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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순 넘긴 포크 대부 ‘울릉천국’ 열다

    칠순 넘긴 포크 대부 ‘울릉천국’ 열다

    150석 규모 공연장·카페 조성 ‘동방의빛’ 멤버들과 주 3회 공연 “이것저것 해봐도 음악이 1순위 후배 뮤지션들 보금자리 됐으면”‘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난 어떤 사람일까. … 그때도 꿈이 남아 있을까.’ 가수 이장희가 1974년 작사·작곡한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를 부르며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40여년 만에 가수 활동을 재개하는 그는 올해 ‘일흔하고도 하나’다. 한국 포크음악 1세대이지만 잊힌 가수나 마찬가지였던 그가 다시 기타와 마이크를 잡은 계기는 다음달 8일 울릉도에 개관하는 ‘울릉천국 아트센터’다. 이장희는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이 70에 이러는 게 잘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다시 음악을 하게 돼 너무 기쁘고 설렌다. 제자리에 와 있다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1971년 ‘겨울 이야기’로 데뷔한 이장희는 ‘그건 너’, ‘한 잔의 추억’,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의 히트곡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가 됐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과 함께 국내에 포크 열풍을 불러일으킨 ‘세시봉’ 멤버이기도 하다. 직접 작사, 작곡을 하며 노래를 부른 싱어송라이터였던 그는 1976년 대마초 사건으로 가수 활동을 중단한 뒤 라디오 DJ, 프로듀서로 활동하다 1980년대 말 미국으로 넘어가 레스토랑, 라디오 방송 등의 사업을 했다. 미국 이민 생활을 접고 2004년 귀국한 그는 울릉도로 낙향해 농사를 짓고 살았다. 울릉천국 아트센터는 그가 기증한 농장 부지 1652㎡(약 500평)에 울릉도가 공연장을 만든 것이다. 1996년 울릉도를 방문했던 그는 자연경관에 매료돼 2004년부터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터를 잡고 ‘울릉천국’이라 이름을 붙였다. 현재 그가 사는 집 앞마당에 들어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울릉천국 아트센터는 지하 1층, 지상 4층에 150석 규모의 공연장, 카페 등의 공간으로 꾸며진다. 그는 이곳에서 기타리스트 강근식, 베이시트스 조원익 등 옛 ‘동방의빛’ 멤버들과 함께 4개월간 일주일에 세 번씩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송창식, 윤형주 등 세시봉 멤버들의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요즘 서울도 극장 운영이 어렵다고 하는데 울릉도 중에서도 시골인 이곳에서 잘 될까 의심스럽지만 3000명의 관광객 중 100명만 와 줘도 좋겠다”면서 “울릉도의 독특하게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보시고 오신 김에 아트센터도 들러 달라. 관객들이 물밀 듯이 오면 공연을 더 늘리겠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공연은 1976년 이후 공식적인 가수 활동은 하지 않았던 이장희가 다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는 “오랜만에 동방의빛 멤버들이랑 같이 연습을 하다 보니 학창 시절에 공부는 안 하고 음악에 푹 빠져 살 때가 떠올랐다”면서 “이것저것 많이 했지만 역시 나에겐 음악이 1순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힙합이 대세이길래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들었던 닥터 드레(힙합 가수)나 리듬앤드블루스를 다시 듣는데 여전히 좋고 옛날 기분이 그대로 느껴지더라”면서 “내가 좋아하던 장르들을 새로운 스타일로 만들어 부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뮤지션들의 보금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맨 처음 극장을 짓겠다는 안을 가져왔을 때 정말 작고 아름다운 소극장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후배들이 이곳에서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하는,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연 티켓은 오는 20일부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9월 15일까지 매주 화·목·토 3만 5000~4만원. 울릉도 주민은 1만원.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과학입국’의 길로 안내한 우장춘 박사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과학입국’의 길로 안내한 우장춘 박사

    씨 없는 수박 첫 개발자 아냐 작물 품종 개량·보급해 증산 과학 본질·존재감 깨우쳐 줘 지난 4월 8일은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1898~1959) 박사가 태어난 지 12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 박사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현재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초대 소장입니다. 흔히 우 박사 하면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육종학자로서 우 박사의 대표적인 업적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이론을 보완한 ‘종의 합성’ 이론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한 배추속(屬) 작물의 유전 연구와 품종 개량입니다.최근 들어서는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발명한 사람이 우 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많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우장춘=씨 없는 수박을 만든 과학자’로 알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사람은 일본 농학자 기하라 히토시(1893~1986) 박사입니다. 우 박사는 일본에서 기하라 박사와 친하게 지내 그의 연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1950년 한국으로 온 뒤 농민들과 언론에 대해 육종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수시로 ‘씨 없는 수박’ 이야기를 꺼냈고 1953년에는 씨 없는 수박을 직접 재배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최초’만 아닐 뿐 우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만든 것이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하라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우 박사의 ‘종의 합성 이론’ 덕분이기도 합니다. 우 박사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1916년 도쿄제국대 농학실과에 입학했습니다. 1919년 졸업 후 도쿄 농사시험장에서 연구직이면서 기술직에 해당하는 기수(技手)로 20여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농학박사 학위도 38살이 되던 해인 1936년에 받았지요. 늦깎이 박사였지만 학위 취득을 위해 제출한 ‘배추 속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라는 논문은 세계 육종학계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농사시험장에서 기수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원예작물 품종 개량 실험을 하면서 쌓은 경험이 논문에 그대로 실렸던 것입니다. ‘종의 합성 이론’은 ‘우장춘 트라이앵글’로도 알려져 있는데 쉽게 말하면 염색체 수 10개인 배추와 9개인 양배추를 교배시키면 염색체 수가 19개이면서 전혀 다른 종인 유채를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종은 다르더라도 같은 속의 식물을 교배하면 전혀 새로운 식물을 만들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보인 우 박사의 이론은 아직까지도 종 합성의 대표적 사례로 간주되고 있고 육종학 연구에서 여전히 인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물리학 분야에서 이휘소 박사가 있다면 생물학 분야에서는 우 박사가 있다고나 할까요. 또 요즘 제주도 하면 감귤을 떠올리고 강원도 하면 감자를 연상케 하는 지역별 특화 농업을 제안했던 것이 우 박사라는 사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도입한 귤을 품종개량하고 제주도에서 시험재배해 감귤 농업을 제안했고 무병 씨감자를 강원도 대관령에서 시험재배에 성공함으로써 감자 특산지로 성장하게 한 밑거름이 됐다는 것입니다. 또 한국 토양에 맞는 배추 ‘원예 1호’, 양배추 ‘동춘’, 양파 등도 개량했고 세상을 뜨기 전에는 병충해에 강하고 낱알이 많은 벼의 개량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습니다. 우 박사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보릿고개’라는 말은 진즉에 없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 박사가 태어난 4월은 정부가 정한 ‘과학의 달’ 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점점 커져 가는데 국내에서 ‘과학’에 대한 존재감은 점점 미미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가 창조경제니 융합이니 4차 산업혁명만을 들먹이며 과학에 교육, 미래, 이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무리하게 접붙이기하는 ‘종의 합성’ 실험을 하며 ‘잘되고 있어’라는 자기최면을 걸다 보니 과학의 본질이 뭔지를 까먹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edmondy@seoul.co.kr
  • 농협 ‘농촌일손돕기’ 행사 개최

