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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전 온배수로 키운 채소 먹어도 괜찮을까

    경북 경주시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온배수(溫排水·발전기 열을 식힌 뒤 방출하는 물)를 활용한 시설채소 재배 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원전 선진국인 일본과 프랑스도 원전 온배수를 활용하지만 채소 재배가 아니라 식물원과 농업 온실, 난방용 에너지 등으로 공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는 19일 한수원이 최근 월성원전 온배수를 활용한 유리온실 영농사업 공동 추진을 제안해 옴에 따라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현재 경기 및 제주 지역에서 지열과 화력발전소 온배수를 농작물 재배에 활용한다. 시 등은 월성원전 인근 8㏊에 총 400억원 정도를 들여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시설채소 재배 단지를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재배 단지는 원전 온배수(21~35도) 열기를 활용해 파프리카와 토마토, 오이, 딸기 등의 사계절 고소득 농산물을 생산한다. 생산 비용을 75% 이상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성원전은 현재 가동 중인 원전 5기(월성 1~4호기, 신월성 1호기)에서 초당 배출되는 249t의 온배수 가운데 10%만 자체 양식장(939㎡)에 활용하고 나머지 90%는 바다에 버리고 있다. 시는 이 사업이 추진되면 연간 130억원의 농가 소득 증대와 주민 120명 일자리 창출, 체험형 관광 인구 증가로 지역 경기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와 한수원은 다음 달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내년부터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이 포함될 수 있는 온배수로 시설채소를 재배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대해 갈등이 예상된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은 “울진원전 온배수가 버려지는 인근 바다에서 새로운 방사성물질인 방사성 은이 극미량이지만 계속 검출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폐자원을 재활용한다는 명분으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원전 온배수로 사람이 먹는 시설채소를 재배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전이 안전하다는 한수원 말만 믿을 게 아니라 시민 건강을 우선 고려해 사업 추진을 재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인 월성 1호 연장 가동과 방사성 폐기물이 담긴 드럼통 부식 사고 논란 속에서 이 제안이 나왔다며 순수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핵물질에 직접 노출되지 않은 깨끗한 바닷물인 온배수 열기를 배관을 통해 활용하기 때문에 오염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시설채소가 문제 된다면 화훼 단지 등으로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 지역상생협력팀 관계자는 “국내에도 친환경 에너지인 원전 온배수를 시설채소 재배 단지 등에 활용하기 위한 기술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돼 사업을 제안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경주시와 지역 주민 간의 협의 등을 통해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부잣집 똥을 훔치면 부자 된다는 말 듣고 칠석이와 팔석이는 정말 똥을 훔치는데…

    부잣집 똥을 훔치면 부자 된다는 말 듣고 칠석이와 팔석이는 정말 똥을 훔치는데…

    어수룩하지만 마음만은 순수한 칠석이와 팔석이. “얼마 전 산골짜기의 논을 산 아랫마을 삼돌이가 최 부자네 똥을 훔쳐 부자가 됐다”는 말에 귀가 솔깃한다. 두 아이는 최 부자네 담을 기웃거린다. 칠석이는 팔석이의 목말을 타고 순식간에 담을 넘는다. 최 부자네 마당에는 똥이 산처럼 쌓여 있다. 똥을 훔친 칠석이와 팔석이는 마주 보며 헤벌쭉 웃는다.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똥 항아리를 보듬고 달리기 시작한다. 똥 항아리를 안방 아랫목에 고이 모셔 둔다. 하지만 부자가 되기는커녕 점점 구려지는 냄새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급기야 똥은 삭아 걸쭉해져 부글거리기까지 한다. 고약한 똥 냄새는 널리 퍼지고, 두 아이는 망신만 당한다. 그제야 칠석이와 팔석이는 ‘똥 도둑질’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똥은 가만히 모셔 두는 게 아니라 밭에 거름으로 뿌려 주어야 비로소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다. ‘똥 도둑질’(휴먼어린이 펴냄)은 정월 초하룻날 첫 닭이 울 때 부잣집의 똥을 훔치는 평안북도 강계 지방의 옛 풍속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부잣집 똥을 훔치면 한 해 운수가 잘 풀리고 부자가 된다는 의미였다. 순박하기만 한 칠석이와 팔석이는 왜 조상이 설날 꼭두새벽부터, 하필이면 더럽고 냄새 나는 똥을 훔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농사를 지어 먹고살던 조상에게 똥은 돈만큼이나 꼭 필요한 자산이었다. 똥 한 덩어리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그 사람을 부자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른 새벽에 도둑질해야 한다는 데는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은 두 아이가 똥 도둑질에 얽힌 조상의 지혜를 깨우치는 과정을 정란희 작가의 맛깔스러운 문장과 홍영우 화백의 익살스러운 그림으로 잘 표현했다. 공부나 운동, 그림 그리기를 잘하기 위해서도 성실하고 근면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았다. 책 속의 마을 어른들은 도둑질을 하다 어처구니없이 들켜버린 칠석이와 팔석이를 야단치지 않는다. 아이들도 땅에 거름을 뿌리며 들판을 즐거운 노랫소리로 채운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듯하다. 작가는 “‘똥 도둑질’은 일종의 놀이였다”며 “아이들이 흥미롭게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만 2000원.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경북 경산 삼색 유혹

