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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실천의 울림’… 행복한 구민, 보람찬 공직자

    ‘나눔실천의 울림’… 행복한 구민, 보람찬 공직자

    “저를 기다리는 어르신을 떠올리면 봉사를 거를 수 없어요.” 매월 격주 월요일 독거노인에게 도시락과 반찬을 배달하는 서희숙 서울 중구 주무관은 20일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는 “20년 학창시절을 보낸 지역이라 애정을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부모님 같다”며 “2년 넘도록 뵙는 분들이라 점심을 드린다는 생각보다는 그 사이 건강을 해치진 않았는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어 “눈 때문에 늦게 도착한 날에도 골목에서 기다리는 할머니도 계시고 늘 커피 마시고 가라고 해서 커피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어르신도 있다”며 또 웃었다. 중구가 2012년부터 1200여명에 이르는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연 8시간 이상 자원봉사 의무 이수제로 눈길을 끈다. 첫해 2283명이 1만 133시간, 지난해엔 2248명이 1만 434시간 활동했다. 도배·장판 교체, 노숙인 배식, 복지시설 청소, 자매도시 일손 돕기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의무 이수제는 기업과 학교, 단체 등 자원봉사 기능 확대 계획을 세우면서 첫발을 뗐다. 공무원이 솔선수범해야 민간에서도 적극성을 보일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덕분에 직원들 사이에 나눔 실천이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구 관계자는 “골목 청소, 어르신 배식 봉사 등을 부서끼리 함께한다”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했지만 보람이 커 개인도 주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의무 이수는 상·하반기 각 1회 이상이다. 취지에 맞게 업무시간 외 공휴일, 주말 등에 펼친다. 구는 모든 직원을 ‘1365자원봉사 포털’에 등록해 개인별 실적을 관리하도록 했다. 특히 올해는 소외계층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맞춤형 봉사로 강화한다. 이를 위해 중구자원봉사센터, 남대문상담센터 등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과 연계해 활동하도록 지원한다. 부서별 직원들의 재능 현황을 ‘재능나눔 시스템’에 올려 집 수리, 외국어, 컴퓨터, 예술, 상담·멘토링 등 나눔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구는 봉사활동 직원들을 위해 자원봉사자 상해보험에 가입하고, 연 최대 30시간을 상시학습으로 인정할 계획이다. 최창식 구청장은 “직원 자원봉사를 통해 지역 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적극 동참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임주형 기자 소치 프리즈마] 최고의 후원자 ‘가족’

    [임주형 기자 소치 프리즈마] 최고의 후원자 ‘가족’

    지난 18일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팀 박승희(22·화성시청)는 동료들이 누리지 못한 행운 하나를 만끽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가족과 함께 나눈 것. 박승희는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관중석에서 응원한 언니 박승주(24·단국대)와 얼싸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대부분 선수는 가족을 한국에 둔 채 머나먼 러시아로 날아왔지만, 박승희는 언니도 국가대표(스피드스케이팅)인 덕에 현장에서 직접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이날 박승희는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경기 전 잠깐 박승희를 봤는데 왼쪽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었다. 지난 13일 500m에서 다친 무릎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언니와 이상화(25·서울시청)가 관중석에서 내건 플래카드를 보며 힘을 얻었다. “금메달 아니어도 괜찮아♥ 다치지만 말아죵♥ 이미 당신들은 쵝오. 달려랏! 조해리 박승희 공상정 김아랑 심석희” 최근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금메달리스트 케이틀린 패링턴(미국)이 “아버지가 소를 팔아 후원했다”고 밝혀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는데, 한국 선수들의 부모와 가족들도 패링턴의 아버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심석희(17·세화여고)의 아버지는 딸을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강릉에서 서울로 이사했다. 한국체대 아이스링크가 있는 서울 송파구 근처로 가기 위해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고 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본떠 ‘심부(沈父)삼천지교’라는 말이 나왔다. 이상화의 부모는 빚을 져 가며 딸의 전지훈련 비용을 만들었고, 역시 스케이트 선수였던 오빠는 동생에게 가족의 지원이 집중되도록 정들었던 스케이트화를 벗어 던졌다. 선수들에게 가족은 코치이자 든든한 조언자이기도 하다. 루지 김동현(23·용인대)은 지난 10일 남자 싱글 4차 시기를 마친 뒤 기자와 만나 아버지가 보낸 카카오톡을 살짝 보여 줬다. “3, 4차전도 지금처럼 차분하게, 욕심 내지 말고 정상 페이스로 하고~절대 부담은 금물~!!(우리 아들~!! 코스는 감 잡은 것 같던데~!!)” hermes@seoul.co.kr
  • 추사랑 미니마우추 변신, 수영복에서 찜질복까지 ‘깜찍 폭발’

    추사랑 미니마우추 변신, 수영복에서 찜질복까지 ‘깜찍 폭발’

    ‘추사랑 미니마우추’ 추사랑이 ‘미니마우추’로 등극했다. 9일 방송되는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이종격투기 추성훈 선수의 딸 추사랑이 미니마우스 수영복을 입고 ‘미니마우추’로 변신한다. 앞서 오키나와의 수영장에서 귀여운 수영복 모습을 공개했던 추사랑은 이번엔 설 특집 녹화를 위해 한국을 방문해 스파를 찾았다. 평소 운동을 싫어했던 추사랑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은 수영이다. 추성훈은 전 수영 국가대표였던 할머니에 대해 “할머니도 수영으로 태릉에 있었다”며 “추사랑이 수영을 좋아하는 건 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밝혔다. 아빠 추성훈에게 물에 뜨는 법과 발장구치는 법을 배운 추사랑은 미니마우스 전신 수영복을 입고 ‘미니마우추’로 변신해 수영연습을 하며 즐거워했다. 네티즌들은 “추사랑 미니마우추 정말 귀엽겠다”, “추사랑 미니마우추 본방사수 해야지”, “추사랑 커서 수영선수 되려나”, “추사랑 미니마우추 사랑스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추사랑 미니마우추 변신은 오는 일요일 오후 4시 55분 방송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KBS(추사랑 미니마우추)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흉터없고 정밀한 소이증 수술법 개발 화제

    흉터없고 정밀한 소이증 수술법 개발 화제

    소이증 수술을 위한 새로운 방법이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프로필 성형외과(대표 정재호)의 정재호 원장은 3D 프린터로 정상귀의 모양을 3차원적으로 제작해 수술시간을 단축하고, 내시경을 이용해 측두근막 박리 후 귀를 재건하는 방법을 통해 절개를 없애 흉터 없는 소이증 수술을 선보였다고 밝혔다. 작은 귀나 귀의 결손으로 인해 청력의 감소와 외형적인 불이익을 겪을 수 있는 소이증은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귀 없는 남자’로 인해 화제가 된 바 있는 선천적 기형 증상이다. 기존의 수술은 복잡한 귀의 형태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었고 피부 채취를 통한 흉터가 남았다. 그러나 이번에 등장한 수술법은 두피의 절개를 거의 없애거나 아예 하지 않고 수술하는 방법으로 기존의 측두부위의 횡 절개, 반대편 귀의 피부 이식 상처, 사타구니 피부 채취 흉터 등에서 벗어나 지혈도 잘되고 피주머니도 하나만 사용, 제거도 4일 이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두피에서 채취한 피부는 동종 진피를 같이 이식해 전층 피부 이식과 같은 효과를 보며 두피에서 탈모가 되는 부위도 생기지 않아 뼈대를 이루고 있는 메드포 외에는 보통의 귀와 같으며 수술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3D 프린터 기술로 정상 귀의 모양을 3차원적으로 제작하고 메드포를 그에 맞춰 수술 전에 준비할 수 있는 것도 특징. 수술 전에 이미 뼈대와 귀의 모양이 나와 있어 수술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형태도 더욱 정밀하게 구현할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 사용되어온 수술방식이지만, 수술집도 의사와 내시경 의사가 분리되어 있던 것과는 달리 프로필 성형외과에서는 특화된 방법을 통해 정재호 원장이 집도해 환자와 보호자가 더욱 안심할 수 있도록 수술의 일원화를 이뤄냈다. 새로운 시술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profilehospital.com)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나만 모르고 다 아는 ‘지독한 입냄새’라면

