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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개방 촉진」 기대 어렵다/북­미 전화개통 파급 효과

    ◎전화 보급률·회선 “미미”/북 통신 기반시설 발전 계기 될수도 미국과 북한간의 일반 국제직통전화 개통이 북한의 대외개방을 촉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 유수의 통신회사인 AT&T사가 북한측과 이달 8일자로 직통전화 서비스를 개통키로 한 것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조치의 일환이다.이는 지난해 제네바 핵합의 이후 예정된 수순이다. 이로 인해 북한의 극히 취약한 통신 기반시설이 한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일단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당장 극단적인 「폐쇄회로」사회인 북한체제를 크게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개방폭이 북­미간 직통회선수나 북한의 전화보급률등을 감안할 때 극히 제한적 수준에 불과한 탓이다. 물론 오는 8일이후 북­미간에 굳게 막혔던 정보의 흐름이 어느 정도 트이리라는 것은 부인키 어렵다.그동안 북­미간에는 북한 뉴욕대표부와 평양 외교부간의 직통전화 1회선만이 존재했으나 이제 몇개 회선이 북한전용으로 할당된 것인지는 모르나 양측간 일반 직통전화가 개설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민간 전화보급률이 아직 바닥권이기 때문에 어차피 큰 개방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북한의 전화보급 실태는 93년말 기준으로 대략 60여만회선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정부당국의 추정이다.그나마 전체 전화의 90% 이상이 공공용으로,개인용 전화(10%)를 보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당·정 간부 및 기관·기업소의 장들이다. 북한당국이 92년 ITU(국제전기통신연합)에 스스로 제출한 자료에 따르더라도 91년 기준으로 인구 1백인당 전화보급률이 3·7회선에 불과했다.같은 사회주의권인 동구권국가들에 비해서도 현저히 뒤지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현재 북한은 「광케이블 시스템」운영을 위한 자동중계 설비공사를 진행중이나 전전자교환기(TDX)는 2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수동식 교환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북한당국이 얼마든지 불리한 통신을 차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북­미간 통신개방은 북한의 개방을 앞당기는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특히 해외 교포등이 북­미간 직통회선을 사용해 북한주민들과의 통신을 시도하는 사례가 빈발할 경우 북한당국도 예상치 못했던 변화의 물결을 야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 산업연원장 이규억씨

    산업연구원(KIET)은 13일 이사회를 열어 새 원장에 이규억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을 선임했다. ◇신임 이원장 약력=▲충북 진천(50) ▲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 졸 ▲미 뉴욕대 경제학 박사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과 조교수 ▲한국개발연구원 부원장
  • 전위무용가 홍신자(이세기의 인물탐구:70)

    ◎거침없이 도전하는 성격… 독창적 춤사위 창출/“어릴때 죽은 언니 추모”… 73년 「제례」로 무대 데뷔/40세 넘어 연하 미술학도와 결혼… 2년전 안성에 캠프 차리고 정착 홍신자 뉴욕 타임스의 전속춤 비평가 제니퍼 더닝은 홍신자를 향해 『조각가의 조형감각을 지닌 안무가이며 인간심리의 예리한 실험자』라고 말한다.84년 「나선형의 자세」를 세번째로 공연했을때 공연평에 인색한 잭 앤더슨은 『시각예술가로서의 홍신자는 또 한사람의 시인』임을 지적했고 『몇가지 작은 동작만으로 죽음의 사자로 변신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춤은 참으로 거대한 카리스마의 모습』이라고 호평했다.1주일에 평균 7백∼8백편 이상의 엄청난 양이 공연되는 뉴욕에서 중요 신문의 평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그러나 홍신자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뉴욕인들에게 그때마다 신선한 혁명을 보였고 그곳 매스컴들로부터 밀착되고 호의적인 평을 받는 몇안되는 예술가중의 한 사람이다. 중국의 저명한 춤비평가이자 중국 국립예술아카데미의 우장핑은 「세계 무용사를 만든 인물들」로 홍신자를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기라성같은 이사도라 던컨·마사 그레이엄·머스 커닝햄·폴 테일러·알윈 니콜라이속에 홍신자는 「동양 전통미학에 뿌리를 둔 서양 전위무용의 꽃」으로 다뤄지고 있다.한국의 홍신자 이전에 세계적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86년 K­1TV가 마련한 신년특집 다큐멘터리에서 「세계정상의 한국인 홍신자편」으로 방영된바 있다. 그의 명성과 활동을 재론할 필요는 없다. ○동양 전통미학에 뿌리 영문학도에서 춤을 추기엔 너무나 뒤늦은 나이인 27세에 무용학도로 변신했고 호텔 접수일과 고양이 먹이를 주는 아르바이트로 명문 알윈 니콜라이무용학교와 컬럼비아대 대학원을 졸업,33세 되던해인 73년에 「댄스 시어터 워크숍」에서 어릴때 죽은 언니를 추모한 「제례」를 추어 당당하게 신인 안무가로 변신했다.그때도 뉴욕 타임스와 댄스매거진은 『아무도 홍신자의 앞날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고 못박았다.「제례」는 전통적인 한국의 「곡」으로 시작되어 촛불에 만장을 사르고 모호한 탄식을 허공에 퍼뜨리는 것으로 끝난다.이 작품은 한국서도 국제현대음악협회(ISCM)가 초청하여 같은 해 명동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졌고 전위무용에 생소한 한국무용계에 아연한 긴장과 충격,찬반양론의 시비를 빚기도 했다. 그의 춤은 형식과 기교에 얽매이지 않는다.「무용의 힘을 아는 자는 신과 함께 있는 자」라고 한 쿠르트 작스의 명언대로 육체와 영혼이 조화된 「우주적 감각」이 특징이다.그의 극미한 거동조차도 춤의 흐름이며 그의 운기는 객석에까지도 고뇌의 현란한 열기를 흩뿌린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시선과 관심의 대상이 됐을때 그는 돌연 인도로 가버렸다.76년부터 3년간 춤에 대한 회의와 삶의 근본적인 의미에 파고들었으나 「나만이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리쪽에서도 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다시 뉴욕에 복귀했다.결혼 같은 건 하지 않고 원도 한도 없이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하다가 「40세가 되기전에 자살」하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나이 사십이 넘어 열두살 연하의 젊은 미술학도와 결혼했고 딸 희야를 임신하자 「여자의 몸매는 바로 이렇게완성된다」는 메시지를 내걸고 만삭의 몸으로 무대에 올라 「입에서 꼬리까지」를 초연,하나의 덩어리(매스)로 무대를 구르면서 「돌도 웃는다」는 경이의 경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결코 「평범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지 않을것」이라는 패기와 인내심으로 그는 예술이 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거침없이 도전해 왔다.그리고 「홍신자만의 독창적 세계」를 창출해 내었고 그만의 독특한 무용언어인 적멸로써 작품들을 형상화 시키고 있다.따라서 「깨어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로움의 깨달음을 주고 창작정신의 퇴적화 현상을 일시에 휩쓸어버린 회오리바람」으로 부상되었다. ○뉴욕 빈민가서도 생활 아무도 홍신자의 삶을 흉내 낼 수는 없다.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없이 가장 자유로운 행보를 펼쳤고 아마 앞으로도 그는 그럴 것이다.물론 하루 아침에 오늘을 이룩한 것은 아니다.혹은 기적적 행운이 뒤따른 것도 아니다.쥐들이 득실거리는 뉴욕의 빈민가 스탠턴에서 더 이상 어린 딸을 키울 수가 없어 고국의 시댁에 아이를 맡겨야 했고 토큰 하나와 말라빠진 샌드위치로 연명하면서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그의 장래에 대한 희망은 검은 연기에 휩싸인 검탄(검탄)과도 같았다.그 무렵 하와이 볼캐노 정글에 틀어박혀 그는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 자신은 무용가 명상자 아내 어머니 그 모든 것이며 그 모든 것에서 완전히 해방된 자유로운 생명의 불꽃임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그의 무용에 영향을 준 것은 인도에서의 스승인 라즈니쉬였다.그는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라.나 자신이 춤추기전에 삶의 펄펄 끓는 에너지가 나를 통해서 춤으로 흘러나오게 하라」고 가르쳤다.「춤은 무엇을 증명하거나 제시하거나 등의 아름다움과 팔다리의 기교를 과시해선 안된다.무엇인가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춤은 보이지 않고 춤추는 자의 몸매만 보이게된다」그래서 광대한 우주공간인 우라노스에 날아오른 신비의 피닉스(영조)처럼 불에 타죽고 나서도 다시 탄생하기 위해 그는 수십번씩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가 추구하는자유로운 삶이란 허례나 가식이 배제된 명징의 세계이며 그의 맨 끝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겸허해지고 솔직해진다.나의 비천함을 다 알고 있는 스승에게 무엇을 더 감출 것이 있겠는가」.그러나 자유를 찾아 떠나고 또 떠났지만 가족이라는 굴레와 고향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 어둡고 긴 갱도를 혼자서 방황하고 있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딸 희야는 중학교 1년 그는 지금 안성에 있다.2년전 고국정착을 선언하고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용설리,저수지를 끼고 올라간 척박한 야산에 토담으로 된 무용캠프를 치고 그에게 명상과 내면의 춤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움직임속의 정지」를 전수하고 있다.지난 5월에는 예술의 전당서 「돌도 웃는다」는 뜻의 그의 래핑스톤 무용단을 이끌고 「풀루토(명왕성)」를 공연,11월 뉴욕 공연에서는 「미니멀리스트이자 맥시멀리스트로서의 홍신자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 2월부터 본격적으로 무용캠프 강좌에 들어간 그는 그가 바라던대로 자연속에 묻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정신의 춤을 추구하게 되었다.그의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남편 이상남씨(재미화가)는 그의 공연을 도맡아 판타스틱한 무대를 만들어주고 딸 희야(중1)도 부모의 자유와 자연스러운 삶을 자랑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물론 그는 또 어떻게 변할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유성이며 소용돌이 치는 회오리 바람이다.다만 춤이 빠진 홍신자란 상상 할 수 없을 뿐이다.그는 춤추기 위해 태어났고 무대에서 춤추다가 쓰러질지도 모른다.그리하여 그의 육신이 사라질때도 그의 푸른 영혼은 폭풍속의 나무처럼 끝없이 흔들리면서 아마 그때도 「나선형의 자세」로 춤추게 될것에 틀림없다. □연보 ▲1940년 충남 연기출생 ▲1963년 숙명여대 영문과 졸업 ▲1966년 도미,뉴욕정착 ▲1970∼71년 알빈 니콜라이 무용연구소 입소 ▲1972년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졸업 ▲1973년 뉴욕대 입학,케이 다케이와 그룹활동, 뉴욕 댄스시어터 워크숍서 「제례」로 안무가및 무용수 데 뷔 ▲1975년 홍콩 아트페스티벌 초청공연,공간 1백호기념 초청 「이사도라 던컨의 춤」및황병기 작곡 「미궁」발표 ▲1976∼79년 인도정부 장학생으로 인도체류 ▲1981년 래핑스톤무용단 창단기념 「입에서 꼬리까지」 뉴욕 초연 ▲1982년 오하이오 더 유니언 인스티튜트 무용학 박사학위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 초청공연 ▲1986년 미국 샌디에이고 패시픽 링아트 페스티벌 「ISLE(섬)」참가 ▲1988년 미국 웨슬리언대 개최 국제음악제 존 케이지와 「네개의 벽」참가 ▲1989년 독일 베를린예술원초청 「붉은 노을」,중국문화부초청「섬0공연 ▲1990년 제16회 중앙문화대상 수상,북경 아시안 게임 서울시립무용단 「2001년」안무 공연 ▲1992년 스페인 세비야 EXPO참가 ▲1993년 플럭서스 서울 공연 백남준 비디오작업출연,사단법인 래핑스톤(웃는 돌)설립 0▲1994년 「풀루토」서울및 뉴욕공연
  • 태권도(한국문화 세계화의 길:5)

