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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광표 한국 구세군사령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광표 한국 구세군사령관

    ‘왜 겨울이지요?’ 이런저런 설(說)이 많다. 재미있는 근거(?) 하나.‘겨’는 지금의 계시다는 말에서 유래했고 ‘울’은 올아비라는 의미란다. 그러니까 오라비, 남자가 집에 있다는 뜻이란다.‘겨울’에는 농사일이 없기 때문에 사내들이 집을 나설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추운 겨울이다. 따뜻함이 기다려진다. 문득 붉은 세 다리와 냄비 모양의 모금통이 보인다. 제복을 입은 구세군의 손에서 울리는 딸랑딸랑 종소리도 정겹게 들려온다. 경쾌한 캐럴송, 금빛 꼬마전구들이 밤하늘을 반짝반짝 수놓는다. 해마다 이맘때, 성탄절을 앞두고 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빨간 자선냄비가 우리들 곁에 나타난다. 어느새 세밑의 풍물 중 하나가 됐다.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사슴처럼 크리스마스의 상징처럼 됐다. 그렇다면 자선냄비의 첫 종소리는 언제 울렸을까. 궁금해진다. 자료에 따르면 1891년 성탄을 앞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선보였다.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한 도시의 빈민 1000여명이 슬픈 성탄을 맞게 된 것. 이때 구세군의 한 사관(조지프 맥피 정위)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오클랜드 부둣가로 가서 그곳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빌려 삼각형 모양의 받침대를 만들어 거리에 내걸었다. 그 위에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글귀를 써 붙였다.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고 성탄절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었다. 결국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구세군 사관의 깊은 마음이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됐고, 오늘날 전세계 111개국으로 퍼지게 됐다. 한국에는 1928년 12월15일 당시 한국 구세군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사관이 서울의 종로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가난한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말을 메가폰을 통해 호소하면서 처음 시작됐다. 이렇게 해서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지 77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일반인들 가운데에는 깔끔한 유니폼에 모자를 쓴 모습 때문에 군인이 아니냐, 또 자원 봉사자가 아니냐며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주 말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서울 구세군교회에서 전국의 자선냄비를 총지휘하는 전광표(65) 한국 구세군사령관을 만났다. 막 지방 출장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는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때문에 지난해보다 모금액이 9%가량 늘어 우리 민족의 따뜻한 마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먼저 감사 표시를 했다. 이어 “작년에는 25억 5000만원을 달성했는데 올해는 조금 높은 27억원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날씨가 추운데도 따뜻한 성원이 계속 답지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그간 자선냄비의 경험을 보면 우리 민족은 어려울 때일수록 돕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2년 전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함에 50대 초반의 중년 신사가 3752만원 상당의 수표와 현금 뭉치를 넣고 사라진 경우도 있다.”면서 경제가 어렵지만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추위와 싸우는 자원 봉사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녹인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지난해보다 19개 늘어난 230개의 자선냄비를 전국 76개 지역에 설치했다.”면서 “종전의 구세군 자선냄비가 기부자들을 거리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면 올해는 미니 자선냄비를 만들어 은행 창구에서도 만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T머니를 통한 기부, 각종 상품권 기부 등을 비롯해 거리, 지하철, 은행, 우체국 창구에서도 만날 수 있도록 했단다. 올해의 경우 명동과 서울역, 백화점 등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에서 모금이 잘된다면서 100만원에서 200만원 사이를 기부하는 익명의 시민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성금이라는 것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전 사령관은 올해의 77주년 의미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민족의 아픔과 더불어 해마다 발생하는 이재민 구제, 빈곤 속에서 고생하는 불우한 이웃, 버려진 아이들과 함께 해왔단다.1928년 당시에는 자선냄비가 명동, 종로, 충정로 등 서울에만 20군데 놓여져 성금도 겨우 몇백원에 불과했다고 회고했다. 예전에는 100원짜리 동전이 많아 계수하는 데만 4∼5시간이 걸렸지만 요즘에는 1000원짜리 지폐가 많다 보니 계수시간이 1시간 정도로 단축됐다고 한다. 이어 “우리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눌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한다. 나눔은 아픔을 치유하는 시발이며 인격을 고양시켜 주는 것”이라면서 자선냄비는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철학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선냄비에 얽힌 에피소드를 얘기해 달라는 질문에 “세월의 길이만큼 여러 사연이 있다.”고 전제한 뒤 “어린 아이들이 돼지 저금통을 들고 와 자선냄비에 넣는 일을 보면 눈물이 찡할 정도”라고 말했다. 또한 “며칠 전에는 서울 삼성역에서 어느 장애인이 자신이 모금한 성금을 자선냄비에 기부한 경우도 있다.”면서 따뜻한 커피, 식당 쿠폰, 문화상품권을 기부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했다. 고사리 같은 손에 들린 코 묻은 동전 몇 닢, 폐품을 수집하는 할머니가 손수레를 끌고 가다 꺼낸 쌈짓돈, 아름다운 처녀와 데이트하느라 돈이 떨어진 탓에 헌혈증서를 내놓는 동네 청년도 있기에 추운 겨울이 그저 훈훈하단다. 전 사령관은 194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13세 되던 해 충청지방에 속한 덕암 구세군 교회 주일학교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71년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천연 구세군교회, 삼성구세군 교회, 영등포 구세군 교회, 과천구세군 교회 등에서 담임 사관으로 몸담았다. 이후 구세군 전라·충청·서울 지방관을 거쳐 2004년 서기장관에 임명됐으며 올해 1월1일자로 한국 구세군사령관에 취임했다. 그의 부인은 한국 구세군 여성사업총재, 즉 여성 사령관 직책으로 남편과 함께 구세군을 이끌고 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으며 식구가 다 구세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건강관리를 묻자 “학창 시절 탁구선수까지 했지만 요즘에는 통 운동을 못한다.”면서 틈틈이 걷는 일이 유일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왜 빨간색이냐고 하자 “예수님의 보형을 상징하며 인류를 구원하는 사랑의 극치”라면서 사랑의 마음에 빨강을 사용하는 기독교적 문화유산이 내포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불우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희생하는 사랑이 담긴 선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1년 논산 출생 ▲71년 구세군사관학교 졸업 ▲71년 서울 천연교회 담임사관 ▲83년 영등포교회 담임사관 ▲90년 국제사관대학 졸업 ▲95년 동양사관대학 졸업, 구세군 전라 지방장관 ▲98년 구세군 서울지방장관 ▲99년 한국기독교협의회(NCC) 실행위원 ▲2000년 대한기독교 서회 이사, 교경 중앙회 부회장 ▲03년 국제종합장기증센터 부총재 ▲04년 NCC 부회장 ▲05년 1월 한국 구세군사령관,CBS방송 이사, 한국기독교연합재단 이사 ●구세군 이란 일반인들도 구세군 교회에 출석하면 누구나 구세군이 될 수 있다. 성직자가 되려면 구세군 사관학교(7년)를 마쳐야 한다. 처음 2년 동안 합숙훈련, 임관 이후 2년간의 논문심사,3년간의 선교신학대학원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구세군에 다른 기독교 종파와는 달리 여성 목회자들이 많은 이유는 철저한 남녀평등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구세군은 군대조직과 유사한 상명하달 체계와 계급제를 갖고 있다. 군인처럼 임관 후에 ‘정위’라는 계급을 달고,15년 이상 사역했을 때에는 ‘참령’으로 승격된다. 그 위로는 부정령, 정령, 부장, 대장 순으로 계급이 높아지는데 대장은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9개 지방본영에 630여개의 교회가 있으며 총사령관의 계급은 부장이다. 구세군 복장을 보면 붉은 바탕에 황금색 글씨로 ‘S’자 배지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S’자는 ‘Salvation(구원)’,‘Soup(수프)’,‘Soap(비누)’ 등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Salvation’은 인간의 영혼을 구한다는 의미이고,‘Soup’와 ‘Soap’는 먹을 것을 주고, 몸을 닦아 준다는 육체적인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에는 1908년 영국에서 파견된 로버트 호가드 정령이 이끄는 10여명의 사관이 선교사업을 시작한 이래, 교세를 확장해 왔다. 의료선교 및 고아원, 양로원, 육아원 등을 경영하며 교육기관을 통해 포교에 힘쓰고 있다.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다.
  • [길섶에서] 모닥불/우득정 논설위원

    그 시절 마을 뒤편 산 끝자락을 잘라낸 외진 곳은 겨울철 아이들의 단골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시래기국에 꽁보리밥 한그릇을 후딱 비우곤 놀이터로 몰려들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모두가 물기 젖지 않은 솔가지, 솔방울, 솔잎을 두 손 가득 들고 왔다. 그러곤 솔 향기짙은 모닥불 주변에 모여 어제 했던 잡담을 이어갔다. 벙어리장갑조차 얻어 챙기지 못했던 아이들은 갈라터진 손등과 칼바람에 실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난 뺨을 불 위에 대고 연신 문질렀다. 반질반질해진 소맷자락에 흘러내리는 콧물을 쉴 새 없이 닦으면서. 누구도 점심시간이 됐다는 말이 없다. 슬그머니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면 점심을 먹고 왔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그래도 놀이터엔 이따금 행운이 찾아들기도 했다. 지난가을 산비탈을 일구어 고구마 농사를 지었던 아제가 또래 아들놈을 앞세우고 주먹보다 실한 고구마 여남은개를 들고 나타난다. 재만 수북한 잔불 위로 고구마를 올리곤 생소나무 가지를 꺾어 덮으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군고구마가 만들어진다. 입가가 온통 숯검정으로 변해도 그날은 행복했다. 수은주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던 날 버스 정류장 건너편 공사장의 모닥불이 기억 너머에서 끄집어 내준 어린시절의 한 토막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이사람] 장서가 이상희 前내무장관

