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농민
    2026-02-23
    검색기록 지우기
  • 40분
    2026-02-23
    검색기록 지우기
  • 롯데
    2026-02-23
    검색기록 지우기
  • 신해철
    2026-02-2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980
  • 태국 정권교체… 도망자 탁신 “적당한 때 귀국”

    태국 정권교체… 도망자 탁신 “적당한 때 귀국”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 망명길에 오른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의 막내 여동생 잉락 친나왓(44)이 이끄는 푸어타이당이 3일(현지시간)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에 따라 잉락 친나왓은 정권 교체와 함께 태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에 오르게 됐다.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탁신 전 총리도 조만간 입국, 정치 일선에 복귀해 사실상 막후 정치를 펼칠 전망이다. 그러나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태국 군부 내 일부 세력의 반발로 제2의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레드셔츠’(탁신 지지 세력)와 ‘옐로셔츠’(탁신 반대 세력)로 대표되는 태국 내 계층 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태국 정국은 한동안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전국 9만 800여개 투표소에서 실시된 태국 국회의원 총선 결과 선출직 의원 375명과 비례대표 의원 125명 등 전체 500개 의석 가운데 제1야당인 푸어타이당이 과반 의석을 웃도는 263석을 차지한 것으로 태국 선관위 잠정 집계 결과 드러났다. 반면 민주당은 161석을 얻는 데 그쳤다. 푸어타이당은 이날 총선을 통해 과반 의석을 차지함에 따라 군소정당과의 연대 없이 독자적으로 정부를 꾸릴 수 있게 됐다. 잉락은 출구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총선 승리가 확실시되자 취재진에게 “이 결과를 나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시민들이 나에게 기회를 줬고 나는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웨차치와 총리도 총선 패배를 인정하며 잉락의 승리를 축하했다. 투표 직후 실시된 출구조사에서 푸어타이당이 압승한 것으로 나타나자 두바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탁신 전 총리는 잉락에게 전화를 걸어 총선 승리를 축하했다. 탁신 전 총리는 “민심은 화해를 원했다. 푸어타이당은 복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귀국을 희망하지만 태국 사회에 소요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만큼 서둘러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축출 이후 영국으로 망명한 뒤 주로 두바이에 머물러 왔다. 탁신의 ‘클론’(복제 인간)으로 불리는 잉락은 오빠의 후광에 더해 수려한 외모와 빼어난 말솜씨, 똑똑한 이미지와 다듬어진 매너 등 인간적 매력을 앞세워 표심을 사로잡았다. 특히, 탁신의 전통적 지지층인 도시 빈민과 농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왕실과 군부, 엘리트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집권 민주당은 부패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선고된 탁신 전 총리의 사면을 공약으로 내건 푸어타이당을 비판하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정치 신인’의 거센 바람몰이에 끝내 무릎을 꿇었다. 투표율이 75%에 이른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태국의 이번 조기 총선은 경찰 18만 3000명이 투입돼 삼엄한 경계를 펼친 덕에 큰 불상사 없이 진행됐다. 그러나 최남단 나라티왓주에서 총선 투표함을 수송하던 트럭이 무장 괴한으로부터 총기 공격을 받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한편 ‘푸어타이당이 승리하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 프라윗 옹수완 태국 국방장관은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군을 정치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며 쿠데타설을 일축했다. 푸어타이당의 압도적 승리 속에 총선이 큰 충돌 없이 끝났지만 불안 요소는 여전히 잠복해 있다. 전문가들은 태국 내 빈부계층 간, 정치세력 간 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정정불안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푸어타이당이 현재 30%인 법인세를 2년 뒤 20%로 낮추고 학교에 입학하는 80만명의 학생에게 태블릿PC를 주기로 하는 등 선심성 공약을 쏟아낸 탓에 이를 둘러싼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특파원 칼럼] 변화 요구받는 중국 공산당/박홍환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변화 요구받는 중국 공산당/박홍환 베이징 특파원

    중국 공산당이 창당 90주년을 넘겼다. 동아시아에 제국주의의 암운이 가득했던 1921년 7월, 마오쩌둥을 비롯한 13명의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들은 비밀리에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의 한 허름한 건물에 모여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중국 공산당의 창당을 알렸다. 당시 당원은 57명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90년, 당원은 창당 시기의 140만배가 넘는 8029만명으로 확대됐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60년간의 집권기간, 특히 지난 30여년간 중국 공산당은 연평균 두 자릿수의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무엇보다도 13억 인민을 ‘기아’에서 해방시켰다. ‘동아시아의 병자’라고 놀림을 당하던 1800년대의 중국이 아니다. 세계 제2의 경제체로서 외교, 경제, 군사력 등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했다. 자부심을 가질 만한 발전이다. 창당 90주년을 맞아 중국 전역에 ‘공산당이 없었다면, 중국은 존재할 수 없다’(沒有共産黨, 沒有新中國)는 붉은 색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100년 정당’을 앞두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지금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빈부 격차 확대에 따른 사회불만 확산,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장기독재에 대한 거부감…. 낙후한 중서부 내륙지역에서 경제가 활짝 핀 동부 연안지역으로 ‘동부 드림’을 안고 몰려든 농민공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거기에서 거기인 현실에 좌절감을 안은 채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발전의 과실을 공산당원 등 특권계층만 독점한다는 푸념과 비아냥도 적지 않다. 대부분 공산당원인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자오스린(趙仕林) 중앙민족대 교수는 당 지도부를 상대로 “당을 신격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부패관리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죽하면 후진타오 주석조차 “반부패는 당의 생사존망과 직결돼 있다.”고 위기감을 토로했을까. 이런 혼란과 관련, 공산당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좌파들은 “당이 원칙을 저버리고 너무 멀리 ‘오른쪽’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사회병리 현상이 범람하고, 당이 실권의 위기에 처해 있다.”며 ‘혁명정신’의 회복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칭시 당서기인 보시라이(薄熙來)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집단시위 등 점증하는 사회문제는 당이 더욱더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방증”이라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정치개혁과 책임의식의 고양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좌파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원자바오 총리가 지난해 이후 여러 차례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후 주석 등 대부분의 최고지도자들은 “서구식 민주주의는 불필요하다.”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고수를 다짐하고 있다. 내년에 5세대 지도부로의 권력 이양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공산당 지도부는 더욱더 ‘선명성’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공산당은 이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미진하게나마 답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록 실험적이지만 일선 향·진(우리의 읍·면에 해당)을 시작으로 선거를 통한 대표 선출이 시작되는 등 당내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다. 권력투쟁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을 선거로 선출하는 전례도 만들어졌다. 2007년 17차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후 주석은 시진핑보다는 심복인 리커창을 후계자로 올리려 했지만 중앙위원들의 요구로 선거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공산당에 대한 변화 요구는 중국 경제가 더 큰 규모로 확대될수록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확대되는 중산층들이 결국은 정치에 관심을 돌리고,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한다는 것은 우리를 비롯해 이미 여러 나라들이 경험한 바 있다. 거센 변화 요구에 중국 공산당은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stinger@seoul.co.kr
  • 첫 女총리 축제전야? 군부의 쿠데타 전야?

