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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출가 오태석·서재형씨 문예진흥원 ‘베스트&퍼스트’에 나란히

    연출가 오태석·서재형씨 문예진흥원 ‘베스트&퍼스트’에 나란히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원로 연출가 오태석(65)과 주목받는 신예 서재형(35)이 만났다. 나이가 한 세대만큼 차이가 나는 이들의 만남은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예술극장이 마련한 2005 기획시리즈 ‘베스트&퍼스트’가 계기가 됐다. 이번 기획은 독창적 작품 세계를 구축한 ‘베스트’ 연출가와 패기 넘치는 ‘퍼스트’ 연출가의 작품을 나란히 선보이는 것. 오태석과 서재형이 그 첫 주자다. 이들은 각각 신작 ‘만파식적’(21일∼2월12일)과 지난해 초연 돼 호평을 받았던 ‘죽도록 달린다’(15일∼2월6일)로 관객 앞에 선다.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오태석은 “다른 공연장들이 너무 상업적인 쪽으로 치중하는데 연극다운 연극으로 방향을 잡아주니 (예술극장측에)고맙다.”고 소감을 밝혔고 서재형은 “여러모로 아버님 같으신 분과 함께 하게 돼 새해부터 복을 많이 받고 있다.”고 뿌듯해 했다. 그러면서 서재형은 오태석과의 나름의 인연을 밝혔다.“배우를 꿈꾸던 학창시절 오태석 선생님의 ‘부자유친’을 보고 연출가로 전환하게 됐고,‘죽도록 달린다’를 끝내고 지쳐 있을 때 선생님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었죠. 또 선생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지난해 4월 ‘죽도록 달린다’를 한 달간 아룽구지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을 수 있었고요.” ‘죽도록 달린다’의 작가 한아름은 오태석의 제자. 이번 기획으로 사제지간의 만남까지 성사된 셈이다. ‘만파식적’은 오태석이 2년 만에 내놓는 신작. 전통 신화나 설화를 창작 모티브로 삼아온 그가 이번엔 삼국유사에서 ‘만파식적’을 빌려왔다. 둘로 갈라져 있다가 하나로 합쳐지면 소리를 내는 만파식적을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 현실을 빗댄 것. 두 동강 난 국가는 사회 분열과 단절을 초래했다. 때문에 그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소통이다.“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지에서 풀려나자마자 이데올로기의 급습을 당했어요.47년 4·3사태부터 보자면 60년 가까이 그 멍에가 영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그 속에서 일생을 살아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천착하게 됐습니다.” ‘만파식적’의 주인공 종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옆에 빈 관을 마련하고 납북된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신문왕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찾아 남으로 모셔오려는데 북쪽의 배다른 형제들이 반대한다. 그들은 남쪽이 더 살기 좋다는 사실을 입증하라 하고 종수는 내려와 양심우산 캠페인을 벌인다. 불운한 가족사도 작품에 녹아 있다.“지난해 1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납북된 아버지를 상봉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니 안타까웠죠. 두 사람을 만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연극으로나마 두 분이 만나는 시늉을 해보는 거예요. 통일이 어려우니 만나는 방법으로 삼국유사를 빌려 보자 했지.(웃음)” 그의 작품은 종종 과감한 비약과 생략으로 엉뚱한 재미를 준다거나 또는 이해가 어렵다는 상반된 평을 들어왔다.“나도 미술관에 안 가본지 몇 십년 됐어요. 버릇이 안돼서 그렇죠. 뭐든지 재미를 붙이면 더 쉬운 거고. 내 연극은 말하자면 먹여주는 게 아니라 관객이 직접 칼질해서 먹는 재미가 있는 거라고 봐주면 좋겠어요.” 지난해 4월 초연 돼 호평을 받은 서재형의 ‘죽도록 달린다’는 ‘활동 이미지극’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표방한 연극.“사진을 이어서 넘기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연결된 동작 하나를 떼서 보면 사진처럼 보이는 그런 개념이에요.” 보지 않고서는 감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배우들도 애로를 겪었다. 알렉산드르 뒤마의 고전 ‘삼총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줄거리는 ‘삼총사’의 속편 격으로, 신예 작가 한아름이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새롭게 썼다. 권력에 집착한 안 왕비는 달타냥을 유혹해 아들을 낳고, 추기경은 왕비 제거 음모를 꾸민다. 애인을 버린 비정한 달타냥은 왕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쫓긴다. 서재형은 “목걸이를 갖고 온 후 궁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어느 궁궐 안에서나 있을 법한 음모, 복수, 대 잇기, 현실정치 문제 등이 모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출연 배우들의 몸무게가 도합 30㎏이나 빠졌을 만큼 무대 위에서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런데 왜 달리는 걸까.“저에게 ‘달린다’는 개념은 긴장된 상태에서 심장이 뛴다라는 것과 같아요. 지난 번엔 극 후반부에 좀 덜 달렸는데 이번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끝까지 달릴 작정입니다.”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성매매범 누명 벗었지만 보상은 못받아

    법원은 청소년과 성매매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국가를 상대로 “검찰의 막무가내식 수사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민사23부(부장 김경종)는 5일 김모(49)씨와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7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검찰 수사가 부족한 면은 있지만 합리성을 완전히 잃은 정도는 아니다.”며 원심대로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은 김씨가 계속 범행을 부인해 더 자세한 수사가 필요했어야 했다.”면서 “그러나 수사를 소홀히 했다고 보이지만 수사기관의 판단이 합리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한 “형사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이 확정됐다고 해도 검사의 구속이나 공소제기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고 경험이나 논리상 합리성을 잃은 경우에만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덧붙였다.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던 김씨는 2001년 7월 15살이던 황모양과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 돈을 주고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검찰은 다른 사람과 성매매를 하다 붙잡힌 황양의 휴대전화에서 김씨 명의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가족요금제로 가입해 명의만 내 것이고 아들이 사용한다.”고 항변했지만 황양은 “김씨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진술했다. 기소된 김씨는 증거불충분으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검찰의 항소도 기각돼 무죄가 확정됐다.1심에서 황양은 “검찰이 윽박질러 김씨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진술했고 진술을 번복하면 김씨가 거짓말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낼 거라고 겁을 줬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확인 결과 황양의 친구가 황양의 휴대전화를 빌려 친구인 김씨의 아들에게 전화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역사속의 을유년] 60년전 한반도엔 ‘희망의 물결’

    [역사속의 을유년] 60년전 한반도엔 ‘희망의 물결’

