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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촌에도 정보화 물결/농민 12만명 컴퓨터 교육

    ◎2004년까지 값싸게/교육 마치면 ‘119 서비스’ 농촌에도 한바탕 ‘정보화(情報化)’바람이 불 것 같다. 농림부는 올해부터 농업인들을 상대로 컴퓨터 교육을 대대적으로 실시한다.올해 안에 1만3,000명,2004년까지 12만명을 교육시킨다는 계획이다.교육과정은 기본과정과 전문과정로 나눴다.기본과정 교육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맡도록 했다.컴퓨터 조작법,PC통신,PC로 가계부 쓰기 등을 가르친다.수강신청이 들어오는대로 연중 실시하며 지역 내 대학교수,교사,시·군의 전산직 담당공무원이 강사로 나선다. 전문과정에서는 인터넷으로 각종 농업정보 검색하기,농업용 소프트웨어 활용법,PC로 농산물가격 분석하기 등을 가르친다.인터넷 농업반,양돈전문반,농업법인경영반 등 10개 분야로 나눠 필요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재단법인 농림수산정보센터가 교육을 맡는다. 수강료는 기본과정이 3일 기준으로 1만5,000원,전문과정은 5일 기준 4만∼5만원이다.교육기간 중에 식사도 공짜로 제공한다. 정보이용 교육을 마친 농업인들을 위해 사후관리 프로그램도 마련했다.일명 ‘농업정보 119서비스’.서비스 기관으로 경상대학교·강원대학교 농과대학 등 두 곳을 우선 선정했다.농업인들의 신청이 들어오면 대학측이 학생 등을 현장에 보내 애로사항을 해결해 준다.자세한 문의는 농림부 정보화진흥담당관실.(02­503­7255∼6)
  • 지방관사 절반 ‘구조조정’

    ◎단체장·부단체장·보건소장·소방서장에만 제공/나머지 1,154개는 매각… 규모도 40평 이하로 축소 【광주=林松鶴,朴賢甲 기자】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장과 부단체장,보건소장,소방서장에게만 관사를 제공하고 나머지 관사는 팔거나 공공시설로 활용하기로 했다.자치단체장 등이 쓰는 관사도 40평 이내로 줄인다. 행정자치부는 5일 지방재정을 건실화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의 ‘지방 관사 감축방안’을 마련,16개 광역자치단체에 내려보냈다. 이에 따라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있는 2,338개의 관사 가운데 비어 있거나 실·국장 및 원장·과장 등이 쓰는 1,154개가 없어진다.이는 전체 관사 수의 절반쯤이다. 나머지 1,184개 관사도 40평 이상인 227개 관사는 규모를 줄이고,156개 단독주택은 관리비를 절약하기 위해 아파트로 바꾼다. 그러나 현재 관사에 살고 있는 공무원이 그대로 사용하기를 원하면 대부계약을 맺어 돈을 받고 빌려준다. 이에 따라 전남 신안군은 이날 관사 28동 가운데 군수와 부군수 관사를 뺀 과장용 숙소 3동과 면장용 6동,일반직원용 6동,농촌지도소 직원용 11동 등 26동의 관사를 올해 안에 팔거나 임대할 방침이다. 1차 매각 대상은 목포시에 있는 28평형 아파트 3동이다.예상 매각대금은 평균 5,300만원이다.
  • 외화 버는 누에박사/농진청 잠사곤충硏 柳江善 박사

    ◎혈당 강하제 세계 첫 개발/특허권 日 기업에 수출/로열티 4,900만원 국고에 공무원이 갖고 있는 특허권이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외국에 수출됐다. 세계 최초로 누에에서 당뇨병 치료 혈당강하제를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국내외의 특허를 지니고 있는 농촌진흥청 잠사곤충연구소 연구관 柳江善 박사(44). 柳박사의 특허가 지난 1일 4,900만원의 로열티에 일본의 한 기업으로 팔려나갔다.공무원이 출원한 특허는 적지 않지만 특허권의 수출은 이번이 처음이다.공무원 신분인 柳박사의 특허는 국가 소유이고,따라서 로열티는 당연히 국고로 귀속됐다. 그는 당뇨병 환자들이 민간요법으로 누에를 치료제로 쓰는 점에 착안,연구를 시작했다.환자들이 안심하고 복용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효능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한 것은 지난 95년. 柳박사가 특허를 받아낸 그 해의 누에 생산량은 3만1,600여상자(1상자당 2만마리).특허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2년만인 지난 해 누에 생산은 5만4,362상자로 급증했다. 시장 잠재성은 무궁무진하다.국내의 당뇨병 환자는 대략 200여만명,일본은 1,200만명으로 추산된다.柳박사의 특허 취득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기업의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허의 시장성을 알 수 있다. 柳박사는 나라에 4,900여만원을 벌게 해준 대신 국가로부터 짭잘한 보상금을 받았다.특허 등록보상금 100만원에 로열티 판매 보상금 700만원 등 800만원이다.잠사곤충연구소도 柳박사 덕택에 100만원의 별도 포상금을 받았다. 특허청은 柳박사처럼 공무원이 더 많은 지적재산을 만들어 내도록 하기 위해 내년부터 발명보상금을 크게 올릴 계획이다.
  • 농진청 감자과(이색부서)

    ◎대관령서 감자와 사는 석·박사연구원 26명/작년 다수확품종 개발… 북 식량량 도움됐으면 【평창=徐東澈 기자】 “감사(監査)가 아니고 감자라구요” 농촌진흥청 고령지(高嶺地)농업시험장 감자과 식구들이 누군가와 처음 인사를 나눌 때 으레 꺼내는 말이다.먹는 감자가 관공서의 과(課)이름라는 데서 오는 통과의례다. 대관령 정상이 지척인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감자과는 해발 800m의 고지(高地)에 자리잡은 고령지농업시험장(장장 姜尙憲)의 3개과 가운데 하나이다.고령지시험장은 말 그대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전문연구기관이다.나머지 2개과는 원예과와 관리과로 별 특색이 없다. 감자과 가족은 모두 26명.申觀容 과장 등 박사학위 소지자만 9명이 포진해있는 초고학력 부서이다.나머지 연구원들도 대부분 석·박사 과정에 있다. 원주가 고향으로 감자연구만 20년이 넘는 申과장은 “강원도 사람이 감자를 연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토종 감자바우’.도시 출신 직원들도 이 곳에서 몇 달만 지내면 강원도 감자의 우직함에 반해 다른 곳으로 가기를 싫어할 정도다.대관령을 제 2의 고향으로 삼아 뿌리를 내린 직원도 많다. 시험장이 강원도 산골에 자리잡은 것은 서늘하고 바람이 많은 대관령의 자연환경이 감자 연구에 적격이기 때문이다.이 곳에서 우리 입맛에 맞으면서도 병충해에 강한 씨감자를 생산하고,재배기술을 개발한다. 최근 감자 가공 식품이 인기를 끌면서 감자튀김이나 감자칩 용으로 활용하기 좋은 품종을 개발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감자과는 한가지 특별한 성과를 거두었다.북한 개마고원에 알맞는 새로운 초다수확품종을 개발한 것.‘대관 48호’로 이름 붙여진 이 개량종은 기존의 다수확 품종보다 77%나 생산량이 많다.또 북한에 부족한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다수확이 가능하다. 감자과 직원들은 이 감자가 북한 동포들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하루라도 빨리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중국에 신下放운동/실직 도시민 자발적 낙향

