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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북한군 사기 저하(6·25내막/모스크바 새 증언:18)

    ◎모,스탈린에 “장기전 대비책 강구” 요청/연합군 재반격에 “수년간 싸울 준비 필요” 전문/모스크바,중의 게릴라 전법 비판… 전술적 이견 제4차 공세작전을 펼 뜻을 나타낸 모택동의 전문을 받아본 스탈린은 이틀 뒤인 51년1월30일 모택동 앞으로 답전을 보내 그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서울과 제물포는 반드시 사수하고 공격작전은 계속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같은 날 스탈린은 모택동과 김일성 두사람 앞으로 같은 내용의 전문을 보내 다음 사항을 함께 논의하자고 제의했다.북조선군 사단수를 대대적으로 축소,재편성하자는 충격적인 제의였다(소련군총참모부 제8총국.전문번호 N651). 1.현북조선사단은 지난해 여름의 사단보다도 전투력이 떨어짐.당시 북조선사단은 10개 사단에 충분한 장교가 있었고 잘 훈련된 병력을 확보하고 있었음.현재 북조선은 28개 사단에 이중 19개 사단은 전선에,나머지 9개 사단은 만주에 주둔중임.이렇게 사단수가 많으면 장교를 충분히 배치시킬수 없음.이것이 지금 북조선사단들의 산만하고 불안정·비효율적인 주원인임.북조선측은 사단수에만 집착,질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고 있음. ○“5개사단 감축” 제의 2.따라서 사단수를 23개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함.줄어드는 5개 사단 소속 장교와 병력은 나머지 취약한 사단에 보충시킬 것.4개 인민군 여단도 전투력이 미미하기 때문에 장교·사병을 사단강화용으로 전용시킬 필요가 있음. 3.현단계에서 병단사령부를 별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병단을 지휘할 장교수가 태부족이고 또한 군사령부가 이미 설치돼 있기 때문임.각각 4개 사단으로 구성되는 5개 군사령부를 조직하는 게 더 바람직함.이럴 경우 인민군은 5개군(총20개 사단)과 3개 예비사단으로 구성됨.이 3개 사단은 총사령관 직접지휘하에 두어 작전기간중 다른 군 소속 사단을 지원케 함.물론 시간이 지나 지휘관들이 충분한 경험을 쌓고 숫자도 늘어나면 그때 병단체계로 돌아갈 수 있음.이 군조직개편은 지금 당장 하는 게 아니라 작전이 끝난 뒤 휴식기간중에 추진하자는 것임. 그러나 이 전문을 받은 평양의 소련대사관은 이를 김일성에게 곧바로전달하지 못했다.1월31일 내각 부수상 김책의 사망으로 김일성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있었기 때문이다.대신 평양주재 소련대사가 자신의 견해를 보내왔다.모두 13개 항목으로 정리된 이 전문내용을 요점만 소개한다(전문번호 N500316sh). 스탈린동지의 북조선군 전력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타당함.인민군내에서 이미 사단수 감축조치가 진행중임.북한군이 사단수에만 집착,질이 형편없다는 스탈린 동지의 지적은 타당하나 현상황에서 이들을 도와줄 적절한 방도가 없음.가장 심각한 쪽은 해군임.불과 3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으나 모두 소련에 정박중이고 이를 운용할 해군병력·장교수가 태부족임.특히 북조선에서는 매사를 차근차근 따져보지 않고 무계획적으로 진행하는 습관이 있음.병단 체계는 종전 후에 도입하는 게 바람직함… 이 답전을 받고 스탈린이 만족할 리가 없었다.그는 2월3일 평양주재 대사관으로 다시 전문을 띄워 인민군 편재개편에 관해 보낸 1월30일자 전문을 조속히 김일성에게 직접 보여주고 그의 반응을 보고하라고 재촉했다.이튿날 평양대사관은 김일성과 만난 회담결과를 즉시 스탈린 앞으로 보고했다.예상대로 김일성은 스탈린의 제의에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았다.특기할 점은 김일성이 여기서 다음 공세작전시기를 51년 2월7일부터 13일사이로 잡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는 점이다.김일성은 이 공세작전 이후 사단·군 감축등 추가군편제개편을 단행하자고 스탈린에게 건의했다. ○“미 소모전 전개 예상” 그러나 이후 연합군의 반격이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북한쪽의 사기는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2월10일소련군 해군사령관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을 통해 미군의 상륙작전개시가 임박했다는 정보보고를 올렸다.2월7일부터 미해군 극동사령부와 한국 근해에 파견된 해군전선 사령관들 사이의 전파교신횟수가 급속히 늘어났고 2월9일에는 동서해안에 많은 수의 미군전함이 출현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가운데 모택동은 3월1일자로 스탈린 앞으로 장문의 전문을 보내 상황의 심각성을 상세히 알리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요청했다.그 대책은 다름아닌 장기전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전문번호 N17255). 필리포프 동지께.현재 북경에 잠시 머물고 있는 팽덕회 동지로부터 들은 조선상황과 관련,본인의 입장을 전하는 바임. 1.심대한 패배를 당하지 않는 한 적군은 조선에서 물러날 것같지 않음.그리고 이들에게 큰 패배를 안겨주기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할 것같음.장기전이 전개될 가능성이 생겼으며 최소 2년은 더 싸울 대비를 해야 할 것같음.적은 우리를 소모전으로 몰고가려 하고 있음.적의 목적은 한편으로는 전선에서 우리 병력이 휴식을 취하거나 전력재정비할 여유를 주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세한 무기를 이용해 소모전으로 이끌려는 것임.동시에 해군함대를 이용해 조선해안을 쉴새없이 공격하고 있고 아군 통신시설에 대한 적의 공습이 계속되고 있음.전선에 대한 물자보급이 60∼70%만 당도하고 나머지는 모두 적의 공습에 도중 파괴되고 있음.추가병력은 전선에 투입되지 못하고 전선병력은 물자보급을 받지 못해 앞으로 1개월 반 후면 적군이 38도선 지역에서 공격작전을 다시 전개할 수 있을 것임. 2.장기전에 대비해중국군은 중단없는 병력투입(편집자주:인해전술)전술을 구사하겠음.이에 대비해 이미 의용군 3개 그룹을 결성해 1개 그룹씩 차례로 전선에 투입키로 결정했음.현재 조선에서 전투에 참가중인 9개 병단(30개 사단)이 제1그룹임.중국내에 있는 6개 병단과 조선에 주둔중인 다른 3개 병단을 합쳐 9개군단(27개 사단) 제2그룹을 만듬.현재 중국영토에 있는 10개 병단(30개 사단)으로 제3그룹을 만들어 6월경 전선에 투입할 예정임.지금까지 4차례의 작전에서 중국군은 전사·부상등 합쳐 10만명의 인명피해를 입었음.이를 보충하기 위해 12만명을 새로 충원할 예정임.금년도와 내년도에 중국군 30만명의 추가인명피해를 예상하고 있음.병력 계속투입을 위해 30만명을 추가차출할 계획임. 인민군조직과 관련,팽덕회는 김일성에게 현재의 8개 병단을 6개 병단으로 줄일 것을 권유했음.각병단은 1만명으로 구성되는 3개 사단으로 짜도록 권했음.아울러 해안·주요도시 방어를 위해 5개 여단을 창설하도록 요청했음. ○지상군의 열세 인정 3.오는 4월초 의용군 제2그룹의 9개군단이 전선에 투입되기 전까지 지상군 우위는 적이 차지할 것같음.따라서 그때까지는 공격작전을 펴지 않는 게 좋음.이 기회를 이용해 적이 1개월 내지 1개월 반 뒤에 공격을 취할 가능성이 있음.만약 적이 다시 서울을 장악하고 38도선을 넘어올 경우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것임.미리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음. 4.현재 우리가 고전하는 주이유는 적이 화력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임.우리는 보급수송이 취약해 보급물자의 30∼40%가 적의 공습을 받아 도중에 유실됨.4∼5월중 10개 항공여단이 전투에 투입될 것으로 기대함.지금까지는 조선에 마땅한 비행장이 없음.지상에 눈이 쌓여 있어 아직 보수작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음. 결론적으로 우리는 수년간에 걸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함.미군을 몰아내지 않고서 조선문제는 해결될 수 없음. 당신의 지시를 기다리며.볼셰비키의 인사를 전하는 바임.모택동. 그러나 이 간곡한 청원을 받은 스탈린은 무려 보름 뒤인 3월15일에야 답전을 보냈다.모택동의 공군지원요청을 마지못해 수락하면서 스탈린은 끝까지 소련공군기를 전선에 직접 투입하는 것은 피했다.즉 중국 안동지역에 전투기 1개 사단을 보내줄 테니 그곳에 있는 중국공군 전투기 2개 사단을 전선으로 빼내가라는 것이었다.안동에 있는 이 중국군 전투기 2개 사단도 사실은 벨로프장군이 지휘하는 소련 전투기사단이었다. 이 무렵 스탈린·모택동 두사람은 전술문제를 놓고 다소의 이견을 빚고 있다.즉 모택동이 전선에서 치고빠지는 식의 게릴라전법을 구사하겠다고 한 데 대해 스탈린이 이를 한반도사정에 적절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매우 신랄히 비판한 것이다. ◎새로 밝혀진 사실/북 28개 사단중 9개사단 만주 주둔/스탈린·모 「연합군 대응전술」 마찰 51년 1월30일의 스탈린 전문을 보면 북한군의 당시 시점에서의 병력의 규모와 위치가 나타나 있다.총 28개사단이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28개 사단중 9개사단이 만주에 주둔중이라는 사실이다.중국군의 참전 이후 북한군은 전쟁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군대가 만주로 이동하였었다.전면적으로패퇴한 북한군은 이 만주를 근거지로 하여 재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그동안 미군의 정보문서에만 나타나 있었을 뿐 소련과 북한은 물론 중국의 공식문서에서는 비밀로 취급되어오던 사실이었다.이러한 내용이 이번 자료를 통하여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이번 회에서 우리는 병력의 가장 구체적인 편제까지 스탈린이 장악,지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또한 모택동이 51년 초부터 장기전에 대비하려 하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이미 51년 3월에 모는 『2년은 더 싸울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수년간에 걸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언명하고 있는 것이다.흥미롭게도 실제의 전쟁은 이로부터 2년을 더 끈 뒤에 종결되었다.끝으로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에 대응전술의 이견이 존재하였다는 점도 처음 밝혀진 사실로서 앞으로 많은 규명을 요하는 부분이다.그들은 소련공군과 무기의 지원문제만이 아니라 실제의 전쟁수행방식을 놓고도 이견을 보였던 것이다.물론 이러한 내용 역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 영국은 유럽의 주변국이 될 것인가(해외사설)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지난 92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영국을 유럽의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분명히 말했다.그는 지금 당수직을 내걸고 정통성을 요구하고 있다.영국에서 정치적 논쟁의 핵심은 오히려 유럽통합문제에 있는 것같다.보수당이 분열된 것도 유럽통합 때문이고 메이저 총리의 권한이 날로 비판받고 있는 것도 통합문제 때문이다.대처 여사의 후계자들이 동원되는 것도 유럽에 반대하자는 데 있다. 칸에서 열리는 유럽정상회담 참석차 떠나기 전날 메이저 총리는 비판자들 때문에 위축돼 보였다.칸정상회담에서 어떤 중요한 결정이 없기 때문에 그로서는 행복한 셈이다.회담에서의 논쟁정도는 틀림없이 유럽회의론자들이 그를 괴롭혀온 격분 뒤에 오는 조용한 휴식시간 같을 것이다.국회의원 가운데 감히 그에 대적하려는 사람이 나서면 결과를 7월4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그의 자리는 새롭게 위협받게 된다.낙관론자들은 다음 선거가 97년 봄에나 있을 것으로 보고 있고 비관론자들은 다음 비난의 도전이 있을 때 치러질 것으로 전망한다. 사람들은 유럽회의론자들이 갑자기 화를 내고 있으며 메이저 총리라는 그들의 먹이감을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우려한다.즉 철의 여인은 자신의 후계자에게 계속해서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분열의 가장 큰 희생자는 메이저 총리도 아니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도 아니다.바로 영국이 될 것이다.영국은 몇달 전부터 유럽통합을 종결짓자고 주장하는 측에게 인질로 잡힌 희생자였다.메이저 총리에게 유감스러운 것은 유럽이 겁을 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영국을 들끓게 한 분열이 영국의 이미지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점이다.그가 단일통화 같은 사안에 대해 논쟁을 거부하고 타협을 할 때마다 영국은 다른 나라에게 증오의 대상이 돼왔고 프랑스와 군사협력관계를 유지하려는 주도권은 비웃음을 샀다. 기술협력을 하려는 메이저 총리의 노력도 자해 이데올로기에 강압된 비합리적인 행동들로 좌절돼왔다.이제 오늘날의 현상에 눈을 떠야 될 때다.그렇지 않으면 영국은 유럽의 주변인으로 남아 있거나 다음 선거에서 보수당은 노동당에 패배할 것이다.
  • 1·4후퇴(6·25내막/모스크바 새 증언:17)

