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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2000년간 아무도 못 본 ‘평양 신사비’…하루 만에 찾은 조선총독부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2000년간 아무도 못 본 ‘평양 신사비’…하루 만에 찾은 조선총독부

    위당 정인보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1월부터 동아일보에 ‘오천년간 조선의 얼’을 연재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서울신문사에서 이를 ‘조선사연구’라는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했는데, 그 서문 격인 ‘부언’(附言)에서 위당은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고적도보’와 ‘점제현 신사비’를 보고 “일본학자들의 조선사에 대한 고증이라는 것이 저들의 총독 정책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비판했다.●조선총독부의 낙랑군 유적·유물 조작 정인보가 말한 ‘점제현 신사비’는 1914년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평남 용강군 해운면 운평동 평야지대에서 발견했다는 비석이다. 낙랑군 산하 점제현의 현령이 만든 비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산속도 아닌 평야지대에 2000년 동안 서 있던 신사비를 아무도 못 보았는데 이마니시가 하루 만에 발견했다는 것이다.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1892~1960)는 ‘조선고고학연구’(1948년)에서 이마니시는 면장으로부터 ‘고비(古碑)가 하나 있는데 이를 해독(解讀)할 수 있으면 비 아래에 있는 황금을 얻을 수 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증언을 해 준 면장의 이름도 못 대고 사진도 10살 전후의 동네 아이와 찍었다. 북한은 해방 후 이 화강암의 재질과 조성 연대를 분석한 결과 평안도가 아니라, ‘요하지방의 화강석’과 비슷하다고 발표했다. 또한 “발굴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기초에는 시멘트를 썼다”(‘물성 분석을 통하여 본 점제비와 봉니의 진면모’·1995)고 발표했다. 2000년 전에 시멘트를 사용해 세운 희한한 비석이다. 그러나 남한 학계는 이런 숱한 의문은 모른 체하고 무조건 진품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한사군 유적, 유물을 발견했던 ‘신의 손’ 세키노 다다시는 1911년에 황해도 봉산군에서 대방태수 장무이의 묘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세키노는 이왕가(李王家)박물관 소장품 중 봉산군에서 채집됐다는 문자가 새겨진 벽돌 ‘전’(塼)을 ‘우연히’ 발견하고 달려갔다가 기차 안에서 또 ‘우연히’ 철로 연변의 큰 고분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①‘태세무 어양 장무이전’(太歲戊 漁陽 張撫夷塼), ②‘대세신(大歲申) 어양 장무이전’ 등의 전돌들을 발견했는데, ①전돌의 무(戊)자는 60갑자에서 무(戊)년을 뜻하고, ②전돌의 신(申)자는 신(申)년을 뜻한다면서 무신년에 만든 무덤이라고 주장했다. 서진(西晉) 무제(武帝)의 연호인 태강(太康) 9년 무신년(288년)에 만든 대방태수 장무이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문성재 박사가 ‘한국고대사와 한·중·일의 역사왜곡’(2018)에서 중국의 황제나 태수는 대부분 외자 이름을 썼고, 특히 ‘오랑캐를 달랜다’는 뜻의 무이(撫夷)라는 두 글자 이름을 쓴 경우는 전무후무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60갑자 중 ‘갑·을·병·정…‘(甲乙丙丁…) 순서인 천간(天干) 10자 중에서 무(戊)자를 취하고, ‘자·축·인·묘…’(子丑寅卯…) 하는 지지(地支) 12자 중 신(申)자를 조합하는 경우도 전무하다는 것이다. 한 문서에 1자가 있고, 다른 문서에 8자가 있는데 이를 조합하니 18이라면서 2018년에 만든 것이라고 해석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본학계에서도 이 무덤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벌어졌지만 정작 남한 학계는 일체의 논쟁 없이 ‘대방군=황해도설’이 ‘정설’이다. 그런데 중국의 ‘후한서’(後漢書)는 주석에 “군국지(郡國志)에는 서안평현과 대방현은 모두 요동군에 속한다”(西安平, 帶方縣, 屬遼東郡)라고 써서 대방군도 고대 요동에 있었다고 말했지 황해도에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답사 전에 낙랑군으로 결정된 토성 1913년 세키노 다다시 등은 평남 대동군 대동면 토성리가 낙랑군을 다스리던 낙랑군 치지(治址)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1913년 9월 이마니시 류 등은 대동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마을 사람으로부터 토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낙랑군 유적임을 직감하고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하고 있다. 가 보기도 전에 ‘낙랑군 유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니 가는 곳마다 우연히 낙랑군 유적·유물을 발견한 ‘신의 손’을 넘어서는 ‘신통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낙랑태수장’(樂浪太守長)이 새겨진 봉니 등을 발견했다면서 낙랑군 치지라고 우겼지만 후지타 료사쿠가 ‘조선고고학연구’에서 “이 땅을 낙랑군 치지라고 보는 데는 많은 역사학자가 의문을 가졌다”고 말한 것처럼 일본인 학자들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곳은 도시락 싸 들고 놀러 갈 장소지 도저히 한나라 5만 7000 대군과 1년 이상 맞서 싸운 자리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키노 다다시도 ‘조선고적도보’의 ‘낙랑군 치지(治址)’에 물음표(?)를 달아 놓았는지도 모른다.●中 요령성서 ‘임둔태수장 봉니’ 발견 일제가 ‘낙랑군=평양설’의 근거로 주장한 것 중에 봉니(封泥)도 있다. 봉니란 공문을 쓴 죽간·목간 등을 끈으로 묶은 후 점토로 봉하고 인장을 찍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갑자기 봉니가 쏟아져 위조설이 팽배했지만 조선총독부 박물관은 150원 등의 거금으로 구입했다. 그런데 북한학자 박진욱은 “해방 전에 봉니가 가장 많이 나왔다는 곳을 300㎡나 발굴하여 보았는데 단 1개의 봉니도 발견되지 않았다”(‘낙랑유적에서 드러난 글자 있는 유물에 대하여’·1995)고 말한 것을 비롯해여러 토성을 다 발굴했지만 단 한 개의 봉니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1997년 중국 요령성(遼寧省) 금서시(錦西市) 연산구(連山區) 여아가(女兒街) 옛 성터에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가 수습되었다. 조작설이 일지 않은 유일한 봉니다. 그간 남한 학계는 임둔군을 함남·강원도 등지라고 주장했는데, 요령성 서쪽에서 임둔태수장 봉니가 발견되자 일제히 침묵으로 외면하고 있다. ●남한 사학계, 北 연구결과 거꾸로 전달 조선총독부의 고고학이라는 것이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그간 북한과 관계가 단절된 것을 이용해 남한 사학계와 일부 언론이 북한의 연구결과를 180도 거꾸로 뒤집어 발표한 사례가 적지 않다. 조선일보로부터 ‘무서운 아이들’이란 칭찬을 받은 소장 사학자 중 한 명인 안정준은 “일제 시기에 발굴한 낙랑 지역 고분의 수는 70여기에 불과한 반면, 해방 이후 북한에서 발굴한 낙랑 고분의 수는 1900년대 중반까지 무려 3000기에 달한다. 현재 우리가 아는 낙랑군 관련 유적의 대다수는 일제 시기가 아닌 해방 이후에 발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역사비평사·2017)라고 말했다. 북한도 마치 ‘낙랑군=평양설’을 주장한다는 식이었다. ‘한겨레 21’의 전 편집장 길윤형은 ‘국뽕 3각연대’라는 칼럼에서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기의 낙랑고분이 확인됩니다. 옛 사서의 기록과 이 성과를 근거로 한국의 고대 사학자들은 대부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비정합니다”라면서 북한에서 2600여기의 낙랑군 고분을 발굴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북한 학자 리순진은 ‘지난 시기 일제 어용사가들과 봉건 사대주의 사가들의 역사 위조 행위로 만들어진 것이 ‘한나라 낙랑군 재평양설’이라면서 “해방 후 우리 고고학자들은 평양 일대에서 일제가 파본 것의 30배인 근 3000기에 달하는 낙랑 무덤을 발굴 정리했다”고 말했다. 리진순은 “이것들은 한식(漢式) 유적 유물이 아니라 고조선 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낙랑국의 유적 유물임을 실증해 준다”(‘평양 일대 낙랑무덤에 대한 연구’)는 것이다. 북한은 한나라 행정관청인 낙랑‘군’(郡)이 아니라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조에 나오는 낙랑‘국’(國)의 유적·유물이라고 발표했는데, ‘나라 국(國)’ 자를 ‘고을 군(郡)’ 자로 바꿔 속인 것이다. 지난 정권 시절 간첩 조작 사건이 연상되는 역사조작 사례들인데, 왜 사료 조작까지 해 가면서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낙랑군=평양설’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평양서 발견된 ‘中낙랑목간’…메이지 일본식 한자로 기록? 1993년 평양시 정백동에서 이른바 ‘낙랑목간’을 발견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남한 학계는 ‘낙랑=평양설’는 증거라고 환호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 학자들은 이를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는데, 목간을 구경도 못한 남한 학자들은 평양에서 나왔다는 사실에만 주목해서 ‘낙랑=평양설’의 물증이라고 거꾸로 해석했다. 낙랑목간의 이름은 ‘낙랑군 초원(初元) 4년 현별(縣別) 호구부’로서 낙랑군 산하 각 현의 인구를 적은 것이다. 문성재 박사는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에서 중국은 산하 현을 표시할 때 속현(屬縣) 등의 용어를 쓰지 ‘현별’(縣別)이라고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별(別)자’는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이 쓰던 일본식 한자라는 것이다. 일제가 파묻어 놓고 언젠가 써먹으려고 하다가 그전에 쫓겨 간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 “중풍 투병이 짠해서”···노모에 수면제 건넨 아들

