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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임스 녹스 폴크(美國의 대통령 문화:17)

    ◎美 영토 2배로 확장해낸 ‘전쟁 영웅’/멕시코와 3년전쟁서 텍사스州 등 7개州 점령/중앙銀 개설­관세인하 등 국가재정 안정 주력 【콜럼비아(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인내의 술잔은 이제 비었습니다.멕시코는 우리의 영토를 침범했고 미국인의 피를 미국 땅 위에 흐르게 했습니다.” 1846년 5월12일,텍사스병합을 위해 멕시코의 선공을 기다리고 있던 11대 미국대통령(1845­1849) 제임스 녹스 폴크는 선전포고를 위해 의회에 보낸 교서의 앞부분에서 이같이 단호한 결의를 나타냈다. 미역사상 유일하게 하원의장 출신인 그는 미국의 기존 영토를 두배로 확장,서부 경계를 미시시피강에서 대서양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동시에 미국을 대륙국가로 만든 용감하고 뚝심있는 대통령으로 미국민들에 기억되고 있다.폴크는 7대 대통령으로 대중의 시대를 개막시키고 영토확장의 불을 당겼던 앤드루 잭슨의 열렬한 추종자로 ‘영 히커리’(Young Hickery)라는 애칭으로 불렸다.잭슨의 강인함을 히커리나무에 비유해 붙여졌던 ‘올드 히커리’에서 따온 것이었다.○40세때 연방하원의장 피선 1795년 노스 캐롤라이나주 멕킨버그 카운티에서 스코틀랜드인 후손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폴크는 10살때 아버지를 따라 테네시주 콜럼비아로 옮겨살게 됐으며 그후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을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다.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다시 테네시로 돌아와 당시 하원의원이던 필릭스 그룬디의 지도로 법학을 공부,24세에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여 콜럼비아에서 개업했다. 폴크는 스승이 앤드루 잭슨의 친한 친구였던 것을 계기로 잭슨과 교류를 갖게 됐으며 민주당에 입당하게 됐다.그는 주하원의원을 거쳐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후 1835년에는 하원의장에 선출됐다.나이 40세때 였다.168㎝로 미국인으로서는 작은 키에 체격이 다부져 ‘땅딸보 나폴레옹’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던 그는 7선의원으로 두차례 하원의장을 역임한뒤 39년에는 테네시주지사에 당선됐다.그는 자연스레 반 뷰렌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목됐으나 지명도가 낮다는 이유로 민주당 전국전당대회는 그의 후보지명을 거부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는 연거푸 주지사 선출에서 고배를 마시게되자 마치 그의 정치생명은 끝난듯이 보였다.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으며 마침내 44년 볼티모어 민주당 전국전당대회가 그에게 행운을 안겨주었다.당시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반 뷰랜과 루이스 캐스가 끝내 승자를 가리지 못하자 9차 투표에서 당의 화합을 이룰 인물로 폴크가 극적으로 부상,후보로 지명됐던 것이다. 정치생명이 끝난 것으로 알려져 있던 폴크의 지명에 대해 헨리 클레이를 후보로 지명했던 상대편인 휘그당은 해보나마나한 게임이라며 냉소를 보였다. 그들은 ”제임스 녹스 폴크가 누구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폴크가 대통령에 부적격자라는 점을 집중 강조했다.반면에 폴크는 당시 미국민들의 영토확장 욕구를 간파,“텍사스와 오레곤의 병합”을 구호로 내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단임으로 그 약속을 이룰 것임을 공약했다. 선거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폴크의 승리로 끝났다.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취임사에서 ‘한 당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임을 강조,소신있는 통치를 위해 당의 영향력에 분명한 선을 긋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는 취임 이듬해부터 3년간 계속된 멕시코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텍사스에 이어 뉴멕시코,아리조나,캘리포니아,네바다 유타주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한 것은 물론 멕시코시티까지 함락했다. ○스페인령 쿠바도 구입 시도 폴크는 멕시코 전체를 미국령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까지도 있었으나 48년2월 강화조약으로 전쟁은 끝났으며 멕시코정부는 1천500만달러라는 헐값에 오늘날 미국땅의 7분의1에 달하는 1천300만㎢의 땅을 미국에 양도해야 했다. 폴크는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구입,멕시코만을 내해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성사단계에 이르렀으나 의회의 반대로 쿠바 구입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사가들이 당시 폴크의 선견지명을 따랐다면 오늘날처럼 미국이 쿠바로 인해 골치를 썩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간선거 이후에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휘그당이 다수당이 되는 바람에 집권 후반기 정국운영에 많은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관세 인하를 위한 새 관세법과 워싱턴에 중앙은행,주요도시에 국유은행을 설치하는 독립은행법을 통과시키는등 국가의 재정안정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일벌레 폴크’라고 불릴 정도로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의 폴크는 1849년 대통령 퇴임후 콜럼비아의 사저로 돌아와 3개월만에 과로와 콜레라로 54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19세기 상류층 생활용품 집대성”/임기중 최초 우표발매­첫 야구경기 개최도/존 스탠위치 폴크 박물관 큐레이터 【콜럼비아(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테네시주 주도(州都) 내슈빌에서 남쪽으로 60㎞ 떨어진 인구 3만의 콜럼비아시는 11대 대통령 제임스 폴크의 체취가 곳곳에 서려 있다.웨스트 스트리트 7가에 위치한 폴크 대통령의 사저는 폴크 생전의 유품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었으며 큐레이터 존 스탠위치씨는 폴크 관련 22개소의 위치와 사연을 기록한 ‘폴크 따라 걷기’라는 소책자를 주며 한차례 돌아볼 것을 권했다. ­먼저 이 소책자에 관해 설명해달라. ▲시내에 산재한 폴크가(家)와 관련된 유적들을 걸어다니면서 체계적으로 볼수 있게 만든 것이다.폴크가의 집들과 부친 새뮤얼 폴크가 딸인 나오미의 결혼기념으로 선사한 집.폴크의 변호사 사무실,당시 법원,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폴크의 환영대회가 열렸던 스테이트 뱅크 앞 광장,그들이 출석하던 교회,학교 등 모든 것이 나타나 있다. ­박물관으로 꾸며진 사저의 소장품은 어떤것들이 있나. ▲이 집은 1816년 폴크가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 공부하러 가있을때 지은 집으로 폴크가 대통령 퇴임후 돌아와 숨질때까지 살았다.퇴임후 백악관에서 가져온 집기들과 19세기 테네시 상류층이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이 잘 보관돼 있다.그 가운데 특히 폴크가 부인에게 선사한 취임기념 부채,폴크의 선거포스터 등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부인 사라 폴크는 어떤 유형의 퍼스트 레이디 인가. ▲사실상 폴크의 보좌관으로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폴크 못지 않게 부인도 일을 좋아했다.그들이 백악관에 들어온후 백악관 내에서 술과 파티와 카드가사라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오락은 일에만 탐닉했다. ­소개할만한 폴크의 또다른 업적은.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업적이 많다.스미소니안 박물관 개관,최초의 우표 발매,미국내 최초의 야구시합 개최 등도 그의 임기중 일이다.
  • 영산강은 말없이 흐르건만(박갑천 칼럼)

    나주목(羅州牧)조의 십이영(十二詠)가운데 제8영. “붉은뱃전(舷) 검은 돛대가 파도에 가득하고/나지막한 집 마을마다 노적가리 높구나/백만섬 영산창(榮山倉)의 곡식있으니/올해는 백성들 고혈짠다는 말 하지들 마소”.뱃길따라 세곡(稅穀)을 실어 날랐던 왕조시대, 지금의 영산포언저리에 조창(漕倉)있었음을 알려준다. 본류길이 115.5㎞의 영산강.지난날에는 서해의 한사리 밀물이 나주까지 밀려들었다.영산포까지는 70년대 중반까지도 작은배들이 드나들면서 수산물거래로 박신거렸고.후백제 甄萱과 弓裔휘하의 王建이 공방전을 벌인 곳도 영산강하류 영암군 덕진포(德津浦)께였다.912년 견훤이 중국으로 보내는 교역선을 영광앞바다에서 나포한 왕건은 승리한 군대를 이끌고 나주포구로 개선하고있다. 수리시설 없는 영산강은 가뭄과 홍수에 민감하여 유역주민에게 피해를 주어왔다.黃玹의 은 1876년의 가뭄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는 가하면 그 이듬해에는 장마로해서 논밭곡식이 거의 썩어 버렸다고 써놓는다.현대로 와서는 1967년의 나주지방 가뭄이 유명하다.이해 여름 40일 동안의 강우량이 고작 37㎜였다는 것 아니던가. 이같은 가뭄과 홍수의 되풀이를 두고는 목포의 여류작가 朴花城의 작품을 떠올린다.여러 단편 가운데 ‘홍수전후’가 1934년,‘고향없는 사람들’과‘한귀(旱鬼)’가 1935년에 발표되었는데 가뭄·홍수와 영산강유역 주민들의 참상을 그리고있다.“작년 홍수때문에 쌀알 몇밖에 건져보지못한” 오삼룡이네 등 아홉집 가족이 평안남도 강서농장으로 이민하게 되는 시작이 ‘고향없는 사람들’.그곳에서 다시 귀향하기로 작정한 사흘전 오삼룡은 가장 친하게 지냈던 고향의 강판옥으로부터 긴편지를 받는다.“…하늘이 무심하여 작년에는 자네들을 몰아내고 금년에는 개벽이래로 두번도 없는 큰가뭄이 우리들을 마저 죽여 고향에서 쫓아내네그려.…”삼룡이는 이 편지를 받고 고향에 갈 생각을 버린다. 광주시에서 추진하는 영산강 개발사업이 환경영향평가의 벽에 부딪혀 있다.그 개발이 생태계를 파괴하게 돼있다는 것이 환경당국의 눈길.홍수예방을 위한 범위안에서계획을 다시 짜보라는 주문인 것으로 알려진다.개발에 따르는 파괴와 보존의 조화는 항상 어려운 대목.억겁의 역사를 안은채 오늘도 영산강은 말없이 흐른다.
  • 인공씨감자 양산체제 돌입

