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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이나 리포트 2004] (17)마이카 붐의 허와 실

    [차이나 리포트 2004] (17)마이카 붐의 허와 실

    올 들어 중국의 마이카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2003년 승용차 생산량이 전년보다 배가 늘어난 200만대를 넘어서면서 막연히 보고서 전망치 속에 갇혀 있던 마이카 시대는 광저우(廣州),상하이(上海) 등 연해지역의 고소득 도시와 베이징(北京),톈진(天津),선양(瀋陽),다롄(大連) 등 기타 주요 도시에도 도래하게 됐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말 국내외 모든 자동차 전문예측기관은 중국 주요도시의 자동차 대중화 또는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의 시작을 2005년쯤으로 전망했다.WTO 가입 당시 중국의 수입 승용차 관세는 80%에 달했으나,2006년에는 25%로 하락해 국산 승용차 가격하락을 유도,주요 연해도시에서 마이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게 당초 예측이었다. ●너무 일찍 찾아온 마이카 시대 최근 통계에 의하면 현재 베이징의 자가용 보유대수는 128만대로 해마다 27만대씩 늘고 있다.상하이의 자가용 보유대수도 25만대로 연간 50% 이상 급증하고 있다.2001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승용차와 개인용 차량 보급이 늘어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90년대 자동차 수요의 대부분을 점유하던 ‘관용차’의 퇴장이다.한국의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려는 상하이기차(SAIC)와 독일 폴크스바겐 합작사인 상하이VW에서 1984년부터 생산한 배기량 1800∼2000㏄급 승용차인 싼타나(Santana)의 경우 90년대 생산된 200만대 중 70%가 관용차로 구매된 바 있다.2000년부터 중국정부는 예산절감과 기구축소를 목적으로 ‘관용차’와 기사제도를 없애고,관용차 운용에 필요한 자금을 해당 공무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해 자가용을 사서 스스로 운전하도록 유도했다.관용차 제도의 개혁은 각 부처 국유기업으로 확산됐다.그 결과 2001년 자가용 보유대수가 770만대에서 불과 2년 만인 2003년에는 58.3%가 늘어나 1219만대에 달하게 됐다. 둘째는 정부의 승용차 구입장려 정책이다.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할부금융을 통해 개인의 승용차 구매를 장려한 점이다.국유 상업은행의 자동차 대출은 1999년 말부터 허용됐으며,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15만위안(약 2250만원)이 넘는 배기량 2000㏄급 승용차의 경우 차 값의 최대 90%를 최장 5년 4.5% 금리로 대출받아 살 수 있다. ●늘어나는 자동차의 명암 자동차의 급격한 대중화는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실대출의 증가다.중국정부는 2004년 초부터 철강·부동산·자동차 등 일부 투자과열 산업에 대해 강력한 억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여기에는 자동차 대출도 포함돼 있다. 2004년 5월31일 중국 언론에는 다소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2003년 11월 말 현재 자동차 대출잔액은 1800억위안이 넘었으며 이중 은행이 자체적으로 회수불능 판정을 내린 대출잔액은 52.5%인 945억위안에 달한다는 것이다.2003년 말 중국이 밝힌 주요 국유상업은행의 부실채권 총액은 2조 1100억위안.이중 무려 4.5%가 불과 3년 전에 시작된 ‘신생’ 자동차 대출에서 초래된 불량자산이라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개인신용평가제도 부재를 들 수 있다.중국은 아직 전국적인 통합 전산망을 통해 신용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이 시기 자동차 판매영업소의 광고문구는 ‘당신의 한달 월급으로 자가용을 마련하세요.’였을 정도다.결국 상환능력이 없는 월소득 5000위안(75만원) 정도의 소비자가 A은행에서 대출로 차를 구매하고,이를 상환하지 않으면 A은행에 돌아오는 것은 가치가 떨어져 팔리지도 않을 압류 중고차뿐이다.도덕적 해이에 빠진 소비자는 A은행에서는 신용불량자이지만,다시 B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새 차를 구매하는 악순환이 몇 년간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마이카 시대의 도래로 중국이 겪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도로망 부족과 자동차 문화 부재로 인한 교통사고 증가다.자전거와 뒤엉킨 도로 위에서 비보호 좌회전이 일상화된 중국내 주요 도시에서의 크고 작은 사고는 불가피해 보인다.경력이 오래된 택시기사나 회사 기사들이 새로 나온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나서 ‘초보 운전자’를 피해 다니는 일은 베이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2003년 10만 4000명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중국은 자동차 사망자 수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구조적인 문제점과 향후 전망 중국 자동차산업 하면 단골 메뉴로 여러 회의나 보고서에 등장하는 말이 ‘중복 투자’다.이는 연간 생산규모 444만대의 중국에 완성차 메이커는 96개사에 달한다는 점이며,이중 기본적인 규모의 경제 시현이 가능한 연산 100만대급 대기업은 한 곳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상하이기차,중국일기 등 2대 그룹은 연간 80만대 규모이나,1사당 생산량을 단순 계산하면 4만 6000대라는 결과가 나온다.이렇듯 31개 각 성(省),시(市)에 자동차 메이커가 분산돼 있고,이들 지방정부는 모두 자동차산업을 지역 육성전략 산업으로 지정,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이러한 산업적·지역적 연유로 중국의 마이카 붐은 앞으로도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될 전망이다.자동차 불량대출의 경우 중국 중앙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출기한 단축과 대출비중의 축소에 불과하다.급기야 가장 많은 자동차 대출 불량자산을 보유한 농업은행은 올 8월부터 개인용 자동차 대출을 중지했다.그럼에도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중국의 마이카 붐은 다소 문제점이 많은 조급함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그러나 한국 돈으로 1억원이 넘어가는 아파트보다는,그 10%에 불과한 자동차를 먼저 사겠다는 중국인 동료와 결혼식까지 미루어가며 ‘찜’해 두었던 중고차를 구입하려는 그의 또 다른 친구들이 하루하루 거대한 소비군으로 자라나고 있는 한 중국에서의 진정한 ‘마이카 붐’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베이징 김동하 포스코 경영연구소 연구위원 dhkim@posri.re.kr ■ 빈부격차로 계급갈등 심화 |베이징 이석우특파원|심화되는 빈부격차로 중국사회에 빨간 불이 켜졌다.이로 인해 계급간 적대감이 확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빈부격차가 고스란히 세습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사회과학원 사회과학연구소 리웨이(李) 박사는 “후진타오·원자바오의 신 정부는 전과 달리 인민내부의 계급간 모순을 언급하면서 그 심각성을 주시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1995년 무렵부터 계급간 긴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그는 이어 “권력유착을 통한 축재와 불로소득의 척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압력이 커가고 있는 것이지요.”라고 덧붙였다. 안후이성 부성장 왕화이중(王懷忠) 사형선고,랴오닝성 부성장 류커톈(劉克田) 면직 및 사법심사,선전시 전 부시장 왕쥐(王炬) 20년형 등 고위급 관리들의 부패에 대한 사법처리도 이같은 사회적 압력에 부응하기 위한 공산당의 안간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간 계층은 엷고 부자·빈자로 구성된 양극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어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지난해 상하이의 경우 18%의 소비지출 증가는 자동차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진행됐다는 조사결과도 부익부 빈익빈의 진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과 관련,리 박사는 노동자계급의 급격한 지위하락을 꼽았다.“노동자계급이 영도하는 나라란 과거 헌법규정은 역사책에만 남아 있지요.어느 특정계급에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장쩌민 전 주석이 퇴임 직전 헌법에 삽입한 3개 대표론도 기업가 등 전국민,전계층이 나라의 주인임을 명시한 것입니다.” 중국 사회는 제도상 혁명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다.호구제도의 폐지가 그것.리 박사는 “정부가 호구제의 전면 폐지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빠르면 올해나 내년 중에는 결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도시민과 농민이란 이원적 호적제도에 따라 자유로운 거주이전을 막아 왔는데 열린 사회로의 진전이 이뤄지면서 사회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농촌 등 다른 지역에서 대도시로 유입돼 온 부모들의 자녀들도 호구제란 제도로 인해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자녀 교육을 위해선 한 학기에 600∼800위안가량의 학비를 납부해야 한다.농민의 자녀,호구를 얻지 못한 저소득 전입 인구의 자녀들은 돈을 내지 못해 의무교육의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리 박사는 호구문제가 해결돼도 “재정문제를 감안할 때 향후 10년 안에 외래 유입자의 자녀들이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교육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한 빈곤 세습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 기초를 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진전이 남미처럼 엷은 중간계층에 부자와 빈자로 양분된 양극 계층구조로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swlee@seoul.co.kr
  • 386의원 재산 ‘중산층 이하’

    17대 국회에서 재산을 새로 등록한 초선의원들의 재테크는 최근 불안정한 경기상황을 반영하듯 주식과 부동산,예금,회원권,골동품 등에 골고루 분산 투자하는 경우가 두드러졌다.15,16대 의원들의 경우,주식과 부동산에 집중 투자했던 것과는 달라진 양상이다. 30억 5400만원을 신고한 열린우리당 구논회 의원은 대전시 일대 건물의 전세권과 예금,주식 등에 분산 투자했고,39억 4600만원을 신고한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은 울산의 대지와 임야,목장용지,리조트클럽과 콘도 회원권 등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100억 5500만원으로 1위에 오른 우리당 김혁규 의원은 부동산,예금 등 통상적인 재테크와 함께 김환기·김흥수·이응노 화백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신고해 눈길을 끌었고,우리당 최재천 의원도 서양화와 동양화 4점을 신고했다. 민주당 김종인 의원은 거주중인 구기동 빌라를 제외하고는 부동산 투자가 전혀 없는 대신 은행 예금과 주식,헬스 및 골프 회원권 등 유동성이 큰 분야에 투자했다.대기업 CEO출신으로 87억 8700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우리당 이계안 의원도 부동산보다 예금과 주식,골프회원권 등을 선호했다. 이들과 달리 채무만 5억 6300만원을 신고한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은 매년 이자만 3000여만원씩 물어야 하는 처지다.현 의원측은 “지난 95년 쌀시장 개방 이후 농사를 지으면서 조금씩 쌓여온 빚이 5억원을 넘었다.”면서 “하우스 재배 등 농사로 벌어들인 돈 전부가 빚 이자를 갚는데 나간다.”며 “거의 모든 농가가 엇비슷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한편 초선의원들은 주로 2000㏄급 중형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으며,차종도 세단형보다는 승합차 등 실용적인 차량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이 뉴EF쏘나타를 신고한 것을 비롯해 같은 당 강길부 의원(마르샤),한나라당 이주호 의원(SM5) 등 상당수 의원들이 2000㏄급의 중형차를 신고했다. 농민 출신인 민노당 강기갑 의원의 경우 농업용 트랙터 2대,포터슈퍼캡,봉고프런티어를 갖고 있었고 열린우리당 김선미 의원은 경차인 마티즈를 신고해 눈길을 끌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8)커지는 빈부격차