    “중풍 투병이 짠해서”···노모에 수면제 건넨 아들

    투병 생활에 지친 어머니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건네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도운 50대 아들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11부(이준철 부장판사)는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A(50) 씨에게 이같이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2013년 7월부터 중풍 등 지병으로 거동할 수 없는 어머니(72)와 함께 살면서 식사를 챙기고 병간호를 하는 등 어머니를 돌봐왔다. 그러던 올해 2월 19일 A 씨는 어머니가 이전보다 호흡이 어려운 상태가 계속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면제를 찾자 “수면제 먹고 돌아가시려고 그러세요?”라고 말한 뒤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에게 “나도 힘들고 어머니도 힘드니 같이 죽읍시다”라며 수면제 40알을 물과 함께 건네 삼키도록 했다. A 씨 어머니는 결국 같은 날 밤에서 다음 날 새벽 사이 급성약물중독으로 숨졌고 A 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의 권유로 자살을 결심하게 됐고 당시 피고인에게 피해자와 동반자살을 하려는 진정한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동기나 경위를 떠나 자신의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는 중대한 범죄에 해당하고 윤리적으로도 용납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이 피해자의 병간호를 도맡으면서 성심껏 돌봐온 점, 피고인의 친척들이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면서 선처를 탄원하는 점, 범행 후 자백하고 깊이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유재석 “김제동 꿈 이루게 했더니 일자리 잃었다”

    유재석 “김제동 꿈 이루게 했더니 일자리 잃었다”

    MBC FM4U ‘굿모닝 FM 김제동입니다’에는 ‘국민MC’ 유재석이 전화로 출연했다.김제동은 “다른 게스트들과는 달리 목소리가 쌩쌩한데 아침에 뭐하냐”고 물었고 유재석은 “아이가 학교 가니까 일찍 일어난다”며 “작가가 전화 연결 가능하냐고 미리 전화와서 화장실 갈까말까 하다가 안 갔다”고 말했다. 김제동은 가수들 경우는 아침에 노래 부르면 목이 막힌다고 하는데 괜찮냐며 걱정하자, 유재석은 “아침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는다. 자다가 깨워도 토크를 하는 스타일로 언제든지 준비가 돼 있다”며 내친김에 노래도 부르며 김제동을 안심시켰다. 유재석은 “예전 프로에서 제동의 어머니도 뵙고 아버지 산소에도 다녀온 적 이 있는데 그때 제동이 외롭지 않게 함께하는 프로그램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게 이뤄졌다”며 김제동의 DJ 데뷔를 축하하면서도 “대신 저는 일자리를 잃었다. 다 가질 순 없지 않느냐. 매주 목요일은 쉰다”고 말해 스튜디오에 폭소가 터졌다. 김제동은 “누가 들으면 나 때문인 줄 알겠다”며 수습하면서도 “목요일에 스튜디오 출연해달라”고 부탁했다. 앞서 지난 3월 방송된 MBC ‘무한도전’의 ‘조금 더 보고싶다 친구야’ 특집에서는 유재석이 김제동의 소원으로 그의 어머니를 만나는 모습이 전파를 탄 바 있다. 유재석은 예전 전현무가 진행할 때 클로징 멘트가 ‘내일도 현무 사랑’이었다며 하나 만들라고 하자 김제동은 즉석에서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유재석은 “‘잘자요’ 어떠냐”며 “새벽 내내 잠 못 드시고 이제 막 눈 붙이는 분들도 계신다. 타깃형 멘트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제안했다. 김제동은 “이제 제발 화장실 좀 가라”며 유재석과의 토크를 마무리했다. MBC FM4U(수도권 91.9MHz)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는 평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방송되며 PC 및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mini’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미우새’ 김종국 “성격으로 보나 뭐로 보나 홍진영” 쌍방 ‘♥’

