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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 살인·시신훼손 유동수에 사형 구형…“억울한 누명” 부인

    검찰, 살인·시신훼손 유동수에 사형 구형…“억울한 누명” 부인

    옛 연인 살해한 뒤 시신 훼손·유기“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경찰이 다 조작한 것” 혐의 부인 검찰이 옛 연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중국교포 유동수(49)씨에게 15일 사형을 구형했다.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 조휴옥) 심리로 이날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에게 법정최고형을 선고해달라”며 이렇게 재판부에 요구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계획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하는 등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피고인은 폐쇄회로(CC)TV 분석과 DNA 감식을 통해 범행이 확인됐는데도 변명으로 일관하고 피해자 가족에 사과하지 않는 인면수심의 모습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에서부터 줄곧 혐의를 부인해 온 유씨는 “경찰이 다 조작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 나는 이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수사기관에서는 혐의를 인정하라고만 했다”고 최후 진술을 했다. 유씨는 지난 7월 25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자택에서 과거 교제했던 중국교포 40대 여성 A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인근 경안천 주변 자전거도로의 나무다리 아래 등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사건 발생 이틀 뒤 A씨 동료로부터 실종신고를 접수하고 수사에 나선 경찰에 붙잡혔다. 이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 따라 신상이 공개됐다. 선고 기일은 다음달 28일 열린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法 ‘직무 배제는 檢중립성 훼손’ 판단… 尹 “헌법정신·법치 수호”

    法 ‘직무 배제는 檢중립성 훼손’ 판단… 尹 “헌법정신·법치 수호”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조미연)는 1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내린 직무배제 명령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켜 달라며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단순 인용이 아닌 ‘일부 인용’으로 조건을 달았다. 애초 윤 총장은 추 장관의 명령 자체가 “위법·부당하다”며 해당 명령 자체를 무효화하는 본안 소송과 해당 소송의 확정판결 때까지 추 장관 직무배제 명령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소송도 함께 냈었다. 하지만 법원은 윤 총장의 청구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서도 추 장관 명령의 효력 정지 기간을 ‘1심 판결 후 30일까지’로 한정했다. 재판부는 추 장관의 직무배제 명령으로 인해 윤 총장에게 행정소송법 제23조 제2항에서 규정한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 측은 지난달 30일 열린 심문에서 “장관의 직무집행정지 명령으로 인해 검찰총장의 공백과 검찰의 정치 중립성 훼손, 법치주의 붕괴라는 손해가 발생할 것이며 윤 총장이 직무에 복귀하지 못하면 이 손해를 회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윤 총장 측 이완규 변호사는 “반정부 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불편해진 검찰총장을 내쫓으려는 것”이라고 이번 사건을 규정하면서 “정권의 비리에 맞서 수사하는 검찰총장에게 누명을 씌워 쫓아내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반면 추 장관 측은 2일로 예정된 법무부 검찰 징계위원회를 이유로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 혹은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총장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로 검찰의 중립성·독립성 등을 언급했지만 이는 법원이 보호하는 개인의 구체적인 손해가 아니다”, “재판부 사찰도 명백한 불법행위”와 같은 주장도 마찬가지로 배척됐다. 법무부가 이날 법원의 인용 결정과 감찰위의 권고를 감안해 징계위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면 윤 총장은 일단 총장 업무를 수행하며 징계 청구에 대한 소송전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도 이날 법원의 집행정지 인용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로 맞대응하면서 추가적인 감찰과 수사 의뢰 등을 병행할 가능성이 있다. 법무부가 징계위를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당초 행정법원은 징계 청구나 수사 의뢰 자체의 적법성을 심리한 게 아닌 데다 감찰위의 자문은 법무부가 지난달 3일 ‘자문을 받아야 한다’는 강행규정을 ‘자문을 받을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바꾸면서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징계위에서 어떤 처분을 내리느냐에 따라 셈법은 달라진다. 일단 해임이나 면직과 같은 중징계가 의결되고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내리면 집행정지 신청의 인용 결정과는 별개로 윤 총장은 다시 총장직을 잃게 된다. 사실상 하루짜리 복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윤 총장에게 남은 카드는 징계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 정도다. 징계위에서 중징계 미만의 처분이 내려지면 임기까지 총장 업무를 수행하며 법정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남양주시장 “경기도 갈등 본질은 관행적 위법 감사”… ‘인권침해 레스토랑’ 퍼포먼스도

    남양주시장 “경기도 갈등 본질은 관행적 위법 감사”… ‘인권침해 레스토랑’ 퍼포먼스도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1일 경기도와 특감갈등에 대해 “25만원 커피 상품권 지급이 엄청난 부정부패냐”며 “이번 사태 본질은 위법 부당한 감사권의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조 시장은 이날 오전 11시 경기도북부청사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최근 페이스북에 ‘남양주시 공무원들이 코로나19로 고생하는 간호사들에게 줄 위문품을 절반이나 빼돌려 나눠 가졌다’고 밝힌 것에 대해 반박한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지지자들이 경기도의 특별감사를 풍자하는 ‘인권침해 레스토랑’ 퍼포먼스와 함께 ‘부패와 뷔페, 착각하신 듯’ 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선보였다. 조 시장은 “시장 업무추진비로 50만원 상당의 커피 상품권을 사서 절반을 최일선 대응부서인 보건소 직원들에게 주고, 나머지는 보건소 지원 부서 직원들에게 나눠준 것”이라며 “남양주시 전 공무원이 엄청난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직원을 중징계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 시장은 “경기도가 법에서 정한 감사대상과 한계를 초과해 매우 이례적인 감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다수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양주시 공무원들에 대해서 정치적 사찰로 규정할 수 있는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면서 “향후 반드시 사법기관의 판단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남양주도시공사 감사실장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해서 “과정상 부적절하게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은 있겠으나 개인 비리와는 전혀 상관없다”며 “사법절차에 따라 해결되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면 될 일이다. 수사기관이 다뤄야 할 일을 왜 경기도가 감사를 통해 따지고 드느냐” 고 주장했다. 이어 조 시장은 “저는 도지사가 친형 강제 입원에 대한 직권남용과 검사사칭 누명 건으로 선거법 위반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을 때도 선거사범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며 이 지사를 특정해 불만을 표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김태년 “조국·원전이 무슨 정권 비리냐…검찰 혁신해야”

    김태년 “조국·원전이 무슨 정권 비리냐…검찰 혁신해야”

