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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이후 중국… 나카지마 미네오 기고(해외논단)

    ◎중 사회주의 모순 분출… 체제유지 회의적/강택민 군사력 증강·민족주의 강화 가능성 등소평이후의 중국에는 사회적 모순이 분출될 가능성이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일본의 중국전문가 나카지마 미네오 도쿄외국어대학 학장이 21일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주장했다.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중국의 최고 실력자였던 등소평의 죽음은 중국의 현대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온 등은 모택동 모델의 중국사회를 변혁시킨 지도자다. 등은 3번씩이나 실각하면서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으며 모택동이 죽은후 78년에는 마침내 화국봉을 밀어내고 중국공산당내 주도권을 확보했다.등은 그후 최고 실력자로 황제와 같이 군림해왔다.하지만 그러한 등의 인치를 비판하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으며 민주화 움직임은 1989년 6월4일 천안문사태로 발전했다.등은 천안문사건을 철저히 진압하지않은 조자양 당시 총서기를 실각시키고 강택민을 총서기에 임명했다. 등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이때문에 중국은 등의 사망이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사회적 혼란을 피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그러한 문제들은 장기적으로 큰 불안을 안고 있다.무엇보다도 지금의 개혁·개방정책이 중국민중들에게도 혜택을 주며 등사망이후에도 중국의 경제·사회가 순조롭게 발전해 나가면 그러한 불안은 크게 완화되겠지만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은 현재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지만 많은 사회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압력솥」과 같은 상황이다.천안문사건후에도 개혁·개방정책을 둘러싸고 당내 논쟁이 끊이질 않았으며 민주화운동의 불씨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이때문에 포스트 등시대에 거대한 역사적 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한 변동은 민주화운동을 다시 고양시키고 농민반란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폭발을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으며 옛소련과 같이 등이후에 정치적 실권을 쥔 지도자에 의한 위로부터의 「반혁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그러한 두가지현상이 연계되어 일어나며 큰 혼란없이 공산당독재체제가 조용히 붕괴될지도 모른다.그럴 경우 대만과 홍콩으로부터 불어온 「남풍」의 사회적 침투력도 무시할수 없을 것이다. 최근의 중국 권력중심부에서는 등이후의 혼란에 대비,견고한 위기관리체제를 구축하기위해 등과 거리를 두는 일종의 「비등소평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94년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택민 총서기의 측근인 황국 당시 상해시장 등 이른바 상해인맥이 당중앙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도 그러한 흐름의 반영이었다. 강택민 주석은 지금 당(총서기),정(국가주석),군(국가군사위원회주석)의 3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등에 의해 현재의 지위에 올랐음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그렇기 때문에 강택민은 등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것에 비해 등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 그러한 강의 기반강화 움직임에 보수파 원로들과 군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거리다.앞으로 수주에서 수개월사이에 교석 등 최고 지도자들의 권력투쟁이 격화되면 군의 움직임도 주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역사적 흐름인 탈사회주의 조류에 의해 등이 주도한 개혁·개방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등사망후의 중국은 장기적으로 사회주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21세기에는 「일국다정부」 형태의 중국으로 재편될지도 모른다.오는 7월에 반환되는 홍콩의 운명,대만인들의 정체성 성숙,소수민족의 반란움직임 등이 그러한 전망의 가부를 결정할 중대한 문제다. 중국이 그러한 불확실성의 과정에 들어서면 중국은 군사력을 증강하며 대외적으로 대중화 민족주의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그렇게 될경우 미국과 중국,일본과 중국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일 도쿄외국어대 학장/정리=강석진 도쿄특파원〉
  • 등소평이후 중국의 진로/이민형 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전문가기고)

    ◎선택의 기로에 선 강택민 모택동의 사망이 문화대혁명의 종식과 더불어 개혁개방이라는 대격변을 가져다 주었듯 등소평의 사망 역시 중국에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예고할 것인가? 세계의 이목이 온통 중국에 집중되고 있다.등소평의 사망은 결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닌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수년전부터 그가 언제 사망할 것인가는 세계 최대 관심사중의 하나였으며 그의 사후 중국 진로에 관한 연구보고서도 국내를 포함하여 세계 도처에서 이미 상당수 작성·발표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망에 여전히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면 세계,특히 서방국가들의 중국 경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사실 지난 20여년간 중국이 달성하였던 연평균 10%라는 경제발전 속도는 세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중국의 이러한 폭발적 잠재력에 서방 국가들은 이미 충분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사회주의 모순극복 과제 지금까지 발표된 등 사후 시나리오들은 대체로 두가지의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상당수는 중국 경제가 지금과 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21세기 중반에는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을 전망하고 있다.비록 소수지만 또 다른 시나리오는 중국이 소련과 동구처럼 결국 사회주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그의 사망을 계기로 핵분열될 것을 예측하고 있다. 중국 현대사에서 등소평이 남긴 업적에 대해서는 더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그러나 등소평시대에 추진되었던 개혁개방은 그 성과가 화려한 만큼 그 이면의 골도 깊게 나타나고 있다.대부문의 모순과 갈등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등소평 유산의 최대 걸작품이라고 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경제는 시장경제를 지향하되 정치는 공산닥 일당독재를 고수한다는 원칙은 의사 결정의 분권화를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의 발전에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또한 순차적,선별적으로 진행되었던 개혁개방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알력은 물론 지역간 경제격차를 갈수록 확대시켜 급기야는 지역 이기주의와 연계된 상해방,북경방,광동방,산동방 등과 같은 패거리 정치를 형성시켰다.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원적 경제구조는 개혁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농민과 국유기업 종사자,공무원,군인들의 생활여건을 갈수록 악화시키고 있다.인치제도하에서 불명확한 권력의 한계는 당·정·관료들을 부패로 유혹하고 있으며 이데올로기를 상실한 엘리트들의 배김주의 사상 팽배는 부정부패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지역적,자연적 조건이 개혁개방에 불리하였던 소수 민족들의 상대적 빈곤과 소외는 종교적 요인과 맞물려 서장,내몽고,신강 지역에서의 분리 움직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그리고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모순과 갈등들이 문화대혁명때 절대 빈곤이 모택동의 카리스마에 의해 은폐되었듯 등소평 생전에 제대로 현실 정치에 반영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강 주석 해법에 세계관심 강택민이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모순과 갈등들은 화국봉이 물려받은 것들과 비교하여 결코 가볍지 않다.이제 등소평 시대에 축적되었던 모순을 타파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중국과 강택민은 또 한번 선택을 하여야 한다.과거 화국봉처럼모택동 사상 일변도의 유훈 통치를 고집하다가 절대 빈곤 타파라는 시대적 사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권좌에서 물러나고 말것인가 아니면 이등휘나 등소평처럼 중국의 현실적 바탕위에서 새로운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여 제2의 도약을 맞이할 것인가.마침 강택민과 중국은 운이 좋게도 고성장,저물가라는 안정된 경제 환경하에서 등소평 사망을 맞이함으로써 상당한 여유를 확보하였다.시장경제에 걸맞게 정치체제를 개혁하여 권력 창출의 메카니즘을 확립하여야 함은 물론 지역간,계층간 내부 갈등을 해소할 대안을 새롭게 제시해야만 하는 선택의 순간이 왔다.강택민은 제2이 화국봉이 될 것인가? 제2의 이등휘가 될 것인가? 세계는 기대반 우려반의 모순된 심리를 갖고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 농업경영인 시대/박상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굄돌)