    ◎중국군 파상공세… 2개 사단 서울 재점령/모,김일성에 “북조선군 사단수 감축 필요” 전문/4∼5월 춘계대공세 맞춰 소제무기 증강 촉구 파상공세를 펼치던 중국군은 마침내 51년1월4일 다시 서울을 점령했다.그후 1월8일 모택동은 스탈린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전문번호 N15227).바로 팽덕회,김송,박일우등 3명의 전선사령관이 서울점령직후 김일성앞으로 보낸 작전보고서의 사본이었다. 『1.제116보병사단과 117보병사단병력 일부가 오늘(1월4일)서울을 점령했음.적군 병력은 한강이남의 강안으로 패주했음.적은 한강과 산악지대등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이용해 잔여병력을 끌어모아 시간을 끌며 이후 전투에 대비할 가능성이 있음. 2.만약 적이 한강이남을 따라 방어선을 펴고 김포공항을 장악하고 제물포항을 이용해 보급품을 조달할 경우 서울은 적의 공습과 포공격의 위협을 받을 것임.이는 아군의 춘계대공세에 매우 불리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음.만약 적을 한강이남지역에서 더 패주시킬 경우 김포공항을 아군이 장악함은 물론 재물포항도 아군수중에 넣을 수 있음.아울러 춘계대공세때 매우 유리한 상황이 되는 것임.적이 남으로 계속 후퇴할 경우 아군은 수원을 점령한뒤 추가 작전지시를 기다리겠음. 1월4일 24시. 팽덕회,김송,박일우』 ○“인민애국세력 승리” 이 전문을 읽은 스탈린은 전문위에다 자필로 다음과 같이 써서 모택동앞으로 보냈다.『본인은 팽덕회를 비롯한 사령관들이 1월4일자로 김일성에게 보낸 작전건의문을 읽었음.필리포프의 견해로는 이 건의가 타당하며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한다고 생각함.진심으로 서울을 점령한 귀하에게 축하를 보냄.이는 인민애국세력이 반동세력에 거둔 위대한 승리임』 추후 작전전개와 관련,1월16일 모택동은 김일성앞으로 다음과 같은 충고를 보냈다.이 전문사본은 북경주재 소련대사관을 통해 스탈린에게도 보고됐다(전문번호 N15 603). 『현재 중국 동북부에서 훈련중인 10만명의 조선인 신병들은 2∼3개월후면 훈련이 끝남.이들을 인민군 각급 부대에 배치하되 각 중대인원은 1백명이상,사단병력은 1만∼1만명이상으로 구성돼야함.북조선군은 사단,여단급 부대가 너무 많음.모든 병력을 15개정도의 사단으로 나누어 이들에게 소련제무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음.그럴 경우 조선문제를 최종 마무리할 춘계대공세(4월∼5월사이)때 이들이 중국의용군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음. 향후 2∼3개월사이 중국의용군과 북조선군은 신병들을 보충해 부대를 새로 개편하는 중대한 대규모 작업을 해내야함.신병들에게 고참병들의 경험을 가르쳐야 하고 무기증강,철도보수,식량 및 탄약저장등을 마무리해야함.앞으로 있을 군사작전에서 적군사령부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다음의 2가지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됨. 1.아군의 공세에 밀려 크게 저항을 못하고 조선을 떠남.우리의 준비가 완벽하고 전력이 자기들보다 우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적은 물러날 것임.2.적은 부산,대구지역에서 최후저항을 벌일 것임.하지만 이 경우에도 저항이 무모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조선을 떠날 것임.물론 이를 위해선 우리도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야됨.그렇지 않을 경우 1950년 6월에서 9월사이 북조선군이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할 것임. 객관적인 상황에 비추어 2월에 공세작전을 한번 펼친뒤 다시 휴식을 취하며 마지막 대작전에 대비한 병력재편성에 착수해야함.중국과 조선동지들은 인내를 갖고 필요한 준비에 임해줄 것을 바람』 이렇게 1·4후퇴를 계기로 김일성,모택동,스탈린 3인은 다시 한번 한반도무력통일이 임박했다는 벅찬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아울러 중국군의 대공세를 계기로 작전의 거의 모든 전권을 어느덧 모택동이 행사하고 있음도 이 전문은 보여주고 있다. 이 전문을 받아본 김일성은 곧바로 중국군 전선사령관 팽덕회를 만나 후속문제를 논의했다.팽덕회는 김과의 회담결과를 1월19일 모택동에게 보고했다.이 전문도 물론 북경의 소련대사관을 통해 1월21일자로 즉각 스탈린에게 보고됐다(전문번호 N15974). ○모,작전 전권 행사 『김일성과의 회담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함. 1.김일성을 비롯한 북한동지들은 미군과 그의 괴뢰군들을 남쪽으로 패주시키기 위해서는 북조선군 병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음.북한동지들은 최소한 2개월은 휴식을 취하며 병력재편성에착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음.박헌영은 이와 다른 입장을 보였으나 본인의 추가설명을 들은뒤 수긍했음.소련군사고문관도 앞으로 있을 추가 대공세는 결정적인 마무리작전이 돼야하기 때문에 북조선 당정치국의 뜻에 따라 완벽한 준비를 갖추는게 바람직하다는데 동의했음. 2.해안방어 관련.소련으로부터 기뢰1천개,대전차 지뢰를 비롯한 각종 지뢰 20만개를 제공받았음.이중 10만개는 해안방어에 사용키로 했고 기뢰는 제일 중요한 항구들의 방어에 사용키로 했음. 3.5개군 편성건.각 군은 3개사단으로 편성키로 결정했음.현재 1군을 제외한 나머지 군들은 모두 4∼5개사단으로 편성돼있음.그러나 이들 사단들은 모두 3천∼5천명의 병력만 보유한 불완전한 사단임.본인은 남조선군포로들중 2만명을 5개군에 골고루 배치해 넣자고 제의했으나 북조선동지들은 이에 반대했음. 4.새로 해방된 지역에서 일할 장교숫자가 부족함.서울인구는 이전에 1백50만이었는데 현재도 1백만이 남아있음.식량,연료난이 극심함.피란민,실업자들에 대한 보조가 전무함.인민군,중국의용군이 보유한 식량도 최저수준임』 팽덕회는 이 전문에서 이밖에도 크고 작은 각종 문제를 북한측과 협의해 시행에 옮기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그중 몇가지만 더 소개한다.점령지역 통제강화,적군 사기저하를 위해 노력,북한주민들의 봄파종 지원,피란민 지원대책,미군·남조선괴뢰가 일시점령중인 지역에 대한 정치선전공세강화,적의 후방에 침투할 특수부대창설 등등.하지만 이런 일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할지에 대해서는 추후 재차 협의키로 했다고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1·4후퇴를 계기로 한껏 고조됐던 중국군,북한군진영의 축제분위기는 1월말을 고비로 눈에 띄게 수그러지기 시작했다.그리고는 곧이어 불안,공포,때에 따라선 엄청난 히스테리현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관련문서들은 또한 중·소간에도 불협화징조가 커져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스탈린은 계속해서 소련군의 직접개입을 피하려 했다.소련군사고문단,조종사를 비롯한 군병력 일부를 한국전에 파견하기는 했지만 매번 모택동,김일성 양자로부터 몇차례씩 간곡한 파견요청을 받은 후에야 마지 못해 이에 응했다. 스탈린은 또한 병력지원뿐 아니라 무기,탄약지원에도 모,김일성 두사람이 요청한 것보다 훨씬 못미치는 양을 지원해 주었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소련의 형편 역시 크게 넉넉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휴전협상은 시간벌기 51년 1월28일자로 모택동은 스탈린앞으로 전문을 보내 제4차 공세작전을 펼 뜻을 밝히고 이에 대한 스탈린의 의중을 물었다.이 전문에서 모택동은 같은 날짜로 전선의 팽덕회장군앞으로 보낸 작전지시문을 동봉했다(전문번호 N16052.51년 1월29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 다음은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낸 전문의 주요내용.『서울과 재물포인근 지역으로 진격한 적군 2만∼3만명을 격퇴시키기 위해 제4차 공세작전준비에 즉각 착수할 것.대전­안동 북부지역을 점령할 것.재물포와 서울,그리고 한강이남지역을 확고히 장악한뒤 전선을 남하시킬 것.중국군,북한군 병력을 15∼30㎞북쪽으로 후퇴시킨뒤 임시휴전협상에 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적들은 우리병력이 북으로 물러나고 한강을 자기들이 장악한 뒤에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임.4차 공세가 끝나면 적들은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한 평화협상을 제의할 것임.그렇게되면 이 협상은 중국,북조선에 유리하게 됨.이후 아군은 2∼3개월 휴식과 준비기간을 거쳐 결정적인 제5차 대공세를 감행할 것임』 어떤 경우에도 불리한 상황에서 휴전협상에 임하지 않는다는 것과 휴전협상은 추가 대공세를 펴기 위한 시간벌기로 이용할뿐이라는 점을 전선사령관에게 주지시키기 위한 작전지시문이었다.
  • 여야 지도부 지원유세 현장