    ◎1,000만명 농촌서 새생활 【베이징 AFP 연합】 마오저뚱(毛澤東)의 60년대 문화혁명 때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강제방출당했던 ‘하방(下放)’운동이 오늘날 대량으로 발생하는 실업자들 사이에서 재연되고 있다. 중국의 차이나 데일리지는 68년 하방과 98년 ‘제2 하방’을 비교하면서 문화혁명 당시 1,700만명의 젊은이들을 ‘재교육’ 명목으로 시골로 내쫓았던 하방운동의 동기가 정치적이었다면 98년 하방 현상의 동기는 경제적인 것이라고 논평했다.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도회지 주민들은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시골로 내려가 농사나 축산으로 생계를 개척하고 있다.국가통계국 관리의 말에 따르면 이미 1천만명의 도시민들이 농촌 노동력에 흡수됐다. 베이징 당국은 비틀거리는 국영기업들에서 정리해고된 수백만명의 실업자중 희망자들에게 교외의 광활한 시유지를 임대해 주는 계획에 착수했다. 시는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길러 소득을 올리는 주민들에 대해서는 3년간 과세유예 혜택을 주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해 새 일자리를 얻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1만위안(약 1,200달러)을 지원한다. 98년판 하방은 역이농(逆離農) 현상으로 불린다.지난 10년간 무려 1억2,000만이 넘는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회지로 몰려들어 남아도는 노동력을 형성했었는데 다시 일자리를 찾아 시골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 여성정책 담당관 첫 공채 선발/교육부 南承希씨·농림부 朴聖子씨

    교육부 초대 여성교육정책담당관(4급상당 별정직)에 명지전문대 부교수 南承希씨(45·여)가 선임됐다.南씨는 3일 교육부의 공개모집에 응모한 12명의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겸임 발령을 받았다.앞으로 교수와 공무원으로 1인 2역을 해야 한다. 여성교육정책담당관은 여성교육정책의 수립·조정,여학생 진로교육,여교사 권익보호,여성의 사회진출과 교육참여 확대 등을 총괄하는 실무책임을 맡게 된다. 南씨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당당하게 실력을 겨룰 수 있는 풍토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구 출신으로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를 나와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명지전문대 부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여성사회교육회 부회장,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남편은 고려대 생명과학부 朴永仁 교수(47)이며,대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두 아들이 있다. ◎농림부 朴聖子씨/미혼의 재야 농민운동가 “여성농업인 목소리 반영” 농림부의 첫 여성정책담당관(별정직 4급)에 농촌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미혼의 재야 농민운동가가 임명됐다.朴聖子씨(44)가 주인공.농림부의 공개모집에 대학교수와 민간연구소의 박사 출신 연구위원 등 7명의 쟁쟁한 후보들이 몰렸지만 이들을 모두 제치고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朴 담당관은 서울여대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84년부터 전북 부안에서 미취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농촌과 인연을 맺었다.기독교농민총연합 간사,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회장 등을 거치며 농촌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 들었다.15년여동안 현장에서 농촌의 ‘현실’을 지켜봐 농촌과 관련된 어떤 현안에 대해서도 훤하다는 평이다. 재야운동가에서 공무원으로 신분을 바꾼 朴 담당관은 앞으로 여성 농민들의 지위와 복지 향상을 위해 일하게 된다.3일 金成勳 농림부장관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면서 “현장 경험을 토대로 여성농업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이상국씨 네번째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화선지에 그린 ‘넉넉함의 세계’ 강원도 양양의 이상국 시인이 네번째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창작과비평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생존논리만이 득세하는 요즘 시인의 새 작품은 따뜻하다.6년간의 공백을 더욱 넓어진 여백으로 채우고 있다.쫓기는 현대인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여유로워진 시선은 표제시 ‘집은 아직 따뜻하다’에서 집약되어 있다.“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오래 된 삶도 소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상처를 달래주는 이 시적 경지가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북으로 가는 길을 따라 ‘겨울 화진포’를 다니기도 하고,사북의 폐석더미서 남은 희망을 건지며(‘희망에 대하여’),‘별’을 보며 서러운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한차례 격정으로 걸러진 여정은 세상의 약음을 허허롭게 바라보는 삼불사 스님의 어깨(‘삼불사’)와 북설악의 샛령을 너머 선림(禪林)을 찾는다(‘禪林阮址에 가서’).막힘이 없는 걸음은 결국 세간의 무림(武林)으로 향한다.어차피 보듬고 가야할 곳이다.“가지 꺾인 소나무의 빛나는 자해/ 혹은 아름다운 마감”(‘대결’)을 매개로 세상으로 돌아온다.그곳은 연어가 찾아오는 남대천이고 강원도의 뚝심과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직장’인 농촌이다. 걷잡을 수 없는 자본의 속도에 눌리는 시대에 이상국의 존재는 화선지 같다.그 속에서 묵화를 치든,잇속을 따지든 강요하지 않는 넉넉함의 세계다.시인은 그저 아늑한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언젠가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이 아름다운 뿌리를 되찾을 날을.또 하나의 세파를 뛰어넘어 달관의 자세로 돌아온 시인이 만든 집은 여전히 따뜻하다.그가 꿈꾸는 한 그릇의 국수를 함께 먹고 싶다는 느끼는 순간 그는 또 다른 여백으로 저 멀리서 웃고 있다.
  • 밥 굶게 돼야 힘든 일 하려나/실직 늘어도 3D업종은 구인난

