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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꾸는 에코 빌리지 오바마小浜町 ②오바마가 꿈꾸는 에코 빌리지

    꿈꾸는 에코 빌리지 오바마小浜町 ②오바마가 꿈꾸는 에코 빌리지

    ●오바마가 꿈꾸는 에코 빌리지 오바마가 심상치 않다. 이주민이 늘고 있다. 인구가 줄어 고민인 시골마을에서 오바마의 역주행은 반가운 일이다. 이주민이지만 오바마를 대표하게 된 그들을 만났다. ▶테라하우스 파티셰 사카가미 치에 비건을 위한 제안 사실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일반적인 베이커리인 줄 알고 불쑥 찾아갔는데 실은 쿠킹 클래스여서 당황한 탓도 있었지만 마침 수업 중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리학교를 졸업한 후 10년 넘게 자연식품 매장과 마이크로바이오틱Macrobiotic 푸드카페를 경영하며 베이커리 수업을 진행해 왔고 3년 전 오바마로 이주하기 전에는 나가사키 대학에서 지역에서 재배하는 약초를 이용한 레시피를 개발하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를 찾아서 나가사키에서 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매월 마지막 주말에 걸쳐 진행되는 쿠킹 클래스의 메뉴는 우유나 계란 등 유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비건용 빵과 허브나 약초를 이용한 건강식들이다. 소량만 생산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그녀가 만든 효모식빵, 쌀가루빵, 핫도그 등을 맛보고 싶다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어야 한다. 테라하우스Terra House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007 매월 마지막주 금, 일, 월요일에 4명 정원의 소규모 쿠킹클래스를 연다. 실습비 4,000엔 +81 957 74 5780 www.terrahouse.jp ▶가리미즈안 카페 & 숍 시로타니 코우세이 디자이너 밀라노에서 오바마까지 시작은 한 디자이너의 귀향이었다. 오바마에서 태어나 도쿄와 밀라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엔조 마리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시로타니 코우세이Shirotani Kosei씨는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스튜디오 시로타니를 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오바마 재생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5년간 출강했던 사가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마을 만들기’를 주제로 디자인 캠프를 진행하면서다. 나가사키현의 지원으로 역사, 경관, 자연 등의 조건을 갖췄지만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한 작은 마을을 재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던 것. 시작이 반이 되어 시로타니씨 자신이 먼저 오바마에서 ‘가리미즈 에코 빌리지’를 시작하게 됐다. 2013년에 그는 마을의 빈집 중 하나를 골라 1층은 그가 직접 디자인하거나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판매장으로, 2층은 이탈리아와 한국 등지에서 수집한 가구와 소품으로 카페를 꾸몄다. 70년 된 고택의 폐기물을 실어내는 데만 1톤 트럭을 몇 번이나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가리미즈안 숍 & 카페Karimizuan Shop & Cafe는 현재 오바마 안팎 사람들에게 중요한 아지트가 됐다. 일본 디자인협회 이사이자 디자인, 공예, 건축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탈리아, 일본,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시로타니씨의 인적 파급력 덕이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그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위해 먼저 이주해 왔고 도예가, 요리사, 농업을 배우는 학생, 요리사 등 오바마로 보금자리를 옮긴 이주민이 늘어나고 있다. “오바마가 지닌 일본적인 삶의 양식이 깨지지 않으면서도 이탈리아처럼 소도시에서도 대도시와 같은 수준의 문화적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획한 가리미즈안 디자인 마켓이 열리는 4월에는 가뜩이나 좁은 가리미즈의 골목이 사람으로 메워진다. 사례 연구를 위해 쇠락한 제련마을에서 예술가 마을로 되살아난 핀란드 피스카스에도 다녀왔고, 지역의 여러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아버지의 목공소에서 동생들과 쌓았던 유년의 추억들 위로 그가 그린 오바마의 미래 설계가 켜켜이 쌓이고 있다. 가리미즈안 카페 & 숍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011 10:00~17:00 (매주 수요일 휴무) +81 957 74 2010 www.facebook.com/karimizuan ▶아이아카네 공방작가 스즈키 테루미 붉고 푸른 인생 2막 오바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신문에서 본 시로타니씨의 기사 덕분이었다. 살기 좋은 마을에 빈집이 있다는 것도, 에코 빌리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그녀가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나가사키에서 1년 정도 왔다갔다 하면서 물색한 끝에 시노타니씨의 카리미즈안 카페 바로 뒷집에 터를 정하고 ‘아이아카네 염색 공방’을 오픈했다. ‘아이’는 푸른색을 내는 천연 쪽, ‘아카네’는 붉을 색을 내는 꼭두서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개조한 소박한 공방은 너른 마당을 끼고 있었다. 천연염색에 필요한 염료 식물을 직접 재배하기 위한 공간이다. 고운 적색 염료를 얻기 위해 서양 꼭두서니의 씨를 뿌려두었는데 꽃을 보려면 3년을 기다려야 한단다. 염료뿐 아니라 천까지 직접 만든다. 직접 물레를 돌려 목화솜에서 실을 뽑고, 그 실로 직조를 해서 천을 짜고, 그 천을 염색해서 옷으로 만드는 전 과정을 그녀 혼자서 해내는 것이다. 테루미씨는 주인과 5m도 떨어지지 못하는 애완견과 단둘이 살고 있지만 적막한 전원생활과는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직접 만든 스카프와 소품 판매 외에도 주민들을 위해 오래된 기모노를 리메이크해 주고, 쪽풀을 가공해 첨가한 소금, 허브티, 후리카케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일거리가 넘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염색체험 손님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젊은 시절 취미로 시작한 염색이 인생 2막의 일상이 된 지금, 그녀는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 아이아카네 공방Atelier Aiakane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012 10:00~17:00 (화, 수요일 휴무) + 81 090 3899 1393 www.facebook.com/aiakane.kb ▶운젠시 농부 이와사키 마사도시 Iwasaki Masatosh 일본 자연주의 농법의 선구자 정확히 말해 그는 오바마가 아니라 운젠시 북쪽에 위치한 아즈마에서 농사를 짓는 촌부다. 하지만 그는 운젠이나 나가사키뿐 아니라 일본을 대표하는 자연주의 농법의 선구자다. 35년 전부터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라져 버린 일본의 전통품종 복원에도 성공했다. 슬로푸드의 고향인 이탈리아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져 있고 2년 전에는 한국에도 다녀갔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과 주름이 그 세월을 가늠하게 했지만 정작 그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들의 몰이해였다. 전통농법으로 재배한 채소가 낯설어서인지 오히려 유전자 변형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고.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 15년 전부터다. 현재 그는 아즈마 지역 2.7ha의 땅에 다양한 작품을 키우고 있다. 일본의 다양한 고유 종자와 좋은 것들을 지키고 싶다는 소박한 농부의 바람을 응원할 수밖에! 그에게 농법을 배우기 위해 오바마로 이주해 온 농업학교 학생들도 함께 응원한다! ●유혹하는 탕·찜·뽕 다시 돌아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그리고 그 이유는 놀랄 만큼 사소한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그 이유가 동네 목욕탕, 야채가 듬뿍 들어간 짬뽕 한 그릇, 온천증기에 쪄 낸 해산물이었다. 증기만세! 요리가 제일 쉬웠어요! 이제야 하는 이야기지만 오바마에 홀딱 반해 버린 가장 큰 이유는 온천 찜요리였다. 일본의 위라고 불리는 시마바라 반도는 최고 품질의 감자를 포함해 품질 좋은 야채와 해산물의 보고다. 염화온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온의 증기에 그 식재료들을 넣고 찌기만 하면 천연 염분이 더해져 감칠맛이 난다. 첫 경험은 ‘훗토홋토 105’에서 먹은 온센다마고온천달걀. 달걀이나 옥수수, 토란, 고구마 등을 구입하고 바구니를 대여해서 직접 쪄 먹는 방식이다. 오바마 사람들은 아예 집에서 준비해 온 재료를 전용 바구니에 담아 피크닉을 나온다. 더 다양한 재료를 즐기고 싶다면 마켓과 찜가마가 함께 있는 체험형 식당 무시가마야蒸し釜や를 이용하면 된다. 겨울에 제철인 미즈호산 양식굴이나 여름이 제철인 운젠 바위굴뿐 아니라 각종 조개와 생선, 다양한 야채와 찌기만 하면 되는 반조리식품들도 구비했다. 식당 앞에 설치한 15개의 증기가마 위쪽에 감자 20분, 옥수수 10분, 돼지고기 세트 10분 등 재료마다 찌는 시간이 안내되어 있다. 방파제 옆에 위치해 있어서 바깥 테이블에 앉으면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낭만도 있다. 모든 것이 셀프인 곳도 있다. 운젠관광정보센터 건너편에 위치한 유야도 죠키야 湯宿 蒸気家는 농한기에 지역 사람들이 와서 보름이나 한달씩 요양하듯 쉬어 가는 곳. 숙박료가 1박에 3,000엔 정도에 불과한 이유는 식음료 서비스가 없이 객실과 온천탕이라는 심플한 구성 때문이지만 넓은 주방은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장점이다. 가까운 마트나 장에 가서 담백한 운젠규쇠고기, 감칠맛 나는 방어와 복어, 고소한 꽃게 등 직접 재료를 구입해 오면 모든 것이 갖춰진 주방에서 자유롭게 조리할 수 있고, 숙소 앞에 찜가마도 설치되어 있다. 찜도 좋지만 담백한 국물이 필요하다면 오바마 짬뽕도 별미. 나가사키에 살던 중국인 요리사 첸핑슈운이 1897년에 창안했고, 1910년대 온천 여행객들을 통해 나가사키에서 오바마로 전해진 요리지만 100여 년이 지나면서 오바마 고유의 맛을 갖추게 됐다. 고기 육수가 진한 나가사키 짬뽕에 비해 야채와 해산물을 주재료로 담백한 오바마 짬뽕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시가마야蒸し釜や운젠시 오바마쵸 마리나 19-2 9:00~21:00 연중무휴 +81 957 75 0077 www.musigamaya.com 유야도 죠키야湯宿 蒸気家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4-7 1실 기준 2인 숙박시 1인당 4,500엔, 5인 숙박시 1인당 2,800엔, 조식 포함시 추가요금. 입욕 성인 1인 400엔, 전세탕 1인당 800엔. 림프마사지 90분에 6,000엔 예약 접수 9:00~20:00 +81 957 74 2101 오바마 짬뽕16개의 공인 짬뽕 레스토랑이 있는데 가격은 600~800엔 사이다. 지도 안내서를 보면 각 식당마다의 특징뿐 아니라 국물의 진하기도 1~5개의 숟가락 개수로 표시해 놓았다. ▶travel info Unzen, Obama transportations오바마쵸 찾아가기 후쿠오카 공항에서 차로 2시간 반이 걸린다. 열차로는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이사하야역까지 1시간 50분, 여기서 오바마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시마테츠 패스를 구입하면 시마바라 반도 안에서 무제한으로 철도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오바마온천과 운젠온천 사이는 차로 20여 분이 걸린다. info center오바마온천관광협회 어쨌든 오바마엔 오바마가 있다. 오바마관광안내센터 앞에 서 있는 오바마상은 3번째로 세워진 것이다. 지난번 것은 태풍에 파손됐다. 오바마도 만날 겸 짬뽕 레스토랑 지도도 얻을 겸 안내센터를 방문해 보자.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초 키타혼마치 14-39 +81 957 74 2672 www.obama.or.jp Festival쟈카란다 페스티벌6월의 오바마엔 쟈카란다가 만발한다. 만발한다고 말하기에는 나무의 수도 적고, 큰 나무가 많지는 않지만 세계 3대 화목에 속하는 이 나무를 향한 오바마 사람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실제로 쟈카란다는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 중에 하나다. 보랏빛 옷으로 단장하고 6월에 열리는 오바마 쟈카란다 페스티벌을 찾으면 묘목을 받을 수 있다. TREKKING미나미시마바라 올레 규슈의 17번째 올레가 지난해 11월22일 반도 남부에 개장했다. 미나미시마바라 코스는 미나미시마바라시 구치노쓰항에서 출발하는 10.5km 구간으로 최고 표고가 90m 정도밖에 안 되는 평탄한 해안길이 대부분이다. 야쿠모 신사, 세즈메자키 등대, 하야사키 해협, 구치노쓰 등대 등을 볼 수 있다. 미나미시마바라시 상공관광과 +81 050 3381 5032 규슈여행정보사이트(올레길 정보) www.welcomekyushu.or.kr STAY 이세야 료칸伊勢屋旅館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을 잘 알고, 그래서 한국어도 구사하는 구사노 사장님과 싹싹한 오카미상 때문에 한국인 단골들도 많은 곳이다. 350년 동안 료칸 사업을 이어와 오바마 료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부부의 몸에 밴 배려와 깔끔한 성격이 료칸 곳곳에 보인다. 예를 들면 오바마의 보석 같은 석양을 놓치지 말라고 방마다 그날의 해지는 시간이 적혀 있다.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905 +81 957 74 2121 www.iseyaryokan.co.jp 하마칸 료칸 浜観ホテル오바마 유일의 비즈니스 호텔로 모두 침대가 있는 양실구조다. 휑하다고 느낄 만큼 넓은 객실에서는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전통 료칸의 아늑한 재미는 없지만 재단장한 지 오래되지 않아 깔끔하고 쾌적한 환경을 찾는 사람에게는 제격. 가이세키 요리 대신 외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681 +81 957 74 2222 www.jisco-group.net 슈운료칸春陽館 가장 고풍스러운 외관을 자랑하는 자부심 가득한 료칸. 1930년대에 지은 본관 건물에 신관을 증축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느낌. 객실에서 바라보이는 오바마 마리나와 항구, 석양이 압도적이다. 저녁 식사를 방에서 먹을 수 있도록 차려 주고, 아침은 식당에 내려가서 먹는다. 즉석에서 솥밥을 해 주는 것도 인상적. 나가사키현 운젠시 오바마쵸 기타혼마치 1680 +81 957 74 0514 www.shunyokan.com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진혁 취재협조 운젠시 관광물산과 www.city.unzen.nagasaki.jp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전 재산 남기고 돌아가신 할머니 위해 주민들 32년째 제사