    경북 경산 삼색 유혹

    경북 경산은 대구의 위성도시, 혹은 산업도시 정도로 인식되는 곳입니다. 그 탓에 수도권 사람들이 여행 삼아 발걸음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한데 복사꽃 필 때는 다릅니다. 도시 안팎이 죄다 분홍빛으로 현란해집니다. 반곡지 물 위로 아름드리 왕버들과 복사꽃이 담기고, 인근의 계정숲은 신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지요. 도시의 겉옷을 걷어내면 원효, 설총, 일연 등 삼성현(三聖賢)의 역사가 튀어나옵니다. 여기에 경산의 ‘아이콘’ 팔공산 갓바위 부처까지 돌아본다면 봄날의 여정으로 모자람이 없겠습니다. 반짝이는 회백색 가지 위에 연분홍 꽃술이 얹혔다. 빛깔은 화사하고 향기는 은은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깔도 향도 짙어진다. 귀밑머리 간질인 봄의 훈풍이 진분홍 복사꽃잎을 날릴 때면 처녀 가슴이 까닭 없이 달뜬다. 이러니 선인들이 여염집 마당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말라 했을 게다. 경북 영천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경산 방면 국도로 갈아탄다. 사방이 복사꽃 천지다. 아랫녘에서 시작된 ‘꽃전선’이 내륙까지 확대된 모양새다. 하얀 배꽃도 한창 벌과 희롱하는 중이다. 경산시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경산은 복숭아 재배 면적이 1470㏊로 전국 3위다. 동북쪽으로 이웃한 영천시가 1위(이상 2012년 기준), 남쪽과 경계를 이룬 청도는 한때 2위에 올랐던 지역이다. 그 덕에 해마다 이맘때면 영천과 경산, 그리고 청도를 잇는 진분홍 ‘복사꽃 벨트’가 펼쳐진다. 하지만 경북 영덕의 지품면처럼 복사꽃을 관광상품화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엿보이지 않는다. 복숭아 농사가 말 그대로 농업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일 터다. 그나마 경산에서 복사꽃 명소로 알려진 곳이 남산면 반곡리다. 보다 정확히는 마을 안쪽에 있는 반곡지의 유명세 덕에 지역 전체가 복사꽃 마을로 알려지게 됐다. 해마다 이맘때면 온 마을이 전국에서 몰려온 사진작가들로 몸살을 앓는다. 이때를 놓치면 일년을 더 기다려야 복사꽃 핀 반곡지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그리고 저녁 무렵이면 마을 주변이 차량들로 가득 찬다. 이쯤 되면 마을 주민들이 싫은 내색을 할 법도 한데, 아직 그런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주민과 방문객 간에 험악한 상황이 연출되기 전에 자치단체에서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등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반곡지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다. 근동의 사진작가들 사이에선 진작부터 봄 풍경 빼어난 곳으로 입소문 났다. 복사꽃 필 무렵 찾으면 단박에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바람이 잦아들 때면 파란 하늘이, 그리고 진분홍 복사꽃과 신록의 새 옷으로 갈아입은 왕버들이 저수지에 풍덩 빠져 있다. 자연이 그린 데칼코마니다. 반곡지의 둑길로 들면 분위기는 또 달라진다. 100m 남짓한 둑길에 십여 그루의 아름드리 왕버들이 뿌리를 내리고 섰다. 수백 년을 살아왔을 왕버들은 둥치가 어른 두어 명이 양 팔을 벌려야 맞닿을 정도로 굵다. 회오리처럼 휘휘 돌아간 나뭇결도 이채롭다. 늙고 거무튀튀한 가지 끝엔 올봄 새로 나온 연둣빛 잎들이 매달려 있다. 말 그대로 신록(新綠)이다. 이런 곳에서라면 누가, 어떤 카메라로 찍은들 작품이 되지 않으랴. 뷰파인더가 싱그러운 신록으로 가득하다. 반곡지가 있는 남산면 일대는 경산 최대의 복숭아 산지다. 그 덕에 저수지의 주변이 온통 복사꽃 꽃구름에 잠겨 있는 듯하다. 출렁대던 꽃구름은 마을 초입의 별밤곡 고개에서 마침내 파란 하늘과 맞닿았다. 마을 뒤편 삼성산도 볼만하다. 산벚꽃이 솜뭉치처럼 몽실몽실 피어나 산허리를 에워싸고 있다. 반곡지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계정숲이 있다. 구릉지에 조성된 숲으로, 이팝나무와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이 빼곡하다. 짙은 숲그늘에서 산책하기 맞춤하다. 계정숲 안에는 한 장군 묘와 사당, 자인현청 등이 보존돼 있다. 해마다 단오 때만 되면 계정숲에서는 자인단오제가 열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단오 축제다. 한 장군은 이 자인단오제에 여원무(女圓舞)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 장군이 왜구의 침략에 맞서 누이동생과 함께 여장(女裝)을 하고 적을 유인해 물리쳤다는 게 춤의 내용이다. 경산은 삼성현(三聖賢)의 고장으로 불린다. 신라 승려 원효와 그의 아들이자 학자였던 설총, 삼국유사를 쓴 고려시대 승려 일연 등 3성인이 경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관련해 가볼 만한 곳은 많지 않다. 올 6월께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이 완공되고 나면 다소 체면이 설 것으로 보인다. 경산 남쪽이 복사꽃 무릉도원이라면, 북쪽은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이 굽어보는 불국의 영토다. 경산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관봉석조여래좌상은 흔히 ‘갓바위 부처’로 알려져 있다. 해발 850m에 달하는 팔공산 관봉(冠峰)의 암봉들 사이에 조성됐다. 축조 시기는 신라 선덕여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현 대사가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갓바위 부처를 조성하는 동안 밤마다 큰 학이 날아와 지켜 줬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갓바위 부처로 오르는 길은 연중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 준다는 영험 많은 부처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방문객 숫자만 한 해 500만명에 달한다. 특히 입시철에는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팔공산은 경산 와촌면에 속해 있다. 흔히 대구 쪽을 들머리 삼지만, 경산 쪽에서 오르는 게 더 가깝고 수월하다. 일반 산행에 견줘 오르기가 고된 편은 아니다. 다만 몇 군데 깔딱고개가 있어서 ‘거의 다 왔다’는 말을 몇 번쯤 들을 각오는 하는 게 좋다. 갓바위 주차장에서 걸어가면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린다. 시내버스를 타고 좀 더 위쪽의 선본사 주차장까지 오르면 왕복 두 시간 이내에 다녀올 수 있다. 애견가라면 ‘경산의 삽살개’를 방문하는 것도 좋겠다. 삽살개는 귀신이나 액운(살)을 쫓는(삽)다는 뜻의 한국 토종견이다. 갓바위 가는 길의 대조농원, 삽사리테마파크 등에서 보호·육성되고 있다. 갓바위는 포항~대구고속도로 청통·와촌나들목, 반곡지는 대구~부산고속도로 수성나들목으로 빠지면 수월하다. 경부고속도로 경산나들목도 있다. 경산 시내에선 919번 도로를 타고 용성·자인·남산 방면으로 가다 석원석재 앞에서 925번 도로로 갈아탄 뒤 상대온천 앞 500m 지점에서 좌회전하면 별밤곡 고개다. 경산역에는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열차가 선다. 동대구역까지 고속철(KTX)로 간 뒤, 20분 간격으로 경산역까지 운행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도 된다. 경산시장 입구에 돼지국밥 등을 맛볼 수 있는 ‘돼지골목’이 형성돼 있다. 인근에 개성 넘치는 벽화마을도 조성돼 있다. 숙소는 갓바위 들머리인 와촌면 일대에 몰려 있다. 여행의 피로를 풀려면 상대온천이 좋겠다. 반곡지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다. 경산시 새마을문화과 (053)810-5362~5365. 글 사진 경산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미친 세상, 홀로 울며 노래하며 살아낸 ‘광주’를 위하여

