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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공학계의 거두 황우석 서울대 교수

    ‘하늘을 감동시키자.’ 생명공학계의 거두인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51) 교수의 좌우명이다.황 교수는 며칠 전 미국 시애틀에서 최고 권위의 ‘사이언스’지를 통해 인간의 복제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연구결과를 발표,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감동’과 ‘놀라움’은 비단 생명공학계뿐만이 아니다.그의 일상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놀랄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생명공학과는 전혀 다른 서울대 미식축구부의 지도교수를 2년반 동안 맡고 있다.또 19년째 홀로 강화도 전등사를 찾아 대웅전에서 400배 이상 참배해오고 있다.국선도 수준이 득도의 경지에 이르러 ‘살아 있는 국선도의 전설’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일반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범상치 않은 ‘일’들을 그는 지니고 있다. 여기에 1년 365일 가운데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연구생활’에 몰두하는 부지런함이 철저하게 몸에 배어 있다.연구결과를 발표하고 미국에서 돌아오는 이튿날 새벽에도 그는 방진복을 걸쳐 입고 연구현장에 복귀할 정도로 장인정신으로 무장돼 있다.아마 세계적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이 아닐까. 황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도 10년 넘게 하루 서너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았고,연구팀 전원이 3년째 휴일과 명절을 반납한 덕분”이라고 말한다.그렇게 연구원들은 연중 무휴로 제각각 동물난자 채취,체외성숙,탈핵,체세포 핵이식,세포융합 및 활성화,체외배양,대리모 이식·착상 등에 몰두해왔단다.만일 주말에 쉬거나 자칫 정전이라도 되면 난자 채취나 체외성숙 등에 지장이 초래되기 때문이라고 황 교수는 설명했다. 이번처럼 ‘하늘을 감동시킬’ 제2,제3의 쾌거는 언제쯤이냐고 성급하게 물었더니 황 교수는 “세계 최초의 업적을 이루기 위해 다들 연구에 미쳐 있다.”며 웃었다. ●미국서 귀국 다음날도 실험실 달려가 지난 23일 이른 아침 충남 돼지농장의 실험현장으로 떠나기에 앞서 서울대 연구실에서 황 교수를 잠시 만났다.자리에 앉자마자 그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오나라∼가나라∼’ 인기 드라마 ‘대장금’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교수님,세계적 과학자께서 어떻게 장금이를?”하고 물었더니 황 교수 왈,“벨소리는 연구실 여직원이 다운받아준 것이고,요즘 방송이나 신문에 인터뷰를 해도 뭐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낸다.”며 ‘미소년’ 같은 웃음을 활짝 지어보였다.그저 앉으나 서나 오로지 ‘소,돼지’ 생각뿐이란다. “미식축구요? 2년반 전쯤 어느날인가 그래요.서울대 미식축구부 졸업생들이 벌떼같이 몰려오더니 다짜고짜 ‘미식축구부 지도교수로 선임됐다.’고 하더군요.부탁도 아니고 그냥 자기네들끼리 투표를 해서 그렇게 결정했다는 통보였습니다.” 생명공학에 몰두하던 그는 졸지에 미식축구부 지도교수가 된다.1965년 서울농대 미식축구부 창단 이래 비전공자가 지도교수가 되기는 처음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처음에는 달갑지 않았지만 미식축구부 멤버들의 끈끈한 인간애에 감복하면서 점점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특히 시합에서 승리했을 때 그 영광을 남에게 돌리는 양보정신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단다. 황 교수는 “사회 일각에서,서울대 출신을 부정적 에고이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나 미식축구부원들은 그 한계를 극복하고 배려와 양보·봉사의 정신 등 사회성까지 갖춘,정말이지 의리의 친구들이다.”고 치켜세웠다. 미식축구부의 자랑은 더 이어진다.경기가 있는 날이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쫓아가 목이 터져라 응원한다.경기의 전술·전략 등에서는 문외한이라 ‘코치역할’은 제대로 못해주고 있다.그러나 승패에 관계없이 선수들의 등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격려가 황 교수의 소중한 역할이다. 지난해 2월 OB(졸업생)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미식축구부원들의 가정형편이 대부분 넉넉하지 못한 데다 다른 체육부 학생들처럼 장학제도의 혜택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황 교수는 장학금 5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그러자 ‘범서울대 동문’ 차원에서 시동이 걸렸고 곧 이어 서울대 미식축구부 사상 처음으로 장학금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바쁜 연구생활로 (경기에)자주 참석을 못해 아마 3월 새 학기가 되면 (지도교수직에서)‘잘릴’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19년째 전등사로 가는 까닭은’ 황 교수는 미국 출국 3일 전에 전등사를 찾아 예불을 올렸다.또 다녀온 뒤인 지난 22일 새벽 4시에 전등사를 찾아 400배를 올렸다.이번 ‘쾌거’를 시작으로 현재 진행 중인 ‘5대 프로젝트’(소,돼지,애완동물,백두산 호랑이,줄기세포)의 성공적 연구를 위해 밤낮없이 고생하는 연구팀원들의 건강을 빌었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19년 전 건강이 지독하게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절망적인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권유를 받았다.그는 우리나라 산 중에서 가장 기(氣)가 세다는 강화도 마니산의 전등사를 찾아 108배의 예불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건강이 조금씩 회복됐다. 생명의 존귀함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이후 매월 한차례씩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전등사를 꼭 찾는 버릇이 생겼다. 2년 전 2월 어느날 전등사에 갔을 때였다.참배를 끝내고 대웅전을 막 나오는데 한 스님이 다가와 황 교수가 아니냐고 불쑥 물었다.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스님은 (전등사의)주지스님이 황 교수에게 곡차를 한잔 대접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세계적 생명공학자와 득도한 주지스님과의 만남이 우연히 이루어졌다.‘19년째의 전등사행’ 가운데 유일하게 만난 사람이었다. 황 교수에게 연구철학의 바탕에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담겨 있지 않느냐고 불쑥 물었다.“아마,그렇게 봐도 맞을 것”이라면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이 담긴 글을 접할 때 가장 감명을 받는다.”고 대답했다. ‘전등사행’이 시작되면서 내친김에 그는 ‘국선도’를 배우기 시작한다.깊은 명상과 호흡,스트레칭….연구활동에도 도움이 되고 자신의 건강회복을 위해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곧 국선도에 빠져들었고 19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동네 대중목욕탕에 들른 뒤 5시면 어김없이 국선도장을 찾는다.그가 ‘국선도의 전설’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릴적 가족 먹여살린 소에 보답하려 수의대 선택 그는 서울 논현동 35평 전세 아파트에서 전업주부인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요즘에는 군에서 막 제대한 아들이 합류해 한 식구가 더 늘었다.얼핏,35평 전세가 전 재산이라는 말에 세계적 업적을 남기려면 생활도 풍족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돌아오는 답변이 의외였다.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국가에서 봉급을 주고,또 아이들 교육까지 시켜주는데 더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또 “풍요 속에 나태가 오는 법이며 가용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연구비 없어 연구 못하는 그런 시대는 아니란다.봉급이 얼마냐고 슬쩍 물었더니 “내가 관리 안 해서 모르겠다.”고만 대답했다.(다른 교수들의 말을 빌리면 대략 수당까지 합쳐 연봉 8000만원쯤으로 추정된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충남 부여의 ‘깡촌’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6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초등학교 시절 방과후 가족의 재산목록 1호이기도 했던 소에게 풀을 먹일 때마다 ‘장차 소를 연구해야지.’ 하고 꿈을 키웠다. 그러다가 가끔 너무 배가 고프면 ‘소를 잡아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어머니는 어린 황 교수를 볼 때마다 “너는 면사무소 서기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시 소 3마리가 우리 식구를 먹여살렸지요.나중에 꼭 소에 대해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대전고 3학년 때 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의대 진학을 권유받았다.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릴 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대 수의학과에 입학했다. 이 때부터 그는 ‘소와의 춤’이 시작됐다.대학 시절 미팅 한번 하지 않았다.대신 도축장이나 가축병원에 드나들면서 소의 항문에 손을 집어넣어 장기를 만져 소의 상태를 진단하는 ‘직장검사’를 셀 수도 없이 했다.아마 국내에서 황 교수보다 직장검사를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소를 키우는 전국의 어지간한 농장 주인들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의 연구실과 집에는 농민들로부터 ‘우리 소가 아프다.’는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도 자주 걸려온다.그때마다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소를 키우는 축산농가 사람들은 그런 황 교수를 보고 ‘정말로 쇠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일본 유학 중 연구비와 생활비가 모자랐을 때 결정적 고비를 넘기게 해준 이들도 그를 아끼는 농민이었다. ●‘이공계 기피’ 정부 안이하게 사회는 과도하게 우려 87년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23명의 연구팀을 구성,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다.이후 최근 10년간 그는 줄기세포 추출 외에 국내 최초 시험관 송아지(93년),슈퍼젖소(96년),복제젖소와 복제한우(99년),세계 최초 광우병 내성 복제소와 장기이식용 무균돼지(2003년) 생산에 잇따라 성공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연구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주치의인 서울대 의대 신장내과 안규리 교수의 영향도 컸다.안 교수는 평소 황 교수에게 “세포를 복제하는 방법만이 장기이식시 타인의 면역거부를 완전히 해결하는 길”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화제를 잠시 돌려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치유책을 물었다.그는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너무 과장해서도 안되고 또 덮으려고 해서도 안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세계적 조류라고 할 수 있지요.기피현상을 ‘암’으로 비유하면 사회에서는 ‘4기암’으로,정부에서는 ‘1기암’으로 각각 바라보고 있습니다.저는 ‘3기암’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올해가 새로운 전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애정’이 있어야 모든 병이 빨리 완치되듯이 현재의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서도 국가든 사회든 ‘애정’이 절실할 때라고 강조했다.다행히 최근 분위기로 볼 때 기피현상이 상승의 변곡점에 있으며 5년 후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그는 치유책으로 ▲세제 ▲병역특례 ▲공직진출 등의 제도적 개선을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면서,과학기술의 진흥 없이는 미래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5년쯤 뒤엔 노벨상도 해낼것” 황 교수는 미국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한 직후 ‘노벨상 감’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그러나 황 교수는 “우리가 지금 노벨상을 받을 때도 아니고 받아서도 안된다.”면서 “연구결과를 더욱 심화시켜 실용화할 수 있는 확인작업이 더욱 중요하다.바로 그것을 이룬 사람이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현재 연구팀의 실력으로 봐서 5∼10년 후 정도면 반드시 그런 성과를 이룩할 것으로 장담했다. 그는 또 “새로운 학문에 대해 훨씬 더 전문성을 갖추고 전세계의 추이를 파악하고 역량도 뛰어난 후배교수 서너명을 주목하고 있다.”면서 “적절한 시점에 지휘봉을 넘겨야 우리 연구팀이 다음 단계로 점프 업할 수 있다.”고 의미있는 말을 했다.그 지휘봉을 이어받을 후배교수들 가운데서 한국인 최초로 노벨과학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황 교수는 갖고 있다. 앞으로 시급히 해야 할 과제에 대해 그는 “전세계에는 정말 이 순간에도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난치병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이들의 눈과 귀가 될 수 있는 연구를 계속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 한민족의 얼로 상징되는 백두산호랑이를 복제하는 데 꼭 성공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입각설과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선정위원 명단과 관련,그는 “현재 전국의 13개 대학 184명의 분야별 연구진이 또다른 ‘세계 최초’의 개가를 올리기 위해 리더로 혼신의 힘을 쏟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 그가 걸어온 길 ▲1953년 12월 출생 ▲72년 대전고 졸 ▲77년 서울대 수의학과졸 ▲79년 동대학원 졸 ▲82년 서울대 수의학박사 ▲86∼97년 서울대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 ▲96∼97년 대한수의학회 학술위원장 ▲97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현) ▲99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정책자문위원(현) ▲2000년 일본수의학회 학술위원(현) ▲10년간 그가 이룩한 결과는 줄기세포 추출 외에 국내 최초 시험관 송아지(93년),슈퍼젖소(96년),복제젖소와 복제한우(99년),세계 최초 광우병 내성 복제소와 장기이식용 무균돼지(2003년) 생산 등이다. 김문기자 km@˝
