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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정찰용 비둘기·코끼리 부대… ‘살아 있는 무기’로 전락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정찰용 비둘기·코끼리 부대… ‘살아 있는 무기’로 전락

    과연 동물 없이도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때로는 생명을 유지해 주는 귀중한 식량으로서, 때로는 소중한 내 재산을 지켜 주는 파수꾼으로서, 때로는 감정을 나누는 친구로서 동물은 인류와 공존해 왔다. 그런 동물에게 인류는 더욱 극한의 임무를 내린다. 인간의 전쟁을 위한 ‘살아 있는 무기’가 되라는 명령이 바로 그것이다. 인류가 동물을 전쟁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전 일이다. BC 15세기 전후 군대는 동물에게 갑옷을 입히고 전차(고대의 전투나 경주용 마차)를 끌게 한 것이 시작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비잔틴의 카타플락타이 등 동방 지역에서는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기병부대가 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군대로 인정받았다. BC 4세기 후반에서 3세기 시대에는 코끼리를 타고 움직이는 코끼리 부대를 제압하기 위한 돼지 부대가 등장한 바 있다. 몇 명의 병사를 태운 코끼리는 절대적인 전투력으로 보병들이 도망치도록 만들었는데, 당시 에피로스 왕 피로스는 코끼리를 이용해 승승장구하다가 로마군이 내세운 돼지 부대에 패배하고 만다. ●BC 15세기 전후부터 ‘전쟁 무기’로 고대 역사가들에 따르면 로마군은 돼지의 몸에 기름과 역청을 바른 뒤 불을 붙여 코끼리들을 향해 돌진하게 했다. 돼지들은 온몸이 불타는 채로 코끼리의 다리 사이를 난폭하게 뛰어다녔고, 이에 놀란 코끼리들은 부대를 이탈해 도망을 치거나 아군을 다치게 했다. 이후 다양한 전투에서 동물은 물자 수송과 통신 수단, 수색과 더불어 인간과 한 몸이 돼 싸웠다. 이러한 동물을 단순한 수단으로만 봐야 할지, 병기로도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활용하는 모든 것을 무기로 지칭할 경우 이에 동원된 동물 역시 무기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독일군은 비둘기를 정찰용으로 활용했다. 미니어처 카메라를 매단 비둘기가 목표물을 상공에서 정찰한 뒤 다시 돌아오게 하는 훈련에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정찰용 비둘기는 1916년 베르덩 전투와 솜 전투에서 실제로 사용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독일군은 비둘기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기술로 새를 운반하거나 훈련시키는 일, 카메라를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일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용 빈도는 매우 미미해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비둘기를 무기로 써 보려 애쓰는 동안 미국 해군이 내세운 것은 다름 아닌 사나운 상어였다. 최근 미국의 유명 과학전문 작가이자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메리 로치는 최근 발간한 자신의 책에서 “미 해군은 2차 세계대전 때 상어 전문가 및 무기 전문가가 팀을 이뤄 상어를 일종의 ‘배달 도구’로 삼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적의 함선 부근에서 터뜨리는 미션에 대해 연구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이 연구는 상어의 통제불능 상태 탓에 실패로 끝나야 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돌고래가 무기로 활용된 예도 있다. 1960년대 옛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해군은 실제 ‘전투 돌고래 부대’를 운영했다. 주요 임무는 해저 정찰과 수색, 적군 포착 등이었는데, 머리에 사격 장치를 달아 적의 잠수부나 목표물을 공격하는 임무 수행도 가능했다. 소련 붕괴 후 돌고래 부대는 해체 위기까지 갔지만, 201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돌고래 부대는 러시아 소속으로 변경됐다. 지난 3월에도 러시아가 175만 루블(약 3000만원)을 들여 돌고래 5마리를 추가로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히자 일각에서는 돌고래 부대의 실전 투입을 본격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현실화된 영화 속 ‘동물 무기’ 2000년대에 들어 빠른 속도로 발전한 과학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동물 무기를 개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 과학전문기자 에밀리 앤디스는 2006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과학자들에게 감시 장비나 무기를 실을 수 있는 곤충 사이보그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다. 앤디스에 따르면 DARPA는 초소형 비행체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자연 상태의 곤충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실제 곤충을 활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또 최근 10년간 곤충의 뇌에 전기자극을 줌으로써 멈춤, 출발, 선회 등의 명령을 내리고 작업을 미세 조종할 수 있는 상태까지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앤디스는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는 유전자 변형을 통해 만들어진 포악한 육식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됐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만약 앤디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인류는 과학의 발전을 등에 업은 채 동물을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생체공학 동물 무기’의 현실화에 매우 가깝게 접근한 셈이 된다. 전쟁터에 사람 대신 로봇이 나가는 시대에 동물 무기는 구시대적 발상일 뿐이라고 코웃음 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무기가 성능과 전투력이 더 뛰어난지를 비교하는 일이 아니다. 인류는 군인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데다 적의 눈을 보다 쉽게 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동물 무기를 이용해 왔지만, 살아 있는 동물을 인간의 전쟁을 위해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더 나아가 생명체를 무기로 활용하면서까지 벌이는 전쟁이 인류에게 과연 필요한 일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huimin0217@seoul.co.kr
  • [D-30 美 대선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경합주 12곳 잡는 자, 마지막에 웃으리라

    [D-30 美 대선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경합주 12곳 잡는 자, 마지막에 웃으리라

    최초의 ‘퍼스트레이디 출신 여성 대통령’이냐, 최초의 ‘부동산재벌 아웃사이더 대통령’이냐. 미국 백악관 차기 주인을 가리는 대통령선거가 오는 9일(현지시간)로 3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 세계의 눈이 미 대선으로 쏠리고 있다. 미 역대 대선마다 박빙의 레이스가 펼쳐졌고 대선 날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판까지 누가 승리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번 대선에도 적용되고 있다. 미 대선은 전체 득표율뿐 아니라 각 주 별 할당된 선거인단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로 판가름 나기 때문에 득표율과 함께 스윙스테이트(경합주) 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주의 선거인단을 잡아야 한다. 지지율이 박빙일수록 ‘승자 독식제’로 결정되는 선거인단이 간 발의 차로 넘어가기 때문에 후보들은 경합주 10여 곳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신문은 대선을 한달 앞두고 후보들의 지지율과 선거인단 판세를 통해 누가 백악관행 가능성이 높은지 짚어봤다. ●1차 TV토론 선전한 클린턴 지지율 회복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부동산재벌 출신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레이스는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지지율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7월 하순 각 당 전당대회 이후 본격화한 대선 경쟁은 전당대회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클린턴이 지지율에서 트럼프를 따돌리며 여유 있게 시작했지만 ‘개인 이메일 스캔들’과 ‘클린턴재단’ 의혹, ‘9·11테러’ 1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가 휘청거리며 쓰러져 실려나간 뒤 드러난 폐렴 증세 등 건강 문제 등이 발목을 잡으면서 3개월 째 트럼프와 박빙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물론 트럼프도 계속되는 인종·성 차별 막말과 납세 보고서 미납 및 세금 회피 문제, ‘트럼프재단’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지지율이 출렁거렸으나 이내 클린턴을 따라잡았다. 미 언론은 “유권자들이 비호감도가 높은 두 후보 중 ‘덜 비호감 후보’를 뽑는 상황이기 때문에 두 후보의 악재가 터질 때마다 지지율이 출렁거리지만 빠른 시간 내 다시 비슷해지고 있다”며 “유권자들이 상대방 당 후보에 대한 반감이 높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뉴욕타임스는 “여론조사 지지율이 계속 오락가락하는 것은 이미 마음을 정한 유권자들이 악재가 터진 직후에 이뤄지는 여론조사에 답을 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라며 “이미 후보를 정한 유권자들이 많기 때문에 후보들의 각종 악재와 TV토론 등 ‘빅 이벤트’로 인해 유권자들이 마음을 바꿀 지는 불투명하다”고 관측했다.  역대 미 대선에서 TV토론이 대선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경우는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가 붙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예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미 언론의 평가다. 그렇지만 아직 누구를 뽑을지 정하지 않은 부동층 유권자는 나 그럼에도 최근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던 클린턴은 지난달 26일 열린 대선 후보 1차 TV토론에서 여유와 관록을 갖춘 모습으로 선전해 좋은 평가를 받음으로써 지지율을 만회하고 있다. 1차 TV토론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은 트럼프에 최대 7% 포인트 앞서, 6일 현재 평균 48.0%로 트럼프를 4.1% 포인트 앞서고 있다. 자유당 게리 존슨 후보, 녹색당 질 스타인 후보까지 포함한 4자 여론조사에서도 클린턴은 트럼프를 최대 6% 포인트 앞서며 이날 현재 평균 43.9%로 트럼프를 3.2% 포인트 앞섰다. TV토론 전 각종 악재에 시달리며 트럼프에 최대 5% 포인트까지 뒤졌던 클린턴에게는 TV토론이 고마운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뒤로 트럼프의 세금 회피 의혹과 클린턴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오바마케어’ 비판,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의 처음이자 마지막 TV토론에 대한 엇갈린 평가 등도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남은 한달 간도 지지율이 출렁일 가능성이 높다. ●경합주 선거인단 확보 여전히 박빙 클린턴이 전국 지지율에서 트럼프를 평균 3~4% 포인트 앞서고 있지만 지지율로만 승패가 갈리는 것은 아니다. 50개 주 및 워싱턴DC에 할당된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과반인 270명을 얻어야 하는데, 각 주 별 득표율이 조금이라도 높은 후보가 할당된 선거인단 전체를 가져가는 승자 독식제(메인·네브래스카 예외)가 적용되기 때문에 득표율에 따른 선거인단 확보가 중요하다. 전국 득표율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이 많은 주를 뺏기는 바람에 승리를 내준 경우도 있었다. 이미 캘리포니아(선거인단 55명) 등 민주당 성향 주 10여 곳은 클린턴에게, 텍사스(선거인단 38명) 등 공화당 성향 주 20여 곳은 트럼프에게 선거인단을 몰아주는 구조가 돼 있다. 이에 따라 대선 때마다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 사이를 왔다갔다했던 경합주 10여 곳이 어떤 후보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백악관 주인을 판가름하게 된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에 따르면 클린턴에게 확실하게 투표하거나 투표할 가능성이 있는 선거인단은 237명이며, 트럼프에게는 165명이 투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경합주에 속한 136명의 선거인단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어느 후보가 270명을 확보할 것인지가 결정된다. RCP가 전망한 경합주는 플로리다(선거인단 29명)와 오하이오(18명)·조지아(16명)·노스캐롤라이나(15명)·애리조나(11명)·위스콘신(10명)·미네소타(10명)·콜로라도(9명)·아이오와(6명)·네바다(6명)·뉴햄프셔(4명)·메인(2명) 등 12개 주다. RCP에 따르면 당초 백인 노동자층 유권자가 많아 보호무역 이슈로 격전지가 된 ‘러스트 벨트’(쇄락한 공업지대)에 속해 경합주에 포함됐던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건은 클린턴 쪽으로 기운 것으로 나타났고, 인디애나는 트럼프 쪽으로 쏠린 것으로 분류됐다.●경합주에 속한 136명 결정 따라 당락 결정대선을 한달 앞두고 RCP가 집계한 각종 여론조사의 경합주 판세를 들여다보면 플로리다는 클린턴이 평균 46.6%로, 43.4%인 트럼프를 조금 앞서고 있지만 6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1% 포인트 앞서 끝까지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위스콘신, 미네소타, 네바다, 뉴햄프셔, 메인에서는 클린턴이 최대 5% 포인트까지 앞서고 있는 반면 오하이오와 조지아, 애리조나, 콜로라도, 아이오와는 최대 4%까지 트럼프가 앞서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들 주의 여론조사에서도 전세가 뒤바뀐 결과가 나오기도 해, 최종 승패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만일 이날 대선이 열려 경합주 지지율 대로 대의원 수가 결정된다면 클린턴은 이미 확보한 237명에다 7개 경합주 76명을 더 얻어 313명이 돼, 과반인 270명을 훌쩍 넘게 된다. 트럼프는 이미 확보한 165명에다 5개 경합주 60명을 더 얻어 225명에 그치게 된다. 그러나 클린턴이 확보한 313명은 2008년과 2012년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확보한 각각 365명과 332명에 훨씬 못 미치는 규모다. 이번 대선이 더욱 박빙이 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미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이 열광적 지지를 얻어 흑인으로서는 처음 대통령으로 당선된 2008년에 비하면 민주당과 클린턴에 100% 유리한 것은 아닌 구도”라며 “특히 경합주들의 지지율이 오락가락하고 있어 끝까지 두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돼지부터 돌고래까지…무기로 이용당한 동물들

