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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메르,혹은 신들의 고향/제카리아 시친 지음

    수메르,혹은 신들의 고향/제카리아 시친 지음

    지은이가 성경의 역사적 확실성을 믿는, 깐깐한 창조론과 허점많은 진화론간의 합일점을 찾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자. 그리고 모든 과거를 설명하는 근거가 하필이면 왜 지금의 현대 문명인가라는 의문도 잠깐 잊자.‘한단고기’류의 서적에 열광했었던 사람이라면 많이 들어봤을 ‘수밀이국(須密爾國)’이라는 명칭도 잠깐 접어두자. 마지막으로 영화관에 온 기분으로, 온 몸의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자. ●수메르는 우주인의 문명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제카리아 시친 지음, 이근영 옮김, 이른 아침 펴냄)은 그런 방식으로, 어떻게든 기존의 사고방식을 떨쳐버린 뒤에야 읽어야 할 책이다.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알려진 수메르가 사실은 우주인에 의해 ‘던져진’ 문명이었다는 주장,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는 신이라 불렸던 우주인들이 노예로 부리기 위해 만들어냈다는 해석 등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신 우리가 평소에 궁금하게 여겼던 고대문명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자세한 해설서로 생각한다면 정말 흥미진진한 책이 될 듯하다. 책의 출발점은 단순한 의문이다. 인류는 어떻게 “어느 순간부터 직립보행을 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하고 도구를 쓰고 농사를 짓고 문자를 만들고 종교와 예술이라는 분야까지 만들게 됐을까.” 과학적 사고방식이라는 진화론은 이에 대해 ‘단계적 발전’이라는 모델을 제시한다. 그러나 저자는 실제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놓고 보면 이런 주장이 사실과 어긋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4만∼5만년 전에 출현한,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존재는 ‘호모 사피엔스’다. 그런데 유물로만 따지자면 호모 사피엔스의 흔적은 수십만년 전에도 발견되고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으로 공인된 호모 에렉투스와도 존재하는 시기가 겹친다. 진화론이 단선적인 모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부분들은 쉽사리 설명되지 않는다. 왜 진화는 일률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시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들쭉날쭉할까. ●고대문명 해설 흥미진진 저자는 이런 허점들에 대한 기록이 이미 과거에서부터 있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것이 성경의 창세기다. 일종의 상징이나 비유로서 해석되어 왔던 수많은 대목들이 고고학적 발굴결과로 사실로 밝혀졌다. 성경이 ‘사실(史實)’이라면, 그래서 해석을 고민할 필요없이 문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면,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는 근원이 바로 수메르 문명이다.12간지,60진법, 별자리 이름, 달력…. 기독교에 젖줄을 대고 있는 현대문명에 수메르문화가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에 대한 풍부한 자료와 설명만으로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때 비틀스의 부활로 받아들여졌던 클라투(Klaatu)의 두번째 앨범 ‘Hope’에 등장했던 ‘폴리체니아(Politzania)’를 떠올릴 법도 하다.1만 8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지역균형 선발’ 서울대 관문돌파 6인

    최근 3년 동안 서울대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했던 전국 18개 군(郡) 소재 19개 고교생 21명 등 모두 48명의 지역 인재들이 올 수시모집에서 서울대에 합격했다. 서울대가 첫 실시한 ‘지역균형선발전형제도’에 따라 군 단위 합격자 비율이 지난해 3.7%에서 7.4%로 높아진 덕분이다. 합격자 대부분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하지 않고도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6명의 대표적 사례를 소개한다. ●경남 의령군 의령여고 최란경 최양은 1966년 의령여고 개교 이래 첫 서울대 합격자로 인문Ⅱ계열 수석의 영예를 안았다. 고교입학 후 한번도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교지 편집부장과 방송반 작가로 활동하는 등 명랑·쾌활하며, 적극적인 성격이다. 당초 법대 진학을 꿈꿨지만 사학도로 선회한 최양은 “동양사를 전공, 중국이 시도하는 고구려사 왜곡을 바로잡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4남1녀중 막내로 아버지는 건설 노무자, 어머니는 이웃집 애봐주기 등 돈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는 억척주부. 담임 정사진(44) 교사는 “스스로 공부하며 모르는 문제는 메모했다가 담당교사에게 물어서 꼭 알고 넘어갈 정도로 철저한 성격”이라고 전했다. ●경북 영양군 영양여고 황진하 개교 30년 만에 3번째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해 교사와 학생들은 하루 종일 들떠 있었다. 수학교육과에 합격한 황양의 담임 서글로리아(32·여) 교사는 “지역 균형선발은 농어촌 학교에 엄청난 기회를 줬다.”며 “이제 이곳 중학생들이 도시지역 고교로 진학하는 숫자가 크게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며 “하루 2시간씩 EBS 강의를 들으며 수능에 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교에 진학할 때 도시학교로 가고 싶은 유혹이 있었으나 농어촌 특별전형을 염두에 두고 영양여고를 선택했다.”며 “앞으로 농어촌 출신이 도시학생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고 박명주 사회교육계열에 합격한 박양은 전곡읍에 있는 입시 학원에 월 10만원을 내고 다닌 것이 학원 과외의 전부다. 장래 교사가 꿈인 박양의 아버지 박정렬씨는 경찰관(44·경사·연천서 지령실장)이며 어머니 이기순(43)씨는 할아버지·할머니와 연천읍 동막리에서 오이·토마토 등 농사를 짓고 있다. 박 경사는 “박봉에 노부모와 아이들 돌보느라 신경도 제대로 못썼는데 고맙다.”고 대견해했다. ●충북 음성군 매괴고 김현경 사회과학대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한 김양이 서울대에 합격한 것은 인문계 2개교, 실업고 1개고가 있는 음성군내 고교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초등학교 때 서울에서 음성으로 이사해 학교를 다녔다. 김양은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등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게 가장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교 1학년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문제집을 풀며 영어와 수학 등을 공부했다.2학년부터는 기숙사에서 하루 5시간 자고 공부에 매달렸다. 수업후 오후 5시30분쯤 보충수업이 끝나면 기숙사에서 혼자 공부했다. 김양은 “처음에는 도시 학생들에게 뒤떨어질까 조바심이 났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나중엔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기숙사 친구들과 틈틈이 운동장을 달리거나 줄넘기를 하면서 체력도 관리했다. 담임 이미영 교사는 “양로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봉사정신이 강하고 성격이 소탈해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고 귀띔했다. 장래 희망은 PD. ●강원도 고성군 고성고 정국현 체육교육학과에 합격한 정군은 국내 알파인스키선수 중 랭킹 5위 안에 드는 국가대표 상비군. 국제대회에서도 수차례 우승했다. 스키는 수업시간외 시간과 방학을 이용한 연습벌레. 집은 스키장 인근 간성읍 흘리에 있으며 부모는 농사를 짓고 있다. 체육담당 최근호(47) 교사는 “늘 성실하고 착한 모범생이며 학교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아 상위권을 유지했다.”고 칭찬했다. ●전남 영광군 해룡고 박재인 개교 이래 처음으로 법대에 합격하자 학교는 온통 축제 분위기. 박양은 진도군 의신면 출신으로 의신중을 졸업하고 서울지역 특목고에 응시했다가 낙방하는 쓰라림을 딛고 영광을 안았다. 담임 은희균(41) 교사는 “재인이는 자투리 시간을 쪼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데 능통하다.”며 “신문 사설을 보거나 컴퓨터를 이용해 시사상식을 검색하고 교육방송에도 열정을 쏟았다.”고 공부법을 소개했다. 또 “독서량이 엄청나 수준 높은 사회과학 서적을 즐겨 읽었으며, 그래서인지 논술을 아주 잘했다.”고 덧붙였다. 박양은 3년 동안 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으며, 아침 6시 기상과 밤 12시 취침시간을 지켰다. 전국종합
  • [책꽂이]

