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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쓸만한 유전 찾아내기 잇따라 실패(현장/세계경제)

    ◎“국제유가 멀지않아 오름세로”/미 메이저,아·남미 탐사서 돈만 날려/「북해러시」 이후 대형유전 개발 전무/“매장량 77%” OPEC위력 부활 불보듯 장기 하락국면에 묶여있는 국제 석유가가 유전탐사의 잦은 「실패」에 편승,상승반전 한다는 예측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5년내 최저수준 세계 각지의 탐사를 통해 쓸만하다고 판정되는 새 유전이 갈수록 드물어짐에 따라 국제원유의 수급상황이 지금과는 아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현재 1배럴당 12∼14달러대로 5년래 최저수준인 유가는 반대로 인상가도를 달리게 되며 따라서 빛바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위세와 영화가 부활된다는 전망이다. OPEC가입 13개 산유국들은 유가가 10달러 아래로까지 폭락할 가능성이 대두된 가운데서도 지난 주말의 각료회의에서 현 2천4백50만배럴인 1일 총 산유량을 감축하는데 실패했다.비OPEC분을 포함해 날마다 6천만배럴씩 뿜어올려지는 원유중 1백만배럴 이상이 과잉 공급량이다.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유가의 추가 하락은 뻔해 보인다.그러나 유전탐사의 실패율 증가,즉 『새 유전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면 유가의 인하가 아니라 인상이 필연적 대세로 여겨진다. 미국 석유회사 모빌(93년 매출액 6백억달러)의 최고경영층은 2년전 페루에서 흔히 「코끼리」란 은어로 통하는 초대형 유전 후보지를 물색해 냈다.환경주의자들과 기나긴 실랑이를 벌이고 궁벽한 오지에 거대한 탐사장비를 이동시키는등 온갖 고생을 다 했지만 결국 「헛」유정으로 밝혀지고 말았다. ○「코끼리급」 기대난 『유전탐사에 관한 고전적인 예』라고 루치오 노토 모빌회장은 회고한다. 『3천5백만달러를 쏟아넣은 다음에야 쓸모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실패담들은 석유업계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다.석유회사들이 동남아·남미·아프리카 등지에 돈과 공을 다들여 시추공을 수다하게 뚫었으나 스트라이크는 드물었다.미국의 아르코사(매출액 2백억달러)는 93년 한햇동안 알래스카에서만 13개의 유정을 시추하는데 1억6천3백만달러를 썼다.결과는 미약한 발굴획득에 그쳤다.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은 콜롬비아에 코끼리급 후보지를 찾아내 흥분했지만 그 유전도 금방 바닥이 나고 말았다.대형 유전은 지난 60년대 말경 유럽대륙 위의 북해에서 발견된 후 감감 무소식이다. 『그후에도 많은 유전이 발견되긴 했으나 모두 대어급에서 벗어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추정 매장량 1백30억배럴의 북해유전이나 1백억배럴 상당의 알래스카 프루도 베이 유전에는 아주 못 미쳤다. 이에따라 사업상 유전탐사 활동을 중단할수가 없는 석유회사들은 그들의 비상한 노력을 이미 대량으로 석유가 발굴된 북해등 기존지역으로 되돌렸다.또 구소련 국가들과 중국·베트남·베네수엘라 등에 대형유전이 파묻혀 있으리라는 오래된 추정이 새삼스럽게 부각되고있다. 새롭게 발굴되는 유전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최근의 상황은 결국 유가의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원유의 과잉생산이 유가를 하락 일변도로 몰아가고 OPEC의 가격결정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가운데서도 많은 국가들의 경제가 되살아나 세계는 또다시 석유에 목말라 하는 모습을 노출한다.그런데 OPEC만이수요 증가에 답할 거대 매장량을 품에 안고있다. ○한때 비중 30% 급락 알래스카와 북해유전에서 석유가 넘쳐나온 80년대에 OPEC는 수세에 몰려 50%이상이던 전세계 산유량 비중이 85년 30%까지 급락했다.그 이후 OPEC의 비중은 43%에 고정되어 있는데,새 유전의 추가가 어려워진 시점에서 최신 추정치로 전세계 석유매장량의 77%인 7천7백억배럴이 OPEC 회원국 영토안에 파묻혀 있는 사실은 주목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OPEC는 현재 산유량의 10%인 2백50만배럴 정도는 당장이라도 더 뿜어올릴 수 있다.반면 다른 대형유전지역의 생산량은 감소세에 놓여있다.미국의 국내 산유 능력은 계속 떨어져 지난해에는 58년이후 최저 수준인 1일 6백90만배럴로 격감했다. 『근본적인 여건이 OPEC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석유 수요는 지난 4년간 엇비슷했지만 올들어 경기회복이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올해 석유 수요는 3.5∼4% 증가할 전망인데 2%만 증가하더라도 1백50만배럴이 날마다 추가 생산되어야 한다. ○북해일대 눈돌려 이처럼 과잉분을 말끔히 소화할 가능성은 커진 반면 석유회사들의 탐사활동이 북해등 기존지역으로 이동됨에 따라 OPEC의 산유비중을 잘라먹을 만큼 거대한 신규 유전이 발견될 확률은 한층 적어졌다.81년부터 87년사이에 미국의 대형 석유업체 18개사가 시추장소에서 손을 털고 철수했다.엑손사(매출액 1천1백억달러)는 80년대에 소말리아·말리·탄자니아·모잠비크·차드·나이지리아·모로코 등지에서 광범위한 탐사활동을 펼쳤다가 차드·나이지리아만 빼고 모두 철수했다.로열 더치 쉘그룹도 다마가스카르와 과테말라에서 북해로 옮겼다. 뿐만 아니라 성공률이 저조한 유전탐사에 대한 투자 자체가 소극화 돼 80년대 1백50억달러에 이르렀던 미대형 석유업체들의 연 탐사경비가 60억달러로 급감했다.이 또한 유가의 상승반전을 예측케 하는 현상인 것이다.
  • 몰락한 벌목장 비르비잔(무너지는 생지옥 시베리아 북한벌목장:3)

