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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법의 「재정신청」 어떤 제도

    ◎검찰서 피의자 불기소처분 경우 고소인이 고법에 재판회부 요청/야당의 특별검사제 요구 일부 수용 민자당 5·18 특별법 기초위원회(위원장 현경대)가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대해서도 재정신청을 낼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정치권의 특별검사제 도입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재정신청 제도는 비록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나 야권의 특별검사제 도입요구를 현행법 테두리안에서 부분 수용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신청은 형법상 공무원의 독직죄나 불법체포·감금·가혹행위 및 타인의 권리행사 방해 등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범죄에 대해서만 인정되는 제도다.다시 말하면 불법체포·불법감금 폭행·가혹행위·권리행사 방해 등 직무와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피의자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결정을 내릴 경우 고소·고발인이 법원에 직접재판에 회부해줄 것을 요청하는 제도다.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의 부당한 불기소처분에 불복하는 제도로 수사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공정성을 잃을 경우 이를 견제하기 위한법적 장치라 할 수 있다. 고등법원은 재정신청이 이유있다고 인정하면 부심판 결정문을 관할 지방법원에 보내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한다.이때 해당 지방법원은 변호사를 특별검사로 임명,수사와 함께 공소유지를 담당토록 하는 등 특별검사가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검사로서의 모든 직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민자당이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대해서도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함에 따라 검찰이 12·12,5·17,5·18사건에 대한 재수사에서 관련자를 불기소할 경우 고소·고발인이 재정신청을 통해 특별검사를 지정해 주도록 요구할 수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법원에 의해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지난 85년 김우성씨가 진주경찰서 경찰관 3명을 상대로 낸 불법구금 사건과 88년 부천서 성고문사건 등 2건이다. 진주경찰서 경찰관에 대한 재정신청은 대법원에서는 받아들여졌으나 파기환송을 받은 하급심이 이를 기각한 뒤 대법원도 다시 기각했기 때문에 최초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사건은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으로 볼 수 있다. 조영황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임명된 부천서 성고문사건은 인권침해 범죄를 저지른 문귀동 당시 부천서 경장을 구속·처벌하는 등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을 혁명의 도구화했다」고 매도됐던 이 사건의 피해자 권인숙양은 누명에서 벗어난 반면 5공화국 말기의 공권력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현위원장은 『지난 73년 워터게이트 사건 때 처음 도입된 특별검사제는 미국에서도 그리 흔치 않은 제도』라며 『새로운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하기 보다는 우리 법체계 내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 비밀일지 내용

    ◎“숙군 방해 송호성 사령관 공산당과 내통”/서대문형무소에 사무실마련… 군적색분자 색출작업/남로당 조직책 이중업 사형집행전날 비서가 탈옥시켜/빨갱이 고희두 심문중 변사… “고문치사” 누명받고 좌천 대한민국 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부분의 하나가 숙군이다. 군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는 숙군의 주역이었던 김창룡(1920∼56년). 1956년 1월30일 육군특무부대장으로 재직시 저격을 받아 숨지기까지 타공실상을 기록한 그의 비밀일지가 워싱턴에서 발견되었다. 미국립공문서보존기록국이 소장한 이 일지는 한글로 쓴 원본을 미 당국이 영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를 긴급입수,우리말로 다시 옮겼다. 단순한 개인기록물의 성격을 떠나 격동의 현대사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숙군(Purge)은 제주도반란을 전후하여 3차에 걸쳐 있었다.레드파지는 군내부에서 진행되었기에 외부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1947년 1월 육사3기생으로 입대했는데,동기생 가운데 약 8할이 공산주의자였다. 대구폭동이 일어나고 공산당 간부에 대한 체포령과 동시에 공산당이 불법화되자,공산당에서는 이중업에게 조선경비대에 공산주의자들을 침투시킬 것을 명령했다.이중업은 이재복을 군사책임자로,김영식을 군사레포(Militaryrepo)로 임명하였다.조선경비대와 육군사관학교 간부의 다수가 공산주의에 감염되었다.당시의 육사 생도대장 오일균 소령,교수부장 조병건 소령,중대장 김학림 소령 등이 공산당의 지령에 움직였다. 반면에 초대 군감 이병주 소령은 남로당 특수부의 지령에 따라 조선경비대 내부에 세포를 확대하여 비상시에 반란을 획책하고자 준비하였다.그는 노재길·정국환·김민배 등을 인천의 모 부대에 공산당 세포로 침투시켰으며,문산과 기타 지역에 무기를 숨겨두었다. ○생도 80% 공산주의자 후보생으로서 나는 밤 10시경에 경비근무를 하였다.룸메이트인 김진태를 혼자 남겨둔채,내무반을 순찰하고 돌아오니 김후보생이 보이지 않았다.멀리 바라다보니 생도대장 방에서 불빛이 비쳤다.나는 그 앞으로 걸어갔다.이때 김후보생이 놀란 표정으로 그 방을 뛰어나왔다.생도대장 오소령도 뛰어 내왔다.나는 아무 말없이 오소령 앞에 섰다.오소령은 나에게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에게 보고해 달라고 말했다.나는 동지를 얻은 것 같이 반가웠다.오소령도 역시 우리 동지로구나.나는 기뻤다.그리하여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모조리 이야기했다.김지회·홍순석·박호산 등은 모두가 공산계열에 속하는 인물에 틀림없다고 이야기했다.그후 상당한 시일을 기다려도 생도대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제1연대 정보부 근무 1947년 6월에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에 임관되었다.하늘이 도와 나를 제1연대 정보부에 근무하게 하였다.나는 이제 경비대에 침투한 공산계열부터 색출해야 하겠다.경비대는 장래 우리나라 국군의 모체이다.제1연대는 조선경비대의 모체였던 것이다.임관되자마자 육사는 물론 조선경비대의 주요 간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폭로 적발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이것이 제1차 숙군이었다.우선 제1차로 군감사령관 이병주 소령 및 그 선을 검거하였다.이소령 이하 수십명과 문산 부근에 은닉하고 있던 무기까지도 압수하였다.소령이라면 당시의 군인으로서는 최고의 계급이었다.일개 소위가 어찌 최고 계급인 소령급과 그 일파를 검거할 수 있었으랴! 이것은 오로지 나의 신념인 타공정신의 소치였다.동시에 당시 통위부 고문관 가소(Kasso)소령의 후원이 컸기 때문이었다. ○문산부근 무기 압수 일당 9명 가운데 군정재판에서 8명은 5년,1명은 3년의 징역 언도를 받았다.나는 당시의 총사령관 송호성 장군에게 전말을 이야기한 바 있다.그랬더니 송장군은 공산당도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군정재판에서 언도가 내렸을 때 송장군은 나에게 적지않은 노여움을 표명하였다.그후 나는 전후 6회에 걸쳐 전속명령을 받았던 것이다.나는 괴로웠다.그들은 분명히 공산당인데,송장군은 왜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한편 노엽기도 하고 한편 괴롭기도 했다. 나는 후에 알 수 있었다.알고 놀랐다.당시의 사령관 송호성장군이 적색계열과 연락이 있다는 것을. (편집자주:당시 경비대 총사령관이었던 송호성 장군은 적색계열과 내통한 공산주의자였다.그는 뒷날 월북해 1956년 「재북 평화통일협의회」에서 활동했다. 남로당 군사책 이재복의 체포로 이것이 판명되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령 이병주가 5년 징역의 언도를 받았을 때 송사령관 방으로 뛰어들어갔다.수사관의 입장으로서는 자기가 검거한 피의자들이 언도를 많이 받는 것을 바라는 심정이었다.하물며 그들은 공산당이며 국군의 모체가 될 경비대에 침투하여 멀지않아 수립된 대한민국의 기반을 완전 파괴하기 위하여 유사시에 봉기할 계획을 암암리에 세우고 있던 것이 아니었던가.그들 일당에게 5년 징역이라는 언도가 내렸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그리하여 송사령관 방에 뛰어들어갔더니,송사령관은 칭찬은 고사하고 화를 내면서 나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너는 어디 놈이냐.조선놈이 조선놈을 잡아서 징역시키는 법이 있느냐.공산당도 잘 설교를 시켜서 쓰면 된다.송사령관은 커다란 목소리로 이렇게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나는 그냥 그 방에서 나왔다.나는 송사령관을 이상하게 생각했다.그리고 구속영장의 사인을받으려고 갔을 때 몇번이고 거부당한 선례를 생각했다.사실 최고사령관인 송준장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다.그가 공산당 통정자라고는 정말 생각되지가 않았었다.그러나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다.만약 그가 공산당 통정자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총사령관에게 미움 사 여순반란 후 숙군은 가일층 강화되었다.「인민해방군사건」의 오동기 소령과 그 일당 8명,그리고 소령 오일균,소령 조병건,중령 김종석,소령 김학림,중령 박근서,소령 황택림,소령 김호량을 비롯한 일당의 체포와 검거가 있었다.당시에 소령이면 군에 있어서 최고의 계급이었고 중령이라고는 불과 몇사람 밖에는 없었다.이자들은 모두가 남로당의 지령에 따라 움직여 각자 세포부식과 연락 또는 「빨치산」전술을 연구하여 유사시에 봉기할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만약에 그때 숙군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후에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우리 국군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숙군을 위하여 서대문 형무소에 한방을 얻어 부하들과 그곳에서 기거하면서숙군을 착착 단행했다. ○여간첩 김수임 진상 밝혀 이중업은 체포되는 순간 자기는 이중업이 아니라고 했다.그리고 자기 이름은 이명근이라고 말하였다.그는 도주하려고 했다.그리고는 가소롭게도 돈을 줄터이니 용서해 달라고 했다.그는 체포당시 83만원이라는 대금을 가지고 있었으며 입속에는 연락문을 넣고 있었다.돈이라면 무엇이든지 될줄 아는 그들.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가 도주하다니,나는 전화를 받고 뒹굴어 일어났다.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사형수 이중업을 사형 집행 전날 새벽에 육군형무소에서 탈출시킨 것은 그의 단 하나의 비서였던 김형륙이라는 청년이었다.그가 체포되고 48시간만에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전향하자,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이중업이 월북하던 경위와 이중업이 머물고 있던 여간첩 김수임의 진상,그리고 실로 지금까지 우익으로 열렬히 행세하던 인물들이 좌익분자였다니.상상외의 인물들이 드러났을 때 나는 몇번이고 나의 눈을 의심했다.김형륙은 남로당 잔당을 색출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나는 그를 찾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그는 전쟁시기,놈들에게 붙잡혀 끌려갔다고 한다. ○수사관에 3년 징역형 소위 「고희두 사건」만큼 세상에 화제를 던진 사건이 당시에는 없었다.그는 틀림없는 빨갱이었다.그는 표면으로는 대한민국에 가장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공산당들이 하는 전술이요,전법이었으며 그는 이면으로는 철저한 당원으로서 갖은 흉모를 다하였던 것이다.빨갱이 중에서도 이와같이 무서운 빨갱이는 없다.표면으로는 충실한 백성이요,이면에서는 공산당원인 자들과 같다. 고희두 구속에 대하여 각계각층에서는 방첩대를 비난하였다.그러나 확고한 증거가 있다.오랫동안의 내사에서 이 증거는 더욱 굳어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비난하다니.이와같은 썩은 뿌리들까지 모조리 뽑아 버려야 한다.나와 나의 대원들은 일체의 방해를 물리치고 민국을 위하여 소신에 매진하겠다. 고희두가 1949년 9월29일 변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각계각층에서는 고문치사라고 들고 일어났다.그를 취조한 사람은 방첩대 2등상사인 도진회였다.사건은 고문치사로 판명되어 도상사는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고문치사가 아니다.그는 원래 몸이 뚱뚱하였으며 혈압이 높은 사람이다.그는 체포 연행되었을 때 어느 누구보다도 당황했었다.1949년 9월27일 상오8시 그를 연행했을 때 그는 펄펄 뛰면서 발악을 했다.그는 자기의 죄상을 하는 수 없이 자백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조서도 꾸몄다.그는 연행되었을 때에는 퍽이나 쇠약해 있었다.증거의 제시로 자백하기 시작한 그는 숨가뿐 소리를 내면서 몹시 괴로워하였다.그 다음날 저녁7시 그는 취조 도중에 의자에서 쓰러지며서 절명한 것이다.의사들을 불러 응급치료를 가하였으나 그는 소생하지 못하였다.그는 자기의 죄상이 보통짓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남에 괴로워하고 몹시 당황한 것이다.고문치사가 아니었다.그는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다.서울대학의 김모 교수는 5백여 명의 시체를 해부한 권위자이다.김교수는 고의 시체를 해부하고 급성심장마비로 진단을 내렸던 것이다.고문치사라니? 우리들에 대한 압력중의 하나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급성 심장마비로 진단 이 사건으로 좌천되어 전속명령을 받았다.모든 슬픔,모든 괴로움,모든 고난,우리들은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한다.설사 기쁨이 있다고 해도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의 과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판에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무슨 기쁨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상부의 명령이니 가야만 한다.그러나 방첩대에서 내가 할 일,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어느 때인가 내가 할 일 내가 해야 할 일이 나에게 돌아오고야 말겠지. ○9·28 수복전 서울 잠입 9·28수복 며칠전 단신 서울에 잠입하여 정보활동을 전개하였다.이때 고희두 가족에 대하여 확증을 얻었다.6월28일 그들이 서울을 침범하자 새벽에 고의 집에 찾아와서 패퇴할 때까지 평양정치보위부 제1과 직원들이 가족과 재산을 보호하였다.고의 부인은 3개월간 붉은 서울에서 여맹 위원장으로 뻔뻔한 활동을 전개하였다.고의 아들 흥천은 자진하여 의용군을 동네에서 색출하여 출동시켰다.그후 그는 정치보위부 명령에 의하여 잠복근무를 하다가 체포되었던 것이다.고흥천은 이것만이 아니다.종로4가에 있는 전매국에서 물자를 훔쳐 인민군에게 제공하였던 것이다.잠복 근무하다가 체포된 그는 일체의 죄상을 자백하였다.그는 자기 아버지 고희두는 당원이었다고 진술하였다. 고희두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말인가.이와같은 확고부동한 증거물을 파악했다.사실 그가 너무나 표면에서는 민국에 협력하는 인물이기에 이와같은 증거가 속속 나타났을 때에는 우리들은 적지않이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그는 종로구책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리에 숨어있던 인물이다.그러기에 우리들은 그를 구속하였던 것이다.적색분자는 대한민국의 땅위에서 그리고 전지구상에서 말살해야 하는 것이다.
  • 우즈베키스탄공 타슈켄트(세계속 한인촌 탐방:2)

