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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하랑 선영이의 베낭메고 60개국]②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앙코르의 사원들은 7∼11세기 사이 크메르 문명의 전성기에 만들어졌으며,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당시 크메르 제국의 황제는 앙코르에 앉아 남으로는 베트남,북으로는 중국의 윈난성,서쪽으로는 벵골만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통치했다고 한다.앙코르 왕조가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와트는 정글에 함께 묻혀버렸고,수백년이 지난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캄보디아 씨엠립 킬링필드의 나라,선조들이 남겨준 유적 앙코르와트로 먹고 사는 나라,무장강도와 거지들이 여행자들을 강탈하고 구걸하는 나라,곳곳에 게릴라가 출몰하고 여기저기 지뢰가 묻혀 있는 나라…. 캄보디아에 오기 전 내가 갖고 있던 인상들이었다.그런 무서운 나라에 가는 게 겁나기도 했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유적지 앙코르와트를 봐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그리고 앙코르와트만 보고 얼른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태국 아란지방을 통해 국경을 넘었다.비행기로 오면 편했겠지만 배낭여행자들인 우리에게 비행기값은 한달 이상의 생활비와 맞먹었기 때문에 두 주먹 불끈 쥐고,심호흡을 하고 그 악명높은 국경넘기를 감행했다. 방콕에서 캄보디아 씨엠립까지 꼬박 하루 버스를 타고 ‘죽음의 길’ 비포장 국경지역을 달려 미지의 땅,무시무시한 나라 캄보디아에 밤늦게 도착했다.캄보디아는 전력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밤이 되면 온통 암흑세계가 된다.불안감이 가중된 우리는 빨리 숙소를 잡고 다음날부터 앙코르와트를 돌기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연방 두리번거렸다.그런데….이상하게 나쁜 사람은 찾을 수가 없고 가는 곳마다 호의적이고 순한 사람들뿐이었다.물론 여행하기 위험한 지역도 있겠지만 최소한 이곳 씨엠립은 그리 위험한 것 같지도 않고 사람들도 너무나 순박하고 착해 보였다. 하루만에 캄보디아에 대한 나의 모든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졌고,우리는 정작 앙코르와트 유적지보다도 사람들 사는 모습과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미소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캄보디아는 국민소득이 연 300달러에도 못미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지만 고단해보이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별로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자꾸만 맘에 걸리는 것은 국경지대나 유적지 입구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이다.선조들이 남겨준 찬란한 유적지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얼 먹고 살까 싶을 정도로 캄보디아는 오직 이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에게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전력도 수입해서 쓸 만큼 별다른 기간산업이 없다. ‘원 달러’를 외치며 계속 물건 하나만 사달라고 따라다니며 애원하는 대여섯살 정도밖에 안 된 어린이들.가난을 안고 태어나 가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 어린이들에게 이들의 신은 어떤 은총을 내려줄까….인간이 만든 최고의 아름다운 사원이라 칭송받는 앙코르 사원을 돌아보며 이 거대한 신전을 짓기 위해 무거운 돌덩이를 이고 나르던 고단한 백성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인간에게 종교란 과연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 인터뷰 - 고교1년생 싼 보파양 씨엠립은 앙코르 유적 덕분에 캄보디아의 다른 지역보다는 생활수준이 높은 편.그래도 고교 진학률은 중학교 졸업생의 30∼40% 정도에 불과하다.이때문에 이곳의 고등학생들은 혜택받은 소수의 인텔리층에 속한다.씨엠립 외곽에 있는 왓 스배이(Wat Svay)고등학교 1학년생인 싼 보파(Ssan Bopha)도 그런 학생 중 한명이다. 학교 생활에 대해. -유치원을 포함해서 보통 7시에 수업을 시작해요.유치원은 2∼3시간,초·중·고등학교는 6시간 정도예요.교실이 많지 않아서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공부해요. 방과 후나 방학에는 주로 무얼 하는지. -형편이 좋아서 대학진학을 할 수있는 애들은 공부를 더 하는 편이고,그렇지 않은 애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집에서 농사일을 도와요.방학도 농번기인 4월에 보름,6월에 한달 정도여서 가족들을 도와 들판에서 일을 하는 애들이 많아요. 이곳 고등학생들도 과외를 하나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따로 과외반을 모집해서 등록금 외에 별도의 과외비를 받고 영어나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을 가르쳐요.그런데 시험에 나오는 내용들은 정규 수업시간보다 과외시간에 주로 가르쳐주기 때문에 형편이 되는 애들은 과외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관광가이드예요.돈도 많이 벌 수 있고,또 외국인을 많이 만날 수 있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이죠.그 다음으론 택시 운전기사인데,역시 돈을 많이 벌어서예요.저도 대학에 가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관광가이드가 되고 싶어요. 학교시설이 훌륭해 보이진 않았지만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은 모두 밝고 건강해 보인다.캄보디아의 미래가 자신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을까.˝
  • 여성에게 일이란/30·40대 여성의 성공비결

    “나는 일이 재미있고,일을 좋아한다.”육아의 어려움을 다리에 매단 채 일해야 했지만,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30∼40대 여성들.그들에게 “왜 일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이렇게 입을 모았다.사실,직장인에게 “왜 일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결례’임에 분명하다.남성에게는 좀체 이렇게 묻는 사람은 없으니까.그럼에도 여성들은 끊임없이 질문에 부딪힌다.“그렇게 힘들게 왜 일하느냐?”“남편이 돈을 잘 버는데…”.이런 질문이 외부의 적이라면 ‘내부의 적’도 만만찮다.아이들이 아플 때나 가정에 급한 일이라도 있으면,“내가 왜 일을 하나?”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일을 비하하게 된다.생계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에,여성에게 밀려드는 회의는 더 깊은 법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사연들 때문에 30∼40대의 직장 여성을 말할 때,‘(직장에서)살아남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성공한 서바이버(survivor)들이 말하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7명의 여성에게 물었다. ●나이와 함께 커져가는 일의 ‘재미’ 한국휴렛팩커드 전산용품사업부 최인녕(38) 이사는 이미 세일즈 파트에선 이름난 인물이다.세계 HP 영업사원 100인의 모임인 ‘프레지던트 클럽’에 초대받는 경력만으로도 ‘최고’라는 접두어는 이미 그의 것이다. ‘안면 장사’라는 영업 영역을 ‘거래처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컨설팅’으로 바꿔온 것이 남성적인 영업파트에서 첫 여성부서장,첫 이사로서 선두를 달려오게 했다.그의 비결은 “당당하게 일한다.”는 것.“전 ‘예스 맨’이 싫어요.눈치를 보고 따라가는 것은 제 생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윗사람에게도 언제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제 뜻을 밝히고,그 말에 책임질 수 있도록 일했습니다.” 그는 일을 ‘재미’라는 말로 풀었다.“20대는 일이 너무 좋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닥치는대로 일했죠.30대엔 책임이 맡겨지면서 전체를 아울러야 했는데,그것이 한결 더 재미있어요.저는 재미없게 느껴지는 일이 있으면 더 열중하라고 말합니다.몰입하면 일에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요즘 그는 직원들의 계발을 큰 화두로 삼고 있다면서 “나와함께 일하면서 많이 배우도록,일할 때 도움이 되는 좋은 습관을 형성해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일하는 기쁨을 더하고 있어요.”라고 웃음을 보였다. 서울시 여성·복지담당 황인자(49) 제1정책보좌관은 지방임명직 여성공무원으로선 유일한 1급 공무원이다.지난해까지 여성부 남녀차별개선국장으로 일하던 국가공무원에서 지방공무원으로 신분을 바꿔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 그는 “40대에 접어드니 일의 참맛,애착을 더욱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30대까지 육아는 물론 시어머니의 와병으로 인해 어려움을 적잖이 겪었다는 그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지난 10년을 회상했다. 물론 여성의 직장생활이 그렇듯 그에게도 어려움은 적잖았다.근무하던 정무2장관실이 없어지는 바람에 직위가 강등되는 등 슬럼프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가장 일을 많이 한 때가 40대였어요.물론 50대에는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같아요.남편과 다 자란 아이들이 지지해주고,오히려 일에만 전념하도록 체력과 건강을 유지하라고 하니까요.이젠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것같아 의욕이 더욱 솟구칩니다.” ●육아는 영원한 숙제 “일이 있어 인생이 즐겁다.”고 말하는 한태숙(47)인터컨티넨탈호텔 홍보부장은 2000년 26개국 정상들이 참여한 ASEM(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의 공식호텔 이미지를 드높이기 위해 26개국의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리틀 아셈’을 마련해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의 주목을 이끌어내기도 했던 여성이다.2002년 부장으로 승진한 그는 기존의 홍보실을 커뮤니케이션부로 확대개편해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출산휴가 2개월 동안 내가 뒤처지는 느낌이었어요.그래서 한 순간도 내게서 일을 떼놓고 생각한 적이 없죠.”라고 말하는 한 부장은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야말로 성취감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에 관한한 두려움이 없다는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다.초등학교 6학년인 딸의 뒷바라지만은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아무리 일터에서는 능력있어도 직장엄마는 전업주부에 비해 정보가 부족해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대로 줄 수 없어요.그래서 저는 아이클래스의 엄마들과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고 도움을 받고 있어요.”그는 일과 가정을 조화시키는 것이 관건이라며 “아이와 내가 함께 성공하는 것이 목표다.”고 덧붙였다. 다국적 광고대행사 레오버넷의 오신원(36)기획부장은 5살과 4개월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출산휴가를 마치고 나온 지 한 달,그는 요즘 생각이 많다. “정말 아이있는 여성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남편과 주위의 도움은 절대적요소예요.게다가 안심하고 아이맡길 육아시설은 없고,보육시설조차 진정 직장여성을 위한 곳은 아닌 것같아요.둘째를 낳고는 ‘차라리 탁아사업을 하는 게 더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것이 아닐까.’란 의문에도 빠질 정도였어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단 한번도 직장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는 오 부장의 고민은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한 여성이라면 공통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부장은 말했다.“늘 깨어있어야 하고,앞서가는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광고를 사랑합니다.흔히 3D업종이라고 하지만,나는 일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며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딸 둘을 KAIST에 입학시켜 ‘자식농사’에도 성공한 서울경찰청 이금형(45) 여성청소년과장은 가정과 사회적으로 모두 성공한 여성으로 꼽힌다.“모두 시어머니가 책임지고 아이들을 키워주셨으니 가능했던 일이었어요.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한 때 함께 있을 수 없는 엄마인만큼 아이들에게 매정할 만큼 자립심을 키우도록 했지요.” 지난 해 그는 서울의 집을 떠나 충북 진천경찰서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여성 서장으로 강력한 치안활동을 펼쳤는가 하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몰리는 진천시외버스터미널에 ‘외국인 근로자 상담소’를 설치 운영하는 등 사회적 약자인 여성·아동·청소년·노인·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보호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해 세계 인권선언 기념일에 국가인권위원장상을 받기도했다. 이 과장은 4년전,폭력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연쇄살인범 등 흉악범이 된 사건 사례를 발표,가정폭력은 학습돼 대를 이어 발생하는 심각한 사회적 범죄임을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이런 활동이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같다며 “나이가 들수록 남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지면서 업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같다.”고 말했다.또 “몇 해전부터 국기에 대한 거수 경례를 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낀다.내가 해야 할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고 자신의 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밝혔다. “성폭력·아동학대·호주제폐지 등 여성계에서 그의 도움없이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정열적인 이명숙(42)변호사.경력 15년째인 그는 “이제부터 더 잘할 수 있을 것같다.”고 말했다. “사실 일의 능력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20대에는 ‘너무 어려서’‘너무 젊어서’라는 말을 의뢰인들에게 들어야만했다.그게 스트레스였다.그러나 이젠 의뢰인들이 더 신뢰해주는 나이가 된만큼 갈등을 풀어가는 지혜나 생각이 깊어졌다.때로는 같이 붙잡고 울 수도 있을 정도로 성숙해진 것이 법리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가 이혼여성들이 양육비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사문화된 이행명령과 감치신청 등을 찾아내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된 것도 역시 그스스로 아이를 키우면서 여성에 대한 ‘공감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었단다. ●아직도 계속되는 ‘최초’신화 이명주(39)삼양사 홍보부장은 입사 14년 만인 지난 해 부장이 됐다.그의 승진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 80년 삼양사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부장 탄생’이었다.그에겐 최초의 정식여사원,최초의 대리·과장이라는 기록경신의 연장이었다. “의식주가 우리 생활의 기본이듯이 ‘일’은 이제 제 생활의 필수항목입니다.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일 없으면 살 수 없을 것같습니다.”고 말하는 그는 “실무 중심으로 일을 진행했던 20대와 달리 여러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사고하여 업무 진행을 하는 지금의 역할에 큰 만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자녀를 키우는 일은 영원한 숙제다.그러나 30대 후반이후, 육아의 짐을 살짝 내려놓은 여성들은 “진정한 경쟁을 할 준비가 됐다.육아 때문에마음과 달리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다면 이젠 모든 에너지를 일에 쏟고 싶다.”고 말했다. 글 허남주기자 hhj@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 낮은 소리/최저임금보호 못받는 아파트경비원

