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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성 내각 긴장했다/개혁주도역 청와대서 넘겨받고

    ◎부처역할 강화로 현안 자율해결 모색/기대에 부응 못하면 응분의 인책예상 새정부 출범후 4개월­김영삼대통령이 정치·경제·사회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반대로 부작용도 따르고있다.조금 어려운 일이 생기면 대통령만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의 예만 보아도 한두가지가 아니다.노사분규,무노동 부분임금,한·양약분쟁,전교조 복직문제등.최고 통치권자로서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할 수는 없다.그러나 밑에서 책임지고 해야 될 사안도 대통령의 결정에 미루기 시작하면 대통령업무는 무한정으로 늘어날 것이다. 새정부 실세들과 「상도동 구신」들은 잇따라 모임을 갖고 이같은 풍토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거기서 모아진 의견이 『내각에 적절한 권한과 책임을 배분한다』는 것이다.김대통령도 이를 흔쾌히 수용,지난 22일 청와대 고위 당국자 입을 통해 내각과 국민에게 고지했다. 청와대 당국자는 『앞으로 정부의 주요 정책발표는 대통령의 지시형식이 줄어들고 내각차원에서 자율적으로 하게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정부운용에 있어서 청와대의 자세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미묘한 현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고 있으며 해당 부처가 책임지고 합리적 해결책을 마련해보라는 원칙론만 개진하고 있다. 이전까지 일반인들은 「있는지 없는지」조차 제대로 몰랐던 대통령­총리 주례회동의 의미도 부각시켜 총리의 위상을 제고시킨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웬만한 정책사안은 황인성총리가 전결권을 갖고 처리하게끔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비서관들의 내각간섭정도도 낮추려하고 있다.이번주부터 김대통령이 이경식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으로부터 매주 현황보고를 정기적으로 받기로 한 것도 내각역할강화와 연관이 있다.대통령이 경제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횟수도 2주마다에서 한달에 한번으로 줄이는 방안을 강구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통령의 통치스타일 변화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정치적인 면에서는 사정정국에서 평상정국으로의 복원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개혁초기에는 대통령주도가 불가피했으나 개혁이 궤도에 올라섰다고 판단되는 지금부터는 내각이 제도개혁에 앞장서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럼에도 평상정국복원은 아직 가슴에 와닿지않는다.새정부 출범후 김대통령이 보여준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했고,아직 사정정국이 일단락됐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김대통령이 내각에 「힘」을 주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개혁을 더 힘차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로 이해된다.대통령 개인보다는 대통령과 총리이하 전 각료,그리고 당이 팀플레이를 통해 국민이 공감하는 개혁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으로 볼수 있다. 「힘」의 배분은 「책임」도 수반한다.김대통령은 지금까지 정책과 관련해 각료들을 크게 꾸짖은 일도,문책한 적도 없다.문민정부 이미지에 맞추다보니 업무파악이 제대로 안된 각료도 상당수 탄생했던 것도 부인할수 없다.이제부터는 다르다.오리엔테이션기간이 끝난 것이다.스스로 소신을 갖고,국민속에 호흡하고,움직이는 내각­이것이 대통령의 요구사항이다.요구에 부응 못할 때 응분의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는 것이 청와대관계자의 설명이다. 전 내각이 권한을 부여받았음에도 긴장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울산의 현대노사분규현장에 뛰어내려간 이인제노동부장관의 경우가 「내각중심 정부운용」의 성공여부를 가름짓는 1차 시금석이다.
  • 일 신당들 인기 급상승/7·18총선앞두고 높은 지지율

    ◎부패구조 척결… 정치개혁 주장/신생당/선거후 합당… 자민과 연대 예상/사키가케 일본신당 일본의 정치구도가 바뀌고 있는 가운데 정치개혁을 부르짖으며 일본정계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신당들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일본언론 여론조사에 의하면 자민당을 탈당,23일 새로운 정당으로 출범한 하타파 중심의 신생당 및 「신당사키가케」와 지난해 창당된 일본신당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조일)신문이 23일 보도한 여론조사결과 이번 7·18총선에서 의석이 증가하기를 기대하는 정당으로는 신생당,신당사키가케등 자민당을 탈당한 그룹이 14%로 1위를 차지했다.2위는 일본신당으로 13%.자민당은 9%로 3위,사회당은 8%로 4위를 기록했다.도쿄신문이 5천명의 도쿄시민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일본신당에 투표하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13.1%로 자민당을 누르고 1위를 기록했다. 신당들의 이같은 높은 인기는 기성정당에 대한 불신과 함께 정치개혁및 정계개편에 대한 일본인들의 높은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일본인들의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전후 38년간 계속된 자민당 1당지배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정치부패와 냉전종결 등 국제정세변화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일본인들은 경제발전과 냉전구도에서는 정치의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인식,자민당의 정치자금스캔들등 부패구조를 어느정도 눈감아왔다.그러나 경제대국을 이룩한 오늘의 일본인들은 국제정세등 시대가 변화했음에도 부패방지를 위한 정치개혁에 소극적인 자민당에 비난과 분노를 나타내기 시작하고 있다. 하타파를 중심으로 결성된 신생당은 이같은 시대의 흐름을 배경으로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신생당은 정강정책에서 정치·관료·재계의 3각유착이라는 「전통적」인 부패구조의 척결을 강조하고 있다.신생당은 그러나 자민당과 마찬가지로 보수정당을 지향하고 있다. 신생당은 정치개혁을 목표로 사회·공명등 야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상하고 있다.「하타총리」정권이 탄생할 경우 헌법 외교 안보정책 등에서 사회당과의 심각한 마찰이 예상된다.그러나 신생당은 적극적인 국제공헌을강조하고 있어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가 가속될 가능성도 높다. 일본신당과 신당사키가케는 신생당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선거후 합당할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오히려 자민당의 개혁세력과 가까우며 자민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할 경우 파트너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신당들은 그러나 실제 선거에서는 상당한 고전을 하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선거구에서 경쟁하지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있으며 탈당에 대한 기존조직의 반발도 있다.야당과도 겹치는 선거구가 많다.중선거구제도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면도 없지않지만 어느정도 선거협력이 이루어질지 미지수다. 유권자들중에는 아직 어느당에 투표할 것인가를 결정하지못한 경우가 40%이상인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정치불신은 높지만 변화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수 있다.이들의 선택에 따라 일본의 정치지도는 다시 그려질 것이다.
  • 부전전투 영웅 이병형씨(예비역 육군중장 전쟁기념사업회장)는 말한다

    ◎“6·25 끝난줄 아는 착각 안타깝다”/안이한 안보관으론 나라지탱 못해/우방지도층 자제의 한국전 희생 본받아야 전선에서 산화한 전우와 두고온 산하를 못잊는 노병 이병형씨(67·예비역 육군중장·전쟁기념사업회장)에게는 아직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사에 길이 남을 전과를 세운 전쟁영웅이기도 한 이씨는 『지금 모든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76년 2군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한 이씨는 30년 가까이 군에 있으면서 참군인의 면모를 과시,칭송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다.그의 군인 됨됨이를 높이 산 노태우전대통령도 88년 취임초 그에게 전쟁기념사업회 일을 맡겼으며 장태완전수경사령관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군인의 한 사람으로 그를 꼽았을 정도. ­다른 사람들 하고는 달리 6·25를 맞는 소감이 각별하다고 봅니다만.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합니다.6·25 발발소식을 듣고는 마치 댐밑에 서 있다 댐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에는 뚜렷한 승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승패없는 전쟁에서는 전쟁을 치른 대가를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6·25전쟁의 승패가 나지 않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전혀 결정이 안났다고 봅니다.이질적인 집단간의 투쟁에서 아직 가부간의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김일성이 엄연히 존재하지 않습니까. ­6·25는 어디서 맞았으며 그때 얘기를 좀 들려주시죠. ▲당시 수도사단 18연대 인사참모로 대위였습니다.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원산탈환후 북진할 때는 18연대 1대대장으로 참가 했습니다.전쟁얘기를 다 할수는 없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몇 개 있지요.50년 12월초로 기억되는데 두만강을 90리 정도 앞둔 함북 부령까지 북진해 갔을때 갑자기 연대에서 대대장회의를 소집하더니 철수한다고 하더라고요.중공군 때문이었지만 그날 새벽 이미 2대대 6중대는 선발대로 두만강 쪽으로 출동한 상황이었지요 6중대에는 통신이 안닿아 할 수 없이 남아있는 병력만 철수했습니다.6중대를 먼저 보낸 것은 적의 급속한 진격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작전이었지요.당시 6중대장인 이원개소령은 그 사실을 몰랐고…. 고향이 부령인 이소령은 얼마전에 소령으로 진급했음에도 부령전투에 참가하겠다고 고집,중대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나중에 들은 소문에 따르면 6중대 1백60명은 고립돼 유격전을 펼쳤다고 합니다만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고귀한 희생들로 인해 이 나라를 이만큼 지킬 수 있었던 겁니다. 함남 북청출신으로 실향민인 이씨는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작전시 동부전선에서 안강→청송→평창을 거쳐 서림(양양군)지역의 38도선을 돌파한 후 북진의 선봉대열에 서서 간성→양구→화천→신고산을 경유,원산까지 진격한다.원산탈환후 18연대 1대대장이 된 이씨는 대대를 이끌고 함흥을 공격,점령하고 50년10월 하순에는 함흥 북방 신흥지역의 백암산에서 부전호를 따라 남하하는 중공군 5명을 최초로 생포한다.곧이어 1개 중대의 중공군을 기습,매복으로 전멸시켰다. ­최근 탈냉전분위기등 주변상황변화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많이 해이해진 것 같습니다.국민들이 안보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6·25는 종전된 것이 아닙니다.휴전상태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모두들 전쟁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남북이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협상등이 있고 보니 그렇게들 보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안보관을 개혁하지 못하고서는 나라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특히 권력층·지도층·부유층에 문제가 있습니다.나서야 할 사람들은 항상 뒤로 빠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이익의 방패로 썼기 때문에 망국의 설움과 6·25를 겪었던 것입니다.군대가는 문제만 해도 지금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권력층·지식층·부유층자제들이 나라를 지키는 데 소극적입니다. 이게 고쳐지지 않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습니다.외국의 지도급 자제들이 6·25에 참전,많이 전사했다는 점을 거울삼아야 합니다.우리의 안보의식을 혁신해야 할 것 입니다. ­6·25때 생명을 내던져 쌓은 군의 신뢰가 최근 많이 실추된 듯 합니다. 군원로로서의 견해는. ▲군은 특별한 조직이 아닙니다.군도 국민의 일부입니다.국민이 합쳐서 군을 이루는 것입니다.국민들 이익에 반대되는 일이 있어선 안될 겁니다.군과 민이 별도라는 개념은 바람직하지 않아요.최근 군내에 「하나회」등 사조직이 문제가 됐다고 들었습니다.군내에선 사조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물론 일부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국민들도 전체 군과 관련지어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는 요즘 전쟁기념관건립에 몰두해 있다.6·25를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을 똑바로 알려주고 애국심을 고취하는데 헌신함으로써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노병의 한을 달래고 있다.
  • 바닥 드러낸 댐 상류… 흉물스런 모습만

