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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여성시장 광명의 전재희씨/“남편보다 앞서 미안”

    ◎행시도 여성 1호… 20년만에 영광/“여성시장이 뉴스 안되는 사회돼야” 『광명시 주민들로부터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정직하고 진지한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첫 여성시장 탄생이라는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광명시장에 발탁된 전재희노동부직업훈련국장(45·이사관). 16일 상오 9시30분쯤 노동부주관으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여성계인사 초청간담회」를 마친뒤 임명소식을 전해듣고 『전국장 축하해요.잘해보세요』라는 주위의 축하인사를 받는 전시장의 얼굴은 한동안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행정고시 여성1호(73년 13회)로,사무관으로 츨발한지 19년만에 이사관(2급)으로 고속승진을 한 여성관료로 화제가 됐던 그녀는 이번에 또 첫 여성시장이라는 영광을 얻었다. 49년 경북 영천군 대창면 오길동 농사꾼집안에서 2남1녀의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변호사가 돼라」는 부모님과 동네사람들의 말을 「귀가 아프게」 듣고 자랐다. 그녀는 5살때 대구로 이사,중·고교를 다녔고 학교옆 법원에서 열리는 재판을 몰래 방청하면서 변호사의 꿈을 키웠다.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 2학년때.당시 대구지방노동사무소에서 한달간 일용잡급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시정을 건의했는데도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계기가 됐다. 행시에 합격한뒤 문화공보부에서 1년간 수습사무관을 거친 그녀에게 보사부와 노동청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가 왔다.그녀는 「여성에게 알맞는 자리」라는 보사부의 권유를 뿌리치고 과감히 노동부를 선택했다. 부녀소년과장·임금복지과장·훈련기획과장등 주요과장을 거친 그녀는 부이사관(3급)승진후 92년 여성도 능력에 맞는 자리에 배치돼야 한다는 최병렬장관의 방침에 따라 남성관료만이 차지했던 요직에 발탁되는등 남자이상의 추진력과 폭넓은 행정경험을 인정받았다. 주변에선 김영삼대통령의 여성중용방침과 전시장의 능력이 맞아떨어져 이번에 시장에 뽑힌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나이는 한살 적으나 국가고시(기술직)는 한해 선배인 남편 김형율씨(44·조달청 가격2과장)는 그녀보다 2계급아래. 『서기관승진은 남편이 나보다 한해 빨랐다』면서 남편 체면을 앞세우는 그녀는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냐고』고 웃음지었다. 상공회의소에서 다음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곧장 과천 노동부청사로 들어오는 승용차에서 기자에게 『여성이 시장되는 것이 더이상 뉴스가 아닌 사회가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 그녀는 대입을 앞둔 1남1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경북 영천출신 ▲영남대 행정학과졸(72년) ▲행시 13회(73년) ▲노동부 부녀소년과장·재해보상과장·부녀지도관·노동보험국장·직업훈련국장(74∼94년) ▲미네소타주립대 수학(91년)
  • 유기농업 보급하는 농민들(일본농업탐방:24)

    ◎20년전부터 무공해농산물 계약재배/4천농가 그룹 결성… 도시 소비자와 직거래/백화점·슈퍼에도 특별코너… 「21세기형 농업」으로 각광 생명의 근원은 자연에 있다.유기농업은 그 자연을 이용,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는 「생명산업」이라 할수 있다.일본에서는 이러한 유기농업이 21세기에도 발전할수 있는 미래농업으로 정착되고 있다. 유기농업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않고 퇴비를 이용하는 농업이다.일본의 유기농업은 지난 70년대 중반부터 크게 늘어났다.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20여년전 「일본유기농업연구회」를 만들어 유기농업보급에 앞장서고 있다.현재 회원은 약 4천명.도쿄 세다가야구에서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오히라 히로시(대평박사·61)씨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도쿄역으로부터 전차로 약 30분 서쪽으로 달리면 오히라씨의 유기농장을 만난다.한적한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밭에는 무·파·시금치·갓등 여러가지 채소가 자라고 있다.그밖에 오이·토마토·양배추·피망·가지등 50여종의 채소들이 계절별로 재배되고 있다. ○농약·화학비료 안써 오히라씨가 소유하고 있는 농장은 1㏊.도쿄 변두리이기는 하지만 1㏊의 땅을 가지고 있는 그는 대단한 부자임에 틀림없다.그러나 그는 넓은 땅을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밭으로 생각하며 농사에 전념하고 있다.그에게는 더욱이 농한기도 없다.1년내내 기후에 맞는 채소를 돌아가며 재배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는 농가소득를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그만큼 여유가 있다고 할수 있다.그러나 보통농가의 3∼4배는 된다고 강조한다.보통 1년에 5번의 윤작을 하며 생산비가 30%정도 덜 들기때문이다.그는 전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퇴비를 만들어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오히라씨가 유기농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68년.자신과 부인및 아들부부등 4식구와 2명의 연수생과 함께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그는 명성대학 농학부를 졸업하고 농사일를 하고 있다.자신의 유기농업을 설명하는 자료중에는 영어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그 자료를 받는 순간 조금 놀랐다.그는 또 유기농업에 관한 3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그중「실천 유기농업독본」은 한국에서도 번역됐다고 들려준다. 유기농업으로 재배되는 농산물은 무공해 식품으로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오히라씨는 농산물 판매를 위해 군마·후쿠시마·지바·나가노·시즈오카·에히메현등에 있는 15명으로 「약엽회」를 만들었다.채소·쌀·과일등 각자 재배한 농산물을 모아 도쿄에 있는 4백가구 1천6백여명에게 정기적으로 공급한다.고정된 4백가구 소비자들은 다른 농산물은 먹지않는다고 그는 말한다.남는 농산물은 학교급식용으로 판매한다. ○전문 유통업체 등장 오히라씨와 같이 농산물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유통구조가 일반적이다.그러나 유기농업이 대규모화하면서 백화점·슈퍼등과 계약을 맺고 백화점등에 「유기농산물 코너」를 설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가락시장과 같은 일본의 대표적인 농산물유통센터 오타(대전)시장에도 「유기농산물 코너」가 만들어졌으며 전문 유기농업유통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유기농업이 이같이 발전하게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것은 한권의 소설책이었다.아리요시 사와코의 「복합오염」.지금은 고인이지만 그녀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작품에서 농축산물의 오염이 인체에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하고 있다.이 작품이 발표된후 일본인들은 농산물 오염의 위험성을 깨달으며 유기농산물에 큰 관심을 갖기시작했다고 한다. 유기농업은 사실 새로운게 아니다.옛날의 농업으로 돌아간 것에 불과하다.물론 새로운 영농방법이 개발되고 있지만 퇴비를 이용하는 유기농업은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없던 옛날의 농업방식의 계승이라 할수 있다.전후 일본의 농업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대량사용,생산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공업화 과정의 효율화개념이 「농업의 근대화」란 이름으로 농업에서도 강조된 것이다. ○정부 적극 지원방침 일본은 「잡초의 나라」라고 비유될 만큼 농업을 둘러싼 자연환경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나쁘다.일본은 이때문에 미국의 5∼6배,유럽의 10배에 가까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해왔다.그러나 농약과 화학비료의 대량사용은 토양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환경을 악화시킴은 물론이고 농산물의 안전성에도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에대한 반성으로 유기농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일본의 유기농업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그룹을 만들거나 법인의 형태로 각지역에서 발전하고 있다.유기농업의 발달로 지방자치단체나 농협·정부도 이들을 무시할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그러나 일본의 유기농업은 농협이나 정부의 지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농민 자신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발전해왔다. 유기농업의 발달로 일본인들은 안전한 유기농산물를 찾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이는 농업시장이 개방되더라도 일본농산물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 한몫을 할 것이다. 유기농산물의 최대 소비지인 도쿄도는 이러한 유기농업 발전을 위해 백화점·슈퍼·청과·채소장수등 5천여 가맹점을 지정,생산·판매를 지원할 방침이다.일본의 유기농업은 「21세기 농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 도시소비자에 「농사정보」 제공/농진청,매월 3차례

    도시 소비자에게 「생활 농사정보」가 제공된다.농촌진흥청은 12일 앞으로 매달 1일과 11일,21일 등 3차례씩 도시 소비자에게 생활 농사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지금까지는 농민만을 대상으로 「주간 농사정보」만 발표해 왔다. 정보내용은 ▲기상정보 ▲기술정보 ▲시장정보 ▲생활정보 ▲정원수와 분재 등의 가정 원예작물 관리요령 ▲관상조·관상어·애견 등의 특수가축 관리요령 ▲우리농산물 애용 등이다.
  • 한만국경(외언내언)

