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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농촌 현실/오승호 논설위원

    중학교 동문들은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모이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학연을 따질 때에도 고교나 대학을 기준으로 하지,출신 중학교를 물어보는 이들은 드물다.초등학교는 고향과 직결돼 애틋한 정을 느낀다.중학교만 어중간한 셈이다. “학생 숫자가 적어 우리가 나온 중학교 건물은 놔두고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와 건물을 함께 이용한데….” 앗! 이게 무슨 소리인가.농촌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 지경까지 이를 줄이야.얼마 전 중학교 동문 몇 명과 모처럼 만나 생맥주를 마시면서 들은 ‘뉴스’다.모교는 읍(邑)에 있는 한 곳의 중학교만으로는 모자라 1970년대에 신설됐다. 정부가 도시민들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지 구입을 허용하는 쪽으로 농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투기가 아닌 농촌을 살리기 위한 도시자본이 많이 유입돼 중학교가 원래 자리로 되돌아 가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이해찬 총리지명자 청문회] 野 “영농경력 속여 농지 불법취득”

    ■ ‘부동산 투기 의혹’ 공방 24일 이해찬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를 상대로 열린 국회 인사청문특위에서는 주택담보 대출 관련 위증 여부와 부인 김정옥 씨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핫 이슈’로 떠올랐다.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주공격수로 나섰다. 심 의원은 “이 지명자의 부인 김정옥 씨가 지난 2002년 10월28일 경기도 안산시 대부남동 90의 1번지 외 3필지 683평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농지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특히 이 땅은 평당 25만원에서 현재 35만원으로 뛰었다.”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이 지명자는 그러나 “장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상속금을 주면서 돈을 갖고 있으면 허비하기 쉬우니 주말에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사라고 해서 샀다.”며 투기 의혹을 일축했다. 심 의원은 이어 김씨가 토지 취득 당시 직접 작성한 ‘농지 취득 자격증명 신청서’를 근거 자료로 제시하며 “김씨는 영농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농경력’란에는 15년이라고 적었고,‘농업 기계 장비의 보유계획’란에는 경운기 8MP 1대라고 허위 기재해 농지를 불법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이 지명자는 “영농 경력이 15년이라 쓴 것은 지금 처음 알았고,사실과 다른 것같다.”고 시인했다. 심 의원은 또 토지 구입 당시 김 씨가 남편인 이 후보자에 대해 공업사 대표라며 매도인을 속였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이 지명자는 국회의원 신분을 밝혔다고 반박했다. 심 의원은 “이 후보자의 부인이 대부남동 땅을 구입하기 10일 전 이 후보자가 본인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우리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받았는데 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에는 누락돼 있다.”며 공직자윤리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이에 대해 이 지명자는 “대출받은 적이 없다.”며 “아마 등기부 등본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확인해보겠다.”고 답변했다. 심 의원은 그러나 이날 오전 질문을 끝낸 뒤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은행 신림로지점에 따르면 김씨는 토지 구입 열흘전에 1억 20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하고 사흘 뒤 1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그럼에도 이 지명자는 대출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위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매매 계약서에 따르면 김씨는 남편 명의로 은행 대출을 받은지 이틀 뒤인 지난 10월21일 7000만원을 중도금으로 지불했다.”며 ‘땅 구입 자금은 장인의 상속 재산이 아니라 은행 대출금이 아니냐.’는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부실 청문회’ 쟁점 들어보니 “이렇게 한심한 청문회는 처음 보는 것같다.” 24일 열린 이해찬 총리후보 지명자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한 국회 관계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그만큼 청문위원으로 참석한 여야 의원들의 수준은 기대이하였다. 특히 대다수 초선의원들은 ‘청문회를 왜 하는지’에 대한 기본개념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날카롭게 검증할 생각은 않고 한줌밖에 안 되는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데 질문시간을 죄다 허비하는가 하면,마치 세미나에 참석한 것처럼 상식적인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의원도 있었다.한나라당 심재철·전재희 의원 정도만이 이 지명자의 도덕성에 대한 사실관계를 치밀하게 추적한 흔적을 보여줬다. ●교육개혁 논란 의원들은 이 지명자가 교육부 장관 재직시 단행했던 교육개혁 조치의 과오를 집중 추궁했다.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교원정년 단축시 60대 교사를 개혁 대상으로 지칭한 것은 큰 실수가 아닌가.”라고 묻고 “‘이해찬 세대’란 말이 있듯이 당시 입시제도 때문에 학생들이 손해를 봤고,과외비도 더 올랐다.”고 따졌다. 교총 회장 출신의 이군현 의원도 “과연 지금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을 갈 수 있는가.”라고 가세했다.열린우리당 이호웅 의원은 “이 지명자의 교육개혁이 학업능력 저하와 교권의 추락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이 지명자는 “교육정책은 20년 후에 사회에 나올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방향을 잡는 것이기에 현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개혁적일 수밖에 없다.”며 “당시 정책은 95년에 만들어진 5·31 개혁안을 중심으로 했고,실행 과정에서 외환위기가 겹쳐 여러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교원정년 단축에 대해서는 “방향에 있어서 많은 국민이 동의했다.”고 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로서는 굉장히 가슴 아픈 희생을 치러야 되는 일이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특히 그는 “총리가 돼도 교육개혁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의 질문에 “지난 10년간 그 방향으로 60∼70% 가고 있다.그런 방향으로 안정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이라크 추가파병 의원들은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자세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을 제기했으며,이 지명자도 “어처구니 없다.”며 혀를 찼다. 전재희 의원은 “미국이 한국의 추가파병을 위해 김씨 피랍사실을 숨긴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이 불과 71명 규모의 교민을 관리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이 지명자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라고 생각했다.”며 유감을 표시하고 “외교 공관원들이 교민보호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며 경위파악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그러나 정부의 파병 원칙 천명이 김씨 피살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김씨를 살해한 조직은 처음부터 살해 목적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도덕성 논란 전재희 의원은 “이 지명자의 부인은 지난해 5월부터 출판·인쇄업체인 ‘H문화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별도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내지 않았다.”고 추궁했다.이 지명자는 “별도로 내야 하는지 몰랐다.”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확인해보니 지난해 사업자로 등록했기 때문에 올해 11월에야 단독보험자로 결정된다고 하더라.”고 해명했다. 전 의원은 “이 지명자가 1992년 6월 관악구 신림동 건영아파트 전세를 얻으면서 미등기 분양권을 불법으로 매매한 집에 전세를 들었고 사용승인허가 전에 아파트에 입주했는데도,건축법 위반으로 다른 사람들은 고발됐지만 유독 이 지명자만 빠졌다.”고 지적했다.이 지명자는 “소유권 확인은 안했지만 매도자가 조합원이 아니라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면서 “사용승인 허가가 안 났지만 가사용 허가는 돼 있었다.”고 답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2억 250여만원에 달하는 이 지명자의 골프회원권을 국회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한달 57만원 월급을 다 털어서 사려면 30년이 걸린다.”고 꼬집었다. 김상연 박정경기자 carlos@seoul.co.kr ■ 교육계 “지지” “반대” 두목소리 이해찬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관련,교육계는 흔쾌히 지지하지도 노골적으로 반대하지도 않는 분위기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지쪽에 비중을 둔 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학부모들은 “인준되면 이 총리지명자의 장관시절 나타난 갈등과 마찰을 씻어내고 국민의 통합에 힘써 줄 것”을 주문했다. 전교조는 “교육 정책의 잘잘못도 국무총리의 인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국무총리의 적격성과는 별개”라면서 국무총리의 인준에 반대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전교조는 이 총리 지명자가 교육정책을 시장주의에 맞춰 추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냈지만 경쟁위주의 입시정책 개선 및 보충수업 폐지,특기적성 활성화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회원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한국교총은 이 총리 지명자에 대해 “국무총리로서 부적합한 인물”이라면서 “인준되더라도 제대로 국정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거듭 밝혔다.교총은 이 총리 지명자의 “정년 단축은 당시 IMF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라는 발언과 관련,“현재 교육은 교육청의 빚 증가,교원수급의 불균형 등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 총리 지명자의 장관 시절 정년단축은 교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학부모 사이에서는 환영받았다.”면서 “너무 자기 입장에서 비판을 일삼으며 갈등을 부추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이해찬 총리지명자 약력 ▲충남 청양 출생(52) ▲13∼17대 의원 ▲용산고,서울대 사회학과 졸 ▲민청학련 사건·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투옥 ▲서울시 정무부시장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의장 ▲교육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남북정상회담지원 특위위원장 ▲16대 대선 기획본부장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 기획단장 ˝
  • [이해찬 총리지명자 청문회] 野 “영농경력 속여 농지 불법취득”

    [이해찬 총리지명자 청문회] 野 “영농경력 속여 농지 불법취득”

    ■ ‘부동산 투기 의혹’ 공방 24일 이해찬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를 상대로 열린 국회 인사청문특위에서는 주택담보 대출 관련 위증 여부와 부인 김정옥 씨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핫 이슈’로 떠올랐다.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주공격수로 나섰다. 심 의원은 “이 지명자의 부인 김정옥 씨가 지난 2002년 10월28일 경기도 안산시 대부남동 90의 1번지 외 3필지 683평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농지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특히 이 땅은 평당 25만원에서 현재 35만원으로 뛰었다.”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이 지명자는 그러나 “장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상속금을 주면서 돈을 갖고 있으면 허비하기 쉬우니 주말에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사라고 해서 샀다.”며 투기 의혹을 일축했다. 심 의원은 이어 김씨가 토지 취득 당시 직접 작성한 ‘농지 취득 자격증명 신청서’를 근거 자료로 제시하며 “김씨는 영농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농경력’란에는 15년이라고 적었고,‘농업 기계 장비의 보유계획’란에는 경운기 8MP 1대라고 허위 기재해 농지를 불법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이 지명자는 “영농 경력이 15년이라 쓴 것은 지금 처음 알았고,사실과 다른 것같다.”고 시인했다. 심 의원은 또 토지 구입 당시 김 씨가 남편인 이 후보자에 대해 공업사 대표라며 매도인을 속였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이 지명자는 국회의원 신분을 밝혔다고 반박했다. 심 의원은 “이 후보자의 부인이 대부남동 땅을 구입하기 10일 전 이 후보자가 본인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우리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받았는데 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에는 누락돼 있다.”며 공직자윤리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이에 대해 이 지명자는 “대출받은 적이 없다.”며 “아마 등기부 등본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확인해보겠다.”고 답변했다. 심 의원은 그러나 이날 오전 질문을 끝낸 뒤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은행 신림로지점에 따르면 김씨는 토지 구입 열흘전에 1억 20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하고 사흘 뒤 1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그럼에도 이 지명자는 대출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위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매매 계약서에 따르면 김씨는 남편 명의로 은행 대출을 받은지 이틀 뒤인 지난 10월21일 7000만원을 중도금으로 지불했다.”며 ‘땅 구입 자금은 장인의 상속 재산이 아니라 은행 대출금이 아니냐.’는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부실 청문회’ 쟁점 들어보니 “이렇게 한심한 청문회는 처음 보는 것같다.” 24일 열린 이해찬 총리후보 지명자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한 국회 관계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그만큼 청문위원으로 참석한 여야 의원들의 수준은 기대이하였다. 특히 대다수 초선의원들은 ‘청문회를 왜 하는지’에 대한 기본개념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날카롭게 검증할 생각은 않고 한줌밖에 안 되는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데 질문시간을 죄다 허비하는가 하면,마치 세미나에 참석한 것처럼 상식적인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의원도 있었다.한나라당 심재철·전재희 의원 정도만이 이 지명자의 도덕성에 대한 사실관계를 치밀하게 추적한 흔적을 보여줬다. ●교육개혁 논란 의원들은 이 지명자가 교육부 장관 재직시 단행했던 교육개혁 조치의 과오를 집중 추궁했다.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교원정년 단축시 60대 교사를 개혁 대상으로 지칭한 것은 큰 실수가 아닌가.”라고 묻고 “‘이해찬 세대’란 말이 있듯이 당시 입시제도 때문에 학생들이 손해를 봤고,과외비도 더 올랐다.”고 따졌다. 교총 회장 출신의 이군현 의원도 “과연 지금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을 갈 수 있는가.”라고 가세했다.열린우리당 이호웅 의원은 “이 지명자의 교육개혁이 학업능력 저하와 교권의 추락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이 지명자는 “교육정책은 20년 후에 사회에 나올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방향을 잡는 것이기에 현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개혁적일 수밖에 없다.”며 “당시 정책은 95년에 만들어진 5·31 개혁안을 중심으로 했고,실행 과정에서 외환위기가 겹쳐 여러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교원정년 단축에 대해서는 “방향에 있어서 많은 국민이 동의했다.”고 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로서는 굉장히 가슴 아픈 희생을 치러야 되는 일이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특히 그는 “총리가 돼도 교육개혁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의 질문에 “지난 10년간 그 방향으로 60∼70% 가고 있다.그런 방향으로 안정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이라크 추가파병 의원들은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자세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을 제기했으며,이 지명자도 “어처구니 없다.”며 혀를 찼다. 전재희 의원은 “미국이 한국의 추가파병을 위해 김씨 피랍사실을 숨긴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이 불과 71명 규모의 교민을 관리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이 지명자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라고 생각했다.”며 유감을 표시하고 “외교 공관원들이 교민보호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며 경위파악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그러나 정부의 파병 원칙 천명이 김씨 피살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김씨를 살해한 조직은 처음부터 살해 목적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도덕성 논란 전재희 의원은 “이 지명자의 부인은 지난해 5월부터 출판·인쇄업체인 ‘H문화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별도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내지 않았다.”고 추궁했다.이 지명자는 “별도로 내야 하는지 몰랐다.”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확인해보니 지난해 사업자로 등록했기 때문에 올해 11월에야 단독보험자로 결정된다고 하더라.”고 해명했다. 전 의원은 “이 지명자가 1992년 6월 관악구 신림동 건영아파트 전세를 얻으면서 미등기 분양권을 불법으로 매매한 집에 전세를 들었고 사용승인허가 전에 아파트에 입주했는데도,건축법 위반으로 다른 사람들은 고발됐지만 유독 이 지명자만 빠졌다.”고 지적했다.이 지명자는 “소유권 확인은 안했지만 매도자가 조합원이 아니라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면서 “사용승인 허가가 안 났지만 가사용 허가는 돼 있었다.”고 답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2억 250여만원에 달하는 이 지명자의 골프회원권을 국회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한달 57만원 월급을 다 털어서 사려면 30년이 걸린다.”고 꼬집었다. 김상연 박정경기자 carlos@seoul.co.kr ■ 교육계 “지지” “반대” 두목소리 이해찬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관련,교육계는 흔쾌히 지지하지도 노골적으로 반대하지도 않는 분위기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지쪽에 비중을 둔 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학부모들은 “인준되면 이 총리지명자의 장관시절 나타난 갈등과 마찰을 씻어내고 국민의 통합에 힘써 줄 것”을 주문했다. 전교조는 “교육 정책의 잘잘못도 국무총리의 인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국무총리의 적격성과는 별개”라면서 국무총리의 인준에 반대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전교조는 이 총리 지명자가 교육정책을 시장주의에 맞춰 추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냈지만 경쟁위주의 입시정책 개선 및 보충수업 폐지,특기적성 활성화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회원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한국교총은 이 총리 지명자에 대해 “국무총리로서 부적합한 인물”이라면서 “인준되더라도 제대로 국정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거듭 밝혔다.교총은 이 총리 지명자의 “정년 단축은 당시 IMF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라는 발언과 관련,“현재 교육은 교육청의 빚 증가,교원수급의 불균형 등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 총리 지명자의 장관 시절 정년단축은 교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학부모 사이에서는 환영받았다.”면서 “너무 자기 입장에서 비판을 일삼으며 갈등을 부추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이해찬 총리지명자 약력 ▲충남 청양 출생(52) ▲13∼17대 의원 ▲용산고,서울대 사회학과 졸 ▲민청학련 사건·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투옥 ▲서울시 정무부시장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의장 ▲교육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남북정상회담지원 특위위원장 ▲16대 대선 기획본부장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 기획단장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1)장승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이다(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1)장승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이다(上)

