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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면대결로 치닫는 소 개혁­보수파

    ◎군의 「공산당수호」 다짐 의미/“반당주의 세력”·“쿠데타 기도” 서로 맹비난/고르비의 조정력도 점차 약화… 위기 고조 소련의 군부 등 보수강경파들이 최근 들어 심상치않은 움직임을 보이고있다.잇따라 눈에 띄게 목소리를 높이고있는 것이다.공산당의 분열을 초래하면서 신당 창당작업에 열을 올리는 개혁파 인사들에 대한 반격이 본격적으로 개시된 셈이다. 소련군은 16일 군기관지 크라스나야 즈베즈다지에 기고한 호소문을 통해 『국가의 생존에 매우 중대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하면서 공산당과 군이 급진개혁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있다고 경고하는 한편 군이 국가의 방위와 안정을 위해 일치단결해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지난달 23일에는 공산당과 군부 경찰의 수뇌 12명이 보수신문인 소비에츠카야 로시아지에 낸 성명에서 정부내 개혁파들이 국가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국가를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 군부가 일어서 줄 것을 촉구했다.공산당 중앙통제위원회는 15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개혁파 기수 야코블레프를 당분열을 획책한다는 이유를 들어 출당조치하도록 당중앙위에 권고키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폐막된 공산당 중앙위가 오는 11월 열릴 제29차 당대회에 상정키로 채택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당강령 초안도 그후 대폭 수정돼 상당히 퇴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파들이 이같이 일련의 전례없이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데는 나름대로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야코블레프와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 등을 중심으로 진보정당인 「민주개혁운동」창당준비작업이 활발히 이뤄져 공산당의 분열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섰고,소련최대의 러시아공화국에서는 공산당활동이 대통령령에 의해 금지되는 등 보수파들의 숨통이 점점 죄어드는 반면 개혁파들의 득세여건이 조성돼 가고있는 것이다.보수파들은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보수파의 반격에 대해 개혁파도 만만찮은 대응을 보이고있다.야코블레프는 16일 공산당 탈당을 선언하면서 이즈베스티야지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공산당내 스탈린주의자 강경파들이 쿠데타를 음모하고 있다고 경고했다.셰바르드나제가 지난해 12월 외무장관직 사임을 전격발표하면서 『독재가 다가온다』고 경고한것과 같은 맥락이다. 비록 충분히 예견돼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제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일대 격돌을 알리는 신호탄은 쏘아올려졌다.예전에도 이들 양대세력간의 반목과 설전이 간간이 있기는 했으나 이번처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과거 70여년간 소련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던 공산당이 분열 및 위상저하를 목전에 둔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관심을 끄는 것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정치적 조정능력.고르바초프는 과거에도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갈등이 첨예화됐을 때마다 줄타기작전을 구사,성공리에 무마했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경우가 다른 것 같다.셰바르드나제와 야코블레프 등 개혁파 측근들이 모두 고르바초프의 미약한 개혁의지와 줄타기전술에 염증을 느껴 그의 곁을 떠난 상황이고 보수파들도 고르바초프를 무작정 따르기에는 한계상황에 와있기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도 영향력이 약화돼있는 고르바초프 자신도 어느쪽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다. 국제적인 데탕트 분위기나 소련의 심각한 경제위기 등을 고려한다면 군부를 포함한 보수파의 쿠데타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완전히 배제할수만도 없는 살얼음판위에 소련정국은 놓여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3