    한만국경 하면 우리는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을 생각하게 마련이다.그리고 일제시대의 독립투사들이 위경의 눈을 피하며 조국광복을 위해 넘나들던 한많은 국경선을 연상한다.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간도 즉 사잇섬 이라는 이름의 땅을 떠올리게도 된다. 예부터 압록·두만 양강연안에 살던 우리 사람들은 흉년이 들거나 난리를 당하면 강건너 대안의 기름진 땅에서 농사를 지어오기도 하고 살기도 했다.19세기 들어 청나라가 국경순찰대를 두고부턴 몰래 건너가 도둑농사를 짓다 붙들려 목숨을 잃기도 했던곳.그런 우리의 슬픈 사연들이 서린 간도다. 그곳 중심지가 바로 오늘의 만주 연변이며 중국 유일의 한주자치주다.2백만 인구의 40%인 82만의 동포가 살고있는 그곳이 오늘에 와 다시 또 우리한주의 목숨을 건 새로운 선택의 땅이 되고있다니 이무슨 기구한 인연인가.기아와 공포의 북한탈출 동포들이 줄을 이어 그숫자가 이미 수백 수천에 달한다는 것이다. KBS의 충격적인 르포에 이어 30년전 월북한 서울대생이 50대가 되어 탈출했으나 붙들려송환될 운명에 처하자 차라리 자살을 택했다는 처절한 소식도 날아들었다.연이은 흉년에 경제파탄의 난리고 보면 인내에 숙달된 북한 동포들이지만 별수 있겠는가.강건너 개혁중국의 유혹이 있고 그로부터 흘러드는 서울소식 또한 만만치 않을터. 한만국경이 한반도의 베를린장벽 되지말라는 법 없다.동독인들처럼 쏟아져 나온다면 바로 여기서부터일 것.북한이 개혁을 않는한 그것은 반드시 일어날수밖에 없다.그리고 핵고집과 전쟁위협은 그것을 앞당길 뿐일 것이다. 월경자에 대한 무차별 사살령과 공개화형보도도 나왔지만 최근 북한의 한만국경 경비도 수차에 걸친 김정일의 명령으로 크게 강화되고 삼엄해졌다고 한다.그런다고 막아질까.핵으로도 못막는것이 민심인 것을.
  • 지바현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일본농업탐방:22)

    ◎최소비용으로 최고의 쌀 생산 실험/단위경작지 일평균의 70배… 헬기 직파/모든 영농 기계화… 미보다 시간 적게 들여 더 많이 생산 세계에서 가장 싼 비용으로 쌀을 생산할 수는 없을까.도쿄옆 지바현에 있는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의 대규모 농경지에서는 쌀시장 개방후에도 일본농업이 살아 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맛있고 생산비가 적은 쌀농사의 영농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는 지바현 사쿠라시에 있는 호수 인바호를 중심으로 그주변에 넓게 펼쳐진 농경지다.도쿄 우에노역에서 전철로 80분.대규모화가 이루어진 거대한 농경지에는 UR를 이겨내겠다는 일본농업의 의지가 심어져 있다. ○농경지 대규모화 가장 넓은 구획은 길이 3백75m 너비 2백m로 7.5㏊.단위 면적으로 일본에서 가장 넓은 농경지다.그 바로 옆에 있는 구획은 7.2㏊.인바호를 메워 만든 이 농경지는 일본 평균단위 논넓이의 70배이상이나 된다. 『일본의 쌀농업이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지의 대규모화를 통해 생산비를 낮추는 길밖에 없다』 지난 40여년간 농지대규모화를 추진해온 가네사카 다스크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 이사(75)의 일본농업혁명론이다. 가네사카이사는 제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농업에 종사하며 농지대규모화를 추진해왔다.그는 여러필지로 나누어져 있던 농경지를 한데 묶고 인바호 간척사업등을 통해 대규모 농지를 만든후 땅주인들로 구성되는 농업법인을 만들었다.농사는 대부분 전업농가에 위탁하여 짓고 있다.인바누마지구에는 지금도 대규모화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용·배수로 땅에 묻어 그러나 단순히 농지의 대규모화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효율적인 과학영농을 위해 철저한 계산을 하고 있다.일본에서 단위논으로는 가장 넓은 7.5㏊ 농경지의 땅높이 편차는 보통 농지정리지역의 절반이하인 플러스·마이너스 2㎝에 불과하다.활주로 건설에 사용되는 「레이저 콘트롤」 불도저를 이용하여 이같이 평평한 농지를 만들었다.『항공파종,기계화 영농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편차가 거의 없는 평평한 농지가 필요하다』고 가네사카이사는 강조한다. 그러나 이같이넓은 농지에 반드시 필요한 용·배수로는 보이지 않는다.파이프를 이용한 자동식 용·배수로는 모두 땅속에 묻혀 있다.용·배수로가 땅속으로 들어가면 그만큼 경지면적이 넓어지고 논두렁도 필요없게 된다.꼭 필요한 논두렁도 보통논두렁의 절반이하인 15㎝로 낮추고 그것도 경사형으로 만들어 트랙터등 농기계가 자유로이 다른 논으로 이동할수 있도록 만들었다. 농지의 이러한 대규모화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세계에서 가장 싼 생산비용의 쌀농사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경작지중 10㏊에 헬기를 이용,논에다 직접 볍씨를 뿌리고 모든 작업을 기계화하는 기계화영농을 실험하고 있다.10a당 파종에서 수확까지 걸리는 시간은 41분.미국의 평균 1시간보다 짧았으며 모내기방식의 일본농업에 드는 평균 45시간보다는 65배이상이나 시간이 단축됐다. ○올해 항공파종 확대 쌀농사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모내기다.가네사카이사는 이때문에 일본도 모내기방식에서 직파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는 『직파를 할 경우 농업에 드는 시간을 미국보다 단축시킬 수 있고 단위생산량도 미국보다 많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싼 쌀농업은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고 자신한다.그는 올해부터 항공기 파종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가네사카이사에게는 그러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꿈이 하나 있다.그것은 하이테크 농업기계센터의 설립이다.밤동안에도 논을 갈수 있는 로봇이 운전하는 트랙터와 센서로 작동할 수 있는 콤바인등을 만들기 위해서이다.로봇 트랙터등은 현재 일본에서 실험 운전중이다.그의 마지막 꿈이 실현될 날도 그리 멀지않은 느낌이다.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는 일본 미래농업의 모델이다.일본각지 뿐만 아니라 한국등 외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개량지구사무실 2층에는 모델농업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강당이 마련돼 있다.가네사카이사는 대형 비디오가 갖추어진 강당에서 일본농업혁명론을 정열적으로 강의하고 있다. ○영농로봇 제작 추진 일본정부가 지난 92년 발표한 「새로운 식료·농업·농촌정책의 방향」이라는 이른바 「신농정」의 핵심도 농지의 대규모화다.신농정은 1가구당 농지규모를 10∼20㏊로 확대하고 생산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일본은 이러한 대단위 「개별경영체」 15만개와 몇개의 부락으로 구성되는 「조직경영체」 2만개를 2000년까지 만들어 전체 농업의 80%를 담당하게 할 계획이다. 그러나 농지의 대규모화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일본은 그동안 여러번 대규모화정책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그것은 일본인들의 토지에 대한 강한 애착과 토지의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일본농가는 토지의 생산성이 높아 영세규모로도 생활이 가능하며 급격한 공업화과정에서 토지는 투기의 대상이 되며 자산성이 높아졌다. 토지에 대한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 때문에 대규모화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러나 쌀시장이 개방된 이상 농지의 대규모화와 맛의 고급화등으로 국제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일본의 쌀농업은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대규모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쌀시장개방은 일본농업의 시련임에 틀림없다.그러나 가네사카이사는 『지금이 일본농업을 개혁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일본정부도 농가전체를 지원하는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대규모화를 통해 농업에 의욕을 갖고 도전하는 전문농가에 대한 지원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농업에 뜻이 있는 농가를 중점 지원하겠다는 전략이다.일본은 쌀시장개방이라는 도전을 이같이 농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농업혁명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 북노동자의 탈출 경로(무너지는 생지옥 시베리아 북한벌목장:5)