    ‘미우새’ 김종국 “성격으로 보나 뭐로 보나 홍진영” 쌍방 ‘♥’

    ‘미우새’ 김종국이 홍진영에게 호감을 드러내며 핑크빛 러브라인을 형성했다.지난 29일 방송된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김종국과 홍진영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김종국은 쇼리와 춘식, 태한, 무홍 등 친한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SBS ‘런닝맨’에서 러브라인을 맺는 듯한 모습으로 화제가 됐던 홍진영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김종국은 홍진영에 대해 “괜찮다. 똑똑하고 애교도 많다. 내가 안 그러니까 여자가 애교 많으면 좋지”라고 칭찬하며 “그런데 진영이는 조금 애교가 과하긴 하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김종국은 ‘런닝맨’에 함께 출연했던 홍진영, 이다희, 강한나, 송지효 중 이상형을 꼽아달라는 짓궂은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당황하면서도 “성격으로 보나 뭐로 보나 홍진영이 제일 낫다”라고 꼽았다. “홍진영과 잘 해보라”는 후배들의 말에 김종국은 손사래를 치면서도 “성격도 좋고 사람 자체도 좋지. 물론 번호도 있지만 자주 연락을 하진 않는다. 사적으로 만날 수 있지”라며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종국의 발언에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보던 홍진영과 김종국의 어머니도 내심 미소를 띄웠다. 앞서 빨간 옷을 좋아하는 박수홍과 검정 옷을 좋아하는 김종국 중 누가 좋냐, 공포영화를 누구와 보러가고 싶냐는 질문에 김종국을 선택한 홍진영은 마지막으로 다섯 아들 중 가장 자신의 스타일과 가까운 분께 전화를 걸어달라는 서장훈에 말에 김종국에게 전화를 걸어 김종국 어머니를 흐뭇하게 했다. 전화를 받은 김종국은 홍진영에게 자신을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전했고 김종국 어머니는 “엄마도 진영 씨가 딱 마음에 든다. ‘미우새’ 피디님이 여기 나오면 며느리감 얻어준다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퍼블릭 詩 IN] 로드킬

    [퍼블릭 詩 IN] 로드킬

    그 길로 가라고 해 그 길로만 가야 한대 (따르지 않으면 죽기도 한다지) 그들이 만들어 주었지 묻지도 않았고 알리지도 않았고 (우리를 위한 길이라더군) 뱀도 개구리도 고라니도 멧돼지도 그 길로 가야 한대 그들을 피해서 착한 동물들이 열심히 오간다더라 길 옆 누운 생명은 뱀인가 개구리인가 고라니인가 멧돼지인가 그 길 그 한가운데서 죽은 생명의 붉은 피를 위해 기도하고 남 몰래 피 냄새를 허파에 채운다 그들은 몰라도 나의 길은 죽은 이들이 가고자 하던 길 그들이 알아도 막을 수 없을 나의 길심진경 (강원 정선군청 주민생활지원과 주무관)
  • [뉴스클로즈업]“한국 정부, 사과해야” 50년만에 용기 낸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

    [뉴스클로즈업]“한국 정부, 사과해야” 50년만에 용기 낸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각 국가배상법 제3조에서 정한 배상기준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책임 등에 관해 공식 인정하라.” 지난 22일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 재판장을 맡은 김영란 전 대법관의 주문 선고에 환호와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비록 모의법정이지만 원고로 참석한 두 명의 응우옌티탄은 “이겼다”며 환호했고, 5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상처를 보듬어준 것처럼 기뻐했다. 1968년 2월, 같은 시기 인근의 마을에서 일어난 비슷한 학살사건의 생존자인 같은 이름의 두 사람은 시민법정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8일 한국에 왔다. 원래 알던 사이도 아닌 두 사람이 자신들에게 아픔을 준 나라에 발을 내딛는데, 인천국제공항의 입국장 문이 열리자마자 손을 꼭 잡고 활짝 웃으며 나왔다. 시민법정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임재성(38·변호사시험 4회)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25일 “시민법정에 생존자들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가해자의 논리에서 폭력의 증거로 삼는 것 아닌지 많은 고민을 했는데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두 분의 모습을 보자마자 모든 걱정을 내려놨다”고 설명했다.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마을 학살 생존자인 응우옌티탄(58)씨와 하미마을 학살의 생존자인 응우옌티탄(61)씨가 이번 시민법정의 원고였다. 퐁니마을의 응우옌티탄씨는 2015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을 찾았고, 하미마을 응우옌티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미마을 응우옌티탄은 베트남에서도 자신의 아픔을 알리는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어서 50년 만에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상처를 꺼내는 용기를 낸 것이었다. 시민법정에 참석하도록 설득하는 데 꼬박 두 달이 넘게 걸렸다. 어렵게 낸 결심이어서인지, 25일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국회와 청와대에서 기자회견도 했지만 두 사람이 가장 힘있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곳은 바로 시민법정이었다고 임 변호사는 전하며 “그 분들의 그 많은 고민 속에서 이뤄진 결심이 시민법정 내내 너무 당차보였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중심으로 50개 시민단체가 주최한 시민법정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론화를 위해 추진됐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과 같은 양상이지만, 당시 도쿄의 시민법정은 이미 사법부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온 뒤였다. 한국에서도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1993년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이 나온 이후부터였다. 더 늦기 전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도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변호사들이 모여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계획했다. 과거의 시행착오들을 최대한 줄이고, 생존자들에게 보다 더 진실한 방법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고민하다가 시민법정을 열게 됐다. 일종의 연극과도 같은 모의법정에도 무게감이 달랐다. 재판장인 김영란 전 대법관을 비롯해 이석태 변호사와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재판부로 선정됐는데 “각본이 짜여진 연극이라면, 더구나 내용이 부실하다면 참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고 한다. “원고 패소 판결을 해도 되느냐”고까지 물었다. 준비위원회에서 만든 소장과 각종 증거, 자료들을 재판부도 매우 꼼꼼히 검토했고 정식 재판을 진행하듯 진지하게 임했다.법복을 입은 재판부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 명의 응우옌티탄씨는 힘있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특히 불도저로 마을 전체가 휩쓸려 학살의 증거가 남지 않은 하미마을의 응우옌티탄씨는 “153명의 희생자들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섰다”며 한국군의 수류탄 때문에 어머니와 사촌동생을 잃고, 자신도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된 당시 상황을 또박 또박 밝혔다. 그는 최후 진술에서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내놨다. 그러면서도 “저는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어 외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저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제가 용기를 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라며 오히려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도 시민법정에 나와 연대 발언을 하려 했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김 할머니는 “우리는 아직까지 사과를 받지 못했고,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사과를 받기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면서 “여러분은 꼭 사과를 받길 바란다”며 두 사람에게 응원의 뜻으로 100만원씩을 건네기도 했다.시민법정을 넘어 실제로 우리 법원에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임 변호사는 “재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증거와 자료는 이미 충분히 확보했다”고 자신하면서도 “베트남과의 외교 문제 등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기까진 검토할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에서는 아직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임 변호사는 “원고 두 분이 진짜로 소송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어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면밀히 검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라고 강조했다. 1968년 퐁니마을의 진상조사를 벌이기도 했던 국가정보원(당시 중앙정보부)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 다음달 11일 첫 변론이 열린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헌신과 희생의 삶… 행복한 ‘은하 철도’가 달린다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헌신과 희생의 삶… 행복한 ‘은하 철도’가 달린다

