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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치광장] 농사 시작을 알리는 선농대제/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

    [자치광장] 농사 시작을 알리는 선농대제/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농경사회였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겐 예기치 못한 자연 현상으로 인해 풍년과 흉년이 엇갈리는 게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백성들의 어려움을 같이 고민하고 백성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애민사상이 깃든 제례가 있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선농단의 선농대제가 바로 그것이다. 선농단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현재 위치에 단이 조성됐다고 한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에서는 절기에 맞춰 입춘과 입하, 입추 때 세 번에 걸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중 입춘 후에 지내는 제사를 선농제(先農祭)라 했다. 조선 태종 때 선농단 형태와 제도 전반에 대한 정비를 시작했고 성종 때 친경의식 전반에 대한 절차를 정비했다. 성종 7년에 조선 건국 이후 최초로 선농제를 지냈으며 숙종 대에 왕이 몸소 밭갈이 시범을 보이는 친경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예조에서 해일(亥日ㆍ穀雨日)에 제삿날을 정하면 임금은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당일 새벽 선농단에서 여러 중신과 백성들이 참가한 가운데 농사와 곡식의 신들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행사가 끝나면 왕은 모든 참가자들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해 소를 잡아 국말이밥을 내렸는데, 이를 ‘선농탕’이라 했다. 훗날 음운변화를 거쳐 설롱탕으로 읽게 되었고, 오늘날에 와서는 설렁탕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선농단과 선농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시설 대부분이 훼손됐고, 초석과 향나무 등 일부 잔존하던 선농단은 역사·문화적 가치와 의의를 되살리려는 민관의 꾸준한 노력으로 2015년 4월 선농단 역사문화관 조성과 함께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유산으로 계승 보존되고 있다. 1979년 제기동의 뜻있는 분들이 선농단의 전통을 보존하고 선인들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모임을 만들어 1년에 한 번씩 이 단에서 치제를 올리기 시작한 이래로 1992년부터 동대문구가 이를 계승해 매년 4월 곡우(穀雨)를 전후해 선농대제를 열고 있다. 올해도 20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초헌관으로 선농대제를 봉행한다. 농사의 시작을 알리고 풍년을 염원하려는 선현들의 얼이 깃든 곳에 많은 사람들이 들러 제례를 보고 무료 설렁탕도 먹으면서 진정한 애민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면 어떨까.
  • ‘홍·간·미·오’ 삼겹살, 님과 한겹… 봄맛 두겹

    ‘홍·간·미·오’ 삼겹살, 님과 한겹… 봄맛 두겹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낡은 간판이 걸려 있는 허름한 식당. 모여 앉아 삼겹살을 구우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에선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삼겹살을 상추에 싸 한입 가득 넣어주는 풍경에서는 푸근한 정이 느껴진다. 삼겹살이 서민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소통 문화의 코드로 불리는 이유다. 시인 안도현은 딱 두 줄짜리 시 ‘퇴근길’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아, 이것마저 없다면’이라고 삼겹살을 예찬했다. 혹자는 말했다. 삼겹살은 세월이 한 겹, 정성이 한 겹, 희망이 한 겹이라고. 여기에 지역의 특성과 문화까지 더해졌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삼겹살은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돼지 갈비에 붙은 살’을 말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삼겹살은 아니었다. 세겹살로 불리다 해방 이후 삼겹살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겹살이 삼겹살로 바뀐 설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개성 유래설이다. 개성 사람들이 돼지에게 지역 명물인 인삼을 먹였다고 해서 삼겹살이 됐다는 것이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인삼의 고장 충북 증평군이 탄생시킨 홍삼포크삼겹살이 진정한 삼겹살이다. 군은 10여년 전 홍삼 부산물을 사료로 먹인 돼지를 시험 사육했다. ‘부산물에도 사포닌이 많은데 사람이 먹기는 좀 그렇고, 한번 돼지에게 먹여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홍삼포크의 시발점이 됐다. 6개월간 친환경 사료 1t당 2㎏을 섞여 먹였더니 고기가 부드럽고 연하며 담백했다. 성공을 확신한 군은 2003년부터 보강천 체육공원에서 홍삼포크삼겹살 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의 백미는 기네스북에 최장 길이로 등재된 204m의 구이판에 홍삼포크삼겹살을 구워 먹는 이벤트다. 군은 2005년 12월 ‘사미랑 홍삼포크’란 상표까지 등록했다. 사미랑은 ‘인삼의 고장’, 홍삼포크는 ‘홍삼 먹인 웰빙 돼지고기’에서 이름을 땄다. 2008년 4월에는 홍삼 부산물을 이용한 돼지사육방법을 특허등록했다. 송정현(40·여) 사미랑영농조합 대표는 “일반 삼겹살보다 색깔이 진하고 탄력성이 뛰어나 쫄깃쫄깃하다”며 “잡냄새가 거의 없고 구워서 쌈장 없이 고기만 먹어도 될 정도로 고소하다”고 자랑했다. 가격은 일반 삼겹살과 같다. 군은 2015년 증평읍 송산로에 홍삼포크 전문 판매장을 열었다. 현재 증평에는 총 10곳의 홍삼포크 판매장과 식당이 있다. 인근 청주나 음성 등에도 홍삼포크 식당들이 영업 중이다. 충북 청주는 삼겹살의 고장으로 불린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삼겹살거리가 있고, 삼겹살축제까지 열린다.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편에 ‘청주가 돼지고기를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까지 나온다. 청주는 독특한 삼겹살 문화가 자리잡았다. 1960년대 초 청주에 삼겹살집들이 문을 열었는데 생삼겹살을 간장에 담갔다가 구워 먹는 간장구이와 대파를 가늘게 썰어 양념에 절인 파절이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원조가 누군지 불분명하지만 생강과 대파 등을 넣어 달인 간장소스에 삼겹살을 한번 적셨다가 구우면 누린내가 안 나고 육질이 부드러워졌다. 파절이는 느끼한 삼겹살과 찰떡궁합을 이뤘다. 이후 간장구이와 파절이는 청주 삼겹살과 ‘한몸’이 됐다. 청주 삼겹살거리는 2012년 서문시장에 조성됐다. 인근 대형마트에 밀려 인적이 끊긴 전통시장을 살려보겠다는 시민들이 청주시에 제안해 명물이 탄생했다. 현재 300여m 남짓의 작은 시장 골목에는 삼겹살 전문식당 12곳이 영업 중이다. 업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간장소스를 차별화했다. 김동진(54) 함지락식당 대표는 “지방분해에 좋은 녹차나 향이 좋은 당귀 등을 넣어 간장소스를 만드는 등 식당마다 특징이 있다”며 “간장을 찍어 구우면 간장치킨처럼 고기 맛이 짭짤해 자꾸 먹게 된다”고 말했다. 해마다 3월 1일부터 3일까지 3일간 이곳에선 삼겹살 축제가 열린다. 올해에는 2만여명이 다녀갔다. 매년 봄이면 경북 청도군 한재 미나리 생산단지에는 미나리의 향미를 즐기기 위한 미식가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 주말과 휴일에는 수십여대의 관광버스가 한재마을을 가득 메워 관광명소를 연상케 한다. 마을 초입부터 미나리 식당촌이 이어지고 식당마다 ‘미나리삼겹살’ 파티가 한창이다. 한재 미나리는 2월부터 4월까지가 제철이다. 3월이 되면 향취가 더욱 강해진다. 한재 미나리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생산단지를 찾아가는 게 좋다. 식객들은 연신 암반수를 이용해 키운 알싸한 봄 미나리를 삼겹살에 둘둘 말아 한입 가득 넣고 씹어 댄다. 차가운 물에 씻은 미나리와 뜨겁고 기름진 삼겹살이 만나 절묘한 맛을 낸다. 미나리는 아삭하게, 삼겹살은 부드럽게 씹힌다. 고기를 다 먹은 뒤에도 입안에서 미나리 향이 감돈다. 모두 행복한 표정이다. 이기동(58·대구 수성구)씨는 “매년 이맘때쯤 동료와 한재마을에 미나리삼겹살 먹으러 오는 일이 관례처럼 됐다”며 “싱싱한 봄 미나리와 삼겹살 쌈을 즐기는 맛에서 봄을 느낀다”고 했다. 한재 미나리는 다른 미나리보다 줄기가 굵고 육질이 연한 게 특징이다. 미나리는 혈액순환과 해독 효과가 있어 빈혈, 냉증,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 미나리삼겹살을 즐기기 위해서는 손님들이 고기와 김치, 음료수 등을 준비해야 한다. 불판과 가스레인지 등 기본적인 것만 제공한다. 주변에 와인터널, 프로방스, 운문사 등 둘러봐야 할 곳도 많아 미식 여행지로 제격이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일대는 ‘오삼불고기’ 명소로 유명하다. 겨울이 길고 눈과 바람까지 많은 탓에 50여년 전부터 매콤 달콤한 오삼불고기가 생겨났다. 오삼불고기 탄생에는 높고 골이 깊은 험준한 산세도 한몫 했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산골마을 사람들이 대관령 아래 강릉 주문진에서 지천으로 나던 오징어에 고추장, 파를 넣고 불고기를 만들어 먹으면서 자리잡은 음식이다. 처음에는 오징어만 갖고 막걸리와 소주 안주로 얼큰하게 만들어 먹던 게 시작이다. 이후 1980년대 들어 대관령 일대에 대단위 스키장과 고랭지 배추 농사가 유명해지고,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삼겹살을 섞어 오삼불고기로 변천했다. 요즘에는 건강식으로 더덕을 이용한 더덕즙을 양념장에 넣어 돼지고기 특유의 향을 잡는다. 대관령면에만 100여곳 식당에서 오징어불고기를 판다. 요즘에는 오징어와 삼겹살에 파를 썰어 넣은 게 인기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오삼불고기거리사업이 추진돼 외지인 발길이 이어진다. 횡계10리 인근 뒷골목 네거리에 11곳이 모여 있다. 함영만 오삼불고기거리사업추진위원장(횡계10리 이장)은 “오삼불고기는 대관령의 맛깔난 음식 가운데 하나로 다양한 메뉴도 함께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청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평창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한 컷 세상] 늦깎이 초등생의 행복