    ◎탈출 잇따르자 북서 노동자 소환/벌목계약 작년말에 종료… 연장 포기/한때 1천여명 작업… 현재는 10명뿐/술주정에 사향노루 사냥 일삼아 러시아주민들도 반감 극동 러시아의 중심도시인 하바로프스크시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3시간쯤 달리면 비르비잔이란 곳에 닿게 된다. 비르비잔은 하바로프스크주 예브레이스카야구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10만명의 주민 가운데 유태인이 30%를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 체그도민이 러시아에 남아 있는 북한벌목장의 건재를 확인하는 곳이라면 비르비잔은 몰락해가는 북한벌목장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르비잔의 거리에서는 작업복을 입은 북한노동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시의 북서쪽에 자리잡은 벌목장본부와 목재가공공장,이웃 벌목장등에서 1천여명의 북한노동자들이 일했기 때문이다. 특히 목재가공공장은 비르비잔시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벌목노동자들이 간부들에게 뇌물을 써서라도 가려하는 인기좋은 작업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곳에서 북한노동자들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지난해말로 비르비잔벌목장의 벌목계약기간이 끝나 북한노동자 대부분이 이미 철수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취재팀은 3월18일 새벽 비르비잔에 도착했다.비르비잔역에 내려 북한벌목장을 돌아보기 위해 20만루블(약10만원)을 주고 전세낸 택시의 운전사가 운좋게도 목재가공공장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유태인이었다. 그의 안내로 시내의 목재가공공장을 찾았다.정문에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 있었으나 러시아인 직원들은 『서울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별다른 절차 없이 출입을 허락했다.공장은 총규모가 5천평 정도로 정문에 들어서니 벌목현장에서 베어온 나무를 쌓아놓은 야적장과 이를 운반하는 대형 크레인,굴삭기,대형트럭이 줄지어 있었다.또 통나무를 절단하는 기계와 목재를 네모나게 자르는 기계,전기톱,대패등 각종 공구를 비치한 커다란 가건물이 10여채 늘어서 있었다.공장의 동쪽 끝에는 북한노동자의 숙소가 있었다. ○가장 인기 좋았던 곳 공장 곳곳에는 북한노동자들이사용하던 깃발등의 물품이 널려있었지만 일하는 북한노동자는 한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고 러시아 노동자들만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다른 목재공장과 벌목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과 간판도 거의 눈에 띄질 않았다. 공장본부에서 만난 비크토프 그리고리스비츠 러시아측 지배인은 『비르비잔지역의 벌목계약은 지난해로 완전히 끝나 연초부터 북한 노동자들의 철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비르비잔벌목장은 러시아와 북한간에 나머지 벌목장들과는 따로 벌목계약이 체결됐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데도 비르비잔에서 철수를 결정한 것은 다른 벌목장보다 눈에 띌 정도로 탈출자가 많이 나왔기 때문인 것으로도 보였다.비크토프지배인은 최근에도 이곳에서 몇명의 노동자가 탈출했다고 밝혔으며 그 가운데 세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다른데보다 좋은 작업여건인데도 노동자들의 탈출이 많은 것은 러시아사회와 잦은 접촉기회를 가지면서 그동안 통제된 북한에서의 삶이 허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것이었다. 벌목장본부의 한 간부는 『벌목계약기간이 끝나갈 무렵 주민들이 정부당국에 계약연장을 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했고 신문에서도 그런 기사를 많이 썼다』고도 했다.벌목노동자들의 행색이 남루한데다 술을 마시고 러시아인들과 패싸움을 하거나 불법으로 사향노루와 곰을 마구 사냥하는등 문제가 계속 발생했기 때문에 러시아주민들이 북한사람들을 싫어했다는 설명이였다. 비크토프지배인은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북한인은 행정간부와 안전요원,그리고 통역원등 10명뿐으로 본국에서의 마지막 철수명령만 기다리고 있다』면서 『음식을 사러가는 것을 빼놓고는 숙소 밖으로 일체 나오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살아 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과 10명정도라는 말에 취재팀은 그들의 숙소 안에 한번 들어가보기로 했다.비크토프지배인등 러시아관계자들은 『사고가 생겨도 책임질 수 없다』고 말렸다.하지만 우리는 일단 부딪쳐보기로 하고 북한측에 아무런 사전통보 없이 숙소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최근에도 몇명 탈출 숙소는 블록과시멘트로 지은 2층건물이었다.층마다 공동화장실과 세면장이 있고 긴 복도 양쪽에 방들이 줄지어선,한국 대학가의 하숙집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비르비잔역의 기차시간을 적은 표가 입구에 걸려있었다.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이따금씩 시간을 내어 하바로프스크까지 여행을 하는 자유도 누리곤 했다고 한다. 1층의 모든 방을 열어보았지만 비어있었다.빈채로 방치해둔 탓인지 냉기가 감돌았다.2층으로 올라서면서부터는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분명히 사람이 사는 곳인데도 인기척이 없이 조용하기만 한 까닭이었다. 계단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TV 소리였다.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가 문을 열어젖혔다. 방에서 축구경기를 보고있던 5명의 북한인과 마주쳤다.그들은 흠칫 놀라며 쏘아봤다.그들에게 『서울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뜻밖에 그들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 없이 인사를 받았다. 5명 가운데 2명은 옷도 깨끗한 편이었고 점퍼엔 김일성배지를 달고 있었다.행정간부나 국가보위부요원쯤으로 보였다.나머지 3명은 겉으로 보기에도 노동자 냄새가 났다.이들은 『사업 때문에 비르비잔에 왔다가 북한동포들이 있다기에 들러봤다』고 말하자 의자를 내주며 앉도록 권했다. 방안에는 창쪽으로 10개의 침대가 나란히 붙어있었고 장작난로와 흑백TV를 올려놓은 선반,의자등이 가구의 전부였다.나무로 짠 침대에는 색이 바랜 시트와 붉은 나일론 이불이 깔려있었다. ○북서 감옥으로 사용 이들은 왜 비르비잔에서 노동자들이 철수하느냐고 묻자 『계약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다.한강과 대동강의 봄소식을 화제로 5분가량 대화를 나누던 북한인들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기자일행을 앉혀둔채 한사람씩 방을 나가기 시작했다.옆방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더 있다가는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이만 돌아가겠다』고 일어섰다.마지막까지 방에 남아 있던 김일성배지의 사나이에게 『기념으로 사진 한장 같이 찍자』고 권했더니 『작업복을 입어서 안되겠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비르비잔 목재공장 건너편에는담이 매우 높은 회색건물이 있다.유태인택시운전사는 그곳이 옛소련의 정치범수용소였다고 일러줬다.그곳을 북한측은 벌목노동자의 감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튀르마벌목장을 탈출,러시아에 망명허가를 받은 김호씨가 도주과정에서 붙잡혀 수용됐던 곳이기도 하다. 비르비잔은 국경을 넘어선 남녀간의 애틋한 우정이 꽃핀 곳이기도 하다.지난 91년 이곳에서 일하던 벌목노동자 장모씨는 동료가 남한방송을 들었는데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전요원에게 조사를 받게되자 탈출을 결심했다.장씨는 그 동료와 자주 가던 러시아식당에서 일하던 올냐라는 아가씨에게 사정을 얘기했다.올냐는 장씨를 남편인 것처럼 꾸며 시베리아횡단 열차편으로 모스크바에 데려가 장씨가 헝가리를 통해 남한으로 탈출하도록 도왔다.장씨는 서울에 정착한 지금까지도 올냐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초청장을 보낼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취재팀은 서울에서 장씨에게 들었던 얘기를 토대로 올냐가 일하던 식당으로 찾아갔다.그러나 그곳에서 올냐를 만날 수는 없었다.식당에서 일하는 중년여인은 『지난해까지 올냐라는 이름의 여성이 식당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지만 지금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 세계의 눈길 쏠린 체그도민(시베리아 북한벌목장:2)

    ◎1천여명 중노동… 안전요원 “철통감시”/인민복3명 기자에 “와 쳐다보는 기야”/시장서 만난 노동자들은 “반갑다” 접근 극동러시아에 자리잡은 인구 5만의 작은 도시 체그도민에 최근 세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인권사각지대로 떠오른 러시아의 북한벌목장 가운데 대표적인 벌목장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는 하바로프스크주의 9개와 아무르주의 6개등 모두 15개의 북한벌목장이 있다.체그도민은 하바로프스크주에 있는 북한벌목장의 본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재쏘림업대표부 제1련합기업소」가 자리잡은 곳이다. 지난 91년 서울신문특파원이 이 지역을 방문,북한벌목장의 참혹한 생활을 처음으로 고발한 뒤 벌목노동자의 인권문제는 세계적인 쟁점으로 떠올랐다.이에 따라 현재 진행중인 러시아와 북한의 벌목재협정에서는 인권문제가 협상의 최대쟁점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인구5만 소도시 체그도민은 주민 대부분이 임업과 광업에 종사하는 매우 평범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다만 극동러시아의 대부분 지역이 그러하듯 보수적인 색채가 강해 공산당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러시아공산당이 붕괴된데 따라 중앙정부가 철거지시를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여관이나 일반사무실 곳곳에 아직도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 있을 정도다. 체그도민벌목장은 시와 잇닿아 있으며 현지인들은 이곳을 「러시아에 존재하는 북한사회」라고 부르고 있다.이른바 「주체의 논리」에 따른 노동과 생활 사상의 통제가 1천여명의 노동자를 지배하는 철옹성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체그도민의 벌목장은 이제 변하고 있다.그것은 인권상황의 변화와는 별문제로 「북한사회」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짐으로 풀이되고 있기도 하다.벌목장의 「집권층」인 당간부와 국가보위부요원,사회안전부요원등 지도부는 여전히 주체의 사상으로 무장된 냉혹함과 외부에 대한 적개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새로운 생각이 움트고 있음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들 벌목노동자를 바라보는 체그도민주민의 시각도 소련이 러시아로 와해되는 과정에서 겪은 거센 변화만큼이나 달라지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신문 취재팀이 체그도민에 도착하기 하루전 일본 아사히신문 취재팀이 이곳을 찾았다.16일에도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사와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특파원을 파견했다.영국과 프랑스에서도 곧 취재진이 들이닥칠 것이라고 체그도민시 당국자는 밝혔다.일본과 미국등지에서 온 기자들이 이곳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역시 『인권문제』라고 했다. 15일 체그도민공항에 도착한 서울신문 취재팀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북한 안전요원의 매서운 눈초리였다.군청색 점퍼를 입고 안경을 쓴 안전요원은 우리일행이 도착하자 한번 훑어보더니 공항건물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체그도민시의 유일한 여관에 도착,숙박계를 쓰고있을 때였다.군청색 인민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 3명이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한눈에 봐도 노동자 모습은 아니었다.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 가운데 한명이 다짜고짜 『와 쳐다보는기야』하며 달려들었다.그러고는 기자의 면전에 대고 『와 쳐다보느냐고』라고 시비를 걸어왔다. 마침 여관에 러시아경찰관이 들렀기 때문에 충돌을 면할 수 있었다.러시아경찰관은 안전요원들이 나간 뒤 지난 92년에 있었던 독일 슈피겔지 기자폭행사건을 설명해주며 우리일행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말했다. ○독 기자 폭행당해 문제의 슈피겔 기자들도 북한벌목장의 인권문제를 취재하려고 이곳에 왔다가 북한간부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이 사건은 현지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사회문제가 됐으며 이례적으로 폭행 북한인들에 대한 재판도 추진됐다.그러나 재판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그때 러시아로서는 독일기자의 인권보다는 북한과의 협정이 더 중요했는지 모를 일이다. 북한 안전요원의 감시는 거리와 식당에서도 계속됐다.우리일행은 할 수 없이 체그도민경찰에 정식으로 신변보호를 요청,정복경찰 2명의 동행보호를 받았다.난처하게도 그들은 여성이었지만 마다할 처지는 아니었다. 우리는 이들의 보호아래 체그도민시청을 방문,페트르 티티코프시장을 만나 벌목장취재에 협조를 요청했다.공산당 출신인 티티코프시장은 『벌목장 안의 관리는 벌목협정에 따라 전적으로 북한측의 소관』이라면서 일단 다음날 아침 러시아·북한 양측 사업담당자와의 면담을 주선해주겠다고 했다. 한국과 서울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호의를 보인 티티코프시장은 『북한측이 어제 하바로프스크에서 연락을 받고 서울 기자들이 도착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지도자들이 그 문제에 대해 회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티티코프시장은 『회의결과를 알수는 없지만 북한측이 면담을 수락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일행은 일말의 희망을 가졌으나 다음날 아침 여지없이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북한측 현지대표인 김근순총지배인은 『서울에서 온 기자들을 만나보라』는 시장의 권유에 단 한마디로 『필요없다』고 일축했다는 것이다.북한측이 면담을 거부한다는 것은 벌목장을 돌아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나중에 시장에게 들어보니 전날 회의에서 북한측은 『남한과 미국의 기자들과는 면담과 취재를 거부한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북한측은 그러나 이날 일본기자들에 대해서는 벌목장과 노동자들의 숙소,가공공장을 안내하며 취재와 사진촬영에 협조했다.한국과 미국,일본을 보는 그들의 시각이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우리는 그래도 북한측 사무실을 찾아가 김학수부지배인에게 함께 간 고려인(한국계 러시아주민) 통역을 통해 면담을 요청했다.그는 『흰것을 검다고 쓰는 작자들과는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통역을 내쫓았다. 남은 방법은 직접 김총지배인과 접촉하는 것 뿐이었다.전화번호를 알아내 수화기를 돌렸다.저쪽에서 전화를 받자 기자는 이곳에 온 목적을 상세히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그러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신분도 밝히지 않은채 욕설부터 시작했다.그는 『남조선 기자놈들이 헛소문을 퍼뜨려 각국에서 기자들이 몰려오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이 격분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신상에 해로울 줄 알라』고 협박을 했다. ○서울소식 묻기도 그러나 벌목장 지도부와 안전요원들의 이런 태도와는 달리 체그도민 곳곳에서 만나본 북한노동자들은 서울에서 온 우리일행에게 상당한 호감을 표시했다.이들은 우리의 슈퍼마켓격인 가스트롬과마가진 그리고 재래시장등에서 주로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만든 크와슈나야 카푸스티를 김치대용으로 구입하고 있었다.일부는 옷과 전자제품에도 관심을 가졌다. 북한노동자들은 대부분 기자가 다가가 『서울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면 꽤나 놀라면서 『해외에서 동포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고 악수를 청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이들은 서울소식을 묻기도 했는데 『서울에 차가 많이 막히느냐』고 묻는등 관심이 많다는 느낌을 줬다. 그러나 평양에서 대학엘 다니다 왔다는 김모씨에게 『벌목장을 탈출해 서울로 넘어온 사람들의 소식을 들었느냐』고 묻자 표정이 굳어지면서 『무슨 말이냐』고 얼굴을 돌렸다.함께 있던 다른 노동자의 눈치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이들은 『사진촬영을 함께 하자』고 하면 사진기를 손으로 막으며 『지금 작업복을 입고나와 주제비가 이렇다』라는 이유로 한사코 거절했다. 지도부와 노동자들의 다른 인식에 대해 체그도민에 오는 북한노동자의 출입국 사무를 맡고 있는 루덴카 리디아 빅토르나씨는 『북한사회나 벌목장 자체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그들이 나와 있는 러시아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있고 그 때문에 북한노동자의 생각이 많이 변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벌목장의 러시아측 총지배인인 발레리 수크노발렌코씨는 벌목장의 인권문제에 대해 『그 문제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면서 『북한노동자들이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자유로운 노동이 최고의 인권보장이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제 북한노동자의 인권은 법에 의한 인권,즉 러시아법에 따른 인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 4개월만에 돌아온 교실/한강우 전국부기자(오늘의 눈)