    ◎제주에 23만평의 세계 최대 생산공장 가동/앞으로 5년간 3억5,000만달러 외화 획득/생명력 기존보다 10배 강하고 생산량 30% 증산 우리나라가 지난 89년 개발한 인공씨감자가 대량 생산체제에 접어 들어 외화획득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부가 이달말쯤 북한 나진·선봉지역 시범 합영농장 2만여평에 인공씨감자 40만개를 시범 재배키로 한 것도 국산 인공씨감자가 충분한 상업성을 갖춰 세계 씨감자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인공씨감자는 농업생산성 및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첨단 농업생명공학기술 실용화의 대표적 성공사례.기존 씨감자와 달리 실험실에서 생명공학기술로 배양해 만든 것으로 기존 씨감자보다 생명력이 10배 남짓 강하다.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기존 씨감자보다 30% 정도 많다.방울토마토만한 크기에 무게가 5∼10g에 지나지 않아 유통물류비를 10분의1로 절감할 수 있는 것도 특징. 국산 인공씨감자는 지난 8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鄭革 박사팀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해 32개국에서 특허를 획득했다.현재 대상하이디어(주)가 전용실시권을 확보,상업화에 나서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2백억원을 들여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선홀리 23만평의 부지에 연간 5천만개 생산규모의 세계 최대 인공씨감자 생산공장을 가동했다.이 생산공장은 4천300여평의 배양시설과 2천여평의 발아육묘시설을 갖췄다. 인공씨감자는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구미 선진국조차 실험실 수준에서 극소량 생산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어서 국산 인공씨감자 및 관련기술의 수출전망은 매우 밝다. 지난 96년 연변 조선족자치주에서 인공씨감자 시험경작을 시작한 데 이어 97년 11월 중국 국제기술지력합작공사와 인공씨감자 재배설비의 수출계약을 했다.97년 12월 이란에 인공씨감자 1백50만개를 수출했으며 세계 50여개국과 수출상담을 진행중이다. 인공씨감자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는 올해 8백만달러에서 99년 2천3백만달러,2001년 1억1천만달러,2002년 1억7천만달러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과학기술부는 앞으로 5년동안의 인공씨감자 수출액이 모두 3억5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현재 제주지역에서 감자조합·영농조합법인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있는 인공씨감자를 오는 2000년까지 전남북과 경남북,2001년까지는 강원과 중부지역으로 확대 공급할 할 계획이다. 보급량도 올해 1천만개에서 99년 3천만개,2000년 5천만개,2001년 7천만개로 해마다 2천만개씩 늘린다. 鄭革 박사는 “인공씨감자가 양산체제에 들어서면서 쌀·밀·옥수수와 함께 세계4대 주식작물의 하나인 감자의 종자시장에서 국제적인 우위를 확실히 차지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인공씨감자를 저개발농업국에 무상으로 지원,통상협상과 연계하는 방식의 국가전략사업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공 씨감자 北韓에 제공/KIST 鄭革 박사

    ◎나진·선봉에 40만개 파종 우리나라가 지난 89년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인공씨감자가 북한에 제공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鄭革 박사(인공씨감자 연구실)는 “오는 4월 20일쯤 북한 나진·선봉지역 시범 합영농장 2만여평에 인공씨감자 40만개를 파종,시험 재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鄭박사는 이어 “북한의 식량난 해결을 위해 인공씨감자 시험재배 면적을 오는 99년 30만평,2000년에는 3백만평 규모로 늘려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 朴永學 集賢縣 공산당 부서기(黑龍江 7천리:28)

    ◎동족 향촌의 풍요 일구는 조선족 당 간부/가난한 요원향 서기 부임 3년만에/현내 제일의 부휴한 향으로 개척/중앙민족대학 연수뒤 연 2인자로 지난해 12월11일 부금시에서 두흥농장 취재를 마치고 집현현(集賢縣)을 향해 밤길을 달렸다.눈길 100㎞를 두시간 달려서야 현정부 소재지 복리진(福利鎭)에 이르렀다. 석탄도시 쌍압산시(雙壓山市)의 관할구역에 속하는 집현현 복리진은 철도를 경계로 남북으로 갈리는데 남은 쌍압산시에 속하고 북은 집현현에 속한다.그래서 진(鎭)으로 보기엔 그 규모가 컸다.새로 지은 붕락원호텔(鵬落源大酒店)에 투숙했다.요금은 160원인데 호텔방은 깨끗하고 훈훈했다.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호텔 뒤는 양식창고였다.곡식을 만재한 트럭들이 줄을 지어서 나가고 빈 트럭들이 또 줄을 지어서 들어오는 모습이 장관이다. 상오 9시쯤 현 민족사무위원회 민장원(閔璋元·48) 선생이 호텔로 찾아왔다.흑룡강성 발리현(勃利縣) 태생인 그는 1976년부터 1979년까지 군복무를 한뒤 지금까지 줄곧 민족사업을 해왔다고 한다.우리가동강시 조선족마을을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그는 무척 반색했다. ○곳곳에 식량 창고 즐비 “부천,부화,부광촌은 건설 초기부터 제가 있던 곳이랍니다.인구는 많지 않지만 사람들은 누구 하나 보통내기가 아니었습니다.1980년도에 그 마을에 가서 당지부를 세우려니 지부의 서기감이 잡히지 않더라구요.중국에서는 촌이 서려면 당지부가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원래 살던 마을에서 무얼 했는가고 물었더니 마침 김씨가 당서기를 했다는 겁니다.지금처럼 전화가 있나,버스가 통하나,통신과 교통이 막힌 때라 그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밖에요.그래서 촌의 당서기를 시켰답니다.그리고 1년이 지나서 당조직 서류를 가지러 김씨가 살던 원 촌으로 갔더니 당원이 아니라는 겁니다.저의 실수로 당조직이 비당(非黨) 허풍쟁이 손에서 1년간 돌아간 셈이었지요” 우리가 “현재의 부천촌 당서기는 도성수씨더라”는 말을 하자 민장원씨는 “아니 도성수가요?”라고 하면서 앙천대소하는 것이었다. “나하고 도성수씨는 아주 가깝습니다.도씨네집에 하숙을 했습니다.내가 자원해서가 아니라 거의 억지였지요.사람이 주먹이 드세고 성격이 괴퍅해서 감히 다른 사람들은 그의 비위를 건드릴 엄두도 못냈습니다” 민장원씨는 한참이나 웃더니만 심각한 얼굴을 짓고 “그 사람 당서기까지 한다니 사람꼴이 잡힌 모양이구려”라고 한마디 부언했다. 공산당 당조직은 향촌의 지도적 핵심이다.기차에 비하면 기관사격이라고 할 수 있다.하얼빈시 신길상성(新吉商城·하얼빈시 남강구 선화가 288호)의 김병건(金秉健·44) 사장은 말한다. “공산당이라고 하면 한국사람들은 조건반사처럼 빨갱이를 상기하게 됩니다.하지만 중국에서 공산당원이라면 우수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중국 공산당은 6천만의 당원을 가진 방대한 조직이다.중국사회는 바로 이러한 공산당원에 의해 움직여 가고 있다.조선족사회도 우수한 조선족 당간부들의 역할로 발전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현재 흑룡강성 내에는 20개의 조선족 향이 있고 500개의 조선족 촌이 있는데 바로 향과 촌의 당조직이 민족사회를 꾸려가는 핵심이다. “주은래 총리는 생전에 중국 동북지방이 조선민족 발상지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우리 선조들이 이 땅을 개척하고 지켜왔습니다.수천 수만의 우리 민족 선열들이 이 땅에 피를 흘렸습니다.오성홍기(五星紅旗)에는 우리 민족 선열들의 피가 물들기도 했지요.오늘날 우리 민족이 향수하는 정치권리는 선열들의 피로 얻은 것이랍니다.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우리 선조들이 피땀을 뿌려 가꾼 땅입니다.그러므로 조선족의 조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며 우리의 고향은 우리 조선족들이 개척하고 살아온 이 땅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언론서도 ‘훌륭한 간부’로 조선족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박영학(朴永學·52) 집현현 당부서기가 말했다.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한 박영학은 요하진의 부진장,진장을 거쳐서 요원향의 당서기가 되었는데 3년만에 가난한 이 향을 전 현에서 제일 부유한 향으로 건설했다.뛰어난 재능과 성과로 그는 1984년에 부현장이 되었다.1988년에 중앙민족대학에 가서 2년동안 연수를 하고 돌아온 다음 요하현 당위원회 부서기로 임명됐다.지난 96년 11월 그는 집현현으로 전근되었다.집현현이 생겨서 첫 조선족 간부가 태어난 셈이다. 흑룡강신문의 박일 기자는 ‘훌륭한 간부 가정의 참다운 주인’이라는 기사를 썼다.당시 박영학 서기는 자기 돈으로 음식상을 마련하여 현 소재지에 있는 조선족들을 청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여러분의 도움을 받을 일은 별로 없습니다.여러분이 저를 많이 찾고 저의 도움을 받으라고 이렇게 모신 겁니다.저는 당의 간부이면서 또 조선민족의 간부입니다.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박영학 서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웃어른을 존중하고 높이 모시는 미덕이 있습니다.저는 현의 2인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현내 조선족의 한 성원이 아니겠습니까.어르신네들에게 드리는 저의 효도의 심정이랍니다” 아들 둘을 엄한 교육으로 훌륭한 인재로 키워왔고 또 8년동안 하루같이 반신불수가 된 아내를 간호해온 박서기는 자식한테는 자애로운 부친,아내한테는 따사로운 남편,그리고 사회의 만백성의 훌륭한 아들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별을 앞두고 나는 식당마당에서 박서기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 스웨덴·페루대사 경질(북녘 뉴스라인)