    전 재산 남기고 돌아가신 할머니 위해 주민들 32년째 제사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전 재산을 마을에 남기고 떠난 할머니를 위해 32년째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는 훈훈한 동네가 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주민들은 28일 오전 10시 30분 용담 복지회관에서 1984년 세상을 떠난 김금옥 할머니의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련한 용담동 복지협의회는 주민 80여명을 초청해 점심을 제공하며 김 할머니의 깊은 뜻을 기렸다. 김 할머니가 전 재산을 기부한 것은 1981년 추석을 앞둔 가을쯤이었다. 당시 60대 후반이던 그는 용담동 주민 친목모임인 ‘가좌골 동계(洞契)’ 회원들을 만나 어렵게 생활하는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봉투를 열어본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봉투에는 그가 농사를 지으며 평생 모은 전 재산인 2000㎡의 땅문서가 들어 있었다. 김 할머니는 자손이 없는 자신과 남편의 제사만 지내달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할머니는 땅을 기탁한 지 3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동계 회원들은 가족이 없는 김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그를 청주 가덕 공원묘지에 모셨다. 주민들은 약속을 잊지 않고 이듬해부터 해마다 그의 기일인 음력 5월 24일이 되면 정성스럽게 음식을 마련해 제사를 지냈다. 회원들은 김 할머니가 맡긴 토지에서 농사를 지어 인근 복지시설에 쌀을 전달했다. 이들의 모습에 하늘이 감동이라도 한 듯 1990년대 말 김 할머니가 맡긴 땅이 용암2지구 택지개발지구에 포함되면서 5억 7000만원의 보상금이 나왔다. 주민들은 체계적인 이웃돕기를 위해 2004년 ‘청주 용담동 복지협의회’를 만들었다. 이 협의회는 김 여사 토지 보상금으로 건물을 신축하고, 이곳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이웃돕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20명을 뽑아 장학금을 지급하고 설과 추석에는 쌀 60포대(20㎏)를 불우이웃에게 전달한다. 김 할머니의 추모제가 열리는 날에는 동네 노인분들을 초청해 점심을 대접하고 경로잔치도 연다. 협의회 신재우(68) 대표이사는 “김 할머니는 농사를 지으며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도 보육원을 돕는 등 항상 이웃을 배려하면 사신 분”이라며 “김 여사의 뜻을 받들어 훈훈한 동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인류가 농사진 쌀의 기원은 9000년 전 중국”

    “인류가 농사진 쌀의 기원은 9000년 전 중국”

    인류가 농사지어 먹는 쌀의 기원이 9000년 전 중국이라는 역대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됐다. 최근 캐나다 토론토 대학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양쯔강 하류 유역에서 9000년 이상된 벼농사의 흔적을 발굴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간 학계에서는 벼농사의 기원을 놓고 다양한 논쟁이 있어왔다. 쌀이 변종이 너무 많아 기원을 밝히기 힘든 탓도 있지만 대체로 학계에서는 중국에서 기원해 우리도 먹고있는 자포니카 쌀(japonica rice)에 무게를 두고있다. 쌀은 세계 5대 작물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식물로 우리나라 역시 중국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특히 벼농사는 인류가 '농부'로서 첫발을 내딛었다는 인류학적 의미도 담고있다.  이번에 공동연구팀은 3년 간의 조사 끝에 벼를 옮겨심은 흔적, 벼 껍데기 등 야생이 아닌 경작의 증거를 찾아냈다. 또한 연구팀은 토기와 돌 도구, 동물 뼈, 숯, 다른 식물 씨앗 등도 함께 발굴했다. 연구를 이끈 게리 크로포드 박사는 "쌀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 중 하나"라면서 "이번 발견은 언제 어떻게 인간이 농부가 됐는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창기의 농사는 수렵에 의존했던 인류가 의도했던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 "농사를 통해 인류는 지속적이고 관리 가능한 삶이 가능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11년 미국 뉴욕대학 연구팀도 게놈 분석을 통해 쌀의 기원지가 중국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인류가 재배한 양대 쌀 품종인 자포니카와 인디카를 분석한 이 논문에서 연구팀은 쌀의 기원이 대략 8200년 전 중국의 창장(長江) 유역이라고 주장했다. 사진=©wisdom12 / Fotolia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장마철 운전속도 20% 줄이세요

    장마철 운전속도 20% 줄이세요

    작년 2만 6441건 중 463명 사망 장마기간 치사율 2.7%로 치솟아 보험업계에 기상청 장마예보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됨을 알리는 경보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장거리 차량 이동이 잦아지는 가운데 빗길 교통사고부터 집중호우로 인한 차량 침수까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보험사 수익성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장마 대비가 한 해 보험 농사를 좌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2일 손해보험업계와 교통안전공단 등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빗길 교통사고는 2만 6441건이다. 이 중 463명(1.75%)이 사망해 맑은 날 발생한 교통사고 치사율(1.41%)보다 23%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사고 치사율이란 사고 100건당 사망자 숫자를 말한다. 치사율만 보면 빗길은 눈길(치사율 1.69%)보다 더 위험하다. 눈이 오면 아예 운전대를 놓거나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 일이 많지만 비교적 흔한 비에는 방심하고 습관대로 운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기를 장마 기간으로 축소해 보면 교통사고 치사율은 더 높아진다. 손해보험협회가 2011~2013년 3년간 장마 기간에 발생한 7만 2029건의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빗길 사고의 평균 치사율은 2.7%까지 치솟았다. 협회 관계자는 “장마철엔 노면이 연일 젖어 있는 일이 많아 안전 운전을 위해선 차량 속도를 최소 20% 이상 줄여야 하지만 그냥 평소처럼 운전하다 보니 큰 사고도 잦은 것”이라고 말했다. 증가하는 침수 피해도 고민거리다. 최근 10년(2005~2014년) 사이 침수 피해를 입은 차량 수는 6만 2860대로 총피해액을 합치면 3259억원에 이른다. 특히 2010년을 기준으로 피해 차량 수는 2.5배, 피해액은 3.6배로 느는 추세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최근 도심 속 게릴라성 호우가 빈번해진 데다 2010년 이후 수입차 보급률이 급격히 늘면서 피해 차량 수와 액수 모두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마철 앞뒤로 업계의 손익계산도 판이해진다. 최근 3년간 협회 통계를 보면 2분기(4~6월)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4% 중·후반대를 유지하지만 본격적인 장마를 맞는 3분기(7~9월)에는 87~89%로 3~5% 포인트나 높다. 손해율이란 보험사가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 중에서 교통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에게 지급한 보험금 비율을 말한다. 삼성화재는 지난 주말 3000명 규모의 침수 예방 비상팀 가동에 들어갔다. 전국 상습 침수 지역 250곳을 골라 비 피해가 예상되는 날에는 자체 순찰 및 견인 등을 진행한다. 다른 보험사들도 집중호우가 예상되는 날과 지역 등을 특정해 보험 가입자에게 차량 운행 자제나 안전 운전을 부탁하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할 계획이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게릴라성 호우는 1시간이 침수 피해 여부를 가르는 골든타임”이라면서 “보험사의 수익성 문제를 떠나 개인의 안전과 재산 보호 등을 위해 장마철 안전 운전법과 비 피해를 피할 주차 장소 등을 숙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10년간 7배 뛴 밀양 땅값 폭락 조짐… 투기 후유증 커지나

