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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무극 1인자 공옥진(이세기의 인물탐구:76)

    ◎고독을 춤추는 이시대 마지막 광대/타고난 끼와 파격의 몸짓으로 한맺힌 삶 표현/헤살궂은 사설조에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부친에게 창배워 유랑극단에… 장애인 동생 조카위해 국수장사도 전라도 광주땅에서 공옥진예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공옥진」 이름을 대면 「함평군 문장을 지나 40㎞쯤 들어간 영광에 가보라」고 일러준다.영광읍 교촌리 영광예술연구소에 들어서자 그는 찾아간 사람을 얼싸안고 눈물부터 글썽인다.눈물 많고 한 많고 정많은 모습은 예전이나 변함 없다.연구소 마루는 널찍한 20여평인데 비해 뒤꼍에 위치한 살림방은 사람이 둘만 앉아도 비좁은 골방에 불과했다.전국 방방곡곡 이름을 떨치지 않은데가 없건만 그의 생활은 여전히 궁핍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그러나 자신이 직접 캐온 불갑사 산나물이며 법성포 바닷가에서 주워온 바지락으로 상을 차리면서도 지난해 피땀으로 절약한 1천만원을 중고생 장학금으로 내놓아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는 얘기다.가난과 한과 고독이 점철된 그의 지나온 생애에 비춰 그는 한푼이라도 돈이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지금도 의탁할곳 없는 동네 노인들을 집에 데려다 함께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산에 가서 고사리를 캐기도 한다. ○생활은 여전히 궁핍 지금부터 17년전 중앙대 교수이자 무용평론가인 정병호씨가 「참으로 이 시대 그대로 지나쳐선 안되는 예사롭지 않은 예인」이 있다면서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데려간적이 있었다.그때 공옥진은 하얀 옥양목 치마 저고리차림의 평범한 시골 아낙에 지나지 않았으나 창과 춤뿐 아니라 일인다역으로 「흥보가」「심청가」를 혼자서 몇시간이든 두루 꿰어나간다고 했다.막상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가 「심청이 팔려가는 대목」을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 번뜩이는 예살이 범상치가 않았다.「서리서리 한맺힌 구성진 가락은 한여름철 장대비와도 같고 헤살궂은 사설조마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 담겨있었다.용궁막 황성 맹인잔치대목에 이르러 저고리 뒷섶을 활짝 뒤로 젖히더니 목속에 턱을 깊숙이 파묻고 눈을 사팔로 만들고는 엉거주춤 허리춤을 부여잡고 뒤뚱뒤뚱 휘돌아나갔다.엉덩이 빠진곱사춤,절름발이 곰배팔이 오리발 병신춤을 눈부시게 펼치는 가운데 인물치레 성음치레를 무시한 자재로운 몸짓은 도무지 몸을 사리거나 풍색을 개의치도 않았다.솔직하고 천연덕스러운 그의 춤은 얼핏 보기엔 즉흥적인 신명같지만 하나의 익살스러운 동작에는 반드시 그 시작과 끝을 알리는 회무가 따르고 있었다.경륜 있는 예인으로서의 여유와 능수능란이었다. 그의 성공에 대해 민속학자 심우성씨(문화재 전문위원)의 「고격의 예술에 식상한 관객들이 섬세한 아름다움이기를 거부한 그의 진솔한 인간적 표현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 탓」이라는 평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이후 국악관련 책자나 프로그램에서 그는 「우리나라에 예술가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공옥진을 꼽겠다」고 당당하게 밝혔고 「공옥진의 타고난 「끼」,철저한 광대기질,총명과 명석은 가히 천재적인 것으로 그는 한번만 힐끗 보고도 상대방의 모든 동작과 표정을 날카롭게 읽어낸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예술사 연구를 하는 김철순은 『일찍이 이동백옹이 이혜구씨에게 말한 것처럼 판소리 뿐 아니라 모든 한국예술의 본질은 기존의 법칙과 양식,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류의 새로운 음악과 춤으로 자연스럽게 창조해내는 것」이라야 한다면 그가 바로 공옥진』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공옥진의 춤은 춤사위로 이어진 정제된 춤이 아닌 고통스런 삶의 한풀이이자 아무도 흉내낼수 없는 진짜 고유의 조선춤」으로 호평했고 무언극공연차 한국에 왔던 마르셀 마르소도 「나는 무언극을 하지만 공옥진의 일련의 움직임은 그것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독특한 파격의 예술」임을 거듭 강조한바 있다. ○한때 입산… 비구니로 공옥진의 광기랄가,신기랄가.