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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장이 안경을 바꾼 이유

    국정원장이 안경을 바꾼 이유

    노무현 정부 시절 전윤철 감사원장의 금테 윗부분이 까만 눈썹 안경이 어느날 뿔테로 바뀌었다. 그렇잖아도 붙같은 성격으로 ‘핏대’로 불렸는데, 안경마저 강한 인상을 준다는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최근 서훈 국정원장은 그 반대다. 평범한 금테 안경을 벗고 눈에 띄는 눈썹 안경으로 바꿨다. 그 안경이 요즘 유행이라고는 하나 그의 부드러운 인상은 사라졌다. 아마도 눈썹 안경으로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녹록지 않은 국정원 처지를 보면 그가 강한 인상을 주는 눈썹 안경으로 바꾼 게 이해가 간다. 인터넷 댓글 사건,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등으로 전직 국정원장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적폐 중의 적폐로 지목된 국정원을 개혁하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 줘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정보기관이다. 우리와 안보 환경이 비슷한 이스라엘의 모사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처럼 이스라엘은 시리아, 이란 등 사방이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어 늘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다. 그래서 두 나라 모두 정보기관의 역할과 비중이 크다. 하지만 우리의 국정원은 불신의 대상이지만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세계적으로 드물게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그런 모사드도 2002년 팔레스타인 과격단체의 지도자 암살 작전이 실패하고, 스위스 등에서 정보요원들이 붙잡히는 등 치명적인 실수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위상이 추락했다. 메이어 다간이 모사드의 구원투수로 나선 배경이다. 조직을 개혁해 새로운 정보기관으로 탈바꿈시켜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안고 취임했다는 점에서 서 원장과 다간은 닮은꼴이다. 따지자면 다간이 더 불리했다. 그가 국장으로 임명되자 모사드의 고위직 일부는 반발하며 사임하기도 했다. 다간은 기존의 정보 분석이나 비밀외교보다 주로 행동에 나서는 ‘작전’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적에게 먹히지 말고, 적의 뇌를 삼켜라”라는 자신의 좌우명대로 이스라엘의 껄끄러운 적인 시리아와 이란의 핵시설을 파괴하고, 테러조직 핵심 인사들을 제거하는 성과를 내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시리아가 북한 영변의 핵시설과 똑같은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을 처음 알아챈 것도 다간이다. 이란과 시리아의 핵시설에 대한 모사드의 공작은 집요하고 과감했다. 이스라엘 안보를 위협하는 모든 것은 다간의 표적이 됐다. 적국의 고위직 인사, 핵과학자들을 망명시키거나 암살하고, 유령회사를 통해 일부러 결함이 있는 장비·원료를 공급해 핵시설을 고장냈다. 이란 핵시설 컴퓨터에 역사상 최초로 악성 바이러스를 심어 핵 원심분리기 1000여기를 파괴하는 사이버 공격도 단행했다. 다간은 재임 8년을 거치면서 역대 최고의 모사드 국장으로 평가받았다. 그가 퇴임할 때 각료들은 이례적으로 기립박수를 보냈다. 160㎝의 작은 키이지만 ‘이스라엘의 슈퍼맨’으로 불린 그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그는 늘 “정보기관이 정치인의 ‘도구’가 되면 나라가 위험에 빠진다”고 경계했다. 자신을 임명한 총리에게 맞설 정도로 모사드를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단 하나, 국가와 국민의 안위였다. 서 원장은 최근 국정원 문패를 바꾸고, 대공 수사권 폐지를 담은 국정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정원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서 원장은 남북 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역사에 남을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의 행보를 보면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인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길을 가려는 것 같다. 지금 북한은 잇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마당에 국정원이 거꾸로 대공 수사권까지 포기한다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위기 국면에 다간의 길을 갈지, 임동원의 길을 갈지는 그의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그가 롤모델로 삼으려는 임 전 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만 매달려 훗날 ‘반쪽짜리 국정원장’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bori@seoul.co.kr
  • 소리는 진화의 지렛대다

    소리는 진화의 지렛대다

    소리의 과학/세스 S 호로비츠 지음/노태복 옮김/에이도스/400쪽/2만 2000원 태초에 ‘굉음’이 있었다. 진공상태의 우주와 달리 45억년 전 지구는 탄생 순간부터 시끄러웠다. 신생 지구를 강타하는 소행성들의 융단폭격으로 뜯겨 나간 지표 덩어리는 잔해가 돼 하늘로 솟구쳤고, 지구가 냉각되는 과정에서 빗소리가 등장했다. 신간 ‘소리의 과학’을 쓴 음향신경과학자이자 음악가인 세스 S 호로비츠는 2009년 나사의 한 연구소에서 초속 15㎞로 발사체를 날릴 수 있는 버티컬 건으로 지구의 탄생 과정을 재현했다. 실험이 반복될 때마다 그가 설치한 초음파 마이크에는 쿵, 투두둑, 쉬이익 등의 소리가 녹음됐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거친 소음이 미친 듯이 연속됐다. 그건 지구가 노래를 부르는 장엄한 사운드트랙이었다. 우리는 흔히 인류의 생존 능력을 시각과 연결시킨다.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로, 공기 중의 소리 속도(초속 340m)보다 88만배 이상 빠르다. 인간이 청각보다 시각에 더 빠르게 반응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청각이 시각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하다.인간의 뇌는 시각적 정보에는 초당 15~25번의 변화만 인식하지만 소리에 대해서는 초당 수천 번의 변화도 지각한다. 귀 안에 있는 유모세포는 초당 5000번까지의 진동을 느낄 수 있고, 외부 소리가 청신경을 거쳐 우리 뇌에 인지될 때까지의 시간은 50밀리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청각은 촉각, 후각, 미각보다 인지 범위도 훨씬 넓다.이 책은 30년간 소리에 빠져 지내 온 과학자가 풀어놓는 소리에 관한 거의 모든 이 야기와 더불어 소리와 인류 진화의 연관 관계를 과학적 통찰로 전개하고 있다. 지구상에 특수하게 제작된 공간을 빼고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 모든 생명체는 소리로 소통하며, 정보를 파악하고 진화해 왔다. 시각 능력이 거의 없는 동굴물고기나 인더스강돌고래 등 후각과 미각이 제한적인 동물은 있지만 청각이 없는 생명체(청각 상실 환자를 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가 진화와 생존의 비밀을 청각에서 찾는 이유다. 24시간 작동하는 경보 시스템 역할을 하는 청각이 진화적 유산이라는 걸 체감하는 건 의외로 손쉽다. 맹수들의 으르렁대는 저주파 소리는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준다. 침묵과 정적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발명된 지 300년도 채 되지 않은 칠판을 긁는 소리는 우리를 몸서리치게 한다. 저자는 온갖 소음이 가득 찬 연회장에서도 친한 사람의 목소리를 곧바로 알아채는 우리의 능력도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흥미로운 건 머릿속 ‘뇌’도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다. 뇌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녹음하는 데 성공한 저자는 이를 “마음이 빚어내는 노래”라고 표현했다. 뇌에 전극을 밀어 넣고, 신경세포의 전기적 변화를 소리로 변환시킨 결과 신경단위인 뉴런마다 제각각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규칙적인 딸깍거림도 있고, 때로는 죽어 가는(기능이 소멸된) 뉴런의 애처로운 ‘유언’도 있었다. 각 뇌의 발달 상태, 건강, 활동 상황에 따라 특정 부위의 신호는 증폭하거나 감쇄하면서 제각각 다른 소리들이 화음을 빚어냈다. 물론 저자는 “어떤 과학자도 뇌나 마음이 무엇인지 여전히 밝혀내지 못했고, 뉴런들이 내는 소리들은 실제로는 세포막의 이온 채널이 칼륨을 방출하는 것이어서 큰 의미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뉴런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는 소리를 내는 건 마음의 활동이라고 평하며, 이는 흡사 성간우주만큼 광대한 미지의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소리를 많이 내는 동물일수록 행동이 복잡하고, 사회성이 강화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러니 당신의 수다스러움은 어쩌면 당신이 지적이고, 특별히 사교적인 존재로 자부하는 징표일 수 있는 셈이다.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소리에 대한 대부분의 궁금증에 답하고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청각은 지구의 생명체가 위대한 진화적 도약을 하는 지렛대가 됐다는 걸 깨닫게 된다. 미국 과학저술가 메리 로치의 위트 있는 추천사로 글을 맺는다. “귀가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라.”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두뇌에 직접 ‘정보’ 주입…원숭이 실험 성공했다

