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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태 돋보기] 인간세와 생물다양성, 함께 살아가자

    [생태 돋보기] 인간세와 생물다양성, 함께 살아가자

    인간은 지구에 어떤 존재일까. 1700년대 산업혁명 이후 인간 문명이 급격히 발달했고 1900년대 화학공학의 발전과 녹색혁명으로 풍요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풍요의 숨겨진 이면을 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이 풍요를 누리는 동안 함께 살아가야 할 많은 생물들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던 것이다. ‘인간세’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이제 지구는 자연에 의해 조절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의해 변화하고 있다는 뜻에서다. 우리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가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키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지난 50년간 인간에 의한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그 가속도가 점점 붙고 있다. 큰입베스와 뉴트리아같이 우리 땅에서 전에 살지 않던 생물들의 인위적 도입으로 인한 환경교란은 매우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안정된 환경에서 생물다양성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에 의한 생태경관의 변화는 때로 급격하게 완전히 생소한 모습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많게는 육지의 50%를 변화시켰고, 전 지구의 생산량 40%를 소비하고 있다. 숲을 베어내고 농경지를 만들거나 인간의 서식지를 확장하는 것은 반대로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일일 것이다. 목축과 농사는 일부 식물만 자라게 하는데 이것은 연쇄적으로 다른 생물의 다양성을 크게 떨어트린다. 도시화는 경향이 다른데, 생물다양성이 낮아지기도 하지만 인간이 만든 서식처를 좋아하는 바퀴벌레, 개미 등 생물들이 들어와 도리어 생물다양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열대 숲의 나무를 베어낸 것이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은 브라질의 아마존 정글과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에서 다르게 나타났다. 이유는 보르네오에서는 훼손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벌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코스타리카는 정책적으로 농업의 강도를 낮췄다. 그 결과 농경지에 서식하는 새가 숲의 수준에 이르게 됐다. 유엔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생물다양성의 복원을 위해 국제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야외 생태조사, 장기생태연구와 더불어 도시 내 생물다양성 복원과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과 연구 결과를 보면 생물다양성을 자연적으로 높이는 것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공존을 이야기한다. 공존은 잘 보이지 않더라도, 서로 살을 맞대고 살지 않더라도, 각자 살아갈 수 있도록 그냥 놔두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 보자.
  • 봄맞이 하는 농촌

    봄맞이 하는 농촌

    춘분인 20일 강원 강릉시 송정동 일원에서 농민이 트랙터로 땅을 고르는 등 농사 준비를 하고 있다. 강릉 연합뉴스
  • ‘비정상회담’ 최민용 “다양한 곳에서 자연 속 삶 경험하고파”

    ‘비정상회담’ 최민용 “다양한 곳에서 자연 속 삶 경험하고파”

    배우 최민용이 ‘비정상회담’에 출연한다. 최근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 녹화에 참여한 최민용은 각국 비정상 대표들과 함께 ‘자연과 하나 되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인 멤버들을 의식해 직접 준비한 한복을 입고 등장한 최민용은 “미래의 아내를 위해 다양한 곳에서 자연 속 삶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멤버들 또한 산촌과 어촌, 농촌에서의 ‘자연인의 삶’을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촌 출신의 중국 대표 왕심린부터 농사의 달인을 자처한 파키스탄 대표 자히드까지, 다양한 ‘생존 기술’을 자랑하며 경쟁을 벌였다. 최민용은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의 ‘버섯 채취’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한국에서 산 다니시는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자연 사랑꾼의 면모를 보였다. 이어 멤버들은 은둔 생활을 택한 각 나라의 자연인들과, 자연 치유법 등을 소개했다. 일본 대표 오오기는 온천의 나라 출신인 만큼 다양한 온천을 소개했다. 이에 경쟁심에 불붙은 멤버들도 각국의 온천을 소개하며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한편, 이날 잠시 자리를 비운 미국 대표 마크와 스위스 대표 알렉스 대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크리스, 스페인 카나리아 섬에서 온 알레한드로가 일일 비정상으로 합류해 신선함을 더했다. 특히 크리스는 녹화 내내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능청스러운 리액션을 선보여 웃음을 선사한 것으로 전해져 본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더했다. 한편,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은 20일 오후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사진제공=JTBC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농공단지를 유럽풍 파크로… 사무관 승진과 맞바꾼 기적

    농공단지를 유럽풍 파크로… 사무관 승진과 맞바꾼 기적

    지난 50년 동안 인구가 줄어들기만 하던 전남 구례군에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해 구례군에 귀농·귀촌으로 정착한 사람이 685명에 이르는 등 2012년 2만 777명에서 2016년 2만 7412명으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6년 전 학생수 11명으로 폐교 위기에 시달리던 용방초등학교 학생은 50명으로 늘었고 지난해는 16명이 다니는 유치원도 생겼다. 모두 처음에는 용방농공단지란 다소 딱딱한 이름으로 추진되던 구례자연드림파크가 2014년 문을 열면서 생긴 변화다. 열정적인 공무원들이 이 같은 기적을 낳았고 그중 한 명이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4급으로 퇴직할 때까지 40년을 구례군을 위해 산 김영택(60)씨다. 김씨는 19살에 구례군 9급 토목직 공무원으로 시작해 59살에 4급 서기관으로 퇴직했다.구례는 지리산 자락의 산수유 축제가 유명한 곳이지만 해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만 하는 곳이었다. 이를 걱정한 김씨는 2011년부터 농공단지 조성에 뛰어들었다. “사무관 생활 10년을 구례자연드림파크와 바꿨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사무관으로 일한 10년을 승진도 제쳐 놓고 구례자연드림파크의 유치와 건립에 바쳤다. 시작은 아이쿱 생협이 물류센터를 짓기 위해 땅을 물색한다는 것을 알고 아이쿱에 투자해 줄 것을 제안하면서부터다. 김씨는 “좋은 기업이 들어와야 구례군이 산다고 생각했다”면서 “아이쿱에 금전적 지원은 못하지만 행정적 지원은 원하는 대로 뭐든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조례 등을 제정해 아이쿱을 적극 지원했고, 아이쿱은 물류센터를 지으려던 계획을 확대해 15만㎡에 달하는 거대한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직원도 500여명에 이르고 3년 동안 생산한 금액도 120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주변에서 ‘왜 잘 모르는 아이쿱에 구례군 땅을 다 내주느냐’고 비난했다. 그때마다 농사를 지으면 맘대로 팔 수 있는 친환경 유통회사의 필요성을 알렸다. 김씨는 퇴직 후에도 지역언론의 통신원으로 일하면서 구례자연드림파크를 알리고 있다. 지난해 퇴직한 그는 상하수도 기사 자격증을 살려 설계·용역 회사에 재취업했다. 물론 아이쿱에서 일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자신이 처음 유치부터 완공까지 마무리한 구례자연드림파크에 취직했다가는 욕먹을 것 같아 다른 회사를 택했다고 했다. “항상 후배들에게 말합니다. 돈 벌려 하지 말라고. 공무원에게 첫째는 국민이고 그다음은 지역이라고.” 떳떳하게 공직생활을 마친 퇴직공무원의 어깨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글 사진 구례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길섶에서] 시골/박홍기 수석논설위원

    봄의 색깔이 드러난다. 논둑이 파릇파릇하다. 누런 풀 사이로 새싹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쪼그려 앉은 아낙들의 손놀림이 가볍다. 바구니엔 냉이, 쑥이 수북하다. “시내에 사는 분들이란다.” 어머니가 한 말씀하신다. 봄나물 값도 웬만하니 시내에서 쉬엄쉬엄 시골까지 와서 봄을 캐는 것이다. 논둑은 쓸모가 많았다. 봄철엔 나물이, 여름 초입엔 콩이, 가을엔 수수가 있었다. 봄나물은 자연이 거저 준 선물이다. 어른들은 봄이 오면 틈나는 대로 논둑에 나가 나물을 채취해 시장에 내다 팔곤 했다. 모가 뿌리를 내릴 즈음 논둑에 콩을 심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땅을 파고, 콩 서너 개를 넣은 뒤 재를 덮었다. 전부 다 옛날 얘기다. 시골은 늙었다. 젊은이도, 애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나물을 캐러 들판에 나갈 어른들도 없다. 논둑에 콩을 심을 여력도 없다. 심어봤자 고라니 먹이다. 땔감을 대주던 산이 잡목으로 덮인 지 한참 됐다. 논농사, 밭농사는 기계들의 차지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정(情)이다.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만나는 이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곳, 시골이 포근한 이유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고든 정의 TECH+] ‘로봇 농부’ 등장…인간없는 농업 시대 활짝

    [고든 정의 TECH+] ‘로봇 농부’ 등장…인간없는 농업 시대 활짝

    최근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 공장이 늘어나면 쇠락한 미국의 제조업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방향성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미래 일자리의 위협은 중국이 아니라 바로 자동화이기 때문이죠. 기계화와 자동화는 산업화 이후 항상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류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자동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한 세대가 지난 후에는 아예 인간 없는 공장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는 공장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쩌면 인간 없는 농업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이미 이를 위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 입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완전히 자율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로봇이 개발 중이기 때문이죠. 농업의 기계화와 산업화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제는 인간 없는 농업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호주 시드니 대학 연구팀은 2015년부터 립파(Robot for Intelligent Perception and Precision Application·RIPPA)라는 농업용 로봇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로봇의 목적은 사람의 지시 없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농지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립파는 경차보다 작은 크기의 평평한 로봇으로 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해서 농작물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만약 농작물이 아닌 잡초를 발견하면 독특하게도 물리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제거합니다. 작은 막대기 같은 장치로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죠. 동시에 작물에게는 비료와 물을 투여할 수도 있습니다. 립파는 어떤 것이 작물이고 어떤 것이 잡초인지 파악하기 위해 기계학습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카메라에 찍힌 이미지를 보고 작물과 잡초를 알아내는 것이죠. 물론 제초제를 사용하는 방식이 더 저렴하지만, 립파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비료와 물을 절약하는 친환경 유기농 농업의 대중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립파는 태양전지 패널과 배터리를 이용해서 친환경 에너지로 완전히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런 자율형 농업 로봇의 개발은 사실 여러 기관과 기업에서 진행 중입니다. 보쉬사의 보니롭(BoniRob)은 립파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잡초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잡초 제거 이외에 작물의 수확, 파종, 농약 살포 등을 모두 드론과 로봇으로 해결하려는 연구 역시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이와 같은 자동화는 사람 없는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일부 국가에서는 미래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농촌 인구 고령화로 인해 10년, 20년 후에는 농사지을 사람 구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로봇과 드론을 이용한 농업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우리가 농업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다면 진지하게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를 고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임야 화재 3월 최다… 논·밭두렁 태우지 마세요”