그의 천부적 재질은 연습과 훈련으로 이루어진 격식을 갖춘 전통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사람을 사로잡는 힘과 정과 한이 일체감을 이루면서 「고통과 슬픔이라는 껍질을 과감하게 깬 살아 있는 몸짓」은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만의 독특한 창무극을 무대에 정착시켰고 그는 일약 중앙무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7살때 단돈 천원에 일본에 팔려간 적이 있어요.당대 제일의 무용가인 도쿄의 최승희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다시 일본인집에 넘겨졌지요.5년만에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방랑길을 떠났고 어머니 마저 개가해버려 동생들과 먹고 살기 위해 그때부터 장터에서 춤을 추고 창을 하게 됐답니다』 하얀 옥양목 치마끝에 찍어낸 눈물은 그의 말을 빌리면 「눈물이 고여 바다」가 됐을 정도다.그만큼 그의 지난 세월은 어느 대목을 들어도 고초와 한숨이며 통곡의 파노라마다.그런중에도 국내 구석구석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 초대되어 젊은이들에게 「어머니」라 불렸고 미 카네기홀 링컨센터 대공연을 갖는가 하면 일본의 저명한 사진작가 세키네는 그의 공연사진과 데생으로 도쿄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옥진은 전남 승주군 송광면 추동리에서 태어났다.남도 인간문화재인 공대일 명창의 4남매중 둘째딸,그의 조부는 광주의 김채만을 사사,서울 협률사 초기멤버이던 공창식 명창이다.그는 일찍이 부친에게 창을 배운후 유랑극단의 소녀주역으로 활약하다가 두번의 결혼 실패끝에 한때는 지리산 천은사에 입산하여 「수진」스님으로 참선,중년에 접어들어 농아인 남동생과 곱사등이인 조카딸을 돌보기 위해 광주 지산면에서 국수장사를 했고 그곳에 공연을 왔던 김연수씨를 만나 우리국악단에 몸담으면서 다시 유랑생활에 나섰다.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로 얼룩진 그의 인생사는 그동안 여러잡지 신문 등에 소개된바 있지만 그 어느것도 그가 돗자리 하나만으로 장바닥에서 펼치는 통한의 눈물과 익살과 한숨에 미치지 못한다.또한 그의 「살풀이춤」은 장탄식과 짙푸른 한의 음영이 깃든 명무지만 「살다보니 어찌어찌하다 희극무인 병신춤 동물춤의 일인자」처럼 되었고 한때는 장애자들로부터 「무엇 할짓이 없어 장애인 흉내로 무대에 서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그때마다 그는 곱사춤은 옛날부터 각 지방에서 내려오던 사당패들의 자리판 놀음이며 더구나 그 자신이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과 내손으로 키운 조카아이까지 장애인의 가족으로서,살아있는 여러 삶의 절박한 표현은 춤일수 밖에 없음」을 그때마다 상기시키지 않으면안되었다. ○84년 서울생활 청산 그는 지난 84년 6년여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노부를 모시고자 그가 자라난 영광읍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동생과 조카를 앞세웠고 부친마저 90년 세상을 떠난후 지금은 예술연구소에 남아 고향의 「아기」들에게 그의 춤을 전수시키고자 만모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요즘은 수년전부터 앓아온 담석증을 세번째 수술하고 아직 건강치 못한 몸이지만 산에 가서 즉흥무를 추거나 산야에 대고 「제비 노정기」를 내지르면 「없던 힘과 신명이 절로 솟아」 아프던 몸이 거뜬히 낫는다고 말한다.지난봄부터 여수 영암공연,크고 작은 경로 효도잔치에 빠지지 않았고 7월에는 광주에 새로 생긴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을 앞두고 있다. 