    북한은 스웨덴및 페루주재 대사를 경질하고 후임에 세네갈 주재 2등서기관인 손무신과 전 기니대사인 지용호를 각각 임명한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무독 항암주사제 개발 북한 국가과학원의 의학과학연구원 종양연구소는 컴퓨터와 방사선을 이용해 각종 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진단법과 암치료를 위한 무독성 항암주사제를 개발했다고 노동신문 최근호가 보도했다. ◎컴퓨터프로그램과 증설 북한은 올해 새학년도부터 대학의 컴퓨터 프로그램학과를 증설하고 고등중학교(고교)2학년 이상 전학생에게 컴퓨터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노동신문최근호가 밝혔다. ◎평양 대대적 녹화사업 북한은 봄철 국토관리총동원기간에 맞춰 평양시 전역에 감나무 잣나무 향오동나무 등 각종 나무 수만그루를 심는 녹화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중앙방송이 25일 보도했다. ◎돼지고기 생산증대 독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최근 식량난 해소의 한 방법으로 각지 협동농장농민들에게 돼지고기 생산량 증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고기생산에서 새로운 기록을 창조할 것을 촉구했다.
  • 제일제당그룹 종합연 이철훈 박사(세계 최고에 도전한다:12)

    ◎초강력 ‘천연 미생물농약’ 결실 눈앞/부작용 없고 기존 항균제보다 활성 최고 1천배/세계최대 제약·농약사 ‘노바티스’에 기술 수출/92년엔 레지오넬라균만 죽이는 산물질 ‘AL072’ 개발 경기도 이천의 제일제당그룹 종합연구소 이철훈 박사(42·미생물탐색연구그룹장)는 한달에 한번꼴로 연구원 3∼4명과 함께 ‘토양채취여행’을 떠난다.30∼40㎞ 차를 몰고 가다가 내려 흙을 한삽 퍼담은 뒤 또 다른 길을 재촉한다.속모르는 남이 보면 부러워할 일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고행길이나 다름 없다. 하루에 야산 3개정도 넘는 일은 기본이고 난지도같은 쓰레기장을 포함,악취가 진동하고 세균이 우글거리는 하수·분뇨처리장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탓이다.보통 3박4일간의 여행에서는 700삽의 흙을 채취한다.지금까지 10년째 전국의 산하를 누벼 모두 70여만삽의 흙을 모았다. 이박사는 86년 독일 괴팅겐대 인간유전학연구소 박사과정때 남성불임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인 ‘프로타민단백질’의 유전자 구조와 발현과정을 세계 처음으로 규명,국제 유전학계의 관심을 모았던 인물.88년 박사학위를 받을 때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최우등졸업’(summa cum laude)의 영광도 안았다. ○‘토양미생물 탐색’ 첫 가동 고국에 돌아온 이박사가 토양채취여행에 나선 것은 87년 국내에 물질특허제가 도입되면서 모방 위주의 상품개발이 더는 불가능해졌다는 판단 때문.그는 89년 물질특허를 비켜가기 위한 방안으로 ‘토양 미생물 탐색’이란 이색 프로젝트를 국내 산업계에서는 처음으로 가동했다. 토양 미생물 탐색은 우리 주변의 흙속에서 찾아 낸 수없이 많은 토양균 가운데 어떤 것이 인간에게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 내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어떤 토양균이 인간에게 유익한 항생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확인되면 그균을 분리해 종류를 규명하고,그 균이 만들어내는 항생물질이 새로운 것인지를 밝히는 일이 토양 미생물 탐색의 주된 관심사다. 보통 2만∼3만개의 토양균을 탐색하면 1∼2개의 쓸모있는 균이 나오지만,이 유용균이 인간에게 필요한 신물질이 될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땅속의 미생물을 찾아 내어 신약으로 만들 수 있는 확률은 10만분의 1도 안될 만큼토양 미생물 탐색은 불확실성과 싸워야 하는 작업이다. 이박사는 G7프로젝트의 하나로 토양 미생물 탐색에 나선지 3년만인 92년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경북 포항에서 떠낸 토양에서 ‘스트렙토마이세스’라는 방선균이 분비하는 신물질 ‘AL072’를 찾아 냈다. 이 항생물질은 수많은 세균과 곰팡이중에서 레지오넬라균만을 독성없이 죽이는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또 0.2PPM의 매우 낮은 농도로도 일반 냉각수에 서식하는 레지오넬라 양의 100배나 되는 균을 박멸하는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그러면서도 부식성과 독성이 강한 기존의 염소계 화학살균제와 달리 인체나 환경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다. 레지오넬라균은 여름철 대형건물의 냉각탑수에 서식하는 세균.물방울입자를 통해 호흡기로 감염되어 치사율이 20%에 이른다.84년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23명이 감염되어 이중 4명이 숨진 사례도 있다.“연구과정에는 늘 실패의 가능성이 내재하지요.기업체는 특히 단기적인 평가를 하기때문에 열심히 해도결과가 시원찮으면 견디기 힘든 곳입니다.회사측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끝까지 도와준게 큰 힘이 됐습니다”.이박사는 지난해 4월 이 신물질을 원료로 삼아 대형건물의 냉각수용 천연살균소독제를 선보였다.이 레지오넬라 천연 살균소독제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연간 1백50억원 규모의 염소계 화학살균제 시장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된다.이 신물질 관련 기술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 15개국에 특허 출원됐다. 흙에서 ‘21세기 노다지’를 찾는 이박사의 노력은 국제 농업계의 최대 관심사인 ‘환경보전형 천연생물농약’분야에서도 대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박사는 지난 94년 충북 문촌지역에서 곰팡이를 완전 박멸하는 새로운 구조의 ‘슈도모나스’라는 항진균성 미생물을 찾아냈다.그리고 이것에서 꿈의 신물질로 불리는 ‘세파시딘A’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세파시딘A는 기존의 항진균제보다 낮게는 50배,높게는 1천배 뛰어난 활성을 보였습니다.세파시딘A로 박멸되지 않는 곰팡이를 찾기 힘들정도였지요.‘앤티 바이오틱스’같은 세계적학술지는 이를 미생물학계의 대사건으로 소개했습니다.그러나 문제가 생겼어요.동물 실험을 해보니 혈액내단백질이 세파시딘A와 엉겨 붙는 바람에 약효가 형편없이 떨어지더라구요” ○연 3억불 로열티 수입 예상 그는 동물실험결과에 낙담한 나머지 한때 상품화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그러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94년 10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 미생물대사체학회’에 나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학회에서 돌아와 첫 출근해보니 연구실에 팩스 한장이 기다리고 있더군요.세계 최대의 농약회사인 스위스 시바가익사가 보낸 것이었습니다.천연 미생물 농약을 개발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찾던 대상이 시바시딘A같은 물질이라며 공동 개발하자는 것이었지요.뜻밖의 제안에 정말 가슴이 떨리더라구요” 시바가익사는 96년 산도스와 합병해 연간 매출액이 1백70억달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제약·농약회사인 노바티스란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이박사와 노바티스는 세파시딘A를 농작물 뿌리의 곰팡이를 박멸하는 환경친화적 생물농약으로 개발키로 합의했다.지난해말에는 이 신물질의 화분실험과 온실실험도 모두 마쳤다. 온실실험에서 세파시딘A의 방제효과는 92%로,기존 화학살균제의 60%선을 훨씬 웃도는 대성공작이었다.오는 4∼8월에는 미국의 대규모 목화농장에서 마지막 현장실험을 거쳐 2001년쯤 상품화할 계획이다.한국의 첫 미생물농약기술수출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이박사는 이미 20개국에 이 천연미생물의 균,신물질,제조방법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반 전세계 살균제 시장은 미생물제제가 기존 화학제제를 완전 대체하면서 연간 1백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이중 뿌리 살균제 시장의 점유율은 30% 안팎.이박사가 이 신물질의 기술 수출료를 12%만 받아도 연간 로열티수입은 3억달러(약 3천억원)를 훨씬 웃돌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이박사의 궁극적인 소망은 좋은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아플 때 먹어서 부작용없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치료제 개발을 위해 10년 앞을 내다보고 계속 뛸 작정이다. ◎무한가능성의 미생물산업/의약품·농약·에너지·환경오염처리 등 다양/2000년 시장규모 500억∼1,000억불 전망 1674년 레벤 훅이 현미경으로 미생물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이후 32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미생물을 병원균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미생물은 현재 뿐 아니라 미래에도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생명체다. 곰팡이·박테리아·바이러스 등 주로 1개의 세포로 이뤄진 미생물이 활용되는 분야는 의약품,농약,신소재,에너지생산,환경오염처리 등 매우 다양하다. 특히 의약품 분야에서는 1920년대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을 계기로 항생물질의 개념이 등장한 이래 스트렙토마이신,테트라사이클린,반코마이신,에리스로마이신 등의 항세균물질과 암포테리신 등의 항곰팡이 물질들이 상품으로 나와 질병 예방과 치료에 큰 구실을 했다. 최근에는 고지혈증치료제인 메발로친,로바스타틴과 함께 장기 이식수술뒤의 면역억제제인 사이클로스포린A,타크로림스(FK506) 등이 개발됨으로써 미생물을 이용한 신약시대가 절정기를 맞고 있다.또한 전세계적으로 미생물을이용한 항암제,항에이즈치료제,항결핵제,노화방지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머잖은 미래에 수많은 미생물 신약이 인간의 고통을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생물은 환경분야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중금속을 함유한 폐수의 처리에도 필수적이며 해상의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는 데도 이용된다. 이와 함께 살충제·제초제·살균제 등의 농약에도 수많은 미생물 물질이들어가며 최근에는 미생물 자체를 농약으로 쓰는 환경친화적 생물농약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전세계의 미생물 분야 시장은 80년대 초반 1백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2000년에는 5백억∼1천억달러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철훈 박사 약력 △56.9.서울 출생 △80.2.서울대 약학대학 졸업 △82.2.성균관대 대학원(생물학석사) △88.일 괴팅겐대 인간유전학연구소 이학박사 △86.남성불임 원인물질 ‘프로타민단백질’의 유전자 구조 규명 △87∼88.독일 괴팅겐대 의과대학 전임연구원 △88∼현재.제일제당 발효연구실 미생물탐색연구그룹장 △88.독일 괴팅겐대 박사과정 최우등 졸업 △94.라지오넬라균 선택적 사멸 무독성 신물질 ‘AL702’ 발굴,천연 항진균물질 ‘세파시딘A’ 추출
  • ‘김정일 장군’ 최고 호징(북한 이모저모)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을 ‘장군’으로 호칭하고 있는 것은 여러 호칭중 김정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이기 때문이라고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가 최근 보도.조선신보는 김정일 장군 호칭에 대해 “여러가지 관칭들을 초월하여 전인민적 사랑의 분출로 터져 나오는 언어 표현”이라면서 “이 세상에 장군처럼 감동깊은 호칭은 없다”고 강조. ◎협동농장에 예술선동대 ○…북한은 영농기를 앞두고 농업근로자들의 사기앙양책으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각지 협동농장에 기동예술선동대를 파견하고 있다.노동신문 최근호에 따르면 10명 내외로 구성된 기동예술선동대는 작업반을 찾아다니며 예술소품공연과 함께 농장원들과 같이 질통을 지고 흙을 져 나르고 있으며 휴식시간엔 예술선동사업을 더욱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는 것.
  • 귀농상담실 북적댄다/작년 1,823가구서 올 두달동안 586가구

