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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지훈 “누나들의 동생 닉네임은 잊어주세요”

    주지훈 “누나들의 동생 닉네임은 잊어주세요”

    30대 누나들의 영원한 동생인 모델 출신 탤런트 주지훈(25)이 ‘복수의 화신’으로 안방에 돌아왔다. 지난해 MBC ‘궁’에서 까칠한 ‘황태자’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그가 KBS-2TV 수목 드라마 ‘마왕’에서 야누스적인 변호사 오승하로 변신했다. 오승하는 따뜻하고 온화한 이미지와는 달리 자신만의 판결로 살인을 연출하고 지휘하는 냉정한 악인이다. 배역을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긴 머리를 짧게 잘랐고 187㎝의 훤칠한 키에 한결 차갑고 날카로워진 눈빛이 돋보였다. 또 이번 작품을 위해 운동으로 체중을 5㎏ 감량해서인지 군살없는 근육질의 몸매를 드라마속 수영장면 등에서 유감없이 드러내며 젊은 누나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는 “전체적으로 샤프한 변호사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체중을 5㎏이나 감량했다.”며 “쉬는 동안 머리를 자르고 체중을 줄인 건 일을 위한 것이다. 긴 머리는 배역에 따라 자르면 되고, 살도 미리 빼두면 되며 다시 찌는 건 쉽다.”고 프로의식을 보였다. 주지훈은 ‘마왕’의 김지우 작가와 박찬홍 PD의 전작이었던 KBS ‘부활’과 ‘마왕’의 시놉시스를 본 뒤 감동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치밀한 두뇌싸움이 좋았고 배역도 매력적이어서 망설임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 작품이 너무 좋아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수없이 망설이기도 했다고 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살아있는 애 유수지 던졌다”

    지난 11일 발생한 인천 초등생 유괴사건 용의자 이모(29)씨는 “살려 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는 박모(8)군을 산 채로 유수지에 던져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16일 인천 연수경찰서에 따르면 이씨로부터 “유괴한 당일 밤 박군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은 뒤 포대에 담아 인천 남동공단 유수지에 던져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씨는 당초 박군을 목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유수지에 유기할 생각이었으나 박군이 울면서 “아저씨 왜 그래요. 살려 주세요.”라고 애원하자 그냥 산 채로 유수지에 던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경찰에 체포된 후 처음에는 “시화지구의 공중전화에서 박군 부모에게 전화할 때 박군이 도망갔다.”라고 주장하다가 “테이프로 박군의 입을 막고 차 뒷좌석에 뒀는데 나중에 보니 숨져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16일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에서 박군의 사인이 ‘익사’로 나와 추궁하자 더 버티지 못하고 이같은 사실을 실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씨는 범행계획 단계부터 완전범죄를 노리고 어린이를 유괴한 뒤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괴 5시간 후인 오후 6시 30분쯤 시신을 유기할 때 사용할 목적으로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의 모 카센터에서 포대를 구입했다.30분 뒤에는 소래대교 부근에서 휴대전화로 “아빠 보고 싶어요.”라는 등의 박군 목소리를 녹음했다. 이어 박군을 살해할 장소를 찾아 경기도 부천, 시흥과 인천 남동구 일대를 돌아다니다 오후 11시 30분쯤 인적이 드문 남동공단 유수지에 빠뜨려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군이 살해된 시점은 이씨가 연수·남동구 일대 공중전화에서 7차례나 박군 집에 협박전화를 한 뒤여서 경찰이 발신지 추적 등을 통해 현장수사에 박차를 가했더라면 박군이 살았을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한편 이씨의 범행수법이 영화 ‘그놈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으나 이씨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군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버려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박군의 아버지는 “차가운 물에 아이를 던져 버리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박군 장례식은 16일 오후 빈소가 차려진 인천적십자병원에서 치러졌다. 관이 옮겨지는 순간 박군 부모와 누나가 관에 매달려 한참 동안 울부짖자 친지들도 울음보를 터뜨려 빈소는 눈물바다로 변했다. 박군 시신은 집, 다니던 M초등학교, 교회를 차례차례 돈 뒤 인천가족공원 화장터에서 화장, 납골당에 안치됐다. 경찰은 오는 19일 납치 장소와 남동공단 유수지 등 이씨의 범행경로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하기로 했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제2의 그놈 목소리에 당했다

    제2의 그놈 목소리에 당했다

    지난 11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에서 유괴된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는 “아빠 보고 싶어요.”라는 말만 남긴 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인천연수경찰서는 15일 용의자 이모(29·인천시 연수구 연수동·견인차 운전사)씨를 긴급체포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영리약취 유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범행 용의자 이씨는 지난 11일 오후 1시30분쯤 송도국제도시인 송도동 K아파트 상가 앞에서 교회 예배를 보고 귀가하던 중 상가로 게임기를 사러가던 박모(8·초교 2년)군에게 다가가 길을 묻는 척하며 자신이 운전하는 견인차량에 태워 납치했다. 전과 3범인 이씨는 아파트 구입비와 유흥비 등으로 진 빚 1억 3000만원을 갚기 위해 이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박군 집으로부터 3㎞가량 떨어진 연수동에 24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아내(31)와 11개월된 아들을 두고 있다. 이씨는 박군으로부터 부모 직업과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포장용 테이프로 이군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은 뒤 오후 2시45분쯤 인천 남동공단 공중전화에서 박군 어머니 임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수요일까지 1억 3000만원을 준비하라.”는 협박전화를 걸었다. 이씨는 오후 10시51분쯤 경기도 부천 상동신도시 공중전화에서 7번째 협박전화를 하고 인천으로 돌아오던 중 뒷좌석에 있던 박군이 질식사한 것을 발견하고,12일 0시10분쯤 인천 남동공단 유수지에 시신을 유기했다. 이씨는 이후에도 검거되기 전날인 13일 낮 12시까지 공중전화와 훔친 휴대전화로 모두 16차례에 걸쳐 위치를 바꿔가며 박군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녹음해둔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나 데려다 준대.”라는 박군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돈을 요구했다. 박군 부모는 13일 0시11분쯤 연수구 선학동 공영주차장에 있는 1t트럭 적재함에 현금 1억원이 든 돈가방을 놓고 돌아왔으나 이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사와 문제점 경찰은 이씨가 사건 발생 다음날인 12일 낮 12시19분쯤 연수구 청학동 공중전화에서 8번째 협박전화를 하고 나오는 모습을 건너편 상가건물 옥상에 설치된 CCTV를 통해 확보했다. 이어 3분 뒤 인근 아파트에 설치된 쓰레기투기 감시용 CCTV가 이씨의 견인차를 찍었다. 경찰은 견인차 운전사들을 탐문한 끝에 14일 오후 2시30분쯤 자신의 차량에서 잠을 자던 이씨를 검거했다. 하지만 이씨가 집중적으로 협박전화를 한 연수구에서 활동하는 견인차가 10여대에 불과해 결정적 단서를 확보한 뒤에도 검거까지 2일이나 걸려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경찰은 이씨가 주로 공중전화로 협박전화를 해 연수구 일대 공중전화 600여대에 경찰관을 배치했는데도 이씨를 검거하지 못했다. 특히 경찰서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공중전화에서도 전화를 걸었는데 경찰은 현장에서 이씨를 검거하는 데 실패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씨가 협박전화를 짧게 해 현장검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이씨의 자백을 토대로 남동공단 유수지에서 사건 발생 나흘 만인 15일 오전 6시쯤 빨간색 포대자루에 싸여 있던 박군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씨가 박군을 유괴한 6시간 뒤에 목소리를 녹음하고 포대자루를 준비한 점 등으로 미뤄 박군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다. ●박군 주변 졸지에 변을 당한 박군의 아버지는 고교,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다. 박군은 외아들이며 초등학교 4학년인 누나가 있다. 박군의 아버지는 “이번 사건은 얼마 전 상영된 영화 ‘그놈 목소리’와 거의 일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우리 아이는 사악한 모방범죄의 희생양이며 우리 아이가 아니면 다른 아이가 희생됐을 것이다. 왜 그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비통해했다. 박군의 담임교사 이모(58)씨는 “학기 초인데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다며 “적극적이고 명랑했던 박군이 이런 변을 당하다니 믿을 수 없다.”며 침통해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이두한 원장의 건강이야기] 참을 수 없는 항문의 가려움