    미친 세상, 홀로 울며 노래하며 살아낸 ‘광주’를 위하여

    “영암집 숙자가 죽은 사람은 있어도 죽인 사람은 없는 야속한 세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산 사람들은 사는 것이 바빠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그 사람들이 언제 죽었느냐 하고서 잊어버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도 그 사람이 누구를 죽였든지 말든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시치미 뚝 떼는 세상이라고. 이놈의 세상이 그렇게도 야속하고 무정하다고.”(166쪽) 공선옥(50)의 새 장편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 펴냄)는 시간상으로 1970년대 새마을운동부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까지를 다루고 있다. 황석영이 1985년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전달했던 즉각적인 충격과 분노를 이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5·18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그린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과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역사를 관통하는 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개인들의 연속된 삶이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농촌에서 순박한 부모를 잃고 쫓겨나 도시로 이주해 콩나물을 팔면서 동생을 건사해야만 했던 15살의 어린 소녀 ‘정애’의 삶을 그저 불운했다고 하기에는 마음이 답답하다. 국가의 요구에 무차별적으로 부응하는 집단의 광기와 국가의 폭력이 없었더라면 정애의 삶은 평범하고 아름답게 늙어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몹쓸 일을 당할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 어떤 형식이나 형태가 있는 노래가 아닌데, 무서움도 사라지고 위로가 찾아온다. 문제는 그녀가 너무 자주 노래를 불러야 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가 여성들로 표상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우호적이고 야만적인 사회였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는 오일팔(5·18)을 겪고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미쳐 버린 인물이 ‘셋이나’ 나온다. 남동생을 찾으러 갔다가 군인들에게 몹쓸 일을 당한 정애를 비롯해 학생으로 오인받는 재미로 전두환이 누군지도 모른 채 얼결에 데모대에 휩쓸려 삼청교육대까지 끌려갔다가 돌아온 카센터 직원 박용재, 5·18에 공수부대 무전병으로 국난극복기장을 받았지만 제대 후 멀쩡한 팔을 기차 바퀴에 밀어 넣은 오만수다. 사실 ‘미친 사람이 셋이나’ 나온다는 기술은 정확하지 않다. 공선옥은 “자네를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도 미친 것은 다 한가지여. 세상이 미친 거여. 미치지 않은 세상은 언제였을까. (중략)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라고 박샌댁 입을 통해 일갈한다. 정애는 또한 말한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한 것보다 좋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이 나는 더 무서웠다”라고. 신뢰했던 국가, 그 국가의 폭력 앞에 노출된 시민들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흔적을 입은 것이다. 그 당시 국가의 폭력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고 우리는 자신할 수 있을까. 제3세계 국가에서 배우려고 오는 새마을운동이 1970년대 이농을 부추긴 실패한 정책이었음이 공선옥의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주인공 정애는 “새마을을 만들었는데도, 새마을이 됐다는데도 어인 일인지 사람들은 자꾸자꾸 새마을을 떠났다”고 했다. 당시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농가는 빚이 늘었단다. 정부는 통일벼를 심으라고 강요하고, 통일벼로 못자리를 하지 않으면 공무원들이 와서 짓밟았고, 정부 시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다 빨갱이라고 했단다. 통일벼는 해충에 약해서 농약이 없으면 지을 수 없었다. 키가 작고 힘이 없어 초가집의 이엉을 얹을 수도 없었단다. 그러니 농가에서는 슬레이트로 지붕을 올려야 했고, 농약을 듬뿍 친 통일 볏짚을 소의 여물로 쓸 수 없으니 비싼 수입 사료를 먹여야 했단다. 70~80%가 농부였던 대한민국은 새마을운동을 거치고 21세기에 접어들어 이제 7~8%의 농부만 농촌에 남았다. 그 많은 농부는 저임금의 도시 노동자로 전락해 일요일 아침에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를 시청하면서 겨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누그러뜨렸으니 말이다. 공선옥은 저자의 말에서 “나의 이 허술한 글을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노래하고 혼자 울었던 내 어머니에게 바친다. 그리고…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 바친다”고 했다. 돌아보자. 광주가 아직도 홀로 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 외에도 울진 포구 여기저기에는 60여 호를 헤아리는 크고 작은 염전이 있고 소금 도가 포주인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는 그런 동사 간에도 내왕 없이 지냈기 때문에 해포이웃이라곤 없었다. 천성이 도무지 분잡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울타리 밖의 사정을 모르고 살면서 엉덩이에 두께살이 앉도록 출입이 없었다. 괴팍한 처신 때문에 같은 염호나 소금 도가 포주인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송석호는 그런 처지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니면 남의 밭에 개똥도 줍지 않는 꼬장꼬장한 성품에 내 것이라면 고뿔도 남에게 주지 않을 만큼 인색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차인이나 염간(鹽干) 들에게 새경이나 용채를 후하게 쥐여주어 그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 처신이 그처럼 데데하지 않은 것에도 알고 보면 까닭이 있었다. 염전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토호나 벼슬아치들이 질청의 아전이나 관노들을 사주하여 염전을 싼값으로 사들이려 끊임없이 협박과 농간을 자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농간에 송석호는 염부들과 힘을 합쳐 염전을 지키려 했다. 그런 저항에 부딪히면 아전들은 문서에도 없는 염세를 강징하여 그를 괴롭혔다. 삼척, 울진을 비롯하여 통천, 고성, 간성, 양양, 강릉, 영해, 평해와 같은 고을은 예부터 땅이 매우 척박하고 자갈이 많아 농사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들 고을에서는 고기를 잡고, 미역 따거나 소금 굽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땅은 비록 메말랐어도 부유한 자가 많다고 하지만, 서쪽으로 고개가 너무 높아서 이역과도 같아 한때 유람하기는 좋겠으나 오래 살 곳은 못 되었다. 소금 전매하는 일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오랜 세월 그대로 고치지 못하네 우리나라 법이 크게 엄하여, 해마다 내는 세금 일 년 농사보다 많다네 나도 관동으로 나온 뒤에 해안을 다니며 몸소 독려했다네 백성들 누추한 거처는 오두막집, 쑥 엮어 만든 문에 자리조차 걸 수 없어 늙은이가 자식 손자 데리고, 한 치의 시간도 쉴 수가 없네 혹한에도 바닷물 길어 오기에, 짐 무거워 어깻등이 휠 대로 휘고 열기와 연기 그을음, 끓이는 훈기에 눈썹마저 타버렸네 문 앞의 열 수레나 되는 나무도, 하룻저녁 땔감이 되지 못하네 하루종일 백 말의 물을 끓여도 소금 한 섬 채울 수 없네 만약 기한 내에 대지 못하면 혹독한 관리는 꾸짖고 성내어 운송하는 관리는 소금을 산처럼 쌓아놓고, 전매하여 비단으로 바꾸지 임금은 공신을 중하게 여겨 상을 주는 데 아끼지 않네 한 사람 몸에 입은 옷가지, 만백성 괴로움 깊이 쌓이네 슬프다 저 소금 굽는 사람들이여, 옷은 해어져 등조차 가릴 수 없고 이 괴로움 견디지 못하여 급히 도망하여 자취를 감추네 고려시대 안축이 소금 굽는 일을 보고 충격받아 이렇게 묘사할만치 염한들이 겪는 고초를, 그는 몸소 눈으로 보고 있었다. 평생 염막만을 지키고 앉은 터에 이제 막 육십 줄에 들어섰건만, 구루병 걸린 당나귀처럼 허우대가 찌그러진 행색은 애꾸눈이 보아도 열 살은 더 먹어 보였다. 남들이 그의 인색함을 허물하면 언제나 그는 부자로 살았던 어떤 역관의 얘기를 사례로 들었다. 그 역관은 일찍이 부자 소리를 들었으나 의복은 매우 검소하였다. 찢어진 모자에 칼은 나무로 만들어 썼다. 그러한 연고를 물었더니 역관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가진 물건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면, 힘있는 관리와 선비들이 너도나도 모두 가지고 싶어 침을 삼키게 될 것이다. 그때 선뜻 건네주지 않으면 환심을 잃게 될 것이고 골고루 나누어주자면, 숫자가 모자랄 것이다. 이어서 송석호는 내가 외관이 의젓하고 치장이 화려하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필경 화를 부르게 될 것이므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 한달 전 ‘붕괴 판정’ 받은 그 둑, 결국 터졌다

    한달 전 ‘붕괴 판정’ 받은 그 둑, 결국 터졌다

    경북 경주에서 저수지의 둑이 터져 농경지와 도로·상가 등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사고가 난 저수지는 한 달 전 정기점검에서 붕괴 우려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예고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오후 2시 5분쯤 경주시 안강읍 산대리 산대저수지의 둑이 터졌다. 이 저수지는 저수량 24만 6000t 규모이고 둑 길이 210m, 높이 12.2m이다. 이 가운데 중간 부분의 가로 10m, 세로 11m 정도가 유실됐다. 이 사고로 저수량의 70%인 16만 2000t이 두 시간여 동안 인근 지역을 덮쳤다. 이로 인해 농경지 1만여㎡가 물에 잠기거나 유실됐고 도로에 물이 넘쳐났다. 또 차량 10대와 상가 20채가 물에 잠겼고 주택 등에는 토사가 흘러들었다. 국도 28호선도 침수로 한때 통제됐다. 하지만 터진 물이 주변 아파트 지역이 아닌 안강운동장 방면으로 많이 흘러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저수지 주변은 평지로 돼 있으나 남동쪽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저지대에는 주민 14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둑이 터지자 경주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날 오후 2시 50분쯤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주민 1000여명이 어린이집과 상가, 산대초등학교 등으로 대피했다. 경주시는 오후 4시 30분쯤 주민 대피령을 해제했다. 경찰은 용수로로 물이 빠져나가는 수문 주변이 유실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둑 아랫부분에 콘크리트로 설치된 용수로 주변의 흙이 유실되면서 둑이 터졌다는 것이다. 용수로 주변은 다른 쪽보다 다소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저수지가 오래된 데다 만수위에 99%의 높은 저수율과 높은 수압 때문에 붕괴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흙으로 축조된 저수지여서 수압 때문에 아랫부분에서 물이 샌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저수지 안전관리 책임자를 불러 조사한 뒤 관리 소홀이 확인되면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사고가 나자 경주시는 공무원 등 260명과 덤프트럭 3대, 굴착기 3대 등을 투입해 복구작업을 벌였으나 많은 물이 흘러나와 어려움을 겪었다. 이 저수지는 1964년에 조성됐으며 비를 모아 농사에 이용하는 큰 못이다. 산대저수지는 지난달 13일 농어촌공사의 정기점검에서 부분 침하와 균열, 누수, 세굴, 침식 등의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 붕괴 우려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종합평가는 D등급으로 나왔다. A∼E등급 가운데 D등급은 재해 우려가 있어 보수를 해야 한다는 판정이다. 이에 따른 대책으로 정밀안전진단 대상지로 분류했지만 사업비가 확보되지 않아 정밀진단이나 보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2013 구정을 말하다] 동대문구청장의 ‘독도 구상’

    [2013 구정을 말하다] 동대문구청장의 ‘독도 구상’