    ◎연 4천가구 이를듯… 30대가 57% 차지/농림부,200억 지원·경험자 연결 정착교육 IMF여파로 귀농알선 창구들이 북적대고 있다.농정당국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귀농자들의 정착을 위해 각종 영농교육과 실습 프로그램들이 마련하는 한편 귀농자들에게 올해 200억원의 정책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귀농인구는 93년 618가구,95 922가구,97년 1천823가구 등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특히 올들어서는 IMF여파로 1∼2월 두달간 586가구가 귀농,연간으로는 3천∼4천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올해 귀농한 가구를 조사한 결과 30대가 57%로 가장 많고 다음이 40대(22%) 50대(21%)였다. 농림부는 올해 이들에게 금리 5%(2년 거치 3년 상환)의 정책자금 200억원(2천명에게 1인당 1천만원씩)을 영농시설과 농자재 구입대금으로 지원한다. 농협도 지난 18일부터 귀농희망자들이 새 농민상 수상자의 농장에서 영농실습을 받을 수 있도록 알선해 주고 있다.개설 하룻만에 64건이나 접수됐다. 농협은 귀농희망자가 종사하고 싶은 업종(과수 화훼 축산 기타)이나 희망지역을 적어 자기소개서와 함께 농협에 신설된 ‘귀농희망자 농장실습 알선창구’에 제출하면 새농민상 수상자 중 적합한 농가와 연결시켜 주고 있다.귀농희망자는 농장주로부터 진로결정과 작목선정을 도움받게 된다.새 농민상 수상자는 전국에 1천571명이 있으며 모든 작목이 망라돼 있다.농협중앙회농촌지원부의 알선창구는 02­397­5608,5626. 축협이 지난 17일 개설한 ‘축산 귀농상담실’에도 하루 70∼80건의 상담전화가 오고 있다.서울 중앙회를 비롯 10개 시·도지회,전국 180여개 시·군의 회원축협에 동시 개설됐다.축산창업에 필요한 일체의 상담과 정보를 받을 수 있다(02­224­8461∼9).상담신청은 전화나 우편,팩스로 할 수 있고 PC통신 천리안에서는 GO NLCF로 접속하면 된다. 경기도 안성의 축협 종합연수원에 ‘귀농축산인반’강좌도 개설했다.상반기 강좌는 6월1일부터 3일까지 있다. 문의는 0333­53­2031∼3.농어촌진흥공사도 오는 22일부터 ‘귀농자상담소’를 운영한다.문의 전화는 0343­20­3350.
  • 김성훈 농림장관에 듣는다(올해 국정 어떻게)