    “임야 화재 3월 최다… 논·밭두렁 태우지 마세요”

    최근 5년 산불·들불 1만4024건 산림 인접지역 소각 행위 말아야국민안전처가 건조한 봄철 날씨에 산불과 들불이 날 위험이 커졌다며 16일 주의를 당부했다. 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5년(2012~2016년)간 산불·들불 등 임야 화재가 1만 4024건 발생해 339명의 사상자(사망 59명, 부상 280명)를 냈다. 월별로는 3월 3871건, 4월 2085건, 2월 2028건 순으로 임야 화재가 많았다. 3~4월이 건조한 데다 겨우내 쌓였던 낙엽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 대형 산불 발생 가능성을 높였다고 안전처는 설명했다. 임야 화재의 원인으로는 쓰레기 소각(31%)과 담배꽁초(25%), 논·밭두렁 태우기(20%) 등이 꼽혔다. 이 가운데 논·밭두렁을 태우다 일어나는 화재는 전체의 40%가 3월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 지역에서 해충을 없앤다며 봄마다 논두렁과 밭두렁을 태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안전처는 “논·밭두렁 태우기는 해로운 병해충보다는 거미 등 이로운 벌레가 더 많이 죽어 농사에 불리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볏짚과 잡초 등은 태우지 말고 2~3등분으로 잘라 땅에 뿌려 갈아엎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비닐 등 영농 쓰레기는 개별적으로 태우지 말고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수거하거나 소각하는 등 다 함께 처리해야 한다. 특히 산림과 산림 인접 지역(100m 이내)에서는 소각행위가 금지된 만큼 시장·군수·구청장의 허가를 받아 화재 예방 조치를 취한 뒤에 실시해야 한다고 안전처는 강조했다. 특히 임야 화재 사망자의 90%는 70대 이상 고령자였다. 논·밭두렁을 태우다가 화재가 발생하는 시간대는 오후 1~4시에 집중됐다. 농어촌 지역 노인들이 봄철 오후에 논·밭두렁을 태우다 불이 번지자 이를 무리하게 끄려다가 화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실수로 화재가 발생한 경우 혼자 진화하지 말고 불길에서 빠져나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피한 뒤 즉시 119에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안전처는 “야외에서 불을 사용할 때는 각별히 주의하고 고향의 부모님께 논·밭두렁 태우기의 위험을 알려드리는 차원에서 안부 전화 한 통씩 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정찬주의 산중일기] 산중의 봄맞이

    [정찬주의 산중일기] 산중의 봄맞이

    한겨울 내내 참았다가 터트리는 이른 봄 개구리 소리는 청아하다 연못가에는 매화가 꽃을 피웠지만 향기는 보낼 수 없으니 안타깝다보름 전에 마당가 연못이 바닥을 드러내 물을 댔다. 그러자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들이 어김없이 연못으로 모여들었다. 알을 낳기 위해서다. 산방 부근에 사는 개구리들의 출생지는 아마도 마당가 연못이 아닐까도 싶다. 연못에는 벌써 개구리 알들이 듬성듬성 무리 지어 있다. 물이 나오는 소나무 홈통은 젊은 김 목수가 선물한 수제품이다. 산중 농부들은 ‘연못을 파면 개구리들이 뛰어든다’고 말한다. 경험에서 우러난 말인데 때로는 흥미로운 비유로 바뀐다. 산방을 짓고 난 뒤 내가 텃밭을 하나 장만하려고 서둘렀더니 한 농부가 연못을 팠으니 개구리들이 뛰어들 거라며 만류했다. 산방에 가만히 있어도 밭주인들이 자기 땅을 사라고 찾아올 거라는 귀띔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돼 버린 그 농부 덕에 나는 착한 값을 치르고 텃밭을 장만했다. 그늘진 밭 윗부분에는 차밭을 조성했고 밭이랑 끝에는 매화나무와 뽕나무, 블루베리 몇 그루를 심었다. 또 밭두둑에는 고구마와 고추 농사를 1년마다 번갈아 지어 자급자족했으니 얼치기 농사꾼으로서는 최고의 텃밭인 셈이다.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왜 굳이 텃밭을 일구고 땀을 흘렸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다산은 거처를 초당으로 옮기면서 텃밭을 하나 갖고 싶어 했다. 실학자다운 계산도 있었겠지만 농사지으면서 자연의 섭리와 농부의 수고를 알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물론 다산은 선비의 책무를 다하고자 부지런히 강학하고 제자를 가르쳤다. 그 결과 초당 제자가 열여덟 명이나 됐다. 나 역시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것이 많다. 귀동냥한 지식은 남의 것이지만 체험 속에서 자각한 지혜는 내 것으로 쌓였다. 줄기와 잎이 지나치게 무성한 고구마는 허장성세, 민망할 정도로 부실한 뿌리를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서울에서 방일했던 내가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이 든 것도 산중 농부들 덕분이리라. 17년 전 낙향했을 때였다. 나야말로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농부들은 동창이 훤해질 무렵까지 자던 나와 달리 새벽부터 다랑이 논밭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20리밖에 있는 면 소재지로 나가 호미 한 자루를 사와 방벽에 걸어 두고 ‘지금 나는 무엇을 하나?’라고 스스로 묻곤 했는데, 그 무렵의 나를 항상 잊을 수가 없다.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 와서 사약을 받은 뒤 처음으로 묻힌 곳이 있다. 내 산방에서 1㎞쯤 떨어진 서원터 마을이다. 옛날에는 조대감골로 불렸다고 한다. 그곳에 사시는 팔십대인 구씨 농부도 나에게는 고마운 분이다. 내 산방으로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구불구불하여 구 노인의 밭을 사서 길을 넓혀야만 손수레라도 다닐 수 있었다. 구 노인은 선뜻 자신의 밭에서 길이 될 부분만 팔겠다고 허락했다. 그러면서 길은 그냥 내어주는 법이라며 몹시 미안해했다. 그런데 그날 밤 구 노인 부인이 찾아와 길 부분만 떼어내 팔면 쓸모없는 땅이 된다며 밭을 다 사라고 하소연했다. 내가 듣기에는 노파의 부탁도 일리가 있었다. 결국 나는 원래의 평당 가격에다 구 노인의 선한 마음까지 보태 후한 값을 치르고 밭을 샀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따라 구노인의 안부가 자못 궁금하다. 연못에 햇볕이 비쳐 드는지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른 봄에 듣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곡진하고 청아하다. 한겨울 내내 참았다가 터트리는 소리이니 절절할 수밖에 없으리라. 때마침 연못가에서는 백매, 홍매, 청매가 다투어 꽃을 피우고 있지만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향기를 보낼 수 없으니 안타깝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서울의 소식에 마음이 격동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에 어느 쪽이든 눈물 흘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불가의 자비란 말을 풀어 본다. 자(慈)는 측은지심이고 비(悲)란 틀린 것을 아니라고 바로잡고 심판하는 마음이 아닐까. 이제는 어떤 주장을 폈든 자비 안에서 화합하기를 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자와 비를 상징하는 듯하다.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될 우리 민족의 빼어난 진면목이 거기에 있는 것 같다.
  • 그래, 너를 보니 봄… 섬진강 따라 남도 밝히는 꽃등불