    ◎해저 케이블 극비 절단… 중공군 큰 타격/“중국본토 공격” 맥아더의 도전 실패로/중공군까지 밀리자 소,돌연 휴전제의 내가 도쿄의 극동사령부를 경유,함흥에 도착한 것은 50년 11월30일이었다.각부대에 특공중대의 배치및 활용등에 대해 협의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그 무렵에는 이미 중공군의 대공세가 여기저기서 확인되고 있었다. 서부전선에서는 8군단 소속 2사단과 1기갑사단의 한 연대가 청천강을 따라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를 받고 있었다.이른바 군우리(편집자주:평안남도 개천)전투로 알려진 청천강변의 전투에서 2사단은 엄청나게 우세한 중공군의 공세에 의해 참패했으며 뿔뿔이 흩어진 병력들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얼어죽거나 포로로 잡혔다.이 때문에 다른 8군병력에게도 중공군 조우와 관계없이 후퇴명령이 내려졌다. ○산동∼대련 통신끊겨 동부전선의 중공군 공세 역시 야만적인 것이었지만 10군단의 대응은 다소 달랐다.압록강을 향해 전진배치돼있던 7사단은 지형관계로 소규모부대 단위로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었다. 10군단사령부는 함흥 교외의 옛 일본비행장 부근 눈덮인 벌판에 여러개의 텐트촌으로 형성돼 있었으며 포위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인근의 어항인 흥남에서 철수토록 돼있었다.나는 한국에 있는 미군중에 중국의 전술에 대하여 잘아는 몇안되는 장교중의 하나였다.중공군은 미군이 보다 효율적으로 싸운다면 물리칠수 있을것 같았다.중공군은 한밤중에 소규모 단위로 이동하는데 이는 매복에 약하고 인해전술 공격은 위치선정이 잘된 포병의 공격에 취약했다. 나는 얼마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함흥을 떠나 몇시간 후에 서울에 도착해보니 서울은 어지러운 상황이었고 남쪽으로 향하는 길은 피란민들로 뒤덮여 있었다.서울은 불과 6개월만에 공산군에 의해 두번째 점령당하게 됐으며 유엔군사령부는 반공시민들에게 남쪽으로 피란할 것을 권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후 6개월동안 노스캐롤라이나의 베닝기지에서 특공중대 훈련에 또다시 열중하고 있었다.한국전쟁은 상호 처절한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워커 8군사령관은 서울북부에서 교통사고로 죽고 서울은 51년1월4일 공산군에 의해 다시 점령된채 매슈 리지웨이장군이 후임 8군사령관을 맡고 있었다.유엔군의 전선은 서울남쪽에서 불과 60마일 떨어져 형성돼 있었다.유엔군은 1월말부터 다시 공세를 강화,3월달에 서울은 재탈환되었다. 그러나 이해 봄 더 큰 사태진전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것에서 발생했다.4월11일 트루먼대통령이 맥아더원수를 극동군사령관직에서 갑작스레 해임한 것이다.그 후임에는 리지웨이장군이 임명되었으며 8군사령관으로는 제임스 밴 플리트장군이 맡게 됐다.맥아더장군의 해임은 불행하게도 필연적인 것이었다.사실 그의 임무는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이 시작됐을때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당시 한국에서의 미국정책의 목표는 군사적 대립상태를 안정시키고 남한을 재건하는데 있었다.군인의 임무는 그가 신병이건 맥아더와 같은 노련한 5성장군이건 본국정부의 명령은 어리석다 생각되더라도 합법적인 것은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아더장군은 그같은 명령을 묵살하고 의회와의 연계를 통해 지휘계통도 무시했던 것이다.그의 목표는 중공을 무찌르는 것이었고 그같은 목적 수행을 위해 그는 중국본토에의 공습과 지상공격을 요청했다.그는 또 압록강을 잇는 다리들과 남만주의 중국 비행장들을 모두 폭파할 것을 주장했다.그러나 맥아더장군의 이같은 변칙적 작전주장은 그가 이 전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높이는데 더 목적이 있는듯이 보였다.그는 결국 도박을 했고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그해 여름부터 리지웨이와 밴 플리트의 지휘를 받는 연합군은 중공군에 대대적인 반격을 가해 그들을 38선 이북으로 다시 몰아내고 있었으며 그렇게 되자 소련은 마침내 유엔에 휴전을 제의하게 됐다.이에따라 38선 근처의 도시인 개성에서 종전을 위한 예비회담이 개최되게 됐다. 워싱턴에 있는 CIA본부로 불려간 것은 51년 12월이었다. ○북 청년 게릴라 자원 나를 만난 빌 디퓨이대령과 리처드 스틸웰대령은 미국정부는 특히 한국전에 참전하고 있는 중공군의 통신망을 교란시키는등 중국본토에서의 게릴라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중국 공산당정권에 압력을 넣기로 결정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들은 이 작전은 일본에 신설된 지역본부에서 맡게되며 수송기편대와 연안상륙정부대의 지원을 받게된다고 설명하면서 육군에서는 그같은 임무를 맡아줄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한국에 다시 돌아간 것은 52년 새해였다.한국전은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교착상태에 빠져있었다.중공군 교란작전의 이름은 JACK(Joint Advisory Commission Korea)이라고 명명됐고 서울에 새본부를 만들었으며 동래에 있는 벤 반더부르트대령의 지휘를 받았다. 우리는 우선 북한 서부해안의 여러개 섬에 비밀 정보망을 구축했으며 원산 앞바다의 여도를 장악,전초기지로 삼았다.이같은 작전에는 중무장된 쾌속함이 동원됐다.우리의 주된 임무는 한국인 정보원들을 공중 또는 해안으로 침투시켜 군사정보를 빼내오는 일이었다.이 일에는 북한으로부터 피란온 많은 젊은이들이 용감하게 자원하고 나서 사람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미 목표는 남한 재건 우리가 해낸 한국에서의 가장 큰 작전은 황해바다 한가운데를 지나 중국본토산동반도와 만주 대연을 잇는 해군 케이블선을 절단한 것이었다.그 케이블선은 한국에 침공중인 중공군사령부와 북경을 연결하는 라인으로 중공군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그후 중공군사령부의 북경과의 연락은 무선전화를 이용하게 됐는데 대부분이 우리 측에 도청됨으로써 휴전협상과정에서 우리측은 중공군의 정보에 대해서는 항상 앞설 수 있었다. 우리의 주된 해상공격은 주로 동해의 여도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그곳에서는 육상이나 해상침투는 물론 원산항에 입항하는 모든 선박까지 체크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적의 후방교란과 함께 유엔군측의 전투수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 독선이 빚어내는 당 분란/김경홍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신문에는 김영삼민자당대표가 제주도에서 바다낚시를 하고 있는 사진이 게재됐다.또 오늘은 김대중신민당총재가 가락동시장을 둘러보는 모습이 실렸다. 한사람은 휴가를 맞아 망중한을 즐기는 중이었고 또 한사람은 시정여론을 청취하는 모습이었다. 명실상부한 여야지도자가 일상에서 떠나 여유를 보이며 향후 정국운영방안을 구상하는 장면이나 서민들과 어울리는 모습 그 자체는 멋있게 보인다.그러나 최근 이들 양김씨의 정치행태와 이들을 둘러싼 분란과 잡음을 접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사진에 나타난 「여유있는 지도자상」이 행여 하상으로 보이지는 않았을까라는 염려가 앞선다. 「대권」발언으로 비롯된 민자당내의 평지풍파와 반대세력 제거로 치닫고 있는 신민당의 내분수습 과정을 지켜볼 때 양김씨가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으며 무리한 「대권낚시」와 시정서민들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모습뒤에 권위라는 칼을 휘두르고 있는 또다른 모습을 보는 것같아 씁쓸하다. 권위주의를 청산하겠다는 세력이 오히려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거나 독선을 공격하던 집단이 자신들의 조직을 독선적으로 운영하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최근 신민당 안에서 목격했다. 신민당의 조윤형의원 제명파동이 좋은 예이다. 김대중총재는 『개인적으로는 조의원의 제명에 반드시 찬성하는 것은 아니나 당전체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며 주류측의 의견을 존중했다.그러나 자신을 찾아와 사죄를 한 이형배의원은 해당행위 여부를 조사하지도 않고 「사면」해 버리는 아량을 보였다.만약 조의원도 백배사죄 한다면 제명조치에서 감일등 될 것임이 틀림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당내 의견이다. 당헌당규에 따라 엄정한 조사를 거쳐 결정되어야 할 사안들이 개인에 대한 충성심이나 집단 권위주의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해결되는 것은 수권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김총재는 조의원 제명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기 위해 긴급소집됐던 원외지구당위원장회의에서 몇몇 위원장이 『당규대로 처리하면 될 것이지 왜 집단 거수기로 만드느냐』고 항변했던 사실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사정은 민자당의 갈등에서도 마찬가지다.김대표 측근들은 「선후보경선,후 총선」주장에 민정·공화계가 거세게 반대하자 김대표가 특유의 승부수를 띄울 것이라느니 대국민적인 결단을 밝히겠다느니 하며 여론 탐색용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같은 당 안에서 「대표」가 「승부수를 구사한다」는 것 자체가 웃음을 살 일이다.대화와 타협을 통한 민주적인 당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당사자가 누구와 시합을 벌인다는 것인가. 우리 정치를 『제도는 자주 바뀌는데 사람은 전혀 바뀌지도 변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진정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라면 30년 아니라 더 오랫동안이라도 바뀌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그러나 밀어붙이기식,나 아니면 안된다는 식,독선적인 사고방식의 지도자를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제목과 내용이 다른 나라­중국/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중국 광동성 심수는 우리들에게 처음부터 조금 잘못 알려졌다.우선 「심천」이 아니라 「심수」이다.그러나 중국인들은 이를 「센첸」으로 발음한다. 경제특구로 지정된 심수를 흔히들 중국의 자본주의 실험창구라고 부르지만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광동성 저아래 변두리 한촌이었던 심수는 11년전에 중국 자본주의실험창구로서가 아니라 그냥 「자본주의 도시」로 지정,개발됐다.홍콩에서 기차로 20여분이면 훌쩍 넘어갈 수 있는 심수는 이제 홍콩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도시가 돼있다. 그렇게 볼때 중국 자본주의 실험창구라면 오히려 그 수도 북경쪽이 더 가깝다. 어쨌거나 짧은 기간 중국대륙을 여행한 끝에 얻은 나름의 결론은 중국이란 참으로 크고 무섭고 이상한 나라라는 것이었다.사회주의 중국이 표방하는 제목과 그 사람들이 연출해내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제목과 내용이 아주 다른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의 거대한 세계사적인 실험을 지켜보고 있다.근1세기전 새로운 세계관으로 등장하여 혁명적변혁을 이룩했던 마르크시즘이 근본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자본주의의 타락과 몰락을 예언하며 자기비판을 강요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독화살이 이제 그 자신에 되돌아가 꽂히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는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자아비판을 공식문서로 채택하고 소련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는 끝났다.그로써 동유럽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경제는 「제도적」으로,그리고 「사실적」으로 종막을 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인식에 혼동을 주는 사회주의 국가가 있다.그게 바로 오늘의 중국이다.제목은 사회주의인데 내용은 무척 자본주의적이다.아니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데도 이것을 인정하는 공식문서는 한장도 없다.오히려 자본주의노선을 걷는 「주자파」는 아직도 공개적으로는 이단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주자파에 대해 모택동이 벌였던 지각변동과도 같았던 대량 말살운동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다시 등장했다.등력군 등 중국공산당내 극좌이론가들은 그 주자파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제2의 문화혁명을 발동해야 할 때가 왔다는 식의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사회과학원의 미래학자 하신은 보다 더 보수적이다.하의이론에 따르면 세계의 자본주의 선진열강은 중국이 그 능력과 위상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앞으로 3년이내에 중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그래서 중국은 이 신제국주의세력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위」의 공식이론과 「아래」의 움직임이 전혀 딴판인게 중국이다.그들 극좌이론가들과는 달리 이붕을 비롯한 전기운 추가화등 당정고위층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손님들과 악수하고 8차 5개년계획을 직접 브리핑하며 중국에 투자하는 나라는 무조건 친구 나라라며 파안대소한다. 북경의 번화가나 천안문 광장은 밤낮없이 인산인해를 이룬다.왕부정 대가의 수없는 상점들에는 온갖 상품들이 지천으로 흘러넘치며 사람들 또한 물결친다.호텔·식당·백화점·극장들에다 자영상점들도 즐비하고 멋쟁이 아가씨들도 많다.저녁시간 북경 TV를 보노라면 한프로그램 앞뒤에 끼여드는 10여가지의 상품선전 광고에 눈이 부실지경이다.개방 중국 수도의한면이다.물론 상해는 더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특구 심수야말로 오늘날 중국의 이중구조­제목과 내용이 다른­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곳이다.심수는 잠안자는 도시다.새벽1시에도 중심가 화문로일대는 대낮같이 밝다.줄지어 늘어선 「가랍OK」(가라오케),무도장·가무청(댄스홀)·야총회(나이트클럽)의 현란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어우러져 불야성을 이룬다.뒷골목들도 이에 지지않는다. 주자의 도시 심수에는 시인민정부(시청)청사가 둘이 있다.제1청사는 정치·행정부서이고 제2청사는 경제개발 계획과 각종기획·투자유치와 집행부서가 들어있다.심수경제의 심장부이기도 한 곳이다. 경제발전과 개발의 모든것을 실무차원에서 지휘하는 「심수시 투자촉진중심」의 부처장인 여국추씨와 심수시 경제개발국 부국장인 이청삼씨는 그래서 그런지 외모부터가 퍽이나 「자본주의적」이다.그들은 모두 놀랍게도 명확한 어조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과 효용성을 지지했고 제품가격결정의 자율성과 경쟁성을 강조한다. 우리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삼성이증자형식으로 참여한 화리전자유한공사의 사장 고래지씨도 마찬가지다.그 역시 경제의 시장성과 가격결정의 자율성및 경쟁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사회주의적 중앙통제에서 오는 기업의 비능률을 거리낌없이 비판한다.고씨는 그러면서 『세계가 사회주의 중국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려면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현재의 고충을 말한다. 천안문광장 건너편 정면에 인민영웅기념비가 있고 그 바로 뒤쪽 일직선상에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화국봉이 2억원이나 되는 국비를 투자해 지은 이 건물 중앙의 넓은 홀에는 오성공기로 하반신이 둘러싸인 모택동의 유해가 안치,공개되고 있다.이 기념관을 참배코자 수십만의 중국인이 뙤약볕아래 도열해 있는 것이다.그들은 「주자」를 박해한 모의 과거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하지도 않을 것이다.다만 무언가 달라지고 보다 잘살면 그것으로 족하고 그래서 「사회주의 중국」의 아버지인 모의 유해에 경배하고 숙연해지는 것이다.그들의 행태에 주자의 요소는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그것이 모순인가 아닌가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중국의 오늘과 우리의 위상등 지난 몇년의 흐름은 우리 북방정책의 당위,나아가 그 불가피성을 말해주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냉철한 인식과 이해위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 달갑잖은 제주 「대권밀담」/김영만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3김을 「정치에 전 사람들」로 부르고 싶다.특별히 나쁜 뜻으로서는 아니다.모든 시간,모든 사물을 정치로서만 의미를 채우고 보려해서다. 제주도에서 벌어지는「대권정국」에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무더위 철에 벌어지는 내년 겨울의 대통령선거이야기가 유권읨들의 신경을 미리부터 곤두세우게 한다.9월에 있을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같은,「통일로 가는 첫 이정표」세우기는 그바람에 남의 일이 됐다.대통령이 되는 일만 빼고 나머지는 가치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이 여름의 정치판은 몰아가고 있다. 신의 땅 제주도.태평양을 바라보고,수십길 단애위에 자리잡은 호텔신라의 풍광은 「좋다!」가 절로 나온다.전문가들의 평을 빌리면 세계 제1의 휴양시설이다.그곳을 무대로 벌어지는 대권이야기는 그러나 시원하지 않다. 제주의 여름정국을 끌어가는 배우깁이 자신들은 휴가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흥미롭다.휴가중에 우연히 만난 사람들끼리 식사를 했을뿐이라는 이야기다. 맞다. 김영삼대표와 김종필최고위원이 식사를 하고나서도 발표한것은 하나도 없다.김대표와 최영철특보,박철언체육청소년장관간의 연쇄회동에서도 발표된것은 없다. 최특보가 말했다해서 파장을 일으킨 내각제와 경선문제도 와전됐다고 해명됐다.언론과 국민만이 흥분했다는 것이 배우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배우들은 계산해서 행동하고 있다.김대표는 고르비와 노태우대통령이 회담했던 호텔신라 사라룸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김최고위원과 회담했다.총선전 대통령후보 결정을 주장해온 김대표가 10일전에 약속해 문까지 걸어 잠근 회담이라면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모두 알만한 이야기다.서울의 측근들은 그의미를 확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김대표 입장에서 후보의 조기확정은 바람직한 일이다.반대로 거기에 제동을 걸려는 발언이나 모임은,다른 계파,민정계나 공화계의 이익에 맞다. 시기적 이익의 상이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대권정국의 조기개전이 여론의 반대편에 있다.설혹 조기전을 금지시킨 대통령의 지시가 특정계파의 시각을 담은 것이라 하더라도,남북한 유엔가입을 맞아 당분간은 통일역량 극대화에 주력해야한다는 말은 명분을 얻고 있다.유엔가입이란 호재가 대통령의 명분을 강화시켜주는 적극적 소재라면 그것은 통치권자가 누릴수 있는 이익일수 밖에 없다. 지역성이 주요 투표결정요소로 작용하는 우리 정치문화는 불행히도 통합개념인 국민보다,지지자가 앞선다.선거가 끝나도 국민이 4당 지지자로 분열,아무일도 못하던 때가 3당통합전이었다. 유권자들은 어쩔 수없이 편가르기를 하면서도 그속으로 자신들이 빠져드는 것을 기실은 싫어한다.지역주의의 포로가 되면서도 정치가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희망한다. 대처수상의 사임에도 그혼란이 하루를 넘기지않는 영국의 정치를,10월말로 다가온 자민당총재선거를 3개월 남겨두고도 조용하기만 한 일본의 정치를 그래서 부러워 한다. 정치의 요체가 국민을 편하게하는 일이라고 정치인들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국민들은 벌써부터 자신들이 대통령선거의 포로가 되기를 싫어한다.그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는 경험을 갖고 있다.시간은 많다. 호텔신라를 올여름만이라도 세계 제1의 휴양지 그대로두었으면 싶다.
  • 「반덤핑관세」 유감/염주영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우리정부가 외국상품에 대해 처음으로 폴리아세탈수지에 부과키로 한 반덤핑관세는 덤핑관세율에서 아무래도 너무 약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덤핑관세란 원래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무역질서를 깨뜨리는 덤핑행위를 「바로 잡는」제재조치라는 의미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4%에 불과한 반덤핑관세를 매겨 1백%를 오르내리는 고율의 덤핑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관세심의위원회가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23일 재무부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다국적기업인 듀폰사와 독일계 미국현지법인인 훽스트셀라니스사,일본의 아사히케미컬등 전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거대기업 관계자들이 바쁘게 들락거렸다.이들 3개사는 모두 폴리아세탈수지를 국내에 덤핑공급한 혐의로 제소당한 기업들이다.미국대사관과 일본대사관의 관계자들도 눈에 띄었다.이들의 관심사는 반덤핑관세율이 어느 수준으로 결정되느냐는 것이었다. 듀폰사의 경우 미통상대표부(USTR)를 앞세워 이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차원의 협의를 요청했음에도 한국정부가 그동안 준사법절차라는 점을 들어 반덤핑관세 부과 방침을 거듭 밝혀왔기 때문에 이날 재무부를 찾은 이들은 잔뜩 긴장하는 모습들 이었다. 그러나 관세심의위가 결정한 반덤핑관세율이 4%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이들의 얼굴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변했다.『걱정을 많이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가볍다』는 것이 이들의 일치된 반응이었다.이들중에는 도리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가 개방화 시대에 합법적인 덤핑규제장치를 처음으로 발동해 국내산업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선 대목은 충분히 평가받을만 하다.그러나 4%에 불과한 반덤핑관세로 이들의 덤핑행위에 대한 「시정효과」가 있을 것인지에는 많은 의문이 간다. 관세심의위의 한 핵심당국자는 이에대해 『칼을 빼들기는 했지만 이를 휘두르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휘두르는 칼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세계 12위권의 무역대국으로 부상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상대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무역 약자의 입장에서는 강자를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그러나 그럴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뒤탈이 없다.시장개방의 확대에 따라 듀폰등의 덤핑행위와 유사한 사안이 앞으로 계속 발생할 것이 분명한데 이번의 반덤핑관세율이 불리한 선례로 남아 우리 스스로의 발목을 붙들어 매는 격이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 “북한TV 일방개방 용의없나”/22일 통일특위(의정중계)