    ●세 발 달린 까마귀를 찾아서(조한풍 지음, 풀길 펴냄) 1982년 ‘아동문학 평론’지에 동시 ‘숲에서’로 데뷔한 시인의 4번째 시집. 고대사를 소재로 한 산문시가 독특하다.7000원. ●악기점(배한봉 지음, 세계사 펴냄) 시인은 1998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시집 ‘흑조’‘우포늪 왁새’ 등을 발표해왔다.10년 넘게 전원에 묻혀 과수농사를 지어온 시인답게 시들마다 서정으로 넘쳐난다.6000원. ●식구(김별아 지음, 베텔스만 펴냄) 소설가 김별아가 ‘가족’에 대한 단상들을 산문집으로 엮었다. 해체위기에 직면한 현대 가족의 문제를 때론 신랄하게 또 때론 더없이 차분한 어조로 고민해보게 한다.8800원. ●남자를 묻는다(이경자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소설 ‘절반의 실패’ 등을 통해 여성의 억압된 삶을 돌아보게 했던 중견작가 이경자의 신작 에세이.‘여자’ 혹은 ‘여성작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가부장 제도의 모순을 짚었다.8500원. ●꿈의 벽 저쪽(엄광용 지음, 이가서 펴냄) 요절한 여류화가 최욱경의 삶을 조명한 미스터리 장편소설. 창작집 ‘전우치는 살아있다’, 장편소설 ‘황제수염’등을 발표해온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이 속도감 넘치는 문장에 잘 녹아들었다.9800원. ●제국호텔(이문재 지음, 문학동네 펴냄) 모든 것이 네트워크화한 현대문명을 통렬히 고발하는 이문재 시인의 네번째 시집. 첫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도 개정판으로 함께 내놓았다.7000원. ●최명희의 문학세계(박현선 지음, 한길사 펴냄) 2003년 제3회 혼불학술상을 수상한 지은이(숭실대 인문과학연구원)가 ‘혼불’ 작가 최명희의 6주기를 추모해 펴낸 ‘최명희 문학연구서’.1만 2000원.
  • 형수 ‘의사자’ 인정위해 3년 법정투쟁 이록상씨

    지난 2002년 5월1일 발생한 경남 마산시 석전동 마도장여관 화재당시 투숙객들을 대피시키다 숨진 권오남(여·당시 51)씨가 사고 2년6개월여 만에 의사자로 인정됐다. 권씨가 뒤늦게 의사자로 인정받은 것은 시동생 이록상(47·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소만마을)씨가 정부를 상대로 법정투쟁한 결과다. 서울고법은 지난 10일 이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의사자 불인정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씨는 14일 “여관에서 청소일을 하다 화재가 발생하자 투숙객을 깨워 대피시키다 숨진 사람을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는데 분노했다.”면서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권씨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은 이날 새벽 3시. 휴업중인 2층 레스토랑에서 원인모를 불이 나 3∼5층 객실로 번졌다. 매캐한 냄새에 잠이 깬 권씨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복도는 연기로 가득찼다. 화재임을 직감한 권씨는 우선 119에 신고한 후 방문을 두드려 투숙객들을 깨워 대피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유독가스에 질식, 숨지고 말았다. 권씨의 선행은 당시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사고 소식을 들은 이씨는 마산시를 거쳐 보건복지부에 의사자 인정을 신청했지만 의사상자심사위원회는 인정하지 않았다. 권씨의 행위가 “직무와 관련이 있다.”며 직무외 행위로 타인을 구제한 경우 의사상자로 인정된다는 관련 법규를 제시했다. 이어 행정심판이 기각되고, 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1심에서 같은 이유로 패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권씨가 주로 청소를 하면서 여관 관리 보조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무릅쓰고 투숙객을 대피시킬 직무상 의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의사자로 인정했다. 권씨는 20년전 합천에서 농사짓던 남편과 사별하고 시어머니(76)를 모시며 3남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식당주인을 따라 여관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형수의 숭고한 희생을 인정받아 다행이지만 의사자 인정을 거부한 보건복지부의 처사는 못내 아쉽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마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성공시대] ‘쌀버거’ 히트 정인순 대표

    [성공시대] ‘쌀버거’ 히트 정인순 대표

    히트 상품의 가장 큰 비결은 ‘탈(脫)고정관념’이라고 했던가.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문곡리 ㈜라이스랜드 대표 정인순(45·여)씨. 밀가루 대신 쌀로 햄버거 빵을 만들어 히트를 친 그녀는 기업을 일으키기 전에는 농촌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벼 농사만으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었고, 청소년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10여년 노력 끝에 국내 처음으로 쌀로 햄버거 빵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쌀 버거’를 생산하게 됐다. ●쌀로 햄버거 빵 만들어 연 매출 10억원 상회 이 회사는 요즘 경기 남부지역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쌀버거’로 연간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회사 설립 첫 해인 2001년에는 외형이 4000여만원에 그쳤으나 이듬해에는 5억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으며, 지난해에는 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13억원을 예상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20억원을 목표로 잡는 등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녀가 만든 쌀버거는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라이스버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라이스버거는 쌀밥으로 햄버거 빵 모양을 만들어 그 속에 고기와 야채를 넣은 패스트푸드. 그러나 쌀버거는 쌀을 발효시켜 만든 빵이어서 밥을 먹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기존 햄버거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도 거부감이 없다. 뿐만 아니라 쫄깃하면서도 담백한 데다 야채를 많이 넣어 일반 햄버거보다 칼로리가 낮고,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어머니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요즘 패스트 푸드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서 비만 등 성인병 증상이 늘고 있어 걱정스러운데 쌀버거는 우리 농산물로 만든 웰빙식품이라 마음이 놓인다더군요.” 그래서 학부모회나 자모회 등에서 대량 구입해 학교에 남아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주거나, 체육대회 등 학교 행사때 많이 찾는다. 현재 이들 제품은 주로 차량을 이용한 이동식 체인망을 통해 판매되고 있으며, 식사 대용 혹은 간식거리로 등산객과 회사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쌀 발효기술 개발에 꼬박 10여년 그녀가 10년 넘게 연구한 비법은 쌀을 발효시키는 기술. 반죽을 부풀리려면 베이킹 파우더나 이스트가 들어가야 하는데 쌀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빵처럼 부풀어 오르기는커녕 삭아버리기 일쑤였다. 갖가지 재료로 이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해법은 우연히 만든 콩물이었다. 콩물을 섞으면서 반죽을 부풀리는 이스트성분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 일정량의 막걸리를 첨가함으로써 일반 빵에 가장 가까운 쌀 빵을 만들수 있었다. 지난해 5월 이 같은 기술을 이용한 쌀버거 특허를 등록했다. 앞서 2001년에도 쌀 피자를 특허 등록,TV에 방영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녀가 쌀을 이용한 가공식품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0년대 초. 평택에서 태어나 농부의 딸로 자라온 그녀는 4H클럽 등 봉사 활동을 통해 농촌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앞으로 우리 농업의 설 땅이 좁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고부가가치 농산물 생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쌀 소비는 계속 감소하고 있고 쌀 개방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데도 농민들은 농사만 지으려고 해 안쓰러웠요. 때문에 뭔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 특성에 맞는 음식을 개발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요.” 정씨는 처음에는 피자가게로 출발했다. 물론 쌀로 만든 피자였다. 예부터 즐겨 먹던 빈대떡을 만드는 원리에서 착안했다. 수입 밀가루 반죽 대신 찹쌀과 멥쌀을 적당히 섞고, 김치·버섯 등 각종 우리 농산물을 넣었다. 맛도 맛이지만 농업인이 혼자의 힘으로 가공식품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쌀 피자가 인기를 끌었지만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6년전 39살때 만학… 식품영양학과 진학 39살에 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했다. 농산물을 이용한 가공식품 분야에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쌀버거, 쌀 스파게티, 쌀 그라당. 쌀보리버거, 장아찌주먹밥 등 다양한 쌀 가공식품을 개발했다. 현재 그녀의 회사에서 소비하는 쌀을 연간 700여가마(80㎏ 기준). 전량 평택에서 생산되는 쌀이다. 남편이 3만여평에서 짓고 있는 쌀도 모두 소화하고 있다. 농사만 지었다면 1년에 수익을 몇천만원밖에 낼 수 없었겠지만 쌀버거 덕분에 수십배의 부가가치를 얻고 있다는 정씨는 “무엇보다 우리 농산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갖게 돼 힘이 절로 난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 평택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37)남양알로에 이병훈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37)남양알로에 이병훈 사장

