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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시간 동안 13차례 구조요청… 경찰도 119도 외면/中동포 파출소옆서 동사

    정부의 불법체류자 일제 단속에 쫓기던 중국동포가 길거리에서 매서운 추위에 시달리다 숨지기 한시간 전까지 경찰과 소방서 등에 구조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해 동사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9일 오전 5시20분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고가 아래 인도에서 중국동포 김모(46)씨가 쓰러져 숨져 있는 것을 환경미화원 김모(55)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현장에서 발견된 김씨의 휴대전화에서는 112와 119에 오전 1시15분부터 4시25분까지 짧게는 6초에서 4분17초까지 모두 13차례나 통화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112신고는 신원과 장소 등을 명확히 밝혀야 접수되는데 김씨의 신고는 공식 접수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서울경찰청 112신고센터에서 남아있는 통화내용은 이와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112신고센터측에 따르면 이날 새벽 김씨는 “종로4가에서 창덕궁 쪽으로 가고있는 중인데 추워죽겠고 힘이 없어서 못 걷겠다.”면서 “집이 100주년 기념관 쪽이니 순찰차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당시근무자는 “김씨가 술에 취한 듯 횡설수설하고 종로4가가 워낙 넓은 데다 자기 집도 가까운 만큼 택시를 타고 집에 갈 것을 권유했다.”고 밝혔다.또 김씨가 숨진 장소가 인근 순찰지구대 사무실과 불과 20m 남짓 떨어진 곳이어서 경찰과 119구급대가 안일하게 대응한 데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 중국동포의 집 김해성 목사는 “파출소 옆에서 김씨가 여러 차례 신고를 하다 죽어 갔는데 경찰과 119에서 모두 출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다.”면서 “신고자가 누구인가를 떠나 위험에 처했다면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숨진 김씨는 중국 헤이룽장성 출신으로 2000년 7월 5일 국내에 몰래 입국한 뒤 수도권 일대 건설현장 등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달부터는 서울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다른 중국동포와 불법체류자 강제추방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다 지난 2일 농성장에서 이탈했다. 유영규기자 whoami@
  • 최대표 건강 나빠져/ 단식 6일째… 1500여명 다녀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1일 단식 엿새째 접어들어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고 있다.감기 기운과 함께 혈당이 80으로 떨어지고,혈압도 ‘최고 110·최저 75’ 정도로 낮아져 혈압강하제 복용을 중단했다.최 대표는 원래 고혈압이 있어 약을 복용해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치의인 유창선 박사와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 등 전담 의료진이 잇따라 진찰,“대표실 공기가 나쁘니 병원으로 옮기라.”고 권유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한다.대신 이날부터 기자단 개방을 대표기자 1명씩으로 제한키로 했다. 최 대표는 얼굴도 현저히 수척해지고 시력 저하에다 말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으나 방문객을 맞을 때는 꼭 일어서서 악수를 청했다. 그는 “방에서 조금씩 걷고 있다.”면서 “몸무게가 쑥쑥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박상천 전 대표,자민련 김학원 총무 등 정치권 인사뿐만 아니라 김수환 추기경 등이 단식농성장을 방문하는 등 이날까지 1500명 이상 외부인사가 다녀갔다. 김 추기경은 “정치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이해는 한다.”면서 “뭔가평화로운 길,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순리로 되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재의 직권상정 방침과 관련,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또다시 들렀다.박 의장은 “친구 입장에서 건강도 걱정되고 국회정상화도 중요해서”라고 최 대표를 설득했다. 최 대표는 감사를 표시한 뒤 정치권의 재의결시 찬성 약속과 국회정상화 요구에 “당에서 협의하겠다.”고 답변,전날보다 다소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그러나 대통령과의 대화 제의에는 “국정쇄신 문제는 재의와 별개 사안”이라면서 “대통령이 내각을 바꾸고 청와대를 개편하겠다면 내가 내 발로 가서 만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정경기자 olive@
  • 盧, 조선족 농성장 깜짝방문 / “中동포 국적문제 점진 해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9일 오전 서울 구로구의 조선족 교회(담임목사 서경석)를 깜짝 방문했다. 취업을 위해 국내에 체류하다 강제추방 위기에 놓인 조선족 100여명이 우리 국적 회복을 요구하며 16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던 현장이었다. ●盧 “큰 기대 갖지말라” 노 대통령은 교회 안의 농성자들이 “우리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라고 통곡하듯 매달리자 “여러분은 우리 동포이고,대통령으로서 마음으로 위로한다.”며 연신 애틋함을 드러내 보였다.과거 인권변호사 시절 중국동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한 일화 등도 소개한 노 대통령은 목이 메인 듯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대통령 왔으니 큰 백이 생겼다고 생각하죠?”라는 말을 주고받는 도중 교회 안에서는 노 대통령에 대한 만세삼창이 일기도 했다.이날 노 대통령이 밝힌 언급들은 조선족 등 소수 민족 융합정책,이른바 대가정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하는 듯하면서도,해결 과제를 정부 부처에 던지는 듯한 말을 함으로써 방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외교적 파장도 배제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제가 여기 왔다고 큰 기대를 갖지 말라.”“당장 안 풀리더라도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한다.”“도울 방법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다.”고 했다.이어 “대통령이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고,중국 주권을 생각해야 하는 국제 문제가 있다.”며 현실적 한계를 밝히긴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공무원도 성의를 갖고 노력하지 않겠느냐.”“크게 방향을 잡고 가면 길을 열어내지 않겠느냐.”고 언급,정책 변경 가능성도 시사했다. ●청와대 “위로차원 방문” 이에 대해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정책과는 관계가 없다.”면서 “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고,해결을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있어 위로하는 차원에서 방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그곳을 방문함으로써 기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긴 했으나 위로 차원에서라도 가자고 해서 추진했다.”면서 방문은 28일 오후 최종 결정됐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文실장, 단식농성장 방문/ 文실장 “청와대 회동 주선” 崔대표 “거부권 철회 우선”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있었던 최병렬 대표와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유인태 정무수석의 40여분에 걸친 면담은 시종 냉랭했다.닷새째 단식 중인 최 대표는 문 실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건강에 유의하시라.”고 안부를 전하자마자 감사의 말은 잊은 채 “거부권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을 받았다. ●최 대표 특검을 수용하라.