    ◎「독일식 흡수통합」 검토한적 없다/답변/「꽃파는 처녀」 국내공연 허용하라/질문 22일 통일원으로부터 최근 남북관계현황에 관한 보고를 들은 통일특위에서 여야의원들은 지난 15일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대북성명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과 최근 지식층에서 거론되는 흡수통합방식에 커다란 관심을 표시하면서 남북간 인적·물적교류확대문제,유엔가입이후 북한의 동향등에 관해서도 폭넓게 정책질의를 전개했다. ○…먼저 질의에 나선 남재희의원(민자)은 우리측의 7·15대북성명과 이에 대한 답신성격의 북측담화간에는 외견상 많은 공통점이 눈에 띈다고 지적하며 통일원측의 정확한 판단을 요구. 최부총리는 이에 『북측담화는 우리가 수용하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표면에 내세우고 있다』면서 그 구체적인 증거로 ▲모든 불법방북인사의 석방 ▲연북련공지향단체의 대거참여 등을 예시. 남의원은 또 북측이 『이산가족 고향방문 문제는 남측이 적십자실무대표접촉에 성의를 보일 경우 해결될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혁명가극인 「꽃파는 처녀」 때문에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는게 이해가 안된다』면서 현재 실무대표접촉진전의 최대걸림돌로 돼있는 「꽃파는 처녀」의 국내 공연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방향으로 긍정검토해줄 것을 촉구. 남의원은 이어 노태우대통령의 밴쿠버선언은 대북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한뒤 『이제부터는 북측제의 중에서도 받아들일 것은 전격 수용하면서 남북간 결실을 위해 진력하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 이영권의원(신민)은 『남북통일시대를 대비해 헌법과 법률의 정비가 시급하다』며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한뒤 『기업인의 방북은 허용하면서도 정당간의 교류만은 계속 유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추궁. 정몽준의원(민자)은 최근의 진취적인 일부 대북접근세력을 의식,『나무를 보다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며 『남북관계에서는 냉엄한 현실을 무시하거나 정책과 무관한 희망사항이 나열돼서는 곤란하다』고 강조. 정의원은 또 「흡수통일」에 언급,『요즘 식자층에서 동서독통합방식처럼 남한의 북한흡수통합은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정부가 언제 이같은 통합방식을 결정한 적이 있느냐』면서 『몇십년동안 무력적화흡수통일을 준비해온 북한의 현실을 알고 보면 다분히 경제적 우위만을 앞세운 남한주도의 흡수통일발상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며 섣부른 자신감을 경계. 이인제의원(민자)은 독일이 현재 통일후유증을 심하게 앓고있는만큼 우리정부도 통일에 대비한 정치·사회·경제·문화등 모든 분야에서의 사전준비가 필요하다고 역설. 이의원은 또 『독일통일은 동서독간 교류·협력이 계속되고 국제환경변화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지 서독이 흡수통일방식에 입각,일을 추진한 것은 아니다』면서 최근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흡수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남북간 이질감해소를 위해 우리만이라도 북한의 TV등을 일방적으로 개방할 것을 제의. 이의원은 이어 『북한경제의 절대지원국인 중소가 언제부터 경화결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또 이것이 북한사회의 개방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라고 질문. 유기천의원(민자)은 남북한유엔동시가입이후 남북관계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를 묻고 지난해 2만명의 외국인이 북한을 방문한데다 북한도 관광분야의 개방선언을 한만큼 우리정부가 남북관광교류분야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주문. 김덕용의원(민자)은 남북유엔가입과 관련,『북한이 유엔가입을 수용한 것을 전술적 차원의 소극적 변화로 볼게 아니라 「두개의 조선」이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적극적인 변화로 볼수 있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 ○…답변에 나선 최부총리는 『독일이 흡수통합으로 통일된 것은 동독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동독 스스로 통일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을 흡수통합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으며 다만 북한주민이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날수 있는 길을 유도해나갈 방침』이라고 설명. 최부총리는 또 『소련은 현재 대북교역에 있어 경화결제와 함께 우대가격제를 폐지했다』고 전하고 『중국도 경제난 때문에 이같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측에 통보했다』면서 중소의 이러한 움직임이 결국 북한사회개방의 촉진제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 최부총리는 이어 『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수용은 자발적인 의사가 아니라 사정변화에 따른 궁여지책』이라고 분석하고 『그렇더라도 유엔가입을 계기로 평화공존의 기틀을 마련할수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
  • 중진급 외교관 「요지」에 포진/외무부 해외공관장 인사의 의미

    ◎정치적 색채없이 전근무지·언어 중시/“장관진출 전초” 인도에 이정빈씨 임명 눈길/제네바 차석대사엔 통상협상능력을 고려 17일 단행된 해외공관장 및 외무부 본부인사는 주로 해외근무연한인 3년을 채운 대사를 대상으로한 정기인사다. 따라서 별다른 정치적 「색깔」을 찾을 수는 없으며 다만 인도·스페인 등 요지를 포함한 중진급 외교관의 이동이 상당수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인사에서 특히 고려된 원칙은 전근무지역과의 관련성,이력사항,사용가능한 언어권 등이었다는 것이 정부당국자의 설명이다. 외무부 정무차관보로 3년 가까이 근무한 이정빈차관보가 특1급으로 승진하는 동시에 주인도대사로 임명된 것이 우선 눈에 띈다.인도는 노신영 이범석전외무장관등이 거친 곳으로 장래 장·차관을 바라볼 수 있는 「야망의 임지」라는 것이 중론이다.이신임 주인도대사는 당초 이상옥외무장관으로부터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이 개최될 스페인을 권유받았으나 스페인어가 능통하지 못해 인도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방글라데시대사로 발령난지 1년여만에 주일대사관 공사로 임명된 이재춘신임공사는 동북아1과(일본) 과장·주일참사관·아주국장 등을 거친 일본통.오재희주일대사가 그의 경력과 함께 화합능력을 높이사 함께 근무하기를 강력히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성오외무부문화협력국장도 주일대사관근무경력 등으로 주일공사에 거론되기도 했으나 본인이 방글라데시대사를 강력히 희망했다. 주제네바차석대사와 신설된 GATT담당대사를 겸임하게 된 김삼훈외무부통상국장은 탁월한 협상능력을 가진데다 관련 경제부처간 원활한 의견조정을 위해 막판에 결정됐다.제네바대표부의 대부분 업무가 GATT와 관련된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박수길제네바대사와의 역할분담이 주목된다. 강웅식신임 주과테말라대사는 사기진작 차원에서 예상보다 빨리 대사로 임명된 케이스.미주국 심의관을 지낸 강대사는 미국·캐나다 등 북미지역을 미주국장이 주로 맡은 반면 중남미지역을 도맡아 담당했기 때문에 인사상의 배려도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특1급의 군출신 대사인윤영엽·한철수·박로영·홍순용대사등은 당초 정년으로 은퇴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으나 각각 뉴질랜드·브라질·대만·아랍에미리트연합(UAE)대사에 임명. 이승곤신임외무부기획관리실장(직무대리)은 원래 제1차관보 후보로 올랐으나 지역적인 안배로 기획관리실장을 맡게 됐다.경북이 고향인 이실장이 1차관보가 될 경우 이장관(경북)·유종하차관(경북)에 이어 대구·경북지역출신이 포진하게 되기 때문.
  • 민자 각계파 수면하모임 활발