    지난달 말, 말쑥한 40대 숙녀 한 분이 병원을 찾았다. 항문이 못 견디게 가렵다는 거였다. 벌써 3년째인데 요즘은 너무 심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수시로 긁어야 하는 고통도 견디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항문이 불결해 그런가 싶어 배변 후 소독액으로 닦고 좌욕도 하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진다고 했다. 이 여성의 병은 항문소양증이었다. 무좀이나 칸디다 같은 곰팡이균에 감염되거나 치핵·치열 등이 원인이 되어 항문이 가려운 병이다. 더러는 커피나 술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뚜렷한 원인이 있다면 치료가 쉽지만 원인이 없는 경우에는 치료가 어려워 만성화하는 경우가 많다. 원인이 없는 대부분의 가려움증은 항문 주위의 피부 손상 때문이다. 이런 환자의 항문은 피부 색깔이 물에 분 듯 하얗고, 피부가 두꺼우며, 군데군데 헐거나 갈라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질환을 가진 환자들 대부분은 성격이 예민해 항문이 불결하면 참지 못하는 결벽주의자들인 경우가 많다.이런 성격 탓에 배변 후 휴지로 여러 차례 항문을 닦고, 그것도 모자라 비누나 소독약으로 다시 항문을 씻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항문 주위의 피부를 손상시켜 가려움증을 더욱 심하게 한다. 게다가 가렵다고 항문을 손으로 긁기라도 하면 피부 손상은 더 심해져 치료만 어려워질 뿐이다. 치료는 습관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배변 후 물로 간단히 항문을 씻고 수건 등으로 물기를 없앤 후 스테로이드 연고를 1일 3회 정도 발라준다. 휴지는 표면이 거칠어 피부에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안 쓰는 것이 좋다. 배변 후 휴지로 여러 차례 닦거나 물로 씻더라도 너무 자주, 또 힘을 줘 박박 닦는 것은 금물이며, 소독약이나 소금물로 씻는 것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잦은 좌욕도 항문 주위의 피부를 약하게 한다. 스테로이드 연고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한 달 이상 쓰지 않도록 하고 대신 항문 관리에 힘쓰는 것이 재발 방지에는 더 좋다.대항병원장
  • [생각나눔] ‘군입대 세아이 아빠’ 구제방법 없나

    [생각나눔] ‘군입대 세아이 아빠’ 구제방법 없나

    오는 12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는 신대광(30)씨는 자녀가 셋이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직장에 나갈 수 없는 아내까지 부양가족 4명을 둔 가장이다. 대학 졸업, 다른 대학 학사편입, 대학원 재수와 입학 등을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아이를 ‘바쁘게’ 낳은 것은 여섯살 연상인 아내를 위해서다. 늦어지면 출산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자신 말고는 네 식구를 마땅히 부양해줄 사람이 없는 신씨는 각계에 선처를 호소했다. 병무청, 국가인권위, 청와대 신문고, 국민고충처리위 등등. 그러나 각 민원은 결국 병무청 담당자에게 패스됐고,‘병역법상 구제해줄 수 없다.’란 대답만 돌아왔다. 신씨는 훈련 뒤 가족 거주지 인근 부대에라도 배치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군 복무 중에라도 조금이나마 가족을 돌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사정을 봐줄 수 없다.’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공동의장 한명숙·강신호 등)는 다자녀 가장에 대한 병역 관련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 주목된다. 연석회의는 우리 군이 자녀를 둔 기혼 입대 예정자들과 사병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에 귀 기울이고 있다. 현행 병역법상 장남인 신씨의 경우 미혼인 3명의 동생·누나들 때문에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군 입대자를 빼고 남은 가족 중 부양의무자 대비 피부양자의 비율이 1대3을 초과해야만 면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미혼으로 법적 분가가 안 된 형제 자매들은 신씨 자녀들의 법적 부양 의무자가 되어 있다. 연석회의 지원단 관계자는 6일 “군복무기간 단축 혜택 부여, 상근예비역 또는 공익근무요원 복무, 가족 주거지 인근부대 배치, 자녀 출산·양육시 휴가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연석회의 지원단은 최근 국방부에 신씨의 사례를 들어 다자녀를 가진 입대 예정자의 병역 혜택 방안을 공식 문의했다. 하지만 병역 혜택은 물론 주거지 인근 부대 배치 인센티브도 주기 어렵다는 입장만 전달받았다. 극소수의 병역 혜택을 위한 병역법 개정은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국방 인력자원 부족현상이 해소되는 2011년 이후엔 논의가 가능하다고 언급,‘미래의 과제’로 넘기려는 태도다. 특히 거주지 인근 배치 거부에 대해 연석회의 관계자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8월 육군은 ‘군인·군무원의 인사관리 제도’를 개선, 하사관 이상의 군인 및 군무원이 셋째 자녀를 출산했을 경우 본인이 희망하는 지역으로 보직을 옮길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는 현재 우리 군내 기혼 사병이 몇 명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혼사병 수가 얼마나 되는지, 이들이 몇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한 적이 없으며, 자료도 없다.”고 밝혔다. 연석회의 지원단 관계자는 “기혼자라고 무조건 병역혜택을 주자는 게 아니라, 가족간 부양과 생계 문제 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군 인력자원 관리에 지장이 없는 한 복무중인 기혼사병에 대해서도 다양한 배려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06일 TV 하이라이트]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영국에서는 식품에 첨가된 설탕과 소금, 지방 함량을 어떻게 표기할지를 두고 정부와 식품업계가 줄다리기 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과 소금, 설탕 성분이 많으면 빨강, 중간은 오렌지, 낮으면 녹색으로 표기하는 교통신호등 방식을 업계에 권고했다. 그러나 식품업계는 이를 거부하고 함량을 숫자로 표기한다.   ●한자퀴즈王(EBS 오후 8시) 손발이 척척 맞는 쌍둥이 남매팀 ‘둥이’. 한자는 친구다 선후배팀 ‘자야’. 한자퀴즈王의 동방신기가 되겠다는 사제팀 ‘사제유친’. 한자 대결의 최강자는 우리다 ‘강호현욱’. 얼굴도 부전여전 한자도 부전여전 부녀팀 ‘투영스’. 팽팽한 대결, 과연 어느 팀이 결정전에 올라 한자퀴즈王에 도전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50분) 작은 체구에 귀염성 가득한 7살 현수가 보여주는 살벌한 공포. 누나에게 주먹을 날리며 거침없이 대드는 현수. 이제는 말리는 엄마조차 현수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리모컨, 파리채, 심지어 가위까지 던지는 현수의 행동에 엄마도 누나도 꼼짝 못한다. 반항아 현수를 위한 해결책이 공개된다.   ●거침없이 하이킥(MBC 오후 8시20분) 해미는 민용과 민정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문희에게 보여준다. 덕분에 문희에게 서선생과 사귀냐며 추궁을 받게된 민용은 화가 나서 해미에게 자기가 벼르고 있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민호가 해미에게 참고서 살 돈을 타는 것을 본 윤호는 자신도 달라고 해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딸을 넷이나 낳았지만 지용씨에겐 늘 철부지 딸 같은 아내 박묘행씨.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체육대학의 선후배로 만난 이들이기에 묘행씨는 선배에 불만 한번 얘기할 수 없었다.15년 동안 전업주부로 시부모님 모시고, 네 딸을 키운 묘행씨는 2년 전부터 발레 강사와 스트레칭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등의 생활습관병과 암, 노화. 이러한 질환의 주범은 바로 체내 활성산소다. 대표적인 기호식품인 차와 커피, 와인에는 몸에 나쁜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들에 다량 함유된 노화를 예방하는 항산화 성분의 효능에 대해 입체 분석한다.
  • [아프간 폭탄테러 한국군 사망] “잘 있다던 내 아들, 4월이면 귀국인데…”

    [아프간 폭탄테러 한국군 사망] “잘 있다던 내 아들, 4월이면 귀국인데…”

    “곧 귀국을 앞두고 있어 몸 건강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숨진 윤장호(27) 병장의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특히 윤 병장은 아프가니스탄 근무를 마치고 4월 초 귀국해 오는 6월 초 전역이 예정돼 있던 터라 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자원 말리지 못한 내 잘못” 이날 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집에서 비보를 접한 아버지 윤희석(64)씨는 “아프가니스탄에 가겠다고 자원했을 때 위험하다고 반대를 했다. 굳이 가겠다고 고집을 해서 보냈는데 그때 말리지 못한 내 잘못”이라며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윤 병장의 어머니 이창희(55)씨는 남편으로부터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우리 아들 어떡해…”라며 쓰러지며 오열했다.2남1녀 중 막내인 윤 병장은 중학교 2학년때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인디애나 대학 경영학과를 마치고 남침례 신학대학 대학원을 한 학기 다닌 뒤 2004년 12월 귀국했다. 미국 시민권자는 아니었지만 ‘경영대학원 진학’ 등으로 입대를 더 연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윤 병장은 2005년 6월 특전사 영어 통역병으로 자원 입대했다. 지난해 9월14일 다산부대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자원해 파병됐고, 올 4월 초순 만기 근무를 채워 귀국을 한달 남짓 앞두고 있었다. 지난해 9월2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가 그의 마지막 편지가 됐다. 그는 편지에서 “엄마, 아빠에게 안녕 몸 건강히 잘 있지?여기 상황은 괜찮아. 한국에서 군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미군이 많아 영어도 쓰고 한국 요리사가 와서 밥해 주고 반찬도 많고 군대 밥보다 맛있고 고기도 끼니마다 나와. 당분간 엄마랑 아빠랑 둘이 있겠네. 형이랑 누나도 없는데 심심하겠다. 여긴 위험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6개월 동안 건강하게 잘 있다 갈 테니 그때 봐요. 그럼 나중에 전화할게.”라고 적었다. ●윤병장 부모 내일 현지로 한편 윤 병장의 부모는 호주에서 전도사를 하는 큰형 장혁씨가 귀국하면 다음달 1일 오전 10시 전세기편으로 쿠웨이트로 출국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실려온 윤 병장의 시신을 확인할 예정이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얼굴기형 수술 받은 학생9명 특별한 입학잔치