    ◎30년대 연해주서 이주… 8만여명 정착/근면은 타민족 본보기… 80%가 농업 종사 옛소련 땅의 한인최대밀집지역인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의 타슈켄트주에 있는 한 목화농장.초로의 황 스타니슬라브씨(53)가 이곳 치르치크구역내의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목화수확반의 작업을 일일이 지켜보며 독려하고 있었다.다른 한쪽 켠에서도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인을 비롯해 10여종족으로 구성된 종업원들이 그의 감독하에 목화송이를 거둬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불과 2년전까지만해도 황씨는 국영기업에 가까운 콜호스의 농장장에 불과했다.하지만 이제 그는 회장님이라 불린다.우즈베키스탄정부의 민영화방침에 따라 국영농장(콜호스)이던 이 목화밭이 주식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영농장 회장이 한인 황회장의 오늘은 아버지 황만금씨(74)의 후광이 컸다.아버지 황씨는 지난 30년간 이 목화농장을 옛소련지역 최고의 콜호스로 이끈 장본인이다.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빈농가에서 태어난 아버지 황씨는 지난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선친과 함께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곳에 내던져졌다.타슈켄트 교외 사막 허허벌판에 던져진 이들 부자는 10년동안 막노동과 농업전선을 전전했다.그러던 1947년,특유의 한인기질인 성실성과 총명함이 돋보여 황만금씨는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 콜호스의 관리위원장에 선출됐다.지금의 목화농장 관리위원장으로 뽑힌 것은 53년.이후 30년간 그는 이 농장을 옛소련의 모델농장으로 끌어올렸다.목화재배에 과학영농기법을 도입,다른 지역 콜호스 생산량의 최고 10배까지 달성하기도 했다.58년 노동영웅칭호를 시작으로 그는 3번의 레닌훈장과 10월혁명훈장,소련인민위원회 계관칭호 등 더이상 받을 상이 없을 정도로 모든 상을 휩쓸었다. 이곳에 사는 문 피요트르씨(64)는 『그는 어려울수록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을 발휘한 콜호스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황씨의 바통은 90년대초반 아들이 이어 받았다.그가 아버지의 농업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비닐하우스 재배기법을 우즈베키스탄에 도입한 장본인이라는 점이 발탁의이유였다. 황회장의 경영능력도 아버지 못지않다.이른바 새 콜호스건설에 신사고를 일으킨 아버지에 이어 그는 요즘 토지의 유상분배와 인센티브제의 도입,컴퓨터농정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황회장은 『일을 시켜보면 역시 한인들은 우수한 민족』이라면서 『한때 도시로 빠져나갔던 한인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러한 역유입은 나름의 배경이 있다.주 요인은 바로 언어문제.한인들 가운데는 소련시절 공용어인 러시아어는 하면서도 현지어인 우즈벡어는 제대로 구사할줄 모르는 이가 많다.그런데 올해부터 우즈벡정부가 우즈벡어를 공용어로 채택,우즈벡어를 모르면 공공기관 취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고있기 때문이다.이에따라 대도시에서의 공공기관 취업이 힘들어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한인들은 22만 2천여명.이중 8만 9천여명이 타슈켄트주에 살고 있다.타슈켄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 가운데 60%가 농업에,나머지가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었다.그러던 것이 최근들어 농업종사자수가 80%이상으로 다시 늘어났다.따라서 최근들어 한인들 사이에는 우즈벡어를 배우려는 노력이 한창이다.특히 40대이하 청년층가운데는 우즈벡어를 배우는 부담때문에 우리말을 배우지 못해 우리 말을 할줄 아는 교포가 전체의 3%도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명 변호사도 배출 이런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현지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한국인이 많다.김 블라디미르씨(62)도 그가운데 한사람이다.타슈켄트시에서 80㎞ 떨어진 타슈켄트주 아쿠르간 마을.마을 전부라야 2백50호정도밖에 되지않는 아담한 전원마을에 위치한 김씨의 주택에는 하루종일 이웃주민들의 발길이 북적거린다.취직문제에서부터 한인지위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교포「민원인」들의 발길이다.남의 집을 빈손으로 찾지못하는 한인들의 기질탓인지 이들은 과일을 담은 비닐백같은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교포들이 이처럼 그의 집을 찾는 것은 김씨부자가 우즈베키스탄 변호사동맹의 소문난 변호사이기 때문이다.아들 보로니야씨(38)도 변호사다.김씨는 다민족으로 이뤄진 타슈켄트사회에서 동포들의 억울한 일들을대변,사건해결사 혹은 인권변호사로 지내오기가 올해로 꼭 40년째다.그 역시 37년 극동의 연해주지역에 살다 삼촌과 함께 카자흐스탄땅에 버려졌다.아버지는 일본스파이라는 누명과 함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삼촌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7살때 우즈베키스탄의 한 고아원에 들어갔다.고아원을 전전하며 대학을 졸업한 해인 55년.시민권도 없던 그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변호사자격을 따냈다. ○조선인 자치지역 건의 그는 지난 89년 고르바초프대통령때 『연해주를 조선인자치지역으로 돌려달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이 문제는 당시 상무위원회에 보고돼 대통령에 직접 전달됐으나 고르비가 『기다려보라』는 답신을 한뒤 얼마되지 않아 실각해 문제제기에 그치기도 했다. 지난 90년때의 일.당시 우즈베키스탄인과 투르크메니스탄인사이에 종족갈등이 폭력사태에까지 이르자 우즈벡공화국정부는 「24시간안에 모든 소수민족은 우즈벡을 떠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투르크메니스탄인 등 다른 소수민족들은 대거 국경을 넘어갔다.하지만 한인들만은 모두 마을을 고스란히 지켰다.『연해주에 이어 또다시 조선사람들의 일터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간곡한 그의 청원이 큰 작용을 했다는 후문이다. 비록 타슈켄트의 한인들이 언어에는 어려움을 겪고있지만 문화·풍습은 나름대로 보존해가고 있다.우즈벡인의 70%가 이슬람교도로 이슬람식 일상풍속의 영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것은 1%의 한인소수민족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이곳 한인들은 주로 「고려인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문화·풍습을 보존해 나가고 있다.현재 우즈벡공화국내에 24곳의 한인문화센터가 있다.이곳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거나 우리 전통예술보존을 위한 전시회활동 등도 벌이고 있다.한인들의 춤과 가락을 계승하고 있는 고려악단·청춘가무단·금붕어아동무용단·한인합창단 등 예술단체만도 20여개소나 된다.이곳 한인들의 최대 명절은 역시 추석.우즈벡인들이나 한인마을에 함께 사는 다른 소수민족들도 아예 이날을 자기들의 명절로 인식할 정도다. 황씨의 목화농장에 살고 있는 30대의한 교포주부는 『설날이나 명절때 한인들은 구역별로 모여 음식을 차리고 잔치를 벌인다』면서 『결혼식과 돌·환갑잔치도 빼놓을 수 없는 한인들의 유대의식의 장』이라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명절에 한복을 입는 것,윷놀이 등은 잘 알지못한다고 했다. ◎라술로프 카리드라슬로비치 대통령 자문위원장/“한민족은 역사와 전통을 중시”/개인보다 남을 생각하는 지혜 돋보여 무려 1백40여민족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인들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특출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민족을 포함해 가장 훌륭한 민족이 한인이다.특유의 부지런함과 화합하며 사는 법,개인보다는 집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롭게 보인다. 한민족은 역사와 교육·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다.한인들은 특히 언어와 종교,기질 등이 틀리지만 다른 민족과 쉽게 잘 화합해왔다.소수민족가운데 우즈베키스탄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민족도 한인들이다.소련에서 독립한 뒤 우즈베키스탄에는 명절이 많이 생기게 됐는데 한인의 추석명절을 다른 민족이 본받아 함께 쇠기도 한다. 한민족은 이곳에서 예술분야에서도 단연 다른 민족들을 압도한다.최근 타슈켄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유명화가 초대전에 20명의 우즈베키스탄화가가 초대됐는데 놀랍게도 이 가운데 18명이 한인들이었다.우즈베키스탄이 독립된 뒤 각국에 파견하는 경제·문화사절단도 때때로 거의 한인으로 채워지기도 한다.그러한 한인들의 단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휴일 망월동 참배 줄이어/전국서 시민·학생 등 1천여명 방문