    ◎“재미있게” 규칙 개정·장비 개선 필요/동호인 세계 145개국 4천만명… 해마다 늘어/체계적 무도철학 정립,인성교육 도움돼야 무도철학의 신체적 발현인 태권도는 아름다움을 신체적 동작으로 추구하는 사물놀이,탈춤등 처럼 우리의 민족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한국인이 낳은 문화 가운데 태권도처럼 세계적으로 보급된 문화는 없을 것이다.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이조의 도자기나 현대의 자동차보다도,어쩌면 김치나 갈비보다도 온세계에 널리 퍼져 침투한 것이 태권도다.예컨대 격투기 인구가 많은 미국에서도 무도체육관의 70%는 태권도가 차지하고 있고 그 비율은 지금도 상승하고 있단다』(일본의 스포츠전문잡지인 「스포츠 그래픽 넘버」의 88서울올림픽특집호). 『현재 세계태권도연맹(WTF)에 가입한 회원국은 145개국이며 수련생은 약4천만명에 이르고 있다.앞으로도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이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가입할 것으로 전망되며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 수련생의 증가도 예상된다』(WTF이경명사무차장). 태권도가 동양의 다른 타격기(정격기)무도를 제치면서 세계화의 선두를 달리고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었던 까닭은 한마디로 무도의 합리적인 스포츠화에 가장 먼저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 치러지고있는 태권도는 한국전통무예인 태권도가 아니라 경기스포츠로서의 태권도다.안전성에 대한 배려,알기쉬운 승패,기타 경기를 성립시키는 갖가지 요소를 지금의 태권도는 모두 갖추고 있다』(일본의 격투기전문잡지 「격투기통신」88년12월호). 태권도의 뿌리는 태껸이다.그러나 현재의 태권도는 태껸과 크게 다르다. 『태껸이란 한마디로 한국무도의 근원이다.태권도도 태껸으로부터 태어났다.태껸을 현대적인 스포츠로 만든 것이 태권도다.태껸과 태권도의 차이는 태권도가 직선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는데 견주어 태껸의 움직임은 곡선적인 것과 종합무도이기 때문에 태껸에는 기술에 제한이 없어 손에 의한 안면공격과 메치기기술도 있다는 점등이다』(정경화태껸지도자). 태권도는 73년5월에 WTF를 창설하고 눈부신 세계화를 이룬끝에 94년9월 파리에서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20 02년 시드니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지구가족으로부터 가장 합리적인 동양의 타격기로 받아들여지도록 태권도를 스포츠화한 것이 세계화 달성의 길을 열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단 20년 남짓 사이에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다음 두가지가 크게 작용했다. 하나는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과 함께 전쟁터로 건너간 태권도가 다른 나라군대에게 실전무도로 소개되어 큰 관심을 모으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월남전이후 많은 태권도지도자들이 온세계로 퍼져나갔다. 또 구 서독에 광부로 건너간 사람들 가운데에도 태권도지도자들이 적지않게 끼어있어 광부로서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귀국하지 않고 세계각국에 태권도체육관을 연 사람들이 많았다. 뿐만아니라 미국과 중남미를 향한 이민붐을 타고 많은 태권도지도자들이 남북미대륙으로 건너가 태권도보급에 힘썼다. 또하나는 외국어구사능력과 외교적 수완이 뛰어나 비올림픽경기종목인 태권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IOC부위원장의 자리에 올라간 김운용WTF총재가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각 대륙의 스포츠통활체등을 설득해서 선수권대회 창설과 대륙단위종합체전의 정식종목으로 태권도를 채택하도록 만든 것도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까지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할 것이다. 태권도가 세계속에 보다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태권도를 보다 재미있는 경기로 만들기 위한 경기규칙개정과 장비의 개선등이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태권도철학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세계화 시키는 것이 앞으로 치러야할 제2단계 작업이라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될 것같다. 『유도의 세계화가 이루어지자 88서울올림픽에서 유도의 종주국인 일본은 금메달을 한개밖에 따지 못했다.어쩌면 이 결과야 말로 유도의 참된 세계화일는지도 모른다.태권도의 세계화도 언젠가는 유도와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한국이 태권도의 종주국으로서의 위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경기기술의 부단한 개발과 아울러 태권도철학의 이론적 체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태권도 철학이야말로 태권도를 세계속에 보다깊이 뿌리내리도록 만들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민경호·UC버클리교수·초대 미국태권도협회회장). 『미국에서는 이제 학교선생님의 말씀도 잘 안듣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아직도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사람은 신부나 목사등의 성직자와 무도사범뿐이다.태권도지도자들에게도 경기기술뿐만아니라 수련생의 인간교육을 기대하는 부모들이 많다』(메어리 추·재미 여성태권도지도자). 온세계의 많은 청소년들에게 태권도수련을 통해 전인교육이 베풀어질때 태권도의 세계화는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태권도의 역사/태껸이 뿌리… 소림사권법보다 3백년 앞서 태권도의 기원은 삼국시대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역사적인 자료가 남아있는 것은 삼국시대부터다. 고구려 제10대 산상왕13년(209년)부터 수도였던 환도산성에 있는 무용총벽화에는 오늘날의 태권도와 같은 자유대련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이 벽화는 우리 태권도의 역사가 중국의 소림사권법 보다도100년에서 300년이상 앞선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놀라운 역사적 자료다』(김광성,김경지 교수가 함께 지은 「한국태권도사」). 태권도의 원형은 태껸,수박,권법,수박희,수벽타,각저,날파람등 여러가지로 불렸으며 고구려의 청년무사집단인 선배,신라의 화랑등이 이 격투기를 익혔다.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군사를 뽑는 시험과목의 하나로 태권도겨루기가 실시됐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또 옛기록에 보면 몸을 날려 상대방의 상투를 발로 스치는 비각술이라는 것도 있었다. 오늘날의 태권도가 가라데나 쿵후보다도 다채로운 발기술을 많이 쓰고 있는 것도 역시 옛날부터의 전통이 살아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제때 탄압을 받았던 태껸,혹은 수박은 광복후 여러유파의 도장이 난립했으나 61년에 통합을 이루어 대한태수도협회를 탄생시켰고 65년에 명칭을 대한태권도협회로 고쳤다. 태권도의 어원을 살펴보면 태는 발로 뛰고 차고 내려친다는 뜻을,권은 손 또는 주먹으로 친다는 뜻을,도는 철학적 태도 또는 생활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전문인이 말하는 태권도의 길◁ ◎새로운 경기기술 개발 노력을/김운용씨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 태권도의 세계화는 일단 달성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듯 싶다. 그러나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으로 열리는 올림픽의 조직위원회들이 그때마다 태권도를 선택해 주어야만 한다. 육상이나 수영등의 기본종목은 조직위원회가 빼버릴수 없지만 유도,복싱,태권도등은 조직위원회만 외면하면 그 올림픽에서는 빠지게 된다. 조직위원회가 종목을 선정할때 그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세력이 있다. 막대한 방영권료를 지불해서 올림픽을 재정적으로 크게 지원해주고 있는 TV방송국이 바로 그것이다. 선수의 뇌에 손상을 준다는 우려와 판정을 둘러싼 말썽 때문에 늘 IOC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복싱이 그래도 올림픽에 머물 수 있는 것은 복싱을 선호하는 미국TV방송국이 바람막이 노릇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호구의 착용으로 안전성이 확보되어 있고 전자심판기의 등장으로 판정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또한컬러도복착용여부를 놓고 의견이 갈라져 있는 유도와는 달리 일찍부터 호구의 컬러화로 TV쪽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다만 팬들과 TV의 관심을 보다 끌기위해 경기규칙과 장비의 개선,그리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대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스포츠와 무도 융화시켜야/박동근씨 미태권도협 기술분과위원장 『태권도는 스포츠에 앞서 하나의 정신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운동경기의 측면만을 강조해서는 안되고 무도,즉 정신적 측면을 적절하게 융화시켜야 합니다』 25년동안 미국에서 태권도보급을 위해 애써온 미국태권도협회(USTU) 기술분과위원장 박동근(55·뉴욕대·태권도9단)교수는 태권도 세계화의 요체를 정신력강조라면서 『가라데·쿵후 등 미국에 소개된 동양경기중 태권도만 그 주도권을 미국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고 여전히 한국사람이 장악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정신력에서 앞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내의 태권도가 지나치게 기술위주의 경기력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한 박교수는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서는단순한 스포츠만이 아닌 무도로서의 체계화와 세계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룰과 폼의 정립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민자 정책 싱크탱크/여의도연/오늘 출범… 규모와 역할