    ◎좋았던 옛날만 생각 “조건 나쁘다” 포기/공공 취로사업 참가자도 중도하차 속출 ‘밥을 굶기 전에는 힘든 일은 못하겠다’ 실업대란으로 실직자는 넘쳐나는데도 일이 힘든 3D업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이상현상이 지속되고 있다.실직자들이 전에 일하던 직장보다 낮은 임금과 힘든 일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번기를 맞은 농촌의 일손 부족 현상도 여전하다.특히 일부 중소기업은 외국인 근로자들마저 빠져 나가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3D업종이나 농촌을 기피하는 이유로 실직자들은 ‘일이 너무 힘들다’거나 ‘일은 할만 해도 임금이 너무 낮다’는 점을 내세운다. 인천에 있는 중소섬유업체인 심도산업은 직원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다 올초 사무직 출신 실직자 7명을 채용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이틀만에 그만둔 전직 건축회사 직원 尹모씨(35)는 “75만원의 월급에도 만족할 수 없었고 일도 전에 하던 것과 비교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이 회사는 앞으로 외국인 근로자는쓰더라도 사무직 실직자는 고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농협의 ‘농촌 일손돕기’ 행사에 참여했던 李모씨(45·서울 성북구 삼선동)는 경기 남양주시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농사일을 했다.그러나 사흘만에 그만두었다.대기업 총무부장으로 있다가 지난 2월 명예퇴직한 李씨는 “하루 3만원의 임금은 적지만 받아들일만 했으나 하루 10시간씩의 농사일은 안해본 일이라 그런지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농촌 일손돕기’는 5월말 현재 4만여명이 지원,농촌에 투입됐으나 70∼80%는 2∼3일만에 탈락했다. 선반공으로 일하다 지난 3월 명예퇴직한 金모씨(39·서울 금천구 시흥2동)는 산림청이 주관한 ‘숲가꾸기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했다.지난 달 1일부터 금천구 시흥동 삼성산에서 하루 8시간씩 3만3,000원을 받고 일했으나 1주일만에 그만 두었다.그는 “기계로 나무를 베고 목재를 옮기는 일이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숲가꾸기’는 고되지만 3만3,000∼4만원의 일당을 받으며 1년동안 일할 수 있어 실직자들에겐 좋은 조건이다.그런데도 등록한 818명 가운데 15% 가량인 120여명이 1주일도 되기전에 ‘중도하차’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먹고살기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극한 상황에 몰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 실직·노숙자에 일감 줍니다/서울역에‘농촌 인력은행’…歸農도 알선

    ◎10일까지 10시∼18시 운영 실직자·노숙자에게 일감을 찾아주는 안내센터가 서울역 광장에 개설됐다.농림부는 1일 농업·축산업·임업협동조합과 농촌진흥청,산림청과 함께 ‘농촌인력은행·숲가꾸기·귀농(歸農)합동안내센터’를 설치,오는 10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다.안내시간은 공휴일을 뺀 매일 상오 10∼하오 6시다. 농촌에서 파트타임으로 농가 일손을 거들고 대가를 받으려면 농협에서 주관하는 농촌인력은행을 찾으면 된다.농협은 신청받는대로 각 지역 농협조합에 일자리를 주선해 준다.올들어 3월까지 9,584명이 신청해 7,316명이 일감을 찾았다. 숲가꾸기 사업은 정부의 실업대책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우거진 숲속의 나무를 솎아내는 간벌(間伐)이나 덩굴제거 작업 등을 주선한다.등산로 정비,어린 나무 가꾸기도 있다.하루 3만3,000원의 임금이 지급된다.이와 함께 귀농에 필요한 사전 준비와 농촌 정착자금을 지원받는 방법 등 귀농상담도 실시한다. 농림부는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이번 ‘현장 농정(農政)’의 성과를 봐가며 안내센터 운영을 전국 주요 도시로 확대할 방침이다.
  • 대통령 이메일 인터뷰 큰 인기

    ◎10일만에 1,476건 접수… 수렴 여론 정책 반영 청와대가 마련한 ‘金大中 대통령 이 메일(E­Mail) 인터뷰’ 행사가 네티즌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31일 청와대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30일까지 모두 1,476건의 질문과 건의가 접수됐다. 행사는 6월 ‘정보통신의 달’을 맞아 정보화 촉진 행사의 일환으로 300만명에 이르는 네티즌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마련됐다.이 메일은 컴퓨터통신망인 ‘나우누리’를 통해 개설됐다. 접수된 질문·건의들은 정보통신정책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질문에서부터 해외진출을 위한 방안,대학교육 문제,일본문화 개방 문제,농촌 문제 등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질문 가운데는 ▲벤처기업·정보통 신업체의 병역특례 범위 확대 건의 ▲정보화촉진 기금 대출조건 완화 건의 ▲실업계에 대한 대학진학 기회 확대건의 ▲여성 인권정책 등이 포함돼 있다. 청와대는 이들 질문과 건의에 대한 金대통령의 답변을 6월18일 ‘나우누리’서비스 및 홈페이지와 신문등을 통해 발표할예정이다.
  • 국난속 호국보훈의 달(사설)

    6월은 현충일과 6·25가 있는 호국·보훈의 달이다.건국이래 최대 국난(國難)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 맞는 올해 호국·보훈의 달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용사들의 애국·희생정신이 그만큼 소중하고 절실한 과제로 와닿기 때문일 것이다.오늘의 어려움이 단순한 외환위기에서 온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만연한 물질만능의 이기주의 탓이라는 지적이 사실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선열들과 호국용사들은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초개(草芥)처럼 던져 구했다.이는 우리 민족이 수많은 외침(外侵)을 받고도 반만년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모두 922번의 외침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구려 시대 당 태종의 세계제국 건설이라는 거창한 야심을 분쇄했던 ‘안시성 전투’나 고려 때 세계를 제패한 몽고의 침입을 끝내저지한 ‘대몽항쟁’,조선시대의 ‘임진왜란’과 뒤이은 ‘일제침략’,그리고 ‘6·25남침’등에 우리는 굴복하지 않고 결국 승리했다.이는 우리만의 고유한 신념이며 가치관인 ‘민족정기(民族正氣)’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민족정기는 바로 우리 민족의 바르고 큰 기품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이 되겠다.아울러 자유·평화·정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는 정신이기도 하다.이 민족정기는 시대상황이 바뀌면서 홍익인간정신,화랑정신,선비정신,의병정신,순국정신으로 나타나 나라를 지키는 힘이 됐다. 이렇게 나라의 위기 때 자신을 희생한 분들을 존경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보훈사업은 후손의 의무다.미국이 최근까지 6·25때 전사자의 유해봉환 노력을 하고 있는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가는 국가유공자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기도 하다.국가보훈처가 선열들과 호국용사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갖가지 행사를 펼치고 특히 호국문화확산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가기로 한것도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처사로 받아들여진다.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역시 그 숭고한 애국·희생정신을 본받아 실천할때 찾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지금 우리는 너무 나약하고 자기희생정신은 찾을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걸핏하면 자살하고 농촌과 3D업종에는 일손이 없다는데 노숙자와 무료 급식소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다.이래서는 자신과 가정은 물론 나라도 지킬 수 없다.이번 호국·보훈의 달은 우리 모두가 국가유공자들의 값진 희생을 되새겨 국난극복의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충북 우암공동체농장 함께 일할 새 식구 모집

