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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親日의 군상:4/李瑄根 前 문교장관(정직한 역사 되찾기)

    ◎만주 친일파 거두로… 유신 옹호자로/역사는 그를 왜 친일파로 기록하는가/관동군 군량미 ‘보급창고’ 만몽산업의 상무/독립군 토벌 후원단체 ‘동남지구…’ 상무위원/일제 괴뢰정부 만주국 ‘국회의원’ 지내기도/해방후 행적­敎聯회장·3개대학 총장·국민헌장 제정 참여·정신문화연구원 원장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가장 건실한 신(新)질서를 건설해야만 될 것은 유구한 인류역사가 우리에게 부과한 중대 사명으로…좀더 솔직하고 좀더 용감하게 신체제 건설에 희생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특히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의 활동은…민족협화(民族協和)의 신흥제국(新興帝國·만주제국을 지칭함)에 있어서 가장 솔직한 자기반성으로 이 운동의 광휘있는 실천은 장래 선계(鮮系·조선인)국민에게 정치적으로,사회적으로,정신적으로 반드시 좋은 영향을 가져오리라고 봅니다.…”(‘삼천리’1940.12월호) 누가 쓴 글일까? 만주국(滿洲國) 건설에 조선인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이 글을 쓴 사람은 일본인이 아니다.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인이다. 하성(霞城) 李瑄根(1905∼1983). 문교장관과 수차례 대학총장을 지낸 이선근이 바로 이 글의 필자다. ‘과연 그가 이 글을 썼을까’하는 의문이 갈 정도다. 왜냐하면 이선근의 해방후 경력은 ‘민족적인’ 냄새로 분칠이 돼 있기 때문이다. ‘화랑도(花郞道)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독립운동사’를 저술하기도 했던 그다. 얼핏 보면 그는 ‘친일(親日)’과는 거리가 먼 사람같이 보인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그는 해방후 일찌감치부터 소문난 친일파였음을 알 수 있다. ○독립운동사 저술로 ‘과거’ 위장 일제당시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每日新報·현 ‘서울신문’의 전신)는 해방후 미군정에 접수된 후 10월 25일 조선인 주주총회를 열고 사장 吳世昌,부사장 李相協,전무 金炯元 등 새 경영진을 구성·발표하였다. 이선근은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이 명단 속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 인사는 중도에 좌절되고 말았다. 이유는 새로 임명된 주요간부 대다수가 친일경력자라는 것. 이선근도 이 명단 속에들어 있었다. 과연 이선근은 친일파인가? 구체적으로 언제,어디서,어떤 행적을 했길래 역사는 그를 친일파로 기록하는가. 반세기 이전의 만주(滿洲)땅으로 그를 찾아가 보자. 이선근은 경기도 개풍(開豊·현 개성)사람으로 본관은 전주(全州)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데다 일찍 신학문에 눈떠 휘문고보 졸업(1922년)후 이듬해 일본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1929년 와세다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귀국하여 첫 직장으로 ‘조선일보(朝鮮日報)’에 입사하였다. 당시 나이 24세. 그는 입사 1년 반만에 최연소 정치부장을 거쳐 이듬해 약관 25세로 국장이 공석인 국장대리로 승진하여 사실상 편집국장이 되었다. 그 시절을 두고 그는 “입사 한 달만에 사설(社說)을 쓰기도 했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의 신문사 생활은 3년만에 막을 내렸다. 한편 1937년 ‘만주행(滿洲行)’으로 그는 인생에서 한 전환기를 맞는다. 이 무렵 ‘동양(東洋)의 서부’로 불리던 만주는 출세욕에 불타는 군인·지식인,일확천금을 노린 모략자·협잡꾼들이 앞다퉈 모여들던 신(新)개척지였다. 특히 일본인과의 차별대우로 야망을 좌절당한 조선청년들에게 ‘무법지대’ 만주는 오히려 ‘희망의 땅’이었다.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朴正熙 전 대통령은 ‘긴 칼 차고 싶어’ 만주로 가서는 군인이 되었고 조선인 일본유학생 상당수는 만주로 가서 고급관리가 되었다. ‘야망가’ 이선근의 ‘만주행’은 당시 시대상황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로서는 놀라운 변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가 만주에서 보낸 8년은 결국 그에게 ‘친일파’란 오명을 남겨주었다. 1940년 9월21일자 ‘만선일보(滿鮮日報)’를 보면 이 해 만주국 협화회(協和會) 전국연합회(약칭 全聯) 조선계 대표 16명중 한 사람으로 이선근이 소개돼 있다. 이선근의 당시 직책은 빈강성(濱江省) 오상현(五常縣) 안가촌(安家村)분회 부(副)분회장. 조선일보 퇴직후 잠시 고향에서 교편을 잡던 이선근은 이 지역출신 孔鎭恒씨와 의기투합,1937년 만주행에 올랐다. 孔씨는 개성 백만장자의 아들로 일본와세다대학 영문과를 나와 파리와 런던에서 유학한 지식인.그는 유럽 유학후 귀국길에 시베리아,만주를 경유하였는데,이 때 만주에 대규모 농장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가 후에 만몽(滿蒙)산업주식회사를 설립,사장에 취임했다. 이 회사가 조선인 유랑민을 동원,개척한 안가(安家)농장은 총면적 7천만평,수용가구(家口)만도 4천가구에 달하는 대규모였다. 지난 94년 이선근의 친일행적 조사차 안가농장 현지를 답사한 具良根 교수(성신여대·중문과)는 당시 안가농장의 성격을 두고 “관동군(關東軍)의 군량미 보급기지나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하고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창따미(五常大米)’는 지금도 중국 최고의 쌀로 소문나 있다”고 밝혔다. 이선근의 친일활동은 그가 만몽산업의 상무이사로 있으면서 관동군의 군량미 충당에 협조한 점이 그 첫째다. 전통적으로 쌀을 주식으로 해온 일본군에게 있어서 쌀농사는 총포(銃砲) 이상 가는 전쟁물자 지원이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선근은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친일파들과 어울려 친일대열에 가세한다. 대표적인 친일행적의 하나로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 활동을 들 수 있다. 1940년 10월 만주국 수도 신경(新京)에서 발족된 이 단체는 선비(鮮匪·조선인 항일세력),토비(土匪·만주토착 항일세력) 등 이 지역 항일세력들을 토벌하던 관동군을 측면에서 지원한 조선인 주축의 대표적 친일조직. 당시 만주 건국대 교수로 있던 육당 崔南善은 이단체에서 고문을,이선근은 협화회 봉천성 대표 徐範錫(해방후 6선의원 지냄)등과 함께 상무위원을 지냈다. 나중에 그가 만주국의 국회격인 협화회 협의원에 발탁된 것도 이런 공로(?) 때문이었다. 한편 해방후 이선근은 李承晩정권 하에서 문교장관,성균관대 총장 등을 거쳐 朴正熙정권과 다시 줄을 대는데 여기에는 ‘만주경력’이 알게 모르게 작용한 면이 없지 않다. 朴정권은 만주군관학교와 만주국 관리양성소인 대동학원(大同學院) 출신자 등 만주인맥에 권력기반의 한 줄기를 두고 있었다. 朴정권 말기 총리를 지낸 崔圭夏 전 대통령도 대동학원 출신으로 만주국에서 관리를 지냈다. ○교육·문화계 요직 독식 1968년 ‘국민교육헌장’ 제정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이선근은 朴정권 하에서 승승장구하였다. 문화재위원장(69년),영남대 총장(69년),동국대 총장(74년),대한교련(敎聯)회장(76년),초대 정신문화연구원장(76년)등 교육·문화계의 요직을 거의 독식하였다. 그가 이같은 초특급 대우를 받은 배경에는 그가 유신(維新)체제 홍보의 나팔수를 자임한 공로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동국대 총장 취임사 한 구절을 보자. “…민족,국가가 총력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유신(維新)정신,새마을정신으로 우리 동대(東大·동국대)의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東大新聞’,1974.7.30) 그는 대학총장 시절에도 내놓고 유신체제를 선전한 인물이다. 정식으로 ‘유신옹호’ 논문도 쓰고 강연도 여러 차례 했었다. 박정권 말기인 78년에 문을 연 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은 사실상 그의 주도로 설립됐다. 초창기에는 대만의 ‘중앙연구원’을 모델로 하여 순수 학술연구기관을 만든다고 선전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체제옹호용 기관이 되었다. 권력자를 향한 그의 ‘아부기질’은 李承晩­朴正熙에 이어 全斗煥시대까지 계속됐다. 광주(光州)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시점인 80년 8월. 그는 한인터뷰에서 “全斗煥 장군은 위기상황 극복의 최적임자”라고 추켜세우고는 “全斗煥 장군을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된다는데 국민의 여망이 모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음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지적했다(‘서울신문’,1980.8.20). 지금 그가 살아있다면 뭐라고 변명을 할까. 해방후 대다수 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역대 정권때마다 전천후형(全天候型) 인간으로 살다가 생을 마쳤다. 역사학계의 한 중진교수는 “자신의 과거경력을 위장하기 위해 그는 독립운동사와 같은 책을 의도적으로 썼다” 며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권력자의 전위대였다”고 혹평했다. 83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과거행적에 대해 단 한번도 뉘우치거나 사죄한 적이 없다. 오히려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국립묘지 국가유공자 묘역에 묻혔다. ◎協和會란? ‘협화회(協和會)’란 일제가 만주사변 이듬해(1932년) 세운 괴뢰정부 만주국을 통치하기 위해 만든 ‘국가기구로서의 단체’.일본의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조선의 국민총력조선연맹와 같은 관변·어용기관을 본따 전(全)만주의 전(全)인종을 망라하여 조직한 이 단체는 민족간의 ‘협동과 화합’,항일세력에 대한 선무(煽撫)공작 등이 주요 설립목적이다.. 기구는 정부조직의 국무원­성(省)­현(縣)에 대응하여 전국연합협의회­성(省)연합협의회 등의 협의기구와 지방의 집행기관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회장직은 만주국 국무총리가 맡았다. 전체 회원수는 1940년 현재 5족(五族,일본인·만주족·조선족·몽고인·중국인)을 통틀어 1백 67만여 명. 회원 가운데 민족별로 대표자(협의원)를 뽑아 매년 전국대회를 가졌는데 1938년도 전국연합협의회(약칭 全聯)에서는 총참가대표 1백72명중 조선계 대표는 12인이었다.
  • 막강한 권한·책임… 국장에 버금(중앙부처 총무과장:中)