     누군가의 입에서 풍기는 지독한 구취(입냄새)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경험을 대부분 갖고 있다. 이런 입냄새는 누구나 하지만 정작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해 친구나 가족이 뀌띔해 주거나, 대화할 때 상대방이 얼굴을 찡그릴 때야 비로소 자신에게서 입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을 잃거나 사회생활에서 적극성을 잃기 쉽다.  ■원인은 입 속에 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풍기는 구취는 누구나 겪는 흔한 문제이지만, 이런 수준을 넘어 지속적인 입냄새로 고민하는 사람도 전체 성인의 30%에 이른다. 서울대치과병원 구강내과 구취클리닉 박희경 교수에 따르면 입냄새는 구강 세균이 원인이다. 입 속에는 수많은 세균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 세균들이 단백질을 분해할 때 만들어내는 휘발성 황화합물이 입냄새의 주요 원인이다. 또 혀에 낀 백태나 입안이 잘 마르는 구강건조증도 구강 및 잇몸질환을 유발해 구취를 만든다. 따라서 자신에게서 입냄새가 난다고 느꼈다면 구내염과 잇몸병, 구강 건조증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틀니나 오래 된 보철물·충전물도 입냄새를 유발할 수 있다. 틀니나 보철물과 치아 사이에 생긴 틈에서 세균이 서식해 입냄새를 만드는 것. 따라서 이런 경우라면 오래 사용한 보철물을 새로 정비하거나 틀니는 매일 청결하게 세척을 해 냄새의 원인인 세균을 제거해줘야 한다. 그런가 하면 비뚤어지거나 일부만 밀고 나온 사랑니도 칫솔질이 어려울 뿐 아니라 인접한 치아와의 공간에 음식물 찌꺼기가 끼기 쉬워 구취를 유발하기 때문에 기능을 따져 필요없다면 뽑아내는 것도 입냄새를 없애는 한가지 방법이다.    흡연이나 음주, 또는 마늘이나 양파와 같은 음식을 섭취한 경우에도 일시적으로 입냄새가 날 수 있는데, 특히 육류와 술을 같이 먹을 때 심하다. 이런 경우, 흡연자는 양치질을 자주 하거나, 입 냄새를 유발하는 음식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입냄새, 이렇게 확인하자  입냄새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아침에 일어난 직후 깨끗한 종이컵에 숨을 내쉬어 컵 안의 냄새를 직접 맡아보는 방법이다. 대부분 잠이 깬 직후에 입냄새가 가장 심하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테스트하는 게 좋다. 손을 씻어 말린 뒤 혀로 손등을 핥아 냄새를 맡아 보거나 치실을 이용해 치아 사이에 낀 이물질을 빼내 냄새를 맡아보는 방법도 있다. 가족 간에는 서로의 입 냄새를 직접 맡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자가진단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병원을 찾아 입냄새의 원인물질인 휘발성 황화합물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할리미터나 가스 크로마토그라피 검사기기를 이용하면 정확한 검사가 가능하다. 이 방법 말고도 타액 분비율검사, 혈액검사, 간이정신진단검사와 구강검사 및 치과방사선 사진검사를 통해 입냄새의 원인을 진단한 뒤 원인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된다.    ■원인이 무엇이든 청결한 구강관리는 기본  원인이 무엇이든 구강 청결은 기본이다. 올바른 칫솔질과 치실·치간칫솔의 적절한 사용, 혓바닥을 말끔하게 닦아내는 습관, 치석을 없애 입냄새를 줄여주는 스케일링, 구강 염증 치료, 구강청결제 사용, 인공타액 사용, 식단 개선 등을 병용하면 구강 건강은 물론 구취 제거에도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구강건조를 야기하는 전신질환 약물을 복용해 입안이 건조해지고 냄새가 나는 경우에는 물을 충분히 섭취하고, 무설탕 껌을 씹어 침샘을 자극해주거나, 인공타액 또는 타액 분비 촉진제를 복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다만, 입냄새를 없앨 목적으로 구강청결제를 남용하면 구강청결제에 함유된 알코올 성분 때문에 입안이 더욱 건조해져 오히려 입냄새가 더 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구취를 제거하려면 알코올을 함유하지 않은 전문 구취제거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소 구강을 청결히 관리할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스케일링도 받고, 치과 검진에서 입냄새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편도선염이나 축농증·비염 등 이비인후과 쪽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역류성식도염, 당뇨, 위장질환이나 신장질환, 간질환 등 전신질환이 있을 때도 고유의 냄새가 날 수 있으므로 입냄새를 현재의 건강 상태를 살피는 척도로 삼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박희경 교수는 “입냄새가 문제가 돼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고 있는 추세”라면서 “입냄새는 많은 사람들이 가진 흔한 증상이지만 구강 질병이 전신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주기적으로 치과를 찾아 구강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조언 했다. 박 교수는 이어 “그런가 하면 검사에서 입냄새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것으로 나왔음에도 입냄새를 호소하는 등 걱정이 지나쳐 일종의 구취공포증을 가진 사람도 있다”면서 “이런 경우 입냄새 정도를 파악하는 검사 결과를 통해 불필요한 걱정을 더는 것도 필요하다” 고 덧붙였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노량진, 공무원 준비생 ‘북적’ 신림동, 특강조차 폐지 ‘썰렁’

    노량진, 공무원 준비생 ‘북적’ 신림동, 특강조차 폐지 ‘썰렁’

    “명절에 어른들께 인사한다고 괜히 내려가 빈둥거리는 것보단 빨리 합격하는 게 효도하는 거죠.”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에 있는 두 평 남짓한 고시원 방.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정우(28)씨의 보금자리다. 경남 합천이 고향인 그는 이곳에서 홀로 두 번째 설을 맞는다. 푸짐한 명절 음식 대신에 끼니도 길거리 ‘컵밥’(일회용 용기에 볶음밥 등을 담아 파는 간편식)으로 때우지만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생각에 쓸쓸함을 느낄 여유도 없단다. 그는 “부모님이 시골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지난해 시험에 떨어져 뵐 면목이 없다”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합격해 당당하게 고향에 내려가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설. 그러나 이씨처럼 고향을 잠시 잊은 채 꿈을 위해 뛰는 청춘들이 있다. 각종 국가고시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수험생들이다. 그들이 맞이하는 설은 어떤 모습일까. 명절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서울의 대표 고시촌인 노량진 일대와 관악구 신림동 일대를 찾았다. 노량진 고시촌의 수험생들에게 긴 연휴는 오히려 위험한 적(敵)이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학원 정규수업에 매진하거나 독서실과 자습실을 드나드는 학생들로 고시촌 거리는 붐볐다. 새로 개설되는 강의와 명절 특강을 소개하는 전단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내용을 살펴보는 학생들도 많았다. 공무원 시험 학원들은 대부분 설 당일을 제외하고는 연휴 기간에 정규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설 당일에도 ‘최신 판례 분석’, ‘기출 총정리’ 등 각종 특강이 마련돼 있다. H학원 관계자는 “수강생만 대상으로 특강을 하는데도 한 차례에 1000여명씩 몰린다”면서 “강의실에 못 들어오는 학생들은 옆 강의실이나 복도에 앉아 화상을 보며 강의 내용을 필기하는 등 수강 열의가 높다”고 전했다. 자습실과 독서실은 아예 설날에도 24시간 문을 열어 놓는다. 또 학생들이 많이 찾는 인근 카페와 서점도 설날을 빼고는 정상영업을 할 예정이다. C서점 관계자는 “학원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교재를 사러 오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아 우리도 문을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량진은 최근 특히 법원직 및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로 북적이고 있다. 법원직은 기존 사법시험 준비생들의 ‘전향’이, 경찰 시험은 채용인원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법원직 시험을 준비 중인 정인선(26)씨는 “경쟁이 치열한 만큼 연휴에 집에 간다는 학생들을 거의 못 봤다”면서 “집이 서울이라 설날 하루 정도는 쉴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냥 특강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E학원 관계자는 “최근 공무원 시험 열풍이 더 거세진 것 같다”며 “늦깎이 시험 준비생부터 부부 수험생, 수년간 고시 준비에 매달리다 노량진으로 넘어온 학생 등 다양한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주로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준비생이 많은 신림동 고시촌은 노량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명절에도 시험 준비에 매진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학생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예전 같으면 수험생들로 붐볐을 점심 시간에도 고시촌의 거리는 한산했다. 학생들에게 저렴한 식사를 제공하는 ‘고시식당’도 대부분 텅텅 비어 있다. 학원가 뒷골목 건물 지하 1층에서 5년째 고시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은 “최근 학생들이 많이 빠져나가다 보니 영업이 안 돼 문을 닫는 고시식당들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이 같은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는 곳은 고시 학원들이다. B학원 관계자는 “신림동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사시 폐지가 다가오고 선발정원이 줄어들면서 학생 50% 이상 빠져나갔다”며 “특강을 개설해도 수강생이 없어 적자라 올해는 특강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H학원 관계자도 “사시 1차 시험이 오는 2월이라 예전 같으면 학생들로 붐볐을 시기지만 보다시피 학원가도 침체 분위기”라면서 “특강을 해도 100명이 안 모인다. 혼자 독서실이나 집에서 공부하겠다는 학생들이 많아 정규수업도 연휴 기간에는 대부분 쉬는 편”이라고 말했다. 밤 11시가 되자 고시촌 앞 버스정류장 주변에는 학생들이 긴 줄을 늘어섰다.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강남권 학생들 행렬이었다. 고시원에서 먹고 자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풍경이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신림동의 원룸 및 고시원에는 저렴한 방세를 찾는 직장인들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추세다.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김모(30)씨는 “수험생들이 줄다 보니 고시촌의 면학 열기가 식어 집에서 통학하며 수업을 듣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법시험 준비생들 사이에선 보이지 않는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학원가 근처 카페에서 만난 이지연(28)씨는 “변호사나 공무원 시험으로 전향한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사시를 고집하는 ‘은둔형 고수’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시험도 얼마 안 남은 만큼 학원 강의만 좇아다니기보다 공부한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에 열중하는 편이다. 설이라고 들뜬 분위기는 없다”고 전했다. 올해로 세 번째 사법시험에 도전한다는 강모(33)씨는 “해가 지날수록 점점 합격문이 좁아지기 때문에 이번에도 떨어지면 낙향할 각오로 하고 있다”면서 “설 연휴에는 독서실에서 뒤처진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복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사진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설연휴 TV 한마당] 7번방의 선물·광해·도둑들… 안방극장 박스오피스 풍성