    ◎“유통 개혁·환경농업 육성 전력투구”/옥수수 등 기초식량 남북 계약재배 추진/벼 수매가격은 농가 소득 감안 신중 결정 김성훈 농림부 장관은 소파에 깊숙히 앉질 않는다.IMF 여파로 헝클어진 농심을 수습하고 농산물 유통개혁과 남북한 농업협력사업 준비 등 현안을 챙기랴,대통령 업무보고를 준비하랴 바쁜 탓도 있지만 아직은 장관자리가 익숙치 않아서다.김장관은 지금 휴직 중이다.새 정부에 입각한 뒤 몸담았던 중앙대 교수직 사퇴서를 냈으나 학교측이 반려했다.“입각한 교수가 휴직처리되기도 처음있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재임기간동안 소신있게 일하라는 학교측의 배려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18일 하오 과천집무실로 김장관을 찾아갔다. □대담=권혁찬 경제부 차장 ­학자로 계시다 장관이 되시니까 어떻습니까. ▲말 한마디,한마디가 막중하다는 걸 실감합니다.바깥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관련부처와 국회,언론,농정의 수혜자인 농민들,소비자 등 모든 분들의 협조 없이는 농정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습니다. ­장관께서 행정경험이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FAO 경험’ 신농정에 접목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이 교수와 학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중앙대 안성캠퍼스(부총장)에서 1만1천명의 학생,8백여명의 교·강사와 함께 지냈으면 합격 아닙니까(웃음).지구상에서 가장 관료적이라는 UN의 식량농업기구(FAO)에서 48개국 유통 및 금융·협동조합 책임자로 2년간 일한 경험을 살려 신 농정을 펼치겠습니다. ­농민들이 지금 무엇을 가장 고민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농축업을 계속 해야 할 지,망설이고 계실 겁니다.정말 농업이 희망이 있는가 하는 회의에 빠진 분들도 계실 겁니다.또 부채는 경감될 수 있는 것인 지,영농자재 값은 뛰는 데 농축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을 지,국민정부인 새 정부는 농업인의 아픔을 알아주고 제대로 대접해 줄 것인가도 생각하실겁니다. ­어떤 답을 해주시겠습니까. ○농정계획에 농업인 참여 ▲농민들이 농자재 가격급등과 금리상승에 따른 이자부담,축산물 가격하락으로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그러나 역대 대통령중 김대중 대통령만큼 농업에 애정과 의지를 갖고 계신 분도 안 계십니다.이 점은 농민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농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한다면 직무유기가 됩니다.주어진 자원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리농촌이 하루빨리 희망과 자신감을 되찾도록 하겠습니다.정책계획단계부터 농업인과 소비자계층을 참여시킬 생각입니다. 절대 관료들만의 일방적인 정책결정은 하지 않겠습니다.참여농정 봉사농정 현장중심의 농정이 결코 구호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농정방향은. ○소비자협동조합법 마련 ▲기계화 영농 등 기존의 정책에 대해서는 성급하게 기대하지 않겠습니다.유통개혁과 환경농업 육성이 우선은 절실한 과제입니다.기관끼리의 직거래는 의미가 없습니다.유통은 물처럼 흘러야 되고,농민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야 합니다.농산물유통개혁위원회를 통해 근본적인 개혁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농지규모화 사업 등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식품은 꼭 먹어야 하기 때문에 품질과안전성을 높여나가면 농축수산물의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마케팅 능력에 따라 같은 제품도 엄청난 경쟁력의 차이가 납니다.돈이 적게 들고 성과가 많이 나야 합니다.그같은 차원에서 소비자협동조합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문민정부에서는 슈퍼체인 등 기존 소매상협회에서 저항해 ‘칭찬도 받지 못할’법이라고 도입을 미뤘습니다.올 정기국회때 현실에 맞게 도입할 생각입니다.원래 협동조합은 소비자부터 시작됐습니다. 도시 소비자단체와 농·축·수협 등 생산자단체가 연결돼야 합니다.유통혁신을 통한 생산증대,품질증진,안전성 제고를 통한 농가소득증대가 정책의 요체가 될 것입니다.소농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친환경·유통개혁적 농업뿐입니다. ­농산물수출도 강조하고 계신데. ○농산물수출탑 제정 시상 ▲무역진흥팀을 만들겠습니다.산업자원부 행사와 별개로 수출탑을 제정,시상할 생각입니다.전체수출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해 농산물 수출은 큰 상을 받을 기회가 적었습니다.그러나 부존자원을 활용하는 수출은 부가가치가 매우 높습니다.외국서 곡물의 75%를,쇠고기의 50%를 수입하기 때문에 그만큼 수출해야 경상적자가 나지 않습니다.쇠고기의 경우 환율이 달러당 1천400원일 때 1.1배 정도밖에 한우고기가 비싸지 않습니다.돼지고기 값은 수입육의 75%로 오히려 쌉니다.지금이야 말로 역전의 찬스입니다.곡물과 쇠고기가 연 30억달러 정도 들어오는 데 수출목표는 22억달러입니다.배가운동을 하면 2004년에 50억달러 수출계획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1월에 돼지고기 수출만해도 작년 1월대비 45∼46%가 늘었습니다.맛과 향기,품질이나 안정성 면에서 우리농산품이 훨씬 뛰어납니다.김치 등 토속음식도 발전시켜 수출증진으로 연결시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축산기반이 붕괴됐습니다. ○음식물 사료화 적극 추진 ▲소는 위가 4개인 동물입니다.그런데 위가 하나인 동물 취급을 하다보니(배합사료 사육을 뜻함) 타격이 큰 것입니다.볏짚부터 먹어야 됩니다.초지 다 어디 갔습니까.농민들이 너무 편하게 배합사료를 먹였습니다. 풀을 덜 먹이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어요.그러다보니 우리 젖소의 수명도 짧아져 미국이나 네덜란드에 비해 절반밖에 안됩니다.경제적으로도 문제입니다.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음식물 사료화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습니다.지방자치단체가 음식물을 한 곳에 모아주기만하면 이 사업은 전망이 밝습니다.음식물의 물기를 제거하지 않고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시민들에 대해서는 쓰레기를 받아주지 않고,안 실어주는 벌과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북한식량문제 전문가로서 남북한 농업협력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남은 논,북은 밭입니다.상호 보완관계입니다.FAO에 있을 때 북한 중국이 제 담당이었습니다.기술 원료 자본을 대주는 현재의 남북한간 임가공사업을 농업분야로 확대하면 농산물 계약재배가 됩니다.콩 팥 녹두 옥수수 참깨 등은 미국의 이해에도 부딪치지 않아 지금도 계약재배가 가능합니다.남한에서 남아도는 비료와 농약은 물론,씨감자 송아지도 지원해줄 수 있습니다. 북한에는 냉해와 병해에 강한 품종이 많습니다.토종에 대한 선호도도 점차 높아져 남북한간계약재배가 추진되면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이 됩니다.아직은 민간차원의 교류에 그치고 있지만 신뢰를 얻으려면 어려울 때 도와주어야 합니다. 쌀도 여유가 있으니까 도와줄 수 있습니다.북한은 비료 농약이 거의 없고 트랙터를 돌릴 기름도 없습니다.협동농장체제 역시 비효율적이어서 협력의 대상입니다.상반기 중 세부 협력계획을 마련하겠습니다. ­쌀을 굳이 100% 자급해야 하느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쌀 품질 높여 경쟁력 제고 ▲불안한 세계 식량사정과 북한의 식량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 힘으로 쌀 등 기초식량을 확보해야 합니다.국가안보와 민생안정차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쌀의 자급입니다.IMF 시대를 맞아 쌀마저 자급이 안됐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인도네시아를 보십시요.우리 쌀은 미국 캘리포니아 쌀과 비교할 때 생산비에서 3.7배 비싸지만 농지 값을 빼면 1.7배에 불과합니다.최근에는 환율상승으로 가격차가 더 좁혀지고 있어 안전성과 품질개선이 이뤄지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쌀 시장의 추가개방엔 어떻게 대처하실 계획입니까. ○2천년 UR협상 탄력 대처 ▲제2의 우루과이라운드협상(UR)과 식량의 무기화 가능성에 차질없이 대처해 나갈 생각입니다.지난 5일부터 6일까지 프랑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본부에서 농업각료회의가 열렸습니다.그러나 정부는 조각때문에 구본영 OECD대사를 참석시켰습니다.2000년부터 재개될 농산물 협상과 관련해 매우 의미있는 회의였습니다.구대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훈령을 내렸습니다.노력한 결과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인정하는 내용을 각료회의의 결의문에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농산물의 경우 무역만 강조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이며,2000년부터 재개될 농산물 협상에서 개방시기와 폭에서 상당한 탄력성을 갖출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외교적 성과이지요. ­올해 쌀 수매가 문제는. ▲98년도 쌀 수매가격은 세계무역기구(WTO)와의 약속,농가소득 수준 등을 감안해 신중히 결정돼야 합니다.지난해 정부가 제출한 쌀 수매가에 대한 결정배경을 충분히 검토해 곧 처리할 생각입니다.98년산 쌀 약정수매 등 추진일정에도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장관이 강성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바른 말 한다고 신운동권 교수니,강성이라느니 하는 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안성캠퍼스가 전국에서 1차로 한총련에서 탈퇴했습니다. 교육부에서 칭찬을 받을 정도였습니다(웃음).부친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제가 39년생인 데 생후 7일만에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있는 만주 봉천(현 심양)으로 갔습니다.아버님께서는 농촌계몽운동을 하다 미결수로 복역 끝에 만주로 가셨지요.해방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중학교때부터 4­H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김장관은 UR협상때 인터넷과 FAO인맥을 통해 정부보다도 더 빨리 협상정보를 입수,정부관계자들을 공격해 곤혹스럽게 한 일로 유명하다.‘우리 쌀 지키기 범국민대책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쌀시장 개방저지의 전면에 서기도 했다.그래서 농림부나 통상부처 관리들 사이에선 골치아픈 학자로 불렸다.취미는 바둑(1급)이나 55세를 넘기고 부터는 끊었다.일단 두면 승부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라고.다산 정약용 선생을 존경해 조순 한나라당 총재 등 몇몇 학자들과 다산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입각 전까지는 시간이 날때 마다 강진의 다산회당을 찾곤 했다.‘우리 쌀 어떻게 지킬 것인가’‘북한의 농업’‘장보고 대사 해양 경영사연구’ 등 저서에서 보듯 학문의 폭이 넓다.
  • 농산물직거래 활성화에 총력/원철희 농협중앙회장 일문일답

    ◎대북 기술협력·비료 제공 등 지원사업 구체화 제3기 회장선거에서 재선임된 원철희 농협회장은 “농산물 직거래활성화를 통해 농협을 더욱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재선을 축하드립니다. ▲농협개혁을 통해 농촌경제를 살리는데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IMF한파로 농업부문에 상당한 피해가 있습니다만. ▲충격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잇습니다.기존 난방시설을 연탄이나 태양열 등 값싼 연료를 이용하는 시설로 대체하도록 자금을 지원하고 유휴농지를 활용해 사료작물의 생산을 늘리는 한편 암모니아 볏짚,쌀겨,톱밥,음식물찌꺼기 등의 사료화도 추진 중입니다. ­농산물 직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은 데. ▲그동안 전 근대적인 농산물 유통구조로 소비자들이 비싸게 농산물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신 유통체계 도입차원에서 제1호 양재 물류센터를 올해 초 개설했습니다.올 5월 창동물류센터가 오픈되고 차례로 청주 등 주요 거점도시에도 문을 열 계획입니다.농산물 직거래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겠습니다.­북한과 협력사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협동조합은 독일통일에서 보듯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할 때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적합한 지원체제입니다.북방농업협력팀을 만들었으며 기술협력과 비료 등 영농자재의 지원사업을 구체화시켜 나갈 계획입니다.예컨대 북한이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하고 남한은 비료와 농약 등의 영농자재를 지원하는 남북한 시범 협동농장 사업을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간차원에서 전개되는 북한 옥수수심기 범국민운동에도 참여할 계획입니다. ­농협 구조개선 계획은. ▲경제사업소 3개소,금융점포 23개소 등 한계사업장을 과감히 폐쇄할 생각입니다.인력 재배치를 통해 중앙회 500명,회원조합 1천500명 이상의 인력도 감축할 방침입니다.
  • 남북협력 기대는 크지만…/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요즘 실향민들은 남북간에 싹트고 있는 화해와 협력의 기운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한다.이들은 무엇보다 김대중 대통령의 적극적이면서도 유연한 대북정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북측 또한 이산가족문제부터 협의해야 한다는 우리측 시각에 호응하는 듯한 제스처를 해보이는 등 전과는 다른 느낌을 줘 어쩐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단다. 우리 정부가 곧 북한측에 5만t의 식량을 지원키로 했고 이미 지난해 합의된 일이긴 하지만 남한 비행기가 북한 영공을 통과한 것도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김순권 교수가 북한의 기후와 토양에 알맞는 슈퍼 옥수수 개발에 착수했고 ‘두레마을’이 민간차원에서 나진­선봉지구에 3백15만평의 합영농장을 설치,운영키로 합의하고 돌아온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뒤 북한 당국은 한술 더 떠 우리 정부측에 무려 15만㏊(4억5천만평)의농지를 조건없이 내줄테니 농사를 지어달라고 제의해왔다고 한다.놀라운 일이다.알다시피 북한은 비료 농약 등의 부족으로 각종곡물의 단위 생산량이 국제 수준의 절반도 안된다. 그럴바엔 차라리 농업자재가 풍부하고 영농기술도 한수 위인 남측에 맡기면 수확량의 절반만 챙겨도 자기네가 농사짓는 것보다는 낫고 영농기술도 배울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그렇더라도 종전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때 주춤했던 제조업 분야 등 경제협력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최근 북한에서 생산된 화차가 들어왔고 현대 삼성 대우 LG등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의 협력사업이 전자 섬유산업 의약품 농수산물 가공등에 이르기 까지 여러 분야에서 이미 성사됐거나 추진되고 있다. 이같은 남북경제협력은 남측으로썬 값도 싸고 질도 좋은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함으로써 IMF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받고 북한으로선 좋은 외화벌이에다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게다가 이같은 협력체제는 남북간에 화해무드를 조성하고 평화기반을 구축,통일로 가는 길을 앞당기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어 더없이 반가운 일이긴 하다.그렇지만 금방 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간 실망이 더 클 수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지난 72년 7·4공동선언문이 발표됐을 때 온 국민은 곧 통일이 될 것 같은기쁨에 들떴었지만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또 92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됐을 때나 94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판문점 예비접촉 때도 큰 기대를 했었으나 우리가 얻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그만큼 남북문제는 변수가 많고 상대는 여러 면에서 매우 특별한 집단이다.게다가 북한은 요즘에도 남한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정리해고제의 반대투쟁에 나서라고 선동하고 있고 우리정부에 대해선 여전히 연북화해를 저해하는 제도적 장치부터 제거하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북대창으로 변한 14만㎢(흑룡강 7천리:25)