    “검찰, 특권 지키려는 이기주의”“자성하고 자중해야” 촉구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징계 청구 및 직무배제와 관련해 “윤 총장 측이 정권 비리에 맞서 수사하는 윤 총장에게 누명을 씌워 쫓아낸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법행위를 덮기 위한 정치적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조국 전 장관 자녀가 봉사활동으로 표창장을 받은 것을 수사한 것이 어떻게 정권 비리에 맞선 수사인가. 월성 1호기 원전 수사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 무슨 정권 비리냐”라고 말했다. 그는 윤 총장의 이른바 재판부 사찰 의혹과 관련해선 “검찰의 사법부에 대한 사찰은 그 자체로 삼권 분립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중대한 불법 행위”라며 “검찰이 불법 사찰을 부활시킨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직권 남용이며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윤 총장 직위해제에 대한 검찰 내 반발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불법 사찰 행위가 명백함에도 검찰총장을 비호하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검사들의 행태는 특권을 지키기 위한 검찰 이기주의”라며 “불법이라도 검찰총장을 비호해야 하는 것이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면 검찰의 조직문화도 이 기회에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영역의 한복판에 진입한 윤 총장 때문에 검찰의 중립성이 훼손되고 국민의 신뢰가 훼손된 이 상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두둔만 하는 것은 오히려 검찰의 정치화만 부추길 뿐”이라며 “자성하고 자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윤영석 “추 장관의 ‘막가파’식 난동…문 대통령 침묵 비겁”

    윤영석 “추 장관의 ‘막가파’식 난동…문 대통령 침묵 비겁”

    국민의힘 중진인 윤영석 의원(3선·양산갑)이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배제한 것은 추 장관을 앞세운 문재인 정권의 친위 쿠데타나 다름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의원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 등에 논평을 내고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배제 명령에 대해 “월성원전 부당 폐쇄, 라임·옵티머스 사건 등 문 정권의 몰락을 불러올 부정비리를 파헤치는 윤 총장의 날카로운 칼을 강제로 빼앗기 위한 헌정질서 파괴행위”라며 “추 장관이 내건 윤 총장의 직무배제 사유는 하나같이 억지스럽다. 문재인 정권의 ‘눈엣가시’인 윤 총장에게 누명을 덮어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추 장관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연전연승해 국민적 영웅이 된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고 모해한 조선 선조대의 간신들과 판박이 같은 모리배(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요, 정상배(정권을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무리)”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갔다. 그는 또 “민주당의 이낙연 대표와 의원들은 추 장관의 막가파식 난동에 같이 춤을 추고 장단을 맞추고 있다”며 “그야말로 개 한 마리가 짖으니 여러 개가 함께 짖음이요, 닭 한 마리가 우니 여러 닭이 함께 우는 격”이라고 일갈했다.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도 “침묵은 비겁하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해달라고 자신이 윤 총장에게 쥐여준 칼을 추미애가 뺏어도 아무 말도 않는 것은 치졸하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며 “문 대통령은 당장 직무배제 조치를 철회시키고 추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가이성, 국민의 합리적 판단이 정권의 비상식적 난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며 “사법부는 추미애의 위법 부당한 직무배제 행위를 즉각 중단시키고 윤 총장의 직무권한을 신속히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추 장관은 24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검찰사무에 관한 최고감독자인 법무장관으로 검찰총장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법무부는 검찰총장에 대한 여러 비위 혐의에 대해 직접 감찰을 진행했고 그 결과 검찰총장의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혐의를 다수 확인했다”면서 윤 총장에 직무정지 명령을 내렸다.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해 밝힌 혐의는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 사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등 주요사건 재판부에 대한 불법사찰 △채널A 사건 및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관련 측근 비호를 위한 감찰방해 및 수사방해, 언론과의 감찰 관련 정보 거래 사실 △검찰총장 대면조사 과정에서 협조의무 위반 및 감찰방해 사실 △정치적 중립에 관한 검찰총장 위엄과 신망이 심각히 손상된 사실 등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코로나로 살처분되는 밍크의 눈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코로나로 살처분되는 밍크의 눈물

    모피 때문에 죽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살처분되든, 밍크의 안타까운 운명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 등 외신은 프랑스 외르에루아르 지역의 한 농장에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밍크가 확인돼 1000마리 정도가 살처분 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 외무부 대변인은 "11월 중순부터 밍크 농장 4곳을 대상으로 코로나 검사를 시행했으며 현재 외르에루아르 지역에서 바이러스가 돌고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덴마크를 비롯 스웨덴, 그리스, 네덜란드 등지의 밍크 농장에서도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논란이 커진 것은 덴마크의 밍크 농장 5곳에서 이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12명의 사람이 발생하면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변종 바이러스를 '클러스터5'로 명명했으며 특히 새로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을 무용지물로 만들 가능성이 제기됐다.이에 덴마크 정부는 지난달 밍크 100만 마리를 살처분한 데 이어 최근 밍크 1700만 마리를 추가로 살처분할 계획을 발표했다가 거센 후폭풍을 맞았다. 정부에게 바이러스 영향권 밖에 있는 농장의 밍크까지 살처분하라고 강요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비판과 살처분 명령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것인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 때문이다. 또한 스웨덴 보건 당국도 19일 밍크 업계에서 일하는 여러 명이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감염된 사람과 밍크에서 채취한 바이러스 유형 간에 관련성이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덴마크와 스웨덴 사례처럼 실제로 클러스터5가 밍크에서 비롯돼 사람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이에대한 과학적 증거나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곧 밍크로서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누명이 벗겨진다 해도 운명이 바뀌지는 않는다. 어차피 밍크는 모피 생산을 위해 가죽이 벗겨져 죽을 운명이기 때문. 보도에 따르면 농무부 장관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후폭풍을 겪은 덴마크의 일부 농장에서는 살처분 되기 전 밍크 가죽 벗기기로 분주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 감염 가능성을 우려한 집단 살처분이냐 모피를 위한 도살이냐는 선택이 밍크의 정해진 운명인 셈이다. 한편 덴마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밍크 모피 생산국으로 1000여 곳의 농가에서 1500만∼1700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프랑스나 스웨덴의 경우에는 덴마크보다는 밍크 사육 규모가 훨씬 작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이춘재 보고 그냥 ‘고맙다’ 인사하고 끝냈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 윤성여

    “이춘재 보고 그냥 ‘고맙다’ 인사하고 끝냈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 윤성여

