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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영씨 일가의 부당자본이득/86년에도 수천억 더 있었다

    ◎현대중공업­종합제철 불공정 합병으로/무상주 교부 이익만 2천억원/국세청/증여로 간주,과세 신중검토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 일가및 계열법인에 사상 최고액인 1천3백61억원의 추징세금을 부과한 국세청은 지난 86년 현대 계열사인 (주)현대중공업이 (주)현대종합제철과 합병하는 과정에서 정회장과 자녀등이 챙긴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86년 11월 주당가격이 8배나 높은 현대종합제철을 흡수합병했는데 합병비율을 1대 8이 아닌 장부가격에 따라 1대 1로 함으로써 현대중공업 주주들이 엄청난 자본이득을 취했다. 또 현대중공업은 합병으로 얻은 자기주식(합병전 현대중공업이 소유한 현대종합제철주식과 현대종합제철이 소유한 현대중공업주식) 1억1천7백99만주(2천4백66억원)를 합병즉시 소각하고 감자에 의해 생긴 차액으로 정명예회장과 아들들에게 무상주를 교부했다. 무상주의 교부로 정명예회장은 1천3백23억원,몽준씨(6남·국회의원)는 3백84억원,몽구씨(차남·현대정공회장)와 몽헌씨(5남·현대전자사장)가 각각 2백2억원등 일가족 6명이 2천1백63억원의 자본이득을 챙겼다. 국세청은 이를 불공정한 합병과 특수관계인 사이의 거래로 생긴 경제적 이익(증여)으로 간주하고 ▲합병된 법인인 현대종합제철의 청산소득 ▲특수관계인 두 법인의 주주사이에 이루어진 증여행위로 생긴 자본이득 ▲자기주식 소각으로 생긴 이익을 무상주로 교부함으로써 주주가 얻은 자본이득등에 대한 과세 문제를 신중히 검토중이다. 이상혁서울지방국세청장은 이에대해 지난 1일 현대그룹 세무조사결과 발표후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에서 『현행 세법으로도 일부 소득에 대한 과세에는 큰 문제가 없다』며 『다만 그동안 이같은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 사례가 없었고 관련법규의 적용에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 논의중에 있다』고 밝혀 추징이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과세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현행 우리나라 상속세법 34조4항은 ▲양도자의 배우자나 친족▲양도자의 사용인 ▲양도자가 출자하는 법인등 특수관계에 있는 주주들끼리 시가보다 현저히 저가 또는 고가(1백분의 70이하 또는 1백분의 1백30이상)로 주식을 거래할 경우 그 거래가액과 시가와의 차액에 상당하는 금액은 특수관계에 있는 주주에게 증여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따라서 불공정합병으로 자본이익이 생기면 증여세를 부과하게 돼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불공정 합병에 따른 자본의 부당이득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지난 연말 개정돼 올해부터 시행됐기 때문에 현대건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이 불가능하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의 예에서 보듯이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불공정 합병을 통해 자산을 눈덩이처럼 늘려 왔다』고 지적하고 『행위가 나쁘다고 해서 법을 확대 적용할 수는 없으며 실질과세라도 어디까지나 조세법률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며 과세가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국세청의 다른 관계자는 『상법에서 특례규정을 두어 합병을 권장하는 것은 기업의 자본충실과 경영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지 주주의 부당이득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대중공업의 합병을 부당행위로 간주,법인세법 20조(부당행위 계산의 부인)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합병된 법인인 현대종합제철의 청산소득에 대해서는 법인세법 제43조 청산소득금액의 계산 규정을 적용,합병당시 현대종합제철 주식의 총액에서 출자액을 뺀 나머지 액수에 대해 과세가 가능하다는데는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 건의 조세시효는 오는 연말로 끝나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는 국세청의 최종 결정이 내려질 전망이다.
  • “생색내기” 정치공세/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모임이 끝나고 막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그때 유준상 민주당정책위의장이 이를 가로막았다. 『정부의 추곡가 7%인상과 수매량 8백50만섬 결정은 잘못됐으니 재검토해달라』며 정원식국무총리에게 걸쳤다. 곁에 있던 김대중 민주당공동대표도 거들었다.『올 연말까지 물가상승률은 9%로 예상되는데 쌀값만 물가인상분을 반영하지 않고 7%로 하는 것은 잘못이다.총리가 노태우대통령에게 정부차원의 시정건의를 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1시간30분간의 만남은 끝났다. 30일 낮 서울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정총리 초청으로 김대표를 비롯,민주당 핵심간부들과의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 설명을 위한 모임에서 일어났던 「짤막한 일」이었다.아무데서나 자기주장을 하려는 정략적 제스처로 치부해 버리면 그뿐이다. 그러나 진퇴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누울 자리가 있고 누워서는 안될 곳이 있다.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다.다소의 안타까움과 섭섭함이 있더라도 「사적으로라면 무슨 말이라도…」하면 된다. 그런데 민주당대표들은 당사로 돌아와 개선장군처럼 노무현대변인을 통해 출입기자들에게 당시 상황을 브리핑했다.이를 일문일답형식으로 정리한 대화록을 만들어 배포했음은 물론이다. 거기엔 「정총리:곤혹·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 끄덕」이라는 얘기까지 덧붙여서. 문제는 여기에만 있지않다.민주당은 정총리에게 추곡가에 대해 마치 긍정적인 답변이라도 들은 것처럼 해석했고 대화록에도 모임의 성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 부분을 특히 강조했다. 대화는 신뢰를 전제로 해야된다.총리가 평양을 다녀와 그 결과를 야당지도자들에게 설명하는 모임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며 당연하다. 그러나 정총리의 「잘들었다」는 대답이 이런 식으로 확대되고 왜곡된다면 곤란하다. 그렇다면 누가 정치지도자들과 선뜻 대화에 응하려 하겠는가. 또하나 총리에게 얘기하고 그 내용이 매스컴을 통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다면 할 일을 다했다는 뜻인지,아니면 여론을 환기시켜 대여투쟁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선거전략인지 정녕 알 수가 없다. 그렇더라도 이 시점에서 「총리 곤욕」운운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않으며 국민의 강야가 가야할 길은 아닌것이다.명절때면 1천5백만명의 「민족대이동」이 일어나는 이 땅에 「흙」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야당만이 아니다.우리 모두는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하는」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 장애아교육 개척 김후리다여사(이사람)

    ◎“정박아 가슴에 「복음밀알」 심기 20년”/73년 「성베드로학교」 설립… 「사랑실천」 첫발/“「한가족 삶」 부축” 아동 놀이도서관도 운영/일서 성공회 김성수주교 만나 69년 가정 이뤄/“모두가 형제… 장애아교육에 더 많은 관심 보였으면…” 덕수궁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낡은 건물­대한성공회 주교관을 찾았을때 김후리다여사(59)는 영문편지를 쓰고 있었다.장애자를 위해 오랜기간 봉사를 했다고 해서 털털하고 소박한 외양을 떠올렸으나 금테안경을 낀 얼굴이 단정하고 흐트러짐이 전혀 없어 뵈는 인상이다. 영국태생으로 대한성공회 김성수주교(61)의 아내인 김후리다여사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나라 정신장애 어린이 교육의 개척자.현재 갓난 아기에서 8세까지의 정신장애 어린이를 장난감을 이용해 교육하는 시설인 「레코텍 코리아(Rekotek Korea)」의 원장인 그와 한국의 인연은 2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지난 62년 30살의 나이로 고국인 영국을 떠나 일본땅을 밟았다.성공회의 선교사가 되어 한달반이 걸리는 배편으로 낯선 아시아에 도착한 것이다. 『집안에서 부모님과 하나뿐인 언니가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억양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유창한 한국말로 김여사는 당시를 회상했다. ○사회복지학등 전공 영국의 리즈사범대에서 음악교육을 받고 런던대에서 사회복지분야를 전공했던 그는 일본에서 청소년 지도상담을 맡았다.그당시 일본은 벌써 제2차대전의 참화를 극복한 때라 국민들의 생활이 서구사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그래서 자신의 전공분야인 사회복지 활동보다는 성공회 선교사로서 종교적인 업무에 주로 매달리고 있었다.그무렵 한국에서 온 현재의 남편 김신부를 만나게 됐다. 김여사는 김신부와의 결혼을 역시 하느님의 뜻으로 돌린다.당초 두사람 가운데 누구도 결혼하자는 말은 없었다고 말한다.함께 일하다보니 그냥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됐다는 것.어떻든 69년 그는 결혼을 하러 김신부와 함께 한국에 왔다. 『결혼과 함께 정식선교사로서의 직분은 떠난 셈이었으나 한국에서주교님을 도와 하느님의 큰 뜻을 실천할 그 무엇이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 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경제사정이 더 나빴다고 김여사는 이야기한다.한겨울인 2월에 입국했는데 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어 교통사정이 형편없었으며 거리를 오가는 버스와 택시등도 금방 고장이라도 날듯 오래된 것들이었다는 것이다. ○박봉에 “애옥살이” 그때 김신부의 월급은 1만7천원이어서 하룻동안 김여사가 쓸 수 있는 생활비는 2백원에 불과했다.밥 짓고 연탄 가는 일이 어렵긴 했지만 너무 바빠 그럭저럭 저도 모르게 지나갔다.밥은 일본에서 길들여져 잘 먹었으며 김치도 처음부터 잘 먹었다.크게 불편했던 것은 오랫동안 마셔왔던 커피를 구하기 어려웠던 것. 73년 한국말에 어느정도 입과 귀가 열릴 즈음 그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서울 구로구 항동에 국민학생 연령의 정신장애아를 교육하는 「성베드로학교」를 설립했다.2층 건물의 윗층에서 김원장부부와 수녀 2명,교사 4명이 장애아 14명을 돌보았는데 나중에 학생수가 40명까지 늘어났다.그때 화장실이 하나였던 것이 가장 문제였다고 김여사는 회상한다.그는 집이 종로구 원서동에 있어 「성베드로학교」까지 버스를 3번 갈아타고 다녔다. 얼마뒤 이 시설들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책이 마련되면서 김여사는 여전히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미취학 장애어린이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현재 김여사가 관리하고 있는 교육시설은 지난 83년 개관한 서울시 중구 정동 성공회관의 「레코텍 코리아」를 비롯,피어슨 빌딩의 「레코텍 코리아」와 중계동의 「마들사회복지관 레코텍」등 세곳이다.레코텍은 스웨덴말로 놀이도서관이란 뜻.김여사는 이 세곳의 교육시설에서 장애어린이의 부모들을 위한 상담역할을 하고 있다. ○“미취학아에 관심을” 김여사는 이젠 한국에도 미취학 정신장애어린이를 위한 놀이방이 전국적으로 50∼60여곳으로 늘어나 장애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한다. 『정부도 이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으니 미취학 장애아에 대한 교육에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이들에 대한 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좋기 때문입니다』 ○장애아도 “가족일원” 김여사는 레코텍의 역할중 장애어린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그는 장애어린이가 일단 가족 속에 끼어들어 자연스럽게 섞이게 될 때 그 다음단계인 학교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이 때문에 장애어린이를 가진 부모와의 상담을 통해 그들이 아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분노와 죄의식,절망등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시키는 활동을 중요시하고 있다. 현재 김여사가 관리하는 세곳의 장애아시설에는 10명의 교사가 1백여명의 어린이를 교육하고 있다. 「레코텍 코리아」는 운영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이외에는 회비를 받고 있다.또 87년부터 기금마련을 위해 해마다 「레코텍 코리아」후원의 밤을 열고 있다. 김주교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둔 김여사는 한국에 온 뒤 미8군영내에 있는 남캘리포니아대 분교에서 교육학석사,연세대에서 교육학박사를 받기도 했다. 장애어린이 상담 문의는 733­3469.
