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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드아이에 입술 흉터까지…자신과 똑닮은 반려묘 찾은 소년

    오드아이에 입술 흉터까지…자신과 똑닮은 반려묘 찾은 소년

    두 눈의 색이 다르고 입술에 흉터까지 있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온 한 소년이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처한 반려동물과 친구가 돼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미국 온라인매체 러브왓매터스는 미국 오클라호마주(州)에 사는 7세 소년 매든 험프리스가 자신처럼 입술이 갈라져 있고 두 눈이 색이 다른 고양이와 만나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소년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특별한 외모를 갖고 태어났다. 이른바 ‘오드아이’로 불리는 홍채이색증 때문에 두 눈동자의 색이 다르고 구순열로 불리는 선천성 입술갈림증 때문에 어렸을 때 받은 수술로 입술에 흉터가 남아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년은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왔고 소외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소년은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에 있는 고양이 ‘문’을 만나 동질감을 느끼며 점차 자신감을 되찾게 됐다. 소년의 어머니 크리스티나는 “지난주 한 친구가 구순열 자녀를 둔 어머니 모임 인터넷 카페에 고양이 사진 한 장을 게시했다”면서 “고양이는 미네소타주(州)에서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구조된 ‘문’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그녀는 “우리는 고양이를 보는 즉시 우리 가족이 될 운명임을 깨달았다”면서 “문은 7살 된 아들 매든처럼 구순열뿐만 아니라 홍채이색증을 지녔다”고 말했다. 험프리스 가족은 지난달 26일 오클라호마에서 미네소타로 직접 가서 고양이 문을 데려왔다. 그리고 소년과 고양이는 만나자마자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크리스티나는 “우리는 괴롭힘과 혐오스러운 말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사랑을 쫓는 걸 선택할 것이다. 난 문이 사랑으로 매든과 우리의 삶에서 일부를 차지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진=크리스티나 험프리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핵잼 라이프] 11살 된 흑백 쌍둥이 “인종차별 모르고 자랐어요”

    [핵잼 라이프] 11살 된 흑백 쌍둥이 “인종차별 모르고 자랐어요”

    폭풍 성장한 ‘흑백 쌍둥이’의 근황이 공개됐다. 영국 버밍엄에 사는 마르시아 빅스와 밀리 빅스는 2008년 7월, 100만분의1 확률로 태어난 흑백 쌍둥이다.마르시아와 밀리 쌍둥이의 부모는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아 결국 시험관 시술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극히 낮은 확률인 흑백 쌍둥이를 임신·출산했다. 하얀 피부와 금발, 파란 눈동자를 가진 마르시아는 엄마인 아만다의 유전자를, 어두운 피부와 흑발, 짙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밀리는 자메이카 혈통인 아빠 마이클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올해 11살이 된 흑백 쌍둥이는 최근 과학전문매거진인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표지모델로 등장하며 폭풍 성장한 근황을 알렸다.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흑백 쌍둥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인종차별의 개념도 깨우치기 시작했다. 검은 피부와 흑발을 가진 밀리는 인종차별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인종차별이란 누군가가 당신을 색깔로 판단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고, 흰색 피부를 가진 마르시아는 “인종차별주의는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부정적인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아빠인 마이클 역시 “나는 일평생을 인종차별을 겪으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게 인종차별은 가장 먼 관심사”라고 전했다. 마르시아는 “당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신만의 고유한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성숙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인면조 뺨치는 인면견?…누리꾼 당혹

    인면조 뺨치는 인면견?…누리꾼 당혹

    반려견 얼굴이 너무 사람처럼 생겨서, 보는 사람이 불편하게 느낄 정도라고 미국 반려동물 전문 매체 더 도도가 지난 8일(현지시간) 소개했다. 견주 샹탈 데자르당은 평소에 반려견 ‘요기’를 평범한 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 요기의 사진을 공유하자, 예상치 못한 반응이 쏟아졌다. 데자르당이 페이스북에 요기의 사진을 올리자, 한 친구는 “요기가 개의 몸에 사람 얼굴이 있는 것 같아”라고 댓글을 달았다. 다른 친구도 “인간 얼굴로 바꿔서 너처럼 보이는 이유가 뭐지? 그 개는 나를 기겁하게 만들어”라고 덧붙였다. 데자르당의 친구가 미국 소셜 뉴스 웹사이트 ‘레딧(Reddit)’에 요기의 사진을 올리자, 누리꾼들은 아래와 같은 반응으로 친구들의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심란한 것이다.” “이것은 깊이 동요하게 만든다.”“니콜라스 케이지가 스타워즈 이웍(Ewok) 캐릭터처럼 분장한 것처럼 보인다.”“나는 웃고 나서 불편해졌다. 나는 앞뒤로 구르며, 스스로 얼굴 바꾸기일 뿐이라고 납득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데자르당의 다른 반려견과 비교하면, 요기의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아몬드 모양의 눈에 눈동자가 작은 데다, 분홍빛 입술을 앙 다문 것이 사람 같다. 얼굴도 사람처럼 동그란 편에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견주는 대중의 반응에 의아할 뿐이다. 데자르당은 “요기를 보면, 나는 보통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며 “요기는 가장 껴안고 싶고 솜털이 보송한 강아지”라고 털어놨다. 노트펫(notepet.co.kr)
  • [문화마당] 뉴미디어 시대의 ‘1인방송’/송한샘 국제예술대 교수

    [문화마당] 뉴미디어 시대의 ‘1인방송’/송한샘 국제예술대 교수

    지난달 개최된 ‘유튜브 펜페스트 코리아’가 화제다.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의 키즈페스티벌과 초중고생에서 20대까지 아우르는 라이브 쇼에는 1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운집했고, 레드카펫 행사에는 출연진의 ‘실물을 영접’하려는 팬들이 일찍부터 몰려들었다. 1인방송 제작 노하우를 공개한 ‘크리에이터 캠프’는 단연 인기였다. 꿈이 무어냐 묻는 말에 아이들은 “유튜버!”를 외치고, 부모들의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으니, “나는 대통령이 될 터이다”를 부르며 자랐던 여느 아재라면 두 눈이 휘둥그레져졌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관객이 영화나 TV, 가요계의 스타가 아닌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1인방송 유튜버들을 보러 왔다는 사실이다. 기타리스트 정성하(500만)를 비롯해 게임 유튜버 ‘대도서관’(160만), 제패니메이션 OST 싱어 ‘라온’(205만), 뷰티 유튜버 ‘씬님’(148만), ‘급식체’ ‘병맛’ 더빙의 ‘장삐쭈’(73만) 등 이들의 채널은 구독자 수에서 웬만한 연예인의 SNS를 능가한다. 춤 신동 10세 소녀 ‘어썸하은’(149만)은 지난달 첫 앨범을 발매했을 정도다. 1인방송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텍스트의 간결성과 탁월한 접근성이다. 이 방송들은 대부분 5∼10분 길어도 20∼30분 정도로 부담이 없다. 또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둘째, 정보의 실용성과 선택의 다양성이다. 뷰티 유튜버 ‘회사원 A’는 메이크업 노하우를 여과 없이 공개한다. 제품 정보는 기본, 풍성한 이벤트는 덤이다. 교육 유튜버 ‘올리버쌤’도 인기다. 최신 트렌드의 일상회화라면 네이티브 스피커의 1인방송이 학원보다 낫다는 것이다. 셋째, 소재의 흥미성과 일탈의 희극성이다. ‘허팝’, ‘꾹TV’, ‘섭이는 못 말려’ 등은 일종의 대리 일탈을 통해 일상 속 호기심을 채워 주며 100만 이상의 초등생 구독자를 거느린다. 이들은 ‘가스버너로 열기구 띄우기’, ‘1000도에서 소금 녹여 용암 만들기’ 등 흥미롭지만 집에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실험을 하며 예기치 못한 웃음을 선사한다. 넷째, 소통의 상호성과 출연진의 친근성이다. 1인방송은 주로 집, 사무실, 창고 등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일상적인 옷, 나와 같은 말투가 주는 친근감은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쉽게 하며 진실성을 높여 준다. 댓글에도 신속하게 반응하며, 사과도 서슴지 않는다. 시청자는 친근하게 소통하는 영상 속 크리에이터에게 점점 더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문제도 있다. 지나친 재미의 추구가 자극적인 콘텐츠를 양산한다든지, 속어와 비어의 무분별한 사용 등은 개선돼야 한다. 1인방송의 인기를 기존 주류 미디어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다. 제도권에 안주해 거대 담론과 거대 서사만을 앞세우고, 시류에 편승하는 프로파간다에 급급하거나 시청자를 감상적 환상의 세계로 이끌기에 바빴던 주류 미디어의 구태는 오늘날 10∼20대로 하여금 일상적 마이크로 텍스트로 침잠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그렇다고 당장 1인방송이 미디어 생태계를 전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상 뉴미디어의 출현은 늘 기존의 것을 부정한다기보다 그것을 바탕으로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미디어의 변화가 콘텐츠의 변화를 이끈다는 점이다. 짧고,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를 즐기며, 맞춤형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원하고, 능동적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세대에 소구하는 문화 콘텐츠는 무엇일까. 1인방송 산업이 향후 어떻게 성장해 갈지 지켜볼 일이다.
  • [월드피플+] 폭풍 성장한 ‘흑백 쌍둥이’ 근황…인종차별 물었더니