    “독도 방문을 통해 봉사하는 공직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았습니다. 올해는 농사로 치면 가을걷이를 하는 때입니다. 주민복지와 교육지원을 통해 더불어 함께 잘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모든 정열을 바치겠습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이 10일 ‘독도 구상’을 밝혔다. 유 구청장은 “지난 5일 구 관계자 40여명과 함께 방문한 독도에서 단체장으로서 자세와 올해 사업계획을 잘 진행하겠다는 각오를 되새겼다”고 말했다. 그가 들려준 ‘독도 구상’은 바로 동대문공동체 복원이었다. 유 구청장은 무엇보다 올해 자살률 줄이기에 매진하겠다는 목표를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참여국 가운데 자살률 1위 국가다. 특히 동대문구의 자살률은 2011년 인구 10만명당 30.4명으로 서울시 평균 26.3명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유 구청장은 이를 “구청장으로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자신을 책망했다. 유 구청장은 “우리 구는 2010년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자살률이 3위였다. 다행히 노력 끝에 2011년에는 4위, 지난해에는 5위로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취임 이후 유 구청장은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전날 한국철도공사 수도권 동부본부와 체결한 지하철 자살 예방을 위한 ‘생명존중 친환경 협약’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다. 그는 앞으로도 공공기관 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자살예방 체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그가 줄곧 정열적으로 추진해 온 ‘희망결연사업’도 자살률을 줄이기 위한 정책 가운데 하나다.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 문제로 자살에 이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 구청장은 “먼저 구 직원들이 취약계층의 주민들과 결연을 맺도록 했다”면서 “동마다 희망복지위원회를 구성해 주민과 주민을 연결시키는 사업도 착착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안부전화도 하고 불편한 점을 하나씩 풀어 주는 작은 노력이 쌓여야 자살률도 줄어들고 공동체 의식도 살아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달 말까지 구성을 서두르고 있는 희망복지위원회는 동별로 종교단체, 지역 상공인, 봉사단체 관계자 30명 내외로 이뤄진다. 유 구청장은 “그분들을 중심으로 마을에 거주하는 취약계층 노인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동네별로 문제를 풀어 가는 노력을 자율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생활 단위에서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게 진정한 공동체”라면서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 내면서 마을공동체 복원을 일군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한다”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14년 만의 ‘응애~’ 강원 산골 깨운 아기울음

    14년 만의 ‘응애~’ 강원 산골 깨운 아기울음

    첩첩 산골, 강원 정선군 화암면 북동리 마을에서 14년 만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렸다. 10일 정선군에 따르면 아기가 태어난 화암면 북동리 마을은 전체가 잔칫집 분위기다. 주인공은 지난달 31일 태어난 유재인군으로 3년 전 서울에서 귀농한 유익열(42)씨와 베트남에서 시집 온 응엔티응안(27)씨의 첫 아들이다. 이름도 ‘어질게 살아가라’고 쌓을 재(載), 어질 인(仁)으로 지었다. 오랜만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 북동리 마을 이장 장부군(60)씨는 “북동리는 넓은 면적에 주민이 띄엄띄엄 사는 깊은 산골마을이라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면서 “이런 오지마을에 새 생명이 탄생했다니 마을 전체가 잔치라도 열어야 할 것 같다”고 기뻐했다. 이 마을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황금 노다지를 찾아온 사람과 화전민으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하지만 금광이 문을 닫고 1979년 수해로 골짜기에 몰려 있던 수많은 집이 휩쓸려 내려가면서 급격히 쇠락했다. 현재 40여 가구에 70여명이 산골짜기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다. 대부분이 60대 이상이고 10대 이하는 갓 태어난 재인군을 포함해 5명뿐이다. 이런 마을에 오랜만에 갓난아이를 안겨준 유씨는 축하전화와 미역, 배냇저고리 등을 들고 찾아오는 마을주민들을 맞느라 바쁘다. 정선군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면서 북동리에 찾아온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축하의 글이 올라왔다. 귀농하면서 충북 단양에 살던 노모(83)까지 북동리 마을로 모셔 결혼도 하고 아들도 얻은 유씨는 “논이 없어 감자와 고추, 콩, 곤드레 등 밭농사를 주로 하며 생활하고 있지만 아들을 얻으면서 앞으로 농사를 더 늘려 돈을 더 벌어야 할 것 같다”면서 “내친김에 둘째도 얼른 낳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정선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농작물 재해보험, 너만 믿는다!

    농작물 재해보험, 너만 믿는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서인기(70)씨는 지난해 태풍으로 낙과 피해가 많이 발생했지만 단 한 푼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씨는 올해도 기상재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지난달 재해보험에 가입했다. 기상이변에 따른 농작물 피해가 반복되면서 농가들의 재해보험 가입이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태풍과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전북과 전남, 충남 등 내륙지방 과수 재배농가들의 보험 가입이 크게 늘었다. 8일 NH농협손해보험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22일까지 사과·배·감귤·단감·떫은감 등 과수 5개 품목의 재해보험상품을 판매한 결과 지난해보다 가입 면적은 4.7%(3만 2685㏊), 가입 농가는 4.2%(3만 5064가구)가 증가했다. 사과의 경우 1만 7564개 농가가 1만 5756㏊의 면적을 가입했다. 이는 전체 대상 면적의 89.7%에 이르는 것으로 지난해보다 농가수는 4.9%, 면적은 5.7% 증가한 것이다. 배도 1만 731개 농가가 1만 795㏊를 가입했다. 특히 떫은감의 가입률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보다 농가수는 40.7%, 면적은 37.6% 증가했다. 기상변화에 농가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지난해 과수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들은 ‘볼라벤’과 ‘덴빈’ 등 3차례의 강력한 태풍으로 엄청난 낙과 피해가 발생했지만 보상을 받아 보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충남의 경우 지난해 농가들이 받은 농작물재해보험금은 571억 7000만원으로 전년도 10억 500만원의 57배를 넘어섰다. 충남 아산시 이모(68)씨는 지난해 8월 볼라벤으로 60% 이상의 사과가 떨어지는 피해를 입었지만 그해 3월에 가입한 재해보험 덕분에 1억 4267억원의 보험금을 탔다. 아산시에서 배 농사를 짓는 김모(53)씨는 “90%가 넘는 낙과 피해를 입었지만 1억 1148만원의 보험금을 받아 재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농작물재해보험은 납입 보험료의 50%는 국비, 27%는 지자체가 지원하기 때문에 농가 부담이 적은 것도 보험 가입이 급증하는 원인이다. 전북지역은 올해 1140개 농가에서 1480㏊의 과수재해보험에 가입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농가수는 51%, 면적은 42.9%나 늘어난 것이다. 전남지역은 올해 6401개 농가가 과수재해보험에 가입했다. 지난해 5523개 농가에 비해 15.9% 증가했다. 충남지역도 재해보험 가입 농가가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 2805개 농가에서 2011년 6491개 농가, 2012년은 8903개 농가로 늘었다. 올 들어서도 3월 하순까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2886곳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2597개 농가에 비해 11% 늘어났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전국노래자랑 296번 갔죠”

    “전국노래자랑 296번 갔죠”

    11년 동안 296차례나 KBS 전국노래자랑을 직접 참관한 노부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달 말이면 300회를 채운다. 일요일 낮에 방영되는 KBS 전국노래자랑 ‘광팬’은 전북 익산시 오산면 이병철(75)·박정자(73)씨 부부. 이 부부는 1993년부터 11년째 전국노래자랑이 열리는 전국 곳곳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이 부부는 노래자랑 녹화가 열리는 날이면 모든 일을 제쳐놓고 현장에 나타난다. 현장에 도착하면 바로 빨간 커플티로 갈아입고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신나게 춤을 춘다. 노부부가 나타나면 사회를 맡은 송해씨가 “이분들이 바로 전국노래자랑 홍보대사”라고 주민들에게 소개할 정도다. 이씨 부부가 전국노래자랑과 인연을 맺은 건 의사가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아내 박씨에게 운동하라고 권하자 취미 삼아 녹화현장을 찾으면서부터다. 농사일에 지친 이들에게 유일한 낙인 전국노래자랑 구경은 최저 비용으로 이뤄진다. 철저한 원칙은 ‘무박 여행’이다. 자가용 차량이 없는 노부부는 경비 절감 차원에서 열차와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식사는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이 때문에 부부가 전국노래자랑을 구경하는 데 드는 경비는 회당 평균 3만 3000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씨 부부는 “우리가 돈이 많아 전국노래자랑 구경을 다닌 게 아니라 열정과 부지런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최전방 양구 주민 ‘청정 시래기’ 대박