    태국은 신데렐라와 쿠데타를 함께 맞이할 것인가. 3일 태국 총선에서 탁신 친나왓(61)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 잉락 친나왓(44)의 총리 당선이 유력한 가운데 집권세력인 군부가 이 결과를 수용할지 태국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녀가 탁신의 여동생이라는 점에서 5년 전 탁신을 쿠데타로 축출한 군부가 가만있겠느냐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쿠데타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태국 제1야당인 푸어타이당 후보로 나선 잉락은 정치 경험이 두 달도 채 안 되는 초보 정치인이지만 빼어난 외모에 대중친화적인 언변을 자랑한다. 오빠의 지지층인 빈민, 농민은 물론 중산층까지 아우르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를 제친 상태다. 태국 치앙마이대학교에서 정치·행정학을 전공한 잉락은 미국 켄터키주립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부동산·통신회사 대표 등을 지냈다. 기업인 아누손 아몬찻과의 사이에 아들 1명을 두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 머물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는 탁신 전 총리는 여러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푸어타이가 승리하더라도 2006년 쿠데타에 대한 복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부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방콕 사무소의 마크 색서 소장은 “탁신은 푸어타이당의 승리와 함께 정치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반대세력인) 엘리트층과의 ‘그랜드바겐’을 준비하려는 양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탁신 진영의 진화책에도 불구하고 태국 군부는 막판까지 잉락의 당선을 저지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쿠데타를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을 일축하면서도 “푸어타이를 지지하는 것은 태국 왕정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잉락 총리’ 저지에 나섰다. 탁신 남매의 재산 은닉 혐의를 부각시키면서 잉락이 당선될 경우 자칫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지지층을 압박하고 있다. 5년 전 군부의 쿠데타 이후 태국과 관계가 틀어졌던 미국도 총선 향방에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자칫 태국의 정국이 혼란으로 치달을 경우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자국의 동남아시아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정부 당국자들이 물밑 외교채널을 통해 태국 정부와 군부에 총선 결과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열린세상] 결코 놓칠 수 없는 한·미 FTA/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결코 놓칠 수 없는 한·미 FTA/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이제 남은 것은 한·미 FTA 비준이다. 우리 경제는 90%에 육박하는 대외 무역 의존도를 지니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치다. 그만큼 무역이 국부 창출의 원천이기도 하고, 우리 경제가 해외 시장의 변화에 취약하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FTA를 통해 해외 시장 접근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아울러 FTA는 일종의 차별방지 보험에 가입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17개국과 FTA를 체결한 미국은 앞으로도 수많은 나라와 FTA를 체결할 것이다. 이들 중 많은 나라의 기업들은 미국시장에서 우리 수출 기업들과 경쟁관계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최대 해외시장 중의 하나인 미국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관세 차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FTA보험’을 들어두어야 한다. 적어도 90%에 해당하는 해외 경제와의 보험 효과를 확보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FTA를 발효시킨 국가의 경제규모를 합쳐도 25%밖에 안 된다. 미국, 중국, 일본과 FTA를 발효시켜야 60%를 넘어설 수 있다. 미국과의 FTA 없이 우리의 해외시장 접근 보험체제를 완성할 수는 없다. 한·미 경제통합이 한반도 안보관계에 기여할 장기적인 긍정적 효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혜택이다. 한·미 FTA가 수출기업만 살찌우고 서민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반대논리는 사실과 다르다. FTA의 최대 혜택은 경쟁이다. 이제 EU와의 FTA가 발효되었으니, 최선진 경제권과의 벌거벗은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미국과의 FTA는 이러한 경쟁체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경쟁은 상품과 서비스의 값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므로, 장바구니 물가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한·미 FTA가 의약품 값을 폭등시키고, 미국 투자자들의 한국 정부 제소를 부추겨 공공정책을 무력화시키며, 지적재산권 강화의 폐해를 야기한다는 비판은 과장되었다. 특허 의약품 보호가 다소 강화되어 의약품 가격이 소폭 상승할 가능성은 있다. 외국 투자자에 의한 정부 제소가 제도화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제도는 투자 유인을 제공함과 동시에 투자 분쟁을 정치문제화하지 않고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 캠퍼스 주변에는 외국서적의 불법 복제가 판을 치고,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는 일상화되어 있다. 제약회사가 병원과 결탁하여 납품을 대가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관행도 만연되어 있다. 우리 경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교역하는 글로벌 기업체제로 이행했는데,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지 않으면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 EU 및 미국과의 FTA는 이러한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경제에서 가장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분야가 기초 서비스 부문이다. 가장 우수한 두뇌집단이 진출하는 곳이 법조계·의료계·교육계인데도, 철저하게 미개방 상태로 머물렀기에 국제 경쟁력을 갖출 기회가 없었다. 그만큼 이 분야의 종사자들은 국내 독점의 이윤을 챙겼으나, 소비자들은 그 비용을 지불했다. 세계 10대 무역대국인 우리가 50위권 대학교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해외 유학에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국내에 외국계 병원이 들어설 수 없으니, 의료 시술 받으러 해외로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업들은 불편을 무릅쓰고 외국 현지 로펌을 고용해 원격 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아 왔다. FTA 자체가 서비스분야의 경쟁력을 가져다 주지는 않으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필수 과정인 ‘경쟁’을 선물한다. EU와 미국에 대해 법률시장을 단계적으로 개방한 것은 우리 로펌들도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임을 선언한 셈이다. 앞으로 교육 및 의료시장 개방도 추가로 진행해야 한다. 이젠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국제 경쟁의 파고를 타고 우리 경제 전체가 순항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농민들의 피해, 일부 부문의 실업문제, 산업 구조조정 문제 등은 국내 보완 대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런 국내 문제 때문에 FTA가 주는 모든 혜택을 포기하자는 것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대한민국이 취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다.
  • [中 공산당 90주년] 中 청년들이 본 ‘90세’ 공산당