    ◎통일·경제 등 10분야 전략 연구/소장에 박필수씨 등 3명 물망 민자당이 세계화에 앞장서는 정책정당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여의도연구소(YDI)가 6일 현판식을 갖고 공식출범한다. YDI는 우리나라 정당이 운영하는 최초의 본격 정책연구소.외교·경제분야를 중심으로 국가 장기경영전략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의 역할을 맡는다. 민자당은 이 연구소의 기금으로 올해 안에 우선 1백억원을 출연할 계획이다.이미 당사와 이웃한 건물에 5백평짜리 사무실을 마련했다.이사장 소장 이사 감사등 임원진에 박사급 연구원도 10명을 확보하고 있다.박사급 연구원은 곧 10명을 증원하게 돼 있다.장기적으로는 1천억원의 기금에 2백여명의 연구원들을 거느린 대규모 연구재단으로 키우려 한다. 얼마전 마감한 박사급 연구원 공모에는 모두 2백27명이나 지원,관계자들마저 놀라게 했다.이들 가운데 10명을 선정,정치 통일 안보 경제 환경 복지 건설 교통등 10개 분야로 나누어 전담시킬 방침이다. 이사장은 당 사무총장이 당연직으로 맡는다.연구소의 얼굴인 임기 4년의 소장에는 20명 남짓한 중량급 인사들이 물망에 오른 끝에 박필수 전상공부장관과 신동원 전 주독일대사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전주미대사)등 3명으로 압축됐다.당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낙점」한다. 박 전장관은 경제기획원과 상공자원부 등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관료 출신의 대학교수로 외국어대총장과 소비자보호원장을 역임하는등 실물경제의 이론과 현실에 두루 밝다.정통외무관료 출신인 신전대사는 주독일대사로 독일의 통일전후 현실을 직접 지켜보았고 외교안보연구원장등을 맡아 국제정치 및 민족문제를 깊이 연구한 점이 평가되고 있다.김 원장은 미국 뉴욕대와 고려대에서 정치학을 강의했고 대통령특보 및 비서실장,유엔대사 등을 거쳐 지난해 국제화추진위원장을 맡아 폭넓은 비전을 갖고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임기 4년의 이사로는 이원경 전외무부장관 김계수 외대명예교수 이상희 과학기술자문위원장 노승우 민자당국책연구실장 등이 내정됐다.감사는 서울 서초갑지구당위원장인 김찬진 변호사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여의도연구소를 김대중씨의 아시아·태평양재단이나 전두환전대통령이 추진했던 일해재단과 같은 정치적 목적의 기구로 보기도 한다.그러나 YDI의 설립을 처음 제안했던 이인제의원은 『YDI를 대형 전문연구재단으로 키워 세몰이식 정치판에 정책논쟁을 불러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민자당은 이 연구소의 기금을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의 일부로 충당할 계획이나 이에 대한 일부의 오해가 있음을 감안,다른 방법도 함께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패션 디자이너 트로아 조,미시장 공략법 조언

    ◎“패션은 고급이미지 지녀야 성공”/옷이 흔해지기 전에 단기간내 승부내도록/끊임없이 시장탐색… 소비층 연구개발 필요 미국 뉴욕시장에서 성공적으로 발판을 굳히고 있는 패션디자이너 트로아 조씨가 최근 귀국,국내에서 패션쇼를 열고 미국시장 개척담 및 시장현황에 대해 소개했다.『미국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만큼 까다로우며 민첩성을 요구합니다.디자이너의 순간적인 실수를 용서하지 않지요』 조씨는 79년 뉴욕에 간 이래 14년 동안 「내손님은 어떤 층이어야 하나」「내옷을 어떻게 알리느냐」등을 놓고 끊임업이 시장탐색전을 해왔다고 밝힌다. 70년대 당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트로아 조씨는 현재 뉴욕 패션중심가 66번가와 57번가에 부티크와 전시장을 두고 바이어들을 맞고 있다.지난 봄에 이어 지난달 말 두번째로 뉴욕컬렉션에 참석,앤 클라인,도나 카란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겨루기도 했다. 지난 1일 모델센터 주최의 94년 송년 패션쇼에 참가,뉴욕컬렉션에 제시한 내년 춘하복을 다시 소개한 그는 자신의옷은 전문직여성및 중상류층 여성들을 대상으로한 것이라고 말했다. 『50·60년대의 실루엣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현대여성에 맞게 되살렸습니다.허리선을 꼭맞게 하고 아래는 풍성히 살린 낭만적인 옷들이죠』 뉴욕컬렉션 이후 현지 패션전문점 바이어들로부터 40만달러 이상의 물량을 주문받았고 앞으로 미국내에 전문점 거래선을 2백곳 이상 확보해나갈 계획이라는 조씨는 현재 니만 마커스,버그도프 굿맨 등 백화점에서 실크 드레스 등의 독점거래를 원해 조건을 협상중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옷주문이 늘어나고 있는 현지 분위기를 조씨는 『14년 미국시장 공략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갈림선』이라고 평가한다.『옷이 흔해지면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바이어 상담에서 가격수준과 시한을 정확히 제시해야 고급 이미지가 유지된다』는 것이 그의 패션비즈니스전략이다. 미국시장은 장벽이 높지만 일단 발판을 닦은 다음에는 정확한 주문생산체제가 잡혀있는 유통구조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젊은 국내 디자이너들이 한번 도전해볼만 하다는 것이 조씨의설명.매장을 운영하는 전문 바이어들이 현금으로 디자이너의 옷을 주문해 산 다음 고객에 직접 판매하는 미국 패션시장의 유통체계가 하루속히 우리국내에도 정착됐으면 한다고. 조씨는 국내와 뉴욕의 사업운영을 가족체제로 꾸리고 있다.자신은 전반적인 디자인을 관장하고 동생인 조은자씨가 국내영업을 총괄하고 있으며 장녀가 서울에서 패션마케팅을,차녀는 뉴욕지점장을 맡고 있다.특히 뉴욕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본업을 바꾼 장남 송한규씨(27)는 자신의 작품 40여점을 뉴욕컬렉션에 출품,국내에서 보기 드문 「모자 디자이너」체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 대마초 충격… 방화붐에 “찬물”/톱스타 박중훈 구속의 파장