    ◎“의혹 투성이” 평화의 댐… 그 시말 재점검/파헤쳐진 원시림… 쓰던장비 녹슨채로/“이게무슨댐” 찾아온 관광객 분노·허탈 ▷현장르포◁ 「평화의 댐」은 이날따라 유난히 적막감이 감돌았다.착공 7년만에 심판대에 오른 「평화의 댐」을 찾은 16일 하오 이날도 평소처럼 1백여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흉물스런 모습의 댐을 지켜볼 뿐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에서 도로변 절개지로부터 돌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험난한 길을 따라 해발 1천m 가까운 높은 산 몇 개를 지루하게 넘어 차량으로 1시간여 동안 달리다보면 화천군 화천읍 풍산 2리 세칭 애막골에 도착한다. 이 곳이 바로 지난 87년2월부터 88년 5월까지 북한의 수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불도저등 각종 중장비를 동원해 산과 산을 가로막는 거대한 평화의 댐을 건설한 현장이다. 북한의 수공의 위협을 막기위해 높이 80m, 길이 4백20m의 「평화의 댐」이 축조됐던 바로 그 장소이다.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평화의 댐은 온데간데 없고 윈시림으로 우거진 산을 함부로 파헤쳐 놓은 황무지 벌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금쯤이면 어느새 높이 80m,길이 1천1백m의 웅장한 댐과 절경을 이룰 호수는 5공 최대의 낭비와 불신의 기념비적 공사로 지탄만 받은채 세월의 흐름속에 묻혀 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상류로 4㎞를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이 건설하고 있다는 금강산 댐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평화의 댐 성금의 현장을 확인하고자 찾는 관광객들이 찾아올 뿐 당시의 떠들썩함도 세인들의 관심도 발길도 뚝 끊겨 있다.이 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마치 국토를 황폐시키려는 공사라도 한듯 함부로 파헤쳐진 공사현장을 확인하고는 분노만 되새기며 발길을 돌릴 뿐이다. 안보관광 안내소는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평화의 댐 축조 등을 설명해주고 있지만 금강산 댐의 수공위협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관광객은 전혀 없다. 댐 공사현장에 들어서는 방문객들의 출입신고를 받는 이곳의 한 경비병은 『댐을 밟고도 댐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귀뜸해 준다.댐 주변에는 부식된 철근과 부서진 합판 등 각종 공사자재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당시 댐공사로 파헤쳐진 절개지는 짙은 황토색을 드러내고 있고 댐상류는 거의 바닥까지 드러낸 채 평화스럽던 옛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건설공사에 투입됐던 41억원 상당의 불도저·굴삭기 등 각종 중장비는 53대.쌍용과 대림산업이 사용했던 36대의 각종 중장비는 회수해 다른 건설공사에 활용되고 있지만 삼성과 삼환이 쓰던 17대가 아직도 인근에 그대로 버려져 있어 더욱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평화의 댐」건설공사가 표류하면서 지난 91년부터 추진돼 왔던 안보관광 사업도 함께 흐지부지됐다.당초 지난해 말로 완공예정이었던 안보전시관 공사는 올 5월말로 완공시일이 늦추어졌다.그러나 전시관 공사도,댐 축조공사 뒷마무리 작업과 조경공사도 중단됐다. 특히 안보전시관은 댐 상류지역에 조성돼 2차공사 추진의사가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 주고 있다.그동안의 국민들의 무관심을 입증하듯 안내판과 공사 진척 상황판의 색이 바랜 가운데 먼지만 뿌옇게 쌓인썰렁한 모습만 드러내고 있다. 평화의 댐을 안보관광지로 운영하고 있는 (주)동일관광의 한 안내원은 『관광객은 하루에 1백명 가량으로 황량하기만 한 평화의 댐 건설 현장을 가리켜 낚시조차 할 수 없는 저수지거나 또는 국민 성금모아 자연만 훼손한 3류 관광지라며 크게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 김모씨(47·충북 제천시)부부는 『이것이 무슨 댐인가.국민 성금모아 원시림을 마구 파헤쳐 자연만 훼손한 황량한 현장 바로 그것』이라며 『정부는 댐 축조과정의 의혹을 밝혀내고 댐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 주도자·성금사용내역 등에 초점/“정치적 사안”… 진상규명으로 매듭질 듯 ▷특감 방향◁ 감사원이 평화의 댐 건설이라는 정치색 짙은 사안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평화의 댐 건설이 결정되고 추진되던86년말과 87년 당시는 13대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여야세력이 개헌과 호헌의 양극으로 치닫던 시기다.그리고 평화의 댐 건설은 이러한 정치상황을 어느정도 반영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따라서 그에대한 감사도 실무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이번 감사의 초점은 매우 단순해진다. 그것은 과연 금강산댐의 건설로 인한 북한의 수공위험이 있었느냐하는 것과 누가 평화의 댐 건설을 주도했는가에 집중된다. 감사원은 이와함께 ▲지금까지 성금모금사상 최대액수인 6백52억4천만원의 사용처 ▲정부예산 1천3백여만원의 집행내역 ▲설계및 시공상태 ▲공사중단이유등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부분은 거의 다 드러난 사실이다.이미 88년 2월 한차례 감사를 마친바 있다. 감사원은 지금까지의 자료수집및 내사결과 당시 평화의 댐 건설사업은 국가안전기획부가 주도한 것으로 보고있다. 감사원은 당시 평화의 댐 설계를 담당했던 산업기지개발공사가 안기부가 제시한 자료를 근거로 도면을 작성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폭파하는 등 저수된 물을 한꺼번에 쏟아낼 경우 16시간만에 서울이 50m 깊이의 물속에 빠져들고 수도권 1천5백만명의 시민이 수장될 것이라는등의 당시의 안기부 자료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는 판단을 감사원은 내리고 있다. 감사원은 또 댐의 규모등을 결정하면서도 금강산댐의 담수용량및 지형등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하지않고 안기부의 요구에 따라가는 식으로 일을 처리해왔다는 관계자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이 부분을 감사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안기부에 손을 댈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건설부와 한전,수자원공사등관계기관에 대한 조사를 거쳐 안기부에 관계자료를 요구하고 필요할 경우 안기부를 방문,현장감사도 벌인다는 방침이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관련자료를 요청할 경우 안기부가 비밀을 이유로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이 이기택민주당대표와의 회동에서도 평화의 댐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다짐한만큼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안기부장은 장세동씨(구속중)였으며 이학봉제2차장도 정책결정과정에 일부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사원은 이와함께 86년 11월 평화의 댐 건설방침을 공동발표했던 이기백전국방부장관,이규효전건설부장관,허문도전통일원장관,이웅희전문공부장관(현민자당의원)들로부터도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진술을 들을 예정이다. 그러나 평화의 댐 건설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책임자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감사가 많은 국민이 의혹을 갖고 있는대로 정치적 이유에서 시작된 사업이란 결론이 나온다하더라도 이를 사법처리할 법적근거는 매우 애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감사는 책임자처벌보다는 진상규명을 위한 감사가 될 전망이다. ◎87년 착공… 1단계 축조뒤 중단/총1천6백억 소요… 국민성금 1백34억 남아/지명경쟁·수의계약 통해 11개사 공사 맡겨 ▷공사 경위◁ 북한의 「금강산 댐」 건설로 인한 수공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긴급 축조된 「평화의 댐」공사는 지난 87년 2월28일 착공됐다. 금강산 댐에서 4㎞ 정도 떨어진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에 1년여만인 88년 5월 높이 80m,길이 4백10m,저수용량 5억9천만t 규모의 1단계 댐이 축조됐다.직경 10m의 배수 터널도 4개가 설치됐고 양구 및 화천과 통하는 2개 노선의 도로(69·9㎞)도 뚫렸다. 건설부 발표에 따르면 수자원공사의 발주로 시작된 1단계 댐 건설비는 총 1천5백95억원으로 각계 각층에서 모아진 성금 6백39억원,국방부 예산 9백56억원으로 집행됐다. 평화의 댐 건설지원 범국민추진위원회가 86년12월∼88년6월 모금한 성금은 원금 6백61억1천3백만원과 은행이자 1백12억4천9백만원을 합쳐 총 7백73억6천2백만원이며 공사비로 쓰고 남은 1백34억6천만원은 현재 상업·부산·강원·경기·전북은행 등 5개 은행에 연 14∼15%의 이자를 받는 특정금전신탁에 예치돼 있다. 건설 당시 해외건설 사업장에서 3년이상 쓴 초대형 불도저와 덤프트럭등 66대를 들여와 사용했고 등록말소된 13대를 제외한 53대 중 36대를 국방부의 자유로 사업에 활용 중이다.나머지 17대는 평화의 댐 현장에 그대로 방치돼 녹슬어가고 있다. 1단계 공사가 끝난 후 5년 동안 그대로 방치된 평화의 댐은 저수능력이 전혀 없다. 당초 설계부터 수공을 막는다는 취지여서 수문이 없을 뿐더러 비가 내려 유수량이 늘어나도 모두 배수 터널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1천6백억원 짜리 거대한 시멘트 벽이 쓸모없이 서 있는 셈이다.관리할 필요도 없지만 형식상 수자원공사 소양강댐 관리사무소가 관리 책임을 맡고 있다. 건설부 관계자는 『당초 북한의 금강산댐 진척 상황에 따라 2단계 댐 추진 여부를 결정키로 했으나 현재 금강산댐 공사가 「미미하다」고만 알려져 있어 2단계 사업 시행여부나 착공 시기등은 전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재인자
  • 부산 지방청와대/민속관 활용 결정

