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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16) 제주 우도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16) 제주 우도

    제주 성산포 앞바다에 떠있는 우도는 이름 그대로 소섬이다. 섬의 형태가 소가 드러누웠거나 바다로 머리를 내민 모습과 같다고 하여 우도라 불린다. 우도는 제주도가 거느리는 62개의 새끼 섬 중에서 가장 크다. 그래 봤자 면적 5.9㎢(650㏊, 196만평), 남북의 길이 3.5㎞, 동서로 2.5㎞밖에 되지 않는다. 해안선 길이는 모두 합해서 17㎞. 이렇듯 크기는 작아도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간직한 옹골찬 섬’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우도를 제대로 보려면 느리게 다녀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자가용이나 관광버스에 올라 포인트만 찍고 두세 시간 만에 섬을 빠져나간다. 이런 수박 겉핥기식 여행에서 벗어나야 우도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전거로 섬을 한 바퀴 돌면서 우도봉을 걸어서 느긋하게 감상하는 것이다. ●제주의 원형을 간직한 소처럼 착한 섬 성산항에서 배를 타면 15분 만에 우도 서광리 하우목동항에 닿는다. 배에서 내리면 우도 마을버스가 기다리고 있고, 그 옆에 자전거 대여소가 보인다. 여기서 자전거를 빌려 왼쪽 해안길을 선택해 출발한다. 우도는 경사가 완만한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게 힘이 덜 든다. 길은 짙푸른 바다를 왼쪽에, 현무암을 쌓아 만든 검은 돌담을 오른쪽에 두고 있다. 그 사이로 힘껏 페달을 밟으면 청량한 바닷바람이 온몸을 어루만진다. 서광리에서 우도의 가장 북쪽인 오봉리로 가는 길에는 푸른 잉크를 풀어낸 듯 넘실대는 바다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자맥질을 하고 올라와서 길게 내뱉는 숨비소리가 파도 소리를 뚫고 들려온다. 마침 길에서 한 무리의 해녀들을 만났다. 망태기 짊어지고 무거운 납벨트를 두른 채 구부정한 허리로 발걸음을 옮기는 늙은 해녀들. 안타깝게도 대부분 60~70대의 노인들이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마른 쑥으로 물안경을 닦더니, 아무 주저함 없이 거친 파도를 향해 차례대로 뛰어들었다. 헤엄칠 때 필요한 도구인 ‘태왁’ 하나에 의지해 거센 파도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정말로 감동적이었다. 용암이 굳은 현무암 돌담이 유독 많은 오봉리는 배우 전도연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인어공주’ 촬영지로 유명하다. 영화에서 돌담 너머로 펼쳐진 싱그러운 바다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구멍 숭숭 뚫린 돌담 안에선 해풍을 맞으며 우도 특산물인 마늘, 땅콩 등이 쑥쑥 자라고 있다. ●숨비소리 들리는 해녀들의 섬 오봉리에서 오른쪽으로 모퉁이를 돌면 하고수동이다. 관광객들은 우도 최고 절경으로 산호사 해수욕장을 꼽지만, 우도 사람들은 하고수동 해수욕장을 으뜸으로 친다. 두 곳 모두 에메랄드빛 해변이 압권이지만 하고수동의 백사장이 넓고 물이 얕아 놀기에 좋다. 하고수동에서 다시 해안길을 따르면 우도봉 동쪽 아래 깎아지른 벼랑을 만난다. 벼랑 아래에 검은 모래가 깔린 검멀래 해변이 있다. 모래사장으로 내려오면 일명 콧구멍굴이라 불리는 큰 동굴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이 우도8경 중 하나인 동안경굴(東岸鯨窟)이다. 파도가 뚫어놓은 이곳은 ‘고래가 살 수 있을 만큼 큰 동굴’이라 가끔 동굴음악회도 열린다. 우도봉(133m)은 이곳에서 오르는 것이 좋다. 본래는 천진항 앞에서 들어가는 것이 메인 코스지만 경사가 급하다. 그래서 자전거를 이용할 경우에는 좋지 않다. 동굴밥상 리조트 앞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10분 정도 오르면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시원한 초원길을 따르면 곧 하얀 등대가 나타난다. 우도 등대는 돔형의 탑으로 1906년 3월1일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옛 등대는 100년간의 임무를 완수하고 퇴역했다. 그 옆에 손자뻘인 16m 높이의 100주년 기념 등대가 서 있다. 등대 1층에는 우도등대와 세계 각국의 등대 모형이 전시된 등대박물관이 있다. ●100주년 기념 등대가 세워진 우도봉 등대가 서 있는 자리에서 전망이 기막히게 트인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망망대해가 우도8경 중 지두청사(地頭靑莎)다. 고개를 돌리면 우도의 여러 마을과 들녘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왕관을 쓴 듯한 성산일출봉과 멀리 한라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우도봉의 가장 높은 곳은 군부대가 들어섰기에 아래쪽으로 우회해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선다. 이곳부터는 천연 잔디가 깔려 개구쟁이들은 신나게 굴러서 내려간다. 펑퍼짐한 우도봉의 품은 부드럽고 포근하지만 바다를 맞댄 곳은 까마득한 벼랑이다. 우도봉에서 내려와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넘으면 천진항에 이른다. 천진항부터는 길이 순해 콧노래가 절로 나고, 우도8경 중 최고로 손꼽히는 서빈백사(西濱白沙) 즉, 산호사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자전거는 산호사 해수욕장을 끝으로 하우목동항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도를 떠나려고 배를 기다리는데, 서광리 해변에서 나지막이 숨비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해녀들의 물질은 끝나질 않았다. 자전거로 우도의 해안선 17㎞를 한 바퀴 도는데 4시간, 우도봉은 1시간쯤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여행전문작가 ●가는 길과 맛집 제주 공항에서 성산읍 성산항까지 우도 콜택시(080-725-7788)를 이용한다. 공항→성산항 1만 7000원, 성산항→공항 2만 2000원. 50분 걸린다. 일반 택시 미터요금으로는 3만원 안팎이 든다. 성산항→우도는 08:00~18:00 매시 정각 출발한다. 성산포항 064-782-5671. 천진동항 앞 우도일번지(064-783-0015)의 해물뚝배기와 성게국수가 괜찮다.
  • [26일 TV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1년 365일 쉬지 않고 가동되는 신체의 엔진, 심장. 심장에는 ‘동방결절’이라 불리는 전기발전소가 있다. 우리의 심장은 이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의 자극으로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이 발전소에 문제가 생겨 심장이 너무 빠르게, 혹은 느리게 뛴다면 우리 몸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내와 여자(KBS2 오전 9시) 연하는 모두의 전송을 받으며 짐을 챙겨 회사를 떠난다. 한편 준하로부터 비로소 태환의 일을 듣게 된 원우와 선자 부부는 오히려 연하의 방황을 부채질한 자신들이 한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이런 가족의 근심은 아랑곳없이 이혼하겠다고 소란을 떠는 창하가 준하는 철없고 성가시기만 하다.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희정은 남편이 카드 값으로 큰 돈을 긁어버리자 홧김에 명품 가방을 구입한다. 하지만 정작 가방을 들고 갈 데가 없는 처량한 아줌마 희정은 명품 가방에 순대나 넣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가방이 찢어지고 만다. 고교동창인 방송국 PD 성민과 마주친 희진은 빵집 알바생인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순결한 당신(SBS 오전 8시30분) 병원으로 옮겨진 단비를 정밀검사한 후 의사는 아기의 심장박동이 약하고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면서 상태가 계속되면 수술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한쪽에 서 있던 미진을 발견한 희숙은 “네가 저렇게 만들었냐.”며 멱살을 잡고, 희숙을 뿌리치던 미진은 순희를 보자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며 태도를 바꾼다. ●극한직업(EBS 오후 10시40분) 앞으로 3~4일 파도가 계속될 거라는 기상예보. 선원들의 안전을 위해 고명수 선장은 귀환을 결정한다. 조기 귀환 결정에 선원들도 풀이 죽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옥돔 조업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며칠 후 파도에 부서진 배를 수리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선원들, 또다시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하는데….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프랑스 파리 남서쪽의 작은 도시 프와티 시 당국이 한국인 설치미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도록 적극 지원에 나섰다. 프랑스 지방도시가 외국인 작가를 내세워 개인전을 열도록 지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립 미술학교인 보자르와 시립 갤러리 등에서 동포 설치미술작가 하차연씨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 [사설] G7의 7배 물가상승률 대책 세워라