  • FTA 후폭풍… 과수원 매물 넘친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후폭풍이 농촌을 강타하고 있다.포도 주산지인 충북 영동·옥천과 경북 예천 등지의 농민들이 농지가격 폭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북예천 6만원짜리가 2만원으로 농지의 80%가량이 포도원인 충북 영동의 대산동 일대 포도밭 가격은 평당 4만원대다.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평당 5만원을 웃돌았다.FTA가 통과되면서 1만원가량 내려간 것이다.이 가격에도 사려는 사람은 없다.과수원을 경영하며 중개업을 겸하는 박충규씨는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가격결정권이 매수자에게 넘어갔지만 매수세가 없어 거래가 중단되고 매물만 넘쳐난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 영농조합법인의 정동옥씨는 최근에 과수원을 평당 2만원에 내놓았다.3∼4년전만 해도 5만∼6만원을 호가했지만 지금은 2만원에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정씨는 “홧김에 1만원에 내놓을까 생각했지만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에 거둬들였다.”면서 “농협대출 보증을 서는 경우가 잦은데 신용불량자로 내몰릴 위기다.”라고 말했다.경북 경주시 안강읍 과수원 부지도 최근 30%나 하락했다.과수원이 1만원에도 팔리지 않자 평당 7000원짜리 매물도 나왔다.안강읍내 두성공인 선경희씨는 “과수원 거래는 끊겼지만 과수농사 포기농가는 늘어만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칠레 FTA는 포도의 경우 국내 성수기인 5∼10월에는 관세를 현행대로 46%만 물린다.대신 겨울철(11월∼이듬해 4월) 수입물량에 한해 관세를 낮춰주기로 했다. ●비닐판매업자 등으로 일파만파 그러나 겨울철에도 포도재배농가는 비닐하우스에 난방을 해가며 포도를 재배한다.당연히 생산원가가 올라가는데 이때 칠레산 포도의 수입가는 국내 생산가의 5분의1선에 그칠 것이라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이에 따라 농민들은 올겨울 포도농사를 포기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이렇게 되면 포도농가뿐 아니라 비닐이나 파이프 등의 자재 공급자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비닐하우스 등 자재를 공급하는 이모(충북 영동읍)씨는 “포도농가가 겨울 재배를 포기하면 우리도 함께 문을 닫아야 해 지역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그나마 농촌 경제를 지탱해온 과수농사마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농지체계 바꿔주오 경북 예천의 과수농민은 “포도농사를 포기하고 받는 ‘폐원보조금’이 나온다지만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 폐원하고 싶다.”고 말했다.이들은 이곳에 집을 짓거나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책을 수립해줄 것을 요구했다.농업전용지역의 경우 넓은 땅을 잘게 쪼개팔게 하거나 건축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추곡수매 폐지 이후-식량안보차원 필요량만 비축

    정부가 내년부터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대신 공공비축제도를 도입키로 한 것은 우리 농업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농림부는 그동안 추곡수매제를 통해 수매가와 시장가격과의 차액을 정부 예산으로 메워왔다.가령 쌀 80㎏ 한 가마의 시장가격이 10만원이라면 정부는 이보다 1만원쯤 비싼 11만원선에서 사들였다.농촌의 열악한 현실과 농업의 중요성을 감안해서다. 그러나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공공비축제로 대체되면 수매 및 출하시기만 조절할 뿐,시세대로 사들인 뒤 되팔게 된다.지금처럼 시장가격에 일정 금액을 더 얹어주지 않는다는 얘기다.그만큼 농가의 부담은 가중된다. 정부수매 제도는 WTO(세계무역기구) 농업협상에서 정부보조금으로 인정하고 있어,전면 폐지를 강요받고 있다.협상 무대에서 우리 정부가 이를 고집하다간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각국이 긍정적으로 여기는 DDA(도하개발어젠다) 의장 초안에서도 정부수매는 연간 27만t씩 수매량을 줄이도록 명시했다.추곡수매 비중도 1994년에 전체 생산량의 30%에서 올해에는 17%로 줄었다. 정부는 한해 1조 6000억원(2003년 기준)의 추곡수매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하지만 실제 농민들에게 돌아간 혜택은 800억원 정도에 그치고 있어 농가소득 보전 방안으로 이미 실효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내년부터 실시될 공공비축제는 현재의 추곡수매와 같은 방식으로 수확기에 지역농협 등에서 단계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다.구매량은 식량안보 차원을 위해 필요한 물량을 정하게 된다.현재 추곡수매량보다는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이에 대해 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민수 정책실장은 “수매제 폐지는 국제협상에서 양보할 카드이고,국내 쌀시장의 가격안정 기능이 있으나 실익도 없이 섣불리 폐지했다.”고 비판했다. 전국농민단체총연맹 이영수 정책부장도 “쌀 수급과 관련,후속대책없이 수매제부터 폐지해 농민 불안이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부고]

    ●鄭在德(경원대 겸임교수·신세계 고문)씨 별세 昇鎭(인스실업 이사)多美(명지대 교수)恩美(명지전문대 교수)씨 부친상 在恩(신세계 회장)씨 형님상 金民寧(한국외대 교수)씨 빙부상 21일 오후 9시36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5 ●金東燮(중앙일보 시민언론부 차장)씨 부친상 趙剛祿(위아 직원)씨 빙부상 22일 0시5분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30분 (055)270-1945 ●金箕洙(캐나다 거주)銅洙(한국고시회 대표)씨 모친상 21일 오후 3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92-1099 ●尹赫(MBC 시사교양국 위원)成均(자영업)씨 부친상 安昌奎(기술신용보증기금 직원)洪昇杓(티엠에듀컨설팅 수석컨설턴트)李白賢(㈜세종파마텍 이사)씨 빙부상 21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92-3499 ●吳仁成(전 연세대 관재차장)根成(자영업)志成(대아건설 소장)씨 모친상 林鎭平(자영업)씨 빙모상 21일 오전 7시1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10시 (02)392-0699 ●李燦爀(전 양평경찰서 청문감사관)씨 별세 許燕子(양평경찰서 근무)씨 상부 宇耿(성남시 한국학원 교사)씨 부친상 燦豪(양평경찰서 근무)씨 형님상 21일 오전 3시44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3010-2266 ●宋東熹(중앙기계섬유 고문)哲煥(한국수력원자력 부장)東燮(현대건설 차장)淸子(서울대현초등학교장)씨 모친상 崔榮羽(국립평창수련원장)씨 빙모상 21일 0시7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93 ●李庸赫(서울신문 독자서비스국 발송부장)씨 형님상 22일 오전 3시 경기 김포시 장기동 고려병원,발인 24일 오전 9시 (031)998-1982 ●金泰源(한국투자증권 이사)劉寬相(서울방원중 교사)金完洙(유원건축사무소 이사)씨 빙모상 21일 오후 3시47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54 ●金潤(서강민주동문회 고문·전 전국여성농민위원회 준비위원장)씨 별세 21일 오전 9시30분 전북 전주시 금성장례식장,발인 23일 오전 9시 (063)276-4443 ●鄭炳涉(한국방송광고공사 출판사업부장)씨 모친상 盧哲鎭(서울 강남치과 원장)씨 빙모상 21일 오전 2시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590-2557 ●尹在文(전 충남지방경찰청 차장)在明(전 대한항공훈련원장)씨 모친상 池長植(자영업)鄭保泳(성호교역 대표)씨 빙모상 20일 오후 3시30분 서울 상계백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951-1499 ●李誠植(하이닉스반도체 과장)씨 부친상 李鍾浩(미국 거주)尹智元(Combynets㈜ 대표)씨 빙부상 21일 0시15분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발인 23일 오전 6시 (031)701-2641 ●閔炳友(국가유공자)炳敦(중소기업진흥공단 실장)씨 모친상 沈英禮(부천시 동곡초등학교 교사)씨 시모상 誠基(㈜유성 직원)永準(자영업)必準(경희산업 직원)씨 조모상 22일 오전 3시5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4일 오전 9시30분 (02)3410-6914 ●林淳洪(전 서울신탁은행 감사)씨 별세 益成(남서울대 교수)良禧(서울 이화내과 원장)씨 부친상 宋侖燮(순천향대 의대 교수)姜熙哲(변호사)씨 빙부상 21일 오후 6시 삼성서울병원,발인 23일 오전 9시 (02)3410-6910 ●崔鍾圭(세진금속 대표)泳圭(신선양행 대표)玄圭(부산대원어묵 경기총판 소장)씨 부친상 金龍柱(송파구 직원)成年杓(자영업)씨 빙부상 22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6시 (02)3010-2294 ●金晶洙(MBC 라디오본부 위원)씨 빙부상 22일 오전 9시 서울 한양대병원,발인 24일 오전 6시 (02)2290-9460 ●宋榮德(경남농협지역본부 신용부본부장)榮福(현대미포조선 차장)씨 모친상 20일 오후 10시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55)270-1940 ●朴光洙(진미갑 대표)明洙(제일엔지니어링 대표)鎭洙(현대석유화학 공동대표)唱洙(더컨텐츠컴퍼니 부장)씨 모친상 21일 오후 6시50분 인천 인하대병원,발인 23일 오전 9시30분 (032)890-3199 ●徐弘源(대우기계 대표)平源(보광산업 대표)点源(자영업)成源(삼성테크원 과장)씨 모친상 22일 낮 12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2)3010-2235 ●김현태(전 단국대 불문과 교수)씨 별세 22일 오전 8시5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2)590-2538˝
  • [부고]