    [송혜민의 월드why] 돼지부터 돌고래까지…무기로 이용당한 동물들

    과연 동물 없이도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때로는 생명을 유지해주는 귀중한 식량으로서, 때로는 소중한 내 재산을 지켜주는 파수꾼으로서, 때로는 감정을 나누는 친구로서 동물은 인류와 공존해왔다. 그런 동물에게 인류는 더욱 극한의 임무를 내린다. 인간의 전쟁을 위한 ‘살아있는 무기’가 되라는 명령이 바로 그것이다. 인류가 동물을 전쟁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 전 일이다. BC 15세기 전후, 군대는 동물에게 갑옷을 입히고 전차(고대의 전투나 경주용 마차)를 끌게 한 것이 시작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비잔틴의 카타플락타이 등 동방지역에서는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기병부대가 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군대로 인정받았다. BC 4세기 후반에서 3세기 시대에는 코끼리를 타고 움직이는 코끼리 부대를 제압하기 위한 돼지 부대가 등장한 바 있다. 몇 명의 병사를 태운 코끼리는 절대적인 전투력으로 보병들이 도망치도록 만들었는데, 당시 에피로스 왕 피로스는 코끼리를 이용해 승승장구하다가 로마군이 내세운 돼지 부대에 패배하고 만다. 고대 역사가들에 따르면 로마군은 돼지의 몸에 기름과 역청을 바른 뒤 불을 붙여 코끼리들을 향해 돌진하게 했다. 돼지들은 온 몸이 불타는 채로 코끼리의 다리 사이를 난폭하게 뛰어다녔고, 이에 놀란 코끼리들은 부대를 이탈해 도망을 치거나 아군을 다치게 했다. 이후 다양한 전투에서, 동물은 물자 수송과 통신 수단, 수색과 더불어 인간과 한 몸이 되어 싸웠다. 이러한 동물을 단순한 수단으로만 봐야 할지, 병기로도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활용하는 모든 것을 무기로 지칭할 경우 이에 동원된 동물 역시 무기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부터 상어와 돌고래까지 1914년 1차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독일군은 비둘기를 정찰용으로 활용했다. 미니어처 카메라를 매단 비둘기가 목표물을 상공에서 정찰한 뒤 다시 돌아오게 하는 훈련에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정찰용 비둘기는 1916년 베르덩 전투와 솜 전투에서 실제로 사용됐다. 2차세계대전 당시에도 독일군은 비둘기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기술로 새를 운반하거나 훈련시키는 일, 카메라를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일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용 빈도는 매우 미미해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비둘기를 무기로 써보려 애쓰는 동안, 미국 해군이 내세운 것은 다름 아닌 사나운 상어였다. 최근 미국의 유명 과학전문 작가이자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메리 로치는 최근 발간한 자신의 책에서 “미 해군은 2차세계대전때 상어 전문가 및 무기 전문가가 팀을 이뤄 상어를 일종의 ‘배달 도구’로 삼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적의 함선 부근에서 터뜨리는 미션에 대해 연구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이 연구는 상어의 통제불능 상태 탓에 실패로 끝나야 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돌고래가 무기로 활용된 예도 있다. 1960년대, 옛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해군은 실제 ‘전투 돌고래 부대’를 운영했다. 주요 임무는 해저 정찰과 수색, 적군 포착 등이며, 머리에 사격 장치를 달아 적의 잠수부나 목표물을 공격하는 임무 수행도 가능했다. 소련 붕괴 후 돌고래 부대는 해체 위기까지 갔지만, 201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돌고래 부대는 러시아 소속으로 변경됐다. 지난 3월에는 러시아가 175만 루블(약 3000만원)을 투입해 돌고래 5마리를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히자 일각에서는 돌고래 부대를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미군 역시 돌고래를 해양정찰에 이용한 바 있다.(위 사진) #과학의 발전이 현실화 시킨 영화 속 ‘동물 무기’ 2000년대에 들어 빠른 속도로 발전한 과학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동물 무기를 개발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 과학전문기자 에밀리 앤디스는 2006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과학자들에게 감시 장비나 무기를 실을 수 있는 곤충 사이보그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다. 앤디스에 따르면, DARPA는 초소형 비행체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자연 상태의 곤충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실제 곤충을 활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또 최근 10년간 곤충의 뇌에 전기자극을 줌으로서 멈춤, 출발, 선회 등의 명령을 내리고 작업을 미세 조정할 수 있는 상태까지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앤디스는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는 유전자 변형을 통해 만들어진 포악한 육식 공룡 ‘인도미누스 렉스’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됐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만약 앤디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인류는 과학의 발전을 등에 업은 채 동물을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생체공학 동물 무기’의 현실화에 매우 가깝게 접근한 셈이 된다. 전쟁터에 사람 대신 로봇이 나가는 시대에 동물 무기는 구시대적 발상일 뿐이라고 코웃음 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무기가 성능과 전투력이 더 뛰어난지를 비교하는 일이 아니다. 인류는 군인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데다 적의 눈을 보다 쉽게 피할 수 있다는 장점 탓에 동물 무기를 이용해 왔지만, 살아있는 동물을 인간의 전쟁을 위해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더 나아가 생명체를 무기로 활용하면서까지 벌이는 전쟁이 인류에게 과연 필요한 일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진=United States Navy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쭉~ 늘어나는 임실치즈… 체험하는 재미도 쭉~ 늘어나요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쭉~ 늘어나는 임실치즈… 체험하는 재미도 쭉~ 늘어나요

    “치즈의 고장 전북 임실에서 ‘대한민국 원조 치즈’의 맛과 멋을 즐겨보세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치즈를 생산한 전북 임실군에서 ‘임실N치즈축제’가 개최된다. 오감만족 체험형 축제인 임실N치즈축제는 6일부터 9일까지 성수면 치즈테마파크와 치즈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임실치즈의 역사는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전북 임실에 벨기에 출신 ‘파란 눈의 사제’ 가 선교사로 부임했다. 디디에 세스테벤스(85). 한글 이름도 지었다. 지정환 신부다. 그는 가난한 산촌 주민들을 위해 낙농업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 산이 많고 농경지가 적은 임실은 낙농 최적지라고 판단했다. 그는 산양 두 마리로 축산을 시작했다. 산양유를 생산했지만,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지 신부는 남은 산양유를 이용해 치즈를 만들었다. 1967년 처음 생산한 치즈는 맛과 냄새가 생소하고 제조기술도 떨어져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나 지 신부는 실망하지 않았다. 지 신부는 프랑스로 건너가 치즈 제조 기술을 배워왔다. 1968년 국내 최초로 카망베르 치즈를 생산했다. 1970년에는 3개월 이상 보관 가능한 체다치즈를 만들어 조선호텔에 납품했다. 1976년부터 서울 명동 피자가게의 요청으로 모차렐라 치즈를 생산하며 국내 치즈 시장을 개척했다. 임실 치즈가 좋은 이유는 목장형 유가공 제품이기 때문이다. 목장형 유가공 제품은 새벽에 농가들이 직접 짠 가장 신선한 원유를 가공해 유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대기업에서 원유를 수집해 대량 생산하는 공장형 제품과 차별화했다. 임실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생태환경을 유지하고 있어 건강한 청정 원유를 생산하고, 이것이 임실 치즈 품질을 결정한다. 또한 색소, 향료,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제품이다. 치즈연구소에서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고 제조기술을 향상시켜 수입품이나 대기업 제품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임실N치즈축제는 지역의 명물인 치즈와 전통문화가 어우러지고, 체험, 휴식, 교육, 경관, 산업, 관광 등을 한자리에서 할 수 있는 6차 산업의 대표 모델을 제시해 의미가 있다. 올 치츠축제에서는 보고, 먹고, 체험할 수 있는 6개 분야 63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아름다운 임실의 자연과 함께 다채로운 문화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치즈를 이용한 행사는 물론 흥겨운 농악공연, 다양한 공예체험, 각종 경연대회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치즈테마파크에는 형형색색의 국화 3만 그루를 전시해 축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최고의 힐링 공간을 제공한다. 치즈테마파크의 랜드마크인 치즈캐슬은 유럽의 성을 재현한 모습이다. 1층 250석 규모의 치즈전문식당 ‘프로마쥬 레스토랑’에서는 임실 치즈를 듬뿍 넣은 피자와 파스타 등 각종 치즈요리를 맛볼 수 있다. 2층 홍보관에서는 임실치즈의 탄생부터 대표 브랜드 성장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언덕 위에 우뚝 선 치즈모형의 전망대에서 오르면 테마파크와 치즈마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경관이 발아래 펼쳐진다. 전망대 주변 포토존은 가족과 연인들의 추억 만들기 장소로 최고 인기다. 푸른 잔디밭 위에서 펼쳐지는 썰매타기도 어린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임실N치즈축제는 관광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1967년 지정환 신부가 국내 최초로 치즈를 생산한 것을 기념해 ‘1967! 토피어리 긴 피자만들기’, ‘1967! 치즈 떡볶이 나눔행사’가 열린다. 치즈고추장으로 만든 주먹밥으로 한우 모형을 완성하는 ‘임실N치즈&한우 모자이크’, 치즈를 쭉쭉 늘려보는 놀이 ‘가족대항 쭉쭉 늘~려, 내 치즈’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관광객들이 피자 재료를 직접 토핑한 후 화덕에 굽는 ‘와일드 화덕체험’도 잊을 수 없는 맛과 추억을 안겨준다. 임실N치즈축제 홍보대사인 최현석 셰프가 참여하는 ‘스타셰프 챌린지’는 9일 치즈캐슬 앞 분수광장에서 열린다. 다양한 레시피로 푸드트럭 치즈요리를 선보인다. 축제장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임실군 읍·면 생활개선회원들이 발굴한 향토음식 12종과 부메뉴 39종도 향토음식관에서 맛볼 수 있다. 고품질 임실 한우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치즈축제에서는 각종 문화행사도 무대에 오른다. 지역주민 참여 공연인 뮤지컬 동자바위 전설, 필봉농악 중뱅이골 공연, 35사단 군악대 퍼레이드가 열린다. 경연 행사인 복면가왕! 전국청소년뮤직페스티벌, 임실N치즈 UCC공모전, 치즈경매 이벤트도 진행된다. 전국의 치즈 매니아와 공예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치즈조각 공연대회, 전국 어린이 창작동요제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치즈가든파티, 나만의 피자 만들기, 크림치즈체험, 벨기에 먹거리 체험, 향교문화체험, 병영문화체험, 두부 만들기, 대형 캐릭터 연날리기, 낙농체험 등 참여행사와 즐길거리도 풍성하다. 임실치즈테마파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치즈를 테마로 한 체험형 관광지다. 치즈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만들고 맛볼 수 있는 복합관광 명소다. 치즈테마파크는 2011년 임실군 성수면 도인리 일대에 조성됐다. 14만 8000㎡(축구장 20개)의 드넓은 부지에 스위스풍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건립했다. 이곳에는 치즈체험장, 치즈과학연구소, 유가공공장, 홍보관, 판매장 등을 집적화해 치즈 종합특구 기능을 하고 있다. 치즈 생산, 연구개발, 체험학습, 판매, 축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테마파크에서 하고 있다. 스위스 아펜젤 마을 풍경을 재현한 이곳은 전북도 1시군 1대표 관광지로 선정돼 임실군 관광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올 한 해 유료 관람객이 임실군 인구(3만명)의 5배인 15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즈마을’은 한국 치즈의 원조 임실치즈의 뿌리를 가진 마을이다. 느티나무가 많아 느티마을로 불리다가 마을 총회에서 치즈마을로 개칭했다. 80농가 155명의 주민들이 합심하여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치즈마을’을 가꾸고 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中 국경절 연휴, 중국인 관광객 수 사상 최대 …요우커 대상 프로모션 쏟아진다