    우리나라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선진 7개국(G7)보다 무려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이 지난 1월 우리나라는 3.7% 오른 데 비해 G7 국가는 0.5%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OECD 30개 회원국의 물가상승률은 1.3%에 불과했다. 경기침체 상황에는 약간의 디플레이션을 보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경기가 나쁜데도 우리만 유독 고물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경제정책 기조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물가가 강세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강세인 데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원자재 수입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 오를 때는 빠르게 많이 오르고, 내릴 때는 느리게 찔끔 내리는 게 우리나라 물가이다 보니 한번 오른 물가는 좀처럼 내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경기부양에 온 힘을 집중하느라 물가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MB물가지수’란 것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물가구조를 왜곡시키는 역효과만 초래했다. 지금 서민들은 자산가치 하락과 고물가의 이중고로 허리가 휠 지경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재정지출과 추가경정예산 등이 집행되면서 단기간에 통화량이 늘어날 경우 화폐가치는 더욱 떨어지고 물가가 폭등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여기에 외환시장마저 흔들리면 최악의 경우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맞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까지 등장했다. 경기부양을 겨냥한 각종 감세정책과 통화정책, 재정지출 확대에 대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신 서민들을 위해 효율적인 물가대책 마련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지나친 물가상승은 경기부양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 숭실대생 교수평가 책내 화제

    ‘기절초풍 대학 강의 실태-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가 대학가에 화제다. 숭실대생들이 최근 3년간 교수·강사들의 강의에 대해 무기명으로 적어낸 의견을 정리한 책이다. 강의에 대한 비판과 칭찬 등 학생들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있다. 교수사회에도 성과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교수들이 강의준비에 진땀을 흘리고 있어 자극제가 될 전망이다. 이 대학 노경식 홍보팀장은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평가를 토대로 교수들이 강의를 더 알차게 준비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면서 “내부 교직원들에게 600부를 배포했는데 외부에서 요청이 있어 추가인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의계획서 따로, 수업 따로 “처음에 계획서 볼 때 유익한 강의가 많아 기대가 컸는데 강의 계획은 무시되고 교수 편한 대로 강의가 이뤄지는 듯해 많이 실망했다.”, “정상적인 수업진도보다 지나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다 학기말에 와서는 2주 분량을 단 하루만에 나가기도 했다.”는 등 제멋대로 수업에 대한 불만들이 많았다. 학교측은 이런 경우 처음부터 강의계획서를 성실하게 작성하든지, 바꿀 경우 수정본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닫힌 연구실 문, 열린 연구실 문 “이메일로 과제냈는데, 안 냈다고 한다. 수신확인 인쇄해서 보여 드렸더니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한다. 제대로 성적은 나올까?”,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나가시는 교수님,학생보다 빠르다.” 이른바 닫힌 교수들에 대한 학생들의 지적이다. 물론 “수업뿐만 아니라 상담도 해주시고 학생 한 명 한 명 신경써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는 칭찬도 있었다. 학교측은 진로나 전공 취업 등에 대해 자상하게 대화해 주는 교수들을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교수연구실 문을 반쯤 열어두거나 ▲학기 중 한 번 이상은 반드시 교수를 방문해야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등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교수님,오늘도 지각입니다.” “모범이 되어야 하는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15분 늦는 건 예사로 알고…완전 실망했습니다.”, “수업을 항상 2~3분 늦게 끝내주셔서, 다음 시간 수업강의가 먼 곳에서 있으면 시간 안에 가기 빠듯합니다.” 학교는 이에 대해 학생들은 시작시간 못지않게 종료시간에도 민감한 만큼 ‘일일 연속극’처럼 시작시간과 종료시간이 정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필적으로 본 항일과 친일

    필적으로 본 항일과 친일

    어떤 사람은 목숨을 바치며 불의에 맞서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을 좇는가? 평소 의문이 있었다면, 흰 종이를 꺼내 놓고, 친구들에게 보낼 편지를 적어보자. 적어도 한 열 줄 정도는 죽 써 내려가야 할 것 같다. 그런 후에 ‘필적은 말한다’(구본진 지음, 중앙북스 펴냄)를 읽어보자. 그 열 줄의 편지를 통해 35년의 일제 강점기 동안 자신이 과연 항일 투사가 되었을 것인지, 아니면 친일파가 되었을 것인지 실마리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글씨는 뇌의 지문’이라는 필적학의 주장을 전제로, 항일 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비교분석한 보기 드문 책이다. 필적학에서 글씨는 사람의 인격과 기질, 성격을 모두 반영하는 총체적인 인격으로 본다. 현직 검사인 저자(현재 법무연수원 교수)는 조직폭력, 마약, 살인 등 강력범죄 수사를 20여년 해오던 중 10여년 전부터 간찰을 모으기 시작해 범죄 수사하듯 글씨와 인격과의 관계를 탐색해 나갔다. 간찰이란 선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이다. 일반적으로 공들여 쓰는 서예 작품에 비해 솔직하게 심성을 드러냈기에 쓴 사람의 정서를 파악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값이 쌌다. 그가 수집을 시작하던 10여년 전만 해도 이같은 간찰은 2만~3만원, 구한말 역사적 인물인 곽종석, 기우만 등의 글씨도 10만~20만원이면 구할 수 있었단다. 그 결과 김구, 안중근 등 항일 운동가 400여명이 남긴 600여점, 이완용 등 친일파 150여명이 쓴 300여점의 친필을 수집했다. 그 결과 ‘시체는 말을 한다.’는 법의학의 격언과 똑같은 알레고리로 ‘유묵이 말을 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저자는 거실 바닥에 간찰과 서예 작품 200여점을 섞어 놓고 항일 운동가인지 친일파인지를 직감에 따라 분류도 해봤는데, 놀랍게도 직감은 90% 적중했다고 했다. 글씨 크기, 자간, 행간, 글씨가 주는 카리스마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항일운동가의 필체는 안진경체와 흡사하다고 한다. 안진경은 안녹산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의병을 지휘한 강인한 인물이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과 기개가 배어 글씨체가 반듯하고 각이 져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 등의 글씨다. 항일 운동가는 작은 글씨를 느리게 쓴다고 한다. 글씨는 작게 쓰면서 행간은 넓게 벌려 놓아 조심스럽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드러낸다. 반면 친일파는 글씨를 빠르고 크게 쓰면서 행간이 넓지 않고 다른 글자를 침범하곤 한다. 저자는 ‘적극적인 친일파는 일제의 탄압과 수탈에 민족이 고통받는데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이런 배려심 없는 성향이 글씨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항일 운동가는 행간이 넓은 반면 자간은 좁다. 글자 사이가 좁은 사람은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다. 결국 항일 운동가는 일본의 무력에 복속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던 자의식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반면 친일파의 글씨는 자간이 넓다. 넓은 자간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외향적이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친일파는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는 일을 스스로 수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고, ‘일본의 지배’라는 새로운 환경에도 무리없이 잘 적응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극단적인 친일파의 경우는 글씨가 들쭉날쭉하며, 도저히 읽기가 어려운 수준인데 이는 일제시대의 사회지도자나 지식인들의 극단적인 정신분열상태를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당대의 명필로 평가되는 이완용을 두고 저자는 그가 중국의 미불이나 동기창과 같은 명인의 서법을 깊이 연구했고 실제로 달필이지만 획의 운용이나 글씨의 구성에서 보이는 세련된 기교에 비해 전체 글씨의 격은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반면 김구의 글씨는 큰 기교는 오히려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대교약졸(大巧若拙)로 달빛에 매화 향기가 떠다니는 것처럼 은은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인자하고 후덕한 인품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술시장에서 두 사람의 글씨에 매기는 가치는 130×30㎝ 반절지를 기준으로 백범의 글씨는 1000만~1500만원이고, 이완용의 글씨는 30만~50만원이다. 책의 앞부분은 친일파와 항일 운동가의 필적을 비교 분석하는 데 공을 들이지만, 책 중반 이후부터는 수집한 개별 간찰의 내용을 소상히 소개한다. 의병장 양한규의 쌀 한 섬을 빌려 달라는 편지나, 의거를 앞두고 가족을 부탁하는 김지섭의 편지,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곽종석의 포고문, 정경태의 ‘창의통문’, 의병장 유인석이 최익현에게 보낸 간찰로 유배 소식에 눈물로 걱정하는 내용 등등을 읽을 수 있다. 국내 최초 공개되는 서찰들로 역사적 자료로서의 의미도 크다. 1만 7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新귀거래사] ‘접시꽃 당신’ 도종환 시인