    농협 ‘농촌일손돕기’ 행사 개최

    농협중앙회는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농촌일손돕기 붐을 조성하기 위해 16일 ‘풍년농사 지원 전국동시 스타트업’ 행사를 전국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 158개 시·군에서 농협 임직원과 자원봉사단체, 기업 임직원 등 5만여명이 참석했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전북 익산시 삼기면에서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와 송하진 전북도지사, 정헌율 익산시장 등 1200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가졌다. 또 전국 951개 농·축협에 220억원 상당의 농기계 전달식도 가졌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역사 속 행정] 고려와 조선의 수령

    [역사 속 행정] 고려와 조선의 수령

    ‘중앙·지방 중재자’ 고려 박시용 향리에게 부담 공정하게 나눠줘 ‘군현 총괄 경영자’ 조선 이보림 마을 재원 펀드 ‘제용재’ 만들어1349년(고려 충정왕 1년) 충남 한산군의 관아가 너무 낡아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수령이던 박시용은 향리들을 소집해 관청 재건축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향리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이곳이 바닷가여서 목재를 구하기 힘들고 군의 백성 상당수가 권세가의 노비여서 세금을 받아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박시용은 향리들의 반대에도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는 한밤중에 낡은 관아 건물을 허물어 배수진을 쳤다. 향리들은 기가 막혔고 화도 치밀었다. 하지만 당장 청사가 없으니 건물을 새로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박시용의 수완이 발휘됐다. 그는 관청 규모를 군의 형편에 맞게 다시 설계하고 향리들에게도 각자 형편에 맞춰 공정하게 부담을 지웠다. 향리들도 점차 박시용의 공정함과 능력을 신뢰하게 됐다. 이들은 관아가 완성되자 감사의 의미로 예정에 없던 수령 사저와 부대시설까지 추가로 지어 줬다. 목은 이색의 아버지이자 한산 출신 학자 이곡은 이 소문을 미담 삼아 글을 쓰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관아 건축에 필요한 비용과 인력을 철저하게 향리에게 의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면 변화가 감지된다. 명문장가 이제현의 손자인 이보림이 남원 부사로 내려왔다. 이때는 고려 말기여서 재정 상황은 더 나빴고 사회 혼란도 극심했다. 관청 수선은 고사하고 경상비용을 감당하기도 벅찼다. 이보림은 재치가 있어 재판을 잘 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소송을 처리해 주고 수수료를 받았다. 여기에 마을의 여러 재원을 더해 일종의 펀드를 만들고 이를 ‘제용재’(濟用財)라고 불렀다. 향리들 중에서 공정한 사람이 운용을 하고 지출할 때는 수령에게 보고해 결재를 받은 뒤 지출하게 했다. 박시용이 행정 권력만 가진 ‘중앙과 지방의 중개자’라면 이보림은 ‘군현의 경영자’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모든 제도와 법령은 이런 ‘이보림식 수령상’에 바탕을 두고 운영됐다. 고려 말 관청 건축붐이 이유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방관의 역할과 권위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것에 수반해 등장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고려 때는 향리 세력이 강하고 조선에서는 수령 권한이 강했다”고 배웠다. 하지만 두 나라 지방행정의 본질적 차이를 제대로 알려면 지방사회에서 수령의 역할과 기능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조선시대 수령은 왕의 대행자로 군현의 행정과 조세, 사법권, 군사권까지 모두 장악했다. 경제와 산업경영도 책임졌다. 수령은 관내 농경지가 효율적으로 관리되고 경영될 수 있도록 감독할 책임이 있었다. 경작 가능한 토지가 경작되지 않으면 향리나 토지 주인을 불러 처벌하기도 했다. 조선의 수령은 마치 농장주처럼 밭갈기와 씨뿌리기, 모내기 등이 제때 진행되는지까지 점검했다. 심지어 작물 종류까지도 간여했다. 16세기에는 지방 사족들이 “우리가 알아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민원을 넣을 정도였다. 흉년 구제 역시 고려 때만 해도 사찰이나 부호가 담당했지만 조선에서는 이 권한을 관청이 모두 회수했다. 오히려 사적 구제를 금지했다. 고려 시대에는 향촌 사회에서 벌어지는 웬만한 사건은 향리들이 재판하고 처벌할 수 있었지만 조선은 이 권한을 수령에게 모두 몰아줬다. 이웃 간 사소한 말다툼 정도가 아니면 향촌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은 없었다. 여기에 불효와 불화 등도 삼강오륜에 저촉하는 것으로 보고 반드시 수령이 감독하고 처벌하게 했다. 수령이 도덕과 가치관의 수호자 역할까지 한 것이다.■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임용한 대표(KJ&M인문경영연구원)
  • [열린세상] 분단고착 위기가 유령처럼 다가서고 있다

