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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전원일기] 충남 홍성 ‘자연재배 농가’ 귀농 8년차 이연진씨

    [新전원일기] 충남 홍성 ‘자연재배 농가’ 귀농 8년차 이연진씨

    거름은 녹조현상 일으키고 질소는 인체 유해… 압축한 볏짚 단열효과 좋아 난방비 안 들어 우리나라에 유전자조작식품(GMO)이 들어온 지 20년이 지났다. 아이와 여성에게 특히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GMO는 각종 질병과 기형아 출산 등 부작용이 심각함에도 정부는 ‘GMO 완전 표시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결국 최고의 해답은 ‘자연재배’(농약도 비료도 없이 흙의 힘으로만 작물을 키우는 것)가 아닐까. 충남 홍성군 홍동마을에는 완전히 자연재배 농법을 쓰는 젊은 귀농인이 있다. 이연진(44)씨는 귀농 8년차로, 세 아이의 아빠다. 명문대 국문학과를 나왔지만 ‘전공’보다는 ‘재능’과 ‘꿈’을 살린 케이스. 밭 1500평, 논 1000평으로 생활을 꾸려간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가족들이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의 밭에는 온갖 것들이 있다. 셰프들은 자연재배로 키운 그의 농산물을 좋아한다. 그는 귀농 이후 높아진 삶의 질과 마음의 평화야말로 어떤 경제적 이득보다 커다란 가치임을 증언한다. 그는 홍동마을 최초의 협동조합인 ‘얼렁뚝딱 집짓기 협동조합’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천연재료 ‘스트로베일’(압축볏짚)로 집을 지어 난방비가 0원에 가깝다는 그의 집 짓기 비결도 궁금했다. →국문학을 전공하셨는데, 취직을 하셨다가 귀농을 하게 된 계기는. -결혼 후 경기 고양시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중 중국 베이징 주재원으로 가게 되었다. 대기 오염이 워낙 심각해서 베이징 주재원으로 가면 멀쩡한 사람도 천식 환자가 된다는 말을 듣던 터였다. 그래도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덜컥 아이가 생겨버렸다(웃음). 어디서 첫 아이를 키워야 할까를 아내와 고민했다. 베이징이 아니라면 서울도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도시로 가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 충남 공주로 이사했지만, 쳇바퀴 같은 회사 생활에 회의가 들었고 ‘이제 정말 시골로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홍성에 오고 싶었지만, 워낙 귀농인들이 많아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전북 남원으로 급선회했다. ‘실상사’(實相寺)가 있는 동네에서 살았지만,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농부보다는 예술가가 더 많았다. 홍동에 집을 알아보다가 벼룩시장에서 전셋집을 찾았고 바로 계약했다. 2009년 홍동마을로 드디어 입성했다. 드디어 귀농인들의 꿈, 홍동에 정착했다는 뿌듯함도 크고, 농사일이 정말 재미있었다. →문학에 대한 꿈은 완전히 접은 건가. -시를 쓰고 싶었지만, 20대 후반쯤에 포기했다(웃음). 국문학 전공을 살리면 평론가, 기자, 교수 등 이런 쪽으로 가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뭔가 구체적인 산물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분석이 아닌 생산, 그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결국 농사였다. 영업일도 해봤지만 삶의 근원적인 갈증을 해결 못 했고, 결국 모든 위계질서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이 귀농이었다. 부모님이 농사 지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아이들은 꼭 시골에서 키우고 싶었다. 양복도, 출퇴근길도, 위계질서도 불편했고 그런 갈증을 녹색연합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풀었는데, 그곳에서 아내도 만났다. 아내는 “은퇴하면 귀농을 하자”고 했는데, 아이가 생기자 생각이 바뀌었다. 귀농학교 수업도 듣고 귀농운동본부에도 가보면서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비료는 물론 거름까지 안 쓰시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귀농을 한다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고, 석유를 쓰지 않는 농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주일간 내 손으로 밭을 갈았다. 다른 도구 없이 삽만 썼다. 트랙터로 30분이면 끝날 일을, 일주일 내내 내 손으로 해냈다. 그렇게 몇 년 고생하다가 자연재배를 알게 되었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신비한 밭에 서서’라는 책을 보며 뭔가 머릿속에서 커다란 그림이 그려졌다. 그동안 농작물을 위해서 모든 풀들을 ‘잡초’로 분류하고 제거하는 농법에 익숙했지만, 그 모든 풀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기계로 밭을 억지로 뒤집어 놓으면 벌레들, 미생물들이 꾸리던 생태계가 다 무너진다. 작물만 생각하는 농사는, 밭을 갈아버리고 파종하고 거름 넣고 비닐 씌우면 끝이다. 하지만 자연농법은 풀과 흙과 미생물까지 모두 공생하면서 천천히, 길게 나아가는 것이다. →유기농법과 자연농법은 서로 다른 것인가. -자연농법은 본래 흙이 지닌 힘만으로 작물을 키우는 것이고, 유기농법은 밭을 갈고 거름을 넣는다. 30㎝ 정도 땅을 갈고, 흙이 밀가루처럼 부드러워지게 만든다. 해를 거듭할수록 땅이 딱딱해지게 되어 있다. 그 30㎝ 안쪽에 이미 소똥거름과 ‘유박’(기름을 짜고 난 유채 찌꺼기)이 가득하니까 뿌리가 그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뿌리가 땅속 깊이 내려갈 필요가 없으니까, 작물에서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미네랄이 지닌 오묘한 맛이 안 난다. 유기농법은 토마토를 키우든 참외를 키우든 소똥이나 유박의 ‘거름맛’으로 수렴된다. 자연농법은 처음에는 고생스럽다. 땅이 워낙 딱딱한데, 농작물은 뚫고 들어갈 힘이 없으니까.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김도 매지 않고 풀을 내버려두면, 작물보다 훨씬 강한 풀이 먼저 땅을 뚫고 들어간다. 