    『솔직히 말해 그동안 학교 있는 쪽은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습니다.그러나 이제 다시 학교에 나와보니 역시 내 학교라는 옛정이 듬뿍 되살아 나는군요.여느 학생들처럼 고교졸업장을 받을수 있다니 날아 갈 것만 같은 기분이예요』 지난해 11월 상문고 상춘식교장(53)의 비리를 폭로하는 유인물을 돌리다 문제가 돼 학교로부터 제적을 당한 뒤 4개월만에 재입학이 결정돼 29일 다시 등교를 시작한 3학년 이모(18)군등 4명은 스승과 학우들로부터 인사를 받느라 잠시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옛모습으로 돌아가 책상을 찾아 앉았다. 한 학생은 『교장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돌린게 절대 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그렇다고 열흘만에 전격적으로 제적을 당할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그동안 마음의 상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지난해 11월19일 등교길 학우들에게 상교장의 전횡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돌리다 적발돼 열흘동안 매일 10시간씩 교실에 갇힌채 학교측으로부터 『너희들을 사주한 교사가 누구인지 대라』고 강요 받으며 무려 2백여장이나 되는 자술서를 썼지만 결국 전원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 끝내 학교에서 쫓겨난 뒤 다른 학교에 편입하거나 검정고시에 응시하기 위해 제적증명서·생활기록부 등의 발급을 요청했으나 학교측은 이마저 거부,김모군은 다른 학교 편입시험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하지 못하는 시련을 겪었다. 『그동안 아들이 학교가 아닌 학원으로 발길을 돌릴 때는 가슴이 메어지는듯 했습니다』. 아들의 등교길을 따라나선 이모군의 아버지 이기억씨(45·금속공예가)는 아들이 이제부터라도 정상적인 고교생활로 되돌아간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제 예전처럼 머리를 다시 짧게 깎을때만해도 복학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는 김모군은 『학급과 50번이라는 번호를 배정 받은뒤 교실로 들어서면서 옛친구들의 박수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상문인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할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4개월전의 악몽을 가슴에 묻은채 한바탕 소용돌이가 지나간 교정에 어느새 익숙해 지고 있었다.
  • 무너지는 생지옥 시베리아 북한벌목장:1