    中 국경절 연휴, 중국인 관광객 수 사상 최대 …요우커 대상 프로모션 쏟아진다

    10월 1일부터 일주일간 이어지는 올해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 해외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는 태국, 일본과 함께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선호하는 해외여행 국가로 선정되면서 올해 역시 국경절 연휴기간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 여행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29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중국 국경절(10월1∼7일)의 영향을 받는 9월 30일부터 10월 9일 사이 인천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체 승객은 165만 2천여명이다. 이에 중국인 FIT(Free Individual Tour, 개별자유여행) 대상 한국여행 전문사이트인 ‘한유망(韩游网)’에서는 중국 국경절 기간 동안 ‘국결정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이번 프로모션은 9월 중추절(추석) 프로모션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이벤트로, 한국을 찾는 요우커들을 위한 한유망 사이트 자체 특가 프로모션 상품을 비롯해 풍성한 특별 혜택이 제공된다. 서울 명동, 동대문, 제주도, 부산, 대전, 전주 등 전국의 유명 관광지를 여행할 수 있는 요우커들을 위한 국경절 맞춤형 여행상품을 비롯해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국내 여러 관광상품을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관광 상품 할인뿐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무료 입장권 제공, 기념품 증정, 각종 티켓 추가 제공, 좌석 업그레이드 등 풍성한 혜택이 제공된다. 한유망 관계자는 4일 “긴 연휴가 이어지는 국경일을 앞두고 벌써부터 한국 여행상품 예약자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등 국경일 연휴를 즐기려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며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요우커들이 선호하는 관광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한유망 국경절 프로모션에 대한 호응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한편 한유망은 숙박, 교통, 공연, 관광명소, 맛집, 쇼핑 등 한국 여행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여행정보와 최신 콘텐츠를 중국 FIT 여행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많은 협력 업체와 실시간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한국 내 숙박, 교통, 공연, 입장권 등을 검색·예약·결제할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 등을 마련해 중국인 자유 여행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자체장들 김영란법 오랏줄 묶인 듯…더치페이 생활화·지역축제 위축

    지자체장들 김영란법 오랏줄 묶인 듯…더치페이 생활화·지역축제 위축

    “원래 구내식당이 단골집이에요.” 부정청탁 금지법(일명 김영란법)에도 기존 선거법 때문에 청렴을 생활화했던 지자체장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지역 축제가 취소되거나 농축산물 업체 등의 위축으로 지역경제가 타격을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1000원만 받아도 처벌하기 때문에 김영란법보다 더 엄격한 박원순법(공무원 행동강령)을 제정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단골 식당은 다름 아닌 구내식당이다. 지난 1년간 업무 추진비 카드로 가장 많이 지출한 곳도 서울시청 구내식당으로 모두 2억 2750만원의 카드값 가운데 3612만원을 구내식당에서 썼다. 시청 8층의 간담회장에서 구내식당 케이터링으로 대접하는 식사도 1인당 2만원 수준이라 그동안 김영란법을 생활하면서 살았다. 경기지역 시장·군수들은 기존 선거법이 워낙 엄격해서 돈을 쓰거나, 음식을 접대하는 사례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김영란법을 시행했다고 해서 단체장들이 위축될 일은 별로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선출직 자치단체장은 감시의 눈이 워낙 많아서 경조사에 봉투를 전달하거나, 고급음식점에서 접대할 일이 거의 없어 김영란법이 시행되더라도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다. 다만, 각계 공무원들이 주로 찾는 중·고가 음식점들은 비명 일색이다. 경기 고양시에서 고급 한우집을 운영 중인 A씨는 “돼지갈비집에서도 1인당 객단가가 3만원에 이르고, 값이 가장 저렴하다는 정육점 식당의 경우도 1인당 객단가가 4만원씩 하는 상황에서 1인당 3만원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소고기 집은 문을 닫으라’는 말과 같다”고 주장했다. B한정식은 1인당 최저 3만 5000원짜리 식단으로 구성돼 있었으나, 최근 1인당 3만원 미만의 이른바 ‘김영란 메뉴(4인 이상 주류 무제한 공짜)’를 선보였다가 비난만 샀다. 이 음식점 관계자는 “단가를 맞추기 위해 음식 가지 수를 줄이고, 저렴한 식자재를 사용했다가 손님들로부터 먹을 게 없다며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막걸리를 즐기는 이낙연 전남도지사는 원래 식사를 간단하게 하는 편이다. 평상시 막걸리를 마시고 선술집 등을 이용하고 있어 음식값에 대한 부담이 없는 편이다. 이 지사는 참석해야 하는 행사장은 찾아가지만 오해를 살 자리나 모임은 자제하거나 아예 차단하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달 29일 열린 장흥 통합국제의학박람회 개막식에서도 인사말 만하고 자리를 떴고, 30일 열린 전남도청 국정감사 때에도 국회의원들과 함께 도청 구내식당을 이용했다. 이 지사는 “농축수산물 등 현실에 대한 세밀한 고려가 없었다는 데서 잘된 법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일단 법은 지켜야 하므로 공직사회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김영란법 이외에도 최근 측근 인사의 시정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외부활동을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이다. 윤 시장은 3일 예정된 지역 축제와 추모음악제 등의 참석을 취소했다. 또 이날 지인의 장인상에 조의를 표하는 화환도 보내지 않았다. 김영란법 시행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에는 지역 언론사 간부들과 예정된 만찬도 취소하는 등 구설수에 말릴 우려가 있는 모임이나 활동을 아예 자제하고 있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더치페이’를 생활화하고 있다. 행사나 모임의 성격을 불문하고 식사자리에 가게 되면 더치페이를 솔선수범한다. 지난 1일 음성군에서 열린 ‘제15회 충북도 보육인대회’에 참석한 이 지사는 행사주최 측이 오찬을 마련했지만 불참하고 도의원, 시의원 등 10명과 함께 인근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이 지사는 칼국수값 5000원을 내고 자리를 떴다. 이 지사는 앞서 지난달 30일 청주의 한 호텔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 조찬을 가진 후에도 박 시장과 함께 각자의 밥값 1만원씩을 더치페이했다. 이재영 비서실장은 “김영란법 해석을 두고 당분간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여 식사 때마다 더치페이를 하기로 했다”며 “도청 밖에서 식사약속이 없으면 구내식당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서민경제 위축 가능성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 지사는 지난 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부정과 청탁을 방지하자는 법 취지는 살리되 어려운 서민경제 현실을 고려, 하루빨리 김영란법을 대폭 개정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지사는 “김영란법으로 손해 보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전대책이 함께 시행돼야 김영란법이 빛을 보게 될 것”이라며 “하나만 보다가 열을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영란법 여파로 지역축제 만찬이 사라졌다. 경북 봉화군은 3일 막을 내린 ‘봉화송이축제’의 첫 행사로 계획했던 환영리셉션을 전격 취소했다. 봉화송이축제 20년 사상 환영리셉션이 취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송이 축제인 만큼 축제에 참석하는 출향인사나 지역 유지 및 기관단체장 등을 위해 송이와 소고기를 내놓으려니 한 끼 식사값이 3만원을 훌쩍 넘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영란 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행사를 취소했다. 박노욱 봉화군수는 “송이 축제 행사인데 송이 한쪽 대접할 수 없어 아예 만찬 행사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군은 애초 환영리셉션을 위해 출향인사 등 200여명에게 1인 4만원 꼴인 1000만원을 예산으로 잡았다. 경북 안동시도 지난달 30일 안동국제탈춤축제 개막식을 마치고 안동체육관 보조경기장에서 내빈, 각급 기관장, 출향인사 등 250명을 초청해 환영리셉션을 열려다 취소했다. 지난해까지 해마다 시의회와 언론사 등에 배부하던 700매가량의 식권도 나눠주지 않았다. 경북 울진군도 지난 1일 울진송이축제 개막식 때 기관단체장과 출향인 등 50여명을 지역 식당에 초청하려던 환영 오찬을 취소했다. 오는 15일부터 ‘경북 영주 풍기인삼축제’를 개최하는 경북 영주시는 환영리셉션 개최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이다. 국내외 자매도시 관계자 등 240여명에게 2만 2000원짜리 뷔페를 제공할 예정이지만 참석자들의 직무 범위와 관련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시는 4일 관련 회의를 가진 뒤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농축어업 인구가 대부분인 강원도는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까 오히려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소비를 장려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양양송이와 횡성한우 등 애써 가꿔 놓은 고급품질 농산물이 직격탄을 맞지 않을까 적극 홍보와 소비에 나서기로 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기관장들이 앞장서서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농특산품을 선물하고 회식도 더치페이문화를 바탕으로 위축되지 않도록 적극 홍보 하겠다”면서 “경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고품질 농특산물은 계속 육성하면서 건전한 소비문화도 자리잡도록 행정력을 모아가겠다”고 말했다. 서울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고양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성주 골프장에 사드 배치…중국 신화통신 “미국이 판 구덩이로 빠지는 것” 반발