    ◎「공천장사」 야당에 본때 보여주자­민자/“기초의원 뒷 받침 없다” 박찬종씨 맹공격­민주/부여·논산 등 텃밭서 유세… 바람 확산 진력­자민련 여야는 24·25일 이틀에 걸친 주말유세가 6·27 지방선거의 대세를 판가름한다는 절박감 아래 수뇌부를 총동원,각종 쟁점을 둘러싼 공방과 더불어 대형공약을 제시하며 막판 표몰이를 위한 유세대결을 벌였다. ▷민자당◁ ○…이춘구 대표는 이날 청주와 대전에서 지역감정 타파의 목소리를 높이며 「JP(김종필 자민련총재)바람」에 맞불을 놓았다. 이대표는 이날 청주시 중앙공원 유세에서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지역감정을 자극하면서 소탐대실하는 시대착오적 야당에게는 한표도 줄 수 없다』고 김대중·김종필씨를 겨냥한 뒤 『그들은 지역감정 자극행위를 중단하고 국민앞에 사과하는 것만이 마지막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대표는 청주∼오창간 국도 8차선 확장,청주공항∼중부고속도로 연결도로 건설등 김후보가 제시해 놓은 대형공약을 확약하는 긴급 당정회의 결과를 제시하며 막판 「민심잡기」에 안간힘을 썼다. 이대표는 대전역앞 유세에서 『구시대 정치인을 청산하고 새대교체라는 역사의 대세를 이루기 위해 염홍철 후보를 압도적으로 당선시켜 달라』고 호소했다.이날 대전 유세에는 이 지역 유세로는 최대인파인 8천여명이 모여 대전시지부 관계자들은 들뜬 표정. ○…김덕룡 사무총장은 이날 군산을 시작으로 익산·전주등 전북지역에 대한 막판 세몰이에 나서 『너무나도 자주 말을 바꾼 김대중이사장은 정치불신의 장본인이 되고 있는 만큼 이제 쉬게 해 드려야 한다』고 김이사장의 정계은퇴를 촉구하는 등 맹공을 퍼부었다. 김총장은 『김이사장의 지역등권주의는 나라를 호남·충청·대구등 몇개로 분할시키면 호남만으로도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것은 결코 호남을 위하는 길이 아니고 정도가 아닌 사도』라고 비난했다. 이어 『김이사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뒤 「세번씩이나 떨어진 것은 천명이요,하늘의 뜻」이라고 말한 만큼 이제 김이사장을 우리지역 출신의 정계원로,정신적 지도자로 모시고 다른 길을 모색해 볼 때』라고 주장했다. 김총장은 또 『전북이 특정인의 지시에 의해 대세몰이에 따라가기만 하는 개성,긍지,역사도 없는 전북이 돼서는 안된다』면서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고 생각하며 공천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주당◁ ○…이기택 총재와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은 이날 낮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조순 서울·신용석 인천시장후보및 장경우 경기지사후보 등과 오찬회동을 갖고 수도권에 대한 집중공략이 절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김이사장이 주로 서울을,이총재가 경기도를 맡는등 역할분담을 통한 막판 표몰이에 나서기로 했다. 이총재는 회동이 끝난뒤 곧바로 경기도 광주에서 장경우 후보를 위한 지원유세를 펼치면서 『민심이 현정권에 등을 돌렸음을 확인했다』고 말하고 『심지어 현정권의 심장부인 부산·경남에서도 실망의 소리가 높았다』고 주장했다. ○…김이사장은 이날 경기도 성남을 거쳐 서울 동작구 서울기계공고와 효창공원,수유국민학교에서 잇따라 유세를 갖고 서울에서의 막바지 세몰이에 진력했다. 김이사장은 『민자당이 정원식 후보보다 무소속의 박찬종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면서 『민자당의 진정한 후보는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없는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제대로 못하듯 구청장과 시의원,구의원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시장 또한 시정을 정상적으로 꾸려 나갈 수 없다』며 박찬종 후보의 「시장 불가론」을 피력했다. 김이사장은 또 『박후보의 유신체제 지지 발언을 문제삼자는 것은 아니지만 4천만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시민에게 거짓말한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서울시민을 태연하게 속인 사람에게는 단호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무부의 지자제 관련 문서는 정부당국이 변조한 것』이라면서 『우리 당이 입수한 문건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이날 자신의 가장 확실한 지지기반인 충남 청양과 공주 부여 논산을 찾아 「자민련 바람」을 확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김총재는 『나는 YS(김영삼 대통령)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엄동설한에 입이 얼어붙도록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이 무엇이냐』면서 『이번 선거가 끝나면 내리막길을 갈 민자당에는 한표도 주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이어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대통령중심제는 이제 한계에 왔다』고 주장하고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적으로 할 수 있는 제도로 이나라를 바꾸어야 한다』고 의원내각제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역설했다.
  • 지방선거 “새파워”/“30∼40대주부 영향력 커졌다”

    ◎TV토론 활성화로 정치관심 높아/후보선택 「남편 뜻」 떠나 스스로 결정 『30∼40대 주부들을 집중공략하라』­6·27 지방선거가 종반에 접어들면서 안방주부들의 표가 당락을 결정하는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주부의 도리에 따라 가장이 지지하는 후보를 찍어온 주부들의 의식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원 김모씨(40·서울 도봉구 방학동)는 최근 아침식탁에서 아내(37)와 가벼운 말다툼을 벌였다.발단은 서울시장후보들에 대한 시각차였다.그는 후보들의 인품과 정책등을 비교하며 어느 한 후보를 지지할 뜻을 밝혔으나 아내는 그에 정면으로 반대,끝내는 말다툼으로 번졌다. 자영업을 하는 이모씨(52·서울 강서구 화곡동)도 얼마전 부인(48)으로부터 『이번 선거에서 시장과 구청장만큼은 내 뜻대로 찍겠다』는 통고를 받았다.지난 92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 때까지만 해도 이씨가 지지하는 후보를 순순히 찍었던 아내였기에 이씨의 놀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처럼 많은 주부들이 『아무리부부가 일심동체라 하더라도 선거만은 서로 달리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이번 선거에서 처음 등장한 TV토론회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그동안 가정주부들은 유세장에 직접 가거나 신문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는 한 어느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어 자연히 최종판단을 남편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이제는 안방에 앉아서도 TV만 보면 후보들의 면면을 얼핏 알아볼 수 있게 되어 스스로 결정을 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여성들의 정치의식이 보편적으로 향상된 것도 「한 지붕 다른 후보 찍기」의 또 다른 배경으로 풀이되고 있다.요즈음 아파트단지나 주택가등지에서는 주부들이 비교적 한가한 낮에 4∼5명씩 모여앉아 후보자들에 대한 「품평회」를 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등 선거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여성후보들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과 함께 여성유권자들의 권리의식이 향상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풀이되는 장면들이다.
  • 국익 외면한 「핵폐기장 백지화」 공약(표밭에서)

    『굴업도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백지화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19일 하오2시 인천 만수성당에서 「인천 핵대협」(인천 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이 마련한 「굴업도 핵폐기장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하여」라는 주제의 인천 시장후보 초청토론회.후보들마다 이미 국가 차원에서 결정한 핵폐기장 건설을 성토하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민주당의 신용석 후보는 『핵 폐기장은 인천 시민과의 합의 없이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당선되면 시민투표에 부쳐 정부를 압박하고,정부가 건설을 강행할 경우 서명운동을 통해 백지화 투쟁을 펼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자민련의 강우혁 후보는 한술 더 떴다.『핵폐기장을 백지화,인천 시민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출마했다』며 『정부가 계획적으로 인천 시민을 속인 밀실의 음모이므로 무조건 철회해야 한다』고 강변,질문에 나선 패널리스트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했다. 강후보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시장에 당선되는 순간 핵폐기장은 끝장이다』,『정부가 핵폐기장을 계속 강행한다면 굴업도에 드러누워서라도 결사 저지하겠다』고 극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강화 유세와 겹쳐 참석하지 못한 민자당의 최기선후보도 서면답변을 통해 『핵폐기장은 인천시민의 의견이 무시된 채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사안이므로 다시 조사해,안전도에 문제가 드러나면 백지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평소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들의 주장과 달리 굴업도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세우기로 한 것은 정부가 다각적으로 정밀하게 검토한 끝에 이뤄진 것이다.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실시한 현지 조사에서도 이미 타당성을 검증받았다.어느 후보들도 정부가 수년간 심사숙고해 결정한 사안이라는 사실을 거론하지 않았다. 지역 주민의 이해에 가치판단의 기준을 두어야 하는 후보들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그러나 이들이 눈 앞의 표에 얽매어 지역 이기주의에 영합함으로써 국가 백년대계에 역행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김정일의 측근 실세들(북한 특권층 심층 해부:2)

    ◎핵심 20여명 당·군부 포진/거의 혁명2세대… 충성경쟁 치열/비서진­강상훈·이명제·이제강 주축 집무실 근무/친인척­매제 장성택·당숙 박기서 등 지근서 보좌/작전부장 오극열·대남비서 김용순·공업비서 한성용 등 영향력 막강 북한통치의 특성상 김정일은 철저하게 인치에 의존하고 있다.때문에 김정일주변과 요직엔 그의 신임과 총애를 받는 핵심 실세들이 포진하고 있다. 김의 측근은 그가 누구를 얼마나 신임하고 중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며 대외적으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김의 신임이 없으면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현재 정치국원이며 부주석들인 이종옥·박성철등은 예우차원에서 권력서열이 3,4위에 올라 있으나 실제 권력에 있어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보다도 못하다.권력서열이 북한 권력층의 변동과 위계를 파악하는데 참고자료는 될지언정 그 서열이 곧 실세서열은 아닌 것이다. 김정일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실세들은 20여명으로,지근거리에서 그와 같이 생활하며 그를 보좌하는 비서진,친인척그룹,당및 군부에 배치돼영향력을 행사하는 실행그룹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이들은 김이 행사참석이나 현지지도에 나설때 수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비서진은 현재 「1강3이」로 구성돼있다.이들은 비록 급수가 실행그룹보다는 낮아도 영향력은 이들보다 더 크다.권력이 김의 집무실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이 가운데 김정일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무시로 그에게 건의와 조언을 할 수 있는 최측근은 노동당 조직부의 김정일집무실 담당 부부장인 강상춘이다.집무실의 안살림과 김정일의 면담·행사일정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로 나이는 김보다 위인 55세 정도.누구도 그를 통하지 않으면 김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1백72㎝의 키에 다부진 인상의 그는 또 김이 술을 마시고 싶어할 때 분위기에 맞게 참석인원을 선정·동원하고 장소를 결정하며 기쁨조와 음식등을 준비하는 내밀한 일도 관장한다.그가 이러한 핵심요직에 발탁된 것은 호위사령부의 행사부 부부장(대령급)으로 있으면서 김정일과 오랫동안 같이 다니는 과정에서 김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김정일 집무실에 권총을 차고 유일하게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강밖에 없다. 강과 함께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은 선전과 조직업무를 보좌하고 있는 이명제와 이제강.두 사람 모두 60대 초반으로 노동당 조직부 김정일집무실담당 부부장으로 있다.이명제는 조선기록영화촬영소에서 촬영기사로 근무하면서 김일성부자의 현지지도활동을 자주 수행하다 김정일과 가까워지기 시작,김이 조직부부장으로 있을 때 조직부로 옮겨 80년대 중반부터 집무실에서 근무해오고 있다.이제강도 김이 조직부 부장으로 있을 때 과장으로 있다가 김의 신임을 받아 조직업무라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 이들 세사람이 집무실에 근무하면서 김정일을 보좌하고 있다면 현재 스위스 대사인 이철은 외국에서 김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그는 김과 김일성대학 동기동창으로 외교부소속 유엔옵서버대표로 있다가 집무실요원으로 발탁됐다.현재 김정일이가 체제붕괴등에 대비,스위스은행등에 예치해놓은 비자금 규모는 20억∼3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동당쪽에는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이 전진배치 돼있다.북한에선 모든 국가기관과 군부및 사회단체를 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은 당에 그가 가장 신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심어놓고 있다.이중 핵심인물이 바로 친인척그룹의 대표주자 장성택이다.김의 분신으로 불리는 장은 김의 누이동생인 김경희(당 경공업부장)의 남편으로 현재 조직부 제1부부장으로 있으면서 당을 관리하고 있다.군쪽에서는 당숙인 박기서(대장)가 요직인 탱크지도국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실행그룹으로는 당쪽엔 간부담당비서인 김국태를 비롯,작전부장 오극렬,김정일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39호실 1부부장 임상준,중공업비서 한성용,대남담당비서 김용순,선전담당비서 김기남,조직부부부장 조순백,군수담당비서 전병호,조직부 무력담당부부장 김용현등이 있다.이 가운데 조순백은 국가보위부장을 겸직하면서 김정일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있는 사람들을 검거하는등 체제유지의 중책을 맡고 있다.군부에 포진된 실세는 인민무력부 부부장인 차수 김광진,공군사령관 조명록,해군사령관 김일철,인민무력부 작전국장 김명국대장,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선전담당부국장 박재경상장등이다. 강성산총리는 단지 예우차원에서 서열 2위에 올라있을 뿐 이렇다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게다가 사위(강명도씨)의 귀순과 건강상의 문제(당뇨병)외에 경제난타개 실패등이 겹쳐 곧 경질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김의 숙부인 김영주 역시 서열이 5위에 올라있으나 부주석 대우나 받으면서 치료나 받고있지 실권은 없으며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호위사령부에서 통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정일의 측근실세들은 김이 공식적으로 권력승계를 하는 시점을 전후해 당정군의 핵심요직을 차지하거나 주요 포스트에 전진배치될 것으로 전망된다.강성산의 후임으론 한성용과 전병호가 유력시 되고 있다.또 공석중인 인민무력부장엔 오극렬이,총참모장에는 김광진,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엔 김용현이 기용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현재 김정일의 측근실세들은 매제인 장성택을 빼고는 모두 김보다 연상이며 대부분 혁명 2세대들이다.김정일은 이들과 술자리에서자주 어울리고 있으며 대화할 때는 친근감을 주기 위해 반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측근 사이에선 김의 총애를 더 많이 받기 위해 눈에 안보이는 충성경쟁이 치열하다.실세들은 또 성격이 급하고 괴퍅한 김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를 먹고있다.이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김의 눈밖에 나면 하루 아침에 별볼일 없는 신세로 전락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항상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 중등교육(「5·31 교육개혁」을 보고:5·끝)

