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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템’ 주지훈, 신린아와 다정다감 케미 ‘매너다리+따뜻 눈빛’

    ‘아이템’ 주지훈, 신린아와 다정다감 케미 ‘매너다리+따뜻 눈빛’

    ‘아이템’ 주지훈이 신린아와 다정다감 케미를 뽐냈다. 주지훈은 MBC 월화미니시리즈 ‘아이템’(극본 정이도, 연출 김성욱)에서 유일한 혈육인 조카 강다인(신린아 분)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강곤 역으로 매회 열연을 펼치고 있다. 위험천만한 액션 연기는 물론 보는 이들을 눈물짓게 만드는 오열 연기까지 다각적인 강곤의 감정선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극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 강곤은 검찰청에서 ‘꼴통 검사’라 불릴 만큼 냉철하고, 불의에 맞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다. 반면 조카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최고의 삼촌. 카메라 뒤에서도 주지훈의 조카 바라기는 계속됐다. 오늘(11일) 공개된 ‘아이템’ 비하인드 스틸에는 극 중이나 밖에서도 다정다감한 주지훈의 모습이 담겨있다. 188cm의 장신인 주지훈은 신린아가 연기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매너다리로 시선을 맞춰주고 있다. 더욱이 신린아의 연기에 집중하며 응원하듯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과 미소는 보는 이도 덩달아 웃음 짓게 만든다. 또한 주지훈은 추운 날씨에 진행되는 촬영에 아역인 신린아가 추울까 핫팩을 나눠 주며 살뜰히 챙기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뿐만 아니라 주지훈은 현실 삼촌처럼 다정하게 신린아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가하면 눈을 맞추기 위해 몸을 낮춰 대화하는 등 상대를 배려하는 세심함이 흐뭇함을 자아낸다. 주지훈은 극중 조카 강다인의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거나, 둘만의 특별한 인사법을 선보이며 훈훈한 삼촌 조카 케미를 발산해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조카 앞에서만 무장해제되는 강곤이기에 많은 시청자는 하루빨리 강곤이 강다인을 되살려내 두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에 중반부로 들어선 ‘아이템’에서 주지훈의 활약에 기대감이 고조된다. 한편, 지난 회 말미 강곤이 조세황(김강우 분)의 차에 치여 팔찌를 빼앗긴 예측불허의 전개를 펼친 MBC 월화미니시리즈 ‘아이템’은 오늘 밤 10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그래도, 희망은 싹튼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내일’을 일구는 사람들 담은 다큐 ‘봄은 온다’

    그래도, 희망은 싹튼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내일’을 일구는 사람들 담은 다큐 ‘봄은 온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진도 9.0의 강력한 지진이 일본 동북 지역을 뒤흔들었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된 동일본 대지진 직후 발생한 피난민 수만 약 47만명. 새로운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가혹한 기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무너진 땅위에서도 희망의 싹을 보듬는 사람들이 있다. 재일동포 3세인 윤미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봄은 온다’(14일 개봉)는 재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윤 감독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10개월간 지진 피해를 입은 이와테현과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에서 마을 재건에 힘쓰는 100여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해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6년 제작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다큐멘터리 ‘꽁치와 카타르 오나가와의 사람들’이 완성됐을 무렵의 ‘분함’이 직접적인 원동력이 됐다. ‘꽁치와 카타르 오나가와의 사람들’은 미야기현 오나가와 마을의 모습을 2년 가까이 촬영한 작품으로, 2016년 2월에 완성해서 5월에 극장에서 개봉했다. 오나가와는 인구수 대비 희생자의 비율이 가장 높았던 곳이다. 거기서 ‘다함께 마을을 부흥시키자’라고 이를 악물고 버티는 사람들을 만났다. 2015년 12월 크리스마스에 영상이 완성되었지만 마을의 부흥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사람들의 초조함도 계속됐다. 한 편의 영화로 전달할 수 있는 것, 남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것이 분했다. 그래서 끝내고 싶지 않았고, 더욱더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품에는 아픔과 상실을 겪었지만 서로 연대하고 위로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들을 섭외하게 된 과정은. “다큐멘터리 제작부터 완성까지 10개월이라는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취재를 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촬영을 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됐다. 처음부터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중에서 몇 사람을 선별한 것이 아니라 촬영을 하면서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선정했다. 인물을 선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지침은 ‘자신이 나서서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었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나쁜 기억을 남기지 말자’는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비참하고 슬픈 동북’의 이미지를 ‘부흥하는 동북’, ‘희망이 태어나는 동북’으로 다시 쓰고 싶다는 나의 의지를 전달하고 그 다음은 상대방이 이야기해 주는 것에 맡겼다.” -이번 작품을 만들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처음에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 가보니 그분들이 먼저 나를 신경써줬고, 이야기를 들려줬다. 단지 촬영지에서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과 ‘공간에 함께 있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이벤트가 있으면 돕고,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작진이 (그들에게) 이질적인 존재가 되지 않도록 신경썼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화제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슬픈 이야기를 들을 때 울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 촬영팀이었다. ‘사람의 아픔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강하고 부드러워지는구나’라는 생각에 또다시 눈물을 짓곤 했다.” -세월호 참사로 힘든 시간을 겪은 한국인에게도 이 작품은 남다르게 다가갈 것 같다.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재해나 사고로 가족을 잃은 분들의 원통함과 억울함,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상처는 마음 속 깊이 자리잡아 없어지지 않는다. 마음 속에 있는 슬픔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슬픔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래도 괜찮아’라는 것을 사회 전체가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연자인 엔도 신이치가 ‘말로 하지는 않지만 모두 각각 무언가를 안고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라고 말했듯 이 작품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고민이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힘든 인생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본보기를 동북 지역의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일본의 이야기, 재난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과 다름이 없는, 어쩌면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의 이야기로 이 영화를 봐주시면 기쁠 것 같다.” -‘봄은 온다’가 스크린 데뷔작이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 사람들의 좋은 점을 조명하고 싶다.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가능성을 찾아내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한일 관계가 최악이라는 인식 때문에 ‘재일한국인으로서 한국과 일본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도 찾아가고 싶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나는 학교가 싫어요”

    [그때의 사회면] “나는 학교가 싫어요”