    [설연휴 TV 한마당] 7번방의 선물·광해·도둑들… 안방극장 박스오피스 풍성

    올해 설 연휴 안방극장은 역대 한국 영화 흥행 ‘톱3’가 상영되는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지난해 한국영화가 최고의 성적을 거둔 만큼 TV에서 볼만한 작품도 그만큼 쟁쟁하다. 먼저 KBS2는 128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지난해 전체 흥행 1위를 차지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을 31일 오후 8시 30분 방송한다. 같은 날 낮 12시 10분에는 2012년 1232만명의 관객을 모은 흥행작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내보낸다. 살인 기생충 연가시에 감염되는 재난 상황을 다룬 영화 ‘연가시’는 30일 밤 12시 30분에 전파를 탄다. 국내에서 70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는 새달 1일 밤 9시 15분에 방송된다. MBC도 지난해 화제작 2편을 연이어 방송한다. 30일 밤 11시 15분에는 한국형 첩보 액션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하정우·한석규·전지현·류승범 주연의 ‘베를린’이 방송되고,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의 활약을 그린 설경구·정우성·한효주 주연의 범죄 영화 ‘감시자들’도 31일 밤 10시 5분에 방송된다. SBS는 수목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30일 결방하는 대신 남자 주인공 김수현이 출연한 영화를 2편 편성했다. 김수현이 동네 바보로 위장한 남파 간첩 역할을 맡아 코미디와 정극을 오가며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30일 오후 8시 40분에, 2012년 여름 시장을 강타하며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1298만명) 기록을 세운 ‘도둑들’은 새달 1일 밤 11시 15분에 각각 방송된다. 한편 초고층 빌딩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를 소재로 한 재난 블록버스터 ‘타워’는 31일 밤 10시 5분에 방송된다. 아이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을 애니메이션도 풍성하다.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애니맥스의 설특집 상이 푸짐하다. 3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명탐정 코난’의 복수·납치·어린이 탐정단 시리즈 등 세 가지 에피소드로 엮어 보여주고, 31일 오후 4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는 애니메이션 ‘라바2’의 전편을 방송한다. 애니메이션 채널 챔프는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모아 내보낸다. 30일 저녁 10시에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은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방송되고, 새달 1일 오전 9시 30분과 저녁 7시 30분에는 갖가지 정령과 귀신들이 모이는 온천장을 배경으로 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전파를 탄다. 투니버스는 애니메이션 영화 ‘슈퍼배드’를 새달 1일 오전 11시에 내보낸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27세 최연소 떡명장 최대한 씨