    최전방 양구 주민 ‘청정 시래기’ 대박

    인구 2만 3000여명, 휴전선과 닿아 있는 초미니 지방자치단체인 강원 양구군이 버려지는 시래기를 명품 향토특산물로 육성해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양구군은 29일 밭에서 버려지던 시래기(무청)를 건강식품으로 상품화해 지난해 24억원의 수익을 낸 데 이어 올해에는 35억원을 벌어들일 전망이라고 밝혔다. 1990년대 초 휴전선 제4땅굴을 코앞에 둔 해안면 일명 펀치볼지구 만대마을 5개 농가에서 감자농사 이후 시래기를 상품으로 팔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 무공해 청정지역 시래기를 한겨울 영하 20도를 밑도는 추위 속에 말려 판매하기 시작한 게 웰빙바람을 타고 인기를 얻게 되면서 재배지역도 늘었다. 워낙 추운 곳에서 건조되다 보니 영양 파괴가 안 되고 섬유질이 풍부해 위암과 대장암 환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에 따라 전창범 양구군수는 시래기가 군의 미래를 책임질 웰빙식품이 될 것으로 보고 지난해부터 명품화 사업에 본격 나섰다. 정부에 시래기를 향토산업육성 대상으로 신청, 지난해부터 3년간 국비 15억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군비 등 모두 30억원을 들여 ‘펀치볼 시래기 명품화 사업’을 시작한 것. 군 지원이 이뤄지면서 지난해 64개 펀치볼 농가들이 100㏊에서 238t의 시래기를 생산해 24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생산되기가 무섭게 팔려나가 현재 재고가 바닥났다. 올해는 74개 농가에서 시래기 350t을 생산해 35억원가량의 소득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부터 농협에서 수매를 담당해 줄 예정이어서 해마다 재배면적과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이는 양구를 대표하는 농산물인 곰취와 비슷하다. 지난해 117개 곰취 농가는 28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군은 시래기 명품화 사업을 연구·개발, 생산, 가공, 홍보·마케팅 분야로 나눠 체계적으로 꾸려 나갈 방침이다. 건조 덕장을 늘리고 가공시설도 갖췄다. 시래기를 삶아 냉동하고 된장과 소스를 곁들인 시래기 고등어찜과 시래기 모래무지찜, 시래기 해장국, 시래기 감자탕, 시래기 등갈비 등 서민들이 좋아하는 상품을 즉석에서 맛볼 수 있도록 개발해 연말쯤 출시할 계획이다. 전 군수는 “2007년부터 생산농가에서 열던 겨울철 시래기축제를 2008년부터 해안면 향토축제로 승격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웰빙식품 양구 시래기를 알리는 행사를 해마다 열고 있다”면서 “휴전선과 인접한 작은 양구군이 시래기를 통해 부자마을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양구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베트남서 시집 온 김영미씨 8년차 결혼생활 ‘봄·여름·가을·겨울’

    [주말 인사이드] 베트남서 시집 온 김영미씨 8년차 결혼생활 ‘봄·여름·가을·겨울’

    충남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 김영미(31·본명 레 티후에)씨는 아이가 셋이다. 딸 둘(8살, 6살)에 막내아들(5)이 있다. 영미씨는 “손아랫동서가 아들을 낳았는데 시부모가 얼마나 좋아하는지”라며 한국의 남아선호 사상을 놀라워했다. “그랬는데 둘째도 딸을 낳은 거예요.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몰라요.” 영미씨는 “그래서 하나를 더 낳아 아들을 얻었다. 너무 좋았다”고 웃었다. 영미씨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것은 2005년 3월이다. 베트남 남부 호찌민에서 멀지 않은 따이닌에서 농부의 1남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지 한국인 회사에 취직했다. 사장 딸과 어울리면서 한국어를 배웠다. 2년 후 그 회사를 그만두고 국제결혼 통역으로 일했다. 그때 남편 이병일(45)씨를 만났다. “국제결혼을 하려고 베트남에 온 신랑이 ‘저 여자가 아니면 결혼 안 하겠다’는 거예요.” 영미씨는 “그래서 얼떨결에 결혼했다”고 하더니 “신랑 첫인상이 좋았다”고 빙긋 웃었다. “한국 남자와 결혼은 꿈도 안 꿨다”는 그는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남편 이씨는 7동의 비닐하우스에서 깻잎을 기른다. 논도 있고, 밭농사도 한다. 한국에 오니 베트남과 비슷하거나 다른 점이 있어 신기했다고 한다. 먼저 ‘12간지’다. 영미씨는 “베트남에도 띠가 있는데 한국과 순서가 같다”며 “다만 소는 ‘물소’, 양은 ‘염소’, 토끼는 ‘고양이’ 띠로 세 개만 다르다”고 재미있어했다. 사촌끼리 나이로 따져 ‘누나’나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생소했다. 베트남에서는 부모형제 간 서열이 사촌 간 서열까지 결정한다. 영미씨는 “베트남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 누나인 고모의 네 살배기 아들에게 ‘오빠’라고 불렀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린 뒤 “사촌 간 서열은 한국이 맞는 것 같다”고 촌평했다. 영미씨는 남녀 학교가 따로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베트남은 모두 남녀공학이다. 베트남도 추석·설 명절과 제사가 있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불러 음식을 나눠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게 다르다고 영미씨는 전했다. 하지만 한국의 농사는 녹록지 않았다. 영미씨는 “베트남에서는 물을 빼낸 논에 새싹이 돋은 나락을 뿌려놓고 잡초 몇 번 뽑아주면 수확하는데, 한국은 모를 길러 일일이 손으로 심고…”라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베트남 농사는 10월 말에서 12월 말 사이를 제외하고 3모작을 해도 크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영미씨는 “40도까지 올라가는 베트남에서는 아침 일찍 논에 나가 오전 10시쯤 집에 들어오고, 오후 2~3시에 다시 나가 저녁 때 모기가 들끓면 귀가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사시사철 깻잎 농사까지 지어야 해 더욱 힘들다고 했다. 영미씨는 “처음에는 임신한 상태에서 갓난아기를 업고 농사를 지으려니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베트남으로 도망갈까’하고 수없이 결혼을 후회했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행복해졌다”고 귀띔했다. 아이들이 희망이라고 자랑한다. 큰딸 나영이는 금계초등학교 2학년이다. 같은 학년 6명 중 2명이 다문화가정 자녀다. 둘째 딸 규리와 아들 봉규는 금계초 병설 유치원에 다닌다. 셋이 집에서 200m쯤 떨어진 학교에 같이 등교한다. 영미씨는 “아이들이 친구들한테 ‘너희 엄마 베트남 사람이지’라는 놀림을 당할까 봐 요즘도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다”면서 “어려서인지 아직 따돌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대회에서 수차례 상을 받을 정도로 한국말을 잘한다. 그는 아이들이 오히려 친구들한테 엄마 자랑을 늘어놓는다고 전했다. ‘우리 엄마 베트남 사람인데 한국말 잘해. 이름도 한국 이름으로 바꿨어’, ‘너희들 베트남 가 봤어’, ‘베트남말 할 줄 알아’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다. 영미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베트남 과자를 만들어 들려보내기도 한다. 그녀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와 ‘친구들이 베트남 과자 되게 맛있다고 해’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인다”고 조심스러운 심정을 내비쳤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 셋만 의사놀이 등을 하며 논다. 마을에 아이들이 없어서다. 영미씨는 “다른 마을에서 친구나 친척 또래들이 놀러 오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형편도 넉넉지 않아 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피아노나 영어 학원을 못 보내는 것도 늘 마음에 걸린다. 사실 한국에 시집 온 뒤 친정나들이도 딱 한 번뿐이었다. 3년 전 중매를 서 베트남에 갈 때 아이들까지 데리고 갔다. 영미씨는 “베트남에서는 한국에 딸을 시집보내면 ‘딸 덕에 비행기 탄다’고도 하지만 ‘딸을 팔았다’는 말도 많아 친정 부모를 생각하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녀는 “친정 부모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달려가려고 돈을 모으는데 잘 안 된다”며 “돌아가신 다음에 가면 뭐 하겠느냐”고 가슴 아파했다. 고향을 못 가는 그리움은 한국에 시집을 온 막내 여동생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며 달랜다. 막냇동생은 영미씨가 셋째를 임신했을 때 하신리에서 여덟 달 동안 언니를 몸조리해주다 마을 청년과 눈이 맞아 결혼했다. 막내가 ‘농사짓기는 싫다’고 해 회사원을 골랐다. 막내도 네 살배기 딸 하나를 두고 대전 아파트에서 산다. 영미씨는 “한국 남자들이 처자식 먹여 살리려는 책임감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남편 이씨도 자상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 그는 “사람들은 만난 지 얼마 안 돼 결혼하고 나이 차가 많아 사랑 없이 산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살다 보니 참사랑을 느낀다. 내 몫은 이만큼이다고 해야 행복해진다”고 나름의 생각도 전했다. 부부싸움이나 고부갈등도 거의 없다. 그래도 남편은 “저녁에 마실을 못 가게 한다”고 살짝 불평을 늘어놓았다. 동네 주민들이 만나면 “외국인 새댁이 많이 도망가는데 위암 걸린 시어머니 모시고 애들 셋 키우느라 고생한다. 장하고 고맙다”고 다독여 주는 것도 위로가 된다. 반면 한국에 시집 온 외국인 새댁이 살해됐다는 뉴스에 “돈 보고 왔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지”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무척 아리다고 영미씨는 찌푸렸다. 영미씨는 아침 6시 30분쯤 일어난다.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여 등교시킨다. 된장찌개 등 못하는 한국 음식이 없다. 오전 8시 30분쯤부터 저녁 때까지 깻잎을 딴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해먹고, 빨래와 집 안 청소를 하다 보면 밤 10시가 넘어 잠에 든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다. 토요일만 시아버지(80)를 따라 교회에 잠깐 다녀올 뿐 쉴 틈이 없다. 그는 지난해 3월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이름을 지었다. ‘영미’라는 이름은 가장 듣기 좋아서고, 성은 이름과 제일 잘 어울려 붙였다고 했다. 사시사철 더운 나라에서 자란 그는 “겨울이 너무 춥다. 옷을 다섯 겹이나 껴입어도 그렇다”면서 “찬물에 손을 담그면 손톱이 빠지는 것 같다”고 했다. 봄을 가장 좋아한단다. 봄에 새싹이 돋는 것처럼 영미씨는 아이들에서 희망을 보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중고교나 대학교에 가면 다문화가정 자녀라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취직할 때 또는 입사해서도 차별을 받지 않을까 하는 것들이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지만 한국인 부부 자녀들을 계속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소망이 거창하지 않다. 영미씨는 “큰딸은 가수, 둘째 딸은 간호사, 아들은 소방수가 꿈이라고 엄마에게 말하곤 하는데 다른 거 없다. 그저 건강하고 자기 힘으로 살 수 있을 만큼만 자라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글 사진 금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열린세상] 후진국 부모, 선진국 아이/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후진국 부모, 선진국 아이/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대학 강단에 선 지 13년째다. 봄 새 학기가 시작되면 호기심 가득한 신입생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졸업할 때까지 4년 동안 적어도 1000권의 책을 읽어야 제대로 공부한 대학생의 자격이 생긴다고 힘주어 말한다. 매 학기 한 강좌를 들을 때마다 20권의 책을 읽어야 하고, 한 학기 6개 강좌를 들으면 120권, 1년 240권, 4년 약 1000권을 읽게 된다고 자세히 설명한다. 매번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신입생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면서 결의를 다지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래 진로와 관련해 개별면담을 하면서 매번 하는 이 말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 학생은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다양한 세계 문화를 접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다른 학생은 네팔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국문과에 왔다고 했다. 중학교 때 부모와 네팔에 여행을 가서 굶주리고 헐벗은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50대가 된 세대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장래 진로는 ‘사’자 돌림의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1960~70년대 후진국 한국에서 보릿고개 춘궁기를 경험한 세대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잘 먹고 잘사는 것이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공직에 나가거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 그래서 부와 권력을 한꺼번에 손에 쥐는 것만이 출세한 삶으로 비춰졌다. 동네에서 누군가가 고시에 합격하면, 축하 현수막을 내걸고 마을잔치를 하면서 ‘개천에서 용났다’라고 입을 모아 칭찬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갖기를 원하는 젊은이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즐겁게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려는 젊은이가 부쩍 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은 한국이란 울타리를 넘어 세계 속의 한국 젊은이로서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 이들에게서 1960~70년대 가난한 한국을 위해 성심성의껏 봉사활동을 하던 파란 눈의 선진국 젊은이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얼마 전, 친구가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그는 나를 양식당으로 안내했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데 주방장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주방장의 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바로 친구의 아들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는 뒷전이고 요리사가 되겠다고 설쳐대는 바람에, 친구로 하여금 자식농사 망쳤다고 울분을 토하게 했던 그 녀석이었다. 아들이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고개를 들지 못하던 친구이기에 아들 소식을 더 묻지 못하고 지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어엿한 주방장이 되어 친구와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호주로 가서 요리를 배우고 왔다는 녀석이 참으로 대견해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친구는 후식을 먹는 자리에서 아들이 요리사가 된다 할 때 적극적으로 밀어 줄 걸 괜히 자기 욕심 때문에 먼 길을 걷게 했다고 후회를 했다. 친구의 자책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후진국 한국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와 선진국 한국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는 세대의 사고는 다를 수밖에 없다. 후진국 부모는 지금도 ‘사’자 돌림의 직업을 선진국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은 총명하다. 선진 한국사회에서 더불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 길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런 아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기성세대가 할 몫이다. 자식 세대에게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다면, 그들은 기성세대가 상상도 못할 일을 벌이면서 선진 한국을 세계만방에 알릴 것이다. 국문학을 가르치는 선생 입장에서, 세계 각국에 한국문화원과 한국어학원을 세워 우리 젊은이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간절히 한다. 더불어 이번 신학기에는 책을 많이 읽으라는 주문 외에 세계로 시선을 넓히고 폭넓은 견문을 쌓으라는 당부를 반드시 덧붙여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 “조사 100번 해도 달라질 건 없어 그날의 증언, 내가 살아 있는 이유”