    그래, 너를 보니 봄… 섬진강 따라 남도 밝히는 꽃등불

    바야흐로 봄꽃들이 흐드러질 때다. 매화는 벌써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했고, 산수유꽃도 노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달 하순께면 ‘꽃전선의 북상경로’ 섬진강을 따라 남도 전역에서 꽃등불이 켜질 전망이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봄꽃 축제는 취소됐다.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의 확산 우려 탓이다. 그래도 봄꽃 감상에는 문제가 없다. 사람이 만든 일정이 취소됐을 뿐 자연의 프로그램은 변함없이 진행된다.광양 섬진마을 달콤한 벚굴 한입 화신(花信)의 봉홧불은 전남 광양의 섬진마을(매화마을)이 켜 든다. 국내 최대 매화 군락지다. 섬진강을 따라 수만 그루의 매화가 꽃물결을 이룬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역시 청매실농원이다. 농원에 들면 희고 붉고 푸릇한 꽃망울들이 객을 반긴다. 비탈진 언덕엔 수업이 많은 장독들이 늘어서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세트장이었던 초가집을 지나 전망대에 오르면 구름처럼 피어난 매화꽃과 섬진강, 그리고 강 건너 하동의 평사리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가는 강변 드라이브도 제격이다. 진월에서 월길, 신구, 신아 등의 마을들을 지날 때마다 화사한 매화꽃이 반긴다. 이맘때 광양에서라면 벚굴을 맛봐야 한다. 벚꽃 필 무렵 맛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녀석이다. 몸피가 건장한 남도 사내의 손바닥을 넘어설 정도로 크다. 제철은 2월부터 4월까지다. 5월 초까지도 먹는데, 그 이후는 독성이 생기기 시작해 채취를 하지 않는다. 광양 끝자락의 망덕포구가 주산지다.하동 녹색 융단이 품은 단아한 매화 섬진강 너머 경남 하동 땅에서 맞는 매화 향도 범상치 않다. 특히 청매실농원과 섬진강을 두고 마주한 흥룡리 흥룡마을과 먹점마을 등이 소문난 매화마을이다. 지리산 골짜기와 밭두렁, 고샅길과 개울가 등이 온통 매화나무다. 하동을 찾은 외지인들에게 특히 인상적인 풍경이 야생 차밭이다. 꼭 푸른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이맘때면 야생 차밭 사이사이에 매화꽃이 핀다.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자태가 일품이다.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로 알려진 화개면 일대에 야생차 재배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신라시대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쌍계사 주변에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머지않아 차 애호가들의 ‘로망’ 우전차(곡우 전에 따는 차)가 나온다. 첫 수확한 찻잎을 덖을 때면 손 데는 줄 모르고 향기에 환장한다던 바로 그 차다. 남도 먹거리로 배를 채웠다 해도 차 한 잔 들어갈 여유는 그래서 남겨 둬야 한다.구례 돌담길 감싸안은 산수유의 여유 전남 구례는 국내 ‘산수유 감상 1번지’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산동면 일대에 산수유 마을들이 몰려 있다. 가장 이름난 곳은 상위마을이다. 만복대 자락에서 흘러내린 다랑논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이 산수유꽃과 어우러져 풍경화를 그려 낸다. 마을 안쪽의 오래된 돌담길과 어우러진 풍경도 빼어나다. 이웃한 반곡마을은 계류 사이에 핀 산수유꽃이 일품이다. 산수유 마을 전경은 상위마을 위쪽의 팔각정이나 산수유 사랑공원 전망대에서 보면 된다. 계천리 현전마을에선 한적하게 산수유꽃을 감상할 수 있다. 마을 입구 연못에 산수유꽃이 반영되는 풍경이 백미다. 계척마을은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가 있는 곳이다. 현천마을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쪽으로 5분 남짓 떨어져 있다. 3월 말~4월 초 사이에 구례를 찾을 예정이라면 화엄사 각황전 옆의 홍매화를 놓쳐선 안 된다. 조선 숙종 때 각황전 중건을 기념해 심었다는데, 색이 검붉어 ‘흑매’라고도 불린다.순천 선암사 휘감은 깊고 진한 매향 전남 순천에선 봄꽃과 어우러진 절집을 찾아야 한다. 봄의 선암사는 ‘화훼사찰’이라 불린다. 200년 된 영산홍과 300년 된 철쭉, 목련 등이 번갈아 피고 진다. 특히 절집의 내력만큼이나 오래된 매화가 많다. 각황전 담장을 따라 핀 늙은 매화들의 자태가 일품이다. 이달 말부터 새달 초순께면 흙 담장을 따라 홍매와 백매, 청매 등의 매화가 일제히 꽃등불을 켠다. 620년 이상 살았다는 ‘선암매’와 각황전 돌담길의 550살 홍매 등은 천연기념물(488호)이다. 송광사는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선암사와 마주하고 있다. 덜 알려졌을 뿐 송광사에도 늙은 매화는 있다. 이른바 ‘송광매’로, 대웅전 앞마당 오르는 계단 옆을 지키고 섰다. 수령은 200년을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는 바닥에서 다섯 가지로 뻗어 올랐다. 호사가들은 이를 보고 오지벽매(五枝碧梅)라 부르기도 한다. 봄의 송광사를 꽃대궐로 만드는 건 산수유다. 당우 곳곳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의성 마늘밭 바라보는 산수유의 미소 경북 의성의 숲실마을도 산수유 군락지로 이름난 곳이다. 숲실마을은 다래덩굴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골이 깊고 벼농사가 잘된다고 해서 화곡(禾谷),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풍년이 든다고 해서 전풍(全豊)이라고도 불렸다. 요즘엔 산수유 꽃피는 마을로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화전2리에서 3리에 이르는 십리길이 온통 산수유꽃 일색이다. 이 일대의 산수유는 수령이 얼추 300년을 오르내린다. 늙은 나무들이 전하는 풍경의 깊이와 기품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3만여 그루에 달하는 산수유 노거수들이 화석 같은 나뭇가지에서 노란색 꽃을 틔워 내는 모습은 어디서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노란 산수유꽃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것이 연초록의 마늘밭이다. 노란색이나 초록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며 화사한 풍경을 연출한다. 양반마을로 이름난 산운마을, 이웃한 사촌가로숲(천연기념물 405호) 등도 묶어 돌아보면 좋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고요한 섬…오롯한 봄 오롯한 쉼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고요한 섬…오롯한 봄 오롯한 쉼

