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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평구 “눈썰매 타러 학교 가요”

    은평구 “눈썰매 타러 학교 가요”

    “엄마, 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방학과 추위로 대부분의 초등학교 운동장이 썰렁해진 가운데 오히려 등교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 학교들이 있다. 지난 4일 내린 폭설을 치우는 데 바쁜 와중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짜내 ‘깜짝 변신’을 시도한 서울 은평구 관내의 녹번초등학교와 연은초등학교가 그곳이다. 수십㎝ 넘게 쌓인 눈을 치우던 은평구청 직원들과 구민들은 밀어놓은 눈이 도로 가장자리에 산더미를 이루자 주변 학교운동장으로 눈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중 누군가가 “그냥 눈을 쌓아놓을 것이 아니라 쉬는 학교 운동장을 썰매장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구는 이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곧바로 시행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지난 6일부터 도로, 주택가 등 관내에 쌓인 눈을 녹번동 녹번초등학교와 응암동 연은초등학교로 퍼나르기 시작했다. 쌓인 눈을 평평하게 다지고 경사로를 만드는 작업을 거치니 학교 운동장은 순식간에 은백색의 썰매장으로 변신했다. 눈썰매 50개와 눈튜브 40개, 눈비닐포 100여개도 갖춰졌다. 사상 최악의 교통대란을 낳았던 이번 폭설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구는 하루 10명의 안전요원을 배치해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도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길에 내린 눈을 그대로 눈썰매장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구청 측이 강설상황을 조기에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호석 구 공원녹지과장은 “내리는 양을 감안해 염화칼슘을 살포하지 않고 밀어내기 기법으로 눈을 치웠기 때문에 아이들이 맘 놓고 놀아도 되는 깨끗한 눈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여기에 주변 근린공원에서 미세먼지가 적은 눈을 추가로 덧씌웠다.”고 설명했다. 은평구의 초등학교 눈썰매장은 눈이 녹을 때까지 계속 운영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재난뉴스 예방보도에 중점 뒀으면/이종혁 경희대 언론학 교수

    [옴부즈맨 칼럼] 재난뉴스 예방보도에 중점 뒀으면/이종혁 경희대 언론학 교수

    새해(1월5일) 신문 1면은 폭설 기사로 장식됐다. 서울 적설량이 신기록이었다니 그럴 만하다. 뉴스가치가 큰 소재라는 데 이견이 없었을 것이다. 언론학자 슈메이커의 ‘뉴스가치 모델’에 따르면, 일탈성(deviance)과 사회적 중요도(social significance)가 뉴스 가치를 결정하는 주요인이다. 이번 폭설은 과거와 달리 양이 엄청났고, 피해는 대부분 국민들에게 미쳤다. 뉴스 생산자 입장에서 1면감에 손색이 없다. 뉴스 수용자인 독자들은 아침에 신문 1면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또 눈 이야기야?”, “다 아는 내용인데 지겹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TV 뉴스를 통해 폭설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피해 상황, 교통 마비, 제설작업 등은 전날 TV 뉴스가 시간대마다 반복한 내용이었다. 인터넷으로 날씨 변화와 교통 상황을 시시각각 체크한 독자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심정적으로 어느 신문 기사의 제목대로 ‘눈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신문이 독자들이 이미 알고 지겨워하는 내용을 다시 제공한 셈이다. 신문 아닌 매체와 차별화된 내용이 없었다. 서울신문의 1월5일치 관련 기사를 보자. 1면을 포함한 3개면과 사설에서 폭설을 다뤘다. 피해 상황과 제설 작업을 소개하고, 서울시와 기상청의 무능력을 비판했다. 전날 9시 TV 뉴스 소재와 다름이 없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외국의 제설 시스템에 관한 기사였다. 대부분 기사가 피해 상황과 책임 규명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 기사는 폭설 예방과 대책을 다뤘다. 엔트만이란 언론학자는 뉴스가 사건을 보도할 때 사건의 성격 규명, 원인 해석, 도덕적 평가, 대책 제안 등의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폭설과 같은 재난 보도에선 피해 상황과 아울러 대책 제안이 매우 필요하다. TV·인터넷과 같은 실시간 매체가 피해 상황을 신속히 보도한다면, 신문은 심층보도로 대책을 제안하는 데에서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예방보도’에는 신문이 더 효율적이다. 예방보도는 재난 발생에 앞서 사전 점검하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전 예방보도 이외에 재난 직후 단기적 대책을 제안하는 2차 예방보도와 장기적 대책에 관한 사후 예방보도도 있다. 뉴스 형태로 일반 뉴스 이외에 심층보도와 캠페인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다시 신문 기사들을 살펴보자. 서울신문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 일간지들은 대책 제안에 소홀했다. 피해 상황을 다시 정리하고, 누구 탓인가를 논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교통 지옥은 서울시의 미숙한 대응 때문’, ‘도마에 오른 기상청 예보’, ‘사고 예방 미흡-관리 부실 땐 국가 배상’, ‘남 배려 안 하는 차가 교통대란 부추겼다’,…. 물론 폭설 피해의 책임자를 찾아내 개선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재난보도에서 책임자 규명은 시급한 일이 아니다. 피해 복구와 대책 마련에 전사회적 힘을 모으는 게 먼저다. 언론에는 부조리 고발뿐 아니라 사회 통합의 역할이 부여돼 있다. 재난과 같이 사회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서는 후자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 우리 언론의 재난 보도에서 또 지적돼 온 것이 선정적 보도다. 인간적 흥미라는 뉴스가치에 부합하는 기사를 찾다 보니, 특정 인물이나 기관을 영웅시하거나 희화화하는 경우가 있다. ‘경찰관 아저씨는 슈퍼맨(버스 뒤를 혼자 미는 경찰관)’, ‘폭설 녹인 작은 영웅들(중·고생 제설 봉사단)’, ‘강남 스키족(눈 쌓인 도로에서 스키 타는 사람들)’, ‘눈 치우다 하이킥(주민간 다툼)’, ‘양치기 소년된 기상청’,…. 독자에게 재미를 선사하려는 목적은 많은 국민들이 고생하는 폭설 기간 동안 잠시 접어둬도 괜찮을 듯하다.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도움이 되는 ‘심각한’ 기사에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 폭설에 대한 사전 예방 기사를 싣지 못한 언론이 재난을 희화화하려는 것은 무책임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누구 탓을 굳이 따지려 한다면, 언론 스스로도 책임자 리스트에 넣어야 할 것이다.
  • [Weekly Health Issue] (2) 뇌졸중

    [Weekly Health Issue] (2) 뇌졸중

    흔히 중풍으로 알려진 뇌졸중은 돌발적인 발생 양상이나 치명적인 후유증 탓에 ‘천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다른 병을 ‘걸렸다.’고 하는 것과 달리 ‘맞았다.’고 표현하곤 했다. 중년을 넘긴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뇌졸중에 공포감을 가져 뒷머리만 뻐근해도 “혹시….”하며 불안해 한다. 특히 겨울에는 더 그렇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 손상이 오고, 후유증으로 신체장애를 겪는 질환이다.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로 나뉘는데, 단일 장기 질환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다. 현재의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2030년에는 지금보다 3배나 많은 발병 추이가 예상된다. 고령화 사회 자체가 뇌졸중의 지뢰밭인 셈이다. 이런 뇌졸중에 대해 서울대병원 신경과 윤병우 교수를 통해 듣는다. ●뇌졸중의 중증도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뇌졸중 증상이 나타났다 곧 회복되는 경우를 일과성 뇌허혈발작이라고 한다. 이는 운이 좋은 경우지만 언제든 뇌졸중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뇌졸중은 발생 위치와 크기에 의해 중증도가 결정된다. 일부 대뇌 경색은 병변은 크지만 사진을 찍어봐야 알 수 있는 경우도 있고, 뇌간은 경미한 손상으로도 심한 마비나 의식장애를 겪을 수 있다. ●단계별 특이 증상은 무엇인가? 뇌졸중은 병변 부위에 따라 증상이 다양한데, 특히 흔한 증상은 편측마비·언어장애·시각 및 시야장애·어지럼증 및 보행장애·심한 두통 등이다. 이런 증상의 특성은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증상인 편측마비는 한쪽 팔다리의 힘이 빠져 움직이기 어렵거나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대뇌에서 내려오는 운동신경은 중간에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뇌의 이상은 신체 반대쪽의 마비를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말을 못하거나, 말을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고, 상황과 다른 엉뚱한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언어장애는 오른쪽 편측마비와 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 눈 앞의 물상이 잘 안 보일 수도 있는데, 이 때는 손으로 양쪽 눈을 번갈아 가려봐 양쪽이 똑같이 잘 안 보이면 뇌의 문제, 한쪽 눈만 잘 안 보이면 눈의 문제로 보면 된다. 그런가 하면 물상이 둘로 보이기도 한다. 또 갑자기 주위가 뱅뱅 도는 것처럼 어지럽거나, 걸을 때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한 쪽으로 쓰러지려는 경우, 팔다리에 힘은 있는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거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심한 두통이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다. ●한국인이 경계해야 할 원인은? 고혈압과 흡연·당뇨병·심장병·목동맥의 동맥경화증·고지혈증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가장 흔하고 위험한 요인은 고혈압이다. 흡연은 동맥에 혈전을 형성시키는 급성 효과와 동맥경화를 촉진하는 만성 효과를 동시에 보인다. ●뇌졸중의 임상적 경과를 설명해 달라 증상이 돌연 나타나는 뇌졸중의 증상은 발병 당시에 가장 심하다. 그러나 일부는 발병 수 일 후에 증상이 심해지기도 한다. 이후 대개는 증상이 3∼6개월에 걸쳐 서서히 호전돼 1년 후까지 좋아지기도 한다. 부위 별로는 다리의 마비가 먼저 좋아지고 손·손가락의 증상이 가장 늦게 개선된다. ●빈발하는 계층이 따로 있는가? 노인성 질환인 뇌졸중은 60세 이상의 고령자에게 많으나 고혈압·당뇨병을 가졌거나 흡연으로 동맥경화증이 다른 사람보다 빨리 온 젊은 층도 겪을 수 있다. 물론 선천성 심장병이나 혈액 이상, 모야모야병도 젊은 층의 뇌졸중 원인이 될 수 있다. ●자가진단법이 가능한가? 적어도 뇌졸중에 관한 한 자가진단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섣불리 자가진단을 시도하다 귀중한 치료 시간을 소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상이 오면 즉시 큰 병원 응급실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 달라 치료는 원인과 발생시간 등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약물요법인 혈전용해요법은 급성기 뇌졸중에 효과가 있으나 뇌출혈이 아니어야 하고, 발병 3시간 내에 약물이 투여돼야 하며, 뇌출혈 우려가 있어 실제 적용되는 환자는 많지 않다. 이런 급성기에는 악화나 재발을 막기 위해 항혈소판제인 아스피린이 많이 사용된다. 물론 이보다 효과적인 약물도 있으나 값이 비싸다. 또 심방세동처럼 심장에 문제가 있을 때는 뇌졸중 재발을 막기 위해 항응고제를 사용하는데, 이는 출혈 우려가 있어 용량 조절에 주의해야 한다. 동맥경화증으로 목동맥 협착이 심한 경우라면 수술이나 혈관성형술도 고려하는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항혈소판제를 사용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드물지만 뇌 부위의 동맥을 두피 동맥과 연결해 새 혈관을 만들어 주거나, 병변이 너무 커 뇌를 심하게 압박하는 급성 뇌경색은 감압수술을 하기도 한다. ●주요 치료법의 한계와 문제점은? 약물이나 수술로 뇌졸중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평생 복용할 약물인 만큼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또 뇌졸중은 노인성 질환이어서 고혈압·심장병·당뇨병·신부전·말초동맥질환 등과 동반하는 사례가 흔하다. 당연히 먹는 약의 종류가 많아져 치료법이 상충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점은 환자 자신의 철저한 자기관리다. 금연과 혈압·혈당관리가 핵심이고, 고지혈증도 잘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꾸준한 운동과 바른 식습관이 중요하다.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욕창·관절구축·폐렴·요로감염과 심부정맥혈전증 등이 흔한 후유증인데, 환자의 증상이 안정되면 가능한 한 빨리 재활치료를 받아야 증상도 빨리 호전되고, 후유증도 줄일 수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세종시 민관합동위 수정안 마련] 민관위원들 회의시간 넘기며 끝까지 공방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 ‘세종시 발전방안을 도출하라.’는 특명을 받고 출범한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가 수정안이 완성된 8일로 사실상 활동을 종료했다. 23명의 민관위원들은 이날 8차 회의에서 수정안의 막판 조율을 위해 정해진 회의 시간을 넘겨 점심시간까지 토론을 이어가는 등 마지막까지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모두(冒頭) 발언을 통해 “세종시의 바람직한 발전상은 교육과학이 어우러진 경제과학도시”라면서 “오늘 세종시 발전방안 초안이 보고되는데 가급적 통일된 의견을 도출해 주길 기대한다.”고 협조를 당부했지만, 완강한 원안 고수론자들의 주장은 끝내 꺾이지 않았다. ● 충청권위원 2명만 원안 당위성 주장 민관위 내 원안 고수론자는 강용식(전 행복도시자문위원장) 한밭대 명예총장과 김광석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연기군지역협회장 등 2명이다. 김 회장은 “21명(세종시 수정안 찬성)과 2명으로 나뉘어진 위원회에서 대세가 세종시 수정이다 보니 아무리 설명을 해도 너무 힘들었다.”고 그간의 힘들었던 심정을 토로했다. 회의가 처음 열린 날부터 지금까지 9부2처2청의 행정기관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원안의 당위성을 줄곧 주장한 강 총장은 세종시 수정안 최종안을 보고받은 이날 아예 기자실을 찾았다. 그는 “2004년 옛 재정경제부의 ‘신행정수도 건설 파급효과’에 따르면 생산성이 178조원에 이르는 등 정권별로 보는 관점이 크게 차이가 난다.”면서 “세종시는 원안대로 모든 기관들이 지방으로 과감히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민관합동위는 기존 세종시 계획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기업·연구기관·대학 등 부문별 투자 유치 상황을 점검, 토론했다. 여기에는 국토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용역 결과들도 속속 보고됐다. 특히 최대 쟁점인 중앙행정기관 분산과 관련, 연간 3조원의 행정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결과가 나오자 위원회는 얼굴을 붉힐 정도의 치열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 유사사례 독일 베를린 등 탐방 급기야 지난 연말 성탄절이 낀 주중에 위원들은 중앙행정기관 이전 유사사례인 독일의 문제점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베를린·본·다름슈타트로 떠났다. 또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의 필요성을 최종 점검하기 위해 세종시 인근의 대덕연구단지를 시찰했다. 민관위원회는 11일 오전 10시 정 총리의 수정안 발표에 앞서 마지막으로 모여 형식적인 회의를 가진 뒤 활동을 마감한다. 해단식 없이 조용히 흩어진다. 헌법재판소 결정처럼 원안 고수론자 2명의 소수 의견도 실어주되 다수 의견을 최종안으로 발표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부처 이전 백지화와 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이라는 수정안 컨셉트는 민관위 회의 초반에 확정됐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클릭하면 교통사고 과실비율 한눈에

    #사례1 눈이 많이 내려 도로가 얼어붙었다. A씨의 차가 미끄러지면서 마주 오던 B씨의 차와 충돌했다. 중앙선이 없는 골목길이지만, A씨의 차량은 가상의 중앙선을 일부 침범했다. #사례2 편도 3차선 도로의 2차로를 달리던 C씨는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핸들을 꺾었다. 이 때 3차로를 주행하던 D씨 차의 운전석 앞부분과 충돌하고 말았다. #사례3 약속시간에 늦은 E씨는 교차로 2차선에서 서둘러 좌회전을 시도했다. 1차선에서 좌회전을 하던 F씨 차량을 앞지르려는 순간 E씨 차량 운전석 뒷범퍼와 F씨 차량 조수석 앞범퍼가 부딪쳤다.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현장에서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목청을 높이기 일쑤다. 하지만 사고 유형에 따라 과실이 얼마나 되는지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등장했다. 더 이상 목소리가 작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손해보험협회와 구상금분쟁심의위원회는 5일 자동차 사고의 과실 비율을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www.knia.or.kr)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고가 났을 때 자기 차의 과실 여부나 과실 비율을 확인하려면 ‘간편검색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사고발생 장소, 내 차의 진행 방향, 상대방 차의 진행 방향 등을 차례로 입력하면 과실 비율뿐 아니라 시뮬레이션 그림 도표도 제공한다. 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면 ‘과실비율 심의결정사례 검색 서비스’를 활용하면 된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인터넷 통신이 가능한 휴대전화로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면서 “다만 검색된 과실 비율은 기본적인 것으로 도로 사정 등 실제 여건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에 제시했던 사례별 과실 비율은 다음과 같다. #사례1 빙판길에서는 가해·피해 차량 모두 상당한 주의 의무가 요구되기 때문에 A씨의 과실은 60%, B씨의 과실은 40%다. #사례2 C씨는 우회전할 때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에 붙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긴 만큼 과실 비율이 80%다. D씨도 정상 주행 중이라고 하더라도 충돌을 피하기 위한 주의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20%의 책임이 있다. #사례3 E씨에게는 차선을 정확히 따르지 않은 책임이 있으므로 70%의 과실 책임이 주어지고 F씨도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점을 고려해 30%를 책임져야 한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밴쿠버 별을 향해 뛴다] (1) 봅슬레이 4인승 첫 동계올림픽 출전권 딴 강광배 감독 겸 선수

    [밴쿠버 별을 향해 뛴다] (1) 봅슬레이 4인승 첫 동계올림픽 출전권 딴 강광배 감독 겸 선수

    “이제 다시 시작이죠. 허허.” 동네 쌀집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을 지녔다. 말도 느릿느릿했다. 하지만 경기장에 들어서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그는 놀랍게도 100분의 1초로 승부가 결정되는 썰매 종목의 개척자다. 세계 최초로 루지·스켈레톤·봅슬레이 세 종목에서 모두 올림픽에 출전한 대기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봅슬레이 4인승에서 한국 사상 첫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강광배(37·강원도청) 감독 겸 선수를 인천 국제공항에서 만났다. ●두번 무릎 인대 수술했지만 결국 재기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저는 원래 엘리트체육인이 아니에요. 어렸을 때 태권도를 좀 했죠.”라며 쑥스러워한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전주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강광배는 대학시절 스키선수 겸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 역시 남들처럼 스키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그가 스키만을 고집했다면 주목받기는 힘들었을 터. 하지만 스키를 계속할 수 없게 되면서 그의 인생도 180도 바뀌었다. 1994년 스키 지도자로 활동하던 중 왼쪽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것. 결국 장애 5급 판정까지 받았다. 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워가던 그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재활치료하던 도중 우연찮게 루지라는 종목을 알게 됐어요. 그게 인생의 전환점이었죠.” 1995년 당시 대한체육회에서 실시한 루지 강습회에서 그는 30명 중 2등으로 골인, 한줄기 희망의 빛을 봤다. 누워서 타기 때문에 부상도 그리 문제 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까지 열심히 루지를 연습했고, 결국 생애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영광을 안았다. 혹독한 시련은 그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척자로 탈바꿈시켰다. ●루지에서 스켈레톤… 다시 봅슬레이로 1998년 9월 그는 또다른 도전을 위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다쳤던 무릎인대를 또 다쳐 두번째로 수술대에 올랐다. 국내 루지연맹에서는 매정하게 선수자격을 박탈했다. “선수생활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죽어라고 공부만 했죠.” 하지만 그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지도교수의 소개로 마리오 구켄베르크라는 스켈레톤 선수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스켈레톤을 권유해서 종목을 또 바꾸게 됐어요.” 강광배는 스켈레톤의 매력에 푹 빠졌다. 1999년 오스트리아 대학선수권에서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종목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국가대표로 뛸 수밖에 없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2000년 한국에 스켈레톤을 도입했다. 결국 2003년 10월에는 봅슬레이-스켈레톤 팀을 창단하는데 성공한다. 선수는 단 2명이었지만, 2002년 솔트레이크·2006년 토리노올림픽에 모두 스켈레톤으로 출전하는 쾌거를 이뤘다. ●썰매 종목의 기틀 세우는 게 목표 그는 토리노올림픽 이후 봅슬레이로 종목을 또다시 바꿨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계 종목에 피겨나 쇼트트랙이 아닌 썰매 종목도 있다는 걸 널리 알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후배들에게 빨리 자리를 내줘야죠.” 그가 썰매 종목의 다변화를 꾀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다. 그는 2002년부터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 전문위원 활동도 겸하고 있다. “저의 최종 목표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예요. 그래야 후배들이 좋은 여건에서 운동할 수 있으니까요.” 지난달 30일 그는 여장을 풀기가 무섭게 다시 짐을 꾸려 오는 13~16일 유럽컵 7차대회가 열리는 이탈리아 토리노로 떠났다. 봅슬레이 2인승 올림픽 출전권이 남아 있기 때문. 썰매 종목의 개척자 강광배의 멈출 줄 모르는 도전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글 사진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과도한 얼굴 주름 성형수술 받은 개