    “이춘재가 늦었지만, 진실을 말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내가 천주교를 믿고 있는데 용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망정 용서를 해주라는 규칙이 있다. 물론 100% 용서가 될 수 없지만, 이씨가 진정으로 사과했기 때문에 용서를 하는 거다. 다른 피해자 유가족들로선 그 사람의 말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저는 법정에서 직접 보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선 그렇다는 뜻이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 지난 7일 청주 한 공원에서 만나 그에게 던졌던 ‘이춘재를 용서하는가’란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일 진범 이춘재가 증인으로 출석한 법정에서 그를 직접 만났다. “처음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 사람도 계속 고개만 숙이고 있었죠. 사진에서 본 것과 달리 인상이 나빠 보이진 않았어요. 근데 저런 인상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죠.” 89년 체포되던 때의 상황을 묻자, “당시의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해 심적으로 힘들다”며 “제발 그 질문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씨를 범인으로 국과수에 의뢰한 모발 두 점을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해 그를 ‘찍어’ 감옥에 보냈던 경찰에 대한 원망도 가득했다.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왜 그랬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되묻고 싶다고 했다.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현재 수원지법 12형사부는 윤씨 사건에 대한 재심을 진행하고 있다. 30년 전 그에게 무기징역을 처음 선고한 재판부는 수원지법(2형사부)이다. 당시 유죄 확정은 1년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같은 사건의 피고인을 두고 비슷한 기간에, 같은 장소에서에서 정반대의 판단을 내리게 되는 상황인 셈이다. “누명을 벗게 된다면 가족들하고 못한 일들을 한번 해 보고 싶다. 내년엔 검정고시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 살 집은 하나 있어야 할 거 같다”며 “그저 이 재판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살인범’, ‘무기수’란 주홍글씨를 벗고 새롭게 펼쳐질 윤씨의 인생을 기대한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건강은 괜찮은 편이다. 31년 전엔 농기계를 수리했었는데 지금은 가죽 재단일을 하고 있다. 시대가 많이 변했고 시대를 맞춰가며 생활하는 게 힘들다. (Q) 복역했던 청주교도소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청주에 어떤 연고가 있나제가 청주교도소에서 20년간 살고 나왔다. 근데 나오니깐 실제로 갈 데가 없다. 아는 사람도 없고. 출소하면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그곳에서 2년 정도 있다가 돈을 좀 벌어서 이곳 청주에서 자립하게 됐다. (Q) 소아마비는 언제 찾아왔는지어머니 말씀에 제가 세 살 때 열이 갑자기 높아졌다고 하셨다. 그때 바로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3~4일 만에 찾아간 병원에서 소아마비가 왔다고 했다. (Q) 20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세월지난 11월 2일 수원지방법원에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서 이춘재가 증인으로 출석해 본인이 14건의 연쇄살인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내가 22살 청춘에 감옥에 들어가 47살에 나왔다. 당시엔 아무런 증거가 없어서 재심 자체를 할 수 없었다. 근데 출소한 지 12년 만에 이춘재의 자백이 나온 거다. 누명을 벗고픈 마음이 간절해 재심하게 됐다. 20년의 세월이 억울하다기보다 지금이라도 이춘재가 자신이 저질렀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그나마 위로가 된다. 그 사람을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면 선배가 되는 데 착잡한 마음뿐이다. 법정에서 얼굴을 처음 봤는데 그냥 할 말이 없었다. 본인이 얘기 안 했으면 어차피 이 사건은 영원히 묻히는 거였다. 솔직히 긴 세월이 지났고 늦은 감은 있다. 하지만 이춘재가 재판에 많은 영향을 줬기 때문에 뭐라고 딱히 할 말도 없다. 사람들이 왜 가만히 있냐고 그러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 지나간 세월 누굴 탓하겠나. 탓해봤자 내 마음만 아프지 않겠나.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를 처벌할 수도 없는 거고.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어서 그걸 털어준 거로 생각한다. 고맙다는 얘기하고 인사하고 그냥 끝냈다.(Q) 왜 ‘제발 8차 사건만 피해가라’라고 생각했는지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다. ‘8차 사건’이 다시 이슈화되면, 나와 내 가족들이 또다시 시달릴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30여 년간 하도 시달려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저와 가족들이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고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진실이 안 밝혀질 바엔 그냥 지나갔으면’하는 바람이었다. 그걸 통해 내 이름이 또다시 언론에 언급되면 전과자다 뭐다 해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알게 된다면 더는 내가 갈 곳이 없게 됐기 때문이다. (Q) 법정 안에서 본 이춘재는 어땠는지처음엔 말을 못 하겠더라. 계속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사진에서 본 것과 달리 인상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근데 저런 인상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Q) 본인은 ‘시대의 희생양’이 됐다고 했는데당시에 내 체모를 여러 차례 뽑아갔다. 내 거를 제일 많이 뽑아 간 거 같다. 뽑아달라고 해서 뽑아 준 거다. 왜 또 뽑아가냐고 물으면 그냥 잊어버렸다고 했다. 특정 체모가 내 건지 다른 사람 건지 구분이 안 됐다. 국과수에서 현장에서 발견한 체모 두 점이 내 거라고 하는 증거가 나왔다면 나를 바로 잡아갔어야 할 거 아니겠나. 그 시대에는 경찰, 검찰의 세력이 막강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도 그때 있었다. 있는 사람들이야 어차피 빠져나가는 거고. 한두 명 죽어 나간다고 해서 사건 조작해서 만드는 거 그들은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다. 조작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 범인 하나 만드는 건 쉬웠다는 얘기다. 내가 희생양이 된 거다. (Q) 끝까지 무죄를 항변했으면 아마 사형당했을 거라고 했는데그때는 사형제도가 있었다. 내가 부인하나 시인하나 어차피 사형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범행을 시인하는 게 사형을 면하는 거라고. 나도 살고 싶었다. 검사가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1심에서도 무기징역이 나왔다. 당시 문익환 목사님이 무기징역 받으나 사형받으나 내가 안 했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해보라고 하셨다. 결국 2심, 상고심 모두 기각당했다. 재판이 1년이 채 안 걸렸다. 교도소 안에서도 무죄라고 재심해달라고 계속 주장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조차 범인이 잡히거나 획기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재심은 힘들다는 뻔한 답만 돌아왔다. 나처럼 돈 없고 백 없는 사람은 어찌 살겠느냐고 그런 얘기를 많이 했던 거 같다. (Q) 그들에게 묻고픈 말이 있다면내가 항상 인터뷰할 때마다 이 얘기는 꼭 합니다. 내가 그 당시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 사람들한테 꼭 다시 묻고 싶다고. ‘왜 그랬는지, 또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라고. (Q) 지난 8월 초, 당시 수사 경찰관 한 명이 증인으로 출석해 잘못을 인정했는데31년 만에 법정에서 만났다. 5번의 재판과정에서 세 분의 당시 경찰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분들이 한 말들을 직접 들어보셨다면 아마도 흥분하셨을 거다. 워낙 얘기가 안 맞았으니깐.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일부는 인정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받아들였지만 100% 만족할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하는 거 같지 않았다. ‘기억이 잘 안 난다’, ‘저 사람이 그랬다’라는 식이다. 당시 내가 그 사람들에 의해 쪼그려뛰기와 구타를 당했다고 재판과정에서 그런 사실들이 80~90% 이상 진실로 밝혀졌는데도 말이다. 마지막 경찰이 법정에 나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아주 속 터져서 그때 당시 뒤집힐 뻔했다. 박준영 변호사님께서 내 허벅지를 계속 눌렀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던 거다. 못 참았었다면 그곳에서 뭔 일 났을 거다.(Q) 담당 경찰관은 특별승진, 본인은 20년간의 수감생활 참으로 엇갈린 운명…그분들이 진급했는지 연금을 탔는지 난 자세히 모른다. 인터넷에 보면 누리꾼들이 그 사람들의 진급을 다시 취소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법에서 알아서 심판해 줄 일이라고 생각한다. (Q) 무죄 판결 시 20억 원 이상의 보상금 얘기도 나오는데보상 얘기는 정말 하고 싶지 않다. 인생하고 돈하고 바꿀 수 없다. 청춘하고도 바꿀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쳤는데 돈이 그 사람의 청춘을 결코 보상할 수 없다. 보상액이 백억, 천억이 된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인생은 돌릴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보상을 받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왈가왈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 접근하지 말라는 거다. 원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돈이 생기면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사람이 많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들이 싫다. (Q) 지난 8월 방송에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이유는여기저기 인터뷰를 하다 보니 걸리는 게 좀 많았다. 법원에 왔다 갔다 할 때도 그렇고 모든 면이 너무 힘들었다. 언론에서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도 내가 봐도 보일 뿐 아니라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그래서 그럴 바에 아예 신상공개를 하겠다고 변호사님께 말씀드렸고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신상공개한 거다. 하고 나니깐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내가 당당하지 않으면 신상공개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부딪힐 벽은 과감히 부딪히는 거로 생각했다. 내가 이 산을 넘어야 하는 데 못 넘을 거 같으면 중간에 포기해 버릴 텐데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산을 넘기 위해서라도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거다.(Q) 마지막까지 왔는데, 어떤 심정인지결과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로 생각한다. 진실이 밝혀지길 바랄 뿐이다. 우리가 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재판을 하는 거고 또한 진실은 밝혀져야만 한다. (Q) 최종 선고가 무죄로 나온다면누명을 벗게 된다면 일단은 가족들하고 못한 일들을 한번 해 보고 싶다.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직 없다. 그냥 이 재판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 재판이 끝나면 내년엔 검정고시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되든 안 되는 간에. 그리고 내 살 집은 하나 있어야 할 거 같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sungho@seoul.co.kr
  • ‘이춘재 8차 사건’ 윤성여씨 “유일하게 날 믿어준 교도관”