    중국 관광객이 나라 안에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 탓에 여기저기서 걱정과 한숨이 늘어갑니다. 금전 손실만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가장 극적인 곳은 제주입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의 팔할 이상이 중국인이었으니 그 상실감과 위기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행자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다소 달라집니다. 수조원과 고요를 맞바꾼 듯한 느낌이랄까요. 제주 어디를 가도 북적대는 모습을 찾기 어렵습니다. 머지않아 중국인은 다시 돌아올 겁니다. 제주 같은 매력을 가진 곳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말 그대로 시간문제겠지요. 뒤집어 보면 이는 지금이 제주 여행의 적기란 뜻도 될 겁니다.놀라웠다. 성산일출봉에서 중국말이 사라지다니. 성산일출봉은 제주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늘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댔다. 한국말보다 중국어가 더 잘 들릴 정도였다. 다소 거슬리기까지 하는 중국말이 사라지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사실 놀라운 일은 제주에 올 때부터 있었다. 제주행 비행기가 정시에 출발해 정시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고도 못 믿을 지경이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게다가 항공기에 오르내리는 총 4번의 과정 내내 브리지(탑승교)를 이용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 탑승해야 하는 불편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성산일출봉과 이웃한 광치기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도 중국인이 사라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되찾은 건 적요다. 몇몇 관광객은 방석을 깔고 조용히 앉아 참선하며 고요를 즐겼다. 사실 이것이 제주의 본질일 터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풍경을 잃고 있었던 거다.귀동냥 삼아 제주관광공사에 물었다. 3월에 가볼만한 곳이 어디냐고. 공사 측이 추천한 곳들을 중심으로 제주를 돌아봤다. ‘놓치면 후회할 꽃삼월의 제주’가 주제다. 가슴 가득 봄을 담기에 꽃밭만한 곳이 있을까. 제주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는 역시 유채꽃이다. 함덕해변을 낀 서우봉 언덕은 해마다 봄이면 유채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비췻빛 바다와 노란 유채꽃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올해는 유채꽃 개화가 늦어 아직 만개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시리도록 파란 바다와 더불어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서우봉을 에둘러 도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바다를 발아래 두고 자박자박 걸을 수 있다. 서우봉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과 동쪽 오름들이 한눈에 담긴다. 서귀포 ‘화순서동로’에는 약 5㎞에 걸쳐 유채꽃이 가득하다. 이 일대 유채꽃 역시 이번 주말부터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라 정차하기보다는 천천히 드라이브하면서 꽃길을 감상하는 게 훨씬 인상적이다. 화순서동로 유채꽃길은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B코스)의 일부다. 화순곶자왈 지대를 가로지르며 숲과 유채꽃을 즐길 수 있다. 중산간 쪽에서는 표선면 가시리의 녹산로 일대가 손꼽히는 유채꽃 명소다. 가시리 마을 진입로부터 10㎞ 구간이 핵심이다. 한때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던 가시리 녹산로는 조선시대 최고의 목마장이던 녹산장과 갑마장을 관통하는 길이다. 봄이 절정에 이를 무렵이면 발아래는 유채꽃이, 머리 위엔 벚꽃이 피는 그림 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18~19일엔 서귀포 유채꽃 국제 걷기대회가 열린다. 운동 삼아 꽃 구경에 나서자는 게 대회의 취지다. 첫날은 중문관광단지에서 안덕까지, 둘째 날은 중문에서 강정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걷는다.온평리 포구는 조용하고 평온한 마을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최근 제2 제주공항 부지로 선정되면서 마을 주민들이 반발하는 등 풍파가 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온평리의 옛 이름은 열온이다. 연을 맺은 곳이라는 뜻이다. 탐라의 시조로 꼽히는 고, 양, 부 삼신인이 벽랑국에서 떠내려온 세 공주를 맞으러 나간 곳도 이 온평리 바다라고 전해진다. ‘황로알’은 세 공주가 배에서 내릴 때 노을에 비친 바닷가 돌이 황금색으로 빛났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황로알 주변엔 검은 돌이 장벽을 이루고 있다. 환해장성이다. 오래전 왜구 등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새마을운동으로 훼손됐다가 30년 전 복원됐다. 이 밖에 생선 기름을 이용해 불을 밝히던 도대(전통 등대), 주민들의 생명수였던 용천수, 말발자국 등 볼거리가 제법 많다. 이웃한 혼인지는 온평리의 ‘연관검색어’ 정도 되는 곳이다. 삼신인들이 혼례를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연못으로, 제주도 기념물(17호)이다. 중산간 일주도로를 따라 가면 나온다. 이맘때 제주 갯가 마을을 돌다 보면 굿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영등굿이라 부른다. 제주 사람들은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 부른다. 영등신(영등할망)이 변덕스러운 날씨와 꽃샘추위를 몰고 온다는 달이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날씨 변화가 심해 항해를 꺼리는 등 금기시하는 일도 많은 시기다. 사실 영등신은 우리나라 갯마을 전체에 분포하는 민간신앙이다. 영등할망을 잘 대접해야 한 해 농사도 잘된다는 생각은 어디나 공통적이다. 다만 뭍의 영등신앙이 다소 희석된 반면, 늘 바다에서 ‘바람신’과 함께 살아야 하는 제주에선 여전히 마을공동체의 신앙으로 전승되고 있다. 바닷가 특유의 풍습을 엿보려면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서둘러 지나치지 말고 해녀당이나 본향당 등을 꼼꼼히 살피며 돌아보길 권한다.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하도, 세화 일대 해변이다. 이제 개발의 ‘삽질’이 멈춰주길 바라는 곳 중 하나로, 얼마 남지 않은 제주 특유의 풍경이 그나마 이 일대에 남아 있다. 하도는 구좌읍에 속한 해안마을이다. 별방진성이 대표적인 볼거리다. 오래전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별방(別防)은 하도리의 옛 지명이다. 성 둘레는 1㎞ 남짓. 높이는 3.5m에 이른다. 검은 돌을 쌓아 올린 성벽도 멋들어지지만 더 인상적인 건 주변 풍경이다. 성벽을 딛고 서면 마을 안쪽의 밭담들이 검은 물결처럼 넘실댄다. 검은 돌담과 노란 유채꽃이 소박하게 어울렸다. 세화해변에선 벨롱장이 열린다. 벨롱장은 제주말로 ‘불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이란 뜻이다. 제주 문화가 집약된 벼룩시장이라 보면 틀림없겠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주민과 도시에서 옮겨온 이주민들이 저마다 독특한 토산품들을 내놓는다. 그 덕에 지역 주민과 여행자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 같은 시장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매주 토요일에 열린다. 전통 5일장도 볼만하다. 끝자리가 0과 5인 날에 열린다. 바닷가 풍경도 곱다. 사파이어 빛 바다와 고운 모래, 불퉁하고 검은 갯바위가 보기 좋게 어우러졌다. 협재, 함덕 등 물빛 곱기로 이름난 해변들과 견줘도 전혀 뒤지지 않은 풍경이다. 모래톱엔 ‘단물탕’이 두 개 남아 있다. 용천수를 활용한 마을 공동목욕탕이다. 바닷가 쪽이 남탕, 마을 쪽이 여탕이다. 단물은 민물을 뜻한다. 논짓물이라고도 불린다. 단물탕은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모래 위로 단물이 졸졸 흐른다. 지금은 사람이 없지만, 여름엔 관광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다. angler@seoul.co.kr
  • [新전원일기] 연 매출 10억… ‘덴마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新전원일기] 연 매출 10억… ‘덴마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덴마크 무궁화를 보러 가는 길에 눈이 살짝 덮인 산을 봤다. 눈가루가 엷게 나무들 위에 얹혀 있었다. 초코케이크 위에 올려진 슈거 파우더처럼. 바람도 제법 차가웠다. 그러나 분명 봄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봄은 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계절이라고. 차가운 바람 속에 잠깐 머물다가 가버린다고.지난 2일 비닐하우스 14개 동이 늘어선 충북 음성의 ‘하신농장’ 앞에서 강하늘(28)씨와 인사를 나눴다. 우선 덴마크 무궁화를 눈에 익히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둘러봤다. 덴마크 무궁화라는 꽃 이름은 생소했지만 막상 꽃을 보니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꽃이었다. 덴마크 무궁화는 ‘하와이안 히비스커스’를 개량한 품종이라고 한다. 우리의 ‘나라꽃’인 무궁화도 히비스커스로 넓게 보면 같은 품종이다. 덴마크 무궁화가 우리나라에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경쟁해서 키우다가 지금은 하신농장에서 독점 재배하고 있다. 많은 꽃들 중에 왜 덴마크 무궁화를 선택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우선 꽃이 크고 화려해서 한 송이만 피어도 화분이 꽉 차 보여요. 꽃알도 많고, 하나가 지면 또 다른 꽃이 연이어 피죠. 그래서 3월부터 11월까지 꽃을 볼 수 있어요. 잎도 광택이 있어서 고급스럽고, 실내나 베란다에서 월동이 가능해서 키우기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관상용으로 한국시장에 잘 맞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자식 자랑하듯 강씨의 덴마크 무궁화에 대한 자랑이 길게 이어진다. 2000평 규모의 시설비닐하우스 안은 입구에서 건너편 끝까지 생육 단계에 따라 분류된 화분으로 채워져 있었다. “비닐하우스가 제법 넓은데 실내의 온도와 습도, 환기 등은 어떻게 조절하나요?” “덴마크 무궁화는 습도가 높은 걸 좋아하는 식물이기 때문에 적절한 습도를 유지해 주는 게 좋아요. 온도는 20도에서 25도를 유지합니다. 통풍도 잘 되도록 주기적으로 천창을 열어서 환기시킵니다. 농장을 한정된 인원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조절 장치들은 어느 정도 자동화돼 있어요. 예를 들어 적정 온도를 미리 설정해 놓으면 그 온도보다 낮아지면 보일러가 자동으로 돌아가고, 높아지면 부저가 울리는 식이죠. 물을 주면 자연스럽게 습도가 올라가지만 그래도 적정 습도에 도달하지 못하면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기도 합니다.” 그녀의 말에는 전문가의 확신과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강씨는 열여섯 살에 중국 푸젠성 장저우로 유학을 갔다. 중국이 좋아서 한번쯤 중국에서 살아 보고 싶어서 무작정 떠난 유학이었다. 한국인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그곳에서 그녀는 2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한국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처음엔 학교 교육 과정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중국의 옛 한시들을 외우고, 화학 원소들을 중국어로 익혀야 했다. 아침 7시에 시작된 일과는 밤 10시가 되어야 끝났다.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장저우에 대한 추억을 물으니까 망고 얘기를 먼저 꺼낸다. 장저우 시내 가로수가 망고나무였는데 나무에 달린 망고는 국가 것이라서 딸 수 없지만 떨어진 망고는 누구나 가져갈 수 있었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 잘 익어서 떨어진 망고를 발견하면 운이 좋은 날이었다고. “본격적으로 화훼농장을 해 보리라 결심한 것은 언제부턴가요?”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 잠깐 직장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어디에 얽매어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제겐 좀 답답하더라구요.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이어받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열심히 하면 한 만큼 얻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꽃을 만지고 심는 게 좋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해 봤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한국국립농수산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대학을 다니면서 평생 화훼 농사를 해야겠구나 마음을 굳혔어요.” 국립농수산대는 2학년 때 10개월간 의무적으로 현장 실습을 나간다. 강씨는 네덜란드 ‘피마바우스 농장’으로 실습을 나갔다. 꽃이 피는 ‘호야’(덩굴성 상록다년초)를 기르는 농장이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그녀는 선진 농법과 첨단 관리시스템을 익혔다. 꽃박람회를 참관하는 등 장차 화훼농으로서의 시야를 넓혔다. “농사를 지으면서 제일 걱정하는 게 있다면 뭘까요? 다른 농사는 대체로 판로를 걱정하던데.” “솔직히 판로는 크게 걱정 안 해요. 잘 키우면 판로는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까 무엇보다 잘 키우는 게 중요하죠. 또 화훼는 한 품종이 끝나면 다음엔 어떤 품종을 선택할까 계속 고민해야 해요. 단순히 지금 농사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 또 그다음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 힘들어요. 자료를 찾고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야 하죠. 이것 때문에 힘들지만 이것 때문에 재밌어요.”경기 고양시 하신농장을 음성으로 확장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이미 10년 전에 강씨의 아버지 강종희(53) 하신농장 대표가 농장을 확장하려고 했다. 땅을 확보해 놓고도 일손이 모자라서 비닐하우스 뼈대만 세우고 방치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에 강씨가 결혼을 하고 남편 임상학(28)씨와 음성으로 내려와 정착하면서 농장을 확장했다. 둘은 같은 대학에서 만났다. 임씨는 축산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하신농장에서 화훼농사에 전념하고 있다. 하신농장은 일종의 가족 농장 형태를 띠고 있다. 중요한 일은 모두 모여 회의를 통해 결정하지만 각자 맡은 일은 나뉘어져 있다. 강씨는 정보를 수집하고 홍보를 책임지고 있다. 남편 임씨는 재배를 담당하고 있고, 남동생 신구(25)씨는 판로를 책임지는 판매실장이다. 어머니 이정희(50)씨는 구매 담당이다. 물론 이들의 중심에는 강종희 대표가 있다. 그는 평생 화훼 농사를 했다. 아이디어가 풍부해서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먼저 시도했고, 덕분에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홍수가 나서 한강 둑이 무너졌을 때 고양 하신농장의 피해도 컸다. 난 화분이 물에 다 잠긴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강 대표는 유럽을 둘러보고 화훼시장의 눈을 넓혔다. 돌아와서 ‘안시리움’(아메리카 원산지의 관엽식물)으로 다시 시작했다. 화훼농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강 대표에게 들어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입니다. 요즘같이 정보가 오픈되어 있는 때에 기술이나 재배 방법은 비슷비슷합니다. 남들과는 다른 아이디어가 있어야 생산자로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중간 상인에게, 소비자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게 됩니다.” 강씨가 화훼 농사를 하겠다고 선뜻 결심한 데에는 이런 든든한 아버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성 하신농장에서 출하를 기다리고 있는 덴마크 무궁화는 키가 1m 30㎝쯤 된다. 중간에 지주(支柱)를 세워서 기존의 덴마크 무궁화보다 키를 키웠다. 도매상에게 샘플을 보냈을 때, 키를 좀더 키웠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이런저런 궁리와 시도 끝에 지주를 이용한 지금의 재배 방법을 사용하게 됐다. 이 방법은 가지가 나오기 전에 잎을 계속 따주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또 모든 덴마크 무궁화를 이렇게 재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품종이 따로 있다고 한다. 재배 과정이 번거로운 대신 수형이 독특해서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다. 키가 크기 때문에 개업 축하나 행사장에 사용되는 관엽식물을 대신하기에 충분하다. 지주를 세워서 키를 높게 한 덴마크 무궁화를 선보이는 것은 전 세계에서도 하신농장이 처음이다. 덴마크 본사에서 거래처 현지 방문차 와서 보고 덴마크 무궁화의 변신에 흡족해했다고 한다. 몇 년 동안 경쟁을 통해 독점계약까지 체결하게 된 배경에는 하신농장 식구들의 이런 노력이 숨어 있다. 화훼 농사도 1년 내내 병충해를 주의해야 한다. 생육 과정마다, 계절마다 병충해가 있다. 병충해를 입지 않으려면 주기적으로 약을 치고 현미경으로 확인해야 한다. 눈으로 확인되기 전에 미리미리 대처해야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화훼는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어요. 비닐하우스가 자동화돼 있지만 규칙적으로 온도계와 습도계를 확인하고 체크해야 해요. 기계도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외국에서 들여오는 상토도 밖에서 뜯고 사용하기 전에 미리 다 소독을 합니다. 거기에 어떤 벌레 알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죠. 만약 병충해에 노출되면 한 배드를 다 버려서라도 피해를 막아야 해요. 화훼 농사는 한 번의 작은 실수로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어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에만 매달린다는 강씨의 말이 와닿았다. 화훼 농사는 비전이 있는 편이다.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꽃 소비도 증가한다. 집 안에 꽃을 두는 것을 가구를 놓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긴다. 예전보다 꽃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다. 중국 시장도 크고 러시아나 일본 시장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신농장은 올해 매출 목표를 고양농장 5억원, 음성농장 5억원 등 총 10억원으로 잡고 있다. 강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들어가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정환이네 집’ 사진이 캡처돼 있다. 사진 속 계단 양옆으로 붉은색 동그라미 두 개가 보인다. 그 동그라미 안을 자세히 보면 덴마크 무궁화 화분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거기에 어떤 꽃이 있는지 신경을 쓰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강씨의 눈에는 덴마크 무궁화 화분이 보였던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놓치지 않았고 자랑삼아 그 장면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덴마크 무궁화에 대한 애정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긍지가 얼마나 큰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가을 음성 하신농장에 심겨진 덴마크 무궁화가 올해 첫 출하를 앞두고 있다. 소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강씨는 요즘 기대와 긴장 속에서 지낸다. 하신농장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화분들은 사무실에, 행사장에 혹은 어느 집 베란다에 놓일 것이다. 손바닥만 한 붉은 꽃이 주위를 환하게 만들 것이다. 무궁화라는 이름처럼 꽃 하나가 지면 다른 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꽃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소설가 강진 2007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건조주의보’로 등단. 소설집 ‘너는, 나의 꽃’, ‘피크’(공저), ‘캣캣캣’(공저) 등.
  • 김제 토마토 농장 청년 사장님 도시 근로자 1.6배 소득 비결은