    두뇌에 직접 ‘정보’ 주입…원숭이 실험 성공했다

    두뇌에 정보를 직접 ‘주입’하는 방법을 과학자들이 찾아냈을지도 모르겠다. 신경과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뉴런’(Neuron) 최신호(7일자)에 실린 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원숭이 뇌의 특정 부위에 미세 전류를 흘리는 방법으로, 원숭이의 움직임에 직접 관여하는 정보를 집어넣는 실험에 성공했다. 물론 이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과학자들은 이같은 뇌 자극 방법이 뇌졸중이나 부상 등으로 일부 뇌 기능을 상실한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고있다. 연구를 총괄한 영국 로체스터대학의 마크 H. 쉬버 박사는 “주로 1차 감각 피질인 체감각피질과 시각피질, 그리고 청각피질을 자극해 두뇌에 정보를 입력하는 데 관심이 크다”면서 “하지만 이번 연구는 피험자가 식별할 경험을 갖는데 감각 영역을 직접 자극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쉬버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위해 과학 실험에 흔히 쓰이는 붉은털원숭이 두 마리가 시각적인 지시와 움직임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도록 교육했다. 이들 원숭이 앞에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모양의 손잡이를 배치하고 그 주위에는 연구자들이 원격으로 켜거나 끌 수 있는 조명등을 설치해놨다. 그리고 실험을 시작할 때 원숭이들은 가운데 있는 손잡이를 잡도록 했다. 그다음 조명이 들어온 손잡이를 원숭이가 잡도록 했다. 또한 연구팀은 조명이 켜졌을 때 이들 원숭이의 전운동피질에 미세 수준의 전기 자극을 가했다. 각 조명이 켜질 때마다 서로 다른 점 부분에 자극을 가했다. 그후 모든 조명을 끈 뒤 미세 자극을 가한 결과, 원숭이들은 조명이 들어와 있을 때처럼 정확한 움직임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쉬버 박사는 “원숭이들은 우리에게 자기가 느낀 것을 말할 수 없으므로, 이들 원숭이가 미세 자극과 움직임을 연관할 수 있도록 교육하면 이를 통해 원숭이들이 충동을 느끼거나 일종의 경험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연구팀은 전극 위치를 바꾼 뒤 원숭이들을 조명으로 재교육한 뒤 시행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더 나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와 신경보철학을 위한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연구에 주저자로 참여한 케빈 A. 마주레크 박사후 연구원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개발에 관한 대부분 연구는 주로 뇌의 감각 영역에 집중돼 왔지만, 주로 정보를 전달하는 곳으로 한정했다”면서 “이 연구는 치료를 목적으로 할 수 있는 신경계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이 연구는 뇌졸중이나 부상, 또는 다른 질병으로 뇌 영역의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할 수 있다”면서 “우리는 뇌 연결이 끊어진 손상 부위를 잠재적으로 우회해 손상되지 않은 부분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이 기술을 인간에게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쉬버 박사는 “체감각피질이나 시각피질을 직접 자극하면 대상자는 일반적으로 피부에 무언가를 느끼거나 눈에서 뭔가를 보게 된다”면서 “하지만 이 기술은 이런 인지 없이 뇌에 원하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사진=ⓒ포토리아(위), 케빈 A. 마주레크, 마크 H. 쉬버 제공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남성 동성애 유발하는 유전자 발견됐다

    남성 동성애 유발하는 유전자 발견됐다

    남성 동성애와 관련 있는 유전자가 발견됐다.미국 노스쇼어대 의대 행동유전학과 앨런 샌더스 교수팀은 13번 염색체에 있는 ‘SLITRK5’, ‘SLITRK6’ 유전자 2개와 14번 염색체에 있는 ‘TSHR’ 유전자의 변이가 남성 동성애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남성 동성애자 1077명과 이성애자 1231명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 동성애자 그룹에서 이들 3개 유전자 DNA에서 단일염기다형성(SNP)을 발견했다. DNA는 아데닌(A),시토신(C),구아닌(G),티민(T) 4개의 염기가 각기 이중나선 구조로 배열돼 있는데 이 염기 중 둘이 서로 자리를 바꾸거나 한 부분 전체가 중복되거나 위치가 바뀌는 것이 ‘단일염기 다형성’이다. 단일염기 다형성 때문에 사람마다 다른 특징을 보이는 것인데 남성 동성애자들의 경우 특히 해당 유전자에서 다형성이 나타나는 것이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남성의 경우 SLITRK6 유전자는 성적 지향성에 따라 크기가 다른 것으로 알려진 뇌 부위인 시상하부가 있는 ‘간뇌’ 부위에서 발견됐다. 또 TRK6 유전자는 갑상선과 관계가 있는 유전자로 일반적으로 갑상선 호르몬은 성적 지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샌더스 교수는 “남성 동성애에는 이 밖의 다른 유전자들이 관련돼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3가지 유전자에 변이가 있다고 해서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3개 유전자 변이가 여성 동성애, 양성애, 무성애와도 연관이 있는지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엄마 목소리에 혼수상태서 깨어난 딸

    엄마 목소리에 혼수상태서 깨어난 딸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 아이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깨어나는 순간을 담은 영상이 공개돼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칼라 레센디즈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8살 된 딸 홀리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앞서 홀리는 뇌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뇌동맥류’로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왔다. 의료진은 뇌 기능을 보호하고 고통을 덜어주고자 홀리에게 약물을 사용해 인위적 혼수상태를 유도했다. 얼마 뒤 칼라는 수술 후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는 딸이 깨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아침으로 초콜릿 푸딩 먹을까? 점심으로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어때?”라고 말을 걸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홀리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브로콜리도 먹자”는 말에는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칼라는 딸 홀리의 손을 꼭 잡으며 감격했다. 영상이 공개되면서 지금도 병과 사투를 벌이는 홀리를 돕기 위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8일 현재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에는 홀리를 돕기 위한 성금 1800여만원이 모금됐다. 사진·영상=Carla Resendiz/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수많은 생명을 구할 간이 ‘황달 측정기’ 개발