    ●장승연구 소홀… 민중정신사 소외시키는 것 판소리 ‘흥부가’의 ‘박타령’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늘어선 조를 보면 대촌 당산 법슈(法首) 갓고’하는 부분이다.이 법슈(法首)는 벅수,법수라고 부르는 장승을 말하는데,이 말은 중국,일본의 문화와 아무 관련 없는 우리나라 토종이다. 장승 얘기는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에 보다 상세하게 나온다.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즉 천하잡놈 강쇠가 산에 나무하러 가서 산고개에 서 있는 장승을 뽑아와 방에 군불을 때고 자다가 장승 동티로 죽어버린다.그러자 팔자 한번 겁나게 드센 옹녀가 강쇠놈 시체를 치우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길손들이 강쇠 시신을 치우려고 하다가 변을 당하는 이야기다. 생활 토대를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의 참담한 생활상을 주제로 하고 있는 변강쇠타령의 비극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장승이다. 우리나라 상류 사회의 신앙이었던 유교·불교와 관련된 역사와 미술은 많은 연구 성과물을 가지고 있지만 민중의 정신사라 할 수 있는 무속과 장승 연구 업적은 그리 많지 않다.무속 연구도 귀족 취향적 풍토에 머물러 있어서 무속의 참모습을 제대로 드러내는데는 한계를 지녔다.장승 연구가 희귀한 까닭은 민중의 정신사가 소외되고 있음을 뜻한다.안타깝고 또 잘못된 일이다.크게 후회할 일이다. ●‘살아있는 장승’ 갈촌선생을 뵙다 이같은 민중정신사의 소외 속에서도 30년 가까이 한국의 탈과 장승 연구에 삶을 녹여 넣고 있는 갈촌 이도열(李道烈·58·갈촌 탈 박물관장 겸 장승학교 교장) 선생을 만났다.그는 한국의 탈과 장승연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이자 살아 있는 장승 그 자체로 통하는 귀하고도 고마운 분이다.오광대의 고장 경남 고성에 있는 ‘갈촌 탈 박물관’에서 탈과 장승에 관한 선생의 깨달음을 전해 들었다. 문:탈과 장승에 관한 생각을 언제부터 골똘히 하게 되셨는지요. 李:농과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나갔는데,훈련 중에 허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일찌감치 제대를 했지요.그 길로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한우 비육 농사를 도우면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고향에서 살아가려면 농사 외에 다른 뜻 있는 일을 함께 해야만 보다 온전한 삶이 되지 않겠나 싶어서 이것 저것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지요. ●‘고성오광대’는 신명의 원천 ‘고성오광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젊은 내가 땀흘려 배우고 지켜나가야 할 몫이라는 생각을 했지요.농사가 육신을 키우고 지켜주는 신명이라면 오광대의 춤과 노래는 영혼을 맑게 해주고 자라나게 하는 신명의 원천이라고 여겼지요. 오광대 춤을 배우게 되면서 한 가지 의심이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더군요.탈을 만드는 문제였어요.탈의 눈,코,색깔,크기 등이 매우 다양한데 그 까닭을 알고 싶었어요.그런데 내 의문을 풀어 줄 만한 문헌,자료가 우리나라에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더욱 더 풀기 어려운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지요. 이같은 의문을 안은 채 농사를 계속했지요.70년대 초반 우리나라 농촌이 대개 다 그러했듯이 고향을 떠나는 풍조가 만연하는 가운데서도 농촌에 남은 청년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우회(農友會)를 조직하여 연대하기 시작했지요.이 농우회를 근간으로 하여 가톨릭 농민회를 만들어 이끄는 일을 맡기도 했지요. ●농민의 역사 안에서 생겨난 탈 한국 농업이 어려움에 봉착하고 농촌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저는 역설적으로 농민과 농업,농촌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지요.농업(농사)은 한국 문화의 원형이며,농민은 그 문화의 어머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탈은 그 농사와 농민의 역사 안에서 생겨났다는 것도 알았지요.좀 복잡하지만 계기라면 계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흔히 탈과 장승은 조금 다른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어떤 관계로 봐야 합니까? 李:탈은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태양탈,신앙탈,예능탈이지요.태양탈은 구석기,신석기시대 또는 그 이전에도 이루어진 여러 종류의 암각화,상형문자들을 말합니다.어둠,추위,맹수의 공격,식량,종족의 번식,사냥,태양의 힘 등과 인간의 생존 관계를 상징하는 그림들이지요.신앙탈은 고인돌,선돌,장승 등 자연의 섭리로부터 인간이 보호받게 되기를 갈망하면서 만들게 된 것인데,주술성을 중요하게 여기지요.종족 보호,건강과 식량의 확보를 위해 하늘에 기원하는 마음을 돌이나 나무에다 새긴 것이지요.예능탈은 주술성이 없어지고 단지 유희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모든 ‘탈’의 근원은 욕심 문:그렇다면 ‘탈’이란 말은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언제부터 나타났을까요? 李:(웃음을 머금으면서)사람 사는 세상엔 참 탈도 많지요.배탈,해탈,돈탈,명예탈,온갖 욕심으로 해서 생기는 탈로 해서 한시도 탈 안 나고 살기 어렵지요. 배탈이 왜 생기는가? 사람이 태어나면서 어머니 젖꼭지부터 물지요.그 젖을 먹으면서 탈이 시작됩니다.어머니가 음식을 잘못 먹으면 젖먹이한테 배탈이 나거든요.젖을 너무 많이 먹어도 배탈이 나지요.몸은 거부하는데 욕심 때문에 자꾸 먹다보니 탈이 나지요.배탈은 생기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알면서 욕심을 억누르면 탈이 안생기지요.모든 탈의 근원은 욕심입니다.돈탈,명예탈은 목숨도 앗아가지요. 스님들은 내 마음의 어둠,고통,번뇌,망상을 다 태워버리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더군요.결국 왜 탈이 생기는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고,행동을 하니까 탈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탈은 상상력·꿈·희망·기도의 상징 그래서 탈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욕심으로 하여 생기는 자연재앙으로부터 지켜지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의 형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인간이기 때문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고,그 욕심이 아니라면 또 세상은 얼마나 심심하겠습니까?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욕심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탈은 어쩔 수 없이 또 자연의 섭리로 치유시켜 주고,쓸어안아서 자연으로 회귀하도록 다독거려주는 신(神)이 필요한 것이지요.참 얼마나 재미있는 상상입니까?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 상상력,꿈,희망,기도의 상징물이 탈이며,장승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원래 탈의 어원(語原)은 몽골의 ‘타르’라고 하더군요.‘타르’는 맑아지다,깨끗해지다,밝아지다,좋아지다는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또한 불타다,불에 타서 없어진다는 뜻도 들어 있다고 합니다.‘탈춤’이라는 춤은 몸에 붙어 있는 온갖 탈을 탈탈 털어 내기 위해 추는 춤입니다. 문:장승은 탈의 기능적 한 종류임을 알겠는데,장승이 맨 처음 세워진 것은 언제쯤일까요? 그리고 그 때의 장승이 지녔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李:대개 삼국시대부터 장승이 세워진 것으로 봅니다.삼국시대 장승의 눈,코,입,귀와 몸이 지녔던 그 시대의 마음을 느껴보기 위해서 나는 그 시대의 의식주 환경을 재현하여 그 안에서 한 달 가까이 생활해 보기도 했지요. 음식은 거의 생식을 하고,옷은 겨울에도 내의 없이 홑껍데기 한복을 입었으며,산에다 토굴을 파거나 판잣집을 지어서 지냈는데 산이나 들판의 바위,나무 밑에서도 지냈지요.적게 먹고 그것도 생식을 하니까 잠이 적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생각이 깊어지더군요.자연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장승 통해 자연치유 능력 발견 그런 마음의 상태에서 장승을 생각했지요.인간은 왜 장승을 다듬어 세우는가? 이 물음은 인간의 마음에는 왜 액이 생기는가 하는 것과 같지요.자연에서는 액이나 탈이란 것이 없습니다.인간이 많이 살게 되면서 자연과의 조화가 파괴되면서 액과 탈이 생겼지요.이 액과 탈을 치유시키기 위해 장승을 세운 것입니다.약이나 인위적 치료가 아닌 자연치유 능력을 인간 스스로가 발견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연과 공존할 수 있을까? 탈없이 살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한 끝에 터득한 것이 장승을 세우는 것이었지요.장승이 서는 자리가 엄격하게 선택되고,장승 다듬는 일이 신성시되고,장승 위치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데까지 인간의 생각이 미쳤지요.마을마다의 액과 탈에 따라 장승의 모양과 서는 위치가 다른 것은 그 마을 사람들의 기원,소망이 각각 다르고 지리적 위치도 다르기 때문이지요. ●현대에도 장승 세우는 것은 ‘효험’ 때문 문:현대 사회에 들어온 이후에도 계속 장승을 세우고 있는데 무슨 이유일까요? 李:오랜 옛날에 세운 장승이 지금까지 남아서 전해지고 있는 이유나 오늘날 도심 한 가운데나 아파트 단지에도 장승을 세우기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효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효험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李:자연과의 공존,상생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우주 속의 내가 어떻게 하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겠지요.그 때 장승은 나를 자연으로 인도해주는 안내자이자 내 안에 감춰져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하거든요.그것은 미신이나 우상 따위가 아니라 우주와 나의 하나됨을 깨닫게 해주는 영혼의 등대 혹은 영혼의 치료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1)장승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이다(上)

