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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 흥망사/이창위 지음

    2005년 을유년은 한민족에게 오욕과 환희의 역사가 오버랩되는 해다. 정확히 1세기 전인 1905년, 을사조약에 의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본격화됐고,60년 전, 바로 전 을유년이었던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참혹한 패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수십년 만에 거대한 경제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경제강국이란 지위에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역사적 죄악을 희석하는 망언을 툭툭 던지며 주변국들에 파시즘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듯한 일본 파시즘의 실체는 무엇일까. 일본 군부의 광기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고, 무모한 침략전쟁으로 이어졌을까. ●러일전쟁 승리로 일본 군국주의 태동 3·1절을 앞두고 일제 침탈과 파시즘, 을사조약, 친일문제 등을 재조명하는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중 침략전쟁의 뿌리인 일본 군국주의의 태동과 파시즘의 형성과정, 일본군 특유의 정신문화와 병리적 군사문화 등을 분석한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흥망사’(이창위 지음, 궁리 펴냄)를 중심으로 신구 일본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1974년 일본 국민과 언론은 오노다 희로라는 육군 소위의 귀환에 열광했다. 그는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1944년부터 30년간 필리핀 루손섬 정글에서 일본의 패망을 부인하며 유격전을 계속해온 인물이었다. 죽지 말고 데리러 올 때까지 버티라는 상관의 명령 하나만을 믿고 산속에서 30년을 버틴 그의 눈동자는 광채가 번득였고, 총검은 여전히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그를 찾으려는 일본인들, 심지어는 가족의 모습까지 먼 발치에서 보았던 그는 일본의 패전을 믿지 않았고, 결국 30년 전의 직속상관으로부터 직접 투항명령서를 전달받고서야 1974년 일본으로 귀환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무 완수를 위한 30년 전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을 뿐,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도리어 일본전쟁이 모두 악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듬해 브라질로 이주했다. ●진주만기습·가미카제등 상세히 소개 오노다 소위는 극단으로 치달았던 일본 군국주의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지은이는 일본 군국주의의 태동을 러일전쟁의 승리에서 찾는다. 그 이전에 이미 메이지유신 이후 급속한 근대화로 상당한 군사력을 갖고는 있었지만, 러일전쟁 승리 후 지나친 자신감과 착각에 빠졌으며, 그후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되었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대륙침략을 본격화한 일본은 조선병합, 시베리아 출병,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을 통하여 군부 파쇼체제를 확립하고 대미 개전에 이르게 된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시바 료타로는 광신적 군부가 이끌고 우중이 지지한 일본을 ‘술에 취해 말을 타고 달리는 여우’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책은 태평양전쟁의 주요 국면인 진주만 기습, 미드웨이 해전,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가미카제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다. 자결을 앞둔 일본군 장교들은 일왕에 대한 충성과 우국충정으로 가득 찬 최후진술을 남겼는데, 비장함을 넘어 광기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국력의 확연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무모한 항전 뒤엔 군인의 정신자세와 행동규범을 규정한 ‘군인칙유’‘전진훈’이 있었다. 특히 일왕이 발한 군인칙유(軍人勅諭)를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는 명분 하에, 태평양 전쟁 도발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가 공포한 전진훈(戰陳訓)은 군인들이 금과옥조로 삼아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전진훈은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군인 최고의 명예라고 강조함으로써 전체주의적 사고를 주입시켰고, 특히 ‘살아서 포로의 치욕을 당하지 말고 죽어서 죄화(罪禍)의 오명을 남기지 말라.’(제2장 제8조)는 조항 때문에 수많은 병사들이 헛되이 죽어갔다. 생명을 경시하는 무모한 전술과 자결 각오 뒤엔 전진훈에서 강조한 도착적 군사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전진훈’ 통해 전체주의 사고 주입시켜 지은이는 책 말미에서 패전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정치적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현재의 일본은 패망한 일본의 밑그림 위에 덧칠된 그림이라고 본다. 그 밑그림이 다원화된 국제사회에서 다시 복원돼 서글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지은이는 소망한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노동자시인 조기조 8년만의 새 시집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시단에 이름을 알린 노동자 출신 시인 조기조(42). 그의 새 시집 ‘기름 美人’(실천문학사)은 솔직히 좀 생경스럽다. 물론 그것은 실체가 없는 순전히 생뚱맞은 편견 때문이긴 하지만…. 이념의 땀내를 피우는 노동시가 요즘 독자들한테도 온전히 먹혀들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의문은 몇몇 시편을 스쳐 읽기만 해도 금세 사라진다. 첫 시집 ‘낡은 기계’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새 작품은 여전히 사실주의에 발붙이고 있되 삶의 보편적 이치를 향해 활짝 귓문을 열었다. ‘기름’ 냄새가 스며 있긴 하다. 하지만 이번에 동원된 기름의 용처는 노동자의 삶의 해체에 머물지 않았다. 고장난 기계를 분해하다 뒹구는 쇠구슬을 시인은 “기름에 흠뻑 젖은 기름공주”(‘기름공주’)로 의인화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새 “네 눈동자는/어느 지극한 마음의/마지막 그리움을 보여주는/진신사리를 닮았더라.”라는 선적(禪的) 상상력으로 비약한다. 문학평론가 조정환은 “기계와 인간의 교감에 대한 형상화”란 말로 시인의 작품세계를 압축했다. 시인 특유의 ‘기계적 상상력’은 여러 다른 시편에서도 드러난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고 고치면서/조금씩 조금씩 망가져가는 공구들”(‘공구실에서’)을 감싸 안으며 “어쩌면 동기간 같기도 하고/친구 같기도 한”(‘내가 만든 기계’) 기계를 향해 은근한 애정의 시선을 보낸다. 삶의 강파른 마디에 올라서서 살붙이와 흘러간 시간에 대해 향수를 보내는 시들에서는 찝찌름한 눈물의 회한이 묻어 나온다. 어머니와 고향의 늙은 곰솔나무의 이미지를 겹쳐낸 ‘어머니 곰솔’에서는 “바람을 좋게 풀어놓고 그늘을 넓게 내리며/늘 눈가가 짓무르던 어머니/오래 사는 것이 저렇게 서럽기도 하데.”라며 소맷자락으로 쓱 눈가를 문지른다. 시인은 때로 모성과 고향을 향한 먼 시선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좌표를 확인하기도 한다.“초등학생 시절 먼발치에 주저앉아서 개 혓바닥같이 길고 질긴 여름 해가 꼬박 질 때까지 사래 긴 밭을 하염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김매기 품을 팔던”(‘리듬’) 그 어머니가 “오늘날 내 시의 리듬이 되었다.”고 시인은 마지막 행을 채웠다.6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다빈치코드’ 伊 모의법정 설전

    예수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낳은 딸이 교황으로서 적통을 이었어야 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담아 논란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의 역사적 진위를 가리는 모의재판이 이탈리아에서 열리고 있다.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인 빈치시에서 지난 18일(현지시간) 개정된 모의법정에는 많은 예술 전문가들과 보수적인 가톨릭 성직자들이 ‘원고’로 참여했다. 이들은 독자들이 작가 댄 브라운이 꾸며낸 ‘성서의 진실’이라는 픽션과 역사적 진실을 혼동해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최후의 만찬’ 막달라 후계자 인정 꽉 찬 원고석과는 달리 소설을 옹호하는 ‘피고’석에는 수백명의 독자들만이 참석했다. 브라운은 2003년 6월 소설 출간 직후 미국 NBC방송의 ‘투데이쇼’에 출연,“주인공 로버트 랭던 등 등장인물을 제외하고 예술과 건축, 밀교의식, 비밀결사에 관한 모든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소설은 다빈치가 실제로는 여자 교황의 적통성에 찬동하는 비밀결사의 지도자로서 그의 작품들에 여성 교황의 적통성을 주장, 옹호하는 코드들을 교묘히 숨겨왔다는 점을 담고 있다. 예수와 12제자의 만찬을 그린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제자들 가운데 막달라를 가장 믿음직스러운 후계자로 인정했음을 드러내려고 다빈치가 의도한 것이라거나,‘모나리자’가 사실은 다빈치의 초상화로 여성의 세계 지배를 당연시하는 다빈치의 세계관이 투영된 것이라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지도자들이 막달라를 마녀로 낙인찍어 성배를 둘러싼 진실을 은폐하려 했으며, 교황청의 추적으로부터 예수의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해 1099년부터 시온수도회가 실존해 왔다고 주장했다. ●보수 기독교계 반발… ‘유죄 평결’ 이같은 내용은 가톨릭은 물론, 보수적인 기독교단으로부터 전례없는 반발을 불러왔다. 예수를 신성한 존재에서 하루 아침에 보통 인간으로 격하시킨 신성모독이라는 항변이었다. 모의법정을 기획한 알레산드로 베초시 레오나르도 박물관장은 다빈치 초상화와 모나리자를 비교한 결과 귀와 입, 눈동자, 표정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록과 회화작품 사진 120장을 공개, 소설의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겠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에서 성서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암약하는 바티칸의 비밀결사로 묘사된 ‘오푸스 데이’(하느님의 과업) 대표도 법정에 나와 자신들을 둘러싼 오해를 독자들에게 해명한다. 모의법정의 평결은 ‘유죄’가 예정돼 있다. 소설 ‘다빈치 코드’는 세계적으로 750만부가 팔렸고 소설 속 논란만을 정리한 책이 10종이나 쏟아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식물 빛 조절원리 세계 첫 규명

    국내 연구진이 동물의 눈동자처럼 빛의 양이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식물의 유전자가 어떠한 원리로 작용되는지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 유전자의 작용 원리를 활용해 적은 양의 빛으로 생육이 가능한 농작물을 개발한다면 일조량이 적은 지역에서도 고품질의 농작물 수확이 가능해져 ‘제2의 녹색혁명’도 기대된다.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남홍길(48) 교수팀은 식물의 빛 수용단백질인 ‘피토크롬’에 의해 인지된 빛의 정보를 최적화하는 기능을 가진 새로운 유전자를 찾아내 그 원리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10일 밝혔다. 과학기술부와 농촌진흥청의 지원을 받아 금호생명환경과학연구소,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와 공동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 결과는 셀(Cell)지 최신호(11일자)에 게재됐다. 색소단백질인 피토크롬의 존재는 1952년 미국의 생물학자 보스윅과 헨드릭스가 처음 발견했으나, 빛의 양이나 밝기를 적절히 조절해 최적의 상태로 만드는 피토크롬의 작용원리에 대해서는 분자생물학계의 미해결 과제였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CEO 칼럼] 한류열풍속 ‘짝퉁그늘’/김범수 NHN 대표