    [이사람] 장서가 이상희 前내무장관

    “여름에 비가 오면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합니다. 지하 서고에 물이 차지 않도록 밤 새워 물을 퍼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국내 최고의 장서가로 꼽히는 이상희(73) 전 내무부장관은 책을 보관하는 일이 고역이지만 책과 더불어 사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한다.지난해 영광학원(대구대학교) 이사장을 끝으로 공식적인 직장생활을 마감한 그는 요즘도 어느 때 못지않게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필생의 업인 독서와 저술활동이 더욱 전방위로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서연구회’‘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을 이끌며 저술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를 서울 성산동 자택에서 만났다. 먼저 안내받은 곳은 짐작한대로 지하 서고. 서재라기보다는 책창고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이 곳에는 그가 목숨처럼 아끼는 6만여권의 책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장서를 위한 장서가 아니라 수십년 동안 꼭 필요해서 한 권 두 권 사다 보니 쌓인 책들이다. 천장 곳곳에 물이 새고 통풍조차 잘 되지 않는 어둑한 곳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책들. 그중에는 ‘보물급’ 희귀 도서와 유일본도 적지 않다. “책도 박물관 유물처럼 항온·항습을 유지해 줘야 하는데 이렇게 험한 곳에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지난 여름엔 서고에 물이 들어와 1000권 가까운 책들을 버리게 됐어요.” 내무·건설부장관, 경북지사, 공기업 사장 등 그만큼 화려한 이력을 거친 이도 드물지만 그는 여전히 생활에 쪼들린다. 재산이라곤 20여년 동안 살고 있는 지금의 허름한 2층 단독주택이 전부. 공직자로서 몸에 밴 청렴에 돈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모두 책을 사는데 바쳤으니 그럴만도 하다.“지금도 아내와 싸우는 원인의 90%는 책 때문”이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이 씨의 장서는 민속학, 국문학, 미술, 관광, 조경, 지방행정, 환경, 군사 등 인문·사회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한다. 특히 관심 분야인 꽃과 나무, 지방행정 등에 관한 책들은 가히 독보적이다.“식물 관련 단행본으로 가장 먼저 씌어진 책이 ‘화암수록’일 겁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과 함께 조선시대 2대 원예전문서로 꼽히는 귀중한 책이죠. 이 것을 구하기 위해 인사동 고서점 통문관의 설립자인 이겸로 선생을 1년 넘게 쫓아 다녔어요. 결국 이 필사 유일본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처럼 쉽게 접하기 어려운 책이라 그런지 ‘화암수록’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게 너무 많다.“‘화암수록’의 저자가 화암이 아니라 송타라고 적혀 있는 책자가 있는가 하면, 모 신문의 유명 칼럼니스트는 ‘화암수록’에 나오는 이야기를 ‘양화소록’의 내용으로 잘못 알고 자신의 고정란에 버젓이 인용한 예도 있어요.” 이 씨는 전공 학자들조차 ‘책’을 몰라 적지 않은 서지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는 조선시대 기생들이 펴낸 잡지인 ‘장한(長恨)’, 활자본으로 된 ‘허난설헌 전집’, 건양 원년(1896년)에 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소학교 교과서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이름과 벼슬명이 적힌 관안(官案), 조회에 대한 회답을 적은 조복문(照覆文), 호구단자 등 지방행정에 관한 문서는 학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큰 것들이다.‘지방세제론’ 등의 저서를 낸 지방행정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지방행정은 농사부터 수산, 보사, 심지어 군사문제까지 모두 알아야 하는 분야”라고 강조한다. 필요한 책을 구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눈물겹다. 고서점 거리인 일본 도쿄의 간다나 오사카의 우메다를 갈 때는 반드시 일본 전국 고서점 지도를 가지고 가 북 헌팅을 한다. 옛 책을 거래하는 이른바 ‘도서 나카마’ 중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정도. 그 중개상들로 인해 책값이 터무니없이 뛰기도 한다.“내 고향이 경북 성주예요. 그래서 성주 향토지인 ‘성산지’를 사려고 했는데 300만원을 달라고 하더군요.50만원이면 살 책인데. 결국 못샀지요.” 부인 송명자(71) 여사의 말대로 그는 “책을 찾고 사고 하는 데는 박사도 아니고 도사”이지만 천추의 한이 될 만한 ‘오점’도 남겼다. 애옥살이가 죄라고 할까.“10년도 더 된 일입니다. 형편이 하도 어려워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성현의 시문집 ‘허백당집’을 5만원에 팔았지요. 또 고려 최고의 문집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전집’을 한 서점 주인에게 50여만원에 판 적도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이 없는 일이죠.‘허백당집’은 임란 당시 동래부사였던 송상현의 소장인까지 찍힌 귀한 책이었는데….” 이 씨는 최근엔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를 샅샅이 뒤져가며 읽었다. 곧 출간될 200자 원고지 3500장 분량의 방대한 저서 ‘한국의 술 문화’(도서출판 선)를 쓰기 위해서다.“민속주나 가양주 등을 단편적으로 소개한 책들은 나와 있지만 우리 술문화 전반을 통시적으로 다룬 책은 없어요. 특히 한국의 주막에 관한 한 가장 상세한 책이 될 것입니다. 책의 한 부분인 ‘주호열전’은 아주 재미있을 겁니다.”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그는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멋있게 술을 마신 인물로 조선 성종 때 문신 손순효를 꼽는다.“손순효는 고주망태가 되어도 명나라에 보내는 국서를 완벽하게 써낸 일화를 남긴 명문가이자 명필가입니다. 임금이 하루에 석잔만 마시도록 하사한 은술잔을 최대한 얇게 펴 늘려 술을 실컷 따라 마신 그의 재치와 기백을 누가 따라갈 수 있겠어요.” 그의 말에는 호연한 기운과 풍류를 잃어가는 오늘의 술문화 풍토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세번은 책방에 들르는 그는 집에서도 맥놓고 쉬는 일이 없다. 수불석권(手不釋卷)이라 할 정도로 늘 긴장 속에 책을 읽는다. 그가 그동안 공직생활 중에 내놓은 수많은 아이디어는 이 같은 독서의 산물인지 모른다. 그는 지금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 구상들을 아쉬워한다.“일산 호수공원을 설계하면서 호수 한 가운데에 ‘용궁’을 만들려고 했지요. 또 경기도 파주 오두산 밑에 한반도를 그대로 축약한 ‘반도공원’을 조성하려고 했습니다. 광릉수목원 한 켠에 ‘종교식물원’도 세우고 싶었어요.” 이처럼 ‘아이디어 발전소’인 그에게도 도무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일이 있다. 자신의 장서를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여러 대학에서 기증을 바라고 있지만 아직 자신의 분신을 가까이에 두고 싶어 한다. 이마저 욕심이라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욕심이 아닐까. 글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사진 강성남 기자 snk@seoul.co.kr
  • 교육용 전기료 16.2% 인하

    교육용 전기료 16.2% 인하

    전기요금이 이르면 이달 말부터 평균 1.9% 인상된다. 다만 서민주택·중소기업·농사용은 동결되고, 교육용은 16.2% 인하된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7일 국회에서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과 정장선 제4정조위원장, 지병문 제6정조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협의회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전기요금 조정 방안을 확정했다. 오영호 산자부 자원정책실장은 “최근 국제유가 상승과 발전용 LNG에 대한 수입부과금 인상 등의 요인을 전기요금에 반영키로 했다.”면서 “조정된 요금은 부처협의 등을 거쳐 이달 말부터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정은 주택용 전기요금의 경우 월 200 이하 사용 주택은 현행 요금이 유지되며,200 초과 사용 주택은 평균 1.8% 올리기로 했다. 월 200 초과 사용 가구는 전체 1839만 3000가구 가운데 51.8%인 952만 6000가구이다. 특히 전기 사용량에 따른 누진율이 강화돼 전압 220V 기준 월 250 사용 주택은 0.9%,300는 1.4%,400는 2.4%,500는 3.2%,600는 3.8% 등으로 인상 폭이 확대된다. 이에 따라 300 사용 주택은 연간 5300원가량의 추가 부담이 생기는 반면 600 사용 주택은 연간 6만 9000원 정도가 더 들게 된다. 또 음식점 등 자영업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일반용은 1.9%, 대기업에 공급되는 산업용은 2.8%, 심야전력은 9.7% 각각 인상된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와 서민층의 경제적 어려움을 감안, 중소기업에 공급되는 계약전력 300㎾ 미만의 산업용과 농사용은 요금이 동결된다. 이와 함께 교육용 전기요금은 16.2% 인하되며, 현재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용받고 있는 보육 및 교육시설도 교육용으로 전환해 싼 값에 전기를 공급키로 했다. 이밖에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전기요금을 15% 할인해 주고, 독립유공자에 대서는 20% 할인제도를 신설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대책도 마련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방이 생태보전지역 학습장으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생태계보전지역이 생태학습장으로 꾸며진다. 서울시는 6일 최근 ‘방이동 생태계보전지역 관리 및 복원계획’을 수립, 내년부터 생태 복원사업을 벌이고 학습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이같이 밝혔다. 이곳은 성내천과 감이천이 합류하는 삼각형 범람원 가운데 있는 1만 7000여평의 습지다. 원앙 물총새 등 천연기념물을 비롯, 다양한 생물종이 나타나 2002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시는 2002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진행된 ‘생태변화관찰 학술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말까지 7억여원을 들여 생활 하수 등 오염원에 노출된 생태계를 관리, 복원한다. 또 농가 주택 등 기존 건축물을 생태학습관으로 꾸미고 수변 관찰 데크, 조류관찰대, 안내 해설판도 설치할 예정이다. 농사 체험, 논우렁이 키우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한편 생태변화관찰 결과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는 천연기념물인 개구리매, 황조롱이, 서울시 보호종인 제비, 박새 등 조류 66종과 청개구리 등 양서류 5종, 대륙송사리 등 어류 5종, 딱정벌레 등 곤충류 120종이 발견됐다.
  • [농어촌청소년대상] 본상