    ◎대입제도 맞춰 교과조정 서둘러야/학급당 인원 줄여 전인교육 실현을 교과서 발행제도·공급방식 등 재검토 교육개혁위의 교육개혁안은 방향의 타당성,내용의 참신성,그리고 방대성 측면에서 많은 국민을 놀라게 했고,또 지지를 얻어내는 데 일단은 성공한 것 같다.이 개혁안에 담긴 내용은 아직은 근간이 되는 부분만 보도를 통해 일반국민에게 알려졌을 뿐 그 구체적 내용이 되지는 않았고 또 어떤 부분은 더 계속해서 논의되어야 할 사항도 있어 조금은 더 귀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등교육의 개혁내용중 주요부분을 살펴보자. 첫째는 대학입시제도의 변화다.1997학년도 입시에서부터 국·공립대학은 대학별 고사를 폐지한다.고교의 성적내신은 종래의 성적위주의 석차서열에서 탈피하여 고교의 종합생활기록부를 입학원서와 함께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그리고 수능시험은 취약한 판별력을 높이는 데 힘써 보완케 하고 그밖에 논술·실기·면접 등의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사립대학은 고교교육의 정당화,국민의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방향에서 학생모집방법을 자율결정하도록 위임했다. 한편 수능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논술고사의 시행요령이나 방법도 수정될 조짐이 있으며 내신도 성적중심에서 종합생활기록중심으로 그 내용이 옮겨지면서 아직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고교평준화지역안에서 일반고교의 신입생선발과 배정방법도 달라진다.학군내 학교에 선복수지원하고 합격자의 지망교를 참작하여 컴퓨터배정을 한다.중학교도 배정방법은 같다.98학년도부터는 다시 지필고사를 폐지하고 종합생활기록부로 학생을 선발한다.종래의 생활기록부는 상대평가방법의 성적표시를 했고 전교과성적의 총점으로 학년석차를 내고 그 백분율을 내신성적으로 활용했으나 종합생활기록부에서는 교과목별로 성취도를 내어 학생선발에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출석상황·행동발달상황과 함께 재학중 각종대회 입상실적,자격시험합격상황,자치활동,봉사활동,수련활동,헌혈실적 등 교내외생활에서 거둔 여러 성과를 기록하여 학생선발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지금 1·2학년 학생은 신·구생활기록부를 모두 제출하도록 이행조치까지 언급하고 있다.그러나 재수생이나 검정고시합격자에 대한 처리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 같고 종합생활기록부의 양식이나 작성요령,그리고 신설되는 각종기록란의 기재요령과 기록할 내용의 범위와 한계 등도 정해져 있지 않다. 교개안 안에 「교육과정특별위」를 설치하고 교육과정조정작업을 시작하는 일도 눈에 띈다.현행 교육과정에는 필수과목이 너무 많으므로 이를 줄이고 선택과목과 선택의 폭을 확대한다는 방침에 따라 교육과정의 조정작업도 빨리 해야 한다.고등학교에서는 96학년도부터 제6차 교육과정을 시행키로 하고 제반준비를 해왔는데 그 조정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제1학기말 전에는 그 내용이 확정되어야 96학년도의 교과서주문과 교원수급의 준비가 순조롭다.우열반의 편성이나 수준별 이동수업도 교육과정에 알맞는 프로그램의 편성이 되어야 한다.또 제 6차 교육과정 자체가 다양한 과정의 분화를 유도하고 있는데 그 정신을 살려 일반고교의 다양한 교육과정운영을 권장할 수도 있다. 교과서의발행제도나 공급방식도 재검토해야 하고 인성교육이 가능하도록 학급당 인원수의 감축도 고려해야 한다. 또 학교선택과목을 학생선택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교원의 증원,시설설비의 보충도 뒤따라야 한다. 교원과 학부모와 주민대표·동창회대표·교육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는 「학교운영위원회」는 단위학교수준의 교육자치를 염두에 두고 설치하려는 것이다.지방자치시대를 열면서 교육측면에도 학교단위의 자치활동이 왕성하게 전개되기를 기대해본다. 98학년도 고교신입생선발부터 자립형 사립고교를 희망하는 학교가 일정조건을 갖추게 되면 이를 인정하여 학생의 자율선발권과 등록금의 자율결정권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길도 열어 놓았다.이 자립형 사립고교가 출범하는 경우 속칭 일류교가 다시 등장하여 고교평준화가 사실상 와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우가 있다.특수목적고나 자립형 사립고교도 학생모집에서 제약조건이 있다.일정지역내 거주학생이어야 하고 서류전형으로 정원의 1·5패의 학생을 1차합격시킨 후 추첨으로 최종합격자를 결정한다.그러나 이들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의 질이 조금은 좋을 수도 있다는 예측은 가능하다.자립 사립고교의 수를 많이 늘려주면 그 존재의 희소성이 떨어져 항간의 기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또 「교개위」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개혁이 고교평준화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그 결점을 보완하여 영재교육도,학습부진아의 교육도 개선한 처방이라고 한다.이렇게 볼 때 이번 교육개혁이 고교평준화를 해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 미 프리니스턴대 샤피로총장 졸업식사(연설)

    ◎“교육과 지식이 미국미래 이끄는 힘/근시안적인 예산삭감 막아야 한다” 교육과 기술,과학에의 최우선적 투자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대의 해럴드 T 샤피로총장이 지난달 30일 있은 졸업식 치사에서 역설했다.그는 저명한 경제학자답게 이들 분야의 투자가치 효율성을 지적,「아는 것이 힘」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다.다음은 그의 졸업식사 요지다. 대학졸업식은 지난 세월 이룩한 과업을 축하하고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는 주요한 자리의 하나입니다.오늘 나는 이 뜻깊은 졸업식장을 1930년대 대공황기에 태어나 길고 긴 어둠속의 2차세계대전과 이후의 여파 속에 자라온 우리 세대가 겪은 몇몇 경험의 단면을 반추해보기 위해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로 삼고자 합니다.특별히 나는 우리 사회를 강건하게 해주는 교육과 사회·경제·문화적 염원을 이뤄내는 과학과 기술에의 새로운 믿음의 방법을 고려해보겠습니다.이것들은 우리 세대에게 30∼40년대초의 상흔을 말끔히 벗게 해준 것입니다. 올해는 종전 50주년의 해입니다.전후세대에게 대공황과 이후의 2차세계대전이 얼마나 쓰라린 경험이었는가를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나는 며칠 전 45년도 졸업생들을 전쟁중 숨진 프린스턴대인들을 기리는 자리에서 만났을 때 30∼40년대의 어려움을 뚫고 「낙관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미군 병사들이 전장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의 사회는 고등교육을 향한 참으로 혁신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이른바 「병사의 법안」이 통과되면서 우리 사회는 처음으로 참전병사에 대한 보상은 교육기회의 제공이라는 형태를 띠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전후 초기에는 과학과 기술에 대해서도 매우 낙관적 태도를 견지했습니다.한동안 우리는 지식과 기술이 더 발전하면 풀지 못할 문제는 거의 없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같은 믿음과 낙관은,그러나 연속적으로 야기되는 난제들을 막지 못했습니다.우리는 과학과 기술만으로는 응집력 있고 정당한 사회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기술분야에서의 괄목할 업적은 사회적으로나,기술적으로나 새로운 우려를 파생시켰습니다.예를 들면 신기술은 사회적 관계의 재정립을 촉진시킬 때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가치 있는 인간관계의 상실이라는 측면도 가져왔습니다.신형자동차와 초고속도로·쇼핑센터들은 소도시들을 텅 비게 했으며 개인적·사회적 관계를 좋든 나쁘든 바꾸어 놓았습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기술적이며 비기술적인 해결방법을 요구하는 사회적·정치적·문화적 현안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었습니다. 기술적·과학적 낙관의 시대는 새 지식과 기술의 무궁한 장점에 대해 의심과 불확실성을 갖는 시대에 자리를 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과학과 기술에 대한 양가치적 감정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의 발전은 자연세계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돌파구를 계속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때때로 나는 역사를 자신감과 열정,그러나 활발한 이상론과 밀접한 낙관의 시대에서부터 불신과 의혹,그리고 의심으로 대변되는 회의의 시대까지 돌고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다행히도 비관적 시대는 조정이 되거나 통합이 되는 시대로 이어지며,새 통합체제는 새 수준의 희망을 창조하면서 다시 한번 낙관과 자신감의 시대를 구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의론적 감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교육,과학과 기술의 미래역할까지 비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고 역사를 모르는 처사입니다.교육분야를 볼 때 수입에 관한 최근의 여론조사결과는 두 가지의 피할 수 없는 사실을 보여줍니다.첫째,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의 수입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부자와 가난한 자의 수입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이 결과는 사회가 교육투자증대의 길과 함께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투자방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압력을 받고 있을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교육과 연구에의 투자를 삭감할 때 우리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습니다.우리 앞에 놓여 있는 어려운 선택을 하는 데 있어 우리의 대표자들이 재정문제만 보는 단견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납세자이며 유권자인 우리는 이 목표를 이뤄내는 데 희생을 할 각오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한 순간에는 제아무리 매력적이라 할지라도 단기적 해결방식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무엇보다 우리는 교육과 새 지식에 대해 가끔씩 실망했다고 해서 교육과 지식이 지닌 잠재력에 눈을 감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난 몇십년을 돌이켜볼 때 우리의 이같은 믿음은 몇배로 보상받았습니다.교육과 기술에 대한 회의는 언제가는 신중한 사고과정을 거쳐 우리의 새롭고 폭넓은 목표에 양보할 것으로 믿습니다.다시한번 교육과 새 지식 창조를 위한 지속적 공약이 뒷받침돼야 할 것입니다. 사회가 믿음과 노력을 정확히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게끔 유도하는 것은 바로 여러 졸업생입니다.현재의 환경과 여러분이 건설하고자 하는 세계를 심사숙고하는 것이야말로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 일 우익 「한·중 수탈사」 왜곡입증/일 귀족원 비밀회의록 공개의미