    지난 설 연휴 때 부산 영도구에서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과 말다툼 끝에 흉기를 휘둘러 입주민을 숨지게 하고 자신은 아파트 12층에서 몸을 던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아파트 경비원들은 주민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이다.더욱이 이들은 법적으로 최저임금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최저임금을 적용시키면 임금이 인상돼 결국 주민들이 부담을 느끼게 되고,대량 해고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전시 서구 삼천동 G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양모(58)씨는 경력 6년째이지만 월급은 60만원이 채 안된다.그나마 짝수 달에 받는 25만원의 보너스가 그에게는 큰 돈이다. 양씨의 업무는 오전 6시부터 시작된다.24시간 맞교대하는 격일근무제다.충남 금산에서 농사를 짓다 경비원으로 일하게 된 그는 지금도 금산에서 출퇴근을 한다.교통비만도 한달에 6만원이나 든다.식사는 도시락을 싸올 때도 있지만 대개 경비실에서 혼자 해먹는다.더욱이 양씨가 생활하는 경비실은 냉난방도 안된다.양씨의 생활공간은 첨단시설속의 ‘오지’인 셈이다. ●냉난방도 안되는 경비실서 근무 양씨의 가장 큰 바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임금을 받는 것.“입주자들의 무시하는 태도는 참을 수 있지만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L아파트는 15개동에 경비원이 38명이다.이들은 초봉으로 69만 3000원을 받는다.매년 얼마씩 임금이 인상돼 왔지만 최근 4년 동안 임금이 동결됐다.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기가 안 좋다며 임금을 동결시켜 버린 것이다.4대 보험과 갑근세·주민세 등으로 7만원 정도 떼고 나면 65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이 아파트 관리소장 최모(61)씨는 “아파트 경비원 대부분이 회사에서 명퇴했거나,거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임금을 조금만 줘도 일을 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연 350%의 보너스를 받기 때문이다.전체 아파트 경비원 중에서 30% 정도는 용역회사를 통해서 취직하는데 이들은 용역비로 월 15만원 정도를 떼준다. 최저임금 보호도 못받지만 인간 이하의 푸대접은 더욱 견디기 어렵다.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5년째 경비원 일을 하고 있는 배모(60)씨는 “주차단속시 ‘경비원 주제에 이래라 저래라 한다.’며 면박을 받으면 너무 서글프다.”고 하소연했다. ●부당해고에 말못하는 고용불안 고용 불안도 문제다.용역회사를 통해 취직한 사람들은 1년 단위로 계약을 한다.하지만 주민들이 근무소홀이나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바꿔 달라고 민원을 제기하면 그만둬야 하는 불안전한 고용형태다.한 용역업체 관계자는 “입주민들의 성향에 따라 이직률도 비례한다.”고 말했다. 근무형태도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24시간 맞교대여서 생활리듬이 깨져 몸이 망가지기 십상이다.잡일도 많다.청소뿐만 아니라 조경작업도 해야 한다.특히 재활용품 분리수거제 시행 이후에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요즘 같은 겨울에는 제설작업까지 해야 한다. ●연월차휴가·초과근로수당 없어 이뿐만이 아니다.아파트 경비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및 휴일 등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따라서 하루 24시간 일해도 초과근로수당이 없고 연·월차휴가 등을 받을 수도 없다. 경비원들이 최저임금법상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노동강도가 일반 근로자와 비교해서 낮다는 이유에서다.그래서 최저임금 보호도 받지 못하고 근로시간 및 휴일 규정도 적용받지 못한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한국노총 산하 전국아파트노동조합연맹에 가입해 있다.하지만 이름만 전국연맹이지 사실상 서울과 경기 일원에 한정돼 있다.‘몇푼’의 노조비가 부담스러워 노조가입을 꺼리기 때문이다.조합원 수는 약 2300명이지만 그나마 경비원은 700명에 불과하다.이처럼 조직력이 부족해 ‘큰 목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12월 초에 아파트 경비원을 최저임금법에 포함시켜 달라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 청원’을 국회에 냈다.아파트노조연맹 김혜영 총무차장은 “아파트 경비원은 주민들에게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관리직으로 볼 수 있다.”면서 “따라서 감시·단속적 근로자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지난해 12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입법예고했으나 아파트 경비원은 종전처럼 최저임금 보호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노동부 임무송 임금정책과장은 “최저임금에서 보호할 경우 역으로 고용불안이 더 커질 악영향이 있어 장기 과제로 검토키로 했다.”고 말했다.한국노동연구원 정진호 연구위원은 “임금이 올라가면 무인경비시스템 도입 등으로 대량 해고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이란? 정부가 고시하는 것으로 임금의 최저 가이드 라인이다.사용자가 임금을 그 이하로 지급하면 처벌받는다.지난해 9월부터 1년 동안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급 2510원,일급 2만 80원,월환산액 56만 7260원이다. 김용수 기자 dragon@ ■최종태 최저임금위원장 “노동계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최저임금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하지만 고용형태가 특수해서 법 개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최종태 위원장(서울대 경영학과교수)은 아파트 경비원들이 최저임금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유부터 설명했다.최저임금법상 2000년 11월부터 1인이상 근로사업장 모두 최저임금 적용을 받도록 돼 있지만 예외규정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근무시간이나 근로조건 등이 일정치 않아 현재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분류돼 있다.따라서 사용자가 노동부에 적용제외 인가신청을 내면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다. 최 위원장은 “아파트 경비원들의 처우개선 문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특별한 대책수립이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경비원들의 처우개선이 이뤄지려면 사용자인 주민자치회의나 용역업체의 부담이 늘어나야 되는데 이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로서도 아파트 경비원을 최저임금 대상자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갖고 법안개정을 검토중이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무엇보다 인력공급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데다 주민자치회의도 비용부담이 늘어나면 무인경비시스템 등 다른 대안을 찾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 위원장은 “현재 아파트 경비원들의 저임금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고용주체인 입주민들이나 인력공급업체인 용역회사의 의식 전환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경비원들 스스로 노조를 결성해 자기주장을 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목소리가 커지면 주민들은 무인경비시스템 등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때문에 위원회로서도 중재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따라서 아파트 경비원들의 처우문제는 “고용관계가 특수한 만큼 고용주인 주민들이 이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이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진상기자 jsr@ ■황재화 아파트노조聯 중앙위원 “경비원이 길을 가면 ‘사람 지나간다.’고 하지 않고 ‘경비 지나간다.’고 말할 정도 아닙니까? 우리 말을 들어주는 곳도 없고 답답할 뿐이죠.” 한국노총 소속 전국아파트노동조합연맹의 중앙위원이자 서울 구로구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황재화(60)씨는 “괄시도 괄시지만 사회 어느 곳에서도 경비원들의 애로사항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가장 서글프다.”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4년차인 황씨가 받는 임금은 월 95만원으로 처우가 그나마 나은 편이다.하지만 황씨는 “국민연금이다 의료비다해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정작 손에 쥐는 돈은 80만원에 불과해 세 식구 건사하기가 힘에 부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또 “아파트 경비원들은 최저임금 보호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노조가 있다 하더라도 정당한 요구조차 하기 힘들다.”면서 “오히려 괘씸죄에 걸려 해고당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주민재산을 손상시키거나 근무지를 이탈하는 등의 해고사유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닌 괘씸죄에 걸려 사소한 일로 해고당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면서 “사업주측에서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꼬투리를 잡아 부당해고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특히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도 임금이지만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끔은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법상 아파트 관리업체가 바뀔 경우 근로자는 승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고 만다.황씨는 “계약 기간 내에도 사업주가바뀌면 어디 호소할 곳도 없이 내쫓기는 신세가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혜승기자 1fineday@
  • [씨줄날줄] 쥐불놀이

    농촌의 피폐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봉건주의시대엔 지주들이,일제시대엔 식민지 자본주의에 편승한 친일 지배세력이 각각 영세농들을 착취했다면,오늘날엔 물밀듯 밀려드는 수입자유화의 물결이 농촌의 활기를 앗아가고 있다.이 와중에 우리 농촌의 공동체 문화유산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반개울 마을 앞에서는 도깨비불 같은 불이 솟아나고 있다.새빨간 불이 어둠 속에서 총총히 번지고 있다.정초에 벌어지는 쥐불놀이다.돌쇠는 쥐불 싸움에 신나게 뛰어들었으나,쥐불 싸움은 시시하게 끝나고 만다.먹고사는 일이 힘들어 그것도 해마다 시들해진 것이다.” 민촌 이기영은 1933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서화(鼠火)’에서 친일 자본가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가난의 수렁에 빠져드는 농촌의 피폐화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쥐불놀이의 쇠퇴를 들었다. 쥐불은 원래 정월 첫째 쥐날(上子日)에 쥐를 잡던 일종의 농사일이었다.하지만 언젠가부터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해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다.쥐불은 논두렁이나 밭두렁의 마른 풀을 태워 쥐나 해충을 잡는 ‘쥐불놓이’와 이웃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불싸움을 하는 ‘쥐불싸움’으로 구분된다.쥐불놀이에는 무병 장수하고 액을 멀리 한다는 믿음과 함께 잡초를 태워 풍작을 기원하고,그 재는 거름으로 쓴다는 뜻이 담겨 있다.쥐불은 또 겨우내 언 땅을 녹여,씨앗이 대지를 뚫고 나오게 하는 일종의 농경기술이었다.쥐불싸움은 마을 축제로서 주민들은 싸움이 끝나면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밤새워 놀곤 했다. 서화에서 주인공 돌쇠는 쥐불놀이가 시들해지자 ‘할 것이라곤 노름밖에 없다.’며 반쯤 바보인 친구 응삼이의 소 판 돈을 가로채는 등 노름판에 빠져든다.이기영은 쥐불놀이의 쇠퇴에서 농촌공동체의 파괴,개인주의·물신주의의 횡행 조짐을 읽어낸 것이다. 5일 대보름을 하루 앞두고 빈 깡통에 장작개비 등을 채우고 불을 붙여 빙빙 돌리는 사진이 신문지상을 장식한다.장소를 살펴보니 놀이공원이나 유원지 등이다.농경활동이란 당초의 취지는 사라진 채 놀이만이 남은 박제된 쥐불놀이다.하기야 수입자유화니 자유무역협정(FTA)이니 해서 가뜩이나 피폐해진 농촌에 쥐불놀이할 신명이 남아 있겠는가.그뿐인가.어린아이 울음소리 들어본 지 오래라니 어른들 눈치보며 쥐불놀이할 아이들도 없을 테고.보름달은 이제 저홀로 뜨고 지겠지. 김인철 논설위원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7·끝)농촌의 미래를 위한 제언

    인간생활의 필수인 의·식·주(衣食住)의 한 축,그래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 여겨지던 우리의 농업이 위기를 맞은 지는 이미 오래다.오늘의 농촌은 인력의 노령화와 경쟁력 상실,갚을 능력을 한참 넘어선 부채,시장개방 등 안팎으로 시달린 나머지 실낱같은 희망조차 포기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에 맞닥뜨려 있다.그동안 온갖 처방들이 무위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농업인과 농정입안가,전문가들로부터 고질적인 부채 해소와 고소득 창출,정책자금의 효과적 지원 방안을 들어보고 농촌의 살 길을 찾아 본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정분석실장 김정호 농림부 농업정책과장 나승렬 한우리영농조합 법인대표 이은욱 ●빚 안지고 살기, 고소득 창출방안은 나승렬(농림부 농업정책과장) 의욕적인 농가,발전 가능성이 높은 농가,젊은 농업인,자본 축적이 안된 농가가 빚을 진다.고령 농가,영세 농가는 빚이 거의 없다.빚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농촌사업을 하면서 빚은 언제든 질 수 있다.다만,건전성이 담보돼야 한다.갚을 능력이있는 범위에서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게 농정의 방향이다. 김정호(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정분석실장) 우선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현재 우리 농촌은 생산성에 비해 소비성향이 높은 편이다.농가부채는 생산을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소비성 부채다.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원칙은 영농규모를 늘리는 일이다.농산물 시장개방 시대에서 국내 농산물 가격은 정체 또는 하락이 있을 뿐이다. 이은욱(47·전남 해남군 현산면 한우리영농조합법인 대표) 농민도 이제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통한 틈새농업으로 가야 한다.농산물의 부가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이냐도 문제다.즉 판로 확보가 중요하다.농가소득을 보장할 수 있도록 우리 농산물의 소비촉진과 대도시와의 농산물 직거래를 대폭 지원해야 한다. ●부채 해소 방안은 나승렬 정부가 직접 농가부채를 경감하는 방안은 그리 올바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정부는 농가가 스스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규모화 사업을 지원하면 된다.과거의 빚 때문에 경영에 방해된다면 이를 해소해주려고 한다.이를 위해 올해 2000억원의 경영회생자금을 마련했다.부채상환 능력이 부족한 농가에는 국민복지 차원에서 종합복지자금을 투입해 돕는 방안이 있다. 김현국(69·전국농민회총연맹 장흥농민회 회장) 경영개선자금 금리(6.5%)를 저리로 하고 이를 15년 이상 장기상환으로 돌려야 한다.탕감해 달라는 말이 아니다.농협에서 일반대출 금리를 대폭 내려야 한다.자체적으로 지역농협에서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 정도로 농협마다 돈이 남아 돌고 있지 않나. 이주영(40·전농 경북도연맹 사무처장) 정부가 농가의 채무 이자를 보전해 주거나 금리를 1%대로 대폭 낮춰 줘야 한다.특히 부채를 갚는데 도움이 되는 직접지불제를 농업 전 분야로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 김정호 농가부채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나.해소시킬 필요도 없다.기업도 사업을 하려면 남의 돈을 빌려서 한다.농촌도 마찬가지다.부가가치가 높은 고단위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부채를 얻어 집중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다만,현재의 부채가 고정화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사업을 통해 자신의 능력범위에서 돈을 빌리고 정부도 그 한도에서 지원해야 한다. ●효과적인 정책자금 지원과 농촌회생 방안은 김현국 영농자금 등 정책자금은 연리가 4%로 비싸고 1년만에 상환해야 한다.연체율이 15%다.금액을 늘려 혜택을 골고루 주고 금리도 3% 이하로 내려야 한다.마을별 경지면적별로 할당돼 액수가 너무 적다.40가구에 3200여만원이 나와 가구당 100만원이 안된다.그래서 다른 일반대출을 쓴다.젊은이들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문화·환경 등에 정부 투자를 늘리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은욱 정부지원 가운데 잘못된 게 하나 있다.꼭 무슨 사업을 하라고 권장할 게 아니다.군이나 면 등 그 지역에서 농민들이 올리는 사업계획서를 중시해야 한다.공산품 분야에서 남는 이익을 돌려 농업 관련 세금을 줄이는데 써야 한다.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농민들 스스로 자신이 만든 제품을 차별화하고 직접 판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나승렬 농촌도 시장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우선 농업경영인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신지식인 농업인 등 모범 농업인 수상자들을 보면 자주와 경영혁신 노력이 남다르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장개방 시대에 농가 재정지원을 위해 올해 119조원을 만들었다.법과 제도 개선도 정부가 할 일이다.농민단체도 경제성 있는 사업을 찾아내고 서로 정보교환을 해야 한다. 김정호 정책자금이 적은 게 아니다.오히려 많아서 문제다.정책자금의 과다가 농가부채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정책자금은 농가의 규모,사업성,농업인의 상환능력 등을 모두 고려해서 지원해야 한다. 자금운영은 농협이나 일반 금융기관에 맡겨야 한다.정부가 금융기관에 농업인에 대한 우대금리를 권장하는 방안도 있다.그러나 정부는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농촌 스스로 살 길을 찾는 게 경쟁력을 갖고 세계 농업시장에 맞서는 길이다. 특별취재팀 ■김충실 경북대 교수 농업경제학 농업은 지속 가능한 국민경제의 기초산업이며 안전장치다.이 명제는 유럽연합(EU),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국정운영 경험에서 진실로 입증됐다. EU의 실체는 사실상 출발 당시부터 공동농업정책(CAP)을 주관하는 것이었으며,그래서 수십년간 EU 예산의 90%가량을 이 부문에 투입했다.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개방이 구체화되기 전인 2002년에 무려 76%의 농업보조를 추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막강한 국제경쟁력을 확보해놨다. 그런데 우리 정부 국정운영의 현실은 어떤가? 시장기능을 강조하면서도 선진국이 그 기능 도입의 필수 전제로 수용하는 농업의 유지·발전을 사실상 경제성장의 장애물로 취급하고 있다.이것은 국정시스템의 중요한 오류다.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아무리 농정당국이 애를 써도 정상적인 농정이 수립될 수 없다. 식량자급률 30% 미만인 나라에서 유휴농지를 걱정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지만,지금 정부의 농정계획에는 선택과 집중을 강령으로 농지는 60% 이하로 농가 수는 10∼20% 이하로 축소하는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는 서울신문 기획기사는 이런 상황의 단면을 잘 진단하고 있다.상황이 이대로 전개되면 농업과 농심의 황폐는 물론이고,국민소득 2만달러의 꿈도 물거품이 되리란 걸 쉽게 전망할 수있다. 이쯤해서 더 늦기 전에 국정운영의 틀부터 수정하고 획기적인 농정의 틀갈이 작업을 단행해야 한다.시장기능에 따른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못하는 일을 정부의 ‘보이는 손’으로 정책을 보완하는 것이다. 현재 농민들이 저항하는 주요 이유가 바로 정부의 ‘보이는 손’짓에 대한 반사적 반응이다.이 반응은 흔히 말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농사짓는 민초중의 민초들이 참을 만큼 참다가 가장 낮은 단계의 생존조건을 요구하는 몸부림이다. 이미 2001년에 한국농업정책학회,국회통일농어업의정연구회,WTO국민연대가 공동으로 마련한 정책토론회에서 필자는 범정부적인 농정 마스터플랜이 시급함을 주장했다.그로부터 몇개월 후,오늘의 ‘농특위’가 배태됐지만,농민들은 희망 대신 더욱 혼돈된 오늘의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이 “농업문제가 이토록 심각한 상태에 이르도록 지금까지 뭘 했는가.”라고 탄식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통치권자가 향후 10년간 119조원의 대규모 농정투융자 계획을 발표하고 각종 농정목표와수단,그리고 FTA이행 특별법을 포함한 4대 특별법까지 동원해도 농민들은 물론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 및 관계전문가들조차 부정적인 반응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안타깝게도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인 농업 및 농가경제 청사진이 없기 때문이다.위기 국면으로 접어든 농정문제가 회생불능의 임계권으로 접어들기 전에 농민도 순응할 수밖에 없는 농정 마스터플랜을 구축하지 못 한다면 참여정부에 이르러 한국 농업은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정치권의 판갈이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잘못된 국정운영의 틀속에서 왜곡될 수밖에 없는 우리 농정의 틀갈이다.이대로는 안 된다.참여정부는 현실을 직시하고 선진 각국의 정책행태를 교훈삼아 세계경제-한국경제,세계농업-한국농업의 틀 속에서 과학적인 마스터플랜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정의 총체적 틀갈이를 해야 한다.농민들도 답답하지만 이제 시위보다는 뼈를 깎는 각오로 농업회생을 위한 획기적인 농업·농정 틀갈이에 역량을 결집해 주도적으로 양보와 저항의 균형점을 제시하는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함양군수 김종직을 아십니까?(상)

