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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내기부터 쌀 수확까지 우리가 해봐요”

    “모내기부터 쌀 수확까지 우리가 해봐요”

    “학교에서 모내기도 하고 쌀도 생산하고” 충남도는 17일 대전 서대전초등학교에서 학생과 학부모, 농민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시학교 친환경농업 첫 모내기’ 행사를 열었다. 이는 학교에 생태학습농장을 만들어 학생들이 교내에서 농촌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농민들은 자신이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을 이들 학교에 급식 식자재로 판매하는 상생발전 사업이다. 도는 지난해 서울 8개, 대전 6개 등 14개 초등학교에서 시범사업을 벌인 데 이어 이날 본격 사업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도 관계자는 “교내에서 농촌체험학습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이 사업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도는 다음 달 중순까지 3억원을 들여 서울 55개, 대전 25개, 충남 20개 등 모두 100개 도시지역 초등학교에 농촌학습농장을 만들 계획이다. 이 농장은 길이 65㎝, 폭 45㎝ 크기의 고무화분 150개로 만들어진다. 학생들이 이곳에 모를 심은 뒤 물을 주고 피도 뽑아주면서 키운다. 가을에는 학생들이 직접 낫을 들고 벼를 벤 뒤 수동 탈곡기로 쌀을 도정한다. 수확한 쌀은 일부 급식 식자재로 보탤 예정이다. 농민들이 틈틈이 학교를 찾아 벼 재배과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사업에 참여하는 충남 농촌마을은 모두 15개. 마을당 여러 학교와 교류하고 일부는 자매결연까지 체결해 학생들이 자기 마을을 찾아 현장 체험도 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도 관계자는 “친환경 농산물 판로확보 목적도 있지만 도시 학생에게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 등 정서함양에 도움을 주는 의미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권익위, 합천창녕보 주변 수박 피해 “기관 공동조사” 중재

    4대강 사업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수박 농가의 호소에 국민권익위원회가 중재에 나섰다. 권익위는 경북 고령군의 수박 주산지인 우곡면 연리 수박농가들의 피해 주장에 대해 관계 기관과 중재 합의안을 마련했다고 15일 밝혔다. 지난해 12월 이 지역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농민 145명은 비닐하우스 800여동의 절반 이상에서 수박이 영글지 못하고 변형이 생기자 4대강 사업으로 인근 낙동강에 들어선 합천창녕보에 따른 침수 때문이라며 권익위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국수자원공사와 한국농어촌공사 등 관계기관은 예년에 비해 비가 3배 이상 내린 데다 배수체계 불량 등이 원인일 수 있어 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권익위는 “중재합의안에 따라 두 기관과 경상북도, 고령군 등이 30일 내로 공동실무협의체를 구성해 공동 조사용역을 의뢰하기로 했다.”면서 “조사를 거쳐 원인 책임비율을 산정, 농민들에 대한 보상대책을 마련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논 잡초 효율적 제거하려면 제초제 2~3년 주기로 교체

    논의 잡초를 효율적으로 제거하려면 2~3년을 주기로 성분이 다른 제초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5일 충북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도내 12개 시·군 400여곳의 논 토양시료를 채취해 잡초가 자라게 한 뒤 설포닐우레아계 제초제를 뿌렸더니 25%인 100여곳에서 잡초가 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내 농가의 70% 이상이 사용하는 설포닐우레아계 제초제에 대한 잡초의 저항성을 조사한 것이다. 제초제를 바꿔 가며 사용하는 농가가 많은 경남 지역의 경우 제초제에 대한 잡초의 저항성이 10% 이내로 나왔다. 농민들이 설포닐우레아 성분이 들어간 제초제를 선호하는 것은 가격이 다른 것보다 50% 저렴하고, 오랫동안 쓰다 보니 사용법 등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항성이 생겨 효과가 적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의원등록하고 종적 감춘 이석기·김재연