    남양알로에 이병훈 사장은 창업주인 선친 이연호(1996년 작고) 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알로에 판매기업을 한단계 도약시켰다. 판매기업을 세계적인 알로에 원료농장 기업과 생약연구 기업으로 키워낸 글로벌 최고경영인(CEO)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친의 만류에도 교수의 꿈을 접고, 사업에 뛰어든 지 19년 만에 10억원대의 매출을 2000억원대로 성장시켰다. 차세대 재계 지도자로도 주목받는 그의 성공담을 들었다. ●고대부터 신비의 물질 -우선 알로에 자랑부터 하고 싶다. 알로에는 인삼과 함께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생약이다. 서양에선 고대부터 ‘신비의 물질’로 소중하게 여겼다. 백합과 열대식물인데, 신선한 잎으로부터 추출한 원액은 위장 질환과 화상, 곤충에 물린 상처의 치료제로 쓰였다. 알로에는 기원전 2000여년의 수메르 석판에도 등장하고 이집트에선 미라를 천에 감쌀 때에도 사용됐다. 고대 그리스의 의약서에는 ‘배를 편안하게 하고 위를 정화한다. 우유나 물에 타서 먹으면 구토를 멈추고 황달을 낫게 한다. 상처를 아물게 하고 푸른 멍을 삭인다.’라고 적혀 있다. 중국에선 송대에 서양으로부터 건너와 ‘눈을 밝게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신비의 명약’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동의보감에도 나온다. -우리 회사가 성공한 이유는 알로에의 200여가지 성분을 세계 최초로 정확하게 규명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약효가 면역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병이 걸리거나 몸이 약해지면 면역 기능이 떨어지는데 이를 다시 강하게 해준다. 화상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일본에선 원폭 치료제로 쓰였다. 다른 사업을 하던 선친께서는 1984년 악성 간질환을 앓다 알로에 덕분에 완치된 뒤 알로에 사업을 시작했다. 생전에 돈독한 우의를 나누던 친구분 중에는 김정문알로에의 김 회장도 있다. 김 회장은 약초재배에 능력이 탁월한 분이었다. 광복 후 부산에서 기독교 학생모임을 통해 서로 연을 맺었다고 들었다. 두 기업이 경쟁할 이유는 별로 없다. 우리 회사는 해외활동이 중심이고 김정문알로에는 국내 판매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선친의 반대 불구하고 알로에 사업에 참여 -대학 교수가 꿈인 나는 대학 영문학과를 나온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대학가는 학생운동으로 혼란했다. 나도 고민을 했으나 공부를 먼저 하고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서 변혁을 실천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사회학을 선택했다. 유학중이던 지난 1986년 선친의 회사가 미국에 처음 진출했다. 원료와 판매망 확보를 위해서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회사 일을 하면서 선친을 도왔다. -사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든든한 원료 공급선을 확보해야 한다. 나는 88년 미국 텍사스에서 경영 부실로 망한 알로에 원료공급 농장을 발견했다.425만달러의 농장을 100분의1인 단돈 5만달러에 매입했다. 농장을 사고 나니까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아졌고, 슬슬 재미도 붙었다. 알로에 사업은 매력이 있다. 알로에는 우선 식물 재배이기 때문에 공해 문제가 없다. 황무지를 개간하니까 지력이 살아난다. 건강·미용 식품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권할 수 있다. 선순환 산업인 셈이다. 알로에 사업에 동참하겠다고 선친께 말씀을 드렸더니 강하게 반대하셨다. 부모님들은 내가 공부를 계속하길 바라셨다.1년을 졸라 허락받았다. 나는 미국에서 알로에 공급을 맡았다. 농장을 맡은 지 1년만에 텍사스에 냉해가 닥쳤다. 서둘러 원산지인 멕시코로 건너가 원료를 선매했고, 덕분에 원료 메이저로 이름을 날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다 92년쯤 위기가 닥쳤다. 미국 알로에 시장에서 가짜 원료가 범람한 것이다. 판매 실적이 반토막 났다. 이를 이겨내는 과정은 악몽이었다. 알로에 분말 원료는 겉으로 보면 전분 가루와 비슷하다. 미국의 악덕 원료업자들이 알로에 원료 1%에 전분 가루를 99%나 섞었다. 가짜를 먹어 본 소비자들은 효능이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고 다시는 알로에를 찾지 않았다. 나는 양심적인 알로에 생산업자들과 가짜 원료를 구별하는 법 등을 강연하고 돌아다녔다. 식품의약안전청(FDA)에 신고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여의도의 3.7배 농장 확보 -마침 92년부터 알로에 성분 분석을 포함한 생약 연구에 착수했는데, 시작부터 중단 위기에 놓였다. 연구개발은 장사가 잘되든 안되든 꾸준히 돈을 투입해야 한다. 힘겹게 돈을 대도 아무런 실적도 없을 때가 많다. 연구개발은 소신과 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잘 팔리던 미국의 화장품 회사를 처분하고 댈러스에 있던 부동산도 팔았다. 한바탕 난리를 친 탓인지 가짜 파동도 가라앉았고, 소비자들의 신뢰도 서서히 되살아났다. 농장은 계속 늘어나 현재 140만평 규모의 멕시코 탐피코 농장을 비롯해 텍사스 할링젠 농장(80만평), 러시아 크라스키노 농장(650만평) 등을 확보했다. 총 재배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3.7배인 940만평에 이른다. 이들 농장은 ‘존슨앤존슨’ 등 해외 40여개국 1300여개 기업에 원료를 공급하고 있다. 연간 1억달러 안팎인 알로에 원료시장의 40%(매출액 800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2위 업체와는 매출액이 3배 정도 차이가 난다. ●4000여종의 천연식물 분석 -우리 회사의 특징은 사업구조가 수직계열화 돼 있다는 점이다.1차 산업인 농사부터 3차 산업인 판매·마케팅까지 한 곳에서 한다. 이같은 구조 때문에 원가 경쟁력을 갖고 품질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바탕을 갖춘 셈이다. 당시 연구에 초빙한 외국인 연구진들은 “10년은 헛돈을 들이는 고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리냐.”면서 이를 믿지 않는데 정말 한동안 투자만 했다. 알로에 연구 6년만에 200여종의 유효성분을 밝혀냈다. 인삼의 핵심 성분을 추출해 상품으로 성공시킨 것은 스위스의 베링거 인겔하임이다. 인삼을 연구하는 분들께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5년산 홍삼이 좋다고 하면서 왜 좋은지, 어떻게 체계적으로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지는 아무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서양의 인삼’이라는 알로에를 성공적으로 분석했다. 알로에는 이미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2000년부터 세계에서 채집된 3만여종의 천연식물을 연구하고 있다.4000여종은 완벽하게 데이터베이스(DB)화했다. 이는 필요한 시점에 보완 연구를 하면 언제든지 상품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천연식물 산업은 일종의 신소재 산업이며 성장 산업이다. 매출액의 10%를 연구개발비로 쓴다. 천연식물에 대한 논문을 3000여종이나 입수해 보니 세계의 어느 한 국가도 이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한 곳이 없었다. 천연식물 연구의 첫 성과로 중국의 ‘황금’이라는 식물에서 ‘항염제’를 추출했다. 올해 580만달러어치를 수출할 예정이다. 대나무 등에서 추출한 혈전방지제도 곧 나온다. ●CEO의 리더십과 글로벌기업 -나의 애칭은 ‘알로에 빌(Bill)’이다. 자랑같지만 미국에선 꽤 유명하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아시아 차세대지도자들의 의장 자격으로 대표 연설을 했다. 나로선 큰 영광이었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정치를 해보라는 권유도 받는데, 전혀 뜻이 없다. 사람은 태어날 때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한가지씩의 역할을 받고 나오는데, 천연식물 사업만 해도 30∼40년이 걸린다. 차세대기업인은 글로벌 마인드가 중요하다. 리더십도 가져야 하는데, 카리스마가 선천성이라면 리더십은 후천적으로 다듬어진 성품이다.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자원, 인적자원, 시장자원의 활용이다. 한국의 기업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역량을 기술개발에 투자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야 산다. 깨어있는 리더십에서 최고의 명품이 나온다. 선친께서는 생전에 ‘문화는 산업과 연계돼야 더 큰 가치가 있다.’는 소신을 내세우며 교육사업에 관심을 가졌다.(외동 아들인 이 사장의 모친은 청강문화산업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희경 전 국회의원이고, 그의 누이는 이수형 학장이다.) 우리나라는 조상 대대로 생약 연구에 대한 토대를 갖고 있다. 동의보감 등을 보면 조상들의 우수성을 느낄 수 있다. 독보적인 생약연구 기업을 만들어 세계인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이병훈 사장은 남양알로에 이병훈(43) 사장은 일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1000만평에 이르는 알로에 농장과 해외지사가 세계 10여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서도 아침식사 전에 반드시 알로에 생즙 한잔을 마신다.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일하는 게 보람이라고 한다. 교수가 되려고 공부하던 중 아르바이트로 여기고 선친의 알로에 사업에 합류한 뒤 19년만에 매출 10억원의 기업을 2000억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성실하고 치밀한 성격이 밑바탕이 되었다. 지금은 생약사업의 최고봉에 서려는 꿈에 가득 차 있다. 미국 등에 퍼져있는 다양한 네트워크와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재계 지도자로도 꼽히고 있다. 경복고와 연세대 영문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 칠순 노인 134번만에 운전면허 필기합격