    주름 없는 팽팽한 얼굴을 원하는 마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 얼굴과 몸에 주름이 많기로 유명한 샤페이(Shar pei) 종 개 한마리가 축 처진 ‘매력 주름’을 없애는 리프팅 수술을 받아 화제가 됐다. 영국에 사는 로날드는 ‘과도한 주름’ 때문에 눈꺼풀이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는 ‘선천적 안검내반증’을 앓았다. 동물보호협회인 RSPCA는 축 처진 피부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울 뿐 아니라, 눈꺼풀이 눈을 찔러 실명할 위기까지 처한 로날드를 위해 ‘눈,얼굴 리프팅’ 수술을 받게 하기로 결정했다. 로날드가 받은 리프팅 수술은 눈 주위와 이마, 입 주위 등 심하게 처지고 주름진 피부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많은 중년 여성들이 받는 미용성형수술과 비슷하다. RSPCA의 한 관계자는 “로날드는 90여 분에 걸친 수술을 잘 받고, 매우 양호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피부 리프팅 수술을 받은 동물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로날드가 영국의 동물전문병원에서 받은 리프팅 수술비용은 115만원 상당으로, 사람이 받는 미용수술 비용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 개를 보호하고 있는 RSPCA는 “눈 건강이 매우 호전돼 앞을 보는데 전혀 이상이 없다.”면서 “로날드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폭설대란] 땅위·땅속·하늘·바닷길 올스톱… “걷는게 더 빨라”

    [폭설대란] 땅위·땅속·하늘·바닷길 올스톱… “걷는게 더 빨라”

    ‘아수라장’이었다. 2010년 첫 출근 날인 4일 아침 서울에 폭설이 내리면서 시내 전역에서 교통대란이 벌어졌다. 서울시의 느림보 제설에 하루종일 교통이 마비됐다. 차량들은 도로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했고,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 마저 고장나거나 지연되는 바람에 시민들은 무더기 지각 사태를 빚었다. 이날 오전 5시부터 시작된 눈발이 점점 굵어지면서 서울시내 주요 간선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돌변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오전 5시30분 삼청터널길을 시작으로 인왕산길과 북악산길, 개운산길, 은평터널길, 후암동길, 당고개길, 남태령고개, 이수고가 등 서울시내 도로 9곳의 통행을 통제했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는 오전 9시 넘어서도 전 구간에서 지·정체가 이어졌고 동부간선도로와 북부간선도로, 내부순환로 등 주요 간선도로에서는 차량들이 고립되다시피 했다. 을지로와 퇴계로 등 도심 주요 도로 역시 제설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차량이 거북이 운행을 했다. 광화문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5시부터 제설차량 3대를 동원해 눈을 치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오전 8시40분부터 북부도로교통사업소가 차량 7대와 제설인원 85명 전원을 투입했다. 염화칼슘을 64t이나 퍼부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고갯길이 많은 강남 테헤란로도 교통지옥으로 변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 삼성역 방향으로 차량들이 잇달아 고갯길에서 미끄러져 다른 차량과 충돌하거나 중간에서 멈춰섰다.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영자들이 오후 1시로 된 입소시간을 넘기자, 국방부는 ‘오늘 중에만 들어오면 문제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기도 했다. 도심에서 스키를 타는 등 진풍경도 연출됐다. 오후 1시30분쯤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뒷길에서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스키를 타고 광화문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발견됐다. 서울 시내 도로가 마비상태에 빠지고 지하철로 시민들이 모이자 일부 직장인들은 퇴근을 미루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김지현(22·여)씨는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남자 동료들은 퇴근을 아예 포기하고 찜질방에서 밤을 새우기로 결정했다.”면서 “나도 신촌으로 가는 퇴근길이 혼잡할 것 같아 강남역 주변에서 동료들과 서너시간 회식 자리를 갖고 늦게 퇴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늘길도 끊겼다. 김포공항에서 오전에 출발하는 국내선 항공편 운항은 완전히 마비됐다. 김포공항 활주로에 20㎝ 넘는 눈이 쌓여 첫 비행기인 오전 6시30분발 제주행 대한항공 여객기를 비롯, 오후 3시까지 출발 예정이었던 100여편이 결항됐다. 김포공항에서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된 것은 2001년 1월 폭설 이후 9년 만이다. 집중적인 제설작업으로 운항은 오후 3시30분에야 부분 재개됐다. 인천공항에서도 오전까지 여객기 20여편이 결항되고, 100여편의 운항이 지연돼 승객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오후 6시 현재 KTX 67개 열차와 여객열차 75개, 수도권 전철 52개 열차가 3분에서 1시간씩 지연운행됐다. 각종 사고도 폭증했다. 오전 11시12분쯤 노원구 상계3동 배드민턴장 지붕의 눈을 치우던 육모(54)씨가 7m 높이의 지붕에서 미끄러져 추락사했다. 삼성화재에 접수된 긴급출동 요청 전화도 1만 3000여건으로 눈이 온 지난달 28일보다 10%가량 늘었다. 군 병력도 제설작업에 동원됐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등 6개 부대가 서울 남태령과 청량리, 강남, 남양주 덕릉고개 일대에 병력 5000여명과 제설차량 80여대를 투입했다. 의정부 우체국 등에서는 우편물 발송이 중단됐고, 한진택배는 물품배송을 전면 중단했다. 김병철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정부 “中企 미래보고 대출” 은행 “객관성 떨어져 무리”

    정부 “中企 미래보고 대출” 은행 “객관성 떨어져 무리”

    향후 성장 가능성보다는 당장의 재무상태에만 의존하는 현재의 중소기업 대출 관행에 대해 정부가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한 가운데 현실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 성장성·기술력 등 평가 유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중소기업 지원책으로 “담보대출 심사 때 담보 같은 재무적 요인에만 의존하지 말고 기업의 성장성, 기술력 등 비(非) 재무적 요인도 담보가치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은행권은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업의 잠재능력을 찾아 돈을 빌려주라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 적용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작은 기업일수록 잠재력이나 성장성을 제대로 전망하기 힘들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든다. 어떤 기업이 유망한 기술을 가졌는지, 경영진의 평판은 어떤지 등을 따져봐야 하는데 어느것 하나 계량화된 수치로 뽑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심사역이 현장을 방문해 점수를 매기긴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100%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도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심사 때 경영진의 능력과 평판, 기업에 대한 업계의 평판, 영업망 구축 정도 등 비 재무적 요인을 40~50%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대출허용 여부는 자본, 부채, 영업이익 등 재무적 요인에서 갈린다. 비 재무적 요인에 의존해 대출을 했다가는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은행권은 주장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비 재무적 요인을 평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부분 재무 평가에서 결정돼 왔다.”면서 “성장성이나 기술력을 평가할 마땅한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대출을 하라는 것은 눈 감고 대출하라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했다. 시중은행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도 비 재무적 요인을 마냥 확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은행들이 내부 평가모형으로 대출 심사를 한 뒤 검증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무적 평가와 비 재무적 평가간에 균형이 맞는다.”면서 “중소기업의 부실채권 비율이 지난해 9월 현재 2.38%에 이르는 상황에서 기업의 잠재력만 보고 대출을 했다가는 부실률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대출문턱 높아 제도개선 시급 그러나 이런 은행권의 주장은 대출심사가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고 부실 대출의 위험부담을 낮추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중기 대출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보증기관들과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겠지만 은행도 공익을 위해 비 재무적인 기준을 늘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은행마다 중기 대출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서 없이는 여전히 중소기업들은 대출받기 힘든 것이 현실 아니냐.”고 말했다. 이미 일부에서는 비 재무적 요인에 대한 평가를 확대하고 있다. 신보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기존 평가 문항에 비 재무적 항목인 경영능력 검토표(50문항), 미래성장성 심사표(60문항)를 합쳐 보증 심사에 반영하고 있다. 기보도 전체 42가지 기준으로 보증 여부를 결정하지만 이중 재무 항목은 10% 미만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폭설대란] 지구촌 폭설 몸살 주요국 제설 시스템은