    [中 공산당 90주년] 中 청년들이 본 ‘90세’ 공산당

     1921년 창당 당시 57명에 불과했던 중국 공산당원은 지난해 말 현재 8029만 9000명으로 90년 만에 140만배 이상 늘었다. 전체 중국인 17명당 1명꼴로 공산당원인 셈이다. 35세 이하 당원 비율이 아직 24.3%에 불과하지만 매년 300만명 이상씩 늘어나는 신규 당원의 81.8%가 35세 미만이고, 40%가 대학생이라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은 오히려 점점 젊어지고, 고학력화되고 있다. 중국 교육부는 최근 베이징, 상하이 등 전국 15개 성·시, 140개 대학, 2만 5000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80%가 공산당 입당을 희망했다고 밝혔다. 90회 생일을 맞은 중국 공산당은 이런 조사 결과에 고무돼 있다. 신화통신 등 관영언론들은 신세대들이 개혁·개방 이후 공산당의 주도로 놀라운 발전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 감동하고 있으며, 이것이 청년학생들을 공산당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 같은 조사에서 89%가 넘는 대학생들은 공산당의 집정 능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것을 낙관했다.  중국인민대 대학원생 천레이(陳雷)는 “유사 이래 전체 중국 인구를 먹여 살린 정권은 공산당뿐”이라면서 “공산당은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의 과오도 저질렀지만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켰다.”고 공산당의 국가경영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정식 입당을 기다리고 있는 예비당원인 가오젠(高健)은 “중국 공산당은 중국에서 가장 수준 높은 조직”이라고 평가한 뒤 “많은 당원들이 입당 전에는 열심히 당과 국가의 개혁 문제에 대해 공부하지만 일단 입당하면 나태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당원들의 학습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애정을 담아 충고했다. 상당수 젊은이들은 ‘공산당이 없었다면, 신중국도 없었다’(沒有共産黨, 沒有新中國)는 공산당의 구호처럼 현재 중국에 공산당을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젊은이들은 체제 내 점진적 개혁이 빈부격차 등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대학원생 팡자웨이(房佳僞)는 “중국의 많은 문제는 성장 과도기의 불가피한 진통이지 공산당 집권에 따른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젊은이들은 체제를 비판만 하기보다 체제 안에 들어가 중국의 발전을 도모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방자웨이의 친구인 천위레이(陈聿雷)도 “농민공 등의 문제는 빨리 해결돼야 한다.”면서도 “중국의 발전은 공산당의 영도하에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산당에 대한 쓴소리도 흘러나온다. 베이징 지역의 한 명문대생은 중국 공산당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대해 ‘대충 생각해서 결정한 뒤, 가슴을 탕탕 쳐 가며 보장하지만, 결국 다리를 탁 친 뒤 후회하고, 엉덩이를 때리며 집으로 돌아간다.’며 ‘중국 특색의 의사결정시스템’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법치나 민주주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후진적인 인치(人治)시스템에서 모순이 돌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사범대 4학년생인 류젠궈(劉建國)도 “중국 공산당은 권력과 돈이 특정계급에 집중되면서 국민들의 불신이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기득권층이 아닌 새로운 개혁주도 세력이 나와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주링허우(90後·199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공산당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베이징 시내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허스원(何世文)은 “지금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면서 “정치나 공산당에는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킬링 필드/박홍기 논설위원

    ‘서로 죽이고 죽는 일도, 종교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꿈꿔 보세요.’ 존 레넌의 대표곡 ‘이매진’(Imagine)이 흐른다. 캄보디아 현지인 기자 디스 프란이 생활하는 태국 국경의 수용소에 미국인 기자 시드니 쉴버그가 찾아온다. 둘은 눈물의 포옹을 한다. 프란은 캄보디아가 크메르루주 정권에 넘어간 뒤 쉴버그와 헤어져 모진 고문을 겪다 ‘죽음의 들판’을 지나 탈출했다. 1984년 제작된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킬링 필드’(The Killing Fields)의 마지막 장면이다. 킬링 필드는 크메르루주가 저지른 대학살로 생긴 집단 무덤이다. 500개가 훨씬 넘는다. 때문에 영화 제목도 ‘Fields’ 복수형이다. 영화는 198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쉴버그의 ‘디스 프란의 생과 사’를 각색,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과 인간애를 다뤘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다. 크메르루주의 야만과 광기를 다 담지도, 표현할 수도 없었다. 태국과 라오스 영토를 지배했던 앙코르와트의 영광을 구현했던 크메르 제국의 후예를 자처한 크메르루주는 1975년 집권해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자급자족형 농경공산주의, 지상낙원의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부르주아라고 분류될 수 있는 지식인과 전문직·기술자층은 모두 죽였다. 가운데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였으면 펜을 많이 쓴 사람이라는 이유로, 손이 깨끗하면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학살했다. 얼굴이 희다고, 안경을 썼다고, 피아노를 칠 줄 안다고…. 여자든, 아이든 가리지 않고 만행의 대상이 됐다. 비명소리를 덮으려고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기도 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없었다. 1979년 베트남 침공으로 붕괴될 때까지 최소 200만명이 처형되거나 질병과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했다. 전 인구의 4분의1이다. 20세기 최악의 학살극 중 하나다. 킬링 필드의 핵심 전범 4인이 어제 32년 만에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ECCC) 법정에 섰다. 정권의 서열 2위였던 누온 체아를 비롯, 이엥 사리 전 외무장관과 부인 이엥 티리트 전 내무장관,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 등이다. 수괴 폴 포트는 1998년 사망했다. AP통신은 “독일 나치 전범들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가장 주목받은 재판”이라고 규정했다. 희생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반인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단죄해야 할 역사적 당위성을 가진 세기의 재판이다. 평화를 갈구하는 존 레넌의 노래처럼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공룡시대 살았던 눈 3개 ‘괴물 새우’ 발견?

    공룡시대 살았던 눈 3개 ‘괴물 새우’ 발견?

    영화 속 ‘괴물’이 현실로? 최근 중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청체를 알 수 없는 희귀 생물 2종이 발견돼 주민들이 놀라움에 휩싸였다고 현지 언론이 26일 보도했다. 쓰촨성 광한시의 한 농민이 발견한 이 생물은 머리는 매기, 꼬리는 귀뚜라미, 몸체 일부는 지렁이, 몸에 달린 다리는 새우를 연상케 하며 눈이 3개가 달린 희귀한 외모를 가져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괴물’로 불리고 있다. 이 ‘괴물’이 발견된 때는 지난 13일 오후. 마을 주민 두 사람이 지나다 밭두렁 사이에서 이를 발견했다. 빠른 움직임 때문에 올챙이나 조금 큰 새우 정도로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눈이 3개가 달렸거나 몸체 일부가 투명한 희귀한 생물이었다.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 눈이 3개 달린 새우형태의 생물은 ‘갑옷새우’, 또 다른 생물은 학명이 ‘브란치오포다’(Branchiopoda)인 새각류로 밝혀졌다. 쓰촨농업대학동물학의 옌타이밍 교수는 “갑옷새우는 공룡시대에 살았던 생물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살아있는 화석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눈이 3개 달린 이유로 ‘눈3개공룡새우’라고도 불리며 2억 년 전부터 외형의 변화가 거의 없는 생물이다. 이번에 광한시에서 발견된 갑옷새우는 오랜 기간 부화하지 않던 알이 특정한 기후에 반응하며 알에서 깨어나 사람들의 눈에 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새각류는 몸길이 최대 2cm의 원시적인 소형 갑각류로, 이 또한 2억년 전부터 살아왔으며, 따뜻한 물에서 주로 서식한다. 옌 교수는 “새각류의 경우, 예전에는 농촌에서 종종 발견됐지만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다.”면서 “매우 의미있는 발견”이라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재오 “달고 안전한 칠곡 참외 많이 드세요”