    70대 할아버지가 운전면허 학과(필기)시험에 134번 도전 끝에 합격했다. 경북 의성군 다인면 구상리에서 농사를 짓는 오상백(70)씨는 지난 9일 경찰청 문경운전시험장에서 134번째 2종 보통 필기시험에 도전,60점을 받아 합격했다. 오씨는 지난해 12월29일 첫 필기시험을 본 뒤 계속 낙방해 그동안 계속 필기시험에 응시해 왔다는 것. 오씨는 의성에서 문경까지 50㎞ 가까운 거리를 농번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날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운전면허시험장에 출근하다시피 드나들며 필기시험을 보았지만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오씨는 “기능시험에도 합격해 운전대를 잡겠다.”고 말했다. 문경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법정스님, 길상사 7주년 기념법회

    “‘맑은 가난’, 즉 청빈(淸貧)이란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갖고자 할 때 갖지 못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가난의 정신입니다.” 법정(72) 스님이 12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극락전에서 열린 길상사 창건 7주년 기념법회에서 법문을 했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 회주로 주석하다 지난해 12월 회주직을 내놓았다. “최근 감기에 걸려 몸이 온전하지 않다.”고 밝힌 스님은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불황이라고들 얘기한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진정한 가난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사람들은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하지만 많이 가질수록 행복할까요? 20∼30년 전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봅시다. 우리는 연탄 몇 장과 쌀 몇 되밖에 가진 것이 없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삶의 질은 물질적인 부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님은 이어 “하루에만 전세계에서 매일 3만 5000명 정도가 굶어 죽어가고, 세계인구의 6분의1인 10억명 정도가 하루 1달러로 연명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웃을 먼저 돌아보자.”고 역설했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한 자락 펼쳤다.“기상학자들은 금세기 중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5∼8도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갠지스강과 양쯔강은 모두 말라 버리고 이 지역 벼농사는 망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기아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스님은 “그렇다고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사느냐에 따라 미래가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면서 청빈의 삶을 재차 강조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농민 홈페이지 표적…‘홈파라치’ 비상

    농민 홈페이지 표적…‘홈파라치’ 비상

    농수산물 전자상거래 업체에 이른바 ‘홈파라치’ 주의보가 발령됐다. 이들은 포상금을 노리고 농·어민들이 개설한 홈페이지에서 ‘금지 문구’를 찾아내 당국에 신고하는 전문 신고꾼이다. 10일 경남도에 따르면 올 들어 농·어민이 개설한 홈페이지의 문구를 문제삼은 신고가 52건에 달한다.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것으로 대부분 고발됐으며, 경미한 9건은 영업정지 또는 시정명령을 받았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식품의 명칭과 제조방법 및 품질에 대해 허위표시, 과대광고 등 의약품과 혼동할 우려가 있는 표시나 광고를 금하고 있다. 흔히 사용하는 ‘최고’·‘고품질’·‘우수’ 등의 문구도 안 된다. 이같은 규정을 모른 채 자신이 생산했거나 취급하는 농수산물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것이 홈파라치의 표적이다. 지자체는 원칙적으로 고발해야 되지만 경미할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고, 신고자에게는 건당 3만∼10만원씩 포상금을 주고 있다. 남해군 이동면 김모(26·여)씨의 경우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고구마의 효능을 홍보했다가 홈파라치의 신고로 최근 고발됐다. 고구마에 식물성 섬유질이 많아 성인병을 예방하며, 장내 활동 세균을 증가시켜 변비를 없애고, 비만과 대장암을 예방한다고 소개한 것이 화근이었다. 고추농사를 짓는 제모(45·진주시 문산읍)씨도 ‘고추는 다이어트 식품이고, 효소분해 효과가 있다.’고 소개했다가 신고당해 경찰서에 불려다니다 최근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강모(45·남해군)씨도 마늘이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내용을 올렸다가 고발돼 벌금 50만원을 물었다. 한편 울산에서는 식당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XX고기를 먹으면 몸과 피부에 좋다’는 등의 음식 선전 문구가 과대·허위 광고라며 고발을 당하는 사례가 최근 30건에 달하고 있다. 울산 남구청 등은 이들 식당을 고발한 홈파라치들에게 부정·불량식품 신고 포상금 운영지침에 따라 건당 3만원씩의 포상금을 주고 고발된 업소는 15일간의 영업정지나 400만원 이상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그러나 식당 업주들은 최근 불경기로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인데 구청이 사전교육도 없이 홈파라치들의 고발에 따라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업주들은 특히 “오리가 몸에 좋다, 붕어가 산모의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장어가 스태미너에 좋다, 돼지고기와 표고버섯이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등의 음식 선전 광고를 다 허위·과대 광고라며 홈파라치들이 고발하고 있다.”며 “구청이 처벌만 하지 말고 법 해석을 다시 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창원·울산 이정규 강원식기자 jeong@seoul.co.kr
  • [마니아] 회원 4000명 ‘수지침 봉사단’

    [마니아] 회원 4000명 ‘수지침 봉사단’