    ‘이춘재 8차 사건’ 윤성여씨 “유일하게 날 믿어준 교도관”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가 종합편성채널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교도소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줬던 교도관을 만나 그 동안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윤성여씨는 18일 방송된 채널A ‘아이콘택트’에 출연해 박종덕 교도관과 눈맞춤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당시 범인으로 몰렸던 윤성여(53)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하다가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의 범행 일체 자백 이후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 들어간 지 30여년 만이다. 법원은 올해 1월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이날까지 재심 재판을 진행해왔다. ‘아이콘택트’는 사연을 보낸 신청자와 사연의 주인공이 서로 말없이 눈을 바라본 뒤, 각자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재심 소송에서 윤성여씨의 변호인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스페셜 MC로 함께했다. 박 변호사는 “윤성여씨와 16년 동안 그와 함께 생활했던 두 분의 눈맞춤이다. 사건 속의 사람들을 주목해줬으면 좋겠다”라며 이날의 주인공을 소개했다. 당시 수사 담당자들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윤성여씨를 상대로 강압적인 수사를 벌여 허위자백을 받아냈고, 검찰과 법원도 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윤성여씨는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기에 이르렀다. 박 변호사는 윤성여씨의 말을 빌려 “실제 억울하게 만든 사람은 직접적으로 이춘재가 아니니 (윤성여씨는) 검사와 판사가 더 밉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윤성여씨는 교도소 내에서도 흉악범으로 낙인찍혀 집단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해 수형 생활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고초를 겪던 윤성여씨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이 이날 함께 출연한 교정공무원 계장 박종덕씨였다. 윤성여씨는 박종덕 교도관에 대해 “유일하게 나를 믿어준 사람. 그가 없었으면 나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덕 교도관은 윤성여씨에게 “끝까지 살아야 한다. 살 방법은 인내심뿐이다”라고 응원하며 윤성여씨가 교도소 내에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왔다. 결국 윤성여씨는 무기징역에서 감형돼 20년 만에 가석방 출소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20년 만에 나온 감옥 밖 세상도 그를 잔혹한 흉악범으로 대할 뿐이었다. 윤성여씨는 출소 이후에도 사회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해 또 한번 좌절했다고 한다. 힘겹게 살아가던 윤성여씨를 위해 박종덕 교도관은 취업을 도와주기 위해 나섰다.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수용 생활을 하던 윤성여씨를 지켜본 박종덕씨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박종덕 교도관은 윤성여씨에 대해 “가장 신뢰를 느꼈던 수용자”라고 말하며 누구보다 힘들었을 윤성여씨의 상황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 사이의 칸막이가 올라가고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 본 두 사람은 곧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박종덕 교도관은 고마움을 전하는 윤성여씨에게 오히려 그를 존경한다며 고통을 홀로 감내해 온 윤성여씨에 경의를 표했다. 아직 재심 재판이 진행 중인 윤성여씨는 “완전히 누명을 벗지 못했다”면서 “지나간 세월도 돌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이춘재에게 왜 그랬는지 꼭 묻고 싶다”고도 말했다. 출소 이후 힘들었던 생활과 관련해 윤성여씨는 “오죽했으면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고 싶더라”면서 당시 힘겨워하던 자신을 꾸짖고 붙잡아준 박종덕 교도관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했다. 윤성여씨는 출소 이후 자신을 문전박대하는 친척들의 모습에 서러웠다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윤성여씨는 박종덕 교도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속마음을 숨겼다며 손편지를 꺼내어 진심을 전했다. 윤성여씨와 박종덕 교도관은 서로를 향해 “고맙다”고 거듭 말했다. 박종덕 교도관은 윤성여씨에게 “외롭게 살지 말고 근처로 이사 와 가족처럼 지내자”고 제안했지만 윤성여씨는 자립을 위한 적응이 더 필요할 것 같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윤성여씨의 재심 재판은 19일 결심 공판을 앞두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검찰 “김광석씨 부인 명예훼손한 이상호, 징역형 선고해달라”

    검찰 “김광석씨 부인 명예훼손한 이상호, 징역형 선고해달라”