    ●수산 강진오씨 복합양식어장을 조성해 물김 및 개량조개와 다양한 어류를 판매해 2002년 1억 2000만원이던 수입을 지난해 2억원까지 늘렸다. 구청 및 어촌계 주관의 과잉초과시설 등 불법어업 근절 활동에 모범적으로 참여했다. 어촌정보화사랑방을 이용, 어업인에게 전자상거래 기업을 전수했다. ●수산 김홍곤씨 오지의 섬인 원산도에서 어려서부터 부모를 도우며 어류양식업에 종사해 왔다. 어업인 후계자가 되면서 어한기를 이용, 어업의 다각화로 소득을 크게 향상시켰다. 어획 강도가 높은 통발이나 인강망어업을 피해 수산자원보호에 앞장섰다. 자율방범대원으로 안전사고 방지에 기여했다. ●수산 유승남씨 넙치 자망어구의 신기술개발로 어획량을 당일 조업기준 20∼30㎏에서 60∼80㎏으로 늘렸다. 조업상황, 어장위치 등 영어일지를 기록 관리하고, 각종 첨단장치를 활용함으로써 어선어업의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항내 폐유 및 오물을 버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어장 정화활동에 솔선수범했다. ●수산 김병락씨 김 양식방법 개선 및 상표 등록으로 소득을 크게 늘렸다. 효율적인 황토 살포법을 개발해 ‘도청 김병락 황토김’의 상표를 등록했다. 그 결과 김 판매액은 2003년 8400만원에서 올해 1억 4700만원으로 늘었다. 김양식생산자협의회를 창립했고, 불법 및 과잉시설을 억제해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농업 양우선씨 제주의 주 소득원인 감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감귤원의 폐원·간벌·적과·휴식년 등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 감귤 폐원지나 휴원지에 고소득 작목인 브로콜리를 저농약 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14만평의 목장에서 한우 80마리도 기르는 등 복합영농으로 연 1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매년 저공해 비누를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농업 김정범씨 4만평에 묘목 45만그루를 키우며 인터넷에 ‘대림묘목농원’을 운영, 지난해에 52만 그루를 팔았다. 연 소득은 3억 5000만원이나 된다. 고성 산불 지역에 고로쇠나무 6000그루, 강원 영동군에 포도묘목 4700그루 등을 기증했다. 최초로 석류의 비닐하우스 재배 실험에도 성공하는 등 옥천군이 묘목특구로 지정되는데 기여했다. ●농업 박종성씨 광주광역시 화훼농가 사회에 영농기술과 유통관련 정보 등을 선도적으로 알리고 있다. 비닐하우스 4000평을 통해 연 6000만원의 소득을 올리며 화훼부농의 꿈을 키우고 있다. 폐품수집, 일일찻집, 사랑의 사탕바구니 등 각종 자원행사로 150만원의 기금을 조성, 불우이웃돕기를 해왔다. ●농업 박세우씨 분재 소재인 남천마무, 해송 등을 생산·판매하고 전통식물인 명아주도 기르고 있다. 수지팡이로 불리는 청려장 제작기술을 물려받았다.4H회원들과 유휴지에 도라지, 콩, 쪽파 등을 재배하고 있다. 논밭 2400평을 배 과수원 5400평으로 확대 조성하는 등 소득의 다변화에 힘쓰고 있다. ●농업 전형범씨 유휴지 3000평을 개간, 무·배추를 재배해 나온 이익금 5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놨다. 한우(14두), 피망·고추(1500평), 콩·옥수수(2000평), 벼(3000평) 등 복합영농의 기반을 갖췄다. 책 모으기 운동을 전개, 공부방과 버스 정류장 등에 500권에 달하는 책을 진열, 독서환경을 조성했다. ●농업 주승균씨 전북 무주의 관광지 주변과 농경지 자연정화 활동을 펴 9.5t에 해당하는 폐비닐 등을 수거했다. 벼농사 3000평 외에 인삼농사를 7000평에 짓고 있으며 4H를 통해 934만원의 기금을 만들어 소년소녀 가장 및 독거노인 돕기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농업 김민구씨 농업환경 오염을 막기 위해 매월 농업환경 보전활동을 하고 있고 충남 보령시 청라군계에 팬지, 피튜니아, 메리골드 등 꽃길 24㎞, 꽃동산 3000평을 조성했다. 오리농법에서 나온 부산물을 이용해 유기농으로 염소 300여두를 키우고 있다. 폐교를 이용한 팜스테이도 추진했다. ●농업 김춘기씨 부친의 농업을 이어받아 우렁이 농법으로 벼농사 2㏊, 기능성 표고버섯 1만본, 고추재배 900평 등 친환경 복합영농으로 연간 75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정보화 시대를 선도하는 4H회’라는 목표로 홈페이지 제작 활성화, 농산물 쇼핑몰 운영 등 경북 거창군 영농사회를 이끌고 있다.
  • 붕어빵 찍듯 7년째 이웃사랑

    충북 영동 재래시장에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40대 아줌마가 힘겹게 번 돈으로 7년째 불우이웃을 도와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 중앙시장 붕어빵 장수 이문희(47·영동군 양강면 묵정리)씨. 이씨는 1일 영동읍사무소를 찾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면서 20㎏짜리 쌀 7포대(30만원 어치)를 기탁했다. 이 돈은 1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1평도 안되는 손수레 매장에 쪼그리고 앉아 200원짜리 붕어빵을 팔아 마련한 것이다.이씨는 “장사를 하면서 쌓인 10원짜리부터 500원짜리까지 동전을 모두 모아놓았다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쓴다.”고 말했다. 자녀 학비라도 보탤 요량으로 7년 전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이씨는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딱한 처지의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 작은 사랑을 실천해 왔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 사정을 알기 때문에 이런 일을 시작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누구를 어떤 방법으로 도와야 할지 몰라 혼자 사는 노인 집을 찾아 다니며 양말, 목도리, 라면 등을 선물했다.2년 전부터는 손수 담근 김치 10통과 라면 10상자를 읍사무소에 기탁한 뒤로 이같은 방법으로 겨울철이나 수재발생시 수시로 기탁하고 있다. 서울 출신인 이씨의 남편은 농사를 짓는다.“영동 친구 집에 놀러왔다 남편을 만났다.”는 그는 고교 2년 아들과 딸 둘을 두고 있다. 큰 딸은 현재 이화여대 산업디자인학과 3학년이다. 그녀는 “형편은 넉넉지 않지만 마음은 부자”라며 “별 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 떨지마라.”며 한사코 사진찍기를 거부했다.영동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구정이삭]

    ●서울 강북구 5일(월)부터 28일(수)까지 수유동 삼각산문화예술회관(구 강북구민회관)에서 컴퓨터 강좌를 운영하고 수강생(각 반 3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 컴퓨터 기초반, 인터넷 활용반 등 2개 강좌로 신청은 전화(02-901-2085)와 인터넷 홈페이지(www.gangbuk.seoul.kr)를 통해 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30일(금)까지 청소년 밀집지역 특별 점검을 실시한다. 유흥·단란주점, 비디오방, 노래방, 게임방 등을 대상으로 충소년 출입·고영 및 술 제공, 담배 판매 행위 등을 단속한다.(02)731-0362. ●서울 관악구 2일(금)까지 제2기 ‘청소년 생활과학교실’ 수강생을 모집한다. 생활과학교실은 내년 3월까지 4개월 과정으로 각 동사무소, 관악구 평생학습센터 등에서 매주 1회 1시간 동안 진행된다. 초등학생 1명과 학부모 1명을 한 쌍으로 해서 총 10∼15명쌍을 선착순 모집한다. 문의는 각 동사무소로 하면 된다.(02)880-3468. ●서울 동작구 동작구청 1층 민원실과 구청 광장에서 ‘로야 무선 인터넷 광장’을 운영하고 있다. 노트북·PDA를 이용하여 무료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02)820-1411. ●서울 구로구보건소 23일(금)까지 이동 보건소 진료를 운영한다. 월요일엔 궁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금요일엔 오류2동 연세사회복지관에서 주 2회 운영된다. 의사, 간호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등이 진료를 수행한다. 검진을 희망하는 주민은 구로구보건소(의약과 860-3255)로 전화 예약을 해야 한다. ●경기 시흥시 농업기술센터 30일(금)까지 내년도 벼농사를 위한 정부 보급종 종자 신청을 받는다. 보급종 품종은 오대벼, 화성벼, 수라벼, 대안벼, 일품벼, 새추청벼, 추청벼 등이다. 공급 가격은 20㎏들이 1포당 3만 220원이며 내년 2∼3월에 보급된다.(031)310-2573. ●인천시 6일(화)까지 건축물·공원·녹지·공동주택 조경 시공자와 설계자를 대상으로 조경상 수상 후보자를 공모한다. 응모자격은 2003년 7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인천지역에서 시공된 조경 시설물로 제한된다. 출품을 원하는 사람은 작품 패널과 현장 사진을 인천시 녹지조경과에 내면 된다. 금·은·동상을 선정, 상패와 감사패를 전달한다.(032)440-3662. ●경기 과천시 2일(금)까지 ‘제2회 과천시 청소년 경제캠프’에 참가할 고등학생 60명을 모집한다. 참가자는 지원자 가운데 컴퓨터 추첨을 통해 선정되며 고3학생이 우선 선발된다. 캠프는 26일(월)∼28일(수) 경기 화성시 청호 인력개발원에서 열린다. 참가비 5000원.(02)3677-2218. ●경기중소기업 종합지원센터 19일(월)부터 5일 동안 의정부시 경민대학에서 지역 가구업체 디자이너 30여명을 대상으로 ‘해외 유명 가구디자이너 초청교육’을 갖는다. 교육에는 이탈리아 가구 디자이너와 교수 3명이 강사로 참석, 신소재를 가구디자인에 적용하는 기술과 품질관리기법 등을 강의한다. 또 그룹별로 샘플을 제작하고 제품에 대해 토의하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교육을 받으려면 9일(금)까지 센터 홈페이지(www.ksbc.or.kr)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신청하면 된다.(031)837-8032.
  • [KT&G V-리그] 프로배구 “추위 녹인다”