    [新귀거래사] ‘접시꽃 당신’ 도종환 시인

    충북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의 굽이굽이 길을 따라 곡예운전 10여분. 산 속에 파묻힌 곳에 버섯모양의 황토집 구구산방이 나온다. 결혼 3년 만에 부인과의 사별을 주제로 쓴 ‘접시꽃 당신’으로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도종환(56) 시인이 5년째 살고 있다. 주변은 시인의 수식어 ‘아름다운 서정과 굽히지 않는 의지’처럼 일치돼 보였다. 시인은 깊은 숲속에 살지만 은둔거사는 아니다. 지난해 오장환문학관(회인면 중앙리) 명예관장이 됐다. 단체 방문객이 올 때마다 직접 안내한다. “충북 보은 출신인 오장환 시인은 1951년 34세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월북시인입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많은 작품을 쓰며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낭만’과 ‘시인부락’ 동인이며 생명파 시인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시인은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사들로 구성된 글쓰기 교육연구회 회원 60여명에게 설명했다. 그는 “제가 오장환 시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오장환문학관 명예관장으로 일하고 있으니 대단한 인연 아닌가요.”라고 자랑했다. 시인은 보은문화원이 해마다 주최하는 오장환 문학제 추진위원장도 맡아 행사를 이끌고 있다. 회인면 부수리 민들레마을 가꾸기 사업에도 참여한다. 그가 고향인 충북 청주를 떠나 보은 사람이 된 것은 지난 2003년. 당시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시인은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쓰러진 뒤 몸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몸의 균형이 깨져 심신이 무기력해지는 병이다. 감기라도 한번 걸리면 좀체 낫지 않는다. 시인은 27년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났다. 지인들의 권유로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 숲속의 황토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친구들이 ‘거북처럼 오래 살라.’며 대문에 ‘구구산방(龜龜山房)’이란 문패를 달아줬다. 처음엔 “열심히 살아 왔는데 내가 왜 이런 시골에서 ‘유배생활’을 해야 하나.”라며 하늘을 원망했다. 고독했다. 새소리,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새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점차 느린 삶, 조용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시골과 숲이 가져다 준 편안함에 빠져 들었다. 곧 청주로 돌아 가기로 했던 계획을 접고 이곳에 눌러 앉았다. “숲에 들어올 때 저의 몸과 마음은 망가져 있었습니다. 숲은 그런 저를 내치지 않고 받아 주었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골짜기 물로 닦아 주고 나뭇잎의 숨결로 말려 주었습니다.” 숲이 가져다 준 청안(淸安)한 삶은 그의 작품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건강이 회복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숲속에서 틈틈이 동시를 썼다. 지난해에는 등단 24년 만에 처음으로 동시집 ‘누가 더 놀랐을까’를 냈다. 시인은 2006년 8월부터 메일을 통해 시를 배달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 됐다. 시골에 온 뒤 인생관도 바뀌었다. 전교조 활동에 앞장서며 해직과 복직을 반복하는 등 정신없이 살았던 그였지만 이제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사는 삶을 예찬하고 있다. 느리게 살면서 ‘빨리빨리’를 외칠 때 얻지 못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시인은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귀거래사가 아닙니다.”라면서 “저처럼 마음의 거처를 찾아가 자신을 되찾는 게 진정한 귀거래사가 아닐까요.” 라고 말했다. 글 사진 보은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열린세상] 새 경제팀 달라야 한다/이필상 고려대 경영학 교수·전총장

    [열린세상] 새 경제팀 달라야 한다/이필상 고려대 경영학 교수·전총장

    새 경제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크다. 새 경제팀의 수장인 윤증현 장관은 뚝심 있게 원칙을 지키고 오랜 경험과 강한 추진력을 가진 시장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지난 경제팀의 잘못을 과감히 시정하고 올바른 정책을 신속하게 펴서 경제흐름을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 경제팀은 100일 액션플랜을 추진 중이다. 재정지출효과 극대화, 서비스산업 선진화, 민간투자활성화 등 세 가지이다. 재정지출효과의 극대화는 경기부양 효과가 직접적인 재정지출의 속도를 높여서 경제회복 효과를 최대한 높이겠다는 것이다. 서비스산업의 선진화는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방송통신, 광고, 컨설팅 등의 서비스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민간투자활성화는 민간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자금 지원, 수도권 규제완화, 세금혜택 등 가능한 모든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 플랜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실업대란이 일고 있는 위기상태에서 경기의 신속한 회복을 위해 적절한 대책이다. 그러나 위기를 일단 극복하자는 응급조치이지 부실한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신산업을 수혈하는 새 정책기조는 아니다. 따라서 정책이 소진되면 경제가 더 심각한 위기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새 경제팀은 경제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국민에게 답부터 해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지난 경제팀의 잘못이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지 명확히 답해야 한다. 경제정책기조를 그대로 둔 채 영혼 없는 충성자로 역할만 한다면 국민의 불신은 더 커지고 경제는 다시 방향감각을 잃고 혼란에 빠진다. 윤증현 장관은 환란 때 금융정책실 책임자였다. 당시 정부가 왜 환란을 방치했으며, 왜 막지 못했는가 책임 있는 답을 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묻어두고 이번 금융위기를 해결한다고 한다면 국민은 안도 대신 불안을 느낀다. 더 나아가 윤증현 장관의 과거 행적은 관치금융을 주도했던 직책을 많이 맡았다. 관치주의자인지 시장주의자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아니면 정치논리에 따라 잘못된 정책을 맹목적으로 추진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다음, 새 경제팀은 경제흐름을 올바르게 진단하고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금융과 실물이 맞물려서 주저앉는 구조적 위기에 처했다. 이를 감안하여 실효성 있는 위기극복대책을 내놔야 한다. 강만수 경제팀은 지난 한해 경제위기 극복대책을 무려 73건이나 내놓았다. 필요한 자금 투입도 390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돈은 안 돌고 경제는 계속 무너지고 있다. 이들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실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책으로 바꿔야 한다. 한편, 경제정책은 속도전이 능사는 아니다. 신속히 추진해야 할 것과 신중히 해야 할 것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규제혁파, 공공부문 개혁, 구조조정 등은 관련자들의 이해를 떠나 신속하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과 그린벨트 규제완화, 비정규직 기간 폐지, 방송통신 융합 등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정책들은 여론을 수렴하여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 아무리 급하고 답답하다고 해서 무조건 밀어붙이면 경제를 낭떠러지에 떨어뜨릴 수 있다.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심리적 반전이다. 경제가 극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상태에서 새 경제팀이 경제살리기 청사진을 다시 제시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면 경제의 주체인 국민들은 하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앞을 다투어 따라나선다. 따라서 급할수록 느리게 가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2차대전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아 세계 각국 경제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보여준 것과 같이 적의 화살로 적을 이기는 새로운 발상의 전략을 펴야 한다. 또한 국민에게 미래를 여는 희망을 불어넣어 사기를 드높이고 우리 민족의 무한저력에 불을 붙여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 교수·전총장
  • 민승규 농식품부 차관 ‘벤처형 개혁 드라이브’ 주목