    성주 골프장에 사드 배치…중국 신화통신 “미국이 판 구덩이로 빠지는 것” 반발

    지난 30일 국방부가 성주골프장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 언론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사드의 한반도 진입은 미국이 파놓은 구덩이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늑대를 제집에 끌어들이는 것과 같다”, “불을 일으켜 자신을 태우는 것과 같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한 뒤 “사드 배치는 한국의 안보를 보호하려는 명목이지만 실제로 보호하는 것은 주한 미군의 안보”라고 주장했다. 통신은 “사드 배치를 통해 북한으로부터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겠다는 환상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것”이라며 심리적인 위안 외에 한국은 진정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드 배치 결정은 한국을 미국 전차에 묶인 ‘선봉대’로 만들어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전략과정에서 지역 패권을 얻는 데 사용되는 도구로 전락하게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드 배치는 미국이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한걸음이자 미국이 서태평양 지역에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요한 조치라면서 “앞으로 미국이 일본과 다른 국가에도 사드를 배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사드 배치는 한국을 미국의 군사식민지로 전락하게 할 것이라고 한국의 평화인사가 경고했다”고 쓰기도 했다. 통신은 “사드 문제가 핫이슈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연말의 대통령 선거까지 한국에는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며 지금이라도 사드 철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물질의 힘으로 시대가 짜맞춘 인류의 가치관

    물질의 힘으로 시대가 짜맞춘 인류의 가치관

    가치관의 탄생/이언 모리스 지음/이재경 옮김/반니/480쪽/2만 2000원 많은 문화 인류학자들은 문명의 발달을 인간 가치관의 향상과 밀접하게 연결짓는다. 정치·경제·사회의 발달은 더 높은 수준의 가치관으로 이어진다는 문명의 진화론이다. 실제로 개인과 사회가 공유하는 기본적인 생각은 보편적인 것이고 때로는 절대 불멸의 가치로까지 여겨진다. 미국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이 책은 그런 문명론적 가치관을 보기 좋게 뒤집는다. 각 시대는 결국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치관을 정할 뿐이라는 것이다. 물질의 힘이 인류의 문화와 가치관, 신념까지 한정하고 결정짓는다는 역설이 흥미롭다. 책은 진화론과 유물론을 결합해 10만년 전쯤 공평, 공정, 사랑과 증오, 신성한 것에 대한 합의 같은 형태로 처음 출현했다는 가치관을 속속들이 들춰내고 있다. 인류 문화를 수렵채집과 농경, 화석연료 시대의 3단계로 구분해 각 시대에 득세한 사회적 가치를 결정한 핵심 요인을 ‘에너지 획득 방식’으로 규정한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문화며 종교, 도덕철학이 인간 가치관에 미친 영향력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난다. 저자가 가치관의 형성 과정에서 특별히 주목한 측면은 위계와 폭력이다. 우선 원시시대인 수렵채집기를 보자. 흔히 수렵채집 사회는 모든 물자를 공동 소유하는 ‘원시 공산 체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수렵채집기의 사람들은 소유와 소유물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사람이 만든 물건 하나하나에는 개인 소유자가 있고, 그 사람이 해당 물건의 사용과 용도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정착해 농사를 짓고 살기 시작한 농경기의 가부장적 가치관도 색다르게 해석된다. 농업혁명 이후 여성에 대한 남성 주도권이 강화된 건 남성 농부가 남성 사냥꾼보다 횡포해서가 아니라 가부장제가 노동 조직화에 가장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눈에 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끝없이 경쟁하는 세계가 성공 요소로 드러나자 남녀 공히 가부장적 가치를 공정한 가치로 수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딱 잘라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종류의 체제로 가동되고 다른 종류의 가치관이 득세했던 사회의 사례가 역사학과 인류학 기록에 하나도 없을 이유가 없다.” 화석연료 시대의 특징을 수직적 위계와 수평적 위계 사이의 줄타기로 보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지난 200년 동안 이런 화석연료 가치관은 부의 불평등을 줄이는, 하지만 너무 줄이지는 않는 정부를 옹호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대목이 도드라진다. 특히 자본주의를 놓곤 이렇게 설명한다. “현실적인 사람들이 에너지가 날로 늘어나는 세상에서 자본주의가 일을 도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았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일했다.” 갈등과 타협이 반복되는 가운데 문화적 진화의 경쟁논리가 작동해 덜 효과적인 방법들을 멸종시켜 나갔다는 저자는 21세기에도 이 과정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 그리고 문화적 진화가 결국은 최선의(또는 가장 덜 나쁜) 결과를 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저명한 학자와 작가의 반박을 논평 형태로 실어 형평성을 살린 점도 책의 색다른 특징이다. 영국 엑서터대 리처드 시퍼드 교수는 저자의 주장에서 가치관과 문화 유형의 다양성이 축소됐다고 꼬집는다. 역사의 진전에 대한 견해가 지배층 이념에 가깝고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중심 이념을 지나치게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전 예일대 석좌교수 조너선 스펜스는 저자의 데이터가 생생한 현실감을 전달하는 데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인 크리스틴 코스가드는 사회에 실제로 퍼져 있는 가치와 사람들이 마땅히 보유해야 하는 참된 가치에는 차이가 있다며 저자의 도덕가치 측정 방식을 문제 삼는다. 그런 논박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가 화석연료 경제의 발전 한계수준을 돌파하게 될지, 또 돌파한다면 어떻게 할지’ 예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지난 2000년 동안 최소 다섯 개 사회가 농경 경제의 상한선을 강하게 압박했고 네 개 사회가 돌파에 실패했다. 실험은 계속 이어졌고 마침내 18세기 후반 북유럽이 화석연료 경제를 촉발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촌 시대의 우리에게는 오직 한 번의 전 지구적 실험만이 허용된다. 실패는 곧 모두의 재앙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드 성주골프장 확정] 中언론 “사드는 미국이 파놓은 구덩이로 빠져드는 것”

    정부가 30일 사드 배치 지역을 최종 결정한 데 대해 신화통신은 “사드의 한반도 진입은 미국이 파놓은 구덩이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통신은 “늑대를 제 집에 끌어들이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사드 배치의 명목은 한국의 안보 보호지만 실제로 보호하는 것은 주한 미군의 안보”라고 덧붙였다. 통신은 “사드 배치를 통해 북한으로부터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겠다는 환상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것”이라며 심리적인 위안 외에 한국은 진정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드 배치를 미국의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규정한 신화통신은 “앞으로 미국이 일본과 다른 국가에도 사드를 배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특히 통신은 “사드 문제가 핫이슈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연말의 대통령 선거까지 한국에는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며 지금이라도 사드 철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민일보도 이날 “성주골프장에 사드를 배치하면 레이더는 김천시를 향할 것”이라며 “김천시민의 반대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고소식망도 “사드 배치 부지 변경의 목적은 현지 주민들의 반대를 완화하는 동시에 반대의 민의를 분열시키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데스크 시각] 그래도 소통은 계속돼야 한다/김태균 경제정책부장

    [데스크 시각] 그래도 소통은 계속돼야 한다/김태균 경제정책부장

    정부 부처를 담당하던 때의 일이다. 기자들 몇이서 출입처 고위 간부와 저녁 식사를 하게 됐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이어지다가 대화의 주제가 과도한 교육비 부담으로 넘어갔다. 중고생 자녀 가르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한 기자의 푸념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 간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교육비가 그렇게까지 드는 줄은 몰랐다”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꽤 됐던 그는 현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오늘 들은 얘기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던 그의 말은 그해 가을 국회에 제출한 법률 개정안을 통해 현실화됐다. 물론 그날 일이 정책 변화에 100%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민생경제를 고민하는 정부 관료가 현실에 그만큼 어두웠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팩트라고 할 수 있다. 정부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정책이나 법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통상 기대하는 만큼 정교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종종 놀라곤 한다. 어떤 정책의 방향이 윗선에서 결정되면 사무관, 서기관 등이 초안을 만들고 이것이 과장, 국장 등 단계를 거치면서 구체화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다양한 외부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 당사자들과 폭넓게 접촉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면 좋을 텐데 불행히도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탁상행정’, ‘책상물림’으로 표현되는 정책들이 나온다. 정책 당국자들이 소통 노력을 강화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다. 사회 구성과 조직이 다양해지면서 이해 관계가 한층 복잡하게 얽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모바일을 타고 실시간으로 여론이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현실에서 정교하고 균형 있는 정책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발효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한 우려는 그런 면에서 더 크다.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 못지않게 공무원 사회와 외부를 차단하는 두껍고 묵직한 칸막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발효 첫날 정부 청사를 방문하는 외부인들의 수가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경위야 어찌 됐던 우리 사회는 그 법이 안고 있는 여러 장점과 단점 중에 장점에 방점을 찍고 이를 선택했다. 김영란법 시스템은 이미 가동이 됐고 돌이키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걱정만 하는 단계는 이제 끝났다는 얘기다. 이제는 국민들과의 소통이 위축돼 나타나는 부작용을 어떻게 완화하고 해소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영란법의 발효를 민과 관의 불투명하고 닫힌 만남을 투명하고 열린 만남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계기로 삼을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 이미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공직사회의 소통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대안을 찾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무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외부 인사들을 만나 관심사에 대해 청취하고 이를 보고서 형태로 제출하도록 하는 대신 시간과 경비를 지원하자는 주장 같은 것들이다.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지정해 조기 퇴근을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다소 부자연스럽더라도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 혹은 담당자와 민원인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걱정보다는 머리를 맞대고 소통의 대안을 고민할 때다. windsea@seoul.co.kr
  • 클린턴·트럼프 ‘눈엣가시’ 전략… 진흙탕 토론