공옥진은 참으로 한이 많은 예술가다.그리고 그의 춤과 소리를 격조와 품위로 논하기란 어렵다.그러나 무대에 서면 진흙탕에 뒹굴듯 몸을 사리지 않고 인간의 「절대고독」을 춤추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 그 이상」이라는 한 평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누군가 말한대로 「광대가 될때만가장 인간적」이라고 한다면 꾸미지 않은 옛광대의 기질과 체취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옥진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광대라는 예감이다. □연보 ▲1931년 전남 승주 출생 ▲38∼43년 일본 체류 ▲45∼47년 조선창극단 ▲48년 고창·정읍 명창대회1등 ▲57∼63년 임방울창극단 협률사 입단 ▲61∼63년 김연수 우리국악단 ▲64∼66년 김원술안성국악단 ▲66∼67년 박녹주국극협회 ▲67·68년 일본공연 ▲78년 공간사랑 1인창무극 ▲81년 미 케네디센터 「한국전통무용」공연,전남 영광읍장터 「공옥진놀이판」 ▲84년 일본 공연,서울 결산무대 「공옥진춤판­그의 모든 것」(문예회관대극장),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서 「마당놀이 춤판」,낙향 광주서 부친 공대일명창과 「아버지와 춤을」 대공연 ▲85년 런던 국제 연극제 참가 ▲91년 1인창무극(호암아트홀) ▲92년 불우한 소년소녀가장돕기 서울공연(세종문화회관)을 필두로 인천 성남 수원 구미 대구 천안 평택 충주 제주등 15개도시 순회공연 ▲93년 뉴욕(링컨센터) 시카고 LA 하와이 중국 런던 일본등 세계순회 및 부산(KBS홀)공연,「한국의 소리와 몸짓」시리즈(예술의 전당),1인 창무극(미도파 메트로홀) ▲94년 1인창무극 「학녀의 한의 춤」(세종문화회관),그외 전국 50여 대학 초청 「공옥진 한의 춤」공연등 경로위로 잔치 수백여회 ▲95년 여수(진남체육관) 및 영암 정읍 공연,7월9일 광주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 예정 전남 영광예술연구소 대표
  • 청각장애인용 휴대단말기 나온다/한통개발원 「텍스트폰」개발

    ◎노트북∼전화선연결… 문자를 음성으로 합성/시제품 50대 시험보급… 내년부터 대량생산 청각 장애인들이 전화선을 통해 문자 또는 음성합성으로 정상인이나 장애인과 불편없이 의사를 교환할 수 있는 휴대단말기와 통신중계시스템이 국내 기술로 개발됐다. 한국통신 연구개발원의 차세대영상통신팀(팀장 전준현 박사)은 19일 노트북형태의 청각장애인및 농아인용 단말기 「텍스트폰」(문자전송장치)과 「복지통신망(WelCom­NET)중계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텍스트폰은 지난 93년부터 4억원을 투입,2년여 연구끝에 개발에 성공했다.이는 단말기끼리 서로 한글·영문 등의 문자통신을 할 수 있는 것을 비롯,문자를 음성으로 합성·변환하고,이동중 통신을 가능케 하는 음향및 문자변환(커플링)등 3가지 통신기능을 갖추고 있다. 문자통신기능은 장애인 상호간에,음성합성기능은 장애인이 정상인과 통신할 때 사용하고,음향및 문자변환기능은 전화선 연결잭이 없는 곳에서 장애인이 공중전화기를 이용해 통신할 때 사용하도록 돼 있다. 즉 공중전화기에돈을 넣고 송수화기를 텍스트폰의 음향커플링장치위에 올려 놓은 다음 키보드로 문자를 입력하면 문자가 전기적 음향신호로 바뀌어 전화선을 통해 전달,상대방 단말기에서 다시 문자로 변환돼 화면에 나타난다. 텍스트폰은 이밖에 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하도록 ▲1백개의 전화번호를 입력할 수 있고 ▲달력·시계·계산기·일정관리등을 할 수 있는 보조기능 ▲부재중 메시지를 자동응답하게 하거나 정상인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문자 단말기임을 음성합성으로 알려주는 환경설정 기능을 제공한다. 전준현 개발팀장은 『장애인들이 텍스트폰을 아무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무선호출·팩스전송·전자펜기능 등도 추가하겠다』며 『올해는 이 단말기 시제품 50대를 만들어 장애인들이 시험사용토록 하고 내년부터 무상임대나 염가판매로 대량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복지통신망 중계서비스시스템은 장애인이 특정번호로 중계센터에 접속,문자통신으로 정상인과의 통화를 신청하면 중계요원이 상대방을 호출해 말로 전달하고 정상인의 말은 문자로 장애인에게 전달하도록 돼 있다.