    [김문이 만난사람] 27세 최연소 떡명장 최대한 씨

    떡은 그리움이고 정성이다. 어머니의 손맛이고 마음이다. 집안 내력과 조상에 대한 공경심을 알게 하는 느낌표이기도 하다. 설이다. 차례를 지낼 때는 상에 떡을 올리고 차례가 끝나면 가족끼리 둘러앉아 함께 떡을 먹으며 못다 한 얘기를 나눈다. 떡국 한 사발을 후다닥 비우고 나서 ‘와, 한 살 더 먹었다’ 하며 우쭐해하는 어린 조카도 있고 흐르는 세월에 대한 야속한 속내를 뒤돌아서 드러내는 주름 깊은 할머니도 있다. 이렇게 명절 때가 되면 떡은 우리 곁에 항상 친숙하게 다가온다. 올 설에는 떡의 진정한 가치를 한번 더 되새겨 보는 것이 어떨까. ‘명장’이라고 하면 어떤 분야에서 기술이 뛰어난 장인을 말한다. 그래서 흔히 나이 지긋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최대한(27)씨의 경우는 다르다. 2011년 10월 2일 한국쌀가공식품협회와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떡명장대회에 처음 출전해 명장대상을 거머쥐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상금 500만원과 해외 연수의 특전이 주어지는 명장 선발대회에서 20대의 젊은이가 대상을 차지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최연소 떡 명장이라는 기록도 동시에 세웠다.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요즘 실정을 감안할 때 한우물을 열심히 판 결과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설을 맞아 떡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최씨를 지난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떡집에서 만났다. 떡집 1층에서는 3~4명이 오가며 선물 떡을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지하 1층에서는 갓 뽑아낸 가래떡을 켜켜이 쌓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최씨는 배달을 나갔다가 막 떡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설날을 앞두고 있어 주문이 많이 들어옵니다. 대개 2주 전부터 주문이 몰리기 시작하는데 요즘이 가장 바쁜 대목이지요. 평소 일주일에 10~20가마씩 떡을 만드는 데 비해 설 대목에는 하루에 15가마씩 떡을 뽑아요. 말 그대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습니다.” 이럴 때면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뭉쳐 떡을 빚어낸다. 형 대로(32)씨, 동생 대웅(25)씨 그리고 그의 친구들까지 합세한다. 잠시 가족 얘기를 물었다. 동생은 벌써 9년의 경력을 가졌다. 가장 나이가 많은 형은 연세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뒤늦게 가업을 잇겠다며 떡 일을 시작한 터라 아직은 2년 반 정도의 경력밖에 안 된다. 아버지는 30년 넘게 떡집을 운영해 오고 있다. 4부자가 떡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흔치 않은 ‘떡 사랑’ 집안이다. 이렇게 떡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경남의 한 보육원에서 자란 부모가 서울 낙원상가의 제분소에서 10여년간 일을 한 뒤 떡집을 차리면서 시작됐다. 다시 화제를 가래떡 얘기로 돌렸다. 가래떡 만드는 과정에 대해 최씨는 “다른 떡보다 만들기가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까다롭다. 쌀과 물, 소금만으로 맛을 내야 하기 때문에 재료와 정성, 솜씨가 그대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쌀을 2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까지 미리 불려 놓은 다음 큰 소쿠리에 쌀을 건져 담아 물기를 빼고 소금을 한 주먹씩 뿌려 간을 한다. 이것을 분쇄기에 넣어 빻으면 보송보송한 쌀가루가 나온다. 여기에 바가지로 물을 적당히 더해 섞은 다음 시루에 담아 10분 정도 뜨거운 김으로 찐다. 그러면 백설기 비슷한 떡이 되고 이것을 ‘가래떡 성형기’에 넣고 눌러 주면 아래에 뚫린 2개의 구멍으로 뜨끈뜨끈한 가래떡이 술술 빠져나온다. 이렇게 나온 가래떡을 알맞은 길이로 잘라 쟁반에 쌓아 뒀다가 하루 뒤에 뒤집고 다시 또 엇갈리게 쌓아 둔다. 상하좌우 고루 말라야 썰기도 좋고 떡국도 맛있다고 설명한다. 제대로 마르지 않은 떡으로 떡국을 끓이면 떡이 풀어져 맛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떡국용 떡이 완성될 때까지는 3일이 걸린다고 한다. 어떤 떡을 골라야 가장 맛있을까. “뭐니 뭐니 해도 쌀이 가장 중요합니다. 찹쌀처럼 찰기가 있어야 합니다. 묵은쌀로 만든 떡은 씹는 식감이 안 좋아요. 제가 전국의 쌀을 조금씩 사용하면서 연구를 해 봤는데 경기쌀이 떡용으로 가장 좋습니다. 좋은 쌀로 지은 밥처럼 빛깔이 나면서 떡도 맛있습니다. 묵은쌀로 만든 떡은 거무스름한 작은 점이 있습니다. 냉동시켜 보관할 때는 한 달 이상 오래 두면 맛이 조금 떨어집니다.” 명장이 된 비결을 물었더니 “쌀은 종류가 달라서 떡을 만들 때 넣는 물의 양도 다 다르다. 이 때문에 물의 양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손 느낌이 있어서 뽑힌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떡을 만들었다. 최씨가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느낀 아버지가 떡집에서 일을 하게 했다. 매일 새벽 3~4시에 일어나 아버지가 시키는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자동적으로 떡집에서 일을 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처음에는 불만도 많았지만 워낙 열심히 일을 하는 아버지의 말씀이라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떡 만들기에 취미를 붙여 처음 만든 것이 백설기였다. 백설기는 가장 기본적인 떡이지만 최초의 완성품이라 아버지에게 달려가 자랑했다. 다행히 잘 만들었다는 칭찬을 들어 무척 기뻤다. “떡 만들기에는 따로 레시피가 없어요.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感)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정확히 몇g의 양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늘 한주먹을 쥐시며 ‘이만큼 하면 된다’였지요. 처음에는 고생도 많이 했는데 나중에는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양을 기록하고 레시피를 정리해 떡을 만들었지요.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가 떡명장대회에 나가게 된 것은 떡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떡학원에 다닐 때였다. 학원장이 하루는 떡명장대회가 있으니 경험 삼아 한번 나가 보라고 권유했다. 고민하던 그는 새로운 떡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도전하는 데 의미를 두고 출전했다. 그는 대회에 나가기 전에 우연히 호박떡을 배워 몇 차례 연구한 끝에 자신만의 노하우로 호박설기떡을 개발해 판매했는데 의외로 인기가 좋았다.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된 대회에 호박설기떡을 내놨다. 그가 만든 호박설기떡은 시중에서 파는 호박떡과 비슷하지만 과정과 재료가 확실히 달랐다. 색소 가루를 넣지 않고 생단호박을 쪄 넣어 천연색을 내면서 단호박 향이 솔솔 올라오게 한 점이 특징이다. “너무 젊은 나이에 명장 타이틀을 받아 사실 부담이 큽니다. 그러나 앞으로 열심히 할 겁니다. 젊으니까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떡이라는 것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떡이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건 기쁜 일이잖아요.” 그는 요즘 떡을 연구하고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떡의 지식, 맛, 멋에 대해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단순히 맛있게 먹는 게 아니라 멋있게 즐기자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떡 명장 타이틀을 받은 만큼 부담감이 있지만 우리 떡을 세계화시키는 데 앞장서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설날인데 떡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어떤 보람이 있을까. “가족끼리 떡집을 운영하는 게 저는 정말 좋아요. 동생도 있고 형도 있고 명절 때는 다 같이 도와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남들은 결혼하고 나면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지 않아요. 서로 일하면서 만나니까 더 돈독해지고 의지가 된다는 걸 느낍니다.” 20대의 최 명장, 어떤 생각과 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시골에서 묵묵히 떡을 만드는 분들이 많다. 그렇게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진짜 명장”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연구,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전통 떡을 새롭게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믿을 만한 음식점이 없다. 원산지를 속이고 청결 상태가 장담이 안 되는 곳도 있다”면서 적어도 떡집만큼은 믿고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명장대회에서 인정받은 기술력으로 한국의 전통음식인 떡으로 전 세계인의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떡 갤러리를 차리고 싶어요. 전통 떡들을 만들어 놓고 전시하는 겁니다. 먹는 것은 인간 최상의 휴머니티거든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쁘고 맛있는 떡을 만들겠습니다.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떡을 제대로 인정받겠습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최대한 명장은… 2011년 10월 경기 양평군에서 한국쌀가공식품협회와 경기농림진흥재단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떡명장대회에 처음 출전해 대상을 받아 떡 명장이 됐다. 아버지 최길선씨에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떡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아버지는 서울 시내에서 30년 넘게 떡집을 운영하고 있고 최대한씨는 그 집에서 명품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3형제가 함께 떡집에 참여해 4부자가 떡을 만들고 있다. 형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가업을 잇겠다며 뒤늦게 합류했다. 최대한씨는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했으며 2주 전 결혼했다.
  • [사설] 정크 본드로 추락한 소니가 보내는 경고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일본 소니의 신용등급을 ‘Baa3’에서 ‘Ba1’으로 한 단계 낮췄다. Ba1 등급은 투자부적격, 즉 투기(junk) 등급에 해당한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세계 제1의 전자업체가 부실기업 수준의 신용등급을 받은 것이다.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소니의 추락으로 한국과 중국 등의 경쟁업체들에는 반사적 이익이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은 결코 아니다. 급변하는 세계 시장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어느 기업이라도 소니의 뒤를 밟을 수 있다. 소니는 ‘워크맨’, TV, 게임기 등을 앞세워 1980년대부터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자만심에 빠져 기술개발과 혁신을 외면했다. 한 예로 비디오 시장에서 베타맥스 방식을 고수하면서 시장을 독점하려고 기술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 VHS 방식을 도입하고 기술을 공개한 마쓰시타에게 선두 자리를 빼앗겼다. 다른 분야에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기업들이 신기술로 소니를 눌렀다. 애플의 아이팟과 MP3, 삼성과 LG의 LCD·LED TV도 소니를 제치고 세계를 제패했다. 소니는 시장의 변화에 둔감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2005년 소니에서 퇴사한 미야자키 다쿠마는 ‘소니 침몰’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과감한 투자와 연구개발이 사라지고, 전략적 판단을 못하고, 반대 목소리만 크고, 그러면서 핵심 인재보다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높은 봉급을 받는 간부들이 많다는 것이다. 소니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은 현실에 안주하며 혁신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의 ‘관료화’도 있다. 우리 기업들은 소니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응해 나가야 한다. 급변하는 시장에 뒤처지면 몰락은 한순간에 올 수 있다. 휴대전화와 TV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1위 자리를 지키는 것은 빼앗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끊임없는 연구 개발과 기술 혁신밖에 없다. 소니도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 자리바꿈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1위를 지키고 또 빼앗으려면 지금부터 미래를 내다보며 준비해야 한다.
  •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정부 고위 관료와 정치인에 유명 연예인까지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정부 고위 관료와 정치인에 유명 연예인까지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보 유출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마련한 시스템이 오히려 ‘2차 피해’를 불러오는 등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와 정치인은 물론 유명 연예인의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유출돼 허술한 개인정보 보호 시스템을 만든 카드사에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카드는 지난 17일 오후부터 자사 홈페이지에 개인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안내창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 등으로 구성된 주민번호 13자리 중 생년월일과 성별 구분 코드 이후 6자리 중 마지막 한 자리만 맞으면 자신의 유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데서 비롯됐다. 일부 네티즌은 곧바로 허점을 파고들었다. 유명 인사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은 이미 공개된 정보이기 때문에 주민번호 끝자리만 넣으면 유명 인사 정보가 유출됐는 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 주민번호 끝자리는 1~10번까지 숫자 가운데 하나씩 넣어보면 되기 때문에 누구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식으로 금융권 감독기관의 수장인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개인정보가 빠져나간 사실이 공개됐다. 반기문 사무총장도 결제계좌, 결제일, 연소득을 포함해 총 13건이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인들도 상당수가 정보를 털렸다. 2PM 멤버 찬성은 지난 18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아아… 털렸다…”라는 멘션을, 19일에는 “이건 뭐 어쩌라는 건지… 불행중 다행이지만 이거 어딜 믿으라는 거야. 금융사가 털리는데”라는 멘션과 함께 자신의 유출정보 내용 캡처 사진을 공개했다. 방송인 겸 배우 이파니도 카드사 정보유출에 분노하는 멘션을 남겼다. 이파니는 트위터에서 ”카드 정보유출 농협은 조회도 안 되고… 아침부터 일 가다가 무슨 꼴인지”라는 멘션을 올렸다. 금융당국이 KB카드에 공인인증서를 활용한 보안장치를 서둘러 지시했지만 이미 수많은 정보가 빠져나간 뒤였다. 이밖에 유명 연예인에 관심이 많은 일부 네티즌들도 정보 유출 대열에 동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카드사 개인 금융정보 유출사건과 관련해 신제윤 금융위원장에게 “정확한 상황과 피해 등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재발방지 대책 수립과 책임자의 처벌을 대폭 강화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은 “법적 도덕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산책] ‘400㏄의 기적’…대한적십자사 ‘헌혈의 집’ ‘혈액원’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산책] ‘400㏄의 기적’…대한적십자사 ‘헌혈의 집’ ‘혈액원’ 가다

    해마다 되풀이됐던 ‘피 가뭄’ 현상이 해갈되는 듯하다. 최근 들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헌혈자가 늘어나면서 혈액 비축량이 증가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모두 270만 8172명이 헌혈에 참여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종전의 단체 헌혈에서 ‘헌혈의 집’을 통한 개인 헌혈로 정책을 바꾼 것이 주효했다. 대한적십자사 ‘구로헌혈의 집’은 지하철역과 버스 환승장이 있는 교통 요지에 자리하고 있다. 날마다 이곳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엄청난 용량의 혈액이 흘러들고 또 나가는 곳이다. 헌혈자 기준으로 전국 1, 2위를 다투는 이곳에서는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피를 본다’. 헌혈의 집 박경미 간호사는 “인터넷, 책, TV를 보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헌혈을 할 수 있다”며 “쾌적한 실내는 물론 헌혈자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환경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를 나누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사람들의 결심은 소중하지만 누구나 원한다고 다 헌혈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철분 부족이나 체중 미달인 여대생, 전날 과음한 노래방 사장님, 귀에 피어싱을 한 지 1년이 채 안 된 가수 지망생 등등…. 퇴짜 맞고 돌아서서 나가는 이들의 아쉬운 모습은 헌혈의 집에서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100회 헌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사람, 너끈히 400㏄의 혈액 팩 하나를 채우는 60대 할머니도 있다. 이처럼 한명 한명에게서 어렵게 모은 ‘귀하신 피’는 병원으로 가기 전 담당 지역 혈액원으로 보내진다. 병원에서 새 주인을 만나는 행운을 얻으려면 예쁘고 건강한 피로 뽑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검사 및 제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서울서부혈액원은 서울 강서 일대 병원을 책임지고 있다. 공급팀에서는 이제 막 들어온 혈액을 보관하기 위한 온도 측정이 한창이다. 적정 온도인 섭씨 1~6도를 맞춰서 보관했는지 재는 것이다. 이어서 제제팀으로 옮겨진 혈액은 동일한 무게를 달아 원심분리기 안에서 돌린다. 분리기를 거친 혈액은 두 가지 색깔로 변해 있었다. 김석완 제제팀장은 “종류별로, 비중 차이에 따라 ‘혈장 제제’ ‘혈소판 제제’로 나눠 병원에 공급한다”고 말했다. 헌혈할 때 샘플링한 혈액은 곧바로 검사실로 보낸다. 혈액형과 각종 바이러스 감염 상태를 검사하기 위해서다. 몇 년 전 신종플루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혈액 재고가 바닥나 수술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었다. 김 팀장은 “바이러스 질환이 유행하면 헌혈을 꺼리는데 여러 검사를 통해 의심이 되면 제외하니 걱정 말고 헌혈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침 9시가 되면 혈액원 차량들은 일제히 ‘피 배달’에 나선다. 큰 수술이 많은 대형병원에는 서너 시간 간격으로 하루 4차례씩 혈액을 배달해 주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서부혈액원 고중석 공급팀장은 “겨울철은 소위 헌혈의 비수기인데도 늘어나는 헌혈자 덕분에 병원으로 공급할 혈액이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소아백혈병 병동에 입원 중인 종식(6)이는 다음 주 골수이식수술을 받는다. 종식이는 한 기업의 단체 헌혈을 통해 기증받은 혈액으로 수술을 할 예정이다. 종식이가 건강을 되찾게 되면 헌혈자들은 ‘400㏄의 기적’을 보게 된다. 최근 들어 다량의 혈액이 필요한 백혈병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환자들이 헌혈이라는 사랑의 힘에 의해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 헌혈은 우리 사회 안에서 순환하며 서로를 살리는 생명의 불이자 사랑의 힘이다. 400㏄의 혈액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은 무한하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성시경 방귀소리 “‘뿌악’ 아닌 엘프 같다” 허지웅 고난도 디스?

