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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혼자 산다’ 한혜진X장윤주, 모델 체육대회에 시청률 10.6% ‘1위’

    ‘나 혼자 산다’ 한혜진X장윤주, 모델 체육대회에 시청률 10.6% ‘1위’

    ‘나 혼자 산다’ 한혜진이 강풍마저 이겨낸 승부욕으로 신바람 나는 체육대회를 만들며 금요일 밤을 웃음으로 수놓았다.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던 그녀는 속마음과 달리 승부욕에 휩싸여 모든 경기에 적극적으로 힘하며 언행불일치 승부욕을 발산했고, 그녀와 반대로 장윤주는 자신의 팀이 경기에서 져도 흥을 뿜어내며 춤판을 벌여 핵웃음을 투하했다. 이에 시청률이 10.6%를 기록,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0일 밤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기획 김구산 / 연출 황지영 임찬) 241회에서는 소속사 모델들과 체육대회를 한 한혜진과 클래식 카 정보 수집을 하러 다닌 이시언의 하루가 공개됐다. 21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나 혼자 산다’ 241회는 수도권 기준 1부 9.4%, 2부 10.6%를 기록, 변함없이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우선 소속사 모델들과 체육대회를 한 한혜진의 하루가 공개됐다. 그녀는 체육대회에 참석하는 모두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부엌에 섰다. 이날 그녀가 준비한 음식은 바로 주먹밥과 김치전이었는데, 이는 지난해 박나래가 여름나래학교를 떠날 때 무지개회원들을 위해 주먹밥을 싸준 것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주먹밥을 처음 해본 한혜진은 시작부터 우왕좌왕했다. 그녀가 평소 보여준 완벽하게 전을 부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주먹밥을 떡으로 만드는가 하면, 쌀을 씻으려다 와장창 쏟아버려 그녀를 도우러 온 모델 이현이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게다가 저염식단을 주장하는 한혜진과 운동할 때는 고칼로리로 먹어야 한다는 이현이가 아웅다웅하며 음식을 만들어 웃음 가득한 하루가 될 것을 예고했다. 이후 체육대회가 펼쳐질 운동장에 도착한 한혜진과 이현이. 두 사람은 장장 3시간에 걸쳐서 완성한 음식을 동료 모델들과 나눠먹고 체육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날 체육대회는 한혜진이 팀장인 한팀과 이현이가 팀장인 이팀으로 나눠져 진행됐다. 특히 한혜진은 체육대회에 앞서 “전면에 나서서 뭘 하는 걸 안 좋아해요”라고 말했는데 이와 반대로 입장식을 시작하자마자 모델 모드를 발동하며 운동장을 런웨이로 만들며 반전 승부욕을 뿜어내 모두의 시선을 강탈했다. 이후로도 한혜진의 언행불일치 승부욕은 계속됐다. 그녀는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자리가 아니라 서로 친해지고 그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든요”라며 친목을 강조했는데 팀장의 각오를 드러낼 때는 “저 하얀 옷을 시커멓게 만들어주겠습니다”라며 열정을 활활 불태웠다. 그녀는 응원구호 대결에서 더 많은 점수를 얻기 위해 망설임 없이 무릎까지 꿇어 언행불일치 승부욕을 드러냈다. 하지만 곧 갑작스러운 강풍에 체육대회는 잠시 중단됐고, 한혜진은 리더십을 발휘해 남은 게임 중 줄다리기와 계주만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계속 상대팀에 졌던 한혜진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해 남은 경기를 모두 이기며 역전승해 엄지를 척 들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승부욕을 발산한 한혜진만큼 독특한 행동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이가 또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장윤주였는데, 그녀는 “리사와 함께 다시 태어났거든요”라며 신인의 마음으로 열심히 임하겠음을 밝혔다. 이를 증명하듯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심지어는 자신의 팀이 경기에 졌음에도 정체불명의 춤을 추며 흥을 발산해 시청자들을 폭소케 했고 결국 체육대회의 MVP에 등극하기까지 했다. 이와 함께 이시언은 자신의 새로운 애마 블루칩을 공개했다. 블루칩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93년식 자동차로 매끈한 외관과 달리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히터와 라디오 작동이 불가능한, 주행기능만 있는 자동차였다. 이에 이시언은 기능이 싹 빠진 자신의 차를 설명하며 “더우면 졸리니까”와 같은 1얼 표 무소유 명언을 쏟아내 웃음을 빵 터트렸다. 이날 이시언이 블루칩을 타고 이동한 곳은 지인의 클래식 카가 전시된 창고였다. 그는 다채로운 디자인의 자동차들을 보며 신기함에 눈을 떼지 못했고, 행인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새빨간 슈퍼카를 시승하면서 로망을 이뤄냈다. 이어 이시언은 자신의 드림카를 가지고 있는 친구이자 소속사 대표를 찾아갔다. 그는 친구의 차와 자신의 차를 교환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모습을 보여 웃음을 유발했고, “많은 클래식 카 활동을 통해서 공부도 하고 지식도 얻어서 즐거운 취미생활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며 클래식 카라는 새로운 취미의 세계를 보여줬다. 이처럼 ‘나 혼자 산다’는 화려했던 5주년 특집이 끝나고 다시 무지개회원들의 소소한 일상이 공개돼 시청자들에게 편안한 웃음을 안겼다. 한혜진은 체육대회를 통해 몸이 튼튼해지는 하루를 보여줬고, 이시언은 클래식 카의 정보를 얻으며 지식이 탄탄해졌다. 이같이 두 사람은 각각의 흥미진진한 하루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제목이 통해야 대박 난다