    ◎서울신문 왕상관·이도운특파원 그 현장에 가다/“나는 이렇게 탈출했다” 김호씨 증언/도주­피체반복 6년만에 러거주증 획득/현장 운전수 3년만에 불순자로 낙인/몽고­중아 유랑… 두번 잡혔다 다시 도피/한국망명 신청했으나 “부답”… “서울거리 걸어 봤으면” 러시아 극동지역의 북한벌목장을 탈출한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서울로 가는 꿈을 안고 러시아 전역을 떠돌고 있다. 북한당국의 추적과 지역주민들의 밀고에 쫓기는 불안과 긴장,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돌봐주기는 커녕 무슨 흉물보듯 대하는 이민족들의 멸시,그리고 망명에 대한 한국정부의 어정쩡한 방침 때문에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아예 서울행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망명을 신청하기도 한다. 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기만 하다.특히 최근에는 이들의 입을 통해 벌목장의 인권유린등 온갖 비행이 폭로되는 것을 꺼리는 북한당국이 탈출자를 붙잡기 위해 특무대원을 러시아 각지에 파견하고 있어 거의 절망적인 불안속에서 고달픈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숨어다니며 고려인(한국계 러시아주민) 행세를 하기 때문에 만나보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4명에만 망명 허가 기자는 지난 13일부터 러시아에서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와의 접촉을 시도한 끝에 1주일이 지나서야,그것도 다섯 단계를 거쳐서야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아르좀의 한 주택가에서 김호라는 탈출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김씨는 지금까지 러시아정부로부터 망명허가를 받은 오직 4명뿐인 북한노동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김씨는 망명허가를 받고도 여전히 계속되는 북한측의 테러위협 때문에 지금도 은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의 성장과 파란만장한 도피과정,러시아로부터 망명허가를 받은 법적 위상등 북한벌목장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한 몸에 안고 사는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다. 김씨는 59년7월20일 평안남도 혜산에서 태어났다.3남2녀 가운데 둘째아들이었다.아버지는 혜산일대에서 유명한 교육자였고 누나가 의사,형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다녔으며,여동생도러시아어 교사를 하는 성분좋은 집안이었다.고등중학교를 마친 뒤 군에 입대,휴전선근처 공군부대에서 복무하다 평안북도 정주의 군관학교를 거쳐 82년 소위로 임관했다.몇년동안 장교생활을 하다 「10만군 축소계획」에 따라 제대를 하게 된다. ○현장 당비서차 운전 사회에 나와 운전을 하던 김씨는 러시아 벌목장으로 돈을 벌러가려고 마음을 먹었다.88년 5월16일 러시아행 열차를 타고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의 북한벌목장 가운데 하나인 튀르마에 도착했다. 러시아에 와보니 세상이 달랐다.튀르마는 지방의 소도시였지만 주민들의 삶은 자유로웠고 상점에는 물건이 가득한,일종의 「천국」이었다.김씨는 벌목장에서 공산당책임비서의 운전사로 근무했다.책임비서는 벌목장에서도 위치가 확고했기 때문에 김씨도 열악한 생활환경이었지만 그런대로 적응해 지낼 수 있었다. 김씨의 운명이 바뀐 날은 벌목장에 온지 3년이 조금 넘은 91년8월24일이었다.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우리도 러시아처럼 민주주의를 해야한다』고 「불순한」 말을 내뱉은 것이 화근이었다.바로 다음날 김씨는 당위원회의 호출을 받았다.안전부에서도 김씨를 찾았다.그는 본능적으로 사태가 심각함을 깨달았다.『산에 좀 갔다오겠다』며 숙소를 나와 그길로 열차를 잡아탔다. 김씨는 러시아에 와서 북한에서의 삶이 허구였다는 것을 어느정도 깨닫기 시작했다.그렇다고 탈출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그러나 당위원회와 안전부에서 자기를 부른 것은 전날밤의 일만을 갖고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이미 그동안의 여러가지 발언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 분명했다.이제 북한으로 돌아간다해도 정치범수용소 신세를 모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결국 서울로 달아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하바로프스크로 갔다.시장에서 윤씨라는 고려인 할머니를 만나 그 집에서 며칠동안 숨어살았다.갖고 있던 총재산 1백달러를 주고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고려인의 신분증을 빌렸다.그리고 9월7일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고려인 아내도 맞아 김씨는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한국대사관을찾아가 망명을 요청했다.그러나 한국대사관에서는 김씨에게 이렇다,저렇다 하는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낙담천만이었다.게다가 북한당국의 추적망이 좁혀오는 것을 느꼈다. 모스크바에 더 머무르기가 어려웠다.9월 중순 고려인들이 많아 러시아보다는 신변이 안전한 중앙아시아 카자흐공화국으로 들어갔다.그러나 거기서도 결국 정착지를 찾지 못하고 고민끝에 북한 안전요원의 발길이 미치지 않을 것같은 몽골로 건너갔다.몽골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고려인 청년 한명을 만났다.그 만남이 김씨의 운명을 또한번 바꿔놓았다.카자흐공화국의 타슈켄트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청년은 김씨에게 함께 일하자고 했다. 그는 마침내 청년의 동생인 마야(5월이라는 뜻)라는 아가씨를 아내로 맞게 됐다.곧바로 두사람은 부부가 되고 마야의 친척들이 김씨의 신분증을 만들어주기 위해 관리를 매수할 돈을 모았다.그러나 관리들의 실수로 여권이 2중으로 발급됐고 행정처리 과정에서 그 사실이 드러나 김씨는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경찰은 김씨를 수도인 타슈켄트로 이송해 신분확인 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경찰에 수감된 김씨는 우연히 목공일을 돕다가 만일에 대비해 칼 하나를 훔쳐뒀다. 김씨의 신분확인은 한달만에 끝났다.벌목장을 탈출한 사실이 드러났고 경찰은 신병을 북한측에 넘겨주기로 결정했다.그러나 그는 죽으면 죽었지 북한에 다시 잡혀갈 수는 없었다.경찰이 호송차에 태우기 직전 품속에 숨겨둔 칼을 꺼내 자기배를 찔렀다.그리고 경찰호송차 대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그는 다음날 밤 의사와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탈출했다. 한 고려인 집에 숨어 치료를 받은 김씨는 마야와 함께 이번에는 우즈베크공화국으로 넘어갔다.우즈베크는 바다가 육지로 변한 척박한 땅이다.탈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불같이 끓는 모래밭 2정보를 일궈 해바라기를 심고 지게로 물을 지어 날랐다.해바라기가 자랄 때까지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처형이 사는 블라디보스토크 이웃으로 가 중국과의 국경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 때가 92년 여름.국경에서 떠돌이 북한인을 사귀게 됐다.며칠뒤 그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보니 러시아 경찰 두명이 다가와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도망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결국 다음날 북한 안전요원들에게 넘겨지고 말았다.안전요원들은 김씨를 차에 태운뒤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 받줄로 묶었다.다리에는 마치 부러진 다리를 기브스하듯 철제 족쇄를 두른뒤 40㎏짜리 여행용 가방에 묶었다.하바로프스크의 북한임업대표부를 거쳐 기차로 3시간 떨어진 비르비잔 벌목장의 감방으로 끌려갔다. 부인 마야는 김씨가 잡혀가자 혼자서 하바로프스크의 북한임업대표부로 찾아갔다.몇날며칠을 임업대표부 앞에 앉아 김씨를 풀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며 하바로프스크주정부등 관계당국을 찾아 남편의 구명운동을 벌였다.러시아 국적을 가진 마야가 독하게 달려들자 북한측으로서는 골치아픈 일이었다.문제가 커지기 전에 김씨를 북한으로 빼돌리기로 했다. 지난해 4월3일 김씨는 북한으로 가는 열차에 태워졌다.그러나 기차를 타고 가는 이틀동안 감방에서 주은 핀침으로 수갑을 풀었다.일행은우스리스크역에서 기차를 바꿔타려고 역사로 나왔다.4명의 안전요원 가운데 2명이 표를 사러가고 2명이 남았다.김씨는 그틈에 2명의 안전요원 가우데 한명은 면상을 들이받고 다른 한명은 수갑을 찬 손으로 머리를 내리쳐 쓰러뜨리고 도망쳤다. 김씨는 북한 안전요원을 피해다니고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다니는 편법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고 결론을 냈다.마야의 친척집으로 숨어들어가 모스크바의 법률가협회에 망명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곧이어 모스크바로 날아가 인권위원회와 유엔,외교성등에도 도움을 청했다.모스크바당국은 김씨의 망명신청을 일단 접수했다.러시아의 법적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2년 지나면 시민권 북한은 김씨의 망명을 허가해주지 말도록 각종 채널을 통해 러시아정부에 강력히 요청했다.그러나 지난해 10월4일 러시아공민권위원회는 김씨의 망명을 허가했다.그리고 지난 1월26일 모스크바에서 김씨에게 편지가 날아왔다.그 안에는 특정지역(김씨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의 거주를 인정하는 「비트 나 지제스트로」가 들어있었다.이 거주증은 2년만 지나 본인이 원하면 러시아시민권인 파스포트로 교환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씨의 꿈은 여전히 남한에서 살아가는 것이다.벌목장을 탈출한 순간부터 닥쳤던 가시밭길은 모두가 서울로 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목숨을 걸면서까지 탈출한 것은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것이었다.러시아에서는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김씨는 그러나 막상 한국측에서 『넘어오는 북한사람을 모두 받아주기만 하는게 능사가 아니다』라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몹시 씁쓸해하고 있다.『떼를 쓴다고 될일도 아니갔디요』라고 계면쩍게 웃는 그의 표정이 꽤나 측은해 보였다.그는 『서울에 대해서는 잘 모르갔디만 아마 가보면 내눈이 뒤집힐 것』이라고 말했다.『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그저 서울거리를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 러시아에는 김씨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탈출노동자들이 수백명에 이른다.이들이 벌목장을 탈출했다는 사실은 결코 영예로운일이 아니다.행여 그들이 지나간 삶을 서울에서 보상받으려 해서도 안될 것이다.그러나 결국 누군가는 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러시아와 북한,그리고 한국 이 세나라가 이들의 관련당사국이다.러시아는 이미 이들을 받아들일 몸짓을 보이고 있다.북한도 이들을 모두 붙잡아가는데 혈안이 돼있다.물론 그 이유는 서로 다르다.그러나 정작 이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자유조국」은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다.
  • 로봇혁명/청소·빨래 가사노동 로봇 등장(미리 가보는 21세기)