    을유년(乙酉年)은 ‘희망의 해’다.60년 전 35년간의 일제 강점을 털어내고 광복을 맞은 것이 서력(西曆) 이후 서른두번째의 을유년이었고, 오늘 맞은 새해는 바로 서른세번째 을유년이다.60년 전 을유년에 온 나라 구석구석 넘실댔던 기쁨과 희망의 물결만 생각해도 새해 아침은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이전에 지나간 서른한번의 을유년을 돌이켜보건대, 우리 선조들도 비교적 평화로운 한해를 보냈던 것으로 보아 새해는 커다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시작해봄직하다. 세계적으로도 2차대전 종결 및 니케아종교회의 등 희망적인 해가 많았다. 을유년에 일어났던 역사적 주요 사건을 시대별로 살펴본다. ●325년 로마제국 니케아종교회의 기독교는 로마시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유대교의 한 분파로 출발했다. 예수는 스스로 ‘하느님의 왕국’을 준비하기 위해 온 메시아를 자처하며 세력을 키웠으나 초기의 은 생애동안 성공했을 뿐 곧 혁명가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후 예수의 추종자들은 갖은 탄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의 몇몇 도시들에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신앙관용령(밀라노칙령)을 선포한 데 이어,325년 니케아에서 모든 교회 대표자들이 모인 최초의 전 기독교 회의를 열어 모든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인정해 주었다. 이후 로마제국 전역에 교회조직이 발달했다. ●1225년 최우, 정방 설치 고려 무신정권 수장이었던 최우가 고려 고종때 자신의 집에 ‘정방’이란 관청을 설치했다. 무신들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았지만 국가의 행정실무를 무신만으로 처리할 수 없어 정방을 두고 젊은 문사들이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 이곳에선 문무백관의 인사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했는데, 인사 명부와 함께 고과를 매겨 왕에게 올리면 왕은 그것을 결재할 뿐이었다. 이를 통해 최씨 정권은 문무백관을 실제로 장악할 수 있었다. 최씨 정권 몰락후 정방은 궁중으로 옮겨져 국가기관이 되었다. ●1285년 일연, 삼국유사 완성 충렬왕 11년,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일연은 1277년 이후 청도 운문사에 머물 때 삼국유사를 편찬하기 시작해 5권2책으로 완성했다. 삼국유사는 왕명으로 편찬한 기전체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달리 자유로운 형식으로 단군신화에서 후삼국까지의 역사를 다루었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 서민들의 생활상을 비롯해, 삼국사기에 실려 있지 않은 귀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일연은 나름대로 철저히 사실을 고증해 책을 편찬했다고 한다. ●1645년 소현세자 죽음 소현세자는 인조의 맏아들로 병자호란때 볼모로 청에 끌려갔다. 청에 9년간 머물며 청과 조선 외교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귀국할 때 천문·수학·천주교 서적 등을 갖고 왔다. 귀국하자 반청파들은 그를 친청적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가져온 서양서적도 불태워버렸다. 인조 23년 4월 세자는 귀국한 지 두 달만에 ‘오랑캐의 것이라도 배울 점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화가 난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 앓다가 나흘만에 죽었다. 이때 시신이 검게 변해 있었고, 피를 쏟고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 독살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후 소현세자 빈도 인조를 저주했다는 누명을 쓰고 이듬해 사약을 받았으며, 세 아들도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가 막내만 살아남았다. ●1885년 거문도사건 발생 갑신정변(1884년) 이후 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조선에선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여 청·일 양 세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러시아도 겨울에 얼지 않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조선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세계 각지에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던 영국이 러시아의 남방 진출을 막는다는 구실로 그해 3월 선제공격을 감행, 거문도를 점령했다. 거문도는 여수와 제주를 잇는 바닷길의 중간에 있어서 러시아 동양함대가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결국 조선을 제외한 러시아·청·영 3국이 교섭을 벌여 러시아는 조선의 어떠한 영토도 점령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1887년 2월 영국함대는 철수했다. 그해 8월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최초의 근대식 중고등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설립했으며, 한성전보국이 개국(서울∼인천간 전신 개통)했고 대원군이 청에서 귀국했다. ●1885년 인도국민회의 결성 영국에 의한 식민정부에 의해 교육받은 인도인들이 구성했다. 후일 간디의 지도아래 통치권을 되찾기 위해 영국과 전국적으로 싸우며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1945년 일본 항복, 한국 광복 8월15일 일본 왕의 항복선언과 함께 2차대전이 종결되고 한민족도 광복을 맞았다. 이에 앞서 5월2일엔 베를린이 연합군에 점령당했고,5월8일 독일이 항복했다. 9월2일 맥아더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책을 발표했으며,9월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 선언됐다.9월7일엔 미 극동사령부가 군정을 선포하고 9월16일 한국민주당(한민당)이 결성됐다.11월10일 미군정이 인민공화국을 비난했다는 것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매일신보’가 정간됐다가 11월25일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꿔 속간되었다. 조선일보(11.23), 동아일보(12.21)도 복간됐다.12월30일 송진우가 피살되고,31일부터 신탁통치 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일요영화]

    [일요영화]

    ●블레이드(SBS 오후 11시45분) 스티븐 노링턴 감독의 1998년작. 웨슬리 스나입스, 스티븐 도프 출연. 인간과 흡혈귀의 혼혈 주인공을 내세운 만화 원작의 액션물. 영화 ‘파워 오브 원’에서 흑인들의 백인영웅이었던 스티븐 도프가 음산한 흡혈귀로 등장하고, 흑인배우 웨슬리 스나입스가 흡혈귀 사냥꾼으로 등장해 묘한 재미를 준다. 오랜만에 가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블레이드는 어머니가 임신 상태에서 흡혈귀에게 물리는 바람에 반은 인간, 반은 흡혈귀로 태어났다. 블레이드는 복수를 위해 흡혈귀들을 사냥하며 살아간다. 한편 흡혈귀 프로스트는 “인간들과 공존하며 은밀하게 살아가라.”는 흡혈귀 지도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리는 인물. 그는 인간 사회와 흡혈귀 사회를 모두 지배하기 위해 전설 속의 피의 신 ‘라마그라’를 부활시키려 시도한다. 그러나 부활에는 혼혈종인 블레이드의 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105분. ●윈슬로 보이(EBS 오후 2시20분) 1908년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한 테렌스 래티건 원작 희곡을 데이비드 마멧 감독이 1999년 영화화했다. 20세기 초 영국. 평범한 중산층 가족의 가장인 아서는 14살 난 막내아들 로니가 왕립 해군 사관학교에서 우편함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퇴학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서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힘겹고 긴 투쟁을 시작하는데….120분.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쌍웅(KBS2 오후11시15분) ‘천장지구’ 등의 진목승 감독 2003년작. 정이건과 여명이 각각 음모에 휘말린 경찰과 최면술사로 등장한다. 당시 홍콩영화계에서 유행하던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최대한 자제하고 실제 액션 위주로 촬영했다. 홍콩의 강력계 형사인 이문건은 경찰 내부에서 일어난 보석 절도와 자살 사건을 수사하다 최면술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이문건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살인사건과 연루되어 7년을 복역중이던 홍콩 최고의 최면술사 여상정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순순히 협조해주는 것 같던 여상정. 그러나 결국 이문건에게 최면을 걸어 다이아몬드 절도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도망쳐버린다. 이문건은 누명을 벗기 위해 여상정을 추적하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여상정은 폭력 조직 두목에게 아내와 친구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히고 이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99분. ●리틀 세네갈(EBS 밤 12시) 프랑스 이민 소재 영화를 즐겨 만들었던 라시드 부샤렙 감독이 아프리카 흑인들과 미국 흑인들의 미묘한 갈등을 담아냈다.2001년작. 세네갈의 노예 역사박물관에서 30여년 동안 가이드로 일해온 알루네는,200년전 미국으로 노예로 팔려간 선조들의 자취를 찾는 여행을 할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미국 뉴욕의 ‘리틀 세네갈’까지 여행하는 동안, 알루네가 찾은 것은 아프리카 흑인들과 미국 흑인들 사이의 갈등 뿐이다.93분.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박지원 전 장관 대법원 파기환송 이끈 소동기 변호사