    【부산=김세기기자】 부산시는 15일 남구 남천동 부산시장 공관(지방청와대)을 민속관으로 활용키로 최종 확정했다. 지방청와대 활용 방안을 검토해온 부산시립박물관 윤병용관장은 이날 지방청와대의 본관 건물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속관으로 활용키로 하고 1층에 각종 민속전시실,2층에는 부산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전시실을 마련할 계획이며 야외공간은 장승,연자방아,맷돌등 민속관계 석물과 야외공연장,야외결혼식장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몸매·창의력·끼 겸비한 춤의 요정(이세기의 인물탐구:30)

    ◎환상의 율동속 감성·지성 융해… 칠정묘파/「…슈퍼스타」로 데뷔… 문학성 짙은 작품 추구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한다.「우리의 걸음걸이는 너무 쉽고 익숙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스텝을 결코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신기한 것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박명숙은 최근 그가 번역한 샐리 베인즈의 「포스트 모던댄스」서문에 이 글을 인용하고 있다.그는 모든 것은 춤,모든 움직임은 춤이며 우리의 일상적인 보행조차도 이미 춤임을 알고있는 예술가의 한사람이다. ○보행도 춤으로 인식 지금부터 20년전 그가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처음 맡았을때는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손가락질 받는 한낱 외롭고 초라한 여인을 표현하는데 불과했다.그 무대는 청순한 처절미로 일관돼 있었다.그러나 지난해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수퍼스타」 20주년 기념공연에서의 막달라 마리아는 인생의 고락과 희비,번뇌와 갈등을 넉넉하게 껴안는 아름다운 인간으로 승화되어 그날 관객들은 사랑의 힘으로 신에게다가간 절실한 기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소설이나 시,연극이나 영화처럼 언어없는 춤이 신비한 주술임을 체험한 순간이었고 특히 하이라이트를 이룬 「어떻게 그를 사랑할지(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박명숙솔로는 평자들로 하여금 「그는 해내고야 말았다」는 평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춤은 대부분 짙은 문학성과 철학성,그리고 연극적인 요소와 장식적 요소를 작품전편에 깔고있는 점이 특징이다.흔해빠진 일상적인 것을 일순간에 초월하여 의외성과 경이로움으로 역작용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빗발치는듯한 눈부신 알레그로 콘브리오의 「비둘기만 날아가다」가 그랬고,그동안 끈질기게 추구해왔던 곡선과 직선을 사선으로 붕괴한 「시간기행」「풀잎환상」등이 그렇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일에도 의연하게 대처한 것같지만 실은 그의 내면은 언제나 당황하고 망설이고 거부하는 습관이 배어있다.그것은 섬약한 감성과 투철한 지성감이 복합적으로 대립되어 어느 한쪽의 우성을 끊임없이 주장하려는 투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한 예로73년 육친같은 스승인 육완순씨가 영국의 록오페라 「…수퍼스타」를 현대무용으로 재구성·안무하여 그에게 막달라 마리아를 맡겼을때,그래서 모든 무용계가 육완순을 잇는 제2의 스타탄생을 기대하고 있을때 그는 개막을 앞둔 몇시간전 소리없이 도망쳐버린 적이 있었다.물론 소동과 곡절끝에 어렵게 막이 올려지긴 했으나 그후 자신의 작품이 막이 오를때도 바로 그곳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두려움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성격은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수줍음이 많다.그러나 연극계와 화단,음악 문학 사진 조각 각 분야의 사람들과 절친한 우정을 누려 공연장이나 전시장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얼굴의 하나이기도하다. 박명숙은 어릴때부터 춤췄다.사업을 하는 박승규씨와 김대순여사 사이의 3남매중 외동딸.어머니의 손에 끌려 국립국악원 김부남씨에게 고전무용,진명여중 2학년때 김정욱씨에게 발레,여고 2학년때 육완순씨의 현대무용발표회를 보고 그는 그가 선택해야 할 길을 「두눈을 크게 뜨듯」결정할 수 있었다.육완순씨는 박명숙의 극과극의 기질을 무엇보다 높이 샀다.부유한 가정에서 어려움 모르고 자랐으나 과묵하면서도 참을성 있고 화려하면서도 겸손하고,그리고 무엇보다 욕심이 도사린 승부근성이 대성의 지름길임을 간파한 것이다.더구나 나는 듯한,출렁이는 듯한 긴 팔의 선은 마치 하늘을 비상하는 새의 선회처럼 신선하기만 했다.그의 두 팔에 대해선 같은 경희대 교수이며 무용계 대선배인 김백봉씨도 「백만불짜리」라고 칭찬한 적이 있다.무용가가 아름다운 체구에다 재능,거기에다 번뜩이는 창의력까지 지녔다면 더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모두들 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고 최욱경과도 절친 단지 한사람,연전에 타계한 화가 최욱경만은 예외였다.생전에 천재화가로 불리던 최욱경의 박명숙에 대한 사랑은 좀더 끈끈하고 각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외국에 나가 마사 그레이엄을 더 배우고 싶어하면 최욱경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라.그 사람의 것은 그의 것.외국은 여행만으로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그가 결혼할 때도 「예술가의 결혼은 난센스」라고 쏘아붙였다.『춤이 있는데 결혼하다니,너는 너무 욕심이 많은가』라고.그후 결혼해서 남매를 낳고 이제부터는 「춤」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빠지자 『결혼과 아이가 왜 춤에 방해가 되는가? 결혼과 아이는 네 예술을 더 살찌웠다.네가 무용가라면 죽을 때까지,그리고 죽을 때도 무대에 서라』고 충고했다. 광기와 신기없이 늘 조용한 박명숙도 최욱경의 천장까지 그림으로 들어 찬 여의도 화실에 들어서면 언제라도 즉흥무를 출수 있게 되었고 최욱경은 그런 박명숙을 모델삼아 춤추는 그림들을 얼마든지 남기고 있다. 최욱경이 타계하자 친형제를 잃은 것처럼 슬퍼했던 그는 작품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화려한 장례식춤을 만들어 사랑하던 화가 친구에게 바쳤다. 박명숙은 고지식하고 외곬인 성격으로 한곳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또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굵은 실로 뜬 숄을 두르고 앉아 연습실에서 작은 막대기 하나만으로 「다시!」이렇게 지시하고연습한다.튀는 사람이 있으면 사정없이 몰아붙이되 상대방이 좋은 움직임을 보이면 작품에다 연결시켜 나간다.제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그를 따르고 아끼고,그도 제자들이 「나의 재산,그래서 나는 부자」라고 말할 정도다. 1주일에 20시간의 강의,요즘은 26일로 다가온 춤발표회를 앞두고 연습에 쫓겨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지만 부군 유대렬씨는 「춤만 제일이냐?」고 나무라는 법이 없다.오히려 일만 아는 아내가 애처로운 나머지 「내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라고 지켜보고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딸 희주(19·이화여대무용과)는 어릴때부터 남몰래 춤추어왔고 지난해엔 혼자서 동아무용콩쿠르에 나가 금상을 타왔다.그전까지는 한동작도 춤을 지도하지 않았으나 「피는 속일 수 없어」 비로소 감싸기로 마음먹었다. ○명분·사명감에 눈떠 이제 박명숙은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알게됐다고 말한다.한사람의 아내·어머니이기도 하지만 그는 무용가이고 제자를 길러내야할 교수다.단 한번도 선생이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지만 스승과선배들의 현대무용 30년을 잇기 위한 뼈저린 흔적이 자신에게 닿고 있음을 피하려들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뚜렷한 명분과 사명감에 눈뜨자 그 옛날의 두려움과 공포가 다시 움트려하고 있다.그래서 이를 씻어버리기 위해 열심히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몸속으로부터 솟구쳐나오는 묘한 힘에 이끌려 담담히 무대에 서게 되었다. 물론 그는 단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는다.「언제나 박명숙,나의 방식대로」 춤추고 있을 뿐이다. 더글러스 던의 「춤추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케네스 킹의 「춤추는 존재가 되는 것」,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막달라 마리아처럼 신에게 다가가는 정신의 춤을 추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꿈일 것이다. ▷연보◁ ▲1950년 서울 효자동 출생 ▲1972년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동대학원 졸업 ▲1976년 N Y 머스커닝햄 마사 그레이엄 엘빈에일리 현대무용학교 수료,뉴욕대학 대학원 무용과 박사과정이수(NYU DA코스),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81년부터 현재 경희대무용과 교수,박명숙 서울현대무용단 예술총감독,한국 현대무용 협회이사,한국무용협회이사,경희대 무용과교수 ◇공연 ▲1973년 팀라이스 작사·앤드루 웨버 작곡 육완순안무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역으로 데뷔이래 20년간 2백여회 출연.그외 박명숙 현대무용단(78년이래 해마다)제1회 한국현대무용향연(82년이래 해마다),한국컨템포러리 무용단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아시아무용제 참가,제10회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무용제,88서울올림픽 개회식(엠불렘춤)등 국내 해외공연등 수백회 ▲1993년6월26일 박명숙춤 「구십삼년6월」 문예회관대극장 예정 ◇대표작 「잿빛우울의 거리」「얇은사 하이얀 고깔은」「초혼 ⅠⅡⅢⅣ」「살풀이」「학ⅠⅡ」「소용돌이치는 영혼」「결혼식과 장례식」「그날새벽 ⅠⅡ」「비옷을 입은 천사」등 78편 안무 수 상 제1회 대한민국 무용제 문공부장관상,대한민국 무용제 안무상(80년)·개인상(82년),86예술가상,코파나스상(86년),서울무용제 안무상(91년)
  • 미­일 무역전쟁 “실탄장전”/내일 무역회담 앞둔 워싱턴 시각