    ●鄭在德(경원대 겸임교수·신세계 고문)씨 별세 昇鎭(인스실업 이사)多美(명지대 교수)恩美(명지전문대 교수)씨 부친상 在恩(신세계 회장)씨 형님상 金民寧(한국외대 교수)씨 빙부상 21일 오후 9시36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5 ●金東燮(중앙일보 시민언론부 차장)씨 부친상 趙剛祿(위아 직원)씨 빙부상 22일 0시5분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30분 (055)270-1945 ●金箕洙(캐나다 거주)銅洙(한국고시회 대표)씨 모친상 21일 오후 3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92-1099 ●尹赫(MBC 시사교양국 위원)成均(자영업)씨 부친상 安昌奎(기술신용보증기금 직원)洪昇杓(티엠에듀컨설팅 수석컨설턴트)李白賢(㈜세종파마텍 이사)씨 빙부상 21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92-3499 ●吳仁成(전 연세대 관재차장)根成(자영업)志成(대아건설 소장)씨 모친상 林鎭平(자영업)씨 빙모상 21일 오전 7시1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3일 오전 10시 (02)392-0699 ●李燦爀(전 양평경찰서 청문감사관)씨 별세 許燕子(양평경찰서 근무)씨 상부 宇耿(성남시 한국학원 교사)씨 부친상 燦豪(양평경찰서 근무)씨 형님상 21일 오전 3시44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3010-2266 ●宋東熹(중앙기계섬유 고문)哲煥(한국수력원자력 부장)東燮(현대건설 차장)淸子(서울대현초등학교장)씨 모친상 崔榮羽(국립평창수련원장)씨 빙모상 21일 0시7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93 ●李庸赫(서울신문 독자서비스국 발송부장)씨 형님상 22일 오전 3시 경기 김포시 장기동 고려병원,발인 24일 오전 9시 (031)998-1982 ●金泰源(한국투자증권 이사)劉寬相(서울방원중 교사)金完洙(유원건축사무소 이사)씨 빙모상 21일 오후 3시47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54 ●金潤(서강민주동문회 고문·전 전국여성농민위원회 준비위원장)씨 별세 21일 오전 9시30분 전북 전주시 금성장례식장,발인 23일 오전 9시 (063)276-4443 ●鄭炳涉(한국방송광고공사 출판사업부장)씨 모친상 盧哲鎭(서울 강남치과 원장)씨 빙모상 21일 오전 2시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3일 오전 8시 (02)590-2557 ●尹在文(전 충남지방경찰청 차장)在明(전 대한항공훈련원장)씨 모친상 池長植(자영업)鄭保泳(성호교역 대표)씨 빙모상 20일 오후 3시30분 서울 상계백병원,발인 23일 오전 7시 (02)951-1499 ●李誠植(하이닉스반도체 과장)씨 부친상 李鍾浩(미국 거주)尹智元(Combynets㈜ 대표)씨 빙부상 21일 0시15분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발인 23일 오전 6시 (031)701-2641 ●閔炳友(국가유공자)炳敦(중소기업진흥공단 실장)씨 모친상 沈英禮(부천시 동곡초등학교 교사)씨 시모상 誠基(㈜유성 직원)永準(자영업)必準(경희산업 직원)씨 조모상 22일 오전 3시5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4일 오전 9시30분 (02)3410-6914 ●林淳洪(전 서울신탁은행 감사)씨 별세 益成(남서울대 교수)良禧(서울 이화내과 원장)씨 부친상 宋侖燮(순천향대 의대 교수)姜熙哲(변호사)씨 빙부상 21일 오후 6시 삼성서울병원,발인 23일 오전 9시 (02)3410-6910 ●崔鍾圭(세진금속 대표)泳圭(신선양행 대표)玄圭(부산대원어묵 경기총판 소장)씨 부친상 金龍柱(송파구 직원)成年杓(자영업)씨 빙부상 22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6시 (02)3010-2294 ●金晶洙(MBC 라디오본부 위원)씨 빙부상 22일 오전 9시 서울 한양대병원,발인 24일 오전 6시 (02)2290-9460 ●宋榮德(경남농협지역본부 신용부본부장)榮福(현대미포조선 차장)씨 모친상 20일 오후 10시 경남 창원시 파티마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55)270-1940 ●朴光洙(진미갑 대표)明洙(제일엔지니어링 대표)鎭洙(현대석유화학 공동대표)唱洙(더컨텐츠컴퍼니 부장)씨 모친상 21일 오후 6시50분 인천 인하대병원,발인 23일 오전 9시30분 (032)890-3199 ●徐弘源(대우기계 대표)平源(보광산업 대표)点源(자영업)成源(삼성테크원 과장)씨 모친상 22일 낮 12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2)3010-2235 ●김현태(전 단국대 불문과 교수)씨 별세 22일 오전 8시5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2)590-2538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문제의 이 사발은 공식적으로 조선에 파견되는 당시 일본 외교사절인 ‘왜국국왕사(倭國國王使)’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전해졌다.조선시대 일본 외교사절은 승려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이들은 조선과의 국교가 시작되어 임진왜란으로 잠시 국교가 단절되었던 때까지 조선을 방문하여 우수한 조선의 문물을 배웠거나 직접 가지고 돌아갔다. 대표적인 것은 베틀을 이용한 직물의 생산,불경과 대장경,도자기와 그 제작기술 등이었는데,조선 도자기 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 일본이 매우 탐내는 첨단 문명이었다. ●조선 도자기기술은 세계최고 수준 1423년 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이후 일본 승려들의 조선 방문은 더욱 활발해져서 조선의 민간 풍물과 사찰 문화를 집중적으로 수입해갔다. 조선에서 배워간 문물을 이용하여 일본의 저급한 문화를 일깨웠는데,가마쿠라막부와 무로마치막부 시대의 혼돈과 무절제,사치와 방종의 폐해가 일본의 존립을 위협할 때 그 대안으로서 조선의 문물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송나라로부터 수입한 문화인 서원차(書院茶) 병폐를 치유시키기 위해 응용한 것이 조선 서민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초가집 살림살이와,깊은 산중에서 은거하는 청빈한 수행자의 토굴 생활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절제와 무소유 철학을 가미하여 일본 특유의 초암차를 만들었다.이 초암차는 뒷날 ‘다도(茶道)’라는 일본 특유의 차문화가 탄생하게 되는 원천이 되었다. 서원차에서 다도까지의 진보 과정은 일본이 혼돈과 야만에서 정화와 문명으로 변화하는 혁명적 승화였다.이 혁명을 완성한 것은 인간이지만 그 인간의 내면세계를 혁명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차를 담아 마시는 찻그릇이었다.그 찻그릇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도차완이 통도사 봉발을 조형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무릇 모든 그릇은 조형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모두 중국의 청자와 백자를 조형의 모체로 삼아서 나름의 독창성을 이루어 냈다. 중국의 그릇 또한 인도 불교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발전했다.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른바 주발(周鉢: 위가 약간 벌어지고 뚜껑이 있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식기),바리(놋쇠로 만든 여자 밥그릇.오목주발과 같지만 입이 좀 더 좁고 중배가 나왔으며 뚜껑에 꼭지가 있음),완(梡,碗) 종류들이다. 모두 산스크리트 patra를 음역한 발(鉢: 승려의 식기)의 형태를 모체로 삼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한국적 특성 가장 잘 나타낸 분청사기 흙을 재료로 한 사발(砂鉢),구리를 이용한 동발(銅鉢),쇠를 이용한 철발(鐵鉢),진흙을 이용한 와발(瓦鉢),은을 이용한 은발(銀鉢)등이 크기와 형태에서 매우 다양하게 발전했다.그렇게 발전한 대표적인 성과물이 송나라대의 찻사발들인데,천목(天目)이라 부르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릇이다.천목찻사발의 형태는 고려 청자 찻사발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필연적으로 중국 도자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시대의 독특한 도자문화로 일컬어지는 분청(粉靑) 사기는 한국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청자에서 백자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체험하고 터득해 낸 조선 사기장들의 지혜와 미감(美感)이 응집되어 창출된 한국형 사발이다.이같은 우리나라의 도자사(陶磁史)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 저 일본인들이 이도(井戶)라 부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를 통해서였다.따라서 그 이전 우리나라 그릇의 역사에서 이것의 존재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400년 넘게 일본에서 자란 그릇이어서 이 그릇의 참된 주인은 일본 차인들이라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른다.그렇다보니 이 그릇의 본래 용도에 관한 연구와 논의도 일본에서만 이루어져 왔다.그러던 중 이도차완에 관한 한국 사기장들의 관심이 표명된 1960년대부터 조금씩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주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 국한되어서였다. 그 뒤로 중국,일본의 차문화가 한국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한국에서도 차 마시는 인구가 1000만 명을 헤아리게 되면서 다른 찻사발들과 함께 이도차완의 감상과 미학적 탐구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왔다. 어느새 한국의 현재 찻사발 종류 중에서 이도차완 형태를 본뜬 것들이 찻그릇 문화를 주도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히 이도차완으로 이름이 붙여져 찻사발로 이용되고 있는 이 그릇의 본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도 생겨났다.무릇 모든 그릇이 그러하듯 그 쓰임새를 알아야만 그릇에 대한 정확한 가치매김을 할 수 있다.이도차완은 본래 찻사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기된 당연한 의문이다.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맨 먼저 이 그릇의 용도를 얘기한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이다.동양미술사학자인 그는 일제시대를 통하여 조선서민들의 생활용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간 대표적인 사람이며, ‘민예(民藝)’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만큼 조선문화에 대한 전문가였다. ●日선 “雜器” “祭器” 두가지 견해 그는 이도차완을 16세기 조선서민들의 밥그릇,생활 잡기였다는 잡기설(雜器說)을 내놓았다.이 그릇의 투박한 생김새,자유분방한 색깔과 재료의 특성 등을 그 증거로 제시하면서였다. 두 번째 의견은 동경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을 지내기도 한 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祭器說)이다.이도차완 중에서 규격이 큰 그릇들의 특징인 높은 굽을 증거로 내놓았다. 이 그릇의 가장 큰 특징이 높은 굽임은 확실하고,이 높은 굽으로하여 청자나 백자 혹은 분청사기와도 현저하게 다른 그릇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도차완의 가장 큰 특징 또한 굽의 형태와 굽 언저리의 신비스러운 문양이어서 높은 굽은 누구에게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일제시대의 산물이며,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4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그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제기설에 동조하는 견해와 잡기설을 지지하는 견해로 나눠져 있다.두 가지 견해를 모두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 국보가 된 한국의 그릇은 이도차완뿐이며,청자,백자,분청사기는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이도차완 중에는 신비와 전설의 대상이 되었을 만큼 놀라운 정치적 흥정물로,천문학적 가격으로,죽기 전에 꼭 한 번 구경하기를 소망하는 그릇이 여러 점이다.이같은 역사가 한국인들에게는 더 관심거리로 작용하고 있는 듯 싶다. 어쨌든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이 그릇이 지닌 미학적 요소들을 놀라운 미감과 관찰력으로 읽어내어 이 그릇에 관한 평가를 한층 심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조선시대 사기그릇 祭器는 백자가 유일 16세기 조선의 도자사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고 쓴 그릇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16세기 조선의 도자기 생산 제도는 철저한 관요(官窯)체제여서 모든 생활그릇의 공급을 국가가 전담했다.민간인이 마음대로 그릇을 생산 판매할 수 없었다.일정 직급의 관료와 양반 사대부,소수의 중인 계층들에게만 관요에서 생산된 그릇이 주어졌다. 따라서 농민 등 서민층은 질그릇 외의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기설이 이 그릇의 높은 굽에 착안하고 있는 점은 조선의 민속과 제도에 얼마큼 지식을 가졌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조선시대의 제기는 백자가 원칙이었다.놋그릇,목기를 제외한 사기그릇 제기는 백자가 유일하다.이도차완 종류는 백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도차완 형태의 그릇을 제상에 진설할 수 있는 상차림이란 없다. 두 가지 견해 모두 이 그릇의 용도를 전혀 엉뚱하게 추정하는 잘못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으로서의 견해일 따름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문제는 한국인들이 앞의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일본 견해를 비판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도차완의 원래 용도는 통도사 봉발대의 봉발을 근원으로 하여 생활화하려 했던 승려들의 발우였던 것으로 보인다.마하승기율,사분율 등 주요 경전에서 규정하고 있는 흙발우의 조건과 통도사의 봉발,그리고 이도차완의 모든 것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도차완 미학의 신비로움은 미륵신앙에 담겨 있는 종교적 염원과 긴 역사가 승화된 것이라고 볼 때 조선 사기장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도예가들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내장산입구 조각공원 조성