    얼굴기형 수술 받은 학생9명 특별한 입학잔치

    “이제 크게 웃을 거예요. 이제까지 웃지 못했던 것까지 전부 다 합쳐서요.” 23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이 병원의 ‘밝은 얼굴 찾아주기 캠페인’을 통해 얼굴 기형치료를 받은 저소득층 아이들과 청소년 9명의 초·중·고등학교 입학축하 행사장에서였다. 그동안 선천성 얼굴 기형이나 상처 흉터로 인해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집안 형편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모처럼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민영(7·충남 보령군)양은 목젖과 입천장, 코뼈가 뭉그러진 얼굴로 세상에 태어났다. 이불보에 싸인 민영이의 일그러진 얼굴에 깜짝 놀란 어머니 이현희(31)씨가 생후 100일이 지난 뒤 1차 성형수술을 시켰지만 수술 흔적은 여전했다. 민영이는 매일 유치원에서 코와 입이 이상하다는 놀림에 시달렸다. 이씨는 “한번은 몰래 유치원에 가서 창밖에서 봤더니 따돌림 당해 한쪽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민영이를 보고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코와 입이 기형이다 보니 비장애 아이들보다 말 배우기도 느려 매일 회초리를 맞아가며 읽고 말하기 연습을 따로 해야 했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전셋집에서 근근이 꾸려가는 형편 탓에 재수술은 꿈도 꾸지 못하다 지난해 8월에야 한 병원의 도움으로 얼굴이 거의 제 모습을 찾았다.“다음달 들어가는 학교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할 거예요.” 민영이가 책가방을 꼭 부여잡으며 말한다. 강원도 화천에 사는 정세희(9·여)·예찬(7) 남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남매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돌출되는 크루존씨병이란 걸 앓았다. 집을 나간 부모 대신 할머니 최혜자(62)씨의 손에서 자란 세희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본다.”며 친구도 없이 혼자만 지냈고 예찬이 역시 누나와 함께 행동했다. 학교까지 가지 못하던 남매는 2005년 7∼8월 잇따라 수술을 받고 다음달 뒤늦게 초등학교 책가방을 메게 됐다. 선천성 소이증(小耳症)으로 왼쪽 귀가 자라지 않은 문대일(17·전남 순천군)군은 평소 다른 사람들이 자꾸 자신의 귀만 바라보는 것 같아 대인 기피증까지 겪었다. 중학교 땐 스포츠 머리인 친구들과 달리 귀를 가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길렀지만 그것마저 ‘다름’의 증거가 됐다. 문군은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갈비뼈와 사타구니살을 떼어내 귀 모양을 만드는 수술을 받았다.“부모님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했지만 그렇게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어요. 귀만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진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2004년 4월부터 캠페인을 열어 모두 210명에게 ‘밝은 얼굴’을 찾아준 삼성서울병원 사회사업실 구미현 사회복지사는 “수술 전에는 거울 보기조차 거부하며 침울하게만 지내던 아이들이 수술 뒤 웃음을 되찾으면서 새로운 환경이 시작되는 입학 이후의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돼 우리도 보람차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깔깔깔]

    ●아내의 과거 2년의 결혼생활 동안 만득이는 여전히 아내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었다. “에이, 괜찮아. 말해봐, 몇 명이었어?” “자기, 내가 말하면 발작할걸?” 만득이는 절대로 화내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말해줄 것을 설득했다. “알았어. 절대 화내지마.”라며 아내는 손가락을 꼽으며 수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그리고 자기,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셋…”●접시 깬 사람은? 어느 집안에서 누나와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아빠와 아들은 TV를 보는데 갑자기 쨍그랑 소리가 났다. 정적 속에서 아빠가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누가 접시 깼는지 보고 와라.” “아빠는 참. 그것도 몰라? 엄마잖아.” “어떻게 아니?” “엄마가 아무 말도 안 하잖아.”
  • [씨줄날줄] 설 인사말/황성기 논설위원

    설 연휴를 앞둔 어제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지식 검색어에는 ‘새해 인사말’ 혹은 ‘설날 인사말’이 1위에 올랐다. 설이면 으레 있는 일이려니 하지만 포털을 검색하는 주력 소비층을 감안하면 젊은층이 급한 마음에 검색어 입력을 많이 했을 것으로 어림된다. 설 인사말까지 포털에서 찾는 세태가 박정하게 느껴지긴 해도 부모를 비롯한 가족에게 건넬 예의 바르고 적절한 인사를 검색까지 하는 정성은 갸륵하다. 인터넷 시대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인터넷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아무리 검색해도 써먹을 인사말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초등학생이라 밝힌 어느 네티즌은 “만수무강하세요.”라는 말을 형·누나들이 앞에서 써버리니 순서가 맨 마지막인 자신은 늘 인사말이 궁하다며 좋은 말이 없느냐고 질문했다. 조회가 6000회 가까운 이 질문의 답변은 이렇다.“제 용돈 많이 주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하시는 일 잘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답변은 “애교로 보일 수 있게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좋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해마다 세배를 하거나 인사를 나눌 때 인사말이나 덕담에 빈곤함을 느끼기는 어른이 되어 자식까지 둔 지금이 되어서도 초등학생 네티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예절문화원의 남상민 원장은 가족끼리 나눌 설날 인사말에서 지켜야 할 몇가지를 일러준다. 흔히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들 하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써서는 안 된다고 한다. 복을 내리는 것은 윗사람뿐이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연령에 관계없이 건강을 빌고 일이나 공부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만 지난 한해의 노고에 대한 격려, 도와준 데 대한 감사의 말을 먼저 하는 게 좋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어른들에게 올리는 인사말, 아이들에게 내리는 덕담만 생각하지 말고 부부간이라도 꼭 절을 나누고 인사말을 주고 받으라고 충고한다. 이런 원칙들만 머릿속에 넣어둔다면 가족의 특성에 따라 인사말·덕담에 얼마든지 상상력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지혜가 담긴 말, 상대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 그리고 격려와 고마움을 담은 인사말을 오늘 하루 생각해 두고 설날 아침을 맞는 건 어떤가.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남매 해국장교 안미영·승화씨