    부산 감정초등학교가 학생 감소로 폐교돼 마지막 졸업식이 눈물바다가 됐다. 학급당 평균 학생수가 80명에 육박했던 ‘콩나물 학교’ 시절은 ‘호랑이 담배 먹던 이야기’가 됐다. 교실이 부족했던 강원도 속초 어느 초등학교는 교실을 반으로 쪼갰다. 교단과 교구 놓을 자리를 뺀 6평에 70여명이 수용됐다. 서 있기도 어려울 공간이었으니 악취가 첫 번째 문제였다(경향신문 1961년 12월 9일자). 폭발적 인구 증가로 서울 사정은 더 심했다. 1968년 서울 전농초등학교는 123학급(한 학년에 20반 이상)에 학생수는 1만 230명이었다. 학급당 평균 83.1명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수업을 받는 바람에 학생들은 옴짝달싹하기도 어려웠고 가위나 칼을 쓰다 다치기도 했다. 교사는 학생 이름을 다 외우지 못했고 한 달이 되도록 담임교사의 얼굴을 모르는 학생이 수두룩했다. 교실이 모자라 2부제 수업은 보통이었고 3부제도 있었다. 1972년에 서울 숭인초등학교는 학생수 1만 1965명의 ‘동양 최대 매머드 학교’였다(동아일보 1972년 6월 21일자). 학생수를 줄이고자 숭곡초교를 신설했는데 땅을 못 구해 숭인초교 부지를 반으로 나눠 그 안에 새 건물을 지어 쌍둥이 학교가 됐다. 1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등교하는 풍경을 신문은 ‘전선열차가 한꺼번에 들이닥친 서울역’이라고 썼다. 쏟아져 들어오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전 교사가 새벽부터 교통 정리에 동원됐다. 학교 신설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 서울 강남과 여의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77년 서울 반포초등학교의 6학년 학급 학생수가 98명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이듬해 독산초등학교 2학년 5반 학생수가 104명에 이르며 깨졌다. 세계 최고다. 책상을 칠판 바로 앞까지 놓아 맨 앞에 앉은 학생은 칠판 글씨가 안 보인다고 아우성이었고 뒷자리 어린이들의 귀에는 교사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동아일보 1978년 7월 8일자). 넘쳐 나는 학생들로 운동장도 비좁아 축구 등 구기 경기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조회는 2~3팀으로 나눠서 해야 했고, 체육 시간은 10여반이 겹쳐 화단이나 담벼락 옆에서 도수 체조를 해야 했다. 운동회도 1·3·5학년과 2·4·6학년이 날짜를 달리해 열었다(경향신문 1976년 3월 31일자). 운동장에서 덩치 큰 상급반 학생들에게 치인 저학년 학생 입에서는 “학교가 싫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덩달아 교사도 부족해 서울 불광초등학교에서는 교사의 연수, 휴가로 학생들을 보름 사이 세 번이나 이웃 반들에 옮기고 합반시켜 의붓자식 취급한다는 항의를 받았다(경향신문 1965년 11월 4일자).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생존 세계 최고령’ 116세 日 할머니 “기네스 인정받은 지금, 가장 즐거워”

    ‘생존 세계 최고령’ 116세 日 할머니 “기네스 인정받은 지금, 가장 즐거워”

    올 1월 만 116세 생일을 맞은 일본 여성 다나카 가네가 영국 기네스월드레코드로부터 남녀를 통틀어 ‘생존하는 세계 최고령’으로 인정받았다고 일본 언론들이 10일 전했다. 다나카는 지난 9일 자신이 지내는 후쿠오카시 노인시설에서 기네스월드레코드 측으로부터 인정증서를 전달받았다. 인정기록은 116세 66일이다. 다나카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현재까지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지금”이라고 답했다. 1903년 1월 2일 태어난 다나카는 19세에 결혼해 남편과 미곡상 일을 함께하며 4명의 자녀를 키웠다. 현재 하루 세 끼 음식을 모두 남기지 않고 먹고 있으며 간식으로 초콜릿과 탄산음료를 즐긴다고 한다. 평소에는 보조기구를 이용해 걷거나 시설에서 지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한다. 다나카에 앞선 기록 보유자는 지난해 7월 117세에 사망한 미야코 지요로 역시 일본 여성이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세계 최고령 할머니 “120살까지 살고 싶다”

    세계 최고령 할머니 “120살까지 살고 싶다”

    일본 후쿠오카시에 거주하는 다나카 가네(116) 할머니가 영국 기네스월드레코드로부터 남녀를 통틀어 ‘생존하는 세계 최고령’으로 인정받았다고 일본 언론이 10일 전했다. 교도통신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다나카 할머니는 자신이 지내는 후쿠오카시 노인시설에서 전날 기네스월드레코드 측으로부터 인정증을 전달받았다. 정확한 인정 기록은 116세 66일이다. 다나카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현재까지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을 묻자 즉석에서 “지금”이라고 답했다. 인정증 수여식에는 다카시마 소이치로 후쿠오카 시장도 참석해 축하의 말을 건넸다. 다나카 할머니는 장수 국가로 꼽히는 일본에서도 최고령자다. 1903년 1월 2일에 태어난 다나카 할머니는 19세에 결혼해 남편이 운영하는 미곡상 일을 함께했다. 4명의 자녀를 뒀다. 다나카 할머니는 요양시설에서 하루 세끼를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고 있으며 간식으로 초콜릿과 탄산음료를 좋아한다고 한다. 지난해 취재진에게 “맛있는 것을 먹고 공부하고 재미있게 노는 것 외에 하고 싶은 것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 시설 안에서 보행 보조기를 이용해 걷거나 시설에서 지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즐기곤 한다. 다나카 할머니는 가족에게 “120세를 목표로 하겠다”고 말했다. 다나카 할머니에 앞서 기록 보유자는 지난해 7월 117세로 사망한 미야코 지요 할머니였다고 교도통신은 덧붙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안재모, “비닐하우스에 살 정도로 어려웠다” 충격

    안재모, “비닐하우스에 살 정도로 어려웠다” 충격

    안재모가 안방극장에 감동을 안겼다. 8일 방송된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배우 안재모는 어릴 적 의남매처럼 함께 지낸 동생들을 찾아 나섰다. 먼저 예전에 살던 동네를 찾은 안재모는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난 후 비닐하우스에 살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겪었던 일화를 전하며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다는 고생하는 부모님을 걱정했던 마음이 컸다”는 그의 속 깊은 면모는 보는 이들의 더욱 가슴 찡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들어준 남매와의 추억을 더듬던 안재모는 동생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설렘과 부푼 기대를 안고 행복한 추적에 시작했다. 옛 기억에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 지켜보는 시청자들까지 남매와의 만남을 고대하게 만들었다. 단서를 찾기 위해 남매와 연결고리가 되어 준 교회로 발길을 옮긴 안재모는 그곳에서 뜻밖의 선물 같은 시간을 갖게 됐다. 함께 교회를 다닌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 안재모는 IMF 이후 다시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하루 아침에 가족 모두 집을 떠나야 했고, 남매는 물론 교회 사람들에게 인사조차 남기지 못했던 속사정을 전하며 시청자들의 눈가를 촉촉이 적셨다. 폐가 될까 연락도 하지 못했다는 그는 배우로 성공한 이후에도 쉽사리 교회를 찾지 못했던 가슴앓이를 전하며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교회 사람들은 “모두 안재모의 가족을 그리워했다”고 화답, 늘 그를 응원하고 격려해왔다며 더없이 깊은 감동을 안겼다. 교회 사람들로부터 받은 따뜻한 마음을 한껏 안아들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안재모는 드디어 동생 이상훈 씨와 뜨겁게 해후, 안방극장을 감동의 물결로 물들였다. 얼굴을 보자마자 터지는 웃음과 함께 아무 말 없이 서로를 꼭 껴안으며 감격의 순간을 만끽하는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뭉클함을 선사했다. 이제는 어엿한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여동생 이상은 씨와도 영상 통화로 만나 긴 말 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덩달아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상훈씨는 “재모 형은 착하고 잘생기고 마음씨 좋고 운동까지 잘하는 형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구파발의 박보검?”이라고 말해 기분 좋은 폭소를 터트렸다. 그러면서 말없이 떠났던 그날에 대해 “서운했다”라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 그만큼 각별하고 애정했던 이들의 관계를 엿볼 수 있게 해 더욱 진한 여운을 남겼다. ‘TV는 사랑을 싣고’를 통해 공개된 안재모의 추억여행은 힘들었던 유년 시절 즐거운 추억을 교류한 의남매와 버팀목이 되어준 교회 사람들과 따뜻하고 정겨운 시간을 갖으며 마무리, 안방극장까지 따스한 웃음과 기운을 전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전지적 참견 시점’ 수현, 미국 뉴욕 일상 두 번째 ‘눈물 보인 이유?’

