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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문점 많은「경관 억울한 옥살이」/검찰 김기웅순경사건 재수사 안팎

    ◎김 순경,그동안 7차례나 범행시인/번복불구 기소·서군 자백도 “이상” 살인혐의로 구속·기소돼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던 전직 경찰관이 뒤늦은 「진범」의 검거로 누명을 벗게 된 사건은 일선 수사기관의 허술한 수사 관행에 경종을 울린 충격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진범이 검거되자 당혹감을 금치못하고 있는 검찰은 10일 이사건을 원점에서 전면재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씨(사건당시 관악경찰서 신림 9동 파출소 소속 순경)이 경찰조사에서 7차례에 걸쳐 범행사실을 자백한 점,김순경이 검찰에서 범행을 부인했는데도 검찰이 기소를 강행해 1·2심에서 12년이란 중형이 선고된 점,진범이라는 서모(19)군이 이 사건부분을 추궁받지 않았는데도 난데없이 범행을 자백한 점 등 갖가지 의문점등을 집중 수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지검 강력부의 담당 검사는 진범이 새로 검거된데 대해 『정말 믿기 어려운 소설같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당시 수사관계자들은 『미성년자도 아닌 경찰관이고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7차례나 한 자백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사건을 이 지경으로 몰고간 김순경이 야속하기까지 하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수사관계자들의 이같은 심경토로는 사건 수사가 원점으로 돌아간데대한 자괴심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이 사건의 이면에 적지않은 의문이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검찰관게자들은 보고있다. 이에 대해 김순경은 『범행을 자백하고 피해자 가족과 합의하면 형이 가벼운 폭행치사나 상해치사로 처리되게 해주겠다는 동료 경찰관들의 설득에 넘어가 허위 진술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김순경이 그동안 가족들과의 접견에서조차 범행을 시인했었다는 사실과 거짓 진술의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아는 경찰관의 신분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김순경의 이같은 해명은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는 것이 검찰의 공통된 지적이다. 더구나 진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서모군이 경찰조사 과정에서 묻지도 않은 범행을 난데없이 자백했다는 것도 미심쩍은 대목으로 꼽고있다. 검찰은 그러나 서군의 자백경위가 순전히 자의에 의한 것이며 범인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사건현장의 여러 상황을 정확하게 진술했다는 점등으로 볼때 현재로선 자백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없지않느냐는 분위기다. 또한 검찰이 사건 발생 당시 범행을 입증할만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채 「경찰관이 동료경찰관에게 한 자백」이라는 점을 지나치게 믿고 기소한점도 경솔했던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일각에서는 오히러 바로 이 점이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다.다시 말하면 서군이 누구로부터 사주를 받아 미리 사건내용을 숙지한뒤 허위자백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검찰은 현재로서는 이같은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한 정밀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하튼 이번 사건으로 불명예를 뒤집어 쓴 검찰이 재수사에서 진실을 밝혀낼수 있을지 속단키 여러운 상황이라 할수 있다.
  • 살인누명의 억울한 옥살이(사설)

    살인누명 경관의 억울한 옥살이 보도는 기사를 읽기만도 고통스럽다.당사자가 민간도 아닌 경찰관으로서,동료인 검·경 및 재판부에 의해 살인범으로 몰리고 중형까지 받아 복역을 하다가 우연한 진범용의자의 출현으로 구속취소가 되었다는 사실은 수사상 있을 수 있는 일일지 모르나 당하는 사람은 기가 찰 일이다.더욱 놀라운것은 진범이 나타났음에도 이를 덮어두려 했을뿐 아니라,기소검사의 해명이 단지 자백내용이 완벽했다는 것 뿐이라는 점이다.하나의 사건을 너무 크게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나 그냥 넘어 갈수는 없는 사안이다. 범죄수사와 인권의 문제는 사실상 인권적이 아닐 소지를 적지 않게 갖고 있다.실질적으로 말해 범죄수사는 그 궁극적 목표가 범인을 검거하여 유죄판결을 얻어 내는 것이다.따라서 수사담당자에게서는 이론적으로 설명되는 적법절차의 구체적 내용들이 수사의 목적달성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요소로 받아들여 질수가 있는 것이다.공개적이기보다는 밀행적이고,순서적이기보다는 비단계적 중복적 활동이며,범인과의관계에서 양방적이기보다는 일방적 입장이 되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러므로 범인의 검거라는 가치와 국민의 기본권보장이라는 가치가 늘 긴장과 갈등을 갖게 되는 것이 수사의 괴로움일 수는 있다.그렇다해도 이속에서 인권을 지켜가는 것은 결국 또다른 제도적 규칙들의 강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수사관 자신들의 개별적인 인권의식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그런데 이번 사건은 동료에 의해 자백까지 만들어졌다는 무리함과 허점까지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수사경찰의 인권의식을 조사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최근 자료가 있다.피의자권리의 실질적 보장에 대해 대부분이 동의하지만 16.2%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피의자권리 보장의 상대적인정 정도에서도 유의할만한 부분이 있다.죄질이 흉악한 범죄자에 대해서는 법률상의 권리를 다소 제한해도 무방하다에 75.2%가,어느정도 고통을 가해도 무방하다에 62.3%가 동의하고 있다.현대사회속에서,특히 전망과 예측이 불가능한 고도의 기술정보사회에서 범죄수사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현실에서 보면 우리 수사의식의 인권관은 대단한 딜레마를 갖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이하게도 이 사건을 우리는 제45회 인권의 날 기념식과 함께 마주했다.대한변협회장은 과학문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인간의 생명과 가치가 경시되는 등 인간소외,인간상실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지적하고,인격의 존귀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강조했다.세계적으로도 이제 남아 있는 마지막 선진의 과제는 진정한 인권의 수립일 것이다.힘이 들더라도 인권의 보장을 통한 법질서의 확립에 진력해야 할 때이다.
  • 살인범누명 경관 억울한 옥살이/징역 12년 선고받아