    [CEO 칼럼] 한류열풍속 ‘짝퉁그늘’/김범수 NHN 대표

    국립국어원이 최근 발간한 ‘2004년 신어 보고서’를 보면 욘사마, 욘겔계수, 욘플루엔자 등 한류스타 배용준에 관한 신조어가 세 개나 수록되어 눈길을 끈다. 일본열도를 강타한 ‘한류열풍’의 조짐은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여명의 눈동자’ 등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으로 중국대륙은 벌써부터 ‘한류열풍’의 진원지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중국의 한류 열풍은 온라인게임에서도 두드러진다. 시장조사기관인 IDC가 발표한 2004년 초 기준 자료에 따르면, 중국 인기 온라인게임 톱10에 ‘미르의 전설 2·3’‘뮤’ 등 5개의 한국 온라인게임이 들어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온라인 게임에 대한 불법복제라는 지나친 애정표현(?)으로 한류 열풍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뿐만 아니다. 얼마 전 중국에 한국 ‘짝퉁’ 사이트의 범람과 이에 따른 국내 업체들의 피해사례가 속출한 바 있다. 국내 게임포털과 미니홈피 등 인기 인터넷 서비스의 메뉴구성과 전체화면, 캐릭터를 그대로 표절한 것이다. 심지어 서비스에 사용된 한글까지 그대로 사용하는 등 몇몇 중국 사이트의 노골적인 ‘짝퉁’ 행각이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전세계 짝퉁산업의 현황과 기업의 대처법을 특집으로 다룬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따르면 세계관세기구(WCO)가 추정한 전세계 짝퉁시장 규모가 물품교역량의 5∼7%인 약 51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이중 중국산이 전세계에서 생산·유통되는 짝퉁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NHN의 게임 포털 사이트 ‘한게임’이 국내에 서비스 중인 플래시 게임들도 최근 중국의 모 게임업체에 의해 도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신속한 사태 파악과 중국대사관 인증 등을 통해 수집한 증거자료들을 토대로 NHN의 저작권을 침해한 해당 기업에 경고장을 보내 서비스를 중단시켰다. 나는 한국에서 만든 증거자료가 중국에서 얼마나 능력을 가질지 알지 못한다. 또 모방 서비스로 인한 피해액이 어떻게 산정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사태가 중국 업체들의 무분별한 도용에 대한 경고가 되고, 한국 기업들의 지적재산권보호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관련 부처에 주문했다. 다행히 불법복제에 대한 불만을 각국 정부로부터 받아온 중국정부는 최근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실제로 세계 최대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일본 ‘혼다’가 자사 로고와 브랜드를 혼동시키는 ‘훙다’를 사용해온 중국 최대 오토바이 생산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침해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냈다.2년여의 심리 끝에 중국인민법원으로부터 받아낸 이 판결은 중국시장을 개척하려는 수많은 외국 기업들에 희망적인 사인으로 읽혀지고 있다. 특히 미국 특허청(PTO)은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에 특허권 문제를 전담하는 담당관까지 파견하는 등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해 이례적인 대처를 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힘을 모아야 한다. 유수 글로벌 기업들과 해당 국가의 정부들은 지적재산권 침해 사태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IT강국이다. 향후에도 우리 IT 기업들이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에서 경쟁력을 쌓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행동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김범수 NHN 대표
  • [길섶에서] 예뻐지는 법/신연숙 수석논설위원

    오랜만에 만난 한 지인의 얼굴이 몰라보게 예뻐졌다. 체중감량을 하기 위해 단식에 가까운 절식을 하고 매일 침까지 맞는 노력을 했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체중조절 이상의 그 무엇이 느껴졌다. 안면이 쫙 펴져 그늘이 사라진 대신 눈동자에 초롱초롱한 생기가 가득하였다. 결혼 전 청순했던 이미지까지 연상시켰다. 모두들 감탄을 하자 그가 고백을 하였다. 고교동창들과 댄스교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1주일에 한번,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친구들과 수다떨기를 하면 속이 확 뚫리고 기운이 샘솟는다고 했다. 몸이 가볍고, 아픈 데도 사라진 기분이란다. 한때 대단했던 주부 노래부르기 열풍이 생각났다. 그때 가요 강사는 노래도 노래지만 입담이 구수해 주부들의 맺혔던 마음을 어루만지고 풀어주는 치료사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치열한 경쟁과 팍팍한 일과 속에서 삶이 고단하기는 전업주부나 직업여성이나 다를 바 없다. 진지한 편인 그가 탱고나 살사춤 스텝 밟는 장면을 상상하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예뻐지고 싶은가. 누군가를 찾아 수다를 떨어보자. 기계처럼 틀에 박혔던 몸을 해방시켜 보자. 그처럼 댄스는 못 하더라도 동네 산책로라도 달려볼 수는 있지 않겠는가. 신연숙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새음반] 레이 찰스의 생전 사운드트랙 17곡

    [새음반] 레이 찰스의 생전 사운드트랙 17곡

    1930년 미국 조지아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사고로 빛을 잃었다. 두 눈이 멀쩡하던 다섯 살 땐 동생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감수성 예민한 열다섯 살 땐 사고로 부모까지 떠나 보냈다.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역설적으로 새로운 희망이 꽃피듯 열일곱 살이 되던 해 그는 시애틀로 향했다. 완벽하게 버려진 세상, 그러나 그에게는 눈동자보다 빛나는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구원이 됐다. 싸구려 술집에서 시작한 음악 인생은 운명을 바꿨고 미국 대중 음악사를 바꿨다. 주인공은 지난해 6월 75세의 나이로 타계한 레이 찰스. 굴곡 많고 파란만장한 삶을 딛고 ‘거장’에서 ‘전설’이 된 이 위대한 뮤지션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매력적인 영화 소재다.‘사관과 신사’의 테일러 핵포드 감독이 그의 전기영화 ‘레이’를 만들었고, 국내에는 새달 개봉된다. 레이 찰스 역을 맡은 제이미 폭스가 제6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차지해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이 작품은 영화 전편에 흐르는 음악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영화보다 앞서 상륙한 ‘레이’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이보다 더 좋은 베스트 앨범이 없을 만큼 그의 히트곡 중 가장 빼어난 곡들로 채워져 있다. 경쾌한 피아노 연주가 흥겨운 ‘Mess Around’로 시작하는 이번 앨범에는 라이브 버전으로 선보인 ‘I Can’t Stop Loving You’를 비롯해 1954년 히트곡 ‘I Got A Woman’‘Georgia On My Mind’‘Unchain My Heart’ 등 우리에게도 낯익은 불후의 명곡 17곡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What’d I say’‘You Don’t Know Me’‘Hallelujah I Love Her So’ 등은 레이 찰스가 생전에 사운드트랙을 위해 직접 골라 놓은 곡들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건빵도시락 먹고도 “감사합니다”

    “아주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두성.” 전북 군산시의 결식어린이들이 부실 파문을 일으킨 ‘건빵 도시락’에도 ‘감사의 편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하지만 군산시는 이들의 편지를 “결식학생들이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다.”며 부실 도시락의 잘못을 호도하려는 의도로 공개해 주위를 머쓱하게 했다. 결식 어린이들의 해맑은 동심이 엉터리 도시락을 제공한 어른들을 더욱 부끄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도시락 잘 먹었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한 어린이는 문제의 ‘건빵도시락’을 받은 다음날인 성탄절 아침 또박또박 감사의 뜻을 적은 쪽지를 빈 도시락에 넣어 자원봉사자에게 전달했다. 이날 도시락을 배달했던 최모(53)씨는 “자식을 둔 아비의 입장에서 차마 반찬으로 건빵이 나온 도시락을 내밀기가 부끄러웠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한 표정을 전혀 짓지 않는 어린이의 눈동자가 하도 맑아 마주 대할 수 없었다.”고 말끝을 흐렸다. “방학 중인데도 집에까지 도시락을 배달해주니 고마울 뿐이에요. 추운 날 고생하시는 자원봉사 누나, 오빠들에게 고맙기 그지없고요.” 달동네인 군산시 금동 한 결식어린이(초등학교 3년)는 부실 도시락이지만 매일 보내주는 정성이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술래를 기다리는 아이/방미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술래를 기다리는 아이/방미진