    김제 토마토 농장 청년 사장님 도시 근로자 1.6배 소득 비결은

    의무 기간 年소득 9000만원 자금 지원·해외 연수 등 도움전북 김제에서 토마토를 키우는 허정수(28) 하랑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청년 스타’ 농부다. 2010년 국립한국농수산대 채소학과를 졸업한 뒤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2만㎡ 땅에 유리온실을 지었다. 장미를 키워 일본에 수출하던 그의 아버지가 엔화 가치 하락으로 농사를 접을 무렵이었다. 허 대표는 대학 2학년 때 10개월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현장실습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생산성 좋은 유리온실과 스마트팜 기술을 적용해 사업을 키웠다. 연 1200t의 토마토를 출하하는 허 대표는 햄버거 체인점 맥도날드에 슬라이스 토마토를 납품하는 등 안정적인 직거래 선을 확보한 덕에 지난해 1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순수입만 7억원이다. ‘농업사관학교’로 불리는 농수산대 졸업생의 2015년 평균 소득이 9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9일 조사됐다. 전년(8594만원)보다 4.7% 증가했다. 일반 농가(3722만원)의 2.4배이자 도시근로자 소득(5779만원)의 1.6배 수준인 고소득이다. 1997년 개교해 올해 20주년을 맞은 농수산대는 지난해까지 404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가운데 85%(3251명)가 농수산업에 종사한다. 이 대학을 나오면 최소 6년 동안 의무적으로 영농활동을 해야 한다. 김남수 농수산대 총장은 “현재 의무 영농 중인 졸업생 1896명의 연평균 소득 조사 결과가 9000만원인데 의무 기간이 지난 졸업생 소득은 더 높을 것”이라면서 “농수산업이 청년 취업난 해결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학과별로 보면 양돈·양계와 관련된 중소가축학과 졸업생의 소득이 1억 9904만원으로 가장 많고 축산학과(1억 9491만원),수산양식학과(1억 4428만원),한우·젖소 관련 대가축학과(1억 2285만원), 식량작물학과(7372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역적’ 김정태, 머리 산발한 채 한양으로 압송 ‘윤균상 통쾌한 한방’

    ‘역적’ 김정태, 머리 산발한 채 한양으로 압송 ‘윤균상 통쾌한 한방’

    7일 방송된 MBC 월화특별기획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극본 황진영, 연출 김진만 진창규, 제작 후너스엔터테인먼트) 12회에서는 ‘홍길동 사단’이 드디어 충원군(김정태 분)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렸다. 충원군이 한양으로 압송된 것. 그 과정에서 길동(윤균상 분)의 지략이 빛났다. 특히 기방을 열어야 한다는 전략은 적중했다. 걸출한 양반들의 사랑방으로 거듭난 활빈정으로 궁궐 안의 모든 소문이 모였고, 역린을 찾겠다고 다짐한 길동은 활빈정에 앉아서도 궁 안을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했다. 연산이 증조할아버지 세조에 관한 추문을 빌미로 역모의 씨앗을 찾으려 한다는 정황을 파악한 길동은 반역죄에 충원군을 엮기로 했다. 세조를 왕위에 올린 일등공신 양응대군의 손자에게 세조를 욕보였다는 죄를 씌우겠다니, 모두가 고개를 저었지만 길동은 해냈다. 궁지에 몰린 쥐의 불안감을 이용한 것. 역모죄로 몰릴까 전전긍긍하는 김일손에게 손을 내민 길동의 지략 덕분에 충원군은 오밤중에 한양으로 압송됐다. 이제 완전한 지도자로 거듭난 길동이었다. 반짝거리는 지략은 물론이고 충원군이 벌을 받는 방법은 충원군의 나쁜 짓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임을 정확하게 간파한 판단력과 불안해하는 사단을 아우르고 설득하면서도 제 뜻을 관철시키는 모습이 그랬다. 특히 자신에게 불리한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 승기를 선점하는 모습이 아모개(김상중 분)와 판박이였다. 윤균상은 방물장수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길동을 분명하게 표현해냈다. 아버지에게 이제 위험한 일은 그만 하고 오순도순 농사나 지으며 살자고 애처럼 울던 다 큰 사내는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느새 눈빛이 단단해졌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성장해가는 길동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윤균상의 기민함이 빛났다. 김정태는 역모로 몰린 순간조차 기고만장함이 꺾이지 않는 왕족을 지독하게 연기했다. 잔뜩 헝클어져 길게 늘어진 머리칼도 반역으로 몰린 황당함과 연산에게 외면받았다는 불안감, 감히 왕족인 나를 건드렸다는 분노를 감추지는 못했다. 이미 연산의 눈 밖에 난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전하를 뵙게 해다오, 전하를 뵙게 해줘!”라고 절규할 때, 자신이 누구 때문에 의금부로 끌려왔는지도 모르고 증인으로 “조방꾼 발판이”를 간절하게 꼽을 때 충원군은 우매하고 어리석은 기득권을 대변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충원군의 지목으로 의금부로 들어간 길동은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13일 월요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MBC ‘역적’에서 공개된다. 사진=MBC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新전원일기] 묵히면 돈 되는 늙은 호박… 넝쿨째 굴러온 방문객