    지난달 25일 서울 대학로 M카페. 오후 7시가 다가오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20대 젊은 대학생부터 40대 중년 남성들까지 20여명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이윽고 이들이 꺼낸 것은 은색으로 빛나는 수지침과 수지침 교재. 이들은 수지침으로 봉사활동을 펼치는 ‘수지침 봉사단’ 초급 회원들이었다. 아직 서투른 솜씨지만 봉사단 회장 안승재(36)씨의 강의에 따라 옆사람의 손을 ‘교재’삼아 침을 꼽는 이들의 두 눈은 심신의 아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대하는 듯 한껏 빛나고 있었다. ●외국에도 수지침 봉사 포털사이트 다음(cafe.daum.net/soojichim) 등 수지침 봉사단의 온라인 회원은 모두 4000여명.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만 해도 100명 정도다. 봉사단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00년 7월.‘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모임을 만들자’라는 취지로 안씨 등 10여명이 모여 결성했다. 봉사 활동을 본격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5월부터였다. 처음 찾은 곳은 경기도 용인 성모영보수녀회 부설 양로원. 매주 일요일마다 20여명의 회원들이 오전에는 수녀회 소속 농경지에서 농사를 거들고 오후부터 양로원에 계신 노인들의 손에 수지침을 놨다. 지난해부터는 수녀회 장애인 시설인 영보자애원에도 사랑의 손길을 뻗기 시작했다. 봉사활동이 궤도에 오른 건 지난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로부터 우수 커뮤니티로 선정되면서 회원 숫자가 알음알음 늘어난 덕분이다. 서울 독립문 영락농인교회와 파주시 여성회관 등으로 활동 폭도 넓혀나갔다. 내년부터는 서울 수유리 가톨릭 농아선교회와 청각 장애인 학교인 애화학교, 그리고 수도권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침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은 외국에도 사랑의 침술을 펼치고 있다.2002년 베트남 호치민과 2003년 필리핀 남부 빙가완 지역, 올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등 매년 여름마다 10여명의 회원들이 자비로 봉사단을 꾸렸다. 안씨는 그중에서도 지난해 활동을 가장 보람있는 일로 떠올린다. “빙가완은 변변한 병원 하나 없는 지역이라 처음부터 교육을 주목적으로 갔습니다.2주 동안 가르친 20여명의 주민들이 마지막 날 실습을 하는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봉사는 국경과 인종, 종교를 넘어 사람을 묶는 사랑의 끈’이란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군 장교에서 수지침 전도사로 안씨는 예비역 대위 출신이다. 집안 사정도 어려웠지만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매력에 87년 육사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처음 침을 잡은 것은 90년 겨울. 야전에서 불편한 사병들을 직접 치료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군문(軍門)에서 병을 얻은 건 공교롭게도 안씨였다. 전방 소대장 시절 박격포 사격 때 귀 보호를 소홀히 한 탓에 이명(耳鳴) 증상에 시달렸다.‘이 상태로는 월급만 축내겠다.’ 싶어 결국 96년 제대를 한 뒤 6개월 동안 수지침에 파고들어 스스로 병마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시련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해 어려운 형편에도 위성통신학 공부를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물리공과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98년 IMF 경제위기 때 중도 포기하고 귀국해야 했다. 결국 그를 다잡은 것은 수지침이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취업도 안 돼 집에 있다가 유학 전 배웠던 선생님에게 ‘나와서 강의 좀 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게 내 길이구나.’ 싶더라고요.” 이후 안씨는 본격적으로 ‘수지침 전도사’의 길을 걷게 된다. 수지침 관련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고려대 사회교육원 등 대학과 각종 기관 등에서 일반인들이 생활에서 질환을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은 수지침 봉사단이다. 수지침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슴 아픈 사연도 많다. 지난해 수지침 치료를 받다 암 후유증으로 세상을 뜬 파주의 50대 아주머니는 잊혀지지 않는다. 안씨는 “그분이 2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을 모르고 출장치료를 나가다가 해외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벌써 돌아가신 뒤였다.”면서 “아주머니가 ‘수지침 덕분에 통증 없이 가게 됐다.’는 말을 남겼다는 걸 듣고 ‘알았다면 더 적극적으로 치료할 걸….’이라는 아쉬움에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토로했다. 그렇게 해서 얻는 수입은 겨우 혼자 생활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풍요롭다. 사회에 무언가를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수화나 마술 등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배우면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안씨는 “생활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즐겁게 나의 지식이나 돈을 조금이라도 나누려는 게 바로 봉사”라면서 “수지침 봉사와 교육을 함께 할 수 있는 수지침 카페를 마련하는 게 내 꿈”이라고 밝게 웃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손 인체’ 이해하면 쉬워 수지침의 공식 명칭은 고려수지침. 지난 1970년대 초 고려수지침요법학회 회장 유태우(柳泰佑) 박사가 처음 개발했다. 수지침의 치료법은 크게 상응요법과 기맥요법으로 나뉜다. 상응요법은 손이 인체의 축소판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손바닥은 몸 앞면, 손등은 몸 뒷면에 해당한다. 또 중지는 머리, 검지와 약지는 좌우 팔, 엄지와 소지는 좌우 다리를 뜻한다. 이상이 나타나는 몸의 부위에 해당하는 손이나 손가락을 주물러주거나 침을 놓는 게 상응요법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위장병 때문에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이때는 머리뿐 아니라 위장에도 처방을 해 줘야 한다는 게 기맥요법. 손에 있는 14개의 기맥과 345개의 치료점이 오장육부에 해당한다고 본다. 여기를 통해 진단하고 침을 놓으면 치료가 가능하다. 수지침의 장점은 수지침이나 마사지, 뜸 등으로 손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고통과 위험부담,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 또한 자가 진단과 치료가 가능할 뿐 아니라 경제적이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탁월한 점이다. 다만 반드시 수술해야 하는 각종 암질환이나 성인병, 전염병, 퇴행성 장애, 기질에서 오는 질환은 수지침 치료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런 병들의 조기 치료와 예방, 고통 감소 효과는 탁월한 편이다. 수지침은 일반인들도 일상 생활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복잡한 기맥요법 대신 상응요법은 수지침의 손의 구조만 이해한다면 훌륭한 가정치료법이 된다. 침을 쉽게 놓을 수 있는 신수지침관과 수지침 등의 간단한 장비만 갖추면 된다. 단순히 부위를 주물러주거나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뜸, 스티커 침(서암봉)만으로도 기본적인 수지침 요법은 가능하다. 수지침 인구는 국내 1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대중적이다. 교육도 주위에서 쉽게 받을 수 있다. 지역마다 있는 고려수지침요법학회 지회나 동사무소 자치센터, 문화센터 등에서 초급강좌를 들을 수 있다. 수지침 봉사단은 홈페이지(www.soojichim.net)를 통해 무료 동영상 강의도 하고 있다. 봉사 활동을 목적으로 한다면 수지침 봉사단에서 거의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단 중급 이상에 해당하는 기맥요법 강좌는 수지침학회 지회에서 가능하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영화속 수능잡기] 황야의 7인

    [영화속 수능잡기] 황야의 7인

    멕시코 접경의 한 마을. 농부들은 매년 마을을 노략질해 가는 칼베라 일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결국 마을을 지키는 싸움을 시작하기로 하고,7명의 총잡이를 고용한다. 마을에 도착한 7인의 총잡이는 방어벽을 쌓고 총 쏘는 법을 훈련시키면서 칼베라 일당에 맞서기 위한 준비를 해나간다. 이상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를 할리우드식으로 리메이크했다는 영화 ‘황야의 7인’의 대략적인 스토리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쟁쟁한 스타들 중의 한 명은 베르나르 역을 맡은 찰스 브론슨이다. 그는 직업적인 총잡이다. 우수가 짙게 드리운 냉정한 얼굴과는 달리 그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한다. 아이들도 베르나르를 좋아한다.“저도 크면 아저씨처럼 총잡이가 될 거예요.” 아이들은 눈부신 사격솜씨를 가진 베르나르를 부러워한다. 그 부러움의 이면에는 비겁한 아버지들에 대한 분노가 있다. 자신들의 아버지들은 총을 잡고 싸울 줄도 모르고 그저 농사만 짓는다고 아이들은 불평이 대단하다. 이 아이들에게 베르나르는 이렇게 말한다.“겁쟁이가 전쟁터 한 가운데로 스며든단다. 진짜 겁쟁이는 너희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나란다.” 아이들은 왜 아저씨가 겁쟁이냐고 따진다. 그러자 베르나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너희들의 아버지는 농부들이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다릴 줄 안단다. 씨를 부리고 기다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기다릴 수 없단다. 씨를 뿌리고 기다릴 줄 아는 용기가 없는 내가 바로 겁쟁이란다.” 어느 해에는 불볕 더위에도 비 한 방울 뿌리지 않지만 어떤 해에는 우기가 훨씬 지난 초가을의 폭우로 농사를 망쳐놓기도 한다. 한 마디로 자연은 믿을 수가 없다. 예측불가능한 자연을 믿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일종의 도박이다. 도박에는 당연히 자신의 밑천을 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폭우나 우박으로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뻔히 알면서도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기다린다. 그것은 분명 용기에 속한다. 성철스님은 눕지 않고 자지도 않는 소위 ‘장좌불와’ 수행을 팔 년 동안이나 행했다고 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행을 그렇게 오랜기간 했다니 입이 딱 벌어진다.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17세기 조선 시단(詩壇)에서 이름을 날렸던 김득신은 백이전(伯夷傳)을 1억 1만 3000번을 읽었고, 노자전(老子傳)과 분왕(分王) 등은 2만번을 읽었다고 한다. 이런 노력에도 용기는 필요하다. 반드시 총과 칼을 잡거나 주먹을 쓰는 자만이 ‘용기 있는 자’의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황야의 7인’에서의 총잡이들은 용기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르나르의 말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 그 결과를 겸허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용기의 소유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존 스터지스 감독, 율 브린너·엘리 웰라치·스티브 매퀸·찰스 브론슨 출연,1960년작. 김보일 서울 배문고 교사 uri444@empal.com
  • [길섶에서] 노인과 호박/이호준 인터넷부장

