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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PPY KOREA] 주민 참여는 이질감 극복의 힘

    [HAPPY KOREA] 주민 참여는 이질감 극복의 힘

    ● 등산로 ‘한마음’ 정비 진해 석동마을 토착민-아파트주민들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이질감을 극복하고 공동체 의식을 싹틔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동네 이웃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먼저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았느냐에 따라 상대를 바라보는 눈길은 다르다. 서로 섞이기도 쉽지 않다.‘굴러온 돌, 박힌 돌’논란을 잠재우려면 계기가 필요하다. 경남 진해시 석동 석동마을 주민들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텃세’ 토착민,‘대세’ 아파트주민 석동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배윤 장군의 후손들이 터를 잡은 분성 배씨 집성촌이었다.1945년 광복 직후에는 ‘일본인 추방운동’을 처음으로 주도할 정도로 주민들 사이에서 결속력과 유대감이 강했다. 특히 196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당시 받은 정부지원금 50만원을 허투로 쓰지 않고 땅에 ‘재테크’했다. 이 돈은 무럭무럭 자라나 지금은 마을 소유의 토지·기금만 5억원을 넘는다.3.3㎡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 동사무소(부지 2000㎡)도 주민들이 기부채납한 땅에 지었을 정도다. 주민 수가 200여명이 고작이던 마을에 개발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대 중반. 택지개발이 이뤄지면서 주민 소유의 논밭에 진해시청을 비롯한 행정기관들이 속속 들어섰다. 이어 2000년대 이후에는 창원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대규모 아파트 건립이 줄을 이었다. 이에 따라 지금은 4000여가구,1만 500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70% 이상이 아파트 입주자이다. 기존 토착민과 신규 아파트주민들은 마을 일을 결정하는 주민자치위원회에 더 많이 참여하기 위해 ‘세 싸움’을 벌이는 등 갈등이 커졌다. ●공동체 의식을 일깨운 등산로 복원 지난해 ‘참살기좋은 마을가꾸기’사업 차원에서 마을 뒷산인 장복산 등산로 1.5㎞ 구간을 정비하면서 토착민과 아파트주민간 소통의 물꼬를 텄다. 옛 웅천현감이 한양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치던 길을 복원했다던 역사성도 뒷받침돼 자긍심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등산로는 주민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우선 등산로 입구, 산불 감시원이 있던 허름한 비닐 움막 터에는 등산객을 위한 쉼터를 조성하고 마을을 상징하는 장승도 세웠다. 이를 통해 지난해부터 장승제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또 등산로 자투리 공간에 돌탑이나 석축을 쌓고 체육소공원·야생화체험장·약수터 등도 꾸몄다. 진해만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 중턱에는 돌탑 전망대도 세웠다. 주민 배종권씨는 “등산로 정비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주민들이 만나고 얘기를 나누는 계기가 됐다.”면서 “이를 통해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생겨 갈등이 화합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진해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공터에 ‘화합’ 꽃동산 거제 옥포아파트 임대거주 주민들 아파트는 구조적으로 폐쇄적인 탓에 ‘단지는 있어도 문화는 없다.’는 표현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하물며 소속감이 떨어지는 임대아파트는 더욱 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조선강국 코리아’를 이끌기 위해 전세계에서 몰려든 이방인들로 가득찬 경남 거제시 옥포1동 옥포아파트는 이같은 선입견을 허물고 있다. 옥포아파트 단지 곳곳에 조성된 야생화·동물농장·시골풍경 체험학습장 등을 둘러보는 주민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소통보다 무관심에 익숙했던 임대아파트 벽안의 외국인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 주고받는 눈인사를 통해 서로 이웃임을 짐작케한다. 옥포아파트가 애초부터 이런 모습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옥포아파트는 ㈜대우조선해양이 사원들을 위해 지은 임대아파트이다.1981년 550여가구가 들어서 거제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아파트단지 중 한 곳이다. 단지 안에 호텔과 골프장 등이 위치할 정도로 여건은 뒤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최대 5년까지 살 수 있는 만큼 분양아파트에 비해 주민들의 주인의식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또 전체 가구의 4분의1인 150여가구는 외국인들로 채워져 반상회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거제군청 관계자는 “지난해 참살기좋은 마을가꾸기 사업비를 아파트단지에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느냐는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가 도시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만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에 따라 지원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의식의 전환을 이끌어낸 공간의 변화 이에 따라 주민들은 단지내 공터를 꽃동산과 쉼터로 탈바꿈시켰다. 외국인 이웃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단지내 현황판이나 표지판 등을 모두 국문과 영문으로 함께 제작했다. 바자회도 열어 2000여만원의 수익금 전부를 불우이웃돕기에 쾌척했다. 이헌 거제대 교수는 “주민들이 정례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 아이템을 결정하고 있다.”면서 “서민아파트의 방치 공간이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야겠다는 인식이 번지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한 해 지원을 약속했던 행정기관도 주민들의 열의를 반영해 올해도 지원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원금이라고 해야 2000만원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전세계에서 모여든 ‘입주자’들을 ‘이웃’으로 묶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교수는 “도시안에서 살기좋은 마을에 대한 고민도 이뤄져야 할 때”라면서 “초기에는 물리적 환경 등 하드웨어 중심으로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지만, 이를 계기로 주민들의 정서적 측면 등 소프트웨어에 미친 영향을 분석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거제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기고- 태풍이 휩쓴 마을 ‘손에 손잡고’ 복구 우리 마을은 해발 2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94가구,289명의 주민들이 척박한 땅에서 축산업과 밭농사로 생활하는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다. 심지어 제주를 대표하는 작물인 감귤의 경우 표선면 일대가 주산지임에도, 우리 마을만 표선면에서 유일하게 감귤 재배가 안 되는 곳이다. 갈수록 공동체 의식은 약해지고, 마을일에는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9월 제주를 강타한 태풍 ‘나리’에 의해 농경지가 유실됐다. 수확을 앞둔 더덕·콩 등 농작물이 쓸려가고 도로·교량 등이 훼손됐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이 범람하면서 자매가 휩쓸려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겪었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복구할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참살기좋은 마을가꾸기’사업이 눈 앞에 닥쳐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온 주민이 합심해 태풍 피해에 대한 복구 활동을 펼쳤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복구작업이 불과 한달여만에 마무리됐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진 주민들은 농번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을가꾸기 사업에 곧장 뛰어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새벽 5시부터 우리 마을 주민들은 깨어났다. 마을 진입로 주변 공터에 자연경관과 어울리는 자연석·잔디·해송 등 향토 수종을 심은 마을공원을 조성했다. 태풍으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한 하천변도 깔끔하게 정비했다. 또 집집마다 제주도 특유의 정주목·정낭도 다시 만들었다. 정낭에 정주목이 1개만 걸쳐있으면 주인이 잠깐 외출했다는,2개가 걸쳐있으면 좀 긴 시간 외출했다는,3개 모두가 걸쳐있으면 종일 출타했다는,1개도 걸쳐있지 않으면 집에 있다는 의미를 각각 담고 있다. 이렇듯 제주에서 정낭·정주목은 주민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수단이었다. 정낭·정주목 복원은 신뢰와 인심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고 태풍으로 인해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복구 사업과 마을가꾸기 사업을 통해 그간의 힘들었던 일들을 삭힐 수 있었다. 우리 마을 이웃들은 이제 과거를 얘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더불어 잘 살 수 있을지, 마을공동기금을 어떻게 쌓고 활용할지, 필요한 공동생산시설은 무엇인지 등 미래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우리 마을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변화와 발전의 시작인 셈이다. 윤순동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2리 주민
  • 손톱 깎기