    ◎인조인간 「스틸컬러」시대 개막/공장서 24시간노동… 각광받아/“미래산업 꽃” 각국 국운걸고 개발나서 21세기가 되면 청소와 빨래등 가사노동을 하는 로봇이 등장한다.또 산업현장에서는 1t 무게의 짐을 들고 72시간 동안 쉬지않고 일하는 로봇이 등장 새로운 산업혁명이 일어나게된다.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를 대신하는 스틸 칼라라는 새로운 인조인간이 조선소와 자동차공장의 선반과 사출기등 공작기계앞에서 일을 하고있다. 로봇은 사람들보다 일을 더 잘하며 생산에서 운반 포장 저장까지 공장 자동화의 주역이 되고있다.로봇은 먹지도 입지도 않고 근로 조건에 불평하지도 않으면서 사람이 할 수 없는 해저탐사나 우주개발 원자력발전소 안이나 송유관 배관속에서도 충실히 일 할 수있다.21세기를 앞두고 선진각국은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3D업종의 대체 노동 ▲제품의 대량생산및 균일화 ▲24시간 가동할 공장 인력 ▲노령인구의 증가로 인한 대체인력확보 등의 이유로 로봇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지난 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된 로봇의 산업이용은 90년대에 와서 일본에서 더 발달하게 됐다.우리나라도 오는 2천년대에 선진 7개국에 진입하기위해 휴먼 로봇개발을 주요 기술개발과제로 선정,선진국과의 경쟁을 하고 있다.지난해 대전 엑스포에는 꿈돌이 조각가 로봇이 등장 관람객의 얼굴을 조각해주고 사물놀이 로봇 놀이패가 등장 신명나는 연주를 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의 병원에는 로봇이 음식을 병실에 나르고 있으며 눈 수술이나 전립선수술등 정밀을 요하는 수술에 투입되고 있다.우리나라에도 현재 현대자동차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등에서 로봇이 생산 라인에 투입되고 있다.1921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칼 자벡이 인조인간의 이름으로 처음 쓴 로봇은 2차대전이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 되기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민간 연구소에서도 금성사의 로봇청소기 삼성전자의 집지키는 로봇을 시판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현대산업의 4가지 핵심분야를 자동차·가전제품·반도체·공작기계로 분류하고 있으며 미래의 산업은 로봇에 의한 공장 자동화가 성공의 관건이 될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미래학자들은 21세기의 전쟁은 병사가 아닌 로봇에 의한 인간기능의 대리전이 될것으로 예상하고있다.총알이 날아와도 전진하며 운전병이 없이도 움직이는 탱크와 자주포의 싸움에서 승리는 어느편이 더 정교하고 우수한 로봇을 생산 하느냐가 승패를 결정하게 될것이다.
  • 개도국의 대한 취업외교/황성기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올들어 노동부에는 제3세계 국가의 각료나 대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 산업현장에 보다 많은 자국 근로자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세일즈」방문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법취업한 자국 근로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달라」고 목청을 높였던 지난해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 23일 하오 파즐러 라만 주한방글라데시대사가 노동부를 방문했다.형식은 노동부장관 「예방」이었으나 실상은 인력수입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라만대사는 이날 남재희장관을 찾지 않고 실무국장인 조순문직업안정국장을 지명해 만났다. 그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마치자마자 방글라데시의 어려운 사정을 강조하며 「가능한 많은 근로자의 취업」을 부탁했다. 그러나 조국장은 확답할 수도 없고 「안된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어 「적극 고려하겠다」는 외교적인 수사로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앞서 이달초 남장관은 주한 이란대사의 예방을 받았다. 이란대사는 이런저런 얘기끝에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어려워진 경제현실을 설명하며 자국 근로자의 취업을 당부했다. 이란은 60∼70년대 중동건설붐 때 우리 각료나 대사들이 수시로 「예방」해 가급적 많은 한국근로자들을 써달라고 부탁했던 나라이다. 우리 정부는 이같은 「취직부탁」에 대해서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기업의 필요에따라 근로자가 오가는 것이지 정부가 무턱대고 인력수입을 결정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23만명까지 낯선 땅에 근로자를 내보내야 했던 우리나라가 현재 외국에 보낸 근로자는 2만명에 불과하며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취업한 외국인근로자는 5만명 남짓이다. 현재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국내 실업자는 57만여명이라고 한다. 3D직종 기피현상 때문에 「자기집 일」을 남의 나라 근로자들에게 내어주는 한심한 행태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 것인가.
  • 교총회장 선거 “4파전”/김 대통령 처남 손은배씨 출마선언

    ◎신극범·윤형원·장을병씨와 각축전 이영덕 교총회장이 부총리로 영전된 데 따라 공석이 된 후임회장 자리에 대통령의 처남인 손은배교사(서울 인원국교)가 22일 출마를 공개선언하고 나서 주목된다. 손후보추대위원회는 이날 모일간지에 광고를 통해 『교총의 참신한 역할에 대한 강한 집념과 지난날 그가 자기혼을 쏟아 사랑해온 이 나라 교단을 위한 봉사와 고뇌의 흔적,그것이 전부였기에 손선생만이 최적의 인물임을 확신하고 뜻을 모아 추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추대위는 『5공시절 교육의 본질을 정치도구화해온 출마자는 문민시대를 맞아 마땅히 자숙해야 한다』고 지적,『대통령 처남의 신분이 추대의 동기가 결코 아니다』라며 출마의 변을 강조. 손후보는 지난해 11월 당시 이회장이 재선될 때도 출마의사를 표명했다가 선거 하루전날 출마를 갑자기 포기했었다.현재는 학술진흥재단에 파견중. 이로써 오는 4월27일 열리는 제 27대 교총회장선거는 이미 출마의사를 밝힌 신극범한국교원대총장과 윤형원충남대교수,손교사에 이어 주위의 출마권유를받고있는 장을병성균관대총장등 4파전의 양상을 띠고있다. 신총장은 5공시절 교육부 교직국장을 거쳐 청와대 교문수석을 거쳤으며 이미 전국의 대의원에게 출마의 변을 담은 유인물을 우송하는등 활발한 선거활동을 벌이고 있다.윤교수는 이번에 다섯번째 교총회장에 도전,숙원을 이룰지 관심을 끌고 있으며 장총장은 학식과 덕망으로 주변의 강력한 권고를 받고있어 출마시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전망.교총회장 선거는 재적 대의원 4백11명의 과반수출석·과반수찬성으로 선출하며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다수득표자 2명이 결선투표에 나서 다득표자로 결정한다.내달 23일 선거공고에 이어 26일까지 후보자등록을 마친뒤 27일 투표가 이뤄진다.
  • 영 인디펜던트지의 몰락/서정아 국제1부기자(오늘의 눈)

    「독립성」이란 전세계 언론인의 이상을 성공적으로 「실험」해오고 있는것으로 평가되던 영국의 인디펜던트지가 창간 8년만에 그 신화의 막을 내리고 언론재벌에 합병돼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이클 헤젤타인 무역·산업장관이 18일 데일리 미러지를 발간하는 미러그룹 주도의 컨소시엄에 인디펜던트를 합병토록 결정했다고 발표,영국 언론계가 벌집을 쑤셔놓은듯 들끓고 있다.전국지 20개 가운데 10개가 데이비드 몽고메리 미러그룹 회장,루퍼트 머독 더 타임스지 사장 두사람 소유가 되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인디펜던트의 몰락과정은 신문산업에 불어닥친 자본의 바람,이를 바탕으로 한 신문사간 이전투구식 과당경쟁 등 오늘의 언론계가 처한 위기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86년 10월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중견 기자 3명이 30개 회사로부터 공동출자를 받아 「편집,재정,운영의 독립」을 내걸고 설립한 인디펜던트.관급기사를 줄이고 발로 뛰어 쓴 기사를 중시한 인디펜던트는 빠른 속도로 20∼40대 지식인층을 파고들었다.「한번도 새로운 고급신문이 성공한 예가 없다」는 1백30년 영국 언론사의 금기를 깨고 창간 2년만에 발행부수에 있어 기성 고급지들과 같은 대열에 올랐고 92년에는 타임스를 앞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기적의 신문」 인디펜던트는 93년들어 급격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전후 최악이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일요판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를 발행한 것이 실수였다. 총자본액의 10%가 넘는 빚을 얻어 만든 일요판은 처음 몇개월간 반짝 인기를 누렸으나 1년이 못돼 부수가 급격히 떨어졌다.또 휴일없는 격무에 시달린 사원들의 사기 저하로 신문의 질도 떨어지게 됐다. 여기에 더 타임스가 막강한 재정을 무기로 평일판의 가격을 45펜스에서 30펜스로 내리는 지가전쟁을 선포하자 인디펜던트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해졌다. 인디펜던트는 고급신문,독립신문이란 차별화를 고집하며 구독료를 오히려 올려 받는 모험을 감행했으나 불경기에 시달린 때문인지 독자들은 끝내 인디펜던트와 그 이상을 외면했다. 이같은 인디펜던트의 실패가 자칫 신문의 질이 돈의힘을 이길수는 없는일이라는 징크스로 굳어질까 세계 언론인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 경호대책 완비… 실질성과 도출 만전/YS맞이 일·중 현지준비 상황