    모처럼 찾은 근교의 고모 댁, 노인은 초겨울 햇살 아래 앉아 텃밭의 푸성귀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가꾼 것들과 이별을 늦추고 싶어서 수확을 미룬 게 틀림없다. 출가한 딸들은 멀리 살고 아들마저 이국땅으로 떠난 뒤, 말이라도 붙일 수 있는 존재는 그들뿐이다. 마당을 서성이던 고모가 헛간 지붕을 가리킨다.“다른 건 다 손이 닿는데 저 녀석 하나만은 어쩔 수가 없어. 한 번 좀 올라가봐.” 슬레이트 지붕 위엔 한아름은 될 듯한 누런 호박이 몸집을 자랑한다. 지붕이 꺼질세라 조심조심 끌고 내려오는데 등에 진땀이 흥건하다. “왜 이 놈만 높은 곳에 열려 가지고…. 못 올라가게 좀 말리시지.” 땀을 훔치며 투정하는 조카에게 고모는 웃으며 대답한다.“씨를 뿌리고 키우는 일이야 농사짓는 사람 몫이지만, 자리를 잡는 거야 일일이 간섭할 수 있나. 자식도 마찬가지야. 품을 떠난 뒤엔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는 거지. 하지만 걱정이야 왜 안 될까. 저 곳은 봄에 새 생명을 틔울 데도 못되니….” 시선을 지붕에 둔 노인의 목소리에 습기가 촉촉하다. 이호준 인터넷부장 sagang@seoul.co.kr
  • [길섶에서] 첫 눈/심재억 문화부 차장

    옛적에는 겨울가뭄도 여름가뭄 못지않은 걱정거리였다. 그래서 겨울가뭄이 닥치면 ‘제발 눈 좀 펑펑 내려달라.’며 기설제(祈雪祭)를 올리기도 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기설제문이 지금도 전하거니와, 모두가 착한 농본(農本)의식의 발현이다. 그러나 오로지 농사일 때문에 눈을 기다린 건 아니었다. 옛 일을 더듬어 보면 겨울, 그것도 눈이 쌓여 수륙(水陸)의 길이 막힌 때에는 외침이 없었다. 그러니 위, 아래 없이 침노에 시달려 온 민초들이야 곳간에 곡식 쌓아두고 오붓하게 날 수 있는 겨울이 또한 얼마나 안온한 계절이었겠는가. 그런 우리 민족에게 모든 눈은 항상 서설(瑞雪)이었고, 그래서 가슴 포근하게 첫눈을 맞곤 했다. 첫눈이 내린 26일 한동안 서울에서는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가 꽉 막혀 터지지 않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첫눈의 설렘을 전하려는 눈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까닭이고, 농경민족의 풋풋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도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한 가운데 다들 시름없이 겨울을 났으면 좋겠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아버지에게 듀얼 간이식한 두딸 이나영·종은씨

    “건강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를 받았지만,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간경화로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두딸이 빈혈과 건강이 상할 우려를 무릅쓰고 간을 이식,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주인공은 이규봉(54)씨 3부녀. 간경화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이씨는 지난 17일 두 딸로부터 간을 절반씩 이식받은 뒤 서울아산병원 무균실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이씨가 받은 수술은 ‘2대 1(듀얼)이식’으로, 기증자인 딸들의 장기 용량이 적어 두 사람의 장기를 절반씩 나눠 이식받았다. 충남 논산에서 딸기농사를 짓던 이씨가 B형 간염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해 봄. 평소 건강에 자신이 있던 이씨는 치료를 받으면 곧 나아질 것으로만 생각하고 꾸준히 병원을 다녔지만 상태는 점차 악화됐고, 지난해 가을 간경화 판정을 받았다. 급기야 지난 6월에는 병원에서 이식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통보를 들었다. 그러나 이씨의 부인은 마른 체형에 키가 작았고, 세딸 중 막내딸은 몸무게가 40㎏도 되지 않아 간을 이식할 만한 건강 조건이 되지 못했다. 큰딸 나영(26)씨도 적격 검사 결과 간 크기가 너무 작았다. 그러자 빈혈증세로 이식이 힘들다는 판정을 받았던 둘째딸 종은(23)씨가 언니와 힘을 합쳐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나섰다. 가족의 간 이식을 만류하던 이씨는 병세가 악화돼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뒤였다. 시간을 다투며 시작된 수술은 국내 ‘듀얼 이식술’의 권위자인 이승규 교수의 집도로 20여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큰딸 나영씨는 회복실에서 “아버지가 빨리 완쾌돼 온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면서 “지난 8월 대학을 졸업한 종은이가 수술 때문에 취업을 포기했는데 이제 하루빨리 직장을 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영씨가 근무하는 인천공항세관은 수술 소식을 듣고 전 직원이 모은 성금 1900만원을 이날 이씨에게 전달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교수로 NGO 활동가로 되돌아 온 김성훈 前농림부장관