    ◎소그룹서 보스들까지 잦은 회동/후계구도 관련,당내파장에 관심/참석자들은 부인하지만 결속·이해조정 움직임 최근 민자당내에서 계보별모임및 초계파성 회합이 끊이지않고 있어 이들 모임이 향후 여권의 후계구도 정리등과 관련한 당내기류에 어떤 파장을 던질지 정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정·공화계의 관리자·중진등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최근 일련의 모임은 특히 지난주초 국회 대정부질문때 민정·공화계일부 의원들의 세대교체론,내각제개헌론제기와 11일 노태우대통령의 정치일정논쟁중지지시에 이어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모임참석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향후 정치일정 마련등과 관련,수면아래에서 각계파가 의중을 탐색하고 이해조정을 시도하는 자리가 됐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지난 주말부터 눈에 띄었던 모임은 민정계관리자인 박태준최고위원주재로 14일 안산제일컨트리클럽에서 이뤄진 민정계8인중진 골프회동과 13일저녁 공화계의 김종필최고위원중심의 대전·충남출신의원모임을 비롯,김윤환사무총장자택에서 14일 저녁 이뤄진 당내외 4·19세대의원모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모임자중 민정계8인 모임에는 김윤환사무총장,이종찬·이춘구·이한동·이자헌·심명보의원과 박철언체육청소년부장관등 민정계중진들이 참석,민정계의 단합문제를 집중 거론. 특히 이날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은 대권후보결정에 대해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있는 민정계내 소그룹의 리더격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아니라 이들이 향후 정치일정과 관련,모종의 입장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주목.그러나 이날 참석의원들은 당내 타계파,특히 민주계의 반응을 의식한 탓인지 『정치적인 현안과 관련한 특별한 논의는 없었다』며 구체적인 대화내용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 이날 2개팀으로 나눠 가진 골프회동에는 박최고위원은 이종찬·이자헌·심명보의원과 한팀을 이뤘고 김윤환총장·박철언장관·이한동·이춘구의원이 다른 한팀을 구성했는데 김총장팀 멤버는 대체로 최근 김총장이 친YS경향을 보이는데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노출했던 인물들로 짜여져 이와 관련한 의견교환이 있을것이란 관측이 우세. 이날 회동이 끝난뒤 박최고위원은 『앞으로도 자주 만나기로 했다』고 말해 정례적 회합을 통해 민정계 행동통일 방안등을 모색할 것임을 시사. 이날 모임을 추진했던 박최고위원등 참석자들의 일부는 5시간여의 골프를 끝낸뒤 기자들을 피해 곧바로 서울시내 모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2차회동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도 14대총선및 전당대회시기·방법등 정국현안과 관련된 의견교환이 깊숙하게 이뤄졌으나 특별한 결론은 없고 민주계등 타계파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행동방향을 재론키로 입장을 정리했다는 후문. 또 이날 저녁 김총장자택에서있은 4·19세대모임에는 이치호 안병령의원 등 민정계 의원외에 박관용(민주계)·서석재의원(무소속)등 친YS 멤버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는데 김총장은 지난12일 청와대 당무보고때 노대통령과 나눈 대화내용 등을 소개하면서 계파를 초월한 당의 결속을 부탁. 김총장은 이날 모임에서 최근 정치일정 논의,내각제·세대교체 등의 논쟁이 가속화될 경우 자칫 여권의 분열을 노리는 신민당의 전술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같은 논쟁을 더 이상 계속하지 말도록 강조한 노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소 그룹별 모임과는 별도로 김영삼대표최고위원과 김종필 박태준최고위원등 각계파 보스들이 자파계보원들에 대한 관리뿐아니라 타계파 의원들과의 독대등을 통해 「교분」의 폭을 넓히고 있고 각계파 중간보스들에 의한 범계파적 교류도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어 계파별 세결집움직임은 한층더 빨라질 전망이다. 또 후계결정방법등과 관련,일찌감치 자유경선을 내세우며 「신정치그룹」이라는 민정계 일부중진의원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이종찬의원은 광역선거이후 초·재선의원 그룹과 호남지역 원외지구당위원장등 원외인사들과 활발한 접촉을 갖고 지지기반 확산을 시도하고 있고 이춘구 이한동의원등도 자신들의 세를 바탕으로 영향력확대를 기도하고 있어 향후 이들의 거취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당내 소그룹별 모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오는 정기국회 후반 정도까지는 계파별충돌및 갈등의 노출보다는 「언젠가」 본격화될 후계구도 결정논의 등과 관련해 장기적으로 계파내 소그룹간 또는 계보간연합 등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물밑대화도 활발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차기대권주자와 관련,대세론을 폈던 민주계나 민정·공화계 모두 노대통령이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현상황에서는 섣불리 자신의 카드를 내보여 집중포화를 받기보다는 세를 축적하며 때를 기다려야한다는 동상이몽식의 공동인식을 갖고 있다는게 당주변의 해석이다. 특히 노대통령이 지난11일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과의 주례회동에서 정치일정논쟁중지를 지시한 것과 관련,각계파가 서로 아전인수격의 자파에 유리한 해석을 하고 있어 계파간 「세력균형」의 모습은 한동안 더 지속될 전망이다.
  • 성급한 대남아공 「면죄부」/강석진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지난 86년 그러니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정책이 요지부동으로 흑인을 옭아매고 있던 시절 남아공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았다.주로 도시거주 백인층에서 발발한 자살은 인구 10만명당 30명꼴로 헝가리의 35명 다음이었다. 백인들이 자살하는 뒷면에서 흑인들은 성인남자 10명 가운데 1명꼴로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고 있었다.이것은 물론 인종차별정책이 백인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공포감과 긴장을,흑인에게는 자아상실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6·25 참전국의 하나이기도 한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은 그 뿌리가 백인의 아프리카 이주시기에까지 닿아 있다.네덜란드에서 이주해온 보어인들은 원주민의 토지를 약탈하고 캘빈주의에 입각한 노예소유자의 사회를 만들려고 했다.1차대전후에는 국민당과 노동당의 연립정부하에서 노골적인 인종차별법이 제정됐다.2차대전후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흑인의 거주지역을 제한하는 거주지역법(50년),인종간 통혼을 막는 반도덕법(50년),흑인들의 고등교육을 제한하는 반투교육법(53년),아예 흑인들을 황무지로 내쫓아 버리려는 반투자치법(59년)을 제정,인종차별정책을 빈틈없이 펴나갔다. 인구의 16.5%에 불과한 백인들의 이익을 위해 조상 대대로 그 땅에 살아온 흑인과 유색인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려는 백인들은 심지어 자신들을 「아프리카너」라고 부르고 정작 아프리카인인 흑인들은 「반투」(Bantu)라고 부르며 흑인들을 이방인처럼 대했다. 인종차별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려던 그들이 89년부터는 통혼금지법 거주지역법등 거의 대부분의 인종차별법을 폐지하는등 인종차별의 빗장을 스스로 벗기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지도하에 흑인들의 항거가 꾸준했고 백인들도 안팎의 압력으로 인한 침체된 경제·사회적 분위기를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작가 박범신씨는 남아공 기행문에서 최대의 도시 요하네스버그가 낮이면 백인들의 천국이다가 밤이면 텅빈 어둡고 우울한 흑인부랑아의 도시가 된다며 낮과 밤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도시는 처음 보았다고 쓰고 있다. 빗장을 푼 또 한가지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국제사회의 압력이었다.남아공은 70년 IOC로부터 쫓겨나고 86년 미국으로부터는 반아파르트헤이트법에 따라 경제제재를 당했다.유엔은 76년부터 무려 3번이나 인종차별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같은 국제적인 압력이 9일 IOC의 재가입 승인과 10일 미국의 제재조치 해제로 모두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미국의 결정은 남아공의 자원과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서방국가들로하여금 뒤를 잇게 만들 것이다. 아직도 흑인들은 정치적으로는 투표권이 없고,사회적으로는 문맹률이 50%를 웃돌고,경제적으로는 80%의 흑인과 혼혈인들이 경제력의 30%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 “살기좋은 내고장”… 소시민의 꿈 펴라/이근배 시조시인

