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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학중 뉴욕서 교통사고 이건희회장 셋째딸 사망

    유학중 뉴욕서 교통사고 이건희회장 셋째딸 사망

    미국 뉴욕대에 다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3녀 윤형(26)씨가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 삼성 관계자는 “윤형씨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치명상을 입은 뒤 다음날 새벽 숨을 거뒀다.”면서 “21일 오후에 직계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현지에서 불교식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고 22일 밝혔다. 삼성측은 “윤형씨 사망 이후 외부의 조문은 일절 받지 않았다.”면서 “이 회장과 홍 여사는 결혼하지 않고 죽은 자식의 장례에 부모가 참가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장례식에는 참석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올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 윤형씨는 다른 자녀들과 달리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활달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지식사회 예견한 ‘현대경영학 아버지’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 교수가 지난 1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95세. 드러커 교수는 1950년대에 저서 ‘단절의 시대’,‘새로운 사회’ 등을 통해 지식 사회와 지식 근로자의 도래를 예견, 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국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9월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가 설립됐고, 내년부터는 ‘피터 드러커 혁신상’도 생긴다. 소사이어티의 상임대표는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한준호 한국전력 사장, 이형모 시민의 신문 대표이사, 임영숙 서울신문 고문 등 400여명이 소사이어티에 참여했다. 혁신상은 드러커 교수의 경영철학인 평생학습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 공공기관이나 사회단체, 기업 등에 준다. 드러커 교수의 이름을 딴 상은 미국, 캐나다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번째다. 드러커 교수는 1954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교육담당 고문으로 방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지난해 소사이어티 준비팀과의 면담(서울신문 1월1일자 보도)에서 “한국의 빠른 성장을 보면서 50년대 미국 정부에 한국 학생들을 위한 여러 장학금 제도를 만들도록 건의한 보람을 느낀다.”고 회고한 바 있다.1977년 두번째로 방한했다. 드러커 교수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지난해에는 소사이어티 준비팀에게 “한국전쟁 이후 50년간의 한국 발전이 바로 20세기의 성공사례”라며 “앞으로 10년은 중국시장, 그 이후는 인도시장에서 성공해야 한국경제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올해 나온 ‘실천하는 경영자’에서는 “오늘날 한국이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것은 혁신과 기업가정신”이라고 지적했다.‘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서문에서는 한국을 부존자원이 없는 후진국이 교육을 통해 성공적으로 산업사회에 진입한 대표적 국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90세가 넘어서도 공부하고 글을 써온 ‘평생학습자’다. 지난해부터 프랑스 혁명 전후의 프랑스 정치와 영국의 보수주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에 대해 공부해왔다. 지난해 ‘데일리 드러커’를 냈고, 올해는 ‘드러커 자서전’ 등을 출간했다. 190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드러커 교수는 20대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왔다가 미국에 정착했다.1939년 나치의 종말을 예언한 ‘경제인의 종말’로 미국 정치학계와 경제학계에 두각을 나타났다. 제너럴모터스(GM),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 등 대기업의 컨설팅을 담당하면서 현대 경영학을 세웠다.1950년부터 뉴욕대에서 일했고, 1971년부터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시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석좌교수로 활동해왔다.노년에는 비영리단체의 컨설팅을 맡아 비영리단체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드러커 교수는 “은퇴 이후의 관심사가 될 두번째 관심사가 중요하다.”며 “비영리단체의 참여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1세기 지식경영’,‘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 정신’,‘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프로페셔널의 조건’ 등도 국내에 소개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도리스 여사와 네 자녀가 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식민·개발독재시대 발전이 진정한 발전인가”

    “독일에서 파시즘 찬양은 처벌받는데, 한국에서 박정희 찬양은 활개친다.” ‘청와대’ 꼬리표를 떼서일까.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박정희 향수’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26일 서울YWCA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을 위한 3대 논쟁’ 토론회에서였다. 이 교수는 미국의 경제사학자 윌리엄 포겔과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을 소개하는 것으로 ‘박정희’ 평가에 대해 운을 뗐다. 포겔은 각종 통계자료를 통해 남북전쟁 이전 남부 흑인노예들이 북부 노동자 못지않게 잘 살았다는 식의 연구결과를 내놔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학자.‘식민지시대가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주장하는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금기에 도전한 과학적 실증주의자의 표본으로 자주 언급하는 학자다. 그러나 이정우 교수는 아마르티아 센의 반박을 제시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책을 통해 자유의 신장에 기여하는 발전이 진정한 발전이라고 주장했다.이 교수는 “센이 제시한 5가지 자유 가운데 첫번째가 바로 정치적 자유”라면서 “노예가 제아무리 밥 잘 먹고 오래 살았다고 해도 노예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 교수는 “30년대를 긍정하는 사람들이 박정희를 긍정한다.”면서 “그러나 식민시기·개발독재시기의 발전이 진정한 의미에서 발전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이 교수는 74년 2차 인혁당 사건 당시 반대운동을 펼치다 강제출국당한 조지 오글 목사의 증언과 노벨평화상 수상단체 아메리카프렌즈봉사단(AFSC)이 실시한 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비참한 생활을 언급했다. 동시에 독재와 성장 사이에는 선택적 친화성이 있다는 ‘뉴라이트’ 진영의 주장과 같은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뉴욕대 애덤 쉐보르스키 교수, 하버드대 데니 로드릭 교수 등이 경제와 민주주의간의 관계에 대해 최근 내놓은 국제비교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런 논의 끝에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정희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놓고 “도대체 다른 나라에서도 민족반역, 동지 배신, 독재, 부도덕으로 점철된 인생이 국민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있을까?”라고 반문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貿協공채 170대 1

    사법시험 등 전문자격증 소지자들도 예외없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25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5명을 선발하는 2006년도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서 2563명의 지원자가 몰려 170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지원자 가운데는 변호사 및 사시합격자 3명, 공인회계사 8명, 미국공인회계사 10명, 관세사 3명, 세무사 3명, 국제무역사 98명, 외환관리사 20명 등 전문자격증 소지자 145명이 포함됐다. 이른바 ‘사(士)자 출신’들의 경쟁률만 따져도 10대1에 육박한다. 또 미국의 뉴욕대·UCLA·일리노이대, 일본의 와세다대·메이지대·법정대, 중국의 베이징대·칭화대, 러시아의 모스크바국립대 등 내로라하는 해외 유명대학 졸업생 105명도 서류를 제출했다. 이와 함께 토익(TOEIC)시험 만점자 18명을 비롯, 전체 지원자의 49.8%(1267명)는 토익 성적이 900점 이상이었다. 무협 관계자는 “올해 공채에서 사상 처음으로 이공계 출신에게도 문호를 개방, 컴퓨터와 전기·전자 등 이공계 출신 146명도 지원했다.”면서 “경쟁률뿐만 아니라 지원자들의 자질도 갈수록 향상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무협은 오는 28일 서류전형 통과자를 발표한 뒤 논술·한자시험과 면접 등을 거쳐 다음달 말쯤 최종 합격자를 결정할 예정이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국내 10대 그룹이 대부분 1930∼1940년대 출범한 것과 달리 동부는 이보다 한 세대가량 늦은 산업화시대인 1969년, 대학생인 김준기 회장이 세운 후발기업이었다. 선발 창업 기업은 사업참여 기회가 많았지만 동부는 후발기업이어서 사업참여에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우·율산 등 60년대 말을 전후해 함께 등장했던 기업들이 부실 문제로 몰락한 것과 달리 동부는 성장과 안정을 기치로 삼아 꾸준히 사세를 키워 현재 재계 순위 12위까지 끌어올렸다. ●사우디 최초·최대의 사업단지인 주베일에서 신화를 창조하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니 죽으려 했다. 공사도 시작하기 전에 나라에 큰 손해를 끼친다는 죄스러운 마음에서 눈앞이 깜깜했다. 중동 진출 꿈은 날아가고 동부건설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양주를 한병이나 마셨다. 이 탑에 올라가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죽으려니 그동안의 고생이 너무 아까웠다. 이탈리아 말도 모르면서 이탈리아 귀신들 속에서 고생할 것 같다는 쓴웃음도 나왔다. 그리고 죽더라도 고국에 돌아가서 죽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죽기로 마음 먹으니 다시 한번 부딪쳐 보자는 각오가 섰다.” 1974년. 동부의 중동 진출 시발탄인 주베일 해군기지 공사를 내정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입찰받자 회사와 국가에 큰 손해를 끼치게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김 회장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유복한 집안에서 고생 없이 자란 덕에 김 회장의 창업은 밥벌이와 무관했지만 그렇다고 그룹을 이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죽는 대신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섰다. 발주처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재입찰을 성사시키면서 동부의 중동시대를 본격 개막했다. 김 회장이 현장 반장이 되어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을 전세 택시로 오가며 말뚝을 박고 공사를 지휘했다. 사우디 최대의 산업단지인 주베일에 한국 건설 업체로서는 최초로 동부건설이 대형 복합공사(4800만달러)를 따냈고, 그 이후 1억달러 이상의 대형 공사를 수주했다. 사우디 제다 해군기지, 사우디 국방부 청사, 리야드 국제공항 등 중동지역 공사를 잇따라 따냈다. 그 때 벌어들인 돈이 오늘날의 동부를 일군 종자돈인 일명 ‘오일 머니’다. 건설사 창업 10년도 안돼 도급 순위가 1978년 6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부강한 미국에서 착안한 기업가의 길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69년. 만 24세의 나이로 직원 셋을 데리고 동부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했다. 군제대 후 선진국 시찰단의 일원으로 40일간 미국을 돌아보고 그는 자본주의의 위대성과 시장경제체제의 합리성에 눈뜨게 된다. 좋은 기업을 만들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젊은 포부에서 동부의 창업 이념은 ‘좋은 기업’이다. 건설업은 리스크가 크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나 설비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창업 업종으로 삼았다. 당시 회사 이름은 아름답게 솟아오른다는 뜻의 ‘미륭’. 오늘날 동부의 전신이다. 창업자금 2500만원은 여러 친지들을 설득해 간신히 꾼 돈이다. 아버지 김진만(87) 전 의원은 대학 재학중인 어린 아들이 사업하는 것을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한 아버지 김 전 의원은 김 회장이 창업한 1960년대 후반, 여당의 당 4역으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동부의 창업 과정에 아버지의 후광 이야기가 운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7선 의원인 김 전 의원은 지금도 민족중흥동지회장이란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은 동부그룹을 창업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정치는 후광으로 가능하지만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평가받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라고 말한다. 김 전 의원은 1972년 항명파동으로 당권의 핵심에서 멀어져 간 인물이고, 오늘날 동부그룹을 이룬 결정적 기반은 1975∼1983년 중동에서 벌어들인 외화였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 군부 정권은 권력에 의존해 축재 혐의가 있는 정치인을 조사, 재산을 몰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의원으로 인해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연루된 적도 있다. 아들인 김 회장은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직면한 일대 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동부의 창업 과정과 김 전 의원이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당시 미륭)를 창업한 1969년 당시 이미 600여 선발 업체들이 포진한 상태였고 도급 순위에 따라 수주 한도가 정해졌기 때문에 미륭은 정부 발주 공사는 넘보지도 못했다.”며 후광설을 일축했다. 그는 또 “그래서 요즘 말로 우리만의 틈새시장인 이른바 ‘블루오션’을 개발해 성공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영국대사관·독일문화원·용산미군기지와 같은 주한미군 공사·연세대 이공대 건물 등 외국인 및 민간 발주 공사를 집중 공략했다. 특히 이는 국제적인 공사 표준이 엄격하게 요구되던 사우디 건설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이룬 밑거름이 됐다고 덧붙였다. ●계획된 사업다각화로 재계 10위권 진입 5남3녀 가운데 장남인 그는 서울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 회장 일가는 경기고와도 인연이 깊다. 광복후 청년운동을 펼쳤던 그의 숙부 고 김진팔씨가 경기고 27회, 김 회장이 60회, 그의 아들 김남호(30)씨가 90회 졸업생으로 3대가 경기고를 졸업했다. 지난 6월 말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에는 김 회장 재학 당시 화학 선생님이자 남호씨의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송길상씨가 주례를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 중 사업을 가장 크게 하고 있는 사람 역시 김 회장이다. 동창들은 김 회장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도 잘했지만 술·담배는 물론 주먹도 무지 센 친구였다.”고 회고한다. 김 회장의 경기고 동기동창 중에는 고려대학교 어윤대 총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 최창영 고려아연 회장, 최경원 전 법무장관, 원정일 전 법무차관, 송옥환 전 과학기술부 차관, 양수길 전 OECD 대사, 한남규 전 중앙일보 부사장, 손욱 전 삼성SDI 사장, 이연수 전 외환은행부행장 등 쟁쟁한 유명인사가 많다. 동부그룹에서는 김 회장에 대해 “일밖에 모르는 탁월한 기업가” 라고 정의한다. 일을 위해 그 좋아하던 술·담배도 끊고 걸음걸이까지 바꿨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서를 즐기고 골프는 거의 치지 않는다. 주요 사업현안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얻을 때까지 임직원들과 마라톤 회의를 벌인다. 논리에서 밀리지도 않고 지독하다 싶을 만큼 마음 먹은 일은 꼭 이뤄내고 마는 성격이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건설·운송사업에 머물던 동부가 10위권 그룹으로 거듭난 것도 동부가 중동신화를 창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집념, 탁월한 전략, 추진력, 리더십의 결과라는 평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실 기업들을 속속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킨 주인공이 바로 김 회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다각화는 초기부터 큰 밑그림을 갖고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예컨대 1984년 ‘장영자 사건’ 여파로 부도가 난 일신제강을 인수,4000여억원을 투입해 민간 최대의 냉연강판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어 1998년 1조 3000억원을 들여 아산만에 제2 냉연공장을 건설, 오늘날 동부제강을 세계적인 냉연철강회사로 탈바꿈시켰다. 80년대에는 울산석유화학·영남화학을 인수, 양사를 합병해 동부화학(현 동부한농화학)으로 출범시켰고,1983년에는 만년 적자인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해 오늘날 손해보험업계 ‘빅3’인 동부화재로 거듭나게 했다.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일에 대한 열정만큼 극진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 있는 어머니 고 김숙자씨의 묘소 옆에 별장을 지어놓고 수시로 다녀가고 있다. 사업 구상이나 고민에 빠질 때도 그가 찾는 곳은 늘 어머니 곁이다. 어머니 김씨는 서울 명성여학교에서 유학, 일제시대 삼척 송정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최초의 여교사다.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는 평이다. 동부는 80년대 중동 경기가 악화되기전 이미 중동에서 철수했다. 사우디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회사를 속속 설립, 인수하면서 그룹 시대를 열었고 몇 안 되는 친인척들은 이무렵 동부그룹에 들어왔다. 정치인 아버지 슬하에서 이뤄진 혼사들이라 화려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연애 결혼도 이외로 많다. 누나인 김명자(63)씨의 남편인 임주웅(65)씨는 결혼과 함께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해 한국자동차보험 이사, 동부생명보험 사장 등을 지냈다. 누나 김명자씨는 김 회장을 대신해 가족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매형인 임 전 사장의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치약 제조회사였던 동아특산약화학의 창업자인 고 임형복씨다. 임 전 사장의 형인 임주용(71)씨는 동국제강 고 장상태 회장의 막내 동생인 장복혜씨와 결혼했으며 중앙투금 부사장을 지냈다. 임 전 사장의 아들 준석(37)씨의 장인 윤호중씨는 흥아해운 창업주인 고 윤종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큰 동생이자 김진만 옹의 차남인 김택기(55)씨는 90년대 동부화재 사장을 지내면서 만년 적자이던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흑자 전환시켰다. 그러나 정계 진출을 위해 사표를 내고 2000년 4월 16대 민주당 의원(강원 태백 정선)으로 당선됐다.17대 총선에는 낙선했지만 그룹으로 돌아올 계획은 없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요즘은 강원대 초빙교수로 출강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아버지의 정치가 피를 이어받은 사람은 동생 택기씨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부친과 절친했던 이철승(83) 전 의원의 딸인 이양희(49) 성균관대 아동학과 교수와 결혼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김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김무기(52)씨는 80년대 초반 동부그룹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상무, 동부증권 부사장 등을 역임하다 1990년대 말 벤처 창업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지금은 IT전문 경제지인 서울디지털경제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약 중이다. 성격이 호방한 데다 주량이 세고 입담이 뛰어나 그룹 내에서는 일명 ‘핵무기’로 통했다. 자유연애로 만난 부인 이지은(46) 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서울대 문리대 학장을 지낸 고 이종진씨의 딸이다. 친구의 소개로 만났으며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다.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재계 정상에 오르다 동부는 창업에서부터 궤도에 오르기까지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사업을 했고, 창업자 단독으로 그룹을 일궈낸 보기 드문 사례다. 그룹을 이루는 과정에서 한때 일했던 매형과 동생들은 모두 각자의 길로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은 김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동서지간인 윤대근 동부아남반도체 부회장과 제조부문 회장을 지낸 외삼촌 김형배(71) 고문 둘뿐이다. 김형배 고문은 상공부(현재의 산업자원부 전신)에서 기획관리실장, 경공업 차관보를 거친 경제관료 출신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거쳐 1994년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동부한농화학, 동부전자 등 동부 주력 제조업체들의 경영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동서인 윤 부회장은 문교부(현재의 교육부 전신) 장관과 서울대 총장을 지낸 고 윤천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부인인 김정희(57) 여사의 여동생 김정림(56)씨의 남편이다.70년대 초반 미국 유학 당시부터 그룹 일을 도와 가장 먼저 그룹에 참여한 친·인척으로 꼽히기도 한다. 측근들은 김준기 회장과 윤대근 부회장은 코드가 통해 지금도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소머리 국밥집에서 냄비에 눌어붙은 누릉지를 긁어먹길 좋아하는 등 두 사람의 소탈함이 닮았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윤 부회장에 대해 “인척관계를 떠나 사업상 고락을 함께 해온 동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정이 돈독하다. 김 회장과 윤 부회장의 장인은 고 김상준 삼양염업사 명예회장이다. 고 김 명예회장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형이다. 고 김 명예회장의 2남3녀 중 둘째 딸과 셋째 딸이 나란히 김 회장과 윤 부회장에게 시집간 것이다. 지난 7월 김 회장의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 당시 식장 맨 앞에 있던 신랑 가족석 옆에 삼양그룹 사람들을 위한 별도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9월 고 김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당시 두 사람이 시종 빈소인 고려대병원을 지키기도 했다. 김 회장의 결혼은 친지의 중매로 이뤄졌다. 동부 관계자는 “창업 이후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던 김 회장에게 중매가 들어왔는데 신부 후보가 알고 보니 김 회장과 중·고등학교 동기인 김병휘(현 한양대 수학과 교수)씨의 동생이었다.”면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인지 자연스런 만남이 지속됐고 혼사도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연세대 기악과 출신의 김정희(57)씨는 김상준 전 삼양염업 회장의 2남3녀 중 차녀다. 주례는 당시 동아일보 고재욱 사장이 맡았다. 이밖에 다른 형제들은 그룹에 관여한 경험조차 없다. 여동생 김명희(58)씨는 ‘여성의 전화’ 창립맴버로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 등 여성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평우(60) 변호사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김 변호사의 양친 모두 유명한 소설가인 고 김동리 선생과 고 손소희 여사다. 김평우 변호사는 김준기 회장과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김흥기(46)씨는 여동생인 희선(45)씨의 소개로 이화여대 수학과 출신인 오남선(46)씨를 만나 연애 결혼했다. 흥기씨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가방을 만들어 수출하는 무역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김희선씨는 농심 신춘호(75) 회장의 둘째 며느리이자 신동윤(47) 율촌화학 사장의 아내다. 이화여대 음대 재학시절 자신이 소개해 오빠의 부인이 된 오남선씨의 주선으로 남편 신 사장을 학교 축제에서 만나 결혼했다. 막내인 김현기(39)씨는 부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상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아직 미혼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현재 동서인 윤 부회장과 외삼촌인 김 고문 이외에 다른 어떤 친인척도 동부그룹에 몸담고 있지 않다.” 면서 “다른 재벌들과 달리 동부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핵심경영인들 김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 김준기 회장은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묘비명에 적힌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부리다가 간 사람, 여기 누웠노라.” (Here lies a man who was able to surround himself with men far cleverer than himself.)를 자주 인용한다. 대학 시절 카네기의 ‘부의 복음’을 읽고 그의 경영철학과 인재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묘비명이 자신처럼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경영자의 참모습을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철학 및 인재관에 관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도 이를 실천할 것을 독려한다. 2001년 입사한 이명환(61) 현 ㈜동부 부회장의 경우 김 회장이 여러 차례 만나 자신의 기업관 등을 설명하며 동부 합류를 끈질기게 설득해 영입한 케이스. 이 부회장은 67년 삼성에 입사해 삼성전자 종합기획실장, 삼성 비서실 인사담당, 삼성SDS 사장 등을 지냈다. 효성 생활산업 사장, 현대건설이 출자한 인천국제공항철도사업단 사장도 역임했다. 이미 70년대부터 김 회장과 손발을 맞춰 온 백호익(62·건설·물류분야) 부회장, 윤대근(58·소재분야) 부회장은 물론 90년대 말 이후 합류한 장기제(금융분야) 부회장, 신영균(61·화학분야) 부회장 등 오늘날 동부를 이끄는 핵심 전문경영인들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밖에도 2004년 6월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전 삼성화재 부사장), 같은 해 12월 임종성 동부아남반도체 부사장(전 삼성전자 전무), 지난 2월 김홍기 동부정보기술 사장(전 삼성SDS 사장) 등이 삼성에서 영입됐고, 지난 3월 GS건설 출신의 황무성 부사장이 동부의 토목부문 사장으로,4월 GS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을 지낸 김용화씨가 개발부문 사장이 됐다. 이어 5월에는 세계적인 반도체회사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오영환 동부아남반도체 사장, 대림산업 부사장 출신인 하진태 동부건설 부사장, 대림산업 출신인 김용식 동부건설 부사장 등이 영입된 바 있다. jhj@seoul.co.kr ■ ’후계자’ 김남호씨 MBA 유학중 동부의 후계구도는 단순 명확하다.김준기 회장의 승계자가 1남1녀 중 아들인 김남호(30)씨로 일찌감치 정해졌기 때문이다.180㎝나 되는 건장한 체구에 겸손한 태도가 눈에 띈다. 남호씨는 최근 부인 차원영(26)씨와 함게 미국으로 건너갔다.내년 1월부터 뉴욕대학에서 MBA과정을 밟기 위해서다.원영씨는 차경섭(86) 차병원 이사장의 손녀(차광열 포천중문의대 교수 딸)로 지난 6월 남호씨 누나인 주원(32)씨 후배의 소개로 만난지 1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남호씨는 MBA과정을 끝낸 뒤에도 서울로 돌아오는 대신 한동안 일본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경기고를 졸업한 뒤 미국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귀국해 군복무를 마쳤고 지난 2002년부터 외국계 경영 컨설팅 그룹인 AT커니 한국지사에서 최근까지 근무했다. 서울예고 출신의 원영씨는 영국에서 ‘유니버시티 오브 런던’ 수학과를 나온 재원.그룹의 예비 안주인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향후 남호씨 뒷바라지에 전념중이다. 2,3세에 대한 지분 이양 과정에서 ‘편법 증여’ 등 의혹이 제기되는 일부 재벌들과 달리 동부의 경우 온전히 증여세를 내고 정당하게 지분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지분 이양은 대부분 이뤄졌지만 남호씨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멀었다고 그룹측에선 진단한다. 동부그룹측은 “남호씨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다 김 회장도 평소 남호씨에 대해 국내외 경제 흐름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국제적인 안목을 쌓길 바라고 있다.”면서 “경영 참여는 전혀 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진작에 끝났다.김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아들 남호씨에게 꾸준히 지분을 넘겼고,그 결과 지난 2002년 10월 남호씨가 동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 최대주주가 됐다.동부화재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들인 동부생명,동부증권,동부저축은행,동부투신운용 등 금융계열사들과 동부건설 및 동부아남반도체의 경영권도 확보하고 있다. 또 2004년 8월 김 회장이 아들 남호씨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증여함으로써 남호씨는 동부정밀화학,동부증권,동부제강 등 주요 계열사에서 개인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 사실상 지분 승계 작업을 마무리했다. 딸 주원씨는 동부화재,동부정밀화학,동부제강 등에 대한 지분을 일부 갖고 있으나 경영 참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룹측 설명이다.친구 소개로 만나 1997년 9월 당시 해동화재 김동만(96) 회장의 손자인 김주한(35)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지금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김주한씨는 메릴린치증권 애틀란타 지사에서 자산운용가로 일하고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여러분은 ‘메이드인 코리아’… 잊지마세요”