    ◎행자부 李在忠 과장­고함 잘 치는 ‘뚝심’/교육부 張基元 과장­바뀐 장관도 능력 인정/과기부 具本悌 과장­치밀한 성격 行試 22회/문화부 金俊英 과장­9급 출발 외유내강형/농림부 鄭勝 과장­아이디어 기획력 탁월/정통부 李圭太 과장­성품 온화 업무는 정확 행정자치부 李在忠 총무과장(45·행시 21회)은 소박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강한 추진력의 소유자다. 청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서울대 시절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MBC아나운서인 趙一秀 부장이 부인이다. 내무부 출신으로 충북 보은·중원군수와 지방행정연수원 기획과장,내무부 사회진흥과장을 거쳤다. 지난 94∼95년 청와대 파견 시절 총무처 업무를 맡아 행자부 안팎 사정에 두루 밝은 것이 강점이다. 최근 2국 5과를 줄이는 부내 2차 구조조정에 따른 인사를 무리없이 해냈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한다. 게다가 소리도 잘 질러 직원들은 ‘못살겠다’고 비명이다. 교육부 張基元 총무과장(41·행시23회)은 安秉永 전 장관이 재직하던 지난해 4월 장관비서관으로 기용돼李明賢 전 장관 때까지 일하다 12월 총무과장이 됐다. 서울대 생물학과 출신이다. 李海瓚 장관 취임 후에도 총무과장을 계속 맡으면서 지난달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李장관의 스타일대로 지연이나 학연보다는 능력을 인정한 케이스로 꼽힌다. 합리적이고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그러나 총무과장의 핵심 권한인 인사문제에 있어 고시 출신을 더 챙긴다는 비고시 출신들의 원성도 들린다. 과학기술부 具本悌 총무과장(41)은 치밀하고 정교한 성격으로 일찍부터 총무과장 적임자로 꼽혀왔다. 보성고와 서울사대 독어과를 졸업한 행시 22회 출신. 기술협력1·2과장,기술협력총괄과장,법무담당관,공보담당관을 거쳤다. 공보담당관을 지내며 세상보는 안목과 어려운 과학기술정책을 쉽게 풀어 알리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호방한 듯하면서 까다로운 성격의 姜昌熙 장관을 보필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보기에 안타깝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문화관광부 金俊英 총무과장(53)은 서울대 농대 출신으로 69년 9급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지 10년만인 지난 79년 사무관에 올랐다. 박물관과장과 문화진흥과장·문화산업기획과장을 지낸뒤 지난 3월 국장 승진이 약속되다시피한 총무과장에 임명됐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공직자다. 문화관광부 안에서는 공무원답지 않은 공무원으로 불린다. 그만큼 할 말을 다하고 산다. 아이디어도 반짝인다. 박물관 행정에 일가견이 있으며 복식사에도 해박해 ‘한복입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농림부 鄭勝 총무장(41)은 아이디어가 출중하다. 우유마시기 운동과 ‘자린고비 행정’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전남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행시 23회. 국무총리 행정조정실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파견을 거쳐 농촌인력과장을 지냈다. ‘농업을 사랑하는 농림공무원들의 모임’(농사모)을 구성,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례적으로 서기관이 총무과장을 맡아 농림부 분위기를 젊고 밝게 만들고 있다. 金成勳 장관이 각별히 아낀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게 장점이다. 정보통신부 李圭太 총무과장(43)은 전북대 행정학과 출신으로 행시 22회. 체신부 법무담당관과 정보통신기획과장·기술기획과장을 지낸 뒤 지난 6월 현재의 자리에 왔다. 현재의 장·차관이 모두 의전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일하기가 매우 편하다고 느낀다. 성품이 온화하고 부하들을 편하게 대한다. 그러나 업무처리는 정확하다는 평이다.
  • 휴경농지 366만평 처분명령/4,264명 1년내 이행해야/농림부

    농지를 갖고도 농사를 짓지 않은 4,264명에 대해 농지처분 명령이 내려졌다. 농림부는 96년 1월 1일부터 지난해 9월 30일 사이에 영농을 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하고도 지난해 농사를 짓지 않은 농지소유주 4,264명에게 해당 농지를 처분하라고 12일 통지했다. 처분조치가 내려진 농지는 1,209㏊(366만평)로 경기도가 324㏊에 1,201명으로 가장 많고 강원 226㏊ 485명,충북 119㏊ 400명,충남 112㏊ 393명,전북 84㏊ 303명,전남 76㏊ 328명,경북 104㏊ 333명,경남 126㏊ 595명 등이었다. 처분명령을 받은 농지 소유주들은 자영업자 1,381명,농업인 987명,회사원 640명,공직자 80명 등이다.이들은 농지법에 따라 1년 안에 해당 농지를 처분해야 하며,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6개월의 경과기간이 지난 뒤 해당 농지 공시지가의 20%에 이르는 이행 강제금을 매년 물어야 한다.
  • “논이 댐역할 水害 줄여”/농림부,9조원 효과 주장

    “논이 홍수를 막았다” 높이 쌓은 제방이 못막은 홍수를 평평한 논이 막았다는 이 이색주장이 나왔다. 농림부는 11일 ‘전국 벼농사의 경제적·공익적 효과’라는 참고자료를 통해 “물을 저장하는 논의 댐 기능이 대홍수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전국에 내린 비의 양은 118억t.이 가운데 논이 17억t을 가뒀고 이를 댐건설비로 환산할 경우 금액만 9조3,883억원에 달한다는 것.
  • 大農꿈 와르르… “올농사 다망쳤다”/중부 물난리­침수피해 농경지