    ◎서울시의회 개원 참관기 한동안 잠들었던 태평로에 때 아닌 봄을 만난 듯 민주주의의 부활제가 열리고 있었다.비가 흠뻑 내린 탓인가 민주주의 중에서도 약이 될 것 같은 풀뿌리민주주의가 30년만에 심어지는 날이다. 풀뿌리 중에도 으뜸인 산삼은 나이가 들수록 값이 나간다더니 민주주의도 산삼흉내를 내고 싶은 것인지 한두해도 아니고 30년씩이나 잠을 자다가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특별시의회」의 문패는 태평로에 있는 옛날 국회의사당에 올려지고 있었다.현판식이 있은 다음 곧바로 개원식은 진행되었다. 방청석에 앉아있노라니 이 나라 헌정 반세기의 역사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자유당의 사사오입 개헌,4·19,5·16,제3공화국의 3선개헌,10월 유신,그리고 신민당 총재 경선 때 각목싸움도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었다. 그 영욕의 때를 씻고 세종문화회관별관의 설움도 벗고 이제 다시 의회민주주의의 전당으로 되살아난 것이다.그러나 30년간 기다린 목마름에 비해 그토록 부르짖던 민주화의 마무리작업이라던 구호에 비해 서울특별시의회의첫날은 흔히 맛볼 수 있는 짜릿한 긴장감이 없었다. 왜 그럴까.여당인 민자당소속 의원이 총1백32석 가운데 1백10석이나 차지한 때문일까.사실 지방자치제 실시를 놓고 여야는 오랫동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었다.기초의회에서는 정당 공천을 배제하고 광역의회에서는 정당공천을 허용하는 등 선거법 협상에서 부터 난맥상을 이룬 것이 여야가 당리당략 때문에 적잖이 신경을 썼음을 말해준다. 선거 때마다 여촌야도현상은 어김없이 나타났고 여당은 도시 공포증마저 가지고 있었다.그런데 이번 시·도의회 선거에서 국민들은 뜻밖의 투표성향을 보인 것이다.만년 야당을 찍던 서울시민들이 여당에 표를 던졌고 민자당을 84%나 당선시키는 이변을 낳은 것이다. 야당이 놀란 것은 말 할 것도 없겠지만 여당이 스스로 눈을 의심할 정도였으니 땅밑에 잠들었던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화산처럼 폭발한 것이다.그 결과 서울특별시만 해도 1당의회가 된 셈이었고 의장 선출에서부터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밖에 없었다. 그러나 1당의회라고 해서,선거에서 당선된 의원이라고 해서 등뒤에 꽂혀있는 시민의 눈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저 고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시민 대표들이 도자기 조각에 투표를 해서 참주를 쫓아냈던 도편추방이 민주주의의 기원이라는 것도 새겨둘 일이다. 서울의 1천만 시민들은 언제든지 참주를 쫓아낼 수 있는 도편을 가지고 있다.그 참주는 의원 하나일 수도 있고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정당일 수도 있다.이번 시 의회선거에서 국민들이 어떤 참주룰 쫓아 낸 것이라면 다음 선거에는 또 다른 참주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먼 그리스에서 찾을 것도 없다.우리나라도 2천년전에 이미 화백제도가 있었다.신라 6촌부족의 어른들이 모여서 나라일을 의논하지 않았던가.서울특별시 의회의원들은 모두가 10만 선양들이다.비록 국회와같은 권한은 아니더라도 조례의 제정·개정·예산결산의 승인 등 시정살림을 의논 결정하는 작은 국회인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3년후면 서울정도 6백년을 맞게 된다.경제발전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고 서울올림픽으로 지구촌하늘 드높이 문화서울을 띄워 올렸었다.그렇다.이제 민주주의를 그것도 산삼처럼 30년씩이나 묵힌 풀뿌리 민주주의를 하게된 마당에는 그 산삼의 힘으로 멋지게 문화서울을 꽃피워야 하지 않겠는가. 공기 맑고,물 깨끗하고 교통편리한 속에서 내집을 가지는 행복….서민들은 이런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꿈의 실현을 이날 개원하는 지방의회에 걸어보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지금 막 문을 연 서울특별시의회,그리고 각 시·도의회가 할일이며 유권자들이 찍어준 한 표의 의미를 바로 아는 일이다.
  • 아태 새시대의 구도 확고히/노 대통령의 방미·가 등정에 부쳐

    ◎「비핵적 안보협력」 구체화 기대 오늘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과 캐나다의 공식방문 길에 오른다. 이번 방문은 비록 정상간에 긴급히 다루어야 할 현안문제들이 없고 극적인 합의문의 발표 같은 것이 예상되지 않는다 하더라도,최근의 세계와 한반도 주변에서 일고 있는 엄청난 변화에 비추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동안 한미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과 갈등을 겪어온 게 사실이다. 북방외교의 추진과 한소수교는 물론이거니와 한중관계,미·북한관계,그리고 일·북한수교교섭 등 일련의 사태들이 한반도 역학 관계의 기본구도를 바꾸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마찰과 시장개방 등의 쌍무적 문제들도 두 나라 관계에서 긴장과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7월2일에 있을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두 나라 관계의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는 구체적 의제들이 논의되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냉전시대가 물러나고 새로운 국제정치질서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다가오는 21세기를 바라보면서 한미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해야 하는가 라는 보다근본적이며 철학적인 문제들이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탈냉전의 오늘의 시각에서 볼 때 한미관계가 새로운 바탕 위에 위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한국의 국제적 지위도 세계의 12대 교역국으로 부상했으며 미국 역시 냉전체제의 붕괴에 따라 세계전략과 아시아 정책을 수정하고 있는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 스스로도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기본노선의 변화를 전제한 예비적 조치들을 가시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조선이라는,남북한 관계개선을 가로 막아온 최대의 걸림돌이 사실상 제거되고 있으며 오랜 진통 끝에 유엔가입을 결정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의 남북관계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도 짙어졌다. 이렇게 볼 때 한미정상회담은 한반도 주변에서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정착되는 과정에서 두 나라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최근 지상에 보도되고 있는 미국과 북한간의 정치관계개선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도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은 북한의 대외정책과 대남전략이 그 숱한 허구와 위선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공동인식이 확고하게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 가능성에 관해서는 그것이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 아래 이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노력의 구체적 내용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두 정상은 미국의 대한반도 핵정책에 관래서도 보다 진보적 조치들을 검토해야 한다. 핵무기의 존재를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는 미국정부의 입장은 이미 비현실적이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따라서 한미정상들은 핵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는 안보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특히 핵무기 철수를 둘러싸고 한국정부를 제쳐놓은 채 미국과 북한이 비밀접촉을 벌이는 사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한미안보협력이 비핵적 수단에 의존할 수도 있다는 구상이 한국측의 주도에 따라 한미간에 합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남북한간에 정치적 신뢰가 조성되고 군비통제를 통해 군사긴장을 줄이는 평화정착의 청사진에 대한 합의도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한미 양국은 각별한 우호선린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해 온 특수관계를 갖고 있다. 단순한 안보차원을 넘어 정치·사회·문화의 각 분야에 걸쳐 비슷한 이상을 추구하는 가치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이같은 특수관계는 탈냉전의 시대에서도 더욱 더 그 중요성이 제고될 것이다. 과거의 질서가 깨어지고 새로운 질서가 채 정착되지 못한 오늘의 전환기적 성격 때문에 한미관계가 갖는 중요성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원화시대를 맞아 한반도에서 냉전의 벽을 허물고 동북아의 주역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역시 한미관계가 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이제 한반도와 동북아의 차원을 넘어 아시아·태평양지역과 나아가서 세계무대에서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중요한 책임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도 아태지역국가로서 이 지역의 미래에 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들 3개국이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아태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고 단합하는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탈냉전의 혼란과 불확실이 제거되고 새 질서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국가원수의 국빈방문 형식으로는 26년 만에 처음인 노 대통령의 방미와 캐나다 방문이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한반도와 아태지역에서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 “빈사의 증시” 점진적 활성화 겨냥/부양책 전격발표의 배경

    ◎“반짝 대책”보다 시장여건 개선에 역점/할인율등 자율화로 주식수요도 창출 13일 전격 발표된 증시부양대책은 증시환경 및 증권제도의 개선을 통해 주식에 대한 수요를 진작·창출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따라서 공급억제위주의 지난해 대책들에 비해 능동적인 자세가 엿보이지만 직접적인 자금지원 대신 제도개선의 간접전략이란 한계도 눈에 뛴다. 투자자들의 기대에는 미흡할 수도 있으나 통화 등과 관련된 전체 국민경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당국의 고심이 짚어지는 대목이다. 최근 증시의 문제점은 주식물량이 넘쳐서라기보다는 주식을 사자거나 주식투자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급격히 감소한 데 있다. 시중자금이 딴곳으로만 흘러갈 뿐 증시를 고집스레 외면하고 있는데 이번 방안을 우선 유상증자제도를 고쳐 주식수요를 늘려 증시로의 자금유입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도 시가보다 30% 싼 가격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에 응하지 않는 기존주주가 태반이다. 할인율 자율화는 현 상황에서는 할인폭의 대폭적인 확대로 통하며 여기에서 주식수요를 끌어내보겠다는 것이다. 시가보다 아주 싸 액면가 5천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주식을 보탤 수 있을 때 기존주주들의 증자호응도가 제고되면서 이 같은 혜택을 누리기 위해 주식을 새로 사는 사람이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같은 유상증자 시가발행 할인율의 자율화는 주식수요 진작과 함께 직접금융 조달액의 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채 방식보다 발행비용이 훨씬 덜 드는 유상증자는 올 들어 89년도 실적의 10분의1 수준으로 격감,증시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켰다. 금융기관의 유가증권 담보대출 활성화 방안도 주식수요진작을 위해 마련되었다. 부동산 담보와 마찬가지로 주식 등 유가증권을 담보로 제공할 경우 금융기관에서 이를 취급하도록 하겠다는 방안이다. 유가증권 담보여신은 이미 규정으로 보장받고 있지만 관행상 활용되지 못해 왔다. 그러나 유가증권의 담보가격을 시가의 50% 수준으로 낮추고 은행감독원과 보험감독원의 협조를 얻어 이를 활성화,유가증권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킨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수요진작책과함께 증권사의 기관투자가 기능제고와 대주주의 매각억제를 통한 시장안정화대책도 병행실시된다. 투자자들이 바라는 기관투자가에 대한 주식매입자금의 직접지원은 못하지만 교환사채발행 허용을 통해 증권사의 자금난을 타개 기관투자가로서의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방안이다. 증권사는 4조8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종전의 부양책 일환으로 사들이는 바람에 자금이 없어 장세개입이 불가능해진 가운데 고금리의 단기차입금만 급증하고 있는 처지이다. 교환사채발행으로 증권사에 1조원 가량의 자금이 유입되면 단기차입금이 축소되면서 이들의 주식매입여력이 대폭 신장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대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시가발행할인율의 자율화와 증권사에 대한 교환사채 발행 허용은 증시부양효과 못지않게 부작용도 수반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가발행 자율화의 경우 기업조달자금이 감소될 수도 있으며 시세차익이 큰 만큼 내부자 거래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증권사의 교환사채는 채권이 하나 더 추가돼 시중자금 사정을 더욱 압박하게 된다는우려를 낳고 있다. 또 이번 대책에 포함된 공모가격 결정합리화,자본시장 개방계획 조기확정,대주주에 대한 주식매각 자제요청 등은 이미 시행하고 있거나 거론된 것이란 비판도 있다. 그러나 증권당국 관계자들은 이번의 증시대책은 표면적인 한계에도 불구,단기적인 부양책 위주에서 증시주변 환경개선을 통한 중·장기적 방침으로의 전환의지가 뚜렷이 담겨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에 마련된 안이 모두 주식매입자금을 직접적으로 공급하는 단기부양책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시장여건이 개선되도록 하는 본격 대책의 서장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이번 방안은 지난 4일 박종석 증권감독원장이 증권업협회의 의견을 참고한 뒤 이용만 재무장관을 방문,증시안정대책 마련을 건의하면서 골격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때 이 장관과 박 원장은 「12·12 부양조치」와 같은 단기부양책을 써서는 절대 안 된다는 원칙에 쉽게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 「평화의 거리」를 만들어내자(사설)