    내장산 국립공원 입구에 대한민국 미술전 등 국내 4대 미술전이 배출한 조각부문 대상 수상자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야외 조각공원이 들어선다. 전북 정읍시는 22일 내장산 조각공원 작품설치위원회를 열고 한국 미술협회가 추천한 현역작가 16명의 구상과 비구상,반구상 분야의 대표적 작품을 1점 이상씩 구입해 영구 전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참여 작가는 대한민국미술전의 대상 수상자 고경호,김수현,문인수,정대현,정안수,정현도씨 등 6명과 서울미술대전의 계낙영,김병철,이문영씨 등 3명,동아미술대전의 박헌열,신범상,최태훈씨 등 3명과 중앙미술대전의 백철수,엄혁용,이일호,임형준씨 등 4명이다. 작품이 설치되는 곳은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탑과 내장호수,수목원과 산책로 주변이다. 시 관계자는 “다른 조각공원과 차별화를 위해 현역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로 했다.”며 “수준높은 조각품을 한 곳에서 모두 다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조각공원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읍 임송학기자 shlim@˝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문제의 이 사발은 공식적으로 조선에 파견되는 당시 일본 외교사절인 ‘왜국국왕사(倭國國王使)’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전해졌다.조선시대 일본 외교사절은 승려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이들은 조선과의 국교가 시작되어 임진왜란으로 잠시 국교가 단절되었던 때까지 조선을 방문하여 우수한 조선의 문물을 배웠거나 직접 가지고 돌아갔다. 대표적인 것은 베틀을 이용한 직물의 생산,불경과 대장경,도자기와 그 제작기술 등이었는데,조선 도자기 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 일본이 매우 탐내는 첨단 문명이었다. ●조선 도자기기술은 세계최고 수준 1423년 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이후 일본 승려들의 조선 방문은 더욱 활발해져서 조선의 민간 풍물과 사찰 문화를 집중적으로 수입해갔다. 조선에서 배워간 문물을 이용하여 일본의 저급한 문화를 일깨웠는데,가마쿠라막부와 무로마치막부 시대의 혼돈과 무절제,사치와 방종의 폐해가 일본의 존립을 위협할 때 그 대안으로서 조선의 문물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송나라로부터 수입한 문화인 서원차(書院茶) 병폐를 치유시키기 위해 응용한 것이 조선 서민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초가집 살림살이와,깊은 산중에서 은거하는 청빈한 수행자의 토굴 생활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절제와 무소유 철학을 가미하여 일본 특유의 초암차를 만들었다.이 초암차는 뒷날 ‘다도(茶道)’라는 일본 특유의 차문화가 탄생하게 되는 원천이 되었다. 서원차에서 다도까지의 진보 과정은 일본이 혼돈과 야만에서 정화와 문명으로 변화하는 혁명적 승화였다.이 혁명을 완성한 것은 인간이지만 그 인간의 내면세계를 혁명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차를 담아 마시는 찻그릇이었다.그 찻그릇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도차완이 통도사 봉발을 조형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무릇 모든 그릇은 조형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모두 중국의 청자와 백자를 조형의 모체로 삼아서 나름의 독창성을 이루어 냈다. 중국의 그릇 또한 인도 불교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발전했다.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른바 주발(周鉢: 위가 약간 벌어지고 뚜껑이 있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식기),바리(놋쇠로 만든 여자 밥그릇.오목주발과 같지만 입이 좀 더 좁고 중배가 나왔으며 뚜껑에 꼭지가 있음),완(梡,碗) 종류들이다. 모두 산스크리트 patra를 음역한 발(鉢: 승려의 식기)의 형태를 모체로 삼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한국적 특성 가장 잘 나타낸 분청사기 흙을 재료로 한 사발(砂鉢),구리를 이용한 동발(銅鉢),쇠를 이용한 철발(鐵鉢),진흙을 이용한 와발(瓦鉢),은을 이용한 은발(銀鉢)등이 크기와 형태에서 매우 다양하게 발전했다.그렇게 발전한 대표적인 성과물이 송나라대의 찻사발들인데,천목(天目)이라 부르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릇이다.천목찻사발의 형태는 고려 청자 찻사발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필연적으로 중국 도자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시대의 독특한 도자문화로 일컬어지는 분청(粉靑) 사기는 한국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청자에서 백자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체험하고 터득해 낸 조선 사기장들의 지혜와 미감(美感)이 응집되어 창출된 한국형 사발이다.이같은 우리나라의 도자사(陶磁史)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 저 일본인들이 이도(井戶)라 부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를 통해서였다.따라서 그 이전 우리나라 그릇의 역사에서 이것의 존재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400년 넘게 일본에서 자란 그릇이어서 이 그릇의 참된 주인은 일본 차인들이라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른다.그렇다보니 이 그릇의 본래 용도에 관한 연구와 논의도 일본에서만 이루어져 왔다.그러던 중 이도차완에 관한 한국 사기장들의 관심이 표명된 1960년대부터 조금씩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주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 국한되어서였다. 그 뒤로 중국,일본의 차문화가 한국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한국에서도 차 마시는 인구가 1000만 명을 헤아리게 되면서 다른 찻사발들과 함께 이도차완의 감상과 미학적 탐구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왔다. 어느새 한국의 현재 찻사발 종류 중에서 이도차완 형태를 본뜬 것들이 찻그릇 문화를 주도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히 이도차완으로 이름이 붙여져 찻사발로 이용되고 있는 이 그릇의 본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도 생겨났다.무릇 모든 그릇이 그러하듯 그 쓰임새를 알아야만 그릇에 대한 정확한 가치매김을 할 수 있다.이도차완은 본래 찻사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기된 당연한 의문이다.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맨 먼저 이 그릇의 용도를 얘기한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이다.동양미술사학자인 그는 일제시대를 통하여 조선서민들의 생활용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간 대표적인 사람이며, ‘민예(民藝)’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만큼 조선문화에 대한 전문가였다. ●日선 “雜器” “祭器” 두가지 견해 그는 이도차완을 16세기 조선서민들의 밥그릇,생활 잡기였다는 잡기설(雜器說)을 내놓았다.이 그릇의 투박한 생김새,자유분방한 색깔과 재료의 특성 등을 그 증거로 제시하면서였다. 두 번째 의견은 동경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을 지내기도 한 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祭器說)이다.이도차완 중에서 규격이 큰 그릇들의 특징인 높은 굽을 증거로 내놓았다. 이 그릇의 가장 큰 특징이 높은 굽임은 확실하고,이 높은 굽으로하여 청자나 백자 혹은 분청사기와도 현저하게 다른 그릇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도차완의 가장 큰 특징 또한 굽의 형태와 굽 언저리의 신비스러운 문양이어서 높은 굽은 누구에게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일제시대의 산물이며,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4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그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제기설에 동조하는 견해와 잡기설을 지지하는 견해로 나눠져 있다.두 가지 견해를 모두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 국보가 된 한국의 그릇은 이도차완뿐이며,청자,백자,분청사기는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이도차완 중에는 신비와 전설의 대상이 되었을 만큼 놀라운 정치적 흥정물로,천문학적 가격으로,죽기 전에 꼭 한 번 구경하기를 소망하는 그릇이 여러 점이다.이같은 역사가 한국인들에게는 더 관심거리로 작용하고 있는 듯 싶다. 어쨌든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이 그릇이 지닌 미학적 요소들을 놀라운 미감과 관찰력으로 읽어내어 이 그릇에 관한 평가를 한층 심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조선시대 사기그릇 祭器는 백자가 유일 16세기 조선의 도자사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고 쓴 그릇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16세기 조선의 도자기 생산 제도는 철저한 관요(官窯)체제여서 모든 생활그릇의 공급을 국가가 전담했다.민간인이 마음대로 그릇을 생산 판매할 수 없었다.일정 직급의 관료와 양반 사대부,소수의 중인 계층들에게만 관요에서 생산된 그릇이 주어졌다. 따라서 농민 등 서민층은 질그릇 외의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기설이 이 그릇의 높은 굽에 착안하고 있는 점은 조선의 민속과 제도에 얼마큼 지식을 가졌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조선시대의 제기는 백자가 원칙이었다.놋그릇,목기를 제외한 사기그릇 제기는 백자가 유일하다.이도차완 종류는 백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도차완 형태의 그릇을 제상에 진설할 수 있는 상차림이란 없다. 두 가지 견해 모두 이 그릇의 용도를 전혀 엉뚱하게 추정하는 잘못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으로서의 견해일 따름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문제는 한국인들이 앞의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일본 견해를 비판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도차완의 원래 용도는 통도사 봉발대의 봉발을 근원으로 하여 생활화하려 했던 승려들의 발우였던 것으로 보인다.마하승기율,사분율 등 주요 경전에서 규정하고 있는 흙발우의 조건과 통도사의 봉발,그리고 이도차완의 모든 것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도차완 미학의 신비로움은 미륵신앙에 담겨 있는 종교적 염원과 긴 역사가 승화된 것이라고 볼 때 조선 사기장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도예가들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뉴스플러스] 민노당 “여성26석 비례대표 전환을”

    민주노동당은 18일 국회 정개특위가 추진중인 여성전용선거구제 도입 방안을 철회하고 여성 선거구 26석을 모두 여성 비례대표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민노당 여성후보단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여성전용선거구는 여성의원 확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지역분할구조 온존,위헌 논란,대규모 사표 발생 등 여러 면에서 문제를 안고 있는 제도로 도입 논의가 중단돼야 한다.”며 여성 비례대표 전환을 주장했다.˝
  • ‘FTA효과’ 말 뒤집은 정부