    ◎1년만에 진범검거로 풀려나 살인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1년동안 옥살이를 한 경찰관이 뒤늦게 진범이 나타나는 바람에 풀려나게 돼 검·경의 수사력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서울지검 강력부는 9일 지난해 11월29일 서울 관악구 신림6동 C여관에서 발생한 술집종업원 이모양(당시 18세)살해사건의 진범은 이양의 애인으로 이미 1,2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김모씨(27·당시 관악경찰서 근무·순경)가 아니라 서모군(19·서울 관악구 봉천동)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서군은 지난달 24일 관악구 봉천8동에서 노상강도짓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힌 뒤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이양 살해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결국 진범임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당시 서군은 상오6시쯤 인근의 만화가게에서 TV를 보다 나와 C여관에 몰래 들어간 뒤 혼자 자던 이양의 방에 침입,반항하는 이양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10만원권 수표 2장이 든 핸드백을 갖고 달아났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서군이 친구 전화번호를 이용해 이서한 뒤 사용한 수표 2장을 증거물로압수했다. 당시 C여관에 애인 김씨와 함께 들었던 이양은 아침에 김씨가 먼저 나간 뒤 혼자 있다가 상오10시쯤 변사체로 발견됐고 경찰과 검찰은 함께 투숙했던 김씨를 범인으로 지목,구속기소했었다. 김씨는 『함께 여관에 들었던 정황으로 미루어 어차피 살인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는 동료경찰관의 말에 따라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속기소된 이후에는 법정에서 계속 혐의를 부인했었다. 김씨는 지난 5월의 1심과 지난 9월 항소심에서 모두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를 해놓은 상태다.
  • 재산공개 결과 눈길끄는 두 행정기관

    ◎외무부/“알부자 많다”/국세청“의외로 적다”/평균 9척2천만원… 20억이상이 14명/부동산많아… “해외발령때 샀기 때문” ▷외무부◁ 비교적 「깨끗한」 부서로 알려져 어느 정부부처보다 자존심이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외교관들의 재산이 평균치보다 높게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경찰청·국세청보다는 다소 낮으나 「민원업무와는 거리가 멀어 비교적 적을 것이라」는 당초 기대에 비춰보면 높은 수치가 나온 것이다.재산공개 의무대상자인 외무부 「1급이상 고위외교관」 총1백37명의 평균액은 9억2천2백만여원.「많음」과 「부패」가 꼭 등식을 이루는것은 아니지만 50억대가 이승환그리이스대사와 박수길외교안보연구원장등 2명이고 30억대가 김기수전뉴욕총영사·김정훈파키스탄대사·최동진의전장등 3명에 이른다. 20억대는 9명으로 김이명벨기에대사·이창수필리핀대사·김석현본부대사구원연구부장·민병석체코대사·박영우헝가리대사·김흥수불가리아대사·김승호리비아대사·한승수주미대사·장명관인도네시아대사등이다.10억대는 19명이며 가장많은 재산대가 5억대로 23명이나 된다. 이른바「재력가」로 드러난 외교관들의 재산품목은 역시 부동산과 빌딩이다.더러는 부동산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어 부동산에 상당히 「신경」을 쓴듯한 외교관들도 있다. ○10억∼20억 19명 타부처 공무원에 비해 특징이라면 잦은 해외공관 생활때문인지 다이아몬드등 보석류와 고서화 소지자가 많다는 점이다.44명이 신고한 다아아몬드는 대개 1캐럿이상인데 김모대사 부인이 소유한 2·8캐럿이 제일 크다.동양화와 서양화는 운보 김기창등 국내작가의 작품이 주종을 이루나 대사시절 주재국 사람들로부터 받은 듯 간혹 18세기 카드릭성화·중국 호방경의 「해바라기」·석진관의「매화도」등을 소지한 외교관도 있었다.신모대사의 경우는 유고슬라비아대사시절 타고다니던 90년식 소형 벤츠를 신고했다.그는 『내전으로 92년12월 긴급 철수하면서 팔지 못하고 들고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석류 소지자 많아 직업 특성상 외국은행에 맡긴 현금도 많았다.주식및 유가증권 신고자도 타부처에 비해 눈에 띄었다. 「재력외교관」에 대해 외무부는 『고위직급에 해당하는 대사의 수가 많고 근무패턴상 자금활용의 기회가 많기때문』이라고 공식 해명했다.1급이상 공개의무 대상자 7백9명중 외무부 대상자가 19·5%에 달해 부처로는 가장 많은게 사실이다.이들은 대부분 서너차례의 해외공관 근무를 경험한 외교관들로 해외로 발령이 나면 먼저 집을 판다는 것이다.그리고 그 돈으로 관리할 필요가 없는 땅이나 주식을 몽땅 사놓고 나가는데『주로 그런데서 오는 이익때문에 재력가가 많다』는것이 외무부 공식 해명의 골자이다. 약간 차이는 있으나 외무부 내부의 설명도 이와 엇비슷하다.한 고위간부는 『해외 여행이 어려웠던 60∼70년대만 해도 외교관이 최고의 사위감이었다』면서 『당시 재력집안과 결혼한 외교관이 많았다』고 말했다.즉 처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다는 얘기이다. ○“처가 덕 많이 본다” 또 70년대 초 까지만 해도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외국 가전제품등을 들고 들어올수 있었다는 것이다.『이때 대형 냉장고 3개만 가지고 들어와 팔면 집 한채를살수 있었다』고 한 간부는 설명했다.여기에 주재국에서 외교관에 대한 면세혜택을 활용,고급외제차를 싼값에 구입해 타고다니다 귀국할 때 팔면 보통 집 한채값은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가 얽혀 재력외교관이 많다는 것이나 집이 3채,상가 두개등에 대한 해명으로는 어쩐지 설득력이 약한게 현실이다. ◎평균 12억… 「상당수 재산가」 소문에 그쳐/“축재자 이미 축출… 일부튼 등록전 퇴직” ▷국세청◁ 국세청 간부들의 재산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만 하다.그러나 공개결과는 일반의 「기대」나「예상」에 미치지 못했다.대상자 10명의 평균 재산이 12억6천만으로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재산가가 상당수라는 시중의 풍문에 비하면 상상 밖이다. ○22억8천만원 최고 지난 3월의 공개때와는 달리 1급 이상(차장·국제조세실장·서울지방국세청장)은 물론 2급이라도 지방의 기관장인 지방국세청장(중부·경인·부산·대구·대전·광주)이 포함돼 총 10명의 재산이 공개됐다. 추경석청장의 경우 1차 공개때는 가족을 포함해 13억2천만원이었으나 이번에 13억8천만원으로 다소 늘었다. 1차때는 부산 연산동의 대지 4백13평을 공시지가 기준으로 4억4천8백만원으로 신고했으나 이를 처분한 금액이 다소 높았기 때문이다.또 1차때 보유했던 동래골프클럽 회원권과 한원골프클럽 회원권을 처분했다. 임채주차장은 17억8천만원으로 지난 69년에 산 강남구 역삼동의 대지 1백86평이 15억원이었다. 이연희 경인청장과 임영호 국제조세실장이 각각 22억8천8백만원과 18억8천5백만원으로 1·2위이다.이들은 모두 종손으로 종중재산 및 상속으로 물려받은 전·답이 많았다.최하위는 2억6천만원의 서정원 대전지방청장으로 지난 74년부터 지방에서 주로 근무해 왔다. ○「억울한 누명」 벗어 국세청 간부들의 재산이 예상보다 적고 투기 냄새도 별로 풍기지 않는 것은 그동안 숱한 격변기를 거치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지난 70년대 이후 이미 도태됐기 때문으로 보인다.올 들어서도 감사원의 집중 표적이 되는 등 그동안 축재의 대명사처럼 비쳐진 국세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도마 위에 올라 문제가될 만한 인물들이 버티기가 어려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간부들의 대부분이 정규 행정고시 출신이라는 사실을,이들의 재산보유와 연결시켜 풀이하는 견해도 있다.공채를 거친 엘리트라는 자부심이 처신할 때 탈법이나 비리 등과 거리를 두게 했다는 시각이다. 공개 내역을 보면 국세청 간부들은 연고지 아닌곳에 땅을 지닌 경우가 별로 없다. 서정원 대전지방청장과 최용관 광주지방청장은 4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재산공개로 그동안 재산가가 많을 것이라는 세간의 「억울한 평」에서 오히려 벗어나게 된 셈이다. ○“하위직 재력가 있다” 그러나 공개 대상자만 보고 국세청에 재산가가 별로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도 우세하다.지난달 11일의 재산등록 마감 직전 국세청은 등록 대상자(6급이상)중 가장 많은 26명이 퇴직했다.당사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었으나 재산 공개를 피하려 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했었다.이들은 그동안 재산등록 대상이 아닌 5∼6급이었다.국세청은 하위직일 수록 재산가가 많다는 얘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초부터 국세청 주변에는 재산이 20억∼30억원 이상으로 문제가 많은 직원들의 사표를 종용한다는 루머가 나돌았다.전 직원들의 재산이 공개될 경우 국세청의 재력가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 이대생 “돈의노예” 매도/뉴스위크지에 배상 판결(조약돌)