    박지원 전 장관 대법원 파기환송 이끈 소동기 변호사

    “수사기록을 분석하면 할수록 무죄라는 확신이 더해 갔습니다.”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변론,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을 이끌어낸 소동기 변호사는 14일 “검찰이 서울고법에서 내세울 추가 증거를 반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 변호사는 지난해 8월 대북송금사건으로 기소된 박씨에게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받았다는 혐의가 추가되자 사건에 뛰어들었다. 박씨가 “김영완·이익치씨가 나에게 왜 이런 누명을 씌우는지 알 수가 없다.”며 고향 후배인 소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2000년 4월 박씨에게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원을 직접 전달했고, 무기거래상 김영완씨는 돈을 받아 관리했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소 변호사는 박씨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우선 A4용지 300장씩 묶인 46권의 수사기록을 꼼꼼히 검토했다. 핵심은 지난해 4월 검찰수사 때까지 150억원 대부분을 갖고 있던 김영완씨가 누구와 공모했느냐로 정리됐다. 검찰은 박지원씨와 공모했다고 주장했고 소 변호사는 이익치씨와 공모했다고 맞섰다. 골프광인 김영완씨의 인간관계를 분석하려고 소 변호사는 골프장 기록을 뒤졌다.1999년 11월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됐던 이익치씨가 석방된 직후 처음으로 골프를 쳤던 사람이 김씨란 사실을 확인했다. 돈이 전달된 2000년 4월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러 이씨가 출국할 때마다 김씨가 동행한 사실도 알아냈다. 현대 비자금 200억원을 받아 구속기소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기록을 검토한 결과 이씨 진술이 어긋나는 것도 발견했다. 박지원씨 사건에선 김영완씨를 99년 5월말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고 진술했지만, 권노갑씨 사건에선 98년 1월 김영완씨 소개로 이씨와 정몽헌씨가 권노갑씨 집을 방문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소 변호사는 해외도 누비고 다녔다. 수사가 시작되자 미국으로 도망간 김영완씨의 행적을 찾기 위해 태국 방콕을 방문했다. 김씨가 진술서를 법원에 내면서 변호사와 함께 동남아의 콘라드 호텔에서 작성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씨와 김씨의 관계를 알기 위해 일본도 다녀왔다. 박지원씨가 대북송금과정에서 북한과 접촉한 요시다 다케시란 일본인을 두 사람과 함께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소 변호사는 1심,2심에서 이·김씨 주장의 허점을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희망’을 안고 이들의 주장을 믿을 수 없는 이유를 A4용지 200장으로 정리해 대법원에 제출했다. 확정 판결이 내려지려면 재판을 더 열어야 한다. 따라서 소 변호사의 변론이 맞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 변호사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유서대필’ 강기훈씨 노모 대학생됐다

    지난 1991년 유서대필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강기훈씨의 어머니 권태평(70)씨가 늦깎이 대학생이 된다. 권씨는 11일 성공회대 2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성공회대는 “권씨가 고령인데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와 인권운동사랑방 등에서 적극 활동한 경력을 인정받아 ‘NGO활동우수자’ 전형으로 사회과학부에 합격했다.”면서 “국가가 하지 못한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상을 학교에서 먼저 시작하자는 의미”라고 밝혔다. 권씨는 이번 수시모집 합격자는 물론 재학생을 통틀어 최고령이다. 권씨는 중학교에 다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뒀다. 그는 “대학 때 데모만 하고 다니던 아들 속을 알고 싶어 아들의 책이나 유인물을 읽어봤는데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어 공부를 하고 싶었다.”면서 “배웠으면 사회에 돌려줘야 할 텐데 시간이 너무 짧다.”고 말했다. 평범한 주부였던 권씨는 아들이 투옥되자 누명을 벗기겠다는 심정으로 아들이 일하던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자원봉사를 시작,NGO와 인연을 맺었다. 권씨는 2년전 마포구 염리동의 일성여고에 입학한 뒤 공부에 열중, 대학까지 응시하게 됐다. 손녀뻘 되는 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했지만,“하루도 공부를 쉬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공부했다.”고 권씨는 밝혔다. 아들이 공부했던 내용을 배우고 싶어 사회과학부를 선택한 권씨는 여성이나 노인 대상 상담가가 되는 게 꿈이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儒林(203)-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儒林(203)-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공자로서는 영공의 태도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아들인 태자 괴외는 남자를 죽이려 했다가 실패한 후 송나라로 망명하였는데, 영공은 이러한 아들의 충정은 모르고 젊은 미남자와 간통을 계속하고 있는 아내에게 빠져 함께 수레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공자를 더 분노케 하였던 것은 환관 옹거를 한 수레에 태운 것이었다. 환관 옹거는 태자 괴외가 고용한 자객 희양속으로부터 남자를 보호하였던 내시였다. 이후부터 남자는 옹거를 총애하여 애지중지하였다. 원래 환관은 시중을 드는 근시일 뿐 함께 수레를 탈 수 있는 존재가 못 되는 미천한 신분이었다. 그러나 영공은 옹거를 태운 수레를 타고 시가를 행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본 공자는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나는 아직 색을 좋아하는 것만큼 덕을 좋아하는 군주를 본 적이 없다.(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영공에게 환멸을 느낀 공자는 다시 위나라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 이번에도 목적지는 진나라였으나 우선 봄에 위나라를 떠나 조나라를 거쳐 여름에 송(宋)나라를 지나게 되는데, 여기서도 공자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큰 수난을 겪게 된다. 공자는 조나라를 지나서 송나라로 들어간 후 제자들과 함께 큰 나무 밑에서 예에 대한 강습을 하고 있었다. 이때 송나라의 사마인 환퇴(桓 )가 공자를 죽이기 위해서 칼을 빼어 들었다. 환퇴가 공자를 죽이려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사기는 ‘일찍이 환퇴가 공자로부터 창피를 당해 그 분풀이를 하기위해서 감행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환퇴는 직접 공자의 몸을 베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군자를 죽인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으므로 환퇴가 선택한 방법은 우연을 가장한 사고사였다. 그래서 환퇴는 단칼에 공자가 강습을 하고 있던 큰 나무의 밑둥을 베어 버린 것이었다. 쓰러진 나무에 의해서 공자가 압사당하여 죽으면 살인자라는 불명예는 벗어나면서도 소기의 목적은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가까스로 쓰러지는 나무로부터 벗어났다. 놀란 제자들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큰일 날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쓰러졌던 공자는 일어서서 몸에 묻은 먼지를 떨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하늘이 내게 덕을 부여해 주셨거늘 환퇴, 제까짓 게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天生德於予 桓 其如予何)” 그러나 이렇듯 생명의 위협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공자를 죽이려다 실패한 환퇴는 군사들을 몰고 계속 공자를 추격하고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공자는 제자들과 일단 헤어지기로 한다. 함께 일행을 이루면 자연 적들의 표적이 될 수 있었으므로 뿔뿔이 흩어져 개인 행동으로 방향을 바꾸어 정나라로 갈 것을 결의하고 단신으로 정나라로 향한다. 간신히 정나라로 들어간 공자 일행은 서로의 안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였다. 제자의 한 사람인 자공(子貢)이 무사히 정나라로 입국하여 가장 먼저 스승을 찾아 헤맸다. 자공은 위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단목사(端木賜)였다. 공자보다 31세나 아래였으나 특히 외교면에 있어서 월등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훗날 실제로 정계로 나아가 뛰어난 외교활동을 펼침으로써 사기는 이러한 자공의 활동을 ‘노나라를 보존시키고(存魯), 제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難齊), 오나라를 패망시키고(破吳),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고(彊晉), 월나라를 패자가 되게 하였다(越).’고 극찬하였는데, 무엇보다 자공이 특별하였던 것은 스승을 모시는 지극정성이었다.
  • DJ - 한통련 31년만에 재회