    수많은 생명을 구할 간이 ‘황달 측정기’ 개발

    신생아에서 발생하는 생리적 황달은 대부분 큰 문제 없이 저절로 해결된다. 하지만 산모와 신생아의 영양 및 보건 상태가 좋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치명적인 질병인 핵황달로 진행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황달은 혈액 속의 빌리루빈 수치가 높아서 생기는데, 너무 높은 경우 뇌까지 침범해서 치명적인 신경 장애를 일으키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핵황달의 위험도는 미국의 100배에 달한다. 하지만 의료 기관을 이용하기 쉽지 않은 가난한 나라들이 많아 치료는 커녕 진단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간단한 피검사로 혈중 빌리루빈 수치를 측정할 수 있지만, 빈곤층은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라이스 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빌리스펙(Bilispec)은 앞으로 신생아 황달의 진단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순하게 생긴 장치지만, 혈당 측정기처럼 한 방울의 피만 있으면 2분 안에 혈중 빌리루빈 수치를 측정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 번 검사하는데 가격이 5센트에 불과해 일반적인 피검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하다는 점이다. 또 일반 혈당 측정기보다 약간 큰 크기로 쉽게 휴대할 수 있어 병원뿐 아니라 간이 진료소나 이동 진료소는 물론 필요하다면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68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빌리스펙이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수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물론 일반적인 피검사에 비해 정확도는 좀 떨어질 수 있으나 앞서 말한 장점이 워낙 크기 때문에 신생아 황달이 심각한 아프리카 국가에 우선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빌리스펙은 NEST(Newborn Essential Solutions and Technologies) 프로젝트의 일부로 개발되고 있으며 완성되면 아프리카 병원에 보급할 예정이다. 물론 저렴한 휴대용 빌리루빈 측정 장치가 개발되면 혜택을 보는 것은 신생아만이 아닐 것이다. 간이나 담도에 질병이 있어 황달이 생긴 경우 외래나 집에서 쉽게 측정할 수 있어 질병 치료 및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당뇨 관리에 혈당 측정기가 매우 유용한 것처럼 앞으로 빌리루빈 측정기도 환자와 의사에게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안방극장 ‘사이보그’여도 괜찮아

    안방극장 ‘사이보그’여도 괜찮아

    ‘사람과 사람 사이엔 거리가 필요하다. 날 지키기 위한 거리가 필요하다….’사람과 접촉할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피해 집으로 돌아온 김민규(유승호)가 혼자 되뇐다. 국내 최대 금융사의 대주주인 김민규는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결정적으로 ‘인간 알레르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살아간다. 당연히 연애조차 해본 적 없다. 그러면서도 혼자서 잘 살 수 있다고 자부하는 그에게 사람과 똑같이 생긴 인공지능(AI) 로봇 아지3(채수빈)가 나타난다.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안방극장에도 불기 시작했다. 지난 6일 첫방송된 MBC 드라마 ‘로봇이 아니야’는 인간 알레르기를 겪는 남자 주인공에게 여자 AI 로봇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채수빈이 진짜 사람 조지아와 AI 로봇 1인 2역을 맡았다. 김민규가 겪고 있는 인간 알레르기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특이한 질환은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상처를 의미하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하는 심리적 방어막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어쩌면 사람에게서 얻지 못한 정서적 만족감을 AI에게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암시하지만, 결국엔 진짜 로봇이 고장 난 사이 ‘대타’로 로봇을 연기하는 조지아를 통해 김민규는 이 알레르기를 극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앞서 MBC는 지난 1일 종영한 예능 드라마 ‘보그맘’에 이어 로봇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보그맘은 로봇공학자인 최고봉(양동근)이 7년 전 아들을 낳다 숨진 아내 이미소(박한별)를 사이보그(인간의 뇌를 가진 로봇) 아내로 부활시킨다는 설정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상류층 (로봇) 여성들이 완벽한 현모양처로서의 역할을 해낸다는 점에서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스텝포드 와이프’(2004)와도 유사하다. ‘A.I.’(2001), ‘Her’(2013) 등 할리우드 영화로 친숙한 AI가 이제 한국 TV 드라마까지 접수하는 모양새다. 과거 로봇이라고 하면 으레 기계적인 모습을 떠올렸으나 AI 기술이 대중에게 가까워지면서 사람의 모습을 한 AI에 대한 거부감도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영국에서는 2015년과 지난해 드라마 ‘휴먼스’ 시즌 1·2에서 엄마 역할을 하는 가정용 로봇이 나중에는 스스로를 자각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내용을 다뤘다. 이 드라마는 인간의 감정이 과연 선천적인지, 경험에 의해 체득되는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담았다. 국내 케이블 채널에서도 올 상반기에 실험적으로 복제인간 등을 주인공으로 한 장르드라마 ‘써클’(tvN), ‘듀얼’(OCN) 등을 내보내기도 했다.KBS에서도 본격 AI 휴먼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를 준비하고 있다. 제작비 100억여원을 들인 블록버스터로 지난달 말 촬영을 완료하고 내년 상반기 선보일 예정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를 대신하기 위해 투입된 AI 로봇이 인간과 얽히며 빚어내는 갈등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제작진은 “머지않아 우리와 함께 생활할 AI 로봇을 통해 인간성과 유대감,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AI 로봇이란 소재는 외모는 사람과 똑같으면서 지능 면에서는 사람을 능가하고, 정서나 감정은 없다는 점에서 트렌드를 넘어 인간 사회의 모습을 객관화하고, 사랑이나 가족 등 사회적 관습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로봇의 상용화가 가져올 미래상을 국내 드라마가 얼마나 잘 구현해 낼지는 좀더 지켜봐야겠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로봇과 사람의 차이나, 그로 인한 갈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거나 미래 모습을 구현하기보다는 아직은 에피소드 확장과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AI 로봇을 활용하는 데 그치고 있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세가와병, 전문의도 판정 어렵다…“오진 사례 빈번”

    세가와병, 전문의도 판정 어렵다…“오진 사례 빈번”

    오진 때문에 13년 간 누워 있던 환자가 약을 바꾼 뒤 1주일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발생하면서 ‘세가와병’에 대한 관심이 높다.세가와병은 주로 소아 연령대에 발병하며 뇌성마비·파킨슨병과 워낙 증상이 유사해 신경과 전문의들조차 오진하는 사례가 빈번한 질환이다. 신경전달 물질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 이상으로 도파민 생성이 감소해 발병하는 세가와병의 주요 증상은 우선 다리가 꼬이면서 점차 걷질 못하게 된다. 또 신체 근육에 경직 현상이 심해지면서 마비증상이 오고, 아침에는 상태가 호전되는 듯싶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악화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전문가들은 이런 증상 자체가 뇌성마비·파킨슨병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세가와병 판정 자체가 꽤 까다롭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세가와병 진단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전문 의료기관이 아직 국내에 없다는 점이다. 뇌성마비·파킨슨병으로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보니 이번 환자처럼 오진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가 앞으로도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미국국립보건원(NIH), 하버드대 병원 등을 지정해 세가와병 환자를 전담 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특정 의료기관을 지정해 세가와병과 같은 희귀질환을 전문적으로 판정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쏠리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살인미수 후 가스총으로 자살시도한 40대 남자 결국 사망