    손톱 깎기

    “정란아, 니네 할머니 죽게 생겼다. 먹는 거 다 게워내고, 어쩐디야.”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지만 회사 일 때문에 지난주 공휴일이 겹친 날을 잡아 할머니를 뵈러 갈 수 있었습니다. 7시간 걸려 병원에 도착해 할머니를 본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우리 정란이만큼 야무진 손녀 또 없다, 아들보다 낫다” 하시던 할머니 앞에서 내가 눈물을 보이면 여리디여린 우리 할머니 또 얼마나 우실까 싶어 꾹 참았습니다. “나가 여그에 요라고 있응께 손톱을 못 깎긋다. 고모헌티는 말 못 허것고 니가 왔응께 가시게 좀 사다줄래? 나가 손톱깎이는 써본 적이 없응께 꼭 가시게를 사와야 헌다.” 나는 가위 대신 손톱깎이를 샀습니다. 이번 기회에 할머니 손톱을 깎아드리려고요. 남자친구 손톱 손질은 해줬으면서 아직 할머니 손톱은 한 번도 깎아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아따, 가시게 없디. 이 손톱을 니가 깎아주것다고? 그려, 한번 해볼래, 그럼.” 힘든 농사일로 뼈밖에 남지 않은 손을 잡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할머니, 내가 발톱도 깎아줄게.” “안디야. 이 지저분한 걸, 나 안적 씻지도 못했는디….” 양말을 벗은 할머니 발을 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한겨울 소나무 껍질마냥 쩍쩍 갈라지고 발톱은 다 닳아서 어디가 발톱이고 살인지 구분이 어려웠습니다. 참다못한 눈물이 흘렀습니다. “할무니, 발톱은 안 깎아도 되것어.” 결국 나는 할머니의 발톱을 깎지 못했습니다. “정란아, 인제 가믄 언제 볼지 모릉께 한 번 더 보자. 추석 때는 올 수 있것냐? 너는 일이 바쁜께 못 오믄 어쩔 수 없고. 이 할무니 신경 쓰지 말고 회사에 잘해야 혀.”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당께.” “알쟈. 우리 정란이는 잘하니께 걱정 안 혀” 하며 할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은혜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 딱딱해진 발이 누구 때문인지,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할머니는 늘 고맙다고만 하십니다. “할무니는 만날 니만 잘살면 돼 했잖아. 근데 내가 잘되려면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아프면 안 돼. 알았지?” 2008년 8월
  • 장마를 이기는 야생초를 아시나요

    장마를 이기는 야생초를 아시나요

    텔레비전에서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더니 하루 종일 비가 내립니다. 매년 요맘때면 풋고추며 애호박 따위의 푸성귀들이 얼마만큼 자라 맛나게 부침개를 부쳐 먹습니다. 별 양념이 없어도 소금 간을 한 밀가루 반죽에 싱싱한 푸성귀를 넣고 부쳐 먹는 부침개는 심심한 입을 달래기에는 충분합니다. 이왕 손에 밀가루를 묻히는 거 어머니는 양푼 가득 반죽을 만들어 이웃들에게도 돌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입이 소태같이 써 그 맛난 부침개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복분자 농사는 대부분 장마와 함께 끝을 맺습니다. 아직 넝쿨마다 여남은 복분자가 남아있지만 대부분 장맛비에 녹아내릴 것입니다. 비가림 시설을 했다고 하더라도 날이 궂으면 열매에 곰팡이가 생겨 내다 팔 수 없습니다. 올해는 참 힘든 농사를 짓습니다. 고창 지역 대표 특수작물 복분자는 냉해를 입어 작년에 비해 작게는 15%에서 많아야 50%를 밑도는 수확량이 고작입니다. 몇 해 전부터 고소득 작물로 복분자가 관심을 받고, 많은 지역 사람들이 경작하던 밭에 복분자를 심어두었는데 망연자실 손가락만 빨게 생겼습니다. 복분자 팔아 딸내미 여운다던 아짐, 서울에 취직한 아들 사글세방 보증금을 마련하겠다던 아재. 참말로 환장할 노릇입니다. 마음도 뒤숭숭하고, 비도 오고. 삽자루 하나 들고 논으로 물꼬를 보러 나갑니다. 미리미리 물꼬를 봐두지 않으면 방천(논에 물이 넘쳐 둑이 무너지고, 벼가 불어난 물에 쓸려 가는 일)이 날지도 모릅니다. 마을 앞 논에는 저보다 일찍 나온 동네 어르신들이 비옷을 입고 논일을 보고 계십니다. 저도 부지런을 떤다고 하는 편이지만, 논을 돌보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아직 농사꾼이 되려면 한참 먼 일인 것 같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논에 심어둔 벼들이 초록을 입습니다. 비가 내린 다음날이면 벼는 한 뼘은 자랍니다. 이것들 자라는 거 보면 또 맘이 흐뭇해집니다. 야생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그친 후 잔뜩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면 그 작은 몸으로 장대비를 이겨낸 것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더욱 맑고 선명한 빛을 냅니다. 야생초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여름을 알리는 야생초로는 산수국, 연꽃, 패랭이, 달개비(닭의장풀), 모싯대, 참나리 등이 있습니다. 이중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는 산수국과 연꽃, 달개비 등입니다. 산수국은 6월에서 8월경 주로 야산에 많이 피는데, 생김새는 깨알 같은 진한 청색의 꽃들을 두고 가장자리에 네다섯 개 꽃잎을 가진 연한 청색의 꽃이 나비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늘을 닮은 푸른색이 참 예쁩니다. 근데, 산수국에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진짜 꽃과 가짜 꽃이 있다는 겁니다. 가장자리의 나비 모양 꽃이, 암술도 수술도 없는, 다시 말해 꽃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는 ‘가짜 꽃’입니다. 산수국은 이 가짜 꽃으로 벌이나 곤충을 유인하여 종을 번식시킵니다. 진짜 꽃이 너무 작아 벌과 나비를 유인할 수 없으니 눈에 잘 띄는 ‘가짜 꽃’을 개발한 모양입니다. 농수용으로 담아둔 논에는 연꽃이 한창입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 피면서도 맑고 청아한 맛이 있어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곳도 연단이며, 옛날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졌다가 환생한 꽃도 연꽃입니다. 지금은 군것질거리가 많아 천대 받지만 먹을 것이 귀했던 옛날에는 연꽃 열매인 연밥은 아이들에게 좋은 간식거리였습니다. 지금도 연 뿌리는 연근이라 하여 귀한 음식입니다. 닭의장풀도 여름을 대표하는 야생초입니다. 주로 파랑색 꽃이 피는데, 그 모양이 닭의벼슬을 닮기도 했지만 닭장 주변에 많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야생초가 그렇지만 이 녀석도 생명력이 질겨 뽑아도 완전히 말려 죽이지 않으면 금세 다시 땅으로 뿌리를 내립니다. 닭의장풀은 약용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커다란 주전자에 끓여 차처럼 마시면 당뇨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 밖에 초여름의 숲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꽃나무가 있는데, 분홍 실을 풀어놓은 듯한 꽃잎을 부챗살처럼 활짝 펼쳐 놓은 자그마한 꽃이 특징인 자귀나무입니다. 잎은 낮에는 옆으로 퍼져 있으나, 밤이나 흐린 날에는 금세 입을 접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모습이 꼭 잠을 자는 귀신처럼 생겼습니다. 또 자귀나무는 합환목(合歡木)·합혼수(合婚樹)·야합수(夜合樹)·유정수(有情樹) 등으로 불리며, 그 이름은 부부의 금실을 뜻하기도 해 집안에 심어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꼬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장마가 어느 정도 지나면 논에 비료를 뿌려야 합니다. 논에 들어갈 비료의 양을 계산하다보니 또 한숨이 나옵니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비료값이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비료의 종류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올해만 들어 60~101%까지 올랐습니다. 12,000원 하던 요소비료는 이제 20,700원이나 합니다. 천정부지로 뛰는 비료 값은 떨어질 줄 모르고 앞으로 더 오른다고 합니다. 사안이 이러다 보니 비료를 사재기 하는 현상도 빈번이 일어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비가림시설(하우스)에 들어가는 철재 값은 220%나 올랐습니다. 이것저것 계산해 보니 일 년 벼농사 지어봐야 200평에 소작료를 빼고 나면 8천 원 가량이 남습니다. 어쩌다 보니 하늘 잔뜩 흐린 날, 좀 무거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가 지나고 나면 활짝 피는 야생초처럼, 농민들이 얼굴도 활짝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주영태 농부 글쓴이 주영태 씨는 전라북도 고창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찍으며 살아가는 젊은 농사꾼입니다.
  • 프로배구 28일 양산서 ‘스파이크’

