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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 세대] 터키의 케이팝 전쟁/임명묵 작가

    [2030 세대] 터키의 케이팝 전쟁/임명묵 작가

    발단은 지난 8월 이스탄불에서 발생한 10대 여아 세 명의 가출 사건이었다. 가출 며칠 만에 경찰이 학생들을 발견해 집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그들의 가출 이유가 밝혀졌을 때 터키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그들은 “한국에 가고 싶어서” 집을 나왔다고 답했다. 그들은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즐기는 ‘한빠’들이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터키 가족사회복지부는 케이팝이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의 도이체벨레가 9월에 터키 정부가 케이팝을 아예 금지할 것이라고 보도하자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현 집권당을 포함한 터키의 보수파가 케이팝을 경계하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2018년부터 터키 대표적 친정부 언론 ‘예니 샤파크’에서는 케이팝이 청소년들을 부적절한 문화로 이끌고 있다는 비판 기사가 자주 등장했다. 방탄소년단은 ‘째진 눈의 가수들’이라고 하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표현부터, 왜 터키의 10대들이 케이팝에 열광하는지 심리적, 문화적 이유를 분석하는 심층적 기사까지 다양했다. 이번 이스탄불 가출 사건과 그에 따른 떠들썩한 반응에도 나름의 ‘역사’가 있는 셈이다. 터키의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은 대체 케이팝 혹은 한류의 어떤 면모를 걱정하는가. 먼저, 그들은 케이팝 등 한국 대중문화가 겉보기엔 아주 보수적인 것에 주목한다. 한국의 높은 표현 규제를 만족시키면서 만들어진 콘텐츠들은, 보수적인 비서구 문화권에서는 성적 표현 등에서 노골적이어서 ‘부담스러운’ 서구 콘텐츠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외견상 보수적인 콘텐츠의 이면에는 성별 이분법의 해체를 비롯한 전복적 메시지가 숨어 있다는 게 그들이 케이팝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다. ‘건전 문화’인 줄 알고 내버려 뒀더니, 무성(無性) 문화를 퍼트린다는 것이다. 케이팝 특유의 공격적 팬덤 문화로 청년층이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반항적’이 되는 것 또한 중요한 점이다. 실제 터키 한류 팬덤은 케이팝을 비판하는 논자들에게 케이팝을 검열하지 말라며 집단적인 사이버 공격을 가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마지막으로, 민족주의적인 보수파로서는 케이팝 팬덤이 자신들을 국적이나 전통문화가 아니라 ‘케이팝 팬덤’이라는 정체성으로 정의하며, 국경을 넘나들며 교류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케이팝 팬덤은 반대로 자국의 문화적 공기가 점차 보수화되는 가운데 케이팝 팬덤 활동에 참여하면서 세계 트렌드에 발맞춘다는 감각을 느낀다. 케이팝을 싫어하는 보수적 기성세대와 케이팝을 열렬히 소비하는 청소년, 청년 세대의 골은 이렇게 점점 깊어진다. 터키뿐 아니라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한국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문화 전쟁과 세대 갈등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러니 한류가 세계화될수록, 그로 인해 파생되는 상상도 못 했던 문제들을 기민하게 쫓아갈 필요가 있다. 뺨을 맞더라도 알고는 맞아야 할 것 아닌가.
  • 속세와 거리둔 암릉, 당신과 한발만 멀리

    속세와 거리둔 암릉, 당신과 한발만 멀리

    강원 철원에는 겨울에 제격인 여행지들이 몇 곳 있다. 한탄강 협곡을 따라 걷는 ‘물윗길 트레킹’이 대표적이다. 용암이 흘러가며 만들어 놓은 기이한 풍경들을 가까이에서 실감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소이산에서 굽어보는 철원평야의 풍경도 장쾌하다. 너른 들녘이 지평선 너머 북녘 땅까지 이어진다. 눈의 호사가 보통이 아니다.한탄강 협곡에 조성된 트레킹 길의 공식 명칭은 ‘한탄강 물윗길’이다. 이름 그대로 ‘한탄강 물 위에 만들어진 길’이다. 태봉대교부터 순담계곡까지 이어지는 8㎞ 정도의 구간을 부교(浮橋)와 바위지대를 따라 걷는다. 십수년 전만 해도 얼음 위를 그냥 걸었다. 그래서 이름도 ‘아이스 트레킹’이었다. 요즘은 부교 위를 걸어야 한다. 그 덕에 한결 안전해졌다. 하지만 아이스 트레킹이 주는 날것 그대로의 전율은 느낄 수 없다. 현지 지질해설사에 따르면 상당수의 관광객이 송대소와 고석정 등은 차로 돌아보고 실제 걷기는 순담계곡 쪽을 택한다고 한다. 짧지만 얼음 위를 걷는 구간이 있어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눈앞에서 펼쳐진 20~30m 수직절벽 주상절리 ‘아찔’ ‘물윗길’의 가장 큰 미덕은 멀리서 보던 풍경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탄강 협곡 일대의 풍경들은 대부분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 주변이 높이 20~30m의 수직 절벽인 데다 협곡 아래로 깊은 강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물윗길’은 바로 이 강물 위에 부교를 띄워 조성했다. 그 덕에 내려서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협곡의 주상절리를 만지거나, 얼어붙은 폭포 옆에서 ‘인증샷’을 찍을 수 있게 됐다. ‘물윗길’의 공식 들머리는 태봉대교다. 한데 대부분의 관광객이 들머리로 삼는 곳은 대교 위쪽에 있는 직탕폭포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라고 불리는 곳. 크기는 작아도 모양은 매우 독특하다. 용암이 흐르다 식은 검은 주상절리 위에 폭포가 형성돼 있다. 폭포의 높이는 낮아도 폭은 강폭과 거의 동일하다. 검은 현무암 주변으로는 얼음이 매달려 있다. 흰 얼음과 시커먼 주상절리의 대비가 인상적이다.태봉대교에서 10분 남짓 걷다 보면 송대소다. 용암이 빠르게 식으며 수직절리 절벽으로 남은 곳이다. 한탄강 협곡을 따라 약 20~30m 높이의 절벽이 커튼처럼 둘러쳐졌다. 실제 협곡 아래서 보는 절벽의 규모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압도적이다. ‘물윗길’에서 만나는 최고의 풍경 중 하나다. 송대소 협곡 위로는 철원한탄강은하수교가 날아갈 듯 매달려 있다. 흔히 은하수교라 불리는 다리다. 2년여 공사 기간을 거쳐 지난해 10월 정식 개통됐다. 길이는 180m. 출렁대는 교량을 걷는 것도 겁나지만 강화유리를 댄 바닥 구간에선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다리 위에서 보는 송대소 일대의 모습도 스릴 넘친다. ●이승만·김일성 이름 따 지은 ‘승일교’… 남북 함께 만들어 은하수교에서 승일교까지 3㎞ 정도 구간은 얼어붙은 한탄강변을 따라 걷는다. 승일교(등록문화재 26호)는 아치형의 교각이 아름다운 옛 다리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가운데 글자를 따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1948년 북한에서 공사를 시작했으나 절반가량 짓다 한국전쟁으로 중단했고, 이 지역을 탈환한 한국 정부가 휴전 이후 1958년쯤 나머지 절반가량의 구간을 완성했다. 결국 남과 북이 함께 만든 다리인 셈이다. 남과 북이 다른 시기에 만들어 교각의 모양이 약간 다른 것도 흥미롭다. 승일교에서 종착지 순담계곡까지는 3㎞ 남짓 떨어져 있다. 강변을 따라 걷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석정에 차를 두고 순담계곡까지 걷는다. 송대소 일대의 풍경이 거대하고 압도적이라면 고석정 주변에선 빼어난 암릉미와 마주할 수 있다. 거북바위, 선녀탕 등의 암벽들이 굴비 두름처럼 엮여 있다. 이 풍경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 부교를 넘어가는 이들도 눈에 띈다. 얼음이 두껍게 얼었다 해도 한겨울의 끝자락을 향해 가는 시기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종착지인 순담계곡과 이웃한 포천에도 용암의 흔적을 따라 걷는 길이 조성돼 있다. 포천 쪽에선 이를 ‘한탄강 주상절리길’이라 부른다. 여러 코스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벼룻길 코스’다. 용암이 만든 비경, 비둘기낭 폭포가 이 구간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벼루’는 벼랑, 높은 고개 등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부소천 협곡과 비둘기낭 폭포를 잇는다. 깊은 숲속에 숨겨진 비경을 찾고 싶다면 ‘멍우리길’을 권한다. 깎아지른 멍우리 협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이 일대 어디나 인적이 드물지만 멍우리 협곡 주변은 특히 적막하다. 한탄강 협곡을 따라 철원 순담계곡과 포천을 잇는 트레킹 길이 조성 중이다. 완공 예정은 올해 말이다.●사연 많은 소이산 평화마루공원 전망대… 너른 철원평야 ‘한눈에’ 이 계절에 철원에서 꼭 찾아야 할 곳이 소이산이다. 오래전 궁예와 왕건이 터를 잡았고, 일제강점기엔 신사가, 군사정권 시절엔 ‘삼청교육대’가 세워졌던 사연 많은 산이다. 정상 부근 두 곳에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소이산 평화마루공원 전망대와 옛 소이산 전망대다. 평화마루공원은 옛 미군 부대 건물과 교통호 등을 재활용한 공간이다. 전망대는 교통호 위에 조성됐다. 여기서 굽어보는 풍경이 실로 장쾌하다. 경기 고양시 일산의 22배에 달한다는 드넓은 철원평야 위로 딱 그만큼의 하늘이 펼쳐져 있다. 전북 김제의 ‘징게맹갱 외에밋들’에 견줄 만한 넓이다. 그 너른 벌판 위에 한국전쟁 당시 잦은 폭격으로 산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는 아이스크림 고지, 백마고지 전적비 등이 산재해 있다. 멀리로는 북한의 평강고원과 철원의 용암대지를 만든 오리산 등이 묵직한 자태로 자리잡고 있다. 평화마루공원 오른쪽은 옛 소이산 전망대다. 예전엔 단연 최고의 전망대였지만 요즘은 평화마루공원 전망대에 자리를 내준 느낌이다.이 계절에 철원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겨울 철새다. 두루미, 재두루미, 큰고니 등 수많은 겨울 철새들이 민간인통제선 너머 철원평야에서 겨울을 난다. 하지만 올겨울은 코로나19로 외지인의 민통선 출입이 완전 차단됐다. 철새 탐조가 방문 목적이라면 철원군에 거리두기 완화 추이를 확인한 뒤 찾는 게 좋겠다. 민통선 아래에서도 서너 마리씩 가족 단위로 먹이를 찾는 두루미를 볼 수는 있다. 여기저기 널린 정미소 주변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다. 민통선 너머의 월정역, 토교호, 평화전망대 등도 찾을 수 없다. 다만 ‘해탈의 피안(彼岸)에 도달한다’는 뜻의 도피안사(到彼岸寺), 겸재 정선이 사랑했던 삼부연 폭포 등 민통선 밖의 명소들은 방문할 수 있다. 글 사진 철원·포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주말에는 철원 물윗길 탐방객이 몰리는 편이다. 방문 전에 철원군축제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는 게 좋다. 평일에는 현장에서도 무난히 예매할 수 있다. 이용료는 1인 5000원이다. 전액 철원사랑상품권으로 교환해 준다. 관내 음식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찾는 포천 비둘기낭 폭포는 코로나19로 탐방이 중지됐다. 인근의 한탄강 하늘다리는 다녀올 수 있다.
  • 1968년 국내 첫 치즈공장 설립… ‘임실의 기적’ 만들어