    성시경 방귀소리 “‘뿌악’ 아닌 엘프 같다” 허지웅 고난도 디스?

    ‘성시경 방귀소리’ 가수 성시경의 방귀소리가 또다시 화제에 올랐다. 10일 방송된 JTBC ‘마녀사냥’에서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성시경 씨에게 미안해 죽겠다. 나는 태어나서 방귀소리 기사가 이렇게 많이 나올 줄 몰랐다. 심지어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다”며 지난 회에서 성시경 방귀소리를 언급한 데 대해 사과했다. 허지웅은 “사실 성시경 방귀소리가 ‘뿌악’이라고 말한 것은 방송이니 웃기려고 그런 것이다”며 “성시경 방귀소리는 여자화장실에 음악 소리 깔릴 때 있지 않냐. 인간의 목소리로 재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엘프 같다”고 해명했다. 이에 성시경은 “심지어 어머니도 내게 ‘허지웅 앞에서 방귀 뀌었냐’고 물어보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네티즌들은 “성시경 방귀소리 해명했다가 괜히 또 화제”, “성시경 방귀소리 얘기 그만 좀 했으면. 깬다”, “성시경 방귀소리 엘프에 빵 터졌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JTBC ‘마녀사냥’ 캡처(성시경 방귀소리)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형돈 용준형 어머니, 숨겨진 친분 공개 ‘알고보니 이웃 주민?’

    정형돈 용준형 어머니, 숨겨진 친분 공개 ‘알고보니 이웃 주민?’

    정형돈 용준형 어머니 친분이 화제다. 8일 방송되는 MBC에브리원 ‘주간아이돌’에는 신곡 ‘flower’로 솔로 변신에 성공한 비스트 용준형이 출연한다. 최근 녹화에서 정형돈은 용준형도 몰랐던 용준형과 정형돈의 숨겨진 친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형돈은 “용준형의 어머니가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이었다”며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분이 ‘안녕하세요 용준형 어머니입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해주셨다. 굉장히 품격 있어 보이셨다”고 말했다. 이에 용준형은 MC형돈의 집 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등 MC형돈과 어머니의 의외의 인연에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형돈은 빅뱅 승리와의 인연도 털어놨다. 그는 “빅뱅의 승리 어머니 역시 근처에 사신다”며 “어머님들끼리는 친하게 지내시는 것 같더라”고 덧붙였다 정형돈 용준형 어머니 친분을 접한 네티즌은 “정형돈 용준형 어머니..정형돈이 이웃으로?”, “정형돈 용준형 어머니..승리 어머니도 근처에? 신기하다”, “용준형 어머니, 정형돈 집이 어디지?”, “정형돈 용준형 어머니..새로운 사실이네”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MBC에브리원 (정형돈 용준형 어머니)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영희 눈물에 김영희母 “영희, 열심히 했다!”

    김영희 눈물에 김영희母 “영희, 열심히 했다!”