    ●장승연구 소홀… 민중정신사 소외시키는 것 판소리 ‘흥부가’의 ‘박타령’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늘어선 조를 보면 대촌 당산 법슈(法首) 갓고’하는 부분이다.이 법슈(法首)는 벅수,법수라고 부르는 장승을 말하는데,이 말은 중국,일본의 문화와 아무 관련 없는 우리나라 토종이다. 장승 얘기는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에 보다 상세하게 나온다.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즉 천하잡놈 강쇠가 산에 나무하러 가서 산고개에 서 있는 장승을 뽑아와 방에 군불을 때고 자다가 장승 동티로 죽어버린다.그러자 팔자 한번 겁나게 드센 옹녀가 강쇠놈 시체를 치우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길손들이 강쇠 시신을 치우려고 하다가 변을 당하는 이야기다. 생활 토대를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의 참담한 생활상을 주제로 하고 있는 변강쇠타령의 비극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장승이다. 우리나라 상류 사회의 신앙이었던 유교·불교와 관련된 역사와 미술은 많은 연구 성과물을 가지고 있지만 민중의 정신사라 할 수 있는 무속과 장승 연구 업적은 그리 많지 않다.무속 연구도 귀족 취향적 풍토에 머물러 있어서 무속의 참모습을 제대로 드러내는데는 한계를 지녔다.장승 연구가 희귀한 까닭은 민중의 정신사가 소외되고 있음을 뜻한다.안타깝고 또 잘못된 일이다.크게 후회할 일이다. ●‘살아있는 장승’ 갈촌선생을 뵙다 이같은 민중정신사의 소외 속에서도 30년 가까이 한국의 탈과 장승 연구에 삶을 녹여 넣고 있는 갈촌 이도열(李道烈·58·갈촌 탈 박물관장 겸 장승학교 교장) 선생을 만났다.그는 한국의 탈과 장승연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이자 살아 있는 장승 그 자체로 통하는 귀하고도 고마운 분이다.오광대의 고장 경남 고성에 있는 ‘갈촌 탈 박물관’에서 탈과 장승에 관한 선생의 깨달음을 전해 들었다. 문:탈과 장승에 관한 생각을 언제부터 골똘히 하게 되셨는지요. 李:농과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나갔는데,훈련 중에 허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일찌감치 제대를 했지요.그 길로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한우 비육 농사를 도우면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고향에서 살아가려면 농사 외에 다른 뜻 있는 일을 함께 해야만 보다 온전한 삶이 되지 않겠나 싶어서 이것 저것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지요. ●‘고성오광대’는 신명의 원천 ‘고성오광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젊은 내가 땀흘려 배우고 지켜나가야 할 몫이라는 생각을 했지요.농사가 육신을 키우고 지켜주는 신명이라면 오광대의 춤과 노래는 영혼을 맑게 해주고 자라나게 하는 신명의 원천이라고 여겼지요. 오광대 춤을 배우게 되면서 한 가지 의심이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더군요.탈을 만드는 문제였어요.탈의 눈,코,색깔,크기 등이 매우 다양한데 그 까닭을 알고 싶었어요.그런데 내 의문을 풀어 줄 만한 문헌,자료가 우리나라에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더욱 더 풀기 어려운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지요. 이같은 의문을 안은 채 농사를 계속했지요.70년대 초반 우리나라 농촌이 대개 다 그러했듯이 고향을 떠나는 풍조가 만연하는 가운데서도 농촌에 남은 청년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우회(農友會)를 조직하여 연대하기 시작했지요.이 농우회를 근간으로 하여 가톨릭 농민회를 만들어 이끄는 일을 맡기도 했지요. ●농민의 역사 안에서 생겨난 탈 한국 농업이 어려움에 봉착하고 농촌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저는 역설적으로 농민과 농업,농촌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지요.농업(농사)은 한국 문화의 원형이며,농민은 그 문화의 어머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탈은 그 농사와 농민의 역사 안에서 생겨났다는 것도 알았지요.좀 복잡하지만 계기라면 계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흔히 탈과 장승은 조금 다른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어떤 관계로 봐야 합니까? 李:탈은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태양탈,신앙탈,예능탈이지요.태양탈은 구석기,신석기시대 또는 그 이전에도 이루어진 여러 종류의 암각화,상형문자들을 말합니다.어둠,추위,맹수의 공격,식량,종족의 번식,사냥,태양의 힘 등과 인간의 생존 관계를 상징하는 그림들이지요.신앙탈은 고인돌,선돌,장승 등 자연의 섭리로부터 인간이 보호받게 되기를 갈망하면서 만들게 된 것인데,주술성을 중요하게 여기지요.종족 보호,건강과 식량의 확보를 위해 하늘에 기원하는 마음을 돌이나 나무에다 새긴 것이지요.예능탈은 주술성이 없어지고 단지 유희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모든 ‘탈’의 근원은 욕심 문:그렇다면 ‘탈’이란 말은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언제부터 나타났을까요? 李:(웃음을 머금으면서)사람 사는 세상엔 참 탈도 많지요.배탈,해탈,돈탈,명예탈,온갖 욕심으로 해서 생기는 탈로 해서 한시도 탈 안 나고 살기 어렵지요. 배탈이 왜 생기는가? 사람이 태어나면서 어머니 젖꼭지부터 물지요.그 젖을 먹으면서 탈이 시작됩니다.어머니가 음식을 잘못 먹으면 젖먹이한테 배탈이 나거든요.젖을 너무 많이 먹어도 배탈이 나지요.몸은 거부하는데 욕심 때문에 자꾸 먹다보니 탈이 나지요.배탈은 생기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알면서 욕심을 억누르면 탈이 안생기지요.모든 탈의 근원은 욕심입니다.돈탈,명예탈은 목숨도 앗아가지요. 스님들은 내 마음의 어둠,고통,번뇌,망상을 다 태워버리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더군요.결국 왜 탈이 생기는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고,행동을 하니까 탈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탈은 상상력·꿈·희망·기도의 상징 그래서 탈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욕심으로 하여 생기는 자연재앙으로부터 지켜지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의 형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인간이기 때문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고,그 욕심이 아니라면 또 세상은 얼마나 심심하겠습니까?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욕심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탈은 어쩔 수 없이 또 자연의 섭리로 치유시켜 주고,쓸어안아서 자연으로 회귀하도록 다독거려주는 신(神)이 필요한 것이지요.참 얼마나 재미있는 상상입니까?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 상상력,꿈,희망,기도의 상징물이 탈이며,장승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원래 탈의 어원(語原)은 몽골의 ‘타르’라고 하더군요.‘타르’는 맑아지다,깨끗해지다,밝아지다,좋아지다는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또한 불타다,불에 타서 없어진다는 뜻도 들어 있다고 합니다.‘탈춤’이라는 춤은 몸에 붙어 있는 온갖 탈을 탈탈 털어 내기 위해 추는 춤입니다. 문:장승은 탈의 기능적 한 종류임을 알겠는데,장승이 맨 처음 세워진 것은 언제쯤일까요? 그리고 그 때의 장승이 지녔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李:대개 삼국시대부터 장승이 세워진 것으로 봅니다.삼국시대 장승의 눈,코,입,귀와 몸이 지녔던 그 시대의 마음을 느껴보기 위해서 나는 그 시대의 의식주 환경을 재현하여 그 안에서 한 달 가까이 생활해 보기도 했지요. 음식은 거의 생식을 하고,옷은 겨울에도 내의 없이 홑껍데기 한복을 입었으며,산에다 토굴을 파거나 판잣집을 지어서 지냈는데 산이나 들판의 바위,나무 밑에서도 지냈지요.적게 먹고 그것도 생식을 하니까 잠이 적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생각이 깊어지더군요.자연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장승 통해 자연치유 능력 발견 그런 마음의 상태에서 장승을 생각했지요.인간은 왜 장승을 다듬어 세우는가? 이 물음은 인간의 마음에는 왜 액이 생기는가 하는 것과 같지요.자연에서는 액이나 탈이란 것이 없습니다.인간이 많이 살게 되면서 자연과의 조화가 파괴되면서 액과 탈이 생겼지요.이 액과 탈을 치유시키기 위해 장승을 세운 것입니다.약이나 인위적 치료가 아닌 자연치유 능력을 인간 스스로가 발견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연과 공존할 수 있을까? 탈없이 살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한 끝에 터득한 것이 장승을 세우는 것이었지요.장승이 서는 자리가 엄격하게 선택되고,장승 다듬는 일이 신성시되고,장승 위치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데까지 인간의 생각이 미쳤지요.마을마다의 액과 탈에 따라 장승의 모양과 서는 위치가 다른 것은 그 마을 사람들의 기원,소망이 각각 다르고 지리적 위치도 다르기 때문이지요. ●현대에도 장승 세우는 것은 ‘효험’ 때문 문:현대 사회에 들어온 이후에도 계속 장승을 세우고 있는데 무슨 이유일까요? 李:오랜 옛날에 세운 장승이 지금까지 남아서 전해지고 있는 이유나 오늘날 도심 한 가운데나 아파트 단지에도 장승을 세우기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효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효험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李:자연과의 공존,상생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우주 속의 내가 어떻게 하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겠지요.그 때 장승은 나를 자연으로 인도해주는 안내자이자 내 안에 감춰져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하거든요.그것은 미신이나 우상 따위가 아니라 우주와 나의 하나됨을 깨닫게 해주는 영혼의 등대 혹은 영혼의 치료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 儒林(122)-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경공이 공자에게 목공(穆公,BC 660∼621)의 패업에 관해 물었던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훗날 전국시대를 천하 통일한 것은 시황제였지만 경공이 공자에게 목공에 대해서 물었을 때만 해도 모든 제후들이 꿈꾸었던 영웅이 바로 목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목공은 이미 100여년 전의 인물이었지만 소위 춘추오패(春秋五覇) 중의 한 사람으로 경공이 공자에게 질문하였던 대로 ‘작은 나라로서 편벽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다른 제후국을 정복하고 가장 강력한 국가를 이룩하였던 패왕이었던 것이다. 목공의 진(秦)나라가 강력한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변방국이어서 땅은 협소하고 부존자원도 없었지만 선진국으로부터 새로운 산업기술과 행정기술을 들여와 미개발지인 자신의 국토에 적용함으로써 경제력과 군사력을 함께 키워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목공이 패업을 이루었던 것은 ‘백리해를 등용하여 대부의 벼슬을 주었으며,죄인으로 묶여 있는 중에 등용하여 사흘 동안 얘기해본 끝에 정사를 맡긴’ 인재술이야말로 패업을 이룬 근본요인임을 강조하였던 것이었다. 백리해(百里奚). 전국시대에 있어 가장 뛰어난 정치가였던 백리해는 원래 우(虞)나라의 대부로 있었으나 우나라가 진(晋)의 헌공(獻公)에게 망할 때 포로가 되었던 기구한 운명의 인물이었다.이때 헌공은 목공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면서 백리해를 딸의 뒷바라지를 맡도록 딸려 보내는 잉신(孕臣)의 미천한 역할을 맡겼는데,백리해는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해 진나라를 도망쳐 초(楚)나라에서 시골관리에게 붙잡혔던 것이다.뒤늦게 백리해가 뛰어난 인물임을 전해들은 목공은 너무 요란을 떨면 초나라가 의심할 것을 걱정해 도망친 하인을 잡아온다는 구실로 양피 다섯 장으로 백리해를 바꿔왔던 것이었다.백리해를 실은 함거가 진나라에 당도하자 목공은 백리해를 불러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지금 나이가 몇 살입니까.” 백리해가 대답하였다. “금년에 칠십이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공이 한탄하여 말하였다. “애석하게도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소이다.” 그러자 백리해가 말하였다. “이 백리해로 하여금 날아다니는 새를 쫓고 맹수를 잡게 하실 요량으로 부르셨다면 신은 이미 늙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만약에 신으로 하여금 앉아서 나라의 일을 보게 하실 요량으로 부르셨다면 아직 젊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옛날 태공 여상(呂尙)은 나이가 팔십이 되어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주 문왕을 만나서 같이 수레를 타고 주나라로 들어가 상보(尙父)의 벼슬을 맡아 주나라의 사직을 일으켰습니다.신이 금일 군주를 만난 것은 여상과 비교하면 10년이나 젊습니다.” 백리해의 말을 들은 목공은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 물었다. “우리나라는 융(戎),적(翟)과 이웃하여 있어서 여러 나라들이 만나는 회맹에도 참석지 못하고 있습니다.노인께서는 어떻게 과인에게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이에 백리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군주께서 신을 패망한 나라의 포로로 보지 않으시고 몸이 늙어 이미 쇠잔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마음을 여시어 하문하시니,신이 감히 어리석은 의견이지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지금 진나라가 군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융과 적과 같은 오랑캐와 맞닿아 있지만 이를 오히려 역이용하여 오랑캐의 땅을 병합하면 농사를 크게 지을 수 있으며,그 백성들을 민적에 올리면 감히 중원의 나라들과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이것은 중원의 나라들이 진나라와 다툴 수 없는 오히려 유리한 점인 것입니다.”˝
  • 儒林(122)-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22)-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경공이 공자에게 목공(穆公,BC 660∼621)의 패업에 관해 물었던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훗날 전국시대를 천하 통일한 것은 시황제였지만 경공이 공자에게 목공에 대해서 물었을 때만 해도 모든 제후들이 꿈꾸었던 영웅이 바로 목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목공은 이미 100여년 전의 인물이었지만 소위 춘추오패(春秋五覇) 중의 한 사람으로 경공이 공자에게 질문하였던 대로 ‘작은 나라로서 편벽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다른 제후국을 정복하고 가장 강력한 국가를 이룩하였던 패왕이었던 것이다. 목공의 진(秦)나라가 강력한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변방국이어서 땅은 협소하고 부존자원도 없었지만 선진국으로부터 새로운 산업기술과 행정기술을 들여와 미개발지인 자신의 국토에 적용함으로써 경제력과 군사력을 함께 키워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목공이 패업을 이루었던 것은 ‘백리해를 등용하여 대부의 벼슬을 주었으며,죄인으로 묶여 있는 중에 등용하여 사흘 동안 얘기해본 끝에 정사를 맡긴’ 인재술이야말로 패업을 이룬 근본요인임을 강조하였던 것이었다. 백리해(百里奚). 전국시대에 있어 가장 뛰어난 정치가였던 백리해는 원래 우(虞)나라의 대부로 있었으나 우나라가 진(晋)의 헌공(獻公)에게 망할 때 포로가 되었던 기구한 운명의 인물이었다.이때 헌공은 목공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면서 백리해를 딸의 뒷바라지를 맡도록 딸려 보내는 잉신(孕臣)의 미천한 역할을 맡겼는데,백리해는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해 진나라를 도망쳐 초(楚)나라에서 시골관리에게 붙잡혔던 것이다.뒤늦게 백리해가 뛰어난 인물임을 전해들은 목공은 너무 요란을 떨면 초나라가 의심할 것을 걱정해 도망친 하인을 잡아온다는 구실로 양피 다섯 장으로 백리해를 바꿔왔던 것이었다.백리해를 실은 함거가 진나라에 당도하자 목공은 백리해를 불러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지금 나이가 몇 살입니까.” 백리해가 대답하였다. “금년에 칠십이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공이 한탄하여 말하였다. “애석하게도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소이다.” 그러자 백리해가 말하였다. “이 백리해로 하여금 날아다니는 새를 쫓고 맹수를 잡게 하실 요량으로 부르셨다면 신은 이미 늙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만약에 신으로 하여금 앉아서 나라의 일을 보게 하실 요량으로 부르셨다면 아직 젊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옛날 태공 여상(呂尙)은 나이가 팔십이 되어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주 문왕을 만나서 같이 수레를 타고 주나라로 들어가 상보(尙父)의 벼슬을 맡아 주나라의 사직을 일으켰습니다.신이 금일 군주를 만난 것은 여상과 비교하면 10년이나 젊습니다.” 백리해의 말을 들은 목공은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 물었다. “우리나라는 융(戎),적(翟)과 이웃하여 있어서 여러 나라들이 만나는 회맹에도 참석지 못하고 있습니다.노인께서는 어떻게 과인에게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이에 백리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군주께서 신을 패망한 나라의 포로로 보지 않으시고 몸이 늙어 이미 쇠잔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마음을 여시어 하문하시니,신이 감히 어리석은 의견이지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지금 진나라가 군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융과 적과 같은 오랑캐와 맞닿아 있지만 이를 오히려 역이용하여 오랑캐의 땅을 병합하면 농사를 크게 지을 수 있으며,그 백성들을 민적에 올리면 감히 중원의 나라들과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이것은 중원의 나라들이 진나라와 다툴 수 없는 오히려 유리한 점인 것입니다.”
  • 도시민 농지 소유제한 내년 7월부터 폐지