    ○…서울민사지법 박시환판사는 8일 미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지난 91년 11월 이화여대를 배경으로 하교하는 여대생을 사진찍어 돈의 노예들­이화여대생들이란 부제의 기사를 실은 것과 관련,과소비의 대명사처럼 누명을 썼다며 당시 이화여대생 권모양(25세.경영학과졸)등 3명이 뉴스위크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뉴스위크지는 원고들에게 3천만원씩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외국언론사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및 초상권 침해에 관한 첫판결이어서 주목된다.
  • 동생살해 누명 국교생에/8천만원 배상 판결

    서울민사지법 합의42부(재판장 이창구부장판사)는 5일 지난 91년9월 발생한 서울 마포구 대흥동 권미경양(당시 9세)피살사건과 관련,경찰이 범인으로 단정해 불기소처분했던 권양의 오빠(당시 10세)를 그 가족들이 국가및 당시 수사관련 경찰관 3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경찰이 강압수사후 권군을 범인으로 단정,발표하는 등 국가의 불법행위가 인정되므로 국가는 8천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이 유력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권군의 자백은 권군이 미성년자인데다 사건 당시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등 심신이 극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져 신뢰할 수 없는데도 경찰이 이를 근거로 무리하게 권군을 범인으로 단정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 부역 누명주장 할머니/이웃밀고해 23년 복역/서울지검 확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6·25 당시 국군을 도왔는데도 부역자로 몰려 2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김복련 할머니(76)에 대한 당시 수사및 재판기록을 정밀검토한 결과 『김할머니는 서울지방법원에서 국방경비법위반혐의사실이 인정돼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26일 밝혔다. 검찰은 『김할머니는 당시 자신의 집에 하숙중이던 여자3명이 「이승만박사여 돌아오라」는 내용의 전단을 제작,살포한 사실을 인민군에게 알려준 혐의로 후에 정식재판에 회부돼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히고『적치하에서 퇴각중이던 국방군에게 옷을 줬다는 김할머니의 주장은 당시 재판과정에서 참작사유로 작용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김할머니는 최근 KBS에 출연,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했었다.
  • 안마시술소 주인 절반이 정상인/안마사협 자정결의 계기로 본 실태