    “동·서 영해 방위, 오누이가 책임집니다.” 아버지를 이어 2대째 ‘바다 지킴이’로 나선 남매 장교가 있다.2함대 전투정보관 안미영(29·사관후보생 98기) 대위와 1함대 상황장교 안승화(26·해사 59기) 중위다. 누나가 서해를, 동생이 동해바다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해병대 출신 아버지 밑에서 바다와 군에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자랐다. 임관은 사관후보생인 누나 미영씨가 2년 빨랐지만 해군과의 인연은 사관학교에 입학한 동생 승화씨가 먼저 맺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 질문1‘엿 먹어라.’가 왜 욕이 됐을까.1964년 12월 전기 중학입시 공동출제 선다형 문제 중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정답으로 채점된 것은 ‘디아스타제’. 하지만 보기 중에 ‘무즙’이 있었는데 무즙을 정답으로 표기했다가 낙방한 학생의 어머니들이 법원에 제소하는 등 집단항의에 나섰다. 급기야 직접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관련기관 등에 찾아가 “엿 먹어라! 무즙으로 만든 이 엿 먹어봐라!”하며 엿을 들이댔다. 결국 당시 한상봉 문교부차관과 김규원 서울시교육감이 사표를 냈고 무즙을 답으로 썼다가 낙방한 38명은 정원에 관계없이 경기중학에 합격했다. # 질문2 엿장수는 1분에 가위질을 몇번이나 할까.‘초딩’시절, 시골동네에 ‘엿장수’가 찾아와 가위질을 하며 “엿 바꿔먹으라.”고 소리칠 때 여러번 들었던 추억의 문제다. 초롱초롱 눈알을 굴려가며 애써 답을 생각하다가 “야, 그거야 엿장수 맘대로지.”라는 답을 듣고 허탈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릴 적 가장 반가웠던 손님은 뭐니뭐니 해도 ‘엿장수’였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절겅대는 가위소리가 들려오면 약속이나 한듯이 다들 쪼르르 달려가 엿장수의 뒤를 따랐던 그 때 그 시절. 오는 날짜도, 가위질 하는 것도 ‘엿장수 맘대로’였지만 늘 반갑기 그지 없었다. 다 떨어진 고무신 한쪽, 망가진 양은 냄비 조각, 심지어는 누나의 긴 머리카락까지 내밀면, 엿장수는 끌과 가위로 탁탁 잘라주며 “옜다, 엿먹어라.”하며 던져주곤 했다. 가끔 “쟤는 왜 많이 주고 저는 쬐금만 주나요?”라고 항의하면 “야, 엿장수 맘이여.” 하며 꿀밤을 맞기도 했다. 윤팔도(81) 할아버지. 어쩌면 어렸을 적 동네에서 한번쯤 만났을 법한 추억의 할아버지다. 지난 66년의 세월동안 ‘엿장수’라는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전국 팔도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 원래 이름이 석준이었지만 ‘팔도(八道)´로 바꾼 것만 봐도 그의 인생역정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한때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엿장수들이 모인 엿가위질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국가대표로 인정받기도 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기에 최장수 ‘엿장수’이자 살아 있는 ‘엿가위 예술의 달인’으로 꼽힌다. 더욱 눈길 끄는 대목은 그의 막내아들이 5년 전에 아버지와 합류했고 최근에는 손자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3대째 ‘엿장수 집안’이 된 셈이다. 설날이 가까워오면 자연스럽게 정겨운 시골추억이 생각나기 마련, 그래서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일산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엿장사로 가업을 잇는 이들 3부자를 만났다. 청주에 살고 있는 이들은 때마침 백화점측의 초청으로 설 대목 행사에 참석해 길거리에서 흥겨운 엿판을 벌이고 있었다. “일락 서산에 해 떨어지고 이내 목판에는 엿 떨어졌구나. 청춘 과부 잠못 잘 적에 먹는 엿이요, 큰애기 허벅지맹키로 희건 엿이 왔어요. 부산 동래 사탕엿, 울릉도에 호박엿, 전라도 봉산의 생강엿, 강원도 금강산 생청엿….” 윤 할아버지의 구성진 엿타령이 길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들과 손자는 엿가위로 어깨를 들썩들썩 하며 척척 장단 맞추는 모습에 절로 흥이 돋아난다. 잠시 짬을 낸 윤 할아버지와 마주 앉았다.81세의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게 보였다. 비결을 물었더니 “즐겁게 사는 거여.”라며 그저 호탕하게 웃을 뿐이다. 지나온 인생살이가 간단치 않을터.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8세 때 남사당패에 들어갔다. 왜소한 체구 ㅜ때문에 주로 3층 꼭대기에 올라가는 역할을 맡았다. 잘못되는 날엔 매맞기 일쑤였다.3년 뒤에는 창극단에 들어가 노래를 배웠다. 하지만 배고픔은 여전했다. 14세되던 겨울, 그는 호구지책으로 엿장수로 나섰다. 동네 어른을 통해 충남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경씨가 1000명 산다는 마을)에 위치한 엿방(엿공장)에 취직했다. 이때부터 하루 밥 세끼를 먹게 되면서 엿장수 생활에 만족과 즐거움을 느꼈다. “엿방에 갔더니 장작불 지펴놨지, 엿물로 밥지어 먹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비록 머슴 신세나 다름없었지만 남사당 가락으로 가위질 하며 용돈도 벌었어.” 19세되면서 세상 보는 안목이 넓어지자 홀로 독립한다. 음악을 알고 재주가 남달라 자신감이 더욱 생겼던 것. 우선 몽둥이만 한 엿을 만들었다. 이어 리어카를 구입하고 엿가위 두 개를 장만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어린 아이들은 “몽둥이 엿장수가 왔다.”며 떼지어 몰려들었다. 윤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날이면 “자, 엿먹어라.” 하며 길다란 몽둥이 엿을 몇개씩 집어주기도 했다. 서른 한살 때 군복무를 마친 어느날, 충남 광천의 시골에서 엿판을 벌일 때였다. 창극 노래, 트로트 등으로 이어지는 흥겨운 놀이마당이 한바탕 끝나자 어여쁜 처녀(김종숙·70·지금의 부인)가 다가와 뒤따라가겠단다. 가만 보니 부잣집 딸이었다. 고생 바가지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처녀의 진심을 알고는 친척이 사는 논산으로 함께 야반도주했다. 결국 연산면 살포리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엿장수한테 누가 딸을 주겠나 싶어 결혼 생각을 안 했지. 허긴 엿가위 장단에 처녀들이 담 넘어 올 정도로 꽤나 인기를 모았어. 생각보단 결혼을 일찍했지만 부인은 늘 독수공방이었지. 리어카 끌고 집을 나가면 1년만에 돌아왔으니까 말야. 그러면서 하나 둘 낳은 아이가 나중에 5남매가 되더군.” 1969년 어느날이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큰 엿공장을 운영하는 한 부자의 주최로 서울 신당동에서 전국 엿가위질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호남의 송산갑, 부산의 김항구, 경기·인천의 백대가리, 서울의 윤팔도 등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모였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쌍가위’를 들고 출전한 윤팔도가 최우수상을 차지, 전국 최고수임을 입증했고 부상으로 쌀 20가마를 받았다. 1985년 12월이었다.KBS 전국 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을 받고 방송국 정문을 나서는데 “오라버니 타세요.” 하면서 누군가 승용차 문을 연다. 얼굴을 보니 코미디언 배연정씨였다. 그 길로 간 곳이 서울 돈암동의 유흥업소. 곧바로 무대 위에 올라 ‘물레방아 도는 내력’‘고향무정’‘돌아가는 삼각지’등 세 곡을 불렀다. 그랬더니 5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며칠 뒤에는 MBC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에 초대받았고 이 방송을 본 신소걸씨한테 연락이 와 2년동안 밤무대에 출연했다. 낮에는 엿장수, 밤에는 가수로 활동했던 것이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이북을 제외하곤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지. 엿가락 길이로 따지면 지구 수십번은 돌았을 거야. 그런데 요새는 엿가위 만드는 곳도 없어지고 뭔가 아쉬워.” 지난 2003년이었다. 윤 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막내 아들 일권(36)씨가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일권씨는 “60여년동안 일해온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만약 돌아가시면 엿불림(구전 판소리)도 끊길 것 같았다.”고 의미 부여를 한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일권씨는 2년 전 아버지와 함께 ‘엿불림 음반’(대표곡 ‘엿가위 인생´)을 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가업을 이은 아들은 초보답지 않게 2005년에는 2억원, 작년에는 3억원을 벌어들여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해마다 명절 때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엿판시합이 벌어진다는 일권씨는 “도저히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아울러 “이제는 초콜릿 대신 우리의 전통 엿을 사랑해야 한다.”면서 폐백이나 입학·졸업시즌에 애용되는 엿을 건강식 웰빙 스타일로 바꾸고 있다고 귀띔했다. “엿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인정을 나눠주는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가 해온 66년과 제가 합류해 100년을 꼭 채우겠습니다. 또 제 아들이 100년부터 다시 어어가겠죠.” 손자 경식(13)군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엿가위를 잡아 엿불림을 구성지게 부른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경식군은 휴일과 방학을 이용, 할아버지를 돕겠다며 활짝 웃는다. 인물 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6년 충남 논산 출생 ▲34년 남사당 입문 ▲40년 엿장수 생활 ▲69년 전국 엿장수 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85년 KBS전국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 수상 ▲2002년 윤팔도 전통엿집 개업(충북 청주시) ▲현재 사단법인 전통식품연구회 고문
  • ‘공공의 적들’

    산업자원부 A팀장(서기관·서울 송파구)은 지난 2003년 경기도 고양시 밭 1048㎡를 누나와 함께 샀다. 고양시로 위장 전입하고, 직접 경작하겠다는 내용의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했다. 그 땅은 산자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국제종합전시장(KINTEX)사업부지로 편입됐다. 시세는 당연히 급등했다. 감사원은 이같은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등 비리를 대거 적발했다고 9일 밝혔다. 지난해 3∼5월 건교부, 고양시 등 12개 기관 대상으로 ‘주택공급제도 운영 및 토지거래 허가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인 결과다. ●길까지 내서 제땅값 올려 이에 따르면 주요 부처 공무원뿐만 아니라 정부출연기관 연구원, 공기업 직원, 교사 등 61명이 위장 전입하거나 직접 사업을 할 것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받아 토지를 매입했다가 적발됐다. 대전과 경기 화성시 주택담당 공무원 2명은 미분양·미계약된 아파트 분양권을 불법 취득했다. 안산시 B공무원은 자신이 사들인 임야에 시 예산을 들여 없던 길까지 내서 땅값을 올렸다. 개발이 제한된 이 임야를 부당하게 토지분할까지 하는 과감한 수법을 사용하다가 걸려들었다.4억 3400만여원의 부당 이득이 예상된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한국국방연구원 C차장은 화성시 팔달면 임야를 공장부지로 개발, 토지 가치를 높여 매도하는 방법으로 15억 4000만여원의 매매 이익을 얻었다. ●미분양 아파트 공무원 등에 특혜 공급 대전시 유성구 D공동주택계장과 화성시 공동주택담당자 E씨는 자신이 입주자 모집 승인을 한 아파트 분양업체로부터 아파트 로열층 분양권을 불법으로 취득했다. 분양업체들도 미분양·미계약된 아파트를 빼돌려 3000만∼4500만원의 웃돈을 받고 속칭 ‘물딱지´ 거래를 하다가 적발됐다. 담당공무원, 분양업체 임·직원 등 특수관계인에게 특혜 공급하기도 했다. 특히 주택공급관련 전산시스템 관리가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2003∼2005년 투기과열지구내 28개 주택단지 2만 6000가구를 표본조사한 결과 332명이 유주택자이거나 1가구 2주택 이상의 소유자인데도 당첨이 취소되지 않았다. ●한 사람이 19차례 당첨… 주택전산망 엉망 서울 송파구 F재건축조합원 6명은 투기과열지구 내 1순위로 당첨됐는데도 부적격 당첨자로 검색되지 않아 주택을 공급받았다. 장애인 G씨는 장애인에 대한 주택특별공급제도를 악용,71차례에 걸쳐 위장 전입해 19번이나 특별공급을 받은 뒤 분양권을 전매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적발된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2명 파면 등 중징계와 함께 검찰에 고발 조치하고, 부당 또는 불법 분양받은 471명은 당첨 취소토록 했다.”면서 “건교부에는 주택당첨자 검증시스템 마련 등 제도 개선을 통보했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김형기의 영화, 99가지 모놀로그] 피보다 진한 우정