    ◎거의가 모스크바 잠입… 망명 요청/요즘엔 밀항하려 블라디보스토크 몰려/한국행 어려워지자 러시아 여인과 결혼시도 늘어/①여권위조→기차→모스크바→한국대사관 ②하바로프스크·아무르→중앙아시아→서울 ③모스크바→인접한 동구원 국가→한국공관 ④브라디보스토크→부산행 배·한국총영사관 시베리아에 있는 북한벌목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줄을 이어 탈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벌목장의 노동조건이 「돼지우리」처럼 열악하고 노동자의 인권이 「개만도 못하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러시아와 북한의 벌목재협정이 늦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또 이를 해소하려는 협상과정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좀더 살펴 보면 북한노동자들이 벌목장을 탈출하는 까닭은 단순히 열악한 노동조건과 참을 수 없는 인권유린 때문만은 아니다.가장 큰 이유는 노동자들이 「북한 밖의 세계」를 만났다는데서 찾아야 한다.안에서 살았던 북한사회와 밖에서 본 북한사회는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만큼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 취재과정에서 만난 탈출노동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었다.몇달씩 산속에 묻혀 나무를 베어야 하는 벌목현장보다 시내에 있는 목재공장에서 탈출자가 더 많이 나오는 것도 그들이 러시아사회와 더 많은 접촉을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다.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벌목장에서 3∼5년만 일하면 냉장고와 오토바이 재봉틀 선풍기같은 가재도구를 한아름씩 사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다.말하자면 몇해 고생한 대신 한밑천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경제의 혼란으로 물자가 귀해지자 러시아정부는 물자유출을 금지시켰다.더군다나 러시아에서 돌아간 노동자들은 따로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노동자들은 이래저래 일할 의욕을 잃게된 것이다.그러다 보니 「남한사정은 어떤가」 싶어 한국방송을 듣는다든지 외국영화를 본다든지 러시아여인을 만난다든지 술을 마시고 김일성부자의 욕을 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생긴다.그리고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안전요원들에게 조사를 받게된다.일단 조사를 받게되면 소명의 기회가 없다.마침내 『북한에 돌아가서 정치범수용소에 가느니 차라리 탈출을 하자』는 마음을 먹게 된다. ○최종목적지는 서울 또 하나는 이미 벌목장을 탈출,서울로 가는데 성공한 노동자들의 사례를 벌목노동자들이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남한방송을 통해서,또는 마음을 터놓는 동료에게서 듣는 그들의 삶이 탈출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것이다.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들이 꿈꾸는 최종목적지는 대부분 서울이다.그러나 서울에 가기 위해 밟고 있는 탈출경로는 서로 다르다. 벌목노동자들의 탈출루트는 크게 4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하바로프스크등지로 나가 여권을 위조해 비행기나 기차편으로 모스크바로 가는 것이다.모스크바에 가서는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고 도움을 청한다.일부는 러시아의 인권위원회와 법률가협회 법무부 외무부등에 망명을 신청하기도 한다.그러나 한국정부가 북한노동자에 대한 처리방침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어 이들에게는 낙심천만인 일이다. 러시아도 한때 이들의 망명신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최근 신청자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91년에 망명을 신청했는데 지금까지 회답을 받지 못한 노동자도 많다. 이런 현실 때문에 대부분의 탈출자는 고려인(한국계 러시아주민)들이 모여사는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크와 카자흐로,또 일부는 사할린으로 흘러들어가 다음 기회를 엿보게 된다. 우즈베크와 카자흐는 러시아로부터 분리된 독립국가이지만 아직까지는 러시아국내와 마찬가지로 출·입국이 자유롭다.이들은 고려인 사이에 숨어 막일을 하고 농사도 지으며 마지막 탈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다.일부는 이곳에서 고려여인과 결혼해 정착하기도 한다. ○망명신청 회답없어 또 하나의 탈출경로는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중국으로는 이곳 벌목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기근을 견디지 못해 넘어가는 사람도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중국은 러시아와는 사정이 또 다르다.이들을 붙잡아 북한측에 넘겨주기도 한다.따라서 중국으로 넘어간 노동자가 남한으로 오기는 사실상 어렵게 된다. 벌목장탈출노동자들은 헝가리와 루마니아 폴란드등 동구권국가로 숨어 들어가 현지 한국공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그러나 근래에는 그리 알려진 사례가 없다. 최근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들이 몰리는 곳은 극동러시아의 오랜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이다.블라디보스토크는 지난 91년까지만 해도 내국인이라도 비자를 받아야 갈 수 있는 통제된 지역이었다. 92년 1월부터 러시아정부가 내외국인에게 통행을 개방함에 따라 이 도시는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다.극동 러시아의 유일한 불동항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와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호주등 인접국가들과의 무역중심지가 되고 있다.블라디보스토크와 부산을 오가는 여객선은 일주일에 4∼7차례나 있으며 최근에는 서울에서 여객기도 날아들기 시작했다.한국의 동신중공업이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거센 변화의 과정에서 항구의 이권을 차지하려는 자생적 폭력집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이들은 현재 3개파의 마피아조직으로자라났다.마피아들의 세력다툼은 갈수록 치열해져 지난달 한낮에 블라디보스토크공항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지난 2월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단의 마피아가 중앙아시아 여행객을 태운 전세버스를 도시 진입로에 세우고 현금과 귀중품을 모조리 강탈해가는 사건도 일어났다.이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밤8시가 넘으면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일부에서는 경찰의 일부도 마피아와 연루돼 있으리라고 의심하고 있다. 바로 이 마피아들을 통해 부산으로 가는 배에 오르려는 북한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그 사례는 최근 언론에도 보도됐었다.배를 타는데 얼마가 드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큰 액수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이 때문에 탈출노동자들은 돈이 필요하다. ○마피아에 돈줘 부탁 탈출노동자들은 어느정도의 달러와 루블을 몸에 지니고 있다.그러나 도망자 생활을 하다보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무일푼이 되고 만다.따라서 탈출노동자들은 고려인등 탈출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사할린에서는 탈출한 벌목노동자가 자기를 숨겨준 고려인을 살해하고 돈을 훔쳐 달아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었다.하바로프스크에서도 탈출한 벌목노동자가 고려인의 집에 숨어있다 주인이 나간 사이 살림살이를 몽땅 털어가버린 일이 일어났다. 탈출노동자들은 고려인사회 안에서도 경원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블라디보스토크주재 한국총영사관은 현지에 거주하는 고려인과 한국에서온 종교인,기업인등에게 『탈출노동자를 돕는 것은 좋지만 무조건 그들을 신뢰하지는 말라』고 조심스런 처신을 당부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자가 만난 탈출노동자 최모씨는 러시아여인과 동거를 하고 있었다.블라디보스토크에 탈출한 벌목노동자들이 모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총영사관이 있기 때문이다. 탈출노동자들은 초조한 목소리로 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망명가능성을 묻기도 하고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그러나 총영사관에서는 본국정부의 방침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없다고 설득,이들을 돌려보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노동자들은 끊임 없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몰려들고 있다.그곳에는 한걸음 뒤에서 그들을 돕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문소문으로 잘 듣고 있기 때문이었다.
  • 환경을 창조하는 산림/식목의 달에 부쳐/조남조(기고)

    2년전의 리우환경회의는 지구환경의 악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각국의 공통인식에서 소집되었다.이 회의에서 채택한 산림원칙성명과 기후변화 협약·생물다양성협약등은 지구환경 문제를 근본적으로 수습해 나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같은 환경문제의 새로운 인식과 해결 노력은 최근 오존층의 파괴로 인한 지구 온난화·산성비·수질오염·야생동식물의 멸종위기등 각국이 현실적 난제에 봉착함으로써 구체화 된것이다.특히 연간 1천7백만㏊에 달하는 열대림의 감소가 지구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데 우려의 소리가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울산등지에서 산성비에 의한 수목피해가 조사 되었고 특히 낙동강 영산강등의 수질오염으로 인한 식수 파동은 큰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림의 환경 창조 기능은 더욱 돋보일수 밖에 없다.산의 나무는 목재라는 재화를 공급하는 이른바 경제기능보다 환경을 형성하는 공익가치가 훨씬 높게 평가되고 있다. 92년도 우리나라 임산물 생산액은 8천2백50억원으로GNP의 0.3%에 불과 하지만 같은해 산림의 공익가치는 무려 27조6천억원으로 GNP의 12%에 해당한다. 도시주변의 산림은 개발의 무한정 확대를 방지하면서 오염공기의 확산을 차단한다.주요 수계의 활엽수림은 수원을 함양하며 산자수명한 자연휴양림은 공해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산림은 강우를 토양에 침투시켜 저장하고 낙엽·흙·암석등의 자연 여과기를 통해 불순물을 제거한다. 말하자면 산림은 거대한 녹색댐이며 정수공장인 셈이다.관련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림의 저수능력은 1백80억t으로 9개 다목적 댐의 1.6배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건강한 산림은 민둥산에 비해 3.4배나 많은 수량을 저장하는 것으로 연구 되었다.산림의 이같은 수원함양 기능이나 대기정화·토사유출 방지·야생동식물 보호,보건휴양장소 제공등을 통틀어 환경창조 라고 할수 있다.이러한 환경생산은 바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고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부적 시혜이다. 이때문에 산림은 위대한 자연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품이라 일컬어 지기도 하고 현재의 자산일뿐 아니라 미래의 후손에게 물려 줄 귀중한 유산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산림면적은 6백46만 ㏊로서 전 국토의 65%를 점한다.그러나 목재 자급률은 12%정도로 매우 미미하다.그래서 우리 산림을 두고 「숲은 있어도 나무는 없다」는 일부 비판이 있다. 경제수·장기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이것은 사실이다.우선 민둥산을 없애기 위해 녹화를 서두른 나머지 적지적수원칙에 입각해서 경제수종을 심고 가꾸는데는 힘이 미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고유 경제수종인 강송이 솔잎혹파리의 무차별 공격을 받아,한때 궁궐대들보 감으로 회자되던 춘양목을 비롯하여 좋은 임상이 많이 사라졌다. 사정이 이러 한데도 상당수 국민과 일부 지도층까지 식목이나 육림사업에 무관심하거나 소극적 이어서 안타깝기 이를데 없다.심지어는 녹화를 이룩한 마당에 산림투자는 뒤로 미루어도 된다는 안이한 사고가 정부내 일각에 있음을 볼때 산림의 위기라는 생각이 든다.이러한 발상은 환경창조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아니다. 인공조림의 역사로 볼때 우리는 아직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이웃 일본이 1백년,독일은 2백년의 조림역사를 가진데 비해 우리는 겨우 30년을 헤아린다.그래서 우리나라 나무의 90%가량이 서른살이하로 통계되고 있다. 나무는 흔히 아버지가 심고 아들이 가꾸며 손자가 수확을 거둔다고 말한다.백년 걸리는 농사인것이다.다른 표현으로 하면 백년 앞을 보고 나무를 심으라는 말이된다. 벌목은 되도록 억제하면서 적어도 향후 70년가량 꾸준히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소위 보속생산이 가능해 진다.매년 일정 양을 베고 심는 것이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나무를 심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손만대에게 훌륭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겠다.
  • 인구 폭발적 증가로 세계 식량파동 임박/국제식량정책연