    [新전원일기] 묵히면 돈 되는 늙은 호박… 넝쿨째 굴러온 방문객

    ‘나, 호박 너무 좋아/ 호박은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고향으로서/ 무한대의 정신성을 지니고/ 세계 속 인류들의/ 평화와 인간찬미에 기여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호박은 나에게는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물방울 무늬가 가득한 호박 작품으로 유명한 일본의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가 쓴 ‘호박에 대하여’라는 글의 일부이다. 오랫동안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질환에 시달렸던 그는 호박죽을 먹으면서 몸을 회복했고, 이러한 경험은 호박에 대한 찬미와 호박을 주제로 삼은 여러 뛰어난 작품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고 했던 현해탄 너머의 설치미술가 못지않게 호박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농부가 있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에 위치한 ‘참샘골 호박농원’의 최근명(64) 대표다. 서산시가 공인한 ‘호박 명인’이기도 한 그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늙은 호박의 변신은 가히 예술적이라 말할 만했다.# 4전 5기 끝에 만난 복덩이 호박 한 덩이 충남 공주 출신의 최 대표가 서산에 처음 터를 잡게 된 계기는 1980년 ‘참샘골 목장’을 설립하면서다. 그는 군 복무 시절, 부대 근처에 있던 젖소 농장에서 소젖을 짜는 농부의 모습을 보고 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제가 1970년대에 군 복무를 했는데 그 시절만 해도 우유를 먹는다는 게 굉장히 생소했어요. 그런데 앞으로 우유 먹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당시 서산에는 ‘상아목장’이라는 큰 목장이 있었다. 제대 직후 그곳에 취업한 그는 3년 동안 낙농 기술을 배운 후 독립했다. 동네의 유명한 샘 이름을 따다 지은 ‘참샘골 목장’이라는 이름은 현재 ‘참샘골 호박농원’의 전신이 되는 셈이다. 낙농업이 유망한 산업이 되리라 생각했던 청년 최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1980년대 산업이 발달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유 소비가 늘어났다. 송아지 5마리로 시작한 그의 목장은 젖소 50마리까지 늘어났다. 10년간 승승장구하던 그의 목장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90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실시되면서였다. 저렴한 수입 우유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많은 축산농가가 타격을 입었다. 사료값도 못 건질 정도로 우유값이 떨어지자 목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수입 개방과 상관없는 산업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두 번째로 시도한 것은 토종닭 사육이었다. ‘참샘골 토종닭’을 설립해 토종닭을 방사해 키웠다. “여름에는 토종닭 장사가 괜찮았어요. 그런데 겨울이 되니 닭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더라고요. 저 혼자 하는 영세업체라 유통 시스템을 갖추기도 어려웠고요. 결국 1억원 정도 손해를 보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세 번째로 도전한 우렁 양식업에서도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대형 수조 설비를 갖추고 우렁을 잘 키우는 데에만 주력한 나머지 판로 개척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통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없었던 거죠.” 최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네 번째 도전이었던 느타리버섯 재배도 겨우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농업환경 변화가 큰 이유였다. “1995년부터 느타리버섯에 갈반병이라는 병이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더이상 버섯이 자랄 수 없을 정도로 주변 환경이 오염돼 생긴 병이래요. 첨단 무균 재배 설비를 갖춰야 앞으로 계속 버섯사업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저 막막했죠. 이미 앞서 세 번이나 실패했던 탓에 가진 돈이 없었거든요.”수차례 실패 끝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는 갈반병이 든 것을 추려내고 얼마 남지 않은 버섯을 팔아치운 다음 농사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느타리버섯을 팔러 간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만난 늙은 호박 한 덩이가 그의 인생을 역전시켜 줄 복덩이가 됐다. “가락동 시장에서 호박 장수를 만났는데, 늙은 호박 한 덩이에 1만~2만원씩 파는 거예요. 왜 이렇게 비싸게 받느냐고 물었더니 가을철에 한 개 2000원이면 살 수 있는 호박이 봄과 여름철이면 값이 열 배, 스무 배까지 치솟는다고 하더군요. 저장이 어려워서 그렇대요. 호박 장수가 ‘누가 호박 저장 기술만 개발하면 그 사람은 떼돈 벌 텐데’라고 지나가는 말로 던진 한마디가 제게는 구원의 종소리처럼 들렸어요. 그래 이거다. 내가 그 기술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미래의 농업을 준비하는 선견지명 자신만만하게 도전했지만 첫해 ‘참샘골 호박농원’에서 재배한 호박은 다 썩어버려 폐기처분을 해야 했다. 수차례의 시행착오, 수년간의 연구 끝에 1998년 호박 장기 저장 기술을 개발했을 때 최 대표는 천하를 모두 얻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온도 10도 내외, 습도 60%의 건습 상태, 에틸렌 가스농도 0.02ppm 이하, 그가 찾아낸 최상의 호박 저장 환경이다. 전국 최초로 호박 저장법을 개발하고, 자동화 시스템을 갖췄다는 참샘골 농원의 호박 저장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향긋한 호박 냄새가 165㎡ 규모의 저장실 전체에 감돌았다. 수천 통의 굵직한 호박들이 층을 지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이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자동 조절 시스템을 통해 잘 관리된 호박들은 겨울을 지나 초봄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단단하고 싱싱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노란색 늙은 호박은 모양이 맷돌처럼 둥글납작해 ‘맷돌호박’이라고도 불리는데, 비타민과 식이섬유,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60대에 접어든 최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의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1990년대 농업인들 사이에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무지하던 시절에 그는 이미 ‘참샘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상표 등록까지 마쳤다. 이후 업종을 바꾸면서도 참샘골이라는 브랜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2000년 농촌진흥청에서 무료로 홈페이지를 개설해 준다는 공고가 떴을 때에도 가장 먼저 신청해 ‘농업인 1호 홈페이지’를 구축했다.“그때만 해도 인터넷으로 농산물을 판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인터넷 시대가 되고, 호박도 쇼핑몰을 통해 팔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든 후에도 1년이 훨씬 넘도록 단 한 건의 주문도 없었다. 그럼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주문 내역을 확인했다. 첫 주문이 들어온 것은 홈페이지 개설 후 1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조금씩 소문이 나고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주문량이 늘기 시작했다. 각 가정에 인터넷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쇼핑몰 매출도 폭증했다. “쇼핑몰에서 호박을 판매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고객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게시판을 통해 고객들이 남긴 의견을 꼼꼼하게 읽고 소통했죠. 그 과정에서 다음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호박즙과 호박죽 등 호박 가공식품 생산까지 사업을 확장하게 된 계기는 고객의 요청 때문이었다. 2002년 한 여고생이 ‘호박 달인 물이 여성 미용, 다이어트, 부기 제거에 효과적이라며 호박즙을 만들어 달라’는 글을 홈페이지에 남겼다. ‘호박 미인’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호박즙이 대박을 내면서 2차 산업으로의 진출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후 2005년 한서대 식품공학과와 산학협약을 체결해 국내 최초로 ‘레토르트 고구마호박죽’을 개발했고, 2012년에는 임신부의 배 뭉침과 조산을 막아주는 데 효과가 있다는 ‘호박손달인물 액상차’를 개발해 출시했다. 모두 고객들의 요청에 따른 제품 개발이었다. # 농원매출 6억 중 가공품 판매 85% 차지 지난해 참샘골 호박농원의 매출은 6억여원, 그중 85%가 호박 가공품 판매에서 거둔 수익이다. 이제 호박 농사보다 가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호박 저장 시설을 잘 구축해 놓은 덕에 연중 내내 호박 가공품을 일정하게 생산할 수 있다. “참샘골 가공식품이 인기를 얻은 가장 큰 이유는 원재료인 호박이 맛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황토땅에서 서해안의 해풍을 맞고 자란 참샘골 호박은 농약과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계약 재배 중인 농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죠.” 모든 제품을 인터넷 직거래로 판매하는 참샘골 호박농원의 홈페이지 회원 수는 2만여명에 이른다. 연간 80~100t 규모의 호박이 가공식품의 원재료로 쓰인다. 최 대표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어서 지역농민 여러 가구와 10만㎡ 규모로 재배 계약을 맺어 수매한 호박을 재료로 쓰고 있다. 참샘골 호박이 유명해지면서 인근 지역에서 호박을 재배하는 농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최 대표에게 경쟁자가 많아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오히려 “더 늘어서 맷돌호박이 서산을 대표하는 지역 명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맷돌호박하면 서산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유명해지길 바랍니다. 그러면 호박을 보고, 체험하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더 늘어나겠지요. 이 마을을 대한민국 최고의 호박 테마파크로 키우는 것이 제 꿈입니다.” # 호박체험관 운영… 마을주민과 수익 나눌 것 그동안 최 대표는 바쁜 와중에도 10년 전부터 일본을 오가며 3차 산업 진출을 준비해 왔다. 일본 규슈 지방의 후쿠오카현을 방문했을 때 소바(메밀국수) 만들기 체험을 하는 것을 보고 호박 따기 체험뿐 아니라 호박칼국수, 호박피자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3차 산업은 문화와 체험을 파는 일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앞으로 6차 산업의 시대가 올 거라는 최 대표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갔다. 마을 주민들과 합심해 노력한 결과, 2008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돼 정부로부터 2억원을 지원받았고 호박체험관을 지을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최 대표는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최한 ‘제1회 6차 산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이곳을 다녀간 방문객은 5000명 정도다. “체험관을 지으면서 3차 산업을 통해 거두는 수익은 마을 사람들과 모두 나누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3차 산업 수익이 점점 더 커지겠지만, 그건 제 몫이 아니에요.” 향긋한 호박향이 가득한 농원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라는 속담이 참으로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호박이 수박보다 못할 이유도, 호박이 수박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호박은 호박 나름의 개성, 달콤한 맛과 향이 있다.■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이웃과 함께 하는 자급자족의 삶…‘노전해솔 공동체마을’ 눈길

    이웃과 함께 하는 자급자족의 삶…‘노전해솔 공동체마을’ 눈길

    각자의 사생활을 누리면서도 공용 공간에서는 공동체로 살아가는 주거 형태를 ‘코하우징’이라고 한다. 풍요로움과 편리함이 절대 선이 된 물질 사회에서 타인과 삶의 터전을 공유하며 공존하는 코하우징이 신 주거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진안, 상주, 영동, 아산, 산청 등지에서도 코하우징 방식의 농촌 공동체 마을을 조성한 바 있는 사회적 기업 민들레코하우징이 이번에는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노전마을에 ‘노전해솔 공동체마을’의 터를 닦고 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이곳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산인 지리산과 물 맑기로 유명한 섬진강을 품고 있는 지역. 이곳에서 공동체를 이룬 입주민들은 이웃과 함께 터를 가꾸고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며 지역사회와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 하동군의 지원 하에 추진중인 악양면 공동체마을은 총 7천710㎡ 부지에 주택 9세대와 주민공동시설(27평)이 들어선다. 적게 먹고 적게 쓰는 자발적 불편을 감수하고 태양광 설치, 빗물 이용, 생활용수 재사용, 생태적 화장실, 생태적인 건축과 조경으로 자연친화적인 삶을 꾸려간다는 계획이다. 또한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을 모토로 하는 ‘부산한살림’과 하동군의 협력 하에 지역 농산물을 상품화시켜 유통하는 한편 도시민을 초대하여 직접 농사, 채취, 가공에 참여하는 팜스테이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관계자는 “지리산 공동체마을 ‘노전해솔마을’은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을 잇는 가교로서 안정적인 귀농귀촌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라며 “산림바이오매스 에너지(목재 펠릿보일러), 태양광 발전, 고단열 벽체 등 탄소제로의 생태 공동체 마을로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동 악양 노전해솔마을은 현재 한살림 공동체 회원 4가구가 입주를 결정지었으며,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을 함께 가꿀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다. 오는 3월 11일에는 대상지 인근 매암차박물관에서 현장설명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희정 컬처 살롱] 봄날, 강변을 거닐며

    [공희정 컬처 살롱] 봄날, 강변을 거닐며

    겨울은 매년 떠날 때마다 가지 않겠다고 앙탈을 부린다. 꽃을 샘내는 겨울, 그러나 입춘, 우수는 이미 지났고, 며칠 뒤면 경칩이다. 나무엔 물이 오르고, 아지랑이는 피어나고, 개구리도 곧 깨어날 것이다. 바야흐로 봄.지난 주말 봄을 맞으러 친구들과 강변으로 나갔다. 다운 점퍼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햇살은 따스했다. 합정역 근처에서 만난 우리는 봄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며 양화대교로 향했다. 질주하는 차들을 기다렸다 길을 건너니 뜬금없는 동상 하나가 서 있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의 지은이 정몽주 동상이었다. 1970년 10월에 건립된 이 동상은 한때 서울의 명물이기도 했고, 동네 꼬마들에겐 신나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비슷한 때 강 건너 양화대교 남단에 세워졌던 을지문덕 장군 동상은 이미 오래전 다른 곳으로 떠나갔지만, 오십년 가까운 시간 동안 처음 그 자리를 지켜 온 정몽주 동상은 역시 일편단심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양화대교로 들어서 한강 둔치로 내려갔다. 강의 흐름을 따라 구불구불 휘어진 길은 봄볕에 녹고 있었다. 계단 몇 개 내려온 것뿐인데 자연의 기운은 확연히 달랐다. 그 길을 걷다 올려다본 하늘 끝에 한옥 정자 지붕이 살짝 걸쳐 있었다. 망원정(望遠亭)이었다. 망원정은 태종 이방원의 작은 아들인 효령대군의 정자다. 본래 이름은 희우정(喜雨亭). 세종의 형인 그는 아우에게 왕권을 양보하고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풍류를 즐겼다. 가뭄이 심했던 어느 해 세종이 형을 찾아왔을 때 비가 내렸고 오랜 가뭄이 해소됐다고 한다. 이에 세종이 희우정이란 이름을 내렸고, 이후 이 정자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이어받았다. 왕이 되지 못한 왕의 형 효령대군과 월산대군. 그들은 이 정자에 올라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권력 무상, 삶의 회의를 느꼈을까. 아니면 욕망의 짐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서 충만한 행복을 느꼈을까. 망원정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면 선유도가 보인다. 지금은 섬이 된, 섬이 아니었던 섬. 선유봉이라 불리던 그곳은 신선이 노닐 만큼 빼어난 경치를 갖고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엔 여의도 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해방 후 미군정기엔 인천으로 가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채석장이 돼야 했다. 1962년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가 착공되면서 선유봉은 육지와 떨어진 섬이 됐다. 그곳에 태종 이방원의 큰아들인 양녕대군의 정자 영복정(榮福亭)이 있었다. 형제의 심장에 칼을 꽂아야 했던 왕자의 난을 알고 있던 그는 어쩌면 스스로 폐세자의 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조선 최초의 적장자 세자였음에도 비운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던 양녕대군은 세상 울타리를 벗어나 명산대첩을 떠돌며 생을 마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왕의 자리를 뺏긴 한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조카인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할 때 기꺼이 세조의 배후가 됐고, 그 대가로 이곳에 정자를 짓고 말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친족들의 죽음으로 얻은 부귀영화는 달콤했을까. 이방원의 아들인 양녕과 효령대군, 그리고 정몽주. 그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던 봄 산책은 상쾌했지만 미적거리고 물러나지 않는 겨울은 불쾌했다. 마치 요즘 세상을 닮은 것 같아서.
  • [新전원일기] 개구리가 펄쩍, 동심이 팔딱… 곤충과 오감을 나누다