    10년간 7배 뛴 밀양 땅값 폭락 조짐… 투기 후유증 커지나

    하남읍 농지 23만원까지 급등 후보지역 외지인 소유 60% 육박 가덕도는 여파 적어 비교적 차분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10년이나 거론됐던 경남 밀양시가 부동산 투기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건설 방침에 따라 공항 예정지였던 밀양시 하남읍 일대는 신공항 건설 기대감에서 땅값이 폭등하다 지난 21일 오후 ‘김해공항 확장’이 발표된 직후부터 폭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세 차익이나 보상을 바라고 ‘상투를 잡아’ 비싸게 땅을 산 토지 소유자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22일 밀양시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신공항 건설 공약에 이어 정부의 신공항 타당성 연구 용역 의뢰 등으로 밀양 하남읍 일대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이전에 발생한 부동산 투기에 이어 두 번째 신공항 열풍이 몰아쳤다. 이에 따라 2007년 당시 3.3㎡당 3만~5만원이던 하남읍 백산·명례리 일대 농지 가격은 2010년 15만원 선까지 올랐다. 이후 공항건설이 무산되면서 1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잠잠하던 땅값은 2012년 대선에서 신공항 건설이 다시 검토되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올해 23만원 선까지 폭등했다. 최근 ‘밀양이 신공항 건설 후보지로 확실하다’는 소문들이 나돌면서 매물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지난 21일 신공항 백지화로 ‘폭망’한 분위기다. 매물이 잇달아 나오고 있으나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땅값이 폭락할 조짐이다. 하남읍 U공인중개사 사무소 김모(37·여) 소장은 “외지인 한 고객이 공항 후보지 농지를 구입하기로 오늘 계약을 할 예정이었으나 공항 건설이 백지화되자 계약을 취소했다”며 이런 계약 취소가 오늘만 3건이고, 땅을 팔아달라는 의뢰는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설명했다. 또 다른 공인 중개사 사무소 측은 “신공항 건설 발표 직전에는 공항 예정지에 땅을 사겠다는 외지인이 매물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지금은 땅을 갖고 있는 외지인들의 매도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하남읍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일찍 땅을 샀다가 발 빠르게 넘긴 사람들도 있지만, 공항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막판에 높은 가격에 대규모로 구입한 외지인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주민들은 “공항부지에 편입되면 많은 보상을 기대하고 새로 집을 짓거나 원룸을 건립한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하남읍 사무소와 주민 등에 따르면 공항 후보지였던 백산리와 명례리 일대 토지 가운데 외지인 소유가 60% 가까이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밀양 신공항 후보지였던 하남읍 백산리·명례리는 7.2㎢로 850가구에 주민 1800여명이 살고 있다. 낙동강을 낀 넓은 평야지역으로 토질이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해 농사가 잘되는 지역이다. 감자·양배추·딸기 등을 생산한다. 박일호 밀양시장은 신공항 건설 백지화가 발표되자 “지난 10년 동안 신공항 부지 선정문제로 시민들은 지치고 땅값만 올려 밀양의 개발 가능성을 소멸시켰다”며 “정부가 두 번이나 밀양시민을 우롱했다”며 “정부를 이제 누가 믿겠느냐”고 불만을 표했다. 또 다른 신공항 후보지였던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일대는 밀양과는 다소 다른 차분한 분위기다. 가덕도 지역 한 부동산 사무소는 “가덕도는 섬 지역이어서 투자를 할 토지가 넓지 않은 데다 외지 투자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토지를 확보해 갖고 있고 관광개발 호재가 많아 신공항 건설 무산에 따른 여파는 크지 않은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밀양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외지인 폭망’ 한 밀양 신공항 예정지, 땅값 폭락 조짐

    ‘외지인 폭망’ 한 밀양 신공항 예정지, 땅값 폭락 조짐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10년이나 거론됐던 경남 밀양시가 부동산 투기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건설 방침에 따라 공항 예정지였던 밀양시 하남읍 일대는 신공항 건설 기대감에서 땅값이 폭등하다 21일 오후 ‘김해공항 확장’이 발표된 직후부터 폭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세 차익이나 보상을 바라고 ‘상투를 잡아’ 비싸게 땅을 산 토지 소유자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22일 밀양시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신공항 건설 공약에 이어 정부의 신공항 타당성 연구 용역 의뢰 등으로 밀양 하남읍 일대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이전에 발생한 부동산 투기에 이어 두 번째 신공항 열풍이 몰아쳤다. 이에 따라 2007년 당시 3.3㎡당 3만~5만원이던 하남읍 백산·명례리 일대 농지 가격은 2010년 15만원 선까지 올랐다. 이후 공항건설이 무산되면서 1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잠잠하던 땅값은 2012년 대선에서 신공항 건설이 다시 검토되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올해 23만원 선까지 폭등했다. 최근 ‘밀양이 신공항 건설 후보지로 확실하다’는 소문들이 나돌면서 매물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지난 21일 신공항 백지화로 ‘폭망’한 분위기다. 매물이 잇달아 나오고 있으나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땅값이 폭락할 조짐이다. 하남읍 U공인중개사 사무소 김모(37·여) 소장은 “외지인 한 고객이 공항 후보지 농지를 구입하기로 오늘 계약을 할 예정이었으나 공항 건설이 백지화되자 계약을 취소했다”며 이런 계약 취소가 오늘만 3건이고, 땅을 팔아달라는 의뢰는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설명했다. 또 다른 공인 중개사 사무소 측은 “신공항 건설 발표 직전에는 공항 예정지에 땅을 사겠다는 외지인이 매물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지금은 땅을 갖고 있는 외지인들의 매도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하남읍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일찍 땅을 샀다가 발 빠르게 넘긴 사람들도 있지만, 공항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막판에 높은 가격에 대규모로 구입한 외지인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주민들은 “공항부지에 편입되면 많은 보상을 기대하고 새로 집을 짓거나 원룸을 건립한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하남읍 사무소와 주민 등에 따르면 공항 후보지였던 백산리와 명례리 일대 토지 가운데 외지인 소유가 60% 가까이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밀양 신공항 후보지였던 하남읍 백산리·명례리는 7.2㎢로 850가구에 주민 1800여명이 살고 있다. 낙동강을 낀 넓은 평야지역으로 토질이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해 농사가 잘되는 지역이다. 감자·양배추·딸기 등을 생산한다. 박일호 밀양시장은 신공항 건설 백지화가 발표되자 “지난 10년 동안 신공항 부지 선정문제로 시민들은 지치고 땅값만 올려 밀양의 개발 가능성을 소멸시켰다”며 “정부가 두 번이나 밀양시민을 우롱했다”며 “정부를 이제 누가 믿겠느냐”고 불만을 표했다. 또 다른 신공항 후보지였던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일대는 밀양과는 다소 다른 차분한 분위기다. 가덕도 지역 한 부동산 사무소는 “가덕도는 섬 지역이어서 투자를 할 토지가 넓지 않은 데다 외지 투자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토지를 확보해 갖고 있고 관광개발 호재가 많아 신공항 건설 무산에 따른 여파는 크지 않은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밀양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평생 모은 12억 기부한 할머니

    6·25전쟁 때 남편을 잃고 홀로 평생 모은 재산을 장학재단에 기탁한 박수년(85)씨가 보건복지부로부터 ‘행복나눔인상’을 받았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박씨는 지난 3월 남편 ‘김만용’씨의 이름으로 수성구 ‘수성 인재육성 장학재단’에 12억원을 기증했다. 박씨는 “결혼 2년 만에 사별한 남편 이름으로 보람된 일 한 가지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1948년 17세 때 김씨와 결혼했다. 신혼생활도 잠시, 전쟁이 터지자 남편은 참전했고 그로부터 2년 후 박씨는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았다. 이후 박씨는 농사부터 직물공장 일까지 억척스럽게 일하며 조금씩 재산을 모았다. 번 돈은 대부분 저축했고 정작 자신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12억원을 기탁하면서도 박씨는 얼굴 공개를 거부했다. 장학재단은 부부의 이름을 딴 ‘김만용·박수년 장학금’ 1000만원을 수성구에서 지내는 성적 우수 학생과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산양삼 전통 재배방식 혁신해 대박 낸 청년 영농인