대통령이 재의 요구했을 때는 재의결돼 다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재의가 불가능한 것이라 판단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실장 특검법 재의는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라고 본다.(야당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회유설과 관련) 우리가 손 쓴 적은 없다. ●최 대표 엊그제 대통령의 TV토론회 내용을 전해 들었는데 정말 걱정된다.대통령이 상황인식을 바꿔야 한다.국회정상화도 중요하지만 대통령 생각의 정상화가 더 중요하다. ●문 실장 대통령도 나릿일을 많이 걱정하고 있다.야당이 도움을 주면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최 대표 (언성을 높이며)그동안 야당이 안 도와준 게 뭐가 있느냐.도와줄 수 있는 것은 다 도와드렸다. ●문 실장 국회가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더 도와 달라.대통령도 자나깨나 고심 중이다.국정쇄신책도 마련 중이다.대통령은 특검에 반대하는 것 아니다.검찰수사를 좀더 지켜보고 미진하면 특검을 도입하자는 거다.이 문제에 대해 야당과 언제든지 대화를 하자는 입장이다. ●최 대표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특검만이 진상규명을 할 수 있다고 본다.대통령에게 특검거부를 철회하도록 말씀 드려주기 바란다. ●문 실장 현실적으로 철회는 지금 어려운 상황이라고 본다. ●최 대표 재신임 문제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이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이번에 나온 헌법재판소 판결은 재신임을 묻는 것이 사실상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문 실장 잘 알겠다.대통령도 노심초사하고 있고 최 대표께서 국회가 돌아가게 해주면 문제가 풀어질 것으로 본다. ●최 대표 (유인태 수석에게) 국회가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야 되지 않겠는가.대통령이 총선준비에만 몰두하고 국정을 도외시하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자신의 보좌관을 시켜서 사전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야당 입장에서 대통령의 사전선거운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유 수석 대통령의 생각이 총선에만 집중돼 있지 않다.나랏일을 많이 걱정하고 있다.오해 없기 바란다.오해받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문 실장 최 대표께서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란다.언제든지 연락을 주면 대통령과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선하겠다.대통령도 대화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최 대표 대통령이 특검 거부 철회를 안 하고 있는 마당에 지금 만나는 것이 의미가 있겠느냐. 이지운기자 jj@
  • 파병반대 농성 사병 연행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방침에 항의하며 농성하던 강철민(22) 이병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내 농성장을 나와 청와대로 행진하려다 회관 앞길에서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대에 연행됐다. 이날 행진에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인권운동사랑방,파병반대국민행동 회원 등 50여명이 참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덕우 변호사 등 12명으로 구성된 강 이병의 변호인단은 “군법의 상위법인 헌법의 정신에 따라 강 이병의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지혜기자 wisepen@
  • 최병렬대표 단식 이틀째/ “국회파행 죄송”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단식이 이틀째다.평상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얼굴이 약간 수척해졌으며 “배가 고프지만 잠은 집에서보다 잘 잤다.”고 답했다.이어 “박종웅 의원이 갖다준 게르마늄 생수를 마시고 있는데 3∼4일 후가 고비일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하루 두 차례 개방하는 대표실에는 ‘힘내라.’는 격려 화분이 즐비하고 외부인사의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농성장을 찾아 “의장으로서 부끄럽다.”면서 “상황이 달라지면,단식을 길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적절히 대응해달라.”며 국회 정상화를 주문했다.박 의장은 최 대표와 38년 ‘무인회(戊寅會)’ 동기로 평소에 친하다. 이회창 전 총재는 전화를 걸었다.“당과 나라를 위해 크게 고생스러운 길을 선택한 것 같다.”며 건강 유의를 당부했다고 박진 대변인이 전했다.한때 각을 세운 서청원 전 대표도 방문,“노 대통령이 우리 당을 벼랑끝으로 몰았다.”면서 “최 대표가 결단했으니 뭔가 확 바꿔야 한다.”고 힘을 실어주었다. 최 대표는 “예산과 정치개혁안이 중요한것도 알고 이런 모습 국민에게 죄송하지만 대통령이 철회만 하면 내년 살림살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특검 철회와 국정쇄신을 거듭 촉구했다.노무현 대통령의 TV토론에 대해선 반론권을 요구했다. 그는 오후 들어 ‘회의감’도 표출했다.손학규 경기지사가 찾아왔을 때 “솔직히 내가 이런다고 대통령이 먼 산만 보고 귀담아 듣지 않는데 과연 기대하는 효과가 나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놓았다. 이재오 사무총장과 임태희 대표비서실장은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표의 단식이 끝난 뒤 ‘릴레이 단식’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들은 박진 대변인과 함께 하루 한 끼 굶고 있다.홍 위원장은 “홍보가 우선”이라며 “TV토론에서 대통령의 파업 사례를 열거하겠다.”고 별렀다. 특별당보 25만여부를 전 지구당에 배포하는 등 장외투쟁도 계속됐다.이날 중앙당에서 열린 서울지역 당원결의대회에는 300여명이 집결해 “대표님,힘내세요.”를 외쳤다.외유 및 골프 자제 지침도 내려졌다.기자실에는 노 대통령-강금원-이기명씨의 삼각커넥션을 암시하는 사진 위로 모 영화 광고문구인 ‘통하였느냐.’가 씌어진 배경그림이 내걸렸다. 박정경기자 olive@
  • 한나라 이모저모/최대표 쌀뜨물 하루 한잔 마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26일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곧바로 7층 대표실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최 대표는 실내벽에 파랑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나라를 구하겠습니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걸고 그 앞에 마련된 스티로폼 받침대에 군용모포를 깔아 농성장을 만들었다. 최 대표는 만 65세라는 나이를 의식한 듯 “이런 단식은 생애 처음”이라고 단식 후유증을 다소 우려하면서도 “나라가 제대로 돼야지...”라고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김상현의원등 격려방문 단식장에는 민주당 김상현 의원이 제일 먼저 방문,최 대표와 대화를 나눴고,오후부터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김상현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사건특검은 수용해놓고 자신의 측근비리 특검은 수용하지 않은 것을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최 대표는 “지난번 청와대에서 만났을 때는 특검을 받을 것처럼 했는데,특검이 달려들면 무서운 게 있나봐...”라며 특검 거부를 비판했다.김 의원은 “예산안을 심의중인데 제1당 대표가 단식하는 것을 국민이우려하고 불안해 한다.”고 지적하고 자신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23일 단식을 중단시켰다며 “(최대표 단식도) 중지시킬 명분을 만들겠다.”고 조속한 단식중단을 간접 권유했다. 이어 김덕룡·강재섭·김종하·박종웅 의원 등 소속 의원 40여명과 당원들의 방문이 잇따랐다.최 대표는 의사출신인 정의화 의원과 박종웅 의원 등 단식경험이 있는 의원들로부터 단식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특히 이라크 현지 조사활동을 마치고 이날 오후 귀국한 국회 이라크 조사단의 강창희 의원은 공항에서 당사로 직행,최 대표를 위로하고 40여분간 이라크 현지상황을 보고했다. ●인·아들 당사 찾아 저녁 7시50분쯤에는 부인 백영자씨가 둘째아들 선준씨와 함께 옷가지를 챙겨 당사를 방문,1시간 30여분간 머물다가 돌아갔으며 이후 최 대표는 홍사덕 원내총무,이강두 정책위의장과 만나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최 대표는 위염증세가 있기 때문에 당장 식음을 중단하는 게 아니라 이날부터 사흘간은 쌀뜨물을 끓인 것을 하루 한 컵 정도 마시고 이후부터 생수를 제외하고식음을 전폐할 계획이라고 임태희 대표 비서실장은 전했다. 최 대표는 단식 동안 ‘국가전략의 대전환(류상영)’,‘분단과 통일이야기(서원식)’,‘Fit For Life(건강하게 살기)’ 등을 읽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정경기자 olive@
