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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민 3명중 2명 “앞으로 더 어렵다”

    우리나라 농민 3명 중 2명은 향후 5년 뒤 생활형편이 지금보다 더 악화되고, 당장 내년의 농사환경도 올해보다 나빠질 것으로 걱정한다. 또 5명 중 4명꼴로 앞으로도 농촌은 도시보다 못 사는 곳으로 남을 것이라고 응답, 도시와 농촌간 양극화가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전국 농민 7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4일 발표한 ‘농업인 의식구조 변화와 농정현안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2 수준인 67.8%가 ‘앞으로 5년 뒤 생활수준이 현재보다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조사 때의 66.5%보다 소폭 상승한 것이다. 반대로 ‘생활수준이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지난해 9.4%에서 7.8%로 감소했다. 특히 ‘내년 농업 여건이 올해보다 악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63.8%로 지난해 같은 내용의 조사결과(53.7%)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내년이 더 나을 것이라는 응답은 단 1.9%에 그쳐 상황 호전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바닥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5년 후 도시와 비교한 농촌사정에 대해서는 81.1%가 ‘도시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도시보다 낫다거나(0.9%) 도시와 비슷할 것(6.5%)이라는 응답은 7.4%에 머물렀다.농촌경제연구원은 “농촌의 수입 증가율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반면 경영비용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어 농민들의 현실 인식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체 응답자의 48.8%가 현재의 농촌생활이 불만족스럽다고 답한 가운데 이유로는 ‘열악한 교육여건’이 28.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 자녀교육에 대한 박탈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복지시설 미흡 22.8% ▲일반인의 농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20.1% ▲열악한 주거환경 18.7% 순이었다. 농사의 애로사항(복수응답)으로는 ‘인력부족’이 24.2%로 가장 많았고 ▲농산물가격 불안 21.9% ▲농산물수입 개방 10.3% ▲병충해·기상조건 10.1% ▲영농자금·농가부채 9.9% 등이 뒤를 이었다. 이렇게 현재와 미래에 대해 불만과 불안감이 큰데도 도시로 이주하겠다는 응답은 25.3%(반드시 이주 1.1%, 기회가 오면 이주 24.2%)로 비교적 낮았다. 이는 그동안 꾸준히 진행돼온 고령화로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인구의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농촌경제연구원 김동원 전문연구원은 “농업개방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농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면서 “정부의 농업정책이 농민들의 자구노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현실감 있게 수립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이상한 농부들?

    경남지역 농협들이 농업경영개선자금 44억여원을 농사도 짓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법대출해 준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이에 따라 농협의 농업경영개선자금 운용실태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가 실시된다. 창원지검 진주지청은 1일 가축 자가사육 사실확인원과 농지임대차계약서, 경작사실 확인서 등을 허위로 작성하는 방법으로 수천만원씩을 불법대출받거나 해 준 혐의(사기·공문서위조 등)로 윤모(40·동남해농협 직원·남해군)씨와 박모(66·슈퍼마켓 운영·하동군)씨, 권모(61·남해군청 공무원)씨 등 모두 36명을 구속기소하고 최모(41·남해군)씨 등 22명을 불구속 기소,2명을 지명수배했다. 이들은 2001년부터 농림부에서 농어민부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농협중앙회를 통해 시행한 1조 8000억원 규모의 농업경영개선자금 중 44억 1300여만원을 불법대출해 주거나 받은 혐의다. 검찰에 적발된 불법대출자들은 횟집주인을 비롯해 회사원, 전자대리점 주인, 독서실 운영자, 슈퍼마켓 주인 등 농업경영개선자금을 대출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들은 행정기관에서 발급하는 가축 자가사육 사실확인원을 변조하거나 농지임대차계약서, 경작사실확인서 등을 허위로 작성한 뒤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에서 보증서를 받는 방법으로 대출받거나 해줬다. 특히 농협은 전체 대출금액 가운데 38억 1100만원에 대해 변제능력이 없다는 내용의 대손(貸損)신청서를 농신보에 제출, 농신보가 대신 갚도록 했다. 윤씨는 공문서를 위·변조해 17명의 농민들에게 농업경영개선자금 8억 7200만원을 대출해 준 뒤 대환처리(새로 대출을 받아 기존의 빚을 갚는 것)하는 방법으로 동남해농협의 부실채권을 정리한 혐의다. 권씨는 면장이 작성하는 가축 자가사육 사실확인서를 위조해 농업경영개선자금 5630만원을 대출받아 농협 채무를 갚았다. 불법대출혐의로 적발된 곳은 남해 동남해농협을 비롯, 하동 진교농협, 산청농협 호암지소. 단성지소, 새하동농협, 하동 금남농협, 하동 고전농협 등이다. 창원 이정규·서울 김태균기자 jeong@seoul.co.kr
  • 고려말 문신 안축의 작품집 국역 단행본 ‘근재집’ 발간

    고려말 문신이자 학자인 근재(謹齋) 안축의 문집 ‘근재집’(jinhan M&B 펴냄)이 국역돼 단행본으로 나왔다. 근재가 관동지방 존무사(存撫使)로 있을 때 지은 시문집 ‘관동와주(關東瓦注)’를 뼈대로 후손들이 모은 몇 편의 시문들을 덧붙였다. 정우상 서울교대 명예교수 등 국문학자와 한문학자 6인이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근재의 문학적 재능은 특히 고려시대 경기체가인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에 잘 드러나 있다. 근재의 시는 우국애민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 대부분. 일손이 바쁜 농사꾼에게 할당된 삼을 캐오라고 내치는 관리를 개탄한 ‘삼탄(蔘歎, 인삼을 한탄한다)’ 같은 작품에서는 당시 인삼 공물의 폐해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또 ‘농두엽부(壟頭 婦, 밭머리에 들밥 나르는 여인)’는 들일 하는 사람들에게 점심밥을 가져다 주는 여인의 정성을 한폭의 풍경화처럼 그린 서정적인 시가다. 알기 쉬운 현대말로 전해주는 고전의 향기가 은은하다. 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2) 변산에서 만난 정감록과 미륵신앙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2) 변산에서 만난 정감록과 미륵신앙