    클린턴·트럼프 ‘눈엣가시’ 전략… 진흙탕 토론

    ‘트럼프 저격수’ 갑부 큐반 초청 ‘빌의 내연녀’ 플라워스 불러와 시청자 1억명 예상 사상 최대 미국 대통령선거의 분수령이 될 대선 후보 첫 TV토론이 26일 오후 9시(현지시간·한국시간 27일 오전 10시) 뉴욕주 헴프스테드 호프스트라대학에서 90분간 열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혼전을 보이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68)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70) 간의 향후 세 차례 TV토론이 당락의 운명을 가를 것이란 분석이 많다. 특히 이번 TV토론 시청자는 1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돼 1980년 로널드 레이건과 지미 카터의 TV토론 시청자(8000만명)를 훌쩍 넘어 사상 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첫 TV토론은 두 후보 간의 난타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보와 경제, 건강 문제를 두고 치열한 설전이 예상된다. 뉴욕타임스는 “‘극과 극’의 후보가 맞붙은 상황이기 때문에 TV토론이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방송에 상당한 경험이 있는 트럼프가 클린턴을 상대로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캠프는 겉으로는 클린턴이 더 많이 말하게 만들어 약점을 노출시키자는 토론 전략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메일 스캔들 및 건강 문제 등 힐러리의 취약점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을 강하게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클린턴 캠프는 트럼프의 방송 경력을, 트럼프 캠프는 클린턴의 경륜과 토론 경험을 각각 평가했지만, 이는 서로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치를 최고조로 높인 뒤 조금만 실수할 경우 실망을 더 크게 만드는 토론 전략이라는 것이 미 언론의 분석이다. CNN은 전문가를 인용, “TV토론에서 각 후보에 대한 기대감과 실망감이 TV토론 내용 자체보다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1차 토론 주제인 미국의 방향과 번영, 국가안보를 둘러싸고 날 선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방청석에 ‘트럼프의 저격수’와 클린턴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과거 여인이 동시에 등장, 서로의 신경을 긁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클린턴 측은 트럼프를 비판해온 억만장자 마크 큐반을, 트럼프 측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진 제니퍼 플라워스를 방청석에 초청하겠다고 예고했다. 트럼프의 초청을 플라워스가 수용하자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첫 TV토론을 앞두고 두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4일 편집위원회 명의 사설에서 클린턴의 지성과 경험, 강인함, 용기를 평가하며 그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와 경쟁했던 테드 크루즈 텍사스 상원의원은 지난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몇 달간 심사숙고하고 기도한 결과 트럼프에게 투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서울광장] 운명은 극복하는 데 그 참맛이 있다/강동형 논설위원

    [서울광장] 운명은 극복하는 데 그 참맛이 있다/강동형 논설위원

    사주와 관상을 믿는가. 심상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사주란 사람마다 타고난 길흉화복을 말한다. 여기에 운명이라는 뜻의 팔자를 더하면 사주팔자가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면 팔자 탓으로 돌리며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람이 사주팔자를 바꿀 수 없다면 사는 게 재미가 없지 않을까. 그래서 옛 사람들은 관상을 사주팔자보다 상위 개념에 올려놓고 위로를 삼았다. ‘아무리 좋은 사주팔자도 좋은 관상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관상이 마지막 단계라면 관상이 나쁜 사람들이 못마땅해할 것이다. 이에 대한 장치도 마련해 뒀다. ‘아무리 좋은 관상도 좋은 심상만 못하다’는 말로 매조지하고 있다. 심상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마음 씀씀이는 관상을 통해 그 단면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심상의 진정한 맛은 오랫동안 접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사주팔자를 입에 달고 사는 인생이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타고난 운명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사주와 관상, 심상의 관계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매천 황현이 쓴 역사기록 오하기문(梧下記聞)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그가 한문으로 쓴 오하기문이 8월 29일 국치일을 맞아 ‘오동나무 아래서 역사를 기록하다’는 이름으로 번역·출간됐다. ‘나는 국가와 백성에게 큰 피해를 주는 재난이나 변란이 우연히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가 제 구실을 하여 백성이 편안한 삶을 누리는 세상, 혹은 정치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여 백성이 고통받는 세상은 각 그 나름의 운수가 있으며, 행불행은 서로 번갈아 발생하기 마련이고 시대의 운수는 그 변화가 정해져 있기에 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들 또한 사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대세가 결정되는 일이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120년 전 국가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권력자의 무능을 탓하고, 비통해하면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글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비춰 봐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고, 국론이 분열되고, 전쟁의 위험성까지 고조되는 현재 상황이 매천이 봤던 그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달라진 게 없는 까닭이다. 당시 많은 지식인이 국운이 쇠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때 그는 아니라고 강조하는 대목에서 어린 시절 들었던 사주와 관상, 심상에 대한 얘기가 오버랩됐다.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주민들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지진은 누가 뭐라 해도 자연재해다. 과거에는 자연재해까지도 나라님 탓으로 돌리고 운명으로 돌렸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일본과 중국의 지진 사례만 봐도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정부에서 지진에 대비해 철저하게 준비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용두사미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는 지진 발생 초기 지진을 마치 운명이나 팔자소관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진뿐만 아니다.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 이에 따른 사드 배치 찬반 논란, 전략핵 한반도 재배치, 핵무장 주장, 진행 중인 세월호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파동, 청년실업 문제와 양극화 등 우리 앞에는 수많은 도전이 놓여 있다. 운수소관으로 손 놓고 있을 일들이 아니다. 운명은 극복하는 데 그 참맛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어렵더라도 대응만 잘하면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는 일들이다. 팔자소관이나 관상 탓으로 돌리는 건 바른 태도가 아니다. 심상에서 답을 찾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먹보다 대화가 선이라면 대화를 선택하는 길이 바른 대응이고 좋은 심상이다. 전쟁보다 평화가 선이라면 평화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한 개인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명운도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혹자는 북한과 대화를 하고 평화를 얘기하는 것에 대해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언제가 때인지 되묻고 싶다. 그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톨스토이의 이야기를 빌리면 선을 행하는 때는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이다. yunbin@seoul.co.kr
  • 인류의 기억 디지털에 맡겨도 되나

    인류의 기억 디지털에 맡겨도 되나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애비 스미스 럼지 지음/곽성혜 옮김/유노북스/348쪽/1만 5500원 인류의 정보는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인플레이션’되고 있다. 전 세계 웹 데이터는 2012년 27억 테라바이트(TB·1TB=1024GB)에서 지난해 80억TB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반면 기억의 유통기한, 즉 ‘데이터 수명’은 찰나적이다. 인터넷이 전 세계로 확산되던 1997년 당시 웹 페이지가 존재한 시간은 평균 44일이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시간은 불과 100일에 그친다. 현 인류의 속도감 있는 디지털 기억들은 사유를 위한 최소한의 ‘마찰 저항’조차 없이 우리의 기억을 기계화된 입력과 출력의 문제로 환원시킬 뿐이다. 신간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는 급속히 증가하는 인류의 기억을 디지털에 위탁해도 되는지를 묻는다. 저자는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부터 수메르인 필경사들이 창조해 낸 설형문자와 중세 인쇄술의 발명이 불러온 문자혁명 그리고 2010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트윗을 보관하기로 한 결정까지 주요 역사적 지점마다 기억과 지식을 다뤄 온 인류의 방식을 ‘외주화’로 정의한다. 중세 이후 서구 사회는 지식 보급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값싼 목재 펄프 종이에 책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술이 개발됐고 사진 촬영과 음향 녹음 기술은 인류로 하여금 훨씬 빠르게 정보를 기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같이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보존하는 기능은 인간의 두뇌가 아닌 별도의 장치에 외주화되면서 첨단화·고도화되어 왔다. 디지털 세례로 인해 인류는 컴퓨터와 구동 프로그램(OS), 파일, 심지어 전기까지 없게 되면 모든 일상이 마비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인류가 축적해 온 기억은 인간의 유전자(DNA)에는 내장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일찍이 문자의 발명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그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인간의 생각과 경험을 쓰는 행위를 지식과 기억의 외주화로 여겼고, 인간은 지혜를 잃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경고는 틀린 예측에 그쳤다. 인류는 그리스 로마 시대 이래 탁월한 문화적 성취를 문자로 기록했지만 지혜를 잃지는 않았다. 기억의 외주화는 인류의 원초적 욕망과 연관돼 있다. 4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남긴 벽화들도 따지고 보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전하고 싶은 기억을 이미지로 남겨 놓은 흔적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이미지들을 “존재를 증언하고 싶은 욕망, 시공간이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인류의 욕망”으로 묘사한다. 이 같은 욕망에 불을 지른 첫 기억 혁명이 바로 문자의 발명이다. 문자는 기록 문화를 만들어 냈으며, 지식을 조직화했고, 근대의 유물론은 과학 기술 혁신의 분기점이 됐다. 이 책의 부제인 ‘디지털 기억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질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안다. 개인정보 침해와 우발적 삭제와 해킹, USB와 외장하드 같은 저장 기술의 취약점 등 역설적으로 디지털 시대 들어 인류의 기억이 더 큰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을 말이다. 특히 저자는 “개인적 기억과 정체성을 컴퓨터에 더 많이 위탁할수록 우리는 자율성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인 ‘데이터 소외’가 더욱 증가한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기억을 유일하게 읽어내는 존재는 이제 디지털 기계뿐이며 ‘구글이 무엇을 아는지 알기 위해 항상 접속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오늘날의 금언처럼, 인류의 통제력을 기계에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안이 있을까. 저자는 인류의 집단적 기억을 저장·보존하고 개방하는 주체로 공공성을 제시한다. 구글 같은 사기업들이 이윤 추구 이상의 인류적 가치를 실행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대신 세계 각지의 공공 도서관과 기록 보관소, 박물관, 인터넷 아카이브 등 공공 및 비영리 기관들을 통해 인류의 기억을 보존하자고 외친다. 그는 “지식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결정하는 일은 공익사업이 돼야 한다”며 “구글 같은 회사가 지식을 조작하게 내버려둔다면 인류는 집단 기억상실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시론] 2017년 정부 예산안이 밋밋한 이유/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시론] 2017년 정부 예산안이 밋밋한 이유/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17년 예산안이 발표됐다. 2016년 본예산 대비 총수입은 6.0% 늘어난 414조 5000억원, 총지출은 3.7% 증가한 400조 7000억원으로 설정됐다. 이에 따라 관리재정수지는 28조 1000억원 적자,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내년도 예산안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난해 작성된 중기계획과 비교해 2017년 국세 수입이 9조원 정도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국세 수입에 연동되는 의무 지출인 지방재정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약 4조원 증가하고 재정수지 적자폭은 중기 계획보다 축소됐다. 중국의 경제 불안과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 대외 위험 요인이 있고, 기업 구조조정 등 국내 하방 위험도 지속됨에 따라 만약을 대비해 재정 여력을 비축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둘째, 일자리 사업에 상당한 역점을 두고 있다. 2017년 일자리 분야 예산안은 올해 대비 1조 7000억원(10.7%)이 늘어난 17조 5000억원으로, 교육과 문화 등 12대 분야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분야별로는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일자리 분야 심층평가에서 중장기적으로 고용 효과가 높다고 평가한 고용서비스(21.5%), 창업지원(16.8%), 직업훈련(12.3%)에 대한 투자 규모 확대가 눈에 띈다. 최근 국정 운용 기조가 경제성장률에서 일자리 창출 중심으로 전환됐고, 이를 예산으로 뒷받침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외에는 기존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2017년 예산안이 너무 밋밋할 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끌어올리기에는 지출 증가폭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연 그럴까.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28조 100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은 강도를 조절하는 것일 뿐 향후에도 경기 대응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추가적인 재정 확대를 하면서까지 경제성장률에 얽매이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바람직한 대응이다. 예컨대 정부가 2017년 예산안보다 50조원(GDP 대비 3%) 정도의 지출을 더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재정승수를 어림잡아 0.5 정도로 보면 내년 경제성장률이 정부 전망치(3.0%)보다 1.5% 포인트 높은 4.5%까지 올라간다는 얘기다. 그만큼 재정수지 적자도 늘고, 국가 채무도 더 많이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2018년에도 동일한 정도로 확장 재정을 유지하기에는 국가 채무가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확장 재정 기조를 포기하면 경제성장률은 급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저성장은 인구고령화, 신흥국의 추격, 주요 산업의 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다. 재정을 활용한 단기적인 수요 확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금융위기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인위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올리기 위해 재정을 확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증세를 하면 국가 채무를 늘리지 않으면서도 경제성장률도 올리고 복지도 확대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물론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증세를 위한 준비가 돼 있는지 되묻고 싶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증세도 안보 문제만큼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국론을 모아 결정할 일이지 하루아침에 결정할 바가 아니다. 결국 재정 지출을 어느 정도로 가져갈지, 이에 따른 재원 부담을 어찌할지는 내년 대선에서 큰 이슈가 될 수밖에 없고, 선거 결과가 그 방향을 말해 줄 것이다. 2017년 예산은 지금 정권이 마무리를 잘할 수 있는 범위에서 편성하는 것이 맞다. 내년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해이므로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고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과도한 재정적자는 차기 정부에 부담일 뿐이다. 따라서 정부가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이를 말리는 게 맞지 않을까. 2017년 예산은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재원 마련 없이 재정 지출을 늘리던 브라질 호세프 대통령의 매직은 사실 재정회계법 위반이었으며, 종국에는 탄핵으로 마무리됐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오늘의 눈] 백화점·쇼핑몰은 지진 안전지대일까/박재홍 산업부 기자