    정부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수출효과와 농가피해 규모를 국회비준 이전과 이후에 서로 다르게 발표해 농민단체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는 그동안 비준 촉구를 위해 강조하던 수출효과 규모를 비준 이후에는 슬그머니 30% 수준으로 낮춰 제시했다.농림부는 한·칠레 FTA가 시행되어도 농가의 피해가 미미할 것이라고 설득하다 국회비준 이후에는 과수농가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을 바꾸었다.FTA 비준을 전후해 산하 연구원의 자료 등을 그때그때 유리하게 해석하고 활용한 것이어서 빈축을 사고 있다. ●하루새 수출효과 70% 감축 산업자원부는 17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FTA가 발효되면 칠레에 대한 우리나라 공산품의 수출 증가액이 단기적(3∼4년)으로는 7000만달러,중장기적(5∼13년)으로는 2억 2000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품목별 칠레시장 점유율도 5∼2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재경부와 산자부는 국회 비준 이전에는 칠레에 대해 수출효과가 이보다 3배나 많은 6억 6000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당시 정부 발표의 근거인 재경부 산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무관세화에 따른 수출 기대효과가 6억 6000만달러,수입 효과는 2억 5000만달러로 4억 2000만달러의 무역흑자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특히 수출 외에 칠레를 중남미 거점시장으로 확보하고,칠레정부 조달시장에 참여하는 등의 부수 효과까지 따지면 수출 기대액은 9억 5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두 부처는 품목별 수출효과도 비준 이후에는 이전보다 작은 수치를 제시했다.대표적 수출품인 자동차(수출비중 31.2%)는 처음에는 수출 증가액을 4억 1900만달러라고 내다봤다.그러나 비준 이후에는 단기적으로 2억 3000만달러,중장기적으로 3억 4000만달러로 바꿨다.섬유는 5260만달러에서 2600만∼3700만달러로 축소됐다. ●“경쟁력 낮아 직접피해 예상돼” 농림부는 지난 16일 배포한 자료를 통해 “과수를 중심으로 피해가 예상된다.”면서 “시설(비닐하우스)포도는 칠레와 유통시기가 경합되고 가격경쟁력이 낮아 직접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과수 피해액은 한양대 연구팀이 추산한 자료를 인용해 ‘10년간 5860억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준 이전엔 “(칠레산 포도는) 신선도 유지 문제와 참외 등 대체 과실류의 본격 출하 등으로 6월 이후 국내 판매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었다.사과·배는 관세인하 품목에서 제외됐고,포도는 국내산과의 경합을 피하기 위해 계절관세(비출하기인 11∼4월에는 관세를 단계적으로 낮춰 10년 뒤에는 무관세) 협정을 맺은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과수피해 추산액도 농림부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내놓은 ‘4500억원’을 제쳐두고 액수가 보다 큰 대학 연구보고서를 채택해 인용하는 등 FTA 처리가 끝나자 이제는 예산확보 등에 유리한 자료를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해명과 농민단체의 대응 정부가 이같이 엇갈린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정책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국회 비준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결국 피해가 적을 것이라고 강조하던 농림부가 이제는 예산당국으로부터 농가피해 지원금이 당초 계획보다 삭감되지 않도록 방어할 절박성이 생긴 것이다.농림부는 FTA이행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정책이 바뀐 것은 없고 규모를 산출하는 기준이 달라졌을 것”이라면서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되물었다.그러나 농민단체들은 허구성 여부를 가리겠다는 입장이다.전국농민회총연맹 전기환 정책위원장은 “조만간 FTA를 전후한 정부의 태도 변화를 종합평가해 결과를 공식 발표하고 잘못이 명백하면 관련 공무원에 대한 문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 'FTA 통과’ 격렬 시위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소속 회원 3000여명은 16일 오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통과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등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농민단체들은 이날 비준 철회를 주장하며 ‘낙선 대상의원’ 및 ‘반농업 인사’ 대상자 명단을 공개,17대 총선에서 대대적인 낙선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전국농민연대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조순형 민주당 대표,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 여야 의원 8명을 ‘낙선 대상’으로 발표했다.전국농민회총연맹도 유인물을 통해 박관용 국회의장,정동영 열린우리당 상임의장과 홍사덕 한나라당 총무,허상만 농림부 장관,신장범 주칠레 대사 등 16명을 ‘반농업 인사’로 낙인찍고 강력히 비난했다.전국농민연대 전기환 집행위원장은 “FTA 비준은 무효이며 이를 철회하지 않으면 찬성 의원들을 파악,대대적인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500여대의 관광버스를 타고 상경한 농민들은 각목 등을 휘두르며 국회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시위대 일부가 돌과 인분이 담긴 주스병 수십개를 던지자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저지했다.이 과정에서 농민과 전경 등 10여명이 부상했다.이들은 오후 5시30분쯤 자진 해산했다.경찰은 국회 주변을 전경 버스 100여대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69개 중대 7500여명의 병력을 배치해 국회 진출을 막았다.이날 집회에서 농민들은 연습용 최루탄으로 추정되는 수류탄 모양의 물체 1개를 발견,경찰의 최루탄 사용을 주장했다.이에 대해 경찰은 “농민단체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반박했다.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농가부채특별법 등 농어촌 복지향상을 위한 특별법부터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면서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FTA 비준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사설] FTA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세차례에 걸쳐 무산되는 우여곡절 끝에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다소 때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정치권이 농민 표보다는 국익을 우선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하겠다.그럼에도 우리는 FTA 처리과정을 되짚어 볼 때 국정 주요 현안 처리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한마디로 ‘로드맵’의 부재이자 리더십의 실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따라서 우리는 한·칠레 FTA 비준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보다 세심한 국정 현안 이행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앞으로 한·일,한·싱가포르 FTA 등 넘어야 할 고비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개방의 파고를 한번 넘을 때마다 이번처럼 ‘퍼주기식’으로 대응했다가는 나라 살림이 거덜나기 십상이다.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웃 일본이 최근 통상조직을 다자무역과 쌍무무역 협상을 병행하는 체제로 개편하면서 FTA관련 전문인력을 대폭 늘린 사례는 눈여겨볼 만한 대응방식이라고 판단된다. 정부는 당초 약속한 대로 농촌 피해보상과 지원 계획을 차질없이 이행하는 한편,농촌 구조개혁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지난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발효 이후 수십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단위의 지원금을 투입하고도 농촌의 부채만 도리어 키운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이번에야말로 우리의 농업을 국제 경쟁이 가능한 규모로 재편하고 쌀 위주의 생산방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이렇게 해야만 앞으로 본격화될 쌀시장 개방협상에서도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FTA 비준에 극력 반대했던 농민단체들은 이제부터 농촌의 활로를 찾는 데 앞장서야 한다.지금까지 애국심과 향토애 등 정서에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하는 것이다.시장 개방으로 혜택을 받는 기업들도 농촌 일자리 만들기 등 지원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오늘의 농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 [FTA 비준안 통과] 농업분야 대책

    농정 당국은 한·칠레 FTA 비준안이 통과됨에 따라 농업·농촌 지원에 본격 착수했다.비준안과 연계돼 제·개정이 추진된 FTA이행특별법,농어촌부채경감특별법,농어민 삶의 질 향상특별법,농특세법 등 4대 특별법이 지원의 핵심이며,이를 위해 추가지원액을 포함,올해에 총 1조 2000여억원의 예산이 책정될 전망이다.향후 10년간 투융자 규모는 119조원에 이른다. 우선 FTA이행특별법에 따라 과수 농가 등 한·칠레 FTA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 부문에 7년간 1조 5000억원(올해 예산 5000억원)이 지원돼 농가 등에 대한 시설 현대화가 추진된다. 또 농어촌부채경감 특별법의 시행으로 농어민이 정부에서 대출받은 정책자금 9조 6000억원의 금리가 현행 4%대에서 1.5%로 내려간다.연대보증피해 자금 상환기간도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나며 농어민이 개별적으로 빌린 상호금융 대체자금 등의 금리도 6.5%에서 3%로 낮춰진다. 삶의 질 향상 특별법은 농어가에 대한 국민연금 보험료,영유아 보육비,건강보험료 지원을 비롯해 농어촌 주민의 복지 증진과 교육여건 개선,지역개발을 위한 것으로,2013년까지 10년간 17조 3000억원이 지원된다. 또 올 6월로 끝나는 농어촌특별세 징수시한도 농특법 개정으로 2014년까지 6월까지 10년 더 연장된다. 이밖에 추가지원책으로 농민들이 2000년부터 3년간 상호금융에서 빌린 농업용 자금(7조원)의 금리를 향후 5년간 8%에서 5%로 3%포인트 인하한다. 김경운기자˝
  • 韓·칠레FTA 162대71 국회 통과 “싱가포르와 연내 체결”

    우리나라도 칠레를 시작으로 자유무역 체제가 출범한다.정부는 올해 싱가포르,내년 일본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매듭지을 방침이다.새달에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의 FTA공동연구위원회가 발족한다.장기적으로 미국·중국 등과도 FTA 체결을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통상교섭체제를 ‘공격형’으로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정부 관계자는 16일 “통상교섭본부 조직안이 마무리되는 대로 FTA전담국 신설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통상부는 조직개편 전까지 한시적 체제로 부내 다자 통상협력과와 통상정책기획과를 FTA1과와 FTA2과로 개편키로 했다.정부는 한·칠레 FTA 비준 과정에서 드러난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회와 민간단체와의 협의를 의무화하는 ‘통상절차법’을 제정할 방침이다. 한·칠레 FTA가 발효되면 칠레산 포도주 관세는 단계적인 감세를 거쳐 5년 뒤 철폐된다.포도는 현재 45%의 관세가 10년간 15%의 관세로 수입된다.커피·배합사료·종우·양털 등은 발효 즉시 무관세로 수입된다.쌀·사과·배 등 칠레산 농산물 394개 품목은 FTA 대상에서 빠졌다.반면 자동차·휴대폰 등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목은 발효 즉시 관세가 없어진다. ●3전4기끝 처리… 4월 발효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을 가결했다.사흘전 이라크 추가 파병 비준동의안처럼 ‘3전4기’끝에 통과됐다.표결 결과는 재석의원 234명 중 찬성 162,반대 71,무효 1표 등으로 집계됐다. 본회의는 또 FTA비준에 따른 농가 피해 최소화를 위해 농어업인 부채경감특별법 수정안과 농어민 삶의 질 향상특별법도 통과시켰다. 고건 국무총리는 박관용 국회의장의 중재에 따라 세가지 지원대책을 추가로 밝혔다.농업용 상호금융자금의 금리 8% 중 3%포인트를 정부가 보전해 주고,경영이양직불제 지원연령을 현행 69세에서 72세로 연장하며,직불제를 연차적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한·칠레 외교장관 통화 비준안은 양국 정부가 국회동의 등 필요한 법적 절차를 마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면 통지를 교환한 뒤 4월1일쯤 발효될 전망이다.그러나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회원 3500여명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였으며 4·15총선에서 비준안에 찬성한 의원들에 대해 낙선운동을 펴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크리스티안 바로스 칠레 외교장관 대리(차관)는 이날 오후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 정부와 국회의 비준노력에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박대출 김수정기자 dcpark@seoul.co.kr˝
  • [FTA 비준안 통과] 여야 배수진치고 지각출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은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농촌지역 의원들의 물리적 저지 없이 순조롭게 통과됐다.지난해 7월 제출된 뒤 네번째 시도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가 농민 등 이해 집단의 반발에 무능력하게 대처하고,돈으로 막기에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향후 추진할 FTA협상과 쌀시장 개방협상 등에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이다.국내 공산품 분야에 영향을 주는 싱가포르·일본과의 협상에선 노조 단체의 반발로 또다시 정책이 좌지우지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서울이 지역구인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과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반대표에 가세해 눈길을 끌었다.민주당 강운태 총장은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졌고 열린우리당 정세균 정책위의장은 아예 불참했다.투표 기록이 남는 ‘기명 투표’로 이뤄진 탓인지 극심한 눈치보기를 한 결과로 분석된다. ●한나라 “반대할거면 나가라.” 당초 우려와 달리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데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협박에 가까운’ 강력한 통제가 있었다.한나라당은 본회의에 앞서 의원총회를 두차례 열고 ‘당론으로’ 찬성을 정한 다음 “반대할 거면 표결에 불참하라.”는 특단의 지시까지 내렸다. 최병렬 대표 등 지도부는 찬성 의원들의 참석률이 예상보다 저조하다는 총무단 분석에 따라 예정에 없던 오후 의총까지 열어 표단속을 벌였다.지도부의 초강경 조치가 농촌 의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도 고려된 듯하다. 열린우리당은 찬성 당론,민주당은 자유투표로 임했다.그러나 민주당 조순형 대표도 “지도부가 동의해 준다면 신임을 걸겠다.”고까지 배수진을 치고 나와 찬성표를 호소했다. ●고 총리,농촌대책 전격 수용 이날 낮 고건 국무총리가 한나라당 박희태·이양희,민주당 이정일·김효석 의원 등 농촌 의원 대표들과 국회 귀빈식당에서 오찬 겸 5자회동을 갖고 세 가지 정부대책을 수용한 점도 가결 분위기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상호금융 대출금리 3%P를 정부가 보전하고 ▲경영이양직불제 지원연령을 현행 69세에서 72세로 연장하는 방안 등을 박관용 의장이 앞서 총무회담을 통해 마지막으로 제안했고,고 총리가 이를 전격 수용했다. 하지만 농촌 의원들은 계속 추가대책을 요구하며 저항,한때 표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 보고되기도 했다. 박정경기자 olive@˝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고령화사회 중국인들