  • 일장기의 캄보디아 상륙/이창순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이 마침내 「평화」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국제공헌」활동을 적극화하고 있다.일본은 파리에서 캄보디아평화협정이 조인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캄보디아문제 개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나카야마(중산)일본외상은 『일본은 평화협정 조인국의 하나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그는 또 캄보디아 「부흥회의」를 도쿄에서 개최하겠다고 제의했다.일본은 캄보디아 개입의 당위성은 물론이고 더나아가 이니셔티브를 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를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캄보디아지원을 현지지휘하기위해 태국주재 일본공사에게 캄보디아 최고국민평의회(SNC)담당대사를 겸임토록 했다.다음달에는 상주대표부를 개설한다.연내에 현지조사단을 파견하고 국제연합 선거조사단에 외무부관리를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일본은 난민구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국제연합 캄보디아 잠정통치기구(UNTAC)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UNTAC간부진에 일본관리를 포함시킬 방침이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UNTAC조직의 일부로 편성되는 국제평화유지군에 일본 자위대가 파견된다는 사실이다.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제도화할 국제평화유지활동(PKO)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중이다.그러나 다음날 5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이법안이 통과될 것은 확실하다.자위대 깃발이 캄보디아에 휘날릴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캄보디아는 일본이 군사대국화로 가는 길목이 될지 모른다. 캄보디아는 물론 일본의 경제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경제지원만으로 만족할 것인가.「국화와 칼」의 저자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은 과거에 대한 깊은 죄책감을 느낄줄 모르는 도덕성이 얄팍한 민족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아시아인들은 정치·군사대국화로 가는 일본인들의 이같은 미숙한 도덕의식을 우려하고 있다.과거에 대한 진정한 회개가 없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아시아안보의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아시아에는 유럽의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체제도 없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공헌」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역할을 증대시키고있다.그들의 국제공헌은 당연히 국제윤리를 바탕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그러나 역사는 그렇지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거리에는 「왜색문화」가 범람하고 있다.섬뜩한 일이 아닌가.
  • 잇단 예능계 부정입학,실태와 개선책

    ◎“재능보다 돈”… 합격 끈잡기에 수억원/레슨 스튜디오 통해 「입학티켓」 뒷거래/교수들마다 사단 형성… 영향력 행사/대학 간판 따기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세태도 문제 이대 무용과의 입시부정 사건은 우리의 예능교육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올해초 서울대 음대와 건국대 음대에서 입시부정사건이 터져 나온데 이어 지난 여름에는 외제 유명악기 구입을 둘러싼 사기사건에 음대교수들이 관여하여 음악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더니 이전의 어떤 예능계 부조리보다 액수가 큰 입시부정사건이 무용계의 최고 명문인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또 발생한 것이다. 딸자식 하나 무용과에 집어 넣느라고 1억여원을 들인 부모나 이를 눈 하나 까딱않고 챙겨 넣은 대학교수의 비윤리성에 대한 징벌은 차치하고라도 이제 더이상 불합리한 예술교육제도 뒤에서 횡행하는 입시부정사건이나 그 타락상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온국민의 여론이다.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오던 「관행」들이 뒤늦게 파헤쳐진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모두의부끄러움이기도 한 오늘의 예체능계 교육풍토는 양심이 마비된 예술가와 어떻게든 자녀를 대학에 집어넣겠다는 학부모,불완전한 예술교육제도가 함께 어울려 빚어낸 결과다.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가족이기주의와 사회적인 부의 불균형,대학교수집단의 윤리의식 결핍,예체능계대학의 실기중심 교육등이 한데 어우러진 「부패4중주」의 이 사건들은 심지어 「인간의 삶을 순화시키는 예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뿌리채 흔들어 놓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우리의 예술교육이 부패했다는 소문과 냄새는 10∼20년전부터 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일부 타락한 사대주변에서 맴돌던 것이 불합리한 교육제도에 따라 대학 전체로 전이됐다. 갈수록 대학에 예술학과가 늘어나 한해에 분야마다 수천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고,예술적 재능이나 기량과 관계없이 대학간판을 따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전공을 택하는 학생수가 늘어나면서 그 오염도는 더욱 확산됐다. 게다가 예술의 특성상 입시에서 실기비중이 높이 잡혀있고 대학교수는 대부분 실기전공자들이며 교수 숫자는 제한돼 있는 탓에 부정을 유발할 여지는 점차 높아졌으며,이름 있는 몇몇 실기교수들의 보이지 않는 횡포는 날로 거세졌다. 전국에 걸쳐 30여개에 이르는 대학 무용과의 교수 숫자는 대학별로 2∼3명에 불과한 실정이다.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이대 무용과의 경우도 구속된 홍정희 육완순교수와 조사설이 나왔던 김매자교수가 각각 발레·현대무용·한국무용의 세분야를 독점,세 교수의 개인연구소화돼 있다는 것이 무용계의 얘기다. ○몇명이서 좌지우지 이런 상황에서 특정교수와 특정스튜디오를 잇는 거대한 무용사단이 형성되고 이 사단은 자연스럽게 대학진학의 통로역할을 하는 것이다.한국 무용의 대모로 알려진 한 교수의 경우 자신의 사단에 40여개의 무용스튜디오를 거느리고 있다. 따라서 무용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우선 이 스튜디오를 통해 원하는 대학교수의 춤사위를 익히고 많게는 4백만∼5백만원의 「작품비」를 들여 실기시험 준비를 해야한다.또한 해당교수의 작품발표회때마다 수십장의 표를 사야하며 때때로 조건없는 「선물」도 해야 한다.이 스튜디오와의 끈마저 없을 경우 억대의 돈을 들여야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커튼이 가려진 음대입시 실기고사에서도 헛기침소리나 보이지 않는 암호등으로 부정의 줄이 닿는 형편에 얼굴과 몸이 노출된 무용과 시험의 입시부정은 원천봉쇄가 불가능한 형편인 것이다. 홍정희교수를 따라 모스크바연수를 갔다가 아이스크림을 사오라는 홍교수의 심부름을 하던중 교통사고를 당한 학생으로 인해 이번에 무용과 입시부정이 뒤늦게 밝혀지긴 했지만 무용과 입시가 예체능계 입시부정의 온상이란 사실은 알만한 사람들에겐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몇년전 현대무용계의 중견무용가인 J대의 L교수와 S교수등이 입시부정과 관련하여 재학생들의 반발을 사서 일시 휴직하기도 했는데 무용계 내부사건으로 묻혀버린 바 있다. ○작품발표회 후원도 명망있는 무용가이며 대학교수로 재직중인 K씨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앞에 무용실을 차려놓고 입시생들과 입시 훨씬전부터 돈으로 산 「사제관계」를 형성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것으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입시전에 맺어진 교수와 학생들간의 비정상적인 끈은 입학후에도 그대로 연결돼 교수의 국내무용발표회는 물론 해외공연까지 막대한 경비를 들여가며 참가해야 한다.