    【광주=최치봉 기자】 민자당의 5·18 특별법 제정 방침이 발표된 뒤 첫 휴일인 26일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 희생자 묘역에는 유가족과 시민,학생 등 참배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망월동 묘역관리사무소는 이른 아침부터 5·18 묘역에 전국에서 찾아온 참배객들이 줄을 이어 평소 휴일보다 2배가량 많은 1천여명이 참배했다고 밝혔다. 특히 망월동 5·18 묘역 앞에 민자당 광주시지부에서 보내온 「5·18 특별법 제정」을 축하하는 화환이 놓여있어 눈길을 끌었다. 참배객들은 「광주여 부활하라」는 염원이 새겨긴 돌탑주변에서 고개를 숙이고 희생 영령들의 넋을 추모했다. 이 날 상오 묘역을 찾은 전 5·18 유족회장 전계량(전계양)씨의 부인 김순희(57·광주시 북구 중흥3동 광신아파트)씨는 묘지번호 20번인 아들 전영진(80년 당시 대동고 2년)군의 무덤 앞 비석 위애 아들이 살아있을 적에 좋아했다는 홍시를 올려놓고 『이제야 너의 뜻이 이뤄지려나 보다』고 중얼거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씨는 『아들을 가슴에 묻은 지 15년만에 응어리진 한이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동생의 묘소를 찾은 홍순백(40·5·18 유족회 회원)씨는 차가운 땅속에 싸늘하게 묻혀있는 동생에게 5·18 특별법 제정 소식을 전하며 『이제 조금이나마 한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흐느꼈다. 5·18 특별법 제정 소식을 듣고 망월동 묘역을 찾았다는 김영례(25·학원강사·인천시 남동구 구월2동)씨는 『25일 밤 인천을 출발해 새벽에 광주에 도착했다』며 『폭도라는 누명을 쓰고 차가운 땅속에 묻혀 있는 영령들이 특별법 제정으로 조금이나마 한풀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고법원장 4명 전보

    ◎서울 한대현/대전 최공웅/대구 지홍원/광주 이철환 대법원은 20일 공석중인 서울고등법원장에 한대현 대전고등법원장을 임명하는 등 고법원장 4명,지법원장 1명,고법부장 1명 등 6명에 대한 전보 또는 승진인사를 오는 23일자로 단행했다. 대전고법원장에는 최공웅 대구고법원장,대구 고법원장에는 지홍원 광주 고법원장이 전보발령됐고 광주 고법원장에는 이철환 춘천지법원장이 승진·임명됐다. 또 춘천지법원장에는 양인평 서울 서부지원장,서부지원장에는 조용완 서울 고법부장판사가 각각 임명됐다. ◆신임 고법원장 프로필 ◎한대현 서울고법 원장/합리적 사고로 신망높아 균형있는 사고방식과 해박한 법률지식,다른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 등으로 선·후배 법관 사이에 인기가 높다.전형적인 법조가족으로 고 한성수 대법관이 부친이며 이회창 전 총리의 처남이다.고시 15회의 선두를 줄곧 달려왔으나 대법관 인선에서 두번씩 탈락해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경남 산청·53세 ▲경기고·서울법대 ▲서울동부지원장 ▲인천·서울 형사지법원장 ▲대전고법원장 ◎최공웅 대전고법 원장/친근감 주는 학자풍 법관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친근감을 주는 학자풍의 법관.서울 가정법원장 때는 가사조정전담 판사제를 신설해 가사사건을 신속·원만하게 해결하는 데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국제사법에도 밝아 이 분야의 「바이블」로까지 일컬어지는 「국제소송」의 저자다. ▲서울·55세 ▲경동고·서울법 ▲고시 14회 ▲서울민사지법 부장 ▲대구·서울고법 부장 ▲청주·전주·서울 가정법원장 ◎지홍원 대구고법 원장/민소분야 이론·실무 밝아 깔끔한 용모와 깨끗한 매너로 누구나 호감을 갖게 하는 신사.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는 일이 없어 법원 내에서 「생불」로 통한다.민사소송법 분야의 이론과 실무에 밝아 「소송물에 관한 소고」,「의료상의 과실에 관한 조사」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고교 재학시 국전에 입상했을 정도로 그림솜씨가 뛰어나다. ▲경북 청도·56세 ▲경북고·서울법대 ▲고시 14회 ▲서울북부지원장 ▲창원지법원장 ▲서울 가정법원장 ◎이철환 광주고법 원장/재산많아 한때 누명도 훤칠한 키에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은 온화한 인상을 준다.93년9월 재산공개 당시 73억여원을 신고,사법부내 1위를 차지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그러나 부산굴지의 재벌기업인 (주)삼화의 맏사위로 대부분 상속받은 재산임이 확인돼 누명을 벗었다.등산을 즐기며 김영희씨와 1남2녀를 두고 있다. ▲부산·57세 ▲경남고·고대법대 ▲고시15회 ▲부산·대구지법 부장 ▲창원·부산·인천·제주·춘천지법 원장
  • 나이지리아 인권운동가 9명 처형

    ◎영 연방·미·독 등 맹비난… 외교·군사 제재 돌입 【오클랜드·워싱턴·유엔본부 AP AFP 연합】 나이지리아는 10일 국제적인 구명노력에도 불구,켄 사로 위와 등 인권운동가 9명에 대한 교수형 집행을 강행했다. 형집행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국 정부와 단체들의 비난이 잇따랐으며 구명운동을 주도해 온 영연방과 미국,독일등은 나이지리아에 대한 즉각적인 외교,군사적 제재조치에 들어가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나이지리아 주재대사를 즉각 소환하고 미국인들의 나이지리아 여행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데 이어 제재확대 방안의 일환으로 전세계적인 대나이지리아 무기금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백악관은 이날밤 1단계로 대나이지리아 무기금수조치를 취한데 이어 성명을 통해 매들린 올브라이트 유엔주재 미대사에게 『이같은 행위를 규탄하기 위해 유엔차원의 적절한 조치들을 즉각 협의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한편 뉴질랜드에서 정상회담을 진행중인 영연방국가들은 11일 영연방의 민주,인권 원칙들을무시하는 회원국을 제명하거나 자격정지시킬 수 있는 새로운 행동계획을 승인했다. 이 행동계획은 지난 91년 채택된 하라레 선언을 발전시킨 것으로 회원국 대표들은 이 계획에 따라 나이지리아의 자격을 정지하기로 결정했다. 【라고스 AFP 연합】 나이지리아 군사정부는 자국의 인권운동가 집단처형에 대한 제재조처로 영연방이 11일 연방회원자격 정지결정을 내리자 『불행하고 부당하며 근거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나이지리아 왜 전격 처형 단행했나/회교 지배계급 “기득권 유지” 극단 조치/오고니족 자결운동에 위협느껴 국제여론 무시 나이지리아 정부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면서 켄 사로 위와 등 9명에게 전격 사형을 집행한 것은 회교도가 주도하는 지배계급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극단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사로 위와가 주도한 오고니족 생존운동(MOSOP)이 그간 석유보고인 오고니랜드에 대한 영토회복과 자결권을 확보하는데 주력해왔기 때문이다. 오고니족과 나이지리아 정부의 갈등은 5년전 시작된 오고니족 영토회복 운동에서 비롯됐다.나이지리아 남동부 니제르강 삼각주 뒤편에 위치한 오고니랜드의 오고니족은 이때부터 정부에 자결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오고니족은 이와 함께 오고니랜드에서 원유를 채굴하던 국제적 메이저 쉘사에 경제적 보상을 요구했다.보상 요구의 명분은 수십년간 원유를 캐면서 땅을 황폐화시키는 한편 공해를 심화시켜 오고니족의 주업인 농업과 어업이 위협을 받게 됐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오고니족 자결 운동은 나이지리아 경제의 근간인 석유개발이 오고니랜드에서 이뤄지면서도 그 혜택이 지배계층인 북부 회교도들에게 돌아가는데 대한 반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대응은 단호했다.9천6백만 인구 가운데 50만에 불과한 오고니족의 자결 요구에 강경대응으로 일관했다.이들에 대한 나이지리아 특수부대의 폭력도 공공연히 자행됐다.마침내 자결 운동이 극에 달한 가운데 지난해 5월 실시된 민족제헌회의 대표 선거운동 기간중 오고니족 저명인사 4명이 무참히 살해돼 불태워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써 오고니족 대표로 출마한 사로 위와와측근들에 누명이 씌워졌고 사로 위와는 살해를 교사했다는 혐의를 받게 됐다.국제인권단체들은 이를 두고 오고니족 탄압을 위한 정치적 조치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정부가 이같은 비난을 일축,사형을 집행함에 따라 영연방 52개국이 갖가지 제재안 마련에 나서고 미국 등 기타 서방국들도 이에 동조할 움직임이어서 나이지리아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처형당한 켄 사로 위와는 누구/거대 석유회사 쉘과 맞서 소수민족 인권대변 10일 처형된 켄 사로 위와는 나이지리아의 기간산업인 석유문제에 초점을 맞춰 국내외에서 소수 오고니족의 인권운동을 전개해 온 인물.인권·환경단체들로부터 많은 상을 받았고 지난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국제사면기구)은 그를 양심수로 규정했다. 저명한 극작가이자 풍자가인 사로 위와는 오고니족 거주지역인 니제르 삼각주 지역의 석유오염에 대항하는 운동을 전개,나이지리아 전역에서 영업중인 굴지의 석유회사 쉘과 맞서 왔다. 그는 사형선고 후 발표한 성명에서 『나는내 신념을 위해 인생 모든 것을 바쳐왔으며 그로 인해 나를 비방하거나 위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지금 이 재판은 나와 내 동료들 뿐 아니라 쉘사에 대한 재판도 함께 치러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41년 나이지리아 리버스주의 보리에서 태어나 대가족 속에서 자란 그는 일찍부터 자신을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만 했으며 65년 이바단대를 졸업한 후 남동부 우무아히아의 고교교사로 재직하다가 동부 라고스의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사로 위와는 처형 직전인 지난 9일 가디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유감스러운 단 한가지는 나이지리아에서 소수인종으로 태어난 사실 뿐』이라고 말하고 『침대 위에서 꿈꾸며 죽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 비자금정국 여권 5·6공 인사 거취는…