    민승규 농식품부 차관 ‘벤처형 개혁 드라이브’ 주목

    비즈니스형 농업혁신의 전도사로 통하는 민승규 청와대 농수산식품비서관이 지난 22일 농림수산식품부 1차관에 임명되면서 앞으로 그가 몰고 올 변화의 바람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장태평 장관이 농식품부 스스로의 반성과 개혁을 주창하며 변화의 기초 토양을 마련했다면 민 차관은 구체적인 정책들을 현실 농정에 접목시키는 역할을 맡게 된다. 민 차관은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조적 정책’과 ‘처절한 노력’을 강조하며 그동안의 농식품부 정책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농민이 농사를 짓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대로 먹고 제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 농정 담당자들은 이 기본원칙을 소홀히 해 왔습니다. 농촌과 농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무신경했습니다. 창조적이지도 못했습니다. 좀더 처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는 농정과 농촌 현장의 괴리를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농정에 깊숙이 침투돼야 하는데 이게 부족합니다. 모든 정책이 획일적입니다. 이를테면 벼농사의 경우만 해도 종자, 비료, 농약, 농기계, 가공, 유통 등 수많은 단계별로 가치사슬이 형성되는데 거기에 모두 일률적인 기준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곳에 지원이 안 되거나 불필요한 곳에 지원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민 차관은 동국대 농업경제학과 출신으로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농업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5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13년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농업문제 전문 연구원으로 있었다. 2001년에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설립해 세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농식품부 안팎에서는 그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잘 갖춰져 있다고 본다. 장 장관과는 벤처농업대학을 이끌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서로를 잘 이해한다. 그의 혁신작업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기대도 크다. 민 차관은 오래 전부터 주창해 온 ‘3P 혁신전략’을 현장에 접목해 볼 생각이다. 생산(프로덕트·Product), 과정(프로세스·Process), 사람(피플·People) 등 3가지를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농업은 먹는 게 전부라는 개념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관광, 엔터테인먼트, 예술, 자연 등과 융합·복합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맛과 재미, 감동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민 차관은 “현재 우리 농업이 어려워진 이유는 시장이 작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모두 우리 농산물을 먹고 살았지만 지금은 중국산과 미국산이 들어오면서 시장이 절반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지요. 전자시계가 나오면서 위기에 몰리자 패션·럭셔리 산업으로 전환시켜 화려하게 부활한 스위스의 시계산업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민 차관은 농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오히려 농민들보다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농정 자체는 물론이고 농식품부 내부의 혁신을 어떻게 이끌지도 관심사다. 김태균 이두걸기자 windsea@seoul.co.kr
  • 우크라, 가스수송관 차단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이 13일(현지시간) 유럽행 가스 공급을 시작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 분쟁이 일단락된 듯 보였지만 이번엔 우크라이나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AP통신에 따르면 가즈프롬은 13일 오전 10시(현지시간)를 기해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재개했으나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가스 수송관을 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알렉산드르 메드베데프 가즈프롬 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가스관의 밸브는 열렸지만 우크라이나에 의해 다시 막힌 상태”라면서 그 배후로 미국을 거론했다. 메드베데프 부회장은 “우크라이나와 미국 사이에 맺어진 협정이 있다.”면서 “그들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나라 밖에서 연주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확실히 미국의 개입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경제인”이라고 언급을 피했다.스티븐 해들리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주 “러시아가 만일 에너지로 이웃 국가들을 위협한다면 지구촌에서 큰 영향력을 얻기 위한 기대에 손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이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가즈프롬이 내놓은 ‘용납할 수 없는 수송 조건들’ 때문에 가스 공급을 중단시킨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dpa통신은 우크라이나 국영 가스회사 나프토가즈의 한 관리의 말을 인용, “러시아 가스가 느리게 우크라이나 가스관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고 압력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가 가스 흐름을 막고 있다는 주장을 일축해 사실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지난 11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했지만 같은 날 가즈프롬은 “공식 채널을 통해 협상 내용을 통보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스 공급을 거부했었다. 다음 날 공급은 재개됐지만 이번엔 우크라이나가 다시 공급을 거부하는 지루한 ‘가스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둘 사이의 줄다리기 속에서 정작 답답한 것은 유럽이다. 특히 러시아산 가스에 상당량을 의존하는 동유럽의 경우 때마침 찾아온 한파로 비상이 걸렸지만 계속되는 공방전에 힘만 빠졌다. 심지어 불가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선 반(反) 러시아 감정도 거세지고 있다고 이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피아 아흐렌킬데 한센 EU 대변인은 “지금 러시아산 가스가 유럽으로 거의 이송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어 “가스가 유럽으로 공급되는 것을 확실히 보장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파견된 EU 감시단의 배송관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호세 마뉴엘 바로소 EU 집행위원장도 “푸틴 대통령에게 크게 실망했다.”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돼지코’ 가진 희귀 오징어 태평양서 발견

    돼지야? 오징어야? 독특한 외모의 희귀 오징어가 포착돼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학명 ‘Helicocranchia pfefferi’의 이 오징어는 오렌지만한 몸 크기에 둥글고 팔 처럼 생긴 촉수를 가지고 있다. 특히 통통한 몸에 큰 눈이 인상적으로 아기돼지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아기돼지 오징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오징어는 일반적으로 100m이상의 심해에서 발견되며 외형상 매우 느리게 수영하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색소가 포함된 유세포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명하며 큰 눈 바로 아래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포(胞)를 가지고 있는 희귀종으로 더욱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이 오징어는 마치 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네티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한편 이 ‘아기돼지 오징어’는 로스앤젤레스와 카탈리나 사이의 태평양지역에서 포착됐으며 LA에 위치한 카브리오 해양 수족관(Cabrillo Marine Aquarium)이 샘플을 보존하고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생활습관병 다스리는 슬로푸드의 비밀

    생활습관병 다스리는 슬로푸드의 비밀

    21세기의 또 하나의 키워드 ‘느림’.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느림’은 바로 삶의 질(質)과 직결되는 화두다. 하지만 한국에선 느긋함이 곧 게으름이 되어버리고, 우리는 그속에서 ‘빨리빨리’를 외치며 속도에 휩쓸리듯 살아가고 있다. 8일 오후 10시에 방송되는 KBS 1TV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는 신년특집 2부작으로 ‘느림의 건강학’을 방송한다. 오염되지 않은 우리 땅에서 난 신선한 제철식품을 천천히 숙성시키거나 조리해 맛을 낸 음식인 ‘슬로푸드’. 과연 ‘슬로푸드’는 우리 건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우리 선조들이 즐겨 먹던 음식은 김치나 된장과 같이 오랜 시간을 두고 발효한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사이 우리의 밥상은 180도 달라졌다.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가 넘쳐 나면서 식습관이 서구화되었고, 현대인들의 건강에 심각한 적신호가 켜졌다. 이에 제작팀은 평소 잘못된 식습관으로 개선이 필요한 성인 5명, 아동 7명을 대상으로 슬로푸드 식단을 제공한 ‘슬로푸드 캠프’를 진행했다. 개인별 처방과 미션을 들고 굳은 각오로 캠프에 입소한 12인의 참가자들. 하지만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오랜 식습관과 입맛을 단시간 내에 바꾸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8일 동안 진행된 캠프 기간 과연 그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건강을 지키기 위한 참가자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그 결과를 공개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바쁜 현대인들, 그들의 식사 속도는 얼마나 될까. 조사결과 직장인의 72%가 한 끼 식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5분. 그리고 그들에게 사랑받은 것 또한 빠르고 간편한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음식이다. 최근 경제 한파로 인해 그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식탁 역시 빠르게 조리되고 빨리 먹는 음식들로 채워지고 있다. ‘슬로푸드 캠프’ 참가자인 문종권 (38)씨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밥을 빨리 먹기로 유명하다. 밥 한 공기를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분, 뜨거운 국밥도 5분이면 비운다. 그런데 8년 전, 30세의 젊은 나이에 그에겐 당뇨와 고혈압이 찾아왔다. 체중 감량과 빨리 먹는 식습관을 고치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지만 결과는 매번 실패였다. 캠프에서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30분간 천천히 먹기´. 평소보다 6배 이상 느리게 먹어야 하는 슬로푸드 식단은 그의 건강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천천히 조리하거나 오래 숙성시켜 느리게 먹는 음식, 생활습관병을 다스리는 ‘슬로푸드’의 숨겨진 효과를 밝힌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백범 수행비서의 절절한 추모와 회한