    ‘전지적 참견 시점’ 수현, 미국 뉴욕 일상 두 번째 ‘눈물 보인 이유?’

    ‘전지적 참견 시점’ 수현이 매니저 고백에 눈물을 보였다. 지난 9일 방송된 MBC ‘전지적 참견 시점’ 수현이 매니저의 진심 어린 고백에 감동의 눈물을 보였다. 이날 방송에서는 수현과 매니저의 미국 뉴욕 일상 두 번째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른 시간 조깅을 하고 숙소로 돌아온 수현은 능숙하게 셀프 스타일링을 시작했다. 매니저는 “해외 일정은 공식 일정이 아닌 이상 누나 혼자 코디와 메이크업 모두를 소화한다”고 밝혔다. 외출 준비를 마친 수현과 매니저가 만난 이는 다름 아닌 댄 포글러.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 함께 출연한 인연으로 우정을 이어오게 된 수현과 댄 포글러는 반갑게 인사한 후 중국에서 함께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 이후 수현은 댄 포글러가 진행하는 인터넷 라디오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가 협소해 작음 소음도 방해가 될 수 있는 만큼, 매니저는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수현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 뒤 밖으로 나섰다. 그는 여느 관광객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기념품 쇼핑을 하는 등 자유 시간을 만끽했다. 모두가 만족하는 만찬이 끝나고 매니저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매니저는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댄 포글러에게는 초콜릿을, 초콜릿을 먹지 않는 수현에게는 초콜릿향 향초를 선물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특히 매니저는 수현에게 처음으로 작성한 손편지까지 전해주며 감동을 자아냈다. 매니저는 손편지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저는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누나가 표현을 잘한다. 누나와 함께 다니면서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며 “손편지 써 주면 매일 읽을 거라고 말씀을 해 주셔서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고, 수현은 “저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이후 매니저는 “표현 못 하는 매니저인데, 누나가 잘 표현해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는 표현을 잘할 수 있는, 더 믿음이 갈 수 있는 매니저가 되겠다”며 “해외랑 한국이랑 다 오가면서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전했다. 무뚝뚝한 매니저가 전하는 진심에 감동한 수현은 “이렇게 말로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다”며 감동의 눈물을 보였다. 수현은 매니저를 향해 “나야말로 고맙다. 아이 러브 유”라고 화답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태국 성전환자 미인대회서 흑인 여성 첫 우승…트럼프에 일침 날리기도

    태국 성전환자 미인대회서 흑인 여성 첫 우승…트럼프에 일침 날리기도

    태국에서 열린 ‘2019 세계 성전환자 미인대회’(미스 인터내셔널 퀸)에서 처음으로 흑인 여성이 우승을 차지했다고 AFP통신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파타야에서 열린 대회에는 전 세계 19명의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여성(MTF, Male to Female)들이 참가했다. 이 중 미국 플로리다 출신 흑인 여성인 자젤 바비 로열(31)이 우승 왕관을 차지했다. 2004년 첫 대회 이후 흑인 참가자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AFP는 전했다. 우승자가 발표되자 바비 로열은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환호했고, 왕관이 씌워질 때엔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바비 로열은 전 세계 유색인종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영감을 불어넣어 주기를 희망한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에이즈 예방 활동가이기도 한 그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제한하려는 자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도 일침을 날렸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마디 한다면 ‘제발 다음 대통령 선거에는 나서지 말아달라’라고 말하고 싶다고 꼬집었다. 바비 로열은 이번 대회에서 ‘베스트 탤런트 상’도 받았다. 15년째 대회를 주관한 태국은 아시아에서도 상대적으로 트랜스젠더에 개방적인 나라로 꼽힌다. 이달 24일 총선을 앞두고 최초로 트랜스젠더가 총리 후보로 출마한다는 소식이 최근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또 작년 태국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에선 그 동안 66년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스페인 출신의 트랜스젠더 여성이 참가해 화제를 모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월드피플+] 6명 고아 키우며 평생을 바친 100살 독신 할아버지의 삶

    [월드피플+] 6명 고아 키우며 평생을 바친 100살 독신 할아버지의 삶

    6명의 고아를 키우며 한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100살 할아버지의 사연이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하얼빈 TV는 지난 4일 100세 생일을 맞은 펑윈송(彭云松) 할아버지의 사연을 소개했다. 사연은 1954년 당시 35살의 펑 씨가 철길 위에서 굶주린 8살 남자아이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금세 쓰러질 듯 굶주린 아이에게 만두를 건넨 펑 씨는 차마 아이를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나랑 함께 가자꾸나”라고 말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15년간 그는 5명의 남자아이와 1명의 여자아이를 집에 들였다. 모두 버림을 받거나 부모를 여읜 채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이었다. 이렇게 각기 성이 다른 6명의 아이는 한집에 살면서 가족이 되었다. 펑 씨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하얼빈의 공사장에서 막노동하거나, 폐지를 주우며 돈을 벌었다. 1954년 당시 한 달 월급은 30위안(한화 약 5000원)에 불과했지만, 귀갓길에는 늘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들고 왔다. 또 누가 맛있는 걸 주면 잘 간직했다가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먹였다. 아이들은 날마다 아빠가 돌아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동네 어귀에 푸른 작업복을 입은 아빠의 모습이 보이면 6명의 아이는 한꺼번에 달려가 아빠를 맞았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나눔의 기쁨은 컸다. 한번은 중추절에 펑 씨가 받은 월병이 하나뿐이었다. 펑 씨는 월병 하나를 6조각 내어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먹였다. 아이들은 평생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그 시절 나누어 먹었던 작은 월병 조각을 꼽는다. 펑 씨에게는 한가지 신념이 있었다. 아이들을 비단 먹고, 입히는 것뿐 아니라 제대로 교육을 받도록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가난했고, 아이들 학비를 벌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아이들을 돈벌이에 동원하지 않았다. 한번은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폐지를 줍다가 펑 씨에게 들켰다. 그는 “또다시 폐지를 줍는다면 다시는 너희를 키우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돈을 벌려고 욕심을 내다보면 그릇된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웃들은 펑 씨에게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고, 어서 장가를 들라”며 여자를 소개해 주었다. 여성은 펑 씨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6명의 고아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줄행랑을 쳤다. 아이들은 아빠가 결혼하면 버림받을까 두려워 “아빠,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펑 씨는 “누가 너희들을 버린다고 했느냐?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절대 그럴 리도 없다”고 말했다. 이후 누가 선을 보여준다고 하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펑 씨의 보살핌에 아이들은 모두 바르게 자라나 성인이 되어 제각각 가정을 꾸렸다. 자식들은 서로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했지만, 펑 씨는 홀로 고향인 산동성의 누추한 집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2013년 펑 씨가 94살 되던 해, 더는 참을 수 없던 자식들의 간곡한 설득에 비로소 하얼빈으로 돌아와 자식들과 살고 있다.한편 각기 성이 다른 6명의 자식의 평생소원은 성씨를 ‘펑’ 씨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펑 씨는 “너희들이 비록 고아일지라도 근본을 나타내는 성이 있는데 이를 바꿀 순 없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2013년 그의 자식들은 눈물을 쏟으며 “다음 생에 태어나도 우리는 한 가족이다”라면서 ‘성’을 바꾸게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펑 씨는 자식과 함께 한 지 60여 년 만에 아이들에게 ‘펑’ 씨 성을 허락했다. 한때 세상에 버림받아 홀로 남겨져 어둠 속에서 살아갔을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반듯하게 자라 행복한 가정을 일구었다. 장성한 자식들은 펑 씨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기적’이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갚고 있다. 다섯째 아들은 17년 전부터 노인을 위한 무료 서비스 여관을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130명이 넘는 과부, 빈곤 노인을 위해 무료 숙박, 음식을 제공하는데 100만 위안(1억700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그는 “아버지에게 배운 인애(仁爱) 정신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100살이 된 펑 씨는 “내가 아이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지는 못했을지라도 반듯하게는 키웠다”면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손주들이 할아버지에게 수시로 연락을 하고 찾아온다. 빈곤한 생활이었지만, 가슴으로 품은 고아들은 아들, 딸이 되어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가져다주고 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김정숙 여사 편지 받은 ‘칠곡 가시나들’이 눈물 흘린 사연?