    1968년 국내 첫 치즈공장 설립… ‘임실의 기적’ 만들어

    벨기에 출신 ‘파란 눈의 사제’ 지정환 신부는 ‘임실치즈의 아버지’로 불린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던 1959년 낯선 땅을 밟은 이방인은 1964년 임실성당 신부로 부임했다. 그는 굶주림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작은 산골을 보고 양이나 젖소를 키워 치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965년 산양 두 마리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해 다음해는 임실산양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효소는 막걸리 누룩, 발효통은 약탕기로 대신해 치즈 생산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직접 치즈 제조기술을 배워와 1967년 대한민국 최초로 카망베르 치즈 개발에 성공했다. 1968년에는 정과 망치만으로 우리나라 최초 치즈공장을 설립했다. 1972년에는 모차렐라 치즈를 생산해 조선호텔에 납품하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이후 임실치즈는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정환 신부는 1964년부터 현재까지 임실치즈 생산과정이 담긴 기록물을 임실군에 기증했다. 그는 지난 4월 “임실을 사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선종했다. 정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눈을 왜 그렇게 떠?” 동백꽃 강하늘, ‘♥공효진’ 위한 초강력 눈빛

    “눈을 왜 그렇게 떠?” 동백꽃 강하늘, ‘♥공효진’ 위한 초강력 눈빛

    흔히 멜로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이 상대역을 달콤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 ‘멜로눈’을 장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백꽃 필 무렵’ 공효진의 전담보안관 강하늘이 멜로눈의 종말을 고하고, ‘폭격눈’ 시대를 열 기세다.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 연출 차영훈, 제작 팬엔터테인먼트)에서 세상의 편견에 눈치 보던 동백(공효진) 때문에 용식(강하늘)은 결단을 내렸다. 앞에서 “내 자랑이다”라고 대놓고 얘기하면 뒷말이 나오지 않을 거라며, 옹산의 그 어떤 사람도 “동백이가 용식이 꼬신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 그 순간 그의 눈빛이 변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눈이 ‘돌았다’. 동백으로부터 “눈은 왜 그렇게 떠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언가 벌어질 것만 같았고, 이는 결국 현실이 됐다. 의지에 불타오른 용식이 시장통 한복판에서 “동백이를 꼬시는 건 용식”이라 외치며 아무도 말릴 수 없는 美친 행동력을 선보였기 때문. 동백을 향해 로맨스 폭격을 퍼붓고 있는 용식의 이와 같은 ‘폭격눈’은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누군가가 이토록 날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멜로눈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저 정도 눈빛은 장착해야 한다”, “강하늘 눈빛 보고 빵 터졌는데,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랑스러움이 있다”란 평가가 나온 이유였다. 그런데 오늘(2일) 공개된 스틸컷을 보니 지난 방송에서 잠깐 본 용식의 폭격눈은 예고에 불과한 듯하다. 한눈에 봐도 차이 나는 용식의 눈빛 온도차. 쌍꺼풀 라인이 짙게 생길 정도로 초강력 눈빛을 발사하고 있다. “눈을 왜 또 그렇게 뜨고 그랴?”란 소리가 나올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용식. 이번엔 어떤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이는 방송 직후 공개 된 예고영상(https://tv.naver.com/v/9996029)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이상한 빈 병과 알 수 없는 시선 등 누군가가 동백을 지켜보고 있다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계속되자 용식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 “제가요 까불이 잡아 보렵니다. 지가 감히 누구를 건드린 건지 잡아서 알려줘야죠”라며 연쇄살인마 까불이와의 전쟁을 선포한 용식의 폭격눈엔 게장골목사람들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마치 금방이라도 까불이를 때려잡을 기운이 만렙으로 담겨있다. ‘동백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또다시 폭격눈을 장착한 용식의 촌므파탈 로맨스 활약이 기대되는 ‘동백꽃 필 무렵’ 9-10회는 오늘(2일) 수요일 밤 10시 KBS 2TV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대한민국 치즈의 대부 지정환 신부 선종-16일 장례미사

    대한민국 치즈의 대부 지정환 신부 선종-16일 장례미사

    대한민국에 최초로 치즈산업을 일으킨 지정환 신부가 지난 13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8세.벨기에 태생인 고인은 1960년부터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활동하며, 국내 치즈 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 신부는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후 척박한 임실에서 산양 2마리로 산양유와 치즈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온갖 실패를 딛고 임실읍 성가리에 국내 첫 치즈공장을 설립했다. 이를 모태로 임실 치즈 농협이 출범했고 임실은 우리나라 치즈의 메카로 자리매김 됐다. 파란 눈의 외국인 신부가 한국을 찾은 것은 1959년 12월. 벨기에 국적의 디디에 세스테반스 신부는 6.25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부산항에 첫발을 디뎠다. 이듬해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발령 난 그는 ‘정의가 환하게 빛난다’는 의미로 ‘정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성은 본명인 ‘디디� ?� 비슷한 ‘지’씨로 정했다. 1964년 임실의 작은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그는 척박한 농촌을 먹여 살릴 방법을 고민하다 치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농지는 적고 산지가 많은 임실은 낙농업이 제격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완주의 한 신부가 선물한 산양 2마리로 산양유와 치즈 생산을 시도했다. 그러나 치즈생산은 쉽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하던 지 신부는 고심 끝에 치즈 생산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국으로 향했다. 프랑스 등 유럽의 공장을 돌며 장인들로부터 비법을 배워 와 맛과 향이 균일한 치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산양유로 만든 치즈를 서울의 호텔과 레스토랑, 피자집 등에 납품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만든 치즈가 ‘신선하고 맛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요도 크게 늘었다. 주문이 쇄도하자 농민들과 함께 젖소를 키워 치즈 생산량을 늘렸다. 낙농업의 불모지였던 임실은 이를 기반으로 한국 치즈 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됐다. 고인은 목표로 했던 임실치즈산업이 궤도에 이르자 모든 것을 농민들에게 대가 없이 넘겨주고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전주와 완주 등 전북도내 복지시설을 오가며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돌보는 데 힘썼다. 고인은 한국 치즈 산업과 사회복지에 기여한 공로로 2016년 법무부로부터 우리나라 국적을 받았다. 그는 한국인이 된 이후에도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나눔의 삶을 실천해오다 지병이 악화해 영면했다. 빈소는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천주교 전주 중앙성당에 마련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6일 오전 10시 전주 장례미사를 진행한다. 장지는 전주시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고아, 전쟁 그리고 망명… 평화 찾아 떠난 작은 인간