    백범 수행비서의 절절한 추모와 회한

    역사의 기술에는 좌우가 따로 있을 수 없다.역사적 사실에 대한 엄정한 기록만이 있어야 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상과는 다르다.최근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이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따르면 백범 김구는 대한민국 건국과 무관한 테러범 정도에 불과하다.현 정부 이데올로그 역할을 자임하는 세력의 이러한 역사인식은 10만원권 발행의 무기한 보류 결정이 백범의 초상화 화폐도안 때문이라는 의구심마저 증폭시키고 있다. ●높은 기개·세세한 일상까지 담아 이런 상황에서 백범의 수행비서 선우진(87)씨의 회고록 ‘백범 선생과 함께한 나날들’(최기영 엮음,푸른 역사 펴냄)이 나왔다.2009년으로 서거 60주년을 맞은 백범에 대한 옛 수행비서가 남기는 절절한 추모와 자책,회한의 기록이자 또 하나의 역사이다. 장준하 등과 함께 한국광복군훈련반 소속이던 선우씨는 1945년 1월31일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가 백범과 첫 인연을 맺는다.그리고 1949년 6월26일 서울 종로구 평동 경교장 집무실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숨질 때까지 꼬박 4년 5개월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백범을 수행했다. 선우씨는 백범이 평생의 염원이던 자주적 통일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해 주변의 온갖 만류를 뿌리치고 1948년 4월19일 38선을 넘어가는 순간에도,김일성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과 회담을 진행할 때도,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벌이는 현장에서도 늘 곁에 있었다. 독립운동가로서 백범의 높은 기개만 접한 것이 아니었다.세세한 일상의 기억도 뚜렷하다.당시 유력 기업인(강익하 상공회의소 부회장)이 건네는 정치자금 300만원을 이승만 박사에게 주라며 돌려보낸 일,그러다가 임시정부 요인들이 돈이 없어 점심을 굶는 지경에 이르자 친히 이 박사를 찾아 면박을 받으며 30만원을 받아온 일,북한을 방문했을 때 소풍나온 국민학생과 천진하게 어울리던 일 등에 대한 기록도 생생하다.이밖에 육식보다는 채식을,특히 만둣국과 국수를 좋아한다는 백범의 식성도 엿보이고,아침에 일어나 ‘중국시선’을 읽고 남는 시간에는 각지에서 요청하는 휘호를 쓰곤하는 세세한 일상 등도 기록의 한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凡夫를 자처하며 인간애·검소 실천 꼬박 60년 동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자책과 회한.1949년 6월26일 일요일 오후 12시 40분쯤 포병 소위 안두희가 백범 면담을 요청했을 때 45구경 권총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점,안두희를 2층 집무실로 안내한 뒤 백범의 점심 만둣국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하식당으로 바로 내려간 점 등은 선우씨에게 결코 잊혀지지 않는 ‘슬로모션’처럼 흐른다.그는 ‘햇볕도 느리게 내리쬐었고,사람들의 발걸음도,목소리도 느리게 스쳐 간다.’고 표현했다. 선우씨는 “선생의 서거는 나의 불민(不敏) 때문”이라면서 “이제는 죄스러움을 넘어 팔십이 훨씬 넘은 내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내가 아는 선생의 모습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는 것이 내 마지막 의무가 아닐까 한다.”고 책을 쓴 뜻을 밝혔다. 그는 서문에서 “백범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조국통일에 헌신한 사람이기 이전에 범부(凡夫)를 자처하면서 따뜻한 인간애와 검소,절제를 몸소 보여 주었다.”고 회고했다.1만 2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희망의 남극을 가다] 세종기지에서 온 아빠편지

    [희망의 남극을 가다] 세종기지에서 온 아빠편지

    │킹 조지(남극) 박건형특파원│동토의 땅 남극에도 새해가 찾아왔다.남극 킹조지 섬 대한민국 세종과학기지에는 연구원 등 50여명이 이 시간에도 추위와 싸우고 있다.그들은 외로움,그리움과도 싸운다.2007년 12월 임신 3개월의 부인을 두고 먼 길을 떠나온 조리장 김종훈(사진 오른쪽·38) 대원과 100일을 갓 넘긴 아들 희원이를 떼어놓고 온 대기과학 연구원 김명광(왼쪽·31) 대원의 가족을 향한 마음은 더욱 애틋하다.새해를 맞아 두 사람이 지구 반대 쪽에 있는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kitsch@seoul.co.kr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연애하면서도 편지 한 통 없다가 남극에서 웬 편지냐고 생각하겠지. 지금 생각하면 시간 한 번 빨리 간다고 생각하지만 지낼 때는 하루가 일년 같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어.임신 3개월의 당신 떼어놓고 오면서 참 많이 울었지.아들 규민이 혼자 출산하고 산후조리하고 키운다고 마음 고생이 많을 것 같아.아기 키울 때는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아빠가 옆에 있어주지 못해 많이 서운하지.당신한테 지난 한해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야.귀국하면 미안한 것 다 갚아줄게.아직 얼굴을 직접보지 못한 우리 아들 규민이 동영상과 사진을 매일 보고 있으면 얼마나 가슴 미어지고 그리워지는지.진짜 내아들인가 믿기가 힘들더라.너무 잘 생겨서.  규민아.아빠는 규민이가 세상에 나올 때 먼 곳에 있었단다.지구의 남쪽 끝에서 네가 태어났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기쁘고 눈물이 나오던지.기도 많이 했단다.아빠가 귀국하면 정말 많이 놀아줄게.규민이도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엄마 사랑 많이 받고 있어. 2007년 12월 선발대로 와서 남극이라는 환경에 적응한다고 힘들었지만 아빠는 규민이가 크는 동안 해 줄 얘기가 많아졌다는 점에 감사한단다.하루도 빠짐없이 대원들의 세끼를 책임지면서 보낸 시간들이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됐단다.우리 곧 만나자.아빠 못 알아보고 울면 안 된다. 규민이 아빠가 ●우리 아들 희원이에게 어느덧 첫돌을 지나 부쩍 자란 지금의 네 사진을 보면서 아빠는 충만한 삶을 느낀다. 꽉찬 일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진 속 네 모습은 언제나 아빠에게 기쁨과 휴식을 가져다 주었지.아빠가 태어나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은 희원이 너란다. 지금 희원이 곁에서 같이 놀아주는 것도,안아주지도 못하고 네게 받은 선물을 고마워만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아빠는 널 사랑한단다. 아빠는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구나.햇살 좋은 날 희원이를 목말태우고 동물원에 가서 사진도 같이 찍고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싶어.희원이가 좋아하는 바닷가에 가서 모래로 두꺼비집을 같이 만들어보고싶고,휴일엔 나란히 앉아서 실로폰도 같이 치고 도화지에 색연필로 그림도 같이 그리고,컵쌓기 놀이고 해보고 싶구나.박물관,공원에서 하는 축구,겨울 눈썰매 모두 적어놓고 있단다.아빠는 희원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을 맘껏 해볼 만큼 새해에도 건강했으면 좋겠구나.그리고 주어진 것에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감사할 줄 아는 사람의 삶은 풍족하단다.기쁘게 나눠주는 법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사랑하는 아들아.아빠는 이곳에서 희원이를 생각하며 즐겁고 건강하게 생활을 마무리할 테니 희원이도 엄마랑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렴. 희원이 아빠가
  • “감동 펑펑… 마음이 따뜻해져요”

    “감동 펑펑… 마음이 따뜻해져요”