    ◎파주­물 빠지는데 3∼4일… 밭작물 물에 쓸려/김포­한강 유입 곡릉천 만조때 역류 ‘물벼락’/당진­골재 채취장 흙더미 덮쳐 논밭 사라져/보성­“벼멸구 판쳐 복구해도 30% 減收” 개탄 서울·경기·충청 등 중부지역을 강타한 기습폭우는 엄청난 인명 및 재산피해를 안기며 삶의 터전을 뿌리째 짓밟았다. 대풍(大豊)을 기대하며 바쁜 일손을 놀리던 농민들은 수마가 한순간에 할퀴고간 깊은 상처를 허탈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농경지가 물에 잠기고 밭작물이 떠내려간 수해피해 현장을 긴급 점검한다. ▷경기도◁ 11일 상오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갈현들녁. 인근 곡릉천이 범람,한때 바다로 변해 버린 들녘을 바라보는 농민들은 할말을 잊은채 깊은 시름에 잠겼다. 주민들은 한포기 벼라도 건지기 위해 마을어귀에 나왔지만 흙탕물로 변해버린 논에 들어갈 수 없어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황토물에 잠긴 벼는 줄기부터 썩어들어가고 있다. 탄현면 지역의 침수 농경지는 1,200㏊. 이중 40여㏊의 논은 물이 빠지는데 앞으로도 3∼4일쯤 걸려 사실상 올 농사를 망쳤다. 밭작물도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고구마가 뿌리를 덩그러니 내놓은 채 썩어가고 있다. 金張淳씨(45·탄현면 갈현리)는 “피땀 흘려 가꾼 고추 참깨 콩 등 밭작물이 물에 쓸려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며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같다”고 허탈해 했다. 교하면 일대 농경지 2,298㏊도 한강으로 유입되는 곡릉천이 만조때 역류하면서 끝내 물에 잠겼다. 주민들은 황토물에 담긴 벼를 일으켜 세우려 논에 들어갔지만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형편이다. 김포군 김포읍 걸포·사우리 지역 농경지도 걸포천이 역류하면서 대부분 침수됐다. 인천시 강화군 불온면 삼성 1·2리 지역 역시 농경지 전체가 물에 잠겼고 평택시 포승·현덕면의 농경지 1,191㏊는 만조때 수문을 열지 못해 불어난 하천이 범람하면서 극심한 침수피해를 입었다. 경기도내 농경지 침수는 이날 현재 논 2만2,495㏊,밭 5,030㏊ 등 2만7,525㏊에 이른다. ▷충남◁ 황토물이 빠진 당진·태안군 일대 농경지는 폐허나 다름없다. 300만평의 당진읍 채운평야는 빗물이 빠지면서 벼포기가 넘어진 채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흙더미에 깔려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일부는 송두리째 뽑혀 하얀 뿌리가 거꾸로 솟아오른 모습이다. 당진읍 대덕리 5만여평의 꽈리고추밭은 떨어진 고추가 낙엽처럼 가득히 널린채 벌써 짓물러 터져 썩기 직전이다. 그나마 몇개 달려있는 고추마저 금방 떨어질 지경이다. 밭고랑 사이로 농민들이 떨어진 고추를 줍느라 분주하게 헤매고 있다. 정미면 봉생리 논과 밭은 모습이 아예 사라졌다. 뒷산 골재채취장에 쌓여 있던 흙더미가 빗물에 순식간에 무너져 떠내려오면서 논과 밭을 덮친 때문이다. 농민들은 복구작업조차 포기한 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도내 두번째로 피해가 큰 태안군도 마찬가지다. 소원면 신덕리 150만평 논은 벼포기들이 모두 드러누웠다. 흙더미가 덮쳐 벼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영전리 4만평의 논은 공사장을 방불케 한다. 뒷산인 철마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흙더미가 평야를 덮쳐 산 중턱의 절반은 깎였다.최대 생강 생산지인 태안읍 남산리 들판의 생강밭들은 하얀 뿌리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물살에 깎여나간 일부 밭은 흙만 보일 뿐 텅 비어 있다. 깊게 파여 흉칙한 웅덩이가 여러 군데 눈에 띈다. 송암리 난(蘭)재배단지와 산후리 장미 재배단지의 시설도 모두 망가졌다. 장미단지는 쓰러지면서 덮친 주변 전봇대가 깔고 있다. 1,000여평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하천 물이 들어와 붉은 장미 꽃잎을 흙으로 덮었다. 1만2,000평의 난 재배시설도 흙더미에 깔려 있다. 물살에 쓸린 난 줄기는 방향을 알 수 없이 여러 갈래로 뻗어 보기조차 흉하다. 이날까지 충남도내에는 당진군의 4,500㏊를 비롯해 태안 3,659㏊,천안 301㏊,아산 1,000㏊,서산 2,225㏊,홍성 375㏊,예산 176㏊등 모두 1만2,236㏊의 농경지가 침수됐다. 이중 논은 1만1,904㏊에 이른다. ▷전남◁ 보성군 득량면 일대 간척지 들녘에는 벼끝이 하얗게 말라 죽고 각종 쓰레기더미가 군데군데 쌓여 있다. 한톨의 쌀이라도 더 건져보려는 농민들은 매일 논에 나와 농약을 뿌리고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워낙 피해면적이 넓은데다 복구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득량면 해평·오봉·예당리 일대 간척지에는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쏟아진 폭우로 300여㏊가 물에 잠겼다. 배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3∼4일 동안 벼가 흙탕물에 잠겼다. 물이 완전히 빠지자 이제는 벼잎이 말라죽고 벼멸구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농약을 뿌리러 나온 朴金彩씨(49·예당리)는 “복구를 한다 해도 평년의 30% 이상 감수가 예상된다”고 한숨지었다.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시간당 135㎜의 폭우가 쏟아진 구례·순천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덕은천 주변 700여평의 논이 모두 유실된 金선철씨(38·구례군 토지면 구산리)는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라며 “지금 당장은 대체작물을 심을 기력조차 없다”고 허탈해 했다. 이번 폭우로 인한 전남도내 농경지 침수면적은 논 1,924㏊와 밭 71㏊ 등 1,995㏊에 이른다. 이중 동부에 위치한 보성(549㏊) 구례(401㏊) 순천(391㏊) 지역이 집중 피해를 입었다.
  • 수재복구 함께 나서자(사설)

    나흘간 서울과 경기북부를 강타한 기습폭우가 경기남부와 충청지역으로 이동,도시와 농촌 모두를 폐허의 현장으로 바꿔 놓았다.지리산 참사에 이은 이번 중부지방 재해를 보면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아직도 서울과 경기지역을 강타한 국지성 집중호우대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상태에 있어 복구작업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졸지에 집과 가재도구를 잃은 도시주민은 물론 논과 밭이 온통 침수된 농민과 가축을 홍수로 떠내 보낸 축산 농가들의 실의와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가 없다.더구나 부모와 자식을 잃은 수재민의 아픔과 시름은 형용하기조차 어렵다.대자연 앞에선 인간의 무력함을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하늘을 원망하면서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수재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정부는 지난 9일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호우피해 지역 주민과 기업에 대해 금융과 세제상의 지원을 하고 학자금과 영농자금 감면혜택을 주기로 했다.이번 재해는너무도 엄청나 정부지원만으로는 수재민들이 재기하기가 힘들 것이다. 당국은 우선 식수·식량·전기·가스 등 이재민들에 대한 생활필수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무너지고 끊긴 교량·도로·철로·전기 통신 시설을 조속히 복구할 것을 당부한다.당국뿐 아니라 전국민이 나서 재해를 당한 도시민과 농민을 도와야 할 것이다.도시지역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 치우기와 수인성 전염병 예방을 위한 방역을 위해 당국과 민간기업의 인력과 장비지원이 신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특히 농촌지역은 집과 논 및 밭이 침수피해를 입어 어떤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상태이다.벼 병충해의 경우 비가 잠깐 갠 사이에 방제하는 것과 하루를 미루는 것과는 수확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올해는 기상이변으로 벼멸구 발생이 지난해보다 5배이상 늘어난 상태에서 이번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잎도열병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조생종 벼는 이미 벼가 패었고 중·만생종은 이삭이 막 패기 시작하고 있다.이삭이 팰 때 목도열병에 걸리면 벼농사가 결정적인 피해를 보게된다.병충해 방제는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밭작물 피해 또한 심각한 상태이다.그러나 노인과 여성이 주축인 농촌의 가족 노동력만으로는 집과 가재도구를 챙기기도 일겨운 실정이다. 농촌지역 수해피해를 줄이기 위한 도시민들의 일손돕기가 절실한 때이다. 도시의 유휴인력과 방학중인 학생들이 농촌을 찾아 폭우로 쓰러진 벼를 세우고 논과 밭의 병충해를 방제하는 일에 나설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 “힘 모읍시다” 백포도주 건배/청와대 회동 이모저모