강인한 풀들이 작물보다 먼저 딱딱한 곳을 뚫고 들어가 준다. 그럼 작물도 풀을 따라서 깊은 땅속으로 뿌리를 뻗어나간다. 자연재배 농작물에서는 ‘원래 수박이 이런 맛이었나, 참외가 이런 맛이었나’ 싶을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한 맛이 난다. 유기농 작물에 들어가는 거름에는 질소 성분이 가장 많다. 질소 성분은 인체에 매우 위험하다. →농작물에 섞인 질소 성분은 어느 정도 위험한 것인가. -농작물 부패 실험을 해보면 답이 나온다. 화학비료 작물, 유기농 작물, 자연재배 작물을 밀폐된 공간에 두고 부패하는 데 드는 시간을 비교해 보면, 유기농 작물이 가장 먼저 썩는다. 그 다음이 화학비료 작물이다. 그런데 자연재배 작물은 ‘부패’하지 않고 ‘발효’가 된다. 질소 성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질소비료가 많이 들어간 작물을 먹으면 호흡곤란이 올 수 있다. 신생아는 마트에서 산 채소를 먹고 청색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우리 식생활 자체가 ‘과잉 질소’로 오염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질소 거름이 들어가면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비자가 20만명이 넘는다. 그래서 자연재배 채소만 찾아서 먹는 사람들이 많다. 소똥을 과다하게 쓰는 문화도 문제다. 악취가 엄청날 뿐 아니라, 소나 돼지 축사에서 나오는 똥을 그냥 밭에다 쏟아부어 처리해 버리니까 하천에 녹조현상이 심해지고 지하수 오염도 심해진다. 거름이나 비료를 많이 주면 과영양 상태로 인해 병충해도 극심해지고, 농약을 더 많이 뿌리게 되니까, 악순환이 되어버린다. →‘농부가 돼서 참 다행이다’ 싶은 순간은. -예전에는 풀이 농사의 방해물로 보였지만, 이제 농사의 친구로 보인다. 풀이 없이 작물만 있는 밭은 흡사 사막과 같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땅을 덮어줘야 그 땅이 부드러워지고 다음해 굳이 밭을 갈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동안 사람들은 풀을 없애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체력을 허비했다. 이제는 풀을 적극적으로 키우는 것이 농부와 땅의 체력에도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장터인 ‘마르쉐 장터’에 가면 우리집 농산물이 인기다. 특히 셰프들이 내가 키운 자연재배 채소의 진가를 많이 알아주어서 뿌듯했다. 산약초, 수세미, 당근잎으로 만든 효소, 울금으로 만든 비누, 돼지감자차, 직접 갈아 만든 미숫가루 모두가 반응이 좋다. 울금비누로 머리를 감았더니 몇 년 동안 고질병이던 비듬이 한 번에 싹 없어졌다. 자연재배 농산물을 드시고 ‘이런 맛은 처음이다, 정말 맛있다’고 해주시면 그게 가장 큰 보람이다. →자연에 최대한 가깝게 살아가는 삶의 방편으로 천연재료로 집짓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인가. -귀농 2년차에 많이 흔들렸다. 둘째가 태어나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체력 고갈이 극심했고 은행 잔고도 바닥났다. 그러던 중 같이 집을 지어보자는 동네 형님들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귀농 3년차에 집을 짓게 되었다. 지역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재료로 집을 짓고 싶었다. 벼농사를 많이 하니까 볏짚이 많았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볏짚을 벽돌처럼 압축해서 만든 재료로 집을 지으니까 단열 효과가 대단하다. 남자 네 명이서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농사엔 석유를 쓰지 말고, 집에는 시멘트를 쓰지 말자고 결심했다. 양파망에 흙을 채워 흙부대를 만들어 기초를 탄탄히 한 후 결국 해냈다. 처음엔 네 명이 시작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내 집을 내 손으로 짓고 싶다’는 원초적인 관심이 사람들을 모이게 한 것 같다. 2013년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고, ‘얼렁뚝딱 집짓기 협동조합’이 홍성 최초의 협동조합이 되었다. 이제는 목수 없이도 우리끼리 집을 지을 수 있고, 태양열 발전기만 따로 주문하시는 분도 많다. 한 번만 설치하면 고장도 거의 없고 평생 난방비가 들지 않는다. “우리 집도 천연재료로 지어보고 싶다”는 분들의 문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 손으로 집짓기’에 대한 강의도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농사일과 집짓기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집짓기라는 종합예술’을 여러 사람들과 창조적으로 즐길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어쩌면 농사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늘 모범생으로 자라왔던 문학청년이 귀농해 저토록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뭔가 뿌듯한 연대감이 느껴졌다. “후회될 때는 없었느냐”는 내 소심한 질문에, 단호하게 “지금 귀농을 포기해도 후회는 없다”고 말하는 그의 결기가 좋았다. 앞으로 더 무언가를 채워야 좋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단다. 그는 귀농 강의를 할 때 이렇게 말한다. “시골에는 돈 빼고 다 있다. 돈만 포기하면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고, 결국 돈도 생긴다.” 그는 ‘귀농’이라고 하는 것보다 ‘시골에 산다’는 표현을 좋아하는 듯했다. 귀농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시골에 산다는 것은 훨씬 친근하고 소박하게 다가온다. 시골에 살면, 정말 놓치기 아까운 눈부신 찰나들이 많다. 정신없이 밭일을 하다 잠깐 고개를 들면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순간이 눈부시게 아름답단다. 한때 시인을 꿈꾸었던 젊은 농부에겐 바로 그런 순간이야말로 ‘일상이 시(詩)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글쓴이 정여울 2013년 제3회 전숙희 문학상 수상작가. 주요 작품으로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 [부고]