    ◎공천배제 금진호·노재헌씨 거명/박세직씨 수서사건 부각돼 어려운 처지/허삼수·허화평씨 TV영향 이미지 타격 민자당의 「5·6공」 인사들은 좌불안석이다.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파문이 목을 죄어오고 있기 때문이다.금진호의원의 검찰소환을 계기로 정치권이 검찰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가자 위기감은 더해지는 것 같다. 민자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파문 처리에 관한한 「6공과의 단절」이 아니라 「6공비리와의 단절」이라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이 원칙은 내년 총선 공천에서도 다를 바 없다고 민정계의 김윤환 대표위원이나 민주계인 강삼재 사무총장은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구여권,특히 5·6공의 핵심이었던 인사들은 여권 내부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고 받아들이고 있다.최근 여권의 공천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듯한 조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당선가능성이라는 기존의 최우선 원칙이 뒤로 제쳐지고 개혁성과 도덕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구여권 끌어안기」로 표현되던 화합이란 말도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5·6공 출신인사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여권 핵심인사들의 입을 통해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명되고 있는 형편이다. 배제대상에 가장 먼저 손꼽히는 인사는 검찰에 소환됐던 금진호의원이다.금의원은 노씨의 손아래 동서로 비자금 실명화에 핵심역할을 맡은 인물로 부각돼 민자당이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노씨의 장남으로 대구동을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재헌씨도 마찬가지다.그로서는 민자당이 나가라고 하기 전에 먼저 나가야 할 처지에 있다. 비자금을 실명화한 중개인으로 소문이 나돌았던 이현솔 의원은 금의원이 장본인으로 밝혀지면서 일단 누명은 벗게 됐다.하지만 6공시절 유원건설 부회장으로 재직할 때 노씨의 해외순방에 수행하고,노씨가 올림픽 조직위원장일 때 연희동 헬스클럽에서 가깝게 지냈다는 등 「남다른 사이」가 드러나면서 무척 걱정하고 있다는 얘기다.게다가 서울 서대문을 지구당 위원장직을 놓고 민주계 핵심들의 적극 지원을 받고 있는 이성헌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이종구 전국방부장관이나 염보현 전서울시장 등의 영입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박세직 의원은 경북 구미갑을 놓고 전국구인 박재홍 국회건설교통위원장과 경합을 벌이고 있지만 서울시장 재직 때의 「수서비리」가 이번 파문으로 다시 부각돼 검찰의 재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어려운 처지가 됐다. 노씨의 비리파문과 때맞춰 「코리아게이트」「제4공화국」 등 TV드라마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5공 출신인사들에게까지 영향이 파급될 가능성도 높아졌다.특히 허삼수·허화평 의원 등 12·12의 주역들은 드라마를 통해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공천재검토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허삼수 의원은 이미 이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 구청장 “급식비 지원” 지시는 법규 위반

    ◎유성 구청장­직원 갈등 법리적 고찰/“직위해제” 명령도 지나친 「항명문책」/법제처 유권해석·내무부 대응 관심 학교 급식시설비의 집행을 둘러싼 대전 유성구청의 내홍이 확대되고 있다. ▲구청장은 자신의 공약 사업인 학교의 급식시설비를 지원하라고 독촉하고 ▲상급 관청인 내무부는 급식시설비 지원은 법규 위반이라고 지적하는 틈바구니에 놓인 구청의 공무원.그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느냐가 모든 자치단체 공무원들의 관심이다. 송석찬 구청장은 지난 달 30일 의회에 요구한 급식시설비의 추가 지원액 8억8백만원이 전액 삭감되자,예산집행 계획서 제출을 거부한 박원규 문화공보실장을 직위 해제하라고 지난 2일 한연동 총무국장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한국장은 『지방공무원법 제 65조2항에 따르면 상사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징계의 대상은 되지만 직위해제의 사유는 되지 않는다』며 반대함으로써 파문이 커지고 있다. 송청장이 한국장과 박실장을 문책키로 한 것은 자신이 공약한 급식시설비의 지원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대한 위기감의표출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의 지도·감독권을 갖고 있는 내무부는 지난 8월22일 유성구 의회가 급식시설 지원예산 5억8천5백만원을 승인하자 학교급식법 등 관련 법규를 위배한 결정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내무부는 이틀 뒤인 8월24일 대전시에 공문을 보내 유성구의 급식시설비 지원은 법규위반 뿐 아니라 하반기 지방재정 운용계획에도 벗어난 결정이라며 즉각 시정을 요구했다.이와 함께 법제처에 법규 위반 여부에 관한 유권해석도 의뢰했다. 내무부는 내년도 대전시의 지방교부금 중 이 액수만큼 삭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재정적인 제재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문화공보실장은 한 달이 넘도록 집행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청장의 계속된 독촉과 질책을,법제처의 유권해석이 나올 때까지 유보하자며 버티고 있다. 구 의회가 급식시설비의 추가 지원액을 삭감한 이유는 의회가 승인해준 1차분 5억8천5백만원을 한달이 넘도록 집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8억8백만원을 승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송청장은 의회가 승인한 예산의 집행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담당 직원의 무소신과 보신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다.결국 담당 공무원을 교체함으로써 예산을 집행하려는 정면 돌파인 셈이이다. 이번 파문은 투표로 선출된 민선 단체장이 중앙 정부가 위법이라고 지적하는 사업을 강행하려는 의욕 때문에 빚어졌다.담당 공무원이 항명의 누명을 쓰게 될 가능성도 있어 전국의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모두 자신의 일처럼 지켜보고 있다.
  • 이사민·현 앨리스 사건(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8)