    [新전원일기] 개구리가 펄쩍, 동심이 팔딱… 곤충과 오감을 나누다

    ‘충사’(蟲師)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형의 존재인 벌레와 인간의 세계를 몽환적이고 신비하게 그려 나간다. 각 화마다 다른 에피소드를 보여 주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다루고 있는 주제나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것이 보여 주는 철학적 깊이도 눈여겨볼 만하다. 자연과 생명이라는 대전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본능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공존하는 삶에 대해서도 고민할 계기를 만들어 주니 말이다.‘충사’에서 다루고 있는 벌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곤충과 다르다. 다양한 성질과 힘을 지닌 가장 원초적인 생명체로서 인간 세계에 기이한 현상을 일으킨다. 이런 낯선 생명체와 인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주인공 ‘긴코’라는 인물이다. 긴코는 벌레와 인간을 이해하고 두 존재 사이의 갈등을 해결한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묘사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숲과 바다, 갖가지 꽃과 곤충과 동물들을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빛이 감싸 안는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시초였던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다. 최근 ‘김포곤충농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내내 ‘충사’의 이미지에 사로잡혔다. 벌레라는 단어의 쓰임새는 다르지만 곤충농장의 장동귀(55) 대표 역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는, 깅코와 같은 인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잊고 살아가는 것들이 품은 세계 김포곤충농장은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김포 IC를 거쳐 아파트촌을 빠져나오면 거짓말처럼 시골 향기가 물씬 풍기는 농장이 펼쳐지고, 입구에 자리한 익살스러운 매표소에서는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매표소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잇대고 페인트칠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일 모두 가족이 힘을 합했기 때문일 테다. 딸 셋의 아버지이기도 한 장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연친화적인 삶이다. 우리는 모두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니만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 대표가 서울에서의 삶을 접고 김포에 곤충농장을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그래도 마음 한쪽을 채우고 있는 것은 어릴 적 뛰어 놀던 고향 산천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요. 너무도 소중한 그 추억들을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아이들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고 싶었어요. 삭막한 도시 문명 속에서 그나마 동심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죠.” 장 대표는 땅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오랜 시간 고민했다. 농사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용 작물을 키울 깜냥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TV를 보던 딸의 말에 이끌려 곤충을 키우기로 결심했다. “우와, 저거 귀엽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이 장수풍뎅이였던 것이다. 곤충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곤충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던 장 대표로서는 무모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무언가 키우는 것에 재미를 느껴 왔던 터라 시도를 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았다. 결심이 선 후 곧장 곤충연구센터나 농업기술원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곤충에 대해 공부했고 도서관에 가서 곤충 관련 책자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당시 우리나라에는 애완 곤충과 관련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고 일반인이 곤충을 사육하고 분양하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나라의 경우 애완 곤충에 대한 관심과 보급률이 컸지만 역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자료가 없어 참고로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장 대표는 우선 하우스 한 동에 사육장을 마련하고 2004년 8월에 김포곤충농장을 정식 오픈했다. 어떤 일이든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는 더 단단해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입구에 플래카드를 걸어 놓은 게 전부였지만 곤충을 키우는 데는 전력을 다했다. 처음에는 부화가 되지 않거나 유충으로, 혹은 성충이 돼서도 금세 죽어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점차 실패가 줄었고 장 대표의 기쁨도 커졌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부조리한 사회에 항거한 함석헌 선생 역시 “자유는 감옥에서 알을 까고 나온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를 둘러싼 보편적인 속성과 부조리함을 깨야 새롭고 자유로운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의미일 텐데, 이는 애초에 그 알이 새로움과 자유를 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알이 번데기가 되고 그 번데기가 성충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역시 우리가 잊고 있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경이로움과 같지 않았을까.# 함께 나누고 자연을 이해하다 시행착오 끝에 2005년과 2006년에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사육이 크게 늘었고 연매출도 1억원으로 급신장했다. 때마침 애완 곤충에 대한 관심도 점차 증가해 매스컴에서 다루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는 장 대표에게 양날의 검이 됐다. “TV나 지면에서 다루는 일이 많아지니까 매출이 눈에 띄게 늘더라구요.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자연산 곤충이 대량 보급되기 시작했어요. 퇴비에 곤충들이 알을 까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채집해서 도심 대형마트나 대형 행사장에 납품을 하는 거죠. 매출이 반으로 줄더라구요. 그래서 2006년부터 체험학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장 대표는 곤충 체험은 물론이고 동물 체험, 농촌 체험도 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농장 한켠에 동물원을 꾸며 양과 염소, 토끼와 닭, 거위와 오리 등 여러 가지 동물과 함께 뛰놀 수 있도록 했고 주변 농가와 연계해 감자와 고구마, 배추 등을 직접 심고 캐거나 겨울에는 김장 김치를 담그는 시간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이용해 곤충 표본이나 액자를 꾸미는 식의 만들기 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이에 소비되는 나무는 모두 장 대표가 직접 벌목하고 다듬어 놓은 것들로, 그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물고 빨아도 인체에 전혀 무해하단다. 올봄부터는 숲체험도 가능해졌다. 농장 주변에 예쁘게 살아 있는 숲 속에서 한 마리 사슴처럼 뛰놀거나 숲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야생의 생물들과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모든 체험은 오감을 통해 이루어진다. 직접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는 등의 감각적인, 살아 있는 체험만이 유의미하다는 생각에서다. 충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감각을 나누기란 힘든 일이지. 상대가 만져 보지 못한 감촉을 상대에게 그대로 전할 수 없는 것처럼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 세계를 이해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야.” 이 대사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감각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하는 장 대표의 철학이 그대로 묻어나는 부분이다. “저는 농장이 가급적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도 자연 상태로 지냈으면 하구요. 농장 주변에 약을 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에요. 풀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와도 절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요. 자연의 생명력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것들이 많을수록 좋고 아이들에게도 해가 되지 않아야 하니까요.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손으로 풀을 베요. 사흘이 꼬박 걸리지만 그게 좋아요.” 장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이 야생마처럼 뛰어노는 모습이다. 등나무 넝쿨과 풀숲에서 이름 모를 애벌레를 발견하며 탄성을 지르거나 벌집을 발견하고 메뚜기처럼 튀어 오르거나 손등에 곤충을 올려놓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뿌듯하다. 가끔씩 걸려오는 전화도 장 대표를 행복하게 만든다. 곤충의 생육조건을 묻는 전화도 기껍지만 가장 흐뭇한 것은 아무래도 데려간 애벌레가 성충으로 변태한 것을 알려오는 전화다.# 곤충이 자라는 만큼 아이들 웃음도 커간다 “징그럽다면서도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애벌레를 데려가는 부모님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이 소식을 전해 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쌀벌레만 하던 것이 손가락 마디만큼 자라고 그게 또 손가락만 해지고, 그러다 어느 날 그놈이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로 변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대요. 짝짓기하고 알을 낳는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요. 녀석들 때문인지 아이들 짜증도 줄고 주변 것들 모두에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 같다며 고맙다고 하는 분들도 계세요.” 장 대표는 2011년 곤충농가시설지원사업에 선정돼 시설을 보강했다. 현재는 곤충사육장과 제1학습장(작업실, 만들기실), 곤충·파충류 전시관, 휴식공간, 밤나무숲터 등 하우스 5개동 외에도 연못과 동물원 등 야외시설과 주차장을 포함해 5000여평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동종 업계에서 자기 살 깎아 먹기 식의 가격 경쟁을 하는 통에 운영이 수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필요한 만큼만 사육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대량 사육하고 판매로를 찾지 못해 곤충을 떼죽음하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기 때문이다. 방문객에 한해 판매를 한 뒤 지속적인 관리를 해 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장 대표에게 곤충과 자연은 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 낮이 제법 길어졌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도 커졌다. 봄이 시작되는 3월에는 장 대표의 가족이 함께 만든 매표소도 문을 열 것이다. 봄꽃이 지천인 곳에서 아이들이 새떼처럼 지저귀고, 자연을 어루만지며 사방을 웃음소리로 물들일 것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생명의 깊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의 소중함을 깨우쳐 나갈 아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런 자리를 마련해 준 김포곤충농장에도.글쓴이 소설가 진연주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방’(房)으로 등단. 2015년 ㈜문학동네에서 장편소설 ‘코케인’ 출간.
  • [기고] “전남으로 얼렁 오씨요” / 박남일 전남도청 일자리협력팀장