    고아, 전쟁 그리고 망명… 평화 찾아 떠난 작은 인간

    한국전쟁의 고아로 미국에 입양돼 미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일본으로 휴가를 나왔다가 주일 쿠바대사관으로 숨어버린 뒤 8개월 만에 잠적한다. 초유의 사태에 한국과 미국, 일본 정부가 모두 혈안이 돼 그를 찾는 가운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등단 40년을 앞둔 이대환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총구에 핀 꽃’의 주인공 ‘손진호’는 실존 인물 ‘김진수’를 모델로 했다. 김진수는 1967년 4월 주일 쿠바대사관에 망명한 한국계 미군 탈주병으로 이후 도쿄 한국대사관과 서울 외무부는 ‘김진수 한국계 미군 주일쿠바대사관 망명사건: 1967-68’이라는 비밀 문건을 만든 바 있다. 그러나 작가는 손진호와 김진수 사이, 엄연한 간극을 만들어 냈다. 서울에서 비참한 전쟁 고아로 떠돌았던 김진수와 다르게 손진호는 시장 바닥에서 수녀의 지갑을 탈취하다 붙잡혀 경북 포항 영일만의 ‘송정원’에서 푸른 눈의 신부·수녀들을 만난다. 이곳은 베트남 전장과는 대비되는 평화의 상징 같은 공동체다. 이 외에도 타이피스트 특기병이었던 김진수와 달리 손진호는 첨병분대 전투원으로 복무하며 베트남전의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일본에서 아이누족의 피가 섞인 대학원생 ‘고바야시’와의 만남을 통해 일본 내 소수민족 아이누족이 겪은 통한의 역사를 원경으로 비추기도 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전 세계적 차원의 비극적 디아스포라가 끊임없이 환기되는 양상이다. ‘광장’의 이명준이 중립국으로 가듯 손진호는 소련을 거쳐 스웨덴으로 간다. 망명에 실패하고 유폐된 인간으로 1년을 견뎌 낸 뒤 다시 지구를 반 바퀴 도는 험난한 여정을 선택하며 손진호는 말한다. “국가나 거대 폭력이 평화를 파괴할 수 있지만, 작은 인간의 영혼에 평화가 살고 있다면 평화는 패배하지 않는다.” ‘총구에 핀 꽃’은 ‘아시아 문학선’ 시리즈의 첫 한국 장편소설이다. 베트남 작가 바오닌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으로 출발한 ‘아시아 문학선’은 21권으로 이번 책을 출간했고, 앞으로 한국 작가 신작 장편소설과 창작집을 엄선해 선보일 계획이다. 22권으로는 일본 오키나와를 지키는 작가 메도루마 의 장편소설 ‘무지개 새’가 출간될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눈보라 보듬고 칼바람 맞으며 한겨울 버텨내…황태, 그 이름을 얻다

    눈보라 보듬고 칼바람 맞으며 한겨울 버텨내…황태, 그 이름을 얻다

    설악과 대관령 겨울바람을 맞으며 노랗게 익어가는 황태는 추위가 반갑다. 올해도 어김없이 강원 인제 청정 내설악과 평창 대관령 마루금 바람골마다 펼쳐진 덕장에는 명태가 주렁주렁 내걸려 황태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명태가 황태가 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 세른세 번의 손질이 필요할 만큼 정성이 들어간다. 혹한의 칼바람 속에 겨우내 얼었다 녹기를 수십 차례, 부들부들한 속살에서 뽀얗게 우러난 황태국은 최고의 해장국으로 꼽힌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맹추위 속에서 덕장을 지키는 황태 지킴이들의 손길이 어느 해보다 바쁘다. 올해는 초겨울부터 추위가 이어지면서 어느 해보다 품질 좋은 노랑태(황태) 생산이 기대된다. 술꾼들의 해장국으로, 여성들의 다이어트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높은 황태의 세계를 들여다본다.●실향민들이 개척한 백담사 입구 ‘황태 마을’ 내설악을 끼고 국내 최대 황태 덕장이 펼쳐진 인제군 북면 용대리는 황태의 본고장이다. 명성에 걸맞게 해마다 겨울이면 바람이 불어오는 골짜기마다 황태를 말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400여명 주민들이 모여 사는 용대3리에만 모두 22곳의 덕장(전체 면적 23만 1000㎡)이 있다. 이곳에서 국내 황태의 70%가량이 생산된다. 해마다 3000만 마리, 2만여t의 황태가 만들어져 600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곳이다. 한겨울 동안 내설악의 칼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익어가는 황태들이 산골마을의 경제 중심에 있다. 설악산 백담사 입구에 있는 용대리가 황태마을이 된 것은 그리 머지않다. ‘살이 노란 명태’란 뜻의 황태는 함경도가 본고장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북강원 원산 출신 실향민들이 용대리에서 황태를 건조하기 시작하며 남한지역의 황태 역사가 시작됐다. 전쟁 이후 아바이마을 등 속초를 중심으로 터전을 마련하고 생활하던 실향민들이 용대리가 남한에서 황태 생산의 천혜 조건을 구비한 적격지임을 알고 1963년 무렵부터 덕장을 만들어 황태를 생산해 왔다. 황태가 되는 데 필요한 바람과 추위, 눈의 3대 요소를 모두 갖춘 땅이 바로 용대리였기 때문이다.●4개월 가량 얼렸다녹였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 명태가 영양 만점의 황태가 되려면 밤낮 기온 차가 커야 하고, 한낮의 온도가 영하 2도 이하여야 한다. 내장을 빼낸 명태를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 차가 심하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추운 지역에서 낮에는 녹이고 밤에는 꽁꽁 얼리면서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4~5개월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말리면 살이 노랗고 솜방망이처럼 연하게 부풀고 고소한 맛이 나는 황태가 된다. 눈 등 적절한 수분 공급도 필수다. 육지의 바람과 해상의 기운이 계곡에서 절묘하게 만나는 용대리는 그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이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의 내설악 골짜기 바람은 겨우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백설과 함께 명태를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시키며 황태로 변신시키기에 적격이다. 이강열 용대리 황태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용대리 황태는 하늘과 더불어 만들어진다”며 “황태는 눈, 바람, 추위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지난겨울에도 그랬지만 올겨울에도 한파가 이어지면서 최상품의 품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두대간 바람과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평창 대관령에도 대단위 황태덕장이 산재해 있고, 최근에는 고성, 영월 등에서도 황태가 만들어지는 등 바람, 추위, 눈 등 여건이 맞으면 강원도 산골짜기 어디서든 황태가 생산되고 있다. 명태를 계곡에서 4개월가량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해 탄생시키는 것이 황태라면, 북어는 바닷가에서 한 달 동안 바람에 말려 만든다. 명태는 또 싱싱한 생물 상태의 ‘생태’, 얼린 것을 ‘동태’, 말린 것을 ‘북어’, 하얗게 말린 것은 ‘백태’, 검게 말린 것은 ‘흑태’, 딱딱하게 마른 것은 ‘깡태’ 등 불리는 명칭만 35가지가 넘는다. ●고단백 자연식품으로 해독·다이어트에 좋아 명태가 마르면서 황태가 되면 단백질의 양은 2배로 늘어나는데 단백질이 전체 성분에서 56%를 차지할 정도의 고단백식품이 된다. 그러나 몸에 해로울 수 있는 콜레스트롤이 거의 없는 고급 단백질이어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고단백 저칼로리이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좋다. 또 명태에는 인체 각 부분의 세포를 발육시키는 데 필요한 ‘라신’이라는 필수 아미노산과 뇌의 영양소가 되는 ‘트립토판’이 들어 있어 건강 유지에는 그만이다. 기름기가 상대적으로 적어 비만환자나 노인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명태의 간에서 뽑아낸 기름(간유)에는 대구 한 마리의 3배가량에 해당하는 비타민 A가 들어 있어 영양제로의 가치도 높다. 꾸준히 먹으면 눈이 밝아지는 효과가 있다. 노란 황태포 살 속에 붉게 머금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명태의 간유가 스며든 것이다. 황태는 부들부들하게 씹히는 부드러운 맛에다 담백하고 고소함까지 갖고 있어 ‘맛’으로도 인기가 높다. 한방에서는 황태 국물이 일산화탄소 중독까지 풀어낼 만큼 해독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약재료로도 많이 쓰인다. 과음으로 피로해진 간을 보호해주는 메타오닌 등 아미노산이 풍부한 황태는 술 해장용으로도 최고의 식품으로 꼽힌다. 맛의 80% 이상을 하늘이 결정한다는 황태를 이곳 용대리 황태마을에서는 마음껏 맛볼 수 있다. 황태구이와 황태국, 황태강정 등 신선하고 맛있는 황태요리가 다양하다. 인제에 가면 황태를 간판에 새긴 음식점과 판매장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인제~속초를 잇는 국도변의 용대리에 가면 황태 관련식당과 가게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용대3리에 있는 황태 식당만 16곳, 황태 판매장은 26곳에 이른다. ●매년 5월 황태축제… 황태강정 등 요리 체험도 해마다 5월이면 용대마을에서는 황태축제가 열린다. 지난해 20회째 열었다. 품질 좋은 황태를 선보이며 지역주민은 물론 수도권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축제에는 황태팬케이크 만들기 체험, 황태국 만들기, 황태강정, 황태라면 요리체험, 황태 숯불구이 체험 등 다양한 황태 음식을 직접 요리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김기훈 용대리 황태 생산 농민은 “올겨울에도 황태를 만드는 한파와 칼바람이 고맙기만 하다”며 “영하 17~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 속에 최고 품질의 황태가 기대된다”고 활짝 웃었다. 인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명태의 변신 또 다른 내 이름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리거나 얼리지 않은 생태/갓 잡은 선태/마른 건태/얼린 동태/고온 건조된 흑태/3~4월에 잡힌 춘태/끝물에 잡힌 막물태/음력 4월에 잡힌 사태/오월에 잡힌 오태/가을에 잡힌 추태/명태를 말린 북어/배를 갈라 만든 짝태/겨울철에 찬바람에 얼고 녹이기를 반복해 만든 황태/노란색이 나는 노랑태/소금에 절인 간태/반건조 상태로 코를 꿴 코다리/새끼 명태 노가리/큰 명태 왜태/어린 명태 아기태/덕장에서 황태를 말릴 때 날씨가 따뜻해 물러진 찐태/기온 차가 커서 하얗게 마른 백태/수분이 빠져 딱딱하게 마른 깡태/몸뚱이가 제 모양을 잃어버린 파태/잘못 익어 속이 붉고 딱딱해진 골태/머리를 떼고 말린 무두태/유자망 그물로 잡은 그물태/낚시로 잡은 낚시태/주낙으로 잡은 조태/원양산 명태와 동해안 명태 구분을 위한 진태/고성 간성에서 잡힌 간태/강원도에서 잡힌 강태/ 산란한 직후 뼈만 남은 꺽태/명태가 금처럼 귀한 어종이 되면서 금태
  • [김균미의 세계는 지금]미·중 무역전쟁 갈림길…전 세계 눈은 트럼트-시진핑 회담에