    ◎태평양전쟁에 조선인 징용 준비 확인/“공격대상 미·영” 논리 허구성 드러내 일본참의원의 전신인 명치헌법하의 귀족원(추밀원) 비밀회의록이 5일 모두 공개됐다.비밀회의록은 24건으로 A4판 4백70쪽 분량.그 가운데 전후 미점령군 사령부가 가져간 「미국의 일본 공습 및 상륙에 관한 질의」는 공개대상이지만 자료는 입수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따라 중의원이 갖고 있는 비밀회의록의 공개가 과제로 남게 됐다. 비밀회의록의 공개는 대부분 한국에서는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등에 의해 널리 확인돼 왔으나 일본에서는 극우주의자나 일부 보수정치인등에 의해 제멋대로 왜곡돼 왔던 과거의 침략수탈사가 다시 한번 정확히 확인됐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 41년 1월 회의록에는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을 일으키기 1년전 이미 영미와의 전쟁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었으며 전쟁수행을 위해 조선인 노동자를 착취할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이는 뒤에 징용으로 나타난다. 또 고노에 당시총리는 대동아공영권 구상과 관련,「대동아 각 민족을 구미의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한다」면서 「(예상되는 지구전에 대비해)남방경영에 의해 소요물자의 보급을 확보해 지구전체제를 정비하는 외에 길은 없다」고 본심을 드러내고 있다.즉 구미로부터 동남아시아를 분리시켜 자원을 강탈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정치권에서 부전결의등의 채택을 둘러싸고 비뚤어진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시아와 싸운 것이 아니고 영·미와 싸우다가 본의아니게 아시아인에게 폐를 끼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영·미가 일본의 생명선인 유류등의 금수조치를 실시해 전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일본 일부 보수주의자들의 논리가 엉터리라는 점이다.고노에총리는 『영·미는 중일사변과 관련,9개국조약에 기초해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대륙침략정책을 포기하지않자 영·미가 일본을 준적국화하고 가솔린등 대일수출금지에 이르고 있다』고 말해 모든 원인이 한반도와 만주에 이어 중국까지 마구잡이로 침략을 자행한 일본에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밖에 비밀회의록에는 1894년(한국의 동학농민전쟁에 일본이 개입,청일전쟁이 벌어진 해) 청일전쟁 임시군사비를 심의하는 귀족원 회의가 히로시마에 건설된 대본영의 가의사당으로 의원들이 집합해 열리는가 하면 심의도중 군사비에 관한 사항이라며 속기까지 정지돼 기록이 남겨지지 못하게 되는 등 군의 문민정치원리에 대한 훼손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45년 3월 도쿄대공습 직후 열린 비밀회의에서는 이미 공습사망자가 5만5천명을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이와관련,한 전쟁작가는 당시 일본이 전쟁을 포기했다면 일본은 원자탄 투하도 피할 수 있었고 일본인 사망자 3백10만명 가운데 2백만명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침략에 눈이 먼 지도자들이 일본국민과 아시아인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다.회의록 내용을 살펴본 도쿄도립대 사사키 류지교수등은 「고노에내각은 절망을 선택했다」,「무책임한 체계의 공허함을 본다」면서 침략의 역사에 강한 비판을 가했다. ◎일제 비밀회의록 요지 일본 참의원은 18 91년부터 19 45년까지 명치헌법하의 귀족원에서 행해진 비밀회의록을 5일 공개했다.다음은 비밀회의록 가운데 한반도 및 침략전쟁과 관련된 부분들의 주요내용. ▷태평양전쟁과 조선인 노동력 착취 계획◁ 1941년 1월 고노에 후미마로총리의 「국내외정세에 관한 보고」.…제국장래의 생명인 대동아 공영권건설 문제에 관해 독일·이탈리아 양국은 일본의 지도권을 인정한다고 함이 명료하다. 독·이와 더불어 나아가는 길 말고는 길이 없다.전쟁은 독일측의 승리로 귀결될 것으로 믿는다.영국과 미국은 중일사변에 대해 우리의 지금까지의 대륙정책을 포기하도록 하고 있다.제국으로서는 그렇게 해서는 장래의 발전이 되지 않는다.그 결과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준적국화하고 장개석정권을 원조하고 있으며 가솔린등의 대일수출금지에 이르고 있다. (영·미와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면서)특히 노동력 보급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곤란을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지금의 탄광종사자 30수만명에 더해 시급히 약 4만명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다른 산업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쉽지 않다.국내 노동자 모집,조선 노동자 도입등에 관해 현재 응급 특별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아시아각지의 침략과 관련)예상되는 지구전에 대비해 남방경영에 의해 소요물자의 보급을 확보해 지구전체제를 정비하는 외에 길은 없다. ▷중일전쟁◁ 40년 2월 요나이 미쓰마사총리(해군장관출신) 상황보고.중경정권(장개석정권)이 항전을 계속하는 한 사변은 계속된다.(왕조명정권의 목적은)중경정권을 약화굴복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국제연맹탈퇴◁ 1933년 2월 사이토 마코토총리(조선총독역임)의 보고.(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립튼보고서를 국제연맹이 채택하면)동양평화의 확립에 대해 연맹과 소신을 달리하게 되므로 연맹과 협력할 여지가 없게 된다.…최후의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이 회의는 연맹이 보고서를 채택한 2월 24일보다 사흘 앞선 21일 열렸다).
  • 초등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사설)

    변혁이라는 의미에서 건국이후 가장 야심찬 개혁의지를 보이고 있는 새 교육개혁안을 대하며 「가슴 벅찬」기대를 거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남은 일은 어떻게 현실화시켜 성과를 거두느냐다. 그런 뜻에서 이번 개혁안의 미진한 부분에 대해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우리의 교육에 대한 지향은 늘 고등교육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초등교육,그중에서도 국민학교교육은 늘 소외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이번 교육개혁안도 그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눈에 띄는 것이 없어 보인다.중등교육에 관한 관심도 「대학입시」의 방향을 위한 것이므로 대학중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떤 교육도 지능이 발달되기 시작하는 만3살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그시기에 모든 가능성의 85%가 결정된다는 것이 모든 교육학의 정설이다.사상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의 발사로 우주전쟁에서 소련에게 졌던 미국이 서둘러 착수한 교육혁신은 SMSG같은 국민학교과정의 기초교육 강화였다.연전에 한국을 방문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의 석학은 물리학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10살에 이미 판가름이 난다고 말했다.25살이면 「환갑」이라 일컫는 것이 이 분야다. 이렇게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시기의 교육에 대한 개혁이 함께하지 않는 교육개혁은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교육내용,교육환경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과 변혁의 시간표가 고등교육의 그것보다 먼저 세워져야 한다.적어도 함께는 세워져야 한다.이번의 개혁안에서 아직은 그것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유아기만 되면 태권도에서 피아노까지의 온갖 교육을 거의 무자격 교사가 이끄는 「학원」에 맡겨두고 국민학교과정까지 방치상태에 있는 것이 우리 어린이들이다.이런 현상은 전국이 거의 평준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학원 시간표에 묶여 뛰어놀 자유도 없어진 우리 어린이들의 교육에 대한 심각한 반성과 검토야말로 교육개혁에 우선 포함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후속되는 실천과정에 기대한다.
  • 러·일의 자존심 경쟁/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정부는 지난달 31일 러시아로부터 날아온 한마디에 영 기분이 구겨져 있다.옐친대통령이 『러시아는 스스로 잘할 수 있다.일본은 섬들(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북방 4도서)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면서 일본으로부터의 지원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내비춘 것이다. 이 말이 전해지자 일본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관방장관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를 돕겠다는 것은 이웃나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한 신문은 『지난 1월 대지진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 사할린지진을 남의 일로 생각할 수 없는 일본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또 다른 신문은 옐친 대통령이 부주의한 발언과 술취한 행동을 되풀이해온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재차 옐친 대통령의 발언을 러시아국민의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옹호하고 나섰고 무라야마총리는 『발언이 사실이라면 대단히 유감』이라고 강한 불쾌감을 표명,2일까지 가시돋친말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일본은 1월17일 발생한 한겨울 지진으로 사망자 수천,피난민 수십만을 헤아리고 있을 때인 1월19일까지 세계 14개국이 제의한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다마자와 도쿠이치로(옥택덕일낭)방위청장관 등은 『자위대원 7천여명을 포함한 2만9천명의 구조대가 활동하고 있다』 『일본은 태풍·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아 구조활동에 대해 자위대가 갖고 있는 기자재와 노하우의 수준은 상당한 수준』이라면서 자력구조를 강조했다.후생성은 외국의사들이 일본의사면허가 없으므로 법규정상 일본안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없다고 고집,일본언론으로부터도 비판받기까지 했다. 결국 일본정부가 대외관계와 국민감정·수송업무·물자부족 등을 고려해 지원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지만 이번 발언공방을 보면서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정치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반복될 수 있음을 보게 된다.옐친대통령의 발언이 스마트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지원거절의 배경이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일본 정치지도자들에게 한신대지진 발생초기지원을 제의했던 외국이 느끼던 당혹감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입에 쓴 약」 정도는 될 수 있을지 모른다.
  • 시인 박두진(이세기의 인물탐구:75)