    제목이 통해야 대박 난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연애 세포 자극… 6회 만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지난 한 해 동안 개봉한 영화만 총 1621편. 스크린에 걸리는 작품 편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방송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종편·케이블 등 매체의 다양화로 시청자들에게 선보이는 드라마 편수도 급증하고 있다. 관객, 시청자들의 눈에 들기가 더욱 치열해진 것. 이 때문에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제목 뽑기’는 흥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첫 열쇠가 되기도 한다.●‘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처럼 호기심 자아내야 최근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지난 2월 개봉한 ‘월요일이 사라졌다’가 ‘제목 잘 뽑아 흥행한 작품’으로 회자된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넷플릭스에서만 보여졌던 이 영화는 국내에서 CGV 단독 개봉임에도 불구하고 100만명 가까이 관객을 모았다. ‘월요일이 사라졌다’의 원제는 ‘월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나?’(왓 해픈 투 먼데이)와 ‘일곱 자매들’(세븐 시스터스). 하지만 원제가 길고 발음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수입·배급·홍보사 모두 매달려 제목을 손질했다. 그 결과가 ‘월요일이 사라졌다’였다. 이 제목은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동시에 ‘월요일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직장인들의 바람을 이뤄 주는 ‘쾌감’까지 담은 중의적 의미로 관심을 이끌어 냈다. 영화를 수입한 퍼스트런의 이소라 마케팅팀 과장은 “제목을 고심했을 당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같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월요일이 사라졌다’로 결정했다”며 “제목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궁금증이 영화 인지도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진짜 월요일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콘텐츠들도 다수 올려 영화의 주 타깃층인 2030 관객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흥행 돌풍 영화 ‘럭키’ 6개월간 제목 뽑기 고민 최근 방송가에서는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잘 뽑은 제목으로 꼽힌다. 남녀가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밥 사준다’는 말의 중의적 뉘앙스와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예쁜 누나’에 대한 남성들의 환상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연출한 안판석 PD는 “송중기·송혜교 커플 인터뷰에서 송중기가 송혜교에 대해 ‘밥 잘 사주는 좋은 누나’라고 얘기하다가 둘이 결혼하는 것을 보고 위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제목에 얽힌 뒷얘기를 소개했다. 드라마는 지난 14일 방송 6회 만에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1위(전국 6.2%, 순간 최고 시청률 8.5%)를 차지했다. TV 화제성 지수로도 드라마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를 기록했다. 이처럼 영화와 드라마의 제목은 작품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관객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첫 계기’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유치원생부터 노년층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게 쉽고 간결하면서도 강한 각인 효과를 주는 제목을 뽑기 위한 제작진, 홍보 담당자들의 고군분투는 치열하다.지난해 70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코미디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킨 유해진 주연의 ‘럭키’(LUCK-KEY)는 제목 아이디어만 150개 이상 낸 끝에 결정된 작품이다. ‘럭키’ 홍보사인 호호호비치 이채현 실장은 “일본 원작 제목은 ‘키 오브 라이프’였으나 작품 내용이 쉽게 전달되지 않아 영화 기획 단계에서부터 영화 포스터를 찍기 전인 개봉 직전까지 6개월 동안 계속 제목을 고민했다”며 “영화에서 열쇠가 주인공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소재이기 때문에 콩글리시이지만 ‘행운’이라는 뜻의 럭(Luck)과 열쇠라는 뜻의 키(Key)를 조합한 단순하지만 복합적인 의미가 있는 제목을 뽑았다”고 했다. ●‘미스티’·‘꾼’ 등 강렬하고 짧은 제목 선호 최근 예상 밖의 흥행을 이룬 공포영화 ‘곤지암’(260만명), 지난해 인기를 끈 ‘1987’(723만명), ‘꾼’(401만명), ‘택시운전사’(1218만명)처럼 요즘에는 단번에 인지가 되도록 단순하고 짧은 단어로 이뤄진 제목들을 선호하는 추세다. 드라마에서도 입에 잘 붙으면서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한 단어의 제목을 짓는 경우가 많다. ‘라이브’(tvN), ‘마더’(tvN), ‘리턴’(SBS), ‘미스티’(JTBC) 등이 대표적이다. 수식어를 포함해 두 어절을 쓰는 경우도 많은데 가능한 한 5~6자를 넘기지 않도록 한다는 게 드라마 제작진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외화 제목도 과거에는 의역해 대폭 손질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원제 그대로 따르는 추세다. 2000년대나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등 길고 문학적인 제목들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제목들을 직접 지은 영화 홍보사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실장은 “당시에는 문학성 있고 사색적인 분위기로 공감을 이끌어 내는 제목을 짓는 게 트렌드였다. 하지만 지금은 매체의 다양화, 전 세계 동시 개봉 등으로 관객들이 접하는 정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 직관적으로 가닿을 수 있는 짧은 제목, 언어유희를 이용한 흥미로운 제목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한 예로 최근 M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는 문학적 감수성을 담은 제목이지만 사람들이 잘 외우지 못해 입에서 입으로 잘 전해지지 못한다는 평을 받는다. 시청률마저 3~4%대로 저조하자 제목 탓이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제작진들은 드라마 제목을 정할 때 축약형 제목도 함께 고려하는 추세다. ‘슬감빵’(슬기로운 감빵생활), ‘별그대’(별에서 온 그대), ‘해품달’(해를 품은 달) 등은 모두 줄여서도 부르기 좋은 제목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외화 원제 그대로 살리는 추세 요즘은 방송 프로그램 제목이나 아이돌 그룹 음원 제목들이 영어로 지어진 것들이 많아 외화 제목을 굳이 우리말 제목으로 바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졌다는 의견도 있다. 강동영 롯데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지금 영화를 받아들이는 세대는 영어에 대한 이해력이 높고 대작들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홍보가 이뤄지고 뉴스가 쏟아지기 때문에 어설프게 제목을 바꾸면 되레 젊은 관객층의 반감이 크다”며 “요즘은 외화 제목을 굳이 한국식으로 바꾸기보다 원제에서 오는 인지도를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열린세상] ‘익숙한 것들’과의 과감한 결별을/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열린세상] ‘익숙한 것들’과의 과감한 결별을/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익숙한 것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편안하고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익숙함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아니 오랜 세월 반복과 답습으로 굳어진다. 부도덕하고 불공정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관행조차 좀처럼 깨지지 않고 이어지는 이유다. 관행이라고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전통적 미덕과 가치를 존중하고, 공동체의 선을 지키는 아름다운 ‘문화’가 된 것도 있다. 어쩌면 관행이야말로 경험과 지혜를 중시하는 보수의 산물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서 통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관행은 낡고 억압적이고 차별적이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힘의 논리와 사적 이익 논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요되고 정당화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 관행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다산 정약용도 백성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읍례(邑例)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아전들의 탐학한 악행을 신랄히 비판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대기업이 갑질을 하고, 공직사회는 전관예우로 선배에게 자리와 이권을 챙겨 주고, 병원은 아이들의 생명에 아랑곳없이 이익을 위해 주사제를 마구 나눠 썼다. 권력층의 온갖 편법과 부정, 온갖 취업 특혜, 그림의 대작이나 논문 대필과 표절, 정치권과 언론계에 만연했던 스폰서 제공 외유성 출장,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도 ‘관행’이란 핑계를 대 왔다. 그것으로 나라와 국민이 얼마나 신음해 왔는지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법을 보완하기는커녕 법을 무시하고 뛰어넘으면서까지 강자의 이익과 기득권을 합리화하는 이런 관행은 건전한 규범도, 상식도, 문화도 아니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우리 사회를 도덕 불감증과 부정과 비리로 빠져들게 하는 악습일 뿐이다. 관행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누구보다 과감한 개혁을 주창한 한비자(韓非子)도 옛것을 바꾸기란 어렵다고 인정했다. 이익을 보고 편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소리만 높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만 바뀌고, 잠시 숨죽이고 있을 뿐 내 편만을 챙기는 관행은 더욱 은밀하고 강력하게 그 생명을 이어 가는 모습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목격했다. 한비자는 옛것을 바꾸지 않는 것은 “혼란의 흔적을 답습하는 것”으로 통치의 실패라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고치고 말고는 오로지 옛날 것(관행)이 옳은지, 그른지만으로 판단해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사로운 의리나 욕심, 편견이 개입하면 관행은 더욱 굳어진다. “지금까지 그렇게 했는데 왜 지금은 안 되느냐, 너는 해 놓고 내가 하니까 안 된다고 하느냐”는 형평의 논리도 비겁하다. 나쁜 관행을 용인하는 또 하나의 ‘나쁜 관행’을 만들 뿐이다.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의 사표 수리로 매듭을 지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두고 청와대와 여당이 보인 태도가 그렇다. 야당의 정치 공세에 밀려서가 아니라, 위법성에 따른 결정이란 모양새를 취했다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얻은 것도 아니다. 반대로 권한과 책임 회피란 인상만 남겼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중요한 믿음 하나를 잃었다. 관행 타파다. 능력과 자질보다는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에 참여연대까지 결합한 ‘자기 식구 챙기기’에 매달린 인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능력 있는 인재를 삼고초려라도 해서 쓰는 탕평인사가 바로 이런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다만 그것을 위해 우리 사회의 갖가지 나쁜 관행들까지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정당화하면서 개혁과 적폐청산을 내세우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김 원장의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을 두고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한 대통령 말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다. 불과 1년 전 취임식의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는 다짐을 벌써 잊은 것인가. 눈에 보이는 비리와 부정, 위법은 쉽게 바로잡을 수 있고 효과도 금방 나타난다. 그러나 오랜 시간 너무나 당연하게 답습해 자연스럽고 견고해진 관행은 좀처럼 깨기 어렵다. 그것으로 편안함과 이익을 누려온 기득권의 저항과 유혹도 만만찮다. 나부터 아픔을 각오하고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익숙한 것들과의 과감한 결별. ‘적폐청산’의 시작이자 공정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 ‘든든 토종’ SK냐 ‘부상 병동’ DB냐

    ‘든든 토종’ SK냐 ‘부상 병동’ DB냐

    “이젠 정말이지 있는 것 없는 것 다 긁어모아서 해봐야죠.”(이상범 DB 감독) “몇 번 말씀 드리지만 여기(원주) 다시 오고 싶지 않네요.”(문경은 SK 감독)두 사령탑의 솔직한 속내에 1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으로 옮겨 치러지는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6차전 결과가 어느 정도 담겨 있는 듯하다. SK가 22번째를 맞은 챔프전 최초로 ‘2연패 뒤 3연승’을 거두며 정규리그 1위 DB의 유리했던 우승 확률들을 모두 지우고 사상 첫 2연패 뒤 4연승 대역전 드라마에 한 걸음만 남겼다.역대 챔프전을 6차전 이상 끈 시리즈 가운데 3승2패를 거둔 14차례 중 12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기 때문에 SK는 확률 85.7%를 잡아 18년 만의 통산 두 번째 우승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문 감독으로선 챔프전 6연패 끝에 3연승을 거둬 더욱 얼굴이 달아오른 터였다. 이 감독 역시 경기 전이나 뒤나 상기된 낯빛을 감추지 못했다. 5차전 전에도 “환자 천지”라며 동동 발을 굴렀던 이 감독은 경기 뒤 ‘스피드’를 책임졌던 김현호가 골반을 다쳐 남은 경기 출전이 어렵다고 털어놓아야 했다. 윤호영은 부상 탓에 제 컨디션이 아닌 게 분명했고, 김주성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두경민이 4쿼터 16점을 몰아치며 24득점, 디온테 버튼이 28득점으로 제 몫을 했지만 은퇴를 앞둔 로드 벤슨, 김태홍, 서민수 모두 체력 고갈에 시달리는 게 명확했다. 반면 SK에선 제임스 메이스가 24득점, 테리코 화이트가 23득점으로 꾸준했던 데다 김선형을 비롯해 최준용, 안영준이 든든하게 뒤를 받쳤다. 특히 3쿼터 3점슛 두 방 등 11득점으로 뜻밖의 활약을 펼친 이현석, 헤드 블로 논란을 부르긴 했지만 버튼을 나름 묶으며 김선형의 체력을 벌어준 최원혁 등 식스맨들의 도움이 눈부셨다. 벤치 멤버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 덕에 정규 1위를 차지했던 DB가 가진 장점이 챔프 2차전 이우정(12득점 3어시스트)과 서민수(3점슛 세 방 등 11득점)의 활약으로 정점을 찍고 그 뒤 세 차례 모두 상대 벤치 멤버들에게 눌린 게 연패로 직결됐다. 식스맨들의 6차전 활약이 더욱 절실한 건 벼랑 끝에 몰린 DB다. 이우정과 서민수에다 한정원, 이지운 등이 그야말로 미쳐 줘야 7차전으로 승부를 끌고 갈 수 있다. 하나 더. 문 감독이 경기 전 “잠실 홈도 온전한 홈인지 모르겠다”고 실토한 원주 원정 팬들의 응원 열기도 생각해 봐야 한다. 문 감독은 “우리는 여기에 겨우 100여명이 붉은 옷 입고 앉아 있는데 본사가 서울에 있는 DB는 몇백명씩 몰려들어 녹색 물결을 이루고 있지 않더냐”고 되물었다. 이미 시리즈의 기운은 SK로 넘어간 게 뚜렷해 보이지만 미묘한 경기장 분위기 하나로 급변할 수도 있다. 더욱이 미치는 선수가 하나 나오면 시리즈 향배가 돌변할 수도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삼성 ‘노조 와해’ 수사·글로벌 스탠더드 미흡 여론 압박에 결단