    [한 컷 세상] 늦깎이 초등생의 행복

    70대 늦깎이 할머니 초등학생이 정성스런 필채로 한글을 배우고 있다. 손자뻘 동급생들과의 생활과 하교 후 농사일을 하는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하지만 글 깨우침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행복감은 모든 피로를 잊게 한다고….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포토] ‘곡우’ 앞둔 농촌풍경

    [포토] ‘곡우’ 앞둔 농촌풍경

    오는 20일 절기상 곡우(穀雨)를 앞두고 17일 오전 전남 나주시 노안농협 육묘장에 깔린 모판에서 볏모가 푸릇푸릇하게 자라고 있다. 곡우 무렵에는 못자리를 마련하는 등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된다. 연합뉴스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흔한 것이 귀한 것이니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흔한 것이 귀한 것이니

    “봄은 자유롭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라고 시인 오규원은 말했다. 과연 봄이 무르익었다. 버들이 연둣빛이다. 추사 김정희의 인장 가운데 ‘양류당년’(楊柳當年)이 있다. “버들처럼 무성하던 그때”라는 뜻이다. 김정희가 가장 활발하던 시기를 상징한다. 누구에게나 물오른 버들처럼 푸른 시절이 있다. 그러나 꿈처럼 그 시절은 간다. 귀한 것들이 흔할 때가 봄이다. 충암 김정은 “산나물로는 삼백초와 고사리가 가장 많았다”고 했다. 300가지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그 귀한 삼백초가 제주도에 흔한 것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추사의 편지에도 “산채는 더러 있으나 본디 여기 사람은 먹지 않으니 괴이한 풍속이오”라고 했다. 산나물을 먹지 않는 제주 사람들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흔하기 때문이었다. 흔한 것을 이용한 귀한 행사가 있다. 제주 고사리축제가 그것이다. 제주 5현 가운데 한 사람인 동계 정온은 10년을 귀양살이했다. 이 긴 시간 동안 제주 여인 강씨가 고사리를 꺾으며 도왔던 덕분에 동계는 무사히 유배를 마쳤고, 말년에는 덕유산 자락에 “고사리를 꺾는 집”이라는 뜻의 채미헌(採薇軒)을 짓고 살았다. 이렇게 사랑과 정성은 물론 의리와 절개의 스토리가 제주 고사리와 함께 자란다. 흔한 것이 귀한 거라고 한다. 그러나 흔하기에 그 가치를 모르거나 잊고 지내기 십상이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은 “바닷가라서 좋은 채소는 적고, 좋다는 것은 쑥갓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쑥갓처럼 영양소가 풍부한 나물도 드물다. 또한 그가 좋아했던 것 중 하나가 아욱국이다. 맛이 너무 좋아 문을 걸어 잠그고 먹는 것이 ‘가을 아욱국’이고 그래서 막내 사위만 준다 했지만 ‘봄 아욱국’도 만만치 않다. 그 흔한 쑥갓과 아욱이야말로 귀한 나물이었던 것이다. 흔하지만 처리에 따라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봄에 흔한 꽃이 진달래다. 그러나 정조 때 권상신은 국수에다 진달래를 멋들어지게 얹힌 “진달래국수가 맛이 매우 좋았다”며 입을 다셨다. 어디 그뿐이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짇날이면 화전을 안주 삼아 술을 걸치는 전화음(煎花飮)의 풍습이 있었다. 화전 가운데 으뜸이 진달래전이었다. 함열에서 귀양 살던 허균도 봄날 별미로 진달래전을 꼽았다. 봄철 바닷가에는 갯무라는 ‘야생 무’ 꽃 또한 흔하다. 야생 무를 포르투갈에서는 사라마구라고 한다. 1998년 노벨문학상 작가인 조제 사라마구(Jose de Sousa Saramago)의 이름이기도 하다. 71세에 발표했던 소설이 교황청과 갈등을 빚자 정부는 유럽문학상에 선정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데, 이에 반발한 사라마구는 스페인의 란사로테로 자발적 유배를 가 버린다. 여기서 75세에 발표한 작품이 그 유명한 ‘눈먼 자들의 도시´다. 그러니까 갯무는 흔한 꽃이 아니라 가장 귀한 꽃인 셈이다. 몸소 귀하게 여길 때만 흔한 것도 귀해진다. 우암 송시열은 장기에서 귀양살이할 때 “뜰 앞에 작은 채소밭을 만들어 놓고 친히 스스로 모종을 심고 풀을 벴다. 또한 밭 가운데 생강을 심었다”라고 했다. 제주에서도 몸소 농사를 지었다. 아마도 “내가 지어야 할 농사를 내가 지어서 내 삶을 보살피고, 내가 가진 책을 내가 읽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며 내 인생을 마치려 한다”라고 했던 제주 유배인 유언호와 같은 자세라면 가장 흔한 것도 가장 귀한 것이 될 것이다. 봄이 가기 전에 그래야 한다.
  • 여성농업인 10명 중 8명 “남성보다 지위 낮다”

