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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상 수상자 꼭 나올 겁니다/ 과학영재학교 문정오 초대 교장

    국내 처음 개설된 부산 당감동 과학영재학교.초대 교장인 문정오(文定五·59)씨는 지난달 초 개교 이래 벌써 한달이상 밤잠을 설치고 있다.‘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영재를 뽑아놓고 범재로 만들면 안되는데….”하는 중압감 때문이다.긴장된 탓인지 새벽이면 아무리 피곤해도 절로 눈이 떠진다.곧바로 출근해 학교를 한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문 교장은 “봄을 맞아 모종을 심고 밤낮으로 보살피는 농부의 심정”이라고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문 교장은 개학 이전만 하더라도 어린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에 낯설어 하지는 않을지 등등 여러가지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의외로 학생들이 빠르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보고 조금씩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영재는 역시 영재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많다고 한다.무엇보다 고교생에겐 힘에 부칠 학제 운영시스템에 학생 144명 전원이 잘 따라오는 것을 보면서 감탄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학교의 교육 체계는 대학과 마찬가지로 짜여져 있다.모든 교과가학점제로 운영돼,소정 학점을 이수하면 언제라도 졸업할 수 있다. 한달 남짓 학생들을 가만히 지켜본 결과 조기 졸업할 성 싶은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졸업을 위해 필요한 학점은 국어 사회 과학 등 7개과목 68학점과 필수 45학점,심화선택 32학점 등 모두 145학점이다.국제화가 필요한 과목은 미국 고교의 영어 원서를 교재로 사용한다.현재 신입생 중 18명은 고교수학 수준을 넘은 것으로 판정돼 대학 수학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교사들 역시 일반학교와 다르다.교사진의 90% 이상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교수 등 석박사이다. 문 교장이 영재들을 지켜보면서 새삼 확립하게 된 영재관은 “수학 과학 과목의 창의성이 뛰어 나야 한다.”는 점이다.특히 영재학교에 입학하려 할 경우 분석력과 논리력이 필수인 만큼 관련 서적을 많이 보며 폭넓은 지식과 사고력을 키우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문 교장은 이 점이 민족사관학교 등 다른 우수두뇌들이 다니는 학교와 다르다고 강조한다.민족사관학교가 학습능력 향상에 중점을 둔다면 영재학교는 한 과제에 대해 스스로 연구 분석하고 결론을 내는 등 접근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이 학교는 그러나 차가운 지식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중시한다.학생들은 매월 셋째 토요일에는 양로원,장애인시설 등을 찾아 땀을 흘린다.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돕는 따뜻한 마음가짐을 갖추기 위해서다.문 교장은 “공부에서는 영재이지만 인간관계 사회생활에선 둔재일 수 있어 봉사활동을 의무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에서 모인 이 학교 학생 144명은 지난해 평균 8.3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다.학생들은 서류전형에 이어 2단계인 수학·과학 분야의 창의적 문제 해결력 검사,적성검사,논리적 사고력 검사,과학캠프에서의 면접과 행동관찰 등을 통해 최종 선발됐다.올해도 144명을 뽑는데 6월 원서를 접수한 뒤 9월 최종합격자를 발표한다. 수업료는 일반고교와 같으며 기숙사는 무료이다.학생 전원에게 1년에 100만원 가량의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 문 교장은 자신이 이 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임명된 데 대해 “어쩌면 운명적일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30여년간 과학교사로 교단에 선 문 교장은 지난 97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과장 때 영재학교의 밑그림을 그린 바 있다.문 교장은 “당시 급변하는 세계 과학계의 발전에 우리나라가 뒤처지지 않으려면 고급두뇌의 육성이 절실하다는 국가적 인식이 확산된 데 힘입어 영재학교의 설립을 구상하게 됐다.”고 전했다.이런 바탕 위에서 마침내 지난 2000년 영재교육진흥법이 마련됐고,기존의 부산과학고가 영재학교로 발전적으로 전환됐다. 문 교장이 요즘 중요하게 여기는 과제는 학생들이 마음놓고 연구와 탐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첨단과학관의 운영비를 확보하는 일이다.또 각종 과학 전문도서 구입비 확보,교사들의 연구활동비 지원 등도 난제이다. 실상을 잘 들여다보면 문 교장의 고민이 이해된다.80억원을 들여 지은 첨단과학관에는 40억원어치의 최신 실험기자재들이 있는데 이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비용이 연간 1억원에 이른다.다행이 올해는 예산을 확보했지만 내년도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또 2000권에 불과한 전문도서의 확충도 시급하다.학생들의 폭넓은 지식 습득을 위해서는 더욱 많은 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 교장은 “영재들이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루종일 학교 안팎을 돌아다닌다.”면서 “영재학교 출신들이 노벨상을 타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무너진 후세인 /권좌 빼앗긴 후세인 생애/ 첨단무기에 붕괴된 ‘철권24년’

    미·영 연합군이 10일(이하 한국시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완전 점령함에 따라 1979년 이라크 대통령에 오른 사담 후세인의 24년 철권통치도 막을 내리게 됐다. 역사에 길이 남을 ‘범아랍권 지도자’를 꿈꾸며 많은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대량 살상은 물론 각종 극단적인 조치들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결국 ‘인류의 적’으로 지목돼 처참한 말로를 맞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명성과 권력에 대한 끈질긴 갈망을 버리지 않았던 후세인의 삶은 한마디로 도발과 극단의 연속이었다. ●쿠데타 집권… 한때 진보정책 추진 1937년 4월28일 바그다드 북쪽 중앙 이라크의 시골마을인 티크리트에서 태어난 후세인은 10대 때 바그다드로 옮겨가 아랍바트사회당에 가입하면서 이라크 정치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라크 총리의 암살을 시도,이집트로 도피하는 등 시련의 시기를 거쳐 63년 2월 이라크로 돌아왔지만 64년 다시 투옥됐다.옥중에서 바트당 부총재로 선출된 그는 67년 탈옥,이듬해 쿠데타를 일으켜 같은 바트당원이자 그의 사촌인 아흐메드 하산 알-바크르가 이라크의 새 지도자로 등극하게 됐다. 혁명지휘위원회(RCC)부의장을 맡은 사담은 사실상 권력의 2인자였으며,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많은 진보적인 정책들을 진행했다. 이라크 내 석유회사들의 국유화작업을 진행했던 그는 병원시설을 개선시키고,여성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했으며,국가적인 문맹퇴치 프로그램을 추진했다.또 이라크 사회간접시설 확충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외딴 지역에 전기와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고 도로를 개설하는 등 개혁적인 정책을 통해 민심 획득에 성공했다. ●대통령 취임뒤 정적 처형 오랜 시간에 걸쳐 권력을 다진 후세인은 1979년 대통령으로 취임했다.알 바크르는 질병을 이유로 하야한다고 발표됐다. 후세인은 취임행사가 녹화되고 있는 가운데 고위급 인사들이 가득한 회의실에서 현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적발했다고 말하고 가담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66명이 잡혀갔고 22명은 즉시 처형됐다. 그는 이어 400명의 바트당원을 처형하고 당을 재정비했다.본인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정적들의 힘을 약화시키며,자신에게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화학무기등 사용 대량살상 자신의 체제에 반대하는 시아파를 지원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1980년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라크와 이란 국경 부근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소한 충돌에서 비롯된 전쟁은 8년간 계속됐으며 이라크인 50만명과 이란인 1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 끝났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사담 후세인은 1986년 이라크 군대에게 이페릿 같은 독가스와 신경가스를 이란병사들에게 살포하라고 명령했다. 이어 1988년에는 이라크 북부에서 반항하던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미 국무부는 화학무기 살포,대규모 사형집행 등을 통해 5만∼10만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비밀경찰 동원 언론·국민 통제 80년대 이란과의 전쟁에서 후퇴하고 1991년 걸프전에서는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에게 패한 뒤 사담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빈번히 일어났고,이라크는 오랫동안 유엔의 경제제재조치를 받아왔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사담 후세인은 여전히 이라크에서 강력한 권력을 유지했다.비밀경찰이 국민들을 감시했으며 후세인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 가차없는 처벌을 가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후세인은 자신의 이미지를 잘 유지하기 위해 철저한 이미지 관리와 선전을 이용했다.그는 대중들 앞에서 절대 노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노안으로 돋보기 없이는 글을 읽을 수 없어도 그는 대중 앞에서 안경 쓴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TV카메라도 허리디스크 이상으로 절뚝거리는 그의 걷는 모습을 절대 방영하지 못했다. ●비리폭로땐 가족까지 총살 항상 암살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그는 일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그는 밤에 비밀 장소에서 4∼5시간만 자고 모든 음식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준비되고 검사를 거치도록 했다. 많은 적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족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사담의 사위 중 2명은 95년 이라크를떠나 이라크 정부가 화학무기,생물학무기,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증거를 숨기고 있다고 서방 국가에 말했다. 이런 행동을 너그러이 용서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이라크로 돌아왔던 그들은 결국 총살 당했다. 함혜리기자 lotus@ ■후세인 이라크 통치 일지 ▲1979년 △7월16일=사담 후세인 이라크 혁명지휘위원회(RCC) 부의장 이라크대통령 취임,집권 바트당서기장 겸 혁명지휘위원회 의장취임 ▲1980년 △3월18일=4년간의 위임통치를 위한 헌법승인 △9월22일=이란·이라크전 발발 ▲1981년 △6월7일=이스라엘 공군 오시라크 핵원자로 공격(바빌론작전) ▲1988년 △3월17∼18일=이란을 지지하는 쿠르드족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으로 5000여명 사망△8월20일=이란·이라크전쟁 종료 ▲1990년 △8월2일=이라크군 쿠웨이트 침공 ▲1991년 △1월17일=미국주도 이라크 공격(사막의 폭풍작전)△2월28일=이라크전 종료 ▲1995년 △10월15일=79년 취임이후 첫 국민투표서 99.96% 지지 획득 ▲1998년 △12월16∼19일=미국 이라크에 500여발의 미사일 공격 ▲2002년 △10월15일=7년 임기 대통령에 100%투표와 100%지지로 당선 ▲2003년 △3월20일=미·영연합군 공격시작 △4월9일=미군,바그다드 함락
  • 부시의 전쟁/전황 상보 - 새벽까지 교전 美 ‘더딘 진격’