    “달고 깨끗한 칠곡 참외, 많이들 주문하세요.” 2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층 로비에서는 직거래장터가 열렸다. 특임장관실 주최, 경북 칠곡군 주관으로 ‘칠곡 우수 농산물 시식 및 판매행사’가 벌어진 것. 이 행사는 지난달 이재오 특임장관이 고엽제 매립 의혹이 제기된 칠곡 캠프 캐럴 미군기지를 방문했을 때 현지 주민들이 “지역 농산물 피해가 없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한 데서 비롯됐다. 이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칠곡 군민 여러분에게 신뢰와 애정을 보여줌으로써 농민들의 사기에 도움이 될까 해서 행사를 마련했다. 칠곡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에는 정선태 법제처장, 장세호 칠곡군수 등이 참석했다. 행사에는 참외뿐 아니라 오이, 토마토 등 칠곡산 농산물이 가득 펼쳐졌다. 점심시간을 전후로 많은 공무원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고, 줄지어서 주문서를 작성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장관은 직접 참외를 먹으면서 직원들에게 “많이들 사라.”고 권했고, 정 법제처장 역시 “법제처가 큰 조직은 아니지만, 칠곡 참외를 많이 사 먹자고 열심히 홍보하겠다.”고 말했다. 장 칠곡군수는 “고엽제 매립 의혹 때문에 칠곡 주민들의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다.”면서 “칠곡 농산물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많이 드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中진출 기업들 ‘노사분규’ 몸살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잇따라 노사분규에 휘말리고 있다. 임금인상을 목적으로 한 파업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기업 노동자들은 비인간적인 처우 등도 문제삼고 있어 우리 기업들의 현지경영 전략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광둥성 광저우(廣州)의 한 한국계 핸드백 공장에서 노동자 400 0여명이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지난 20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23일 보도했다. 지난 1992년 문을 연 ‘시몬’이라는 이 공장은 버버리, DKNY 등의 명품브랜드에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납품하고 있으며 노동자 대부분은 내륙 출신의 여성 농민공들로 알려졌다. 노동자들은 “잔업까지 포함해 하루 12시간 일해봐야 월급이 1900위안에 불과하다.”면서 현재 1100위안(약 18만원)인 월 기본급을 1300위안으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비인간적인 대우 등도 문제삼았다. 근무시간에는 4시간에 한 차례씩 화장실 다녀오는 것만 허용될 뿐인데다 식대로 100위안을 공제하면서도 구내식당에서는 ‘쓰레기’ 같은 식사가 제공된다고 하소연했다. 한 남성 노동자는 “한국인 남성관리자들이 수시로 여성 화장실을 출입하는 등 우리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있다.”면서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이달 초에는 지린성 창춘(長春)의 금호타이어 현지 공장에서 대규모 파업이 벌어진 바 있다. 지난 7일 시작된 파업은 일주일가량 지속됐으며 임금 30.8% 인상안에 노사가 합의함으로써 마무리됐다. 당시 한 노동자는 “월급이 겨우 1200~1300위안에 불과하고, 그보다 더 적은 사람들도 있다.”면서 “물가가 치솟고 있는데 이런 월급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도 없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쌀 조기 관세화 한·미 FTA 비준 뒤로 연기

    쌀 조기 관세화 한·미 FTA 비준 뒤로 연기

    정부가 늘어나는 쌀 재고량 해결을 위해 추진 중인 ‘쌀 조기 관세화’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통과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농림수산식품부 당국자는 16일 “쌀 조기 관세화는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고 한·미 FTA 비준 이후에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면서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되는 즉시 외교통상부와 바로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2004년 우루과이라운드(UR) 재협상에서 쌀 관세화를 유예한 기한은 2014년까지다. 관세화 유예 대신 매년 수입되는 의무수입물량(MMA)은 국별 쿼터와 글로벌 쿼터로 나뉜다. 중국·미국·태국·호주로 구성된 국별 쿼터는 매년 20만 5228t으로 정해져 있다. 4개국을 제외하고 각 나라의 경쟁을 통해 수입되는 글로벌 쿼터는 매년 늘게 된다. 2011년 기준으로 14만 2430t인 글로벌 쿼터는 2014년에는 20만 3472t으로 늘어난다. 쌀에 관세를 붙일 경우 쿼터 간 장벽의 의미가 없어져 글로벌 쿼터로만 운영된다. 정부는 관세율이 200~390%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국제·국내 쌀값이 약 1.8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수입량은 오히려 줄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쿼터량이 5만 76t으로 정해져 있는 미국 역시 쌀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관계자는 “미국 수입 물량이 글로벌 쿼터로 바뀌면 미국 쌀 수출업체들이 반기를 들어 한·미 FTA 비준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면서 “한·미 FTA 비준이 늦어도 8월까지는 통과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FTA 비준안이 계획대로 통과되더라도 쌀 조기 관세화 시점에 대해서는 부처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관계자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선진국들이 쌀 관세율을 놓고 압박하면서 글로벌 쿼터 증량을 요구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쌀을 관세화하는 것은 쌀 수입을 덜하기 위한 조치이므로 쌀 관세화가 우리나라의 개도국 지위 유지와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이에 농식품부는 내년부터 쌀 조기 관세화를 전면 시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시점을 타진 중이다.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시행 3개월 이전인 9월까지는 농민단체를 설득시켜 세계무역기구(WTO)에 의사 표명을 해야 한다. 농식품부는 한·미 FTA 비준안이 늦어도 8월까지는 통과될 것으로 보고 쌀 조기 관세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는 방침이지만, 내년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씨줄날줄] 수박/이춘규 논설위원