    살인미수 후 가스총으로 자살시도한 40대 남자 결국 사망

    맥주집에서 만난 지인을 살해하려 했다가 쫒기던 40대 남자가 경찰과 대치하다 가스총으로 자살을 시도한 뒤 3일 만에 숨졌다.대전 유성경찰서는 5일 대전의 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조모(47·무직)씨가 이날 오전 3시쯤 사망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 40분쯤 경찰과 대치하다가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다니던 가스총을 입에 넣고 쏴 병원으로 옮겨졌다. 앞서 조씨는 이날 오전 3시 30분쯤 유성의 한 건물 맥주집에서 김모(47)씨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김씨는 당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평소 알고 지내던 조씨가 갑자기 합석하면서 말다툼이 벌어졌다. 조씨는 다툼 끝에 “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한판 뜨자”며 김씨를 옥상으로 유인한 뒤 건물 내 자신의 원룸에서 흉기를 갖고가 다짜고짜 휘둘렀다. 김씨는 중상을 입고 치료 중이다. 조씨는 범행 후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달아나다 이날 오후 2시쯤 유성구 한 자동차매매상가 인근 도로에서 추적해온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이 순찰차들로 가로막자 조씨는 가스총을 겨누며 거칠게 저항했다. 경찰은 테이저건으로 그를 제압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조씨는 경찰의 계속된 투항 설득에도 완강히 저항하다 40여분이 지난 오후 2시 40분쯤 가스총을 자신의 입에 넣고 발사했다. 병원 측은 조씨의 뇌에서 발견된 이물질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았다. 경찰이 조씨의 가스총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탄두가 장착돼 있었다. 경찰은 조씨가 허가를 받지 않은 채 가스총을 소지했고, 총알을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씨는 1991년 고향에서 작두를 휘둘러 친형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살고 출소해 압류동산 경매 등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시도 후 압수한 조씨의 승용차 안에서는 손도끼와 철사 등 살상용 도구들이 다수 발견됐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살인미수 후 가스총으로 자살시도한 대전 40대 남자 결국 사망

    맥주집에서 만난 지인을 살해하려 했다가 ?기던 40대 남자가 경찰과 대치하다 가스총으로 자살을 시도한 뒤 3일 만에 숨졌다. 대전 유성경찰서는 5일 대전의 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조모(47·무직)씨가 이날 오전 3시쯤 사망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 40분쯤 경찰과 대치하다가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다니던 가스총을 입에 넣고 쏴 병원으로 옮겨졌다. 앞서 조씨는 이날 오전 3시 30분쯤 유성의 한 건물 맥주집에서 김모(47)씨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김씨는 당시 같은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 평소 알고 지내던 조씨가 갑자기 합석하면서 말다툼이 벌어졌다. 조씨는 다툼 끝에 “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한판 뜨자”며 김씨를 옥상으로 유인한 뒤 건물 내 자신의 원룸에서 흉기를 갖고가 다짜고짜 휘둘렀다. 김씨는 중상을 입고 치료 중이다. 조씨는 범행 후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달아나다 이날 오후 2시쯤 유성구 한 자동차매매상가 인근 도로에서 추적해온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이 순찰차들로 가로막자 조씨는 가스총을 겨누며 거칠게 저항했다. 경찰은 테이저건으로 그를 제압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조씨는 경찰의 계속된 투항 설득에도 완강히 저항하다 40여분이 지난 오후 2시 40분쯤 가스총을 자신의 입에 넣고 발사했다. 병원 측은 조씨의 뇌에서 발견된 이물질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았다. 경찰이 조씨의 가스총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탄두가 장착돼 있었다. 경찰은 조씨가 허가를 받지 않은 채 가스총을 소지했고, 총알을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씨는 1991년 고향에서 작두를 휘둘러 친형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살고 출소해 압류동산 경매 등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시도 후 압수한 조씨의 승용차 안에서는 손도끼와 철사 등 살상용 도구들이 다수 발견됐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프로포폴 이용해 의식-무의식 경계점 찾아냈다

    프로포폴 이용해 의식-무의식 경계점 찾아냈다

    마취제 프로포폴을 이용해 마취에 빠지기 직전인 의식과 무의식 경계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고려대 대학원 뇌공학과 이성환 교수팀은 프로포폴을 활용해 사람의 마취 수준을 조절하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해 ‘뇌의 기능적 연결성’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신호에 발표됐다. 이 교수는 “의식-무의식 경계지점을 제대로 찾지 못할 경우 수술 중 환자가 깨어나는 등 마취사고가 일어날 수가 있다”며 “마취와 의식 심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마취 사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포스텍 물리학과, 서울아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공동연구팀도 96명의 실험대상자에게 마취제를 이용한 임상실험을 통해 마취 과정에 따라 뇌파의 변화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지난 7월 발표하고 국내 벤처기업과 함께 관련 진단 장비를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김태의 뇌과학] 우울증의 뇌과학

    [김태의 뇌과학] 우울증의 뇌과학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높은 자살률의 이면에는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우울증 치료율은 매우 낮다. 2015년 항우울제 사용량을 국가별로 비교한 자료에서 우리나라는 28개 조사국 가운데 두 번째로 낮았다. ‘정신력으로 버텨야지’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치료를 기피하다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우울증에 이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우울증이 일어나는 뇌과학적 이유와 치료 원리를 이해하면 병원을 찾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 먼저 우울증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우울한 기분이 들거나 매사에 재미가 없어지는 것은 우울증에서 가장 흔하지만 과소평가되기 쉬운 증상이다. 소화불량, 두통, 과호흡, 가슴 답답함, 피로 등과 같은 신체 증상이 흔히 발생하는데 이런 증상을 보고 우울증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정신건강의학과 대신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먼저 방문해 먼 길을 돌아오는 우울증 환자들을 종종 본다. 어떻게 하면 우울증을 빨리 알아챌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는 ‘기간’이다. 우울한 감정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두 번째 단서는 증상의 ‘심각도’이다. 우울한 기분을 넘어 먹고 자는 기본적 삶의 기능에 이상이 온다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사별, 실직, 힘든 대인관계, 업무 스트레스 등 다양한 심리적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이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급상승한다. 코르티솔은 뇌활동을 조절함으로써 스트레스 극복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코르티솔이 장기간 높은 농도로 유지되면 ‘세로토닌 뉴런’의 활성이 저하돼 우울증을 유발한다. 우울증에 걸린 뇌는 정상적 뇌와 다른 상태를 보인다. 특히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세로토닌은 수면, 식욕, 기분을 조절하고 통증을 줄여 주는 역할을 하며 농도가 낮아지면 우울증과 자살 위험을 높인다. 불안감을 높이는 ‘노르에피네프린’이나 의욕을 갖는 데 필요한 ‘도파민’도 우울증과 관련돼 있다. 약물치료는 이런 화학적 불균형을 바로잡아 정상적 뇌기능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준다. 우울증과 관련한 주요 뇌 부위를 꼽는다면 편도체, 시상, 해마가 있다. 편도체는 감정과 관계가 많은 부위로 분노, 쾌락, 슬픔, 공포, 성욕 등을 관장한다. 우울증에서는 부정적 자극에 특히 편도체 활성이 크게 증가한다. 시상은 감각정보를 대뇌피질로 전달하는 정거장 역할을 하는데 이는 양극성장애와 관련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 해마는 장기기억, 회상에 중요한 뇌 부위인데 우울증 환자의 해마 크기는 10%가량 작다. 스트레스에 의해 새 신경세포 생성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항우울제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고 2~3주가 필요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항우울제를 복용한 뒤 기분이 좋아지려면 새 신경세포가 만들어지고 신경망 연결성이 강화돼야 한다. 항우울제 치료 초기에는 이런 특성을 이해하고 꾸준히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우울증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계는 우울증을 병으로 인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울증 치료법은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환자가 치료를 위해 문을 두드릴 수 없다면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조기 진단, 조기 치료로 우울증을 빨리 극복하고 다시 행복한 일상을 찾게 되는 사례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 [메디컬 인사이드] 폭탄주가 덜 취한다?… 흡수 잘 돼 빨리 취해요