    [열린세상] 분단고착 위기가 유령처럼 다가서고 있다

    이달 초 평양 한복판에서 우리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주제는 ‘봄이 온다’였다. ‘한반도의 봄’이 오면 8000만 한민족은 70년 이상 얼어붙었던 동토에서 해방된다. 봄이 오면 사람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려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듯 한반도가 해빙되면 우리는 통일의 씨를 뿌려 미래를 준비할 것이다.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과 곧이어 개최될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실질적이고 확실한 비핵화 방안을 합의하고 이를 실천한다면 한반도의 봄은 분명하게 온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비핵화가 안 되면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겨울이다. 우리는 봄이 오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크다. 그런데 정작 봄이 오면 뿌릴 씨앗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지금 통일의 씨알이 조금씩 죽어 가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북 공동 입장, 단일팀, 예술단, 응원단 등이 성사됐다. 이에 대한 국민들 반응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식었다.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냉담해진 것이다. 특히 젊은층이 더 그랬다. 청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 중에는 북한 주민을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상당히 많음을 발견한다. 그들은 북한 주민들을 별세계의 사람들로 생각하고, 그들로 인해 자기의 생활이 침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통일을 추구하자면 남북한 주민들이 최소한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도 많이 엷어지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매년 조사에 따르면 통일해야 한다고 대답하는 국민의 비율이 50%를 겨우 넘고 있다. 청소년들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더 낮아진다. 이러한 추세를 그대로 두면 장래에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율이 50%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통일의 기회가 오더라도 정치 지도자들이 통일을 결단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 지식인들이 그러한 추세를 부추기고 있다. 이들은 남북한이 굳이 통일할 필요가 없으며, 서로 다른 나라로 분리해 사는 것이 현실적이고, 그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통일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통일을 포기하면 주변국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한민족에게는 좋을 게 없다. 이렇게 통일의 씨알이 죽어 없어지면 한반도의 봄이 백번와도 씨를 뿌릴 수 없고, 또한 통일이라는 결실도 없다. 지금 분단고착의 위기, 민족의 위기가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동서독 분단 시기에 독일의 지도자들은 국가로서 독일은 분열됐지만 역사, 문화, 언어 등의 공통성에 기초하는 독일 민족은 하나로 존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들은 하나의 독일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했다. 이것이 탈냉전기를 맞아 독일이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통일 독일은 유럽 제일이 됐다. 남북한도 하나의 민족으로서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북한 주민들이 최소한 서로 말이 통하고 역사를 공유하며 정서가 통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통일 노력의 출발점이다. 남북한 간에는 간헐적이나마 이산가족 교류가 있었고 언어와 역사, 문화의 교류와 공동 연구, 국토 보전을 위한 협력을 해 왔다. 5ㆍ24 조치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1년 말부터 유연화 조치를 통해 이러한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는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돼야 한다. 유엔안보리 제재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올해 남북한 예술단의 교환 공연은 그 취지야 어떻든 남북한 주민들이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노래를 부르고 흥얼거릴 수 있는 기회였다. 이는 남북한 주민이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통일의 씨알을 보존할 것이다. 그러한 일이 조용하게 일상화되고 더 개방적으로 지속돼야 한다. 나아가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정보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 출판물의 교류, 방송의 상호 개방이 실현되면 민족 동질성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통일이 가까운 시기에 이루어질지 먼 미래의 일일지 알 수 없으나, 남북한 주민은 한 민족임을 인식하며, 통일해야 할 관계임을 마음속에 단단히 담고 있어야 한다. 엄동설한에도 봄날을 기다리며 씨앗을 보존하듯이. 그것이 분단고착을 막는 길이다.
  • 1년에 수천마리씩 꿀꺽~ 조선의 ‘소고기 사랑’

    1년에 수천마리씩 꿀꺽~ 조선의 ‘소고기 사랑’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김동진 지음/위즈덤하우스/264쪽/1만 5000원 새삼스럽게 보면 식탁 위의 모든 것이 신기하다. 도대체 누가 처음 작은 씨앗을 쪼개어 그 속에 먹을 만한 것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밥그릇에 담을 궁리를 했을까? 도대체 누가 처음 미끄덩거리고 이상해 보이는 괴물체를 맛있게 먹고 ‘굴’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도대체 누가 풀떼기를 짠물에 담가 숨을 죽이고 묵히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을까? 도대체 누가 순하게 눈을 끔벅이는 이로운 동물인 소를 신성시하면서도 동시에 맛있게 먹어 치울 염을 냈을까?조선 시대, 소고기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소의 존재 자체가 그러했다. 백성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상황에서 소는 거의 절대적이다시피 했다. 저자는 말한다. “소는 농사의 성패를 가를 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였다. 소 한 마리가 가는 논과 밭을 사람이 대신하려면 적어도 여덟아홉명에서 십여명까지 달라붙어야 했다. 더구나 소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논밭을 갈 수 있지만 사람은 한나절 만에 탈이 나기 일쑤다.” 더군다나 질척한 논은 푸슬푸슬한 밭과 달리 소의 노동력이 꼭 필요했다. 조선 시대에 소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조선 시대는 소를 탐식한 시대이기도 하다. 소고기는 특별한 음식이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임금은 반드시 소고기를 먹었다. 임금이 되려 하거나 대리하는 자도 소고기를 먹음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다. 당연히 나라의 허락 없이 소고기를 먹으려 드는 것은 왕위 찬탈을 도모하는 역적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한편, 소고기의 풍부한 영양은 나라의 인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성균관 유생들은 일상적으로 소고기를 제공받았다. 서울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소를 잡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곳이 성균관이었다. 그렇다면 가난한 백성은 소고기 맛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귀신에게 제사하고, 또 손님을 대접하는 데 쓰거나 먹기 위해 끊임없이 소를 잡는데 1년 동안 잡은 소가 수천 마리에 이르렀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이 말하듯 백성들도 명절마다 소를 잡아 ‘이밥에 괴기국’을 먹었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 남아 있는 소고기의 흔적을 샅샅이 찾아 들려준다. 각종 행정기록을 참고하여 당시 소의 사육 환경과 소의 숫자를 헤아려 보는가 하면, 소고기를 보관하고 요리하는 법, 소고기를 약으로 쓰는 법, 염소와 돼지와 사슴고기와의 관계까지 가늠해 본다. 먹을 것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가 보인다. 흔연한 식탁이 예사롭지 않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 [길섶에서] 아버지의 독설/김성곤 논설위원

    아버지는 올해 연세가 여든아홉이시다. 쌀가마니도 거뜬히 드신다. 그 연세에 농사짓는 것을 자랑으로 아신다. 둘째 딸 집들이 때문에 서울에 오셨던 아버지가 주무시다가 호흡곤란과 어지럼증을 호소해 응급실에 모셨다. 며칠 전부터 기침과 가래로 걱정하던 차였다. 급성 폐렴이란다. 한나절 전만 해도 멀쩡하시던 분이 산소호흡기 차고, 의식이 혼미한 것을 보니 “노인은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온다. 닷새쯤 되니 차도가 있으셔서 호흡기 떼고 휠체어도 안 탄 채 링거만 꽂고 계신다. 그런데 어제 사달이 났다. 병실 안은 덥고, 답답해 밤에 복도에 있는 빈 병상에 누워 계시다 반대편 병실 분들과 다투신 모양이다. “홍시감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땡감도 떨어져. … 늙은이가 힘들어 거기 좀 누웠다고 쫓아내?” 독설이다. 몸이 불편하니 이해심도 적어지고 곳곳에서 부딪친다. 갈수록 자신과 가족만 안다. 몸이 좋아져 입이 열리니 좋지만, 옆 환자들에게 폐가 될까 조심스럽다. 요즘 우리 형제들은 돌아가면서 병간호를 한다. 아니 간호인지 감시인지 모호해졌다. 웃다가도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늙어 가는가…. sunggone@seoul.co.kr
  • 이웃 반려견 식용 삼은 60대…개주인 아버지에 “먹으러 와라”

    이웃 반려견 식용 삼은 60대…개주인 아버지에 “먹으러 와라”