    |워싱턴 백문일특파원|게릴라 전술을 동원한 이라크군의 예상치 못한 저항으로 미·영군의 바그다드 진격에 제동이 걸렸다. 23일 쿠웨이트 북서부 사막 캠프 펜실베이니아를 출발한 미 육군 제101 공중강습사단은 24일 이틀째 진격을 계속했지만 이동속도를 상당히 늦췄다.바그다드 남쪽 80㎞ 지점인 카르발라로 진격할 예정이었던 미 육군 3보병사단도 행군을 멈췄다.미·영군의 잇단 전사와 5000갤런 들이 연료탱크를 날려버릴 정도의 사막의 모래폭풍이 사단의 이동속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지상군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공습은 24일까지(바그다드 현지시간) 대통령궁과 정부청사 건물 등을 겨냥해 닷새째 계속됐다. ●연합군 지상전투서 고전 바그다드 남쪽 80㎞ 지점에 위치한 중부도시 카르발라에서 ‘걸프전의 영웅’이었던 미군의 아파치헬기 AH-64 1대가 이라크군에 격추됐다고 미 중부사령부가 확인했다.이라크측은 이날 몇몇 농부들이 아파치헬기 2대를 격추했으며 조종사 2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주장했다.조만간 조종사들의 사진도 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쿠웨이트 국경에서 160㎞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변 나시리야 지역에서는 전날 오후부터 24일 새벽까지 계속된 처절한 전투 끝에 미군 12명이 숨지거나 붙잡혔다.이라크군은 백기를 흔들다가 발포하고,매복했다가 전투지원 차량을 습격하는 등 게릴라식 전투로 미군을 괴롭혔다. 이 지역에서는 23일 507정비대 소속 미군 병사 7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됐고 5명이 포로로 붙잡혔으며,뒤늦게 부상자를 구출하기 위해 나시리야 시내로 들어간 해병대원 9명도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미군은 에이브람스 탱크 등을 앞세워 두번째 나시리야 공략에 나섰다. 이라크 남부지역에서 작전 수행 중이던 영국군 2명도 이라크군의 공격을 받고 실종됐다고 영국 국방부가 공식 발표했다.이미 함락된 것으로 알려졌던 이라크 제2도시 바스라와 항구도시 움 카사르에서도 이날 새벽 120여명의 이라크 병사들이 반격을 가해 연합군이 곤욕을 치렀다.나자프에서는 미 육군 제7기갑부대가 무모하게 바그다드로 진격하려다 선봉 5개 부대가 이라크 대대 단위의 병력과 교전을 벌였다. ●민간인 피해도 속출 23일과 24일 미·영 연합군의 대 이라크 공습으로 민간인 98명이 사망하고 490명이 부상했다고 모하메드 알리 사하프 이라크 공보장관이 밝혔다.이라크 국경 부근에서는 승객 37명을 태운 시리아 여객버스 1대가 미군의 공대지 미사일 1기에 피격돼 피란길에 오른 시리아인 5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고 시리아 관영 통신이 24일 보도했다.AFP통신은 또 이날 연합군의 미사일이 바그다드 서쪽 민간인 밀집지역에 떨어져 여성을 포함해 5명이 숨졌다고 현지 주민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공습은 계속 바그다드에서 24일 낮 12시30분(한국시간 24일 오후 6시30분) 최소한 6차례의 강력한 폭발음이 들렸다고 AFP통신이 전했다.이른바 ‘충격과 공포’ 작전 개시 후 최대 규모의 폭격으로 전해졌다.오전 10시쯤에는 이라크 북부 거점도시 키르쿠크와 쿠르드족 자치지역 내 참차말 사이의 전선지역에도 개전 이후 처음으로 공습이 감행됐다.B-52폭격기들도 어김없이 영국 서부 페어포드 공군기지를 이륙,대규모 공습에 들어갔다. mip@
  • 부시의 전쟁/ 기아·공포의 도시 바그다드...미사일파편 박힌 어린이 ‘신음’

    미·영 연합군의 집중적 대규모 공습을 받고 있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모습은 한마디로 ‘기아와 공포’로 얼룩진 죽음의 도시다.바그다드 현지 표정을 보도하는 외신을 종합했을 때 내릴 수 있는 잠정 결론이다. 22일(현지시간)까지 약 350발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공격을 받은 바그다드 시내 곳곳은 무너진 건물과 부상자들로 넘쳐났다.미·영 연합군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1일 대규모 공습으로 바그다드 시내에서만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다.영국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은 이날 대공습으로 바그다드의 알 무스탄사니야 대학 병원에만 101명의 환자들이 온몸에 미사일 파편이 박힌 채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다고 23일 전했다.또 이들 부상자 중 군인은 16명뿐이며 대부분이 어린이와 여성 등 시민들이었다고 덧붙였다. 후세인 대통령 등 지도부만을 겨냥했던 첫날 공격과 달리 21일 새벽 융단 폭격이 쏟아지자 바그다드 시민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시내 전체가 불길과 연기에 휩싸인 가운데 대부분의 공무원들과 시민들은 연기를막아줄 방독면도 없이 물에 적신 타월 등으로 얼굴을 감싼 채 파괴된 건물에서 구조작업을 벌였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폭발음이 계속되고 있지만 23일 이곳 주민들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시민들은 직장에 나가 일을 했고 상점과 식당들도 문을 열었다.시내버스 등의 차량 운행도 계속됐다.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기도 했다. 전쟁에 익숙한 듯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지만 이들은 사실 미사일 폭격보다 더한 두려움에 직면해 있다.바로 굶주림이다. 유프라테스강을 넘어 바그다드로 진격하는 미·영 연합군의 탱크는 이라크 농부들이 겨우내 경작한 농작물과 봄나물을 모두 짓밟고 있다.비축해 둔 식량은 겨울을 넘기면서 바닥이 났고 이제 씨를 뿌려 싹을 내고 있는 농작물과 수확철을 맞은 겨울 농산물은 탱크와 군화발에 짓밟혀 이라크 주민들은 최악의 식량난에 직면하게 됐다. 요르단 암만의 유엔 관계자는 23일 “3월 말은 이라크에서 겨울곡식을 수확하고 동시에 봄작물을 파종하는 시기지만 이라크 전역에서 이뤄지는 전투로농사가 지장을 받고 있다.”면서 “식량수급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밝혔다.유엔 산하 세계식량기구 관계자 역시 수확 및 파종기에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식량공급에 있어 최악의 시기를 잡은 것이라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더욱이 현재 바그다드에 남아 있는 시민들은 대부분 피란을 떠날 엄두조차 못내는 가난한 사람들로 폭탄뿐만 아니라 기아에도 맞서야 할 처지다.일하지 않으면 하루치 식량조차 구할 수 없는,남은 이들은 폭탄 세례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 피란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재산을 챙겨 이라크 외곽으로 대피하거나 요르단,시리아 등 인접국가로 건너갔다.하지만 이라크 북부 역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약 50만여명의 피란민들이 북부 국경지대로 몰려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작은 동굴에 몸을 피하고 있는 난민들은 그야말로 처참한 모습이다.바그다드는 물론 이라크 전 지역의 주민들이 굶주림과 하루하루 업습해 오는 죽음의 공포로 고통받고 있다. 강혜승기자 외신 1fineday@
  • “배수문 닫혀 침수피해” 지자체 손해배상 판결

    서울고법 민사23부(부장 金敬鍾)는 19일 “홍수 때 배수문이 닫혀 빗물을 빼내지 못해 더덕농사를 망쳤다.”면서 김모씨 등 농부 3명이 경기도 연천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96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연천군이 배수문을 적시에 열지 않아 산과 하천으로 둘러싸인 원고들의 더덕밭이 침수피해를 입었다.”면서 “피고는 집중호우로 배수문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고 항변하지만 비상시 지역 주민들이 배수문을 작동하도록 사전 예방조치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씨 등은 지난 99년 홍수로 공동 경작하던 더덕밭이 물에 잠겨 수확을 못하자 소송을 냈다. 정은주기자 ejung@
  • [공직자 에세이] 너희가 까치를 아느냐

    우리는 까치를 길조로 여겨왔다.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나 희소식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까치는 농작물을 해치고 전봇대에까지 집을 지어 사람들의 품을 팔게 하는 골치아픈 새로 전락됐다.정부는 몇년 전부터 까치를 유해 조수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까치는 아주 높은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자기들만의 영역 안에서 무리지어 생활한다.또한 무리 안에 서열과 위계질서가 뚜렷하여 우두머리 까치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새로 학계에 알려졌다. 다른 새들이 영역을 침범하면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협공을 통해 적을 물리친다.위기가 닥칠 때 모두 나서 위기를 극복하는 까치들의 협동정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도시락 산업이 발달되면서 일회용품인 나무도시락과 젓가락을 다량으로 생산하던 때가 있었다.이때 원료로 쓰이는 미루나무·버드나무 등 목질이 부드러운 나무들을 사정없이 베어내 까치들이 둥지를 틀 만한 터전을 없애 버렸다. 이와 더불어 화학비료와 농약의 과다사용으로 토양이 척박해지면서 까치의 먹이가 되는 벌레·지렁이 등의 개체 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먹이가 많던 시절에도 조상들은 미물인 까치의 먹이를 배려해 줬다.가을에 감을 수확하면서 꼭대기에 달려 있는 부분은 남겨둬 까치가 먹도록 했다.이것이 바로 ‘까치밥’이다. 집터를 잃어버린 까치는 그들의 삶을 위하여 전신주 등에 둥지를 틀게 되었고 배를 채우기 위해 농작물로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이다.결국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까치가 유해 조수로 변해 흉폭해진 셈이다.이제부터라도 까치를 탓하기 전에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물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있을 때 자연은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준다.그들이 영악한 무리에게 버림받고 그들만의 생존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 인간에게 날카로운 부리를 세우게 되었는지 모른다. 총을 쏘아대고 품삯을 들여 전신주의 둥지를 털어내도 그들은 쉽사리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올해도 과수원을 가진 농부들은 어김없이 까치와의 전쟁을 벌일 것이다. 인간과 까치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다.인간의 의도대로 순종하고 목숨을 부지하기엔 자연여건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옛날처럼 먹이가 풍부하고 둥지를 틀 곳이 많아지지 않는 이상 까치들은 더 극성스럽게 부리를 들이댈 것이다. 이제 그들을 탓하기보다 생각이 앞서고 사려깊은 우리 인간들이 까치를 배려해 줘야 할 때다.그래야만 흉폭해진 까치를 예전처럼 평화스럽고 친숙한 길조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만들어 주고 인간의 욕심을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인간이 아닌 모든 것,미물에 불과한 것이더라도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그길만이 우리는 물론 자자손손까지 탈없이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다.환경친화적인 개발,그리고 생태계를 보전하는 노력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보장받지 못한다. 지금도 까치들은 우리 인간에게 호소하는지 모른다.“너희들만 배불리 먹고 등 따뜻하게 살지 말고 조금이라도 좋으니 몫을 나누어 달라고….” 정 유 선 한강유역환경청 환경감시대장
  • [LOOK아시아]1부 新장보고 루트 르포 (9) 떠오르는 베트남,타이완