    ◎날씨·농사형편 얘기꽃 피우며 간간이 조크도/“주인 먼저”“손님 먼저 입장하셔야” 서로 양보 金大中 대통령이 31일 하오 6시30분 청와대로 金泳三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4명을 부부동반으로 초청,만찬회동을 가졌다.청와대 부부동반 만찬회동은 정부 수립후 최초로 처음으로 청와대측은 의전과 좌석배치 등에 세심한 신경을 썼다. ○…金대통령과 전직대통령 만찬은 하오 6시45분부터 하오 8시5분까지 1시간20여분 동안 진행.金대통령과 전직 대통령들은 주로 경제난 극복 등 국정현안과 건강,날씨 등을 화제로 환담. 朴智元 대변인은 만찬이 끝난뒤 “대통령께서는 ‘좋은 분위기에서 유익한 대화를 나눴으며,잘되었다’고 평가했다”며 “매우 흡족하고 명랑한 표정이었다”고 소개.그는 “국정현안에 대한 대화가 오고갈 때는 崔,全,盧 전대통령은 얘기를 했으나 金 전대통령은 듣기만 했다”고 부연. 金대통령과 전직 대통령들은 만찬을 마치면서 모두 일어나 全 전대통령의 제의로 백포도주로 건배.全 전대통령은 “金대통령 내외의 건강을 기원하며, 金대통령이 하는 일에 우리 모두의 힘을 합칩시다”고 의미있는 건배사를 해 눈길. ○“기도 많이 하고있어요” ○…이에 앞서 하오 6시28분 盧 전대통령 부부가 처음으로 청와대 본관에 도착,金重權 비서실장의 안내로 金대통령 내외가 미리 기다리고 있던 만찬장인 충무실 옆 전실로 입장.金대통령이 “오랫만입니다”고 인사를 건네자 盧 전대통령은 “감사합니다.오랫만에 들어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고 답례. 이어 하오 6시29분 崔전대통령,5m 뒤에 全전대통령 부부,그리고 하오 6시31분 金전대통령 부부 순으로 도착.특히 金 전대통령부인 孫命順 여사는 李姬鎬 여사와 포옹을 나누며 “많은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말해 눈길. 먼저 金대통령이 “금년에 비가 많이 옵니다”라고 운을 떼자 崔전대통령은 “그래서 날씨가 시원하다”고 화답.이어 盧전대통령이 “올해는 수해가 적어 다행”이라고 말하자 金대통령은 “요즘은 비가 많이 와도 수해가 적다”고 부연. 金대통령은 이어 “농가에 관정이 많아 비가 안와도 피해가 적다”고 말했고,盧대통령이 이를 받아 “지난 82년 내무장관 시절 가뭄이 들어 관정을 많이 설치한 기억이 난다”고 하자 “내무장관을 잘하셨군요”라는 金대통령의 농담에 한바탕 웃음꽃. ○…이어 金대통령과 전직대통령들은 만찬장인 충무실로 이동.金전대통령은 지리에 밝은 듯 먼저 만찬장으로 걸어들어갔으나,崔전대통령은 “주인이 먼저 가셔야죠”라며 金대통령이 앞장설 것을 권유했고,金대통령은 “아니 손님이 먼저 가셔야죠”라며 양보. 그러자 全전대통령은 “우리는 길을 모르니 金대통령께서 가는 길을 안내 해달라”고 주문. ○…청와대측은 이에 앞서 만찬장 자리배치를 놓고 서양의 관례처럼 부부가 서로 마주보고 앉도록 하는 방법과,부부끼리 앉는 방안,남자는 남자끼리 앉는 방안 등 3가지 방법이 검토됐으나 우리식으로 부부끼리 앉는 방안으로 낙착. 만찬요리는 金대통령이 최종 결정했다는 후문.청와대측은 처음 한식과 양식 등 3∼4가지의 코스요리를 준비했으나 金대통령이 “한식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지시.잣죽에 이어 상어지느러미 찜,전복구이,갈비와송이,굴비구이,신선로,과일과 식혜 순으로 이어졌다. ○“YS 미안한 모양이더라” ○…한편 全전대통령은 하오 8시25분쯤 연희동자택에 도착, 부인 李順子 여사와 함께 환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분위기가 어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화기애애한 좋은 분위기 였다.그래서 와인도 많이 마셨다”고 말했다.그는 또 金전대통령과는 인사를 나눴느냐는데 대해 “인사도 하고 악수도 했다.그는 마음속으로 미안해하는 것같았다”고 말해 주위는 한바탕 폭소.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金玉淑 여사와 함께 귀가한 盧전대통령 역시 밝은 표정으로 집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주요화제는 경제위기극복이었으며 분위기는 무척 좋았고 유익한 대화가 오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주 만나고 싶다”는 희망도 피력. 한편 상도동 자택에 도착한 金전대통령은 회동결과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 北間島 개척(秘錄 南柯夢:19)