    ◎재미교포 부부… 49년 입북후 고위직 올라/북,「미 간첩」 혐의로 체포… 남로당 숙청 이용 한국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남북한 집권세력은 내부투쟁을 통해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남쪽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19 52년 부산정치파동을 거쳐 재집권한데 이어 북쪽에서는 그해가 끝날 무렵 남로당계 숙청을 서둘렀다. 김일성은 52년 12월15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에서 『종파주의 잔재들이 당과 정부기관에서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다』고 경고하고 이들을 남겨두면 적의 「탐정배」(간첩)로 변하고 만다고 강조했다.남로당계를 겨냥한 이 발언을 뒷받침해 19 53년 1월 「문헌토의사업」이 벌어지면서 대대적인 남로당계 검거선풍이 일었다. ○53년 남로당 숙청 시작 3월 들어 박헌영을 비롯,이승엽·이강국 등 주요 간부들이 잇따라 체포됐으며 이 가운데 이승엽등 12명에 대한 재판은 휴전직후에,박헌영에 대한 재판은 55년에 각각 열렸다.이들에게 걸린 죄목은 「미 제국주의를 위한 간첩행위」와 「국가전복 음모」,「남반부 민주역량 파괴」등이다.따라서 이 사건을 흔히 「박헌영사건」또는 「박헌영 미제간첩 사건」이라고 부른다. 박헌영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대표적인 의혹사건의 하나로 꼽힌다.이는 사건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이같은 상황에서 박헌영사건의 성격을 가늠해 주는 또 다른 간첩사건인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은 재미동포인 이사민·현앨리스 부부가 북한 정권 수립 후에 입북,고위관리로 일하다 한국전쟁 발발후 소련을 통해 탈출을 기도한 사건을 말한다.남로당 숙청에 앞서 발생한 이 사건은 이승엽등의 재판과 박헌영재판에서 그들의 「미제 간첩」행위를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됐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묻혀 있었다.그러나 이번에 서울신문이 이사민부부에 관한 자료와 당시 그 사건을 취급한 관계자들의 증언을 발굴해 사건 내막을 상당한 부분까지 밝혀냈다. 이사민은 본명이 이경선(미국명 이윌리엄)으로 출신지·나이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그러나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민족혁명당 미주지부에서 일하는등 항일독립운동에 관계 했다.부인 현앨리스는 재미 독립운동가 가운데 거물로 꼽히는 현모씨의 딸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부가 공산주의자가 된 시점은 확실하지 않지만 1947년 초 이미 재미 친북파의 대표로서 자리를 잡았다.이사민은 그해 4월부터 정기적으로 북한에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보고서는 주로 체코 수도 프라하에 머물고 있던 한오수를 통해 북한 당국자들에게 전달됐다. 이들의 미국내 활동은 매우 적극적인 편이었다.미국 공산당에 가입해 한인조직을 결성,한달에 한번 꼴로 모임을 가졌다.그러면서도 평소 이사민은 워싱턴에,현앨리스는 로스앤젤레스에 떨어져 살며 각각 활동한 것을 보면 상당한 골수분자들처럼 보인다. 이와 함께 외부조직으로 민주인민전선연맹과 진보당후원회를 결성해 재미 한국인 단체,미국 좌파단체들과 고리를 맺었다.이들은 민주인민전선연맹을 통해서는 한인 최대 조직인 국민회에 북한에 설립된 인민공화국을 승인하라고 권하기까지 했다.또 「독립」이라는 주간신문을 2천여부 발행하여 국외및 각급단체에 배포했는데 당시 현지에서 발행된 한글 주간신문 4종 가운데 북한 소식을 보도한 것은 「독립」하나 뿐이었다. 이처럼 활발히 움직이던 이사민부부가 갑자기 북한에 들어가 일하겠다는 뜻을 밝힌 때가 1948년 12월이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발굴한 「이사민의 보고서」(별도기사 참고)에서 이사민은 김일성·박헌영에게 동구권 국가를 통해 입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실제로 이 부부는 1949년 1월 체코 프라하로 가 체코정부에 북한으로의 정치망명을 요청했다. ○박헌영이 적극 도와 그러나 북한행이 생각대로 쉽지는 않았다.이들의 망명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3∼4개월이 걸렸다.체코정부가 이들의 의도를 의심했기 때문이다.체코 안전기관은 먼저 분명한 정치적 동기가 없다고 판단했으며,게다가 이들은 북한이 부모의 고향이라고 주장했으나 거짓말인 것으로 판명됐다.정체를 의심한 체코 안전기관은 이를 북한 내무성 안전국에 알렸으며 북한당국도 망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고했다. 이때부터이사민·현앨리스와 박헌영이 관련되기 시작한다.당시 외무상인 박헌영은 내무성의 판단을 무시하고 부부에게 입국사증을 내주었다.아울러 이들이 북한에 도착하자 외무성을 동원해 환영행사를 해주기까지 했다.그후 이사민은 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조사연구부 부(부)부장으로,현앨리스는 중앙통신사 번역부장을 거쳐 외무성 조사보도국에서 일했다.내무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북한 이들이 짧은 기간에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역시 박헌영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사민과 현앨리스는 북한에 들어와 5∼6개월 동안 아주 성실하게 일해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그러나 입국을 거부했던 내무성 안전국은 여전히 부부를 주시하고 있었다.이들은 직위를 이용,유럽에 편지를 자주 했는데 일일이 검열을 당했다.따라서 답장은 한차례도 받을 수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이사민부부는 황급히 북한당국에 유럽여행을 요청했다.내무성은 「불가」통보를 했지만,이번에도 외무성이 출국사증을 내주었다.북한을 떠난 이들이 소련 모스크바공항에 도착하자 북한 안전국 요원들은 짐을 수색했다.의심했던대로 그동안 수집한 자료가 쏟아져 나왔으며 그 가운데는 군대관계 비밀자료도 여럿 들어있었다. 그길로 북한으로 강제귀환된 부부는 안전국의 추궁 끝에 미 정보기관으로 부터 정보수집 임무를 띠고 침투했다고 자백했다.마치 한국 땅을 밟았다 사이공으로 탈출했던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을 보는 듯이 북한의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은 아주 드라마틱하다. ○북한판 「이수근 사건」 이 사건의 불똥은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파에게로 튀었다.이사민부부의 북한 입·출국을 방조한 박헌영이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953년 7월30일 열린 이승엽등의 재판에서 이강국은 『50년 7월 미국에서 직접 파견한 간첩분자 이윌리엄(이사민)과 현앨리스를 평양에 있는 집에서 두차례 만나 공화국의 군사기밀을 탐지하여 제공하는데 대한 토의를 했다』고 고발됐다. 또 55년 12월 재판받은 박헌영도 같은 혐의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더욱 구체적이었다.곧 박헌영은 48년 6월 하지로부터 『이사민등미국 정보원들을 유럽을 통해 북한에 보내겠으니 입국과 간첩활동을 보장해 주라』는 지령을 받았다.이에 따라 이사민등이 입북할 때 입국사증을 내주었으며 현앨리스를 중앙통신사·외무성에,이사민을 조국전선의 요직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박헌영은 과연 미국의 간첩이었을까,아니면 김일성과의 권력투쟁에서 지는 바람에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까.그 진실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이 이제 막 역사의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사민의 대북 보고서/“미 교포 공산당원 26명” 김일성에 보고/47년부터 미 정세 등 탐지… 편지 보내/“곧 동구 경유 입북” 박헌영에도 알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박헌영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구체적인 행적은 베일에 가려 있던 이사민 관계 자료를 이번에 발굴했다.워싱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찾아낸 이 자료는 이사민이 미국에 있던 19 48년 12월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일성과 박헌영에게 직접 보낸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서 「미국 워싱턴주재동지대표」이사민은 ▲당 동지들의 활동 ▲조선인 거류민의 분위기 ▲독립운동 상황 ▲미국의 정세들을 자세히 전했다.당 동지들의 활동에 대해 『현재 당원으로는 로스앤젤레스에 13인,샌프란시스코에 1인,뉴욕에 4인,워싱턴에 2인,기타 지역에 6인을 합하여 26인』이 있으며 이들은 『미국 당부(미국 공산당)의 허락으로 조선인그룹빠를 재조직하고 1개월에 1차 회집』한다고 밝혔다.또 현지의 당원 대표는 『로스앤젤레스의 변준호·김강·현앨리스,워싱턴의 이사민·선우학원,뉴욕의 신두식·곽지순』등 7명이라고 소개했다. 이사민은 이와 함께 동지들 중 일부가 동유럽을 경유하여 북한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그후 이사민과 현앨리스는 체코 프라하를 경유해 북한에 들어갔다.이 대목이 이사민과 박헌영의 연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고서 수신자중 한명이 박헌영이었으므로 그가 이사민의 입북계획을 미리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박헌영은 이사민의 입북이 어려워지자 적극 도왔으며,북한에 있을 때나 뒷날 출국할 때도 이사민을 옹호했다.박헌영의 이른바 「미제간첩 사건」과 이사민을 직접 연결시킬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의심받을 만한 정황은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보고서에서 이사민은 47년 4월이후 동구권을 통해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이 루트가 이제 불가능한 듯 하다고 밝혔다.그래서 앞으로는 자신에게 직접 연락달라며 미국 주소를 제시했다. 이사민이 보고서를 작성할 무렵은 47년 3월 미국이 「트루먼독트린」을 발표한 뒤 동서냉전이 더욱 격화된 시기라는 점에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이 시기에 동구권을 통한 북한과의 서신교류나,미국 주소로 연락을 받겠다고 제의한 사실들은 미 정보기관의 양해없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최근 발굴한 「이사민의 보고서」.「박헌영사건」관련인물로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이사민은 이 자료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 “뜯어낸 액수 발표하면 놀랄것”­검찰/박은태 의원 수사 이모저모

    ◎약점 잡아 압력… 중소기업에까지 손벌려/처남 계좌 통해 돈세탁… 자금추적 따돌려 지난 1일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최락도 의원(57·전북 김제)이 알선수재혐의로 전격구속된데 이어 박은태 의원(58·전국구)도 곧 사법처리될 것으로 보여 검찰수사에 관심이 쏠려 있다. 특히 박의원은 일상적인 뇌물수수가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는 「직위」를 이용,기업체의 약점을 잡아 이를 미끼로 수억원을 뜯어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박의원에게 돈을 뜯긴 회사는 대기업을 거느린 재벌 그룹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들 업체는 대략 5∼6개 업체로 확인되고 있으나 검찰은 이들 업체가 「피해기업」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거명을 피하고 있다. 박의원은 국정조사 등을 통해 입수한 자료와 국회상임위에서 얻어낸 정보를 가지고 대상 기업을 선정한 뒤 공갈성 협박을 곁들여 돈을 뜯어냈다는 것이다. 검찰관계자는 박의원이 뜯어낸 금품액수와 관련,『조사결과를 발표하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해 대략 수억원에 이를 것임을 시사했다. 박의원은 이처럼 기업으로부터 뜯은 돈을 S개발 공동대표로 있는 처남 서모씨와 서씨의 친구이자 공동대표인 박모씨의 계좌에 입금,「돈세탁」과 함께 자금추적을 피해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은행에 보관된 마이크로 필름이 상당히 훼손돼 박의원의 자금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추적가능한 부분도 있어 박의원의 사법처리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의원에 대한 조사 결과 혐의사실이 확인되면 「공갈죄」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공갈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상습범은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된다.따라서 징역15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현역 의원이 공갈죄로 기소된 예로는 91년 2월 「수서비리사건」때 김대식 의원(56·전북 완주)이 있다.김의원은 그러나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누명」을 벗었다.검찰은 이를 의식한 듯 이번 박의원 사건은 이미 상당한 양의 물증을 확보,그 때와 상황이 현저하게 다르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S개발은 직원 26명의 중소건설업체로 상가건축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5년전 강남구 삼성동에 사무실을 연뒤 2년전 이곳으로 옮겼다. ◎박의원 출국 왜 했나/“일단 수사피해 시간벌기” 지적 많아/귀국일 일부러 국회개회일 잡은듯 공갈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당의 박은태 의원(전국구)이 지난달 31일 돌연 출국,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의원이 출국한 날은 전북은행 대출비리와 관련해 최락도의원의 사법처리 방침이 굳혀진 시점이고,검찰주변에서는 비리 정치인으로 야당의원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하루였다.게다가 금융가에서는 박의원의 거액구좌가 발견됐다는 소문도 사실처럼 나돌아 박의원으로서는 입장이 난처한 때였다. 때문에 본인의 해명에도 불구 그의 출국을 「도피성」으로 단정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일단 수뢰사실과 관계 없이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출국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박의원은 2일 일본 도쿄에서 미국으로 출발하기 직전 새정치국민회의에 전화를 걸어 『이번 일은 지난 89년 미주산업을 모 그룹에 매각하면서 사례금으로 받은 것』이라고 공갈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또 『이번 출국은 미 하버드대학에서 세미나준비와 입법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라며 『오는 10일 귀국해 모든 사실을 명백히 밝히겠다』고 해명했다.그러나 정가에서는 검찰수사와 연관된 출국으로 보고 있다.그의 비서관이 박의원의 출국 다음 날인 1일 『박의원은 지역구를 방문중』이라고 말한 것도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귀국일을 정기국회 개회시점인 10일로 못박은 것도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염두에 뒀다는 지적이다.헌법상 현역의원은 현행범이 아니고는 회기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굳이 박의원을 구속하려면 국회동의가 필요한데 이는 정치권에 큰부담으로 작용한다.박의원은 이같은 점을 감안,「앉아서 당하기」보다는 일단 사정한파에서 비켜나 「시간을 버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출국했다는 것이다. 박의원은 진주 출생으로 지난 80년대 민정당 지구당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이후 부산상고 동기동창인 이기택 전 총재의 권유로 민주당에 입당,14대 전국구에 당선,한동안 KT계로 분류돼 왔으나 내년 총선을 고려해 새정치국민회의에 참여했다.
  • 인권불모지 「재활시설」/박찬구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자유」를 향해 주인공이 망망대해에 몸을 던지는 마지막 장면으로 영화 「빠삐용」은 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명배우 스티브 매퀸의 열연도 일품이었지만 바람처럼 「자유」를 갈망하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는 한 인간의 본능과 용기에 관객들은 공감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뒤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죄수」와 그를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절해의 고도에 가둔 「현실」 사이의 부조리는 그러나 영화속의 한 장면만은 아니었다. 37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경기도여자기술학원 방화참사는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유독가스에 질식사한 소녀들의 주검은 마지막 순간까지 굳게 닫힌 출입문과 화장실 쇠창살에 매달린채 그토록 그리던 바깥세계를 향해 있었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무엇이 10대 소녀들을 그 지경까지 내몰았는가. 물론 치밀한 사전공모와 폭행,방화의 시나리오를 비행소녀들의 철없는 행동쯤으로 덮어버릴 수도 있다.「원생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밤마다 출입문을 잠궈야 했다는학원측의 항변에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러나 관할 경찰에 끊임없이 비인간적인 처우등 학원 내부 생활을 고발하는 투서가 접수됐음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행정관청이 출입문의 외부 자물쇠가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개선책 강구만 지시한채 2년이 넘도록 현장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차라리 말문이 막힌다. 생명을 담보로 한 행정편의주의와 인명경시 풍조,예산횡령과 가혹행위 등 온갖 비리로 둘러싸인 학원에서 달아나려던 소녀들은 끝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맞게 된 것이다. 쉽사리 주변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소녀들에게 이 사회는 성의있는 재활프로그램을 마련하기는 커녕 죽음과 자유를 맞바꿀 것을 종용했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까지 들려 온다. 적어도 21세기를 앞두고 세계화를 부르짖는 마당에 아직도 「탈출」을 꿈꾸어야 하는 비인간과 비인격의 창살없는 감옥이 남아 있는 현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귀신설화연구/안병국 지음(화제의 책)