    ●김일수(뉴질랜드 거주)이수(헌법재판소 재판관)삼수(서울과학기술대 교수)지수(충북대 교수)영자(진영초 교장)영숙(록스턴 부회장)영애(서영대 교수)영옥(호주 뉴사우스웨일대 교수)영심(전 가천대 교수)씨 모친상 소재영(전 전방그룹 임원)김진현(전 신동아그룹 임원)김일규(광주대 교수)강재은(호주 거주)서근우(신용보증기금 이사장)씨 장모상 유윤심(뉴질랜드 거주)탁성숙(가천대 인문대학장)씨 시모상 김민범(현대상선 과장)씨 조모상 3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6시 (02)3410-6917 ●황용구(MBC경남 대표이사)씨 부친상 30일 충북대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 (043)269-7211 ●문봉기(자영업)승진(TV조선 스포츠부장)씨 모친상 3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32 ●강학구(전 국립서울농학교 교장)씨 별세 병호(국립한국복지대 교수)미애(서울맹학교 교사)씨 부친상 김현진(서울정문학교 교장)씨 시부상 김세동(부산대 예술대학 조형학과 교수)씨 장인상 3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 (02)3410-6919 ●김원호(예비역 공군 준위)봉호(변호사)씨 모친상 서자익(사무관)하태중(우리은행 본부장)신수영(교사)씨 장모상 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2227-7572 ●조낙현(전 관동대 교수)씨 별세 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3일 오전 5시 (02)2227-7569 ●오석보(전 원자력문화재단 전무이사·4.19혁명 공로자)씨 별세 경덕(한국전자통신연구원 팀장)씨 부친상 최하섭(현대글로비스 부장)이상원(IBK투자증권 팀장)씨 장인상 30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 (02)2227-7587 ●강경우(사업)씨 부친상 추왕훈(연합뉴스 뉴미디어전략위원회 실무총괄팀장)씨 장인상 1일 부산 서호병원, 발인 3일 오전 6시 30분 (051)915-6096
  • [新전원일기] 은아목장 7억 매출의 비결