    ●부안행 버스 속에서 남사고는 먼젓번 내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내 책 ‘남격암’을 살펴보게나. 부안엔 호암(壺岩)이 있고 그 아래 변산 동쪽은 몸을 숨기기에 정말 적합하구나라고 했지.” 나는 이 기회에 변산의 길지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서울서 부안까지는 고속버스 편을 이용했다. 서울남부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3시간쯤 지나 삼례를 지난다. 이 때부터 드넓은 호남평야가 눈앞에 가득하다.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부안은 김제 만경평야의 서남쪽 끝에 있다. 그곳은 곡창지대이면서도 서해바다에 연해 있다. 며칠 전 우연히 부안 출신의 한학자 한 분을 만났는데, 그는 예부터 ‘생거(生居) 부안’이란 말이 있다고 자랑했다. 농수산물이 풍족할 뿐만 아니라 변산(邊山)이란 명산이 있어 부안은 무척 살기 좋은 고장이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부안은 다소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변산에서 군산까지 이어질 새만금방조제 공사로 인해 생태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적지 않다. 잠시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송기숙의 대하소설 ‘녹두장군’이 시작되는 백산이란 지역도 지금은 부안군에 속한다. 갑자기 1984년 동학농민군들의 함성이 귀에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농민군들은 모두 흰옷에 죽창을 들고 있어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고 했다던가? 이런 역사적 격랑의 한복판에 변산이란 길지(吉地)가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밤 나는 이중환의 ‘택리지’를 꺼내놓고 혹시 변산에 관한 설명을 찾아 볼 수 있을까 해서 좀 뒤적여 보았다.“노령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부안에 이르러 서해 가운데로 파고들어간다. 서·남·북 3면은 모두 바다다. 이곳은 많은 봉우리와 허다한 골짜기로 돼 있는데 변산이라 부른다.” 맞는 말이다. 변산은 3면이 바다에 닿아 있고 봉우리와 골짜기가 유난히 많다. ●변산은 백두대간의 서자 그러나 이중환의 설명과 다른 점도 있다. 자세히 검토해 보면 변산의 멧부리는 노령에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백두대간의 계보를 자세히 적은 ‘산경표(山經表)’에도 변산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고지도를 보더라도 변산은 홀로 떨어진 외로운 산이다. 말하자면 백두대간의 서자인 셈이다. 정감록의 길지는 대부분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에 확실하게 능선이 닿은 적자(嫡子)들이다. 그렇다면 서자 격인 변산은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어 길지로 거론된 것일까? 누구도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 답을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난 변산의 지리와 역사를 좀더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버스는 서서히 부안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난 지 4시간 만이다. 읍내 길거리엔 바다 냄새가 물씬하다. 남도의 봄 향기도 객을 반기는 듯하다. ●내변산 우동 정감록서 말한 길지 지인의 소개로 나는 읍내에서 지관 김철수(71·가명)씨를 만났다. 김 지관의 말을 들으니 변산은 길지에 필요한 외형적인 조건을 제법 잘 갖춘 편이란다. 변산의 산세는 용맥이 강이나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갑자기 멈춰선 경우에 해당해, 이른바 산진처(山盡處)의 명당이란다. 김 지관은 서남해안 일대에는 그런 명당이 몇 군데 더 있다며 가야산과 팔령산과 태안반도를 예로 든다. 그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변산의 지세를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 지관의 대답은 이러했다.“변산의 청룡, 즉 동쪽 산세는 사창재, 노승봉(상여봉), 바드재를 건너 옥녀봉으로 이어지다가 잠시 남서쪽으로 흐르는 듯하다가 내소사의 주산인 세봉을 건너서 월명암의 주산인 쌍선봉으로 반원을 그리며 내뻗어요. 그게 학치, 청림리 삼예봉에서 끝나지요. 변산의 백호, 즉 서쪽 산세는 개암사의 주산인 우금산에서 우슬재를 거쳐 의상봉으로 이어진다고 봐야지요. 이 두 흐름을 갈라놓은 것이 그 옛날 백천이었는데, 지금은 부안호가 돼 없어졌어요. 백천의 물길은 본래 우슬재에서 시작됐거든요. 백천도 그렇지만 변산의 청룡과 백호가 그려낸 형상은 결국 산 태극, 물 태극이오. 계룡산과 같다, 이런 말씀이지요.” -그럼 ‘정감록’에 나오는 변산 동쪽의 길지는 구체적으로 어딘가요? “아, 그것은 말이지요. 일단 내변산으로 통하는 입구인 우슬재나 바드재를 좀 잘 봐야 해요. 그저 그 길목만 잘 지키면 인근의 청림리와 중계리는 참 좋은 피난처가 돼요. 거 뭐더라, 정감록에 나오는 호암을 찾으려면 상서면 통정리에서 우슬재를 넘어가면 돼요. 우슬재를 살짝 넘어가면 쇠뿔바위라고 나오지요. 그런데 이게 변산 최고봉인 의상봉의 오른쪽에 있어요. 쇠뿔바위 동남쪽을 잘 살펴보면 산비탈에 실학자 반계 유형원이 우거하던 집이 지금도 있지. 몇 해 전에 복원됐지요. 그 산 아래 마을이 우동이야. 보안면 영전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곰소로 가다 보면 마주치는 동리인데 원래 이름은 우반동이란 말이오. 이 마을서 북쪽을 올려다보면 옥녀봉이 있고 멀리 그 산 끝자락에 굴바위가 보인단 말이지요. 바위 입구가 틀림없는 호리병 모양이에요. 호암이라 이거지요! 우동은 앞이 시원하게 터진 듯하면서도 천마산이 막아주고 있어 삼태기형 명당이 분명하고. 그러니까 뭐냐 하면, 난 우동이 바로 그 ‘정감록’에서 말하는 길지다, 그렇게 봐요. 안 그렇겠어요?” -김 지관님, 그런데요. 역사상으로 볼 때 길지가 있다는 내변산이 외변산보다 훨씬 더 큰 수난을 겪었습니다. 구한말이나 6·25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변산의 우동을 길지라고 주장하시겠습니까? “그거야 잘 모르겠소! 누가 그걸 알겠어요? 그래도 옛 말이 조금도 틀린 게 없어요. 우리가 사는 이 변산은 아주 옛날서부터 미륵님이 나타나신 땅이고, 관세음보살님의 성지요. 원효, 진표, 진묵 등 큰 스님들도 많이 오셔서 도를 닦으신 것만 봐도 이게 보통 땅이 아닌 것은 틀림없어요! 근세엔 증산교를 세운 강일순이도, 원불교의 소태산도 다 여기 변산서 도를 닦았단 말이죠. 그 분들이 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선 분들인데 왜 다른 명당 다 놔두고 부안을 왔겠어요? 정감록에도 길지라고 나와 있단 말이에요. 미륵님이 현신하신 곳이니까 이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봐요.” 김 지관의 설명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변산은 과연 미륵신앙의 발상이요, 불교의 성지였다. 왜,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점이 중요하게 생각돼 난 서둘러 발길을 현장으로 옮겼다. ●변산의 옛 사찰들 부안읍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박재환(45·가명) 선생이 길잡이를 맡아주었다. 나는 박 선생과 함께 내변산 입구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대형 지도에서 변산의 유적지를 다시 점검했다. 변산은 제법 큰 산 덩어리여서 변산면(邊山面)·하서면(下西面)·상서면(上西面)·진서면(鎭西面)에 걸쳐 있다. 그런데 최고봉이라는 의상봉 마천대(508m)도 실은 야트막한 편이라 웅장한 느낌은 별로 없다. 이곳 사람들은 서해안을 따라 겹겹이 포개어진 산봉우리를 외변산이라 하고, 내륙으로 뻗은 골짜기와 봉우리는 내변산이라 부른다. 외변산에는 격포리(格浦里) 해안의 채석강(彩石江)과 적벽강(赤壁江)이 특히 유명하다. 이 두 곳의 명칭은 강이지만 실제는 해안의 바위벽이다. 채석강이니 하는 이름은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과 대문장가 소동파(蘇東坡)가 노닐던 중국 지명을 본뜬 것이다. 그만큼 경관이 수려하다는 뜻이다. 변산의 해안풍경이 그처럼 절경이라 해도 정작 변산을 전국적인 길지로 만든 것은 산속에 위치한 옛 사찰들이었다. 박 선생이 승용차로 변산을 구석구석 구경시켜 준 바람에 모든 게 뚜렷해졌다. 외변산에 해당하는 상서면 감교리의 개암사(開岩寺)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묘련왕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대웅전(보물 292호)이 참으로 볼 만하다. 개암사에 딸려 있던 원효방이란 암자는 신라 때 명승 원효가 수행한 곳이라 전한다. 그런가 하면 변산면 석포리에 위치한 내소사(來蘇寺) 역시 신라 때의 고찰인데 대웅보전(보물 291호)·고려 동종(보물 277호)·법화경절본사본(法華經折本寫本 보물 278호) 등 문화재가 많다. 내소사 경내의 전나무 숲은 울창하기가 전국 최고라 하고 이 절간의 저녁 종소리는 변산8경의 하나로 친다. 내변산은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깊은 계곡이 여럿이고 나무 또한 울창해 풍광이 곱다. 그 중 산내면 중계리(中溪里)에는 신라 때 창건됐다는 월명암(月明庵)이 있다. 변산의 제2봉인 쌍선봉(498m) 중턱에 자리잡은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아침 바다의 물안개는 변산8경의 하나다. 암자 뒤편의 낙조대(448m)에서 서해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역시 변산8경으로 손꼽는다. ●불사의방과 영산사, 한국 미륵신앙의 성지 변산에는 위에서 말한 사찰들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중요해 뵈는 암자 하나가 있었다. 의상봉 꼭대기 있었다고 믿어지는 불사의방(不思議房)인데 이곳이야말로 미륵하생신앙의 진원지였다. 장차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수많은 사람들을 불교적 이상세계로 인도할 거라는 하생신앙이 처음 뿌리를 내린 곳이 변산이라니 신기한 느낌이 든다. 따지고 보면,‘정감록’에 약속된 새 세상도 미륵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게 보면 미륵하생신앙은 정감록 신앙의 뿌리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불사의방에서 미륵신앙을 체험한 승려는 신라의 진표(眞表)였다. 그는 경덕왕 19년(760)부터 3년 동안 3업(身·口·意業, 몸뚱이·언어·의지의 작용)을 닦았다. 아울러 망신참법(亡身懺法·몸을 희생시키는 참회법)에도 힘써 5륜(두 무릎, 두 손, 머리의 5體)을 바위에 마구 부딪쳐 무릎과 손이 깨져 피가 비오듯 했다고 한다. 진표의 극진한 기도에 감동한 지장보상(地藏菩薩)은 진표에게 모습을 드러내 정계(淨戒)를 주었다. 그러나 진표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부근의 영산사(靈山寺)로 수행 장소를 옮겨 더욱 정진했다. 미륵보살을 친견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마침내 미륵보살이 진표 앞에 나타나 그의 신심을 칭찬하고 점찰경(占察經) 2권과 증과간자(證果簡子·수행으로 얻은 果와 점치는 대쪽) 189개를 주었다. 진표는 미륵보살의 수기(授記)를 받은 셈이다. 경덕왕 21년(762), 진표는 신도들을 이끌고 금산사(전북 김제)에 16척이나 되는 거대한 미륵보살을 조성하기 시작했다.2년 뒤 마침내 미륵상은 완성되었다.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중심지가 된다. 진표에 관한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변산에서 미륵신앙이 출범했다는 점이다. 그 뒤 우리 역사상 미륵신앙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 특히 난세에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에게 많은 위로를 줘왔다. ●월명암, 또 하나의 종교적 성지 알고 보니 변산의 월명암(月明庵) 역시 종교적인 성지로 의미가 크다. 월명암은 관음보살을 모신 곳이라는데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영지라 한다. 월명암에 오르기 위해 나는 남여치에서 차를 내려 쌍선봉 쪽을 바라보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이 암자는 신라 신문왕 12년(692)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했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중건했다. 한말엔 의병들이 월명암을 근거지로 삼아 일본군과 싸웠는데 전투에 진 바람에 1908년엔 다시 잿더미가 됐다. 그 후에도 월명암은 몇 차례 심한 몸살을 겪었다. 지금 월명암 옛터에는 대웅전을 건립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월명암을 개창한 부설거사는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의 행적은 ‘부설전’이란 고소설에 상세하다. 경주에서 출생한 부설은 법우(法友)인 영조·영희와 함께 구도의 길을 떠나 변산(능가산)에 들어가 묘적암을 세우고 오직 수도에만 몰두했다. 뒷날 그들 3인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오대산으로 길을 떠나는데, 부설원(정읍군 칠보면)에 이르렀을 때 부설은 삼생연분(三生緣分)이 있는 묘화를 만난다. 두 사람은 반드시 부부가 돼야 할 운명이었다. 환속한 부설거사는 아들 등운(登雲)과 월명(月明)이란 딸을 두었는데 말년이 되자 변산에 등운암(登雲庵)과 월명암(月明庵)이란 두 암자를 지어 아들딸에게 각기 하나씩 맡겼다. 겉으로 보면, 부설과 묘화 부부는 속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평생 남몰래 수도에 정진해 도력이 출중했다. 부설거사보다 한 수 낮았다는 묘화만 해도 환한 대낮에 조화를 부려 비나 눈을 내리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때로 묘화는 빗방울이나 눈송이를 단 하나도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했다고 전한다. 월명암을 중건한 진묵대사도 많은 이적을 남겼다. 진묵은 조선 중기 호남의 대표적인 선승(禪僧)이었는데, 어느 날 탁발을 나갔다가 매운탕 한 솥을 얻어 마셨다. 그 다음 진묵은 물가에 가서 토해냈는데 탕 속에 들어 있던 죽은 물고기들이 전부 살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근대에는 백학명(1867∼1929)과 같은 고승이 월명암에 주석했다. 학명은 불교개혁의 일환으로 선농(禪農)일치를 몸소 실천했다. 그는 참선과 농사를 같은 것으로 파악해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원불교를 개창한 소태산 박중빈도 세상을 구제할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월명암을 찾았다.1919년 소태산은 학명과 더불어 동안거를 했다. 이때 학명의 거처는 법당이었고 소태산은 그 옆방을 사용했다. 원불교의 2대 교조인 정산종사도 한때 학명의 상좌 노릇을 했다. 뿐만 아니라 증산교를 창설한 강일순(姜一淳) 역시 월명암을 찾았었다. 강증산과 소태산은 모두 새 세상을 열기 위해 부심했다고 한다. ‘부설전’을 보면 월명암에서 모두 4성인,8현자,12법사가 나온다고 했다. 월명암 스님들은 부설거사 가족 4명을 성인으로 간주한다. 옛날 이 암자에 주석했던 성암·행암·학명 스님은 3현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5현과 12법사가 더 나올 예정이라는 뜻인데 과연 그 말대로 될지 어떨지 나는 모른다. 장차 지켜볼 일이다. 요컨대 변산은 불보살과 깊은 인연이 있어 정감록이 손꼽는 길지가 되었다. 변산의 경우에서 보듯 때로 민중의 깊은 불심은 풍수조건을 능가하기도 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지구의 주인은 개미?

    지구의 지배자는 인간일까, 개미일까.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부른다. 인간과 유전자의 99%가 일치하는 침팬지조차 국가를 세우거나, 전쟁을 벌이거나, 농사를 짓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같은 인간의 진화 과정은 개미 사회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인간은 600만년전 침팬지와 갈라졌다. 반면 개미의 가장 오래된 화석은 인류 역사의 10배에 달하는 신생대 초기(6000만년전)이며 개미의 출현은 이보다 앞선 중생대 백악기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개체수에서 인간은 약 60억명인데 비해 개미는 1억의 1억배 정도로 월등히 많다. 개미의 크기는 채 1㎜도 되지 않는 것부터 큰 것도 3㎝가량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많은 개미들의 무게를 합치면 인류와 거의 맞먹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지구상에는 1만 4000여종의 개미와 2000여종의 흰개미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150여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10여종은 집개미이다. 이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를 ‘개미의 행성’이라 부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한다. 한편 개미는 태어날 때부터 그 역할이 정해지게 된다. 우선 몸집이 크고 가슴에 날개가 달려있는 여왕개미는 번식을 담당한다. 여왕개미가 일정 수 이상의 일개미를 낳기 전에 자신의 영양분을 모두 소모해 버리면 종족 모두가 죽게 된다. 이 때문에 다른 개미 집단에서 알이나 애벌레 등을 훔쳐와 노예로 쓰기도 한다. 또 일개미는 먹이를 모으고 알과 애벌레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 머리와 턱이 발달된 병정개미는 적의 침입으로부터 보금자리를 지킨다. 수개미는 먹이를 축낼 뿐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번식이 주된 임무이기 때문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김정문알로에 대표이사 장원씨

    ㈜김정문알로에는 장원(48) 전 녹색연합 사무총장을 대표이사로 영입했다고 30일 밝혔다. 장 대표이사는 ‘내안의 자연’이라는 브랜드로 유기농사업을 시작한 ㈜김정문테크의 최고경영자도 겸임하게 된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1)전국의 길지 (하)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1)전국의 길지 (하)