    ◎한국인 정서속에 살아있는 귀신 본질 해석 귀신이 실제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지만 우리 정서 깊숙이 귀신관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이 책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귀신설화를 비교,연구함으로써 한국인의 정서 속에 살아 있는 귀신의 본질을 해석한 연구서다. 지은이는 귀신중에서도 원한을 품은 귀신(원귀)을 기본으로 보고 이를 다섯가지로 나눈다.곧 누명쓴 귀신,정욕을 풀지 못한 귀신,그리움이 원망으로 남은 귀신,유골이 땅에 드러난 귀신,재혼한 배우자를 원망·질투하는 귀신이다. 이같은 귀신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까닭을 지은이는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보상행위」로 풀이한다.착한 사람에겐 복이 돌아오고,나쁜 사람은 벌받아야 제대로 된 사회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억울하게 죽는 사람(귀신)이 생겨난다.따라서 가치가 전도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귀신을 빚게 되고,그 귀신 이야기를 통해 울분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귀신 이야기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쏟는 감정의 투시 또는 전이이거나,살아 있는 사람의 의식을 표현하는 또다른 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규장각 1만2천원.
  • 한국영화 대표작 50편 “스크린 잔치”

    ◎광복 50돌 기념 특선기획영화제 새달 2일∼9월6일/46년 「자유만세」서 94년 「두여자 이야기」까지/연도별 우수작 1편씩… 영상자료원서 상영 현존하는 최고의 한국영화인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1946년 작)에서부터 지난해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정국 감독의 「두여자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1940∼90년대 대표적인 우리영화들을 한 자리에서 본다. 한국영상자료원(이사장 신우식)은 광복50주년을 맞아 8월 2일부터 9월 6일까지 「광복50년,한국영화50편」 특선기획영화제를 마련한다.이번 행사기간에 소개될 작품은 지난 46년부터 94년까지 당해연도를 대표하는 우수영화 각 1∼2편씩 모두 50편.토·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하오1시30분·4시 두차례씩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 지하자료원 영사실에서 상영한다.입장료는 5백원. 영화제의 서막을 열 「자유만세」는 일제 치하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지하운동을 하는 독립투사와 간호원 출신 여인과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멜로성영화.당시 자유중국으로 수출된 이 영화를 시사회에서 본 장개석 총통이 주연배우(전창근)에게 「자유만세 한국만세」란 휘호를 친히 써 보내와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윤대룡 감독의 「검사와 여선생」은 변사의 해설을 곁들여 선보이기도 했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로 현재 디지털 복원작업중이다.살인죄 누명을 쓴 옛 은사에 대한 논고를 맡은 젊은 검사가 법과 인정 사이에서 고뇌한다는 줄거리.무죄로 풀려나는 여선생,고학생시절을 생각하며 은사를 향해 속으로 울고 있는 검사,흐느끼는 방청석,숙연한 재판장….요즘 좀처럼 보기 드문 전형적인 최루영화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점이 오히려 신선감을 준다. 「마음의 고향」(감독 윤용규)은 지난 48년 제작된 흑백 16㎜영화로 최근 프랑스에서 입수,자료원이 복원작업을 통해 특별시사회를 가졌던 작품으로 극작가 함세덕의 대표희곡 「동승」을 작가가 다시 시나리오로 각색한 것이다.어린나이에 산사에 버려진 천애고아가 불공을 드리러 오는 아리따운 젊은 미망인(최은희 분)에게 애정이상의 모성애를 느낀다는 내용. 50년대 영화로는 한국영화사상 최초로키스장면이 등장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과 이데올로기와 휴머니즘의 대결을 사실적으로 그린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국내 처음으로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이병일 감독의 「시집 가는 날」등 9편이 선보인다. 60년대는 한국영화의 황금기.그런만큼 상영작품도 가장 많은 12편에 이른다.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비롯,「독짓는 늙은이」「갯마을」등 문예영화가 주목할 만하다.이 가운데 특히 「오발탄」은 영화속의 노파가 외쳐대는 「가자!」는 방향이 어디냐가 문제돼 결국 5·16 군사혁명정부에 의해 상영중지됐던 작품으로 6·25 동족상잔 뒤끝의 절망적인 한국사회 표정과 시대정신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70년대는 유신체제하 영화검열과 통제가 심했지만 한글세대의 새로운 영상문화를 꽃피웠던 시기로 「별들의 고향」「겨울여자」「병태와 영자」등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이밖에 80년대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90년대 「국민영화」로 자리매김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등이 영화제의 대미를 장식한다.문의 521­31 47∼9
  • 추한 한국인/“실제 저자는 일극우 외교평론가”

    ◎누명쓴 한국인 장세순씨 증언/가명 저자 박태혁은 「나」 아닌 가공인물/다른 사람 글에 내가 쓴 글짜깁기 조작 지난해 3월 일본에서 출간돼 물의를 빚고 있는 일본어판 「추한 한국인」의 가명 저자 「박태혁」씨의 실제인물로 알려진 재일 한국민속전문가 장세순(57)씨는 31일 『이 책의 실질적인 저자는 일본의 극우외교평론가 가세 히데아키』라고 주장했다. 장씨는 이날 하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추한 한국인 저자에 관한 공개증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장씨는 저자로 되어 있는 「박태혁」이란 인물은 본적도 없다고 밝히고 『가세 히데아키와 일본 광문사 출판사가 펴낸 「추한 한국인」은 가세 히데아키의 요청에 따라 한국민속에 관해 원고지 1백장분량으로 써준 내용을 다른 사람이 한국에 관해 쓴 글과 섞어 조작한 것에 불과하며 「추한 한국인」에는 가세 히데아키가 89년에 펴낸 「한의 한국인,외경스런 일본인」의 내용 가운데 20여군데가 그대로 옮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출판계약서에는 「박태혁」에게 40%,책의 추천서를 쓴 가세 히데아키에게 60%의 비율로 인세를 나누도록 돼 있다』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나의 요청에 의해 출판사가 초판 3만부에 대해 4%의 인세를 추가로 주겠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추가한 점으로 볼 때도 분명 「박태혁」은 가공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광문사 관계자로부터 책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저자가 한국인 「박태혁」으로 잘못돼 있음을 출판사측에 지적한 뒤 내용에 문제가 많으므로 발매중지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저자를 밝히려는 이유에 대해 『저자가 가짜 일본인이었다면 별 문제가 없으나 마치 한국사람이 책을 쓴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짜 저자를 분명히 규명해 한국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민주내분/「물귀신 사퇴」…계파불신 심화/민주「돈봉투 몸살」언제까지