    숨바꼭질이 시작되었어요. 담 모퉁이에 숨은 순용이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꼭 쥐고 숨을 죽였어요. “거기! 이순용. 찾았다!” 술래인 다람이가 금세 순용이를 찾아냈어요. 또 순용이가 제일 먼저 들키고 말았어요. 다람이는 다른 아이들은 더 찾아보지도 않고 소리쳤어요.“못 찾겠다. 꾀꼬리!”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어요. 이렇게 되면 들킨 사람은 순용이 혼자니까 순용이가 술래예요. 이런 식으로 순용이는 자주 술래가 돼요. 순용이는 분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꾹 참았어요. 울어 버리면 놀이에도 안 끼워 주고, 울보라고 놀릴 게 뻔하니까요. “1,2,3……99,100!” 순용이는 단숨에 100까지 세고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그새 아주 깊숙이 숨었나 봐요. 한참 동안 한 명도 찾지 못했으니 말이에요. 순용이는 더 이상 찾을 곳이 없어 잠시 멍하니 서 있었어요. 꼭 바보가 된 것 같았어요. 아이들이 모두 짜고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혼자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만 하고 싶었어요. “못 찾……어!” 순용이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려는 순간, 가게 냉장고 옆에 삐죽 튀어나온 발이 보였어요. 순용이는 냉장고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외쳤어요. “찾았다!” 잔뜩 웅크린 채 숨어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어요. “어? 아니네?” 같이 숨바꼭질하는 애가 아니었어요. 그 애는 골목 맨 끝 집에서 할머니랑 둘이 사는 애였어요. 순용이는 그 애가 싫었어요. 순용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그 애를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그 애는 좀 이상했거든요. 얼굴은 크기가 다른 두 눈이 밑으로 쭉 찢어져 있어 무서웠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지 집 밖으로 나오는 일도 거의 없었어요. 게다가 그 집 앞에서 놀고 있을 때면 담 너머로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그 애를 놀리기는 해도 같이 놀지는 않았어요.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순용이는 괜히 짜증을 내며 말했어요. “……숨바꼭질.” ‘무슨 숨바꼭질을 혼자서 해? 진짜 이상한 애야.’ 순용이는 그 애가 기분 나빴어요. 순용이가 가려고 하자 그 애가 순용이를 불렀어요. “순용아.” 순용이가 놀라서 돌아봤어요. ‘같이 논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거지?’ 순용이는 자기 이름을 안다는 것 때문에 그 애가 더 이상하게 보였어요. “너 매일 술래 하는 순용이 맞지?” ‘어떻게 내가 항상 술래 하는 것까지 알고 있지? 정말 기분 나쁜 애야.’ 순용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가려고 했어요. “저기……우리 집에…….” 그 애가 말했어요. “너네 집에 뭐?” “우리 집에……데려다 주지 않을래?” “뭐?” “사실은……눈이 안 보여.” 그 애의 말에 순용이는 조금 놀랐어요. 그러고 보니 그 애의 눈동자가 아주 흐렸어요. ‘그래서 집 밖에 잘 안 나왔구나.’ 하지만 순용이는 그 애와 같이 있기가 싫었어요. 다른 아이들이 보기라도 하면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으니까요. 순용이가 망설이고 있는데 그 애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어요. 그 사탕은 안에 초콜릿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순용이가 제일 좋아하는 거고요. “맛있겠다.” 순용이가 저도 모르게 말했어요. 그 애가 사탕을 내밀었어요. 순용이는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고개를 저었어요. “내 것도 있어.” 그 애가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더 꺼내면서 말했어요. 순용이는 그 애의 사탕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애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어요. 순용이가 그 애의 팔을 잡고 끌었어요. 순용이의 걸음이 빨랐는지 그 애가 휘청거렸어요. 순용이는 그 애의 손을 잡았어요. 그리고 좀 더 조심스럽게 걸었어요. 그 애의 집 앞에 다 왔어요. 다행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어요. 그리고 더 이상 사탕도 남아 있지 않았지요. 순용이가 돌아서는데 대문까지 이어진 계단이 눈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순용이는 그냥 뒤돌아 걸어갔어요. ‘계단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겠지?’ 순용이는 가다 말고 그 애를 돌아봤어요. 그 애는 순용이를 보며 그대로 서 있었어요. ‘왜 안 들어가고 있는 거야? 에이, 대문까지만 데려다 주자.’ 순용이는 그 애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갔어요. 그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 마당 쪽으로 난 마루까지 그 애를 데려다 줬어요. 그 애가 마루에 앉았어요. 순용이는 왠지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어요. “나 갈게.” “순용아! 순용아!” 마침, 밖에서 순용이를 찾는 소리가 들렸어요. “어…….” 순용이가 나가려고 하는데, 다람이가 하는 말이 들려왔어요. “순용이는 어디 간 거야? 순용이 없으면 누가 술래 해?” 그 말에 순용이는 깜짝 놀라 그대로 서 있었어요. “집에 갔나 봐.” “술래하기 싫어서 간 거 아냐? 치사하기는.” 순용이의 얼굴이 온통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그냥 그 애 옆에 앉았어요. 눈물이 찔끔 나왔어요. 아이들이 다시 숨바꼭질을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순용이는 그 애 몰래 눈물을 닦았어요. 그 애는 순용이가 우는 줄 알았지만 그냥 모르는 척해 줬어요. 순용이는 왠지 그 애가 자기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인지 그 애 앞에서 우는 게 창피하지 않았어요. 둘은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순용이가 먼저 입을 열었어요. “너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매일 여기 앉아서……너희들이 노는 소리를 들었어.” 그 애가 얼굴을 붉힌 채 다리를 마구 흔들며 말했어요. 순용이도 그저 다리만 흔들고 있었지요. “내가 바다 보여 줄까?” 갑자기 그 애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어요. 순용이는 조금 어리둥절했어요. 여긴 산동네거든요. 그 애가 집 뒤쪽으로 걸어갔어요. 그런데, 눈이 안 보이는 것 같지가 않았어요. 벽을 더듬으며 가긴 했지만 아주 잘 찾아갔거든요. 아까 순용이가 데려다 줄 때와는 다르게 말이에요. “너, 아까 거짓말했지?” 순용이의 말에 그 애가 그냥 씩 웃었어요. 순용이도 그냥 웃었어요. “다 거짓말은 아냐. 내 눈은 정말 잘 안 보이거든. 아주 희미하게만 보여. 얼굴도 둥그렇게만 보이는 걸. 하지만 가게는 몇 번 가 봐서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어.” 그 애가 말했어요. “너 그럼 가게에서 집 찾아올 수 있어? 근데 왜 데려다 달라고 한 거야?” “사실은 우리 집에서……같이 놀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게…….” 그 애가 아주 조그맣게 말했어요. “숨바꼭질하고 있었다는 것도 거짓말이지? 아까 가게에서는 왜 숨어 있었어?” “숫자 세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나도 같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 순용이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 애의 집 뒤쪽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요. “얘가 바다야.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파도 소리가 더 크게 들려.” 그 애는 나무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어요. “바보야, 이건 나무야!” 순용이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어요. 그러자 그 애가 순용이를 똑바로 쳐다봤어요. 그 애의 눈 때문에 순용이는 잠시 무서웠어요. 하지만 곧 미안해졌어요. 그 애의 얼굴이 무척 슬퍼 보였거든요. “바보 아니야! 바다는 얘 이름이란 말이야. 바보야.” 그 애가 마구 웃었어요. 순용이도 멋쩍게 웃었어요. “근데 왜 바다야?” “파도가 치니까.” “뭐?” “파도소리가 들리잖아.” 순용이는 그 애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너도 나처럼 해 봐.” 그 애는 나무를 끌어안고 가만히 눈을 감았어요. 순용이도 그 애를 따라 눈을 감았어요. 바람이 불자,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쏴아아, 쏴아아.” 정말 파도 소리 같았어요. 바람이 더 세게 불어오자 그 애가 말한 파도 소리가 점점 더 커졌어요. 당장 파도가 밀려 올 것만 같았어요. “바다에 와 있는 것 같아.” 순용이는 얼굴에 뭔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어요.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어요. “바다에서 물고기가 떨어진다.” 그 애가 머리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 내며 말했어요. 정말 나뭇잎은 물고기와 닮은 모양이었어요. “잡았다.” 그 애가 떨어지는 나뭇잎을 받으며 말했어요. “야! 우리 누가 많이 잡나 내기하자.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아야해.” 순용이가 말했어요. 둘은 정신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았어요. 순용이는 진짜 낚시라도 하는 것처럼 신이 났어요. 하지만 바람이 멈추자 더 이상 나뭇잎은 떨어지지 않았어요. “에이. 재밌었는데. 야! 넌 몇 마리나 잡았어? 난 열두 마리.” “응. 난 일곱 마리. 가을이 되면 더 많이 잡을 수 있어. 그땐 나뭇잎이 마구 떨어져. 꼭 눈 내리는 것 같아.”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응. 하지만 아무리 많이 떨어져도, 혼자하면……재미없어.” 그 애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집 앞쪽으로 빠르게 걸어갔어요. 순용이는 그 애가 넘어질까 봐 얼른 손을 꼭 잡았어요. 그 애의 얼굴이 온통 빨갛게 되었어요. “빨간 차 뒤에 영민이!” 대문 밖에서 술래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곧이어 빠르게 뛰어가는 소리도 났어요. “다른 술래들은 저렇게 잘 찾는데, 나는 항상 왜 그럴까?” 순용이는 잠시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애가 순용이의 손을 잡아끌었어요. 그 애는 조그만 창문 앞에 가서 섰어요. “이건 요술거울이야.” 그 애가 창문에 손바닥을 갖다 대면서 말했어요. “왜?” “이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기한 게 보인다. 조그만 사람도 보이고 꽃도 보이고, 시커먼 얼굴이 휙 하고 지나갈 때도 있어. 꼭 귀신같아.” 그 애가 웃었어요. 순용이는 창문을 들여다보았어요. 유리에 때가 껴서 얼룩덜룩했어요. 그 얼룩들은 사람 모양 같기도 하고, 꽃 모양 같기도 했어요. 그리고 하늘이 가득 담겨 있었어요. 지나가는 구름도요. 순용이는 그 애가 참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어요.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여전히 얼굴도 이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그 애가 싫지 않았어요. 순용이가 가만히 있자 그 애가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왜? 아무것도 없어? 시시해?” “아니. 하늘이 잔뜩 있어. 구름도 있어.” “정말? 또 뭐가 있어?” 그 애의 물음에 순용이는 한참 창문을 들여다보았어요. “어, 어……너도 있고 나도 있어.” 창문에 담긴 그 애와 순용이의 얼굴이 웃었어요. 그 애의 이상한 눈도 웃고 있었어요. 창문에 비친 그 애의 눈을 보고 있던 순용이는, 웃고 있는 그 눈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신기한 눈 같다고 느꼈어요. 순용이는 고개를 돌려 그 애를 똑바로 쳐다봤어요. 그리고 그 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그 애가 고개를 숙였어요. “내 눈……무섭지? 이상하지?” “아니, 안 무서워.” 그 애가 다시 순용이를 쳐다봤어요. 순용이도 그 애의 눈을 들여다보았어요. 이젠 정말 무섭지 않았어요. 밖에서 술래가 소리쳤어요. “거기! 건우, 다람이 찾았다!” 문득 순용이는 바다라는 이름의 나무와 요술거울이라는 이름의 작은 창문을 가진 그 애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물었어요. “너는 이름이 뭐니?” ■ 당선소감-공포의 구름사다리 또하나 넘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무지개 모양으로 생긴 구름사다리가 있었다. 어른 키 정도밖에 안 되는 낮은 사다리였지만,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도 그 사다리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6학년 체육시간에 구름사다리 넘기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쉽게 구름사다리를 넘었다. 단 한 명, 나만 빼고. 나는 구름사다리 맨 꼭대기에서 그만 멈춰버렸다. 가운데가 볼록한 구름사다리를 넘으려면 몸의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정신이 아찔해지는 꼭대기에서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체육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릴 때까지도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의 눈이 말했다. 할 수 있다고. 너를 믿으라고. 이미 쉬는 시간이었지만, 반 친구들 모두 불평 한마디 없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몸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그래. 오른손 먼저, 좀더 위쪽을 잡아.’ 나를 격려하는 작은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는 그 구름사다리를 넘었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구름사다리를 넘었다. 동화의 처음을 열어준 선안나 선생님,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 남편 성훈, 아들 시와 그리고 성은, 주연, 주희, 영희, 민조. 나를 믿고 격려해주며 기다려준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약력 1979년 울산 출생 명지전문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 심사평-소외된 아이 심리 예리하게 묘사 예년에 비해 응모 편수가 많았다. 그럼에도 문장이나 구성이 턱없이 미숙한 작품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점은 응모작의 전체적인 수준이 향상된 것으로 보여 참으로 반가웠다. 많은 작품들이 실직, 가족 해체, 학교 폭력, 소외, 노숙자 등의 사회 현상들을 다뤄 작품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는 상당히 바람직해 보였지만 문학적 형상화에는 미흡한 경우도 종종 있어 아쉬웠다. 최종적으로 거론된 작품 중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은 우선 제외되었다. 전반적으로 무리가 없던 이야기의 흐름이 끝부분에 가면서 흐트러지고, 마무리가 느닷없다는 이유에서였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따뜻하고 잔잔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꼬리 아홉 달린’은 전래동화의 등장인물인 구미호를 끌어들여 깜찍한 팬터지를 만들어냈고 주인공인 아이가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반전도 신선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깊이를 주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세상에 가득한 사랑’은 독특한 작품이었지만 그 독특함이 오히려 잘 읽히지 않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사랑의 인사’와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였다. 두 이야기 다 또래 집단에서 사실상 소외된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고, 아이의 심리 묘사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있다. 문장이나 전개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사랑의 인사’가 무난한 느낌이라면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는 예리하고 섬세하다. 두 작품을 놓고 장시간 논의 끝에 구성이나 묘사가 좀더 세련된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를 당선작으로 민다. 조대현·이윤희
  • [광복60주년 여론조사] (2)흡수통일이냐, 연방제냐