    【워싱턴 APDJ 연합】 새로운 농사기법의 연구·개발등에서 이렇다할 진척이 없는 가운데 세계인구는 전례없이 증가하고 있어 식량의 근본적인 부족현상이 멀지않아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는 28일 내놓은 「세계식량동향과 미래식량안보」란 보고서에서 개도국들은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앞으로 20∼30년간에 걸쳐 매년 1억명에 대한 식량을 추가공급해야 할 상황을 맞고 있으나 이 부문에서의 연구개발은 계속 지리멸렬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무너지는 생지옥 시베리아 북한벌목장:1

    ◎서울신문 왕상관·이도운특파원 그 현장에 가다/“나는 이렇게 탈출했다” 김호씨 증언/도주­피체반복 6년만에 러거주증 획득/현장 운전수 3년만에 불순자로 낙인/몽고­중아 유랑… 두번 잡혔다 다시 도피/한국망명 신청했으나 “부답”… “서울거리 걸어 봤으면” 러시아 극동지역의 북한벌목장을 탈출한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서울로 가는 꿈을 안고 러시아 전역을 떠돌고 있다. 북한당국의 추적과 지역주민들의 밀고에 쫓기는 불안과 긴장,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돌봐주기는 커녕 무슨 흉물보듯 대하는 이민족들의 멸시,그리고 망명에 대한 한국정부의 어정쩡한 방침 때문에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아예 서울행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망명을 신청하기도 한다. 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기만 하다.특히 최근에는 이들의 입을 통해 벌목장의 인권유린등 온갖 비행이 폭로되는 것을 꺼리는 북한당국이 탈출자를 붙잡기 위해 특무대원을 러시아 각지에 파견하고 있어 거의 절망적인 불안속에서 고달픈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숨어다니며 고려인(한국계 러시아주민) 행세를 하기 때문에 만나보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4명에만 망명 허가 기자는 지난 13일부터 러시아에서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와의 접촉을 시도한 끝에 1주일이 지나서야,그것도 다섯 단계를 거쳐서야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아르좀의 한 주택가에서 김호라는 탈출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김씨는 지금까지 러시아정부로부터 망명허가를 받은 오직 4명뿐인 북한노동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김씨는 망명허가를 받고도 여전히 계속되는 북한측의 테러위협 때문에 지금도 은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의 성장과 파란만장한 도피과정,러시아로부터 망명허가를 받은 법적 위상등 북한벌목장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한 몸에 안고 사는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다. 김씨는 59년7월20일 평안남도 혜산에서 태어났다.3남2녀 가운데 둘째아들이었다.아버지는 혜산일대에서 유명한 교육자였고 누나가 의사,형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다녔으며,여동생도러시아어 교사를 하는 성분좋은 집안이었다.고등중학교를 마친 뒤 군에 입대,휴전선근처 공군부대에서 복무하다 평안북도 정주의 군관학교를 거쳐 82년 소위로 임관했다.몇년동안 장교생활을 하다 「10만군 축소계획」에 따라 제대를 하게 된다. ○현장 당비서차 운전 사회에 나와 운전을 하던 김씨는 러시아 벌목장으로 돈을 벌러가려고 마음을 먹었다.88년 5월16일 러시아행 열차를 타고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의 북한벌목장 가운데 하나인 튀르마에 도착했다. 러시아에 와보니 세상이 달랐다.튀르마는 지방의 소도시였지만 주민들의 삶은 자유로웠고 상점에는 물건이 가득한,일종의 「천국」이었다.김씨는 벌목장에서 공산당책임비서의 운전사로 근무했다.책임비서는 벌목장에서도 위치가 확고했기 때문에 김씨도 열악한 생활환경이었지만 그런대로 적응해 지낼 수 있었다. 김씨의 운명이 바뀐 날은 벌목장에 온지 3년이 조금 넘은 91년8월24일이었다.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우리도 러시아처럼 민주주의를 해야한다』고 「불순한」 말을 내뱉은 것이 화근이었다.바로 다음날 김씨는 당위원회의 호출을 받았다.안전부에서도 김씨를 찾았다.그는 본능적으로 사태가 심각함을 깨달았다.『산에 좀 갔다오겠다』며 숙소를 나와 그길로 열차를 잡아탔다. 김씨는 러시아에 와서 북한에서의 삶이 허구였다는 것을 어느정도 깨닫기 시작했다.그렇다고 탈출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그러나 당위원회와 안전부에서 자기를 부른 것은 전날밤의 일만을 갖고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이미 그동안의 여러가지 발언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 분명했다.이제 북한으로 돌아간다해도 정치범수용소 신세를 모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결국 서울로 달아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하바로프스크로 갔다.시장에서 윤씨라는 고려인 할머니를 만나 그 집에서 며칠동안 숨어살았다.갖고 있던 총재산 1백달러를 주고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고려인의 신분증을 빌렸다.그리고 9월7일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고려인 아내도 맞아 김씨는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한국대사관을찾아가 망명을 요청했다.그러나 한국대사관에서는 김씨에게 이렇다,저렇다 하는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낙담천만이었다.게다가 북한당국의 추적망이 좁혀오는 것을 느꼈다. 모스크바에 더 머무르기가 어려웠다.9월 중순 고려인들이 많아 러시아보다는 신변이 안전한 중앙아시아 카자흐공화국으로 들어갔다.그러나 거기서도 결국 정착지를 찾지 못하고 고민끝에 북한 안전요원의 발길이 미치지 않을 것같은 몽골로 건너갔다.몽골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고려인 청년 한명을 만났다.그 만남이 김씨의 운명을 또한번 바꿔놓았다.카자흐공화국의 타슈켄트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청년은 김씨에게 함께 일하자고 했다. 그는 마침내 청년의 동생인 마야(5월이라는 뜻)라는 아가씨를 아내로 맞게 됐다.곧바로 두사람은 부부가 되고 마야의 친척들이 김씨의 신분증을 만들어주기 위해 관리를 매수할 돈을 모았다.그러나 관리들의 실수로 여권이 2중으로 발급됐고 행정처리 과정에서 그 사실이 드러나 김씨는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경찰은 김씨를 수도인 타슈켄트로 이송해 신분확인 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경찰에 수감된 김씨는 우연히 목공일을 돕다가 만일에 대비해 칼 하나를 훔쳐뒀다. 김씨의 신분확인은 한달만에 끝났다.벌목장을 탈출한 사실이 드러났고 경찰은 신병을 북한측에 넘겨주기로 결정했다.그러나 그는 죽으면 죽었지 북한에 다시 잡혀갈 수는 없었다.경찰이 호송차에 태우기 직전 품속에 숨겨둔 칼을 꺼내 자기배를 찔렀다.그리고 경찰호송차 대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그는 다음날 밤 의사와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탈출했다. 한 고려인 집에 숨어 치료를 받은 김씨는 마야와 함께 이번에는 우즈베크공화국으로 넘어갔다.우즈베크는 바다가 육지로 변한 척박한 땅이다.탈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불같이 끓는 모래밭 2정보를 일궈 해바라기를 심고 지게로 물을 지어 날랐다.해바라기가 자랄 때까지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처형이 사는 블라디보스토크 이웃으로 가 중국과의 국경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 때가 92년 여름.국경에서 떠돌이 북한인을 사귀게 됐다.며칠뒤 그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보니 러시아 경찰 두명이 다가와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도망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결국 다음날 북한 안전요원들에게 넘겨지고 말았다.안전요원들은 김씨를 차에 태운뒤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 받줄로 묶었다.다리에는 마치 부러진 다리를 기브스하듯 철제 족쇄를 두른뒤 40㎏짜리 여행용 가방에 묶었다.하바로프스크의 북한임업대표부를 거쳐 기차로 3시간 떨어진 비르비잔 벌목장의 감방으로 끌려갔다. 부인 마야는 김씨가 잡혀가자 혼자서 하바로프스크의 북한임업대표부로 찾아갔다.몇날며칠을 임업대표부 앞에 앉아 김씨를 풀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며 하바로프스크주정부등 관계당국을 찾아 남편의 구명운동을 벌였다.러시아 국적을 가진 마야가 독하게 달려들자 북한측으로서는 골치아픈 일이었다.문제가 커지기 전에 김씨를 북한으로 빼돌리기로 했다. 지난해 4월3일 김씨는 북한으로 가는 열차에 태워졌다.그러나 기차를 타고 가는 이틀동안 감방에서 주은 핀침으로 수갑을 풀었다.일행은우스리스크역에서 기차를 바꿔타려고 역사로 나왔다.4명의 안전요원 가운데 2명이 표를 사러가고 2명이 남았다.김씨는 그틈에 2명의 안전요원 가우데 한명은 면상을 들이받고 다른 한명은 수갑을 찬 손으로 머리를 내리쳐 쓰러뜨리고 도망쳤다. 김씨는 북한 안전요원을 피해다니고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다니는 편법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고 결론을 냈다.마야의 친척집으로 숨어들어가 모스크바의 법률가협회에 망명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곧이어 모스크바로 날아가 인권위원회와 유엔,외교성등에도 도움을 청했다.모스크바당국은 김씨의 망명신청을 일단 접수했다.러시아의 법적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2년 지나면 시민권 북한은 김씨의 망명을 허가해주지 말도록 각종 채널을 통해 러시아정부에 강력히 요청했다.그러나 지난해 10월4일 러시아공민권위원회는 김씨의 망명을 허가했다.그리고 지난 1월26일 모스크바에서 김씨에게 편지가 날아왔다.그 안에는 특정지역(김씨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의 거주를 인정하는 「비트 나 지제스트로」가 들어있었다.이 거주증은 2년만 지나 본인이 원하면 러시아시민권인 파스포트로 교환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씨의 꿈은 여전히 남한에서 살아가는 것이다.벌목장을 탈출한 순간부터 닥쳤던 가시밭길은 모두가 서울로 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목숨을 걸면서까지 탈출한 것은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것이었다.러시아에서는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김씨는 그러나 막상 한국측에서 『넘어오는 북한사람을 모두 받아주기만 하는게 능사가 아니다』라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몹시 씁쓸해하고 있다.『떼를 쓴다고 될일도 아니갔디요』라고 계면쩍게 웃는 그의 표정이 꽤나 측은해 보였다.그는 『서울에 대해서는 잘 모르갔디만 아마 가보면 내눈이 뒤집힐 것』이라고 말했다.『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그저 서울거리를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 러시아에는 김씨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탈출노동자들이 수백명에 이른다.이들이 벌목장을 탈출했다는 사실은 결코 영예로운일이 아니다.행여 그들이 지나간 삶을 서울에서 보상받으려 해서도 안될 것이다.그러나 결국 누군가는 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러시아와 북한,그리고 한국 이 세나라가 이들의 관련당사국이다.러시아는 이미 이들을 받아들일 몸짓을 보이고 있다.북한도 이들을 모두 붙잡아가는데 혈안이 돼있다.물론 그 이유는 서로 다르다.그러나 정작 이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자유조국」은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다.
  • 혁신적 농업기술(백제를 다시본다:9)