    삼성 ‘노조 와해’ 수사·글로벌 스탠더드 미흡 여론 압박에 결단

    이재용 부회장이 최종 승인한 듯 정부의 비정규직 문제에 힘 보태 나두식 지회장 “합법화 큰 의미”삼성전자서비스가 사내 하청 근로자 8000여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한 것은 두 가지 면에서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삼성이 전향적으로 힘을 보탰다는 점과 지난 80년간 지켜 온 삼성의 무노조 원칙이 사실상 폐기됐다는 점에서다. 배경을 떠나 비정규직 해법에 재계 1위인 삼성이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다른 대기업으로의 확산 기대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너무 한꺼번에 직접 고용을 받아들임에 따라 인건비 부담의 급증 등으로 인한 애프터서비스(AS) 질 저하를 우려하기도 한다.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 노조인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013년부터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집요하게 서비스 측에 요구해 왔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이 “서비스 기사는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으로 볼 수 없다”며 사측 손을 들어주고, 고용노동부도 2013년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노조의 요구는 헛바퀴를 돌았다.직접 고용 전환 대상은 서비스 기사를 포함한 90여개 협력사의 8000여명이다. 구체적인 범위는 추후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위탁계약 해지에 따른 협력사 보상 방안도 추후 결정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이번 결정은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사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기존 방식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물꼬를 텄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검찰의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문건 수사와 연관 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검찰 수사 이전부터 논의돼 온 사안”이라며 부인했다. 삼성의 무노조 원칙은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절대 안 된다”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창업주 이후 80년간 지켜 온 경영의 제1원칙이 3대째인 이 부회장에 이르러 무너진 셈이다. 삼성은 공식적으로 ‘무노조’라는 점을 인정한 적이 없고, 계열사 8곳에 노조가 존재하는 만큼 “무노조 경영 원칙이 깨졌다는 표현은 성립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파격적인 조치이긴 하나 노사 상생은 삼성의 일관된 원칙이다. 이를 무노조 원칙 파기로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간 삼성의 경영 기조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견줘 민망한 행태’라는 여론의 압박,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부의 방침을 삼성 측이 더이상 외면하기 힘들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계열사 노조 설립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노조가 있는 계열사는 삼성생명, 삼성증권, 에버랜드 등으로 모두 민주노총 소속이다. 하지만 조합원이 700명선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제외하면 노조원이 30~50명 수준이거나 5명 이하인 곳이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이름뿐인 노조’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에스원이 약 30~50명, 에버랜드는 5명 내외, 삼성SDI가 설립 당시 기준 10여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은 인수합병을 통해 노조가 승계된 경우다. 이번 결정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종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상고심을 의식한 것이라는 정치적 해석도 나오지만 그전에 이미 (이 부회장이) 협력사 상생을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에서 “앞으로 저희 사업장말고도 협력사까지 작업환경이나 사업환경을 챙기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대기업들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나 SK 등이 사내 하도급 근로자들을 본사 또는 자회사 직접 고용으로 전환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전환해 준 예는 찾아 보기 힘들다. 삼성전자서비스 직원 수는 1700명에서 1만명으로 급증하게 됐다. 한쪽에선 사측이 떠안을 부담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협력사 경쟁 체제가 사라지면서 AS 질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은 “삼성의 80년 무노조 경영 원칙에 맞서 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보장받았다”며 큰 의미를 뒀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서울플러스 칼럼] 최저임금, 무엇이 문제인가/황종성 경제 칼럼니스트

    [서울플러스 칼럼] 최저임금, 무엇이 문제인가/황종성 경제 칼럼니스트

    ●대기업은 5만불, 중소기업은 1.5만불 시대 대기업 유보금에 분노한 화살이 경제적 하위 그룹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날아오고 말았다. 100대 기업의 순이익이 6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88%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에 최저임금을 강제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며 중소기업인의 어깨의 힘이 축 늘어지게 하는 결정인 것이다. 5만불 시대에 살고 있는 대기업은 최저임금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안전지대에 살고 있는 그룹으로서 최저임금을 주고 있는 기업은 이미 중국상품에 경쟁력을 잃었거나 탄생한 지 얼마 안 된 신생기업이고 뿌리의 활착이 약한 기업이다. 대선 당시 후보 전원이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공약했지만 당선되고 보니 원전 시공 중단 사태처럼 대국민 의견수렴으로 간다면 공약이행 안 했다고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최저임금 16.4%의 눈칫밥이 배부를 수 있는가 정부에서 저소득층을 위하여 포퓰리즘 공약을 이행하려 하지만 노사가 합의되지 않은 대선공약으로 결정된 임금은 노동자들조차도 달갑지도 않고 떳떳하지도 않은 노사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현 정부는 최저임금을 받는 저소득층에게 공약이행으로 높은 인기를 유지 하고 싶지만 먹이사슬의 분배가 실패한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에 편중된 이익이 낙수 되지 않아서 가난한 하위그룹끼리 싸움을 붙이는 것이다. 경제적 가뭄을 겪고 있는 유보금이 없는 중소기업 또한 경제적 약자인데 중소기업에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다수가 행복할 수 있다면 소수가 불행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노사 모두가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결정이다. 한국의 정치구조는 여야가 격렬하게 싸우는 구조로서 집권 시 여야가 협력하여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임기 5년마다 대한민국 경제호를 이끌어갈 경제 컨트롤 타워의 변경으로 경제기술을 축적할 수 없는 경제기술이 빈약한 정치구조인 것이다. ●내년에도 16.4%를 또 올릴 것인가 이전 정권의 잘못된 정치가 분배구조를 박살 내놓고 서민 기업의 최저임금이 분노의 대상인가? 분노의 방향을 알고 분노하면 애국열사가 되지만 분노의 방향을 모르고 분노하는 멧돼지는 실탄을 맞는다, 정부 돈 퍼주기도 모자라 가난한 기업도 퍼주라는 포퓰리즘은 영혼 없는 땜질 처방의 극치이다. 현 정부는 최저임금에 대한 분노의 칼날을 거두고 더 높이 올라가서 더 넓게 보고 한국에 주어진 파이를 어떻게 서민에게 분배할지를 냉철하게 고민해야 한다. 내년에도 16.4%를 올린다면 서민경제의 하부구조가 붕괴를 가져오며 촛불의 역풍을 생각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난제는 반드시 해법이 존재한다, 다만 당사자의 눈에 보이지 않고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뿐이다. 중소기업이 잘 되는 환경이면 대기업처럼 연봉 1억원은 안 주고 싶겠는가. 중소기업은 최저임금 주는 게 창피하다. 더 번창시켜서 더 많이 주고 존경받고 싶다. 한국경제가 피라미드 구조로 활성화되려면 첫째, 파이를 나눌 수 있는 대기업에 대한 경제민주화가 단행되어야 하고 둘째, 중소기업인들이 존경받고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경제융성의 시대가 가능한 것이다. ●경제 민주화로 최저임금 해소해야 경제 민주화의 성공은 최저임금의 확실한 성공이다. 모든 기업에 포트폴리오로 3개 이상의 법인을 가질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금산분리와 순환출자에 의한 방만하고도 탐욕스러운 계열사 보유를 막아야 무수한 중견기업들이 강건해질 수 있으며 대기업의 계열사가 없어졌으니 제값을 받을 수 있으며, 기술탈취가 필요 없으며, 독점거래, 불공정이 사라질 것이다. 중소기업의 제품 가치가 인정되고 제값 받으니까 중소기업의 고용 낙수가 최저임금을 해소시키고 한국경제의 선순환에 시발점이 될 것이다. 대기업의 지네 발에서 잘려나간 중견기업들은 민간에서 성공한 기업가들이 인수해서 독자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고 더 많은 고용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대통령이 경제 민주화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순간, 미래의 한국경제의 기대감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저항이 약화되고 불확실한 경제 구조가 정상 궤도에 연착륙할 때까지 인내하면서 수용하고 기다려 줄 것이다. 경제 칼럼니스트
  • ‘수염난 여가수’ 콘치타 부르스트, HIV 양성 보균 고백

    ‘수염난 여가수’ 콘치타 부르스트, HIV 양성 보균 고백

    일명 ‘수염난 여가수’라는 수식어로 더 유명한 오스트리아 가수 콘치타 부르스트가 자신이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보균자라고 고백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HIV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를 말한다. 콘치타 부르스트는 수염을 길렀지만 여장을 빼놓지 않는 성전환 가수다. 2014 유로비전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각인됐고, 이후 내놓는 신곡마다 눈에 띄는 외모와 목소리, 노래로 주목을 받아왔다. 2014년에는 뉴욕에서 당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과 만나 동성애나 인종, 성적지향에 대한 혐오를 없애자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메트로의 15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몇 년 동안 HIV 양성 보균자로 지냈다. 사실 이것은 대중과는 매우 무관한 일이었지만, 나의 전 남자친구가 이러한 사적 사실을 대중에게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왔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 누구에게도 나를 위협하거나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권리를 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가 SNS에 남긴 내용에 따르면, HIV 양성 진단을 받은 뒤 현재까지 치료를 이어가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보균자로서 이를 타인에게 전염시킨 적도 없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부르스트는 “나를 지지해준 친구들은 꽤 많은 시간동안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매우 ‘공정’하게 이 사실을 대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성적인 접촉과 관계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이러한 내용의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콘테스트에 우승한 뒤 유럽 전역을 사로잡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녀는 “나의 고백을 통해 HIV에 감염된 사람이나 이를 스스로 고백하는 사람들에 대한 낙인을 줄이고, 이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위해 나의 HIV 사실을 알리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건강상태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매우 잘 해내고 있고, 매우 강해지고 있다. 날 지지해주는 팬들께 매우 감사하다"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화암사 ‘대시주’무인 성달생 위패 모신 한 칸짜리 사당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화암사 ‘대시주’무인 성달생 위패 모신 한 칸짜리 사당