    ◎북대황 개간 40년 양국 연 850만t 생산/55년 전업관병 10만여명 집단 이주/문화혁명때 학생병단 수십만명 합류/황야 300만㏊를 옥토로 개간/국영농장 10여곳·공장 수십개 건설 관동이라고 하면 중국 사람들은 산해관 동쪽이라는 뜻으로 해석,동북땅을 상기한다.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중국 역사에서 관동은 함곡관 동쪽을 말한다.산해관은 명나라에이르러서 생긴 이름이고 그 전에는 유관이었으며 수당 초년에쌓은 것이다.더구나 유관의 위치로 보아 지리상에서 이동지구는 존재하지 않는다.청나라 초 산해관 밖으로 정배를 당한 문인들이 인명,지명,물명을 별칭하면서 ‘관동’이라고 한 것이다.그것을 받아서 청나라 말년에 러시아가 여순에 관동주를 설치하면서 많이 사용하게 됐다. 관동땅의 주인은 숙신,고구려,발해,거란,금 나라의 종족이었다.동북땅으로 한족들이 이민을 한 것은 요금 시기로 하북과 산서 두 성의 한족들이었다.그들의 이주노선은 희봉구,고북구를 통한 길로 이른바 주구자라고 한다. ○1947년 퇴역군인 첫 선 한족이 이곳에 나타나기 수천년 전에 원시 민족들은 동북땅에서 생활했다.특히 흑룡강 하류지역인 송화강,우수리강과 흑룡강이 합수하는 14만4천㎢의 거대한 면적 삼강평원을 중국에서는 북대황이라고 부른다.북쪽에 있는 거대한 평야,천고의 처녀지라는 뜻이다.이 곳으로 한족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광복 후이다.1947년 처음으로 퇴역군인들이 첫 보습을 박은 뒤를 이어 1955년에 10만 전업관병이 “지구에 도전하고 황야를 다스려 양식을 생산하자(향지구개전,향황원요량)”는 왕진 장군의 명령을 받들고 북대황으로 진군했다. 가목사에서 동강,동강에서 무원으로 가는 길옆에 세워진 마을 표지에 씌어진 이름들을 보면 지금도 군부대를 연상시킨다.한국전에 참가했던 중국인민지원군 부대의 일부도 한국에서 돌아오던 길에 북대황으로 향했다. 북대황으로의 두번째 대거 이주는 문화대혁명 시기였다.당시 상해,북경,천진 등 대도시의 수십만 중학교,고등학교,대학 졸업생들이 생산건설병단으로 조직되어 왔다. 군인들이 북대황에 진군하여 첫 보습을 박은뒤 꼭 40년이 되는오늘 이곳의 초가집은 벽돌집으로,진흙탕길은 아스팔트로 바뀌고 마을마다 양식창고가 숲처럼 들어섰으며 농기계가 즐비한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했다.3백만㏊의 황야를 옥토로 개간하여 100여개의 국영농장을 세웠고 수십개의 공장과 광산이 들어섰다.1996년까지 북대황에서 생산한 양식 총량은 7백20만t. 1997년 8백50만t 이었다. 북대황이 이름 그대로 북대창으로 변모한 것이다. 조선족이 북대황으로 이주한 역사는 150여년이 된다.무원현 조길향 파카이촌(무원현 길향팔개촌)의 지명 유래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조길향에 사는 조진은(94)옹은 벌써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이 고장에서 150년 이상 대대로 살아왔다고 한다.그는 파카이촌이 증조부 때부터 있었다고 했다.박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세웠다는 것이다.조선말로 하면 박가촌인데 한족들이 박가의 음을 따서 발음한 것이 파카이라는 것이다. ○조선족 150년전 이주 그 후의 조선족 마을들로는 만주국 개척단으로 온 부락들이 있다.바로 동강시 근덕리(동강시근덕리)다.한족들의 지명에 리자가 붙는 법이없다.순수한 우리 민족의 지명인 것이 분명하다.하지만 그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근덕리마을은 원래 만주국때 개척단으로 이주해온 조선족들의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한족의 국영농장이다.이 농장에서 최후의 조선족으로 살다가 95년에 우의농장으로 이사를 갔다는 한태운(51)씨는 말했다. “나는 근덕리가 고향입니다.50여호 조선족들이 살았는데 68년도부터 떠나가 지금은 한 호도 없습니다.원예기술자였던 나는 월급도 꽤나 높았습니다만 그대로 고향에 눌러 있다가는 한족 며느리를 얻을 것 같아서 조선족이 많은 우의농장으로 이사를 갔습니다.우의현 우의농장 6분장 6대와 8대는 조선족 대대인데 6대가 300호,8대가 200호로 총 500여호나 됩니다.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있는데 물론 조선족 학교입니다.부근의 신광,선웅촌에서도 학생들이 모여와 기숙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도 “한국가서 돈 벌자” “농장원들은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월급생활을 했습니다.대대에는 무기고가 있고 농한기에는 군사훈련도 하고 절반의 군인이었습니다.지금도 대장,회계는 월급을 받습니다.대장 월급이 1년에 한 만원 합니다” 국영농장에서 무기 등을 거두어가고 국유토지를 농장원들한테 나누어주었다.북대황에 있는 100여개의 국유농장이 20여만 개의 가정농장으로 되었는데 99.9%의 농장원들이 93.5%의 경작지를 도급맡았다고 한다. 한태운씨는 말한다. “우리 집은 아들 딸 모두 넷인데 논 5㏊가 있습니다.㏊당 9∼9.5톤이 생산되는데 모든 비용을 떼고서 ㏊당 순수입은 4천원입니다.벼 한 근에 국가 수매값이 68전이거든요.먹고 살기엔 좋은 고장입니다.내가 이사를 가서 한 3년 되는 사이에 해마다 10여호씩 시내로 가고 한국으로도 갔습니다.지금도돈 십만원씩 넣고 밀입국을 한다고 몇 년 번 돈을 탕진하고들 있습니다만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사람이란 만족을 알아야지 허욕을 부리면 결국 망합니다” 한국바람이 북대황에까지 불어서 우의농장의 조선족 마을에서도 처녀가 고갈됐다는 것이다.조선족 농장마을의 미래가 어찌될 건지 걱정됐다.
  • 앤드류 잭슨(미국의 대통령 문화:14)