    한국 남녀 배구대표팀은 베이징에 초청받지 못했다.44년 만의 남녀 동반 탈락이었다. 야구, 핸드볼 등이 올림픽을 통해 전국민적 열광을 받는 모습을 씁쓸하게 TV로 지켜보며 설움과 아쉬움을 곱씹었다. 그리고 실력과 인기에서 ‘배구 부흥’의 뜻을 천 번, 만 번 되뇌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28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경남 양산에서 2008IBK기업은행배 양산프로배구(이하 양산대회)가 열린다.08∼09시즌 이전 팀간 전력을 점검하는 한편, 정규리그에서 배구를 접할 수 없는 ‘배구 소외지역’에서 배구팬들과 만난다는 의미도 있다. 늘 뒤에서 1,2등을 다투던 한국전력과 상무의 변신은 경기의 박진감을 한층 더할 전망이다. 프로 전환 원년의 한전은 비록 문성민(22)의 해외진출로 한껏 부푼 꿈이 어그러지기는 했지만 신인과 용병의 영입을 통해 전력을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상무 역시 27일 신협중앙회를 메인 스폰서로 두며 ‘신협상무배구단’으로 새롭게 출범한다.2년 동안 연 3억∼5억원 정도를 지원받으며 코치 영입, 선수단 복지향상을 꾀한다. 또한 490만 신협조합원을 ‘잠재적 서포터스’로 두며 아마추어 초청팀 신분이지만 사실상 ‘준 프로’의 성격을 띤다. ‘용병농사’의 작황에 따라 팀 성적도 출렁인다. 남자부의 대한항공과 한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인 선수 계약을 마쳤다. 이들 중 삼성화재 안젤코 추크(25·크로아티아)를 빼면 모두가 새 얼굴. 양산대회부터 그들의 면면과 활약상을 직접 볼 수 있다.특히 LIG손해보험의 라이트 공격수 카이 반 다이크(24·네덜란드)의 키는 무려 214㎝. 역대 한국을 거친 용병 중 가장 크다. 현대캐피탈은 매튜 존 앤더슨(21·미국)을 데려왔다. 김호철 감독이 “숀 루니보다 잘 생겼고, 더 잘한다.”고 말할 정도로 스타마케팅에 대한 기대도 크다. 특히 이번 양산대회에는 여자부에 아마추어팀 양산시청이 주최팀 자격으로 참가한다. 기존의 프로팀과 전력 차이는 불가피하겠지만 양산시청의 ‘깜짝 활약’이 흥미를 더함이 확인될 경우 향후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 아울러 통합챔피언을 가리는 ‘프로암컵’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도 있다. 이 밖에 여자부에서 운용되던 ‘2점 백어택’이 양산대회부터 없어진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성근, 영화 ‘실종’서 절대 악역으로 변신

    문성근, 영화 ‘실종’서 절대 악역으로 변신

    배우 문성근이 공포스릴러 영화 ‘실종’(감독 김성홍ㆍ제작 활동사진)을 통해 절대 악역에 도전한다. 특유의 지적이고 냉철한 이미지를 가진 지성파 배우 문성근은 이번 영화를 통해 반듯한 이미지를 벗고 허름한 농사군 차림에 눈빛에는 독한 살기가 어린 60대 촌부 판곤 역으로 파격 변신한다. 판곤은 인적이 드문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60대 촌부로 어느 날 그 마을에서 연쇄적으로 실종사건이 발생하고 노모를 모시고 사는 그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겉으로 보이는 평범함과는 달리 내면의 잔악 무도함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문성근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거친 액션 연기은 물론 잔혹한 표정, 섬뜩함까지 절대 악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한편 2007년 여름 실제 일어났던 연쇄살인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 ‘실종’ 은 실종된 동생을 찾기 위해 외딴 마을을 찾은 현정(추자현 분)과 유력한 용의자인 판곤(문성근 분)의 대결을 그린 작품으로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 사진=활동사진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반도最古 청동기시대 관개수로 발견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기원전 10세기 무렵 청동기시대 저수지가 발견된 경북 안동 저전리 유적에서 같은 시대 농경용 관개수로의 흔적이 확인됐다. 청동기시대 수로 유적으로는 처음이자 최고라는 점에서 한반도 선사시대 농경문화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받는다. 동양대박물관은 25일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국도 5호선 서호∼평은 구간에 포함된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광평리 일대 ‘저전리 유적’에 대해 제2차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시대에 조성한 저수지 2곳이 계곡 상류와 하류에 서로 잇닿아 조성된 흔적을 확인했으며, 관개용 수로 유적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2005∼2006년에 실시한 제1차 조사에서는 계곡 하류에 위치한 ‘1호 저수지’(너비 15m 안팎, 길이 60m) 외에도 상류 인접 지점에 또 다른 ‘2호 저수지’의 일부 흔적을 확인했다. 당시에는 전체 규모가 밝혀지지 않았던 데다,1호 저수지가 폐기된 직후 그 대용으로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했다. 조사단은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 토층 양상으로 볼 때 이 두 저수지는 같은 시기에 존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저수지 평면 구조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인 것은 “물을 더 많이 가두고 물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수온을 높여 벼의 냉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저전리 유적에서는 저수지 외에도 1차조사에서 나무로 만든 절굿공이와 목제 따비 유물이 출토됐으며,1호 저수지에서는 다량의 볍씨가 수습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관개수로가 만들어진 시기를 기원전 10세기 무렵으로 추정하는 것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권구 계명대 박물관장은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 볼 때 기원전 10세기가 아닌, 기원전 6∼4세기 무렵 농사에 이용하기 위해 물을 가두는 보(洑) 형태의 시설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규환·대구 김상화기자 khkim@seoul.co.kr
  • (46) 짜트, 과연 신의 선물인가