    소박하면서도 단정하게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사찰을 두고 흔히 ‘곱게 늙은 절집’이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안도현 시인이 ‘화암사, 내사랑’에서 말한 ‘잘 늙은 절 한 채’의 변주(變奏)가 아닐까 싶다. 시인이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다’고 했던 절은 완주 화암사(花巖寺)다. 절에 오르기는 쉽지가 않다. 시인이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다’고 한 그대로다. 그렇게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 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나타나는 절이 화암사다. 그런데 ‘화암사 중창비’의 분위기도 안 시인의 묘사와 닮아 있다. ‘바위 벼랑의 허리에 한 자 폭 좁은 길이 있어 그 벼랑을 타고 들어서면 이 절에 이른다.…바위가 기묘하고 나무는 늙어 깊고도 깊다’ 비문은 1441년(세종 23) 지은 것이다.●‘하앙식 구조’ 화암사 극락전 국보 지정 화암사라면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1981년 해체 수리하면서 찾은 기록으로 1605년(선조 38) 세운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극락전은 이른바 하앙식(下昻式) 구조로 유명하다. 복잡한 설명이 뒤따라야 하지만, 한마디로 지붕을 높여 맵시 있게 보이기 위한 건축적 장치라면 크게 망발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건물의 겉모습만으로 알아차리기란 전문가도 쉽지 않다. 하앙식 구조가 아니더라도 날아갈 듯 아름다운 지붕이 우리나라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극(極)·락(樂)·전(殿) 세 글자를 한 글자씩 따로따로 내건 편액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물론 편액을 이렇게 만든 것도 하앙식 구조이기 때문일 것이다.화암사를 말할 때 강당에 해당하는 우화루도 빼놓으면 안 된다. ‘잘 늙은 절 한 채’라는 이 절의 인상은 아마도 우화루에서 결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극락전과 우화루, 여기에 적묵당과 불명당이 마당을 감싸며 이른바 산지중정형 사찰의 모습이 완성됐다. 화암사가 아름다운 것도 각각의 전각도 전각이지만 이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오늘은 극락전도, 우화루도 아닌 화암사에서 가장 작은 철영재(英齋)로 눈길을 돌려보고자 한다. 극락전 동쪽에 자리잡은 철영재는 불과 한 칸짜리 사당이다. 뜻밖에 조선 초기의 무신(武臣) 성달생(1376~1444)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절집에 무신의 사당이라니….●철영재 현판 글씨는 문인 자하 신위가 써 철영재 현판 글씨는 자하 신위(1769~1845)가 썼다. 추사 김정희와 비교되곤 하는 조선 후기 문인이다. 자하는 금강경을 필사하고 감상을 적은 ‘서금강경후’(書金剛經後)를 남겼을 만큼 불교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인물이 사당의 현판 글씨를 썼다니 성달생과 화암사, 나아가 성달생과 불교의 인연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화암사는 창건 연대가 통일신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중창비는 전한다. 원효와 의상도 수도했다고 적었다. 1425년(세종 7)부터 1440년(세종 22)까지는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다. 당시의 대(大)시주가 성달생이다. 그는 1417년(태종 17)부터 이듬해까지 전라도관찰사 겸 병마도절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화암사와 인연을 맺은 듯하다. 그런데 인연은 중창에 머물지 않는다. 조선시대 불경(佛經) 간행의 역사에서 화암사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중심에 성달생과의 인연이 있다. 성달생은 개성유후(開城留後)를 지낸 성석용의 아들이다. 유후는 조선의 창건 수도인 개성을 다스리는 벼슬이었다. 태종실록에 있는 성석용의 졸기(卒記)에는 ‘글씨를 잘 썼다’는 대목이 보인다. 그런데 글씨라면 그의 아들 삼형제 달생·개·허도 일가견이 있었다.●법화경 등 판각한 조선 불경 간행 중심지 성달생과 성개가 필사한 안심사판 묘법연화경은 최근 보물로 지정됐다. 완주 안심사는 화암사에서 멀지 않다. 화암사와 더불어 불경 판각이 활발했던 안심사에는 금강경, 원각경, 부모은중경 등 조선시대 한글 경판도 다수 전하고 있었지만, 6·25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고 한다. 성달생의 글씨로 찍은 화암사판 불경은 1443년(세종 25)부터 쏟아져 나온다. 법화경, 능엄경, 중수경, 부모은중경, 지장경, 육경합부, 시왕경 등 모두 12종에 이른다. 육경합부(六經合部)는 금강경, 화엄경, 능엄경, 아미타경, 관세음보살예문, 법화경의 한 대목씩을 엮은 것이다. 성달생의 아들과 손자는 단종 복위 운동으로 나란히 목숨을 잃은 성승(?~1456)과 성삼문(1418~1456)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삼문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성달생이 필사한 화암사판 법화경에는 성승과 성삼문도 발원자로 참여했다. 화암사판 법화경은 이후 복각본만 24종이 나왔다. 조선시대 법화경은 성달생 글씨를 판각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봐도 크게 과장은 아니다. 철영재 현판을 쓴 자하 역시 ‘성달생 법화경’을 읽으며서 불교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여 갔을 것이다. 그러니 화암사는 성달생의 존재로 ‘조선시대 불경 간행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절 경내, 그것도 큰 법당 곁에 이런 인물의 사당을 지은 것도 이해할 만하다. 화암사에 남은 성달생의 흔적은 철영재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창비는 높이 130㎝, 폭 52㎝, 두께 11㎝이니 그야말로 아담하다. 비문은 15세기 중엽 지었다지만 비석을 세운 것은 1572년(선조 5)이다. 중창비에는 비문을 누가 짓고, 글씨를 누가 썼는지 나타나 있지 않다. 매우 이례적이다. 그 주인공으로 성달생을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문을 지었다는 1441년은 그가 죽기 3년 전이다. 아들과 손자가 ‘역모’에 가담했으니 성달생도 무사하지 못했다. 세조실록에는 ‘예조에서 성승의 아비에 대하여 연좌를 청하여 그대로 따랐다’는 대목이 보인다. 파주 무덤의 석물(石物)을 모두 없앤 것이다. 성승과 성삼문이 복권된 것은 1691년(숙종 17)이다. 중창비를 세운 시기 그들은 여전히 ‘대역죄인’이었다. 성달승의 이름을 새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달생은 일화도 많이 남긴 인물이다. 전라도관찰사에서 내직인 내금위삼번절제사로 옮긴 1418년 세종이 명나라 사신을 전송할 때 직책상 칼을 찼다. 세종이 즉위한 해다. 그런데 상왕, 즉 태종 앞에서 칼을 찼다는 이유로 세종으로부터 질책을 받아 파직된 것이다. 형제의 난을 일으키는 등 칼로 일어선 태종 이방원이 적지 않게 놀랐던 때문일 듯하다. ●유감동 ‘섹스 스캔들’에 연루돼 물의도 성달생은 세종실록의 표현대로 ‘명나라 황제의 친척’이 되기도 했다. 명나라는 공녀(貢女)의 악습을 원나라로부터 물려받았는데, 1408년(명나라 영락 6)부터 1433년(명나라 선덕 8)까지 7차례에 걸쳐 114명의 조선 소녀를 징발한다. 성달생의 열일곱 살난 딸도 여기에 포함됐다. 공조판서 시절이었으니 조선시대를 통틀어 공녀의 부친으로는 가장 벼슬이 높았다. 성달생은 유감동의 간부(奸夫)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유감동은 양반 가문의 딸이자 고위 관리의 부인으로 세종시대 40명 남짓한 조정의 전·현직 관리와 스캔들을 일으켜 물의를 빚었는데, 성달생도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그는 충청도 초수로 안질을 치료하러 간 세종을 호종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프로농구] 승리의 ‘버튼’ 오늘도 눌러!

    [프로농구] 승리의 ‘버튼’ 오늘도 눌러!