    ‘날자, 다시 한번 날자꾸나.’ 요즘 배구인들 얼굴을 들여다보면 최근 몇 년간의 지독한 침체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희희낙락 희색이 감돈다. 프로배구 2년차를 맞아 각 팀의 전력 평준화, 스타선수 양산 등에 따른 ‘제2의 배구 르네상스’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05∼06프로배구 V-리그가 12월3일부터 내년 4월2일까지 4개월 동안 대장정에 들어간다. 이날 남자부문의 삼성-대한항공, 현대캐피탈-한국전력,LG화재-상무, 그리고 여자 부문의 KT&G-GS칼텍스, 도로공사-현대건설 등을 시작으로 이번 시즌 동안 남자 105경기, 여자 70경기 등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합계 정규리그 175경기를 치르며 명실상부한 ‘프로배구 원년’을 선언하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용병 도입이다. 시즌 시작 전이긴 하지만 ‘용병 농사’의 짭짤함을 맛본 팀으로는 일단 현대캐피탈과 LG화재가 꼽힌다. 미국대학 최우수선수(MVP)를 2년 연속 휩쓸었으며 훤칠한 키와 돋보이는 외모로 ‘인기 돌풍’을 예고하고 있는 현대캐피탈의 숀 루니(24·206㎝)는 후인정과 함께 ‘타도 삼성’의 꿈을 실현시켜 줄 현대의 복덩어리다. LG화재 역시 레프트·라이트 공격은 물론 브라질 국가대표 리베로 출신답게 수비도 팀내 최고수준인 ‘만능 살림꾼’ 키드(34·193㎝·브라질)의 영입으로 과감히 ‘우승 도전’을 선언했다. 다만 키드가 비교적 나이가 많은 탓에 장기 레이스에서 어떻게 체력을 안배할지가 변수다. 반면 ‘수성’의 입장에 놓인 삼성은 아쉐(33·196㎝)가 기대와 달리 수비가 취약한 ‘반쪽 선수’인 데다 무릎 등 부상도 있어 한숨만 쌓인다. 대한항공은 프로 4개 팀중 가장 늦게 브라질 출신 알렉스(31·200㎝)를 데려와 올시즌 고공 비행을 꿈꾸고 있다. 아직 정식 경기에서 손발을 맞춰 보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거물급 신인’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강동진(22·대한항공)과 김연경(17·흥국생명) 등은 입단하자마자 단숨에 팀의 주전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 배구계 전체에 뜨거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삼성화재 레프트 권광민(23), 현대캐피탈 센터 송병일(22) 등도 역시 붙박이 주전감은 아니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선수들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번 리그에는 재미있는 변수가 숨어 있다. 바로 초청팀 자격으로 리그에 참가하는 ‘고춧가루팀’ 상무와 한국전력. 이미 시범경기에서 한전이 LG화재를 3-1로 꺾는 등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프로팀으로서는 자칫 이들에게 패한다면 ‘단순한 1패’가 아니라 심각한 내상을 입으며 순위경쟁에서 크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배구연맹(KOVO) 박세호 사무총장은 “각 팀 전력의 평준화와 용병 도입, 홈앤드어웨이 프로시스템 완비는 매경기 손에 땀을 쥐는 흥미진진한 경기 내용을 만들면서 팬들의 발걸음을 다시 한번 배구 코트로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화마당] 아! 농민/김용택 시인·교사

    나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많은 복중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부모님을 두었다는 것과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 곁에서 아이들과 함께 평생을 살고 있는 것을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복이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내게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 고향에 사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의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 같이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일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우리 집에 색다른 음식이 생길 때마다 이웃에 사시는 할머니 큰아버지 당숙들을 모시러 달려가거나 음식을 가져다 주어야 했다. 제사를 지내거나 생일 잔치를 하거나, 부침개만 부쳐도 어머니는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누구네 집 모내기를 해도 사람들은 그 집에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농사철에는 늘 그렇게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는 잔칫날이었다. 농민들은 또 늘 일을 같이 했다. 겨울밤이면 우리들은 삼을 삼는 기구들을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는 게 일이었다. 삼 품앗이뿐 아니었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슬픈 일과 궂은 일에도 사람들은 늘 힘과 인정을 보태서 함께 문제를 해결했다. 힘을 모아 같이 일을 하게 되니, 힘든 일 후엔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기 마련이었다. 힘든 일을 이겨내기 위해 농민들은 또 놀이를 같이 했다.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 자리에서 일과 놀이를 함께 할 때도 있었다. 이것이 농민들의 일과 놀이문화다. 일을 따로 하고 놀이를 따로 하는 게 아니라 고된 일을 놀이화했다. 말하자면 일이 곧 놀이였고 놀이가 곧 일이었던 셈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두레가 열리는 날 논을 매면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놀았던 문화다. 나는 이 아름다운 일과 놀이문화를 우리들의 전형적인 농촌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일이었고 빛나는 문화였다. 그 농촌공동체는 역사 곳곳에서 힘을 발휘해 민족사의 물굽이를 틀어놓기도 했다. 나는 농촌 공동체가 부서지고, 농민들이 벼랑으로 내몰리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가슴아픈 세월이었다. 마을이 텅텅 비어가고 학교가 비어갔다. 한때 마흔 가구가 넘었던 우리 마을이 열서너 가구로 줄어들어 버렸고,700명이 넘던 학교 학생들은 이제 30명이다. 늦가을이면 산밭에서 소가 쟁기질을 하며 보리를 갈고 들판 이 논 저 논에서 파랗게 싹을 틔우던 보리들은 이제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사람들이 마을에서 사라지고 곡식들이 들판에서 사라져갔다. 농촌공동체의 해체는 우리들을 지탱시켜 왔던 정신적인 공동체의 해체와도 깊이 닿아있다. 농촌 공동체가 부서지고 무너지면서 우리사회에선 지금 극악한 자본이 인간성을 극도로 황폐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정신적인 본령이었던 농촌이 무너지면서 우리들은 기댈 언덕을 잃어버린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농사는 우리들의 먹을 것만 주지 않았다. 자기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농민정신은 위대하고 성스러운 생명정신이었다. 이제 그 생명정신이 넘쳐나던 아름다운 곳에 시멘트를 앞세운 개발이 쳐들어오고 있다. 작은 마을들은 생태와 공동체 문화의 보고이며 펄펄 살아 숨쉬는 정신적, 물질적인 박물관이다. 보상을 앞세워 마을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는 개발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생태, 아름다운 문화, 그리고 살아있는 농촌공동체의 복원과 보존이야말로 우리 농촌의 진정한 희망이 되도록 국가와 전 국민들의 관심과 지혜를 한데 모아야 한다. 아! 농민, 농민 한 명의 죽음은 곧 우리들 모두의 죽음과 닿아 있음을 지금 알아야 할 때다. 김용택 시인·교사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35년… ‘문인들이 좋아하는 화가’ 이왈종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35년… ‘문인들이 좋아하는 화가’ 이왈종 씨