    요즘 세상을 혼란스럽다고들 한다.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믿어버리는 풍조,가정의 해체,학교와 학문의 붕괴,스승과 제자 관계의 변질,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와 무능이 국민을 끊임없이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모두 걱정하며 불안한 나날을 산다.오늘은 이같은 불안과 근심을 덜고,어쩌면 혼돈의 우리 시대를 편안하게 해줄 묘책을 찾게 될지도 모를 곳으로 길을 떠나기로 했다. 경상남도 함양으로 간다.함양은 산 너머에 또 산이 있고,고개 너머에 또 고개가 있는 두메 산골이다.바깥에서 함양으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세 길이 있는데,진주에서 가는 동쪽길과 전라북도 남원에서 가는 남쪽길,그리고 전라북도 장수에서 가는 북쪽길이다.요즘은 전라남도 구례에서 지리산 노고단을 넘어서 오는 서쪽길도 생겼으니 옛날의 그 첩첩산중이 사통팔달로 트인 곳이 되었다. 함양 가는 네 길은 모두 저다마 예사롭잖은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 ●신라·백제 국경 맞닿았던 첩첩산중 북쪽길은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계내면 장계리를 잇는 육십령(六十嶺)고개를 넘는 길이다.육십령은 해발 734m나 되는 가파른 고갯마루인데,옛적에는 화적떼가 밤낮으로 들끓어서 육십 명이 모여야 간신히 넘을 수 있었다 하여 육십령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첫걸음 하는 이들은 자신의 운전면허증이 진짜인지를 혹독하게 시험당한다는 우스갯말이 생길 만큼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고 내린다.하지만 어머니 품같은 덕유산의 여름 철쭉과 겨울 눈꽃은 천하제일이다.그러나 무엇보다 뜻깊은 역사는 이 육십령이 백제 사람과 신라 사람이 넘나들면서 서로의 문물을 뺏고 빼앗기는 통로였다는 점이다. 남쪽길은 경남 함양군 함양읍 죽림마을과 전북 남원군 동면 성산마을이 코를 마주대고 동서로 앉아 있는데 50m쯤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너무나 완연하다.그래서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있는 고개를 두고 남원사람들은 ‘팔량’이라 부르고 함양사람들은 ‘팔령’이라 부른다. 서쪽길은 전남 구례에서 화엄사와 천은사를 지나 지리산 노고단 산자락을 가파르게 기어올라 성삼재를 넘어야 한다.이 길도 육십령 넘는 길 못지않게 운전 솜씨를 시험받게 되는 아기자기한 산길이다.성삼재를 넘으면 곧바로 뱀사골 계곡이다. 뱀사골 끝자락에 실상사가 있고,다시 용유담 계곡 길을 따라 내려가면 경상도와 전라북도 경계를 지나 함양으로 들어서게 된다.곧장 변강쇠 전설의 고장이자 눈망울이 가장 아름다운 장승이 있는 벽송사도 있다.용유담 계곡이 끝나면서 엄천강이 시작되는데 엄천강 맑은 물길을 따라 가다보면 함양군 휴천면 엄천 마을이 산자락에 보듬겨 있고,마을 앞 길가에서 자그마한 비석 하나를 만나게 된다. 엄천강 기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펀펀한 돌 하나를 주워다 생긴 그대로 세운 비석에는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先生) 관영차밭(官營茶園) 조성터(造成址)”라 씌어 있다. 동쪽 길은 진주에서 오는 국도 3호선과 대전 충무간을 잇는 대진고속도로가 훤하게 뚫렸다.나그네는 엄천마을 앞에 있는 그 비석의 앞면과 뒷면을 다 읽고는 잠시 함양의 옛일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최치원·정여창·박지원 등 名목민관 부임 지금의 함양군은 1914년까지만 해도 안의군(安義郡)으로 독립해 있었던 안의면(安義面)을 아우르게 되면서부터 그 역사와 문화가 더욱 깊은 유서를 지니게 된 고장이다.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이기도 했는데,사철 마르지 않는 여러 줄기의 개천과 강 좌우에 펼쳐진 넓고 비옥한 토지에서 나는 곡식을 차지하기 위한 양측의 마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에 에워싸여 있어서 풍부하고 좋은 목재와 땔감,약초와 산나물이 많고 밭자락 땅심도 좋아서 밭농사도 논농사 못지않았다. 이같이 좋은 생활 조건들로 인해 함양군으로 통합되기 이전 안의현(安義縣),함양현(咸陽縣) 시절의 현감이나 군수,관아의 육방관속 아전들 중에는 오히려 탐학과 부정부패를 일삼아서 백성들을 고통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던 이들도 많았던 것 같다. 이런 폐단이 단절되지 않고 있는 중에도 함양 땅의 지도자로 왔다 간 이들 중에는 참으로 훌륭한 어른들이 적지 않았다.그분들은 비단 지난 어느 시대의 함양군수나 안의현감에 그치지 않고,시간을 뛰어 넘어 지금 이 시대에까지도 좋은 지도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민족의 양심이자 살아 있는 정신의 사표이다. 첫 번째 어른은 891년에 함양태수를 지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다. 두 번째는 1471년에서 1474년까지 함양군수를 지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며, 세 번째는 1495년에서 1498년까지 안의현감으로 재직했던 일두(一) 정여창(鄭汝昌) 선생이고, 네 번째가 1791년에서 1796년까지 안의현감을 지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선생이다. 네 분 어른 모두 우리나라 역사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뿌리깊은 정신의 샘물이며 의리와 예절,무엇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사무치게 그리운 이름으로 살아 있다. 지리산과 가야산을 낀 마을마다 신비로운 행적을 남겨 놓은 사람 최치원은 함양 태수를 지내면서 해마다 범람하는 위천을 막기 위해 고심했는데,위천 가에다 손수 심어 가꾸었다는 상림(上林)의 거대한 잡목숲의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학사루를 지어 지금도 한 목민관의 선행을 기리고 있다. 정여창은 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 김굉필(金宏弼)과 함께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의 길로 들어서 저 향기롭고 빛나는 영남사림의 계승자가 되기도 했던 어른이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영국의 셰익스피어,독일의 괴테,중국의 소동파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최고의 대문호였다.그런 그가 안의현감으로 재직한 6년 동안에 보여 준 성공한 목민관으로서의 생생한 증거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제도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든 공직자와 정치인을 포함한 교육자,사회지도층 사람들에게 왜 이 땅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지를 아프게 따져 묻고 있다. 함양군수 김종직은 1431년 지금의 경남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한재마을에서 태어났는데,아버지 김숙자(金叔滋)는 그에게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다. 김숙자는 고려말 조선초 전환시대의 도학사상을 이끌었던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 중심의 의리파(義理派) 학통을 계승하여 아들 김종직에게 이어준 분이다.정몽주,길재를 의리파라 부르는 것은 고려말 국내외적인 현실을 인식함에 있어서 일단 고려왕조를 존속시키면서 점진적으로 개혁을 해나가자고 했던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몽주·길재의 義理派 학통 계승 이에 반하여 고려왕조는 수명이 다했으므로 새로운 왕조인 조선조를 창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도전 등은 정치 권력을 장악하였고,의리파는 학맥을 계승했다.이렇게 이어진 도학사상의 학통은 김종직에 이어 김굉필과 정여창에게 물려졌고,조광조(趙光祖)에 이르러 도학사상의 절정기를 맞았었다.도학사상은 국내적으로는 불의(不義)에 대하여 항쟁하고,외적의 침략이 있을 때는 국가를 수호하는 강력한 의리사상을 지니고 있는데,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의리파의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특히 국내적인 문제에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온몸으로 이를 바로잡으려고 싸우는 태도는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함양 농민들이 빠져있던 세금제도의 모순에 따른 고통을 깨끗이 척결해 보임으로써,도학사상이 흔해빠진 논리의 유희가 아니라 세상을 깨끗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실천적 학문임을보여준 첫 사례였다.백성이 행복해야 나라가 산다는 김종직의 철학적 명제가,함양군수라는 직급이 매우 낮은 지방관직을 맡았을 때 실천된 점은 오늘날 이 나라의 공직자와 정치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신선한 충격이 되고 있다.
  • 책/대통령의 자식들

    더그 위드 지음 / 윤성옥·송경재 옮김 중심 펴냄 우리에게 ‘대통령의 자식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소통령’ ‘비리’ ‘수갑’….그러면 200년 이상의 공화정치 역사를 지닌,43명이나 되는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미국도 대통령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특혜를 받고 비리를 저질러 여론의 비난을 산 아들들이 더러 있다.그러나 적어도 범법행위로 감옥에 간 아들은 없다.물론 어려서부터 ‘사회적 애완동물’이 된 대통령 아들들이 주위의 지나친 기대와 관심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빠지거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예는 적잖다.또 대통령의 자식들은 일반인에 비해 이혼율도 높다.오죽하면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일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그들의 삶은 끔찍하다.”고 했을까. ‘대통령의 자식들’(더그 위드 지음,윤성옥·송경재 옮김,중심 펴냄)은 조지 워싱턴부터 조지 W 부시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자녀에 관한 보고서다.1988년 조지부시 대통령 후보의 선거참모로 일한 저자는 부시가 당선된 후 아들 조지 W 부시의 요청으로 대통령 자녀들의 삶을 정리했다. 미국 대통령들은 대부분 모험가 정신이 충만한 사람들이었다.그래서 그런지 그 아들들 또한 모험심이 강한 이들이 많다.1999년 자신이 직접 조종하던 비행기가 추락해 죽은 존 F 케네디 2세가 대표적인 예.그는 위험한 바다로 카약여행을 다니고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비행기 조종훈련을 받곤 했다.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아들 4명은 1차대전이 터지자 모두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그 중 막내인 쿠엔틴 루스벨트는 전투기 조종사가 돼 독일군과 공중전을 벌이다 추락해 전사했고,두 형은 지체장애자가 됐다.맏형 시어도어 테드 루스벨트 2세는 육군준장으로 2차대전에도 참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했다. 아버지에 못지않은 명성을 쌓은 아들도 보인다.링컨 대통령의 맏아들 로버트 토드 링컨은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산 인물로 꼽힌다.그는 AT&T의 창립자로 알려져 있으며,가필드 정부에서 육군 장관을 지낸 것을비롯해 각료·대사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로버트를 포함해 8대 마틴 밴 뷰런 대통령의 둘째아들 존 밴 뷰런,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의 장남 로버트 알폰소 태프트 등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지목되기도 했다.실제로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장남 존 퀸시 애덤스는 6대 대통령에,41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장남 조지 W 부시는 4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역대 대통령의 아들로 주지사에 당선된 사람은 두 명인데 그들 모두 조지 부시의 자식들이다.부시가가 자식농사만큼은 잘 지은 셈이다.그 비결은 무엇일까.조지 부시는 말한다.“나는 자식들을 훈계하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오직 사랑만 베풀 뿐 스트레스를 결코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조지 W 부시 또한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벽돌담이라도 뚫고 달리겠다.”고 말한다. 대통령 아버지를 궁지에 몰아넣거나 불운한 생을 살다 간 자녀도 많았다.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의 장남 조지 워싱턴 애덤스는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과 기대에 중압감을 느낀 나머지 자살로 추정되는 사고로 죽었다.남북전쟁 영웅인 18대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은 퇴임 후 둘째아들 율리시스 심슨 버크 그랜트 2세가 설립한 증권회사에 투자했다가 재산을 몽땅 날리기도 했다. 32대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역시 아들들의 인사 개입과 특혜시비로 곤욕을 치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인기나 영향력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루스벨트의 네 아들은 2차대전이 일어나자 모두 군에 자원 입대해 가장 위험한 전투지역에 투입됐다.‘병역정의’가 흔들리는 우리에겐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책은 대통령 자녀의 생애와 일화를 11개의 장으로 나눠 요령있게 다뤘다.1만 6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서울 송파구 문정동 무허가 ‘개미마을’ 르포/“개발도 좋지만 우린 어디로 가나”

    “돈 있으면 여기 들어왔겠어? 개발도 좋지만 어디로 가란 말이야.” 김정임(91) 할머니는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신세타령부터 한다.할머니는 서울시가 오는 2007년까지 대규모 상업단지로 조성하겠다며 청사진을 내놓은 송파구 문정동 무허가 비닐하우스촌,‘개미마을’ 주민이다. 김 할머니는 “살 곳을 찾아 헤매다 이곳에 들어온 지도 10년이 넘었다.”면서 “전셋값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성화도, 이사할 필요도,방세를 낼 걱정도 없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는 몸이 아파 누워있고 어머니가 비닐하우스 농사일을 도와 5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박형진(12)군은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면 집이 물에 잠기기 일쑤”라면서 “여기가 개발되면 우리집도 새로 지어주나요?”라고 물었다. ●비닐하우스촌 5곳에 350여 가구 1000여명 거주 서울시가 올해 문정지역에 대한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한 뒤 내년부터 토지보상 및 건축공사에 착수한다고 하니,김 할머니를 비롯한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은 당장 내년부터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할 판이다. 문정지역 비닐하우스촌은 97가구 284명이 거주하는 개미마을을 비롯해 새마을,문정작목반,장지마을,장지작목반 등 5곳에 모두 350여가구 1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무허가 건축물 이주 지원 못받아 문제는 대부분 생산녹지(농토)인 이 지역에 무허가로 만든 비닐하우스의 경우 거주자들에 대한 이주지원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업시행자가 토지 및 허가건물 소유자에게 이전비·이사비·이주정착금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무허가 건물이나 비닐하우스와 같은 무허가 가설건축물은 지원대상이 아니다. 서울시도시개발공사 관계자는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을 개발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이주지원 여부를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면서 “다만 해당 구청에 등재된 무허가 건물은 허가건물에 준해 보상할 수 있어 이에 대한 해석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송파구청 관계자도 “무허가 건물의 경우 개발에 따른 보상을 보다 엄격히 적용해 가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소외계층에 임대주택 지원자격 줘야” 이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김한수 개미마을 자치회장은 “도시개발사업이 주로 저소득층이 사는 낙후지역에서 이뤄지는 만큼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문제를 법적으로 명시해 둘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이주비 몇푼보다 안정적인 삶의 보금자리를 지원할 수 있도록 임대주택에 대한 지원자격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6)그래도 길은 있다-성공사례(하)