    [김형기의 영화, 99가지 모놀로그] 피보다 진한 우정

    ‘당신에게 우정은 무엇입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해봤다. 다음은 답변을 일부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믿음/끝까지 같이 있어 주는 것/뜻과 생각이 달라도 같이 있어 주는 것/10년 만에 봐도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듯한 느낌/내 몸과 같이 아프고 기쁘고 그래서 그 사람의 것들을 내 것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해 주는 것/사람한테는 기대하기 힘든 것. 차라리 술이나 동물과 더 쉬운 감정. 그만큼 노력해야 하는 것/침묵마저 편안한 사람/사랑의 다른 말/상대가 신뢰하지 못한 행동을 해도 끝까지 포용해주는 게 진짜 우정이라고 생각/결혼식에 돈 봉투 대신 정성스레 고른 선물 주고 싶은 것/믿음, 추억, 이해…. 생각만 하고 실천 못하는 게으름. 용서, 편안함, 관계의 성실성/서로 비교하지 않으며 끝없는 평행선을 함께 가는 것/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같이 하는 것 등등. ‘올드미스 다이어리(극장판 2006년)’는 외로운 싱글들의 마음이 더더욱 허전해지는 연말, 그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줄 ‘머스트 해브 무비(MUST HAVE MOVIE)’로 극장가에 등장했다.‘올드미스’를 지나 ‘골드미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로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인 미자와 요즘 누나들의 가슴에 훈훈한 바람을 불어넣어줄 연하남 지피디. 연애를 하고픈 사람이라면 결코 이들의 이야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원작에서 보여줬던 세 여성간의 우정은 양념에 그쳤다는 점이다. 아픔과 외로움을 함께 극복하고 다독이는 그녀들의 우정이 과연, 사랑 만들기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여성들이 보여주는 남다른 이해와 우정을 확인하고 싶다면 영화 ‘카렌다 걸’을 적극 추천한다. 반면, 남자들의 우정은 비밀을 공유하는 데서 시작되고 돈독해져간다. 태생적 바람기와 밤문화의 공유에서 이뤄지는 남자들의 우정은 ‘사이드 웨이(Sideways,2004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와인을 마시고, 골프를 즐기며, 햇빛을 만끽하는 한가로운 휴식을 즐기기 위해 떠난 이들의 여행은 주체할 수 없는 성욕과 노골적인 배신, 급기야 신체적인 손상으로까지 이어지다가 예기치 않은 화해의 순간과 마주한다. 인생의 갈림길에 선 평범한 두 남자가 결혼을 앞두고 떠난 와인 산지 여행에서 저지르는 실수는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을 저미며, 이들이 마주치는 갖가지 삶의 기복과 일탈, 뜻밖의 화해의 순간은 잔잔한 감동의 웃음을 자아나게 한다. 칼럼의 제목을 막상 피보다 진한 우정이라 정해놓고 보니 얼마간 겪었던 사람의 들고남이 여전히 선명하다. 작은 오해와 그것으로 인한 다툼 그리고 예상치 못한 편가르기와 짓궂은 험담과 루머들.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기도를 해보았으나 모두들 가슴에 상처들을 안고 현재는 소강상태이다. 누구는 잊혀질 테고, 누구는 화해하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데에 얼마간은 주저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홀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잔인하고 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길을 가는데 함께 걸어갈 벗 하나 얻는 것이 최고의 선물임을 아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그런 벗 하나 얻는 과정일까. 나이들수록 부침이 잦은 ‘관계’의 정의 속에서 당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에게 우정은 무엇입니까?” 시나리오 작가
  • [주말탐방] 고시학원 스타강사 특별한 뭔가 있다