만일 교수의 눈밖에 날경우 국내무용계에서는 발을 붙일수 없을 정도로 교수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수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이대무용과의 경우 홍정희·육완순·김매자 세 교수가 각각 한국의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계의 대표적 존재로서 각기 경쟁적으로 무용활동을 펼치는 바람에 우리 무용계 발전에 기여한 측면은 많지만 그 경비조달을 위해 입시부정에 관계하게 됐을것이라고 보는 무용인들도 있다. 이같은 파행적인 예능교육의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우리사회에 대두됐고 당국 또한 그 해결점을 찾기위해 골머리를 앓아왔다. 그러나 문제를 입시제도에 국한시켜 실기채점에서 교수들의 공동관리제를 조정한다거나,입시전형에서 실기점수비중을 낮추는 등의 조절이 결코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예·체능계 입시부정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대학간판을 따기위해 예능대학에 진학하는 우리사회의 그릇된 간판위주 풍토에 있는 만큼 그 해결책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실기중심의 예체능교육을 꼭 대학에서 다뤄야 하느냐는데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따라서 문화부는 예술실기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국립예술학교 설립안을 마련,오는 94년 개교를 목표로 구체적인 운영계획을 내놓은 바있다. 우리의 예술교육이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한 방편으로 동원되는가 하면,재능있는 학생들에게는 제대로 된 예술영재교육을 시키지 못해 과도한 해외유학 현상만 팽배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국립예술학교의 탄생은 예술교육의 새 풍토마련에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음악평론가 박용구씨는 일련의 예능계 부정사건에 대해 『예술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예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며 80평생 예술했다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면서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학자와 공연예술가를 한꺼번에 배출하겠다는생각은 버려야 할때』라고 주장했다. 이화여대 미술대학 도예과 강석영교수는 『우리나라가 다른나라에 비해 예능계학원의 수가 엄청난 것도 지적돼야 한다.어떤 동네에는 구멍가게 하나 건너마다 음악·미술학원이 개설돼 있다.여기서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대학가는 수단으로 예능을 이용하게 되니까 경쟁이 심해져 비리가 판치게 되고 또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강습비 수백만원 무용평론가 김태원씨는 『이번 무용계 사건을 보면서 과연 대학에 무용과가 있어야 하느냐는데까지 회의를 느낀다.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심각할 정도로 학위에 연연해하는 경우를 보는데 재능이 뛰어난 한 무용수가 결혼할 때가 되니까 고등학교만 졸업한 것이 걸림돌이 돼 애먹는 것을 보고 부패의 원인이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예능계 입시생을 둔 학부모 안송자씨(46)는 『예술계 교육풍토가 너무 돈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사실에 계속 공부시킬 엄두가 안난다.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그 학교에 재직중인 선생님에게 레슨한번 받기가 하늘에 별따기이고 주1회 받는 한달레슨비가 1백만원을 넘어서니 진정한 예능교육을 받는건지 돈놀음에 줄타기를 하는건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우리를 암담한 기분에 처하게 하는 예능계 입시부정사건을 대하며 많은 사람들은 하루빨리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져야 하고 부정은 그 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현직 교수의 개인레슨 금지/학교군별 연합형태로 실기 평가 ▷교육부 개선방안◁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예능계 입시부정에 따른 교육부의 개선방안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실기평가를 소속 대학교수를 제외하고 시간강사를 포함한 3명이상이 해오던 종전과는 달리 전임강사 5명이상을 원칙으로 하고 소속대학교수를 포함하되 반드시 다른 대학의 평가교수를 50%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기고사 반영률을 대학이 결정하되 하향조정할 것을 권장하고 시험의 출제와 평가·시험관리등을 대학 총·학장의 책임하에 두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밖에 공정성 확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현직 예능계 교수의 개인레슨 행위를 금지하고 대학실정에 따라 해당 총·학장사이의 협의아래 학교군별 연합형태로 실기고사를 실시토록 했다. 이에 따라 각 대학은 실기고사반영률을 0.2%∼25%까지 낮춰 교육부의 승인을 요청하는등 입시의 공정성확보에 나름대로 부심하고 있다. 서울대 미대는 이미 40%의 실기반영률을 35%로 낮췄다.이대는 무용학과등 체육대학 3개학과의 실기반영률을 현행 30%에서 25%로 하향 조정했으며 부산대 음악·미술·무용학과,건국대 미대,단국대 음대,명지대 미대등 예·체능학과가 설치된 전국의 78개 대학가운데 절반가량이 총점에서 실기반영률을 낮췄다. 실기비율을 낮춘 만큼 학력고사의 반영률이 높아지고 대학마다 실기반영률이 크게 차이가 나 입시 70일을 남긴 현재 수험생과 해당 고교에서는 진학지도에 혼선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교육부의 제도개선책에 대해 서울대 음대 김정길교수는 『당장의 제도개선으로 예·체능계의 입시부정을 막기는 힘들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사회도덕성 회복의 차원에서 평가교수들이 교육자적 양심에 따라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예·체능계의 입시개선을 당장의 제도개선에 호소하기 보다는 「예술」이라는 전문성에 비춰 전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이에 따라 대학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거시적인 안목에서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자격시험 합격해야 대입 응시/전문학교 마쳐야 종합대 진학/독 ▷외국 예체능입시◁ 외국의 예능계 대학입시제도는 우선 입시절차등 여러 측면에서 우리나라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다시말해 종합대학이나 예능계 전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격시험을 치러 합격한 사람에 한해서만 지원하는 대학에 응시할수 있는 자격을 주는등 엄격한 입시관리체제를 갖추고 있다. 미국의 경우 종합대학의 예·체능계나 음악학교등 전문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 대학에 응시하는 수험생과 똑같이 프린스턴대학안에 있는 대학입학위원회가 주관하는 SAT(Schoarship Aptitude Test)와 경우에 따라서는 ACT(American College Test)를 치러야 한다. 수험생들은 「학업성적검사」와 「미국대학검사프로그램」인 이 두가지 시험에 합격해야 원하는 예·체능계대학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일반대학에 지원하는 수험생들은 1년에 4회 치러지는 SAT나 또는 대학에 따라 요구하는 ACT성적 가운데 가장 좋은 점수를 지원대학에 보내 합격여부를 판정 받지만 예·체능계를 지원하는 수험생들은 이 시험을 통과해야 지원대학에서 실기고사등을 치를수 있다. 대만은 예·체능계입시를 국가고사로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국가고사에 합격해야 지원하는 대학에 응시할 수 있다. 이와함께 대만은 다른 나라와 달리 신입생을 뽑는 예·체능계 종목 자체를 국가에서 지정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독일은 학문위주의 교육을 하는 종합대 예·체능계와 철저히 실기중심으로 교육하는 각종 학교인 예술·체육학교등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종합대학의 예·체능계에 진학하려면 교육기간이 4년인 각종학교를 졸업한 뒤에야 지원이 가능하도록 돼있다. 이에따라 종합대학 예·체능계를 졸업한 사람은 나중에 비평이나 평론분야의 업무에 종사하게 된다. 이밖에 영국은 전공실기시험을 치르기에 앞서 수험생이 지원한 대학의 학과에서 지정한 교과목에 대해 일반자격 시험을 치러 예·체능계 수업을 이수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 받아야 한다. 이같은 자격시험은 연 2회 치러지며 수험생들은 5지망까지 학과 또는 전공과목을 지원할 수 있다.