    [차이나 리포트 2004] (8)커지는 빈부격차

    |베이징·상하이 이석우특파원|베이징의 명동,왕푸징의 상가들은 밤 10시가 넘도록 관광객과 손님들로 대낮처럼 북적거린다.루이뷔통,샤넬,프라다,아르마니 등 즐비한 명품 상점들도 화려함을 더한다.상하이 화이하리루나 난징루,광저우의 베이징루나 티엔허 등 다른 대도시 번화가 역시 축제를 벌이듯 활력이 가득하다. ‘베이징어’의 1인당 평균소득은 3707달러.상하이,광저우는 각각 5643달러,5787달러다.물가수준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그보다 2∼2.5배가량 높다.수치상으론 대도시 주민 1억명 가량은 한국과 비슷한 생활수준에 와 있는 셈이다.명품족이 어림잡아 1000만∼1500만명 수준이란 계산도 일맥상통한다. ●베이징시 등록차량 200만대 넘어서 베이징시는 등록차량 200만대를 돌파,마이카 시대로 돌입했다.‘중국창업투자&하이테크’란 중소 잡지사의 월급쟁이 사장인 쉬장핑(許江萍·37)은 24만위안(3600만원상당,1위안은 150원) 하는 중국산 혼다어코드를 몰고 다닌다.베이징대 출신의 쉬 사장은 “주변 친구들은 모두 다 차가 있다.”고 말했다.상하이시는 급증하는 차량 증가를 막기 위해 신규허가 차량을 제한,차를 사기 위해선 차량번호 경매에 참가해야 한다.번호값은 4만∼5만위안이나 웃돌지만 이를 사기 위해 줄이 늘어서 있다. 대학가 게시판의 운전실습 광고와 젊은 직장인 사이의 운전면허증은 당연한 것이 됐다.대학가 마이카족도 심심찮게 눈에 띄고,해외여행도 도시민에겐 빼놓을 수 없다.쉬 사장의 올 휴가계획도 유럽이다.지난달 유럽 일부국가에 대한 중국정부의 여행자유화 조치로 가족이 오붓하게 다녀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대학생도 해외여행 대열에 끼어들었다.카메라 기능을 지닌 고급 휴대전화,무선통신 노트북컴퓨터,자동차,해외여행 등은 젊은 신소비계층의 일반품목이다. 풍요 속에 민초들의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은 더한다.중산층이 형성되기도 전에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빈자란 구조 속에 계층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노동자 한달 월급에 해당하는 한 잔의 차,일년 월급보다 많은 한끼 식사는 대수롭지않은 일이 됐다.베이징·상하이 등에는 입회비가 몇백만원을 넘는 헬스클럽,식당형 사교클럽 등 멤버스 클럽도 확산 중이다. 안후이성 출신으로 베이징의 한 대형 식당 종업원인 리샤오리(李小莉·22)는 “한 끼에 내 한달 월급을 먹어치우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다.”면서 “30대이면서 여러 채의 집을 소유,세놓고 살면서 명품으로 치장하고 벤츠와 BMW를 타면서 고급 식당과 유흥장을 출입하며 소일하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냐.”고 반문한다.휴일 없이 일하는 샤오리의 월급은 700위안,이런저런 부수입을 모아 한달 평균 1000위안을 버는데 6명이 함께 쓰는 닭장 같은 방값 400위안,식비 300위안씩을 쓰고 나면 저축할 돈도 얼마 남지 않는다며 상대적 빈곤감에 우울해한다. ●도시빈민 상대적 빈곤·박탈감 빈부차의 이유는 많지만 주요 원천 중 하나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다.통계수치론 3배.사회보장,공공교육 혜택 등을 따지면 6배 이상 벌어진다.중국의 1인당 평균소득은 1090달러지만,광둥성 선전시는 6500달러나 된다.경제성장의 과실이 도시로 집중,9억이 넘는 농민들은 2등 국민으로 전락했다.농촌에서 도시로 흘러들어온 유입인구들은 저소득 하층민이 됐다.중국사회과학원 사회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베이징에만 20만∼50만이 빈민생활을 한다.월소득 500∼900위안의 일용직이나 날품팔이,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도시로 몰려드는 농촌 인구는 1년 평균 연인원 1억 2000만명.공사장 막노동은 하루 30∼50위안.창고 등을 개조한 막사 같은 곳에서 10∼20명이 함께 새우잠 자고 한 끼 1∼4위안가량 하는 음식으로 떼우면서 몇달을 버틴다.대부분 몇달 일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일부는 가족을 거느린 채 도시를 전전한다.평균 월소득은 600∼800위안.농촌인구의 도시정착이 확대되면서 도시빈민이란 개념이 생겨났고 당국의 빈민대책에 비상이 걸렸다. 공사장 인부 등 노동자임금 체불은 공식통계만도 연 200억위안.저소득계층의 사회보험이 제대로 안돼 있어 사고가 나거나 중병에 걸려도 돈이 없어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적잖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중국일보사 쟈오더런 부사장은 지적한다.베이징대의 한 퇴직교수는 “앞으로 써야 될 지출의 용도와 규모가 가늠되지 않아 허리띠를 졸라매고 산다.”고 말했다.급격한 사회변동이 저소득계층뿐아니라 중산층에도 불안감을 가져오고 있다.새로운 사회보장망이 확충되지 못한 과도기 속에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는 때로 ‘정글 자본주의’의 색깔을 띤다.더이상 국가가 돌봐주지 않는다는 강박감 때문인지 사회 전체는 돈을 향해 큰 수레바퀴처럼 굴러간다.그 밑에 깔리면 모든 것이 끝장이란 생각이 사람들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도 성장 사회의 활력 때문일까.낙담보단 희망과 기대가 큰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다.베이징 푸라이야 건강센터 안마사인 왕펑(王鋒·30).한달에 1200위안을 받는 왕은 “죽어라고 일해도 한달에 200∼300위안 벌기도 힘겨운 고향 쓰촨 농촌사람들을 떠올리면 지금 수입도 황송하다.2008년 올림픽을 치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내일에 대한 기대가 상대적 빈곤감을 앞서고 있는 셈이다. ●성장혜택에 기대·희망 큰 편 빈부차를 나타내는 중국의 지니계수는 0.4∼0.45 수준.양퉁팡(揚通方) 베이징대 한국학연구센터 소장은 “한국보다 격차가 크지만 소득차의 확대 속에서도 기회와 선택의 폭이 늘고,희망적인 기대로 빈부격차가 사회불안정을 일으킬 단계에는 와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swlee@seoul.co.kr ■ 中부자들 어떤 사람 |베이징·상하이 이석우특파원|중국 최고 갑부는 중국판 빌 게이츠격의 컴퓨터 귀재로 불리는 33세의 딩 레이(丁磊),윌리엄 딩이다.2000년 나스닥에 상장된 자신의 인터넷 검색엔진 왕이(罔易·Netease.com)의 주식가격이 뜨면서 단번에 13억달러의 재산가로 부상했다.중국인 1인당 연평균소득이 1090달러인 것을 감안할 때 12만명이 1년 동안 벌어야 겨우 딩 레이 한 사람의 재산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IT 재벌은 딩 레이 말고도 줄을 서 있다.천티엔차오(陳天橋·31) 오락게임사이트 셩다왕루오의 회장,장차오양(張朝陽·40) 인터넷 검색엔진사이트 소후(Sohu.com) 회장 등이 그들이다.각각 4억 9000만달러,2억 7000만달러의 재산가다.IT 재벌들은 30대 초·중반이 많다.대부분 기술이나 전문지식을 통해 재벌이 됐다는 점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 자산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부침이 더 심하다.IT 재벌들의 재산은 나스닥이나 홍콩증권시장 등에 상장된 주식에 의존해 있어 주식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다른 상당수 재벌총수들은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특혜대출,권력자와의 유착관계 등의 구설수 속에 불편한 처지다.“포브스지의 중국자산가 순위는 쇠고랑 차는 순서”란 식의 비꼬는 말이 유행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재산증식 과정이 석연치 않은 사람도 적잖다. 지난해엔 20대 자산가에 꼽히던 산시 하이신철강그룹 리하이창(李海倉)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엽총으로 살해당했고,허난성 최대 갑부 챠오진링(喬金) 황허실업 회장은 은행의 대출금 상환 압박 속에 의문의 자살을 택했다.올 들어선 상하이 최대갑부로 통하는 저우정이(周正毅) 농카이그룹 회장이 대출금 유용,미상환 등을 이유로 구속돼 3년형을 선고받았다.중국 부자들이 돈을 벌어도 수면 위에 나서길 원하지 않는 것도 축재의 투명성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IT업계의 기린아들이 약진하고 있지만,비율로 보면 아직 중국 자산가의 대다수는 부동산업의 ‘큰손’들이다.정부 입김을 크게 받아 개발이익이 많은 부문이다.지난해 말 현지 언론들이 꼽은 30대 자산가 중 절반이 넘는 16명이 부동산으로 치부를 한 재력가들이었다. 중국 100대 자산가의 출신 지역은 개혁·개방이 가장 빨랐던 광둥성 출신이 22%로 가장 많았다.상하이 14%,베이징 11%,저장성 8% 순이다.국무원 발전연구센터의 후장윈(胡江雲) 박사는 “소득격차 그 자체보다는 부자들이 어떻게 축재를 했는가하는,돈을 버는 수단과 방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의 증가가 점점 쟁점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swlee@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8)커지는 빈부격차

    |베이징·상하이 이석우특파원|베이징의 명동,왕푸징의 상가들은 밤 10시가 넘도록 관광객과 손님들로 대낮처럼 북적거린다.루이뷔통,샤넬,프라다,아르마니 등 즐비한 명품 상점들도 화려함을 더한다.상하이 화이하리루나 난징루,광저우의 베이징루나 티엔허 등 다른 대도시 번화가 역시 축제를 벌이듯 활력이 가득하다. ‘베이징어’의 1인당 평균소득은 3707달러.상하이,광저우는 각각 5643달러,5787달러다.물가수준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그보다 2∼2.5배가량 높다.수치상으론 대도시 주민 1억명 가량은 한국과 비슷한 생활수준에 와 있는 셈이다.명품족이 어림잡아 1000만∼1500만명 수준이란 계산도 일맥상통한다. ●베이징시 등록차량 200만대 넘어서 베이징시는 등록차량 200만대를 돌파,마이카 시대로 돌입했다.‘중국창업투자&하이테크’란 중소 잡지사의 월급쟁이 사장인 쉬장핑(許江萍·37)은 24만위안(3600만원상당,1위안은 150원) 하는 중국산 혼다어코드를 몰고 다닌다.베이징대 출신의 쉬 사장은 “주변 친구들은 모두 다 차가 있다.”고 말했다.상하이시는 급증하는 차량 증가를 막기 위해 신규허가 차량을 제한,차를 사기 위해선 차량번호 경매에 참가해야 한다.번호값은 4만∼5만위안이나 웃돌지만 이를 사기 위해 줄이 늘어서 있다. 대학가 게시판의 운전실습 광고와 젊은 직장인 사이의 운전면허증은 당연한 것이 됐다.대학가 마이카족도 심심찮게 눈에 띄고,해외여행도 도시민에겐 빼놓을 수 없다.쉬 사장의 올 휴가계획도 유럽이다.지난달 유럽 일부국가에 대한 중국정부의 여행자유화 조치로 가족이 오붓하게 다녀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대학생도 해외여행 대열에 끼어들었다.카메라 기능을 지닌 고급 휴대전화,무선통신 노트북컴퓨터,자동차,해외여행 등은 젊은 신소비계층의 일반품목이다. 풍요 속에 민초들의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은 더한다.중산층이 형성되기도 전에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빈자란 구조 속에 계층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노동자 한달 월급에 해당하는 한 잔의 차,일년 월급보다 많은 한끼 식사는 대수롭지않은 일이 됐다.베이징·상하이 등에는 입회비가 몇백만원을 넘는 헬스클럽,식당형 사교클럽 등 멤버스 클럽도 확산 중이다. 안후이성 출신으로 베이징의 한 대형 식당 종업원인 리샤오리(李小莉·22)는 “한 끼에 내 한달 월급을 먹어치우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다.”면서 “30대이면서 여러 채의 집을 소유,세놓고 살면서 명품으로 치장하고 벤츠와 BMW를 타면서 고급 식당과 유흥장을 출입하며 소일하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냐.”고 반문한다.휴일 없이 일하는 샤오리의 월급은 700위안,이런저런 부수입을 모아 한달 평균 1000위안을 버는데 6명이 함께 쓰는 닭장 같은 방값 400위안,식비 300위안씩을 쓰고 나면 저축할 돈도 얼마 남지 않는다며 상대적 빈곤감에 우울해한다. ●도시빈민 상대적 빈곤·박탈감 빈부차의 이유는 많지만 주요 원천 중 하나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다.통계수치론 3배.사회보장,공공교육 혜택 등을 따지면 6배 이상 벌어진다.중국의 1인당 평균소득은 1090달러지만,광둥성 선전시는 6500달러나 된다.경제성장의 과실이 도시로 집중,9억이 넘는 농민들은 2등 국민으로 전락했다.농촌에서 도시로 흘러들어온 유입인구들은 저소득 하층민이 됐다.중국사회과학원 사회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베이징에만 20만∼50만이 빈민생활을 한다.월소득 500∼900위안의 일용직이나 날품팔이,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도시로 몰려드는 농촌 인구는 1년 평균 연인원 1억 2000만명.공사장 막노동은 하루 30∼50위안.창고 등을 개조한 막사 같은 곳에서 10∼20명이 함께 새우잠 자고 한 끼 1∼4위안가량 하는 음식으로 떼우면서 몇달을 버틴다.대부분 몇달 일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일부는 가족을 거느린 채 도시를 전전한다.평균 월소득은 600∼800위안.농촌인구의 도시정착이 확대되면서 도시빈민이란 개념이 생겨났고 당국의 빈민대책에 비상이 걸렸다. 공사장 인부 등 노동자임금 체불은 공식통계만도 연 200억위안.저소득계층의 사회보험이 제대로 안돼 있어 사고가 나거나 중병에 걸려도 돈이 없어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적잖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중국일보사 쟈오더런 부사장은 지적한다.베이징대의 한 퇴직교수는 “앞으로 써야 될 지출의 용도와 규모가 가늠되지 않아 허리띠를 졸라매고 산다.”고 말했다.급격한 사회변동이 저소득계층뿐아니라 중산층에도 불안감을 가져오고 있다.새로운 사회보장망이 확충되지 못한 과도기 속에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는 때로 ‘정글 자본주의’의 색깔을 띤다.더이상 국가가 돌봐주지 않는다는 강박감 때문인지 사회 전체는 돈을 향해 큰 수레바퀴처럼 굴러간다.그 밑에 깔리면 모든 것이 끝장이란 생각이 사람들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도 성장 사회의 활력 때문일까.낙담보단 희망과 기대가 큰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다.베이징 푸라이야 건강센터 안마사인 왕펑(王鋒·30).한달에 1200위안을 받는 왕은 “죽어라고 일해도 한달에 200∼300위안 벌기도 힘겨운 고향 쓰촨 농촌사람들을 떠올리면 지금 수입도 황송하다.2008년 올림픽을 치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내일에 대한 기대가 상대적 빈곤감을 앞서고 있는 셈이다. ●성장혜택에 기대·희망 큰 편 빈부차를 나타내는 중국의 지니계수는 0.4∼0.45 수준.양퉁팡(揚通方) 베이징대 한국학연구센터 소장은 “한국보다 격차가 크지만 소득차의 확대 속에서도 기회와 선택의 폭이 늘고,희망적인 기대로 빈부격차가 사회불안정을 일으킬 단계에는 와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swlee@seoul.co.kr ■ 中부자들 어떤 사람 |베이징·상하이 이석우특파원|중국 최고 갑부는 중국판 빌 게이츠격의 컴퓨터 귀재로 불리는 33세의 딩 레이(丁磊),윌리엄 딩이다.2000년 나스닥에 상장된 자신의 인터넷 검색엔진 왕이(罔易·Netease.com)의 주식가격이 뜨면서 단번에 13억달러의 재산가로 부상했다.중국인 1인당 연평균소득이 1090달러인 것을 감안할 때 12만명이 1년 동안 벌어야 겨우 딩 레이 한 사람의 재산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IT 재벌은 딩 레이 말고도 줄을 서 있다.천티엔차오(陳天橋·31) 오락게임사이트 셩다왕루오의 회장,장차오양(張朝陽·40) 인터넷 검색엔진사이트 소후(Sohu.com) 회장 등이 그들이다.각각 4억 9000만달러,2억 7000만달러의 재산가다.IT 재벌들은 30대 초·중반이 많다.대부분 기술이나 전문지식을 통해 재벌이 됐다는 점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 자산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부침이 더 심하다.IT 재벌들의 재산은 나스닥이나 홍콩증권시장 등에 상장된 주식에 의존해 있어 주식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다른 상당수 재벌총수들은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특혜대출,권력자와의 유착관계 등의 구설수 속에 불편한 처지다.“포브스지의 중국자산가 순위는 쇠고랑 차는 순서”란 식의 비꼬는 말이 유행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재산증식 과정이 석연치 않은 사람도 적잖다. 지난해엔 20대 자산가에 꼽히던 산시 하이신철강그룹 리하이창(李海倉)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엽총으로 살해당했고,허난성 최대 갑부 챠오진링(喬金) 황허실업 회장은 은행의 대출금 상환 압박 속에 의문의 자살을 택했다.올 들어선 상하이 최대갑부로 통하는 저우정이(周正毅) 농카이그룹 회장이 대출금 유용,미상환 등을 이유로 구속돼 3년형을 선고받았다.중국 부자들이 돈을 벌어도 수면 위에 나서길 원하지 않는 것도 축재의 투명성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IT업계의 기린아들이 약진하고 있지만,비율로 보면 아직 중국 자산가의 대다수는 부동산업의 ‘큰손’들이다.정부 입김을 크게 받아 개발이익이 많은 부문이다.지난해 말 현지 언론들이 꼽은 30대 자산가 중 절반이 넘는 16명이 부동산으로 치부를 한 재력가들이었다. 중국 100대 자산가의 출신 지역은 개혁·개방이 가장 빨랐던 광둥성 출신이 22%로 가장 많았다.상하이 14%,베이징 11%,저장성 8% 순이다.국무원 발전연구센터의 후장윈(胡江雲) 박사는 “소득격차 그 자체보다는 부자들이 어떻게 축재를 했는가하는,돈을 버는 수단과 방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의 증가가 점점 쟁점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swlee@seoul.co.kr
  • 정병국의원등 8명 강진서 1박2일 농활체험