    ●호남의 길지 호남엔 여느 도 못지않게 길지가 많다며, 성질 급한 독자들은 내게 거세게 항의했다. 그런 줄 내가 왜 모르겠는가? 다만 ‘정감록’의 길지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모태로 삼는 까닭에 그 두 산부터 설명을 시작해 점차 주변지역으로 확대시킨 것뿐이다. ‘남격암’에 가장 먼저 언급된 호남의 길지는 무주(茂朱) 덕유산(德裕山)이다. 덕유산 아래서도 무풍(舞豊) 북쪽에 있는 동굴 옆 음지가 으뜸이라 했다. 그곳은 어떠한 환난도 피할 수 있는 명당이라 한다.‘피장처’에선 약간 다른 곳을 지적해, 덕유산 남쪽의 원학동이야말로 숨어 살기 적당하다 했다. ●덕유산 부자마을 한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덕유산의 성격을 흙산이라 보았다. 지리산과 성질이 같은 것으로 본 것인데 남격암과 마찬가지로 산의 북쪽에 있는 무풍에 주목한다. 이중환은 바로 그 옆의 설천(雪川)도 길지로 간주한다. 그는 남사고가 무풍을 복지(福地)로 파악했던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 덕유산의 미덕을 이렇게 말한다.“무풍의 바깥쪽은 온 산이 비옥해 부자 마을이 많다. 이는 속리산 이북 지역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사고는 내게 보낸 편지에서도 덕유산의 장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과연 그렇다네. 실로 덕이 넉넉한 산이 덕유산이요, 풍요로움을 기꺼워하다 못해 저절로 춤이 나오는 곳이 무풍이라네. 우리나라 12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덕유산. 그 주산은 향적봉(香積峰·1614m)이요, 산세의 흐름이 유장해 무풍의 삼봉산(1254m)에서 흘러내린 용맥이 수령봉(933m), 대봉(1300m), 덕유평전 (1480m), 중봉(1594m), 무룡산(1492m) 삿갓봉(1410m), 남덕유(1508m)까지 무려 100리를 굽이쳐 흐르며 영호남을 갈랐다네. 충청, 경상, 전라 3도를 굽어보는 향적봉에 한번 올라보게. 가까이는 북으로 적상산을 발치에 두고 멀리 황악산과 계룡산을 바라보네. 서쪽을 둘러보게나. 운장산, 대둔산이 버티고 서있어. 남쪽은 어떠한가. 남덕유를 코앞에 걸어두었네. 지리산 반야봉도 가물거리네. 동쪽을 어찌 빠뜨릴쏜가. 저 멀리 가야산과 금오산이 보이지 않나? 향적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옥 같은 샘물줄기가 한참을 흐르다가 구천동 33비경을 만들어 놓았도다. 요즘은 북사면에 무주 리조트가 있다지. 서남쪽의 칠연계곡도 큰 장관일세. 봄의 덕유산은 칠십 리 깊은 계곡에 붉은 철쭉꽃이 불타오르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온 산을 적시네.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꼬까옷을 입히지. 겨울이면 설화를 피운 고목이 고요한 은세계를 더욱 빛낸다네. 참 아름다운 곳이야! 길지란 대부분이 이렇게 아름답고 고즈넉하며 은근히 풍요로운 곳에 있기 마련이네.” 덕유산에 대한 남사고의 예찬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나는 이쯤에서 줄이기로 했다. ‘남격암’은 호남의 명산 내장산(內臧山)도 길지로 손꼽는다. 이른바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라는 내장산은 가을 단풍 하나로만 전국에 유명하다. 이 산의 단풍은 30여종의 나무들이 토해낸 붉고 노란 빛깔이 어우러진 전원 교향악이다. 많은 사람들은 단풍에만 혹할 뿐이나 실은 난세를 피할 길지로서 이만한 곳이 무척 드물다. 임진왜란 때는 전주 사고(史庫)에 소장돼 있던 왕조실록이 내장산에 옮겨져 잠시 화를 피했다. 그 때 만일 내장산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세계기록문화유산이기도 한 왕조실록은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내장산은 과연 길지로다.‘피장처’는 내장산에서 별로 멀지 않은 담양 추월산도 숨을 만한 곳이라 추천한다. 추월산은 전남 담양군 용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 사이에 걸쳐 있는데, 구한말 호남의병운동의 한 거점이었다. ●길지 변산에 웬 도둑 떼가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호남 굴지의 길지는 부안의 변산(邊山)이야.” 남사고는 그렇게 주장한다.“내 책 ‘남격암’을 살펴보게나. 부안엔 호암(壺岩)이 있고 그 아래 변산 동쪽은 몸을 숨기기에 정말 적합하구나라고 했지. 만일 제주도가 다른 나라 땅이 되고 말면 일은 그릇된다고 했어. 이는 왜 그런가? 제주에서 배를 타고 북상하면 전남 강진, 영광, 또는 전북 부안에 곧장 뱃길이 닿을 테니 위험할 수밖에. 어쨌거나 내 생각은 그래. 기왕 변산을 찾았다면 그 동쪽 계곡까지 들어가라. 하지만 그 산을 빠져나가지는 말라! 언제는 속리산 이북으로 가지 말랬다가 이젠 또 변산 동쪽을 벗어나지 말라고 하니, 자네들이 좀 헷갈리겠군. 내 말의 뜻은 그만큼 속리산 이남이 길하고 변산이 좋다는 말이야. 다른 뜻은 전혀 없다고!” 참 이상한 노릇이지만 좀 조사해본 결과 문학속의 변산은 도둑의 소굴이기도 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주인공 허생이 변산의 도둑 떼를 인솔해 무인도로 떠나간 걸로 돼 있다. 어떤 연구자는 이를 두고 영조 때 일어난 ‘무신난(戊申亂·1728년)’ 무렵 변산의 실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도 불리는 무신난의 주체는 남인(南人)·소론(少論)·소북(少北)의 연합세력이었다. 그들은 당시 집권층인 노론(老論)을 몰아내려고 난을 일으켰고 거기에 전국 각지의 도둑들·서얼·상민·천민들이 상당수가 가담했다. 호남 여러 고을의 빈농들과 변산의 도적들도 무리 가운데 끼어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빈농은 자칫하면 유리걸식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살다 보면 자연히 도적 무리에 포섭되었다. 허생전에 나오는 변산의 도둑 떼는 허생의 영도 아래 각자 배우자와 소 한 마리씩을 이끌고 무인도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 곳에서 열심히 농사 지어 외국과 무역에 종사 하는 등 유족한 삶을 누린다. 변산 도둑들의 입장에서 볼 때 허생은 다름 아닌 ‘진인’이었다. 혹자는 허생이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이상향으로 도둑들을 이끌고 숨었다며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현실에 순응하며 합법적인 개혁을 꿈꾸던 연암 박지원에게서 허생 이상의 주인공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요구가 아닐까? 그야 어쨌거나 허생전에 변산이 도둑의 소굴로 설정된 것은 실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변산은 골짜기가 깊고 사방으로 뻗어 있어 은신에 적합했다. 그렇기 때문에 변산이 길지로 손꼽혔다. 하지만 도둑 떼들이 이러한 자연 조건을 적극 이용한 결과, 조선 후기엔 그들의 요새로 둔갑하기도 했다. 남사고는 말하기를,“변산이 중요한 까닭은 그 산세에 국한된 것이 아니야. 좀더 깊은 연유가 있었지.”라며 매우 의미심장하게 운을 뗀다. 그러나 그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기회를 마련해 경청하기로 한다 ●조계산의 ‘십팔공’ ‘남격암’은 전라도의 또 다른 길지로 조계산(曺溪山·887m)을 예로 든다. 전남 승주군에 있는 이 산엔 고찰(古刹) 송광사(松廣寺)가 있어, 산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절에서 동북쪽으로 10여리를 올라가면 천자암(天子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다. 이 암자의 오른편에 곱향나무 두 그루(천연기념물 제88호)가 우뚝하다. 높이가 12.5m, 가슴높이쯤에서 둘레가 3∼4m나 되는 거목인데, 나무에 얽힌 유래가 특이하다. 지금부터 800여년 전 이 절에 머물던 보조국사(普照國師)는 중국에 건너가 황후의 불치병을 고쳐준 다음 그 인연으로 왕자 하나를 제자삼아 데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천자암에 오른 그들은 나란히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것이 살아나 차츰 거목으로 자랐단다. 보조국사 일행의 도력도 만만치 않지만, 조계산의 지력도 여간 왕성하지 않은 모양이다. 워낙 명산에 자리잡은 까닭에 송광사의 “松”자는 길한 예언을 담고 있다. 그 글자를 해체하면 “십팔공(十八公)”이 돼,18명의 국사가 나온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조국사를 비롯해 모두 16명의 국사가 나왔다 한다. 앞으로 2명이 더 나오게 돼 있는데 그때가 되면 모든 중생에게 불법이 바로 전해져 용화세계의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유추되듯, 조계산은 최고수준의 길지라 미륵세상의 도래를 약속하는 곳이 된다. 소백산에서 남서쪽으로 곧게 뻗어 내린 용맥이 서해바다를 눈앞에 두고 멈춰선 곳에 한 길지가 있다.‘남격암’이 말한 월출산(月出山)이 그곳이다.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에 불쑥 솟아오른 월출산은 단순히 많은 큰 산의 하나가 아니다. 산 이름 그대로 달맞이하는 산이라서, 이 산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달 신앙의 대명사로 우뚝 솟았다. ●왜적도 못 들어온 팔령산 월출산에서 좀더 남으로 내려가면 한반도 남단의 길지 팔령산(八靈山)이 웅자를 드러낸다.‘남격암’은 이렇게 말했다.“우리나라의 지세를 논할 때 섬이 바라보이는 남쪽은 절대적으로 피할 일이다. 다만 한 예외가 있어 팔령산이 바로 좋은 산이다.” 남사고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소백산 줄기가 고흥반도 동쪽까지 내려오다 끝맺음을 한 것이 바로 이 팔령산이야. 정상의 봉우리가 모두 8개인 산이지. 팔영산(八影山)이라고도 부른다네. 예전엔 팔전산(八顚山), 팔형산(八兄山), 팔봉산(八峰山)으로도 불렸어.‘택리지’에서 이중환은 이 산이 마치 섬처럼 바다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고 했어. 일찍이 내가 복이 있는 땅이라고 기술했다고도 썼어. 기특한 내 후배 이중환은 늘 중요한 지점에서 내 말을 곧잘 인용한단 말이야! 아는 대로 임진왜란 때는 왜선이 고흥반도를 타고 침입하려고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어. 이게 다 팔령산의 지기(地氣)에 힘입은 거야. 고흥의 옛 문헌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팔령산의 넷째 봉우리인 사자봉이 대단해. 마치 용이 바다를 향해 치닫는 형상이라고 할까. 사자봉의 혈(穴)은 국왕의 옥쇄인데 마지막 봉우리에서 그만 미완성으로 끝나 여간 아쉽지 않아. 일제시기 그 놈들이 조선의 맥을 끊어버리려고 팔봉에다 큰 쇠막대를 깊이 박았어. 그 놈들은 한국 사람들을 미신적이라고 비웃었지만, 그래도 뒤가 켕겼는지 갖은 못된 짓을 다했어. 이제 와선 멀쩡한 우리 땅 독도를 자기네 섬이라고 주장하지를 않나. 가소롭기 짝이 없어! 한데 말이야, 당시 그 놈들이 혈을 정확히 짚지 못하는 바람에 그 뒤 고흥선 진짜 장군이 나왔다고들 하지.” 팔령산이 명산이란 소문은 진작 전국에 널리 퍼졌다. 각지의 무당이 몰려와 무속신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고, 난리가 닥치면 산 속 깊이 은신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삼십년 전엔 어느 사이비 종교단체가 이 산에 본거지를 두고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경기도의 길지 “나는 주로 속리산 이남인 하3도(충청, 경상, 전라)에서 길지를 찾았지. 속리산 이북인 중부지방엔 별다른 길지가 없다고 보는 편이야. 영산인 태백산에 가까운 강원도 남부지역에 한두 군데 있을까 말까. 그 외엔 사실 주목되는 곳이 하나도 없는 셈이야. 정감록에서도 말했을 걸. 오대산 이북은 몹시 흉하다고 말이야.” 그러나 ‘피장처’와 ‘두사총비결’엔 중부지방의 피난지가 다수 언급돼 있다. 우선 ‘피장처’에 따르면 양주 산내촌에서 북쪽으로 80리를 들어가면 길지가 있다 했다. 또한 양근 소설촌의 북쪽 40리쯤에서 좀더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가장 은밀한 곳에 숨은 길지가 있다고도 했다. 요새 설곡리(雪谷里)라 불리는 곳 말인데 고려 말 임제종(臨濟宗)을 개창한 명승 보우(普愚)가 설곡리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진다. 여주의 사전촌에선 장수와 정승이 나온다고 했고, 광주 율평 동쪽에 있는 동굴은 난리 때 여덟 성씨가 함께 숨어 살 곳이며 장차 56대 동안 장수와 정승이 출생할 곳이라고 했으니 굉장한 명당이다. 또한 ‘피장처’엔 이천 북면의 광복동, 가평의 대아, 도성 등도 피난할 만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인천의 영종도 역시 복지라 했다. 오늘날은 국제비행장이 들어선 영종도는 고려 말부터 단 한번도 전쟁의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무사했다는 것이다. ●중국 지관 두사총이 손꼽은 길지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따라 중국에서 왔다는 지관(地官) 두사총이 쓴 비결로 알려진 ‘두사총비결’에도 경기도의 길지가 두어 군데 언급된다. 그 중 하나는 화약산이다. 가평에서 36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산이 바로 그 산인데 부근엔 집다리골 휴양림도 있어 쉬어 갈 만하다. 그밖에 포천의 도성산도 길지로 말해진다. 도성산은 길가에 가까워 산세가 얕다는 평을 듣지만 전쟁의 기운이 미치지 않고 간사한 기운도 침범하지 못한다고 믿어진다. 고려가 망했을 때 어느 선비는 도성산 밑으로 들어가 시냇가에 대(竹)를 심고 충절을 맹세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 선비가 지조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도성산의 지기 덕분이라 한다. ‘두사총’은 강화의 마니산(467m)도 길지라 일컫는다. 인천시 강화군(江華郡) 화도면(華道面)에 있는 이 산은 강화섬에서 가장 높다. 마니산은 한반도 남쪽의 한라산, 북쪽의 백두산까지 거리가 똑같아 주목된다. 마니산은 마리산·머리산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리란 머리를 뜻한다. 이 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이름이 그렇게 됐다. 마니산이 길지로서 특별한 위치를 주장하게 된 것은 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塹星壇·사적 제136호) 때문이다.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높이 5m의 자연석을 포개어 만든 이 단의 기단부는 원형이며 그 상단은 네모꼴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이란 고대 동양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이 단이 축조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멀리 고려 때부터 국가가 제관을 파견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전한다. ●황해도의 길지 북부지방엔 길지가 없다는 게 ‘정감록’의 근본 주장이다. 이와 달리 ‘피장처.’는 황해도 곡산의 명미촌을 길지라 한다. 좀더 정확히 말해 명미촌에서 서쪽으로 발길을 재촉해 희령과 잇닿은 경계 지점에 숨으면 어떤 난리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남격암’은 “수양산(首陽山·899m)은 백미(白眉)의 난을 당하면 물 마른 개울의 물고기처럼 되느니라.”라고 했다. 수양산이 좋긴 해도 눈썹 흰 사람이 난리를 일으키면 도리어 흉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수양산은 황해남도 벽성군(碧城郡)과 해주시(海州市)에 걸쳐 있다. 이 산은 남격암이 거론한 서북지방의 유일한 길지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행정도시 예정지에 자고나면 논밭에 나무가 ‘빽빽’