    ◎“실직 아픔 털고 영농으로 새 출발을”;/2만8,000평… 동물사육·특용작물 재배/회원들 공동생활·모든 비용 수익 균등 배분/계약 5년… 재충전·생활기반 마련 계기로 “실직의 아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세요” 우암공동체농장(이사장 李基泰)이 실직자들을 대상으로 농장운영을 함께 할 새로운 식구를 찾고 있다.모집회원은 26명 정도. 총면적이 2만8,000평인 이 농장은 충북 괴산군 불정면 신흥리 719번지에 있다.사슴 사육장(1,000평),염소 사육장(5,000평) 닭 사육장(50평) 등 대규모의 동물사육장이 갖추어져 있다. 회원들은 이곳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동물구입 등 모든 비용은 공동부담이고 수익도 세대별로 공동분배한다.李이사장은 농장만 제공할 뿐 운영은 회원들이 자율적으로 하게 된다. 농장에서는 동물사육뿐 아니라 자두 살구 복숭아 산수유 등 과수농업과 버섯 작약 등 특용작물 재배도 가능하다.캠프장이나 학생들의 MT장소로 농장 일부를 대여할 수도 있다. 李이사장은 회원들의 중도포기를막기 위해 보증금제를 실시할 예정이다.농촌지도소에서 2,000만원을 연리 6.5%,2년거치 3년상환의 조건으로 융자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놓았다. 계약기간은 5년이지만 희망자는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李이사장은 늦어도 다음달 말쯤 회원구성을 끝낼 생각이다. 초·중등학교는 농장에서 시내버스로 10분 거리에 있어 자녀들의 교육에도 큰 문제가 없다. 20여년간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던 李이사장은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곳을 지난 88년부터 농장으로 운영해 왔다.그는 “시름에 쌓인 실직자에게 재충전의 기회와 함께 생활기반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락처 (02)986­7477,984­3128.
  • 환경호르몬/제3의 공해 퇴치 나섰다

    ◎정부 장애물질 대책 협의회 발족/캔·플라스틱 컵·비닐 랩 등 역학조사/정자 격감 등 생식기능 파괴 대처 수컷의 생식기능을 파괴하고 기형(畸形)을 초래하는 내분비계 장애물질(환경호르몬)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체계가 구축된다. 정부는 29일 환경부 노동부 식품의약품안전청 농촌진흥청 국립환경연구원 농업과학기술연구원 관계자와 민간전문가 등 10명으로 내분비계 장애물질 대책협의회를 발족시키고 첫 회의를 가졌다. 협의회는 1단계로 올 하반기부터 2001년까지 세계야생보호기금이 지정한 67종과 일본 국립의약품식품위생연구소가 지정한 143종 등 모두 210종의 환경호르몬 유발물질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하기로 했다. 2단계로 2004년까지 역학조사를 통해 위해성을 평가하고 정보망을 구축하며 3단계 2005∼2008년에는 환경호르몬 유발물질을 지정하고 규제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변압기 절연유에 포함된 폴리염화비페닐(PCB) ▲살충제 DDT ▲합성세제 원료인 알킬페놀 ▲플라스틱 원료인 비스페놀A ▲스티로폼 등 폴리스틸렌 수지의 성분인 스틸렌다이머와 트리머 ▲쓰레기 소각장 배출가스에 들어 있는 다이옥신 등을 환경호르몬으로 지정,규제하고 있다. 95년 일본 환경청은 생식기능에 미치는 독성이 큰 PCB 등 67종,미국 환경청(EPA)은 잔류성이 강한 69종의 화학물질을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물질로 지정했다.세계생태보전기금은 67종,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7종을 내분비계 장애물질로 지정해 놓고 있다. 환경호르몬은 컵라면 용기,음료 맥주 등의 캔,플라스틱 컵,우유 팩,비닐랩(wrap) 등 일상생활용품에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 국립의약품위생연구소는 지난 달 말 “폴리스티롤로 만든 즉석 라면 등의 1회용 식기에 환경호르몬을 유발하는 물질이 대량 함유돼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일본농예화학회는 쓰레기처리장에서 5㎞ 떨어진 목장의 우유에서 고농도의 다이옥신이 검출됐다고 밝혔다.데이쿄(帝京)대 연구팀은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 20대 일본 남성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충족시키는 사람은34명 가운데 1명 밖에 안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도쿄 근처 다마가와(多摩川)에 서식하는 잉어 수컷의 정소(精巢·정자집)가 갈수록 줄고 수컷이 암컷으로 바뀌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들 제품의 소비가 격감하고 학교에서는 합성수지로 된 식판을 바꿔달라는 요구가 쇄도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40년대 이후 사람의 정자 수가 50% 이상 감소하고 고환암 등이 3배 이상 증가한 것은 산업 및 농약용 합성화학물질 등 환경호르몬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환경호르몬이 앞으로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고 지금부터라도 환경호르몬이 묻어나지 않는 제품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환경호르몬이란◁ 환경호르몬이란 내분비계에 작용해 정상 발육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수컷의 정자 수를 감소시키고 생식기능 이상을 초래하는 물질이다.심지어 수컷을 암컷으로 바꿔놓기도 하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 주로 잔류성이 강한 화학물질에 포함돼있다.주변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데다 작용하는 메카니즘이 복잡해 규명과 퇴지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주요 환경호르몬 유발물질 물 질 용도 또는 발생원 폴리염화비페닐 변압기 절연유 DDT 살충제 알킬페놀 합성세제 원료 비스페놀 A 플라스틱 원료 스틸렌다이머 폴리스틸렌 수지 성분 트리머 폴리스틸렌 수지 성분 다이옥신 쓰레기소각장 크롤덴 개미 살충제 프틸산 에스텔 폴리스틸렌 수지 성분
  • ‘전환기 북한의 정책 선택’ 심포지엄 주제 발표

    ◎北 농협개혁 추진 한계 서방세계 적극 지원을 경남대 북한대학원은 미국 아메리칸대 아시아연구소와 공동으로 28일 ‘전환기 북한의 정책선택­국내구조와 대외관계’란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다음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운근 수석연구위원이 발표한 ‘북한의 식량문제와 농업개혁’이란 논문의 요지. 북한의 식량난은 집단농장 체제라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나 무엇보다 90년대 들어와 침체를 벗어나지 목하고 있는 경제난이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북한의 경제사정 악화가 에너지와 원료부족으로 이어져 산업가동률이 20% 이하로 떨어졌으며 농업생산에 필수적인 비료·농약 등 농자재 공급도 안돼 농업생산성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 ○北 산업가동률 20% 이하 여기에다 지난 93년 이래 냉해와 홍수,대가뭄 등 잇단 자연재해까지 겹쳐 곡물생산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다.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으로 북한 농업의 회생을 북한 스스로가 감당하기에는 벅차게 되었다.북한 당국의 주민 부양능력 또한 한계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북한의 곡물생산은 2,559t으로 추정되는 데 정상적인 기후조건과 충분한 농자재 등이 공급된다면 6,811t 생산은 가능하다고 본다.지난해의 곡물생산은 정상 생산량의 40% 이다.이를 북한 주민에게 정상적 배급기준(성인 하루배급량 700g)에 의하여 분배한다면 5∼6개월 분에 불과하다.그러나 북한은 지난 해 수확이 되기도 전에 50만t의 풋옥수수를 이미 소비했기 때문에 나머지 2,100t을 하루 배급량 458g(유엔이 산정한 최소 영양수준)을 기준하여 공급한다면 금년 4∼5월에 식량이 모두 바닥날 것이다. ○농업회생 스스로 감당 못해 최근 들어 북한 농업은 미미한 수준이기는 하나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대내적으로는 농업생산성을 위한 새로운 영농법의 보급과 분조관리체제(농장의 작업반 단위를 7∼10명으로 세분화하고 할당량 이상의 농산물을 자유로히 처분하는 제도) 개선을 통한 농민들의 노동의욕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대외적으로는 폐쇄적인 주체농법 고수에서 점차 외국의 영농기술 지원 및 협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은 식량증산을 위해 지난 96년부터 농장원들의 노동의욕을 높이기 위해 협동농장에서 기존의 분조관리제를 개선한 새로운 분조관리제를 실시하였다.이같은 분조관리제의 개선조치는 제한적이나마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의 근로의욕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북한도 작년까지는 이 조치의 시행에 의구심을 가졌으나 새로운 제도를 통해 분조들의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식량문제 해결방안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개방 통해 식량난 해소를 한편 북한의 농업부문 개혁 가운데 실질적인 농업생산성 향상과 직결된 부분은 이른바 ‘큰모재배법’의 도입이다.이 방법은 노력과 종자재를 절약하면서도 단보당 수량을 높임과 동시에 작물의 재배기간을 단축함으로써 논에 2모작 재배가 가능하고 가뭄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농업개혁은 북한 스스로의 개혁을 통해서만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북한 식량난의 근본원인이 궁극적으로는 경제사정 악화에 기인되기 때문에 대외협력을 통하여 북한 농업을 부흥시켜 나가야할 것이다.그러한 것은 남북한간 또는 북한과 서방국가와의 경제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현재 미국·일본 등 서방세계의 비정부기구(NGO)에서도 북한농업 지원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북한 지원방안을 시도하고 있다.이러한 대외적인 다양한 협력만이 북한의 식량난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 경제개발계획(대한민국 50년:20)