    │베이징·도쿄·워싱턴 박홍환·박홍기·김균미특파원│기후변화로 인한 폭설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주요국들도 대부분 올 겨울 예상치 못한 폭설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갖가지 제설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중국 지난 3일 59년만에 최대 폭설이 내린 베이징은 눈이 그친 4일에도 여파가 지속됐다. 전날 790여개 항공편이 취소된 서우두(首都)공항에서는 이날도 강풍과 한파 때문에 연착과 지연운항이 속출했다. 베이징과 주변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대부분은 결빙 때문에 폐쇄됐고, 시내버스 47개 노선도 운행이 중단됐다. 대응은 신속했다. 베이징과 톈진의 경우, 초·중학교 임시휴교를 전날 결정해 비상연락망과 언론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신속히 전달했고, 각급 공공기관 및 회사도 출퇴근 시간을 신축적으로 조정했다. 새해 첫 출근에 나서는 시민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2만대의 시내버스를 베이징 전역에 투입했다. 베이징은 전통적으로 눈이 적어 제설장비를 많이 갖추지 않기 때문에 전날 내린 눈은 여전히 주요 도로상에 그대로 쌓여 있다. 다만 지역별 주민 조직을 통해 제설을 독려, 이날 새벽부터 대규모 인원이 동원돼 제설작업을 펼치고 있다. 공안부도 2개의 전담 조직을 편성, 제설작업과 교통소통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일본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홋카이도 현의 현청소재지인 삿포로는 눈속에서의 생활이 일상화돼 있다. 지난 3일까지 눈이 내린 탓에 도로는 눈에 덮인 빙판이나 마찬가지다. 차선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차량의 소통은 원활하다. 모든 차량들은 스노 타이어를 장착하고 있다. 삿포로시의 지난해 제설 예산은 143억엔(약 1787억 5000만원)이었다. 2007년의 145억엔에 비해 다소 줄었다. 시의 10개구(區)는 다시 39개 구역으로 나눠 대부분 민간에 위탁, 제설의 책임을 맡기고 있다. 구역별 제설센터는 24시간 가동된다. 적설량이 10㎝면 제설차가 출동한다. 눈이 워낙 많이 내리기 때문에 도로면이 보이도록 치우는 게 불가능하다. 대신 수시로 제설 작업이 실시된다. 삿포로시청의 눈대책실 직원인 나리사와(36)는 “시 관할에서 해마다 겨울에 눈을 치우는 데 동원되는 차량이 1000대 가량, 인원도 3000명에 달한다.”면서 “도로의 커브가 심한 곳이나 사고가 많이 나는 곳, 지하철 및 기차역 앞, 버스 정거장 등에는 도로 건설 때 아예 눈을 녹이는 열선으로 불리는 ‘융설(融雪) 파이프’를 깔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제설 장비도 눈을 치우는 차량, 도로면을 고르는 차량, 치운 눈을 운반하는 차량 등 다양하다. 삿포로시에만 무려 80곳의 눈퇴적장을 갖추고 있다. ●미국 미국에도 올 겨울은 초입부터 큰 눈이 내려 예사롭지 않은 겨울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18~19일 워싱턴과 버지니아, 메릴랜드 등 미 동부 일대에 50㎝에 가까운 폭설이 내려 학교들이 앞당겨 겨울방학을 하고 연방정부가 하루 쉬었다. 지방 정부에 따라 제설작업 원칙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워싱턴시 정부와 버지니아, 메릴랜드 주정부는 우선적으로 폭설이나 기온 하강으로 도로가 얼 가능성이 높다는 기상예보가 나오면 최대 24시간 전부터 결빙 우려가 큰 지역과 도로들에 미리 염화칼슘을 뿌리는 선제대응으로 결빙을 막는다. 주간 고속도로와 고속도로 진입로, 다리 등이 대상이다. 버지니아 주의 경우 눈이 2.5~5㎝ 정도 쌓이면 보유하고 있는 1700여대의 제설장비를 총동원해 도로의 눈을 치우기 시작한다. 메릴랜드 주의 경우 도로 상황을 알려주는 TV스크린과 도로에 설치된 센서, 관련 부서들로부터 제공되는 정보 등을 취합해 제설장비와 염화칼슘을 실은 트럭들을 고속도로와 주요도로, 간선도로 순으로 투입해 제설작업을 한다. 미국에서는 주민들이 자기 집앞 눈을 치우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메릴랜드 주는 눈이 그친 뒤 24시간 내에 주변 도로와 인도의 눈을 치우지 않으면 50달러의 벌금을 물린다. kmkim@seoul.co.kr
  •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할머니가 사라졌다. 노인정과 공판장을 지나 경찰서로 뛰어가던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뭐라고? 할머니가, 어디? 엄마, 잘 안 들려요! 모퉁이를 돌아서자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얼결에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칸막이를 닫았다. 어느새 전화가 끊어져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 전부터 기숙사에 와 잔소리를 해대는 팀장과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쳐 오후 두 시가 다 되도록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내친김에 변기 위에 걸터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곧 리허설을 시작하겠다는 팀장의 목소리였다. 그건 안 됩니다. 코끼리들 상태가 좋질 않아요. 오늘은 무조건 쉬게 해야 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팀장은 무전기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오라고 했지만 당장은 가기 싫었다. 무전기의 전원을 끄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디 가셨다는 거지? 몸도 안 좋으시면서.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삼촌의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울고 있던 가족들이 황망히 수골실로 내달렸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삼촌의 유골은 대리석 탁자 위에 새카맣게 탄 못들과 뒤엉켜 있었다. ‘냉각’을 거쳤다고는 하나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유골이었다. 할머니가 탁자 모서리에 가슴을 짓찧었다. 망연히 서 있던 아버지가 서둘러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작은 뼛조각 하나를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탁자 옆에 서 있던 나도 얼른 새카맣게 탄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도 못 본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고모들은 아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내내 울음을 참던 아버지도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못을 내 몸에 박아두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쥐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공항에서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를 데리러 온 사촌 동생의 차를 탈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도 어쩐지 집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례식장 앞에서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둘째 고모가 내 몫의 상복을 내밀었다. 장례식장 안팎에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은 삼촌이 왜 죽었을까 답답해했고 삼촌의 동료와 친구들은 경찰서를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이라도 불러 알아볼 수 없을까? 사촌 동생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삼촌의 방에 널브러진 술병들, 불에 탄 이부자리, 종류가 다른 담배꽁초들. 어떤 추측은 가능할 테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삼촌은 각기 다른 이유들로 죽고 또 죽었다. 효원 장례식장 국화실에 놓인 영정사진 속 삼촌은 너무나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릎에 올려놓은 상복이 자꾸 무겁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삼촌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서 삼촌의 시신을 보았다는데도. 거의 녹아내린 새카만 못과 유골을 분리하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뼈가 상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그만 잠에서 좀 깨어나라고 흔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나는 어쩌려고 못을 집어든 것일까. 할머니가 두 주먹을 옹골차게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덩달아 나도 주먹에 힘을 주었다. 내 손이 못과 함께 타들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원내 방송이 들려왔다. 잠깐 눈만 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빨리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숫자를 거꾸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득달같이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달라는 방송은 계속 되었다. 운영실이 가까워질수록 방송이 더 자주 들려왔고, 느려터진 두 발은 점점 더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도착하기만 하면 저 공손한 팀장의 말투는 야수로 변해 나에게 돌진할 것이었다. 그때 가로수 사이로 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색 기지바지와 연두색 스웨터, 복고풍의 파마머리까지. 혹시 할머니인가 싶어 가던 방향을 바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뒤돌아섰다. 팀장이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가 창문 쪽으로 날아갔고, 내 가슴팍에 내리꽂힌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원내 방송 담당 아나운서가 시디 데크를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팀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악단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악단장의 발치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나비넥타이가 떨어져 있었다. 기어이 팀장과 한바탕 한 것 같았다. 오전에 병원으로 실려 간 러시아 무용수는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하혈이 심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악단장과 팀장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더듬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러시아 말을 할 줄 알았던 내가 그 ‘중요한’ 시기에 사라졌다는 것이 팀장이 화를 내는 이유였다. 앞으로 바짝 다가온 팀장의 손이 내 뺨을 향해 날아왔다. 그때 태국인 조련사 푸앙이 운영실 안으로 들어왔다. 푸앙은 코끼리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퍼레이드를 취소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코끼리의 설사 따위는 팀장에게 먹혀들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나는 푸앙의 손을 잡아끌고 코끼리 우리로 갔다. 쏘냐는 계속 설사를 했고, 아프리카 산 일 년 생 코끼리 튀라는 쏘냐의 엉덩이 쪽에 대가리를 박고 누워 있었다. 제때 검사를 하며 건강을 돌보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생과는 달리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그래서 예방 접종, 먹이, 변의 상태 등을 확인하여 제때 사료 혹은 건초 더미를 바꾸어 주는 것들은 무척이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팀장은 번번이 동물원의 재정 상태를 운운하며 우리가 올리는 건의사항들을 묵살했다. 이하설, 오늘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너부터 자를 줄 알아!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팀장님, 직접 오셔서 코끼리들을 살펴보시란 말이에요! 무조건 데리고 나가는 일이 능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뭐야? 푸앙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코끼리 나가지 마, 나 죽어. 푸앙,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나한테 제발 좀 이러지 마! 그러나 푸앙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삼촌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내가 아는 한 삼촌은 아픈 동물은 절대로 퍼레이드에 내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국인 조련사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고, 윗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선에 맞추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못을 만졌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울고 있는 푸앙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오늘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퍼레이드의 리허설이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를 나온 동물들의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한 달 전부터 신문 및 지역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테마랜드의 혁신을 위해 팀장이 삼 개월 넘게 심혈을 기울인 행사였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삼촌은 일급 코끼리 조련사이자 동물 쇼의 사회자였다. 공휴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기 한 달 전이면 삼촌의 얼굴이 실린 포스터가 동네 곳곳에 나붙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매일 테마 랜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또 어떤 쇼가 진행 중인지 보도해 주었다. 삼촌은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 나도 삼촌에게 꽃을 건네는 어린이 중 한 명으로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었다. 십 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나도 테마 랜드에 조련사 보조로 들어왔다. 그러다 조련사가 되었지만 그 삼촌에 그 조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내내 업무에 허덕이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기에만 급급한 나날이었다. 삼촌처럼 되기를 원했지만 그를 뛰어넘을 재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물 구입 차 태국과 러시아에 출장을 간 사이 삼촌은 직원 기숙사 방문 손잡이에 목을 맸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삼촌의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가 지난 뒤 실신한 채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실려 왔다. 어린이 날 행사를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바쁘게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악단장과 팀장 사이에 생긴 일들을 조율하고 동물원 곳곳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별 탈 없이 생활을 했다는 진술들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바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장례식 도중, 나는 삼촌이 행사를 진행할 때 입던 붉은색 조련복을 챙겨두었다. 팀장은 동물원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사육사들이 동물 관리를 잘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물 구입의 명목으로 예산을 타갔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단란주점에서 여자애들과 놀아났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날에는 실내 경마장에서 누군가와 게임을 했다는 말도 들렸다. 건의서를 제출하면 가지고 있는 동물 관리나 잘하라며 번번이 우리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동물이 죽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후 사체처리비로 외유를 떠났다. 이사장이 바뀌고 줄을 잘 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악단의 인원이 대폭 감소되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꼬투리를 잡아 악단장의 연봉도 삼십 퍼센트나 감봉시켰다. 대부분이 계약직인 연주자들은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었다. 곧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동물원을 떠나는 연주자들이 늘자 참다못한 악단장이 팀장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악단장은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소주를 마시고, 매일 두 갑의 담배를 피웠다. 테마랜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든 짐승들과 관리되지 않은 채 잡풀이 번다한 식물원, 날만 흐리면 전기가 오르는 범퍼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놀이기구만 모아 놓은 부상 랜드였다. 사육조장에게선 늘 술 냄새가 났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이유로, 날이 더우면 덥다는 이유로, 동물들이 발정이 나면 수컷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늘 술을 마셨다. 나도 간간이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곤 했지만 어쩐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는 술만 취하면 내게 삼촌의 이야기를 하려고 들었다. 삼촌의 성격과 그와의 관계, 동물들을 아끼던 마음, 은밀하게 나누곤 했던 농담들. 하지만 나도 다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반쯤 마신 매실 주스에 소주를 타먹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그는 코끼리 우리를 나오면서 빈 매실 주스 병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없어진 할머니를 이곳에 있는 내가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엄마,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요, 지금 좀 바빠!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조장님, 홍학 우리에 고양이가 들어와 새끼들을 물어뜯고 난동을 부렸어요. 뭐라고? 홍학 한 마리가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알았어, 곧 갈게. 안 그래도 행사 준비 때문에 신경이 무척 곤두서 있는 홍학무리였다. 허겁지겁 바쁘게 뛰어가다 보니 남색 기지바지가 또 눈에 띄었다. 오늘은 동물원에 남색 기지바지가 유난히 많았다. 그 바지들은 여기서도 나타났고 저기로도 지나갔다. 동물원에 온 할머니들은 대부분 남색 기지바지 혹은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두들 엇비슷한 파마머리를 한 채 손차양으로 햇빛을 가리고 느릿느릿 걷거나 그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납골당은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치고 있는 공원을 지나 한참 더 올라가는 산 중턱의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적한 공터인 줄 알았던 공원도 지나가며 살펴보니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었다. 그물이 벗겨진 하나밖에 없는 축구 골대, 녹슨 시소, 줄 끊어진 그네. 곳곳에 놓인 페인트칠이 벗겨진 벤치와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 공원을 지나 한참을 걸었는데도 납골당이 나오질 않아 잘못 찾았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따름이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산길을 따라 삼십여 분쯤 더 걸어가다 보니 자그마한 분지 위에 지어 놓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곧장 유골 안치실로 들어갔다. 삼촌의 위패에 쓰여 있는 이름이 낯설었다. 이선빈이 아닌 고(故) 이선빈은 내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수학공식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저쪽 세계의 풀 수 없는 문제 같은 것인가. 돌아갔으나, 되돌아 올 수는 없다는 낙인? 오늘만큼은 할머니가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퍽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귀신같이 아들 있는 곳을 찾아냈다. 가져간 술과 포를 놓고 준비되어 있는 향을 피웠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에 혹시나 싶어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대꾼한 두 눈을 슴벅이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계시라 해도 한사코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술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잔을 쥐고 향 위에 세 번을 돌린 후 상에 올렸다. 두 뺨이 경련이 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옆 칸에서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담배에 불을 붙여 제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분향실의 향내에 짓눌려 있던 나는 생담배 타는 매캐한 냄새가 차라리 반가웠다. 우리도 한 대 필까, 삼촌? 부검 결과 별다른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악단장과 몇몇의 연주자들, 팀장에 대한 조사가 차례대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알지 못하던 우울증이 새로 생겨났으며,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알코올 중독이란 말이 덧붙여졌다. 추측성 발언들이었지만 조서에 쓰인 것들은 그대로 사인(死因)이 되었다. 분개한 가족들이 사건 수사를 계속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바로 장례 일정이 잡혔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발인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발인 전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영안실로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납골당 쪽을 다시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저쪽의 삼촌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어깨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듬성듬성하던 머리칼은 그 사이 더 빠졌는지 머릿속이 훤히 다 보일 지경이었다. 올라오는 길을 잘 찾았던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을 헷갈렸다. 납골당에 들어서는 길은 우리가 걸어온 길 하나밖에 없는데도 할머니는 분향실에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맸다. 내가 앞장서 걸을 수도 있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지난 주말에 할머니와 내가 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납골당에 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내가 만약 그곳에 할머니를 모시고 간 것을 알면 크게 혼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에는 할머니가 한 번도 삼촌에게 다녀온 적이 없다는데, 처음이라는 할머니는 삼촌의 자리를 잘도 찾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홍학 우리 안의 소동이 잠잠해진 뒤였다. 고양이에게 물려 다리를 다친 홍학은 다행히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이 아니라 두 달 전에 알에서 깬 새끼였다. 놀란 홍학들을 진정시키느라 껍질 깐 호두와 아몬드를 두 자루나 뿌려주었다. 어느샌가 팀장도 홍학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그는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들을 좀 더 밝은 빨간색 형광 안료로 칠하라며 조련사들을 다그쳤다. 나는 홍학들에게 빨간 안료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 보았지만 팀장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물끄러미 팀장과 조련사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제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촌을 보내고도 꿋꿋하게 나오던 곳이고, 그가 하던 일만은 내 손으로 이어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조련사들이 빨간 형광 안료 통을 들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옷장에서 삼촌의 조련복을 꺼내 입었다. 오랫동안 묵혀둔 것이라 혹시 곰팡이라도 슬었으면 어쩌나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의자 위에 놓아둔 전기 총을 집어 들자 푸앙이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미안해,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얼른 끝내버리자. 나는 입을 앙다문 채 쏘냐의 뒷다리에 총을 쏘았다. 쏘냐가 움찔하며 왼쪽 다리를 들었다. 재빨리 엉덩이에도 총을 갖다 댔다. 한참 만에 쏘냐가 일어섰다. 푸앙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 울부짖으며 내 왼팔에 매달렸다. 쏘냐의 몸에 멋을 내느라 발라놓았던 노란색 형광안료가 설사에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에 형광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무전기에서는 팀장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무전기 소리를 무시하니 그 뜻 없는 말들은 점차 행진곡 풍으로 변해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괜찮다고, 얼른 끝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호두를 쪼아 먹고 있던 홍학들이 코끼리 우리 앞에 나와 있었다. 온몸에 빨간색 형광 안료를 잔뜩 바른 홍학 무리였다. 등에 홍학을 둘씩 태운 코끼리들이 정문으로 출발했다. 붉고 노란 머리들이 공중에다 점을 찍었다. 휴대전화와 무전기에서 팀장과 사육조장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어차피 코끼리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행렬을 완성할 수 없고 또 사회자인 내가 가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물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 역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뺐다. 팀장님, 지금이라도 리허설을 취소해 주세요. 뭐, 뭐야? 이대로 가단 코끼리들이 죽습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얼른 데리고 나와! 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니가 나한테, 대든 거냐? 쏘냐와 튀라는 절뚝이고 비틀거리면서도 앞만 보고 걸었다. 푸앙이 코끼리 배에 손을 얹고 함께 걸었다. 저렇게라도 가주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쏘냐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 코끼리, 죽어. 나도 죽어. 푸앙이 울며 말했다.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미안해! 니가 살려! 푸앙, 죽어가는 것들을 일으키고 이미 죽은 것도 살려낼 수만 있다면야 오죽이나 좋겠니. 푸앙이 이를 악물고 우는 소리와 코끼리들의 거친 숨소리가 마치 한 덩이처럼 느껴졌다. 정문 쪽에 노란 나비넥타이를 한 악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전보다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잘 다려진 연미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심벌즈 연주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탬버린을 담당했던 사람이 심벌즈를 잡고 있었다. 다섯 명이던 작은 북 담당 연주자들은 둘밖에 없었고 심지어 트럼펫 연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행렬이라도 완성해야 한다는 팀장의 고집 때문에 음악은 녹음해둔 것으로 대체되었다. 연주자들이 항의했지만 오늘은 ‘리허설’ 날이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악단장의 말에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연주자들의 얼굴 표정은 괜찮아진 것 같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불안한 처지인데 악단장마저 번번이 자신들 앞에서 팀장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에 익지도 않은 악기를 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악단장은 연신 나비넥타이만 고쳐 맸다. 동물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문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직접 코끼리를 만지려고 다가갔다. 놀란 사육사들이 그들을 말리는 사이, 나는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동물들의 우는 소리들이 마구잡이로 내 가슴속에 맺혔다. 그 사이 ‘시’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다가왔다. 행사를 하는 날도 아닌데 무슨 일로 온 거지? 팀장은 ‘시’ 사람들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시’ 사람들은 악단장에게도 다가갔다. 팀장이 활짝 웃으며 악단장의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팀장에게 이끌린 악단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엉거주춤하게 그들과 악수를 했다.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 않은 채 인사를 하는 악단장을 바라보는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팀장은 악단장에게 당장 연주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악단장은 시디를 틀기로 되어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빨리 하라니까! 팀장 자신도 모르게 나온 큰 소리에 본인이 더 놀라고 있는 사이, 악단장이 뒤돌아섰다. 그러나 내내 굽실거리거나 팀장에게 할 말을 다 못하고 돌아서던 악단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악단장은 맨 앞줄의 연주자가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넘겨받았다. 지휘봉을 연미복 허리춤에 찔러 넣은 악단장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축배의 노래였다. 멍한 얼굴의 팀장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악단장의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다른 연주자들의 악기도 조금씩 리듬을 탔다. 때마침 비가 내렸다. 당황한 팀장이 재빨리 ‘시’에서 나온 사람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절정으로 향해 갔다.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원숭이와 코알라,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채 들고 나온 나무늘보들을 적셨다. 문제는 코끼리 등 위에 빨간 형광 안료를 덕지덕지 바르고 올라 앉아 있는 홍학들이었다. 진회색의 코끼리 등에 붉은 물이 들어갔고,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열심히 연주를 하는 악단장과 ‘시’ 사람들을 서둘러 본관으로 끌고 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거세지자 동물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때 푸앙이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홍학의 다리를 잡아챘다. 푸덕, 푸흐드덕! 홍학이 거센 날갯짓을 했지만 푸앙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푸앙이 정문과 반대쪽을 향해 뛰었다. 마치 홍학 연을 타기라도 한 것처럼 재빠른 속도였다. 홍학 한 마리가 사라지자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다른 홍학 네 마리도 푸앙이 사라진 쪽을 향해 날아갔다. 푸앙은 홍학의 습성도 잘 알았다. 아마도 어미를 데려갔을 거였다. 홍학이 날아가면 코끼리들은 그 자리에 앉아 무릎을 굽혀 반쯤 앉거나 선 채 왼발을 들어 쇼의 시작을 알리게끔 훈련되어 있었다. 내가 말려볼 틈도 없이 정문에서가 아니라 정문으로 가는 도중에 코끼리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붉은 꽃 한 송이를 등에 얹은 코끼리들이 추는 군무가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때까지도 정문 앞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사진을 찍어댔다. 쏘냐와 튀라는 설사를 좍좍 갈기면서도 춤을 추었다. 코를 양 옆으로 흔들면서 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접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코를 하늘 위로 높게 치켜세웠다가 쿵쿵 땅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왼쪽 오른쪽으로 두 차례씩 긴 코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빗줄기를 쏟아붓는 하늘을 향해 코를 쏘아 올리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 번 쇼를 시작하면 끝이 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게 훈련된 코끼리들이었다. 홍학과 함께 한 군무가 오 분, 코끼리만 하는 쇼가 십오 분이었다. 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코끼리들 옆에 전기 총을 든 채 무력하게 서 있었다. 코끼리의 군무가 점점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쯤 다시 축배의 노래가 들려왔다. 악단장은 마치 무한 반복이라도 할 것 같은 완강한 표정이었다. 코끼리들은 덜렁덜렁 코를 흔들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차례대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후 푸앙이 쏘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커다란 횃불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푸앙이 없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홍학들은 왜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본관으로 갔던 팀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정문을 가로지르는 팀장의 뒤쪽으로 익숙한 남색 기지바지가 지나갔다. ……할머니? 축배의 노래에 맞춰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재빨리 할머니를 향해 뛰었다. 할머니, 할머니이! 그러나 할머니는 멈춰 서지 않았다. 내 등 뒤에서 악단장이 연주하고 있던 바이올린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따라 전기 총을 쏘는 소리도 들려왔다. 코끼리들이 거세게 날뛰며 질러대는 울음과 구경하던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돌아서서 잠시 주춤하던 나는 다시 있는 힘껏 할머니 쪽을 향해 뛰어갔다. 빗물이 자꾸 눈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삼촌의 뼛조각을 손에 쥔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어서인가. 내 손은 자꾸만 할머니의 몸을 움켜쥐려고 했다. 아버지가 못을 골라내자 화장장 직원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바로 삼촌의 뼈를 유골함에 넣어주었다. 고모들은 자신의 혈육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막힌 듯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촉망받던 조련사였으며, 사람 좋던 막내 삼촌은 그렇게 몇 줌의 유골이 되었다. 옥색 유골함 위에는 삼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삼촌은 옥함 겉면의 금박 이름으로만 남게 될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움켜쥐고 있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게 우시려는가 싶어 나는 고개를 돌려 유골함 쪽을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단히 쥐고 있던 두 주먹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천천히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수골실의 모든 것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가 갑자기 상체를 숙였다. 입 속의 것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가.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할머니 뒤쪽의 흰 벽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잘 움직이지 않았고 무엇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동물원에 가보자. 집으로 돌아온 후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지만 그것은 분명 동물원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동물원에 데려다주지 않자 할머니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모든 행위들을 다시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기세와 할머니의 고집 사이에서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는 밤마다 할머니 방으로 가서 할머니의 몸을 쓰다듬었다. 여기 어디쯤 삼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할머니의 몸이 무척 단단하게 느껴졌다. 삼촌은 할머니의 쇄골 위에 올라 있었다. 할머니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속에서도 삼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엔가 삼촌은 할머니의 팔목을 그러쥔 채 죽이 담긴 숟가락을 할머니의 입 속으로 밀어 넣어주기도 했다. 먹은 음식이 어쩌다 얹히기라도 하면 조용히 할머니의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삼촌이 그렇게라도 여기서 할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삼촌, 좋아? 나는 탄 못과 할머니의 무릎을 번갈아가며 만졌다. 할머니는 오래 울었다. 가족들 모두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할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 홀로 깨어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삼촌의 베개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어쩌다 밥상에 삼촌이 좋아하던 창란젓이라도 올라오면 그걸 바라보며 오래 울었다. 눕거나 앉거나 간신히 일어서거나 벽에 등을 기대거나. 언제 어디에서건 어떤 자세로든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속으로 울고 있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쩌면 울다 지쳐 손으로 몸을 짚기라도 하면 어디에서건 삼촌이 만져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유골함이 되는 일은 무척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식구들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오늘 할머니는 혼자서 동물원에 온 거였다.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식물원 입구였다. 할머니를 막 따라잡으려다가 도대체 왜 동물원에 왔고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궁금해 뒤를 따랐던 참이었다. 할머니의 남색 기지바지 속에서 끊임없이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원내 방송이 나왔다. 이하설 조장님,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식물원 뒤쪽에는 고사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희귀한 꽃이나 과실수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누군가가 빼돌린 뒤였다. 테마 랜드를 재정비한다면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할 곳도 여기였다. 할머니는 왜 하필 이곳으로 온 것일까. 마침내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단풍나무 둥치에 기대앉았다. 집에서 동물원까지 걸어왔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나는 천천히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집으로 모셔 갈 작정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손을 뻗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나뭇조각이었다. 주저할 새도 없이 할머니는 그것을 입에 넣은 후 가슴을 쳤다. 그러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크으헉, 으흑. 그것은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다가가 말리지 않았다. 할머니도 얼마간은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주먹으로 툭툭 땅을 쳤고, 나무 둥치에 등을 짓찧었다. 돌로 만든 조형물에 얼굴을 갖다 박았고 두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속으로만 쌓였던 울음들을 모조리 뱉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 식물원 어디선가 커다란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푸앙? 그는 나에게 다른 한국인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향기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자기를 찾는 거라 여기고 또 달아나버리면 어떡하지? 푸드덕거리는 새소리와 할머니의 울음이 식물원 안을 가득 채웠다. 죽은 나무들도 잔잔한 바람을 타며 울음소리와 박자를 맞췄다. 나는 할머니가 울고, 푸앙이 새들과 함께 마음을 삭이고 있는 여기가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눈물을 그친 할머니가 다시 걸었다. 나는 할머니를 뒤따라갔다. 할머니는 여전히 뒤에 있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동안 동물원 곳곳을 걷던 할머니는 코닥 필름 사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우두커니 서서 문 닫힌 사진관의 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코끼리 등에 올라 탄 삼촌이 붉은 조련복을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테마랜드 30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된 사진들이었다. 오래되어 빛이 바랬을 뿐, 사진 속의 모든 것들은 충분히 식별이 가능했다. 할머니는 손을 뻗은 채로 창가에 바짝 다가섰다. 삼촌의 사진이 언제부터 저곳에 걸려 있었던 걸까. 테마랜드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사진을 그곳에 걸어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 그제야 내가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만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코끼리 등 위에 앉아 밝게 웃고 있는 삼촌과 그것을 향해 말 없이 손을 뻗는 여인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사진 속으로도 빗방울들이 쏟아져 내렸다.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푸앙이 우는 소리였다. 푸앙은 팀장에게 멱살을 잡힌 채 이쪽으로 끌려오는 중이었다. 여전히 홍학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야, 이하설! 나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할머니!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내내 그렇게 멈춰 있을 것만 같던 사진 속 초로의 여인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여인의 핏발 선 두 눈이 멈춘 곳은 내가 입고 있는 삼촌의 조련복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단추를 달고 솔기를 여며준 이 옷을 할머니는 단번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느새 창틀에서 떼어 낸 삼촌의 사진을 안고 있는 할머니가 다른 한 손으로 내 옷을 가리키며 다가왔다. 팀장과 푸앙도 이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코끼리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쏘냐와 튀라는 우리로 돌아갔을까.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못을 꺼내 쥐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했다. 누군가 먼저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끝> ■ 당선소감 -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타슈켄트 동물원에는 코끼리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초원을 훑어야 할 우묵한 눈들이 녹슨 푸슈킨 동상을 바라보고 있지요.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코끼리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늙고 병든 코끼리의 두툼하고 너덜너덜한 귓불을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 코끼리들이 저와 함께 아랄 해를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 노인정에서 한글을 배우고 계십니다. 손녀가 쓴 글을 읽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글을 써나갈 작정이므로 할머니는 기필코 200세 장수하셔야 합니다.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동인, 그 섬’의 대장 임철우 선생님(‘그 섬에 가고 싶다’를 필사하던 그 순간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잘 견디고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치열하고 엄중한 소설쓰기가 일상의 진부함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주신 최수철 선생님(선생님의 조언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살고, 쓰겠습니다.), 검룡소에서 풀솜대를 뜯어주신 최두석 선생님(돌아가지 못하는 시의 자리가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글 쓰는 손가락은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주신 서영채 선생님(밤새 꺼지지 않던 선생님 연구실의 불빛을 바라보며 술 취한 저는 도서관에서 잠들곤 했지요.),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신 주인석 선생님(아, 이제 오디오 튜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 전 홍성여고 문예반 수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이정록 선생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행운입니다. 그 운명을 결정지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옆에서 바로잡아주고 격려해준 권오영 시인께는 미처 다 갚을 수도 없는 마음들을 받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내내 소설 쓰기의 치열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던 김도연 선배께 맥주 한 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철없는 저를 뒤치다꺼리해 주느라 고생한, 제일 먼저 축하해준 이진희 시인. 정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손에 들고 계셨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같이 힘들어도 조금 더 기운을 낼 수 있는 뚝심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리보통(Ly-botong)’으로 달려가 그곳에 계신 분들과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약력 -본명:이미선. 1983년 충남 보령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소설전공 수료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 세계언어대학 한국어 강사 역임 ■ 심사평 - ‘현대인 삶의 축도’ 동물원… 상징적 압축미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열 편. 이 가운데 다시 세 편의 작품을 어렵게 추려 놓고 생각했다. 신춘문예가 필요로 하는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우리 소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단편소설은 산문 양식임에도 언어의 경제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이 짧은 언어로는 ‘모든 것’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양식은 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떻게? 수사학, 즉 기교가 우리를 지상적인 삶에서 초월적 의미의 세계로 순간이동시켜 준다. 그러니 기교가 모든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다. 상징적 깊이나 환유적 지시 체계를 갖추지 못한 훌륭한 단편소설이란 일종의 형용모순과도 같다. 하이준씨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현대적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문체가 돋보였다. 강남의 한 미장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그만 사건은, 일상의 소소함이 그 한계 내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든 장점도 갖추었다. 김명진씨의 ‘뷰티플 원데이’는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와 아버지의 젊은 여인과 ‘나’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나’의 내면의 섬세함이 다문화라는 문제를 사회성 이상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이 너무 희박하고, ‘뷰티플 원데이’는 사건을 보편적인 의미로 상승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이은선씨의 ‘붉은 코끼리’는 상징적 압축미가 뛰어나다. 동물원 코끼리 조련사의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을 담았다. 동물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어떤 상징성을 띤, 현대인의 삶의 축도로 이해하게 한다. 여기서 동물원을 지배하는 어떤 메커니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의 어떤 축도와도 같다. 이 작품은 쓴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독자에게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재능과 생각을 겸비한 이은선씨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정진을 당부 드린다.
  • [2010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질문하는 소설, 경험하는 콜라주’-김중혁론