    ◎“간도 개간해 영유권 회복” 은밀히 제의/관직 물러난 심선택,부국강병책으로 진언/고종,“뜻은 거창하나 재정연구뒤 착수” 지시/심,“삼도 어사삼으면 수령출척 충당” 아뢰니 “흉년에 민폐 끼칠라…” 물리치자 없던 일로 두만강 건너 이북의 땅을 북간도(北間島)라 한다. 지금 연변 조선족이 사는 곳이다. 이곳이 고조선과 고구려,그리고 발해의 옛 강역이었던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그토록 귀한 땅이 대륙의 이민족에게 넘어간 것은 고려때부터로 알려지고 있다. 그때 간도땅을 차지한 민족을 만주족,일명 여진족이라 하는데 여진족은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워 중원을 정복하는데 성공한 민족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사학자 가운데는 여진족이 이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금과 청의 역사를 중국사에서 떼어내 한국사의 일부로 끌여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만일 계속 간도땅을 영유하고 있었다면 약소국의 설움을 맛보지도 않았을 것이요,일제로부터 침략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렇게 중요한 간도에 고종황제가관심을 가진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어느날 심선택(沈善澤)이 나(정환덕)를 찾아왔다. 이 사람은 전 동부승지 의평(宜平)의 아들이다. 지난해 엄귀인(嚴貴人:엄비)의 여동생에게 장가들어 외척이 되더니 그 인연으로 성주목사(星州牧使)자리를 얻어 나갔다. 그러나 겨우 일년이 지나 어머니 상(喪)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왔다. 상를 마친 뒤 아무 직업도 없이 있다가 드디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매우 좋은 일이 있소이다. 영감께서 황상께 아뢰어 꼭 성취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한 일이요,창업공신과도 맞먹는 일이니 생각이 어떠하십니까”라는 것이었다. 심선택은 흥분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고 싶은것은 북간도 개척문제였다. 그래서 정환덕은 “순서대로 조용히 말씀해보시오”라고 말했다. “북간도는 원래는 조선 땅으로 사방이 4천리나 됩니다. 남이(南怡) 장군이 당시에 백두산의 북쪽인 중국 동부지역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고 여기가 조선 땅이라는 것을 밝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가보면 그 지역이텅비어 있고 관할하는 사람도 없으니 그곳에 공사관(公使館)이나 영사관(領事館)을 설치해 중국과 조선이 서로 무역을 하고 버려진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면 부국강병책이 스스로 그 안에 있을 것입니다. 영감께서는 이 사업을 각별히 힘써서 주선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북간도의 지도 한장과 북간도에 관한 사실을 조사한 서류 한 점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세종때 남이장군이 세웠다는 백두산정계비는 백두산보다 훨씬 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하며,목격자도 많은데 일제가 폭파했다는 설이 있다. 그뒤 18세기초에 다시 청나라가 강요하여 정계비를 백두산 남쪽에 새로 세우게 되어 백두산 천지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이때 문제된 강이 토문강인데 청은 토문강을 두만강이라 주장하고 우리는 두만강이 아니라 해란강이라고 주장했다. 심선택은 이같이 간도땅의 역사를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종에게 건의하여 간도땅을 되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그런데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은 거창한데 재정이 어려워 섣불리 착수할 수가 없다. 아직은 보류하고 재정을 연구한 뒤 착수하기로 하자”고 분부하셨다. 그래서 심선택에게 상감의 교시가 이와같다는 뜻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상감의 교시가 비록 그와같다 해도 좋은 방도가 있으니 상감께서 우리일가 심상훈(沈相薰)을 불러 “북간도의 일을 심선택과 상의하여 보라고 처분을 내리시면 방도가 나올 것이니 다시 그렇게 아뢰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대궐에 들어가 다시 아뢰었더니 상감께서 심상훈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북간도 일은 심선택과 함께 상의해 처리하라”고 교시하시었다. 심상훈은 대한제국의 공신으로 고종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심선택이 심상훈의 도움을 받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심선택의 말에 문제가 있었다. 이에 심상훈이 심선택에게 “상감께서 북간도 일을 어른(심선택)과 상의해보라는 교시를 내리셨는데 무슨 방도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감께서 잘 여쭈시어 나를 북쪽 삼도(三島) 어사(御史)로 삼아 옛 식대로 마패(馬牌)를 가지고 현지 수령들을 출척(黜陟)하는 권한을 갖게 해주신다면 일년도 되기 전에 쉽사리 몇천만원은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북간도에 들어가 시설을 하면 재정의 부족은 근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찌 국고(國庫)의 돈으로써 경비를 낭비하는 일이 있겠습니까”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농민들은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에는 많이 이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역경을 딛고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청나라의 강압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 문화와 의복을 지켰다. 청나라의 관리들은 한국농민들에게 머리를 깎고 청나라 옷으로 갈아입으면 토지소유권을 준다고 유혹하였으나 백의민족으로서 긍지를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대한제국 정부는 1902년 우리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범윤(李範允)을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로 임명,파견하였다. 이 때문에 심상훈과 심선택은 의견충돌이 일어나 각자 화를 내고 헤어졌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심선택은 국가의 일에는 뜻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탄한들 어찌하겠는가. 그 뒤 심상훈이나를 찾아와 “북간도의 일은 다시 여쭈지 말라”고 단단히 요청하였다. 그리고 심상훈이 황상께 입대해서 아뢰기를 “신(臣)이 저의 일가 심선택의 말을 들어보니 북쪽 삼도(三島)백성의 재산을 거두어서 북간도를 개척하자고 하기 때문에 ‘민간의 재정이 고갈돼 있고 흉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한데 이러한 때를 당해 저같은 일을 하고자 한다면 일이 성취되지 않을뿐 아니라 도리어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니 서로 관계하고 싶지않다’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니 황송한 마음은 모두 여쭈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알았다”고 하시었다. 이에 심선택이 나에게 찾아와 말하기를 “저 일가 사람 심상훈이 나의 말을 믿지 않고 이와같이 반대하고 있으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라고 했다. 내가 대답하기를 “상감께서 처음부터 즐겨하지 않았기 때문이요,심상훈이 반대한 것이 아니니 차차 일의 형편을 보아가며 도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많은 말을 하지 말라”고 하니 심선택은 물러가고 말았다. 독도는 우리땅이라 했듯간도도 우리땅이었다. 우리 농민들이 개척한 땅이어서 이름을 간도(墾島)라 불렀던 것인데 일제가 ‘사이 간’자로 바꿔 간도(間島)라 명명했고 1909년에 마침내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땅을 중국에 넘겨주고 말았다.
  • 北 최고인민회의 물갈이/金正日 “믿을곳은 역시 軍”

    ◎대의원 12% 軍출신… 남북관계 경색 우려/온건파 延亨默 선출 총리 재기용 가능성 金正日은 믿을 곳은 군(軍)밖에 없다고 작심한 것 같다. 북한이 27일 발표한 제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687명중 군출신이 12%이다. 90년의 9기 대의원선거보다 비중이 배 가까이 높아진 비율이다. 金益鉉 당 민방위부장,全在善 1군단장,玄哲海 총정치국 부국장,朴在景 총정치국부국장,李찬복 판문점대표부 대표를 비롯한 신진 군 수뇌부들이 새로이 대의원 배지를 달며 전면에 등장했다. 金正日이 군부에 의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金正日은 군인 선거구에서 후보자로 나와 100% 찬성으로 당선됐으며 투표당일 군부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金正日은 대의원선거 전에도 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올들어 지난 달 말까지의 공식행사 44건중 75%인 33건이 군과 관련됐을 정도다. 북한의 군은 건설현장과 농사에도 동원되면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정부는 강경파인 북한군부가 득세하는 것은 앞으로 남북관계에 좋은 조짐은 아닌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全今哲 대외경제협력 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대남(對南) 및 대외관련 인물들이 다수 탈락한 것은 군부의 전면 등장과 관련 있다. 남북관계가 유연한 쪽보다는 경색된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92년말 경질됐던 온건파인 延亨默 전 정무원총리가 대의원에 선출된 것은 총리로 재기용될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延 전총리는 자강도 당책임비서를 맡으며 자강도를 북한내 모범지역으로 가꾸어왔다. 영웅 칭호도 받아 중용은 예상돼왔다. 延 전총리와 같은 온건 개방파도 있지만 그보다 군부의 입김이 훨씬 거셀 것으로 보이는 점은 남북관계에 우려스런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자연재해 대비 철저히(사설)

    지구촌 곳곳을 덮치고 있는 자연재해가 심상치 않다. 극심한 가뭄과 홍수에 해일,지진,화산폭발,폭염등이 잇달아 엄청난 피해를 내고 있다. 경제위기라는 먹구름이 짙게 덮혀있는데다 자연재앙까지 겹쳐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8,000여명의 인명을 앗아간 파푸아 뉴기니의 해일에 이어 중국과 방글라데시 등에는 엄청난 홍수로 양쯔강(楊子江)이 범람위기에 놓여있고 수천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텍사스주를 비롯한 미국 남부지방에는 혹심한 가뭄과 함께 섭씨 4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더위가 20여일째 계속돼 1백여명이상이 죽고 농작물 피해도 엄청나다. 러시아 남부지역도 가뭄으로 방대한 농경지가 말라가고 있다고 한다. 급격한 산업화와 화석연료의 과다한 소비에 따른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는 그동안 계속 우려돼 왔었다. 더구나 지난해부터는 엘니뇨현상이 기승을 부렸고 엘니뇨가 사라지면서 이번에는 해수면온도가 낮아지는 라니냐현상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어 앞으로 언제 어떤 자연재해가 덮칠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자연재해는 닥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상이변으로 인한 심상치 않은 조짐들은 이미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더위가 예년보다 일찍 시작되더니 막상 무더위가 한창이어야할 요즘에는 예년보다 낮은 기온이 계속되고 있다. 모기떼가 극성이고 말라리아환자가 늘어나는가하면 여름 한철을 바라보는 해수욕장들은 장사가 안돼 울상이다. 계절을 잃은 과일들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벼농사도 병충해와 냉해로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세계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높아지고 있고 바다수온의 상승으로 석회질이 바다속 바위들을 뒤덮어 생태계를 위협하는 백화현상이 제주도에서 울릉도까지 폭넓게 확산돼 어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경제에 자연재해까지 덮치면 헤어나기 힘든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특히 자연재해로 세계 곡물생산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있는 상황에서 농사까지 흉작이 된다면 문제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엄청난 재해를 입고 허둥될 일이 아니라 지금부터 관심을 가지고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여름 한철 집중돼 내리는 아까운 수자원을 그대로 흘려보내지말고 잘 관리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장기예보능력을 높이는등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해를 막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 팔당호 완충지대 “울고 싶어라”