    교수로 NGO 활동가로 되돌아 온 김성훈 前농림부장관

    김성훈(65) 전 농림부 장관을 문득 떠올리게 됐다. 쌀시장 개방 협상의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 분야의 전문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증이 일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넣어 만남을 청한 건 이 때문만은 아니었다.6년전 장관과 기자로 처음 만나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그는 다변(多辯)의 재담가였다.‘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가 많겠다.’는 요량이 더 컸던 듯하다. 최근 서울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그와 세 시간여를 마주 앉았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몰랐던 사실…‘농민가’를 쓰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얼른 “예일대 교수지요.”란 대답이 나온다.(그는 중앙대 교수다.) ‘어, 그랬나….’ 순간 얼떨떨했다. 그러자 “예전에 하던 일, 그대로 하니 예일대 교수지요.”란 풀이를 붙인다. 어색하기 십상인 6년의 시차를 그는 이렇게 쉽게 뛰어넘는다.DJ(김대중) 정부의 첫 농림부 장관(1998년 3월∼2000년 8월)으로 30개월을 장수한 뒤 원래 자리인 중앙대 교수로,NGO 활동가로 되돌아왔다는 얘기다. 이전과 차이라면 직함이 더 많아지고 더 바빠졌다고 한다. 경실련·한국내셔널트러스트 등 NGO의 대표자리만 네 개이고, 여기에 고문이나 이사직함까지 더하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그는 지금껏 우리 농촌·농업문제의 이론가이면서 행동가로 진력해 왔다.1990년대 초반 UR협상 반대논리를 줄기차게 제기하며 정부를 맹렬히 공박하는 바람에 ‘신운동권 교수’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행로가 학창시절(서울대 농경제학과 58학번)부터 본격화했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서울 농대의 전통적 이념서클로 유명한 ‘한얼’을 조직한 이가 바로 그였다. “일화 좀 들려달라.”고 요청하자 잠시 뜸을 들이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80년대 시위건, 집회건 모였다 하면 불렀던 ‘농민가’다.“다른 동기와 함께 작사했지요. 원래는 한얼에서 분화한 농사단(農士團)의 단가로 만들어 불렀던 노랩니다.2절 첫 가사가 ‘붉은 태양 솟아오르는∼’인데, 언제부턴가 ‘밝은 태양∼’으로 바뀌더군요.” 그랬나…. 고개를 끄덕이며 보니 그는 새삼 감회어린 표정이 되어갔다. ●허문도와의 인연 신군부 ‘3허(許)’씨 중 한 사람인 허문도(57학번) 전 통일원장관과는 학창시절 친구라는 얘기도 뜻밖이었다.“농대 도서관 책의 절반은 허문도가, 절반은 내가 읽었지요. 조용하고 그다지 말이 없었는데, 주로 역사와 철학쪽 책을 탐독한 걸로 기억됩니다.” 김 전 장관은 그로부터 20여년 뒤 전두환 정권의 실세로 부상한 그와 다시 만나게 된다.“80년 5·18 사건 이후 어느날 요정으로 부르더군요.‘청운의 꿈을 같이 실현하자.’고 합디다.” 김 전 장관은 “악어의 눈물이라도 좋으니 5·18에 대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뿌리쳤다고 한다. 그즈음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자로 ‘남산’에 끌려가 고초를 겪게 된다. 허씨가 자기 몰래 이름을 올렸던 국보위 농업분야 전문위원직을 끝내 마다한 데다,‘지식인 134인 시국선언’에 서명한 일이 빌미가 됐다.“신병처리가 어떻게 될지 몹시 불안해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풀려나더군요. 아마 허문도가 힘을 썼던 것 같습니다.” ●가까스로 내던진 장관직 그는 장관직을 물러날 때 남다른 과정을 거쳤다. 떼를 쓰다시피 물러나겠다고 매달렸다. 김종필 총리와 이한동 총리에게 한번씩 사표를 제출했지만 “DJ가 아직은 생각없는 것 같다.”는 이유로 반려됐다고 한다.2000년 총선을 앞두고 축협통합 문제와 구제역, 동해안 산불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을 때다.“동가식 서가숙하며 뛰어다니는데 이빨이 몹시 아프더라고요. 그냥 진통제로 버티며 지냈는데 어느날 앞니 5개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더니 4개가 더 빠지더군요.” 병원에서 찍은 이빨 사진까지 들고 가 “밥도 못 먹을 지경인데,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 총리에게 호소하기도 했지만 “난 모르는 일”이라는 대답만 들었다.‘DJP 연합’이 재개되고 농림부장관직이 자민련 몫으로 조정된 뒤에야 ‘가까스로’ 장관직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고 한다. ●통상교섭본부 설치는 실정(失政) 쌀 시장 개방 협상으로 화제를 돌리자 김 전 장관의 얼굴빛이 달라진다. 웃음이 사라지고 표정과 목소리에 노기(怒氣)까지 서렸다. 그는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는 바람에 계속 잘못돼 가고 있다.”고 단호하게 비판했다.“외교력과 협상력의 부재로 중국에 지나치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농민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국가이익을 챙기는 시나리오와 국내 농업대책 마련이 동시에 필요한데,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통상교섭본부 내에 농업 전문가가 없는 현실도 문제지요. 장관이 바뀔 때마다 통상문제와 관련한 멤버가 교체됐는데 이래서야 협상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는 자기가 몸담은 DJ 정부에 대해서도 톤을 높였다.“그때 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한 것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대놓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건 실정이에요. 미국 무역대표부(USTR)처럼 힘이 막강하면 몰라도, 우리처럼 수세적 협상을 해야 하는 나라는 한 곳에 권한을 모아주는 것이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관세화 협상에 대해선 결연한 태도다.“지금 그걸 왜 합니까.DDA 협상에서 농산물 관세 한도설정 등 세부원칙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관세화 협상을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지난해 멕시코 칸쿤 WTO 각료회의에서 자결한 이경해씨와의 인연을 어디선가 들었다. 자결하기 하루 전날 유언을 남겼는데 김 전 장관에게 “둘째딸을 맡긴다. 결혼식을 잘 치러줄 것으로 믿는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가을 치러질 결혼식에 김 전 장관이 주례로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쌀 시장 개방 협상문제로 나라 안이 시끄럽다. 김 전 장관의 애정 어린 당부와 비판을 당국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다.“저녁에 (서울 서초동)정토회관에서 강연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일어서는 그의 표정은 만날 때와 달리 어두워져 있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서울갤러리서 ‘선사토기 재현’ 개인전 이종능씨

    “흙과 불이 제 인생의 친구가 된 지 20년이 됐습니다. 많은 것을 잃었고 또 얻은 것도 많지요. 한 때는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바로 제 자신입니다.” 선사(先史)시대 토기 재현을 필생의 업으로 살아가는 도예가 이종능(48)씨가 ‘도예 20년’을 결산한다.22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태평로1가 서울갤러리에서 세번째 개인전을 여는 것. 그의 가마터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관음리에 있는 ‘도천방(陶天房)’. 말 그대로 ‘도천(陶天)’을 신앙처럼 여기며 오로지 ‘흙·불’과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얼마전 어차피 인생은 서론·본론·결론 등 세토막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바로 ‘서론 인생’을 매듭짓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동안 국내에서 꽤나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본론’이 저를 기다리고 있지요. 앞으로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알리는 그런 인생이 될 것입니다. 현재 일본 도쿄 등 몇몇 도시에서 순회전을 계획하고 있지요.” 작품 주제가 ‘선사 토기 재현’이어서 그런지 언뜻 보기에는 거칠고 투박하다. 하지만 그는 “자연을 본뜬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를 빚어 순수한 아름다움을 불어 넣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옛 선현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예술가적 쾌감이요, 행복의 극치라고 부연한다. 경북 경주 출신인 그는 부모의 권유로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나 생각은 딴데 가 있었다. 도자기를 연구하기 위해 전국의 가마터와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기법을 익혔다. 특히 1983년 지리산에서 분청사기 파편 태토(胎土)를 수집·연구하면서 선사토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제주도·태국의 남방문화의 흐름을 추적했다. 또 중국·몽골·실크로드의 명요(名窯) 산지를 찾아 북방문화권을 연구하며 자신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했다. “흙을 빚을 때는 수험생과 같은 심정입니다. 그래서 도자기 이름을 ‘토흔(土痕)’이라고 이름을 짓고 상표등록까지 했지요.” 농사짓는 정성이 없으면 제대로 된 그릇을 만들 수 없다는 그는 이번 전시에 토기와 청화백자 등 70여점과 도자기 벽화 여섯점을 선보인다.‘내 어릴 적에’‘출산장려’ 등 작품마다 붙여진 이름이 눈길을 끈다.‘흙과 불과 나의 인생’이라는 책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부고]

    ●문한성(삼성테스코 CCPR부문 사진부장)씨 형님상 18일 여의도성모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3779-2191 ●김형룡(대한축구협회 홍보부장)씨 빙부상 18일 보훈병원, 발인 20일 오전 6시30분 (02)478-3299 ●고군익(전 홍농사 대표)씨 별세 창호(현대캐피탈 부장)용호(YBM시사영어사 차장)씨 부친상 박문태(코세로지스틱스 회장)이종우(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씨 빙부상 최경란(영등포 최치과 원장)씨 시부상 18일 분당서울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31)787-1504 ●김교두(주식회사 C&M 고문)규진(서울보증보험 진주지점장)씨 부친상 문재희(삼현종합 대표)박노인(전 효성기계 상무)정한중(한국IBM 부장)씨 빙부상 1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0일 오전 9시 (02)3410-6915 ●함도식(한독약품 기술지원담당 이사)씨 별세 1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3410-6918 ●박병용(면목3동 새마을회장)씨 상배 18일 면목동 녹색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30분 (02)493-4444 ●조용완(전 서울고등법원장)성완(롯데월드 감사팀장)영완(하나로텔레콤 상무)씨 부친상 성기목(전 조흥은행 지점장)길찬일(전 동해병원장)씨 빙부상 1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0일 오전 9시 (02)3410-6919
  • 주가따라 희비 엇갈리는 CEO들