    고대 그리스의 부타데스(Butades of Sicyon)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의 기원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 여인이 연인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불빛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벽에 그린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옹기장이였던 여인의 아버지 부타데스가 딸의 그림을 본떠 빚은 점토 형상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대상-그림자-회화-조소’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속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 나아가 예술적 표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적 표현은 사적 욕망의 구체화라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고자 하면 할수록 그 대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퇴적 속에서 예술적 표현의 방식이 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시원(始原)의 욕망과 대상을 그저 희미한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적 영역(oikos)과 공적 영역(polis)의 경계가 깨지면서 발생한 것이 ‘사회’라는 아렌트의 지적대로라면, 이제 우리의 사회는 개인의 욕망조차 자아를 충족시키는 내밀함에서 벗어나 공적 담론의 장 속에서 공익적 측면을 수용하기를 요구한다. 역사의 진행을 개인 욕망의 발현 과정으로 본다면,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 속에서 욕망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가 중요시된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의 개인적 욕망은 때로 성적(性的)인 원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집단적 도덕성으로 재단되기도 한다. 결국, 계량화가 가능해지고 공적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것만이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으면서 순수하고 개인적인 욕망의 발현은 유아기적 망상으로 치부되기에 이른다. 더구나, 매스 미디어의 균질적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 다양한 욕망들은 서열화 속에서 재배치된다. 이제 욕망은 비교우위 없는 순수한 발현을 억압당한 채 잘못된 대상에 고착되거나 인터넷의 작은 화면 속에서 일쑤 신경질적으로 해소된다. 마치, 떠나고 없는 연인의 그림자를 향해 말없음을 타박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말이다. 욕망조차 계열화된 현실에서 소설 행위(쓰기/읽기)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있다. 다양한 욕망이 부딪치는 공간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소설이 이야기와 달리, 이전 시대의 경험들과 분리되어서 후대의 경험으로 확장되거나 조언을 포함하지 않는 고립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소설은 정보가 그랬듯이 상품으로서 자본주의적 유통의 과정으로 포획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소설행위의 의미 역시 정보가 소비되는 방식처럼 한 순간 안에서만 소비되고, 우리의 욕망은 자본주의적 만화경 속에 갇히고 만다. 이 글이 김중혁의 소설(‘펭귄뉴스’(2006), ‘악기들의 도서관’(2008). 두 권의 단편집을 제외한 작품으로는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창작과 비평, 2009년 봄), ‘C1+y=:[8]:’(문학과 사회, 2009년 여름), ‘유리의 도시’(현대문학, 2009년 8월), ‘1F/B1’(문학동네, 2009년 가을) 등이 있다. 단편집에서 작품을 인용할 때에는 작품의 제목과 면수만 밝히기로 한다.)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소설 안에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반복·중첩시켜 가며 소설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소설은 종국에 이르러 개인의 순수한 욕망을 만날 수 있도록 가벼워지고, 이 가벼움은 다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가로지른다. 김중혁의 이러한 작업은 부타데스 이후 멀어져 가고만 있는 개인의 욕망을 직접 대면케 하는 동시에 소설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여겨진다. 김중혁 소설의 근저에는 공통 취향을 가진 두 인물들의 반복과 변주가 배치되어 있다. 이 배치가 그의 소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소설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공통 취향의 공간은 독자들을 무리없이 공감하게 만든다. 이 두 명의 중심인물들은 때로 쉽게 의기투합하기도 하지만(‘무용지물 박물관’), 결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거나 협력의 지점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두 인물들은 만나지도 않거나(‘자동 피아노’), 아니면 아예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비닐광 시대’). 반면에 이럴 때조차 이들은 서로 여전히 “작고 가냘픈”(‘자동 피아노’, 29쪽)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데, 말하자면 두 인물들은 매개물을 통해 가까워진 두 개의 항이 아니라 매개물을 통해 반복되고 변주되는 하나의 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인물들은 ‘여성들의 서사적 비중이 축소된 남성적 유대관계’(신수정)나, ‘전형적인 남성 버디(buddy)소설의 면모’(심진경)로도 파악된다. 하지만 소설적 공간의 의미를 구축하는 이들의 역할에 주목하여 살펴본다면 성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우리는 다만 반복적 이형태(異形態)가 만들어내는 변화에 동참하게 될 뿐이다. 소설 속에서 상대자로 ‘나’와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영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만 나타나는 경우 이러한 변화는 더욱 두드러지는데, 고유명사를 부여받지 않은 대상은 독립적 역할보다는 ‘나-나’로의 반복과 변화를 이끈다. 가령, ‘나와 B’에서 ‘나’는 ‘B’와 음악으로 인해 ‘핵융합’을 한 것처럼 금방 친해진다. 하지만 실제 이 둘의 관계는 ‘B’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행위로 시작되고, 전개된다. 음반 가게 점원인 ‘나’가 음반을 훔치려던 ‘B’를 처음 만난 뒤, 몇 번의 이직을 겪는 ‘나’와 무명 기타리스트에서 주목받는 신인 기타리스트가 되는 ‘B’의 사이를 ‘하나로 합쳐’졌다고 보기에 둘 사이는 느슨하다. 음악이라는 공통 취향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B’는 ‘음반을 두 번 정도 듣고 난 다음엔 음반과 거의 똑같이 기타를 연주’(195쪽)하는 전문가이고, ‘나’는 심장에 무리가 가서 아예 전기기타를 배우기도 힘든 인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는 동영상을 보다가 내 습관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화면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그를 볼 때마다 왼쪽 엄지로 나머지 왼손 손가락들의 끝을 비비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듯 매끄러운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그런 행동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손가락 끝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아니면 굳은살 하나 박여 있지 않은 내 손가락 끝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중략…) 한 달 전 기타를 한 대 샀다.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다. (…중략…) 아직 내 손가락 끝은 너무 무르다. -‘나와 B’, 210~211쪽.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나’ 스스로의 재발견이다. ‘나’는 ‘B’와의 만남으로 인해 이전에는 억압되어 있던 자신 내면의 어떤 지점을 발견하고 다시 이를 통해 내면에 감추어졌던 순수한 욕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갑자기 음악(기타)을 위해 생업을 내팽개치거나 하는 등의 결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무른 손가락 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순간은 우리가 전망을 가지고 억압과 대결을 펼치든, 현실을 비틀어 냉소적 거리를 두든 오히려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적 억압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망이나 목표는 그 자체로 억압되고 조작된 욕망에 노출되어 뒤틀린 결과물이 될 위험성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결말이 보여주는 의미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리거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출발점과는 구별된다. 이제 우리는 조작된 욕망에서 벗어나 본래의 욕망, 즉 시원(始原)의 욕망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김중혁은 이러한 반복과 변주가 주는 새로운 의미의 발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가 자신의 작업에 붙이는 이름(제목)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첫 번째 소설집 ‘펭귄뉴스’에서 우리는 ‘무용지물/ 박물관’, ‘사백 미터/ 마라톤’이라는 제목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기 힘들 것 같은 두 단어가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면서 묘한 호기심과 낯섦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방식의 명명은 두 번째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더욱 늘어난다. ‘자동/피아노’, ‘악기들의/도서관’, ‘유리/방패’, ‘무방향/버스’(제목의 /부호는 인용자) 등이 그것이다. 지적한 제목들은 모두 이질적인 두 단어가 A+B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품을 읽은 뒤 우리는 소설의 내용이 A나 B 어느 한쪽과 관련된 이야기거나, A가 B(혹은 B가 A)를 특별한 방식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설이 전달하는 의미들은 사실, A∩B를 통해 파생되며 이를 통해 A나 B가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나고 그것들의 공통점에 기반하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A‘(또는 B’)가 무한대로 풀려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교집합적 운동이라고 새롭게 불러도 좋을 이와 같은 김중혁의 소설적 전략은, ‘반복(repetition)’과 ‘이접(離接.disjunction)’을 통해 모든 ‘토대’를 집요하게 해체하고자 했던 일련의 운동이 문학적 테두리 안에서 갖는 성과이다. ‘엇박자 D’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이 성과를 분명하게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세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고, 네 사람, 다섯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합창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합창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의 음이 맞질 않았다. 박자도 일치하지 않았다. (…중략…)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로의 음이 달랐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화음 같았다. (…중략…) 22명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유는, 아마도 엇박자 D의 리믹스 덕분일 것이다. 22명의 노랫소리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엇박자 D’, 280~281쪽. 공연기획자인 ‘나’가 20여년 만에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합창단 친구 ‘엇박자 D’를 만나 같이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그 공연에서 ‘나’ 몰래 친구가 준비한 앙코르 장면은 소설속의 ‘나’가 그랬듯 예기치 못한 감동을 준다. 공연을 기획한 ‘엇박자 D’는 합창단 시절, 자발적으로 단장까지 맡을 정도로 유일하게 열성적이었던 친구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의 박치이자 음치’(255쪽)여서 실제 공연 때는 선생님에게 립싱크만을 강요당한다. 그러나 ‘엇박자 D’는 결국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망친 장본인이 된다. 그 뒤 의도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던 ‘엇박자 D’는 전공으로 무성영화를 선택한다. 무성영화를 통해서, 영상과의 필연성에 얽매이지 않는 소리의 자유로움을 깨닫고 위에 언급한 장면을 연출하기까지의 소설적 과정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엇박자 D’의 의도를 알게 된다. 실상, 음치라는 것은 ‘자신이 알아낸 게 아니고 들어서 아는 것’이며 ‘평생 그렇게 세뇌’(270쪽) 당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의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된 것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억압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기준이 음치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억압이 작용하지 않는 시원의 욕망을 만남으로써 주체들이 자유롭게 해방되고 나아가 ‘서로의 소리’를 억압하지 않는 ‘화음’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김중혁이 보여주는 교집합적 운동의 힘이다. 교집합적 운동 속에서 억압되/하지 않는 욕망을 만날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교집합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기이다. 운동성을 상실한 모든 것은 결국 그 힘을 잃고 다시 계열화 속으로 수렴될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이러한 위험은 계시적인 교훈이나 전망으로 구체화되면서, 문학작품이 운동성을 상실한 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아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김중혁은 자신의 소설이 처할 수 있는 이 비극적 운명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여 표준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의 전략이 지속적 운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억압적 현실⇒구체적 전망의 필연성’으로 이어지는 고정적 틀 그 자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망이 다시 억압으로 작동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의 비트(beat)를 억압하기 위한 진압군과 이에 맞선 저항군이 전쟁 중인 현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각각 배경으로 삼은 ‘펭귄뉴스’와 ‘유리방패’처럼 비교적 억압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에서 이러한 의도는 더욱 잘 드러난다. 이는 억압의 체계에 포획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작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 읽힌다. ‘전쟁 중인 현실→무감각한 나→저항군인 그녀→그녀와의 우연한 만남→그녀를 따라 저항군이 되는 나’로 이어지는 ‘펭귄뉴스’의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다소 의외로 ‘그녀’의 죽음을 확인한다. 전쟁 중인 현실조차 ‘지루하고 재미없’(263쪽)는 ‘나’에게 ‘그녀’는 ‘모든 살갗이 곤두서’(274쪽)게 하는 유일한 자극이었기 때문에 그 의외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제 곁에 있던 그녀는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극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감상을 말해야 한다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야겠군요. 어쨌든 극히, 자연스럽게 그녀는 죽었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 ‘펭귄뉴스’, 357쪽. ‘비트’를 매개로 ‘나’와 ‘그녀’ 사이에서 이루어진 교집합적 상태는 필연적으로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지만, 이것 자체가 지속가능한 운동으로의 전환은 아니다. 교집합적 만남을 통해 변화된 주체는 다른 주체와 거리를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자유의 공간 즉, 운동성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 어디에도 ‘반납’할 수 없는 ‘정말 사적인 비트’(357쪽)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비트’는 ‘그녀’와 ‘나’만의 매개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엇박자 D’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쿵쾅’(358쪽)거릴 수 있는 운동으로 변환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지속적인 운동성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파리의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공원은 설계단계에서부터 문학·철학·영화 등의 다양한 비건축적 개념을 적극 끌어들인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통해 오히려 건축의 새로운 발전가능성을 촉발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공원은, 점·선·면의 세 체계를 따라 설계된 각각의 공간이 한 공간 안에서 중첩되고, 분열되고, 해체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어 있다. 설계의도에 따르면, 응집력 있는 구조들을 중첩시켰을 때 하나의 초응집적 거대구조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정될 수 없는 것, 즉 전체성에 반대하는 것이 생겨난다. 결국 이 공간은 반-맥락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실제 공원 내 기능들의 중첩은 고정된 시설물로서의 기능성과 편의성에서 벗어나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간을 탄생시킨다. 일상 언어학에서 말하는 관습적인 절차나 효과로서의 ‘맥락(context)’을 파괴하는 이 공간은 2000년대 우리 소설이 새롭게 만들어 낸 소설적 공간, 이른바 ‘무중력 공간’(이광호)과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소설들은 종래의 작품들에서 기피해 온 이질적인 소재나 인물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공간에 낯섦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소설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 자체가, 중력으로 작용하는 어떠한 억압적 기준 없이 자유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단절적인 대화나 전통적 서사 구성을 거부하는 듯한 문체, 현실과 이질감 없이 섞여 있는 환상적 비현실 또한 그 결과물이자 원동력임은 물론이다. 김중혁의 소설 역시 이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현실과 냉소적인 거리를 두거나 이질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현실들과 겹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는 변별성을 통해 보다 많은 욕망들을 해방시킨다. 따라서 비교적 전통 서사에 충실하게 진행되던 김중혁의 소설은 언제나 결말에 이르러 모든 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마음이 편안해’(‘자동피아노’, 35쪽)지는 경험을 안겨준다. 이때의 ‘가벼움’이 바로 단순한 현실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김중혁만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결과이다. 이 ‘거리두기’ 역시, 앞서 언급한 빌레트 공원에서 폴리(folie)라는 인상적인 개념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프랑스어로 광기, 무분별한 짓이나 말, 정열 등의 의미를 가진 폴리는 이 공원의 설계 단계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점 체계 속의 폴리는 실제 빨간색 철골 구조물들로 형상화되었는데 공원 내에서 쉽게 눈에 뜨이기 때문에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준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이 폴리는 전체 공간을 나누고 분리시키는 동시에 면과 선 체계의 폴리들과는 상호충돌하고 왜곡되어, 애초 설계자의 의도대로 공원전체가 탈통합적인 공간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기준점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모든 것들과의 반복과 중첩, 그리고 다시 그것과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M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M과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얘기를 했지만 그사이 M과 나는 어딘가를 지나온 것 같았다. 어떤 갈림길을 지나온 것 같았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 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유리방패’, 180쪽. 위의 장면 속 ‘나’와 ‘M’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지내면서 취업을 위한 면접시험조차 같이 치른다. 심지어 한 명만 뽑는 회사의 면접시험도 ‘막무가내’로 같이 치르는 이 둘은 전형적인 김중혁 소설의 인물들이다. 이들이 면접시험을 위해 준비했던 일종의 퍼포먼스가 우연히 인터넷 신문에 예술적 시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순식간에 이들은 면접관으로 불려다니는 유명인사가 된다. 서른 번의 입사시험을 치르는 동안 ‘한때 실패에 중독된 인간들’이었던 주인공들이 ‘실패중독자들을 위로해 주는 입장’(178쪽)이 된 것이다. ‘점수를 받는 사람’에서 ‘점수를 주는 사람’(176쪽)으로바뀌게 된 이 발랄한 치환은 현실의 체계를 뒤엎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적 서열구조의 확대·재생산 방식으로 작동하는 공개취업의 기준에 함몰되어온 인물들이 그 틀을 자신들의 힘으로 벗어난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본 경우보다 오히려 짧은 시간 내-‘스무 번째였는지 스물한 번째였는지의 면접관 일을 마치고 나올 때’(178쪽)-에 ‘피곤’을 느끼고 만다. 애초부터 이들의 ‘자리바꿈’은 사실 무분별하게 정보를 생산해 내는 매스미디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벤트’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변화가 억압이 작동하는 체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체계 안에 다시 포획되고 말았음을 느낀 순간, ‘나’는 ‘M’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교집합적 운동이 다시 체계 내에 갇히고 말 때, 김중혁의 ‘거리두기’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운동성을 확보한다. 교집합적 반복과 변주, 그리고 거리두기까지 포괄한 김중혁 소설의 운동성은 작가 특유의 소재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공간과 교직(交織)된다. ‘마니아적인 열정과 감수성’(박진), ‘사물들을 해방시키는 수집광’(김형중), ‘등장인물들의 마니아적 취향과 취미를 개성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물-예술’(심진경) 등으로 평가되는 김중혁의 사물에 대한 애착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 속 소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공업적’ 성격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등장한 ‘정보’의 유통은 후대로 전달되는 경험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따라서 사실이 아닌 이야기에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던 시대에서, 진실과 관련 없이 사건만 난무하는 시대로의 변모를 지적한 벤야민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시간적 확산이 가능한 정보만이 중요시되고, 전생애에 걸쳐 축적된 개인의 경험들이 획득하는 의미와 그 깊이가 외면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때, 수많은 경험들이 구전적인 방식으로 축적되어 있는 이야기를 벤야민은 수공업적 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의 특성을 빗대서 말한 ‘옹기그릇에 남아있는 손흔적’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가치가 아닌 시스템의 오류로 취급될 뿐이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김중혁은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는 동시에 새로운 경험들을 환기시키는 소재들을 사용한다. 마치 벤야민의 ‘이야기’처럼 그의 소재에는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 공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음에서 작가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먼저 살펴보자. “잠수함 설명하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제가 집에 있는 잠수함 모형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비틀스의 영화 ‘Yellow Submarine’에 등장했던 잠수함이에요. 청취자 여러분들이 이걸 직접 만져볼 수 있다면 좀더 이해가 쉬울 텐데 아쉽네요. 전체적인 모습은 입이 툭 튀어나온, 심술 맞은 물고기 같아요. 심술난 것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 한번 만져보세요. 잠수함 앞모습이 바로 그래요. 그리고 몸통은 비늘을 다 긁어낸 물고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미끈하죠. 창문은 왼쪽에 여덟 개, 오른쪽에도 여덟 개가 있어요. 이 창문을 통해서 바닷속 풍경을 보는 거죠. 그리고 꼬리 쪽에는 방향을 조종하는 지느러미 같은 게 달려 있어요. 지느러미 아래쪽에는 잠수함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프로펠러가 두 개 달려 있어요. 프로펠러는 바람개비를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위쪽에는 네 개의 잠망경이 올라와 있는데요, 잠망경은 잠수함이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도 바깥을 볼 수 있도록 기역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굽힐 수 있게 만든 스트로 아세요? 그걸 잠망경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음, 그리고…….” (…중략…) “자, 이제 우리가 잠수함이 한번 돼 볼까요? 제가 자주 하는 놀이인데요. 욕조에 물을 받은 다음 스트로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에겐 그 스트로가 잠망경인 셈입니다.” -‘무용지물 박물관’, 33~34쪽. 대상과 직접적 연관없는 “물고기, 바람개비, 스트로” 등을 동원하여 잠수함을 설명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감각과 경험들 역시 대상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우리에게 ‘잠수함’을 경험적 실체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대상을 보편화시키는 정의(定義)는 ‘무용지물’이 되고, 나아가 감각 주체가 스스로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방법은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과 달리 “통조림”처럼 압축되지 않고 수많은 감각과 경험들이 중첩되면서 위의 긴 인용문에서처럼 필연적으로 비경제적이 된다. 김중혁이 선택한 소재들의 수공업적 성격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즉, 계열화된 체계 안에서 박제된 상태의 사물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는 사물이 바로 작가의 탐구 대상이다. 먼저,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지도가 그것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이 지도는 에스키모들이 ‘기억과 소리’로 만들고 촉각을 동원하여 ‘상상하는 지도’이다. 일반적인 ‘지도’의 제작과 활용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의 반복적인 경험 안에서 유용한 이 지도는 그 자체로 수공업적 소재라 할 수 있다. 이 지도로 인해 ‘나’는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78쪽)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다. 사물에 축적된 수많은 경험들이 ‘나’와 중첩되어 나만의 경험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사물 역시 갇혀있던 가치판단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이와 같은 탐구는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심화되어 나타난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109쪽)는 생각이 든 ‘나’가 우여곡절 끝에 취직하게 된 악기점에서 만든 이 ‘도서관’은 연주가 아니라 ‘그냥 악기 소리만’ 있는 곳이다. 악기는 애초에 인류가 감정표현과 전달의 도구인 신체를 보충하는 보조수단이었다. 여기에 악기를 사용해온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도구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악기가 분류되고 체계화되면서 점점 경험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전문연주자를 필요로 하기에 이른다. 체계 내로 편입되지 않은 개별적 경험들이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차단당한 것이다. 사실상 처음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시되기 직전까지도 사물들은 오직 사용자들의 경험과 경험사이에서만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주의적 체제의 강제성을 보편타당성으로 받아들여 사물들을 분류하고 서열화해 왔던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적 질서로 재편된 박물관 안에서 사물들은 더 이상의 경험을 용납하지 않은 채 개별성을 상실하고, 인간마저 전시물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김중혁의 수공업적 사물에 대한 탐구는 이와 같은 운명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박물관’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체계에서 소외된 모든 것들을 ‘악기도서관’으로 이끈다. 여기서 우리는 ‘긁거나 할퀴거나 두드리거나 뜯거나 쓰다듬거나 꼬집으면서’(127쪽) 억압되/하지 않는 개별적 경험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않냐? 그보다 더 처음으로, 더 처음” -‘유리방패’, 178~179쪽(인용자 재구성). 시원의 욕망을 꿈꾼다는 것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전도되고 억압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기억을 통해 더듬어 가는 ‘처음’은 언제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계하는 데리다는 기원을 아예 결정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부타데스의 딸이 기억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던 순간부터 실제 대상은 무시될 수밖에 없고, 차라리 현존(presence)과 부재 사이의 ‘놀이’ 그 자체가 의미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자본주의는 모든 차이의 진폭과 오류마저 자신의 안으로 포획하는 강력한 보편타당성을 지향하는 체계이다.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이 자체 내의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적 처방만이 유효하게 거론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김중혁의 소설은 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모든 욕망들을 중첩시키면서 멈추지 않고 차이들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는 그 전략으로 모든 경험과 욕망들의 ‘흔적(trace)’이 새겨진 사물을 사용한다. ‘자신만의 생각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괴물에 가까’운 ‘타자기’(‘회색괴물’), 그 어떤 외부조건에도 얽매이지 않고 연주되는 순간마다 ‘자신의 몸을 통째로’ 빌려주는 ‘투명’한 ‘피아노’(‘자동피아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이것이 다시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되는 작업을 하는 디제이들의 ‘비닐레코드’(‘비닐광시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사물들이 만들어 내는 차이들이 결국 무한대의 욕망들에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통해 우리들은 ‘처음’으로 이끌린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최근작인 ‘C1+y=:[8]:’에서 ‘보드빈터’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다. 정글의 특성을 도시에 연결시켜 보다 쾌적한 도심을 만들고자 하는 도시 연구가 ‘나’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도심을 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 공간은 목숨을 걸고 정글을 탐사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이는 목적지로 충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도심 속 길들의 일부분이며, 수많은 익명의 스케이트 보더들이 ‘단 한 번도 신호등을 만나’거나,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도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는 길의 연결일 뿐이다. 이 ‘길’이야말로 도시가 생성되기 이전 개인의 욕망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던 ‘첫 길’이며, 그 ‘처음’은 억압 자체가 무화되고 인류전체의 경험과 개인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원의 욕망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 길 위로 부지런하게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는 작가의 행보에 시선을 고정시킨 이유는 그의 소설행위가 하나의 답변이 아니라 ‘처음’을 향한 지속적인 질문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끝>
  • [씨줄날줄] 따뜻한 원조/육철수 논설위원