    이웃 반려견을 몰래 죽여 식용으로 삼은 60대 남성의 만행이 공분을 사고 있다.지난 10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청원 게시판에는 ‘도와주세요. 저희 개가 이웃에게 처참히 죽임을 당했습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글쓴이(30·여)에 따르면 그가 키우는 2살 웰시코기 종 수컷 ‘꿀이’는 지난달 4일 오후 경기 평택 청북읍에서 실종됐다. 다음날인 5일 바로 사례금 50만원이 적힌 현수막을 제작해 설치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전단지를 배포하며 꿀이를 찾아다녔다. 유기견 사이트나 카페에 글을 올려봤지만 꿀이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사례금을 100만원으로 올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한달여가 지난 지난 9일, 글쓴이는 한 주민의 제보를 받았다. 누군가 꿀이를 잡아먹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그 범인이 글쓴이 아랫집에 사는 이웃 A(64)씨였다는 점이다. 글쓴이가 꿀이를 애타게 찾으며 전단지를 나눠줄 때 A씨는 꿀이를 보지 못했다며 찾게 되면 연락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 꿀이를 잃어버려 힘들어하는 부모를 위로하며 술도 마셨고, 그 다음날엔 농사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해 글쓴이의 아버지가 거들어줬다고 글쓴이는 전했다. 꿀이가 글쓴이 집의 개인 것도 A씨가 모를 리 없었다고 한다. 강아지 시절부터 봤고, 산책시키는 것도 여러 번 봤기 때문. 그 정도로 오랜 이웃이었다. 심지어 개를 죽인 뒤 글쓴이 아버지에게 먹으러 오라고 초대까지 했다. 글쓴이는 “정녕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악마 같다”면서 분노했다.글쓴이는 곧바로 A씨를 신고했고, 현재 경기 평택경찰서가 이 사건을 수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개가 집 마당에서 심하게 짖어 돌멩이를 던졌는데 기절해 전깃줄로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또 죽은 개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본인은 먹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하고,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그 시절 공직 한 컷] 공휴일이었던 식목일…나무 그늘 밑 休 하고픈 날

    [그 시절 공직 한 컷] 공휴일이었던 식목일…나무 그늘 밑 休 하고픈 날

    매년 4월 5일. 이 날은 신라가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677년 2월 25일(양력 4월 5일)이다. 또 조선 성종이 동대문 밖 선농단에 나가 몸소 제를 지내고 직접 농사를 짓는 모범을 보인 날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1949년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을 제정해 이 날을 식목일로 지정했다.그러나 식목일은 공휴일로서 부침을 거듭했다. 1960년 공휴일에서 폐지됐고 3월 15일을 ‘사방의 날’(재해를 줄이려고 산림녹화 또는 각종 토목공사하는 날)로 대체 지정됐다. 그다음해 식목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면서 사방의 날 대신 식목일이 공휴일로 재지정됐다. 1982년 5월 15일에는 법정기념일로 제정됐지만, 2006년부터 주 5일제 시행으로 다시 공휴일에서 폐지됐다. 사진은 1955년 4월 5일 열렸던 식목일 행사에서 나무를 심는 모습이다. 당시는 공휴일이었지만 공식 행사였는지 참석자들이 양복을 입고 나무를 심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 [커버스토리] 57세 경남 출생 男, 서울대·행시 출신 李차관… ‘늘공’ 정점까지 30년

    [커버스토리] 57세 경남 출생 男, 서울대·행시 출신 李차관… ‘늘공’ 정점까지 30년

    ‘1961년 경남(부산) 출생, 남성, 서울대 졸업, 행시 출신….’ 2018년 4월 8일 기준 대한민국 차관의 평균적인 모습이다.차관은 해당 부처 출신이 대부분이라 업무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 장관에 견줘 조직 장악력도 탁월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나라 정책을 실행하는 첨병 역할을 하는 자리가 차관이다. 심심치 않게 실세 차관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장관이 정치인으로 느껴지는 것에 반해 차관은 늘공(늘 공무원)의 정점이다. 차관이 되면 억대 연봉을 받는다. 올해 기준 1억 2500여만원이다. 장관이 1억 2900여만원이니 큰 차이가 없다. 운전기사를 포함한 전용 승용차가 지원된다. 과거에는 장·차관 차량의 배기량도 엄격하게 명문화했으나 최근에는 자율이다. 관례상 장관급은 에쿠스(3300㏄ 이상)를, 차관급은 체어맨(2800㏄) 등을 탔는데 최근 들어 차종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집무실도 1급 때에 견줘 두 배 가까이 대폭 확장된다. 비서실을 포함해 99㎡(약 30평)이다. 물론 청사 규모를 감안해 늘거나 줄 수 있다. 1급은 50~66㎡, 장관은 165㎡가 기준이다. # 정책 실행 첨병역으로 ‘실세 차관’ 괜한 말 아냐 차관은 정무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차관이 되려면 일단 사표를 내고 다시 임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차관으로 임명되는 순간, 그간 공직 생활을 해온 자부심과 뿌듯함, 보람과 함께 곧 공직을 떠나야 한다는 허전함이 동시에 느껴진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인사혁신처가 발간한 국가주요직위 명부록 등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의 차관은 모두 23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행정부는 18부가 중심인데 그중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국토교통부가 차관을 두 명씩 거느리고 있다. 대부분 1960년대생(78.2%)이지만 1950년대 생도 눈에 띈다. 모두 다섯 명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차관은 조현 외교부 2차관이다. 1957년생으로 환갑이 지났다. 가장 나이가 어린 차관은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다. 1965년생이다. 출신지로 따져 보면 부산·경남 지역 출신이 7명(30.4%)으로 가장 많다. 서울과 전북이 각각 4명으로 뒤를 잇는다. 여성은 단 2명뿐이다. 교육부의 박 차관과 여성가족부의 이숙진 차관 단 둘이다. 전체의 8.6%에 불과하다. 18부의 여성 장관이 5명(27.7%)인 점을 고려하면 차관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성씨를 따지면 이씨가 5명(21.7%)으로 가장 많다. 김씨는 4명이다. 출신 대학(학부 기준)을 보면 서울대가 압도적이다. 11명(47.8%)이 서울대를 나왔다. 고려대 3명, 연세대와 성균관대가 각각 2명으로 뒤를 이었다. 대부분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장 최근 임명된 김정렬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학벌주의를 무너뜨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군산고 2학년 재학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검정고시로 고교 학력을 땄으며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를 졸업하던 1988년 32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행시 출신이 많다. 모두 14명(60.8%)이다. 여기에 기술고시 3명, 외무고시 2명, 사법시험 1명까지 합하면 고시 출신 차관이 압도적(86.7%)이다. 행시의 경우 1986년 합격한 30회, 1987년 합격한 31회가 각각 5명으로 가장 많은데, 30회가 같은 해 합격한 기술고시 22회가 2명 있기 때문에 사실상 1986년에 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부터 공직을 시작한 차관이 가장 많다고 보면 된다. 문재인 정부의 차관 대부분 지난해 임명됐는데, 행시 30기를 기준으로 하면 공직 입문 뒤 차관 자리에 오르는 데 30년이 걸린 셈이다. 외교부 임성남 1차관과 조현 2차관은 각각 1980년과 1979년 외시에 합격했으니 외교부 차관이 되기까지 6년 이상이 더 걸렸다. 가장 빨리 차관이 된 것은 이진규 과기부 1차관이다. 1990년 기술고시 26회에 합격해 이듬해 공직에 입문했으니 26년이 걸린 셈이다. 발탁 인사로 기수 파괴라는 평가를 받았던 교육부 박 차관도 27년 만에 차관이 됐다. 앞서 공직을 거치지 않은 경우도 3명이 있다. 국방부 서주석 차관, 환경부 안병옥 차관, 여가부 이숙진 차관은 민간 전문가 출신이다. # 차관급 최고령 1939년생·최연소 1968년생 18부 차관을 포함해 5처 17청 2원 4실 6위원회의 차관급 공무원(직무등급이 별개인 대검찰청과 군 제외)까지 합하면 대한민국 차관(급)의 모습은 다소 달라진다. 현재 공석인 세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83명의 차관(급)을 분석하면 ‘1959년생 경남(부산) 출생, 서울대 졸업, 행시 출신, 남자 김 차관(급)’이 평균이다. 1960년대생이 53명(63.8%)으로 가장 많았고 1950년대생이 24명(28.9%)이었다. 그럼에도 차관에 견줘 차관(급) 평균 연령대가 다소 올라간 것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 행안부 산하 이북5도위원회의 이북5도지사 5명이 모두 70대이기 때문이다. 1939년생인 박성재 황해도지사가 차관(급)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최연소자는 1968년생으로 최연장자와 거의 서른 살 차이가 난다. 19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신인 배재정 국무총리 비서실장이다. 출신지는 부산·경남이 23명(27.7%)으로 여전히 많았다. 서울 11명, 광주·전남과 전북 각 10명, 대구·경북 8명 순이었다. 차관(급) 여성은 8명으로 늘어나지만 비율로 따지면 9.6%에 그쳤다. 성씨는 김씨가 19명(22.8%)으로 가장 많았고, 이씨가 9명으로 한 계단 밀렸다. 차관(급)도 서울대 출신이 압도적이었다. 모두 38명(45.7%)이었다. 그 뒤를 고려대 7명, 연세대 6명, 성균관대 5명이 이었다. 공직 입문 경로는 역시 행시가 36명(43.3%)으로 1위를 차지했다. 행시 30회가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외시, 사시, 기시까지 합하면 차관(급) 중 고시 출신은 모두 50명(60.2%)에 달했다. 1991년 행시 35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손창동 감사위원이 고시 출신으로는 가장 빨리 차관(급)이 됐다. 차관(급)에는 민간 출신도 대거 진입했다. 모두 21명(25.3%)이다. 밑바닥에서부터 ’9급 공무원 신화’를 쓴 사례도 있다. 라승용 농촌진흥청장은 9급 공무원 공채로 1976년 공직에 입문했다. 지난해 청장으로 취임했으니 무려 40여년 만에 차관(급) 반열에 오른 셈이다. 김종진 문화재청장도 고시 출신이 아닌 7급 공채로 1981년 공직에 입문한 경우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어촌이 늙어간다] 노인만 남은 바다… 힘없는 80대 어민 조업 포기 수두룩