    20일 아침 용산역에서 KTX(한국고속철도)를 타고 목포로 출발했다.대전까지는 1시간쯤 걸렸지만 대전에서 목포까지는 속도가 새마을호 수준으로 떨어져 1시간50분이 걸렸다.이런 것도 호남인들이 상대적 소외감을 느끼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8명의 의원은 강진군에서 가장 작은 면인 옴천면에서 농촌활동을 하기로 돼 있었다.우리가 머문 영산리 계원마을 50여 가구 중 20여 가구는 독거 노인의 집이었다.젊은이들이 떠나버린 농촌의 현실을 한 눈에 확인했다. ●농민들 쌀 개방 앞두고 불안 “정말 놀랍소.감사하요.이렇게 많은 국회의원들이 한꺼번에 우리 마을을 찾은 것은 처음이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소.” 주민들의 환대를 받자 출발 전에 가졌던 우려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만나본 농민들은 내년 쌀 개방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정부의 대책에 대해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정부는 향후 10년간 119조원을 투ㆍ융자하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농촌의 수익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고 했다.쌀 개방을 앞둔 그들은 우려를 넘어 절망하고 있었다.주민들은 대부분 벼농사를 지었고 더러는 강진 특산 한우인 맥우를 사육하거나 민물 새우인 토하를 키우는 집도 있었다.나는 토하 양식과 벼농사를 하는 조경철씨 댁으로 배정됐다. 우리는 잡초를 뽑고 풀베기를 하면서 농촌 현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주민들은 “1만여평 가까이 농사를 지어도 살림살이가 빠듯하고,애들 공부시키기도 힘들다.”고 했다. ●“의정활동도 모범 보여주세요” 저녁을 먹고는 마을 회관에서 기탄 없는 간담회를 가졌다. 한 분은 “전라도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찾아줘서 기분이 좋다.이제 당을 떠나서 농촌을 체험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환영한다.”고 했다.다른 분은 “잘 왔다.이런 인연으로 영호남이 가까워지고 정치권이 농업 문제를 피부로 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진심으로 바란다.서울로 올라가면 무책임한 질책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는 의정활동의 모범을 세워줬으면 좋겠다.”는 충고도 해줬다. ●지역벽 허물고 의형제 緣 맺어 간담회를 마치고 농민들과 새벽 2시까지 술자리를 함께 했다.이 순간만은 의원이라는 신분을 떠나고 싶었다.우리는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생각들을 털어놓았다.올해 62세 되는 농가의 주인을 형님으로 모시면서 의형제의 연을 맺은 건 더없는 기쁨이었다. 비록 1박2일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지역주민과 너무나 큰 친밀감을 느꼈고,여기에서는 더 이상 호남의 벽,지역 감정은 우리에게 없는 듯했다.돌아오는 길 주민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선배 정치인의 구태를 벗고,호남인이 아닌 국민으로서 우리를 대해주길 바란다.”는 한 주민의 진심어린 충고가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5) 고라니의 DMZ 살이

    민통선·비무장지대(DMZ) 고라니들의 일상은 ‘평화’와 ‘불안’이 교차한다.인적이 떠난 단절된 환경 속에서 눈에 띄는 천적도 없고,주변 산야의 풍부한 물과 나무뿌리 등 널린 먹이는 여느 곳 고라니들이 부러워할 만하다.그러나 지뢰와 불발탄에 희생되거나 ,연례행사처럼 매년 봄 계속되는 비무장지대의 산불에 쫓기는 등 그네들이라고 고초를 겪지 않는 건 아니다.남방한계선 철책 인근 남쪽에 자리를 잡았거나,간혹 수로 아래 철책 구멍을 통해 남쪽으로 넘어온 녀석들은 농부들의 농작물을 탐내다가 올무에 희생되고,농로와 작전로를 지나는 차에 치여 비명횡사하기도 한다. ●자동차에 뛰어들어 비명횡사 6월11일 낮.강원도 화천군 오작교 하류 2㎞ 지점 북한강 상류에 어미 고라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폭 100여m의 강변 모래밭,토종자라가 90도 가까이 곤두서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웅덩이 옆을 지나 껑충거리는 특유의 몸짓으로 오작교 방향을 향해 강을 따라 5분여를 유유히 달리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라니는 수영을 잘하니 녀석도 수영하러 나왔던가 보다.이 고라니는 탐사대에 DMZ 야생 고라니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가장 오래 드러내 보인 녀석이다.탐사대는 탐사기간 동안 거의 매일 고라니를 1∼2마리씩 목격했다.그러나 미확인 지뢰지대 풀숲에서 ‘두두둑’ 소리를 내며 불쑥 등장해 아취형 등짝만을 보여주고 달아나거나,강변 억새 숲속에서 쉬고 있다 풀잎을 가르며 순식간에 달아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6월10일 임진강 초평도 너머 장단반도의 서부전선 이중 철책 사이에서 목격된 고라니는 500여m 남짓한 구간을 동서로 왔다갔다 배회하는 행동을 반복했다.남방한계선 너머 북쪽에서 살다가 철책을 넘어와 길을 잃은 녀석으로 보였다. 영어로 물사슴(Water Deer)이라 불릴 정도로 물과 친숙한 고라니는 DMZ에서도 대부분 호수나 강변 숲에서 목격됐다.경기도 연천 필승교 남방한계선 임진강 철책 하류 100여m 풀숲의 고라니는 임진강가의 갈대숲을 터전으로 삼았다. 강화도 북부 해안의 창우리에서 본 어미와 새끼 2마리의 고라니 모자는 묵논 습지를,파주 스토리사격장내 풀숲을 갑자기 뛰쳐나와 탐사대를 놀라게 한 고라니는 미군 사격장내 피탄지점 자연습지를 터전으로 삼고 있었다. 고라니 서식밀도는 6·25전쟁 이전에 비해 한동안 현저히 줄었다가 생피를 마시고 보약재로 쓰려고 성행했던 밀렵을 엄격하게 단속한 이후 근년들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개체수가 늘고 특히 DMZ에선 흔한 짐승이다.그래서인지 멸종위기종이 돼 버린 산양 등과는 달리 고라니의 습성에 대한 집요한 연구결과를 찾기는 힘들다. 지난달 6일 밤 마을앞 도로에서 고라니를 차로 쳤다는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이장 김동일(42)씨는 “마을 사람들도 가끔 고라니와 부딪치는데 녀석들이 모두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향해 달려든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그러나 전방부대 장병들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경기도 연천의 DMZ 철책담당 중대장은 “10㎞ 순찰로를 밤중에 한번 돌면 보통 10여마리를 목격한다.군용 손전등을 가까이 들이대면 놀라서 얼어붙은 듯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몸길이 1∼1.2m의 왜소한 체격에 등이 휘어 때론 옹졸해 보이기조차 하는 고라니는 위험에 처하면 마냥 줄행랑을 놓는 ‘소심하고 아둔한 약자’다.먹이를 저축하거나 겨울잠을 자지 않으므로 겨울은 시련의 시기다.인가도 경작지도 없는 비무장지대 고라니에겐 특히나 잔인한 계절이다.DMZ 장병들은 폭설이 심한 겨울엔 배고픔과 추위에 지쳐 숨진 고라니를 가끔 목격한다. ●논·밭 망쳐 농민들과 ‘원수지간’ 탐사가 진행되던 6월초 남북이 서로 철책에 설치된 선전방송용 대형 스피커와 전광판을 철거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소음과 야간 불빛에 시달리던 고라니에게도 좋은 소식일 것이다.그러나 민통선 지역을 출입하는 농민들과 고라니는 불행하게도 ‘원수지간’이 되어간다.벼와 콩 등 밭작물의 새순을 잘라먹거나 논 군데군데 자리를 차지하고 눌러앉는 고라니의 등쌀에 농민들은 정부가 피해를 보상하라고 아우성이다.툭하면 논두렁을 무너뜨리고 가을에 볏단을 짓밟곤 하는 멧돼지에 대한 불만만큼이나 크다.고라니는 ‘겁쟁이’ 노루보다도 작고 약하지만 인적없는 땅 DMZ에서 꿋꿋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노루나 사슴보다 더욱 번성해 가고 있다.우리에게 “인간과 자연의 공존한계는 어디인가.”를 되물으면서…. 화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전문가 칼럼 겨울철에도 눈이 말끔히 치워진 길을 따라 민간인통제선 지역으로 들어서면 길 옆 눈이 쌓인 곳에 야생동물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멧돼지를 비롯해 노루나 고라니가 대부분이지만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다.어쩌다 산양의 발자국이라도 만날 때면 기쁨은 더욱 커지고 발자국을 따라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다.그나마 나라 안에서 야생동물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은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뿐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따라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남북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씩 물러남으로써 넓이가 6400만 평에 이르는 드넓은 비무장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군사분계선은 서쪽으로 한강 하구의 교동도에서부터 판문점을 지나 중부지방의 철원,양구,인제와 동해안의 고성에 이르는 248㎞ 길이로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민간인통제구역은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으로부터 지역에 따라 5∼20㎞ 밖에 그어진 민간인통제선 안의 지역을 말하며 비무장지대 일대의 군 작전 및 군사시설보호와 보안유지를 목적으로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는 구역이다. 휴전 이후 사람들의 간섭을 덜 받음으로써 어느 정도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은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야생동물만 보더라도 남한 지역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짐작되는 반달곰,표범,여우와 같은 종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멸종위기종인 산양을 비롯한 수달의 흔적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먹이를 찾아 산을 오르는 멧돼지와 노루,고라니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겨울철이면 강원도 고성 오소동과 고진동 계곡에서는 산양이 무리지어 나타나 군인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겨울을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자연 상태에서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생태계의 건강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몸담아 살아가고 있는 곳의 자연은 야생동물의 모습은 그 흔적조차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건강함을 잃었고 우리들의 삶도 아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야생동물이 살 수 없는 땅은 우리네 인간들도 살 수 없다.야생동물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만이 우리들에게 가냘픈 희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박그림 설악녹색연합대표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5) 고라니의 DMZ 살이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5) 고라니의 DMZ 살이