    내년 하반기부터 도시민도 농업인처럼 농지를 실질적으로 무제한 소유할 수 있게 된다.다만 도시민이 실제 농사를 지을 때까지는 소유 농지의 영농 등 운영을 ‘농지은행’에 맡겨야 한다. 농림부는 내년 7월 시행을 목표로 이같은 내용의 농지법 개정안을 마련,관련 부처와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21일 밝혔다.개정안은 이르면 다음달 초 입법예고될 전망이다. 현재도 도시민의 경우 주말·체험 농장용으로 0.1㏊(약 300평)미만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다만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아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지어야만 한다.농사를 짓지 않는 사실이 드러나면 강제처분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농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도시민이라도 농지취득자격 증명을 받아 농지를 구입한 뒤 이를 농지은행에 맡기면 본인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된다.농지은행은 내년 하반기쯤 농업기반공사 산하 기구로 설립될 예정이다.농지은행에 맡겨진 도시민 소유의 우량 농지는 전업농에게 넘겨져 위탁영농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도시민은 농지은행과 최초 5년계약(예상기한)을 맺은 뒤 재연장할 수 있다.따라서 직접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농지를 장기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임대차 조건이 붙기는 했으나 사실상 도시민의 무제한 농지 소유를 인정하는 획기적인 조치다.취득한 농지가 전업농이 농사짓기를 원하지 않는 비우량 농지여서 농지은행이 위탁을 거부하면 도시민은 지금처럼 농사를 짓거나 농지를 바로 처분해야 한다. 농림부는 지난해 초 도시자본의 농촌유입과 농지의 규모화를 위해 직접 농사를 지을 경우에 한해 주말·체험농장용(0.1㏊미만)으로 도시민의 농지취득을 허용했었다.부동산업계는 농지소유가 대폭 완화될 경우 시중의 부동산투기 자금이 농촌으로 대규모 유입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수도권 인근의 우량농지를 구입해 농지은행에 맡긴 도시민들이 위탁영농 계약을 재연장하면서 개발에 따른 이익을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는 해석이다. 농림부는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해 도시민이 구입한 농지를 전용할 경우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부담금을 물리는 전용부담금제를 실시하고 농지개발때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섬 재테크]김포 신도시 개발 후폭풍

    [섬 재테크]김포 신도시 개발 후폭풍

    1960년대에 연륙교가 놓여져 육지와 다름없는 섬인 강화도는 요즘 김포신도시 개발 ‘후폭풍’에 따른 토지매매가 활기를 띠고 있다. 신도시 조성으로 농지를 수용당하게 될 김포 주민들이 대토 개념으로 거리가 가까운 강화도의 농지를 잇달아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이 여파로 강화읍 입구에는 20여개의 부동산업소가 생겨났다.한 업소 관계자는 “IMF 이후 모처럼 부동산 거래가 활발하다.”면서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지만 투자성 농지 구입도 상당수 있다.”고 귀띔했다.이로 인해 수개월 전만 해도 평당 6만원하던 논이 12만∼13만원으로 2배 가량 올랐다.물론 형질변경이 불가능한 농림지역(절대농지)이지만 먼 미래를 보는 것이다.강화군 전역은 토지거래허가지역이지만 외지인도 농지의 경우 300평 이하는 허가없이 구입할 수 있으며 임야는 600평까지 가능하다. 사실 강화는 오래전부터 외지 투자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왔다.“강화땅의 절반 이상이 외지인들에게 넘어갔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바닷가 경관이 좋은 마을에 방치돼 있는 빈 집은 외지인들의 소유로 보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화도면 장화·여차·동막리,길상면 초지리,내가면 외포리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마을마다 10∼20개씩 빈집이 있다.대개 전원주택용이나 투자 목적으로 구입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매물이 잘 나오지 않으며,나온다 하더라도 평당 100만원대에 이르는 고가다. 이같은 대지 외에도 관리지역(준농림지)의 전,답,임야는 형질변경을 통해 주택 건설이 가능하다.강화도는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평당 전 25만∼30만원,답 10만∼30만원,임야 10만∼30만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다.전·답이라도 대로변에 접한 경우는 평당 100만원에 육박하기도 한다.강화도는 개발이 많이 진행된 탓에 임야의 형질변경이 다른 섬에 비해 쉬운 편이다. 온천 개발이 추진중인 불은면 삼성리와 상동암리는 토지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삼성리의 전,답,임야는 40만원선,상동암리는 30만∼40만원이다.삼성리가 다소 비싼 것은 큰길에서 가까워 개발이 수월한데다 일조권이 좋기 때문이다. 강화도에서 서쪽으로 1.6㎞ 가량 떨어진 섬 석모도는 강화도를 잇는 다리 건설 여부가 항상 재테크의 핵심으로 떠오른다.㈜석모개발이 지난해 강화도 건평리와 석모도 석포리간을 잇는 석모대교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자 석포리 일대 땅값이 20∼30% 가량 올랐다.그러나 아직 석포리에 제한된 현상인데다 실제 토지거래는 활발치 못하다.섬 전반적으로는 관리지역 기준으로 전 10만∼30만원,답 10만∼30만원,임야 10만∼60만원 등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지난해 논에서 온천수가 나와 일대 3만평이 온천지구로 지정된 매음리는 평당 30만∼50만원을 호가한다. 석모도는 경관이 뛰어나고 전통사찰인 보문사라는 확실한 관광상품이 있기 때문인지 수년새에 30여개에 달하는 펜션·카페가 들어섰다.지금도 대형 호텔과 모텔,콘도가 각각 1개씩 건설중이다.그러나 이러한 투자는 다리 건설을 전제로 했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는데 ㈜석모개발은 당초 제안과는 달리 건설비 일부를 강화군에 떠넘기려 하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강화도 북쪽으로 2.3㎞ 가량 떨어진 교동도 역시 지난 4월 강화도 인화리∼교동도 봉소리간 교동대교 건설계획이 강화군에 의해 발표된 이후 땅값이 전체적으로 10∼20% 가량 올랐지만 매물이 거의 없다.얼마전까지만 해도 전·답 10만∼20만원,임야 10만∼15만원에 불과했었다.이곳 주민들은 군에 의해 건설되는 교동대교가 비록 발표는 늦었지만 민자로 지어지는 석모대교보다 개통이 빠를 것이라고 믿고 있다.이같은 기대심리가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반대편인 강화도 인화리의 토지가격도 20% 가량 올라 전·답이 30만∼35만원을 호가한다. 교동도는 민통선 지역이어서 그 흔한 펜션이나 모텔 하나 없을 정도로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남북 화해무드에 연도교가 얹혀지면 ‘범이 날개를 단 격’으로 개발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유망한 전원주택·펜션·주말농장 후보지로는 읍내리,봉소리,동산리,고구저수지 주변 등이 꼽힌다. 글 강화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부동산업소 ◇강화도 신의:032-934-1145 나라:032-932-0444 땅지:032-932-1203 신태양:032-932-8866 발리:032-933-1774 시내산:032-934-1122 알미:032-933-3068 한국:032-933-8242 ◇석모도 삼산:032-932-3945 석모도:032-933-7771 보문:032-933-7743 석모대교:032-933-3151 ◇교동도 교동:032-932-4008 강화교동:032-932-3599
  • [섬 재테크]김포 신도시 개발 후폭풍

    1960년대에 연륙교가 놓여져 육지와 다름없는 섬인 강화도는 요즘 김포신도시 개발 ‘후폭풍’에 따른 토지매매가 활기를 띠고 있다. 신도시 조성으로 농지를 수용당하게 될 김포 주민들이 대토 개념으로 거리가 가까운 강화도의 농지를 잇달아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이 여파로 강화읍 입구에는 20여개의 부동산업소가 생겨났다.한 업소 관계자는 “IMF 이후 모처럼 부동산 거래가 활발하다.”면서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지만 투자성 농지 구입도 상당수 있다.”고 귀띔했다.이로 인해 수개월 전만 해도 평당 6만원하던 논이 12만∼13만원으로 2배 가량 올랐다.물론 형질변경이 불가능한 농림지역(절대농지)이지만 먼 미래를 보는 것이다.강화군 전역은 토지거래허가지역이지만 외지인도 농지의 경우 300평 이하는 허가없이 구입할 수 있으며 임야는 600평까지 가능하다. 사실 강화는 오래전부터 외지 투자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왔다.“강화땅의 절반 이상이 외지인들에게 넘어갔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바닷가 경관이 좋은 마을에 방치돼 있는 빈 집은 외지인들의 소유로 보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화도면 장화·여차·동막리,길상면 초지리,내가면 외포리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마을마다 10∼20개씩 빈집이 있다.대개 전원주택용이나 투자 목적으로 구입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매물이 잘 나오지 않으며,나온다 하더라도 평당 100만원대에 이르는 고가다. 이같은 대지 외에도 관리지역(준농림지)의 전,답,임야는 형질변경을 통해 주택 건설이 가능하다.강화도는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평당 전 25만∼30만원,답 10만∼30만원,임야 10만∼30만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다.전·답이라도 대로변에 접한 경우는 평당 100만원에 육박하기도 한다.강화도는 개발이 많이 진행된 탓에 임야의 형질변경이 다른 섬에 비해 쉬운 편이다. 온천 개발이 추진중인 불은면 삼성리와 상동암리는 토지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삼성리의 전,답,임야는 40만원선,상동암리는 30만∼40만원이다.삼성리가 다소 비싼 것은 큰길에서 가까워 개발이 수월한데다 일조권이 좋기 때문이다. 강화도에서 서쪽으로 1.6㎞ 가량 떨어진 섬 석모도는 강화도를 잇는 다리 건설 여부가 항상 재테크의 핵심으로 떠오른다.㈜석모개발이 지난해 강화도 건평리와 석모도 석포리간을 잇는 석모대교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자 석포리 일대 땅값이 20∼30% 가량 올랐다.그러나 아직 석포리에 제한된 현상인데다 실제 토지거래는 활발치 못하다.섬 전반적으로는 관리지역 기준으로 전 10만∼30만원,답 10만∼30만원,임야 10만∼60만원 등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지난해 논에서 온천수가 나와 일대 3만평이 온천지구로 지정된 매음리는 평당 30만∼50만원을 호가한다. 석모도는 경관이 뛰어나고 전통사찰인 보문사라는 확실한 관광상품이 있기 때문인지 수년새에 30여개에 달하는 펜션·카페가 들어섰다.지금도 대형 호텔과 모텔,콘도가 각각 1개씩 건설중이다.그러나 이러한 투자는 다리 건설을 전제로 했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는데 ㈜석모개발은 당초 제안과는 달리 건설비 일부를 강화군에 떠넘기려 하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강화도 북쪽으로 2.3㎞ 가량 떨어진 교동도 역시 지난 4월 강화도 인화리∼교동도 봉소리간 교동대교 건설계획이 강화군에 의해 발표된 이후 땅값이 전체적으로 10∼20% 가량 올랐지만 매물이 거의 없다.얼마전까지만 해도 전·답 10만∼20만원,임야 10만∼15만원에 불과했었다.이곳 주민들은 군에 의해 건설되는 교동대교가 비록 발표는 늦었지만 민자로 지어지는 석모대교보다 개통이 빠를 것이라고 믿고 있다.이같은 기대심리가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반대편인 강화도 인화리의 토지가격도 20% 가량 올라 전·답이 30만∼35만원을 호가한다. 교동도는 민통선 지역이어서 그 흔한 펜션이나 모텔 하나 없을 정도로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남북 화해무드에 연도교가 얹혀지면 ‘범이 날개를 단 격’으로 개발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유망한 전원주택·펜션·주말농장 후보지로는 읍내리,봉소리,동산리,고구저수지 주변 등이 꼽힌다. 글 강화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부동산업소 ◇강화도 신의:032-934-1145 나라:032-932-0444 땅지:032-932-1203 신태양:032-932-8866 발리:032-933-1774 시내산:032-934-1122 알미:032-933-3068 한국:032-933-8242 ◇석모도 삼산:032-932-3945 석모도:032-933-7771 보문:032-933-7743 석모대교:032-933-3151 ◇교동도 교동:032-932-4008 강화교동:032-932-3599˝
  • [이주일의 어린이책] 나는 주워온 아이인가봐/정유나 글