    여성 농업인 10명 중 8명이 자신의 지위를 남성 농업인보다 낮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여성 농업인 관련 업무를 중점적으로 추진할 전담팀을 구성·운영할 계획이다. 농식품부는 일반 여성농업인 1534명, 귀농 여성농업인 267명, 농촌지역 다문화여성 248명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성 농업인이 자신의 직업적 지위를 공동경영주 또는 경영주로 인식하는 비율은 38.4%로 조사됐다. 여성 농업인의 지위를 남성과 비교했을 때 ‘예전보다 높지만 남성보다 낮거나 여전히 남성보다 낮다’는 의견이 81.1%였다. 연령이 낮을수록 여성 농업인의 지위가 남성과 평등해야 한다는 응답이 높았다. 30 이하의 75.9%, 40대의 77.2%가 향후 지위가 남성과 같아야 한다고 답했다. 여성 농업인이 참여하는 농작업의 종류로는 판로 결정이 57.6%로 가장 높았고, 농사기술 및 판매 정보가 56.1%로 뒤를 이었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으로는 ‘농사일에 체력이 부족’(32.8%), ‘농사와 가사 병행이 어려움’ (24.5%), ‘농기계 및 시설 사용이 어려움’(16.1%) 순으로 나타났다. 여성 농업인 정책에 대한 인지도는 항목별 6.1%에서 39.4%로 조사됐다. 한편 농식품부는 여성 농업인의 농업·농촌에서의 역할 증대와 여성 농업인 특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여성농업인 전담팀을 구성할 계획이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볍씨 담그는 이재민들… 화마 딛고 서둘러 일상으로

    볍씨 담그는 이재민들… 화마 딛고 서둘러 일상으로

    일손 보태는 자원봉사자들 도움 큰 힘 동해시 오토캠핑장은 14일부터 정상화강원 산불 지역들이 ‘화마’ 피해를 입은 생채기에서 차츰 벗어나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산불피해 이재민들은 10일 영농철을 맞아 볍씨 담그기와 못자리 만들기를 비롯해 캠핑장 정상화 등 일상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시름에 빠져 있는 이재민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크다. 피해가 가장 컸던 고성지역에서는 군과 농협을 중심으로 영농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산불로 볍씨와 농자재, 농기계 등 피해를 입은 농가의 영농지원에 나섰다. 이재민 상당수가 농사가 생계수단인 농민인 만큼 모내기 등 적기 영농을 최대한 지원해 실의를 딛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산불 피해 농가에 볍씨, 육묘, 육묘상자 무상 지원, 옥수수, 콩 등 밭작물 종자 지원과 농업기계 임대사업소 보유 농기계 지원, 못자리 설치와 모내기 일손돕기 지원 등 지원에 나서고 있다. 다른 피해지역 지자체들도 가장 우선 영농지원에 나서 이재민들의 시름을 한결 덜고 있다. 이재민들 스스로도 복구에 나서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강릉에서 집과 선산을 지키느라 밤새도록 산불과 사투를 벌였다는 김연옥(여·63)씨는 “불이 꺼지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안 아픈 곳이 없는데 그래도 농사는 지어야 하니 고추를 심으려고 골을 파고 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차 방문한 박상희 광주광역시 광산주자원봉사센터장은 “산불로 피해를 입은 분들을 위해 작은 일손이나마 보태고 싶어 새벽밥 먹고 달려왔는데 막상 현장을 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안타깝다”며 “하루빨리 이재민들이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동해시는 화재 피해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망상 오토캠핑리조트을 빠르면 오는 14일부터 조기 정상화할 계획이다. 산불로 망상 오토캠핑리조트 시설의 상당부분이 소실됐지만 남아 있는 제2 캠핑장부터 문을 열고 정상 운영하기로 하고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또 산불 피해를 입은 제1 캠프장 내에서 소실되지 않은 한옥과 캐러밴 등도 전기시설을 응급 복구해 오는 5월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고성·동해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종합] 아이유 기부 의혹 해명, “산불피해 아이들 없다?” 기부해도 난리

    [종합] 아이유 기부 의혹 해명, “산불피해 아이들 없다?” 기부해도 난리

    아이유 기부에 황당한 의혹이 제기됐다. 가수 아이유가 최근 일어난 강원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1억 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기부 단체를 두고 황당한 의혹이 불거졌다. 아이유는 지난 5일 강원산불 피해 주민들을 위해 써달라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1억 원을 기부했다. 앞서 아이유는 해당 재단을 통해 저소득층 및 조손가정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해 꾸준히 기부해왔다. 이와 관련해 한 네티즌은 ‘아이유의 수상한 기부’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네티즌은 “산불피해 지역 자체가 산골이라 초등학교도 아예 없고, 농사짓는 노인들, 전원주택 짓고 사는 은퇴자뿐이다. 뉴스를 봐도 노인들만 나와서 울고 있다”면서 “강원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어린이 관련 재단에 기부한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이유가 과거에도 이 어린이단체를 선택해 기부한 적이 있다면서 밑도 끝도 없이 수상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주장 글에 동조하는 듯한 댓글들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이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해명에 나섰다. 재단 측은 “먼저 후원자님의 순수한 기부의 뜻이 왜곡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앞서 다음과 같이 사실을 확인해 말씀드리고자 한다”며 반박 댓글을 게재했다. 재단은 “산불 발생 지역에 지원 아동의 가정 중 네 가정이 이번 화재로 주거지가 전소됐다”라며 “나머지 다수의 가정들도 추가 피해를 우려해 긴급 대피소로 피난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이미 많은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진 것처럼 가수 아이유 씨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자이기도 하지만, 재단에만 후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모교인 동덕여고 발전기금 지원, 서울시 농아지원센터 기부, 승일희망재단 후원 등 평소에도 다양한 NGO를 통해 후원하며 사회에 나눔의 가치를 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갑작스러운 피해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동과 가정에 따뜻한 선의를 표한 가수 아이유씨를 비롯해 여전히 많은 후원자님들께서 강원산불 피해 아동을 돕기 위해 재단의 후원에 동참하고 계시다”면서 “개인의 허위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정보 등이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확산되는 것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기부에 대한 불신감, 기부문화 축소로 이어지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제때 도움을 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번 강원산불 피해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헬기 못가는 곳 호스 끌고 가 사투” 비정규직 특수진화대원의 헌신