    민통선·비무장지대(DMZ) 고라니들의 일상은 ‘평화’와 ‘불안’이 교차한다.인적이 떠난 단절된 환경 속에서 눈에 띄는 천적도 없고,주변 산야의 풍부한 물과 나무뿌리 등 널린 먹이는 여느 곳 고라니들이 부러워할 만하다.그러나 지뢰와 불발탄에 희생되거나 ,연례행사처럼 매년 봄 계속되는 비무장지대의 산불에 쫓기는 등 그네들이라고 고초를 겪지 않는 건 아니다.남방한계선 철책 인근 남쪽에 자리를 잡았거나,간혹 수로 아래 철책 구멍을 통해 남쪽으로 넘어온 녀석들은 농부들의 농작물을 탐내다가 올무에 희생되고,농로와 작전로를 지나는 차에 치여 비명횡사하기도 한다. ●자동차에 뛰어들어 비명횡사 6월11일 낮.강원도 화천군 오작교 하류 2㎞ 지점 북한강 상류에 어미 고라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폭 100여m의 강변 모래밭,토종자라가 90도 가까이 곤두서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웅덩이 옆을 지나 껑충거리는 특유의 몸짓으로 오작교 방향을 향해 강을 따라 5분여를 유유히 달리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라니는 수영을 잘하니 녀석도 수영하러 나왔던가 보다.이 고라니는 탐사대에 DMZ 야생 고라니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가장 오래 드러내 보인 녀석이다.탐사대는 탐사기간 동안 거의 매일 고라니를 1∼2마리씩 목격했다.그러나 미확인 지뢰지대 풀숲에서 ‘두두둑’ 소리를 내며 불쑥 등장해 아취형 등짝만을 보여주고 달아나거나,강변 억새 숲속에서 쉬고 있다 풀잎을 가르며 순식간에 달아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6월10일 임진강 초평도 너머 장단반도의 서부전선 이중 철책 사이에서 목격된 고라니는 500여m 남짓한 구간을 동서로 왔다갔다 배회하는 행동을 반복했다.남방한계선 너머 북쪽에서 살다가 철책을 넘어와 길을 잃은 녀석으로 보였다. 영어로 물사슴(Water Deer)이라 불릴 정도로 물과 친숙한 고라니는 DMZ에서도 대부분 호수나 강변 숲에서 목격됐다.경기도 연천 필승교 남방한계선 임진강 철책 하류 100여m 풀숲의 고라니는 임진강가의 갈대숲을 터전으로 삼았다. 강화도 북부 해안의 창우리에서 본 어미와 새끼 2마리의 고라니 모자는 묵논 습지를,파주 스토리사격장내 풀숲을 갑자기 뛰쳐나와 탐사대를 놀라게 한 고라니는 미군 사격장내 피탄지점 자연습지를 터전으로 삼고 있었다. 고라니 서식밀도는 6·25전쟁 이전에 비해 한동안 현저히 줄었다가 생피를 마시고 보약재로 쓰려고 성행했던 밀렵을 엄격하게 단속한 이후 근년들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개체수가 늘고 특히 DMZ에선 흔한 짐승이다.그래서인지 멸종위기종이 돼 버린 산양 등과는 달리 고라니의 습성에 대한 집요한 연구결과를 찾기는 힘들다. 지난달 6일 밤 마을앞 도로에서 고라니를 차로 쳤다는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이장 김동일(42)씨는 “마을 사람들도 가끔 고라니와 부딪치는데 녀석들이 모두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향해 달려든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그러나 전방부대 장병들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경기도 연천의 DMZ 철책담당 중대장은 “10㎞ 순찰로를 밤중에 한번 돌면 보통 10여마리를 목격한다.군용 손전등을 가까이 들이대면 놀라서 얼어붙은 듯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몸길이 1∼1.2m의 왜소한 체격에 등이 휘어 때론 옹졸해 보이기조차 하는 고라니는 위험에 처하면 마냥 줄행랑을 놓는 ‘소심하고 아둔한 약자’다.먹이를 저축하거나 겨울잠을 자지 않으므로 겨울은 시련의 시기다.인가도 경작지도 없는 비무장지대 고라니에겐 특히나 잔인한 계절이다.DMZ 장병들은 폭설이 심한 겨울엔 배고픔과 추위에 지쳐 숨진 고라니를 가끔 목격한다. ●논·밭 망쳐 농민들과 ‘원수지간’ 탐사가 진행되던 6월초 남북이 서로 철책에 설치된 선전방송용 대형 스피커와 전광판을 철거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소음과 야간 불빛에 시달리던 고라니에게도 좋은 소식일 것이다.그러나 민통선 지역을 출입하는 농민들과 고라니는 불행하게도 ‘원수지간’이 되어간다.벼와 콩 등 밭작물의 새순을 잘라먹거나 논 군데군데 자리를 차지하고 눌러앉는 고라니의 등쌀에 농민들은 정부가 피해를 보상하라고 아우성이다.툭하면 논두렁을 무너뜨리고 가을에 볏단을 짓밟곤 하는 멧돼지에 대한 불만만큼이나 크다.고라니는 ‘겁쟁이’ 노루보다도 작고 약하지만 인적없는 땅 DMZ에서 꿋꿋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노루나 사슴보다 더욱 번성해 가고 있다.우리에게 “인간과 자연의 공존한계는 어디인가.”를 되물으면서…. 화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전문가 칼럼 겨울철에도 눈이 말끔히 치워진 길을 따라 민간인통제선 지역으로 들어서면 길 옆 눈이 쌓인 곳에 야생동물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멧돼지를 비롯해 노루나 고라니가 대부분이지만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다.어쩌다 산양의 발자국이라도 만날 때면 기쁨은 더욱 커지고 발자국을 따라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다.그나마 나라 안에서 야생동물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은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뿐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따라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남북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씩 물러남으로써 넓이가 6400만 평에 이르는 드넓은 비무장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군사분계선은 서쪽으로 한강 하구의 교동도에서부터 판문점을 지나 중부지방의 철원,양구,인제와 동해안의 고성에 이르는 248㎞ 길이로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민간인통제구역은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으로부터 지역에 따라 5∼20㎞ 밖에 그어진 민간인통제선 안의 지역을 말하며 비무장지대 일대의 군 작전 및 군사시설보호와 보안유지를 목적으로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는 구역이다. 휴전 이후 사람들의 간섭을 덜 받음으로써 어느 정도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은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야생동물만 보더라도 남한 지역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짐작되는 반달곰,표범,여우와 같은 종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멸종위기종인 산양을 비롯한 수달의 흔적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먹이를 찾아 산을 오르는 멧돼지와 노루,고라니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겨울철이면 강원도 고성 오소동과 고진동 계곡에서는 산양이 무리지어 나타나 군인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겨울을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자연 상태에서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생태계의 건강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몸담아 살아가고 있는 곳의 자연은 야생동물의 모습은 그 흔적조차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건강함을 잃었고 우리들의 삶도 아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야생동물이 살 수 없는 땅은 우리네 인간들도 살 수 없다.야생동물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만이 우리들에게 가냘픈 희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박그림 설악녹색연합대표
  • [세상에 이런일이]칠칠맞은 女

    빈 농가에 들어가 주인행세를 하며 소를 팔아치우려던 30대 여자가 ‘엉뚱한’ 가격을 제시한 탓에 경찰에 붙잡혔다. 강원 춘천경찰서는 7일 혼자 사는 농민이 집을 비운 틈을 타 축사에 있는 소 4마리를 팔려던 마모(33·여)씨에 대해 절도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마씨는 6일 오후 2시쯤 춘천시 동산면 고모(66)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축산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트럭을 몰고온 축산업사 A씨에게 마씨가 부른 소 4마리의 값은 950만원.마리당 500만원씩은 족히 나갈 수 있는 소값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A씨였다.터무니없는 가격을 수상하게 여긴 A씨는 마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경찰에서 “병도 없이 멀쩡한 소를 반도 안되는 가격에 팔려고 하는 점도 이상했지만 왠지 급하고 불안해 보이는 여자의 모습이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조사결과,마씨가 지난 일주일 사이 고씨의 집에서만 같은 수법으로 3차례나 소를 훔치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 [세상에 이런일이]칠칠맞은 女

    빈 농가에 들어가 주인행세를 하며 소를 팔아치우려던 30대 여자가 ‘엉뚱한’ 가격을 제시한 탓에 경찰에 붙잡혔다. 강원 춘천경찰서는 7일 혼자 사는 농민이 집을 비운 틈을 타 축사에 있는 소 4마리를 팔려던 마모(33·여)씨에 대해 절도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마씨는 6일 오후 2시쯤 춘천시 동산면 고모(66)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축산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트럭을 몰고온 축산업사 A씨에게 마씨가 부른 소 4마리의 값은 950만원.마리당 500만원씩은 족히 나갈 수 있는 소값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A씨였다.터무니없는 가격을 수상하게 여긴 A씨는 마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경찰에서 “병도 없이 멀쩡한 소를 반도 안되는 가격에 팔려고 하는 점도 이상했지만 왠지 급하고 불안해 보이는 여자의 모습이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조사결과,마씨가 지난 일주일 사이 고씨의 집에서만 같은 수법으로 3차례나 소를 훔치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 한나라 “국민속에서 ‘딴나라당’ 오명 씻자”