    고졸 학력에 경력 15년,나이 30대 후반,연간수입 1억원 이상,출퇴근은 비교적 자유로움! 프로 운동선수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지난 여름 모일간지에 기획기사로 일주일간 실린 「억대 농업인」들의 신상명세이다.필자가 만난 충남 아산의 젊은 쌀전업농은 남의 논 10만평을 봄에는 경운하고 가을에는 수확해 주며 농비를 벌어 자기 논 3만8천평의 벼농사는 순소득이라니 정말 억대가 넘는다. 일찍이 정약용선생은 「목민심서」에서 편농·후농·상농이라는 농민관을 제시했는데 지금의 억대농들은 기계로 힘 덜들게 농사지어 돈벌고 칭송까지 얻고있는 것 같다.이런 농업인을 본받아 기업적으로 농사를 지어 보겠다는 의욕적인 후계자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21세기 우리 농업의 관건은 사람이다.농업인구는 지난 10년동안에 절반으로 줄었는데 우리 연구원의 추계에 따르면 현재 150만 농가가 2020년에는 3분의1 수준인 50만호로 감소하는데다 그중 절반 이상이 고령농가라고 한다.그래서 정부도 미래농업을 선도할 전업농을 2004년까지 12만명 육성할 목표이나 이제 3만명이 확보되었고 후계자는 18만명 계획에 이제 10만명이니 아직 멀었다. 지금은 아무나 농사짓는 시대가 아니다.트랙터 운전은 기본이고 컴퓨터로 회계장부를 기록하며,정부의 농산물 관측정보를 토대로 영농을 설계하고 필요한 정책자금도 끌어써야 한다.과거의 농사꾼이 아니라 사업가이고 경영자여야 하기때문에 정부에서도 법을 바꿔 농민을 농업인으로 고쳐 부르고 농협은 이들에게 명함갖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3월 개교를 앞둔 농림부산하 농업전문학교에 30대초의 수학교사가 합격했다는 사실은 미래농업을 향한 또하나의 청신호이다.이들이 나서서 농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농촌을 쾌적한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 21세기 선진농업,부강한 통일한국이 이룩되기를 기대한다.
  • 전교조 「노동법 수업」 유보/학교현장 불필요한 마찰 막으려

    전국 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권한대행 이영희)은 16일 대전 카톨릭농민회관에서 열린 「교원·공무원 노동기본권 확보 전교조추진본부」 전국회의에서 17일과 18일 이틀동안 실시하기로 했던 노동법 관련 공동수업을 유보키로 결정했다. 전교조는 『공동수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학교 현장에 불필요한 마찰이 빚어지고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며 『전교조의 공동수업은 89년 전교조 결성 이후 계속돼온 사업으로,공동수업은 「문화유산의 올바른 보존과 계승」,「대만 핵폐기물 한반도 반입」 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계획된 활동이었다』고 주장했다.
  • 김정일의 성격(외언내언)

    북한의 황장엽 노동당비서가 망명동기 등을 밝힌 자술서와 서신에는 김정일의 성격을 묘사한 대목이 여러차례 나와 눈길을 끈다.『북의 지도자는 교만하고 안하무인격』이라든지 『멋없이 허장성세하고 자기를 굉장한 존재로 내세우고 있다』『자존심이 강하다』는 표현들이 그것. 또 『위대한 장군님은 위대하다 천재다 하고 자화자찬하다가 이제 공로는 다 자기 것으로 돌리고 잘못은 다 부하가 저지른 것으로 돌리고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그의 위대성의 정체』라고 비판하고 있다.『노동자 농민이 굶주리고 있는데 이상사회를 건설하였다고 떠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겠는가』하는 대목도 김정일성격 비판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김정일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히틀러와 스탈린으로서,귀순자 강명도씨는 김이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을 베고 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어느 학자는 김과 히틀러를 41개항목에 걸쳐 비교한 결과 33.5개 81.7%가 유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두 사람 모두 권력욕이 강하고 인정이 없으며 도덕적 절제가 부족하다.또 광기어린 사고와 행동이 비슷하고 모두 울화병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정신건강을 말할때 분석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편집증이다.그는 편집증의 특성인 의심·적개심·환상 등을 모두 갖고 있으며,그의 정치적 스케일이 크고 대담함을 뜻한다는 「광폭정치」도 편집증의 산물이라고 한다.군 지휘관 600명 일제진급,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더 높은 유경호텔,잠실경기장보다 5만명을 더 수용하는 능라도 경기장,이탈리아 실업가에게 보낸 비행기 1대분의 송이버섯 선물 등은 광폭정치의 허세와 허영을 잘 보여준다.오늘 55회 생일을 맞는 김정일의 편집증과 광폭정치의 대담성이 남한으로 표출되면 도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그것이다.
  • 북의 전쟁모험 경계해야/황장엽 자술서에 담긴 메시지(사설)

    황장엽 비서의 망명이 우리 분단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비단 북한 권력구조 안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던 높은 지위 때문만은 아니다.북한내 사정이 그들의 핵심이념인 주체사상의 창시자가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모순과 혼돈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이는 북한의 사회주의경제가 벼랑에 몰렸을 뿐 아니라 정신적 지주,이념체계마저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황장엽 비서가 망명신청직후 한국대사관에서 작성한 자술서와 망명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쓴 서신들은 철들어 50평생을 공산주의선교자로 살아온 한 원로가 오늘날 북한의 모순적 현실에서 느끼는 깊은 회의와 개인적 고뇌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인생 황혼기에 지난날을 회고하며 자신으로선 순수한 이상을 좇아 정립한 주체사상이론이 한낱 김일성·김정일부자의 세습독재를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북한이 사회주의 아닌 김부자의 봉건국가가 돼버린 허망한 현실에 깊은 자괴심을 느낀 것 같다.민족 앞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모순투성이 존재가 돼버린 북한실상을 정확히 알려 북의 전쟁도발을 막고 평화적 통일을 가능케 하는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결의에서 망명을 결행했음을 읽게 된다. 그는 자신의 망명동기에 대해 『우리민족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남의 인사들과 협의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공산주의자로서보다 민족주의자로서의 고뇌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 황비서가 북에 대해 느끼는 갈등은 노동자·농민의 지상낙원을 이룩했다면서 국민을 굶어죽게 만들고 평화통일을 떠들면서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는 김정일등의 모순된 언행일 것이다.이런 북의 실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한눈만 팔고 있는 남쪽 동포도 그를 답답하게 만드는 존재였다.북을 제대로 알고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토록 충고해주지 않으면 또다시 동족상잔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불행스러운 확신에서 가족과 안락한 삶을 버리고 망명을 결행했음을 그는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황비서의 메시지를 차분하게 분석하여 통일정책·대북정책의 교훈을 추출해내고 그가 가지고 있을 정확한 정보를 통해 북한실정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북한 최고위급의 망명이라는 외형에 흥분,요란스러운 홍보용 사건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온갖 추측보도와 흥미위주의 내막 까발리기경쟁을 벌이는 언론의 상업주의도 자제되어야 한다. 그의 메시지 가운데 특히 소홀히 다뤄서는 안될 대목은 그의 망명이 북한이 바로 붕괴함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는 『독재체제가 너무나 째이고 탄압이 너무나 무자비하다 보니』 농민폭동도 일어나지 못하며 경제가 파탄이 되어도 『민심이 일정한 이념을 가지고 통치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나설 정도로 성숙치 못했다』고 지적한다.따라서 북이 경제에 이어 이념적 파산에 직면했지만 붕괴에 앞서 평소 『전쟁밖에 출로가 없다』고 믿어온 김정일 등이 최우선적으로 강화해온 무력으로 전쟁을 도발하는 이판사판의 선수를 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다.이념적 파탄에 처한 북의 최후의 모험을 사전봉쇄,조만간 평화통일이 찾아올 수 있도록 차분하게 대책을 세우는 것이 황비서의 모든 것을 건 망명의 의미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그의 망명이 그의 소망대로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에 도움을 주는 역사적 사건이 되기를 기대한다.
  • 황장엽 망명­56년 저서 「사회발전사」