    누구나 어릴 때 한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이다.동생을 괴롭힌다고 야단맞거나 나만 힘든 일을 해야 할 때,‘내 친부모는 누구일까.’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아이들의 순박함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의 주인공 ‘나’도 마찬가지다.시골에서 맏이로 태어난 ‘나’는 어린 동생도 돌봐야 하고,농사일이나 집안일도 도와야 한다.바지에 오줌을 싼 동생을 쥐어박다가 엄마에게 야단을 맞은 ‘나’는 하루종일 집 밖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해질 무렵에서야 몰래 부엌으로 들어온다.그때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너 좋아하는 달걀 부쳐놨다.밥 먹게 어서 씻고 와.’ 엄마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멋쩍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우리 유물 나들이’시리즈의 하나로 기획된 이 책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옛날 사람들이 쓰던 신기한 유물에 대한 설명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요강이나 각종 농기구,밥지을 때 쓰는 살림도구 ,악귀나 질병을 쫓는 장승 등 지금은 보기 어려운 각종 유물들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호기심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초등 저학년용.8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中國 쌀산업 대해부] (하) 유통체계 허점없나

    중국의 국내 쌀시장 개방 요구는 얼핏보기에 위협적이다.세계 최대 쌀 생산국이면서 최첨단 도정·가공시스템을 갖춘 점 등을 감안하면 겉으로는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로 ‘탈농(脫農)’현상이 심화되면서 해마다 벼 재배면적이 줄어들어 자국의 수요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속사정이 있다.특히 중국내 쌀 유통실태를 들여다보면 쌀 경쟁력이 부풀려져 있음도 알 수 있다. ●북적대는 상하이의 최대 쌀 도매시장 중국 최대의 쌀 전문판매 시장인 상하이시 ‘신전(眞新)교역’시장.3000여평의 반구형 도매 시장안에 20㎡짜리 점포 190여개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늦은 오후인 데도 흥정하는 상인들도 보이고,화물차에서 쌀을 내려놓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최근 하루 평균 거래량은 2000t남짓.지난 해 33만t(하루 평균 90t)의 쌀이 거래된 점을 비춰보면 올들어 두 배 정도 거래가 늘었다.질 좋은 동북 3성의 자포니카 쌀이 이곳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동북 3성산(産)’이라는 간판을 내건 점포들이 상당수 있다. 동북 3성 쌀을 찾는 소매상들이 늘면서 쌀 가격도 크게 올랐다.동북 3성 쌀은 ㎏당 3.2위안이다.우리나라의 80㎏짜리 한 가마로 환산하면 3만 8400원.올해 우리나라 정부 수매가격이 16만 1010원이니 4분의1수준이다.한 상인은 “동북쌀이 품귀 현상을 빚어 지난해 말 2.6위안 하던 쌀이 3.2위안으로 올랐다.”면서 “산지 쌀 가격이 계속 올라야 농민들이 농사를 계속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1600만위안(24억원)을 주고 정부로부터 이 시장을 넘겨받았다는 전싱싱(陳杏興·52) 사장은 “이농(離農) 현상을 막으려면 산지 가격이 ㎏당 4위안(현재 2위안 안팎)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지금보다 2배는 더 올라야 쌀 재배 농민들의 수지가 맞다는 얘기다. ●쌀 경쟁력 실체와 달라 하지만 중국 쌀의 유통 현장을 보면 쌀 경쟁력의 실체는 사뭇 달라보인다.중국내 유통구조는 크게 3갈래로 볼수 있다.산지 쌀이 중간상을 거쳐 민·관 도정공장과 정부 비축분으로 흘러가거나,중간상이 직접 판매하는 경우다.도정공장용은 ‘브랜드 쌀’로 해외수출 가능성이 있는 쌀이고,직접 판매용은 질 낮은 쌀로 대부분 시골에서 소비된다.우리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정부비축 물량이다.제대로 비축돼 있지 못하다.중국 농업기술경제연구소 간징톈(干經天) 교수는 “중앙 정부는 전체 생산량의 20%,국민의 6개월 소비물량을 지방 정부별로 할당,수매하도록 했으나 이를 지키는 지방정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면서 “기밀이어서 정확히 확인하긴 어렵지만 정부 곳간은 텅 비어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중국의 쌀 생산량은 1억 1940만t가량.이 기간의 예상 소비량은 1억 3870만t으로 1930만t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부족분은 옥수수 보리 등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촌진흥청의 베이징 파견관인 강충길(姜忠吉) 박사는 “중국 정부는 식량 공급을 제1 국가과제로 삼고 있는데 쌀이 부족한 형편에 수출 여력이 있을 지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입장 변화 가능성? 18일 베이징에서 우리나라 대표단과 2차 양자간 협상에 나선 중국 대표단은 한국 쌀 시장의 전면 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쌀의 수출 물량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중국의 요구대로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대신 40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중국으로선 실익이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국 정부의 주장대로 전면 개방을 몇년간 늦춰주는 대신에 낮은 관세를 물고 일정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수출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올해 우리나라가 관세화 유예를 조건으로 의무도입한 수입쌀은 22만 5000t으로,중국은 이 중 절반 가량을 5%의 관세만 물고 수출하고 있다. 강충길 박사는 “우리나라 협상 대표단이 여론의 압박으로 성급한 판단을 해선 안 된다.”면서 “실익을 우선한 결과를 얻은 뒤 고품질 쌀을 개발하고,농업전략 전문가들을 양성하면서 농정을 편다면 쌀 문제로 국민이 고통받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중국)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9) 토기의 넋을 찾아서

    지나친 편리함과 이익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욕망이 회색도시를 만들었다.기계화,자동화로 설명되는 편리함은 삶의 틀 자체까지 변화시키고 있다.또한 이익을 키우기 위해서는 영혼까지 거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혼란,무질서,인간 상실로도 일컬어지는 회색도시는 철구조물을 뼈대로 삼고 콘크리트로 살을 입혀 만든 욕망의 그림자다.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발바닥에는 흙이 묻지 않는다.흙을 밟지 않고 산다.흙으로 이루어진 대지(大地) 위에 살면서도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갇혀버렸다.고층 아파트에서 태어난 아기는 평생토록 흙을 밟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흙으로부터 추방된 도시인을 만든 것은 도시인 스스로의 욕망이다.어느새 도시인들은 차츰 흙을 그리워한다.한 주일 또는 한 달에 한 번쯤이라도 흙을 밟아봐야만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는 듯이 시간이 나면 아파트를 빠져나와 흙이 살아있는 산과 들녘으로 간다. 웬만한 산과 들판은 온통 등산복 차림 도시인들로 북적거린다.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은 등산복 차림으로 못가는 데가 없을 정도로 기이한 복장문화가 생겨났다.흙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갖추어 입는 예복이 아닌 전투복 같은 느낌이다.흙을 순례하는 것이 아니라 흙에 기대어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 셈이다. 전투복의 사람들은 몹시 게걸스럽다.등에 짊어진 배낭 가득 먹을 것을 쑤셔 넣고 산이며 들판에 나온다.그들은 배불리 먹고 껍질은 아무데나 버린다.배가 부르면 남이야 상관없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노래를 부르고,마구 내질러댄다.도시인들이 지나간 자리는 모조리 더럽혀지고 썩는다는 말도 생겨났다.흙에서 내쫓긴 자들의 불안과 상실감에서 생겨난 고약한 도시병이다. 흙에 대한 향수는 본능적이다.도심 곳곳에서 성업 중인 황토찜질방,황토아파트,황토침대,황토팬티,장작가마에서 구워낸 생활그릇들,고급 아파트나 주택의 거실에서 더러 볼 수 있는 가야나 신라 토기류들,꽃과 나무를 심은 크고 작은 화분들은 흙을 그리워하는 도시인들의 갈증이 투영된 슬픔이자 상처다. 한국인은 유달리 흙과 친하게 살아왔다.물고기,야생 동물들을 잡거나 원시림의 풀잎이나 열매 혹은 뿌리를 먹이로 삼아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았던 유목시대의 정서는 한국인의 피 속에 아주 옅게 남아 있을 뿐이다.그보다는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살면서 자연에 순응하는,삶의 질서를 발견해 낸 역사가 한국인의 정서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땅은 순하고 살이 깊다.사계절 아름다운 순환이 흙의 성정을 순결하게 만들어서 한국 땅 어느 곳이든 호미로 살짝 헤집고 씨앗을 넣으면 금방 싹이 트고,꽃 피어 향그럽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고 익는다.비,바람,눈,서리,추위와 더위도 모질지 않아서 이 땅에 뿌리 내린 풀 나무는 모두 영험한 약이 되고 맛있는 음식이 된다. 그래서 금수강산이라 불렀다.산중이든 들녘이든 땅심이 깊고 기름지다.지구 위 어느 나라 땅보다 비옥하다. ●흉년들면 지장토 먹고 목숨 건지기도 흙에 들어있는 광물질 등 영양소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여 예부터 중국의 제후들은 한국 땅에서 자라는 약초와 차(茶)를 매우 선호했다.현대에도 중국산 인삼,채소류,과일,곡물류가 한국산에 비해 약효와 맛이 뒤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이렇듯 한국의 흙은 그 자체가 영약이 될 때도 있다.오랜 흉년이 들어 가난한 이들이 양식 부족으로 굶주릴 때 ‘지장토(地藏土)’라 부르는 흙으로 무수한 사람 목숨을 구했는데,황토의 일종인 지장토를 먹고 목숨을 건진 사례는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이처럼 농사의 근본이 되는 흙은 곧 한국문화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한국인은 그 이전 유목시대에 사용했던 도구들과는 사뭇 다른 도구를 만들어 냈다.흙을 이용하여 만든 토기(土器)였다. 수렵 채취 시대 때는 계속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토기처럼 무겁고 깨지기 쉬운 도구가 필요하지 않았다.이때는 주로 풀잎이나 식물의 줄기,넝쿨 같은 것을 엮어서 썼다.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곡식이나 물을 저장하고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는 보다 견고한 도구가 필요했다.특히 불을 이용하여 음식을 끓여 먹을 수 있는 도구의 필요성이 문화가 생겨날 수 있는 배경을 이루었다.그 문화의 원형이 토기였다.항아리와 잔은 한국인이 맨 먼저 만든 그릇인데,물,곡식을 저장하기 위해 항아리가 필요했다면 잔은 물,국물,술,차를 담아서 제사하거나 마시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따라서 생활감정이나 미적감각의 변천이 한국인이 사용한 어떤 물건보다도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이 토기이고,그 이후의 모든 그릇들이었다.하나의 그릇에는 한 시대 역사와 마음이 담겨있다는 말이 생겨난 이유이며 그릇은 한 민족이나 국가 문화의 모태이기도 한 까닭이다. 인류는 문자나 옷보다 그릇을 먼저 만들어 썼다.문자나 의류보다 먹는 일이 더 본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문자나 의류는 그릇이라는 ‘어머니문화’가 낳아서 기른 ‘자식문화’인 셈이다. ●인류역사상 최고수준의 도자기문화 완성 이렇듯 한국문화 모태로서의 토기는 세계 고대 민족들이 공통적으로 제작하여 사용했던 토기류들에 비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는 매우 우수하고 고급스러운 그릇들이다. 토기류 제작 기술에서 발견되는 과학적 사고와 사상은 그 후 청자,백자,분청사기 등 인류 역사상 최고 수준의 도자기문화를 완성시킬 수 있는 풍부하고 튼튼한 기초가 되었다. 토기의 제작은 새로운 산업이었다.흙으로 형태를 만들고,불을 이용하여 단단해지도록 구워내며,불의 온도에 따라서 단단함과 색깔이 달라지고,흙의 종류에 따라서도 단단하기와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화학변화를 이용한 최초의 과학적 사고이자 생활화였다.또한 흙과 불을 인간의 의지대로 조절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릇을 빚어낼 수 있다는 확신은 사상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특히 토기류에 장식을 하거나 주위 환경을 참작하여 만든 형태의 그릇들을 이용하는 여러 가지 의식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국가와 제도를 운영하는데 신의 존재와 조상에 대한 제사의식이 발달하게도 되었다. 토기는 음식을 끓이거나 졸이는 조리용,각종 행사나 의식용,지역 기후의 변화에 알맞은 그릇,빈부와 신분 차이를 나타내는 그릇으로 변화하면서 차츰 한국인들의 생활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나무,돌,종이,금속을 이용한 그릇보다 만들기가 쉽고 재료가 풍부한 탓으로 폭발적인 수요를 충당하면서 토기의 시대는 오래 지속되었다. ●한민족 문화의 원형 ‘토기’ 무엇보다 뜨거운 음식을 담았을 때 빨리 식지 않는 토기의 성질은 따뜻한 음식을 즐겨 먹는 한국인의 정서에 매우 알맞았다.또한 차가운 음식을 담아두어도 쉽사리 미지근해지지 않게 하는 토기는 오래 잘 견디고 기다리는 심성의 문화를 만드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토기는 수분을 흡수하거나 내뿜는 이른바 숨쉬는 그릇으로서 물이 쉽게 썩지 않아 담아 둔 음식이 오래 보존된다.이처럼 숨쉬는 그릇임이 알려지면서부터 곡식이나 씨앗을 신선하게 저장하는 귀중한 도구로 발전했다. 고구려 때부터 시작된 콩으로 메주를 쑤고,장을 담는 문화가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숨쉬는 토기를 제작할 줄 알았던 한국인의 지혜가 낳은 인류 최고의 문화였다. 흙과 불의 조화를 다스려 자연에 순응하는 슬기를 삶의 기쁨으로 여겼던 한국인이 플라스틱,알루미늄,스테인리스 스틸,유리 등 숨 막히는 그릇에다 독기 묻은 육류와 농약 중금속에 오염된 채소류를 담아 먹으면서 끊임없이 도모하는 편리함과 이익키우기가 과연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여기쯤에서 한 번 가던 걸음을 멈추고,속도를 줄이고 서 보자.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인은 과연 어떤 그릇에 담겨 있는가?˝
  • [술따라 맛따라] 청양 ‘둔송 구기주’