    [김균미의 세계는 지금]미·중 무역전쟁 갈림길…전 세계 눈은 트럼트-시진핑 회담에

    남미의 아르헨티나에서 개막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거의 10년 만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G20 정상회의 기간에 열리는 미국과 중국 정상회의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올 들어 본격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향배가 12월 1일(현지시간) 저녁에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간 정상회담에 달렸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앞서 추수감사절 때 자신의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기자들에게 “미·중 정상회담을 평생 준비해왔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평생을 준비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휴전이냐’‘확전이냐’, 정상회담 코앞인데 결과는 예측 불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엄청난 대미 무역흑자가 불공정 통상 관행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중국이 미국의 지적재산권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고, 미국의 첨단기업들을 대거 인수합병하면서 핵심 기술을 통째로 가져가는 식의 방법으로 ‘기술 도둑질’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과 핵심 기술 유출로 인한 국가안보 위협을 중국과의 무역전쟁의 명분으로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관세를 내세워 중국으로 몰려갔던 미국 제조업들이 미국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늘릴 것으로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브에노스아이레스로 출발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나는 우리가 중국과 (무역합의에) 근접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중국도 합의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며 합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금 당장 수십억 달러의 돈이 관세나 세금 형태로 미국으로 들어오고 있다”면서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지금 상황이 좋다”고 말해 무역협상 전망에 대해 엇갈린 신호를 보냈다. 트럼프의 헷갈리는 발언을 놓고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려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려는 특유의 화법이라고 분석이 나온다. 애초 정상회담에 배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던 대중(對中) 초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미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회담에 참석할 것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미국이 고삐를 바짝 조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국의 시 주석은 확전을 피하면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모양새를 갖추길 바라고 있다.해외 언론들은 미국과 중국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앉기로 한 것 자체는 양국 간 합의가 도출됐기 때문으로 보면서 회담 결렬과 그로 인한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세계 경제 불안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희망 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7월 6일 자정을 기해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이어 모두 세 차례에 걸쳐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매겼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 내년 1월 1일자로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현재 10%에서 25%로 올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에 중국이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방식으로 맞대응해왔다. 중국은 연간 130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산 수입품 가운데 이미 1000억 달러 규모의 제품에 10%, 25%의 관세를 매겼다. 미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자국 기업들은 물론 안보동맹국들에게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고 요청했다. 미 상무부는 최근 인공지능(AI), 로보틱스, 생명공학 등 14개 차세대 기술의 수출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규정을 마련하는 등 중국의 ‘기술굴기’ 저지를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 얼굴만 쳐다보는 G20 정상들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사업가로 최고의 협상 기술을 자랑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국내외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고 G2로서 국제적 위상을 굳건히 하려는 노련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지난해 4월 플로리다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의 첫 만남 이후 같은 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베이징 국빈방문까지 세 차례 회담을 통해 친분을 다져왔다는 트럼프와 시진핑이 올해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맞대면하는 이번 회담에서 둘 다 웃으면서 돌아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른 회담 참가국들은 미·중 정상회담 결과가 그렇지 않아도 내년 이후 세계 경제 전망이 밝지 않은데 여기에 부담을 더 얹는 상황이 되지 않길 바라는 것 이외에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게 지금의 국제적 현실이다. 김균미 대기자 kmkim@seoul.co.kr
  • [황규관의 고동소리] 김수영 생각

    [황규관의 고동소리] 김수영 생각

    올해는 김수영이 불의의 사고로 이승을 떠난 지 50년이 되는 해인데,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사후 50주기 행사가 11월 들어 시작됐다. 정확하게는 지난 6월 16일이 그의 기일이었다. 심포지엄 같은, 재미는 좀 덜한 행사가 주이지만 사실 심포지엄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연구 결과를 접하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 같다. 일각에서는 일찍부터 ‘김수영 신화’를 지적했지만, 달리 말하면 김수영이 끼친 영향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뜻도 된다.새로운 해석은 언제나 환영받을 일이다. 하지만 해석이란 것 자체가 해석 대상에 먼저 충실해야 가능한 법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수영 해석이 오늘날 얼마만큼 시 자체에 충실했는지 자문해 볼 문제다. 또는 해석을 위한 해석이나 단순한 오마주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도 새로운 해석이 인식해야 할 과제다. 김수영 해석에서 이와 같은 것이 지켜지지 못할 때 신화를 조성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김수영의 시는 적지 않은 작품이 명료하게 포착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 난해성이 연구자와 비평가를 끊임없이 매혹하는 원인 같다. 그 난해성을 조금 더 명료하게 밝혀 내는 것이 연구와 비평의 몫이겠으나, 김수영의 시는 자구 하나하나에 사로잡힌 독자를 집어삼키는 늪이기도 하다. 도리어 김수영 시가 어떤 상태에서 시작됐는지 접근해 가는 것도 다른 해석을 얻는 방법 중 하나다. 언어를 무시한 방자한 해석을 독려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수영 ‘너머’다. 우리가 김수영을 읽는 이유에서 이 ‘너머’가 빠진다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반의 반도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수영의 시는 현실의 ‘너머’를 끝끝내 꿈꾸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분명히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라고 했지만, 그의 시가 보여 주듯 시적 상상력은 현실을 단순히 재현하고 비판하는 것에 머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상이 필요하다고 김수영은 생각했다. 현실을 ‘바로 보고’, 자기 자신을 영원히 고쳐 가야 할 운명이란 이것과 통한다. 사상이 있어야 시의 형식도 가능하다는 인식은 김수영으로 하여금 독특한 시적 입장을 갖게 만들었다. 사상을 가지고 현실을 바로 보고 넘어가려는 과정은 김수영에게 결국 심각한 싸움을 안겨 주었다. 김수영이 말하는 사상은 언제나 현실에 발을 디딘 채 춤을 추는 동작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현실을 통해 사상을 구성했고, 그 사상을 가지고 현실과 싸웠던 것이다. 시에서 정치성은 특정 정파나 정권에 대한 어떤 입장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시의 정치는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시간을 향한 싸움이다. 이 싸움은 사실 사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다. 사상 자체가 현실 너머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김수영 시에 아직 생명력이 살아 있다면 그것은 그가 이 현실과 사상의 변증법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수영은 5·16쿠데타로 심한 내상을 입었다. 5·16은 김수영에게 단순한 정치적 패배만 안긴 것이 아니라, 심각한 존재론적 위기도 안겨 주었다. 이때 김수영은 역사에 대한 인식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그것은 먼저 한국전쟁 때 실종된 동생을 떠올리면서 희미하게 드러나지만, 훗날 실패한 혁명을 곱씹으면서 시간에 대한 인식을 겹쳐 놓기도 한다. ‘먼 곳’에 대한 꿈과 시적 투신은 지난 역사에 대한 재해석과 동시에 진행됐으며 그는 점점 눈의 밝기를 달리하면서 언어를 혁신해 갔다. 그 혁신의 과정에서 난해성이 필요 이상으로 부가됐다는 것은 조금 유감이지만, ‘언어의 간지’를 감안한다면 그렇게 책망할 일만은 아니다. 오늘날 시인들은 이 언어의 간지에 무지하거나 그것을 나태하게 대하지만, 그것마저 서늘하게 인식해야 진정한 새로운 시는 탄생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때 시인의 영혼에 죽음의 빛이 드리워진다. 죽음 없이는 새로 시작하는 사태는 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수영은 그것을 알았던 것 같다. 따라서 김수영이 언제나 머리맡에 두었던 ‘죽음’은 소멸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뜻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김수영을 ‘생명의 시인’으로 읽는다.
  • “아시나요, 北전쟁고아 키워 준 폴란드 교사들을”