    “짝짝짝!” 인터뷰가 길어진다 싶으면 여지없이 손뼉을 마주친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기자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면 씩 웃고 만다. 지난 8일과 10일 SK와의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 1, 2차전을 치른 뒤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두 경기 평균 38.5득점 10.5리바운드로 활약하며 2연승을 이끈 디온테 버튼(24) 얘기다. 두 경기 내리 3쿼터만 되면 어김없이 원맨쇼를 펼쳤다. 1차전에서는 팀 30득점 가운데 20점을 도맡았고 2차전에서도 혼자 18점을 잇달아 넣는 등 20점을 쌓았는데 SK 팀 득점(19점)을 웃돌았다. 2차전 5어시스트 1스틸 1블록슛 등 고른 활약을 보여 공헌도 49.2로 상대 테리코 화이트(31.2)를 압도했다.어린 나이에도 챔프전처럼 큰 무대에서 들쭉날쭉하지 않는 게 돋보인다.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PO)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준 제임스 메이스가 1차전 9득점, 2차전 27득점으로 출렁인 점과 대비된다. 이상범 DB 감독도 “어린 나이에도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절대 흥분하지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두 경기 모두 32분대를 뛴 그에게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느냐고 떠보자 “이제 스물넷이다. 아주 어리다. 그래서 괜찮다”며 웃었다. 중간중간엔 로드 벤슨과 뭐라고 속닥거렸다. 벤슨이 “(은퇴 시즌이어서) 다리가 부러져도 잃을 게 없다는 정신력으로 뛰고 있다”고 말하자 버튼은 “그런 선수가 동료라 너무 좋다”고 재잘거리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잃어 경기할 때마다 유방암 예방 캠페인의 상징 색인 핑크빛 양말을 신고 뛰는 그가 이렇게 신인답지 않은 활약을 챔피언전에서도 이어 가자 자유계약제인 다음 시즌 그를 붙잡으려는 여러 구단의 러브콜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챔프전 1차전을 앞두고 이 감독이 시즌을 마치는 대로 그의 미국 집을 찾아가 안방에 드러눕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SK가 12일 3차전에서 매력덩어리 버튼에게 제동을 걸지 지켜볼 일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시론] 여야 개헌 협상 3대 관전 포인트/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여야 개헌 협상 3대 관전 포인트/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3월 26일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됐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여야 개헌 협상의 3대 관전 포인트를 생각해 본다.대통령 개헌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문재인 대통령도 여야 합의로 개헌안이 발의되면 철회하겠다고 말했다. 개헌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야당이 반대하는 개헌안의 국회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헌 협상의 핵심은 여야의 이견이 첨예한 부분이 무엇이며, 어떻게 타협할 수 있을 것인지에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정부 개헌안의 대통령 4년 연임제와 야당의 책임총리제 안의 대립이다. 이 부분은 지난 1년 동안 보였던 여야의 완강한 태도를 보면 쉽게 타협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협상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5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권력분산형으로 가더라도 대통령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왔으나 만약 선거구제 개편 등이 같이 논의된다면 다른 정부 형태, 다른 권력 구조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개헌안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볼 수 있는 조항(제44조 제3항 후단)이 이미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총리의 선임 방식에 대해 야당과 협상할 여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이 부분에 대한 개헌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대통령의 인사권이다. 정부 개헌안 제70조 제1항에서는 국가원수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원수직을 폐지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 개헌안에서는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과 중요 헌법기관에 대한 임명권이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독립기관이 된 감사원도 감사원장 및 감사위원들에 대한 임명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삼권분립을 생각한다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동등한 위치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의 자격으로 대법원장을 임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결국 대통령은 국가원수이기 때문에 대법원장 등에 대한 임명권을 갖는 것이며, 이러한 임명권이 형식적 권한이 아닌 실질적 권한, 대통령의 선호가 반영된 인사로 이어져 제왕적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그동안 국회 개헌특위와 자문위원회를 비롯한 수많은 개헌 논의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대폭 축소하는 안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 개헌안에서는 대통령의 인사권이 거의 유지되고 있다. 달라진 것은 대법관 임명제청 이전에 대법관추천위원회를 거치는 것과 헌법재판소장의 호선 정도인데, 이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이다. 대법관추천위원회의 9인 중 6인을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대법관 인사도 결국 대통령의 의사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관 인사에도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대법관회의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작용하는 구조다. 세 번째로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 설정이다. 국회에서 총리를 선임하면 대통령과 총리가 경쟁 또는 협치의 주체가 되고, 국회는 총리의 후원 세력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대통령제를 유지할 때는 ‘대통령(정부)+여당’과 ‘야당’ 간 갈등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대통령 개헌안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크게 줄지 않았지만, 예산법률주의 도입으로 국회의 재정통제권은 강화된다. 그러면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정부+여당은 야당의 통제를 협치를 통해 풀어 나갈 수 있을까. 승자독식의 대통령과 대통령의 실패를 통해서만 집권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야당은 선의의 경쟁이 불가능한데, 과연 어떤 방식의 협치가 가능할까. 그 밖에 관전 포인트도 많지만, 제10차 개헌을 위한 여야 협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들은 이상의 세 가지라 할 수 있다. 과연 여야는 어떤 전략으로 국민을 설득할 것이며, 어떤 부분들을 서로 양보하는 가운데 타협을 이뤄 낼 수 있을까.
  • “바라봐야만 했던 블랙리스트… 우리도 흔들렸다”

    “바라봐야만 했던 블랙리스트… 우리도 흔들렸다”

    “2017년 1월 13일 블랙리스트에 반대하는 예술가들이 탄 ‘블랙리스트 버스’가 문화체육관광부 앞에 도착했어요. 그들이 진상 규명을 외치며 절규했을 때, 저는 그저 창가에 서서 그들을 쳐다봐야만 했어요. 당시의 그 참담함이란….”‘블랙리스트가 있었다’(위즈덤하우스)의 저자 정은영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실 행정관은 지난해 그날을 생각하며 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잠시 눈물을 훔쳤다. 그는 “블랙리스트는 문체부 존재 자체를 격렬하게 흔드는 사건이었다. 15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했던 나 자신도 크게 흔들렸다”면서 “당시의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 선고에서 24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좌파 성향 문화·예술인과 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에 관해 직권남용으로 박 전 대통령의 유죄를 인정했다. 정 행정관은 2015년부터 2017년 5월까지 문체부 국민소통실에서 여론과장으로 일했다. 책을 함께 쓴 김석현씨는 정 행정관의 남편으로, 문체부에서 일하다 2015년부터 2년 동안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비서관을 지냈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됐던 두 저자는 책을 통해 내부자의 눈으로 당시 상황을 복기하는 한편 문화국가를 향한 대안도 제시한다. 책을 함께 쓰자고 제안한 이는 김씨였다. 그는 “문체부에서 일했던 나 자신에 관한 반성을 위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정 행정관에게 같이 글을 쓰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몇 개의 사건들을 통해 블랙리스트 사건을 재구성했다. 예컨대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 ‘개구리’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불러일으킨 논란은 정 행정관과 김씨가 몸담았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의 시스템이 불능에 빠지는 현장을 생생히 다룬다. 2013년 9월 공연한 ‘개구리’는 그리스 희곡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화하고 박 전 대통령은 비하하면서 문제가 됐다. 박 연출가의 또 다른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문체부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지원 사업에 응모해 그해 4월 최종 8개 작품에 선정됐지만, ‘개구리’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선정작이 결정됐음에도 그해 6월까지 결과 발표가 나지를 않았다. 한국문화예술위 직원들이 박 연출가를 찾아가 포기를 종용하고, 박 연출가가 이를 마지못해 수용했던 일이 뒤늦게 밝혀졌다. 책은 이 밖에 세월호 참사, 홍성담 화가의 ‘세월오월’의 광주 비엔날레 전시 무산, 국정농단 국조특위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2013년에서 2017년까지 문체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기록했다. 김씨는 블랙리스트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케인스의 팔 길이의 원칙’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가나 행정 기관이 예술 창작과 관련해 예술가(또는 단체)를 지원할 때 ‘팔 길이만큼의 거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원칙에 정 행정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는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지원은 하되 통제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예술가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관심과 인식의 수준도 더 높아져야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시민들도 문제가 생기면 감지하고 인지할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인식이 높아졌으면 좋겠어요.”(김석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소환조사도 받았습니다. 책을 쓰면서 블랙리스트를 두고 발생했던 문제들을 돌아보고 정리해 보니 저도 치유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문체부가 이번 일을 잊지 않고 조직을 위해 고생한 직원들에 대해 그 어려움, 고단함, 아픔과 슬픔을 잊지 않는 ‘조직의 예의’도 지켜 주길 바랍니다.”(정은영)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긴장감 도는 법원…오늘 친박 6500명 대규모 집회

    긴장감 도는 법원…오늘 친박 6500명 대규모 집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 선고 공판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는 친박 단체들의 집회가 이어지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급심 선고로는 사상 처음 생중계되는 만큼 전날 오전부터 각 방송사 중계차량들과 뉴스용 테이블 등이 민원인 주차장을 선점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6일 오전부터 법원청사 출입문을 일부 통제할 예정이다.국민계몽운동본부 등은 지난 1일부터 중앙지법 앞에서 24시간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날 봄비가 내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이들은 천막 네 채에서 ‘박근혜 대통령 무죄 석방을 위한 기도회’를 열고 기독교인은 철야 기도를, 불교인은 3000배 수행을 벌였다. 농성을 개인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다는 지대홍(66)씨는 “30명 정도 천막에 상주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200명 정도 천막을 방문해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박 단체들은 박 전 대통령의 재판부와 검찰을 규탄하는 데 초점을 맞춘 모습이었다. 재판 생중계를 결정한 재판부를 비난하는 글귀도 눈에 띄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지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김세윤 부장판사의 얼굴 사진에 눈을 뚫고 입에 엑스표를 친 피켓을 놓고 재판부를 압박하는 모습도 보였다. 선고 당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대한애국당 등이 대규모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6500여명 규모의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1000여명의 경력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계획이다. 법원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청사 정문에 있는 차량 출입문을 폐쇄한 뒤 오후 1시부터는 정문의 보행로까지 통제하고 방청권 소지자나 신원이 확인되는 사람들만 선별적으로 들여보낼 예정이다. 선고 공판이 열리는 417호 형사대법정을 가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서관 1층의 주요 출입구들도 오후 1시부터 폐쇄될 예정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송혜민의 피플스토리+] 中 20대 여성이 ‘부모 몰래’ 간 기증 한 사연

    중국 후베이성에 사는 올해 22살 장류신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씨는 갓 태어난 딸의 옹알이를 보기도 전인 지난해 9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해야 했습니다. 딸에게 선천적인 고빌리루빈혈증이 있다는 진단이었습니다. 고빌리루빈혈증은 간에서 대사과정에 발생하는 빌리루빈의 농도가 증가한 상태를 말합니다. 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질병인 만큼, 간 기증이 시급한 상황이었죠. 형제가 없는 생후 7개월의 이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공여자는 바로 엄마인 장씨였습니다. 남편은 아이와 조직이 맞지 않아 기증이 불가능했거든요. 장씨는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귀중한 딸을 위해 기꺼이 간 일부를 기증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장씨의 부모와 친척들이 한 목소리로 수술을 반대하고 나선거죠. 장씨의 사연을 보도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장씨의 부모는 딸이 수술 중 잘못될 것을 우려해 수술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손녀의 목숨과 건강도 중요하지만, 장씨의 부모는 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거죠. 부모는 장씨의 신분증까지 감추고 간 기증 수술을 결사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장씨는 기로에 섰죠. 자신은 한 아이의 엄마이지만, 동시에 부모님의 딸이기도 했으니까요. 자식으로서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고민해야 했을겁니다. 결국 장씨는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부모님 집에 몰래 들어가 부모님이 숨겨둔 자신의 신분증을 ‘훔쳐’ 나왔고, 이를 통해 간 기증 공여자 서류에 서명한 뒤 가족들 모르게 수술실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부모님에겐 정말 너무 죄송했지만 내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나와 남편은 딸을 위해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아직 치료가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아이는 무사히 회복되고 있습니다. 장씨 부모의 심경이 전해진 바는 없지만, 아마도 그들의 딸을 이해해주시리라 짐작됩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이해 못 할 일도, 하지 못 할 일도 없는게 부모니까요. 장씨가 딸에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신흥주거단지 프리미엄을 누려라…‘청주 동남 시티프라디움’ 주목