  • 죽기전 50분간 무슨일이…/여중생범대위 간부사망 의혹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 범국민대책위’ 간부 고(故)제종철(33)씨의 죽음에 대해 경찰은 자살 또는 사고사로 사실상 결론을 냈지만 이에 대한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부검결과 직접적 사인인 척추 대동맥 파열이 ‘전동차 하부구조에 받혀 생길 수 있는 상처’로 밝혀졌고,치명상을 입기 전 살아있었다는 ‘생활반응’이 나타난 데다 시신에 폭력 흔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제3자에 의한 타살이나 폭행 후 유기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특히 제씨와 일행 김모(33)씨 등 3명이 사고 직전 술을 마시고 의정부역 주변 F주점을 나온 시간을 주점 여종업원의 진술을 통해 사고 13분 전인 오후 11시40분으로 단정,제3자 개입 가능성을 일축한다.경찰은 제씨가 추정 이동경로를 가는 데 13분 정도 걸린다고 밝혔다.경찰은 제씨가 자살하기 위해 철로를 택했거나 당초 일행에게 가겠다고 말했던 의정부역내 동부광장에 있는 금속노조 농성장을 술에 취해 잘못 찾아가다가 변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대책위측은 평소 제씨의 주량으로 보아 당일 심하게취하지 않았고,길을 잘못 들었다해도 철길로 가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주장한다.대책위는 ▲여종업원이 경찰에서 제씨 일행이 오후 11시40분 나갔다고 진술했으나 대책위측엔 뒤 손님들이 들어온 시간이라고 진술을 번복하고 있는 점 ▲제씨가 오후 11시15분 경남 진주에 있던 부인과 통화를 한 사실을 일행이나 여종업원 누구도 목격하지 못한 점 ▲일행 김씨가 주점에서 5분 거리인 집에 도착해 오후 11시5분에 시작하는 SBS TV 연예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을 부인과 함께 들었다는 점 등을 들어 경찰이 추정한 사고시간대는 맞지 않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대책위의 주장대로라면 제씨가 주점을 나온 시간부터 사망까지 5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고 제3자에 의한 위해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경찰이 사고 기관차를 검사하지도 않고 일행 등의 증언을 무시한 채 자살이나 사고사로 사건을 종결지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정부 한만교 구혜영기자 mghann@
  • ‘국적회복’나선 中동포/(상)‘강제출국’ 안타까운 사연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들이 극한투쟁에 돌입했다.오는 17일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예고된 가운데 이들 중국동포는 ‘고향땅에 살 권리’를 주장하며 헌법소원에 이어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중국인으로 불법체류자일 뿐’이란 법률 논리와 ‘고향에 왕래하는 것은 천부적인 권리’라는 역사성을 강조한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중국동포들의 현주소와 역사적 배경,해법 등을 살펴본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중국동포들이 ‘고향에서 살 권리를 보장하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접수시키고 있는 동안 재판소 밖에선 5000여명의 중국동포들이 손에 손을 잡은 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누군가가 시작한 노래가 커다란 울림이 돼 퍼지면서 이들이 한 민족임을 실감케 했다. ●“우린 조국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이 땅에 할아버지 묘지도 있고,내 호적도 있고,친척들도 있는데 왜 제가 이 땅에서 쫓겨나야 합네까.” 새문안교회 단식농성장에서 만난김자연(가명·55·여)씨는 두 손을 꼬옥 말아 쥔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한국에 온지 6년이 됐지만 그동안 모은 3000만원은 얼마전 사기를 당해 다 날려버렸다.그는 “쫓겨날 상황에서 단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면서 “우리는 아픈 역사의 희생자일 뿐 조국이 싫어 떠난 사람들이 아닌 만큼 무조건 불법체류자라는 굴레로 엮지 말아달라.”며 하소연했다. 5살 때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간 이형상(64)씨는 “우린 동포 아니냐.”며 말문을 열었다.그는 “중국 땅에서 수십년간 이방인이라는 눈총을 견디며 풀뿌리처럼 살다 어렵게 찾아왔는데 조국마저 우리를 버린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여기 모인 사람 중 조국 땅 싫어 떠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도 딱한 처지는 마찬가지겠지만 중국동포들이 이 땅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를 찾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법률자문을 맞고 있는 정대화 변호사는 “재중동포의 국적문제는 단순히 헌법적인 차원을 넘어 일제 강점기의 수탈을 피해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한민족의 역사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중국동포들이 자진해서 중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만큼 이들이 국적을 취득할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또 “독일이 통일 후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100만명 이상의 독일인들에게 국적회복을 해준 만큼 우리도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재중동포의 국적회복의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일제단속에 생이별의 아픔도 불법체류자라는 족쇄 때문에 일제단속이 시작되면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중국동포들도 적지 않다.이충일(32·여)씨는 요즘 아들 성민(가명·3) 때문에 외출을 할 수도 없다.세살밖에 안되는 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밖에 나가면 경찰아저씨가 엄마 잡아가.”라며 엄마의 다리를 잡고 떨어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씨가 한국에 온 것은 6년 전.식당에서 일하다 한국인인 장모(38)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성민이를 갖게 됐다.하지만 혼인신고를 하고 돈도 모아 함께이씨의 고향인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살자던 부부의 약속은 이내 남편의 외도로 무참히 깨져버렸다.지난 8월 한국 여자가 생긴 남편은 이후 이씨를 폭행하고 아들 성민이마저 빼앗아갔다.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열흘 남짓만에 아들을 되찾았지만 모자(母子)가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17일부터 시작되는 단속에 적발되면 이씨는 아들을 남겨둔 채 강제출국을 당하고 호적법에 따라 성민이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혼한 어머니를 찾아 옌볜(延邊)을 떠나 한국에 온 현아(가명·14·여)는 국내법상 불법체류자다.미성년자인 불법체류자들은 학교의 울타리 안에만 있으면 학교장 재량에 따라 강제출국은 피할 수 있다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현아는 지난 2000년 방학을 맞아 한국 남자와 재혼한 어머니 김선숙(35)씨를 만나러 왔다가 함께 살게 되었다.