    “아시나요, 北전쟁고아 키워 준 폴란드 교사들을”

    오는 3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한국전쟁 중 폴란드에 보내졌다가 다시 북한으로 송환된 전쟁고아와 이 아이들을 돌본 폴란드 교사들의 자취를 좇는다.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이야기는 배우이자 단편 영화 두 편을 연출한 추상미(45) 감독에 의해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잊혀진 역사’를 세상에 꼭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는 추상미.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북한과 미국이 서로 으르렁거릴 때만 해도 이 작품이 세상에 못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최근 시국이 기적적으로 바뀌면서 전 국민 중 가장 기뻐한 사람이 나였을 것”이라며 웃었다.추상미는 4년 전 지인이 일하는 출판사에 갔다가 누군가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끝내 몰랐을 이야기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1951년 북한이 한국전쟁 중 고아가 늘어나자 동유럽 국가에 아이들을 돌봐 줄 것을 요청했고, 그중 1500명이 폴란드 남서부의 작은 마을 프와코비체의 한 양육원에 보내졌다. 아이들 몸에서 발견된 기생충 서식지를 조사한 결과 1500명 중 절반은 남한 출신이었다. 전쟁 중 전선이 이동할 때마다 북한이 수시로 점령 지역의 고아들을 데려갔기 때문이다. 생김새도 쓰는 말도 달랐지만 양육원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봤다. 아이들 역시 새로운 가족의 정을 느끼며 새 삶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8년 뒤인 1959년 교사들과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이별한다. 북한이 경제 발전 운동인 ‘천리마운동’을 본격화하면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이 아이들에 대한 송환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추상미는 이를 소재로 한 폴란드 소설 ‘천사의 날개’와 폴란드 국영방송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김귀덕’, 관련 논문 등을 보며 조사를 시작했다. 폴란드 전쟁고아 중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북한 소녀 김귀덕을 소재로 한 장편 영화 ‘그루터기들’을 만들기로 결심한 추상미는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2016년 폴란드로 떠났다. 준비 과정 중 당시 아이들을 돌본 교사 300여명 가운데 살아 있는 사람은 단 10여명이고 생존 교사들의 나이도 80~90대라는 소식을 접한 추상미는 그들의 육성과 증언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먼저 선보이게 됐다.“유제프 보로비에츠 양육원 원장님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난생 처음 보는 까만 머리, 까만 눈의 동양 아이들인데도 그 아이들이 자신의 유년시절의 일부 같았다’고요. 실제로 당시 양육원 교사 중 상당수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고아 출신이더군요. 교사들은 선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복하기 위해 혈육의 정을 나눈 거죠. 이분들의 상처가 다른 나라 아이들을 사랑하는 데 선하게 쓰였던 반면 우리는 증오의 프레임을 만들고 이데올로기를 견고하게 만드는 데 사용한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상처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고 싶었어요.”추상미는 ‘그루터기들’의 배우로 캐스팅한 탈북민 출신 배우 지망생 이송씨와 함께 폴란드로 갔다. 평소 적극적이고 활발하지만 자신의 상처나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리던 이씨는 폴란드에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송이는 평소에 ‘북한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런 송이가 폴란드 교사들을 만나면서 마음의 빗장을 풀더라고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폴란드 선생님들이 자신을 꼭 안아 주니까 어찌나 울던지요. 남한에선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이상하게 쳐다봐서 북한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안 했대요.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북한에서 태어난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을 때 참 인상 깊었어요.” 2009년 드라마 ‘시티홀’ 이후 한동안 연기를 쉬었던 추상미는 “오래되고 낡은 꿈”이었던 연출을 하면서 배우 이상의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유년 시절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상처가 컸어요. 그래서인지 전 늘 상처에 관심이 많았죠. 감독이 되니 개인의 상처가 사회의 상처나 문제로 확장되더라고요. 전쟁고아들을 돌본 선생님들처럼 모성이 사회의 분열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모성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추상미 감독 ‘폴란드로 간 아이들’ 티저 예고편

    추상미 감독 ‘폴란드로 간 아이들’ 티저 예고편

    배우 겸 감독 추상미의 연출작 ‘폴란드로 간 아이들’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한국전쟁 고아와 폴란드 선생님들의 위대한 사랑을 담은 치유와 회복의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접속’, ‘열세 살, 수아’ 등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 추상미가 연출과 출연을 담당한 첫 장편다큐멘터리이다. 그는 앞서 단편영화 ‘분장실’, ‘영향 아래의 여자’를 연출해 감독으로서 능력을 인정을 받았다. 추 감독은 역사 속 숨겨진 아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상처를 사랑으로 품었던 폴란드 선생님들을 직접 만나 위대한 사랑의 모습을 카메라에 기록했다. 탈북소녀 이송이가 이 여정에 함께했다. 공개된 예고편은 1951년 수많은 전쟁고아를 태운 기차가 폴란드로 향하는 흑백 필름 뒤로 “아이들을 가득 실은 기차가 며칠에 걸쳐 도착했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전쟁으로 인한 심한 충격에도 한국의 아이들이 파란 눈의 사람들을 아빠, 엄마로 믿고 따를 수 있게 했던 폴란드 선생님들의 “뭐든지 다 해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겪었던 그 상처를 지워줄 수만 있다면요…”라는 이야기는 특별한 사랑의 흔적을 궁금케 한다.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오는 10월 31일 개봉 예정이다.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아이맥스 명당자리는 어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아이맥스 명당자리는 어디?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압도적인 예매 점유율을 기록하며 아이맥스 영화관 예매 대란을 일으키는 가운데 아이맥스 영화관 명당자리를 수학적으로 풀어내 화제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10주년을 맞이한 마블 스튜디오의 작품으로, 새로운 조합의 어벤져스와 역대 최강 빌런 타노스의 무한 대결을 그린 영화다. 영화 전체가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어벤져스3’는 CGV용산 아이파크몰을 시작으로 CGV상암, 여의도, 영등포, 왕십리, 상봉 등 주요 아이맥스 극장가에서도 전타임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어 아이맥스를 즐기려는 관객들의 명당 좌석 확보 전쟁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아이맥스는 ‘아이 맥시멈’(Eye Maximum)의 줄임말로 사람이 볼 수 있는 최대의 시야를 뜻하며 이 상영기술을 개발한 캐나다 영화제작사 IMAX의 필름 포맷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2009년 영화 ‘아바타’ 이후로 각광받기 시작한 상영기법인 아이맥스는 1970년대부터 개발됐지만 뒤늦게 전성기를 맞았다. 촬영 단계부터 전용 필름과 카메라를 사용해야 하는 아이맥스는 일반 상영관보다 훨씬 커다란 스크린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스크린은 곡선의 형태로 눈의 최대 시야각보다 넓게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사람의 눈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모두 영상으로 채워 영화 관람객으로 하여금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한다. 또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반영해 객석 각도를 25도 가량 위로, 스크린은 5도 가량 아래로 기울어져 있다. 이처럼 아이맥스는 촬영과 상영, 공간까지 우리 눈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시야각은 어떤 물체가 지상에서 일정한 높이 위에 있을 때, 사람의 눈에 보이는 각도를 말한다. 이때 관객과 스크린과의 거리, 지면부터 스크린까지의 수직거리, 스크린의 높이와 너비 등의 조건을 통해 더욱 정밀하게 시야 최대각을 계산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이맥스 명당 자리는 최대의 시야각을 확보할 수 있는 D, E, F 열의 가운데 자리다. 물론 상영관 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스크린으로부터 네 다섯 번째 세 줄이 서라운드 음향은 물론 최고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해 수학인강 스타강사 세븐에듀&차수학 차길영 대표는 “수학적으로 변화 가능한 조건의 최댓값을 구하기 위해서는 미분법을 이용하는데, 이때 시야거리가 최대가 되는 변수를 미분하면 극대값을 얻을 수 있고 그 극대값을 통해 최대 시야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며 “서울대 수시 문제로 유명한 레기오몬타누스 최대각 문제를 이용하면 보이는 물체의 크기, 거리, 각도를 고려해 좀 더 정확한 값을 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오늘(25일)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내년에 개봉하는 ‘어벤져스4’(부제 미정)와의 연결로 감독 및 배우 전원이 전 세계 노 스포일러 캠페인까지 적극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고맙습니다… 제주가 된 신부님