    김정숙 여사 편지 받은 ‘칠곡 가시나들’이 눈물 흘린 사연?

    김정숙 여사가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주인공인 할머니들에게 책주머니와 편지를 전달했다. ‘칠곡 가시나들’ 제작사 단유필름은 “7일 칠곡 복성2리 배움학교에 김정숙 여사의 선물이 전달됐다”며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프린팅한 책주머니 여덟 개에 할머니들 각자의 ‘서명’이 따로따로 인쇄돼 있었다”고 8일 밝혔다. 지난 4일 영화를 관람한 김정숙 여사가 보낸 편지에는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처음으로 이름 석 자를 쓰고, 처음 편지를 쓰고, 처음 우체국에 가고, 아무도 ‘꿈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던 세월을 건너, 가수라는 꿈을 찾아 노래자랑에도 나가고…. ‘너무 늦은 처음’, 하지만 이제라도 스스로 찾아내신 ‘그 모든 처음’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어 “이제 ‘가시나들’이라는 말은, 나이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패기, 나이에 꺾이지 않고 설렘과 기쁨의 청춘을 살아가는 지혜, 유쾌하고 호탕한 유머와 사려 깊은 통찰…. 그런 말들로 다가옵니다. 과거와 추억 속에 살지 않고, 날마다 두근두근한 기대로 오늘을 사는 칠곡 가시나들의 ‘내 나이 열일곱’이라는 선언에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응원이 담겼다.단유필름은 특히 “‘나는 박금분’, ‘나는 곽두조’, ‘나는 강금연’, ‘나는 안윤선’, ‘나는 박월선’, ‘나는 김두선’, ‘나는 이원순’, ‘나는 박복형’ 당당하게 말하는 그 이름들 앞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라는 대목에서 할머니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이라는 질곡의 삶을 살아온 할머니들을 통해 나이 듦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한 것에 대해 김정숙 여사는 “‘칠곡 가시나들’의 즐거운 감탄이 더 많은 사람에게 번져가도록 해야겠습니다.”라며 고령화 시대의 정서적 복지에 대한 다짐을 드러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은 1930년대에 ‘가시나’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박해와 가난 속에서 한글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80줄에 들어 한글을 배우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일상의 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여기는 중국] 10년 간 몰랐던 아빠의 죽음…한 초등생의 눈물 일기

    [여기는 중국] 10년 간 몰랐던 아빠의 죽음…한 초등생의 눈물 일기

    10년 전 사망한 아버지의 희생 소식을 천신만고 끝에 접한 초등생의 일기장이 공개돼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중국 양저우(扬州)에 거주하는 올해 12세의 후보 군. 최근 그는 지난 2009년 사망한 아버지 후용페이 씨의 소식을 접한 뒤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해 타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것으로 알고 지냈기 때문. 하지만 최근 확인한 후 군의 아버지는 지난 2009년 티베트 자치구 지역 일대의 건설 현장에서 근무 중 전우 2명을 대신해 전사한 군인 출신이었다. 후용페이 씨는 사망 당시 국경 지대 초소 건설 현장 인근에서 높이 30m의 절벽 인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2명의 전우 증언에 따르면, 당시 후용페이 씨는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바위에 전복된 차량에 탑승한 채 옆 좌석에 있던 전우 2명을 향해 굴러 떨어지던 바위를 향해 자신의 몸을 밀어 넣으며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사한 후용페이 씨 덕분에 당시 사고 현장에 있던 2명의 전우들은 무사히 구출, 생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출생 16개월에 불과했던 후 군의 미래를 위해 가족들은 아버지 후 씨의 전사 소식을 숨기기로 약속했다. 이후 후 군은 지난 10년 동안 아버지 후용페이 씨가 해외 원정 출장 중이며 곧 귀국할 것으로 믿어 왔던 것. 특히 후 씨의 사망 이후 줄곧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후 군의 어머니 주 씨(39)는 후 군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아버지 후용페이 씨의 사망에 대한 사실을 발설하지 말 것을 부탁해 왔다. 주 씨는 매년 학년과 담임 교사가 변경될 때마다 남편의 사망 사건을 감출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때문에 후 군은 아버지 후용페이 씨의 사망이 있은 후 10여년이 지난 올해에 이르러서야 그가 전우를 위해 희생, 전사한 군인 출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후 군은 이후 자신의 일기장에 ‘나의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약 2000자의 장문의 글을 작성, 이를 온라인에 공개했다.해당 일기장에는 지난 10여년 동안 후 군이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어머니 주 씨에게 질문을 이어갔던 사례와 그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이라는 후 군의 효심이 담겨져 있다. 특히 후 군은 ‘다른 집 친구들은 모두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 왜 아버지가 없느냐. 먼 나라에서 돈을 벌고 있다는 아버지는 대체 전화로도 연락이 안되는 이상한 곳에 있는 것이냐’며 어머니를 힐난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후회한다는 내용을 일기장에 적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줄곧 할머니와 할아버지 등 아버지 쪽 식구들의 생계를 모두 책임지고 있다. 특히 친할머니는 과거 정신 질환 경력이 있는 탓에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상태인데 어머니는 생계와 가정 살림을 모두 홀로 도맡아 해왔다’고 적었다. 실제로 후 군의 어머니 주 씨는 남편의 사망 이후 낮에는 의류 제작 공장에서 근무, 야간에는 세탁소에서 빨래감을 수거, 배달하는 등 가족 생계를 위해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후 군은 최근 그의 어머니 주 씨와 함께 전우를 위해 희생당한 아버지를 기리는 열사 공원을 방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후 군은 “어머니가 저에게 진실을 알려줄 때가 왔다고 하시면서 아버지를 기리는 곳에 함께 데려가 줬다”면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만큼 마음이 저렸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을 내가 지켜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하는 것은 분명 가슴이 아프고 괴로운 일이다”면서도 “하지만 아버지는 전우 2명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하신 분이라는 점에서 저 역시 그 죽음을 숭고하게 여기고 살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함께 가요” 영정 품은 노부부는 마지막 잠에 들었다