    KBS2 수요 예능 맘마미아서 김영희 눈물 보여… KBS2 수요 예능 ‘맘마미아’가 모녀간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방송으로 새해 첫날 밤 시청자들에게 훈훈함을 전했다. 지난 1일 방송된 맘마미아에는 김지민, 레이디 제인, 김현숙, 김보민, 정주리, 김영희, 김혜선, 최희와 이들의 어머니 등 8쌍의 연예인 모녀가 총출동해 ‘2014년 한 살 더 먹은 내 딸 핀다 or 진다’란 주제로 따뜻한 속마음 토크를 펼쳤다. 특히 ‘2014년 한 살 더 먹은 내 딸 핀다 or 진다’ 라는 주제에 8명의 엄마들 모두 ‘핀다’를 선택해 딸들의 희망찬 2014년을 기원해 눈길을 끌었다. 평소 티격태격하며 김영희를 향해 독설을 서슴지 않았던 김영희 어머니도 이 주제만큼은 ‘핀다’를 선택하며 역시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은 것임을 드러냈다. ’맘마미아’에서 선보였던 코너 ‘끝사랑’으로 개그콘서트 무대에 오르게 됐음을 밝힌 김영희는 “(첫 방송 녹화 후) 커튼콜 때 춤을 추는데 다시 오른 무대가 너무 좋아서 뒤에서 많이 울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에 김영희 어머니는 노력하는 김영희를 지켜보며 느꼈던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아 감동을 선사했다. 김영희 어머니는 “눈 앞 성과도 중요하지만 (김)영희가 굉장히 열심히 했다”며 “365일 코너를 짰다. 엄마로서 그 점을 가장 칭찬해주고 싶다”고 김영희에게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칭찬의 한마디를 건네 감동을 자아냈다. 이어 새해를 맞아 준비한 ‘신년운세 자판기’ 코너에서는 복불복으로 신년운세를 점쳐 웃음을 선사했다. 특히 영화로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던 김지훈은 ‘과욕을 꾀하면 이득은 커녕 손해만 당하니 분수를 지키세요’라는 운세를 뽑아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새해를 맞아 평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어머니의 깊은 속마음과 애정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시청자들은 SNS와 게시판을 통해 “이 세상 엄마들 마음을 다 똑같구나~”, “김영희 눈물에 엄마의 진정한 칭찬 깊은 모정이 느껴져~”, “평소 티격태격하던 엄마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시간“ “새해 첫날 밤에 ‘맘마미아’를 보며 울컥ㅠ 엄마 보고싶다”, “김영희 눈물에 엄마가 김영희를 진심으로 칭찬해주시는데 왜 내가 눈물이 나는지..훈훈한 ‘맘마미아’ 너무 좋아~” 등의 글을 올리는 등 관심을 보였다. 한편, ‘맘마미아’는 8팀의 모녀들이 펼치는 모녀 공감토크 프로그램이다. 매주 수요일 오후 11시 15분 방송.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소니가 앞뒤로 몸을 흔든다. 몸을 숙일 때마다 등의‘보호외국인’이란 흰 글자가 형광등 불빛에 번쩍거렸다. 흔들림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필 근무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여자 보호실에는 그녀와 나 단 둘뿐이었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당직실로 연락하라고 이 반장은 말했었다. 소니가 요란하게 몸을 떨더니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당직실 내선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은 갔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 반장은 밤새 직원이 당직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라 했었는데,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망연히 소니만 바라봤다. 소니는 비린내를 맡은 임산부처럼 헛구역질을 해댔다. 붉게 충혈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소니가 말했다. “언니, 제발, 소니 물 줘.” 소니의 일그러진 입가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눌한 소니의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우스꽝스러웠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소니도 영문을 모른 채 나를 따라 웃었다. 보호소를 안내해주던 이 반장은 말했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소니한테 물어보라고. 저래 보여도 사무소에서만큼은 나보다 선임이니깐.” 이 반장은 소니를 가리키면서도 내 쪽을 흘끔거렸다. 철장 안의 소니보다 나를 더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살아오며 항상 마주쳐야 했던 눈빛이었기에 새삼스럽진 않았지만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라면 많은 혼혈을 봤을 텐데. 마치 외국인을 처음 본 사람처럼 계속해서 곁눈으로 슬그머니 흘겨봤다. 아마도 같이 일하는 사람 중 혼혈은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이 반장이 가리키고 있는 소니를 쳐다봤다. 내 옅은 커피색 피부보다 소니의 피부는 희었다. 소니의 피부는 한국인들이 살색이라 부르는 옅은 귤색에 가까웠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따르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소니가 언니, 하며 나를 불렀다. 그녀는 한 아름 크기의 원을 손으로 그렸다. 나는 그녀의 뜻을 이해했지만 왜 그렇게 많은 물이 필요한지 이해되지 않았다. 소니가 다시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가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왔다. 대야 한가득 담긴 물을 본 소니는 구역질을 멈췄다. 소니는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수면 위를 내려다봤다.‘후훕 후훕’소니의 날숨과 들숨소리가 보호실에 울려 퍼졌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소니가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대야에 담갔다. 넘쳐난 물이 바닥을 적셨다. 정수리까지 잠기자 찰랑대며 흘러넘쳤던 물결이 잠잠해졌다. 소니의 숨소리가 사라지자 보호소는 파도가 멈춘 바닷가처럼 고요해졌다. 오직 들리는 소리라고는 얕은 내 숨소리뿐이었다. 소니의 앞머리가 흘러내렸다. 수면 위로 소금쟁이 발자국 같은 작은 물결이 일렁였다. 얼마나 지난 걸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가라앉은 지 오래였고 숨 쉬는 것도 잊은 듯 소니는 미동조차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철창을 열려는데 소니가 대야에서 고개를 들었다. 물방울들이 그녀의 얼굴에서 뚝뚝 떨어졌다. 소니가 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말했다. “소니 땅 멀미했다. 이젠 괜찮다.” 땅 멀미? 배를 오래 탄 선원들이 뭍에 올라오면 멀미를 한다고 하던데, 그걸 말하는 건가. 소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온전히 자기 뜻을 전달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소니는 지금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쇠창살에 기대앉은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바다에 살았다. 발, 땅에 안 디뎠다.” 물방울이 소니의 이마에서 볼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의 궤적을 따라 형광등 불빛이 반사됐다. 소니가 손바닥으로 얼굴의 물기를 훔치며 말했다. “소니 여러 여름 전, 바다 떠났다.” 그녀는 땅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올라선 땅은 흔들렸다. 바다에서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울렁거림을 겪어야 했다. 바다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그녀가 설명했지만 어눌한 발음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땅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한국까지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에서도, 쪽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매 순간 속은 메슥거렸다. 나는 며칠 전 봤었던 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소수종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바다 집시라 불리는 그들은 육지에 올라오면 오히려 멀미를 느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와 주변 국가의 압력 때문에 땅에 정착해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엄마가 동생을 낳다 죽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그녀의 국적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저 내 피부색을 보며 다큐멘터리에 나온 저들처럼 바다와 강렬한 해가 있는 지역 출신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소니의 피부색은 그들이나 나보다 옅었다. 지하층 계단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등이 나간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집주인은 갈아주지 않고 있었다. 흐릿한 빛에 의지해 현관문을 열었다. 안은 말라버린 우물 속처럼 컴컴했다. 벽을 더듬자 콘크리트의 냉기가 손끝에 스며들었다. 스위치를 찾지 못한 나는 어둠 속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채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채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무릎과 정강이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 찔끔 오줌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퀴퀴한 지린내가 밀려왔다. 나는 팬티를 갈아입을 생각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까지 기어가 누웠다. 첫 밤샘근무였고 한밤중에 소동까지, 피로에 찌든 몸은 솜사탕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다. 얼마나 잔 걸까? 알 수 없었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눈가를 만졌다. 다행히 손끝에 느껴지는 물기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눈에 무슨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꿈을 꾸며 눈물을 흘린다는 걸. 무슨 꿈인지는 알지 못했다. 마치 교통사고 후의 기억상실증처럼 꿈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깨어날 때마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허기가 엄습해왔다. 더듬거리며 일어나 방에 불을 켰다. 시계를 보니 벌써 한밤중이었다. 통증처럼 허기가 밀려왔다. 라면 두 개를 끓였다. 밥까지 말아 먹고 나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다 먹고 난 냄비를 싱크대에 놓았다. 수도꼭지를 틀자 빈 냄비 속으로 물이 쏟아졌다. 냄비 속 옅어진 갈색 국물이 거품을 내며 소용돌이쳤다. 밥풀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다 넘쳐나는 물을 따라 개수대로 흘러갔다. 땅멀미를 한다는 소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멀미할 때처럼 속이 울렁였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동생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울렁임은 더욱 심해졌다. 배를 채우면 이 메스꺼움이 좀 가라앉지 않을까. 찬장에서 감자칩을 꺼내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듯이 넘겼지만 메스꺼움은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보호실 철문이 열리고 이 반장과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이런 곳이 처음인지 창살 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어린이 팔뚝만 한 쇠봉이 한 뼘 간격으로 세워진 창살 안에는 다양한 피부색의 여자 외국인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마루 형식으로 된 바닥에 국적별로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소니만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은 채 구석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사무소 직원이 아닌 듯 남자는 관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검은색 쟈켓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특징 없는 인상은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십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이 반장이 소니를 조사실로 호출했다. 남자는 조사실로 들어갔다. 둘은 삼십 분 정도 조사실에 있었다. 가끔 소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는 다른 웃음이었다. 끈적끈적하니 교태가 묻어있는 웃음이었다. 조사실에서 나온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어그러뜨렸다. 황당하다는 웃음 같기도, 싱겁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남자와는 다르게 뒤따라 나오는 소니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남자는 이 반장에게 짧게 말을 전한 후 돌아갔다. 나는 이 반장에게 다가갔다. 저분은 누구예요, 라는 내 물음에 이 반장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밀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순순히 돌아갔다. 내 태도에 이 반장은 당황한 듯싶었다. 쩝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더니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소니가 진짜 이름일까?” 나는 그제야 이 반장이 비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최대한 지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잘 직시하지 못했다. 나의 피부색을 처음 본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는 바로 꼬인 가방끈을 고쳐 매듯 낯을 바꾼다. 마치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어떤 반감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그 표정을 본 나로서는 더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이 반장은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묻히고는 말했다. “당연히 진짜 이름 아니지. 소니 들어봤잖아. 워크맨 만드는 전자회사” 작년 겨울, 한 베트남인이 여고생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 사건은 십분 정도 모 포털 사이트 검색어 톱을 차지했다. 첫눈이 오기 전날 대대적인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이 벌어졌다. 그날 밤 노래방을 덮친 경찰은 손님의 노래에 맞춰 탬버린을 치고 있는 소니를 붙잡았다.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첫눈을 맞으며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졌다. 그녀의 지문과 일치하는 한국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넘겨진 불법 체류 외국인들은 사무소 내에 있는 보호실에 임시로 수감된다. 제일 먼저 그들의 국적을 확인하는데 가끔 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국적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니는 아예 한국어를 모르는 척했다. 여러 언어의 통역사들이 말을 걸어봤지만, 그녀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연기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협조하지 않는 한 그녀의 모국어가 무엇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굉장히 난감해했다. 직원들은 소니의 소지품을 확인했다. 수거된 소지품에서 신원의 단서를 찾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품에 지니고 다닌다. 신분증부터 휴대폰, 수첩, 메모 등. 그러나 그녀의 소지품이라고는‘SQNY’라고 로고가 박힌 짝퉁 휴대용 라디오뿐이었다. 나중에 그녀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은 발각되었지만, 그녀의 국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절대 신원의 실마리가 될 이야기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마지막 눈이 녹았지만, 여전히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심문에 잘 대답하다가도 신분이 노출될 만한 질문이 들어오면 입을 다물거나 딴소리를 해댔다. 그 엉뚱한 말들 때문이었을까, 심문했던 직원들 중 몇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보내져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각국 대사관에 그녀의 사진이 포함된 협조문도 보내졌다. 미친 것은 아니라는 의사의 소견과 자기네 국민이 아니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몇몇 국가는 아예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보호실은 외국인 보호소로 이송되기 전, 하루나 이틀 정도 임시 수용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골치 아플 것을 눈치챈 외국인 보호소는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이름이 없으니 불편함을 느낀 직원 하나가 그녀를 소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 이름이 맘에 들었는지 자신을 소니라 소개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근무 첫날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이 반장에게 했다. 소니가 바다에서 왔다는 내 말에 이 반장은 껄껄대며 웃었다. “소니는 신입이 오면 꼭 한 번씩 골탕을 먹이더라고. 내가 말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그냥 맘 편하게 신고식이었다고 생각하도록 해.” 이 반장은 은근히 흐뭇해하는 눈치였다.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이 반장은 말했다. “나도 올 초 여기 사무소로 발령받아 왔을 때 감쪽같이 속았다고. 소니가 자기는 동생한테 이름을 빼앗겼다는 거야.” 소니는 자신이 일 가구 일 자녀 정책을 펴는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이 반장에게 말했었다. 소니의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다. 첫아이가 소니이자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됐던 그녀의 아버지는 앞으로 태어날 남동생을 위해 그녀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대신 미리 지어 놨던 남자 이름, 남동생에게 주어질 이름으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곧 태어난 남동생이 가져가 버렸다. 그녀는 이름도 없고 서류상으로도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소니의 비밀을 알게 된 이 반장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런데 다 거짓말이었어. 중국대사관에 동생 이름을 문의해 봤더니 그런 자는 없다는 거야.” 소니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상하게도 먹먹해진 내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 같았다. 나는 만난 적 없는 엄마와 기억나지 않는 꿈을 떠올렸다. “아마도 소니는 여기서 두 번째 겨울은 나지 못할 것 같아.” 이 반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나 보다. 내 반응에 이 반장은 신이 났는지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윗분들이 그녀를 풀어주려 한다고 했다. 어차피 더는 그녀의 신원을 알아낼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둬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혹시 간첩이 아닐까 ’누군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방금 전 소니를 조사했던 남자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남자가 지었던 표정으로 봐서 그녀는 간첩이 아닌 게 분명했다. 창살 사이로 소니를 바라봤다. 분명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고 티브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터운 쌍꺼풀에 불거진 광대뼈, 두꺼운 입술 위로 큼지막하게 자리한 뭉툭한 코. 아무리 뜯어 봐도 어디 사람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속으로 삼키듯 소니를 발음해 봤다.