    “딴나라를 버리고 국민 속으로….” 한나라당이 ‘딴나라당’‘부자당’ 등 그간의 나쁜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 자신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언론으로 꼽혀온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매체에 ‘딴나라는 드뎌 사라진다.’는 문구의 배너광고를 게재하는 등 지금까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줬다.특히 그동안 말로만 외쳐대던 ‘뜬구름 잡는 변화’와는 거리가 먼 ‘행동하는 변화’를 모색중인 것 같다. 이같은 변화는 국민 속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정권 창출은 고사하고 정당으로서의 존립기반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소장파 “마오쩌둥식 하방(下放)” 초·재선 소장파 중심의 ‘수요조찬모임’은 ‘마오쩌둥식 하방(下放)’에 나서기로 하고 구체적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하방은 마오쩌둥이 중국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문화대혁명(1965∼1974년) 당시 자신은 물론 친위세력까지 대거 농촌으로 내려가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민의 뜻’을 앞세워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했던 일을 말한다. 원희룡·김명주·김기현 의원은 최근 회동을 갖고 의원 개인의 관심 및 전문 분야에 따라 다양한 ‘민생 현장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들은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쌀 개방 대책의 실효성을 점검하기 위해 호남지역에서 미래 지향적인 대안농업을 경험하는 등 농촌활동도 벌이고 광복절을 맞아 독도 방문 일정도 잡아 놓았다.또 군부대내 복지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해병대 입소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장애 체험,농수산물 경매 현장 체험 등도 갖기로 했다. 원 의원은 “일반 시민들도 참가하고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도록 제안했고,대부분 의원들이 이에 공감했다.”면서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닌 정책적 측면에서 접근해 의정활동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3선·중도그룹,“금강산으로,백두산으로” 3선그룹을 중심으로 한 ‘국가발전연구회(발전연)’와 중도성향 의원모임인 ‘국민생각’도 나름의 프로그램에 따라 금강산과 백두산으로 각각 떠난다.발전연 소속 의원 20여명은 2일 금강산으로 떠난다. 이 모임은 그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실익 없는 일방적 대북 퍼주기’라며 정면으로 비판해온 이재오·김문수·홍준표 의원 등 대여 강경파들이 속한 모임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강경파들이 앞장서 대북·통일문제의 전향적 변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성향의 의원들로 구성된 ‘국민생각’ 소속 의원 10여명도 조만간 백두산으로 ‘독립기행’을 떠난다.이들은 올 여름 연구과제로 ‘독립운동’을 상정하고,백두산을 비롯해 항일 전적지가 산재한 만주지역을 돌아볼 계획이다.친일진상규명특별법이 국회에 계류된 상황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추진해 적지않은 관심을 끌고 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서울광장] 성실과 한탕주의/손성진 논설위원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이란 말이 사회의 지향점이었던 때가 있었다.“열심히 참고 일하라.그러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위정자들은 사탕발림의 말로 성실을 강요했다.국민들은 묵묵히 따랐다.노동자,농민들이 공장과 논밭에서 쉼없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내일에 대한 기약 때문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떠했나.사실 열매가 맺어지긴 했다.속이 꽉 차지 않고 덜 익은 열매였다.그것이라도 피와 땀을 흘린 이들의 몫으로 돌아갔는가.수십년간 그들이 꿈꾸었던 미래가 실현되었는가.그렇지 않다.성실을 믿고 따라온 노동자 농민에게 남은 것은?아무것도 없다.가구당 3000만원의 빚과 신용불량의 딱지,백수 신세,OECD회원국중 10년간 자살 증가율 1위라는 기록….남은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열매는 누가 따먹은 것일까.‘가진자’들이다.부(富)는 한 곳으로 몰렸다.중소기업은 죽어가는데 재벌은 공룡처럼 몸집을 불렸다.단칸방을 언제 면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 아파트 값은 수억원씩 올라버렸다.내집 마련의 꿈은 언제까지나 아득한 꿈이다.신용불량자는 줄지 않는데 한달에 1000만원 이상 카드를 쓰는 사람이 3만명이 넘는다.더욱이 5000만원 넘게 쓴 사람은 작년보다 80.5%나 늘었다니.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넘어섰는데도 왜 대다수 국민들은 빈곤을 느끼는가.다수가 잘 사는 정책을 펴지 못한 탓이다.성장만능주의의 소산이다.성장의 과실은 부유층 몫이었고 대다수 국민은 배고픔에 허덕인다.한 연구소가 조사해 보니 49.5%가 가정의 경제 상태가 불만스럽다고 했다.“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 놓으라.”성장주의자들은 경제교본을 들고 목청을 높인다.경쟁을 통해 도태시킬 것은 시켜야 더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지금까지 겪었던 ‘못가진자’의 희생을 또 강요하고 있다.가진자만이 더 잘 살겠다는 집단이기주의다.아파트 20층에서 아이를 던지고 죽든 말든 관계없다는 것이다. 못가진자들은 이제 성실을 믿지 않는다.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는 더 이상 아니다.개미처럼 일해 한푼 두푼 모아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여긴다.이는 연속적인 저축률 하락,자조적 풍조,근로 의욕 상실로 나타났다.성실이 통하지 않을 때 사회는 아노미에 빠진다.노리는 것은 ‘한탕’이다.한탕주의는 이미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자신도 모르게 한탕 욕구가 마음을 점령했다.로또 광풍,10억 만들기 열풍은 그래서 나왔다.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해서는 ‘대박’을 손에 쥐긴 어려운 까닭이다. 범죄도 한탕주의다.몇백만원어치를 터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납치,유괴를 해서 몇억원을 뜯어내려 한다.주가조작으로 수백억원을 갈취한다.몇십억원씩 회사돈을 털어 해외로 줄행랑을 놓는 것은 예사다.고위층을 사칭해 수억원씩 가로채는 것도 가장 흔한 사기수법이다.고시열풍도 ‘한탕주의’라 할까.취업은 어렵고 직장을 얻어도 신분이 불안하니 고시로 인생역전을 시도하는 것이다.지난 3일 보도된 전직 증권맨의 사기극은 ‘한탕의 집합체’같은 사건이다.증권사 직원 K씨는 고객 돈 7억원을 맡아 주식투자로 한탕을 노리다 모두 날렸다.다음에 택한 것이 공무원 시험이다.번번이 낙방하자 마지막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을 사칭해 거액을 뜯으려다 붙잡힌 것이다. 다시 성실로 돌아가자.가진자들은 못가진자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과거에 다 성실했다는 것은 거짓일 수도 있다.그러나 가진자의 부귀는 못가진자의 희생을 딛고 얻은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이제 돌려줄 때가 됐다.경제·사회적 정책이 그쪽으로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성실이 통하는 세상으로 되돌려야 한다.그러면 한탕주의는 저절로 물러갈 것이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3)흙사람이 보낸 편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4848-16,옛 김해평야의 낙동강 기슭 한 언저리에 소담재(小潭齋)라는 작은 전시실을 겸한 찻집.그 곁 창고같이 허름하고 귀신냄새가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것 같은 어두컴컴한 안쪽에는 뜻밖에도 한국인의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아프고 서러운 배고픔의 역사가 눈 뜨고 서 있다. ●‘소담재’에서 만난 ‘역사’ 배고픔만이 아니다.여자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차별받고 부대끼면서도 죽는날까지 참아야만 했던 한국의 어머니들이 모두 모여 서 계신다.모두가 일하는 모습이다.흔히 노동이라고 표현하는,육체를 수고롭게 움직여 식구들과 이웃의 삶을 보살피고 있는 동작은,멈춘 상태로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과 긴장감이 짙게 느껴진다.얼핏 1900년 무렵 개항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고,외세와의 갈등과 시련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한국인들의 생활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한국인을 인간의 길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껴안고,업고,다독여 오늘까지 데려오신 어머니 모습이다. 이같은 어머니 모습을 빚고 있는 허경혜씨도 여성이다.우연한 기회에 그의 작품전을 알리는 작은 신문기사를 읽고나서 그의 작품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그런지 몇 해를 지나서 또 우연히 그의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퍽 인상적이었다.그는 그의 작품을 토우(土偶)라 불렀는데,나는 토우라는 이름보다 ‘흙사람’이라는 말이 더 좋겠다고 했다.토우와 흙사람은 좀 다른 세계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허경혜씨의 ‘흙사람’은 한국인의 역사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한 미술양식이다.따라서 토우,토용(土俑),명기(名器)라고도 부르는 것들과 다르게 보아야 할 것 같다.중국,한국 역사 속에서 자리매김되어온 토우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세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또한 희랍 로마에서 발달한 테라코타(Terra-cotta)나 일본 문화인 하니와(埴輪)와도 다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토우’와는 다른 ‘흙사람’의 세계 이른바 토우는 사람 모습을 갖춘 것과 여러 가지 동물,생활용구 등 모든 표상물들로서 주술적인 우상,무덤에 껴묻기 위한 부장용(副葬用)으로 만든 것들이다.특히 한국과 중국 고대 사회에서의 토우는 인간이 죽은 뒤의 세계와 영혼의 미래를 상징하는 신앙 체계와 관련되어 있다.또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주종관계를 전제로 하여 지배자의 시체와 함께 노비나 하인을 산 채로 파묻던 고대 국가의 습속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이 때 토우에 나타난 인물상들은 여성의 성적 특징을 과장하여 표현함으로써 다산신앙과 풍요를 나타내거나 공예적으로 두드러진 기법을 이용함으로써 그 시대의 우주관이나 사생관(死生觀)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그런 연유로 토우의 외형이 당시의 생활상·사회상을 짐작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하지만 이 토우가 주술적 우상성과 주종관계를 위한 제물로서 인간을 희생시키는 몰인간성 이념을 유지한 채 현대사회의 한 미술형식으로 재현,혹은 답습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무의미한 낭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허경혜씨의 ‘흙사람’은 이런 전통사회에서 있어 온 토우들과는 선명하게 차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흙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로움인데 그런 점에서 전통시대의 나한신앙(羅漢信仰)이 지닌 특징들과 일정한 소통관계를 지니고 있다.한국인들이 꿈꾼 자유로움이 나한신앙에 잘 나타나 있는데,이들 나한상은 다른 불상과 달리 엄격한 도상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자유롭게 바위 위에 앉거나 팔을 괴고 쉬는 자세,기분 좋게 서있는 자세 등으로 표현되는데 표정도 가지각색이다.눈을 내리뜨고 참선하는 얼굴,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거나 빙긋이 미소짓는 모습,찡그린 얼굴 등 다양한 인간의 표정을 보여준다.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화된 성격과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적절하게 융화시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그렇게 볼 때 흙사람은 유장한 한국인의 전통신앙체계를 근간으로 삼되 종교적으로 의존하거나 이미지를 억지로 끌어들이지 않으면서도 전통의 힘과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한국인의 사랑과 믿음,갈등과 불안을 담백하게 형상화시키고 있는 점은 흙사람의 장점이자 미덕이다. 소백산맥 이남의 흙 중에서 산화철 성분이 적고 흙 알갱이가 굵으면서 내화도가 높은 흙을 이용하여 인간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점도 좋아보인다. ●노예노동보다 고통스러웠던 보릿고개 그가 집중하고 있는 20세기 초 중반 무렵의 한국 농촌의 여성상은 수많은 회화와 조각들로 표현되어온 기존의 미술적 혹은 역사적 평가와도 조금은 궤적을 달리해야 할 것 같은 문화다.가난과 질곡으로 압축되는 20세기 초중엽 농촌 사회에서 가장 부자유스럽고 무거운 노동과 정신적 중압감을 받으며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과 가족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일들을 도맡아해 낸 것은 어머니였다.양반 사대부 가정과 달리 민중의 삶은 여성들의 희생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사회구조였다.의료시설과 의약품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가운데서 여러 명의 자식을 생기는 대로 낳아 기르는 일은 죽음에 가까운 위험하고도 무모한 생존 그 자체였다. 식량부족은 곧 산모와 여성들에게 영양결핍을 고질적인 일상으로 만들었고 대가족의 빨래와 식단차리기 등은 견디기 힘든 노예노동에 견줄 만했다.그 어떤 어려움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보릿고개로 불려온,긴 긴 봄날의 굶주림이었다.토지 부족과 식량 부족이 일상화된 가운데서 해마다 반복되는 보릿고개는 특히 젖먹이를 키우거나 임신중인 어머니들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천형과도 같았다. 그런 질곡의 세월은 적어도 보리농사가 시작된 18세기 무렵 이후부터 더욱 극심해진 한국 농촌의 비극이었다.한국 농민들이 하루 세 끼니의 식사를 하게 된 것이 1960년대 이후부터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보릿고개 시절에는 하루 한 끼니조차도 제대로 거치기가 쉽지 않았었다.굶주림과 고난중에도 어머니는 임신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고 길러야만 집안과 사회가 이루어진다. 똑같이 굶으면서도 임신하고,젖 먹이고,어린 자식 품어 키워내야 하는 역할은 전적으로 어머니 몫이다.따라서 한국 어머니는 한국 역사의 절반이 아닌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온 몸으로 도맡아왔다.그런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역사 바깥이나 다름없는 홀대와 차별의 불길 속에 서서 살아왔다.그러다가 현대사회라는 이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까지 와버렸다.전통적 가치와의 충돌로 생기는 늙으신 농촌 어머니의 고독,깊은 상실감,소외와 박탈감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고백록을 쓰듯이 어머니의 수난사를 흙으로 표현하게 된 것 같다. ●‘강철문명’과 맞서는 흙의 힘 콘크리트와 강철 등 인공적 조형과 냉혈한 금속성,생명의 단절과 괴리를 멈추지 못하는 도시문명 속에서 허경혜씨가 들고나온 것은 흙이다.흙의 부드러움과 온유함,자연성과 생명성을 상징하는 흙 한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한국여성사의 한 단면을 조형해내는 그의 작업은 분명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어머니 마음으로 읽혀진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임을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흙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잠시 우리가 걸어왔고 지향하고 있는 목표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3)흙사람이 보낸 편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4848-16,옛 김해평야의 낙동강 기슭 한 언저리에 소담재(小潭齋)라는 작은 전시실을 겸한 찻집.그 곁 창고같이 허름하고 귀신냄새가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것 같은 어두컴컴한 안쪽에는 뜻밖에도 한국인의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아프고 서러운 배고픔의 역사가 눈 뜨고 서 있다. ●‘소담재’에서 만난 ‘역사’ 배고픔만이 아니다.여자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차별받고 부대끼면서도 죽는날까지 참아야만 했던 한국의 어머니들이 모두 모여 서 계신다.모두가 일하는 모습이다.흔히 노동이라고 표현하는,육체를 수고롭게 움직여 식구들과 이웃의 삶을 보살피고 있는 동작은,멈춘 상태로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과 긴장감이 짙게 느껴진다.얼핏 1900년 무렵 개항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고,외세와의 갈등과 시련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한국인들의 생활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한국인을 인간의 길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껴안고,업고,다독여 오늘까지 데려오신 어머니 모습이다. 이같은 어머니 모습을 빚고 있는 허경혜씨도 여성이다.우연한 기회에 그의 작품전을 알리는 작은 신문기사를 읽고나서 그의 작품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그런지 몇 해를 지나서 또 우연히 그의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퍽 인상적이었다.그는 그의 작품을 토우(土偶)라 불렀는데,나는 토우라는 이름보다 ‘흙사람’이라는 말이 더 좋겠다고 했다.토우와 흙사람은 좀 다른 세계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허경혜씨의 ‘흙사람’은 한국인의 역사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한 미술양식이다.따라서 토우,토용(土俑),명기(名器)라고도 부르는 것들과 다르게 보아야 할 것 같다.중국,한국 역사 속에서 자리매김되어온 토우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세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또한 희랍 로마에서 발달한 테라코타(Terra-cotta)나 일본 문화인 하니와(埴輪)와도 다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토우’와는 다른 ‘흙사람’의 세계 이른바 토우는 사람 모습을 갖춘 것과 여러 가지 동물,생활용구 등 모든 표상물들로서 주술적인 우상,무덤에 껴묻기 위한 부장용(副葬用)으로 만든 것들이다.특히 한국과 중국 고대 사회에서의 토우는 인간이 죽은 뒤의 세계와 영혼의 미래를 상징하는 신앙 체계와 관련되어 있다.또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주종관계를 전제로 하여 지배자의 시체와 함께 노비나 하인을 산 채로 파묻던 고대 국가의 습속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이 때 토우에 나타난 인물상들은 여성의 성적 특징을 과장하여 표현함으로써 다산신앙과 풍요를 나타내거나 공예적으로 두드러진 기법을 이용함으로써 그 시대의 우주관이나 사생관(死生觀)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그런 연유로 토우의 외형이 당시의 생활상·사회상을 짐작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하지만 이 토우가 주술적 우상성과 주종관계를 위한 제물로서 인간을 희생시키는 몰인간성 이념을 유지한 채 현대사회의 한 미술형식으로 재현,혹은 답습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무의미한 낭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허경혜씨의 ‘흙사람’은 이런 전통사회에서 있어 온 토우들과는 선명하게 차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흙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로움인데 그런 점에서 전통시대의 나한신앙(羅漢信仰)이 지닌 특징들과 일정한 소통관계를 지니고 있다.한국인들이 꿈꾼 자유로움이 나한신앙에 잘 나타나 있는데,이들 나한상은 다른 불상과 달리 엄격한 도상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자유롭게 바위 위에 앉거나 팔을 괴고 쉬는 자세,기분 좋게 서있는 자세 등으로 표현되는데 표정도 가지각색이다.눈을 내리뜨고 참선하는 얼굴,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거나 빙긋이 미소짓는 모습,찡그린 얼굴 등 다양한 인간의 표정을 보여준다.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화된 성격과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적절하게 융화시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그렇게 볼 때 흙사람은 유장한 한국인의 전통신앙체계를 근간으로 삼되 종교적으로 의존하거나 이미지를 억지로 끌어들이지 않으면서도 전통의 힘과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한국인의 사랑과 믿음,갈등과 불안을 담백하게 형상화시키고 있는 점은 흙사람의 장점이자 미덕이다. 소백산맥 이남의 흙 중에서 산화철 성분이 적고 흙 알갱이가 굵으면서 내화도가 높은 흙을 이용하여 인간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점도 좋아보인다. ●노예노동보다 고통스러웠던 보릿고개 그가 집중하고 있는 20세기 초 중반 무렵의 한국 농촌의 여성상은 수많은 회화와 조각들로 표현되어온 기존의 미술적 혹은 역사적 평가와도 조금은 궤적을 달리해야 할 것 같은 문화다.가난과 질곡으로 압축되는 20세기 초중엽 농촌 사회에서 가장 부자유스럽고 무거운 노동과 정신적 중압감을 받으며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과 가족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일들을 도맡아해 낸 것은 어머니였다.양반 사대부 가정과 달리 민중의 삶은 여성들의 희생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사회구조였다.의료시설과 의약품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가운데서 여러 명의 자식을 생기는 대로 낳아 기르는 일은 죽음에 가까운 위험하고도 무모한 생존 그 자체였다. 식량부족은 곧 산모와 여성들에게 영양결핍을 고질적인 일상으로 만들었고 대가족의 빨래와 식단차리기 등은 견디기 힘든 노예노동에 견줄 만했다.그 어떤 어려움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보릿고개로 불려온,긴 긴 봄날의 굶주림이었다.토지 부족과 식량 부족이 일상화된 가운데서 해마다 반복되는 보릿고개는 특히 젖먹이를 키우거나 임신중인 어머니들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천형과도 같았다. 그런 질곡의 세월은 적어도 보리농사가 시작된 18세기 무렵 이후부터 더욱 극심해진 한국 농촌의 비극이었다.한국 농민들이 하루 세 끼니의 식사를 하게 된 것이 1960년대 이후부터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보릿고개 시절에는 하루 한 끼니조차도 제대로 거치기가 쉽지 않았었다.굶주림과 고난중에도 어머니는 임신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고 길러야만 집안과 사회가 이루어진다. 똑같이 굶으면서도 임신하고,젖 먹이고,어린 자식 품어 키워내야 하는 역할은 전적으로 어머니 몫이다.따라서 한국 어머니는 한국 역사의 절반이 아닌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온 몸으로 도맡아왔다.그런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역사 바깥이나 다름없는 홀대와 차별의 불길 속에 서서 살아왔다.그러다가 현대사회라는 이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까지 와버렸다.전통적 가치와의 충돌로 생기는 늙으신 농촌 어머니의 고독,깊은 상실감,소외와 박탈감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고백록을 쓰듯이 어머니의 수난사를 흙으로 표현하게 된 것 같다. ●‘강철문명’과 맞서는 흙의 힘 콘크리트와 강철 등 인공적 조형과 냉혈한 금속성,생명의 단절과 괴리를 멈추지 못하는 도시문명 속에서 허경혜씨가 들고나온 것은 흙이다.흙의 부드러움과 온유함,자연성과 생명성을 상징하는 흙 한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한국여성사의 한 단면을 조형해내는 그의 작업은 분명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어머니 마음으로 읽혀진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임을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흙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잠시 우리가 걸어왔고 지향하고 있는 목표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 [딸기·장미 로열티 비상] 딸기98% 외국種…2만농가 ‘무방비’