    “한국인의 긍지와 김치의 힘을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세요.” 하반신 마비장애를 딛고 세계 일류병원의 의사로 우뚝 선 ‘슈퍼맨 닥터’ 이승복(40·미국 존스 홉킨스병원 재활의학과 수석의사)씨가 13일 서울 일원동 중동중학교를 찾았다. 편지로만 접했던 어린 팬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바쁜 일과 중에 짬을 냈다. 지난달 말 고국에 금의환향해 이달 초 출국한 지 10여일 만이다. 이씨가 휠체어를 타고 학교 본관 1층 시청각실에 들어서자 학생 100여명은 슈퍼맨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했다. 이씨는 “여러분을 너무 만나고 싶었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해 체조선수에서 장애인으로, 그리고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소개했다. 그는 “여러분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확고한 목표를 정해 노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씨는 최근 출간된 자신의 책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에 사인을 담아 학생들에게 주었고, 학생 대표는 감사의 뜻으로 종이학 1000마리를 전달했다. 이씨와 학생들의 만남은 2학년 7반 담임 김미영(40·여) 교사가 올 7월 이씨의 이야기를 다룬 TV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감동한 학생들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의지의 주인공에게 너나할 것 없이 편지를 썼고, 김 교사는 편지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편지를 받은 이씨는 김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 “ 편지에 감동했다. 편지 한장 한장을 넘기며 어머니와 함께 많이 울었다.”는 내용의 e메일도 보냈고 결국 이번 만남이 성사됐다. 학교측은 이씨가 휠체어를 타고 쉽게 다닐 수 있도록 600만원을 들여 계단공사까지 했다. 이씨는 8세 때인 1973년 가족들과 미국 땅을 밟아 한때 유망한 체조선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연습 중 부상으로 사지마비 장애인이 됐다.그러나 정상인들조차 하기 힘든 의대 공부를 이를 악물고 해내 뉴욕대를 거쳐 컬럼비아대에 입학해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다트머스대 의대와 하버드대 의대에 들어가 인턴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곧 존스 홉킨스대의 조교수로 부임할 예정이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우리 아이 좋은 공부습관 이렇게

    우리 아이 좋은 공부습관 이렇게

    요즘 엄마들은 스스로 자녀의 ‘매니저’라 부른다. 입시제도를 꿰뚫고 발빠르게 학원 정보 등을 수집해 자녀에게 최상의 학습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연히 반복적으로 ‘공부하라.’고 강요하거나, 학원을 억지로 보내는 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부를 습관처럼 하도록 해야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하고 효과도 배가된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좋은 공부습관을 들여주는 방법을 알아본다. 자녀의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만 있으면 일단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이렇게 성적에 일희일비하고 조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자녀의 실력을 키워주는 데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깨우쳐 주고 공부와 친숙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근본적인 방법이다. 자녀들에게 좋은 공부습관을 들여주기 위해 부모가 알아야 할 점들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동기부여·목표설정이 가장 중요 가장 중요한 것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동기 부여다.“좋은 대학을 나와야 출세한다.”는 식의 무조건적 동기 부여가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컴퓨터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가 필요할까.”“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동기를 넌지시 알려주는 식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박도순 교수는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하는 ‘내적 동기’ 부여가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때때로 상벌과 같은 외부 자극도 필요하다.”면서 “칭찬이 가장 좋은 동기유발 요소”라고 설명했다. 성과만을 놓고 다그치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고 세심하게 관찰해 적절한 칭찬을 해 주면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또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성취감과 보람을 맛보게 하면 “공부란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잘 듣고 그 목표를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비행기 조립하는 일을 좋아한다면 “이런 장난감 말고 진짜 비행기를 만든다면 멋진 일이겠지. 날다가 떨어지지 않는 안전한 비행기를 만들려면 여러가지 수치 계산을 잘 해야 할거야. 그리고 사람들에게 네가 만든 비행기를 많이 알리려면 똑부러지게 말하는 연습도 필요하겠지?” 하는 식이다. 단 낮은 단계부터 차근차근 하도록 해야지, 너무 거창한 목표를 던져주는 것은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한다. ●책과 친해지도록…분위기 조성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종일 공부를 강요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친구와 놀듯 공부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활로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책과 친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박혜란 공동대표는 “방·식탁·화장실 할 것 없이 온 집안에 책을 널려 놓고, 책이 장난감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 지속적인 지적 자극을 줘 학습 효과를 극대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여성학자이면서 가수 이적씨를 비롯해 세 아들을 모두 서울대에 보내기도 한 박 대표는 “의도적으로 책을 들이민 것이 아니라 부모가 스스로 책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이책 저책을 뒤적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라면서 “책을 공부의 도구로 인식하기 이전에 친구처럼 받아들인 덕에 세 아들 모두 과외나 학습지 한번 안하고 좋은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바른 생활습관과 시간관리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공부하는 분위기와 연결된다. 목표를 설정했으면 이를 잘게 나누어 월 단위, 주 단위, 일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조연순 교수는 “아이가 먼저 계획을 짜도록 하고 ‘실제 해보니까 숙제를 다 하기에 조금 시간이 모자라던데 조금 늘려보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수정해 나가는 것이 좋다.”면서 “짜여진 시간표를 주고 지키도록 하는 것은 실천도도 떨어지고 스스로 공부에서 주도권을 놓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선행학습은 흥미 잃게 해 오히려 ‘독’ 학원 등에서 주로 하는 선행학습은 공부 습관이라는 면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어설프게 알게 된 지식이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게 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지적이다. 박도순 교수는 “예습 수준을 넘어선 선행학습은 당장은 앞서나가는 것 같지만 ‘다 아는 것이니 재미 없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내적 동기를 해친다.”면서 “교육학적으로 보면 선행학습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박혜란 대표도 “선행학습은 뭘 먹고싶은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무조건 떠먹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독서가 가장 근본적인 선행학습이며, 한두학기씩 앞서가며 배우는 것은 잠깐 성적은 오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이를 망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이정숙씨의 ‘자녀 교육법’“좋은 공부 습관만 들여주고 나면 그 다음엔 아이 키우기 정말 쉽죠.” ‘잔소리하지 않고 유쾌하게 공부시키는 법(나무생각)’의 저자 이정숙씨는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두 아들을 미국 명문대에 보낸 엄마이기도 한 이씨는 “어렸을 때 바른 생활·공부습관을 잡아준 뒤에는 한번도 ‘공부하라.’고 잔소리 한 기억이 없다.”며 ‘습관’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씨가 아이들을 키우는 원칙은 스스로 하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책과 가깝게 해 주고 계획을 세워 지키도록 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이씨 역시 조급한 마음에 딱 두번 아이들이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켜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둘 다 산수를 너무 못해 억지로 주산 학원에 보냈더니, 숙제도 전혀 하지 않고 수업 중에도 딴짓만 했다. 주산 학원에 다니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뒤 결국 1주일 만에 그만두게 했다. 이때 ‘설득 없이 억지로 하는 건 역효과만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둘째아들은 바이올린을 억지로 가르치자 5년 만에 ‘절대 못하겠다.’고 버텨 끝내 그만두더니, 스스로 재능을 찾아낸 피아노는 용돈을 아껴 레슨을 받고 대학에서 전공까지 했다. 본인이 동기를 얻고 하고 싶어야 비로소 효과가 있다는 것.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견을 나누면서도 생활 습관은 따끔하게 가르쳤다. 큰아들이 6세 때 시장에서 장난감을 사달라면서 발버둥을 치며 떼를 쓰자 몇번 경고를 한 뒤 ‘혼자 집에 찾아오라.’고 하고는 사라졌다.30분간을 울며 엄마를 찾던 아이는 이후에는 절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중학교 1·2학년이던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이씨는 “뉴욕 맨해튼 일부 지역에 우리나라 대치동이나 청담동 같이 엄마들이 아이 공부에 더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긴 하다.”면서 “그러나 어려서부터 함께 책을 읽고 원칙을 지키도록 습관을 만들어준 뒤 학창시절에는 오히려 간섭하지 않는 미국인 부모들의 교육법이 훨씬 인상적었고 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큰아들 창연(25)씨는 미시건대 건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둘째 승연(24)씨는 뉴욕대 경영학과와 줄리어드 음대를 동시에 다니면서 ‘공부기술(중앙M&B)’이라는 책을 써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씨는 “분위기에 휩쓸려 선행학습이다 뭐다 하는 것에 조급증을 내기 보다는 적극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습관을 들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이렇게 하면 ‘효과 두배’뭐가 좋은지는 알면서도 잘 안되는 것이 자녀교육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당장 따라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질문할 때마다 백과사전 활용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면 부쩍 질문이 많아진다. 이럴 때 아는 대로 대충 대답해주거나 얼버무리지 말고 함께 백과사전을 찾아본다.“눈은 왜 와요?” 하고 묻는다면 함께 ‘눈’을 찾아보고 스스로 물음에 대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흥미를 자극하고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국어사전을 항상 옆에 두기 국어실력은 모든 공부에 기본이다. 바른 언어습관은 생활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책이나 TV를 보다가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그때 국어사전을 찾아보도록 한다. 사전을 통해 어휘력과 문장력이 풍부해져 말과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런 습관이 들면 외국어 공부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재래시장 자주 데려가기 책상 앞에서 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다. 때때로 재래시장에 데려가는 것은 아이의 오감을 자극하는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시장통에서 생선을 자르는 아주머니,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일하는 청년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며 사회성, 생활력, 호기심, 기초적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사지마비 장애 딛고 美 최고 병원 의사된 이승복씨