    ◎「투캅스」·「게임의 법칙」등 출연작마다 빅히트/“관객동원 보증수표 부도” 주연구하기 난감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배우로 꼽히는 박중훈이 「대마초 상습복용」혐의로 7일 전격 구속되자 영화계에 비상이 걸렸다. 소식을 접한 영화계 인사들은 또다시「대마초사건」이 터진데 대해 『박중훈같은 일급배우가 직업윤리를 망각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고 개탄하면서 「대마초 파동」이 영화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박중훈이 배우로서 갖는 비중을 감안,한국영화가 한참 활성화하는 시기에 그가 구속됨에 따라 모처럼의 기회가 무산되지 않을까 안타까워 하고 있다. 흥행을 보장하는 인기여배우가 드문 현재의 영화계에서 박중훈은 관객동원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보증수표」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와 안성기가 공동주연한 「투 캅스」는 8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지난해 「서편제」가 점화한 방화 붐을 이어주었다.이어 지난 추석대목에 「태백산맥」과 함께 내걸린 「게임의 법칙」에서도 주연을 맡아 20여일만에서울에서 10만관객의 동원을 눈앞에 둔 놀라운 인기를 과시했다. 「태백산맥」이 원작·화제성·임권택감독의 유명도등 흥행요소를 두루 갖춘데 비해 「게임의 법칙」은 그가 주연이라는 사실말고는 두드러진 점이 없어,흥행성공이 오로지 박중훈 개인의 연기력과 인기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게 영화계의 분석이었다. 따라서 박중훈·안성기등 몇몇 대형스타의 개인적 인기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영화계로서는 흥행 구조에서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손실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또 「투 캅스」의 강우석감독이 박중훈을 주연삼아 촬영중인 「마누라죽이기」가 제작중단 사태에 놓인 것을 비롯 그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많은 영화가 제작에 차질을 빚게 됐다. 게다가 「인기스타」의 추악한 사생활이 알려지면서 팬들이 한국영화에 등을 돌리지나 않을지 하는 것도 영화인들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영화계의 한 인사는 『평소 영화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깊어 TV등 다른 매체에의 출연을 자제하던 박중훈이 다시 스크린에 등장할 수 없게 된 것은개인의 불행에 앞서 한국 영화계의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화계 일부에서는 「지존파사건」으로 폭력·외설 영화에 대한 지탄이 최고조에 달한데다 한국영화를 대표할만한 배우의 「대마초사건」이 터진만큼 영화계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자정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나오고 있다. ◎박중훈은 누구/85년 「깜보」로 데뷔… 뉴욕대 연기학 석사 출신 64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중훈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중인 85년 이황림감독의 「깜보」에서 건달제비역으로 데뷔했다.이후 「칠수와 만수」「우묵배미의 사랑」「그들도 우리처럼」 등 작품성 있는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미래를 걸머질 재목으로 성장했다. 터프한 마스크에 개성있는 연기로 한국영화계의 간판스타가 된 그는 91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태 영화제에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영화배우로는 유일하게 지난 92년 뉴욕대 예술대학원에서 연기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귀국 후 강우석감독의 「투캅스」로 화려하게 스크린에 복귀해 이 영화로 올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 사건으로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안게됐다.그는 지난 6월 재일동포 윤순양과 결혼했다.
  • 미 노인대학 「엘더호스텔」/못다한 공부하며 봉사의 기쁨까지

    ◎우리도 배울만한 「실버산업」 프로그램/작년에만 60세이상 29만명 참가… 큰 인기/장애어린이 보살피고 “사회에 보답” 보람 최근 우리나라의 몇몇 대학에서 은퇴를 앞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한 기획강좌가 마련돼 세인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원기왕성한」퇴직 노년층의 문제가 우리사회에도 그만큼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은퇴한 60세 이상 노인들 사이에 함께 숙식을 하며 가치있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일종의 유료 노인 기숙사 대학인 「엘더호스텔」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외신이 관심을 끈다. 뉴욕타임스지 최근호는 지난 75년 노인들을 대상으로 학문의 재충전기회를 주기위해 세워진 비영리단체 「엘더호스텔」(보스턴 소재)의 참가자가 지난해만도 전세계 1천8백개 지역에서 29만명의 사람들이 참가했다고 밝혔다.자원봉사등의 교육프로그램으로 확대된 이곳 외에도 각 대학의「엘더호스텔」까지 합한다면 그 수는 더 많다고. 새로운 엘더호스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대학은 뉴욕대나 맨해턴의 포드햄 대학등.「햄릿론」등의 문학강좌와 실용예술에서부터 장애아복지시설 자원봉사에까지 다양하다.자메이카의 고교교사로,폴란드에서 영어교사역할을 하러 떠나기도 한다. 많은 은퇴노인들이 6박7일 정도의 프로그램에 참가비 2백75달러에서 4백달러를 내가며 자기개발및 자원봉사에 기꺼이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참가하는 노인들은 전직 법관,교수,교사,간호사,회계사,외무부관료 등으로 퇴직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던 직종종사자가 비교적 많은 편.은퇴후 생활의 급격한 이완으로 우울증과 폐쇄증에 빠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나선 이들은「엘더호스텔」의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사회에 보답하는 길을 찾았다』며 한결같이 기뻐한다. 전직 컬럼비아주 대법원 청소년담당 법관인 오먼 캐첨씨(75)는 최근 19명의 은퇴노인들과 함께 영화배우 폴 뉴먼 등이 우드랜치시에 세운 중증 장애아 시설을 찾아 그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자원봉사를 했다.가발을 쓰고 아이들앞에서 춤을 추는 어릿광대역이 특기인 그는 『아이들이 나를찾으며 즐겁게 웃는 것 이상으로 기쁜일이 없다.이것이야말로 가치있는 삶이다』고 자신있게 주장한다. 사별과 이혼 등으로 혼자살고 있는 독신 남녀노인들에겐 동성의 친구를 사귀는 장점외에도 새로운 황혼의 반려자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곱명의 자식들이 보내주는 용돈은 곧 바로 각 대학등의 「엘더호스텔」프로그램 참가비로 낸다는 전직 부동산 중개인 카예 토빈할머니(64·뉴욕 거주)는『헌팅턴시에 사는 손자의 사진만 바라보고 사는 청승맞은 생활은 이제 끝났다』고 밝힌다.함께「엘더호스텔」에 참가하고 있는 동료 할아버지·할머니들과 프로그램의 내용과 할일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노인들의 대화주제인 「식이요법과 신세한탄」이 끼어들 틈새가 없다는 설명이다.
  • 미 대학/학교이미지 상품화 열올려