    “조사 100번 해도 달라질 건 없어 그날의 증언, 내가 살아 있는 이유”

    “이런 발표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바빠지겠다’고 툭 던져요. 하지만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28일 오전 충남 당진시의 한 시골 마을. 새소리만 이따금 들리는 조용한 마을에서 한 촌로(村老)가 목소리를 높였다. 의문사한 장준하(1918~1975) 선생 ‘마지막 산행의 동행자’인 김용환(78)씨다. 그는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장 선생이 실족사하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주장하며 검찰 등에 진술해온 인물이다. 하지만 최근 장 선생의 유골 정밀 감식 결과 등 타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김씨의 목격담에 의문을 품는 여론이 높아졌다. 김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밝혀질 게 없다. 어떤 증거가 나와도 사실은 그대로다”라면서 “하늘이 무너지기 전에는 증언을 바꿀 수 없다. 그것이 나의 자존심이자 살아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교사였던 그는 1999년 퇴직 후 농사를 지으며 이곳에서 살고 있다. “보지 못하는 순간 누군가 장 선생을 돌 등으로 가격했을 가능성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 말도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또 자신을 ‘피의자’로 지목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떤 빌어 먹을 놈이 같이 모시고 투쟁하던 분을 시해하나. 장 선생과는 어려울 때 함께한 끈끈한 관계였는데 내가 시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천륜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은 나에게 ‘장 선생을 위해 선생님에게 유리한 편으로 얘기하라’고 했지만 그래서도 안 될 일이다. 그건 선생님을 위한 일이 아니다”고 얘기했다. 장 선생의 사인을 놓고 의혹이 계속 제기되는 것에 대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제기하는 것이며 정치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김씨는 시민단체와 야권에서 장 선생 사인을 재조사할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벌써 다섯 번의 조사(사건 당시, 1988년 경찰 재조사, 1993년 민주당 조사, 2002년과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를 받았는데 또 받을 의무는 없다. 또 조사를 100번 해도 다른 게 나올 리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장 선생 사후에 자신의 인생이 기구해졌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언성이 높아질 때면 옆에 있던 아내가 혈압 높아지니 ‘말하지 말라’며 진정시켰다. “억울하다면 국가인권위원회나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인권위를 어떻게 믿나. 더 이상 논쟁하고 싶지 않다. 초연하게 살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회고록을 내려고 원고도 써 봤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나를 괴롭힌 사람을 못 박아 써야 하는데 또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싶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38년간 실족사를 주장해 온 그가 이번 유골 감식 결과로 자신의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당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당진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한국인의 밥상(KBS1 밤 7시 30분) 전남 진도 남쪽에 위치한 환상의 섬, 조도군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50%가 무 농사를 짓고 있다. 방금 뽑은 무를 시원한 굴과 함께 버무린 아삭아삭한 무생채는 물론 조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보리싹 무전이 곁들어진 조도 명지마을의 새참을 즐길 수 있다. 밭에서 뽑은 무의 아삭아삭 달콤한 참맛을 느껴본다. ■오감만족 세상은 맛있다(KBS2 밤 8시 20분) 미얀마 사람들의 하루는 스님들을 위한 탁발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맨발로 길에 서서 스님들을 기다리고, 바리를 옆구리에 낀 스님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미얀마는 스님들과 여성의 신체적 접촉을 불허하는 나라다. 이에 탤런트 정소영은 조심스럽게 스님들의 바리에 음식을 넣고 합장을 시도한다. ■MBC 특별 기획 구암 허준(MBC 밤 8시 50분) 산음땅에 도착한 허준(김주혁)과 어머니 손씨(고두심)는 계획대로 되지 않아 살길이 막막하다. 그런 이들 앞에 구일서(박철민)가 접근해 온다. 허준은 갑자기 쓰러진 손씨를 업고 유 의원의 집으로 향한다. 한편 허준을 도와주기로 한 구일서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밤 8시 55분)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춘삼월에 눈꽃을 만드는 남자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그곳에는 신비의 가위손을 가진 론 애스턴이 살고 있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장가 온 지 올해로 8년차 된 그는 하얀 종이와 가위만 있으면 앉은 자리에서 쓱싹쓱싹 예쁜 눈의 결정체들을 줄줄이 탄생시켰다. ■연중기획-폭력없는 학교(EBS 오후 1시 5분) 경기 구리시의 동구중학교에서는 ‘뉴스포츠’ 활동이 활발하다. 그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플로어 볼’이다. 아이스하키를 마룻바닥으로 가져온 체육활동으로 공과 스틱은 모두 연성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보다 안전하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고 이는 학교폭력 예방까지 낳았는데…. ■눈먼 자들의 도시(OBS 밤 12시 5분) 평범한 어느 날 오후, 앞이 보이지 않는 한 남자가 차도 한가운데에서 차를 세운다. 이후 그를 집에 데려다 준 남자는 물론, 그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어 버린다. 한편 남편을 지키기 위해 눈먼 자처럼 행동하는 한 여인이 있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병동에서 오직 그녀만이 충격의 현장을 목격한다.
  • 이지바이오, 러시아서 직접 경작한 옥수수 국내 첫 반입