    ■전남 장성 삼서농협 설을 쇤 임학수(64·전남 장성군 삼서면 유평리)씨는 27일 서둘러 관내 삼서농협을 찾았다.다음달 초에 있을 영농교육과 친환경 농자재 지원 여부를 알아보고,올해는 찰벼 발아 현미용으로 심을 논 6000여평을 추가로 계약해야 하기 때문에 정초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임씨는 1997년부터 자신의 논 5200평을 친환경 농법으로 삼서농협과 계약재배하고 있다.그는 “벼농사 짓는데 농약과 화학비료를 적게 쓰면 농협에서 전량 높은 값에 사준다.”면서 “판로 걱정이 없으니 농사짓기가 이렇게 수월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그는 이런 방식으로 재배해 수확한 40㎏들이 벼 234가마를 가마당 6만 9000원에 팔았다.정부 수매값 6만 440원(1등)보다 가마당 8560원을 더 받은 셈이다.같은 면 삼계리 류재춘(65)씨는 “정부수매는 물량이 적어 벼를 심을 때 팔 궁리를 해야 했는데 지금은 전량 계약재배여서 그런 불안은 없다.”고 웃었다.인근 금산1구 오재국(56)씨는 “내년부터 추곡 정부수매가 없어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우리는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 올해 삼서면 19개 마을 192농가는 삼서농협과 벼를 계약재배(120㏊)하면서 판로 걱정이 싹 사라졌다.이 농협에서 가마당 8000원 이상 더주고 전량을 사들이기 때문이다.다만 자운영을 심고 참숯과 우렁이 집어넣기 등 친환경 농법으로 쌀을 생산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삼서농협은 지난해 친환경벼 500t을 사들여 ‘풀꽃나라 자운영’이란 쌀 상표로 25억원어치의 판매고를 올렸다.처음이던 96년 계약재배 면적이 67㏊였으나 지금은 두 배로 늘었다.이 면적은 삼서면 전체 논의 15%를 웃돈다.삼서면 대도리 1·2구 친환경농업쌀 작목반 김공근(48) 반장은 “도시 소비자들은 쌀밥을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가족들의 건강에 유익한 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더라.”고 말했다. 현대인들이 건강식에 거는 기대는 의외로 크다.삼서농협은 이를 겨냥해 2002년에 벼 발아현미를 개발했다.히트 예감 상품으로 자부하는 기능성 쌀이다.시중에서 1㎏에 9000원이니 40㎏에 36만원이다.같은 양의 친환경쌀에 비해 두 배이상 비싸지만 물량이 없어서 못 팔 정도다.지난해 200t을 가공해 18억여원의 판매고에 수익 1억여원이 떨어졌다. 올 연말엔 500t으로 가공량도 두배가량 늘어난다.농민들도 계약면적을 늘리려고 한다.발아현미는 친환경으로 재배한 벼를 골라 수분과 온도·산소를 공급해 싹을 틔운 쌀로,현미의 기능을 극대화한 것이다.비타민이 많아 영양도 그만이다.발아현미는 일반백미에 비해 비타민 종류에 따라 2∼16.7배 많다.발아현미 100g 속에 들어있는 비타민 B1은 김 50장,우유 2ℓ,쇠고기 2근,달걀 20개 이상과 맞먹는다.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박수영(39)씨는 “백화점에서 비싸지만 갖가지 기능성 쌀을 자주 사다 먹고 있다.”면서 “소화가 잘되고 영양가도 높아 이제 식구들이 백미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발아현미를 고안해 낸 삼서농협 이계택(44) 상무는 “발아현미는 실버산업 분야에서 성공 기대치가 높고 노약자들의 보양식이나 소화기 계통 질환자들에게 인기”라고 자랑했다.내친 김에 싹 틔운 통밀이나 싹 틔운 흑미 출시로 소비자들의저변을 파고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지난해 발아현미는 교육부 지정 학교급식 품목으로 채택됐으나 물량이 달려 아직 공급을 못하고 있다. ‘가족 건강은 식탁에서’라는 말처럼 농약과 비료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농산물은 농민과 도시 소비자를 잇는 든든한 줄이다.농산물에 대한 신뢰만 얻으면 소비자들은 값이 비싸더라도 저절로 찾기 마련.광주 신세계백화점 조남용(44) 식품팀장은 “고객 가운데 젊은 주부들이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많고 구매율도 높은 편이며,기능성 쌀과 유기농 야채를 함께 구입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농산물의 경우 서울·부산·인천 등 대도시 지역 자치단체나 아파트 부녀회,향우회 등과 자매결연을 통한 직거래 판매량이 늘고 있다.전남도 내 22개 시·군 가운데 42개 마을이 대도시 아파트단지 부녀회 등과 자매결연했다. 농민들은 도시 소비자를 초청해 작물재배 현장을 보여주고 농촌체험 장소를 제공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이렇게 해서 고정고객(5만 9000여명)으로 만들었다.생산자는 판로걱정이 없어 좋고,소비자는 속지 않고 값싸게 살 수 있어 좋다. 지난 8일 192개 농가와 업체가 참여한 전남도 농산물 전자상거래(JNMall)가 문을 열고 쇼핑몰을 운영하기 시작해 벌써 1억여원어치를 팔았다. 삼서농협은 대도시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 등 고품질 농산물을 선호하는 곳을 첫번째 공략지로 삼고 있다.친환경이나 기능성쌀의 경우 소포장으로 하고 판매량에 따라 탄력적으로 값을 내리거나 올린다.주부덕(56) 조합장은 “노약자나 병원 환자 등 주 소비자층을 집중 공략하고 대량 수요처에는 이에 걸맞은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남도는 올해 경기미를 능가하는 ‘전국 제1미' 가 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지난해 확보한 전남 쌀 평생고객도 서울과 부산·경남 등에서 6만 6700여명을 넘어섰다.올 목표는 10만명이다.지난해 전남도내 공무원 1만 6200여명과 유관기관 3200여명 등 2만 6200여명이 이 운동에 나서 20㎏들이 49만 3000부대 212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지난해 국내 백화점과 할인점의 구매팀장(352명)을 초청한 전남도의 청정농산물 상품 설명회에서 694억원,농·수·축산물 직판행사에서 125억원(125회),전남쌀 수도권 총 진군대회에서 28억원 등 모두 109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전남도 농산물판촉과 고대석(52) 과장은 “농민들이 고정 거래선을 갖고 있으면 맘놓고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경북의성 총각농군 박재만씨 “저는 농사가 절대 사양산업이 아니라고 확신해요.그래서 농촌의 미래를 낙관합니다.남들과는 생각이 많이 다르죠?” 경북 의성에서 6000평의 사과농사와 1만평의 쌀농사로 연간 1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박재만(27)씨.대다수 농민들이 농촌의 암울한 현실로 위기감에 젖어 있지만,그는 거꾸로 농촌에 ‘올인’하는 총각 농군이다.늘 연구하는 자세로 농사를 지으면 고소득은 물론 높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박씨가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봄,안동공업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상주대 농과대학 야간학부에 편입하면서부터다. 그는 “당시 도시와 농촌생활을놓고 고심을 거듭하다 결국 부모님이 물려주신 건강한 신체로 평생 일할 수 있는 농촌을 택했다.”고 술회했다.처음에는 농사꾼인 부모의 어깨너머로 일을 익혀 나갔다.몸 하나 믿고 겁없이 덤벼든 농사지만 녹록지 않았다.그러면서 조금씩 농부가 되어갔다.새벽에 부모를 따라 과수원과 논으로 나가 퇴비와 농약을 뿌리고,물대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었다. 해거름 때면 학생 신분으로 돌아와 공부에 열중했다.이런 2년간은 주경야독의 연속이었다. 농대를 졸업한 후 박씨는 나이가 많은 부모로부터 과수원과 논 1만평을 물려받아 손수 농사를 짓는 전문 농사꾼으로 변신했다.열심히 농사를 짓다 보니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문제를 해결하는 행운도 누렸다. 직접 농사를 지은 첫 해의 결실은 신통치 않았다.전체 수익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사과농사에서 비료량 조절과 병충해 관리 실패로 큰 손실이 났다.부모가 농사를 짓던때 보다 수확량은 30%,수익은 4000만원이 줄었다. 별다른 농사 지식없이 의욕만 앞세웠던 게 화근이었다.과수 관련 책을 구입해 탐독하고,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다.군 농업센터에서 실시하는 ‘영농교육’도 빠지지 않았다.자비를 들여 과수 선진국인 일본과 타이완을 방문,신 재배기술도 익혔다. 이런 노력은 본격적인 과학영농으로 이어졌다.우선 친환경 농업으로 살균제 살포 횟수를 연간 15∼17회에서 8회까지 줄여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사과 생산에 성공했다. 철저한 토양검증과 시비 조절로 수세(樹勢)를 증대해 평범한 사과농사보다 30% 이상 증산도 가능했다. 여기다 그가 직접 개발한 독특한 사과 반사필름 피복 농법으로 착색 및 당도도 크게 증가시켰다.이런 농법이 고부가가치를 안겨줬다.그가 생산한 사과는 18㎏ 상자당 3만 5000원.일반사과보다 1만원이 더 비싸다. 판로 개척에도 남다른 노력을 쏟았다.대도시 아파트 부녀회 등을 고정 판로로 확보하고,전자상거래로도 눈을 돌렸다.천리안 등 통신망에 가입한 후 광고란에 자신의 사과를 소개했다.통신가입자가 늘면서 사과 주문도 밀려 들기 시작했다.부단한 노력으로 2002년에 농림부 장관상,지난해엔 대통령상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요즘 제2의 도약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올 봄까지 8000여평에 2억원을 들여 새로운 사과밭을 조성할 작정이다. 박씨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고품질의 사과를 생산하는 게 꿈”이라며 “올핸 이런 꿈을 함께 실현할 마음씨 착한 여성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활짝 웃는 그의 모습처럼 우리 농촌의 미래도 밝았으면…. 글·사진 의성 김상화기자 shkim@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6)그래도 길은 있다-성공사례(중)

    ■‘버섯돌이 3형제' 최용주씨 “팔 데 없으면 농사짓지 마라.” 농업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으로 성공한 경남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최용주(崔龍柱·48)씨는 학생들에게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그는 2002년 농림부의 ‘신지식인’에 뽑힌 뒤 농업고교를 찾아 강의도 한다. “벤처정신을 갖고 농민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자신이 개발한 독자 브랜드는 등록을 통해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 그는 안간리 자연부락 단숫골 280평 시설하우스에서 최고급으로 알려진 상황버섯을 재배하고 있다.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버섯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9년.어머니가 두통이 심해 병원에 들락거렸지만 특별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답답해하던 차에 우연히 지리산을 즐겨 오르는 지인이 버섯을 건네면서 “달여 드려 봐라.”고 해 그리한 지 5개월 후 거짓말같이 낫고부터. 효험이 하도 신기해서 그때부터 농촌진흥청 등을 찾아다니면서 상황버섯을 연구하기 시작했다.91년 운영하던 복사기대리점을 그만두고 표고버섯을 재배했다.일단생활을 안정시킨 뒤 상황버섯을 키우자는 생각에서였다.자신감이 생긴 95년부터는 서울에서 회사에 멀쩡하게 다니던 동생(42)까지 불러내려 상황버섯 재배에 나섰다.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심어보니 흰개미들이 뿌리를 갉아먹어 수확량의 40%를 버려야 했다. 어머니께 달여 드렸던 지리산 자연 상황버섯은 어떻게 자라는지 궁금했다.산속에 텐트를 치고 몇달 동안 유심히 관찰했다.나무 꼭대기에 자란다는 걸 알아내고 그 환경의 온도·습도를 파악해 ‘실전’에 옮겼다. 국내 처음으로 ‘공중재배법’이 개발된 것이다.뽕나무나 참나무 토막을 고리로 파이프에 매달아 기르는 재배법이다.99년 상황버섯 재배에 성공하자 모대학에서 복사점을 운영하며 돈을 대주던 형(54)도 합류했다.같은 해 9월 공중재배법에 대한 특허를 신청,2002년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이듬해에는 ‘버섯돌이 3형제’란 브랜드를 상표등록했다.브랜드 관리를 잘해 요즘엔 손님들이 이름을 잘 몰라도 ‘삼돌이 농장이 어디냐.’라는 식으로 물어물어 찾아온단다.최씨는 “벤처농업을 공부하다 보니 브랜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5월부터 1년간 충남 금산에 있는 ‘한국농업벤처대학’에서 벤처농업을 배웠다.농사기법은 하나도 안 가르치고 농업의 마케팅,홍보,회계 등 판매에 가장 가까운 것만 가르쳐 큰 도움이 됐다.지금은 동생이 이곳에 다닌다. 군제대 후 진주의 모 복사기대리점 직원으로 일하면서 기계수리는 물론 영업,납품,수금 등 1인다역에 ‘고객 위주의 경영’을 배운 것도 마케팅 마인드를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공중재배법 성공으로 대량 생산이 이뤄지자 ‘미리 시장을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가장 대중적인 라면에 상황버섯을 연계시켜 지난해 8월부터 ‘상황버섯 3.5면’을 생산 중이다. 라면 전문제조업체에 의뢰해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생산,방문업체를 통해 일반 라면보다 2배 이상 비싸게 위탁 판매하고 있다. 최씨는 “생 버섯을 팔 때보다 수익성이 낮지만 안정적 판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상황버섯을 달인 물을 섞어 밀가루를 반죽,면을 만들어 매달 30만여개를팔 정도로 인기”라고 자랑한다.노지재배보다 생산성이 훨씬 뛰어난 공중재배로 연간 생산하는 버섯 6t을 이런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다.상황버섯은 브랜드 관리를 통해 유명해져 ㎏당 100만원을 호가한다. 지금도 백화점이나 건강식품 등 행사에 적극 참여해 자신의 브랜드 상황버섯을 알리고 있다.“효과를 본 손님들이 ‘고맙다.’면서 상황버섯 고추장과 잼 등을 만들어 보내와 상품화 가능한 품목은 무궁무진하다.”며 이를 다시 행사장에서 시식회를 열어 소비자의 반응을 세밀히 분석하는 일을 반복한다. 지난해엔 해외 진출을 노리고 느타리·표고버섯 등 80여개 전국 버섯재배 농가와 함께 ‘머시가이(MUSHGUY)’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상표등록했다.최근 미국,캐나다,일본,호주 등에 버섯가공품 샘플을 보냈다.오는 5월에는 각종 버섯으로 만든 음식을 파는 식당을 설립,좋은 반응이 나오면 전국에 프랜차이즈 식당 개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씨는 “마케팅이 없으면 현재 상황버섯 재배농가의 99%가 망하는 것처럼 농사짓기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면서“한발 더 나아가 농산물도 공산품처럼 A·B·C등급 등으로 정확하게 분류해 판매하는 ‘규격화’가 이뤄져야만 세계시장 진출은 물론,농업의 기업화도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주 이천열기자 sky@ ■지적재산관리재단 황종훈 실장 “농업도 이젠 브랜드와 마케팅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한국지적재산관리재단의 황종훈(黃宗勳·35) 브랜드관리실장은 “농민이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분석,그에 맞는 마케팅을 펼쳐야 자기 농산물의 상품가치를 최대한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대부분 농민들이 농산물의 품질이 최고인데도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해 자기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실패한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그가 소개하는 성공사례.충남 논산의 한 작목반은 농업기술센터의 도움 아래 ‘키토산 딸기’를 재배해 시장을 공략했다.농약 대신 딸기응애의 천적인 ‘칠레 이리응애’를 투입해 병충해를 막았다. 키토산이 포함된 퇴비를 뿌려 무공해로 키운 뒤 요즘 ‘뜨는’ 키토산이란 이름을 브랜드에 붙였다.구입하기좋도록 작게 포장한 것이 소비자들에게 먹혀들면서 다른 딸기보다 25% 정도 비싸게 납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마케팅이 필요한 것처럼 디자인·포장·브랜드,그리고 이를 보호하는 등록도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농민들이 상표개발이나 특허가 왜 필요한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농민들이 서류를 작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복잡한 것으로 예단해 이를 꺼린다는 것이다. 황 실장은 “농민 스스로 농산물 가치를 지켜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장을 누비면서 상품가치가 있는 농산물을 개발,디자인과 유통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자치단체가 나서고 있으나 방향을 잘못잡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꼬집었다. 농산물과 관련한 디자인과 브랜드 등록이 예전보다 늘고 있으나 모양과 이름이 촌스러워 현대적 감각에 안맞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디자인 색상이 빨강,파랑,노랑 등으로 단조롭고 ‘××먹고 ××’처럼 브랜드도 세련되지 못하다. 브랜드는 심플하고,기억하기 좋고,지역 이미지와 해당농산물이 잘 어울릴 경우 지역명을 붙이는 게 이른바 ‘잘 뜬다.’고 소개했다. 황 실장은 “등록이 돼도 정부나 자치단체 등 외부의 홍보,마케팅,기술지원 등이 부실해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성공률이 5%도 안 된다.”면서 “미국이 50%,일본이 30%의 성공률을 보이는 배경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천열기자 ■농산물 특허 어떻게 농업도 패션시대.옷과 핸드백,오디오 등 국내에서 판매 중인 상당수 제품들이 명품 반열에서 외국산에 밀리지만 농산물만큼은 뛰어난 품질과 ‘신토불이’를 사랑하는 국민 덕에 토종이 독차지하고 있다.값싼 외국 농산물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토종 농산물끼리 좋은 품질을 기본으로 디자인,포장과 브랜드 개발을 통해 명품의 반열에 등극하려는 경쟁이 불꽃을 튀긴다. ‘명품’ 농산물의 상품가치를 법적으로 보호받는 것이 등록이다.디자인이나 포장은 의장등록,브랜드는 상표등록이다.의장등록과 상표등록은 과정이 비슷하지만 농민이나 작목반이 신청하는 농산물 관련 디자인과 포장은 박스나 포장지가 대부분으로 심사를 거치지 않는다. 디자인이나 포장은 사진,도면,설명서 등을 갖춰 특허청에 출원하면 서류전산화를 거쳐 무심사로 의장등록이 된다.출원에서 등록까지 걸리는 기간은 3∼4개월.건당 수수료는 전자출원 4만 7000원,서면출원 5만 7000원이나 개인이 출원하면 70%까지 감면해줘 부담이 별로 크지 않다.심사를 거치지 않아도 디자인이나 포장 모양이 음란하거나 유명한 것을 베낀 것이면 등록이 어렵다. 브랜드는 출원 이후 서류전산화 과정을 거치지만 특허청의 심사를 받는다.먼저 등록된 브랜드와 비슷하거나,국가명을 활용하거나,군단위 및 유명 생산지 이름을 사용하거나,맛있는 등 설명조의 브랜드를 쓰면 안 된다.신청 건의 절반은 이 때문에 반려된다. 예컨대 이미 유명해진 ‘성주 참외’나 ‘고창 수박’‘이천 쌀’ 등은 그대로 등록이 안 되고 식별 가능한 문구나 로고를 추가하면 가능하다.상표등록까지 1년 이상 걸리고 출원료는 서면 6만 7000원,전자 5만 7000원이다.등록료는 21만원에 달하고 감면도 없다. 등록보호기간은 브랜드는 10년,디자인과 포장은 15년이다.브랜드는 갱신이 가능하지만 디자인이나 포장은 안 된다. 특허청 문삼섭 서기관은 “변리사없이도 농민이 특허청과 상담하면서 특허나 등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천열 기자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덜 답답한 세상을 위하여