    ◎일/과거사 문제 탈피… 외교정상화 힘써/중/TV서 한국프로방영 등 붐조성 한창 김영삼대통령이 오는 24일부터 30일까지 일본과 중국을 각각 공식 방문한다. 새 정부 출범후 첫 국가원수 방문에서 한·일,중 3국은 경제협력과 악화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등 상호관심사에 대해 내실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 회담준비에 진력하고 있다. 또 빈틈없는 경호를 위해 경찰력이 대거 동원되고 있는 가운데 「대일외교의 정상화」와 공항행사의 간소화등이 예정돼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 한국대사관및 일본외무성과 총리실은 과거사 문제가 주요의제였던 지금까지의 고전적 한일외교를 한 차원 높은 「보통 외교」로 정상화시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으며 일본경찰은 철저한 경호를 위해 1만6천명의 경찰을 동원,비상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주일대사관은 공로명대사를 중심으로 이종무정부공사를 실무대책반장겸 상황실장으로 임명하고 정무(회담),영빈관(의전),호텔,행정,통신등 5개반을 구성했으며 그밖에 안전대책반(경호)과 공보반을 별도로 구성,준비에 만전.회담준비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지금까지는 일왕과 정상회담에서의 과거사에 대한 표현을 둘러싸고 양국실무자들이 힘겨운 씨름을 해야만 했다.표현 하나하나,말 한마디 한마디까지 미리 조율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과거사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일본에 맡기고 있다. 한국측은 또 지금까지는 정상회담의 「가시적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부담을 느껴왔다.그러나 이번에는 과거사를 빌미로 일본의 양보를 얻어내는 종래의 「한건주의」 정상회담준비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양국이익을 극대화하기위한 정상회담이 되도록 의견조정을 하고 있다고 한국대사관측은 말하고 있다. 일본경찰은 김대통령이 와세다대에서 강연하는등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예정이어서 철저한 경호를 준비하고 있다.도쿄도 경찰의 절반수준인 1만6천명이 동원될 예정이며 지난 11일 1천3백여명의 경찰을 투입,극우파 준동에 대비한 특수경비훈련도 실시했다. 일본외무성은 과거에는 군사독재라는 인식때문에 만찬초청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번에는 오히려 많은 유력인사들이 김대통령과 자리를 같이하려고 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김대통령의 오는 26일 공식 중국방문을 앞두고 북경의 한국대사관을 비롯,한국상공인회·무역관등 일부 한국기관 요원들은 야간 근무에 일요일도 없이 행사준비에 분주한 모습. 김대통령의 방중행사중 하이라이트는 양국간 첨단산업분야에서의 합작을 위한 한중산업협력위원회를 구성,출범시키는 일이 될 것 같다. 이를 위해 중국측과의 거듭되는 협상을 통해 한국측 위원장에 김철수상공자원장관,중국측에서는 왕충우국가경제무역위원회주임으로 결정하는 한편 구체적인 문안까지 모두 절충을 마쳤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북경간 직항로 개설을 위한 항공협정은 양측 업계의 이해조정이 쉽지 않아 김대통령 방중전에 타결될 가능성이 40%밖에 안된다는 것이 황병태 주중대사의 귀띔. 중국측은 남북한 대치상태라는 특수상황때문에 여느 국가원수보다 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어서 「초특급경호」를 펼칠 예정인데 중국측 경호담당자들은 지난 92년 노태우전대통령 방중때의 경험을 되살려 준비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국측 경호대책반은 중국측 관계당국과 긴밀한 공조를 유지해가면서 김대통령이 지나갈 곳이나 행사장등에 관한 20여개의 현지상황도를 작성해 도상 경호연습을 실시. 김대통령의 방중에 대해서는 중국측이 지난주에야 공식발표해 아직은 일반주민들의 주요 화제거리로까지 떠오르지 않고 있으나 북경 제3TV가 20일 밤 한국영화 「개벽」을 방영한데 이어 몇가지 한국프로를 준비중이고 멀지않아 극장가에서도 「서편제」「성공시대」등의 영화상영을 준비중이어서 김대통령 방중을 전후해 한국붐을 일으키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중에서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는 공항행사에서 문민시대답게 환영 플래카드는 하나만 내걸어 간소하게 치르기로 한 것.이 플래카드는 이미 한국에서 제작돼 들어와 있다.
  • 미 「인권외교」의 한계/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미국은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표시해왔고 특히 클린턴대통령의 민주당정권이 탄생하면서 그 강도는 더욱 높아갔다. 워런 크리스토퍼국무장관이 지난 11일부터 4일간에 걸쳐 중국을 방문한 목적은 『중국의 인권문제가 현저히 개선되지 않는한 오는 6월의 대중국 최혜국대우(MFN)연장을 더 이상 고려할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크리스토퍼장관은 클린턴행정부 출범이후 중국을 방문하는 최고위 인사로 MFN연장여부 결정에 앞서 인권개선의 현장상황을 점검하고 중국측 개선의지와 약속을 받아내겠다고 단단히 별렀던 터였다. 그러나 결과는 중국측의 「비무역문제의 무역문제 연계불가」「인권문제등 내정간섭 불용」이란 강한 반발에 밀려 크리스토퍼장관 일행이 오히려 밀려나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북경을 떠나게 됐다.크리스토퍼장관은 『인권문제에 관한 미­중국간 이견을 다소 좁혔다』는 평가로 중국방문을 마감했다.인권문제 논의를 위한 양국 고위관리의 접촉유지,중국내 수감중인 정치범에 대한 일람표제공약속 등을 「이견축소」로 평가,자위한 것이다. 이번 미­중외무장관회담에서 미국이 중국의 반격에 멈칫 할수 밖에 없었던 것은 중국의 외교적 논리가 아니라 무역보복도 불사하겠다는 실력행사 「위협」때문이었다.중국은 최혜국대우를 연장해주지 않으면 미국기업의 중국시장진출을 봉쇄,2000년 수입규모가 1천억달러를 넘게될 중국시장에 접근치 못하게될 것이라며 『해볼테면 해보자』는 자세였다. 크리스토퍼장관이 『이견을 줄였다』고 말하고 있을때 클린턴대통령은 미국민에게 『지금부터 6월까지 중국의 인권상황을 지켜보자』며 결코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임을 다짐했다. 15일 워싱턴에서 열린 외교위원회주관 미­중국관계 심포지엄에서 헨리 키신저전국무장관은 『인권문제도 중국의 위신과 양립할수 있는 범위내에서 제기해야한다』고 조언했고 사이런스 밴스전국무장관도 『인권과 MFN의 연계는 현실적 효과 측면에서 신중한 고려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카터 민주당행정부때에 이어 「인권외교」를 강조하고 있는 클린턴외교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목이 아닐수 없다.
  • “윤화후유증 비관자살때도 사망보험금 지급해야”/보험감독원 결정

    교통사고로 장해를 입은 사람이 후유장해로 자살한 경우 보험사는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보험감독원은 14일 교통사고를 입은 뒤 자살한 정모씨(61)의 아들이 신동아화재를 상대로 낸 손해보험 분쟁 조정에서 정씨가 교통사고 때문에 자살했다면 장해 보험금 외에 사망보험금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감독원은 『피해자가 교통사고로 오른쪽 눈이 멀고 뇌조직의 손상으로 기억력이 50%나 상실된 끝에 자살한 것은 후유장해와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정했다.
  • 십일조공동체와 조세공동체/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오늘의 눈)

    천주교는 그동안 종교계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성직자 소득세납부문제를 마무리지었다(서울신문 3월12일자 23면).천주교주교회의 94년춘계정기총회가 이를 확정함에 따라 각 교구는 소득세 납부방안을 세부적으로 마련,곧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주교회의는 또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데도 교회가 동참키로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조치는 성·속이 일치한 사회공동체 지향의 종교적 노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교회운영에 십일조가 필요한 것처럼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경영하는데 요구되는 국민공동부담의 조세는 필연적인 것이다.그래서 성직자들의 납세거부는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그 당위성은 납세가 국민 3대의무의 하나로 꼽힌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에서도 찾아진다. 천주교의 성직자 소득세납부 결정이나 농촌을 돕기로 한 일련의 사안들은 따지고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그럼에도 유독 돋보이는 까닭은 어디 있을까.종교들이 공동체를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종교내적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만 주력해온 현상을 늘상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이를 바꾸어 해석하면 나눔이 없는 십일조 공동체와 피보시공동체가 곧 종교로 이해되어 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종교의 사회참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대략 체제저항적 목소리를 높이는 사회참여로 요약될 수 있으나,민주화에도 어느정도는 공헌했다.지나간 시대 성직자들의 납세거부 배경에는 그런 체제저항의 맥락이 깔려있었는지도 모른다.이를테면 군사정권 체제유지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납세를 거부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성립된다. 지금은 시대가 변화했다.다수의 의사가 결정한 문민정부가 사회를 이끌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백지장도 맞드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그리고 사회는 지금 투명한 쪽으로 굴러가고 있다.이를 부추기는 종교의 역할이 더욱 기대될 수 밖에 없다.천국은 신이 만드는 것이라면,복지국가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건설해야 될 거대한 공동체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남미 니카라과의 한 성직자 에레네스토 카르데날의 삶을 잠깐 돌아보았으면 한다.1980년대 독재자 소모사일가를 몰아내는데 투쟁적 혁명가로 변신했던 그는 소모사가 떠난 이후 니카라과의 역사 한복판으로 돌아왔다.정치,종교,사회가 결합한 새로운 공동체 건설을 위해 현대사회로 돌아온 것이다.
  • 조흥은행 국제금융실(국제화 앞서간다:19)