    이지바이오, 러시아서 직접 경작한 옥수수 국내 첫 반입

    국내 업체가 해외 농장에서 직접 경작한 옥수수를 처음으로 국내에 반입했다. 생물자원 전문기업 이지바이오 계열 사료업체인 서울사료가 러시아 연해주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옥수수 3,100톤이 지난 18일 블라디보스톡항을 떠나 22일 새벽 평택항을 통해 들어왔다. 이지바이오그룹은 계열사 팜스토리㈜의 자회사인 서울사료를 통해 지난 2008년부터 러시아 연해주에 농업법인 ‘에꼬호즈’를 설립, 서울시 면적의 1/4인 15,000여 헥타르의 농지를 임대하여 농산물을 생산해왔는데, 5년 만에 본격반입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사료는 올해 NON-GMO 옥수수 4,700톤, 콩 5,700톤 등 12,000여 톤의 곡물을 생산하여 이중 일부를 국내에 들여와 축산사료로 공급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식용으로 판매하거나 자체 축우농장에서 사용할 예정이다. 이번 옥수수 반입은 사료를 포함한 국내전체 곡물자급률이 22.6%(2011년 기준)에 불과하고 사료곡물의 자급률은 1%도 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해외농업개발협회를 통한 할당관세 추천에 의해 반입되는 첫 사례로 기록되고, 해외농업투자를 통한 안정적인 곡물자원 확보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해마다 국제 곡물가격이 치솟고 식량자원의 무기화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러시아 연해주의 광대한 경작지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농업자원 개발은 이번 사례 이후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이지바이오그룹은 연해주의 곡물생산이 생산성과 가격, 물류 측면에서 경쟁력이 높아 경작면적을 확대하는 한편 향후 주변 농장들의 곡물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한국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다. 이지바이오그룹은 계열사인 이지바이오와 팜스토리, 마니커, 서울사료, 이지가족농장 등을 통해 농, 축산물 생산에서부터 사료와 첨단 바이오공학까지 수직계열화를 구축하고 있는 생물자원전문기업이다. 인터넷 뉴스팀
  • 갈릴레이가 그린 ‘태양 흑점 지도’… 400년째 기록중

    갈릴레이가 그린 ‘태양 흑점 지도’… 400년째 기록중

    “과학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다.” 과학저널 네이처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발간한 최신호에서 던진 화두다. 네이처의 질문은 과학의 근본을 묻는다. 원래 과학은 느리다.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네이처는 현재의 과학계가 이런 기본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봤다. 과학자들이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와 성과를 제시해야 하고, 결국 스스로를 옭아매고 단시일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빠른 과학’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네이처가 과학이 마라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5가지 ‘느린 연구’를 소개한다. 과학자들이 태양의 흑점을 처음으로 세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400년 전인 1613년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신의 망원경으로 최초의 흑점 지도를 그렸다. 이후 200년 이상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태양 흑점을 세고 이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없었다. 1848년 스위스 천문학자 루돌프 울프는 태양 흑점이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간격이 9.5~12년이라는 ‘울프 숫자’ 공식을 만들어냈다. 2011년 벨기에 왕립관측소는 1700년 이후 500명의 과학자들이 기록한 흑점 지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백년의 기록을 통해 태양 활동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흑점 활동은 인공위성의 활동이나 각종 통신 등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벨기에 센터에는 매월 90여명의 관측자들이 각자 관측한 태양 흑점 자료를 보내오고 있다. 대부분 아마추어 천문가인 이들이 사용하는 망원경은 2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갈릴레이 방식의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이 마지막으로 폭발한 것은 서기 79년이었다. 화산재와 용암은 폼페이라는 도시국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연구소인 베수비오 관측소가 이곳에 자리잡은 것이 우연이 아닌 셈이다. 1841년 과학자들은 화산이 가장 잘 보이면서도 화산의 영향에서 안전한 600m 높이의 산 중턱에 관측소를 지었다. 당초 관측소의 목적은 24시간 화산활동을 감시해 화산 폭발 시점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측소의 과학자들은 화산의 진실에 대해 점차 가까이 다가갔다. 첫 번째 관측소장이었던 마케도니오 멜로니는 용암이 지구 자기장에 어떻게 반응하지는지를 화산암에서 읽는 방법을 찾아내 ‘고자기학’을 창시했다. 루이지 팔미에리는 전자기 지진계를 발명해 지진파 감지의 신기원을 열었다. 20세기 초 연구소에서 일하던 주세페 메르칼리는 오늘날 사용되는 ‘진도’(震度)의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최초의 베수비오 관측소는 1970년대 그 역할을 다하고 박물관으로 모습을 바꿨다. 지표면에 센서를 설치하고 위성을 띄운 뒤 연구소에 앉아서 모니터로 실시간 감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그 역할은 나폴리에 있는 국립지구물리학 연구소가 맡고 있다. 영국 로삼스테드연구소는 1843년 영국의 ‘비료왕’으로 불렸던 존 로스가 비료가 작물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만든 거대한 농장이었다. 로스는 질소, 인, 칼륨, 나트륨 등 화학물질들을 보리, 콩 등의 농사에 사용해 실제 생산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살폈다. 연구소장 앤디 맥도널드는 “시간이 흐르면서 연구소는 수많은 비료들의 작용과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복합적으로 작용하는지 등의 질문에 대한 답들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연구소는 농업과 관련된 과학적 궁금증을 해소하는 모든 종류의 연구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1968년에는 육종을 통해 얻어진 신품종 작물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연구소에서 유전자변형작물(GMO)에 대한 연구도 시작됐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했지만 ‘농작물에 관해 장기간의 연구를 한다’는 원칙은 유지됐다. 현재 연구소에는 19세기 이후 실험에 사용되거나 실험에서 얻어진 30만종의 식물과 토양 샘플이 보관돼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은 1921년부터 ‘천재’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IQ 테스트를 거쳐 1900년부터 1925년 사이에 태어난 1500명의 어린이들이 선발됐다. 인간 발달을 대상으로 한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연구였다. 터먼이 연구를 시작한 목적은 ‘천재는 약하고 사회성이 결여돼 있으며 다른 분야에서는 특별한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하버드대의 조지 바이런트는 터먼의 조사대상들이 생애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았는지를 추적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또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의 하워드 프리드먼은 이를 기반으로 현대 심리학의 근간인 ‘사람의 인격이나 심성은 어린 시절뿐 아니라 어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을 완성했다. 터먼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그의 연구는 9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961년 호주 퀸즐랜드대 물리학과에 부임한 존 메인스톤은 학교에서 이상한 장치를 발견했다. 종 모양의 유리병 속에는 모래시계와 같은 형태의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위쪽의 타르 덩어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래쪽으로 흘러 떨어지도록 하는 구조였다. 이 장치는 34년 전 이 학과의 첫 교수였던 토머스 패널이 원유를 증류한 뒤 남은 타르 찌꺼기가 고체이자 유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메인스톤은 이후 이 장치를 지속적으로 관찰했고,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데 6~12년이 걸린다는 것을 밝혀냈다. 1984년 메인스톤은 타르 찌꺼기의 점성이 물보다 2300억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85년의 관찰에서 얻어진 단 한 편의 논문이었다.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직까지 타르 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없다. 때문에 타르 방울이 떨어질 때 어떤 모습인지, 어떤 방향인지 등을 밝혀내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떨어진 타르 방울은 2000년 11월이었다. 2005년 이 실험은 황당한 연구이지만 의미 있는 연구에 주어지는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노원구 초보농사꾼 ‘귀농 수업’