    [술따라 맛따라] 청양 ‘둔송 구기주’

    충남 ‘청양’이라면 누구나 매운 고추를 떠 올린다.하지만 그 지방에 가 보면 고추보다 구기자가 더 유명하다.가는 곳곳마다 ‘구기자’가 청양의 대표 특산품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있다.전국 구기자 생산량의 40% 넘는 양이 이곳 청양에서 생산된다고 한다.충남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에서 청양 ‘둔송 구기주’를 빚는 장인 임영순(65)씨의 집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유,오시느라 힘드셨지유.” 순한 눈매의 임씨는 구기주부터 한잔 건넸다.하얀 잔에 담긴 술은 노르스름한 색이 너무 진해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입에 가져다 대어보니 약재의 향이 강하고 맛은 시큼하면서 달착지근했다.16도나 되는데 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로부터 구기자의 효능과 약효는 각종 문헌에 기록이 남아있다.규합총서 기록에 의하면 한 여인이 구기자를 먹어 390세가 되어도 얼굴빛이 15∼16세 소녀와 같았다 한다.또한 조선시대 민속주 연구논문 자료에 의하면 구기자 열매,꽃,뿌리로 술을 빚었다는 기록이 ‘산림경제’,‘증보산림경제’,‘임원십육지’에 소개되어 있다. 임씨는 이처럼 명약과도 같은 구기자술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일까.그것은 순전히 시집을 ‘잘못’온 탓이라 한다.21살에 시집을 온 그녀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다.외아들을 빼앗겼다고 느낀 시어머니는 매일 술을 마시며 주정했다.혹시 술이 떨어지는 날이면 날벼락이 떨어졌다.남편 또한 술을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보름에 한 번씩 술을 빚었고 시어머니와 남편의 술은 끊을 수 없어도 건강을 지키기위해 몸에 좋다는 구기자와 두충,감초 등을 듬뿍 넣었다. 그는 ‘술꾼’인 시어머니와 남편을 위해서 아침에 술국을 끓인 일이 없다한다.임씨가 빚은 술은 숙취가 없고 그나마 몸을 덜 해쳤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는 잔치마다 불려 다니며 술을 빚어주게됐고 인근에서 최고의 술도가로 손꼽혔다.1996년 ‘명인’이란 칭호를 받았다.하지만 술을 본격적으로 빚지않는 바람에 1999년에는 ‘명인’자격을 반납했다. “제가 무슨 장사꾼도 아니고 술을 만들어 부귀영화를 부릴 것도 아니고 당연히 반납을 했지요.”라며 “무슨 쥐꼬리만큼 지원을 해주고 ‘살균기,여과기를 갖추어라.’라는 등 규제가 심하고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어 술을 팔 자신도 없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한다.하지만 주변에서 우리전통 ‘구기주’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만류에 못 이겨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고민하고 있는 임씨에게 아들이 ‘어머니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술을 만들지 마세요.’라는 충고를 했다.“저의 대답은 간단했지요.‘술을 팔아 돈을 벌 생각은 없고 그저 빚이나 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어요.”라며 “지금도 돈을 벌기보다는 사람을 버는 것이 좋다고 믿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하지만 그녀는 술도가를 만들면서 들어간 ‘빚’때문에 자신의 꿈인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해 여생을 바칠 계획이 늦추어지고 있는 것이 여간 안타깝지않다고 한다. 20년째 같이 살며 기술을 전수받고 있는 며느리 최여옥(42)씨는 “제가 약초를 조금 넣으면 어머님이 어느 샌가 약초 한주먹을 더 갖다 넣으시곤 합니다.”라며 “아마 40년이 넘게 술의 맛이 변하지 않는 것도 어머님의 ‘고집’때문이 아닌가 합니다.”라고 말한다.또한 약주로는 드물게 16도를 유지하는 비결은 수입쌀도 2등급 쌀도 아닌 1등급짜리를 쓰는데 있다고 한다. 임씨가 예전에 시집살이를 하면서 빚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마시면 누룩의 진한 맛이 입에 남지 않고 감칠맛이 일품인 우리나라 최고의 약술인 ‘둔송 구기주’가 만들어진다. “저는 욕심 없습니다.농사를 지어 밥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습니다.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대에 영합해 ‘우리 것’을 자꾸 바꾸어 가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라면서 “우리 정부도 제대로 된 ‘민속주’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합니다.가령 양조장은 주세를 5%를 부과하고 민속주는 40%를 부과하기 때문에 민속주를 만들면 빚만 쌓여가지요.그러니까 자꾸 사람들을 속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라며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이 우리 것을 보존할 수 있는 첫걸음임을 강조했다.041)942-8138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따라 빚으세요 (1) 쌀 3㎏을 곱게 빻아 백설기를 만들고 누룩 1㎏과 섞어서 4일간 발효시킨다. (2) 쌀 4㎏을 쪄서 누룩 1㎏와 섞어 밑술을 만든다. (3) 구기자는 따로 달여서 구기자 뿌리,잎,두충피,두충잎 등과 섞은 뒤 밑술과 잘 섞어서 15일간 발효시킨다. (4) (1)과 (3)을 섞어서 10일간 숙성시킨다. (5) (4)를 잘 걸러내면 맛있고 몸에 좋은 둔송 구기주가 완성된다.
  • [술따라 맛따라] 청양 ‘둔송 구기주’

    충남 ‘청양’이라면 누구나 매운 고추를 떠 올린다.하지만 그 지방에 가 보면 고추보다 구기자가 더 유명하다.가는 곳곳마다 ‘구기자’가 청양의 대표 특산품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있다.전국 구기자 생산량의 40% 넘는 양이 이곳 청양에서 생산된다고 한다.충남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에서 청양 ‘둔송 구기주’를 빚는 장인 임영순(65)씨의 집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유,오시느라 힘드셨지유.” 순한 눈매의 임씨는 구기주부터 한잔 건넸다.하얀 잔에 담긴 술은 노르스름한 색이 너무 진해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입에 가져다 대어보니 약재의 향이 강하고 맛은 시큼하면서 달착지근했다.16도나 되는데 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로부터 구기자의 효능과 약효는 각종 문헌에 기록이 남아있다.규합총서 기록에 의하면 한 여인이 구기자를 먹어 390세가 되어도 얼굴빛이 15∼16세 소녀와 같았다 한다.또한 조선시대 민속주 연구논문 자료에 의하면 구기자 열매,꽃,뿌리로 술을 빚었다는 기록이 ‘산림경제’,‘증보산림경제’,‘임원십육지’에 소개되어 있다. 임씨는 이처럼 명약과도 같은 구기자술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일까.그것은 순전히 시집을 ‘잘못’온 탓이라 한다.21살에 시집을 온 그녀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다.외아들을 빼앗겼다고 느낀 시어머니는 매일 술을 마시며 주정했다.혹시 술이 떨어지는 날이면 날벼락이 떨어졌다.남편 또한 술을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보름에 한 번씩 술을 빚었고 시어머니와 남편의 술은 끊을 수 없어도 건강을 지키기위해 몸에 좋다는 구기자와 두충,감초 등을 듬뿍 넣었다. 그는 ‘술꾼’인 시어머니와 남편을 위해서 아침에 술국을 끓인 일이 없다한다.임씨가 빚은 술은 숙취가 없고 그나마 몸을 덜 해쳤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는 잔치마다 불려 다니며 술을 빚어주게됐고 인근에서 최고의 술도가로 손꼽혔다.1996년 ‘명인’이란 칭호를 받았다.하지만 술을 본격적으로 빚지않는 바람에 1999년에는 ‘명인’자격을 반납했다. “제가 무슨 장사꾼도 아니고 술을 만들어 부귀영화를 부릴 것도 아니고 당연히 반납을 했지요.”라며 “무슨 쥐꼬리만큼 지원을 해주고 ‘살균기,여과기를 갖추어라.’라는 등 규제가 심하고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어 술을 팔 자신도 없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한다.하지만 주변에서 우리전통 ‘구기주’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만류에 못 이겨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고민하고 있는 임씨에게 아들이 ‘어머니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술을 만들지 마세요.’라는 충고를 했다.“저의 대답은 간단했지요.‘술을 팔아 돈을 벌 생각은 없고 그저 빚이나 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어요.”라며 “지금도 돈을 벌기보다는 사람을 버는 것이 좋다고 믿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하지만 그녀는 술도가를 만들면서 들어간 ‘빚’때문에 자신의 꿈인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해 여생을 바칠 계획이 늦추어지고 있는 것이 여간 안타깝지않다고 한다. 20년째 같이 살며 기술을 전수받고 있는 며느리 최여옥(42)씨는 “제가 약초를 조금 넣으면 어머님이 어느 샌가 약초 한주먹을 더 갖다 넣으시곤 합니다.”라며 “아마 40년이 넘게 술의 맛이 변하지 않는 것도 어머님의 ‘고집’때문이 아닌가 합니다.”라고 말한다.또한 약주로는 드물게 16도를 유지하는 비결은 수입쌀도 2등급 쌀도 아닌 1등급짜리를 쓰는데 있다고 한다. 임씨가 예전에 시집살이를 하면서 빚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마시면 누룩의 진한 맛이 입에 남지 않고 감칠맛이 일품인 우리나라 최고의 약술인 ‘둔송 구기주’가 만들어진다. “저는 욕심 없습니다.농사를 지어 밥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습니다.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대에 영합해 ‘우리 것’을 자꾸 바꾸어 가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라면서 “우리 정부도 제대로 된 ‘민속주’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합니다.가령 양조장은 주세를 5%를 부과하고 민속주는 40%를 부과하기 때문에 민속주를 만들면 빚만 쌓여가지요.그러니까 자꾸 사람들을 속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라며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이 우리 것을 보존할 수 있는 첫걸음임을 강조했다.041)942-8138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따라 빚으세요 (1) 쌀 3㎏을 곱게 빻아 백설기를 만들고 누룩 1㎏과 섞어서 4일간 발효시킨다. (2) 쌀 4㎏을 쪄서 누룩 1㎏와 섞어 밑술을 만든다. (3) 구기자는 따로 달여서 구기자 뿌리,잎,두충피,두충잎 등과 섞은 뒤 밑술과 잘 섞어서 15일간 발효시킨다. (4) (1)과 (3)을 섞어서 10일간 숙성시킨다. (5) (4)를 잘 걸러내면 맛있고 몸에 좋은 둔송 구기주가 완성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9) 토기의 넋을 찾아서