    |하노이·호치민·타이베이 김성수특파원|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는 퇴근시간인 저녁 6시가 되면 오토바이부대가 줄지어 몰려나와 도로를 가득 메운다.아오자이를 곱게 차려입은 젊은 아가씨부터 점잖게 양복을 빼입은 회사원까지 베트남인들은 누구나 오토바이를 탄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5년전만해도 자전거가 훨씬 눈에 많이 띄었지만 요즘은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베트남은 공식통계로는 1인당 GDP(국내 총생산)가 400달러로 아직은 ‘최빈국(最貧國)’에 속한다.최근 들어 값싼 중국산 오토바이가 500∼700달러에 팔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가구당 1대씩은 거의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다.그만큼 베트남인들의 생활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다.해마다 5∼7%의 고성장을 이어가는 경제력이 밑바탕에 깔려있음은 물론이다.‘도이모이’(쇄신)로 알려진 과감한 개방정책의 결과로 물밀듯 들어온 외국인투자가 직접적인 원동력이 됐다.성실한 민족성에 타고난 ‘손재주’를 앞세워 컴퓨터 조립 등 제조업도 활황세를 보이고 있고 IT(정보기술)산업도 초보단계지만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가전제품,컴퓨터,자동화기기 등을 생산하는 베트남 산업부 산하 국영업체인 VEIC는 이미 VTB,BELCO,GPC 등 90%에 달하는 자체 브랜드로 내수시장을 공략하고 있다.13개의 계열회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만 1억달러를 기록했다.이 가운데 수출이 2000만달러였다. ●IT산업 급신장세 하노이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사 응우엔 비엣 훙 이사는 “LG,삼성 등 한국기업에 비해 브랜드 파워는 떨어지지만 품질에서 큰 차이가 없고 가격이 10∼15%가량 싼데다 애프터서비스도 잘 되기 때문에 베트남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더 찾는다.”고 자랑했다.그는 그러나 “아직 IT분야에서 소프트웨어 분야는 베트남보다 한국이 15∼20년 앞섰고,원거리통신은 10년 이상 앞섰기 때문에 한국업체와 합작등을 통해 베트남내의 IT수요를 충족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8년 설립된 국영업체인 FPT는 베트남 최대의 인터넷서비스업체다.자체 브랜드의 컴퓨터를 생산하고,정부기구나 외국계회사를 대상으로 한 SI(시스템통합)사업도 같이 하고 있는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8000만달러에 달한다.HP,MS,시스코 등 세계 굴지업체로부터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는 기술력을 인정받았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이 회사의 황 티 반 칸(여) 하노이 지사장은 “지난해 베트남의 인터넷 가입자수는 25만 2000명으로 1.26%대의 인터넷 이용률을 보이고 있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IT시장은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IT강국인 한국과 앞으로 기술·인적 교류가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IT산업이 유망사업으로 부각되면서 월급도 많지 않느냐고 묻자 옆에 앉아 있던 직원 응우엔 드응 링은 유창한 영어로 “아직 은행원만은 못하지만 적어도 농부보다는 더 받는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실제로 IT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공중화장실 안내문은 5개국어로 돼있는 데 한국어,일본어는 없지만 베트남어는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베트남인은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노이 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는 한-베트남 합작업체인 TV브라운관을 생산하는 오리온하넬의 공장이 있다.이 회사 권영운(權永運)부사장은 “토지사용허가를 받기 위해 4∼5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등 외국인기업이 투자하는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는게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중국에 못지 않은 양질의 노동력과 저렴한 생산비,메콩강을 중심으로 한 천연의 자원등 동남아의 허브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불황 떨치고 회복기 진입 한편 같은 한자문화권인 타이완은 사정이 좀 다르다.인구 2300만명의 타이완은 전 세계 화교네트워크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세계 유명제품들의 테스트마켓(시험시장)으로 통한다.중소기업 위주의 탄탄한 경제구조와 반도체,전자,통신 부문의 수출을 앞세워 ‘작지만 잘사는 나라’의 대명사로 불려왔다.그러나 2001년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기록한 이후 올들어 회복세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5%에 육박하는 실업률을 비롯한 각종 경제지표들이 심상치 않은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경기불황에 따른 제조업체들의 휴·폐업이 늘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중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업체들이 늘면서 산업공동화에 대한 우려도 심각해지고 있다. 정권교체로 인한 정정불안과 세계적인 IT경기불황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그러나,올들어서는 서서히 경제불황을 떨어내기 위해 힘찬 시동을 걸고있다.정부차원에서는 IT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장기플랜도 발표했다.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신주(新竹)공업단지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한국의 대덕연구단지와 비교할 만한 이곳에는 350여개의 IT업체들이 밀집해있다.여기서 만난 타이완 1∼2위권의 SI업체인 제너시스(Genesis)의 린 양(林陽) 부사장은 “타이완의 IT산업이 세계적인 경기흐름과 맞물려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장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우리 회사의 경우도 중국 본토에 대한 투자가 본격적으로 회수되는 3∼5년 뒤에는 다시 상승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 타이베이 한국대표부의 이승재(李丞宰)상무관은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늦어지면서 신용경색이 심화된 것도 타이완 경기침체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면서 “이전과 같은 고성장은 어렵겠지만 성장세는 곧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skim@ ◆레중 베트남 과기부 해외협력부장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지만 베트남 IT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베트남 과학기술부 레중 해외협력부장은 “호치민에 소프트웨어 파크를 세우는 등 정부차원에서 IT산업을 베트남 경제발전의 견인차로 삼기 위해 집중투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베트남은 현재 컴퓨터를 조립하는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조만간 직접 생산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면서 “베트남 국민의 잠재력과 외국인투자가 합쳐지면 바람직한 성공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2001∼2005년 IT산업의 장기발전플랜도 정부차원에서 마련했다.현재 1%대인 인터넷 이용률을 인구대비 4∼5%까지 끌어올리고 대학에서는 100%,고등학교에서는 70%까지 인터넷을 이용토록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세웠다.소프트웨어 산업의 성장률도 해마다 30∼35%로 끌어올려 5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청사진도 갖고 있다. 그는 “베트남의 사회경제 개발전략중에서도 IT산업의 발전이 최우선과제로 잡혀있다.”면서 “베트남과 선진국들의 갭을 줄이기 위한 최상의 도구가 IT산업이라는 데 정부 부처내에서 이견이 없다.”고 설명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처음 4년동안 소득세를 면제해 주고 토지사용세 등은 감면해 주고,하이테크 파크에 투자하는 외국기업들에게도 10년간 같은 혜택을 주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레중부장은 “한국의 KAIST 등에도 베트남의 학생,공무원들이 최신 IT정보를 배우기 위해 많이 유학을 가있다.”면서 “현재 일본쪽과 IT교류가 많지만 앞으로 IT강국인 한국과의 인적·기술적 교류가 늘어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성수특파원 ◆왕진안 타이완 경제부 IT담당부서 부주임 “IT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기업을 포함해 국내외 모든 기업들에게 가능한 인센티브를 모두 제공할 계획입니다.” 타이완 경제부 자신공업발전추동소조(資訊工業發展推動小組·IT담당부서) 왕진안(王金岸·여)부주임(부국장)은 2006년까지로 예정된 타이완 IT산업 장기발전계획을 이같이 요약했다. 그는 “타이완의 IT산업은 1970년대 처음 시작돼 지난 30년간 OEM(주문자생산)→자체 브랜드개발→LCD→디지털콘텐츠개발의 단계를 거쳐왔다.”면서 “현재 데스크탑,마더보드,CD롬 드라이브 등 하드웨어 가운데 세계물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품목이 11개나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이완의 PC산업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다음 단계를 어디로 가져가야 할지 검토하다가 지난해 6월 2006년까지 2조 뉴타이완달러(NT·한화 약 70조원)를 투자해 IT산업을 분야별로 육성키로 방향을 잡았다.”고 밝혔다.장기플랜에는 외국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R&D센터를 구축하고 외국기업에게는 소득세를 면제하는 등 인센티브를 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왕 부주임은 한국과의 IT분야 경합과 관련,“한국은 반도체,LCD,디지털콘텐츠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재벌식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타이완은 95% 이상이 중소기업인 만큼 새로운 제품 수요에 대한 CEO의 의사결정이 신속해 시장변화에 빠르게 따라갈 수 있고 이런 장점 때문에 중국 본토를 비롯해 동남아로 시설을 확장하는 데도 훨씬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끝으로 “타이완의 IT분야는 일본제품과 기술교류에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한국과의 협력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을 맺었다. 김성수 특파원
  • 충청도 농부아들 세계적 성악가로,연광철 새달9일 독창회

    충북 충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베이스 연광철이 다닌 공고에는 음악선생님이 없었다.그래도 2학년 어느날 음악경연대회가 열렸는데 연광철은 ‘선구자’를 불러 덜컥 1등을 했다. 그렇지만 3학년 여름 공고생이라면 대부분 합격하는 기능사 시험에는 떨어졌다.연광철은 어쩔 수 없이 음악가로의 변신을 고민하게 됐고,불과 3개월 독학 끝에 청주대에 들어갔다. 연광철이 국내의 몇몇 콩쿠르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뒤 유학을 떠난 곳은 불가리아.세계적인 베이스 니콜라이 갸우로프의 고향인 만큼 ‘정통 베이스의 계보를 잇기 위해서’였다고 누군가가 수식어를 붙여주기도 했지만,‘싼 맛’에 택한 소피아국립음대였다. 그랬던 그가 베를린 국립오페라단에서 솔리스트로 활약하며,최근에는 바이로이트 음악제에 잇따라 초청되는 등 명성을 날리고 있다.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베를린시내에 새로 집을 지어 입주할 만큼 성공한 오늘이 있기까지,연광철의 노력은 눈물겨웠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연광철 스토리’는 자식들을 음악가로 키우고자하는 한국의부모들에게는 ‘모자라는 재능은 재력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데 충분하다.세계적인 음악가에게 필요한 선천적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연광철이 새달 9일 오후 4시 LG아트센터에서 독창회를 갖는다.이번 독창회는 그가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하다.그가 유럽에서 인정받은 다음 금의환향하는 기분으로 나선 지난 99년 예술의전당 독창회에는 손으로 꼽아도 될 만한 숫자의 관람객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초대권 없는 유럽식 음악회에 도전한 결과였다. 그렇지만 연광철은 이후 ‘바그너 열풍’을 타고 확실하게 떴다.이번에는 아마도 1000석 남짓한 LG아트센터 정도는 가볍게 메울 것이다.그러나 연광철 자신은 “정통 바그너 가수가 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이번 독창회 레퍼토리도 슈베르트의 가곡과 모차르트,마이어베어,아당,베르디의 아리아일 뿐 바그너는 보이지 않는다.바그너 팬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연광철의 일부분이 아니라,그의 본래 모습을제대로 찾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피아노 올리버 폴.(02)2005-0114. 서동철기자
  • 이런책 어때요