    ◎동교계 「안의원 카드」로 이 총재 압박/표수에 상관없이 경선무효화 속셈 경기지사후보 경선에서의 돈봉투사건과 폭력사태로 빚어진 민주당 이기택총재와 동교동계의 갈등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민주당은 15일 「공멸」위기의식에 따라 황급히 대국민사과,진상조사,중단된 개표의 완료 3개항을 결정하는등 외형적 응급조치를 취해 일단 폭발은 면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이날 하오 개표문제를 놓고 후보사퇴등의 최악의 사태가 벌어져 오히려 갈등의 진폭을 더욱 넓혀버렸다.동교동계는 이총재와의 「선개표 후진상조사」합의에도 불구,자파의 안동선후보를 전격 사퇴시켜 이총재측에 대한 압박공세를 본격화했다.장경우후보의 동반사퇴를 유도해 이종찬고문을 추대하려는 의도가 배어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총재측은 개표 결과 장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후보사퇴는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전면전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계속 밀어붙일 기세다.안후보의 사퇴도 패배가 분명하다고 판단,「물귀신 작전」을 편 것으로 풀이한다. 거기다 양쪽은 돈봉투사건과 폭력사태에 대한 인식과 해법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노정하고 있다.이총재측은 개표결과에 모두가 승복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들 사건의 책임소재를 철저히 가리자는 입장이다.특히 이총재측은 돈봉투사건을 돈봉투 「조작사건」이라며 역으로 동교동계를 겨냥한다.무엇보다 이총재측은 안 후보측의 이규택 의원(경기도지부장) 폭행사태를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동교동계는 사태의 조기진화와 함께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안후보 사퇴에 따라 장후보도 매표행위와 향응제공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다.아울러 장후보측의 매표행위의 전말을 철저히 밝혀내 이총재측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때문에 매표여부등을 다룰 진상조사단 구성문제에서부터 양쪽의 감정대립이 폭발할 가능성이 많다.이처럼 양쪽은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한 접점찾기가 좀처럼 어려울 것 같다.그럼에도 두 진영은 결국 봉합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결별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장경우 의원 주장/“물의 일의켜 죄송… 「돈봉투」와 무관” 장경우 후보는 15일 『이유야 어떻든 정치적 물의를 일으켜 국민과 당원동지들에게 송구스럽다』고 사과하면서 『그러나 개표 결과 민주당후보로 나서 여당후보를 반드시 꺾으라는 대의원들의 뜻이 드러난 만큼 이를 겸허히 따르겠다』고 사퇴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기택 총재의 지원을 받는 장후보는 이날 하오 기자실에 들러 『중앙당 당무회의의 공식후보 추인을 받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돈봉투사건 「혐의」에 대한 중앙당의 진상조사문제에 대해 『적법절차에 따른 결정이라면 정치인으로서 당연히 승복할 것』이라면서도 『돈봉투사건은 전혀 모르는 일이며 꿈도 꾸지 않은 일』이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경기도지부 선관위가 이날 개표가 끝났음에도 자신을 당선자로 선포하지 않은데 대해 『중앙당의 철저한 입회아래 개표가 진행됐고 아무런 이의제기도 없었다』며 자신의 승리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장 후보는 안동선 후보의 전격사퇴에 대해『같이 경쟁한 입장에서 개표 결과를 기다려 보는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그는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는 『대의원이 아닌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안동선 의원 주장/“불법 명백… 이 총재 언행달라 실망” 15일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후보를 사퇴한 안동선 의원은 『경선대회에서 빚어진 일련의 사태는 전적으로 대의원들을 호텔에 합숙시켜 향응을 제공하고 대회장에서까지 금품을 살포한 장경우의원과 이기택총재에게 있다』고 비난했다. 안 의원은 『불법선거가 명백한 만큼 결선투표의 결과에 관계없이 이번 경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경선무효를 주장했다.그는 이어 『백주에 투표현장에서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고도 도리어 내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당내 일부 인사들의 행태를 개탄한다』면서 『이런 풍토에서 경선에 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 후보사퇴를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명확한 불법·부정을 눈앞에 두고 총재단이 진상조사에앞서 개표를 실시한 것은 부정을 덮어두고 선거를 하겠다는 뜻으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은 『기회있을 때마다 지자제의 중요성과 깨끗한 경선을 강조해 온 제1야당의 총재가 실제로 보여 준 모습은 정반대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가슴아프다』며 『특히 국민을 위하고 민주당을 생각하기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계파만을 위하는 소승적 행동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 총재단회의 표정/동교계/KT계/원색전 설전… 전면전 불사 태세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의 돈봉투사건과 폭력사태에 따른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측과 동교동계의 내분은 15일 양측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듯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두 진영은 이날 총재단회의에서 「선개표 후진상조사」의 수습방안에 일단 의견을 모았으나 개표결과 이총재의 지원을 받는 장경우 의원이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동교동계는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고 개표에 앞서 동교동계의 안동선 의원은 경선무효를 주장하며 후보를사퇴하는등 진통이 계속됐다. ○…이날 상오 총재단회의에서 이총재와 동교동계는 원색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으며 설전을 벌였다.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노갑 부총재는 『총재측이 대의원들에게 향응과 금품을 제공해 대회 분위기를 과열시켰다』고 사태의 책임을 이총재에게 돌렸다.그는 『총재단에서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금품살포와 폭력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응분의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총재는 『단상을 점령하고 폭력을 행사,경선이 안되도록 한 사람이 누구냐』고 맞받았다.이총재는 또 『자파 대의원들을 단속하는 것도 잘못이냐.다 해왔던 일이고 정도가 문제지 10만∼20만원씩 주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 아니냐』고 흥분했다. 양측은 그러나 『당부터 살려야 할 게 아니냐』는 나머지 참석자들의 권유에 따라 「선개표 후진상조사」의 수습방안에 합의했다.이에 따라 회의에서는 먼저 개표를 실시한 뒤 진상조사위를 구성,금품수수와 폭력사태에 대한 조사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회의장 밖에 있던 이총재 진영과 동교동계 인사들의 「막후설전」도 치열했다.이총재의 한 측근은 『동교동계가 주도한 호남지역 경선에서도 돈이 돌았다』고 주장했다.이에 맞서 동교동계의 한 관계자는 『이총재가 지방선거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당권경쟁에만 혈안이 돼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비난했다.
  • 62년 북송운동주도 교포 조호평씨 일가/74년 탈출하다 모두 피살

    ◎국제사면위 지난달 입북… 21년만에 확인 생사여부의 확인이 국제적인 관심으로까지 비화됐던 한 북송가족이 이미 오래전에 탈출하다 집단피살됐음이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21년만에 밝혀졌다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13일 보도했다. 비극의 주인공은 조호평씨(1936년생)와 일본인 부인 고이케 히데코(소지수자·40년생)씨 가족.조씨는 북한을 「조국」으로 생각하면서 북송운동에 적극 참여하다 26세때인 62년 가족과 함께 북송선을 탔다.당시 도호쿠대학 대학원생이었던 그는 북송선 갑판에서 가족들의 환송에 환한 미소로 답하면서 떠나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연락이 두절되고 일본에 남아있던 여동생 조행씨는 오빠가족의 생사확인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왔으나 메아리없는 외침에 그치고 말았다.이 문제는 지난해 국제사면위원회가 직접 생사확인운동에 참여하게 됐고 유럽과 미국의 사면위원회지부등은 북한 김정일앞으로 생사확인을 요청하는 편지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사면위는 지난달 말 북한을 방문,이들이 모두 지난 74년 비참하게 종말을 맞이했음을 확인한 것이다. 북한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조씨는 스파이목적으로 입북해 국가기밀을 누설해 오다 67년 체포돼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고 강원도 천매교화소(강제수용소)에 수용됐었다는 것.조씨는 74년 10월23일 하오 4시쯤 탈주,24일 상오1시 함흥에 도착,상오2시 43분 부인과 장남(당시 10세),장녀(8),차녀(7)를 데리고 함경남도 정평지구의 해안에서 경비병 1명을 죽이고 북한군 배를 탈취해 탈주하려 했다.그러나 조씨 가족은 이들을 발견한 북한 경비대의 사격으로 모두 피살됐다.다만 조씨는 선상에서 죽은게 확인됐으나 나머지 가족들의 사체는 날이 어두워 확인할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행씨는 『수용소 생활을 했다면 굶주림과 강제노동으로 제대로 걸을 수 없었을 텐데 그렇게 빨리 도망칠 수 있었겠는가.보통 사람도 며칠씩 걸릴 도피길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스파이 혐의도 선상탈출도 모두 누명이다』고 반박하고 있다.
  •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 펴낸 박용구옹(저자와의 대화)

    ◎“한·중·일 바른 관계 정립에 도움됐으면”/중국·일본생활 통해 얻은 교훈 정리/“타국 낮워보는 패권주의가 불평등 관계 형성” 문화예술계의 원로 박용구(81)옹이 최근 한국·일본·중국 3국관계를 문명사적으로 조명한 책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지식산업사 펴냄)를 출간했다.평생을 음악·무용 등 공연계에 몸담은 그가 일종의 외도를 한 셈이다. 그러나 세 나라에서 모두 살아봐 느낀 점이 많은 그로서는 할말도 많았을 테고 따라서 너무 늦게 말문을 틔운 감이 없지 않다. 『동아시아의 지난 역사는 「기록게임」에 의해 좌우되어왔습니다.상대보다 먼저 역사서를 통해 주변국을 배타적으로 규정하고 불평등관계를 합리화해온 것이지요』 그는 서기전 1세기 중국 한나라의 사마천이 쓴 「사기」가 이웃국가를 오랑캐로 낮춰보는 패권주의적 화이사상을 확립시킨 뒤 2천여년동안 동아시아가 불평등한관계에 휘말려들었다고 주장했다.또한 일본이 8세기에 역사서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통해 「사기」의 화이사상을 흉내낸 신국사상을 자국민에게 주입함으로써 아시아를 불행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세 나라가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려면 서로의 잘못을 깨닫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그는 중국과 일본이 오만을 버리는 것과 함께 「기록게임」의 패배자인 한국도 한때 「소중화」를 자처하며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것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3국관계에 인류 전체의 존망이 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21세기에 대두될 것으로 예상되는 황화론에 대비해서라도 3국은 뭉쳐야만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박옹은 3국 국민이 각기 위정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 바람직한 3국관계를 유도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박옹은 지난 40년경 만주 하얼삔에서 성악가로 활약하다 귀국했으나 월북작곡가 김순남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자유당정권의 박해를 받자 50년 일본으로 밀항한 비운의 인물.일본에 머무르다 자유당정권이 무너진 뒤 고국에 돌아오자 이번에는 「5·16」군사정권에 의해 재일동포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내가 살아온 80년이선인들이 살다간 8백년보다도 더 변화가 많은 세월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박옹은 자신이 겪은 고초가 잘못된 3국의 역사관계에서 비롯됐다고 깨달은 것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고 밝혔다.그는 이 책이 『한·일·중 동북아시아 세 나라가 앞으로 바람직한 관계를 정립해나가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하고 바랐다.
  • 억울한 옥살이 경관/국가상대 4억 소송