    지나친 편리함과 이익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욕망이 회색도시를 만들었다.기계화,자동화로 설명되는 편리함은 삶의 틀 자체까지 변화시키고 있다.또한 이익을 키우기 위해서는 영혼까지 거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혼란,무질서,인간 상실로도 일컬어지는 회색도시는 철구조물을 뼈대로 삼고 콘크리트로 살을 입혀 만든 욕망의 그림자다.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발바닥에는 흙이 묻지 않는다.흙을 밟지 않고 산다.흙으로 이루어진 대지(大地) 위에 살면서도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갇혀버렸다.고층 아파트에서 태어난 아기는 평생토록 흙을 밟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흙으로부터 추방된 도시인을 만든 것은 도시인 스스로의 욕망이다.어느새 도시인들은 차츰 흙을 그리워한다.한 주일 또는 한 달에 한 번쯤이라도 흙을 밟아봐야만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는 듯이 시간이 나면 아파트를 빠져나와 흙이 살아있는 산과 들녘으로 간다. 웬만한 산과 들판은 온통 등산복 차림 도시인들로 북적거린다.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은 등산복 차림으로 못가는 데가 없을 정도로 기이한 복장문화가 생겨났다.흙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갖추어 입는 예복이 아닌 전투복 같은 느낌이다.흙을 순례하는 것이 아니라 흙에 기대어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 셈이다. 전투복의 사람들은 몹시 게걸스럽다.등에 짊어진 배낭 가득 먹을 것을 쑤셔 넣고 산이며 들판에 나온다.그들은 배불리 먹고 껍질은 아무데나 버린다.배가 부르면 남이야 상관없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노래를 부르고,마구 내질러댄다.도시인들이 지나간 자리는 모조리 더럽혀지고 썩는다는 말도 생겨났다.흙에서 내쫓긴 자들의 불안과 상실감에서 생겨난 고약한 도시병이다. 흙에 대한 향수는 본능적이다.도심 곳곳에서 성업 중인 황토찜질방,황토아파트,황토침대,황토팬티,장작가마에서 구워낸 생활그릇들,고급 아파트나 주택의 거실에서 더러 볼 수 있는 가야나 신라 토기류들,꽃과 나무를 심은 크고 작은 화분들은 흙을 그리워하는 도시인들의 갈증이 투영된 슬픔이자 상처다. 한국인은 유달리 흙과 친하게 살아왔다.물고기,야생 동물들을 잡거나 원시림의 풀잎이나 열매 혹은 뿌리를 먹이로 삼아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았던 유목시대의 정서는 한국인의 피 속에 아주 옅게 남아 있을 뿐이다.그보다는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살면서 자연에 순응하는,삶의 질서를 발견해 낸 역사가 한국인의 정서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땅은 순하고 살이 깊다.사계절 아름다운 순환이 흙의 성정을 순결하게 만들어서 한국 땅 어느 곳이든 호미로 살짝 헤집고 씨앗을 넣으면 금방 싹이 트고,꽃 피어 향그럽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고 익는다.비,바람,눈,서리,추위와 더위도 모질지 않아서 이 땅에 뿌리 내린 풀 나무는 모두 영험한 약이 되고 맛있는 음식이 된다. 그래서 금수강산이라 불렀다.산중이든 들녘이든 땅심이 깊고 기름지다.지구 위 어느 나라 땅보다 비옥하다. ●흉년들면 지장토 먹고 목숨 건지기도 흙에 들어있는 광물질 등 영양소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여 예부터 중국의 제후들은 한국 땅에서 자라는 약초와 차(茶)를 매우 선호했다.현대에도 중국산 인삼,채소류,과일,곡물류가 한국산에 비해 약효와 맛이 뒤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이렇듯 한국의 흙은 그 자체가 영약이 될 때도 있다.오랜 흉년이 들어 가난한 이들이 양식 부족으로 굶주릴 때 ‘지장토(地藏土)’라 부르는 흙으로 무수한 사람 목숨을 구했는데,황토의 일종인 지장토를 먹고 목숨을 건진 사례는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이처럼 농사의 근본이 되는 흙은 곧 한국문화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한국인은 그 이전 유목시대에 사용했던 도구들과는 사뭇 다른 도구를 만들어 냈다.흙을 이용하여 만든 토기(土器)였다. 수렵 채취 시대 때는 계속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토기처럼 무겁고 깨지기 쉬운 도구가 필요하지 않았다.이때는 주로 풀잎이나 식물의 줄기,넝쿨 같은 것을 엮어서 썼다.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곡식이나 물을 저장하고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는 보다 견고한 도구가 필요했다.특히 불을 이용하여 음식을 끓여 먹을 수 있는 도구의 필요성이 문화가 생겨날 수 있는 배경을 이루었다.그 문화의 원형이 토기였다.항아리와 잔은 한국인이 맨 먼저 만든 그릇인데,물,곡식을 저장하기 위해 항아리가 필요했다면 잔은 물,국물,술,차를 담아서 제사하거나 마시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따라서 생활감정이나 미적감각의 변천이 한국인이 사용한 어떤 물건보다도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이 토기이고,그 이후의 모든 그릇들이었다.하나의 그릇에는 한 시대 역사와 마음이 담겨있다는 말이 생겨난 이유이며 그릇은 한 민족이나 국가 문화의 모태이기도 한 까닭이다. 인류는 문자나 옷보다 그릇을 먼저 만들어 썼다.문자나 의류보다 먹는 일이 더 본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문자나 의류는 그릇이라는 ‘어머니문화’가 낳아서 기른 ‘자식문화’인 셈이다. ●인류역사상 최고수준의 도자기문화 완성 이렇듯 한국문화 모태로서의 토기는 세계 고대 민족들이 공통적으로 제작하여 사용했던 토기류들에 비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는 매우 우수하고 고급스러운 그릇들이다. 토기류 제작 기술에서 발견되는 과학적 사고와 사상은 그 후 청자,백자,분청사기 등 인류 역사상 최고 수준의 도자기문화를 완성시킬 수 있는 풍부하고 튼튼한 기초가 되었다. 토기의 제작은 새로운 산업이었다.흙으로 형태를 만들고,불을 이용하여 단단해지도록 구워내며,불의 온도에 따라서 단단함과 색깔이 달라지고,흙의 종류에 따라서도 단단하기와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화학변화를 이용한 최초의 과학적 사고이자 생활화였다.또한 흙과 불을 인간의 의지대로 조절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릇을 빚어낼 수 있다는 확신은 사상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특히 토기류에 장식을 하거나 주위 환경을 참작하여 만든 형태의 그릇들을 이용하는 여러 가지 의식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국가와 제도를 운영하는데 신의 존재와 조상에 대한 제사의식이 발달하게도 되었다. 토기는 음식을 끓이거나 졸이는 조리용,각종 행사나 의식용,지역 기후의 변화에 알맞은 그릇,빈부와 신분 차이를 나타내는 그릇으로 변화하면서 차츰 한국인들의 생활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나무,돌,종이,금속을 이용한 그릇보다 만들기가 쉽고 재료가 풍부한 탓으로 폭발적인 수요를 충당하면서 토기의 시대는 오래 지속되었다. ●한민족 문화의 원형 ‘토기’ 무엇보다 뜨거운 음식을 담았을 때 빨리 식지 않는 토기의 성질은 따뜻한 음식을 즐겨 먹는 한국인의 정서에 매우 알맞았다.또한 차가운 음식을 담아두어도 쉽사리 미지근해지지 않게 하는 토기는 오래 잘 견디고 기다리는 심성의 문화를 만드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토기는 수분을 흡수하거나 내뿜는 이른바 숨쉬는 그릇으로서 물이 쉽게 썩지 않아 담아 둔 음식이 오래 보존된다.이처럼 숨쉬는 그릇임이 알려지면서부터 곡식이나 씨앗을 신선하게 저장하는 귀중한 도구로 발전했다. 고구려 때부터 시작된 콩으로 메주를 쑤고,장을 담는 문화가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숨쉬는 토기를 제작할 줄 알았던 한국인의 지혜가 낳은 인류 최고의 문화였다. 흙과 불의 조화를 다스려 자연에 순응하는 슬기를 삶의 기쁨으로 여겼던 한국인이 플라스틱,알루미늄,스테인리스 스틸,유리 등 숨 막히는 그릇에다 독기 묻은 육류와 농약 중금속에 오염된 채소류를 담아 먹으면서 끊임없이 도모하는 편리함과 이익키우기가 과연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여기쯤에서 한 번 가던 걸음을 멈추고,속도를 줄이고 서 보자.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인은 과연 어떤 그릇에 담겨 있는가?
  • [‘미군기지 확장’ 논란 평택 르포 ] “땅 못내놔” “땅값 올라” 편갈린 주민

    평택시가 미군기지 확장을 둘러싼 찬·반 여론으로 들끓고 있다.정부가 용산 미8군사령부와 의정부 미군 2사단을 평택시 서탄면 K-55(일명 오산공군기지)와 팽성읍 K-6(캠프 험프리스) 가까이로 옮길 뜻을 내비친 까닭이다.낮은 보상액에 토지를 내놓아야 할 서탄면 황구지리와 팽성읍 대추리 주민들은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했다.50여년 동안 비행기 소음 등 환경피해에 시달려온 팽성읍 송화2리와 석탄면 회화리 주민들도 합세했다.반면 K-6 기지 앞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팽성읍 안정리 주민들은 경제논리를 내세우며 반기고 있다.주민들까지 두 편으로 갈라진 평택시를 돌아봤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지난 5일 새벽 2시33분,평택시 팽성읍 송화2리 마을회관.‘덜덜’ 떨리는 창문 탓에 잠이 오지 않는다.온 동네가 K-6(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의 헬리콥터 엔진소리에 가늘게 진동하고 있다.헬기를 점검하느라 밤새 엔진을 켜놓은 탓이란다.“따다다다 따다다다∼.” 갑자기 천둥소리가 내리쳤다.헬기 예닐곱 대가 굉음을 내며 동네를 한 바퀴 휘감았다.기왓장 부딪치는 소리,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멍한 귀를 붙잡고 한동안 웅크리고 앉았다. ●“50년간 소음에 피멍… 더이상 못참아” 경기도 평택시는 겉보기에는 도드라진 것 없는 지방도시지만,곳곳이 소음으로 피멍이 들어간다. 150만평의 미군기지 가까이 사는 송화2리 이청자(69) 할머니는 헬기 소리도 요란하지만,땅울림과 바람 때문에 견디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장독대 뚜껑이 남아난 것이 없어.기와도 산산조각난 지 오래야.빗물이 집안으로 뚝뚝 떨어진다니까.고추·나물 말리기는 엄두도 못내.가을에는 볏단도 세워놓고 말릴 수가 없다니까.헬기가 휩쓸고 가서….” 얘기 도중에도 블랙호크,시누크,아파치 헬기가 쉴새없이 이착륙하며 굉음을 쏟아냈다.텔레비전 화면이 ‘찌지직’ 소리를 내며 순간 사라졌다.하루평균 80여대가 뜨고 내린단다.땅을 뒤흔드는 굉음에 머리가 울리건만 동네 어르신들은 아랑곳없다. 이순규 이장은 청각이 둔감해진 탓이라고 했다.지난 4월 미군기지 주변 마을주민 193명이 10만원씩을 내고 청력조사를 받았다.평택시 박애병원 송중호 부원장은 “난청·고혈압이 심각하다.”면서 “군산·대구·춘천지역 미군기지 지역 주민들보다도 나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마침내 지난달,송화2리를 비롯한 미군기지 주변 마을주민 530명이 소음공해에 맞서 법정싸움을 시작했다.이들은 “피해보상은커녕 용산·의정부의 미군기지까지 이곳으로 이전한다니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50년 동안의 인내가 미군기지 확장으로 폭발한 셈이다. ●미군기지 때문에 두번 쫓겨날 판 K-55와 이웃한 서탄면 황구지리 마을.모내기를 끝낸 초록바다 사이로 217만평의 미군기지가 가로질러 있다.C-130 수송기와 F-16전투기,블랙호크 헬기 등이 연신 가로질러 간다.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역에 꼽혀 있는 노란 깃발 수백개가 한눈에 들어온다.‘생존권을 보장하라.’ ‘미군기지 확장 반대’라는 문구가 나부낀다. 임순목(75) 할아버지가 기지 확장으로 내놓아야 할 땅 2700평을 바라보고 있다.할아버지 가족은 50여년 전 K-55공군기지가 들어설 때 이미 한 차례 삶의 터전을 잃었다.아내 이정자 할머니가 당시 상황을 전했다.“천막과 합판 한 장을 주더니 나가라는 거야.남편은 군에 갔고,한 살배기를 등에 엎은 채 가재도구만 챙겨 나왔지.불도저로 집을 밀어내더라고.전쟁통이라 불평 한마디 못하고 100여가구가 쫓겨났어.우리땅이 4200평이 넘었는데,보상금은 고사하고 땅값도 못받았지.” 고생 끝에 이웃 황구지리 마을에 터를 잡고 큰아들과 농사일을 해왔다.그러나 지난해 말 정부는 또다시 일방적으로 땅을 내놓으라는 통보했다.“5000만원 빚을 얻어 벼말리기 기계·트랙터 등을 장만했는데.한 평에 7만원 주고 내쫓으면 어쩌라는 건지.손자 녀석들이 이제 고등학생인데….” 정부는 지난해 말 K-55 주변 황구지리 38만평과 K-6 주변 대추리 25만평의 토지를 매입한다고 발표했다.토지보상가는 평당 5만 9000∼7만 7000원.그러나 최근 ‘평택 국제평화신도시 계획’과 미군기지 확장 발표로 주변 농토 가격이 평당 15만원 수준으로 오른 상태라 비현실적인 보상가라는 지적이 많다. ●원정리 곳곳엔 미군환영 플래카드 송화2리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원정리 마을.K-6 정문 앞 안정쇼핑몰에는 ‘우리는 미군을 사랑한다.’ ‘우리는 당신의 희생을 기억한다.’고 영문으로 쓴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다.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부동산·자동차정비소·전통공예점 등이 영어간판을 내걸고 성업 중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미군들이 빠져나가 매출이 뚝 떨어졌는데 미군기지가 확장된다니 반갑지.땅값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고.반대할 이유가 어디 있나.” 이모(67)씨는 마을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최근 미군과 외국인을 상대로 임대주택 사업을 하는 주민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팽성읍 일대 외국인 임대주택은 400여가구.그러나 현재 500가구분의 건물을 짓고 있어 연말까지는 1000여가구로 늘어날 전망이다.월세는 30평짜리가 100만원 정도로 상당히 비싸다. 35년 동안 전통공예점과 임대사업을 해왔다는 최정희(63)씨는 “미군기지를 둘러싼 논쟁은 경제적 이유”라고 단언했다.“안정리 상인들은 외국인이 많을수록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니까 미군을 반기는 거야.황구지리나 대추리 마을은 정부의 토지보상액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반대하는 거고.소음? 우리마을이라고 헬기가 날아다니지 않나.” 최씨는 미군 반대가 일종의 인종차별이라고 했다.“우리집에 머문 외국인이 수백명이야.자식처럼 생각하며 돌봤지.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교포들을 생각해 봐.똑같은 입장이잖아.미군들을 배척하면,LA에서 사는 한국인들도 무시당할 수 있는 거라고.” 치열한 ‘생존싸움터’ 위로 블랙호크 헬기 서너 대가 유유히 지나간다. 평택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길섶에서] 흑백TV/오풍연 논설위원