    ◎심벌 마크 로열티 받고 의류 등 업자에 넘겨/전국 2백여개대 판촉… 운동부 예산 등 충당 심각한 재정압박에 처해있는 미국의 대학들이 학생유치 뿐만 아니라 학교이미지의 상품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티셔츠 모자 재킷 속내의등 의류로부터 각종 문구류와 스티커는 물론 어린애들의 턱받이와 화장실용품에 이르기까지 대학 마크와 심벌등이 새겨 있는 수백종에 달하는 대학이미지 상품의 미국내 판매액은 지난 한햇동안 모두 25억달러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대학측에 로열티로 지불된 돈만해도 1억달러가 넘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가장 많은 로열티 수익을 거둔 대학은 미시간대학으로 5백80만달러를 벌어들여 학교 운동부의 예산으로 충당했다.다음은 플로리다주립대학으로 2백60만달러를 벌어 강의동 신축에 사용했다. 이같이 대학이미지를 상품화한 시장이 점점 확대돼가고 있는 것은 전문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에 나서기 때문이다.현재 활동중인 6개 대학상품회사중 가장 규모가 큰 애틀랜타의 칼리지 라이센싱사는 미시간대및컬럼비아·듀크·뉴욕대등 소위 명문들을 포함,1백33개 대학의 상표권을 갖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아이오와시티의 라이센싱 리소스사가 31개대학의 상표권을 갖고 있다.이들이 판매상품에 대해 대학에 지불하는 로열티는 평균 25∼30%.미시간대처럼 액수가 많을 경우는 8%로 떨어진다. 원래 대학이미지의 상품화는 대학의 본질인 아카데미즘 추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최근까지 백안시 당해왔다.따라서 학교마크등에 대한 상표권 개념조차도 없었다.그러다가 지난 1981년 텍사스A&M대가 최초로 교명과 학교심벌등을 상표권으로 등록한 것을 효시로 오늘날은 상당수 대학들이 이에 가담하고 있다. 미시간대의 경우도 81년 상표권을 등록,첫해 로열티수입이 1천8백달러에 불과했으나 13년만에 3천2백배로 증가했다.이같이 기록적인 신장을 보일수 있었던 첫째 이유는 이 대학 스포츠팀이 각종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지난해만도 미시간대는 축구와 농구 하키등에서 국내 최강팀으로 랭크됐다. 두번째는 미시간대가 1백70여년의 학교 역사에서 쌓은 명문대학으로서의 이미지와 사회지도층에서 활약하는 수만명에 달하는 막강한 동창세 등이 모두 조화되어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외국유학생이 많은 점을 활용,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동문들을 상대로한 해외 판매망을 갖추는가 하면 학부모들을 상대로한 판촉등도 상당히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4천여개 대학중 이같이 학교이미지가 상품화되고 있는 대학은 2백여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이 범주에 든 대학들은 다양한 상품개발및 판촉에,들지 못하는 대학들은 나름대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미국대학들은 열심히 뛰고 있다.
  • 유엔 대표부 청사 신축/대지 2백71평·건평 1천4백평

    【뉴욕=나윤도특파원】 유엔주재 한국대표부는 8일 세계적인 건축가 I M 페이씨(77)와 한국대표부의 새 청사 신축을 위한 설계및 감리용역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유엔본부에서 불과 1백m 떨어진 맨해튼가 45번가에 위치할 새 청사 건물은 2백71평의 부지에 총건평 1천4백평 규모로 7∼8층 정도로 지어질 예정이다. 새 청사 건설에는 부지구입 비용 8백70만달러를 포함해 모두 2천3백만달러(한화 약 1백84억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해 15개월의 설계기간을 포함,3년정도의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유종하 유엔대사는 한국대표부의 새 청사건설과 관련,『유엔기능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유엔대표부의 기능을 이에 맞게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남북통일에 대비한 외교인력과 보조인력을 수용할 수 있는 청사건립이 필요하다』면서 『새 청사는 지금까지 불모지대나 다름없었던 다자외교의 본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맡은 페이/「한국의 혼」 깃들인 건물로/통일 대비해 공간 넉넉히/레플즈시티 등 설계한 중국계 『50여년동안 건축설계를 해오면서 실제로 내가 하고 싶어서 맡은 건물은 몇 안됩니다.대부분이 회사를 위해서 한 일입니다.그러나 이번에 맡은 한국 유엔대표부 건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몇 안되는 일중 하나입니다』 8일 한국 유엔대표부 청사신축을 위한 설계및 감리용역계약을 체결한 건축가 I M 페이씨(77)는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계약체결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중국 광동성 출신으로 17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MIT대와 하바드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한 페이씨는 싱가포르의 래플즈시티 등 도시계획을 맡았으며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유리피라미드등 개조설계,홍콩의 차이나뱅크 타워,맨해튼 훠시즌호텔 등을 설계해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대표부 건물은 작은 건물이지만 유엔본부 바로 앞에 위치해 세계인들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고 또 같은 유교권 국가인 한국의 혼이 들어 있는 건물을 짓는다는데 마음이 끌렸다』고 설계참가 동기를 밝힌 페이씨는 『오피스 빌딩이지만 한 국가를 대표하는 빌딩으로의 역할도 맡을 수 있도록 해야하기 때문에 먼저 한국의 정치·사회·문화·사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의욕을 펼쳤다. 설계기간 15개월을 포함,총 3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본 페이씨는 『공사가 끝나기 전에 남북이 통일돼 통일한국대표부로 입주를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면서 『싱가포르에서 한국업체와 일하며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 공사에도 한국 건설업체들의 참여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방연구위원회 위원,하바드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페이씨는 뉴욕대 펜실베이니아대 등 15개 대학에서 명예 미학·법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1955년 페이­파트너사를 설립,지난 89년 퇴임후 현재는 페이 코브 프리드라는 개인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 미국서 본 갱단 모방/대낮 마을금고 털어/20대 둘 영장

    서울 서초경찰서는 23일 새마을금고에 침입,2천4백여만원을 빼앗아 유흥비로 탕진한 장호영씨(27·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대해 특수강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마약법위반 혐의로 이미 구속된 일당 우대엽씨(21·뉴욕대학 중퇴)에게는 같은 혐의를 추가했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등은 지난 4월 18일 하오 4시40분쯤 서울 서초구 잠원동 35 새마을금고에 침입,근무중이던 여직원 박모양(22)등 6명을 가짜권총과 흉기로 위협,10만원권 자기앞수표 60장과 현금등 2천4백여만원을 빼앗아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장씨는 경찰에서 『중학교때 미국에 이민갔다 귀국한 우씨가 미국에서 본 은행갱단영화를 모방하자고 제의해 가짜소총등과 승용차를 훔쳐 범행에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 「태풍의 눈」속의 예송/임영숙 논설위원(서울광장)

    동구권이 해체되고 세계사가 새로 기록되는 중요한 시기에 한가롭게도 외국 대학의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매스미디어의 구조와 기능」을 강의하던 뉴욕대학의 교수는 첫 시간에 「막강한 힘을 가진 저널리스트들의 우둔함」에 대해 매우 냉소적으로 말했다.글쓰기의 최고 직분이 시인이고 그 다음이 소설가,에세이스트로 이어지며 맨 꼴찌가 저널리스트라는 순위매김을 들어본 바도 있지만 그의 냉소는 지독했다. 바로 그 교수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직후 사태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세계사의 대변혁이 일어나는 지금 이 시점은 「태풍의 눈」과 같다.행정부의 어떤 전문가도,대학의 어떤 학자도 설명이나 분석해 낼 수 없는 진공의 상태다.다만 저널리스트만이 실마리를 잡아 이야기할 수 있다.그 실례를 어제아침의 ○○○지는 보여준다.꼭 읽도록 권하는 바다』 글쓰기의 말석을 더럽히는 저널리스트로서 통쾌하게 들었던 그 말이 김일성이 죽은후 지난 1주일동안 다른 의미를 갖고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과연 우리 언론은 「태풍의 눈」속에 있는 대한민국의 안전항해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태풍의 눈」을 벗어난 다음에는 어떤 폭풍우속에 들어가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국내외를 막론하고 언론보도가 북한에 대한 총체적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이미 나오고 있다.언론보도뿐 아니라 국가의 정보수집 능력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춤추는 언론보도나 국가 정보수집 능력의 문제는 꼭 그 당사자들의 책임이라고 볼수 만은 없지 않을까.미국 부시행정부의 국무차관 아놀드 캔터가 『50년대의 크렘린은 현재의 북한에 비하면 펼쳐 놓은 책과 같다』고 말했을 만큼 북한이 철저한 폐쇄사회인 탓이 더 크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50년대의 크렘린은 윈스턴 처칠에 의해 「철의 장막」으로 규정됐던 곳이 아닌가. 다행히 「태풍의 눈」을 우리는 차츰 벗어나고 있다.김일성의 시신이 공개되고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가시화되므로서 일단 분석과 설명의 대상이 드러난것이다.물론 그 대상에 대한 정보 역시 빈약하기 짝이 없어 정확한 분석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데 한국사가 새로 쓰여지게 될 이 중요한 시기에 국론분열의 사태가 빚어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국회의 조문파문,대학가 일부 과격학생들의 경찰서 습격으로 이어지면서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것이다.조선조 현종·숙종대에 걸쳐 효종과 효종비에 대한 조대비의 복상기간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논쟁 예송을 우리는 대표적인 당파싸움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국회의 조문파문은 바로 오늘의 예송인 셈이다. 물론 우리사회는 김정일이 두려워하는 다원주의사회(김정일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다원주의를 허용하는 것은 결국 사회주의사회의 기초를 허물고 인민의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반혁명적 책동의 길을 열어 주는것」이라고 말해 그에 의한 북한의 개방을 기대하는 우리에게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일깨워준다)다.따라서 의견의 충돌이 있을 수 있고 그러한 충돌을 통해 보다 나은 합의를 이끌어내며 발전해 나간다.그러나 요즈음의 국론분열현상은 우리가 정작 머리를 싸매야 할 본질적인 일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금 우리가 매달려야 할 일은 어떻게 북한의 핵위협을 제거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김일성의 죽음에 따른 한 시대의 종언을 민족통일의 길로 슬기롭게 이끄느냐 하는 것이다.북한정권을 돕고 있는 유일한 나라 중국의 노쇠한 지도자 등소평이 김일성처럼 어느날 갑자기 죽을 경우,또한 병약하다는 김정일이 죽을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폴란드방문중 환영만찬직전에 베를린장벽 붕괴소식을 들은 서독의 콜총리는 「부적절한 시기에 엉뚱한 장소」에 와 있는 자신의 초조한 심경을 기자들에게 털어 놓으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의 서두는 모습이 사태진전을 그르치고 독일국민들의 들뜬 기대감을 부추기지 않을 것인가 염려했다.그런 사려깊음을 우리정부 또한 가져야 할 것이다.
  • 헤로인 15억원어치 밀매/2개파 8명 첫 구속