    [오늘의 눈] 백화점·쇼핑몰은 지진 안전지대일까/박재홍 산업부 기자

    지난 19일 밤 또다시 경북 경주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 12일 5.1~5.8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지진이 또 발생해 지진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일단 한반도에서도 대형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인지한 이상 또다시 지진이 발생할 경우 혼란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곳이 실내 공간에 최대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마트 등이라면 혼란은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2일 경주에서 첫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마트 등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 관계자들은 지진에 따른 사고 우려를 묻는 질문에 “이미 매뉴얼이 다 구비돼 있고 각 건물 모두 내진 설계가 돼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안심시켰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의 경우 지진 발생 시 매뉴얼에 예보·발생·조치 등 세 단계로 상황을 나눠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등도 안내방송과 함께 고객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내용의 매뉴얼이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매뉴얼에 대한 교육을 평소에 했는지, 또 근무자들이 매뉴얼을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지다. 예컨대 이미 두 번의 지진 학습효과로 인해 지진에 대한 공포감을 지니고 있는 고객들은 조금이라도 흔들림을 느낄 경우 두려움에 일단은 건물 밖으로 나가려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안내방송이 중요하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 내에 있는 이들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땅이 흔들리는 동안에는 기다렸다가 지진동이 멈춘 후에 밖으로 이동해 빠져나가야 한다. 사업장 운영자들은 신속하게 이를 알리는 방송과 내부 직원들의 조치를 통해 고객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두려움으로 인해 일단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고객들이 몰려 압사 등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19일 밤 지진이 감지됐을 당시 롯데백화점 부산점에서는 안내방송이 나가지 않았다. 반면 앞서 12일 롯데백화점 울산점은 7시 44분 5.1 규모의 첫 지진이 발생한 뒤 안내방송과 함께 고객들을 대피시켰다. 부산점은 지진을 경험한 것이 19일이 처음이었고, 울산점은 지난 7월 울산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규모 5.0의 지진을 경험한 전력이 있다. 지진의 학습효과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부산점의 안내방송이 나가지 않은 데 대해 “내부 전문가 자체판단으로 안내방송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시인했다. 대형 쇼핑몰·백화점·마트 등에서는 지진 등의 재난이 발생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의 여진이 1년 넘게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국민들은 이미 두 번의 지진 학습을 했다. 백화점이나 쇼핑몰, 마트 등 대규모 인원을 수용하는 전국의 사업장은 지진을 대비한 체계적인 매뉴얼 보완과 직원들이 이를 숙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을 해야 한다. 고객인 국민들도 이번 기회에 지진 상황에 대비한 행동요령을 숙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maeno@seoul.co.kr
  • LPGA 핑크빛 전망 박성현에게 쏠린 눈

    LPGA 핑크빛 전망 박성현에게 쏠린 눈

    ‘미국 무대 진출, 결심만 남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016시즌 7승을 올리며 각종 부문 선두를 내달리고 있는 ‘장타 여왕’ 박성현(23·넵스)의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를 차지하면서 내년도 LPGA 직행 티켓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LPGA 비회원인 박성현은 KLPGA 투어 상금 상위 랭커 자격으로 출전한 올해 여섯 차례의 대회에서 네 차례나 6위 이내의 성적을 냈다. 특히 US여자오픈 3위와 ANA 인스퍼레이션 6위를 비롯해 특급 메이저대회에서 세 차례나 선두권에 이름을 올렸다. 6개 대회에서 챙긴 상금만으로도 LPGA 투어 상금 랭킹 40위 이내에 들 만큼 박성현의 기량은 미국 무대에서도 통했다. 당장 LPGA 투어에 뛰어들어도 정상급 선수로 활약할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미국 무대에서 강하게 자신을 각인시킨 건 트레이드마크인 장타다. 박성현은 에비앙에서도 장타를 펑펑 터트렸다. 장타를 치면서도 비교적 정확한 샷을 구사하고,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의 트러블샷 실력도 이제는 세계랭킹 10위 선수답다는 평가다. 호쾌한 경기 스타일로 상품성도 인정받았다.박성현은 이번 준우승으로 퀄리파잉스쿨을 치르지 않고도 내년 LPGA 투어에서 뛸 자격을 확보했다. LPGA 투어는 비회원이라도 초청 등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받은 상금이 시즌 종료 시점에서 랭킹 40위 이내에 들면 이듬해 투어 카드를 부여한다. 그는 에비앙 대회 공동 준우승으로 26만 1500달러의 상금을 챙겼다. 앞서 다섯 차례 대회에서 쌓은 39만 3793달러를 합치면 65만 5293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시즌 종료 시점의 상금랭킹 21위에 해당한다. 그는 “미국 진출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미국 무대 연착륙을 위한 소소한 문제들을 깔끔하게 처리한 뒤 결정을 내리겠다는 얘기다. 당분간 더 국내 투어에 전념할 계획이다. 상금왕과 다승왕, 그리고 대상 등 다관왕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미국 무대 진출은 올해 KLPGA 투어 시즌을 모두 마친 뒤 결정할 공산이 크다. 한편 박성현은 23일부터 사흘 동안 강원 춘천 엘리시안강촌 컨트리클럽(파72·6527야드)에서 열리는 KLPGA 투어 미래에셋대우 클래식에 출전,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 이미 시즌 최다 상금 기록을 갈아치운 박성현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신지애(28)가 2007년 세운 종전의 최다승 기록(9승)에 1승 차로 다가서게 된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저금리에 재테크 씨 말랐다고? 온라인 공매로 ‘대어’ 낚아봐!

    저금리에 재테크 씨 말랐다고? 온라인 공매로 ‘대어’ 낚아봐!

    # 자영업자 A씨는 온라인 공매를 통해 경남 남해 축사를 3200만원에 낙찰받았다. 감정가 5400만원이던 축사 가격은 3차례 유찰을 거듭하는 동안 2200만원이나 떨어졌다. 주변에선 “아무리 싸도 축사를 어디다 쓸 거냐”고 의아해했지만 복안이 있었다. 현재 축사는 태양광발전소로 개조돼 월 300만원의 수익을 가져다주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 직장인 B씨는 제주도에 땅을 사려고 8개월째 공매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다. 많이 올랐다지만 더 늦기 전에 막차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한 달 전에는 첫 입찰에 참여했지만 500만원 차이로 낙찰받지 못했다. B씨는 “평범한 직장인도 투자할 수 있을 규모의 싼 땅도 많다”면서 “경험도 쌓고 공부한다는 심정으로 서두르지 않고 공매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금리에 지친 재테크족들이 우량 자산을 값싸게 취득하는 공매 시장으로 빠르게 눈을 돌리고 있다. 20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따르면 이 회사의 공공자산 처분시스템 온비드(www.onbid.co.kr)에 참가한 입찰자 수는 지난달 말 기준 12만 7455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9만 3806명에 비해 35% 이상 늘었다. 거래 건수도 같은 기간 8%(1만 9124건→2만 716건) 증가했다. 캠코 관계자는 “일반인들의 공매 참여가 늘면서 저렴한 물건 등을 중심으로 거래가 활발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허위매물·중개수수료 없어서 인기 공매의 매력은 부동산 등을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안전성과 수익성이 높다는 점이다. 압류 재산의 경우 유찰될 때마다 매주 10%씩 최저 입찰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유찰이 계속되면 최초의 최저 입찰가격 대비 25%까지 내려갈 수 있다. 허위 매물이 없다는 점도 인기를 끄는 요인이다. 부동산을 포함한 온비드의 모든 물건은 낙찰을 받더라도 중개수수료를 치르지 않아도 돼 매입비용도 아낄 수 있다. 비슷한 방식의 법원 경매도 있지만 이미 시장에서는 ‘레드 오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개인 응찰자 외에도 전문 투자업체, 컨설팅 업체까지 가세하면서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낙찰률과 수익률이 동반하락하고 있어서다. 소액투자가 가능하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부동산을 거래하려면 기본적으로 1억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공매시장에는 일반인들이 노려볼 만한 소액 부동산이나 동산 물건도 많다. 지난해 온비드에 올라간 부동산 물건 중엔 1000만원 이하가 전체의 31%를 차지한다. 이 중 1000만~3000만원대 물건도 20%나 됐다. 물건 종류도 다양하다. 온비드에서는 토지, 아파트, 건물 등 기존의 부동산 외에도 중고차, 콘도미니엄 회원권, 골프회원권, 유가증권, 나무, 미술품 등 다양한 자산을 취급한다. 학교 매점과 지하철 상가, 주차장 운영권 등도 공매 고수들이 노리는 아이템들이다. 특히 공공기관이 사용하던 자동차는 정기적으로 정비를 받아온 데다 거리와 사고 조작이 없어 최근 인기가 높다. ●등기부등본·현장 확인은 필수 유의할 점도 적지 않다. 부동산 공매 때는 적어도 등기부등본 내 권리분석 정도는 투자자 스스로 확인할 줄 알아야 한다. 낙찰 후에는 말소되지 않은 권리가 있는지, 농지는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농지취득자격증명원의 발급이 가능한지, 사용 제한은 없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특히 주거용 건물이나 상가 건물은 임대차 현황은 물론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원 경매처럼 인도 명령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무작정 버티면 스스로 명도소송을 통해서 세입자를 내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싼 물건이라도 현장 확인은 필수라고 조언한다. 온비드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했다면 반드시 발품을 팔아 재확인하라는 이야기다. 특히 부동산은 주변부터 비교적 먼 곳까지 여러 곳의 공인중개소에 들러야 한다. 해당 물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만한 주변 거주민과 상인들의 이야기 등을 참고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이정환 캠코 온비드사업부 팀장은 “자신이 직접 사용한다는 생각으로 능력 안의 범위에서 공매에 참여하되 재매각이나 임대가 쉬운 물건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관심 있는 물건이 있어도 서두르지 말고 마치 뉴스를 보듯 정기적으로 들여다보면 좋은 물건을 고르는 안목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용산팔경 명성 품은 물 마른 7.7㎞ 물길 역사가 대신 흘렀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용산팔경 명성 품은 물 마른 7.7㎞ 물길 역사가 대신 흘렀다