    (46) 짜트, 과연 신의 선물인가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자동차로 하루가 꼬박 걸리는 곳으로 여행을 할 때다. 세 명의 에티오피아 친구들과 동승을 했는데 길가에서 풀잎사귀를 한 다발씩 사더니 다들 가는 내내 그 이파리를 뜯어 씹는 게 아닌가. 한번 씹어보라며 내게도 몇 잎 떼어 주는데 씹어보니 쓰기만 하고 영 무슨 맛인지를 몰라 퉤, 하고 뱉어냈더니 다들 박장대소를 한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게 바로 ‘짜트Qat(Chat, Jaad, 혹은 Khat)’라는 거였다. 짜트(학명 Catha edulis)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동아프리카 일부와 예멘을 비롯한 남아라비아반도에 은밀하게 보급되고 있는 마약류성 식물이다. 짜트에는 케친cathine과 케치논cathinone이라는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데, ‘유엔 향정신약에 관한 조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Psychotropic Substances)’에 따르면 두 가지 모두 복용이 금지되는 품목들이다. 미국, 캐나다,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예멘을 제외한 중동 대부분의 지역에서 짜트는 법적으로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의외로 영국에서 짜트의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마약류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며, 짜트가 알코올이나 서구에서 취급되는 마약류의 대용품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마약류성 식물이라고는 하지만 짜트는 마리화나나 코카인과 비교했을 때 그 작용이 그리 세지 않다고 한다. 담배처럼 중독성도 없고, 짜트를 씹지 않는다고 해서 금단증세가 있는 것도 아니라 에티오피아에서는 짜트가 합법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게다가 졸림방지와 정신을 집중하는데도 뚜렷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난 외국인들 중에 짜트 매니아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는데 주로 장거리 운전할 때나 야근이 필요할 때 짜트를 씹는다고 한다. 짜트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많지만 현재까지는 에티오피아라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짜트는 커피와 마찬가지로 짜트의 각성작용에 일찍 눈을 뜬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에게 애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씹으면 잠이 안 오고 기도할 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짜트는 신의 선물로 간주되어 에티오피아, 예멘, 아라비아 반도에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커피가 17세기 이후 유럽에 크게 유행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짜트는 아직까지 커피만큼 그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짜트는 신선할 때 그 효과가 나타나는데 건조보존이 가능한 커피와는 다르게 유럽이나 먼 지역까지 신선한 상태로 짜트를 운반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짜트를 말려 파우더 형태로 만들어 수출한다는 얘기를 현지인한테 들었는데 실물은 본 적이 없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마실 때 독특한 의식을 치르며, 이를 ‘커피세러모니’라고 부른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세러모니는 단순하게 커피를 마시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통합적인 기능까지 담당하고 있다. 커피세러모니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연령, 성별, 종교, 빈부의 격차없이 모두가 한자리에 앉아 그 공간과 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짜트도 커피와 마찬가지로 ‘짜트세러모니’라는 게 있으며, 짜트를 함께 씹으면서 공동체의식을 느끼고, 이렇게 형성된 연대감이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서로를 하나되게 만든다고 한다. 이런 사회문화적인 배경과 함께 짜트는 에티오피아에서 환금성작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손이 많이 가는 커피와 다르게 짜트는 농사가 비교적 수월하며, 고품질 짜트의 경우 커피가격의 몇 배 이상으로 판매가 가능하다. 국제커피 가격이 널뛰기를 하는 통에 커피농가가 마음 편할 날이 없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최근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대신해 짜트를 심는 농가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양가죽, 콩종류의 곡식에 이어 현재 짜트도 합법적인 수출품목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러나 짜트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한참 씹으면 입안이 진한 녹색으로 물들어 미관상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감각이 예민해지고, 정신집중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잎을 따서 씹는 행위자체도 영 폼이 안 난다. 그리고 짜트를 심은 땅은 금방 토질이 나빠져 다른 농사를 짓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럼에도 커피 농사를 관두고 다들 짜트 농사에 나서는 추세라면 에티오피아산 커피가 금값이 될 날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 짜트는 마약류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지만 현재 학술적인 차원에서 짜트를 약용으로 상품화 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마른 잎이든 파우더 형태든 현재까지 우리나라 법으로는 짜트를 소지한 채 인천공항을 통과할 수 없다. *참고: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Psychotropic Substances [유엔 향정신약에 관한 조약] 1961년 마약에 관한 단일조약이 채택되고 난 뒤 10년 후인 1971년 2월 [유엔 향정신약에 관한 조약]이 채택되었다. 이 조약은 단일조약이 규제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물질(마약, 아편, 대마) 이외의 환각제, 진통제, 각성제, 수면약, 정신안정제 등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규제가 없었던 이러한 물질에 관해서도 국제적 규모에서의 통제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하에 체결된 것이다. (출처: (재)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http://www.drugfree.or.kr/)         <윤오순>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김홍도의 ‘길쌈’(그림 1)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고, 또 길쌈하는 그림인 줄은 누구나 다 안다. 그림 2는 유운홍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길쌈’이란 작품인데, 김홍도의 그림과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길쌈하는 그림은 제법 많이 전하고 있다. 다만 이제 길쌈이란 말 자체가 거의 사어(死語)가 된 형편이다. 예순이 넘은 분들만이 이 그림을 별다른 설명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하의 연배, 그리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길쌈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분들을 위해 무명 짜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 봄에 목화를 심어 가을에 목화꽃을 거둔다. 목화꽃이 곧 목화솜이다. 목화솜에는 씨앗이 들어 있어서 실을 그냥 뽑을 수가 없다. 