    세계 최고 의료기관으로 꼽히는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슈퍼맨 닥터 리’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인 1.5세인 의사 이승복(40)씨. 이씨는 미국 내 단 두 명뿐인 사지마비 장애인 의사 중 한 명이다. 촉망받던 체조선수였던 그는 불의의 사고로 척추 손상을 입은 뒤, 눈물겨운 재활훈련과 의학공부를 거쳐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재활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이미 미국 뉴욕타임스와 볼티모어 선지,AP통신 등에 인간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소개됐던 이씨가 한국을 찾았다. 자신의 스토리를 담은 책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황금나침반) 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것. 29일 휠체어를 타고 기자들 앞에 나타난 이씨는 “자신을 낳아 길러준 부모와 조국을 위해 1등으로 살고 싶었다.”며 “다만 그 방법이 체조선수에서 의사로 바뀐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8살부터 미국에서 자랐음에도 한국과 부모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해 보였다. 한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가져간 국어교과서를 수없이 반복해 읽고 쓰는 한편, 동생들에겐 집에서 한국말을 쓰도록 하고,‘형’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님께 칭찬받는 1등이 되기 위해 시작한 체조에서 그는 곧 두각을 보였고, 고교 3학년 때는 올림픽 예비군단의 최고선수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바로 그해 연습 도중 거꾸로 떨어져 7∼8번 경추 신경이 손상되는 ‘C7∼C8 종결선언’, 즉 사지마비 장애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씨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이 수반되는 재활치료를 병원 스태프들조차 감동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받았다. 그리고 10개월만에 휠체어를 타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이후 이씨는 공부에 매달려 명문대인 뉴욕대, 컬럼비아대 공중보건학 석사, 명문 다트머스 의대, 하버드 의대 인턴과정 등을 거쳐 존스홉킨스병원 재활의학 수석전문의가 되었다. 이씨는 지금의 과정을 모두 끝내면 존스홉킨스의대에 조교수로 임용될 예정이다. 이씨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의사로서, 그리고 장애인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자신은 장애인을 배려하는 미국 의료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오늘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며 “한국이 그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새영화] 인 굿 컴퍼니

    사회성과 작품성이 제대로 균형을 이룬 드라마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6일 개봉하는 ‘인 굿 컴퍼니(In Good Company)’는 그 희소가치를 만끽하게 해주는 할리우드 드라마이다. 실직 위기에 내몰린 한 가장의 이야기와 달콤한 청춘 로맨스가 절묘하게 손을 잡았다. 잘나가던 스포츠 잡지사의 광고이사 댄(데니스 퀘이드)에게 느닷없이 시련이 닥친다. 기업합병으로 정리해고 위기에 처한 것도 속상한데, 설상가상 자신의 자리를 뺏은 새 이사 듀리아(토퍼 그레이스)는 아들뻘의 20대 청년. 마음 같아서야 당장 사표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아내는 늦둥이를 임신해 들떠 있고, 큰딸 알렉스(스칼렛 요한슨)도 뉴욕대 입학통지서를 받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실직문제를 다루고 있으되 영화의 어조는 경직되지 않고, 젊은 등장인물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다. 조직에서 강등되고도 가족 몰래 혼자 속앓이를 하는 댄,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탓에 댄의 화목한 가정을 부러워하는 젊은 상관 듀리아. 듀리아는 가장의 자리를 힘겹게 지켜내는 댄을 이해하면서 갈등이 풀리는 듯하지만, 뜻밖에 듀리아와 알렉스가 사랑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된 댄은 착잡한 마음이 된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서울시정硏 원장에 강만수 前차관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새 원장에 강만수(姜萬洙·60·현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 전 재정경제부 차관이 임명됐다. 시정개발연구원 이사회(이사장 박세일)는 제9대 원장으로 강 전 차관을 선임했다고 24일 밝혔다. 원장 임기는 3년이다. 강 신임원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나온 뒤 미국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피플 인 포커스] 차기 총통 노리는 中통일론자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마잉주(馬英九·55) 타이베이 시장이 19일 타이완 국민당 주석에 공식 취임했다. 그는 이날 롄잔(連戰) 전 주석으로부터 당기를 넘겨받은 뒤 “2008년 정권을 되찾겠다.”며 3년 뒤 차기 총통선거 승리를 다짐했다. 마 주석은 청렴하고 개혁적인 이미지와 깔끔한 외모로 ‘미스터 클린’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홍콩 태생의 마 주석은 타이완 법대를 졸업하고 미 뉴욕대(석사), 하버드대(박사)를 거쳐 20대 후반의 나이에 명문 정즈(政治)대 교수를 역임했다.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영어통역과 비서로 활약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국민당 부비서장(84∼88년)을 거쳐 1998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현 총통인 천수이볜(陳水扁)을 제압, 타이완 정국에 돌풍을 몰고 왔다. 마 주석은 지난달 16일 국민당 주석 선출 직후, 대륙 정책 계승을 선언했다. 집권 민진당의 분리주의 노선과 분명히 선을 그으며 ‘통일론자’로서의 진면목을 과시한 것이다. 이 때문에 후진타오(胡錦濤) 공산당 총서기는 마 주석에게 당선·취임 축전을 보낼 정도로 각별한 기대를 표시했다. 향후 공산당·국민당간의 3차 국공합작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마 주석은 타이베이 시장을 연임하며 확실한 대중적 기반을 다졌지만 당내 기반은 취약하다. 까닭에 앞으로 상당기간 당내 영향력이 막강한 롄잔 전 주석과 타이완 의회를 장악한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 등과 3각 지도체제를 구축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oilma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박용만(50) 두산그룹 부회장은 지난 2월 선친인 박두병 초대 회장의 가르침을 예로 들며 “두산에는 파벌이 딱 하나 있는 데 그게 두산파다. 우리 형제도 마찬가지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계기로 가진 만남이었지만 박 부회장의 ‘집안 자랑’은 가풍과 장자를 중심으로 한 단결력, 비즈니스 패밀리 등으로 이어지며 그는 “가족간의 인화가 두산이 109년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도 두산가(家)를 우애깊은 형제지간으로 꼽는다.‘돈 앞에 추한 꼴’을 적잖이 보인 재계 가문이 많았던 탓인지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두산가만의 독특한 가풍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이 그렇게 자랑했던 화목한 집안이 요즘은 쪼개져 살벌하다. 차남 박용오 회장의 퇴진과 3남 박용성 회장의 추대로 시작된 ‘형제의 난’은 ‘동생들의 쿠데타’와 ‘두산산업개발의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으로 각각 주장되며, 양측의 진실공방 싸움이 한창이다. 수년간 쌓여온 형제간 갈등이 이제야 곪아 터졌다는 것이 두산가 안팎의 지적이다. 피붙이가 등을 돌리면 더 무섭다고 했던가.“비리를 저지른 동생과 조카를 잡아가라.”와 “가문에서 빼버리겠다.”로 상징되는 이번 분쟁은 결국 검찰 수사 결과로 귀결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109년 전통의 두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휩싸였다. 자칫 오너가의 집단 사법처리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행보에 큰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승승장구하던 두산으로서는 호사다마가 아닐 수 없다. 박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우연히 그룹내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마주쳤지만, 급히 자리를 떴다.6개월 전 당당했던 그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어제의 두산과 오늘의 두산이 다르다는 점을 새삼 보여줬다. ●‘박승직상점’이 그룹의 모태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인 두산이 1일 창립 109돌을 맞았다. 보름 전만 해도 ‘잔치’를 벌일 계획이었지만 경영권 분쟁으로 쏙 들어갔다. 두산 창업주 고 박승직씨는 1896년 서울 종로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승직상점’을 열고, 두산그룹의 기초를 닦았다. 등짐 장사와 면포상, 보부상 등 밑바닥 생활 15년 만에 마련한 가게였다. 이후 박 창업주는 포목상으로 대성공, 동대문과 종로 일대에서 ‘배오개의 거상’이라 불렸다.1906년에는 중추원 의관과 정3품에 승서되는 등 이미 거상으로서 황실의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박 창업주는 1905년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인 광장을,1907년에는 국내 최초의 무역회사인 공익사 설립에 참여했다.33년에는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와 함께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 두산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소화기린맥주는 일본 기린맥주의 국내 생산공장이다. 박 창업주는 해방 후 새롭게 출발하는 수송사업을 위해 장남인 두병의 이름 첫 자인 말두(斗)자와 묏산(山)자를 붙여 ‘두산’이란 새 상호를 짓는다.‘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올려 재화가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박가분과 정정숙 여사 여느 재벌가와 마찬가지로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도 바깥 활동이 잦지 않다. 내조와 자녀교육이 최우선 순위다. 이는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며느리 고르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남인 용곤 명예회장의 배필감을 찾던 박 초대 회장의 안테나에 맏딸 용언씨의 친구인 이응숙(작고)씨가 잡혔다. 다소곳하고 참해 마음이 끌렸다. 박 초대 회장은 지프를 타고 한동안 이씨를 추적하며 인물과 행동거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낙점했다고 한다. 가족간 인화에 며느리가 중요하다는 박 초대 회장의 평소 지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초대 회장의 모친인 정정숙 여사와 그의 아내 명계춘(92) 여사는 내조뿐 아니라 남편들 못지 않은 사업수완을 발휘, 여장부로 통했다. 국내 화장품의 효시인 ‘박가분(朴家粉)’은 사실상 정 여사의 작품이다. 정 여사는 1915년 부업 삼아 분기술자 3명을 고용, 재래식 화장분을 근대적으로 포장 판매했다. 처음엔 면포상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주던 미끼 상품이었다가 여성 반응이 의외로 좋아 박승직상점의 어엿한 거래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정 여사는 국내 최초로 화장품 신문 광고를 하기도 했다. 박가분 광고 내용은 이렇다 “죽은 깨와 여드름이 없어지며, 얼굴에 잔티가 없이 피부가 윤택하고, 고아지게 하는 박가분”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부인인 명계춘 여사도 중고 미제 승용차와 일제 트럭 등을 구입해 한때 운수업을 벌였다.‘남자는 보다 큰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대신 떠맡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훗날 두산상회의 토대가 됐다. ●귀하게 얻은 늦둥이 박 창업주는 1910년 딸만 여섯을 두다가 첫 아들을 얻었다. 박두병 초대 두산 회장이다. 박 창업주의 나이 46세로 늦게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후에 우병과 기병, 규병 등이 태어났지만 우병을 빼고는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그래서 그런지 박 창업주의 자식 교육은 별났다고 한다. 두산가에서 인화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박 창업주가 장남에게 들려준 ‘지붕에 소 올리기’다. 가장의 터무니없는 지시도 가족이 믿고 따라야 집안이 화목해진다는 내용이다. 또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근자성공’은 4대째 내려오는 두산가의 좌우명이다. 박 초대 회장은 경성중을 거쳐 1932년 경성고상을 졸업한 뒤,1931년 대지주인 명태순의 딸 계춘씨와 결혼했다. 이어 조선은행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박승직상점에서 본격적인 2세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는 해방 후 동양맥주를 인수해 두산그룹의 토대를 쌓았다.60년대 들어 한양식품(코카콜라·환타 제조)과 윤한공업사(현 두산메카텍), 동산토건(현 두산산업개발) 등을 설립했으며, 한국병유리(현 두산테크팩)를 인수하며 그룹의 외형을 크게 확대했다. ●두산 1번은 용곤 명예회장 두산가의 위계질서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장유유서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장자인 박용곤(73) 명예회장은 여전히 ‘두산의 1번’이다. 전화번호도 ‘1∼2번’을 쓴다. 이어 용오(68) 전 회장(3∼4번), 용성(65) 회장(5∼6번), 용만(50) 부회장(7∼8번) 순이다. 그래서 이번 ‘형제의 난’은 다른 그룹의 경영권 분쟁보다 상처가 유난히 깊어 보인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우애가 좋던 형제가 어쩌다가….”라며 허탈해 했다. 두산가는 사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재계에서 형제간 최고의 화음을 자랑했다. 이는 박 초대 회장의 철저한 자식 교육에서 비롯됐다. 박 초대 회장은 형제간 말썽이 나면 잘못이 있든 없든 무조건 장자를 혼냈다고 한다. 동생들을 잘못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자를 중심으로 형제들이 자연스럽게 뭉칠 수 있도록 했다. 인화와 관련된 박 초대 회장의 이야기는 지금도 입에 오른다.“가정이 평화로워야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 그러자면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고, 지아비는 화하고, 지어미는 순해야 한다. 이럴 때 한 푼의 재산이 없어도 그 가정은 언제나 평화스럽다.” 박 부회장의 설명이다.“부친은 인화가 깨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설날 세배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미풍양속 차원에서 권장할 일이지만, 개인 간에 친소관계가 만들어지면 조직이 공평해질 수 없다고 본 거죠.” 두산가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을 갖는다. 명계춘 여사를 중심으로 3대(3∼5세)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친목과 화합을 다진다. ●“남의 눈치밥 먹어봐야….” 두산가는 기업의 오랜 역사 만큼이나 자녀 교육도 독특한 전통이 있다. 박 초대 회장은 자식들에게 “도둑이 와서 재물을 훔쳐갈 수는 있지만,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은 절대 훔쳐갈 수 없다.”며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박 부회장이 들려준 부친의 자식 교육은 이렇다.“우선 남의 눈칫밥을 먹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은행 근무를 적극 권했습니다. 또 최강대국인 미국을 알아야 한다며 미국 유학을 꼭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용곤 명예회장이 일본을 강조해 일본어 공부가 추가로 들어갔죠.” 이같은 방침에 따라 용곤 회장은 한국은행, 용성 회장은 한국투자금융, 용만 부회장은 외환은행에서 각각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6형제 모두 미국에서 공부했다. 이들은 미국 유학생활 동안 용돈이 넉넉지 않아 자취 생활을 하면서 직접 음식도 해먹고,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두산가는 경영수업도 다른 재벌가와 차이가 있다. 밑바닥부터 출발해 모든 계열사를 거치게 한다. 또 30대 초반에 계열사에 배치해 평균 1∼2년에 한번씩 승진시킨다. 4세도 예외없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4세 중 장자인 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4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일본 기린맥주에서, 차남인 박지원(40)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미국 매켄에릭슨에서 근무했다. 용오 전 회장의 장남인 박경원(41) ㈜전신전자 대표는 미국 코닥에서, 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37)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대한항공에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용현(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인 박태원(36) ㈜네오플럭스 상무는 효성에서 시작했다. ●“정략 결혼은 피하라”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두산가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정·관계 집안과 직접적인 사돈 관계가 없다. 대부분 평범한 집안과 통혼했으며, 간혹 재계 집안이 눈에 띈다.“자녀 혼사에 정략 관계를 두지 마라.”는 박 창업주의 당부를 후손들이 잘 지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6월 박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구자철 한성 회장의 딸 원희(26)씨 결혼은 두산가에서 눈길을 끌 만한 혼사였다. 구 회장은 범 LG가로 구태회 LS 명예회장의 4남이자,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이 때문에 박 부회장은 집안의 첫 경사였지만 ‘재벌가 정략 결혼’이라는 시선 탓에 다소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박 부회장과 구 회장은 경기고 동기생으로 양가가 예전부터 서로 교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원씨와 원희씨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며, 미국에서 공부하다 관계가 급진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두병 초대 회장은 모두 6남1녀를 뒀다. 장녀 용언(72)씨는 당시 실력파 검사였던 김세권(74)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변호사는 대검찰청 차장과 서울고검 검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KCL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차남 용오 회장은 1962년 미국에서 만난 최금숙(작고)씨와 결혼했으며,3남 용성 회장은 66년 김선필 전 삼성물산 사장의 딸인 영희(62)씨와 혼례를 올렸다.4남인 박용현 서울의대 교수는 68년 이화여대 음대를 나온 엄명자(작고)씨와 인연을 맺었다. 5남 용만 부회장은 바깥에 잘 알려진 집안으로 장가갔다. 당시 ‘증권업계 대부’로 통했던 강성진 전 증권협회 회장이 그의 장인이다. 박 부회장은 79년 강 전 회장의 장녀인 신애(50)씨와 혼례를 치렀다. 그는 강 전 회장의 차남 흥구씨와 동기생으로 집에 놀러갔다가 신애씨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6남 박용욱(45) 이생그룹 회장은 이건 전 대호건설 회장의 딸인 상의(45)씨와 인연을 맺었다. golders@seoul.co.kr ■ 박두병 초대회장등 3명 상의 회장 역임 두산그룹과 대한상의는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두산이 재계에서 최고(最古)의 기업이라면 상의도 경제5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단체(1884년 한성상업회의소 설립)다. 두산그룹 회장은 묘하게도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954년 공식 출범한 이후 배출한 회장은 12명. 이 가운데 두산그룹 회장 출신은 무려 3명이나 된다. 고 박두병 초대 두산그룹 회장이 1967∼73년 상의의 회장을 맡았다. 전문경영인 가운데 재계 최초로 그룹 회장직에 오른 정수창 전 두산 회장도 1980년부터 88년까지 상의 수장을 역임했다. 박용성 현 두산 회장도 2000년 이후 상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상의의 반백년 역사 가운데 총 20년을 두산측에서 집권한 셈이다. 특히 대(代)를 이어 경제단체의 수장을 맡은 곳은 두산 박씨가(家)가 재계에서 유일하다. 그래서 4세에서도 상의 회장이 나올지 주목된다.30년간 상의에서 근무한 전 임원은 박두병-용성 부자에 대해 “성격 급하고, 타성에 젖은 일들을 뒤집어 버리는 게 꼭 붕어빵”이라고 했다. 사실 두산과 상의의 인연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고 박승직씨가 1906년부터 5년간 상의의 전신인 경성상업회의소 상의원으로 활동했다. 무려 3대가 상의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이다. 박용성 현 회장은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며 역대 회장 가운데 상의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이다. 박 회장이 상의 회장으로 출근한 첫 날 기자들에게 던진 첫 말이 이렇다고 한다.“예산 규모나 회원사 수, 단체의 역사로 보면 상의가 국내 경제5단체 중 맨 앞인데 왜 항상 전경련을 맨 앞에 세우는 것이냐. 앞으로 경제단체를 소개할 때는 상의를 맨 앞에 써라. 가나다 순으로 해도 상의가 전경련보다 앞이 아니냐, 또 우리는 법에 의한 단체고 나머지는 임의 단체로 사단법인으로 해서 승인 받은 데가 아니냐.”고. 그러나 형인 박용오 전 회장이 제기한 비자금 조성 및 분식회계 의혹으로 박 회장의 향후 행보가 그다지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golders@seoul.co.kr ■ 3·4세 MBA출신 많아… 며느리는 ‘이화의 딸’ ‘가방 끈’이 긴 두산가문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는 당연히 따야 할 자격증처럼 보인다. 없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다. 오너 집안인 데다 미국 유학이 일종의 통과의례인 만큼 3세 ‘용’자 돌림과 4세 ‘원’자 돌림 대부분은 경영학을 전공했다.3세 가운데 용오-용성-용현-용만 4형제는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다만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은 경기고-뉴욕대를 나왔다. 3세 가운데 MBA 학위를 딴 사람은 3남인 박용성 두산 회장과 5남 박용만 그룹 부회장이다. 박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박 부회장은 보스턴대에서 MBA 학위를 땄다. 4세로 넘어가면 MBA는 그야말로 흔하디 흔하다.‘원’자 돌림 15명 가운데 박용곤 회장의 장녀인 박혜원 ㈜두산 잡지BU 상무를 뺀 9명이 MBA 학위를 갖고 있다. 또 박 부회장의 장남 박서원씨 등 학업중인 4세가 5명이나 돼 앞으로 MBA 학위 소지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집안에 MBA 출신이 많다 보니 동문들도 적지 않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숙부인 박용만 부회장은 보스턴대 MBA 출신이다. 또 박 회장과 박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오 전 회장의 차남 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박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차남 박석원 두산중공업 차장,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 박태원 네오플럭스 상무 등 6명은 모두 뉴욕대 MBA 동문들이다. 이밖에 박 교수의 차남인 박형원 ㈜두산 식품BG 차장은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이며, 박인원 ㈜두산 전자BG 과장은 하버드대 MBA 학위를 땄다. 반면 며느리들은 ‘이화의 딸’들이 많다. 서미경(박경원 전신전자 대표 부인·고대 신문방송학과)씨와 이상의(박용욱 이생 회장 부인·한양대 기악과)씨를 빼면 대부분 이대 동문들이다. 맏며느리인 고 이응숙씨를 비롯해 김영희(셋째 며느리), 고 엄명자(넷째 며느리), 김소영(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부인), 서지원(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부인), 정윤주(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부인)씨 등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은 이대 선후배 관계로 맺어져 있다. 박지원 부사장과 부인은 공교롭게 이름이 같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비운의 황세손 日서 화장될 뻔…