    중국이 급속도로 고령화사회로 진입 중이다.60세 이상 고령자가 1억 4000만명으로 전인구의 10%를 넘었다.65세 이상 인구는 9400만명으로 전체의 7%를 초과했다.중국 국가통계국은 60세 이상의 고령 인구가 매년 3.2%씩 늘고 있으며,1000만명의 80세 이상 노인들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70년대 말부터 추진되고 있는 ‘1자녀 갖기 운동’ 때문에 2명의 자녀(부부)가 4명의 노인(친가·처가)을 부양하는 ‘기형 구조’가 멀지 않은 장래에 실현될 조짐이다.이 때문에 중국 정부에서는 장기적 노인복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베이징 동쪽 외곽에 위치한 싱광(星光) 노인건강회복센터.유럽식 철제 대문을 들어서면 아기자기하게 꾸민 강남풍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양로원 실내에는 TV와 VCR,에어컨 등 전자제품은 물론 마작과 바둑,장기,헬스기구 등도 보인다. 이날은 와유차이(瓦有財) 노인의 80세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케이크를 가운데 놓고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주니성르콰일러(祝生日快樂)”를 외쳤고,와 노인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촛불을 껐다. 싱광 노인건강회복센터는 3년 전부터 주변 노인들의 생활을 돌보며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양로원이다.이곳 노인들은 모두 14명이고 평균 연령은 75세 안팎이다.이 양로원은 사업가 량보쥔(梁寶君·35)이 755만위안(약 11억원)을 투자해 국가에 헌납했고 매년 40만위안(6000만원)을 무료로 지원한다.하지만 이런 행운의 양로원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90% 이상이 실비만 받고 운영하는 양로원이나 노인복지센터가 주류를 이룬다.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에 있는 산리툰(三里屯) 퉈라오쒀(托老所·양로원)는 전형적 유료 양로원.아담한 분홍색 단층 건물로 1실 3인 거주의 방 5개를 구비한 소규모 양로원이다.대문을 들어서면 30평 정도의 마당에 아령이나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노인 1인당 비용은 480위안(7만 2000원)이고 국가에서 운영비의 절반 정도를 지급한다. 양로원 책임자인 왕칭(王靑) 여인은 “회사에서 샤강(下崗·정리해고)된 이후 3년 전부터 이곳에서 실비만 받고 일하고 있다.”며 “양로원 운영은 늘 돈이 부족해 주민위원회 의연금 등 정부 보조로 힘겹게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로원 운영에는 자원봉사자들의 지원도 큰 힘이 된다.빨래와 청소·식사는 2명의 봉사자들이 전담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대학생들이 대청소나 이발을 도와준다.양로원 인근 경찰병원은 2주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무료로 해준다. 이곳에 살고 있는 장후이민(張慧敏·여·65)은 “남편이 죽고 나서 자녀들이 사업에 바빠 짐이 되기 싫어서 양로원에 왔다.”며 “7년 전 방직공장 퇴직금으로 양로원 비용을 내고 있고 이곳 생활은 아주 쾌적하다.”고 대만족을 표시했다. 모두 14명이 생활하는 이곳 노인들은 아침 7시 식사 이후 1시간 가량 산책 겸 운동을 한다.다음에 TV 시청이나 마작,바둑,장기 등의 오락 이후 반드시 낮잠을 잔다. ●농촌은 노인복지의 사각지대 예부터 농촌 노인들은 ‘노후는 아들에게 의지한다.’는 관념 속에 살아왔다.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산업화는 8억 인구의 농촌을 노인 복지의 ‘사각지대’로 만들었다.중국 농민의 1인당 1년 수입은 평균 2000위안(30만원) 안팎.가난에 찌든 젊은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로 몰려가 민궁(民工·농촌의 도시근로자)으로 변한다.농사 지을 힘이 없는 농촌 노인들이 빈 집에서 쓸쓸히 죽음을 기다리는 사례가 다반사다.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돈 한푼 없는 농민들을 위해 농민 양로를 사회 시스템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기도 했다. 일부 지방에서는 농민 양로 보험제도가 시험적으로 시작됐다.만 18세 이상 농민들은 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매년 267위안(4만원)씩 15년간 보험금을 내면 여성은 만 55세,남성은 60세 되면 매달 죽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양로금을 받는 제도다. ●자본주의가 노인 경시 풍조 불러 중국에선 자식들의 봉양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노인들을 쿵차오(空巢·빈 둥지)라고 부른다.맞벌이가 보편화된 중국에서 노인들은 텅 빈 집에서 소외되기 십상.13억 인구의 노동력이 포진한 중국에서 노인에게까지 일거리가 돌아올 여력도 없어 하나뿐인 손자들을 통학시키는 일 정도가 그나마 낙이다. 최근 과거의 축구 명장 출신인 쉬푸성(徐福生·75) 노인이 베이징 거리에서 젊은 택시 운전사에게 맞아 죽은 일이 발생했다.이 사건은 전 중국에 광범위한 비판과 반성을 불렀다.일부 언론들은 “중화민족의 전통 미덕인 ‘준라오아이유(尊老愛幼·노인을 존중하고 유아를 사랑한다.)’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했다. 베이징대 천샤오펑(陳小鵬) 교수(철학과)는 “급속히 확산되는 자본주의·시장주의가 약자(노인)를 경시하고 학대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며 날카로운 메스를 가했다. ●종합 노인복지 서비스 착수 1인당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120만원)에 불과한 중국 가정에서 부담하는 ‘노인비용’은 만만치 않다.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연간 5000위안(75만원) 이하 가정이 27%이고, 5000∼1만위안(150만원)의 가정이 37%로 나타났다.양로비 지출이 1500위안(22만 5000원) 이상인 가정도 14%에 달했다.노인들의 병원비와 보건약품(보약류),보모 고용비 등으로 가장 많이 지출됐다.한편 노인들의 가정 양로 선호도가 75%에 달했다.하지만 대부분 가난한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분위기다.이 때문에 중국 정부에서는 지난해 70억위안(1조 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2만개의 ‘싱광라오런자(星光老人家·별빛 노인의 집)를 건설했다.일종의 다기능 노인복지센터로,도시를 중심으로 각 사회구역 단위로 양로에 도움을 주고 노인들의 활동 공간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중국 정부는 지난 96년부터 양로보험제도를 실시하는 등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그러나 한정된 재원으로 급속히 전개되는 노령사회에 대비하기는 역부족이란 시각이 많다. oilman@˝
  • 한국계 첫 美하원의원 지낸 김창준씨

    재미 한국인의 ‘성공 신화’ 김창준(65) 전 미 연방 하원의원을 만났다.‘증인도 알맹이도 없는 청문회,국익을 팔아 표를 사려는 의원들의 행태에 국민들의 지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한국 정치의 살 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나.’해서였다.지난해 하반기부터 고려대의 동북아경제경영연구소 연구교수로,한국과 미국을 오가고 있는 김씨.지난 1999년 결혼한 부인 안진영(45)씨와 함께 인터뷰에 응했다.“한국 정치에 대해 해줄 말도 많고,하고도 싶지만,총선을 두 달 앞두고 좌충우돌하는 저 사람들(국회의원들)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을 겁니다.” ●한국 정치가 사는 길은 먼저 지난 12일 끝난 국회의 ‘대통령 친인척 비리 및 대선자금’청문회 얘기부터 시작했다.청문회가 열리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의 큰 발전이지만,내용은 “아직 멀었다.”고 했다. “증인이 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국회 출석을 거부하고,또 국회의원이 증인의 말을 가로채고,공무원을 데려다 죄인 다루듯 신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은 모두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란 게 김씨의 말이다. 그는 ‘한국 정치가 사는 법’을 제시했다.먼저 국회의원을 8년 이상 할 수 없도록 하는 임기제한제.김씨가 활동한 미 캘리포니아주에서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법이다.“8년만 할 수 있다고 한다면,정치권 언저리에서 평생을 뱅뱅 도는 인사들은 사라질 겁니다.기업들도 수억원씩 퍼주지 않을 것이고,초선과 다선 사이의 파워 차이도 없이 동등하게 일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국회의원은 ‘먹고 사는’ 직업이 돼선 안 되며,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잠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을 5년,8년 임기로 제한해 놓고 자기네들은 왜 마냥 하도록 해놓았느냐고 국민들이 물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번째로 그가 제시한 안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따로 선출하는 것.우리 사회처럼 서로가 나눠져 대립각을 세우는 사회에선 국정을 함께 책임지고 공동 운영해야 서로가 발목잡는 일이 없다는 논리다.미국 대통령·부통령이 한묶음으로 나오는 러닝메이트와는 다르다. 그는 최근 검찰의 정치권 수사와 관련,“제3자적인 시각에서 볼 때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을 검찰이 잘 하고 있다.”면서 “미국 검찰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침묵하는 다수는 외면하는가”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도 국민이지만,침묵하는 찬성자도 국민입니다.” 최근 국회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세 차례 무산시킨 것과 관련,“말도 하기 싫을 정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의 78.8%를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의 국회가 몇몇 의원들의 결사적 저지에 휘둘려,나머지 침묵하는 다수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해도 되느냐고 했다. 서청원 의원의 석방요구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서도 “잘했다 못했다 판단을 떠나서 국민들이 어떻게 보느냐를 염두에 둔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농민이나 일부 시민단체의 시위 행태,또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는 평화적일 때만 기능한다는 것이다.시위가 아니라 ‘폭동’이라는 게 김씨 의견이다. “민주주의에서 집회의 자유와 국민들이 안락한 삶을 추구할 권리는 항상 마찰되지만,한국에선 시위하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는 무시되고 있습니다.” 김씨는 미 캘리포니아주 다이아몬드바시에서 시장을 지냈다.평화적이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깨진 시위의 자유는 보장해줄 의무가 정부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평화적 시위라고 다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거리 행진 등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돈을 내야 합니다.이마저도 공청회를 통해 시민생활에 심각한 침해가 없을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그는 시민단체들이 폭력시위를 하고,정부가 이를 정책에 바로 수용하는 고리가 계속될수록 시위는 점점 더 과격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발전 위해 도울일 찾겠다” 정계 일각에선 그가 한국 정치에 입문할 것이란 소문도 간간이 나온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단호한 어조로 부인했다.“미국에서 43년을 살았습니다.오래될수록 조국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지는 게 대부분 재미동포들의 심정일 겁니다.