  • 통일·국제화시대의 「교육청사진」 제시/교육자문회의 정책건의의 뜻

    ◎수학등 남북 접근 쉬운 과목 우선 편찬/북한의 호응 여부·엄청난 재원 조달이 변수/정원 책정등 대학 자율성 최대한 보장 교육정책자문회의가 17일 노태우대통령에게 건의한 교육정책제안들은 다가오는 21세기에 대비,우리 교육의 중·장기적인 발전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지난 89년 대통령자문기구로 발족한 자문회의는 그동안 ▲독학학위제 ▲교사공개채용 ▲94년실시 새 대입제도등 굵직한 정책을 제안해 정책에 반영시킨 점에 비추어 이번 건의도 앞으로의 교육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자문회의는 우선 남북한 이질화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통일대비교육과 외국어교육등이 부족하다고 전제,획기적인 교육개혁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방안은 말로만 통일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46년간의 분단으로 이제 남처럼 돼버린 남북간의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특히 언어의 이질감에서 오는 분단의 벽을 뛰어넘기위해 수학·과학등 남북상호접근이 용이한 교과목부터 「공동교과서」를 만들고 「우리말사전」을남북공동으로 편찬하기로 한 것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외국어교육을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국제화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외국어,특히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교육부가 오는 95학년도부터 국민학교에서의 영어과목을 자유선택과목으로 지정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이와함께 중학교 의무교육을 완전히 실시하고 고등학교까지 단계적으로 의무교육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모든 국민에게 중등교육의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밖에 「대학평가인정제」와 연계시켜 재정및 학사관리 능력이 있는 대학부터 대학정원등을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대부분 대학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학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최고학부에 대한 외부의 개입을 차단하자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교육방안은 또 기술계대학과 전문대학의 정원을 대폭 늘리는 한편 첨단기술분야의 학과를 신·증설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다. 고도정보화시대및 산업사회에서는 항공·우주·전자·고분자·유전·신소재공학등 첨단과학이 경제발전의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자문회의가 건의한 교육방안은 그동안 학계에서 제기돼온 것들을 종합한 것으로 나름대로 필요성이 인정되고 타당성이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북한과 공동으로 추진해야할 과제나 의무교육확대등은 북한의 태도와 엄청난 재정이 뒷받침돼야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교육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자문회의 보고내용/남북학생 수학여행 교류를 ▷ 통일·국제화시대에 대비◁ 남북한간 이질화현상이 심하고 통일을 대비한 교육이 미흡한 점을 감안,통일대비 교육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위해 외국어교육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통일을 대비한 교육방안으로는 우선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교육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 이를 촉진하는 교육방송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하고 남북한 공동으로 「우리말사전」의 발간을 추진한다. 이와함께 현지에 한국교육원을 설치해 운영하거나 한민족학자에게 모국을 방문해연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등의 방법으로 종전 사회주의국가에 거주하는 교포에게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기위한 교육을 강화한다. 아울러 남북한 학생의 수학여행과 고적탐사등을 상호교류함으로써 남북한간 교육교류 협력의 기회를 넓혀나간다. 이밖에도 국제화시대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 국민학교에 외국어교육을 선택과정으로 도입하고 유엔가입과 더불어 국제기구에 전문인력을 적극 파견하는 것은 물론 외국교과서에 나타난 왜곡된 한국관의 시정작업도 함께 추진한다. ◎사립중학교 공립으로 전환 ▷의무교육및 교직사회 발전◁ 국민학교의 완전한 무상교육을 위해 현재 서울등 6대 도시에서 거둬들이고 있는 육성회비를 곧바로 전면 폐지하며 지역실정에 따라 초·중등학교에 통합학제를 운영하거나 사립중학교를 공립으로 바꿔 중학교 의무교육도 점차 확대해나간다. 이와함께 제9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1차년도인 오는 20 02년 이전에라도 저소득층과 장애자들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의무교육의 실시를 추진한다. 교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년을 원칙으로 하는 수습교사제를 도입,양성과정에서 미흡했던 실무수습을 충실하게 한다. 또 교사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학교 예·체능 전담교사제의 실시에 필요한 교사수요를 정원에 책정하며 학교장 임기제를 실시한 이후 중단되고 있는 학교장 명예퇴직제를 시행한다. ◎산학연합 전문대 대폭 신설 ▷고등교육기관 적정배치◁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인가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설립·인가 심사절차와 결과를 공개하고 공단밀집지역에 기업체와 연합하는 전문대학을 신설한다. 이와함께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고등교육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높이기 위해 국립대학의 설립을 억제하는 대신 시·도립대학의 설립을 적극 권장한다. 또 대학정원정책을 단계적으로 자율화시켜 나가기 위해 대학평가인정제가 정착되고 나면 대학평가기구의 정기적인 평가결과를 바탕으로 계열·전공별 정원을 대학 스스로가 결정한다. ◎직업·기술교육을 적극 권장 ▷학교교육·산업사회연계 강화◁ 산·학협동 교육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기업의 산·학협동경비를 손비로 인정해 주고 「산·학협동법」을 제정,「산학협동협의회」를 설치해 운영한다. 이밖에도 산업사회의 요구에 따른 특별학제를 개선하기 위해 제과·안경 기술고등학교등 단과별로 세분화해 직업·기술교육 위주로 기술고등학교를 운영한다. 아울러 방송통신대학의 교육기회를 넓히기 위해 현재 5년인 수업연한을 4년으로 줄이고 3,4학년만을 둔 주·야간 과정의 개방대학 신설을 적극 권장한다.
  • 외언내언

    언뜻 보면 별것 아닌,또는 별 이상한 연구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있다.예컨대 폰 프리슈는 74년 유럽산 쥐바퀴가 헛간에서 어떻게 집을 짓는가를 연구했다.자전거를 보관하는 한 헛간에서 자전거를 세워두는 지주들 때문에 쥐바퀴는 14개의 집을 짓는 혼돈을 일으켰다.작은 지표물을 기준으로 자신의 굴을 설정하는 말벌들도 똑같은 지표물을 여러개 만들어 놓으면 같은 혼란을 일으킨다.◆이런 연구는 오늘날 도시건축을 포괄적으로 보고자하는 관점에 전용된다.거리와 집들은 언제나 사람들에게서 번호같은 것으로 기억되지 않는다.방위찾기나 통로찾기들은 특히 심정적으로 기억된 정서적요소들의 지표에 의해서 찾아진다.곤충이나 동물이나 인간이나 이점에서는 모두 같다.그래서 현대도시의 균일하게 구획된 집짓기와 길내기는 이 획일성 속에서도 구역별로 무엇인가 다르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이점에서 서울이란 대도시는 대단한 문맹이다.특히 강남 아파트지역은 실제로 멀쩡한 사람이 어느날 자기집 찾아내는데 혼란을 겪을만큼 무미건조하게 획일화 돼 있다.한국사람들은 남향을 좋아해서 모든 아파트들이 남쪽을 향해 일렬로 서 있게 됐다는 문제도 있다.이것은 우리의 문화소산이라고 치자.표준건축비의 규제로 언제나 외관이나 미관같은것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는 이유도 있다.◆그러나 이 이유는 실상 건축비의 문제는 아니다.감각의 문제이고 감수성의 문제이다.서울시가 4일 아파트 미관심의를 대폭 강화한다는 결정을 했다.외벽에 부조등 조형요소를 도입하는등 다양한 미적시도를 할때 이를 건축심의에서 특별한 평점으로까지 고려해 주겠다는 원칙을 세웠다.아직도 지붕과 문만 있으면 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 이런 결정들은 아마도 한가해 보일지 모른다.그러나 집의 문밖환경만 조금 바꾸어도 삶의 정서가 바뀔수 있다는 점에 우리도 눈을 떠야만 한다.인간이야말로 어느 동물보다 환경조건에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 명분 없는 국감 거부/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다수의 결정에 소수는 따라야 한다.그것이 다수의 횡포였는지 여부는 다음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 민주당이 국정감사를 보이콧,민자당 단독으로 진행된 1일 국회 건설위 감사에서 무소속의 김광일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야당의 감사거부가 설득력이 없음을 강조했다. 재야변호사출신으로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김의원은 『본인도 골수 야당인임을 자부하지만 증인 한명 채택문제가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인 국정감사를 거부할 명분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의원의 이날 발언은 양비론에 입각한 것이었으나 논리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었다. 야당이 요구하는 증인들을 충분히 채택,행정부의 잘못을 철저히 추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1차 책임은 다수당인 민자당에 있다는게 김의원의 지적이다.하지만 그것이 관철안된다 해서 소수당이 감사 전부를 거부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감사거부 이유가 되고 있는 정태수 전한보그룹회장의 증인채택문제가 먼저 등장했던 곳은 건설위였다. 금년 국정감사 첫날인 지난달 16일 건설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수서의혹이 남아 있다며 정전 한보회장을 비롯한 관계 인사들의 증인채택을 요구했다.건설위 소속 의원들은 이 안건을 찬반토론 끝에 표결로써 부결시키는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마무리지었다. 반면 지난주말 재무위에서는 정전회장을 증인으로 부르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다 민주당의원들이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사를 거부하는 사태를 빚었다. 민주당은 같은 문제를 처리하는데 「건설위식」과 「재무위식」의 두가지 방법을 구사하다가 뒤늦게 재무위 방식을 당론으로 채택,국감거부의 수순을 밟았고 김광일의원은 민주발전을 위해서는 건설위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이해된다. 상식선에서 생각할 때 김의원의 주장에 동조하고픈 심정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가치판단은 최종적으로는 국민들이 내릴 것이다.김의원 말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14대 총선에서 유권자가 심판할 터이니까….