    ◎미 영토 확장 크게 기여한 전쟁영웅/개척농민 유복자로 변호사·의원·대법판사도/귀족정치서 대중정치시대 연 첫 서민대통령 【내슈빌(미테네시주)=나윤도 특파원】 미국의 7대 대통령(1829­1837) 앤드류 잭슨은 미합중국 정치문화에 ‘대중시대’의 개막을 의미하는 이른바 ‘잭소니안시대’을 전개시킨 대통령으로 전 미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시 6명의 전직 대통령이 버지니아,매사추세츠 등 동부 출신의 대농장주 후손으로 좋은 정규교육을 받은 ‘신흥귀족’ 출신이었던데 반해,그는 가난한 개척농민의 유복자로 통나무집(log cabin)에서 태어났으며 정규학교라고는 문턱도 밟아본적이 없었다.그 때문에 첫 ‘서민대통령’으로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미국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전쟁 영웅으로 추앙되어 대통령에 오른 잭슨은 대통령직 자체를 ‘최고의 지위’라기 보다는 ‘일할수 있는 기회’로 인식했다.그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으며 미국 정치사에서 현대적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시킨 대통령으로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강인함 또는 단단함의 상징인 히커리나무에 비유되어 ‘올드히커리’(Old Hickery)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올드 히커리’ 애칭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67년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시골에서 태어난 잭슨은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의 병사로 홀어머니에 의해 양육됐다.성질이 급하고 거친 그는 싸움질을 일삼아 아들을 목사로 키우고 싶었던 어머니의 꿈은 일찌감치 포기해야할 정도 였다. 장로교 목사로부터 가까스로 글을 깨친 그는 14세때 독립군 민병대에 가담,소년병으로 영국군과의 전투에 참가했다. 잭슨은 용맹스럽게 싸웠으나 이듬해 영국군에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그러나 적개심에 불타던 그는 구두를 닦으라는 영국군 장교의 명령에 불복,그로부터 칼로 머리를 맞아 깊은 상처를 얻게 됐다.그는 평생동안 그 상처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다녔다. 포로교환으로 풀려나온 그는 솔리스베리의 한 변호사 밑에서 법률공부를 시작,20세때인 1787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이후 테네시주 내슈빌로 옮겨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96년에는 새로 주로 승격된 테네시주의 연방하원의원에 선출됐으며 이어 상원의원,테네시 대법원 판사를 역임했다. 그의 호전적인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1812년 미합중국의 선전포고로 영국과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 였다.4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민병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잭슨은 인디안과의 전투에서 연승,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군 중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서남부 전체 미군의 지휘권을 얻게 됐다. 잭슨은 플로리다 펜사콜라 전투에서 승리,플로리다를 장악했으며 15년 겨울,뉴올리언스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영국군과 미군과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사령관을 포함한 2천600명의 사망자를 낸 반면,미군은 단지 8명의 사망자만 냈을 뿐이었다. ○영군과 전투서 대승 세계 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방적 승리로 기록된 뉴올리언스의 승전은 영국민에게는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줬다.그동안 군사력 열세에서 유럽 강대국들에 소극적 대응을 해오던 미국은 자신감을 갖게 됐으며 국제사회에 독립국가로서의 위력을 과시하게 됐던 것이다.지금도 뉴올리언스 시가지 한복판에는 포효하는 말에 탄 그의 동상이 높이 서있다. 이같은 그의 업적은 그를 자연스레 1824년 새로 태어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부상시켰다.잭슨은 1차투표에서 승리했으나 과반수에 미달했고,2차투표에서 정치적 흥정에 의해 존 퀸시 아담스에게 고배를 들고 말았다.그러나 잭슨은 4년후 다시 도전,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됐다. ○첫 암살대상자 기록도 잭슨은 작은 정부를 강조하면서 정부와 국민이 어떻게 하면 가까와질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율의 관세제도를 개혁,관세율을 낮추었으며 예산절감을 통해 연방예산의 잉여분을 주정부에 골고루 이월할 것을 제안했다.따라서 그는 연방정부가 공공복지사업이나 건설사업 등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반대했다.정부의 지나친 부채는 국민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까지 주장했다.이같은 국민편에 선 통치는 그의 재선을 무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잭슨은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많은 시행착오도 일으켰다.친구들을 요직에 등용,‘주방내각’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인사행정의 난맥상을 보인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특히 그는 이혼녀인 부인 레이첼을 따라다니는 악의적 소문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그 문제로 대통령이 되기전까지 많은 사람들과 결투를 벌이곤 했다.그는 또 1935년 실패로 돌아갔지만 암살기도가 발생,역대 미대통령 가운데 처음 암살대상이 되는 기록도 세웠다. 그의 주요 업적으로는 ▲영토의 확장 ▲귀족정치에서 대중정치로의 전환 ▲연방정부의 부채청산으로 건전재정 확립 ▲부패한 연방은행의 규제제도 확립 등이 꼽히고 있다.대중정치의 확립은 라이딩스의 미대통령 랭킹에서 잭슨은 42명 가운데 비교적 높은 8위에 랭크되고 있다.그는 69세 대통령을 퇴임하여 자신의 농장인 내슈빌 교외의 허미티지에서 78세로 숨을 거둘때까지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 ◎잭슨 유적지 ‘허미티지’/평생 가꿔온 사저… 테네시주 내슈빌 위치/55만평에 정원·교회·농장·후손들의 집도 【내슈빌(미테네시주)=나윤도 특파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유적지로 지정된 ‘허미티지(Hermitage)’는 잭슨이 평생을 가꿔온 사저로 컨트리뮤직으로 유명한 테네시주의 주도,내슈빌에 위치해 있다. 외딴집이라는 의미의 허미티지는 55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에 잭슨과 그 가족이 기거하던 맨션을 중심으로 부인 레이첼을 위해 만든 정원과 교회,후손들의 집 등 각종 부속건물과 농장으로 돼있다.비지터센터 뒤에 위치한 맨션에는 잭슨 생존 당시의 실내장식과 함께 가재도구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18세기말∼19세기 중반에 이르는 당시 미국 상류사회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이 터는 잭슨이 내슈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며 1804년부터 조금씩 구입해 모은 것으로 오늘날의 형태가 갖춰진 것은 대통령 재임중인 1833년 무렵이며 37년 대통령 퇴임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허미티지는 워싱턴 교외에 위치한 조지 워싱턴 사저인 마운트버논과 함께 미국내 대통령문화 보존의 한 본보기로 유명하다.1889년 애미 잭슨에 의해 창립된 허미티지부인회에 의해 보존되고 운영되고 있으며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이 부인회는 내년 2월 창립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애미 잭슨은 자식이 없던 잭슨 대통령 양아들의 아들인 잭슨3세의 부인이다.그녀는 45년 잭슨 사망후,수십년 동안 역사적 장소가 일부는 팔려나가고 퇴락해가는데 안타까움을 느낀 끝에 허미티지부인회를 결성,유적지키기에 나섰던 것이다. 30년 앞서 결성된 마운트버논부인회와 함께 허미티지부인회는 남자들이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전쟁에 휩쓸려 있는 동안 부인들의 힘으로 문화유적을 지켜낸 훌륭한 본보기로 남아 있다.
  • 주 장관 투기 의혹 조사/사실 확인땐 경질 시사/청와대 지시

    김중권 청와대비서실장은 9일 주양자 보건복지부장관일가의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의혹’과 관련,박주선 법무비서관실을 통해 본격적인 진상조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박지원 청와대대변인은 이날 주장관 일가의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나타나고 있어 국민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진위여부를 명확히 파악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김대통령도 언론보도 내용은 알고 있지만 자세한 보고는 받지 못해 구체적인 얘기는 아직 없었다”고 밝혔다. 박대변인은 “법무비서실쪽에서 진상파악에 나선 만큼 빠르면 내일 중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면서 “새로운 의혹과 보도내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김대통령도 신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말해 경질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했다. 박대변인은 이에 앞서 “오늘 아침 전화통화를 통해 들은 주장관 본인의 해명에 따르면 본래 농장이어서 남편이 농사를 짓기위해 농장에 있는 집으로 전출·입을 한 것이지,부동산 투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남북 농업협력 ‘청신호’/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지원받은 식량 일부를 군량미로 빼돌리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그러나 저들은 군량미 확보 여부와는 상관없이 작심만 하면 언제든 무력도발도 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그보다 더 걱정되는 일은 따로 있다.굶주린 북한주민,특히 어린이들에게 나타날 후유증이 결국은 우리의 부담으로 돌아와 장차 엄청난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근자에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줘선 안된다는 강경론이 시들해진 것도 그때문일 것이다.그대신 “단순한 식량지원으로 그칠게 아니라 적극적인 남북간 농업협력을 통해 수확량을 늘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일각에선 이미 추진되고 있다. 20여년전 부터 ‘두레마을’이라는 농촌공동체운동을 펴 온 김진홍 목사는 최근 “연내에 북한의 나진­선봉지구에 3백15만평에 달하는 두레마을을 조성,콩 감자 옥수수 채소 등을 심고 돼지 등 가축도 길러 이를 가공 판매하는 남북한 합영 시범농장을 운영키로 했다”고 발표했다.이 합영농장엔 20명 이내의 남한 농업전문가들이 상주하며 영농기술 보급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이 계획에는 인공 씨감자를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원의 농업전문가들도 동참하고 있다. 얼마전 북한의 옥수수 재배실태를 살피고 돌아 온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도 북한의 기후와 지형에 알맞는 수퍼 옥수수를 빠른 시일내에 개발키 위해 오는 13일 국제옥수수재단을 창립한다. 김박사는 이 재단이 개량해 낼 북한형 수퍼 옥수수는 병충해에 강해 소출이 많고 당도가 높아 맛도 좋을 것이라고 장담한다.그동안 북한의 옥수수 수확량은 ㏊당 3.5∼4t이 고작이었는데 이 수퍼 옥수수는 7.5t 이상이라니까 그의 말대로라면 고질적인 북한의 식량난이 일거에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새 정부는 정경분리원칙에 따라 농업분야를 포함한 대북경제협력을 강화키로 했고 김성훈 농림부장관도 북한에서 농축산물을 생산, 국내로 반입하는 계약재배 등 남북한간 농업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농사용 비닐과 농약 비료 등의 지원방안도 검토중이라고 한다.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이른바 ‘주체농법’이 망가뜨린 북한의 농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10년도 넘게 걸릴 것이라 한다.그러나 급한대로 좋은 씨앗과 농약 비료 등을 지원해주고 2년여 정도 영농기술지도를 해준다면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다만 각 기관 기업 단체가 중구난방으로 날뛰는 한건주의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그러기 위해선 정책과 집행을 조율하는 창구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 못배운게 한이 되어 58세에 고교생으로/포천 한우협회장 김명학씨

    ◎자식같은 짝과 나란히 교복입고 수업/현장경험바탕 체계적인 축산 이룰터 【포천=박성수 기자】 “못배운 것을 한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담임선생님보다 24살,옆자리 짝보다는 43살이 많은 포천실업고등학교 축산과 1학년 김명학씨(58·포천군 신북면 만세교리)의 칠판을 바라보는 눈이 반짝 빛났다. 검은 색 보다는 흰 머리카락이 훨씬 많은 김씨는 1백여마리의 한우를 기르는 농장주인이면서 포천군 한우협회 회장.그러나 학교에서는 누구와 다를바 없이 명찰에 교복을 입은 신입생이다. 김씨가 못다한 향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포천실고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96년부터.그해는 입학시기를 맞추지 못해서,또 이듬해는 주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올해는 1천46명의 신입생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0년간 소만 키워왔고 소라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부족한 이론에는 두손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씨의 입학허가 요청에 학교측은 처음 방송통신고나 다른 교육기관을 추천했지만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축산업을 배우겠다는 고집에 결국 입학을 허가할 수 밖에 없었다. “공부하는게 재밌어요.이 나이에 고등학교 다닌다고 누가 뭐라해도 공부가 재미있는 걸 어떡합니까.그러니까 늙그막에 교복입고 학교다니는 것 아니겠어요”
  • 서울시 음식쓰레기 대책(사설)