    [메디컬 인사이드] 폭탄주가 덜 취한다?… 흡수 잘 돼 빨리 취해요

    12월 도심 거리는 송년회를 위해 모인 직장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한 해 술 소비량의 30%가량이 연말에 집중된다고 하니 ‘먹고 죽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CNN의 여행전문 사이트 ‘CNN 트래블’은 지난 7월 국민성이 ‘쿨(cool)한’ 국가 14곳 중 우리나라를 6위로 꼽으면서 “한국인들은 폭탄주를 계속 돌리며 언제나 마실 준비가 돼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 인식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혔는지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이 방송에 등장하기만 하면 무조건 화끈한 술자리가 따라붙을 정도입니다.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아시나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3년 한 해 음주로 인한 암, 심혈관질환 등의 의료비를 분석한 결과 1조 400억원, 조기사망으로 인한 소득손실액은 2조 94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외에 음주로 인한 자살 사망 소득손실액 1조 1700억원, 음주로 인한 범죄·폭력 사고 비용 6000억원, 차량손해액 2600억원 등 사고비용을 모두 포함하면 전체 사회경제적 비용은 8조 5400억원이나 됐습니다.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음주를 강요하는 문화입니다. 술을 먹기 싫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는 지인, 직장 상사의 강권에 버티질 못합니다. 그래서 4일 전문가들에게 주변에 자주 술을 권하는 당신이 잘 모르는 음주의 비밀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 내용을 꼼꼼히 살핀다면 절주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술을 강권하는 빈도는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잦은 폭음 뇌손상·성격 변화·치매 유발 애주가들은 독한 술을 순한 술에 섞으면 도수가 낮아져 덜 취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정반대라고 합니다. 전용준 다사랑중앙병원 내과 원장은 “두 가지 이상의 술을 섞는 폭탄주는 알코올이 가장 잘 흡수되는 도수인 14~15도 내외로 맞춰져 혈중 알코올 농도가 훨씬 빨리 증가하고 빨리 취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폭탄주에 대해 “목넘김이 부드럽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만큼 음주량이 더 늘게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안주를 많이 먹으면 덜 취한다며 술과 안주를 함께 많이 먹으라고 권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기 전에 밥이나 안주로 빈속을 채우면 알코올 흡수가 천천히 이뤄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알코올 분해는 위가 아닌 간에서 이뤄집니다. 음식을 먹는 것으로 취기를 조금 늦출 수는 있지만 숙취를 막진 못합니다. 숙취를 막으려면 술을 적게 먹거나 아예 먹지 않는 방법밖에 없습니다.그렇다면 술이 센 사람은 간이 튼튼할까.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주량은 체내 알코올 분해효소(ALDH)의 양에 따라 결정되고 술로 인한 간 손상은 음주량에 비례합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는다’는 말이 있는 것은 체내 알코올 분해를 위해 간에서 점점 더 많은 알코올 분해 효소를 생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기능이 무한한 것은 아닙니다. 전 원장은 “알코올에 내성이 생겨 폭음을 반복하면 간기능이 떨어져 알코올 분해 능력도 한계에 이르게 된다”며 “술을 많이, 오래 마실수록 간 손상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과음은 탈모 악화… 튀긴 음식 절제를 하루만 쉬면 건강을 회복한다고 큰소리치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최소 기준은 3일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전 원장은 “성인이 하루에 분해할 수 있는 최대 알코올 양은 160~180g으로, 일반적으로 맥주 1병을 분해하는 데는 3시간, 소주 1병은 15시간 정도 걸린다”며 “간이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72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3일은 쉬어 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폭음이 잦아지면 뇌가 위축돼 ‘필름이 끊긴다’고 표현하는 ‘블랙아웃’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또 뇌의 전두엽을 집중적으로 손상시켜 기억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서서히 성격 변화와 치매를 일으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하는 알코올 적정 섭취량은 남성 40g(소주 5잔), 여성 2.5잔(소주 2.5잔)입니다. 그럼 적당량의 음주는 괜찮을까. 전 원장은 “알코올은 1급 발암물질로 하루 1잔의 가벼운 음주도 암 발생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적정 음주라는 것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건사회연구원 분석에서 1회 평균 음주량이 7잔(여자 5잔) 이상이고 주 2회 이상 음주하는 고위험음주자의 질병 위험성은 식도암 6.1배, 후두암 5.1배, 위암 및 직장암 2.5배, 뇌출혈 1.9배, 허혈성 심질환 1.3배 등으로 분석됐습니다. ●술 마실 때 대화 많이 하면 덜 취해 술과 커피를 함께 마시는 것은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술에는 물이 많이 포함돼 있지만 소변을 자주 보게 하고 땀 분비량을 늘리는 한편 알코올을 분해하면서 수분을 많이 소모하게 해 피부노화를 촉진합니다. 김범준 중앙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겨울철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실 때는 소변을 많이 보게 하는 커피, 녹차 같은 카페인 음료는 가급적 피하고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음주는 탈모에도 영향을 줍니다. 과도한 음주로 모근의 피지 분비가 늘어나면 모발이 가늘어지고 약해질 수 있는데 이런 영향이 장기간 이어지면 탈모증이 악화할 수 있습니다. 평소 치킨과 삼겹살을 즐긴다면 연말에는 먹는 양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김범진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알코올이 몸에 들어가면 간에서 지방 분해를 억제하고 오히려 지방 합성을 촉진하게 된다”며 “술이 과식을 유도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튀긴 음식, 기름기 많은 음식은 절제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알코올은 포만감을 방해해 실제 몸이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먹게 합니다. 술을 어느 정도 마시면 스스로를 제어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럴 때는 옆 사람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 좋은 대책이 될 수 있습니다. 김범진 교수는 “대화를 하면 술잔에 손이 적게 가는 것은 물론이고 알코올 일부가 호흡하는 과정에 폐에서 대사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덜 취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기억 지우개’ 당신도 필요한가요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기억 지우개’ 당신도 필요한가요