    ◎초기이론 김일성 우상화 내용 없어/정치·경제 등 민주적 절차를 강조/남녀평등론 등 개혁 필요성 역설 북한의 사상적 지주이자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북한의 정치사상을 집대성한 학자로 널리 알려진 황장엽비서의 초기 이론전개에는 김일성 우상화나 신격화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민주적 절차를 강조했던 것으로 13일 미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황의 저서 「사회발전사」에서 밝혀졌다. 황은 1956년 김일성대학 철학강좌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은 물론 일반 지식층의 정치학습용 교재로 펴낸 이 책에서 북한건설의 견인차가 될 4요소를 「인민정권」「인민군대」「조선노동당」「김일성 원수」 순으로 지적했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 각분야에서의 생활이 민주주의적 기초 위에서 개조되는 것과 이를 위한 남녀평등권 노동법령 등 일련의 민주주의 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정치의 「고전」으로 알려진 이 책은 170페이지 분량으로 도쿄 천대전구 부사견에 위치한 조선노동당의 도쿄 소재 출판사인 학우서당에서 출판된 것으로김정일을 비롯,노동당 역사연구소장 강석승 등 50,60년대 황의 강의를 들었던 현 북한지도층들이 재학당시 교재로 배운 책으로 알려져 있으며,특히 40년동안 저자의 사상적 고뇌가 정치적 망명이라는 「백기투항」으로 결말지어진데 대한 북한정치사상의 과오를 비교해볼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류사회는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발전하여 왔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1장 「인류사회의 발생과 인류의 첫사회­원시공동체사회」,제2장 「계급사회」,제3장 「사회주의 사회 및 공산주의 사회」의 3개 장으로 나뉘어 국가사회 발전과정을 설명했으며 북한의 건설은 마지막 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황이 최근 망명과정에서 편지와 석명서 등을 통해 밝힌 사상적 동요 내용들과 이 책에 나타난 그의 초기 견해들을 비교해 본다. 〔북한과 같은 1인 독재,세습체제가 없다〕:부르좌들과 그의 앞잡이들은 인류역사는 어떤 위대한 인물(왕이나 영웅)이 변화 발전시킨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이것은 통치계급의 지배를 강화하며 근로 대중의 힘을 무시하고 그를 억제해 보려는 수작이다. 〔북한은 사회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정반대로 전체 근로 인민들이 행복스럽게 살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 명백하다. 〔북한은 노동자와 농민이 굶주리고 있다〕:우리의 투쟁은 정치,경제,문화 각방면에서 거대한 성과를 거두었고 공화국 북반부에서 인민들의 물질문화 생활수준은 나날이 향상되어 갔다. 〔북한은 봉건주의나 마찬가지다〕:자본가들이 영도한 부르좌혁명은 철저하게 봉건적 잔재를 숙청할수 없었으며 노동자와 농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그들의 혁명적 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봉건세력들과 협력하게 됐다. 〔북한은 무자비한 탄압과 허위와 기만으로 충만된 암흑의 땅이다〕:공산주의 사회에 가면 문화가 최고도로 발전하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본질적 차이가 없게 된다.특히 기계가 고도로 발전되어 적은 시간 일을 하고도 더많은 생산물을 얻을수 있으며 따라서 여유시간을 즐길수 있게 된다. 한편 황은 이 책에서 소련에 대해 『사회주의 사회를 이미 완전히 건설한 소련 인민은 현재 벌써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길에 들어서고 있다』면서 최고의 이상향으로 소개해왔기 때문에 그같은 소련의 붕괴는 그의 이론을 뿌리채 흔드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북한이 인민민주주의를 건설할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튼튼한 민주기지가 있고 김일성 원수의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적 전통을 계승한 인민군대와 조선인민을 승리에로 조직 동원하는 조선노동당과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는 『제국주의자들이 제아무리 낡은 자본주의제도를 옹호,유지하려고 최후의 발악을 다하여도 그 멸망은 피할수 없으며 사회주의 진영은 반드시 승리하고 착취없고 행복스러운 근로자들의 사회인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가 전 지구상에 건설될 것은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 황장엽 망명­망명동기 석명서 전문

    ◎“불행에서 민족 구원… 남과 협의 결심”/어느 편에 서서 한목하려는 생각은 없어/나는 실패자… 마지막으로 통일 돕고싶어 북한 노동당의 황장엽 비서는 12일 북경의 한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한 뒤 자필로 망명동기를 밝히는 석명서를 썼다.다음은 황비서가 작성한 석명서전문이다. 나는 50여년간 조선노동당원으로서 성실히 일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조선노동당과 그 영도자의 두터운 사랑과 배려를 받아왔다. 따라서 조선노동당과 그 영도자들에 대하여서는 감사의 정이 있을뿐 사소한 다른 의견도 없다. 또 지금 공화국이 경제적으로 좀 난관을 겪고 있다하지만 정치적으로 잘단결되어 있기 때문에 공화국이 붕괴될 위험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남으로 넘어갈 것을 결의하게 되였다는 것을 알게 되며 나의 가족부터 시작하여 내가 미쳤다고 평가할 것이다.나 자신 자기가 미쳤다고도 생각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나만 미쳤겠는가 하는 것이다. 민족이 분렬된지 반세기가 넘었는데 조국을 통일한다고 떠들면서도 서로 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심지어 상대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떠들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또 노동자 농민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노동자 농민을 위한 이상사회를 건설하였다고 떠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한편 민족의 적지않은 부분이 굶주리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없이 시위만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도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결국 우리민족을 불행으로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좀더 넓은 범위에서 협의하고 싶은 심정에서 북을 떠나 남의 인사들과 협의해 보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내 운명에 대하여는 시대의 흐름에 맡기고 나의 행동의 평가는 역사에 맡기려고 한다. 나의 여생은 얼마남지 않았다.나는 정치에서 실패한 사람이다. 나는 어느편에 서서 한몫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또 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가족들은 내가 오늘로 이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해주기 바란다.가능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남과 북의화해와 통일에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다. 이번 일본을 방문하여 총련의 존경하는 벗들이 극진히 환대하여준데 대하여 감사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 비길데 없다. 나를 아는 모든 벗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여 주기 바란다. 중국에서 일을 일으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중국벗들에게 폐를 끼친데 대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황장엽 1997.2.12. 김덕홍 1997.2.12.
  • “한국행 안되면 죽겠다”/황장엽 석명서·진술

    ◎북 체제 모순에 환멸 망명 결심/“로동자·농민 굶는데 리상사회 건설했다니”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는 12일 북경 한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한 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가고자하는 곳은 바로 한국』이라고 한국망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시했다. 황비서는 이날 주중대사관 고위당국자와의 대화를 통해 『만일 나의 한국행 결심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나는 제3국이든 어디든 가지않을 것이며 이곳(한국 영사관)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관계당국자가 전했다. 황비서는 이어 망명동기와 관련,『이번에 일본에 갔을 때 (한국망명을)결행해보려고 여러차례 기회를 엿보았는데 여의치 않았다』면서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이 친구(김덕홍)와 함께 이곳을 찾아왔다』고 밝혔다. 황비서는 이어 한국공관의 안전상태를 물은뒤 『나는 북조선의 주체사상을 확립시킨 제1인자』라면서 『주체사상이 본래의 뜻대로 되지않고 왜곡되고 변질되고 있어 이를 바꾸어보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현실적으로 큰 벽에 부딪쳐 좌절을 겪었다』고 망명을 결심하게 된동기를 전했다. 황비서는 대사관 당국자와의 면담이 끝난뒤 A4용지 3장 분량의 망명동기를 밝히는 자필 석명서를 작성했으며 ,외무부는 이날 황비서가 작성한 석명서를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황비서는 이 석명서에서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결국 우리 민족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좀 더 넓은 범위에서 협의하고 싶은 심정에서 북을 떠나 남의 인사들과 협의해 보기로 결심했다』면서 『노동자 농민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이상사회를 건설하였다고 떠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라고 북한체제를 비판했다. 그는 또 『조국을 통일한다고 떠들면서도 서로 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심지어 상대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떠들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고 북측의 호전성을 성토했다.
  • 황장엽 망명­자필서신 요약