    서울시가 올해를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원년으로 삼고 이에 따른 ‘음식쓰레기 감량 및 재활용 추진계획’을 내놓았다.지난해부터 ‘음식쓰레기 50% 줄입시다’ 연중캠페인을 전개해온 서울신문은 이제 이 운동이 서울시의 본격 정책 수립으로까지 진전된 것에 깊은 감회를 느낀다. 서울시가 내세운 첫단계 추진항목은 음식쓰레기 줄이기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이다.우선 하오 2시부터 4시 사이의 결혼식에 음식제공을 금지키로 한 것은 시민들에게서도 크게 공감을 얻을 것이다.단지 무리하게 음식을 제공해 오던 결혼식 업체의 또다른 억지 요구사항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사후 점검이 필요하다. 5월1일부터 서울시내 전 음식업소는 음식쓰레기를 버릴때 물기를 제거한뒤 실명스티커를 부착해야 한다.그러나 이 시책에는 물기를 말리는 도구를 보다 간편하게 개발하여 싸게 보급하는 일이 필수적이다.그렇지 않으면 크고 작은 모든 음식점이 참여하는데 다소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음식쓰레기 줄이기만큼이나 중요한 또하나의 과제는 이를 자원화하는 것이다.이 대안은 지역 단위로 축산농가와 결연해 직접 전달하는 체인을 만드는 것이 상책이다.서울시가 이 창구를 만들어 하루 160여t의 쓰레기 사료화 목표를 세운 것은 잘한 일이다.중구 경우처럼 구가 직접 다목적 재활용농장을 만드는 것도 훌륭한 발상이다. 또 하나의 계획인 푸드뱅크(식품은행) 설치는 조심할 부분이 있다.남은 음식물을 모아 사회복지시설에 보내자는 이 아이디어는 음식물을 얼마나 위생적으로 이동시키느냐에 관건이 있다.이동용기나 이동시간 등을 점검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서울시 노력이 성공한다면 97년 하루 평균 3천500t 규모였던 음식쓰레기 발생량이 3천t으로 줄고 재활용량은 270t에서 480t으로 증가한다.쓰레기 처리비용도 준다.막대한 자원 절약인 것이다.이제 계획을 효율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 음식쓰레기 사료시설 4곳 신설/서울시 내년까지

    ◎총 183억원 들여 하루 400t 처리 계획/음식쓰레기 실명제 5월부터 전면 실시 서울시는 올해를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원년’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 시는 도봉구 등 4개 구에 음식물쓰레기 퇴비·사료화 시설을 내년까지 건설한다.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시설은 올 11월 가동에 들어가는 강동구 음식물쓰레기 퇴비화시설(하루 30t)을 비롯 내년에 완공되는 성동구 퇴비화시설(〃50t),성북(〃20t)·도봉구 사료화시설(〃300t) 등이다.시설공사에 모두 1백83억여원이 투입된다. 시는 이미 음식물쓰레기 사료를 공급받고 있는 충북 옥천군 개금농장 등 전국의 18개 축산농가에 올해 사료저장시설 설치비를 자치구 예산으로 지원토록 할 계획이다. 음식물쓰레기 발생을 원천적으로 줄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된다. 시는 다음달 각 자치구의 조례를 개정,100가구 이상 공동주택 신축때 음식물쓰레기 감량화기기 설치를 의무화할 방침이다.또 5월부터 마포·강서구 등 8개 구에서 실시중인 ‘음식물쓰레기 배출자 실명제’를 25개 전 구청으로 확대한다.이와 함께 음식물쓰레기 감량업소를 지난해 1천512곳에서 올해 1만2천127곳으로 확대하고 이들 업소가 규정을 위반할 때마다 1백만원까지의 과태료를 물릴 방침이다.
  • 미 버지니아대 ‘아카데미 빌리지’(세계 문화유산 순례:63)

    ◎학문­주거­자연 어우러진 ‘환상의 캠퍼스’/1826년 미 3대 대통령 제퍼슨이 직접 설계 완공/판테온 신전 본뜬 ‘로툰다홀’ 앞에 ‘파빌리온’ 배치 【샬롯빌(미버지니아)〓나윤도 특파원】 워싱턴 DC 남부에 위치한 버지니아주 최고 명문으로 알려진 버지니아대학(UVA)의 대표적 상징으로 돼 있는 ‘아카데미 빌리지’는 학문과 주거와 자연 3자가 한데 어우러진 이상적인 대학캠퍼스의 정형을 이루고 있다. 미국 건국의 일등공신 토마스 제퍼슨이 180여년전 자신의 학문적 이상을 펼치기 위해 고향인 버지니아주 중동부 샬롯빌에 건립한 이 대학은 건국 초기의 대학으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등 정치인은 물론 작가 애드가 앨런 포,요즘 최고 인기 앵커우먼인 NBC­TV의 캐티 쿠릭 등각 분야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UVA를 미국내 일류대로 만들었다면 이 대학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제퍼슨에 의해 직접 설계되고 이름지어진 캠퍼스인 ‘아카데미 빌리지’ 때문이다.이는 대학이 학문 자체뿐만 아니라 학문을 위한 모든 부대조건까지 갖춘 완벽한 공간이 되도록 최초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인간적 측면의 고려없이 학문적 측면만 강조하고 있는 현대의 대학들에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완성도 가장 높은 건축” 따라서 이 빌리지는 1976년 독립 200주년을 기념,미국의 대표적 건축가 모임인 미건축연구소(AIA)에 의해 미국 건축역사상 가장 중요하고,또 완성도가 높은 건축물로 선정됐다.이어 87년에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 의해 포괄적 문화의 가치를 인식한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빌리지는 셰난도 밸리의 동쪽 산맥군인 블루 릿지 마운틴 기슭,락피시 계곡의 빼어난 주변경관의 이점을 한껏 살려 설계됐다.건국초 3대 대통령을 지낸 제퍼슨의 ▲교육자로서의 비젼 ▲건축가로서의 재능 ▲원예전문가로서의 기술 등이 한데 어우러져 노년기에 접어든 그의 인간적 완숙미가 배어난 작품으로 설명되고 있다. 제퍼슨은 죽기 직전 자신의 묘비명에 ‘독립선언서 기초자’‘종교자유를 위한버지니아장전 기초자’‘버지니아대학 설립자’ 등 세가지 타이틀만을 새겨달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이 대학 건설을 대통령직보다도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재임(1801­09)중 또하나의 그의 건축가적 기질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샬롯빌 고향농장에 몽티첼로라 이름 지은 자신의 집을 건축한바 있는 제퍼슨은 퇴임후 교육자로서의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1817년 10월6일 이 대학의 첫삽을 떴으며 모두 9년 걸려 26년 완공됐다.기공식 자리에는 그의 고향 후배들이기도 한 당시 대통령 제임스 먼로,직전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 등이 참석,3·4·5대 대통령이 나란히 초석을 놓았다. 한글자모의 티읕(ㅌ)자를 거꾸로 세운 모양의 아카데미 빌리지는 가운데 직사각형 잔디밭인 ‘론’(Lawn)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원형건물인 ‘로툰다’(Rotunda)홀을,동·서 양쪽으로는 회랑으로 길게 연결된 ‘파빌리온’(Pavillions)이 건설돼 있다.또 각각 뒷편으로는 모양이 다른 정원과 그 건너편에 파빌리온과 나란히 또 한줄씩의 건물로 된 ‘레인지’(Ranges)가세워져있다.론 남쪽은 블루 릿지 마운틴 쪽으로 탁 터져 제퍼슨의 이상인 인간정신의 무한한 진보를 상징하고 있다. 로마 판테온 신전을 본따 절반 크기로 지은 로툰다홀은 당시 도서관으로 사용됐으며 그 밑에는 강의실이 위치했다.또 파빌리온은 I부터 X까지 로마숫자 번호가 붙은 10채의 2층건물이 동서로 5채씩 서 있으며 주로 교수들의 주거와 연구실 공간으로 활용됐다. ○기공식 3∼5대 대통령 참석 뒷편의 레인지에는 ‘호텔’이라 이름 붙은역시 2층건물이 A부터 F까지 6채가 동서로 3채씩 있어 학생식당과 특별활동룸,학교 오피스 등으로 사용됐다.그리고 파빌리온과 호텔들을 연결하는 방들은 학생 기숙사로 쓰였다. 이들 각 건물과 방들은 모두 회랑으로 연결돼 비나 눈 등 자연의 영향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들이 항상 밀접히 지낼수 있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들이 함께 살며 함께 연구하는 제퍼슨의 학문공동체 이상을 실현시킬수 있었다.특히 파빌리온과 레인지 사이의 10개의 정원은 모두 각각의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중앙의 ‘론’과 함께 학문공동체에 충분한 자연의 휴식공간을 제공토록 했다. 로툰다홀의 도서관은 1930년대 다른 곳으로 옮겨졌으나 나머지 건물들에는 오늘날에도 일부 교수들의 주거와 대학원생들의 기숙사로 쓰이고 있으며 특별활동룸 등 학교생활의 중심으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이중 일부는 성적이 좋은 학부 4학년생에게도 제공된다. ○학문 필요한 휴식공간 제공 이들 건물이 낡고 욕실 화장실 등이 떨어져 있어 불편한 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방을 얻는 것을 학생들은 큰 명예로 생각하고 있다고 학교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제 학교규모는 엄청나게 커져 1825년 개교 당시 40명이던 학생수는 1만8천명으로,제퍼슨에 의해 처음 임명됐던 8명의 교수는 오늘날 1천7백명으로 증가했다.또 이 대학의 전부였던 아카데미 빌리지도 이제 캠퍼스 한 귀퉁이로 밀려나게 됐다.그러나 그의 학문공동체 정신은 오늘날 컴퓨터시대와 조화를 이루어 수업,연구,행정,학생활동 등 대학의 모든 분야가 컴퓨터로 연결된 ‘전자 아카데미 빌리지’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살아 있다. ◎여행가이드/워싱턴서 남서쪽 200㎞… 부근엔 미 대통령 3명 사저­농장도 워싱턴 남서쪽으로 200㎞m 가량 떨어져 있으며 승용차로 약 2시간 걸린다.66번 고속도로를 타고 40여㎞ 서쪽으로 달린뒤 29번 국도로 샬롯빌까지 가면된다.이 길은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가운데 넓은 분리대와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어 버지니아 시골분위기를 만끽하며 달릴수 있다.이 근처에는 제퍼슨의 몽티첼로 이외에,약간 못미쳐 제임스 메디슨의 사저 몽펠리에와 제임스 먼로의 농장 애쉬 론 등이 있다.또 서쪽의 스톤턴에는 우드로 윌슨 생가도 있어 이 일대는 미 대통령문화의 진수를 맛볼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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