    [기고] “전남으로 얼렁 오씨요” / 박남일 전남도청 일자리협력팀장

    ‘청년이 돌아오는 전남’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어렵다! 힘들다! 하지 말고, 전남에서 둥지를 틀어 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노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업(家業)을 잇기를 권한다. 다만 권하는 데도 절실함이 묻어 있다. 도시에서 다른 일을 하고 싶고, 또 세상일을 경험하고 싶은 아들에게 아버지의 권유는 하찮게만 생각된다. 아버지도 그걸 알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다만 ‘살다가 어렵거든 하시라도 돌아와라 기다리고 있으마’하고 말을 맺는다.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그 가업은 명품 직업이 되었다.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아버지는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가업을 이을만한 젊은이를 찾고 있다. 찾아오는 이가 싹수만 있다면 흔쾌히 받아들일 심산이다. 아들은 도시에서 이 소식을 듣고 몹시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가업이 타인에게 돌아간다는 게 탐탁치도 않고 그 간의 삶도 어렵고 힘들었던 것이다. 이젠 어떻게 할 것인가 결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시에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그 수가 하도 많아 과잉 경쟁이 예사로 일어나고, 삶을 즐기는 여유를 포기해야 근근히 버틸 수 있다. 반면 농촌에는 청년들이 너무 적어 귀하신 대접을 받고 있다. 지원을 하고 싶으나 연령에 맞는 대상자를 찾기 어렵다. 또 그나마 있는 농촌지역 기업의 일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를 쓰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 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과거의 원인을 탓하는 것은 무용하다 생각된다. 다만 도시의 젊은이들이 현상을 직시해서 블루오션이 되어 떠오르는 농촌에서 기회를 잡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분야에서 과당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도시를 탈출하여 농촌으로 향해 어떤 분야나 깃발만 꼽으면 풍성한 과실을 딸 수 있다. 농업의 예를 들어보면, 지금 농촌엔 농지가 넘쳐나지만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몇 년째 묵히고 있는 땅들이 많다. 농지는 몇 해만 농사를 짓지 않으면 황무지로 변해 버리기 때문에 땅 주인은 임대료 없이 농지를 이용해 줄 사람을 찾고 있다. 밭이나 논을 경작하면 작물 소득 외에 정책적으로 지급되는 직불제 등의 소득이 발생한다. 생각해 보라! 남의 땅에서 임대료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정책 지원금 혜택도 받으며 농사짓는데 필요한 농기계는 빌려서 쓸 수 있다면 솔깃하지 않은가? 여기에 신선한 아이디어만 접목된다면 대박을 낼 수도 있다. 참고로 15년 기준으로 전남엔 억대 부농이 4327농가에 이르고 있음을 밝혀 둔다. 일자리의 예를 들어보자, 전남에는 최근 5년 이내에 신규로 조성된 지방산단이 11개소에 이르고 공장용지가 저렴해 많은 기업들이 들어와 있고, 또 조만간 들어올 예정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할 청년인력이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물론 임금수준은 수도권에 비해 낮지만 생활비나 물가를 따져보면 크게 적지는 않다. 도시의 살인적인 주택가격을 근로자 임금으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하지만 농촌에는 빈집과 공터가 남아돌기에 약간의 개량이나 간단한 시공만으로 그림 같은 집을 소유할 수 있다. 전남은 청년의 연령기준을 39세로 하여 취업지원금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연령기준은 기업들의 인력난을 해소해 주기 위해 통계청 기준보다 휠씬 높게 잡은 것이다. 아무튼 청년이 전남에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음을 밝혀 둔다. 전남의 슬로건은 ‘청년이 돌아오는 전남’이다. 의미는 활기와 매력과 온정의 사회를 구현하여 도시 청년들을 불러들이겠다는 포부이다. 전남은 넓고 깨끗한 들과 산, 바다와 갯벌, 많은 섬과 긴 해안선 등 청정한 환경을 갖고 있어 삶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고 도시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과잉경쟁을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는 ‘기회의 땅’임이 분명하다. 도시 청년들이여 용기 있게 결행하여 전남으로 ‘얼렁 오씨기’ 바란다.
  • [나태주의 풀꽃 편지] 엄혹한 세월

    [나태주의 풀꽃 편지] 엄혹한 세월

    둘러보아 좋은 소식이나 조짐은 없다. 지난해 원숭이의 해를 살면서 우리는 참 많이 위태위태했고 머리가 쭈뼛쭈뼛해지는 일들을 많이 보아 왔다. 원숭이의 해, ‘병신년’이라서 그렇다고들 농담을 던지며 내년에는 좀 좋아지겠지 자위하면서 얼음 찬 강을 건너듯 살아왔다. 그런데 정작 닭의 해인 올해 정유년은 또 새해를 맞으면서 조류독감이 사상 최대로 번져 알을 낳는 닭의 3분의1을 살처분했으며 오리와 메추라기를 합쳐 살처분한 가금류가 3200만에 육박한다니 이러다가는 달걀이라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을지 걱정스런 심정이다. 더구나 청년실업률이 1999년 외환위기 이래 최고치인 9.8%에 육박하고 있다는 통계청 발표는 사뭇 우리를 주눅 들게 만든다. 나이 들고 직장에서 물러난 우리 같은 사람들하고는 무관한 일이지만 그것이 젊은 세대들, 자식이나 제자들의 일이니 결코 무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말로 돌아보아 소망스러운 일, 좋은 일, 가슴 따뜻해지는 일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심기일전’이란 말이 있다. 마음이나 생각을 바꾸어 달라지도록 노력하자는 얘기다. 정말, 정말로 지금은 그러한 때다. 달리 방법이 없다. 이대로 우리가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어려서 가난하고 춥고 배고프던 시절. 우리들보다 더욱 가난했던 우리들의 어버이들은 길고 긴 겨울밤 잠을 자면서도 마음속으로 기와집을 몇 채씩 지었다 부셨다 했다. 바로 닭에 대한 꿈이다. 겨울이 가면 봄은 올 것이다. 그러면 시장에 가서 병아리를 몇 마리 사 가지고 와야지. 그것들을 어미닭으로 키운 다음 다시 알을 낳아 병아리를 깨어 기르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아침이 되면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마는 아버지의 기와집이었다. 그런 아버지들의 아들들로 자라서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 그런데 우리들의 어린 자식들, 젊은 세대들이 일터가 없어 신음하고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니 마음이 아프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런 말들이 절로 나온다. 지금, 여기서라도 마음을 바꿔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좀 찾아보면 어떨까? 어떠한 순간에도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조건과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무언가를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 가장 나쁜 것은 절망하는 일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버리는 일이다. 이런 때일수록 자존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절대적 빈곤 시대는 아니다. 나의 20대는 절대 빈곤의 시대 60년대였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사범학교를 졸업했지만 발령이 나지 않아 1년도 넘게 룸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집에서만 견디기 곤란해 아버지한테 차비 좀 마련해 달라 해서 서울 외숙 댁에 가서 밥을 빌어먹으며 서울 거리를 떠돈 날들이 있었고 그런 날들의 어떤 날들은 서울의 남산시장 냉면집에 찾아가 심부름꾼의 일을 자청해 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냉면을 나르다가 저녁 때 숙소에 돌아오면 발등이 소복이 붓곤 했다. 그런 날 밤엔 잠을 자면서도 돌아누워 흐느껴 울기도 했다. 결국은 그 일도 못하여 시골집으로 돌아와 농사짓는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해 보려고 했지만 반거충이 농사꾼한테 맞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날씨까지 가물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밤새워 물자새(무자위)라고 불리던 기구에 올라가 밤새도록 물을 품던 일도 있었다. 그런 날에도 우리들의 아버지는 결단코 내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고 씩씩했으며 우리들 또한 그런 아버지들을 닮아 어떠한 일에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넘어지는 일은 있어도 그 자리에 주저앉는 일은 없었다. 어찌 우리가 힘든 일 없이 일생을 살기를 바랄 것인가. 젊은 아들딸들아. 제발 지금 그 자리에서 기죽지 말고 일어서기를 바란다. 견디기를 바란다. 언제든 좋아지는 날이 있겠지. 나의 시에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그런 시(풀꽃3)가 있지만 이런 시도 차마 안쓰러워 읽어 주지 못하는 마음이다. 지금은 참 엄혹한 세월이다.
  • [포토 다큐] 초록빛이다 초봄의 볕도 초보의 꿈도

    [포토 다큐] 초록빛이다 초봄의 볕도 초보의 꿈도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뜻을 지닌 우수가 지난 지 10일 가까이 됐다. 우수는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과 동면하던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 사이에 끼여 있는 24절기 중 하나다. 이맘때쯤이면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흙을 촉촉하게 적시고 보드랍게 내려 쬐는 봄 햇살을 머금은 낱알이 싹을 틔워 내려고 한다. 농촌에서는 예부터 우수를 농한기가 끝나고 농번기가 시작됨을 알리는 지표로 삼았다.●명문대 졸업·직장 생활하다 귀향… “첫해 농사 망칠 뻔했죠”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에서 농사를 짓는 김대연(32)씨는 2년차 초보 농부다. 그는 이 마을에서 유일한 30대로 가장 어리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는 몇 해 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귀향하면서 마을의 최연소 농부가 됐다. 경험이 없는 초보다 보니 이런저런 실수도 많이 겪었고, 아직도 겪는 중이다. 그는 “한 번은 논에 물을 잘못 대서 농사를 전부 망칠 뻔했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50㎏ 거름 살포기 메고 보리밭으로… 얼굴엔 땀이 줄줄 초보 농사꾼의 2년차 첫 봄맞이 일정은 겨우내 논에 심어 둔 보리에 거름을 주는 일이다. 날이 풀려 봄비가 오기 전 거름을 뿌려야 빗물에 거름이 녹으며 토양에 잘 스며들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름할 만큼 중요하면서도 힘든 작업이다. 무거운 고압 살포기를 어깨에 메고 논을 직접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30㎏의 거름에다 고압 살포기 자체 무게까지 합하면 50㎏에 이른다. 이 장비를 메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쌀쌀한 날씨임에도 얼굴에 땀이 절로 맺힌다. 초보인 그에게는 아직 모든 작업이 낯설고 힘에 부친다.●청년 농부들과 6억 들여 드론 구입… “농업도 新기술 필요” 농사에는 초보인 김대연씨지만 도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신 기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활용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다. 얼마 전 그는 주변 마을 젊은 청년 농부들과 함께 약 6억원을 들여 농업용 드론 13대를 주문했다. 적지 않은 투자지만 미래 농업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큰 투자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함께 드론을 구입한 박정길(36)씨는 “고령화되는 농촌에서 빠르고 정확하고 적은 힘으로 농약을 투사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며 “드론은 그런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농업 기계”라고 말했다. 현재 농업의 트렌드인 규모의 농법 아래에서는 적절한 농기계의 활용이 성공적인 농사를 가름하는 절대적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겨울 지나 봄이 오듯… 농업의 꿈도 싹 틔울 날 오겠죠” 최근 그는 친환경 대파 재배와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을 활용한 고부가가치를 갖는 밭작물에 관심이 높다. 그가 농업 학술 세미나나 신기술 시연회에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농촌은 레드오션이면서 곧 블루오션”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농업은 포화 상태지만 아직 신기술을 활용한 신농업 먹거리는 무궁무진하다고 믿는다. 그는 얼마 전 고부가가치 작물로 떠오른 우엉을 텃밭에 시범 재배했다. 싹이 올라와야 할 밭에 아직 싹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실패한 농사니 갈아엎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끈기를 가지고 지켜보면 언젠가는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농사꾼 김대연씨도 마찬가지다. 아직 그에게 싹은 트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의 그는 오늘과는 다를 것이다. 물을 주고 기다리다 보면 그도 성공한 영농인으로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앞날에 건승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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