    ◎신·자연·인간을 노래한 “해의 시인”/불의·적당주의·시속과 타협 단호히 거부/독학으로 인생행로 개척한 극기의 인물/등산·수석채집 30여년… 붓글씨·서화에도 능해 「해야 솟아라.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산넘어 산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산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혜산 박두진의 「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우리나라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인 그를 일컬어 문단은 「해의 시인」으로 부르고 있다.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인환(고대교수)은 『밤과 밤을 몰아내는 해와의 대조위에 전개되는 「해」에는 혜산이 희망하는 세계가 투영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그 세계는 꽃과 새와 사슴과 칡범과 인간이 한 자리에 앉아 앳되고 고운 동심을 이루고 있지만 과연 현실이 기다림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가,그의 시적 변모는 이러한 질문에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혜산 박두진의 시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한 줄기 정신은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신앙의 영향은그로하여금 인간중에서 가장 많이 고통받고 가장 위대하게 사랑한 예수의 생애를 통해 언덕과 하늘과,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집단이 감동속에 결속되고 있음을 「갈보리의 노래」로 절규하고 있다. ○“위선과 탐욕 버려야” 「마지막 내려덮는 바위같은 어둠을 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가 있었는가? 뜨물같은 치욕을,불붙는 분노를,에어내는 비애를,물새같은 고독을,어떻게 당신은 견딜 수가 있었는가,꽝꽝 쳐 못을 박고,창끝으로 겨누고 채찍질해 때리고,입맞추어 배반하고 매어달아 죽이려는,어떻게 그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었는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우주의 생명과 우주의 질서」에 눈을 돌려 「이제 사물과 인간은 우주적 무도에 참여하는 하나의 과정,하나의 사건이 되고,가식과 위선과 탐욕을 버리기만 하면 누구나 생명의 환희를 체험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의 특징은 작품에서 개인적인 감상을 추구하지 않는 점이다.86년 한 신문에 발표한 칠순기념 특별기고에서 「가난이라든가 개인적인 슬픔,사람에 대한 배반감이나 기쁨을 시로 승화시킬 수는 있다.그러나 문학은 인간 누구나가 느끼는 인류공동의 문제 이전에 근본적인 문제로 천착하여 진실에 대한 투시력을 보여야 한다」고 논한 바 있다.즉 「시의 사상,시의 윤리,시의 심미적 창조가치는 언제나 그 창조의 주체인 시인에 의해서만 시적 진실이 획득된다」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개탄하면서 「나이든 사람은 젊은 사람의 눈치를 보고 젊은 사람은 나이든 사람을 업고 나와 학연·지연을 앞세워 설쳐대는 것은 문학의 권위와 문학인의 자존심을 잃는 일」이라고 우려해 마지않았다. 혜산의 생애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일컬어 「극기의 인물」로 평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앙상하리만큼 야윈 체구에 오랜 등산과 수석채집으로 다져진 강단은 일상생활에서도 불의에 굴하거나 적당주의나 시속의 타협이 없이 무엇을 하든 정의감과 선비적 자세를 지켜왔고 그의 시의 소재들은 이런 다양한 지란을 이겨낸 심혼의 결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인 신대철은 팔순을바라보는 나이에도 언제나 꼿꼿한 자세와 순수무결한 시심을 잃지 않는 혜산을 향해 『자기초월의지를 가진 인격과 고고한 학자의 기풍과 시인의 기상을 흐트리지 않아 문단에서는 물론 대학에서도 제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고 자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경기도 안성 「고장치기」로 불리는 빈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청렴한 선비이던 선친으로부터 일찍이 한문과 붓글씨를 배우고 안성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것 외엔 그는 혼자서 독학으로 인생행로를 개척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4세때 「문장」지에 등단 24세에 「문장」지의 시 추천을 거쳐 문학활동을 전개하기 이전까지 그는 측량소·경성부청·금융조합원 생활을 전전했고 45년 해방과 함께 그 당시 유일한 출판사이던 을유문화사에 입사한 것이 조지훈·박목월과 만나 「청록집」을 출간하는 계기가 된다.이후 자연과 신을 주제로 하는 시들을 끊임없이 발표하더니 60년대말부터 수석취미에 침몰하여 「돌」 하나만을 주제로 하는 「수석열전」시리즈를 「현대문학」지에 수년간 연재,지금은 「돌의 시」로써 시인만의 청복을 누리는 시기다. 서대문구 창천동 그의 집에 가보면 마당과 거실과 서재와 베란다는 「뇌뢰낙락하고 고하고 괴하면서 관용자수 한 명석」들이 일사불란하게 도열해 있고 그의 돌에 대한 사랑은 3천여편 이르는 시작 외에도 서화나 수필에 넘치도록 표현되어 있다. 「작은 한개의 돌이 갖는 형태미와 색채미는 어떤 조각품에도 견줄 수 없는 묘막한 조형미가 갖춰져 있다.난이 정의 극치라면 수석은 의 극치,난이 부드러우면서 의연하다면 수석은 웅혼섬세하고 표일 불기이면서 차라리 성자롭다」등,그리고 「시를 쓸 때의 사무사의 맑은 마음,맑은 눈만이 석격이 심웅하고 석품이 우귀」한 것을 찾을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혜산의 취미는 다양하다.시를 쓰는 것과 동시에 30년남짓 등산을 하고 난을 키웠으나 그는 이를 굳이 「취미」라고 하지 않는다.붓글씨와 서화에 능하여 앞을 향해 질주하는 듯 한 아름다운 필체는 「혜산체」로 일가를 이루고 있으나 서도를 감히 취미라고 하지 않는다.「어떤 것은 너무 높은 경지라그렇고,어떤 것은 나 자신이 족히 미치지 못해 모자라는 것을 취미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시를 좋아하면서 산을 좋아했는지 산을 좋아하다가 시를 좋아했는지는 모르나 산은 심약한 그를 「의지적 인간」으로 바꾸어놓았고 일목일초에 기울이는 정서적·감각적 운치를 알게 했으며 「한개의 돌에 얽힌 정신적 파동」은 그의 시심을 한층 심화시켰다고 돌아본다. 문단의 교분은 다양하진 않지만 월탄이 생존해 계실 때는 종로구 충신동 월탄댁에 가끔 모여 「문주반생기」의 무애 양주동,「명정사십년」의 수주 변영로,공초 오상순,연포 이하윤등 문단의 주호들과 맥주 두잔의 술실력으로 「도도한 무애의 웅변,월탄의 호통,공초의 무언,수주의 독설속에서 시를 주고받고 휘호를 치면서 철저하게 밤을 새운 이야기」는 문단사의 향기로운 추억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수석에 물을 뿌리고 돌보면서 가슴속에 들끓는 정열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그럼에도 자신을 「시인으로 자처하거나 그렇게 의식해 본 일이 없다」고 끝내 도도하다.다만 「시는 한낱 감상이 아닌 인간이 신의 손길에 의해 생명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덕윤과 경외의 념」이라는 한 평자의 말에 공감할 뿐이다.언제나 쓸 것이 밀려 있고 생각에 쫓겨 「한없이 즐겁고 한없이 탄력을 느끼면서 고양된 감정,맑은 생각,투지와 저항,여유와 절박감이 뒤섞인 속에서」 그는 총체적으로는 어떤 즐거움과 보람같은 것을 느껴왔다고 수필집 「돌과 사랑」에서 밝히고 있다. 연세대 교수 정년퇴직후엔 일주일에 두번 추계예술대 강의,그외엔 2박3일정도로 수석채집을 위한 여행길에 오르고 수석을 알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면 수석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데 지루해 하지 않는다.가족은 동화작가인 이희성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만 4형제. 『시인은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기꺼워하고 다른 사람들보다도 내부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한 워즈워스의 말은 그를 두고 적절하다.혜산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성 속에는 시가 있고 시를 상실한 사람은 인간의 순수성을 상실한 사람이며 시는 본질적으로 진실이며 선이며 아름다움이며 신의말씀」이라는 그의 시론을 시로써 실천해냈고 마지막 붓끝까지도 신과 자연과 인간의 결속을 불후의 명시로 성취할 이 시대 진정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연보 ▲19 16년 경기도 안성출신,호 혜산 ▲39년 「향현」「묘지송」등이 정지용에 의해 「문장」에 추천 ▲46년 첫시집 조지훈·박목월등과 「청록집」(을유문화사)출간 ▲48년 한국청년문학협회 시부위원장,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49년 제2시집 「해」(청만사)출간,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 ▲51∼81년 연세대 교수 ▲65년 우석대 조교수 ▲70년 이화여대 부교수 ▲81년 단국대 초빙교수 ▲86∼현재 추계예대 전임대우교수 시집 「오도(오도)」(54년)「박두진 시선」(56년),수필집 「시인의 고향」(58년),시론집 「시와 사랑」(60년),시집 「거미와 성좌(성좌)」(61년)「인간밀림(인간밀림)」(63년)「하얀날개」(67년)「청록집·기타」「청록집 이후」(68년),시론집 「한국현대시론」,수상집 「생각하는 갈대」(70년),영역시선집 에드워드 W 포이트라스역 「Sea of Tomorrow」(71년),수상집 「언덕에 이는 바람」,시집 「고산식물」「사도행전」「수석열전」,시론집 「현대시의 이해와 체험」,한국현대시문학대계 「박두진」(73년),시집 「속·수석열전」(76년)「야생대」(77년),시선집 「예레미야의 노래」,시집 「포옹무한」「하늘까지 닿는 소리」「박두진 전집」(범조사 81년)「나 여기에 있나이다,주여」(82년)「청록시집」(83년),수상집 「돌과의 사랑」「그래도 해는 뜬다」,시선집 「일어서는 바다」(86년) 「불사조의 노래」(87년),시집 「빙벽을 깬다」(90년),산문전집 「햇살,햇볕,햇빛」(91년)「박두진 전집」(신원문화사 95년) 아세아자유문학상(56년) 서울시문화상(63년) 3·1문화상 예술상(70년) 대한민국예술원상(76년) 인촌(인촌)상(88년) 지용문학상(89년)
  • 관훈 토론회(임춘웅 칼럼)

    관훈 토론회 관훈클럽이 지난주(5월23∼26일)열었던 서울시장후보 3인 초청 관훈토론회는 몇가지 점에서 주목할만 했다. 무엇보다 관훈토론회가 비록 대서울의 시장후보라고는 하나 지방선거에 눈을 돌렸다는 의미를 새겨볼만하다.관훈클럽은 38년의 역사동안 모두 69회의 초청토론회를 가졌으나 그대상은 언제나 중앙정계의 주요 인물들이거나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들이었다.민주당정권시대 정부수반이었던 고장면 총리,대통령을 거쳐간 노태우 민정당총재,현대통령인 김영삼 민자당대통령후보등 기라성같은 인물들이다.정계의 거물로 관훈토론회에 초청되지 않았던 인물로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전대통령 정도일 것이다. 그밖에도 김수환 추기경,정주영 현대그룹회장,주한미국대사같은 각계의 인물들이 등장했으나 지방선거후보들이 초청된 일은 일찍이 없었다.34년동안이나 지방단체장 선거가 없기도 했지만 서울의 시장후보들이 전국적인 관심속에 관훈토론회에 등장했다는 것은 지방화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케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는 이번 토론회가 끼친 영향력이다.3개 주력 TV와 주요방송들이 토론내용을 거의 전량 녹화중계했거나 방송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토론회가 모두 끝난 다음날인 27일 K신문이 전문기관을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조사대상자의 67%가 토론회내용을 듣거나 보았다고 응답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86%가 토론회를 통해 후보들의 인물됨을 파악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답하고 있다.토론회 내용을 보았거나 들었던 사람중 15.5%가 이번 토론회를 통해 투표할 후보를 바꾸겠다고 했으며 13%는 지지자를 결정치 못하고 있다가 토론회를 보고 결정하게 됐다고 답변하고 있다. 무려 3분의1에 가까은 투표권자의 투표권행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대단한 영향력이라 할수 있다.이부분은 「TV정치시대」가 운위되는 시대의 TV영향력에 힘입은 바도 클 것이다. 관훈토론회가 유권자들에게 투표권행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관훈토론회의 기능이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 된다.국민의 직접 정치참여 기회가 줄어들고있는 현대사회에서 언론기관의 이런 기능이란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관훈토론회가 그 영역을 보다 넓히고 그 기능을 더욱더 높일수 있다면 이나라의 여러 분야에서 보다 많고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그렇게 하자면 토론회의 초청대상 선정이나 질문문항 연구,토론의 형식에 다채로운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좀더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외부전문가들의 자문을 받는 시스템 같은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아직도 보완되고 연구될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 언론계에 관훈클럽이 있고 관훈토론회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 교육개혁안 발표에 즈음하여(사설)

    ◎참교육의 새 지평을 열어 나가자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이 마련됨으로써 논란이 되어왔던 교육개혁의 틀과 방향이 마침내 확정되었다.개혁방안은 그동안 공급자위주였던 우리교육의 제도를 수요자입장으로 바꾸고 21세기 정보화·지식화 시대에 걸맞는 「열린교육사회」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획기적조치를 환영한다. ○교육복지국가 위한 최선책 교육개혁의 요체인 신교육체제의 목표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열린교육사회·평생학습사회」의 건설에 있는 만큼 모든 국민이 자아실현을 하는데 필요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교육개혁안이야 말로 「교육복지국가(Edupia)」의 실현을 위한 최선책이라고 하겠다. 교육개혁의 당위성은 현실과 유리된 암기위주의 입시교육이 가져온 교육의 비정상화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과열과외를 척결하지 않고는 지구촌 시대에 세계의 중심국가를 지향하는 신한국의 창조는 불가능 하다는 개혁차원에 있다.한 사회와 국가의 힘과 부,그리고 개인의 삶의 수준은 기술·정보·지식·문화등 지적 자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때 미래문명을 위한 최선의 준비는 바로 교육의 틀을 바로 세워 변화가 빠른 정보사회에서의 적응력을 높이는 일이다. 이번 교육개혁방안을 마련하게 된 동기중의 하나는 국민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는 과열과외와 이에 따른 국민들의 사교육비 부담 때문이다. ○과열과외추방 최우선 과제 따라서 새방안은 과열과외가 입시제도의 경직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해 국·영·수 중심의 대학별고사 폐지,수학능력시험 개선,대학입학 전형방법과 대학의 다양화로 인한 대학 서열의 둔화,대학정원과 학사운영의 다양화등 획기적인 대학관련 개혁방안을 제시했다.또한 초·중·등학교와 관련된 특수목적고와 사립고 선발제도 개선,필수과목 수의 축소 및 선택교과목 수의 확대,첨단기술을 활용한 개별화 학습강화,총점중심의 15등급 내신제에서 종합생활기록부제로의 전환등도 과외에 대한 수요를 근본적으로 경감시키고 과열과외를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과열과외는 교육제도 못지않게 학부모의 불안심리와 학력위주의 고용 및 임금관행에 기인하는 점도 있다는 점에서 학부모의 올바른 자녀교육관 확립을 위한 의식개혁 운동과 더불어 기업의 고용 및 임금관행의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전반 의식개혁이 관건 교육개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사회전반의 의식개혁이 뒤따라야 함을 우리는 강조한다.교육문제는 연령과 계층에 따라 십인십색일 정도로 의견과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백년대계의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접근하고 실천에 옮기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방안은 교육제도 전반에 대해 획기적인 방향전환을 제시하고 있으나 점진적인 실천을 제시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이번 교육개혁방안은 문민정부시대에 완성을 목표로 한것이 아니므로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일관성있게 실천해 나가야 뿌리를 내릴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교육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교육재정의 GNP 5% 확보 세부방안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교개위가 이번 개혁안 중에서 가장 난제였던 교육재정확보문제를 국공립학교의 입학금및 수업료등 수익자 부담분을 제외하고 국민총생산의 5% 확보선에서 매듭을 짓고 오는 9월까지 제시하겠다고 확실히 밝힌 것은 관계부처들도 협의과정에서 교육개혁의 당위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고 그 결과를 기대한다. ○교육개혁은 국가발전 전략 교육개혁은 김영삼 대통령이 문민정부출범 취임사에서 「신한국 건설의 핵심과제로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한데 따라 지난해 2월 교육개혁위원회가 발족돼 14개월동안의 연구 결과 세부개혁안이 마련되기에 이르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교육개혁은 문민정부의 최대 개혁과제이자 국가발전 전략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착근되어야 할 시대적 명제임을 우리는 강조한다.
  • 구미 맥주회사/해외시장 개척 열 올린다