    ◎전국 1백20곳 자격증 빌려 불법영업/맹인,유일생계수단 빼앗기고 「퇴폐」 누명 대한안마사협회가 불법영업금지등 자체 정화결의와 함께 관련당국에 현실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공식으로 호소하고 나섰다. 이들 안마사들은 안마시술소가 퇴폐와 부도덕의 온상처럼 일반에 비쳐지고 있는데 대해 관련 종사자들의 각성과 풍토쇄신노력을 촉구하는 한편 관련 문제점들을 제기한 것이다. 이들은 우선 정상인의 불법적인 안마시술업참여에 대한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단속을 요구하고 안마시술업을 단순한 유흥업으로 취급하는 행정관행을 재고해달라고 촉구했다. 안마사자격은 규정상(의료법상의 안마사에 관한 예규) 앞을 보지못하는 시각장애자중 관련교육이수자에 한해서 주어지며 이러한 자격자에 한해서만 안마시술소를 운영할 수 있다.그러나 실상은 돈 많은 정상인들이 경제력이 약한 맹인들에게 접근,이들의 자격증을 빌리고 고용사장으로 채용해 불법적인 영업을 하는 사례가 많다. 맹인들로 구성된 대한안마사협회는 전국2백53개(서울1백47개소) 안마시술소 가운데 전체의 50%가량인 1백20여개업소의 실질적인 주인은 정상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 맹인안마사들은 『정상인들이 맹인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안마시술업의 경영권을 잠식한뒤부터 퇴폐행위등 불법영업이 심화됐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의 생존권보호차원에서 정상인들의 안마시술소 불법운영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는 정부차원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에 안마시술소가 등장한 것은 지난 68년이후이나 안마시술소가 급증하고 정상인들의 자본참여가 크게 늘어난 것은 지난81∼82년무렵.맹인안마사들은 안마시술업에 빨리 돈을 벌려는 자본가들이 몰린데다 돈을 투자한 정상인들이 최대 이윤을 얻기위해 불법영업도 가리지 않은 것이 안마시술업이 퇴폐로 흐르게된 주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안마시술업계가 퇴폐와 불륜의 온상으로 인식되면서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이 바로 맹인안마사 자신들이라고 말한다.면허를 빌려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는 실질적인 업주에 대해선 당국에서 단속하지않고자신들만 구속되는등 처벌되어왔다는 것이다. 대한안마사협회 정광윤회장은 『호텔·여관등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맹인들의 자활터전인 안마시술소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단속하며 일반유흥업소로 취급돼 환경유발부담금과 상하수도세 종합소득세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점도 시정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안마시술은 이들의 유일하며 절실한 생활수단이다. 전국10개 맹학교에서는 고교과정 전수업시간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당26시간동안 생리·병리학과 함께 마사지와 지압교육을 포함한 물리치료시술교육을 한다. 또 사고등으로 인한 중도실명자를 위한 자립교육과정에서도 보사부의 인가를 얻어 대한안마사협회부설 안마수련원에서 2년동안 교육하고 있으며 해마다 1백여명이 배출되고 있다. 보사부 의료정책과 김태섭과장은 『안마시술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않은 이때 맹인들의 자정결의대회는 환영할만한 일』이라며 『정부도 안마시술소가 장애인의 복지대책차원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원래의 취지대로 건전한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 범죄 관련자 해외 도피에 “족쇄”/사정바람으로 급증… 출국금지란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정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출국금지조치자도 계속 늘고 있다. 높은 자리에 올라 부러움을 잔뜩 샀던 전직 고위관료와 의원들이 출국금지조치로 발이 꽁꽁 묶인채 검찰의 소환이나 법의 심판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한 한 것이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은 출국이 대한민국의 이익을 현저하게 해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거나 범죄의 수사를 위해 출국이 부적당하다고 인정된때에는 출국을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출국금지를 당하면 국내에서 해외로 내뺄 방도가 없어진다.출국금지자는 각 공항 및 항만에 명단이 통보돼 출국심사대를 통과할 수 없기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문을 모르고 외국으로 나가려던 사람들중에는 공항에서 뒤늦게 출국금지사실을 알고 해프닝을 벌이는 사레도 적잖은 실정이다. 정주영 전국민당대표는 지난 1월 대통령선거법위반혐의로 소환장을 받은 상태에서 부산 김해공항을 빠져 나가려다 법무부출입국관리국 직원에 의해 출국을 저지당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국민의인권보호 차원에서 출국금지자의 신상에 대해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다. 율곡사업과 관련,지금까지 출국금지자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권령해국방부장관을 비롯,정호용,최세창,오자복,황인수,임헌표,이진삼,김진영,서동렬,정용후,김종호,김철우,김종호,전경환씨등 14명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져 누명을 벗게 됐다. 현재 출국금지조치된 유명인사는 ▲박태준전포철회장뇌물수수사건 34명 ▲율곡사업비리관련 21명 ▲경우회사건 19명등 1백여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는 이종구·이상훈전국방장관·한주석전공군참모총장등 전직 군수뇌부와 권복경·김우현·이종국·김원환·이인섭씨등 전직 경찰총수,나창주·이재황전의원등 거물들이 다수 끼어 있어 이들의 사법처리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 “군 위상 재정립” 신호탄/수뇌부 전격 경질 배경과 의미

    ◎문민시대 걸맞게 정치탈색 등 대개혁 의지/지장 전면발탁 30여년만에 「대수술」 예고 김진영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기무사령관의 전격 경질은 한마디로 30여년동안 굳어진 군위상 변화의 신호탄으로 상당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군위상 변화란 군내부에 깊숙이 스며들어 굵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위 「정치군인」과 「정치색」을 지워버리겠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이번에 경질된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직등 군핵심이 5·6공 시절 전두환·노태우대통령등 육사11기 극소수 장성들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군맥중에서만 독식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따라서 이번의 전격 경질은 김영삼정부의 군통치 스타일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가늠자로써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인사는 새정부의 대군부 제1단계 포석이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정오 직전 갑작스런 발표가 있자 국방부를 비롯한 군내부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지난 5일 소위 문민대통령이 육사졸업식에 처음 참석했을때 촉각을 곤두세웠던군은 「기습작전」같은 이날 인사를 놓고 『올 것이 오고야 말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빨라 얼떨떨할 지경』이라며 『이것은 신호탄이 아니고 직격탄』이라고 당혹스러워 했다. 김대통령은 육사졸업식 연설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온 대다수 군인에게 당연히 돌아가야할 영예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다』고 군통수권자로서의 군부통제 스타일을 강력히 시사한 바 있다. 그 스타일이란 한마디로 말해 일부 정치군인들에 의해 국가존망이 좌지우지되어 왔던 군부독재시절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 전후 군내부에서 『사병에서부터 장성에 이르기까지 70만 군인들중 99.9%는 국민들로부터 「누명」을 받고 있었다』며 『그것은 0.1%에 지나지 않는 정치군인들 때문이었다』는 여론이 팽배했다는점에서 매우 상징적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전격 경질은 지난 30여년동안 군부내에 깊숙한 고질병으로 자리 잡아온 파벌과 인맥을 개혁하려는 강력한 의지로 평가될 수 있다. 전격인사가 단행된 8일 아침 권령해국방장관은 청와대에서 김대통령과 함께 조찬을 함께 하며 이번 인사를 숙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권장관에게 『지금까지 군 계통상에서 벗어나 있던 기무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국방장관이 철저한 감독을 하라』고 말한 뒤 『정보사령부등도 정보본부장이 장악케 하는등 국방장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신임 육참총장의 경우 평소 무색무취한 지장으로 전임총장과는 동기생이면서도 휘하에 인맥을 형성하지 않은데다 실력을 갖춘 장군이라는 점등이 이번 군인사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김대통령의 대군부 포석은 일단 잘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군통수권자로서 앞으로 5년간 군을 잘 다스릴 것이라는 믿음을 얻게 되는 것은 오는 6월의 군정기인사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 이항복/옳은일이면 불이익 불구,실행(역사속의 청백리)