  • 타협 모르는 구태 정치/김경홍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논쟁이나 싸움에서는 흔히 「네가 먼저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억지논리가 등장한다. 30일 야당이 일방적으로 국정감사 불참을 선언하면서 내놓은 논리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민주당은 국감불참이유를 『정부의 방약무인한 수감태도와 증인신청을 원천거부하는 여당의 비이성적 행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같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몇가지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요체인 대화와 타협을 무시한채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국정감사및 조사에 관한 법률」을 보면 『국회는 매년 정기회 개회 다음날부터 20일간 감사를 행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때문에 민주당은 국감대책을 논의하고 자료를 준비하고 증인채택문제에 있어서도 미리 완벽한 대비를 했어야만 했다.심하게 표현하자면 『장은 벌여놓았는데 사전준비 부족으로 「장사」가 안되니 아예 판을 엎어버리겠다는 짓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더구나 민주당은 「쟁점상위의 국감은 거부하되 비쟁점상위는 국감을 계속하자」는 당내의 일부 의견도 무시해버렸다. 민주당이 「3당합당으로 오만방자해진 정부·여당」이라고 몰아세우려면 스스로도 야권통합이후 세를 과시한다는 차원에서라도 국감을 포기하지 않았어야만 논리에 맞는다. 공교롭게도 공전·파행국감이 계속되는 동안 일부정치지도자가 국내에 없었던 사실도 되새겨 볼만하다.야당내에서도 「김대중대표가 없으니 효율적인 국감운영이 잘 안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일부 세대교체및 정치판물갈이를 주장하는 정치그룹에서는 패권정치·비타협정치를 그이유로 지적해 왔었다.그러나 결과는 과거와 별반 다름없이 「타행일변도」였다.결국 13대국회를 결산하는 마지막 정기국회운영을 지켜보노라면 정치권 전체가 구시대의 그릇된 유산을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고영환은 말한다:2

    ◎김영남·강석주·고성순/북한외교의 「트로이카」/외교정책 결정의 메카니즘/외교부,84년에 당 국제부 누르고 실권 장악/“주석이 머리쓰셔야 하나” 김정일,전권 행사 솜털을 뽑아 그 자리에 다시 박을 만큼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김영남외교부장,능통한 영어구사력과 함께 세련된 제스처를 갖춘 강석주 제1부부장,중앙통신사 편집국장 출신으로 뛰어난 문장력을 자랑하는 고성순책임참사,바로 이들이 북한외교를 이끌고 있는 트로이카다. 북한의 외교정책은 김영남과 강석주가 분석한 내용을 고성순이 유려한 필체로 정리,김정일에 올리면 외교실무능력이 없는 김이 거의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곧장 국가정책으로 결정돼 시행된다. 김정일은 84년 이후 『외교부는 나의 외교부며 당의 외교부』라고 말하며 외교업무를 장악하고 있지만 외교부에서 올리는 제의서에 그대로 따를 뿐 정책방향을 지시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그는 정책적인 지시를 내리기 보다는 『외교부에 규율이 없다』『외교부를 군사화해야 겠다』『외교부에 부는 날나리 바람을 잠재워라』『왜 외교부가 돈벌이에만 열중,나의 외교에 먹칠 하느냐』는 식의 질타나 엉뚱한 주문을 자주한다. 최근 대일수교추진과 관련,당 국제담당비서겸 국제부장 김용순의 활동이 눈에 띄지만 어디까지나 외교부와의 사전합의 아래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그는 당차원의 대외연락을 맡아 일본의 정당들과 『너도 좋고 나도 좋다』는 식의 정당외교를 통해 수교회담을 측면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그는 「술고래」이며 「매사에 허허실실하는」성격의 소유자로 치밀하고 꼼꼼한 판단과 분석력을 요구하는 외교관으로서는 적당치 않은 인물이다. 더욱이 지난 84년 『당 국제부는 상대국의 집권당및 제정당들과의 연락업무만 맡되 집권당과의 교류시는 외교부와 사전 협의를 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은 후 외교부는 당시까지 받아온 당 국제부의 통제를 벗어나 외교정책의 실세로 부상했다. 당 국제부는 60년 김일성으로부터 『당국제부 외교부 3호청사(대남담당총본부)는 삼위일체가 돼 통일문제를 보라』는 지시를 받을 정도로 신임을받아왔다.이같은 당국제부에 대한 신임을 입증하듯 84년초 김정일도 『당국제부원들도 외교관인 만큼 폴카등 외국 춤을 배워둬야 한다』고 하명,이에따라 국제부원들과 그 부인들이 사교춤을 배우겠다며 예술인들을 데려다 국제부마당에서 춤판을 벌인 일이 있었다. 너무 뜻밖의 이같은 해프닝에 국제부를 제외한 모든 당중앙위 부서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당국제부에 날라리 풍이 들어왔다』며 성토하고 덤비자 김정일이 이 책임을 당시 국제부 제1부부장이던 김용순에게 전가,그를 탄광으로 1년간 「혁명」보냈다.이때 김용순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라며 반발,김정일의 분노를 샀으며 이를 계기로 당조직지도부가 당 국제부에 대한 일대 검열을 실시했고 이 결과 예술인과의 「부화」사건(연애)등이 드러나는 바람에 70여명이 숙청되기도 했다.이 숫자는 당시 1백50여명이던 국제부원의 절반에 가까운 것이었다.그러나 외교부는 조직지도부의 검열결과 「건전」판정을 받았으며 이로써 당국제부를 제치고 외교의 실권을 장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뿐만 아니라 77년부터 83년까지 외교부장을 지냈으며 지난 5월 사망당시까지 북한외교를 대표해온 허담은 『외교업무는 신속·신축성을 요구한다』며 양대 기관중 하나를 정리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은연중 「고리타분한 이론」만 내세우는 당국제부의 권한 축소를 시사하기도 했다. 여하튼 85년부터 외교부는 김정일의 직속 부서로 바뀌어 형식상으로는 정소 축소를 시사하기도 했다. 여하튼 85년부터 외교부는 김정일의 직속 부서로 바뀌어 형식상으로는 정는데 김은 『백두밀령에서 풍산과 고초를 겪으신 김일성주석께서 아직도 머리를 쓰셔야 하는가』하는 말로 자신의 외교전권행사를 미화하고 있다. 북한 외교가의 또 다른 숨은 실력자는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부부장겸2과장인 이화선.그녀는 김정일의 직속기구인 조직지도부에서 북한의 대외사업전반을 관리·지도하며 김정일의 외교담당 개인비서역을 담당하고 있다.다른 모든 부서가 그러하듯 외교부도 김정일의 친위부서인 조직지도부의 담당자들의 입김을 무시할수 없는 실정이다.또 현 제네바대사인이철(이수용과 동일인물)도 조직지도부 서기실출신인데 김정일에게 외교업무에 관해 많은 자문을 하고 있다. 북한의 외교관들은 『적을 알아야 적을 탈승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비록 4∼5일정도의 시차는 있으나 남한의 신문·잡지들을 그때그때 까다롭지않게 보고있다.외교부는 남한의 일간지5개및 시사월간지 2종을 구독한다.특히 외교부 지역국과 국제기구국 요원의 경우 KBS와 MBC­TV및 라디오방송을 24시간 모니터해서 만든 「참고통신」을 하루 두차례씩 읽으며 남한정세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이 통신은 북한 중앙통신사에서 정치문제를 중심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상오에 나오는 것은 「1보」,하오에 나오는 것은 「2보」라하며 분량은 매회 40∼50페이지 정도이다.
  • 대입부담 덜고 전인교육 강화/초중고 교육과정 개편 방향

    ◎체육·음악·미술 전담교사제 도입/초/「직업」과목 신설,진로지도에 역점/중/「선택」을 80여개로… 전문성등 모색/고 교육과정연구위원회가 27일 발표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시안」은 내용면에서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국제화·정보화시대에 대비해 컴퓨터·환경등의 첨단기초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신설하고 교육부의 교육과정 선택결정권을 줄이는 대신 각시·도교육청및 학교측에 결정권을 대폭 이양한 것이 눈에 띈다. 또 소련을 비롯한 동구공산권의 몰락과 남북한 유엔동시가입등으로 호전되어 가고 있는 국내외정세를 감안,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국사와 교련과목을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바꾼 것도 주목을 받고 있다. 덧붙여 초·중·고 모두 도덕교육에 중점을 둔 것은 기본생활습관·예절·규칙·질서를 중시하고 도덕적사고·가치관·인생관·세계관을 함양시키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개정시안은 이와함께 지역의 특성이나 학교의 실정,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다양성과 융통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앞으로 개정안이 확정되려면 내년 6월30일까지 9개월 남짓 남아 있으나 정부의 최종안도 연구위원회가 이날 내놓은 시안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는 개정내용이 혁신적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교육예산과 인력확보,시설확충등이 급선무라고 교육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연구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내용가운데 현행제도와 다른 점을 초·중·고별로 요약해 본다. ▷국민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지도하는 「바른생활」(사회·도덕)과 「슬기로운생활」(자연)이 「탐구생활」로 통합된다. 3학년 이상에만 도덕과목이 있었으나 1·2·3학년에 「생활예절」과목을 신설하고 4학년이상은 그대로 도덕과목을 둔다. 6학년을 기준으로 주당 32시간인 수업시간을 최고 31시간으로 줄이고 2학년 이상은 현재보다 주당 1시간씩 줄여 학습부담을 경감시켜 준다. 현재 국민학교의 수업시간을 보면 1학년이 24시간,2학년 25시간,3학년 28시간,4학년 30시간,5·6학년이 각각 32시간씩으로 나타났다. 고학년 체육·음악·미술과목의 교과전담제를 도입하면 현재 교사1명이 9개 과목에 걸쳐 최고32시간을 수업하던 것이 6개과목 24시간으로 훨씬 줄어들게 된다. ▷중학교◁ 교과체계의 합리화를 위해 국사과목을 사회과목에 통합시킨다. 한문교과는 완전히 폐지하고 국어과목에 귀속시킨다. 이는 현재의 한문교과서에는 실제생활과 거리가 먼 한시나 고문등이 많아 이를 국어과목에 귀속시켜 생활한자교육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또 농업·공업·상업·수산업·가사과목 가운데 한 과목만 선택하도록 했던 것을 3학년 교육과정에 「생활과 직업」이라는 과목을 신설,진로지도에 만전을 기울이도록 했다. 주당 수업시간은 현재 36시간에서 34시간으로 2시간 줄어들며 과목별로 주당 1시간 범위안에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도록 자율성을 확대시켰다. 남녀역할의 평등화를 도모하기 위해 1·2학년 교육과정에 기술과 가정과목을 통합시킨 「생활관리」과목을 신설한다. ▷고등학교◁ 개정시안중 가장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학기당 18∼20개 과목을 이수해야 하나 12개 과목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필수과목은 국민윤리·국어·국사·사회·수학·과학·체육·교련·음악·미술·한문·외국어등 12개과목에서 ▲일반국어 ▲현대사회와 시민 ▲윤리 ▲일반수학 ▲현대과학과 인간 ▲일반영어 ▲체육 ▲음악 ▲미술등 9개과목으로 줄였다. 이는 국사·교련과 한문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돌린데 따른 것이다. 국사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지 않은 이유는 종전처럼 한국사에만 연연해 할 것이 아니라 세계사의 맥락에서 우리를 이해하고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육전문가들은 그러나 국사과목을 완전히 폐지하지 않고 선택과목으로 남겨놓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도교육청과 학교는 국사과목을 선택과목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필수과목을 제외한 선택과목도 현행 29개 과목에서 80여개 과목으로 늘려 교육내용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꾀하고 있다. 그동안 없었던 환경관련과목을 신설,「환경교육」「환경과학」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신설한다. 전인교육의 강화측면에서 특별활동중 클럽활동시간이 현재의 주당 1시간에서 주당 2시간으로 늘어난다.