    [월드피플+] 폭풍 성장한 ‘흑백 쌍둥이’ 근황…인종차별 물었더니

    폭풍 성장한 ‘흑백 쌍둥이’의 근황이 공개됐다. 영국 버밍엄에 사는 마르시아 빅스와 밀리 빅스는 2008년 7월, 100만분의 1 확률로 태어난 흑백쌍둥이다. 부모인 마이클과 어머니 빅스는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아 결국 시험관시술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극히 낮은 확률인 흑백 쌍둥이를 임신·출산했다. 하얀 피부와 금발, 파란 눈동자를 가진 마르시아는 엄마인 아만다의 유전자를, 어두운 피부와 흑발, 짙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밀리는 자메이카 혈통인 아빠 마이클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올해 11살인 흑백쌍둥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정 반대의 외모를 유지하며 폭풍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과학전문매거진인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표지모델로 등장하며 근황을 알렸다.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흑백쌍둥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인종차별의 개념도 깨우치기 시작했다. 어두운 피부와 흑발을 가진 밀리는 인종차별에 대해 묻는 현지 언론의 질문에 “인종차별이란 누군가가 당신을 색깔로 판단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고, 하얀 피부를 가진 마르시아는 “인종차별주의는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부정적인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아빠인 마이클 역시 “나는 일평생을 인종차별을 겪으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게 인종차별은 가장 먼 관심사”라고 전했다. 마르시아는 “당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고유의 자신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성숙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리턴’ 봉태규, 박기웅에 멱살 잡힌 모습 포착 ‘흔들리는 악벤저스’

    ‘리턴’ 봉태규, 박기웅에 멱살 잡힌 모습 포착 ‘흔들리는 악벤저스’

    ‘리턴’ 봉태규가 박기웅에게 멱살잡이를 당하고 있는, 일촉즉발 살벌한 현장이 포착됐다.SBS 수목드라마 ‘리턴’은 도로 위 의문의 시신, 살인 용의자로 떠오른 4명의 상류층, 그리고 최자혜 변호사가 촉법소년 출신 독고영 형사와 함께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품격 다른 ‘범죄 스릴러’다. 지난 방송분에서는 오태석(신성록 분)-김학범(봉태규 분)-강인호(박기웅 분)-서준희(윤종훈 분) 등 ‘악벤져스 4인방’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안방극장을 집중시켰다. 이와 관련 악행을 주도한 오태석과 김학범, 그리고 염미정(한은정 분) 살인범으로 구속됐던 강인호와 기억을 잃은 척 할 수밖에 없는 서준희가 분열 조짐을 보였다. 강인호는 오태석, 김학범, 서준희가 염미정 시신을 발견하고도 이를 묻어버리는 바람에 살인 누명을 쓰게 된 것에 분노했고, 서준희는 오태석과 김학범에 의해 죽을 뻔한 사실을 기억하면서도 이를 숨기고 있던 것. 끈끈했던 ‘악벤져스 4인방’의 신뢰가 흔들리면서 앞으로 전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7일 방송분에서는 박기웅이 얼굴 가득 서슬 퍼런 표정으로 봉태규의 멱살을 움켜잡고 있는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극중 펜트하우스 안에서 강인호가 김학범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면. 핏줄까지 선 눈동자로 독기 서린 눈빛을 한 채 강인호는 김학범을 향해 포효하고, 김학범은 멱살을 잡히자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강인호를 바라보고 있다. 과연 강인호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김학범을 ‘멱살잡이’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봉태규와 박기웅의 ‘일촉즉발 멱살잡이’ 장면은 최근 SBS 일산제작센터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박기웅과 봉태규는 촬영 전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친밀한 사이임을 드러냈던 상태. 평소 유쾌하게 대화하며 현장 분위기를 이끌었던 두 사람이지만 절정의 감정을 터트려내는 이 장면을 위해 말수를 줄이며 감정선을 다잡았다. 더욱이 봉태규와 박기웅은 멱살을 잡고 잡히는 장면의 특성상 두 사람의 동선과 제스처의 합이 중요했던 만큼, 리허설에서부터 꼼꼼하게 체크하고 준비했다. 리허설에서 두 사람은 실감나는 애드리브를 선보이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자 동시에 돌변, 김학범과 강인호의 감정이 오롯이 빠져들며 실감나는 열연을 펼쳐냈다. 한편, SBS 수목드라마 ‘리턴’은 7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스토리웍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애완용 카멜레온 혀에 눈알 잃을 뻔한 소녀

    애완용 카멜레온 혀에 눈알 잃을 뻔한 소녀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애완동물이라해도 늘 조심해야겠다. 지난 27일(현지시각) 외신 데일리 메일은 애완용 카멜레온 한 마리에게 눈알 한 쪽을 빼앗길 뻔한 웃지못할 사연을 소개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촬영된 영상 속엔, 한 소녀가 터니(Tuney)라는 이름의 카멜레온을 손등에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카멜레온은 입을 크게 벌린 후, 그녀의 안구를 응시하더니 순식간에 긴 혀로 눈동자를 강타한다. 놀란 그녀는 크게 당황하며 공격당한 한 쪽 눈을 만진다. 다행이다. 눈은 제자리에 잘 붙어 있다. 이러한 카멜레온의 행동은 그녀의 눈알을 먹이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온순해 보이는 카멜레온도 본능은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카멜레온이 먹이를 잡기 위해 혀를 내미는 속도는 무려 시속 96km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혀에는 끈끈이가 있어 먹이가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이 애완 카멜레온의 혀에 있는 끈끈이의 농도가 제법 진했다면 주인의 눈알이 그날의 ‘식사’가 될 수 있을 뻔 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사진·영상=Phil Sylvia/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눈꺼풀 처지는 ‘안검하수’ 수술 전 검사 먼저