    행정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공주지역에 보상금을 노린 나무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3일 공주시 장기면 당암리 주민들에 따르면 최근 1주일 사이 이 마을에 있는 1000여평의 논에 키 2m 정도의 배나무 수천그루가 심어졌다. 굴착기까지 동원돼 심어진 이들 나무는 간격이 20∼30㎝밖에 안될 정도로 지나치게 촘촘해 수확보다는 보상을 받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민 이모(56)씨는 “땅주인은 외지 사람인데 그동안 벼농사만 짓던 논에 배나무를 심은 건 보상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기군 남면 갈운리에서도 밭 400여평에 배나무가 심어졌다. 이 마을 주민 최모(64)씨는 “지난주 말 외지에 살고 있는 땅주인이 찾아와 심었다.”면서 “땅주인의 말로는 ‘밭을 놀렸더니 벌금이 나와 뭐라도 심어야 한다.’고 했지만 지난해에 산 토지에 무슨 벌금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같은 면 나성리에서도 그동안 벼농사만 짓던 1만여평의 논에 최근 향나무와 무궁화·느티나무 등 각종 나무 2만여 그루가 심어졌다. 이밖에도 행정도시 예정지 중심인 남면 진의·양화·종촌리 논과 밭에도 최근 며칠간 보상을 노린 나무심기가 판치고 있다.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임야의 수종 변경은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쌀이나 채소 재배가 목적인 논·밭의 나무심기는 받지 못한다.”며 “항공사진 등도 보상대상 여부를 결정하는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24일 행정도시 예정 및 주변지역 경계공람이 공고되면 토지형질변경, 토석채취 등 개발행위 및 건축행위가 금지되고 보상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행정도시 규모 발표] 행정도시 주민“토지보상이나 제대로 돼야지유”

    “큰 일 났네유.” 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삼리 주민 이정진(55)씨는 “기어이 고향을 떠나게 생겼다.”며 당황해했다. 그는 “지난해에 집도 새로 짓고 인근 마을에 논밭이 조금 있어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를 바랐는데…”라면서 허탈해했다. ●“70살 넘은 나이에 고향뜨려니…” 공주시 장기면 당암리 양재수(66)씨는 “70살 넘는 나이에 6대째 살아온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사양화되는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반면 신행정수도 계획 때보다 50만평을 더 확보한다는 말에 수용이 될까봐 걱정했다가 제외된 마을 주민들은 안도했다.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 박수현(51)씨는 “이번에는 수용될 것으로 봤는데 고향을 지킬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면서 “행정도시 주변지역이 얼마나 규제될지 모르지만 농사짓는 주민들은 큰 의미가 없고 늦어도 7년 뒤에는 보상가보다는 행정도시 건설로 오른 땅값이 더 클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주민대책위 구성·활동 나설듯 애초부터 행정도시 중심에 있는 주민들은 행정도시 포함 여부보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보상이 얼마나 나올지에 관심을 보여 왔다. 남면사무소 인근에 사는 임모(56)씨는 “지난해 신행정수도가 오는 것으로 믿고 농협에서 빚 3억원을 얻어 인근에 축사가 딸린 집을 샀는데 6개월 만에 이자가 1000만원 넘게 나와 기르던 소를 팔아 갚았다.”며 “보상이 적으면 망하게 생겼다.”고 걱정했다. 남면 송원리 김창제(58)씨도 “정부가 원주민에게 개발이익의 일부를 미리 얹어주는 차원에서 보상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하지만 남면 양화리 임백수(49)씨는 “떠나지 않겠다.”면서 “행정도시에서는 농사를 짓지 못하니 정부가 터전과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을 세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도시 예정지 주민들은 곧 ‘주민보상대책위원회’를 구성, 행정도시 건설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주민갈등을 조정하고 주민들이 원하는 맞춤형 보상을 받기 위한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공주·연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중앙PSAT연구소 실전풀이]

    ■ 문제 다음 글이 나타내고자 하는 관리의 가치판단 기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중앙부서의 어느 국장이 자신의 자리를 팔겠다고 신문지상에 경매광고를 내었다면 아마 한국사회가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다만 100년쯤 전의 일이다. 250년쯤 전에는 프랑스의 위대한 개혁주의 정치철학자였던 몽테스키외가 관직을 돈이 많은 사람에게 매매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지지했으며, 비슷한 주장을 영국에서 벤담도 하고 있었다.17,18세기에는 실제로 관직매매가 성행하였다. 관직을 매매한 이유도 다양하다. 국왕이 전쟁을 하거나 외국무역을 보호하기 위한 해군을 강화하면서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관직을 팔았던 것이 시발점이 되었고, 이를 사들인 사람이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매매하기도 하였다. 특히 나이가 들어 활동이 어려울 때는 다른 사람에게 관직을 팔아서 노후생활을 하기도 한다. 연금인 셈이다. 과거 봉건시대에 국왕에게 공이 있는 자를 영주로 임명하고 봉납을 받거나, 봉건영주가 기사에게 토지를 배분하고 충성과 일정한 봉납을 받는 것과 관직매매가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관직매매가 성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을 행정부패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복자나 정복자의 후손이 국왕이 되어 정복된 영토내의 국민이나 국가를 소유하기 때문에 관직이 모두 국왕의 개인 소유물이었다. 이러한 가산국가에서는 관직을 어떻게 처분해도 정당성이 인정되었다. 이러한 시대에는 국왕이 변덕을 부려서 전혀 능력과 성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나, 아첨 잘하는 탐욕스러운 귀족을 관료로 임명하는 것보다는 돈 많은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할 수 있다. 몽테스키외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 돈을 벌면 농민도 관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관직을 농민에게 매매하는 것은 농업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검소하고 열심히 돈 버는 중산층이 관료로 임명될 가능성 때문에 벤담도 관직매매가 개혁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오늘날 기준으로 보아 극히 부패한 행정행위가 극히 개혁적 행위이던 때가 있었다.-(행정학의 새로운 이해), 정정길-중에서 (1)염결(廉潔)이란 목민관의 본무(本務)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요, 모든 덕(德)의 근본이다. (2)군자가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는 무거운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3)무릇 조정의 권귀(權貴)가 사사로이 글을 보내어 간절하게 청탁을 하더라도 이를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4)절(節)이란 한도로 제약하는 것이다. (5)가난한 친구나 곤궁한 친척은 힘을 헤아려서 구제해야 한다. ■ 풀이 및 정답 윗글은 시대에 따른 행정부패개념의 변화를 나타낸 글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때 매관매직이 성행했던 때가 있었으며 그것이 자연스럽기도 했다는 점이다. 과거 관료들이 국민 위에서 군림하던 수탈 행정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나 현대의 관리는 국민(고객)에게 봉사(service)하는 자리로 바뀌어야 한다. 즉 현대의 공직자는 최우선적으로 모범적 윤리모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청렴한 공직자의 자세를 표현한 예시 (1)이 답이 된다. ■ 보충설명 공직자의 자세(예시 (1):목민심서 율기 6조)에 대해 더 알아보자. -염결(廉潔)이란 목민관의 본무(本務)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요, 모든 덕(德)의 근본이다. 염결하지 않고서 능히 목민을 할 수 있었던 자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 염결이란 천하의 큰 장사이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염결한 것이니, 사람이 염결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무릇 지혜가 깊은 자는 염결로써 교훈을 삼고 탐욕으로써 경계를 삼지 않은 자가 없었다. 목민관이 염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을 지목하여 마을을 지날 때 더러운 욕설이 비등할 것이므로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뇌물을 주고받음에 있어서 누가 비밀을 지키지 않으랴만 한밤중에 한 일이 아침이면 드러난다. 보내는 물건이 비록 사소하다 하더라도 은정(恩情)이 이미 맺어졌으니 사사로움이 이미 오고간 것이다.(중략)청탁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염결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청렴한 소리가 사방에 이르고 아름다운 이름이 날로 빛나면 또한 인생 일세의 지극한 영광인 것이다.
  • 전재산 털어 ‘마약교정기관’ 설립