  • 버려야할 「한건주의」/김경홍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한국원씨는 왜 죽었는가」「경찰의 총기사용에 문제점은 없었는가」「이같은 사건의 재발방지대책은 무엇인가」 국회 내무위가 서울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다루었어야 할 사안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19일 심야까지 열린 경찰청감사에서 내무위의원들은 지엽말단적이고 「정치적 쇼」에 불과한 말싸움으로 일관하다 끝내 감사를 중단,본연의 임무를 외면하고 말았다. 또 20일 실시된 사건현장 조사에서도 「보도진 카메라앞에 모습 드러내기」와 인기성발언에만 급급했지 정작 진실규명에는 뜻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조사현장인 서울 신림2동파출소 주변에 모여든 주민들로부터 거칠게 항의받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딱하게도 보였다. 주민들은 민주당의원들에게 『정치를 잘해야 이런 일이 없을 것 아니냐』『시위때문에 못살겠다』면서 삿대질을 해가며 항의했다.민주당의원들은 『정치를 잘못해서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조사하러 온 것』이라고 항변했으나 설득력은 없었다. 이유는 대화와 타협을 내세우는 정치인이 오히려 이를 앞장서외면했고 또 진실규명을 한다고 국정감사일정까지 요란스럽게 변경한 당사자들이 말싸움만으로 국민의 기대를 외면해버렸기 때문이다.국민들,작게는 현장주변의 주민들은 이같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전날 민주당의 이찬구의원은 『노태우대통령은 한씨의 빈소를 찾아가 영전에 무릎을 꿇고 「당신을 죽게한 것은 저의 탓입니다」라고 사죄해야 한다』고 발언함으로써 여야는 「속기록에서 삭제하자」「못한다」고 맞서 소동끝에 감사가 중단됐었다. 이의원은 『국회의원 개인은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에 반해 발언내용을 삭제할수 없다』며 끝까지 버텨 여야간사들간에 합의한 「속기록삭제문제는 추후 총무단결정에 일임한다」는 절충안까지 무시했다.이의원은 또 『대통령이 철학과 결단력이 없어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라는 등 횡설수설했다. 이의원은 자신이 헌법기관임을 내세우기전에 국민을 대변하는 대의기구라는 점을 먼저 알았어야 했다.그는 최근 『정치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못하겠다』며 소속당에 의원직 사퇴서를 냈다가 어물쩡 번의한 사람이다. 국민들은 더이상 소신이라는 허울로 「정치적 쇼」를 일삼는 대변자를 원하지 않으며 기묘한 발언으로 유권자의 관심이나 끌려는 소영웅주의를 더욱 싫어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레슨 거부의 여운/서동철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언제부터인가 대학입시는 교육의 한 과정이라기 보다는 기차표를 사기 위한 역대합실에서의 줄서기가 되어버렸다.다만 새마을호·무궁화호·통일호·비둘기호로 창구가 구별되어 있을 뿐이다. 서울대음대 교수들이 지난 10일 『앞으로 중·고생에 대한 레슨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결의를 바라보는 시각도 매표창구앞의 줄서기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철도공안원의 그것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어보였다. 이번 문제에는 「교육」이외에 「예술」이 하나 더 개입되어 있음에도 전혀 고려의 대상이되지 않은 것이다. 당사자들은 이번 결의로 그동안 자신들에게 집중된 국민의 의심에 찬 눈초리가 상당부분 거두어졌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교육」과 「예술」을 떠나 천문학적인 액수가 건네지는 개인레슨을 하지 않겠다는 교수들의 결의에 공감을 표시하는 보통사람들도 『예술계 중·고교에의 출강도 하지않겠다』는 결정에는 의아함을 표시하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의 논리는 『그동안 중·고교에 출강한 교수들이 학교에서 할당된 시간이외에별도의 개인스튜디오에서의 레슨을 제자에게 요구했던데서 예능계 입시비리가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출강을 하지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부모들은 『그렇다면 지금까지 교수들의 예술중·고교 출강은 개인레슨을 해 돈을 벌기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냐』면서 분개하고 있다.진정으로 이번 결의가 고뇌에 찬 선택이었다면 돈을 위한 개인레슨은 포기하되 우수한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예술학교로의 출강은 비록 쥐꼬리만한 강사료가 쥐어질망정 더욱 열심히 했어야 하지않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에 대한 고려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자세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제 결의를 박차고 나오는 또다른 결의가 나와야 한다.그것은 「다수의 합의」를 의미하는 결의가 아닌 한사람만의 「양심선언」이어도 좋다.그것은 『나는 돈과 관계없이 가르치던 제자가 있으니 더이상 결의를 따르지 못하겠다』는 것이어야 한다. 수업료를 낼 수 없는 가난한 제자의 재능 하나만을 믿고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 훌륭한 음악가로 키워낸다는 미담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들리지 않는가 하는 것을 교수와 학부모·학생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 할 때다.
  • 음대 교수들의 자정 노력(사설)

    서울대음대 교수들이 『레슨을 않겠다』는 결의를 했다.레슨은 예능교육의 핵심이다.예술교사가 레슨을 않겠다면 가르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서울대 음대 교수들의 이 결의에 우리가 눈이 번쩍 뜨이는 신선한 충격을 맛보는 것은 예능계대 입시불정이 던진 심각함 때문이다. 가르치는 일을 본업으로 하는 교수가 가르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일이 매우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이만한 결심을 해준 서울대음대 교수들의 용기에 우선 격려를 보낸다.이같은 결정이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방편으로 단지 「말선사」에 지나지 않게 내려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환영을 하는 것이다.전해 듣기로는 음대교수 41명중 대다수인 35명이 모여 6시간이상 토론을 하고 그 결과 『음대 입시부정이나 가짜 악기판매사건등의 음악교육계 부조리는 교수들의 중고생 레슨에서 발생했다』는 결론을 얻어냈다고 한다. 이 결론을 토대로 중고생 레슨을 중지하는 것은 물론 5개 예술계 고등학교에 교수들이 출강하는 일도 중지하기로결정했다는 것이다.이 출강과 레슨은 말이 강사고 레슨이지 고액과외와 같았다.대학입시를 위해 하늘의 별따기처럼 교수잡기가 어려워서 해당교수들은 특별히 욕심을 내지 않아도 최고의 대우를 받아가며 우수한 지망생을 지도할 수 있었다.그 기회를 포기하겠다는 결의이므로 결정하는데 진통을 겪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그 때문에 사회의 반응도 반신반응한 시선이 쏠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격론을 주고받으며 긴 시간의 토론과정을 겪었고 종당에는 거수표결로 30대 5라는 투표과정까지 거쳐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이만한 진통을 겪어가며 자정노력을 결의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의와 기대를 보낸다.교수쯤되는 지성이므로 고뇌하고 결의하는 노력이 보이기를 고대했었는데 거기 부응해준 셈이어서 다행스럽다.이런 움직임이 서울대 음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또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한다.엄밀하게 말하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입시부정은 다른 대학의 교수와 몇몇 시간강사에 의해 저질러졌을 뿐 현직 서울대교수가 직접 간여된 것은 아니다.그런데도 책임을 느끼고 자정노력을 서둘렀다는 사실이 평가된다.또한 서울대는 누가 뭐래도 다른 모든 대학을 앞서 이끈다.그러므로 서울대 음대교수들의 결의는 잇따라 다른 대학과 다른 예능과목으로 확대 파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급이 안된다 하더라도,「서울대」만이라도 정화될수 있으면 우리 교육계의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질수 있다.또한 당장의 수익이나 재산상의 이득에는 손상이 있을지 몰라도 크고 소중한 명예와 품위를 보존한다는 뜻에서 더 귀중한 것을 얻게 될 것이다.서울대 음대 교수들의 결의가 빛나는 결과로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소 공산 독재가 무너지던 날/김영만 모스크바특파원(오늘의 눈)

    소련이 해체되던 5일 모스크바에서는 작은 떨림같은 것이 있었다.해체가 좋다거나 싫다는 그런 정치적인 떨림이 아니다.예상했던 일이긴 했지만 워낙 큰 뉴스앞에서 이유없이 긴장하게되는 몰가치적인 떨림들이 모스크바 시민들의 얼굴에서 잠시 나타났던 것이다. 붉은 곰으로 소련은 곧잘 비유되었듯이 그것은 탐욕스럽고 거친 이미지로 우리에게 있어왔다.2차대전이후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면서 인류를 핵전쟁의 공포에서 허덕이게 했고 20억 공산권인구에게 마르크스와 레니즘을 실험해왔던 공산주의 종주국이 소련이었다. 그보다 더욱 우리에게 선명한 소련의 이미지는 얄타회담에서 38선을 그어 통일된 나라를 분단시켜 놓은데서 찾아진다.2백만명이상의 사망자를 낸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왔다는 부분에 이르면 소련의 이미지는,또 우리에게 있어서의 그 역사적 존재는 탐욕이나 거칠다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그 소련이 지도에서 사라지던 날,모스크바의 TV와 라디오는 쿠데타소식을 전하던 그때처럼 흥분된 목소리로 인민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전했다.그러나 그것 뿐이었다.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민들은 잠시 큰 뉴스앞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뿐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이미 쿠데타직후부터 연방해체를 예상했던 사람이 많았고 연방이 해체된다 해도 일반시민들의 생활이 바뀔것도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연방해체를 충격없이 받아들이는 모스크바시민들앞에서 한국기자들만은 설명하기 쉽지 않은,배반감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소련이 만들어낸 38선이 휴전선으로 뒤바뀐채 남아있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통일은 언제될지 모르는 상태에 한국은 여전히 머물러 있다.언제 아물지 추측키도 쉽지 않은 그런 상처를 남겨놓은채,막상 상처를 입힌 장본인들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볼셰비키혁명이전으로 돌아가버리는 5일의 모스크바 표정에서 배반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같은 유약한 감정일 것이다.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될리없는 단상이란 점도 분명하다.그러나 그런데서 세계사의 몰인정을 배우면서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큰 재산이 될 것이다.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6