‘SONY’라는 글자를 전 세계 사람 모두 소니라고 발음한다는 기사를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똥별 같은 느낌을 주는 소니라는 어감은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그녀와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았다. 비록 ‘SQNY’라 적힌 그녀의 라디오는 짝퉁이지만. 핸드폰 벨소리에 눈을 떴다. 팔을 뻗어 보려 했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야간근무를 시작한 후부터 낮에는 앓는 사람처럼 곯아떨어져 버렸다. 벨소리는 곧 끊어졌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동생에게서 부재중 전화와 함께 문자가 와 있었다. ‘어머니 제사 때는 집에 올 거지?’ 동생의 문자를 다 읽은 나는 그대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며 꿈을 기억해 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추억처럼 꿈은 기억나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 문을 열자 어제 먹다 남긴 치킨이 보였다. 차가운 치킨을 데우지도 않고 먹기 시작했다. 살코기는 푸석댔고 닭 껍질은 질겼다. 차가울 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기계적으로 씹을 뿐이었다. 접시 위의 치킨은 모두 없어졌지만,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온전한 것을 찾아 수북이 쌓인 닭 뼈 사이를 뒤적였다. 손에 닭 목이 걸려 올라왔다. 튀김가루가 다 떨어져 앙상해진 닭 목을 통째로 씹었다. ‘빠드득’ 입안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어금니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입 밖으로 삐죽거리며 새어 나왔다. 엄마의 제사는 연극 같았다. 나는 엄마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엄마는 불법 체류 외국인이 되어 아직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 물어보고 싶었다. ‘왜 나를 낳았는지, 왜 고향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지만 나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대신 단속에 걸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보호실로 들어올 때마다, 엄마 또래의 외국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얼굴을 모른다. 마치 쏘기 직전의 활처럼 소니와 나이지리아 여자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어제 들어온 금발의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커다란 눈망울로 둘의 눈치만 살폈다. 나는 슬며시 수화기를 들어 이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들어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벌써 외국인 보호소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난민신청 문제로 이송이 지연되고 있었다. 소니는 그동안 보호실의 터줏대감처럼 행동했었다. 워낙 오래 있었고 기가 셌기 때문에 처음 들어온 외국인들은 그녀에게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여자는 자신의 덩치를 믿고 그녀를 무시했다. 아슬아슬했던 둘 사이가 결국 터지려 하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소니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금이 그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소니의 영역은 티브이 맞은편 창가 아래였다. 사람들은 아무리 보호실이 붐벼도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고 직원들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다른 수감자들과는 달리 소니는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그곳에서 티브이를 보거나 낮잠을 청했다. 소니가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먼저 주먹을 날렸다. 소니의 주먹이 정확히 나이지리아 여자의 얼굴을 때렸지만, 나이지리아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이지리아 여자가 성큼 달려들어 소니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검은 표범을 연상시키는 그녀는 보통의 남자보다 몸무게도 더 나갔으며 몸도 더 우람했다. 작은 키에 마른 편인 소니는 금방이라도 찢길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소니의 머리를 흔들어 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 기세에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구석으로 도망쳤고 철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나도 멈칫했다. 아직 이 반장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잠깐 망설였지만 뭉치로 뽑혀 휘날리는 소니의 머리카락을 보자, 큰일 나겠다 싶었다. 무작정 안으로 뛰어들어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파리를 쫓듯 팔을 휘젓자 나는 그대로 날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틈에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깨물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소니의 머리카락을 잡아끌었다. 얼마나 세게 당기는지 소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눈초리는 찢어질 듯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두 손으로 꽉 쥐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흰자위로 금이 가듯 붉은 실핏줄이 섬뜩하게 번져 갔다. 이 반장이 도착했을 때 나이지리아 여자는 제발 놓아 달라며 울고 있었다. 나와 이 반장, 우즈베키스탄 아가씨가 달려들어 겨우 소니를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소니의 입은 거품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뚝은 처참하게 살점이 뜯겨 있었다. 소니는 분이 안 풀리는지 몇 번이고 이를 드러내며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보고를 받은 김 실장이 달려왔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김 실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소니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다음 날 아침,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반장이 들어왔다. “같이 병원 좀 가줘야겠는데.” 이 반장은 소니와 나를 차에 태우고 인근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싸움을 보고 김 실장이 특별 지시를 내린 모양이었다. 여자 수감자가 외출할 때는 반드시 여직원이 동행해야 했다. 소니는 차창 밖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선지 살짝 들뜬 것처럼 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병원 대기실에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번 왔었는지 이 반장은 간호사와 아는 척을 했다. 대기 순번을 보니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접수를 마친 이 반장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펴들었다. 느긋한 그의 모습을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지금쯤이면 거의 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당장 쓰러질 것같이 피곤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고요한 대기실에 울렸다. 이 반장이 황급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들만 이리저리 바삐 움직일 뿐 대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멍하니 티브이만 들여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밖으로 나간 이 반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어올 때만 해도 어스레했었는데 어느새 대기실은 햇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슬슬 데워지기 시작한 볕은 커피 잔의 온기처럼 따스했다. 머리가 무거워지며 눈꺼풀이 스르륵 감겨 왔다. 고개를 흔들어 봤지만 집요하게 따라 붙는 졸음을 물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슬쩍 소니를 쳐다봤다. 소니도 대기실의 다른 이들처럼 아침드라마에 넋을 놓고 있었다. 열중했는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주먹 쥔 손이 스르륵 풀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사막에 있었다. 작은 모래 구릉들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다. 나 이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일 높아 보이는 모래 구릉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살펴봤지만, 예상대로 모래벌판 외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질척이는 모래 속에서 한참을 달렸지만, 소리의 주인은 찾을 수 없었다. 기진맥진해진 나는 멈춰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의 목소리, 여자의 목소리, 격양된 노인의 언성과 가는 아이의 음성, 사투리도 들려왔고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도 있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무력감에 빠져 주저앉는데 저 멀리 누군가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히잡 같은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를 쫓았지만, 그녀와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두려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제발 알려주세요.’ 그녀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녀가 바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간호사가 보였다. “괜찮으세요?” 손을 들어 눈가로 가져갔다. 축축한 물기가 만져졌다. 나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간호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환자분 어디 가셨어요? 진료실로 들어오시라는데.” 옆을 보니 소니가 앉아 있어야 할 의자가 비어 있었다. 뒤통수가 서늘해지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기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뒷줄에 새로 온 이들이 보였다. 화장실로 달려가 봤지만, 소니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소니를 봤는지 물어봤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목이 탁 막혀 왔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이 반장이 들어왔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소니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내 이야기를 들은 이 반장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이 반장을 쫓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 반장의 모습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소니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뿐, 어디로 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수많은 목소리와 거리의 소음들이 한꺼번에 귀로 파고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 내 모습이 이상했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흘끔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문득 스쳐 가는 한 여자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의 옆모습은 소니와 닮아 보였다.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챘다. 안경을 쓴 여자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소니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여자에게 사과한 후 무턱대고 앞으로 걸어갔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가 멈춰 서자 소니와 닮은 여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나는 누구를 쫓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가방을 멘 여자를 따라갔다. 한참을 쫓는데 여자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번에도 소니가 아니었다. 여자의 한국말은 너무나도 유창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반장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돌아갈까.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데 옅은 커피색 피부의 손등이 보였다. 보호소 철장 안에 이런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도망쳐 나온 게 내가 아닐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간판들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그러진 간판의 글자들은 처음 보는 외국어처럼 낯설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여기 이곳의 내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빈 석상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던 걸까, 핸드폰이 울렸다. 이 반장에게 온 전화였다. 그는 소니를 찾았으니 집으로 퇴근하라 했다. 소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침한 표정으로 자신의 영역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내 기분은 가을비처럼 오락가락했다. 도망친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고 돌아와 준 것에 대해 고맙기도 했다. 소니는 도망친 지 네 시간여 만에 자기 발로 사무실에 돌아왔다. 직원들은 그녀가 어디를 갔다 온 건지 몸이 달 정도로 궁금해했다. 하지만 소니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며칠 후 이 반장이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왔다. 병원 근처 지하철역의 개찰구와 그 앞 대합실을 찍은 CCTV 영상이었다. 하단의 숫자는 소니가 도망친 날의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반장이 ‘저기다. 저기’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화면 끝에서 소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홉 시 삼십 분이었다. 병원에서 역까지는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였다. 내가 졸자마자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녀는 대합실에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단의 숫자가 열두 시를 넘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눈길을 보내지도 않았다. 이 반장이 비아냥거렸다. “돈이 없으니 아무 데도 못 가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아는 소니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사람을 속여서라도 갈 사람이었다. 이 반장은 의심스러운 장면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며 한 번 더 비디오를 틀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화면을 스쳐 지나갔고 의자에 앉은 소니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반장과 나는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소니의 도주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갈까 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 사건 이후에도 소니는 예전과 다름없이 행동했다. 새로 들어온 외국인들에게 텃세를 부렸고 자신의 영역에 누워 드라마를 봤다. 그렇게 소니가 또다시 겨울을 보호소에서 날 줄 알았다. 하지만 첫눈 예보가 있던 날 소니의 석방이 통보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소니는 거품을 물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자신의 몸에 자해를 했다. 결국, 소니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지만 윗사람들은 단호했다. 그런 소동을 부렸음에도 다음 날로 석방이 미뤄졌을 뿐이었다. 새로 온 소장은 골치 아픈 문제를 빨리 치우고 싶어 했다. 이 반장은 병원에서 돌아온 소니를 잘 감시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첫날처럼 보호실에는 나와 소니 둘만이 남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다른 수감자들은 일찌감치 외국인 보호소로 보내 버렸다. 취침시간이 지났는데도 소니는 자리에 눕지 않았다. 불을 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톤으로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지하철역을 말하는 건가,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소니가 말했다. “사람들은 걸을 때 참 무서운 얼굴을 한다. 그런 얼굴로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소니는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바라봤다. 소니의 눈동자는 마치 갓난아기의 눈처럼 샛말갰다.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위로 흰 얼룩 같은 눈송이가 쌓이고 있었다. 어제 내릴 거라던 첫눈은 오늘 아침에야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파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소니는 예정대로 오늘 아침 석방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이송되어 왔기 때문에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소니가 더는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마치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거리에는 눈이 쌓여 가고 있었다. 나는 소니의 발자국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벌써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에 의해 어지럽혀 있었다. 무작정 소니의 흔적이라 짐작되는 발자국을 따라갔다. 눈바람이 날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발자국들은 뭉개졌다. 나는 발자국을 놓쳤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역 앞이었다. 나는 역으로 들어갔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역은 붐볐다. 부딪히지 않게 나는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그때, 왠지 낯이 익은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도망친 소니가 앉았던 지하철역의 의자였다. 나는 그 의자로 가 앉았다. 소니의 말대로 사람들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빠르게 내 앞을 지나쳐 갔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워지듯 오고 가는 사람들은 점점 옅어져 갔다. 결국, 신기루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고 역에는 나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소리들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주변 소음은 오히려 증폭되어 귓전을 때렸다. 전차가 진입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전차는 A시 공단역으로 갈 것이다. 엄마는 A시 공단역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소니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끝>
  • 아이 셋 낳은 장이머우 벌금 12억 6700만원