    눈꺼풀 처지는 ‘안검하수’ 수술 전 검사 먼저

    눈을 뜨게 하는 근육의 힘이 약해 눈꺼풀이 처지는 질환을 ‘안검하수’라고 한다. 안검하수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2년 1만 6776명에서 2016년 2만 7253명으로 62% 늘었다. 50대 이상 환자가 70%를 차지하지만 모든 연령대에서 환자수가 늘어나는 추세다.미용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10~20대도 환자가 30%가량 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안검하수 치료를 받아 많이 알려졌다. 26일 장재우 건양대 의대 김안과병원 부원장에게 안검하수 치료법과 주의할 점에 대해 들었다. Q. 안검하수는 어떤 병인가. A. 안검하수는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눈을 뜨게 하는 근육인 눈꺼풀올림근의 힘이 약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증상이다. 보통 정면을 봤을 때 눈꺼풀이 눈동자를 3분의1 이상 가리면 안검하수를 의심해야 한다. 보통 나이가 들어 눈꺼풀의 피부가 늘어져서 생기는 눈꺼풀 피부 처짐은 ‘위눈꺼풀성형술’을 하면 된다. 하지만 안검하수는 위눈꺼풀성형술만 하면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정확한 진료가 필요하다. Q. 안검하수도 종류가 있나. A. 안검하수에는 선천안검하수와 후천안검하수가 있다. 선천안검하수는 어릴 때부터 눈꺼풀올림근의 이상이 생겨 나타난다.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또는 갑자기 눈꺼풀이 처지는 후천안검하수는 눈꺼풀올림근 이상이 주원인이지만 신경질환, 눈의 종양 등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후천안검하수는 반드시 발생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Q. 안검하수를 치료하지 않으면. A. 안검하수가 있으면 눈꺼풀이 시야를 가려 답답하기도 하고 가려진 시야 때문에 턱을 들어서 봐야 하기 때문에 목 근육에 피로가 쌓이기도 한다. 또 이마근육을 사용해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 때문에 두통이 생길 수도 있다. 어린아이에게 생기는 선천안검하수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시력발달 장애로 약시(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정상적인 시력이 나오지 않는 상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Q. 치료는 어떻게 하나. A. 안검하수는 대부분 수술로 교정해야 하고 수술 전 안과검사는 필수다. 시력검사, 안경검사, 안구운동장애검사, 동공반응검사, 안저검사 등 기본적인 안과 검사뿐 아니라 환자 병력을 확인해 다른 병이 함께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동공의 크기가 다르다면 호르너증후군, 아침에는 눈을 잘 뜨지만 오후가 되면 눈이 감기는 경우는 중증근육무력증을 의심해야 한다. 만약 상사시나 하사시가 있다면 안검하수 수술 전 사시 수술을 먼저 해야 한다. 사시 수술을 하면 눈꺼풀 위치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검하수 수술 방법은 다양한 사항을 고려해 결정한다. 주로 눈꺼풀올림근의 기능 정도, 눈꺼풀의 처진 정도, 안검하수의 원인을 점검한다. 눈꺼풀의 기능이 있으면 ‘눈꺼풀올림근절제술’, 눈꺼풀의 기능이 현저하게 감소된 경우는 ‘이마근걸기술’을 하게 된다. 눈꺼풀의 기능이 좋고 안검하수의 정도가 경미하면서 특수검사에 반응이 있으면 ‘결막뮐러근절제술’을 하게 되는데 눈꺼풀 절개 없이 눈 안쪽에 하기 때문에 눈꺼풀에 흉터가 생기지 않는다. Q. 수술 뒤 주의할 점은. A. 안검하수 수술 뒤에는 눈을 뜨고 자게 되는 ‘토끼눈’ 증상이 생길 수 있는데 안검하수가 심해서 많은 교정이 필요할 경우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수술 뒤 반드시 안구 보호를 위해 눈물 안약과 눈물 연고를 사용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검사도 받아야 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뭐 먹을 거 없나’ 영업 끝난 카페 방문한 나무늘보

    ‘뭐 먹을 거 없나’ 영업 끝난 카페 방문한 나무늘보

    영업이 끝난 카페에 방문한 나무늘보 영상이 공개됐다. 지난 9일 Caters Clips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이 영상은, 코스타리카의 한 카페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장면이다. 영상을 보면, 영업이 끝난 뒤 불 꺼진 어느 카페 내부에 눈동자 두 개가 반짝인다.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으니 사람은 아닐 터. 느긋하게 움직이는 녀석은 다름 아닌 나무늘보다. 녀석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 조용해진 카페를 방문해 계산대를 누비며 호기심을 채운다. 나무늘보라는 이름에 맞게 녀석은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인다.영상에 달린 설명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의 마누엘 안토니오에 있는 “카페 밀라 그로에서 마감 후, 느리게 움직이는 한 포유동물이 실내를 탐닉하는 게 촬영됐다”며 “낮에 종종 큰부리새와 원숭이가 들어오지만, 보안을 뚫고 들어온 영리한 녀석은 바로 나무늘보”라고 소개했다. 사진 영상=Caters Clips/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몬스터 잼‘이 뭐길래? 티켓 선물 받자 폭풍 눈물 소년

    ‘몬스터 잼‘이 뭐길래? 티켓 선물 받자 폭풍 눈물 소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이 영상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릴 분들이 꽤 있을 거 같다. 지난 5일(현지시각)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전혀 기대치 않았던 생일 선물을 받고 감격스러워하는 아이의 반응을 소개했다. 아이에게 기쁨을 주려 했던 엄마의 계획은 본인 자신마저 눈물을 흘리면서 계획 대비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트리스틴(Tristin)이란 한 남자아이가 볼링장에서 엄마로부터 축하 선물을 받기로 돼있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카드를 전달하고 그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생일 축하해 트리스틴, 오늘은 너의 날이다. 어디를 가든 너는 충분히 즐길 자격이 있어. 너는 몬스터 잼으로 간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엄마가 ’너는 몬스터 잼으로 간다‘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눈동자를 동그랗게 뜬다. 그리고 엄마가 입장 티켓을 보여주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탄식(?)‘한다. 생일 선물로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 몸의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입을 크게 벌리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몬스터 잼 티켓은 아이가 늘 원해 왔던 꿈의 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많은 몬스터 트럭들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트럭 운전자들도 직접 만나서 사인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자 아이는 다시 한번 울음으로 화답한다. “그렇게 기쁘고 흥분되니?”라고 그녀가 다시 한 번 묻자 아이는 우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보인다. 말하지 않아도 울음 속엔 이미 ’예스‘, ’고마워요 엄마‘, ’사랑해 엄마‘ 등 아이가 할 수 있는 모든 표현들이 들어 있다. 아이가 감격해하는 모습에 엄마까지 눈물을 흘린다. 엄마와 아이의 모습이 소란스럽지 않다. 그래서 이 영상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랜 감동의 여운이 남게 하는 거 같다. 이 몬스터 잼 티켓은 트리스틴에겐 분명 평생 기억에 남는 생일 선물이 됐다. 몬스터 잼은 엄청나게 큰 네 바퀴가 달린 트럭으로 운동장 만한 공간에서 질주하고 곡예하는 스포츠 이벤트로 아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영상=Daily Mail/유튜브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 ‘한 모금‘만 달라는 아빠 말에, 밀크쉐이크 ‘폭풍 흡입’하는 아이

    ‘한 모금‘만 달라는 아빠 말에, 밀크쉐이크 ‘폭풍 흡입’하는 아이

    역시 아이들은 순수하고 사랑스럽다.  밀크쉐이크 한 모금이라도 아빠한테는 절대 뺏기고 싶지 않은, 귀여운 여자 아이를 지난 30일(현지시각) 케이터스 클립스가 소개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올 해 두 살 된 칼리 아보(Carly Arbouet)가 선 채로 밀크쉐이크를 먹고 있다. 얼마나 맛있는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인다. 갑자기 아빠 케빈(Kevin)이 ‘한 모금’만 달라고 한다. 짧은 영상 속 웃음 포인트는 바로 여기다. 일단 아빠 질문을 듣지 못한 채 하며 동시에 몸 속 온 갈빗대를 다 들어올리면서 밀크쉐이크를 빨아대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이 “너무 귀여운 꼬마다”, “눈동자에 힘주는 모습이 재밌다”며 여러 의견을 올렸다. 사진·영상=Caters Clips/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한 모금‘만 달라는 아빠 말에, 밀크쉐이크 ‘폭풍 흡입’하는 아이

    ‘한 모금‘만 달라는 아빠 말에, 밀크쉐이크 ‘폭풍 흡입’하는 아이

    역시 아이들은 순수하고 사랑스럽다. 밀크쉐이크 한 모금이라도 아빠한테는 절대 뺏기고 싶지 않은, 귀여운 여자 아이를 지난 30일(현지시각) 케이터스 클립스가 소개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올 해 두 살 된 칼리 아보(Carly Arbouet)가 선 채로 밀크쉐이크를 먹고 있다. 얼마나 맛있는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인다. 갑자기 아빠 케빈(Kevin)이 ‘한 모금’만 달라고 한다. 짧은 영상 속 웃음 포인트는 바로 여기다. 일단 아빠 질문을 듣지 못한 채 하며 동시에 몸 속 온 갈빗대를 다 들어올리면서 밀크쉐이크를 빨아대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이 “너무 귀여운 꼬마다”, “눈동자에 힘주는 모습이 재밌다”며 여러 의견을 올렸다. 사진·영상=Caters Clips/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려서…한 뮤지션의 비극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려서…한 뮤지션의 비극