    날씨가 예년보다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얼음 바람에 ‘역시 겨울은 겨울’이라고 중얼거리게 된다.여기에 가족이 함께 읽으면 얼어붙은 마음이 훈훈해지는 어린이 책 3권이 있다. ●‘행운의 날’(파트리스 파바로 지음,르노 페렝 그림,김동찬 옮김,청어람 주니어 펴냄)은 인도의 작은 도시 마나쿨루에 사는 자강과 현악기 사랑기를 연주하는 아버지 스리람의 이야기다.자강은 아버지의 연주에 마리오네트(꼭두각시)를 춤추게 하고 돈을 번다.다섯 살 때 거리에 나와 벌써 열 살이 됐다.그런데 어느날 누군가 바구니에 500루피를 넣고 갔다.거리의 예술가인 부자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자강과 아버지 스리람은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그런데 아버지 스리람은 생각하지도 못한 결정을 내린다.가난한 점쟁이 할아버지의 바구니에 500루피를 살짝 집어넣은 것이다.아버지는 “500루피로 우리가 행복을 느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잠깐이나마 풍요와 행복을 느낄 기회를 주자.”고 말한다.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절대로 못할 일일 텐데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자강은 한 술 더 뜬다.이렇게 상상하면서 말이다.“점쟁이 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처럼 한다면,500루피는 광대의 손에서 광대의 손으로,걸인의 손에서 걸인의 손으로,그러는 동안 세상 사람들 모두 한 번씩 부자가 되는 거야.” 7500원. ●‘안젤로’(데이비드 맥컬레이 글·그림,김서정 옮김,북뱅크 펴냄)는 혼자 사는 늙은 미장이로 성당 외벽을 보수한다.어느날 일하다 병든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안젤로는 몹시 귀찮아 하면서 새를 모자에 담아서 집으로 데려온다.돌아가는 길 어디쯤에 내려놓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다.새를 집까지 데려온 안젤로는 테라스서 하룻밤 쉬게 하고 날려보낼 생각이다.그러나 커다란 고양이가 발톱을 가다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안젤로는 마지못해 새를 집의 손님으로 받아들인다. 안젤로는 성당 보수하고 남은 시간에 새를 고치는 데 힘을 쓴다.좋은 음악도 들려주고,주말이면 교외로 나가 햇볕도 흠뻑 받게 한다.이름도 지어줬다.실비아라고.체력이 약해진 안젤로는 이제 혼자 남을 실비아를 걱정한다.고민 끝에 그는 성당에 정말 안전하고 특별한 실비아의 집을 마련한다.지은이는 건축가 출신으로 정밀하고 치밀한 건물 그림을 수채화 느낌으로 따뜻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하다.9500원. ●‘코기빌의 크리스마스’(타샤 튜더 글·그림,공경희 옮김,월북 펴냄)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들뜬 미국의 작은 마을 이야기다.꼬마 친구들은 트리를 만들고,집안을 청소하기에 바쁘다.동물들이 등장하지만 삽화는 미국 시골의 전형적인 인테리어와 미국인의 삶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타샤 튜더는 미국 버몬트 산골에 집을 짓고 느리게 살기를 실천하는 자연애호주의자로 유명하다. 골동품같은 화풍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98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슬로 시티’ 오르비에토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슬로 시티’ 오르비에토

    동진에서 송나라 시대에 걸쳐 살았던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등장한다.무릉도원은 전란이나 다툼,번뇌가 없는 평화로운 마을로,도연명 역시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곳이라고 적었다.무릉도원이 이상향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하게 외부 세계와 차단돼 있었기 때문이다.그곳에서는 폭군도,관료의 부패도 없다.인간 본연의 심성이 착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이었던 셈이다.영국의 토머스 모어 역시 ‘유토피아’를 그렸다.화폐가 없는 유토피아에서 국민은 모두 동일한 노동을 할 뿐이고,모두가 행복하다.무릉도원과 유토피아.이런 나라는 영원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침팬지와 함께 살아가는 제인 구달이나 티베트의 작은 마을 라다크를 찾았던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는 현실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무릉도원과 유토피아를 발견했다.그 곳에서 두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행복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들처럼 살 수는 없다.정글이나 히말라야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어느 곳에나 있는 TV와 인터넷,전화는 사람을 세상과 연결시키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애쓸수록 여유와 행복은 사라져 우울증과 피폐한 감성을 양산하기 일쑤다.그럼에도 세계 곳곳에서 현실의 무릉도원과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이들은 이웃과 머리를 맞대고 좀 더 바람직하게 생각하기 위해 고민한다.또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육체의 편안함을 내려놓고 불편함을 택했다.혼자 잘 살기보다는 모두가 행복하게 함께 살기를 추구한다.완벽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지만,조금이라도 더 인간답게 살고 싶어하는 마을을 찾았다.또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소외된 성소수자들의 얘기도 들어봤다.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르비에토 박건형특파원|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로마 방향으로 한 시간 반가량 떨어진 곳.중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화이트와인 ‘오르비에토’의 생산지.직접 찾기 전까지 상상한 오르비에토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농촌도시였다.그러나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진 오르비에토의 모습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 속에 등장한 ‘하늘을 나는 섬나라’를 연상케 했다.195m 바위산 위에 갈색의 고성으로 둘러 싸인 도시 오르비에토는 고대 에트루리아의 12개 도시 중 하나로 후에 로마의 도시가 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르비에토에 오르기 위해서는 전기로 움직이는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한다.무인으로 움직이는 상하행 두 대의 케이블카는 ‘자연에 최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옛날 방식’을 의미한다.실제로 오르비에토에는 곳곳을 움직이는 버스망과 자전거가 주요 운송수단이다.자동차는 몇 대 되지 않는 택시가 전부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1290년부터 건축이 시작된 오르비에토 대성당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대성당은 예수의 수의가 보관돼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석회암과 현무암이 줄무늬 형태로 보이도록 디자인돼 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대성당 앞으로는 오르비에토의 비밀로 알려진 ‘지하도시’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오르비에토는 땅속에 터널과 동굴로 이어진 미로를 갖고 있다.화산석을 뚫어서 만들어졌고 전시장과 우물,계단,채석장,지하저장소 등 과거의 신비로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최고의 관광상품 ‘슬로시티’  그러나 오르비에토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오르비에토는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슬로시티 운동’의 발상지다.99년 10월 오르비에토와 인근의 그레베 인 키안티(그레베),브라,포스타노 등 이탈리아 중북부 작은 마을들이 세계를 향해 ‘느리게 살자.’고 호소했다.당시 그레베 시장이었던 파울로 사투르니니가 제안한 이 아이디어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세계로 퍼져나갔다.오르비에토 관광안내소장을 맡고 있는 마누엘라 카스타냐(51)는 “당초 슬로시티의 아이디어는 패스트푸드에서 벗어나 지역요리의 중요성을 재발견하자는 ‘슬로푸드’에서 시작됐다.”며 “‘먹을거리가 인간 삶의 기본이자 삶을 결정한다.’는 슬로푸드 운동의 이념이 슬로시티 운동에도 그대로 반영됐다.”고 밝혔다.  85년 이탈리아 북부의 브라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은 이탈리아 로마에 맥도날드 햄버거가 진출하면서 이탈리아 전통음식이 위협받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달팽이’로 상징되는 슬로푸드 운동을 통해 느리게 살기라는 철학을 알게 된 이탈리아인들이 삶 자체에 ‘느림’을 도입하게 된 셈이다.  카스타냐는 “슬로시티 운동은 산업화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인간의 삶이 환경을 파괴하고 전통을 무너뜨린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면서 “당초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한 운동에 불과했지만,이탈리아 북부와 유럽 각국에서 공감을 얻으면서 빠르게 퍼져나갔다.”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전 세계 11개국에서 100개에 가까운 도시가 슬로시티 국제연맹에 가입했고,이 중에는 우리나라의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장흥 반원마을,완도 청산도,신안 증도 등 전남 네 개 지역이 포함돼 있다. ●맥도날드 가게 없고,코카콜라 광고판도 없어  오르비에토에는 없는 것이 많다.맥도날드,버거킹,KFC,피자헛 등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이 전혀 없다.태양이 내리쬐는 외부 공간이 있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레스토랑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심지어 코카콜라나 펩시콜라,스프라이트 등 거대 청량음료 회사의 광고판조차 찾아볼 수 없다.중심가에 자리잡은 상점들조차 천편일률적인 관광지 기념품 대신 직접 만든 수공예품과 접시 등을 팔고 있을 뿐이다.사람들의 생활패턴도 여유로워졌다.음식점에서 주문을 재촉하는 일도 없고 버스가 늦게 온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외지 관광객들뿐이다.편리하게 살기 위해 기계를 도입하고 도시를 바꾸는 대신,이들은 조상이 물려준 도시에 자신들을 적응시키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카스타냐는 “처음에는 주민들도 불편하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지금의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면서 “마을을 떠난 사람은 거의 없는 반면 가업을 잇기 위해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오는 2세들이 늘어 공예 등 전통산업이 부흥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오르비에토 시청에 근무하는 프란체스코 루포(36)는 “모든 도시가 슬로시티가 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그는 “슬로시티의 존재가치는 지나치게 빨리 변화하고,사람들을 몰아가는 도시와 차별화된 곳이 있다는 점에 있다.”면서 “실제로 이곳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현실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경험하고 일정을 연장하거나,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kitsch@seoul.co.kr
  • 혈우병은 피가 느리게 멎는 병