    ◎누적된 적자 일시장 폐쇄성이 원인/일에 수입목표물량 제시요구 방침 11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일무역회담을 앞두고 클린턴 미행정부의 입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하다. 클린턴 미행정부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만성적인 무역적자 해소는 물론 각 분야별로 목표를 설정,미국상품의 대일수출물량을 점검하는 등 실적을 구체적으로 평가할 방침이다. 미측은 이미 지난 7일 주미일본대사를 백악관으로 불러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방안을 제시하고 11일부터 시작되는 무역협상에서 일본측이 답변을 해줄것을 요청했다. 미국은 우선 일본이 무역흑자를 향후 3년간에 걸쳐 절반 이하로 대폭 줄일 것을 요청하고 있다.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의 3%에 달하고 있는 무역흑자를 1.5∼2%로 줄여야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는 5가지 분야로 나눠지고 있다.첫째는 기존 무역협정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수입,셋째는 일본 은행·보험의 개방이다.넷째는 슈퍼 컴퓨터나 건설 등 정부조달사업의 개방이며 다섯째는 미국내와 마찬가지로 동등한 특허권 보장 등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본이 미국의 제품수입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3%에서 4%로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번 무역협상을 오는 7월7일 도쿄 선진7개국(G7)정상회담 이전까지 매듭짓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의 대일무역적자는 지난해 4백96억달러에 이르렀고 이는 미국의 해외적자 총액 8백45억달러의 59%에 해당되는 것이다.미국은 일본이 연간 1천3백20억달러(92년도)의 무역흑자를 과감하게 줄이면 일본의 경기회복은 물론 일본 소비자들의 외국상품구매를 촉진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이같이 대일무역정책을 강경하게 설정한 것은 일본이 교묘하게 각종 장벽을 쌓고 있는데다 자체 시장개방을 늦추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측이 미국의 무역정책노선이 「관리무역」이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대해 미키 캔터 미무역대표는 더 시장을 개방하고 무역균형을 이룩하며 세계경제의 활성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관리무역 잔재” 성토… 도쿄 입장/인위적 목표보다 경쟁력 강화필요/“가타에 제소” “건설적 타협”등 양론 『일본의 경상흑자 감축 등에 대한 미국의 구체적인 목표설정 요구는 「관리무역」으로 일본은 받아들일 수 없다』­무토 가분(무등가문)외상은 9일 이같이 말하며 미국의 대일경제정책에 크게 반발했다. 미국은 7일 일본의 경상흑자 삭감과 시장개방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설정을 요구했다.그러나 일본은 무역불균형시정을 위해서는 미국이 인위적 목표설정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이 우선 재정적자를 축소하고 과잉소비체질을 바꾸어 저축을 증대시키는 등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 있다.일본의 93년판 통상백서는 미·일 무역불균형은 미국이 주장하는 일본시장의 폐쇄성 때문이 아니라 낮은 미국제품의 경쟁력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은 미국의 구체적인 목표설정요구는 냉전시대의 군사전략과 같은 대일정책으로 미국은 시대에 뒤떨어진 냉전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냉전시대에는 핵전략 등군사전략이 강조돼 정부가 주역을 맡아왔다.그러나 냉전후 경제시대의 주역은 정부가 아니라 소비자와 기업이며 모든 것은 시장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정부가 목표설정을 인위적으로 약속할 수 없다는 게 일본정부의 주장이다. 일본은 이같은 국제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눈에 보이는 결과주의만을 강조,대일압력을 강화한다면 대미감정만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될지 모른다고 오히려 경고하고 있다.일본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덤핑관세를 물리는 등 불공정무역조치를 취할 경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의 제소 등 강경 보복조치로 대항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강경조치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일본은 시장을 더욱 개방하고 내수확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일본은 7월의 선진7개국(G7) 도쿄회담을 성공시키고 미국과의 경제마찰을 줄이기 위해서도 건설적인 타협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그러나 미국의 「관리무역」에는 반대하며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있다.일본과 미국이 「경제냉전」시대로 접어들고 있는것도 바로 이같은 시각차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 카지노/합법적 도박장 해외유출 창구/전국에 13곳… 실태와 문제점

    ◎슬롯머신수익 수십배 추정/세무조사 전무… 탈법의 온상/7∼8종류 성행… 1곳 연매출 수백억 정부당국이 8일 카지노업소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사찰을 결정함으로써 사회비리의 온상이었던 사행성·투기성 업소에 대한 최종 정화작업이 벌어지게 됐다. 카지노는 슬롯머신업소보다도 검은 돈의 규모가 엄청나 시중에서는 슬롯머신이 구멍가게라면 카지노는 대형백화점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카지노는 전국 특급호텔 13곳에만 설치되어 있고 내국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그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카지노란 트럼프카드와 주사위·구슬등의 기구를 사용,손님과 딜러(업소 소속직원)사이에 대용화폐인 「칩」을 이용해 하는 게임 일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블랙잭 등 게임 15종 우리나라에서는 카지노등을 규제하는 사행행위등 단속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15가지의 게임종류가 규정돼있으나 실제로는 업소측에 유리한 7∼8개 정도의 게임이 성행하고 있다. 카드로 숫자가 「21」에 가깝게 하면 이기는 「블랙잭」,카드숫자 합이 「9」에 가까우면 이기는 「바카라」,원판을 돌리다 돌이 들어가는 곳의 숫자에다 돈을 건 사람이 이기는 「룰렛」,주사위를 던져 숫자를 맞추는 「크랩스」,2개주사위를 던지는 「다이사이」등이 그것이다. ○제주에 7곳 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지난 64년 처음 설립돼 최대규모를 갖춘 서울 성동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을 비롯,부산 파라다이스 비치호텔,인천 올림프스호텔,속초 설악파크관광호텔,속리산관광호텔,경주 코오롱관광호텔등에 설치돼 있고 제주도에는 제주칼호텔·그랜드호텔·남서울호텔·오리엔탈호텔·하얏트호텔·서귀포칼호텔·신라호텔등 7곳이 운영중이다. 이들 업소의 순익은 슬롯머신업소가 한달에 1억∼3억원인데 비해 이보다 수십배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세무당국의 추정이다. 워커힐호텔 카지노측이 지난해 세무신고한 매출액만도 무려 6백10억여원에 이르렀으며 13곳의 외형매출액이 9천억원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다. ○3년마다 허가경신 3년마다 허가경신을 받도록 된 법규에 따라 모호텔 카지노가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업소현황을 서류로 제출한자료에 따르면 8개월의 외화환전액이 9천2백20여만달러로 한화로는 7백37억여원에 달하고 있다. 지방의 모 카지노는 지난 88년에 4만1천8백63명이 이용,외화환전액이 1천3백24억여원으로 1인당 3백10여만원을 가지고 도박을 했다는 셈이다. 물론 신고된 「외형」이 이 정도임을 볼때 실제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슬롯머신업소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심이 집중된 카지노가 「검은돈의 공룡」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이처럼 엄청난 이익사업임에도 그동안 세무조사 한번 제대로 받지 않은채 눈에 안띄는 곳에서 번창하고 갖가지 탈법을 저질렀다는 잡음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영주권자까지 출입 덩치큰 이익사업임에도 전국에 13곳만 있을 정도이므로 카지노업의 허가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여서 허가및 경신과정에서의 로비의혹은 물론 대규모 탈세의혹과 함께 부유층의 외화유출 창구로까지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카지노업소에서는 도박에 쓸 돈을 기탁하고 「칩」을 받아 사용한 뒤 이익과 손실을 계산해놓고 외국으로 출국,해외에서 그돈을 찾을수 있는 점이 바로 외화도피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허가과정의 의혹으로는 우선 전국 카지노업소의 53%인 7곳이 몰려있는 제주도에서는 일부업소만 제외하고 모두 90년과 91년에 집중적으로 허가가 났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비난의 눈길은 외국인 전용이라고는 하지만 해외영주권을 갖고 있거나 외국인을 동반할 경우 내국인출입을 눈감아주고 있어 사실상 「부유층의 합법적인 도박장」이 되어왔다. ○전낙원씨 60%장악 카지노업계에 대해 비리의혹이 이는 이유중에는 국내카지노업계가 사실상 한 사람에 특정돼 있다는데에도 있다. 세계적인 도박사로 알려진 전모씨(65)는 카지노가 국내에 도입된 이후 아무런 경쟁을 받지도 않은채 국내카지노의 60∼70%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회장역을 맡고 있는 「파라다이스 그룹」관계자가 소유주로 등록된 카지노는 쉐라톤워커힐,부산 비치파라다이스,제주 그랜드,서귀포 신라,경주 코오롱 등이어서 의심을 더해준다.
  • 공사장 진동피해 첫 배상/환경분쟁조정위