    신흥주거단지 프리미엄을 누려라…‘청주 동남 시티프라디움’ 주목

    내 집 마련에 나선 수요자들이 시선이 지방으로 향하고 있다. 각종 부동산 정책에서 자유롭고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된 곳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흥주거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신흥주거지는 도시개발구역이나 신도시, 택지지구 등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조성된다. 교통, 학군, 편의시설 등의 생활인프라가 신속하게 구축된다. 또한 구도심 아파트에 비해 합리적인 몸값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분명히 있다. 신흥주거지는 입지 특성 상 임대아파트가 들어서기 마련이다. 임대아파트는 주택 구입에 대한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다. 먼저 임대아파트는 월세에 대한 부담과 함께 매년 임대보증금이 상승할 것이란 걱정이 동반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재테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길”이라며 “내 집 마련을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현실에 맞는 선택을 하기 보단 미래까지 고려하는 선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지방 신흥주거지로 내 집 마련에 나선 이들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가운데 시티건설의 ‘청주 동남 시티프라디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시티건설의 ‘청주 동남 시티프라디움’이 들어서는 동남지구는 청주의 신흥주거지의 최대 수혜지로 꼽힌다. 동남지구는 향후 청주시의 100만 광역도시 여부를 결정할 주요 거점지역으로 총 1만4768가구, 3만6000여명이 거주하는 지역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은 일반상업시설을 비롯해 근린생활시설, 공원 등도 대거 조성된다는 점에서 최적의 주거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입지적 특성은 청주 지역 이외에 보은과 괴산, 증평 등의 주변 수요를 끌어들이는 요소로 작용될 전망이다. 특히 단지는 동남지구의 중심상업시설이 가까운 만큼 실질적인 인프라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향후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도 높다. 우수한 교통환경도 자랑거리다. 단지는 청주 1,2순환로가 가까운 만큼 차량을 통한 타 도시의 이동이 수월하다. 또한 청주 도심에 편입된 2차, 외곽을 순환하는 3차 우회도로 사이에 위치해 교통의 편의성은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오는 2022년 3차 우회도로의 3단계(오동∼구성), 4단계(구성∼효촌)의 사업이 종료되면 청주에서 세종까지 걸리는 시간이 10분대로 단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치원·초․중학교 등의 다양한 학군도 예정돼 있다. 또한 구도심의 용암2지구 학원가도 도보거리에 위치한다. 이밖에 청주교육대학교 등 대학교가 대거 들어서 있고, 청주시립도서관도 가깝다. 여기에 용암1,2동을 비롯해 새롭게 조성되는 중심상업지구의 생활시설도 기대된다. ‘청주 동남 시티프라디움’은 4Bay 판상형 위주의 혁신평면이 적용된 명품 주거단지로 조성된다. 전 세대 남향위주로 설계해 채광과 통풍이 우수하다. 피트니스센터를 비롯해 실내골프연습장, 독서실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입주민 커뮤니티 시설도 들어설 예정이다. 더불어 지상에 차가 없는 공원형 단지로 조성해 주거 쾌적성과 안정성을 모두 높였다. 입주민을 배려한 편의시설 및 시스템도 도입된다. 안전과 보안을 위한 번호판인식 주차관제 시스템을 설치하고, 첨단 디지털도어록과 고화질 CCTV, 원격검침시스템 등도 적용된다. 여성을 배려해 법적 기준보다 10cm 넓은 여성주차공간도 일부 제공한다. SK텔레콤의 사물인터넷(IoT) 기반 스마트홈 서비스도 적용될 예정이다. 스마트홈 서비스는 난방, 조명, 가스밸브 등을 바깥에서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춰 입주민들의 안전성이 한층 강화된다. 또한 스마트폰을 통해 아파트 단지별 공지사항, 주민투표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밖에 음성 홈기기 제어, 날씨 정보 등의 특화서비스도 제공된다. 시티건설의 트레이드마크인 인테리어 스타일 선택제 도입도 눈에 띈다. 세련미를 자연스럽게 살린 도시적인 느낌의 ‘어반스타일’과 현대적이고 절제된 감각미가 돋보이는 ‘모던 스타일’ 중에서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다. 한편 ‘청주 동남 시티프라디움’ 견본주택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에 위치하며, 입주는 2020년 4월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고] 청년 취업, 그 목마름을 안다면/이석행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기고] 청년 취업, 그 목마름을 안다면/이석행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2년간의 공무원시험 준비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들어와서 교육을 받다 보니 취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무엇보다도 보이는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팍팍하게 맞던 고시원에서의 아침과는 다릅니다.”(2018년 1월 23일 서울 강서캠퍼스에서 만난 청년) 가슴이 아렸다. 얇은 책장에 쓸린 듯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의 날 없는 목소리에 깊게 베었다. 그들의 해진 고단함과 지친 무게가 만든 서글픈 날카로움에 손끝이 찢기는 듯 베이는 순간이었다. 뒤따른 건 무거운 책임감이었다. 채 가시지 않은 안쓰러움 위에 더해져서다. 저들의 발걸음을 결코 헛헛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공공직업훈련기관의 수장으로서 마음속 구들장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감정이었다. 얼마 전 한국은행 거시경제연구실에서 내놓은 연구 보고서 결과는 큰 의미가 있다. 4년제 대졸자 중 직업훈련을 받지 않은 집단에 비해 폴리텍대학 등 공공훈련기관을 거친 경우의 취업률이 9.4% 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취업의 난마를 한 번에 자를 칼은 없지만 공공직업훈련이 효과적인 대안임은 다시 한번 분명해진 셈이다. 연구 보고서 밖 현실에서는 대졸자들의 직업훈련 유턴 현상이 가속화된다. 폴리텍대학만 하더라도 4년제 대졸자 재입학생 수는 2010년 932명에서 2017년 1619명으로 크게 늘었다. 전체 훈련 규모 가운데 27.6%(2017년 기준)에 이른다. 2년제 대학까지 합하면 그 비율은 47%까지 치솟는다. 고등교육을 받고도 애써 직업훈련으로 눈을 돌린 청년들에게 우리는 무엇으로 대답해야 하는가. 바로 눈높이 훈련이다. 급변하는 산업 트렌드가 녹아들어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폴리텍대학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고급직업훈련(하이테크) 과정을 선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16년 경기 분당에 설립한 융합기술교육원은 데이터융합소프트웨어, 임베디드시스템(시스템에 내장되는 운영체계), 생명정보시스템 등을 가르친다. 시행 첫해에 이어 지난해 수료생 역시 90%대 취업률을 보였다. 올해는 전국 11개 캠퍼스에서 정보보안, 스마트금융, 스마트팩토리 등 20개 과정을 운영하고, 인원도 545명으로 대폭 확대했다. 청년 취업, 결국은 양질의 공공직업훈련 확대가 해법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1월 경제장관회의에서 발표한 ‘지출구조 혁신 추진 방안’은 그래서 더 반갑다. 전체 직업훈련 예산 중 폴리텍대학 등 신산업, 신기술 직업훈련 예산을 올해 1.1%에서 2019년 3.0%, 2022년까지 10.0%로 지속적으로 확대한다. 지난달 15일 발표된 ‘청년일자리대책’에서도 폴리텍대학 하이테크 과정이 한 축을 이뤘다. 취업을 향한 청년들의 타는 갈증은 거친 칼날이다. 칼끝은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속 흉터로 새겨야 한다. 더이상 우리 청년들을 차디찬 냉골에 둬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참에 공공직업훈련의 풀무를 더욱 힘차게 돌리자. 구들돌 깊숙이 불길을 들이자. 청년들이 취업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그래야 청년이 산다. 그래야 나라가 선다.
  • [사설] 금호타이어 해외 매각, 한국GM 배짱 명분 없다