    ◎수전벼농사 중국보다 더 발달/농용저수지 벽골지 1천만평 규모/뛰어난 토목기술 입증… 철제 농기구도 개량해 사용/6∼8세기경 많은 기술자들 일본에 건너가 「농업혁명」 일으켜 무령왕릉이 발굴되었을 때 우리는 거기서 백제의 찬란한 문화와 과학기술을 만나게 되었다.그 기막히게 아름다운 전돌(타일)의 제조기술과 금속 장식품들의 뛰어난 제작 솜씨는 6세기초의 공장 기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이었다.그 세련된 디자인과 그것을 흙과 불의 조화로 빚어낸 과학과 기술은 백제를 새롭게 조명하기에 충분했다. ○제철·제련기술 우수 그리고 최근에 또 하나의 놀라운 백제의 기술적 산물과 만나게 되었다.지난해 12월에 부여 능산리 백제유적에서 발굴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라고 문화재 전문가들이 이름 지은 청동향로가 그것이다.고고학자들과 미술사학자들은 6∼7세기 공예품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그 아름다운 디자인과 생동하는 조각 솜씨를 완벽하게 청동으로 부어낸 주조기술은 그러한 평가를 받기에부족함이 없다.금으로 도금해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향로의 화려한 모습에서 우리는 백제 공장 기술의 또 다른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백제는 삼국 중에서 과학 기술과 문화 예술이 앞섰던 나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백제에 관한 과학기술 관련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몇가지밖에는 찾아볼 수 없다.유물과 유적도 적다.자료는 오히려 중국과 일본에 더 많다.특히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과학기술에 관한 수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다.백제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고대 일본에 건너가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전해주고 가르쳤는지를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백제의 영향은 고대 일본의 문화적 성장에 절대적인 것이었다. 천문·역법과 지리학,점성술 등의 고대 과학이 백제의 학자들에 의해서 일본에 전해지고 교육되었고,의약학이 전수되었다.역박사·역박사·의박사 등 교수와 같은 직책의 학자가 일본에 파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큰 사찰을 짓고 탑을 세우기 위해서 그 일을 가르치고 감독하는 전문기술직 교수인 노반박사·와박사 등이 백제에서 건너갔다.이러한 과학자와 전문기술자의 관직인 박사는 「삼국사기」에 신라의 기록에만 나타나는데,백제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의 사서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백제의 제철·제련 기술과 금속 공예기술이 우수했다는 사실도 일본의 사서와 유물에 의해서 입증되고 있다.칠지도라는 4세기의 철제 칼이 그것을 말해 준다. ○둑 둘레 2.2㎞ 호수 칼 양쪽에 3개씩 가지칼이 달려있는 길이 75㎝의 칼 양면에 새겨진 61자의 금상감으로 된 명문에는,이 훌륭한 칼이 백제에서 위왕에게 하사하여 후세에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뜻이 적혀 있다. 이렇게 백제는 과학기술의 선진국이었다.그리고 백제의 과학기술은 혁신적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전개된 것이었다.백제의 문화가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은 백제의 농업기술이 크게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가난하고 배고프고 메마른 땅에서보다는 넉넉하고 배불리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산수가 좋은 땅에서 문화의 꽃이 핀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학자들은 4∼5세기경에 있었던 백제 농업기술의 발달이 고대의 농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백제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벼농사기술을 전개하였다.그 당시 벼농사를 짓는 기술은 중국이 제일 앞서 있었다.그래서 중국 화남지방의 벼농사법은 중국 대륙과 이어진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대로 행해지고 있었다.그러나 백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들은 중국 화북지방의 발달된 밭농사의 농경기술을 화남지방의 벼농사법에 도입하여 한반도 서남부의 논(수전)농사를 발전시켰다. 백제는 넓은 평야와 비옥한 토양을 가진 나라였다.게다가 풍부한 수량을 가진 하천들이 그 땅을 흐르고 있었다.그러나 한반도는 1년의 강수량이 여름 석달에 편중되어 있고 벼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인 봄에는 가물기가 일쑤여서 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백제의 기술자들은 그 문제를 수리시설의 개발로 해결해 냈다. 둑을 쌓아 물도 가두고 도랑도 파서 그 물을 필요할 때 논에 대는 방법이었다. 김제 땅의 벽골지논 그 대표적인 시설로 유명하다.「삼국사기」에 의하면,벽골지는 330년에 만들어졌는데 그 둘레가 1천8백보라고 했다.그러니까 둑의 둘레가 2.2㎞나 되는 큰 인공호수를 만든 것이다.김제를 그 때에는 벽골이라 했기 때문에,벽골에 둑(제)을 쌓아 만든 인공호수라고 해서 벽골지(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그 호수의 남쪽이 호남지방,서쪽이 호서지방이다. 우리나라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호수인 이 벽골지는 지금도 호남평야의 전천후 농업을 실현시키는 농업용 저수지니까 그 때 이 호수를 만드는 역사는 정말 국력을 기울인 큰 공사였을 것이다.기록에 의하면 이런 저수 수리시설의 아이디어는 이미 다루왕 6년(33년)에 남쪽에서 벼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논바닥·수로 등 발견 이러한 수리시설 기술의 전개는 백제의 토목기술과 맞물리는 것이다.관개 수리 공사의 활발한 전개는 수전 경작지를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무왕 때(7세기 전반)의 인공호수 공사는 최근에 있었던 부여 궁남지 유적 발굴 조사로 많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 기술수준이 평가되고 있다.백제의 토목기술자들은 6세기에서부터 백제가 패망한 뒤인 8세기에 이르는 동안 일본에 건너가서 많은 대규모의 관개 수리 공사의 기술 지도를 했다는 일본의 기록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궁남지 유적의 발굴 조사로 드러난 6∼7세기 때의 논의 유구는 관개 수리 기술과 관련된 백제 농업기술의 수준을 확인하고 조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리고 또 하나 백제인이 개발한 혁신적 농업기술이 있다.뛰어난 금속기술을 바탕으로 철제 농기구를 만든 것이다.호미와 괭이를 주로 쓰던 농업에서 소가 끄는 쟁기를 써서 논밭을 가는 농업으로의 발전은 획기적인 기술 향상이었다.백제의 기술자들은 쇠로 만든 쟁기의 보습 모양을 개량했다.백제 땅에 알맞는 보다 효율적인 보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백제의 농업기술과 토목기술은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의 고대 농업에 혁명을 일으켰고,그 영향은 산업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혁으로까지 파급되었다. ◎벼농사 발달과정/1세기초 도입 4세기경 보편화/궁남지서 한국최고의 수전유구 발굴 백제는 삼국가운데 가장 비옥한 땅을 차지했다.그래서 농업을 기반으로 국가경제력을 한껏 키워나갔을 것이다.특히 사비시대는 백제가 마한사회를 통합한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남쪽 평야지대 모두가 백제경영권에 들어가 있었다. 평야지대는 논농사에 의한 도작농업을 필연적으로 발전시킨다.여기에는 관개를 위한 농업토목기술이 반드시 수반되었다.백제가 사비로 천도했을 무렵은 벼농사가 보편화된 가운데 농업토목도 상당수준에 이른 시기가 아니었나 한다.그이유는 1세기초반에 이미 벼농사를 장려했다는 기록에서 찾아진다.「삼국사기」백제본기는 「다루왕6년(AD33년)2월 영을 내려 남쪽 주군에 벼농사를 시작케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AD330년에는 벼농사에 필요한 용수확보책으로 오늘날 전북 김제에 벽골제를 쌓는다(삼국사기).최근 벽골제 수문지 2개소에 대한 발굴결과에 의하면 제방의 높이는 4.3m,윗변의 너비 7.5m,밑변의 너비 17.5m로 밝혀졌다.현대의 수준측정법을 적용한 만수면적은 37㎦(1천1백20만평)로 계산되어 당시 토목기술이 고도로 발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부여 궁남지 도수로 확인발굴에서 논바닥과 수로,수로와 관련한 방천및 물막이시설을 발견했다.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최고의 논 유구로 볏짚도 함께 발굴되었다.이 논유구는 6세기후반∼7세기초에 이르는 사비시대 벼농사 흔적이라 할수 있다. 백제가 남부 곡창지대를 경영권에 넣어 경제력을 축적할 수 있었던 기반은 선사시대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BC2세기경 호남지방에서 벼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은 전북 부안 소관리와 고창 송요리에서 출토된 민무늬 토기 밑바닥의 볍씨자국에서 드러난다.그리고 부여 부소산 군창지 출토 숯쌀은 7세기경 쌀이 군량미로 쓰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강변엔 “반핵” 선전물 즐비/“불바다” 극언이후 최전방서 본 북녘