    ◎“폭약과다 사용… 주택균열”/주민에 1억지급 결정 앞으로 건설공사장의 소음과 진동등의 영향을 받는 건물의 경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있는 객관적인 자료만 제시할 수있으면 피해보상을 받을 수있게 됐다. 환경처산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위원장 전영길)는 29일 서울시 성북구 종암1동에 사는 최병환씨등 주민 21명이 인근에서 아파트 재건축공사를 하고 있는 선경건설을 상대로 낸 재정에서 주민들이 제시한 주택의 새로운 균열과 균열확대를 피해물증으로 인정,선경건설은 해당 10가구에 대해 모두 1억2백92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위원회는 선경건설이 아파트재건축을 위해 암반지대의 굴착공사를 허용폭약량을 초과하여 발파를 해 주택에 균열이 생기거나 전부터 있던 균열을 확대시킨 것으로 확인돼 피해배상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또 이번경우에는 피해주택이 17∼19년이 된 낡은 건물이라 피해사실이 눈에 쉽게 띄었지만 새건물의 경우에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공인기관의 안전검사등의 결과로 피해가 확인될 때는배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에따라 주민들이 함께 제기한 정신적인 피해배상은 인과관계를 인정할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되지 않아 기각결정을 내렸다.
  • 한양부실 키운 억지 「합리화」/염주영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부실기업의 대명사가 된(주)한양의 「밑 빠진 독」에 상업은행이 또 다시 자의반 타의반으로 뭉칫돈을 쏟아부을 채비이다. 한양에 대한 법정관리 준비절차로 재산보전처분 명령이 떨어짐에 따라 상업은행이 그동안 한양에 쏟아부은 9천1백억원은 이자 한푼 못받는 부실여신으로 변해버렸다.이는 상업은행 전체 수익성 자산(약 20조원)의 5%에 육박한다.은행을 골병들게 만들기에 충분한 규모이다. 그런데도 정지태상업은행장은 지난 24일 한양의 인수자로 떠오른 박부찬주택공사사장을 찾아가 주공이 한양을 인수하는데 손해가 없도록 할 것임을 굳게 약속했다.인수만 해 준다면 온갖 특혜성 금융지원을 아끼지 않을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총부채 1조9천억원의 부실덩어리를 떠넘기는 정행장의 입장이 저자세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 이해가 간다.따지고 보면 상은에 한양은 더할 수 없는 악연이다.지난 86년 9월 산업정책심의회가 결정한 이른바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5년간 원금은 물론 이자도 못받는 뭉칫돈을 한양에 이미 한차례 쏟아부었다.그중 3천5백11억원이 지금도 「산업합리화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상은의 발목을 꽁꽁 붙들어 매놓고 있다.7년이 다 된 지금 이자가 2천6백억원이 붙었어도 받지는 못하고 장부에만 올라 있다. 3천5백11억원의 「산업합리화 여신」이 7년 만에,이미 부실화된 9천1백억원에다 앞으로 추가지원될 특혜성 금융을 포함,1조수천억원의 부실여신으로 바뀌는 꼴이다.상은의 발목을 잡아맨 과거의 「산업합리화 여신」은 결과적으로 부실을 키운 「불합리화 여신」이 된 셈이다. 돈만 퍼주면 부실기업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경쟁의 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한양건의 「산업불합리화 여신」은 부실기업을 억지로 살리기 위해 금융을 지원하면 오히혀 부실을 더 키울 뿐이라는 경제논리를 확인해 주는 사례이다.
  • 강원 함태탄광/39년 애환 남긴고 문닫아

    ◎양질무연탄 3천만t 매장… 광원 몰려/80년대 중반 연탄소비 줄면서 사양길/첫 시위기록… 노조위원장 의원배출도 국내 굴지의 민영탄광인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함태탄광이 오는 31일 문을 닫는다. 이로써 지난 39년동안 석탄산업의 흥망성쇠를 한몸에 지녔던 함태탄광은 숱한 애환을 남긴채 탄광촌 주민들의 가슴 속으로 묻히게 됐다. 함태탄광은 지난 52년 8월 광권 출원 등록을 한 뒤 54년 5월 개광과 함께 첫 탄맥을 캤다.강원탄광에 이은 두번째 민영탄광이었다. 탄광의 대부분이 밖으로 드러나 캐기가 쉬운데다 저장량이 3천6백32만t으로 추정돼 탄광의 여건은 여타 광업소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무연탄의 질 또한 다른 광업소가 평균 5천㎉를 크게 넘지 못하는 것에 비해 특급인 6천㎉를 훨씬 넘어 판매시장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이어 55년 강릉∼영주간의 영동선이 개설되면서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81년 9월에는 수갱시설을 완료,한때 연간 최고 70여만t의 무연탄을 생산하는 등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함태탄광의 운명은 기울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에너지 소비성향이 고급화되면서 연탄 소비가 줄고 원탄 판매가 둔화되자 기세등등하던 함태탄광도 어쩔수 없이 운영난에 부딪힌 것이다. 광원들마저 하나둘씩 탄광을 떠났다.지난 88년부터 92년까지 5년동안 2백32억6천만원의 퇴직금을 주다보니 부채가 3백66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결국 회사측은 탄광을 닫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함태탄광은 지난 5월까지 1천8백42만7천2백37t의 무연탄을 생산,앞으로 캘수 있는 1천4백여만t은 태백산맥의 준령에 기약없이 묻혀있게 됐다. 39년의 채탄역사는 수많은 애환과 추억을 남겨놓았다. 1백여㎞의 갱도를 뚫는 동안 3천9백2건의 재해가 나 4천3백4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애처롭게도 1백40명은 검은 탄맥 속에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가장 큰 사고는 지난 82년 1월3일 함백갱도에서 일어난 가스사고와 86년6월 같은 갱도에서의 가스폭발사고였다.9명과 4명이 각각 숨졌다. 우리나라 탄광사상 최초의 데모가 74년 1월 발생한 것과 탄광노조위원장 출신인 유승승씨가 13·14대 국회의원(민자당)이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개광때 입사,청춘을 이 곳에 바친 광원직번 1번 이상인씨(62)는 『막상 광업소가 문을 닫게 된다니 39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면서 『또 얼마나 많은 태백시민들이 탄광촌을 떠날지 모르지만 이번 폐광을 계기로 태백이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정치특위 의외의 순항… 부분 타결/「공직자윤리법」 막바지협상 안팎

    ◎“6급이상 등록땐 실사 불능” 지적에 민주서 후퇴/처벌규정 명시 문제 시각차이 향후 최대변수로 공직자윤리법 개정작업이 여야의 「순조로운」 합의속에 완전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치관계법심의특위를 가동한지 1주일여만으로 여야가 이처럼 빠른 접근을 보인 것은 거의 전례가 없다.이는 사안자체가 국민적 지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다 여야 모두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더이상 지체해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순항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특위호도 안으로는 입지선점과 명분등을 놓고 여야간 줄다리기가 치열했다. 특히 등록및 공개대상자범위와 허위·누락·축소등록에 대한 처벌규정을 법에 명시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의원들은 격렬한 논쟁을 계속해 왔다. 일단 등록및 공개대상범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민자당의 한판승. 등록에 있어서 『6급이상으로 할 경우 대상자수가 10만명을 넘어 물리적으로 실사가 불가능하다』는 민자당측 주장에 민주당측이 설복당한 셈이다. 민주당내에서도 『6급이상은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던 터라 합의를 이루는데 큰 마찰을 빚지는 않았다는 전언이다. 공개대상 범위를 정하는데 있어서도 민주당은 『더이상 밀릴수 없다』는 각오로 3급이상 공개를 관철시키기위해 김대식총무가 회의장을 들러 격려하는등 총공세를 폈으나 17일 밤늦게까지 계속된 회의에서 또다시 『실현성이 없다』는 민자당측의 주장에 밀려 1급이상 공개로 합의했다. 재산은닉에 따른 처벌규정을 윤리법에 명시하느냐의 문제도 최대쟁점중의 하나였다. 민자당은 『해당기관에서 자체 징계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으므로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재산등록의 성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와관련,여야는 지난 14일 회의에서 고의로 재산을 누락한 「목적범」에 한해 처벌조항을 두자는 쪽으로 한때 의견을 모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불과 몇시간뒤 민자당측은 『좀더 논의하기로 했다』며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같은 방향선회는 청와대사정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영일의원(민자)과 강신옥의원(민자)등이 『검찰에 공직생명을 맡기자는 소리』라며 급제동을 걸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나 투서를 빌미로 검찰이 언제든지 수사권을 발동할 수 있게 돼 공직사회가 크게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두의원의 주장에 여야 모두 주춤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측은 국민감정을 내세워 『처벌조항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겉으로는 고수하고 있지만 자칫 이 법이 악용될 경우 야당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우려에 따라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피부양자가 아닌 존비속에 대해 거부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은 직계존비속 모두를 등록의무자로 할 경우 자칫 헌법소송이 잇따를 것을 우려한 때문. 당초 여야 개정안 어디에도 없던 사항이지만 지난달 헌법재판소가 위헌소지가 있다는 견해를 밝힌 뒤로는 여야 모두 이견이 없었던 사항이다. 한편 등록의무자에 유독 경찰공무원의 경우 6급인 경감이상으로 대상을 넓히자 일선 경찰관들의 거센 반발과 함께 민원이 빗발쳤다는 후문이다. 17일 상오에 열린 특위회의에는 경찰청의 한 고위간부가 직접 찾아와 『국민들 눈에 경찰이 마치 부정공무원의 상징처럼 비춰지지 않겠느냐』며 재고를 촉구하기도 했다.
  • 이해구장관에게 듣는 내무행정(국정탐방)/대담=김종일 전국부장