    여름철 대표 과일 수박. 아프리카 열대초원·사막지대가 원산지다. 고려 때 몽고에서 귀화한 홍다구(1244~1291)가 처음 개성에 수박을 심었다고 한다. 신사임당(1504~1551)의 작품으로 알려진 초충도(草蟲圖)에는 수박이 여러 개 그려져 있어 조선시대 초기 수박 재배가 보편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박이 한자로 西瓜(서과)인 것을 보면 중국 서쪽 중앙아시아를 거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수박에는 지역색이 있다. 1200종 이상이다. 아시아에선 씨를 볶아 이빨로 깨 내용물을 먹는 지역이 많다. 중국에서는 술안주, 요리, 과자 등에 이용된다. 아프리카에서는 씨앗을 볶아서 분말을 식품 재료로 이용하는 식문화가 남아 있다. 아프리카에선 수박 수분을 음용이 아닌 생활용수로 이용하고, 씨만 먹기도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불가리아치즈를 발라 먹는다. 한국의 품종은 둥근 모양이고 타원형인 것도 있다. 붉거나 노란 속살을 먹는다. 야생 수박은 대부분 단맛이 없다. 당분은 6%일 뿐이고 92%가 수분이다. 대신 밑동 부분을 중심으로 수분이 대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그런데 야생 수박은 대부분 자생지가 사막 등 건조지대라 야생동물에게는 귀중한 수분 공급원이 된다. 야생동물들이 수분은 물론 씨앗도 함께 먹기 때문에 배설물을 통해 야생 수박의 종자 살포가 이뤄진다. 인류도 최초에는 건조지대에서 야생 수박으로 수분을 보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과 단백질이 많은 씨도 식용으로 애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별 수박 생산량 순위는 자연환경과 전년도 가격에 따라 변동이 심하다. 그래도 중국은 재배 면적·생산량에서 줄곧 세계 1위다. 2004년 세계 전체 수박 생산량은 9562만t. 이 가운데 71%인 6831만t을 중국이 생산했다. 터키, 이란, 브라질 그리고 미국이 뒤따랐다. 다음으로는 이집트, 멕시코, 러시아, 대한민국 등의 순이었다. 앞서 1997년에는 중국이 50.6%로 압도적인 생산량 1위였고, 터키는 8.2%로 2위, 대한민국은 2.5%로 5위였다. 지난 10일 서울 롯데백화점 강남점에서 열린 전북 고창군 수박 경매에서 무게 9㎏인 ‘탑2호’가 23만 5000원에 낙찰됐다. 지난해보다 6만원 이상 뛰었다. 명품 수박이 된 탑2호는 소비자 대표, 농업 전문가, 수박 육종 농민 등의 판매현장 평가에서 내·외피 색깔이 뚜렷하고 당도가 14.2브릭스(brix)나 될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았다. 제철을 맞은 수박값이 비싸다. 유통업자와 재배 농민들은 기쁠지 모르지만 소비자들은 씁쓸하다. 안타깝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6)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한다] (6)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대학에서 군사독재 반대를 외치다 제적당하고,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구속됐던 내가 시의원과 구청장을 거쳐 진보정당 최초의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됐다. 단 한순간도 편한 적 없었던 내 인생 한가운데엔 짠 바다 냄새와 메케한 화약 연기가 뒤섞였던 고향 울산이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메카, 진보 1번지가 된 울산. 이곳에서 나는 사회과학 서점을 차리고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 파견 철폐를 외치며 분신했던 봄날, 내 손을 잡고 “노동자는 하나.”라며 눈물을 글썽일 때 나는 다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진짜배기 진보 정치인으로 서 있겠다고. 진보정치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듯 내 정치의 굳은살이 됐다. 어린 시절 난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었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앞장서 대드는 소년이었다. 그런 탓인지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민주화 투쟁에 뛰어들었다. 군사독재를 반대하는 유인물을 돌렸고 1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뒤이어 인천에 있는 공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시 한번 징역(징역 10개월, 자격 정지 1년)형을 받게 됐다. 1988년 울산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점(신새벽)을 열고 당구장을 개업하면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울산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을 만드는 데도 참가했다. 활동을 할수록 ‘이제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2살의 어린 나이에 기초의원 출마를 결정했다. 1998년 최연소 구청장, 민주노동당 창당, 2004년 총선 당선. 조금씩 조금씩 진보 정치의 희망을 일궜다. 30대와 40대를 선출직 공직자로 살아가면서 한나라당, 민주당의 양당 구도가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8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했다. 국회에서 에너지복지법,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사회복지세법을 만든 것은 작은 시작이다. 이제 진보정치를 향한 더 큰 꿈이 익어가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진보적 교수 단체 등과 오는 9월까지 새로운 진보 통합 정당을 창당하려 한다. 한국 정치 구도를 보수, 자유, 진보로 나누기 위한 첫 발돋움이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아들과 함께 ‘등록금 촛불 집회’에 앉아 있는 이 순간에도 ‘서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챙기는 정치’,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를 챙기는 정치’를 꿈꾼다. ● “참여당 한·미 FTA 반성 안하면 공조 못한다” →왜 정치를 하나. -(비정규직 노동자 등 어려운 이웃에 대한) 부채 의식 때문이다. 진보적 의제를 하나하나 이뤄갈 것이다. →최연소 시의원과 최연소(34세) 구청장이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큰 선거에만 희망을 쏟지 말고, 지방선거에도 참여해 진보정치를 확산하자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핵심 지지 기반인 현대차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역 핵심 기반과 정치 핵심 의제가 상충하는 것 아닌가. -현대차 노조의 지지는 노동자 권리와 진보정치를 지킨 데 대한 응원이 아닐까. 현대차 노조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의 산별 전환은 노동운동의 대의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다. 진보 전체의 책임을 개별 기업에 물어서는 안 된다. →진보 대통합 논의와 관련, 지난 11일 전국위원회에서 진통이 심했다. -독자파는 합의문 동의안을 상정한 뒤 기권했고, 통합파는 동의안이 성립 안 된다며 기권했다. 정치적인 의사 표현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합의문을 왜곡한다며 조 대표를 비판했다. -결혼식 날짜 잡아 놓고 바람 피우는 것 아니냐는 표현까지 당내에서 나왔다. 부적절한 동맹에 대해 언급한 것은 부적절한 언행이다. →그럼에도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국민 참여당 대표가 거리를 좁히고 있는데. -부부가 재결합하려는데 유랑극단 3류 가수가 추파를 던져 불편하다. 유 대표가 진보정치를 소수파 전략으로 폄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참여당이 신자유주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찰하지 않는 이상 동행하기 어렵다. →진보 대통합이 실패할 경우, 다음 진로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실패를 가정하고 싶지 않다. →민주당은 진보정당과 합의할 정책이 많아졌다는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엔 샛강이 있지만 진보정당과 민주당 사이엔 한강이 흐른다. 시간 낭비다. →분당 때 선도 탈당파였다. 지금 통합에 앞장서는 이유는. -민주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민들이 많다. 진보 정치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정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은. -진보 진영 첫 광역단체장을 만들고 싶다(울산시장이냐고 묻자 부정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보스턴 마라톤에 도전하고, 목수가 돼서 내 집을 짓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노회찬·심상정 상임고문을 평가한다면. -노회찬 상임고문은 모든 사안을 대중적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심상정 상임고문은 당차고 친화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를 꼽는다면. -조국 교수, 노회찬·심상정 상임고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진보 인사들이 국민경선으로 단일 후보를 결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1962년 울산 출생 ▲동국대 생명자원경제학과, 울산대 정책대학원 행정학 석사,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 수료 ▲울산·인천 등에서 현장 노동자 활동 ▲울산 사회과학서점 ‘신새벽’ 운영 ▲민중당·진보정당추진위원회 활동 ▲울산광역시의원, 울산참여연대(준) 공동대표 ▲울산북구청장 ▲진보정치연구소장·에너지정치센터 대표 ▲17·18대 국회의원 ▲(현) 진보신당 대표
  • 고창 명품수박 한 통 23만5000원

    고창 명품수박 한 통 23만5000원

    전북 고창에서 생산된 명품수박 한 통이 경매에서 무려 23만 5000원에 낙찰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고창군은 지난 10일 서울 강남 롯데백화점에서 진행된 제2회 고창군 우수농특산물 출시전 경매에서 김종일씨가 수확한 수박 ‘탑2호’가 23만 5000원에 낙찰됐다고 13일 밝혔다. 탑2호는 소비자 대표, 농업 전문가, 수박 육종농민 등의 판매현장 평가에서 당도 14.2브릭스(brix), 무게 9㎏에 내·외피 색깔이 뚜렷하고 식미도(먹는 맛)가 뛰어나 경매에서 최고가에 팔렸다. 이 수박은 고창군이 농촌진흥청과 함께 추진한 ‘명품수박 만들기 프로젝트’에 의해 생산됐다. 또 이날 수박 경매에서는 고창지역 20농가(16㏊)가 생산한 수박 10만 통 가운데 엄선된 당도 12브릭스 이상, 무게 8.5㎏내외 100통이 각각 10만원에 매진돼 고창 명품수박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고창군은 오는 17~19일 부산의 롯데백화점 본점과 동래구 메가마트에서 고창 명품수박 판매전을 갖는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씨줄날줄] CT시대/이춘규 논설위원