    ◎국제조직 연계… 유흥가 넘겨/남대문상가 탑씨크리트 번영회장등에 팔아 유흥가 폭력배들이 국제마약조직과 연계해 미국·유럽등지에서 주로 유통되고 있는 마약류중 가장 독성이 강한 헤로인 15억원어치를 밀반입,국내에 대량 유통시키다 검찰에 적발됐다. 헤로인이 동남아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북미·유럽·호주등으로 밀반출되다 적발된 사례는 여러번 있었으나 국내 마약시장에 판매하다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지검 강력부(유창종부장검사·신현수검사)는 17일 태국산 헤로인을 국내에서 팔아온 서만석씨(36·유흥업소 경영)등 마약판매조직 2개파 8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및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이들로부터 팔다 남은 8천회 투약분의 헤로인 2백25g(시가 3억7천만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으로 마약의 국내공급조직이 유학생·교포·외국인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음은 물론 그동안 마약거래에 관여하지 않던 조직폭력배들이 유흥업소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헤로인등을 유통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구속된 우호엽씨(21)는 지난 1월초 태국교민인 김모씨(40·택시관광안내원)로부터 헤로인 1㎏(15억원어치)을 건네받아 구속된 서씨를 통해 국내에 판매했다는 것이다. 89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간 우씨는 뉴욕대 건축과에서 1학년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해왔으며 미국을 오가는 항공기에서 김씨와 접촉,헤로인 공급판매에 가담케 된 것으로 밝혀졌다. 서씨등 판매책들은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흥업소를 경영하는 폭력전과자들로 우씨로부터 건네받은 헤로인을 점조직형태의 국내 소비책에게 팔아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구속된 이상범씨(30)는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L호텔 앞에서 우씨로부터 헤로인 5백g을 건네받아 성모씨에게 헤로인 샘플 1g을 공급하는등 본격적인 판매활동을 하다 붙잡혔다. 이밖에 유재준씨(41·골재업)는 지난 15일 하오 11시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수배중인 히로뽕 공급책 김석준씨로부터 히로뽕 1·2g을 1백만원에 구입,함께 구속된 남대문상가 탑씨크리트번영회장 정건식씨(50)등에게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 평양의 연료봉교체 저지에 주력/「북 시료채취 거부」 한·미의 대응

    ◎북­미·북­IAEA협상 통해 「속셈」 파악 북한이 27일 외교부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녕변 5메가w급 실험용 원자로의 연료봉 교체 때 시료채취를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이같은 북한의 방침은 지난 21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에 보낸 회신에 대한 답신의 형식으로 IAEA측에도 전문으로 공식 전달됐다.얼핏보면 다소 유화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하던 북한 핵문제가 다시 강경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페리 미국 국방부장관이 방한할 때만 해도 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상황은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되던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미국과 북한,북한과 IAEA의 대화 분위기가 고조된 상태였다.선특사교환 철회와 한미 두나라 국방장관의 팀스피리트훈련 11월연기 결정등이 그것이었다. 바로 이때,북한도 화답이나 하듯 핵문제 해결의 「키보드」 가운데 하나인 연료봉 교체 때 입회를 「느닷없이」 제의,대화의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던 것이 27일 북한 외교부대변인의 시료채취 불허 성명과 『그렇다면 이번 주에 사찰단을 파견하기 어렵다』는 IAEA측의 대응으로 처음 기대와는 달리 또다시 사태가 뒤틀릴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북한이 「연료봉을 교체하겠다」고 IAEA에 통보한 날이 2∼3일밖에 남지 않은데다,안보리 의장성명에 명기된 추가사찰의 시한도 앞으로 1∼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북한은 이러한 일련의 유화적 상황을 아주 유리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한미 두나라와 IAEA측이 추가사찰보다 연료봉 교체에 보다 비중을 두게 만들었고,그토록 원하던 미국과의 실무접촉 재개를 자연스레 끌어내는데 성공했다.미국 국무부의 갈루치핵담당대사가 26일 『북한과의 대화를 제의할 방침』이라고 밝힌바 있어 금명간 뉴욕대화가 재개될 게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 두나라는 일단 미국과 북한의 실무접촉을 통해 북한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 같다.핵당담 관계자는 『일단 이번주에 강행할지도 모르는 연료봉 교체를 동결시키는 협상이 급선무』라고 말하고 있다.만일 북한이 막무가내로 연료봉 교체를 강행한다면현 유화국면을 보다 진척시키는 작업은 완전히 불가능해진다.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어 파국도,그렇다고 완전한 해결의 상태도 아닌 애매한 상황을 계속 유지하려 할 것으로 정부 관계자들은 여기고 있다.앞으로 남은 3∼4일 동안 재개될 미국과 북한,북한과 IAEA의 협상에서 보다 구체적인 북한의 의도를 파악할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핵문제는 강경과 대화 사이를 오가던 지난해와는 달리 뭔가 주고받는 식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미 최우수대학원에/법학/예일/경영/스텐포드/의학/하버드/공학/MI

    T/US뉴스 앤 월드리포트지 선정 미국 전국대학원 가운데 법학은 예일,경영학은 스탠포드,의학은 하버드,그리고 공학은 MIT가 가장 우수한 것으로 각각 평가됐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는 지난달 학과별 10대 대학을 선정(서울신문 2월 20일자)한데 이어 최근호에서는 각 분야별 미국의 우수대학원을 선정했다. 선정기준은 ▲입학생의 성적분포 ▲사회적 진출 ▲교수진용과 학업여건 ▲전국대학원장 및 교수들의 평가등이었다. 특히 지난해 4천9백49명의 지원자중 5.8%에 불과한 2백86명을 선발한 예일대 법학대학원의 경우 대부분의 교수가 학생선발과정에 직접 참여하며,학생들은 졸업후 6개월이내 1백% 취업해 평균연봉 8만3천달러의 높은 초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각 대학원 가운데 특정전공과목에서 강세를 보이는 학교는 법학의 경우 국제관계및 지적재산권은 컬럼비아,조세는 뉴욕대로 나타났다. 또 경영대학원은 재정 펜실베이니어,마케팅 노스웨스턴등이었다.
  • 재부부 세제실장 강만수씨

    정부는 12일 강만수 국회 재무위 전문위원(49)을 재무부 세제실장으로 임명했다. ◇약력(경남 합천) ▲서울법대,미뉴욕대 대학원 졸 ▲행정고시 8회 ▲재무부 직접세·이재1과장 ▲주미대사관 재무관 ▲재무부 이재·국제금융국장,공보관
  • 국제화추진 위원장 김경원씨(인터뷰)