    의원등록하고 종적 감춘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 3번인 이석기(왼쪽)·김재연(오른쪽) 당선자가 ‘비례대표 사퇴 권고안’과 무관하게 19대 국회의원 등록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통진당은 이 당선자가 지난 4월 17일 등록을 완료했다고 15일 밝혔다. 비례대표 부정 경선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 일이다. 행정 절차에 불과하지만 이·김 당선자가 국회 등록을 끝냈다는 점에서 자진 사퇴의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통진당은 지난 14일 중앙위원회에서 ‘경쟁명부 비례대표 후보 전원(14명) 총사퇴 권고안’이 포함된 ‘당 혁신 결의안 채택의 건’을 전자투표를 통해 가결했지만 권고안에 불과해 사퇴를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명은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분의2 찬성이 필요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는 오는 30일까지 자진 사퇴를 결정할 시간은 남아 있다. 그러나 이·김 당선자는 사퇴 불가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듯 보인다. 두 당선자는 사실상 ‘연락 두절’ 상태다. 두 당선자가 ‘버티기’에 들어간 동안 다른 비례대표 당선자 및 후보들은 대부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윤금순(1번) 전 전국여성농민총연합회장, 이영희(8번)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오옥만(9번) 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노항래(10번) 공동정책위의장, 나순자(11번) 전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윤난실(13번) 전 진보신당 부대표, 황선(15번)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문경식(16번) 진보사랑 공동대표, 박영희(17번)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김수진(19번) 우리들헬스케어 상무이사, 윤갑인재(20번) 건설산업연맹 정치위의장 등 11명은 사퇴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회종합지원실 관계자는 이날 “이·김 당선자가 등록한 게 맞지만 개인정보의 문제다. (등록 날짜 등은) 당선자가 알려지는 걸 원치 않을 수 있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국민이 선출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당선자의 등록 날짜를 개인 정보를 이유로 들어 확인을 거부한 국회의 행동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강기갑·김영훈, 黨 쇄신 ‘속도전’

    강기갑·김영훈, 黨 쇄신 ‘속도전’

    통합진보당 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강기갑(왼쪽)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밖에서 쇄신 압박을 가하는 김영훈(오른쪽)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당권파를 구석으로 몰고 있다. 이석기·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가 사퇴를 거부하고 구당권파가 당 혁신결의안과 비대위 구성안을 의결한 중앙위 전자투표를 무효라고 선언하며 법적 소송까지 제기할 조짐을 보이자 신당권파와 민주노총은 쇄신 작업에 가속도를 냈다. 무당파인 한 관계자는 “안팎으로 쇄신 압박이 가해지자 구당권파도 여론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신당권·구당권 구별않고 같이 가야” 강 위원장은 당의 추락을 막기 위해 극심한 내분부터 봉합하고자 구당권파에도 비대위의 문을 열어 놓고 인선 작업을 서두르는 중이다. 내홍을 겪으며 갈라선 ‘한 지붕 두 가족’이 비대위 안에서 함께 쇄신 작업을 하며 뭉치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비대위는 신당권파 인사와 외부 영입 인사를 대상으로 인선을 추진 중이거나 거의 마무리하고 구당권파 몫의 자리만 남겨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가능하면 신당권파와 구당권파를 구별하지 않겠다. 삼고초려를 겪더라도 같이 가야 된다.”고 강조했다. 또 통진당이 분당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실상 갈라설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선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강 위원장의 바람과 달리 전자투표에 의해 출범한 비대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구당권파가 비대위에 참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강 위원장은 이와 함께 민주노총과 농민·시민사회단체 인사들에게도 비대위 참여를 요청했다. ●“지금 통진당 민노총이 지지 불가능” 민주노총은 이보다 강도 높은 쇄신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충격요법’이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17일 열릴 9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통합진보당을 버리고 새 당을 만들 것인지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의 통진당을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새 당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통진당 문제에 전면 개입해 당의 주체로 설 것인지 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정·이범수기자 hjlee@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1) 허균과 김육