    ◎삼권분립 가속화… 「기득권」이 개혁 걸림돌/「국가=당」 무너져 각종제약 한꺼번에 풀려/민주적 여론 수렴할 신당 출현도 눈앞에 보수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실패는 결과적으로 소련에 정치개혁의 수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됐다.역설적으로 말하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페레스트로이카 5년여 동안 이루지못한 것을 이들 보수세력들이 단번에 해치운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소위 사회주의 틀속에서의 「한계내의 개혁」을 고집함으로써 파생됐던 숱한 문제들 다시말해 공산당의 권한 약화,다당제도입,시장경제로의 이행,신연방조약 구상 등에 있어서의 각종 제약들이 마치 칼로 자르듯 한꺼번에 해소돼 버렸다. 특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족쇄에서 벗어나 정치면에서의 개혁은 지난 5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게됐다.고르바초프 자신도 여러차례 강조했듯이 페레스트로이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스탈린주의·교조적 마르크스주의의 요소를 청산하고 레닌이 볼셰비키혁명을 통해 구현하려했던 진정한 사회주의를 찾아가자는 것이었다.그리고 그 개혁의 과정과 폭은 당·국가에서 결정하고 추진하는 소위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즉 고르비의 개혁은 애당초 체제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그러나 일단 시작된 개혁운동은 국민들의 의식은 물론 사회전반에 엄청난 변화들을 가져왔다. 이러한 소위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위로부터의 혁명」사이의 괴리는 결과적으로 체제에 대한 회의로 발전했고 이러한 체제도전으로부터 체제를 수호하려는 세력들의 우려가 이번 쿠데타로 나타났다고 할수있다. 향후 정치개혁은 일단 신연방조약이 체결될 경우 새연방구성에 따른 헌법개정을 하고 직접선거등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새 국가기구들을 구성하게 된다.현행 헌법은 브레즈네프가 1977년 소련에 발전된 사회주의건설이 완성된 것을 전제로 만든 것이다.사회조직·국가조직·민족관계등 모든 정치적 문제들이 사회주의 틀속에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방식도 완전히 바꾸어 순수한 국민대의제가 될것이다.지금까지는 당이 기득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못해 이의 도입이 불가능했다.예를들어 인민대표회의 대의원선거에서도 공산당을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 몫으로 일정 의석을 할당하는 등의 편법을 썼었다. 소련공산당은 정상적인 의미의 공산당이 아니라 입법·사법·행정등 국가의 모든 업무를 당이 관장하는 기형적인 「국가=당」의 기능을 가졌었다.공산당의 이런 기능이 중지됨으로써 이제는 명실상부한 3권분립시대가 열리게됐다. 국가속의 국가로 불리며 모든 국가정책의 최고결정기구 역할을 했던 당정치국·당중앙위원회및 각급 당조직이 보유한 권한들이 모두 국가기구로 이전되게 됐다. 이미 여러 공화국에서 군·KGB·경찰·공장 등에 있는 당세포 활동이 중지됐다. 정치개혁의 가장 큰 장애가 돼온 것이 바로 당의 지도적 입장조항이었다.지난해 3월 헌법 제6조에서 이 조항이 삭제된 뒤에도 소련공산당은 여전히 지도적 위치를 누려왔다.공산당의 몰락으로 이제 소련에서도 민주적 여론수렴의 요체라 할수 있는 복수정당제시대가 열리게됐다.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예두아르트드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 등 개혁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서구식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신당이 창당준비중이고 루츠코이 러시아공 부통령을 주축으로 한 공산당내 개혁파들도 새 마르크스주의당을 결성하는 등 벌써 몇개의 정당출현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 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연방정부,연방정부들끼리의 관계도 지배­종속관계를 벗어나 횡적인 협조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소련의 정치개혁은 한마디로 사회 각 분야에 뿌리내리고 있는 공산당의 영향력을 제거해 나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소련이 안고있는 정치제도상의 비정상적인 문제들의 대부분이 여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 「소 사태의 사후비판」 유감/이경형 정치부 부장급(오늘의 눈)

    소련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3일 천하」로 막을 내린 뒤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정부의 「눈치외교」를 호되게 비판했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외무위에서 한 야당의원은 『탱크를 앞세우면 모든게 해결된다고 정부가 생각한 것은 아니냐』고 까지 몰아부쳤다.정부의 신중론의 배경에는 『군부쿠데타는 항상 성공한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야당총재도 소련사태에 왜 신속히 대처하지 않고 우유부단했느냐고 정부당국을 비난했다. 일부 언론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소련보수파에 대해 왜 정면비판을 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등 원칙없는 외교를 하느냐고 나무랐다. 이들 비판은 설득력에 있어 한가지 공통적인 맹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모두가 쿠데타가 명백하게 실패로 끝난 뒤의 사후결과론적 비판이라는 것이다.물론 사후결과를 분석,앞으로 우리 외교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하나의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비판의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정치적인 신념과 상황전개에 따른 나름대로의 판단에바탕을 두고 비판을 하는 것이라면 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도 비판을 했어야 했다. 일이 모두 끝난 뒤 군중들 틈에 끼여 「옳소」를 외치는 식의 자세는 보기좋은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과연 정부가 기회주의적인 눈치외교로 일관했느냐는 점이다. 쿠데타가 발생한 19일 정부는 대외적이 언급없이 미국등 우방국과의 협력속에서 사태를 예의주시했다.20일 하오엔 노태우대통령주재의 관계장관대책회의를 열어 『소련이 앞으로도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가게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3일째인 21일 상오9시 노대통령은 김종휘외교안보보좌관에게 한소어업협정체결을 위해 소련으로 떠나려던 수산청장의 소련행을 중지시켰다. 노대통령은 그 이유로 『조속한 어업협정체결이 국익에 도움은 되겠지만 이 시점에서 협정체결은 소련정변 획책세력의 지지로 오해를 받을 수 있고 쿠데타등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표시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쿠데타 실패가 알려지기 5시간전인 하오4시 정부관계부처는 삼청동 안가에서 회의를 갖고 소련사태에 대한 정부대변인 성명발표를 결정,노대통령에게 보고한뒤 하오6시 발표했다. 최창윤공보처장관의 정부대변인 성명은 「깊은 우려」「개혁정책 계속 희망」「경협집행은 추이 보아 결정」이 골자였다. 표현의 강도는 해석 나름이겠으나 민감한 사안의 외교적 사령인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쿠데타세력에 대한 분명한 비우호적 태도표명이었다. 도덕적 당위성보다 국익이 우선되는 외교는 남북분단 상황에서부터 우리의 경제력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위상진단을 바탕으로 신중히 수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된다.
  • 소 연방총리/이반 실라예프

    ◎러시아공 총리 지낸 시장경제 신봉자/항공학도 출신… 「4인경제위장」도 겸임 불발쿠데타로 축출된 발렌틴 파블로프에 이어 새 연방내각의 총리에 지명된 이반 실라예프(61)는 지난 6월부터 러시아공화국 총리를 역임해온 시장경제의 확고한 신봉자이다. 그는 또 소련경제의 운영방향을 결정할 4인 경제위원회의 위원장도 맡게되므로 앞으로 소련경제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학을 전공한 실라예프는 29세때인 59년 공산당에 입당,74년 소련항공공업차관을 역임한 이래 기계공업장관(80∼81년)항공공업장관(81∼84년)등 경제관련각료를 두루 거친후 85년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집권한 뒤에는 소련각료회의부의장직을 역임했으며 89년 7월 니콜라이 리슈코프 총리내각에서 부총리에 올랐다. 86년 체르노빌핵사고에 대한 정부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지난6월 「시장경제로의 빠른 이행」에 대한 강력한 지지자로서의 면모가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눈에 띄어 러시아공화국 총리로 발탁됐었다.