    ◎환경부 방침에 해당지역 거센 반발/건물 신·증축 규제 강화땐 땅값 폭락/퇴비 못쓰면 영농비 부담 엄청 증가/국고 보조 하수처리시설비도 안돼 팔당호 상수원 양안(兩岸)에서 일정한 거리 이내를 완충지대로 설정해 오염원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고,유역별·권역별로 오염물질 배출허용량을 정한 뒤 이를 초과할 때는 건물 신·증축을 금지하는 내용의 팔당호 수질개선대책이 난항을 겪고 있다.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 6일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 때 이같은 내용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완충지대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郭決鎬 수질보전국장이 팔당호 현지를 몇 차례 답사했으나 환경부 관계자들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광주군 양평군 남양주시 등 팔당호 대책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지방자치단체들은 환경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완충지대로 지정되면 신규 건축이 전면 금지돼 부동산 값이 떨어지기때문이다. 또 숙박·접객업소는 하나에 3,000만∼5,000만원씩 하는 합병정화조를 설치해야 한다.가축을 기르면서 가축분뇨로 퇴비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 복합농가들은 퇴비가 아닌 화학비료를 써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더 든다.양평군에서는 벌써 양평군민포럼 애향동지회 등 60여개 단체가 지난 16일 범군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 환경부의 방침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군(郡) 전체가 상수원 특별대책 1권역으로 지정된 광주군의 경우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특별대책 1권역에서는 일반 건축물은 연면적 800㎡ 이상,음식·숙박업소는 400㎡ 이상 신·증축이 전면 금지돼 있다.광주군은 또 군 전체가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자연보존권역,초월 퇴촌 남종 중부 등 4개 면(面)이 상수원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중부면 남한산성 일대가 공원구역,3곳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지금도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광주군청 관계자는 “오염물질 배출허용량제가 실시되면 개발이니 뭐니 모두 끝”이라고 말했다.
  • 배 뒤집혀 한마을 8명 익사/전남 영암호서

    ◎정원 초과·높은 파도로 사고 전남 해남군 마산면 연구리 선착장앞 해상에서 소형동력선이 뒤집혀 실종됐던 농민 3명이 사고 이틀째인 19일 모두 익사체로 인양됐다.이로써 사망자는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민간인·군·소방서·경찰 등 200여명의 인원과 9척의 배로 구성된 수색팀은 이날 상오 7시30분쯤부터 수색에 나서 사고해역에서 吳준호씨(56·해남군 마산면 학의리)와 朴복덕(46·여·〃)·崔길순씨(68·여·연구리) 등 3명의 익사체를 모두 인양,수색작업을 종료했다. 이들은 지난 18일 상오7시30분쯤 전남 해남군 마산면 당두리 선착장 5백m 앞 영암호에서 0.8t톤급 소형동력선을 타고 간척지에 농사일을 하러 가다 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실종됐으며 閔효림씨(47·마산면 오호리) 등 5명은 사고 당일 숨진채 발견됐다. 당시 사고는 정원이 10명 안팍인 소형어선에 배가 넘는 24명이 승선한데다 때마침 강풍과 파도까지 일어 발생했다.
  • 한창훈씨 두번째 소설집 ‘가던 새 본다’

    ◎사투리와 해학으로 녹여낸 소외된 이웃의 애환과 새삶/80년대 아물지 않는 상처 은색 숲속서 떨쳐버리고… 구수하고 찐한 인정미 물씬/“작가란 기쁨보다 슬픔을 승리보다 패배 보듬는 존재” 머리로 캐는 글이 있고 몸으로 건지는 글발이 있다. 상상력과 체험이 따로 놀지 않아야 하는 법이지만 대개는 한쪽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80년대를 풍미한 노동자문학·민중문학이 주춤하는 틈새를 비집고 나온,세련된 문체나 관념에의 집착도 이런 극단의 흐름이다.와중에 민중의 생활을 다룬 언어가 낯설어 진지도 오래다. 항상심이 아쉬운 현실에서 한창훈의 두번째 소설집 ‘가던 새 본다’(창작과 비평사)는 사적 체험이나 남의 글 팔아먹는 가벼움이 판치는 문단의 주류를 모르쇠 하는 뚝심이 넘친다. 또한 열기가 사그라지는 공백기의 방황을 삭여온 자취도 보여 진지함을 더해 준다. 흔히 한창훈의 작품세계를 남도와 충청도 사투리에 녹여낸 해학의 세계,혹은 된장찌개로 표현되는 구수한 고향내음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이번 소설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은사시나무 겨울’에서 보여주는 섬뜩함이다. 이전의 한창훈의 작품세계와는 약간 동떨어진 새로운 면목이다. ‘은사시나무의 겨울’의 주인공 ‘나’는 자칭 도보고행승(徒步苦行僧)이다. “시퍼렇게 날이 선 80년대의 상황에,그 고통과 폭압에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고 버텨내기 위해”택한 길이 “변증법과 사적유물론을 밀어두고”그저 걷는 것이다. 방황의 여정에 머문 은색 숲 집에서,녹슨 콤파스로 피고름 나는 창(瘡)을 도려내는 장면은 처절하다. 여기서 창은 권력집단의 비인간적 고문으로 인한 아물지 않은 생채기이고,그뒤의 열병은 방황의 사라짐이자 새삶을 향한 통과의례다. 생경한 구호나 경험담에 머무르기 쉬운 소재를 탄탄한 구성 등 문학적 질료로 잘 버무림으로써 또 다른 경지를 개척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날카로운 해학이 빛을 잃은건 아니다. 표제작 ‘가던 새 본다’의 할매와 세들어 사는 ‘나’가 주고 받는 욕지거리를 보라. 걸쭉한 할매의 입심을 통해 이 땅의 농투성이 아낙의 애환을 전라도 방언 특유의 리듬에 실어 넉넉하게 품어내고 있다. 또 돈까지 주며 섬으로 데려와 둥지를 튼 ‘성자’가 도망갈까 조마조마하는 ‘문환’과 섬사람들의 투박하고 시비조의 말로 그리는 구수한 인정이나(‘숭어’),병충해를 입은 생강농사를 둘러싼 농민회의 울분과 아내의 입덧을 재미있게 교차시키는 대목(‘입덧’)은 한창훈에 걸린 이전의 기대에 충분히 답하고 있다. 하지만 해학을 낳은 고통의 과정에 대한 인상이 더 강하고 오래 남는다.재기발랄한 문재(文才)보다는 이웃에 대한 애정을 엮은 이야기가 더 절실한 문단에서,소설가 한창훈의 자리는 더 커보인다. “작가란 제 상처를 만지고 노는 아이들처럼 기쁨보다는 슬픔을,승리보다는 패배를 붙들고 뒹구는 존재일 것이다”. 작가는 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지난 해 첫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를 내놓았다.
  • “농·수·축·임협 통폐합 추진”/金大中 대통령 지시