    ◎지구촌 환시장 24시간 공략/20국과 통화 거래… 작년 19억원 벌어/국내시장 13% 점유… 규모·이익 1위 서울의 중심가인 남대문로 1가에 위치한 조흥은행 본점 5층 국제금융실.자정이 임박한 시각에도 불이 환히 밝혀져 있다.로이터모니터 딜링 시스템(RMDS·국제 외환딜링 전문 통신망)의 모니터용 단말기 앞에 앉은 최명규 외환딜러의 눈이 충혈돼 있다. 그는 이날 거래업체로부터 사들인 2백만달러 상당의 엔화를 팔기로 했다.우리와 비슷한 시간대인 홍콩과 싱가포르 외환시장은 밤 11시로 이미 폐장했다.프랑트크푸르트(하오4시)와 런던(하오3시)은 후장이 개장됐고 뉴욕(상오10시)은 막 전장이 열렸다.APDJ 텔리레이트사가 방금 타전한 런던과 프랑크푸르트 외환시장의 엔화 시세가 들어왔다.미들랜드은행(영국계)과 드레스드너은행(독일계)이 매수가격 달러당 1백3.80엔,매도가격 달러당 1백3.70엔을 제시했다.딜링머신을 통해 후지은행 싱가포르지점을 불러냈다. 조흥:『엔화 2백만달러어치를 거래 하자』 후지:『매도가격은 달러당 1백3.65엔,매수가격은 달러당 1백3.75엔이다』 조흥:『팔겠다』 이어 양측이 거래내용을 한번 더 확인하고 결제할 구좌를 지정한 뒤 통화를 끝내기까지 20초가 채 못걸렸다.대화는 물론 모두 영어로 이뤄진다.따라서 유능한 외환딜러가 되려면 무엇보다 유창한 외국어 구사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 은행의 외환딜링 룸에는 모두 16명이 딜링업무를 하고 있다.하루 평균 거래 규모는 30건에 6억달러 정도.작년초와 비교하면 거의 두배로 늘었다.아직은 원화와 미달러화를 사고 파는 거래가 대종이다.그러나 엔화,독일의 마르크화,영국의 파운드화를 비롯,세계 20개국의 통화도 하루 평균 1천3백만달러어치정도 거래된다. 지난 90년까지만 해도 국내 은행들은 외환거래 업무에 매우 소극적이었다.그 결과 국내 외환시장은 시티은행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들이 판을 쳐 왔다.당시 국내 외환시장의 점유율은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이 6대4정도로 우위를 지키며 장세를 주도했다.거액의 환차익도 그들이 대부분 차지했다.국내 은행들이 그만큼 제 몫을 못 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작년부터상황이 달라졌다.국내 은행들도 국제화와 개방화에 따라 외환업무 분야의 영업을 강화했기 때문이다.작년의 경우 국내 외환시장의 점유율은 국내은행이 6대4 내지 7대3 정도의 우세로 역전됐다. 조흥은행은 국제 및 외환영업 파트를 강화하는 국내 은행들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지난해 이 은행의 국내 외환시장 점유율이 13.4%를 기록,국내 및 외국은행 국내지점을 통틀어 규모와 이익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올해부터는 그 여세를 몰아 국제 외환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전략을 세웠다.외환딜링룸의 근무시스템도 「24시간 영업체제」로 바꿨다.16명의 외환딜러들이 지구촌의 외환시장을 개장시간에 맞춰 매일 한바퀴씩 돈다.금융 국제화의 첨병들인 셈이다.정상근무조 외에 야간근무조를 편성,하오 2시부터 취리히·프랑크푸르트·런던시장을 거쳐 뉴욕시장의 전장을 보고 나면 자정이 넘는다. 이들이 지난해 벌어들인 돈은 19억원에 이른다.올들어서는 2월까지 7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허경희/국내 첫 여성딜러/“정보 통한 순간적판단이 딜러의 생명”/전세계 정치·경제정보 지속적으로 수집 『외환딜러는 정보를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딜링을 잘 하려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시시각각의 정치·경제 관련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일이 요체입니다』 국내 은행 최초의 여성 딜러인 조흥은행 국제금융실의 허경희씨(26)는 유능한 딜러가 되기 위한 자격요건으로 국내 및 국제 정치와 경제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꼽았다.수집된 정보의 의미와 그것이 환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이다.그러려면 평소에 국내외 정세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은행원 경력 4년에 딜링업무만도 2년째인 허씨는 매일 신문이나 방송·통신의 보도 내용을 빼놓지 않고 검색한다.그날의 환율을 오르내리게 할 만한 뉴스가 있기 때문이다. 허씨는 외환딜링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이달말부터 7주 코스의 금융연수원의 국제금융 과정에 등록했다.국내 연수가 끝나면 오는 6월부터 10월까지 뉴욕 금융연수원(NYIF)과 런던의 선물중개회사 등 해외 연수과정도 밟을 계획이다. 이화여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허씨가 국제 금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 입행 후 지점근무를 할 때이다.『금융시장의 개방화와 자율화가 확대될 수록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가 국제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연히 생소한 외환업무를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돼 국제금융에 관한 서적들을 구입,기본 개념들을 익히기 시작했다.또 근무가 끝난 밤시간을 이용해 국내 선물거래회사들이 개설하는 연수프로그램 등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덕분에 지난 92년에는 미국의 선물거래중개사 자격증도 땄다. 허씨는 성실성과 신속한 판단력,그리고 철저한 자기관리가 외환딜러의 생명이라고 강조한다.모니터 화면앞에 하루종일 앉아 초단위로 변하는 국제 환율시세를 들여다 보면서 거래의사를 신속하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거래 결과가 나빠 거금을 날린 경우라도 절대 흥분은 금물이다.흥분하면 다음 거래에서 더 큰 손해를 초래하기 십상이다.그러나 거래 결과가 좋아 하루에 수천만원씩 벌어들일 때는 뿌듯한 자긍심을 느낀다.
  • 명분­실상 다른 러 여권/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코너)

    모스크바시민들은 지난 주말부터 화요일인 8일까지 느긋하게 연휴를 즐겼다.8일이「세계여성의 날」로 공식 휴일인데다 연휴를 만드느라 내각의 결정으로 월요일인 7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했기 때문이다.관공서는 모두 문을 닫았고 상가도 대부분 철시해 꼭 신정연휴같은 기분을 냈다. 여성의 날은 메이데이 등과 함께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의 독특한 명절이다.원래는 1910년 코펜하겐에서 여권운동을 하는 일단의 사회주의자들이 제정한 것인데 이후 러시아로 수입돼,볼셰비키혁명 뒤 소련여성들에게는 최고의 공휴일로 간주돼온 날이다.사회주의는 물러났지만 이 전통이 남아있는 것이다.소련시절 이날을 크게 기념한 것은 세계여성을 해방한다는 거창한 이데올로기적인 명분 때문이었다.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러시아여성들같이 불쌍한 여자들도 없는 것같다.험한 일을 남자들과 똑같이 하는데 실제 대우는 형편없다.지금도 눈치우기,아파트·공공건물 경비,버스·전차운전등은 거의 여성들의 몫이다.조금 편한 일로 교사,간호원,경리등이 있는데 이는 또하나같이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직종들이다. 사회주의 붕괴이후 여성들의 처지는 더 나빠졌다. 자녀양육수당·3개월의 출산휴가,자녀들이 아플 때 특별휴가를 주는 등의 사회보장제도들이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감원시에는 여성들이 일차 감원대상이 된다.연방취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월말 현재 전체 노동인력중 여성의 비율이 47.1%인데 실업률은 여성이 전체실업자의 70­7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임금도 남자의 40%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여권문제에 대한 의식이 조금 높아져 가정폭력,성범죄피해자를 위한 「사랑의 전화」,「이혼녀를 위한 네트워크」 등등의 자생 여권단체가 모스크바에만 1백50여개 생겨났다.지난해 총선에서 「러시아여성당」이 23석을 얻어 원내 제4당으로 진출한 것도 일단 긍정적인 일로 꼽이고 있다.하지만 여권문제에 대한 인식은 아직 초보단계에 있는게 사실이다.「여성의 날」도 러시아 남자들에게는 실상 보드카나 실컷 마시는 휴일쯤으로 생각되는 것같았다.
  • 재야 운동권의 차세대 리더/“파격적 발탁” 김문수씨는 누구