    국민참여재판서 징역 1년 6개월 구형검찰 “서해순씨, 돌이킬 수 없는 피해”이상호 “실체적 진실 알아내려 했던 것” 검찰이 가수 고 김광석씨 부인 서해순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고발뉴스 기자 이상호씨에게 실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양철한) 심리로 열린 이상호씨의 명예훼손 등 혐의에 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상호씨는 영화 `김광석‘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서해순씨가 김광석과 영아를 살해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서해순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상호씨의 요청에 따라 사건을 12∼13일 이틀에 걸쳐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했다. 국민참여재판은 법관과 일반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형사재판으로, 시민이 배심원 자격으로 법정 공방을 지켜본 뒤 유·무죄 의견을 내면 재판부가 이를 참고해 판결을 선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검찰은 “피고인으로 인해 피해자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봤다”며 “피고인이 어떤 판결을 받든 피해자는 본인이 쓰고 있는 살인자라는 누명과 악독한 이미지를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배심원을 향해 “피고인에게 형을 선고하는 것은 죄에 대한 응징의 의미도 있지만, 앞으로 이런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않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유념해 달라”고 당부했다.반면 이상호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의 목적은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었다”며 “김광석의 어머니를 포함한 유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이 있었고 기자로서 양심에 따라 관련자를 만나 취재했다”고 반박했다. 직접 최후변론 기회를 얻은 이상호씨는 배심원을 향해 “만약 제가 국민의 의혹을 대신해 물었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돼야 한다면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가 앞으로 `제 가족 중 이런 일이 있다’고 제보하면 뛰어들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당한 질문이 범죄가 된다면 저뿐 아니라 또 다른 이상호도 좌절하지 않을까 싶다”며 “부끄럽지만 그런 이유로 무죄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상호씨는 최후변론 중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보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에 시작됐지만, 이씨와 검찰의 치열한 법정 공방으로 약 12시간 만인 오후 9시 40분쯤 변론이 종결됐다.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서해순씨는 이날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공황장애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출석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이틀 모두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배심원들은 곧장 이상호씨의 혐의에 대한 평의에 들어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48년 전 살인에 유죄 판결 내려지기 3시간 전에 그는…

    48년 전 살인에 유죄 판결 내려지기 3시간 전에 그는…

    48년 전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78세 노인은 죄책감을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판사가 2주의 심리를 마치고 유죄 판결을 내리기 3시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 NBC 뉴스와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따르면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에드몬즈의 자택에서 9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10시쯤 테렌스 밀러의 주검이 발견됐다. 스노호미시 카운티 보안관실은 페이스북에 그의 죽음을 알리는 성명을 실었는데 3시간 뒤 재판부는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밀러에게 주어진 혐의는 1972년 8월 23일 조디 루미스(당시 20)를 살해한 혐의였다. 그녀는 보델의 집에서 자전거로 마굿간을 찾은 뒤 말을 타던 중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로 그날 저녁 발견됐다. 두 사람이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실마리를 찾지 못해 영원히 미궁에 빠질 뻔했지만 피해자가 썼던 컵과 말 탈 때 신었던 부츠에 남은 정액 자국에서 채취한 DNA 정보와 유전정보를 수집하는 웹사이트 GED매치에 올라온 유전자 정보들을 비교한 결과, 밀러의 친척 중 한 명의 DNA 정보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 밀러가 용의자로 지목돼 지난해 자택에서 일급 살인 혐의로 체포할 수 있었다. 그는 살해 사건이 벌어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그는 무죄라고 강변했다. 가족 중 한 명이 그의 주검을 발견하고 보안관실에 신고했는데 몇 시간 뒤 판사는 유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의 오빠 존은 “그는 48년을 빠져나갔다”며 밀러가 감옥에 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사건 당시 27세였던 존은 결혼한 뒤에도 누이가 함께 살았던 집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며 이날 선고 재판을 집에서 라이브스트리밍 중계로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마침내 그를 잡은 것이 너무 기쁘다. 정의가 거의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밀러의 변호인 로라 마틴은 부츠 바깥에 묻은 DNA 정보가 오염된 것이며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한 것은 잘못됐으며 의뢰인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극단을 선택했다고 계속 반박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여기는 남미] 23년간 친딸 성폭행…출산까지 하게 한 아버지