    2004년말 인도양의 쓰나미로 주변 12개국에서 23만명이 숨지고 재산피해는 107억달러에 이르렀다. 선진국들은 원조와 구호를 앞다퉈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60만달러를 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 여론이 여간 따가운 게 아니었다. “먹고 살 만한 나라에서 그게 뭐냐?”는 비판이 일자 원조금을 두어 차례 올리다가 마지막에 5000만달러로 결정했다. 당시 미국도 우리와 처지가 비슷했다. 미국은 처음에 1500만달러를 내겠다고 밝혔다가 3500만달러로 높였다. 그래도 시원찮다는 반응이 나오자 3억 5000만달러로 올리고서야 여론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원조 약속의 이행 과정도 세계 여론의 감시망에 걸려 시빗거리가 됐다. 당초 7900만달러를 내놓겠다던 프랑스와, 6000만달러를 약속한 스페인은 쓰나미 발생 후 2년 동안 각각 100만달러 정도를 지원했다. 유럽연합(EU)은 7000만달러를, 영국은 1200만달러를 덜 내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 한국은 착실하게 원조금을 내놓고 현지 민관 지원에 물심양면으로 노력해 수혜국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국제사회에도 이렇듯 보는 눈이 많고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잘살수록 나라의 품격을 유지하기가 그래서 어려운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연말 외교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원조는 한 손으로 주지 말고 두 손으로 줘야 한다.”면서 “주고도 욕먹는 일이 없게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바뀐 만큼 우리의 옛날 처지를 생각해서 ‘따뜻한 원조’가 되게 해달라는 주문이다. 대통령의 언급대로 도움을 주는 게 받는 것보다 어려운 게 사실이다. 돈을 주는 건 쉽지만 마음까지 주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 겸손, 또 겸손이 국가 간에도 미덕으로 통하는 세상이다. 한국은 현재 40여개 나라를 돕고 있다. 원조금액을 2015년까지 지금보다 3배 수준으로 높여야 하며, 그러려면 해마다 3조원씩 늘려야 한다. 원조정책 또한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한 무상원조에 비중을 두는 선진국형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공여국이 되었다고 요란 떨 게 아니라 수혜국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국민 사이에 인정이 오가는 원조를 차분히 구상할 때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변신/이시원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변신/이시원