학교장의 배려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입학은 했지만 1학년 1년 동안은 시험조차 볼 수 없는 청강생 자격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서울 외국인 노동자의 집 이선희 소장은 “학교장 재량에 따른다는 애매한 조항에 따라 현아와 같은 미성년 불법체류자 역시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영규 유지혜기자 whoami@ ■이은규 서울조선족교회목사 “중국동포들에게도 조국에서 살 권리를 주십시오.” 중국동포의 국적회복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서울조선족교회 이은규(사진·43) 목사는 “중국동포들은 우리 나라에서 단순히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향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면서 국적회복 운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목사는 “중국동포 대부분은 일제 시대에 독립 운동이나 생활고를 피하기 위해 만주로 떠난 사람들의 후손”이라면서 “해방 후 북한에 들어선 김일성 정권 때문에 귀국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중국에 머물러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이어 “1948년 제정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에 의해 한국 국민이 됐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중국과 한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면서 ‘국제 미아’가 된 중국동포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이라며 이번 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중국동포들의 국적회복 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법무부에 대해 ‘책임 방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이 목사는 “우리나라는 지난 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을 당시 국내법 효력을 갖는 ‘재중동포의 지위에 대한 협정’을 만들지 않았다.”면서 “이는 만들어야 할 법을 안 만든 ‘입법 부작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또 “법무부는 중국동포들의 국적회복 신청을 거부함으로써 같은 동포의 국적선택권,평등권,행복추구권을 위배했다.”면서 “정부는 스스로 양산한 중국동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책임방기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 목사는 이와 함께 “우리 국민들도 중국동포 문제에 대해 좀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190만 中동포 이주 역사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재중 동포는 190여만명에 달한다.대부분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거나 생활고를 피하기 위해 한반도를 떠난 이주민의후손들이다. 주로 ‘동북 3성’으로 불리는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에 거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베이징,톈진,신장,상하이,광저우 등 중국 전역 대도시로 진출하고 있다. ●첫 이주는 1860년 베이징조약 직후 재중 동포 이주사는 크게 3기로 나뉜다. 1기는 19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로 대부분 가난과 탐관오리들의 폭정을 피해 압록강을 건넜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2기에는 항일운동을 위한 정치적 망명이 주를 이뤘다. 3기는 45년 해방까지의 시기로 당시 일본은 일본인을 조선으로,조선인을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시키는 환위이민(換位移民) 정책에 따라 대규모 강제이주를 실시했다. 1기 이민은 1860년 베이징조약 체결 직후에 이뤄졌다.당시 청나라는 러시아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청조의 발상지인 만주지방에 대한 ‘봉금정책’을 풀고 주민들을 국경지대로 이주시켰다.그러자 조선의 헐벗은 농민들도 비옥한 미개척지를 향해 강을 건넜다.이들은 이주 초기 청의 관헌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었지만 1880년대 청 조정이 간도개척을 위해 조선족 포용정책을 펼치면서 간도지방 곳곳에 조선족 마을이 생겨났다. 학계에서는 이 시기부터 한·일합병 직전까지 20여만명의 조선인들이 국경을 넘은 것으로 추정한다. ●한·일합병 직전까지 20만명 이주 일제의 한국침략이 노골화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직후부터 1919년 3·1운동 전후까지는 주로 항일인사들의 정치적 망명이 많았다.국내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홍범도,유인석,이범윤 등이 을사조약을 전후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경을 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전후에는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기획이민’이 활발했다.이상설,이동녕,안창호,박은식,신채호 등이 이 시기 만주에 정착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만주지방을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대규모 개발계획을 세운다.이에 따라 황무지였던 이곳에 조선 농민의 집단이주를 추진,38년 처음으로 간도와 랴오닝지방에 조선인들이 정착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 후에는 전쟁 물자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개척이민단’이란 이름으로 조선인농민들을 강제이주시켰다. 이세영기자 sylee@
  • 집회...진압...””난 빵점 아빠””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며 민주노총 산하 100여개 사업장의 근로자 9만여명이 6일 4시간 동안 시한부 총파업에 돌입하는 등 동투(冬鬪)가 시작됐다.같은 30대이지만,전혀 다른 삶을 사는 노동자와 시위진압 경관을 통해 이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본다. ■한진重노동자 정진관씨 “노동자가 인간으로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아닙니까.” 민주노총 산하 금속연맹 한진중공업지회의 정진관(사진·37)씨는 6일 아침 서울 동대문구 민주노총 서울지부 사무실의 임시 숙소를 나와 서울역 광장 민주노총 농성장으로 향했다. 정씨는 지난달 17일 김주익 지회장이 부산 영도구 청학동 고공 크레인에서 자결한 뒤 조합원 200여명과 함께 크레인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여오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노동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40여명의 조합원과 함께 상경했다.그는 집회현장을 지키느라 어깨,팔,다리 등 관절이 쑤신다고 호소했다.감기까지 걸려 약을 달고 산다고 했다.100일을 넘어선 파업기간 동안 2주에 한번 집에들어가 잠든 아들의 얼굴만 바라보고 다시 찬이슬을 맞으며 농성장에 합류하곤 했다.상복 차림으로 마스크를 쓴 채 침묵시위 대열에 가세한 정씨는 휴일 서울 시청앞 등 도심 집회가 끝나면 다시 부산 천막 농성장에 합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정씨는 “지난해 흑자를 239억원이나 내고도 2년 연속 임금 동결을 고수하고 나이 많은 조합원을 강제사직시키는 처사를 두고 볼 수 없었다.”면서 “노조 간부들에게 몰아치는 손배·가압류 액수만 7억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빡빡한 집회 일정에 어느새 집보다 천막이 더 익숙해졌다는 정씨는 총파업 집회가 열리는 대학로로 다시 잰걸음을 옮겼다. 구혜영기자 koohy@ ■서울청기동대 백성언 경감 “땀에 전 속옷을 며칠씩 그냥 입고 시위 내내 용변을 참아야 하는 일은 견딜 만합니다.그러나 가족에게 ‘빵점짜리 아빠’로 비쳐지는 것은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6일 오전 밤샘 근무를 마치자마자 노동계 시위가 예정된 대학로로 향하는 서울경찰청 제1기동대 1중대장 백성언(사진·33·경찰대11기) 경감이 던진말 한마디에는 밤낮없이 시위 진압에 매달리는 경찰관의 고충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백 경감은 지난 3월 전남경찰청에서 서울경찰청으로 발령받은 이후 남들이 다 쉬는 ‘빨간 날’조차 거의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서울 도심의 대규모 집회가 대부분 주말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노동계 동투(冬鬪)를 앞두고 잇단 시위로 이번 주에만 밤샘 근무가 벌써 3일째다.얼마 전부터는 월요일 출근할 때 미리 3∼4일치 속옷을 챙겨서 나오고 있다.백 경감은 “유치원 다니는 큰아들이 밤늦게 전화로 ‘다른 아빠처럼 집에 들어오면 안되냐.’고 울먹일 때는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과격 시위 진압이 주 임무이지만 시위대의 분노와 요구를 몸으로 막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백 경감은 경찰이 일방적으로 시위대와 반대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며칠전 시위진압 현장에서 생긴 왼쪽 발목의 시퍼런 멍자국을 어루만지던 백 경감은 “오늘 시위는 평화적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며 전투화 끈을 졸라맸다. 이영표기자tomcat@