    산양삼 전통 재배방식 혁신해 대박 낸 청년 영농인

    부친 따라 70㏊ 규모 재배 시작 씨앗 직파·황토 속 보관기술 특허 매출 年 7억… 인제·양구로 확장 라면 등 연관 6차 산업 도전장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산을 일구며 승부수를 던진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강원 홍천 첩첩산중에서 산양삼을 키우는 유재덕(34)씨는 이제 전국에서 성공한 영농인으로 손에 꼽는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산을 일구기 시작한 지 10년, 이제는 130㏊ 산양삼 재배단지를 기반으로 산양삼 라면과 수프 등 다양한 가공품을 만드는 6차 산업에 도전장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산양삼 판매로 올리는 매출만 연간 7억원에 달하고, 수년에 걸쳐 스스로 개발한 산양삼 종자 파종 노하우를 전수하며 벌어들이는 소득도 만만치 않다. 산양삼 재배의 시작은 유씨의 부친이다. 1990년대 중반, 홍천군 두촌면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던 부친은 버섯 종균을 넣는 참나무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산양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삼씨를 뿌리기 시작했고, 아예 2000년 초부터 버섯농사 대신 산양삼 농사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어려서부터 부친을 따라 산을 오르내리던 유씨는 2006년 군에서 제대하면서 본격 산양삼 재배사업에 뛰어들었다. 초창기 70㏊ 규모의 산을 물려받아 산사람이 됐다. 20대 중반, 주변 친구들은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할 때 유씨는 산속에 묻혀 산양삼만 키웠다. 수익금은 오롯이 산을 사는 데 재투자했다. 홍천에서 시작한 산양삼 재배지는 인제와 양구 지역으로 넓혀갔다. 넓은 산에 지게를 지고 오르내리며 삼씨를 뿌리고 수확했다. 유씨는 “10년 이상 골이 깊고 험준한 산속을 오가며 산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낙상 사고도 많이 겪고 무릎과 발목 등 성한 데가 없다”고 치열하게 살아온 삶을 털어놓았다. 유씨는 어느 작목보다 어렵다는 산양삼 씨앗 활착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씨앗을 심기 전에 전통방식으로 내려오던 ‘개갑(딱딱한 껍질을 살짝 열리게 한 뒤 식재) 방식’에서 벗어나 과육을 품고 있는 씨앗을 직접 뿌려 재배하는 방식에 성공했다. 예로부터 100일 이상 물에 불리거나 닭·오리 등 가금류에게 삼 씨앗을 먹여 개갑하던 전통 방식이 유씨의 연구로 혁신적인 대안을 찾은 것이다. 씨앗을 직접 뿌리는 기법과 토양, 습도, 일조량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산양삼 씨앗 활착률을 높이면서 전국의 산주들이 유씨를 찾는다. 삼 씨앗도 전국 최고 수준으로 해마다 100㎏ 안팎을 생산하고 있다. 이 같은 씨앗 생산과 심기 기술을 산주들에게 직접 전수하며 올리는 수익도 연간 수억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무농약 인증을 받은 것을 비롯해 산양삼차 특허와 산양삼 황토 포장 신기술 특허까지 얻었다. 지금까지의 이끼를 이용한 포장은 산림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장기간 보관이 쉽지 않았지만, 황토를 이용한 산양삼 보관과 포장은 상품성을 높이고 보관 기간이 길다. 6차 산업으로 눈을 돌려 산양삼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도 개발하고 있다. 대학에서 호텔조리학을 전공한 특기를 살려 3년 전부터 라면에 산양삼을 넣은 산양삼해물라면을 개발, 제주도 테우해변에서 직영점을 운영하며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중국과 일본, 프랑스 등에서도 체인사업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또 올해 산양삼을 고온 건조한 뒤 수프로 만든 산양삼라면도 홍콩으로 처음 수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 용산 동부이촌동에는 다음달 초 산양삼을 이용한 직영 죽집도 문을 연다. 유씨는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산양삼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세계 속에 대한민국 산양삼의 가치를 심어 놓겠다”면서 “6차 산업의 경험을 좀더 쌓은 뒤 성공사례를 책으로 정리해 산양삼 경영의 표본이 되게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홍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길섶에서] 감자/박홍기 논설위원

    감자알이 제법 굵다. 작년엔 가물었던 탓에 작황이 좋지 않았다. 올해엔 비도 적당했다. 어른들이 앞서서 감자 줄기를 뽑았다. 아이들이 덩달아 나선다. 한몫하려는 양 호미까지 집어 든다. 좀 굵다 싶으면 “큰 거다”라고 들어 보이며 신나 했다. 뙤약볕에 흐르는 땀도 아랑곳없다. 호미로 감자를 찍으면 못내 아쉬워했다. 얼굴은 땀에 흙에 엉망이다. 그래도 마냥 즐거워한다. 고랑에 군데군데 모아 놓은 뽀얀 감자들이 탐스럽다. 호미를 잡은 손을 조심스레 놀릴 때마다 속살 비치듯 감자들이 드러난다. 흙 속에 감췄던 보물을 찾는 것 같다. 크든 작든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캐 흙을 털어 냈다. 땀의 결실이자 자연의 혜택이다. 농사가 그렇듯 감자 역시 자연의 흐름과 같다.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이른 봄에 심었다가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에 캐서다. 감자알이 가장 잘 들고 예쁘다. 하지 감자로 불리는 이유다. 장마가 지기 바로 전이다. 찐 감자 주위에 둘러앉았다. 햇살에 그을린 아이들도 “내가 캔 감자”라며 집어 한 입 베어 문다. “와! 맛있다.” 모두 포실포실하고 달큰한 햇감자의 참맛을 만끽했다. 올해 감자 농사, 끝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김영탁의 詩食男女] 울산, 소머리국밥과 참가자미

    [김영탁의 詩食男女] 울산, 소머리국밥과 참가자미

    아주 멀어서 빨라도 하루 종일, 아니면 1박 2일 정도 달려가야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은 울산, 동해,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귀신고래. 멀다는 기억의 저편에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과 송창식의 노래가 어느 정도 침전된 탓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거리는 서울에서 울산까지 두 시간 오십 분 만큼이었다. 기꺼이 역사까지 마중나온 정일근 시인은 3년 만이지만 좋은 안색이 어제 본듯하다. '시식남녀'(詩食男女)의 첫 만남이 아니라도 늦은 점심을 위해 일단 먹어야 했다. 일행은 승용차 두 대로 나누어 타고 언양으로 달려갔다. 언양장터 소머리국밥이 유명하다고 했다. 그렇게 울산역에 도착하여 곧장 소머리 속으로 들어간다고 봐야할 것이다. 소를 찾아 나선 것인데 한 편의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의 꼬리를 보기 전 두각頭角을 본다는 건 직방으로 도道의 길을 가는 법. 시장기에 맞춘 입들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소머리를 향하여 길을 가는 것이다. 언양 재래시장 진입로 부근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했을 때 보슬비가 내려오신다. 얼마나 느리게 오시는지 안개비 같아서 비를 맞아도 좋을 만큼 우산을 펴지 않아서 좋았다. 재래시장은 오일장처럼 없는 게 없이 풍물이 펼쳐져 있다. 보슬비 탓에 조금 가라앉은 듯하지만 흥성거렸다. 장터 국밥집으로 가는 길목에 대장간이 있다. 방금 풀무질을 마치고 나온 듯한 검푸른 낫, 칼, 호미와 농기구, 잡다한 쇠붙이와 숫돌이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숫돌 앞에 멈춰 서서 오래전에 숫돌로 칼 갈아 쓰던 시절을 기억해 냈다. 오일장이 아닌데도 장날처럼 이러한 쇠붙이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대장장이가 허름한 지붕을 붙박이 삼아 부지런히 놀리는 손길 탓인 듯했다. 언양 오일장은 울산의 재래시장 중 태화장과 더불어 가장 큰 장이 서는 곳이다. 근처 주변 마을의 온갖 먹거리와 특산물이 모인다. 예전 장돌뱅이들처럼 오일장마다 돌며 장사하는 사람들과 직접 농사지은 생산물을 갖고 나온 촌부들이 좁은 골목 구석구석 진풍경을 이룬다.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여러 불편하지만 먹거리의 싱싱함과 인정에 끌려온다. 그리고 옛것을 놓지 않으려는 풍물의 추억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오랜 세월을 견디고 독특한 맛을 이어오면서 소문이 난 언양 장터 골목마다 붙어 있는 국밥집. 장날이면 식당 앞에 걸어 놓은 솥단지에서는 고기 삶는 냄새가 골목을 진동시켰을 터이다. 무럭무럭 나오는 하얀 김의 열기는 식당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뽀얗게 얹히어 시장기를 보탰을 터. 비좁은 자리에 엉덩이와 이마를 맞대고 뜨거운 국물과 고기 한 점 숟가락에 떠서 후루룩후루룩 아, 얼마나 시원할까. 그래, 장터 국밥은 그런 왁자한 풍경이 양념으로 얹어져야 제대로 맛나지. 장날 아닌 날에 장터 국밥 먹을 땐 애써 그런 욕심을 내지 못한다. 청정지역 언양 인근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축산물로 언양 불고기 단지가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부속물이 장터의 국밥집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오창헌 시인이 잘 아는 집이 있는 듯 앞장을 섰다. 왠일인지 정일근 시인은 빙긋이 웃으며 늑장을 부린다. 무슨 사정인지 오 시인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되돌아 나온다. 정 시인은 다시 한 번 빙긋 웃고 만다. 정일근 시인의 단골집인 오십 년 전통 국밥집에서 소머리 국밥을 주문했다. 그는 예전에 울산의 중심이었으며 울산의 관문인 언양의 유래에 대해 얘기했다. 지금은 울산이 산업도시의 중심이 되었지만 불과 백 년도 채 되지 않던 시절에는 양반 문화의 중심은 언양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울산 언양에는 5000~6000년 전으로 알려진 선사문화의 발자취 속에 음식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언양의 음식문화는 선사시대 사냥을 통해 얻어낸 맛의 전통이 이곳 사람들의 DNA 속에 각인되어 전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처럼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남아 있는 현장이 울산 언양이다. 사냥에서 얻은 고기로 음식의 맛을 후손들에게 전했으며, 그 전통적으로 이어진 맛의 결정체가 언양 소머리국밥에 있는 것이다. 국밥에 소면을 얹고 심심한 겉절이 부추를 국밥에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시원하면서 담백한 국물, 부드럽고 쫀득한 소머리 살코기, 매끈한 소면, 맛의 절정에 오른 깍두기는 일품이었다. 우리는 소머리국밥이 입으로 들어오는지 코로 들어오는지 그저 후르륵 거리며 국을 훔치고 있었다. 오십 년 전통 언양 장터 소머리 국밥이라도 소금 파 매운 다대기 듬뿍 넣어도 싱거울 때가 있다 세상 입맛 돋우는 풍경들이 흩어져버린 장날 아닌 날에는 -김양희, 「장날 아닌 날에는」 눈 감아도 뜨겁게 끓어오르는 뼈의 경전을 받아 마시는 오후, 떨어지는 빗방울은 뜨겁다 -김성순, 「소머리 국밥」 아무리 매운 다대기를 넣어도 양이 차지 않는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는 김양희 시인은 장날에 국밥을 먹어야 한다는 정통 '국밥론자'다. 그러니까 아무리 세상이 맵고 고달파도 좋은 시만 쓴다면 그 고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일념, 열정의 내공이 깊다. 김성순 시인의 시는 목젖을 뜨겁게 데운다. 뼈의 경전이 사무쳐오기에 차가운 빗방울마저 녹일 수 있는 용광로를 가진 그는 앉으나 서나 오매불망 경전을 읽고 읽는다. 그리고 언제가 경전經典을 치며 쓸 것이다. 오창헌 시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소머리로 곰탕 맛을 내려면 정성도 보통 정성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 소머리를 그릇에 넣고 물을 부어 센 불에 달구면 부르르 끓어오르는데 이때 약한 불로 푹 고아 차게 식히고 기름 덩이를 거두는 게 필수. 그걸 여러 번 반복해도 소머리 기름이 나온다고 한다. 애들 말로 소머리 기름 짱이다. 마지막 기름기를 제거했다 싶은 때 한소끔 더 끓인 후 식혀 나머지 기름기를 거두어야 한다. 소머리 곰탕 먹으려다 머리 허해진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소머리 곰탕 1번지는 언양 장터에 있다지만 국물 맛은 고아본 사람만이 안다고 귀띔하네 기름 덩이 걸러낸 손이 맛을 낸다고 하네 -오창헌, 「울산 언양 소머리 곰탕이 맛있는 두 가지 이유」 웃을 줄밖에 모르는 두 남녀, 생애 처음인 듯 소머리 국밥집에서 만났다 -이궁로, 「연애」 맛의 두 가지 이유의 근본을 잘 알고 있는 오창헌 시인은 참으로 섬세하다. 그는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 모임’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그는 행동하고 만지고 밀착하는 시인이기에 손맛이 최고라고 한다. 손맛을 하는 사람이 바로 몸을 아끼지 않는 장인이 아닐까. 「연애」를 노래한 이궁로 시인은 정말 아직 연애를 하는 사춘기 소녀 같다. 아니 시와 열애를 하는 그는 만남이 시와 예술로 승화된다는 걸 직시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가장 중요한 생애 첫 만남을 소머리 국밥집으로 자리한 것만 봐도 인연을 육화할 줄 아는 사랑의 시인 이궁로다. 일행은 한참을 승용차로 달려서 정자 해변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울산 참가자미가 기다리는 곳이다. 울산에서만 건져 올린 참가자미는 다른 지역의 바닷가에서 잡힌 것보다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울산 하면 참가자미이고 참이라는 말이 가자미 중 진짜라는 말과 통하고 맛을 안 봐도 틀림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바다의 생물을 파는 수산물 도매상에서 참가자미와 해삼, 멍게를 한 자루를 사서 근방에 있는 횟집으로 들어갔다. 횟감을 사오면 회를 떠주고 술과 밥을 파는 집이다. 참가자미 회는 고소하고 시원하고 쫀득쫀득한 육질이 풍부하면서 비리지 않아서 좋다. 평소에 술을 잘 못하는 정일근 시인도 그날은 술이 당기는 듯 잘 마셨다. 술을 좀 하는 사람은 필자와 정일근 시인, 김 요아킴 시인이고 나머지 시인들은 조금씩 홀짝홀짝 마셨다. 시와 음식을 앞에 둔 시식남녀 대열은 계속 늘어난다. 횟집으로 달려온 두 사람이 있다. 장상관 시인과 시를 잘 쓰고 있는데 아직 미등단인 이현옥 예비시인이었다. 바다를 짊어졌던 몸이 접시를 방석 삼아 누웠다 빚더미에 억눌려 뼈 째 썰린 살점을 씹는 전사들 격랑이 한동안 저 사내들 앞에서는 무릎 꿇겠다 -장상관, 「참가재미」 참가자미의 맛은 담백한 타원형의 몸에 그득하지만, 고수 칼잡이를 만나야 천의무봉의 그 칼질이 받아낸 진짜 맛을 읽을 수 있으니 보라, 가로로 길게 쓴 저 참가자미의 詩 같은 진짜 맛을 알지 못하고 바다를 안다고 말하지 마시라, 방! -정일근, 「진짜 맛, 진짜 시인-참가자미의 시詩」 억눌린 자나 살점을 씹는 시인들이나 한 몸으로 엮어내는 장상관 시인은 술도 호쾌하게 마셨다. 그의 시적 발현은 대상들을 동일시하므로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상호 소통과 반전의 극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므로 저 사내들은 격랑과 함께 낮은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진짜 맛과 진짜 시인을 노래한 정일근 시인은 고수답게 노래한다. 고수의 도법刀法은 상처가 없다. 그의 말처럼 천의무봉 아닌가! 요리를 하는 데 있어 칼솜씨에 따라 요리 맛도 달라진다. 똑같은 재료라도 칼질에 따라 맛은 제각각이다. 칼의 결에 따라 시가 되는데 칼이 가는 길 따라 시를 쓰는 행위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칼질을 받아내야만 진짜 맛이 나는 법인데, 이 말은 외부의 상처를 어떻게 승화하는가에 따라 시가 되는 법을 얘기하고 있다고 본다. 어쩌면 정일근의 시론이 탄생한 셈이다. 그러니 넓고 깊은 가없는 시의 바다를 함부로 안다고 하면 안 될 일이다. 간밤엔 그대를 살 발라서 참 맛있게 술 한잔했네 꿈속에 참가자미 울산바다를 안방으로 내어주고는 아침엔 참가자미 해장국 먹으며 땀이 뻘뻘 나네 -김영탁, 「울산 참가자미 해장국」 태화강 굽이도는 무동교 그 언저리에 안개가 자욱하다. 불빛이 안개를 가르고 보니 멀리서 울산역이 보인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hanmail.net
  • 北, 내부적으로 ‘농업 투쟁’ 독려… 국제사회의 대북재제 대응 차원인 듯