    [여기는 남미] 23년간 친딸 성폭행…출산까지 하게 한 아버지

    10살도 안 된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 자식을 4명이나 낳게 한 인면수심 남자의 범행이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아르헨티나 검찰이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자와 피해자 자식의 친자관계를 DNA 검사로 뒤늦게 확인했다고 현지 언론이 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족들까지 동원해 뻔뻔하게 무죄를 주장해온 남자의 처벌은 이로써 뒤늦게 탄력을 받게 됐다.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우고 빅토르 아기레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건 지난 1월 8일. 검찰은 피해자인 그의 친딸 나탈리의 진술을 근거로 범죄를 추궁했지만 법정에 선 그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어진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그의 부인과 또 다른 딸들도 남자를 옹호했다. 부인과 딸들은 "나탈리가 악의적으로 아버지에 누명을 씌우고 있는 것"이라며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갔다.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던 재판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은 건 최근 나온 DNA 검사 결과였다. DNA 검사에선 "피고와 피해자 자식 간에 99.9% 친자관계가 확인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올해 32살인 피해자에 따르면 아버지의 짐승 같은 짓이 시작된 건 9살 때였다. 피해자는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태우고 집에서 가까운 숲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아버지로부터 처음으로 성폭행을 당한 장소와 당시 자신이 입고 있던 바지의 색깔 등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상습적인 아버지의 성폭행에 시달린 그는 13살 때 첫 임신을 했다. 아버지의 아기였다.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인면수심 아버지는 "동네 이웃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했다. 친딸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거짓말을 하고 딸을 낳았다. 친부는 할아버지, 엄마는 아빠의 딸, 이렇게 뒤죽박죽 얽힌 관계 속에 태어난 딸은 벌써 19살이 됐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피해자 나탈리는 15살 때 또 아버지의 자식을 출산했다. 이번엔 아들이었다. 나탈리는 이번에도 친부가 누구인지 가족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는 이런 식으로 4남매를 낳았다. 모두 아버지의 자식들이었다. 자신의 자식 4명을 낳았지만 아버지는 친딸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자식이 많아 이제 너에게 접근할 남자는 없을 것"이라면서 성폭행을 이어갔다. 피해자 나탈리가 꼬이고 꼬인 가족관계를 바로잡고 새로운 삶을 출발하겠다고 용기를 낸 건 지난해 말. 그는 23년간 자신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아버지를 검찰에 고발했다. 현지 언론은 "피고가 완강히 거부하던 DNA 검사 결과가 나옴에 따라 재판에 속도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피고가 피해자 자식들의 친부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됨에 따라 공모 여부에 따라 증언을 한 가족들까지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인포바에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 탄원… 항일투쟁 외교 전선의 선구자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 탄원… 항일투쟁 외교 전선의 선구자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1월 윌슨 미국 대통령이 천명한 민족자결주의는 나라를 빼앗긴 약소국들을 독립의 희망에 부풀게 했다. 그런 배경에서 같은 해 8월 중국에서 민족지도자들이 발족한 신한청년당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기로 했다. 파리에 대표로 간 인물이 김규식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김규식은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국제 정세에 밝아 적임자였다. 김규식은 파리로 떠나기 직전 결혼한 김순애와 바로 이별해야 했다. 여운형과 김순애 등은 국내외 각지로 가서 파견 경비를 모으는 한편 한국 대표의 외교활동에 힘을 실어 주려면 대규모 독립운동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이런 활동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김규식이 파리에 도착한 것은 국내에서 일제의 탄압 속에 만세운동이 계속되던 1919년 3월 13일이었다. 김규식의 임무는 회의석상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비망록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전승국인 일본의 방해로 애당초 불가능했다. 이를 예상한 김규식은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먼저 파리 샤토가 38호에 한국공보국을 설치했다. 각국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언론, 정당은 물론 사회주의 조직과도 접촉했다. 그를 통해 일제의 죄악상을 폭로하고 독립의 정당성을 홍보했다.●한국 독립 문제 국제적 부각… 동정 여론 형성 한국공보국은 공보국회보를 발간하고 ‘한국독립에 대한 탄원서’를 회의에 제출했다. 김규식이 만났던 미국 인사는 외교관이자 언론인인 스티븐 본잘이라는 사람이었다. 본잘은 한국에 호의적이기는 했지만 결정권이 없었다. 그의 대답은 “우리가 유럽에서 전범을 응징하면 나중에 국제연맹이 일본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였다. 김규식은 좌절하지 않았다. 조르주 클레망소 강화회의 의장에게 임정 대통령 이승만 명의의 서한을 전달했다. 김규식이 파리에 머물던 4월 11일에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돼 대표단 지원사업은 임시정부로 이관됐다. 임정은 공보국을 임정 파리위원부로 개칭하고 김규식을 임정 외무총장 겸 파리위원부 위원장으로 임명해 힘을 실어 주었다. 김규식은 4월 26일에는 ‘통신국회보’를 발간해 3·1운동 등 독립운동 소식을 알렸다. 한일합병의 무효화 등을 요구하는 20개 항목을 담은 독립공고서를 비롯한 서한을 강화회의 이사회 위원들과 각국 정부에 여러 차례 보냈다. 달걀로 바위 치기 같았지만 김규식의 다각적인 노력에 침묵을 지키던 유럽 신문들이 움직여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규식의 활동은 열강들의 외면으로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 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고 동정적 여론을 형성하는 간접적인 성과는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사(尤史) 김규식은 1881년 1월 29일 부산 동래에서 김지성과 경주 이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구한말 선전관을 지낸 부친은 일제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갔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 김규식은 사실상 고아가 됐다. 큰아버지 집에 맡겨졌지만 형편이 어려워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어린 나이에 고난을 겪었다.●16세 美 유학… 박사과정 장학생 접고 귀국길 그를 구한 사람은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였다. 그의 아내 릴리아스는 이런 글을 남겼다. “언더우드는 분유와 약을 들고 가마를 타고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 아이는 너무 굶주려서 먹을 것을 달라고 울부짖으며 벽지를 뜯어내어 삼키려고까지 했다.” 언더우드는 병든 김규식을 극진히 보살피고 입양했다. 5세 때 김규식은 언더우드가 세운 고아학교(경신학교)에 입학했는데 영어를 대단히 빨리 익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어 1894년 한성 관립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김규식은 독립신문사에 입사하고 독립협회에도 가입했다. 김규식은 16세가 된 1897년 서재필의 권유와 언더우드의 후원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동부 버지니아주 로노크대학에 입학했다. 예과를 2등으로 마치고 본과에서도 전 과목 평균 90점 이상을 받았다. 외국어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전교강연대회에서 2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스스로 학비를 조달해야 했지만 1903년 전체 3등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한 해 가을 그는 프린스턴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 1년 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장학생으로도 선발됐지만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귀국을 결심하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김규식은 은인인 언더우드 목사를 돕는 일부터 시작했다. 언더우드의 비서와 주일학교 교장직을 맡으면서 새문안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할 수 없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105인 사건’을 일으켜 독립운동가와 기독교 지도자들을 대거 구속했을 때 투옥은 모면했지만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심해졌다. 김규식은 해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참여할 결심을 굳혔다. 일제의 추적을 따돌리고자 호주로 간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상하이로 향했다. 상하이에 도착한 때는 32세 때인 1913년 4월 중순이었다. 신규식, 박은식 등이 창설한 동제사(同濟社)가 프랑스 조계에 설립한 박달학원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중국에서의 첫걸음을 떼었다.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돼 임무를 마친 김규식은 임정 구미위원부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돼 1919년 8월 22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구미위원부는 대한민국을 대표해 외교 활동을 벌이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사실상 정부 기능을 수행했다. 김규식은 미국 국무부 당국자들에게 독립운동 지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윌슨과 관리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냉대를 받았다. 구미위원부는 한국친우회를 결성하고 대중 연설이나 홍보물 배포, 신문·잡지 기고 등의 간접적 활동을 폈다. 이는 미국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미쳐 1920년 3월 미국 상원에 한국 독립안이 상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김규식은 1921년 1월 상하이로 돌아가 임정에 합류했다. 그러나 임정의 내부 갈등에 염증을 느껴 구미위원부 위원장과 학무총장을 사임하고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를 창립해 한중 합작으로 항일운동을 벌였다. 1921년 극동피압박민족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규식은 참가를 결정했다. 고비사막을 횡단하고 러시아 이르쿠츠크를 거쳐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개막된 회의에 참석했다. 50여명이 참가한 한국대표단은 레닌으로부터 지원을 약속받았다. 중국으로 돌아온 김규식은 복단·동방·북양대학 교수로 일하는 한편 삼일중학을 세웠다. ●독립단체 통합 참가, 민족혁명당 국민부 부장에 1925년부터 김규식은 독립운동 계파 통합을 위한 민족유일당운동에 참가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자 교육에만 열중했다. 1935년 7월에는 난징에서 한국독립당, 의열단 등 5당 통합으로 창당된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과 국민부 부장으로 선임됐다. 1942년에는 좌우익 세력을 대표하는 한국독립당과 광복군,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가 임정을 중심으로 통합했다. 사천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김규식은 충칭 임시정부로 와서 국무위원과 선전부장으로 선임됐다. 1944년에는 임정 부주석에 취임했다.광복 후에도 그의 통합정신은 이념과 노선을 초월한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으로 이어졌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란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9월에 납북당했다. 평북 만포진까지 끌려간 김규식은 그해 12월 10일 동상과 천식 등으로 고통받으며 69세를 일기로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정부는 1989년 김규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고모이기도 한 부인 김순애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룸살롱 황제 뇌물수수’ 누명 벗은 전직 경찰관