    씨앗 하나가 가장 연약한 잎새를 올리며 딱딱하게 굳은 언 땅을 허물곤 한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작가는 셀 수 없이 많은, 시들어버린 영혼의 잎새에 글이라는 생명의 물을 부어 주는 존재들이다. 세상이 점점 팍팍해져서일까. 유튜브를 보면 세계 각국 언어로 꾸준히 낭송되는 시 한 편이 있다. 이웃 섬나라 까마득한 시골에서 태어나 땅과 평화를 열렬히 사랑했던 시인이자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1896~1933)의 작품이다. 37년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미야자와는 동화작가 권정생, 소설가 김연수 등 문인들도 사랑하는 작가다. 그의 유고시 ‘비에도 지지 않고’는 투병 중이던 1931년 11월 3일 수첩에 쓴 것이다.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 땡볕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이 결코 화내지 아니하며 늘 조용히 웃으며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먹고 모든 일에 제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깨달아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숲속 그늘 아래 초가지붕을 새로 이은 작은 초가집에서 살며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봐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가 계시면 가서 볏단을 날라주고 남쪽에 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부질없는 짓이니 그만두라고 말리고 가뭄 들면 눈물을 흘리고 냉해 닥친 여름엔 허둥대고 모두에게 멍청이란 소리 들으며 칭찬도 듣지 않지만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드라마와 영화에 많이 나오고, 노래로도 많이 불렸다. “비에도 지지 않고/바람에도 지지 않고/눈보라와 여름 땡볕에도 지지 않겠다”는 당찬 다짐으로 시작한다. 비에도, 바람에도, 눈에도, 눈보라와 여름 땡볕에도, 모두 날씨와 관계 있다. 농민들과 함께 살았던 그는 매일 날씨를 걱정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단가(短歌)를 지을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했던 미야자와는 농민들을 착취하는 아버지가 미워 가출을 하기도 했었다. 그의 고향 이와테현 하마나키는 휴전선처럼 북위 38도선 근방이지만, 여름날 땡볕 날씨에 오호츠크해의 냉습한 동북풍이 불어오면 갑자기 냉해가 닥쳐 “추위 닥친 여름엔 허둥대”야 했다. 모리오카 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한 그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늘 조용히 웃으며 이겨 나가야 한다며 농촌 청년들과 악단과 극단을 만들기도 했다.가난한 농민들을 착취하는 돈 많은 부모를 떠나 초가집에서 살며 농사를 짓고 농업학교 교사로 일했다. “하루에 현미 네 홉과/된장과 나물을 먹으며”에는 채식주의자였던 미야자와의 식습관이 보인다. 세상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육식보다 채식을 해야 한다며 농민들에게 채식주의를 권했다. 일일현미사홉(一日玄米四合)에 만족하며 전쟁에 반대했던 미야자와와 달리, 태평양전쟁 때 일본 군부는 세계 정복을 꿈꾸며 하루에 이홉(二合)만 먹을 것을 국민에게 강요했다.1926년 그는 농촌 지역 향상을 위해 라스지인협회(羅須地人協會)를 설립하고 농작과 비료 연구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동쪽에 병든 아이”,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 “남쪽에 다 죽어가는 사람”,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으로 상황이 이어지는데 이것은 동서남북으로 어려운 농민들 곁으로 분주하게 다가갔던 미야자와의 일상 그 자체다. 일본어 원문을 보면 몇 개의 명사를 한자로 쓰고 나머지는 가타카나로만 썼다. 가타카나 표기는 곱씹으며 읽어야 한다. 마치 기억하며 읽으라는 시인의 기호 같다. “그런 사람이/나는 되고 싶다”라는 표현에 구도자로서 아직 경지에 오르지 못한 안타까움이 스며 있다. 시에 이어 “남무”(귀의합니다), “묘법연화경(법화경)”이 쓰여 있는데, 이는 “법화경으로 귀의합니다”라는 뜻이다. ‘법화경’을 탐독하고 1921년부터 대승불교를 포교했던 미야자와의 손길이 보인다.안타깝게도 농민들은 미야자와의 정성을 간섭으로 여기고 불편해했다. 장마와 냉해 때문에 모든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자, 농민들은 부잣집 도련님의 철없는 행동이라며 배척하기까지 했다. 농민들에게도 따돌림을 받았지만, 그는 어떡하면 농민들에게 즐거움을 줄까 생각했다. “농민들의 삶을 위로해 줄 글을 쓰자.” 그는 동화집 한 권과 시집 한 권을 자비로 출판했다. 야만의 군국주의 시대에 그의 책을 산 구매자는 다섯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죽고 남아 있는 수많은 메모 중에서 친구들은 한 편의 동화를 찾아냈다. 그것이 바로 동화 ‘은하철도의 밤’이었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구구구”라는 후렴을 듣기만 해도 영상이 떠오르는 세대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1980년대에 방송된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말이다. 원작 만화를 그린 만화가 마쓰모토 레이지가 미야자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읽고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은하철도의 밤’에서는 몇 가지 신화적 요소를 볼 수 있다.이야기는 교실에서 선생님이 은하수란 무엇인지 설명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수줍은 성격 탓에 아이들에게 왕따당하는 주인공 조반니에게는 곁을 지켜주는 친구 캄파넬라가 있었다. ‘은하 축제의 날’에 놀 일을 생각하는 친구들과 달리 가난한 조반니는 인쇄소에서 일해야 했다. 몇 푼 번 돈으로 빵과 설탕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병든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릴 뿐이다. 조반니가 엄마를 위해 우유를 사던 그날은 ‘은하 축제의 날’이었다. 이날엔 하눌타리 열매의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등불을 넣어 강에 띄우는 놀이를 한다. 왕따당한 조반니가 외로이 언덕에 올라 밤하늘을 바라보는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언덕 풀밭에 쓰러져 잠시 쉬고 있는데, 뒤쪽에서 “은하정거장, 은하정거장”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수억 마리의 반딧불이가 날아오듯 밝아졌다가, 정신을 차리니 조반니는 어느새 기차 안에 있다. 기차 안에서 물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새까만 윗도리를 입은 친구 캄파넬라를 발견한다. 캄파넬라의 모습은 이미 죽은 자의 모습이다. 캄파넬라의 얼굴은 어딘가 좋지 않은 듯 창백했습니다. 그러자 조반니도 어디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묘한 기분이 들어 입을 다물었습니다. (미야자와 겐지 전집 1/너머·2012·246쪽) “젖은 듯한 검은 옷”은 물에 빠져 죽은 캄파넬라의 모습이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는 ‘고사기’(고대 일본의 신화·전설 및 사적을 기술한 책)에 나오는 창세신화에서도 볼 수 있다. 이미 죽어 저세상에 있는 이자나미를 만나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자나기가 저세상에 가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 신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캄파넬라는 은하철도 안에서 계속 엄마를 걱정한다. “엄마가 날 용서해 주실까?” 캄파넬라는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힘겹게 참고 있는 듯했습니다. “난 모르겠어. 하지만 누구라도 정말로 좋은 일을 하면 가장 행복한 거지. 그러니까 엄마는 나를 용서해 줄 것으로 생각해.”(위의 책, 249쪽) 이 대화 부분이 무슨 뜻인지, 왜 캄파넬라는 엄마에게 미안해하는지, 왜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지, 작품을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끝까지 읽고 나면 캄파넬라가 강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 죽은 뒤, 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동화는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계속 몇 번이고 묻는다. 미야자와의 작품에서 보이는 신화는 허황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다. 조반니가 눈을 떴을 때 모든 게 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반니의 가슴은 이상하게 뜨거웠고 볼에는 차가운 눈물이 흘렀다. 마을에 내려왔을 때 친구 캄파넬라가 축제 때 강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는 말을 듣는다. 꿈속에서 만난 캄파넬라는 이미 죽은 존재였던 것이다. 캄파넬라는 죽어 지금 저 은하 끝 하늘나라로 사라졌고, 자신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차표 덕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을 깨닫는다. 캄파넬라가 친구 자네리를 구하고 죽은 희생정신은 바로 미야자와가 평생 지켜오던 헌신적인 삶이었다. 남을 위해 사는 삶 자체가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진정한 행복에 대한 답으로 미야자와는 타인의 행복을 위한 숭고한 자기희생을 제시했다. 결핵으로 37세에 요절한 그는 평가받지 못하다가 이후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열도는 식지 않는 ‘겐지 붐’에 휩싸여 있다고 할 만큼 일본엔 열광적인 독자군이 형성돼 있다. 2000년에 아사히신문에서 발표한 1000년간 일본인이 좋아하는 문인 순위를 보면 1위는 나쓰메 소세키, 2위는 무라사키 시키부, 3위는 시바 료타로, 4위는 멍청이라고 조롱받던 미야자와 겐지가 올라 있다. 필자가 일본에 유학 갔던 1996년은 미야자와 겐지 탄생 100주년의 해였기에 영화도 나오고,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특집과 드라마가 방영됐다. 대형 서점뿐만 아니라 동네 책방에도 입구까지 1년 내내 그의 책들이 쌓여 있었다. 마구 출판되던 한국어판 전집은 도서출판 너머에서 잘 정리돼 5권짜리 전집으로 출판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오랫동안 수록됐고, 환멸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자연과 우주의 교감을 이루고 있는 그의 작품은 진정한 행복을 제시하는 바로 그 지점, 절망의 동토(凍土)를 뚫고 고개 드는 연둣빛 잎새처럼 부드럽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증평 모녀’ 딸 살해 뒤 극단적 선택…경찰, 여동생 구속영장 신청