    ◎“깨끗한 공직사회 위해 살깎을 각오”/비위·무사안일 공직자는 과감히 도태/지역경제 활성화돕게 지자단체 지원/휴일 회의실·주차장 개방… 친근한 관공서로 새정부가 들어선지 몇달밖에 안됐지만 지역관공서와 만나는 주민들은 「관」이 사뭇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체감행정 실천할터 관공서 회의실·주차장의 무료개방,각종 공문열람 허용,민원1회방문처리제 실시등 갖가지 조치를 생활현장에서 느끼는 주민편의 위주의 「체감행정」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는 것 같은 개혁의 소용돌이에 묻혀 두드러지진 않지만 이같은 「작은 변화」의 흔적에 신선한 느낌을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국민과 더불어 전국의 일선지방행정조직을 독려하며 지방 행정개혁을 주도하는 내무부는 그래서 작은 정부,검소한 정부,봉사하는 정부를 실천하는 얼굴이라 할수 있다. 이해구 내무부장관을 만나 내무행정개혁방안등 현안 전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새정부의 개혁바람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우리사회를 건강하게 다듬기 위해서는 아직도 도려내야 할 환부가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현상이라 생각됩니다.내무행정의 쇄신방안의 골격을 정리하여 주시지요. ▲내무행정은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의 50%인 42만 공직자가 일선지방 곳곳에서 국민 개개인과 접촉하며 수행하는 종합행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주민들과의 접촉이 가장 빈번한 내무행정의 개혁이 성공하면 깨끗하고 작은 정부를 구현하려는 문민정부의 의지가 사실상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내무부는 이같은 개혁의 첨병이라는 자부심속에 민원행정개혁,지역경제 활성화,민생치안 확립이라는 3대목표를 두고 공무원의 의식개혁과 제도정비작업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민원 1회 방문처리제로 상징되는 민원행정개혁은 관편의위주·공무원중심의 행정에서 국민편의·국민중심의 행정을 유도하는 공무원의 의식개혁과 제도,관행의 혁신을 동반하고 있습니다.또 이제 지방조직을 총괄하는 내무부는 농촌경제및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중심역할을 하는 경제부처의 기능도 함께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이와함께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치안을 확보하고 사회기강을 확립할 수 있는 제도개선 등도 당연히 뒤따라야 할것입니다. ­최근 내무부가 발표한 작은정부 실현을 염두에 둔 지방행정기구 개편안에 대해 일부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방실정을 무시한 결정이라고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기구축소에 따른 지역주민이나 공무원의 불이익은 없는지요. ○치안확립 제도개선 ▲내무부는 작은 정부,검소한 정부,절약하는 정부의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고통분담차원에서 12년만에 전국 15개 시·도에서 22개국 65과 58개 사업소를 폐지 또는 통합하고 사무관급이상 공무원 2백13명을 줄이는 작업을 추진중입니다.기구및 인원축소에 따른 고통이 당연히 수반될 것으로 압니다.하지만 대민업무와 관련한 부서는 원래의 기구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보강토록해 일반국민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할 계획입니다.또 감축된 공무원 역시 민원부서나 결원이 생긴 새로운 부서등에 배치토록해 부당한 처우를 받는 일이 없도록 했습니다.지방기구 개편에 뒤이은 내무부본부와 경찰청의 기구감축문제는 정부 각부처의 기구조정차원에서 행정쇄신위원회가 충분한 검토를 거쳐 결정할 것으로 봅니다. ­현재 추진중인 내무부 자체사정활동에 대한 내용을 평가해주시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지요. ▲깨끗하고,공정하고 친절한 공직자상 확립은 새정부가 추구해야할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따라서 이같은 시대요청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자기혁신의 의지가 없는 공직자들은 당연히 도태돼야 할것입니다.그동안 윗물맑기운동을 과감하게 추진,부적격 인물을 가려냈고 지금 아랫물맑기운동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그동안 1단계조치로 △뇌물수수 △부동산투기 △공사생활문란등의 사실이 확인된 공직자6백72명에 대해 면직등 각종인사조치를 마무리했읍니다. 앞으로도 「기관장 사정평가제」라든지 민원인을 대상으로 행정업무에 대한 반응을 조사하는 「민원인 행정평가제도」를 실시,자율사정의지가 약한 기관장이나 일선 공무원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책임을 물을 예정입니다. ­내무부가 현재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역시 최근 시행에 들어간 민원1회방문처리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그러나 민원인이 직접 해당부서를 돌아다니지 않으면 늑장처리가 된다든지 민원전담공무원과 민원인간에 구조적 유착관계가 형성될수 있다는 등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원래 취지대로 정착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일단 접수된 민원에 대해서는 모든 노력을 다바쳐 처리하겠다는 공무원의 의식전환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선진국형 행정문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현해 나가야할 숙제라 할수 있지요. ­민·관 화합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친근한 관청만들기운동」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까. ▲사실 종전에 주민들이 관청을 보는 시각은 어딘가 거리감이 있고 썩 바람직한 편은 아니었지요.그래서 관청이 먼저 주민들에게 문을 열 필요가 있다고 판단,지난1일부터 주말과 공휴일에 관공서 주차장과 회의실등을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의외로 반응이 좋고이용자가 많습니다. ­새정부출범이후 지방중소기업지원등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위한 갖가지 정책이 발표되면서 최근 지역경제가 다소 살아나고 있습니다.농촌경제회생과 중소기업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복안같은게 있습니까. ▲모든 경제의 구체적인 실천은 지방에서 이뤄지고 현실화된다는 점에서 지역경제활성화는 대단히 중요하지요.따라서 내무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제는 경제행정의 주체라는 각오로 지역경제회복을 위해 모두 노력을 기울여 나갈까합니다. ○아랫물맑기 운동 지방예산 절감액을 포함,모두 8천8백1억원을 중소기업 육성과 농촌경제활성화를 위한 지원자금으로 활용하려는 계획 역시 이같은 노력의 일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지방행정도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릴때가 됐다고 보고 지역생산품의 해외시장개척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와함께 물가안정을 위해 지방공공요금을 올 연말까지 동결하고 개인서비스요금도 올리지 못하도록 행정지도를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새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아파트붕괴,열차전복,교량붕괴,대형산불 등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특히 행락철과 장마철을 앞두고 사건·사고예방대책이 강구돼야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최근 재해산관리종합대책을 수립,관계기관등과 협의해 취약지와 각종시설을 재점검하고 대형사고 우려시설에대한 특별안전진단을 실시할 계획입니다.또 재난발생때 효과적으로 대처할수 있는 표준행동요령을 만들어 각급기관과 국민들이 활용토록해 인명및 재산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강구중입니다. ○지방공공요금 동결 ­문민정부 출범으로 민생치안에 대한 기대가 과거 어느때보다 높은것 같습니다. ▲민생치안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신뢰의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그동안 국민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한게 사실입니다.또 지난 3·1절특사및 3·6대사면조치에 따라 그동안 구속돼있던 수감자들이 많이 출소한데다 정권교체기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취약요소도 노출되고있어 범죄발생 유인은 많다고 분석됩니다.경찰은 이에대비해 오는 9월말까지를 범죄소탕기간으로 정해기동성 있는 방범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동안 시국치안에 배치했던 시위진압기동대 2백47개중대 가운데 1백95개중대 2만6천명을 전국 지·파출소에 투입,범죄취약지에 대한 순찰활동을 강화했습니다. ­끝으로 오는 95년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앞두고 내무공무원들의 위상과 관련,사기저하는 물론 승진등을 둘러싸고 인화가 깨질우려가 높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단체장선거는 시대적 흐름이고 국민적인 요청인 만큼 내무 공무원들 역시 큰 동요는 없다고 봅니다. 앞으로 공무원의 위상과 관련 한 전향적인 검토를 통해 자치시대에 맞는 폭넓은 역할을 개발해 나갈생각입니다.
  • 황 장관의 요령부득 해명/김병헌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황산성 환경처장관이 최근 보도가 되어 물의를 빚은 「하정선교재단」과 자신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자료를 10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황장관은 당초 이날 재단측이 참석한 가운데 해명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재단측이 「개인적인 문제」를 놓고 환경처 청사안에서 해명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불참을 통보해왔다면서 김형철차관을 통해 해명자료만을 냈다.그러나 불과 이틀전 스스로 해명의 기회를 갖기를 원했던 황장관이 갑자기 기자회견을 취소하면서 내놓은 설명으로서는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재단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해명자료 자체도 논리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었다.다시말하면 법을 잘 아는 뛰어난 율사인 그가 제시한 「해명」은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는 9개의 참고자료를 첨부한 해명자료를 내면서 이 문제를 보도한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황장관에 대한 대중적인기는 그의 소신에서 비롯됐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보여진다.그래서 지난번 「낙누사건」때도 장관으로서는 보이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었음에도 그다지 비판은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법에 규정된 유언집행자의 권리의무조항과 공동유언집행조항을 보면 황장관의 해명이 법이에 크게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따라서 그의 정정보도요청도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법조문을 보면「유언집행자는 유증의 목적인 재산의 관리 기타 유언집행에 관한 행위를 할 권리의무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고「유언집행자가 수인일 경우에는 그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볼때 안춘생씨와 함께 공동유언집행자로 선임됐던 황장관이 정말 「아무런 관계가 없고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법적으로 안씨 혼자서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말처럼 그냥 도장을 찍어줬다는 대목도 공인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평소의 처신대로 잘못된 부분은 솔직히 인정하고 그에 따른 뒤처리를 말끔히 하는게 「멋진 황장관」에거는 국민들의 기대일 것이다.
  • 부패척결 큰 줄기는 잡았다/마무리단계의 윗물맑기사정 점검