    “헬기 못가는 곳 호스 끌고 가 사투” 비정규직 특수진화대원의 헌신

    양양 진화대 양승현씨 “고향 지키는 일 자부심”6~10개월마다 재계약…“다치면 연장 어려워”“‘고생하셨다’는 시민 한마디에 힘내”“까맣게 불탄 나무처럼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속도 까맣습니다.”(특수진화대 소속 A씨의 SNS 글 중 일부) 강원 산불 현장의 최일선에서 불을 껐지만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산림청 소속 특수진화대 대원들이다. 헬기가 뜨지 못하는 밤에도 500m 남짓 되는 호스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 불과 사투벌이는 게 이들의 임무다. 산불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서서 마을과 주민들을 지키지만 이들은 6~10개월마다 재계약해야만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강원도 양양 국유림관리소 특수진화대에서 조장인 양승현(44)씨는 7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산불 때도 이틀 정도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진화 작업했다”고 했다. 양양이 고향인 양씨는 10년 넘게 진화대에 몸을 담고 있다. 양씨는 “농사 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시작한 일이지만 고향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친구나 선배의 마을이 불타 없어진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특수진화대는 보통 10~12명이 한 조를 이뤄 움직인다. 양씨는 “대부분 7~10년 이상 경력을 가지신 베테랑”이라며 “산에서도 무전기 하나만으로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씨의 팀의 유효기간은 1년 정도다.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받는 월급은 250만원 남짓. 양씨는 “재계약 때마다 다시 서류를 준비하고 체력 테스트를 봐야 한다”며 “그 시기에 다치기라도 하면 재계약이 어려워져 노하우를 가진 아까운 인재를 놓치기도 많다”고 했다.강릉 국유림관리소 특수진화대 소속인 유승완(58)씨 역시 고용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유씨는 “그나마 10개월 단위로 계약하던 게 올해부턴 6개월 단위로 바뀌었다”며 “오는 9월에 다시 테스트를 봐야 한다”고 했다. 유씨는 이번 강원 산불 때에도 삼시세끼 김밥 한 줄씩만 먹으며 혹시나 뒷불이 나진 않을까 차에서 쪼그려 앉아 대기하며 며칠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유씨는 화재 상황에서 겪는 위험보다 불안정한 고용이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서인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도 많이 들어온다”며 “나야 이제 나이가 많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 같은 친구들이 지형적 특성으로 산불이 매번 나는 강원에서만큼은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섰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소방관들과 같은 일을 하지만 특수진화대의 존재와 노력을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지난 6일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된 특수진화대 소속 A씨는 “정규직 소방관들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까맣게 불탄 나무처럼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속도 까맣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양씨는 “사람들이 소방관들만 알고 우리의 존재는 잘 모르지만 괜찮다”면서도 “다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열심히 불을 끄고 잠깐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불 끄러 왔으면서 목구멍으로 그게 넘어가느냐’라며 언성을 높이는 분들이 있을 땐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도 우리가 지나갈 때 차들이 먼저 비켜주고 일이 다 끝나면 ‘고생하셨다’고 말해주는 주민들 때문에 힘내서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다시 어떻게든 해봐야지… 우리집 옷 드릴게, 우선 그거 입어요”

    “다시 어떻게든 해봐야지… 우리집 옷 드릴게, 우선 그거 입어요”

    잿더미 된 집 앞서 망연자실한 이웃 위로 타지서 급히 온 가족·자원봉사자들 수고“퇴직금 털어 짓는 농사 다 타버려” 눈물 통신사 직원들 전봇대 통신망 밤샘 복구 전국서 성금 100억 등 구호품 온정 밀물“우리 집에서 옷을 좀 가져다 드릴게요. 우선 그거라도 입어요.” 지난 4일부터 강원 인제·고성·속초·강릉·동해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릉 옥계면에 사는 허금석(64)·정계월(59)씨 부부의 터전을 훑고 지나갔다. 부부는 잿더미가 된 집을 망연자실 바라만 봤다. 경운기, 용접기, 이앙기, 볍씨발아기가 까맣게 그을린 채 엎어져 있었다. 피해가 그나마 적은 옆 동네 주민 윤상기(64)씨가 부부를 위로하러 왔다. 윤씨는 “다시 어떻게든 해봐야지. 무슨 수가 있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화마가 삼켜버린 동네에 잿더미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강원 지역 일대에는 7일 하루종일 외부 차량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과 자원봉사자, 공무원들은 불안에 떠는 이재민을 끌어안았다. 장천마을 주민 박춘랑(85)씨의 큰아들도 차를 몰고 달려와 불안에 떠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박씨는 “겁이 나 집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다가 아들과 함께 불에 탄 집을 둘러봤다”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친 불길은 풀 한 포기조차 남기지 않았다. 장천마을은 이번 화재로 건물 50여채가 전소됐다.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주민들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이 마을 주민 엄기찬(64)씨는 “퇴직하고 40년 만에 고향에 와서 살려고 퇴직금을 전부 털어 고사리 농사(450평)를 짓고 있었는데, 다 타버렸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마을에서 40년 넘게 거주한 엄기만(80)씨의 집 앞마당에 있는 쌀 저장고에는 새까맣게 탄 나락만 남아있었다.생계가 막막해진 이재민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건 이웃의 격려와 지원 때문이다. 메케한 냄새가 가시지 않은 현장에는 소방대원들과 군인,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이젠 ‘복구’를 목표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육군 23사단 조성민(21) 일병은 “제가 낯선 강원도에서 주민을 돕듯 제 고향에서 만일 화재가 났다면 그쪽의 군인과 주민들이 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가야지 어쩌겠느냐”는 한 이재민의 말처럼 마비된 공동체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도 분주했다. 택배회사 직원들은 불에 타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택배터미널 옆 공터에서 배송품을 펼쳐놓고 열심히 분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해가 진 이후에도 자동차 불빛과 휴대용 손전등에 의지해 통신선 복구 작업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복구업체 직원 류모(39)씨는 “주민들의 불편함을 덜어주려면 밤샘 작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빠르게 작업을 이어갔다. 이재민을 위한 구호품과 성금도 전국에서 모이고 있다. 법정 재난·재해 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73억 6500만원)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25억 6300만원)에서만 100억원에 육박하는 기부금이 모였다. 강원도가 이미 지급한 구호 세트·구호 키트·생필품 등은 12만개에 달한다. 고성 천진초등학교에서 피해 주민들의 ‘산불 트라우마’를 어루만져 주는 박부녀 활동가는 “같이 끌어안고 울고 토닥이며 악몽을 치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성·속초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강릉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강원 화재]타버린 탈곡기와 경운기…“앞으로가 막막해요”

    [강원 화재]타버린 탈곡기와 경운기…“앞으로가 막막해요”