    ◎“통일 대비하는 국제화전략 필요”/국민합의 바탕 「민간 싱크탱크」 만들터 『우리 사회에서 국제화의 당위성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무총리 자문기구로 8일 발족한 「국제화추진위원회」의 위원장에 위촉된 김경원사회과학원장(58)은 뒤늦게나마 국민들 사이에 국제화의 필요성이 인식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그러나 『국제화는 본질적으로 변화와 개혁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전제한뒤 『특히 민족의 주체성을 전제로 하지 않은 국제화는 무의미하고 위험하다』고 말해 위원회가 추구하는 작업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김위원장은 27살에 미국 하바드대에서 정치학박사를 따낸 수재.캐나다 요크대,미국 뉴욕대에서 교편을 잡은 것을 비롯해 대통령국제정치담당특보·비서실장,주유엔대사,주미대사등을 거치며 평생동안 국제관계를 다루어 왔다.최근에도 사회과학원장으로 국제세미나등을 자주 열고 우리의 국제화를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그는 이날 위원회 첫회의에서 국제화의 개념정립부터 명확히 하자는 제안이 나온데 대해 『그러려면 상황이 너무 복잡해진다』고 단순한 출발을 희망했다.『영어권에서는 고립과 국제주의라는 두 상반된 개념을 상정하고 있으며 우리는 더불어산다는 국제주의를 선택했다는 것을 위원회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위원장은 특히 우리의 국제화 추진은 통일시대에도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전략이라고 말했다.그는 『북한은 마르크스주의와도 다른 스탈린식의 시대착오적 체제를 갖고 있다』고 단정짓고 『이러한 북한의 국제화를 돕는 것도 우리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날 첫회의에서 쏟아진 의문은 『위원회에서 제기된 국제화 관련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충실히 정부정책에 반영될 것인가』였다.이어령전문화부장관,서경석경실련사무총장등은 『과거 여러 위원회가 그랬듯이 형식적 모임이라면 뜻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이회창총리는 『국제화추진위는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만든 것』이라면서 『위원회의 건의내용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국제화의 가망이 없다고 보아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강한 실천의지를 피력했다.김위원장도 『위원 여러분의 의욕을 보니 위원회가 명목적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같다』면서 「국제화추진위」가 국가적 과제로 등장한 「국제화」를 향한 「민간 싱크탱크」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 도산 애국활동·사상 재조명

    ◎오늘부터 4일간 LA서 대규모 국제학술대회/강만길교수 등 국내외학자 30여명 참가 도산 안창호선생(1878∼1938)의 애국활동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대규모 국제학술회의가 3일부터 6일까지 미국 로스앤젤스의 옥스포드팰리스호텔에서 열린다. 도산사상연구회(회장 김신일)와 로스앤젤스에 있는 태평양평화연구소(소장 김중순)가 함께 주최하는 이번 회의의 주제는 「도산:코리안 아메리칸」.국내에서 강만길(고려대)·조동걸(국민대)·윤병석(인하대)·신용하(서울대)교수,미주지역에서 박한식(조지아대)·방선주(뉴욕대)·최영호(하와이대)·루디실(남가주대)교수,샘플남가주대총장등 모두 30여명의 국·내외학자들이 참가한다. 김회장은 『도산선생은 폭넓은 독립운동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반인들에게는 「애국교육사상가」정도로만 인식되어 왔고 특히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개량주의자의 거두」쯤으로 낮추어 보는 시각까지 있었다』면서 『이번 회의는 그에 대한 본격적인 재조명을 통해 올바르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교수는 이 회의에서 1920년대 중국에서 도산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중국에서 도산의 독립운동」을 발표할 예정.그는 이 논문에서 도산의 「민족유일당」과 「한국독립당」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상세히 소개했다.도산은 1920년대 중반부터 만주지역에서 큰 세력을 형성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을 통합한 통일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민족유일당」을 결성하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것.이에따라 도산은 1930년1월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세력만을 결집해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는 것이다. 유병용교수(강원대)는 「도산 안창호의 정치사상에 관한 재검토」에서 『전민족의 복지·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사로운 이익의 희생을 요구한 도산의 대표적인 사상 「대공주의」는 민족·정치·경제·교육평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이상사회 건설의 설계도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는 이밖에도 1907년에서 1910년까지 도산과 관련된 국·내외의 보도를 모두 수집해 정리한 윤경로교수(한성대)의 「도산의 국내에서의 행적과 구국계몽활동」등 새로운 방법론을 채용한 연구성과의 발표도 있다.
  • 화학연의 일류화 도전(국제화 앞서간다:7)

    ◎첨단 의약품 미·일·러와 협약연구/퀴놀론계 항생제 기술 영에 첫 수출/외국특허 30건… 암 치료제 연구 나서 한국화학연구소(소장 강박광박사) 5백여명의 연구원들은 국제화시대를 맞아 「화학의 힘은 바로 국력」이라는 신념으로 세계 일류에 도전하고 있다.1백10여명의 학위소지자들은 대부분 외국의 유명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세계적인 두뇌집단이다.연구원들은 다른 정부출연 연구소와는 달리 자유분방한 분위기속에서 윗사람의 눈치를 보지않고 자신과의 싸움으로 세계정상에 도전한다. 연구소장 강박광박사는 서울공대화공과를 졸업한뒤 도쿄대학과 미국 뉴욕대 캐나다 워터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루이지애나대학교수,주미한국대사관 과학관을 역임한 국제통이다. 화학연구소는 올해부터 2000년까지 모두 1천3백9억원을 투자해 암과 에이즈치료제등 10개이상의 신의약및 농약,10개이상의 신화학소재,4개이상의 정밀화학제품,8건이상의 신공정기술을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추진중이다.연구소는 의약·농약·고분자소재·무기소재·촉매·화학공학·공업화학연구부등 10개 연구부를 두고있다.그중에서도 의약과 농약연구부는 세계적으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국제협약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화학연구소가 보유하고있는 국내외특허는 68건이나 되며 선진국 제약회사의 주목을 받고있다.국내기업에도 기술개발을 완료한 76건을 주어 실용화하는데 성공,그 상품이 외국에 수출되고 있다. 국내신약개발을 선도해온 의약연구부의 김완주박사는 세계최초로 개발한 새로운 퀴놀론계 항생제특허를 영국에 넘겨주면서 국내특허의 외국수출사상 최고액인 2천1백만달러(1백68억원 상당)를 받았다.영국은 앞으로 이 제품이 시판될 경우 매년 연간 매출액의 3∼5%를 경상기술료로 지불하도록 돼있다. 하나의 신약이 개발되려면 1억달러의 연구비,과학자 1천2백여명의 10년에 걸친 연구가 필요할 정도이다.이때문에 신약개발은 모두 선진국에서 독점해왔다.그러나 최근 선진국에서도 연구비와 개발시간이 너무 오래걸려 외국에서 특허기술을 사다가 개발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기술 수출은 지난 78년부터 지난해말 현재 3백30여건에 2억3천만달러이다.80년대에는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의개발도상국에 비누와 조미료기술등 저급·중급기술을 수출하는데 그쳤으나 90년대부터는 일본과 영국등 선진국에도 기술을 수출하는 국제화의 길을 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해방·육순홍박사팀이 세계최초로 고성능 약물전달 초미세캡슐을 개발하고 미국 영국 일본 독일등에 물질특허와 공정특허를 신청했다.연구팀은 이 기술을 스웨덴에서 개발한 고성능 위궤양치료제에 임상실험을 마치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이박사는 당뇨병치료제인 인슐린을 먹지않고 파스처럼 피부에 붙여 약을 투여하는 인슐린 패치와 인공혈관등 생체의료용 신물질 개발에서 국내외특허 18건을 따냈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의 유명한 제약회사인 추가이제약회사가 화학연구소와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합동으로 개발하기로 협약을 체결했다. 화학연구소는 올해 미국의 스탠포드연구소와 합성화학물의 독성실험 약리대사 및 효능 검사를 공동연구하고 러시아과학원과는 청색광전재료에대해 레이저광에너지로의 사용방법에대해 공동연구로 한국의 기술을 세계에 과시할 계획이다. ◎새항생제 개발 김완주박사/“4∼5년내 「기적의 신약」 선뵐터”/수천년 전통의 한약경험이 큰힘 『우리나라는 수 천년간 한약을 제조한 경험을 가지고있습니다.한약의 특징은 부작용이 없고 안전하다는 것입니다.이 경험을 살려 신약을 개발한다면 국가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특허사상 최고가인 2천1백만달러의 기술료를 받고 영국의 제약회사에 차세대항생제인 퀴놀론계 신물질 특허를 양도한 한국화학연구소의 김완주박사는 국내의 연구진에게도 세계시장을 상대로 도전할 수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김박사는 최근 외국의 유명 제약회사들이 한국의 신약개발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해 한국 방문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처음 개발당시부터 국내판매용이 아닌,세계적으로 판매될 신약개발을 목표로 했기때문에 성공했습니다.그러나 신약 개발을 경험해보지못한 우리나라에서는 선진국의 개발정보조차 입수하지못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퀴놀론계 항생제는 인공합성이 가능한 신 화합물로 약효가 기존의 항생제보다 뛰어나며 부작용이 적어 세계시장에서 급속한 신장세를 보이고있다. 현재 사용되고있는 퀴놀론계항생제는 독일의 바이엘사와 일본의 다이이치사가 개발한 두종류 뿐인데 연간 매출액이 7억달러를 넘고 있는 기적의 신약으로 꼽히고 있다. 그런 약을 김박사가 10년간의 각고끝에 기존제품과는 전혀다른 구조의,놀라운 약효를 가진 신물질 개발에 성공하자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영국의 제약회사와 국제협약계약을 맺게된 것이다. 『선진국에서도 최근 은행잎에서 혈관약을 만들고 독사의 독에서 심장병약을,또 개구리와 미꾸라지에서도 항생제를 합성하는등 생약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있습니다』 김박사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전통생약을 이용한 신물질 개발에는 잠재력이 크다고 주장했다. 『신약개발의 근본적인 목적은 인간을 질병에서 구하고 건강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기위한것이며 경제적인 효과는 부수적인 것입니다』 김박사는 퀴놀론계 신물질 개발에 이어 세계어느 제약회사도 개발한적이 없는 경구용 카바케넴개발에 몰두하고있다. 그는 90년대 말에는 한국에서도 기적의 신약이 개발될것이라고 자신했다.
  • 선경의 글로벌전략(국제화 앞서간다:6)