    20일 오후 서울 창덕궁 낙선재. 멸망한 황실의 아픔을 온 몸으로 지켜본 한 사내가 주검으로 돌아왔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쓸쓸하게 숨진 고종 황제의 황세손 이구(李玖·1931∼2005)씨. 그는 영친왕(1897∼1970)과 일본 왕족 이방자(1901∼1989) 여사의 아들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적통이다. 뒤틀린 대한제국의 역사를 뒤로 한 채 홀로 죽음을 맞은 이씨는 빈청(殯廳·빈소)이 마련된 낙선재에서는 외롭지 않았다.300여명의 전주 이씨 종친들이 그를 맞았다. 이날 낙선재 돌계단에서 그를 대신한 귀국 보고가 낭송되자 “저하, 드디어 오셨구려….”라는 울음섞인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월세 6개월 못내 호텔 전전…비운의 죽음 그의 일본 생활은 대한제국의 마지막처럼 찌들리고 초라했다. 이씨는 일본에서 거주했던 아파트의 월세를 6개월치나 내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그는 외가의 도움으로 일본 왕궁이 보이는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 투숙해 있었다. 그의 마지막을 목격한 호텔 종업원에 따르면 “유카다(일본 전통 홑옷)를 입은 채 화장실 양변기에 앉아 우측 45도 각도로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숨진 그의 품에서는 미국 여권이 나왔다. 이씨는 미국 MIT 유학 시절 미국 시민권을 딴 이중국적자였다. 이 때문에 이씨의 유해를 국내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미국 대사관에 사망 사실을 알리고 주민등록 증명서를 팩스로 받아 다시 주일 한국대사관에 제출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는 생전에 “나 같은 인생이 다시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정부는 4∼5년전부터 생활비와 품위유지비 명목으로 다달이 100만엔 정도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생활 형편이 썩 좋지 않았다.”는 전언이다.●일본 천왕 사절 조문 예정 이씨의 유해를 둘러싼 뒷얘기도 일부 공개됐다. 이환의 대동종약원 이사장은 “외가 친지인 나시모토가 밀장(密葬·비밀장례)을 한 뒤 화장을 하자고 제안해 분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영친왕을 끌고 간 것도 부족해 황세손마저 화장하고 숨기겠다는 것이냐.’고 항의했다.”면서 “일본측에 황세손으로서 예우를 강력히 요구했다.”고 말했다. 종약원은 조문하는 종친들에게 유해를 공개할 뜻을 내비쳤다. 이 이사장은 “일본 천왕 사절이 조문할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왕실에서 누가 올지는 모르지만 조선 황세손의 마지막 가는 길을 국왕의 붕어(사망의 높임말) 수준에 맞게 예를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사손(후계자)은 이미 내정, 의친왕 손자 유력 자녀없이 숨진 이씨의 대를 이을 사손(후사를 이을 양자)도 내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1958년 미국 여성인 줄리아 여사와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자 1982년 결국 헤어졌다. 이 때문에 종약원은 3∼4년전부터 이씨에게 수차례 사손 책정을 건의했고 이씨는 이에 따라 사손 후보자를 두세차례 만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황세손이 숨지기 1주일 전 문서로 후계자를 내정했고 사인을 했다. 본인 의사가 가장 중요한 만큼 이사회를 통해 검토한 뒤 장례식인 24일 책봉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황제의 손자로 뉴욕대를 졸업한 뒤 모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친왕의 손자 이원(43)씨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9일장… 종묘서 노제 장례식은 9일장으로 24일 오전 10시 창덕궁 희정당에서 열린다. 이환의 대동종약원 이사장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 종로4가 종묘 앞에서 노제를 거행하며 운구에는 600여명의 반차행렬이 뒤따를 전망이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고종황제릉) 뒤편의 영친왕 묘역이다. 김문식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는 “국왕이 사망했을 때 치러지는 국장(國葬) 절차와 비슷하지만 규모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타이완 정국 돌풍 예고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마잉주(馬英九·55) 타이베이 시장이 국민당의 새 주석에 올라 타이완 정국에 돌풍이 예고되고 있다. 마 신임 주석은 16일 104만명의 국민당원 가운데 54%가 참가한 주석 선거에서 72.36%의 압도적 득표율로 왕진핑((王金平·64) 입법원장을 누르고 롄잔(連戰)에 이어 타이완 제1야당의 주석으로 당선됐다. 마 주석은 1950년 홍콩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들은 모두 대륙의 후난(湖南)성 출신이다. 마 주석은 타이완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석사), 하버드대(박사)에서 공부했다.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영어통역을 시작으로 국민당 부비서장(84∼88년)을 거쳐 1998년부터 타이베이 시장을 연임, 타이완 정국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차기 대권주자 중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정계입문 전 미국계 은행에서 법률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81년부터 수년간 정즈(政治)대학 법학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마 주석은 그동안 선거 유세를 통해 ‘타이완 독립 반대’와 양안간 경제 교류 확대 등 국민당의 대륙정책 계승 의지를 분명히 했다. 홍콩·타이완 언론들은 마 주석이 이른 시일 내에 대륙을 방문,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와 회동을 가질 것이라고 보도했다.대륙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마 주석에 대해 중국 지도부도 ‘환영’ 분위기 일색이다. 후 주석은 17일 “양안 관계의 평화정착과 발전,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해 양당이 함께 노력하자.”는 축전을 마 주석에게 보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마 주석의 등장으로 국민당 내부는 물론 타이완 정국 전체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홍콩·타이완 언론들은 오는 8월 마 주석의 취임과 함께 국민당 내부는 ‘마잉주·롄잔·왕진핑의 3각구도’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국민당 내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롄잔 전 주석과 타이완 의회를 장악한 왕 입법원장, 새로운 기수로 떠오른 마잉주가 3각 지도체제를 구축,‘협력과 견제’의 정치를 펼칠 것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집권 여당인 민진당은 마 주석이 강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르자 벌써부터 대항마 선정에 고심하고 있다. 타이완 헌법상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은 두번 연임했기 때문에 차기 대선에는 입후보할 수 없다.천 총통이 아직 후계자 문제에 대해 ‘천심(陳心)’을 감추고 있지만 셰창팅(謝長廷) 행정원장과 쑤전창(蘇貞昌) 민진당 주석이 민진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유력시 된다고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가 17일 보도했다.천 총통은 셰 원장이 내각에서 확고한 위치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지난 5월 지방선거 승리 직후 쑤 주석의 지도력을 공개석상에서 치하하는 등 2인자 경쟁 구도를 통한 ‘레임덕 방지’를 구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oilman@seoul.co.kr
  • “치매발병 9년전 예측”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 증상이 나타나기 9년 전에 발병 예측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울러 과일이나 야채 주스를 일주일에 3차례 이상 마신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견줘 치매에 걸릴 위험이 4배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연구 결과는 미 알츠하이머병 학회가 1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개최한 제1회 치매 예방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됐다. 뉴욕대 의과대의 라이저 모스코니 박사팀은 사람의 뇌를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을 통해 뇌의 기억 중추 부위인 해마(海馬)에서의 포도당 대사량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치매 발생 여부를 85%까지 알아맞힐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팀은 54∼80세의 건강한 53명을 12∼24년에 걸쳐 최초와 3년 후,7년 후 등 3차례 PET를 실시한 결과 해마의 포도당 대사량이 적을수록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팀은 대사량이 15∼40% 감소할 경우 9년 후 치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85%, 치매의 전조인 가벼운 인지기능 손상이 나타날 위험이 71%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사실은 치매가 발병할 경우 가장 먼저 몸의 변화를 알려주는 것이 해마란 점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팀은 설명했다. 또 일본계 미국인 노인 1800명을 관찰한 결과 과일이나 야채 주스를 많이 마시는 이들이 치매 예방에 뚜렷한 효과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2)-2세경영