    ◎5·3인천사태 등 투쟁경력 다체/“개혁당으로 보고 입당 결정했다” 8일 민자당 부천·소사지구당 조직책에 임명된 김문수씨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재야운동권에서는 장기표·김근태씨를 이을 차세대 거물로 꼽혀왔다. 경북고 3학년 때 3선개헌 반대시위를 주동,무기정학을 당하면서 운동권과 인연을 맺은 뒤 71년 서울대 경영학과 제적,74년 민청학련 관련 수배,86년 5·3인천사태 구속등 수배와 복역을 거듭하면서 재야에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75년부터는 노동운동 쪽으로 눈을 돌려 80년까지 한일도루코와 세진전자의 노조위원장을 지냈다.이어 84년 발족한 급진 노동운동단체 「서노련」을 이끌고 90년부터는 「전노협」지도위원을 맡아 「경인지역 노동운동계의 대부」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지난 90년에는 민중당 구로갑지구당 조직책을 맡고 92년 총선에 전국구 후보로 나서기도 하는등 제도권 참여를 통한 사회혁신을 꾀하기도 했으나 민중당의 해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채 지금까지 부천경찰서성고문사건의 권인숙씨가 설립한 노동인권회관 소장을 맡아왔다. 이같은 전력 때문에 그의 민자당참여에 대한 정치권의 충격은 자못 큰 것같다.민자당의원들은 특히 이번 김씨의 영입은 같은 운동권출신인 김정남청와대교문사회수석이나 손학규의원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보고 앞으로 예견되는 정치권 물갈이와 연계시켜 생각하는 모습들이다. 81년 「민가협」여성노동자회부회장이던 설란령씨(41)와 결혼,국민학교 6학년인 딸 하나를 두고 있으며 올 8월 23년만에 서울대를 졸업하게 돼 있다. ­여당에 입당하게 된 동기는. ▲나는 김영삼대통령을 가장 개혁적인 인물로 생각한다.여당이라기 보다는 개혁당이라 보고 참여를 결정했다. ­재야 「동지」들은 어떻게 보고 있나.반발은 없는가. ▲일부는 지금 이뤄지고 있는 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앞으로 노동개혁등 과제와 결부시켜 좋게 보고 일부는 제도권의 한계 때문에 회의적이라는 생각도 갖고있는 것 같다. ­정부는 지금도 「전노협」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전노협은 일반이 생각하듯 그렇게 과격하지 않다.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제도권에 참여시켜야 한다. ­복수노조 허용을 말하는가. ▲그 문제와는 다르다.현행법 안에서도 전노협을 인정할수 있다.
  • 문민외교 더 당당해야/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미국 국무부의 허바드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의 보안법 폐지희망 발언에 이어 4일 크리스토퍼장관의 비슷한 발언이 나왔다.크리스토퍼장관은 『한국의 보안법 폐지는 미국정부의 공식 견해』라고 말해 허바드부차관보의 발언보다 그 강도가 훨씬 더했다.비록 「우호적인 처지에서 이를 언급하는 것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보안법에 대한 미국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정말 말이 아니다.당국자들은 줄곧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 것일 뿐,미국 정부의 공식 견해는 아니다』라는 태도다.그리고는 「사과」의 뜻을 전해왔다는 홍보아닌 홍보에 급급한 느낌이다. 미국의 책임있는 당국자가,그것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공개석상에서 한 발언인데도 말이다. 이 문제가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는 정부의 고충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특사교환을 위한 남북 실무접촉이 어렵사리 재개된 시점에서 보안법 문제는 걸림돌이 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앞으로 열리게 될 미국과 북한의 3단계 고위급회담에서북한의 인권문제를 본격 거론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정부의 지극히 소극적인 대응 태도엔 문제가 있다. 먼저 국가적 자존심이다.우리는 유엔인권위 소속 53개 이사국 가운데 한 나라이며,문민정부가 들어서 집권 2년째를 맞고 있다.외교문제를 얘기할 때마다 김영삼대통령이 『당당하게』라는 말을 즐겨 쓰는 것도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인권과 정통성 시비에 말려들 여지가 전혀 없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보안법은 과거처럼 정권연장을 위한 도구는 더이상 아니다.이제는 그렇게 할래야 할수도 없다.더욱이 지금 국회에서 독소조항에 대한 개폐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아직은 엄연히 우리의 국내법이다.개폐의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이며,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그런데도 미국의 당국자가 이를 거론하는 것은 크게보면 「내정간섭」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뒤늦게 레이니주한미국대사를 불러 진의를 파악하는등 호들갑이다.설령 「사후약방문」이라 하더라도 이런 처방은 아닐 것 같다.
  • 「당당히」 풀려난 러 쿠데타범/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오늘의 눈)

    의회의 사면결의안에 따라 소위 10월사태 주모자들과 함께 지난 91년의 소련쿠데타 주역 12명이 모두 석방됐다.국가반역죄로 최고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는 이들이 개선장군같은 모습으로 정치범감옥인 모스크바시내의 레포르토감옥을 걸어나왔다. 당시 부통령으로 「8인비상위원회」 대표를 맡았던 겐나디 야나예프는 출옥일성으로 『정의가 승리했다』고 외쳤다.그러고는 『91년 여름 우리는 비록 미숙했지만 구국의 일념으로 거사를 했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총리로 쿠데타에 가담했던 발렌틴 파블로프는 『국가화합을 위해 이번 사면은 현명한 결정』이라고 말했다.함께 풀려난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소감들을 피력했다. 지난해 4월 이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될 당시 옐친대통령은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국가를 세우는 각오로 이 재판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그러나 재판은 시작되면서 곧바로 코미디나 다름없는 장면들을 연출했다.피고들은번갈아가며 칭병,출정을 거부했고 그때마다 재판은 기약없이 연기됐다. 의회보수파와의 정쟁이 심화되고 국민들사이에 보수세력들에 대한 동조분위기가 확산되는 기미가 있자 이들의 재판은 의식적으로 자꾸만 연기됐다.최고회의의장으로 쿠데타에 가담했던 루키야노프는 지난해 12월 피고의 신분으로 총선에 버젓이 출마해 당선,이번 사면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의정활동을 하고 있었다. 쿠데타저지에 앞장섰던 많은 러시아국민들은 이들에 대한 재판이 「법에 의해」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싶어했을 것이다.그러나 옐친대통령은 속절없이 재판을 끌다 사면에까지 이르게 함으로써 이 기대를 저버렸다.그해 여름 모스크바시민들이 맨손으로 탱크에 맞서며 지키려 했던 정의는 결국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풀려나는 쿠데타주범이 오히려 『정의가 승리했다』고 외쳤다.이들의 사면은 러시아의 개혁이 보수대 개혁세력간 권력대립을 넘어 보다더 깊은 곳에서 멍들어간다는 우려를 갖게한다.
  • 필요한 현·복직 교사의 화합(사설)

    해직교사들이 4년만에 교단에 다시 섰다.그들로서는 숱한 우여곡절과 진통끝의 복직이어서 더욱 감회가 클 것이다.다시한번 해직교사의 복직결정이 훌륭한 판단이라고 평가하고 환영한다.교육계 최대의 현안이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돌이켜보면 문제의 발단은 교원들의 노조활동은 인정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교사들이 전교조를 구성하고 노동자임을 자처하는 것이 국민정서와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자상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었고 정부는 물론 기존 교원단체들도 일선교육현장의 분열과 갈등을 우려했다. 예상했던대로 그동안 교육현장에선 전교조활동으로 인해 숱한 문제가 야기돼왔다.전교조가입교사들이 해직되면서 교직사회는 더욱 분열됐고 일부는 교원의 본분에서 벗어나 정치화됐다는 비판이 있었다.그런가 하면 교단내 인간관계를 복원불가능한 상태로 황폐화시켰다는 소리도 높았다.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교육개혁을 바라는 순수한 정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개혁의지를 실현하는 과정이나 방법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지적했다.수백명의 교사들이 파면되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때마다 안타까워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해직교사의 복직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판단도 현장의 개혁의지를 이해하고 그것만이 해결의 열쇠로 여긴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해직교사가 복직된다고 해서 현안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많은 문제가 남아 있음을 보게 된다.우선 현직교사와 복직교사간의 화해와 관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양측이 서로 손을 맞잡고 교육의 질적향상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해직교사는 교육개혁이 전교조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서로 개혁의 동반자로 화합해야 한다.지금 교육현장에 풀어야만 될 과제가 많고 교육개혁이 우리에게 절실하다는 것은 복직교사나 현직교사 모두가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서로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하는 방법에 대한 사려깊은 토론과 협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복직교사들은 그동안 부르짖던 「참교육」의 의지를 학교의 울타리안에서 구현하는 노력을 통해 신뢰받는 교사상확립에 더한층 분발있기를 당부한다.해직교사들은 복직뒤 인사이동등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하고 또 위장탈퇴자운운의 불명예스러운 소리를 듣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때마침 정부에서도 교육개혁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일선현장의 개혁목소리와 이들 교사들의 그동안의 체험이 정부의 교육개혁의지에 제대로 접목될 때 개혁은 보다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이번이 그런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재산변동 의혹」 공직자 조사/누락여부,고지거부 정당성 중점추적

    ◎정부,각부처등에 특이자명단 제출 요구 청와대는 1일 고위공직자의 재산변경내역 공개와 관련,부정축재 의혹이 있는 인사의 명단을 조속히 제출하도록 각 부처에 지시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이번에 재산변경 내용을 공개한 결과 지난해 9월 첫 재산공개 때처럼 당장 부정이 눈에 띄는 인사는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전하고 『그러나 수는 적지만 일부 의혹이 가는 부분도 있어 각 부처와 민자당에 특이점이 발견된 사람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자료들을 1차 스크린해본 뒤 지난해 처럼 청와대나 총리실이 공직자윤리위와 별도의 사정활동을 벌일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도 『재산증가분에 대한 합리적 소명이 안되는 인사와 함께 아직도 누락재산이 있는지,그리고 직계존비속에 대한 고지거부가 정당한지가 이번 사정의 중점이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지금의 변동내용을 볼때 행정부와 국회에서 각각 10명 안팎의 소수 인원만이 1차 스크린 대상이 될 것이어서 지난해처럼 본격 사정은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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