    ◎하이네켄 총판매액 70% 외국서 소비/버드와이저는 해외공장 매입에 총력 맥주회사들의 시장쟁탈전은 흔히 진지전이라고 불린다.맥주시장이 갖는 고유한 특성 탓으로 한판에 승부를 가리는 기동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즉 한번 맛을 들이면 쉽게 바뀌지 않는 소비자의 기호로 인해 한 나라의 시장에 외국산 맥주가 끼어들어 터를 잡기가 매우 어렵다.앞을 멀리 내다보고 수익이 더디게 증가하더라도 참고 기다려야만 한다. 최근 이런 인내심을 갖고 해외시장에 눈돌리는 구미 유명맥주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자국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탓이다. 버드와이저를 생산하는 안호이저부시(AB)는 해외시장개척에 매우 정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세계최대의 맥주회사인 AB는 전세계 맥주의 10%를 생산하고 미국내에서 밀러와 함께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꽤 일찍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땀을 쏟아 왔다. AB사가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지역은 중국이다.AB는 2년전 중국 최대의 맥주회사인 산동성 청도맥주의 주식 5%(1천6백40만달러)를 사들이면서 이 지역 개척에 나서기 시작했다.지난해 2월에는 경쟁사인 네덜란드의 하이네켄을 물리치고 호북성 무한에 소재한 대형맥주회사의 주식 80%를 경쟁사가 제시한 가격보다 거의 2배가 많은 1억4천만달러에 인수했다. AB는 또 멕시코와 브라질에도 눈을 돌려 지난 2년동안 이 나라들의 주도적인 맥주회사 주식을 사들이는데 6억달러을 쏟아부었다.지난 4월에는 영국 런던에 소재한 커리지맥주의 지배주주로 올라섰다.AB의 최대 상표인 버드와이저는 지금 60개 나라에 수출되거나 현지생산되고 있다. 미국내 2위의 거대맥주회사인 밀러사도 AB에 뒤이어 중국시장 개척에 힘을 쏟고 있다.이 회사는 최근 중국 제2위 맥주회사인 오성맥주에 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유럽지역 가운데서는 국외판매가 가장 활발한 맥주회사로 하이네켄을 꼽을 수 있다.하이네켄은 지난해 총판매액 65억달러 가운데 70%를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벌어들였다.이 회사는 최근 이탈리아와 폴란드의 맥주공장을 사들이고 스위스와 헝가리 쪽에도 투자를 늘렸다. 하이네켄의 아시아권전략중심은 싱가포르와의 합작투자회사인 아시아퍼시픽 브루어리스(APB)다.지난해 APB는 아시아 해안지역에 4억4천만달러를 들여 6개의 맥주공장을 세운다는 5개년계획에 착수했다. 덴마크의 칼스버그는 10년전부터 중국에 판매망을 구축해 왔다.이 기간동안 칼스버그는 맥주공장 건설전문 자회사인 댄브루를 통해 40개의 중국내 공장시설을 현대화시켰다.칼스버그는 이밖에 지난해 홍콩내 대중국 무역회사인 스와이어 퍼시픽과 손잡고 광동성의 혜주에 소재한 대규모 현대식 맥주공장을 사들였다.
  • 전북 잇단공천 잡음/「경선후보 교체·금품비리」주민 반발

    ◎민주 지지기반 “흔들”/“전주시장후보 재심”요구… 갈등 증폭/“공천값 억대”괴문서 나돌아 어수선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 대한 지지 일변도였던 전북지역의 정치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경선을 통해 결정된 기초 단체장 후보를 중앙당이 일방적으로 교체하고 기초 단체장 경선에서의 금품 살포에 대한 폭로가 잇따라 지역 대의원은 물론 시민단체,주민들이 민주당에 크게 반발하거나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지역 민주당 지구당 위원장들은 지난 22일 전주시장 후보로 선출된 이창승씨(46·전주코아호텔 대표)에 대해 금품살포 의혹이 있다며 이씨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토록 중앙당에 이의신청을 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경선과정에서 이씨를 지지했던 지구당 대의원들은 『경선에서 이씨의 손을 들어 지지를 약속했던 지구다 위원장들이 하루아침에 이를 번복,중앙당에 재심을 요청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나서 당내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또 전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기독교장로회 전북지역 지방자치제 대책위원회 등도 지난 22일 잇따라 성명을 발표해 『정당한 절차에 의해 선출된 시장후보의 교체 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당사자인 이씨 역시 민주당이 후보를 교체할 경우 법적인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민주당은 교체방침만 세웠을 뿐 마땅한 영입대상 인물조차 물색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경선과 공천과정의 잇따른 금품수수 파문까지 겹쳐 민주당 지지 일변도의 지역 정서를 흔들고 있다. 지난 15일 치러진 민주당 군산시장 후보 경선대회에서는 김길준씨(61·변호사)가 후보로 선출됐으나 대의원 전봉해씨(65·군산시 대야면)가 22일 경찰에 출두,경선 과정에서 김씨 운동원이자 평소 알고 지내던 문모씨(65·군산시 성산동)로부터 10만원을 건네받았다고 진술했다. 이에 앞서 군산 지구당 대의원인 서기빈씨(54·군산시 경암동)도 김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담배값과 교통비 명목으로 김후보측으로부터 10만원을 받았다고 양심선언을 통해 폭로했다. 여기에 전주에서 재야출신 도의원 출마 예상자들이공천과정에서 모두 탈락하자 재야단체에서 완산과 덕진지구당 위원장을 집중 성토하고 있다. 특히 완산지구당은 시의원 내천 과정에서 탈락한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무소속 연대모임을 구성키로 했고 일부 의원은 지구당 선정위원회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주장,법적 대응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중에는 시의원과 도의원,시장후보의 후보별 공천가격이 수천만원에서 억대에 이른다거나 시장후보 경선에서는 수십억원의 돈이 지구당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등의 공천과정 비리를 폭로한 괴문서가 나돌고 있다. 그 내용의 사실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민주당 지지 일변도의 정치적 기반이 동요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관측이다.
  • “러 정부 이양문서의 「공백」메웠다/서울신문의 소 문서 발굴 의미

    ◎스탈린 역할 「부차적 아닌 주도」밝혀줘/「역사원형 찾아내기」두드러진 언론역할 지난해 6월에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옐친 대통령으로 부터 6·25남침전쟁에 관한 기록 문서들을 받아온 일이 있다.정부는 그것들을 모두 공개했다.우리의 현대사에서 우리 운명에 가장 결정적이며 가장 비극적인 작용을 했던 6·25전쟁의 원인에 대한 왈가왈부의 오래된 논쟁은 그 문서들에 의해 일단락을 지을 수 있었다.남침전쟁의 숨은 설계자로 지목되었던 구소련이 실제로 전쟁의 시작에서 휴전에 이르기까지를 지휘했음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가 넘겨받은 문서가 6·25남침전쟁의 전모를 다 밝혀주는 것은 아니었다.모든 역사적 사실이 다 그렇겠지만 캐고 들면 들수록 더 의심나고 더 알고 싶은 대목이 줄줄이 떠오르게 마련인 것이다.특히 그때 러시아가 우리쪽에 넘겨준 문서들은 주로 그들 외무부 관련 문서들로서,그것도 그들이 적당히 골라서 넘겨 준 것이어서 세밀하게 파고들면 들수록 몇갈래의 관련 문서 또는 부속 문서의 열람의필요를 낳게 하는 것들이었다. 뿐만아니라 구소련이란 나라가 공산당 일당독재의 나라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사실들은 당중앙위원회나 그 정치국에서 결정·재단되게 마련이어서 6·25전쟁의 본질에 접근하자면 아무래도 당문서의 발굴이 필수였다.소련공산당은 없어졌다해도 주요문서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모스크바의 한구석,구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보관 서고에 그것들은 있다. 뿐만 아니라 6·25란 전쟁에 관한 준비 및 진행상황이 군부 몰래 이루어질 수는 없다.어떤 무기의 어느 만큼의 수량이 북한으로 넘어갔으며 어느 수준의 어느 만큼의 실제 병력이 북한군의 배후를 떠받치고 있었는가.또 미군이나 한국군 포로들의 어느 부분이 소련영토로 연행되었는가.6·25남침전쟁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명 또한 필수다.소련의 붉은 군대는 러시아 연방 군대로 바뀌었지만 붉은 군대 시절의 주요 문건들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모스크바의 교외,하루 거리의 조그마한 고을에 있는 군 문서보관 서고에 그것들은 있다. 소련이망하고 러시아로 바뀌자 많은 나라들이 지난 70년간 감추어진 역사의 진실을 찾아나섰다.구소련의 외무부 문서,당문서,군부 문서들 속에서 자기 나라와 관련된 부분을 찾기위해 러시아 정부당국과 교섭하기 시작한 것이다.이에 이르러 옐친은 하나의 꾀를 생각해 냈다.정부의 문서보관소들에 각국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중요한 문서들을 골라 대통령부 문서보관소로 이송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93년중에 이 작업은 끝났다.그래서 오늘날 어느 나라든 소련과 관련된 역사를 복원하자면 크렘린궁의 대통령부 문서보관소와도 교섭을 잘 해야 한다. 우리는 작년에 옐친이 넘겨준 6·25문서가 기대에 차지 못한다.해서 실망한 일이 있다.그래서 러시아에 대해 당및 군의 문서도 공개하라고 소리 높이 요구한 일이 있다.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성질의 일이란 요구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호락호락 받아줄 수 있는 일은 아니다.필요한 쪽이 파고 들어가서 필요한 기록을 발굴해 내야 한다.이웃나라 일본은 5명의 전문가를 모스크바대사관에 상주시켜 필요한 역사의 원형을찾아내는 일을 전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신문이 이일을 맡고 나서 대통령부문서보관소와 당및 군의 문서보관소를 뒤져 벌써 9백50여건,총 3천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6·25관련 문서들을 발굴해냈다.대견스럽고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관점도 바로 섰고 취지도 바로 잡힌 취재였다.문제는 자료의 해석이다.미국측 자료나 우리측 자료및 북한측 자료와 등거리 동일 시야 속에서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미국이 6·25때 북한에서 노획한 방대한 양의 자료는 워싱턴의 공문서보관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신문이 발굴한 자료들은 요즘 지면을 통해 소상히 알려지고 있지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작년의 외무부 문서들이 6·25의 전쟁 책임에서 스탈린의 역할이 부차적이었다는 해석을 낳게 했었는데 비해,이번의 문서들은 그것이 스탈린에게 더큰 책임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물론 연재가 끝나야 더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겠으므로 앞으로의 연재에 큰 기대를 걸면서 서울신문의 일대 취재에 경의를 표한다.
  • 50년 「만찬장 사건」(모스크바 새 증언:3)