    손길승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쌍두 체제’로 포스트 재벌을 향해 순항중이었던 SK그룹은 2003년 2월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소위 ‘SK사태’로 불리는 일련의 악재로 오너가(家)인 최 회장이 전격 구속됐기 때문이다.2세 체제의 성공적인 착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비상벨’이 울린 것이다. 그러나 ‘카운터 펀치’는 이것이 다는 아니었다. 투기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경영권 탈취를 목적으로 그룹의 지주회사인 SK㈜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보스’의 부재와 채권단의 압박, 소버린의 흔들기는 ‘SK호’의 최대 위기를 가져왔다. 한 임원은 긴박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시민단체의 공격과 채권단의 위협, 소버린의 가세는 그야말로 내부 구성원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시중에는 그룹 해체설까지 나돌았습니다. 또 소버린의 지분 매입 의도는 최 회장이 보석으로 나온 뒤에나 대책이 세워질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할까. 산전수전 다겪은 최 회장은 ‘뉴SK’ 기치를 내걸고, 난제를 정공법으로 하나씩 헤쳐나가고 있다. 포스트 재벌을 지향한 지배구조 개선은 경영투명성과 윤리경영을 핵심으로 강도를 더 하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해 10월 SK㈜ 창립 42돌에서 밝힌 내용이다.“나는 재벌이라는 말이 싫습니다. 그룹이라는 말도 재벌이라는 지배구조에서 나온 것인데 그런 지배구조가 과거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을 이끄는 시스템입니다. 누가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독립된 각 기업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일을 추진하는 시스템을 가졌느냐는 것입니다.” ●경영 ‘대표선수’ 패밀리 4인방 “내 아들은 5명이다. 경영능력이 있는 대주주는 경영인으로 키울 것이다. 적임자라고 판단되면 아들이든, 조카든 가리지 않고 경영을 맡기겠다. 나는 자식들 누구에게나 밥상(경영권 승계 후보)을 차려주겠지만 먹은 것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최종현 회장) 최씨가에서 현재 SK 경영에 참여하는 인물은 최신원(53) SKC 회장과 최태원(45) SK㈜ 회장,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 최창원(41) SK케미칼 부사장 등이다. 최씨가의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2000년 8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그룹 승계자로 확정된 것은 1998년 8월 가족회의에서다.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자 최씨가의 차세대 5인방인 사촌 형제들이 모여 당시 최태원 SK㈜ 부사장을 그룹의 경영권 승계자로 합의했다. ‘패밀리 5인방’이 별다른 갈등없이 신속하게 후계구도에 합의한 것은 고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이 많지 않아 ‘뭉쳐야 산다’는 묵계가 있었기 때문.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과 기원씨는 아예 상속포기 각서를 썼을 정도였다. 또 연장자인 최윤원·신원 형제가 경영권에 욕심을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맏이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최태원 회장이 가족대표로 경영권을 승계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적극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 회장은 가족회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룹 회장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훗날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으로서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SK그룹은 98년 9월 계열사 사장단회의격인 수펙스(SUPEX·슈퍼 엑셀런트의 준말)추구협의회에서 손길승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하고, 최 회장은 SK㈜ 회장직을 맡았다. 국내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파트너십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토론해서 분석하고, 협의해서 합의한다.’로 요약된다. 합리적이며,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최재원 SK엔론 부회장은 ‘파이낸싱’의 귀재로 통한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일본계 증권사에서 18개월가량 근무한 경력도 있지만 그의 진면목을 드러낸 것은 2000년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에서였다. 당시 신세기통신의 최대주주는 27.6%의 지분을 보유한 포항제철(현 포스코).SK가 이를 매입하려면 1조 70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최 부회장은 이를 SK텔레콤 지분 6.5%와 포철의 신세기통신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의 스와핑(주식 맞교환)으로 해결했다. 최 부회장은 미국 브라운대 물리학과, 스탠퍼드대 재료공학과 석사, 하버드대 경제학 석사 출신이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은 94년 선경(현 SK)그룹 경영기획실로 첫 발을 내디뎠다.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에 뛰어나다는 평이다. 특히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계열사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그가 96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을 때는 국내 최초로 명예퇴직제를 도입했으며, 쉐라톤워커힐호텔과 SK상사에서도 잇따라 명퇴를 통한 감량 경영 바람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그는 ‘구조조정 리베로’라고 불렸다. 특히 최 부사장이 계열사로 내려온다는 소문이 들리면 해당 임직원들은 긴장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90년대부터 ‘나는 경영에 자질이 없다.’며 경영일선에서 한발짝 비켜섰었다.SK케미칼 회장 때는 아예 회장 결재란을 없애고,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일임했다. 사교와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그룹의 원로 경영인들을 많이 챙겼다고 한다. 우석대와 미국 엘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2세 교육 “선친은 자식들이 결코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유학시절엔 용돈이 항상 부족해 가정교사로 뛰고,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한번은 중고차를 샀는 데, 이것도 어떻게 구입했는지 일일이 현지 지사장으로부터 자금 출처(?)를 확인 받기까지 했죠. 그리고 집도 제일 싼 곳에서 살아 일주일에 쥐를 40마리까지 잡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쥐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을지 연구까지 했답니다.” 차남인 최 부회장은 남들처럼 어렵게 공부했던 미국 유학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자식 교육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 최 회장은 자식들과 토론을 즐겼다. 주제는 사회·경제가 아닌 과학 분야. 가끔은 난센스 퀴즈와 같은 질문을 들이대, 자식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최 부회장은 “부친이 살아계셨으면 최근의 토론 주제는 아마도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관련됐을 것”이라며 “그 만큼 과학을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화학도’인 고 최 회장은 아들들은 모두 이과 전공을 권했다. 최종현 회장은 장남이 진학 문제로 고민할 때 “자신의 진로는 자신이 선택해라.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합리적 논리를 펼 수 있는 객관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 경제의 기본원칙은 ‘합리(合理)’다. 경제를 잘 알려면 ‘리(理)’와 관련된 분야로 물리나 화학, 생물 가운데 하나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장남인 최 회장은 문과 지망생이었지만 선친의 뜻에 따라 물리학을 전공하게 됐다. 최 부회장도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고 최 회장은 또 자식들에게 최종 학력만큼은 최고를 주문했다. 최 부회장은 “선친은 최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학은 아무 곳에서 졸업해도 괜찮지만 최종 졸업장은 최고 수준의 ‘학벌’이 필요하다.”면서 “그래야 최고가 뭔지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가 3세들은 ‘공부 중’ 최씨가의 2세들은 대부분 연애 결혼했다. 최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만났다. 최 회장의 설명이다. “대학 테니스 동호회에 선수가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와이프를 적극 끌어들였죠.”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가 진척될수록 SK가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노 관장의 부친이 당시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 체육부 장관으로 정경 유착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친인 고 박계희 여사가 미국에 건너가 맏며느리감인 노 관장을 직접 살펴봤으며, 고 최 회장도 미국 출장중에 노 관장을 면담했다. 고 최 회장은 사돈인 노 장관이 대통령이 되자 임직원을 모아놓고 “이제부터 SK는 해외에서 사업을 벌일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 “조금이라도 정경유착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경영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위의 이목속에 결혼한 탓일까. 부부간 ‘애정 전선’은 세간의 이목 이상으로 견고하다는 평이다. 한 지인의 얘기다.“최 회장이 2003년 ‘SK글로벌’ 사태로 구속 수감됐을 때입니다. 노 관장은 공판 때마다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1주일에도 세 차례씩 면회를 꼭 갔었어요. 당시 수감중인 최 회장은 노 관장의 생일에 사람을 통해 장미꽃을 전달하기도 했고요.” 최 회장과 노소영씨는 장녀 윤정(16)양과 차녀 민정(14)양, 장남 인근(10)군 등 1남 2녀를 두고 있다. 차남인 최 부회장과 채서영(41) 서강대 영문과 교수의 인연은 누이동생인 최기원씨 소개로 맺어졌다. 채 교수와 기원씨는 친구 사이다. 자녀는 2남1녀. 장남 성근(14)군과 장녀 원정(8)양, 차남 동근(6)군이다. 고 최윤원 회장과 김채헌(51)씨는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장녀 서희(28)씨는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 7월 평범한 집안 출신인 최성훈씨와 결혼했다. 최씨는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은진(22)씨와 3녀 현진(20)씨, 장남 영근(18)씨는 모두 학생이다. 최신원 SKC 회장은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유진(27)씨는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다. 차녀 영진(25)씨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장남 성환(24)씨는 중국 복단대에서 학업을 하고 있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과 최유경(38)씨는 장녀 경진(8)양과 장남 민근(7)군을 두고 있다. 모두 초등학생이다. ●‘SK호’ 이끄는 전문경영인 조정남(64) SK텔레콤 부회장은 SK텔레콤의 기술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은 ‘산파’로 통한다. 또 ‘CDMA 전도사’라 불린다. 조 부회장이 밝힌 1995년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의 개발 성공 일화다.“당시 손길승 부회장이 저에게 지속적으로 CDMA 성공 여부를 물어오셨지만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수천명이 동시에 통화를 시도할 수 있는 상업화 규모의 투자를 결심해야 하는 판국에 몰렸습니다. 그때 제가 손 부회장에게 ‘제게 400억원을 주십시오. 항상 물으시던 CDMA 성공 여부에 대해 확실한 답을 드리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손 부회장은 과감한 지원을 약속했고, 결국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라는 신화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조 부회장은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친근감이 넘친다. 자칭 ’리버럴리스트’로 말한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김창근(55) SK케미칼 부회장의 별명은 ‘마징가’다. 매일 서너 시간만 잠자며, 일에 매달리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으며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일처리와 관련,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 후계자로 불릴 정도다. 그는 마지막 구조본부장으로서 1974년 ‘경영기획실’로 출범한 SK 구조조정본부를 30년 만에 직접 ‘간판’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1974년 입사 이후 SK케미칼 외환과장·자금부장·재무담당 상무를 거쳤고,1997년에는 그룹 구조본 재무팀장을 맡는 등 SK를 대표하는 재무전문가다. 서울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신헌철(60) SK㈜ 사장은 소탈한 외모와는 달리 일처리가 꼼꼼하다는 평과 함께 노력형 CEO(최고경영자)로 불린다. 상고 출신으로 주판알만 튀기던 그가 이효석의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때문에 대학 입시에 떨어지자, 아예 작품을 통째로 암기해 버릴 정도다. 그는 지금도 기분이 좋아지면 ‘메밀꽃 필 무렵’을 술술 읊어댄다. 신 사장은 본인을 ‘운 좋은’ CEO라고 평가한다.SK㈜ 사장도 운 때가 맞아 떨어진 것이지, 능력으로 뽑았다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겸손해한다. 신 사장의 얘기다.“최 회장으로부터 SK㈜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능력도 부족한 내가 맡아서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최 회장이 지금의 SK㈜는 ‘아버지’ 같은 CEO보다 상처를 보듬아주고, 이것 저것 챙겨줄 수 있는 ‘어머니’ 같은 CEO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CEO를 맡을)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그러나 ‘능력없다.’는 말과 달리 SK㈜는 신 사장이 CEO로 취임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매출과 수출, 순이익 면에서 역대 실적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신 사장의 운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신 사장이 1998년 5월 SK텔레콤 수도권본부장으로 일할 때다. 당시 서정욱 사장은 국제전화 식별번호 추첨식에 참가할 SK텔레콤 제비뽑기 ‘대표선수’로 신 본부장을 선택했다. 가서 모든 경쟁사가 희망하는 ‘00700’ 번호를 뽑아오라는 특명과 함께. 그런데 이 업무는 신 본부장의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무선사업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임직원이 염원했던 대로 기어이 ‘00700’번호를 뽑아내는 기염을 연출해냈다. 신 사장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부산상고와 부산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 대학원을 나왔다. 김신배(51) SK텔레콤 사장은 논리적이며 날카롭다는 인상을 주지만, 의외로 가사를 외운 팝송이 100여곡에 이를 정도로 감성적인 면도 적지 않다. 또 순탄하게 CEO까지 오른 듯 보이지만 이공계 출신의 기획통 CEO로서 만년 하위권이던 수도권영업을 SK텔레콤 지사 중 1위로 올려 놓을 정도로 ‘야전 경험’도 많다. 그는 당시 현장 직원과 친해지기 위해, 또 바닥권이던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술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는 사석에서 “평소에 즐겨하지 않던 술이었지만 그때 마셨던 술이 그 전 동안 마셨던 술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신세기통신과의 통합작업을 2년간 잡음없이 해 낼 정도로 사업 조정 및 대인 관계에도 능수능란하다는 평이다. 그는 애창곡으로 분위기를 띄울 때에는 ‘오늘같은 밤’(이광조)이나 ‘골목길’(신촌블루스)을, 분위기를 탈 땐 ‘사랑이 지나가면’(이문세)이나 ‘사랑일 뿐이야’(김민우)를 부른다고 했다. 학창시절엔 팝송 100곡 정도는 가사를 안보고 부를 정도였다고. 김 사장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정만원(53) SK네트웍스 사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CEO다.2003년 그룹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태로 위기를 맞았을 때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장으로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이같은 활약 덕분에 SK네트웍스 사장으로 취임, 채권단 조기 졸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 사장은 21회 행시 수석 출신으로 1994년 통산산업부 과장에서 ‘SK맨’으로 변신했다. 그는 사령장을 받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관련 서적 40권을 구입했다고 전한다.95년부터 OK캐쉬백 사이트의 원형인 쇼핑몰을 구상했으며,OK캐쉬백과 그 사이트를 기획해 SK에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중앙고,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장석(50) SKC 사장은 오너가(고 최종건 회장의 둘째 사위)의 일원이지만 전문경영인으로 불리기를 더 좋아한다. 솔직함과 친근감을 바탕으로 강한 추진력과 빈틈없는 일처리 능력을 보유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CEO라는 평이다. 그는 1979년 ㈜선경 미주본부로 입사, 경영지원본부장, 관리총괄 부사장을 거치며, 방송·통신 장비업체인 SK텔레시스 인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서울고와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미국 스티븐스대 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golders@seoul.co.kr ● ‘맏형’ 최신원 SKC회장 “분가요?시기상조입니다. 여건도 성숙치 않았는 데 무슨 분가입니까. 지금은 형제간에 서로 협력해서 SK를 더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훗날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것입니다.” 최신원(53) SKC 회장은 최근 재계의 이슈로 떠오른 ‘SK분가설’을 이렇게 일축했다. 이어 “형님(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이 돌아가신 이후 최씨가(家)의 맏이로서 형제간의 협력과 우애를 돈독히 하는 것이 저의 책무”라며 “이를 위해 형제간에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패밀리 미팅’으로 알려진 형제간 모임은 실상 집안 제사 행사인 경우가 많다. 또 해외 출장을 빼곤 형제들 모두 참석하는 것이 최씨가의 오랜 전통이다. 최 회장은 ‘음지’에서 동생들을 지원하는 소리없는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지난해 ‘소버린사태’로 경영권을 위협받았을 때 SK㈜의 대주주인 SK케미칼 지분을 확대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행동하면 불협화음이 나올 수 없어요. 사업이야 다들 알아서 잘 하니까. 또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서로 뭉치면 되고요. 선친과 숙부께서 상호신뢰 속에서 그룹을 키워오신 것처럼 우리 2세 형제들도 서로 협력해 SK그룹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키울 것입니다.” 최 회장은 또 “몸은 부실해도 부친을 닮아 통뼈”라며 선친인 고 최종건 회장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선친은 언제나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사실 죽으면 돈 갖고 갑니까. 살아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해야죠.” 그는 앞으로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했다.“제 소박한 꿈은 이렇습니다. 재단법인 ‘선경 최종건 재단’의 장학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입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한국에 영국의 ‘이튼스쿨’과 같은 명문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기술학교를 세워 선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최 회장은 “선친은 평소 교육에 열정이 대단했지만 일찍 돌아가신 탓에 실천에 옮기지 못하셨다.”면서 “선친의 이름으로 재산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국내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해병대 출신이다. 부친이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해병대 입대를 권유했기 때문. 그는 이런 경험을 살려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회사의 임직원은 반드시 해병대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해병대 CEO’로 불린다.CEO(최고경영자)로 나선 지 8년째인 최 회장은 신속하면서도 과감한 업무 추진력, 강한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이다. 이는 위기관리 능력으로 이어져 SKC 회장에 취임한 이후 한계사업의 과감한 철수와 정보통신 관련 사업 진출 등 적극적인 ‘턴어라운드’ 작업을 통해 SKC를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golders@seoul ● 최씨가 며느리·딸 ‘경영불참 불문율’ 국내 재벌가에서 며느리들을 경영에 참여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SK가(家)는 이보다 한 술 더 떠 딸들까지 아예 배제한다. 한 임원의 얘기다 “최종현 회장이 한번은 가족 회의를 열고 최씨가의 여성은 딸이든, 며느리든 경영 참여는 안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남자만 경영에 참여시키기로 한 거죠. 그래서 큰 집(최종건가)과 작은 집(최종현가)의 5남 5녀 가운데 ‘대표선수’ 5명(윤원, 신원, 창원, 태원, 재원)만 경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런 불문율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요.” 큰 집 조카들까지 포함해 10남매의 가장 역할을 했던 고 최종현 회장(그는 생전에 형의 3남 4녀와 자신의 2남 1녀를 합한 ‘5남 5녀의 아버지’로 자처했음)이 기업 경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며느리와 딸들을 경영진에 참여시키지 않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화 한토막. 최 회장이 병마와 막바지 씨름할 때였다. 하루는 저녁 식탁에 앉았는 데 큰 아들(최태원 SK㈜ 회장)이 보이지 않자, 큰 며느리(노소영 관장)에게 “오늘도 못 온대.”라고 물었다. 노 관장은 시아버지에게 어리광 부리듯 “네∼”라고 답했다. 이어 “요새 그 사람 얼굴 보기도 어려워요.” 그러자 최 회장은 무뚝뚝하게 “사업을 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니. 사업이란 장난이 아니다. 전력투구해야 한다. 사업을 위해서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최씨가의 맏며느리인 김채헌(51·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부인)씨는 최씨 2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집안 안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소리 안나게 일을 처리한다는 평이다. 시동생 얘기다.“집안을 화목하게 하는 데 형수님으로서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하는 일은 없지만 애들도 어느 정도 커서 이제는 뭔가 해 보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시동생의 평은 이렇다 “워낙 말이 없고, 착하기만 합니다. 마음도 대단히 여리고요.”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최씨가의 며느리 가운데 가장 활동적인 편이며,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긴다.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예술쪽에 관심이 많다. 최태원 회장도 노 관장의 바깥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 지인은 “최 회장과 성격이 비슷한 데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대단히 합리적인 분”이라며 “서로 바쁘기는 해도 주말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며, 테니스를 치거나 요리를 하는 등 부부 금슬이 대단히 좋다.”고 설명했다. 시아버지인 최종현 회장은 큰 며느리를 어떻게 봤을까. “저래도 아이들 교육은 잘 시킨단 말이야. 제 시어머니(고 박계희 여사)를 닮은 데도 많고….”고 최 회장과 50년 지기인 언론인 홍사중씨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겉으로는 제법 쌀쌀하면서도 조금도 표리가 없고, 야무지게 집안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뜻으로 최 회장이 며느리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최재원 SK엔론 부회장 부인인 채서영(41)씨는 야무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집 사람이 좀 바쁘죠. 그래서 저는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가능한 한 골프를 치지 않으려고 해요. 집안 일은 좀 거드는 편인데…. 와이프 눈에는 많이 부족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만 쓰는 주방용 칼이 있으면 된 것 아닙니까.”라며 웃는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 부인 최유경(38)씨는 치과의사다. 개업을 않고 가끔씩 지인들 병원에서 일손을 거들고 있다. golders@seoul.co.kr .co.kr
  • [피플 인 포커스] 3선연임 확실시 엘바라데이 IAEA사무총장