    해질 무렵,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온다.큰 멍석이 그들을 기다린다.앞 자리는 언제나 노인들 차지.바짓가랑이가 해져 고추가 보일 듯 말 듯한 손자는 할머니 무릎에서 온갖 재롱을 피워댄다.젖먹이 아기는 엄마 품속에서 곤한 잠에 빠진다.농사일로 파김치가 된 장정들은 졸음을 쫓느라 무진장 애쓴다.마당 한쪽에선 모닥불이 피어 오른다.어릴 적 우리 마을에 흑백텔레비전이 처음 들어왔던 때의 모습이다. 당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프로레슬링.김일 선수는 모두의 우상이었다.그의 박치기 한 방에 상대 선수들은 그대로 무너졌다.특히 일본 선수를 넘어뜨릴 땐 동네가 떠나갈 듯했다.30여가구 중 방앗간 집이 맨 처음 TV를 들여왔다.면 소재지 다방에나 가야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으니,다른 가정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다.그 집 애들이 동네 꼬마들로부터 부러움을 산 것은 당연했다. 그랬던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이 현재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80인치짜리 대형 PDP TV도 선보였다.이제 흑백텔레비전은 골동품 반열에 올랐다.그래도 TV를 보는 재미는 그 때만 못하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中國 쌀산업 대해부](중)도정·가공 시스템- ‘씨앗에서 도정까지’ 바이어 입맛맞추기

    중국 쌀의 경쟁력은 대단위 경작,끊임없는 품종개발,값싼 가격 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자동화 설비를 동원한 도정(搗精)·가공 기술도 높은 경쟁력의 바탕이다.또 중앙 정부의 농가 지원책도 우리나라에 못지않다.이는 결국 수출을 겨냥한 투자로 모아진다. ●일본의 첨단 도정설비 도입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에 있는 ‘징허(菁禾)미곡유한공사’ 소속의 한 도정 공장.지린성 일대에서 수확된 벼를 곱게 찧어 자동포장을 거쳐 고품질 쌀로 가공하는 공장이다.우리나라로 치면 미곡종합처리장(RPC)인 셈이다. 공장 뒤편의 저온 저장(섭씨 22도) 창고에서 벼 부대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공장으로 실려 들어오자 도정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쌀이 쏟아졌다.쌀 낟알이 손상되지 않도록 균일하게 찧는 기술이다.이렇게 찧어진 쌀은 ‘징허’라는 상표로 2∼20㎏ 단위로 포장된다.징허의 도매 가격은 ㎏당 5위안(750원).중국 일반미(㎏당 3∼3.5위안)와 비교하면 비싼 편이지만 우리나라 일반미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우리나라 RPC 한곳의 하루평균 처리량보다 5배나 되는 120t의 쌀을 처리하지만 공장의 전 직원은 37명에 불과하다.자동화설비는 2002년 일본으로부터 2대를 도입했다.이 회사는 전국 5곳에 같은 설비를 갖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지난해 75만t의 쌀을 도정,이 가운데 11만t을 한국과 일본에 수출했다. ●농산물 가공업체의 경쟁력 중국 쌀 산업의 높은 경쟁력은 다른 농특산품을 가공,수출하는 업체의 첨단 운영방식에서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과일,채소,특산품 등에만 적용되고 있는 방식을 조만간 쌀 산업에도 적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시의 농산물가공 수출업체 ‘중다(中大)뉴랜드’의 한 공장.이곳에선 13종의 채소와 과일,콩 등을 가공 또는 진공포장 처리해 해외로 수출한다.외부인사의 방문 절차도 반도체 공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엄격하다.1995년 민·관 합작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중국 전역에 공장 4곳을 운영하고 있다.150여종에 이르는 생산품은 모두 국제 표준규격인 ‘ISO9001’에 맞춰 가공된다. 이를 미국과 유럽,일본 등 11개국의 월마트,까르푸,마크로 등 대형유통점에 직수출한다.항저우 공장의 지난해 총 생산액은 1억달러 정도.이 가운데 8000만달러어치를 해외로 수출했다.특히 녹차는 매년 3만 5000t을 수출하는 인기 품목이다.저장성에는 이같은 농산물 가공업체가 50개가량 있다.50여개 업체의 수출액은 총 39억달러에 이른다. 가공시설도 훌륭하지만 더 큰 장점은 농민들과 맺는 독톡한 계약이다. 회사는 농민들이 생산하는 단계부터 철저하게 관여한다.중국내 14개성의 농민들과 계약을 맺고 외국 바이어의 주문에 따라 씨앗의 종류에서 비료,재배법까지 지정해준다.직원들을 수시로 파견해 농민들에게 기술지도도 한다.반면 농민들은 까다로운 생산 통제를 받는 대신 재배한 농산물을 일반 시장에 내다파는 것보다 후한 가격을 받을 수 있다.출하걱정을 할 필요없이 농사만 지으면 되는 셈이다.회사는 원가부담이 커져도 수출용 상품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농민들이 농협과 민간에서 운영하는 도정 공장에 쌀 도정을 맡기고 있다.농민들은 도정 직후 또는 포장 직후에 쌀을 되돌려 받아 스스로 판매한다.판로 개척 역시 농민 몫이다. 체계적인 생산,가공과 조직적인 브랜드 홍보 등에서 중국이 앞서 있는 셈이다.차오궈천(超國臣) 지린성 수도작연구소장은 “한국 수입업체의 주문에 따라 2년단위로 수출계약을 맺고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쌀을 언제든지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출을 겨냥한 정부 지원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올해 신년사 등을 통해 “앞으로 인구가 13억명에서 16억명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쌀 증산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농촌진흥청의 베이징 파견관 강충길(姜忠吉) 박사는 “원자바오 총리는 농업담당 부총리를 지냈기 때문에 농업에 대한 관심이 크다.”면서 “중국인들로부터 존경받는 그의 말은 23개 성(省)정부의 지침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마다 있는 수도작(水稻作)연구소는 양질미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종자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가 연구소와 개발자에게 철저하게 돌아간다.동북3성에 걸쳐 흐르는 쑹화(松花)강 주변 지역은 중앙 정부 주도로 대규모 기계화,규모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가구당 경지면적을 확대하기 위해 경작지를 매수자에게 넘기면 3∼5년동안 매년 ㏊당 2000∼5000위안의 보상금을 준다.소규모 단위 농가의 연간 평균수입이 3000위안인 점을 감안하면 보상이 후한 편이다.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올해부터 ㏊당 연간 900위안에 이르는 물세,농업세 등 각종 세금도 없앴다.종자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성도 있다.쌀 생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올인’하고 있는 셈이다. 창춘·항저우(중국)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中國 쌀산업 대해부](상)‘곡창’ 동북3성 르포

    우리나라가 이달 중순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 2차 협상에 들어간다.미국 호주 태국 등 9개 협상국 가운데 중국의 시장개방 압력이 가장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중국 쌀은 국내 쌀과 비교해 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중국 쌀 산업의 실상에 대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중국 수출 쌀의 주산지로 떠오른 동북 3성의 영농현장과 항저우의 첨단 도정·가공현장,상하이의 쌀 유통시장 현장을 찾아 우리의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수출 쌀의 주산지 동북 3성 중국 동북 3성 지방의 모내기가 막 시작된 지난 5월 말 지린성(吉林省)의 창춘(長春)시. 시내에 들어서자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 곡물 부대를 가득 실은 낡은 화물차가 100여대 이상 줄지어 서 있다.부대마다 마른 옥수수 알갱이가 가득차 있다.조선족 안내인은 “가을이 되면 화물차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이 가득 담길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린성은 북쪽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과 동쪽의 랴오닝성(遼寧省)과 함께 중국의 쌀 주산지로 떠오르고 있다.재배 주종은 중국인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좋아하는 ‘자포니카(중단립종)’계열.동북 3성의 쌀 생산량은 중국 쌀 수확량의 0.9%인 1471만t에 불과하다.그러나 질 좋은 자포니카 쌀만 따지면 중국의 전체 생산량의 절반에 이른다.결국 우리나라 쌀 시장이 개방되면 동북 3성이 한국의 쌀 시장을 휩쓸 수도 있다. 창춘시를 그대로 통과해 남서쪽으로 2시간 남짓 자동차로 달리면 궁주링(公主)시에 이른다.지린성 농업과학원 수도작(벼농사)연구소가 있다.성 단위로 1곳씩 벼 재배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다. ●자포니카 쌀 수요 부쩍 증가 수도작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시험재배단지는 시험단지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호남평야와 비슷한 규모다.모내기철이만 농부들이 모를 심는 풍경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우리 농촌과 달리 청춘 남녀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손으로 모를 심다보니 모 간격은 10㎝ 안팎으로 매우 촘촘하다.동행한 농림부 관계자는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10%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린성의 벼 재배 면적은 47만㏊,거주인구는 2700만명이다.강수량은 우리나라보다 적지만 세계적인 흑토(黑土)지대여서 땅에 유기질 함량이 높고 비옥해 벼농사에 적지다.일조량도 풍부하다. 농부 뤼인웨(61)는 “한국이든 어디든 쌀을 수출해서 돈을 벌면 좋은 일”이라면서 “쌀을 팔 곳이 문제이지,쌀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생산한 쌀 가운데 절반이 안 되는 200만t은 지역 주민들이 소비하고 나머지 250만t은 상품화할 수 있다.차오궈천(超國臣) 수도작연구소장은 “한국에 150만t의 쌀을 수출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차오 소장은 “현재 중국 자포니카 쌀의 소매 가격은 1㎏당 3.2위안(元)”이라고 설명했다.80㎏으로 환산하면 3만 8400원이다.우리나라 1등품 쌀의 5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은 양쯔강(揚子江)을 중심으로 북방의 동북 3성과 양쯔강 하류의 장쑤성(江蘇省) 등에선 찰기가 있는 자포니카 쌀을 주로 재배한다. 상하이를 포함한 남방지역에선 꼬들꼬들한 인디카(장립종)종을 심는다.몇해 전부터 도시민을 중심으로 자포니카 쌀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산업화로 소득이 높아지면서 가격은 1.5배 정도 비싸지만 감칠 맛이 나는 자포니카 쌀을 찾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따라 1980년에 쌀 생산량의 5%에 불과하던 자포니카 쌀은 90년에 10%,2000년에 20%로 늘더니 다시 2년 사이에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로 증가했다. 수도작연구소의 목표는 양질미 종자를 보급하는 한편 유기농 쌀 재배법을 개발하는 것이다.양질미는 한국의 일품벼,일본의 아키다코마치(秋田小町)와 같이 1등급으로 분류되는 쌀이다. ●한국 수출을 노리는 고급 쌀 양질미는 종자 개량을 통해 밥맛이 좋은 쌀을 만든 것이다.양질미로는 ‘품성(品星)1호’ 등이 있다.맛 뿐만 아니라 수확량도 기존 품종보다 15% 정도 많다.차오 소장은 “지린성 쌀 생산량의 40%가 양질미이고 이 비중은 해마다 10%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유기농 쌀은 한마디로 양질미보다 두단계 업그레이드 된 쌀이다.양질미에 친환경 농법을 활용해 만든 것이다.‘양질미→무공해 쌀→유기농 쌀’이 되는 셈이다.유기농 쌀을 생산하는 땅에는 우선 4년 동안 적은 양의 요소비료만 쓴다.이후 2년간은 비료를 전혀 주지 않고 벼농사를 지으면 되지만 ‘유기농 쌀’로 인정하는 것은 3년차 생산분부터다.비료를 쓰지 않아 생산량은 30%나 줄어들지만 가격은 일반 쌀보다 5∼6배 비싸다. 동북 3성에서 대규모 경작되고 있는 쌀은 우리나라를 향하고,가격은 국내의 20%수준에 불과했다.한국 수출을 겨냥한 양질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의 농업현장에서 쌀협상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창춘(중국 지린성)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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