    금호타이어가 어제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쳐 해외 매각을 최종 결정했다. 경영난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가 그야말로 벼랑 끝에서 되살아났다. 법정관리의 파국을 면한 금호타이어는 경영 정상화 수순을 밟게 됐다. 금호타이어를 인수할 중국의 타이어 회사 더블스타는 6400억여원을 유상증자 형태로 투자한다. 채권단은 더블스타와 3년 고용 보장과 지분매각 제한 등 투자 조건을 구체화하게 된다. 외국 회사로 넘어가 안타깝지만 노조가 현실적 방안으로 회생 기회를 붙들었다는 점에서 천만다행한 일이다. 극적 타결로 발등의 불은 껐으나 현실은 답답하다. 정부와 채권단의 끈질긴 설득과 단호한 압박이 없었다면 파국으로 치달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사측과 채권단의 해외 매각 방안에 아무 대안도 없으면서 끝까지 반대만 했다. 업계 순위가 한참 낮은 더블스타가 기술만 챙기고 ‘먹튀’할 거라는 것이 노조가 내세운 반대 사유였다. 노조 집행부의 강경 투쟁에 만기가 돌아온 기업어음 260억원도 못 갚을 판에 버티기로 무슨 실익이 있겠느냐는 내부 성토가 높았다. 자율협약 종료일까지도 회생의 길을 만들어 줄 거라 기대하던 노조에 청와대는 “정치적 논리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며 쐐기를 박았다. 법정관리 시한을 몇 시간 앞두고도 청와대가 강경 입장이니 노조는 외통수로 해외 매각을 받아들인 셈이다. 좀비기업의 밑 빠진 독에 계속 혈세를 부어 줄 거라는 기대는 시대착오적 오산이다. 이번 일로 또 한번 분명해졌다. 지난달 정부는 자본잠식 상태인 성동조선에 법정관리의 극약 처방을 했다. STX조선에도 예상과 달리 추가 자금 지원은 없이 자구 노력만을 전제로 생존을 모색하게 했다. 부실이 눈덩이처럼 느는데도 두 회사에 지난 8년간 밀어넣은 혈세가 10조원이 넘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줄 알고도 구조조정을 미룬 대가는 그렇게 혹독했다. 그런 선례들은 이번 금호타이어 사태에 뼈아픈 반면교사로 작용했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좀비기업에는 헛돈을 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학습효과를 얻기까지 국민 혈세로 치른 대가는 너무 컸다. 금호타이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데에는 채권단의 책임도 크다. 채권단은 노조의 ‘먹튀’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더블스타에 대한 견제를 철저히 해야 한다. 배짱을 부리다 십년감수한 금호타이어를 보고도 한국GM은 정신이 번쩍 들지 않는지 모르겠다. 한국GM은 임단협 합의에 또 실패해 본사의 신차 배정을 받지 못했다. 1인당 주식 3000만원 지급, 10년간 정리해고 금지 등의 주장을 노조는 여전히 고수한다. 지방선거가 코앞이라도 예전처럼 정치 논리가 먹히지 않는 현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명분 없는 배짱을 접어야 한다.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도 제 잇속만 차리는 강성 귀족노조를 곱게 봐줄 현실이 아니다.
  • 이영자 ‘전지적 참견 시점’에 빠져드는 이유 “영자미식회”

    이영자 ‘전지적 참견 시점’에 빠져드는 이유 “영자미식회”

    ‘전지적 참견 시점’ 이영자가 시청자들의 기대를 200% 만족시켰다. 그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소떡소떡-호두과자-오징어 등을 먹으며 중독성 강한 맛 표현을 펼쳤고, ‘휴게소 음식 월드컵’에서 고뇌 끝에 서산 어리굴젓 백반을 최고의 음식으로 꼽으며 ‘영자 미식회’를 기다린 수많은 시청자들의 식욕을 자극했다.이와 함께 유병재는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덩어리 면모로 눈길을 끌었다. 엄마처럼 챙겨주는 매니저와 부부케미를 폭발시키더니, 화보 촬영장에서는 감춰뒀던 끼를 마구 발산하며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매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영자와 유병재의 활약으로 2부 시청률은 6.3%를 기록하며 토요일 밤 예능 강자의 입지를 견고히 했다. 특히 2049 시청률은 2부가 4.0%를 기록, 전체 프로그램 중 탑5에 올라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증명했다. 지난달 31일 방송된 MBC ‘전지적 참견 시점’ 4회에서는 이영자의 고속도로 휴게소 도장 깨기 2탄과 소심함과 대범함을 넘나드는 유병재의 모습이 그려졌다. 1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전지적 참견 시점’ 4회는 수도권 기준 2부 5.6%, 2부 6.3를 기록하며 지상파 동시간대 2위를 차지했고, 2049 시청률은 1부 3.4%, 2부는 4.0%를 기록했다. 이영자가 드디어 안성휴게소에서 소떡소떡을 영접했다. 이영자가 부르는 애칭인 줄 알았던 ‘소떡소떡’은 실제 존재하는 휴게소 메뉴였고, 이영자의 정보력에 매니저와 참견인들은 놀라움을 드러냈다. 이에 이영자는 모든 것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며 “우리는 한 번 본 사람은 잊어도 한 번 먹은 음식은 못 잊지~”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잠시 뒤 수제 어묵을 먹으며 “첫 입은 설레고 마지막 먹을 때는 그립고”라는 먹방 어록으로 참견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특히 이원일은 떡에 꿀을 찍어 먹는 것에서 착안해 소떡소떡과 설탕시럽의 조합을 추천했고, 이영자는 이원일의 꿀팁을 귀담아들으며 정성스럽게 메모를 해 보는 이들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음식에 관련해서는 천생연분처럼 뜻을 같이했고, 쉬지 않고 대화를 펼치며 진정한 푸드 소울메이트가 됐다. 실제 먹방 만큼이나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건 이영자의 ‘휴게소 음식 월드컵’이었다. 소떡소떡, 알감자 등 각 지역 휴게소의 내로라하는 음식들이 총출동했고,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대결에 이영자는 “둘 다 먹어버리죠!”라며 선택을 포기하기도. 쟁쟁한 후보들에 이영자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고, 고뇌 끝에 서산 어리굴젓 백반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그녀의 진심이 묻어나는 표정과 맛깔나는 표현력에 시청자들은 방송 내내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껏 충족시킨 이영자의 에피소드 다음에는 유병재가 또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매니저와 한집에서 사는 그는 외출을 앞두고 꼼지락거리다 잔소리 폭격을 맞았다. 매니저는 엄마처럼 유병재를 챙겼고, 스타일링을 도와주기도 했다. 유병재는 팬들이 카페에 올려준 스타일대로 옷을 입다 사육사, 거지를 연상시키는 패션으로 보는 이들의 폭소를 유발했다. 여전히 낯가림이 심한 유병재의 모습도 펼쳐졌다. 그는 식당에서 주문하는 것을 주저했고, 참견인들과 전화번호 교환도 어려워했다. 외국인 스타일리스트와 단둘이 남겨졌을 때는 급기야 음악이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상황을 회피하기도 했다. 이처럼 내성적인 유병재가 화보 촬영장에서는 훨훨 날아다녔다. 카메라 앞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수만 가지의 포즈와 표정을 지으며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인 것. 유병재는 자신을 향해 “내 속에 많은 내가 있어. 그중에 하나인 너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고 너 싫지 않아. 앞으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랑해 병재야”라고 애정 어린 한마디를 남겼고, 이 같은 유병재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그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매주 토요일 밤 11시 5분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로랑 벨기에 왕자 ‘연봉’ 15% 삭감안 의회 통과한 이유는?

    로랑 벨기에 왕자 ‘연봉’ 15% 삭감안 의회 통과한 이유는?

    ‘저주받은 왕자’로 이름 난 로랑(54) 벨기에 왕자가 연봉 개념으로 지급받는 배당 35만유로(약 4억 5860만원) 가운데 15%인 4만 6000유로(약 6020만원)를 삭감당했다. 로랑 왕자는 필리프 국왕의 막내 동생으로 2003년 영국 평민 여성과 결혼해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해 정부 허락을 받지 않은 채 해군 제복을 입고 중국대사관 만찬에 참석했다가 정부의 눈밖에 났다. 벨기에 연방의회는 최근 샤를 미셸 총리가 제안한 그의 배당 삭감안을 투표에 부쳐 93-23으로 가결시켰다. 미셸 총리는 앞서 왕자들이 외교적 행동을 하려면 외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경고했는데 로랑 왕자는 이를 무시하고 피로연에 참석한 뒤 자신의 사진을 버젓이 트위터에 올렸다. 투표에 앞서 로랑 왕자는 세 쪽에 걸친 격정적인 내용의 편지를 연방의회 의원들에게 띄워 자신은 왕실 사람이기 때문에 생업을 가질 수 없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투표가 “내 인생의 시험대”이며 만약 의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리면 “날 심각한 편견으로 바라본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배당금 삭감은 정치, 여론의 흐름에 따라 논의되고 있으며 한 삶의 값어치, 지금의 날 있게 만든 내 삶의 값어치를 다루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왕실이 재정적으로 독립하려는 자신의 시도를 막아왔다며 “결혼하는 것도 허가를 구해야 했고,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선택하는 대가를 오늘 지불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랑 왕자는 숱한 논란을 일으킨 전력을 갖고 있다. 속도 위반 과태료를 부과받았고, 중국 인민군 창설 90주년 행사에 개인적으로 참석하는 등 곧잘 입길에 올랐다. 고 무아마르 가다피가 권좌에 있던 시절 리비아에서 만났고 2010년 벨기에 식민지였던 콩고민주공화국(DRC)이 벨기에의 제재 대상이었지만 정부에 알리지 않고 여행했다. 하지만 괴짜 기질에다 소탈한 품성으로 호감을 사기도 한다. 동물애호가로 유명한 그는 “문어나 파리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바란 때도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말빛 발견] 유감/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유감/이경우 어문팀장

    ‘유감’은 섭섭함이다. 못마땅함이거나 불만스러움이다. 이런 마음이 생기면 상대에게 ‘유감’이라고 한다. 그 전에 상대가 사과를 하면 ‘유감’은 대부분 사라진다.한데 상대가 사과의 말로 ‘유감’이라고 한다면 흔쾌하지 않다. 불편한 감정이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사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둘 사이를 지켜보던 이들조차 ‘유감’이 생긴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사과의 뜻으로 ‘유감’이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데도 ‘유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과’라고 한다. 진정성에 대한 질타도, 반발도 버텨 낸다. 사과는 해야겠는데, ‘진정’은 싫은 것이다. 사과는 다 내려놓고 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마뜩잖은 것이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말이 ‘유감’이다. 형식이라도 갖추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에 관해 나도 똑같이 편치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너그럽게 봐 달라는 의미겠다. 이러한 정도도 사과로 받아들여 달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유감’을 ‘사과’라고 하던 쪽도 형편이 바뀌면, ‘유감’을 사과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한다. 사전 편찬자들은 ‘유감’의 뜻풀이에 ‘사과’의 의미를 담아야 할지 고민이다. 담는다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해한다.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외에 ‘미안함의 표시’ 같은 뜻도 함께 올려야 하나? 언어는 생명체 같고,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대중이다. 이경우 어문팀장
  • 그날, 잊으려 할수록 붉게 피어난다