    영국의 한 60대 뮤지션이 민감한 청력을 견디지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웨일스 카디프 출신의 켈빈 에드먼즈는 일명 앞반고리관 결손증후군(Superior Semi-Circular Canal Dehiscence Syndrome, SSCDS)이라는 증상을 앓아왔다. 앞반고리관 결손증후군은 앞반고리반 상부의 골결손이 있는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우리 귀의 가장 안쪽 부분인 내이에는 반고리관이 있으며, 앞반고리관은 이중 앞쪽에 있는 고리관을 뜻한다. 이 증후군은 청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이로 인한 어지럼증이 유발되며, 국내에서도 매우 희귀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한 외상이 없고 고막 상태가 정상이어도 발병하는 케이스가 있는 등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증상이 심할 경우 정신질환도 유발될 수 있다. 에드먼즈는 15년 간 앞반고리관 결손증후군을 앓으면서도 록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해왔다. 평소 지나치게 조용한 분위기를 힘들어했는데, 이는 공간의 소음이 줄어들수록 가까운 곳에 있는 소리에 더욱 예민해지고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자신의 귀에 종이나 휴지를 말아 넣는 등 고통을 호소했다. 평범한 사람은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 하며 힘들어하던 그는 지난해 9월 자택에서 자살을 시도했지만 아내가 이를 막으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자신의 자살을 막은 아내에게 격분한 그는 폭력을 휘둘렀고, 이후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증상을 호전시키려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한 달 뒤인 10월, 그는 아내를 폭행한 일로 법원에 조사를 받으러 나갔다가 실종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숲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후 경찰은 자택에서 유서를 발견했다. 그의 아내는 “평소 남편이 심장 뛰는 소리뿐만 아니라 눈동자가 돌아가는 소리마저 들린다며 고통스러워했다”고 진술했다. 현지 경찰은 유서를 토대로 에드먼즈가 자살했다고 판결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게 ‘개’라고? 사람처럼 피자 먹는 애견 화제

    이게 ‘개’라고? 사람처럼 피자 먹는 애견 화제

    사람은 감각 중 70%를 시각에 의지하는 반면 개는 50% 이상을 후각에 의지한다고 한다. 눈을 감고 자고 있다 한들 그 뛰어난 후각 능력은 어디 가겠는가? 침대에 누워 있는 어린 하운드 한 마리. 코 앞에 피자 냄새가 진동하자 바로 눈을 뜬다. 본능이다. 휘둥그레진 두 눈동자는 이미 피자 한 조각에 ‘굴복’ 당했다. 그리고 사람처럼 두 손, 아니 두 앞발로 낼름 받아 게걸스럽게 먹는다.한 번 뜯어먹은 피자는 멈출 수 없다. 사람도 그렇듯이 맛있는 음식을 먹은 후에 느끼는 ‘절대적 행복감’이다. 애견가들에겐 더더욱 미치도록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일 거 같다. 개로 태어났지만 사람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개 한 마리를 지난 25일(현지시각) 외신 데일리메일이 소개했다. 이 개를 보면 그 주인이 누군지도 알 수 있을 거 같다. 현재 29만 4천여 명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몰고 다니는 유명 블로거 ‘블론지’(Bluenjy)다. 그녀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귀여운 개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이번 영상 속에 보이는 빨간색 후드 차림의 주인공도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명성’에 한몫하고 있다. 그녀는 이 영상을 지난 2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게 뭐지?, 냄새 맡게 해주세요, 먹게 해주세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피자!’라는 설명과 함께... 믿고 찾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역시 수많은 누리꾼들의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영상=moon lite/유튜브 사진=bluenjy 인스타그램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여권사진 규정 완화…“양쪽 귀 노출 의무 조항 삭제”

    여권사진 규정 완화…“양쪽 귀 노출 의무 조항 삭제”

    여권사진을 찍을 때 양쪽 귀가 다 보여야 한다는 규정이 삭제됐다.외교부는 국민 편의를 높이기 위해 여권사진 규격을 개정, 25일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새로 마련한 여권사진 안내문에는 종전 안내문에 있던 내용 중 ▲양쪽 귀 노출 의무 ▲어깨의 수평 유지 ▲뿔테 안경 및 눈썹 가림 지양 ▲제복·군복 착용 불가 ▲가발·장신구 착용 지양 항목 등이 삭제됐다. 대신 머리카락이나 안경테가 눈동자를 가리지 않아야 하며, 빛이 반사되거나 얼굴 윤곽을 가리는 장신구 착용도 제한된다. 또 머리카락이나 장신구로 얼굴 윤곽까지 가리면 안 된다. 이와 함께 기존 유아 사진 속 세로 머리 길이(정수리부터 턱까지)가 2.3~3.6㎝여야 한다는 조항을 수정해, 기존 성인 규격과 동일한 3.2~3.6㎝로 통일했다. 외교부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정한 여권사진 기준을 충족하면서, 민원인의 편의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본인 확인이 어려울 정도의 여권사진은 해외 입국심사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또 군복·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허용한 것과 관련해서도 “군인이나 경찰 등 제복을 입는 직업이라면 가능하지만 ‘코스프레’식으로 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외교부 여권사진 규격 개정안은 외교부 여권 안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9000년 전 10대 여성의 얼굴, 이렇게 생겼었다

    9000년 전 10대 여성의 얼굴, 이렇게 생겼었다

    무려 9000년 전 지구상에 생존했던 10대 여성의 얼굴이 복원됐다. 얼굴이 복원된 유골은 1993년 그리스 동부 테살리아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를 연구해 온 아테네 대학 연구진은 이 유골의 주인이 BC7000년 경 중석기 시대 끝 무렵에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아브기’(Avgi)라는 이름이 붙은 이 유골의 주인은 15~18세의 여성이었으며, 고고학자들은 그동안 아브기의 건강상태와 당시 생활환경 등을 유추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 그 결과 아브기는 광대와 턱이 유독 발달돼 있으며 눈썹이 짙고 뺨이 홀쭉했다는 것을 유추해냈다. 또 입술이 두툼하고 쌍꺼풀이 있으며 코가 우뚝한 편이다. 특히 광대와 턱이 발달한 것은 아브기를 포함한 당시 인류가 질긴 동물의 고기나 껍질을 자주, 오래 씹으면서 나타난 특징이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과거 여성의 외모는 현대 남성처럼 다소 선이 굵고 강한 느낌을 줬지만, 1만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턱 선이 부드러워지는 등 외모의 느낌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브기의 얼굴을 복원하는 과정에는 고고학자뿐만 아니라 정형외과와 영상의학과, 치아교정과 등 전문가들이 동원됐다. 전문가들은 아브기의 유골 상태를 정밀 분석한 결과, 뼈의 상태는 15세로 추정되지만 치아의 상태로 보아서는 18세 정도일 가능성도 높다고 밝혔다. 또 얼굴 해부학적 형태를 바탕으로, 유골에 붙어 있던 피부과 지방층의 두께를 추정해냈으며, 피부색과 눈동자의 색은 당시 거주했던 고대 원시인들의 특징을 그대로 옮겼다. 아브기의 얼굴 표정이 다소 화가 난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관련해 연구를 이끈 치과교정 전문의는 “사실 당시 그녀가 화가 났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연구 결과 그녀는 생전에 빈혈 및 괴혈병 등의 질병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복원된 아브기의 얼굴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19일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미술관에서 공개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슈퍼맨이 돌아왔다’ 샘 해밍턴 아들 윌리엄, 귀여움 100% 여권 사진 공개

    ‘슈퍼맨이 돌아왔다’ 샘 해밍턴 아들 윌리엄, 귀여움 100% 여권 사진 공개

    방송인 샘 해밍턴 아들 윌리엄의 여권 사진이 눈길을 끌고 있다. 21일 방송되는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방송인 샘 해밍턴과 그의 아들 윌리엄 해밍턴이 여행에 나서는 모습이 그려진다. 두 부자는 일본 도쿄로 출장 겸 여행을 떠난다. 이날 방송에 앞서 공개된 사진에서는 윌리엄이 아빠 샘 해밍턴과 공항을 찾은 모습이 포착됐다. 윌리엄은 커다란 비행기 크기에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이를 바라보고 있다. 제작진은 이날 윌리엄의 여권 사진도 공개했다. 통통한 볼과 크고 새까만 눈동자, 앙다문 입술 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아빠 샘 해밍턴의 어릴 적 모습과 동생 벤틀리와도 똑 닮아 훈훈함을 자아내고 있다. 이를 본 네티즌은 “윌리엄 제발 그만 귀여워주라”, “으아 볼살 만져보고 싶어”, “윌리엄 잘 다녀와”, “굴욕 없는 여권 사진이다. 세상 귀엽”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샘 해밍턴과 그의 아들 윌리엄의 도쿄 여행기는 21일 오후 4시 50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KBS2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아는형님’ 엄정화, 서장훈 과거 폭로 “내 친구랑 사귄 적 있다” 무슨 일?