    ◎쌀값 현실화로 농가소득 증대 金大中 대통령은 29일 농림부의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농·수·축협을 지역단위 조합별로 과감히 통폐합하고 농가 소득 향상을 위해 쌀값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金成勳 농림부장관에게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청와대에서 金장관으로 부터 ‘축협을 1,500개에서 1,200개로 줄이고,농협은 2001년까지 1,200개에서 500개로 통폐합한다’는 국정과제 추진상황을 보고받고 이같이 지시했다고 朴仙淑 청와대 부대변인이 전했다. 박부대변인은 김대통령의 과감한 조직 통폐합 지시에는 지역별 단위조합 뿐아니라 중앙회 차원의 통폐합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사무기능이 확대되고 있는 농·수·축협이 농수축산 농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사업의 방향을 정하고 불필요한 기구를 과감히 축소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동안 정부는 농·수·축산물의 가격보장이 아닌 비경제적인 방법으로 농가를 지원해왔다”면서 “앞으로는 농수축산업도 사업이니만큼 SOC외에는 정당하게 빌려가고 이에 대한 이자를 물리도록 하라”고 말했다. 이와관련,김장관은 “농·수·축협의 투·융자산업에 비리와 부실이 발생하고 있어 비리척결 차원에서 정밀 실태조사를 실시,농민이라고 해도 법대로 처리할 방침”이라고 보고했다. 金대통령은 이와함께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소득이 오르지않으니 젊은이들이 농사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농촌을 희생해서 물가를 낮추기 보다는 농촌을 살리면서 도시인들도 잘사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강조,쌀값을 현실화하도록 지시했다. 이어 金대통령은 李廷武 건설교통부장관으로부터 국정과제 추진상황을 보고받고 그린벨트 대책과 관련,“정치가 개입되지 않게 전문가와 국내외 환경평가기관에 맡겨 과학적 검토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영국의 예를 알아보도록 당부했다. 그는 또 경부고속철도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독립기념관,올림픽공원,대전 엑스포공원 등이 적자를 내고있다”고 지적하고 “경부고속철도 사업도 적자가 나지 않도록 여러 부대사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현재 남북축으로 되어있는 SOC나 도로를 동서축으로도 개발하고,지방에 물류단지 등을 유치,지방발전을 위한 국토개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 농업법인 태반이 지원금 유용

    ◎감사원 “과다 지원금 받아 돈놀이 등 사용” 지적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상당수의 농업법인들이 영농사업은 등한히 한 채,과도한 지원금을 받아 돈놀이 등에 유용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 4월 정부 지원을 받는 2,256개 농업법인 가운데 표본 추출한 439개 법인을 감사한 결과,55.8%인 245곳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28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경북 영천시 모 영농조합법인은 한우고기 전문 판매점 사업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1억4,000만원을 지원받아 7,000만원은 연리 11.5%의 금융 상품에 예탁하고 나머지 7,000만원도 연리 5%의 이자로 제3자에게 빌려줬다는 것이다. 또 경북 구미시의 한 영농조합법인은 축산단지 조성사업 명목으로 보조금과 융자금을 지원받는 과정에서 실제 공사비를 부풀려 정산하는 수법 등으로 5억원의 지원금을 더 받아냈다. 또한 충남 논산시와 부여군의 40개 법인중 23개 법인은 영농 규모가 50㏊를 넘지않아 지원대상이 아닌데도 정부의 기계구입자금 지원금을 받아왔고,25개 법인은 지원금으로 마련한농기계와 창고를 개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아울러 과일생산 유통자금을 지원받은 경북,충남지역 136개 법인은 1,000억원 상당의 시설물을 조합인 개개인이 소유하고 이를 개인영농에 사용해 왔다고 밝혔다. 또 과다하게 지원된 보조금이나 융자금은 회수하라고 통보했다.
  • ‘가정교회’ 방문 뜻깊은 신앙의 만남/朴宗和 교수 평양방문기:下

    ◎해일 피해지역 평남 숙천벌 모 누렇게 떠 묘향산은 빼어난 명승지로 관광코스의 일품이었다. 주체농법에 따라 밭으로 개간한 헐벗은 산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금 매장량이 엄청난데도 주석의 명령으로 채광을 포기한 채 수려한 자연환경으로 보존하고 그곳에 주석이 세계 각지로부터 선사받았다는 20만 5,000점의 선물을 전시한 ‘국제친선관람관’은 북한방문객이나 북한국민의 주체와 자주의 학습터로 활용되고 있다. 5만여점의 보물들을 전시한 ‘김정일도서관’도 신축된 학습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비료제공 적극 배려해야 묘향산을 거쳐 방문단 일행은 평남 숙천군 창동리의 수해 현장을 방문했다. 수해전 숙천벌은 17만톤 가량의 쌀을 생산했으나 해일 이후에는 5만톤의 쌀을 건지기도 어렵다는 농촌지도소 간부의 설명이다. 모내기는 거의 끝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해일 지역은 이미 심은 모가 누렇게 떴는가 하면 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어 안타까웠다.해일을 벗어난 지역의 평야에도 모를 심었으나 비료가 모자란다고 했다. 6월말까지 비료를 뿌리지 않으며 금년 농사도 풍작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이 쌀이나 곡물로 비상원조를 하느니 차라리 비료를 제공하여 스스로의 영농을 통한 기근 해소책을 쓰도록 배려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북한의 언론매체는 강성일변도였다. 노동신문이나 TV는 “남조선괴뢰집단”이라고 이쪽 정부를 칭하고 있었다. 평양이나 농촌을 막론하고 눈에 뜨이는 구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구호와 함께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의 사상적 무장과 일사불란한 당의 통치를 강조한 것이다. ○교통·통신 우리 60년대 수준 북한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 얼마나 극심한가 하는 문제를 필자는 북한이 남한의 기준으로 보아 1950년대에서 1990년대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는 표현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평양의 중심에 90년대가 있는가 하면 변두리에는 50년대의 모습이 보이고 교통이나 통신은 60년대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국민의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평화·화해·협력’의 틀이어떻게 북한의 ‘우리식대로’의 자기 발전에 효율적으로 도움을 주게 할지가 커다란 과제일 것이다. 주일날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의 예배는 가슴 뜨거운 종교적·신앙적 만남이었고,아파트 단지에 있는 ‘가정교회’ 방문도 뜻깊은 신앙의 만남이었다. 열악한 환경속에서 민족번영에 헌신하는 종교의 제사장적 역할이 통일 이후까지도 지속되도록 바랄 뿐이다. 끝으로 민간차원의 인도적 교류협력은 조건없이 베풀어야 한다. 분단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남북이 지불하는 비용은 너무도 크다. 북한의 경우도 힘겨워 보였다. 인도적 협력은 엄청난 분단유지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는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액수의 생산적 투자임을 명심해야한다.
  • “統一 소”/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남자의 눈물’을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본 경험이 있다. 60대의 실향민 작가가 쏟은 눈물이었다. 비공식 통로를 통해 어찌어찌 북쪽 가족 소식을 알아낸 그는 평소의 꼿꼿한 자세를 허물어뜨리고 어린 기자들 앞에서 울었다. 연세 많으신 부모님의 생존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누이마저 굶어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울면서 그는 말했다. “도대체 신문과 방송은 무얼 하느냐?”고. 북한 주민의 기아(飢餓)사태가 매스컴에 등장하기 몇년 전 일이다. 한동안 그는 거의 곡기(穀氣)를 끊다시피 하고 술만 마셨다. 500마리 소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고향을 찾는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서도 그와 같은 절절함이 느껴진다. 16일 북한 땅에 발을 내딛기 직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강원도 통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운의 뜻을 품고 세번째 가출할 때 아버님의 소 판 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이제 그 한마리 소가 천마리의 소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고향산천을 찾아 가는 것이다” 그 무렵 북한으로 간 소들이 자란 목장이 있는 충남 서산 일대에서는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 시각 전국에서 비가 내린 곳은 서산 뿐이어서 기상청 관계자들도 의아스러워했다는 것이다. 鄭회장 일행을 보며 ‘차라리 소가 되어 고향을 찾고 싶다’고 생각한 실향민들의 한(恨)이 뿌린 비일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말 잘하는 사람에 꼽힐 金東吉씨는 실향민으로서의 마음을 자신의 칼럼에 이렇게 쓰고 있다. “소가 되면 나도 북에 갈 수 있다. 소처럼 쓰다 달다 말도 않고 묵묵히 노동만 하면 나도 휴전선을 넘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늙은 몸이 입은 다물고 살 수 있을지 모르나 노동은 하기 어렵다. 오래전에 나는 고향에 가서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소들이 북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그 꿈도 허망한 것임을 깨달았다” 판문점을 넘어 간 소떼는 이런 한을 풀어줄 것이다. 비록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 그 소들이 식용으로 이용된다 하더라도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고대에서 소 사육의 가장 큰 목적은 식용도 농사용도 아니었고 하늘에 제사 지낼때의 희생을 위한 것이었다. 북한 언론이 소의 방북(訪北)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서 통일을 위한 소들의 희생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500마리 가운데 150마리의 소는 새끼를 배고 있다니 평화의 씨앗은 계속 자랄 수도 있을 듯 싶다.
  • 붉은 곰팡이 감염 보리피해 최악/정부 소극적 대응