    중국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동이 사람들은 농사 절기에 맞추어 하늘에 제사하고 밤낮으로 음주(음식)가무를 즐겼다.”고 적었다. 부여편에서 “나라에서 제사를 열어 연일 먹고 가무를 즐겼으니 영고(迎鼓)라 불렀다.”고 했다. 고구려편은 “백성들은 가무를 즐겨 읍성에선 한밤중이 되면 남녀가 무리지어 모여서 노래하고 유희를 즐긴다.”고 밝혔다.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이미 2000년 전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는 유전자(DNA)가 꿈틀댔다. 음주가무 DNA는 삼국시대에 이르러 풍류(風流)로 나타난다. 신라 최치원은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깊고 미묘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고유한 전통 사상으로 분류했다. 고려 인종 때 곽동순의 글에는 “풍류가 역대에 전해 왔고, 경신되었으니”라고 적었다. 그러다 조선시대에는 풍류가 고유한 사상적 전통이나 종교풍습의 의미가 아니라 자연과 가까이하고, 멋과 운치를 즐기는 삶의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 된다. 풍류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시들해진다. 전란과 경제난 등이 이어지며 풍류는 억눌려 있었다. 잠재된 DNA를 누가 막으랴. 생활의 여유가 생기며 되살아난다. 동네별로 칠월칠석날에는 콩쿠르대회가 열려 남녀노소가 노래솜씨를 뽐냈다. 젊은 대표를 읍내 대회에 내보냈다. 신인을 발굴해 육성해 내는 한류(韓流) 전사들의 맹아가 여기 있었다. 농민은 농한기 가무놀이를 이어 갔다. 극장에선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가 성행했다. 한류의 원천은 음주가무 DNA, 풍류 등 오랜 전통 문화력이다. 풍류만 해도 일본에는 14세기 무로마치바쿠후 시대 때에야 전해졌다고 한다. 일본 문화전문가들은 이런 바탕 위에 ‘한국인의 힘’이 확인돼 한류가 폭발한 것으로 본다. 박세리의 US여자오픈 골프 우승, 2002월드컵 축구 4강 파워에 드라마 ‘겨울연가’, 가수 보아 등이 겹쳐지며 한류를 완성했다. 중국, 동남아에 이어 아프리카로 확산돼 바이어 접대나 정상외교의 윤활유 구실까지 한다. 프랑스 파리도 K팝 열기에 푹 빠져들었다. ‘문화 기술’(CT·Culture Technology) 시대 이론이 주목 받는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은 14년 전 아시아 진출 때 정보기술(IT)과 구별하기 위해 CT를 만들었다. IT 뒤 CT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 한류3단계 발전론을 고안해 시행했다고 한다. 한류문화상품 수출→현지 회사 합작, 시장 확대→한류 현지화다. 그러나 한류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한류는 미래성장동력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아나키즘’ 운동가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아나키즘’ 운동가