    고맙습니다… 제주가 된 신부님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너무나 사랑해 평생을 헌신했던 ‘돼지 신부님’의 죽음에 제주도 전체가 슬픔에 잠겼다.24일 패트릭 J 맥그린치 신부의 빈소가 마련된 제주 한림성당에는 하루 종일 제주도민들의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맥그린치 신부는 전날 90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도민들은 “누구보다 제주와 제주도민을 사랑하고 한평생을 바쳤던 신부님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맥그린치 신부는 60여년 전 ‘4·3 사건’의 소용돌이와 한국전쟁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제주에 들어와 목축업 기반을 다지고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는 등 제주 근대화에 큰 공헌을 했다. 1928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1954년 4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 제주 한림본당에 부임, 제주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가 제주에 도착했을 당시 도민들의 삶은 가난 그 자체였다. ‘가난을 벗어나지 않으면 하느님께 다가설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인천에서 새끼를 밴 요크셔 돼지 한 마리를 구입해 한림까지 가져왔다. 이 돼지는 훗날 연간 3만 마리를 생산하는 동양 최대 양돈목장의 기초이자 제주 근대 목축업의 기반이 됐고, 맥그린치 신부는 ‘돼지 신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또 4-H 클럽을 조직하고 가축은행을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축산업을 시작했고, 1961년 축산업 교육을 목적으로 성이시돌 목장을 세웠다. 목초를 개발해 소도 기르기 시작했고 농민들에게 사료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사료공장도 만들었다. 한림수직이란 봉제공장도 만들어 1300여명의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한림에 은행이 없어서 농민들이 계를 들었다가 돈을 떼이거나 높은 사채 이자에 허덕이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1962년 제주도 최초이자 국내 농촌 지역 1호인 한림신용협동조합도 만들었다. 또 목장사업으로 생긴 수익금으로 병원·양로원·요양원·유치원·노인대학·청소년수련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을 속속 설립했다. 제주도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선 이후엔 호스피스 사업에 집중했다. 2002년 3월 성이시돌 병원을 호스피스 중심의 성이시돌 복지의원으로 재개원했다.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후원 회원들의 도움과 이시돌농촌사업개발협회 지원 덕에 전액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맥그린치 신부는 지난해 2월 그의 업적을 기록한 평전 발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도민들이 협동심과 성실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난을 벗어나고 한국의 축산업을 선도하는 기적이 가능했다”고 도민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예수는 신부님께 어떤 분입니까’라는 질문에 ‘저는 누구를 가르치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답할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아프고 고통받고 가난한 사람의 편에 늘 함께 하셨던 맥그린치 신부의 사랑과 나눔은 오래도록 제주도민의 가슴에 온기로 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전에서 “파란 눈의 아일랜드 신부님은 그렇게 제주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며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안을 깊이 새겨 주셨다”면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27일 오전 10시 성이시돌목장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열리는 장례미사를 거쳐 이시돌 글라라 수녀원 묘지에, 즉 제주도에 영원히 묻힌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성이시돌 목장’ 제주 축산업 선구자 맥그린치 신부 선종

    ‘성이시돌 목장’ 제주 축산업 선구자 맥그린치 신부 선종

    제주 성이시돌 목장을 설립하는 한편 한국에서 60년 넘게 선교와 사회사업을 이어 온 패트릭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가 23일 오후 선종했다. 90세.아일랜드 출신인 맥그린치 신부는 1954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 제주에 처음 발을 들였다. 당시 제주는 한국전쟁과 4·3 사건을 거치면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였다. 제주의 어려운 상황을 본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의 가난을 타개할 대책으로 성이시돌 목장을 설립하고 척박한 한라산 중턱의 산간을 경작하며 새로운 농업 기술을 전파했다. 이때부터 ‘푸른 눈의 돼지 신부님’이란 애칭을 얻었다. 60여년 봉사활동을 한 공로로 2014년 아일랜드 대통령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한 맥그린치 신부는 지난 9일 심근경색과 심부전증 등 허혈성 심질환으로 제주한라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다. 빈소는 제주시 한림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성이시돌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오는 27일 오전 10시 진행된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백지연의 생각의 창] 역사적 공간에 스며든 고통의 기록

    [백지연의 생각의 창] 역사적 공간에 스며든 고통의 기록

    오래전 후쿠오카와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길에 평화 공원과 원폭 자료관에 다녀온 적이 있다. 평화 공원은 전쟁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세심한 상징들을 살리고 있었다. 피폭 당시 애타게 물을 찾았던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에서 조성된 분수와 원자폭탄이 투하된 시간인 11시 2분인 채로 시간이 정지된 시계가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공원을 돌아보는 중에 희생자를 위한 묵념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 퍼졌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많은 한국인이 그렇듯이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과 원폭 자료관을 돌아보는 마음은 착잡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을 위해서’를 강조하는 슬로건 아래 전시된 수많은 자료는 일본의 침략 역사에 대해 침묵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화를 기원하는 종이학 조형물이나 기념품으로 판매되는 원폭 기록물들 역시 희생자의 단면만이 부각된 씁쓸한 느낌을 남겨 주었다.여행 당시는 가보지 못했지만 최근 나가사키 지역에서는 하시마(군함도) 투어가 관광 상품이 되고 있다. 나가사키와 가까운 곳에 있는 하시마는 산업혁명의 유산으로 최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논란을 부른 바 있다. 일본은 하시마를 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조선인 강제징용의 역사를 기록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협의 사항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일본인 가이드가 진행하는 하시마 투어에서는 근대적 건축물의 이면에 존재하는 강제 노역과 착취의 참상이 소개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파트와 학교 등 제한된 건물 구역만 공개하는 가이드의 설명에는 건물 지하에서 노역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기록이 삭제돼 있는 것이다.역사적 폭력의 공간을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참상을 확인하는 데 있지 않다. 영화 ‘남영동, 1985’(정지영·2012)와 ‘1987’(장준환·2018) 덕분에 재조명되는 남영동 대공분실도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건축과 공간의 기억을 현재적으로 해석하게 한다. 영화 ‘1987’을 본 후 뒤늦게 찾아본 건축 관련 논의들은 치밀하고 잔혹하게 설계된 대공분실의 공간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고 김근태 전 국회의원을 포함한 무수한 사람을 향한 끔찍한 취조와 고문이 이루어졌던 대공분실은 군사정권의 도시화 계획을 이끌었던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곳이다. 독특한 외관의 경동교회와 예술인들의 교류를 주도했던 공간 사옥의 설계자가 이러한 참담한 감시 취조 공간을 설계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의외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건축가 조한에 따르면 남영동 대공분실 5층은 “끊임없이 감시하고 감시받는 ‘눈의 공간’이자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조차 잃게 되는 극단적인 ‘몸의 공간’”(‘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2013, 돌베개)이다. 관공서, 박물관과 문화공간을 가로지르던 건축가의 예술적 취향이 고문실의 세밀한 기능과 결합된 과정을 보면 예술의 공공성이 무엇인가 새삼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무심하게 지나쳐 왔던 주변의 건물과 공간 역시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었음도 자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들이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두루 공유되고 있는 과정은 매우 의미 깊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는 고통이 과연 재현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두고 평생 자신의 글과 기록 속에서 고민하고 씨름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잔혹한 학살과 고문의 실상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레비가 실제 겪은 고통은 어느새 전시 대상이 돼 버린 ‘질서정연하고 인공적인’ 박물관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고통을 상상하게 만드는 온갖 종류의 자극적인 환영과 허상에 레비는 저항하고 또 저항했던 듯하다. 레비가 추구했던 “훨씬 더 소박하고 덜 흥분되는 진실, 차근차근,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공부와 토론과 추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실, 확인되고 입증될 수 있는 진실”(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2007)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유효한 울림으로 남아 있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의 묵시록/송종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의 묵시록/송종찬