  • 지율스님, 생명 ‘묵언’ 열변

    “단식을 시작하며 매일 시 한편을 썼습니다.벌써 30편이나 됐지요….생명시인라구요?(웃음)” 부산시청 현관 앞 왼쪽 입구에서 한달째 단식농성중인 지율스님은 인터뷰를 청하자 이렇게 글을 써줬다.스님 옆에 있던 한 청년은 “(스님이) 묵언단식 중이기 때문에 인터뷰할 수 없다.”고 말했으나,서울에서 일부러 왔다고 하자 지율스님은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했다.이 청년은 “스님은 물 마시는 것 외에는 일체 곡기를 끊었으며 농성장 인근 봉고승합차에서 늦은 밤 잠을 청하곤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청 2층 구내식당 한켠에서 마주앉아 필담을 나눴다.단식을 오래 해서인지 지율스님은 얼굴이 초췌하고 창백해 보였다. 건강과 묵언단식의 까닭을 물었더니 “그동안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하고 싶었다.”고 촘촘한 글씨로 써 내려갔다.또 “시청 앞에서 3000배 기도를 38일째 하던 날(지난 9월) 정부에서 공사재개의 방침을 발표했다.”면서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일은 마지막까지 묵언단식을 통해 생명의 존귀함을 알릴 방법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도룡뇽 소송건과 관련해 지율스님은 “법적재판에 앞서 우선 여론재판이 중요하며 전국적으로 현재 소송인단을 모집중에 있다.”며 동참을 호소했다.스님은 터널공사 때문에 일본 홋카이도 다이세스산 일대의 토끼서식지가 감소하자 소송을 제기,30년 만에 승소했던 ‘우는 토끼 소송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건강상태에 대한 질문에는 자신할 수 없다는 듯 여러차례 힘없이 고개만 저었다. 김문기자
  • 농성 당진화물연대 강제 해산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의 총파업 선언과 관련,4일 오후 6시30분쯤 당진지부 농성장에 경찰력이 투입돼 지도부 단체행동 돌입시기에 새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경찰은 이날 화물연대 당진지부 농성장인 한보철강 당진제철소 앞 도로에 9개 중대 1000여명을 동원,조합원 350여명을 강제 해산시켰다. 연행된 조합원 90여명은 인근 경찰서로 분산돼 조사를 받고 있다. 당진지부 조합원들은 지난 달 22일부터 한보철강 앞 도로를 점거한 채 ▲조합활동 보장 ▲조합원 불이익 배제 ▲화물차 고정 배차 등 요구조건을 내걸고 시위를 벌여왔다. 경찰 관계자는 “주동자에 대해서는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앞서 이날 오전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당국이 중간착취 근절 등 지난 5월15일 노·정 합의사항에 대해 적극적인 이행의지가 없는 데다 합의사항 자체를 왜곡·희석하려 한다.”면서 “오는 19일까지 노·정 합의사항 이행과 실질 운임료 인상 등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20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5월에 이어 또 한번 ‘물류 대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진 이천열기자 sky@
  • ‘명동성당 불법집회’ 실형선고

    최근 법원이 사전신고 없이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주도한 가톨릭계 병원 노조지부장에 대해 이례적으로 실형을 선고,법정구속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서울지법 형사1단독 노재관(魯在寬)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사전신고를 하지 않고 명동성당 안에서 농성을 벌인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전국보건의료노조 산하 강남성모병원 노조지부장 한용문(43)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10월에 벌금 10만원을 선고,법정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노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불법 집단행동에 엄격한 법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민주시민이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쟁취하고자 했던 민주적 법질서가 요구하는 바”라면서 “사전신고 없이 신성하고 엄숙한 성당 구내에서 불법시위를 벌인 점을 고려,실형을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같은 노조 부지부장 황인덕(36)씨는 “지난해 공권력이 병원에 투입되는 상황에서 사전신고를 하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명동성당을 농성장소로 택했다.”면서 “한씨를 법정구속한 것은 명동성당이 ‘종교적인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
  • [사설] 공권력 첫 투입 부른 철도파업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수도권 전철이용자와 철도고객의 불편은 물론 화물운송 차질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정부가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해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데 맞서 노동계도 정면대응 태세여서 사태해결에 진통이 예상된다.철도파업은 참여정부의 첫 공권력 투입을 부르고,하투(夏鬪)양상과 맞물려 노사정 관계를 가름할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정부가 천명한 노동정책의 ‘법과 원칙’ ‘대화와 타협’ 방침이 지켜질지에 주목한다.정부는 어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같은 원칙을 거듭 다짐했다.농성장에 참여정부 들어 처음으로 경찰병력을 투입해 근로자들을 연행한 사실은 정부가 ‘법과 원칙’을 중시한 것으로 이해된다.‘선파업-후협상’의 관행을 고치고,법 위반자는 사후에라도 처벌하겠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며칠전 대통령이 “노조의 특혜는 해소돼야 한다.”는 발언에 따른 정책변화로 읽혀진다.그것이 법치를 실현하고 경제난국 해결,해외신인도를 높여가는 길이란 국내외의 잇따른 지적과 현실인식이 반영된것이라고 하겠다.그렇다고 정부가 강경일변도로 돌아서서는 안된다.정부는 철도 정상화이후 노조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타협할 의사가 있다며 사태해결의 여지를 남겨뒀다.앞으로도 이러한 ‘엄정대처-대화’ 병행방침이 유지되길 기대한다. 노사관계도 차제에 전향적으로 달라져야 한다.철도노조는 철도개혁법 입법연기와 공무원 연금승계 문제 등을 파업 명분으로 내걸었다.그러나 이는 쟁의대상이 될 수 없는 정치적 파업이라 정부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많은 시민들은 조흥은행에 이은 철도노조원의 집단이기적 행태에 분개하고 있다.더더욱 공공의 발을 담보로 한 정치적 투쟁 의도를 미더워하지 않는다.현대자동차노조의 산별노조 전환투표 부결과 인천지하철노조의 파업 조기타결은 무엇을 말하는가.노조원과 국민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노사분규는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
  • 철도 총파업 돌입 “공권력 즉시 투입”