    기나긴 명절기간이 지나갔다.어려서는 명절기간이 길수록 좋았다.농촌에서 설과 추석은 농사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먹을 것이 귀하고 기후가 혹독하던 시절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추석은 명절 중의 명절,하늘이 내린 축복이었다.설 명절 또한 추수한 곡식이 아직은 충분히 남아있고 소와 돼지는 살찌고 해는 길어질 때다.날로 도타워지는 햇살이 언 땅에 깊이 파고든다는 건 곧 농사꾼들에게 잔인한 계절이 올지니 그 전에 실컷 먹고 충분히 놀아둬야 한다는 신호 같은 거였다. 며느리는 친정나들이를 보내고 시집간 딸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설 동안이었다.짧게는 보름 길게는 정월 한달이 때때옷 입고 먹고 마시고 놀고 나들이 다니는 명절기간이었다.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을 아무리 넉넉하게 장만해 둬도 쉬거나 썩을 걱정이 없다는 것도 하늘이 주는 혜택이요 편리였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군량미가 다급해진 일제는 식민지의 이런 느긋하고 풍요한 세시풍속조차 묵과하지 못했다.농사지은 양식을 거의 다 공출 당해 그렇게 오랫동안 즐길 수도 없었지만 음력 설 자체를 말살하려들었다.양력으로 1월1일이 진짜 새해이기 때문에 음력으로 설을 쇤다는 건 비과학적이라고까지 몰아붙였다.점점 더 강제성을 띠다가 말기로 접어들면서는 도시에서는 떡방앗간의 영업을 못하게 했고 농촌에서는 떡 치는 소리만 들려도 고발의 대상이 됐다.설 명절이 새 해의 뜻보다는 오랫동안 우리의 정서에 뿌리내린 민속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는 걸 인정하려들지 않았다.그러자 편의상 양력으로 차례를 지내던 집까지 양력 정초는 일본설이라고 배척하고 음력을 조선설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듯이 비장한 용기로 음력설을 쇠게 되었다. 우리 고향은 아주 보수적인 산골 마을이고 그런 마을에서도 드물게 할아버지는 상투를 틀고 계실 만큼 고루한 어른이셨는데도 설은 양력으로 쇠도록 하셨다.이유는 간단했다.대처에 나가 학교 다니는 손자들이 방학해서 내려와 있는 동안 차례도 지내고 음식장만도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그때나 이때나 음력설이 겨울 방학 안에 드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우리 집안의 상투 튼 진보 덕분으로 손자들은 귀향의 기쁨과 설에만 맛볼 수 있는 지방색 짙은 음식과 놀이문화에 대한 풍부한 추억을 갖게 되었다.또 하나 그 어른에게 고마운 것은 차례나 제사 지낼 때 여자들도 참예토록 한 것이다.오빠하고 똑같이 차례나 제사 참예를 했다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었다.그러나 훗날 내가 여자로 사는 데 있어서 주눅 들거나 허세 부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광복이 되니까 사람들이 마음 놓고 구정을 쇠게 되었지만 공휴일을 지금처럼 구정에 더 많이 주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그런 변화에 상관없이 나는 어렸을 때 버릇으로 신정이 명절 같다.내 자식들이 어렸을 때는 우리 할아버지와 똑같은 이유로 신정을 지냈고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도 늙어가면서 음식장만하고 손님 치르는 일이 힘들어지니까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고,미리 지내고 나서 신정보다 훨씬 심해지는 교통체증,물가고,품귀현상,혹한 따위 구정풍경을 남의 일 보듯이 느긋하게 구경하는 맛도 그럴듯하다.좀 얄미운 심보인지는 몰라도.그밖에도 나처럼 딸만 여럿 있는 집은 설이 두 번이나 된다는 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여럿이다 보니 자연히 사돈끼리 지내는 설날이 달라지기 때문에 내 자식이 몸과 신경을 쪼개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점점 외아들 외딸이 늘어가는 추세인데 만일 양가가 전통적으로 지내 온 설이 같고 서로 그걸 고집한다면 어쩔 것인가.그럴 때는 남자 쪽 부모가 양보하는 게 좋을 것 같다.뭐니뭐니 해도 아직은 권력을 쥔 쪽이 아들 가진 쪽이니까.하나밖에 없는 자식도 나눠가진 사이가 둘 있는 명절을 하나씩 나눠 갖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우리의 사소한 배려가 우리 자식 우리 손자가 살아나갈 앞으로의 세상을 지금보다 덜 답답한 세상으로 만드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소설가)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6)그래도 길은있다-성공사례(상)

    시리즈 ‘농촌경제-비상구가 없다.’ 제 6회 ‘그래도 길은 있다.’편이 26일자부터 이어집니다.상·중·하 세 차례에 걸쳐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빚,파산,이농(離農)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런 말 잊은 지 오랩니다.”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신대리 토고미(土雇米) 마을.이곳 주민들은 도시생활이 부럽지 않다.오히려 도시인들로부터 살고 싶은 마을로 한껏 부러움을 사고 있다.4년 전부터 시작한 친환경 유기농사와 그린투어리즘(농촌체험관광)이 자리 잡으면서부터다. ■강원 화천 토고미 마을 ●56가구 200여명… 유기농으로 승부 토고미 마을은 야트막한 백암산 자락과 실개천인 파포천에 둘러싸여 56가구 20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사는 전형적인 농촌이다.잘 정리된 논 한쪽 모퉁이마다 옹기종기 오리를 몰아 넣도록 만든 검은 비닐막사와,논두렁에 세워 놓은 ‘오리농법 들녘’이라는 대형 간판이 이곳이 친환경 오리농사를 짓는 마을이라는 걸 알려준다. 토고미 마을의 오리농사는 주민들만 참여하는 단순한 농업이 아니다.농촌과 도시가 함께 살아간다는 취지에서 도시인을 대상으로 ‘나눔의 가족’이라는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도시인들로부터 해마다 3만 5000원씩 회비를 받아 회원마다 오리 15마리씩을 ‘일꾼’ 명목으로 기르게 한다.대가로 농사를 지어 추석 때 햅쌀 8㎏씩을 택배로 보내주고 있다.이같은 가족 회원제는 풍년이나 흉년에 구애받지 않고 농산물 가격을 원가이상으로 유지시켜 주는 원천이다. ●다양한 혜택으로 ‘나눔의 가족' 회원 늘려 ‘나눔의 가족’ 회원들에게는 마을에서 생산한 청정 유기농산물을 시중보다 15∼20% 싸게 살 수 있는 혜택을 준다.마을입구에 지은 펜션(10평·20평)과 폐교를 깔끔하게 리모델링해 다양한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토고미 자연학교’도 30% 할인가로 이용할 수 있다. 해마다 논에 오리를 방사하는 6월 초에는 ‘토고미 푸른마을 오리쌀 축제’를 열어 가족회원들과 친목도 나눈다.회원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어울림 행사다. 마을 주민들은 4년째 오리농법만을 고집하다 지난해부터 우렁이농법도 병행하며 가능성을 찾고 있다.농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해마다 7000여마리의 오리와 우렁이를 논에 풀어 농사를 짓고,가끔 목초액과 키토산을 뿌려 병충해를 예방할 뿐이다.거름은 추수 후 논에 뿌려둔 호맥을 그대로 갈아 엎어 대신한다.이렇게 농사를 짓는 면적은 마을 전체 농토 48㏊ 가운데 30㏊이다.‘토고미 오리쌀’로 포장된 쌀은 지난해에는 80㎏짜리 1300가마를 생산해 60%를 가족회원들에게 판매했다.나머지는 생식회사와 삼성전기 등에 직거래를 통해 팔았다. 토고미마을 대표 한상렬(47)씨는 “가족회원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단계적으로 유기농 재배면적을 늘려가고 있다.”며 “현재 980여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2000여명으로 늘면 마을의 모든 농토가 유기농 재배지로 바뀌고 농촌과 도시가 어우러진 공동체 마을이 될 것”이라며 희망에 부풀어 있다. 무공해 유기농사를 도입하면서 수입은 4년 전보다 가구당 800만원 이상 증가했다.지난해에는 농사 하나만으로 가구당 3000여만원씩에 육박하는 수입을 올렸다.강원도 농가 평균 2100만원을 훨씬웃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성진(75) 노인회장은 “긴 장마 등 날씨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에도 우리 마을은 수입을 꽤 올렸다.”며 “이제는 청년들이 돌아오고 생기넘치는 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자연학교 운영 마을수입 7400여만원 토고미 마을은 농사 외에 그린투어리즘으로 짭짤한 농외소득을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폐교를 ‘토고미 자연학교’로 개조해 사계절 농촌관광 및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이곳에서는 농산물 파종에서부터 수확체험은 물론 짚공예,허수아비,메주,올챙이국수,두부 만들기와 메뚜기 잡기,나물캐기,초가지붕 이기,새끼꼬기,장담그기 등 찾아오는 도시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활동을 연중 실시한다. 계절에 맞게 이뤄지는 농사일에 참여시켜 농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체험토록 하고 있다.가족단위 또는 학생·직장인 등 50∼60명씩 단체로 찾아와 3∼4일 동안 머물며 농촌을 배운다.마을 앞을 흐르는 파포천과 마을 뒷산 언덕도 체험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맑은 파포천은 여름에 물고기잡이와 물놀이 장소로,겨울이면 썰매타기 장소로 인기다.지난 한해 동안 찾아온 외지인이 9000명을 넘었다. 지난해 자연학교에서 얻은 수입만 7400만원을 웃돌아 고스란히 마을주민들 몫으로 돌아갔다.마을사람들이 사무국장 등 관리요원과 청소 및 취사를 담당하는 일용직으로 고용되면서 취업효과와 부수입을 함께 올리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연간 마을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인건비만 4000만원이 넘는다.나머지는 마을발전기금으로 적립해 이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다.학생 대부분이 장학금 수혜자다. 외지에 나가 공부하는 학생들도 방학 때면 고향으로 돌아와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를 벌 수 있게 했다.진한 고향의 사랑을 맛보게 하려는 배려다. 마을 정미소와 자연학교 운영,외부에서 받아온 상금 등이 쌓여 지금은 마을공동기금이 2억 5000만원에 이른다.기금이 조금 더 모이면 마을 입구에 주차장과 공원을 조성하는 게 주민들의 꿈이다. 마을 출신의 유일한 공무원인 최수명(41·화천군 농업기술센터)씨는 “토고미 마을은 농산물시장이 완전 개방되고 수매제도가 없어진다 해도 걱정없다.”고 말했다. 글·사진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 ■ 울주 ‘친환경 쌀 생산단지'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복안리 들판에는 ‘친환경 쌀 생산단지’가 조성돼 있다.단지 규모는 국내에서 가장 넓은 15만평이다. 이 지역 두북농협(조합장 이장우)이 주도해 지난해 조성했다.두서면 신기·양지·음지·활천 등 4개 자연마을 63개 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곳 친환경 쌀 생산단지에서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다.대신 모내기 후 쌀겨를 뿌리는 ‘쌀겨농법’으로 벼를 재배한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벼 작황이 좋지 않았지만 이 단지에서는 평년을 웃도는 총 240t의 벼를 수확했다.농협과 농민들은 일반농법에 비해 영농비는 비슷한데 생산량은 10%쯤 많다고 귀띔했다. 쌀겨농법이란 기계를 이용해 쌀겨를 적당한 크기로 만든 뒤,모심기 한 논에 뿌려 벼를 재배하는 방식이다. 쌀겨 속 식물생장 억제물질인 아브시신산(식물호르몬)과 탄수화물,지방성분 등의 영향으로 미생물 분해작용이발생,잡초가 발아하지 못하거나 고사하기 때문에 제초제를 쓸 필요가 없다.쌀겨 속 탄수화물,무기질,비타민 등이 천천히 분해되면서 벼에 적절한 영양분을 공급해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벼가 튼튼하게 자란다.농약이 필요없을 정도로 병충해에 강하고 바람에도 잘 견딘다. 완전 무공해 방식으로 생산한 벼라서 수매가가 일반 벼보다 훨씬 비싸다.40㎏ 한 포대에 6만 3000∼6만 4000원으로 일반 벼보다 1만원 이상 비싼 셈이다.농협과 계약재배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매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벼를 심은 논에 자연산 미꾸라지가 많은 것도 일석이조.가을철 미꾸라지를 잡아 판 수입도 짭짤해 농가마다 평균 100만원에 이른다. 울산시와 울주군은 기계 구입비와 기술 개발비로 지난해 4000여만원을 지원하는 등 적극 뒷받침해주고 있다.쌀겨농법으로 수확한 벼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받았다.두북농협은 ‘황우쌀’이라는 상표를 붙여 울산지역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농협지점을 통해 판매한다.소비자 가격은 20㎏ 한포대에 5만 8000원.일반쌀(4만 8000원) 보다 1만원 더 비싸다. 백화점 매장 직원들은 “무공해 쌀인데다 밥맛이 워낙 좋아 한번 먹어 본 집에서는 단골로 찾는다.”고 말했다. 현재 두북농협 저온창고에는 쌀겨로 재배한 벼가 120t쯤 남아 있다.두북농협은 울산지역에만 공급해도 오는 6월 말이면 바닥날 것으로 예상한다. 농협은 지난해 시험재배를 통해 지역환경에 가장 적합한 품종을 선정해 뒀다.볍씨도 충분하다.따라서 올해는 더욱 풍성한 수확이 기대된다. 두북농협 서정익(45) 상무는 “농업시장 개방으로 갈수록 어려운 농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친환경·과학영농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쌀겨농법이 벼농사로는 가장 좋은 친환경 농법”이라고 자랑했다. 처음 시도하는 농법이라 서 상무,농협 농업기술지도사와 울산시·울주군 공무원 등은 농민들에게 사전준비를 철저히 시켰다.지난해 2월 충남 홍성군 농업기술센터가 일본의 쌀겨 벼 재배전문가를 초청해 실시한 교육에 참가해 강의를 들었다.농업진흥청 전문가를 초청해 농민들과 함께 교육을 받기도 했다. 황우쌀 생산단지 작목반장 이형우(53·두서면 복안리)씨는 “작목반 농민들도 앞으로 친환경 과학농사가 아니면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쌀겨농법 벼농사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東獨협동농장 농지 몰수 위법”유럽인권재판소 “원 소유주에게 보상” 판결