    ‘아는형님’ 엄정화, 서장훈 과거 폭로 “내 친구랑 사귄 적 있다” 무슨 일?

    가수 엄정화가 서장훈의 과거를 폭로했다.6일 오후 8시 50분 방송된 JTBC ‘아는형님’에는 가수 엄정화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엄정화는 24년 전 서장훈이 엄정화의 친구와 사귄 사실을 폭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엄정화는 등장하자마자 서장훈에게 “내 친구 중에 되게 예쁜 애가 있었는데, 그 친구랑 잠깐 만났지?”라고 말했다. 이에 서장훈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잠깐 만났는데 누나 친구였다”면서 “그분이 나한테 나이를 속여 나중에 알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분이 제일 친한 친구를 데려 오겠다고 했는데 누나(엄정화)가 와서 되게 놀랐다”라면서 “‘눈동자’로 엄정화가 되게 유명할 때 였다”고 털어놨다. 엄정화는 서장훈을 놀리며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더니, 너무 자상하고. 옆에 입술도 닦아주고...”라며 폭로를 이어갔다. 이에 서장훈은 모르쇠로 일관,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냈다. 김희철은 “농구계의 현빈”이라며 로맨틱한 서장훈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사진=JT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반려독 반려캣] 교회 앞 버려진 견공은 밤새 주인 기다렸다

    [반려독 반려캣] 교회 앞 버려진 견공은 밤새 주인 기다렸다

    지난달 중순 어느 날 밤, 10살쯤 된 골든래트리버 한 마리가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버너디노에 있는 한 교회 앞에 버려져 있었다. 개는 자신이 버려졌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해 밤새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으며 지칠 대로 지쳐 걸을 힘조차 없어 제자리를 지키고 앉아만 있었다. 동물전문 매체 더 도도에 따르면, 이튿날 아침 교회에 나온 한 관계자가 개를 발견했다. 개는 나중에 ‘치노’로 불리게 됐다. 치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도움이 절실해 보였다.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지 못해 털은 지저분하게 엉켜 있고 벼룩까지 있었다. 눈곱도 가득 끼어 있고 눈동자는 탁해 시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영양실조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관계자는 인근 지역 테하차피에 있는 말리스 머츠 도크 레스큐(Marley‘s Mutts Dog Rescue)에 연락했고, 곧 잭 스코라는 이름의 설립자가 찾아왔다. 스코가 처음 본 치노는 두려움 때문에 짖어댔다. 하지만 그의 노력으로 치노는 곧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스코는 “치노는 전혀 보살핌을 받지 못했는데 좋지 못한 환경에 고립돼 있었던 게 분명하다”면서 “눈은 오래전부터 세균에 감염돼 괴사 직전이라서 실명까지도 생각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치노의 몸을 살핀 수의사 역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치노의 피부와 눈 외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는지 면역체계가 손상돼 있었기 때문이다. 또 치노는 치아가 추정 나이를 고려해도 손상이 심했다. 금속성 울타리 같이 단단한 물건을 계속해서 물어뜯어온 것처럼 보였다. 경찰 등 조사에서도 치노의 원래 주인은 누구인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스코는 “치노는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서 떠돌이 신세가 된 이후 사람들과도 거의 교류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치노는 구조 이후 곧바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2주 만에 치노의 상태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의료진의 노력 덕분인지 치노의 눈은 심각한 상태였음에도 어느 정도 시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적절한 치료 속에 피부 상태 역시 갈수록 좋아졌다. 스코는 “치노는 2주 만에 완전히 다른 개가 됐다. 처음에는 걷는 것조차 무리일 수도 있겠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치노는 밝고 즐겁게 여기저기 관심을 보이며 돌아다닌다”면서 “지금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골든 래트리버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치노는 두려움에 떨며 짖던 모습 역시 사라졌다. 붙임성이 좋고 침착하다는 것. 이에 따라 스코는 앞으로 치노가 완전히 회복하면 치유 견으로서 양로원이나 병원 등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 치노는 다른 개와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하지만 한 달 뒤에는 중성화 수술을 받을 만큼 건강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치노의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이 생겨 치노는 머지않아 새로운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진=말리스 머츠 도크 레스큐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 필경사 (이철주)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 필경사 (이철주)