    DJ - 한통련 31년만에 재회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구출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구명운동에 앞장선 곽동의(74)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전 의장을 14일 다시 만났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찾아와 눈물을 글썽이는 곽 전 의장과 30여년 만에 두 손을 굳게 잡았다. 한통련은 박정희 정권에 맞서다 1978년 대법원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규정됐다. 입국금지된 곽 전 의장은 한통련 고국방문단의 일원으로 지난 10일 44년 만에 고국땅을 밟았다. 곽 전 의장은 새로 발급받은 ‘대한민국 여권’을 김 전 대통령에게 보여주며 “우리가 올 수 있었던 것은 6·15공동선언으로 정치적 여건이 성숙됐기 때문”이라면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오늘이 일생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감개무량하다.”면서 “군부독재는 나를 한민통(한통련의 전신) 의장으로 몰아 반국가단체의 괴수라며 사형을 선고했지만 최근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한통련의 누명도 벗겨졌다.”고 화답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우리나라처럼 국내외 민주인사들이 피흘리며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가 없다.”면서 “여러분같은 개혁적 인사들이 세계화 시대 한국의 전위부대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26)’창업CEO’ 김기문 로만손 사장

    ㈜로만손의 김기문(金基文·50) 사장은 창업을 꿈꾸는 월급쟁이 직장인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다. 작은 시계회사의 영업직을 그만두고 두어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종업원 두사람을 데리고 출발한 지 15년.그는 임직원 120여명과 전국 영업점 45개,연간 매출 500억원·수출액 3000만달러의 국내 최고 시계보석 전문기업을 일구었다.개성공단에 첫 입주하는 15개 중소기업의 대표이면서,러시아를 방문하는 대통령의 수행 기업인단의 한사람으로 선정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그의 성공 신화는 이렇듯 부지런함에서 시작됐다. ●밀수꾼으로 오해받고 사우디선 납치되기도 1989년 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국제공항.로만손을 창업한 지 1년째 되던 김 사장은 공항에서 세관원에게 봉변을 당했다.가방 3개에 가득 든 시계가 검색대에 쏟아져 나오자 그만 밀수범으로 몰린 것이다.김 사장은 명함 등을 보여주며 “시계 장사꾼이고 견본품들”이라고 해명했다.그러나 세관원은 “샘플이라면 몇개만 들고 다니면 되지 왜 이렇게 많은가.”라면서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그는 “샘플 몇개 보여주자고 비싼 비행기 요금을 내고 먼 길을 오느냐.중동 전역에 만나야 할 거래선이 많다.”고 따졌다. 물불을 안 가리고 발품을 팔면서 비롯된 오해로 밝혀져 밀수범의 누명은 벗었으나 그는 ‘단 한개라도 히트 상품을 만들자.’는 교훈을 얻었다. 1990년 초 또다시 방문한 사우디의 공항 인근.김 사장은 출장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차편을 기다리다 평소 안면이 있는 현지 시계판매상을 만났다.“공항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판매상의 호의를 받아들여 승용차에 올랐으나 곧 자신이 납치된 사실을 깨달았다.판매상은 사막 근처에 차를 세운 뒤 “왜 우리에게는 ‘커팅글라스’ 제품을 대주지 않느냐.사막에 파묻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김 사장은 “그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나기는커녕 도리어 ‘내가 드디어 성공했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고 회고했다. 히트 상품에 대한 그의 집념은 3년만에 시계의 유리를 보석에서 응용한 커팅기법으로 깎은 세계 최초의 제품을 탄생시켰다.수출은 ‘1국 1바이어’만 상대한다는 원칙을 세우고,제품의 희소가치를 한껏 끌어올리던 중이었다. 김 사장은 “가난한 집안에서 장손으로 태어나 어렵게 성장기를 보내며 그저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이라면서 “내세울 게 없다.”고 말했다.성공한 배경과 비결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는 청년시절 제대로 직장을 잡기도 전에 잇따라 부모가 돌아가신 뒤인 지난 82년 한 신생 시계 회사에서 영업 일을 하게 됐다.발로 뛰면서 꽤 실적을 올렸으나 한계를 느꼈다.당시 시계업계는 ‘오리엔트’‘삼성’‘아남’‘한독’ 등의 대기업들이 90% 이상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국내 시계업계는 70∼80년대가 전성기로 80년대 후반에는 누구나 웬만한 시계 한개쯤은 차고 다녔다.신생 회사가 기존의 벽을 뚫기에는 버거운 상황이었다.그러나 포기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승부를 걸자는 생각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매출 500억 국내최고 시계보석 기업 88년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사무실 겸 공장을 차리고 기술자 2명과 일을 시작했다.일본 시계회사에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으로 납품하면서 간신히 회사를 꾸렸다.‘품질은 스위스제,가격은 홍콩제’를 요구하는 일본 기업의 구미에 맞춰 최선을 다해 납품했으나 손에 쥐게 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는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는데,한개를 만들어도 내 브랜드로 만들자.’고 결심했다.컨셉트는 고급 기호품으로 하고,판매 시장은 ‘처음부터 편견을 갖고 제품을 얕보지 않을 수 있는 수출시장’으로 정했다.브랜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시계 기술자들이 전쟁을 피해 몰려살던 스위스의 산악 마을인 ‘로만시온’에서 따왔다.수시로 유럽,중동,아프리카 등으로 출장을 다녔다.출장중 봉변도 겪었으나 ‘커팅글라스’ 시계가 시장에서 먹혀들면서 매출이 급증했다.이어 지금은 보편화된 이온도금 시계도 세계 처음으로 만들었다.대형 동전에 시계바늘을 결합한 제품,24시간을 150개 등급으로 나눠 전세계 네티즌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타이머’도 만들었다.‘팔찌형 시계’도 대박으로 이어졌다. ●직관서 아이디어… ‘팔찌형 시계’ 대박 김 사장은 성공 비결에 대해 “아이디어는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그는 “여러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대화하다 보면 듣는 것도 그만큼 많고,느끼는 것도 항상 새롭다.”