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한국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조언자의 역할만 하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통’이라고 하지만 자신만큼 미국 정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하다.그는 지난 1961년 도미해 시의원과 시장,연방하원의원을 지냈다. 한국의 반미 기류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민주주의는 1인1표지만,국제사회는 1국가 1표가 아닙니다.힘이 없는 나라 100개국이 한 나라를 못당하는 냉혹한 곳입니다.한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들어갈 때까진 한국은 강대국과 동맹을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그러면 어느 나라와 해야겠습니까.” 그는 최근 젊은이들의 주장이 한국의 외교가 미국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이 싫다는 애국적 차원이지 정말 반미는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착하고 정직하고 낙천적인 아내” 1999년 말 하원의원 4선 도전 실패를 끝으로 정계를 은퇴한 그는 현재 서울 안암동 개운사 뒤 고려대 외국인교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미국에서 홍보회사를 운영하는 부인 안씨는 사업차 미국과 한국을 오가고 있다. “생명의 은인입니다.불법선거 자금 스캔들에 휘말려,인생을 포기할 상황에서 따뜻한 손을 내민 아내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을 워싱턴 소재 미 관공서와 기업 인턴으로 연결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중인 안씨는 가수 조용필씨의 처제.지난해 심장병으로 사망한 안진현씨의 동생이다.자매의 얼굴,표정이 너무나 닮았다.“미국에 머물 땐 1주일에 두번 언니 산소에 갑니다.서로 의지를 많이 했는데,아직까지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형부는 인도네시아에 가 있어 아직 만나지 못했어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처럼 돼 있는 한국인 출신 최초의 미 하원의원 김창준씨는 “착하고 정직하고 낙천적인 아내와 조용하게 후학을 양성하는 일로,조국에 봉사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4)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하)

    혜소 스님은 금산사의 진표,화엄사의 연기 스님처럼 옛 백제 땅이 고향이다. 전주에서 최씨(崔氏)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출가하였다.진표나 연기 스님 같이 백제 유민들의 뿌리 깊은 슬픔과 분노의 그림자를 밟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그의 중생 구원 소망은 목숨을 건 구도행위로 실천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통의 바다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쳐 본 자만이 그곳을 건너는 법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혜소 스님의 짚신삼기는 곧 그의 독특한 수행법이 되었다.저녁만 되면 염불을 외우면서 짚신을 삼았다.한밤중이 되면 앉은 채로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부터 다시 일을 계속 했다.밤을 새워 삼은 짚신을 짊어지고 길거리로 나간다.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삼거리나 장터 들머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살폈다. 맨발이거나 짚신이 닳아서 너덜거리는 사람을 불러 세우고는 새 짚신을 신겨주었다.뜻밖에 짚신을 얻어 신게 된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혜소 스님은 도리어 자신에게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어서 고맙다며 절을 했다.짚신을 삼아 맨발로 다니는 사람에게 신겨주는 수행이 계속되자 이를 헐뜯는 사람도 생겼지만 격려하며 고마워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함께 짚신을 삼아서 길거리로 나와 신발 보시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다른 일로 스님을 도와주는 승려도 있었다. ●“수행 깨우쳐 줘 고맙다.” 되레 행인에 인사 큰 비가 오거나 눈보라 때문에 행인이 없는 날을 빼고는 거의 쉬는 날 없이 항상 그 자리에 앉아서 짚신을 신겨주는 스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평상심의 기쁨과 힘을 보다 선명하게 깨달아 갔다.평상심이 민중의 마음이며 부처의 마음임을 알아갔다. 기껏해야 짚신 몇 짝 삼아서 발 벗은 이에게 신겨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발 벗고 사는 민중이 출가 승려를 가르치고 일깨워주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꾸밈없는 평상심이야말로 부처가 되는 길이며 민중은 평상심의 바다라는 것을 덤으로 얻었으니 수지맞은 것은 민중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믿었다.참으로 신통한 수행법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혜소 스님은 840년에 지금의 쌍계사 터에다 옥천사(玉泉寺)를 짓고 그만의 특유한 수행법을 다시 시작했다.그곳은 이미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당나라에서 선종 불교를 이끌었던 혜능의 머리뼈를 가져다 묻은 터였다. 옥천사는 뒤에 정강왕이 쌍계사라고 바꿔 부르도록 했다.아무튼 혜소 스님의 수행처는 항상 민중들이 많이 모여서 사는 곳이었다.이는 마치 원효가 절이라는 곳에서 세속 한가운데로 수행처를 옮긴 것과도 유사했다. 소박하고 조촐한 성품이어서 언제나 대중 속에서 수행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는데,이것 또한 원효가 근엄하고 조용한 절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생로병사가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세속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글자를 모르는 이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간단한 염불을 가르쳐 함께 소리치며 노래했던 모습을 닮아 있었다. 혜소는 쌍계사를 처소로 삼은 뒤부터 새로운 수행법으로 민중들을 만나기 시작했다.그가 새로 개발한 것은 범패라는 음악을 통하여 민중들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것이었다. 범패(梵唄)는 불교의 의식 음악이다.범음(梵音),어산(魚山),인도소리라고도 한다. 절에서 주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인데,가곡,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성악곡의 하나로 꼽힌다. 범패는 신라풍인 향풍(鄕風),중국의 당풍(唐風),당나라 이전 신라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고풍(古風:일본풍) 세 종류가 있는데,불교의식에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설 내용을 표현하지 않는다.심산유곡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같아서 은은한 파도소리를 그리듯이 들린다.의젓하고 그윽한 맛이 있는가 하면 유장하고 심오한 맛도 느껴지는 소리다.사설이나 가사 내용보다는 몸 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 그 자체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소리하는 사람의 심정이나 환경에 따라 다양하고 특이한 맛을 내게 된다.혜소는 가사 내용이 전혀 없는 범패를 흥얼거리면서 저잣거리를 거닐었다. 대개의 민중들은 가난의 고통에 빠져 신음했다. 한 번 가난에 빠지면 평생토록 좀체 그 늪을 빠져나오기 어려웠다.혜소는 그 민중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만 진정한 수행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저자를 돌아다니면서 보고,듣고,느끼는 것 대부분이 민중들의 빈곤한 삶에서 찢겨나오는 고통에 짓눌린 신음소리와 세상을 향한 울분과 불평,원망과 저주가 서린 악담,신세타령,자학으로 뒤엉킨 비탄이었다. ●“욕설·원망대신 소리질러라.” 범패소리 전파 혜소는 그 신음소리가 사라지도록 발원했다.민중들의 깊고 무거운 가난과 차별의 슬픔과 병고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토지를 넉넉히 장만해 주어서 가난을 벗어나도록 해줄 수도 없었다.집을 지어 주고,약을 짓고 치료를 도와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도 없었다. 불안과 불만,원한과 저주에 찬 가슴 가슴들을 모두 씻어내기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는 인간 그 자체의 문제였다. 혜소는 범패 소리를 이용하여 마음의 번뇌를 가라앉히고,맑고 큰 우주 기운을 받아들여 정신세계를 비우는 불교 수행 방법을 세속인들에게 응용해보기로 했다.범패가 사설이나 가사 내용을 표현하는 노래가 아니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움직임과 감정을 호흡으로 내뿜고 빨아들이는 운동을 통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임을 이용해보자는 것이었다. 혜소는 민중들에게 범패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었다.범패 형식을 빌려서 마음 속의 온갖 감정들을 쏟아내고,녹여내고,태워서 자신의 감정에 짓눌리고 억압되어 고통받지 않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우선 마음껏 큰소리를 외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민중들은 슬퍼도 큰소리로 울지 못했고,기쁜 일이 있어서 큰소리내어 웃기도 쉽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억압 구조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민중의 입에서는 곧잘 세상을 향한 저주와 신세타령이 터져 나온다.농사일을 하다가 허리를 펴면서도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했다.논이며 밭이랑에서는 물론 땔감을 장만하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입에서는 욕설과 원망이 떨어지지 않는다.길쌈하는 자리거나 빨래터 아낙들도 다르지 않았다. 혜소는 그런 민중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욕설과 원망 대신 크게 소리를 지르도록 가르쳤다.큰소리,작은 소리 가리지 말고 내키는 대로 소리를 질러보라고 시켰다.내 소중한 육신 수고롭게 움직여서 먹이 장만하고,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왜 남을 욕하고 원망하며 저주하느냐고 타일렀다. 욕설과 원망과 저주는 결국 나 자신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업장이 되며,삶을 추악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일 뿐이라며 쓸어 안고 울며 함께 소리를 질렀다.욕하는 대신 염불하고,노동의 고통 때문에 신음소리를 내기보다는 그냥 아무렇게나 소리를 내지르면 고통이 훨씬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을 느껴보도록 이끌었다.농민들은 혜소의 말이 맞다는 것을 금방 느꼈다.실제로 욕설을 지껄이거나 신음소리로 끙끙 앓기보다는 큰소리 몇 번 내지르고 나니까 훨씬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느꼈다.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제 몸뚱아리 수고롭게 움직여서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남 원망하고 저주하여 마음에 병 만들어 시달리면 나 자신만 손해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처럼 보이는 이 새로운 존재방식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이다. 그때부터 농민들의 입에서는 욕설과 원망 대신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다소 기이하고 높고 낮은 소리,길고 짧은 소리들이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 입에서 시작된 그 소리는 한 집을 즐겁게 하고,한 집안의 소리는 이웃과 동네의 기쁨으로 커져갔다. ●쌍계사서 찻잎으로 약 만드는 법도 가르쳐 참으로 끝없는 사랑이었다.아무런 가사나 내용도 없이 앉고,일어서고,허리를 굽히고 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터져나오는 기이한 소리,노래도 아니고 울음도 아니면서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움직이는 신이한 소리였다. 그런 다음 혜소는 쌍계사 주위에다 차나무를 심어 가꾸면서 찻잎으로 차약(茶藥)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가르쳤다.병들어도 약 한 첩 먹을 수 없는 민중들에게 차나무를 심어 그 잎으로 약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그래서 하동 쌍계사가 우리나라 차문화의 고향이 된 것이다. 이렇듯 민중에게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을 가르치던 혜소스님은 850년 76세로 입적했다.헌강왕이 진감(眞鑑)이라 시호를 내리고,그 뒤를 이은 진성여왕이 대공탑을 준공하였다.아,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은 고통받는 이와 함께 사는 것임을 온몸으로 실천해 보인 혜소 진감선사여.˝