    폴 고갱은 나이 마흔셋에 문명 세계에 대한 혐오감을 느껴 남태평양의 작은 섬 타히티로 훌쩍 떠났다. 여기에서 ‘타히티의 여인들’ 등 불후의 명작을 많이 남겼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대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껴 지중해로 떠나 걸작 ‘해바라기’를 남겼다. 아마 예술가의 포부를 위해 자기유배의 길을 스스로 떠나지 않았을까. 이왈종(60)씨.‘생활속에서-중도 시리즈’로 잘 알려진 한국 화단의 중견작가다. 지난 1990년, 그해 어느날 교수직(추계예술대)을 홀연히 버리고 따뜻한 남쪽의 섬 제주를 택했다. 주위에서는 서울로 곧 돌아오리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예술가적인 기(氣)를 충전하고 돌아올 것으로 다들 생각했지만 15년째 눌러 살고 있는 것. 이젠, 자신을 해방시킨 제주를 왜 떠나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또 복잡한 서울을 더 이상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푹 파묻혀 있다. 이 화백은 올해로 화단 데뷔 35년째를 맞고 있다. 그러니까 1970년 한국미술대상전(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이듬해인 스물여섯 나이에 국립공보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그동안 국내외 개인전만 20여차례, 단체전의 경우 매년 1∼2차례 참가했으니 그의 왕성한 작품활동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난주 제주의 밤 바다가 보이는 서귀포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때마침 서울에서 온 손님(화랑 관계자)과 싱싱한 복어회에다 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서울에서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후래삼배’를 먼저 권한다. 이 화백이 약간 취기가 있었기에 같이 보조를 맞추자는 뜻에서였다. 창너머 서귀포 앞바다에는 한치잡이 어선에서 켠 불빛이 아름답게 빛나 장관을 이루었다. 문득 한마디 건넨다.“선생님, 아름답죠?” 그러자 “암요,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돌아왔다. “……?” “자연입니다. 인간에게 맞추면 괴롭고요, 자연에 맞추면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지요. 괴로움도 즐거움도 말입니다. 파리나 참새도 똑같은 생명입니다.” 술잔이 다시 오고갔다. 안주도 권했다. 사전에 질문 거리를 몇 가지 생각했지만 취기가 있어서인지 갑자기 순서가 헷갈린다. 들켰을까. 이 화백도 그걸 아는지 껄껄 웃으며 선문답 형태의 얘기로 분위기를 설렁설렁 몰아간다. 에라 모르겠다,“선생님은 그동안 제주 어디에다 맞춤표를 두셨는지요?”라고 질문을 툭 던졌다. “아닌 곳이 없지요. 제주에 왔을 때 시장바닥을 봐도, 잡초나 동백꽃을 봐도 행복했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치우치느냐가 문제이지요. 꽃을 봐도 괴로울 수가 있습니다. 제주란 아름다움이고 그렇게 맞추었습니다. 또 집착하지 않고 평등하게 바라보면서 ‘중도관’을 생각했습니다.” 이 화백은 제주 생활을 하면서 ‘중도시리즈’를 표방해 왔다. 또 오랜 금욕적인 생활방식과 돌담처럼 쌓인 열정으로 붓의 힘이 더욱 세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석한 화랑 관계자도 “이 화백은 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면서 “(그림이)흥분된 에너지를 능란한 서예의 획으로 쓱쓱 그려진다.”고 거들었다. “중도란 무엇입니까.” “너무 가까이 가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도 괴롭지요. 하나는 전부요, 전부는 하나입니다.” “지난 제주생활의 15년을 관통한다면 어떤 의미로 새겨집니까?” “행복,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몸속에 채워져 있을 때가 괴롭지요. 비운 마음은 작은 것도 크게 보입니다. 사람 만날 일도 없고, 그림 그리고 밥 먹는 게 전부입니다.(제주)올 때 모든 것을 놓았어요.” 처음 5년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실컷 그리다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15년이 됐단다. 어디서나, 아무때나 들을 수 있는 새소리, 파도소리, 장중하고 때론 감미로운 바람소리, 그리고 동백꽃, 매화, 수선화 등 온갖 꽃들 향기에 취해 살아온 몽유의 세월이었다고 했다. 까닭에 화폭에는 꽃, 새, 물고기, 노루, 자동차, 전화기 등이 자주 등장했다. 요즘에는 골프장 풍경을 많이 그린다. 예술성이든, 상업성이든 따지지 않고 즐겁게 그렸고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활짝 웃는다. “최근에는 도자기 작업에도 열중하고 있지요. 향로를 만들고 거기에 그림을 집어넣는 향로들이지요. 저 세상으로 떠난 친구의 영혼 안식을 빌어주고 또 다사다난한 현실에서 많은 번뇌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심사를 편안케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이지요.” 다시 건배를 하고 나서 잠시 창밖을 응시한다. 때를 놓칠세라 제주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곡선입니다. 인간은 수직적이고 상하관계로 연결되고 이해관계로 얽혀져 있습니다. 해안선과 돌담, 다들 아름다운 곡선이지요. 제주의 자연을 보면 마음을 덜어내는 행복을 느낍니다. 또 솟구치는 파도를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새삼 절감하지요.” “선생님, 왜 서울을 버리고 제주를 택했나요? 그리고 다시 서울 갈 생각은 없나요?” “그곳은 와글와글합니다. 먼지 속으로 사람 많은 곳으로 갈 이유가 하나도 없지요. 자연과 호흡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평생 제주에 있을 작정입니다. 여기에서 놓고 가야지, 어떡하겠습니까.” 요즘 그는 어린이들과 일주일에 두번씩 동심의 세계에 푹 빠져든다. 지난 10월 초부터 서귀포시 평생학습센터 ‘엄마랑 아이랑 함께하는 미술교실’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는 것. 매주 월요일 유아반, 화요일 초등반으로 나눠 각각 한시간반씩 그림 지도를 해주고 있다. 친근감을 주는 ‘동시’와 ‘동요’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초부터 틈틈이 어린이들에게 지도를 해오다 아예 고정적인 시간을 마련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학부모들로부터 수강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고 서귀포시 관계자는 전했다. “어린이들한테 많이 배우고 있어요. 어른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든요. 어린이들에게 그림은 상상력과 사고력을 확충시켜 주지요.” 이 화백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버린 자식처럼 들꽃과 산꽃을 무작정 만나기도 하고 붓을 들어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한다. 두달에 한번 만나는, 서귀포 시내의 향토예술인 모임 ‘문화사업회’에 참석하는 것이 유일한 개인생활이다. 슬쩍 젊었을 적 시절을 물었더니 “국전에서 아홉번 낙선하고 아홉번 당선(입선)했다.”는 말이 금방 나온다. 자료를 뒤졌더니 국전 15회(66년)부터 27회까지 17∼19회를 제외하곤 연이어 심사에 뽑힌 것으로 확인된다.‘9전9기’가 아니냐고 했더니 그냥 멋쩍게 웃기만 한다. 경기도 화성 출신인 그는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었다. 어려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몸이 하도 허약해 농사꾼조차 못되는 쓸모없는 아이로 취급받았다. 중학때 미술 선생이 좋아 특활시간에 미술반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소정 변관식(76년 작고) 화백 등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데뷔 초기에는 실경산수를 자주 그렸다. 그는 슬하에 딸과 아들을 두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딸은 동양화를 전공, 현재 전시회를 준비 중이고 아들은 영국 켄트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생로병사의 근심을 털고 모두들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행복과 안식이 온 누리에 펼쳐지길 희망합니다.” ■ 그가 걸어온 길 ▲1945 경기도 화성 출생 ▲70년 중앙대 회화과 졸업, 한국미술대상전(국립현대미술관) 전시 ▲88년 건국대 교육대학원 회화과 석사 ▲79∼90년 추계예술대 교수 ▲90년∼현재 제주에서 생활 ▲71년 국립공보관 첫 개인전 ▲76년 2회 개인전 미도파화랑 ▲80년 3회 개인전 미도파화랑 ▲이후 2005년까지 19회 국내외 개인전 ▲단체전은 75년 아시아 현대미술전(도쿄)을 시작으로 50여회 참여 ■ 상훈 국전 제15,16,20,21,22,23,25,26,27회 입선. 한국미술대상전 입선(70년), 한국미술대전 문공부장관상(74년), 미술기자협회 미술기자상(83년), 미술시대 미술작가상(91년), 월전미술문화재단 제5회 월전미술상 수상(2001년) ■ 저서 ‘생활속에서-중도의 세계 이왈종의 회화’ ‘도가와 왈종’‘중국 회화 사상 및 문학성에 대한 연구’‘이왈종 화집’ km@seoul.co.kr
  • 여의도 면적 70배 남미 땅 개발 검토

    정부가 27년 전에 구입한 남미의 땅을 농업용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농업기반공사는 28일 “지난 6월 외교통상부로부터 아르헨티나 ‘랴흐타마우카 농장’과 칠레 ‘테노 농장’의 소유 및 관리권을 농업기반공사로 이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공사 관계자는 “국가 차원에서 방치돼 온 국유지의 관리 주체를 농업전문기관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하지만 개발 가능성을 위한 타당성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농림부에 제출한 상태”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서쪽으로 986km 떨어진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주(州)에 위치한 랴흐타마우카 농장은 정부가 1978년 농업 이민을 위해 시범 농장용으로 211만달러를 들여 구입했다. 규모는 여의도 면적의 70배에 이르는 2만 8094㏊에 달하지만 실제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토질이어서 27년간 방치돼 왔다. 칠레 테노 농장 역시 정부가 지난 80년 농업 이민을 위해 구입한 땅으로 면적은 185ha이다. 현재 두 땅의 소유권은 외교부 산하 정부투자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20년 이상 방치된 만큼 농업용으로 적합한지 타당성 조사가 우선돼야 한다.”면서 “최종 결론이 난 것은 없다.”고 말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7·9급 공무원 시험 완전정복] 문학의 미적 범주

    ●청동기시대(기원전 15세기∼10세기 경) (1)경제 1)농경의 발달 (1)재배작물 (ㄱ)조, 피, 수수:신석기시대부터 재배 (ㄴ)벼, 보리, 콩:청동기시대부터 재배 벼는 일부 저습지(밭농사가 중심), 여주 흔암리, 부여 송국리 등에서 출토 (2)농기구 (ㄱ)청동제(금속제)는 없음 (ㄴ)간석기의 다양화, 기능 개선 (가)반달돌칼, 삼각형돌칼:추수용 (나)홈자귀 (다)바퀴날도끼 (ㄷ)목기 (3)토기의 제작 (ㄱ)민무늬토기 (가)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나)지역에 따라서 모양이 약간씩 다름(가락리식, 송국리식, 공귀리식, 팽이식 등) (다)화분형과 팽이형이 기본적인 모양 (ㄴ)미송리식토기 (가)밑이 납작한 항아리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하나씩 있음 (나)주로 청천강 이북, 요령성과 길림성 일대에 분포 (다)고인돌, 거친무늬거울, 비파형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특징적인 유물로 간주 (ㄷ)붉은 간토기 (4)집단적 취락의 형성(넓은 지역에 많은 집터가 밀접) (ㄱ)배산임수의 위치 (ㄴ)야산(구릉, 산간)의 움집(직사각형)과 지상가옥에 거주 2)돼지·소·말 등 가축의 사육 증대 (2)정치 1)계급의 발생 (1)원인 (ㄱ)농경의 발달→잉여생산물의 발생, 분배 (ㄴ)빈부의 차이 발생→사유재산의 발생 (2)구분 (ㄱ)지배층:선민사상의 대두→거석문화:선돌, 고인돌(계급의 발생과 경제력의 성장을 입증) 등 (ㄴ)피지배층 (3)결과 (ㄱ)군장의 출현 (ㄴ)전문장인의 등장 (ㄷ)정복전쟁의 전개→남녀분업의 발생 2)군장국가의 등장 (3)예술 1)의의:종교(주술적) 및 정치적 요구와 밀착 2)대표적 (1)청동제품:제사장, 족장들이 사용했던 칼, 거울, 방패 등 (2)토제품:흙으로 빚은 짐승, 사람모양의 토우 (3)바위그림:울주 반구대, 고령 양전동 알터 등 ●문제 다음의 내용과 관련된 시기의 생활 모습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유물은 반달돌칼, 홈자귀 등의 석기와 비파형동검, 거친무늬거울 등의 청동제품, 그리고 미송리식 토기와 민무늬 토기 등이며, 이들 유물은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 당시의 무덤에서 나오고 있다. (1)남자들은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여자들은 가사를 담당하였다. (2)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큰돌을 옮기고 있었다. (3)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일부 저습지에서 모내기를 하였다. (4)남의 물건을 훔치면 노비가 될 수도 있었다. ●해설 지문의 내용은 청동기시대에 대한 설명이다.(1)청동기시대에는 정복전쟁의 전개 등으로 남녀의 분업이 발생하였다.(2)청동기시대에는 거석문화와 관련된 고인돌이나 선돌을 건립하기 위하여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다.(3)청동기시대에는 일부 저습지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나, 모내기는 고려 말에 남부지방 일부에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4)청동기 시대에 건국된 고조선의 8조법에는 도둑질을 하면 노비가 되도록 하였다. 정답 (3)번. 심태섭 남부행정고시학원 강사
  • 개사료만도 못한 쌀값…가격차 갈수록 커져