    “함께 가요” 영정 품은 노부부는 마지막 잠에 들었다

    2016년 6월 19일 저녁 부산 금정구의 한 빌라. 노부부는 인생의 황혼기를 함께한 낡은 빌라에서 작은 잔치를 열었다. 할머니의 여든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근처에 사는 둘째 아들이 고기를 사들고 왔다. 할머니가 호호 불어가며 할아버지(당시 85) 입에 고기를 넣어주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삼킬 수 있는 건 단 두 점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맛나다”며 환하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많이 아팠다. 위암 4기였다. 2011년 이 몹쓸 병이 덮쳤다. 수술을 받고 나은 줄 알았는데 재발했고, 식도와 십이지장까지 번졌다. 의사는 위 전체를 들어내고 식도와 장을 직접 연결해야 하는데,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두 달 만에 15㎏이 빠졌다. 낮에는 걸을 힘이 없어, 밤에는 배를 찢는 고통에 바닥을 기었다. 64년간 해로한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이제 그만 헤어질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가요. 당신 없이 혼자 남겨지기 싫어요.” 잔칫상을 물리고 아들마저 돌아간 밤 10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둘 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을 잡고, 각자 영정을 팔에 낀 채, 마지막 잠에 들었다. 노부부는 한날한시에 떠났다. 어느덧 석 달 뒤면 탈상(脫喪)이지만 늙은 아들은 아픈 기억을 털어내지 못했다. 같은 동네에 살며 매일 문안을 왔던 둘째 아들 김영성(59·가명)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미 숨을 거둔 부모를 처음 발견해 신고한 이도 그였다. “처음 위암이 발병했을 때는 바로 수술도 받고, 억지로라도 음식 삼키게 하는 약까지 먹어가며 밥 드셨어요. 암이 재발했다는 말을 하니까 두 분 다 충격 많이 받았죠. 그때 그 표정은 평생 못 잊습니다.” 할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졌다. 가장 큰 고통은 먹지 못하는 괴로움이었다. 새 모이처럼 잘게 썬 것만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죽이 아니면 씹다가 내뱉는 게 대부분이었다. 협심증까지 덮쳤고, 종종 심근경색 증상이 왔다. 1931년생인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믿었지만, 병에는 장사가 없었다. 결국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자식에게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을 건냈다. “이제 그만 내를 놔도….” 침묵이 흘렀다. “근데 걸리는 건 느그 엄마다. 자꾸 같이 가자고 안 카나…. 만다꼬 그래쌌는지 모르긋다. 니가 쫌 어뜨케 해봐라.”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아들 내외와 좀 더 살며 남을 생을 누려주길 바랐다. 두 사람은 전쟁 통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할아버지는 전쟁 후 공무원으로 일하며 남 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렸다. 할머니는 걱정이 많고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와 이리 쓸쓸하노’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듬직한 남편인 할아버지를 의지하며 정성껏 세 아들을 길렀다. “내 나이가 인제 팔십인데 느그 아부지까지 없으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겠노. 내 친구 중에 살아 있는 아는 아무도 없다. 이 정도면 천수 누린거다. 그카고 맨날 토하는 이 병, 니는 안 겪어봐서 모른다. 하루종일 뱅기(변기) 붙들고 토악질해봐라. 딱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읍따.” 할머니도 아팠다. 젊어서부터 메니에르병을 앓았다. 귓속 달팽이관이 부어 갑자기 어지럽고 구토가 이어졌다. 처음엔 단순히 체한 것인 줄 알았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게 이상해 병원에 가보니 치료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건강할 때는 그래도 버틸만 했지만, 나이가 드니 병은 마치 달거리처럼 어김없이 찾아왔다. 사흘 내내 지속했고, 후유증으로 열흘은 누워 있어야 했다. 아들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자고 권했다. 노부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 있는 건 딱 하루도 싫다. 고마 마음 편히 내 집에 있다 때 되면 갈 꺼니까 걱정하지 말그라. 몬 참아가 모르핀(마약성 진통제) 맞아야 하믄 때가 온 기다.” 노부부는 하나둘 작별할 준비를 했다. 가장 좋아하는 옷 한 벌씩을 꺼내 입고 사진관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베이지색 남방, 할머니는 분홍색 재킷을 골랐다. 입체(3D) 사진을 찍고서 두 사람의 모습을 20㎝가량의 작은 인형으로 만들었다. 인형 속 두 사람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답지 않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적금도 해지해 아들들에게 나눠줬다. 마지막 목욕을 하고 하얀 종이에 글을 적었다.할머니의 생일잔치가 열렸던 그날, 노부부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고기를 들고 온 아들에게 숯불로 구워먹고 싶다며 번개탄을 사오라고 했다.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건 오후 8시쯤이었다. “제가 종종 어무이 곁에서 자거든요.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품을 더 느껴보고 싶어가…그날도 그랄라고 했는데, 자꾸 집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노부부가 숨을 거둔 건 아들이 떠나고 2시간쯤 뒤로 추정된다. 지난 2년간 조금씩 모아왔던 수면제를 함께 입에 넣었다. 고기를 굽다 남은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메스꺼운 연기가 시커멓게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고통 없이 떠나는 방법으로 번개탄을 선택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듯했다. 몸부림친 흔적이 짙게 남아있었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싶었던 노부부 바람과 달리 아들은 곤욕을 치렀다. 부모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번개탄을 사다 놓은 게 문제가 됐다. 당시 아들은 집에 가지 않고 노부부 집 옥상에 있는 의자에 3시간 반가량 앉아 있었다. 오후 11시 30분쯤 노부부가 잠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조용히 함께 자려는 생각으로 내려갔다가 참사의 현장을 발견했다. 검찰은 이게 아들이 노부부의 자살을 예견했던 정황증거라고 판단했다. 아들은 “평소에도 자주 옥상에 있다가 내려갔고, 부모님이 이렇게 돌아가실지는 상상도 못했어요”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아들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적 공방에 지친 아들은 항소하지 않았고, 검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모든 일이 마무리 되고서 아들은 아내와 함께 노부부의 집으로 이사했다. 노부부가 숨을 거둔 방을 침실로 사용한다. “저한테는 이 집이 슬프면서도 추억이 어린 장소예요. 맨날 이 문을 열면 두 분이 웃는 얼굴로 앉아 계셨는데…. 텅 빈 방을 보고 있으면 제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내한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던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안락사가 허용됐다면 노부부는 좀 더 편히 떠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2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시행됐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원할 경우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땐 가족 동의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영양 공급을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나 치명적인 약을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노부부가 세상을 떠났던 2016년엔 존엄사법도 시행되지 않았던 때였고,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아들은 우리 사회가 안락사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했다. “제가 (부모 죽음을 바랐던) 패륜아처럼 보입니까? 제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때는 ‘더 사셔야 한다’고 말하는 거 자체가 두 분께 또 다른 괴로움을 주는 거였어요. ‘죽기 전까지 고통을 더 참으라’는 말과 같은 거니까. 죽음을 보는 사회 인식도 이제 많이 바뀌었잖아요. 공포나 두려움, 소멸 이런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보기도 하잖아요. 저는 몹쓸 병에 걸린다면 주저 없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선택할 겁니다. 본인의 죽음을 과연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공론의 장이 열렸으면 합니다.” 부산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부산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장자연 문건’ 목격 배우 “특이한 국회의원 이름 있었다”