    ‘증평 모녀’ 딸 살해 뒤 극단적 선택…경찰, 여동생 구속영장 신청

    충북 증평군 모녀 사망 사건은 엄마가 딸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를 알고도 방치한 채 해외로 도피했던 여동생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충북 괴산경찰서는 여동생 A(36)씨로부터 “지난해 11월 조카가 언니에 의해 사망했고, 지난해 12월 초에는 언니도 숨진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19일 밝혔다. 전날 인천공항에서 체포된 A씨는 조사에서 “지난해 11월 27~28일쯤 언니에게 전화를 받고 아파트를 찾아가보니 조카가 침대에 숨진 채 누워 있었고, 언니는 넋이 나간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이어 “2시간 뒤에 자수할 테니 가만히 있으라‘는 언니의 말을 듣고 나와서 다음날 필리핀으로 출국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12월 5일 언니 집을 다시 찾아가보니 언니도 숨져 있었다”면서 “언니의 신용카드, 휴대전호, 도장이 든 가방을 들고 나와 3일 뒤(12월 8일) 마카오로 출국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언니와 조카가 숨진 것을 신고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 두려워 출국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마카오에 머물면서 숨진 언니의 SUV 차량을 처분해 돈을 챙기기로 마음먹고 올해 1월 1일 다시 입국했다. 1월 2일 서울의 한 구청에서 언니의 인감증명서를 대리 발급받는 등 매매서류를 갖춰 중고차 매매상을 만나 차를 1350만원에 팔았다. 그러나 이 차는 이미 캐피탈 회사가 1200만원의 저당권을 설정해놓은 상태였다. A씨는 차를 판 날 언니 통장에 입금된 매각대금을 인출한 뒤 다음날 인도네시아로 출국, 모로코 등에 머물다 지난 18일 오후 8시 45분쯤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경찰에 체포된다. 경찰은 A씨가 주거가 일정하지 않고 도주 우려가 있는데다 언니와 조카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죄책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A씨에게 사문서 위조, 사기 혐의를 적용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손 쓸일 없는 자율주행 스마트 카트

    [서울포토] 손 쓸일 없는 자율주행 스마트 카트

    17일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 하남 내 트레이더스에서 모델이 자율주행 콘셉트 스마트카트인 ’일라이(eli)’를 시범운행하고 있다. ’일라이’는 이마트가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개발한 스마트카트다. 이 카트는 사람을 인식할 수 있는 센서와 음성인식 기능, 상품 무게 인식 센서 등이 달려 있어 상품이 있는 자리로 고객을 안내하거나, 고객과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도록 제작됐다. 카트를 통해 즉시 결제도 가능하다. 2018. 4. 17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쇼핑 카트도 자율주행… 스마트 카트 ‘일라이’

    [서울포토] 쇼핑 카트도 자율주행… 스마트 카트 ‘일라이’