     북한이 본격적인 농사철을 맞아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응해 ‘식량 자급자족’ 능력을 확보할 것을 촉구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승리의 통장훈(외통수)을 부르자’는 제목의 정론에서 “자체의 힘으로 기어이 먹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원수들의 그 무슨 ‘고사’작전이라는 것도 물거품으로 만들고 무엇이나 마음먹은 대로 창조해나가겠다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배짱이고 신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야말로 원수들이 무서워 벌벌 떠는 또 하나의 수소탄과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과거) 원수들의 극악한 제재와 압살의 포위환속에서 제일 큰 시련을 겪는 것은 농촌이었다”며 “비료 걱정, 연유 걱정이 언제나 떠날 줄 몰랐고 자연재해가 연이어 겹쳐들어 애써 키운 곡식들이 다 떠내려갈 때면 빗방울보다 더 굵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사람들”이라고 독려했다.  북한의 이같은 속내는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과거 보다 더욱 촘촘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당국으로서는 외부에서 그 어떤 지원이나 수급이 불가능한 상태란 판단아래 내부 자원을 통한 타개책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삼시세끼 고창편’ 차승원-유해진-손호준-남주혁 “벼농사 도전”

    ‘삼시세끼 고창편’ 차승원-유해진-손호준-남주혁 “벼농사 도전”

    tvN ‘삼시세끼 고창편’의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 남주혁 4인방이 이번엔 ‘벼농사’에 도전한다. 17일 ‘삼시세끼 고창편’ 제작진은 새 시즌의 포스터를 공개했다. 포스터에서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 남주혁 등 4인방은 고창의 논두렁에서 모내기를 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특히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네 사람은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를 표출하듯 결연한 표정으로 손을 번쩍 치켜들고 있어 이번 시즌 활약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 제작진은 “‘삼시세끼’ 새 시즌에서는 자급자족의 끝판왕 격인 벼농사에 도전한다. ‘삼시세끼’ 전 시즌을 통틀어 출연자들이 벼농사에 도전하는 것은 처음으로 보통 모내기를 하는 시기인 5, 6월과 첫 촬영 시기와 딱 맞아떨어졌다. ‘삼시세끼’ 사상 최대 미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포스터 촬영 당시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도중에도 네 사람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해 멋진 포스터가 나올 수 있었다. 어촌에서의 생활에 익숙했던 차승원-유해진-손호준을 비롯해 새내기 남주혁이 벼농사 도전을 통해 어떻게 농촌 생활에 적응하게 될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전했다. 한편 ‘삼시세끼’는 도시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한 끼’를 낯설고 한적한 시골에서 가장 어렵게 해 보는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아름다운 시골 풍광을 배경으로 출연자들의 소박한 일상이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며 힐링 예능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번 ‘고창편’은 ‘정선편’과 ‘어촌편’에 이은 새 시리즈로, 오는 7월 1일(금) 밤 9시 45분 tvN에서 첫 방송한다. 이지연 인턴기자 julie31080@seoul.co.kr
  • 4대강 사업 폐해 어디까지…“매년 밭 침수”