    ◎“빈곤의 역사 씻자”… 62년 첫 울산공단 기공/“자립경제 구축” 62년부터 5개년 계획 실시/간접자본 확충·기간산업 육성 효율적 통제/81년까지 연평균 8.3% 성장… 경제규모 4배로 1962년 1월2일 황량한 울산 들판 위로 육군경비행기 ‘비바’가 날았다.그 안에는 朴正熙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과 金鍾泌·金龍泰 등 5·16 주체세력,李秉喆·李庭林·鄭載頀·南宮鍊·金周仁 등 실업인들이 타고 있었다.李秉喆(삼성) 李庭林(개풍) 鄭載頀(삼호)는 당시 3대 그룹의 총수였고,南宮鍊·金周仁은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의 부회장들이어서 가히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라 할 만했다. 울산 벌판을 둘러본 일행은 인근 여관방에서 떡국을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였다.朴의장이 입을 열었다.“거창한 계획을 추진하려면 자본과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군요.그러나 여러분이 이처럼 의욕을 보여주시니 기필코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공업화 원년으로 기록 그로부터 두달 보름만인 62년 3월16일 울산공업단지 기공식이 열렸다.朴의장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민족의 숙원인,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자 이곳 울산에 신생 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고 공표했다.훗날 대한민국 경제개발의 시발(始發)이자 ‘공업화의 원년’으로 기록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무렵의 풍경화는 경제개발 논리의 당위와 한계를 이미 보여주었다.李秉喆을 비롯한 재력가들은 5·16쿠데타 직후 부정축재자로 지목받은 상태였다.이들은 朴正熙와 만나고자 울산을 향하다가 천안경찰서 관내에서 붙잡혀 한때 구금될 정도였다.하지만 ‘강탈한’권력과 ‘부정한’재력이 만나는 순간 양쪽은 경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공생의 길을 찾았다.이후 정경유착은 우리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朴正熙 군사정권은 통치의 당위성으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62∼66년)을 곧바로 발표했다.그 기본목표는 원조의존적인 소비경제를 청산하고 자립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었다.이에 따라 시책의 중점을 △농업생산력 증대에 의한 농업소득 상승과 국민경제의 구조적 불균형 시정 △전력·석탄 등 에너지원의 확보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 확충 △유휴자본 활용,특히 고용증대와 국토 보존 및 개발 △수출증대를 주축으로 하는 국제수지 개선 △기술 진흥에 두었다. 이 기간에는 전력·비료·시멘트·정유·PVC 등을 전략산업으로 지정,자금 동원과 배분에서 각종 특혜를 주면서 집중 육성했다.이와 함께 투자재원을 외자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그 원리금을 상환하고자 수출을 적극 장려하게 됐다.이후 ‘수출’과 ‘공업화’는 경제개발을 이끄는 두바퀴로 자리잡았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71년)은 산업구조 근대화와 자립경제 확산에 중점을 두었다.외형적인 성장은 괄목할 수준이었지만 석유화학 등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과잉투자가 발생해 기업 부실화가 상당한 정도로 진척됐다. 그 후유증은,제3차 계획의 첫해인 1972년 대통령긴급명령권으로 발동된 ‘8·3조치’를 비롯한 일련의 특별조치로 나타났다.그리고 그 당연한 귀결로 국민 희생 위에서 정부가 경제개발에 일방적인 주도권을 행사하는 개발체제는 더욱 심화했다. ○과잉투자 기업 부실화 제4차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81년)은 기업의 시장경쟁원리에 입각,공업화를 간접적으로 유도하고 사회개발은 정부가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됐다.그에 따라 △투자재원을 스스로 조달하고 △국제수지에서 균형을 이루며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과학기술 투자를 확대한다는 시책이 강조됐다.정부는 이 시기에 의료보험·공정거래·환경보전 등의 개념과 제도를 도입해 시행했다. 1962년부터 81년까지 네차례로 나눠 추진한 개발계획의 결과 한국경제는 연평균 8.3%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이루었다.이 기간에 경제규모는 4.8배로 커졌고,1인당 국민소득도 82달러에서 1천636달러로 엄청나게 늘어났다. ○정부 주도 성장 ‘한계’ 반면 외자에 기댄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무역의존도를 높여 62년에는 22.6%에 불과하던 것이 81년에는 95%나 됐다.무역적자도 62년에 3억5천5백만달러였으나 20년후 29억8천5백만달러라는 거대한 양으로 늘어났다.만성적인 국제수지 악화를 초래한 것이다. 1980년 한국경제는 -5.2%라는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면서 경제개발과정 아래 쌓여온 문제점들을 노정했다.경제규모가 대형화하면서,정부주도형 경제개발이 오히려 낭비와 비능률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첫손가락에 꼽혔다.양적(量的) 성장에 치중하다 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조립업체와 부품생산업체,도시와 농촌간의 간극(間隙)이 크게 벌어진 것도 사회에 짐이 되었다. 적정한 성장을 이루지 못하면 물가를 비롯한 경제안정을 얻을 수 없고 신규고용,외채 원리금 상환도 불가능해지는 구조가 고착됐다든지,각종 규제와정책·제도적 요인의 비용부담이 기업의 대외경쟁력을 약화시킨다든지 하는 문제점도 정부주도의 성장논리를 약화시켰다. 이후 91년까지 두차례 더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시행했지만 1∼4차 개발계획 때와는 기본방향이나 영향력이 본질적으로 달랐다. 자본을 축적하지 못한 신생 독립국가가 공업화를 이룩하는 데는 경제통제의 일종인 개발계획 도입이 필수적이었다.그나마 형성된 자본을 누수없이 사회간접시설과 기간산업 육성에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인허가 업무를 활용,중복투자·자원낭비를 막은 것이나공공요금·생필품값을 규제해 물가안정을 이룬 것,수입규제를 통해 취약한 국내 산업기반을 보호한 것도 초창기 경제개발계획의 긍정적인 측면이었다. 그러나 개발경제 체제에서 굳어진 정부의 경제규제는,경제규모가 커지고 기업경영의 세계화가 진전된 지금 오히려 국민경제의 효율을 저해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한다.공룡처럼 비대해진 재벌의 갖가지 부정적인 행태,정경유착의 부산물인 정치인·관료의 부패,경제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체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행정절차가 그것들이다. IMF체제로 국가 산업구조를 기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하는 이 때,우리는 경제개발 계획의 묵은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시장경쟁 원리로 재도약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떠안고 있다. ◎그전의 ‘계획’들/네이산 보고­52년 유엔한국부흥委 작성… 李 대통령 거부/타스카 계획­아이젠하워 특사 3년 對韓 원조 계획 권고/부흥부 계획­산업개발委 입안… 5·16뒤 군사정권 승계 국가가 경제목표를 정하고 그 실현에 필요한 조건들을 조성해 나가는 경제개발계획은,후진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필연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대한민국 출범후 경제개발계획이 등장한 것이 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6·25가 교착상태에 빠진 1952년 12월 ‘네이산 보고서’가 나왔다.UN한국부흥위원회의 위촉으로 네이산자문단이 작성한 ‘한국경제재건 5개년계획’(1953∼57년)은 李承晩 대통령에게 제출됐으나 채택되지 않았다.이어 6개월후에는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경제특사인 헨리 타스카가 방한해 ‘타스카 3개년 대한원조계획’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네이산 보고서’건 ‘타스카 계획’이건,한국전쟁이후 미국의 대한원조를 어떻게 운용하라는 지침 성격이 강했을 뿐 한국 자체의 경제개발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정부 스스로 마련한 경제개발계획은 58년 부흥부의 산하기관인 산업개발위원회가 입안,발표한 ‘경제개발 3개년 계획’(1962∼64년)이 최초였다.이 계획은 실현이전에 5·16을 맞는 바람에 빛을 잃었지만 그 핵심내용은 군사정권에 의해 대부분 계승됐다.
  • 印尼 차관 27억달러 연기/IBRD·ADB,사태 호전때까지 유보