    서울 강남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로부터 성매매 단속 무마 등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경찰관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김미리)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경찰관 A(56)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07년 4월∼2009년 2월 동료 경찰관 4명과 함께 관내 유흥주점 등 업소 업주들에게 단속 정보를 제공하고 단속을 무마해 주는 등의 대가로 이씨로부터 총 1억 3500만원을 받아 나눠 가진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동료 경찰관들과 공모해 이씨로부터 뇌물을 수수했거나 분배받았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에 대한 무죄 판단에는 앞서 같은 혐의로 기소된 동료 B씨의 일관되지 못한 진술이 영향을 미쳤다. B씨는 처음에는 이씨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다 일부 혐의를 인정하면서 받은 돈을 A씨를 포함한 동료들과 나눴다고 진술했다. B씨는 이후 다시 이씨에게 돈을 받은 적이 없고, A씨에게 돈을 분배하지도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재판부는 동료들이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A씨를 끌어들인 것으로 판단했다. 이씨로부터 돈을 직접 받았거나 분배한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 중 A씨 등 2명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모두 징역형과 벌금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됐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이춘재 “불 찾아가는 불나방처럼… 연쇄살인 14건 모두 내가 했다”

    이춘재 “불 찾아가는 불나방처럼… 연쇄살인 14건 모두 내가 했다”

    “반성하고 있고, 그런 마음에서 모든 사건을 자백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의 범인인 이춘재(56)가 2일 ‘진범 논란’을 빚은 1988년 9월 ‘8차 연쇄살인 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섰으며, 1980년대 경기 화성과 충북 청주 일대에서 벌어진 14건의 연쇄살인 사건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또한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에게 사건 발생 32년 만에 사과했다. 첫 번째 살인 사건 발생 34년 만에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지난해 경찰의 재수사가 시작된 후 “범행 당시 현장 은폐 등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경찰에서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저의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반성하고 있고, 그런 마음에서 자백했다”고 털어놨다. 이춘재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군데군데 흰머리가 성성했다. 오랜 수감 생활 탓인지 얼굴 곳곳에는 주름이 깊게 패었으나 얇게 찢어진 날카로운 눈매는 30여 년 전 몽타주 속 사진과 다름없었다. 그는 경찰이 교도소로 찾아와 DNA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추궁하자 1980년대 화성과 청주에서 저지른 14건의 살인 범행에 대해 모두 털어놨다고 설명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이나 생각을 갖고 한 것이 아니라 불을 찾아가는 불나방처럼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춘재는 이날 법정에서 윤씨를 포함해 범인으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다가 죽거나 다친 무고한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뉴스영상을 본 뒤 “제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형 생활을 한 윤씨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다. 윤씨는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이춘재가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며 “다만 그가 진실을 밝혀 줘서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세·중학생)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춘재가 법정에 나와 일반에 공개된 것은 그가 자백한 연쇄살인 1차 사건이 발생한 1986년 9월로부터 34년 만이며, ‘진범 논란’을 빚은 8차 사건이 발생한 1988년 9월로부터 32년 만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30여년 만에…이춘재 “누명 쓴 윤씨와 피해자들에 사죄”

    30여년 만에…이춘재 “누명 쓴 윤씨와 피해자들에 사죄”

    “죽은 피해자들의 영면을 빌어…참회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하겠다”공소시효 지나 이춘재 처벌은 불가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을 자백한 이춘재(57)가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한 윤성여(53)씨에게 사건 발생 32년 만에 사과했다. 2일 이 사건 재심 재판이 열린 수원법원종합청사 501호 법정에서 이춘재는 “제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형생활을 한 윤씨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윤씨의 변호인 측이 1980년대 경기 화성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 당시 윤씨를 포함해 범인으로 몰려 경찰서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다가 죽거나 다친 무고한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뉴스 영상을 재생한 후 “할 말이 없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춘재는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가서 (윤씨의) 앞으로의 삶이 더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했다. 이어 “저로 인해 죽은 피해자들의 영면을 빌며, 유가족과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 사죄드린다”면서 “제가 이 자리에서 증언하는 것도 작은 위로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마음의 평안을 조금이라도 얻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춘재는 또 “제가 저지른 일은 앞으로 없어질 수 없다. 모든 분에게 반성하고 또 반성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이춘재를 코앞에 둔 윤씨는 착잡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모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모두 이춘재를 증인으로 신청했으며,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날 법정에 선 이춘재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씨와 처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들에게 30여년 만에 사과하기는 했으나, 그가 저지른 14건의 살인(처제 살인 제외)과 30여건의 성범죄는 이미 모두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하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어린이집 교사에 학대 누명, 가해자 엄벌해달라” 청원글 동의 30만 넘어

    “어린이집 교사에 학대 누명, 가해자 엄벌해달라” 청원글 동의 30만 넘어

    아동학대 누명과 악성 민원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세종시 어린이집 교사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 엄벌을 바라는 국민청원 게시글의 동의자가 30만명을 넘었다. 앞서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아동학대 누명 쓰고 폭언에 시달린 어린이집 교사였던 저희 누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청원 글에는 25일 오전 9시 기준 31만2000여명이 동의했다. 이는 ‘한 달 내 20만명 이상 동의’라는 청와대 공식 답변 요건을 크게 넘어선 수치다. 법조계에 따르면, 세종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였던 A(30)씨는 2018년 11월쯤부터 1년 6개월 넘게 아동학대를 주장하는 원생 가족 B(37)씨와 C(60)씨 등의 폭행과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6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앞서 B씨 고소로 이뤄진 A씨 아동학대 혐의 수사는 혐의없음으로 마무리됐으나, B씨는 세종시청에 지속해서 어린이집 관련 악성 민원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A씨 동생이라고 밝힌 청원글 작성자는 “B씨 등은 어린이집 안팎에서 제 누나가 아동학대를 했다고 원생 학부모뿐만 아니라 어린이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 주민과 인근 병원 관계자에게 거짓말했다”며 “피를 말리듯 악랄하게 괴롭히고, 누나의 숨통을 조여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B씨 등에게)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와 같은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억울한 보육교사를 죽음으로 내몬 이들을 엄벌하라는 취지의 여론이 들끓고 있으나,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처분은 마무리된 상황이다. 앞서 지난달 17일 B씨와 C씨는 ‘웃는 게 역겹다’라거나 ‘시집가서 너 같은 XX 낳아서…’ 등 폭언을 퍼부으며 A씨를 수차례 때린 죄(업무방해·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모욕)로 1심에서 각각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 피고인 2명의 돌연 항소 취하로 해당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으며, 사건 전반에 대한 재조사 역시 피해자가 숨진 점 등을 고려할 때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해당 청원 글 게시 종료일인 11월 4일 이후 아동학대 누명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집 보육 현장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전망이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어린이집 교사에 학대 누명” 사건, 재수사가 어려운 이유는?