    17일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 하남 내 트레이더스에서 모델이 자율주행 콘셉트 스마트카트인 ’일라이(eli)’를 시범운행하고 있다. ’일라이’는 이마트가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개발한 스마트카트다. 이 카트는 사람을 인식할 수 있는 센서와 음성인식 기능, 상품 무게 인식 센서 등이 달려 있어 상품이 있는 자리로 고객을 안내하거나, 고객과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도록 제작됐다. 카트를 통해 즉시 결제도 가능하다. 2018. 4. 17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길섶에서] 아버지의 독설/김성곤 논설위원

    아버지는 올해 연세가 여든아홉이시다. 쌀가마니도 거뜬히 드신다. 그 연세에 농사짓는 것을 자랑으로 아신다. 둘째 딸 집들이 때문에 서울에 오셨던 아버지가 주무시다가 호흡곤란과 어지럼증을 호소해 응급실에 모셨다. 며칠 전부터 기침과 가래로 걱정하던 차였다. 급성 폐렴이란다. 한나절 전만 해도 멀쩡하시던 분이 산소호흡기 차고, 의식이 혼미한 것을 보니 “노인은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 닷새쯤 되니 차도가 있으셔서 호흡기 떼고 휠체어도 안 탄 채 링거만 꽂고 계신다. 그런데 어제 사달이 났다. 병실 안은 덥고, 답답해 밤에 복도에 있는 빈 병상에 누워 계시다 반대편 병실 분들과 다투신 모양이다. “홍시감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땡감도 떨어져. … 늙은이가 힘들어 거기 좀 누웠다고 쫓아내?” 독설이다. 몸이 불편하니 이해심도 적어지고 곳곳에서 부딪친다. 갈수록 자신과 가족만 안다. 몸이 좋아져 입이 열리니 좋지만, 옆 환자들에게 폐가 될까 조심스럽다. 요즘 우리 형제들은 돌아가면서 병간호를 한다. 아니 간호인지 감시인지 모호해졌다. 웃다가도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늙어 가는가…. sunggone@seoul.co.kr
  • 1년 만에 귀가한 아빠 보자 눈물 쏟는 두 자매

    1년 만에 귀가한 아빠 보자 눈물 쏟는 두 자매

    미국 오하이오주(州) 블루록에 사는 두 자매 토니(7)와 브레아(5)에게 지난달 31일(현지시간)은 생애 가장 기쁜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1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해 만날 수 없었던 아버지 테리 괴트케가 깜짝 귀가했기 때문이다. 이날 두 자매와 함께 남편의 귀국을 누구보다 반긴 브리타니 괴트케는 페이스북에 남편이 선물한 깜짝 이벤트를 영상으로 공개했다. 두 딸과 함께 집에서 파티를 열고 있었던 브리타니는 멀리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두 딸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왔음을 알았지만 두 딸을 위해 애써 모른 척했다. 때마침 소방차가 멈춰섰고 거기서 헬멧과 마스크를 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소방관 한 명이 내렸다. 그러더니 그는 두 소녀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더니 헬멧과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마스크까지 완전히 벗으며 두 소녀에게 미소를 보이자 토니와 브레아는 “아빠”라고 외치며 그의 품에 안겼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그만 울고 만 것이다. 사실, 두 소녀의 아버지가 소방차를 타고 돌아온 이유는 바로 두 딸의 꿈이 소방관이기 때문이다. 두 소녀는 파병을 떠났던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소방관이어서 자신들도 커서 소방관이 되길 바라고 있다. 아마 두 소녀는 이날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공개된 영상은 브리타니의 페이스북에서만 조회 수 31만 회를 기록했으며 ABC와 CBS뉴스 등 현지언론에도 소개돼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었다. 사진=브리타니 괴트케/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문재인, 천안함 주범에 면죄부”…MB의 ‘옥중서신’

    “문재인, 천안함 주범에 면죄부”…MB의 ‘옥중서신’

    구속 직전 작성한 페이스북 원고 공개“화풀이 넘어 자유민주주의 와해 의도” 성토이명박(MB) 전 대통령은 9일 “오늘 검찰의 기소와 수사결과 발표는 가공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그에 따라 초법적인 신상털기와 짜 맞추기 수사를 한 결과”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헌정사상 유례없는 짜 맞추기 표적수사를 진행해 온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은 나를 구속기소를 함으로써 이명박을 중대 범죄의 주범으로, 이명박 정부가 한 일들은 악으로, 적폐대상으로 만들었다”며 “검찰은 일부 관제언론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혐의를 무차별적으로 유출해 보도하도록 조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덧씌워진 혐의가 마치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왜곡되고 전파됐다”며 “검찰이 원하는 대로 진술하면 구속되지 않고, 그렇지 않으면 줄줄이 구속되는 현실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명박이 목표다’는 말이 문재인 정권 초부터 들렸다. 그래서 저 자신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한풀이는 있을 것이라 예상했고, 제가 지고 가야 할 업보라고 생각하며 감수할 각오도 했다”며 “그렇지만 이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저를 겨냥한 수사가 10개월 이상 계속됐고, 댓글 관련 수사로 조사받은 군인과 국정원 직원 200여 명을 제외하고도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 등 무려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며 “가히 무술옥사(戊戌獄事)라고 할 만하다”고 꼬집었다. 2018년 무술년에 발생한 옥사(獄事·살인이나 반역 등의 중대한 범죄를 다스리는 일)라는 의미에서 ‘무술옥사’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안보의 최일선에 섰던 국정원장과 청와대 안보실장, 국방부 장관들은 거의 대부분 구속 또는 기소된 실정”이라며 “그들에게 씌워진 죄명이 무엇이든 간에 외국에 어떻게 비칠지 북한에 어떤 메시지로 전달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전용 ▲다스 소유권 문제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등 각종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구속 이후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은 그동안 공격을 자제해 온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도 작심한 듯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 전 대통령은 “감정적인 화풀이고, 정치보복인가보다 했지만, 그것은 저 이명박 개인을 넘어서 우리가 피땀 흘려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은 천안함 폭침을 일으켜 46명의 우리 군인들을 살해한 주범이 남북 화해의 주역인 양 활개 치고 다니도록 면죄부를 줬다”며 “매년 천안함 묘역을 찾겠다고 영령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덧붙였다. 그는 “저는 학생 시절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가 감옥에 갔다. 그 이후에는 전 세계를 무대로 뛰었던 기업인이다”라며 “대통령이 돼서는 국민의 지지 속에 대한민국의 자유와 경제 발전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렇기에 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깊이 분노한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과 대북 정책에 대해 대한민국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들기 위한 시도라고 규정하고, 보수진영의 결집을 주문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전 대통령은 구속 이전에 이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작성했으며, 기소 시점에 맞춰 글을 올리도록 측근들에게 맡겨 놓았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文 “흥남철수 때 훌륭한 선원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것”