    【워싱턴 AP AFP 연합】 세계은행(IBRD)은 18일 12억2천5백만달러 규모의 대(對)인도네시아 차관 심사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계은행 대변인은 이날 심사가 연기된 차관은 경제회생 지원자금 10억달러와 농촌빈곤 퇴치사업자금 2억2천5백만달러 등 두가지라고 밝히고 이번 연기조치는 “자카르타의 상황이 더 투명해질 때까지” 계속 유효하다고 말했다. 당초 세계은행 이사회는 19일 이 차관들을 심사할 예정이었다. 세계은행의 이같은 조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이날 인도네시아에 대한15억달러의 차관 제공을 연기한 직후 나온 것이다. 한편 세계은행의 자매기관인 국제통화기금(IMF)은 인도네시아에 대해 제공하기로 한 긴급구제금융 4백30억달러의 일부인 10억달러 제공 여부를 오는 6월6일까지 결정할 예정이다. 세계은행과 ADB가 결정을 연기한 차관들은 모두IMF 긴급구제금융의 일부다. 한편,스탠리 로스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상원의 한위원회에 출석,세계은행 차관이 인도네시아 소요 사태에 따른 “기술적인 문제들” 때문에 연기됐다고 말했다.
  • 자민련 李判石·한나라 李義根/여·야 경북도지사 후보 비교

    ◎자민련 李判石 후보/포항·경주서 우세 자신/농민단체 표에 큰 기대 자민련 李判石후보는 李義根후보측의 초반 우세주장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현직 도지사가 인지도면에서 앞선 것은 당연하다는 것. 이같은 판세는 선거전에 들어가면 곧바로 따라 잡을 수 있다고 낙관론을 편다. 특히 95년 6·27선거에서 무소속이라는 불리한 여건속에서도 여당후보인 한나라당(당시 민자당) 李후보와의 표차이가 5만1천여표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더구나 당시 자민련 박준홍후보가 전체 유효표의 27.7%를 차지,승부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으나 이번에는 朴씨가 출마를 포기,李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인다. 李후보측이 믿는 구석은 한군데 더 있다. 95년 선거에서 패배 원인이 됐던 포항·경주 등 경북 동남권이 朴泰俊 자민련총재의 영향권에 들어있다는 것. 이곳에서만 표차이를 줄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다. 북부지역에서 기초단체장들이 잇따라 한나라당을 탈당한 데다 도청이전 후보지 선정지연에 대한 반발이 심해 격차를벌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95년 선거에서 한나라당 李후보가 출생지인 청도에서 몰표가 나온 것을 지적하며 자신의 출생지인 칠곡은 물론 구미 등에서도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장 시절 농민단체 등과 맺어온 인연도 고정표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나라 李義根 후보/민선지사 경험이 장점/인물·정책 차별성 강조 한나라당 李義根후보는 자신감에 차 있다.초반 판세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李후보측은 이를 투표일까지 유지하는 데 선거전략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세를 주장하는 근거는 여론조사. 李후보측은 18일 도민 63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53%의 지지를 얻어 21%에 불과한 자민련 李判石후보를 크게 앞서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30% 이상 차이가 난다며 자신감을 나타낸다. 의성과 문경·예천에서 치러진 4·2보선 결과를 보더라도 경북은 한나라당의 안방이라는 것이 입증됐다. 민선지사로서 3년 동안 지역발전을 위해 힘써왔고 도내 곳곳을 누비며 현장행정을 펼쳐온 것도 이번 선거에서 압승할 수있는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기독교 장로로 활동하며 다진 교계인맥과 새마을운동단체 농·수·축협 등농어민단체의 지지도 큰 힘이 된다. 7차례에 걸쳐 치러질 TV토론과 정당연설회를 통해 인물과 정책에서의 차별성을 강조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같은 李지사측의 낙관론에도 곳곳에 암초는 도사리고 있다. 최근에 다시 불거지고 있는 도청후보지 선정문제는 李지사측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 문제가 선거쟁점화되면 취약지인 북부지역에서 표이탈현상이 심각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여야 경북도지사 후보 비교 ◇이판석(자민련) 나이:64 출생지:경북 칠곡 학력:영남대 상학과 주요경력:경남 마산시장(81년) 강원 춘천시장(85년) 내무부 재정국장(87년) 내무부 차관보(90년) 경북도지사(임명직)(92년) 농촌진흥청장(93년) 현 자민련 당무위원 가족:1남3녀 별명:황소 재산:12억7천5백만원 병역:육군 하사제대 ◇이의근(한나라)나이:60 출생지:경북 청도 학력:영남대 경제학과 주요경력:청와대 새마을비서관(78년) 경기도 부천 안양시장(86년) 내무부 기획관리실장(92년) 경북도지사(임명직)(93년) 대통령 행정수석(93년) 현 경북도지사 가족:2남 별명:없음 재산:8억5천7백만원 병역:육군 상병제대
  • ‘업종전문화’로 기업 토대 탄탄히/崔鉉烈 중견기업聯 회장 인터뷰