    서울 중구의회가 12일 가결공포한 명동 「평화의 거리」 선언은 여러 측면에서 그 의의가 깊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우선 신선감을 준다. 광역의회선거 과정이 혼탁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터에,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의회라는 게 있기는 있어야겠구나라는 감각을 갖게 하는 것은 우리의 민주화 걸음마에 큰 기여를 하는 셈이다. 명동이 「평화의 거리」가 되어야 하겠다는 사안의 주제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명백한 우리의 의사이다. 지난 80년대 내내 우리는 이 이야기를 해왔었다. 특히 6공화국이 시작되면서 명동의 회복과 재창조를 간절히 바랐었다. 명동은 서울의 한 동네가 아니라 이 나라의 가장 밝고 활달함을 상징하는 이미지의 중심이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곳이 바로 파리의 샹젤리제로 비유되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과정에서 명동성당은 국민의 자유 확립을 위해 한 종교를 초월한 양심의 거점으로 자리잡았고,이 상징적 가치의 이미지를 하나 더 명동에 보태었다. 따라서 한국인 삶의 가장 값진 이성적이며 동시에 감성적인 장소가 되어 있다. 이 장을 아직도 우리가 가장 살기 힘든 곳으로 되돌리고 있다는 풍경 만큼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실질문제로서도 마찬가지다. 수천에 이르는 명동상가의 상인들이 구체적으로 받고 있는 생계의 난처함이 두드러져 있다. 뿐만 아니라 4대문 안 도심의 전체가 몇시간씩 교통정체를 일으킴으로써 영향을 받게 되는 그 많은 시민의 에너지 낭비와 시간의 유실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경제적 핍박으로 보아 무방하다. 그렇다면 시위가 얻어내고자 하는 실질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런 시위를 위해 명동을 내주면서 시민이 같이 세월을 보내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굳이 따질 것도 없이 우리는 이제 성숙의 단계로 가야 할 때에 있다. 사람이나 사회가 성숙했다는 것은 심리학의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도,자신의 앞에 당도한 보다 많은 문제들을 함께 인지할 뿐 아니라 그 모든 문제들간에 보다 안정된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무엇보다 오늘의 시위논리들은 우선 자신의 단순한주장 이외에는 어떠한 문제들과도 대면하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그저 미성숙 단계만을 표출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 미성숙 단계에서 또 성인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것은 더욱 미숙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중구의회의 결의가 지금 주민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또 한편 이러한 결정이 어느 정도 시위에 억제효과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의아심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의 관습도 벗어나야 할 때라고 말해야 한다. 결의는 시행이 되어야 하고,따라서 마땅히 변화시킬 것에 대한 실질적 변화의 규칙들도 더 추가해 만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살 만한 삶의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제에 있어 정치적 제도나 정치적 인물들의 면면이 아니다. 우선 내가 서 있는 지점이 실질적으로 인간화돼야 한다. 생계가 묵살당하고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거리조차 없는 곳에 어떠한 운동도 설득력을 가질 수는 더욱 없는 것이다. 이제는 우선 「평화의 거리」를 만들어 내자.
  • 전통가족제도 무너진 「북녘」/「오늘의 북한」 책자로 본 사회상

    ◎친족 6촌 이내로 한정… 핵가족화 확산/“봉건잔재” 호적제 폐지… 「공민증제」 도입/재산상속·전통제례 소멸… 주택 국가소유원칙 철저 교육부가 최근 일선학교 교사들의 북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펴낸 「오늘의 북한」이라는 책자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교육용 참고도서는 분단 이후 교육부가 처음 발간한 것으로 지난해 12월 통일원과 민족통일중앙협의회에서 따로 펴낸 「북한개요」와 「방문자를 위한 북한 북한편람」 등을 참고해 만들어졌다. 1백88쪽짜리인 이 책자는 북한의 인구와 행정구역 등 일반현황 말고도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교육·체육·외교·군사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부록으로는 ▲남북한의 통일정책 비교 ▲북한의 특수용어 해설 ▲남북한 생활언어의 차이 ▲북한의 헌법 등을 싣고 있다. 북한주민들의 실생활을 알 수 있는 주요 내용들을 간추려 본다. ▷가정생활◁ 조상으로 이어져온 전통적 가족제도를 타파하고 「사회주의화」 하는 제도적 조치의 첫단계로서 호적제도를 혈연과 문벌을 상징하는 봉건적 제도라 하여 없애는 대신 지난 46년부터 신분등록제도인 「공민증」제도를 실시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17살 이상의 개개 가족 성원은 가족단위로부터 독립된 존재로서의 법적지위를 부여받았으며 친족의 범위는 6촌으로 한정하고 있다. 특히 소유의 사회화 정책에 따른 재산상속세의 소멸은 전통적 가족제도에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왔다. 재산의 사회화,국유화조치는 가족제도의 물질적 기반을 소멸시켰고 친족집단의 성원들을 각 지역으로 분산,이주시키는 계기가 됐다. 가족의 범위는 2대에 국한된 핵가족화현상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60년대까지만 해도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출산을 장려했으나 70년대 초부터는 산아제한을 권장해 현재는 1가구에 4∼5명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식주생활◁ 60년대까지는 「천리마시대」의 생활양식을 준수할 것을 강조해 남자는 인민복(레닌복)과 노동복,여자는 흰저고리에 검정치마의 한복으로 단조롭고 획일적인 것 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성의상의 경우,종래 감색이나 녹색계통의 어두운 색상에서 벽돌색,분홍색 등 비교적 화려한 색상과 신체의 일부를 노출시키는 의상도 두드러지게 눈에 띄고 있다. 지난 57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식량배급제」는 대상자의 직급과 거주지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으며 배급기준은 연령과 노동력의 공여정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잡곡과 쌀의 혼합비율도 평양은 7 대 3,지방은 8 대 2나 9 대 1로 차등을 두어 평양시민이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농민들은 그러나 배급제로 식량을 분배받지 않고 협동농장의 연말결산을 할 때 도시노동자의 식량배급량에 상당하는 1년치의 식량을 현물로 할당받게 된다. 이 때문에 북한주민들이 여행을 하거나 친척집 등을 방문할 때는 「량표」라고도 불리는 「양권」을 반드시 지참하고 다녀야 한다. 출장용 양권은 여행도중 식당이나 여관에 투숙할 때 사용되며 열차 안에서 도시락(곽밥)을 사먹으려면 양권과 「철도 밥표」를 함께 내야 한다. 북한의 모든 주택은 국가의 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택에 대한 개인의 소유는 물론 개인에 의한 주택의 건축도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규격화되어 있는 각 등급의 독립가옥이나 아파트 등을 신분등급에 따라 국가로부터 임대형식으로 배정받아 사용하고 있다. 공급되는 주택형은 대개 정무원의 부부장급(차관급) 이상 고급간부 등이 거주하는 특호부터 말단 근로자와 협동농장원에게 배정되는 1호 주택에 이르기까지 5단계로 구분된다. ▷결혼◁ 46년 공포된 남녀평등법에 혼인적량을 남자 18살,여자 17살로 규정하고 있으나 70년대 말까지 실제 결혼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나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여자의 경우 23∼24세,남자의 경우 27∼28세로 다소 낮추어 결혼하는 것이 보통이다. 결혼상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배우자의 성분으로 당원의 인기는 매우 높은 편이다. 가장 인기있는 결혼상대로는 당고위직·전문직·군인이 선호되지만 최근에는 비행사·기관사·열차승무원·운전사·요리사·도시총각(특히 평양시민)도 큰 환영을 받고 있다. ▷이혼절차◁ 정권수립 초기에는 합의에 의한 이혼이 가능하였지만 56년 합의에 의한 이혼제가 폐지됨에 따라 재판에 의해서만 이혼을 허용하는 내각결정을 채택하게 됐다. 이혼은 관할 재판소에 재판을 청구,그 판결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일반적으로 남자가 이혼을 원할 경우에는 이루어지기가 어려우나 여자가 원하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때 자녀의 양육문제는 이혼당시의 합의에 따라 부인이 자녀를 양육할 경우 남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양육비를 지불하며 양육비는 월급에서 자동공제된다. ▷제례◁ 전통적인 제례를 미신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조상숭배를 복고주의적 병폐와 봉건적 잔재라고 비판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제사는 공식적으로 없어졌다. 그러나 탈상 때까지는 매년 사망일에 제사를 지내며 집안에 노인이 있는 경우 계속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 이질성 극복의 몸부림… 이기백특파원 현지보고/통일이후의 독일:7