    文 “흥남철수 때 훌륭한 선원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것”

    국가보훈처는 6·25 전쟁 흥남철수 작전 당시 피란민을 태우고 남쪽으로 내려온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원이었던 미국인 벌리 스미스(89)가 5일 한국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크루즈 여행 중인 스미스는 여객선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해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에 머무를 예정이다.흥남철수 작전은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국군과 미군이 함경남도 흥남에서 철수하며 약 10만명의 피란민을 함께 이송했던 작전이다. 12월 23일 흥남에서 출항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군수물자 25만t을 버리고 피란민 1만 4000여명을 경남 거제까지 무사히 태워 온 일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도 당시 이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이다. 스미스는 방한에 앞서 편지를 썼고, 문 대통령은 감사와 환영의 뜻을 담은 답장을 전했다. 스미스가 지난 1월 22일 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최근 문 대통령의 부모님이 1950년 크리스마스에 흥남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탑승했던 피란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5일부터 이틀간 방한 기간 동안 문 대통령이나 흥남철수 이야기를 아는 지인을 거제도에서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은 답장을 통해 “스미스씨를 비롯해 ‘시맨십’(항해술)을 가진 훌륭한 선원들이 없었다면 부모님이 거제도에 오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이어 “마음 같아서는 직접 부산에서 맞이하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일정이 허락하지 않아 아쉽다”면서 “어머니도 91세 고령이셔서 인사드리러 가기가 쉽지 않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보훈처에 예를 다해 맞이하고 환영 오찬을 하도록 지시했다. 부인, 딸과 함께 한국에 온 스미스는 6일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의 흥남철수작전 기념비를 찾아 빅토리호를 이끌었던 레너드 라루 선장과 승선원 등을 위한 추도행사에 참석한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승선원 중 생존자는 모두 3명이다. 1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루니는 지난해 6월 미국에서 문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종수 LA 목격담 “여행 온 김에 식당 들렀다며 사인해줬다”

    이종수 LA 목격담 “여행 온 김에 식당 들렀다며 사인해줬다”

    잠적 중인 배우 이종수가 미국 LA에서 목격됐다는 보도가 나왔다.5일 스포츠조선은 “한 제보자가 4일 ‘며칠 전 LA 한인타운의 한 식당에서 이종수 씨를 직접 봤다. 주인 아주머니도 저에게 탤런트 이종수가 밥 먹고 있다며 자랑식으로 얘기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종수는 지난달부터 LA에 머물고 있으며 지난달 21일에 이 식당에 나타났다. 이종수는 “여행을 온 김에 식당에 들렀다”고 말하며 사인까지 해줬으며 식당 직원들은 이종수가 당시 불안해보이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종수는 지인 A씨의 소개로 결혼식 사회를 봐주기로 한 후 계좌로 돈을 입금 받고 결혼식 당일 종적을 감췄다. A씨는 지난달 28일 이종수를 서초경찰서에 고소했고 이후 소속사와의 합의로 고소는 취하했다. 이종수는 현재 잠적 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미국에 체류 중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수의 소속사 국엔터테인먼트는 연락두절 상태가 지속되면, 가족들과 상의 후 실종신고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월드피플+] 가난한 美17세 소년, 명문대학 20곳 동시 합격

    [월드피플+] 가난한 美17세 소년, 명문대학 20곳 동시 합격

    미국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대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감격적인 순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일(현지시간) 미 CNN, 뉴욕타임즈 등 현지언론은 텍사스 주 라마 고등학교 학생 마이클 브라운(17)이 전액 장학금 지원과 함께 미 명문대학 20곳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브라운은 저소득 가정에서 자랐지만 ‘스탠포드 대학교 입학’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의 어머니도 브라운이 좋은 학교에 들어갈 것이라 믿고 아들을 묵묵히 뒷바라지 했다. 학교 지원 당시 그는 4.86의 우수한 평점(GPA)외에 토론 동아리나 청년 민주주의 같은 특별활동에도 참여한 이력을 열거했다. 그 결과 브라운은 하버드, 예일, 프리스턴 등 미 북동부 8개 명문대학인 아이비리그를 포함해 스탠포드, 노스웨스턴, 조지타운, 캔더빌트, 존스 홉킨스 대학 등의 합격장을 거머쥐게 됐다. 또한 대학들은 그에게 우리 돈으로 2억 8000만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시했다. 그는 다음달 1일까지 어느 대학에 입학할지 선택해야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브라운은 “그렇게 많은 통지서를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충격을 받았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큰 꿈을 가져라, 겁내지 마라. 가족을 자랑스러워하고 지역사회와 나 스스로를 사랑하라. 그리고 당신의 어려움을 공유하라”며 세상에 외쳤다. 사진=뉴욕타임즈, 유튜브캡쳐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나름 YG’ 유병재, 한달 수입 물어보니...“가족들 씀씀이 헤퍼지고 있어...고민”

    ‘나름 YG’ 유병재, 한달 수입 물어보니...“가족들 씀씀이 헤퍼지고 있어...고민”

    ‘라디오쇼’ 유병재가 유쾌한 입담으로 웃음을 전했다.3일 방송된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방송작가 겸 코미디언 유병재(31)가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병재는 이날 방송에서 오는 27일 열리는 스탠드업 코미디쇼 ‘B의 농담’ 소식을 전하며, 팬들의 많은 관심에 감사인사를 했다. 유병재는 “지난해 8월쯤 했던 ‘B의 농담’을 조금 더 크게 연다”며 “게스트는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다 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진행된 ‘B의 농담’ 예매에서 ‘전석 매진’이라는 쾌거를 이룬 것을 언급,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제 입으로 말하겠다. 그냥 매진이 아니고 1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서버도 다운됐다”고 자랑해 웃음을 자아냈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자 최근 여러 TV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유병재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DJ 박명수는 “한 달에 얼마나 버냐”며 유병재에게 직접 물었다. 이에 유병재는 “아직 4월인데, 올해 들어 가장 경박한 질문이었다”며 “숫자까지는 실례인 것 같고 나쁘지 않게 벌고 있다”고 재치있게 답했다. 이어 “아버지가 차 리스(자동차를 빌려 타는 금융상품)가 다 돼서 새 차로 바꾸고 싶어 하신다. 아버지 연락이 잦아지고 차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다”면서 “어머니도 새로운 집터를 보러 다니고 계신다.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유병재는 “제가 YG에 들어간 이후 가족들 씀씀이가 헤퍼지고 있다. 저를 ‘비빌 언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고민이 많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편 유병재는 오는 27일~29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유병재 스탠드업 코미디쇼-B의 농담’을 진행한다. 사진=유병재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해피투게더3’ 워너원, 사상 최초 빽도사태..김재환 “꼴등할 것 같다”