  • 이단종교 연구가 탁명환씨(92문화계 주역:5)

    ◎“시한부 종말론 끝나지 않았다”/“회개” 발언불구 헌금 되돌려주지 않아/기성교회 내실 기하지 못한데서 비롯/사회불안 계속땐 더 은밀히 퍼져나갈것 시한부 종말론의 여파로 기성교단이나 휴거를 주장하던 이단교파나 모두 상처뿐인 한해가 되고만 92년의 종교계를 돌아보는 이단종교연구가 탁명환씨(56·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그는 『시한부 종말론은 끝나지 않았으며 이제 더 은밀하고 더 절박하게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퍼져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이 회개하는 듯한 발언들을 하고 있긴 합니다.그러나 아직 헌금을 전혀 되돌려주지 않고 있어요.가출했던 아이들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것도 물론이구요.휴거의 망상이 끝났다고 보기엔 아직 시기상조지요.적어도 2000년까지는 휴거의 여파가 계속될 것 같습니다.사회가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복지국가가 실현되면 유토피아와 현실적 약속으로 신자들을 호도하는 이단종교는 자연히 사라지게 될것입니다』 그는 지난 86년부터 시한부 종말론의 심각성을 기성 교단에 경고하고 자신의 연구소에 불량종교 고발센터를 개설,피해방지에 앞장서왔다.특히 금년은 휴거론자들이 주장하는 종말의 해여서 이에 대처하느라 진땀을 흘렸다.지난 10월28일에도 휴거 현장설이 나돌았던 성산동 다미선교회 앞에서 자정이 넘도록 유인물을 돌리고 돌아가다 집앞에서 괴한들에게 왼쪽 어깨를 깊이 찔려 1달여 입원치료를 받고 최근 퇴원했다. 『이같은 현상은 기성 교회가 질적 내실을 기하지 못한 부작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지금이라도 교회들이 이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 시한부 종말론에 빠졌던 2만신도들을 구원해야 합니다.그것은 영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일입니다』 기존종교가 제구실을 하면 사이비종교가 발붙일 틈이 없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하루빨리 이단종교연구도 필요없고 고발센터도 문닫게 되는때가 오는것이 그의 소망이기도 했다. 『지난 85년 자동차 폭탄테러를 당한후 실명의 기로에서 가까스로 시력을 되찾았습니다.그래서 육신이 내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 안구 기증서까지 써놓았습니다.그리고 제 장기및 시신은 물론 가족들의 장기와 시신까지도 모두 기증키로 약속했지요.내년부터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이비종교 피해자 구조모임과 연계,국제적인 활동을 벌일 작정입니다. 새해에 그가 실현하고 싶은 일은 농아인교회를 세우는 것이다.지난해말부터 20년간 나가던 교회를 서울임마누엘농아인교회로 바꾸고 농아인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수화도 상당히 배웠다.『사이비종교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면 뛰어들려던 일이었으나 그들의 사정도 급해 바쁜대로 그일도 서두르기로 했다』며 건강과 강한 신념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돌렸다.