    경북 칠곡에 있는 조경업체 동우아트는 4대강살리기 사업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낙동강 인근에 있는 밭에 심어놓은 조경수가 썩어버렸기 때문이다. 칠곡군 약목면 무림리에 있는 동우아트 1만 9000여㎡ 밭은 낙동강과 직선거리로 900m 떨어져 있다. 4대강 사업을 하기 전에는 자연적으로 물이 빠져서 조경수나 야생화를 키워 파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업체에 그늘이 생긴 건 2009년 10월쯤 정부가 4대강 사업의 하나로 칠곡보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칠곡보 인근 땅이 저지대여서 침수 피해가 날 것으로 보고 흙을 메워 높이는 농경지 리모델링을 했다. 동우아트 땅도 처음에는 농경지 리모델링 대상에 들었다. 이 업체는 리모델링사업에 동의했다.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침수 피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어촌공사는 사업하는 과정에서 동우아트 땅을 리모델링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동우아트 측은 나무를 옮겨 심고 흙을 덮는 데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동우아트는 농경지 리모델링에 편입해달라고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러고 나서 2011년 6월쯤부터 조경수와 야생화가 고사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해마다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주변 농토는 높지만 동우아트 땅이 낮아서 물이 몰린 탓이었다. 비가 어느 정도 오면 무릎까지 물이 찼고 농막에 설치한 냉장고나 각종 집기는 물에 젖어 못 쓰게 되기 일쑤였다. 자비를 들여 1m가량 흙을 메워 땅을 높였으나 물이 원활하게 빠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지금은 조경수 농사를 거의 포기했다.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야생화도 사람 허리 높이 만큼 지지대를 설치해 키우고 있다. 이 때문에 전체 밭에서 4분의 1 정도만 활용하고 상당수 땅을 방치했다. 동우아트 측은 2014년 7월 정부,한국농어촌공사, 한국수자원공사를 상대로 2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수년째 민원을 제기했음에도 특별한 반응이 없어서다. 그나마 동우아트는 법인으로 문서를 다루고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기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다. 동우아트 밭과 바로 붙은 논 주인도 수년째 농사를 포기한 채 땅을 놔두고 있다. 그러나 소송비 부담이 많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손을 놓았다. 동우아트 재판 과정에서 정부나 농어촌공사는 “칠곡보가 2012년 3월 담수가 이뤄진 만큼 그 이전에 침수 피해를 본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우아트는 2년의 소송 끝에 이달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47민사부는 사업 시행자가 아닌 수자원공사를 제외한 대한민국과 한국농어촌공사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1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칠곡보 건설로 지하수위가 상승해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며 “칠곡보 건설과 농경지 리모델링으로 조경업체 땅에 침수 피해를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대한민국과 한국농어촌공사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동우아트 정병숙 실장은 “그동안 받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고 소송에서도 피해를 다 배상받은 것이 아니어서 불만이 많다”며 “지금 땅은 여전히 배수가 안 돼서 쓸 수 없는 만큼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개헌, 애시당초 글러 먹은 이슈?/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개헌, 애시당초 글러 먹은 이슈?/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우여곡절 끝에 20대 국회의 막이 오르자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의장이 된 정세균 의장의 첫마디는 뜻밖에도 수년 동안 정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개헌’이었다. 그는 개헌이 ‘결코 가볍게 꺼낼 얘기는 아니지만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문제도 아니며,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천명함으로써 20대 국회 전반부에 개헌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개헌 문제를 들으면서 문득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첫머리가 생각났다. 1936년 조광(朝光)이라는 잡지에 발표된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버려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농사로 한창 바쁜 여름 장날에 사람들이 북적거릴 수 없다는 것을 맛깔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개헌 문제와 어쩌면 그리도 닮았을까.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탄생한 현행 헌법은 30년 가까운 세월을 거쳐 오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문제들이 누적돼 왔다. 이에 따라 개헌 문제는 정치권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돼 왔다. 그러나 모두 그뿐이었다. 자신의 정치적 의제와 일정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에 개헌이란 마치 메밀꽃 필 무렵의 여름장처럼 ‘애시당초’ 글러 먹은 것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소위 원포인트 개헌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켜 정치 비용을 줄이자고 주장했지만 다음 대선을 떼 놓은 당상으로 여겼던 당시 한나라당으로서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정략적 제안으로 치부됐다. 19대 국회 전반부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의 취임 일성도 역시 개헌이었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개헌특위와 자문위를 만들어 다양한 대안을 개발하고 퇴임 후에도 적극적으로 개헌 전도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 세력에 개헌이란 그저 적당히 입장을 유지하다가 정권을 잡으면 피하고 싶은 문제였다. 정권 초기부터 굳이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개헌을 공론화해 국정 과제 추진을 위한 동력을 약화시키는 일을 스스로 하겠는가 말이다. 가깝게는 2014년 김무성 대표가 중국 방문 때 개헌 문제를 꺼냈다가 청와대의 반발과 함께 꼬리를 내렸고, 2015년 11월 친박계 홍문종 의원이 꺼내자 야권이 친박발 장기 집권 음모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런가 하면 현재 야권의 잠재적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문재인, 손학규 등 정치인들도 과거 한두 차례씩은 개헌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이처럼 개헌은 거론은 하되 굳이 추진할 이유가 없는 애시당초 글러 먹은 이슈였다. 지금까지 정치권이 거론한 개헌 문제는 수많은 이슈 중 단 하나, 권력 구조의 문제뿐이었다. 대통령제를 계속할 것인가,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꿀 것인가, 또는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4년 중임제로 갈 것인가 등을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논의를 반복해 왔다. 문제의 성격상 정답이 있을 수 없기도 했지만, 논의 당시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선택하다 보니 여야가 바뀌면서 서로 상대방의 주장을 반복하는 우스운 꼴도 보였다. 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은 권력 구조를 넘어선 많은 의제를 내포하고 있다. 국민 기본권의 확장과 복지국가화, 국민통제 강화와 투명성 제고, 의회의 대통령 및 행정부 견제 능력의 제고, 영토 규정과 통일에 대비한 헌법 체제, 검찰권의 독립을 위한 논의, 정보화에 따른 변화 등 많은 문제가 국민적 합의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이 수많은 의제는 고사하고 권력 구조 하나에 대하여도 정치권의 합의를 도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시간도 개헌론자의 편이 아니다. 개헌 문제는 늘 정권 후반부에 논의되기 시작하다가 대선과 함께 절정에 이르고, 대선 후에는 새 정권에 의해 뒤로 미뤄지곤 했다. 정세균 의장이 개헌 카드를 꺼낸 것은 이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스스로 주장한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루지 못했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다시 개헌이 한여름 장날처럼 애시당초 글러 먹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新전원일기] 꽃보다 할매 충남 당진 ‘백석올미영농조합’

    [新전원일기] 꽃보다 할매 충남 당진 ‘백석올미영농조합’

    1. 프롤로그 청매실이 익어가는 6월, 충남 당진의 ‘백석올미영농조합’(올미)으로 향하던 날의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강했다. 차에 오르자마자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도심과 고속도로에서는 선글라스를 끼나 벗으나 눈에 보이는 것에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백석리 어귀에 이르러 비포장 농로 위에서 차가 덜컹거릴 때쯤에는 선글라스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 개천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초록빛 매실나무의 향연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푸르고 무성한 잎사귀와 동그랗게 여문 열매가 따사로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매실밭을 보면서 목적지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평균 나이가 76세인 할머니 57명이 함께 일하는 백석올미영농조합의 주소는 ‘당진시 순성면 매실로 246’이다. 10만 그루에 달하는 마을 공동 소유의 매실나무에서 나오는 매실을 좀더 가치 있게 팔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영농조합이 이제는 할머니의 일터가 되고, 삶이 되고, 꿈이 되었다. 2. 할머니의 반란은 성공 여름철이면 지천으로 열리는 왕매실은 백석리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지만, 영농조합 설립 전까지는 마을 주민들에게 천덕꾸러기로 여겨졌다. 보관이나 유통이 어렵고 제값을 받기도 힘들어 매실을 따서 판다고 한들 인건비도 제대로 건지기 어려웠다. “우리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매실 한과’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33명의 조합원이 각자 200만원을 출자해 초기 자본금을 만들고, 농어촌 개발을 위해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 3억원을 받아 마을 영농조합이 만들어졌죠. 처음부터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저 할머니들이 모여 마을을 위해 뭔가를 해보자는 마음이었지요. 이런 걸 두고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더라고요.” 2011년 영농조합 설립 당시 마을 부녀회장을 맡고 있었던 김금순(66) 대표는 마을 소득 사업이나 사회적 기업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시골 할머니들이 모여 무작정 시작한 일이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2008년 대기업을 퇴직한 남편과 함께 백석리로 귀농했다는 김 대표를 두고 할머니들은 ‘굴러들어온 복덩이’라고 치켜세웠다. 2012년 한과 공장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매실 한과를 생산한 이래 연매출 6억원의 영농조합으로 발돋움하기까지 김 대표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 대표는 귀농 이후 마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 부녀회장을 맡으면서 새로운 운명의 길로 들어섰다고 회상한다. 부녀회원들을 중심으로 손주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매실 한과를 만들어 보자며 시작한 영농조합의 생산 품목은 이제 매실 장아찌, 매실 고추장, 매실청, 매실 진액 등으로 확대됐다. 매실 따기와 한과 만들기 등 체험 활동 프로그램도 26개로 늘었다.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개최한 ‘6차 산업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 전국 각지의 농민들이 올미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체험과 견학을 목적으로 이곳을 다녀간 체험객이 5000명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도 57명으로 늘었고 매출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올미의 성장보다 더 근사한 것은 57명의 할머니에게 일자리와 꿈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미영농조합에 출근하며 처음으로 명함을 가져보았다는 할머니들은 주 5일 근무에 월급 126만원을 받는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약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할머니들에게는 큰 수입이다. 게다가 4대 보험과 퇴직금이 보장된 ‘정규직’이다. 상품 판매 실적에 따라 보너스를 받기도 한다. 남들은 경로당이나 요양원 갈 나이에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과 자부심은 돈보다 더 큰 행복을 안겨준다. 한과를 만들면서도, 공장 청소를 하면서도 할머니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한때 마을의 골칫거리였던 매실이 이제는 한과도 되고, 장아찌도 되고, 진액으로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매실은 할머니들의 일자리가 되면서 돈을 벌어다 주었고,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통로를 열어 주었다. 3. 그녀들의 목소리 올미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50~80대로 다양하다. 70대가 제일 많아 평균 연령이 높지만 함께 일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곳에 몸담으면서 달라진 이들의 삶에 대해 연령대별로 직접 들어보았다. 막내 유희숙(51)씨 -어른 행세하는 분 없이 언니들이 항상 든든해요 우리 남편이 백석리 이장이에요. 남편이 감투를 쓰는 바람에 저도 졸지에 이장댁 사모님이 되었죠. 그래서 여러 궂은일을 나서서 맡을 때가 많아요. 올미에서는 언제부터 일했느냐고요? 5년 전에 올미영농조합이 설립될 때 저도 200만원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했어요. 그런데 집에 다른 농사가 바빠서 영농조합에 출퇴근은 못 하다가 직원으로 합류한 지 이제 6개월이 지났어요. 젊은 사람이 부족하다고 도와 달라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었어요. 언니들이 솜씨는 좋은데 기계를 다룬다든지, 운전을 한다든지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서툴러요. 지금도 한과 만드는 기계를 살피는 중이에요. 기계 틈에 한과 부스러기가 끼어서 날카로운 대바늘로 긁어냈어요. 언니들은 눈이 어두워서 이런 일을 하기가…(웃음). 같이 일하는 어르신들이 시어머님뻘로 연세가 많으셔서 처음에는 대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여기에는 나이 따지면서 어른 행세하는 분이 없어요. 똑같이 일하고 수익도 똑같이 나눠 갖는 시스템이니까요. 언니들에게 가장 고마운 건 제가 아무리 실수하고 뻗대더라도 나무라기는커녕 막내라고 귀여워하고 예뻐해 주신다는 거죠. 제가 이 나이에 어딜 가서 이런 사랑을 받겠어요. 언니들 덕에 저는 항상 든든해요. 대표 김금순(66)씨 -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버니 잡음 생길 틈이 없죠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은퇴하면서 남편 고향인 이곳 당진 백석리로 2008년에 귀농했어요. 서울에서는 은퇴할 나이인데 이곳에서 60대는 젊은이 취급을 받아요. 부녀회장도 맡고, 영농조합 대표까지 되면서 오히려 귀농 후에 더 바빠졌어요. 우리의 목표는 돈이 아니에요.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파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찹쌀, 참깨, 검은깨 등 한과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이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로 쓰는 게 철칙이에요. 원산지라고 해서 싸게 사는 것도 아니고 시중가대로 매입하죠. 다른 업체들은 대부분 수입산을 쓰는데 국산 농산물을, 그것도 비싼 값으로 사서 재료로 쓰니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니에요. 저나 할머니들이나 노년에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돈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아요. 수익 규모가 커지면서 서로 간에 잡음이 생길 법도 하지만, 개인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불평이 없어요. 제가 대표라서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받는 게 아니라 저도 다른 할머니들과 똑같이 월급을 받아요. 조합 성공 사례에 대한 강연을 하고 강연비를 받더라도 제 개인 몫으로 챙기는 게 아니라 조합 소득으로 계산하고, 저는 전체 수익을 할머니들과 똑같이 나누는 거죠. 한과 한 봉지도 따로 집에 못 가져가도록 해요. 본인 돈으로 구매하고 영수증을 처리해야 가능합니다. 시골 인심 같지 않다고요? 공평한 급여 체계와 투명한 운영이 갈등 없이 올미를 성장시킨 원동력이기 때문에 이 원칙을 끝까지 지킬 생각입니다. 판매왕 권탁(71)씨 - 여그만 오면 아픈디가 싹 나아…만병통치약이여 여그 일하는 할매들은 70대가 대부분이여. 처음 생길 때부터 시작해서 여그서 일헌 지 5년째여. 재미있고, 신나유.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명함도 생기고 말이여. 내가 여그 조합에서 최고 판매왕이유. 한과를 맹그는 것도 중요허지만, 못 팔면 소용이 없잖유. 비결이 뭐냐고? 내가 낳은 자슥들이 7남매유. 우리 아들, 딸들이 100박스, 200박스씩 팔아주는 게 비결이여. 한과를 한 해에 1000박스 넘게 파는 거지유. 갸들이 회사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이웃들한테도 소개하고…. 한과 주문을 받느라 명절만 되면 전화통에 불이 나유. 재미가 쏠쏠한 게 뭐냐믄 월급 외에 한과 판 보너스는 영업 실적에 따라서 따로 받아유. 그래서 내가 보너스만 300만~400만원씩 받어유. 돈 벌어서 손주들 용돈 챙겨 줄 때가 제일 좋아유. 손주가 초등학교 댕길 때만 해도 할매가 용돈 주면 닁큼 받더니, 중학교 간 후부터는 안 받을라 그러잖유. 할미가 고생해서 번 돈이라서 못 받겠대유. 그래서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면서 번 돈이라고 받아도 된다고 했지유.아픈 데가 없기는 왜 없겄슈. 평생 살림하고, 애 낳아 키우고, 농사짓고 살았는데 온몸이 쑤시고 프지유. 근디 신기하게 여그만 나오면 씻은 듯이 다 나아유. 웃고 떠들면서 일하다본께 피곤헌 줄도 모르고 아픈 것도 까묵어 버려…. 여그가 만병통치약인가벼. 최고령 성정옥(81)씨 - 돈 벌지, 돈 모아서 여행가지 을매나 좋은지 몰러 여그 정년퇴직 나이가 80세거든. 그런데 내 주민등록 나이가 아직 78세라 더 일할 수 있어. 우리 아부지가 내가 다 늙어서 올미에 취직할 줄 미리 알고, 출생 신고를 3년 늦게 해 준 덕이여. 나는 이렇게 등도 굽고, 다 늙어서 쪼글쪼글한 할매를 취직시켜 줘서 여그가 을매나 고마운지 몰러.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게 행복이여. 건강 관리는 어떻게 허냐고? 조합원들이 모여서 일주일에 두 번씩 체조를 햐. 체조 선생님이 오셔서 한 시간씩 제대로 하는 겨. 그것도 다같이 허니께 힘든 줄도 모르고 재미나. 70대에 처음 직장 생활해서 월급이란 걸 받아 봤어. 그 돈으로 영화도 보러 다니고 여행도 가. ‘해랑’이라고 열차로 크루즈여행을 하는 고급 여행 패키지여. 그게 2박 3일 가는데 100만원이나 혀. 여그 올미 할매들이랑 같이 댕겨 왔어. 자식들이 안 보내 주느냐고. 아유, 그런 말을 어떻게 혀. 내가 번 돈으로 친구들이랑 여행 가서 맛난 거 실컷 먹고 구경하고, 그게 을매나 좋은디. 4. 에필로그 매실 한과로 돈을 많이 벌면 ‘올미 실버타운’을 지어 친구들과 여생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할머니들, 올미에서 일하면서 할머니들은 이전과는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초록빛 매실이 시골 촌부(村婦)의 삶에 희망이라는 초록 불을 밝혀 준 것이다. 매실의 매(梅)를 한자로 풀이하면 ‘人+母 +木’이므로 ‘사람에게 어머니 같은 나무’라고 한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할머니들은 여러 매실 가공품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있다.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농사지은 인삼 헐값에 팔았다고 아버지 폭행 살해