고 했다.해외출장을 많이 다녀 여권 안쪽에 입출국 승인도장을 찍을 곳이 없어 여권을 일년에 3번 바꾼 적도 있다.그는 “발전하는 사람이나 도시는 몇달 전에 본 모습과 후의 모습이 조금 다른 점을 느낀다.”고 말했다.또 “세련된 제품의 감각은 사람의 머리가 아닌 손끝에서 나온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사람의 직관(直觀)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걸프전 터져 투자금 모두 날려 그에게도 좌절과 실패는 있었다. 그는 초창기에 브랜드 가치와 해외 수출시장을 중시하다 보니 이익이 생기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해외박람회에 쏟아부었다.스위스 시계의 유명세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익히 알려진 명성에서 비롯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더디지만 국제 바이어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더불어 김 사장에게도 국제적인 안목이 생기게 됐다.바이어들의 취향도 본능으로 느끼게 됐다. ‘박람회의 매력’에 빠져 참가비용을 무리하게 해외로 빼내다 경쟁업체의 신고로 외화밀반출 혐의도 받게 되었다.세금만 호되게 물고 혐의는 벗었지만 ‘뛰더라도 주변과 함께 뛰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 사장은 ‘아랍인들은 유럽인들처럼 고급품은 좋아하지만 결코 그들처럼 값비싼 제품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중동시장 공략에 몰두했다.매출을 거의 다 쏟아붓다가 그만 걸프전이 터지면서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그는 “영리한 여우는 굴을 여러 개 파놓는다는 교훈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수출선을 다변화하기로 했다.이는 오늘날 중동뿐만 아니라 러시아,동남아시아,남부 유럽 등 68개국과 거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커팅글라스 시계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자 복제의 귀재라는 홍콩의 시계업자들이 제작한 싸구려 모조 시계가 등장했다.특허권도 소용이 없었다.그는 “제품도 사람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끊임없이 제품을 개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전 직원의 15%가 연구개발 인력인 데에는 이같은 이유가 있다. 김 사장은 “상황 변화를 빨리 읽고,그때마다 과감하게 자기 변신의 결단을 내린 것이 시장에서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덕분에 로만손은 최근 들어 스위스에 오히려 OEM 제품을 주문하는 회사가 되었다.러시아에선 언론사 조사를 통해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가장 받고 싶은 선물에 로만손의 ‘팔찌 시계’가 꼽히는 결과를 얻었다.지난해 4월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시계보석전시회’에선 엄격한 심사를 거치는 명품관 전시의 영광도 누렸다. ●68개국과 거래… 스위스서 OEM 납품 받아 로만손은 올해 안에 개성공단 1차 입주 시범단지 2만 8000여평 가운데 10분의 1인 2620평에 106억원을 들여 공장을 세운다.내년초부터는 공장 인력의 90%인 820여명 정도의 북한 근로자들이 로만손의 정식 직원이 된다.북한 근로자들의 최저 임금은 월 57.5달러로 월 7만 9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로만손의 연간 매출을 30% 정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개성 진출을 제2의 도약의 기회로 삼고 있다.시계산업이 사양업종이 아니라는 사실은 로만손의 놀라운 성장을 통해 입증했으나 기술 및 노동집약 산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이 때문에 그는 북한 근로자를 통해 인건비의 부담을 줄이면서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김사장은 “시계는 만드는 사람의 손재주와 감성이 듬뿍 담겨야 명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아울러 부품 협력업체들이 현재 인천의 남동공단,경기도 광주 등 도처에 떨어져 있어 물류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점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로만손은 15개 협력업체와 함께 개성공단에 입주한다.김 사장은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중국으로 건너간 부품업체들도 개성으로 불러들여 개성을 한국 시계산업의 메카로 키우겠다.”고 밝혔다.“그래도 국제시장 가격이 일본 시계의 95% 이상인 고급형을 지향하겠다.”고 덧붙였다. 로만손은 시티즌,세이코,티쏘 등 유명 브랜드들과 어깨를 견주며 오메가와 명품인 메리골드를 추격하고 있다.‘변화를 이끄는 고급 이미지’이라는 쉽지 않아 보이는 길이 로만손의 목표다.중상류층의 기호를 겨냥했다. ●대통령 러시아 방문 수행 기대 커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수행에 대한 기대도 크다.김 사장은 “러시아는 중국,인도 등과 더불어 떠오르는 수출시장”이라면서 “감성이 풍부한 러시아인들에게 한국인 특유의 예술적 재치가 넘치는 감성 제품들이 크게 ‘어필’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김 사장은 “한국의 시계산업을 위해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김기문 사장은 로만손의 김기문 사장은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거의 맨손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시계보석 전문기업을 만들었다.그는 자랑할 만한 학벌도 없고,디자인도 공부하지 않았다.요즘 인터넷 세상에서는 보기드물게 “사람의 만남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직관으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한다.이렇듯 사람의 능력을 중시하는 점이 성공의 한 요인으로 보인다.지칠 줄 모르는 투지와 부지런함이 밑천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그는 로만손을 정상에 올려 놓은 뒤 고려대와 서울대의 경영대학원을 마쳤다.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 직책도 갖고 있다.그는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하소연 대신에 “개성공단 입주와 해외시장 개척이 한국의 중소기업이 제2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 [씨줄날줄] 마타하리/손성진 논설위원