    ◎학생투쟁 선동 확성기방송 요란/매일 밤마다 1∼2시간씩 정전/나무 남벌… 모두 민둥산으로 남녘의 꽃소식이 한창인 23일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 해병 청룡부대 군사분계선 최전방 경계초소(OP)는 아직도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몰아쳤다.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한강하구인 이 곳서는 북측의 대남비방방송 소리만 귀청을 때렸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은 지난 주말 남북실무접촉에서 북측대표의 「전쟁발발시 서울 불바다」 망언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흘러만 갔다. 서울에서 48㎞,강을 가로질러 불과 1.3㎞ 지척인 북의 선전부락 「해물마을」에는 인공기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주택공사가 한창이었고 인근 논에서는 몇몇 「북한주민」들이 농사준비를 하는듯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언뜻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들 풍경뒤에 숨은 북측의 호전성을 느끼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해물마을 앞을 따라 강가 곳곳에 세워진 대형선전구조물에는 「반미」「인민정치」「무료교육」「자주시대」등의 문구가 요란했고 지난달 말까지 「반전평화」라는 구호가 아로새겨져 있었다는 구조물에는 핵사찰거부를 은폐하듯 「반전반핵」으로 바뀌어 있었다. 또 북측은 하루 16시간씩 하는 대남비방방송을 대폭 강화,거의 24시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었다.『팀스피리트 훈련재개는 우리 인민들의 투쟁의욕을 고취시킨다』『양키놈들 물러가라…』쉬지 않고 쏟아지는 24개로 묶어진 고성능확성기 소리는 귀를 찢을듯 산골짜기를 울렸다. 확성기가 설치된 북쪽산들은 나무를 모두 베내 민둥산이었다.또 밤에는 매일 1∼2시간씩 정전이 되는등 전력부족현상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대장 조현석중령(41)은 『우리 군은 특별경계근무에 들어갔습니다.그러나 아직 북측의 특별한 징후가 발견되지는 않습니다.군은 철저한 경계태세로 북의 어떠한 행동에도 즉각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며 이번 북측의 망언은 군의 정신력강화와 의지를 더 굳혀주었다고 말했다. 또 경계병 김수남상병(23)은 『저들이 오판을 할 경우 우리는 그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며 필승의 의지를 보였다.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정상 초소에서 내려다본 북녘땅의 피폐함과는 대조적으로 해병부대정문 구조물에는 「서부전선 이상없다」고 적힌 구호가 밝은 봄볕아래 더욱 선명했다.
  • 오염심각한 음식점 지하수(사설)

    지하수오염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왔는가를 알게 하는 검사결과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20일엔 부산지하수오염이 50%에 이르렀다는 부산시보건환경연구원의 판정이 알려졌고,21일에는 서울 일반음식점 사용 지하수오염이 생명에 위험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있음을 확인하는 서울시 조사자료가 나왔다. 음식점용수에 세균이 득실거린다는 기사쯤은 누차 보아온 것이나,피부가 청색으로 변하는 질산성질소까지 다량 포함돼 있다는 사실에는 사뭇 공포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곧 생명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환경처가 전국 7백47개 지점의 지하수수질을 검사한 적이 있다.17%가 환경기준치를 훨씬 넘게 오염되어 청색증 유발물질만이 아니라 발암물질까지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결국 지하수오염상황은 이제 이곳저곳 가끔씩 들춰보는 방법으로 위험도나 강조하는 대상으로 방치해둘 일이 아닌 것이다.체계적으로,본격적으로 접근해야 할 큰 항목의 과제가 된 것이다. 우리 지하수정책은 현재 지하수수질 정기검사와 지하수용도별 수질기준마련의 단계에 있다.수질기준도 실은 생수시판과 연관되어 이번에야 생활용수·농업용수·공업용수를 분리하여 마련키로 했고,생활용수기준에 질산성질소·카드뮴·수은등의 중금속을 포함키로 했다. 그러나 지하수정책은 수질검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수질검사란 사실상 행정의 과제다.정책의 과제라면 지하수를 본질적으로 하나의 수자원으로 파악하고 이를 대체수자원으로 사용할 것인가,아닌가를 정하는 일이다.대체수자원으로 설정했을 때도 이 자원은 유한한 자원이란 점에 유념하여 언제 어느 수준까지 사용할 것인가를 총량적으로 판단하는 원칙의 대강을 마련해놔야 한다. 한단계 더 적극적으로 나간다면 도시하수를 농업관개용수로 사용하는 구조 같은 것에 접근하는 일이다.농작물에 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해 질소·인·칼륨등이 든 화학비료를 일부러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농사다.생활용수에는 바로 이런 중금속들이 들어 있다.그러므로 도시에 공급된 물을 한번은 생활용수로,한번은 농업용수로 사용하자는 시도는 지금한창 세계에 번지고 있다.이미 15개 국가에서 50만◎의 농경지가 도시하수로 관개되고 있다. 물은 제한된 자원이다.물순환은 일정지역에 매년 같은 양의 물만을 공급할 수가 있다.따라서 한지역에 사람이 늘면 그만큼 물공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서울이나 부산의 물공급이 이제는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수질관리를 철저히 할뿐 아니라 재사용체제에도 접근을 해야 한다.지하수오염은 계속 진행될 것이고 수질기준만 따진다고 물이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 김해평야 드럼통·폐비닐 “몸살”/현장고발:2(녹색환경가꾸자:29)

    ◎무허 업자가 공단서 가져다 버려/농가쓰레기 곳곳에 “수북”/공항로에도 산적… 외국관광객 눈살 김해평야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있다. 무허가 폐기물처리장에서 버린 산업쓰레기 생활쓰레기 농사쓰레기등 온갖 쓰레기들로 옥답이 오염돼가고 있는 것이다.특히 김해평야 한가운데 있는 부산시 강서구 일대 농경지는 곳곳에 산처럼 쌓여가는 각종 오물더미로 쓰레기매립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강서구 대저1동 신장로마을뒤쪽 인적이 드문 공터에는 낡은 냉장고·드럼통·소파등 수백개가 집채만큼 쌓여 있다.「쓰레기를 버리다 적발되면 고발하겠다」는 주인의 경고판이 오히려 쑥스러워 보인다. 대저1동 번덕마을에 있는 산희유치원 뒤쪽에는 시커먼 잿더미속에 온갖 크고 작은 깡통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주민들은 사시사철 쓰레기태우는 냄새에 시달리고 있으며 바람이 부는 날이면 쓰레기를 태운 재가 날아들어 빨래조차 널수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환경파괴의 또다른 주범은 농사쓰레기.김해평야를 가로지르는 남해고속도로 4차선확장공사장을 건너 당리마을의 배나무 과수원옆 빈터에도 온갖 비닐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특용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에서 나온 횐색과 검은색 폐비닐,비닐하우스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쓰였던 담요같은 덮개,부른색과 붉은색 천막등이 바람에 어지러이 날리고 있었다. 또 부산에서 공항으로 이어지는 국도 2호선 주변과 김해쪽으로 가는 대동로옆 곳곳에는 공사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건축폐기물이 볼썽사납게 군데군데 쌓여있어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외국관광객들에게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무허가 폐기물처리업체들은 사상공단등에서 나오는 폐합성수지와 고무등을 모아 선별해 재생고무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아무데나 마구 버리거나 불법으로 자체 소각하고 있다.이들은 공해배출시설을 갖추지 않았음은 물론이다.그래서 이들이 버리는 쓰레기는 비옥한 김해평야를 척박하게 만들고 폐기물에서 나오는 침출수가 인근 하천으로 타고 지하로 스며들거나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주부 권영옥씨(41·대저1동 2428의11)는 『몇차레 당국에 고발했지만 치우기는 커녕 갈수록 태산』이라며 『한밤중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면 트럭이 와서 드럼통과 냉장고등을 마구 굴려 쌓는다』고 말했다. 강서구청은 최근 무허가산업폐기뭄처리업체를 단속한 결과 27개소를 적발,이 가운데 12개 업체를 고발하고 15개 업체에 대해 제거명령을 내렸다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그중 14개 업체가 이미 2차례이상 고발당해 단속이 건돌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장담그기 비법 가르쳐 줍니다/「우리음식연구회」 주최