    마약 전과자가 ‘마약 의존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출소하기 전 사회적응을 돕는 교정교육기관이 설립된다. 한국마약범죄학회 전경수(53) 회장은 전 재산 10억원을 들여 ‘한국교정대학원대학교(가칭)’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교정대학은 비영리 공익 특수교육 목적으로 설립되는 100명 미만의 초미니 대학으로 ‘석방전 지도센터(Pre-release Guidance)’의 성격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1961년 시카고·뉴욕·로스앤젤레스 연방교도소에 수용된 마약 범죄자를 석방하기 3∼4개월 전 특별시설에 보내 직장에 출퇴근할 수 있도록 석방전 지도센터를 만들었다. 전 회장은 이 학교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에 유기농법 등 전문교육을 포함시키고 교육이 끝나고 나면 지방자치단체와 연계 유휴 농경지 등을 활용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 대학에는 또 마약 의존증의 극복을 지도하는 전문 교도관 양성 과정도 설치될 예정이다. 전 회장은 “재소자가 마약 의존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이 아직 국내에 한군데도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장기적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우선 우리가 그 일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儒林(308)-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儒林(308)-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명종 4년(1548년) 10월. 48세의 이퇴계는 단양을 떠났다. 퇴계가 단양군수를 사직하고 이웃한 풍기의 군수로 전근한다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백성들이 나와서 퇴계가 탄 가마를 막으며 울부짖으며 말하였다. “나으리, 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나으리, 오신 것이 어제와 같은데 벌써 가시다니요.” 단양군민에게 남긴 퇴계의 인상은 놀라운 것이었다. 불과 9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단양군민을 위해 이퇴계는 경이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퇴계가 군수로 부임할 무렵 단양은 오랜 가뭄으로 곳곳에 헐벗은 기민(飢民)들로 피폐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3년 동안 계속해서 한발이 들어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간신히 연명해 가고 있었다고 한다. 퇴계로서는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양은 예부터 남한강과 단양천을 비롯하여 곳곳에 물이 풍부한데 어째서 해마다 가뭄으로 재앙을 입는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퇴계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단양에 강이 많기는 하지만 날이 가물면 흐르는 물도 곧 말라붙어 물을 농사에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풍부한 양의 물을 농사에 이용하려면 보(洑)를 쌓아 흐르는 물을 가둬서 저수지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이다. 퇴계는 실제로 단양의 곳곳을 답사하여 마침내 탁오대 바위 옆 여울목이 가장 좁아 둑을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마을 사람들을 총동원하여 ‘복도소(復道沼)’란 저수지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퇴계가 만든 ‘복도소’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인공저수지인데, 그로부터 500여년이 지난 최근에 이르러 남한강에 충주댐을 쌓고 거대한 인공호수가 생긴 것은 퇴계가 위대한 사상가였을 뿐 아니라 실학정신까지 갖춘 선각자였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해 여름 퇴계는 ‘복도소’의 수중보(水中洑) 준공을 기념하여 큰 바위에 ‘복도별업(復道別業)’이란 친필의 휘호를 새긴다.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도를 회복한다.’는 이 문장의 뜻을 통해 퇴계는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은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 얼마든 개선될 수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퇴계가 건설하였던 수중보의 유구(遺構)는 1986년 6월 충주인공댐의 조성으로 수몰되어버리고 퇴계의 친필휘호만 따로 보존되고 있을 뿐. 따라서 퇴계가 건설한 저수지로 고질적인 한발을 막고 홍수 때 내리는 물을 저장하여 범람까지 막을 수 있는 다목적용 댐을 갖게 된 단양군민들은 퇴계와의 이별을 못내 아쉬워하며 떼 지어 나와서 가마를 향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퇴계 자신도 단양의 빼어난 절경에 심취되어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짧은 재임기간이었지만 ‘단양산수기’란 책을 남길 만큼 이곳의 산수를 사랑하였고, 또한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단양팔경’을 일일이 지정하여 스스로 이름까지 명명하지 않았던가.
  • [클릭 이슈] 꽃동네 오웅진 신부 1심선고 두달 앞두고

    [클릭 이슈] 꽃동네 오웅진 신부 1심선고 두달 앞두고

    충북 음성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59) 신부는 유죄일까, 무죄일까.2003년 8월 1일 업무상 횡령과 사기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년반이 넘도록 공방을 펼치고 있는 1심재판 선고가 두달 앞으로 다가와 있다.“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며 꽃동네를 일으켜 세운 그가 ‘신의 심판’이 아닌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 신부는 이 재판에서 ‘빈자(貧者)의 아버지’로서 명예를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초심을 잃은 성직자란 낙인만 더 찍힐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재판기록만 1만 8000쪽 오 신부는 1996년 9월부터 2002년 2월까지 동생 등 친인척에게 농지구입비와 생활비 등으로 꽃동네 자금 8억 8000만원을 지원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98년 1월부터 2003년 5월까지 근무하지 않은 수사와 수녀를 일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국고보조금 13억 4000만원을 빼돌리고 청주성모병원 영안실부지 등 꽃동네와 관련이 없는 사회사업에 12억 4000만원을 쓰는 등 모두 34억 6000만원의 꽃동네 돈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공판은 지금까지 22차례 열렸다. 재판기록이 1만 8000쪽에 이르고 증인도 100명을 넘어섰다. 공판마다 5∼6명의 증인이 나오지만 공방이 치열해 밤 늦게까지 진행될 때도 많다. 오 신부는 공판에 매번 나오고 있다. 손성현 청주지검 충주지청장은 “꽃동네에서 증거가 확실한 것조차 인정하지 않아 재판진행이 늦다.”고 말했다. ●검찰 “친인척이 땅을 사 농사를 짓고 있다” 꽃동네측은 “관리는 꽃동네에서 했다.”며 “법인이 땅을 살 수 없어 오 신부 친인척 명의로 구입했을 뿐 실제 소유자는 꽃동네”라고 말한다. 검찰은 “다른 땅은 수사·수녀 명의로 구입했지만 친인척 명의의 토지 6필지는 그들이 직접 샀고 가등기도 안 돼 있다.”고 반박했다. 꽃동네는 “친인척에게 보낸 돈은 토지매입금으로 모두 들어갔다.”고 밝혔으나 검찰은 “땅구입비와 송금액에 7000만원의 차이가 나고 이 돈은 영수증 처리도 안 돼 있다.”며 “오 신부 형의 며느리 통장으로 입금된 것도 생활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근무일지를 조사하고 관련자들의 진술을 들어보니 자격이 없고 일도 하지 않은 현도사회복지대 재학생 등을 근무자로 등록하고 국가보조금을 받아온 사실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른바 유령 근무자가 8명에서 많게는 20명까지 있었다고 한다. 꽃동네가 99년 3월 개교한 이 학교는 오 신부의 고향 충북 청원군 현도면에 있다. ●꽃동네 “영안실 부지 구입자금 주지 않았다” 꽃동네는 “재학생은 충북도에서 ‘문제될 게 없다.’고 해서 등록했다.”면서 “2001년부터는 재학생도 꽃동네와 학교를 오가면서 일을 했고,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면 시정을 요구할 문제이지 처벌할 사안은 아니다.”고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충북도는 꽃동네의 이같은 주장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주교 청주교구에 청주 성모병원 영안실 부지 구입비를 대줬다는 검찰 수사발표에 대해서도 오 신부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천지인’ 소속 이상수 변호사는 “그런 사실이 없다. 돈이 넘어간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측은 “계좌추적이 다 돼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공판이 없는 날, 오 신부는 사건 이후 줄곧 꽃동네 수도원에서 머물며 수사·수녀와 함께 기도하며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마태오 수사는 “대외활동은 일절 하지 않고 꽃동네 운영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 신부는 꽃동네에서 기도 중 꽃동네는 오 신부가 회장에서 물러난 직후인 2003년 3월 신순근 신부가 새 회장으로 취임, 운영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해 2월 설립 25년 만에 처음으로 수입과 지출내역을 공개했었다. 당시 발표한 2003년도 운영결산보고에서 꽃동네는 회원회비 100억 828만원, 후원금 3496만원, 이자수입 6억 427만원 등 모두 108억 1225만원의 수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아직 미공개 상태다. 박 수사는 “오 신부 사건과 지속돼온 경기침체로 회원이 많이 탈퇴해 회비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수용자 복지와 무관한 시설보수 등은 미루고 있다고 한다. 꽃동네는 음성 2100명을 비롯, 경기 가평과 서울에 부랑인, 정신지체자 등 4000여명이 수용된 국내 최대 복지시설이다. 이들을 돌보고 행정업무를 하는 수도자 등 종사자만 800여명에 이른다. 꽃동네는 “특정인 혼자 운영하는 시설이 아니다.”고 밝히고 있으나 꽃동네의 상징인 오 신부에 대한 재판결과가 이곳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변호사는 “잘못된 수사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오 신부에 대해 불구속 기소하면서 ‘공적과 지병을 참작했다.’고 밝혔었다. 손 지청장은 “유죄를 입증하는 데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낮·밤 길이 같은 날은 17일

    낮·밤 길이 같은 날은 17일

    춘분인 오는 20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낮의 길이가 8분가량 더 길다. 춘분을 포함한 24절기는 태양이 하늘의 어느 위치에 있느냐를 표시한 것이다. 태양은 하늘을 한바퀴 돈 뒤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겉보기 운동)을 반복한다.‘하늘의 적도’(지구의 적도를 하늘로 확대한 가상의 적도)와 ‘황도(태양이 1년간 지나는 길)는 서로 지구의 기울기만큼인 23.5도 기울어져 있는데, 춘분은 하늘의 적도와 황도가 일치하는 시기다. 따라서 춘분은 태양이 적도 위를 지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야 한다. 그러나 춘분에 밤보다 낮이 긴 이유는 낮과 밤의 길이를 재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낮과 밤은 각각 일출에서 일몰, 일몰에서 일출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보통 일출·일몰은 태양의 윗부분이 수평선 또는 지평선에 닿는 시각을 기준으로 삼지만, 춘분은 태양의 중심과 일치하는 시각을 기준으로 한다. 결국 태양의 반지름만큼 오차가 생기게 되며, 실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은 춘분 3∼4일 전이다. 추분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또 지구가 받아들이는 태양 에너지만을 고려하면 춘분과 추분의 기온은 비슷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의 평균 기온은 춘분 6∼7도, 추분 19∼20도 등으로 10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분은 추운 겨울을 난 뒤 기온이 차츰 올라가면서 따스하게 느껴지는 반면, 추분은 무더운 여름을 지난 터라 서늘하게 느껴진다. 이는 사람의 체질 탓이라 할 수 있다. 춘분을 지난 직후는 1년중 기온 상승 폭이 가장 큰 시기이다. 이 때문에 농가에서는 춘분을 농경일로 삼아 1년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초경, 즉 초벌 논밭갈이에 나선다. 그러나 춘분 무렵에는 ‘화투연바람’ 또는 ‘꽃샘바람’이라 불리는 매섭고 차가운 바람이 많이 분다.‘2월 바람에 큰 독이 깨진다.’는 등의 속담도 여기서 비롯됐다. 때문에 농부와 달리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잠시 중단하는 시기다. 우리 조상들은 24절기중 첫번째인 입춘을 봄의 시작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은 입춘과 대동강 물이 녹는다는 우수,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을 거쳐 밤보다 낮이 길어지는 춘분을 지나야 비로소 봄이 됐다고 여긴다.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봄이 문턱에 다다른 셈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김영만칼럼] 고령사회, 歸農과 아버지의 위엄