    1. 눈먼 자의 윤리 때론 그림자가 더 많은 말을 건넨다. 긴장 가득 훈련된 표정을 지어도, 무시당하지 않으려 허리를 꼿꼿이 세워도, 불안은 그림자에 투영돼 존재를 누설한다. 가끔 속내를 들켜도, 환멸에 사로잡혀 생이 부대껴도 그림자는 결코 존재를 떠나지 않는다. 뒤틀리면 뒤틀린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닌다. 삶과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그러곤 어디에선가 누군가를 닮은 모습을 하곤 쓸쓸히 흘러다닌다. 생을 반복하고 따라하며 생이 이곳을 떠나도 홀로 남아 존재를 증거한다. 그림자의 이 헌신엔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맹목이 있다.한편으로 그림자는 왕성한 식욕의 소유자다. 표정도, 색깔도, 음성도, 촉각도, 냄새도 모두 집어삼킨 채 존재의 맹점을 현상한다. 감각이 보증하는 확실성을 제거하고 정체불명의 검은 얼룩을 펼쳐 놓는다. 그림자는 시각 속의 동공이며 감각을 배반하는 충동이다. 그러니 그림자란 본디 외경의 대상인 것이다. 감각과 관념에 잘려 나간 세계가 역으로 이쪽을 바라볼 때, 맹목의 관계는 뒤집힌다. 그림자에 감염되어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기이한 갈증을 느끼며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니는데 그들을 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들도 그림자와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수억의 생들을 베끼고 반복하며 처연히 이해해 간다. 그림자의 맹목과 시인의 맹목. 어찌할 수 없음으로밖에는 풀이될 수 없는 이 눈멂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진실한 이해의 방법이 된다. 불가해한 생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따라하며 존재의 자세를 닮아 버리는 것. 그 충분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진 함부로 대상을 떠나지 못하는 무능이 그들이 가진 윤리이며 능력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시가 과연 이 충분한 맹목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000년대 이후 이어진 일련의 실험적 시들이 관습적 문법의 경계를 뒤흔들고 시의 외연을 확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 의지와 선언이 너무 앞선 나머지 관념과 이론이 시를 대신 살아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유행하는 철학적 담론을 잘 소화한 시가 좋은 시가 아니듯, 시와 비평이 근거로 삼은 담론의 윤리성이 시의 윤리와 덕목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말과 삶에 대한 치열한 응시와 질문. 좋은 시의 윤리와 덕목은 언제나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소연의 시는 바로 이 점에서 시의 본연에 충실하고 있어 반갑고 소중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위태로운 추락의 한 시절을 통과하는 중이다. 좁고 피폐한 삶을 지켜 내기 위해 일말의 어둠도 쫓아내기에 급급한 지금, 육박해 오는 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당당한 목소리가 절실하다. 이 눈 맑은 시인은 삶의 도처에 엎어져 있는 상흔을 읽어 내고, 고통의 결과 깊이를 삶의 구체적 언어로 더듬으며 섬세히 응시한다. 그림자가 한 생을 바쳐 삶과 동행하듯, 그의 시 역시 수억의 생을 바쳐 그림자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을 성실히 몸에 새겨 넣으며 깊고 단단해진다. 그림자란 본디 맹점이며, 어떤 확신도 불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무지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고, 보인다고,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자로부터 ‘시선’의 능력을 빼앗았기 때문이며, 닮았다는 이유로 전부 이해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 온 탓이다. 마음의 눈꺼풀은 그렇게 굳게 닫힌 채 존재가 퍼붓는 질문으로부터 안전하게 물러난다. 김소연의 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림자에게 외경을 되돌려 주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이론과 개념들이 생의 그림자가 될 수 없음을 몸소 증거한다. 김소연은 그림자의 시인이다. 그림자의 언어로, 그림자의 시선에 응답하며, 그림자가 남겨놓은 파문들을 뼛속 깊이 묻는다. 2. 그림자양식장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자아 내면의 복수적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그림자들의 양식장이라 부를 만한 공간에서, 시인은 말들을 먹이로 던져 주며 내면의 그림자들이 불러일으키는 파문을 응시하고 있다. 그림자의 차가운 비늘이 말에 닿아 번지고 마침내 말을 삼켜 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불화하는 내면에로 깊이 침잠한다. 차가운 환멸과 단호한 자기 부정은 김소연 시의 근본을 이루는데, 여기에는 뼈아픈 목도만이 있을 뿐 화해의 축이 부재한다. 타협 불가능한 절대적 자세로 삶의 피폐를 건넌다. 무참한 추락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시되는 이곳의 삶에 당당히 맞서 고통의 극한을 살아 낸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모두 통과한 그의 목소리는 가장 뜨거울 때조차 차가움을 예감하고, 가장 차가울 때조차 뜨거움을 끌어안는다. 이 현격한 열의 낙차가 일상의 무감각한 관성을 깨뜨리는 뇌관으로 작동한다. 사월은 차갑다/사월의 돌은 더 차갑다/사월의 돌을 손에 쥔 사람은 어째서 뜨거운가/그는 어째서 가까운가//마루 아래 요정이 산다고 믿은 적이 있다/잃어버린 세계는 거기서 잘살고 있다/이 사실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다//하나의 문장으로도 세계는 금이 간다/이곳은 차가우므로 더 유리하겠지 - 「열대어는 차갑다」 부분 (『아침』) 돌은 사월의 뜨거움을 기억하기에 더 차갑다.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워야 할 날들이기에, 그렇지 못한 현실을 더 비극적으로 비춘다. 화자는 마루 아래라는 가시성 바깥의 공간에 망각된 세상의 온기를 풀어놓고 있다. 현실과 ‘너머’의 세계가 빚어내는 처연한 온도차를 뜨거움으로 명명하는데, 그러므로 “이 사실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다”는 선언은 설익은 화해의 제스처로 읽혀선 안 된다. 세계에 금이 가는 이유는 이곳과 너머 사이의 아득한 거리 때문이지 희망과 열정 같은 추상적 개념 때문이 아니다. 불화를 불화로서 보존하되, 이들이 빚어내는 떨림과 파열을 섬세히 기록하는 것. 김소연 시의 이와 같은 분명한 자세는 화자가 실족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노출하는 장면에서 더 아프게 현상된다. 서로가 서로의 치부를 헛짚고 세계의 성감대를 헛짚은. 내리 빗나가던 선택들. 말하자면 기다림으로 독이 남는 자세. 시효를 넘긴 고독. 일종의 모독. 기다려온 우리는 치사량의 관성이 있을 뿐. 부패 직전의 끝물이다. - 「끝물 과일 사러」 부분 (『극』) 말의 파편들이 ‘끝’이라는 날카로운 선 앞에까지 밀려나 있다. 각 행의 끝엔 더 이상 남은 공간이 없다. 마침표조차 제대로 찍히려면 스스로가 끌어온 말들을 다시 과거로 밀어내야 한다. 미루고 미뤘던 삶의 초라한 진실이 단정하고 건조하게 한마디를 건넨다. “우리도 끝물이다.” 단단하게 요약된 이 사랑의 문장은 아프다. “치사량의 관성”으로 버텨온 관계의 맨얼굴, “끝물 과일”이 화자를 바라본다. 언어가 감정을 헛짚고, ‘사랑해’가 ‘미안해’를 대신하며 살을 찌워 갈 때, ‘끝’은 이렇게 언어의 은밀한 구석에 날카로운 뼈를 현상한다. 이럴 때 언어는 잔혹해진다. 한없이 위태로워 길들이지 않을 수 없는 짐승이 된다. 과녁에서 벗어난 말들의 사체가 한동안은 무심히도 쌓였을 것이다. 시인은 이 사랑의 폐허를 떠나는 중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를 “끝물은/아주/달아.”라는 감각적 긍정으로 전환해 낸다. 허위로, ‘헛짚음’으로 유지된 일상을 ‘끝물’에 비유하는 순간, “치사량의 관성”은 역으로 서로의 치부와 세계의 성감대를 더욱 선명하게 발설한다. 부재하는 여기를 정면으로 직시함으로써 몰락한 꿈의 순간들을 발굴해 낸다. 폐허엔 여전히 지독한 허기와 갈망이 어리겠지만 이를 부정하지 않고 생의 언어로 감각해 냄으로써 끝물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도래해야 할 것으로 변모된다. 어떤 환상도 희망도 없이 뜨거움과 차가움을 반복하며 그의 문장은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그가 “차례차례 사랑이었던 것들과 한꺼번에/달디단 혼숙을 하는 것”(「달디단 꿈1」, 『극』)이 꿈이라며 부드럽게 말할 때에도 “이 조용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치욕스럽다”(「학살의 일부12」, 『극』)며 “중무장된 평화”(「학살의 일부1」, 『극』)가 학살이라 선언할 때처럼 단호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의 시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불화와 혼숙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한 사람은 나를 바로 보지 않는다/소파와 구별되지 않게 소파 속에 있거나/반쯤 열린 문틈 안에서 베개를 돋워 돌아눕는다//한 사람은 나를 보다가 나를 태운다/그 온도는 태양과 다름없고/내 운명은 종이와 마찬가지라/돋보기 같은/그의 눈빛에 나는 새까맣게 타들어간다/대체로 나는 그 앞에서 나는 재만 남는다//또 한사람/꿈을 보기 위해/눈꺼풀을 오려냈다는 이 사람/밤새 두 손을 소담히 오므려서/잠든 두 눈을 나는 덮어주곤 했다// (중략) //축하보다는 축복을 받고 싶은 시월 아침에/오만 잡병의 숙주가 된 육체/속옷 벗듯 벗어둔 채/마음끼리 살을 섞는다 - 「세 사람과 한집에 산다」 부분 (『눈물』) 화자는 텅 빈 폐허 같은 방 안에서 자신의 갈라진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나’에게는 두 명의 폭군이 있는데, 하나는 나를 지우고 다른 하나는 나를 재로 만든다. 비록 관계의 양상은 다르나 결과적으로 나를 비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사람’이 더해진다. ‘꿈을 보기 위해 눈꺼풀을 오려 냈다는 사람’은 나에게 어떤 힘도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를 존재로 만들어 준다. 화자는 눈꺼풀을 오려 낸 눈이 꿈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잠든 눈을 가만히 덮어 준다. 이 시가 평범한 시였다면, 이 세 번째 사람에게 시의 전권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 세 개의 그림자로부터 한발 물러나, 이 셋과의 공평하고도 평등한 혼숙을 명명한다. 물론 이는 화해라는 낭만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세 개의 그림자와 나 사이엔 살을 섞어도 결코 화해될 수 없는 아득한 거리가 여전히 냉정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소연의 문장은 자신을 거쳐간 수많은 그림자들을 마음에 풀어 놓고 그들이 일으키는 파문들에 눈을 충분히 단련시킨 자만이 얻어 낼 수 있는 ‘말’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이 위태롭고 어려운 일을 그는 차분하고도 안정된 걸음걸이로 해낸다. 