    ◎“굶어죽는 북은 사회주의 아닌 봉건주의”/김부자 미신적 숭배 강요… 침공땐 남 잿더미로/학생소요·총파업 한심… 노동법개정은 잘한일/북 침략대응 군·안기부 강화­강력한 여당 필요 북한의 황장엽 당비서는 12일 망명을 신청하기 훨씬 전인 지난달 2일 그의 망명동기로 해석될 수 있는 자신의 심경을 담은 서신을 작성,함께 망명신청한 김덕홍을 통해 중국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 한국인에게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A4용지 13장 분량인 서신에서 황은 북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남한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를 밝히고 있다.다음은 월간조선이 입수해 공개한 황의 서신 요지이다. 남북간의 대립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사이의 대립이다.지금 북은 사회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인민들,노동자,농민들,지식인 등이 굶어죽는 사회가 어떻게 사회주의 사회로 될 수 있겠는가. ○운동권학생 어이없어 후계자(김정일)는 날 때부터 「광명성」으로 태어나 자기 아버지의 지위를 계승하기로 하늘이 결정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이들 부자를 신격화하기 위한 형용사가 모자라게 되자 자연현상까지 위대한 장군님과 결부시켜 신비화하고 있다.소련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가 비판되고 그후 다른 사회주의 나라 등에서도 민주화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나 북은 반대로 개인에 대한 숭배를 절대화하고 이른바 수령에 대한 절대적 숭배를 요구하는 수령관을 당 건설과 모든 당 활동,모든 정책작성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소위 조직생활이 되는 것은 아침부터 수령을 찬양하고 수령께 충성을 맹세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남의 청년학생들이 북이 사회주의가 아니고 봉건주의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북에 대하여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북의 인민들은 지금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다.양곡이 약 2백만t이 모자라는데 군량미는 무조건 내야한다 하니 농민들이 자기 식량으로 남겨놓은 몫에서 3개월분을 떼 군량미로 바치고 있다.무단결석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무자비한 탄압과 허위와 기만으로 충만된 암흑의 땅에서 인민들은 전전긍긍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 만세를 부르고 있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자면 남북간의 차이를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들어야 한다.아마 남이 정치적으로 통일되고 경제적으로 인구 1인당에서 일본을 따라잡게 되면 평화통일이 실현될 것이다. 남의 경제가 일본을 따라잡자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야 했는데 지난 8월에는 대규모 학생소요가 일어났고 또 이번에는 노조에서 대규모적인 파업을 일으켜 경제발전에 지장을 주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며 가슴아픈 일인가.도탄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북의 애국주의적 입장에서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다.그러나 그들이 왜 그렇게 정치적으로 암둔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북의 마수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고 청년학생을 비롯한 대중관리,대중장치를 소홀히 한 남의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판하지 않을수 없다. 남조선의 정치가 이렇게 약해가지고서는 경제 발전속도를 높이고 문제를 해결할수 없으며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잘못하면 북의 독재자들,군국주의자들의 침략의 희생물로 될 우려까지 없지 않다. ○학생 무단결석 부지기수 남의 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서는 우선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그 하나는 남을 불바다로 만들 기회만 노리고 있으며 남을 내부로부터 와해시켜 보려고 모든 힘을 다하고 있는 북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투쟁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군대를 강화하고 안기부를 강화하는 것이다.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안기부를 군대와 같이 강화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안기부 성원들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보다는 그들의 사상이론수준과 기술실무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안기부일군 양성대학에 수재들을 받아들이고 안기부 일군들의 대우를 높이며 그들의 사회적권위를 높여주어야 할 것이다. 남의 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서는 강력한 여당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여당의 정치수준이 높으면 각계각층을 통일 단결시킬수 있고 학생소요나 노동자들의 파업같은 것은 얼마든지 정치적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안기부법과 노동법을 개선하여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여당이 각계각층속에 들어가 정치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사업을 선행시켰더라면 이번과 같은 대중적 소요는 미연에 방지할수 있었을 것이다. 당면하여 남조선 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서는 강력한 여당을 건설하고 안기부를 결정적으로 강화하는 두가지 문제를 기둥으로 틀어쥐고 힘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두가지 기본 문제를 해결하면서 북에 대하여 올바른 선택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①복지사회 건설 구호를 내놓고 남의 각계 각층을 단결시키는 정치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실업을 없애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키는데 필요한 사회시책을 실시하는데 큰힘을 돌린다.여당은이러한 정책의 정당성을 대중속에 들어가 널리 선전한다. ②대북정책 통일문제를 국가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도록 한다.북은 지금 식량난이 너무 심하고 경제가 마비상태에 있기 때문에 당장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전쟁준비를 첫자리에 놓고 모든 일을 꾸미고 있다.남이 아무리 경제를 발전시켜도 북의 침공을 받게 되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된다는 것을 전체국민이 인식하게 하여야 한다.잠수함사건이 일어나고 북이 보복하겠다고 떠들때 남의 정치상태가 호전되었었다.남의 정치인들 뿐아니라 기업가들,지식인들,노동자,농민들이 북의 침공의 위험성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야수를 앞에 두고 적수공권으로 서로 싸우고 있는 2중적으로 어리석은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외교로 북 고립시켜야 북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북의 비참한 생활형편,포악무도한 독재의 후과를 남측이나 미국 일본이 정확히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그래서 북은 미·일 관계를 생명같이 여기고 있다.북의 정책은 밖으로부터 자기 내막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안개가 낀 흐린 상태로 만들고 북의 인민들이 외부로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③대외적으로 북을 최대한 고립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남측이 대국들과의 관계에서 더 겸손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고 보며 북의 고자세외교를 자꾸 조장시켜 더욱 고립시켜야 한다.
  • 음식문화 이렇게 본다/정종택 전 환경부장관

    ◎자린고비 교훈 되새길때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한마디로 대단히 불안하다고 할 수 있다.지금과 같은 경제난국이 지속된다면 선진국 진입은 고사하고 과거 남미 몇몇 나라가 겪었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월 한달동안의 무역수지 적자가 34억8천4백만달러에 육박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자동차,양주등 외국상품의 소비는 더욱 증가하고 있으며 호화사치성 외국여행도 좀처럼 수그러드는 것 같지 않다. 필자가 지난해 5월초 유엔 환경회의 참석차 미국에 갔을 때 미국무성 차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러한 우리 국민들의 과소비 낭비풍조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한국이 목재와 종이를 너무 많이 수입해가서 열대우림을 훼손시키니 수입량을 줄여달라』는 것이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로서는 목재와 종이의 수입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나 외국인들이 염려하는 정도로까지 그렇게 많은 양을 수입하여야 하는가는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인 것 같다. 지금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 각부처와 서울신문에서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도 이러한 취지에 부합되는 일이 될 것이다. ○음식물쓰레기 연8조원 우리나라의 음식물쓰레기 발생량은 95년 기준으로 전체 쓰레기 발생량의 32%인 1일 1만5천여t에 이르고 있으며 이러한 음식물쓰레기를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약 8조원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참으로 엄청난 자원이 우리의 잘못된 소비행태로 인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농촌지역 출신으로 직접 농사도 지어 보고 또한 보릿고개도 겪어본 필자로서는 우리네 농민들이 피땀흘려 수확한 농작물을 이렇게 흥청망청 낭비해도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더구다나 국토가 협소해 전체식량의 71%인 8천9백만석의 곡물을 매년 외국에서 수입하여 충당하고 있는데 말이다. 음식물쓰레기는 또한 우리의 생활환경을 악화시키는 오염의 주범이기도 하다.우리나라의 음식물쓰레기는 수분함량이 과도하게 높아 수거·운반·매립과정에서 악취와 오수를 유출시키는 문제점을 야기한다.또,최근 매립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소각방식도 높은 수분함량 때문에 소각시 열효율을 떨어뜨리고 다이옥신 등 유해대기오염물질을 발생시켜 널리 활용하는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환경오염도 막고 귀중한 식량자원의 낭비도 줄이는 방법은 음식물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검소한 식생활 문화를 정착시키는 길밖에는 없다. 가정,음식점,집단급식소등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가정에서는 식품을 구매하기 앞서 하루 2∼3일 혹은 일주일간의 식단을 짜고 시장에 가기전에 먼저 냉장고의 식품을 정리한 뒤 꼭 필요한 양만을 구입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리·식사단계에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손큰 여자를 보고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고 일컬었다.반찬의 수가 많고 양이 많은 상차림이 정성스럽고 예의바르게 여겨졌던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생각된다.그러나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진수성찬을 만들어 손님을 대접하던 관습은 이제 더이상 미풍양속이 될 수 없다. ○검소한 식생활문화 정착을음식점 및 집단급식소의 경우도 현재 많은 곳에서 좋은 호응을 얻고 있는 좋은 식단제와 자율배식제를 적극 도입하는 등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에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곧 어려운 우리의 경제를 회생시키고 우리 삶의 터전인 환경을 살리는 길인 것이다.반찬 먹는 것이 아까워서 조기를 매달아 놓고 쳐다만 보면서 식사를 하였던 자린고비의 교훈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때인 것 같다.
  • 빼어난 효능… 탁월한 품질/인삼의 고장 강화도