    등장인물 변신남(남·46세), 조사원(남·30세), 여직원, 남직원, 젊은 여인, 교복1·2, 양복남자, 전당포주인, 딸(변신남의), 아내(변신남의), 문신 남자, 교도관, 사람들1·2·3·4, 노숙자들 ※변신남과 조사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배역은 1인 다역을 하도록 한다(젊은 여인?변신남의 아내/여직원?변신남의 딸, 사람들2, 노숙자/교복1·2?사람들3·4, 노숙자/양복남자?문신남자/전당포주인?교도관, 노숙자/남직원?사람들1, 노숙자). 시 간 현재 무 대 무대는 기본적으로 비어 있다. 장소들은 각각 구체적으로 재현되기보다는 공간·디테일·조명 등으로 처리되며, 소도구는 극의 진행에 따라 사용한다. 시간과 장소의 전환은 ‘변신남’의 회상을 재현하는 것에 바탕을 두며 특별한 논리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물의 이동 또한 사실성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여행하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 민원실 민원창구에 앉아 있는 여직원. 한 젊은 여인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여직원 어서 오십시오. 시민의 안전을 지켜드리는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입니다. 젊은여인 (가쁜 숨을 내쉬며) 내 남편 어디 있어요? 여직원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젊은여인 내 남편이요. 여직원 연락을 받고 오셨습니까? 젊은여인 전화요. 전화가 왔었어요. 여직원 아, 그럼 남편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젊은여인 김상수. 여직원 김상수님…(컴퓨터로 조회해 보고) 두 분이신데…, 혹시 관리번호 받으셨습니까? 젊은여인 번호요? 아, 번호.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주며) 이건가요? 여직원 네, 맞습니다. 3-17이면··· (찾고) 아, 저희 쪽에 계시네요. 잠시만요. (인터폰으로) 3-17번 보호자 분 오셨습니다. (끊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젊은여인 내 남편, 괜찮은 거죠? 여직원 저희가 안전하게 모시고 있었습니다. 젊은여인 어디 다친 데는 없구요? 여직원 그러시리라 예상되지만, 나중에 정확한 검진은 필요하실 겁니다. 젊은여인 (안도의 한숨을 쉬고) 얼마나 걸리나요? 여직원 …네? 젊은여인 원래대로 돌아오는 시간이요. 여직원 개인차가 좀 심해서, 보통은 일주일에서 한 달인데 요즘은 더 짧거나 길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직원이 상자를 들고 나온다. 젊은여인 (남직원의 손에 들린 상자를 보자마자, 와락 달려들듯) 자기야. 남직원이 상자를 내밀고는 뚜껑을 열어 젊은 여인에게 보인다. 상자 안에는 덩그러니 머그컵 하나가 들어 있다. 젊은여인 (여직원을 쳐다보고는) 컵이네요? 여직원 (한번 들여다보고는) 네, 컵이네요. 뭘로 변신하셨는지 전해 듣지 못하셨나요? 젊은여인 (컵을 본다) 남직원 남편 분은 오늘 아침 을지로2가 대로변에서 컵으로 변신하셨습니다. 젊은여인 머그컵으로요? 남직원 예. 젊은여인 이게 설마 내 남편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죠? 남직원 (주머니에서 남편의 신분증을 꺼내 건네며) 정확한 변신 추정시간은 오전 8시 50분경이고, 운전을 하시던 중에 일이 발생하는 바람에 을지로 일대가 잠시 마비가 됐었습니다만, 다행히 저희 관리국의 발 빠른 긴급대응으로 출근 대란은 없었습니다. 젊은여인 말도 안 돼…. 아침까지 말짱했는데요. 남직원 요즘 유행하는 변신의 가장 흔한 유형입니다. 옷도 소지품도 남기지 않은 채 신분증만 덩그러니 남는 경우죠. 젊은여인 (컵을 받아들고 바라보다가) 남편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남직원 빠르면 일주일 이내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젊은여인 돌아오기는 하는 거예요? 남직원 (여직원에게) 안내를 충분히 안 해드렸나요? 여직원 그게…. 젊은여인 영영 안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거예요? 남직원 대개는 돌아온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문제죠.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발생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는 질병이라서 아직 임상 단계입니다. 통계도 잡혀 있지 않고, 아직 질병으로 분류하기에도 뭣하고 해서 지켜보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젊은여인 그건 안 돌아온 사람도 있다는 얘기잖아요. 남직원 너무 염려 마십시오, 돌아오실 겁니다. 다만 깨지지 않게 주의하셔야 합니다. 깨지기 쉬운 물건으로 변신하셨을 경우에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거든요. 잘못하다가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해도 어느 한 곳이 불구가 될 수도 있고, 기억이나 신경들이 뒤엉켜버릴 수도 있습니다. 젊은여인 (컵을 보며 울먹이는) 자기야…. 남직원 자동차는 신청서를 작성해주시면 일주일 이내에 순서에 따라 댁으로 배달이 될 겁니다. 그리고 남편 분께서 본 모습으로 돌아오시면 저희 본부민원실이나 희망2과로 연락 주십시오. 그럼 저희가 직접 방문하여 도와드리겠습니다. 여직원 언제든지 전화 주시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종이를 내밀며) 여기 인수증에 사인해주시겠어요? 남직원, 머그컵을 챙겨 상자에 담으려고 하는데 젊은 여인이 컵을 들어 바라본다. 젊은여인 (컵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곰이에요. 남직원 예? 여직원 (그림을 보고) 어머 그러네요. 젊은여인 남편이 동물을 아주 좋아했는데…. 곰처럼 묵묵히 일만 하던 사람이었어요. 오늘 아침에도 늦었다고 그러면서 헐레벌떡 나갔었는데. (남직원을 향해) 그런데 왜 곰이 되지 않고, 하필 머그컵이 됐을까요? 남직원 …. 젊은여인 머그컵이 된 사람도 있었나요? 남직원 글쎄요. (여직원을 쳐다보며) …잘 모르겠습니다. 여직원 머그컵이 흔한 건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어떤 분은 칫솔이 되기도 하셨고 선풍기나 베개가 된 분도 계시거든요. 심지어는 스티커가 된 분도 계시는걸요. 젊은여인 스티커요? 여직원 네. 다섯 살짜리 따님의 장난감 휴대폰에 안전하게 붙어 있다가 본래 모습으로 복귀하셨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젊은여인 그렇구나. (그림을 보며) 당신 이렇게 뚱뚱하지 않았잖아. 곰처럼 생기진 않았었는데. 여직원 외모와 변신은 별개랍니다. 젊은여인 그래도 컵은 좀. 남직원 왠지 여유로워 보이시는데요, 남편 분. 젊은여인 …. 남직원 꿀을 넣은 차 한 잔을 생각하셨을지도 모르죠. 변신하던 그 순간에요. 여직원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 짓는) 남직원 머그컵은 아주 낭만적인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여인 그런가요? 남직원 남편 분의 쾌속 복귀를 기원하겠습니다. 여직원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 희망2과도 남편 분의 쾌속 복귀를 기원하겠습니다. 젊은 여인은 남직원과 여직원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어둡다. 상심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머그컵을 상자에 넣으려고 하는 젊은 여인. 그러다가 그만 손에서 머그컵이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도자기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지는 머그컵. 놀라서 얼어붙은 세 사람. 젊은 여인이 비명을 지른다. 암전. 어둠 속에서 뉴스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뉴스캐스터(목소리) 최근 무작위적인 변신이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 오후 2시경 컵으로 변신한 남편을 깨뜨려 죽음으로 몰고간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화양동에 사는 서른두 살 박모 여인은 오늘 오전 컵으로 변신한 남편을 인수받기 위해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를 찾았습니다. 인수증에 사인을 하기 전, 남편임을 확인하기 위해 컵을 들고 자세히 살피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려 깨지는 사고가 일어난 것인데요. 검찰은 직원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수를 범한 박모 여인을 구속하고 실수가 아닌 고의적 훼손, 즉 살인이 아닌지를 검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박모 여인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시민단체에서는 과실치사에 해당되는 사건인 만큼 박모 여인에게 무죄를 적용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뉴스가 시작되고 잠시 후, 희미하게 조사실이 보이기 시작하면 변심남과 조사원이 문서를 작성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가 끝나면 무대 완전히 밝아진다. 컴퓨터에 뭔가 기록하는 조사원과 맞은편에 앉아있는 변신남. 변신남은 반팔 남방차림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조사원 (자판을 두드리며) 깨어났는데 새벽이었단 말씀이시네요. 변신남 그렇다니까요. 조사원 쓰레기 집하장에서 말이죠. 변신남 정확히는 쓰레기 더미 사이였어요. 사방이 쓰레기봉투였고 머리 위로도 몇 덩이 쌓여 있었습니다. 조사원 얼마 동안이나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시구요? 변신남 그걸 알고 싶어서 여기 온 거 아닙니까. 조사원 그걸 알려 드리려면 저희 쪽에 협조해주셔야 합니다. 변신남 하고 있잖아요. 8월 1일. 그게 마지막 기억입니다. 조사원 휴대폰의 마지막 문자기록과도 일치하네요. 변신남 다 말했잖아요. 8월 1일 저녁에 마누라랑 딸이랑 쇼핑 간다고 문자가 왔어요. 바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실직자에겐 집에 아무도 없는 게 천국이거든요. 조사원 그리고 집에서 맥주를 한잔 하신 것 같다고 했는데 어떤 맥줍니까? 변신남 맥주가 우리 집 찾는 거랑 뭔 상관입니까? 조사원 알코올 성분이 선생님 몸에 어떤 반응을 일으켜서 변신 또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걸 수도 있는 거잖아요. 변신남 나 술 쎄요. 맥주 세 캔에 필름 끊기고 그런 거 안 해요. 조사원 (기록하며) 세 캔이라··· 아까는 하나 드셨다고 안 하셨나요? 변신남 하나고 셋이고 그 정도로는 멀쩡하다니까요. 이건 술과는 상관이 없어요. 어느 순간 머리가 띵하더니 깨지게 아팠고 그 다음엔 기억이 없다니까요. 조사원 예 알았습니다. 어떤 걸로 변해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시구요. 변신남 그냥 깨어나 보니까 처음 와 본 곳이었고, 그 전의 모습을 보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니까요. 조사원 변신 순간에도 혼자셨나요? 변신남 그걸 기억하면 내가 여기서 똑같은 얘기 반복하고 있겠어요? 조사원 오늘이 9월 30일입니다. 두 달 만에 돌아오신 분도 흔치 않지만 이렇게 전혀 기억을 못하시는 분은 없었거든요. 사람에 따라 기억이 돌아오는 속도가 다르긴 하지만, 선생님은 아직 변신 후 복귀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구요. 변신남 미치겠네 진짜. 휴대폰 기록과도 일치한다면서요. 조사원 잘 생각해보세요. 변신했다가 돌아온 분들은 긴 악몽을 꾼 것처럼 몸과 마음이 무겁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은 대개 기억하고들 있었습니다. 변신남 이유가 있을 거 아뇨. 이렇게 사람들이 변신하는 이유를 알면, 나도 그러그러해서 변했겠구나 추측도 하고, 그러면 자연히 내가 변신했었는지 단순 기억상실인지 분간도 가능하고. 조사원 저희도 원인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더 이상 사회적인 문제로 커지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구요. 변신남 최선만 다하면 뭐해요. 밝혀진 건 모두에게 알려서 스스로 원인을 제거하고 정확하게 진단해서 치료하도록 해야지. 뭐든 불투명해서 좋을 거 없잖아요. 조사원 아직 밝혀진 게 없어서 그런 거죠. 아니면 밝힐 단계가 아니거나요. 변신남 그러니까 발전이 없는 거예요. 질병은 만방에 알려 함께 고쳐나가는 게 맞는 거 아니요? 나 같은 케이스의 변신이 또 있을지 누가 알아요. 조사원 저희도 이게 변종인지 조사가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변신남 마누라랑 집 찾아달라고 했더니 이제 변태취급까지 하는 거요? 여기서 하는 일이 뭔데. 변신한 사람들, 아니 물건들, 집 찾아서 안전하게 돌려보내주고, 돌아오면 변신한 이유가 뭔지 파악하고 그러는 거 아니냐구요. 조사원 진정하십시오. 안 도와드리겠다는 게 아니라 집에서 변신했는데 깨어나 보니 쓰레기장이었다는 건 저희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 아닙니까. 거기다가 변신해 계셨던 기간도 길고, 어떤 걸로 변신해 있었는지조차 모르신다면서요. 변신남 나도 이상하니까 이렇게 찾아온 거 아닙니까. 조사원 보통은 변신을 했을 경우 신고가 들어옵니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시민들이 발견하고 신고를 해주시거든요. 저희 직원들에 의해 발견되는 경우도 있구요. 하지만 선생님께선 변신이 아니라 단순한 기억상실증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나 막중한 책임감 같은 걸 느끼셨냐는 질문에도 아니라고 답하셨잖습니까. 변신남 내 마누라랑 딸이 없어지고 집이 이사를 갔다니까요. 조사원 그 점도 이상하구요. 변신남 변신이 틀림없어요. 내 기억에서 지워진 두 달 사이에 뭔 일이 생긴 겁니다. 집이 사라지고 가족들도 연락이 안 되고. 뭔가 사고가 있는 게 틀림없다구요. 조사원 집에서 변신했다면 왜 사모님이 신고를 안 하셨겠어요. 변신남 내가 묻고 싶은 게 그겁니다. 조사원 혹시 몽유병 같은 거 앓으신 적은 없으시죠? 변신남 지금 장난합니까? 조사원 병력 사항 질문란에 적혀 있어서 그럽니다. (뭔가 기록하고)쓰레기장 주변 CCTV를 조사 중이니까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겁니다. 누군가 쓰레기장에 선생님을 옮겨 놓은 게 포착되면 역추적을 통해서 이동 경로가 파악되겠죠. 스스로 쓰레기장에 들어가지는 않으셨을 거 아닙니까. 변신남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내 발로 쓰레기장에 들어가겠어요? 조사원 알겠습니다. 변신남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냈다거나 하는 건 다시 알아볼 순 없습니까? 조사원 아까 알아봐 드렸잖아요. 변심남 그 사이에 또 뭐가 들어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조사원 경찰서 조회 결과로도 확인되는 게 없고. 저희 쪽에도 신고된 게 아직 없습니다. 네트워크로 연결돼서 바로 뜨거든요. 변신남 …. 조사원 조만간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서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생님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리다 보니까 신고를 하지 못한 걸 수도 있으니까 더 기다려보는 수밖에요. 변신남 (풀이 죽는다) 조사원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제일 빠릅니다. 변신남이 기억을 더듬어 회상으로 넘어간다. 그 때, 돌멩이 하나가 변신남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온다. 돌을 주워드는 변신남.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변신남 그날도 다른 날처럼 아침 일찍 출근을 한다고 집을 나왔던 것 같아요. 월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화요일이었나? 회사에 안 나가면서부터 요일 구별하기가 점점 힘들어져서요. 딸은 방학이라 오전에 영어학원을 갔을 테고, 마누라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에어로빅에 갔을 겁니다. 구립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우다 나왔는데,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육교가 하나 있어요. 그 앞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둘이 경찰이랑 얘기하고 있는 걸 봤습니다. 무대는 육교가 서 있는 도로가로 바뀌고 변신남이 돌멩이를 들고 육교 한쪽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다. 경찰의 모습은 관객에게 보이지 않고 교복을 입은 두 여학생만 경찰과 인터뷰하듯 이야기한다. 변신남은 육교 건너편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교복1 진짜예요. 한순간에 변했다니까요. 교복2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교복1 바로 이 육교예요. 교복2 저기 위에 보이시죠? 우린 그냥 걸어가고 있었어요. 교복1 독서실은 반대쪽인데 떡볶이랑 순대 먹으려면 여기로 지나가야 되거든요. 교복2 그 시간에는 원래 육교에 사람이 없어요.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횡단보도가 있거든요. 교복1 우리는 그냥 여기로 건너요. 조금 편하자고 돌아가고 그러는 거 우린 안 하거든요. 이런 날씨에는 육교로 건너고 그러는 게 더 낭만적이잖아요. 교복2 오늘은 다른 날보다 사람도 없고 거리가 한산하면서 묘하게 나른했어요. 교복1 네, 그냥 단순히 여름이라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아지랑이가 세상을 녹일 것 같은 그런 날 있잖아요. (교복2에게) 좀 영화 같지 않았냐? 교복2 많이 영화 같았지. 교복1 그치그치. (앞을 보며) 한 아저씨가 육교로 올라오고 있더라구요. 와이셔츠를 입고, 보통 키에 그냥 흔한 아저씨였는데요, 우리는 반대쪽에서 올라갔고요. 교복2 그런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그 아저씨 몸이 흐물거려 보였거든요. 교복1 아냐. 희미해 보이는 것 같았어. 옅어졌달까. 교복2 흐물거리던데. 교복1 희미해졌다니까. 교복2,1 (동시에 강하게 부정하며) 아니에요. 거짓말 아니라니깐요. 교복1 얘랑 저랑 말이 다른 게 아니라 표현방식이 다른 거예요. 교복2 원래 같은 걸 봐도 느끼는 회로 방식이 달라서 그래요. 교복1 아무튼요··· 그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다가, 점점 줄어들더니··· 교복2 한순간에 펑. 교복1 ‘펑’은 맞는데 스모그는 없었지? 교복2 맞아. 스모그가 없어서 더 마술 같았어요. 교복1 만화영화 보면 사이즈가 팍팍 줄어들면서 변신하는 장면 있잖아요. 교복2 슬로모션처럼요. 촤르르르륵. 교복1 딱 그랬다니까요. 그러더니 호호아줌마처럼 펑, 교복2 하고, 돌멩이가 됐다니까요. 교복1 네? 아, 네. 저희가 원래 호흡이 척척 맞아요. 돌멩이요? 교복2 그게요…. 교복1 사실 그 돌멩이 때문에 저희가 제보를 드린 건데요…. (교복2에게) 내가 말해? 교복2 (끄덕인다) 교복1 얘가요…, 장난으로 그 돌멩이를 차버렸거든요. 교복2 그러니까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요…, 그 아저씨가 돌멩이로 변해서, 그걸 보는 순간 제 눈을 믿기 힘들어서, 한번 건드려본다는 게 그만…. 진짜 살짝 찼는데 밑으로 굴러 떨어지더라구요. 교복1 육교에서 차니까 당연히 밑으로 떨어지죠. 제가 봐도 진짜 살짝 찼거든요. 교복2 그래서 우리가 막 찾았는데 이 돌멩이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교복1 가로수 밑이랑 인도 쪽도 샅샅이 뒤져 봤어요. 교복2 근데 그 아저씨 진짜 돌멩이로 변한 거 맞죠. 교복1 사람들이 이상한 걸로 변한다는 얘긴 되게 많이 들었는데, 우린 말만 들었지 처음 봤거든요. 교복2 당근 처음이지. 왕 놀랐다니까요. 교복1 나도 완전 놀랐잖아. 교복2 아니라구요? 왜요? 맞는 거 같은데. 교복1 우리가 직접 봤다니까요. 교복2 그 돌멩이는 어디 있는지 우리가 모르죠··· 몰라서 경찰서에 신고한 거죠. 교복1 아,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에도 신고하려고 했는데요 교복2 일단 돌멩이부터 찾아야 될 거 같아서요. 원래 뭐 찾는 건 경찰아저씨들이 더 잘하잖아요. 교복1 돌멩이 어딨냐고 물어보시는 거 보니까, 변한 거 맞죠. 그거 변신이죠? 교복2 맞아 맞아. 아저씨 얼굴 굳어지는 거 보니까 맞다. 교복1 (깜짝 놀라며)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우리는 그냥…. 그럼 직접 찾아보시면 되잖아요. 돌멩이를 들고 가서 신고 안 한 건 우리 잘못이지만, 그래도 목격자 신고는 했잖아요. 도서관도 안 가고 조사까지 받고. 교복2 그런데… 그 돌멩이 못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교복1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변신남이 두 여학생에게 다가간다. 변신남 혹시, 이 돌멩이 찾나? 교복1, 2 (눈이 휘둥그레져서) 오 마이 갓! 바로 이거예요. (뺏듯이 가져가서 경찰에게 보여주는) 이 돌멩이예요. 확실해요. 육교 위에 굴러다닐 만한 돌이 아니잖아요. 변신남 …그냥 돌멩인데. 교복1 이런 짱돌이 육교에 있는 거 보셨어요? 교복2 (돌을 바닥에 내려놓고 살짝 차본다) 맞아요. 느낌이 똑같아요. 교복1 경찰서로요? 교복2 우린 무죄인 거죠? 그냥 참고인으로요? 교복1, 2 재잘거리며 경찰을 따라 나간다. 교복1, 2 (나가면서) 그러지 말고 변신대책본부로 가면 어때요. 거기가 어떤 덴가 구경하고 싶어요. 포상 같은 건 없나요? 사회봉사 가산점 같은 건요? 무대 중앙은 어두워지고 조사원이 앉아 있는 조사실 쪽이 밝아진다. 변신남이 원래 있던 자리로 가서 앉는다. 조사원 그 돌멩이라면 저도 기억합니다. 유일했었죠. 변신남 그 사람은 돌아왔습니까? 조사원 일주일 쯤 뒤에 돌아왔다고 들었습니다. 제 담당은 아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자살하러 가는 길이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변신남 자살이요? 조사원 뛰어내리려고 점찍어둔 산에 큰 바위가 있는 절벽이 있었는데, 거기로 가는 길이었답니다. 그러다가 변신을 하게 됐구요. 변신남 다시 뛰어내린 건 아니겠죠? 조사원 별 소식 없는 걸 보면 힘내서 잘 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변신남 다행이군요. 하필 돌멩이라니…, 그걸 보니까, 혹시 변하게 되더라도 돌멩이로는 변하지 말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돌멩이는 좀…, 씁쓸하지 않겠습니까? 조사원 그러네요. 사이. 남직원 그 다음엔 어디로 가셨습니까? 노숙자들이 무대 위로 나온다. 한 줄로 서서 변신남 옆을 천천히 지나가는 노숙자들. 그들은 공원에서 배식하는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다. 변신남,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뒤에 서서 따라간다. 변신남 늘 가던 공원에 갔습니다. 점심은 항상 여기 와서 먹거든요. 점심값도 아낄 겸 해서요. 그런데 그날은 어떤 양복 입은 남자와 밥을 같이 먹게 됐습니다. 무대는 공원 벤치로 바뀐다. 변심남이 사랑의 밥차에서 타온 도시락을 들고 벤치에 앉아 먹기 시작한다. 똑같은 도시락을 든 양복 남자가 벤치에 다가온다. 양복남자 다른 벤치가 꽉 차서. 변신남 (자리를 조금 비켜준다) 양복남자 (앉으며) 찬이 점점 부실해지네요. 변신남 예, 뭐. 두 사람, 먹는다. 양복남자 우리 구면이죠? 변신남 (양복남자를 한번 쳐다보고) 그런 것도 같고…. 양복남자 대개는 얼굴 익힐 만하면 안 보입니다. 노숙자도 아니고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밥 타먹기 뻘쭘하니까 그렇죠. 변신남 …. 양복남자 실례지만, 뒤쪽에 있는 인력 사무소에 나오십니까? 변신남 아닙니다. 양복남자 옷차림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저도 아닙니다. 변신남 …. 양복남자 하지만 일자리는 구하고 있죠. 변신남 면접이 있으셨나 봅니다. 양복남자 웬걸요. 이 나이에 면접 볼 데나 있겠습니까. 변신남 그럼…,(넥타이를 바라보는) 양복남자 아, 이거요? 뭐 흔한 케이습니다. 정리해고 당한 걸 집사람도 아는데, 제가 집에 있는 걸 도무지 싫어해서요. 산책하는 기분으로 편한 옷이라도 입고 나갈라치면 티 좀 내지 말라고 해서 늘 이런 차림입니다. 변신남 예…. 양복남자 (서류가방을 들어 보이며) 만화책도 몇 권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빌려드리죠. 변신남 예, 그럼 있다가. 두 사람, 먹는다. 양복남자 들으셨어요? 변신남 뭘요? 양복남자 어제 뉴스에 나왔잖아요. 회의실 단체 변신 사건. 변신남 아, 그거요. 양복남자 거기, 제가 다녔던 회삽니다. 아침마다 매출신장 몇 퍼센트 달성을 외치며 으쌰으쌰하는 회의가 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세뇌 같은 건데 그게 또 서로 경쟁이 붙고 분위기를 그쪽으로 몰아가면 압도되는 묘한 마력이 있거든요. 아무튼 그 회의실에서 무려 다섯 명이나, 똑같은 시간에, 변신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돼지저금통으로 변한 사람은 분명 박부장일 거예요. 원래 돼지같이 생긴 데다가 먹는 거랑 돈에만 욕심이 많았거든요.  변신남 . 복남자 (먹으며) 밥통으로 변한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그건 누군지 감이 잡히질 않아요. 아침을 안 먹고 왔을까요? 아니면 가족들 굶기게 될까봐 걱정을 했었나. 아무튼 월요일 아침마다 회의실 벽에 영업실적표가 나붙는데, 아침을 든든히 먹어도 그거 보면 속이 쓰리죠. 쇠주걱으로 긁어대는 것처럼 말입니다.  변신남 .  양복남자 제가 쓸데없는 얘길 했나요? 식사하시는데.  변신남 괜찮습니다. 어딜 가나 그런 얘기들뿐인데요.  양복남자 보건당국은 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곳이면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렇게 불안해서야 원.  변신남 국가재난설정 단계도 경계단계로 올라갔다고 하던데요.  양복남자 아무리 봐도 질병본부보다는 처음부터 재난본부에서 나섰어야 했던 거 아닌가 싶어요.  변신남 재난이든 질병이든 원인을 빨리 찾아야 할 텐데 말이죠.  양복남자 (먹으며) 신기하지 않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안 변하잖아요.  변신남 우리 같은 사람들이요?  양복남자 이치가 그렇잖아요.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 성실한 사람들이 더 많이 변신을 한다 이겁니다.  변신남 그만큼 피로가 쌓인 사람들이니까, 몸의 변화도 다르겠지요.  양복남자 우리는요? 나야말로 피로가 켜켜이 쌓인 사람인데.  변신남 사람마다의 책임감과 의무감을 어떻게 재겠습니까.  양복남자 물론 상대적이겠죠. 그래도 노숙자는 안전하답니다. 걱정이 덜하니까요.  변신남 그럴 수도 있겠네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구요.  