    세계는 지금 ‘종자전쟁’중이다.종자전쟁이란 한마디로 씨앗의 개발과 공급을 둘러싸고 국가나 기업 사이에 정치적 또는 경제적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한국은 반도체나 자동차·조선 등에서 강국의 반열에 접어들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종자전쟁에서는 국제식물신품종보동맹(UPOV)같은 국제기구를 앞세운 종자강국에 철저히 유린될 수밖에 없는 약소국이다.더구나 종자 강대국의 융단폭격에 초토화되고 있는 상대는 다름아닌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농민들이다.오는 8월 로열티 지급여부가 결정되는 딸기농가와 이미 로열티 지급이 결정되어 해외 종자 메이저와 로열티 분쟁이 한창인 장미농가의 어려움을 두차례에 걸쳐 돌아본다. “로열티 주고 나면 농사지어 뭘 갖고 먹고 산답디까.딸기에 로열티를 붙인다니,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3000평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기르는 충남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 박동민(55)씨는 불만을 쏟아냈다. 국제 식물신품종보호협약(UPOV)에 따라 일본품종을 주로 심는 딸기 농가들이 품종 사용료(로열티)를 물어야할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딸기에 무슨 로열티냐 농림부는 8월 말까지 딸기를 품종보호대상으로 지정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박씨가 심는 딸기는 현재 80%가 일본품종이다.전국 생산량의 13%를 차지하는 최대 딸기생산지 논산 지역 대부분이 비슷하다.그는 한해 50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리지만 비닐값 600만∼700만원,인건비 1000만원 등을 빼면 3000만원도 남지 않는다.박씨는 “딸기농가들이 남의 집 마당만 쓸어줘도 이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한탄하는 마당에 로열티는 무슨 로열티냐.”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웃 연무읍 죽본리에서 1600여평의 딸기 농사를 짓는 김낙원(62)씨도 “지난 봄 폭설로 하우스 8동 가운데 6동이 무너져 죽을 지경인데 로열티가 웬말이냐.”고 한숨쉬었다. 현재 전국에서 재배되는 딸기품종은 육보(레드펄) 40%,장희 45% 등 일본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국산인 매향은 고작 1.8%에 불과하다.딸기 농가는 2002년 말 현재 2만 2000여 가구.7800㏊에서 연간 21만t 5000억원 어치를 생산하고 있다.우리나라 전체의 채소 생산액 6조 5000억원의 7.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국립종자관리소 최근진 심사관은 “모든 작물이 2009년까지 품종호보 대상으로 지정되지만 딸기를 유독 걱정하는 것은 생산비중이 높은 데다 외국품종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000여평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경북 고령군 쌍림면 곽영상(48)씨는 “육보 딸기를 길러 대부분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로열티 문제가 불거질 경우 수출길이 막히고 말 것”이라고 걱정했다.국내 딸기는 지난해 449만 7000달러 어치가 수출됐으며 주요 수출국 역시 일본이다.전남 담양군 월산면 중월리에서 1600평의 딸기 농사를 짓는 배정운(57)씨는 “앞으로 딸기 공판장에서 출하량을 따져 가구당 로열티를 매기는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며 불안해했다. ●지정을 최대한 늦춰달라 보성군 벌교읍 딸기영농조합 위창길(54) 대표이사도 “장미가 로열티를 물고 있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딸기는 조합원들 사이에서 거론되지 않고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라고 걱정했다.곽씨는 “국내 딸기재배농 대부분이 영세해 일본 육종권자들의 요구에 대응능력이 부족하다.”며 “정부차원의 지원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논산의 박씨는 “국내품종인 매향을 재배하려 해도 아직은 재배법을 잘 몰라 망설이고 있다.”며 “재배법을 터득하는데 적어도 3년은 걸리기 때문에 품종을 전환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정을 늦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아직 별 말도 없는데 정부와 언론 등 국내에서 왜 이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다.”면서 “떠들어봐야 좋을 것이 없고 일본에서 요구해도 끝까지 버티는 게 상책”이라고 공론화 자체를 매우 달가워하지 않았다.김낙원씨는 “매향이 일본산보다 당도나 색깔에서 뒤지지 않지만 출하량이 15% 정도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면서 “지정시기를 늦추고 품종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 달렸다 농림부 농업기술지원과 서준한 계장은 “올해 쑥갓,순무 등과 함께 딸기를 품종보호대상으로 지정할 계획이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 “딸기품종을 개발한 일본측의 수입거부 등 불이익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여 신중히 지정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지정대상은 딸기를 포함해 41종이지만 작물을 줄이거나 다른 작물로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있다.하지만 일본은 이미 국내 딸기농가에 대한 현장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서 계장은 “딸기를 대상으로 지정하더라도 일본의 무리한 요구를 조율하여 우리 농민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농민들은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리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딸기·장미 로열티 비상] 딸기98% 외국種…2만농가 ‘무방비’

    [딸기·장미 로열티 비상] 딸기98% 외국種…2만농가 ‘무방비’