    ◎토질·기후 최적지 “전국 최고” 자부/수삼 1채에 5만원… 도매가로 판매/가격 불안정·수입상품 늘어 재배감소가 문제 우리나라 인삼의 효능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명나라 이시진이 지은 의약서인 「본초강목」에서조차 『인삼중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것은 한국으로부터 도래한다』고 명시돼 있다.이름하여 「고려인삼」이다. 고려인삼 가운데서도 강화인삼을 최고로 치는 것은 강화도가 인삼을 재배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강화의 토양은 점질 양토인데다 통풍이 좋은 해양성기후로 인삼이 자라기에 최적의 토양·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다른 지역 인삼이 4년근인데 비해 강화인삼은 6년근으로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이 풍부해 약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인삼에 비해 조직이 치밀하고 인삼의 영양분이 밀집된 뿌리의 발달상태가 양호하다. 강화 인삼은 강화인삼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강화인삼센터」내 79개 점포에서 도매가격으로 직판되거나 이곳을 찾는 소매상들을 통해 전국에 공급되는데 생산량이 많지 않아 공급이 달리는 형편이다. 강화인삼은 지난 76년까지는 재배면적이 1천여㏊에 달했으나 지금은 200㏊에 불과한 실정이고 경작인도 400명 뿐이다. 이는 농촌 인력난으로 경작면적이 날로 감소하는 데다 인삼가격 불안정과 중국인삼 수입 등으로 농민들의 경작의욕이 상실돼 가기 때문이다. ▷종류◁ 수삼은 인삼밭에서 재배한 것을 캐내 자연상태 그대로 보존한 것으로,효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강화읍 갑곶리 844의 1에 자리잡은 강화인삼센터에서 취급하는 인삼은 거의 모두가 수삼이다. 백삼은 수삼의 껍질을 깎아 말린 것인데 인삼에 흠집이 많거나 장기보관이 필요할 경우에 이 방법을 취한다. 홍삼은 수삼을 증기로 찌는 것으로 담배인삼공사에서 수매한 인삼을 이러한 방식으로 여러 형태의 가공식품을 만들어낸다. ▷고르는 법◁ 인삼의 상태가 썩지 않고 흠집이 없이 깔끔한 것이 좋다. 색깔은 흙빛깔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인삼의 효능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나 적변삼(붉은 빛깔을띤 인삼)은 질이 조금 떨어진다. 인삼은 뿌리의 상태가 중요한데 뿌리가 잘뻗고 개수가 많은 것이 좋다. ▷가격◁ 수삼의 경우 굵은 것일수록 가격이 높은데 1차(750g)당 5∼6개 들은 것이 5만원,7∼8개 4만5천원,9∼10개 3만5천원,11∼13개 3만원선이다. 선물용으로는 1차당 7∼8개 이하 들은 것이 적합하다. 삼계탕용 잔삼은 1차에 25개 든 것이 2만원,차를 끊이는데 사용하는 파삼은 1만2천원선이다. 백삼은 1근(300g)당 4년근이 3만5천원,5년근 4만2천원,6년근 6만원선이다. ▷효능◁ 원기를 북돋워 허약체질을 개선하고 체력을 증진시켜 주며 심장과 폐·위장을 튼튼하게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혈액생성을 왕성하게 하고 맥을 고르게 하며 설사를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몸안의 독 제거와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다. ▷문제점◁ 수매제도의 불안정이 인삼재배의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 담배인삼공사에서 인삼을 수매하는 가격이 5년째 동결돼 있는데다 수매가 또한 시중가보다 높지 않아 지난해에는 강화지역 재배농민들이 수매를 거부하였다. 5∼6년전부터 밀수입돼 시중에 싼 가격으로 불법유통되고 있는 중국인삼도 인삼가격 불안정을 부추기고 있다. 강화인삼협동조합 관계자는 『강화지역의 인삼재배가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수매제도의 확립 등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애국미 헌납운동」에 주민 반발

    ◎식량재분배 목적… 농업근로자에 촉구 북한이 이른바 「애국미」헌납이란 미명 아래 곡식을 거둬들이고 있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주민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애국미헌납운동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11월11일자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식량을 국가에 바친 한 농민을 「90년대의 참된 애국자」로 선전하면서 각지 농업근로자가 이를 따라 배울 것을 촉구하면서부터였다.지난 13일엔 김정일이 애국미를 헌납한 협동농장원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고 이를 일반화할 것을 요구하며 부추겼다. 북한이 이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식량재분배」차원에서 식량사정이 다소 나은 협동농장 등에서 식량을 거두어 배급사정이 좋지 않은 지역에 나누어주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전에도 「전쟁비축미」 「절약미」 「통일미」 등의 명목으로 주민에 대한 배급미에서 공제해왔다.〈내외〉
  • 중 중고품시장 유례없는 호황

    ◎중산층의 신상품 선호 선진국형 소비에/도시 저소득층 수요 맞아떨어져 급성장 중국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중고품시장이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고 있다. 북경의 대표적인 중고품 판매회사인 무역신탁공사의 매출액은 지난 90년대초 6천만위안(60억원상당)에서 8천만위안대로 뛰어올랐고 대표적인 휴일 중고품·골동품 노천시장인 심가원 시장은 2천여 노점상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또 인민일보에 따르면 상해의 중고품 판매업체의 월 판매액도 3억4천만위안(3백40억원상당)으로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천진시의 천보로 중고시장과 항주의 개선로 편의시장도 각각 하루 1천만원대이상의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중고품시장의 거래품목은 TV,비디오 플레이어,냉장고 등 가전제품서부터 자전거,각종 잡화류,골동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민일보는 중고품시장이 이처럼 호황속에 급성장하는 것은 신상품 개발주기가 빨라진 가운데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중국인들과 저소득 주민들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중국인들이 고장날때까지 물건을 쓴다는 것은 옛말이고 싫증이 나면 새것으로 바꾸는 등 유형과 첨단에 민감해지는 선진국형 소비자로 변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다가 전반적으로 소득이 높아졌지만 아직 넉넉지 못한 대도시주변의 농민과 소도시 소비자들이 중고품시장에 와서 중고품과 제고품들을 사가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중고품시장 「이상과열」의 원인이란 분석이다.거주이전 제한이 풀리면서 대도시로 급속히 유입된 노동력과 유동인구도 이같은 중고품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순수 조선족마을 성화향(송화강 5천리:16)