    철도노동조합은 철도구조개혁 관련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됨에 따라 28일 새벽 4시 총파업에 돌입했다.이에 따라 전국적인 수송물류대란 및 수도권 전철 교통대란이 우려된다. ▶관련기사 10면 정부는 철도노조 파업을 명분없는 불법 파업으로 규정,주동자 사법처리 등 엄정 대처키로 하는 한편 28일 철도청장 명의의 복귀명령을 시달,파업 가담자들을 공무원법에 따라 처벌키로 했다. 특히 검찰은 천환규 노조위원장 등 주동자들에 대해 즉각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아울러 파입돌입 즉시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혀,농성장 등에서의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 철도노조는 이에 앞서 27일 오후 4시 서울 을지로 훈련원공원에서 17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파업 출정식을 개최한 뒤 오후 7시 연세대로 옮겨 철야농성에 들어갔다.또 부산 350명,대전 600명,경북 영주 600명,전남 순천 200명 등도 전야제 행사에 참여했다. 최종찬 건교부장관은 이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노조의 직장복귀를 촉구했다. 김문 조현석기자 km@
  • [녹색공간] 새만금의 죽음

    또다시 새만금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지난 9일 오후,군산에서부터 시작되는 새만금의 제4공구 구간이 농업기반공사에 의해 기습적으로 메워졌다.황급히 배를 저어 간 부안 사람들이 그 사실을 확인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알렸다.조계사 앞 단식 농성장에 있던 사람들이 청와대 앞 네거리에 모였다.기습 공사를 규탄했고,그 공사를 알고 있었던 청와대를 성토했다.깊은 밤,밤을 재촉해 현장으로 달려가 4공구 방조제의 끄트머리,2m쯤 남은 물길을 지키던 부안 사람들과 합류했다. 이튿날 ‘생명평화’의 이름으로 기자 회견을 마치고 많은 사람들은 현지로 달려갔다.삽과 곡괭이를 들고 막혀 가는 방조제 끝자락을 파헤쳤다.조금이라도 더 물길을 넓히려는 눈물겨운 안간힘이었다.장대비 속에서 수십 명이 5시간여 달라붙었지만 가까스로 2m쯤 물길을 열 수 있었다.방조제를 메웠다고 꽹과리를 치며 기뻐하던 사람들의 세찬 모욕과 조롱도 갯벌을 살리려는 젊은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렇지만 그 물길은 거대한 굴삭기에 의해 단 10분만에 메워져 버렸다.굴삭기는 ‘보호받는 폭력’이었고,2m라도 물길을 넓히려는 활동가들의 안간힘은 국책 사업 방해자가 된 셈이다.삼보일배를 마치고 문규현 신부가 세상에 처음 발표한 글에서 그 물길은 이렇게 표현되었다. ‘서서히 막혀 가는 물길,마침내 막혀버린 물길을 눈물 흘리며 그저 바라만 봐야 했습니다.그나마 가녀린 숨줄조차 조여오자 물살은 갈 곳 몰라 몸부림을 쳤습니다.이 폭력적이고 야만스러운 세상에서 어쩌면 갯벌은,바다는 차라리 자살을 꿈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숨을 쉴 수 없으니 그들은 곧 온몸이 뻣뻣하게 굳고 시커멓게 죽어갈 것입니다.’ 그렇다.이제 새만금 갯벌은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여의도 140배 넓이의 살아 있던 갯벌은 시화호가 그랬듯이,화옹호가 죽어가고 있듯이 이제 죽어갈 것이다.혹자는 4공구 방조제에 의해 갯벌의 74%가 죽을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4공구 끝자락에 달려간 사람들에게 가해진 폭행은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갯벌을 죽이는 것이 ‘발전’이라고 주입된 사람들에 의해 여러 활동가들이 폭행을 당했다.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했으며,실신해 병원에 실려간 사람도 있었다.취재 기자의 카메라도 파손되었다.경찰은 그런 폭행을 지켜보기만 했다.항의하자,“당신들이 먼저 (국책공사를 방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답했다.“그러면 왜 우리를 잡아가지 않느냐?”고 말하자,“고소가 들어오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그 얼마 후,몇 환경단체 간부는 65일 삼보일배 도중 하루 22시간 야간공사를 했던 농기공에 의해 고소를 당했다.‘살림’의 사람들이 ‘죽임’의 사람들에게 폭행당하고,고소당한 것이다. 6월 새만금 방조제의 폭행을 바라보며,문득 인도의 소금행진 때 영국 경찰이 강철을 입힌 방망이로 간디를 따르던 사람들의 머리를 내려치던 광경이 떠오른다.곤봉에 맞아 볼링 핀처럼 쓰러지면서도 단 한 사람도 곤봉을 피하지 않았다고 ‘비폭력의 역사’는 전하고 있다.비폭력(非暴力)을 ‘폭력이 아니다.’라는 뜻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비폭력은 ‘폭력이 아닌 힘’이다.폭력이 아닌 분노이고 눈물이고,그래서 기도이기도 하다.“아직 2공구와 3공구 사이 3㎞가 남았어요.거기 살려 달라는 갯벌들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지요.” 서울 공덕동에 사는 한 회사원의 말이다.이 기도가 어찌 폭력보다 강하지 않은가. 최 성 각
  • 노동자출신 구청장 힘겨운 행보

    진보정당 소속 구청장의 제도권 진입후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관행과 형식을 깬 튀는 언행으로 주목받고 있는 민주노동당소속 이갑용(李甲用) 울산 동구청장이 상급기관은 물론 구의회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구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구청장이 구의회와 충돌,추경예산안 전액이 부결되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은 것. 동구는 올해 제 1회 추경예산안 108억원을 편성,구의회의 승인을 요청했으나 지난달 23일 열린 본회의에서 부결됐다.노동계 의원 4명이 불참한 가운데 비노동계 의원 6명이 부결시킨 것. 예산액 2080만원에 불과한 노동상담소 설치를 둘러싼 구청장과 비노동계 출신 구의원들의 감정대립으로 이어지면서 주민들의 편의사업 등 다른 구정이 파행을 맞게 된 것이다. 동구는 이 구청장의 선거공약인 ‘노동상담소’ 설치에 따른 사업비를 올해 본예산에 편성했다가 구의회가 “상담소를 구청사 안에 설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관련 예산을 삭감했으나 이 구청장이 이를 무시하고 구청 4층에 상담소를 마련한 것이 발단.동구는 상담소를 미리 설치한 뒤 추경안에 편성,구의원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구의원들은 “노동상담소를 굳이 구청안에 두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음에도 이를 강행한 것은 의회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예산안을 손질,다시 제출하면 심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동구 관계자는 “추경예산은 대부분 구민 편의사업과 관련돼 있어 의회 승인이 늦어지면 구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부결된 추경안을 그대로 구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혀 양측의 기싸움은 다음 임시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이 구청장은 지난해 11월 공무원 연가파업 때 연가신청을 모두 허가한 뒤 연가파업에 참가한 공무원을 징계하라는 행자부의 징계방침을 거부,마찰을 빚었다. 지난 1월에는 현대중공업 해고근로자들이 길가에 컨테이너 농성장을 설치,복직요구 집회를 하자 “나도 노동자 출신으로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참석하는 바람에 불법 시설물 철거담당 직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원영만 전교조 위원장 “인권위 권고안 수용하면 NEIS 개선책 제시할것”

    단식 농성장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플래카드와 대자보가 간간이 찾아오는 외부 인사를 맞았다. 21일 오후 5시쯤 청와대 근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새마을금고 앞길.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원영만(元寧萬·48) 위원장이 교육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권고안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며 6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보건·교무 등만 CS로… NEIS 완전폐기는 원치 않아 ” 원 위원장은 교육부가 기존 NEIS 가운데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일부 영역을 빼고 시행토록 한 인권위의 권고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국민과 학생이 느낄 실망감을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그는 교육부가 권고안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공언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원 위원장은 또 정부와 일부 국민이 전교조의 주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인권침해 소지가 많은 보건,교무·학사,입·진학 등 3개 영역을 CS로 운영하라는 것이지 NEIS 자체를 폐기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원위원장은 “교육부가 인권위 권고안을 받아들이면 전교조가 직접 나서 NEIS의 개선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료들이 대통령과 장관을 오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시스템을 폐기해야 한다는 (인권위의) 권고는 과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원 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이번 사안에 대해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만일 NEIS의 인권침해적 요소를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인터뷰 도중 민중연대 오종렬 상임대표가 농성장을 찾았다.