    ◎서울 세곡동 은곡마을 가정집서 실습행사 서울시 농촌지도소 「우리음식연구회」는 23일 상오11시∼하오2시 장담그기가 불편한 아파트 주부들및 우리장을 연구하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맛있는 장담그기 비법을 소개하는 실습및 공동 장담그기 행사를 갖는다. 장소는 서울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의 조숙자씨(55)집으로 14대째 이 부락에서 농사짓고 살며 집안의 내림솜씨로 장담그기 비법을 고수해 장맛이 좋기로 소문난 이 가정의 장담그는 방법이 처음 공개된다. 이날 공동 장담그기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경북 의성군 농촌마을에서 생활개선회원 주부들이 생산한 우리콩 메주 3장(2.4㎏)과 소금·콩등의 재료 비 2만원을 내고 장을 담가 장이 익으면 된장 8㎏과 간장 10회씩을 나눠받게 된다.장을 담가 나눠 가질때까지의 관리는 조숙자씨가 해준다. 한편 서울시농촌지도소는 이 행사와 함께 95년 장담그기철 인수를 조건으로 메주콩과 메주를 신청하는 「우리콩메주 청약」도 받는다. 문의 및 신청은(02)563­5703∼6.
  • 일 쌀재고 올10월엔 “바닥”/암시장서 값 70% 올라

    ◎수입·국산 혼합판매속 쌀도독 급증 【도쿄 로이터 연합】 일본 농수성은 지난해 벼농사 흉작으로 인해 오는 10월경에는 국내에서 생산한 쌀을 더 이상 비축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관리들이 16일 말했다. 교도통신이 입수한 연간 쌀생산·공급 계획에 따르면 93­94 경작연도가 끝날 무렵인 오는 10월경에는 국내생산쌀 재고분이 바닥나게 될 것으로 나타났다. 농수성 소식통들은 올해 벼농사도 지난해와 비슷한 흉작을 기록한다면 일본은 오는 95년까지 연속 2년 쌀을 수입해야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소비자들은 태국,미국,중국 등지로부터 수입한 쌀이 일본산 쌀보다 맛이 없다며 정부가 쌀파동을 완화하기 위해 국산쌀과 수입쌀을 섞어서 판매하는 것에도 반대하고 있다. 이에따라 일본 국내산 고급품종 쌀의 가격은 암시장에서 공식가격보다 70%가량 올랐다. 뿐만아니라 이처럼 일본쌀에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수입쌀을 섞어 파는데 대한 일반의 항의가 비등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경찰청은 16일 창고와 슈퍼마켓에서의 쌀 도둑이 급증하고 있다고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지난 93년의 쌀 도난사건이 4백64건으로 전년도보다 1백89건이 늘어났으며 금년에는 3월10일까지의 첫 10주동안에 99건의 쌀 도난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됐다.
  • 아키타현의 집단영농협의회(일본농업탐방:16)

    ◎「PC농법」으로 전국평균보다 20% 증산/벼 생육정보 교환,품질 개량·방제에 활용/현농업센터에 데이터베이스 구축… 매년 농가별 평가회 개최 일본 최대의 냉해가 지난 여름 일본농촌을 휩쓸 때 매스컴의 관심이 쏟아졌던 영농집단이 있다.아키타(추전)현 북부 히나이조(비내정)의 도작집단연락협의회(회장 중전정남)가 그것이다.이 협의회가 언론의 각광을 받은 것은 부락단위의「PC농법」으로 흉작을 최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쌀생산량만 봐도 최근 5년동안 일본 최고품질의 쌀로 불리는 「아키타고마치」를 전국 평균보다 20%나 더 생산했다. 협의회 소속 40가구의 연평균 쌀생산량은 10㏊당 5백90㎏.히나이마을 전체평균인 5백㎏보다 1백㎏이나 더 많았다. 히나이농협 농산물가공시설내 회의실에서 연락협의회 부회장이며 현재 히나이농업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다카마쓰(고송정부)씨,히나이 아스파라생산회 부회장인 마쓰에(송강일칙),히나이농협 농산유통과 하라자와(우택번지)과장,농산유통과 하세베(장곡부신),사토(좌등화호)히나이정 농정계장등을 만났다.앞의 세사람은 모두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협의회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지난해 냉해로 이곳 작황이 말이 아니었습니다.그래도 우리 협의회 소속 회원들은 다른 마을의 평균생산량보다 높았습니다.우리나름대로 과학적영농을 한 덕택이지요』다카마쓰씨의 말이었다.지난해말 협의회주최로 가진 농가별 생산분석자료들을 보았다.샘플농가 15곳 가운데 흉작이 극심했던 지난해 히나이마을 전체평균(10㏊당 3백81㎏)을 웃도는 농가가 열곳이나 됐다. 아키타현 식량사무소가 작성한 현미품질개황도 마찬가지였다.이마을 오다테관내의 1등급 판정비율이 35.5%였으나 협의회소속 농가의 1등급비율은 79.9%에 달했다.같은 양의 쌀을 생산해도 품질이 좋은 덕택으로 흉작피해를 크게 보상받았던 셈이었다. 『협의회는 지난 60년 집단농장화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발족됐습니다.다른 현의 「집단영농」은 경영을 함께하며 이윤을 배분하지만 이곳 집단연락협의회는 「농업정보는 공유하고 경영은 농가단위로」하는 것이 다르죠』 사토계장에 따르면 토양과 생육정보에 대해 개개농가가 모여 활발한 정보교환을 하면서도 농사는 따로 짓는다는 것이다.선의의 경쟁을 통해 보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이다. 다른 현의 농가들이 감히 흉내내지 못하는 이른바 「PC농법」도 협의회가 구사하는 첨단 농업기법이다.협의회의 각 농가는 모내기이후 벼의 줄기와 잎의 수,크기등을 매월 3회 조사한다.그리고 조사한 수치는 현농업정보센터가 개발한 「생육진단시스템」에 담는다.이때 농협중앙전산실에서는 농업개량보급소의 협조를 받아 예상기상과 기온이 담겨진 데이터베이스를 퍼스널컴퓨터가 있는 각 농가에 서비스한다. 대부분의 회원농가는 농협의 생육진단시스템에 의존,냉해를 예상하고 방충·방제의 시점,예상수확량등을 정밀하게 판단한다. 『지난해에는 농업센터의 자료를 분석,7월중순쯤 냉해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도열병방지를 위해 한차례 방제를 실시하도록 각농가에 지시했습니다』다카마쓰부회장은 이어 『자료를 충실히 측정,관리하고 토론회 정보를 잘 이용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고설명했다. 다카마쓰씨의 경우 컴퓨터농정으로 지난해 히나이마을의 평균생산량을 훨씬 웃도는 4백87.9㎏의 아키타고마치를 수확했다. 뿐만아니라 매년 회원농가별 벼의 유형기·출수기·성숙기때의 상태, 각농가의 토양중 질소잔존율,지온,줄기및 줄기당 이삭수등이 20년간 농업지도센터에 데이터베이스화돼 있다.이를 농가단위에서 활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마쓰에씨의 경우 지난해 아키타고마치생산량은 평균치를 훨씬 밑도는 2백95.5㎏정도에 불과했다.컴퓨터분석자료는 『마쓰에씨의 경우는 토양의 배수가 나빠 생육이 지연된 케이스.유기질의 투입은 좋았는데 투수성이 나빠 유기질의 효과가 제대로 구실을 못했음』이라고 분석돼 있었다.이같은 분석은 바로 마쓰에씨가 사서 쓰는 유기질배합비료회사가 해준 것이어서 더욱 이채로웠다.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농가에선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우문현답이 나왔다.『쌀은 생산후에도 여러각도로 분석해야 합니다.맛과 색깔은 어떻고…비료배합에 따라 쌀의 맛은 어떻게 나오는지 등모두 컴퓨터농법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하세베씨의 대답이었다. 지난해 농가별 쌀평가회는 12월 16일에 있었다.이날은 농협과 농업지도센터가 그동안 각 농가의 기초자료를 응용,분석한 자료를 검토하는 날이다.협의회는 이 평가회에서 각급 농업관련 전문가를 초청,농가별 생산실적을 비교,평가한다.장소는 정농산유통과가 무료로 임대해준다. 단위농협과 정농협지도센터가 후원이 되고 자료제공및 조사협력기관 관계자가 빠짐없이 참석했다. 아키타현농업시험장,현식량사무소대관지소,대관농업개량보급소,아키타현농협경제연관계자가 모두 나오고 비료회사등 농업관련 민간기업관계자도 나왔다. 질좋고 값싼 쌀의 생산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농협,민간기업,단위농가할 것없이 모두가 한마음 한공동체였고 이것이 바로 일본농업의 강점이었다.
  • 위탁영농사 설립 쉬워진다/「3년이상 농업종사」 제한 없애