굉장한 내공과 섬세한 마음의 섭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지나간 마음에 눈을 빼앗겨서도 안 되고, 잊어서도 안 되며, 섣부른 성찰로 도망쳐서도 안 된다. 꼬이고 뒤틀린 존재들이 서로를 밀어내고 뒤엉키며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는 것. 어떤 불화도 해소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삶의 진실 앞에 스스로를 담담히 열어 놓는 것. 김소연의 시는 이 선명한 규율들을 가슴에 품은 채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보폭으로 사유의 어긋남과 욕망의 비틀림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3. 유실영(影)보호소 김소연 시의 한 축이 자아 내부에 도사리는 복수적 그림자들의 불화를 매개하고 내부의 균열과 긴장을 풀어 놓는 데 있다면, 다른 한 축은 타자의 삶에 깃든 그림자에 대한 섬세한 응시로 나타난다. 그의 시에서 그림자는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사유로 환원되지 않는데, 이는 무엇보다 그의 시가 삶의 구체적 실상과 인간의 유한한 조건들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새로운 삶을 위해 전시해 놓은 그럴듯한 기념물이 아니라, 매일의 몰락을 견뎌 온 숨겨 온 자세들이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장소이다.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은 표정들과는 달리 불가피하게 삶의 피폐가 누수되는 공간이며, 모두가 공평히 그런 누수 속에 강제되는 사건이다. 시인은 그렇게 누군가 흘려 버린 그림자들을 데리고 와 사라져 가는 존재들을 거두고 보호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의 내력을 짚어 보며 삶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남아 이곳을 떠도는 그림자들을 위무한다. 그녀는/바다에서 용이 머리를 치키고 올라올 때와 같이/담배 연기를 코로 뿜는다 여의주처럼/담배를 물고 앉아서/성긴 이빨을 자꾸 드러낸다// (중략) /그 노파는 세상 사람들이 그어놓은 줄들을/그런 모양으로 무시하듯 질펀히 앉아서 살아왔다//노오란 양지는 노파를 점점 비켜간다/노파는 그저 햇볕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햇볕이 얼굴의 반을 부시게 하더니/점점 비껴서/이제는 그늘 안에 노파를 가둔다 - 「학살의 일부 10-이빨이 성긴 노파」 부분 (『극』) 노파는 퇴락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연함 속에 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추락의 상흔이 이빨이 성긴 노파의 얼굴에 현상된다. 자신감 넘치는 낡은 몸 안에, 아무도 관심 없던 폐허 몇 개쯤 담담히 갖고 있을 노파의 눈빛이 화자를 응시한다. 함부로 이해해선 안 될 외경이 노파의 그림자에 어린다. 김소연이 “그 얼굴은 얼굴 외에 또 다른 것들이 겹쳐 있었다”(「1937년생」, 『극』)고 말할 때나, “우리 뒤에 깔린 반듯한 비단길을 아무도 걷지 말거라/벼랑 끝 노을이 우리 이마에 새겨주는 불립문자를/아무도 읽지 말거라”(「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빛』)고 진술할 때, 그가 끌어올린 그림자엔 어찌할 수 없는 외경이 실려 있다. 그가 외경을 표하는 그늘들엔 어쩐지 피 냄새가 짙다. 그늘은 찬란한 빛에 의해서만 어둠을 풀어내고, 어둠이 풀려날 때마다 추락은 반복된다. 수없이 깨지고 터져도 결연히 몸을 털고 일어난 생들은 하나같이 여전히 뜨거운 어둠을 품는다. 그 어둠의 무게가 어깨와 허리를 휘게 만들고, 그림자는 삶을 견디는 그들의 자세를 닮아 버린다. 이승에서 삼십 년/육신을 빠르게 쓰고 저승으로 이사한 아들 사진을//팔십 년째/육신을 아껴 쓰고 계시는 아버지가/느리게 문갑 문을 열어 만지고 계신다// (중략) //계시는 사진 한 장과 없어진 사냥개 사이엔/벽지처럼 살고 있다/앞모습을 보아선 아니 될/가족의 녹슨 얼굴들이 - 「계시는 아버지」 부분 (『눈물』) 여기에는 경솔히 이해해선 안 될 그늘에 머물기 위해 추락의 깊이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 현상돼 있다. 자식의 죽음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기엔 상처는 너무 깊고 치명적이다. 그래도 삶은 이어져야 하기에 멍이 곰팡이처럼 들어선 낡은 방에 벽지를 바른다. 벽지를 뜯어내고 나면 그 자리엔 함부로 보아선 안 될 타인의 맨 얼굴이 저마다의 자세로 들어앉아 있다. 행복한 시절의 낙서처럼, 녹슬어 가는 얼굴들을 마냥 덮어 둔 채 가족의 삶은 이어진다. 벽지에 얼룩진 가족의 그림자는 이따금 마음을 괴롭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림자의 앞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며 불경이다. “엄마가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에/아기들이나 지을 법한 표정”(「뒤척이지 말아줘」, 『눈물』)을 훔쳐보았다고 타인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그러한 표정을 숨기고 있을 얼굴을 그림자를 통해서 바라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 번 슬쩍 보고 건네는 동정이 아니라, 그림자를 평생 가슴에 품은 채 그림자가 건네는 추락의 내력을 오래도록 살아볼 때만 허락되는 일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시들이 쓰여진다.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있었다/ (중략) //그 창문으로 나는 지금 바깥을 내다본다/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가장 쉽게 이해한 사람이/가장 오래 서 있었을 자리에 서서// (중략) /할 줄 아는 말이 거의 없는 낯선 땅에서/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잠깐의 반가움과/오랜 두려움뿐이다//두려움에 집중하다 보면/지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었던 사람이/실은 자신의 피폐를 통역하려 했다는 것을/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내쫓으면서/나는 알게 된다 - 「여행자」 부분 (『아침』) 화자는 지금 수십, 수백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그늘에 머물러 있다.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 없는 그늘을 지키기 위해 어떤 삶은 희망이 불가능한 곳으로 자신을 조용히 밀어 넣기도 했을 것이다. 상처를 애써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을 위해 황무지뿐인 창밖을 오래 바라봐야만 했으리라. 화자는 낙관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 않아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피폐한 문장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타인의 전생이 한꺼번에 이곳의 삶으로 현상돼 번지고 부대끼는 일. 화자가 매개하고 있는 이 순간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던 “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포기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나를 보호하던 관념들을 내려놓은 채 타인의 그늘을 만져 보는 일은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한다. 시인이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 낼 때//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먼지가 보이는 아침」, 『아침』)이라고 말할 때, 다음 생이란 희망적이고 추상적인 미래의 어느 때를 의미하지 않는다. 타자의 그림자를 밟는 일이란 이미 하나의 생이 끝나고 다른 생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매개하기 때문이다. 김소연의 시는 하나의 그림자에 담긴 무게를 섬세히 읽어 내고 그 무게가 역으로 자아의 무게를 읽어 내는 경계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의 시를 버림받은 그림자들의 보호소라고 할 때, 화자는 그림자들을 관리하는 주체도 아니고 동정을 베푸는 관광객도 아니다. 그의 시는 하나의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를 관통하는 사건의 매개이며, 타인의 그림자로부터 또 하나의 생을 물려받는 상속의 증거이다. 그림자를 이해하며 그림자에 감염되어 스스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되어 간다. 길 잃은 그림자들은 그렇게 다음 생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4. 아포리아인형극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배우이고 관객이며, 공기이고 침묵이다. 그림자들에 잠재된 생의 근원적 형상을 발굴하고 혼을 불어넣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생의 어둠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들과 연극을 시작한다. 때로는 독백으로, 때로는 방백으로, 그림자인형들 사이에 무형의 그림자가 스미고 번진다. 연극은 비교적 순조롭게 시작된다. 하지만 말이 리듬을 타면 탈수록 그림자는 연출자의 의도를 넘어서 스스로 움직이고 발화하기 시작한다. 오려낸 눈동자의 텅 빈 어둠으로 삶이 역류하기 시작한다. 말에 자기를 꿰뚫리고 거꾸로 그림자에 응시당할 때, ‘이곳’은 어떤 강제성에 내몰린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 낯선 질문들에 발가벗겨진 채 노출되는 것이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몸에 둘렀던 기호와 기표들의 강고함은 물거품이 되어 녹아 버린다. *현재까지 발간된 김소연의 시집은 『극에 달하다』(1996),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 『눈물이라는 뼈』(2009), 『수학자의 아침』(2013)까지 총 네 권이다. 인용할 경우 면수는 생략하고 각각 『극』, 『빛』, 『눈물』, 『아침』으로 표기한다.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자세만이 남아 있다//이따금 나는 무지막지한 덩치가 되고/이따금 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그의 충고를 따르자면/너무 빛 쪽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여러 개의 불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 「빛의 모퉁이에서」 부분 (『빛』) 그림자 없는 삶을 위해 끌어다 쓴 빛의 피곤이 필연적으로 ‘밤’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는 정확한 진술은 이러한 말과 그림자의 본질에 닿아 있다. 단적으로 말해 그림자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면 그것은 유령의 삶일 것이다. 