씨아를 이용하여 씨를 빼내고, 활로 솜을 탄다. 탄다는 것은, 활줄로 퉁겨서 솜을 부풋하게 부풀리는 것이다. 그 다음 넓은 판대기 위에 목화를 올리고 수수깡 같은 것을 30㎝쯤 잘라 심으로 삼아 손으로 밀면 기름한 솜덩이가 된다. 이것을 물레에 걸어 실을 뽑는다. 이 실을 막 바로 베틀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림 1의 위쪽을 보면, 실을 길게 메고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바르고 있다. 풀이다. 실이 엉키지 않게 풀을 먹이는 것이다. 여자의 오른손 아래쪽에 있는 것은 숯불이다. 풀을 말리는 것이다. 이렇게 풀을 먹이는 것을 베매기라 한다. ●지루하고 고된 노동 노래로 털고 씻어 베매기를 한 실이 날줄이 된다. 이 날줄을 도투마리(베틀 가장 왼쪽에 실을 묶은 부분)에 맨다. 이제 씨줄을 만들 차례다. 날줄을 둘로 나누어 엇건 뒤에 그 사이의 공간으로 씨줄을 통과시키면 천이 되는데, 이 엇건 공간으로 넣는 것이 곧 북이다. 북에 들어갈 씨줄은 따로 감아둔다. 북을 날줄 사이로 통과시키는 것은 씨줄을 넣는 것이다. 씨줄이 들어가면 바디를 내려 쳐서 천을 단단히 짠다. 조선시대의 피륙에는 비단, 삼베, 모시, 무명이 있었다. 무명은 알다시피 고려 말에 문익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명은 농사짓기가 쉽고 피륙을 짜기도 수월하며, 또 보온성이 뛰어나 이내 삼베나 모시, 비단을 물리치고 가장 많이 생산하는 피륙이 되었다. 여기서 무명 짜는 것을 예로 든 것도 무명이 가장 일반적인 옷감이었기 때문이다. 삼베나 모시, 비단은 실을 얻는 과정이 다를 뿐 짜는 원리는 동일하다. 그림 1과 2에 등장하는 길쌈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이다. 조선시대의 수신교과서 ‘소학’은 아예 여성을 조리와 직조(織造)하는 존재로 규정하였고, 특별히 귀한 가문의 여성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여성은 두 노동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다.‘소학’이 아니라 해도 조리와 직조를 여성이 맡았던 역사는 아마도 인류 역사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그 기원의 흔적을 찾자면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 9년 조다. 유리왕은 나라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고 자신의 딸을 각 패의 우두머리로 삼게 한다. 그리고 7월16일부터 매일 아침 가장 큰 고을의 뜰에 모여 밤 10시 쯤까지 길쌈을 하게 한다.8월15일에 그 성적을 따져 진 패가 이긴 패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게 한다. 이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온갖 놀이를 벌인다. 이것을 ‘가배’라고 한다. 진 패의 여자는 일어나 ‘회소, 회소’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아름답고 구슬퍼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회소곡’이란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 ‘가배’가 뒷날 ‘가위’ 곧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추석의 유래는 직조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고, 여성 직조의 역사는 역사의 기원까지 소급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라 길쌈대회 ‘가배´서 한가위 유래 조선시대 옷감을 짜는 것은, 심상한 행위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은 입을 것, 먹을 것, 비바람을 피하고 잠을 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데 집이야 한 번 지어놓으면 그만이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소모된다. 다시 보충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먹을 것만큼은 아니지만, 입을 것의 무게란 중세 경제에서 엄청나게 무거운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지금 값싼 옷이 지천인 세상에서의 입을 것이 갖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옷감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옷이 되었고, 나라에 바치는 세금이 되었으며,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을 사들이는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날 때면 노잣돈이 되었으니, 한 필 무명이야말로 지금의 현금카드와 같은 구실을 했던 것이다. 옷감을 짜는 과정은 고되고 지루하였다. 그 노동의 고통을 여성들은 노래를 불러 잊었다. 수많은 길쌈노래, 물레노래, 베틀노래가 그 증거다. 어디 베틀노래 하나를 들어보자. 경상북도 의성 지방에 전하는 노래다. “시집 갔든 사흘만에/ 과거 빈다 소문 듣고/ 과거 보러 가신 낭군/ 밤낮으로 기다리니/ 밤도 길어 해도 길어/ 길쌈이나 시작하세” 남편은 과거 보러 떠났다. 아내는 기다리기 지루하여 길쌈을 하면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잊으려 한다.“송이송이 따 모아서/ 참나무쐐기에 앗아내어/ 대나무활로 타다놓고/ 수수회기로 비벼내어/ 정데정이 치은 가락/ 버드나무 물레에 미여 넣고/ 당태실 같이 뽑아내어/ 파람파람 뽑아다가/ 앞마당에 날아다가 뒷마당에 매어다가/ 베틀이나 차려보세” 목화송이를 따서 활질을 하고 실을 뽑는 과정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그 다음은 베틀을 차리는 과정을 길게 늘어놓고, 그 다음 베를 짜는 과정을 늘어놓는다.“바디집 치는 양은/ 광한루 높은 정자/ 신선들이 모여 앉아/ 장기 바둑 뚜는 듯다/ 북이라고 노는 양은 청학이 알을 품고/ 들락날락 하는듯다/ 잉애라고 바란 양은/ 모시국이 실묵시를/ 놋전반에 받친 듯고” 이렇게 해서 짠 것을 이제 씻어 간직한다.“앞 냇물에 씻어다가/ 줄어 너니 줄 때 묻고/ 손에 드니 손때 묻어/ 고이고이 말라내어/ 은실겅에 얹어 얹고” 남편을 기다린다. “과거 선비 오실까봐/ 동창문을 열어놓고/ 날이 날로 기다려도/ 한양 선비 자취 없네” 아무리 기다려도 한양에 간 남편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가는 선비에게 물어본다.“말 묻기 어려우나 말 한 마디 물읍시다. 한양서 오시며는 우리 선비 안 옵디까?” 어렵게 말을 꺼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엉뚱하다.“오기사 오드마는 칠성판에 얹혀 와요” 아내는 절망한다.“아이고 답답 내 일이야/ 암행어사 하실까봐/ 고대고대 바랐드니/ 칠성판이 웬일인고” 남편은 과거를 치러 가서 무슨 사건으로 인해 죽어 시체가 되어 칠성판에 얹혀서 돌아온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노동과 가혹한 운명을 이 노래를 부르면서 털고 씻고 잊었다. ●군역 대신 낸 군포… 한과 눈물의 응집물 여성들이 짜낸 무명은 그야말로 한과 눈물의 응집물이었다. 가혹한 노동의 결과라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명이 ‘군포’란 말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조선후기 사회가 앓아야 했던 거대한 모순이 되고 만다. 군포는 군역을 지는 대신 내는 무명이다. 조선은 원래 16세에서 60세까지의 장정은 모두 군역을 지게 되어 있었다.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면 남는 큰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후기에 와서 군역의 의무는 그대로 남지만, 실제 군대는 직업군인으로 채워지기에 16세에서 60세까지의 남성들(양반은 제외)은 모두 직접 군역을 지는 대신 1인 당 2필의 군포를 납부해야만 하였다. 조선은 대가족제도다. 따라서 한 집안에 남자 장정이 6명이면 12필을 내어야 한다. 그 뿐인가.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어린아이에게도 받는 황구첨정이 있다. 군포를 못내고 달아나면 그 동네 사람에게 받거나(동징), 친척들에게 받아낸다(족징). 군포의 징수가 얼마나 가혹했던지 자살하는 사람, 달아나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있었고, 급기야 마을 하나가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가혹하게 거둔 군포 위에 조선이란 국가와 양반체제가 서 있었던 것이니, 저 그림 속에 보이는 여성 노동은 조선 후기의 체제모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기고] “원예체험실이 밥 먹여주는 거여?”