    아이 셋 낳은 장이머우 벌금 12억 6700만원

    중국의 거장 감독인 장이머우(張藝謀)가 ‘한 자녀’ 정책을 어긴 대가로 물어야 할 벌금이 730만 위안(약 12억 6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역대 한 자녀 정책 위반 벌금으로는 최대 규모라는 평이다. 장 감독은 지난 29일 관영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자녀 정책을 어기고 세 자녀를 낳은 데 대해 재차 사과했다. 그는 “아버지는 임종 전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어머니도 아이들에게는 함께할 수 있는 형제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그러나 초과 출산은 위법인 만큼 결과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박시후 근황, 부여에 계신 할머니 보고싶어서..‘컴백은 언제?’

    박시후 근황, 부여에 계신 할머니 보고싶어서..‘컴백은 언제?’

    박시후 근황이 공개됐다. 29일 방송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박시후의 근황을 알기 위해 그의 할머니의 집을 찾아갔다. 박시후의 할머니는 “지난 번에 왔다 갔다. 며칠 됐다”며 “특별히 얘기한 건 없고 잠깐 보고 싶다고 왔다 갔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는 성폭행 무혐의를 받았다는 말을 꺼내자 “당연하다”고 말하고는 “컴백 중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지난 2월 15일 성폭행 혐의로 피소를 당한 박시후는 최근 중국영화 ‘향기’를 통해 컴백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박시후 측은 “아직 국내 복귀 계획은 없다”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박시후 근황을 접한 네티즌들은 “박시후 근황..할머니까지 찾아가야하나”, “박시후 근황..박시후 할머니도 마음고생 심하셨겠다”, “박시후 근황..국내 복귀는 언제?”, “박시후 근황..잘 지내고 있구나”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MBC (박시후 근황) 연예팀 chkim@seoul.co.kr
  • 개그우먼 송인화 집행유예…대마초 흡연 유죄 인정 징역 6월

    개그우먼 송인화 집행유예…대마초 흡연 유죄 인정 징역 6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기소됐던 영화배우 출신 개그우먼 송인화(25)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김상동)는 송인화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송인화의 언니(31)에 대해서는 송씨보다 무거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송인화는 2010년 9월과 올 7월 각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과 서울 성북구 집에서 언니와 함께 미국인에게서 산 대마 담배를 2차례에 걸쳐 피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송인화의 언니는 2010년 9월부터 지난 7월까지 4차례에 걸쳐 대마초를 피운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흡입한 마약류인 대마초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해악을 생각하면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 “그러나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고 범행을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2차례 흡연 후 그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KBS 공채 출신 개그우먼인 송인화는 2005년 영화배우로 연예계에 발을 디딘 뒤 올해 개그우먼으로 전향했다. 지난 9월 개그콘서트 ‘시청률의 제왕’ 편에 출연하는 등 인기가 상승세를 탈 즈음 대마초 흡연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사실이 알려져 해당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뒤 이달 초 한시적 출연규제 조치를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웃 더 사랑하고 배려·포용… 화해·상생하는 새해를”

    “이웃 더 사랑하고 배려·포용… 화해·상생하는 새해를”

    갑오년 새해를 앞두고 천주교, 불교, 개신교, 원불교 등 종교계 지도자들이 일제히 신년사를 발표했다. 각 종교 지도자들은 신년사를 통해 이웃에 대한 자비와 배려, 포용과 상생의 정신을 한목소리로 당부했다. 종단 신도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를 전하는 종교계 수장들의 신년사를 요약, 소개한다.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새해에는 우리 모두 더 진실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도록 노력하자. 특히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도록 하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소망하지만 사실 행복은 우리 마음 안에 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다. 가난한 삶이란 겸손한 자세로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이런 행복의 진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나라 안팎으로 화해와 상생의 물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옛 말씀에 바보 셋이라도 모여 의논하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나온다 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과 종단의 주인인 사부대중이 마음을 모아 지혜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다. 새해에는 현란함과 숫자로 이름 지어진 허명을 좇아 동분서주하기보다는 진실과 화해의 새 길을 여는 데 모두의 마음을 모으자. 천심인 민심을 형성하고 합리적인 민심이 사회의 공론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 마당을 열어가자. 도정 천태종 총무원장 새해에는 모든 것을 긍정하고 상대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나를 낮추면 세상이 높아지고 상대를 높이면 세상이 평화로워진다. 다툼이 없으면 평화롭고 차별이 없으면 평등하다. 일체를 긍정하는 마음에서 천지의 조화가 드러나고 상대를 공경하는 마음에서 상생의 복락이 펼쳐진다.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일하고자 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기쁨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세상, 약자와 강자라는 대립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는 마음을 나누는 세상, 공권력은 주인인 국민을 섬김으로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민족이 화해하고 하나 되는 세상이기를 소망한다. 교회는 먼저 공공성을 회복함으로써 세상의 희망으로 다시 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박위근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새해 새 아침에 우리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갱생하고 개혁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일에 힘쓰자. 가진 것을 흩어 구제하고, 겸손히 이웃을 섬길 때 한국교회는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정쟁으로 우리 사회는 미래를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극단적 양극화의 골을 메우기 위해 한국교회는 화해와 치유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장응철 원불교 종법사 새해를 맞아 국가 및 세계, 교단의 앞날에 큰 서광이 깃들고 전 교도와 국민, 인류에게 법신불 사은의 은혜가 가득하시길 축원한다. 이제 우리는 세상 만물을 상극에서 상생으로 살려나가야 한다. 넉넉한 마음을 기르고 깊은 지혜를 닦고 남모르게 베푸는 덕행을 쌓자. 21세기를 과학과 도학이 병진하는 참문명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인류공동의 과제인 환경에 대해 우리의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를 새롭게 해야 한다. 안경전 증산도 종도사 개벽은 험난한 시련이지만 동시에 위대한 희망이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원형문명과 시원역사로 돌아가 온고지신으로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점점 치열해지는 동북아 역사전쟁의 판세와 급박하게 돌아가는 남북의 상씨름 대결은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과제다. 수천년을 이어온 조상의 얼과 대한의 혼으로 다시 배달민족의 영광을 회복해야 한다. 개벽기에 하늘의 광명과 땅의 광명이 대한민국의 찬란한 앞날을 밝혀 세계의 문화 종주국으로 우뚝 서기를 축원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장애 있어도 갈 수 있어요”

    “장애 있어도 갈 수 있어요”

    부산 북구 구포동에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도 쉽게 거닐 수 있는 무장애 숲길이 25일 완공돼 시민들이 전망대에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숲길은 폭 1.5∼2m의 나무데크를 경사도 12% 이내로 조성해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히 다니도록 했다. 부산 북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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