    혈우병은 피가 느리게 멎는 병

    피를 좋아한다는 뜻에서 유래한 ‘혈우병’(血友病). 과거 영국 왕실의 빅토리아 여왕이 혈우병 인자를 가졌으며, 이 인자로 인한 환자가 후손들에게 생기면서 유명해졌다. 주로 ‘피가 멈추지 않는 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세한 질병 정보를 아는 환자는 드물다. 유전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환자의 30%는 가족력과 관련 없이 발병한다. 혈우병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자. ●혈우병은 피가 멈추지 않는 병? ‘피가 느리게 멎는 병’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혈우병은 ‘혈액응고인자’가 부족해 생기는 선천성 질환이다. 출혈이 생기면 즉시 특정 혈액세포가 모여들어 상처 구멍을 막고 혈액응고 인자들이 출혈을 완전히 멎게 한다. 혈우병 환자는 이 혈액응고인자 중 한 가지가 없거나 적절하게 작용하지 않아 찢어진 혈관의 구멍을 덮을 뚜껑을 늦게 만든다고 보면 된다. ●나도 혈우병 환자? 자신이 혈우병 환자인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혈우병은 보통 혈액응고인자가 정상인의 1% 미만일 경우를 중증으로,1~5%일 때를 중등증,6~50%를 경증으로 분류한다. 경증일 때는 평소 문제가 없어 모르고 지내다 수술을 받거나 크게 다쳤을 때 지혈이 되지 않아 병을 인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증 환자는 상처가 나지 않아도 관절이나 근육에 출혈이 생길 수 있다. ●혈우병은 100% 유전된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혈우병의 30%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100% 가족력으로 유전되는 질환은 아니다. 과거에는 이런 잘못된 정보가 널리 알려져 자녀 중에 혈우병이 생기면 부인이 소박을 맞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칼에 살짝 베이거나 찰과상만 입어도 출혈로 죽는다? 아니다. 칼에 살짝 베이거나 찰과상을 입었더라도 대부분 쉽게 지혈된다. 혈우병 환자에게 상처가 생겨 출혈이 심하더라도 혈액응고인자를 따로 주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는 주의해야 한다. 환부를 깨끗이 씻은 후 깨끗한 거즈를 대고 5~10분간 눌러주면 된다. 소독 크림을 바른 후 거즈나 밴드를 붙이는 것도 좋다. ●혈우병 환자는 피가 나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 혈우병 환자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관절 출혈이 생기기 쉽다. 간혹 물건에 부딪치거나 삔 경우에도 근육출혈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증상은 눈으로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관절이나 근육에 출혈이 생겨도 보이지 않아 곧바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만약 관절이나 신경 부위에 출혈이 심해지면 각 부위가 압박되면서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아기가 아무 이유 없이 운다거나 관절을 움직일 때 아파하고,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비정상적이면 병원을 찾아 원인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혈우병 아기는 안고 접촉만 해도 타박상을 입는다? 혈우병에 걸린 아기는 안고 접촉만 해도 타박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아기를 안아주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아기를 안아주고 싶다면 손과 팔로 아기의 몸통 아래를 받쳐서 퍼올리듯이 아기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리는 방식으로 안으면 된다. ●생리 출혈로 사망하기도 한다? 혈우병 환자는 대부분 남성이며, 여성 환자는 극히 드물다. 여성 환자의 절반 이상이 태어나기 전에 숨지기 때문이다. 다만 사망하지 않은 환자는 혈우병 인자만 갖고 있는 ‘보인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혈우병 환자도 치료제를 사용하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도움말 대한혈액학회
  • [휘청대는 미국 실물경제] 美 실업공포에 ‘덜덜’

    [휘청대는 미국 실물경제] 美 실업공포에 ‘덜덜’

    자동차 산업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굴지의 가전유통업체 서킷시티의 파산보호 신청까지 겹치면서 미국 고용·소비시장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서킷시티 파산에 소비시장 마저 한파 미국 2위의 가전유통업체 서킷시티가 10일(현지시간) 끝내 파산보호 신청을 내자 현지 소비시장에서는 “결국 올 것이 오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킷시티는 미국 전역에 721개, 캐나다에 770개 매장을 갖고 있는 메이저 유통업체. 자구노력으로 지난 3일 미국내 매장의 20%를 자체 폐점하고 6800명을 감원키로 했으나, 이번 파산보호 신청으로 감원 수가 8000명 선으로 늘어날 것으로 알려졌다. 서킷시티 외에도 지난 1년간 파산보호신청을 한 주요 소매업체 체인은 머빈스, 린넨앤싱즈, 샤퍼 이미지, 가구전문점 레비츠 등 14개에 이른다. 특히 이들 업체들은 경기가 어려울 때도 시간제 근로자 채용 등을 통해 고용시장의 안전장치로 역할해 왔다는 점을 들어 서킷시티 파산을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서킷시티 등 주요 소매업체들의 몰락은 이들 업체가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돼 왔다는 점에서 최근의 경기 침체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미국인 소매업종 종사자 수는 제조업 종사자 10명 가운데 한 명 꼴. 경기침체시에도 소매업체의 감원 속도는 다른 업종에 비해 느리게 진행됐으나, 최근 상황은 급반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일자리를 잃은 사람 4명 중 1명꼴인 32만명이 소매업 종사자였다. 지난 10월 미국 실업률이 6.5%로 높아진 주요 배경도 이같은 소매업체의 일자리 감소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문은 실업자 지표에는 소매업 분야의 상시근로자에서 시간제 근로자로 전락한 20만 9000여명을 포함하지 않고 있어 실제 고용의 질은 지표보다 훨씬 더 나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번 금융위기에 따른 소매업체의 감원 속도는 지난 2001년 침체 때보다 빠르다고 전했다. 2001년 당시에는 소비자들이 소비를 멈추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자동차, 금융 등 산업 전반의 불안요인이 얽히고 설켜 소비시장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년엔 소매매장 1만4000개 파산” 전망 문제는 소매시장 중심의 이같은 고용위기는 이제부터 본격화할 공산이 크다는 데 있다. 기업 청산 전문업체인 힐코 아프레이절서비스는 파산할 소매업 매장이 올해는 지난해보다 25% 증가한 6100개, 내년에는 1만 4000개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최대의 커피전문체인 스타벅스도 소비위축에 따른 실적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매출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올들어서만 200여개의 미국 내 매장을 줄였으며, 해외 매장 개설 계획도 상당수 철회할 것으로 알려졌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소리의 빛으로 어둠을 밝히다