그림자는 사물의 물성을 증거하면서, 동시에 그 물성을 지워 버린다. 그림자 없는 물성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그만큼 물성이라 믿어 왔던 존재의 본질이 허약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자를 통해서만 사물의 사물됨을 알 수 있고, 말을 통해서만 자신의 자신됨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림자 없는 물성이 유령의 것이라면, 말을 부여받지 못한 내면 역시 비존재로 내몰린다. 그러나 어떤 그림자로도 어떤 말로도 존재의 본질은 포착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림자와 말은 환영 혹은 오류가 되어 존재의 본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그림자가 지닌 이 이중성. 존재의 물성을 실감하게 하면서 오히려 그 실감을 내파해 버리는 모호성에 삶과 말이 지닌 진실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림자를 수도 없이 베끼며, 그림자들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어떤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일뿐이다. 밤마다/그녀였던 당신이었던/수많은 아이들이 찾아와요/거친 바람처럼 문을 흔들며 칭얼대요/하나같이 눈은 퉁퉁 부었고 손끝은 차고/고개는 숙였어요// (중략) //지낼 만한 노곤함과/돌아갈 만한 차비를 두 손에 움켜쥐고/칭얼대고 칭얼대다 사라지죠//들어줍니다 두 귀를 여행 가방처럼 활짝 열고서/쓰다듬지요 두 손을 세계지도처럼 판판히 펼쳐서 위로합니다 긴 밤을 꼬박 앉아서// (중략) //번번이 한 아이가 남아 있어요/벽에 걸어둔 시커먼 외투처럼 등 뒤에서/이 아이, 자기가 엄마라고 우깁니다// (중략) /누워서 그녀는 자기 젖을 빨아요/그러면 그녀는 잠이 오지요 - 「그녀의 생몰 연도를 기록하는 밤」 부분 (『눈물』)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보다도 밤의 시간에 더 스스로의 본질에 가까워진다. 낮이 강제하는 빛의 윤곽으로부터 풀려남으로써 그림자는 비로소 ‘경계’의 영역에 서기 때문이다. 그녀였던 당신이었던 수많은 그림자들은 태양의 폭정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이미 반쯤은 사라지고 투명해진 모습으로 찾아와 말을 건넨다. ‘그녀’가 그 수많은 그림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젖을 물리며 그림자들의 해갈될 수 없는 결여에 응답하는 것뿐이다. 이 고된 노동. 그림자들을 위무하기 위해 역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그녀’가 스스로의 젖을 빨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적 진술은 삶의 피폐성을 요약한 아포리아에 가까워진다. 그의 시에 잔혹동화와 같은 모티프들이 자주 동원되는 까닭 역시 동화가 압축해 내고 있는 생의 근원적 형식 때문이다. 그가 변용한 동화들 속에서 캐릭터는 오직 ‘자세’만으로 요약되는데, 무수히 많은 말들로 흘려보내도 끝끝내 남아 되돌아오는 ‘그림자’의 맹목적 갈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암늑대가 숲속에서 바람을 간호하는 밤이었대. 바람은 상처가 아물자, 숲을 떠나 마을로 내려갔대. 암늑대가 텅 빈 두 손을 호호 불며, 우듬지에 앉은 지빠귀를 올려다보는 밤이었대. 섭생을 위해서 살생을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늑대 이야기에, 한 아이는 밑줄을 긋고 있었대. 바람은 그 지붕 위를 저벅저벅 밟고 다녔대. 암늑대는 노란 지빠귀를 올려다보고, 노란 지빠귀는 늑대를 내려다보았대. 둘은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았대. 그래서 겨울밤은 감옥이 되기 시작한 거래. - 「눈물이라는 뼈」 부분 (『눈물』) 아이의 성장통을 비유하고 있을 이 시는 어떤 노래의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새하얀 벽 위로 그림자들이 생을 공연한다. 섭생을 위해 지빠귀를 노리는 암늑대의 자세는 낮고 단단하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마음은 모두 잘라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늑대의 눈빛에 어리는 검은 허공의 시간. 그 시간이 서서히 늑대를 물들여 간다. 암늑대를 내려다보는 지빠귀 역시 흔들림 없이 다가올 운명 앞에 눈감지 않는다. 공포에 몸을 맡겨 둔 채 자신도 그 시간의 일부가 되어 간다. 그리고 이들의 비극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바람과 아이가 있다. 이들이 빛과 어둠 사이에서 얽히고설키며 삶을 요약해내는 동안, 그 단단한 함축을 받아 먹고 돌들이 자란다. 하나의 비극이 있었음을,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생의 굴레에 의연하게 걸어 들어가 견뎌낸 그늘이 있음을 증거하고 제의한다. 김소연의 시는 그림자로 펼쳐 낸 한 편의 아포리아 인형극이다. 이 연극에는 무수히 많은 그림자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부재한다. 주인공이라 일컬을 수 있다면 아마도 그건 생 자체일 것이다. ‘삶’이 그려 내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다변성 속에서도 결코 인간을 놓아 주지 않는 묵직한 생의 중력을 그의 시가 잘 포착해 내는 건 그림자야말로 생의 본질임을 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자는 원상의 형상을 얼마든지 왜곡도 하고 때론 숨어 버리기도 하지만 결코 달아나지 않는다. 원상 내부의 상처와 질곡에 악착같이 달려들어 생의 모서리를 현상해 낸다. 삶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무수한 그림자 기표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그림자란 본디 원상의 것도 아니며, 원상과 무관한 것도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그림자란 한 편의 활시위와 같다. 원상의 중력과 그 중력을 넘어서려는 두 힘이 팽팽하게 긴장하며 휘어질 때, 그림자는 필연적으로 생의 근원에 가까워진다. 김소연의 문장이 지닌 안정된 흡인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5. 판화적 글쓰기 인간이 맹점의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하는 건 맹점에 의한 시야의 어둠을 다른 눈의 시각을 통해 메우기 때문이다. 언어의 눈, 그림자의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빛을 가득 채워 존재가 현현하는 곳을 봉쇄할 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감정과 생각이 어긋나고, 말과 빛이 허용하는 사유만이 폭거하는 메마른 불모지로 변모한다. 동일성의 사유에 항거하는 최근의 숱한 철학적 사유들이 그 윤리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삶의 언어를 구원해 내지 못하는 건 이들 이론과 이미지의 현란함이 맹점의 파쇄가 아닌, ‘보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언어로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한, 자신의 손과 발로 직접 일구어 내지 못한 이미지의 언어들은 스스로가 올바른 대체시각이며, 이 강렬한 빛으로 맹점과 어둠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또한 뒤틀린 자만이며 확장된 동일성이다. 그러나 맹점은 우리 삶의 조건이며, 그 종착지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은 부정되거나 개선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세계와 인간 사이에 놓인 고유한 매개 방식이다. 그림자가 아무런 음성도 없이 지상에 잠시 내려앉은 검은 입으로 말을 건넬 때, 이를 가장 섬세하게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은 어둠을 어둠인 채로 내버려 두는 일이다. 시선의 한구석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어둠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인간은 영원히 이 조건을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하여도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유령처럼 태어나고, 그 절망적인 시도를 되풀이하며 말의 어긋남 속에서 더 진실한 말 하나를 길어 올린다. 이는 시인의 숙명이며, 시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를 김소연의 시적 방법론을 빌려 말하자면 판화적 글쓰기라고 명명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성실하고도 마음 따뜻한 그림자 필경사는 그림자에 각인된 어둠의 지문을 숨죽여 더듬으며 그 굴곡과 깊이를 음화로 찍어 낸다. 어둠의 언어로, 어둠을 끌어안은 채,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근원적 자세들을 현상해 낸다. 안전한 거리에서 시각의 윤곽을 따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언어로 어둠에 밀착해 어둠을 살아 내면서 몸으로 찍어 내는 것이다. 그의 판화적 글쓰기에서 그림자는 언제나 모상(模像)이 아닌 원상(原象)일 수밖에 없는데, 시선의 권력을 그림자에게 돌려줌으로써 주체가 만들어 낸 일련의 위계상을 단번에 해체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시가 지향하는 바와 전략이 너무도 명확한 만큼 쉽게 ‘코드’로 환원될 수 있다는 약점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시는 ‘코드’로 읽히지 않는다. 그림자를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려 하기보다는, 언제나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 자체를 경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구체적인 삶의 시공간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삶의 실경이 굳건하게 뿌리박고 있는 시적 공간에서 그림자의 우화로 그림자의 눈빛에 노출되도록 만들 뿐이다. 태양에 흑점이 많을 때는, 역설적으로 태양의 활동이 가장 ‘극에 달했을’ 상태라고 한다. 내부의 격렬한 균열과 폭풍이 열의 흐름을 방해하여 상대적으로 어둡고 온도가 낮은 부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그림자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은 가장 격렬한 생을 통과한 내상들이며, 그 내상이 건네는 말의 뒤틀린 방식이라고. 김소연의 시는 현실 너머의 추상적 피안이 아니라, 뜨거움과 차가움을 절실히 통과한 이후의 ‘이곳’을 그림자의 형상을 통해 추적해 낸다. 삶을 가장 치열하게 마주한 자의 뜨거움으로 그늘이 품은 울음을 읽어 내고 위무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일컬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의 흑점들로 이루어진 점자들이며, 생의 근원적 자세를 찍어 낸 판화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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