    [광복60주년 여론조사] (2)흡수통일이냐, 연방제냐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다른 이름은 ‘분단’이다. 광복의 주년(周年)과 분단의 주기(周忌)는 정비례한다. 광복 60주년에 우리는 그래서 환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식민(植民)이 광복을 부르고 광복이 다시 분단을 낳은 급반전의 현대사를 발가벗고 관통한 우리는, 다음 무대에 통일이라는 해피앤딩의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음을 온몸으로 직감한다. 광복→분단→통일의 변증(辨證)적 해몽을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감격적인 통일의 순간에 지하의 애덤 스미스가 환생해 “남북한의 통일을 완성한 ‘보이지 않는 손’이 이제 한민족의 번영을 이끌 것”이라며 ‘통일 국부론’을 설파하는 장면을 꿈꿔 본다. 동시에 우리는 카를 마르크스가 살아나와 “분단은 그 자체의 모순으로 파국을 맞았고, 한민족 모두가 주인되는 통일이 도래한 것”이라며 ‘통일 선언문’을 뿌리는 광경을 꿈꾼다. 우리는 스미스와 마르크스가 통일된 한반도에서 화해하길 희망한다. 하지만 꿈은 아직 꿈일 뿐이며, 만져지는 현실은 냉엄하다. 서울신문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가 공동기획한 신년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남한식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강한 애착과 동시에 북한식 공산주의 체제와의 공존에 큰 거부감을 보였다. 이번 조사에서 서울신문은 국민들이 선호하는 ‘통일의 방식’을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아주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문항1▶민주적이면서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이어야 한다. ▲문항2▶남북한이 합의하면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에 의한 통일도 무방하다. 문항1의 ‘흡수통일’은 북한이 심하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용어이고, 문항2의 ‘북한이 주장하는’이라는 표현 역시 상당히 직설적이다. 응답자 입장에선 심리적 압박감이 느껴질 만큼 솔직한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결과는 눈동자를 크게 하기에 충분했다. 예상보다 문항1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 것이다. 조사 대상자의 65.6%가 민주적 흡수통일을 찬성한 반면, 반대한 사람은 20.5%에 그쳤다. 반면 조사대상자의 절반 이상(50.7%)이 연방제 통일에 반대했고 27.4%만이 지지했다. 민주적 흡수통일은 예컨대 ‘독일식 통일’을 말한다. 북한을 남한식 자유민주체제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북한 체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연방제 통일’은 남북한이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각자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조사에 참여한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의 김형준(국민대 교수) 부소장은 “정치권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밑바닥 민심의 변화속도는 늦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라며 “우리 국민의 다수는 통일에 관한 한 아직 보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나이가 많을수록 흡수통일 방안을 지지했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우리 체제에 대한 자신감과 북한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전 연령에 걸쳐 고르게 나타났다. 50대의 69.1%가 지지했지만 20대도 10명 중 6명 이상(61.7%)이 흡수통일 방안을 지지했다. 반면 연방제에 대해서는 40대의 지지율이 29.8%로 가장 높았으며, 오히려 20대(23.4%),30대(27.3%)가 약간 더 낮았다. 김 부소장은 “20대의 경우 30∼40대보다 보수적이며 이념적 마인드가 흐린 편”이라고 분석했다. 흥미로운 것은 스스로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의 태도다. 자신을 ‘매우 진보적’이라고 한 응답자 가운데 단지 22.6%만이 흡수통일에 반대했다. 반면 이 사람들 중 40.9%가 연방제 통일에 반대했다. 진보든, 보수든 통일국가의 체제가 자유민주주의가 돼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이론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흡수통일에 대한 지지 의견을 ‘적극 동의’와 ‘대체로 동의’로 분리할 경우, 대구·경북(TK)지역에서 흡수통일에 ‘적극 동의’한다는 비율이 56.7%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다른 지역(서울 37.2%, 호남 34.9%)에 비해 ‘완고한 보수성’을 보여준다. 반면 같은 영남권이면서도 부산·경남(PK)지역 응답자는 ‘적극 동의’가 29.5%에 그쳐 TK에 비해 훨씬 ‘리버럴한’ 성향을 보였다. 연방제에 대한 반대의견을 ‘전혀 동의하지 않음’과 ‘별로 동의하지 않음’으로 나눠볼 때도 역시 대구·경북의 ‘전혀 동의하지 않음’이 38.5%로 강원·제주(40%)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부산·경남(19.7%), 호남(23.9%)과 차이가 컸다. 정리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北은 어떤 대상인가 분단 이후 북한은 우리에게 위협의 대상이면서도 화해의 상대였다. 이런 양면성의 딜레마가 여전히 우리를 고민스럽게 하고 있음이 이번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 북한을 무서워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북한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팽팽하게 갈렸다. 양 집단의 차이가 10%포인트를 넘지 않았다. 북한에 위협을 느낀다고 답한 사람(36.9%)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43.1%)이 약간 더 많았고, 북한에 대한 지원을 가능한 한 많이 해야 한다는 의견(43%)이 그렇지 않은 사람(37.3%)보다 조금 많았다. 우리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확고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국민이 적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같은 심리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북한을 위협의 대상보다는 지원의 상대로 보는 시각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은 의미있는 추세라 할 만하다. 정치권이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수치로 입증된 셈이다. 연령이 낮고 학력이 높은 국민일수록 위협을 덜 느끼며, 대북 지원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북한이 위협적이다.”고 답한 의견은 50대 이상에서 절반에 육박(48.1%)했으나,20대에서는 30.3%에 그쳤다. 중졸 학력 이하에서는 43.5%가 위협을 느끼지만 대학 재학 이상은 35.1% 정도만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 ■서울·40대 “못했다” 호남·20대 “잘했다” 노무현 정부의 미국에 대한 동맹정책에 대한 평가에서는 긍정과 부정이 비슷하게 나타났다.“잘못했다.”(37%)는 응답이 “잘했다.”(34.9%)보다 약간 많았으며,“보통이다.”는 의견도 28%를 점했다. 한·미동맹에 있어서도 역시 연령이 낮을수록, 그리고 진보 성향이 강할수록 긍정 평가가 좀더 많은 편이다.20대의 경우 응답자의 40%가 “잘했다.”고 대답,“잘못했다.”(38.3%)는 의견을 근소하게 앞섰다. 이런 현상이 30대 이상으로 넘어가면 살짝 역전된다.“잘했다.” 대 “잘못했다.”의 비율이 30대(37.1% 대 37.9%),40대(33.1% 대 41.4%),50대이상(31.5% 대 32.2%)로 분석됐다. 호(好)·불호(不好)가 이처럼 비등하게 나타나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대미정책이 절묘하거나, 아니면 일관성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현 정부가 주한미군 문제와 대북정책에 있어 전에 비해 목소리를 키우기는 했지만, 이라크 파병과 같은 결정적 사안에서는 미국에 적극 협조하는 등 상반된 태도를 보인 것이 국민의 판단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어쨌든 일부 보수세력의 우려와는 달리,50대 이상의 상당수가 노무현 정부의 대미정책을 긍정평가한 대목은 눈길을 끈다. 한·미동맹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학력별·소득별·지역별 편차가 크지 않고 고르게 나타났다. 다만 지역적으로 서울의 경우 “못했다.”(44.9%)는 응답이 “잘했다.”(31.1%)는 대답을 비교적 큰 격차로 앞섰다. 반면 호남은 “잘했다.”(44.1%)는 평가가 “못했다.”(31.2%)는 평가보다 많았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미래로 부치는 편지/이문재