    |베를린 연합|유럽인권재판소는 22일 독일 정부가 통일 이후 옛 동독 농민으로부터 무상으로 토지를 몰수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통일 이후 협동농장의 농지와 산지 일부를 몰수당했던 약 7만명의 옛 동독지역 농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줄줄이 배상 소송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소는 “독일이 통일 이후 특수한 상황에 있었으며,통일 독일 의회는 옛 동독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폐기할 권리도 갖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공중의 이익과 개인 기본권리 보호간의 공정한 균형 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소는 이어 “독일 의회가 토지 몰수 관련법을 제정하더라도 소유주에게 보상은 해줬어야 했다.”면서 “따라서 독일의 관련 법률은 유럽인권협약의 사유재산 보호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옛 동독 정부는 1945년 토지개혁을 실시해 농민들에게 농지를 분배했으나 이후 협동농장제도를 도입하면서 소유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동독 최초로 민주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는 1990년 3월15일협동농장에 사실상 귀속돼 있던 원소유주에게 토지 소유권을 모두 되돌려 주는 일명 ‘모들로브’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1990년 10월3일 동독은 서독으로 흡수통일됐으며,1992년 통일 독일 의회는 협동농장 토지 원소유자들 가운데 모들로브법 제정 이전까지 그 땅에서 실제 농사를 지어온 사람이나 후손들에게만 소유권을 인정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다른 곳으로 이주해 살거나 다른 직업을 갖고 있던 원소유주 및 후손들의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고 무상으로 몰수,주정부 소유가 됐다. 이에 반발한 동독지역 농민 5명은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0년 독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내리자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독일은 유럽인권협약에 서명했기 때문에 유럽인권재판소가 이날 재판관 7명의 만장일치로 무상 몰수를 위법이라고 한 판결을 준수해야 한다. 협동농장 농토를 몰수당한 농민은 약 7만명이며,이번 판결에 따른 배상액은 최소 10억유로,많으면 수십억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독일 정부가 이번 판결에 불복해 앞으로3개월 내에 17명으로 구성되는 유럽인권재판소 대배심에 항소할 수 있으나 전문가들은 판결이 번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독일 언론은 전했다. 한편 독일 정부는 이번 판결이 나자 옛 동독 공산정권이 몰수해 국유화했던 재산과 관련한 소송들의 귀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독일은 통일 후 약 500억유로 이상의 옛 동독 정부 소유 산업체와 금융기관 등을 해당 지역 주정부 소유로 돌렸으며,현재 대부분 민영화를 통한 매각작업이 끝난 상태다. 이에 대해 옛 동독 정권에 몰수되기 이전의 원소유주들은 부당한 몰수였다면서 재산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해 현재 진행 중이다.
  • 설특집 We/Let’s play

    “올 설에는 손자부터 할아버지까지 도란도란 둘러앉아 보드게임에 빠져봅시다.” 보드게임은 여러 사람이 모여 카드,주사위,말판 등을 이용해 진행하는 모든 게임을 가리킨다. ■ ‘고스톱 스톱’ 보드게임 스타트 ●보난자-콩농사 짓기 풋내기 농부가 된 당신.콩이 그려진 카드를 받아 콩을 키워 돈을 벌 수 있다.그렇지만 밭에 심은 콩과 다른 종류의 콩이 그려진 카드가 나오면 밭을 갈아엎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 한다.대인관계까지 총동원해 치열하게 협상을 벌이는 두뇌싸움이 흥미진진하다.2∼7인용이 2만원. ●젠가 방법도,규칙도 간단한 ‘젠가’는 어린이가 있는 가족에게 잘 어울린다.나무토막을 3개씩 묶어 가지런히 쌓아 탑을 올린 뒤 한 사람씩 탑에서 나무토막을 하나씩 뽑는다.도중에 탑을 무너지게 한 사람이 벌칙을 받게 된다.2∼8인용을 2만 25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할리 갈리 “세상에는 ‘할리 갈리’를 잘 하거나 못 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보드게임 마니아 사이에 떠도는 말이다.딸기·사과 같은 과일이 그려진 카드를 차례로한장씩 펼친다.같은 과일카드에 적힌 숫자의 합이 5가 되면 테이블 가운데 있는 종을 친다.종을 빨리 친 사람이 카드를 갖게 되고,카드를 많이 모으면 이긴다.2∼6인용이 2만 2000원. ●부루마블 일단 종이돈을 나눠 갖는다.주사위를 던져 외국 도시이름이 죽 적혀있는 판을 돌아다니는 방식이다.돈이 있으면 땅을 사고,빌딩과 호텔을 지어둔다.다른 사람이 지나갈 때 통행료와 숙박비를 짭짤하게 챙길 수 있다.파산하면 게임이 끝나니까 조심해야 한다.2∼4인용이 2만 4500원. 김효섭기자 newworld@ ■ 원숭이 소재게임 인기만발 원숭이해를 맞아 원숭이를 소재로 삼은 게임들이 주목을 끌고 있다. 30대라면 누구나 80년대 학교 근처 오락실에서 만나봤을 법한 친근한 캐릭터 ‘동키콩’이 휴대용 겜보이 속에서 부활했다.‘동키콩’은 지난 1983년 일본의 닌텐도사에서 출시,20년 남짓 게임 마니아들에게 사랑을 받은 원조 원숭이 캐릭터.게임에서 ‘슈퍼 동키콩’이 정글 속 모험을 펼치는 동안 부모와 아이는 시간의 벽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콘솔게임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가진 플레이스테이션2에도 원숭이 게임이 있다.‘사르겟츠’(원숭이를 잡아라-PS2)는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온통 원숭이 판이다.외계인의 조종을 받는 원숭이들이 지구를 정복하기 전에 이들을 그물로 잡아야 한다.일본에서 직수입된 게임CD가 중고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 사이트의 플래시 게임 속에도 원숭이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원숭이 뺨때리기’,‘원숭이축구’,‘정글몽키즈’ 등이 대표적이다.‘원숭이 뺨때리기’는 마우스를 이용해 손을 살살 흔들다가 잽싸게 원숭이 인형을 때리는 게임.스트레스를 풀기에 그만이다.이 외에도 세가의 게임큐브용 ‘슈퍼 몽키볼2’ 등 기대되는 원숭이 게임들이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원숭이 게임이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해 게임전문기자 지봉철(32)씨는 “원숭이가 친근감 있고 유머스러운 모습으로 거부감이 없는 데다 인간의 행동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 ■ 모바일 게임 100배 즐기기 그리운 가족을 만나러 고향에 가는 길이지만 늘 그렇듯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되기 일쑤다. 올해도 막히는 도로탓에 짜증 날 수밖에 없다면 손쉽게 도로위에서 즐길 수 있는 모바일 게임에 도움을 요청해 보자. ●원숭이 띠는 2배 더 이쓰리넷의 ‘동전쌓기’는 2004년 갑신년을 맞아 SKT 유저를 대상으로 이벤트 ‘원숭이 띠는 3배를 가져라’를 실시한다.1위부터 100위까지의 이용자에게는 게임에서 쌓은 동전만큼 실제 현금으로 지급한다.특히 원숭이띠인 유저에게는 3배의 현금을 지급한다. ●‘바퀴벌레’ 터지는 맛 그만 매직하우스테크놀로지의 ‘바퀴바퀴대마왕’은 돌연변이 바퀴벌레들을 무찌르고 납치당한 여자친구를 되찾는 액션게임.2002년 당시 출시된 전작에 비해 바퀴벌레를 때리는 ‘손맛’ 부분에 중점을 두는 등 업그레이드됐다. ●모바일 맞고·맞포커 모바일 원커뮤니케이션의 ‘팡팡 맞고’는 1대1의 모바일 맞고 게임.상대방이 먹은 패,자신이 먹은 패,점수 등이 한 화면에 모두 표시돼 편리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특히 일반모드 외에 제공되는 팡팡모드를 선택하면 연승을 할수록 점당 고스톱 머니가 배로 증가해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장감을 만끽할 수 있다. 모바일 포커 게임으로는 게임빌의 ‘스피드 맞포커’가 그럴듯하다.두명이 승부를 벌이는 1대1 모바일 포커게임인 점을 감안해 1인칭시점의 화면으로 실제 느낌을 강조했다.상대편을 ‘올인’시켜 승부를 확실히 결정지을 수 있는 ‘올인 시스템’도 게임에 재미를 더한다. ●무한거리? 무한대전 ‘삼국지 무한대전’은 서비스 시작 3주 만에 인기게임 순위에서 2주 연속 1위에 오른 화제의 게임.게임을 위해 무려 8개의 파일을 다운로드해야 하기 때문에 짧은 귀경길보다는 먼거리 여행에 적격이다.게이머는 촉의 관우와 조자룡,위의 하후돈과 전위,오의 주유와 육손 등 6명의 장수 중 하나를 골라 중국의 요새가 묘사된 지도에서 모험을 벌인다.잘 키운 장수를 다른 게이머의 장수와 맞대결시키는 것이 백미. 채수범기자 lokvid@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6)백제인의 사랑 질표율사(하)

    삼국시대 후반 백제는 신라와의 지루한 전쟁으로 몹시 불우한 시대를 이어갔다. 신라는 백제를 넘어서 당나라와의 보다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국력을 키우고 싶어했고,그러자면 백제는 신라에 가장 골치 아픈 장애물이 되었다.두 나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다.신라의 집요한 침략전쟁 속에서 백제는 좌절하지 않기 위해 미륵신앙을 껴안았다.단순한 전쟁 회피나 불안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서가 아니라 신라의 군사 공격을 꺾어 응징하는 힘과 근원적으로 죽고 죽이는 살상전이 없는 세계에 태어나 살고 싶다는 구원을 향한 절절한 신앙이었다. 미륵신앙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백제인들은 백제 땅이 미륵부처가 강림하실 약속의 땅으로 선택되기를 희망하면서 미륵사를 크게 짓고 미륵부처가 오시기를 기다렸다.미륵사가 삼국시대를 통하여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은 백제인들의 그같은 소망이 투영된 백제인의 마음으로 이룩한 신앙의 결정체였다. 미륵신앙은 100년이 넘도록 뜨겁게 달아올랐다.온 나라가 미륵신앙의 성지였다. 이같은백제의 미륵신앙을 유심히 살펴보던 신라가 뒤늦게야 슬며시 미륵사상을 배워가더니 백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미륵신앙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다. ●신라에 정복 뒤 좌절빠진 백제 유민 화랑도와 미륵사상을 연결시켜 현실적인 국력으로 바꿔낸 것이다.미륵신앙을 표방하는 사찰을 짓기도 했지만 미륵사상이 현실화된 화랑도를 통하여 군사력을 극대화시킨 신라는 그 힘을 바탕으로 삼아 백제를 정복해버렸다. 어이없게도 신라의 지배 아래로 떨어진 백제는 그들의 염원으로 이룩한 미륵성지들과 함께 소망의 땅에서 절망의 땅으로 쫓겨난 셈이 되고 말았다. 좌절감은 크고 깊었다.이제 백제인들은 백제 유민이란 말로 바뀌는 가혹한 운명에 놓였다.그 때부터 처절한 저항의 날들이 시작되고,원한 또한 깊어졌지만 한번 뒤바뀐 운명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신라는 아주 천천히 백제 땅과 사람을 신라의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갔다.먼저 백제의 역사를 신라기년(新羅紀年)으로 고쳐 신라기(新羅紀)에 삽입시켰다.백제를 정복한 지 100년이 가까워진 757년(경덕왕 16) 진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땅 이름을 원래 지명인 두내산현에서 만경(萬頃)으로 바꾸었다.이는 정복지 백제에 대한 신라의 완전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진표는 이제 만경들판에서도 그치지 않는 백제유민들의 원한과 저주의 나날들이 미륵신앙의 힘으로 해원되어 신라와의 상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이같은 격변속에서 진표는 아버지와 진지한 의논 끝에 금산사(金山寺)의 숭제(崇濟)법사를 의지하여 출가하기로 결심했다. ●유민들 고난 해결위해 ‘망신참회법’ 수행 숭제법사 또한 백제 유민으로서 일찍 당나라 정토종을 이끌던 선도(善導·613∼681)화상 법맥을 이어온 스님이었다.이제 진표는 스님이 되어 숭제법사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숭제법사는 진표스님께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을 주면서 각별한 수행을 권했다.점찰경이라고 부르는 이 경전은 말법시대(末法時代)가 되면 불교를 신앙하는 이들이 많은 어려움과 장애에 부닥쳐 수행에 곤경을 겪게 되고,산란한 마음때문에 갈피를 잡지못할 경우가 많게 된다고 했다.이때 숙세의 선악업보가 현재의 고락길흉을 점찰하여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안락을 얻도록 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숭제법사는 진표스님에게 계법(戒法)을 지니고 미륵과 지장보살에게 참회하여 직접계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할 것을 당부했다. 진표스님은 백제 유민들이 100년 가까이 겪고 있는 그 고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과 능력을 구하기 위해 17년 간의 긴 고행에 돌입했다.육신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수행법의 하나인 망신참회법(亡身懺悔法)을 선택했다.육신을 버리지 않고는 깨달아지지 않는 수행법이었다.백제 유민들이 한 세기토록 겪은 육신의 고통을 자신의 한 몸으로 다 받아내겠다는 각오였다. 참회의 참(懺)은 산스크리트 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비는 것,뉘우치는 것을 뜻한다.내가 범한 죄를 부처 앞에서 고백하는 것,회개한다는 것인데,원시불교에서 비구는 자기가 범한 죄를 석가세존 또는 장로비구에게 고백하여 심판받도록 되어 있었다.비구는 보름마다 모여서 우포자타(uposatha·포살·布薩)라는 의식을 행하고,계율의 조목을 읽힐 때 마다 죄가 있을 때는 스스로 말하고 일어서야 했다.이렇듯 대승불교에서는 자기의 죄를 인정한 자는 모든 부처 앞에 참회하고,온몸을 던져 진리에 귀의하는 맹세를 하며,부처의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의 잘못을 거두어주는 은혜를 입음으로써 죄의 공포에서 해방된다고 했다. 이같은 의식의 궁극 목표는 죄의식이 전혀없어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 하였다. 진표스님이 이같은 망신참회법을 선택한 것은 직접 자신이 진리를 체험하여 확신하기 위해서였다.그런 뒤 백제 유민들에게 참회의 필요성을 말하고,참회를 통하여 진정한 해방을 누리고 자유를 숨쉬고 사는 삶을 권하려는 것이었다.육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참회법은 일찍이 석가모니 시대부터 있어왔다.하루에 한 끼,이틀에 한 끼,사흘에 한 끼를 먹거나,나무 열매나 꽃으로 요기를 하거나,한 다리를 들고서 있거나,진흙 먼지 속에 누워있거나,가시덤불 위에 누워있거나,물과 불 위에 누워있거나,어깨쭉지의 살에 구멍을 뚫고 그 속으로 끈을 밀어 넣어 나무가지에다 묶어놓고 피를 흘리며 매달려 있는등의 육신을 고통속으로 몰아 넣어 그 고통을 잊어버림으로써 위대한 정신을 깨달으려는 수행법이었다. 진표스님의 망신참회법은 이들 전통적 수행법보다 훨씬 더 처절했다. 760년(경덕왕 19) 쌀 20말을 쪄서 말린 것을 가지고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면서 백제 유민의 고통을 구원할 수 있는 깨달음을 구하지 않고는 살아서 그 방문을 걸어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미륵부처 앞에서 부지런히 계법을 구했다.대부분의 출가승려들이 해온 전통적 수행법에 따른 정진이었다.그러나 3년이 넘도록 미륵불은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았다.그때 진표스님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경전에 쓰여있는 수행법에 따라 참회하는 것만으로 백제 유민들의 그 오래고 참혹한 고난이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신라가 백제를 정복한 것은 땅 위에 백제 한 나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서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인정할 때는 피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상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우주 모든 것의 상관성 깨달아 진표스님이 망신참회법 수행을 결심한 것은 신라의 백제 침공을 꾸짖고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그보다는 백제인들이 한 세기가 넘도록 미륵신앙을 지니고 혼신껏 기도했지만 그에 대한 회답이 신라의 지배 아래서 굴욕적인 삶을 살도록 한 것이라면,왜 그래야 했는지를 알고 싶었으며,장차 백제유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원한과 저주의 불길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진표스님은 자신의 고통이 모든 백제유민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으며,그 끈은 모든 신라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주에서 홀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없고,태어나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있다는 깨달음이 진표스님의 확신으로 차올랐다.백제인들의 고통이 소멸되지 않고는 자신이 결코 안락할 수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이제 남은 문제는 백제인들의 고통을 없애줄 방법을 터득하는 일이었다.그 방법은 수행자 자신의 죄의식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참회법으로는 불가능한 차원에 닿아야만 깨달을 수 있음을 알고는 육신을 버리기로 했다.온 우주는 마음의 문제이지 육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장한 결심으로 21일 동안 육신을 던져넣는 참회수행을 단행했다.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진표스님을 안아 바위 위에 올려 놓고 사라졌다.다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수행을 강행했다.3일째 되자 팔과 다리가 부러져 일어서 걸을 수도,물건을 쥐기도 어려웠다.이제는 온몸을 굴려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참회수행을 계속했다.오직 마음으로 미륵을 불러 대답을 원했다.차츰 고통을 잊는 상태로 몰입했다.이제 온전한 것은 머리 뿐이었다.머리 마저 깨뜨려버림으로써 살고죽는 불편함마저 초월하고 싶었다.7일째 되던 날 밤 지장보살이 나타나 팔과 다리를 고쳐주고,가사와 발우를 전했다.수기(授記)가 내려진 것이다.그때부터 새로운 수행을 시작했다.21일을 다 채웠을 때 그토록 갈망했던 고통을 치유시키는 지혜가 터득되었다.금산사로 다시 돌아온 것은 29세 때였다.금산사에다 청동으로 빚은 미륵장육상을 모시고 그 아래서 외치기 시작했다.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것이다. ●신라 지도자들에도 참회 설파 만경들에서 농사짓던 이들이 미륵불을 기다렸지만 미륵불이 오지 않는 까닭을 말하면서 진정한 미륵을 만날 수 있는 비법을 설파했다.백제인의 마음속에는 신라를 향한 증오와 저주로 꽉 차있기 때문에 미륵의 소식이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이미 미륵은 와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했다.증오와 원한과 저주로 피흘리고 죽이는 일이 그치지 않는 한 미륵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설득했다.신라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백제인들뿐이며,백제인의 용서를 통해서만 신라가 나라다울 수 있고,신라가 나라다워야만 백제인의 마음에서 증오와 저주가 사라질 수 있으며,그래야만 공존과 상생을 이룰 수 있다고 절규했다. 신라의 지도자들을 향해서도 외쳤다.백제인을 능멸하고,빼앗고,죽이는 통치법으로는 신라도 끝없는 고난속으로 빠져들 뿐이며,오만과 편견과 무력으로 이룬 한 때의 번영이 더 큰 재앙으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면 참회하는 길뿐임을 설파했다. 신라인의 참회가 있어야만 백제인과 공존할 수 있음을 타일렀다.마침내 신라의 왕과 귀족,지도자들이 진표스님의 법문에 무릎을 꿇었다.진정한 통일신라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진표스님의 온 몸을 던진 백제 사랑은 한 시대의 고난과 불행을 극복해 내는 위대한 지도자의 참모습이었다.
  • 수도권 농지가 떠오른다