    ***왜 사냐면...웃지요 김열규 지음 궁리 펴냄 “만산(滿山) 홍록(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구나.” 우리 옛 시조는 푸른 잎,단풍 잎도 웃는다고 했다.그런가하면 꽃이 떨어지는 걸 보고도 “봄날이 며칠이랴.웃을 대로 웃어라.”라고 노래했다.지는 꽃잎도 바람과 장단 맞춰 흔들흔들 웃는다고 했던 그 살가운 감성,흐드러진 웃음은 어디로 갔을까.우리는 왜 웃음기근 속에 살게 됐을까.한국인의 마음살이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전달해온 저자가 풀어놓는 한국인의 웃음의 미학은 신선하면서도 걸쭉하다.한국 문화에서 웃음이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가를 민담,소설,판소리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살펴본다.1만 2000원. ***이덕일의 여인열전 이덕일 지음 김영사 펴냄 고구려와 백제건국의 숨은 주역 소서노,황제국가를 꿈꾼 고려의 여걸 천추태후,세계를 지배한 대제국 원을 움직인 고려출신 여인 기황후….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속 여인들의 삶을 엄정한 사료해석을 통해 밝혀냈다.인간중심의 역사서 집필에 몰두해온 저자(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는 이책에서 역사 인물들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살려내는 데 주력한다.한 예로 진덕여왕은 서라벌 출신 진골 정통들의 반발과 당나라의 위협에 맞서 김유신과 김춘추로 대변되는 소외세력을 등용,국가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1만 7900원. ***농부의 마음으로 경영하라 앨런 힉스 지음 함규진 옮김 / 시대의창 펴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래의 자연은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그 시스템을 유지한다.예컨대 초목은 가을 결실기가 끝나면 낙엽을 퇴비 삼아 지력 회복을 꾀하고 양분을 축적하기 위해 생산활동을 멈춘다.때론 해걸이를 통해 양분과 소출의 균형을 맞춘다.때문에 대지의 힘을 전혀 고갈시키지 않은 채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다.사람과 조직의 양생원리도 이와 같다.이 책은 유기농법의 방식을 원용,개인과 조직의 지속가능한 경영프로그램을 제시한다.그것은 일할 때 칭찬과 격려 등의 깨끗한 자원으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으로 요약된다.1만 3000원. ***영혼의 정원 스태니슬라우스 케네디 지음 이해인·이진 옮김 / 열림원 펴냄 자연의 고요함과 에너지,아름다움과 너그러움을 일깨워주는 명상록.자연의 사계와 정원의 신비를 우리의 삶과 연관지은 영혼의 일기다.저자는 ‘스탠’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아일랜드 출신의 수녀.인간은 삶이란 작은 정원에서 날마다 생각하는 나무같이,기도하는 잎사귀같이,각자 영혼을 가꿔가야 할 정원사란 메시지를 전한다.글 끝자락마다 짤막한 지혜의 어록도 실렸다.“내 영혼은 지상의 아름다움을 통하지 않고선 천국에 이르는 계단을 찾을 수 없다.”(미켈란젤로)“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매일 한 가지씩 버려라.”(노자) 등이 그것이다.1만 3500원. ***고전소설 바르바라 지히터만 등 지음 두행숙 옮김 / 해냄 펴냄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 크리스토 백작’.70명의 직원이 매년 20∼30편씩 소설을 찍어내는 ‘소설공장’에서 만들어진 작품임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가난과 간질,도박벽에 시달리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짧은 시간 안에 소설을 지어내지 못하면 글쓰는 노예가 될 위기에 처해 쓴 작품이 ‘죄와 벌’이란 사실은 얼마나 경이로운가.이책은 우리가 고전소설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과 경외감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세계문학의 원형이라 할 16∼19세기 명작소설 50편의 내용과 창작배경을 다뤘다.1만 5000원 ***존재하는 무0의세계 로버트 카플란 지음 심재관 옮김 / 이끌리오 펴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0의 개념은 인도문명이 낳은 것이 아니다.그보다 훨씬 이전인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갈 뿐 아니라 마야 같은 독자적인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다.따라서 0의 개념은 보편적 성격을 띤다.반면 저자는 인류가 0의 도움 없이 큰 숫자를 계산하는데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지도 실감나게 보여준다.수학에 능했다는 그리스인에게도 0이 없었다.0을 주제로 인류 문명사를 거시적으로 그려낸 이 책엔 0이 갖는 인문학적 의미를 다룬 에세이들이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1만 2000원.
  • 작가미상 1만엔짜리 그림 경매직전 고흐作 밝혀져

    |도쿄 황성기특파원| 작자 미상으로 단돈 1만엔에 팔릴 뻔했던 그림이 뒤늦게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으로 밝혀지면서 6600만엔에 낙찰되는 소동이 일본에서 벌어졌다.8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서양화가 나카가와 가즈마사(사망)의 수집품 168점에 대한 경매에서 후기 인상파 거장인 고흐의 ‘농부’가 히로시마의 한 주택건설회사 회장에게 낙찰됐다. 당초 ‘작자미상의 부인상’으로 이름붙여진 이 그림은 경매 주최측이 경매예상가 1만엔에 출품하려고 했었다. 앞서 주최측은 유족에게 위탁받은 수집품 가운데 고흐의 초기 작품과 유사한 작품이 있는 것을 파악하고,지난 연말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측에 감정을 의뢰했다.그러나 감정결과가 경매 직전 도착하는 바람에 이런 소동이 빚어졌다.
  • [길섶에서] 들풀

    쇠비름 명아주 질경이 씀바귀….초등학교 때 어머님이 간혹 들이나 밭에서 캐어 반찬으로 무쳐 주신 들풀들이다.그러나 고교생이 된 이후 30여년이 넘도록 먹어보지 못한 것 같다.그리곤 못 먹던 시절에 먹을 것이 없었으니까 먹었던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황대권씨의 ‘야생초 편지’를 읽고는 사람이 들풀을 멀리하게 된 것은 농사를 산업화하면서 다수확 품종만을 개발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무식의 소치다.산업화 전에는 농부들이 100종에서 300종의 야생초를 채취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학원 간첩단으로 몰려 13년2개월을 복역한 황씨는 교도소에서 100여종의 야생초를 키우며 ‘토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안 먹어 본 풀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야생초 편지’는 땅의 주인은 온갖 식물인데,인간들이 채소를 심으며 야생초들을 내쫓아 생물은 물론 인간조차 살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외친다.시인 김지하씨가 교도소에서 생명 사상의 단초를 열었듯이,황씨 역시 교도소에서 생태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니 경이롭다. 황진선 논설위원
  •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성혁