    미래로 부치는 편지 이문재 내 몸이 신전이라고 말하는 친구가 생각날 때마다 스카이라인 너머 바라보며 몇 걸음 더 걷는다 고개 둘 넘어 읍내까지 걸어다니는 그 친구 떠오를 때마다 녹황색 채소 오래 씹는다 신전은 식물성이다 암송아지 눈처럼 순한 친구 눈동자 그리울 때마다 첩첩 마음의 주름들 펴진다 지하철 속에서도 눈감으면 신전으로 가는 길 보인다
  • [문학이 머문 풍경] 시인 박인환의 고향 ‘인제’

    [문학이 머문 풍경] 시인 박인환의 고향 ‘인제’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중략)…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목마는 하늘에 있고/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가을 바람 소리는/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펑펑 눈이라도 내리는 겨울날, 찻집에 앉아 애잔한 음악과 함께 낭송되던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는 대학가 감상적 낭만의 대명사였다.20∼30년전까지만 해도 찻집마다 단골메뉴로 들려주던 ‘목마와 숙녀’는 그렇게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자리잡았다. 한국전쟁이 가져다 준 허무와 절망, 시대적 불안과 애상을 노래한 전후의 대표적 모더니즘 작품인 ‘목마와 숙녀’는 애절한 한국인의 한(恨)풀이이기도 했다. 전쟁의 상처를 보듬은 31세 요절 시인 박인환(朴寅煥)은 전쟁으로 인해 죽어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슬픔을 인간의 비극으로 승화시켜 상처받은 시대적 감성을 달래주었다. 젊은 나이로 요절한 시인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세월이 흐를수록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지금도 애송되고 있다. 박인환 시인은 1926년 8월15일 강원도 인제군 상동리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했다. 이후 서울로 유학해 서점을 경영하며 모더니즘 시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서점을 통해 문단의 주요인사와 교분을 넓혔고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전쟁 이후 상실과 자조의 풍조가 지배적이었던 당대의 시풍을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등으로 담아내면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한때 외항선을 타기도 했던 박인환 시인은 당대 문인들 가운데 최고의 멋쟁이 ‘댄디보이’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입고 다닌 양복은 외국 고급천에 일류 양복점의 라벨이 붙어 있을만큼 지나칠 정도로 정장과 외투를 선호했다는 후일담이다. 시 쓰기에 몰두하던 박인환은 공교롭게도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 추모의 밤 행사때 술을 마시고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친구들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신에 그가 평소에 좋아했지만 돈이 없어 마음껏 먹지 못한 조니워커를 쏟아 부어주며 그의 시 ‘목마와 숙녀’처럼 살다간 시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전략)/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후략)” 그는 해방후 혼란의 소용돌이와 6·25 전란의 황폐 가운데서 70여편의 시를 남겨 한국현대시의 맹아를 키워 냈으며, 모더니즘 시인으로서 현대시의 토착화에 기여하였고 문학사에 큰획을 그어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인환 시인 시비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수십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박 시인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88년 남북리 아미산공원에 시비를 건립했다가 이후 도로공사로 현재의 합강정 소공원에 이전·건립했다. 해마다 10월이면 시인의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박인환 문학제’도 열린다. 문학제는 추모 백일장과 문학상 시상식, 시낭송대회, 문인초청 세미나, 동화구연대회 등 다채롭게 개최된다. 인제군 문화재 담당 윤형준씨는 “생가터 복원을 위한 자료조사를 마치고 산촌박물관 공원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2006년까지 생가터에 15억원을 들여 상징물과 동상, 시비 이전사업을 펼쳐 문학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후략).” 시인이 남긴 시 가운데 ‘세월이 가면’도 지금까지 세인들의 심금을 울리며 애송되고 있다. 인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싱글녀들의 파자마 talk talk

    싱글녀들의 파자마 talk talk

    싱글 여성들이 호텔방에서 밤을 새우며 벌이는 파자마 파티에서는 과연 어떤 얘기가 오갈까. 프라자호텔에서 일하는 호텔리어 최난주(27), 정유진(28), 조규현(25)씨는 하루에 한번씩은 꼭 만나 연애상담을 해주는 친한 동료사이. 삼총사가 연말연시를 맞아 올해를 집대성하는 수다대전을 펼쳤다. 최난주 점심시간에 소개팅까지 하면서 ‘심하게’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올해는 잘 안 됐네. 올해 (남자친구) 만들어서 내년에는 꼭 결혼하려 했는데…. 정유진 점심시간에 소개팅하면 부담이 없고, 맘에 안 들어도 잠깐 한시간만 보면 되니깐 되게 좋은 거 같아. 난주는 여자 3:남자 20 미팅도 한적 있잖아.(일동 잠시 기절) 최 요즘 미팅에서는 혈액형이나 형제관계 맞히기 놀이를 많이 하는데 남자들도 좋아하더라. 정 올해 ‘B형 남자’가 유행이었잖아. 역시 연애는 바람둥이 기질이 많은 B형 남자랑, 결혼은 세심한 A형과 하는 게 좋을거 같아. 조규현 O형이랑 결혼하면 너무 털털해서 열받는다고 하던데.AB형은 묘해서 심심하진 않을 거 같아. 최 연애할 때 여성들도 ‘던지기의 기술’을 발휘해야할 거 같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남자가 2∼3번 보내면, 여자는 1번 보내는 게 적당하지. 정 요즘엔 남자도 약아서 여자에게 목숨을 안 걸더라. 정열도 부족하고 몇번 하다 안 되면 그냥 말아버리지. 남자들도 피곤해하는 것 같아. 최 내년 직장생활 목표는 뭐니뭐니해도 승진이지. 그동안 2년 가까이 영어와 회계 등을 공부해 왔거든. 정 연말에 모범사원상을 받아서 그동안 일하면서 힘들었던 것이 모조리 상쇄된 것 같아. 무슨 일만 하면 동료들이 모범사원이라 그렇다고 놀려서 힘들긴 하지만. 조 올해 처음 후배가 들어오긴 했는데 나이들이 많아서 후배같진 않았어. 내년엔 대학원에 입학할 계획이고. 최 올 크리스마스에도 24일에는 야근하고,25일에는 호텔에서 소년소녀 가장을 초청하는 잔치 때문에 일해야 할 거 같아. 정, 조 호텔리어의 비애지.(일동 웃음으로 마무리) ■ 백발백중 작업법 파티다. 그런데 난? 함께 보낼 변변한 남자 하나 없다. 그렇다고 한숨만 내쉴 수는 없는 일! 화려한 솔로는 싱글 파티에서 직접 남자를 건진다. 내 눈동자에 쏙 들어온 그 남자, 유혹하는 4단계 전략. ●1단계:외모로 매력을 발산하라 먼저 시각에 민감한 남자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 만남에 첫인상이 중요하듯 옷차림도 중요하다. 꼭 노출로 몸매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튀거나…. 자신의 매력을 뿜어낸다. 길고 고운 머리칼이나 올린 머리에 길게 늘어뜨린 귀고리, 깔끔하게 기른 손톱 등 남자들이 할 수 없는 ‘여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면서 어필한다. ●2단계:추파 보내기 사랑에 빠지고픈 남자를 포착했다면 자주 시선을 마주쳐라. 그가 무엇을 하든 계속 바라보면서 눈빛을 마주한다. 아주 짧게 그를 바라보고, 자신있는 옆모습이나 눈웃음, 함박웃음 등 무엇이든 좋은 매력적인 모습을 남기고 돌아선다. 단 위아래로 훑어보거나 째려보는 것은 금물. 차라리 유혹하듯 서글픈 눈매가 낫다. 자신을 자꾸 쳐다보는 여자, 남자들은 분명 의식한다. ●3단계:자연스러운 대화 걸기 바의 한구석에서 홀로 와인 잔을 들이켜는 여자, 무척 예쁘거나 잘 빠지지 않으면 물고기가 몰려들지 않는다. 파티는 즐겁게 놀기 위한 것이므로 여자가 먼저 말을 건다고 해서 이상하게 볼 사람 없다.“파티 분위기 어때요?”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접근한 뒤 취미나 시사문제, 가벼운 영화 이야기 등으로 대화를 진행한다. 자신감 있으면서 부드러운 말씨는 필수. 혼자 떠들지 말고, 상대의 말에 “어머, 그렇군요.” 정도나 화사한 미소로 호응한다. ●4단계:유혹하기 당신이 지나친 ‘폭탄’이 아닌 이상 여기까지 관심을 보이면 남자는 설렌다. 이럴 때 적절히 다른 남자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남자는 ‘어라? 나한테 관심 있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경쟁상대에 대해 불타오른다. 단 약간의 음식을 건네는 식의 관심인지 친절인지 아리송한 행동은 당신이 찍은 한 남자에게만 보여라.50% 이상 당신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유혹하되 애태우기, 남자를 끌어당기는 확실한 전략이다. ■ 여성포털 ‘젝시인러브’ 콘텐츠팀 조현규 팀장(anny@mail.xy.co.kr) ■ 백전백승 작업장 싱글들이여, 파티에서의 ‘작업’으로 외로움을 날려 보자. 연말연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파티 중에 싱글들이 갈 만한 곳을 엄선했다. 특히 겨울철 비수기에 각 호텔들이 10만∼20만원대에 싸게 내놓는 윈터 패키지는 친구들끼리 파자마 파티장으로도 좋다. ●프라자호텔 메리크리스마스 패키지(310-7710) 서울 광장의 성탄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객실에서 낭만적인 휴일을 즐길 수 있다.19만원부터.24일 뷔페식당 ‘프라자뷰’에서는 산타마을에서 찍은 사진 액자를 증정하는 ‘눈내리는 산타마을 파티’가, 프라자펍에는 타로점·배꼽춤 등이 펼쳐지는 ‘미스티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린다. ●조선호텔 파자마 패키지(080-317-0404) 연말에 친구들끼리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호텔방에 파자마, 와인, 과일, 치즈안주 등이 준비된다. 아침 뷔페, 저녁 칵테일, 헬스·수영장도 이용가능하며 수다 떨다 늦잠자도 걱정없도록 오후 3시까지 체크아웃이 연장된다. 값은 23만 5000∼31만원. ●우바 크리스마스 파티(2022-0333) 현재 서울에서 가장 ‘힙’한 곳으로 디카족들의 촬영지 명소로 사랑받는 W호텔에서도 성탄절 파티가 열린다.W서울 워커힐 우바에서 24,25일 양일간 오후 8시∼오전 4시에 영국의 퍼커셔니스트 나키샤와 유명 DJ 마크 밤박의 공연이 펼쳐진다. 입장료는 3만원, 음료수 한잔이 제공된다. ●쌈지 빅스타 쇼쇼쇼(338-7624) 4시간 동안 한국 록의 심장 ‘언니네 이발관’,‘슈가도넛’ 등 일곱 밴드의 공연이 스탠딩으로 벌어진다.25일 5시부터 홍대입구 쌈지 스페이스 바람홀에서 열리며 입장료는 예매하면 2만원, 현장에선 2만 5000원. 공연 시간 동안 1층에서는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즐길 수 있다. ■ 수다파티 이런 요리 어때요 친구들끼리의 ‘수다파티’에도 음식이 없다면 섭섭하다. 하지만 한사람이 음식 준비를 한다면 좀 부담스럽다. 이럴 땐 자신있는 요리 한가지를 들고 가자. 푸드칼럼니스트 이혜정씨는 “모두에게 환영받으면서 어떤 음료와도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돼지고기 케첩조림과 오코노미야키, 컵샐러드가 무난하다.”고 제안했다. 소파에 기대 앉아서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인 것도 공통된 장점이다. ■ 도움말 필앤라이프(02-523-8054) ●돼지고기 케첩조림 재료 돼지 갈비 1㎏, 간장·청주 3큰술씩, 녹말가루 4큰술, 케첩·설탕 1컵씩, 두반장·콩소스 1작은술씩, 고추 기름 3큰술 만드는 법 (1)돼지 갈비는 기름기 적은 것으로 골라 5∼6㎝ 길이로 토막내 찬물에 담가 핏물을 충분히 뺀 다음 깨끗이 헹군다.(2)(1)을 간장, 청주, 녹말가루에 주물러 3시간 정도 재어둔다.(3)160도 저온에서 서서히 튀긴 다음 온도를 높여 속까지 완전히 익힌다.(4)토마토 케첩에 설탕을 같은 분량으로 넣고, 고추 기름을 조금 넣어 골고루 젓는다.(5)(4)에 콩소스와 두반장을 섞어 프라이팬에서 중불에 서서히 끓인다.(6)설탕이 녹고 소스에 끈기가 생기면 튀겨서 기름뺀 갈비와 잘 버무린다. ●컵샐러드 재료 파프리카 2개, 양파 1개, 적채 (@)개, 만두피 1통,양념 마요네즈·겨자·식초 1작은술씩, 설탕·소금 조금씩 만드는 법 (1)만두피는 오븐에 구워낸다.(2)파프리카와 양파, 적채는 가늘게 채썬다.(3)양념 재료를 입맛에 맞게 섞어 머스터드 소스를 만든다.(4)구워낸 만두피 속에 야채와 소스를 버무려 담아준다. ●오코노미야키 재료 오징어 한마리, 칵테일새우 200g, 양배추 반개, 부침가루, 소금, 오일, 돈가스 소스, 마요네즈 만드는 법 (1)오징어는 가늘게 채썰어 준비한다.(2)새우도 손질하고, 양배추도 가늘게 채썬다.(3)볼에 부침가루와 물을 섞고 손질해둔 야채와 해물을 섞는다.(4)팬에 오일을 두르고 부쳐낸다.(5)(4)위에 마요네즈와 돈가스 소스를 뿌려 완성한다. ■ 선물로 그녀의 마음을 사볼까 연인이나 친구들과의 선물에도 웰빙바람이 불고 있다. 지갑, 벨트, 라이터가 주종을 이루던 예년과 달리 아로마 램프, 토피어리 화분, 기르는 팬시화분 등이 인기다. 또 직접 손으로 만드는 퀼트, 테디베어, 손뜨개, 비즈공예 액세서리 등도 좋다. 아로마 램프세트는 도자기 발향기와 천연 아로마 오일, 티라이트(향초)10개가 기본. 숙면을 돕는 라벤더향이 여성들에게 인기다.(2만 5000원대) 산세베리아 화분은 공기를 정화하는 식물로는 가장 탁월하고 음이온을 방출한다. 연인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방에 하나쯤은 필수(4만원대). 곰 토피어리는 곰인형에서 토피어리라는 식물이 자라나는 인형이다. 자연 식물로서 실내의 공기정화는 물론 가습 효과가 있어 실내 생활이 많은 현대인에게 잘 어울린다(4만원대). 커플눈사람 스탠드는 예쁜 원형 모양의 스탠드. 스탠드 위에 커플 눈사람이 달려있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해준다(2만원대). 이밖에 다이어트 다이어리, 건망증 다이어리, 패션 다이어리 등 다양한 다이어리(2만원대)도 신선한 선물아이템이다.
  • 자폐증 청년 마라톤 도전기 영화 ‘말아톤’ 촬영현장