    개사료만도 못한 쌀값…가격차 갈수록 커져

    ‘쌀값이 견공의 사료값 만도 못하다니’ ‘4㎏ 들이 견공(犬公) 사료값은 1만 4000원, 쌀값은 7000원’ 최근 시중에 거래되는 견공 사료값이 사람들이 먹는 쌀값보다 2배 비싼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민은 물론 소비자들까지 탄식하고 있다. 25일 경북도내 일부 도정·유통업체들에 따르면 이달 들어 시중에서 80㎏ 들이 쌀 한가마가 14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따라서 쌀 ㎏당 가격은 1750원이다. 그러나 견공의 사료값 ㎏당 3500원으로 쌀값보다 정확하게 2배가 비싸다. 특히 애완견의 사료값은 ㎏당 6700원에 달해 쌀값에 비해 무려 3.8배나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오리농법 등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된 무공해 쌀값 4000원(㎏당)보다도 크게 비싼 것이다. 물론 지난 해에도 견공 및 애완견의 사료값이 쌀값보다 비쌌었다. 하지만 올들어 견공 등의 사료값은 ㎏당 500원 정도가 오른 반면 쌀값(지난해 80㎏ 가마당 17만원)은 275원이 떨어졌다. 그만큼 가격차가 더욱 커지게 됐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은 “옛날에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개가 먹었는데…, 이젠 사람이 개보다 못한 세상이 됐다.”며 “자존심 상해 밥 못 먹겠다.”고 달갑잖은 반응을 보였다. 농민들은 “쌀의 명예회복을 위해 수년 전부터 각종 친환경 쌀 개발에 나서고 있으나, 이마저도 워낙 싸 견공 등의 사료값을 넘어서지는 못할 전망”이라며 “쌀농사를 포기하고 개사료를 생산하라는 것이냐.”며 현실에 씁스레했다. 도정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국회의 쌀협상 비준안 통과로 내년에는 쌀값 폭락마저 예상돼 더 이상 견공 등의 사료값과는 비교하지 못할 처량한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농지은행/이상일 논설위원

    한국에서 땅의 역설은? 공개념 의식은 상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사유화 비율이 아주 높다. 단적으로 한국의 국공유지 비율은 20%선에 불과하다. 유럽의 30∼40%는 물론 미국 32%나 일본의 23%보다 낮다. 또 다른 땅의 역설은 논과 밭, 즉 농지에 있다. 농지는 일반 주택·토지와 비교해 더욱 ‘공적(公的)’이다. 규제는 또 얼마나 많은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 소유도 어려울 정도다. 그런 규제를 비집고 힘깨나 쓰고, 돈 있는 사람치고 안 가진 사람이 없을 정도란 점에 농지의 역설이 있다. 공직자를 낙마시키거나 구설에 올린 사안으로 걸핏하면 농지가 등장하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얼마 전 전 주미 대사의 변칙 농지매입 의혹이 제기됐으며 정권 실세들의 농지 보유도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어차피 이제는 농지의 역설을 극복할 때가 된 듯하다. 쌀이 개방되면 논값이 0.6% 정도 떨어진다니 농지 대책이 필요하다. 소규모 농사를 짓는 연로한 농부는 땅을 팔고 싶어하는 반면 도시인들은 농촌 별장이나 전원주택을 꿈꾼다. 이 와중에서 ‘농지은행’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농업기반공사의 한 사업본부로 농지은행은 지난 10월부터 농지의 임대를 알선해 주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나서 소유자가 팔아 달라고 맡긴 땅을 처리해 주며 빚 많은 농민으로부터 땅을 사서 경작을 맡기는 형태의 사업도 한다. 농지를 직접 사서 비축하는 일은 ‘긴급 사업’으로 검토 중인데 2년 후에나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터넷 강국답게 농지 사업이 인터넷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놀랍다.‘농어촌포털’(www.nongchon.or.kr/karico/)이나 ‘농지은행’(www.fbo.or.kr/)으로 들어가 매물이나 임대를 선택해 마우스를 누른다. 그러면 바로 지도상에서 농지의 위치와 ㄱ자형이나 ㅁ자형의 농지가 뜬다. 시청이나 구청에서 떼는 지적도보다 더 상세해 직접 위치를 찾을 수도 있을 듯하다. 클릭 한번 하면 농지 소재지의 인근 경작자를 파악해 농지은행이 연결도 시켜 준다고 한다. 이제 농지 거래를 쉬쉬 하지 말고 농지은행을 통해 드러내놓고 했으면 싶다. 그래야 도시 자본도 농촌으로 떳떳하게 들어갈 것이다. 농지은행이 농지 매매와 비축 업무에서 토지공개념 구현에 기여하길 바란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seoul.co.kr
  • 재개발 열풍 서러운 달동네