    ◎“해외경영 현지두뇌에” 외국인 중용/선진기업 노하우 소유자 과감히 채용/미주기획실 22명중 한국인은 2명 얼마 전 선경그룹의 미국 현지법인인 선경 아메리카는 금융 노하우 하나만으로 1백만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미국 금융계에서 통용되는 파이넨셜 엔지니어링(Financial Engineering)기법을 활용한 결과다. 그 과정은 이렇다.파이넨셜 엔지니어링을 하는 선경 아메리카의 에코반사는 멕시코와 오랜 관계를 가지는 과정에서 멕시코 개발은행이 자국의 수출업자 지원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러나 멕시코 개발은행은 대외 신용도가 낮아 돈을 구하기 힘들었다. 이에 에코반은 멕시코에 진출한 이토추·마루베니·미쓰비시상사 등 일본계 상사로 하여금 일본 수출입은행에서 2천만달러를 얻게하는 한편,멕시코의 정치적 리스크를 고려해 멕시코 개발은행과 긴밀한 관계인 미티 보험회사에 국가리스크 보험을 가입토록 했다. ○단숨에 백만불 수입 일본 수출입은행은 자국의 상사에게 빌려주는 돈이라 안심할 수 있었고 일본상사는 보험이 담보됐기에 부담이 없었다.또 미티 보험회사는 프리미엄을 받아 불만이 없었기에 이 돈은 멕시코은행으로 전달될 수 있었고 결국 수출지원 금융으로 사용됐다. 에코반은 멕시코 개발은행의 필요를 일본계 상사,일본 수출입 은행,그리고 미티 보험회사를 입체적으로 결합하는 국제금융사업을 통해 해결해줬고 그 대가로 1백만달러 이상의 사례비를 받은 것이다. 이는 선경그룹이 국제화의 제1목표로 삼는 현지 우수인력 채용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경영자원 초국적 활용 「글로벌리제이션」으로 대표되는 선경의 국제화 전략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향후 세계시장은 영토의 경계는 있을지 몰라도 경제의 경계선은 없어져 자금·기술 등 모든 경영자원의 초국가적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수 인력의 확보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현지 시장에 뿌리 내리기 위해선 현지사정에 정통한 인재를 적극 등용해야 한다」는 최종현 회장의 「글로벌」철학은 설비투자 등과 같은 하드웨어 방식이 아닌 인재관리의 소프트웨어 접근 방식이다. 지난86년 뉴욕 맨해턴 55번가에 선경그룹 미주경영기획실을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현재 이곳은 최회장의 해외 두뇌집단이자 그룹 국제화전략의 산실이다.근무인원은 22명.이중 한국인은 2명뿐이고 나머지는 미국인이다. ○실질경영권한 부여 선경그룹의 미국 현지법인인 선경 아메리카에 소속돼 이 회사의 김영만 부회장이 실장을 맡고 있다.그러나 실질적인 운영은 인사담당 부사장 로널드 올슨씨와 재무담당 부사장 안토니 트라파니씨가 맡는다. 또 나머지 구성원 19명은 모두 금융·재무·기획·인사·조직관리·컴퓨터 통신·기업합병 등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다.우수 인력을 확보한 탓에 지난 91년 국제금융 및 무역 전문회사인 에코반사를 기업 흡수·합병(M&A)을 통해 인수했고,정보통신 전문회사인 유크로닉스사를 미국에 설립,이동통신 사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무한경쟁시대 대비 선경은 글로벌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인적자원의 관리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우수인력의 양성도 중요하지만 선진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외국인을 과감히 채용하는 열린사고방식이 국제화의 선결요건이라고 믿는다.도이치 뱅크가 미국에서 현지인을 최고 경영자로 임명해 월스트리트의 금융 노하우를 전수하고 세계를 상대로 금융사업을 전개한 것처럼 선경도 과감한 인력의 현지화를 통해 21세기 무한경쟁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벽안의 경영인들/능력따라 국내계열사도 맡겨/M&A·금융전문가 등 각분야 망라 선경그룹은 국내 기업중 해외의 첨단두뇌를 가장 많이 확보한 회사이다.해외법인 최고경영자중 80% 가량이 현지인이다. 미국 현지법인 선경 아메리카의 대표이사 사장은 미드렉셀러사 부사장 출신인 제임스 드미트리우스다.미공인회계사이며 기업 인수·합병의 전문가이다. 지난 90년 선경 아메리카에 수석 부사장으로 입사한 후 선경의 기업문화를 익혀 지난 해 9월 사장으로 부임했다.외국인이 국내기업의 사장으로 임명된 최초의 사례다. 드미트리우스사장은 또 자신이 직접 기업 M&A를 통해 인수한 에코반사의 대표이사 사장직도 아울러 맡고있다. 유공해운의 일본 현지법인(YKL저팬)사장은 이토추상사 출신의 히카사 타추지(일립달이)이다.그는 지난해 11월 이토추에서의 25년 대간 생활을 청산하고 자리를 옮겼다.선박 및 해운분양의 베테랑이다 ○일류기업서 경력닦아 미주경영기획실의 로널드올슨 인사담당부사장은 뉴욕대 노동경제학 석사 출신으로 미IBM사에서 10년간 인사담당 이사를 지냈고,일본 IBM의 창설멤버로 활약한 인물이다. 또 안토니 트라파니 재무담당부사장 역시 미딜로이사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금융은 물론 기업합병 부문의 전문가이다. 미주경영기획실의 인적구성은 직원들의 경우도 화려하다.예를들어 제이 창씨는 컴퓨터와 통신분야의 전문가로 미위성통신회사에서 비용분석 업무를 맡았다. 찰스 문씨는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 출신으로 씨티은행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사에서 프로젝트담당 매니저로 일한 관리의 베테랑이다. 이 뿐이 아니다.유능한 인력은 국내기업의 경영에도 직접 참여한다.선경유통의 래리 라이트 부사장은 미도매물류회사인 플레밍사의 이사로 근무하다 92년부터 선경유통의 식품사업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그는 지금 경영 컨설팅을 하며 선경의 유통시장 진출계획을 수립한다. 워커힐 호텔 부총지배인 버나드 브렌더씨는 세라톤 홍콩에서 근무하다 91년부터 이곳에서 객실 운영담당 부총지배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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