    1200명이나 되는 농노와 드넓은 소작지를 소유한 러시아 귀족의 아들. 황제의 최측근이 될 수 있는 근위학교를 수석 졸업하고도 안락한 궁정 생활 대신 시베리아 장교 지원. 시베리아 지형 탐사를 통해 지리학자로 명성을 얻지만 ‘제국지리학회’ 사무관직 거절. 막대한 상속을 포기하고 혁명운동에 투신. 반체제 운동 주동자로 지목 돼 투옥. 2년 후 탈옥. 그리고 반세기 동안 이어지는 투옥과 추방.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귀국. 그러나 볼셰비키의 아나키즘 탄압. 심장질환과 폐렴으로 사망. 10월 혁명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장례식…. 이것이 아나키즘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의 간략한 프로필이다. 이 정도면 그를 소재로 드라마 한 편을 찍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크로포트킨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는 고뇌에 찬 지식인의 자의식을 보여준 적도 없고 혁명 투사의 화약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크로포트킨의 삶에는 골방 대신 시베리아의 벌판과 눈 덮인 스위스의 산들이 있다. 값싼 봉투를 붙이며 격론을 벌이는 이론가가 있다. 그는 비밀경찰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이 유럽을 누비고 다녔다. 유산을 포기할 때도, 되풀이되는 추방과 고된 망명 생활에 관해서도 괴로움을 토로하는 법이 없다. ●지식인 운동가의 교만함이 혁명을 왜곡한다 크로포트킨은 솔직 담백했다. 그의 삶의 모든 것은 공공연하게 말해지고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공공연함’, 이것이야말로 크로포트킨이 혁명가로서 보여준 최고의 미덕이었다. 크로포트킨이 보기에 사회주의 지식인 운동가들은 공공연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농민이나 노동자들보다 더 안다는 교만함. 민중들은 무식해서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판단할 수도,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오만함. 그런 운동가들은 현실을 계산하고 전술을 찾았다.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침묵하고, 해야 할 일을 미뤘다. 심지어 전술을 위해 황제와 귀족 편에 서서 농민과 노동자의 봉기를 탄압하기도 했다. 지식인 운동가들의 계몽적 태도와 이로 인한 지도부와 민중 사이의 괴리. 이 사이에서 혁명은 왜곡되고 비밀주의로 물들었다. 크로포트킨은 이런 괴리를 거부한다. 현실이 어려운가? 그럼 공공연히 말하라. 그럼 답은 온다. 해야 하는가? 그럼 공공연히 하라. 그럼 된다. 이 간단한 원칙이 그의 삶 전부다. ●아나키스트, 생각한 대로 행동하라 1878년 경 유럽 전역에서 왕에 대한 암살이 네 차례나 시도되었다. 유럽 정부들은 이 음모의 주동자들을 스위스가 숨겨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스위스는 아나키즘 운동의 중심인 쥐라연합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쥐라연합의 많은 지도자들이 추방당하고 망명 생활에 오르게 됐다. 결국 기관지 편집 일이 크로포트킨에게 맡겨졌다. 이제 막 러시아 감옥에서 탈출한 망명자 크로포트킨,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듀마르트리, 제네바 출신의 내성적인 사나이 헤르치히. 이 세 사람은 1879년 제네바에서 ‘반란자’를 창간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인쇄소에 압력을 넣었다. “정부에서 일을 받지 못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반란자’를 인쇄해줄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매우 실망하고 제네바로 돌아왔다. 그러나 듀마르트리는 오히려 열정과 희망에 불타 있었다. “간단한 문제입니다. 3개월 동안 신용담보로 인쇄기를 사면 됩니다. 3개월이면 기계 값을 지불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돈이라곤 겨우 200~300프랑밖에 없지 않소?” 나는 반대했다. “돈이란 우스운 겁니다.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우선 기계를 주문해서 다음 호를 내면 돈이 모일 겁니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우리는 기계를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 호를 우리의 ‘쥐라 인쇄소’에서 찍고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팸플릿을 발행했다. 우리 모두가 직접 인쇄했다. 과연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동전과 소액의 은화였지만 어쨌든 돈이 모였다.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돈이 없다. 이것이 크로포트킨이 좌절한 이유였다. 하지만 듀마르트리는 어땠는가. 그는 말한다. 활동을 해야 돈이 생긴다. 그러니 활동을 하자. ‘반란자’는 그렇게 21년간 발행되었다. ‘이론가’ 크로포트킨에게 ‘못 배운 노동자’들은 언제나 배움을 통해 삶의 길을 열어주는 동지였다. 어려움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어려움을 과도한 비장함으로 포장할 뿐아니라 너무도 쉽게 좌절했다. 노동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판단했으며, 꾸밈없고 단순하게 문제를 받아들였다. 혁명가를 자청하는 지식인들이 문제를 분석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문제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갔다. 머리와 가슴, 그리고 손 사이에 어떠한 간극도 없음! 크로포트킨은 이 간극을 없애는 것이 혁명의 출발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길을 간다. 막대한 유산 상속, 위로부터의 개혁을 위한 관료로서의 삶, 학계의 권위 있는 지도자로서 얻게 될 명예와 힘. 그는 이 모든 것을 버린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가진 간극 없는 삶을 배우기 위해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의 삶부터 바꿔라! 이것이 그가 살아낸 아나키즘이었다. ●레닌에게 물었다 “우리란 누굴 말하는 겁니까?” 러시아 2월 혁명. 크로포트킨은 40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러시아로 돌아온다. 이어진 10월 혁명. 레닌을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는 이 혁명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이어간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한다. 그래도 호랑이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법. 레닌은 1919년 크로포트킨을 만난다. 레닌은 크로포트킨의 ‘프랑스혁명사’를 극찬하며, 이 책을 인쇄해 전국에 배포하고 싶다 말한다. 크로포트킨은 그 책을 정부인쇄소가 아닌 소비조합과 같은 곳에서 출판할 조건을 내건다. 레닌, “희망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우리는 전적으로 편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크로포트킨, “우리란 누굴 말하는 겁니까? 정부 말인가요?” 허를 찔린 레닌은 대답을 얼버무린다. 레닌은 여전히 혁명을 도달해야 할 무엇으로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혁명의 중간 단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크로포트킨의 생각은 달랐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상호부조·相互扶助)” 이것은 도달해야 할 이념이 아니라 자연 법칙이고,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일구는 현재적 조건이었다. 제도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그 의도가 아무리 민주적일지라도 지배 기구는 모두 악”이다. 국가를 위시한 온갖 사회적 제도들은 만인을 노예 상태로 묶어 둔다. 레닌이 말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도 결국은 하나의 제도로 새로운 노예 상태를 만들어 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로 인해 가려진 인간 본성, 그 상호부조의 본성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혁명의 지점은 여기에 있었다. 혁명의 지도자든 농민이든 노동자든 바로 그 자신의 삶에서 이 본성을 찾아내고 구현해야 한다. 때문에 크로포트킨에게 노동자를 ‘위한’ 활동은 없다. 혁명은 누가 누구를 구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구원의 주체와 대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크로포트킨은 직접 노동자가 ‘되는’ 활동을 했다. 그는 농민과 노동자들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배운 만큼 글로 써 내려갔다. 배움을 실천하는 삶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실천. 이 과정을 통해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 사상의 이론가가 되었다. 크로포트킨이 최후에 쓰고자 했던 책은 ‘윤리학’이었다. 이것은 혁명에 관한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크로포트킨의 질문은 ‘노동자들을 위한 세상이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 노동자가 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자만이 혁명가였다. 폭약 냄새와 무질서, 혹은 대규모 시위로 혁명을 떠올리는 우리들 앞에, 크로포트킨은 이런 혁명가의 초상으로 우뚝 서 있다. 신근영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TV 쏙 서울신문’ 방송 1주년

    ‘TV 쏙 서울신문’ 방송 1주년

    서울신문이 만든 시사정보프로그램 ‘TV 쏙 서울신문’이 방송 1주년을 맞았다. ‘TV 쏙 서울신문’은 지난해 6월 4일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첫 회가 나간 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서울신문 기자들이 알차고 신속한 정보를 전하며 시청자들을 만나 왔다. ●연평도 영상특종 쾌거도 3일 53회를 방송하기까지 숱한 화제를 뿌렸다. 960번 만에 운전면허를 딴 차사순 할머니는 인터뷰 후 다른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가 하면 TV광고를 장식하며 소형차를 받는 행운을 누렸다. 또 최근에는 대한제국의 상징적 적통을 이은 황사손(皇嗣孫·황실의 대를 잇는 후손) 이원(49)씨를 만나 잊혀진 황실의 의미와 우리나라 역사관을 새롭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울러 지난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도발 당시 3주 동안 연이어 특집방송을 꾸려 연평도 상황과 주민의 어려움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방송 최초로 연평주민들의 대피소 상황을 영상에 담아 전 세계에 긴박한 상황을 알리기도 했다. 이어 전국 축산농가를 위협한 구제역 사태 이후 생생한 지역 분위기를 전하고, 가시지 않는 축산농민의 쓰린 아픔을 담아내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제작진은 “색다르고 깊이 있는 정보를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뛰었는데 아쉬운 점도 많았다.”면서 “앞으로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1주년 특집은 ‘신재생 에너지’ ‘TV 쏙 서울신문’ 방송 1주년 프로그램은 미래를 준비하는 의미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태로 더욱 중요해진 ‘신재생 에너지 특집’으로 꾸렸다. 원전 지역의 갈등과 함께 풍력과 조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가 과연 에너지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짚어 본다. 재방송은 4일 오전 7시와 오후 7시에 볼 수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신임 장관들 ‘현장속으로’

    신임 장관들 ‘현장속으로’