    [어촌이 늙어간다] 노인만 남은 바다… 힘없는 80대 어민 조업 포기 수두룩

    지난 4일 오후 1시쯤 찾은 충남 서산시 팔봉면 호리 1구 마을 앞 갯벌은 썰렁했다. 마을 안 인적도 뜸했다. 해변과 접한 곳에는 갯마을과 어울리지 않게 세련된 외양의 펜션이 줄지어 서 있었다.이 마을 어촌계장 황기연(63)씨는 “요즘은 (고기)잡이가 없는 때다. 5월부터 바지락 작업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1970~80년대 큰 풍선(돛단배)을 타고 인천 앞바다까지 올라가서 어른 키만 한 (식용)상어를 잡던 동네 형님들이 이제는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것마저 힘겨워한다. 20㎞ 넘게 떨어진 서산읍내까지 지게에 상어를 지고가 팔던 사람들이었는데…”라고 털어놨다.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동화가 어려워 몸을 쓰는 일이 많은 어업은 어민들 사이에서 농사보다 힘든 ‘3D 업종’으로 불린다. 파도치고 바람이 부는 바다 위에서 고기를 잡는 일은 노인한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일하는 것 역시 보통 고된 노동이 아니다. 이 마을 어촌계원은 85명인데 60대 안팎의 계원이 주류다. 황씨는 “어장에서 바지락을 캐 오면 무게를 재는 계근자 4명이 필요한데 서로 안 하려고 해 사정사정한다”고 전했다. 계근자는 계원들이 바지락을 캐 20㎏짜리 그물 망태기에 담아 오면 배에서 내리고,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고, 트럭에 실어야 해 힘이 좋아야 한다. 한 계원이 3~4망태기를 캐 오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 황씨는 “계근자는 하루 1시간 30분 일하고 3만원을 받지만 워낙 힘든 일이라 대부분 꺼린다”고 했다. 이 마을은 5월부터 11월까지 바지락, 겨울에 감태와 굴을 따고 틈틈이 낙지 등을 잡는다. 마을 선창에서 만난 70대 귀어 부부는 “45살 먹은 사위가 마을에 땅까지 사놨다가 지난 겨울 이틀간 감태를 따본 뒤 ‘도저히 못하겠다’며 귀어를 포기하고 땅도 도로 내놓았다”고 털어놨다. 황씨는 “새벽 3시부터 저녁 7~8시까지 종일 서서 작업을 하면 하루 13톳(톳당 100장)을 만드는데 너무 힘이 들어 나도 한 달만에 포기했다”며 “감태는 지난해 톳당 3만 5000원에 팔릴 정도로 수입이 좋지만 못하는 계원이 절반”이라고 전했다. 이 마을은 결국 지난해 4월 귀어 외지인 6명을 신규 어촌계원으로 처음 받아들였다. 이를 위해 1000만원이 넘는 어촌계 가입비를 300만원으로 낮추고 거주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다. 대신 어로작업을 전혀 못하는 고령의 기존 계원 7명을 제명했다. 황씨는 “너무 늙어 바다에 못 나가는 계원이 꽤 있다”면서 “신입 계원도 50대가 많지만 계근자로 나서는 것은 물론 어장의 해양쓰레기와 폐그물을 치우고, 모래를 뿌리고, 갯벌을 갈아주는 등 노인이 하기 어려운 어장관리에 발 벗고 나서줘 활기가 좀 돈다”고 했다. 인근 서산시 지곡면 도성어촌계는 더 심각하다. 정래만(70) 어촌계장은 “5년 전에 어촌계원이 118명이었는데 8명이 죽고 지난해 어업을 못하는 계원 10여명을 제명했다”며 “앞으로 5년 있으면 어촌계원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제명된 계원은 85~86세다. 정씨는 “우리 마을은 65세 어민을 ‘애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늙어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힘이 달려 갯벌로 굴, 바지락, 모시조개, 낙지를 잡으러 가는 날이 한 해에 몇 일 안된다”고 쓸쓸하게 웃었다. 이어 “근처 왕산어촌계는 어촌계장 본인이 80세”라고 심각한 고령화 실태를 전했다. 이 어촌계는 지난해 진입장벽을 과감히 허물었지만 신규 가입이 한 명도 없다. 정씨는 “수입이 적고 힘든데 젊은이들이 왜 어촌에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요즘 이 일대 어촌계장들은 틈만 나면 모여 어민들이 나이가 많아 어로작업을 못하는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 정씨는 “의견이 모이면 조만간 해양수산부를 찾아가 어촌이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대책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말 현재 전국의 어촌계원은 13만 3000명인데, 그중 연간 한 달 넘게 어업을 한 만 15세 이상 어민(어업종사가구원)은 8만 8214명에 불과하다. 결국 4만 4786명의 어촌계원이 사실상 어업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어업종사가구원 숫자마저 10년 전인 2007년 12만 2916명에 비하면 크게 감소한 것이다. 이국일 수협중앙회 대리는 “어민 고령화는 국내 수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어촌의 사회변화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외국산이 우리 식탁 수산물의 절반 이상을 채운 데는 어민의 고령화가 한몫했고,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동티모르, 베트남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외국인 어업 노동자를 공식 도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20t 미만 어선, 양식장, 염전에 투입할 젊은 외국 노동자 1만여명을 조달했다. 일본, 동중국해 등 먼바다에서 조업을 하는 20t 이상 어선 인력 수입은 2016년 8314명에서 지난해 8400명 이상으로 좀더 늘렸다. 2015년부터 계절근로자 200명도 수입하고 있는 상태다. 이슬 해양수산부 주무관은 “어촌 인력이 크게 달려 매년 고용노동부에 외국 어업 노동자 도입을 늘려 달라는 요청이 어민들로부터 쇄도한다”고 말했다. 서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어촌이 늙어간다] 어민 10명 중 6명이 60대 이상 ‘어업의 위기’