    ◎이달말부터 빠르면 이달 말부터 농민은 아무나 위탁영농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지금까지는 3년 이상 농업에 종사해야 설립이 가능했다. 농림수산부는 9일 행정규제 완화 차원에서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 시행규칙을 이같이 개정,시행키로 했다.박원규농업기계과장은 『농가소득을 높이기 위해 부업으로 공장에 취업하는 등 농사일을 위탁영농 회사에 맡기려는 겸업농가가 늘고 있어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현재 우리나라에는 4백93개의 위탁영농회사가 있다. 한편 9천평 미만이던 농가당 위탁영농 규모에 대한 제한 규정도 지난 1월 폐지됐다.
  • “개방 극복” 복도현의 겸업농(일본농업 탐방:15)

    ◎토목공장서 일하며 30a 쌀농사/영농기계화돼 직장일 마친뒤 경작 가능/이농땐 현에서 농지매매 알선… 영농 대규모화 자연스레 유도 일본에는 「1종겸업농가」,「2종겸업농가」라는 것이 있다. 농업이외에 다른 직업이 있으면 겸업농가이다.겸업농가중 농업소득의 비중이 크면 1종 겸업농가,다른 소득이 더 크면 2종 겸업농가로 분류된다. 후쿠시마(복도)현 마쓰카와정 가네자와마을의 한자와씨(반택구장·58)는 2종 겸업농가이다.농사로는 쌀농사 30a와 밭농사 10a가 전부이다.우리식이라면 이정도 농사로는 살기가 힘들다고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하지만 일본의 경우 한자와씨처럼 조그만 농토라도 소중히 가꾸며 돌보는 농민들이 많다. 한자와씨는 농사이외에도 일정한 직업을 갖고있다.그가 일하고 있는 곳은 집에서 가까운 토목건설현장이다.주로 도로공사 현장이다.쉽게 말해 도로공사장 「잡역부」이다.한달에 23만엔정도의 월급을 받는다.그의 농가수입은 쌀 다섯가마니를 생산,자급용외 일부를 친구들에게 공급해 일년에 20만엔정도라고 한다.10a정도의 밭에는 토마토,오이,호박,가지등을 재배한다.모두 자체소비용이다. 『소득도 얼마 안되는데 왜 힘들게 계속 농사를 짓습니까』『원래 농촌출신이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합니다』 『그래도 다른 일과 함께 하려면 심신이 피곤할 텐데요』『모두 기계로 하니까 회사일을 끝낸 뒤 혼자서도 가능합니다』그는 농사를 지어먹는 일을 즐긴다고도 했다.스스로 땅내음을 맡으며 건강도 지킨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겸업농가라면 우리에게도 있지만 일본의 경우 농가소득이 변변치 못한 겸업농가도 대부분 기계화로 대처하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한자와씨가 소유하고 있는 농기계는 전식기(이앙기)1대,수확트랙터 1대,콤바인등을 갖고 있었고 다른 농기계가 필요하면 이웃농가에서 임대해 쓴다. 한자와씨는 전업농가가 아니기때문에 쌀시장을 개방해도 별로 걱정은 없다. 이웃마을에 사는 후시미씨(49·복견일웅)는 1종겸업농가이다.90a정도의 논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다.한자와씨의 쌀은 소위 자유롭게 유통시키는 「자유미」.그러나 후시미씨는 연 9백㎏정도의 쌀을 모두 농협을 통해 수매한다.지정한 면적만큼 생산하고 지정한 기관을 통해 유통시키고 있다.소위 일본정부의 「식관제도」를 따르는 그는 식관제도를 따라주며 농업보조금이나 일정한 조성금을 받아내고 있다. 쌀시장의 부분개방에 대해 이들은 모두 『일본이 어차피 무역으로 일어선 나라이니만큼 받아들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정부시책을 믿고 따라주는 것이 개방에 대응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두 겸업농가는 서로 소득은 차이가 났지만 쌀 생산을 부업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는 점,든든한 주소득원이 있다는 점,국가시책을 믿고 따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두 농가는 또 작년처럼 냉해가 심했을 때 공제농업협동조합이나 공제단체등에서 일종의 「재해보상금」도 받았다.한자와씨의 경우 지난해 냉해가 발생하면서 농업 총매출액의 10∼15%정도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받았다. 겸업농가에 대해 국가에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었다.그러나 일본 전국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같았다.후쿠시마현에서는 겸업농가에 대한 일본정부의 「이중정책」을 감지할수 있었다. 이 정책은 농업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과 포기하고 싶은 농가를 나눠 각각 정책을 펴나가는 방식이다.즉 농업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농업을 그대로 하게하고 동시에 일정한 수입이 유지되도록 지방정부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농업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결정을 내리는 순간 다른 일자리를 반드시 보장해주고 있다.후자의 경우 규모영농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농업을 포기하는 겸업농가의 농토를 소개까지 해준다. 일본 농림수산성의 통계를 보면 1990년 4백만 일본 총농가수의 65%인 2백70만가구가 겸업농가이다.지난 75년 겸업농가가 3백10만호였다.그러니까 겸업농가는 완만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겸업농가를 중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이농을 유도,전업농가의 대규모 농지집약화를 동시에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있다. 가네자와 마을의 경우 3년전 전체 1백20가구가운데 반이상이 겸업농가였지만 지금은 거의 겸업농가가 정리돼 현재 3가구만이 겸업농사를 한다.겸업인 3가구는 모두 「농업모델」화됐다. 한자와씨가 사는 후쿠시마는 시여러곳에 분산돼 있는 각종 공업단지를 한 장소에 모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이공업단지 예정지를 농촌마을인 마쓰카와정를 택한 것은 이농희망자에 대해 자연스레 이농을 유도하겠다는 지방정부의 의지를 보인 것이다.농촌인력의 수급을 따져 이 장소를 결정했다는 것이 시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곳 농협관계자들도 『겸업농가는 농가소득이 가계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많지 않아 수입개방의 영향을 별로 받지않는다』면서 『기업적 규모영농과 상호 보완하는 쪽으로 가고있다』고 말했다. 농산물의 수입개방파고를 겸업농의 육성으로 헤쳐 나갈 수도 있다는 실례를 일본은 보여주고 있었다.
  • 도시인도 농지 살수있다/하반기부터/「6개월 농촌거주」 제한 폐지

    올 하반기부터 농촌에서 6개월이상 거주하지 않은 도시인이라도 농사를 지을 뜻만 있으면 농지를 살 수 있다.농림수산부는 5일 농지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행정규제 완화 차원에서 농지임대차 관리법 시행규칙을 이같이 개정키로 했다.현행 농지임대차 관리법은 영농후계자와 농과계 학교 졸업자가 아닌 도시인은,농지 소재지에서 6개월이상 살아야 농지취득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농수산부는 또 상반기중 농지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도 개정,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에 대한 시장·군수의 전용 허가권을 최고 3천평까지 늘릴 방침이다.공장 설치의 경우 현행 4백50평에서 3천평으로,농어업용 시설(신고)은 1천평에서 2천평으로 확대한다.소규모 면적의 임야를 사들이는 사람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임야매매 증명발급이 필요없는 산지의 면적도 현행 7백평에서 3천평으로 넓히기로 했다.
  • 농업인구 80년의 절반/농림수산부 발표/작년말 5백40만7천명

    지난 해 우리나라의 농가 인구는 5백40만7천명으로 13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농림수산부가 4일 발표한 「93 농업 기본통계」에 따르면 농가 인구는 전년보다 30만명(5.3%)이 줄어 80년 1천82만7천명의 절반이 됐다. 농가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3%로 전년의 13.1%보다 0.8%포인트 낮아졌고 농가 수는 1백59만2천호로 3%(4만9천호)가 줄었다. 연령 별로는 20세 미만이 26.9%인 1백45만7천명으로 16만명이 줄어 전체 감소 숫자의 53.5%를 차지했다.반면 60세 이상은 전체의 23.4%인 1백26만7천명으로 전년의 1백23만7천명(21.7%)보다 3만명이 증가,고령화가 지속됐다. 남자가 2백61만명(48.3%),여자 2백79만7천명(51.7%)으로 여자가 18만7천명 많았으나 구성비는 전년과 비슷했다. 경지규모 1㏊ 미만이 전체의 59.4%,1∼2㏊ 28.9%,2㏊ 이상 11.7%였다.2㏊ 이상 농가가 18만6천호로 전년보다 1만호(5.7%)가 늘어난 반면 2㏊ 미만은 5만9천호(4%)가 줄어 이농과 탈농에 따른 영농의 규모화 현상이 뚜렷했다.호당 평균 경지면적은 1.29㏊(3천9백3평)로 전년의 1·26㏊보다 0.03㏊(87평)가 늘었다. 영농형태 별로는 쌀농사를 짓는 미작농이 1백1만3천호로 전년보다 8.4%(9만3천호)가 준 반면 과수 및 화훼 재배농가는 각각 6.6% 및 8.3%가 증가,전통적 미작 중심에서 성장 작목 쪽으로 바뀌고 있다. 농가 형태는 농사만 짓는 전업농가가 전년보다 4만1천호(4%) 줄어든 98만5천호로 전체의 61.9%를 차지했고,농사 이외의 부업을 하는 겸업농가는 전년보다 1.2%(8천호) 준 60만7천호였다.겸업농 중에서도 농외소득이 농업소득보다 많은 2종 겸업농가는 전년보다 2.4% 늘어났다.농공단지 등에 취업하는 농민이 느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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