    조선 선조때의 대신 백사 이항복(1556∼1618)은 오성대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관료사회에 만연했던 당쟁에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초연했을 뿐만 아니라 재정·회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나라의 어려운 살림을 잘 꾸려 나갔다.또 역사상 민족의 최대 수난기였던 임진왜란때 병권을 쥔 병조판서가 돼 난리를 무난히 평정했다. 그가 호조참의에 임용됐을 때 그때까지 방만하게 운용되던 재정지출을 대폭 줄이고 불필요한 예산항목을 과감하게 삭감,불과 한달만에 재정적자를 흑자로 되돌려 놓았다고 한다.이에 호조판서인 윤두수는 「문인으로서 전곡에까지 밝으니 과연 도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항복은 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비록 신분상의 불이익이 오더라도 개의치 않고 실행에 옮겼다.사화가 격렬해지면서 정철이 누명을 쓰고 한강가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평소 정철과 절친했던 친우들이 모두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감히 위로의 말을 건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항복만은 주위의 권고를 뿌리치고정철에게 위문을 갔다.이 때문에 그도 모함을 받아 귀양가는 신세가 됐으나 그의 선비정신을 높이 산 이원익의 도움으로 관직에 복귀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총명과 재기를 발휘,주위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각오를 하고 관청에서 돌아오자 마자 형님과 누이들에게 하직인사를 하면서 「더이상 나에게 가사를 말하지 말라」고 한뒤 임금을 모시고 떠났다.속된 사람은 난리가 나면 자신의 피붙이부터 먼저 챙기지만 그는 나라와 임금의 안위부터 걱정했던 것이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6)

    ◎대한매신의 애국계몽/“축채 갚자” 전국적 담배끊기 전개/의연금 기탁자 명단·사연 연일 보도/「반지빼기」계기 여성동참 적극 유도/“통곡으로 실업가에 고한다” 사설로 참여 촉구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제는 이듬해 통감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기 시작했다.이에따라 1910년 한일합방 때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주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국권수호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신민회 충실 대변 대한매일신보(이하 신보)는 일제가 민족의 목을 죌수록 배일논조를 통해 항일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었다.그것은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등을 주도한 민족지도자들과 국민들간의 의사소통수단으로 나타났다.또 국채보상운동과 같이 직접적인 대국민캠페인을 통해 국민운동을 주도해나가기도 했다.특히 1907년 양기탁주필을 총감독으로한 민족지도자들의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가 창립되었을때 신보는 역할 하나를 더맡았다.신민회 주관 각종 국민운동의 충실한 대변지로서 신민회 활동을 날카로운구국언론활동을 통해 뒷받침했다.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 광문사라는 출판사를 설립,국민교육운동에 앞장서고 있던 김광제 서상돈등 10여명이 주도하고 나서는 것으로 불을 댕겼다.1907년 1월31일 당시 일본에 빚지고 있던 국채 1천3백만원을 국민성금으로 갚자는 운동이 그것이었다.「국채 1천3백만원 보상취지서」라는 격문을 전국에 발송한데서 발단한 이 운동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바로 지키기 위해서는 나라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구국운동 이기도 했다. 그 하나로 2천만동포들이 배를 끊자는 방안이 제시됐다.한사람이 한달 담뱃값 20전을 3개월만 모으면 1천3백만원의 차관을 무난히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이는 전국민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아 마침내 20여일만인 2월22일 한성에 중앙총괄기구인 국채보상기성회를 결성시켰다.국채보상서도의성회·국채보상부인회·국채보상경남찬성회·동래부국채보상일심회·대구국채담보회·제주의성회·황해도재령군보성소등 전국적으로 지역별뿐 아니라 직능별 단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결성됐다. 대한매일신보는 당시 어느 신문보다도 앞장서서 국채보상운동을 다뤘다.의연금 기탁자의 명단을 보도함은 물론 기탁에 얽힌 사연들도 소개했다.이들 보도 가운데는 어려운 노동자들까지도 동참하는데 정부관리나 부유층들이 외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내용도 있었다.『국채보상을 위해 3개월씩만 단연하자는 서상돈의 발기에 한성안의 병문(길가)노동인이 충분소격에 연초대금을 서로 다투어가면서 모으고 있다는데 현금 정부대신은 노동자 보기가 어떠할 것인가』(1907년 2월24일자). 이 운동이 단시일내 전국적으로 확산될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문들의 이같은 적극적인 보도에 힘입어서였다.그러나 신보는 초기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드는 의연금을 여러 곳에서 다룸으로써 혼선이 빚어질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그래서 의연금을 한곳으로 모을수 있는 중앙수합처가 결정되기 전에는 수전소 역할을 맡을수 없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그러면서도 3월1일자에는 「한인충애」 표제의 사설로 이 운동을 『일본으로부터 면탈하려는 인민의 제의』로 규정하고 나섰다.이 큰일의 성취를 돕는 것은 신문이 할수 있는 즐거운 일이라고 적극적인 지지를 밝혔다. 대한매일신보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동기는 3월31일자에 특별사고로 다루었다.「이제까지와는 달리 국채보상 의연금을 동사에서 직접 수령키로 했다」는 뜻을 분명히하고 나선 것이다.이에따라 신보는 일부 유지들을 규합,4월1일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결성,그 사무소를 사내에 설치했다.간부진용으로는 양기탁총무를 회계로 하고 윤웅렬소장,김종한부회장,박용규재무등이 추대됐다.전국각지에서 작게는 5전부터 10전·1환·10환,크게는 1백환 이상에 이르기까지 성금이 답지했다.이 운동이 처음 시작된 2월말부터 4월말까지 불과 두달 사이에 4만명이 넘게 참여하는등 큰 호응을 얻었다.신보를 비롯,각 언론기관들도 이들 명단게재및 보도에 호외를 발행하는등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남자들을 위주로한 단연운동으로 시작했던 국채보사운동은 5월들어 신보에 의해 시작된 반지빼기운동등 여자들의 참여로 확산돼 나갔다.신보는「국채보상에 나선 여인의 대열」이라는 반지빼기모임 취지문의 논조는 사뭇 흥미롭다.「우리 2천만중 여자가 1천만이요,1천만중 반지있는 이가 반은 넘을 터이니 반지 한쌍 2원씩만 셈하면 1천만원이 여인 수중에 있다할수 있다.이 운동에 동참을 계기로 남녀동권을 찾자」(4월22일자). 통감부는 이 운동 초기에는 흡연을 즐기는 한국인들에게 단연운동이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대수롭지않게 비웃었다.그러나 국채보상운동의 열기가 점차 고조되자 통감부는 3월 들어서면서 영문판 기관지인 「서울프레스」를 비롯한 친일지들을 동원,비난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신보는 이에 정면으로 맞섰다.「빚진 사람이 압제하는 채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라는 논조를 폈다.또 3월24일자 「통곡고대한실업가」 표제의 사설에서는 소극적인 자세로 있던 실업가들에게 자극을 주면서 동참을 촉구했다. 통감부는 급기야 공안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한매일신보사장 배설을 영국총영사에게 제소한데 이어 1908년 7월12일에는 의연금 3만환 횡령의누명을 씌워 양기탁을 구속하였다.영국측은 전날 배설 공판때 통감부 외무부장이 영국인피고의 증인으로 출두했던 어떤 한국인도 한제국및 통감부로부터 방해 내지는 탄압을 받지 않는다고 확약한 사실을 내세웠다.그러면서 양기탁의 즉각 석방을 요청,영국과 일본 양국간의 외교분쟁으로까지 비화되었다. ○2백여만원 모금 양기탁은 이른바 국채보상금사기취재사건의 다섯차례 공판끝에 9월29일 증거불충분으로 무죄석방 되었다.그러나 그의 구속과 이후 법정공방으로 비화된 보상금 횡령사건등으로 모금활동은 더이상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결국 1년반 가까이 계속된 모금운동에서 걷힌 돈은 모두 2백31만9백89원13전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그러나 이 액수는 애당초 목표로 했던 국채 1천3백만원에는 먼 액수였다. *참고문헌:「한국신문사론고」(최준,일조각 1976)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정진석,나남 1987) 「한국민주독립운동사연구」(신용하,을유문화사 1985) 「대일민주선언」(홍이섭,일우문고 1972)
  • 한·중수교 등 정세변화에 위기감 고조/북한,폐쇄정책 강화