    전기·가스로 뇌 자극해 공포감 삭제 ‘제논 가스’로 새로운 기억 만들기도 세계 각국 연구진 연구결과 쏟아내 20년 전 시작된 ‘가상현실 치료법’도현대인은 끔찍한 범죄와 테러, 자연재해 등에 시시각각 노출돼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게 겪은 경험과 기억은 뇌에 강제 저장되고, 이러한 나쁜 기억은 인간의 일상을 어지럽히고 망친다. 전쟁을 겪은 군인은 고막을 울리는 큰 소리만 나도 갑작스럽게 주변 사람을 공격하거나 불안에 떨고, 성폭행을 겪은 여성은 사람들로 붐비는 길거리에서 남성과 스치기만 해도 공포와 두려움에 무너져 내린다. 지진과 화산으로 가족의 울타리를 잃은 아이, 교통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은 운전자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지워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를 그날의 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기억은 결국 트라우마가 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발전한다. 우리 뇌에서 나쁜 기억을 저장하고 이것을 트라우마화(化)하는 데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는 부위는 대뇌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다. 편도체가 손상된 인간과 일부 동물은 감정, 특히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예컨대 편도체 또는 편도체의 시냅스(2개의 신경세포가 접합하는 부위)가 망가진 쥐는 고양이가 자신을 잡아먹는 그 순간까지 공포를 느끼기는커녕 장난을 친다. 이러한 발견을 토대로 세계 각국 연구진은 뇌의 특정부위를 전기 또는 레이저, 가스로 자극해 공포심 또는 공포심을 준 나쁜 기억에 대한 공포를 억제하고, 더 나아가 이를 지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은 2014년 제논 가스에 노출된 쥐들에게서 공포를 느끼던 환경에 대한 반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무색·무취의 불연성 기체인 제논 가스는 의료용부터 가구 제작까지 폭넓게 사용되는 가스인데, 이것에 노출되면 공포의 기억과 관련된 특정 단백질 수용체를 차단해 나쁜 기억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제논 가스가 뇌가 해당 기억을 완전히 차단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 밖에도 레이저나 전기 자극을 나쁜 기억 지우개로 활용하면 트라우마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쥐 등 동물을 이용한 실험이다. 두개골을 열고 복잡한 회로로 이뤄진 뇌에서 ‘공포기억 저장소’를 찾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보다 완벽하고 안전한 나쁜 기억 지우개를 찾는 사이,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쁜 기억과 연관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트라우마로 인한 PTSD는 시각과 청각, 촉각, 미각 등 다양한 경로로 발현되며 이는 한 사람의 일상을 완전히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영국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연구진이 지난해 50대 이상 성인 45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어린 시절 학대나 따돌림 등의 경험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일수록 노화 및 수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다양한 트라우마적 문제들이 몸에 각인처럼 남고, 이것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짧아지게 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것. 자녀의 죽음이나 목숨을 위협하는 사고 또는 질병, 신체적 공격 등의 외상적 사건을 겪은 여성은 이러한 사건을 겪어보지 않은 여성에 비해 비만이 될 위험이 11% 높다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연구결과도 있다.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나쁜 기억을 지우는 것에 있어서 최근 각광받는 기술이 바로 ‘가상현실 치료’다. 1990년대 중반에 처음 시작된 이 치료법은 과학의 발전으로 더욱 현실감이 높은 가상현실을 만들어냄으로써 전쟁 및 테러 생존자들에게 꾸준히 실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쁜 기억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이를 뛰어넘게 도와주는 주위의 손길이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 처방에 따른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럽거나 감춰야 하는 또 다른 비밀이라고 인식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망각을 두고 ‘신의 선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망각이 기억보다 더 나을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고 다 잊혀졌을 거라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이미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세월호 참사나 경주·포항 지진 피해자들에 시간은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다. 기억, 그것도 나쁜 기억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질길 수 있다. 망각은 신의 선물일 수 있지만, 그 선물을 언제, 어떻게 받고 쓸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 그 자신이다. huimin0217@seoul.co.kr
  • AI와 함께 돌아온 랭던 인류의 시작·끝을 좇다

    AI와 함께 돌아온 랭던 인류의 시작·끝을 좇다

    오리진 1·2/댄 브라운 지음/안종설 옮김/문학수첩/각 권 372·352쪽/각 권 1만 3000원불과 마흔 살의 나이에 로봇 공학과 뇌 과학, 인공지능, 나노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이뤄낸 천재 컴퓨터 과학자 에드먼드 커시는 매번 미래 과학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발표하면서 예언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는 모든 기성 종교의 교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코페르니쿠스 혁명과 맞먹는 파급력”을 발휘할 획기적인 과학적 사실을 발표하기로 한다. 그에 앞서 커시는 스페인 카탈루냐 한 수도원에서 저명한 종교 지도자 세 사람에게 내용을 먼저 들려준다. 종교의 근간을 위협하는 커시의 이야기에 종교인들이 혼란에 휩싸이고 이 중 두 사람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가운데 커시의 프레젠테이션은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하지만 중요한 대목을 앞두고 있던 커시는 어디선가 날아든 총탄에 맞고 사망한다. 제자인 커시의 초대로 현장을 방문했던 하버드대의 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의 수수께끼를 푸는 여정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오리진’은 종교와 과학의 대립을 둘러싼 대담한 질문을 거침없이 던져온 베스트셀러 작가 댄 브라운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 ‘로스트 심벌’, ‘인페르노’에 이은 ‘로버트 랭던’ 교수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이다. ‘기원’, ‘근원’이라는 뜻의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와 같이 인류의 시작과 끝, 존재의 기원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작품 속 커시가 창조한 인공지능이자 랭던 교수의 훌륭한 조력자로 등장하는 윈스턴은 이야기의 박진감을 더하는 동시에 도덕적 주체로서의 인공지능의 한계와 가능성을 돌아보게 한다. 작품 곳곳에 암호와 상징을 숨겨놓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을 조명하며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전작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찰스 다윈, 스티븐 호킹, 제러미 잉글랜드 등 저명한 과학자들의 이론 공부를 비롯한 사전 자료 조사만 5년간 했다는 작가의 치밀함이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커시의 진실이 담긴 비밀 파일을 열기 위해 마흔일곱 글자의 암호를 푸는 과정은 특히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랭던 교수가 커시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방문한 바르셀로나의 카사밀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몬주이크 언덕 등 아름다운 건축물과 명소에서 마주하는 현대 미술 세계 역시 흥미롭다. 다만 빠른 전개와 거듭되는 반전을 통해 결말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던 독자들이 마주한 커시의 발견이 그가 공언한 만큼 파급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알쏭달쏭+] 개와 고양이 중 어느 쪽이 더 똑똑할까?

    [알쏭달쏭+] 개와 고양이 중 어느 쪽이 더 똑똑할까?