    세계는 지금 ‘종자전쟁’중이다.종자전쟁이란 한마디로 씨앗의 개발과 공급을 둘러싸고 국가나 기업 사이에 정치적 또는 경제적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한국은 반도체나 자동차·조선 등에서 강국의 반열에 접어들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종자전쟁에서는 국제식물신품종보동맹(UPOV)같은 국제기구를 앞세운 종자강국에 철저히 유린될 수밖에 없는 약소국이다.더구나 종자 강대국의 융단폭격에 초토화되고 있는 상대는 다름아닌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농민들이다.오는 8월 로열티 지급여부가 결정되는 딸기농가와 이미 로열티 지급이 결정되어 해외 종자 메이저와 로열티 분쟁이 한창인 장미농가의 어려움을 두차례에 걸쳐 돌아본다. “로열티 주고 나면 농사지어 뭘 갖고 먹고 산답디까.딸기에 로열티를 붙인다니,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3000평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기르는 충남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 박동민(55)씨는 불만을 쏟아냈다. 국제 식물신품종보호협약(UPOV)에 따라 일본품종을 주로 심는 딸기 농가들이 품종 사용료(로열티)를 물어야할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딸기에 무슨 로열티냐 농림부는 8월 말까지 딸기를 품종보호대상으로 지정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박씨가 심는 딸기는 현재 80%가 일본품종이다.전국 생산량의 13%를 차지하는 최대 딸기생산지 논산 지역 대부분이 비슷하다.그는 한해 50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리지만 비닐값 600만∼700만원,인건비 1000만원 등을 빼면 3000만원도 남지 않는다.박씨는 “딸기농가들이 남의 집 마당만 쓸어줘도 이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한탄하는 마당에 로열티는 무슨 로열티냐.”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웃 연무읍 죽본리에서 1600여평의 딸기 농사를 짓는 김낙원(62)씨도 “지난 봄 폭설로 하우스 8동 가운데 6동이 무너져 죽을 지경인데 로열티가 웬말이냐.”고 한숨쉬었다. 현재 전국에서 재배되는 딸기품종은 육보(레드펄) 40%,장희 45% 등 일본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국산인 매향은 고작 1.8%에 불과하다.딸기 농가는 2002년 말 현재 2만 2000여 가구.7800㏊에서 연간 21만t 5000억원 어치를 생산하고 있다.우리나라 전체의 채소 생산액 6조 5000억원의 7.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국립종자관리소 최근진 심사관은 “모든 작물이 2009년까지 품종호보 대상으로 지정되지만 딸기를 유독 걱정하는 것은 생산비중이 높은 데다 외국품종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000여평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경북 고령군 쌍림면 곽영상(48)씨는 “육보 딸기를 길러 대부분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로열티 문제가 불거질 경우 수출길이 막히고 말 것”이라고 걱정했다.국내 딸기는 지난해 449만 7000달러 어치가 수출됐으며 주요 수출국 역시 일본이다.전남 담양군 월산면 중월리에서 1600평의 딸기 농사를 짓는 배정운(57)씨는 “앞으로 딸기 공판장에서 출하량을 따져 가구당 로열티를 매기는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며 불안해했다. ●지정을 최대한 늦춰달라 보성군 벌교읍 딸기영농조합 위창길(54) 대표이사도 “장미가 로열티를 물고 있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딸기는 조합원들 사이에서 거론되지 않고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라고 걱정했다.곽씨는 “국내 딸기재배농 대부분이 영세해 일본 육종권자들의 요구에 대응능력이 부족하다.”며 “정부차원의 지원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논산의 박씨는 “국내품종인 매향을 재배하려 해도 아직은 재배법을 잘 몰라 망설이고 있다.”며 “재배법을 터득하는데 적어도 3년은 걸리기 때문에 품종을 전환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정을 늦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아직 별 말도 없는데 정부와 언론 등 국내에서 왜 이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다.”면서 “떠들어봐야 좋을 것이 없고 일본에서 요구해도 끝까지 버티는 게 상책”이라고 공론화 자체를 매우 달가워하지 않았다.김낙원씨는 “매향이 일본산보다 당도나 색깔에서 뒤지지 않지만 출하량이 15% 정도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면서 “지정시기를 늦추고 품종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 달렸다 농림부 농업기술지원과 서준한 계장은 “올해 쑥갓,순무 등과 함께 딸기를 품종보호대상으로 지정할 계획이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 “딸기품종을 개발한 일본측의 수입거부 등 불이익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여 신중히 지정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지정대상은 딸기를 포함해 41종이지만 작물을 줄이거나 다른 작물로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있다.하지만 일본은 이미 국내 딸기농가에 대한 현장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서 계장은 “딸기를 대상으로 지정하더라도 일본의 무리한 요구를 조율하여 우리 농민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농민들은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리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기고] 축산업 정책보다 신뢰가 ‘우선’/송석우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대표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에 각종 악재가 겹치고 있다.중국의 경기 연착륙,사상 최고의 국제 유가,원자재 난에 따른 기업의 가동률 하락 등 우리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되는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 침체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이러한 경기 침체로 우리 축산물 소비가 바닥을 밑돌고,계속되는 위기를 극복하고자 축산농민과 정부 그리고 업계 관계자들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농민을 위한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농협의 축산 부문에 종사하는 필자로서도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우리 축산물을 먹어야 한다고 무작정 말할 수만은 없다.과거와는 달리 개방화·세계화하는 시대에 어느 누구든 자녀에게 안전하고 질 좋은 먹을거리를 먹이고 싶은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농민들이 ‘안전하고,맛 있고,먹기 좋은’ 축산물을 생산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한다는 점을 국민 여러분이 분명히 인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실제로 가축이 생산되어 도축·가공되고 소비자 식탁에 오르는 전 과정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위생관리하에 이루어지며,냉장·부분육 중심의 선진 식육 유통체계 정착과 친환경 축산물 공급 기반을 조성하고자 쇠고기 ‘안심시스템’을 도입하여 소비자가 축산물 제품 정보를 직접 검색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또한 ‘가축 방역에 실패하면 축산업도 없다.’는 전제 하에 정부와 민간이 역할 분담을 통해 방역활동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아울러 선진국형 유기축산 모델을 개발하고 축산업과 농업을 연계한 가축 분뇨의 자연순환을 촉진하고 있으며,각종 축산물 브랜드를 육성하여 소비자의 선택 폭을 크게 확대함으로써 한발 더 다가서는 ‘소비자 지향적인 축산’을 하고 있기도 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노력은 조금씩 가시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데,그동안 막혀 있던 수출길이 열리는 등 수년에 걸친 노력과 투자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특히 가축 질병의 확산을 막느라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자기가 키우던 가축을 폐기처분한 농민들의 살신성인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지금 우리 농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정책보다도 사회적 합의,즉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국민이 우리 축산물의 안전성을 믿고 애용해 준다면 청정 축산물을 생산해 내려는 농민들의 노력과 어우러져 구제역보다 더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시장이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축산 농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재정지원이나 새로운 정책보다는 국민의 믿음과 신뢰일 것이며,지금 국민이 주는 믿음이야말로 제때의 한 바늘이 아홉 바늘을 절약시켜 주듯이,농민들은 우리 자녀에게 평생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축산물로 화답할 것이다. 이대로 우리 축산업이 고사된다면 우리가 감내해야 할 수많은 불편과 불안을 지금 한번의 전폭적인 믿음과 신뢰로 떨쳐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입개방,늘어만 가는 부채 등 수많은 난관으로부터 우리 축산 농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들의 믿음이다.그 믿음을 한번만 우리 축산 농민들에게 주자.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대가를,그 힘든 고비 고비를 넘기며 체질을 개선한 우리 축산 농민들에게 기꺼이 요구하자. 송석우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대표˝
  • 칭화대 후안강교수가 진단한 中경제

    세계 금융시장은 지난달 28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유럽 순방길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위험하게 급성장하고 있는 경제를 진정시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긴축정책 시사 발언에 휘청하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한국 등 중국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충격의 정도는 컸다.오일만 베이징특파원이 중국정부 경제자문인 후안강(胡鞍剛·51) 칭화대 교수와 긴급 인터뷰를 갖고 ‘차이나 쇼크’의 배경과 향후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정부의 경제자문을 맡고 있는 후안강(胡鞍剛·51) 교수는 인터뷰 내내 재치있고 활기찬 어조로 직설 화법을 구사했다. ‘체제 특성상’ 두루뭉술하고 완곡한 표현에 능숙한 중국 학자들과는 분명 달랐다.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중국 학계에서도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어 중국당국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점과도 무관치 않은 듯했다. 지난 13일 오후 칭화(淸華)대학교내 국정연구(國情硏究)센터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후 교수는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갈등’을 ‘차이나 쇼크’의 원인으로 지적하는가 하면,즉석에서 자료를 찾아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자신의 논리를 진행시켰다. 세계의 슈퍼파워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화(中華)의 자신감을 후 교수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서 ‘소장파 석학’으로 불리는 후 교수는 지난달 28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발언으로 시작된 ‘차이나 쇼크’의 배경과 향후 전망 등을 놓고 중국정부가 취했던 과거의 긴축 사례와 비교하면서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중국 정부가 긴축정책을 펼 정도로 중국경제가 과열됐는가. -중국경제는 1979∼2001년까지 매년 9.2∼9.5%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다.지난해 9.1%,올 1·4분기 9.7%의 성장은 지표로선 과열이 아니다. 하지만 동태적 측면에선 상황이 다르다.전체적으로 과열은 아니지만 ‘추세’가 과열이다.과거 경험을 추론하면 과열 조짐 현상은 개혁·개방정책 이후 지금까지 4번 있었고 지금이 5번째다.77∼78년과 84∼85년,87∼88년,91∼93년이었다. 현상황은 구체적으로 13년전인 91년과 비슷하다.1년만 놓고 보면 과열이 아니었지만 92년부터 성장이 가속화돼 93년 무려 13.5%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과거와 현재의 경제과열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공통적으로 투자가 과열됐고 부동산 가격과 물가와 원부자재,곡물 가격 등이 가파르게 올랐다.재미있는 것은 매번 과열은 중국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는 점이다. 공산당 전당대회 1차연도 평균 성장률은 10.3%이고 2차연도 11.0%,3차연도 8.7%,5차연도 8.0%로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정치 동원체제인 중국에서 정권 초창기에 의욕적으로 일하다 보니 과열 양상으로 번진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胡錦濤) 체제 출범 이후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2002년 16대 전대(全大) 이후 지방에 가면 2∼3년내에 ‘샤오캉(小康)사회’ 건설을 완성해야 한다며 경제개발을 독려했던 것도 과열의 원인이다. 거시적으로 지금의 긴축정책이 중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중국정부는 ‘연착륙’에 동의하고 있다.여기서 연착륙은 자동차 운전시 과속으로 달릴 때 ‘살짝’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수준이다.세게 브레이크를 밟으면 문제가 생긴다.이번 경제조정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조정으로 봐야 한다. 다소 아쉬운 것은 1년전에 경제 조정에 들어갔어야 했다는 점이다.중국 정부가 능동적이 아닌,피동적 자세로 나온 것이다.중앙정부가 지난해 발생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주저하고 망설인 측면이 있다.나 자신도 지난해에 조정에 들어가야 한다고 중국정부에 건의했다. 1979∼2001년까지 고정자산의 평균 성장률은 10.9%였다.지난해만 27.3%였고 올 1·4분기는 43%나 성장,평균 성장률의 4배나 됐다.아직 조정할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다. 중국의 연착륙의 성공 가능성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게 직접 물어봐라.(웃음) 지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 ‘게임’을 하고 있다.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올해만도 31개 성·시·자치구의 성장과 주요 시장 등을 모아놓고 중앙에서 거시경제 조정을 위해 투자를 줄이라고 수차례 지시했었다. 지방정부 지도자들은 회의석상에서는 ‘알았다.’고 해놓고 돌아가면 실행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내륙지방은 “경제가 낙후돼 경제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연안지역은 “경제분위기가 좋을 때 더 빨리 경제발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3년 당시 장쩌민(江澤民),리펑(李鵬),주룽지(朱鎔基) 등 3명의 지도부가 지방과의 싸움에서 이겼다.이번에도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와 원자바오 총리가 이길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선 이긴 것이 아니다.지방에서 중앙의 압력에 과거처럼 순종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이 세계경제에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세계경제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과거와 다르다.97년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 때에도 중국은 기둥으로서 주변국의 경제회복에 좋은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세계경제에 영향을 주는 원인은 간단하다.2002년 무역량은 불과 4년전인 99년의 두배나 됐다.10년전과 비교해서 무역물량이 4∼5배나 늘었고 세계 3,4대 교역국으로 성장한 것이다.지난해 석유 수입은 200억달러,1억t을 넘어섰다. ‘마이너스 효과’도 있다.중국의 거시경제가 불안하면 바로 주변국들의 경제불안으로 이어지는 점이다.중국경제의 거시적 안정을 위해선 일종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우선 동아시아 3국,즉 중국과 한국 일본이 1년에 두번 정도 주기적으로 재무장관 회의나 중앙은행장,무역(통상)장관 회의를 열어 상황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나아가 경제 전문가들이 모여 집중적으로 토론을 하며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국제적 협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거시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 주변국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력해야 중국의 거시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가. -우선 정보교류를 위한 학술 세미나가 필수다.한국과 일본의 민간기업들이 중국정부에 거시정책과 관련해 의견도 개진할 수 있다.이번 중국정부가 취한 각종 긴축정책들을 주변국에 통보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장기적인 중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중국경제는 전환기 모델이 절실한 시점이다.현재는 고투자,고원가에 저효율 시스템을 갖고 있다.지난해의 고정자산 투자가 26% 성장했으나 경제성장률은 9%대였다.투자 성장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전형적인 저효율 경제구조다. 따라서 자원소모와 환경오염이 높은 성장모델에서 자원소모가 적고 친환경적인 경제성장으로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두번째로 정부의 기구와 역할도 조정해야 한다.정부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집행하지 말고 한발 나와서 공공 서비스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직접적으로 시장에 관여하거나 투자자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정부 본연의 역할인 공공서비스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방정부의 역할이 더 커져도 안 된다.중요한 것은 중앙이나 지방정부가 아니라 시장주도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점 3가지를 든다면. -가장 시급한 것이 삼농(三農)문제이다.도시와 농촌의 빈부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현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에서도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두번째는 실업률이다.중국은 세계 인구의 21%,세계 노동인구의 26%를 차지하고 있다.매년 280만명이 대학을 졸업하고 있는데 구직난도 문제다.현재 실업자가 1400만명인데 수억명의 농민들이 도시로 뛰쳐나오고 있다.중국의 정부정책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가 자원부족 문제다.석유는 1억t을 수입하고 매년 20∼30%씩 늘어나는 추세다.올해의 석탄 소모량은 16억t 규모다.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덩달아 심각해지고 있다.인구 5000만명 규모의 한국경제와 13억명의 중국과는 분명히 다르다. ■후안강교수는 누구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소장파 석학’으로 불리는 후안강(胡鞍剛) 칭화대 국정연구센터 주임(소장)은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중국 경제발전과 공공정책 분야가 주 전공이다.그동안 논문 100여편을 발표했고 저서 9권과 공저 16권을 냈다. 지난해 3월 중국의 신정부 출범 이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주재 국무원 경제관련 회의에 참석,경제 부문을 자문해 오고 있다. 후 교수의 고향은 안산강철(鞍山鋼鐵)로 유명한 랴오닝(遼寧)성 안산이다.안산강철의 준말인 ‘안강(鞍剛)’이 이름이다.5세때인 58년 베이징으로 와서 67년 문화혁명 당시 오지 중의 오지였던 베이다황(北大荒)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는 “내 개인 이력은 한마디로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라며 “개혁개방 덕에 노동자였던 내가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77년 대학 입시에서 허베이성 탕산(唐山) 공학원(공대)에 입학했다.그는 “대입제도 부활은 덩샤오핑 선생의 최대 업적”이라고 강조했다.개혁·개방을 추진하려면 사람이 필요하며 대입제도 부활이 인적자원 육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논리다. 주요저서는 중국 부패도전(中國腐敗挑戰),중국 대전략(中國大戰略),중국 경제파동(中國經濟波動),중국 국가능력(中國國家能力) 등 다수가 있다. ●후교수 약력 -53년 랴오닝성 안산 출생 -82년 허베이성 탕산공학원 졸업 -84년 베이징 과기대학 석사 -88년 중국 과학원 박사 -92년 예일대 박사후 과정 -93년 미국 머레이주립대 교환교수 -98년 MIT 객원연구원 -99년∼현재 칭화대 국정연구센터 주임 공공관리학원 교수,재정부 자문위원 oilman@seoul.co.kr˝
  • [사설] ‘좌편향’ 불안심리부터 해소하라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지난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성장을 중시하는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은 “경제정책의 기조가 ‘좌회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17대 총선 결과를 놓고 일부 해외 언론들이 분배를 중시하는 친노동자 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이해된다.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의사당에 진출함에 따라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부총리 등의 발언은 매우 시의적절했다고 평가된다. 총선 결과 나타난 민심은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 회생에 주력해 달라는 것이다.산업간 불균형 시정,물가 안정,성장잠재력 확충,신용불량자 및 가계 부실 해소 등에 전력집중하라는 뜻이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지금까지 말로는 시장경제를 외치면서 시장을 옥죄는 정책들도 적지 않았다.그 결과 기업은 정부 정책을 불신하면서 돈 주머니를 굳게 잠그고 해외로 발길을 돌렸다.소비자들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돈 쓰기를 주저했다. 우리는 정부 당국자뿐 아니라 정치권 지도자들도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그리고 기업인들을 만나 이러한 믿음을 분명히 심어줄 것을 제안한다.23일부터 예정된 정부의 해외 국가설명회(IR)도 중요하지만 국내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권의 경제 설명회가 더 중요한 것이다.특히 민주노동당의 경우 서민과 농민,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은 권장할 일이지만 기업인들을 불안하게 해선 곤란하다.전략적 사고와 유연성을 촉구한다.˝
  • [민노당 국회진출…공직사회 파장 2題] 경제부처 반응