    내가 지금 사는 집도 서울미래유산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기준에 적합하면 가능하다. 미래유산은 시민 손으로 발굴하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삼는다. 선정 과정은 시민 손으로 발굴한 미래유산에서 보전가치를 파악하고 그 가치를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일련의 여정이다. 미래유산은 발굴·신청, 조사·심의, 선정·발표 단계로 지정된다. 최종 확정된 미래유산에는 인증서가 교부되고 5년마다 재발급 여부를 결정한다. 미래유산 시민제안은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이 같은 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서울신문·문화지평과 공동주관으로 매주 토요일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만초천(蔓草川). 무악재(길마재)에서 발원해 서대문사거리, 서울역, 서부역, 청파로, 원효로를 따라 흐르다 원효대교 밑에서 한강에 합수되는 물줄기다. 만초는 넝쿨이 무성한 풀을 말한다. 천변에 풀이 덩굴째로 무성히 자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일명 넝쿨내라고도 부른다. 폭염이 한풀 꺾인 지난달 27일 일곱 번째 서울미래유산 탐방답사는 만초천 물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이 눈이 부시게 푸른 날이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모였다. 물줄기 원천인 안산과 인왕산이 청명한 대기 때문에 한결 가깝게 보였다. 만초천 길라잡이는 전상봉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맡았다. 서울시민연대 대표이기도 한 전 해설사는 ‘전상봉의 서울 이야기’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등 서울시민의 인문학 소양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순국정신 깃든 ‘서대문독립공원’…떡 도매하던 영천시장 옥바라지의 흔적 서대문독립공원은 지금은 역사관으로 바뀐 서대문형무소가 있었던 곳이다. 이 밖에 순국선열추념탑, 서재필 선생 동상, 독립관(순국선열 위패봉안소), 3·1 독립선언 기념탑, 독립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이진아 기념도서관 등이 들어서 있다. 독립관은 조선시대 중국사신을 영접하던 모화관을 1996년 복원해 내부에 순국선열 위패 2327위를 모셨다. 그래서인지 독립관이란 현판 앞에 별도로 현충사란 현판을 걸고 있다. 전 해설사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면서 해설이 시작됐다. 그가 펼쳐든 것은 수선전도(首善全圖) 실사출력물이다. 수선은 서울을 뜻한다. 수선전도는 서울시 지도인 셈이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다. 최근 답사에서 보충 교재가 자주 등장한다. 앞서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는 노트북을 이용해서 잘 보이지 않는 서울미래유산을 설명했고, 배건욱 해설사도 파일에 옛 사진을 담아 나와 해설에 입체감을 더했다. 전 해설사도 사진파일은 물론 실사출력 지도를 준비해 와 이해를 도왔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어서 수선전도를 세 명이 붙잡아야 했다. 안테나형 지시봉까지 챙겨 온 전 해설사는 지도에서 만초천 위치를 짚어가며 특유의 해박한 역사지식을 쏟아냈다. 전 해설사는 “만초천은 총길이 7.7㎞로 1967년 이후 복개가 시작돼 지금은 물줄기를 구경하기 힘들다”며 “청계천만큼 인지도는 없지만 과거에는 용산팔경 중 하나로 매우 경치가 아름다웠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답사팀에 뭉쳐 다니는 한 무리 ‘아줌마 부대’가 있다. 답사 전 화장실도 우르르 함께 몰려갔다 오는 의리(?)를 보여준 이들은 도봉구에 사는 김남숙(52)씨가 신청하고 친구들을 데려온 것이다. 함께 온 강혜린(52)씨는 “평소 한국사,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따라 나섰다”며 “여태껏 모르던 서울의 역사를 알게 되는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서울미래유산을 알고 있었다”며 “주변에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자꾸 사라져서 안타까웠는데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해서 보호한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영천시장에 들어서자 아줌마부대를 비롯해 중년 여성들의 두리번거림이 심해졌다. 시장은 여성, 특히 중년 이상 아줌마들의 안마당 같은 공간이기 때문에 이곳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몸이 반응한다. 영천시장은 1960년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아마도 개천변에 있던 조그만 노점이나 점포가 복개 이후 물길 위에 시장을 형성한 게 아닐까 추측된다. 2011년 7월 전통시장으로 등록됐고 원래는 떡 도매시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일반시장과 다름없다. 떡이 많이 팔린 이유는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때문이었다는 속설이 타당하게 들렸다. 1916년 원형 그대로 ‘석교교회’…첨두아치 디테일 뛰어난 고딕양식 눈길 영천시장을 통과해 조금만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 외관이 멋들어진 교회가 나온다. 1916년 세워진 석교교회로 서울미래유산이다. 지정 이유는 강당식 평면형식을 가진 고딕양식 건축물이 건립 당시 모습을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1층 회당 입구 첨두아치(Pointed Arch)에서 우수한 조적 디테일을 보여준다. 전 해설사는 “처음엔 한옥을 예배당으로 개조해 사용하다가 신도가 늘어나자 예배당 건립이 필요하게 됐다. 하지만 가난한 성 밖 주민들이 건축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며 “기적적으로 미국에서 헌금이 모아져 벽돌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석교교회는 감리교인데 우리나라에 이 교단이 들어온 것은 1884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있던 해이고 최초 교회는 1987년 문을 연 정동교회 벧엘예배당이다. 아펜젤러가 대표적 감리교 선교사로 배재학당을 만들었다. ‘정거장호텔’ 흔적 지킨 회화나무…경인선 기차시발역이었던 서대문정거장 농협중앙회와 이화여자외국어고 사이에 표지석 하나가 있다. 서대문 정거장이 있던 자리를 표시한 것이다. 조선시대는 중국과의 관계가 현재 한·미관계만큼 중요했다. 한양에서 중국을 가기 위한 교통의 요지가 바로 서대문과 의주로였다. 중국 사신이 들어오던 영은문이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서대문 정거장은 경인선 철도가 처음 개통됐을 때 시발역이 됐다. 역전에는 여행객을 위한 숙소가 있기 마련. 서대문 정거장 앞에도 정거장호텔(스테이션호텔)이 1901년 문을 열었다. 주인이 영국인 엠벌리에서 프랑스인 마르텡으로 바뀌면서 애스터하우스(Astor House)로 거듭났다. 전 해설사는 “정거장호텔 개업 직후 한 미국인 사진작가가 호텔을 방문해 찍은 사진을 보면 기와집 뒤쪽에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며 “그 나무가 지금 이화여자외국어고 정문 앞에 있는 회화나무”라고 말했다. “5분간 휴식하겠습니다.”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늦더위 기승은 여전했다. 전 해설사는 지친 답사팀을 그늘지고 앉을 수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답사팀을 자리에 앉히고 전 해설사는 가방에서 파일을 열어들고 정거장호텔과 회화나무 사진을 보여주면서 조금 전 해설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물은 곧게 흐르지 않는다. 만초천도 구불구불 완만한 물길을 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위에 지어진 집들의 위치와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소문아파트는 오목렌즈처럼 곡선 형태로 지어졌다. 물길을 복개하고 그 위에 지었기 때문이다. 마치 하얏트호텔을 축소해 놓은 느낌이다. 오목렌즈 같은 ‘서소문아파트’…하천 위에 지어져 대지지분 없어 “서소문아파트는 하천 위에 지어져서 대지지분이 없는 게 특징입니다.” 전 해설사는 “1972년 지어진 서소문아파트가 이런 이유로 재개발, 재건축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거래가 실종된 것은 물론이다. 2013년 서울시가 이 아파트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추진했으나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아 무산됐다. 한 참석자는 “소유주 입장에서는 재산권이 제한되고 집값도 안 올라 펄쩍 뛰겠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저로서는 지금의 모습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홍제천 위에 지어진 유진상가, 도로 위에 올린 낙원상가 등이 대지지분이 없는 대표적인 대형 건물들이다. 신유년, 기해년, 병인년 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서소문 역사공원은 사방이 펜스로 둘러싸여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이 있는 이곳은 바티칸 교황으로부터 천주교 성지로 인정받았다. 천주교인을 박해하기 이전 조선 초기부터 죄인을 참수하는 형장으로 사용됐던 곳이기도 하다. 전 해설사는 “서대문 일대는 조선시대 풍수설에 따라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있다고 해 죄인 처형장으로 이용되고 감옥이 설치되기도 했다”면서 “성삼문, 허균 등이 이 언저리에서 처형됐고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김개남, 안교선, 최재호 등이 효시된 곳”이라고 말했다. 전 해설사의 해설을 듣는 표정들이 편치 않다. 그리 오래지 않았던 시대에 단지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참히 참수당한 이들이 있었던 참혹한 역사 때문일 것이다. 90년 역사 지닌 ‘염천교 구두거리’…50년대부터 1층 상점·2층 공장의 형태 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염천교 고가도로 한편은 수제화를 만드는 구두거리다. 전 해설사는 “이른바 ‘염천교 구두거리’로,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90여년 역사를 가진 구두 전문 거리”라며 “한국 구두산업의 산 역사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어서 미래유산에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1925년 경성역이 생기고 피혁 밀거래가 이뤄지면서 자연스레 구두점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 중고 전투화를 수선하고 개조하는 점포들이 생겨나다가 1950년대부터 1층은 상점, 2층은 공장 형태의 구두거리가 형성됐다. 2000년대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다가 서울역 일대 재개발 계획과 맞물려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 답사팀 일원인 최일원(63)씨가 “나도 저곳에서 옛날에 구두를 사 신은 적이 있다”며 “싸다고 다 비지떡이지 않고 내구성이 좋아 오래 신었다”고 말했다. 드디어 서울역 광장에 도착했다. 이번 답사의 종착역이자 해산지다. 일제강점기 사이토 총독 저격사건, 1980년도 서울의 봄, 1987년 6·26국민평화대행진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배태한 공간이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서울시내에서 가장 교통이 혼잡했던 서울역 주변 교통을 완화하기 위해 1970년 8월15일 완공한 고가차도다. 1970년 5월 마포대교 완공과 함께 퇴계로와 만리재, 마포대교를 잇는 고가도로로 개설됐다. 노후화에 따른 안전 문제로 지난해 12월 폐쇄됐다. 서울시는 뉴욕 고가 철도를 공원으로 재생한 ‘하이 라인 파크’(High line Park)를 벤치마킹해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화하고 있다. 답사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이경수(53)씨는 “평소 주말답사를 취미로 삼고 안 다녀본 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아내와 함께 다닌다”며 “서울미래유산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관심의 영역을 넓혀줘서 고마운 프로그램”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눈 맞추며 이야기하면 정보 기억력 높아져 (연구)