    [新전원일기] 은아목장 7억 매출의 비결

    봄볕 가득한 날이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난 후 내비게이션이 이끌어주는 대로 몇 번 굽이진 길을 달렸고, 길 끝에 초원이 보인다 싶더니 은아목장이 나타났다.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하얀 집 몇 채가 하늘과 닿아 있었고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송아지와 자유로운 말 ‘벨라’와 그들이 노닐 법한 너른 마당이 보였다. 길을 오르다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보면 구름 아래 펼쳐진 방목의 초원이 보였다. 하늘 아래 펼쳐진 이 아름다운 유럽형 목장을 이룬 사람이 바로 조옥향(64) 대표다. 지체장애 3급의 그녀가 불편한 다리를 끌고 가족과 함께 이곳 경기 여주시 금당리에 들어온 게 벌써 33년 전의 일이었다. 긴 세월을 지나 지금 그녀의 남편 김상덕(67)씨와 두 딸이 은아목장을 꾸려 나가고 있다. 신림동에 서울대학교가 자리잡기 전 그곳엔 곳곳에 목장이 있었다. 은아목장의 조 대표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인 55년 전에 그녀의 아버지 친구분 목장을 구경 삼아 나들이 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자전거에 실린 우유통이 비포장도로를 지나가며 저희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듣기 좋았죠. 옛날엔 우유를 그런 깡통으로 배달을 했어요. 그 길, 구름, 나무, 자전거를 쫓아 달려가는 강아지 그리고 초원 같은 걸 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조 대표는 그 시절 그곳에서부터 낙농가의 꿈을 키웠으리라. # 목장의 여걸들 은아목장은 유럽형 축산을 실현한 국내 몇 안 되는 목장 가운데 하나다. 기술력이 뛰어난 친환경 목장이며 다양한 형태의 체험 프로그램을 접목한 ‘한국형 목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체험 목장으로 이름을 처음 알리던 2007년 무렵엔 200여명 남짓 다녀갔는데, 지난해에는 외국인 8000명을 포함해 2만여명이 다녀갔으며 체험교육비로 올린 매출액만 3억 5000여만원에 이른다고 했다. 지난해 은아목장의 총매출액이 7억원 정도였으니 그 절반은 목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지불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조 대표가 황무지에 젊음을 바친 지난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땐 아무것도 없었어요. 언덕에 텐트 쳐놓고 지내는데 밥 지을 물이 없어 몇 달 동안 개울물 떠다 지었죠. 그땐 가스도 안 들어와서 땔감을 모아와 불을 피웠어요. 하루는 비가 퍼붓는데 텐트 안에서 그 비를 보고 있자니 서글프고 괜히 여주로 내려왔나 싶기도 했어요.” 조 대표의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은아목장은 평화와 자유가 가득했다. “이런 작은 목장은 사람을 많이 쓸 수 없어요. 체험이나 유가공 같은 일은 비수기가 있어서 작은 목장은 가족들끼리 꾸려 나가는 게 좋아요. 우리도 두 딸하고 남편이랑 목장을 꾸려 가고 있어요.” 그녀에겐 두 딸이 있다. 목장의 체험 프로그램을 맡은 큰딸 지은(31)씨와 목장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작은딸 지아(30)씨가 조 대표의 양 날개이자 은아목장의 여걸들이다. “딸들에게 미안해요. 아들이 없으니 목장 일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딸들밖에 없는 거예요. 시골에서 하는 일이 쉬운 게 없어요. 제 몸 불편하니까 남편이랑 딸아이들이 돕는데 얘들이 큰 후로는 사실 거의 목장 일꾼처럼 살았죠. 사춘기 시절부터 예쁘게 꾸며본 적이 없어요. 그럴 시간이 없었죠. 지금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젖을 짜야 하는데 우리 애들은 중학교 때부터 그 시간에 일어나 젖을 짜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소똥을 치우고, 건초를 준비하고, 밭일을 하고…. 예쁘게 자라야 하는 그 시간들을 목장에서 보내게 해서 늘 미안하죠.” 지금은 두 딸이 주력이 되어 목장을 꾸려 나가고 있다. 목장의 이름을 ‘은아목장’으로 만들 때 두 딸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따와서 만든 연유도 딸들이 목장을 꾸려 나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녀의 두 딸은 소위 말해 유럽형 목장에 최적화된 교육을 받아 왔다. 큰딸인 지은씨는 프랑스의 유명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수제 치즈며 요구르트 그리고 피자와 쿠키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은아목장 내에 있는 ‘엘리 카페’는 연간 수천명이 다녀가는 아이스크림 체험장이 되었는데, 그녀가 구상해 일군 공방이며 요구르트를 만드는 균주실험의 실험장이기도 했다. 작은딸인 지아씨는 일본에서 낙농업과 유가공을 공부하고 돌아와 은아목장의 낙농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가 유학을 다녀온 일본 홋카이도의 낙농학원대학은 종합대학으로 한국인 출신 중 여학생은 지아씨가 처음이라고 했다.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맛봐야 한다는 소량 생산의 리코타 치즈부터 은아 플레인 요거트, 은아 버터쿠키, 은아 다쿠아즈 등은 두 딸에 의해 탄생한 지구상에 하나뿐인 은아목장만의 먹을거리가 되었다. 두 딸은 결혼도 해서 아이들도 있는데 결혼 조건이 딸들이 목장 일을 해야 하니 그 점을 이해해 줄 남자여야 했다는 것이다. 두 딸과 조 대표, 그녀의 남편 그리고 손주들은 목장에서 지내고 그녀의 두 사위는 본의 아니게 주말 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살아 내야 하는 일이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그래도 소음 한 자락 없고 찌든 때 한 점 없는 이런 곳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겨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랭보의 유명한 시 ‘나의 방랑’에 보면 ‘내 여인숙은 큰 곰자리’라는 노숙하는 자신을 표현한 시구가 있는데 은아목장이라면 노숙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 삶을 조 대표는 물론 두 딸도 순응하며 살고 있다. # 서울 여자가 목장의 주인이 되기까지… 조 대표는 치과 의사였던 부친의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집안의 맏딸이었던 그녀는 목장을 꾸려 나가면서 다리뼈가 세 번이나 부러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 점을 부친께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런 그녀가 결혼 후에 경기도 여주행을 결심했다. 건설회사를 다니던 남편과 아버지의 고향이자 뿌리가 있는 여주로 내려왔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한심한 짓거리로 보였을 것이다. 다리 불편한 여자와 서울서 직장 생활을 했던, 목장 경험이라곤 전무한 부부 내외가 시골로 내려와 목장을 하겠다니 혀를 찰 법도 했다. 그녀 나이 스물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주말이면 일찍 병원 문을 닫고 여주에 다녀가셨어요. 버스 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버지가 그러셨죠. 농업은 창조적이고 경이로운 직업이라고요. 제 딸들을 이곳에서 낳았고 이곳에 정착하도록 했던 것도 그 시절 아버지가 가르쳐준 그 철학 그리고 아버지가 저를 믿어준 힘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녀는 초원 위에서 가족과 함께 수십 년을 버텨내고 개척하고 이루어냈다. 초원의 외로움과 고독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식들은 쉬이 부모의 삶을 닮아가는 게 섭리일 터. 목장을 찾았던 한 낙농가가 아들도 없는 집안에서 목장을 해서 뭐하겠느냐고 말했을 때 작은딸인 지아씨가 그런 말을 했다. “아저씨, 제가 이 다음에요, 아들 많은 집에서 아들 데려다가 이 목장 할 거예요!” 작은딸의 말은 절반은 맞았다. 결혼했고 사위도 생겼지만 사위가 아니라 작은딸이 ‘목부’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 대표의 고민도 이 지점에 있었다. 목장은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농업이다. 그녀와 그녀의 두 딸이 가꾸어 나가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게다가 2000년 우유값이 폭락한 ‘우유 파동’도 겪었다. 그때부터 조 대표는 ‘힘의 목장’이 아니라 노동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창의적인 목장’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7년간의 준비 끝에 2006년 낙농진흥회로부터 체험목장으로 인증받았다. 가족 단위 혹은 어린아이들이 단체로 찾아와 소들에게 먹이를 주고 젖도 짜고 치즈와 피자, 요구르트 등을 만드는 목장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는 나라 2000년 무렵 조 대표는 기존의 헌 우사를 체험장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개발 차익을 노린다는 오해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또한 목장의 새로운 수익도 창출하고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 유제품 가공 공장이 필요했다. 조 대표는 1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끊임없이 정부 기관을 찾아다니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공무원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나 축산인 행사가 있을 때면 꼭 찾아가 은아목장에서 나온 우유로 만든 치즈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 노력 덕에 까다로운 규제를 완화할 수 있었고 공장을 설립할 수 있었는데 그게 2009년의 일이었다. 그 덕에 소규모 낙농은 물론 산양 등의 축산업까지도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목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낙농의 나라라면 어디든 연수를 떠났다. “일본은 목장 경영에서 우리보다 적어도 20년은 앞선 나라였어요. 우유를 가공하고 유제품을 만들고 목장을 가꿔 체험이 가능한 목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걸 절감했죠. 둘째 딸을 일본 홋카이도의 낙농대학으로 유학을 보낸 건 그 모든 걸 배워 오라는 뜻도 있었던 겁니다.” 그녀는 작은딸의 대학 지도교수이자 후견인이 되어 준 안도 고우치 교수를 만나 치즈 공방 설계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은아목장은 요즘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도 제품을 납품하고 있고 고급 치즈와 요구르트의 진정한 맛을 아는 소비자들 덕에 몇몇 백화점에도 들어가고 있다. 생산량이 일정 궤도 이상 올라가면 중국 등 해외 수출도 계획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녀와 같은 낙농가의 삶이 가능할까 싶어 물었다. “처음엔 자본이 굉장히 많이 들기 때문에 낙농 귀농은 어려워요. 축사며 착유기 등 돈이 많이 들어가요. 대신 가축 사육에 관심이 있다면 젖을 생산하는 산양으로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의 절대적 믿음이에요. 남자라면 아내의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하죠. 그래야 귀농이 가능해질 거예요.” 그녀가 오랫동안 회장을 맡고 있는 ‘여주 낙농검정회’는 농장의 후계자 8명과 함께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낙농가의 삶과 축산업에서 희망을 일구기 위한 시작이다. 검정회는 1998년 전국 최초로 설립됐으며 전국의 낙농가들이 롤모델 삼아 벤치마킹하러 오기도 한다. 30년 세월 동안 낙농가에게는 최고의 명예인 ‘홀스타인 품평회’에서 소규모 농가로서는 기적이랄 수밖에 없는 그랜드 챔피언을 2번 차지했던 조 대표와 두 딸은 세상의 여러 편견을 깨버린 여걸들임에 분명하다. 은아목장의 세 여걸이 그걸 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글쓴이 소설가 전민식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다수
  • [서울포토] 박대통령 “투표하세요”