    자폐증 청년 마라톤 도전기 영화 ‘말아톤’ 촬영현장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초점 흐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한 청년.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듯도 하고,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두리번거리는 듯도 하다. 배우 조승우(24)가 다섯살 지능을 가진 스무살 자폐증 청년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말아톤’의 촬영현장에서 만난 그를 통해, 자폐증 청년의 해맑은 순수를 슬쩍 들여다봤다. #자폐증 청년으로 완벽 변신 “동물백과 초원이 줬어.357종의 동물, 올 컬러 어린이 동물백과… 세연이 보고싶어.” 감독의 슛사인과 함께 터져나온 조승우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고음의 가성이 섞인데다 제멋대로인 억양. 뮤지컬 스타이기도 한, 한국 최고의 목소리를 자랑하는 배우 조승우의 목에서 나온 소리가 맞나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날 촬영분은 초원(조승우)과 어머니 경숙(김미숙)이, 초원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인 세연과 오랜만에 재회하는 장면. 초원은 세연을 마주하고도 누구인지 몰라 멀뚱멀뚱 주변만 바라보고 있다.“그 세연이가 나야.” 그제서야 세연을 뚫어져라 보더니 긴 손가락을 뻗어 반복해 탁자를 치며 “세연이 입에 점 있다. 왕점…”이라며 흥분된 어조로 말을 이어간다. 짧은 머리 위에 흰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파란 체크무늬 남방을 바르게 차려입은 조승우는 그 모습만으로도 지극히 평범한 아이 같았다. 거기에 약간은 경직된 몸동작, 벌어진 입, 초점없는 눈빛까지 더해지니 영락없는 자폐증 환자였다. 홍보관계자가 “자폐증 환자 사이에 있으면 분간을 할 수 없다.”고 귀띔할 정도. #“닫혀있는 게 아니라 순수한거죠.” 영화 ‘말아톤’(정윤철 감독)은 엉뚱하고 순수한 자폐증 청년의 좌충우돌 마라톤 도전기를 담은 휴먼 드라마다. 춘천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2시간57분 만에 풀코스를 뛴 배형진씨를 모델로 했고, 조승우 역시 그를 자주 만나 함께 뛰면서 연기의 영감을 얻었다. 지난 9월에는 강화 해변 마라톤대회에서 함께 10㎞를 완주했다. “촬영전에는 몇백m만 뛰어도 헉헉댔는데 지금은 6·7㎞정도는 거뜬히 뛸 정도로 중독됐다.”는 조승우. 달리기는 이제 어느정도 자신있지만 자폐증 연기는 여전히 그에게 어려운 과제다.“한국영화에서 이런 역할이 흔하지 않잖아요.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 거고, 외국 영화에서 멋있는 배우들이 이미 보여줬고…. 하지만 저 나름대로 나만의 초원을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가 표현하고 싶은 초원은 “자폐(閉)아가 아닌 자개(開)아”란다.“닫혀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는 순수함에 초점을 맞춰 연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영화 ‘하류인생’,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거쳐 ‘말아톤’까지, 정신없는 한 해를 보내면서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조승우.“운좋게도 소중한 작품들을 만났다.”는 그는 앞으로도 뮤지컬, 영화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싶단다.‘말아톤’은 초원이 그림일기에 ‘내일의 할 일 말아톤’이라고 쓴 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제목. 이달 중순 크랭크업해 새달 말 개봉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마니아] 나만의 인형 ‘테디베어’

    [마니아] 나만의 인형 ‘테디베어’