    ‘주가성적표…, 앗! 뜨거워라 VS 하하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한 해 농사’의 중요 평가 기준인 주가로 인해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연말연초 인사를 앞두고 ‘주가성적표’는 CEO의 경영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 이건희 회장과 LG 구본무 회장은 수년 전부터 ‘주가 경영’을 모토로 내세웠다. ●‘주가 낙제점… 가시방석’ 삼성 CEO 가운데 이중구 삼성테크윈 사장과 강호문 삼성전기 사장, 배호원 삼성증권 사장 등은 심기가 편치 않을 전망이다. 주가성적표가 삼성 계열사 가운데 바닥권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18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삼성테크윈의 주가는 7660원(16일 종가 기준)으로 지난 연말(1만 4200원) 대비 46%가량 추락했다. 사실상 반토막 수준이다. 삼성전기(지난해 연말 3만 9450원→지난 16일 2만 6150원)는 33.71%, 삼성증권(2만 5000원→2만 300원)은 20.39% 떨어졌다. LG에서는 노기호 LG화학 사장과 정홍식 데이콤 사장 등이 주가 하락으로 마음이 불편하다. 데이콤의 주가(7880원→5450원)는 30.8% 추락해 그룹 내에서 가장 큰 폭락을 기록했다.LG화학(5만 5000원→4만 4150원)도 20% 가까이 떨어졌다. SKC(부회장 김수필·사장 박장석)도 주가가 지난해 연말 1만 4200원에서 9020원(지난 16일)으로 무려 36.48%나 곤두박질쳤다. ●미소짓는 CEO 주가 폭등으로 표정 관리에 들어간 CEO도 적지 않다. 이우희 에스원 사장과 정연주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이상대(건설)·정우택(상사) 삼성물산 사장, 이만수 호텔신라 사장 등은 주가 성적이 삼성 계열사 가운데 최상위권에 포진됐다. 에스원의 주가(2만 3500원→3만 3700원)는 43.40%, 삼성엔지니어링(4050원→6700원) 65.43%, 삼성물산(9900원→1만 4800원)은 49.49% 각각 급등했다. LG전자 김쌍수 부회장과 LG상사 이수호 부회장 등은 LG그룹 CEO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LG전자와 LG상사의 주가는 지난해 연말 대비 각각 19.1%,14.6% 올랐다. SK에서는 SK케미칼(사장 홍지호)의 주가가 지난해 연말 6350원에서 1만 1250원(16일 종가 기준)으로 77.17% 뛰었으며,SK㈜(사장 신헌철)는 소버린자산운용과의 경영권 분쟁 영향으로 무려 126.64%나 급등했다. 재계 관계자는 “주가가 경영 실적과 따로 놀거나 인수합병(M&A) 호재로 수혜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아 평가는 기업마다 다를 것”이라면서 “그러나 주가가 폭락한 기업의 CEO들은 인사철이 다가올수록 고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시론] 쌀농사 직불제, 경쟁력에도 효과/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론] 쌀농사 직불제, 경쟁력에도 효과/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는 쌀 협상 이후에 대비해 기준연도 가격과 그해 가격과의 차이를 직접 보전해 주는 쌀농가 소득안정방안 시안을 최근 발표했다. 시안은 공청회를 거쳐 최종안으로 확정된다.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아직 남아있으므로 시행 방안중 일부가 조정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이는 농가의 소득을 예측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인 정책변화로 평가된다. 오는 연말까지는 향후 쌀수입 방식을 관세화로 전환하거나 또는 관세화유예를 지속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실리에 입각한 협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농가의 장래 소득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쌀농가 소득안정방안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관세화유예를 지속하는 경우 의무수입물량(MMA)은 현재 수준보다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해 당사국은 수입쌀의 일정비율을 밥쌀용으로 시중에 직접 판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는 쌀가격의 하락과 소득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쌀농가의 소득이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인지는 의무수입물량 증량 수준 및 관리방식에 따라서 달라지므로 농가가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관세화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국제 쌀가격, 환율, 적용될 관세 수준에 따라 수입량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관세화유예가 지속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쌀가격은 하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만큼 고려할 요인이 많으므로 쌀가격 및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지 지금으로선 전망하기 어렵다. 이 역시 농가에는 불안감을 줄 것이다. 쌀협상 결과에 관계없이 내년부터 쌀가격과 소득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쌀협상에 대한 저항감은 고조될 것이다. 경작규모 확대 등 신규 투자를 기피하게 될 게 뻔하다. 쌀농가 소득안정방안은 쌀가격 변동에 관계없이 기준연도 가격을 기초로 일정수준의 소득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므로 쌀농업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대된다. 소득안정방안이 제도화되면 농가입장에서 관세화나 관세화유예에 대해 아무런 차이를 못 느끼게 되어, 결국 정부는 실리에 입각한 쌀협상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쌀가격 급락에 따른 농가의 충격을 완화해 줘 원활한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위기에 몰린 쌀산업의 연착륙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소득안정방안이 도입되면 정부는 농가소득의 유지를 위해 쌀시장에 개입함으로써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게 된다. 시장기능에 맡겨두면 쌀가격은 연간 2∼3%씩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쌀을 구입할 수 있다. 이로써 쌀 산업의 대외적인 가격경쟁력이 향상되는 장점도 있다. 다만 80㎏당 일정 수준의 가격을 보장하는 소득안정방안이 가격지지 정책으로 인식되고 수급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에서 생산된 물량에 대해 일정한 가격을 보장하면 생산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안정 직불제는 기준연도 면적과 단수를 기초로 직불금을 지급하도록 설계하여 공급과잉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해 연도 면적이나 생산량을 기준으로 소득을 보전하면 농가의 생산의욕을 고취시켜 공급과잉으로 연계될 수 있다. 기준연도 면적이나 단수를 기준으로 소득을 보전하면 농가는 꼭 쌀만 재배해야 하는 의무가 없으므로 과잉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직접지불제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수급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준연도 면적이나 단수를 설정하여 소득을 지원해주고 있다.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영웅시대’ 2부 ‘천태산’역 최불암

    “아니 그렇게 고함만 지르지 말고 한 대목에만 힘을 줘. 화내기만 하는게 아니라 (박정희에 대한) 박종규의 깊은 충정이 묻어나야 한다니까.” MBC 드라마 ‘영웅시대’의 주인공 천태산(정주영)역을 맡은 최불암(64)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울린다. 5·16쿠데타 직후 최고권력자 박정희(독고영재)와 독대한 천태산이 “친구하자.”고 능청을 떨자 발끈한 경호실장 박종규가 천태산의 머리통에 권총을 겨누는 숨 막히는 장면이다. 이 때문에 후배 연기자는 한껏 목청을 높였지만 최불암의 생각은 다르다. 쿠데타 직후라는 시대상황과 절대적 박정희 추종자인 박종규란 인물이 결합한다면 은근하면서도 위협적인 목소리가 더 어울린다는 해석이다. 그의 ‘참견’은 끝이 없다. 카메라 위치와 샷에 따른 시선 처리에서 무대장치와 소품 배치까지 일일이 지적한다. 이날은 1부에서 젊은 천태산을 열연했던 차인표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최불암이 한층 성숙한 천태산을 연기하는 2부 첫 회(15일 방영) 리허설이 열리는 날. 노배우의 의욕과 열정 덕택에 예정보다 2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의 이런 열정은 어디에서 나올까.“요즘 경제가 어렵다, 힘들다 하는데 이런 드라마를 시청자들이 많이 봐서 힘을 얻어야 돼요.” 최근 유행하는 ‘말랑말랑한’ 드라마는 영 못마땅하다는 투다. 그는 “유명 작가나 PD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해요.”라고 내쳐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과 인연이 있다. 문화계 인사를 좋아했던 정 명예회장과는 80년대 초 처음 만나 술로 친분을 쌓았다. 그 덕에 정 명예회장이 전원일기에 ‘카메오’로 출연할 뻔 하기도 했다. 최불암은 드라마 ‘야망의 25시’에서 이미 정 명예회장 역을 맡았었다. 정 명예회장에 대한 최불암의 평가는 ‘땅의 철학자’다. 그가 이룩한 숱한 신화도 농사지어먹던 사람이라서 가능했다는 설명이다.“한국사람다운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게 배우로서의 욕심인데 그런 면에서 정 명예회장만한 인물이 없어. 거 많이 봐서 힘들 내시라고 써줘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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