    화재 진압 마무리 단계…생계 걱정 앞선 이재민들“작물·농기계 타버려 걱정”…노후 생활 꿈도 무너져외지 가족들 찾아와 위로…집 잃은 가축들도 배회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등지에서 발생한 강원 산불 사흘째인 6일 재발화 없이 화재는 진압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정부의 총력대응으로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던 화재 규모와 비교해 인명피해 등을 줄였다. 하지만 이재민들은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재민의 가족·친척·지인들은 현장을 찾아 놀란 이재민들을 달래고 현장 정리를 도왔다. ●생계 수단까지 삼켜버린 대형 산불 6일 오전 강원 속초시와 강릉시의 주민들은 화재에 까맣게 잿더미가 된 농작물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 마을 건물 50여채가 전소된 속초시 장천마을 주민 엄기찬(64)씨는 “이제 퇴직하고 40년 만에 내 고향에 와서 살려고 장천마을에 먼저 고사리 농사 450평을 짓고 있었는데 다 타버렸다”면서 눈물지었다. 엄씨는 “이번 주에 고사리를 거두고 다음 달에 아내와 고향에 돌아와 살려고 했는데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됐고 생가는 잿더미가 됐다”면서 허무해했다. 이어 “재건하려면 몇 년은 걸릴 것 같은데 그동안 꿈꿔왔던 노후 생활도 2~3년 미뤄질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농기계가 모두 타버린 탓에 막막함을 호소하는 농민도 많았다. 이 마을에서 40년 넘게 거주한 엄기만(80)씨는 “우리 아들, 딸, 손주들 주려고 직접 심고 거둔 쌀 열댓 가마니가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탈곡기까지 다 망가져버렸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이어 “속초에 대피했다가 돌아올 때만 해도 이 꼴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엄씨의 집 앞 마당에 있던 쌀 저장고에는 쌀 한 톨 남김없이 새까맣게 타버린 상태였다. 강릉시 옥계면에 거주하는 정계월(59)씨는 “농사지어 팔려던 고추랑 고구마 모종 총 1600만~1700만원 어치가 순식간에 타버렸다”고 발을 굴렀다. 정씨는 “수천 만원 들여서 마련한 경운기, 용접기, 사각 베일러(짚 묶는 기계), 이양기, 볍씨 발아기까지 죄다 타고 틀만 남았다”면서 “당장 다음달부터 농작물을 심어야 하는데 올해 농사 전체를 글렀다”며 한숨을 쉬었다.정씨는 화마에 농작물뿐 아니라 살던 집도 잃었다. 앞산에서 붙은 불덩어리가 집 뒷산까지 날아와 집 곳곳에 붙자 200평 대지가 5분도 안돼 전소했다. 정씨의 남편 허금석(64)씨는 “농기계 사고 집 사고 애들 교육시키느라 평생을 빚만 갚다가 작년에 겨우 다 갚고 이제 좀 살 만하다 하니까 이렇게 다 타고 없어져버렸다”면서 속상해했다. 이어 “아들 결혼할 때 반지 하나 못해줬다”면서 “없이 사니까 미안해서 (아들에게) 무사하다고 연락만 하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온다고 하더라”라면서 덧붙였다. ●이재민 걱정에 만사 제쳐두고 현장 찾은 가족들 화재 피해를 입은 강원 지역 일대에는 6일 하루종일 외부차량이 드나들었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들이 찾아와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불안에 떠는 이재민 가족을 끌어안았다. 장천마을 박춘랑(85)씨는 큰 아들이 차를 몰고 달려와 불안에 떠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박씨의 집은 타지 않았지만 바로 옆 소 축사와 그 안에 저장해뒀던 비료가 불타 온 집안에 탄내가 진동하고 잿가루가 날렸다. 집안 곳곳을 살피고 돌보는 박씨 아들의 뒤를 까맣게 그을린 백구가 좇았다. 박씨는 “아들이 일전에 데려와 맡겼던 백구가 검둥이가 돼선 이따금 눈물을 흘린다. 많이 놀랐다보다”라면서 “대피하면서 다칠까봐 풀어주고 갔는데 내내 집 주위를 배회한 것 같다”고 백구를 쓰다듬었다. 백구의 집은 다 녹아서 없어져버렸다. 80대 고씨 형제는 장천마을에 모셔둔 부모님 묘지가 걱정돼 현장을 찾았다. 고수길씨는 “장천마을이 다 탔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라고 걱정했는지 모른다”면서 “싹 타버린 부모님 묘에 술 한 잔 올리고 내려왔다. 다음에 다시 와서 싹 정리해야겠다”고 말했다. 이재민이 걱정돼 속초·강릉·고성 일대를 찾은 가족과 친지들로 인해 강원 일대는 차량으로 붐볐다. 이재민들은 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포토] 강원도 산불 피해 주민 위로하는 이낙연 총리

    [포토] 강원도 산불 피해 주민 위로하는 이낙연 총리

    이낙연 국무총리가 5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화재 지역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 총리는 “정부가 아침 9시를 기해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법이 허용하는 최대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이 단계가 지나면 피해 정도를 조사해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따른 지원 등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집을 잃은 분들에게 임시거처를 마련해드리고 제도가 허용하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주택복구를 지원해드리겠다”며 “마침 지금이 농사가 시작되는 계절이므로 농사를 짓는데도 차질이 없도록 고성군과 협의해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소박한 행복 넘치는 ‘불의 고장’…느긋한 풍경 익어 가는 ‘맛의 고장’

    소박한 행복 넘치는 ‘불의 고장’…느긋한 풍경 익어 가는 ‘맛의 고장’