    ◎두레농사 지혜로 집체농장시대 열어/만주국시절 일 군량기지화 위해 개척한 옥토/1946년 동북각지 조선족 제2의 삶터로/한몸되어 일군 성화농장 성공사례 영화제작/“농사만이 살길” 신품종 개발·황무지 개간 박차 흑룡강성 화천현 성화조선족향은 조선족 말고는 다른 민족이 전혀 없는 순수한 조선족향이다.연변을 포함하여 한 사람의 타민족이 끼지않은 조선족은 없기 때문에 전국 유일의 순수 조선족향인 것이다.이 향의 이름인 성화는 불꽃이라는 뜻이다.중국 건국 초기 첫 집단농장이었던 성화조선족향의 경험이 전국에 불길처럼 번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명실상부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성화는 가목시에서 15㎞거리다.삼강평원 서쪽에 위치한 성화는 토양이 비옥하고 수원이 풍족하여 만주국 시절인 1936년 일본 무장개척단이 첫 발을 붙였다.일제는 삼강평원을 군량기지로 만들기위해 중국인 쿠리들을 동원,능당백하라는 물길을 내고 송화강물을 끌어들였다.그리고 방대한 토지를 규격화한 논으로 개간했으나 1945년 일제가 패망하는 바람에 그 좋은옥토가 묵어나고 말았다. ○개척 초기 335가구 이주 일본인들이 떠나고 나서 성화향 농토를 다시 일군 사람들은 바로 조선족이다.1946년 공산당이 흑룡강에서 토지개혁을 하는 과정에 동북각지의 조선족을 불러들였다.임구현에서 60가구,계동현에서 85가구,벌리현에서 120가구,길림성 돈화현에서 70가구가 이사를 와서 오늘의 성화향 4개 마을을 이루었다.그 때에 돈화현에서 소작을 살다가 성화로 이주한 김백산이 마을을 이끌어 두레농사를 시도한 것이 점차 확대되어 1951년 성화농장을 탄생시켰다. 모두가 객지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이라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터였다.그래서 민족고유의 농촌사회 미풍양속이었던 두레는 성화농장 발전을 부축했다.오랜 세월을 두고 혼자 농사를 지어온 한족들에게는 조선족 두레농사가 신기할 뿐이었지만,중국에는 마침 새 바람이 불었다.구 소련의 콜호스경험이 막 이식됐던 때라 성화농장은 공산주의 사회의 깃발이 되었다.1951년 동북 영화촬영소는 성화농장을 영화로 찍어 「전국 첫 집체농장」으로 소개했다.그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농장 주석 김백산은 전국 노력모범이 되었고,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뽑혔다.1962년 김백산이 세상을 뜨자 이재근(77)이 뒤를 이었다.벼 우량품종을 육종하여 전국에 보급시킨 이재근은 전국집체농장 당서기에 이어 3·4·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에 올랐다.그도 역시 전국노력모범이 되었으니 성화농장의 명성은 전국에 뜨르르했다. 오늘의 성화농장은 6개 마을 1천400가구 5천815명으로 구성되었다.첫 두레농사때 335가구가 참여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있다.지금은 교육기관으로 국민학교 4개,중학교 1개가 들어섰다.의료기관으로 현급 조선족병원 하나를 가지고 있다.전체 경작면적은 2천761㏊로 1㏊당 평균 7천㎏의 벼를 거두어 1인당 3천원꼴의 소득을 올린다는 것이다.농사꾼 수입으로는 상당한 수치다. 조선족향 성화향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면 지금도 타민족이 한 사람도 살지않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리고 논농사에만 매달려 농자천하지대본을 고집하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그런 이유로 해서 향의 중점시책 역시 논농사를 통해 부유한 농촌을 건설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향에 성화벼연구소를 설치한 이유도 여기 있는데,벼육종가 이재근 밑에서 일을 한 농민 김병천(42)을 중심으로 성화향에 적합한 신품종 볍씨개발에 나섰다. 그래서 성화향에서는 마을 남쪽 독산아래 황무지에 또 눈을 돌렸다.광복전 일인들이 손을 댔다가 버려둔 이 황무지를 논으로 개간하려면 공사비가 엄청나게 소요되어 그동안 엄두도 못냈었다.그러다 향에서 지난해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성화향 안창선 향장은 독산아래 황무지개간을 서둘러야 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벼 우량품종 전국에 보급 『우리 속담에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라는 말이 있디요.개혁개방 이후 더러 한눈을 판 사람들이 있지만,모두 자리 보지 못하고 다리를 편 꼴이었디 뭡네까.무슨 기업이요,장사요 하고 애를 썼디만 헛물만 켰수다레.우리는 벼농사라는 장기를 버리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디요.그래서 황무지 개간을 추진한 것입네다』 그 독산아래 황무지 개간은 지난해 이미 착수되었다.흑룡강성농업개발공사가 300㏊의 황무지를 논으로 만들어 이를 성화현에 20년동안 임대하는 조건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모두 3백60만원의 공사비가 들어가는 개간사업의 노력은 향에서 도맡았다. 흑룡강성에는 아직 개발할 황무지가 많이 있다.삼강평원은 가장 유망한 개간 적지인데,30여년 동안 2백90만㏊가 개간되었다.아직도 이용할 수 있는 토지 자원이 1백7만㏊에 이른다고 한다.최근에는 삼강건설관리국이 일련의 우대정책을 내놓고 외국자본과 국내농가의 투자개발을 유치하고 있다.이미 12개 성,44개 현에서 투자의사를 밝혔다.그리고 해남이방실업투자유한회사는 개간계약을 맺고 2만㏊의 황무지를 사들였다. 이들 기업뿐아니라 농가 단위의 삼강평원 진출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흑룡강성 14개 현·시를 비롯,길림성과 요령성 농민 1만여명이 삼강평원 땅을 임대받아 농사를 짓고 있다.대부분의 농가가 가구당 한 해에 평균 3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는 것이다.논농사를 잘 짓기로 소문난 성화향 조선족의 가구당 평균소득에 비해10배가 더 많은 것이다.그래서 성화현에서는 독산아래 300㏊를 개간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일고있다.안창선향장의 말에서도 삼강평원으로 진출하고 싶은 의도가 보였다. 『우리도 새로운 야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네다.성화향과 여건이 비슷한 수릉현 수중향 송가촌 100가구 농가는 삼강평원으로 들어가 벌써 성공했디요.가구당 1년 평균소득이 3만5천원 꼴이나 되고,13가구는 10만원의 순수익을 올렸다고 기래요.그들이 개간한 논이 1천500㏊라니,자신들이 두고 온 송가촌 하나를 더 건설한 것이디요.그런데 우리는 아직 고향을 떠날 엄두도 못낸다 이겁네다.성화향을 개척한 우리 윗세대 어른들에 비하면 오기가 없다고 하겠디요.우리 성화향 사람들도 이제 넓은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네다.그거이 윗어른들의 개척정신을 재창조하는 길이기도 하디요』
  • 「파업」편승 대남 선전공세 강화/“노학연대 반정부 투쟁” 부추겨