    [주말탐방] 고시학원 스타강사 특별한 뭔가 있다

    ‘신이 내린 직장’을 얻기 위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젊은층들이 늘고 있다. 이들에게 스타급 강사는 누구보다 소중한 ‘스승’이다. 채한태 교수는 공무원 시험학원가에서 1,2인자를 다투는 헌법 강사다.SS(슈퍼스타)급으로 통한다. 올해 강의하기로 한 곳만도 6∼7곳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학원가에서는 강사를 ‘교수’라고 부른다. 실제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예우상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채 교수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 연봉 얼마나 될까 이른바 고시학원가로 불리는 신림동과 노량진에 자기 이름을 걸고 강의를 하는 강사들은 대략 120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정말 자기 이름만으로 학생들을 끌어올 수 있는 이른바 SS(슈퍼스타)급 강사는 손을 꼽는다. 이들의 연수입은 얼마나 될까? 학원가에서 이들의 연봉은 특급비밀에 부쳐져 있지만 10억∼20억원은 거뜬히 번다는 게 정설이다. 일반적으로는 학원과 강사가 수입을 일정 비율로 나눈다. 계약금은 없다.SS급 강사를 따라 학생들 수백명이 움직이기 때문에 각 학원들은 어떤 강사를 영입하느냐가 수입과 직결된다. 강사 입장에서도 소위 잘 나가는 학원과 계약하는 것이 좋다.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SS급 강사의 경우 300명에서 많게는 500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강의’를 2∼4개 정도 한다.1인당 수강료는 7만∼8만원 선. 여기서 벌어들이는 것만 10억원 가까이 된다. 동영상 강의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짭짤하다. 현장 강의를 녹화한 것을 팔기 때문에 ‘손 안 대고 코 푸는’격이다. 수강료는 현장 강의의 50∼80%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규모가 전국적이기 때문에 더 크다. 책을 팔아 버는 수입도 만만치 않다. 보통 학원과 별도로 계약하기 때문에 인세가 고스란히 수입으로 연결된다.10년 넘게 베스트셀러인 경우도 많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24시가 모자라는 스타강사 채한태씨의 하루 “암기하면 안 돼요. 암기하면 포인트를 못 잡습니다.” # 오전 9시 한양대학교 공학관 2층의 강의실.70여명 학생들의 볼펜 굴러가는 소리, 눈알 돌리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하다. ‘외우지 말라고?’,‘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학생들의 속을 꿰뚫은 듯 강의는 계속된다. “상식적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지난 대선 때 ○○당이 ‘국회를 놀이터로 만들겠다.’‘예비군제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어요.○○당 당원인 초등학교 교사가 맘 먹고 아이들한테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그래서 초·중·고교 교사는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는 겁니다.” ‘아하∼’그제서야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선이 임박했기 때문에 출제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학생들 노트엔 ‘밑줄 쫙 별표 하나’가 그려진다. 강의는 4시간이나 계속됐다. # 오후 1시20분 학교 수업을 예정보다 10분이상 늦게 마친 채 교수는 서둘러 중앙대학교로 향했다.4년째 계속해오고 있는 헌법과목 수업을 협의하기 위해서다. 매주 금요일에 특강을 하고 있고, 새학기부터는 3학점짜리 과목을 가르칠 예정이다. 그는 아침마다 6개 조간신문을 빼놓치 않고 읽는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늘 학생들에게 뉴스 얘기를 해줍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아는 것도 시험 공부거든요.” 3시간 이상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노트북을 챙겨서 수시로 뉴스를 체크한다. 대통령 신년연설도 ‘다시보기 서비스’로 챙겨봤다고 한다. # 오후 2시50분 채 교수는 노량진의 근처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뚝딱 점심을 해치우고 학원 2층에 자리잡은 연구실로 몸을 옮겼다. 연구실에는 질문을 하려는 학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오후 3시30분 인근의 독서실 원장이 찾아왔다. 올 들어 처음 시작한 특별관리반 학생들을 위해 독서실과 계약을 맺기로 했는데, 터가 좋아 합격률이 높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곧 이어 특별관리반 강사진들의 회의. 채 교수의 목표는 그가 가르치는 7급공무원시험 준비반의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는 것이다. 특별관리반은 20명으로 된 소수 정예반이다. 수험 스케줄 관리는 물론 수시로 상담도 해준다. 올해 처음 시도하는 것인 만큼 채 교수의 기대도 크다. # 오후 4시30분 신문사에 보낼 원고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무가지와 공무원 시험 전문지에 정기적으로 원고를 보내고 있다. 돕는 꼼꼼한 조교가 있지만 오늘은 지난주에 오·탈자가 뒤늦게 발견되었기 때문에 원고 마무리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고 한마디했다. # 오후 6시40분 오후 단과반 수업을 위해 그는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바로 이어지는 수업엔 수강생이 500명쯤 되는 대형 강의다. 학생들은 앞자리를 잡으려고 2∼3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 “아침 9시에 강의가 있을 때는 새벽 5시반부터 미리 와서 기다리는 학생들도 많아요. 주로 여학생들이죠. 요즘은 여학생이 반쯤 되지만 10년전만 해도 1,2명밖에 없었어요. 그땐 이름도 다 외웠었는데…(웃음).” # 오후 10시30분 오늘의 강의는 끝났지만, 채 박사는 정작 이 시간부터 또 다른 공을 들인다.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를 관리하는데 회원이 3만명이 넘는다. 그는 학생의 글에 무조건 24시간내에 답을 하기로 유명하다. 글이 많을 때는 답글을 다는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채 교수의 성실함 탓인지 합격한 후에도 그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다. 지방에 사는 학생 중에는 매년 쌀이나 귤, 매실주 같은 것을 보내오기도 한다. 올가을엔 난생 처음 주례도 서게 됐다며 쑥스러워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하는 학생들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20년후 이 나라를 이끌어갈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면 더 뿌듯하죠.”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강자생존 그들만의 비결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쟁쟁한 강사들 사이에서 살아 남으려면 실력은 기본이고,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다양한 ‘+α’가 필요하다. 옷차림은 기본 전략이다. 노량진 공무원 시험가 강사들은 반드시 양복 정장을 입는다. 학생들에게 신뢰와 무게감을 주기 위해서다. 양복과 넥타이의 색깔을 맞추어야 하고, 요일별로 코디를 달리하기도 한다. 넥타이와 셔츠의 조합도 중요하다. 강의를 할 때는 대부분 양복 윗옷을 벗은 채 하기 때문이다. 유명강사들은 대체로 자기만의 고유 브랜드를 쓴다. 제갈공명=행정, 재정=국어, 민주=국사, 스파르타=영어하는 식으로 강사이름은 쉽게 잊어도 브랜드는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보통은 자신이 쓴 교재 이름과 한 세트다. 아울러 홈페이지나 인터넷 카페를 통한 학생관리를 한다. 시험정보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교실 밖의 수업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시험준비에 지친 학생들에게 형, 누나, 아버지 같은 인생의 상담자가 되어주기도 한다. 인터넷 검색어 광고도 유용한 광고수단이다. 검색창에 ‘국어’를 치면 강사 홈페이지가 나오게 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검색어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좀 더 전통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강사들도 있다. 책걸이, 쫑파티라는 이름으로 오프라인미팅을 갖기도 한다.1년에 몇차례씩 학원 근처에 호프집을 통째로 빌려 한 턱 크게 쏘는 강사도 있다. 일부 강사들은 학생을 끌어모으기 위해 선물공세를 편다. 파일케이스, 노트, 형광펜 등 문구류나 2000∼3000원 정도 하는 제본된 강의노트를 덤으로 주기도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이런 미끼에 좀처럼 동하지 않는다는 게 학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뭐니뭐니 해도 강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3∼4시간짜리 강의를 하루에 2∼3번 하다 보면 목에 피로가 오는 것은 물론이고 기가 빠진다. 수시로 물이나 녹차를 마시거나, 목에 좋은 백년초, 도라지+배즙은 인기 음료다. 강사생활을 하면서 대부분 담배는 끊는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03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의 고장, 전북 김제. 너른 들판의 김제평야를 지나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사찰, 망해사를 둘러본다.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에 올라 땅과 바다와 하늘이 한점으로 만나는 광경을 감상한다. 모악산 기슭에 위치한 금산사를 찾아 미륵전과 주변의 석탑도 둘러본다.   ●스페이스-공감(EBS 오후 10시) 세상과의 대화, 소통을 갈망하는 음악 ‘오소영’과 ‘이다오’. 이 둘의 공통점은 조동익, 조동진, 장필순 등이 함께했던 포크음악 공동체인 ‘하나뮤직’의 멤버. 조동익의 프로듀싱으로 첫 앨범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확연히 다르다. 이들의 새로운 곡들을 감상해본다.   ●그것이 알고 싶다〈혼테크의 그늘, 혼수파혼〉(SBS 오후 11시5분) ‘결혼은 투자다.’ 혼수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혼수에 대한 부담감으로 차라리 혼자 살겠다는 예비신부부터 아예 재혼시장에서 좋은 상대를 만나겠다는 여성들도 있다. 허세와 거품, 사치로 물든 혼수문화의 실태를 들여다 본다.   ●누나(MBC 오후 7시55분) 지나 할머니는 승주 아버지에게 아들 민준기와 형제의 연을 맺어 한 가족처럼 우애있게 지내자고 한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승주네 식구들은 놀라지만 승주 아버지는 자신도 평생 어머니처럼 모시겠다며 흔쾌히 대답한다. 병원에서 돌아온 수아는 주스 두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가루약을 털어넣는다.   ●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하영은 준호에게 미국에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고, 두 사람은 기한을 정해 놓은 시한부 연애에 빠져든다. 닥터 고와 함께 교외에 나갔던 선영은 준호와 하영이 함께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태섭은 세종이와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입양기관에 보내지만 마음을 잡지 못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KBS1 오전 10시) 적도 아래편 1만 7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섬, 인도네시아. 동부에 자리한 아름다운 섬 발리는 세계 모든 여행자들이 한번쯤 여행을 꿈꾸는 휴양지다. 발리는 휴양지, 관광지의 모습 외에도 이 섬만의 독특한 문화를 품고 있는 섬이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보석, 발리로 떠나본다.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이석행 민주노총 5대위원장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이석행 민주노총 5대위원장