    [기고] “원예체험실이 밥 먹여주는 거여?”

    마을 인근에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인돌 유적 군락지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56가구,126명의 주민 대부분이 농사일에만 전념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아니, 그동안 정부 지원사업이 소득과 연계되지 않은 데다, 지원이 끊긴 뒤에는 관리가 힘들어 주민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반목이 내재된 상태였다. ‘참 살기좋은 마을가꾸기’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사업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고민하던 차에, 고령화된 농촌마을에 건강과 환경을 접목한 ‘로하스’ 개념의 원예체험실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기쁨도 잠시, 사업을 위한 마을회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원예체험실이 밥 먹여주는 거여?” 농사일도 바쁜데 원예치료실을 왜 짓느냐는 핀잔, 기존 정부사업도 운영이 안되는데 뾰족한 수가 있겠냐는 걱정 등이 쏟아졌다. 이에 마을 주민 40명과 함께 선진마을 투어에 나섰다.1박2일 동안 3개 도,6개 시·군 8개 마을을 방문하는 강행군이었다. 가는 곳마다 주민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변화의 계기가 됐다. “안녕하세요. 주민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아침에 돌을 주워오려고 하는데, 시간이 있으신 분은 지금 바로 광장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농사일에 바쁜 낮시간을 피해 새벽 5시에 일어나 마을을 위해 모이라는 방송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방송을 마치고 한참을 기다려도 1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선진마을 방문 이후 한 두 분씩 돌을 나를 세수대야를 들고 나오시더니, 급기야 시간이 지나면서 주민 대부분이 참여했다. 이렇게 참살기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은 시작됐고, 주민들끼리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꽃도 보고 음악을 들으며 편히 쉴 수 있는 원예체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민박집 마당에 황토를 깔고 응달샘을 만들고 돌담을 쌓았다. 변화는 외부에서도 느낄 수 있다. 외지에 나가있는 자녀와 손자·손녀들이 과거에는 불편해서 오기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말이나 방학에 빨리 와보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기뻐하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조은희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도산마을 주민
  • “나도 이젠 외할아버지 나라의 국민”

    “나도 이젠 외할아버지 나라의 국민”

    “저도 이제 외할아버지의 나라를 ‘우리나라’라고 불러도 되죠.” 양기탁(1871∼1938) 선생의 외손녀인 황대순(62)씨는 지난 13일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귀화증 수여식에서 ‘특별귀화증’을 받았다. 그의 눈에는 이내 회한의 이슬이 맺혔다. 그는 “저도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서 “어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그렇게도 그리던 나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양기탁 선생의 딸이 낳은 딸이다. 양기탁 선생은 1905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신민회를 창립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만주로 근거지를 옮긴 뒤에도 독립운동단체인 통의부를 창설했으며 임시정부 국무령으로 활동했고 1935년 10월부터 2년 동안 임시정부 대표를 지냈다. 그의 공훈은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가족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양기탁 선생의 부인 이경숙씨 등은 1928년 일제의 핍박을 피해 당시 5살이던 딸 법정씨 등을 데리고 중국 헤이룽장성으로 떠났으나 살 길은 막막했다. 이집저집을 돌아다니며 품팔이를 했고 쓰레기장에서 감자 등을 주워 구워먹으며 힘겹게 3명의 딸을 먹여살렸다. 고달픈 삶은 딸들에게도 이어져 결혼한 뒤 황씨를 비롯한 3남3녀의 자녀를 뒀던 법정씨는 날씨가 흐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날에도 일거리를 찾아나설 정도로 힘겨운 생활을 했다.“한국 땅을 한번 밟아보는 게 소원”이라던 법정씨는 1999년 조국 땅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황씨는 “소학교를 마친 뒤 내 재능을 안타까이 여겼던 선생님이 집으로 세 차례나 찾아와 중학교 진학을 권고했지만 갈 수 없었다.”며 “방에 누워 사흘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씨는 1남3녀의 자식을 낳은 뒤 “자식만은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일념으로 딸 1명은 대학까지 보내고 나머지 자녀는 고교까지 졸업시켰다. 막내 딸 이계화(33)씨가 다롄시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일을 하다 현재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황씨 가족은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치열하게 가난과 싸우는 사이 이들에게 독립운동가 양기탁 선생이란 존재는 잊혀졌다. 이씨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중국인 등을 상대로 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양기탁 선생에 대해 수도 없이 설명을 했지만 처음엔 ‘그분이 바로 내 증조부’라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고 전했다. 황씨는 딸의 초청으로 1997년 한국에 왔지만 호적부에 모친인 법정씨가 양기탁 선생의 딸로 등록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국적 획득에 실패했고, 할아버지의 조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전락했다. 이들은 결국 외숙모가 한국에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양 선생의 외손녀란 사실을 인정받아 13일 마침내 할아버지 나라의 국민이 된 것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Local] 15일 전주 한옥마을 백중장날 재현

    음력 칠월 보름 백중(百中)날을 맞아 전통 세시풍속을 경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15∼16일 전주 한옥마을에서 열린다. 한옥마을 곳곳에서는 백중날을 전후로 열렸던 백중장날이 재현된다. 시민들은 공예장터에서 전통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사고팔 수 있고 장기대회ㆍ제기차기 대회와 가족줄넘기 대회도 열려 판소리 공연과 함께 백중날 흥겨운 분위기를 돋운다. 이번 행사의 백미인 씨름대회는 공예품전시관 야외마당에서 열려 성별ㆍ연령별로 힘을 겨룬다. 최명희문학관에서는 백석 시인의 ‘칠월 백중’을 함께 낭송하고 전문연극인들이 최명희 대하소설 ‘혼불’에 나오는 머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냉홍차와 뜨거운 황차를 마시며 전통 다례를 체험하고 장터국수와 막걸리로 출출함을 달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있다. 차마당 대청에서는 오후 8시부터 호러 애니메이션 ‘가쿠렌보(숨바꼭질)’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컷’이 상영돼 여름밤 더위를 씻어 준다. 백중은 음력 칠월 보름의 속절(俗節)로 조상들은 이날 잠시 농사일을 멈추고 잔치를 벌여 노동의 지루함을 달랬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원전·방폐장 선정 ‘산넘어 산’

    정부가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원전) 10기를 새로 짓는 방안을 사실상 확정했다. 하지만 원전 부지와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 선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민단체가 반대입장을 명확히 해 앞으로 공론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한국전력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전력 판매사업도 점진적으로 자유화된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져 가격인하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도 크게 단순화된다. 지식경제부는 1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국가에너지기본계획 관련 2차 공청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정부안을 발표했다. 최종안은 이달말 열리는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확정된다. 이날 나온 정부안은 국가에너지위 산하 전문위원회 의결을 거친 것이어서 원안대로 의결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 대안” vs “佛 전철 되풀이” 가장 큰 관심사인 원전 적정비중(설비 기준)은 이미 예고된 대로 41%로 결론났다. 현재 26%인 비중을 2030년까지 41%로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러자면 신고리 3·4호기 같은 140만㎾급 원전 11기를 새로 지어야 한다. 원전은 비용절감 등의 문제로 통상 짝수로 짓기 때문에 10기가 유력하다. 정부는 “1의 전력을 얻으려면 액화천연가스(LNG)는 103원, 유연탄은 39원이 들지만 원자력은 38원이면 된다.”며 “고유가와 온실가스 감축시대에서는 원전이 가장 경제적이고 현실적 대안”이라고 역설했다. 녹색연합 등 19개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에너지시민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의 원전비중 확대 구상은 원전 설비과잉으로 문제를 겪고 있는 프랑스의 전철을 밟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우리나라와 인도, 중국을 제외하고 핵 발전을 늘리는 나라는 없다.”며 “정부의 ‘원전 르네상스’ 주장도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부지 4곳에 추가할 수 있는 원전은 6기뿐이다. 따라서 4기의 원전부지를 신규 확보해야 한다. 부지 확보에서 준공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2년.2022년 준공 예정인 원전은 2010년까지 부지 확보를 마쳐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사용후 핵연료(방사성 폐기물)의 임시저장시설이 2016년쯤 포화가 예고돼 대안도 강구해야 한다. 문제는 경주 방폐장 부지 선정에만도 엄청난 국론 분열과 해당 지역주민 반발로 21년이나 걸렸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점은 이번에는 사용후 핵연료 자체를 처리해야 하는 고준위 방폐장이라는 사실이다. 경주방폐장은 원전에서 사용된 작업복과 장갑 등을 묻는 중저준위 방폐장이다. 정부는 “국민과 충분한 소통절차를 거치겠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다.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 대폭 손질 전력판매 자유화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가스처럼 민간 발전사업자의 신규 진입을 촉진해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송·배전, 저장시설 등 네트워크 부문은 진입장벽 완화대상에서 제외된다. 시대 변화상과 맞지 않아 불만의 온상이었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도 대폭 손질된다.6단계인 현행 누진제는 가장 낮은 요금과 가장 높은 요금의 누진배율이 11.7배나 된다. 누진 2∼3단계인 일본(1.4배), 미국(1.1배)보다 훨씬 비싸고 복잡하다. 궁극적으로는 요금부과 잣대가 주택용·산업용·농사용 등 지금의 ‘용도’에서 공급원가에 따른 ‘전압’으로 바뀐다. 그렇다고 일반 가정집 전기요금 인하를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원가를 반영한 요금체계를 만들기로 해 지금보다 전기요금 인상이 쉬워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15일 송파백중놀이… “한 판 놀아보세”