    국제원자력기구(IAEA) 수장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62) 사무총장이 국제기구 사상 이례적으로 세번째 임기를 맞게 됐다. 그의 3선을 저지하려던 미국이 대세에 밀려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다음주 열릴 IAEA 정기이사회에서 두번째 연임이 사실상 확정됐다고 외신들이 10일 보도했다. 미국은 엘바라데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의 축출을 위한 외교노력을 벌여왔다. 하지만 러시아와 제3세계 국가들은 물론 유럽국가들마저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자 마지못해 연임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국제사회가 북한·이란 핵개발현안을 숨가쁘게 다뤄나가는 과정에서 3선의 엘바라데이의 역할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됐다. 그는 북한 핵개발 문제가 이란보다 시급한 문제라고 주장해 왔다. 1997년 첫 임기때부터 줄곧 ‘핵위기’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는 온건한 자세로 ‘채찍’에 무게를 두려던 미국과 마찰을 빚어왔다. 미 국무부와 백악관은 지난해부터 “국제기구 수장은 한 차례만 연임하는 게 관례”라며 그의 2차례 연임을 저지해 왔다. 엘바라데이는 이라크전쟁 전부터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와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미국 주장을 일축하면서 신중하고 중도적 입장으로 IAEA를 이끌어 왔다. 또 “미국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 포기 대가로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노여움’을 샀다. 이집트 외교관 출신으로 뉴욕대에서 국제법 박사를 받고 뉴욕대 교수를 지냈다.1984년 IAEA에 합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해 12월 그에 대한 미 정보기관의 도청이 알려지자 “사생활이 침해됐지만 숨길 게 없다.”고 자신감을 보일 정도로 깔끔한 몸가짐에 빈틈없는 일처리로 평판을 얻고 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고령화 시대의 나이는 남은 수명으로 계산을”

    ‘2050년의 40세의 나이는 2000년의 30세의 나이와 같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예전보다 젊게 살고 있으므로 ‘나이’의 개념을 시대에 따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뉴욕대학의 워런 샌더슨 교수와 빈 인구학연구소의 세르게이 스케르보프 교수는 9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지금까지는 단순하게 ‘살아온 시간’을 기준으로 나이를 정했지만 이제부터는 ‘앞으로 살아갈 기간’을 고려해 나이를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독일과 일본, 미국의 인구학적 변화 추세를 분석, 기대수명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나이 계산법을 소개했다. 이 방법으로 계산하면 2000년 30세인 사람과 2050년 40세인 사람은 모두 남은 기대수명이 50년이므로 실제로는 같은 나이가 된다. 또 2005년의 55세는 1900년에 살고 있었더라면 40세 수준에 불과하다. 갈수록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등 일반적으로 더 오래 살게 되면서 과거와 비교할 때 나이에 비해 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기존 방식대로 나이를 산정하면 고령화 사회에 적합한 정책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④-LG화재·LS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④-LG화재·LS그룹