    재개발 열풍 서러운 달동네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만든다.’ 서구 중세시대의 격언입니다. 당시 농노계급이 신분의 자유를 얻기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은 도시로 ‘탈출’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시는 왕이나 영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던 덕분이지요. 한국전쟁 직후 다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서울은 서구의 중세 도시와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생존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일푼 ‘촌놈’들이 제 한몸 뉘일 곳은 달동네뿐이었지요.1994년 드라마 ‘서울의 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도 극중 홍식과 춘섭의 달동네 생활이 팍팍한 우리네 일상과 다를 바 없던 까닭일 것입니다. 그런 달동네가 이젠 서울에서 사라져만 갑니다.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 변모하는 것은 분명 반길 일입니다. 하지만 대신 들어서는 ‘아파트숲’에 달동네 사람들이 등 비빌 데는 좁기만 합니다. 갈 곳 없이 남은 이들에게는 이번 겨울도 가혹하기만 합니다. 성북동 고급 빌라와 중계동 학원촌의 그늘에서 연탄 한 장과 김치 한 포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옛 것 없는 새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과거 우리의 모습인 이들을 어떻게 포용하느냐는 어떤 미래를 그릴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함께 하지 않는 내일은 우리가 아닌 ‘그들만의 미래’입니다. 새벽 하늘에 진눈깨비가 날린 지난 21일. 하늘과 맞닿은 달동네는 이미 한겨울 바람이 휘감고 있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주인 없는 집들. 코흘리개 아이들과 강아지들은 그 사이를 뛰어다닌다. 구멍가게 난로 주위는 노인들 차지다. 서울에서 얼마 안 남은 달동네 풍경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 달동네로 향하는 길만큼이나 가파른 일상의 풍경들이 펼쳐진 곳. 그러나 달동네는 아파트촌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곧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서울 달동네 사람들의 겨울나기를 살펴봤다. 서울의 달동네는 이제 손을 꼽을 정도다. 노원구 상계4동 희망촌과 양지마을, 성북구 성북2동 북정골 등 4∼5곳만 남아있다. 그것도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진행중 이거나 추진되고 있다. 노원구 상계4동 ‘희망촌’은 서울시내에서 달동네의 명맥을 이어가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지하철 4호선 상계역에서 종점인 당고개역으로 가다 보면 창 밖 오른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희망촌에는 300여가구 1000여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당고개역에서 내려 수락산 자락을 따라 오르는 가파른 계단과 좁은 차도가 세상과 이곳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상계 4동은 거의 전체가 3차 뉴타운지구로 지정돼 있다. 희망촌을 찾은 손님을 가장 먼저 맞는 이들도 부동산 업소들이다. 쓰러져가는 집마다 업자들의 명함과 전단이 도배돼 있다. 달동네 사람들에게 겨울은 여전히 가혹한 계절이다. 이중창은 고사하고 비닐과 목재문으로 겨우 바람만 막았다. 도시가스는커녕 유지비가 만만찮은 기름보일러도 이 곳에서는 사치다. 최근에는 연탄을 다시 때는 집도 늘었다. 그러나 연탄값도 버겁다. 주민 정상준(55)씨는 “하루 연탄 세 장이면 방 뜨끈하게 데울 수 있지만 돈이 없어서 마음대로 못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산동네까지 배달되는 연탄은 장당 380원 정도다. 한겨울을 나려면 500장은 필요하다.20만원도 이들에게는 큰 돈이다. ●집세 오를까봐 집 수리도 못해 희망촌 건너편 ‘양지마을’에는 5800여가구 1만 6000여명이 살아간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 서울시민 대부분이 저렴하게 이용하는 도시가스가 이곳에도 들어오지 않아 연탄·기름·전열기 등에 의지하고 있다. 결국 중산층보다 연료비 부담이 더 큰 셈이다. 이날은 마침 한 기업에서 보내온 김치를 주민들에게 배달하는 날. 상계4동 사회복지사 강수아(32·여)씨와 함께 김치를 들고 나섰다. 이곳에는 유독 독거노인들이 많다. 이들에게는 지역사회복지관에서 전달하는 도시락과 안부전화가 거의 유일한 ‘생명줄’이다. 김치를 받은 김옥분(가명·70) 할머니는 연신 복지사의 손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훔쳤다. 김 할머니는 연탄 땔 힘도 돈도 없어 작은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 살고 있다. 그나마 전기값도 걱정이다. 김 할머니는 청각장애까지 겪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 약값 등으로 15만원이나 나가서 보청기도 새로 사지 못했다. “그래도 너희들 때문에 겨우 살아. 따뜻하게 다녀.” 김 할머니는 추운 날씨에 산동네를 오르내리는 복지사를 되레 친딸처럼 걱정한다. 이곳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세입자들이다. 보증금 500만원에 20만원 안쪽의 월세를 낸다. 그러나 눈·비로 천장이 내려앉거나 담장이 무너져도 집주인들과는 연락이 안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집주인에게 연락을 못 하기는 세입자들도 마찬가지다. 강씨는 “수리가 되면 집세 오를 걱정에 연락 안 하고 위험하게 사는 게 여기 사람들의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나무도 여전히 훌륭한 땔감 중계본동 산 104번지에는 1670여가구 4000여명이 부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도 개발 열풍이 한창이다. 주택공사와 SH공사가 이곳을 수용한 뒤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여기 주민들은 대개 들어온 지 10년 정도 된 이들이다. 다른 달동네와 달리 젊은 사람들도 눈에 종종 띄는 이유다. 젊은 부부와 중년 부인은 물론 짙은 화장에 세련되게 빼 입은 아가씨들까지 다닌다. 하지만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여전히 어려운 사람들로 넘친다. 특히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이들도 많다. 도끼로 나무를 패고 있던 박상춘(50)씨는 “공사장 폐목이나 버려진 가구 등을 잘개 쪼개 난로 땔감으로 쓴다.”면서 “나무도 남아도는 데다 연탄값도 아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천막에 쌓아둔 나무에 불이라도 나면 동네 전체로 퍼질 것 같아 위험천만해 보였다. ●텃밭서 김장거리 수확 성북구 성북 2동 북정골은 가장 도심에 가까운 달동네다. 북악산 자락 서울성곽 바로 아래에 있다. 이곳은 비교적 다른 곳보다 생활 형편이 낫다. 기초생활수급자 숫자도 일반 동네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꼬불꼬불한 길과 쓰러져가는 집들, 그리고 생활고를 겪는 이웃들이 많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북정골에서 눈에 띄는 풍경은 텃밭이다. 가파른 경사나 집 뒤편 작은 공터에 마련한 밭에 배추나 파 등을 심었다.‘산사태의 원인인 농사를 짓다가 처벌될 수 있다.’는 구청의 경고문도 생활고 앞에서는 효력을 잃었다. 마침 서너평 남짓한 밭고랑의 배춧잎을 줍던 박순자(가명·57·여)씨는 “여기서만 열 포기 넘는 배추를 수확했다.”면서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데 이렇게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성북2동 사회복지사 이주안씨는 “자연환경과 함께 사는 북정골 주민들은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다행히 정이 많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달동네의 ‘대명사’ 하월곡동 산2번지. 한때 2000가구 이상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100가구도 채 안 남았다. 지난 9월 재개발 사업시행 인가가 확정되면서 주민들은 밀물 빠지듯 흩어졌다. 이 곳 장위중학교 맞은편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이진배(69)씨는 하월곡동 달동네 토박이다. 고향인 전남 곡성에서 40여년 전 상경한 뒤 여기서 쭉 지냈다. 하지만 이씨에게 이제 남은 건 걱정뿐이다. 가게와 조그만 집의 권리금은 8000여만원에 불과하다. 연립 하나 장만할 돈도 안 된다. 이곳을 떠나는 것도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씨는 “청춘을 보낸 하월곡동을 떠나는 게 시원섭섭하다.”면서 “마지막으로 설을 쇤 뒤 지방 쪽으로 거처를 옮길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두걸 고금석기자 douzirl@seoul.co.kr ■ 달동네의 유래는 ‘달동네’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한 정설은 없다.60∼70년대 신문에서 각종 개발 사업의 여파로 도심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나 형편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달이 잘 보이는 산자락에 천막을 짓고 산다는 의미로 ‘달나라 천막촌’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이 말이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가 방영된 이후부터 불량·불법 가옥이 몰려있는 산동네를 의미하는 대명사격으로 사용됐다. 당시 이 드라마는 어려운 처지 속에서도 서로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려 큰 인기를 누렸다. 사실 60∼70년대 ‘강제이주’된 철거민들에게 허락되는 것은 비바람을 겨우 피할 만한 천막 하나였다. 수도며 하수도, 부엌까지 공동으로 사용하며 어깨 너머로 옆집의 살림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주거환경은 열악했다. 달동네는 ‘주거환경개선’이나 ‘재개발’의 대상이었지만 도시 성장에 필수적인 노동력을 공급해주는 의미는 부인할 수 없었다. 청계천 주변, 청량리, 사당동, 봉천동, 행당동, 삼양동, 하월곡동, 상계동, 상도동 등 서울 곳곳에 자리잡았던 달동네는 80∼90년대 이후 대부분 높은 ‘아파트 숲’으로 변하게 됐다. 얼마 전까지 달동네의 대표격이었던 난곡도 이제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곧 경전철이 도입되는 ‘신도시’가 된다. 상계4동, 중계본동 등 일부 남은 지역들도 뉴타운이나 공공개발 등 개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달동네가 없어지면 원주민들은 어디로 옮겨가느냐는 것이다. 재개발 뒤 원주민들의 재정착률은 30% 남짓이다. 다른 대체 주택을 찾아야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달동네가 사라지는 상황이라 이주할 곳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 개발이 끝난 난곡의 경우 인근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방이 이전 달동네 주민 대부분을 흡수했다. 글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도움 인천 수도국산 박물관
  • 민노 의장석 점거 몸싸움 표결 30분만에 ‘탕 탕 탕’

    23일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동의안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실력 저지로 격렬한 몸싸움을 치르는 진통 끝에 가결 처리됐다. 국회 본회의는 민노당 의원들의 의장석 점거로 예정보다 30분 늦게 시작됐고, 반대 의원들의 격렬한 항의로 진행이 중간중간 끊기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막상 김원기 국회의장이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실력 지원’속에 표결을 강행하면서 30여분만에 속결 처리됐다.●비준안 상정부터 쉽지 않았다. 회의 시작 30분 전인 오후 1시30분 민노당 노회찬·단병호·이영순 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저지를 뚫고 본회의장에 입장, 의장석을 점거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경위들의 호위 속에 김 의장이 입장했고, 이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의장석을 점거한 민노당 의원들을 강제로 단상 아래로 끌어내리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영순 의원은 “왜 가슴을 만지냐.”면서 격렬하게 저항하며 단상 옆에 주저앉아 버텼고, 나머지 민노당 의원들이 합세하면서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다.●민노당 의원들이 발언대를 점거하는 바람에 제안 설명과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은 마이크 없이 찬성토론에 나섰다. 조 의원은 “맨발로 사는 닭발보다 더 험하게 사는 농사꾼 자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쌀협상이 농업과 농민 입장에서 100% 잘됐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협상을 안 받는 것보다는 받는 것이 낫다.”면서 국회의 ‘현명한 처신’을 호소했다.●민주당 의원들은 단상 앞에서 ‘처리 연기’라고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였다. 26일째 단식농성을 이어온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기력이 쇠한 탓에 단상 앞에 주저앉아 간간이 반대 구호를 외쳤다. 강 의원은 의장석 통로가 열린우리당 의원들에 의해 봉쇄당하자 단상을 뛰어넘으려고 시도하다 제지당하기도 했다. 김 의장은 몸싸움이 계속되자 컴퓨터 모니터를 통한 투표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 종전방식인 버튼식으로 진행했다. 비준안이 통과된 뒤 김 의장은 “불가피하게 통과했지만 다들 마음은 아프다. 세계의 일원으로 가는 길이라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박준석 구혜영기자 pjs@seoul.co.kr
  • [김후년의 클럽하우스] 사라지는 연말 골프모임

    한 해를 마무리짓는 연말. 예년 같으면 해가 바뀌기 전에 납회를 위한 골프장 부킹 때문에 동호회 총무들이 전화통과 씨름 깨나 해야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월례모임에 나오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납회 없이 해를 넘기는 동호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세 가지 정도. 비용 부담으로 월례모임이 외면받는 한편 아마추어 골프대회가 활성화됐고 해외 골프투어가 일반화되면서 겨울이라고 골프백을 처박아 두는 일이 없어졌다. 예전에는 같은 연습장에 다니는 회원들과 가까운 골프장에서 매월 한 두 차례 모임을 갖는 골프 애호가들이 많았다. 또한 90년대 후반 포털사이트 골프 동호회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월례모임이 가능하던 골프장 문턱이 높아졌다. 연부킹 자격이 골프장 회원으로 제한됐고 1인당 5만원에서 7만원의 식사와 시상품 구입 요구가 뒤따랐다. 또 많은 회원을 밑천삼아 용품회사에 시상품 협찬을 의뢰해 푸짐한 참가상을 안겨주던 포털사이트 골프모임도 회원들의 참여 열기도 식은 지 오래됐다. 부담은 늘고 나오는 사람이 줄어드니 모임이 꾸려질 수가 없다. 잦은 멤버 교체와 크고 작은 잡음 역시 월례모임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됐다. 대여섯 팀에서 서너 팀, 다시 한 두 팀으로 줄어드는 것이 요즘 월례모임의 모습이다. 월례모임 쇠퇴의 이면에는 최근 붐을 이루는 아마추어 골프대회도 한 몫 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아마추어 대회가 올해 열 두해를 맞이했듯 최근 주류, 카드, 자동차, 골프용품 업체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많은 기업들이 아마추어 대회 개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문을 잘 보고 주변에 소식 빠른 사람이 있으면 굳이 동호회에 나가지 않아도 푸짐한 참가상이 걸린 대회에 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일부 대회는 핸디캡 제약이 있지만 이를 확인할 방법도 없고 굳이 확인하는 경우도 없다. 그 날의 경기 내용을 바탕으로 핸디캡을 결정하는 신페리어 방식이라면 먼저 신청하는 사람이 임자다. 굳이 모임에 소속돼야 골프장을 찾을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난 셈이다. 골프투어 자유화 이전, 서리가 내리면 한 해 골프 농사는 끝이었다. 기를 쓰고라도 귀한 벗들과 골프장 연말 모임을 갖고 서너 달 방학의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이젠 시간과 돈만 있으면 언제든 따뜻한 동남아 등지를 찾아 하루 36홀 라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결국 세태의 변화가 한 해를 뒤돌아 보고 내년을 기약하던 연말 골프모임, 납회를 사라지게 한 것이다.골프 칼럼니스트 golf21@golf21.com
  • 어느 가정부의 인생 이력서