    1.기형도 시의 가상성 그의 죽음에서 벗어나 작품속 죽음 의미찾아 이 비평문은, 그러니까 기형도의 텍스트와 텍스트를 이어보고 만져보면서 이 가상적 구성물인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것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재구성(‘시인'의 세계관이나 무의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하여 다시 텍스트를 짜내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우선 기형도 시의 ‘가상성'을 부각시키려 한다. 이는 기형도 자신도 원하는 것일 게다. 그의 친구인 원재길은, 별로 주목된 바 없는 글이라 생각되는 10여 년 전의 글에서, “창작자와 시적 자아를 동일시하는 심리주의 비평의 어떤 그릇된 접근 방식은 시인 자신으로부터 이미 거부당하고 있다.”(대화적 울음과 극적 울음)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위에서 거론한 비평가들이 조야한 심리주의 비평에 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와 기형도의 의식의 동형관계에서 벗어나 시를 문학적 텍스트로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원재길은 이미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기형도의 여러 시편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 인물과 간단한 사건과 시간에 순연하는 구성이 있는 극적인 구조를 취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기형도 시가 하나의 독특한 가상적인 구성물임을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깊게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 않았고, 그의 지적이 논자들에게도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 대개의 평문들에선 기형도 시의 등장 인물들-낯선 ‘그'로 자주 등장하는-은 대상화된 ‘나'로 취급되어 기형도의 자아를 반영하는 인물이 되어 버리곤 한다. 즉 기형도 시가 ‘극적 구조', 하나의 가상적 구성물임을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1)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부분 2)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 부분 1)에 등장하는 서기나 ‘김'을 대상화된 기형도 자신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편으론 옳고 한편으론 그르다. 옳다는 점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는 나”라고 발언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모든 허구적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시 같은 서정적 장르에서는 그 분신의 농도가 더 짙으리라. 하지만 그 등장 인물이 시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파악은 그르다. 시에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등장 인물은 시 텍스트의 공간 내에서 자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의 ‘나'는 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게 된 텍스트 속의 ‘나'이다.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받은 ‘나'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서정시인일 것이다. 위의 시에서 서기는 시인의 대리일 뿐 아니라 카프카적 의미에서의 서기, 관료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한 일에 탕진하고 있는 우리네 삶의 형식의 상징으로서의 서기이다. 유리창은 그 서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서기를 갈라놓는다. 이 유리창 때문에 ‘나'는 울고 있는 서기에게 가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없다. 하지만 유리창 덕분으로 ‘혼자 울고' 있는 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리창은 타자와 소통할 수 없게 하는 칸막이면서도 또한 ‘혼자' 각각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나'와 ‘그'를 동일시하여 각자 홀로 있는 ‘나'와 ‘그'의 어긋나 있는 대위 구조를 보지 않는다면 이 시가 뿜어내고 있는 의미를 붙잡기 힘들다. 원재길의 ‘극적 구조'를 넓게 본다면 이 장면 역시 그 구조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 침묵의 극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1)의 서기의 울음을 조명하여 해명해주는 텍스트로 볼 수 있는 2) 역시, 독백의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와 ‘김'은 동일 인물의 분신들이다. 1)에서 시적 화자가 ‘나'라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가 담론 배후에 있고 시 표면에 등장한 ‘나'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김'의 중얼거림이 나타나 있다. 홀로 있는 ‘김' 옆에서 ‘김'을 ‘바라보는' ‘그'는 사물화된 김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김이라 할 수 있는데, 성으로만 표시되어 개성을 잃어버렸음을 표시하는 ‘김'보다 더 몰개성적인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김'이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그와 김, 그리고 흐물흐물한 대명사가 되어 버린 ‘나', 또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극적으로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1)에서 서기의 울음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홀로 있음의 순간, 침묵의 순간이었다. 침묵이 깨지면, 이 순간은 깨지고 말 것이다. 세계를 토막내는 언어의 세계가 침묵할 때 순수한 존재 자체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두 시', 삶이 무의미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순간을 깨달을 때의 침묵의 시간, 그 직후터뜨리는 울음의 순간에 배치되는 사물과 인간을 이 시들은 포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극적 구성은 플롯을 시에 도입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배치된 장면을 응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데, 이 일상을 갑자기 전복시키는 시간이 정지된 순간은 기형도 시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된다. 그는 (어느 푸른 저녁)의 시작 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섬'은 아주 익숙한 것 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 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 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형식이 기형도의 가상적 구성물-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그 순간은 시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어떤 연속선상을 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텅 빈 그 순간, 침묵의 순간을 말하기 위해선 우회로를 빙빙 돌아 그 순간을 간접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즉 가상적 공간, 더 나아가 환상적 공간을 구성하여 그 순간을 암시할 수밖에 없다.(어느 푸른 저녁)에서는 그 순간을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이라고 말한다. 이 저녁엔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에서 사람들은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가는 순간이 온다. 이 환상적인 순간은 어떤 예감을 통해 감지하게 된다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고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것은 무방하지 않은가/나는 그것을 본다/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을 숨기고 있는가/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움직임이 홀연히 정지”한 상태, 이 상태는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의 묘사로는 이 상태를 그려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상태는 볼 수 없는, 예감으로서만 감지할 수 있는 상태이면서, 예감했다고 알아차린 순간 없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라고 시는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순간은 그러니까 현실 묘사가 아니라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환상은 의미의 블랙 홀과 같은 상태다. “보이지 않은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의미는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진다. 시인은 또 “이 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역시 순간일 뿐이다. ‘검은 외투'-죽음의 외투-를 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그들의 딱딱하고 무미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본다”고 시인은 말한다.(여기서도 시적 화자는 보는 사람이며,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블랙 홀과 같은 어떤 순간을 느낀 순간, 나에게 ‘그'가 다가온다. ‘그'는 ‘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악마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악마는 말을 걸어온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의 인생의 의미를 모두 무화시킨다.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라고 그 악마는 속삭인다.다시 말해 모든 것이 무의미의 검은 구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을 예감할 때 그 악마는 등장한다. 그리고 세상의 법칙, 아마도 죽음으로 가는 삶의 법칙을 가만히 상기시킨다. 기형도 자신이 말한 ‘가능성'과 ‘불안'은 그 ‘순간'이 이 악마적인 것의 출현을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악마적인 것이 죽음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시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새로운 삶,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주며 ‘위대'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 지경에 다다른 이때 투명하고 푸른 공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감추어진 ‘둥글고 빈 통로'가 열린다. 그래서 악마적인 ‘그'가 말한 숨겨져 있는 ‘법칙'은 다만 죽음의 법칙만이 아니라 환상 속의 다른 통로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형도 시의 환상은 양면적이다. 일상적 삶의 흐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되는 그의 환상은 우리의 삶을 무화시키는 블랙 홀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신비롭게감추어진 희망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시는 시의 탄생과 그 탄생이 가져오는 양면성에 대한 알레고리일지도 모른다. 2.기형도 시의 이중성 파우스트가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이때 아름다움의 순간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은 일상의 권태로운 세계를 무화시킨다. 인간은 권태의 세월보다 죽음을 무릅쓴 아름다움의 세계에 닿고자 하지 않겠는가?(그래서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유혹이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름다움은 죽음의 세계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일상적 삶이 도리어 죽음과 같은 삶이라는 것을 드러내어 삶을 희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파우스트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도 늙은 파우스트가 아름다움의 순간을 찾아 나서는 데서부터이다. 물론 그는 끊임없는 생성을 젊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간이여 ‘멈추어라'라고 만약 자신이 말한다면 자신을 지옥에 데려가도 좋다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그러나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이 매립제에건설한 도시(악마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를 바라보며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죽음의 말을 토해내며 쓰러진다. 즉 파우스트가 산 젊음은 이 아름다운 가상에 대한 외침에 도착함으로써 끝난다. 그의 젊음과 행위는 결국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아름다움의 순간'이란 착지에서 그의 젊음과 힘은 지옥으로 넘겨진다./기형도 시가 포착하려던 그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는 ‘순간'의 이중성도 아름다움에 대한 《파우스트》적 아이러니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형도의 시가 드러내는 아이러니는 순간이 가져오는 이 이중성에 대해 팽팽한 긴장을 풀지 않음으로써 이끌려 나온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시작 노트와 을 다시 상기해보자. ‘아주 낯선 것들'이면서 ‘아주 익숙한 것들'이라는, 순간들의 이중성에 대한 긴장을 시인은 계속 놓치지 않는다. 아니 순간들의 이중성의 포착은 이 대상에 대한 긴장에 찬 예민성의 끈을 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주 낯선 것들로의 ‘둥글고 빈 통로'를 마련하는 어떤 순간은 우리가 언제나 부딪히는 일상에서의 어떤 순간이다. 그래서 ‘아주 익숙'하기도 하다. 그 순간이 벌려내는 환상은 우리 삶의 현장인 일상의 삶을 무화시키면서도 어떤 다른 세계로의 통로, 다른 삶의 세계를 열어 놓는다. 이 이중적인 통로의 발견을 기록하는 데서 기형도의 시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로의 이중성은 ‘둥글고 빈'이라는 수식어에서 이미지화되어 있다. ‘둥근 것'은 아날로지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아날로지는 모든 개체가 전체를 비추고 전체가 개체들을 끌어안는 조화의 세계 아닌가./그 세계는 둥글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비어 있다는 진술에서 ‘둥근 것'의 아날로지 세계는 아이러니의 상태로 변화된다./‘둥글고 빈' 통로는 아름다움에로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無에로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 둥글고 텅 빈 통로를 통과하여 다다른 어떤 다른 세계,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공기 방울의 세계이다. 저녁 노을이 지면/神들의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신비로운 그 城///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 성 안은 “아름답고/신비”한 세계이다. ‘시작 메모'에서 말한 ‘위대한 순간'이 형상화된 세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이 세계에도 해당된다. ‘존재'가 차안의 세계에만 해당된다는 개념이라면 말이다. 이 세계는 신들이 사는 세계이지 않은가. 이 세계는 신들과 농부들과 작은 당나귀는 이 성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어느 하나도 빠지면 성립되지 않는 세계이다. 즉 아날로지의 세계다.시인도 ‘역시' 작은 당나귀들도 평화로운 그 성에 농부들과 살고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은 공기와 같은 세계라서 “구름 혹은/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어지고 세계가 낯설어지며 감각이 착란될 때의 순간이 열어놓는 어떤 ‘푸른 저녁'같을 때, 사람들이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갈 수 있었다. 이 ‘순간'에만 바로 ‘둥글고 텅 빈' 통로를 따라 이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성 안의 세계는 바로 그렇게 공기 방울, 구름이 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룬 세계이다. 그런데 이 공기 방울의 세계는 차안의 공간에 있진 않지만, 차안과 동떨어진 피안의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차안의 공기 안에 있다. 우리가 언제나 대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언뜻 벌려진 공기와 공기 사이의 블랙 홀을 공기가 되어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세계이다.그러니까 이 성 안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옆-앞에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 들어가려는 골동품 상인-아마 차안의 세계의 속성인, 살해를 자행하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등장 인물이라 할-이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가 보았자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다. 골동품 상인은 차안의 세계 뒤에 있는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는 숲만 자르면 성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삼차원적 세계 인식에 머물러 있다. 그가 차안에서 아무리 폭력과 파괴를 행한다 해도 이 숲으로 된 성벽 안은 의연히 평화로운 마을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만큼 불안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는 앞에서 보았듯이 기화되는 길밖에 없다. 통로가 ‘빈' 통로여서 들어가려는 이는 빈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공기 세계는 어떤 무게 있는 물질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볍게 둥둥 떠다닌다. 공중에 투사된 영상처럼 흩어졌다 모여지는 그런 세계다. 우리가 손으로 만질라치면 그 세계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릴 것이다. 이 아날로지의 세계는 그래서 희망의 저편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은 품을 수 있으나 어느전도와 착란의 순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차안에선 이루어낼 수 없을 세계이다. 기형도가 희망에 대해 ‘어둡고 텅' 비어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숲으로 된 성벽' 자체가 비어 있고, 그 비어있는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도 빈 희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 (植木祭) 중에서 기형도 시에서의 ‘죽음'은 시인의 우울한 세계관이나 유년의 기억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와 선택을 통해 ‘각오'한 것이다./ 이 죽음의 각오는 ‘둥글고 빈 통로'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통로에 들어간다는 일은 다른 삶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의미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앞에서 본 바 있었다. 통로 저 편에 있을 숲으로 된 성벽에 갈 수있으리란 희망은 절망으로 전화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둥글고 빈 통로를 걸어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이란 빈 희망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숲으로 된 성벽이 아름답다고 외친 순간 그 아름다움의 덧없음이 부각되면서 죽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즉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은 어두운 희망이라 말할 수 있기에 그러하기도 하다. 그 성벽은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착란과 환상을 통해 대기에 구멍이 나는 순간을 파악하려는 기형도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때의 죽음으로 가는 구멍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푸른 유리병' 같은 공기가 점차 탁해지면서 ‘안개'로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안개) 중에서 푸른 대기 속의 둥글고 빈 통로는 ‘안개의 빈 구멍'으로 전화한다. 다른 삶으로 가는 ‘순간의 통로'가 안개에 의해 막혀버리고 순간이 가지는 죽음의 성질만이 드러난다. 이 순간은 안개로 뒤덮인 환상적인 마을을 구성함으로써 나타나고, 그 죽음의 성질은 다시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죽은 상태와 같은가를 간접적으로 포착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차안의 세계에 대한 네거티브 필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 같은 가상적 세계는, 흐리멍덩한 색깔인 안개의 색깔로 대상의 윤곽만 드러내면서, 생명 없고 답답한 무엇으로 현상한다. 이 시를 더 읽어보자. 죽음의 공기인 ‘안개'의 빈 구멍은 사람들을 빨아들여 그 속에 가두어 놓는다. ‘이 읍' 사람들의 삶은 ‘쓸쓸한 가축들'처럼 무리지어 있지만, 안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 무력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 읍은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인데, 그것은 “한 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하기도 하고, “방죽 위에 醉客 하나가 얼어 죽”지만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같은 시에서)하기도 하는 사건이다. 겁탈당한 여직공과 얼어죽은 취객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는 이 읍 안 사람들에겐 파괴당한 삶을 흐릿하게 바라보고는 쓸쓸하게 고개를 숙여보게 하는 사건 정도의 의미만 가질 뿐이다. 그들 눈앞에서 타인들은 안개 속으로 ‘지워지고' 그들은 제각기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안개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 없게 만드는 세계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또는 그렇게 변화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변화 없는 지속이 기억의 지속을 가져오진 않는다. 그 반대이다. 이 읍에선,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이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지속의 시간성은 텅 빈 시간성이다. 기억이 없이 사는 것은 텅 빈 삶이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와의 상호적인 울림이 없는 시간이고, 그래서 미래조차 가능하지 않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현재가 끊임없이 과거로 되어야만 미래가 있을 수 있어서, 과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개는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 존재이다. 움직이지 않는 존재는 죽은 존재이다. 죽은 존재인 안개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죽은 존재이다. 안개는 독과 같다. 그러나 그 읍 사람들은 안개를 마약처럼 마신다. 안개를 편하게 느낀다./ 안개가 끼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보여야만 해서 “방죽 위의 얼굴들은 모두 낯설”어지고 “서로를 경계하며/바쁘게 지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읍은 ‘안개의 聖域'이 된다. 안개 속의 삶이 정상적인 삶이 된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게 되기도 한다. 이 세계 속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가”게 된다. 이 반어적 표현에는, 안개가 ‘무럭무럭' 키우는 아이들의 삶이란 그들 모두 검은 굴뚝과 폐수와 겁탈의 위험이 있는 공장으로 쓸쓸히 끌려가는 가축과 같은 삶임을 암시한다. 3.작품속 죽음의 포착 (안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를 선택했을 때 기형도 시가 발 딛고 있던 ‘순간'은 무서운 죽음의 세계-안개로 뒤덮인 읍과 같은-를 입벌려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세계-지옥에서의 형벌-는 ‘느릿느릿 새어나'와 계속 ‘미친 듯이 흘러다'((안개)중에서)녀야 한다. 앞에서 본 (식목제)의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라는 구절에서와 같이 이 형벌은 정착이란 있을 수 없게 만든다. 기억도 없이, 미래도, 삶도 없이 흘러다녀야 한다. 오직 흘러다님의 지속만 있을 뿐이다. (안개) 속의 읍내 사람들은 명계(冥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삶을 잃어버린 이 유령의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일군의 기형도 시의 한 주제를 이룬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러 가시라고/모든 길들이 흘러 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기형도는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을 포기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이면에 있는 죽음의 안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와 동일하게 안개에 중독된 유령들을 포착하기 위해선 희망을 억눌러야 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육체를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들이 머무는 정거장으로 쓰려고 한다. 불안이 죽음을 예감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면, 불안을 머물게 한다는 말은 죽음들의 예감을 머물게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죽음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길이 자신에게 흘러들어 죽음이 그 길을 통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길이 흘러드는 정거장으로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육체 자체가 걸어다녀야 한다. 길이 걸어올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길이 흘러 온다는 말은 자신이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길을 흡수한다는 말이다. 걸으면서 길을 흡수하고 흡수한 길을 통해 불안-유령을 만나고 그 유령의 세계를 구성하는 환상으로 시가 구성되게 된다. 이 유령과의 대면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白夜)에선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팡팡 빛나는 이 무서운 白夜” 속에서 “무슨 農具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천천히 걷고 있”는 한 사내를 보여준다. “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사내는 “문닫힌 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 그의 등에 “軍用 파커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 말이다. 담배 살 돈이 없을 이 사내는 아마 어린 아들과 함께 길에 쓰러져 쓸쓸히 얼어죽을 것이다. (가는 비 온다)에서는, 어느 가는 비 오는 날,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지 않는다는 시적 화자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서 전개하는 여러 상념들을 보여준다. 그 상념들은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나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와 같은 죽음의 여러 모습이다. 주검을 직접 보여주는 시도 있다. 가령,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그의 손은 장난감처럼 뒤집혀져 있다”((죽은 구름))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검은 감정이 절제된 상태로 서늘하게 즉물화되어 있다. 시적 화자가 우울하게 가고 있는 거리엔 주검들과 죽음에 대한 상념을 유인하는 ‘낡은 간판'들이 널려 있으며 기후마저도 그러한 상념을 피워 올리게 한다. 그의 눈에 포착되는 사람들은 좀 있으면 죽을 운명이거나 죽어버린 이다. 또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유령들이다. 이들은 회한과 외로움에 말라죽어 가는, 행복과 거리가 먼 이들이다. 플랫폼에서 본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이”고((鳥致院)), 어느 카페에서 본 사내는 “그것으로 탁자를 파내”면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밋빛 인생))라고 새겨 넣는다. 삶을 박탈당한 유령들의 포착은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처럼 ‘흘러다'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포착하는 대상의 대부분인 흘러 다니는 사람들은 시적 화자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삶이 시적 화자의 삶과 다름없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다시 시적 화자의 내면 독백은 떠도는 자의 내면을 드러내게 된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 낸 추억들이 밟히고/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 (진눈깨비) 중에서 진눈깨비 뿌리던 날, 시적 화자는 그날도 역시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서 그는 ‘취한 사내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거해 있는 ‘빈 트럭'도 본다. 그리고 ‘구두 밑창'으로 ‘추억들이 밟히'는 소리를 듣는다.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밟히는 소리도 듣는다. 외로운 빈 트럭과 쓸쓸하게 쓰러지는 취한 사내들에 대한 묘사와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들을 불러오는 회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시적 화자가 주체가 되어 추억들을 불러온다기보다는 저 진눈깨비와 거리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기억들을 불러온다. 그 기억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오”시기에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엄마걱정) 중에서)의 기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엄마가 없어 빈방에 혼자 훌쩍거린 기억을 감추고 있을 사람들이며, 역시 집에 들어가면(집이 있다면)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사람들일 게다. 죽어가는 이 유령들은 그런 기억을 깊이 품고 살아갈 것이며, 이는 다시 역으로 시적 화자 자신도 그 기억을 품고 쓸쓸히 죽어 가는 유령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죽음'을 발견하는 ‘흘러 다니기'는 점점 시적 화자 자신 안의 죽음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 되어버리게 된다. 시적 화자는 “곧 무너질 것만 그리워했”((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다고 말한다. 무너지는 것들이 결국 그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증언하는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과 같이 떠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자신의 다리를 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여행자) 중에서)라고 울부짖는 여행자와 같은, 떠돎을 그만둘 수 없는 유령이다. 환상적 공간의 열린 순간을 통해드러난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 안을 떠돌아다니는 유령적 삶의 포착은, 이렇게 자신도 유령이라고 인식하는, 안개의 구멍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도 안개에 중독되어 버렸다는 점을 인식하는 시적 화자의 등장을 통해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의 공간은 더욱 전일화되고 가공할 것으로 드러낸다. 유령의 세계를 증언하는 자신도 유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그 경악의 순간은, 바로 메두사가 페루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그 놀람과 두려움의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형도의 시는 바로 그 경악의 순간을 포착한 카르파치오의 (메두사)란 ‘그림'과 같은 것일 터, 시 텍스트는 그 경악의 순간 자체, 또는 그 순간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경악의 순간을 구성하여 현현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예술 텍스트가 구성되기 이전엔 그 경악의 순간을 우리는 ‘맞서게 되지' 못한다. 환상을 사용하여 순간을 포착하는 시-예술이 그 경악의 얼굴을 객관화할 때 비로소 경악의 순간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입 속의 검은 잎)은 바로 자신의 얼굴을 본 메두사가 경악하는 순간을 객관화하는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그 일이 터질지 모른다, 어디든지/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이 시에서 등장하는 진술과 사건들이 현실의 어떤 대응물을 지시한다고 본다면 곧바로 해석의 난점이 생길 것이다. 운전기사, 장례식, 망자의 혀, 없어진 사람들, 죽은 사람, 검은 잎,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나' 등,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 텍스트 안에 배치되었을 땐 이 단어들은 그 대상들을 지시하지 않게 된다. 하나의 극적 공간 속으로 이 존재들은 새로 의미를 얻으며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공포의 분위기에 맞추어진다. 어떤 가공할 권력에 의해 살육된 자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무더기'의 실종된 자들-망자들-의 말하지 못하는 혀-잘린 혀일까?-는 유령처럼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유령들은 벌써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린 사람들 몸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 혀들은 이제 ‘거리에 흘러넘'친다. 장례식은 살육당한 자들 중 한 명의 장례식일까? 그 죽은 이의 잘린 혀 역시 거리에 흘러 다닌다. 물론 그 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잘린 혀들이 내는어떤 철버덕거리는 소리, 성대가 잘려나간 채 바람만 빠지는 쇳소리를 내는, 꿈틀대는 소리들을, 원한들을, 슬픔들을, 저주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청 속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혀가 ‘천천히 굳어'감을 자각한다. 그것은 시신을 실은 ‘백색의 차량 가득' 나부끼는 검은 잎 때문이다. 살육이 자행되는 세계에서 살해당한 자들의 유령이 검은 잎일까? 그 유령들-검은 잎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릴 때 혀는 굳어져오며, 이윽고 죽은 자의 혀가 된다. 그리하여 시는 죽은 자의 혀로 쓰여지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지옥에 가 있는 이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무당처럼 대신 말해주는 이가 된다. 정리하자면, 시적 화자가 온통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와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세계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인 운전기사가 어딘가로 그를 데려가서 이 유령들이 시적 화자의 혀를 통해 죽음의 이 세계를 증언할 수 있도록 시적 화자에게 내리는 신들림을, 언제 살육될지 몰라 두려워하는(‘그 일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의 음산한 어조로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아득한 공포의 순간/을 객관화시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수수께끼를 동반한 순간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기형도의 시가 도달한 한 극점은 바로 여기다. 앞에서 보아온, 환상적 공간이 뚫어 놓은 순간의 구멍을 통해 나타나, 죽음을 퍼뜨리는 세계와 그 속에서 떠도는 유령들이, 이 시에선 하나의 전율케 하는 장면으로 종합되어 갑작스레,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 경악의 세계는 물론 가상의 세계이고 현실 세계로 치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형도 시의 세계가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향유 대상으로서의 단순한 가상과는 달리, 시어가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뿜어내는(메두사를 본 메두사), 자기 파열이 가져오는 전율을 우리에게 이 가상 세계는 던져주는데, 그 객관화된 전율과 맞서는 독자는 충격 속에서 새로운 현실에 부딪히며 일상적 시간의 지속이 파열되는 ‘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상적 순간의 충격 속에서 일상적 시간 안에 감추어진 안개와같은 죽음의 습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공포의 세계는 기형도 시가 열어 놓은 ‘순간의 통로'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 속의 검은 잎)의 세계는 그 반대 극점이라 할 수 있는 (숲으로 된 성벽)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희망할 순 없을까. ‘순간의 통로'는 다시 저 유토피아적인 미의 세계로, 숲으로 된 아날로지의 세계, 공기 방울 같은 환상의 세계로 길을 열어 놓기도 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날로지의 세계가 급전하여 유령들의 세계, 경악의 세계가 현현하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아 왔다. 그러나 반대로, 경악의 세계가 급전하여 다시 저 아날로지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두 극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경악의 세계는 다시 희미하게 ‘숲으로 된 성벽'으로 가는 길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적 세계는 부정성을 통해서만 희미하게 빛날 수 있다면 말이다./그렇다면 기형도의 시는 일상적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를 통해세계와의 화해의 열망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용기도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보여주기 위해 두 세계의 연결 지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 작업은 상당한 분석과 해석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글을 마치는 이 시점에서도 비평적 재구성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니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기형도 시 텍스트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몸을 벌리고 있다. (끝) ◆당선소감 영광이다.기쁘다.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과연 좋은 글을 내가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두렵기조차 하다. 당선 통보를 받고 비평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좋은 비평을 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큰일이다. 지금은 문학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문학이 다시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문학 자체의 정치성에 대해서,그리고 더욱 정치성이 짙은 비평에 대해서. 선거 행위만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는 윤리의 문제로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윤리가 단순한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면 삶에서의 권력과 활력 문제로서 윤리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학은 권력 망을 드러내고,비판하며 그것에서 삶이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줄 수 있고,삶의 활력을 북돋을 수 있지 않은가.그렇다면 문학의 윤리-정치성은 더욱 증폭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 그리고 비평이 정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나에게 사랑과 기쁨을 전해 준 사람들에게,그리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도,빈 말이 아닌 ‘고맙습니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이성혁 ●약력 67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 일어과 동 대학원(국문학), 외대강사, 99년 ‘문학과 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심사평 김용하의 ‘미적인 것의 정치성과 정치적인 것의 윤리성’,오홍진의 ‘관념으로 빚은 소설의 성채’,이성혁의 ‘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은식의 ‘사물과 하나가 되기까지의 여정’,장사흠의 ‘풍경의 미학과 권력의 탐색’이 주목을 받았다. ‘미적인 것…’은 미학적 범주들과 시적 언어 사이의 조응 양상을꼼꼼히 살핀 글이지만,미적 개념들을 상호 연관시켜 긴밀한 인테리어를 꾸미는 데는 실패하였다.‘관념으로…’는 짐승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 사이에서 요동하는 정찬 소설의 권력의 역학을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스스로 논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말았다.‘사물과…’는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갈아타며 정현종의 시적 여정을 차분히 밟아간 글이었으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풍경의 미학…’과 ‘경악의 얼굴…’이 마지막까지 남았는데,‘풍경의…’는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개진된 권력의 내면화와 그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과정을,핵심 의미체들을 길어내며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글이고,‘경악의…’는 시인의 심리학에 치중한 종래의 평문들을 단김에 뛰어넘어 극적 구성의 관점에서 기형도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 글이다. 그러나‘풍경의…’는 기계적인 구성과 엉뚱한 결말이 글쓴이의 설익은 문학관을 엿보게 하였으며,‘경악의…’는 미학에서 사회학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리멸렬해지더니 급기야 막다른 길로 뛰어들고 말아,심사자들을 경악케 하였다.하지만 패기만만한 도전과 그 패기가 창안해 낸 새로운 해석 세계는 썩 강렬한 인상을 남겨 마지막 선택의 근거가 되었다.이성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끈기 있게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정과리 김인환
  • 어린이 책꽂이/동물들의 동맹파업 外