    [서울포토] 박대통령 “투표하세요”

    박근혜 대통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투표하고 있는 박대통령

    [서울포토] 투표하고 있는 박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투표함에 투표용지 넣고 있는 박대통령

    [서울포토] 투표함에 투표용지 넣고 있는 박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투표소 들어서는 박대통령

    [서울포토] 투표소 들어서는 박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에 마련된 투표소로 들어오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기표소 나서는 박대통령

    [서울포토] 기표소 나서는 박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박대통령 “투표했어요”

    [서울포토] 박대통령 “투표했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투표하는 박근혜 대통령

    [서울포토] 투표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4·13 총선, 朴대통령 ‘한 표 행사’

    [서울포토] 4·13 총선, 朴대통령 ‘한 표 행사’

    박근혜 대통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투표소 들어서는 박근혜 대통령

    [서울포토] 투표소 들어서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농학교 강당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투표를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쌀 연구 달인’의 초보 농사꾼 도전기

    ‘쌀 연구 달인’의 초보 농사꾼 도전기

    고향 양양서 미니사과 나무 심기 시작 “영세농과 함께 농업정책 해법 찾을 것” “평생 종사한 농학자 신분을 떠나 이제 여생은 진짜 농사꾼으로 살 작정입니다.” 30년 가까이 국내 농업과 농촌문제 연구에 헌신해 온 윤석원(64) 중앙대 명예교수가 고향으로 귀농했다. 지난 2월 명예퇴임한 윤 교수는 곧바로 고향인 강원 양양으로 내려와 농사 준비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미 지난해 양양 현남면과 멀지 않은 강현면 강선리에 1800여㎡의 땅을 마련해 최근 부인 박미숙(61)씨와 함께 미니사과(알프스오토메) 나무 심기를 시작했다. 일반 농사보다 노동력이 적게 들고 친환경으로 과일을 재배할 수 있다는 판단에 미니사과 나무 200그루를 심기로 했다. 윤 교수는 “도시에서 노후를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평생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 농민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 은퇴 후에는 꼭 농촌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늘 해 왔다”고 말했다. 인생 전반부를 강단에서 보냈다면 후반부는 농촌에 뛰어들어 농민들과 함께 어려움에 대해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보자는 열망도 한몫했다. 아직 경기 광주에 집을 두고 강의와 농사일을 병행하지만 내년에는 과수원 옆에 아담한 집을 짓고 정착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양양군에서 5차례의 귀농교육을 받았고 7명으로 구성된 작목반에도 가입했다. 윤 교수는 “그동안 주장하고 지적해 온 농업 정책과 농촌문제 등은 올해 초 집필한 ‘쌀은 주권이다’라는 칼럼집으로 대부분 정리했지만 농민 중에 억대의 고소득을 올리는 전업농은 극히 일부이고 대다수는 영세농인 만큼 이들을 아우르는 농업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윤 교수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각종 매체에 기고한 칼럼 중 쌀과 관련한 부분만 따로 떼어내 엮은 칼럼집으로 쌀시장 개방의 문제점과 농업정책의 문제점 등을 지적한 내용을 담았다. 윤 교수는 중도 성향의 농업경제학자로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 농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해 왔다. 중앙대 산업과학대 학장, 한국농업정책학회회장, 경실련 농업개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 대통령 직속 농업·농촌대책위원회 제1분과위원장, 총리 직속 정부정책평가위원회 위원도 지냈다. 2005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양양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국회의장 비서실장에 김성 비서관

    국회의장 비서실장에 김성 비서관

    정의화 국회의장은 공석인 비서실장(차관급)에 김성 정책수석비서관을 임명했다고 13일 국회의장실이 밝혔다. 김 신임 비서실장은 전남 장성 출신으로 전남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광주일보 정치부장, 무등일보 편집국장,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2014년 6월부터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해 왔다. 전임자인 이수원 전 비서실장은 제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최근 사임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인사]

    ■기획재정부 ◇서기관 승진△기획재정부 이진민 ■교육부 ◇교장△한국우진학교 함영기△서울특별시교육청 김정화△서울송례초등학교 최치수△경기도교육청 정우영△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이희권△한국선진학교 박주열◇장학관△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김동호△대변인실 박종은△학교정책실 박상화△평생직업교육국 송달용△중앙교육연수원 어성훈◇교육연구관△학교정책실 정용호△중앙교육연수원 조현석◇교감△서울맹학교 정인숙△한국우진학교 정경순△서울농학교 김장하△한국선진학교 김종무△경상남도교육청 장용군△서울특별시교육청 김찬우◇교육연구관△학교정책실 안희숙 김영은 김수구△지방교육지원국 장윤정△교육안전정보국 이재복△국사편찬위원회 송낙현△중앙교육연수원 송교준 강전훈△국립특수교육원 이정현 송영준 안수경 금미숙 ■한국국토정보공사 ◇본사△홍보처장 방성배△지적사업실장 여원찬△지적재조사처장 김재복△고객지원처장 남윤구△경영지원실장 최상호△감사실장 최규명△공공사업부장 정철원△융복합사업부장 유인호△감사1부장 김용하△감사2부장 이승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조성재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경영기획본부장 김제철△인재개발연수본부장 윤현진△교수부장 박인서△전략기획실장 정해관△인사총무실장 겸 운영지원실장 명대정△인재개발기획실장 김성철△연구기관연수실장 유대성△대학연수실장 최숙정△중소기업연수실장 권혁상△사이버교육실장 고은정△대전교육센터장 이경애△조사연구실장 이봉락 ■고려대 ◇세종캠퍼스△과학기술대학 부학장 이태원△세종교수학습지원센터장 전경남 ■단국대 △대학원장 안순철△보건복지대학원장 겸 보건과학대학장 이영기△간호대학장 양영희△대외협력처 부처장 이일석
  • 주방의 화학자가 만들어낸 ‘씹어 먹는 칵테일’

    주방의 화학자가 만들어낸 ‘씹어 먹는 칵테일’