    ◎“이젠 초강국”… 국제역할 확대 추구/“나토역외 파병 규제 불필요” 공식 거론/“안보리 제6상임이사국 돼야” 주장도 통일을 계기로 중부유럽의 강대국으로 모습을 드러낸 독일에 대해 인접국가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독일의 국제적인 역할과 영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걸프전 기간 동안 전투병력을 파병하지 못하고 「돈주머니」 역할만 했던 독일은 걸프전이 끝난 뒤 기뢰제거 목적의 소해병력과 장비를 투입하게 된 것을 계기로 분쟁지역에 병력을 직접 파병,국력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세를 얻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통독의 위상을 결정한 모스크바조약에 따라 ABC무기(원자·세균·화학)를 제조·보유하지 못하고 병력을 37만명밖에 유지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협약에 의거,독일군대는 역내의 작전에만 참가하도록 돼 있는 등 운신에 제한을 받아왔다. 그러나 통일이 되자 각 정당에서 초강국으로 등장한 독일이 세계평화 유지에 기여할 수있는 역할이 극히 제한받고 있는 현재의 모순을 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걸프전을 전후해 수면 위로 부상한 독일군대의 나토지역 밖으로의 파병에 대해 집권 연정인 기민당(CDU)·기사당(CSU)·자민당(FDP)은 물론 야당인 사민당(SPD)까지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은 최근의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지난 5월초 게르하르트 슈톨텐베르크 국방장관이 걸프해역에서 작전중인 독일 소해정부대를 방문한 데 이어 이란을 방문했던 콜 총리가 역시 독일 파견 부대를 사열한 사실은 통일독일이 앞으로 세계분쟁지역의 질서회복을 위해 나토역외까지 전투병력을 파견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물론 걸프해역에서의 기뢰제거작업은 전후 마무리를 위한 평화적 목적이라는 점에서 거대 독일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는 이웃 국가들에 의해서도 양해가 됐지만 나토역외로 독일 함정과 병력이 출동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크다. 즉 나토조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독일 국방정책의 한계를 시험하는 케이스가 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루펠트 숄츠 전 국방장관은 소해병력의 걸프 파견과 관련,『독일 국방정책의 점진적인 변화』라고 표현했으며 야당인 SPD도 파견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유엔의 깃발 아래 평화적인 임무수행에만 독일 병력이 동원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집권 연정인 CDU와 CSU도 『이제 SPD가 나서 독일군의 해외파병을 결정할 때』라고 밝히고 『걸프전의 경우에서 보듯 헌법에 저촉됨이 없이 독일이 세계분쟁에 직접 개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인다』고 말했다. 야당인 SPD의 대부이며 총리를 역임한 브란트도 독일이 NATO지역 밖에 유엔평화군으로 참여하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브란트 전 총리 등 당 중진들은 최근 SPD가 집권했던 1973년 독일이 유엔에 가입할 때 유엔헌장을 준수한다고 서약한만큼 독일이 안보리의 결정에 따라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투병력을 파병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콜 총리와 FDP의 겐셔 외무장관은 이같은 기류변화에따라 헌법의 개정 없는 독일군의 해외파병에 반대해온 종래의 입장에서 후퇴,SPD내 파병 반대파와의 공감대 형성에 노력하고 있다. 평소 유연한 태도를 보여온 겐셔 외무장관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독일 전투병력의 걸프지역 파병을 완강한 태도로 반대해왔지만 최근에는 입장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의 정치적인 후계자로 지목받고 있는 크라우스 킨켈 법무장관은 최근 유엔헌장에 따른 독일군의 해외파병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히고 걸프전을 예로 들며 독일은 당연히 병력을 파견했어야 했다고 강조,눈길을 끌었다. 독일이 지난해 10월 통일될 당시만 해도 정치권과 여론은 독일군의 NATO지역 이외로의 파견은 생각지 못할 정도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최근에는 비록 「유엔군의 일원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폭넓은 파병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앞으로의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또 브란트 전 총리를 포함한 일부 정치권에서는 독일이 통일이 된만큼 유엔 안보이사회의 6번째 상임이사국이 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어 정말 독일이 탄탄한 국력을 배경으로 국제사회에서 초강대국으로 다시 올라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주변국에 안겨주고 있다. 더욱이 미국도 독일과 일본의 해외파병에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 통일독일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의 깃발 아래 직접 나서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콜 총리는 세계질서 유지 활동에서 독일의 임무가 증대되는 것을 경계의 눈으로 보는 이웃 국가들의 의구심을 배제하기 위해 과거보다 더욱 유럽합중국의 건설을 강조하며 군사력의 증강을 제한한 모스크바조약의 준수를 다짐하고 있다. 즉 정치·경제·통화통합의 실현을 통해 독일의 독자적인 행동과 결정의 가능성을 덜어냄으로써 과거와 같은 유럽 제패의 재판을 막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관측통들은 지난해 2+4의 합의에 따라 독일이 군축을 추진하는 모양세는 갖추고 있지만 군사강국으로의 재부상 가능성에 대한 주위의 우려를 떨쳐버릴 만큼 확고한신뢰는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남북 유엔정책 수정은 대남정책 변화 아니다”/최 통일원 간담

    최호중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은 30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결정으로 장기적인 측면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기본틀을 마련된 것은 분명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결실이 거둬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중단상태에 놓인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의 재개여부는 전적으로 개최측인 북한의 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따라서 『우리 정부는 앞으로 제4차 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북한측에 촉구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나 그 시기를 못박아 제의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또 『북한의 유엔정책 변화와 대남정책 변화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며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반국가단체 규정삭제 등 국가보안법의 폐지문제는 거론할 단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최 부총리는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으로 고위급회담이 재개될 경우 북한이 제의해 온 불가침선언 채택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안전보장장치가 선결되고 채택에 따른 실효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우리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이어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통일관계장관회의를 오는 6월5일 열어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외·대북정책의 추진방향 등을 폭넓게 협의할 계획이라며 이번 회의에서 남북 관계개선의 분위기를 호전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들이 모색될 것이라고 밝혔다.
  • “열리는 자본시장”… 핫머니 유입 저지 부심

    ◎“충격 최소화”… 준비작업 심층 점검 은행·증권·외환 등 금융분야에 대한 개방의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거대한 자본력과 선진 금융기법을 갖춘 미·일 등 외국계 은행과 증권사들이 국내시장에 밀려들어오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과 한·미금융정책회의 등 쌍무간·다자간 국제회의를 통한 개방압력도 만만치 않다. 이제 금융개방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불가피한 대세가 되고 있다. 개방에는 위험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이익도 있을 수 있다. 무역규모의 확대와 기업의 해외진출 확대 등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진전된 실물경제의 국제화에 부응할 수 있고 기업의 해외자금 조달이나 금융기관의 체질강화를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국제화·개방화시대를 맞고 있는 국내 금융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향후의 개방 추진계획과 그에 따른 영향 및 대응책 등을 조명해본다. ◎외국인 투자한도 종목당 15%로/금리안정때까지 채권부문 유보/기업의 재원 조달 쉬워지는등 이점도 자본시장의 개방은 상품 및 서비스시장의 개방과 함께 국민경제의 대외개방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후자가 「눈에 보이는 시장의 개방」이라면 자본시장 개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방」이라고 할 수 있다. 도쿄나 뉴욕증시에 머물고 있는 수억 달러의 국제자본이 텔렉스 한 장으로 순식간에 국내 자본시장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의 개방이 갖는 이같은 성격 때문에 시장개방이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반면 이에 대한 국내의 인식이나 대비는 상품이나 서비스 교역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본시장의 개방은 크게 증권산업의 개방과 증권시장의 개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외국증권사가 국내에 들어와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증권산업의 개방이고 외국투자자들이 국내 증권시장에서 투자가로서 직접 주식이나 채권을 사고 팔 수 있게 하는 것이 증권시장의 개방이다. 따라서 자본시장이 한꺼번에 개방될 경우 국내경제는 단기간에 거대한 자본이득을 노리는 국제투기성자본(핫머니)의 투기장이 될 위험이 크다. 금리가 국제수준보다 월등히 높고 환율의 가격기능이 취약한 국내 자본시장은 외국자본가들이 오래 전부터 눈독을 들여온 황금시장이다. 이같은 여건을 감안해 자본시장의 개방은 충격이 적은 분야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상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81년부터 외국인 투자펀드나 외국인 수익증권·혼합투자펀드와 국내기업의 해외증권 발행 등을 통해 외국인의 간접증권투자를 허용해왔다. 이에 따라 외국인의 간접증권투자 규모는 지난해말 기준 13억3천5백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와 함께 외국 증권사의 국내진출도 허용,지난 81년부터 영업권이 없는 국내사무소가 설치되기 시작했고 올해 4개 외국증권사의 국내영업점(지점 또는 현지법인)이 문을 열고 영업활동을 하게 된다. 내년부터는 외국인의 국내증권 직접투자도 허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국내 증권시장이 외국투자자들에게 개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국내 증권산업과 증권시장이 모두 개방됨으로써 국내 자본시장은 싫든 좋든 개방원년을 맞게 되는셈이다. 지금이 국내 자본시장의 문을 여는 적기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자본시장의 개방은 금리 및 외환의 자유화와 국제수지의 안정,통화관리의 간접규제 방식으로의 전환,금융산업 개편을 통한 금융기관의 경쟁력 제고,물가안정 등의 요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상황은 이처럼 다양한 요건을 거의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금리자유화의 경우 증시개방에 앞서 올 하반기에 본격추진될 예정이나 통화관리의 간접규제 수단이 미비하고 실질금리 상승에 대한 기업의 우려 등으로 크게 진전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외환거래 자유화도 단기자금의 경우 규제완화로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으나 금리와 환율간의 연계성 결여로 국제투기자본인 핫머니의 급격한 유출입에 따른 국내 경제교란이 우려된다. 국제수지가 적자로 반전된 상황에서 외국자본이 대규모로 흘러들어오면 이는 실물부문에 과도한 부담이 될 소지가 크다. 즉 원화의 비정상적인 고평가를 초래,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은 억제되고 수입은 촉진시켜 결국국제수지 적자폭을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국내여건 때문에 자본시장 개방의 범위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년에 개방되는 증권시장의 범위는 상장주식의 유통시장에 대한 장내 거래로 국한돼 있다. 국내외간에 현격한 금리차가 있기 때문에 국내금리 수준이 안정될 때까지 외국인의 국내채권에 대한 직접투자는 상당기간 유보될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는 외국인이 국내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경우에도 투기성 자본의 유입에 의한 국내증시의 교란을 막기 위해 종목당,외국인 1인당 투자한도를 두어 규제할 방침이다. 증권당국이 현재 외국인 투자한도의 적정선을 검토중이며 대체로 종목당 10∼15%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시장의 개방이 초기에는 국내여건상 소폭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지만 일단 개방이 이루어지면 개방폭은 급속도록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UR협상을 비롯해 한미금융정책회의,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정책대화,EC통합 등의 국제환경은 국내 자본시장에 강력한 추가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측은 특히 한미금융정책회의를 통해 ▲외국 증권사에 대한 내국민 대우와 ▲외국증권사의 증권거래소 회원가입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증권거래소 가입문제에 대해서는 증권거래소가 증권사들의 민간 자율기구로 운용되고 있어 정부가 간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시장이 개방되는 내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국민 대우의 원칙에 따라 증권거래소 회원권 개방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밖에 외국인에 대한 국내 주식투자 허용으로 외국인의 국내기업에 대한 경영권 장악의 가능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행 증권거래법이 기존 대주주의 경영권 보호에 관한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기 때문에 그같은 가능성은,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의 개방이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개방의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시장에서 국내외 금융기관이 경쟁함으로써 국내 금융산업의 체질강화와 금융의 효율성을 제고하는계기가 될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가용자본의 범위가 해외로 확대됨에 따라 보다 유리한 조건의 자금조달이 가능해져 금융비용이 축소됨으로써 국내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자본시장개방계획 ●국내시장 개방 ○외국인 증권투자자(1991년) ·특정 외국투자가의 직접 증권투자 허용 ­투자자:CB 등 해외증권의 전환에 따라 국내주식을 취득한 외국인 ­투자대상:국내 상장주식 금지업종 제외 ­투자자금:전환주식의 국내 유통대금→신규 투자자금 유입금지 ­투자한도:종목당 1인 및 외국인 총투자한도의 설정 ○외국인 증권투자자(1992년) ·일반외국인의 직접 증권투자 제한적 허용 ­투자자:일반 외국인 투자자 ­투자대상:국내 상장주식 ­투자한도:종목당 1인 및 총투자한도 설정 ○해외증권사의 국내진출 ·외국 증권회사의 국내지점 설치 허용 ­지점수·영업범위·영업기금 등에 대해 증시규모,국내 증권산업의 경쟁력 등을 고려하여 적정수준으로 결정­합작회사의 수·자본금 등을 국내 증권산업의 규모·경쟁력 등을 고려하여 상호주의 원칙하에 결정 ­90년말까지 허가기준 마련→국내의 합작선 자격요건·지분비율 등 기준 제정(상호주의 원칙에 따름) ●해외시장진출 ○해외증권투자(1991년) ·일반법인에 대해 해외증권 투자허용 ·해외증권투자펀드의 다양화 ­국내외 혼합투자펀드 등 설정,기존 해외증권 투자펀드의 추가설정 ­기관투자가의 외화보유한도 철폐 ○해외증권투자(1992년) ·일반개인의 해외증권투자를 제한적으로 허용 ○증권산업 ·국내 증권사의 해외지점 및 합작증권회사 설립 허용 ­상호 호혜주의 원칙 ­증권산업의 대외개방 정도 고려
  • 갈팡질팡 유가정책/양승현 경제부기자(오늘의눈)