    농사지은 인삼 헐값에 팔았다고 아버지 폭행 살해

    충북 영동경찰서는 14일 말다툼을 하던 아버지를 폭행해 숨지게 한 A(45)씨에 대해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지난 7일 오전 3∼5시쯤 영동군 양산면의 집에서 말다툼하던 아버지 B(80)씨를 주먹과 발로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서 A씨는 “아버지가 애써 농사지은 인삼을 헐값에 팔아 말다툼을 하다가 아버지를 때렸다”고 말했다. A씨는 범행을 부인하다 아버지의 손톱 밑에서 자신의 DNA 등이 검출되는 등 결정적 증거가 나오자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은 숨진 B씨의 얼굴과 손등에 상처가 있고, 사건현장 바닥에서 혈흔이 발견돼 범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특히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입원한 이후 지난달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A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새벽 시간대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의 진술 등을 확보해 A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조사를 벌여왔다. A씨는 20여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지체 판정을 받은 뒤 최근까지 청주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경찰은 A씨의 정신감정을 의뢰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조사하는데도 큰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영동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조현병’ 40대 말다툼하다 80세 친부 폭행 살해

    ‘조현병’ 40대 말다툼하다 80세 친부 폭행 살해

    정신질환(조현병)을 앓는 40대 남성이 80세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이다 때려 숨지게 했다. 충북 영동경찰서는 14일 인삼을 헐값에 팔았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존속살해)로 A(45)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7일 오전 3∼5시쯤 영동군 양산면의 부모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말다툼하던 아버지 B씨(80)를 주먹과 발로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범행 후 “아버지가 쓰러졌다”면서 태연하게 119 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B씨는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경찰은 숨진 B씨의 얼굴과 팔 등에 상처가 있고 음식점 바닥에 핏자국이 있는 점에 주목해 피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해왔다. 부검 결과 B씨는 폭행 등 외부 충격에 의한 갈비뼈 등 흉부 손상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팔 등에서 손톱에 긁힌 자국 등을 확인한 경찰은 그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집중 추궁했다. 완강히 부인하던 A씨는 숨진 아버지의 손톱 밑에서 자신의 DNA가 검출되는 등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자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에서 A씨는 “아버지가 땀흘려 농사지은 인삼을 헐값에 처분해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1992년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 지체 1급 판정을 받고 조현병 증세까지 보여 20년 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4년 전부터 청주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25일 퇴원해 아버지와 함께 생활해왔다. 경찰은 A씨가 말은 조금 어눌하지만,조사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의사 표현을 명확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범행 경위를 조사중이며,정신 감정을 의뢰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주말 농부/이경형 주필

    2주 만에 밭에 갔다. 고추, 가지, 오이 모종을 옮겨 심은 지는 한 달도 넘었다. 진작 지지대를 세워 묶어 줘야 했는데, 늦었다. 고춧대가 바람에 구부러진 채 햇볕을 받으려고 온몸을 비틀고 있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고춧대 아랫부분 반 뼘 정도는 일찌감치 잔가지와 잎을 제거하고 첫 꽃도 따줘야 실한 고추가 되는데 역시 좀 늦었다. 가지도 밑둥치 부근의 잎은 모두 따 줘야 하는데 무성하게 자라 버렸다. 뒤늦게나마 지지대를 박아 고춧대와 가지를 바로 세워 묶어 주고 잔잎들을 따 주었다. 오이도 알루미늄 파이프로 지주목을 만들어 세워 놓긴 했으나 오이순들이 거기까지 타고 오르는 유인줄을 매달아 주지 않아 땅으로 기고 있었다. 어떤 놈은 옆 고랑으로 뻗어나가 흰 감자 꽃대를 감고 있다. 이미 열린 어린 오이를 조심스레 가다듬으면서 비닐 끈을 지주목에 연결해 오이순을 감아 주었다. 작업 도중 오이순이 뚝뚝 부러지기도 했다. 밭에 자주 왔어야 했는데 오이한테 미안했다.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놓친 만큼 부실한 흔적이 수확 때까지 계속 남는다. 세상사치고 적기를 놓치면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 비단 농사뿐이랴.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경북 영천 별별미술마을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경북 영천 별별미술마을