    [김영만칼럼] 고령사회, 歸農과 아버지의 위엄

    나라가 빨리 늙어 야단이다. 대통령이 주관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구성이 추진되고, 충남 서천군은 발 빠르게 ‘노인공동농장’계획을 발표했다. 노인 150가구를 농장에 입주시켜 하루 4시간 근로에, 월 20만원을 주겠다 한다. 요양원·찜질방·병원을 둬 노인·농촌 문제를 같이 푸는 구상이다. 실업이나 노인문제를 농촌에서 풀려는 시도는 전에도 더러 있었다. 외환위기 때 일었던 실업자들의 귀농바람이 많은 예중의 하나다. 귀농바람은 그러나, 이들이 얼마뒤 다시 탈농촌해 농업은 여전히 수익모델이 아님을 확인하는데 그쳤다.1990년 삼양식품 대관령목장의 노인목부 실패사례도 동경속의 농촌과 실제 생활이 다름을 보여줬다. 당시 50∼65세 부부 10쌍의 공모에 대기업중역·고위공직자·교사부부 등 500쌍이 응모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주택과 식사, 월 70만원의 임금을 주는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한두달새 모두 목장을 떠났다 한다. 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의 이정표들은 우울하다.21년 뒤에는 경제인구 한명에 노인 한명씩이 딸린다. 가장 우울한 일은 ‘30∼40년을 은퇴자로 살아야 한다.’는 예고다. 이러니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60세 이후를 ‘두번째 인생’으로 부른다. 여류 심리학자 게일 쉬히는 남자의 제 1직장 은퇴와 함께 오는 50대를 ‘갱년기’로 분류, 제 2직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세대 이상을 은퇴자로만 산다면,‘인류진화사상 가장 심오한 변화’라는 장수(長壽)도 도시에선 축복 아닌 재앙이다. 도시는 은퇴자가 아닌 현역의 공간이다. 공원과 노인정, 무임승차권에서 늙은 아버지들이 존엄할 방법을 찾기는 난해하다.‘경제가 고도화될수록 일자리는 줄어들 것’(제러미 리프킨)이므로 도시에 살고자 해도 답이 안 나온다. 이런 때 문민정부의 농촌개발계획인 ‘돌아오는 농촌’을 생각한다. 도시의 돈과 사람을 농촌으로 U턴시켜 문제를 풀자는 것이다.10여년 전엔 생뚱맞았지만, 여러 통계는 이 컨셉트가 두번째 인생 문제를 풀 효과적인 대책중의 하나임을 역설한다. 현재 농촌의 농업경영주중 23%는 일흔이 넘었다.60대는 36.2%. 농산물의 절반도 환갑을 넘은 이들이 만들었다. 한세대 앞서 고령화된 농촌의 통계속에 고령사회 해결을 위한 역설(逆說)의 키워드가 있는 셈이다. 이 통계의 묘미는 농촌이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경영주로 활동하는 유일공간이란 점이다. 팔순에도 농사 짓고, 오래 건강하게 사는 보너스도 있다. 한부부가 네댓 마지기로 생활하며, 약간의 노후자금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수백만명을 수용할 휴경지도 농부를 기다리고 있다. 또 있다. 최근 경남의 한 마을에서는 일흔한살 동갑끼리 이장선거에서 경합했다. 낙선자는 후년의 선거를 위해 와신상담하고 있다. 농촌에서 일반화된 이런 현상이 고령화가 낳은 그림자만은 아니다. 노인세대가 생산자로서만 아니라, 공동체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현장이다.65세이상을 노인으로 본 것은 1891년 독일 비스마르크의 ‘노령연금법’이다. 평균수명이 지금의 절반도 안 되던 때다. 인간백세시대의 오늘에 ‘일흔한살 이장’은 인간진화 사례로 축복할 일이다. 1960년대 후반이후 한국은 20년 넘게 대규모 이농의 시대였다. 농촌청년들이 공장으로 가고, 도시로 유학을 간 농촌 아이들도 그곳에 머물렀다. 어느날, 조기퇴출을 말하는 사오정세대가 된 45세어름에서 60 초반까지가 바로 이들이다. 농촌경험을 가진 이들부터 귀향하면 어떤가. 생활인으로, 또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지키고 미래세대의 짐을 더는 방책이 거기 있음이다. 서천군은 대관령의 실패도 눈여겨봐야 한다. 성공하는 귀농 만들기는 사실 서천군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몫이지 않을까 싶다. 논설실장 sangchon@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0)전국의 길지 (상)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0)전국의 길지 (상)

    ●정북창의 십승지론 지난 호를 읽은 정감록 산책의 독자들이 인터넷상에서 한바탕 격론을 벌였다. 어느 독자는 전라도의 십승지는 지리산 하나가 아닐 거라며 항의성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해 누구는 전라도에 길지가 여럿인 것은 사실이지만 십승지는 지리산 하나뿐이라고 못 박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감록에는 전국 각지에 산재한 수십 개의 길지가 일일이 언급돼 있고, 전라도에도 길지가 물론 여러 군데 있다. 그런데 십승지란 최상의 조건을 갖춘 열 곳의 길지를 말하는 것이며 그 대부분은 경상도에 위치한다. 충청, 강원, 전라도에도 몇 개의 십승지가 있지만 전라도 몫은 지리산 하나다. 어떤 독자는 난리가 일어날 때 십승지로 피난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는 정감록에 딸린 ‘북창비결’을 언급해가며 십승지 무용론을 폈다. 북창비결은 흔히 북창 정렴(1506∼1549)의 저술로 본다. 유·불·선에 두루 능통했다고 하는 정렴이 과연 북창비결의 저자인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십승지에 관한 그의 주장은 아래와 같았다. “십승지지(十勝之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쓸데가 있기도 하고 쓸데가 없기도 하다.” 설사 십승지에 들어가더라도 효과가 반드시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북창은 “내 자손들은 산에 올라가지 말고 물에 들어가지 말 지어다.”라고 했다. 그 말대로라면 십승지를 총체적으로 부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한다. 하지만 북창은 “양쪽으로 끊어진 산맥, 물이 깊은 곳 섬에 숨어라.”고도 했다. 요컨대 북창비결은 길지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았으나 정감록의 십승지론을 근원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궁기’가 있다 열째 십승지는 태백산(1567m)이다.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태백시 경계에 우뚝 솟은 태백산. 예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정상에 우뚝한 영산이다. 태백산은 소백산과 더불어 십승지의 자궁 노릇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남사고 역시 내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정감록을 보면 이심은 이렇게 말했지. 곡식 종자는 삼풍(三豊)에서 구하고 인종(人種)은 양백(兩白)에서 구한단 거야. 양백이란 태백산과 소백산이지.‘남격암’에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랬지. 여러 산들 중에서 소백산(小白山)이 으뜸이라고 말이야. 장차 금강산 서쪽, 오대산 북쪽은 12년간 도둑의 소굴이 되고,9년간의 수해와 12년간의 병화가 있다고 보았을 때 오대산 남쪽에서 길지를 찾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남격암’에서도 북쪽의 땅들은 좋지 못하다 했고, 정북창도 충청도와 강원도는 살 수가 없고, 경기도 동쪽에서는 어육(魚肉)이 난다고 말했거든. 바로 그런 위기의 시절에 태백산과 소백산이 사람을 살린단 말씀이야.‘경주이선생가장결’을 보더라도 비슷한 말이 있고,‘토정가장결’에도 역시 똑같이 돼 있어. 달리 말해 정진인(鄭眞人)의 백성은 소백산과 태백산 밑에서 나온단 예언이야. 두 말할 나위 없이 십승지(十勝地) 중에서도 특히 2산의 기운을 직접 받는 곳이 단연 으뜸이지. 신기하게도 ‘택리지’에도 비슷한 설명이 나와.2산은 고래로 3재(수재, 화재 및 풍재)가 없기로 이름나서 국가에서 사고(史庫)를 두었다고 했거든. 태·소백산은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살기라곤 전혀 없거든. 난 특히 소백산을 사모했지. 소백산 아래 말을 내려 절을 올리며 이렇게 인사를 드렸었지.‘이 산은 정녕 사람을 살리는 산이옵니다(此活人山也).’ 글 가운데서도 난 태·소백산이 피난에 제일가는 땅이라고 밝혀두었어.‘정감록’을 읽어보면 태·소백 사이에 예전에 행세하던 양반들이 복고한다, 후세 사람으로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면 2산 사이에 자손을 숨겨야 한다고 했는데 모두 내 말에서 비롯된 걸 거야.” 남사고의 편지를 읽고 헤아려보니 ‘정감록’이란 비결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태백산과 소백산에 얽힌 신화와 전설, 남사고를 비롯한 예언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점차 수렴되어 정감록이란 예언서를 일궈낸 게 틀림없다. 얼핏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남사고의 편지글은 쉴 새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간다. “정감은 이런 말을 했어. 이 난세를 당하여 궁궁(弓弓)이 가장 이롭도다. 이 무슨 뜻인지 짐작하시겠나? ‘경주이선생’에 보면 그 답이 있네. 지도(地道)를 얻어 병진(丙辰)에 금강산(金剛山)에서부터 기운을 바라보고 근원을 찾아 헤매다 어느 새 삼척부(三陟府)에 도착한다고 했어. 거기서 신(辛)·술(戌)의 방위를 따라 오십천우이(五十川牛耳) 사이를 향했더니 태백산(太白山)이란 거야. 태백산에서 백여 리 바깥을 바라보면 깊은 숲 속에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크고 작은 궁기(弓基)란 걸세.‘토정가장결’에도 역시 같은 말이 되풀이된다네. 이 어찌 실없는 말이겠는가? 모름지기 인간 세상에서 몸을 피하는 데는 산도 이롭지 않고 물도 이롭지 않다고 정감록은 말하네. 오로지 양궁(兩弓), 궁궁 또는 활활이 가장 좋다는 거야. 바로 그 궁기가 태백산 아래 백여 리 지점에 있다 하네. 이 아니 좋을손가?” ●강원도의 길지 최고의 길지인 궁기는 태백산에 가까운 곳에 있다! ‘남격암’은 태백산 밑 강원도 영월 정동 방향의 상류를 가리켜 어지러운 일이 생겼을 때 종적을 숨길 만하다고 했다. 그 곳이 혹시 궁기란 말인가? 이상한 일이지만 영월의 정동 상류는 수염 없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면 소용없다고 했다. 방향이 정동인데다 상류라면 양기가 극히 성한 곳이다. 남성에게 적합한 길지란 말인데 ‘수염 없는 사람’이란 승려, 환관, 아이, 또는 여자라 부적절하단 말이다. 한편 ‘피장처’에선 정선을 길지로 지목하기도 한다. 정선은 높은 산에 파묻힌 모습이 무릉도원과도 같다고 했다. 한편 정선은 지형이 험준해 방어에 유리한 곳이라고도 한다. 남자 한 사람이 관문을 충분히 지킬 만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감록이 말하는 길지는 피난지다. 그러나 정선의 경우는 천연의 요새란 점에서 이채롭다. ‘남격암’엔 백두대간의 본류에 해당하는 강원도 산간의 길지가 두어 개 더 있다. 명산 오대산(五臺山,1563m)과 상원산(上元山)이 그렇다. 상원산은 비교적 덜 유명한데, 정선군 북면과 북평면에 걸쳐 있으며 적설량이 무척 많은 곳이다. 금강산에서 태백산을 거쳐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또 몇 군데 길지가 있다.‘남격암’은 “평평(平平) 울울(蔚蔚)”이 가장 길하다고 했다. 북평, 평해, 울진, 울산 등을 가리킨 것 같다.‘피장처’에도 강릉, 삼척, 평해, 울진이 숨기에 좋다 한다. 이밖에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보미산(補彌山)과 유량산(有良山)도 길지로 거론됐다. 이쯤에서 다시 남사고의 편지를 계속 읽어 보자.“과연 ‘두사총비결’에도 태백산의 지맥들이 길지로 언급돼 있네. 홍천군에 가면 약수산이 있지. 삼봉약수로 꽤 유명한 곳이야. 양구군 동면의 대아산은 또 어떻고? ‘피장처’에선 낭천읍에서 동북쪽으로 가면 대미촌과 소미촌이 있다고 했네. 깊고 궁벽한 곳인데 경치가 아주 그만일세. 그 부근에서 오시동, 칠천동, 흑어연, 청하산을 찾아도 좋네. 숨어 살 만한 곳이지. 그밖에 양평과 철원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에 또 하나의 길지가 있어.‘피장처’에선 어영창 동쪽 기슭에서 물길 따라 30리를 들어가면 된다고 했어. 대개 두 물이 모여드는 곳에 길지가 많지.‘화악노정기’에선 낭천에 있는 광현에서 남쪽으로 물길 따라 15리를 내려가면 산이 머리를 돌이키는 곳이 있는데 손씨 6형제가 피난할 곳이라고도 했어. 이렇듯 오대산 쪽에서 서울을 향해 서쪽으로 나오다가 어느덧 춘천에 이르게 되지. 춘천에서도 기린곡은 가장 깊고 궁벽해 난을 피할 만 하네. 춘천과 낭천이 만나는 곳에 불곡이란 곳도 있어. 역시 한 세상의 풍파를 피하기에 최고라네. ●동굴로 연결된 신선세계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신선세계도 있다는 군.‘북두류노정기(北頭流路程記)’에 자세히 나와 있지. 강원도 평강읍(平康邑)으로 흘러드는 구곡천(九谷川)이 있지 않나. 물길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면 청화산(靑華山)이 나오지. 거기서 태산 골짜기 40리를 휘감아 들어가게. 그러면 눈앞에 천장폭(千丈瀑)이 버티고 있네. 폭포수에 뛰어들어 머리로 물길을 뒤집어쓰고 두어 걸음만 들어가 보게. 한 석굴(石窟)이 나올 걸세. 그 석굴은 길이가 10리라네. 이 석굴을 걸어 지나면 드디어 명랑한 한 세계가 펼쳐지네. 동네 입구엔 5장이나 되는 높은 비석이 위용을 뽐내고 있지. 신선계는 상대(上臺)와 중대(中臺) 그리고 하대(下臺)로 나뉘는데 170여 호가 여기 산다네. 모두 6개 마을이야. 예부터 조선의 숱한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이 동경해온 이상세계라네. 한 때 나도 그 곳을 찾아 나섰으나 아쉽게도 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네. ‘피장처’에도 흡사한 이야기가 있어. 들어보겠나? 소양강 물길을 거슬러 얼마를 올라가면 한줄기 물길이 골짜기 입구에 있는 어느 바위 벽 사이에서 용솟음쳐 쏟아지는 곳이 있네. 재빨리 나무 사다리를 구해 바위틈으로 기어들어가게.20리쯤 바위 밑을 꾸불꾸불 파고들면 마침내 눈앞이 트이고 한 동리가 나온대. 이 마을엔 생선과 소금이 귀해 속세의 사람들은 살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긴 해. 태백산 아래 있다는 궁기나 물밑 동굴로 이어지는 신선세상은 좀체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 아주 난점이야. 정말 그런 이상세계가 있기나 한지, 솔직히 말해 나도 모르겠어. 오죽이나 세상살이에 지쳤으면 백성들은 그런 위안거리를 만들어냈을까. 생각할수록 백성들이 가엾기도 하고 영특하게도 생각되네.” ●영남의 길지들 “소백산에서 힘차게 뻗어 내린 몇 개의 산줄기는 다시 영남에 수많은 길지를 만들어 놓았다네.‘남격암’은 우선 조령(鳥嶺,548m)부터 말하고 있네. 조령이라면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가 아니겠나. 새재라고도 하고 문경새재라고도 부르지. 요새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영남이라는 이름도 실은 조령과 큰 관련이 있네. 소백산의 아들에 해당하는 죽령(竹嶺,689m)과 조령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영남 아닌가. 영남은 상고 적에 신라 1천년의 중심이었지. 그밖에 ‘남격암’은 영천을 길지라 말했는데 일리가 있어. 영천은 한민족의 영산인 소백산에 가까워. 북쪽엔 보현산(1124m), 서쪽엔 팔공산(1193m), 동쪽의 운주산(806m)이 에워싸며 높이 솟아 있고, 남쪽엔 금박산(432m), 구룡산(675m), 사룡산(685m) 등이 버텨 있어 포근히 감싸인 분지라, 과연 영천은 명당이로고. ‘남격암’은 수산(首山)을 길지라 말하기도 하네. 영양군에 있는 수산 말일세. 있잖은가? 저 유명한 17세기 조선 여성계의 거인 안동장씨부인의 남편 이시명도 바로 그 수산(首山)에 숨어 살았다고 하지 않나. 이 수산(首山)을 요샌 수비산(首比山)이라 부른다며? 선비가 숨어 살며 힘을 기를 만한 곳이 또 있네. 역시 ‘남격암’에 적혀 있지만 금오산(金烏山)이 아주 그만일세. 영남 팔경의 하나인 이 산 아래 유명한 채미정이 있다네. 이 정자야 물론 영조 때 후학들이 건립했다고 하지만 본디는 야은 길재 선생이 숨어 살며 제자들을 길러낸 곳이지. 금오산이 있는 선산군은 인재의 보고라네. 조선 인재의 절반이 영남에서 나온다 하고 다시 그 절반이 선산에서 출생한다 하지 않던가. 아직도 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 역시 금오산 기슭에 서 있다네. 말을 하면 끝이 없네. 남쪽으로 뚝 떨어져 오늘날 경상남도 산청군에도 길지가 있어. 조선시대 단성현 북면과 동양면 등은 경치가 절승하고 산골이면서도 남강을 거슬러 생선과 소금이 모여드는 곳이라 사람이 살 만한 아름다운 곳이라네.” ●충청도의 길지 남사고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한국의 길지는 태백산 또는 소백산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지의 절반 이상은 2산에서 사방 200리 이내에 집중돼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경상도 단성이나 강원도 춘천처럼 2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도 길지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들은 멀리 2산에 연원을 두되 각기 제 나름으로 명산의 칭호를 누릴 만큼 위엄을 충분히 갖춘 경우다. 남사고는 그 점을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그럼, 그러하고 말고! 길지를 결정하는 조건이 바로 그런 것이네. 우선 충주의 월악산을 보게나. 이 산은 ‘피장처’에도 기록된 곳이지만 소백산의 친자식이나 다름없네. 제법 가까이에 있단 말씀이야. 충청북도 충주와 제천·단양에 걸쳐 있는 월악산은 신령스럽기 한이 없다네. 임진왜란 때 왜병이 가까이 오자 번개가 일고 천둥이 쳤어. 그 바람에 산 아래 송재, 덕산 등 마을엔 왜병이 전혀 침입하질 못했어. 이렇게 땅의 기운이란 대단한 걸세. 속리산(1058m)도 꽤 영험하지. 이 산은 소백산에서 서남쪽으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미 그 자체가 명산이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괴산군(槐山郡)과 경상북도 상주군(尙州市)의 경계에 있는 이 산을 광명산이라고도 하고 소금강산이라고도 하지 않나.‘남격암’에선 뭐라 했던가? 보은(報恩)의 속리산 아래 증항(甑項) 부근은 난리를 당할 때 몸을 숨기면 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을 땅이라고 했어. 하지만 대대로 보존할 땅은 아니라고 했거든. 왜냐? 일조량이 적어 농사가 어렵기 때문이야. 그런가 하면 ‘남격암’은 속리산과 더불어 계룡산을 손꼽았지. 계룡산이 명산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알려져 있고 백소장이 이미 설명한 바라 나로선 말을 아끼고 싶네. 속리산이나 계룡산은 말이지. 이미 태백산과 소백산에서 참 멀리 떨어진 곳이야. 거기서 서남쪽으로 계속 치닫다 보면 산세가 매우 엷어져 지맥이 끊어지다 시피하게 돼. 약해진 용맥은 충청도 바닷가에 이르러 다시 부활하네.‘남격암’이 일컬은 내포(內浦)의 비인(庇仁)과 남포(藍浦)가 그런 곳이야. 내포는 들이 넓고 산이 야트막해 정다운데다 바다가 가까워 물산이 풍부해. 진정 살기 좋은 곳일세. 이러한 길지는 자손만대 영구히 머물 만한 참으로 귀한 땅이야. 속리산과는 사뭇 다른 곳이라네.” 남사고의 안내를 받아 ‘정감록’의 길지를 하나씩 헤아려 보니 곳곳에 명당이요, 명당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이곳 아니면 절대 안 될 곳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호남과 경기지방의 길지 순례는 다음 호에서 계속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열린세상] 성(性)과 자본/김민숙 소설가