    ●동물들의 동맹파업(크리스티앙 부샤르디 글,피에르 에자르 그림,김주열 옮김) 어느날 갑자기 농부가 농장을 뜯어 현대식 건물로 바꾸려 하자 성난 야생동물들이 저마다 제 역할을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올빼미는 쥐를,제비는채소밭의 벌레를 잡아먹지 않으니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인간은 자연과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재미있는 우화로 일깨운다.초등 저학년용.두레아이들 8500원. ●잃어버린 세계(아서 코난 도일 글,장석진 옮김) 영화 ‘쥬라기 공원’의모티브가 된 아서 코난 도일의 SF고전.어린이에게 추리소설의 묘미를 맛보여 주는 길라잡이로 제격.영화와 관련된 에피소드,다양한 공룡 정보 등을 두루 담았다.초등 3학년 이상.옹기장이 8500원. ●올리버와 유령친구들(에바 이보슨 글,민승남 옮김) 마녀·유령·요정이 쉴새없이 신비한 마법을 구사하는 등 환상과 모험 코드로 넘쳐나는 영국산 판타지 동화.주인공 올리버를 둘러싸고 등장하는 무섭지 않은 유령,목이 부러진 유령,조깅하는 유령 등 각양각색의 캐릭터가 재미있게 묘사된다.초등 고학년용.문예당 6800원. ●꼬마 어네스트(로라 반즈 글,캐럴 브라칼렌테 그림,강계식 옮김) 어네스트는 난쟁이 당나귀의 이름.키가 작아 기죽어 사는 어느날 친구 트라비스가 소중한 진실을 귀띔해 준다.“키가 크다고 마음까지 넓은 건 아니야.” 외모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당나귀의 이야기에 곱씹어볼 교훈이 담겼다.4세 이상.효리원 9000원. ●숨바꼭질 생일파티(린다 제닝스 글,조앤 파티스 그림,이승희 옮김) 숨바꼭질을 소재로,유쾌한 글과 아기자기한 원색 그림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 그림책.생일을 맞은 표범이 케이크를 나눠먹을 친구들을 찾아나선다.3∼6세용.문학동네 어린이 8500원. ●사막에서 만난 친구(베티나 오브레히트 글,카트린 엥겔킹 그림,유혜자 옮김) 길 떠난 낙타는 여행중 여러 친구들을 사귀면서 두고온 노새가 정말 좋은 친구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진정한 친구를 얻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4∼7세용.주니어 김영사 7900원.
  • 강동구 ‘민속예술단’창단 공연