    농지제도의 틀이 바뀌면서 수도권 주변 농지가 새 투자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도권 주변 농지가 개발 가능한 생산관리지역으로 바뀌어 주말농장 등의 개발이 쉬워지기 때문이다.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비농업인의 농지소유 한도가 300평에서 900평으로 늘어나 외지인 투자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돈 되는 농지 따로 있다 모든 농지가 규제 대상에서 풀리는 것은 아니다. 도시지역과 붙어 있는 농업진흥지역 밖의 땅이 우선 규제 완화 대상이다.전국적으로 80만㏊에 이른다.그동안 도시 주변에 붙어 있는 농지는 농업 외의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었다.사실상 개발이 허용되지 않아 비닐하우스로 뒤덮이거나 불법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일부 개발이 허용되더라도 엄격한 절차와 심사를 거쳐야 했다. 지역특구 농지도 투자해볼 만하다.7월부터 도입되는 지역특구는 농지 거래가 자유로워지고 전용제한도 대폭 풀린다.포도특구(경북 영천),유기농업특구(전남 강진),사과특구(충남 예산) 등이다. 사방으로 개발 압력을 받아온 대도시와 주변 작은 도시 사이에있는 농지를 눈여겨 볼만하다.‘도시 속의 농촌마을’에 대해 농지 개발 규제와 소유 제한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건교부도 전체 농업진흥지역의 5%에 해당하는 도시(계획)지역의 농지는 적극적으로 개발을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외지인 투자 가능,수요 증가 300평으로 제한됐던 농지취득 제한이 대폭 완화된다.주말 영농이나 체험영농 등 농사에 직접 활용되는 땅은 외지인이 900평까지 살 수 있다.농지 수요가 늘어나고 도시인들의 농지구입이 그만큼 쉬워진다는 얘기다. 경기도 양평지역은 농지규제 완화 방침이 나온 뒤 도시인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오랫동안 쌓여 있던 매물이 처분되기 시작했다. 고복환 한국개발컨설팅 사장은 “농지 완화 방침 발표 이후 서울 투자자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주택ㆍ공장 등을 짓기 위한 농지전용 면적제한도 폐지된다.주택사업이나 공장 건설이 가능해져 대규모 농지 거래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어느 곳이 괜찮나 수도권에서는 경기도 양평군 일대가 투자 유망지역이다.강이 보이거나계곡을 끼고 있는 땅이라면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양평균 양서면 대십리 남한강 주변 농지는 평당 280만∼300만원을 호가한다.강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조망권이 좋으면 80만∼100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펜션,전원주택단지 개발이 한창인 서종면 문호리 일대는 양서면보다는 값이 싸다.강이 보이면 100만원,계곡 주변은 80만원에 거래된다. 다만 양평군이 조례로 가족 전원이 이사해 6개월 이상 거주해야 허가를 내주고,허가는 한 차례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과천,성남,용인 주변 농지도 투자 유망지역이다.대전·청주시 주변 농지도 입질이 늘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5)악어와 악어새에서 반목과 불신의 관계로-농협대해부

    “농민이 잘 되면 농협이 잘 되지만,농협이 잘 된다고 농민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16일 농협중앙회 관계자가 농민과 농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는 분명하지만,시·군 단위 지역조합(개별법인)과 농협중앙회의 이원적 조직운영 하에서 농협중앙회가 농민을 직접 도울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한 말이다.1997년,사회구조 전반에 폭풍을 몰고 오다시피했던 외환위기를 고비로 농민과 농협(이하 지역조합)의 ‘악어와 악어새’ 관계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살인금리에 연체이자,논·밭 등 부동산과 농산물값 폭락,사회전반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으로 부실채권에 대한 가압류와 경매가 쏟아지면서 둘 사이는 불신과 반목으로 치닫고 있다. 농민회원이나 농업인들은 내놓고 “농민들은 말라죽는데 조합 임원들은 돈만 챙긴다.”며 불만투성이다.농업인이 주인인 농협은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대출이자,예금과 대출마진,판매(경제)사업 등으로 수익을 창출해 되돌려 준다는 게 설립 취지인데,결국 농민에게 돌려준 게 뭐냐는얘기다. ●“조합장 연봉 6천만~8천만원” 박모(46·경북 군위군 효령면)씨는 ‘농협 맨’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농협 이야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이다.논밭을 담보로 돈을 빌린 뒤 이자를 못갚아 애태우는데 ‘담보물을 경매처분하겠다.’는 독촉을 시도 때도 없이 보내기 때문이다. 청도군 금천면 농민 30여명은 지난해 말 금천농협 앞에서 집단시위를 벌였다.시위에 참여한 한 농업인은 “농민들은 부채에 깔려 죽을 판인데,농협 직원들과 조합장의 연봉이 6000만∼8000만원이나 된다니 말이나 되느냐.그것도 부족해 해마다 임금을 6∼10%씩 올리고 있다.”며 목청을 높였다. 구미 장천농협 대의원들은 조합개혁을 둘러싸고 농협과 한치 양보도 없이 맞서고 있다.대의원들은 최근 전체 조합원 1200여명 중 915명의 일괄 탈퇴서를 조합에 제출,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조합 해산까지 불사하겠다는 태도다.대의원들은 임원 구조조정,경영책임자 문책,인건비 하향,노조 해산 등을 요구하고 있다.특히 장천농협은 올 사업계획서에 임원 급여로 조합장 7100만원,전무 8100만원,상무(3명)6400만∼7800만원,부장(2명)6100만∼6200만원을 반영하고 있다. 전 직원 19명의 평균 연봉이 5700만원이라고 대의원협의회측은 밝혔다. 농업인들이 선호하는 정책자금 대출의 경우 조합원은 1년(일반자금은 6개월)마다,비조합원은 3개월,6개월 단위로 이자를 내야 한다.조합원이 가구당 1명꼴이니 남편이 대출한도를 넘어 집사람 앞으로 받으면 조합원 요건이 안 된다.농협 채권팀은 정해진 기간 안에 이자를 못내면 연체이자 독촉장이 나가고 3개월 동안 유예기간을 주면서 ‘이자에 대한 이자’를 받고,이 기한마저 넘기면 ‘원금에 대한 이자’까지 합쳐서 받는다.연체 이자율은 담보대출이 15%이고 신용대출은 18%나 된다. ●농협만 배불러서야 조합은 지역조합 1246개,품목조합(인삼조합) 89개 등 모두 1355개다.이 중 부실이 우려되는 곳이 농협 48개,축협 53개,인삼협 1개 등 102개(7.4%)로 집계된다. 외환위기 때부터 2000년 말까지 3년 동안 전국 지역조합의 부실채권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조합마다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짧은 시간에 적립하다 보니 당기손실이 커졌다.농협중앙회에 따르면 부실 우려가 있는 조합(169개)의 연체 채권액이 97년 말 3조 8657억원에서 2000년 말 5조 3829억원으로 39.2%나 증가했다.무수익 채권도 같은 기간 대비 59.7%(1조 2609억원)나 늘었다. 지난해 말 전남도내 196개 지역농협은 외관상으로는 흑자 결산했다.하지만 부채 연체율이 6∼20%를 넘고 있다.연체율은 도시권 소재 농협이 낮고 소득원이 없는 농촌으로 갈수록 높아져 곤궁한 농촌 실정을 보여준다. 충남도내에서도 지역조합 167개 가운데 경영부실 등으로 지난해 27개 조합이 문을 닫았다.9개는 통·폐합 위기다.충북도 87개 지역조합 중 2개 조합이 파산절차를 밟고 있다.1년여 만에 4개가 정리됐다. ●부실 원인은 조합장 그동안 농민회는 조합 직원의 체력단련비 등 급여성 경비를 없애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경영능력이 없는 인물이 조합장에 당선되면 조합 부실화율이 높다고도 경고했다.40대 농민은 “많게는 10억원 이상을 쓰고 조합장이 되는데,맘이 콩밭에 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농민회장은 “수백억원대의 농협 살림살이를 전문가도 아닌 대의원들이 예산·결산 총회를 하루 만에 끝내는 현실에서 어떻게 감시기능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맞서 농협측은 “3개월마다 분기별로 경영실태 등 결산서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분식회계 등은 꿈도 못꾼다.”고 말했다.이미 집행된 정책자금은 9조원에 이른다. 특별취재팀 대구 김상화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기자 ■정책자금의 허와 실 문민정부는 1993년 출범 이후 농·어촌 구조개선을 외치며 무려 5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정부는 보조를 구실로 은근히 정책자금을 쓰도록 권했고,이렇게 나간 돈은 몇해 지나자 새끼까지 쳐서 농가부채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정책자금은 영세 농업인이 자금을 필요로 할 때 사업 타당성과 영농능력을 고려해 정부가 빌려주는 돈이다.용도별로 너무나 다양해 줄잡아도 100가지를 넘어 일원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연 이자율이 4.0%로 비교적 낮고 시설투자비의 경우 3년이나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 조건이어서 농·어업인들에게는 단비와도 같다.농·어촌 구조개선자금,농·축산 경영자금,농기계 구입자금 등이 여기에 속한다.양파·마늘 농사를 짓는 박안수(44·전남 무안군 삼향면 평산1구)씨는 “2차례에 걸쳐 퇴비사와 대형 트랙터를 사느라 정책자금 2500만원을 빌려 해결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이같은 자금은 통상 보조액수가 전체 사업비의 절반에도 못미친다.따라서 사업비의 30∼40%는 융자,10∼20%는 자부담이어서 농업인들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쓰려는 사람에 비해 자금이 달려 혜택범위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불평도 많다.게다가 농협창구를 통해 나간 정책자금의 경우,상환기간이 돌아오면 농협이 정부에 3.85% 이자를 쳐서 대신 갚아주고 10% 이상 연체이자를 농민에게 받는다. ●시설투자비만 대출… 운영비 빚으로 50대 한 농민은 “농어촌진흥자금(2400만원)으로 논을 샀는데 이자율(3%)이 싼 데 비해 상환기간(3년 거치,4년 상환)이 너무 짧아 원금과 이자 등 연말에 900만원가량을 갚다 보니 허리가 휜다.”며 짧은 상환기간 문제를 제기했다. 방울토마토 하우스를 하는 송모(47·전남 무안군 삼향면)씨는 “그동안 정책자금을 신청하면 행정기관에서 대출 대상자를 선정하고 이듬해에야 자금이 나오기 때문에 정작 돈되는 작물을 심을 기회를 놓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20년째 딸기농사에 매달린 최모(58·담양군 봉산면)씨는 “정책자금이라는 게 시설할 때 단 한 번에 그쳐 운영자금은 빚을 내는 식이고,1∼2년 값이라도 폭락하면 빚더미에 올라앉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방울토마토를 재배중인 유모(43·충북 옥천군 안남면)씨는 “정책자금을 빌려준 뒤 운영비 지원이라든가 생산량 파악 등 정부의 사후관리가 없어 아쉽다.”고 꼬집었다. ●생산량 파악등 사후관리도 했으면 그래서 2000년부터 이런 단점을 보완해서 연속성을 가진 ‘농업종합자금’이 나왔다.대출 주체도 행정기관이 아닌 농협이다.신청하면 농협이 심사해 한 달 안에 필요자금의 100%까지 대출해준다.시설자금은 물론 개·보수자금,운영자금까지 대출 가능하다. 농협 전남도지부 관계자는 “지금껏 농업종합자금을 쓴 농업인들 가운데 연체자는 단 한 명도 없다.”며 가능성을 강조했다.지난해 전남도내에서 농업종합자금으로 750억원을 대출했고 올해는 1000억원을 빌려준다. 특별취재팀 ■중앙회 어느 간부의 고백 “농민들이 그렇게 된 데는 우리의 책임도 크지요.하지만 하느라고 했는데도 농촌의 현실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할 말이 없네요.” 농협중앙회의 한 간부는 16일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지난 10여년간 수십조원을 농촌에 쓸어붓다시피했는데….”라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그는 농협중앙회로서는 시·군단위의 지역조합에 대해 인사권 등 특별한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아 개별조합의 부실에 적극 개입할 수 없는 애로를 강조했다.농협중앙회가 지역조합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연간 1조 6000억원 정도를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것인데,개별조합에 돌아가는 혜택은 기껏해야 평균 6000만∼7000만원(전국 1300여개 조합이 연간 이자분 700억∼800억원을 나눠갖는 수준) 정도여서 큰 도움은 안 된다는 얘기였다.한마디로 주는 쪽은 ‘큰 돈’인데농민들로서는 도움을 받으나마나 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수십조원’이라는 정책자금도 농민들이 빌려쓰고 갚은 뒤,이 돈이 다시 투·융자로 쓰이면 이를 정책자금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실제 정책자금 규모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적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더미 같은 농가부채에다 급격한 농촌 노령화·공동화,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자유무역협정(FTA) 등 국내외에서 사정없이 몰아치는 파고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져내리는 우리 농촌을 정부 못지않게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는 것은 농협일 것”이라며 “어렵다고 손을 놓을 것이 아니라 각종 사업 성과가 농가소득과 농업인들의 편익증진에 직결될 수 있도록 사업체계를 바꾸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조합육성을 위한 자금지원을 대폭 늘리고 농가소득 증대와 농산물 제값 받기를 위해 규모화된 산지 조합을 적극 육성하며,대량 수요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농촌의 어려움으로 농협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폄하하기보다는 농업인과 농협이 ‘윈·윈’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주말엔 가족과 함께 농장으로/서울시, 年2만5000원에 임대