    1차대전 때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며 스파이 활동을 한 혐의로 사형된 마타하리가 간첩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전쟁의 와중에 스파이의 누명을 쓴 희생양일 수 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프랑스의 재판관이 “그녀가 빼낸 정보는 연합군 5만명의 목숨을 잃게 할 만한 것이었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지난 99년 비밀이 해제된 영국 정보부의 제1차 세계대전 문서에는 마타하리가 군사 정보를 독일에 넘긴 증거가 없다고 기록돼 있다. 인도네시아어로 ‘새벽의 눈동자’란 뜻인 마타하리는 본명이 M G 젤러로 네덜란드 여성이다.인도네시아에 주둔하고 있던 네덜란드 군장교의 신부 구함 광고를 보고 결혼한 그녀는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7년 만에 이혼한다.검은 머리에 올리브빛 피부,커다란 갈색눈을 지닌 그녀는 이혼후 파리의 물랭루주 댄스홀에 나타나 배꼽을 드러낸 발리 댄스로 남성들을 사로잡았다. 그녀가 간첩으로 의심을 받은 것은 1차대전중에 베를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마타하리는 프랑스군 장교인 20살 연하의 연인을 만나려고 파리로 들어오다 붙잡혔다.그녀는 독일군으로부터 스파이 제의를 받았지만 스파이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1917년 10월15일.파리 교외에서 눈가리개마저 거부한 그녀는 12명의 사수에게 총살당한다.나이 41세였다. 서울의 한 골프장 캐디로 일하던 조선족 여성이 간첩으로 신고돼 조사를 받았다 하여 ‘한국판 마타하리’로 표현됐다.그러나 이 여성은 간첩이 아니었다.‘한국판 마타하리’라 할 여성이 김수임이다.이화여전을 졸업한 인텔리에 미모인 그녀는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역을 하다 공산주의자 이강국을 알게 돼 동거했다.그뒤 미8군 헌병감인 베어드 대령의 자문역이 돼 동거하면서 간첩활동을 하게 된다.이강국을 베어드의 집에 숨겨주고 월북시켰다.또 북한의 초대 외무부장이 된 이강국의 대남공작을 도와주기도 했다.이런 혐의가 발각돼 친구인 시인 모윤숙의 집에서 체포된 그녀는 6·25 발발 직전 총살됐다.흥미로운 것은 최근 공개된 베어드 대령에 대한 미국측 조사보고서다.김수임의 혐의를 대부분 증거 불충분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사랑 때문에 간첩이 됐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점도 마타하리와 꼭 닮았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사회플러스] 의문사 前조사관 박근혜대표 고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전직 조사관 김삼석(39)씨는 10일 “1993년 ‘남매간첩 사건’의 누명을 쓰고 실형까지 살았던 과거사를 왜곡해 본인을 ‘간첩’으로 표현,명예를 훼손했다.”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기자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김씨는 또 이들과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9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 의문사위 前조사관, 박근혜대표 고소키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전직 조사관 김모(39)씨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조선일보 간부 김모씨가 과거 간첩누명을 쓰고 투옥된 사실을 왜곡해 본인을 ‘간첩’으로 몰아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들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10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 김씨는 이날 미리 배포한 고소장에서 “93년 이른바 ‘남매간첩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이 사건은 공안당국의 조작임이 밝혀졌다.”면서 “그럼에도 박 대표와 김씨는 기자회견과 칼럼을 통해 ‘간첩이 현역 장성을 불러 조사한다.’고 악의적으로 비방,본인과 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검찰 고소와 함께 서울중앙지법에 9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함께 제기할 방침이다. 김씨는 93년 군사기밀을 북한에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4년을 복역한 뒤 99년 사면복권,지난해 7월 위원회 조사관으로 채용됐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누명 벗었지만 파탄난 가정은… ”

    “만신창이된 내 인생,내 가족을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뇌물수수 혐의로 억울하게 28개월 동안 옥살이하다 무죄를 선고받은 경기도 연천경찰서 지구대장 김모(45) 경감의 한맺힌 절규다.김 경감은 지난달 30일 자신을 수사했던 수원지검 평택지청 Y검사와 수사관 등 4명을 불법 체포감금과 직권남용,증거인멸 및 허위 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김 경감은 모 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근무하던 2001년 10월 친구 박모씨의 이혼소송과 관련한 진정사건을 잘 처리해 주겠다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됐고 같은 해 11월 구속기소됐다.그해 12월 경찰로서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파면 처분을 받았다.이듬해 1월 1심 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돼 ‘뇌물경찰’이란 오명이 붙어다녔다. 어머니는 아들의 구속에 따른 충격으로 11개월간 몸져누운 끝에 운명을 달리했다.대학생이던 큰딸은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사건이 불거진 뒤 별거에 들어갔던 부인과 결국 이혼했다. 1년에 걸친 항소심 끝에 법원은 김 경감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대법원 역시 같은 해 8월 무죄를 확정했다.별도로 진행된 파면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승소해 지난 4월 복직했다.김 경감은 고소장을 내며 “경찰서 수사과장도 검찰에 힘없이 당하는데 하물며 일반인들이야 어떨지 걱정스럽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Y검사는 이와 관련해 “그동안 겪은 개인적 어려움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수사과정에서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있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대통령-김지태씨 ‘부일장학금’ 인연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이사장인 정수장학회의 전신 ‘부일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다고 2002년 대선 때 밝혔다고 시사저널 최신호(8월5일자)가 보도했다.부일장학회는 (주)삼화,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 등을 창업한 고 김지태 전 의원(2,3대)이 지난 1958년 설립한 재단으로,김씨 유족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2년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을 강제로 빼앗았다.”며 “박 대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는 한편 이름도 부일장학회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시사저널은 전했다. 시사저널은 김씨 유족측 주장을 인용,“5·16쿠데타를 앞두고 김씨에게서 자금을 지원받지 못한 박 전 대통령이 집권 이후 김씨에게 부정축재·농지개혁법과 관세법 위반 등의 누명을 씌워 거액의 추징금과 부일장학회 운영권 포기 등의 각서를 받아냈다.”고 보도했다.5·16 이후 김씨는 부정축재자로 몰려 추징금 5억 4570만환을 내야 했고,1962년에는 재산해외도피 및 관세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의 주식 100%,부일장학회 운영권과 부산 서면 일대 토지 10만평을 군사정권에 넘겨야 했다는 것이다.시사저널은 또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부산 유세 과정에서 “부일장학회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고 밝혔고 당선된 뒤에는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디딤돌을 놓아준 분이 있다.”며 김지태씨를 회고했다고 보도했다.공납금이 없어 진영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노 대통령이 부일장학금을 받아 졸업했고,부산상고 3년 동안에도 ‘김지태 장학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이런 인연으로 노 대통령은 김씨가 경영했던 삼화고무의 고문 변호사를 맡았고,1982년 김씨 사망 후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100억원대 상속세 부과 취소 행정소송의 변호를 담당했다.”고 보도했다. 노 대통령은 통일민주당 초선 의원이던 지난 1988년 10월 부산일보 전무 윤우동씨 등이 국회에 낸 ‘부산일보 등의 소유권 원상회복 청원서’에 김영삼·이기택·서석재·최형우·김정길 의원 등 부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함께 서명한 바 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책꽂이]