    기초자치단체로서는 드물게 구립 '민속예술단'을 창단한 서울 강동구(구청장 김충환)가 26일 창단공연을 갖는다. 민속예술단은 경기민요.국악.무용.풍물팀 등 4개팀 65명으로 구성됐다.경기민요 제 57호 무형문화재 김금숙 선생의 제자 심정자씨가 경기민요팀장을, 소리마당 대표 최순극씨가 국악팀장, 전주대사습놀이 무용부문 장원을 차지한 김나영씨가 무용팀장, 놀이패 울력의 대표인 장이환씨가 풍물팀장을 각각 맡는다. 이번 창단 공연에서는 민속춤이 지닌 '정.중.동'의 흥과 멋을 한껏 표현한 태평무,경기.충청 농악과 영.호남 농악의 정수를 모은 삼도사물놀이 등을 한껏 즐길수있다. 또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벌목노래인 라질가를 비롯해 북한지방의 농부가, 남도 특유의 애절함이 깃든 원장현류대금산조,제비가 등도 만나게 된다. 최용규 기자 ykchoi@
  • 007 어나더데이

    한반도 이미지를 왜곡했다는 비판에 홍역을 치러온 ‘007’시리즈의 20번째 영화 ‘007 어나더데이’(007 Die Another Day)가 오는 31일 국내 개봉한다.‘탄생 4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공들였다는 이 영화는 제작사 자랑대로 막강한 물량 공세로 화면을 압도한다. 시리즈물의 관건은 전편에서 익숙한 특장을 그때그때 유행에 밀리지 않게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홍콩·쿠바·영국·스페인·미국·아이슬란드 등을 발빠르게 돌며 로드쇼처럼 화려한 분위기를 피우는 건 전편 감각을 그대로 빌렸다.눈치껏 유행도 따랐다.사실적인 액션에 기댄 전편들과는 달리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을 과감히 끌어들였다.360도 회전하는 투명 자동차,다이너마이트 타이머시계,초고주파 음파교란 반지 등 ‘아이디어 무기’도 여전하다.제임스 본드는 17탄인 ‘골든아이’ 이후 연속 출연해온 피어스 브로스넌이다시 맡았다. 007이 새 임무를 수행할 곳은 북한의 무기밀매 현장.고난도 파도타기로 북한에 침투해 첩보임무를 무사히 이행하는가 싶던 본드는 곧 위기에 빠진다.북한의강경파 민족주의자인 문 대령(윌 윤 리)과 자오(릭 윤)에 정체가 탄로나 붙잡힌다.몇달 뒤 포로협상으로 석방되지만 영국 정보국은 기밀누설 혐의로 살인면허를 박탈한다.본론은 이제부터.음모를 직감하고 자오를 뒤쫓는 본드의 행로에 영화는 액션,지능게임,본드걸과의 즉흥 연애담 등 갖은 양념을 친다. 북한 비무장지대에서 본드와 문 대령파가 벌이는 추격전을 시작으로 영화는 거침없이 터뜨리고 깨부수어 스케일을 과시한다.서방 강대국들과 이념이 다른 특정국가를 고민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은 변함없다.유전자 치료로 변신하려는 상식 밖 인간들이 몰리는 클리닉센터를 쿠바의 한 섬에 설정하는 식이다. 본드가 ‘본드걸’ 징크스(할 베리)를 만나는 장소는 자오를 뒤쫓아 들른쿠바의 섬.백만장자 구스타프(토비 스티븐스)와 자오의 음모를 캐는 본드곁을 맴돌며 징크스는 CIA요원 신분을 숨긴 채 도움을 준다. 대단한 스케일이나 첩보원 주인공의 변함없는 품위로 볼 때 스파이 영화의대명사로서 여전히 손색은 없다.그러나 아무래도 힘이 달리는 대목이 몇 있다.007을 변주해 성공한 첩보오락물을 관객은 이미 너무 많이 봐 버렸다.‘정통성’ 하나만으로,아직도 본드가 빡빡머리의 신세대 스파이 ‘트리플 X’를 누를 수 있을까.본드의 동작은 품위 있을망정 굼떠 뵈고,첩보물에서 윤활유 구실을 하는 아이디어에는 신세대 관객을 사로잡는 재치가 없다.빙산에서 미끄러져 얼음바다 위를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장면 등 일부 컴퓨터그래픽은 ‘첨단영화’ 같지 않다 싶게 조악하다. 감독은 ‘전사의 후예’로 잘 알려진 뉴질랜드 출신의 리 타마호리.주제곡은 마돈나가 작사·작곡해 불렀다. 황수정기자 sjh@ ◆현실 얼마나 왜곡했나 ‘007 어나더데이’가 정보 빠른 국내 네티즌들에게 일찍부터 밉보인 대목은 어디어디일까.또 이미지를 왜곡한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 무엇보다 국내 관객들이 불편해질 대목은 북한이 세계 평화질서를 깨뜨리며 007을 처참히 고문하는 악의 집단으로 묘사된 설정부터.북한의 강경파인 문 대령(당초 차인표가 의뢰받은 역)과 자오는 유엔이 금지한 무기를 밀매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문 대령은 특히 유전자 변형치료로 변신까지 하는 냉혈한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한국어가 이번만큼 많이 들린 적도 없다.그런데 반가워야 할 우리말이 오히려 입맛을 떫게 만든다.본드가 자오 일행과 첫 대면하는 북한쪽 비무장지대.북한 경비군의 신랄한 사투리가 잠시 화면을 타더니 곧 문 대령·자오 등 주요 북한 인물들의 대사는 영어로 나온다.게다가 성우가 똑같은 목소리로 한국어를 더빙한 대사들은 어설프다 못해 실소가 터진다. 남한이 007의 첩보작전에 직접 연관되지는 않는다.그러나 본드와 본드걸이 북한 공군기지로 잠입하는 후반부에서 북한의 남침이 임박했다는 즉흥적인 설정,007의 분노에 휴전선이 초토화하는 장면 등에서는 심기가 편할 리 없다. 정황상 한반도가 틀림없을 시골마을로 본드와 본드걸이 헬기에서 추락하는결론부.농부가 모는 소는 한우가 아니라 영락없는 물소인데다 농촌 풍경은 낙후해 있다.제작사는 “한국이 아닌 아시아 국가의 한 농촌에서 찍었을 뿐”이라고 변명하지만 찜찜할 대목은 더 있다.본드가 정사를 나누는 사찰이 클로즈업되는데,한국식은 커녕 국적불명에 가까운 건축양식이다.자막 타이틀롤에서 당당히 다섯번째에 등장하는 재미교포 배우 릭 윤의 극중 이름 ‘자오’도 마찬가지.영락없는 중국식이다. 황수정기자
  • 서울시립미술관에서’밀레의 여정’전

    19세기 사실주의 화가이자 ‘바르비종’파의 핵심인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작품이 서울에서 전시되고 있다. 지난 14일 시작해 내년 3월3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밀레의여정’전에 나온 작품은 유화 35점,데생 33점,판화 14점 등 모두 80여 점.밀레에게 영향을 준 들라로슈·다비드 등 고전주의 작가와,밀레에게서 영향 받은 반 고흐·세잔 등 후기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 70여 점도 함께 소개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라 샤리테(동정심)’ ‘여름,세레스’ ‘어머니와 아들’.밀레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은 ‘라 샤리테’는 제작한 뒤 100여년간 행방불명되었다 최근 발견된 작품이다.농부의 아낙이 딸에게 문 밖의 거지에게 빵을 전하게 하는 모습이 따스한 색채로 그려졌다.어머니의 채근에 어린 딸은 수줍기도 하고 거지가 무섭기도 한 듯 망설이며 뺨을 발갛게 물들인다. ‘여름,세레스’는 여신의 왼쪽 뒤에,일에 지친 채 건초 위에서 잠이 든 남녀의 모습을 담은 작품.고흐와 피카소의 ‘낮잠’에소재로 차용돼 화제가된 명작이다.밀레의 생전에는 ‘오줌누는 아이’라고 불리던 ‘어머니와 아들’은 모성의 친밀함·다정함 등 섬세하고 부드러운 서정이 잘 표현돼 있다.드로잉인 ‘아이에게 보리죽을 먹이는 어머니’에서도 같은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제 4전시실에는 비록 포스터들이지만 ‘별이 빛나는 밤’ ‘씨뿌리는 남자’ ‘낮잠’ ‘첫 발자국’ 등 밀레의 영향을 받은 고흐 작품을 나란히 전시했다.1999년 오르세 미술관의 ‘밀레·고흐’전과 같은 형식이다.‘낮잠’을 1889∼1900년까지 90차례 그렸다는 고흐는 밀레를 ‘나의 정신적 안내자’라고 말했는데,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밀레는 18세 때 셰르부르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했으며 1837년 파리로 유학해 들라로슈의 제자가 됐다.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높인 것은 1848년으로,살롱전에 출품한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을 통해서였다.다음해 파리 교외인 바르비종으로 거처를 옮긴 뒤 농민의 고통과 노동의 신성함을 집중적으로 화폭에 옮겼다. 전시장에는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기계를 들여놓는 등 세심하게 관리하고있다.관람료는 일반 8000원,청소년 6000원,어린이 4000원.(02)2124-8991. 문소영기자 symun@
  • 정치 뉴스라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국회법상 의원직은 빨라야 오는 10일 상실될 전망이다. 이 후보는 대선후보 등록 하루 전인 지난달 26일 의원직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국회법 제135조에 따라 의원의 사직은 원칙적으로 본회의 의결로 허가되고 의장이 허가하는 것은 국회 폐회 중일 때로 한정돼 있다. 그러나 오는 9일까지 정기국회 회기가 계속되고 본회의 개의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직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국회가 완전히 종료되는 10일이 돼서야 이 후보의 의원직이 상실되고,전국구 예비후보인 유한열(柳漢烈) 전 의원의 의원직 승계도 이때 이뤄진다. ◆중앙선관위는 올 대통령선거의 선거인명부 사본이 유출돼 유권자 본인도모르게 다른 용도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거관리 규칙을 개정,이번 대선 때부터 선거인 명부에 ‘주민등록번호’ 대신 ‘성별과 생년월일’만 기재해 명부 사본을 교부키로 했다고 1일 밝혔다.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는 1일 자신을 비롯한 진보진영 후보들에대한 언론의 관심을 촉구하는 ‘언론계에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권 후보는 호소문에서 “민노당이 농민단체들과 함께 ‘우리쌀 지키기 100일 걷기운동’을 조직,후보인 저도 참가했지만 이는 묵살되고 어느 후보가농부 몇사람과 막걸리 마시는 장면은 요란하게 장식될 때의 제 심정이 어땠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대학을 순회하며 학생들과 특별강연을 갖는 민노당 후보의 보도자료는 매번 휴지조각이 되는데,‘대학생들과 함께하는 ○○○ 후보’라는 제하의 기사와 사진으로 크게 부각돼 식당에서 대학생 몇명과 햄버거를 먹는 후보의 모습을 보는 마음은 또 어땠을까요.”라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1일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 미군 무죄평결에 대한 항의집회 확산과 관련,“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사과했으나 재발방지책을 밝히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이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가 취한 태도도 유감스러우며,특히 SOFA 개정과 관련한 법무장관의 소극적 자세는 크게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 방짜유기 제작 외길50년 이봉주