    눈의 묵시록/송종찬 갈 데까지 간 사랑은 아름답다 잔해가 없다 그곳이 하늘 끝이라도 사막의 한가운데라도 끝끝내 돌아와 가장 낮은 곳에서 점자처럼 빛난다 눈이 따스한 것은 모든 것을 태웠기 때문 눈이 빛나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 때문 촛불을 켜도 눈의 점자를 읽는 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연애도 전쟁도 멈춰야 한다 상점도 공장도 문을 닫고 신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서체를 받듯 두 눈을 감고 혀를 내밀어보면 뼛속까지 드러나는 과거 갈 데까지 간 사랑은 흔적이 없다 갈 데까지 가 봤어야만 했다. 모든 것을 다 태웠어야 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끝까지 가 봤어야 했다. 망설였다. 미적거리다가 중도에서 멈췄다. 그래서 사랑은 타다 만 장작처럼 볼썽사나운 후회로 가슴에 남았다. 첫눈은 따스하다. 혀 끝에 대면 이내 녹아 사라진다. 첫눈이 그렇듯이 갈 데까지 간 사랑은,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린 사랑은 흔적이 없다. 다음에 사랑이 오거든 갈 데까지 가 보시라. 한 점의 후회도 남기지 마시라. 장석주 시인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청춘,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청춘,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예술은 굳이 혁명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아도 새롭게 인정되면 예전의 것과 공존하거나 또는 스스로 고전이 되어 뒷자리로 물러나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대체하거나 밀어내지 않는다. 이와 달리 사회와 제도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과거와 현재의 질서를 대신하는 속성이 있어 늘 기성체제로부터 배척당하기 일쑤다.때문에 진보와 혁신은 항상 어렵고 전통 또는 고전은 걸림돌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그 반대이기도 하다. 새가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없듯 고전과 혁신, 원칙과 변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공존해야 한다. 세상에 새로운 좋은 것들이 가득해도 ‘오래된 것은 좋은 것’(Oldies but Goodies)이라는 말이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다. 사실 고전이란 단순하게 오랫동안 굳어진 진리가 아니라 동시에 끝없는 새로움을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칭호다.불과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굿 윌 헌팅’(1997)이 고전의 반열에 든 것도 단지 오래된 영화라기보다는 시선과 관점에 따라 끝없이 새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로맨스영화이며, 성장영화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영화’로도 꼽힌다. 법학, 수학, 역사 등등 거의 모든 학문에 재능을 지닌 천재소년 윌(맷 데이먼 분)은 상처투성이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이비리그의 본산 보스턴 남부에 사는 그는 MIT대학의 청소부로 일하며 대학생들도 어려워 쩔쩔매는 수학문제를 칠판에 낙서처럼 쉽게 풀어낸다. 그의 수학실력을 알아본 수학교수 램보(스텔란 스카르스고르드 분)는 그를 자신의 수하에 두고 싶어 하지만 정작 윌은 아랑곳 않는다. 동네친구들과 사고를 친 윌을 램보는 고액의 보석금을 내고 데려와 자신의 연구실로 끌어들이지만 윌은 고분고분하기는커녕 더욱 삐딱하게 나간다. 그의 상처를 달래고 보듬기 위해 정신과 의사까지 붙여도 소용이 없자 램보는 동창이자 라이벌인 션 맥과이어에게 윌을 맡긴다. 션은 영원한 ‘오 마이 캡틴’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했다. 영화는 윌과 션의 만남으로 진부한 성장영화가 아닌 인생영화로 반전한다. 마음을 닫은 윌과 션의 관계는 한 폭의 작은 그림 덕분에 풀린다. 영화에서 이 그림은 션이 그린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 영화를 연출한 구스 반 산트가 솜씨를 부린 것으로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윈즐로 호머(1836~1910)가 그린 유화 ‘안개경보’(The Fog Warning·1885)를 모사한 것이다.호머는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삽화가로 가장 미국적인 화풍으로 일컫는 풍경화가들의 모임인 ‘허드슨강파’(Hudson River School)의 일원이다. 이들은 미국에서 자생한 최초의 화파로 광활한 대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낭만적이며 사실적인 필치로 담았다. 허드슨강파의 풍경화는 6·25전쟁 전후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물레방아와 폭포, 초가집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소위 이발소그림의 원형이 되었다. 영화는 호머에게 상당 부분 빚졌다. 특히 윌과 션이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단초가 되는 그림은 호머의 ‘안개경보’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안개 때문에 잡은 고기를 버리고 빨리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잡은 청어를 가지고 사력을 다해 항구로 복귀할 것인가’ 하는 실존적 고민을 윌의 입장에서 풀어냈다. 영화 후반부에 윌이 그의 친구로 배운 것은 없지만 충고를 아끼지 않는 처키(벤 애플렉 분)와 광대한 하늘을 배경으로 저 멀리 조선소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 뒤로 노인들이 오래된 탑을 철거하고 있다. 처키는 범선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있다. 이것도 호머가 삽화가로 일하던 하퍼스 위클리(1873년 가을판)에 실었던 음각 목판화 ‘배짓기, 글로스터 항구’를 연상시킨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조선소와 철거지가 교차하는 대목에서 문화지리학자 피어스 루이스의 ‘경관 읽기에 필요한 공리’를 떠올리게 된다. 자연을 배제하고 인간이 만든 경관을 문화경관이라 하는데 문화경관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 왔고, 살고 있고,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보여 주는 증거다. 사실 엄청난 변화나 압력, 동기가 없다면 사람들은 크게 경관을 바꾸지 않는다. 항구 근처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계급은 불가피하게 스스로가 풍경의 일부가 되어 그 삶을 영위한다. 처키는 영화에서 통찰력 있는 말로 윌에게 충고한다. “내일 나는 일어나서 50살이 될 것이고 나는 여전히 이 일을 할 거야.” 이외에도 영화는 장면마다 문화적 경관을 놓치지 않는 관찰자로서 호머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초입에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라든가, 윌이 칠판 앞에서 문제를 푸는 모습도 호머의 작품 ‘칠판’에서 빌려 온 것이다. 사실 영화와 그림, 회화는 매우 흥미로운 관계다. 영화는 예술적인 문제를 풀고자 회화가 획득한 일련의 효과들을 이용한다. 회화의 고정성과 단면적인 성격은 영화의 유동성과 방향성과 어울려 서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다. 회화는 형상의 움직임은 없지만 관람객의 눈의 움직임에 의해 영화와 같은 연속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와 회화는 같으면서 다르고 또 다르면서도 같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이성과 감성, 두 가지 속성이 모두 필요한 게 수학이다. 윌은 아무도 손을 못 대는 수학문제,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은 램보 교수도 정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를 술술 푼다. 그가 수학문제를 머리로만이 아니라 직관 즉 마음으로 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사람에게는 머리도 중요하지만, 마음도 중요하다. 윌의 마음을 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했지만, 마음으로 다가간 이는 같지만 다른 상처를 공유한 션뿐이었다. 혁신도 좋고 새로운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어른과 선생 즉 고전과 전통 그리고 뿌리와 원칙도 필요하다. 스승은 없고 선생만 있는 이 시대에,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세상에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는 게 오로지 일자리뿐일까.
  • [고전으로 여는 아침] 낭독과 암송의 힘

    [고전으로 여는 아침] 낭독과 암송의 힘

    고대 그리스 교육은 인문 교양 교육의 전범이다. 첫걸음은 어린이 교육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자유롭게 놀게 하는 것을 교육의 근본 원리로 삼았다. 말을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 어머니와 유모가 구전동화를 들려주었고, 글을 배워 읽고 쓸 줄 알게 되면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게 했다. 필수 교과서는 기원전 8세기 서사시인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들’ 등 고대 최고 문인들의 고전 걸작들이었다. 아테네의 인본주의적 교육은 ‘파이데이아’(paideia)라 불렸다. 이러한 교육이 널리 보급된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교육체계는 인문정신이 쇠락해 가는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교육은 국가가 직접 책임지지 않고 부모의 자유에 맡겼다. 다만 전몰 용사들의 자녀는 국가가 교육을 책임지고 양육비도 댔는데, 이 경우도 소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개인교사에게 교육비를 지급했다. 교육의 첫 단계는 읽기와 쓰기 교육이었다. 플라톤(BC 427~347)은 ‘프로타고라스’에서 아테네 교육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이들이 읽는 법을 알게 되면 바로 위대한 고전주의 시인들의 다양한 시구를 큰 소리로 낭독하도록 했으며, 이어 전부 다 암송하도록 했다.” 아테네인들은 위대한 고전들을 교본 삼아 소년들이 옛사람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찬미와 칭송이 담긴 내용을 학습해 뛰어난 인물들을 선망해서 흉내 내고 그들을 닮기를 갈구하도록 만들었다. 어디 아테네 소년들뿐이랴. 알렉산드로스(BC 356~323)는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일리아스’를 꼭 머리맡에 놓고 수시로 읽었을 정도다. 아테네 소년들이 학습한 고전들은 인류의 고전으로 2700여년 이상 뭇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낭독과 암송은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문맹이 아님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분명한 행위다.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펼치고 낭랑하게 책을 읽던 정경을 상상해 보라. 더구나 서사시를 운율에 맞춰 읽어 나가노라면 눈의 집중과 함께 청각을 자극하는 자신의 목소리에 절로 감흥이 배가되지 않았을까. 구두점도 없고 띄어쓰기도 하지 않은 문자들을 정연하게 풀어 읽는 것도 특별한 능력이었다. 또 알렉산드로스가 모친이 보낸 편지를 말없이 읽어 부하들을 당혹하게 했듯, 낭독은 텍스트를 주변과 투명하게 공유하는 신뢰의 상징이기도 했을 것이다. 암송은 텍스트의 깊은 의미를 거듭 되새기며 내면화하는 데 효과가 있었을 터다. 음유시인들이 크게 존경받고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 교육에서 낭독과 암송이 사라진 것은 못내 아쉽다. 아름다운 시구 하나 제대로 읊조리지 못하는 인문 교육이라니. 자유학기제를 활용해 고전 낭독과 암송을 운용해 보라.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노주석의 서울살이] 걷고 싶은 도시의 꿈