    ‘장자연 문건’ 목격 배우 “특이한 국회의원 이름 있었다”

    10년 전 접대 강요 등을 폭로하며 목숨을 끊은 배우 장자연의 동료 윤지오씨가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장씨가 남긴 7장의 문건 가운데 4장은 경찰이 입수했고, 나머지 3장은 소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4장에는 구체적인 가해자가 지목돼 있지 않아 나머지 3장에 실명이 거론됐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윤지오씨는 공개되지 않은 유서를 보았고 그 중 일부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윤지오씨는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이름들이 쭉 나열돼 있는 페이지가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며 “감독부터 정치계, 언론계 종사자 이름이 있었고 기업인들 같은 경우 거의 대표, 사장이라고 기재됐다. 좀 특이한 국회의원 이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문건 속 실명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당시 신인 배우였던 윤씨는 “언니(장자연)와 나의 계약서는 계약금 300만원에 위약금 1억원이 명시돼 있었다”면서 “내가 (소속사를) 나오고 나서 언니도 굉장히 나오고 싶어했다. ‘너라도 나가서 다행’ 이라고 했다. 그게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고인을 향해 폭력적이고 악의적인 글을 쓰는 것을 멈춰달라”면서 “글을 쓰기 전에 자연언니가 얼마나 비통하고 참담하게 세상을 떠났는지 딱 한번이라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서울포토] ‘유치원 3법’ 통과 촉구 눈물의 기자회견

    [서울포토] ‘유치원 3법’ 통과 촉구 눈물의 기자회견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유치원3법 통과를 위한 전국유치원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유치원비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치원 3법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김한메 위원장이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2019.3.7.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서울포토] 눈물로 호소하는 ‘유치원 3법’ 통과

    [서울포토] 눈물로 호소하는 ‘유치원 3법’ 통과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유치원3법 통과를 위한 전국유치원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유치원비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치원 3법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김한메 위원장이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2019.3.7.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월드피플+] 시한부 엄마가 미래의 딸에게 남긴 눈물의 편지들

    [월드피플+] 시한부 엄마가 미래의 딸에게 남긴 눈물의 편지들

    시한부 여성의 ‘버킷리스트’는 혼자 세상에 남겨질 딸을 위한 것들로 가득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살 날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여성과 하나밖에 없는 딸의 슬픈 이별 준비를 다뤘다. 영국 잉글랜드 노팅엄에 사는 르네 피어스(41)는 지난해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희귀병에 걸려 온 몸이 서서히 굳어가고 있는 그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하는 딸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르네에게는 지난 2013년 남편 라이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 한 명 있다. 태어나자마자 모든 사람들을 반하게 했을 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렉시(5)가 그 주인공이다. 렉시가 태어난 뒤 결혼식을 올린 르네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설명할 정도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행복도 잠시, 2015년 9월 딸과 함께 길을 걷던 르네는 원인모를 무릎 통증으로 주저앉았다.검사 결과 오른쪽 무릎 연골이 찢어진 상태였고 별다른 조치 없이 고강도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하지만 6개월 후 이번엔 오른쪽 팔의 힘이 빠져 플러그도 스스로 꽂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렉시와 장난을 치다 소파에서 떨어졌을 때는 아예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한 르네는 다시 병원을 찾았고 ‘운동신경세포병’ 진단을 받았다. 운동신경세포병은 운동 신경에 점진적인 퇴행이 일어나는 희귀 질환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대표적 운동신경세포병으로는 루게릭병이 있다.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되나 아직 원인도 치료법도 밝혀지지 않았다. 르네는 하위 운동신경이 손상돼 근육이 위축되고 쇠약해진 경우였다. 시간이 갈수록 르네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지난해 9월 의사는 그녀에게 앞으로 살 날이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르네의 머릿속은 온통 딸 렉시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찼다.이후 남편 라이언과 간호사인 르네의 어머니가 불치병에 걸린 딸의 간호를 맡았고 르네는 친구들과 함께 딸과의 추억을 위한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녀는 “시간만 허락된다면 딸과 함께 파리 디즈니랜드도 가고, 미국 델라웨어에 있는 여동생 클레어도 만나러 가고 싶다. 렉시에게 엄마와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 조급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렉시의 다섯번째 생일에 꿈에 그리던 파리 디즈니랜드를 찾은 모녀는 가족과 친구의 도움으로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고 있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르네는 딸이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 딸을 엄마 없이 자라게 하는 것이 속상해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르네는 렉시에게 엄마가 곧 하늘나라로 가야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지만 5살짜리가 죽음을 알 리 없었다. 그녀는 “딸의 미래에 내가 없을 거라는 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라면서 “딸에게 어떻게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어 렉시가 40세 생일 때까지 내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도록 30여 개의 축하카드를 미리 준비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10살, 11살, 17살, 딸이 엄마 없이 홀로 맞이할 생일에 함께하기 위해 르네는 움직이지 않는 팔로 엄마의 도움을 받아 편지를 썼다. 르네가 미래의 렉시에게 보내는 카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10살 생일을 맞은 내 딸에게.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해를 즐기렴. 내 사랑과 내 영혼은 늘 너와 함께 있단다” “사랑하는 내 딸 11살 생일을 축하한다. 중학교 입학식에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해”  “남자친구는 잘 해주니? 17살이라고 다 컸다 생각하겠지만 넌 아직 어리다는 걸 기억해다오. 그리고 운전 연습 꼭 하렴”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반성 없는 김순례 “‘5·18 망언’은 민주당 프레임”

    반성 없는 김순례 “‘5·18 망언’은 민주당 프레임”