    ◎국민적 지지로 새 정부 개혁동력 확보/성역없는 수사… 사정기관 독립성 높여 윗물맑기 사정이 정점을 넘어서고 있는 분위기다.군부비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새로운 이슈의 제공보다는 마무리 손질이 가해지고 있다.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 또는 동화은행장 여죄추궁과정에서 새로운 혐의자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사정의 큰 흐름은 다음단계를 지향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정부는 오는 7일 사정관계관회의를 열어 그동안의 사정결과를 평가한다.그자리에서 부족했다고 평가된 부분에 대한 추가 사정방침이 결정되고,이른바 구조적비리 제거 및 사정의 민간확산문제가 논의된다.이는 고위공직자재산공개­윗물맑기사정에 이은 순서상으로는 3단계 개혁작업에 해당될 수 있다. 그다음 남은 것은 의식개혁과 개혁의 법제화 또는 제도화다.결국 개혁작업도 순서상으로는 중반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정부 사정관계자들은 그동안의 윗물맑기사정에 대해 『대체로 한바뀌 돌았다.부족했던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부패의 큰 줄기는놓치지 않았다』고 자평하고 있다.청와대측은 공직자재산공개에 이은 윗물맑기사정을 통해 5년간의 개혁작업에 필요한 동력을 정부가 확보했다고 믿고 있다.또한 그동안의 치부가 폭로됨으로써 국민적 개혁의 공감대가 최고조로 확산됐고,국민의식의 선진화가 상당부분 이루어졌음은 윗물맑기사정의 부수효과로 기록될 수 있다. 윗물맑기 사정의 힘은 국민적 기대와 이를 읽은 사정기관들의 경쟁적 충성이었다.사정의 기획탑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은 구체적인 사정방향을 지시할 필요도 없었을 만큼 사정기관의 경쟁은 박진감 넘치게 진행됐다. 전현 고위 공직자 대부분이 2∼3개 사정기관으로부터 십자형 내사를 당했다.감사원이 훑은 자리를 검찰이 다시 훑고,경찰이 방대한 인력을 활용해 다시 더듬는 풍경이 도처에서 만들어졌다. 청와대의 사정관계자들은 보도진이 특정인을 지목해 물을 경우 『누구 누구는 내사를 한결과 오히려 생각보다 깨끗한 것으로 나타났다』거나 『누구는 여전히 꼬리가 잡히지 않는다』는 말로 중요인물에 대한 총체적인 내사가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내사작업은 청와대나 특정 세력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진행됐다.사정기관간의 경쟁이 이같은 목적성을 용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란했던 내사에 비해 실제 구속되거나 불이익을 당했던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국회의원 단 두사람만이 구속됐다.재산공개를 통해 10여명가까운 의원이 사실상 정치생명이 끊긴 것과 비교하면 파괴력면에선 재산공개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6공당시 요란하게 힘을 행사했던 문제의원들의 꼬투리를 잡는데도 실패했다.또한 지나치게 쉬운 부분만 매달렸다는 지적도 있다. 외형상의 「수확」과 달리 국민의식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은행 커미션­군의 진급비리가 관행의 보호막에서 벗겨져 법의 심판을 받았음은 국민의식의 선진화에 큰 전환점으로 평가될 수있을 것이다.성역없는 수사가 사정기관의 독립성제고에 특단의 전기가 됐음도 물론이다. 내사작업은 수사자료확보를 위해 이루어졌다.그러나 본연의 목적을 넘어서 이들 내사자료는 사정기관에 몰려드는 하루 1천통가까운 제보·투서들과 함께 앞으로 5년간 새정부의 통치자료로도 활용될 것이다.지난 3·4·6공을 통해 정부에 축적돼온 많은 자료들이 없지않지만 그 편향성으로 인해 새정부가 활용하기에는 부담이 많다.윗물맑기 사정을 통해 만들어진 인사자료들은 앞서의 정부에서 만들어진 것과는 차별성이 있고 따라서 이자료들은 새정부 운영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윗물맑기사정은 성격상 과거의 비리를 파헤치는 방법을 사용했다.경우에 따라 이런점은 정치보복이 아니냐는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사정당국자는 『윗물맑기인 만큼 과거의 비리를 건드리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이 당국자는 그러나 앞으로 이루어질 중하위 사정,즉 구조적 비리에 대한 사정과 경제비리에 대한 사정은 새정부 출범이후의 비리에 대해서만 사정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윗물맑기 사정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라고는 말하고 있다.비록 다음단계로 사정의 칼이 넘어가더라도 이들에게서 사정의 눈을 완전히 돌리는 것은 아니란 점을강조하고 있다.
  • 라운드걸 스커트대신 한복차림/평양TV가 보도한 프로복싱대회장

    ◎17체급에 9개 선수단 67명 경기 출전/결승전 8회로… 포상내용은 발표안해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독자적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에 대표적 자본주의 스포츠의 하나인 프로복싱이 도입돼 이달초 첫대회가 열린 것으로 보도돼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의 중앙TV는 최근 평양시내 청춘거리에 있는 「중경기장」에서 93공화국 프로권투대회가 진행됐다고 보도했다.이번 대회에는 「4·25선수단」「압록강선수단」을 비롯한 9개 선수단에서 67명의 프로복싱선수들이 참가했는데 경기는 예선 4회전,준결승 6회전,결승 8회전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경기는 또 17체급으로 나뉘어 우리의 「신인왕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열렸는데 우승자에 대한 상금등 포상내용에 대해서는 보도되지 않았다. 중앙TV는 그러나 이번대회를 보도하면서 링아나운서의 채점발표장면과 함께 라운드걸이 매회가 시작되기전 피켓을 들고 링을 도는 장면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는데 라운드걸의 복장은 우리와 같은 짧은 스커트차림이 아닌 한복차림이었다. 중앙TV는 또 프로복싱게임이국내선수권대회의 경우 10회전,아시아선수권대회는 12회전,세계선수권대회는 12회전과 15회전으로 각각 치러진다고 소개했다. 북한이 프로권투대회를 연 것은 잘 알려졌듯이 이번이 처음인데 북한은 종래 「프로스포츠」를 『직업적인 선수들이 돈벌이수단으로 하는 경기』라고 비난해왔다. 북한은 그러나 동구권 붕괴이후 러시아가 지난해 11월 프로스포츠 육성정책을 발표하고 중국에서도 프로권투대회를 개최하는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프로스포츠를 도입함에 따라 지난해 말 프로권투의 도입을 결정하고 조총련을 통해 프로선수훈련에 필요한 기자재를 반입하는 한편 「4·25선수단」등 9개 체육단에서 본격적으로 선수를 육성해 왔다. 북한이 이처럼 프로스포츠 도입을 추진하고 이중 프로복싱에 가장 먼저 눈을 돌린 것은 프로복싱이 국제적으로 인기가 있고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특히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한개씩 획득하고 지난달 개최된 아시아선수권대회 5체급에서우승·준우승을 휩쓴 사실에 비춰 국제대회 입상경력의 수준있는 선수들을 선발,집중 육성해 세계적인 프로무대에 진출시킴으로써 돈도 벌고 개방이미지도 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 예술학교의 대학승격 논쟁/황진선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특별법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올초 음악원을 개원한 예술학교측이 「학교」보다는 「대학교」라는 명칭이 더 걸맞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더욱이 앞으로 연극원 미술원 무용원 영상원 전통예술원이 개원되면 그 내용상으로도 종합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라는 이름으로는 우리사회에서 그 위상을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학부모들과 학생은 물론 학교관계자들까지 「학교」라는 이름은 무슨 직업학교처럼 들릴수 있고,예술학교의 대표도 「총장」이 아닌 「교장」이라는 점을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반면 한국음악회측은 최근 이에대해 예술학교가 종합대학으로 바뀌는 것은 전문 예술인과 영재를 양성한다는 본래의 설립취지를 포기하고 예술대학 하나를 더 증설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대학으로의 명칭변경은 예컨대 올초에 설립된 음악원을 기존의 음악대학과 동일한 교육기관으로 만들게 될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예술학교의 설립취지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아무리 학부모등의 의견이 그렇다 하더라도 예술학교의 설립취지가 일반예술대학과 차별성을 유지하는데 있었다고 본다면 역시 「대학」보다는 「학교」가 더 온당할듯 싶다.이 학교는 현재 전문 음악인을 양성한다는 취지아래 내신성적 10%,실기 90%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이는 「이론가」가 아닌 「장인」을 양성한다는 설립취지에 따른 것이다. 더욱이 4년의 과정을 거친 졸업생에게는 학사,석사학위와 같은 대우를 받는 예술사와 예술전문사 자격증을 주기때문에 대학이나 대학원졸업생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수 있다. 물론 예술학교가 일반 대학과 같이 취급되고 있는 점은 개선되어야 한다.예컨대 예술학교는 강의실이 아니라 레슨실이나 실험실습실이 시설기준이 되어야 한다.교수채용에 있어서도 교육경력이 아닌 연주경력이 우선시되는 것이 당연하다.예술학교측은 이같은 점을 들어 교육법상의 학교나 대학이 아닌 특별법상의 대학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명칭을바꾸는 것은 신중을 요한다.또 설혹 명칭을 바꾸더라도 최소한 공청회등을 열어 의견수렴을 통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예술학교측은 대학이라 해도 그이름만 바꾸는 것이지 설립취지까지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형식이 그 내용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주장도 크게 설득력은 갖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 「서편제」/“정한에 가슴 뭉클” 롱런가도에 진입