    제63회 광복절인 15일, 송파구에서는 색다른 놀이판이 펼쳐진다. 송파구는 뜨거운 더위가 온갖 작물을 여물게 하는 백중날(음력 7월15일)에 잠시 농사일을 벗어나 여유를 갖는 놀이판인 ‘송파백중놀이’를 이날 서울놀이마당에서 재현한다고 13일 밝혔다. 송파백중놀이는 300년 전통을 가진 송파 지역의 민속놀이로 송파민속보존회가 정기발표회 형태로 연희를 펼친다. 낮 12시부터 진행되는 장터마당에서는 도자기, 대나무공예, 손수건염색 등 전통 체험을 할 수 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짚신삼기 등 생소한 볼거리도 마련된다. 오후 3시부터 길놀이마당, 풍물마당, 줄타기마당, 산대놀이마당, 씨름마당, 민요마당으로 구성한 여섯마당이 순서대로 펼쳐져 한 편의 공연을 완성한다. 신명나는 탈놀이와 풍물패, 아슬아슬한 줄타기, 활기 넘치는 씨름판, 흥겨운 민요가락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한편 송파민속보존회는 서울놀이마당에 상주하며 송파백중놀이, 송파산대놀이 등 전통놀이 보존을 위해 꾸준한 연구와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학 중 무료강의도 진행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Local] 전북, 벼농사 면적 매년 감소

    농도(農道)인 전북의 벼농사 규모가 갈수록 줄고 있다.11일 전북도에 따르면 올해 벼농사 재배면적은 14만 1530㏊로 지난해 14만 3159㏊보다 1.2% 1629㏊ 감소했다. 도내 벼 재배면적은 2004년 14만 6598㏊,2005년 14만 4091㏊,2006년 14만 2466㏊ 등 매년 감소 추세다. 이같이 도내 벼농사 면적이 계속 줄고 있는 것은 농사를 지어도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벼농사 10a당 소득은 2005년 54만 6000원에서 2007년에는 49만원으로 줄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한인농장 재건… 고국과 농산물 교역하고 싶어”

    “한인농장 재건… 고국과 농산물 교역하고 싶어”

    |피아우이·쿠리치바·루이스에두아르도마갈아에스(브라질) 오상도기자| “내 희망은 농장사업이다. 브라질에선 농업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농산물을 한국과 교역하고 부지런한 한국인을 좀더 모아온다면 충분히 결실을 볼 것이다.” 원시 아마존과 인디오, 그리고 마천루 같은 현대적인 건물들이 공존하는 ‘극과 극’의 나라, 브라질. 태권도 대사부로 추앙받고 있는 한명재(54)씨는 이곳에서 한인농장 재건이란 새로운 목표를 향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머리와 기술을 가진 한국인도 일본인처럼 ‘큰 물에서 놀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다. ●주지사·상원의원 등 제자 수만명 1972년 1월, 한씨는 18세의 나이로 11명의 다른 태권도 사범과 함께 브라질에 첫발을 내디뎠다.95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키워낸 벽안의 제자만 수만명. 파라나주 연방상원의원인 알바로 디아스, 오스말 디아스 형제를 비롯해 각지의 주지사, 시장 등이 절친한 친구이자 제자다. 한씨의 스승은 ‘태권도’라는 이름을 지은 고(故) 최홍희 장군이다. 최 장군은 한씨에게 국제사범자격증을 줬고, 지구 반대편으로 파견했다.72년은 태권도가 브라질에 전파된 이듬해로 오늘날 1300여개 도장,20여만 태권도인의 뿌리가 됐다. 이곳에선 모든 구령이 한국말로 이뤄진다. ‘마스터’라 불리는 한씨는 태권도장을 떠난 뒤 케이블방송 사업자, 대형 레스토랑 사장으로 잠시 외도했다. 하지만 인생 목표를 대형 농장 경영으로 재설정한 뒤 북부 대평원지대인 세하도에서 대규모 조림지 개발에 나섰다.800m 고원지대인 바히아주의 피아우이와 마라뇽 인근에 7000㏊의 농장을 확보,1200㏊에 유클립투스 나무를 심었다. 브라질에 곧 도입될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고, 나무가 성장하면 그루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목재로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대두와 옥수수 재배에도 나서 수십년 전 막내린 한인농장 재건에도 도전한다.20여년 전 취득한 아마존 인근의 농지 3만 6000㏊에도 투자할 생각이다. 한씨는 남부 쿠리치바에 대형 레스토랑과 저택 등을 소유한 부호이지만, 고생을 사서하는 ‘풍운아’다. 이런 그의 삶의 저변에는 부친과 할아버지가 독립투사라는 집안 내력이 깔려 있다. ●할아버지·아버지 모두 독립투사 할아버지인 고 한준관 옹은 일제시대 가족을 상하이로 도피시킨 뒤 홀로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전기고문으로 생을 마쳤다. 부친인 고 한응규 옹도 2차세계대전 당시 광복단(중국 제3전단)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덕분에 자택 거실에는 건국훈장과 포장, 유공자증이 가득하다. 장인인 김갑인(95) 옹도 1960년대 초반 대규모 가톨릭 농업단을 이끌고 온 이민단장이었다. 부인 문옥(49)씨는 “한인들은 이민 뒤 빚더미에 앉았는데 아버지가 제안한 딸기농사로 빚을 탕감했다. 이들은 도회지로 나와 포목상으로 변신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달랐다. 진득하게 버틴 일본인 가운데 여럿은 브라질 농업을 쥐락펴락하는 대형 농장주로 성장했다. 한씨는 “2005년 룰라 대통령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토카친스 주지사가 제안한 한인 농업이민 등을 제시했지만 반응이 냉랭했다.”면서 “잠재된 자원의 나라인 브라질과 한국이 친구가 된다면 충분히 결실을 볼 것”이라고 조언했다. sdoh@seoul.co.kr
  • 여주 사슴마을 “진정으로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