    ◎잇단 교란용 성명속 규탄 집회 한국 잘 되는 것 못보는 북한이 노동계 파업사태에 편승,악랄한 대남선전공세를 가열시키고 있다. 파업 초기 비방·선동에 머물렀던 북한의 대남공세는 최근들어 반정부투쟁,반정권투쟁 및 노학연대 촉구로 방향이 틀어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7일 중앙방송을 통해 한국내 지하당으로 날조 선전하고 있는 민민전 명의로 20개 당면투쟁구호를 발표,『남조선에서의 첨예한 대결전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노동자·교사·종교인·언론인·농민·학생들의 정권타도투쟁과 노학연대투쟁을 선동했다. 구호를 통해 각계 각층의 단결과 연대투쟁을 촉구한 북한은 『노학연대 실현되면 문민독재 끝장난다.노동자 총파업에 1백만학도 합세하자』『농민들은 노동자와 함께 문민살농정권 갈아엎자』『종교인들은 남조선정권에게 천벌을 안기자』고 노골적으로 부추겼다. 북한은 이에 그치지 않고 반정부투쟁,반정권투쟁을 선동하는 특유의 편지공세도 펼치고 있다.북한은 지난 18일 평양시와 학생위원회 명의의 편지를 서울총학생연합(서총련)과 광주·전남총학생회연합(남총련)앞으로 보내 대학생들에게 노동자들과 연대,노동법개정 무효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밖에 북한의 각급 기관과 사회단체들도 잇따라 대남교란용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 노동자들의 파업확산을 선동하는 규탄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내 파업사태와 관련한 북한의 첫 선동집회는 3일과 4일 평양에서 개최된 「남조선 노동자들의 투쟁지지 현장모임」이란 궐기집회였다.이 집회에 참석한 평양종합방직공장,서평양기관차대,3월26일공장 등 각급 공장·기업소 노동자들은 「반정부·반신한국당」「 노동법개정안 채택 반대투쟁 선동」관련 구호들을 내걸고 한국노동자들의 파업을 무조건 찬양옹호하며 지속적 파업투쟁을 부추겼다. 북한은 또 노동계 총파업에 편승해 한국의 각 대학들에도 연대투쟁을 선동하는 편지를 무더기로 발송했다.이는 파업사태가 당초의 정치투쟁에서 체제부정의 이념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정권타도투쟁 열기를 부채질하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과 조선학생위원회는 14일 연세대와 고려대에 편지를 보낸데 이어 15일에는 김형직사범대학이 조선대학교에,김책공업대학이 전남대학교에 각각 편지를 보내 대학별로 선전공세를 펼쳤다. 이같은 북한의 파상적인 대남선전공세와 관련,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노동계 파업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국론분열을 부추겨 궁극적으로 제2의 4·19 또는 제2의 광주민주항쟁과 같은 정치·사회적 혼란이 촉발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결국 북한은 노동계의 총파업사태를 틈타 집중적인 대남폭력선동을 펼침으로써 한국사회의 대혼란을 유도하는 가운데 노동자·청년학생들의 친북 좌익화,혁명의식화를 통한 남조선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클린턴,식품안전 비상령/불량식품 조기경보­오염예방책 추진

    ◎농무부,육류 세균검사 90년만에 부활 【워싱턴 연합】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25일 「식품안전 비상령」을 내렸으며 미 농무부는 27일부터 모든 육류에 대한 세균감염검사를 90년만에 부활,실시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댄 글릭먼 농무장관과 도나 샐랄라 보건장관,캐롤 브라우너 환경청장에게 식품업체와 소비자보호단체,농민,정부 관계기관 등과 함께 식품안전을 위한 방안을 각각 마련,90일내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3개 부처가 마련하는 식품안전대책은 식품안전을 위한 감시감독과 연구·위험평가·교육·지방정부와 주정부,연방정부 간의 업무조정 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와 함께 미전역에서 식품으로 감염되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불량식품 조기경보체제와 식품의 세균오염 등을 막기 위한 첨단기술을 개발하는데 4천3백만달러를 투입하기 위해 의회에 예산 승인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식품안전을 위한 예산은 식품조기경보체제 개발에 1천1백50만달러,질병통제예방센터의 식품으로인한 질병 추적을 위해 1천만달러,식품의약국(FDA)의 일반연구에 1백만달러,해산물 안전조사,연구,위험평가,교육 등에 2천3백만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농무부는 27일부터 시작되는 쇠고기,돼지고기는 물론 닭고기,칠면조고기 등 모든 육류에 대한 검사에서 특히 E 콜리 박테리아의 오염여부를 가려낼 예정이다. 농무부는 또 8백50만달러를 투입,현재 미국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광우병으로 인한 육류공급 차질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 올해는 대선의 해/여성단체들 “제몫찾기” 한목소리

    ◎「한국여성 사회교육원」 설립검토/정치참여·정보화교육도 확충/「음식물쓰레기 줄이기」운동 적극 참여 한해를 시작하는 여성단체들의 발걸음은 분주하다.대선이 열리는 올해는 여성들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도록 쌓아온 역량과 경험을 다해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지난해 활발했던 평등고용,성폭력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사그라들지 않도록 계속 불을 지피는 것도 여성단체들의 몫이다.한편으로는 급속한 정보화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여성들에 대한 정보화교육이 시급하다는 얘기도 들려온다.이와 관련,정부는 전부터 추진해온 여성관련정보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소의 해」를 맞아 느리지만 뚜벅뚜벅 굳은 걸음으로 전개될 여성관련 부처 및 단체들의 97년 사업 청사진을 미리 보자. ▷정무제2장관실◁ 정무2실의 사업가운데 무엇보다 무게가 실리는 것은 제1차 여성발전기본계획 수립이다.지난해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에 근거,1998∼2002년을 1차년도로 삼을 이 계획은 우리나라 여성정책의 근간으로 향후 여성발전을 좌우할 것이다.이를 위해 민·관합동 「…수립위원회」를 통한 수차례의 정책 간담회를 계획중이다.이밖에 여성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독립적 사회교육기관으로 「한국여성사회교육원」(가칭)설립도 검토중.여성개발원의 여성정보센터를 축으로 한 여성정보종합유통시스템 구축도 적극 지원하며 「합리적 생활문화운동」의 하나로 서울신문이 펼치는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도 뜻을 같이한다. ▷한국여성개발원◁ 지난해 문을 연 여성정보센터의 기반구축에 주력하게 된다.하드웨어 확장은 물론,각종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개발,지역 거점기관을 통한 기초적인 정보화교육까지 목표삼고 있다.재일본대한민국부인회와 재중국조선족동포단체가 함께 교류하는 3국 한민족여성 협력의 장도 마련된다.「여성발전기본법의 효율적 시행과 정착화를 위한 연구」 등을 필두로 여성의 정치참여,관리직 진출,사회교육의 남녀차별 철폐 등을 위한 다채로운 연구도 시행된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 정책토론회를 추진하며 후보들에게제안할 여성정책개발을 위해 전문가 워크샵도 한층 다채롭게 벌일 계획.여성의 사회참여와 관련,▲국립대학 여교수 할당제 ▲각급학교 교장·교감직에 여성비율 늘이기 등의 구체적인 목표도 세워두고 있다.음식물쓰레기 줄이기 등 식생활 개선을 위한 활동도 펼친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연은 올해를 「정치적 경제적 주류화를 위한 도약의 해」로 정했다.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는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여성참여 ▲여성유권자 주체화 교육에 주력하며 경제에서는 ▲여성노동력의 비정규직화 방지 ▲여성농민의 경영인력화를 추진,사회적으로는 ▲모성보호비용의 사회분담 ▲국민연금제 여성차별 개선 등의 사회보장을 요구한다.
  • 경작논 매도·임대 65세이상 농민/소득보조금 지급키로

    ◎각의 「직접직불제도」 의결 앞으로 나이가 많은 농민이 경작하고 있던 논을 쌀 전업농민에게 팔면 소득보조금을 받게 된다. 정부는 21일 이수성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농산물의 생산자를 위한 직접지불제도 시행규정」제정안을 의결했다. 소득보조금을 받으려면 65세 이상 농민으로 최근 3년 동안 농림부령이 정한 농작물을 경작하고,직접 경작하는 논 전부를 전업농민이나 농업진흥공사에 팔거나 5년 이상 임대하는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지급대상자는 시·도 농촌발전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시장·군수·구청장이 선정하고 지급요건 등에 관한 현장조사는 농진공이 맡는다. 정시채 농림부장관은 『이 규정은 고령농가의 소득을 지원하고 전문농민의 경영규모 확대를 통한 쌀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일 나라현 법륭사(세계 문화유산 순례:19)