    요리, 온도·압력 등 다루는 과학 활동 외국선 요리사·과학자 협업 연구 늘어가열 없이 독한 술로 상온서 달걀 응고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새로운 별의 발견보다도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18~19세기 프랑스 법관이자 미식가인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 “금성과 화성의 온도를 잴 수 있는 기술을 갖고도 수플레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자 니컬러스 커티) 평소 맛보기 어려운 음식과 유명 맛집, 요리법 등을 다루는 이른바 ‘쿡방’(요리하는 방송), ‘먹방’(먹는 방송)이 넘쳐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요리학원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요리사’가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3위로 뛰어올랐다. 일반인들의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롭고 맛있는 요리’에 대한 직업 요리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음식의 질감과 조직,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과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는 ‘분자요리학’이 주목받고 있다. 분자요리학은 영국 옥스퍼드대의 물리학자 니컬러스 커티와 프랑스 국립농학연구소(INRA)의 화학자 에르베 디스가 처음 주장한 개념이다. 요리와 조리과학, 식품과학을 총괄해 음식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조리 과정을 과학적 연구와 실험을 통해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음식의 다양성과 조리 방식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자는 것이다. 요리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식품과학은 음식보다는 음식이나 식재료를 분석하는 과학 분야이며, 조리과학은 조리를 하는 과정을 다루는 기술 분야다. 분자요리라고 하면 흔히 요리사들이 화학 실험실 같은 주방에서 과학자처럼 스포이트나 사이펀 같은 실험기구로 이상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화학자들은 요리 자체가 열로 단백질 분자를 응고시키거나 물질을 혼합해 이온화시키는 전형적인 물질의 변화 과정이기 때문에 ‘분자요리’는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요리가 처음 생길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요리사와 과학자의 협업이 늘고 있는 추세다. 분자요리의 대가로 알려진 프랑스 요리사 티에리 막스는 파리11대학 화학과 라파엘 오몽 교수와 함께 ‘요리혁신센터’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물리화학적 지식과 도구를 요리에 적용해 보기 좋고 맛도 있는 음식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 성과는 ‘부엌의 화학자’ ‘부엌의 꼬마화학자’ 등의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요리는 식재료를 먹기 좋게 변형하는 화학적·물리적 과정이다. 식재료는 과일과 채소 같은 식물 계열과 생선, 육류, 유제품 등 동물 계열로 나뉜다. 식재료에는 다량의 수분이 들어 있는데 이 때문에 요리를 할 때는 산도, 확산, 용해, 흡수, 투과 등 물과 관련된 화학현상이 중요하다. 요리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시간과 온도, 압력이 중요한데 이는 재료 속 수분을 조절하는 데 필수적인 변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맛을 느끼는 것은 맛 분자가 혀의 미뢰, 입천장, 뺨 안쪽 벽, 목구멍 안쪽의 수용체를 자극하고, 거기에서 나온 정보가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에 전달됨으로써 가능하다. 음식에서 향을 풍기는 분자는 바로 코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입으로 들어간 뒤 목으로 삼켜지는 과정에서 코로 전달되는 ‘역후각’ 과정을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어려서 처음 맛본 음식에 대한 기억이 강렬한 이유도 이렇게 전달받은 다양한 자극이 뇌에 이미지와 감정, 감각의 형태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요리의 대가들이 음식에 대해 강렬한 자극을 남기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걀 하나를 삶을 때에도 시간과 온도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타난다. 달걀을 지나치게 익히면 황화철이 생겨 노른자 표면이 푸르스름하게 변하거나 수분이 완전히 빠져나가 퍽퍽해진다.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황화수소가 발생하면 냄새가 심하게 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달걀을 삶을 때 펄펄 끓는 100도에서 10분 이상 삶는데, 과학자들이 말하는 달걀 삶기에 가장 이상적인 온도는 72도다. 삶은 달걀이나 달걀 프라이는 모두 열을 이용해 노른자와 흰자를 굳히는 것이다. ‘익힌다는 것=응고시킨다는 것’으로 개념을 확장하면 일반 상온에서도 달걀을 익힐 수 있다. 독한 술이나 에탄올을 날달걀의 흰자나 노른자에 붓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것들은 열에 익힌 것처럼 굳게 된다. 분자 요리사들은 이런 현상을 이용해 독주로 달걀을 요리하기도 한다.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각광받고 있는 한천(우뭇가사리)과 칵테일용 술을 섞어 끓이면 액체가 고체 사이에 분산돼 있는 젤 상태로 변하게 되는데, 틀에 넣고 부은 뒤 식히면 씹어 먹는 칵테일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요리 속 과학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음식점에서 이런 식으로 주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카로스와 안토시안이 고농도로 함유된 그물 구조의 다당류와 에어로젤 상태의 글루텐 덩어리를 좀 주시겠습니까.”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블루베리잼과 비스코트(두 번 구워 딱딱하고 바삭한 빵) 주세요”라는 얘기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폐교 앞두고 멘토가 왔다… 6년도 안 돼 기적도 왔다

    폐교 앞두고 멘토가 왔다… 6년도 안 돼 기적도 왔다

    지난 9월 열린 전국영농학생전진대회의 농산물 유통 부문에서 동상을 차지한 고3 학생 송민우(18)군은 미래의 꿈이 분명하다. 중국 음식 요리사가 되는 것이다. 내년이면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그는 이미 한 디저트 식당에서 요리사로 근무하고 있다. 어른들은 송군에게 “미래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고 언제나 자신감으로 차 있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탓에 늘 무기력하고 어두운 아이로 통했던 송군이다. 스스로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해서 공부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더 공부를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반전의 계기가 만들어진 것은 덕양중 2학년 때인 2011년 ‘씨드스쿨’을 만나고부터다. 그의 멘토였던 김형호(29·당시 연세대 재학 중)씨와 함께 미래의 꿈을 정하고 진로를 구체화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았다. 한때 공부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던 송군은 2013년 고양고 식품생활과학과에 입학했다. 송군은 16일 “지금도 가끔 멘토형과 안부를 주고받는다”며 “멘토형과 함께 음식점 서너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이 음식점이 왜 잘되는지 곰곰이 분석한 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떠나가는 학교’에서 ‘찾아오는 학교’로 변신한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덕양중학교의 성공이 교육계 안팎에 화제가 되고 있다. 1969년 세워진 이 학교는 2008년까지만 해도 문제학교, 기피학교로 통했다. 주변 일대가 개발제한구역과 군사시설제한구역 등에 묶이면서 주거환경이 개선되지 않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만 남아 분위기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9년 교육 비정부기구(NGO)인 대한민국 교육봉사단이 운영하는 씨드스쿨을 도입하면서 찾아오고 싶은 학교로 탈바꿈했다. 씨드스쿨이란 중학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대학생 멘토·멘티 방과 후 프로그램이다. 2009년 덕양중에서 처음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서울과 경기 지역 중학교 10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중학생 참가자가 삶에 대한 의욕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싶은지 역할놀이를 하며 자신의 미래 명함을 제작하기도 하고,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록 멘토가 주선을 하기도 한다. 1년 교육과정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정기모임이 열린다. 덕양중은 21명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2학년 학생 73명이 대부분 지원해 경쟁률은 2대1 수준으로 인기가 높다. 선정은 공평하게 추첨을 통해 이뤄진다. 덕양중의 놀랄 만한 변신은 각종 수치로 증명된다. 우선 학생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학생 정원이 150명이 채 안 돼 폐교 위기에 몰렸던 학교였지만 씨드스쿨에 대한 긍정적인 소문이 퍼지면서 학부모들이 화전동으로 이사를 오기 시작했다. 2009년 146명이던 덕양중 재학생 수는 올해 191명으로 증가한 상태다. 교육부가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에서도 2009년에는 국어 과목 기초학력 미달자가 12.3%나 됐지만 지난해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국어 과목의 보통학력 이상 학생은 2009년 31.6%에서 지난해 93.8%로 3배가 됐다. 같은 기간 수학 과목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31.6%에서 2.1%로, 보통학력 이상 학생은 22.8%에서 62.6%로 각각 개선됐다. 덕양중에 이러한 효과가 나타난 것은 2009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덕도 크다. 그러나 학교 측은 씨드스쿨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준원 덕양중 교장은 “씨드스쿨은 학교와 긴밀하게 협조하며 운영되고 있어 효과가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은 일부지만 자존감 향상 효과는 모든 학생이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박일호 경남 밀양시장