    며칠전 밤 열한시가 훌쩍 넘은 시간 갑자기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한 마을에 살며 친하게 지내는 젊은 주부다. 잔뜩 성장을 하고 긴장한 얼굴로 들이닥친 그녀는 남편이 지금 집으로 오고 있는데, 만나면 싸우게 될 거라서 피신왔단다. 남편이 요즘 거의 이틀 걸러 외박인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남편과 같이 술 마시러 다니는 친척 조카에게 남편이 데리러 오라고 전화했다는 핑계로 꼬드겨서 남편이 잘 다니는 읍내 술집을 갔다왔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지금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고 그곳으로 간다고 했더니 남편이 놀라서 알리바이를 세우느라 읍내에 사는 다른 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다. 마주쳐서 큰소리내서 다 자란 딸아이들이 충격 받는 게 싫었다면서 그녀는 비교적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읍내 술집을 잠깐 다녀온 폭 치고는 그새 그녀는 벌써 많은 정보를 얻어왔다. 읍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 전화로 여자들을 불러주는데 그 여자들이 술시중은 물론 나중에 외박까지 나간다는 것이다. 그 여자들은 읍내에 있는 아파트에 단체로 방을 얻어 기거하며 술집 접대는 시간당 삼만원이고 외박을 나가면 삼십만원이라는 액수까지 알아왔다. 심지어는 남편이 잘 가는 모텔에다 동네 다른 남자들의 단골여자들까지 파악하고 돌아왔다. 그 남자들 대다수가 가정을 내팽개치지 않는 한 한두번의 성매매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둔 어머니인 탓인지 그녀도 쉽게 이혼 같은 것은 입에 올리지 않았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서인지 결혼생활 16년이면 싫증날 때도 되었지요, 하고 침착하게 말하다가 그렇지만 싫증난 건 나도 마찬가지예요라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음성적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더니 이런 작은 시골 읍내에까지 벌써 파고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인 내 반응이었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성매매가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의 수입에 비해 술값이나 성매매에 지불하는 액수가 너무 엄청나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들판이 모두 헐벗은 상태지만 봄이 되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시금치며 상추를 팔아봤자 한 상자당 6000원에서 만원 안팎이었는데, 그것도 마을 전체가 모아서 내놓아도 한 트럭이 다 안 차는 판인데 무슨 수로 읍내 술집에서 양주를 마시고 성을 산다는 것일까. 물론 여기 산다고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다른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돈을 지불할 능력이 된다는 게 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액수를 잘못 알지 않았느냐는 나의 의문에 성에 빠지면 남자들은 돈 아까운 거 모른다며 한참 모자라는 나를 답답한 듯 구박하고 밤이 이슥해서야 남편이 지금쯤 잠들었을 거라며 돌아갔다. 아깝고 안 아깝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지불할 능력이 되느냐는 나의 의문에 대해 그녀는 끝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이들의 경제 능력이 훨씬 더 상위에 속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웃남자의 성매매보다 그가 지불했을 액수에 더 놀란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자본의 논리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서 모든 것을 액수로만 판단하게 된 걸까. 아니면 밤낮없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무차별 공격하는 성매매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어서 성매매에 대해 혼란이 생긴 것일까. 연예인의 그 흔한 누드사진집은 성매매인가, 연예활동인가. 그걸 보는 사람들은 성매매 구매자인가 아닌가. 때로는 성이 가장 중요한 자본의 기능을 하는 게 아닌가. 역사이래 언제나 성매매가 있어왔다지만 지금처럼 초등학생까지 나선 것은 결국 우리가 지난 오십년 동안 무분별하게 매달려온 천민 자본주의의 결과가 아닐까. 돈이 최고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된다, 이런 돈에 대한 신앙이 아이 어른없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과 품격까지 내던져버리게 만든 게 아닐까. 특별법보다 더 시급한 것은 우리 모두가 인간됨이라 믿는 그 출발선으로 되돌아가는 사회 모두의 자각이 아닐까. 김민숙 소설가
  • [이젠 사람입국이다] 17. 유한킴벌리