    [노주석의 서울살이] 걷고 싶은 도시의 꿈

    구한말 서울은 불결(不潔)의 도시였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절, 파란 눈의 선교사와 여행가들은 인구는 많고, 도로는 좁고, 오물로 뒤범벅된 도시에 대해 혐오감 어린 악담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실학자들이 도로 확장과 가로 정비를 촉구하고 나섰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사람들이 길을 차지해 말을 탄 사람이 서로 마주치면 지나칠 수 없다”고 했고,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수레를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도로가 나쁜 것은 사대부 탓이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질타했다. 보다 못한 고종이 도성(都城)의 정비를 이채윤 한성부윤(당시 서울시장)에게 맡겼다. 개화파 이채윤은 간선도로 확장에 착수했다. 운종가의 공식 상인조합 건물인 시전행랑(市廛行廊)에 틈입한 무허가 가게, 이른바 가가(假家)를 정리했다. 시전에 딸린 방이 전방(廛房)이 됐다가 나중에 점방(店房)이 되고, 가가가 가게로 명칭이 변이됐으니 이들 가가가 큰길을 암세포처럼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대로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종로가 왕복 8차선의 도로폭을 유지하고 있는 건 이 과감한 정비 덕분일지도 모른다. 18세기 후반 장흥 출신 실학자 위백규가 그린 ‘한양도’에서 볼 수 있듯 2000여칸에 이르는 시전행랑은 오늘의 세종대로 일대에 맞먹는 불야성이었다. 시전행랑은 경복궁, 한양도성과 함께 한양의 3대 랜드마크였다. 1960년대 말 지금의 세운상가 터에 자리 잡은 2200채의 무허가 판자촌과 세계 최대 규모의 사창가 ‘종삼’(鐘三)을 밀어버린 ‘불도저 시장’ 김현옥의 업적에 버금가는 ‘원조 도심재정비사업’이라 할 만하다. 요즘 ‘걷자, 서울’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사람 인(人) 자 모양의 심벌을 길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서울시의 새로운 보행 정책이다. 박원순 시장은 “걷는다는 것은 건강·안전이고 행복·자유이며 연결”이라면서 “걸으면 시민 건강이 살고, 서울 경제가 살고, 지구 환경이 살아난다”고 보행천국론을 강조한다. 백번 천번 지당한 말씀이다. 캐나다와 이스라엘의 두 도시학자가 쓴 ‘도시의 정체성’(The Spirit of Cities)이라는 책을 읽어 보면 어떤 도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걷는 것이다. 천천히 걷다 보면 그 도시의 사람들, 역사와 문화, 사회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서울은 제대로 걸을 수 있는 도시인가. 심벌을 붙이고, 길에 스토리를 입힌다고 될 일이 아닐 성싶다. 최대의 방해물은 노상 적치물이라고 본다. 새삼 말하지만 서울은 걷는 자의 천국이 아니라 노상 적치물의 천국이다. 가끔 서울의 보행로가 공공보도인지, 가게의 점유지인지 헷갈릴 정도다. 너나없이 길에 상품 진열대나 물품을 내두고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지만 제대로 단속이 이뤄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노상 적치물 실태조사 현황도 공개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보도환경 개선은 뒷전인 채 딴전이다. 언제까지 보행자가 노상 적치물을 피해 다녀야 하나.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은 상인들이 청계천을 떠나도록 설득했기에 가능했다. 정녕 ‘걷는 도시, 서울’을 만들려면 보행 흐름을 끊는 길거리의 무법자 적치물부터 상가와 점포 안으로 들여놓도록 ‘노상 적치물과의 전쟁’부터 선언하는 것이 순서다. 시류에 영합하는 인기 정책에 예산을 쓰기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도시의 미래를 생각하기를 고언한다. 그래야 업적으로 남는다.
  • 데이비드 보위부터 카스트로까지…올 해 세상 떠난 명사들

    데이비드 보위부터 카스트로까지…올 해 세상 떠난 명사들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던 2016년 한 해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많은 해외명사들이 숨을 거둔 해이기도 하다. 정치, 문학, 예술, 학술, 스포츠계에 길이 남을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떠난 이들의 생애를 돌아봤다. 1. 데이비드 보위(1947.1.8 ~ 2016.1.10) 본명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 1947년 영국 남부 브릭스톤에서 태어나 1963년부터 가수, 작곡가 겸 배우로 활동했다. 50년 넘게 혁신적 예술가로 추앙됐으며 70년대의 작품들로 특히 인정받았다. 특유의 독창적 음악세계와 무대연출은 세계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전에 1억 4000만 장의 앨범을 판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말년에 세간에 알리지 않은 채 간암으로 투병했으며 1월 10일 마지막 앨범인 ‘블랙스타’가 출시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2. 알란 릭먼(1946.2.21 ~ 2016.1.14) 영국의 배우. 활동 초기엔 왕립연극학교를 나와 로열셰익스피어극단에서 고전극과 현대극을 연기했다. 영화 활동으로는 ‘다이 하드’(1988)의 악역 ‘한스 그루버’로 유명세에 올랐고, 노년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역으로 세계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6년 영화 ‘라스푸틴’에서 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을 연기해 골든글로브 상을 받았다. 2015년 4월, 19세 때부터 50년간 교제해왔던 영국 노동당 당원인 리마 호튼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으나 이듬해 1월 췌장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3. 위르켄 힌츠페터(1937.7.6 ~ 2016.1.25)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1963년 처음 공영방송 영상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1967년 베트남 전쟁을 취재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목숨을 걸고 당시 계엄 사태의 심각성을 취재, 광주의 비극을 외부 세계에 알리면서‘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게 된다. 같은 해 9월엔 김대중 전 대통령 사형 판결에 항의하며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1986년에는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폭력으로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일시적으로 생명이 위독해지면서 “국립 5·18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1월 25일 독일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둔 이후 생전 밝힌 뜻에 따라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안장됐다. 4. 움베르토 에코 (1932.1.5 ~ 2016.2.19)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이자 미학자이다. 1956년 논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문학비평계와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래 현대미학과 문학비평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학계 총아로 떠올랐다. 1968년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와 ‘기호학 이론’등 저서로 세계적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기호학·철학·미학·역사학 등 여러 학술 분야에 더불어 9개 국어에 능통한 천재로 알려져 있으며 제임스 조이스 학회 명예 이사, 예일대 방문교수, 볼로냐 대학 교수, 이탈리아 인문학 연구소 소장 등 여러 직위를 역임했다. 또 케임브리지 하버드 등 세계 명문에서도 강의했다. 출판계에서 일하던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해 1980년 최초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발표한 이래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등 작품을 출간하며 소설가로서도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오랜 암 투병 끝에 올해 2월 19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5. 앨빈 토플러 (1928.10.3 ~ 2016.6.27)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의미하는 ‘제3의 물결’을 예견한 미국의 미래학자겸 작가. 젊은 시절 생산직 노동자, 백악관 출입기자, 포춘지 노동관계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경영·첨단기술에 대한 지식과 관심사를 넓혀 관련 저술을 시작했다. 뉴욕대학교·마이애미대학교 등 5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코넬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IBM등 대형 기업들의 의뢰로 첨단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했으며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 정부 및 비영리민간단체, 일반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 프로젝트와 강연을 진행했다. 본인과 같이 작가 겸 미래학자인 하이디 토플러와 결혼해 연구와 저술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6월 27일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 6. 무하마드 알리 (1942.1.17.~2016.6.3.)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명언을 남긴 복싱계의 전설. 12세였던 1954년에 아마추어 복서 활동을 시작해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약 20년 간 활약하며 총 19회에 걸쳐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며 통산전적 55승 5패를 기록했다. 베트남 전쟁 징병을 거부했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기소됐으나 오랜 법정싸움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때문에 3년 5개월의 경력 공백이 발생했지만 곧 재기에 성공, 1981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권투뿐만 아니라 흑인민권운동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노년에는 파킨슨병을 앓았으며 6월 3일 합병증인 호흡기 질환으로 영면에 들었다. 7. 피델 카스트로 (1926.8.13 ~ 2016.11.25) 쿠바 해방을 이끈 혁명가인 동시에 쿠바를 장기간 지배한 독재자. 스페인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1945년 아바나대에 입학하며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1947년 쿠바인민사회주의당에 입당하며 사회주의자가 됐다. 195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부에 저항,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수감되면서 혁명가로서의 이름을 처음 널리 알렸다. 2년 뒤 사면돼 멕시코로 망명해 체 게바라 등 중남미 해방운동가를 흡수한 뒤 1956년부터 쿠바에서 전쟁을 재개한 끝에 1959년 수도 아바나에 입성, 내각 책임제의 국무총리로 취임하면서 혁명에 성공한다. 혁명으로 군부정권을 타도했으나 정작 본인도 쿠바를 장기간 독재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1965년에는 쿠바를 일당 사회주의국가로 만들고 스스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에 올랐으며 1976년에는 각료 회의 의장 및 국가평의회 의장, 쿠바군 최고 사령관 등을 겸직하며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2006년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 권력을 이양하고 2011년 정계에서 공식 은퇴했으며 지난달 25일에 사망이 공식 발표됐다.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복지정책을 실시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소련 해체 이후 중남미의 사회주의 노선을 이끌면서 사회주의의 대부로 높이 평가 받은 바 있으나 강력한 언론탄압과 반대파 숙청을 자행한 독재자라는 비난 역시 면할 수 없었다. 카스트로 사망 소식을 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카스트로라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주변의 세상과 인물들에 남긴 거대한 족적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은 역사의 몫일 것”이라는 말로 고인을 기렸다. 8. 조지 마이클 (1963.6.25 ~2016.12.25) ‘Last Christmas’로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그룹 왬!(Wham!)의 멤버 조지 마이클이 12월 25일(현지시간) 크리스마스 오후에 53년의 짧은 일기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조지 마이클은 왬!으로 활동하던 1970년대 ‘Last Christmas’이외에도 ‘Club Tropicana’ 등 히트곡을 냈으며 왬!활동 막바지부터 이후 솔로로 활동하며 ‘Careless Whisper’, ‘Outside’와 같은 곡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약 40년의 활동기간 동안 마이클이 판매한 음반은 1억장 이상에 이르며 지난 1990년 발표된 앨범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을 곧 재발매할 예정이었다.고인은 25일 오후 1시 42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죽음을 둘러싼 수상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 2011년에도 폐렴으로 위독했던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의 홍보담당자는 “어렵고 힘든 시기에 유족들의 사생활이 침해돼선 안 될 것”이라며 “현재 단계에서는 추가로 발표할 사안이 없다”고 밝혔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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