    ◎대주주 아닌 “시민 소유·경영 모델” 모토로 출발/中企에 경험 제공·대기업 단점 보완에 의미 ○경제의 허리 역할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서는 ‘한우물 파기’로 전문화를 이룬 중견기업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중산층이 두터워야 민주주의가 번창하듯 경제의 허리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층이 탄탄해야 나라경제가 건실해진다.최근 경제6단체로 불리는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中堅聯)’를 발족시킨 엔케이그룹 崔鉉烈 회장(64).그는 머리(대기업)와 손발(중소기업)의 틈새에 끼여 정책의 사각(死角)지대에 방치된 155개 기업을 결속,‘시민자본주의운동’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혔다.崔회장으로 부터 청사진을 들어봤다. ­중견련의 발족동기와 지향점은 뭡니까. ○당당하게 정책 건의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중소기협중앙회와 전경련을 통해 각각 법적보호와 혜택을 받습니다.그러나 중간에 끼인 중견기업들은 그같은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견기업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지요.업종전문화에 성공한 기업들이 IMF 극복에 앞장서고 자유롭게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는 시장환경 조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정부와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시정해야 할 것은 당당하게 정책건의를 하겠습니다. ­중견기업의 기준이 궁금합니다.매출액 종업원수 등 기준이 있는지요. ▲중소기업과 달리 중견기업은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현재로서는 중소기업(통상 종업원 300명미만)은 졸업했으나 30대 재벌의 계열기업에 속하지 않은 중규모의 기업으로 보면 됩니다.이런 기업이 국내에 2천500개 가량 있습니다. ­출범때 내건 ‘시민자본주의운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한마디로 기업의 소유분산,즉 시민기업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를 테면 독일의 벤츠가 부도가 나서 다른 나라에서 인수하려고 했을 때 독일 사람들이 외국에 팔 지 않았습니다.지역주민들이 1주,10주,20주 씩 주식을 사주었습니다.시민 모두가 주주가 된다는 생각으로 기업에 참여하면 그 기업은 회생합니다.대주주 중심이 아닌,시민 소유·경영의 기업이나오는 것이지요.이런 방향으로 기업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경제에서 중견기업의 역할이라면. ○순리따라 정도 경영 ▲중견기업은 남다른 전문성과 노력으로 중소기업을 졸업한 우등생입니다.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쌓은 경험을 중소기업에 전해 주고,거대기업의 상대적 단점을 중견기업으로 메꿔주는 보완·협력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94년 스피커제조업체인 삼미기업을 인수한 뒤 4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엔케이를 연 5천5백억원 매출의 중견 종합정보통신그룹으로 키워 놓았습니다.이 때문에 崔회장께는 ‘M&A의 귀재’란 별명이 따라 다니는데요. ▲그룹의 사업구조를 미래지향적인 첨단산업 위주로 재편하기 위해 94년 이후 정보통신업체 4곳을 인수했습니다.하지만 적대적 M&A방식이 아닌,우호적 방식으로 이뤄진 것입니다.‘순리에 의한 정도경영’이 소신입니다.물론 운도 따라 주었습니다. ­벤처기업을 창업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기업하는 선배로서 들려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스포츠 애호가 유명 ▲돈을 보고 따라가선 안됩니다.일을 열심히 하면 돈은 자연히 따라 옵니다.덩치에 신경쓰기보다 야구공처럼 단단한 기업을 만들려는 각오가 중요합니다. 崔회장은 현재 17개 계열사에 2천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종합 정보통신그룹의 전문기업인으로 주목받고 있다.그러나 기업인으로보다는 스포츠 애호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69년 대한축구협회 이사를 시작으로 지난 30여년 동안 아마복싱연맹 회장,중고육상연맹 회장,남자실업농구연맹 회장을 지냈다.지금은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아시아농구협회 부회장,대한농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요즘엔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베스트셀러 ‘아버지’를 엔케이그룹 계열 광고업체인 (주)서울광연을 통해 영화화하는 일에도 시간을 쪼개쓰고 있다.‘자기 얼굴에 책임지는 중년의 남성상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중견련이란/30대 그룹­中企의 중간 기업이 회원사 90년 2월 출범한 한국경제인동우회를 모태삼아 경제정책과 사회문제에 관한 정책건의를 목적으로 98년 4월2일 발족했다.회원사는 150개이나 연말까지 300개 기업으로 늘릴 계획이다.명예회장은 중소기협중앙회 회장을 지낸 柳琦諪 삼화인쇄 회장이 맡고 있고 고문에는 南悳祐·劉彰順·朴忠勳·李賢宰 전 국무총리가 추대됐다.金在哲 동원산업회장,金柱津 아남그룹회장,田潤洙 성원그룹회장,李章漢 종근당회장,朴承復 샘표식품공업회장,金聖洙 한국도자기 사장 등이 부회장이다. 시민자본주의 실현을 위한 4대 실천과제로 △중견기업의 소유분산 및 시민기업화 △업종전문화를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 △노사 한마음운동 △한 기업한 농촌 살리기운동을 정했다.중견기업 중심의 산업 재편성 정책연구,중견기업 기본실태조사,남북 경협도 추진할 예정이다.
  • 농어가 부채 상환연장/黨政 10대 지원책 발표

    정부와 여당은 농어가 부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축산정책자금 5천7백7억원의 만기상환을 3개월 추가연장키로 하는 등 농촌살리기 10대지원대책을 발표했다. 金成勳 농림부장관과 국민회의 金元吉,자민련 李台燮 정책위의장은 18일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갖고 축산정책 자금을 3개월 추가 연장하고 농민대표와 생산자단체,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농가부채 조사협의회를 설치,모든 농가부채에 대해 유형별로 부채상환 유예와 이자경감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 건국이후 인구변화(대한민국 50년:19)