    ●싸이코가 뜬다(권리 지음,한겨레신문사 펴냄) 제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탈출구가 없어 숨막힐 것 같은 현실에서 끝없이 출구를 찾아 헤매는 20대의 자화상을 담았다.잡학 다식한 풍자적 대화 등으로 획일성을 강요하는 현대사회를 꼬집는다.9000원. ●사랑의 문법:이광수,염상섭,이상(서영채 지음,민음사 펴냄) 현장비평과 연구작업을 활발하게 병행해온 국문학자의 두번째 저서.근대문학의 거봉인 세 작가의 작품 속에 나타난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분석한다.1만 8000원. ●나는 못생겼다(김하인 지음,생각의나무 펴냄) ‘국화꽃 향기’로 큰 인기를 얻은 작가의 성장소설.강원도 평창에 사는 여섯살배기 소녀의 일상을 중심으로 예뻐지기 위해 벌이는 해프닝 등 순수한 유년기의 풍경으로 유쾌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8800원. ●돌의 집회(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이상해 옮김,문학동네 펴냄)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의 스릴러 소설.여전사 디안 티베르주가 아이를 입양한 뒤 잇단 의문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그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을 긴박하게 풀어간다.1만원. ●버논 갓 리틀(DBC 피에르 지음,양영주 옮김,북폴리오 펴냄) 영국의 권위있는 ‘부커상’ 수상작.급우 16명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기소된 16세 소년이 경찰,교사와 의사 등과 부딪치는 과정을 통해 뒤틀린 사회를 풍자한다.1만 2000원. ●소년시절(J.M.쿳시 지음,왕은철 옮김,책세상 펴냄)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1950년대 남아공화국 소년의 일상을 비추며 인종·종교 등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다룬다.3인칭 관점과 현재시제로 자신의 과거사를 객관적으로 묘사한다.1만원. ●무지개여,모독의 무지개여(마루야마 겐지 지음,양윤옥 옮김,문학동네 펴냄)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모티프로 쓴 장편.두 폭력조직의 두목을 살해하고 바닷가 마을에 은신한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환상적으로 그렸다.모두 2권,각 9000원. ●고양이 요람(커트 보네거트 지음,박웅희 옮김,아이필드 펴냄) 미국의 대표적 반전(反戰)작가의 장편.인류를 멸망시킬 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내는 인류의 과학맹신주의와 문명인으로 자처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다.9000원. ●산으로 간 물고기(김정희 지음,문학의전당 펴냄) 2000년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66편의 작품으로 “은행 층층대에서 자는 행려자의 덧난 발목을 핥아주는 햇빛” 같은 따스한 시선으로 세상의 나약한 존재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감싸안는다.6000원.
  • 儒林(136)-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이처럼 가난하고 검소한 생활에서 즐거움을 찾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안영을 엿보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가 ‘안자춘추’에 나오고 있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영은 검소한 생활에 자족하여 천한 백성들이 살고 있는 시장거리의 누추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이를 딱하게 본 경공이 말하였다. ‘시장거리에 가까이 있으니 얼마나 시끄럽겠는가.좋은 지역에 새 집을 하나 마련해 주겠소.’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안영이 대답하였다. ‘이 집은 조상대대로 사는 집일 뿐 아니라 제 형편으로는 오히려 과분합니다.게다가 시장과 가까워 물건 사기도 편리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가에 밝겠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값이 비싼 것은 무엇인가?’ 이에 안영이 대답하였다. ‘끌신(踊)은 비싸고,보통 신은 값이 쌉니다.’” 안영의 대답은 함축성 있는 깊은 뜻을 갖고 있다. ‘끌신’이란 형벌을 받아 발에 상처가 난 죄수에게 신기는 특수한 신발인데,여기서 말한 형벌은 월형(刑)을 가리키고 있다.월형이란 죄수의 발꿈치를 베던 형벌로,안영의 말은 법이 지나치게 무겁고 엄격하여 그만큼 누명을 쓰는 백성들이 많이 있음을 비견하는 말인 것이다.경공은 이 말을 듣고 형벌을 줄이고 백성들의 죄를 탕감해 주었는데,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검소하고 결백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아픔을 통해 남의 딱한 처지를 헤아릴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공자가 제나라로 망명해온 지 반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야 간신히 공자는 경공을 알현할 수 있었다.안영이 경공에게 ‘이제는 공자를 만나도 좋을 때가 왔다.’고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제나라는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다.‘좌전’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제나라로 가던 소공 25년(기원 전 517년) 가을에 노나라에 큰 가뭄이 들었다 했으니,제나라는 노나라와 인접해 있었으므로 다음해 봄에는 백성들이 가뭄이 들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고 있는 극한 상황이었음은 역사적 사실이었을 것이다.경공이 공자를 만나고 싶어 채근하였던 것은 이처럼 국가적 재난을 벗어날 수 있는 묘안을 얻기 위함이기도 했던 것이다. 마침내 공자는 가을에 제나라에 입국하여 반년 만인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경공을 만날 수 있었는데,제자들과 더불어 궁궐에 들어간 공자는 한 가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것은 궁궐 안에 머무르고 있는 여인들이 모두 남장(男裝)을 하고 있는 사실이었다.처음에는 일부러 예쁘게 생긴 미소년들만 골라 궁인들을 삼은 모양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공자를 맞는 궁인들의 목소리와 말하는 태도,걸음걸이를 보면 그것이 아니라 여인들에게 일부러 남자의 옷을 입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이는 경공의 엽기적인 호사취미였는데,경공은 여인들에게 남장을 시키고 이 모습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를 맞은 경공은 서로 군신의 예를 표하고 난 후 대뜸 천재지변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이에 대한 기록이 ‘공자가어’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공자가 제나라에 있을 때 큰 가뭄이 들어 봄에 기근(饑饉)이 생겼다.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에 공자가 대답하였다. ‘흉년이 들면 둔한 말을 타시고,역사(役事)를 일으키지 마시고,한길을 수리하지 마시고,제물 없이 비단과 구슬만으로 비시고,제사에는 음악을 쓰지 마시고,큰 짐승 대신 작은 짐승을 제물로 삼아야 합니다.이것이 현명한 임금이 스스로를 낮추어 백성들을 구하는 예입니다.’”˝
  • 儒林(136)-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36)-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이처럼 가난하고 검소한 생활에서 즐거움을 찾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안영을 엿보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가 ‘안자춘추’에 나오고 있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영은 검소한 생활에 자족하여 천한 백성들이 살고 있는 시장거리의 누추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이를 딱하게 본 경공이 말하였다. ‘시장거리에 가까이 있으니 얼마나 시끄럽겠는가.좋은 지역에 새 집을 하나 마련해 주겠소.’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안영이 대답하였다. ‘이 집은 조상대대로 사는 집일 뿐 아니라 제 형편으로는 오히려 과분합니다.게다가 시장과 가까워 물건 사기도 편리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가에 밝겠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값이 비싼 것은 무엇인가?’ 이에 안영이 대답하였다. ‘끌신(踊)은 비싸고,보통 신은 값이 쌉니다.’” 안영의 대답은 함축성 있는 깊은 뜻을 갖고 있다. ‘끌신’이란 형벌을 받아 발에 상처가 난 죄수에게 신기는 특수한 신발인데,여기서 말한 형벌은 월형(刑)을 가리키고 있다.월형이란 죄수의 발꿈치를 베던 형벌로,안영의 말은 법이 지나치게 무겁고 엄격하여 그만큼 누명을 쓰는 백성들이 많이 있음을 비견하는 말인 것이다.경공은 이 말을 듣고 형벌을 줄이고 백성들의 죄를 탕감해 주었는데,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검소하고 결백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아픔을 통해 남의 딱한 처지를 헤아릴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공자가 제나라로 망명해온 지 반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야 간신히 공자는 경공을 알현할 수 있었다.안영이 경공에게 ‘이제는 공자를 만나도 좋을 때가 왔다.’고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제나라는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다.‘좌전’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제나라로 가던 소공 25년(기원 전 517년) 가을에 노나라에 큰 가뭄이 들었다 했으니,제나라는 노나라와 인접해 있었으므로 다음해 봄에는 백성들이 가뭄이 들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고 있는 극한 상황이었음은 역사적 사실이었을 것이다.경공이 공자를 만나고 싶어 채근하였던 것은 이처럼 국가적 재난을 벗어날 수 있는 묘안을 얻기 위함이기도 했던 것이다. 마침내 공자는 가을에 제나라에 입국하여 반년 만인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경공을 만날 수 있었는데,제자들과 더불어 궁궐에 들어간 공자는 한 가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것은 궁궐 안에 머무르고 있는 여인들이 모두 남장(男裝)을 하고 있는 사실이었다.처음에는 일부러 예쁘게 생긴 미소년들만 골라 궁인들을 삼은 모양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공자를 맞는 궁인들의 목소리와 말하는 태도,걸음걸이를 보면 그것이 아니라 여인들에게 일부러 남자의 옷을 입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이는 경공의 엽기적인 호사취미였는데,경공은 여인들에게 남장을 시키고 이 모습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를 맞은 경공은 서로 군신의 예를 표하고 난 후 대뜸 천재지변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이에 대한 기록이 ‘공자가어’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공자가 제나라에 있을 때 큰 가뭄이 들어 봄에 기근(饑饉)이 생겼다.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에 공자가 대답하였다. ‘흉년이 들면 둔한 말을 타시고,역사(役事)를 일으키지 마시고,한길을 수리하지 마시고,제물 없이 비단과 구슬만으로 비시고,제사에는 음악을 쓰지 마시고,큰 짐승 대신 작은 짐승을 제물로 삼아야 합니다.이것이 현명한 임금이 스스로를 낮추어 백성들을 구하는 예입니다.’”
  • [일요영화]