    [자치단체장 25시] 박일호 경남 밀양시장

    박일호 경남 밀양시장은 어렸을 때부터 꿈이 ‘고향 군수’였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76년, 개교기념일 날 축사하는 밀양군수를 보고 “나도 군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군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씩 나아가며 준비했다. 마산고와 중앙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제34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환경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고 청와대에서 부이사관 근무를 끝으로 공직을 마무리했다. “안정된 고위 공직생활을 일찍 버리고 험지로 뛰어드느냐”며 말리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손꼽히는 법률사무소인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근무하며 경험을 쌓는 등 군수가 되기 위한 준비를 계속했다. 그리고 지난해 지방선거에 출마, 38년 만에 꿈을 이뤘다. 밀양군이 1989년 밀양시로 승격돼 군수 대신 시장이 됐다. 박 시장은 “막상 시장이 되니 위축된 밀양시를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도농복합도시로 농업 비중이 높은 밀양시는 농업이 전성기였던 1975년, 인구가 18만 4712명으로 인접한 양산시 인구 12만 7432명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인구가 계속 빠져나가 지금은 10만 9722명으로 줄었다. 10만명 선 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는 “공업도시로 도세가 계속 커져 최근 30만명을 돌파한 양산시를 보면 “안타까움과 의욕이 교차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 9일, 박 시장의 바쁜 하루를 동행 취재하며 ‘38년간 준비한 시장’으로부터 밀양시 발전 방안과 구상도 틈틈이 들어봤다. 박 시장은 “밀양시 발전을 위해서는 농업·공업과 관광산업 등 3대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밀양지역은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자연·지리적인 여건도 좋아 발전 잠재력이 충분하다”면서 “시장과 공무원이 앞장서고 시민들이 힘을 모으면 밀양 부흥을 반드시 이뤄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날 오후 5시부터 1시간 동안 시장실에서 관광개발사업 보고회가 열렸다. 보고회 중간마다 박 시장은 이동식 화이트 보드 앞으로 나가 수성펜으로 의견을 적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박 시장은 주요 회의나 업무보고 때 이처럼 보드에 글을 적어가며 설명할 때가 자주 있다. 미리 공부해 준비하고, 회의에 집중하는 스타일임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보고회에서 박 시장은 사업현장 지형까지 그려가며 우려되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정부 예산을 받으려면 중앙부처 해당 공무원들이 사업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부처에 근무하면서 체득한 노하우다. 사업 용역회사 보고자는 “시장님의 설명을 듣고보니 그런 것 같다”면서 “다시 현장을 조사해서 보완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박 시장은 오전 7시 50분쯤 출근해 아침 결재한 뒤 오전 10시 시장실에서 이웃돕기 사랑의 연탄 6000장과 운동화 150켤레를 전달받았다. 이어 오전 11시 삼랑진읍 승진리 임천출장소 준공식에 참석했다. 출장소 마당에서 지역 주민 100여명과 점심으로 소고기 국밥을 먹으면서 식탁을 돌며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오후에 삼남면 기산리 밀양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부자 농촌 으뜸 농업을 위한 농학연계 포럼’에 참석했다. 포럼은 밀양에 있는 부산대 생명자원과학대학 교수들을 비롯해 농업관련 전문가들의 지식을 지역 농업발전에 활용하기 위해 박 시장이 제안했다. 밀양지역은 전국 최대 시설채소 주산지다. 풋고추를 비롯한 들깻잎, 딸기, 얼음골사과, 대추, 단감 등이 주작목이다. 시설채소 재배면적 2022㏊, 과수 재배면적 2352㏊로 각각 경남도 내 1위다. 농업소득은 한 해 7000억원 안팎으로 전국 으뜸이다. 박 시장은 인사말에서 “밀양지역 산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농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농업을 생산·제조·가공·서비스가 복합된 6차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 여러분의 도움이 중요하다”고 지원을 당부했다. 이병인 부산대 생명자원과학대학장은 “농업기관끼리 소통이 잘되지 않았는데 박 시장이 시정을 맡은 뒤 농업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최대한 힘을 보태겠다”고 화답했다.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박 시장은 오후 7시 삼문동 여성회관에서 1시간 동안 열린 사랑방 콘서트를 찾았다. 그가 각계 시민들과 격의 없이 만나는 자리다. 두 달에 한번 열린다. 박 시장은 콘서트에 참석한 사회복지사 140여명에게 시정과 주요 사업 등을 설명하고 질문·답변을 주고받았다. 그는 “일본강점기 건설돼 소음·진동으로 주민 불편이 컸던 밀양강 철교를 시의 건의에 따라 국토부가 836억원을 들여 2019년까지 새로 건설해 주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또 “정부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기상과학체험관을 110억원을 들여 밀양대공원 안에 지어주기로 했다”면서 “2018년 완공되면 울산·부산·창원 등 각지에서 학생을 비롯해 많은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설명도 했다. 박 시장은 “밀양시가 지금 발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군으로 후퇴할 수 있어 밀양 부흥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며 시정에 관심을 당부했다. 콘서트를 끝으로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 박 시장은 “오늘처럼 늦지 않게 귀가하는 저녁에는 와이프와 한두 시간 집 주변을 걷는다”며 “저녁 걷기운동 덕분에 서울 생활 때보다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고 웃었다. 박 시장은 “특히 중소 도시는 누가 단체장이 돼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도시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며 시민들에게 “능력 있고 열심히 일하는 시장으로 기억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밀양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씨줄날줄] 실상사의 파격 불사/서동철 수석논설위원