    “어린이집 교사에 학대 누명” 사건, 재수사가 어려운 이유는?

    아동학대 누명과 악성 민원을 견디지 못한 세종시 어린이집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 책임을 더 크게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지만, 재수사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누명을 씌운 이들에 대한 형사처분이 이미 마무리된 데다 피해자도 숨진 상황이어서 다시 수사를 개시하지는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21일 검찰과 경찰 등에 따르면,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였던 A(30)씨는 2018년 11월쯤부터 1년 6개월 넘게 아동학대를 주장하는 원생 가족 B(37)씨와 C(60)씨 등의 폭행과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6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A씨 사건을 맡은 경찰은 고인의 복잡한 심경이 담긴 일기장 내용이나 유족 참고인 진술 등을 토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검사 지휘에 따라 내사 종결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과 관련해 타살 등 범죄 혐의는 없었다”며 “변사 사건 처리 원칙에 따라 수사를 마치는 수순을 밟았던 것”이라고 말했다.A씨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원인 중 하나였던 B씨 등의 업무방해·공동폭행·모욕 혐의 사건은 그즈음 1심 재판 진행 중이었다. 재판부는 “저런 X이 무슨 선생이냐”는 등 욕설을 해 놓고도 자신들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B씨로부터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고 판단해 A씨를 증인으로 출석시키려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 변호사는 “피해자가 고인이 된 상황이어서 다시 형사 사건으로 다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가해자들에게 피해자 사망 동기에 대한 민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지는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수사기관의 판단과는 별개로 이번 사건의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아동학대 누명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는 취지로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은 보름 만에 동의 2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청원인은 “이 일 때문에 우울증을 앓게 된 누나는 일자리를 그만뒀다”며 “(학대누명을 씌운 이들은) 피를 말리듯 악랄하게 괴롭히고, 누나의 숨통을 조였다”고 분노했다. 업무방해·공동폭행·모욕 등 죄로 각각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고 불복한 B씨 등은 2심 재판부에 사건이 접수된 지 이틀 만인 지난 7일 돌연 항소를 취하했다. 법원에서 보냈던 소송기록접수 통지서 역시 ‘주거지 문이 잠기고 피고인은 없었다’는 뜻의 폐문부재 사유로 전달되지 않았다. 검찰에서 항소하지 않은 이 사건 재판은 별다른 사정 변경이 없는 한 이대로 확정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재명 ‘허위사실공표’ 파기환송심서 무죄 선고

    이재명 ‘허위사실공표’ 파기환송심서 무죄 선고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원심 파기 판결을 받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16일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문제가 된 토론회 발언은 허위사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대법 판단 취지를 그대로 따랐다. 수원고법 형사2부(심담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지사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토론회 발언 내용을 보면 의혹을 제기하는 상대후보자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뿐, 적극적·일방적으로 널리 알리려는 공표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토론회에 나온 특정 질의·응답 과정을 두고서는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려 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를 부인하는 의미로 ‘없다’고 한 것으로, 의도적으로 의미를 왜곡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이같은 사실을 공개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소극적 회피·방어하는 취지의 답변·일부 자의적 해석가능한 취지 발언 등을 허위사실공표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후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고, 별다른 변동사항이 없었다”며 “따라서 이 법원은 기속력(羈束力ㆍ임의로 대법원 판결을 철회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구속력)에 따라 대법 판단대로 판결한다”고 부연했다. 재판이 끝난 뒤 이 지사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인권옹호의 최후 보루로 불리는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며 “앞으로는 이런 송사에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도정에, 도민을 위한 길에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대선에 대한 질문에는 “대선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이 대리인인 우리 일꾼들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지 결정하는 것이다”라며 “부여해주시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지난달 21일 열린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후보자 등이 토론회에 참여해 질문·답변하는 과정에서 한 말은 허위사실 공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파기환송 전 원심 선고형이자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구형한 바 있다. 검찰이 일주일 내에 재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으면, 이번 무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된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에서 “친형을 강제입원 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발언하고, 같은 시기 “검사 사칭은 누명을 쓴 것이다. 대장동 개발 이익금을 환수했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로도 기소됐다. 이를 모두 무죄로 판단한 1심과 달리 2심은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유죄로 보고, 이 지사에게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 전원합의체는 그러나 지난 7월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디지털교도소 운영자 구속영장 발부

    성범죄자 등 신상을 무단으로 공개해 붙잡힌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자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대구지법 강경호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8일 A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는 “증거 인멸과 도망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이날 낮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정에 들어가기 전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인정한다”며 “억울하지 않다”고 했다. A씨는 지난 3월부터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와 인스타그램 계정 등을 개설·운영하며 디지털 성범죄, 살인, 아동학대 등 사건 피의자 신상정보와 법원 선고 결과 등을 무단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모두 176명에 대한 신상 정보 등을 무단 게시했다. 성 착취물 제작 혐의로 신상이 무단 공개된 한 남자 대학생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한 대학교수는 사실무근인 데도 ‘성착취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썼다. A씨는 지난해 2월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인접 국가인 베트남에 은신해있다가 인터폴 적색 수배가 내려진 가운데 지난달 22일 베트남 공안부에 검거돼 국내로 송환됐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억울하지 않다”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자 구속(종합)

    “억울하지 않다”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자 구속(종합)

    성범죄자 등 176명 신상 무단공개법원 “증거 인멸과 도망 우려 있다”모습 드러낸 A씨 “혐의 인정한다” 성범죄자 등 신상을 무단으로 공개해 붙잡힌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자 A씨가 8일 구속됐다. 대구지법 강경호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A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증거 인멸과 도망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지난 3월부터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와 인스타그램 계정 등을 개설·운영하며 디지털 성범죄, 살인, 아동학대 등 사건 피의자 176명의 신상정보와 법원 선고 결과 등을 무단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명예훼손), 개인정보 보호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된다. 성 착취물 제작 혐의로 신상이 무단 공개된 한 남자 대학생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한 대학교수는 사실무근인데도 ‘성착취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썼다.이날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대구지법에 모습을 드러낸 A씨는 혐의를 인정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인정한다. 억울하지 않다”고 답했다. 디지털 교도소를 만든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그는 지난해 2월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인접 국가인 베트남에 은신해있다가 인터폴 적색 수배가 내려진 가운데 지난달 22일 베트남 공안부에 검거돼 국내로 송환됐다. 대구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A씨를 상대로 여죄를 수사하는 한편 압수한 증거물 분석 등을 토대로 공범과 디지털 교도소 2기 운영자를 쫓고 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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