    인간과 가장 밀접한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 중 어느 쪽이 더 똑똑할까? 미국 테네시주 밴더빌트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동물의 대뇌피질(대뇌반구의 표면에 있는 얇은 회백질 층)에 있는 뉴런(신경세포)의 개수가 지능을 결정짓는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특히 사고능력과 계획 능력, 복잡한 행동 능력 등이 이 대뇌피질의 뉴런 개수와 연관이 있다. 연구 결과 개는 5억 3000만개의 대뇌피질 뉴런이 있는 반면, 고양이는 2억 5000만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가 고양이에 비해 2배 더 똑똑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참고로 인간의 대뇌피질 뉴런 개수는 160억 개에 이른다. 연구진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가지고 있는 신경세포의 개수가 이 동물의 지적 정신 상태와 행동 능력 등을 결정하며,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는 수준의 사고능력의 수준이 달라진다”면서 “다만 뇌가 크다고 해서 대뇌피질의 신경세포 개수가 많다고는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골든리트리버는 자신보다 몸집이 3배에 달하는 불곰보다 더 많은 대뇌피질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다. 또 뇌의 크기와 대뇌피질 신경세포 개수의 비율로 봤을 때 가장 똑똑한 포유류 중 하나는 라쿤인 것으로 조사됐다. 식육목 미국너구리과의 포유류인 라쿤은 뇌 크기가 고양이 정도에 불과하지만, 대뇌피질 신경세포 개수는 개와 거의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개가 고양이에 비해 더 많은 대뇌피질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연구는 결정적으로 개가 고양이보다 더 많이 똑똑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능이라는 것은 매우 미묘하고 주관적인 측정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누가 더 똑똑한지를 이야기 할 때 고려할 만한 요소(대뇌피질 신경세포 개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노인·장애인 도우미 ‘착한’ 첨단 보조기기

    노인·장애인 도우미 ‘착한’ 첨단 보조기기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각종 보조기기들이 최근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굳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어 시력이나 청력에 이상이 생긴 노인에게 도움을 주는 착한 첨단 보조기기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착한’ 스마트 기기 개발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주요 정보기술(IT) 세계적 기업들도 속속 뛰어드는 추세다. 시장 전망도 밝다. 노년층 및 장애인 보조기기 시장이 평균 7.8%씩 성장해 오는 2024년 267억 달러(약 29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덤으로 사회적기업이라는 이미지도 쌓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토종 재활 로봇 ‘뉴렉스’ 내년 상용화 국산 재활 로봇 중 대표적인 것은 한국기계연구원이 지난해 11월에 공개한 하지 재활 로봇 ‘뉴렉스’다. 뉴렉스는 사람이 로봇의 힘에 의지해 수동적으로 걷는 ‘패시브 워킹’과 입는 로봇 형태로 착용하고 걷는 ‘액티브 워킹’ 2가지 형태로 이용이 가능하다. 한국 기계연구원 관계자는 “재활 초기에는 로봇의 힘에 70% 정도 의지해 걷는 패시브 워킹으로 훈련을 한 뒤 점점 자신의 다리에 힘을 더 싣게 액티브 워킹으로 바꿔 가며 재활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상용화될 전망이다. 식사 보조 로봇은 중증장애인도 원할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찰기가 강한 한국식 밥도 먹을 수 있게끔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로봇이 음식을 날라 숟가락에 올려놓으면 장애인이 직접 입까지 조정한다. 뉴질랜드에서 2011년 개발된 로봇다리 ‘렉스’는 당시 “하반신 장애인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가격이 15만 달러(약 1억 6250만원) 수준이어서 여전히 개인이 구매하기는 벅차다. ●전동 휠체어에도 자율주행 적용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핵심로 꼽히는 자율주행은 전동 휠체어에도 적용되고 있다. 자율주행 전동휠체어는 목적지만 입력하면 휠체어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 현재 일본 파나소닉 등이 정부 지원을 받아 개발 중으로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테스트를 시작했다. 구글이 인수한 리프트웨어에서 개발한 ‘손 떨림 방지 숟가락’은 가벼운 수전증부터 뇌질환으로 인해 심한 손떨림을 겪는 환자들을 도와주는 기술이다. 입을 통해 마우스를 조작할 수 있는 ‘인테그라마우스’는 손을 쓰지 못하거나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근육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스마트폰과 연결된 VR기기 속속 개발 장애인의 품격 있는 생활을 돕는 IT 기기들도 상용화되고 있다. 일본 앱슨에서 개발한 청각 장애인용 스마트 안경은 현재 영국 런던 브로드웨이의 극장가에서 시범 서비스 중이다. 연극이나 영화, 뮤지컬 등을 볼 때 안경을 통해 자막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증강현실(AR) 기능을 이용해 자막을 제공하고, 자막 위치부터 크기, 색상 등을 마음대로 바꿀수 있다. 미국 그래픽업체 엔비디아와 호루스는 시각 장애인용 웨어러블 기기를 제작 중이다. 눈앞의 글자를 소리로 읽어주거나, 장애물 등 이미지 정보를 소리로 바꿔 전달해준다. 이 기기를 이용하면 점자가 아닌 일반 책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눈으로 확인해야 했던 다양한 시각 정보도 음성으로 확인할 수 있다. 비슷한 시각장애인용 국산 기기로는 삼성전자 사내 벤처회사 ‘C랩’이 만든 시각 보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가 있다. 스마트폰과 연결된 VR 기기를 착용하면 기존에 왜곡되거나 뿌옇게 보이던 사물을 또렷이 보여준다. VR 기기 후면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영상을 변환해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주는 방식이다. 색 밝기, 대비 조정, 윤곽선 강조, 색 반전, 화면색상 필터 기능으로 백내장, 각막혼탁 질환자까지 이용할 수 있다. 홍경순 한국정보화진흥원 박사는 “그동안 장애인 보조기기는 구식이거나 초고가, 초대형이어서 활용도가 낮은 제품들이 많았지만 신기술로 이런 한계들을 극복 중”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매티스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제치고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이유

    매티스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제치고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이유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은 트럼프 아닌 매티스”“장병들에게 ‘무기 사용에 앞서 뇌 사용’ 권장”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을 통해 ‘올해 미국의 인물’로 선정됐다. 에드워드 루스는 30일 FT 오피니언에서 매티스 국방장관을 ‘대의를 위해 승화한 에고(ego)’로 지칭하면서 “그 덕분에 우리가 안심하고 잠잘 수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매티스 국방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어 서열 2위지만 실제로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은 매티스 장관이라는 평가가 많다. 진중하고 겸손하며 또 언론의 찬사에 연연하지 않는다. FT는 지난 6월 트럼프 내각의 첫 전체 회의 일화를 소개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나 당시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 등은 ‘미국민에 약속을 지키는 트럼프 같은 인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일생의 영예’라며 ‘아첨’을 늘어놓았다. 마치 북한 김정은 내각을 방불케 하는 양상이었다고 FT는 꼬집었다. 반면 매티스 장관은 ‘국방부 남녀 직원들을 대표하는 것은 영예’라면서 ‘미국의 외교력은 힘을 바탕으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정의했을 뿐 트럼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FT는 트럼프 내각을 ‘포템킨’ 백악관으로 혹평했다. ‘포템킨’은 내부의 바람직하지 못한 사실이나 상태를 감추기 위한 겉치레를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자신이 언제라도 각료들을 해임할 수 있음을 과시하곤 했으나 매티스에게는 그러한 ‘모험’을 절대 시도하지 않았다고 칼럼은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매티스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매티스 장관은 사실 그동안 북한 대처에서 강온 노선과 이란 핵합의 파기 문제, 성전환자의 군 복무 등 주요 사안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개 충돌해 누구보다 ‘해임 기회’가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과의 가치를 폄하하고 오히려 적들을 부추기는 태도를 취하는 상황에서 동맹들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변함이 없음을 확신시킨 것도 매티스 국방이라고 지적했다. 매티스 국방장관은 동맹들에 트럼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미국 우선’이라는 단어를 결코 꺼낸 적이 없었다.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는 국방부의 3대 전략적 우선 과제를 묻는 질문에 북한이 우선일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트럼프 교육’을 1~3순위로 꼽았다고 FT는 전했다. FT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하려면 매티스 국방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잠을 안심하고 잘 수 있는 이유’라면서 매티스 국방장관은 장병들에게 ‘무기 사용에 앞서 뇌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매티스 장관은 ‘미친개’라는 별칭을 갖고 있지만 실은 ‘이성적인 인간’이며 지금 시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FT는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결혼한 사람이 싱글보다 치매 위험 낮다”(연구)