  • 「장애인주간」행사 다채

    20일은 유엔이 정한 제12회 장애인의 날. 정부는 이날부터 오는 26일까지를 장애인주간으로 공포,이 기간동안 각종 기념행사와 문화·체육행사 등을 다채롭게 펼친다. 20일 서울에서는 상오11시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14개장애인복지단체주관으로 5천여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린다. 또 올림픽유스호스텔에서는 15개국 3백12명의 장애인이 참가한 「92서울 아시아·태평양 농아인대회」가 27일까지 계속되고,21일에는 3백명의 정신지체인이 만든 공예품등의 전시회가 서울정신박약자복지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22일 서울시남부장애자종합복지관강당에서는 한국장애자재활협회주최로 장애예방대책에 관한 세미나도 개최된다. 한편 20일의 기념식에서는 장애인복지에 공이 큰 한국맹인복지연합회 박근수회장(47)이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는 것을 비롯,유공자 12명이 국민훈·포장,대통령표창 등을 수여받는다.
  • 20일은 장애인의 날/전국서 푸짐한 행사

    ◎「사회관심 높이기」 세미나·축하공연 다채/아·태 15개국 농아인대회 17일부터 열려/내일 시각장애자 단축마라톤… 78명 출전 4백만 장애인을 위한 큰잔치날인 제12회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각 장애관련단체들을 중심으로 예년에 볼 수 없었던 푸짐한 행사가 대대적으로 준비되고 있다. 이들 행사는 장애인의 날인 20일 상오 11시부터 전국14개장애 관련단체의 협의기구인 장애인복지단체협의회가 주최하는 서울올림픽공원역도경기장에서의 기념행사및 축하공연으로 시작된다.이날행사에는 서울정신지체청소년합창단과 삼육재활학교합창단등 장애인으로 구성된 합창단,변진섭등 인기가수와 연예인,장애자녀문제를 다룬 KBS주말연속극 「여자의 시간」출연진,장애인공연단등이 나와 축하공연을 벌일 예정이다. 또 장애인주간으로 정해진 20일부터 26일까지는 각 장애단체별로 마련한 다채로운 각종 행사가 치러진다.정신박약자애호협회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동안 서울정신박약자복지관에서 「제15회 전국정신지체인애호주간기념식및 작품전시회」를 갖는다.이 행사에는 애호대상시상식과 지체아동들이 만든 작품5백여점을 전시한다.17∼27일까지는「92서울아시아·태평양농아인대회」가 상무종합운동장에서 세계15개국 5백80명의 농아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그리고 24일 하루동안은 한국뇌성마비복지회가 서울상계 근린공원에서 「오뚜기한마당」을 펼치기로 돼있다.이밖에 78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맹인10㎞ 단축마라톤행사가 16일 맹인복지회관­의정부구간에서 열린다.또 제1회 장애인복지세미나,장애인의 날 기념교향악연주회,무료보장구수리소운영,장애인을 위한 생활체육프로그램보급회등을 전국각 지역별로 열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일반의 관심을 고조시키기로 했다. 또한 지난11일 출정식을 갖고 국토순례대행진에 들어간 「남북한 장애인걷기대행진」행사의 마지막일정행사가 20일 임진각에서 베풀어질 예정.주최측은「사랑의 보장구보내기」기금마련을 위한사랑나눔대잔치도 오는 17일까지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서 계속 갖는다. 한국장애인전도협회도 15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황산성변호사를 강사로 「장애인인권 그 실상과 개선방향」에 대한강연회를 열어 장애인인권찾아주기 붐을조성할 계획,한국재활재단도 13∼19일까지 현대백화점에서 「사랑의 손잡기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전액을 장애인가정지원금및 장학금으로 사용키로 했다.한국장애자복지체육회가 주최하는 제12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는 5월7일 올림픽공원팬싱경기장에서 막이 올라 열전2박3일의 경기를 펼치게 된다.
