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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 3백70만중 리투아니아인 80%/오늘의 리투아니아

    ◎단결력 강해 발트3국 독립운동 선도 탈소 독립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있는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이웃 강대국인 독일ㆍ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중세에는 독일의 정복에 저항,폴란드와 연맹하여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4세기에는 현재 백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상당히 장악,통일된 군주국을 형성시켜 나갔으며 14세기에는 중세유럽의 대표적 제국의 하나로까지 성장했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는 1796년 러시아에 의해 대부분 점령당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으며 제1차세계대전중인 1915년 9월부터 전쟁말기까지 독일의 발굽아래 지냈다. 독일군이 철수한뒤 리투아니아는 1918년 2월 독립을 선포,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1939년 8월23일 히틀러­스탈린의 독소밀약으로 다음해 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과 함께 소연방으로 합병되는 등 끝없는 약소국의 한을 안고 살아왔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은 3백70만 국민가운데 리투아니아인들이 80%를 차지,소연방내의 다른공화국보다 응집력이 강해 단결이잘 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내에서 소수집단인 러시아(9%),폴란드(8%),백러시아(2%)인들은 공업분야에 종사하고 있어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 리투아니아인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으며 마찰 또한 빚고 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스탈린치하에서 다른 소수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강제 이주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 41년 지식인 3만명을 포함,4만5천명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추방된것을 비롯,49년까지 모두 30여만명이 반당분자라는 누명으로 조국을 떠났다. 소련내 리투아니아인들은 3백40만명 정도로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세기말부터 리투아니아인들의 해외이주가 본격화되어 미국과 유럽등지에 약 2백만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조국의 반소ㆍ민족주의운동을 돕고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의 동질성을 높여주는 또다른 요인은 언어와 종교로,88년 10월 리투아니아의회는 리투아니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했으며 리투아니아인들은 대부분 카톨릭을 신봉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영토는 6만5천㎢로 한국의 충정남북도ㆍ전라남북도ㆍ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보다 약간 작다. 주산업은 조선ㆍ화학ㆍ제지ㆍ전자ㆍ직물 등이며 감자ㆍ사탕무ㆍ육류 등이 주요 농산물이다.
  • 우애회복을 위한 문화교류(사설)

    부모가 자손에게 남기는 가장 간절한 유언은 『동기간에 서로 사랑하여라』이다. 우리네 조상들은 우애를 신칙하는 일을 자녀교육의 근본으로 삼았다. 분단의 상황이 이렇게 오래되고 서로 눈흘기며 대화를 하는 족족 깨어지기만 하는 오늘의 우리 모습은,동기간에 우애하며 사는 미덕을 모두 상실해버린 희망이 없는 세대다. 이대로 굳어진다면,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생명력의 근원이었던 동기간의 사랑의 능력은 아주 퇴행할지도 모른다. 문화부와 통일원은 11일 「통일소원 민속잔치」를 벌인 자리에서 남북문화교류 5원칙을 내놓았다. 일방적으로 많은 제의를 했지만 그중의 일부도 수용할 태세를 보여주지 않고 있는 상대에게 또 하나의 카드를 내놓은 셈이다. 그러나 새로 내보인 문화교류 5원칙은 좀 다른 데가 있다. 민족은 정의와 감수성을 자극하는 진솔함이 담겨 있어서 희망을 갖게 한다. 흔히 폴란드의 개혁은 노동자가,헝가리는 정당이,그리고 동독의 그것은 민중이 이룬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완고한 분단장벽은 무엇으로 허물 수 있을까. 그건어쩌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정서적 미덕인 형제애의 회복으로 가능할 것이다. 추수한 양식가마를 지고 형제가 밤새도록 서로의 곳간으로 져나르다가 다리위에서 부딪쳤다는 민담이 마을마다에서 채록되는 것이 우리의 전통문화다. 어떤 강건한 장벽이라도 바람처럼 스며서 넘나들게 하는 것,그 정서를 교류하여 정의 온기를 회복하면 효과적인 통일분위기를 성숙시킬 것이다. 「문화교류 5원칙」은 가냘프긴 하지만 가능성을 예감시킨다. 분단이전의 전통문화를 우선 교류한다는 것은 뜻이 있다. 번번이 촉각들을 곤두세워 일을 망치는 정치성을 배제할 수 있고 세월이 지날수록 풍화하고 마모되는 전통문화를 단절상태에서 먼저 구해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뿐만 아니라 민족의 신화에 담긴 세계관이 역사의 벽에 새겨져 전해오는 전통문화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일깨워 각성하게 한다. 단절 저쪽에서 사그라질 뻔한 전통이 새로이 다가와 우리앞에 놓인다면 거기 묻어있는 잊혀졌던 정의가 새롭게 살아날 수 있다. 특히 변형되지 않은 원형을 간수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불행한 시대에 던져진 우리가 수행해야 할 의무다. 서로 승부와 경쟁심을 유발하는 요소는 배제하자는 생각은 아량있는 동기간만이 보일 수 있는 덕행이다. 대결과 적대감으로 일관해온 남북은 그 덕행을 잃어버려온 타락한 동기간이 되었다. 트집과 억설과 누명으로 피해만 당해왔다고 생각해온 우리에게도 그런 타락한 습성은 오염되었다. 우리쪽에서부터 이 습성을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문화교류 원칙」은 구상되었다고 생각된다. 할수만 있다면 이 우애의 온기는 얼어붙은 북녘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우리 모두가 지녔던 것이 지금은 빙면밑에 가라앉은 것,얼음이 녹으면 그것은 수면에 떠오른다. 장벽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함으로 솟아 오른다. 체육회담까지 좌절시킨 동토의 땅에 「통일소원」의 희망을 스며들게 할 「문화교류」의 심지에 밝은 불길이 댕겨지기를 기대한다. 꽁꽁 동여맨 폐쇄의 북녘땅을 풀 수 있는 작은 빌미가 되기를 기대한다.
  • 도둑누명 고민/중학생 변시로

    9일 상오8시쯤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백련산 중턱 약수터 부근에서 이 동네에 사는 김종규군(14ㆍY중2년ㆍ은평구 응암동 332의64)이 숨져있는 것을 등산을 하던 염복실씨(47ㆍ응암1동 104의64)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김군의 가족들은 김군이 자기가 다니던 Y속독학원에서 최근 도난당한 서적의 범인으로 몰리자 이를 고민해 오다 8일 하오5시쯤 자신이 결백함을 증명한다며 집을 나간뒤 소식이 끊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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