    “결혼한 사람이 싱글보다 치매 위험 낮다”(연구)

    결혼 생활은 힘들 때도 많지만, 배우자와 함께 해를 거듭해 나가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앤드루 조머래드 박사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이 총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선행 연구 15건을 분석한 결과,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국제 학술지 ‘신경학·신경외과학·정신의학 저널’(Journal of Neurology, Neurosurgery and Psychiatry) 최신호(28일자)에 발표했다. 특히 이번 연구는 최신 경향에 따라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는 사람들도 결혼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평생 솔로로 지낸 사람들은 결혼한 이들보다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가 생길 위험이 40%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오랫동안 함께 산 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에도 치매 위험은 20% 더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혼한 사람들의 치매 위험은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부부들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즉, 이혼 여부를 떠나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치매 발병률이 낮은 반면, 아예 평생 솔로로 지냈거나 배우자의 죽음을 겪은 이들은 치매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결혼과 치매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스웨덴과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브라질 등 총 12개국에 사는 사람들의 조사 자료를 분석했다. 놀라운 점은 각 나라의 문화가 다름에도 결과에서는 차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 이번 연구는 관찰 연구이므로 인과관계를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도출한 결과는 서로 일관성이 있어 최초 세 가지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원인은 결혼 자체가 치매 위험을 줄이는 게 아니라 배우자와 함께 사는 생활 방식이 요인이라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앤드루 조머래드 박사는 “건강한 몸과 식이요법, 그리고 운동과 같은 생활 방식뿐만 아니라 대화 상대가 되는 배우자의 존재가 사회적인 자극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다음 요인은 평생 함께한 배우자를 잃는 극단적인 스트레스가 주로 기억과 학습, 그리고 감정을 관장하는 해마의 뉴런(뇌세포)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조머래드 박사는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이 치매 위험이 크고 이혼한 사람들은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은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치매 위험은 서로 다른 고유한 인지 및 성격 특성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결혼이 일반적인 사회 규범일 경우 유연한 사고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은 치매 위험이 크며 스스로 결혼 기회를 잡지 못할 수 있다. 또 나이는 같지만 태어난 시대가 다른 싱글들 사이에서 치매 위험의 차이가 큰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1900~1925년에 태어난 싱글이 치매에 걸릴 위험은 40% 높았지만, 더 최근에 태어난 같은 나이 싱글의 위험은 24%에 그쳤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나쁜 기억 지우개’…당신도 필요한가요?

    [송혜민의 월드why] ‘나쁜 기억 지우개’…당신도 필요한가요?

    현대인은 끔직한 범죄와 테러, 자연재해 등에 시시각각 노출돼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게 겪은 경험과 기억은 뇌에 강제 저장되고, 이러한 나쁜 기억은 인간의 일상을 어지럽히고 망친다. 전쟁을 겪은 군인은 고막을 울리는 큰 소리만 나도 갑작스럽게 주변 사람을 공격하거나 불안에 떨고, 성폭행을 겪은 여성은 사람들로 붐비는 길거리에서 남성과 스치기만 해도 공포와 두려움에 무너져 내린다. 지진과 화산으로 가족의 울타리를 잃은 아이, 교통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은 운전자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지워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를 그날의 기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기억은 결국 트라우마, 즉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이하 PTSD)로 발전한다. 우리 뇌에서 나쁜 기억을 저장하고 이것을 트라우마화(化) 하는 데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는 부위는 대뇌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다. 편도체가 손상된 인간과 일부 동물은 감정, 특히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예컨대 편도체 또는 편도체의 시냅스(2개의 신경세포가 접합하는 부위)가 망가진 쥐는 고양이가 자신을 잡아먹는 그 순간까지 공포를 느끼기는커녕 장난을 친다. 이러한 발견을 토대로 세계 각국 연구진은 뇌의 특정부위를 전기 또는 레이저, 가스로 자극해 공포심 또는 공포심을 준 나쁜 기억에 대한 공포를 억제하고, 더 나아가 이를 지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은 2014년 제논가스에 노출된 쥐들에게서 공포를 느끼던 환경에 대한 반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무색·무취의 불연성 기체인 제논가스는 의료용부터 가구 제작까지 폭넓게 사용되는 가스인데, 이것에 노출되면 공포의 기억과 관련된 특정 단백질 수용체를 차단해 나쁜 기억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제논가스가 뇌가 해당 기억을 완전히 차단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밖에도 레이저나 전기 자극을 나쁜 기억 지우개로 활용하면 트라우마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쥐 등 동물을 이용한 실험이다. 두개골을 열고 복잡한 회로로 이뤄진 뇌에서 ‘공포기억 저장소’를 찾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보다 완벽하고 안전한 나쁜 기억 지우개를 찾는 사이,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쁜 기억과 연관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트라우마로 인한 PTSD는 시각과 청각, 촉각, 미각 등 다양한 경로로 발현되며 이는 한 사람의 일상을 완전히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영국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연구진이 지난해 50대 이상 성인 45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어린 시절 학대나 따돌림 등의 경험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일수록 노화 및 수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다양한 트라우마적 문제들이 몸에 각인처럼 남고, 이것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짧아지게 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것. 자녀의 죽음이나 목숨을 위협하는 사고 또는 질병, 신체적 공격 등의 외상적 사건을 겪은 여성은 이러한 사건을 겪어보지 않은 여성에 비해 비만이 될 위험이 11% 높다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연구결과도 있다.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나쁜 기억을 지우는 것에 있어서 최근 각광받는 기술이 바로 ‘가상현실 치료’다. 1990년대 중반에 처음 시작된 이 치료법은 과학의 발전으로 더욱 현실감이 높은 가상현실을 만들어냄으로서 전쟁 및 테러 생존자들에게 꾸준히 실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쁜 기억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이를 뛰어넘게 도와주는 주위의 손길이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 처방에 따른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럽거나 감춰야 하는 또 다른 비밀이라고 인식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망각을 두고 ‘신의 선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망각이 기억보다 더 나을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고 다 잊혀졌을 거라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이미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세월호 참사나 경주·포항 지진 피해자들에게 시간은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다. 기억, 그것도 나쁜 기억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질길 수 있다. 망각은 신의 선물일 수 있지만, 그 선물을 언제, 어떻게 받고 쓸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 그 자신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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