    ●대부(SBS 오후 11시45분) 마리오 푸조의 소설을 각색해 명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1972년 만든 작품.지난 1일 숨을 거둔 연기파 배우 말론 브랜도의 대표작.그는 돈 콜레오네 역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지목됐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영화는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여세를 몰아 74년에 ‘대부2’,90년에는 ‘대부3’이 제작됐다.알 파치노,로버트 듀발,제임스 칸,다이앤 키튼 등 호화 출연진을 자랑한다. 시실리에서 미국으로 이민,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한 마피아의 두목 돈 콜레오네.재력과 조직력을 동원,사람들의 갖가지 고민을 해결해줘 ‘대부’로 통한다. 어느날 그는 라이벌인 타탈랴 패밀리에 의해 저격 당해 중상을 입는다.막내 아들 마이클은 이를 계기로 조직에 개입,아버지의 복수를 감행한 뒤 시실리로 피신한다.장남 소니는 여동생 코니를 학대하던 매제 카를로를 혼내주나 앙심을 품은 카를로의 계략으로 처참하게 암살당한다.붕괴직전에 직면한 돈 콜레오네의 일가.마이클은 조직의 오른팔 역할을 해온 변호사 톰과 함께 조직 재결집에 나선다.174분. ●워 왜건(EBS2 오후 2시) 존 웨인,커크 더글러스의 명연기를 볼 수 있는 서부극.가출옥한 타우 잭슨은 뉴멕시코 고향 에멧으로 돌아온다.타우는 자신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낸 뒤 자신 소유의 토지와 금광을 빼앗은 피어스 일당에게 복수를 결심한다.겁이 난 피어스는 1만달러를 내걸고 방랑의 건맨 로맥스에게 타우의 살해를 의뢰하지만 로맥스는 냉담하게 반응할 뿐이다.타우와 로맥스는 이미 피어스의 황금 실은 장갑마차를 습격해 50만달러에 이르는 사금을 탈취할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박헌수감독 코믹액션 ‘투가이즈’

    포스터만 보고도 ‘기본은 하겠구나.’ 막연히 신뢰하게 되는 영화가 있다.박중훈·차태현이 콤비플레이를 이룬 코믹액션 ‘투 가이즈’(제작 보람영화사·9일 개봉)는 그렇게 점수를 벌고 들어간다. 코믹연기가 전공인 주인공들은 기대에 걸맞게 고른 호흡을 자랑한다.박중훈은 코미디에서 쌓아온 관록의 여유로,차태현은 그런 그를 쫓아 부지런히 보폭을 맞춘다. 영화는 두 주인공을 도망자와 추적자의 대립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코믹액션의 속도감을 부추긴다.룸살롱을 전전하며 심야 대리운전을 하는 훈(차태현)은 카드깡에 사채까지 끌어쓰고도 빚독촉에는 꿈쩍않는 철면피.완력과 협박으로 불량채무자들의 빚을 받아내기로 소문난 ‘해결사’ 중태(박중훈)의 출현으로 영화는 곧바로 쫓고 쫓기는 대각구도를 그린다.중태는 콩팥을 팔아서라도 돈을 갚으라며 훈을 그림자처럼 감시하고 다니고,둘은 외국인 남자의 차를 대신 몰아주다 미로같은 범죄사건에 휘말린다.훈이 뒤바뀐 외국인의 가방을 찾으러 간 사이에 중태는 정체불명의 킬러에게 외국인이 살해되는 광경을 목격한 뒤 살인누명까지 쓸 판이다. ‘투톱’구도의 액션영화가 으레 그렇듯 두 주인공은 뜻밖의 위기 앞에서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해 간다.우연히 손에 넣은 외국인의 가방이 국내에서 개발된 최첨단 반도체.이를 가로채려는 국제 스파이 조직,되찾으려는 국가안전정보국 틈바구니에서 둘은 우왕좌왕,좌충우돌 해프닝의 소용돌이를 탄다. 오랜만에 코믹현대물로 돌아온 박중훈이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신은 듯하다.그의 모든 것이 코미디의 강도를 띄우는 무기로 총동원됐다.대본인지 애드리브인지 헷갈릴 정도로 유쾌일변도의 대사를 구사하는 ‘입심’에다 신체특징까지 팔아먹는다.“내 주둥이 좀 봐,잘 물게 생겼지?”식의 대사들은 영화가 ‘배우 박중훈’의 개성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를 자백하는 셈이다. 주인공들의 호흡맞추기에 장면장면 현혹돼 있는 동안 관객들은 박장대소하며 즐겁다.개그수준의 대사를 주고받는 재미는 실제로 영화의 키포인트. 문제는 나무들 사이를 헤집고 나와 멀찍이서 숲을 보게 되는 순간이다.두 주인공의 장기만으로 2인3각 장거리 달리기를 하기엔 근본적으로 버거워 보인다.국제스파이 조직,정체불명의 손가방 하나에 등장인물들이 일렬종대로 주목하는 등 범죄코미디에서 줄기차게 우려먹은 소재도 드라마에 개그 프로그램 이상의 등급을 부여하지 못한다.어리버리하게 사건에 휘말리는 카드사 직원에 개그맨 이혁재,룸살롱 손님에 ‘원조얼짱’ 박윤배,찜질방 아줌마에 김애경 등 다채로운 캐스팅은 순간각성제로는 효력을 낼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 자체를 살지우는 기능과는 무관한,얕은 수로 읽힐 위험도 없지 않다.‘구미호’‘주노명 베이커리’를 연출한 박헌수 감독 작품.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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