    통일 되면 고향 납청에 방짜유기촌을 세우려 했는데….나이도 있고 언제 세상을 등질지도 몰라서,차선책으로 문경시 가은읍에 사재 털어서 짓고 있어요. 방짜유기장 이봉주(76·납청유기 대표)씨는 새달 초에 경북 문경시 가은읍으로 유기공장을 옮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조선시대 중기부터 유기촌으로 널리 알려진 그리운 고향,평북 정주 납청 지역에다 사료에 근거해 유기촌을 재현하려던 집념은 일단 유보했다.대장장이로 살아온 지 50년 남짓, 몸집의 단단함이며 쇳소리가 나는 목청이 아직 50대 초반같다. 그는 지난 78년에 자리잡은 안산 공장이 시화호의 공해 등에 영향받아 유기의 색깔이 변하는 바람에 더 이상 공장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유기란 쉽게 말해 놋그릇,구리에 주석을 섞어서 만든 청동기다.금형에 쇳물을 부어서 형태를 만드는 주물유기와 방짜유기로 나뉜다.방짜는 덩어리 쇠(청동)를 해머로 두드려 얇게 편 뒤 형태를 만드는데,청동과 주석의 비율이 78대 22로 정확한 합금이 필수적이다. 합금 비율이 다르고,아연 등 중금속이 불순물로 섞이면 두드리는 단계에서깨져버린다.따라서 방짜유기는 무조건 무공해 식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납청 출신이지만 그는 농부의 아들이었다.정주중학교를 중퇴하고 몇해 농사를 짓던 그는 직장을 찾아 서울로 흘러들었고,1948년에 고향사람이 운영하는 양대방짜 공장에 들어갔다. “월급보다도,밥 굶지 않고 한뎃잠 안 자는 걸로 감사한 시절이었죠.그런데 원대장장이의 하루 임금이 쌀 두가마인 겁니다.얼른 기술을 배워야겠다고마음 먹었는데 마침 행운이 닿았어요.” 원대장장이가 기술은 좋았는데 말썽을 부렸다.사장은 술·담배 안하고 성실한 그를 은근히 마음에 두었다.그래서 밤늦게 남아 일을 배우는 그에게 서너 가마씩 숯포대를 쓰게 하고,나서서 풀무질도 해줬다.일이 되려고 했는지 그가 만든,모양새가 엉성한 초보 제품을 몽땅 사는 상인도 나타났다.일솜씨가부쩍 늘었다.그 솜씨를 믿고 독립해 나와 첫 공장을 세운 때가 1957년이다. 그러나 제기와 혼수품,생활용기로 쓰던 유기는 그때 이미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에게 밀려나고 있었다.일산화탄소(연탄가스)가 닿으면 시커멓게 색이죽고,제삿날을 앞두고 기왓장을 잘게 쪼개 닦아야 윤이 나는 유기를 사람들이 기피한 것이다. 그는 “70년대에는 젓가락 한짝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징하고 꽹과리를 만들어서 생계를 이어갔지.”라고 회상했다.방짜로 만들 징이나꽹과리는 놋 두께가 아주 고르지 않으면 좋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울음잡기’의 명수인 그의 작품을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쓴다. 생계가 힘든 상태에서도 그는 전통적인 방짜유기 제작기법을 포기하지 않았다.그리고 83년에 유기 부문에서 안성의 김근수(주물),벌교의 윤재덕(반방짜)씨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선정됐다.그 뒤로는 문화재청에서 보조금도 나오고 해서 살림 형편은 조금 나아졌단다. 오히려 요즘에는 놋그릇 수요가 적지 않다. 연탄불이 사라져 변색하지 않는데다 광택 없는 놋그릇은 은은한 맛이 있기에 현대인의 미적 감각에 통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부시 미국 대통령 부처가 방한했을 때 그가 만든 식기가 청와대만찬에 사용됐다.그 뒤 청와대 요청에 따라 같은 형태의 식기 두벌을 제작해 놓은 상태다.최근 S그룹에서도 외국인 초대 행사에 그의 식기를 사용해 찬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요즘은 문화상품이라고 티스푼이나 포크,식기도 양이 적어진 현대인에게맞게 제작하고 있죠.고려청자의 도자기 접시를 재현하는 등 현대인의 감각·취향에 맞는 놋제품을 만들죠.” 이제 여든살을 앞둔 그에게는 믿을 만한 후계자를 양성하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장남 형근(44)씨 말고도 5명의 제자를 둔 그는 방짜유기 제작기법을 제대로 전하고 싶다. 방짜유기는 다섯명이 팀을 이뤄서 만들어야 하는만큼 주물유기보다 제작과정이 까다롭고 힘들다.특히 쇠가 달궈진 상태를 확인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예전엔 밤에만 일했다.요즘은 햇빛을 완전히 가려 공장을 깜깜하게 해놓고 일한다.사재를 털어 문경 땅 3만 9000여평에 유기촌을 만드는 것도 도시에서 보다 나은 후계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바람 때문이다. “농촌 총각들! 농사짓는 것보다 방짜유기를 만들면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문경·안산 문소영기자 symun@
  • [2002 길섶에서] 풀잎

    길 따라 고개 꺾인,누운 풀잎에는 젊은 날 꼿꼿했던 공명심도 없다.11월의 찬 서리를 머금은 냉기서린 바람과 묵직한 발자국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시인 김남주는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라고 했다.바람에 울고 웃는 풀잎처럼 오월은 서정적으로 오지 않는다며 누운 풀잎의 유약함을 꾸짖었다.하지만 시인 조지훈은 ‘한 줄기 바람에도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번뇌하고 부대끼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풀잎은 이처럼 시인에 따라 자신이 되기도 하고 타인이 되기도 한다. ‘검찰 구타 사망’ 사건으로 물러난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태산같이 의연하되 누운 풀잎처럼 겸손한 자세로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검찰 후배들에게 남겼다고 한다.공명심이 앞선 나머지 틈만 나면 머리를 곧추세우려는 검사들의 속성을 경계한 말이리라.‘모든 생물은 땅으로 누울 때 겸손하나니…’ 농부들이 가을 들녘에서 배운 교훈이 새삼 생각난다. 우득정 논설위원
  • 제22회 농어촌청소년 대상/ 대상

    ◆농업부문 서일호씨/ 쌀 브랜드화 연 1억 순익 서일호(徐一鎬)씨는 쌀 브랜드화의 귀재다.고급 쌀을 생산,브랜드를 붙여 신뢰를 쌓고 판로를 넓히는 게 주특기다. 그가 생산한 ‘고라실’이란 쌀은 이미 유명하다.‘땅속에서 물이 솟고 기름진 논’을 뜻하는 이 브랜드 쌀은 지난해 1월 특허청에 상표 출원등록까지 한 히트 상품이다. 앞서 99년 4월에는 ‘쌀사랑(www.ssalsarang.co.kr)’이란 홈페이지를 개설,자기 쌀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홈페이지 고정 회원만 900명,비정기적 고객까지 포함하면 3000명은 족히 된다. 연간 120t의 쌀을 생산,모두 인터넷이나 직거래를 통해 판다.연간 매출액은 4억원,순수입이 1억 2000만원이다.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를 도울 당시의 수입 수천만원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이다.3만여평에 불과하던 논도 인근 농지까지 빌려 6만 4000평으로 크게 늘렸다. 그는 현미식초,멸치액젓,게르마늄 돌가루 등을 섞은 특수 비료를 개발,고품질 쌀을 생산한다. 판매한 쌀이 변하면 새 쌀로 바꿔주는 사후관리도 철저해 소비자의 신뢰가 두텁다.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이웃에 매년 쌀을 돌리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대전시내 4-H 회원과 함께 ‘게으른 농부’라는 브랜드 쌀을 내놓은 서씨는 “이를 국내 최고의 고급스러운 쌀 상품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수산부문 이주석/ 서해안 첫 전복양식 성공 “어릴적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것이 이런 결실을 맺었습니다.” 서해안에서 처음 전복 양식을 성공시킨 이주석(李柱石)씨는 “불우한 환경도 이 길을 재촉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전복 양식을 시작한 것은 95년.전문대 축산과를 졸업한 뒤 삼성생명과학연구소에서 1년간 일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큰형은 간기능이 나쁘고 작은형은 팔 한쪽이 없는 장애인으로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형들과 함께 일하면서 가정을 일으키고 어릴적 꿈을 이뤄줄 어업이 뭘까 생각했다.”는 이씨는 전복을 양식어종으로 선택한 뒤 해양수산부 수산시험장 등 전국 전복시험장을 돌며 양식정보와 기술을 터득한 뒤 태안에서 전복양식에 돌입,성공했다.당시 서해안에는 자연산 전복이 자생했으나 경제성을 보고 전복을 양식하는 이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가온사육방법 등으로 2년이 걸리는 양식기간을 16개월로 앞당기는 신기술 등도 개발했다.사업 규모도 95년 양식장이 160평에서 700평으로 넓어졌고 매출액이 연간 8000만원에서 지난해 2억 7000만원으로 늘었다.지금은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 이웃돕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씨는 “무인도에 전복 종묘를 살포한 뒤 스킨스쿠버 등에게 입장료를 받고,주변에 숙박업과 음식점 등이 들어서 다른 사람도 혜택을 받는 관광지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태안 이천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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