    [이젠 사람입국이다] 17. 유한킴벌리

    ‘일은 적게 시키면서 돈은 더 주는 회사, 교육을 강조하며 사회공헌에 앞장서는 기업’ 21세기 가장 이상적인 기업 모델로 자리잡은 유한킴벌리의 이야기다. 지식근로자 양성, 일자리 나누기, 인간 존중 등의 철학을 바탕으로 사람에 대한 투자가 잇따르고, 결과는 매출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계속된다. 그래서 기업들에는 벤치마킹의 대상이고, 일반인들에게는 다니고 싶은 회사로 주목받는다. ●훌륭한 CEO(최고경영자)가 세상을 바꾼다 유한킴벌리가 노사 상생의 회사로 거듭난 데에는 문국현 사장의 공이 크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교육과정을 도입해 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바꾼 주인공이다. 1974년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10년차이던 해에 당시 직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회사에 안식년을 요구해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사람에 투자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선진기업의 인간존중 경영을 배워왔다. 1993년 개설된 제3공장인 대전공장에 대해 당시 3조3교대(주 52시간)로 운영되던 1,2공장과 달리 4조3교대(주 42시간)를 적용토록 했다. 담당 부사장이라 가능했지만 처음엔 반발도 있었다. 봉급이 10이라면 2정도가 특근에서 나오는 부분인데, 한 조가 더 늘어나면 특근도 줄어들 것이란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체 봉급이 눈에 띄게 줄지 않은데다 휴식과 교육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직원들로부터 오히려 좋은 반응을 얻었다.1995년 CEO가 된 뒤 1·2공장에도 4조3교대 근무체제를 도입하려 했지만 특근 수당 감소를 우려한 노조의 반발로 무산됐다. 1996년 경기가 나빠지면서 실업이 심화되고 공장이 30∼40%씩 가동되지 않는 등 인력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위기는 기회가 됐다. 1997년 공장가동률은 50%대까지 떨어졌고 정리해고에 부담을 느낀 노조는 계속되어온 그의 설득과 함께 3조를 4조로 늘리자는 제안을 수락했다. 한발 나아가 노조는 4조2교대를 제안했다.4조3교대는 8시간씩 4개조가 돌아가면서 일하는 것이지만 4조2교대는 2개조가 12시간씩 밤낮으로 일해 4일 일하고 4일 쉬는 체제다. 4조3교대나 4조2교대 모두 근무 시간은 같은 주 42시간이다. 본사 등의 자문을 받아 1998년 말 4조2교대를 1공장의 한 작업장에서 시행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1999년 말 이 제도는 다른 공장에서도 전면 시행하게 됐다. ●일은 적게, 매출은 많이, 월급도 올라 3조에서 4조로 확대되면서 직원입장에선 일은 적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월급은 줄지 않았다. 공장 근로자들이지만 사무직처럼 경력에 따라 직급을 붙여 직능수당이란 명목을 기본급에 추가했다. 하루 12시간씩 4일 일하고 다시 4일 쉬는 4조2교대라 야근조로 편성되거나 공휴일에 일하는 부분은 야간·휴일 수당을 줬다. 쉬는 4일 중 회사에 나와 교육을 받는 하루는 근무한 것으로 쳤다. 이런 저런 명목으로 수당이 붙어 특근이 줄어도 수입은 눈에 띄게 줄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3조가 4조가 되어 인원이 늘었으니 33%의 고용증대 효과가 생겼다. 이는 회사가 그만큼 인건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노조가 이 제도를 반대한 것도 회사가 인건비 부담을 계속 떠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인건비 부담은 다른 데서 충분히 해결되고도 남았다. 경기가 풀리면서 1999년 공장이 정상 가동되기 시작했다. 일수로 따지면 4조3교대나 4조4교대로 인력을 운영하면 연 350일 공장을 가동할 수 있다.3조3교대는 연 260일 가동만 가능하다. 종전엔 1시간에 10개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20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물건이 안 팔려 재고가 쌓이면 의미가 없다. 물량 초과 문제는 휴식과 교육으로 해결했다. 과로가 없으니 제품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불량률이 자연히 감소했다. 유아용품의 경우 미국 공장의 불량률은 16%에 달하지만 유한킴벌리 대전공장에서는 3%에 불과했다. 이는 한 때 18%까지 추락했던 유한킴벌리의 시장점유율이 60%가 넘도록 하는 촉매가 됐다. 휴식과 교육이 품질 향상과 매출 증대로 이어진 것이다. ●유한킴벌리 따라하기 확산 이 회사 직원수는 4조2교대를 실시하기 전인 1997년 1400명에서 지난해까지 1700명으로 늘어났다.1인당 근무 시간이 줄어 직원을 더 많이 고용하게 됐지만 매출이 올라 수익도 커졌다. 직원들에게는 일 대신 연 300시간(생산·기능직)에 달하는 교육 혜택도 주어졌다. 회사도 순이익이 1995년 105억원에서 2004년 904억원으로 10년새 8.7배나 늘어나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현재 국내 18개 회사가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유한킴벌리 모델을 따라잡고 있다. 유한킴벌리 사례가 일자리 창출 모델로 화제를 일으키면서 지난해부터 정부 사업으로도 추진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산하 뉴패러다임센터를 개설해 유한킴벌리 모델을 다른 기업에도 확산토록 한 것이다. 기업이 뉴패러다임센터에 의뢰하면 근무환경 개선 및 평생학습체계 구축 등에 관한 무료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문 사장은 “장시간 일한다고 경쟁력이 유지되고 앞서 나가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면서 “초과근로를 해소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근로자들은 여유시간에 학습을 통해 새로운 역량을 키워 생산성 향상과 그에 따른 수익증대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유한킴벌리는 어떤 회사 1970년 유한양행과 미국의 킴벌리클라크가 합작해 만들었다. 군포, 김천, 대전 등 3곳에 공장이 있다. 아기 기저귀, 생리대, 화장지 등 생활위생용품을 만든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감원 없이 지나고도 그 이후 오히려 고속성장을 이뤘다.1984년부터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캠페인을 펼치며 2003년까지 총 47억원이 넘는 숲 가꾸기 기금을 조성했다. 유한킴벌리 제품은 95%는 종이를 재활용하고, 단 5%만 외국에서 펄프를 들여와 만든다. ■유한킴벌리의 교육과정 유한킴벌리가 실시하는 연 300시간의 교육은 60%는 직무,40%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중심 철학은 지식근로자 양성.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새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주영 인사부 교육담당자는 “교육 프로그램은 고졸자에도 대졸자의 교양수준을 갖도록 하고, 나아가 창의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직무교육은 기계 사용·보존·유지에 관한 것이거나 안전 관련이다. 교양은 영어회화, 영화·음악감상, 전시회 관람, 시사저널 읽고 토론하기, 문화 알기, 금연 프로그램, 경제 일반, 봉사 활동, 인터넷 활용법, 이메일, 워드, 엑셀 등 컴퓨터 일반, 리더십 혁신, 독서 클럽 등이다. 직원 1인당 받는 교육은 연 평균 300시간. 필수는 180시간이다. 하루 12시간씩 4일 일하고 4일 쉬는 만큼 첫 번째 돌아오는 쉬는 4일 중 하루의 8시간 교육은 필수다. 두 번째 돌아오는 쉬는 4일 중 하루 받는 교육은 선택.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들이 선택 교육에도 많이 참여해 평균 한달간 4일(32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참여율은 80%를 넘는다. 참여율이 높은 것은 그에 따른 수당과도 상관이 있지만 교육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자신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안 나갈 수 없게 된다고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매년 10월 말이면 이듬해의 교육 계획을 세우는 직원들이 특정 과목을 개설해달라고 요구도 한다. 세금 등 경제 교육은 직원들의 제안으로 생겼다. 직원 교육이 매출로 이어지는 등 회사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게 입증되면서 교육시간도 늘어났다.1998년 연 54시간에서 점차 늘어 2004년 300시간이 됐다. 대학생들의 한 학기 수업 시간과 같은 양이다. 사내 직원들이 전문 강사로도 활용된다. 직원을 선생으로 육성하는 사내 교수제가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공장에선 노하우란 특정인들이 독점하는 것이지만 유한킴벌리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기계가 멈췄을 때 직원들이 기계를 정비하는 모습은 유한킴벌리에서는 매우 흔한 광경이다. 김주영 교육담당은 “교육을 거쳐 회사가 원하는 수준의 직원으로 키우려면 7년이 걸린다.”면서 “교육을 받으면 육체노동자에서 지식노동자로 거듭나 스스로 업무를 개선하고 문제를 해결해 기업의 생산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쉬는 4일 중 하루를 교육받고 남는 3일은 무엇에 쓸까. 쉬는 날이 많아졌지만 노는 사람은 없다. 헬스클럽을 다니며 건강을 챙기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공인중개사·노무사 등 시험이나 대학편입 준비, 농사일, 봉사활동 등 생활의 여유를 즐기며 자기개발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주말화제] 서천에 첫 ‘노인촌’

    [주말화제] 서천에 첫 ‘노인촌’

    앞으로 노인이 되면 충남 서천으로 이사가야 할 것 같다. 노인들이 한마을에 살면서 공동농장에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키브츠형’ 노인복지타운이 생기기 때문이다. 서천군은 2007년까지 종천면 종천리 3만 4000평에 노인종합복지타운을 조성키로 하고 11일 착공했다. 이 사업에는 170억원이 들어간다. 타운에는 150가구의 노인전용주택이 들어선다.65세 이상 노인이 대상이다. 부부가 함께 입주할 수 있다. 주택규모는 11·15·17평형 등 3가지로 보증금 1000만∼1500만원을 내고 임대해 입주할 수 있다. 입주 노인들은 1만 4000평의 공동농장에서 임금을 받고 일한다. 임금은 하루 4시간 정도 일하고 월 20만원 수준이다. 생산성이 좋으면 성과급도 지급된다. 집과 농장의 소유권은 서천군이 갖게 된다. 농작물은 약초류로 1992년 서천군과 자매결연을 체결한 경희대 한방병원에서 재배 기술을 전수하고 약초를 사주기로 했다. ●하루 4시간 일하고 月 20만원 임금 이 마을에는 입주 노인의 건강을 위해 노인전문요양병원과 찜질방 등이 지어진다. 미니 골프장도 만들어져 틈틈이 운동을 통해 건강을 다질 수 있다. 키브츠는 주민들이 함께 생산과 의료, 문화생활을 공유하고 용돈을 받아 쓰는 이스라엘의 집단생활체제로 모샤브와 달리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다. 서천군 강신화 노인복지계장은 “국내에서 이와 같이 조성된 대규모 선진복지타운은 없다.”며 “2008년이면 입주가 가능한데 노인들이 일도 하고 마음이 통하는 이웃 노인들과 얘기를 나누며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어 상당한 인기를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천군은 또 농업기반공사와 함께 바로 옆 30만평에 ‘시니어 콤플렉스’라는 노인복지단지도 만들 계획이다. 노인타운과 같이 2007년 완공되는 콤플렉스는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이정재 교수가 제시한 미래형 복지모델이다. ●전문요양병원·찜질방등 완비 이 단지는 은퇴한 60세 이상의 도시 노인 200명이 대상이다. 기반공사에서 주택단지를 조성, 분양하게 된다. 주택규모는 17·25·35평형.1인당 1억∼2억원이면 분양받을 수 있다. 쌀농사를 지을 수도 있지만 군에서는 ‘한산모시’로 유명한 지역 특성을 감안해 모시풀 재배를 권장할 생각이다. 서천군은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1.3%로 충남에서 청양군 다음으로 높다. 전국적으로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돼 이들 마을은 노인복지시설의 모범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천은 서울보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해 노인들이 살기가 좋다.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서천보다 약간 북쪽에 있는 보령관측소의 연평균 1월 온도는 영하 1.2도로 서울의 영하 2.6도보다 포근하다.7월에는 평균 24.5도로 서울 24.9도보다 낮고 해양성 기후여서 서늘한 느낌이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오면 2시간, 장항선 열차를 타면 3시간이 걸린다. 서천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주말농장 싱싱한 채소 가꾸며 도심 스트레스 훌훌

    주말농장 싱싱한 채소 가꾸며 도심 스트레스 훌훌

    “주말농장 신청하세요.” 경기도내 주말농장들이 오는 4월 말까지 분양 신청을 받는다. ●4월말까지 텃밭 분양신청 받아 온 가족이 넉넉한 주말을 보낼 수 있는 주말농장은 계절별로 상추와 쑥갓, 무와 배추, 고구마와 옥수수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으며 보통 1년 단위로 계약한다. 임대료는 평당 1만∼2만원으로 작게는 5평에서 많게는 10평까지 분양한다. 농사 경험이 없는 초보자의 경우 4인가족 기준 5평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욕심을 내거나 무리를 하게 되면 재미가 아닌 노동이 돼 버려 흥미를 잃게 된다. 특히 주말농장은 교통사정을 감안, 가급적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을 선택해야 자주 찾게 되고, 텃밭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농기구 제공 등 확인토록 또 텃밭을 가꾸는 데 필요한 농기구 제공이나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쳐 주는지, 텃밭 및 농작물 관리는 제대로 해주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텃밭에 심을 작물은 키우기 쉽고 잘자라는 게 좋은데 상추·쑥갓·열무·시금치 등 채소류가 여기에 속한다. 주말농장을 다녀와서는 자녀와 함께 간단한 영농일지를 써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주말농장 관계자들은 ”주말농장은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주말을 온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최고의 가족 휴식처”라며 “온 가족이 함께 텃밭을 가꾸다 보면 자녀들이 작물의 성장과정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돼 관찰력과 감성을 키워줄 수 있다.”고 말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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