양복남자 예술가는 좋겠어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막중한 책임의식 같은 걸 가지진 않을 테니까.  변신남 꼭 그렇지만도 않겠죠.  양복남자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래도 이건 뭐 소설 같은 데가 있지 않습니까?  변신남 .  양복남자 일하는 사람들 위주로만 변신한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그 사람들 일자리, 우리한테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변신남 그럼 우리도 변하겠죠.  양복남자 그래도 좋으니까 그 자리를 꿰차고 싶은 심정입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이렇게는 더 못살겠어요.  변신남 아직 다른 도시까지는 확대되지 않았답니다. 사람들이 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양복남자 서울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는 좋은 대책일 수 있겠네요.  변신남 그렇게 되면 서울 경제는 누가 돌립니까?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일자리도 줄어들고.  양복남자 팔팔한 젊은 인력을 마구 뽑지 않을까요?  변신남 젊은 사람도 일하게 되면 똑같아지는 거 아닐까요? 살아남으려면 사회화되고 기성화될 테니까요.  양복남자 이럴 땐 내가 사회적 동물이란 게 싫어진다니까요.  변신남 사는 거, 퍽퍽하죠.  양복남자 예. 밥도 퍽퍽하고. (기합을 넣듯) 그래도 우리 주눅들지는 말자구요. 서로 변하지 말고, 매일 여기 나와서 밥 먹읍시다. 사랑의 밥.  변신남 긍정적으로 사시는 것 같습니다.  양복남자 다 살아지는 법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변신남 부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여유가 생깁니까.  양복남자 그런 게 있습니다.  변신남 (씁쓸한 표정으로 도시락을 덮는다)  양복남자 흠흠. 이건 비밀이라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해주는 건데, 처지도 비슷하고 나쁜 분도 아닌 것 같으니 내가 쓰는 방법을 알려드리지요.  변신남 방법이요?  양복남자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는 비밀입니다. 쓸모 있는 걸로 변신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비법이 있어요. 나 같은 경우는 금으로 된 롤렉스시계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마누라한테 전당포에 맡기라고 하는 거죠. 밤이 되면 몰래 변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되고요.  변신남 그게 가능합니까?  양복남자 내가 이 더운 날 밥차에서 도시락까지 얻어먹으면서 거짓말 하겠어요? 불법으로 변신 기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있는데, 관심 있으면 소개해 주리다. 하지만 그걸 연마하려면 보통 수행으로는 어림없어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의 기를 몽땅 정수리에다 모으려면 (가슴을 탁 치며) 여기랑 (머리를 치며) 여기가 타들어가는 거 같거든요. 이런 더위는 아무 것도 아니죠.  변신남 믿기지는 않지만, 가능만 하다면야 뭘 못하겠습니까.  양복남자 아니, 가능은 한데, 먼저 믿어야 연마가 가능하다니까요.  변신남 그런 얘기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요.  양복남자 계속,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나, 나는 왜 이렇게 사나, 나는 우리 가족에게 아무 쓸모가 없구나, 차라리 금덩어리로 변해라. 그런 생각을 아주 간절히 혼신을 다해서 하는 거죠. 그러면서 나에게 주어진 많은 짐들을 머리 가득 넣고 가슴으로 우는 거예요.  변신남 가슴으로 울어요? (모르겠다는 표정)  양복남자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회적 의무 같은 것들을 가슴에 채우고. 아 이거 말로 설명하려니까 어렵네. (주위를 살피더니) 내가 딱 한 번만 보여줄 테니까 잘 봐요. 어차피 최소 한 시간은 변신해 있어야 하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만화책 보면서 기다리슈.  변신남 (못미덥게 쳐다본다)  양복남자 참 나. 내 기술을 무시하시네. 변신한 거 보고 놀라지나 마시라니까.    양복남자, 벤치에 앉아 양손을 맞잡고 기를 모으는 자세를 취한다. 한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만의 언어로 중얼거리더니 얼굴이 일그러지고, 미세하게 경련하기 시작한다.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불똥이 튀는 것을 느끼는 변신남. 그 순간, 눈앞에서 양복남자가 사라진다. 순식간이다. 벤치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황금 롤렉스시계.    변신남 (시계에 대고 다급히) 이봐요. 이봐요. 괜찮아요? 이봐요! (시계에 귀를 대보고) 이봐요, 괜찮은 거예요? (안절부절못하고) 이거 어떡하지? 진짜 변한 건가? 그럼(휴대전화를 꺼내 신고하려다가) 거기 변신대책본부죠? 저기(엉겁결에 전화를 끊는다) 아니지. 아, 이거 어떡하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시계에 대고) 이봐요, 말 좀 해봐요. (시계를 흔들어보는) 괜찮아요? 대답 좀 해요.  변신남은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을 파악하려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누구에게 도움이라도 청하려는 것처럼 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되돌아오더니, 주위를 살피고 롤렉스시계를 잽싸게 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뜬다.    무대 어두워지고 조사실 창구만 밝아지면, 거기 조사원이 앉아 있다. 변신남,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    조사원 아니 진짜로 그렇게 변신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변신남 (끄덕인다) 내 눈으로 봤다니까요.  조사원 말이 안 되죠. 그런 일이 있다면 왜 저희가 몰랐겠어요.  변신남 진짜라니까요.  조사원 그 양복 입은 남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변신남 나야 모르죠.  조사원 모르다니요? 주머니에 넣으셨잖아요. 신고는 하셨습니까?  변신남 (고개를 젓는다) 신고는 안 했지만 진짜 있었던 일이에요.  조사원 아까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잖아요.  변신남 얘기하다 보니까 생각이 난 거죠.  조사원 하지만 아직까지 변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모두 유언비어예요.  변신남 결혼하셨습니까?  조사원 아니요.  변신남 혼자 사쇼?  조사원 부모님이랑 함께 삽니다. 신남 변신 자격미달이네요. 우리 조사원님은 어깨에 짊어질 무게가 하나도 없으시니 안심하셔도 되겠습니다.  조사원 아직 증명된 원인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변신남 중년의 남자들이 왜 그렇게 많이 변한다고 생각합니까.  조사원 드물긴 하지만 젊은 남자들도 종종 변합니다. 여성 가장들의 변신도 늘고 있는 추세구요.  변신남 그 사람들이야 특별 케이스고.  조사원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긴 하겠지만, 유럽에선 사람이 벌레로도 변하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필요하면 막 변했습니다.  변신남 그 사람이 왜 벌레로 변했겠습니까? 소설이나 신화 속에서 일어나던 일들이 왜 지금 일어날까요?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이 변신하는 거 보셨습니까?  조사원 (고개를 가로젓는다)  변신남 행정하시는 분들이 이러니까 문제라구요. 사회 곳곳에 골고루 시선을 분산시키면서 정확히 봐야 하는데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거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 줄 알아요?    갑자기 무대 중앙이 밝아지면서, 변신 중인 사람들이 보인다.    ―교도소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남자가 무대 중앙으로 나와서 웃옷을 벗어붙인다. 온몸은 문신투성이지만 어딘가 둔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는 이소룡 흉내를 내듯 기를 모으고 변신 기술을 연마 중이다. 그러다가 비장한 각오를 밝히듯,    문신남자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내가 변신에 성공해서 여기만 나가면 엄마 호강시켜 줄게. (다시 기를 모으고 숨을 후 내뱉으며) 아자!  교도관 거기 3113번. 허튼수작하지 말랬지?  문신남자 우리 엄마가 집에 혼자 계세요. 우리 엄만 너무 나이가 많아서 거동도 불편하다구요. 끼니도 제때 못 챙겨먹을 텐데. 연탄불은 꺼지지 않았는지.  교도관 한여름에 무슨 연탄불이야. 너는 앞으로 5년은 더 썩어야 돼.  문신남자 여름이요? 제가 여기 들어온 지 한 계절도 안 지났단 얘깁니까?  교도관 이상한 변신 같은 거 연마했다간 가만 안 둘 줄 알어. 힘은 아껴뒀다가 노동 시간에나 쓰란 말야.    교도소 옆방에서 철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재소자들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져 폭동처럼 들려온다.    소리 우리에게 변신의 자유를 허용하라! 허용하라! 우리의 변신 권리를 사수하자! 사수하자!    거리의 사람들 인터뷰가 이어진다.    사람들1 언제 변신할지 모르니까 불안할 수밖에요.  사람들2 그게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3 변신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숨을 참으면 된대요.  사람들4 한번 변신하면 면역이 생긴다고 하던데요.  사람들1 내성이 생긴 변종변신도 생겨났다면서요?  사람들2 약으로 조절이 가능한데 일부러 임상실험을 안 하는 거 맞죠. 사람들3 복수하려고 따라다니는 사람도 많대요. 변신하면 죽이려고요. 사람들4 날 감시하는 게 틀림없어요. 내가 변신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겠죠. 사람들1 변신하면 배설은 어떻게 해결하죠? 사람들2 우리 아이랑 기르던 개가 이상해요. 변신한 것 같아요. 사람들3 언젠가 나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변할까봐 걱정돼요. 사람들4 변신 기술을 개발해서 정치적 무기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1 우리에게는 농업적 근면성이 있으니까 그 정도 변신 기술 개발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죠! 사람들2 전쟁시엔 적군을 모두 사물로 변신시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면 어떨까요. 사람들3 노력하면 애완동물로도 변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인 잘 만나면 애완동물로 사는 게 나을 때도 많잖아요. 사람들4 내 남편은 똑같은 모습의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어요. 외모는 똑같은데 분명 그이는 아니거든요. 사람들1 우리 집 가전제품들은 모두 사람들이 변신한 것 같아서 쓰질 못하겠어요. 사람들2 잘못 건드렸다가는 살인죄가 적용되는 거잖아요. 사람들3 남성을 중심으로 바뀌는 거면 여자 동성애자들은 안전한 거죠? 사람들4 저는 열두 살 소녀가장이에요. 무료백신은 안 놔 주나요? 사람들이 우왕좌왕 거리를 왔다갔다 한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여기저기서 들리더니…, 변신한 사람들로 거리가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마비가 된다. 사람들이 질러대는 소리들과 자동차들의 클랙슨 소리가 뒤섞여 정신없다. 사람들1·2·3·4 도와줘요, 청소기로 변했어요. / 여기 점퍼로 변한 사람이 있어요. / 어머, 이게 웬 모자지? / 장롱이에요, 거리 한가운데 장롱이 서 있다구요. / 와, 예쁜 목걸이네. / 앗! 오물 묻은 양말. 으윽 드러워. / 볼펜이다. / 장갑이에요. / 가위를 찾아주세요. / 여기 일회용 면도기가 한 무더기 있어요. / 마우스잖아. / 자전거로 변한 남편을 어떤 여자가 타고 갔어요. / 부서진 카세트네. / 사람이 두통약으로 변신한 거예요. 먹으면 안돼요. / 찢어진 천사 날개 못 보셨나요? / 무슨 의자가 이렇게 딱딱해. / 스카이 콩콩이요? 변신한 사람들로 일대 혼란을 일으키던 사람들이 사라지면 바닥에는 변신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변신대책본부 직원들이 거리로 나가 떨어진 물건들을 수거하느라 정신없다. 조사실에 있던 조사원도 거리로 나가 직원들과 물건을 수거하고 그들과 함께 무대 밖으로 나간다. 조사원이 없는 조사실에 혼자 남겨진 변신남. 변신남만의 회상은 전당포로 이어진다. 무대는 전당포가 된다. 변신남, 전당포로 들어간다. 변신남, 주머니에서 롤렉스시계를 꺼내 주인에게 내밀면 주인, 확대경을 한쪽 눈에 끼고 시계를 감정하기 시작한다. 변신남 시곗줄만 보지 말고 문자판도 좀 보세요. 전당포주인 …(살핀다) 변신남 전체가 18K예요. 나사 하나까지 다. 전당포주인 …어디서 난 거요? 변신남 게다가 문자판은…. 전당포주인 그러니까 어디서 난 거냐구. 변신남 사업하시던 형님이 물려주신 겁니다. 전당포주인 다들 물려받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변신남 장물 아닙니다. 전당포주인 (확대경을 뺀다) 변신남 아니, 좀 더 자세히 보시라니까요. 안쪽에는 순금이에요, 순금. 전당포주인 갖고 가쇼. 변신남 예에? 전당포주인 그냥 가져가시라고요. 변신남 왜 그러시는데요. 훔쳐오거나 흠집 있는 물건 아니라니까요. 전당포주인 (쳐다본다) 변신남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전당포주인 훔치지 않았으면 어디서, 주웠소? 변신남 예? 전당포주인 그런가보네. 변신남 됐습니다. 전당포가 여기 하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 있는 귀한 물건 들고 나와서 푼돈 좀 만들어보자고 이런 모욕까지 들을 건 없잖습니까. 전당포주인 (시계를 다시 본다) 변신남 막말로 이 정도 물건이면 사장님 손해 볼 거 없잖아요. 전당포주인 신데렐라 얘기 아쇼? 변신남 뭔데렐라요? 전당포주인 12시만 넘으면 호박으로 변하는 신데렐라 말이오. 변신남 왜요, 금시계 보니까 갑자기 금마차라도 생각나십니까? 전당포주인 호박이면 죽이라도 쑤어 먹지만 사람으로 변해버리면 난처해지죠. 요즘 전당포에 변신사기가 판을 칩니다. 변신남 …. 전당포주인 어떻게 장담하시겠소? 변신품이 아니라는 거 말이오. 변신남 속고만 사셨나. 사람이 이렇게 좋은 시계로 변하는 거 보셨습니까? 전당포주인 팔찌, 목걸이, 순금 트로피. 더한 걸로도 변할 수 있지요. 변신남 이건 우리 형님이 사업차 외국에 갔다 오시면서…. 전당포주인 (말 자르듯 망치를 내놓는다) 이걸로 한번 내리쳐 보시든가. 변신남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겁니까? 전당포주인 증명을 해보시라구요. 변신남 내가 못할 거 같아요? 전당포주인 그야 나는 모르지요. 변신남 시계가 망가지면 가격이 떨어질 텐데 그건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전당포주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보다야 덜 손해죠. 망가져도 제값은 쳐 드리지. 만약 사람이 변신한 거라면, 그 사람이 다시는 못 돌아오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명심하쇼. 이 세상과는 영영 빠이빠이란 말이요. 저번엔 진짜로 내리친 사람이 있었는데…, 얼마나 끔찍했던지. 돌아오긴 했는데 반병신이 되었습디다. 평생을 병원에 누워 사는 수밖에. 변신남 그럴 일 없습니다. 이건 진짜 시계니까. 전당포주인 그럼 쳐 보시오. (빨리 쳐보라는 시늉) 변신남 (망설인다) 전당포주인 (떠보듯) 형님이 주신 거라면서…, 아까우면 그냥 갖고 가시든가. 변신남 (결정한 듯 내리치려 하지만 망치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전당포주인 뭐해요 안 내리치고. 변신남 진짜 이거 망가져도 제값 쳐주는 거죠? 전당포주인 증명만 해 보인다면야. 변신남 (심호흡.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얏! 전당포주인 (순간적으로 변신남의 팔목을 잡아채는) 잠깐! 변신남 (멈칫) 전당포주인 됐소. 맡겠소. (시계를 종이 상자에 넣으며) 길에서 변신한 사람들 주워다 돈벌이 하는 사람들 숱하게 봤지. 나도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 도리는 지키고 살아야 될 거 아뇨. 사람이 있어야 사람한테 사기도 치고 돈도 뜯고 그럴 거 아니요. (돈을 지불한다) 양심은 한번 망가지면 다시는 복귀가 안 되는 거 알죠? 당신을 믿어보리다. 형님이 주신 거라면서? 소중한 것일 테니까 꼭 찾으러 오쇼. 변신남 …(돈을 받아든다) 전당포주인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만 변신한다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죠? 변신남, 대답 없이 돈을 들고 나간다. 그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무대 어두워지고, 다시 조사실만이 밝아진다. 변신남, 조사실 의자에 앉는다. 조사원, 땀을 닦으며 들어와, 정장 상의를 벗어 의자에 걸치고 앉는다. 조사원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본부 수거담당 쪽에서 급히 사람이 모자란다고 해서…. 그런데 어디까지 했었죠? 아, 그래서 그 시계는 어떻게 했습니까. 변신남 시계는… 내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그 벤치에 갖다 뒀습니다. 그 사람은 한 시간 뒤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구요. 그날 밤 이후의 일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조사원 (엷게 웃으며) 여전히 마음대로 변신할 수 있다고 믿으시는군요. 최대한 솔직히 말씀해주셔야 선생님뿐만 아니라 조사에도 도움이 됩니다. 변신남 …. 조사원 그 다음엔 바로 집으로 가셨습니까? 변신남 예. 집에 가보니까 아내와 딸이 있었습니다. 조사원 만나신 거네요? 변신남 그런 거나 마찬가지죠. 이제 생각 났습니다. 조사원 아까는 혼자 술을 드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변신남 그러니까 그게··· 조사원 말을 자꾸 바꾸시면 안 됩니다. 변신남 그냥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는 겁니다. 조사원 예. 일단 얘기를 해보세요. 변신남 집에 갔는데 딸이 밥을 먹고 있었어요. 무대는 변신남의 집.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딸. 변신남이 집으로 들어간다. 변신남 나 왔어. 딸 (쳐다보지도 않고 밥을 먹는다) 변신남 학원은 어떠냐? 딸 (대답 없다) 변신남 요즘 대학생들은 배낭여행 많이 가던데. 넌 안 가도 되니? 딸 (아빠를 무시하며) 엄마, 국 좀 더 줘. 아내, 나온다. 아내 (변신남에게 왔냐는 인사도 없이) 그만 먹어. 살쪄. 딸 배고파. 변신남 나는 밖에서 먹고 왔어. 장 과장이 삼계탕 잘하는 집을 안다고 해서. (아내와 딸은 듣지도 않는데 과장되게) 어휴, 배부르다. 딸 (엄마에게 말하지만 아빠에게 들으라는 듯) 한밤중에 밥 먹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지금 먹어두면 좀 좋아. 덜그럭 덜그럭 잠이나 깨우고. 아내 (밥을 퍼서 변신남 앞쪽에 갖다 놓는다) 변신남 (침을 꿀꺽 삼키며) 배부른데···. 아내 먹어. 변신남 오이냉국 맛있어 보이네. 그럼 조금만 먹어볼까. 변신남이 못이기는 척 식탁에 앉자 딸이 식탁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변신남 (돈을 꺼내 놓으며) 저번에 맡았던 공사 말야. 그 쪽 업체에서 대금이 들어왔나봐. 월급도 제때 못줘서 미안하다고…. 보너스다 생각하라면서 주더라구. 아내 (남편을 돌아본다) 변신남 아파트 융자금 밀린 거 꽤 되잖아. 부족하겠지만 좀 보태라고. 아내는 남편을 돌아보지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돈을 들고 들어간다. 혼자 남아 밥을 먹는 변신남. 공원에서 도시락을 타먹을 때보다 더 퍽퍽한 느낌이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시간이 구름처럼 흩어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둘러봐도 피아노는 없다. 밥을 먹다 말고 창밖을 바라보는 변신남. 보이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닮은 형체도 색깔도 없는 허공뿐…. 피아노 소리가 변신남의 가슴을 쓰다듬는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 힘들다….’ 식탁 위의 조명이 꺼질락 말락 불안하게 깜박인다. 변신남 어, 이게 왜 이러지? 변신남이 일어나서 전구를 이리저리 만지며 돌려본다. 피아노 소리 점점 커지다가 뚝 멈추면, 짧은 암전과 함께 변신남이 변신한다. 그가 앉아 있던 식탁의자 위엔 장난감 피아노 하나가 놓여 있다. 아내와 딸이 나온다. 아내가 리모컨으로 TV를 켠다. 뉴스캐스터(목소리) …머그컵으로 변신한 남편을 깨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 박모 여인에게 무죄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검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죽은 김씨와 아내 박모 여인은 주말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밝혀졌습니다. 사건 당일에도 박모 여인은 남편의 변신 소식을 듣자마자 변신대책본부를 찾았다가 이런 변을 당하게 되었는데요, 어떤 정황으로도 남편에 대한 고의성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검찰은 박모 여인의 사례를 ‘매우 특이한 사건’으로 보고 그녀에게 살인이나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박모 여인은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적 쇼크 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그런 그녀에게 시민들의 위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딸 (TV를 끄고) 저건 당연히 무죄 아냐? 고의로 죽인 것도 아니잖아. 아내 고의가 아니었는지는 저 여자밖에 모르지. 딸 던진 것도 아니고 미끄러져서 놓친 건데. 아내 죽은 사람만 억울한 거야. 딸 대체 어떤 사람들이 변신을 하는 걸까. 아내 글쎄다. (빈 식탁을 보고는) 니 아빤 밥 먹다 말고 또 어디 갔대니? 딸 자주 없어지잖아. 아내 아빠가 돈을 주더라? 딸 어디서 구했을까. 이제 더는 빌릴 사람도 없을 텐데. 아내 먼저 얘길 안 하니, 아는 척 할 수도 없고. 회사 잘린 지가 얼마야. 딸 (장난감 피아노를 발견하고) 이게 뭐야? 아내 그게 뭐니? (살펴보는) 하여튼 이런 걸 왜. 딸 (피아노를 눌러보며) 소리도 안 나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해. 아빠가 주워온 것들로, 집안이 온통 쓰레기장이야. 아내 고장 난 걸 왜 들고 왔대니. 점점 이상한 버릇만 생기고. 딸 어떻게 좀 해봐. 언제까지 아빠 저러는 거 모른 척 할 건데. 아내 우리가 이런데 아빠는 오죽하겠니. 딸 아빠도 힘들지만 우리도 힘들잖아. 나…, 아빠가 매일 노숙자들이랑 밥 먹는 거 싫어. 아내 …. 딸 우리 이 집 팔고 이사 가면 안 돼? 더 작은 집으로. 아내 이게 어떤 집인데. 아빠가 젊을 때부터 벌어서 처음으로 장만한 우리집이야. 여길 어떻게 나가. 딸 갚을 돈이 더 많잖아. 아내 생각 좀 해보자. 딸 아빠도 참, 그냥 확 터놓고 얘기를 하든가. 거짓말도 하루 이틀이지, 6개월을 뭐하는 거냐구. 아내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아빠야. 그거라도 없으면 니네 아빤, 죽어. 딸 그런 모습 더는 못 보겠어. (흉내를 내며) 삼계탕 먹었더니, 아휴 배부르다. 아내 (장난감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거 어따 치워라. 딸 몰라. 고장난 거, 갖다 버려. 아내 니가 버리든가. (방으로 들어간다) 딸 (따라 들어가며) 저런 것 좀 주워오지 말라고 해 제발.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은 장난감 피아노. 옆에 서서 아내와 딸을 바라보는 변신남의 모습처럼 쓸쓸하다. 딸이 눌러보던 버튼이 뒤늦게 작동하는지 장난감 피아노에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텅 빈 공간에 홀로 선 변신남만이 그 멜로디를 듣고 있다. 변신남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전화벨소리. 조사실의 불이 켜지고 조사원이 전화를 받는다. 변신남은 다시 조사실의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조사원 그래? 알았어. (끊고) 찾았답니다. 변신남 뭐를요? 조사원 사모님과 따님 찾았답니다. 이제 힘들게 기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까 전에 여기로 출발하셨다니까 잠시 후면 도착하겠는데요? 변신남 그래요? (표정 어두워진다) 조사원 기쁘지 않으십니까? 표정이 왜 그러세요? 변신남 아니요. 그냥··· 조사원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게 돼서 그러신가보네요. 오후 내내 조사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정황으로 봐서는 변신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 뭘로 변신하셨는지만 기억하시면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변신남 다 끝난 건가요? 조사원 집도 찾으신 것 같으니까, 먼저 가족들 만나보시고 마무리하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조사원 밖으로 나가고 변신남 초조해한다. 긴장한 얼굴.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인다. 밖에서 조사원의 목소리 들린다. 조사원(목소리) 오셨습니까? 허영범씨는 안에 계십니다. 사모님이랑 따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얼마나 걱정을 하시던지. 이쪽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모시고 나오겠습니다. 조사실의 불빛이 깜박인다. 변신남, 고개를 들어 깜박이는 불빛을 쳐다본다. 불이 꺼진다. 짧은 암전 후, 조사원 들어온다. 조사원 어? 왜 불이 꺼져 있지? 조사원, 불을 켠다. 변신남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변신남이 앉았던 자리 옆에 똑같은 의자가 하나 더 놓여 있다. 조사원 원래 여기 의자가 두 개였었나? (주위를 둘러보며) 허영범씨. 허영범씨. 어디 계세요? 허영범 씨. 허영범씨. 변심남을 찾는 조사원의 목소리만 허공에 가 부딪친다. <끝>
  • [점프 코리아 2010-G20시대를 열다]사공일 준비위원장 신년 인터뷰 / 대담 곽태헌 정치부장