    ◎미 교포 입국비자 발급 중단/주민의 중국인접촉도 통제 【도쿄·로스앤젤레스=이창순·홍윤기특파원】 북한이 최근 사회주의의 붕괴와 한중수교등 주변환경의 변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해외교포들의 입국을 금지시키고 국내거주 외국인과 내국인의 접촉등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미주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이지역 교포들에 대한 북한방문비자의 발급을 전면중단하고 있다. 미국에서 교포들의 북한방문 창구역할을 하고 있는 조국통일북미주협의회(약칭 통협·회장 김현환목사)의 한 관계자는 이날 『북한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이산가족 상봉목적이든 관광목적이든 미주교포들에게 일체의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미주교포들에 대한 이같은 비자발급 전면중단조치 배경에 대해 『현재 북한내에는 사회주의의 붕괴에 따른 위기의식과 긴장감이 팽배해 있다』고 전하면서 『이에따라 해외동포 영접관계자들에 대한 재교육및 고과평가작업이 진행중이어서 사실상 관광안내도 어렵기 때문에 입국비자 발급을 하지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북한의 이번 조치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훈련재개에 대한 일종의 반발적 측면도 있다』고 분석하고 『훈련이 끝나는 3월 중순이후에는 비자발급이 재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이와함께 지난해 8월 한중국교수립이후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들과 내국인의 교제를 신중히 하도록 지도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일본의 교도(공동)통신이 26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날 평양의 서방 소식통을 인용,『특히 올들어서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를 일반 주민들이 갖고 다니는 것조차 금지시켰다』고 전했다. 서방 소식통은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 영주자는 현재 평양의 2천명을 포함,약8천명에 이른다』면서 『북한 화교 협회의 한 회원은 「요즘 친했던 북한인 친구들이 중국인 집을 방문하는 일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과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다」고 호소해 왔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또다른 한 화교의 이야기라면서 『최근 수개월동안 중국과 북한 국경을 왕래하고 있는 중국인이 밀수업자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거나 화물이 몰수되는 등의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고 밝히고 『평양주재 중국 대사관도 이같은 사실을 알고 몇차례나 북한당국에 개선을 요망했으나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이종찬씨에 50억 줬다”/정주영대표 밝혀

    ◎대선직전 양당통합선언 당시/이 의원은 부인… 후보사퇴 조건이면 최고 5년형 정주영국민당대표는 6일 새한국당과의 통합선언 당시 새한국당의 부채 50억원을 갚아주었다고 밝혔다. 정대표는 이날 한영수최고위원과 요담하는 자리에서 『당시 이종찬의원측이 부채가 50억∼1백억원가량 된다고해서 50억원을 주었다』면서 『이때문에 먼저 국민당에 입당한 새한국당 의원들이 돈을 받았다는 누명을 썼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종찬의원은 『전혀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뒤 『정대표가 돈을 줬다면 언제 누구한테 줬는지 명확하게 밝혀야할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는 심대한 명예훼손에 속한다』고 반박했다. 정대표가 이의원에게 50억원을 준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그것이 만약 대선후보사퇴를 전제로 했을 경우 대선법에 저촉된다.대통령선거법 제1백43조(후보자에 대한 매수및 이해유도죄)에 위반돼 5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백만원이상 5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 유성용/사사로운 청탁 아무도 못꺼내(역사속의 청백리)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끈 명상 유성용(1542∼1607)은 드물게도 영의정의 지위에 있을 때 염근이,즉 청백리에 뽑혔다. 그는 오랫동안 정승을 지냈음에도 청빈하기가 가난한 선비와도 같았으나 당시 북인들은 그를 재물을 탐하는 오이로 무고하곤 했다.이에 정승의 자리에 있던 이항복이 그의 누명을 벗어주기 위해 청백리로 천거했던 것이다. 그는 본래부터 성품이 겸손하고 온화하여 평생 남에게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다.그럼에도 정사를 공평정대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사사로운 청탁은 감히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도체찰사때 여러 고을에 공문을 발송할 일이 있어 이를 역이에게 주었다.그런데 사흘이 지난 뒤 공문내용 가운데 일부 내용이 잘못된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공문을 급히 회수토록 했다.그런데 지난번 공문을 역이가 발송하지 않고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이에 유성용이 역리의 무사안일을 준엄하게 꾸짖자 역리는 「옛말에 조선공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삼일후면 다시 공문을 고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발송을 늦추고 있었다」고 말했다.그러자 유성용은 그를 탓하기는 커녕 「가히 세상을 깨우쳐 주는 말」이라면서 대인으로서의 도량을 보여주었다. 그는 또한 평상시에도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 남에게는 공경하는 자세로 임했다.설혹 집안의 자제들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을 대할 때는 몸을 기대는 등 자세를 흐뜨리지 않았으며 탐욕스럽거나 인색한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가 죽기 전날밤 임금은 그의 병 구완을 위해 전의를 내려 보냈으나 「그렇잖아도 임금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데」라며 간곡히 사절했다.자신은 이미 소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죽으면서 머리를 임금이 계신 쪽으로 북향을 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백성들은 「공이 아니면 우리들의 씨가 없어졌을 것」이라며 임란중 그의 노고를 추모했다. 유성용은 항상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으로 정치의 근본을 삼도록 간했으며 선조는 그의 말을 소중히 여겨 「경을 바라보면 절로 경의가 생긴다」며 각별한 애정을 나타내곤 했다.
  • 민주·국민 임시국회 소집요구 배경