    눈 맞추며 이야기하면 정보 기억력 높아져 (연구)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아이컨택’은 어떤 힘을 가졌을까. 프랑스 파리대학교와 핀란드 탐페레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각인시키길 원한다면 사진이나 이메일이 아닌 얼굴을 직접 마주보고 아이컨택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이컨택의 효과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아이컨택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집중력을 강화시키는지에 대해서는 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과거 한 연구에서는 아이컨택으로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이 일종의 흥분과 호기심 등을 자아내면서, 이 과정에서 주고받는 정보를 더욱 잘 기억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파리대학교 연구진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두 사람이 마주보며 이야기 할 경우, 이때 나누는 정보가 자기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즉 마주보는 행위가 타인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더욱 친절하게 행동하게끔 유도하고, 동시에 반사회적 행동을 줄이게 해 당시 나누는 정보를 더욱 잘 기억하게끔 돕는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연구를 이끈 파리대학교의 로렌스 컨티 교수는 “직접 눈을 마주보는 것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더욱 인식하게 만들며, 이러한 과정은 기억과 의사결정, 지각능력 등의 강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컨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포스터를 제작할 경우, 포스터 속 인물과 포스터를 보는 사람의 눈이 마주치게 하면 더욱 오래 기억에 남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상대방에게 비친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인식은 결과적으로 친사회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며, 이런 행동은 상대방이 주는 정보를 더욱 잘 받아들이게 돕는다”고 덧붙였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신경과학 전문지인 ‘의식과 인지 저널’(Journal of Consciousness and Cognition)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영탁의 시식남녀] ‘아구, 통술 공화국’을 찾다

    [김영탁의 시식남녀] ‘아구, 통술 공화국’을 찾다

    ‘마산’하면 ‘아구찜’이다. 서울이나 전국 어디를 가도 온통 ‘마산아구찜’식당이다. 상관없다. 마산 아구찜은 이미 전국구이기 때문이다. 원조 논쟁? 역시 중요하지 않다. 그냥 마산이다. 마산은 아구찜 식당마다 제각각 하나씩 아구의 일가를 이뤄왔다. 말 그대로 '아구 공화국'인 셈이다. 마산역으로 마중 나온 이상옥, 성선경, 이주언 시인을 만났을 때 마산역 광장의 시계탑은 오후 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끼니를 놓친 시인 무리들은 오동동할매아구찜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표준어는 '아귀'다. 하지만 이 지역 말로 '아구'라고 불러야 금세 입속에 침이 고인다. 아구는 생긴 모양이 흉측하고 못생겨서 바닷고기가 흔할 땐 어망에 걸려도 어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다에 던져버린 생선이다. 이제는 껍질과 내장, 아가미, 지느러미, 꼬리 또한 특유의 맛이 있어 뼈만 남기고 알뜰하게 발라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껍질은 콜라겐이 많아 사람의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 아귀의 간은 비타민A가 많아 고소하고 진하며 남자들의 강장식품이다. 요리는 찜, 탕, 수육 등이 있다. 지방마다 요리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원조 격인 마산 지역은 아귀를 말려서 다시 불렸다가 아주 매운 양념으로 요리하는 것이 특별하다. 지금도 말린 아구로 아구찜을 만드는 식당이 있는데, 연세 드신 분들은 말린 아구찜이 오리지널이라며 그 맛을 만끽하기도 한다. 옛 음식은 이렇듯 추억 혹은 익숙함으로 형체를 바꿔 DNA에 각인된다. 하지만 말려서 꾸득꾸득한 마산 특유의 아구를 제외하고 생아구찜과 탕, 수육을 시켰던 것은 성선경 시인이 결정한 듯하다. 마산 특유의 아구를 주문하지 않은 이유는 나중에 이주언 시인의 설명을 듣고 알았다. 그의 입을 빌려 보면, 생아구로 만든 것보다 말린 아구 맛이 덜했다고 한다. 생선은 신선도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옛날에는 아구를 말려서 보관해두었다가 콩나물 등을 넣고 찜요리를 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생선을 보관하기 위해 말려야 했고, 말린 생선은 신선도가 떨어져 국물 맛이 잘 우러나지 않고, 그래서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찜요리로 만든 것 같다는 설명이다. 일행들은 한편으로는 마산막걸리잔 기울이느라, 한편으로는 아구찜과 수육을 오가며 젓가락질하느라 고개를 주억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시의 거리 마산의 시인들은 타관에서 온 시인의 손을 '시의 거리'로 잡아 끌었다. 시를 돌에 새겨서 세워놓은 소박하고 조용한 공원이었다. 마산이 한눈에 보이는 중심부여서 사방팔방으로 트였다. '누나야 석류꽃이 피었습니다/ 푸르듯 붉은 꽃이 가지마다 피었습니다/ 오월달 맑은 날에 잊은 듯이 피었습니다/ 누나가 가신 날에 잎사귀마다 그늘지어/ 하늘가 높은 곳에 몸부림치며/ 그때 같이 석류꽃이 피었습니다'('석류' 전문) 현촌 김세익(1924~1995) 시인의 시비는 날개 형태로 날아가는 돌 같다. 김세익 시인은 함경남도 홍원 출신으로 마산여고 교사로 10년을 마산에서 살았다. 이석(본명 이순섭·1925~2000)을 비롯해 조두남, 이은상, 이원수, 임화 등 수많은 시인과 예술인들을 배출하고 보듬은 마산의 품은 넉넉하고 따듯한 남쪽 도시이며 출렁이는 바다를 거느리고 있다. 마산은 '가고파'의 고장, 곧 노산의 고장이다. 또한 3·15 의거의 고장으로 그 정신을 강조하다 보니, 옥에 티 같은 노산의 흠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볼 수도 있을 법하다. 노산문학관이 될 뻔하던 건물은 마산문학관이 됐다. 전북 고창에는 미당문학관이 있다. 친일 흔적은 흔적대로 두고 미당의 문학적 업적은 업적대로 기리고 있다. 좀더 시간을 두고 객관적인 접근이 이뤄진다면 노산의 공과 역시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합포만을 통째로 담은 통술집 '통술집'이라는 말이 궁금했다. 도대체 '통술'이 뭘까? 뭔가 큰 인심이 배어 있는 듯도 한데…. 술집은 바닷가의 특성을 잘 살린 곳이다. 술집이라고 부르기엔 먹거리가 너무 풍부하고, 음식점이라고 부르면 찾아가는 목적에 어긋나는 느낌이다. '통술집'은 식사를 하지 않고 찾아야 한다. 여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안주는 밥이 될 만큼 충분히 먹고도 남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안주로 만들어내기에 바다를 통째 안주로 낸다는 의미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요즘은 치킨 같은 다른 안주가 한두 가지 섞여 나오는 곳도 있다고 한다. 주인의 과잉친절 혹은 엉뚱한 애교인 셈이다. 술이 들어오는데 플라스틱 물통에 소주, 막걸리, 맥주가 꽉 채워져 있다. 성선경 시인과 필자의 연속적인 건배로 벌써 빈 병은 퇴역하고 남은 술병들은 병정처럼 통 속에 서 있었다. '바다를 가운데로 빙 둘러앉아서/ 이야기의 옷고름 풀어헤쳐요/ 당신은 소라의 가슴으로/ 당신은 가자미 눈짓으로/ 추억의 살점 저미어 건네 봐요/ 여기선 우리,/ 바다를 통째 건져서 마셔 봐요' (이주언 '통술집') '오동추야 오동동 긴 이야기 한겨울 깡통시장 다녀가고/ 속살 얼비치던 여인 치맛자락 쓸듯 합포 바다 잔잔한 설렘 시심으로 다녀가고'(김일태 '통술을 비워가는 사이') 도대체 바다에서 나오는 생선과 해물이 없는 게 없을 정도로 푸짐하여, 가히 전주에 있는 전주막걸릿집보다 못함이 없었다. 오히려 바다를 밥상으로 끌어당겨서 더 풍부하고 넘실거린다. 이주언 시인의 농익은 사랑이 저미는 시는 맛과 살〔肉〕을 통해서 사랑의 행위가 이루어지고 드디어 우리와 바다가 통째로 동일화한다. 특히 소라의 가슴과 가자미 눈짓은 은근하여 추억의 살점이 몸 안으로 살며시 들어온다. 김일태 시인은 통술을 비워가는 사이 긴 이야기를 깡통에 넣고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축약된 얘기는 시가 되어 벌써 시심은 합포 바다에 다다랐다. '접시 위의 메로 구이는 결국 파국을 보여주지, 잔뜩 긴장한 속살 사이에서 툭 튀어나온 물렁물렁한 뼈, 그 뼈의 촉이 쓴 기억은 십 년이 지났다, 또 십 년이 지날 것이다, 기억을 향해 울기 시작한 물고기의 벌어진 입과 결별해 버린 저녁'(박서영 '메로 구이') '문을 열 때 멀뚱히 쳐다보는 눈/ 접시 위에 시 한 수로 누웠다/ 마주친 눈에 바다로 가는 물길이 잡힌다'(최석균 '도다리 시인') 온갖 해산물에 메로구이까지 내놓는 마산 통술집도 시인들의 술통을 다 채우지 못했다. 성선경 시인이 내밀하게 소개한 '부광수산'에서 도다리까지 저며낸 뒤에도 긴긴 밤은 쉬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 숙취로 쓰린 속은 복국 한 사발 들이킨 뒤 덜컹거리는 귀경 열차에서 성 시인의 시편 '복찌개'를 읊조리며 달랬다. '속 쓰린 소리 복, 복, 복/ 쓰린 속을 달래는 소리 복복, 복복, 복복/ 소기 풀리는 소리 복복복, 복복복'(성선경 '복찌개')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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