    이석행(48)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은 온건파인가, 강경파인가. 이 위원장을 온건파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29일 그의 첫 기자회견 뉴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온건파라더니 아니네.” 이 위원장은 회견에서 “파업투쟁을 통해서 노동자의 조직역량이 강해져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의 대화 조건으로 장기투쟁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180명의 구속자 문제 해결을 내걸었다. 마오쩌둥을 연상시키는 ‘현장대장정’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 잦은 파업, 강경시위는 시민들만 짜증나게 했을 뿐 아무런 위력이나 실익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지도부 비리사건, 내부 폭력사태 등과 겹쳐져 민주노총의 위기론까지 자초했던 터다. 이 상황에서 이른바 ‘온건파’의 당선은 변화를 기대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꽤 센´ 발언으로 이런 예상에 물음표를 찍게 했다.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만난 이 위원장은 뜻밖에 사람좋은 ‘배추장수´ 인상이었다. 충청도 억양, 내려간 눈꼬리에 시종 미소가 입가를 떠나지 않아 외모로만 본다면 분명 그는 ‘온건’했다. ▶해고노동자 출신인데 어떻게 해고됐습니까. “대동중공업이 두원그룹으로 매각된 다음 해인 1991년 해고됐습니다. 당시 윤석양 이병이 양심선언을 하고 보안사의 정치사찰 문서를 공개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제가 267번째로 나왔습니다. 조합원 20명의 임금을 옷장에서 훔쳐 해고됐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게 ‘말’지는 물론 주간 노동자신문에 박스기사로 실린 거예요. 너무 분하고 황당하여 보안사 앞에 가서 ‘보안사 해체하라’고 유인물을 돌리며 항의했죠.” 회사는 항의하는 그를 오히려 ‘회사 무단이탈’‘회사 명예훼손’을 이유로 해고했다. 더욱 황당해져 법에 호소했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졌다. 그때는 젊은 정열이 넘쳤고,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믿던 때였다. 사법부에 대한 절망과 불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 노조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전북기계공고를 나왔습니다. 정밀가공사 자격증만 따 나가면 잘 살 수 있다고 해 그런 줄 알았습니다. 졸업하고 상공부장관 추천을 받아 진주 대동중공업에 취직했는데 이게 딴판이에요. 일당이 770원이었는데 월급으로 10만원을 받았습니다. 일요일도 없었고, 연장근무를 얼마나 했으면 이만 한 돈을 받았겠습니까. 누가 와서 노조 만들면 일요일과 ‘4대절’ 빨간날은 모두 놀 수 있다고 말해 따라가서 교육부장 맡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같은 ‘강성’이 됐나요. “1984년도에 한국노총 1주일 코스 ‘새마을 교육’을 받고 깜짝 놀랐어요. 이름만 ‘새마을 교육’이지 노동 교육이었어요. 김금수(전 노사정위원장), 천영세(민주노동당 의원)씨가 강사로 나왔고, 함께 교육을 받았던 여성노동자들이 서울에 한번 놀러 오라고 해요. 청춘이라 1주일 후 서울로 올라갔죠.” 그때 여성들이 서울대 다니다 현장에 들어온 ‘학출’운동가였다. 노조운동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며 혼을 냈고 이때부터 월2회,1박2일씩 상경 학습이 시작됐다. 다음 해에는 문성현(민주노동당 대표)씨 등을 만났고 이불 속에서 ‘불온서적’을 탐독하기에 이르렀다. 본격적으로 파업을 주도하거나 연대투쟁에 가담하는 운동가가 되었다. ▶해고노동자인데 어떻게 민주노총 조합원 자격이 있었지요. “제가 전과 7범이라 정식 취직은 못합니다. 대신 비정규직으로 작은 공장에서 선반공으로 일하며 서울 동부 금속지역노조에 가입했죠. 비정규직으로 위원장이 된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이 위원장은 선반공으로서 촉망받는 기술자였다. 해고된 뒤는 물론,2005년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금형공장으로 돌아가 선삭 일을 하였다.‘엄마냄새 ’다음으로 ‘기름냄새’가 좋다는 그는 죽을 때까지 현장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현장’을 강조하고 계신데 ‘현장’의 힘을 몰아 더욱 세게 나가는 것 아닌가 걱정됩니다. “맞습니다. 힘이 되는 만큼 교섭을 요구할 겁니다. 지금 걱정이 ‘제조업 공동화’입니다. 남아 있는 굴뚝산업 자동차, 조선, 반도체 정도입니다. 이거라도 제대로 지키는 민주노총이 돼야 합니다. 제조업들이 외국가는데 정부는 서비스산업, 관광산업 외치다 실업률이 이렇게 됐습니다. 힘을 갖고, 정부 정책 초기단계서부터 개입해 들어갈 겁니다. 이렇게 되자면 민주노총이 파업을 해도 콧방귀 뀌는 상황으론 안 됩니다.” 그러나 파업은 수단이지 목적은 될 수 없다고 못박는다. 이 일로 내부에선 욕먹지만 이론이 아니라 체험으로 굳어진 신념이기에 현장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현장대장정은 앞으로 6개월간 텐트를 들고 떠나려 한다. 우선 2월 한달간 서울 사무직을 순회한 후에는 20만 조합원이 파업 안되면 촛불집회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낼 작정이다. ▶이수호 전 위원장 때 추진했던 사회적 교섭 재개를 기대해도 될까요. “우리 의견을 반영하는 시스템이 되면 전체 조합원의 찬반투표를 거쳐 그 힘을 받아 들어가겠습니다. 정부가 틀 만들어놓고, 받을래 안 받을래 하는 식으론 안 됩니다. 현장에는 교섭하자는 소리가 높습니다.2004년 당시, 정부와 민노총 간에는 노사정·노정의 중층적 교섭틀이 합의돼 가고 있었습니다. 실무자들이 대화를 거부해 깨졌지요. 이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데서부터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폭력적인 거리 시위에 시민들이 지쳐 있는데요. “비정규 법안, 자유무역협정(FTA) 거리 시위는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가족에 한 명 꼴이나 되고 FTA는 민족 정체성과도 관련된 일입니다. 또 임금인상 요구만으로는 민주노총 존재의미가 없습니다. 제도개선, 정치운동을 통해 소외 계층의 공감을 얻어야지요. 다만 폭력시위는 다분히 유도된 측면도 있지만, 오는 8일 공식 취임식 때 비폭력투쟁을 선언하겠습니다. 경찰이 밟고, 잡아가도 저항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경영계는 산별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들을 테이블로 끌어낼 복안은 있습니까. “산별노조가 정착되면 기업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을 설득하겠습니다. 주택, 교육, 의료비 등 기업의 후생복지비 지출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부분을 정부와 함께 교섭하면 기업이나 노동자나 걱정없이 일할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노동장관을 만나겠고, 산자부, 행자부, 교육부 등 누구라도 찾아가겠습니다.” 이 위원장은 누구와도 대화를 피하지 않겠다며, 자신은 ‘더디게 발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열려 있음을 뜻하는 이 말은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유인 듯도 싶었다. yshin@seoul.co.kr ■ 이석행 위원장은 1958년 충남 청양 출생. 광산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이후 기성회비를 한번도 못내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14세 때 광산에 들어가 아침 여섯시부터 노동자로 일하고 밤 1시까지 재건학교에서 공부한 뒤 귀가하는 생활 끝에 학비를 모아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학비를 보태주던 누나가 결핵에 걸리는 바람에 서울로 올라가 구두닦이를 했다. 또다시 2년간 돈을 벌어 고향에 내려와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는 박정희 대통령 때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정책적으로 세운 전북기계공고(익산)를 다녔다. 돈이 안 들고 취직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977년 대동공업에 병역특례자로 입사해 이때부터 금속노동자가 됐다.1980년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위원장을 2회 지냈다. 해고된 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차장, 전국자동차산업연맹 부위원장을 지냈고 1988년 전국금속산업연맹 부위원장을 거쳐 2004년 민주노총 4기 이수호 위원장의 러닝메이트로 사무총장이 됐다.2005년 민주노총 내 금품비리 혐의로 지도부가 총사퇴할 때 물러났다. 민주노총 내 온건파인 국민파로 5기위원장 당선. 월수 150만원 정도의 선반공 임금과 강의료, 아내가 액세서리에 구슬을 붙여주고 받는 돈 60만원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다.
  • [씨줄날줄] 하노이 제인/함혜리 논설위원

    1972년의 미국은 베트남전 반대시위로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었다. 반전뉴스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 중 한명이 할리우드의 반체제 스타 제인 폰다였다. 폰다는 그해 2월 개최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청중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오늘은 안 하겠다.”라고 말하고는 퇴장해 버렸다. 폰다는 같은 해 7월 미국정부의 거듭된 만류를 무릅쓰고 공산 베트남의 본거지인 하노이에 들어가 적극적인 반전운동을 펼쳤다. 하노이에서 베트남 전통 복장 차림으로, 베트남군의 대공포앞에서 반전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르는 폰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하노이에서 행한 반전 활동으로 그녀는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반역자라는 비난 속에서 그녀에게는 ‘하노이 제인’이란 닉네임이 붙었다. 명배우 헨리 폰다의 딸이며 피터 폰다의 누나인 제인 폰다는 좌파 자유주의자로 60년대말∼70년대 초 인종차별 철폐와 반전, 여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초기의 통속적인 영화와 달리 전성기에 출연한 인형의 집(1973년), 줄리아(1977년), 귀향(1978년) 등은 좌파 자유주의자인 그녀의 성향을 대변해 주는 영화들이다. 연기 활동 외에도 80년대에는 에어로빅 운동법을 전파하며 건강한 미국의 중년을 상징하는가 하면 미디어 재벌 테드 터너와의 재혼과 이혼 등으로 꾸준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가 어느덧 고희를 맞았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하노이 제인’이 34년만에 다시 반전운동의 선봉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폰다는 지난 27일 워싱턴 내셔널몰에서 열린 대규모 이라크 반전 시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폰다는 “나에 대한 거짓된 이야기들을 우려해 지난 34년간 반전집회에서의 연설을 삼갔지만 이제 침묵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면서 “베트남전 철군 결정을 내리는 데 6년이 걸렸다. 이라크전은 3년이면 충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 연말이면 만 70세가 되는 할머니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폰다. 그녀는 여전히 멋졌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27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신나는 겨울놀이와 추억의 먹거리들이 마련된 겨울축제의 현장, 포천으로 떠난다. 포천에서 열리고 있는 동장군 축제를 찾아 논밭 얼음에서 즐기는 얼음썰매와 백운계곡 산비탈 눈썰매장에서 짜릿한 눈썰매도 타본다. 나무를 톱질하며 산촌체험도 해보고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산골짜기도 유람해 본다.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EBS 오후 9시30분)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어떻게 되겠지.”라며 반복되는 일상. 미운 오리새끼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200년 전 안데르센의 동화를 현대의 일터에 탁월하게 적용한 ‘미운 오리새끼의 출근’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자.   ●그것이 알고 싶다(SBS 오후 11시5분)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3.5%가 신앙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종교 국가인 관계로 종교 간의 갈등이 적지 않다. 특히 제사나 혼례를 둘러싼 가족간의 종교 갈등은 가족화목을 저해하고, 이혼·가출 등 가정파탄을 부르기도 한다. 설날을 앞두고 종교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본다.   ●누나(MBC 오후 7시55분) 경찰서에 가서 미리 사채업자를 고소했던 승주는 혁주와 함께 공원에서 사채업자를 만난다. 주변 눈치를 살핀 사채업자는 의심스러운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승주 남매를 비웃는다. 건우가 학교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수아는 학과장에게 가서 왜 돈 보고 학원으로 옮긴 작자에게 다시 강의를 주냐며 따진다.   ●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하영은 준호에게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점점 더 다가선다. 준호는 죄책감도 없이 지연 몰래 하영과의 만남을 즐기기 시작한다. 태섭은 종민의 부탁으로 어머니의 목걸이를 사러 나갔다가 지연을 만난다. 태섭은 지연의 추천대로 목걸이를 구입하지만, 망가진 목걸이라는 것을 알고 화가 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KBS1 오전 10시) 태국의 수도이자 관문이 되는 도시 방콕.1782년 라마1세 국왕 때 세워진 방콕은 차오프라야강 기슭에 위치해 발달한 도시다. 차오프라야강을 따라 늘어선 수상가옥과 도로의 체증을 피해 이용할 수 있는 수상버스는 태국의 명물로 손꼽힌다. 미소를 품은 물의 나라, 태국 방콕으로 떠나본다.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군의관 출신 첫 3성 장군 김록권 의무사령관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군의관 출신 첫 3성 장군 김록권 의무사령관