  • 소,공산독재 막 내렸다(옐친의 소련:1)

    ◎공산당사 폐쇄·레닌동상 철거의 대변혁/쿠데타 꺾은 「시민파워」업고 개혁 줄달음 소련의 공산주의시대가 마침내 「비극적」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지난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후 마르크스­레닌의 공산주의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마르크스­레닌이즘은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공산당을 해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소련관영 타스통신도 소련최고회의 당기구는 공산당활동의 종식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지난 70여년간 소련을 지배해온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고 추악한 역사의 한장이 끝나고 있는 것이다.소련 공산주의체제의 붕괴는 「시민혁명」의 승리이다.고르바초프대통령은 쿠데타가 실패한후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나는 사회주의자이며 결코 공산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그러나 그는 공산당의 해체를 스스로 선언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소련의 피플파워는 보수파의 상징인 공산당을 거부했다.소련의 피플파워는 옐친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옐친은 강경보수파의 쿠데타를 저지시킨 시민혁명의 구심점이었다.옐친은 이미 공산당을 탈당했었고 러시아공화국내에서의 공산당 활동을 금지시킨바 있다. 고르바초프의 공산당해체선언이전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소련사회에서 소멸해가고 있었다.공산당원들조차도 마르크스­레닌주의 깃발을 휘날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쿠데타이후 공산주의의 종말을 고하는 2개의 사건이 있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뒤 지난 74년간 소련공산체제 수호의 선봉을 맡았던 KGB의 창설자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끌어 내려졌다.크렘린궁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KGB본부건물앞 광장에 버티고 서있던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끌어 내려지는 동안 KGB직원들은 창문을 통해 속수무책으로 그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공포의 권부였던 KGB건물앞에 동상의 기단만 덩그랗게 남은 광장을 바라보며 모스크바시민들은 말할수 없는 감회에 젖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두 장면의 주역은 소련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었다. 고르바초프의 비극은 바로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데서 시작한다.「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라는 시대의 유행어들을 만들어내며 스탈린주의 통치시대를 끝내고 변화의 물꼬를 튼 그였지만 그 변혁의 파장은 그의 사고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의 희망은 스탈린주의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지만 소련국민들의 가슴속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은 이미 깨졌고 공산주의는 조롱거리로 전락돼 있었다.사회주의체제내에서의 개혁을 고집하는 그가 소 국민들의 눈에는 우유부단하고 결단력 없는 지도자로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이번 쿠데타를 물리친 가장 위대한 힘은 바로 모스크바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저항정신이었다.맨손으로 쿠데타군의 탱크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자유에 대한 그들의 욕구가 얼마나 진한가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더이상 공산독재의 노예가 아니었으며 그들이 공산독재 부활기도를 물리친것은 일종의 시민혁명이었다. 옐친은 이러한 성숙한 시민의식의 흐름을 읽고 과감히 그들의 앞장에 섰다는 점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비치고 있다. 쿠데타세력은 물러갔지만 돈이 있어도 살 물건이 없는 경제,와해직전에 놓인 연방체제등 이전의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는게 소련의 현실이다.러시아민족주의·반공산주의 히스테리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경제난이 계속되고 민족간의 충돌이 재발되면 시민들은 또다시 불평을 터뜨릴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옐친의 주장대로 시장화 5백일 계획이라는 급진경제개혁안이 채택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동서냉전구도의 청산,동구의 대변혁등 외부에서의 찬사말고도 고르바초프는 분명 암울하던 구시대를 청산하고 소련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준 위대한 지도자였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그러나 이제 그가 쿠데타의 충격에서 벗어나 이전의 자신에 찬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뚜렷한 전망을 삼가고 있다.그는 공산주의자임을 헛소리같이 되뇌이고 있지만 어느덧 고르비의 시대는 공산당독재시대와 함께 막을 내리고 있다.소련에서는 이제 옐친시대가 개막되고 있는 것이다.
  • 크렘린 정변과 북 동향/이명영 성대교수·정치학(특별기고)

    ◎시대흐름 착각한 평양의 흥분/“대남 강경노선 구상은 커다란 오판” 소련에서 정변이 일어났다.민주화노선을 힘겹게 달리고 있던 고르바초프는 유폐되고 군을 등에 업은 보수파들은 끝내 전면에 나오고야 말았다.지구인의 눈 귀를 모으고 있는 TV화면에는 모스크바 거리를 달리는 탱크의 모습과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분노로 가득하다.특히 옐친의 결연한 반대 성명은 역사의 기로에 선 소련 자체의 몸부림 같기도 하다. 소련의 사회주의체제가 장엄한 인류사적 대실험이긴 했어도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무모한 실험이었음이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였다.레닌 혁명 후의 소련에서 한때 성행했던 아진 스타칸주의(한컵주의·목마르면 한컵의 물을 마시듯이 성생활도 그렇게 자유롭게 해야한다는 주의)가 그들 스스로에 의해 배격,청산되었듯이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꿈도 그들 스스로에 의해 청산되지 않으면 안될 운명이었는데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 고르바초프로 대표되는 개혁파인 것이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이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야기함이 예사이듯이 소련의 대중들도 개혁의 선을 넘어 혁명적인 전진을 재촉했다.그러나 결정적인 모순은 그 대중들이 전진을 감당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70년동안 갇혀 왔던 새들은 새장 밖으로 내보내져도 제힘으로 날 줄을 몰랐던 것이다.민주화개혁파의 고민은 그 혼란을 틈타고 대두하는 보수파의 역공에 의해 더욱 가중되어 오다가 이번에 당하고 만 것이다. 보수파란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멘크라투라들이다.당료·군·KGB들로 대표된다.KGB지배하의 국경경비대 20만과 최정예부대인 내무부직속 보안군 30만 및 4백만의 국방군등이 그 세력의 기반이다.미국은 장군 1인에 사병이 3천4백명이지만 소련은 1대7백이다.너무도 많은 별들이 특권의 포기를 거부해 왔다.공산당의 지도적 기능이 부정된 작년의 개헌이래 모든 조직에서 당위원회는 해체되었으나 군에서만은 그것이 온존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어왔다.그래서 군의 등장이 예견되기도 했던 것이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쿠데타를 질타하고 있다.그러나 이 정변에 회심의미소를 머금고 있는 곳이 평양이다.수년전부터 평양에서는 「고르비놈」「소련 놈들」이란 욕소리가 공공연했다.소련의 개혁을,소련의 탈냉전 정책을 평양은 제국주의에의 투항이라느니 사회주의의 변절이라느니 하면서 매도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그 고르비가 실각하고 소련제국의 권세와 공산당의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등장했다.평양은 세계정세에 일대 역전이라도 온듯이 고무되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우선 그 징후가 총리 회담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27일부터 평양에서 있기로 했던 것인데 판문점에서 하자는 것이다.구실은 콜레라이나 속셈은 회담을 늦추자는 것이다.소련 정세의 귀추를 좀더 보고서 대남 작전을 다시 짜겠다는 계획일 것이 뻔하다.본디 북한은 총리 회담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그것은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겨냥한 성동격서전술의 일막이며 남한의 사회주의혁명세력들의 범민족대회(하층통일전선)를 성사시킬 것을 겨냥한 상층통일전선의 일막으로 짜여진,그야말로 담담정정전술의 한 회전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상층과의 회담은 하층의 투쟁을 부추기기 위해 하는 것이고 그래서 회담(담)은 회담이고 투쟁(정)은 투쟁인 것이다.회담을 한다고 투쟁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다.투쟁을 부추기기 위해 오히려 회담을 하는 것이다.모든 것은 투쟁이다.무엇을 위한 투쟁인가.김일성부자지배하의 통일을 쟁취키 위한 혁명투쟁인 것이다.이 금과옥조와 같은 원칙들을 관철하기 위해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총리 회담이지만 그것도 마다할 정도로 나오는 것은 소련의 정변에 대한 부푼 기대 때문인 것이다. 평양의 통일 원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노선전환이 있을 것을 저들은 모스크바에 걸고 있다.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의 길이라고 했던 지난 5월의 김정일의 담화를 뒷받침해 줄 권력의 정책을 평양은 모스크바에 기대하고 있다.그래서 요즈음의 평양의 신문 방송은 흥분하고 있다.마치 소련마저도 평양을 추종하고 있다는 듯이 들떠 있다.그렇다면 총리회담쯤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조소 합작의 보다 근본적인 통일 문제 해결의 방안(남진)이 더 중요시될 것이다.평양은 그것을 거머쥐고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약자의 허약심리에서 나오는 착각이다.소련의 정변은 성공하지 못한다.한번 자유와 민주에 눈뜬 대중은 반동을 허락하지 못하는 법이다.설사 쿠데타 세력이 일시 권력을 유지한다 해도 그들은 국내문제에 쫓겨 세계를 대상으로 할 여유가 없다.평양의 흥분은 곧 허탈을 불러올 것이다.그러한 비주체적인 기대는 일찍 버리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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