    과천의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원내에 진출한 데 대해 “어느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열린우리당은 개혁 색채지만 여당이고,한나라당은 야당이나 보수정당이어서 그런대로 정책공조가 기대되는 반면 민노당은 야당에다 사회주의 색채가 강해 기존 정책기조와 마찰을 빚을 소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정책 기조를 견지해온 재정경제부는 민노당이 ‘간판 공약’인 ‘부유세’의 신설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근로소득 공제 등 근로자 지원정책에서도 입장차가 클 수밖에 없어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산업자원부도 외국인투자 유치 문제 등과 관련해 외국자본에 대한 인식이 민노당과 판이해 껄끄러운 상대가 될 수 있다.공정거래위원회도 다소 개혁적인 재벌정책 기조를 견지해왔지만 한단계 진보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부도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등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어서 편안할 수만은 없다.보건복지부는 ‘분배’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 복지정책의 중요성이 주목받겠지만 ‘기초생활보장대상자 10배 확대’ 등의 민노당 공약에 대해선 난감해하고 있다. 농림부의 경우 농민운동가 3명이 ‘금배지’를 달게 돼 쌀 재협상을 앞두고 이들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당선자 3명 가운데 강기갑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부회장 등 2명이 민노당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한다. 재경부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민노당 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의 내용이나 요구 범위가 기존 정당과 완전히 다를 지 모른다.”며 “재야 활동을 하면서 가졌던 경제관료에 대한 불신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 지가 과제”이라고 했다.산자부 관계자는 “기업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라 간부들만이라도 이에 대한 논리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민노당의 국회진출은)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평가한 뒤 “민노당이 제도권에서 책임있는 모습을 갖고 합리적인 정책과 주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오히려 대화를 통해 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국민으로 봐서는 불안감을 덜 수 있다.”면서 “민노당의 국회진출을 이유로 시장경제의 틀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김경운기자 kkwoon@˝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4)이걸이 저걸이 갓걸이(上)

    류계춘(柳繼春,1830∼1862).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권 노래이자 혁명가(革命歌) 노랫말을 순 한글로 짓고 곡을 붙여 널리 퍼뜨렸으며,농사꾼이 사는 동네라면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코흘리개 아이들은 사금파리 뾰족뾰족 박힌 골목길을 내달으면서 불렀고,그보다 조금 더 큰 조무래기들은 마을 타작마당이나 마을 앞 빈 논바닥에서 뛰놀며 이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희미한 등잔불이 가물거리는 사랑방에서 새끼줄을 꼬는 머슴들이나,긴긴 겨울밤 무명실 잣는 물레질로 길쌈하는 아낙들도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를 부를수록 마음 속에 시퍼렇게 응어리진 일들이 새삼스레 아파오기도 하고,끝 소절에 잔뜩 힘을 넣어 큰소리로 부르면 그 혹독하고 두려운 것들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도 같았다. 한번 입에 올린 뒤엔 좀체로 떠나지 않는 이 노래를 두고 사람들은 이상한 노래라거나 귀신이 든 노래라고도 했다.이 노래를 만든 류계춘은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수백만장의 음반 판매 기록을 세우면서 일약 인기 작곡가에다 돈방석에 올라 앉는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1862년 민란주도 ‘참수형’ … 족보에서도 삭제돼 한국 농민의 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아보라 한다면 나는 단연코 그의 이름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또한 한국 농민사에서 가장 슬픈 이름을 물어도 그를 불러 보인다.그는 경상도 진주사람이었다. “이 걸이 저 걸이 갓 걸이 진주(晋州) 망건(網巾) 또 망건 짝발이 휘양건(揮項巾) 도래 줌치 장두(狀頭) 칼 머구밭에 덕서리 칠팔 월에 무서리 동지 섣달 대서리.”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 또는 ‘언가(諺歌)’라고 부르는 이 노래를 류계춘이 지었다고 단정지은 것은 그가 계획하고 주도한,1862년 ‘진주농민항쟁(일명 임술 진주민란)’에 관한 당시 조선 정부 수사 기록을 통해서였다. 이 노래의 특징은 노랫말이 지닌 고도의 은유와 상징에 있다.이 노랫말 속에는 진주농민항쟁의 원인과 역사가 밀도 높게 응축되어 있다. 빼어난 노랫말 속에는 풍부한 시적 감성과 치열한 시대정신이 깃들어 있는데,이 노래의 두 박자 리듬에서 우러나는 근원적인 힘과 조화를 이루면서 역동적인 행진곡으로서의 맛까지 곁들이고 있다. 지난 5일 경칩날 류계춘 선생의 묘소가 있는 경남 진주시 수곡면 원당리를 찾아 갔다.선생의 증손자인 류일렬(柳一烈)씨가 동행해주었다. 마을 노인들에게 선생의 묘소를 묻자 대뜸 “아,그 풋심 떼던 묏등”이라고 대답한다.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농촌 사람들은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풋심’이라는 병을 앓곤 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높은 열이 나는 특징을 지닌 병으로서 3일열 또는 4일열 등으로 구분하는데, 심하면 빈혈이 생기고 황달을 일으키기도 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학질(말라리아)이라고 부르는 이 질병을 농촌 사람들은 흔히 풋심이라 했다. 뚜렷한 처방약이 없어서 한 번 걸리면 한달 이상은 예사로 고생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사흘이나 나흘 간격으로 재발하기 때문에 몇 차례 재발한 고열로 고생한 사람들은 귀신이 든 것이라고 여기면서 푸닥거리를 하는 등 안타까운 시달림을 겪었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섬뜩한 처방전이 흘러나왔다.어떤 잘못으로 인하여 형장에서 참수된 자의 무덤을 찾아내어 마지막 치유 방법을 시도해보라는 것이었다.즉, 풋심을 앓는 환자가 캄캄한 한밤중을 이용하여 참수된 자가 묻혀 있는 무덤으로 가는 것이다.이때 등불을 켜서는 안된다. 무덤의 왼쪽이나 오른쪽 어떤 쪽이든 한쪽에 가서 시체가 누워 있는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세 번 구르는 것이다. 그때 환자는 ‘내 풋심 떼어가거라!’를 세 번 외치면서 거꾸로 구른 뒤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는데,아무리 무서워도 뒤돌아보면 안된다.만약 뒤를 돌아보면 떨어졌던 풋심이 되붙어서 다시는 안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과연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으스스한 그 처방전이 이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류계춘 선생의 삶은 그의 주검이 매장된 묘소와 함께 이 지역 농민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매우 독특한 정서로 자리잡고 있었다. 선생은 진주농민들을 선동하여 민란을 주도한 책임으로 다른 아홉명의 동지들과 함께 참수형에 처해졌다. ●80년대 ‘진주농민항쟁’ 으로 정정… 명예회복 선생의 증손자 류일렬씨는 진주 변두리에서 작은 꽃집을 경영하며 산다고 했다.일렬씨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던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의 집안 사람들은 반역자의 후손으로 찍혀서 세상 한가운데 드러난채 살 수 없었다고 한다.그래도 일렬씨 아버지는 류계춘 선생의 뜨겁고 적극적이었던 삶을 죄인으로 몰아붙인 조선후기 양반들의 태도가 더 나빴다는 신념을 꺾지 않았었다. 열린 세상이 오면 류계춘의 삶이 옳았다는 평가를 받게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그 희망이 실현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자식들에게 비겁한 삶을 살지 않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 진주민란이라는 말이 진주농민항쟁으로 바뀌게 되는 날이 왔다. 민란을 주도한 반역자 류계춘을 농민항쟁을 이끈 농민혁명가로 고쳐 부르자는 민주화의 추세로 마침내 문화류씨(文化柳氏) 좌상공파(左相公派)의 족보에 류계춘 선생의 이름이 오르면서 업적을 기리는 기록이 새롭게 추가되기도 했다. 류일렬씨는 증조부 산소를 참배하기 위해 신발을 벗고 무덤 앞에 섰다.그의 표정이 흔들렸다.그 흔한 비석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초라한 무덤을 누가 저 격렬했던 진주농민항쟁을 이끈 농민혁명가의 무덤으로 보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작은 돌 하나도 깎아 세우지 못할 만큼 일렬씨 집안이 어려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비석을 만들어 세우자는 말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그때마다 일렬씨 아버지의 태도는 강직했다.그 따위 돌 하나 깎아 세워달라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아니셨다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의 잔혹한 농민 탄압,가련한 농민의 살점과 피를 짓밟고 올라서서 누린 양반관료들의 교만과 위선으로 꽉찬 모순을 온몸으로 질타하면서 농민도 인간임을 절규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선생이 과연 후손들에게 뭘 바라시겠느냐고 되물었다.빛나는 비석에다 화려한 문장으로 죽은 시대의 허위의식을 장황하게 늘어놓고,단청 입힌 사당이며 으리으리한 기념관을 세워 살아남은 자들의 비겁과 죄악을 은폐시키려 하기보다는,역사 앞에서 한점 부끄럼 없는 당당한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싶어하지 않겠느냐고 했단다.일렬씨는 그런 아버지의 태도가 옳다고 믿고 있었다. ●흔한 비석 하나 없는 쓸쓸한 혁명가의 무덤 그날 류계춘 선생 묘소 앞에서 그가 잠시 괴로운 표정을 지은 것은 묘소 가까이까지 밀고 들어오는 가진자들의 별장이 언젠가는 선생의 무덤을 딛고 올라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뒤에.일렬씨는 이 시대 농촌,농업,농민의 삶이 시장논리와 자본의 논리에 밀린 채 무시되어 짓밟히는 것과 류계춘 선생 동지들의 농민항쟁 정신이 왜곡,무시되는 점이 닮아보인다며 한숨지었다. 류계춘 선생과 혁명동지들을 진주형장에서 참수하여 그 목을 진주 남강 건너는 나루터와 장터에 높이 매달아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에 반역하면 누구든 저렇게 되고만다는 것을 보여준 그 국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였던가? 그리고 지금 이 시대 농민과 농업의 위기,농촌문화의 황폐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진주농민항쟁같은 역사의 몸부림이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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