    [점프 코리아 2010-G20시대를 열다]사공일 준비위원장 신년 인터뷰 / 대담 곽태헌 정치부장

    “이번 회의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를 ‘코리아 프리미엄(Korea Premium)’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전기(轉機)를 마련하겠다.” 사공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은 지난 28일 서울 삼청동 사무실에서 가진 신년인터뷰에서 이 같은 비전을 밝혔다. 사공 위원장은 “지금까지 경제 위기탈출을 위한 논의를 주로 해왔다면, 새해 11월 G20 정상회의에서는 경제위기 이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방향이 주로 논의될 것”이라며 “G20 정상회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당장 눈에 드러나는 효과보다는, 국격(國格)이 신장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적인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을 초청하는 데에는 부정적이었다. 사공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을 간추린다. →G20 정상회의를 유치하게 된 의미는. -G20는 지구촌 유지(有志)에 해당하는 나라의 모임이다. 우리가 G20의 일원이 됐을 뿐 아니라 좌장이 됐다. 외교사에 처음있는 일이다. 지구촌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유엔에 가입한 나라는 192개국이다.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한 게 1991년인데, 20년도 채 안돼 192개 나라 중 가장 경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20개국 모임에서 좌장이 된 것이다. 100여년 전인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차 국제평화회의가 개최됐을 때 우리나라는 이준 특사를 파견했지만, 동민(洞民) 취급을 못받았던 걸 생각하면 정말 역사적으로 뜻깊은 일이다. →유치 과정이 쉽지 않았는데.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다고 말씀하셨다. 책을 써도 몇 권은 쓸 내용이다. 경합 도시나 나라가 많다거나, 반대하는 나라가 많아서라기보다는 G20 회의 자체가 제도화되느냐가 문제였다. G8(G7+러시아)이나 G14(G8+중국, 브라질, 인도, 멕시코, 남아공, 이집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도 있었다. G20에서 빠지는 172개 국가의 반발도 문제였다. 국제적인 관계를 고려해 일일이 밝히기는 어렵다(사공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프랑스는 G14를, 일본은 G8을 각각 선호했다). →이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과 관련해 우리에게 국운(國運)이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었기에 유치가 가능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 모두 열심히 일한 국력이 뒷받침됐다. 이 대통령이 그동안 G20 정상회의에서 보여준 리더십도 큰 몫을 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G20 1차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를 하지 말자는 입장을 밝혀 공감을 얻었다. 정상회의나 전화통화를 통해서 세계경제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온 것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다. 한국정부가 기획조정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G20 정상회의를 국정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점도 주효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친 뒤 한국이 업그레이드됐는데 올림픽이나 2002년의 월드컵 개최와 비교하면. -올림픽, 월드컵은 하드웨어가 강한 행사다. G20 정상회의는 소프트웨어적인 성격이 강하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행사를 통해 오는 직접적인 경제효과가 크다. 많은 관람객이 오고 세계 이목이 집중된다. G20도 물론 경제적인 직접적인 효과는 있다. 11월 회의에 세계 정상급 인사만 35명이 온다. 회원국 정상뿐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 수장들이 온다. 공식수행원만 3500명, 취재진만 3000명, 경호인원만 4000명에 이를 것이다.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경제적 효과보다는 장기적인 효과가 더 큰 게 아닌가. -그렇다. G20 정상회의는 장기적인 효과가 더 크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지구촌 유지 모임의 좌장으로 세계경제가 나갈 방향,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하면서 국격이 올라가고 브랜드 가치도 올라간다. 이런 기회를 통해 정치, 사회, 문화 모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로 활용한다면 효과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더 클 것이다. →어떤 의제를 주로 다루나. -우리보다 앞서 6월에 캐나다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마무리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그러나 11월쯤에는 지금보다 세계 경제가 상당히 빠른 회복단계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세계 경제위기 이후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어떤 성장 모델을 가져야 하겠느냐는게 주로 논의될 것이다. →이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에서 20개국마다 대표적인 기업 20개의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하는 이른바 ‘B20’구상을 밝혔는데. -최고의 기업인들을 모아서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회원국들과 협의하고 있다. 400명이 될지, 얼마가 될지는 협의를 거쳐서 정해질 것이다. 어떤 식으로 됐든 기업인들이 G20 정상회의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북한대표단을 초청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G20은 국제경제 협력에 관한 한 프리미엄 포럼이다. 경제협력에 관한 것은 그동안 G8에서 해왔는데, 미국 피츠버그 회의(2009년 9월)에서 G20이 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G20은 당분간 경제분야에서 국제협력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G20에서 정치문제도 다룰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정치성 강한 북한 관련 문제는 신중을 기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주 개최지가 사실상 서울 삼성동 코엑스로 결정됐다는 얘기가 많은데. -(주 개최지는) 공항 접근성과 회의장 시설 등 편의성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보안이나 경호 문제 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다. →재무장관 회의를 비롯한 다른 회의는 지방에서 분산개최한다는데. -G20 정상회의뿐 아니라 재무장관회의, 재무차관 회의, 셰파(Sherpa·실무자) 회의도 모두 완전히 일하기 위한 회의다. 그래서 교통을 비롯해 참석자들의 편의성을 먼저 고려, 최대한 분산 개최할 생각이다. 이런 것을 고려한다는 점을 알고 선정지역에서 빠지더라도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 →해외에 삼성, LG는 잘 알려져 있는 것에 비해 ‘코리아(Korea)’는 잘 모르는 외국인이 많은데. -그래서 이번 회의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로 만들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격이 올라가면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성숙된 모습을 보인다면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 →우리도 이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뀌었는데. -우리 스스로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의 하나였다. 5대 수출품목이 철광석, 텅스텐, 생사, 무연탄, 오징어였다. 1964년에 수출 1억달러를 달성했다고 수출의 날을 만들었는데, 이제 세계 수출 9위의 나라가 됐다. 정리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타이완, 소뼈 등 美쇠고기 금수 재개 추진

    타이완 정치권이 일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다시 금지키로 합의하고 정부 대표단을 미국에 보내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30일 타이완 정치권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여당인 국민당과 제1야당인 민진당은 29일 미 쇠고기 수입에 관한 협상을 열어 일부 쇠고기에 한해 수입금지 재개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는 지난 10년간 광우병 소가 발견된 모든 나라에서 소뼈와 뇌, 눈, 척수, 내장, 간 부위 수입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타이완 의회 왕진핑(王金平)의장은 이날 여·야가 수입 개정안에 합의하고 내년 1월5일 개정안 관련 투표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총통부 왕위치(王郁琦) 대변인은 “정부는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양국관계에 생길 충격을 막기 위해 미국에 대표단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타이완 주재 미국대표부의 토머스 하지스 대변인은 타이완의 결정에 대해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고 티머시 양 타이완 외교부장은 이번 결정이 앞으로 미국과 무역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와 농무부(USDA)는 “타이완의 개정안은 과학적 사실이나 근거가 없다.”는 성명을 내며 반발하고 있다. 타이완 정부는 지난 10월 생후 30개월 미만의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 금수조치를 철회하기로 했으나, 시민사회단체 등이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국민을 광우병 위험지대로 내몰고 있다.’며 재협상을 요구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부처 업무보고] 보금자리 18만가구 공급… 2차분 예정대로 4월 예약

    [부처 업무보고] 보금자리 18만가구 공급… 2차분 예정대로 4월 예약

    ■ 국토해양부 - 경부고속철도 2단계 내년 11월 조기완공 30일 대통령에게 보고된 내년 국토해양부의 주요 업무는 공공사업 조기 집행과 차질없는 주택공급, 철도교통 인프라 구축에 초점이 맞춰졌다. ●상반기 중 공공사업 44조원 집행 새해에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조기집행 기조가 이어진다. 민간 투자사업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공사업 집행은 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국토부 소관 내년 SOC 예산은 23조원으로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중 66%(15조 2000억원)가 상반기에 집행된다. 올해 상반기에 투자한 SOC 예산(15조 900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 산하 공기업 예산(47조 6000억원)의 61%인 29조 1000억원도 내년 상반기에 집중 발주한다. 공기업 전체 예산도 대폭 늘렸다. 올해 7조 2000억원에서 내년에는 9조 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교통 SOC투자는 도로에서 철도 위주로 재편된다. 이를 위해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을 2개월 앞당겨 내년 11월 완공해 개통한다. 내년 설계에 착수하는 수서~평택 고속철도 구간은 수서역을 출발, 동탄역을 거쳐 경부고속철도가 지나는 평택에 이른다. 구간 대부분이 지하로 건설된다. 2011년 하반기에 착공해 호남고속철도와 함께 2014년 말 완공된다. 3조 7231억원 중 40%는 국고, 나머지 60%는 철도시설공단이 조달해 개통 후 선로사용료를 받아 충당한다. 수서~부산을 1시간59분만에 오갈 수 있어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11분 빨라진다. 수도권 동부지역 주민들은 서울역까지 나가지 않아도 돼 고속철도 이용이 쉬워질 전망이다. 보금자리주택은 내년에 18만가구를 공급하되, 위례신도시 3000가구와 2차 보금자리주택지구 6곳의 사전예약을 예정대로 내년 4월에 받기로 했다. 수도권 그린벨트 20㎢를 풀어 주택 8만가구를 건설할 3차, 4차 보금자리주택지구도 추가로 지정하기로 했다. 지방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많아 청약통장과 순위 의미가 없어졌다는 점을 감안해 지방 아파트 청약 1순위 자격을 24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한다. ●오피스텔 등 준주택 공급 확대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권도 확대된다. 입주자 선정 권한을 지자체장에 이양해 청약가점제 적용 등을 자체적으로 판단, 결정하도록 했다. 청약과열이 우려되는 지역은 지자체장의 재량에 따라 1순위 기간을 24개월까지 연장할 수도 있다. 우선공급 제도는 사라지고 특별공급으로 일원화된다.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준주택’ 개념이 도입된다. 오피스텔과 고시원, 노인복지주택 등을 준주택으로 간주하고 정부가 정한 안전·피난·소음기준 등을 충족하면 국민주택기금을 지원하거나 용적률을 올려주는 등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이다. 도시형 생활주택 가운데 단지형 다세대 주택은 현재 연면적 660㎡ 이하만 지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연면적 제한을 풀어 단지형 연립주택도 지을 수 있게 된다. 영구임대주택 공급은 올해 5000가구에서 내년은 1만가구로 늘린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행정안전부 - 감사·건축 등 지자체 공무원 2000명 맞교환 30일 행정안전부가 보고한 내년 주요 업무는 공직사회 기강 바로세우기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방점이 찍혔다. 우선 공직자 비리를 막기 위해 감사와 인사, 건축, 세무, 회계, 법무, 사회복지 부서에 근무하는 지자체 공무원 2000명을 광역-기초단체 간 또는 기초단체 사이에 맞바꾸기로 했다. 올해 사회문제화됐던 공직사회 비리구조를 없애기 위한 고육책이다. 내년 전국지방선거 8개가 동시에 치러지는 만큼 비리를 사전차단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토착비리 신고센터 운영, 부정 계약업체와의 계약해지 의무화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경기회복 추세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 나오는 만큼 서민·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행정인턴과 IT분야, 재해예방, 지역공동체 등 4개 부문 공공 일자리 6만 1300개가 만들어진다. 중앙부처와 자치단체, 지방공기업은 2만 654명을 신규 채용한다. 지방재정의 60%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는 등 지난해에 이은 적극적인 재정투자로 고용을 창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역상생발전기금을 조성한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3개 시·도로 납입되는 지방 소비세를 출연해 연간 3000억원, 2019년까지 총 3조원의 기금을 조성해 지역고용 증진에 집중 투입한다. 희망근로사업은 내년에도 지속하되 ‘포스트-희망근로대책’으로 ‘지역 커뮤니티 비즈니스(CB)’ 사업을 추진한다. CB사업은 보육, 지역특산품, 생태여행 등의 수익사업을 주민들이 주도하는 자립형 사업모델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농림수산식품부 - 수입쇠고기도 유통이력제 도입 농림수산식품부의 내년도 업무계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한 방안이다. 농식품부는 현재 100㎡ 이상 규모의 음식점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쌀과 김치의 원산지 표시제를 내년 12월부터 전 음식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원산지를 거짓으로 표시한 사실이 적발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표시를 안 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국내산 쇠고기에 대해서만 시행되고 있는 유통이력제도 내년 12월부터 수입 쇠고기로 확대된다. 맹독성 농약 12종의 사용이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금지된다. 막걸리와 청주 원료의 원산지 표시제도 12월부터 도입해 우리 술의 고급화를 촉진한다. 2008년 3000억원 수준이던 막걸리 시장을 2012년 1조원 수준으로 키운다는 목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환경부 - 4대강 수질관리센터 내년 6월부터 운영 환경부는 내년에 4대강은 물론 샛강·실개천의 수생태계 건강성을 회복하고, 수질개선에 총력을 기울인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본격 착공한 가운데 수질오염의 감시와 방재, 안전한 취·정수 대책을 추진하고, 환경평가의 사후관리 체계도 구축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30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내년도 업무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6월부터 ‘4대강 수질통합관리센터’를 구축, 수질변화와 오염원을 상시분석·평가·예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유량측정망 94개를 구축하고, 수질측정망도 2012년까지 73개를 설치한다. 특히 환경평가단을 사후관리 조사단으로 개편해 4대강의 환경성 검토도 한층 강화한다. 16개 가동보가 설치되는 지역에는 일간·주간 예보자료와 함께 현장 위기관리를 위한 태풍·집중호우 등 기상정보도 제공할 방침이다. ●車온실가스 배출량 따라 벌금 또 훼손이 심한 지방하천 104곳을 복원하고, 기업·NGO 등과 함께 4대강의 근원이 되는 샛강과 실개천을 살리는 사업을 역점 추진키로 했다. 1월부터는 공공기관과 대형건물, 환경 친화기업을 대상으로 자발적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도를 시행한다. 자동차에 대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벌금도 부과한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대통령은 CEO 장관은 영업이사

    대통령은 CEO 장관은 영업이사

    지난주 말 이명박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순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작됐다가 끝났다. 이 대통령은 47조원 규모의 원전 건설 수주 직후 지체 없이 서울로 돌아왔다. 귀국행 비행기 안에서 하룻밤을 보냈기 때문에 1박3일짜리 초단기 순방인 셈이다. 대규모 수행단을 이끌고 여러 곳을 장기간 도는 전형적인 대통령 순방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기업인의 출장을 연상시킨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모습은 아니다. ●李대통령 1박3일 ‘UAE 출장’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상외교의 경향이 변하고 있다. 과거 외교장관급에서 이뤄지던 협상들에 이젠 정상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정상들이 뒷짐 지고 있다가 장관이 올리는 서류에 서명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 국익을 위해 격식을 벗어던지고 외교의 최전선에서 뛰는 정상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때문에 ‘대통령은 기업 최고경영자(CEO), 장관은 영업이사’라는 말도 회자된다. 지난해 11월 처음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이런 변화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G20은 원래 1999년 재무장관 회의로 출범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정상회의로 격상된 것이다. 장관들한테만 맡겨 놓기엔 현안이 너무 중대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긴요하다는 시대상황이 정상들을 모이게 했다. 1989년 출범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도 원래는 각료급 협의체였으나 지금은 APEC 정상회의로 더 주목받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28일 “예전 같으면 외교장관이 하던 일을 지금은 대통령들이 나서는 시대”라고 말했다. ●간소한 업무형 순방이 대세 순방의 외양도 변모했다. 격식을 따지지 않는 간소하고 실용적인 정상외교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서 부인 미셸 여사를 동반하지 않았다. 8일간의 순방에 홀몸으로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업무형 순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은 첫 방문지인 일본과 마지막 방문국인 한국에서 하룻밤씩만 묵고 관광일정은 잡지 않았다. 그가 각별히 신경 쓴 중국에서만 3박4일간 머물면서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둘러본 게 전부였다.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이 도쿄에 머물고 있는 도중 APEC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로 떠난 것도 파격적이다. 유럽에서는 정상들의 1박2일형 순방이 일반화돼 있다. 기업인 출신인 이 대통령은 CEO형 순방의 일선에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 UAE 순방뿐 아니라 앞서 이달 중순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의도 비행기에서 하루를 자는 1박3일 일정으로 강행군을 펼쳤다. 예전 대통령들 같으면 이왕 먼 길을 떠나는 김에 여러 나라를 둘러보는 식이었지만, 이 대통령은 기업인처럼 목표로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바로 귀국하는 식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황정음, 통장잔고 487원서 12억 알부자로

    황정음, 통장잔고 487원서 12억 알부자로

    487원 남아있는 통장잔고로 화제가 됐던 황정음이 최근 CF로만 12억의 매출을 올렸다. 28일 황정음의 소속사 코어콘텐츠미디어에 따르면 황정음은 최근 CF계약 5건을 연달아 체결했다. 황정음이 최근 세븐몽키스커피, 한국 야쿠르트 팔도 일품해물라면, 국순당 생막걸리, 두리안 치킨에 의류 브랜드 CF로 벌어들인 돈은 무려 12억 원에 달한다. 이에 앞선 지난 5월 황정음은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요즘 일이 없다보니 돈이 없어졌다.”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잔고 487원의 통장을 공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MBC ‘지붕뚫고 하이킥’에 출연, 최고의 인기를 모으며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었다. 황정음은 “올 한 해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다. 특히 지난 몇 년 간 내 옆에서 항상 나를 보살펴 주고 도와줬던 용준이에게 너무 고맙다.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 연말을 맞아 용준이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황정음은 최근 ‘우리 결혼했어요’ 하차를 결정하고 마지막 녹화를 마쳤다. 황정음은 올해 연인 김용준과 부른 곡 ‘커플’로 인기를 모았고 이후 디지털싱글앨범 ‘엔 타임’(N-TIME)을 발매했다. 또 영화 ‘내 눈에 콩깍지’, ‘바람’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되돌아본 2009 산업계] ② 건설·부동산

    [되돌아본 2009 산업계] ② 건설·부동산

    “예측이 불가능한 시장상황이었다….” “통상적인 원칙이 통하지 않았던 한해였다….” 올해 건설·부동산 시장을 표현하는 업계 종사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올해 초 건설사 워크아웃·퇴출로 우울한 스타트를 끊은 부동산·건설 업계는 최고 히트상품인 보금자리주택을 비롯해 각종 부동산 규제완화, 총부채상환비율(DTI), 전셋값 폭등 등 연중 뜨겁게 달아올랐다. ●퇴출, 저조한 분양으로 우울 건설·부동산업계는 칼바람을 맞으며 한해를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1월 채권은행단은 자산 상태가 부실한 건설사 1곳을 퇴출시키고, 11곳에 대해서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결정을 내렸다. 워크아웃대상 건설사들은 인원감축, 자산매각, 사업축소 등 ‘제살 깎기’에 들어갔다. 경기가 위축된 탓에 건설사들은 분양시장에서도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14만가구에 이르는 지방 미분양은 건설사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보금자리주택으로 투자자들의 눈길이 쏠리면서 신규 분양은 더 어려움을 겪었다. ●투자자 눈 높인 보금자리주택 보금자리주택은 서울 반경 20㎞ 안팎의 그린벨트를 풀어 입지나 가격면에서 기존 주택보다 훨씬 월등한 ‘히트 상품’이었다. 10월 시범지구의 사전예약 결과, 강남지역에 청약자가 대거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보금자리주택은 민간 건설사의 분양가를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싸고 좋은 보금자리주택을 기다리는 투자자들의 대기수요 때문에 서울·수도권의 전셋값을 올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부동산1번지 박원갑 소장은 “보금자리주택은 주택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엄청난 변화를 몰고온 히트상품”이라면서 “보금자리 분양이 로또처럼 여겨져 ‘보금자리 재테크족’이 등장한 것도 트렌드”라고 말했다. ●재건축 중심 집값 급등, DTI 규제 10여년 전 경제위기 때 겪은 학습효과로 강남 재건축 지역을 중심으로 1년만에 집값이 회복되면서 ‘강남 불패’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20 08년 12월 말 대비 서울·수도권 재건축 아파트의 매매가는 각각 7.1%, 4.1% 상승했다. 특히 연초 주택경기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가 풀리자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리면서 버블마저 우려됐다. 9월 정부가 DTI를 강화하자 기존 주택시장은 거래가 크게 줄었다. DTI 규제를 받지 않는 신규 분양시장은 반짝 특수를 누렸다. 9월 경기 남양주 별내신도시에서 공급된 ‘쌍용 예가’는 1순위 최고 39.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내년 2월11일 종료되는 양도세 감면 혜택에 맞춰 건설사들이 대규모 분양에 나섰으나 시장 반응은 양쪽으로 갈렸다. 영종 하늘도시 등 입지와 교통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은 분양이 어려웠고, 반면에 광교신도시 삼성 래미안의 경우 최고 775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투자 부담이 적은 중소형 평형이 인기를 끈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건설사들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동안 중소형을 외면했던 탓도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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