    ◎49년 첫조사 20,188,641명… 96년엔 갑절로/55년 간이조사 전에는 추계… 정확성 의문/6·25전쟁기간 150만명 희생… 사망률 4%/60년대부터 공업·도시화 영향 대규모 이동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최초의 인구조사는 49년 5월1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회 인구조사’였다.이 때 인구는 2천18만8천641명으로 파악됐다. 한국전쟁 중인 50년과 51년에는 보건사회부의 발표가 남아있다.50년 2천35만6천명,51년 2천44만1천명이었다.그런데 이 인구조사 발표는 실제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49년의 조사를 토대로 각도 도지사의 보고에 의한 추계였다. 52년과 53년에는 내무부의 추계가 남아있다.52년 2천52만6천명과 53년 2천1백54만6천248명이었다.53년의 인구가 전년도보다 1백만명 이상 급증한 것은 배급을 늘리기 위한 유령인구 때문으로 추측된다.54년 보건사회부의 인구통계는 2천1백91만3천명이었지만 이도 실제조사가 아니라 전년도에 기준한 추계이다.결국 정부가 발표한 50년부터 54년 사이의 인구 수는 정확하지 못하다. 55년 제1회 간이 총인구조사가 실시됐는데 상주인구가 2천20만2천256명이었다.이는 현역 군인과 형무소 수형자 등을 뺀 숫자이다.한국전쟁 시기의 인구 증가율은 1.1%였다.그러나 한국전쟁후 베이비 붐이 일어 55년 이후 66년까지 인구 증가율은 2.8%를 기록했다.그러다가 산아제한 정책이 실시된 66년부터 85년까지는 1.7%로 떨어졌다. ○증가율 2.8% ‘베이비 붐’ 정부 수립후 인구의 변동은 경제문제와 가장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1인당 국민소득은 44.5달러에 불과했다.따라서 국민총생산의 5분의 1에 달하는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액 1억7천9백59만3천달러는 기아를 막기 위한 것으로도 부족했다.한국전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인구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생산시설은 ‘저고용­저소득­저고용’의 악순환 고리를 이어갔다.폭발적인 인구문제의 해결은 60년대 경제개발을 통한 지속적 성장 밖에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인적 피해로 인한 가장 직접적이고 충격적 결과는 무엇보다도 특이한 인구구조를 형성시켰다는 점이다.우선 한국전쟁은 일시적 사망률의 상승과 출생률의 저하를 초래했다.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 손실 중 사망자는 약 1백만∼1백5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한 인구의 사망률은 1천명당 36∼47명,즉 4% 안팎으로서 평소 한국인의 사망률인 평균 2%의 2배나 됐다.이같은 현상은 60년과 66년의 인구 센서스에서 각각 30∼49세 및 35∼49세의 연령층에서 과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된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반면 전쟁기간 동안의 0∼9세의 영아 및 아동의 사망자 가운데는 남아보다 여아가 더 많았다.이것은 새로 태어난 신생아들과 아이들의 경우 전통적 남아 선호사상으로 인해 남아를 되도록 보살핀 때문으로 사회학자들은 보고 있다. ○45만∼72만명 월남 추정 전쟁기간 중의 출생률은 극도로 저하돼 같은 기간의 높은 사망률과 더불어 인구의 절대 감소현상을 초래했다.이때의 출생률은 평상시보다 1%나 낮아졌으나 인구 증가율이 당시에는 1년에 1천명당 23명으로 늘어났었던 데 비해 전쟁기간 중이었던 49∼55년 사이에는 연평균 1천명당 11명 정도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한 인구변동의 또다른 충격은 인구의 대규모 이동현상이다.한국전쟁 기간 동안의 월남인구의 추정치는 45만∼72만명에 이르고 있다.반면 남한에서 북한으로 강제로 납치되거나 그 밖의 이유로 넘어간 이들의 수도 대략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인구이동이 시작된 것은 60년대부터인데 60년대 이후의 인구이동은 물론 공업화의 영향을 받은 도시화의 결과였다. 61년 이후 인구 분포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지역은 수도 서울이었다.서울은 정부수립 직후인 49년에는 전인구의 7.1%를 차지했고 11개 시·도 중 인구 수로 따져 9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75년에는 이미 전인구의 20%에 해당하는 6백90여만명의 인구를 갖게 됐다.또 오늘날에는 전인구의 22%가 넘는 1천여만명의 인구를 갖게 됐다. ○86년 도시인구가 65% 그러나 서울과 부산,그리고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도는 전국 인구에 대한 구성비에 있어 감소 추세를 보였다.인구이동을 도시와 농촌으로 구분하면 도시인구의 비율은 55년 25%에 불과했던 것이 80년에는 57%,86년에는 65%에 달해 도시인구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70년 이후 서울로의 인구집중은 어느 정도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농촌인구가 서울 이외의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특히 마산 울산 포항 등의 새로운 공업도시와 수도권의 성남 안양 수원 등에는 우리나라 전도시의 평균 인구증가율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정부수립후 49년 첫 인구조사에서 남한의 인구는 2천18만8천여명이었으나 96년 조사된 인구는 4천6백43만4천여명으로 50년동안 두배로 불어났다. ◎日 전쟁 동원 인구 해방후 엄천난 逆유입/日帝와 美 군정 시기의 인구/도시주변 戰災民으로 반공체제 정착 큰 역할/46년 1,936만명 조사/이듬해 국민등록 실시 한국은 일제 식민통치 기간 동안 특히 37년 이후의 전시 총동원체제 아래서 대규모의 인구이동을 경험했다.가혹한 수탈로 인해 농촌을 떠나 일본과 만주 등으로 이주했다.또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체제 기간동안 이른바 노무 동원 또는 강제 징용 등에 의해 북한의 광공업지역과 일본으로 동원됐다.39년에서 해방 전까지의 기간에 국내외에 걸쳐 전시체제와 관련한 유동인구는 약 7백만명으로 45년 현재 국내 총인구 수의 약 30%에 달한다는 사실은 인구이동 규모의 방대함을 말해 준다. 일제 말기의 인구이동 현상은 해방직후에는 역으로 대규모의 인구유입 즉 귀환을 초래했다.여기에다 남북 분단의 체제대립적 성격을 반영하는 이른바 월남민들이 발생했다.해방 직후 남한사회는 단기간 안에 엄청난 인구유입을 경험했다. 이는 해방정국을 이해하는 데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첫째는 유입인구가 자신의 성장지역인 농촌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도시지역의 경제활동 인구로 흡수되지도 못하면서 상당수가 도시 주변에 전재민(戰災民)으로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이는 해방정국의 사회적 불안정성과 긴장을 높이는 주요한 변수가 됐다. 둘째는 유입인구가 계급적 성격과 사회적 경험 등에 따라 비교적 뚜렷한 정치적 지향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해방정국의 정치적 격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해방 직후 월남민들이 우익세력의 선봉대였으며 남한사회가 반공체제로 귀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은 역사가들이 입증하고 있다. 해방 후 최초의 인구조사는 미군정청에 의해 46년 8월25일 실시되었다.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은 제외됐다.이 통계는 44년 조선총독부의 국세(國勢)조사 인구에 미군측이 파악한 식량배급 인원과 외부로부터의 유입인구를 고려해 작성됐다.이 때 조사된 남한 인구는 총 1천9백36만9천270명이었다.따라서 이 통계는 실제 인구수를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미군정청은 이어 47년 국민등록을 실시했다.등록 인구는 총 1천9백88만6천234명.다음해 다시 실시한 국민등록에서는 2천2만7천393명의 인구가 등록됐다.미군정청이 실시한 국민등록은 의식주 및 생활 필수품의 확보와 배급계획의 수행,앞으로의 선거 등을 대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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