    새로 임명된 장관들이 취임하자마자 3일 생생한 현장의 민심을 듣기 위해 일제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일 신임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장관들은 직무와 관련된 현장에 많이 가야 한다.”면서 “주중에 시간이 없으면 주말에라도 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전 중소기업 제품 유통센터인 ‘행복한 세상 백화점’을 방문했다. ‘행복한 세상 백화점’은 중소기업의 판로 개척을 위해 1995년 문을 연 중소기업 전용 백화점이다. 내수 확대에 방점을 찍으면서 대·중소기업 동반 상생을 주요 정책과제로 삼겠다는 뜻이다. 한 넥타이 판매장 앞에서 박 장관은 “넥타이가 5000원이면 정말 싼 것인데 주변에 이런 곳이 있으면 자주 이용할 것 같다.”면서 “중소기업들을 인큐베이팅 과정에서 조금만 밀어주면 스스로 일어서는 기업이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장관은 중소기업 대표, 영세상공인, 청년 창업가 등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현장의 경영 애로사항과 해소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박 장관은 유통망을 확보해 달라는 건의에 대해 “유통센터 건립을 위해 유휴 공공건물과 정부 국유지를 활용하는 방안 등을 고민해 보겠다.”면서 “정부의 세금 지원이 많으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점도 고려해 진정성을 갖고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유영숙 장관 4대강 공사장 점검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찾았다. 서 장관은 경북 문경의 신미네 영농조합법인과 양파 재배 현장을 방문해 “농협과 계약재배한 2만 7000t을 수매하고 추가로 5만t을 정부가 사들인 뒤에도 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나중에 2만t 정도 추가로 수매할 예정”이라고 양파 수급 불안에 대한 대책을 소개했다. 그는 이어 경북 안동 구제역 매몰지로 이동해 매몰지 실태를 점검하고, 장마철에 대비해 매몰지 관리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4일 새벽에는 부산 공동어시장과 국제도매시장 등을 방문해 수산 분야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할 예정이다. 유영숙 환경부 장관은 이날 계룡산국립공원에서 열린 ‘제16회 환경의 날’ 기념식을 마치고 오후에 4대강 사업 현장과 하수처리시설을 잇따라 방문했다. 유 장관은 4대강 정비사업이 한창인 금강의 금남보를 찾아 현장 브리핑을 듣고 공사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어 대전 공공하수처리시설을 방문해 철저한 오염원 처리와 장마철에 대비한 안전대책 마련 등을 주문했다. ●이채필 장관 최고 숙련 기술인들 만나 앞서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임 직후인 지난 1일 경기 이천의 하이닉스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현장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 장관은 3일 오후에도 정부과천청사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숙련 기술인 1400여명과의 만남’ 행사를 통해 기술인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유진상·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박테리아 오이’ 외교 갈등

    장출혈성대장균(EHEC) 감염으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확한 오염원이 밝혀지지 않으면서 유럽 각국의 외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31일(현지시간) 현재 이 ‘킬러 박테리아’로 인한 사망자는 16명, 피해 환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이런 가운데 당초 스페인산 오이를 오염원으로 지적했던 독일은 최근 검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입장을 바꿨다. 로베르트 클루스 독일 농업장관은 헝가리에서 열린 유럽연합(EU) 농업장관 회의에 참석해 “독일은 스페인 오이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도 “킬러 박테리아로 인해 독일과 스페인·프랑스·러시아 같은 나라들 사이에 외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면서 “오이가 스페인에서 오염됐는지, 독일 내부 등 운송과정에서 오염됐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오염원으로 지목돼 농산물 수입 금지 국가로 낙인찍힌 스페인은 발끈했다. 로사 아길라르 스페인 농업장관은 “독일이 아무 증거도 없이 책임을 떠넘기는 바람에 스페인 농업이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면서 “손실 보상을 위해 EU 차원의 특별조치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인 농민들은 농산물 판매 손실이 주당 2억 유로(약 380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알프레도 페레스 루발카바 스페인 부총리는 1일 “우리 오이를 오염원으로 의심했던 독일 함부르크시를 상대로 조치를 취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독일과 덴마크, 체코, 룩셈부르크, 헝가리, 스웨덴, 벨기에, 러시아가 스페인산 오이의 수입을 금지했다. 또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스페인산 오이와 양상추, 토마토에 대한 검사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독일과 스페인을 싸잡아 비판했다. 자비에 베르트랑 보건장관은 프랑스 2TV에서 독일과 스페인 정부에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또 러시아는 상황 변화가 없으면 수입금지 대상 국가를 독일과 스페인에서 EU 회원국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네덜란드 농민들은 독일로의 오이 수출이 거의 중단돼 수백만 유로의 손실을 입었다며 발을 구르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항일의병 기념공원 개장

    강점기 일제에 맞서 싸운 의병의 혼을 기리는 전국 유일의 항일의병기념공원이 경북 청송에서 문을 연다. 청송군은 2일 부동면 상평리 항일의병기념공원에서 개관식을 갖고 일반에 공개한다고 1일 밝혔다. 1일은 국가가 정한 제1회 의병의 날이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과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관용 경북지사, 주민 등 600여명이 참석한다. 2007년 착공, 국비 및 지방비 등 총 58억원을 들여 상평리 일대 부지 1만 2000여㎡에 조성했다. 항일의병기념공원은 전시관을 비롯해 건국 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전국 의병 선열 1927인(2009년 독립유공자 인명록 기준)의 위패를 모신 충의사와 선양회 사무실 등이 있는 동·서재, 강당인 창의루, 관리사 등을 갖췄다. 모두 전통 한옥이다. 구한말 청송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항일 의병 봉기인 ‘병신창의’를 토대로 성역화했다. 병신창의는 1895년 일본의 단발령과 을미사변 등의 만행에 격분한 청송지역 유생과 농민 수백명이 궐기, 일본군에 맞선 의병 활동이다. 당시 85일 동안의 활동은 ‘적원일기’(赤猿日記)에 자세히 기록돼 전해지고 있다. 군 관계자는 “1996년 적원일기 발굴을 계기로 청송 의병의 선비정신을 기리고 충혼을 위로하는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항일의병기념공원 조성 사업이 대표적이다.”고 말했다. 청송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정명훈의 극찬 받은 조성진 독주회

    정명훈의 극찬 받은 조성진 독주회

    2009년 일본 하마마츠 국제 피아노콩쿠르는 최연소(당시 15세) 우승자를 배출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은 일본 피아니스트 나카무라 히로코는 “오랜만에 들어본 월등하고 거대한 재능”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칭찬에 인색한 것으로 유명한 마에스트로 정명훈조차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음악을 이해하려면 시간이나 경험이 필요한데도, 단지 테크닉뿐 아니라 음악의 큰 그림을 볼 줄 안다. 내가 칭찬을 잘 안 하는 지휘자로 유명한데 그에게만큼은 아끼고 싶지 않다.”며 극찬했다. 천재 피아니스트로 주목받는 조성진(17) 얘기다. 그가 새달 1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독주회를 연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수차례 올랐던 조성진이지만 그땐 어디까지나 협연자였다. 1100석의 큰 무대를 홀로 책임지는 독주회는 처음이다. 조성진은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제31번과 차이콥스키의 둠카(애가·哀歌) ‘러시아의 농민풍경’, 슈만의 유모레스크,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제 2년: 이탈리아’ 중 제7곡 ‘단테를 읽고’(소나타풍의 판타지)를 통해 섬세하면서도 휘몰아치는 듯한 터치와 왕성한 소화력을 뽐낼 계획이다. 조성진은 새달 15일부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 나선다. 멘토인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197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피아노 부문에서 준우승했던 무대이기에 각오가 남다르다. 모스크바는 그에게 제6회 국제 청소년 쇼팽콩쿠르 우승을 안겼던 기분 좋은 장소다. 2만~5만원. (02)518-7343.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