    가족단위의 실속파 나들이객이라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에 신청해 봄직하다. 임대료가 민간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의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고,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은 유기농산물을 추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팔당 상류지역에서 운영중인 ‘하이서울 친환경농장’을 올해부터 확대 운영키로 하고,참가신청을 받는다고 16일 밝혔다. 시가 2000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하이서울 친환경농장은 지난해 4100계좌(계좌당 5평)에서 올해는 경기 남양주·광주시와 양평군 등 11곳 5000계좌로 늘었다. 계좌당 임대료는 연간 2만 5000원으로 민간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 임대료(평균 7만∼8만원)의 30% 수준이다.상추와 쑥갓,열무,배추,무 등의 종자와 유기질 퇴비를 무료로 지원하고,농사경험이 없는 시민에게는 영농방법을 알려준다. 특히 친환경농장은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인 팔당상수원의 수질보전을 위해 조성됐기 때문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아 무공해 농산물을 직접 가꿀 수 있다. 희망자는 시 홈페이지(www.seoul.go.kr)나 전화(02-3707-9385∼6)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장세훈기자
  • 노점상 자리 없나요?/불황에 실직자·농민까지 나서… 서울 2만5000개

    경기침체로 실직자,농민들까지 노점상으로 변신하면서 도심 거리마다 노점상들이 북적이고 있다.1997년 외환위기 직후보다 노점상들이 더 많아진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전형적인 포장마차 대신 차량을 이용한 이른바 ‘떴다방’이 사람들이 몰리는 번화가뿐만 아니라 주택가까지 번져나가는 추세다. ●노점상 늘고 수입은 절반 서울시는 현재 시내에 1만 8000개의 노점상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하지만 전국노점상협회는 최소 2만 5000개가 있다고 주장한다.단속을 피하기 위해 급속히 늘고 있는 떴다방을 포함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노점상협회 홍웅식 조직국장은 “현재 노점상 수는 외환위기 직후 수준을 회복했다.”면서 “특히 지난 2001∼2002년 2만개를 밑돌던 노점상이 증가 추세에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욱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특히 사람들이 몰리는 이른바 ‘노른자위’ 자리는 기존의 노점상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떴다방은 주로 대규모 아파트단지 등 주택가에 자리잡는다.때문에 인근 상가 상인들과의 신경전도 만만치 않다. 최근 실직한 뒤 목동아파트 단지에 떴다방을 차린 김모(51)씨는 “밤샘영업을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노점상과 경기침체,강화된 단속 때문에 수입이 적어 다른 일을 찾아야 할 판”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부산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서면 롯데백화점 주변의 노점상 박모(44)씨는 “모자나 장갑 등 겨울용품조차 안 팔린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택가 차량이용 ‘떴다방' 늘어 지방도시는 실직자뿐만 아니라,농업 실패로 농촌을 등진 농민들이 차린 노점상도 증가하고 있다. 1∼2년 전 4000여곳이던 광주지역 노점상 수는 현재 5000여곳에 이른다. 지난해 전남 나주에서 하우스 농사를 짓다 빚 때문에 광주로 이사한 이모(49)씨는 “처음에는 공사판을 전전하며 막노동으로 네 가족 생계를 꾸렸지만,이마저도 어려워 붕어빵 장사에 나섰다.”고 털어놨다. 홍 국장은 “노점상을 차리기 위한 문의전화가 외환위기 당시보다 2배 이상 많다.”면서 “본부의 경우 하루 평균 문의전화가 15∼20통이며,전국 70개 지역연합회를 포함하면 수백통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4)일년내내 일해도 남는게 없어-어느 소득작목 농가의 눈물

    시쳇말로 ‘골병’이 든 마을이 있다.수십년씩 농사일에 매달린 농사꾼치고 신경통이 없을 리 만무지만,무릎 관절통에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유난히 많다.집안에는 몸에 붙이는 파스가 통째로 있고,머리 아플 때 먹는 항생제는 농가의 필수품이다. ●쥔 건 없고 몸만 망가져 전남 보성군 조성면 귀산리 수당·귀산마을.하우스(온상)를 가장 먼저 시작한 하우스 ‘원조마을’이라고 소문난 곳이다.주민들은 “아이고! 쥔 건 없고 몸뗑이만 망가졌지.다 하우스병이제,뭐.”라며 스스로를 진단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30여 농가는 여전히 방울토마토가 주 소득원이다.마을에서는 1988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방울토마토를 재배했다는 자부심이 남다르다.당시 방울토마토를 이고 지고 서울이나 광주로 가서 팔 때면 “산에 맹감 가져 왔느냐,산딸기냐.”며 조롱당하기도 했다. 68년 대나무를 꽂고 볏짚으로 만든 거적을 덮던 시절부터 하우스에서 굵은 토마토를 수확했다는 김용래(63·수당마을)씨는 “낮에는 어지러워서 온상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했다.옆에서 술잔을 들이키던 박영수(64)씨는 “온상에서 일하다가 중간중간에 바깥 바람을 쐬러 나와야 가슴이 안정되지라우.”라고 거들었다. 이 집에 놀러온 옆집 할머니는 “젤로 뒷머리가 땡겨 진통제를 많이 묵은디.다 아는 병인께 아파도 약국에 가서 파스나 사다가 붙이고 말지 뭐.”라며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병으로 여겼다.동네 골목에서 만난 70대 할머니에게 “하우스 하시냐.”고 하자 “아이고 온상 일에 몸서리가 쳐 오래 전에 때려치웠다.”며 뒤도 안돌아보고 갔다. ●신경통등 일년 내내 잔병치레 하우스 일이라는 게 눈뜨면 나가고 해진 뒤 보온덮개로 갈무리를 해야 끝난다.담배도 안피우는 데 가래에다 잔기침으로 고생한다는 귀산마을 이장 임영수(48)씨는 “4월만 지나면 하우스 안은 30∼40℃로 올라가고 높은 습도로 후텁지근해 그야말로 찜통”이라며 “주민들 가운데 기관지가 안좋고 감기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말했다. 옆마을인 수당마을 이장 임영모(47)씨는 “어머니(68)도 하우스에만 가면 얼굴이 벌게지고 몸에두드러기 같은 게 난 적이 있다.”면서 “작물 이랑 사이에서 왼종일 쪼그리고 앉아 일하다 보니 무릎 관절이나 팔다리가 쑤시고 아픈 게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토마토 농사 ‘달인’이라고 치켜세운 오근호(57)씨는 “원래 내가 젊어서부터 밥을 많이 묵는 밥 호랭이였는디,아 요즘에는 하루에 한 공기도 못먹는당께.”라며 오히려 “그런 내가 어째서 달인이냐?”고 반문했다.마을에서 가장 젊은 정평오(38)씨는 “9년째 하우스를 하는데 빚만 1억원을 져 돌파구를 찾으려고 5년 전에 토마토에서 부지화(한라봉)로 작목을 바꿔 올해 첫 수확을 한다.”며 한 개를 따 맛보라고 권했다 특별취재팀 대구 김상화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기자 ■연대보증 도미노 파산… 마을 쑥대밭 “그 사람이 호의호식하다 부도났으면 원망이라도 할 텐데….” 오이 작목반 동료의 보증을 섰다가 그의 빚까지 떠안은 충북 옥천군 청산면 지전리 김학도(45)씨는 하루에도 수십번 이렇게 탄식한다.그는 “소금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던 사람이라 욕할 수도 없다.”며 “악하게 산 것도 없는데 웬 천벌이냐.”고 한탄했다. 김씨가 한모(53)씨에게 보증섰다가 떠안은 빚은 2000만원.한씨는 미안한 마음에 자신이 하던 2500평짜리 하우스 시설을 김씨에게 넘겼지만 4년째 놀리고 있다.자기 하우스 1500평을 운영하는 것조차 벅차기 때문이다.돈이 안되는 하우스를 물려받았을 뿐 땅은 남의 것이어서 매년 370여만원의 임대료만 물고 있다. 김씨 등이 오이 작목반을 구성한 것은 1996년.주민 8명이 작목반을 만들어 오이 재배에 나섰으나 IMF사태 후 어려움이 계속되다 2000년 한씨 등 회원 대부분이 동시다발로 무너졌다.외부인에게 보증 부탁이 어려워 서로 서준 게 탈이 났다.연대보증이 서로 얽히고 설켜 한 명이 무너지면 연쇄 붕괴되고,빚이 많다 보니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동시에 부도가 난다.김씨는 “개인당 빚이 1억원 안팎이면 계속 농사를 지어 갚아 보려고 애쓸 텐데 대부분 그 이상을 넘어 어쩔 수 없이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작목반은 ‘쑥대밭’이 됐다.유모(50)씨는 논밭을 다 팔아빚을 갚고 도시에서 야채장사를 한다.구모(44)씨는 도시로 가 막노동을 한다.어떤 회원은 저온창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면서 주변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한다. 김씨는 “쌀이 떨어져 굶고 있는 동료를 보면 같은 농민이지만 눈물이 난다.”고 울먹였다.한 회원은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떴고 박모(44)씨는 다시 오이를 키우며 재기를 꿈꾸다 2002년 여름 태풍에 하우스가 날아간 뒤 고향을 등져 연락이 끊겼다.이 마을 최고 대농인 한 명은 그때 보증으로 물린 빚을 아직 갚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명문대 농대 출신으로 젊음을 농촌에 바친 한씨는 현재 농협의 토양검정 용역을 받아 그 수입으로 농협 빚을 갚고 나머지로 사글세 집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지난 14일 이 마을을 찾았더니 하우스라는 하우스는 대부분 비닐이 갈기갈기 찢겼고,하우스 안은 마른 풀로 가득했다.김씨는 일이 터진 뒤 토마토 하우스 재배로 바꿨다.하지만 그도 한씨의 보증 빚,마을 친구와 친척에게 보증을 섰다가 물린 빚,자신이 농사를 짓다 진 빚 등이 총 2억원 이상돼 마음은 늘 불안하다. 벼농사만 짓다 답답해 오이 재배에 손을 댄 그는 “일이 터진 뒤 몇 달은 술로 지냈다.”며 “일부는 지금도 서로 얼굴 보기를 꺼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김씨가 다닐 때 한 학년에 400명이 넘던 청산초등학교는 인근 3개 학교를 통폐합해 면내 유일한 초등학교로 남아 있지만 40명이 채 안돼 이 마을의 쇠락을 대변해 주었다.김씨는 “자살하고 싶어도 처자식과 새싹이 돋는 작물이 생각나 못한다.”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일해도 빚 갚을 길이 막막해 힘이 안난다.”고 맥없이 말했다. 특별취재팀 sky@ ■결혼 11년만에 8억 빚진 부부 농사 100마지기에 하우스 1200평으로 부농(富農) 소리를 들을 만도 한데,아이들에게 변변한 옷 한 벌 못 사주는 기막힌 농촌가정이 있다.김태환(42·전남 장흥군 관산읍 남송리)·서선희(34)씨 부부는 암담한 현실 앞에서 눈물로 삶을 이어간다. ●잘못된 보증·영농비 상승 빚 눈덩이 1988년부터 농사를 지어온 김씨는 대농(大農)으로 선진농업인에 뽑히는 등 남부럽지 않은 부자였다. 결혼 11년째인 이들이진 빚은 김씨가 7억 700만원이고,부인 앞으로 대출받은 1억 6000만원 등 모두 8억 6700만원이다. 비극이 싹튼 것은 IMF사태 직후인 98년.94년 이웃에게 1억 5000만원 보증을 섰다가 농협으로부터 보증빚 상환 독촉을 받았다.적금을 깨고 2000만원을 빌려 7000만원을 갚았다.그해 트랙터와 콤바인을 사느라 자신도 1억원을 빚졌다. 하지만 15∼24%에 이르는 살인적인 이자로 원금 1억 8000만원이 2000년 3억 4700만원으로 불어났다. 이자를 내느라 이곳저곳에서 대출 횟수가 늘었다.2000년에 보증선 5000만원이 또 터졌다.그러다 보니 2001년에는 5억 2300만원,2002년 6억 2900만원,2003년 5억 3700만원으로 자고 나면 빚이 눈덩이처럼 늘었다. 지난해 김씨 부부는 이자로만 4300만원을 냈다.주위에서 생활비와 농사 경영비 등으로 진 빚 4000만원도 갚았다.이 과정에서 2500만원을 또 빌렸다.100마지기 농사 매출액은 5000만원이다. ●논 담보 설정돼 있어 팔지도 못해 김씨는 “논을 팔아서라도 채무를 정리하고 싶지만 농협 등에 설정이 돼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한숨을 지었다.“기가 막힌다.”는 부인은 “아이들(2남1녀) 유치원비와 학교 다니는 아이가 급식비 6만 400원을 제때 못내 칠판에 이름 적히고 선생님한테 핀잔까지 들었다는 말을 듣고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며 눈물지었다. 특별취재팀 ■영농비·농산물값 등락비교 ‘농산물 값은 종종걸음,영농비는 뜀박질’ 농산물 값은 최근 8년간 별 차이가 없다.반면 영농비는 크게 올라 영농 압박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와 농협중앙회 등에 따르면 쌀값(연평균,중품,도매기준)은 정부의 쌀 수매가격 인상 덕을 봐 1994년 ㎏당 1550원에서 2002년 2263원으로 45% 올랐다..반면 양념·채소류인 건고추(태양초,중품,㎏당)는 7183원에서 7782원으로 8.3% 인상됐다.마늘(한지형,중품,접당)은 1만 2660원에서 1만 1497원으로 1163원 하락했다. 양파(〃 ㎏당)는 784원에서 342원으로 폭락했고,과일은 사과(후지,중품,㎏당)가 1534원에서 2758원으로 1224원 인상된 반면 배(신고,상품,10개당)는 2만 2169원에서 2만 648원으로 1521원이떨어졌다.품삯(성인 남자)은 3만 1313원에서 5만 3093원으로 70% 폭등했다.농기계(이앙기) 사용료도 2만 2220원에서 3만 2564원으로 46% 올랐다.농약값(가격지수 100기준)은 76.4에서 102.7(26.3%)로,비료값은 64.7에서 100.1(35.4%)로 뛰었다.배합 사료값(25㎏,육성돈용 포대당)은 2500원대에서 8400원대로 급등했다.농가당 부채는 788만원에서 1989만원으로 1201만원이나 늘어 이자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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