    ◎한민족혼 숨쉬는 세계최고 목조가람/7세기 아스카시대 불교건축문화의 정수/국보·문화재 190종 2천3백여점 집결/금당 석가삼존상 등 한반도 도래인이 제작/지붕·벽 우리의 옛날집 모습 그대로 일본 나라현 호류지(법륭사)는 일본 문화가 자라나온 모태였다. 세계 최고의 목조 건축물로서 지난 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류지는 「나무의 문화」인 일본 건축문화의 정수이자 일본 불교문화의 원형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람이다. ○5만7천평 동·서원으로 분리 오사카와 나라의 중간 너른 들판 끝 산자락에 위치한 이 절의 18만7천㎡의 경내는 서원과 동원으로 나뉘어져 있다.서원은 산문인 남대문,중문,오중탑,금당,회랑,경장 등으로 이뤄져 있고 동원은 몽전(몽전:유메도노)불당 등으로 이뤄져 있다.190종 2천3백여점의 국보와 중요문화재들이 단아한 모습으로 객을 맞는다.서원의 대보장전에는 백제관음상,유메치가이(몽위)관음상,다마무시노즈시 등 일본 문화의 정수들이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1천300년전인 7세기 아스카시대에 지어진 이 절이 우리들의 관심을 크게 끄는 것은 한반도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오중탑,금당,중문,회랑,경당은 물론 15세기에 재건된 남대문을 보노라면 마치 고향집에 돌아온 듯 아늑한 느낌을 준다.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지붕과 벽의 단정한 처리가 우리의 옛날 집들 그대로다.불교는 고분문화시대에서 「문명시대」인 아스카시대로 넘어오는 6세기중엽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전래됐다.고대 시대 일본의 교육은 대부분 승려들에 의해 이뤄졌다.절은 문화의 중심지였고 그 문화를 한반도 도래인들이 지도했던 것이다. 오노 겐묘(대야현묘)집사장은 『당시 한반도에서 기술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건너와 일본의 문화를 지도했다』면서 『호류지에 제작자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금당의 석가삼존상 뿐이지만 삼존상 제작자인 도리 불사도 할아버지가 도래인이었다』라고 말한다. 호류지는 서기 607년 스이코왕과 쇼토쿠세자가 건립했다.그러나 일본서기에는 670년 4월 30일 호류지가 하나도 남김없이 소실됐다고 기술하고 있다.아직도 이 부분은의문에 싸여있다.발굴조사등에 의하면 완전소실은 아니었다는 반론도 있다.재건·비재건 논쟁에 관계없이 이 절의 주요 부분들이 7세기 아스카시대를 대표하는,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문화유산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산문인 남대문을 지나면 바로 중문.깊숙히 덮인 처마,그 처마 밑에 정교하게 새겨진 공포,그리고 신전의 기둥과 비슷하게 엔타시스 양식으로 다듬어진 기둥 등 아스카시대 건축의 정수를 한데 모은 건물이다. 오중탑은 호류지의 말사로 세계문화유산에 함께 포함된 호키지(법기사)의 3중탑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다.위로 오르면서 점차 줄어드는 처마의 비례가 그지없이 아름답다. 지난 81년 호류지 5중탑과 비슷한 규모의 나라현 야쿠시지(약사사) 서탑을 재건한 미야다이쿠(궁대공:도목수) 야마모토 가쓰미(산본극사)씨는 『도다이지 대불당 하나 짓는데만 연인원 2백60만명이 동원된 기록이 남아 있으며 81년 서탑 재건에는 2천만달러가 들었다』면서 『호류지 건축은 인력과 물자를 동원할 수 있는 국가권력,한반도에서 건너온 기술과 문화가 어우러져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금당벽화 소실… 모사품 걸려 금당은 5중탑과 함께 호류지의 눈동자이다.금당의 벽화는 1949년 실화로 소실되거나 그을려 지금은 수액 처리돼 보관돼 있고 현재는 모사품이 걸려 있다.벽화의 제작자는 모른다.고구려승 담징이 그렸다는 설이 있지만 신빙성은 적다고 한다.오노 겐묘집사장은 『담징이 벽화를 그렸다면 150세이상을 살아 활동했다는 말이 되므로 무리가 있다』면서도 『벽화에 고구려적인 특성이 짙은 것으로 미뤄 일본에 붓과 물감을 전한 담징의 제자들이 벽화를 그리지 않았을까 추론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엔타시스 양식의 기둥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회랑의 서쪽편에는 경장이 있다.평소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천문 지리학을 일본에 전래했다는 백제학승 관륵승정의 상으로 전해지는 좌상이 안치돼 있다.오노집사장은 『관륵승정은 초대 주지였다』라고 말한다.이어 『지금도 호류지의 주지로 취임하면 관륵상 앞에서 취임식을 갖는다.그때만 경장의 문을 연다』고 말한다. 호류지가 목조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천년을 넘어 위풍당당한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나라지역이 지진 등 자연재해가 적고 호류지가 나라의 중심지로부터 떨어져 있어 전화 등 재난을 피할수 있었던 점이 지적될 수 있겠다.다음은 끊임없는 재건과 보수작업 덕분.썩기 쉬운 기둥의 곳곳에는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새 나무를 끼워넣은 흔적이 수다하다. 호류지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다카다 료신(고전양신)스님은 「세계문화유산 호류지」에서 『창건후 200년이 지나면서 호류지는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면서 『그러나 쇼토쿠세자시절 호류지에 하사된 오미 가와치 세쓰 등의 영지에서 재원을 조달할수 있었기 때문에 보수가 가능했다』라고 말한다.료신스님은 재원을 모으기 위해 스님들이 분주했다고 말한다.영지 농민들의 땀이 호류지를 지킨 거름이 된 셈이다. ○창건·보수 민중의 땀으로 호류지는 지을 때부터 보수에 이르기까지 민중들의 땀으로 쌓아올려진 문화재였다.만요수(만엽집)의 빈궁문답가는 아스카시대 일반 민중들의 어려운 삶을 전해준다.「해초와 같은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무너지는 집에 짚을 깔고 앉았다.부모는 머리쪽에 처자는 다리쪽에 웅크리고 있다.부뚜막에는 거미가 줄을 치고 이장은 채찍을 들고 세를 받으러 와 불러댄다.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이렇게까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일까」라고.호류지는 그 시대 백성들의 땀으로 지어졌던 것이다. ◎여행 가이드/오사카서 근철로 15분거리… 인근 고분군 둘러볼만 한국에서 나라 호류지로 접근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루트는 세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첫째는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들어가 공항에서 나라로 들어가는 공항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나라까지 95분 소요된다.둘째로는 간사이공항에서 오사카시내를 거쳐 호류지로 가는것.오사카시내 텐노지(천왕사)역에서 긴테쓰(근철)노선으로 호류지로 간다.텐노지역에서 15분만에 호류지역까지 도착이 가능하므로 가장 이용하기에 편리하다.한국에서 항공편이 닿는 나고야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나고야에서는 JR 또는 긴테쓰선을 이용해 교토를 경유하거나 직접 나라로 향할 수 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사카에서 나라행 노선을 이용할 경우 호류지역에 도착,왼편 출구로 나가면 20분정도 걸어 호류지에 닿을 수 있으며 버스나 택시를 이용할 경우에는 오른편 출구로 나가면 된다. 호류지 인근에는 호키지,후지노키 고분 등이 산재해 있다.역사기행에 알맞으므로 함께 둘러볼 것을 권하고 싶다.나라시내로 발을 옮기면 도다이지,야쿠시지,하세데라 등 수많은 명찰들이 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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