    [어촌이 늙어간다] 어민 10명 중 6명이 60대 이상 ‘어업의 위기’

    우리 식탁의 해산물을 책임지는 어민들이 급속히 늙어 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갈수록 어업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요즘 어촌은 예전 같으면 이미 은퇴했을 법한 60대 이상 노년층 어민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가장 최근의 통계청 자료인 2016년 말 현재 전국의 어업종사가구원(연간 한 달 넘게 실제 어업을 한 어민) 8만 8214명 가운데 60세 이상이 4만 8808명(55.3%)으로 절반이 넘고, 그중 70세 이상도 1만 9204명(21.8%)이나 된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현재는 고령화가 더욱 심화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체력이다. 농사일보다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어업이다 보니 어촌 고령화는 산업으로서의 어업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먼바다 어업도 거뜬했던 어민들이 나이가 들면서 공격적인 어업을 주저하고, 그나마 일손을 이어 가고 있는 갯벌에서의 노동도 힘에 부쳐 생산성이 하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도시인의 귀어(歸漁)를 통해 늙은 어촌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어민 경제공동체인 ‘어촌계’의 진입장벽을 낮추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어민들이 반발하면서 어촌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귀어인들은 어민들이 기득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텃세’를 부린다고 비난하는 반면 어민들은 지금까지 어촌을 지켜온 자신들과 귀어인을 똑같이 대접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항변한다. 서울신문은 갈수록 심화하는 어촌 고령화 및 어촌계 진입장벽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전문가 진단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 보는 기획기사를 오늘부터 3회에 걸쳐 보도한다. 서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16세 농부’ 한태웅, 농촌 예능 ‘풀 뜯어먹는 소리’ 출연...‘소는 누가 키우지’

    ‘16세 농부’ 한태웅, 농촌 예능 ‘풀 뜯어먹는 소리’ 출연...‘소는 누가 키우지’

    ‘인간극장’ 16세 농부 한태웅이 가수로 데뷔하는 데 이어 예능까지 접수한다.6일 한 매체는 tvN 새 농촌 버라이어티 예능 ‘풀 뜯어먹는 소리(가제)’에 16세 농부 한태웅이 출연한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풀 뜯어먹는 소리’는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농촌에 가서 어린 농부와 함께 생활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는 농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엄지석 PD의 새 예능이다. 현재 편성 시점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한태웅은 이 프로그램에서 ‘어린 농부’ 역을 맡아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은 “농촌 예능이라니. 한태웅 딱이다”,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빨리 보고싶어요!”, “10대 농부 서울 물 먹겠네”, “태웅이 방송하면 소는 누가 키우지”, “태웅농장은 이제 어쩐대유~~”, “파이팅 태웅 군 응원할게요!”라는 반응을 보였다.한편 한태웅은 지난해 9월 KBS1 ‘인간극장-농사가 좋아요’ 편에 출연, 대농(大農)을 꿈꾸는 그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중학생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모습과 구수한 말투에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다. 한태웅은 지난 3일 생각을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 측과 전속 계약을 체결, 농민 가수로 데뷔한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사진=한태웅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청명’ 식목일은 어떤 날? 공휴일 지정됐다가 폐지된 이유

    ‘청명’ 식목일은 어떤 날? 공휴일 지정됐다가 폐지된 이유

    5일인 오늘은 식목일이자 청명인 날이다. 매년 4월5일인 식목일은 국민이 직접 가꾼 숲을 통해 애림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하여 제정된 날이다.이 날은 과거 신라가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로부터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이룬 677년(문무왕 17) 2월25일에 해당되는 날이자 조선 성종이 세자 ·문무백관과 함께 동대문밖의 선농단에 나아가 몸소 제를 지낸 뒤 적전(고려 ·조선 시대 권농책으로 국왕이 농경의 시범을 보이기 위해 의례용으로 설정한 토지)을 친경(임금이 농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적전에 나와 몸소 농사를 짓던 일)한 날인 1493년(성종 24) 3월10일에 해당되는 날이기도 하다. 민족사와 농림사상에 매우 뜻깊은 날일 뿐만 아니라, 계절적으로도 청명을 전후해 나무를 심기 좋은 시기이기 때문에 1949년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을 제정해 식목일로 지정됐다. 그러나 1960년에 공휴일에서 폐지되고, 3월15일이 ‘사방(砂防)의 날’로 대체 지정됐으나 1961년에 식목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돼 공휴일로 부활됐다. 이후 2006년 공공기관 주50시간 근무제가 실시되며 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다시 공휴일에서 폐지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외국인 손 빌려 농사짓는 농촌 증가