    그날, 잊으려 할수록 붉게 피어난다

    흰 눈 위로 피 한 방울이 뚝 떨어집니다. 피는 얼음 결정을 따라 빠르게 번져 갑니다. 그 모습이 모가지 꺾어 떨어진 동백꽃을 닮았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흰 눈 위에 떨어진 피에서 혹독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길어 올렸습니다. 동백꽃은 그렇게 ‘제주 4·3 사건’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지요. 한 설문조사에서 4·3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3분의1, 관심 없다는 이는 절반을 넘었다고 합니다.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더욱 기억에서 멀어진 것이 4·3 사건입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과거가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사과할 건 사과하고 청산할 건 청산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의 사악하고 검은 아가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이번 여정은 4·3 사건을 따라가는 것으로 꾸렸습니다.모처럼 제주까지 갔는데 상처의 흔적만 보듬고 오라는 말이냐고 힐난할 수 있겠습니다. 한데 앞서 결론을 밝히자면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습니다. 단언컨대 처음 제주를 방문한 이라도 그렇습니다. 4·3의 무대는 아름다운 제주의 또 다른 면일 뿐입니다. 우리가 무심했을 뿐 명소라 알려진 곳에, 혹은 그 주변에 없는 듯 있었습니다. 제주의 4월을 두고 흔히 ‘침묵의 봄’이라고 합니다. 북촌리 ‘아이고 사건’에서 보듯 눈물마저 죄가 된 시절엔 누구나 말을 아껴야 했으니까요. 피 끓는 포한과 바닥 모를 체념의 끝은 침묵이었던가 봅니다. 그러니 입은 있으되 말하지 못했고, 기억은 선연하되 한사코 떨어내려고만 했겠지요. 제주엔 진작 제비가 왔습니다. 반팔 옷차림으로 훌훌 싸돌아다닐 만큼 기온도 포근해졌습니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시립니다. 물론 스스로 삭이겠지요. 그래도 주변의 위로가 더해지면 생각보다 빠르게 녹을 수도 있을 겁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본 한 장의 지도였다. 제주 전체를 행정 구역에 따라 나눈 뒤 색을 입혔다. 공통적인 건 붉은빛 일색이라는 것. 구역에 따라 빨강과 분홍 등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체가 붉었다. 이는 ‘제주 4·3 사건’ 당시의 피해 정도를 표시한 지도다. 붉은빛일수록 더 많은 주민이 희생됐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4·3의 광풍에서 온전했던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는 게 지도에 담긴 의미다.●섬뜩한 진실과 마주한 ‘4·3 평화기념관’ 4·3 여정의 첫걸음은 제주 4·3 평화기념관이다. 4·3 사건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실 제주 사람들은 ‘4·3 사건’이란 이름 자체에 불만이다. 지나치게 ‘사실’(史實)에만 충실해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의미와 가치가 담긴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념관의 관람 동선 첫 코너에 ‘백비’(白碑)를 뉘어 놓은 건 그 때문이지 싶다. 백비는 아무것도 적지 않은 비석이다. 제주 사람들의 뜻은 간명하다. 언젠가 4·3 사건이 가치와 의미에 부합하는 이름을 얻게 될 때 이 비석에 새겨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다. 기념관 안엔 4·3 사건과 관련된 각종 기록과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육지부’에서 ‘관광차’ 온 이들이라면 담기 버거울 정도의 섬뜩한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기념관 밖은 평화공원이다. ‘비설’(飛雪)이란 이름의 모녀상과 제단, 1만 4000여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각명비 등이 조성돼 있다. 공원 가장 위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은 꼭 찾길 권한다. 4·3 희생자 중 행방불명인 3800여명의 이름을 새겨 표석으로 세웠다. ‘육지부’의 형무소로 끌려가 못 돌아온 이도 있고, 바다에 수장됐거나 여태 제주 땅 어딘가에 묻혀 있는 이도 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살아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지는 못했지만, 이름이나마 한라산 아래 산담(무덤을 둘러친 돌담)에 안겼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이념으로 시작해 희생으로 끝난 섬의 눈물 이쯤에서 4·3 사건에 대해 개략적이나마 살피자. 도화선은 1947년 3월 1일 제주 시내 관덕정에서 열린 3·1절 집회였다. 경찰이 탄 말의 발굽에 어린아이가 차였다. 한데 기마경찰은 무심히 지나갔고, 이를 본 군중이 돌을 던지며 경찰을 쫓았다.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발포해 6명이 사망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미 군정에서 사태파악에 나섰다. 미 군정의 조사 보고서는 “경찰 발포로 도민 반감이 고조된 것을 남로당 제주조직이 선동해 증폭시켰다”며 “제주도 인구의 70%가 좌익 동조자”라고 적었다. 제주가 ‘레드 아일랜드’(빨갱이의 섬)라 규정되는 순간이다. 이어 좌익 색출을 명분으로 서북청년회와 공권력의 탄압이 자행됐다. 이에 맞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에 나섰다. 이후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제주는 아비규환의 공간이 됐다. 물론 4·3 사건의 성격을 두고 여태 논란은 있다. 중요한 건 당시 제주도민의 9분의1에 달하는 희생자다. 최대 3만명에 이르는 희생자 가운데 목숨을 걸 만큼 정치적 신념을 가졌던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희생자 가운데 33%는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였다. 충돌의 배경은 이념이었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었던 셈이다. 제주 4·3 사건을 이념보다 인권과 인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3 여정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단어는 ‘예비검속’이다. 일종의 블랙리스트다. 사상이 의심스러운 이들의 목록을 작성한 뒤 전쟁 등 유사시에 잡아들이거나 상황에 따라 즉결처형했다.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인근의 섯알오름이 대표적이다. 1950년 250여명의 예비검속자들이 총살당한 곳이다. 군이 출입을 통제한 탓에 1956년에야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32구의 시신은 인근의 백조일손 묘역에 안장됐다. 묘역의 이름은 누군지 알 수 없는 백여명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한날한시에 올려 한 자손이 된다는 뜻이다.●아이의 작은 묘탑에 놓인 애달픈 장난감 북촌리 너븐숭이를 찾으면 코끝이 찡해진다. 어린아이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봉분은 작다. 면적도 작고, 봉분을 둘러싼 산담도 작다. 봉분은 모두 20여기 정도 되는데, 그중 최소 8기는 4·3 때 목숨을 잃은 아이의 묘라고 한다. 묘지 앞엔 검은 돌로 만든 작은 탑이 세워져 있다. 돌과 돌 사이엔 동백꽃 등을 꽂아 뒀다. 미니어처 자동차도 눈에 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타요 버스’다. 4·3 당시 비운의 별이 된 아이가 타요 버스를 알 리 없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일 것이다. 늦은 밤이면 봉분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와 꽂아 둔 사탕을 먹고 장난감도 갖고 놀 것 같다.●비행기 소리로 덮인 최대 학살터 ‘정뜨르’ 북촌은 이른바 ‘아이고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1954년 1월, 너븐숭이 주민 가운데 일부가 4·3 사건을 추모하며 설움에 북받쳐 울다가 경찰에 치도곤을 당했다. 이게 ‘아이고 사건’이다. 당시엔 이처럼 울음마저 죄가 됐다. 정뜨르는 어딜까. 4·3 당시 최대 학살터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4·3 지도에도 틀림없이 나와 있다. 한데 도두항 주변을 오가는 주민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고개를 외로 꼬기 일쑤다. 정뜨르는 지금의 제주공항이다. 바로 눈앞에 두고도, 너무 커서 보이지 않았던 거다. 손바닥 선인장 군락(천연기념물 429호)으로 이름난 월령리엔 고 진아영 할머니 집이 있다. 진 할머니는 ‘무명천 할머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4·3 당시 총탄에 턱을 다쳐 평생 무명천으로 턱 주변을 두르고 살았다. 작은 단칸방 한 켠에 진 할머니의 영정이 남아 있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4) →가는길:4·3 사건 70주기를 앞두고 제주 곳곳에서 동백 배지달기 등 다양한 추념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이번만은 올레길에서 벗어나 4·3길을 따라 걸어 보는 것도 좋겠다. 6~7㎞에 이르는 코스를 2시간 정도 걸으며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추천한 코스는 모두 4개다. 제주를 동서남북으로 나눠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미리 신청하면 ‘4·3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면서 걸을 수 있다. 4·3 콘텐츠 관련 내용은 제주관광공사 홈페이지(www.visitjeju.net)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4·3 길을 걷다’란 지도도 꼭 챙기는 게 좋다. 길잡이로 큰 도움이 된다.→맛집 : 도두 해녀의 집(743-1500)은 전복미역국 등을 잘한다. 주방의 손길보다 신선한 재료가 맛을 낸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음식에 별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담백하고 깊은 맛이 난다. 정뜨르(제주공항) 인근에 있다. 커피 한 잔 마시겠다면 쉴만한 물가(796-3808)가 괜찮다. 월령리 무명천 할머니집 앞에 있다. 커피 맛은 옅은 편이어도 업소 앞 풍경은 매우 짙다. 명진전복(782-9944)은 전복돌솥밥 등으로 소문난 집이다. 식사 때가 아니더라도 15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명소 반열에 올랐지만 맛은 여전히 예전처럼 좋은 편이다. 다랑쉬 오름과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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