    노원구가 귀농을 꿈꾸는 주민들에게 영농기술을 가르쳐 주는 체험형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무작정 귀농했다가 현지 적응을 못해 실패하는 경우를 예방하고 성공적인 귀농을 돕자는 취지다. 25일 구에 따르면 교육 프로그램은 ‘귀농·귀촌’과 ‘체재형 주말 농장 체험’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먼저 초보 영농 기술을 배우는 귀농·귀촌 프로그램은 초보 농사꾼을 위해 농촌생활의 빠른 적응을 돕고 농사의 기초적 노하우를 알려준다. 4월부터 9월 초까지 5개월 동안 진행되는 교육은 구와 경기 양평군 농업기술센터를 오가며 농업 기술의 이론 교육과 현장 실습 위주로 가르친다. 교육 시간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이며 교육료는 월 3만원이다. 구는 귀농·귀촌을 위해 약 1500만원의 예산을 들여 귀농 교육에 필요한 버스 임차비와 교재 등 인생 2모작의 꿈을 위해 땀을 흘릴 교육생들의 교육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김성환 구청장은 “지난해 지역 주민들이 귀농·귀촌에 대한 욕구가 높아 이 프로그램 모집 인원이 하루 만에 마감됐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폐비닐·폐부직포·농약병… 농촌은 영농폐기물 몸살

    폐비닐·폐부직포·농약병… 농촌은 영농폐기물 몸살

    전국 농촌 지역이 무분별하게 버려진 폐비닐과 잔류 농약병 등 영농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폐비닐과 생활쓰레기를 노천에서 소각하는 사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폴리에스테르 등 화학물질로 만들어진 폐부직포(보온덮개용)나 비료포대, 쓰다 만 봉지 농약까지도 불에 태워 환경오염은 물론 농민들의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 폐비닐이나 농약병은 정부가 나서 수거보상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발생량 대비 수거율은 절반 수준이다. 수거되지 않은 폐비닐은 불법 소각되거나 자연에 방치되고 있다. 기술 영농이 보편화되면서 새로운 영농자재가 나오고 있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농촌 곳곳에 쌓여있다. 폐비닐과 농약병, 폐부직포 등 각종 영농 폐기물의 처리 실태와 지원 정책 등을 알아본다. 폐비닐은 썩지도 않고 땅속에 묻힐 경우 지력을 약화시키고 토양오염 등 환경피해로 이어진다. 따라서 농촌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은 봄철을 맞아 영농폐기물 수거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농촌의 폐비닐 처리를 위해 1980년부터 수거보상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폐비닐을 마을단위 집하장에 모아두면 ㎏당 30~50원을 국고로 보상해 주는 제도다. 제도 시행으로 연간 100억원가량이 국고에서 지원됐다. 하지만 1998년 10월 이후부터 국고 지원을 대폭 줄이고(19억 5000만원), 지자체별로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24일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농촌의 폐비닐 방생량은 연간 32만 4000t에 달하고, 수거되는 양은 17만 7000t으로 수거율이 55%에 그쳤다. 이처럼 수거율이 낮은 것은 예산이 바닥나면 이후부터 수거를 중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는 “마을 공동 집하장에 폐비닐을 모아 놓으면 무게에 따라 지자체에서 보상급을 지급하는데 예산이 모자라면 대부분 조기에 수거 작업을 끝낸다”고 말했다. 현재 농촌에서 수거된 폐비닐은 이물질 등을 제거한 뒤 새로운 제품으로 재활용된다. 한국환경공단은 올해부터 폐비닐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폐비닐 수거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수거된 폐비닐의 상태에 따라 보상금을 달리 지급하는 제도다. 지난해 시범사업을 벌인 뒤 올해부터 전국 지자체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일률적으로 적용하던 수거보상금은 흙·돌·끈 등 이물질 함량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지자체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A등급(적정 선별품), B등급(보통 비닐), C등급(이물질 함유)으로 구분해 등급에 따라 ㎏당 120원(A등급), 100원(B등급), 80원(C등급)을 준다. 폐비닐 외에 유독물인 빈농약병도 용기 종류에 따라 개당 50~60원씩 수거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 농약 등은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혼선을 빚기도 한다. 빈농약병은 한 해 7800만개가 발생해 5000만개를 수거한 것으로 집계됐다. 폐비닐이나 농약과 달리 인삼 재배나 가축들을 위해 사용하는 차광막, 참외농사 등에 보온용으로 덮는 부직포 등 신소재 폐기물도 넘쳐나지만 수거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수명을 다한 차광막·부직포는 농촌 곳곳에 방치돼 흉물로 등장했다. 인삼 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이나 대규모 축사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방치돼 있는 차광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용이 늘어난 부직포도 마찬가지다. 참외 재배 지역으로 유명한 경북 성주군은 최근 폐부직포 수거에 사활을 걸었다. 수명을 다한 폐부직포가 다량으로 발생해 들판에 방치되거나 불법 소각·매립이 빈번해 심각한 환경오염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 방치된 폐부직포는 장마철에 수로를 막아 거대한 담수호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성주군은 태풍 때 내린 폭우로 주택·상가 900여동이 침수되고 농경지 242㏊가 매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에 성주군은 대대적인 폐부직포 수거에 나서는 한편 실적이 좋은 읍·면에 포상금까지 내걸었다. 폐비닐도 수거율을 높이기 위해 보상단가를 대폭 인상했다. 주민 김형수(성주군 성주읍 대황2리)씨는 “흉물로 방치되던 폐부직포를 군에서 수거하고 재활용할 방안을 찾은 것이 기쁘다”면서 “수거 정책이 정착되면 깨끗한 지역 이미지가 부각돼 특산물인 성주참외의 명성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씨줄날줄] 효도 계약/임태순 논설위원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자식들에 대한 과도하고 맹목적인 사랑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과 왕정복고 등 격변이 많았던 19세기에 제면업으로 큰 돈을 번 고리오 영감은 상류사회로 진출하려는 두 딸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쏟아붓는다. 마지막에는 종신연금까지 팔고 하숙집 꼭대기층으로 옮기지만 그는 딸들의 외면 속에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내가 내 재산을 간직하고 있었더라면. 내가 재산을 그 애들에게 주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물려줄 보물이 있다면 딸들은 나를 치료하고, 나를 간호할 것이다. 나는 부자이고 싶다”라고 절규하지만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몇년 전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개발되기 전 외지에 있는 자식들이 세종시에서 농사 짓고 있는 부모들을 부쩍 자주 찾는다는 기사가 신문 지면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신도시 개발로 토지가 수용돼 부모들이 막대한 보상금을 받을 것에 대비, 자식들이 ‘효도 문안’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며 자식이 부모에게 칼부림까지 저지르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라고 할 수 있다. 세태가 각박해지면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부모·자식 관계도 점점 이해타산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100세 시대 등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들어 부모들이 자녀들을 상대로 재산반환소송을 냈다 패소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부모들은 노후 봉양을 하겠다는 아들, 딸들의 말을 믿고 재산을 물려줬다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자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다. 그러나 노후 봉양을 하겠다는 ‘효도계약’의 물증이 없으면 대개는 부모들이 패소한다.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있어야 한다. 증거에 입각해 판단해야 하는 법원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계약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사회풍토로선 부모 봉양을 문서로 남기는 것도 낯설다. 그러나 소송에서 지면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한다고 하니 효도계약은 문서화하는 등 꼼꼼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부모들이 자식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것은 아무래도 재산이 없으면 노후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국가의 복지 그물망이 더욱 촘촘해져야 하겠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노후생활을 먼저 확고하게 다진 뒤 남는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효도계약이라는 불편한 계약을 맺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들에게 재산 증여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전수하는게 최상의 선물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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