    단기비자 입국 농번기 일손 해결농촌 고령화·인건비 상승 영향 경북 시·군들이 농번기 일손 부족을 해결하려고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계절근로자는 단기취업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이 최장 3개월 동안 지정 농가에서 일하고 출국하는 제도로 법무부가 2015년 도입했다. 4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도내 5개 시·군에서 178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고용한다. 시·군별로는 영양군이 63명으로 가장 많고 영주시 47명, 청송군 39명, 의성군 15명, 성주군 14명 등이다. 계절근로자들은 해당 농가와 계약을 맺고 숙식을 제공받으며 부족한 농작업을 수행한다. 월 급여는 169만원(최저임금 적용) 정도다. 도내에서 이 제도를 가장 먼저 활용한 곳은 영양군이다. 지난해 4, 8월 두 차례 외국인 계절근로자 각 29명, 42명을 농가에 지원했다. 이들은 고추 파종과 채소 수확, 열매 솎아내기 등을 했다. 이를 위해 영주시는 지난해 11월 베트남 타이빈성과 계절근로자 도입 등을 담은 국제농업교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인삼과 사과 주산지인 영주에서는 인삼을 심고 해가림 시설을 하는 4~6월과 인삼을 수확하는 9~11월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청송 사과’로 유명한 청송군도 지난해 말 라오스 비엔티안주 토라콤군과 농번기 계절근로자 도입을 위한 MOU를 맺었고 박노욱 봉화군수도 지난달 21일 베트남 빈증성과 동나이성을 잇따라 방문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과 관련해 사전업무협의를 진행했다. 영양군 관계자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업 초기에는 의사소통 등 문제가 없지 않았으나 이내 작업 숙련도가 높아지고 한여름 무더위에도 작업 능률을 유지해 농가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면서 “심각한 농촌 고령화 현상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계절근로자를 활용하는 지역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인간극장’ 16세 농부 한태웅, 가수로 전격 데뷔...‘농민 가수’ 꿈 이룬다

    ‘인간극장’ 16세 농부 한태웅, 가수로 전격 데뷔...‘농민 가수’ 꿈 이룬다

    ‘인간극장’ 16세 농부 한태웅이 가수로 데뷔한다.3일 생각을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 측은 이날 한태웅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소속사 측은 “‘인간극장’을 통해 한태웅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본인 꿈을 대하는 긍정적 마인드를 보았다”면서 “향후 농업 부문 전문가와 농민가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한태웅은 지난해 9월 KBS1 ‘인간극장-농사가 좋아요’ 편에 출연, 대농(大農)을 꿈꾸는 그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이후 중학생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모습과 구수한 말투에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인간극장’ 출연 당시, 농촌 어르신들께 노래를 불러드리는 봉사를 하며 농민 가수의 꿈을 키웠다. 앞으로 한태웅은 앨범 준비에 본격 돌입할 예정이다. 한편 한태웅 소속사 생각을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에는 코미디언 정찬우, 배우 한영, BJ 서윤 등이 소속돼 있다. 사진=KBS1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검정고시 출신 ‘교통맨’… 학벌주의 깬 김정렬 국토2차관

    검정고시 출신 ‘교통맨’… 학벌주의 깬 김정렬 국토2차관

    “일종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이 소통했습니다.”2일 신임 국토교통부 2차관으로 임명된 김정렬 차관은 검정고시 출신으로 차관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에 김 차관은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했을 뿐 비결은 따로 없다”며 “정책 의견 수렴을 위해 관련 부처와 단체, 지방자치단체, 주민들과 특별히 소통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는 “공직사회에서 중·고등학교 교육 여부의 차이는 노력에 의해 극복되는 것”이라며 “정책 이해당사자들과의 관계 형성에 더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공공주택단장을 지냈을 때 임대주택 관련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해당사자들과의 소통에 주력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임대주택이 들어온다고 하면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많았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입주하면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과 똑같다는 논리로 설득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경험이 있다 보니 각계각층의 이해당사자들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 차관은 1961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군산고 2학년 재학 시절 아버지의 병환으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학업을 접고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1988년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를 졸업, 그해 32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김 차관의 인사를 놓고 학벌주의가 만연한 공직사회의 틀을 깼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차관은 도로·교통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교통맨’으로 통한다. 김 차관은 가장 시급한 정책 현안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버스 종사자 인력수급 문제 해결 및 대도시권 광역교통청 설치 등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공항건설과 관련된 이슈들을 정리하고 주요 민자 고속도로 통행료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수서고속철 운영사인 에스알(SR)의 통합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민 편익이 증진되는 방안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 “고속철도 평택~오송 구간의 병목현상을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겠다”고도 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무한도전’ 종영, 유재석 “제 인생의 모든 것…13년 동안 감사했다”

    ‘무한도전’ 종영, 유재석 “제 인생의 모든 것…13년 동안 감사했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대명사 ‘무한도전’이 종영했다.31일 MBC ‘무한도전’의 마지막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유재석은 “오늘이 마지막 시간”이라고 발표하며 멤버들의 근황을 소개했다. 조세호는 “‘무한도전’이 잘 된다는 가정 하에 집을 구했는데 새로운 프로그램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양세형은 박나래의 바람대로 전남 무안군을 찾아가 박나래의 어머니와 조부모님에게 선물과 사인을 전하고 함께 식사하며 정을 얻어갔다. 또한 농사일을 돕고 마을 어르신들의 각종 민원을 수리했다. 하하는 김종민의 요청에 따라 이른 아침부터 위장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했다. VCR을 지켜보면서 하하는 “나도 기억이 없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놀라워했다. 검진을 마친 하하는 요청을 하나 더 받았고, 중학생 앞에서 특별한 강연을 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하하는 “내 얘기를 꺼내는 미션이라 장난칠 수가 없더라. 중학교 시절에 저는 수줍음이 많았다. 내 결정에 흔들림이 없으려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하며 학생들과 진심으로 소통했다. 박명수와 정준하는 김민종의 요청으로 설악산을 등반하며 ‘하와수’ 마지막 이야기를 썼다. 아웅다웅 케미를 보였던 두 사람의 훈훈한 마무리였다. 이어 멤버들은 스튜디오에서 마지막 소감을 전했다. 박명수는 “‘무한도전’ 덕분에 결혼도 했다. 유재석에게는 문자로도 보냈지만 존경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준하는 “실감이 안 난다”고 말문을 열며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눈물을 쏟으며 “한 주 한 주 오다보니 13년이 되었다. 시청자분들께 감사하고,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하 또한 눈시울을 붉히며 “모자란 저희를 잘 살게 키워주신 것 같다. 살면서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갚아나겠다”고 인사했다. 조세호는 “모든 여행에는 끝이 있다. 짧지만 강렬한 여행이었다.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했다”며 눈물로 인사했다. 양세형 또한 “너무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하면서 나경은 씨와 결혼도 하고. 정말 크고 작은 저의 모든 인생이 담겨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리고 싶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들은 공식 포즈로 “무한도전”을 외치며 13년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장성군의회, 명분 없는 추경안 심사 거부 빈축