    LG는 고 구인회 창업회장과 그의 형제들이 함께 일군 그룹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형제들의 활약이 컸다. 구 회장을 중심으로 철회·정회·태회·평회·두회 6형제는 말 그대로 ‘한솥밥’을 먹으며 회사를 키워왔지만 3대째 내려 온 현재는 각기 다른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구철회씨 자손 LG화재가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의 자녀(4남4녀)들은 지난 1999년 LG화재를 갖고 독립했다. 지난해 자산 4조 6000억원에 매출 3조 444억원, 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한 LG화재는 현재 4남인 구자준(55) 부회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장남인 구자원(70)씨는 LG화재 경영에서는 사실상 손을 떼고 방위산업체인 넥스원퓨처 회장을 맡고 있다. 진주고와 고려대 법대, 독일 쾰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64년 락희화학에 입사한 구 회장은 럭키증권 사장, 럭키개발 사장,LG정보통신 부회장 등을 거쳐 99년 계열분리와 함께 보험업계에 뛰어들었다. 경춘관광 사장을 지낸 유기홍씨의 딸 영희(63)씨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뒀다. LG화재 본부장인 장남 본상(35)씨는 지난해 LG화재 주식 10만 7150주를 사들여 지분율을 3.53%로 늘렸다. 위기관리 전문업체인 TRC코리아 상무인 차남 본엽(33)씨는 지난해 말 소프트웨어 자문일을 하는 ‘LIG시스템’ 대표이사를 맡았다. 본상씨와 본엽씨는 또 넥스원퓨처 주식을 각각 31.79%씩 보유하고 있다.LG이노텍의 방산부문을 인수해 설립한 넥스원퓨처는 자산이 3300억원, 매출이 3000억원에 달한다. 본엽씨가 감사, 구자원 회장의 제수인 이갑희(62)씨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차남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종구 전 산업은행 이사의 딸인 이갑희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뒀다. 장녀 본희(37)씨는 정재문(대양산업 회장) 전 국회의원의 아들인 정연준(41) 미디어플러스 사장과 결혼했다. 차녀 본주(35)씨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고 진성규 변호사의 아들 진상범(36) 남부지법 판사와 결혼했다. 구자성씨의 외아들 본욱(29)씨는 LG화재에 다니고 있다. 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4년 금성사에 입사했지만 곧바로 범한화재(현 LG화재)로 옮겨 30년간 ‘보험인생’을 걸어왔다. 범한화재 런던·뉴욕사무소 소장을 지낼 정도로 국제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금융발전심의회 보험분과위원, 주한 우루과이 명예부영사도 맡고 있다. 임방인(61)씨와 사이에 세 딸을 뒀는데 3녀 문정(30)씨는 최근 타계한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와 결혼했다. 장녀 현정(35)씨의 남편은 글로벌 보험회사인 AON코리아 부사장인 에릭 호프먼(42)이다. ●보험경영도 탐험처럼, 구자준 부회장 미사일 전문가에서 보험전문가로 변신한 구자준 부회장은 경기고를 마치고 미국 캔자스·미주리 주립대를 다니다 귀국,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구 부회장은 74년 금성사 사원으로 입사, 금성정밀(현 LG이노텍)에서 방산사업부 경영을 주로 맡았다.94년 미국산 호크미사일의 탄두 재장착 시스템과 국산화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할만큼 미사일 전문가로 통한다. 99년 계열분리로 LG화재 부사장으로 임명되자 생소한 보험영역을 공부하기 위해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보험전문대학인 ‘TCI’에서 보험전문가로서의 기초를 다졌다. 최근 북극점 정복 성공으로 세계 처음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탐험가 박영석 대장의 ‘후원자’로 널리 알려졌는데 2001년 히말라야 K2등정 때는 베이스캠프까지 원정대와 동행해 전문산악인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마라톤 풀 코스를 6번이나 완주할 정도로 ‘철인 체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참가한 베를린마라톤부터는 1m마다 100원씩을 적립, 지금까지 900만원을 모았다. 구 부회장은 자동차보험 ‘매직카’와 장기보험 브랜드 ‘엘플라워’를 앞세워 보험업계 2위 진입을 노리고 있다. 부인 이영희(53)씨와의 사이에 동범(30), 동진(28) 형제를 뒀다. ●GS, 두산으로 이어지는 딸들의 혼맥 구철회씨의 네 딸은 하나같이 ‘좋은 집안’으로 시집갔다. 장녀 위숙(78)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 허창수 GS회장 등 GS그룹의 핵심 5형제(창수·정수·진수·명수·태수)를 낳았다. 재계에서는 허준구 회장의 생가가 있던 옥인동을 따 이들을 ‘옥인동 5형제’라고 부른다. 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고 구자애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2) 형제의원 원장에게 시집갔다. 자애씨의 장남 정규원(42)씨는 LG화재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결혼했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선희씨의 장녀 박성연(35)씨는 이창수 전 주 필리핀대사의 아들인 주학(40)씨와 결혼했다. ●트랙터부터 전자태그(RFID)까지,LS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셋째, 넷째, 다섯째 동생인 ‘태평두’씨는 2003년 11월 LG전선그룹(현 LS그룹)을 갖고 독립했다.LG의 성장과정에서 이들 3형제의 역할을 감안하면 자산 5조원 남짓한 전선그룹은 너무 작은 것 아니냐는 불평이 나올 만했다. 하지만 3형제는 큰 불만 없이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묵묵히 따랐다고 한다.LG는 이후 LG산전(현 LS산전)을 추가로 넘겨주는 형식으로 3형제의 노고에 대한 보답을 잊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를 ‘본부’로 한 LS그룹은 전선·산전·LS니꼬동제련·가온전선·E1·극동도시가스를 주축으로 1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자산 5조 8800억원으로 CJ와 비슷하며 동국제강, 대림, 동양, 효성, 코오롱보다 규모가 크다. 구태회(82) LS전선 명예회장과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아셈타워 21층에 나란히 사무실을 두고 있다. 구평회(79) E1 명예회장도 같은 건물 14층 사무실을 쓰며 우애를 다지고 있다. 구태회 명예회장은 진주중과 일본 후쿠오카고를 마쳤는데 징병으로 만주로 끌려갔다 광복 후 광복군으로 귀국하는 등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다닐 때는 창신동 하숙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는데 플라스틱 사업 진출, 서울사무소 개소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다 58년 고향인 진양에서 제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공화당 대변인 겸 원내총무, 무임소장관, 국회 부의장 등 중책을 맡다 82년 LG그룹 고문으로 돌아왔다. 최무(83)씨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뒀는데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이준범씨는 현재 합성수지업체인 화인 회장이다. ●멜빵 맨 ‘디지털 전도사’ 구자홍 회장 장남 구자홍(59) 회장은 73년 LG상사에 입사한 뒤 홍콩·싱가포르 지사 근무를 통해 ‘국제감각’을 쌓았다. 영국에서 찰스 황태자를 만났을 때 영국 사람들조차 발음과 표현에 감탄할 정도의 빼어난 영어실력을 자랑했다고 한다.87년 LG전자 해외사업본부 상무로 옮긴 뒤 2003년까지 18년을 전자에서 일하며 ‘디지털 전도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1999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영지수 평가에서 1위를 받을 정도로 대표적인 ‘스타CEO’로 GE, 모토롤라,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업들의 CEO와도 교우가 깊다. 특히 빌 게이츠 회장, 리빈 주한 중국대사와는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북미·아시아·유럽의 전직 고위관료, 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TC(Triliteral Commission)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학창시절 쌓은 농구와 수영실력이 수준급인 구 회장은 골프에도 남다른 재질을 보여 지금까지 모두 4차례의 홀인원을 기록했다. 요즘 핸디캡은 7정도. 또 한국기원이 인정한 ‘아마 6단’의 바둑실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주요 사업장을 순방하며 ‘분위기’를 익힌 구 회장은 ‘R&D워크숍’,‘혁신한마당’,‘테크놀로지 이벤트’ 등 그룹차원의 행사를 연이어 개최하며 회장으로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최근 전력망회의(CIGRE)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공식 대외활동도 재개했다.LG전자 CEO직에 유난히 애착을 보였던 구 회장이 전자에서 못다 이룬 꿈을 LS그룹에서 실현시킬 수 있을지 관심사다. 구 회장은 70년대 재벌 오너일가의 장남으로서는 흔치 않게 지순혜(60)씨와 연애결혼했다. 구 회장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잠깐 다니다 미국 프린스턴대(경제학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인근 뉴저지주립대에서 식품영양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순혜씨를 만나 사랑을 꽃피웠다고 한다. 순혜씨는 이화여대 가정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떠난 엘리트 여성으로 귀국 후 이대에서 잠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경복고와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LG화재에서 주로 일했다.LG건설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사장을 지낸 뒤 2003년 희성전선(현 가온전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태향(55)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는데 장녀 은희(29)씨는 고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과 결혼했고 장남 본규(26)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 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은 경기고를 마치고 아버지와 같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자 재벌가 자제로는 흔치 않은 학군단(ROTC) 출신으로 포병학교를 수석으로 마치고도 전방 부대 근무를 자원했다고 한다. 미국 페어리디킨슨대와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행정학 석사과정을 이수한 뒤 미국 셰브론사에서 잠시 일하다 84년 호남정유 원유수급조정과 과장으로 입사, 정유사업에서 잔뼈가 굵었다. 부인 조미연(53)씨는 경희대 조영식 이사장의 차녀. 아들 본혁(28)씨는 LS전선 경영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은 LG상사에서 잠시 일하다 일찌감치 독립 경영을 했다. 외동딸 원희(25)씨는 구 회장의 경기중·고 동창인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오는 30일 낮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결혼한다. 마침 구평회 명예회장의 ‘팔순잔치’도 이날 저녁 그랜드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구씨 일가의 ‘대이동’이 예상된다. 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아들인 이상현(28)씨는 지난 2003년 운동권의 ‘메카’였던 한양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비운동권’ 후보로 나서 당선돼 화제를 낳았다. 이씨는 한양대를 졸업하고 현재 유학 준비 중이다. 구평회(79) E1명예회장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1951년 락희화학 지배인으로 경영에 첫발을 내디뎠다.1954년 뉴욕에서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 LG의 첫 해외주재원으로 기록됐다. 구 명예회장은 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 때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할 정도로 LG경영의 핵심을 담당했다. 락희화학 전무시절인 65년 정유사업 진출 보고서를 형에게 제출, 오늘날 GS칼텍스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84년에는 국내 최초의 LPG수입사인 여수에너지(현 E1)를 설립했는데 이 인연으로 사업연관성으로 따지면 GS그룹에 넘어갔어야 할 E1이 LS그룹 몫으로 남았다. 재계원로 가운데 독보적인 영어실력과 국제감각으로 ‘재계의 외교관’으로 불린다. 한국인 최초로 태평양 경제협의회(PBEC) 국제회장을 지냈고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무역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2대 월드컵유치위원장으로 활동하며 340억원의 유치기금을 조성하는 등 월드컵 개최에 큰 공을 세웠다. 현재도 한·미협회장을 맡아 한·미간 우호증진에 애쓰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19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철인 CEO’ 구자열 부회장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8년 LG상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뉴욕지사와 도쿄지사, 동남지역본부장 등 오랜 해외경험으로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하다. 구 부회장은 해외경험을 살려 폭넓은 해외인맥을 자랑하는데 2003년에는 도쿄 주재 특파원, 은행지점장, 지사장 등이 모여 만든 ‘동경회’ 회장을 맡았다. 직전 회장은 김인진 한진 사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 등과는 ‘월가(Wall Street)회’ 모임을 통해 교류를 쌓고 있다. LG증권을 거쳐 2001년 LS전선 재경부문 부사장으로 부임한 구 부회장은 2002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LS전선은 특수전선 업체인 GCI, 알루미늄 창호업체 알루텍, 광부품 업체인 네옵텍, 초고주파 부품업체인 코스페이스,2차전지 음극재 전문업체인 카보닉스에 이어 선박용 케이블업체인 진로산업을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다. 구 부회장은 만능 스포츠맨으로도 유명하다.2002년 독일에서 열린 ‘트랜스 알프스 산악자전거 대회’에 참가해 아시아인 최초로 7박8일 동안 650㎞를 완주할 정도. 스키는 물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스노보드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지난겨울 사내 스키동호회 모임에 유일하게 스노보드를 들고 나타나 젊은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명함에 ‘No Innovation,No Future(혁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을 정도로 체질 개선을 독려하는 한편 임직원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사내게시판에 ‘애니 기븐 선데이’라는 영화 동영상과 메시지를 직접 올려 팀워크 정신을 강조했다.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과감한 도전과 팀원들간의 협력을 통해 진정한 승리를 일궈 낸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2월24일에는 라디오방송을 통해 “한 해 동안 고생하신 사랑하는 LS전선 임직원들과 함께 듣고 싶다.”며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신청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사내동호회 행사에서는 직원들 자녀에게 일일이 용돈을 챙겨줬다고 한다.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 장군의 딸 현주(48)씨와 결혼,1남2녀를 뒀는데 아직 학생이다. 차남인 구자용(50) E1 사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무역학과를 마쳤는데 사촌형인 구자명 LS니꼬동제련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ROTC 장교로 복무했다.79년 LG전자에 입사, 주로 미주법인에서 일하다 계열분리를 앞둔 2001년 LG칼텍스가스(현 E1)로 자리를 옮겼다. 구 사장은 보수적인 구씨 집안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할 정도로 유머감각이 뛰어난데 직원들과의 자리에서도 본인이 나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한다고 한다.E1이 10년 연속 무교섭 임금 타결을 이뤄낸 데는 구 사장의 이같은 면모가 적잖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인 현주(46)씨와 결혼, 두 딸을 뒀는데 둘다 외국 유학 중이다. 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중앙고와 고려대 법대를 마치고 미 텍사스주립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를 거쳐 97년부터 고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말 경영인으로 전격 변신했다. ●8개사 사장을 거친 구두회 ‘막내’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고려대 상대와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경영에 뛰어들었다.74년 범한화재 사장을 시작으로, 희성산전, 금성계전, 금성통신, 금성반도체, 호남정유 등 주요 계열사 사장을 역임한 뒤 95년 구본무 회장 체제 출범과 함께 경영에서 물러났다. 위로 두 형과 마찬가지로 구 명예회장도 한·독경제협력위원회, 한·중남미협회장, 고려대 교우회장, 성북구 문화원장 등 활발한 외부활동을 벌였다. 이같은 공로로 78년 멕시코정부로부터 명예영사로 임명됐으며 94년에는 ‘멕시코 최고훈장’을 받았다. 지난달 고려대 10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자랑스러운 고대인’으로도 선정됐다. 구 명예회장은 유한선(72)씨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인 김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외아들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홍익고와 미국 베네딕틴대 경영학과, 시카고대 MBA를 거쳐 90년 LG정유에 입사했다.LG전자 상하이지사 근무로 중국과 인연을 맺어 LS전선에서도 중국지역 담당을 맡고 있다. 장상돈(고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 아들)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의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ukelvin@seoul.co.kr ■ LG·두산家, 겹사돈·사업제휴속 프로야구선 ‘서울 라이벌’ 신경전 LG가(家)는 고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두산가문과 우애가 두터웠다. 구인회 회장이 1956년 서울 컨트리클럽에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두산, 경방그룹 회장들과 골프 친목모임인 ‘단오회’를 결성할 정도였다. LG와 두산은 또 구인회 회장의 첫째 동생인 철회씨가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과 사돈을 맺으면서 더욱 가까워진다. 하지만 두 그룹은 LG가 90년 프로야구단 ‘MBC청룡’을 인수하면서 잠시 사이가 벌어졌다. 같은 서울을 연고로 한 두산구단의 ‘방해’가 심했던 것이다. 이후 LG임직원들은 두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구자경 당시 회장이 부산에서 행사를 가졌는데 평소 좋아하던 양주 ‘패스포트’ 대신 다른 술이 차려져 있었던 것. 두산 제품을 빼라는 기조실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구 회장은 기조실 사장에게 일부러 크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룹의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만한 일로 감정적인 변화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LG와 두산은 오는 30일 구태회 명예회장의 4남 구자철 회장과 고 박두병 두산회장의 5남 박용만 부회장이 사돈을 맺으며 ‘겹사돈’으로 이어진다.LS전선과 두산엔진은 ‘합작사’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두 집안의 혼사나 제휴와 상관없이 프로야구 ‘서울 라이벌’의 팽팽한 긴장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LG트윈스가 최근 두산과의 잠실 홈경기에서 이길 때까지 무료입장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제시한 것만 봐도 그렇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②-구인회 3代 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②-구인회 3代 경영