    소리의 빛으로 어둠을 밝히다

    문이 닫히자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몸은 꽁꽁 얼어붙었다.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믿음이 생기자 비로소 첫발을 내딛었다. 얼마 전 찾아간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한 줄기 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체험하는 전시다. 앞을 보지 못한 채 사물을 구별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한다. 어둠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안내자의 목소리뿐.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실제 시각장애인이다. 문화방송 성우실 박태호 실장(61세)과 첫인사를 나누며 ‘어둠 속의 대화’에서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는 25년간 시각장애인을 위한 <소리잡지>를 만들고 있는 주역이다. “평생 성우로 살다 보니 목소리에 모든 게 담겨 들립니다. 말하는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인지, 마음을 속이고 있는지, 불만이 많은지 등을 귀신같이 알아내죠. 상대적으로 청각이 발달한 시각장애인은 저희보다 목소리에 더욱 예민하겠죠.” <소리잡지>는 지난 1983년 9월 <샘터>를 비롯한 교양지 대여섯 권의 좋은 글들을 모아 성우들이 직접 읽어 녹음하면서 탄생했다. 대중 매체의 점자 보급이 어려웠던 때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자 인기 만화 <뽀빠이>의 브루터스 역으로 유명한 고故 이영달 씨가 후배들과 적극 동참했다. 박 실장을 비롯한 문화방송 성우들은 지금까지 총 300회 1,300여 시간의 녹음으로 1,200권 분량의 <소리잡지>를 보급했다. 이런 공로로 지난 9월 서울특별시복지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야 그저 늘 하던 대로 목소리 연기를 했을 뿐이고, 정작 상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복지관 식구들이에요. 없는 살림에 녹음 끝나면 일일이 밥까지 챙겨주며 저희들 뒷바라지를 했으니까요.” 박 실장이 소개한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최현철 팀장(49세)은 매달 6,500여 명의 회원에게 TAPE, CD, MP3, ARS 등의 형태로 제작된 <소리잡지>를 무료로 배포한다. 녹음 방식도 아날로그에서 점차 디지털로 변하는 추세다. 복지 서비스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해야 한다며 앞으로 <소리잡지>도 교양지에서 벗어나 낚시, 음악, 영화 등 전문 잡지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이미 20여 편의 ‘소리영화’까지 제작해 선보인 그가 성우들과 ‘소리’를 만들면서 특별히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보통 천천히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청각이 발달하다 보니 오히려 느리게 읽는 것을 못 참으세요. 전문 성우들은 정확하게 읽으면서도 호흡 조절이 가능해 속도를 낼 수 있지요. 목소리를 바꿔가며 연기하는 것도 일품이고요. 짬을 내서 일반 녹음 봉사자들을 훈련시켜주시는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20년 넘게 <샘터>와 함께했던 그는 연재물 중 ‘가족’과 ‘삶의 현장’이 특히 인기라며 살짝 귀띔한다. 현재 ‘가족’은 이영달 씨의 뒤를 이어 중후한 목소리의 성우 김태훈 씨가 전담하고, ‘삶의 현장’은 워낙 걸쭉한 사투리가 많이 섞여 있어 한 편의 라디오 드라마 못지않단다. “좋은 목소리는 그저 남의 마음 아프지 않게 들리는 거예요. 내용을 떠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난 목소리죠.” 이미 환갑을 넘긴 베테랑 성우 박태호 실장이 말하는 좋은 목소리에 대한 철학이다. 사람 몸에서 목소리가 제일 안 늙는다며 힘주어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어느 작가의 표현대로 고운 무늬를 볼 수 있었다. 취재, 글 이만근 기자
  • 美 슈퍼파워 시대 마침표 찍나

    ‘미국의 시대’(American century)는 종언을 고할 것인가? 미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가 9일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로 정치·경제적 공황을 겪고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경제위기 이후 국제질서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를 전망했다. 이 신문은 ‘국제 체제론’ 분야 주요 석학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세력 구도의 변화를 3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첫 번째는 독보적인 ‘슈퍼파워’의 지위를 누려온 미국이 뚜렷한 쇠퇴기를 맞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다.CSM은 미국 침몰을 기대하는 이란,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유럽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미국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 질서는 ‘다극적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베트남의 악몽이 재연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과 미국식 금융모델의 붕괴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세계체제론’를 쓴 예일대 이마뉴엘 윌러스타인 교수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한 것은 그동안 느리게 진행되던 미국의 쇠퇴를 가속화시킨 것뿐”이라고 말한다.1980년대 이후 미국이라는 ‘제국’의 종말을 예고해 온 윌러스타인은 이라크 전쟁과 부시 대통령을 원인으로 진단한다. 그는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쇠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동시에 이를 앞당긴 원인이며 부시 대통령은 미국 정부를 재정적자의 수렁에 빠트린 장본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민은 (미국 쇠퇴를 가져온) 일련의 행위들이 정점으로 치닫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현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지위를 상실시키지 않을뿐더러 미국의 군사력은 미래에도 우월적인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미국의 시대’의 저자인 로버트 리버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번 금융위기로 미국의 쇠퇴를 주장하는 이들은 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한다.그는 “압도적인 군사적 능력, 시장규모와 생산성 등 실체적 요인뿐 아니라 미 경제 구조의 유연성과 경제회복 능력은 슈퍼파워의 지위를 유지시키는 요인”이라면서 “미 경제는 경기 주기에 휘둘리지 않는 구조적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리버 교수는 “국제 질서는 우세한 쪽에 편승하는 ‘밴드왜건 효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여전히 미국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강대국의 부상으로 미국의 슈퍼파워가 분산되거나 미국의 쇠퇴를 대체할 국제 기구나 국가가 없는 한 잠정적으론 기존의 슈퍼파워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적 접근이다. 확산되는 금융위기에서도 유럽 정상들이 일치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제시한다. 또 1990년대 초반 이후 미국식 시장경제체제의 확산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도 금융위기로 쇠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나톨 리븐 런던대 킹스칼리지 교수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면서도 “새로운 경제 모델이 낡은 모델(자유시장 체제를 지지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을 대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설명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기고] 주공·토공 통합,밀어붙이기 지양해야/고일두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 교수

    [기고] 주공·토공 통합,밀어붙이기 지양해야/고일두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 교수

    느리게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게 문제다. 파급효과가 큰 정책일수록 검토에 검토를 더하고, 여러 의견을 들어 고치고 다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공기업 선진화와 관련하여 토공과 주공의 통합을 추진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며 하는 생각이다. 주공과 토공이 통합하면 직원수가 6000명을 넘어서고, 총 부채규모가 100조원대에 달하는 거대 공기업이 탄생한다. 국민경제에 대한 영향분석이나 제대로 된 경영실사 없이 이 정도 규모의 공기업을 만드는 것이 타당한가. 기능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논란이 많다. 주택과 택지는 그렇다 쳐도, 서민주거복지와 도시개발, 산업단지개발, 해외 신도시개발, 지역개발을 모두 한 기관으로 통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이런 이유로 두 공사의 통합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검토를 거쳐 국회, 감사원, 해당부처, 전문기관 등에서 기능조정이 더 바람직하다고 결론낸 바 있다. 그동안 국회 등 책임있는 여러 기관에서 통합보다는 기능조정이 더 효과적이라고 내린 결론을 그 흔한 공청회 한번 없이 뒤집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한차례 토론회가 있기는 했다. 지난 8월14일 국토연구원이 주최한 ‘주공·토공 선진화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그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아닌 연구기관이 주최했을 뿐 아니라, 토론회에서 제기된 찬반 의견이 정책에 전혀 반영되지도 않은, 구색을 맞추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이미 정부도 알고 있다. 민주적 절차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인수위백서를 보면, 국가비전인 선진일류국가 건설은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 과제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중 민주화 부분을 보면, 민주화는 되었으나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민주주의가 제기능을 하도록 만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민주적 절차는 정당화와 학습의 기능을 가진다. 민주적으로 결정된 정책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민주주의의 정당화 기능이다. 민주적 과정은 정책을 수정·보완하게 하여 그러지 않을 때보다 더 좋은 정책을 만들게 해 준다. 민주주의의 학습 기능이다. 토공·주공 통합 등 사회적 파급력이 큰 정책은 그것이 사회적 정당성을 갖고, 학습과정을 거치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여기서 학습은 국민만이 아닌 정부에도 해당한다. 더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학습 기능이 더 중요해진다. 법적 하자가 없더라도, 의견수렴과 설득, 상호학습을 통한 개선과정이 충분하지 않을 때 국민들은 그 정책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광우병 파동과 촛불시위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 파급력의 크기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추진하는 양 공사 통합의 부작용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충분히 예상되는 국력낭비와 부동산정책의 혼선, 국책사업 지연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있다. 이제라도 ‘선진일류국가 건설’을 위해,‘민주화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중요 국가정책에 대해 개방적이고 철저한 검토와 토론, 심사숙고를 거치자.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정부도 방침을 바꿀 것은 바꾸고, 고칠 것은 고치자. 그렇게 1,2년 늦어지더라도, 가장 쉬운 길이 아닌 가장 좋은 길을 찾아내자. 단순히 통합이냐 아니냐는 식이 아닌, 국토관리와 주거복지의 큰 방향과 세밀한 정책의 틀에서 철저한 경영실사, 공청회와 통합타당성 분석을 거쳐 공기업 선진화를 추진하는 것이 진정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고일두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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