    여행은 회복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며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 좋은 풍경 앞에 서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안한 숙소에서 쉬다 보면 지친 영혼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 같다. 어디 낯선 곳으로 가 사나흘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일본만큼 적당한 곳이 있을까. 한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저가항공도 많아 항공권도 비싸지 않은 데다 물가도 한국과 비슷해 금전적인 부담도 적다. 도쿄, 오사카와 함께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일본 도시는 후쿠오카다. 규슈에서 가장 큰 도시로 후쿠오카 시내를 다니다 보면 한국인이 행인의 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다. 후쿠오카가 규슈의 대표 도시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신칸센이 들어오면서부터. 그 전까지 규슈의 중심은 구마모토였다. 우리에게는 후쿠오카, 미야자키, 나가사키 등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구마모토현의 전체 인구는 약 180만명. 이 가운데 구마모토시에 약 80만명이 살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정확히 1시간 20분 만에 구마모토공항에 도착했다. 구마모토공항은 국제선 공항이 국내선보다 규모가 훨씬 작다. 해외에서 여행객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수속도 얼마 걸리지 않아 10여 분 만에 끝난다.●일본 온천 랭킹 1위… 구로카와 온천마을 공항을 빠져나와 첫날 숙소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제주와 비슷하다. 부드러운 곡선의 구릉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일행 중 어떤 이는 이 풍경이 홋카이도와 비슷하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하와이와 비슷하다고도 말한다. 필리핀 보홀과 비슷하다는 이도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다니던 일본과는 약간 다른 풍경이다. 첫날 숙소는 구로카와 산아이 고겐 호텔. 1967년에 문을 열었다. 오래된 료칸호텔이지만 리뉴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룸 컨디션이 아주 좋다. 다다미방과 양실방이 모두 있다. 방도 방이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끝없는 아소 평원이 탁 트인 전망을 보여 준다. 구릉지대가 드넓게 펼쳐지고 갈대가 봄바람에 한가롭게 흔들린다. 멀리 옛 화산 분화 흔적이 보이는 높다란 산봉우리들이 이어진다. 방에 트렁크를 놓자마자 유카타(목욕용 가운)로 갈아입고 로텐부로(노천탕)로 향한다. 구마모토는 구로카와 온천마을로 유명하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구로카와 온천마을은 옛 온천 요양지의 소박한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 온천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로텐부로의 운치는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는 순간 지극한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 든다. 사방이 탁 트인 로텐부로가 일본 여행의 백미라면 이 료칸의 로텐부로는 지금까지 경험한 일본의 여러 온천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어느새 해가 뉘엿하게 지고 푸르던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든다. 지평선에 환하게 돋는 별. 여행을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세계 최대 칼데라 화산… 아소산 구마모토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아소산이다. 다카다케(高岳·1592.3m), 나카다케(中岳· 1506m), 네코다케(根子岳·1408m), 에보시다케(烏帽子岳·1337m), 기시마다케(杵島岳·1270m)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칭해 아소오악(阿蘇五岳)이라 부른다. 아소산은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가지고 있는 화산으로, 가운데 자리한 나카다케는 지금도 활동 중이다. 료칸에서 나와 아소산으로 향한다. 아소는 ‘불의 고장’으로 통하는데, 일본에서 화산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일본 전역에 분포된 화산 수는 111개. 이 가운데 아소에만 11개가 있다. 아소 지역은 평평한 분지 형태인데 이는 23만년 전에서 9만년 전 사이 4번의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칼데라 때문이다. 칼데라는 남북 25㎞, 동서 18㎞에 이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 여전히 수증기를 내뿜으며 화산 활동 중인 나카다케가 위험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에 여전히 살고 있는 이유는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하기 때문이다. 용암이 굳어서 생긴 땅은 오랜 시간이 지나 용암이 부서지면서 흙이 된다. 이 흙은 많은 영양을 함유하고 있는데 그 위에 다시 다양한 광물질을 함유한 화산재가 쌓이면서 농사짓기에 좋은 기름진 땅이 된다. 아소 지역에는 1만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5~6세기 일본 나라시대에는 이 지역에서 사육된 소와 말이 왕에게 진상될 정도였다. 그만큼 품질이 좋았다는 것이다. 료칸을 출발한 버스는 고원도로의 오르막길을 30분 정도 달려 넓은 초원에 도착한다. 아소산 서쪽에 자리한 구사센리(草千里)다. 해발 1000m에 자리한 구릉 초원으로 동쪽으로는 아소오악을, 반대 쪽으로는 구마모토를 달리는 거대한 산줄기와 평원을 조망할 수 있다. 차가 구사센리에 다가가면 산 정상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나카다케다. 수증기는 땅속에 있는 마그마가 스며든 빗물을 끓여서 다시 내놓으면서 생기는 것이다. 나카다케가 자리한 평원은 27만년 전 화산이 터지면서 만들어진 칼데라의 바닥이다. 원래는 물이 가득 찬 호수였지만 지금은 약간의 물이 보일 뿐이다. 평원 뒤로 펼쳐진 산줄기는 칼데라의 외벽으로 총길이가 128㎞에 달한다. 예전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나카다케의 분화구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중단됐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유황이 날려 위험하기 때문. 실제로 살짝만 맡아도 가슴에 고통이 느낄 정도라고 한다. 나카다케는 796년 처음으로 폭발했다.●일본 3대성 구마모토성 아소산과 함께 구마모토를 대표하는 여행지는 구마모토성이다. 구마모토시는 구마모토성을 중심으로 거리가 조성돼 있다. 구마모토성을 만든 인물은 우리가 잘 아는 가토 기요마사다. 임진왜란의 선봉장이던 그는 전쟁에서 돌아와 이 성을 만들었다. 성벽의 높이가 20m에 달하는 이 성은 히메지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으로 꼽힌다. 보기에도 육중하다. 해자 바닥에서 재면 가장 높은 성벽이 무려 30m나 된다. 이는 일본 성 중 최고다. 가토 기요마사는 1597년 울산에 왜성(학성)을 쌓고 4만 7000명의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포위 공격을 견딘다. 그의 군대는 1만 5000명. 물과 식량이 떨어진 상황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는데, 조선과 명나라군은 우세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성을 함락하지 못했다. 이 전투를 거울삼아 기요마사는 구마모토성을 쌓는다. 그는 소변과 말의 피를 마셨던 기억을 되살려 성내에는 우물을 120개나 파고, 만약의 경우 비상식량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고구마 줄기로 다다미를 짰다. 은행나무를 많이 심은 것도 은행을 비상식량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구마마토성의 별칭이 은행나무성(銀杏城·긴난조)이다. 1977년 사이고 다카모리가 일으킨 세이난전쟁(西南戰爭)에서 규슈를 석권했던 그가 이 구마모토성만은 끝내 함락하지 못했다. 당시 다카모리의 군사는 1만 4000명, 구마모토는 고작 3400명이 있을 뿐이었다. 이 구마모토성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 주는 일화다. 하지만 지진은 견디지 못했다. 2016년 4월 구마모토 지진이 났을 때 무너져 내렸다. 아직도 곳곳에 지진의 잔해가 남아 있다. 성을 둘러싼 강은 무너진 돌이 가득 채우고 있고, 각종 건설 장비들이 성을 복원하고 있다. 구마모토성 앞에는 에도시대의 옛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거리인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이 있다. 각종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오사카에 뒤지지 않는 구마모토의 음식 구마모토를 대표하는 음식은 말고기다.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뒤 먹을 게 없을 정도로 궁핍했을 때 죽은 말고기를 먹게 했다는 데서 말고기 식용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말고기는 다양한 방법으로 먹는다. 구마모토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방식은 사시미. ‘바사시’라고 부르는데 마늘과 생강을 곁들인 간장에 찍어 먹는다. 맛은 소고기와 비슷한데 한결 진하다. 레몬을 살짝 뿌리면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혀를 튀겨 먹기도 한다. 닭모래집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식감이 더 부드럽다. 말고기는 도저히 못 먹겠다고 겁먹은 사람도 한 번 맛보면 젓가락이 바빠진다. 구마모토성 앞에서는 말고기 고로케도 맛볼 수 있다.‘가라시렌콘’도 구마모토의 명물 요리다. 연근을 유채 기름에 튀겨 낸 것인데 연근 구멍에 보리 된장을 섞은 겨자를 채워 넣었다. 연근의 아삭한 식감과 코를 톡 쏘는 매운맛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맥주 안주로도 좋다. 일본은 와인 생산국이다. 전국에 200여개의 와이너리가 있다. 구마모토에도 와이너리가 있다. 생각보다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기 때문이리라. 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외곽을 나가면 ‘기카 와이너리’가 있다. 이 와이너리는 정말 멋진 샤도네이를 만들어 낸다. 향과 맛이 프랑스나 호주 등 유명 와인 산지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오크통에서 숙성한 와인도 수준급이다. 식용 포도인 거봉으로 만든 레드와인은 디저트 와인으로도 좋다. 곧 피노누아 등도 생산한다니 기대가 된다. 와이너리를 돌아본 후 료칸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온천에 몸을 담갔다. 어느새 별이 환하다. 별을 바라보고 있으니 인생이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잘 것 없다는 게 아니라 뭐랄까, 인생이란 게 꼭 커다란 이념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부와 명예 같은 걸 이루어야 꼭 제대로 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냥 즐거운 음악을 듣고, 맛있는 술과 음식을 먹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이나 다니는 인생 정도면 성공한 것 아닐까.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여행수첩 구마모토 시내 가미토리에 ‘디엠시 투어 플라자’(096-276-6875)가 있다. 일종의 여행자 안내소다. 한국어가 가능한 안내원이 상주한다. 구마모토현 내 여행상품도 판매한다. 구마모토의 마스코트인 구마몬 캐릭터 상품과 특산물인 딸기로 만든 쿠키, 바질페트, 차, 소바 등도 판매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짐 보관도 가능하다. 항공은 티웨이와 에어서울이 운항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이 걸린다. 구마모토 라멘도 맛보자. 고쿠테이(亭·096-321-6202)가 유명하다. 샛노란 날달걀 두 개가 얹혀져 나오는 ‘다마고이리 라멘’을 내놓는다. 돈코쓰라멘인데 국물색이 다소 붉고 뻑뻑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진하다. 탱탱한 면발은 후쿠오카의 그것보다 조금 더 쫄깃쫄깃하다.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만족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만족