    경제가 물 흐르 듯 일관된 논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정책을 입안하거나 즉흥적인 결정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경제정책의 향배가 국민생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경대군 사건으로 시국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선 어느 때보다도 원칙이 중요하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순리와 상식으로 경제의 얽힌 매듭을 풀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 경제의 주요현안으로 등장한 유가인하 논의를 볼 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 흐르듯 처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물을 역류시키는 느낌마저 든다. 특히 유가 인하론이 실무차원의 검토 한 번 없이 14일 경제장관간담회에서 불쑥 거론된 것을 볼 때 많은 경제정책이 심사숙고의 과정없이 즉흥적 발상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 일으킨다. 유가 인하론이 나오자 벌써부터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려던 아파트 주민들이 그대로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기로 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국민에게 돌아갈 실익이 없다』 심지어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실무관계자들의 표현은 접어두고라도 불과 4개월 전인 걸프전 때 관계장관들이 「에너지원 다변화」 「에너지절약형 산업구조로의 개편」 등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외쳐온 사실을 우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가격을 내릴 요인이 생겼으면 어떤 형태로든 가격을 조정,그 혜택이 소비자인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논리에 바탕을 둔 게 아닌 정치적인 판단에만 따른 결정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가인하에 앞서 풀어야할 난제들이 많다. 걸프전 때 비싸게 사들여온 정유회사의 원유도입에 대한 손실보전,휘발유 등 일부 유종의 자율화,휘발유·경유 등의 특별소비세 인상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유기인하를 단행하게 되면 가격이나 소비구조는 더욱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논리 하나만을 따로 떼어 놓고 모든 것을 생각할 수는 물론 없다. 정치·경제·사회상황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어 결코 분리할 수도,분리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안다.다만 시끄러우니까 내렸다가 겨울철 성수기 때 다시 슬그머니 올리는 방식의 정책은 이제 그칠 때가 됐지 않나 싶다.
  • 밤늦도록 화염병·최루탄 공방/5·9집회

    ◎일부 도심 진출… 밀고 밀리는 대치/도로점거… 퇴근길 교통 큰 혼잡/4백여명 명동성당서 철야농성/1백90여명 연행… 경찰·학생 부상 속출 재야·운동권측의 「범국민대책회의」가 9일 전국적으로 추진한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회」는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을 빚으며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인 끝에 무산됐다. 서울에서는 이날 「대책회의」 소속 재야인사들과 「서총련」 소속 대학생 등이 하오 6시부터 시청앞 광장에 모여 대규모 군중집회를 가지려 했으나 경찰에 제지당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시위참가자들은 이날 하오 6시30분쯤 신세계앞·서울역앞 등에 집결,차도로 시청 앞까지의 진출을 시도하다 경찰이 최루탄 등으로 저지하자 화염병과 돌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1만여 명은 하오 10시가 넘도록 서울역앞과 미도파백화점앞·세운상가앞·파고다공원앞·종각앞 등 4대문안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당초 대회가 무산될 경우,종로 2가에 재집결했다가 청와대로 행진하기로 했었으나 모두 저지됐다. 이 때문에 마지막까지 남은 1천여 명은 하오 10시쯤 명동성당앞에 모여 현정권을 규탄하는 간이집회를 가진 뒤 이 가운데 4백여 명은 철야농성을 벌였다. 이날 도심의 간선도로는 곳곳에서 시위대가 길을 막아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으며 이웃 상가들도 대부분 철시했고 시민들은 서둘러 귀가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한편 이날 하오 7시30분쯤 종로 2가 「영에이지」 구두점에 화염병 1개가 날아들어 현관문 일부가 불에 그을렸으며 하오 6시10분쯤에는 종로 3가 지하철역 근처에서 서울지방노동청고용문제조정위원회 사무실의 셔터문을 쇠파이프로 부수기도 했다. 이날 하오 6시40분쯤에는 시위대가 파고다공원앞에서 동대문까지 왕복 10차선 차도 1㎞를 완전 점거,차량통행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또 이날 하오 5시부터 2시간 남짓 동안 지하철 시청역,종각역 등 시위가 격심한 4대문 안 일부 지하철역에 전동차가 서지 않아 귀가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경찰은 이날 교통소통에 큰 불편을 주지 않는 평화적 시위는 되도록 방관했으나 시위대가 시청앞과 청와대 등을 향해 행군을 강행하려 하자 최루탄과 물대포 등으로 이를 저지했으며 시위대도 밤이 깊어가자 양상이 갈수록 격화,화염병과 돌 등을 마구 던졌다. 검찰은 이날 서울지역에서만 극렬시위자 40여 명 등 모두 1백90여 명의 시위자를 연행했다. 이날 서울에서 모두 78명의 경찰관이 부상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날 하오 1시50분쯤 연세대 정문앞에서 대한전몰군경 미망인회 회원 50여 명이 학생들의 시위자제를 호소하다 정문까지 진출한 「전국빈민연합회」 회원 3백여 명과 심한 욕설과 함께 몸싸움을 벌이다 밀려나기도 했다. 서울대에서는 이날 상오까지만 해도 약 40%의 출석률을 보였으나 하오부터는 음대와 미대 등의 일부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과에서 학생들이 강의에 결석,수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 가운데 수천 명이 학교에서 「출정식」을 가진 뒤 일부는 도심으로 진출했다. ○김광일 의원 등 연행 한편 하오 6시쯤 김광일·이철 의원 등과 민주당 당원 30여 명이 구호를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이에 앞서 「대책회의」는 하오 2시쯤부터 연세대 도서관 앞에서 3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출정식을 가졌다. ○강경대군 장례/14일 치르기로 한편 「대책회의」는 이날 강군의 장례식을 오는 14일 「민주국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이날 『14일 명지대에서 발인해 연세대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 시청앞에서 노제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지는 경기도 양주군 마석 모란공원묘지로 결정됐다. 한편 노동부는 시한부 작업거부에 들어간 「전노협」과 「연대회의」 산하 노조가 32개이며 참가인원은 1만5천4백48명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쟁의발생신고 없이 작업을 거부하거나 냉각기간중 작업을 거부한 불법작업거부 노조가 한진중공업 등 21개 노조의 1만3천6백42명이었다. ◎지방서 수만명 농성도/울산선 최루탄 차량 불태워 【부산=장일찬 기쟈】 부산지역 대학생,시민 등 3만여 명은 9일 하오 5시30분쯤 부산시 중구 남포동 부영극장 앞 8차선도로를 점거하고 「강경대열사 폭력살인규탄및 민자당 해체,노 정권 퇴진을 위한 부산시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하오 8시30분쯤 『해체 민자당』 『타도 노태우』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부산역까지 1.5㎞를 가두행진해 부산역 앞 광장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어 이들은 서면까지 6㎞를 가두행진한 뒤 밤늦게까지 시위를 벌였다. 【광주=최치봉 기자】 이날 하오 6시40분쯤부터 광주시 동구 금남로 3가 광주은행 앞길에서 제3차 국민대회를 강행한 후 대학생과 시민 등 2만여 명은 경찰이 하오 9시쯤부터 최루탄 등을 쏘며 강제 해산작전에 나서자 도심일원으로 흩어져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9시30분쯤 광주시 동구 충장로 1가에서 시위를 벌이던 전남대생 최계수군(23·공법학과 2년)은 경찰이 쏜 최루탄에 얼굴을 맞으면서 안경이 깨져 오른쪽 눈에 큰 부상을 입고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10여 명이 다쳤다. 【대구=최암 기자】 이날 하오 6시부터 대회장인 대구백화점 앞길로 집결하려던 대학생,노동자,재야단체인사 등 3천여 명은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3백∼5백여 명씩 나뉘어 인근 중앙파출소,한일극장 주변 등 도심지를 몰려다니며 밤늦도록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8시20분쯤 대구백화점 부근길에서 시위진압에 나선 경찰관들의 방패에 시위장면을 촬영하던 노동자신문 이상태 기자(27)가 머리를 맞아 상처를 입었고 효대 국문과 이윤석 교수(41)와 역사과 최석천 교수(41) 등이 경찰에 맞아 눈주위 등에 상처를 입는 등 시민 10여 명이 부상,한때 최루탄과 투석 및 육탄전이 난무하는 격렬한 시위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수원=김동준 기자】 이날 하오 6시 경기 남부노련 산하 근로자와 수원지역 대학생협의회 소속 대학생 등 1만여 명이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 박창수씨(31)의 시신이 안치된 안양시 안양5동 안양병원 앞에서 열기로 한 「옥중 살인규탄 및 민자당 해체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안양1동 본백화점 앞길 4백여 m를 점거,『민자당 해체』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렬시위를 벌였다. 한편 경남 울산에서 이날 하오 7시쯤 남구 신정동 태화강 고수부지에서 근로자 시민 학생등 1만여 명이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시민결의대회를 연 뒤 경찰의 제지를 뚫고 대회장에서 흩어져 울산시청 정문앞을 비롯,주리원백화점앞 등 도심 곳곳에서 밤늦도록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청앞에 모였던 시위대 3백여 명은 진압경찰의 방패 10개를 뺏어 도로에서 불태웠으며 하오 11시쯤 울산시 남구 신정동 태화로터리 부근에서는 시위대들이 경남도경 제7기동대 소속 다탄두발사차량 1대를 불태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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