    남원 실상사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 창건됐다. 우리나라 선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구산선문(九山禪門)에서도 가장 먼저 세워졌다. ‘한국 선풍(禪風)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과장이 아니다. 유서 깊은 절이니 중요한 문화재도 많다. 우선 실상사 자체가 사적이다. 산내 암자인 백장암의 삼층석탑은 국보로 지정됐다. 실상사를 창건한 증각대사 홍척의 부도와 부도비를 비롯해 보물도 10점에 이른다. 그런데 실상사는 과거의 영화만 먹고사는 사찰이 아니다. 실상사가 실천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도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는 ‘실상사 귀농학교’와 친환경 농사를 실천하는 ‘실상사농장’, 그리고 지역공동체를 위한 ‘법인 한생명’을 운영한다. ‘실상사 작은 학교’는 불교의 연기사상을 교육 이념으로 하는 중·고등학교 과정의 대안학교이다. 이런 실상사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존재가 철조여래좌상이다. 보물로 지정된 여래좌상은 높이가 269㎝에 이르는 당당한 모습이다. 실상사가 창건되던 시기 조성된 이후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이 절의 명물이다. 여래좌상은 손모습(手印)으로만 보면 중생을 극락세계로 이끄는 아미타여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사에서 이 여래좌상은 약사여래로 불린다. 그러니 약사여래가 모셔진 전각도 약사전이다. 약사여래는 중생을 병고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자 하는 부처의 마음을 형상화한 존재이다. 병이 깊어도 별다른 대책이 있을 리 없는 1200년 전 지리산 자락 중생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여 아픔을 달랠 곳은 부처뿐이었을 것이라고 실상사 사람들은 믿는다. 약사전은 조선 세조 14년(1468) 실상사가 전소된 이후 효종 10년(1659) 중창됐고 숙종 27년(1701) 삼창됐다. 그런데 최근 흰개미 습격으로 기둥이 기울어지자 해체 보수에 들어가 2014년 1월 마무리했다. 실상사는 약사전 회향 이후 의미 있는 불사(佛事)를 하나 계획했다. 약사여래좌상을 약사전의 불단으로 다시 모시면서 후불탱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실상사 약사전 후불탱은 우리 불교문화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지리산 생명 평화의 춤’이라는 제목으로 후불탱을 제작한 불모(佛母)는 동양화가 이호신 화백이다. 수묵에 채색을 가미한 후불탱은 전통 불교 미술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다. 그럴수록 전통을 잃어버린 시대, 불교 미술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작지 않다. 이 화백은 “아프고 병든 이를 치유하는 약사여래와 ‘내 손이 약속이오’ 하던 어머니 마음을 품은 지리산 마고할멈의 만남을 시절인연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화개장터와 운조루, 서천리 장승, 산천재 같은 의미 있는 주변 지역 모습도 담았다고 한다. 후불탱의 봉안 법회는 25일 열린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인사] 포스텍 외

    ■포스텍 ▲ 부총장 조무현 ▲ 대학원장 김병현 ▲ 기획처장 겸 대외협력처장 송우진 ▲ 교무처장 최윤성 ▲ 입학학생처장 전상민 ▲ 학술정보처장 이승용 ▲ 산학협력단장 겸 연구처장 정완균 ▲ 엔지니어링대학원장(대행) 이을범 ▲ 정보통신대학원장(대행) 김대진 ■광주일보 ▲ 수석논설위원 박치경 ▲ 서울취재본부 부본부장 임동욱 ▲ 편집국 정치부장 홍행기 ▲ 편집국 경제부장 최재호 ▲ 편집국 사회부장 장필수 ▲ 편집국 문화1부장 김미은 ▲ 편집국 사진부장 겸 체육부장 나명주 ▲ 편집국 편집2부장 정재경 ▲ 편집국 사회2부장 직무대리 채희종 ▲ 편집국 문화미디어부장 직무대리 윤영기 ▲ 독자서비스국 예향부장 배동설 ▲ 편집국 문화2부 부장 송기동 ▲ 편집국 정치부 정치팀장(부장 직무대리) 최권일 ▲ 편집국 정치부 행정팀장(부장 직무대리) 윤현석 ▲ 서울취재본부 정치부장 직무대리 박지경 ▲ 편집국 문화2부 부장 직무대리 박성천 ▲ 편집국 사진부 사진팀장(부장 직무대리) 최현배 ▲ 편집국 편집1부 부장 직무대리 김용환 ▲ 편집국 편집2부 전산팀장(부장 직무대리) 유화종 ▲ 편집국 사회2부 차장 박진표 ▲ 편집국 문화2부 차장 이보람 ▲ 편집국 편집2부 차장 임수영 ▲ 광고마케팅국 차장 백선영 ■한국방송대학교 △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장 겸 학생처장 노형규 △ 인문과학대학 불어불문학과장 겸 대학원 아프리카‧불어권언어문화학과장 이용철 △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장 박강우 △ 사회과학대학 무역학과장 우경봉 △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영상학과장 겸 대학원 영상문화콘텐츠학과장 이영음 △ 사회과학대학 관광학과장 이석호 △ 자연과학대학 농학과장 겸 대학원 농업생명과학과장 장종수 △ 자연과학대학 컴퓨터과학과장 겸 대학원 정보과학과장 정광식 △ 자연과학대학 정보통계학과장 겸 대학원 바이오정보‧통계학과장 장영재 △ 자연과학대학 간호학과장 겸 대학원 간호학과장 최윤경 △ 교육과학대학 청소년교육과장 겸 대학원 청소년교육학과장 장미경 △ 대학원 이러닝학과장 김용 △ 중앙도서관장 겸 역사기록관장 : 박영숙 (간호학과) △ 정보전산원장 직무대리 겸 정보화책임관 한태인 (대학원 이러닝학과) △ 정보전산원장 겸 정보화책임관 이성철 (경영학과) △ 원격교육연구소장 : 임재홍 (법학과) △ 서울지역대학장 백삼균 (경영학과) △ 광주‧전남지역대학장 이동주 (교육학과) △ 학보사주간 변지원 (중문학과) ■서울성모병원 ▲ 관리부장 이응제 ▲ 홍보실장 구자성 ▲ 수술실/DSC실장 이윤기 ▲ 인공신장실장 박철휘 ▲ 기능검사실장 김수환 ▲ 내과 윤승규 ▲ 소화기내과 분과장 배시현 ▲ 혈액내과 분과장 김동욱 ▲ 종양내과 분과장 이명아 ▲ 류마티스내과 분과장 주지현 ▲ 성형외과 과장 오득영 ▲ 소아청소년과 과장 조빈 ▲ 비뇨기과 과장 이지열 ▲ 영상의학과 과장 안명임 ▲ 방사선종양학과 과장 김연실 ▲ 가정의학과 과장 김경수 ▲ 치과 과장 김창현 ▲ 직업환경의학과장 김형렬 ▲ 최소침습 및 로봇수술센터장 김미란 ▲ 유전진단검사센터장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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