    여름방학을 맞아 농촌에서 묵으면서 다양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팜스테이(Farm Stay)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잘 찾아보면 서울 근교에서도 팜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경기도 여주 주록리 안산계곡에 위치한 사슴마을도 잘 보존된 자연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 중의 하나다. 당일과 1박2일의 코스 중에 선택하여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이곳은 마을전체가 4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이 마을의 주요농산물인 표고버섯, 감자, 옥수수, 참외 등의 농사체험을 직접 해볼 수 있다. 특히 떡메를 쳐서 인절미 만들기, 천연염색체험, 전통 제기 만들기, 경운기 타기 등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사슴마을의 이연목 운영위원장은 “사슴마을은 서울에서 가깝지만 깨끗하고 맑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며 “매일 4~5 가족들이 찾아와 농촌의 후한 인심과 자연의 포근함을 느끼고 간다.”고 자랑했다. 또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우리의 전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팜스테이를 운영하는 목표”라며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주 사슴마을은 사계절의 농촌체험이 가능하며 명성황후생가, 세종대왕릉, 목아박물관 등이 근처에 있어 다양한 볼거리도 함께 할 수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쌀 재배면적 7년째 감소

    쌀 재배면적 7년째 감소

    우리나라 쌀농사 규모가 2002년 이후 7년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쌀 소비는 줄어드는데 수입쌀은 늘어나는 등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농민들이 재배면적을 줄였기 때문이다. 8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전국에서 벼 농사를 짓는 땅은 93만 5766㏊(헥타르·1㏊=1만㎡)로 작년 95만 250㏊보다 1만 4484㏊(1.5%)가 줄었다. 사상 최대였던 1987년 126만 2000㏊와 비교하면 25.8%가 감소했다. 쌀 재배 면적은 87년을 정점으로 서서히 감소하다 96년 증가세로 돌아섰으나 2001년(108만 3125㏊)부터 내리 7년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논 10a(아르·1a=100㎡)당 소득은 2005년 54만 6000원에서 지난해 49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사람들은 왜 노래를 할까

    “형, 사람들은 왜 노래를 할까?” 그날 음악을 하는 선배와 연습을 마치고 옥상에 올라가 맥주를 한잔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내 질문에 선배의 눈이 커졌다. 아차,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할 질문을 했구나. 내가 생각해도 너무 유치한 질문이다. 아들이 엄마에게 “엄마는 왜 여자야?”하고 묻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당시 난 그 질문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사람들은 왜 노래를 부를까? 노래의 무엇이 그들을 웃고 울게 하는 걸까? 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물은 적이 있었지만, “스트레스 풀리잖아요” 라든지 “그냥 본능 아닌가요?” 하는 답만 되돌아왔다. 아니다. 내게는 뭔가 더 그럴듯한 답이 필요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근본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식검색 사이트를 뒤졌더니 아래와 같은 답변이 나왔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쾌감을 느끼는 것은 뇌에서 쾌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자에 이어 사회학자가 나섰다. “계급이 생겨나고 탐관오리들이 많아지고 국가가 아수라장이 되다 보니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불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농사일이 힘드니 노래로 흥을 돋우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역시나. 그날 선배 형은 나의 엉뚱한 질문에 핀잔 대신 한 러시아 음악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은퇴를 앞둔 노 음악가였는데 불치병으로 청력을 잃은 후에도 쉬지 않고 연주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인터뷰어가 이 거장에게 당신이 평생을 바친, 고난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음악이 인간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묻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세상에는 오직 음악으로만 전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거였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 그것은 오직 노래로만 전할 수 있는 인간적인 감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의 웅변이 아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이유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김현성_ ‘소원’ ‘이해할게’ ‘헤븐’ 등의 노래를 부른 가수입니다. 폭넓은 음역과 고운 미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는 어디를 가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소문난 독서광이기도 합니다. 2008년 8월
  • 지역총생산 증가율 9.3%… 전국 1위

    지역총생산 증가율 9.3%… 전국 1위

    이완구 충남지사 취임 이후 충남도가 국내 최고 수준의 외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국내 자치단체의 이목을 끌었다. 6일 충남도에 따르면 이 지사가 취임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9건에 61억 296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 첫해 7건에 13억 6630만달러, 지난해 7건 12억 3800만달러에 이어 올해 벌써 35억 2530억달러를 유치, 국내 최대 수준의 해외자본 유치에 성공했다. 충남도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해외 업체는 LCD 분야의 일본 소니, 석고보드 생산업체 프랑스 라파즈, 자동차 연료필터 생산업체인 이탈리아 UFI 등 세계적인 데다 분야도 다양하다. 지난 3월에도 미국의 세계적 전자재료 생산업체인 롬앤드하스로부터 3600만달러,LCD용 가스를 생산하는 미국 프락스에어로부터는 1억 5000만달러의 투자를 이끌어 냈다. 특히 러시아 로스토프주 타가스자동차회사 돈인베스트그룹(DI그룹)이 2012년까지 자치단체의 단독 외자 유치로는 가장 많은 6억 5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은 주목을 받았다. 충남도는 적극적인 외자 유치로 이 지사 재임 기간에 지역총생산 증가율이 9.3%로 뛰어 전국 평균인 5.1%를 크게 웃도는 1위를 기록 중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시아상공인연합회는 지난 3월 이 지사에게 1회 국제 최고경영자(CEO)상을 수여했다. 지난 6월에는 이 지사가 문화 교류를 위해 캄보디아를 방문했다가 국내 처음으로 외국 현지에서 쌀농사를 짓기로 협약하는 이례적인 성과도 올렸다. 이 지사는 “경제부지사와 외부 전문가를 데리고 공격적으로 외자 유치에 나선 것이 적중했다.”면서 “조만간 세계 최고의 자원보유국 러시아에서 투자 설명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길섶에서] 저장에 대하여/노주석 논설위원

    이메일로 받은 자료에서 작업을 한 뒤 ‘첨부파일 저장’을 누르지 않고 무심코 그냥 닫았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는가. 나중에 찾았을 때 ‘비어있음’이라는 글자를 보았을 때의 황당함이란.“저장해야지.”하고 입으로 되뇌지만 버스는 지나가 버린 뒤다. 몇 차례 자료를 날려 버리는 경험을 하고 나면 저장하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저장’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개미가 생각난다. 미주지역에 서식하는 가위개미는 나뭇잎을 집으로 물어온 뒤 그 위에 곰팡이를 키워 버섯을 재배해 식량으로 쓴다고 한다. 수확개미는 씨앗을 저장했다가 싹이 트면 집밖에 가져나가 심는다. 큰검은개미는 달콤한 즙을 분비해 주는 진딧물을 기른다. 이쯤 되면 거의 농사꾼 수준이다. 개미처럼 일해서 재화를 쌓아놓는 것이 저장이라고 머리에 입력돼 있는 탓일까. 컴퓨터에 자료나 정보를 저장하는 일은 왠지 낯설다. 차라리 수첩이나 공책에 적는 편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다시 한번 다짐한다. 저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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