    지난달 19일 러시아 모스크바 출장길에 오른 구본무(60) LG 회장을 수행한 사람은 차장급 직원 한명뿐이었다. 계열사 사장들과 같이 가는 출장이 아니면 수행은 늘 직원 한명이 담당한다. 공항으로 임원들이 배웅이나 마중을 나오는 것도 금지한다. 구 회장은 지난 12일 LG 계열사 사장단 20여명과 함께 국내사업장 ‘혁신투어’를 나서면서 자신의 차량인 ‘벤츠S600’을 놔 두고 대형 관광버스 2대를 빌렸다. 사업장간 이동중에도 사장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지난 2003년에도 구 회장은 버스로 2박3일간 전국의 사업장을 누볐다. 이처럼 ‘격식’을 따지기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구 회장을 두고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평이 따라다닌다. 사람좋아 보이는 눈웃음 등 구 회장의 외모도 이같은 이미지 구축에 한몫했다. ●몸에 밴 검소한 생활 구 회장의 소탈한 모습은 아버지 구자경(80) 명예회장이나 할아버지인 고 구인회 창업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구인회 회장은 창업초기인 40년대 후반 부산 서대신동 시절 활동하기 편하다며 미군 파카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외출할 때를 제외하곤 공장내에서 늘 입고다녀 소매가 닳고 기름때가 반지르르 묻은 옷이었다. 구 회장은 또 비싼 담배와 싼 담배를 같이 갖고 다니면서 손님에게는 좋은 담배를 권하고 자신은 값싼 담배를 피웠다.“돈이란 벌 때 아껴야 하는 법”이라는 지론이다. 사돈이자 동업자인 고 허준구 회장도 당시 판매와 구매일을 맡으면서 수금하러 거래처를 다닐 때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찰떡궁합’인 셈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사업장이나 계열사 사무실을 즐겨 찾았는데 어떤 때는 사전통보없이 불쑥 고객서비스센터 등 현장을 방문해 생생한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럭키증권(현 우리투자증권) 객장을 방문했을 때는 고객들이 좁은 객장에서 불편을 겪고 있는데 반해 임원실이 한 부서보다 큰 것을 보고 “무슨 임원방이 내 방보다 커요?”라며 질책을 했다고 한다. 이같은 소탈한 이미지 때문인지 LG의 회장들은 삼성이나 현대에 비해 강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시사저널’이 지난해 발표한 가장 영향력있는 기업인 순위에서도 구본무 회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은 물론 현대차 정몽구 회장보다 순위가 낮았다. 재계에서 LG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대차그룹보다 낮지 않은데도 그룹총수의 영향력은 현대차가 높게 나온 것이다. LG관계자는 구 회장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구 회장은 1995년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는 허씨와의 동거기간이었고 2년전까지만 해도 삼촌뻘 되는 집안어른들이 계열사 사장을 맡고 있었다. 또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 직격탄을 맞았고 99년에는 반도체 빅딜로 주력사업을 빼앗기는 고초를 겪었다. 사실 구 회장의 총수로서의 경영능력은 올해부터 검증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LG의 상징, 인화(人和) 구인회 창업회장은 포목상, 청과·어물전, 운수업 등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 47년 럭키크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인생을 걸었다.6형제의 장남(4명의 여자형제도 있었으나 일찍 사망함)이자 6남4녀의 아버지가 하는 사업을 돕기 위해 초기 가족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영도 대부분 가족이나 사돈(허씨)들이 도맡아 했다.47년 락희화학 설립당시 생산담당이었던 김준환씨를 제외하면 구 회장, 부사장 고 구정회(둘째 동생)씨, 영업담당 허준구(첫째 동생 철회씨 사위)씨 등으로 사실상 ‘가족기업’이었다. 이후에도 아래로 다섯 동생과 여섯 아들, 조카, 허씨들이 대거 경영에 참여했는데 LG의 ‘인화정신’은 이같은 독특한 가족사와 무관치 않다. 친인척들을 잘 다독여 가며 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를 경영이념으로 발전시킨 것이 인화다. 창업회장부터 내려온 인화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는 삼성과 함께 했던 방송사업. 구인회 회장은 60년대 초반 사돈인 고 이병철 삼성회장으로부터 방송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50대 50 합작으로 64년 ‘라디오서울’과 ‘동양TV’를 설립했다. 하지만 방송사 경영이 시원치 않은 와중에 두 그룹에서 파견된 임직원간 알력이 심해졌고 결국 TV는 LG가 라디오는 삼성이 맡아서 하기로 잠정 합의를 봤다. 이후에도 TV와 라디오 사업의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구 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 회장을 만나 TV사업까지 삼성에 넘기기로 결정한다.LG내부에서는 불만이 많았지만 구 회장은 사돈간의 ‘불화’가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80년대에는 택배사업 진출을 계획했다가 사돈과의 정리를 생각해 포기했다. 당시 기획조정실에서는 21세기 물류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택배사업을 유망한 신규 사업으로 선정, 일본의 택배사업을 벤치마킹하고 계획을 수립했지만 사돈인 한진그룹에서 택배(한진택배)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구자경 회장이 사업중단을 지시했다.LG와 한진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의 2녀 명진(41)씨가 한진그룹 고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하면서 사돈으로 맺어졌다. ●창업주의 사람들 구인회 창업회장은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배우다 열네살때인 1921년에야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한다.24년에는 서울로 상경,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녔지만 19세때인 26년 처가에서 보내주던 학비가 끊기고 본인의 뜻도 있어 낙향, 사업의 꿈을 키운다. 구 회장은 사업을 키워가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했고 동생들은 좋은 학교를 졸업한 뒤 형의 사업을 성심성의껏 도왔다. 한때 구씨, 허씨 일가가 너무 많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구씨, 허씨들 가운데는 경영능력을 갖춘 이들이 적지 않았다. 창업회장의 동생들은 초창기 외국원서를 번역해 기계 작동법을 알아내고 수출, 기술도입 등 형이 할 수 없는 해외업무를 도맡아 했다. 첫째 동생 고 구철회씨는 형과 함께 첫 사업인 포목상 ‘구인회상점’을 세웠고 둘째 고 구정회씨는 동경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남도청 토목과에 잠시 근무하다 형의 사업을 도왔다. 구태회(82) LS전선 명예회장은 일본 후쿠오카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마쳤다. 그는 경영보다는 정치권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4대 민의원과 6,7,8,9,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구평회(79) E1 명예회장은 진주고보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마치고 51년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진주고보와 고려대 상대,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일은행에서 잠시 일하다 63년 금성사 상무로 입사했다. ‘골프멤버’였던 사돈인 이보형 제일은행장·홍재선 전경련 회장·경방 김용완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 등도 구인회 회장과 교우가 깊었다. ●제2의 창업주 구자경 명예회장 구자경 LG명예회장은 삼촌인 구평회 명예회장과 진주고보에 같이 입학한 뒤 진주사범을 마치고 고향인 지수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50년까지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는데 제자들 중에는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 사장,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부인인 한인옥씨 등이 있다. 구 명예회장은 한씨에 대해 “얼굴도 예쁜데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신 전 부의장은 모 TV프로그램에 출연해 구 명예회장에게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구 명예회장은 50년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지만 공장에서 현장 근로자들과 같이 먹고 자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구인회 회장은 생전에 왜 장남을 그토록 고생시키느냐는 질문에 “대장장이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데도 담금질을 되풀이해 무쇠를 단련한다. 내 아들이 귀하니까 저렇게 일을 가르치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덕분에 그는 현장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69년 12월31일 구인회 회장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직후인 1970년 1월6일 열린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은 본인의 경영 퇴진과 구자경 당시 금성사 부사장의 회장 추대를 제안했고 이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통과됐다. 구 회장 취임 이후 1년간 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준 사람은 삼촌인 고 구정회 사장이었다. 조카를 ‘보필’하는 삼촌은 LG가의 저력을 잘 말해준다. 구자경 신임회장은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인화단결과 상호협조를 통해 그룹의 부드러운 기업풍토를 조성하는데 힘쓰고 급속한 확대보다는 내실있는 안정적인 성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락희화학, 금성사 등 11개 계열사를 갖고 시작한 구자경 회장은 95년 2월 이임할 때까지 LG를 한차원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취임 첫 해인 70년 520억원에 불과하던 그룹매출은 94년 30조원을 넘어섰고 수출은 3100만달러에서 147억달러로 474배나 늘어났다. ●늘 꿈이었던 농사일에 매진 구 명예회장은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겨주면서 “앞으로 여의도 본사에는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할 것이다. 모든 경영은 신임 회장에게 맡긴다.”고 약속했다. 구태회·평회·두회씨 등 창업주 형제들과 허준구·허신구 회장도 고문으로 물러났다. 충남 천안의 ‘천안연암대학’으로 내려간 구 명예회장은 버섯재배 등에 심혈을 기울이며 10년전 약속을 지키고 있다. 주중에는 천안에 머물다 주말에는 서울 성북동 집으로 올라오는데 매주 월요일에만 트윈타워로 출근한다. 하지만 구본무 회장 집무실인 30층 대신 32층으로 직행, 본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복지재단·문화재단 업무만 보고 오후에는 천안으로 내려간다.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구 회장 얼굴을 보지 않고 그냥 가는 경우가 많다. 분재, 장미재배를 거쳐 버섯재배로 이어진 구 명예회장의 왕성한 취미활동은 요즘 된장, 생면, 만두 등 유기농 먹을거리로 확대되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선친이 두산, 경방그룹 회장과 함께 1956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발족한 ‘단오회’와 진주중 15회 동창회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있으며 능성구씨 대종회장을 맡고 있다. 단오회에는 김각중 경방 회장, 김상홍 삼양사 명예회장, 선친을 치료했던 이동렬 박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진주중 동창인 고 이규호 전 문교부 장관도 생전에 절친한 사이였다. 고 정주영 회장도 전경련 회장단 활동 등을 통해 남다른 친분을 쌓았다. ●20년 경영수업 받은 ‘구병장’ 구본무 회장은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재벌 총수 가운데 현역 출신은 쉽게 보기 어렵다. 보병으로 만기 제대후에는 미국 애슐랜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때인 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사업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부서로 사업전반을 이해할 수 있음) 과장으로 입사했다. 당시 심사과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구 회장의 ‘핵심참모’인 강유식(57) ㈜LG 부회장이다. 강 부회장은 청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72년 럭키에 입사했다.97년 회장실(구조조정본부)로 소속을 옮겼고 99년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으면서 그룹 구조조정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진두지휘했다. 구 회장은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럭키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쳐 80년 금성사(현 LG전자)로 옮겨 기획심사본부장을 맡았고 83∼84년에는 도쿄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입사 10년만인 85년에야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95년 회장 취임사에서 ‘초우량 LG’를 약속했던 구 회장은 인터넷, 홈쇼핑, 이동통신, 통신 등에 잇따라 진출하며 사세를 넓혀갔고 필립스와 합작으로 LCD사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빅딜’과 ‘LG카드 사태’로 반도체, 금융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1등LG를 이끄는 사람들 지금까지 LG그룹을 상징해 온 ‘인화’는 구본무 회장 대에 이르러 사실상 ‘일등주의’로 바뀌었다.LG는 그동안 ‘인화정신’이 결코 ‘온정주의’가 아니라고 항변해 왔지만 삼성그룹에 비해 LG그룹의 분위기가 다소 느슨해 보인 것은 사실이다. 요즘 LG가 거의 매일 쏟아내는 ‘강한 승부욕’,‘독종정신’,‘다이내믹’ 등은 LG가 온건하고 점잖은 반면 보수적이고 느린 조직에서 ‘환골탈태’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구 회장이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를 김쌍수(60)부회장에게 맡긴 것도 생활가전사업을 1등으로 만든 그의 ‘뚝심’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부진을 면치 못하던 휴대전화 사업을 ‘비전문가’인 박문화(55) 사장에게 맡겨 새로운 도약을 주문했다. 오디오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박 사장은 LG의 ‘광스토리지’ 사업을 7년 연속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LG에서 독립한 다른 친척이나 형제와 달리 주력사인 LG필립스LCD 부회장을 맡고 있는 둘째동생 구본준(54) 부회장 역시 1등에 대한 집념이 남다르다. 경복고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온 구 부회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미국 AT&T를 거쳐 86년 금성반도체에 입사했다. 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빼앗기다시피 넘겨주는 것을 눈으로 지켜본 뒤 99년부터 LG필립스LCD 대표를 맡아 세계적인 LCD업체로 키워왔다. ●숨어있던 승부사기질 발휘되나 소탈하고 인자해 보이는 구 회장의 이면에는 무서울 정도의 집념과 승부욕이 도사리고 있다는 평이다. 구 회장의 집념은 그가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무려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조류학’에 조예가 깊은 것에서 잘 나타난다. 중학교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 집에 데려와 치료해 준 인연으로 새에 관심을 갖게 된 구 회장은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낼 정도로 새에 관해서는 전문가다. 여의도 LG트윈빌딩에 둥지를 튼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구 회장의 각별한 보살핌덕에 무사히 새끼를 낳은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동생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도 최근 ‘사진으로 보는 한국야구 100년’을 발간할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보통이 아닌데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은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 거의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가 있는데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구 회장은 연습장에서 충분히 연습하지 않고 무작정 골프장에 나타나는 초보자를 무척 싫어한다고 한다. 더 싫어하는 부류는 ‘트리플보기(이븐파보다 3타를 더 치는 것)’를 하고도 ‘히죽히죽’ 웃는 사람이다. 다시는 트리플보기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계열사 사장들을 평가할 때도 이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구 회장은 특별히 운동에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끈질기게 연습에 매달려 한때 핸디캡 5∼6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고 한다. 환갑을 맞은 지금도 핸디 8∼9 정도를 친다. 구 회장은 지난 3월 구 명예회장 시절 선포한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에 ‘1등LG’를 더한 ‘LG Way’를 새로운 기업문화로 천명했다.10여년에 걸친 계열분리를 마무리지은 구 회장은 ▲고객이 신뢰하는 LG▲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LG▲인재들이 선망하는 LG▲경쟁사들이 두려워하면서도 배우고 싶어하는 LG를 목표로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의 집념과 승부사기질이 앞으로 어떻게 발휘될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해 동국제강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이례적으로 참석할 정도로 장세주 회장과는 친분이 깊은 편이다. 장 회장의 숙부인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딸 인영(37)씨가 구 회장의 당숙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와 결혼해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만화가 허영만씨와도 교류가 있는데 허씨는 인기작 ‘식객’에서 구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맛있는 삼계탕을 사주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단출한 네식구 구 회장은 72년 김태동 전 보사부 장관의 딸인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닌 ‘재원’으로 서구적인 외모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시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은 “보수적인 며느리를 원했는데 맞고보니 맏며느리는 개방적이고 아래 며느리들이 보수적이었다. 뒤바뀐 감도 없지 않지만 그만하면 잘 맞는 편”이라며 만족하는 분위기다. 구 회장 부부는 금슬이 좋기로 유명하지만 ‘내외’가 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이 주말에 곤지암에서 골프를 치다 부인이 일행들과 골프를 치는 것을 보고 나무랐다는 일화도 있다.LG 소유인 곤지암은 주말에 주로 계열사 임원들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애용하는데 ‘회장 부인’이 나오면 임원들이 불편해 한다는 이유다. 김씨가 다른 그룹 회장 부인과 달리 미술관을 맡지 않은 것이나 여의도 트윈타워에 한번도 나오지 않은 것도 LG가의 엄격한 ‘단속’ 때문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 양자로 들인 구광모(27)씨와 연경(27)·연수(9) 두딸을 두고 있다. 광모씨는 병역특례인 산업기능요원으로 국내의 한 IT솔루션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올해 병역을 마치면 미국 뉴욕주의 로체스터 인스티튜트공대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양자로 입적된 뒤 ㈜LG와 LG상사 지분을 대폭 늘려 ‘경영승계’가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하지만 LG측은 “광모씨의 양자입적은 ‘제사 지낼 장손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4세 경영’과는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연경(27)씨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26)씨와 함께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붓감’이다. ukelvin@seoul.co.kr ■3공화국서 “소총 만들어보라” 권유 구인회 “유망해도 무기는 싫다” 거절 LG화학은 한때 자회사를 통해 ‘비데’사업을 하다 그룹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타일, 욕조 등 욕실 인테리어사업에 비데를 함께 취급하면 고객들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시작했지만 구본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첨단기술로 해외시장을 노리는 제품도 아닌데 돈이 된다고 해서 ‘품위’에 맞지 않는 제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LG에서 계열분리된 지 1년이 지난 지난해 말에도 LG카드의 부실이 해결되지 않자 채권단은 또 한번 LG그룹의 지원을 요청했다.LG측은 “이미 1조원이 넘게 지원을 한데다 그룹에서 분리된 회사를 무슨 근거로 지원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구 회장의 ‘결단’으로 출자전환을 결정했다. 구 회장은 LG카드 기업어음(CP)을 갖고 있던 친척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해가며 출자를 부탁했다고 한다. 삼성과 공동으로 시작했던 방송사업을 넘겨준 것이나 택배사업 진출을 계획했다 직전에 포기한 것도 ‘사돈간의 불화’로 세인들의 지탄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LG가 이처럼 ‘세간의 평판’을 신경쓰는 것은 엄격한 유교가문의 장손인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구인회 회장은 도박이나 술 등 사행산업은 물론 이른바 ‘먹고 마시는’일과 연관된 소비성 사업, 부동산 투자도 금지할 정도로 엄격했다. 나중에야 필요에 의해 인터컨티넨탈호텔을 설립했지만 한때는 호텔사업도 LG의 ‘금지리스트’에 올라 있을 정도였다.3공화국 당시 정부로부터 “소총을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도 “우리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은 고마우나 아무리 유망한 사업이라도 무기는 만들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을 정도다. 하지만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같은 ‘체면 경영(정도경영)’은 자칫 수익성 좋은 사업 기회를 놓칠 수 있고 공격적인 확장에도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LG관계자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가며 일등할 생각은 없다.”면서 “좋은 품질과 서비스를 갖추면 무리한 방법을 쓰지 않아도 고객들이 인정해준다는 것이 구 회장의 지론”이라고 말했다. ukelvin@seoul.co.kr ■구씨 3대의 반도체 인연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합병돼 설립된 하이닉스반도체의 ‘새 주인’이 누가될 것인지를 놓고 재계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매각대금이 3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 대형 매물의 유력한 새 주인으로 전 주인인 LG가 거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LG는 하이닉스 인수설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검토할 일도 없다.”며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40년 가까운 구씨 3대의 반도체 인연이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 LG는 구인회 창업회장 생전인 69년 미국 NSC의 기술제공으로 반도체 회사인 금성전자를 설립했다. 초대 사장은 구자두 현 LG벤처투자 회장이었다. 금성전자는 1차 오일쇼크 등으로 73년 금성사에 흡수합병되면서 주춤했지만 74년 삼성 이건희 회장(당시 동양방송 이사)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 등에 ‘자극’받아 75년 반도체팀을 만들고 미국 AMI와 합작 공장을 설립하는 등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79년에는 대한전선의 대한반도체를 인수, 금성반도체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초대 회장은 구자경 현 명예회장, 사장은 이헌조 현 LG그룹 고문이었다. 금성반도체는 이후 85년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1메가롬(ROM)을 개발하는데 성공하고 금성일렉트론으로 이름을 바꾼 뒤 90년 1메가 D램,91년 4메가 D램을 잇따라 내놓으며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LG는 98년 정부의 ‘빅딜정책’의 ‘희생양’이 되면서 반도체사업을 현대그룹에 양보하게 된다.99년 1월6일 청와대를 방문한 구본무 회장은 전자사업이 주력인 LG에 반도체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지만 이미 현대측과 ‘얘기’가 끝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귀에 구 회장의 ‘절규’가 들릴 리 만무했다. 이날 밤 이헌조, 변규칠, 성재갑 등 LG의 원로들이 마련한 위로자리에서 구 회장은 모처럼 통음을 했다. 일부에서는 구 회장이 ‘통곡’을 했다고 하지만 ‘통한의 눈물’을 보인 정도였다는 것이 당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서울 한남동 구 회장의 집앞에 진을 친 기자들은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구 회장을 붙들고 ‘소감’을 물었고 구 회장은 “다 버렸습니다.”는 말로 3대를 내려오며 30년간 이어진 반도체와의 인연을 정리했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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