    ◎작품성·연출·영상미·연기 빼어나/소리꾼 삶 통해 우리것이 소중함 일깨워/관객들 종영때 눈물로 기립박수 요즘 「서편제」 제작사인 태흥영화사와 개봉관인 단성사는 쉽지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관객이 줄다가 주말이 돼야 조금 늘고, 그 다음주부터는 다시 줄어드는 대부분 영화와 달리 「서편제」는 월요일인 지난 12일에 관객이 2천명이던 것이 1주일뒤인 19일에는 2천5백명으로 늘어나고있다. 그러고도 관객은 계속 늘어나고있다. 참으로 기현상이다. 지금까지 물론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수입영화「사관과 신사」가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개봉이 돼있는 상황에서 아카데미상 수상소식이 전해져 관객이 불어난 때문이었다. 영화의 흥행성은 「입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우리영화 「서편제」가 오랜만에 바로 그같은 「입선전」을 통해 「롱런」가도에 들어서 있음을 보여주고있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 볼만한 괜찮은 영화」로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괜찮은 영화」로 평을 받는 것은 소리꾼 일가의 한많은 인생을 통해 판소리의 소중함과 함께 우리의 한과 정서를 일깨우겠다는 제작의도가 관객들에게 먹혀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높은 평가에 고무된 제작사 태흥측은 최소한 30만명이상은 들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우리의 사계를 담은 영상미와 함께 우리 가락을 체득한 주요 출연배우들의 열연은 호소력을 더하고 있다.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탄 송화역의 오정해는 중학교때부터 각종 판소리대회를 휩쓸어왔고 인간문화재 5호 김소희선생의 춘향가를 이수한 재원이다.지난해에는 미스 춘향 진에 뽑힐 만큼 미모도 갖췄다.아버지 유봉역의 김명곤 역시 서울 사대를 졸업하고 10년동안 인간문화재 박초월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사사했다. 기존 영화인이 아닌 이들의 호흡이 흡인력을 더욱 높인 것이다. 「서편제」의 클라이맥스는 남녘의 한포구에서 극적으로 조우한 의붓남매가 북채를 잡고 밤새도록 한을 풀어내며 소리로 어우르는 대목. 이 장면에서 적지 않은 관객들이 눈물을 닦아낸다.단성사측은 영화가 끝난뒤 관객들이 눈가를 손질할 시간을 주기위해 불을 켜는 시간을 1분 정도 늦추고 있다.영화가 완전히 끝나면 앉아서 또는 기립해서 박수를 치는 모습도 자주 볼수있다. 관객중에는 노부모를 모시고 나온 30∼40대가 눈에 띈다.고교생 대학생 단체관람객들까지 관객의 폭이 무척 넓다. 20대 관객들은 이런 반응도 보인다.『판소리가 이렇게 좋은줄은 몰랐어.역시 나는 토종인가봐』
  • 독립기념관 미봉보수/이용원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민족의 성전」독립기념관 제2전시관과 제7전시관은 요즘 천장 곳곳에 물받이용 함석통을 매달아 놓은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하순 폭우가 내린 뒤로 전시관 천장이 계속 새는 탓이다. 이에 따른 「전시관 누수조사 결과및 대책」이 무려 8개월만인 22일 발표됐다. 최창규 독립기념관장은 『국민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겨준데 대해 다시 한번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한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최관장은 누수방지 대책 발표가 늦어진 것은『그동안 졸속행정으로 각종 하자가 발생했다고 보아 이번 조사에는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가 정작「근원적인」보수대책이라며 밝힌 내용은 ▲옥상 바닥에 경사진 지붕을 추가 설치해 빗물을 흘러내리게 하고 ▲외벽의 화강석을 떼내 안쪽 콘크리트면의 갈라진 곳을 때우고 방수처리를 하겠다는 정도의 것이었다. 그는 비가 가장 많이 새는 제2전시관(근대민족운동관)을 올해 이같은 방식으로 보수해 본 뒤 성공할 경우 내년에 나머지 6개관도 보수하겠다고 덧붙였다. 발표 내용에 실망한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치자 최관장의 답변은 점차 궁색해졌다. ­누수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야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지 않는가.설계와 시공중 어느쪽 잘못인가. 『설계·시공 모두 잘못됐다.게다가 국민이 빨리 완성된 기념관을 보고 싶어해 전시관 공사를 6개월만에 끝내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보수공사를 하고도 비가 샌다면. 『현재로선 이번 방안이 최선책이다』 ­설계부터 잘못됐다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나. 『일단 이번에 결정된대로 보수공사를 하고 장마철을 넘겨보자』 ­보수공사비는 어떻게 조달하나. 『자체 재원과 기업의 협조를 받겠다』 발표 서두에 『전시관을 보수하고도 또 비가 새면 선열들이 흘리는 피눈물로 받아들이겠다』고 멋진 말솜씨를 뽐낸 최관장. 그러나 「미봉책」이라는 기자들의 거듭된 추궁에 그는 갈수록 말꼬리를 흐렸다. 「민족의 성전」은 언제쯤이나 명칭에 걸맞는 대우를 받게 될는지….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51)

    ◎길림시절:10/「반제청년동맹」의 날조/28년에 결성된 세계반제동맹/“27년 산하청년단체 조직” 주장/31년의 서울상해파공적 가로채 김일성은 1927년 1월이 아니라 이 해 8월에 길림에 왔다.그 증거는 회고록의 다음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길림에 왔을 때 「ㅌ·ㄷ」의 몇몇 성원들은 화전에서 약속한대로 이 도시에 와서 문광중학교를 비롯한 시내 학교들과 기관구·선창 등에 적을 두고 있었다』 ○“「ㅌ·ㄷ」서 개편” 기록 이 이외에 같은 8월에 화전의 「ㅌ·ㄷ」성원들이 만주 각 지방의 조선인 거주지역으로 떠났고 그 중에는 독립군이 된 사람도 있었다고도 적고 있다. ㅌ·ㄷ성원이란 김일성이 68년 이후 제 멋대로 과거의 화성의숙생들에게 붙인 이름이다.화성의숙은 회고록에서는 2년제라든가 학생수가 40명 이상이라든가 하고 있지만 일본기록에는 그 이수 기간이 1년반이며 학생수도 30명으로 되어 있다.그 개학도 26년 3월로 되어 있으므로 이 때 입학한 학생이 졸업한다면 그것은 27년8월이 된다.김일성이 심양에서 길림으로왔을때 중퇴하지 않고 졸업한 나머지 화성의숙생들은 길림을 비롯한 만주 각지의 정의부 관할구역으로 배치되어 갔다.그들 속에는 문광중학교에 들어간 학생도 있었다.김일성은 8월달에 길림에서 화성의숙 졸업생들과 만난 것이다. 김일성이 길림에서 화성의숙의 졸업생들과 만난 일은 이들을 「ㅌ·ㄷ」성원으로 만들어 버린 그에게 경력변조 작업을 한층 더 본격화하는 발판을 제공하게 되었다.예를 들어 83년의 김일성 연표는 그가 1927년8월27일에 「ㅌ·ㄷ」을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한 것으로 하고있다.이 날자 자체는 문제 투성이 이지만 하여간 화성의숙생이 길림에 와서 첫 「동창회」를 열었다면 그 달이 8월 정도로 되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기작가가 날짜를 매기면서 저지르는 모든 비리에 눈을 감으면 이러한 견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일 뿐이다.우선 화전현에서 가입시켰다고 주장하는 「ㅌ·ㄷ」성원을 일부러 길림까지 데리고 와서 반제청년동맹 성원으로 삼았다는 말은 지리적으로 보아 무리가 아닐 수 없다.필자는 일찍이 이 점을 신랄하게 지적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그가 길림소년회·유길학우회를 조직한 후 여기에 망라된 회원들을 「ㅌ·ㄷ」에 가입시켰다고 주장하게 되었다.화성의숙 일부 졸업생은 합류한 것으로 처리하여 모순점을 줄인 것이다.물론 우리가 보면 이렇게 해도 「ㅌ·ㄷ」자체가 날조인 이상 「반제청년동맹」도 날조가 아닐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있은 적이 없었던 「김일성의 반제청년동맹」에 대하여 회고록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반제청년동맹은 ㄱ·ㅌ·ㄷ·ㄴ의 구호를 그대로 내세우고 그 강령을 그대로 계승한 반제적이고 대중적인 비합법청년조직이었다.조직의 기본구성은 조선청년이었으나 우리는 반제적 입장이 강한 중국청년들도 거기에 가입시켰다. ○“구호·강령도 계승” 이 조직은 문광중학교·길림제1중학교·길림제5중학교·길림사범학교·길림여자중학교·길림법정대학을 비롯하여 조선학생이 있는 시내의 모든 학교들에 다 들어갔으며 강동·신안둔을 비롯한 길림주변의농촌지역과 유하현·화전현·흥경현 일대에도 뿌리를 박았다.조선청년들이 있는 곳이면 다 퍼졌다.반제청년동맹에서는 얼마후부터 등사판으로 선전용 자료까지 밀어내뜨렸다』 28년에 있었던 코민테른 제6차대회에서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투쟁과 공산주의자의 임무」란 반제국주의 테제가 나왔고 식민,반식민지의 혁명운동이 많이 토의되었는데 여기에서 대중조직인 반제동맹 결성방침이 결정되었다. 이 6차대회 직후에 조선공산당은 코민테른으로부터 승인을 취소당하였다.이동휘가 그 결정서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파인 서울상해파의 간부들과 협의하여 곧바로 당재건에 착수하였다.이 파는 29년 초에는 그 본거지를 길림 돈화 지방으로 정하는 것이다. 이해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사건은 그들의 대중적 지반을 확대하는 일인이 되어 30년 1월 상순에는 재만한인반제국주의동맹이 결성 되었다.이 재만한인 반제국주의동맹은 3월17일 전만한인반제국주의대동맹 창립준비회를 개최하였고 이 준비위원회는 맨 먼저 청년반제국주의대동맹을 조직하였다.그리하여 6월3일 재만한인 반제국주의동맹은 청년반제대동맹과 공동으로 길성한인반제국주의동맹 발기회를 발족시키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그후 서울상해파는 코민테른의 1국1당 원칙으로 그 활동을 정지하여야 했다. ○결성 4년 앞당겨 요컨대 전세계의 반제동맹은 28년에 있었던 코민테른 제6차대회 이후에 생겼다.따라서 반제동맹의 청년조직이라는 뜻을 가진 「반제청년동맹」은 27년 8월에는 존재할래야 존재할 수가 없는 조직으로 되기 마련이다.이러한 조작은 서울상해파가 결성한 「청년반제국주의대동맹」의 존재를 알고 있는 김일성만이 할 수가 있다.그는 이 파의 공적을 횡취하고 그 결성연도를 31년부터 무려 4년이나 앞당겨서 「자신의 반제청년동맹」을 조작한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 1」206면 ②「불멸의 자욱을 따라 1」234면 ③평전 163면 ④「세기와 더불어 1」247면 ⑤평전 139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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