    미술작품 48점·우리동네박물관·조각공원…소통·교감하다 경북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화산리, 귀호리 일대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봄이면 복사꽃 살구꽃 피고, 여름이면 복숭아와 포도가 익어 가고, 가을이면 누렇게 들판이 물든다. 딱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그런 고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잘 만들어진 벽화마을과 미술관이 영천에 있더라’는 소문을 듣고 이 마을을 처음 찾아간 것은 2012년, 아직 겨울이던 2월 초였다. 이 마을에 대한 첫 번째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끝났던 때다. 당시 미술관보다는 마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미술 작품들이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있었지만 조금은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그날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마을 초입의 ‘우리동네박물관’이었다. 옛 마을회관이었던 작은 건물이 마을의 역사와 현재가 담긴 마을사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마을의 역사, 관혼상제, 집과 건축물, 사계절 풍경, 사람들과 강아지, 고양이들이 전시의 주인공이었다.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마을 사람들 사진이 걸린 메인 전시홀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처음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생소해하던 마을 주민들이었지만 우리동네박물관이 완성되자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평범한 자신의 삶이 하나의 전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묘한 자긍심을 안겨줬다. 이제는 마을 주민 누구나 장날 나들이 가듯 화장을 하고 동네 마실에 나선다. 낯선 이들이 물어도 적극적으로 마을에 대해 얘기해 준다. 두 번째 방문은 같은 해 봄 4월이었다. 아이와 함께였다. 마침 미술관은 휴관이었다. 아이는 옛 운동장이었던 조각공원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공원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시안미술관의 변숙희 관장은 미술관 개관 2년째인 2005년, 1000만원이나 들여 달았던 정문과 담장을 없앴다. 누구나 미술관에 들어왔다.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공연도 자주 열었다. 주말 나들이 명소로 먼저 입소문이 났다. 조각공원에 돗자리 펴고 앉은 이들의 30% 정도만 유료 미술관에 입장할 뿐이었지만 관람객 수는 계속 늘어났다. 이는 미술관이 도전적인 기획전시를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세 번째 방문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기사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을 때였다. 서울은 지하철마저 한가롭게 느껴질 정도로 침체된 주말이었는데 시안미술관 조각공원에서는 많은 가족 단위 여행자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막 더위가 시작되는 6월, 옛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 자리를 지켜 왔던 울창한 양버즘나무들이 깊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유유자적하게 오후를 보내기에 그만이었다. 비옥한 토지 덕에 복숭아 농사 등이 잘돼 한때는 지금의 시안미술관인 화동초등학교 학생 수가 400명에 이를 정도로 번화하기도 했다. 이후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여느 농촌처럼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학교는 1999년 폐교됐다. 늘어나는 빈집만큼이나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도 구멍이 뚫렸다. 2011년 공공미술 프로젝트 ‘신몽유도원도’가 진행됐다. 이 일대에 48점의 미술 작품이 생겼다. 우리동네박물관도 그때 생긴 것이다. 세 마을을 합친 동네 이름도 ‘별별미술마을’이라고 붙여졌다. 농촌의 순수성을 살리며 예술의 옷을 새로 입었다. 관도 협력했다. 문화해설사 서담규씨는 “작품을 만든 작가들은 ‘소통’과 ‘교감’을 중요시하며 마을의 과거와 현재, 미래, 사람과 자연에 대해 작품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민, 관, 전문가가 서로 조화를 이룬 대표 사례로 꼽힌다. 마을을 찾는 관람객도 점차 늘었다. 변 관장은 손사래를 치지만 사립미술관들 사이에서는 시안미술관이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미술관으로 소문이 났다. 올해 이곳을 다시 찾았다. 마을은 그새 변해 있었다. 미술관 옆에 깔끔한 매점이 들어섰고 새로 지은 회관 건물엔 세미나, 민박 시설도 보태졌다. 마을 길 안쪽까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됐다. 미술작품들은 비교적 관리가 잘되고 있었으나 없어진 것도 생겼다. 무엇보다 우리동네박물관이 방치되는 듯해 아쉬웠다. 관리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을이 뜨기를 고대했건만 막상 뜨고 나니 이제 마을 정착이 쉽지 않아졌다고 주민들은 걱정한다. 지난달 20일 시안미술관에서는 마을 주민 대표들과 작가, 시 관계자들이 모여 올해 공동의 프로젝트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그동안의 아쉬움들을 보완할 새로운 프로젝트가 오는 7월 2일 시작된다. 주민들과 작가, 방문객들이 교감하며 좋은 작품을 남기고 서로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이 주목표다. 모두가 만족하는 마을 만들기라는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지속 가능한 별별미술마을이 부디 성공적인 사례로 계속 남아 주기를 바란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영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화산, 가상리행 버스를 이용한다. 하루 7회(편도) 가상리행 버스가 있다. 택시는 약 1만원이면 마을 입구 미술관까지 데려다준다. 시안미술관(338-9391)은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함께 가 볼 만한 곳:해발 1124m의 보현산은 대한민국에서 연중 가장 별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정상에 천문대가 있다. 산 아래 마을 입구에 세워진 과학관은 일반인이 언제라도 방문해 고성능 카메라로 별이나 태양 등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임고서원은 포은 정몽주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서원이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면 더욱 멋지다. 포도가 유명한 영천은 7월 중순부터 영천와인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직접 포도를 따 와인을 만들어 보고 유명 와인농장도 방문한다. 까브스토리(335-7070)를 비롯해 17개의 와이너리가 있다. 프랑스나 호주의 와이너리와 비슷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맛집:별별미술마을 내 식당은 마을 주민회에서 운영하는 매점이 유일하다. 잔치국수 등을 판다. 영천시외버스터미널의 편대장영화식당(334-2655)은 전국 최고의 육회 맛집 중 하나로 꼽힌다. 우둔살을 일일이 손으로 손질해 살코기만으로 육회를 만든다. 파와 깨, 참기름만 넣어 만든 육회에 상추무침을 넣어 비비는 비빔밥(1만 7000원)이 일품이다. 소고기된장찌개(9000원)도 맛있다.
  • [서울 핫 플레이스] 왕도길 따라 걷다보면… ‘2000년 古都’ 백제와 마주한다

    [서울 핫 플레이스] 왕도길 따라 걷다보면… ‘2000년 古都’ 백제와 마주한다

    서울 송파구에 가면 2000년 전 백제 최고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의 숨결이 살아 있다. 10여㎞에 이르는 한성백제 왕도(王都)길은 왕이 살았던 풍납토성에서 시작해 ‘한국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석촌동 고분군까지 이어진다. 한성백제의 500년간 수도였던 송파구에서는 일본 고대문화의 지도자 역할을 한 백제인의 수준 높은 안목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올림픽공원의 낮은 언덕이 이어지는 산책로는 바로 백제 몽촌토성입니다.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져서 시원하고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 겨울 설경도 일품이지요.”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한성백제 왕도길의 풍경 자랑에 여념이 없다. 왕도길은 지하철 5호선과 8호선이 만나는 천호(풍납토성)역에서 시작된다. ●풍납토성 ~ 석촌동 고분군 약 10㎞·3시간 도보 출발! 40년 전통시장인 풍납시장에서 어묵과 핫바를 한입 베어 물고 3시간 정도 걸리는 10㎞ 길이의 왕도길 여정을 떠나보자. 어묵 500원, 핫바 1000원의 저렴한 가격에서 도깨비시장으로 시작했던 풍납시장의 인심을 느낄 수 있다. 경당역사공원은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이 살았던 왕성이란 사실을 입증하는 곳이다. 백제인들은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과 천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 터가 바로 경당역사공원이다. 제사에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말머리뼈와 깨진 토기 등이 여기서 발견됐다. ●풍납토성 3만여점 백제 유물… 2000년 된 고도 입증 풍납토성은 수도 서울이 600년 역사의 도시가 아니라 2000년 된 고도임을 입증하는 핵심적인 곳이다. 1997년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쏟아져 나온 3만여점의 유물은 무려 2000년 전 한성백제 시대의 것들이었다. 한성백제는 백제가 건국돼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약 500년간 현재의 송파구에서 번성했다. 서울시는 ‘기약 없는 사업’으로만 여겨졌던 풍납토성 발굴에 2020년까지 5137억원의 예산을 집중 투입해 속도를 내고 있다. 2017년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2020년에는 백제유적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이 목표다. 예산은 주민보상에 우선 투입된다. 풍납토성은 둘레 3.5㎞, 너비 40m, 높이 10m의 국내 최대 토성이지만 현재는 빽빽한 아파트 숲을 둘러싼 언덕일 뿐이다. 풍납초등학교 옆의 왕궁 핵심지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단독주택을 사들여 본격적으로 발굴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아파트를 짓다 유물이 나오면 땅을 사들이는 방식으로는 언제 풍납토성을 복원할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몽촌토성 어디서 사진 찍어도 ‘인생샷’ 남길 명당 풍납토성에서 이어지는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 안에 있다. 올림픽공원은 파크텔 앞의 칠지도 조형물, 몽촌역사관, 움집터, 한성백제박물관 등 백제의 문화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올림픽공원의 나홀로나무는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출사’ 장소로 손꼽힌다. 1996년 드라마 ‘애인’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나홀로나무 뒤편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구릉도 바로 몽촌토성이다. 한성백제박물관은 토성과 한 몸이 된 모양과 흙을 켜켜이 쌓은 토성 건축 방식을 형상화한 외벽으로 눈길을 끈다. 흙을 층층이 쌓은 듯한 모습의 외벽은 한성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의 고향 중국 이연에서 나오는 철평석이다. ●한성백제박물관·몽촌역사관에 모인 백제의 단면 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한성백제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한성백제박물관에 모여 있다. “충남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것과 같은 화려한 금관이라도 나와야 할 텐데….” 송파구에 묻힌 백제의 역사가 조명받길 바라는 송파구청 관계자의 아쉬움이다. 금관은 없지만 한성백제박물관에 전시된 금제귀걸이, 금동신발과 꾸미개 등이 화려한 백제문화의 단면을 전한다. 백제의 배를 복원한 박물관 디자인은 해상강국 백제의 풍모를 담고 있다. 박물관 로비에는 풍납토성 단면이 실사 크기로 재연되어 방문객을 압도한다. 성벽 단면과 흙으로 성을 쌓는 백제인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다. 몽촌역사관은 2012년 한성백제박물관이 건립되기 전까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백제 유물을 전시했던 곳이다. 현재는 어린이 체험박물관으로 백제인들은 무엇을 먹고 놀았는지, 화장실은 어땠는지 등 다양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교육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움집터 전시관은 몽촌토성에서 나온 12곳의 움집터 가운데 4곳을 재연했다. 전시관 자체가 거대한 움집 모양이다. 백제인들은 육각형 모양의 움집에 화덕을 설치해서 생활했다. 농사를 짓고 밥을 먹는 백제인의 모습이 마치 사극 드라마를 보듯 모형으로 생생하게 꾸며졌다. ●석촌동 고분군 ‘한국의 피라미드’ 돌무지무덤 백제인의 무덤인 방이동 고분군과 석촌동 고분군은 확연하게 대비되는 외양으로 눈길을 끈다. 방이동 고분군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언덕 모양의 무덤이라면,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 초기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인 돌무지무덤이다. 납작하고 네모난 모양의 돌을 계단 모양으로 층층이 쌓은 석촌동 고분군은 한 변의 길이가 약 50m에 달해 한반도 최대 크기를 자랑한다. 고구려 장군총보다 훨씬 커서 백제 최고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의 무덤이란 설이 있으며 ‘한국의 피라미드’가 별명이다. 현재는 3단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 규모만으로 당시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4기의 고분이 발굴된 방이동 고분군도 한 고분의 지름이 10~19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고분 가운데 하나는 석실까지 들어갈 수 있어 백제인이 어떻게 잠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는 한성백제박물관의 특별전시 ‘백제 신라, 무덤이야기’전에서 재연된 방이동 고분의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박 구청장은 “매년 10월에는 한성백제왕도길 걷기 행사와 한성백제문화축제가 열려 백제문화를 맛볼 수 있고, 올림픽공원은 산책하기만 해도 몽촌토성을 걸을 수 있다”며 “송파구에서는 2000년 전의 서울이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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