    ■ 혼담긴 ‘테디베어’ 만드는 동호회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감도는 폭신폭신한 털, 반짝이는 눈동자와 움직이는 팔다리.’ “꼬박 하루 걸려 만든 자식같은 저놈이 나를 꼼꼼이 들여다보고 있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한 빨간 고깔을 머리에 씌워놓으니 이제 ‘산타클로스 테디베어’가 다됐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그이에게 선물하면 놀라겠지….” 26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테디베어 공방인 테디클럽.20평 남짓한 공간에 모여앉은 테디베어 마니아들이 꿈과 사랑을 담아 한땀한땀 바느질을 하고 있다. 강진옥(37)씨는 “테디베어를 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은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면서 “숙련된 전문가도 작업시간이 6시간 정도 걸리지만 그래도 이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애칭에서 따온 ‘테디베어’가 우리나라에 본격 소개된 것은 1990년대 말. 공방주인인 고경원(43)씨가 그 주인공이다. “테디베어가 국내에 유행하기 전인 90년대 초 외국에 출장을 갔습니다. 앤티크숍에 갔더니 테디베어들이 저를 보고 웃고 있더군요. 표정들이 제각각인 게 신기하기만 했어요. 우리나라 봉제완구 곰인형과는 달랐습니다.” 완구회사 디자이너였던 고씨는 그 뒤 공장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얻어 테디베어를 만들어봤다. 그러다가 테디베어에 푹 빠져 홍익대학교 앞에 공방을 만들었다. 테디베어를 사랑하는 사람을 모아 차마시고 수다떨려는 요량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국에 1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대사단이 됐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은 김정우(33)씨. 몇 안되는 ‘청일점’이다. 덩치 큰 사내가 바느질 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선물용 테디베어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선수다.5년전 고씨가 펴낸 테디베어 안내책자를 구입한게 발단이 됐다. 테디베어 재료가 부록으로 딸려있어 재미삼아 만들어봤다. “책보며 듬성듬성 바느질해 인형 몸통은 겨우 완성했지만,‘눈’만큼은 통 붙질 않는거예요. 고민하다가 저자를 찾아가 눈을 붙여달라고 했죠.‘화룡점정’을 한 뒤 완성된 인형을 보니 만들 때의 고생스러움은 없어지고 사랑스러움만 남았습니다.” 김씨처럼 ‘선수’들은 테디베어를 남에게 선물하거나 판매할 때 반드시 ‘입양’이라는 말을 쓴다. 혼(魂)을 담아 만든 만큼 인형에도 생명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씨는 “테디베어를 입양시킬 때는 시원섭섭하지만 신주단지 다루듯 테디베어를 모셔가는 또다른 마니아를 볼 때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테디베어를 분신으로 여기기 때문에 인형에 고급 재료를 써도 아깝지 않다. 고씨가 보여준 한 테디베어는 인조 아크릴 원단이 아닌 알파카(남미 안데스산맥에서 서식하는 동물)털로 만들어졌다. 또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연출하기 위해 플라스틱 눈 대신 유리 눈을 달았고, 코는 실로 수놓은 게 아니라 나무를 깎아 만든 뒤 사포로 문질렀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에는 자그마치 ‘38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고씨의 테디베어에 대한 정성은 끝이 없다.“테디베어를 아는 사람은 이런 스타일의 인형을 보면 제 작품인 줄 알아요. 나무로 만든 코 등은 저만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테디베어 만드는 게 어려운 것은 바느질 같은 게 아니라 나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한국테디베어연합회는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프로젝트명-‘스포츠 속의 테디베어들’. 골프, 농구, 폴로 등의 운동을 하는 테디베어들이 전시됐다. 테디베어의 어원대로 사랑과 돌봄(Love&Care)의 정신을 내리받아 전시회 수익금은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기증한다. 테디베어에 대한 경매(www.teddymall.co.kr)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테디베어란? 테디베어의 ‘테디’(Teddy)는 미국의 26대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의 애칭에서 따왔다. 1902년 곰 사냥을 나갔던 루스벨트가 해가 지도록 곰 한마리 잡지 못하자, 이를 지켜보던 수행원이 사냥하기 쉽도록 생포한 곰을 가져왔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곰을 풀어주도록 해 죽음을 기다리던 곰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이러한 일화가 알려지자 많은 미국 국민들이 감동했다. 뉴욕의 한 상점에는 ‘테디의 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인형이 등장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테디베어는 이듬해 독일에서 열린 박람회에 소개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 상품이 됐다. 디즈니 인기 만화 캐릭터인 푸우곰 역시 테디베어의 일종으로 만들어져 상업화에 성공했고, 외국에는 테디베어 전문 수집가가 있을 정도다. 루이뷔통이 특별제작한 테디 베어 가운데 무려 2억 3000만원이나 나가는 것도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테디베어 만들기 “나도 테디베어를 만들 수 있을까?” ‘테디베어’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바느질 방식는 공그르기와 박음질 두가지다. 바느질만 알면 테디베어를 만드는 방식을 절반 이상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본 재료로 칼과 바느질 도구 정도가 필요하며 세부품목이 담긴 8000원∼3만 5000원선의 ‘DIY(혼자서 만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재료)키트’는 서울 동대문 종합상가지 등에서 구입 할 수 있다. 혼자 만들기 어렵다면 테디클럽(www.teddyclub.co.kr)에서 ‘재료와 도구→바느질 방법→옷본 이해하기→옷본작업과 재단하기→머리 만들기→몸체만들기→나사 등으로 관절 연결하기→솜채워넣기→표정연출하기’ 등 9단계 제작과정에 대한 시뮬레이션(시연)을 참조하면 된다. 또는 500개 안팎의 인터넷 동호회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테디베어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경기도 성남 분당구 오리역에 위치한 유아전문 테마쇼핑몰인 ‘베어캐슬’(www.bearcastle)에서는 동화속 테디베어, 세계 각국의 민속의상을 차려입은 테디베어를 만날 수 있다. 걸리버, 피터팬은 물론 심청전 홍길동 등 국내 동화의 주요 장면을 볼 수 있다. 또 제주도 중문관광 단지에 위치한 테디베어 박물관(www.teddybearmuseum.com)에서는 1200평 규모로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테디베어와 테디베어의 역사, 테디베어와 함께하는 모험 등을 접할 수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지붕 낮은 집/임정진 지음

    ‘지붕 낮은 집’(푸른숲 펴냄)은 정말 낮다. 책 갈피갈피를 굴러다니는 얘깃소리도 조잘조잘 낮고, 어린 주인공이 사는 그 동네의 하늘도 별나게 낮아뵌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작가 지은이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있잖아요 비밀이에요’ 등 인기작으로 한때 사춘기 독자들을 몰고 다녔던 임정진(41)씨. 어느덧 여드름쟁이 딸을 둔 중년의 작가는, 가난했지만 보석같은 사연들이 촘촘했던 어릴 적 기억들을 펜끝으로 불러냈다. 마치 이렇게 속삭이듯.“엄마 사춘기적에 말이야….” ‘나’는 낮은 지붕들이 굴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은 가난한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 어른들 세계를 빤히 본 듯이 아는 척하는 친구 희숙이에 비하면 훨씬 순진하다. 그런 ‘나’의 호기심어린 시선망에 동네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걸려든다. 하지만 관심사는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기우뚱 쏠려 있다. 세상이치에 눈떠가는 어린 주인공이 주변인물들을 하나둘씩 끌어들이며 전개되는 책은 그대로 ‘인물 만화경’이다. 주인공을 섞바꿔 전개되는 17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독립된 서사틀을 띠면서도 연속성을 갖는다. 골목 아랫집에서 자취하는 스물두살의 강희언니, 곗돈을 들고다니며 이리저리 남의 말을 옮겨다니는 희숙이 엄마,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어린 명철·명식 형제…. 번갈아 주인공으로 부각된 인물들이 책의 끝장까지 솜씨좋게 이야기의 고리를 끼워간다. ●17개의 단편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친구, 이웃, 동네 전체로 눈동자를 키웠다 줄였다 하며 사연을 푸는 ‘나’는 잡다한 사건들을 보고 겪으며 한뼘씩 마음의 키를 키운다. 밤마다 동네가 떠나가라 시끄럽던 주정뱅이 박씨아저씨는 연탄가스를 마시고 사흘만에 죽고, 새우젓을 팔며 ‘싸움닭’처럼 그악스럽게 살던 엄마가 죽자 일제차를 타고 부잣집 양자로 떠난 철부지 만수. 삶의 큰 옹이인 죽음과 이별의 개념이 이들 캐릭터를 통해 구체화되고, 터질락말락 눈물샘을 건드린다. 아버지가 공장장으로 승진하면서 좋은 동네 큰 집으로 떠나는 주인공이, 혼자 부엌을 서성대는 명식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끝대목 즈음. 울컥울컥하던 감정이 기어이 그릇 밖으로 넘쳐난다. 70년대, 땟국 전 도시공간 한쪽을 무대로 성장소설처럼 펼쳐지는 책에서는 결핍과 쓸쓸함의 이미지가 내내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곤고했으되 울타리 밖으로 관심을 섞었던 그 시절 온기가 수채화처럼 말갛게 번져난다. “밤에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웠다. 연기가 피어 올라가면 혜선이는 그 연기 속에서 귀신이 나온다고 무서워했다.”(129쪽) “희고 가는 국수가 사람 키 높이의 나무 건조대에 발처럼 하얗게 드리워져 있었다.”(135쪽)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신기한 마술 보며 영어의 바다로

    신기한 마술 보며 영어의 바다로

    “Where is the red handkerchief?”(빨강 손수건은 어디에 있을까요?) 23일 오전 11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영어체험마을 마술 체험실. 영어교사 벤저민 그로스(34)가 빨간색 손수건을 빈 가방에 넣은 뒤 흰색 스카프를 빼내며 “Where is…”라고 묻자 초등학생 11명의 눈동자가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학생들은 빨간색 손수건의 행방을 밝혀내기 위해 영어 단어를 맞춰 떠듬떠듬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하나(13·여)양은 “물이 쏟아지지 않는 요술물컵이나 글씨가 사라지는 매직북 등 신기한 마술을 보면서 상황에 맞는 영어를 배울 수 있어 좋다.”면서도 “말하는 수업보다는 듣는 수업이 많고, 학생들끼리는 몰래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22일부터 서울시는 토성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영어체험마을의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영어마을 여권을 소지한 150명은 ‘출입국 관리소’의 영어인터뷰를 거친 뒤 입국했다. 이 곳에서는 마술 수업을 비롯해 힙합댄스, 요리, 뉴욕거리 등 35개 영어체험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학생들은 5박 6일 동안 2인1실의 기숙사에서 머물며 원어민 교사 35명과 함께 24시간 동안 영어만 사용해야 한다. 만일 한국어를 사용하다 발각되면 벌점이 부과된다. 이경희 영어체험마을 사무총장은 “상황에 따른 살아 있는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운영 취지”라면서 “영어체험마을은 궁극적으로 작은 국제사회를 지향하며 영어 외에도 학생들이 국제매너 등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다음달 9∼15일 영어체험마을 홈페이지(www.sev.go.kr)를 통해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내년 1∼2월 신청자를 접수한다. 대상자는 컴퓨터 추첨으로 선정되며 참가비는 5박 6일을 기준으로 12만원이다. 글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십니까?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십니까?