오 대표는 “최근 노 대통령이 전교조를 ‘대화거부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그러자 원 위원장은 “교육 관료들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으면서 대통령과 장관을 잘못 이끌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그는 “참여정부는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의 축적물’이 모여 탄생했다.”고 전제한뒤 “지지자들을 떠나게 하는 정권에 제대로 개혁하라고 충고하는 우리를 보고 ‘막가는 집단’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라고 성토했다. 원 위원장은 NEIS 문제의 처리가 참여정부의 인권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지렛대라고 규정했다.인권을 무시하는 개혁은 있을 수 없으며,혼란을 자초한 교육부가 이제라도 사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전 국민과 함께 NEIS 불복종 운동을 벌일 것” 원 위원장은 인터뷰에 앞서 서범석 교육부차관이 중재안을 제시하기 위해 농성장을 찾은 일을 거론하며 “우리에게 중재안이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정부가 인권위의 권고안을 적극 수용하지 않는다면 전교조 차원에서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뜻이라고 못박았다.그러면서 “공은 정부와 교육부 쪽으로 이미 넘어갔다.”면서 “인권의 새 역사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전교조는 오는 28일 연가투쟁을 벌인다.99년 합법화 이후 6번째다. 정부가 강경대응 방침을 시사하지 않았느냐고 운을 뗐다.그러자 원 위원장은 “연가투쟁은 헌법에 보장된 합법 투쟁”이라면서 “국가가 잘못된 정책으로 교육현장을 황폐화시키는 것이오히려 중대한 학습권 침해이자 교권 침해”라고 주장했다.조합원 70% 이상이 연가투쟁에 찬성한 것은 싸우지 않고 현실을 개혁할 수 없다는 조합원의 의지가 표현된 것이라며 연가투쟁 강행의지를 분명히 했다. 인권위의 권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연가투쟁 이후 전 국민과 함께 NEIS 입력거부운동과 불복종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원 위원장은 밝혔다.단식으로 피곤해 보이던 원 위원장은 “인권침해 요소를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국민들도 정보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지지해 달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구혜영 이두걸기자 koohy@
  • 勞·警 ‘부산대 대치’/ 각각 1000여명 긴장 팽팽

    화물연대 부산지부 조합원들이 하루동안 탐색전 끝에 15일 또다시 부산대에 집결,농성에 들어가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학교측의 시설보호 요청과 경찰의 공권력 투입 방침이 전해지면서 부산대 주변은 밤새도록 급박하게 움직였다. ●‘산개투쟁’ 끝에 기습 집회 13일 새벽 조장의 인솔하에 부산대를 빠져나가 ‘조용한 파업’을 벌이던 조합원들은 14일 새벽부터 ‘게릴라식’으로 재집결했다.삼삼오오 짝을 지어 경찰이 집중 배치된 출입문을 피해 학생회관에 모인 조합원 1500여명은 ‘파업승리 결의대회’를 갖고 정부측에 성의있는 협상을 촉구했다. 학생회관 입구에는 쇠파이프를 든 10여명의 조합원들이 공권력 투입에 대비,취재진과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일부는 장기간 농성에 대비,침구류를 챙기기도 했다.파업지도부 관계자는 “조합원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잠시 ‘산개전술’을 중단하고 재집결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농성장에 합류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경찰력이 투입되면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합원들은 지난해 발전노조의 ‘산개투쟁’ 방식을 본떠 점조직으로 움직이며 휴대전화 메시지와 ‘주파수 공용통신(TRS)’을 이용,이날 새벽부터 일사불란하게 부산대로 몰려들었다.이들은 지난 13일 오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신선대 집회설,부산역 집회설 등을 계속 흘리며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조합원 조모(37)씨는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나가지 않는 한 경찰이 진입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 사이에는 경찰이 조합원을 한 곳으로 모이도록 유도한 뒤 한꺼번에 진압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돌았다. ●경찰,“공권력 투입 시기 조절” 경찰은 이날 조합원들이 기습적으로 부산대에 집결하자 공권력 투입 시기를 조율하며 경비를 강화했다.경찰은 10개 중대 1200여명을 대학 정문과 남·북문 등 10여개 주요 길목에 배치,검문검색을 실시했다.그러나 무리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조합원의 출입을 강제로 막지는 않았다. 권지관 부산경찰청장은 “현재 부산대에 집결한 조합원에게 ‘업무방해·퇴거불응·집시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당장 사법처리할 수 있다.”면서도 “부산대가 봄축제 기간 중이라 시기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봄 축제 기간 중인 부산대측은 “수업과 교육·연구기능에 지장이 우려된다.”며 관할 경찰서에 시설물 보호를 요청한 데 이어 조합원이 모인 학생회관에 단전 조치를 취했다. 부산 이영표 이세영기자 tomcat@
  • 韓國戰정전 50년 양민학살 재조명

    수많은 양민학살 사건 가운데 제주 4·3사건과 거창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만 정부가 조치를 취하자 여기저기서 형평성 문제를 들면서 억울한 원혼을 달래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전국의 대표적 양민학살 현장을 다시 돌아보고,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청원을 낸 국회의원과 정부의 입장을 알아본다. ■고양 금정굴사건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 학살사건의 유족들은 지난달 1일부터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9·28수복직후 부역혐의자 연행 지난달 30일 농성장에 나온 희생자 유족회 서병규(68) 회장은 1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두 형을 금정굴에서 잃었다고 했다.서씨는 “정부와 정치권은 금정굴 학살 진상조사를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고 말했다. 1995년 9월 유족들은 자비와 시민단체가 모은 1300만원으로 금정굴 유해 발굴작업을 폈다.당시 발굴된 유골은 모두 153인으로 추정됐다.그중엔 여성 10여명과 어린이 유골도 1구 발굴됐다.금정굴 학살은 50년 9·28 수복 직후부터 그해 11월 초까지 부역자를 색출한다며 경찰과 우익단체가 혐의자를 대거 연행,경찰서 창고에 가뒀다가 살해한 사건이다. 경기도의회는 99년 진상조사특위를 구성,금정굴 사건이 학살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경기도는 이에 따라 고양시에 유골의 추가 발굴과 위령사업을 추진하도록 통보했다. ●지하 15m 금광서 400여명 처형 고양시의회는 그러나 ‘금정굴위령사업촉구결의안’을 부결시켰다.유족들과 고양시민회 등이 결성한 ‘금정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시의회의 공식 사과와 우익단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며 분노했다.