    전남 장성군의회가 뚜렷한 설명 없이 임시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다루지 않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28일 장성군의회에 따르면 임시회 첫날인 지난 23일 의회운영위원회를 열고 이번 회기에서 2018년도 제1회 추경안에 대한 심사를 거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임동섭 의회운영위원장은 “군이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에 선심성 예산 등 불필요한 예산이 포함됐다”며 “예산집행에 대한 의회의 정당한 권리로 6·13 지방선거 이후 처리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집행부와 농업단체 등이 발끈하고 나섰다. 군 관계자는 “매년 3월 추경안 심사를 했는데 상정조차 안한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며 “국·도비 보조사업의 경우 시기가 늦어져 무산되면 예산을 확보해 추진해야 하는 사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추경안 심사 무산의 피해가 군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추경안에는 북부보건지소와 치매안심센터 신축, 도시가스 공급사업, 공영버스터미널 주변 공영주차장 조성 등 주민들의 복지와 밀접한 편의시설 사업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더 큰 문제는 농업 분야다. 새끼 우렁이와 농번기 마을공동급식 지원은 영농 시기에 맞춰 추진해야 한 사안으로 농사철이 지나면 사업 시행이 아예 불가능해진다. 지난 26일부터 군의회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농민 30여명이 의회를 찾아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 지역민들도 의원들을 질책하고 있다. 김무상(49) 쌀전업농 장성군연합회 사무국장은 “의회가 정치적 계산에 눈이 멀어 당장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됐다”며 “선거 때문에 미룬다고 하지만 실상 속내는 민주당 군의원들이 무소속인 유두석 군수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를 막기 위한 발목잡기가 아니냐”고 비난했다. 장성군의회는 의원 8명중 더불어민주당 7명과 무소속 1명으로 구성돼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의 현직 도의원이 군수 출마를 준비중이다. 김재완(더불어민주당) 장성군의회 의장은 서울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의회에서 잠시 계류해놓은 것으로 예산삭감이나 거부가 아니다”고 했다. 김 의장은 “의원들이 선거철이다 보니 바빠서 충분히 검토를 못했다”며 “빠른 시일내에 간담회를 열어 지방선거 이전에 예산안을 심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강남 허파’ 양재천, 습지가 돌아온다… 낭만도 살아난다

    ‘강남 허파’ 양재천, 습지가 돌아온다… 낭만도 살아난다

    대단위 아파트촌과 고층 주상복합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1만 7457그루의 나무가 숨 쉬는 강남 양재천(15.6㎞) 3.75㎞ 구간이 한층 업그레이드된다.서울 강남구는 올 들어 양재천 명소화 사업 2기를 추진한다고 27일 밝혔다. 양재천은 관악산과 청계산에서 시작해 과천시, 서초구, 강남구 대치동을 지나 학여울 습지에서 탄천과 합류해 한강으로 유입되는 한강 지류 중 하나다. 1979년 개포토지구획정리사업과 함께 배수 기능이 강화되면서 생활 하수가 유입돼 오염됐다가 강남구 주도로 1995년 공원화 사업 추진 이후 수질을 개선하고 수변공원을 조성하는 식으로 국내 생태 하천 복원 1호로 거듭났다. 지난 2월 현재 희귀 텃새인 황조롱이 등 조류 30여종, 양서파충류 10여종, 어류 10여종, 곤충 80여종, 식물 280여종이 서식할 만큼 도심 속 자연형 하천 복원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15년 환경부 생태환경 인증을 받았으며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구는 강남 양재천 구간에서 산책 인구는 일평균 7000명, 자전거 이용자는 6000명이 넘는 만큼 일대 환경을 꾸준히 개선해 지역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표다. 2011년 명소화 사업 1기가 자연 생태 하천과 문화 휴식 공간 조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2기 사업은 핑크뮬리 갈대밭 조성, 자연습지 형성 등으로 자연성과 경관성에 중심을 뒀다. 이를 위해 영동 2교~4교 1.40㎞ 구간은 핑크뮬리 정원 등이 있는 ‘낭만의 공간’으로, 영동 4교~대치교 2.03㎞ 구간은 석잠풀, 벌개미취 등이 만발한 ‘야생화 공간’으로, 대치교~탄천1·2교 0.32㎞ 구간은 맥문동이 아름다운 ‘에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구는 우선 낭만의 공간인 양재천 보행자교 하천 둔치에 4000㎡ 규모의 핑크뮬리 정원을 조성한다. 핑크뮬리는 하천 수변에 자생 가능한 정수식물로 갈대 잎이 여름에는 푸른빛, 가을에는 분홍빛을 띠며 장관을 이룬다. 장미넝쿨도 9곳에 조성한다. 공사는 오는 4월 중순 이후부터 시작한다. 앞서 오는 4월 12일부터 사흘간 강남구 양재천 모든 구간에서 벚꽃 축제를 연다. 2013년부터 1년간 양재천 영동2교에서 탄천2교 구간에 주민 참여로 왕벚나무 등 3억원 상당의 나무 7종 1013그루를 심으면서 오늘날 벚꽃 축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구는 또 오는 10월 영동4교~5교 사이에 있는 양재천 물놀이장을 자연형 습지로 복원해 개장한다. 훼손되고 노후한 물놀이장 바닥의 콘크리트를 걷어 내고 자연형 습지를 만든다. 이를 위해 인근 구룡역과 개포동역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활용해 2000㎡의 면적에 정수식물을 심고 관찰 데크를 설치한다. 영동4교 부근에는 기존에도 가을이면 벼농사 학습장, 겨울이면 썰매장을 운영하고 있어 이번 습지 복원으로 도심 속 살아 있는 학습 현장의 역할이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이 밖에 영동4교~대치교 구간 상단 길 400m 바닥의 탄성포장을 전면 교체해 보행 환경을 개선하고, 대치교~탄천1·2교 상단 산책로 5개 지점에 맥문동 3750주를 심어 경관을 가꾼다. 여울쉼터와 영동6교, 보행자교 인근에도 봄꽃을 대거 심는다. 낭만의 공간과 야생화 공간에는 경관조명 130개를 최근 설치 완료해 오는 4월부터 색다른 야경을 선사할 계획이다. 심덕보 양재천관리팀장은 “양재천의 자연성을 회복하고 계절별 특색 있는 풍경을 선사해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명소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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