    봄이다. 봄이 되면 농사짓는 일을 하지 않아도 분주하다. 얼음이 녹으니 딱딱하게 굳어있던 땅이 부풀고 부푼 숨결에 나무들도 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겨우내 얼까봐 사용하지 않던 지하수를 연결하여 먼지 쌓인 장독대 씻어내고, 아직 쌓여 있는 낙엽을 포대에 담아야 한다. 작년부터 텃밭에서 비닐을 사용하지 않기에 태우지 않는다. 낙엽은 비닐 대신 텃밭을 덮는 역할도 하지만, 퇴비 만들 때도 사용한다. 함께 사는 동물들이 많다보니 그 뒤처리 과정이 만만찮다. 도시에 살면 화장실용 모래 구입하느라 꽤 많은 비용이 들텐데 계분과 함께 퇴비로 만들고 있다. 그렇게 일년 내내 사용할 낙엽은 대부분 커다란 밤나무 두 그루가 내어준다. 작년에 고구마 심던 자리를 없애고 화단을 넓혔다. 그늘진 자리라 잎만 무성해지고 수확이 보잘것없어 정리했다. 더덕 옮겨 심고 딸기밭 다시 만들었다. 관리가 되지 않으니 더덕넝쿨보다 환삼덩굴 같은 가시덩굴이 자꾸 엉켜 볼썽사납기만 했다. 개미들이 진을 친 부추밭도 정리해서 옮겨 심었다. 새로 포도나무와 살구나무, 측백나무를 사서 심었다. 앞으로 나무 몇 그루 더 심어야겠고 꽃씨도 뿌리고 모종도 사다 심어야 하는데 하루는 짧고 할 일은 끝이 안 보인다. 손은 퉁퉁 붓고 몸은 뻣뻣해지고 겨우내 움직이지 않은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마당이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생각하니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사과나무 키우자니 예전 살던 집 자두나무 생각나고 복숭아도 키우고 싶다. 장미를 바라보면 제라늄 키우던 일 생각나고 다알리아 키우는 사람이 부러워진다. 화단 가득 채워진 라벤더와 로즈마리. 코스모스 넘실대는 풍경, 연꽃과 수련이 피어나는 연못은 상상만으로 행복해지고 옥수수밭 사이를 걷던 추억이 떠오르며 부추기니 지금도 키우는 것이 적지 않은데 봄날의 꿈은 아지랑이마냥 끝없이 피어오르려 한다. 적당히 멈춰야겠다. 지금 키우는 것보다 빈곳을 채우려 하니 끝도 없다. 빈자리가 어디 사라지겠는가. 그것 채우는 데 즐거움을 둘까 저어된다. 오늘도 마당일 하려는데 호스에 연결된 분사기가 얼어 터졌다. 한겨울엔 잘 넘겼는데 꽃샘추위 방심하다 터져버렸다. 큰 욕심보다 소소한 마음잡기 소홀하면 이렇다.
  • [박미경의 사진 산문] 이 사진가의 ‘대관령’ 사진 농사

    [박미경의 사진 산문] 이 사진가의 ‘대관령’ 사진 농사

    소가 쟁기를 끌고 지난 자리마다 가지런한 긴 고랑이 생겼다. 고랑 옆으로는 농부가 쟁기를 잡고 걸어서 난 발자국이 점점이 이어진다. 지문처럼 촘촘한 고랑 사이사이에 소와 농부의 시간이 새겨져 있는데, 아직도 갈아야 할 밭이 가없이 넓다. 항공 촬영처럼 위에서 내려다본 앵글의 이 사진은 사진가가 자주 오르내리던 산등성이에 서서 땅과 사람이 하나의 풍경으로 균형을 이룰 때를 오랫동안 기다려 찍은 것이다. 다른 사진 속에서 호미를 들고 김매는 아낙들의 굽은 등허리와 비탈밭의 능선이 서로 닮은 채 굽이져 흐른다. 밭의 기울기는 호미 날만큼이나 가파르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활짝 핀 꽃처럼 배추들이 벙글어져 있고, 그 배추가 열을 이룬 속에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다. 땅을 향한 저 웅크림들이 배추를 개화시킨 힘일 것이다. 원경을 안개가 지워 버린 사진 속의 밭들은 누가 보아도 고랭지 배추밭이다. 대관령의 흔한 풍경 같아도 유정한 시선으로 오래 깊이 들여다본 사람의 심상이 함께 담겨서 사진은 얇지 않고 두툼하다. 사진가 김남돈이 찍은 ‘대관령’ 사진들이다. “사진을 시작한 후 내 발걸음은 언제나 대관령이었다. 추운 대관령에 올라 폭설과 짙은 안개를 마주하고 있으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내게 대관령은 아버지이자 아버지의 대지다.” 사진가의 아버지는 일평생을 대관령에 기대 산 농부였다. 가파른 비탈에 꼿꼿이 서서 때론 구릉처럼 낮게 엎드려 쉼 없이 농사일을 했다. 농사일을 안 하는 동안에는 나물을 뜯거나 약초를 캐러 다녔고, 겨울이면 토끼나 꿩을 잡으러 눈 덮인 산을 오르내렸다. 어린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좀더 자라서는 아버지를 도와 고랭지 밭에 배추와 감자를 심어 길렀고, 약 치고 거름 주는 일을 거들었다. 장성한 후에는 도시로 나가느라 아버지 곁을 떠났지만, 대관령이 바라다보이는 강릉이 새 주소지였다. 그에게 대관령과 아버지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이미지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눈 많고 안개 짙던 대관령의 자연이 구릉과 비탈밭이 그 배경으로 함께 떠올랐고, 대관령의 자연을 떠올리면 그 풍경 어딘가에 아버지가 서 있거나 엎드려 있었다. 사진가가 된 아들이 십수년째 대관령만을 오로지하며 사진 찍는 것도, 그의 사진들 속에서 대관령의 자연 풍경과 그 땅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노동의 풍경이 이토록이나 조화로이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흑백사진 속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무채색들이 왠지 그립고 따스한 정서를 드러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여행자의 시선으로는 쉬이 포착하기 어려운 대관령 풍경의 한 정점이 사진가 김남돈의 ‘대관령’ 속에 있다.“나도 언젠가는 태어났고 살아온 이곳에 묻힐 것이다. 그 순간까지 아버지와 대관령을 사진으로 담을 것이다.” 김남돈이 작업 노트에 쓴 다짐 글이다. 농부였던 아버지처럼 묵묵히, 앞으로도 사진으로 일구어 갈 그의 ‘대관령’ 농사가 궁금하다. 그동안 찍어 온 수천 컷의 사진들을 골라서 한 권의 사진집으로 묶으려는 꿈도 지니고 있다.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사진집의 첫 장은 아버지와 대관령에 대한 헌사로 시작될 것이다.
  • 강동 “건강한 먹거리 일구는 텃밭 농사 시작해요”

    강동 “건강한 먹거리 일구는 텃밭 농사 시작해요”

    도시에 녹지와 쉼, 건강한 먹을거리를 수혈하는 도시텃밭은 서울 강동구의 자랑이다. 강동구는 지난달 30일 명일근린공원 공동체텃밭에서 ‘2019 도시텃밭 개장식’을 가지면서 지역의 도시텃밭 8곳이 올해 농사를 시작했다고 1일 밝혔다. 도시텃밭 참여자들은 지난 2월 구 도시농업 사이트에서 모집된 이들로 사전 교육을 통해 텃밭 이용 방법, 기초 영농 교육을 받은 준비된 도시 농부들이다. 이날 텃밭별로 진행된 개장식에서는 도시 농부와 가족들을 위해 유기질 비료 배부, 씨감자, 채소씨앗 판매, 토종씨앗 나눔 행사 등이 진행됐다. 구는 이날 개장한 도시텃밭 8곳 이외에도 민영 텃밭공동체, 동 주민센터 도시텃밭 등 6797구좌의 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텃밭 곳곳에 그늘막, 테이블 등을 차려 도시 농부들이 소통할 수 있는 쉼터를 늘릴 계획이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재배하고 건전한 여가 문화를 만들어가는 도시텃밭 가꾸기에 참여해 주신 도시 농부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도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도시농업 정책과 프로그램을 운영해 따뜻한 구민공동체 실현에 앞장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도시농부 키우는 동대문

    도시농부 키우는 동대문

    서울 동대문구는 오는 5일 중랑천 제2체육공원에서 ‘2019년 중랑천 도시농업 체험학습장’을 개장한다고 31일 밝혔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시·구의원 등 500여명이 참석한다. 참가자들은 개장식이 끝난 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의 지도에 따라 청상추, 적상추, 적오크, 청아삭이 상추, 부추 등 쌈채소 5종을 심으며 농사를 시작한다. 구는 향후 토양과 농작물의 중금속 오염도를 검사해 안전한 먹거리 생산을 돕는다. 해충방제, 급수시설, 거름주기 등도 지원한다. 앞서 동대문구는 2013년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해 학습장을 조성했다. 올해도 중랑천 장안교 둔치부터 제2체육공원까지의 부지에 약 4000㎡ 규모로 만들었다. 오는 11월까지 운영된다 구는 지난 2월 구민을 대상으로 학습장 참가자 420명을 모집했으며 인당 1만원의 참가비를 받았다 유 구청장은 “도시농업 체험학습장이 단순히 채소만을 재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나눔, 소통, 교육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전남 나주에서 발견된 안중근 숭모비 광주 공원에 재배치하나