    ◎김일성 “개전 수일내 서울점령” 호언/“옹진반도 공략을” 소대사에 간청/“스탈린 다시 만나게 해달라” 졸라/「남침승인」 늦어지자 모택동 들먹이기도 이주연 북한대사의 중국파송을 위해 마련된 만찬이 50년 1월 17일 저녁 박헌영외교부장의 관저에서 열렸다.김일성,박헌영,김두봉을 비롯한 북한 고위층인사들과 소련대사,공사,중국대사,무역대표부 인사들이 대거 초대됐다.슈티코프대사는 1월 19일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을 통해 김일성의 이날 만찬장에서의 행적을 낱낱이 보고했다.(대통령문서보관소) 식사가 끝난 뒤 김일성은 소련대사관의 이그나테프와 펠리센코 두 참사관에게 다가갔다.그리고는 매우 흥분된 목소리로 이제 중국해방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으니 다음은 남조선동포들을 해방할 차례라고 떠들었다.그리고는 남조선 인민들은 자기를 믿고 따르고 있으며 북조선의 군사원조를 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빨치산만 가지고는 문제를 풀 수 없다.북조선에는 훌륭한 군대가 있다고 주장했다.이렇게 떠들어대던 김일성은 『요즈음 통일문제를 걱정하느라 밤잠을 못잔다.남조선 해방과 조국통일 과업을 더 늦추면 나는 조선인민들의 신임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력통일 늦출 수 없다 그런 뒤 김은 자신의 모스크바방문 때 스탈린이 남침을 먼저 시작하지 말라고 한 사실을 언급하며 『하지만 이승만이 북침공세를 시작하지 않고 따라서 남조선해방통일과업이 자꾸 미뤄지고 있으니 내가 스탈린 동지를 다시 찾아가 남침개시 허락을 받아야겠다』고 말했다.그리고 자신은 공산주의자이고 원칙주의자여서 먼저 전쟁을 시작할 수 없다느니,스탈린 동지의 명령이 자기한테는 법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의 허락이 필요하다느니 하며 횡설수설했다고 슈티코프 대사는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는 또 만약 스탈린동지를 만날수가 없다면 모택동동지가 모스크바방문을 마치는 대로 그를 찾아가 만나겠다고 말했다.그는 모택동이 중국내전만 끝나면 자기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모택동을 들먹이며 협박조에 가까운 말을 늘어놓은 것이다.사정이 여기에 이르자 소련대사관의 두 참사관은 그의말을 가로막고 화제를 바꾸어버렸다. 그 다음 상황을 슈티코프대사는 다음과같이 적고있다.『그러자 김일성은 내게 다가왔다.그리고는 이승만 군대에 대한 공격개시문제를 비롯,한반도상황을 논의하도록 스탈린 동지를 만날수 없겠느냐고 물었다.만약 스탈린을 못 만나면 모택동 동지를 만나겠다고 했다.그리고는 왜 옹진반도 공격을 허락하지 않느냐고 내게 따져물었다.인민군은 3일이면 옹진반도점령을 끝내고 수일내 서울까지 밀고갈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본인은 그에게 스탈린동지를 만나는 것은 문제가 안될 것이라고 답했음.그러나 옹진반도 공격은 안된다고 잘라 말하고는 그를 피해 만찬장을 떠났음』 이날 김일성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는 『스탈린동지를 만나게 해달라』『나는 자나께나 남조선해방만 생각하고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슈티코프 대사는 보고서 끝머리를 이렇게 마쳤다.『만찬이 끝날 즈음 김일성은 취한 상태였음.그의 모든 대화는 매우 흥분된 상태에서 이루어졌음.본인은 그의 이날 대화의 목적이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이고 우리의 입장을 타진해보려는 데 있었다고 생각함』 이 보고서 한통을 통해 우리는 당시 김일성이 얼마나 남침의욕에 가득차 있었는지,그리고 당시 소련지도부의 눈에 비친 그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한눈에 짐작할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49년 여름으로 잠시 거슬러올라가 보자.김일성이 스탈린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기남침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게 매달렸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있다.김일성,박헌영 두사람은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슈티코프대사를 8월 12일,14일 연이어 만났다.남침 불가피론을 설득키 위한 목적에서였다.다음은 슈티코프대사가 1차면담 뒤 본부에 보낸 보고전문.(대통령문서소.슈티코프대사와 김일성,박헌영의 대화록) 『두사람은 남조선이 조국통일민주전선이 제의한 평화통일방안을 거부했으므로 무력남침 외에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음.김일성은 자기가 지금 남침을 개시하지 않으면 조국통일의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고 말했음』 그해 6월 25일을 기해 김일성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고몇차례에 걸쳐 대남 평화공세를 펼쳤다.6월 30일에는 평양에서 남북노동당 연합회의를 열어 남북노동당을 합당,조선노동당으로 발족시키고 김일성을 위원장에,박헌영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한 바 있다. ○선제공격 필요성 강조 그러나 슈티코프대사는 이 요청에 대해 그해 3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김일성·스탈린 회담에서 북조선군이 남측에 대해 뚜렷한 무력우위를 확보치 못했다며 스탈린이 거부했다는 점을 거듭 상기시켰다.김일성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남조선 주둔 미군이 물러난 마당에 38도선 분할규정을 지킬 아무 의미가 없다.스탈린동지가 남조선이 선제공격을 가해올 경우에만 대응공격을 하라고 했지만 남조선은 이제 북침계획을 연기시킨 것 같다.남조선은 2차대전 전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고수하려했던 것처럼 38도선 고수에 총력을 쏟고있다.따라서 스탈린동지가 권유하신 대응공격 기회는 없어졌다』며 선제공격 필요성을 되풀이했다.김일성은 이와함께 북조선군이 남측에 대해 확고한 무력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강조했다.그러나 슈티코프도 지지않고 두사람의 현실파악이 너무 낙관적이고 이상적이라고 지적하며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김일성은 한발 물러나 강원도 삼척지구에 해방지구 건설전략을 제의했고 슈티코프는 『그것까지 막을수는 없지만 신중한 분석과 준비를 거친 뒤 실행에 옮길 것』을 권고했다.하지만 해방지구건설은 애당초 김의 목표가 아니었다.8월 14일 김은 슈티코프를 만나 다시 무력남침 필요성을 역설했고 슈티코프는 계속 불가입장을 되풀이했다.그러자 김이 들고나온 전략이 바로 옹진반도 점령 계획이었다. 이 자리에서 두사람은 두가지 사항에 합의했다.『첫째,북조선에 소련제 무기를 긴급히 추가제공할 필요성이 있다.김일성은 전군에 지급할 2∼3벌의 탄약풀세트 지원을 요청.둘째,김일성은 옹진반도 점령을 목표로한 국지전개시를 제의.옹진반도 점령시 38도선 방어선을 1백20㎞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추가 공세를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수 있다고 김은 강조』 슈티코프는 『모든 작전은 북조선군의 작전능력과 전반적인 정세파악을 확실히 한후에만 실행에 옮길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슈티코프대사는 8월27일 이 대화전문을 스탈린 앞으로 보냈다.그러나 슈티코프대사는 이 보고문에 남침계획이 매우 무모하다는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그는 『첫째,현재 한반도에 실제로 2국가가 존재하며 남한은 미국등 여러나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따라서 남침시 미국이 무기·탄약뿐아니라 병력을 직접 파병할 것임.둘째,미국이 소련에 대한 악선전의 기회로 활용할 것임.셋째,북조선군이 남측에 대해 확고한 군사우위 미확보.넷째,남조선은 강한 군·경찰군을 창설했음』등을 남침불가의 이유로 들었다.슈티코프대사는 대안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옹진반도 점령은 권할만함.그러나 남조선군의 반격능력이 강할지 모르고 그 경우 장기전이 될수있음』이라고 덧붙였다. ○소대사 “계획 무모하다” 슈티코프 대사가 본국휴가를 떠난 뒤 김일성은 대사대리인 툰킨공사를 만나 옹진반도 작전계획을 재차 설명한 것이다.툰킨 공사가 김의 이 요청을 스탈린에게 보고했고 스탈린이 소련 당정치국결정을 통해 전면남침은 물론 옹진반도 작전까지 금지시킨 것은 전편에서 이미 기술한 바있다. 당시 소련 당정치국의 남침불가 결정은 소련외무부,국방부가 북한군전력을 종합적으로 평가 비교해서 내린 결론이었다.대통령문서소에는 9월23일자로 그로미코 외무장관,불가닌 국방장관이 스탈린에게 제출한 이 정치국결정의 초안이 보관돼있다.정치국결정의 내용은 거의 이 초안과 일치한다.다만 스탈린이 결재과정에서 몇군데 흥미있는 손질을 한 대목이 눈에 띈다. 스탈린은 초안말미에 『…북조선은 남측의 무력공격개시시 이를 격퇴하고 북조선정부의 영도아래 조선통일을 이루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한다…』라고 쓴 부분을 만년필로 긋고 『남측이 도발할 경우 북조선은 이를 격퇴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상황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고쳐썼다.「무력통일」운운한 문구를 삭제한 것이다.그외에 북한의 무력증강 필요성이 언급된 부분들도 스탈린은 모두 그 표현을 완화하거나 삭제하는 등 끝까지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려했다.그러던 차에 앞서 기술한 김일성의 「만찬장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 옛 국립극장/“문화재로 지정 보존을”

    ◎문화예술계,대한투금 매각추진에 다양한 의견 제시/공연문화 산실… 정부차원서 매입해야/한전 부지와의 맞교환 주선도 바람직 대한투자금융이 15일 서울 명동의 옛국립극장(현 대한투자금융 사옥)의 철거를 1∼2년 유보하고,장기적으로 이 건물의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연극협회 정진수 이사장은 『현재까지 확인된 대한투금측의 신사옥 건설계획 유보나 건물매각 추진 등의 방침은 일단 여론의 관심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인상이 짙다』면서 『대한투금이 이 문제를 적당히 넘기지 말고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대응해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서울시 차원에서 대토형식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또 연극계의 한 관계자는 『문화체육부,서울시 등 관련부처에 옛 명동 국립극장의 문화재 지정을 의뢰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보존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며 문화유적지로서의 보존 자체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광복이후 우리 공연문화의 요람이 되어왓던 옛명동 국립극장을 문화재로 정하는 것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동숭동의 옛 서울 문리대 건물이나 고려대 본관,중앙고의 동·서관 드어이 이미 지난 81년 사적으로 지정돼 원형이 보족되고 있는 전례에 비춰볼때 오히려 늦은 감마저 있다는 것이다. 한편 문화계 일각에서는 옛 국립극장의 건물과 부지를 문화계의 모금활동을 통해 되사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대한투금측이 현 사옥을 매각한다하더라도 그 건물과 부지가 내무부 고시가로 6백억∼7백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이르고 있음을 감안할때 그 현실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와관련,옛 국립극장의 보존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활동방안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대표 박용구)은 지난달 25일 첫 모임을 가진데 이어 10여명의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추진위(위원장 유재천)를 구성,이를 실현시킬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고려대 국문과 서연호 교수(연극평론가)는 『민간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고가의 건물을 문화계 인사들의 힘만으로 매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옛 국립극장의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한만큼 정부가 긴 눈으로 보아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밖에 옛 국립극장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는 대한투금 사옥과 인근 한국전력 부속건물 부지와의 맞교환을 주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한투금은 지난 2월 이곳에 10층짜리 건물을 신축키로 결정,이미 설계작업까지 끝냈으나 문화단체와 시민들의 반발여론에 부딪쳐 당초 계획을 수정하게 됐다. 1934년에 건립된 옛 명동 국립극장은 57년이후 16년동안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극장으로 연극 무용 등 문화예술의 산실 역할을 해왔으며 73년 현재의 장충동 국립극장이 문을 연 다음부터 76년 9월까지는 예술극장으로 쓰여져 왔다. 대한투금은 지난 76년 총무처로부터 이 건물을 매입,지금까지 본점 사옥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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