    어느 가정부의 인생 이력서

    한국 여성의 새로운 직업 시간제 가정부는 그 형태화된 역사가 1년 6개월. 그들은 오늘 어디까지, 어떤 모습에 이른 것일까. 그들이 그려나간 분포도를 가름해본다. 자기 말 가진 마부의 아내, 한때는 집도 장만했으나 마포「아파트」에서 5년 동안 시간제 가정부를 지낸 황완순(41·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씨가 살아온 발자취는 이러하다. 17세 때 황해도에서 농사꾼에게 시집을 간 황여인은 월남한 뒤 건장한 남편이 몇 필의 말을 끌어 집 한 간을 장만했던 기억도 가지고 있다. 말이 늙고 나면 개값도 못되는 것이어서 차차 밑바닥 생활까지 처져갔다. 남의 밑에 들어가기 싫어하던 남편도 마음을 고쳐먹고 5년 전에는 마포「아파트」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허리 다친 남편 앓아 눕자, 살아갈 길 찾아 나선 것이 일 나간 지 이틀 만에 허리를 다친 남편이 앓아 눕자 애 다섯을 앞에 놓고 앞이 캄캄했다. 무엇이든 할 용기가 났다. 남편을 마포「아파트」에 소개했던 사람에게 사정을 했다.『막일이라도 좋으니 일당을 받는 일을 해내겠다』고. 마포「아파트」어느 집에 처음 소개된 그 날을 황여인은 못잊는다고 했다. 내 집일 하듯이 해주고 1백원을 받아 든 뒤 보리쌀 한 되, 새끼줄 낀 연탄 1개를 사들고 집을 향하던 5년 전 6월 어느날 저녁을…. 서투른 일 솜씨가 빠르지는 못해도 알뜰하게 밝은 마음가짐으로 일해나갔다. 차차「아파트」안에서 인정을 받아 2백원의 일당을 받게 됐다. 다시 발전해서 하루 걸러 시간제로 일을 하기 시작한 게 2년 전. 한 달에 1천원을 받았다. 지금은 1천 5백원 정도. 남는 시간에는 또 다른 집을 돌고 해서 최고의 수입이 한 달에 9천 2백원을 모은 적도 있다. 세수 한번 하고 쓴 수건도 빨랫감이 되는 미국인 가정은 일이 많은 대신 하루 걸러 시간제로 한 달에 3천원씩 월급이 후해서 외국인 집을 좋아한다. 『「키」를 맡기고 연탄「바이」하는 것도 시키죠』- 이제는 웬만한 외마디 영어도 할 줄 알게 됐다. 미국인들은 한번 믿으면 이사할 때 꼭 다른 집에 소개해주곤 한다는 것. 아침 9시에 직장 마포「아파트」로 출근. 이 집 저 집 연탄 갈 시간, 필요로 하는 시간을「스케줄」짜놓고 한 바퀴 돌고 나면 하루 일이 욕스럽게 여겨지지 않고 저녁 6시쯤이면 끝난다. 그동안 복직이 된 남편도 같은「아파트」에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이 집 저 집 일 도와주고 저녁 6시 퇴근 끝나면 함께 퇴근을 해도 좋은 철저한 맞벌이 부부. 남편의 고정수입 7천 9백원은 고스란히 살림에 쓰고 황여인이 버는 돈은 주로 아이들 기르는데 쓰고 있다. 23세 된 딸은 시집을 보낼 마련도, 국민학교만 졸업한 19세 아들에게는 편물 기술도, 15세 딸은 중학교 3학년, 13세 딸이 국민학교 6학년, 7세 막내아들, 다섯 아이를 부모가 해줘야 될 만큼 뒷바라지도 해주는 생활이 됐다. 황여인과 같은 생활의, 다른 여인은 마포「아파트」만도 5명이 넘는다. 주부가 제일 바쁜 시간이 아침 9시 전과 저녁 6시 후라면 이들 가정주부들은 주부가 해야 될 일만을 남겨놓고 힘든 일만 처리해주는 살림 보조원. 훈련된 믿을만한 시간제 가정부가 각 가정에 골고루 침투될 때 식모가 들고 들어오던 밥상, 식모가 깔던 잠자리는 이래서 서서히 우리 생활에서 멀어지게 될까 싶다. 믿을 수도 없고 훈련도 안된 시간제 가정부라면 사설 소개소에서 잠깐 하루만 빌어 밀렸던 산더미 같은 일을 내맡겨도 되는 사람 정도로 알아온 것이 67년 12월 14일 이전이다. 서울 YWCA에서는 여성들만의 모임에 가장 많은 화제가 되어오고 출석에 지장을 가져오는 큰 문제가 식모 때문에 생기는 것. 우선은 회원들을 위해서 식모를 훈련하기 시작했다. 67년 12월 14일 국민학교를 졸업한 신원이 확실한 11명을 모아 10일간 교육을 시켰다. 이들 11명에게 그릇 집약된 식모의 통념을 깨뜨려 주고 새로운 직업의식을 불어 넣는데 고심했다. 믿을 수 있고 훈련된 시간제 가정부는 그 후 지금까지 7회 동안에 139명이 각 가정에 주선됐다. 이들 말고도 각「아파트」단위로 그 나름대로 훈련된 가정부가 괘 많은 수가 됐다. 가정부는 어엿한 직업인, 오히려 고용주 계몽해야 20~50세까지의 이들 가정부는 거의 가정부인이라는 것. 그래서 철저하게 부업처럼 여기면서 일하게 됐다. 이들은 아침 9시에 출근, 저녁 6시에 퇴근을 하면서 일당 250원을 받는 직업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에티케트」에서 위생·요리·아이보기까지 교육받은 이들을 부리는 쪽은 전혀 훈련이 안돼 있다는 것. 앉아서 쉬던 주부는 밥을 먹고, 일을 한 가정부는 라면 한 그릇으로 점심을 지나게 하는 등. 이제는 직업인을 고용하는 고용주도 계몽 받을 때가 온 것 같은 느낌. 또 가정부들이 원하는 집은 일하기 편한 집이다. 동선(動線)이 최단거리로 개선된 부엌의 주인은 일하는 주부의 것. 물론「싱크」대, 조리대 등이「딜럭스」한 비싼 부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선반 하나 발판 하나라도 편한 곳에 받쳐 있다는 것. 서울 YWCA에서는 아기보기 전문, 빨래하기 전문, 요리하기 전문 등 분업화해서 여대생을 집단 훈련시킬 계획 중이란다. 남의 가정생활도 몸에 익힐 겸 여대생의「아르바이트」로 권장해도 욕되지 않을 하나의 직업이 됐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 선데이서울 69년 4/13 특대호 제2권 15호 통권 제29호 ]
  • 지주회사 올 1년 경영 성적표는

    지주회사 올 1년 경영 성적표는

    ‘지주사들의 1년 농사 실적은?’ 자회사의 실적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지주사들의 올 성적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적 지주회사인 ㈜LG와 GS홀딩스, 농심홀딩스,㈜STX 등 4개사의 실적과 주가를 비교해보니 경영실적으로는 GS홀딩스가 가장 앞서가고 있다. 주가는 지난해 말보다 100%가량 폭등한 STX가 선전을 펼치고 있다. ●경영 실적은 ‘GS홀딩스’ 지주사의 수입은 지분법 평가이익과 임대수익, 배당수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자회사들의 경영실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있어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 지주사의 성적표이다. 지주사 4개사 가운데 경영 실적은 GS홀딩스가 가장 눈에 띈다. 올 3·4분기 실적만 보면 순이익이 91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39억원)보다 무려 70%가량 뛰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GS홀딩스의 실적 예상치를 매출액(영업이익)이 4200억원, 영업이익 4052억원, 순이익은 39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보다 매출액(2739억원)은 53%, 영업이익(2607억원) 55%, 순이익(2415억원)은 61%씩 각각 늘어난 것이다.GS홀딩스의 올 3·4분기까지의 매출액은 3019억원, 영업이익 2689억원, 순이익 2659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LG의 성적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올 3·4분기까지의 경영 실적은 매출액 3401억원, 영업이익 2384억원, 순이익 2364억원이었다. 지난해 매출액이 8367억원, 영업이익 7823억원, 순이익이 7823억원을 기록했던 LG로서는 올 4·4분기 실적을 감안하더라도 지난해의 절반 수준을 겨우 채울 전망이다. 증시 관계자는 “주력사인 LG전자와 LG화학의 실적 부진이 ㈜LG의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642억원과 순이익 591억원을 기록했던 농심홀딩스는 올 3·4분기까지 영업이익 1051억원, 순이익 814억원을 올렸다. ●주가는 ‘STX’ ‘주가 성적’은 STX가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대우증권에 따르면 STX의 지난 18일 종가는 1만 3700원으로 지난해 12월30일 종가(6820원)보다 갑절 뛰었다. 반면 뛰어난 경영 실적을 기록중인 GS홀딩스의 주가는 썩 재미를 못보고 있다. 지난 18일 2만 2850원을 기록해 지난해 말(2만 2400원)보다 겨우 450원 올랐다.㈜LG와 농심홀딩스의 주가는 2만 6850원과 25만 4500원을 기록해 지난해 말보다 각각 58%,2% 올랐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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