    ‘해피투게더3’ 워너원, 사상 최초 빽도사태..김재환 “꼴등할 것 같다”

    ‘해피투게더3-내 노래를 불러줘’에서 워너원이 사상 초유의 ‘빽도사태’를 맞이했다.29일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3’ 측은 ‘내 노래를 불러줘-1등가수 왕중왕전’에 출연한 소찬휘, 워너원, 다비치, 하이라이트의 스틸을 공개했다. 이날 ‘1등가수 왕중완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본 게임 시작과 함께 진풍경이 펼쳐졌다. 시작 8분만에 워너원의 노래가 선곡된 것. 이는 역대 최단 시간 퇴근 기록인 ‘김태우의 13분’보다 무려 5분이나 빠른 기록이었다. 이에 비롯해 현장 모든 이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워너원은 기쁨의 세리머니도 잠시, 노래방 습격을 위해 부리나케 녹화장을 박차고 나갔다. 그러나 곧이어 대반전이 펼쳐졌다. 환희에 싸여 노래방으로 이동했던 워너원이 시무룩하게 돌아온 것. 이유인즉슨 노래방 습격 직전에 손님들이 노래를 꺼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에 MC 유재석은 자비 없이 “실패”를 외쳤고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던 나머지 출연자들은 “말도 안 된다”, “이거 짠 게 아니라 진짜 그냥 끈 거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이 눈앞에서 ‘대기록’을 놓친 워너원은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다시금 ‘1등 가수’의 기회를 얻은 나머지 가수들은 쾌재를 불러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후문. 한편, 충격에 넋을 놓은 김재환은 “우리가 꼴등 할 것 같다”고 푸념해 강다니엘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 이에 ‘내 노래를 불러줘’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워너원이 한 번의 실패를 딛고 퇴근에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증을 높이는 가운데 ‘1등가수 왕중왕전’의 최종 1등은 누가 될 지 관심이 한껏 고조된다. 한편, KBS2 ‘해피투게더3’은 29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사진제공=KBS2 ‘해피투게더3’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치매걸린 아내 향한 80대 할아버지의 순애보

    치매걸린 아내 향한 80대 할아버지의 순애보

    치매 환자인 아내를 간호한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내밖에 모르는 80대 할아버지의 순애보가 화제다. 27일(현지시간) 미 타임지의 주간 잡지 피플은 펜실베니아주에 사는 칼 가코노(88) 할아버지와 매리 제인(86) 할머니의 사연을 소개했다. 사연에 따르면, 두 사람은 70년 전 같은 고등학교에서 선 후배로 처음 만났다. 할머니에게 첫눈에 반한 할아버지는 관심을 표했고, 할머니도 그런 할아버지가 싫지 않아 데이트를 시작했다. 이후 연인사이로 발전해 할머니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1952년 현재 살고 있는 마을에 정착한 부부는 슬하에 여섯 자녀를 두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냈다. 딸 베키는 “부모님은 항상 서로 깊이 존경했다.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지만 이를 인정하고 싸우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평온했던 가정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9년 전, 할머니에게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다. 할아버지는 그러나 아내가 치매로 인해 집에서 생을 마감하길 원치 않았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아픈 아내를 돕기 위해 사랑스러운 일과를 보내고 있다. 아침 일찍 아내를 씻겨 매일 다른 옷과 신발, 장신구를 골라 입힌 다음 휠체어에 앉힌다. 그리고 함께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남은 시간을 밖에서 아내와 보낸다. 딸은 “아버지가 건강한 편이지만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지만 한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며 “이는 놀라운 사랑의 힘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혼 생활 동안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왔던 아버지가 이제 자신이 돌봐줄 차례라고 느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자살 유가족, 슬퍼할 자격 없다는 낙인에 더 큰 고통”

    “자살 유가족, 슬퍼할 자격 없다는 낙인에 더 큰 고통”

    “자살 유가족은 가족의 죽음에 슬퍼할 새도 없이 ‘가족끼리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일이 생기냐’는 비난의 시선을 받아요. 자살 유가족은 슬퍼할 자격조차 없는 것처럼 인식되는 게 한국 사회죠.”한국자살사별자단체 ‘미안하다고맙다사랑한다’(미고사)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강명수씨는 지난 2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자살 유가족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현실을 설명했다. 강씨는 “질병이나 사고로 가족이 사망한 경우와 달리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위로’와는 거리가 멀다”고 아쉬워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평균 1만 3000명이다. 13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에 따라 그들의 가족인 자살 유가족의 수도 매년 8만여명씩 발생한다. 지난 10년간 누적된 인원은 최소 70만명으로 추산된다. 자살 유가족 대부분은 정신건강에 적신호를 보인다. 우울증을 겪는 유가족은 일반인 대비 7배이며 자살 위험도 8.3배나 높다. 그는 “자조모임에 오신 분 가운데 유년 시절 아버지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는데 수십년 뒤 어머니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이 있었다”면서 “자살 유가족은 ‘자살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에 자살 예방 차원에서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이러한 자살 유가족들과 아픔을 공유하는 구성원이자 전문 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우연히 상담 공부를 시작하게 됐지만 이는 아마도 10여년 이상 우울증을 앓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어머니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처럼 외부에 아픔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 ‘미고사’에 참여해 자조모임의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1400명 이상의 회원이 함께하는 미고사는 매달 1회씩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 실제 자살 유가족은 다른 유가족과 함께하는 자조모임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다. 강씨는 “유가족의 자발성에 기대기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지역별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을 작은 단위로 꾸려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살 사건이 발생한 뒤 유가족이 직면하는 경찰 조사에서부터 사망신고, 장례, 심리상담을 안내해 주는 ‘원스톱’ 시스템 도입도 절실하다고 강씨는 덧붙였다. 그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자책감, 사회적 비난 등 정신적인 고통이 큰 상태임에도 경찰과 지원센터 간 연계가 미흡해 자살 유가족 스스로 지원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서 “사건 발생 이후 심리상담 등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고통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 1월 복지부 산하 자살예방정책과를 신설하고 16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을 2016년 25.6명에서 2022년 17.0명까지 낮추기 위한 정책을 펼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씨는 “자살 예방 대책에 자살 유가족에 대한 심리상담 지원예산 확대안 등이 포함됐지만 동시에 자살 유가족을 발굴해 장기적으로 사후관리까지 해 주는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자살 유가족이 또 다른 자살 유가족을 돕는 ‘자원봉사자’나 ‘전담지도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 사진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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