    25년 전 사라진 후 행방이 묘연했던 ‘전국 제1호 안중근 의사 숭모비’가 전남 나주에서 발견되면서 제자리로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29일 안중근 의사 숭모비 재건립 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995년 이후 사라졌던 안중근 숭모비가 최근 전남 나주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됐다. 광주시와 추진위는 공동으로 현 소유자로부터 기증 절차를 밟고 재건립에 나서기로 했다. 광주시와 추진위는 향후 시민공청회 등을 거쳐 복원 장소와 시기·방법 등을 결정하기로 했다. 추진위 등은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일인 10월26일에 맞춰 애초 숭모비가 있었던 광주공원 일대에 복원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숭모비는 광복 후 전국 최초로 광주에 세워졌다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추진위는 그런만큼 숭모비가 항구적으로 유지·관리되고 교육시설로 활용될 수 있도록 국립나주박물관 등 문화재 관련 시설의 연계 전시 등을 추진키로했다. 또 국가보훈처의 협조를 받아 숭모비가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될 수 있도록 힘쓰기로 했다. 이번에 발견된 안 의사 숭모비는 해방 이후 전국에서 처음인 1961년 광주 남구 광주공원에 세워졌다가 1987년 현재의 광주 중외공원(북구) 자리로 옮겨졌지만 1995년 돌연 사라졌다. 안 의사 동상 제막 당시 숭모비 좌대를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비석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숭모비를 다시 찾은 것은 나주에서 농사를 짓는 이모(47)씨의 공이 컸다. 이씨는 3년 전 고향인 나주 다시면에 주택을 신축하던 중 조경석이 필요해 금천면의 한 석재상을 찾았다. 이씨는 돌무더기에 가려진 채 일부 모습을 드러낸 비석에서 한문 전서체로 ‘안중근’이라고 새겨진 이름을 발견했다. 순간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내 발길을 돌렸다. 이후 3년이 훌쩍 지나갔다. 비석을 기억 속에서 잊고 있던 이씨는 지난달 25일 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나주의 한 식당에서 ‘사라진 안중근 의사 숭모비를 찾는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게 된다. 이씨는 순간 3년 전 봤던 비석이 안 의사 숭모비일 것으로 확신하고 다시 나주 금천면의 석재상을 찾아갔다. 비석에 ‘大韓義士 安公重根 崇慕碑’(대한의사 안공중근 숭모비)라는 비명을 확인한 이씨는 안 의사 숭모비가 확실하다고 생각을 굳혔다. 이씨는 최근 자비 600만원을 들여 숭모비를 매입해 자택 앞마당에 포장을 씌워 보관 중이다. 그는 숭모비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광주시에 기증의사를 밝혔고, 이후 광주시는 진품 여부를 확인한 뒤 기증 방식과 절차를 논의 중이다. 이 숭모비는 검은 색이 맴도는 국내산 오석(烏石)으로 제작됐다. 규격은 높이 2m70㎝(아홉자), 가로 길이·두께 각각 90㎝(석자) 크기로 확인됐다. 광주시는 안중근 의사 기념사회회 등과 논의를 거쳐 공주공원 옛 자리에 숭모비를 재 배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동일본 대지진 다큐 영화 ‘봄은 온다’ 내일 서울서 주한일본대사관 주최 상영회

    동일본 대지진 다큐 영화 ‘봄은 온다’ 내일 서울서 주한일본대사관 주최 상영회

    재일교포 3세인 윤미아(44)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봄은 온다’의 상영회가 주한일본대사관 주최로 열리고,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가 이 기회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 및 피해지역을 도운 한국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주한 일본대사관은 30일 서울 명동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10층 아트 2관에서 이 같은 행사를 열고, 이와 함께 감독 및 출연자들과의 대화 및 토크쇼도 개최한다. 니시오카 다쓰시 주한 일본공보문화원장은 28일 “윤 감독의 ‘봄은 온다’가 지난 14일 한국에서 개봉된 것을 계기로, 이 같은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대지진 이후 성금 기탁, 자원 봉사 등 여러 방법으로 대지진 피해자들을 돕고, 격려해 온 많은 한국인들에게 다시 감사를 표시하고, 꿋꿋하게 손실과 역경을 이겨 나가는 보통사람들의 노력과 애환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유례없는 피해를 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아와테현 가마이시시, 후쿠시마현 가와우치무라 등을 주무대로 했다. 윤 감독은 2016년 여름부터 2017년 봄까지 10개월여 동안 이 지역에서 백여명의 피해자들을 만나며 영화를 만들었다.  3명의 자식을 잃고 지옥 같은 6년을 뚫고 지금은 자원봉사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엔도 부부, 대지진 5일전 결혼한 남편을 잃었지만, 대지진 이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오쿠다, 원전 주변에서 여전히 농사를 짓는 아키모토 부부…. 영화는 피해와 연민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상실과 고난을 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해온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기상이변에… 전북 지난해 쌀 생산비 역대 최고

    기상이변에… 전북 지난해 쌀 생산비 역대 최고

    2018년 전북지역의 쌀 생산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을 뿐 아니라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28일 통계청의 ‘2018년산 전국 쌀 생산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북지역 영농비는 10a당 87만 4894원으로 나타났다. 2017년보다 19.9%(14만 5402원)나 오른 것이다. 1993년 통계조사 이후 처음으로 80만원을 넘겼다. 전국 평균은 79만 6515원이었다. 전국적으로는 충북 86만원, 전남 82만원 등 80만원을 넘은 곳도 있지만 경기는 71만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전북 농민들은 경기지역보다 10a당 평균 16만원 이상을 더 지출한 셈이다. 지난해 전북지역 쌀 생산비가 기록적으로 높아진 것은 기상이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엔 8월까지 극심한 가뭄과 폭염이 계속됐다. 그러나 9월 벼 출수기와 숙성기에 여러 차례 폭우로 피해를 입었다. 가뭄에 이어 폭염과 폭우 반복으로 병충해가 만연해 농약, 비료 등 복구용 농자재가 대거 투입됐고 노동력도 많이 들어간 것으로 분석됐다. 게다가 최저임금과 함께 일부 시·군 농지 임차료가 오른 것도 영농비 증가 주요인이다. 실제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2015년 시급 5580원→2016년 6030원→2017년 6470원→2018년 7530원→2019년 8350원)은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제, 부안, 정읍 등 평야부의 논값이 오르면서 임차료도 덩달아 치솟아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짓는 임대농들에게 부담이 커졌다. 이 때문에 전북의 벼농사 수익률은 30.3%로 전년 대비 2% 포인트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평균 32.4%를 밑돌았다. 한편 정부는 올해 쌀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 쌀 생산조정제 참여농가를 모집한다. 논에다 벼 대신 밭작물을 심으면 일정액을 보상해 주는 제도다. 전북지역 쌀 생산조정제 목표는 8586㏊로 지난해 5052㏊보다 7%(3534㏊) 늘었다. 또 쌀 농사를 포기하면 보상하는 휴경제도를 14년 만에 부활시켰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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