    ◎단체장선거 이슈화… 수세 탈피 포석/민주/부정선거 혐의 검찰수사 완화 속셈/국민 민주·국민당이 오는 1월 임시국회소집을 함께 요구하고 나선 것은 대선패배의 후유증에서 조기탈출하려는 포석이다. 표면적으로는 민생문제나 새정부 진로등을 추궁하겠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대선후 흔들리는 내부체제를 수습하기위한 카드로 분석된다. 특히 국민당은 임시국회소집요구를 통해 불법금권선거운동등에 대한 관계당국의 적극 수사를 완화시켜보겠다는 의도를 감추지않고 있다. 반면 새 정부출범준비에 바쁜 민자당으로서는 1월 임시국회소집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않고 있다.2월말 새 정부의 첫 국무총리인준을 위한 국회를 잠깐 열고 본격 임시국회는 3월이후 개최하는 것이 순리라는게 민자당측의 입장이다. ▷민주당◁ 28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1월 임시국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 선공을 취함으로써 선거패배로 가라앉은 당분위기를 바꾸고 수세에 몰린 국면을 탈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1월중에가시화될 지도부개편문제와 관련,드러날 당권싸움의 파장을 최소화하고 이를 위해 「본업」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외부에 심어줄 필요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가 열리면 민주당측이 가장 우선적으로 들고나올 부분은 선거기간중 민자당측의 「용공매도」부분. 이 대목에 비중을 두는 것은 대선결과의 승복여부차원이 아니라 당과 김대중전대표에 대한 「용공」누명을 벗고 이를 계기로 흑색선전 선거풍토를 쇄신해보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설명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민주당=용공」이라는 치명적인 연상작용을 없애지 않는 한 앞으로 어떤 선거에서도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고 나아가 유세장에서의 김영삼대통령당선자의 발언을 공식적으로 문제삼음으로써 예상되는 여당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같다. 현재 위법상태인 지방자치단체장선거,건영특혜·국방부중기부정사건등 소위「6공비리」와 「실정」등도 신정부 출범전 미리 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단체장선거 연기문제는 민주당이 현 국면을 전환시키는 최대의 카드로 이슈화할 방침이어서 93년 6월30일 시한으로 되어있는 당론과 위법성을 들어 파상공세가 계속될 전망이다. 이같은 민주당의 국면탈피노력은 현재 『선거소송은 논의하지 않고 사안별로 공조한다』는 민주당의 확고한 공조원칙을 감안할 때 국민당과의 공조가 벌써부터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내부 주도권다툼도 1월중 본격 진행될 것으로 보아 성과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민당◁ 국민당이 1월 임시국회소집을 요구하는 이유는 ▲6공 정부의 결산 ▲김영삼 신정부의 진로 ▲이번 대선과정에서 나타난 공권력동원및 관권선거문제등 3가지를 의제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국민당이 이중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목은 관권선거부문. 6공 정부결산이라든가 새 정부의 진로문제는 다소 모호한 주제여서 정치쟁점이 될 수 없기 때문. 국민당은 1월 임시국회가 소집되면 부산기관장회식모임에서 나타난 관권선거의혹과 사직당국의 현대 불법선거운동에 대한 집중조사의 부당성을 강력히 제기,국민당의 대선득표가 「정상적」상황에서 이뤄진 것이 아님을 강조할 방침이다. 그러나국민당이 1월 임시국회소집을 요구하게된 근본 배경은 「공세」라기보다 「수세」의 성격이 짙다. 우선 정몽준의원,이병규대표특보를 비롯해 국민당과 현대관계자 3백80여명이 불법선거운동이나 부산모임건으로 수사대상에 올라있는 상황을 모면해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정부와 민자당에 대해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국회라는 장이 마련되면 관계당국의 국민당 「목조르기」가 약화되지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이다.설령 1월국회가 열리지않더라도 정치공세의 효과를 거둬 현대불법수사나 부산모임건을 둘러싼 막후협상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나아가 대선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위해 「바깥의 적」(민자)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같은 맥락에서 내부체제가 동요하고 있는 민주당과의 공조구축필요성도 느끼는 실정이다. 야당가에서는 민자당이 내년 1월중 민주당에서 20여명,국민당에서 10여명등 30명이상의 야당 의원을 빼내가 개헌선을 확보하려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만약 민자당이 실제로 이같은 구상을 갖고 있다면 더욱 쉽게 흔들릴 상대는 국민당이라는 관측이다.국민당으로서 자체방호벽을 쌓지않을 수 없으며 임시국회소집요구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분석된다.
  • 금고속 1억 증발/은행원 목매자살/“결백”주장 유서

    21일 하오3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26의3 한국주택은행 본점 2층 화장실에서 이 은행 영업1부 조성열씨(27·중랑구 면목4동)가 넥타이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동료 정순식대리(35)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조씨의 바지주머니에는 「나는 결백하다.누명을 쓰고 있어 억울하다」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경찰조사결과 조씨는 지난 19일 자신이 맡고 있는 금고속의 8억5천만원 가운데 현금 1억원이 없어져 상사로부터 추궁을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조씨의 형 성용씨(35)는 『돈이 없어진뒤 은행측이 동생에게 없어진 1억원 가운데 6천만원을 변제하라고 독촉하는등 계속해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해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 “굶주림…절망…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요덕15호 정치범수용소:1)