유족들은 “희생자들은 반공과 국가안보라는 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양민”이라며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한을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금정굴 사건 공대위 이춘열 집행위원장은 “금정굴 희생자와 함께 연행된 사람들 가운데 부역혐의가 짙다고 판단된 사람들은 당시 서울로 송치됐고 아이로니컬하게도 대부분 목숨을 건졌다.”며 희생자들이 억울하게 처형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금정굴 현장은 1995년 1차 발굴후현재 방수포로 덮여 있다.금정굴은 일제 때 금을 캐기 위해 뚫었던 수직굴로,유골이 발굴된 곳은 지하 15m 지점이다.유족들과 증언자들은 당시 금정굴로 끌려간 이들이 400여명에 이른다며 추가 발굴도 요구하고 있다. 입구엔 장승 조형물이 세워졌고 철제 안내문과 안내판이 서 있다.유족들은 인근 창고를 사무실로 쓰면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나주 세지면 동창교사건 전남 나주시 세지면의 일명 ‘동창교 양민학살 사건’(51년 1월20일) 희생자는 136명.면 소재지인 오봉·벽산리 300여가구 주민 가운데 어린이와 노약자를 뺀 젊은이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육전에 희생됐다. 이들은 대낮에 “동창교 아래에서 강연이 있다.”며 위협하는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 소속 군인들의 총칼 아래 억울하게 죽어갔다.군인들은 함평에서 영암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국사봉의 빨치산을 토벌하러 가던 길이었다.(육군 전투상보 기록) ●주민 5열로 세운뒤 총난사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는 조기영(73·세지면 벽산1구)씨는 당시 22살 청년으로 현장에 끌려갔다가 ‘경찰가족’이라고 거짓말해 사지(死地)를 벗어났다.현재 세지우체국 담벼락에 몸을 숨긴 그는 “군인들이 동창다리 밑으로 주민들을 5열횡대로 세운 뒤 다리 위에서 M1소총과 기관총으로 난사한 뒤 인근 논과 밭,산에서 일하던 주민들까지 잡아죽였다.”고 증언했다.이어 “당시 세지초등학교 박모 교사의 부인을 총으로 쏜 군인들이 등에 업혀 울던 세살바기마저 사살했다.”고 몸서리쳤다. 이후 47년간 숨죽이며 살던 세지면 주민(37명)들은 1998년 7월,‘세지 동창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계·46·나주시의원)’를 출범시켰다.이어 유족회를 만들고 2000년부터 해마다 합동위령제(음력 12월12일)를 지내고 있다.내년에는 위령탑을 세울 계획이다. ●“주검 일일이 확인사살” 이상계 추진위원장은 “군인들은 총을 쏘기 전 주민 5명을 가려내 소를 잡아 먹고 일일이 주검을 들춰가며 확인사살까지 자행할 정도로 인간 이하의 행동을 했다.”는 증언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추진위원장은 “한국전쟁의 동일선상에서 자행된 함평 양민학살 사건은 60년 6월 국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가 이뤄졌으나,동일부대의 만행으로 저질러진 동창 양민학살사건은 조사마저 안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나주 남기창기자 kcnam@ ■전주형무소 사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북 전주시 전주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좌익 정치·사상범 1400여명이 군경에 의해 학살됐다는 증언과 자료가 나와 한국사에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형무관 “4차례 자행” 증언 당시 전주형무소 형무관이었던 이순기(78·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씨는 “50년 6월 26일부터 전주가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7월 20일까지 4차례에 걸쳐 좌익 사상범들이 퇴각하는 군경에 의해 집단 살해됐다.”고 증언했다.전쟁이 터진 다음 날인 26일 상부로부터 좌익 사상범에 대한 ‘예비검속령’이 떨어졌고,이날 저녁부터 3년 이상 장기복역한 사상범이 끌려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해 7월 4일 이씨는 사상범 40명이 5명씩 끈으로 묶여 실려가는트럭에 동승했다.전주농고 동문 쪽 야산에서 군인들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 앞에 죄수들을 나란히 세우고 기관총으로 쏘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이씨는 “사상범들은 현재 전북대가 있는 건지산,농협전북본부와 완주군청이 있는 자리,진안으로 나가는 소리개재 등으로 끌려가 살해되고 그 자리에 묻혔다.”고 말했다.특히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황방산에 묻힌 시신들은 막판에 재판도 받지 않고 끌려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밝혔다.이들은 좌익계통 사람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있던 억울한 사람들이었다. ●“좌익 접촉” 이유 재판없이 처형 “7월 16일 전주를 떠났다가 10월 13일 다시 돌아와 보니 전주교도소 주변에서 인민군과 함께 철수하던 좌익들이 우익인사 400명을 죽여 시신들이 수습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진보잡지인 ‘월간 말’은 5월호에 한국전쟁 당시 전주형무소 집단학살 사건의 처형장으로 지목됐던 전주 황방산 부근을 발굴한 결과 수많은 유골을 찾아냈다며 이를 다룬 미국 정부문서보존소 사진을 공개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정부 대책 없나 정부는 다수의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추가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양민학살 관련 정부지원 현황 대규모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작업은 행정자치부 산하 ‘4·3사건 지원단’과 ‘거창사건 지원단’에서 맡고 있다.4·3사건이 한국전쟁 이전에 불거졌다는 점을 고려하면,전쟁 당시의 민간인 희생과 관련된 정부지원단은 거창사건이 유일하다.지원단의 업무는 해당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묘역조성사업 등이다.피해보상 문제는 제외됐다. 거창사건 지원단의 경우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특별조치법’이 제정됨에 따라 구성됐다.지원단은 그동안 거창사건과 관련된 피해접수자 557명 가운데 548명,산청·함양사건 피해접수자 399명 중 386명에 대해 각각 명예회복을 마쳤다.현재는 묘역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4·3사건 지원단은 99년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구성돼 그동안 1만 4028명의 피해신고를 받았다.이 가운데 2778명을 희생자로 결정했으며,오는 2004년 말까지 모든 접수자에 대한 결정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다른 피해자들과 형평성 문제 정부는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의 어려움,전쟁 당시 다른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이 얽혀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어 난감한 입장이다. 거창사건의 경우 당시 이루어졌던 군사재판을 근거로 진상규명 등을 했지만,양민학살사건 대부분은 관련 기록이 전무한 실정이다.따라서 진상규명작업이 유가족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100만∼200만명으로 추정되는 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의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희생자 1인당 1억원씩 보상한다해도 최소 100조원이 필요해 국가재정에서 충당이 불가능하다.게다가 양민학살사건은 군의 작전과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정확한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국방부가 나서야 하지만,양민학살 인정은 군의 명예 실추와 직결된다는 부담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가족들의 억울함을 이해하지만,정부가 대책 마련에 앞장 서기도 어려운 입장”이라면서 “국회 차원의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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