    “어머니 앞으론 저를 장군님이라 불러주세요.”천신만고의 경쟁 끝에 별을 단 아들이 감격에 겨워 어머니께 했다는 얘기라고 한다. 별을 다는 순간부터 신분은 장관급 장교가 된다. 별을 달기 전보다 대우가 몇십가지는 달라진다고도 한다. 김록권(53) 중장. 별이 세개인 의무사령관이다. 지난해 12월1일 의무병과에서는 최초로 3성 장군에 올라 관심을 끈 인물. 고 노충국씨 위암 사망사건 등 줄이은 군의료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던 뒤라 3성장군의 탄생은 정부의 강력한 군의무 개선 의지로 읽혔다. 그러나 그는 군 안팎에서 철저한 업무는 물론 독특한 개인적 소신과 실천으로 더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경기도 분당의 육군 수도병원 집무실에서 만난 김 사령관은 소문대로 그가 왜 창군 이래 의무병과로는 첫 3성장군이 됐는가를 웅변했다. 그의 요즘을 요약한다면 두 가지 전도사를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군 의료에서 가장 취약한 고급인력 확보를 위해 군의관 직의 매력을 전하는 ‘군의관 전도사’. 또하나는 사생활 측면에서 문자 그대로 자신의 신앙에 충실한 종교적 전도사다. 먼저 군의관 관련 질문부터 해보았다. -현재 군 의료인력은 임상경험이 거의 없는 단기 군의관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병사들이 거의 실습 수준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단기 군의관이라고 해도 의사 자격을 가지고, 소정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임상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직업적으로 일하는 장기 군의관은 전체 군의관 중 3%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정원의 25%밖에 채우고 있질 못합니다. 국·공립 병원의 58% 수준에 머물고 있는 보수체계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급인력을 군에 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군의무발전추진계획’에 따라 대우를 개선하려고 합니다. 올해 ‘군의관 임용 등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해서 2008년까지는 국·공립병원과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를 높이겠습니다. 또 우수한 인력 선점을 위해 국방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미 각 의학대학원에 정원 외 40명을 더 뽑아 미래의 군의관으로 위탁교육한다는 데 합의가 돼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의사로서 군의관으로 일하는 것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부족할 뿐이지 일반사회에 못지 않은 지위와 명예, 보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군에서는 장군으로 승진할 수도 있고, 대규모 조직을 관리할 수 있는 기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와 국민 전체를 생각하면서 일하는 데서 느끼는 보람도 특별합니다.” 군의관이라고 누구나 다 장군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더니,“현재도 정원의 75%가 부족한데 무슨 큰 걱정이냐.”며 내년부터는 의무병과의 장군 숫자가 현행 4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나게 돼 문호는 더 넓어지는 것이라고 정색을 한다. 사실 김사령관은 앉은 자리에서 계급만 3성장군이 된 것이 아니다.‘군의무발전 추진계획’에 따라 앞으로 의무사령관의 역할 자체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의무사령관은 16개 군병원을 관장하는 ‘의료원장’격에 불과했다. 반면 병사들의 의료 불만이 주로 발생하는 야전은 각 군에 속해 의무사령관의 소관 밖에 있었다. 이번 승급은 다원화된 의무지휘 체계를 단일화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의무사령관이 국방부 의무본부장이 돼 육·해·공군 의무를 통합 관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무병과 장군 숫자도 6명 늘게 됐다. -전반적인 군 감축추세와 안맞는 것 아닙니까. 저항도 있을텐데요. “일단 군의무를 단일화하는 것은 미국만 예외지 세계적 추세입니다. 또한 의무 강화는 국민적 요구입니다. 국가가 무기 획득에만 치중하고 가장 중요한 무기체계인 병사의 건강에는 소홀하다면 계산이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나 병과가 커지는 데 대한 어느 정도 역풍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김 사령관은 이 대목에서 언론의 보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군의무발전계획’의 핵심은 병사의 의료접근권 보장인데 언론은 3성장군 배출이나, 국방의학대학원 신설 등 조직적 측면만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군 의무체계가 단일화되면 2500명의 군의관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1차의료를 자유롭게 받고, 후송체계를 통해 군병원에서 고급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에 의료접근권 보장도 명기하도록 했다. 과도기 대책으로 민간서비스 연계, 군야간병원 운영 등도 시행에 들어갔다. -군 의무발전 추진계획은 올해부터 7년간 총 1조 3000억원이 소요되는데 첫해 예산 1200억원은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올해는 제도 개선과 장비 등에 역점을 두고 있으므로 적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군 병원의 기초진단 및 검사장비 보강, 중형 구급차 및 환자수송 전용버스 구매, 전역전 건강 검진물자확보, 전방사단 의무시설 환경개선 등이 우선 착수됩니다. 의무발전계획은 어떻게든 실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올해 군병원에 대해 신임평가를 받겠습니다. 민간병원들처럼 보건복지부와 병원협회 주관의 병원평가를 받는 겁니다. 내부에서는 반대가 많지만 잘 나오면 잘나오는 대로, 못나오면 못나오는 대로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 이야기는 사적인 주제라 공개적으로 거론할 부분은 못된다. 그러나 김사령관의 경우 군 투신 자체가 선교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기에 질문을 던져보았다. -군생활 중 종교를 갖게 됐다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습니까. “의대 졸업하고 결혼한 뒤 5년 동안 아내를 시집살이 시켰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따면서 처음 살림을 나갔는데 그동안 고생을 보상할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싶어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게 된 겁니다.” 장기 군의관으로 눌러앉게 된 종교적 개인체험은 공개하기 뭣하지만, 종교적 신념은 그 후 군과 가정생활을 끌어가는 버팀목이 돼 주었다. 무의촌 진료를 나가 주민들과 옥수수를 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때나 승진에 누락돼 낙심했을 때, 이런 신념이 함께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 강북에 살며 사교육도 제대로 못받았던 자녀들이 바르게 커준 것도 이런 실천적 삶의 영향이 컸던 듯하다. 아내는 지금껏 매달 월급날이면 아이들을 불러 아버지에게 한달 동안 수고하셨다며 절을 하도록 하고 자신도 함께 인사를 한다. 김 사령관도 술담배는 전혀 안하며 주말에도 골프모임보다는 가족을 선택할 정도로 가정적이다. 그렇게 자란 장남이 지금 신학대학 4학년생이다. 김 사령관은 주변을 밝게 하는 얼굴을 가졌다. 중년 이후의 얼굴은 그의 삶을 말한다고 한다. 그의 긍정적 힘이 자식 군대 보낸 부모들의 걱정을 가시게 해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yshin@seoul.co.kr ■ 김록권이 걸어온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와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했다.6남매 중 다섯째로 대식구였지만 가정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부친은 전당포를 자주 들락거릴 정도였다. 의대생일 때 형과 누나까지 집안에 대학생이 셋이었다. 부친이 학자금 대출을 위해 여기저기 보증인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군 위탁 장학생’ 제도였다. 덕분에 본과 1학년 때부터 군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고, 졸업 후 입대해 7년을 군의관으로 근무했다. 의무 복무기간을 지난 후엔 전역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업 군의관의 길을 택했다. 이유는 군복무 중 갖게 된 신앙 때문이었다. 군 선교를 필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다.1990년 국군 현리병원 원장을 시작으로 창동, 부산, 서울지구, 대전 등 전국의 국군병원에서 근무했다. 가는 근무지마다 화장실을 짓고, 교회를 세웠다. 주말엔 무의촌 진료, 여름휴가 땐 해외봉사활동을 다녔다. 국군군의학교장, 육군본부 의무감을 거쳐 2005년 11월 의무사령부 사령관에 취임했다. 사령관 취임 다음해인 2006년 1월 소장으로 진급했고, 같은 해 12월1일 중장으로 진급을 거듭했다. 진급속도도 초고속이었지만, 의무병과 사상 최초의 3성 장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얼핏 순탄하게 출세가도를 달려온 것 같지만 시련도 있었다. 이른바 잘나가는 보직을 벗어나 갑자기 외곽으로 돌려졌고, 동기생보다 진급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장성 진급이 2년이나 늦어 이젠 옷을 벗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상황까지 몰렸다. 갈등하기도 했지만 ‘소명의식’으로 버텼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군 최초로 ‘군의무비전 2015’를 입안한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군의무비전 2020’을 세웠고, 고 노충국씨 위암 사망 사건으로 온나라가 들끓을 때 의무사령관에 올라 ‘군의무발전 추진계획’을 신속하게 내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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