    국회 공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을 “괴물 집단”이라고 폄훼해 ‘5·18 망언’ 논란을 초래한 김순례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규에 따라 전당대회 선거에 출마했다는 이유로 징계 처분이 유보됐지만, 새 당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징계가 미뤄지면서 성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 최고위원의 ‘모르쇠’가 굳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조경태 최고위원은 ‘5·18 망언’ 논란을 초래한 의원들의 징계를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최고위원은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우리 당이) 변해야 산다고 말씀드렸다. 그 첫 단추가 5·18 (망언)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읍참마속하는 마음으로 이 문제를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전에도 자유한국당 안에서는 같은 당 의원들이 초래한 ‘5·18 망언’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장제원 의원은 “전당대회 국면과 당 지지율 상승이 맞물려 당내 일각에서 급진 우경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5.18 민주화 운동과 6.10 항쟁, 6.29 항복선언으로 이어진 민주화 대장정은 우리 국민들의 눈물과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화의 과정이자 역사다. 이를 부정한다면 우리는 대중정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무성 의원도 “이번 발언은 자유한국당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전혀 부합하지 않으며 역사의 진실을 외면한 억지주장”이라면서 “국민을 분열시키고 역사의 가슴 아픈 비극에 더 큰 상처를 내는 언행은 정치인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조 최고위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이 흠결을 가리려고 그들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 우리를 가두고 있다”면서 “그 속에서 우리끼리 설왕설래할 수는 없다”고 강하게 맞섰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김 최고위원 감싸기에 나서기까지 했다. 홍문종 의원은 “해당 의원들(이종명·김진태·김순례)이 무슨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 확고한 (당의) 입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지난해 12월에도 “다시는 ‘촛불’ 같은 간계에 넘어가선 안 된다”면서 촛불집회 비하 발언을 쏟아낸 적이 있다. ‘5·18 망언’ 3인방에 대한 징계 처분을 놓고도 당 내부에서 이견이 노출된 가운데 황교안 당 대표는 “절차에 따라서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지난달 28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이종명·김진태·김순례 의원을 포함해 ‘재판 청탁’ 논란을 일으킨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손혜원 무소속 의원, 정부의 비공개 예산정보 무단 열람·유출’ 논란을 일으켰던 심재철 한국당 의원, ‘용산참사’ 당시 과잉 진압 논란에 대해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산 김석기 한국당 의원, 2016년 미국 연수 때 스트립바를 방문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최교일 한국당 의원의 징계안을 7일 열리는 전체회의에 일괄 상정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왜그래 풍상씨’ 이보희, 수술대 올랐는데 도망 “인간도 아니다”

    ‘왜그래 풍상씨’ 이보희, 수술대 올랐는데 도망 “인간도 아니다”

    ‘왜그래 풍상씨’ 이보희가 아들 유준상에게 간을 주기로 했으나 결국 도망쳤다. 6일 방송된 KBS2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에서는 이풍상(유준상)을 찾아온 노양심(이보희)의 모습이 그려졌다. 노양심은 “너 살리려고. 간 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이 말에 간분실(신동미)은 “정말 이 사람 간 주려고 왔느냐”고 물었다. 노양심은 “내가 주지 누가 주겠느냐. 아무도 안 준다고 하지 않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풍상은 간분실의 간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간분실은 노양심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와 다시 물었고 노양심은 “한 입 가지고 두 말 하겠느냐. 큰 결심하고 왔다”면서 “그런데 쟤는 왜 저러냐. 쟤 속만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간분실은 “제가 설득하겠다”고 대답했다. 이풍상은 “하늘이 주신 기회다. 무조건 당신 살고 보자. 목숨 보다 귀한 건 없다”는 간분실의 설득에도 “저 여자 간 싫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이를 거절했다. 이 말에 간분실은 “당신 이 정도 밖에 안되냐. 내 생각은 안하느냐.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당신은 빠져라”고 소리쳤다. 결국 간분실은 이풍상의 반대에도 노양심을 검사 받게 했다. 이후 간분실은 노양심에게 밥을 차려주며 지극정성으로 살폈다. 이후 노양심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적합 판정이 나온 것. 하지만 이풍상은 노양심의 간을 절대 받지 않겠다고 고집부렸다. 특히 노양심은 2천 만원 빚을 갚아달라고 했다. 간분실은 2천만원을 주는 대신, 이풍상에게 진심으로 사과해달라고 말했다. 노양심은 간분실의 말대로 눈물을 흘리며 진심 가득한 사과를 했다. 이풍상은 간분실의 진심어린 사과에 그를 용서했다. 마지막 버킷리스트를 이룬 것. 그는 “엄마도 불쌍하다. 어릴 때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한 줄 몰랐다. 진적 알았다면 그렇게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았을텐데”라고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결국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 수술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노양심이 도망을 간 것. 이정상과 이진상은 도망간 엄마를 찾으러 나섰다. 이풍상은 수술이 미뤄지자 궁금해했다. 특히 엄마 노양심이 다쳤을까 걱정했다. 간분실은 “도망갔다. 2천 만원 달라고 해서 돈까지 해줬는데 도망갔다. 인간도 아니다”라고 분노했다. 이 말에 이풍상은 또 한번 상처를 받았다. 유준상의 눈물 연기는 시청자들을 울리며 긴장감 넘치는 전개에 힘을 실었다. 특히 이번화에서는 동생바보 풍상뿐 아니라 아들 풍상으로서의 상처와 아픔이 두드러진 만큼 유준상은 진심 어린 연기와 눈빛으로 아들 풍상을 완벽하게 표현,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왜그래 풍상씨’는 매주 수요일, 목요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선수로 감독으로 ‘솔샤르의 기적’, 비디오 판독 논란은 계속될 듯