    살인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다 진범이 붙잡혀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난 전관악경찰서 소속 김기웅(29) 순경 가족은 23일 국가를 상대로 『4억5천6백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가족은 소장에서 『당시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경찰과 검찰의 불법수사행위로 13개월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등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며 『국가는 불법수사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김 순경은 92년11월29일 이모양(당시 18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2심에서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가 진범이 붙잡혀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풀려났다. 김 순경은 지난해 4월 파면처분취소소송에서 승소,수원 남부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걸작 건축감상:13)

    ◎엔타시스양식의 과학적 설계기법 탁월/착시현상까지 보정… 인간 공학적 건축 완성/내부엔 금·상아로 만든 아테나여신상 세워/기원전 5세기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기둥만 46개 작열하는 태양과 코발트빛 바다.그리스인은 그들의 신(신)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다.문명의 역사를 열어보면 무형의 신의 모습을 헤아리며 인간 자신을 신 앞에 봉헌할 때 집회의 장소로서의 종교건축이 무수히 만들어졌다.그러나 인간이 만든 신,그리스인의 영웅이자 그들이 가꾸어 온 우주라는 꿈의 본질을 추구하는 의식에서는 신을 위한 무대가 준비되고 그들 고유의 장소가 마련되었다.그들을 바라보는 인간은 인간의 땅에서 축배를 들었다. ○자신들이 신을 만들어 그리스의 신전 건축은 곧 신의 「집」이고 신의 「터」였다.교회에서는 예배를 보는 교인의 무리가 한 지붕 밑에서 신과 교감하지만,그리스인은 신전을 배경으로 노천에 모였다.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굳게 믿었다.그리스인의 신은 그들 자신이 만들었다는 필자의 단언은 그들의 분노를 샀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올림포스산의 주신 제우스를 진지하게 만나고 있을 때,우리 외지인의 눈에는,제우스의 너무나 재미있는 불멸의 투쟁사가,그리고 디오니소스의 광란이 거대한 한편의 드라마로 펼쳐보인다. 희랍공화국.발칸반도 최남단의 국가로서 알바니아·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와 면하여 있다.무려 1천4백여개의 섬이 한반도의 절반 남짓한 국토의 5분의1을 차지하고 있으며 반도의 삼면은 이오니아해와 지중해,그리고 에게해가 감싸고 있다.2천9백17m의 올림포스산을 최고봉으로 하여 반도의 척추라 할 수 있는 핀도스 산맥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뻗쳐있다.국토 곳곳의 활화산은 아직도 그 열기를 머금고 있어서 1953년에는 수백명이 사망하는 지진의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기원전 2500년 무렵 크레타 섬에는 청동기문화가 꽃을 피웠다.그들의 청동기시대에는 문자가 존재하였고,금속문화가 단지 계급의 형성과 문화라는 차원이 아니라 문명의 창조적인 확대를 가져오는 전기가 되었다.이러한 사실들은 20세기에 이르러 건축가에 의해 고대문자의 해독이 가능해짐으로써 알려지게 된 것이다.그들의 문화는 그 문화의 실증적 유물을 수없이 남기고 있지만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문학을 통해서 그리스인이 마음껏 펼쳐보여준 꿈의 정서이다. 그들의 신화가 갖는 독특함의 하나는 신화가 곧 일상의 진리이며 역사적 사실이기도 해서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꿈인지 애매하다는 것이다.트로이 전쟁처럼 서사시로 묘사된 유명한 사건이 실재하였는가 하면 여신을 범하려하거나,신에게 누명을 씌우고 신의 특권을 갈취하여 신을 속이는 인간의 죄상이 나타난다.초조함과 안타까움의 끝에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시 찾는 모험이야기나,죽은 아내 에우뤼디케를 현세로 데려오기 위해서 죽음의 땅을 여행한 오르페우스,그리고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의 투쟁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신과 인간의 공동작품 헬레네의 자손이라고 믿었던 그리스인들은 건축자원이 가장 탁월한 땅에서 살았다.온화한 기후와 풍요한 나무,가공이 손쉬운 석재,그리고 반도라는 지리상의 특성에서 비롯된 산과 바다,군사와 무역이라는 변화있는 환경에서 피어난 그들의 건축은 서양건축의 고전이 되었다.앞서 말한 문화적 깊이와 금속세공의 감각,이집트와의 교류등 다양한 체험과 기량은 목조에서 석조로 이어지는 비례감각과 양식의 발달을 주도하였다.이들은 정열과 재능을 쏟아넣어 우아하고 장중함이 넘치는 걸작인 신전건축을 남겼다.바사이의 아폴로신전,올림피아의 제우스신전,파이스툼의 헤라신전,그리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그 불후의 명작이라 일컬어진다. 파르테논신전은 아테나 여신의 전당으로 아크로폴리스 구릉에 서 있는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작품이다.수많은 신전 가운데서도 특히 「파르테논」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낯익은 것은 그 뛰어난 예술성과 정통성 때문일 것이다.「익티누스」와 「칼리크라테스」의 설계로 건조된 하얀 대리석의 신전 내부에는 금과 상아로 된 아테나 여신상이 있다.오랜 세월로 조각품과 장식면이 크게 훼손되었지만 기본구조는 원상태 그대로 남아있다.건물의 높이는 31m에 달하며 폭은 70m에 이르고 있는데 직사각형의 주변에동서로 8개,남북으로 17개의 기둥이 열주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파르테논은 그 웅장함과 함께 세심한 벽면 장식에 있어서도 그 무엇과 견줄 수 없는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신과 거인,그리스인과 아마존인들간의 싸움을 그린 부조가 치밀한 조소적 외관을 이룬다. ○인간공학적으로 완결 그러나 파르테논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미적요소들,그리고 건축적 웅장함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그것은 우리가 단지 재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파르테논에 집약된 설계기법이다. 이른바 엔타시스 양식이라 불리는 기둥의 「배흘림」을 비롯하여 인간의 눈에서 발생하는 착시를 보정하기 위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기둥을 세웠을 때,균일한 폭의 기둥이 수직으로 반복 배치되어 중앙부가 가늘어보이는 현상에 대응해서 기둥 중앙부를 배부르게 하고,기둥의 상부는 가늘게 뽑아 올림으로써 보는 사람의 위압감을 해소하였다.또한 기둥뒤가 건물외벽으로 막혀있는 곳과 벽이 없이 트여 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기둥간격에 대한착각을 고려하였다.기둥사이로 하늘이 보이면 기둥은 가늘고 상대적으로 간격은 멀어보이게 마련이다.그들은 물리적 치수에 집착하지 않고 착시를 보정하여 균등한 간격을 느낄수 있도록 간격을 조절하였다.또한 이러한 고려는 처마면에서도 나타난다.수치적인 수평선은 실제로는 중앙부가 처진듯한 착각을 일으킨다.따라서 그들은 거대한 돌을 맞추어 나가면서 중앙부를 미세하게 들어 올렸다.수치로는 중앙부가 배부른 모습이지만 보는 이에게는 수평으로 보이는 것이다.또한 신전앞에 모여드는 군중의 시선 방향을 고려하여 처마길이를 조절함으로써 가까운 곳의 길이가 확대되어 보이는 현상까지를 보정하였다. 이러한 착시(opticalillusion)는 가히 환상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다.그들은 신전건축을,신을 위해 지으면서,사실은 기적과 같은 인간중심의 배려를 하였고 그것을 인간공학적으로 완결시켰다.현대건축에서도 이러한 착시보정까지를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메커니즘과 공해에 찌든 우리로부터 어쩌면 고대의 작열하는 태양과 푸른바다는 영원히떠나버렸는지 모른다.하지만 땅과 건물이 오직 경제적 실체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실속에서 인간과 신과 함께 즐기는 신전건축에 바친 고대인의 지혜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은 다시 정리하지 않아도 낭만적 여담보다는 웅변으로 전해져 온다.
  • 5개월 옥살이 김순희씨 사연/중국교포의 억울한 도둑누명

    ◎대리모요청 거절에 “패물훔쳤다”보복/10개월 법정공방끝 무죄판결 얻어내 『조국이 너무나 매정스러웠어요.지난 2년은 긴 악몽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찾은 고국에서 애꿎은 절도혐의로 기소돼 5개월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중국 여성교포가 끈질긴 송사끝에 마침내 누명을 벗었다. 친척의 초청비자로 한국에 와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해온 김순희(31·중국 길림성)씨는 8일 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은 뒤 『진실이 밝혀져 홀가분하다』며 상처뿐인 고국생활을 털어놨다. 김씨가 「돈벌어 보겠다」고 한국에 온 것은 93년 2월. 서울 서초구 C레스토랑 종업원으로 하루 15시간씩 일 했지만 차곡차곡 모아둔 월급을 중국에 있는 남편(34)과 아들(8)에게 부치는 즐거움에 피곤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악몽」같은 고국생활이 시작됐다. 아이를 못낳는 주인부부와 「대리모」계약을 맺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곧 이를 취소하자 월급을 미루는 등 주인부부의 구박이 심해졌던 것. 『불법체류 사실을 알려 중국으로 쫓아버리겠다』며 협박하던 주인 K모씨(여)는 급기야 지난해 5월 『밍크코트와 다이아반지 등 패물 7점을 훔쳤다』며 김씨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김씨는 『털옷(밍크코트)은 체불한 임금을 갚는 조건으로 주인이 맡긴 것이고 패물은 본 적도 없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했지만 경찰·검찰은 불법체류자인 「이방인」의 호소를 묵살했다.심지어 경찰은 자백을 강요하며 손찌검까지 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밍크코트·패물이라는 단어가 뭘 뜻하는 것인지조차 몰랐어요.또 한국에서는 경찰이 때릴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같은해 10월 보석으로 풀려날 때까지 꼬박 5개월을 옥살이한 김씨는 「죄인」으로 몰린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중국에 있는 남편과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겠다』고 결심,수십차례 법정을 오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서울변협의 당직변호사인 임영화 변호사의 무료변론도 큰 힘이 됐다. 서울형사지법 3단독 최철 판사는 이날 『피해자인 식당주인도 김씨가 패물 등을 훔친 것을 보지 못한채 강한 의심이 든다고만 진술하는 등 절도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결,10개월동안 계속된 사건에 종지부를 찍었다. 불법체류한 사실이 적발돼 곧 중국으로 송환될 김씨는 『무거운 짐을 벗었지만 가슴에 든 「멍」은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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