    ◎해마다 되풀이해도 체계적 연구 없어/인체 유해여부 확인못해 “술원료 사용” 올해 보리 농사가 엘니뇨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유독성붉은 곰팡이균까지 기승을 부려 사상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더욱이 당국은 붉은 곰팡이균에서 합성된 유독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히 밝혀내지 못한 채 식량으로 부적당하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렸다. 농림부와 농업과학기술원은 17일 올 봄 엘니뇨의 영향으로 보리 생산량이 지역별로 예년의 40∼70%선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그 만큼 보리농가의 패해도 크다. 게다가 잘 자란 보리도 붉은 곰팡이가 만들어낸 유독성 물질에 오염돼 식용으로 쓸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농업과학기술원은 최근 전국의 밭 214곳에서 보리 이삭을 표본 채취해 성분을 분석했다. 하지만 독성전문가가 없어 붉은 곰팡이에서 나오는 독소인 니바레놀 등이 생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하게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니바레놀은 생체에서 식중독 유산 발육부진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 기술원의 관계자는 “독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없어 식량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농림부는 술을 담그는 주정용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기술원의 보고에 따라 주정용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술원의 관계자는 “예산과 기술,장비가 부족해 붉은 곰팡이 균에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 규모와 대책/재배면적의 절반 4만㏊ 감염/‘잠정등급’ 신설 수매농가 피해 최소화/정밀검사후 식용불능땐 사료전용 검토 올해 보리 농사가 지난 63년 이래 35년만의 최악을 기록할 전망이다.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붉은 곰팡이가 온 들녘에 퍼져 제대로 발육하지 못한데다다 자란 것도 곰팡이의 독성에 오염된 탓이다. 붉은 곰팡이는 해마다 농림부를 골탕먹여온 ‘고질병’이다.특히 올해는 이삭이 팬 뒤 20∼25도의 높은 기온이 계속된데다 비까지 계속돼 순식간에 번졌다. 전체 재배면적의 47%인 3만9,000여㏊에서 발생했고피해정도도 심각하다.전국의 재배면적의 60%를 차지하는 전남은 70%가 피해를 입었다.전북은 97%로 가장 심한 피해를 입었고 경남도 20% 가량 수확이 줄었다. 온전한 보리의 품질도 크게 떨어졌다.보통 95% 이상 1등급 판정을 받았으나 올해 ‘등외 등급’이 대부분이다. 농림부는 올해 처음으로 ‘잠정 등급’을 새로 만들었다.되도록 정상적인 보리에 가깝게 판정해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하지만 농림부의 진짜 고민은 수매 보리의 처리 문제다.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자료가 사실상 전무하고 미국이나 일본 등의 식량 허용 기준치도 사정이 달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탓이다. 농림부는 일단 모든 보리를 주정용으로 돌릴 방침이다.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청과 함께 정밀검사를 실시,식용이 영 불가능하면 사료로라도 쓰는 방안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지난 63년에도 붉은 곰팡이가 확산됐으나 당시 식량사정 때문에 일반에 유통,식중독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고 소개하고 “요즘은 도정기술이 발달해 식용은 아니라도사료로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흉작에도 불구하고 식량 수급에는 별 지장이 없을 전망이다.연 평균 보리생산량 25만8,000t은 전체 곡물 3,000만t에 비하면 1%도 채 안되고 비축량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 薛光彦 KDI연구위원 농업개혁 보고서 요지

    ◎추곡수매가 국회동의 폐지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薛光彦 연구위원은 9일 ‘농업개혁’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추곡수매가격에 대한 국회동의제도 폐지 등을 통해 쌀시장 개방에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다음은 간추린 내용이다. 쌀은 우리나라 농업을 대표하는 작물이다.96년 현재 경지면적의 53.2%가벼 재배면적이며 농가의 79%가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다.농업수입의 40.8%가쌀에서 나오고 있다.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당시 우리나라는 쌀만 관세화수입을 하지 않는 대신 2004년까지 국내 소비량의 4%만 수입하는 최소시장접근방식(MMA)에 합의했다. 그러나 쌀시장의 추가협상에 대비해서 MMA방식을 존속할 지,관세화에 의해 수입할 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쌀시장의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국내 쌀시장에서 시장기능을 저해하는 요소를 고쳐야한다.쌀가격이 정치권에 의해 결정되는 이상현상이 계속되지 않도록 추곡수매가격에 대한 국회동의제도가 폐지돼야 한다. 현행 수매방식의 대안으로서는 융자수매방식과 공공비축 제도를 도입하며 정부미 공매 시에 각종 규제를 철폐,쌀가격이 시장에서 형성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생산과 연계하지 않고서 농민의 소득을 보조할 수 있는 정책수단인 직접지불제도의 도입여부도 검토돼야 한다.환경보호형 농업에 대한 직접보조,경영이양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직불제도의 도입을 우선 검토해야할 것이다.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해서는 사후적 통제보다는 정보의 불완전성을 최소화시킬수 있는 정보서비스의 강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 농촌공간을 다양하게 활용,소득을 창출하는 게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농지소유 제한보다는 농지의 효율적 이용이 중요하다.정부의 농업지원 정책은는 농업인프라 구축과 경쟁기반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농업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농업관련 사업의 국고 차등보조제를 확대하고 지방자치단체에 재량권을 확대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농업관련 지방재정의 확충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 귀농주택 양도소득세 면제 문답풀이

    ◎서울·인천·경기지역 대상서 제외/도시주택은 이사뒤 팔아도 혜택 국세청이 밝힌 귀농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면제내용을 문답으로 간추린다. ­귀농 주택이란 ▲도시에 소유한 주택 외에 연고지인 농어촌에 갖고 있는 주택을 말한다.일반 주택을 갖기 이전에 연고지인 농어촌에 소유하던 주택도 포함된다. ­연고지란 ▲귀농자 부부의 원적·본적지인 읍·면을 말한다.또한 직계 존비속의 원적·본적지이거나 그들이 5년 이상 거주하는 곳이다.여기서 읍·면은 서울,인천,경기도를 제외한 지역이며 읍지역은 도시계획구역이 아닌 곳이다. ­귀농주택과 농어업 종사 조건은 ▲농어촌 주택은 대지면적이 200평을 넘지 않고 호화주택이 아니어야 한다.농지는 300평 이상을 소유하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어업은 직접 종사하거나 이에 고용돼 일해야 한다. ­귀농시 가족이 함께 가야 하나 ▲원칙적으로 세대 전원이 이사해야 한다.그러나 취학,요양,근무상 부득이한 가족은 예외이다. ­귀농시 일반주택을 2년 내에 팔아야 하나 ▲농어촌 주택으로 이사한뒤 농사를 지으면 도시 주택은 언제 팔더라도 양도소득세를 물지 않는다.그러나 귀농 후 다른 주택을 새로이 취득하면 과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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