    선수로 감독으로 ‘솔샤르의 기적’, 비디오 판독 논란은 계속될 듯

    20년 전 선수로 ‘캄프 누’의 기적을 일궜던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이번에는 사령탑으로 ‘파리의 기적’을 연출했다. 솔샤르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7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를 찾아 벌인 파리생제르망(PSG)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을 3-1로 이겨 1, 2차전 합계 3-3이 됐지만 원정 다득점으로 8강에 진출했다. 2-1로 앞서 이대로 끝나면 합계 2-3으로 PSG에 8강행 티켓을 내줄 후반 44분 디오고 달롯의 슈팅이 상대 수비의 손에 맞고 골문 밖으로 벗어났다. 주심은 비디오 판독을 실시해 페널티킥을 얻었다. 마커스 래시포드가 이를 차 넣어 8강행 티켓의 주인이 됐다. 경기 내내 봄비가 촉촉히 내렸는데 파리는 눈물에 젖었다. 경기를 앞두고 토마스 투헬 PSG 감독은 “맨유는 위대한 역사를 가진 강한 팀이다. 솔샤르 감독 역시 훌륭하다. 우리에게 하나의 도전과 같은 경기가 될 것”이라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는데 경기 결과는 그의 우려대로였다. 부상으로 빠진 네이마르는 후반 막바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맨유 사정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네마냐 마티치, 안데르 에레라, 후안 마타, 앙토니 마르시알, 제시 린가드, 필 존스,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모두 주전급이다. 그런데도 솔샤르 감독은 역사적인 트레블을 기록한 1998~99시즌의 기적을 되살리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준결승에서 유벤투스를 만나 1차전을 1-1로 비긴 뒤 유벤투스 원정을 떠난 맨유는 먼저 두 골을 내줬다. 하지만 내리 세 골을 넣으면서 극적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에서도 추가시간에만 두 골을 넣는 기적을 보여주며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트레블을 확정지었는데 솔샤르 감독이 결승골을 넣었다. 솔샤르 감독은 “모든 이는 우리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경기 초반 맨유의 선제골이 터졌다. 전반 1분 틸로 케러의 횡패스를 로멜로 루카쿠가 끊어낸 뒤 드리블하며 잔루이지 부폰 골키퍼를 제친 뒤 골문에 공을 집어 넣었다. 하지만 PSG는 10분 뒤 다니 알베스가 박스 오른쪽으로 전진 패스를 찔러준 것을 킬리안 음바페가 중앙으로 밀어넣자 후안 베르나트가 차 넣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맨유가 전반 29분 래시포드가 중거리 슈팅을 골키퍼 부폰이 쳐낸 것을 루카쿠가 다시 차넣어 맨유가 2-1로 앞선 채 전반이 끝났다. 후반 들어 PSG가 공세를 펼쳤다. 10분 음바페의 뒷꿈치 패스로 앙헬 디마리야가 일대일 기회를 잡아 로빙슛으로 골망을 흔들었지만 비디오 판독 끝에 오프사이드로 판정돼 득점이 취소됐다. PSG는 후반 14분 율리안 드락슬러가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패스를 건네자 디마리야가 중거리 슈팅으로 가져갔으나 맨유 골키퍼 다비드 데헤아에게 안겼다. 그리고 이대로 합계 3-2로 8강 문턱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때 전반 35분 오른쪽 풀백 에릭 베일리 대신 투입된 달롯의 슈팅이 프레스넬 킴펨베의 팔꿈치에 맞은 것으로 판정돼 눈물을 삼켰다.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비디오 판독이었지만 기자가 보기에도 킴펨베가 의도를 갖고 팔꿈치를 뻗지 않으려 했다는 다미르 스코미아(슬로베니아) 주심의 판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편 연장전까지 진행된 포르투(포르투갈)와 AS로마(이탈리아)의 경기에서도 VAR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포르투는 안방 2차전에서 후반 45분까지 2-1로 앞서 1, 2차전 합계 3-3에다 원정 다득점까지 균형을 맞춰 연장으로 끌고 간 뒤 연장 후반 페널티킥 골로 역전승을 일궜다. 연장 후반 알렉산드로 플로렌치(로마)가 상대 페르난도를 잡아당기는 동작으로 VAR에 이은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알렉스 테예스가 연장 후반 12분 골로 연결해 승부를 결정지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박건승 칼럼] 역전세난? 그 불편한 진실

    [박건승 칼럼] 역전세난? 그 불편한 진실

    이 땅의 많은 서민들에게 전세살이는 갖가지 애환이 깃든 삶의 여정이다. 때로는 치솟는 전세금을 감당 못해 이삿짐을 싸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테고, 고리로 돈을 빌려 집주인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의 사다리’였기에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전세였다. 요새는 월세에 밀려 위세가 한풀 꺾였지만, 전세는 사실 집주인이나 세입자 모두에게 ‘윈윈’을 안겨 줄 수 있는 게임이다. 계약대로만 한다면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목돈을 굴릴 수 있고, 세입자는 주택 구입을 위한 강제 저축이 가능했다. 부쩍 ‘역전세’니, ‘깡통 전세’니 하는 말들이 많이 들린다. 지금 언론이 쓰는 역전세는 전셋값이 계약 당시보다 하락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듯하다. 매매값이 전세가격보다 더 떨어져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내줄 수 없는 깡통 전세와도 헛갈리게 쓰고 있다. 본디 역전세의 사전적 의미는 전세 물량이 늘어난 데 반해 전세를 살려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컬었다. 역전세난을 걱정하는 이들은 전셋값 하락의 부작용으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으니 정부가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역전세난을 우려할 정도로 집값이나 전셋값이 그리 많이 떨어진 것일까. 현재 상황에서 역전세란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지, ‘정부가 책임지라’는 집주인들의 요구가 과연 타당한지, 이를 앞장서 설파하는 일부 부동산업자나 부동산 전문가들의 진단이 과연 맞는지는 한 번쯤 따져 볼 문제다. 한 달 전 기준으로 볼 때 전국적으로 전셋값이 하락세인 것은 맞지만, 이 하락세는 지방이 이끈 것이고, 서울 전셋값은 2년 전보다 아직도 조금 높다는 게 한국감정원의 통계치다. 송파·서초를 포함한 강남 4구의 전셋값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 하락률(-0.82%)이 전국 평균(-2.67%)에 비하면 아직까지 큰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전셋값이 하락한 강남 일부 고가 아파트를 예로 들어 ‘역전세난’이라고 일반화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도 보합세나 이제 막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지난 5년간의 상승폭에 견줘 보면 최근 2개월의 하락폭은 하락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것 같다. 지난 5년에 걸친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은 우리에게 무엇을 안겨 줬던가. 양극화와 내수 위축의 주범이었고, 가계부채를 크게 끌어올렸으며, 저출산을 부채질하지 않았던가. 서울 아파트 가격 하락세는 이제 시작일 뿐인데도 벌써부터 집값과 전세값이 크게 떨어졌다며 호들갑 떠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그 뜻이 그다지 순수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집값 하락을 어떡하든 막아 보려는 특정 기득권층의 몸부림이 엿보이는 까닭이다. 역전세난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역전세 대안으로 정부가 집주인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줘야 한다”는 따위의 주장을 내놓은 것은 좀체 납득하기 어렵다. 집값 안정화 정책으로 전세가격이 떨어지면서 2년 전에 계약했던 전세금을 내줄 수 없으므로 이를 정부가 벌충하라는 요구인 셈인데 이게 가당한 말인가. 집주인은 계약이 해지될 때 전세보증금을 준비해 돌려줄 의무가 엄연하거늘 그걸 못 하겠다고 버티는 것은 심각한 모럴해저드다. 더욱이 전세금 못 내주겠다는 집주인들 중에는 전세 끼고 집을 산 이른바 ‘갭투자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갭투자로 집을 사 재미 본 사람이라면 집 팔아서 전세금 돌려주는 게 상식이다. 전세금 올려 달라고 할 때마다 고금리 대출을 받았던 세입자들 아니었던가. 리스크를 그런 세입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몹시 정의롭지 못하다. 집주인에게는 전세보증금을 잘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집주인들의 투기성 투자 때문에 서민들이 눈물 짓는 일이 더는 없어야겠다. 지난 세월 전셋값 폭등 때 얼마나 많은 서민이 등이 휘고 남 몰래 눈물을 흘렸는지를 돌이켜봐야 할 일이다. 정부가 역전세 문제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굳이 정부가 나서야 한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전세금을 갚도록 유도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야박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투자해서 손실 보는 것은 전적으로 집주인 개인의 책임이다. 주식에 투자해 손실이 생겼다고 정부가 보전해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ks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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