  • 사회복지재단을 찾아서(더불어 사는 삶)

    ◎3백만 장애자 사회적응능력 향상 도모/지난해 문화·예술·재활동에 24억원 투자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회장 김석원)는 매년 실시되는 전국장애자체육대회를 주관하는 단체로 널리 알려졌다.이밖에 장애자올림픽 등 장애인관련 각종 체육대회에 파견할 대표선발 및 「장애인의 날」행사도 주관하는 국내 최대의 장애인관련 복지단체다. ○장애인복지체육회/국내최대의 복지단체 체육활동을 통해 3백만 장애인들의 사회적응능력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88서울장애인올림픽」개최뒤인 지난 89년 4월에 설립된 이후 지금은 장애인 재활과 복지증진을 위한 문화·예술진흥사업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복지체육회는 지난 한햇동안 장애인 복지사업을 체육,문화·예술,재활 등 3개중점추진부문으로 나눠 체육부문에 10억원 등 모두 24억여원을 투자했다. 그동안의 주요추진사업중 스포츠관련행사로는 전국장애인 체육대회 3회개최,각종 국제장애인 경기대회14회 참가,전국 지체부자유 청소년체육대회 등 각종 장애인대회 10회 개최,장애인경기규정집발행,장애인을 위한 생활체육프로그램개발,장애인 스포츠지도자 강습회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1백여명에 연금 지급 문화·예술사업으로는 곰두리문학상·곰두리미술대전 등을 개최,장애인들에게 창작의욕을 북돋우는데 기여해 왔으며 복지재활사업의 하나로 장애인올림픽 등 입상자 1백명에게 매월10만∼30만원씩의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배울곳·짝·일터찾아주기」등 장애인복지3대켐페인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가고 있다. 복지체육회는 이밖에도 9억여원을 들여 서울 송파구 오금동 오금근린공원내 2천평에 실내체육관,수영장,체력단련실,물리치료실 등을 갖춘 장애인종합스포츠센터 건립을 의욕적으로 추진중이다.또한 오는 4월18일부터 9일동안 세계15개국에서 3백90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제4회아시아·태평양지역농아인경기대회를 유치하는 한편 10월에는 92서울국제복지용품전시회 및 품평회를 개최해 장애인들에게 최신재활용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올해 예산 30억원 책정 복지체육회 황근익기획부장은 『올해는 30억원의 예산을 책정,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에따라 사업의 역점도 선수로 참가하는 장애인중심에서 일반장애인들의 생활체육프로그램을 보급·진흥하는 방향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범죄의 길」 택한 농아자/서동철 사회부기자(현장)

    ◎사회의 따돌림에 끝내 「날치기」로 아버지가 형사의 질문을 수화로 아들에게 옮기고 수화로 되돌아온 대답을 아버지는 다시 형사에게 말로 옮긴다. 8일 상오 서울 서부경찰서 형사계에서는 은행주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2억2천여만원을 날치기한 혐의로 전날 붙잡혀 온 하기진씨(25) 등 농아자 3명에 대한 조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신문을 받는 하씨는 비교적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5살때 갑작스런 열병을 앓아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83년 농아학교의 고등부를 졸업하고 농아란 따돌림속에서도 운좋게 대구에 있는 한 공장에 프레스공으로 취직이 됐다. 열심히 일했고 정상인인 아내도 만났다. 지난 86년에는 물론 정상인인 예쁜 딸도 얻었다. 그러나 2식구를 부양하기에 20만원의 월급은 너무 적었다. 하씨는 궁리끝에 지난해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인천에 사글세방을 얻은뒤 고속버스터미널과 지하철ㆍ다방 등을 돌아다니며 볼펜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가는 곳마다 불량배들의 텃새와 놀림으로 수입이 신통치않았다. 그러다 지난5월 남대문 근처의 「농아자 휴게실」에서 이번에 수배된 김모씨(23)와 서모씨(23)를 만났다. 가까운 사이가 된 이들은 정상인들의 냉대에 따른 서로의 생활고를 불평하기 시작했고 결국 오토바이 날치기를 하기로 작정,지난 5월부터 6월사이 3차례의 오토바이 날치기를 했다. 그러나 현찰은 2백만원뿐 나머지 2억여원은 모두 수표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날치기한 수표를 바꿀길이 없어 1백만원짜리 1장을 7만원씩에 바꾸려다 붙잡혔다. 얼마전에도 농아인 유모씨(23)가 오토바이를 타고 4차례에 걸쳐 1천5백여만원을 날치기해오다 경찰에 구속됐었다. 장애자들을 돕자는 운동이 점차 확산돼가고 정부에서도 관심을 쏟고 있지만 아직은 장애자들을 위한 우리사회의 관심이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을 이들이 무언으로 항변하고 있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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