    ◎북한탈출 안혁·강철환씨 수기연재 앞서 회견/5만명 가족·독신자동 나눠서 감시/탈출하다 적발되면 돌팔매질 사형/강냉이죽 연명… 사람 죽으면 옷차지 아귀다툼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죽음자체보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에서는 죄없는 북녘 동포들이 절망과 공포에 시달리며 죽어가고 있다. 함경남도 요덕군 정치범수용소는 북한에 있는 12곳의 수용소 가운데 가장 크고 처참한 곳이다. 북한 주민들은 「조선인민경비대 2915부대」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이 곳을 「15호 관리소」또는 「15호」라고 부른다. 15호는 구읍리·입석리·용평리·평전리·대숙리등 5개 리(이)가 있는 요덕군전체 지역에 설치된 거대한 「수용소군도」이다. 이 수용소에는 이른바 반동분자·사상불순자라는 누명을 쓴 북한 주민과 북송교포등 5만여명이 가족세대와 독신자세대로 나뉘어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에 수용되어 있다. 이곳에 9년6개월동안 가족과 함께 수용되었던 강철환씨(24·북송교포 2세)와 1년3개월간 혼자 갇혔던 안혁씨(24·전탁구선수). 강씨는 조총련 교토(경도)본부 상공회장을 지내다 지난 61년 일가족과 함께 북송된 할아버지 강태휴씨(92·생사불명)의 손자로 북한에서 결혼한 아버지 강리명씨(89년 병사)와 어머니 신도옥씨(90년 병사)사이에서 68년 출생했다.강씨 가족들은 소문난 부자였던 할아버지 덕분에 평양시 중구역 경림동 아파트에서 자가용차와 냉장고까지 갖추고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나 77년 7월 강씨의 할아버지가 영문없이 행방불명된지 한달만에 할머니·삼촌·아버지·남동생등 일가족 4명은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강씨는 당시 10살이었고 성분좋은 집안 출신인 어머니는 강제로 이혼 당해 헤어졌다. 한편 안씨는 중학생 대표 탁구선수로 중앙체육학교에 다니던 중 호기심으로 압록강을 건너가 중국의 연길등지에서 놀다 돌아온뒤 간첩으로 몰려 87년 11월부터 1년3개월간 수용되었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사지에서 풀려난뒤 지난 3월 북한을 탈출,중국을 거쳐 남한에 귀순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눈에 선한 수용소의참상을 상세히 폭로하고 싶어한다.그들은 인간다운 삶을 되찾게 된 만큼이나 비인간적인 수용소 생활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강씨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인간에게 온갖 잔인한 고통을 주어 죽어가는 과정을 처참하게 체험토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고 말했다. 1인당 하루 5백g의 강냉이알맹이가 주식의 전부이며 반찬은 굵은 소금.이때문에 수용소 사람들은 풀을 뜯어다 강냉이를 삶아 으깬뒤 죽을 쑤어 먹거나 풀범벅을 만들어 먹고 있다는 것이다. 강씨는 또 『흙벽돌과 나무판자로 지은 낡은 집은 흙방바닥이며 1년에 한번 지급되는 마대로 짠 겉옷이 의복의 전부여서 사람이 죽으면 서로 헌옷을 차지하려고 다투며 신발은 아예 지급되지 않아 나무껍질과 헝겊으로 감발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용소안의 모든 사람들이 극심한 노역과 영양실조로 펠라그라병(단백질 결핍증으로 심한 피부병·설사증세와 정신이상을 일으켜 곤충등을 잡아 먹는 병)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수용소에서는 약을 구경할 수도 없어 병에 걸리면 곧바로 죽을 수 밖에 없다』면서 『폐렴·결핵등에 걸리면 치료는 커녕 산속에 있는 격리수용건물에 넣어 죽을때까지 방치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또 가족세대인 경우에는 드물게 출산을 하는 여자들도 있으나 아이들은 모두 태어난 직후 죽거나 살아도 기형아가 된다고 말했다. 수용소 생활을 견디다 못해 가끔 작업장에 나간 틈을 이용,탈출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지역이 워낙 넓은데다 제대로 걷지를 못해 모두 곧바로 붙잡히고 만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안씨는 『탈출하다 붙잡히면 수용자들이 모두 모인 공터에서 처음에는 총살을 시켰으나 얼마전부터는 총알이 아깝다며 목을 매단뒤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하도록 명령하고 있으며 부녀자들은 이같은 끔찍한 광경에충격을 받고 까무러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수용소 사람들에게는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이듬해 새풀이 돋는 3∼4월까지가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 셋방살이도 억울한데 도둑 누명/8시간구금 자백강요 폭행/전주경찰

    【전주】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절도범으로 오인,강제로 연행해 자백을 강요하며 폭행한 뒤 8시간만에 풀어준 사실이 밝혀져 말썽을 빚고 있다.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이모씨(39) 집에 세들어 사는 박창환씨(37)에 따르면 17일 오전 9시30분께 전주 북부경찰서 팔복동파출소로 연행된 뒤 이모 경장(39)등 경찰관 4명이 지난 16일에 주인 이씨 집에서 발생한 현금 8만원과 2백70만원이 입급된 예금통장 도난사건의 범행 사실을 자백하라며 파출소 창고등에 감금한 채 온몸을 마구 때렸다는 것. 박씨는 『혐의사실이 드러나지 않자 이날 하오 5시 30분께 풀려났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박씨를 연행해 조사한 것은 사실이나 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경찰 가혹행위로 소매치기 누명”/20대,억울한 옥살이 10개월

    ◎2심서 무죄석방 【부산=김세기기자】 경찰이 무고한 20대 청년을 물고문 등 가혹행위로 「원정소매치기」로 몰았으나 9개월 23일의 긴 옥살이 끝에 결백이 밝혀져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박영무부장판사)는 지난달 9일 김정균(31·대구시 북구 불로동 144의7),홍성복피고인(28·대구시 남구 봉덕2동 1155의8)에 대한 강도상해죄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김피고인에게는 원심대로 징역 5년을 선고하고 홍피고인에게는 무죄를 선고,석방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홍피고인이 경찰조사 이후 검찰과 법정에서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피고측 주장을 입증하는 증인들의 증언과 피해자측 진술,사건의 정황 등을 볼 때 피고인을 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없다』고 무죄판결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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