  • [사설] FTA 비준안 이번에는 통과시켜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비준동의안 처리가 16일 국회에서 네번째 시도된다.이번에야말로 국회와 여야 정당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차질 없이 비준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지난 9일 국회가 세번째 비준안 통과에 실패한 이후 쏟아진 국내외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 의원의 석방 결의안을 채택하면서도 국가 이익이 걸린 FTA비준안은 무산시킨 후안무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외국과 체결한 조약 비준안을 계속 거부하는 한국이 외국에 ‘이상한 나라’로 비쳐진다는 재외 공관장들의 지적도 국회는 새겨 들어야 한다. 사실 그동안 비준안 통과 실패에는 각 정당 대표들의 리더십 부족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한나라당 등 주요 정당들은 당론으로 비준안 통과를 추진하면서도 일부 농촌 의원들의 반대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이번에는 정당의 지도부가 직접 나서 의원들을 설득하고 표를 점검해 통과에 차질이 없도록 하길 바란다. 일부 농민단체 대표들이 “한·칠레 FTA를 부결시킨다고 농업이 살아나느냐.”고 반론을 펴는 것을 농촌출신 의원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FTA 비준후의 농업 피해는 불가피할 것이다.그렇다고 개방 반대가 능사는 아니다.FTA비준을 통과시킨 다음 빨리 개방후를 준비하면서 농업 지원에 나서는 것만이 농민을 구하는 길이다. 경제 5단체들은 FTA비준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대 칠레 수출에 문제가 생기고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하락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런 국익 손실 상황을 농촌 출신 의원들은 외면해선 안 된다.농민들도 집단행동으로 반대하는 것을 자제하고 FTA비준안 통과 이후에 대비해야 한다.정부 역시 그동안 제시해 왔던 FTA이후의 프로그램을 확실하게 이행할 것임을 다시 약속해 농민들과 일부 의원들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4)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4)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하)

    혜소 스님은 금산사의 진표,화엄사의 연기 스님처럼 옛 백제 땅이 고향이다. 전주에서 최씨(崔氏)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출가하였다.진표나 연기 스님 같이 백제 유민들의 뿌리 깊은 슬픔과 분노의 그림자를 밟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그의 중생 구원 소망은 목숨을 건 구도행위로 실천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통의 바다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쳐 본 자만이 그곳을 건너는 법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혜소 스님의 짚신삼기는 곧 그의 독특한 수행법이 되었다.저녁만 되면 염불을 외우면서 짚신을 삼았다.한밤중이 되면 앉은 채로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부터 다시 일을 계속 했다.밤을 새워 삼은 짚신을 짊어지고 길거리로 나간다.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삼거리나 장터 들머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살폈다. 맨발이거나 짚신이 닳아서 너덜거리는 사람을 불러 세우고는 새 짚신을 신겨주었다.뜻밖에 짚신을 얻어 신게 된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혜소 스님은 도리어 자신에게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어서 고맙다며 절을 했다.짚신을 삼아 맨발로 다니는 사람에게 신겨주는 수행이 계속되자 이를 헐뜯는 사람도 생겼지만 격려하며 고마워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함께 짚신을 삼아서 길거리로 나와 신발 보시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다른 일로 스님을 도와주는 승려도 있었다. ●“수행 깨우쳐 줘 고맙다.” 되레 행인에 인사 큰 비가 오거나 눈보라 때문에 행인이 없는 날을 빼고는 거의 쉬는 날 없이 항상 그 자리에 앉아서 짚신을 신겨주는 스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평상심의 기쁨과 힘을 보다 선명하게 깨달아 갔다.평상심이 민중의 마음이며 부처의 마음임을 알아갔다. 기껏해야 짚신 몇 짝 삼아서 발 벗은 이에게 신겨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발 벗고 사는 민중이 출가 승려를 가르치고 일깨워주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꾸밈없는 평상심이야말로 부처가 되는 길이며 민중은 평상심의 바다라는 것을 덤으로 얻었으니 수지맞은 것은 민중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믿었다.참으로 신통한 수행법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혜소 스님은 840년에 지금의 쌍계사 터에다 옥천사(玉泉寺)를 짓고 그만의 특유한 수행법을 다시 시작했다.그곳은 이미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당나라에서 선종 불교를 이끌었던 혜능의 머리뼈를 가져다 묻은 터였다. 옥천사는 뒤에 정강왕이 쌍계사라고 바꿔 부르도록 했다.아무튼 혜소 스님의 수행처는 항상 민중들이 많이 모여서 사는 곳이었다.이는 마치 원효가 절이라는 곳에서 세속 한가운데로 수행처를 옮긴 것과도 유사했다. 소박하고 조촐한 성품이어서 언제나 대중 속에서 수행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는데,이것 또한 원효가 근엄하고 조용한 절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생로병사가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세속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글자를 모르는 이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간단한 염불을 가르쳐 함께 소리치며 노래했던 모습을 닮아 있었다. 혜소는 쌍계사를 처소로 삼은 뒤부터 새로운 수행법으로 민중들을 만나기 시작했다.그가 새로 개발한 것은 범패라는 음악을 통하여 민중들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것이었다. 범패(梵唄)는 불교의 의식 음악이다.범음(梵音),어산(魚山),인도소리라고도 한다. 절에서 주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인데,가곡,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성악곡의 하나로 꼽힌다. 범패는 신라풍인 향풍(鄕風),중국의 당풍(唐風),당나라 이전 신라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고풍(古風:일본풍) 세 종류가 있는데,불교의식에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설 내용을 표현하지 않는다.심산유곡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같아서 은은한 파도소리를 그리듯이 들린다.의젓하고 그윽한 맛이 있는가 하면 유장하고 심오한 맛도 느껴지는 소리다.사설이나 가사 내용보다는 몸 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 그 자체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소리하는 사람의 심정이나 환경에 따라 다양하고 특이한 맛을 내게 된다.혜소는 가사 내용이 전혀 없는 범패를 흥얼거리면서 저잣거리를 거닐었다. 대개의 민중들은 가난의 고통에 빠져 신음했다. 한 번 가난에 빠지면 평생토록 좀체 그 늪을 빠져나오기 어려웠다.혜소는 그 민중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만 진정한 수행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저자를 돌아다니면서 보고,듣고,느끼는 것 대부분이 민중들의 빈곤한 삶에서 찢겨나오는 고통에 짓눌린 신음소리와 세상을 향한 울분과 불평,원망과 저주가 서린 악담,신세타령,자학으로 뒤엉킨 비탄이었다. ●“욕설·원망대신 소리질러라.” 범패소리 전파 혜소는 그 신음소리가 사라지도록 발원했다.민중들의 깊고 무거운 가난과 차별의 슬픔과 병고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토지를 넉넉히 장만해 주어서 가난을 벗어나도록 해줄 수도 없었다.집을 지어 주고,약을 짓고 치료를 도와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도 없었다. 불안과 불만,원한과 저주에 찬 가슴 가슴들을 모두 씻어내기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는 인간 그 자체의 문제였다. 혜소는 범패 소리를 이용하여 마음의 번뇌를 가라앉히고,맑고 큰 우주 기운을 받아들여 정신세계를 비우는 불교 수행 방법을 세속인들에게 응용해보기로 했다.범패가 사설이나 가사 내용을 표현하는 노래가 아니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움직임과 감정을 호흡으로 내뿜고 빨아들이는 운동을 통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임을 이용해보자는 것이었다. 혜소는 민중들에게 범패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었다.범패 형식을 빌려서 마음 속의 온갖 감정들을 쏟아내고,녹여내고,태워서 자신의 감정에 짓눌리고 억압되어 고통받지 않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우선 마음껏 큰소리를 외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민중들은 슬퍼도 큰소리로 울지 못했고,기쁜 일이 있어서 큰소리내어 웃기도 쉽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억압 구조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민중의 입에서는 곧잘 세상을 향한 저주와 신세타령이 터져 나온다.농사일을 하다가 허리를 펴면서도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했다.논이며 밭이랑에서는 물론 땔감을 장만하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입에서는 욕설과 원망이 떨어지지 않는다.길쌈하는 자리거나 빨래터 아낙들도 다르지 않았다. 혜소는 그런 민중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욕설과 원망 대신 크게 소리를 지르도록 가르쳤다.큰소리,작은 소리 가리지 말고 내키는 대로 소리를 질러보라고 시켰다.내 소중한 육신 수고롭게 움직여서 먹이 장만하고,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왜 남을 욕하고 원망하며 저주하느냐고 타일렀다. 욕설과 원망과 저주는 결국 나 자신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업장이 되며,삶을 추악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일 뿐이라며 쓸어 안고 울며 함께 소리를 질렀다.욕하는 대신 염불하고,노동의 고통 때문에 신음소리를 내기보다는 그냥 아무렇게나 소리를 내지르면 고통이 훨씬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을 느껴보도록 이끌었다.농민들은 혜소의 말이 맞다는 것을 금방 느꼈다.실제로 욕설을 지껄이거나 신음소리로 끙끙 앓기보다는 큰소리 몇 번 내지르고 나니까 훨씬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느꼈다.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제 몸뚱아리 수고롭게 움직여서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남 원망하고 저주하여 마음에 병 만들어 시달리면 나 자신만 손해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처럼 보이는 이 새로운 존재방식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이다. 그때부터 농민들의 입에서는 욕설과 원망 대신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다소 기이하고 높고 낮은 소리,길고 짧은 소리들이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 입에서 시작된 그 소리는 한 집을 즐겁게 하고,한 집안의 소리는 이웃과 동네의 기쁨으로 커져갔다. ●쌍계사서 찻잎으로 약 만드는 법도 가르쳐 참으로 끝없는 사랑이었다.아무런 가사나 내용도 없이 앉고,일어서고,허리를 굽히고 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터져나오는 기이한 소리,노래도 아니고 울음도 아니면서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움직이는 신이한 소리였다. 그런 다음 혜소는 쌍계사 주위에다 차나무를 심어 가꾸면서 찻잎으로 차약(茶藥)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가르쳤다.병들어도 약 한 첩 먹을 수 없는 민중들에게 차나무를 심어 그 잎으로 약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그래서 하동 쌍계사가 우리나라 차문화의 고향이 된 것이다. 이렇듯 민중에게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을 가르치던 혜소스님은 850년 76세로 입적했다.헌강왕이 진감(眞鑑)이라 시호를 내리고,그 뒤를 이은 진성여왕이 대공탑을 준공하였다.아,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은 고통받는 이와 함께 사는 것임을 온몸으로 실천해 보인 혜소 진감선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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