    17일 오후 3시30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직업전문학교 실내디자인과 실습실. 오는 22일로 예정된 실내건축기능사 자격시험에 대비한 모의시험이 한창 진행중이다. 시험시간 종료를 예고하는 지도 교수의 다그침에 학생 40명의 손놀림이 빨라졌다.5시간안에 원룸의 평면도를 비롯해 투시도, 입면도, 천장도 등 4장을 완성해야 한다. 청소년에서 퇴직 가장까지 모두 도면에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온정신을 쏟고 있었다. 이들의 눈동자는 경기불황을 극복하려는 창업의지로 반짝였다. ●한남직업전문학교 실내디자인과 인기 한남직업전문학교는 서울시가 취약계층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4개 직업학교 가운데 하나. 비진학 청소년을 위한 직업교육시설이던 이곳은 지난 2002년 만29세의 연령제한이 풀려 만 지금은 15∼55세의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와 미용, 실내디자인, 조리, 컴퓨터애니메이션, 패션디자인 등이 6개월∼1년 과정으로 개설돼 있다. 지원자 가운데 나이, 가족부양여부, 국가유공자 등을 감안해서 선발한다. 경력 3∼4년이 쌓이면 창업이 가능한 실내디자인과는 평균 2∼3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제도실기를 비롯해 CAD, 포토샵,3D MAX 등이 주교육 과정이다. 교육을 마치면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실내건축기능사와 전산응용건축제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이진영 실내디자인과 주임교수는 “학생 가운데 20세 이하는 50%,30대 45%,40대 이상은 5%”라면서 “주간에는 주부, 비진학청소년, 퇴직자 등 다양하며 야간 과정에는 70∼80%가 직장인”이라고 말했다. ●청소년에서 퇴직 가장까지 새삶 설계 학생 가운데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퇴직자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은행이나 기업에서 정년을 마친 뒤 새 삶을 준비하는 은퇴자들이다. 국민은행 지점장으로 은행원생활 32년을 마감한 심영섭(55)씨는 “지난 3년동안 건축회사를 운영하면서 인테리어쪽으로 겸업하기 위해 배우는 중”이라고 밝혔다. 일반 기업에서 퇴직한 이재전(55)씨도 건축회사에 다니는 아들과 동업하기 위해 합류했다. 내수경기 불황을 타개할 새 활로로 인테리어를 택한 사람도 있다. 청담동에서 7년동안 자동차 딜러를 하던 장필선(44·여)씨는 지난해 4월 경기불황으로 영업소를 접었다. 장씨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탓에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레저스포츠 강사 김영진(31)씨도 이직을 결정한 경우. 김씨는 “이 과정을 마치면 외삼촌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2∼3년 경력을 쌓은 뒤 중국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17세 소녀 조기유학파도 입학 캐나다에서 중학교를 마친 이사벨라(17)양은 건축사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등록했다. 대학 건축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이양은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불편을 피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내년 수학능력시험 준비도 병행하고 있다.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실업자에게는 인테리어가 취업을 위한 주특기로 자리잡았다. 지난 2월 모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최모(23·여)씨는 “공무원 시험을 잠시 미루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시작했다.”면서 “6개월 동안 바쁘게 두가지 자격증을 따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밝혔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길섶에서] 교실노래방/손성진 논설위원

    차를 몰다 라디오를 트니 ‘funky town’이라는 오래된 팝송이 나온다. 막 대학에 입학한 1980년 초 기숙사에서 해방감을 맛보려 카세트의 볼륨을 높여놓고 자주 들어 귀에 익은 노래다. 우리 가수로는 조용필이 막 날리기 시작할 때라 ‘행복한 사람’‘제비꽃’이라는 노래의 잔잔한 음률도 좋아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야 입시에 쫓겨 라디오를 들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유별난 친구들이 있었다. 꼬박꼬박 엽서에 신청곡을 적어 방송국에 보내 놓고 나오는지 기다리는 녀석, 팝송의 가사를 들리는 대로 한글로 받아 적어 달달 외우는 친구도 있었다. 노래를 부를 곳은 더 없어 도서관에서 밤늦게 나와 여럿이 어두운 길을 걸어가며 소리를 내질렀다. 어느날 방과후 친구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마이크와 스피커를 갖다놓고 교실에서 ‘노래자랑’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10여명이 돌아가며 두시간이 넘도록 대여섯곡씩 불러댔다. 교실 노래방이었던 셈이다. 나도 귀동냥으로 익힌 노래들을 여러 곡 불렀다. 그중에서 박수를 많이 받은 노래가 ‘눈동자’다. 지금도 그 친구들을 만나 노래방에 가면 “눈동자 좀 들어보자.”고 조르는 녀석들이 있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청순가련 깜찍발랄 엄지원

    청순가련 깜찍발랄 엄지원

    진지함과 귀여움. 인터뷰 때는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차분하게 하나하나 말하는 진지한 배우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인터뷰가 끝난 뒤 함께 점심식사를 할 때부터는 깜찍발랄한 모습으로 모두를 즐겁게 했다. 아침을 늦게 먹었다며 수프에 토마토주스, 녹차 등 ‘물’만 먹던 그녀는 “이러다 하마되겠네.”라며 깜찍하게 웃었다. “혹시 막내죠?”“아닌데…”“그럼 가족관계가 어떻게 돼요?”“언니 하나 있어요.”“그럼 막내네요.”“둘째가 어떻게 막내예요?(입 삐죽)” 그러고는 언니 옷을 물려입어야 했던 둘째의 서러움에 대해 한창 수다를 떨었다. 귀여운 막내동생처럼. 점심식사의 하이라이트. 식사가 끝날 즈음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정말 서울에서 테러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순간 당황한 기자. 일간지 기자의 체면에도 불구하고 별로 아는 게 없어서 “안 일어날 거예요. 걱정마세요.”정도로 얼버무렸다. 그래도 “무섭다.”면서 겁에 질린 토끼눈을 뜬 그녀. 언제쯤 스크린에서 이런 귀여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까. 오락프로 코너 MC를 맡다가 1998년 MBC 시트콤 ‘아니 벌써’로 데뷔한 뒤 2000년 영화 ‘똥개’의 날라리 여고생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그 뒤 SBS ‘폭풍 속으로’‘매직’, 영화 ‘주홍글씨’등에서 줄곧 착하고도 어두운 여인들만 연기한 엄지원.“이제는 밝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대로, 팬들도 엄지원만의 깜찍발랄함을 보게됐으면 좋겠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어딘지 모르게 얼굴에 깊은 그늘이 서려있고, 눈동자에 촉촉한 이슬이 항상 맺혀있을 것 같은 청순가련형 배우 엄지원(27). 하지만 그것은 작품이 만들어놓은 이미지에 불과했다. 어두운 배역들을 잇따라 끝낸 뒤여서 조금은 가라앉아있었지만, 인터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귀엽고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모습들이 툭툭 이미지의 껍질을 깨고 튀어나왔다. ●“저 청순가련형 여인 절대 아니에요.” 이 귀여운 아가씨에게 청순가련형 여인의 역할은 “대단한 연기의 하나”란다.“사람들은 제 실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원래 여성스러운 성격이 아니라서 제게는 무척 어려운 연기예요.” 특히 영화 ‘주홍글씨’(제작 LJ필름)에서 엄지원은 기존 드라마에서 보여준 이미지 위에 비밀스러운 도발성을 덧입혔다. 핵심적 반전이라 밝힐 수는 없지만, 힘든 도전이었음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드라마 ‘매직’의 여성스러움과 비슷하다며 어떻게 구분해서 연기하느냐고 묻지만 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인물에 대한 이해가 다르니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감정이나 행동도 모두 다르고요. 충분히 이중적인 복선들을 배려하고 연기했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엄지원이 맡은 수현은 기훈(한석규)의 순종적인 아내로, 착하지만 고교 동창 가희(이은주)와 남편의 불륜관계를 눈치챈 듯 늘 얼굴에 그늘이 있는 역할이다. SBS 드라마 ‘폭풍속으로’나 ‘매직’에서의 엄지원을 떠올릴 만도 하지만, 수현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것은 뒤집힌다. 영화 ‘식스센스’의 반전이 브루스 윌리스의 이전 행동들을 곱씹게 했듯, 그녀의 눈빛이나 행동이 그 순간 섬광처럼 다른 의미로 관객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것. 그 이중성을 연기해야 했으니 얼마나 어려웠을까 싶다. ●“첼로 연주는 또다른 연기에 대한 도전” 힘든 연기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첼로 연기.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 조윤선씨의 지도로 6개월동안 “죽기살기로” 연습했단다. 보통사람들은 6개월이면 겨우 활로 소리를 내는 정도인데, 그녀는 첼리스트들도 어려워한다는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과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영화 속에서 직접 연주해냈다. 러시아혁명 이후를 살아간 쇼스타코비치는 자유에 대한 강한 욕망을 곡에 담았고, 제자의 부인을 짝사랑하던 브람스는 사랑의 애절함을 곡에 표현해내서 수현의 감정과도 잘 어울린다고 했다.“첼로 연주는 기존의 눈, 입으로 표현하는 연기와는 또 다른 표현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잘해내고 싶었습니다.” 감정적으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장면은 신부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해성사한 뒤 은밀한 사랑을 반추하는 장면.“인간 엄지원이라면 정말 싫었겠지만 그녀이니까 연기했다.”는 ‘비밀스러운’장면은 위험한 유혹이 그렇듯 매혹적인 이미지들로 채워졌다.“갑자기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파국을 맞는 장면”이라는 그녀의 설명 속에도 그 절절함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수현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많은 장면들이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가 아쉽단다. 대선배 한석규와의 연기 호흡이 어땠는지도 궁금했다. 혹시 연기지도도 하고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뭐 그런 질문이 다 있나’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10년간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할 만한 이유가 있는 배울 점이 많은 배우”라면서도 “연기는 동등한 입장에서 하는 것이고, 슛이 들어가면 그도 나도 한석규, 엄지원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감은 없었다.”고 딱 잘라 말하는 그녀. 연기자로서의 자존심이 보기 좋았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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