    [선택! 역사를 갈랐다] (11) 허균과 김육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1569~1618)과 대동법의 주창자 김육(1580~1658). 임진왜란 전에 연이어 태어나고 한 세대 이상의 차이로 생을 마감한 두 사람은, 서로 교분은 없었지만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다.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 허균은 조숙한 천재로 이름을 날렸으나 이단아, 괴물로 비난받다가 50세에 반역죄로 죽었다. 몰락한 가문 출신인 김육은 45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70세에 정승이 되었고, 조선을 대표하는 명재상의 반열에 들었다. 두 사람의 희비가 엇갈린 것은 시대가 그만큼 격동하였기 때문이었다. 낡은 질서가 균열하고 새 살이 돋아날 때 지식인은 현실 변화를 모색한다. 그 점에서 그들은 출발점을 공유했다. 그러나 여정과 도달점은 너무나 달랐다.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던 시기, 그들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남겼는가. ●시인의 감성 vs 경세가의 의지 허균은 최고의 명문가 출생이었다. 부친 허엽과 맏형 허성은 동인(東人)의 영수로 활약했고, 둘째형 허봉은 관료와 시인으로 유명했다. 누님 허난설헌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시인이다. 화려한 가문의 정수를 허균은 모두 흡수했다. 26세에 문과에 급제했고, 당대를 주름잡던 시인 이달에게 시를 배우고 마침내 뛰어넘었다. 그는 시평에도 탁월하였다. 명나라의 뛰어난 문사 주지번(朱之蕃)과 시를 화답하고 조선의 시를 소개하는 감식안을 두고, 신흠 같은 문장가 또한 “이 자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정령이 변한 것이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천재 시인 허균은 분방한 기질 때문에 평생을 비난받았다. 귀양지에서 그는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신다는 뜻의 ‘도문대작’을 짓는다. 사대부가 팔도의 진미를 소개하는 일도 드문 일인데, 그는 한 술 더 떠 “식욕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조관기행’이란 글에서는 기생들과의 만남과 놀았던 일까지 솔직히 고백하였다. 그는 도덕 아래 가려 있던 인간의 감성과 욕망, 그 즐거움을 가식 없이 내보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조선, 전쟁의 참화를 겪고 주자학을 재건 이데올로기로 선택한 조선의 상황은 그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비정한 현실일 뿐이었다. 김육은 몰락한 가문 출신이었다. 고조부 김식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자결한 뒤로 가문은 한미해졌다. 부친과 모친마저 임진왜란 전후에 사망하였기에 그는 고모부에게 의지하며 컸다. 26세에 문과 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광해군이 신임하는 정인홍을 비판한 일 때문에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서 관직에 오를 희망을 접어야 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영영 재야에 남아 있었을지도 몰랐다. 앞날을 예감할 수는 없었지만, 김육의 내면에는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중요한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그는 어릴 적 ‘소학’을 읽다가 사람과 사물을 사랑하고 타인을 구제한다는 ‘애물제인’(愛物濟人)이란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게 되었다. 훗날 그는 “애물은 인(仁)에 근본하고, 제인은 의(義)에 근본하고, 의혹을 푸는 일은 지(智)에 근본한다.”고 정리하였다. 어짊에 기반한 사랑, 바름에 기반한 헌신, 그리고 앎에 기반한 판단을 사람의 본성으로 보았던 그는 사랑에 기초해서 전개되는 구체적인 개혁과 실천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편력하는 이무기 vs 기다리는 잠룡 허균의 호는 교산(蛟山)이다. 자신이 태어난 강릉 인근에 이무기(蛟)가 출현해서 생긴 지명에서 땄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분방한 행동은 당시 기준으로는 비상식적이었기에 그에게는 의례 비방이 따라다녔다. 요망한 자, 천지간의 괴물, 인륜을 어지럽힌 자, 금수 등이었다. 사상의 편력 또한 행실에 못지않았다. 사명당을 비롯한 승려들과 두루 사귀고 도가 수련에도 빠졌으며, 서학과 천주교까지 접하였다. 비판에 대한 허균의 대항 논리는 명쾌하였다. “남녀 간의 정욕은 하늘이 주신 것이요, 인륜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이 성인보다 높으니 차라리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하늘이 내려주신 본성을 어길 수 없다.”고 했다. 자연스러움을 최고 기준으로 내세우는 그의 논리에서, 성인이 내세우는 도덕과 사회 기강은 근본을 거슬러 재규정하는 일에 불과했다. 임진왜란 이후 주자학을 통해 사회를 재구축하던 긴박한 시대에서 그런 논리는 불온하기 짝이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비판받는 허균은 명분에 얽매인 이들에게 경고했다. 그대들은 명분을 앞세워 하늘이 내린 재주 있는 자들을 배척하고 있다(‘유재론’). 재주 있는 자가 한 번 호령하면 원망을 품은 백성과 숨죽여 있던 이들까지 동조하여 가장 무서운 세력이 된다(‘호민론’). 하늘 아래 평등한 인민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녔던 그는 주류에서 이탈한 비주류, 조선에서는 결코 용이 될 수 없는 그야말로 이무기였다. 김육의 호는 잠곡(潛谷)이다. 출사의 길이 막혀버린 34세, 농사지으러 내려간 경기도 가평의 잠곡이 그의 호가 되었다. 처음에는 거처할 곳이 없어 굴을 파고 나무를 대충 얽어 지냈다고 한다. 당시 생활을 보여주는 기록은 거의 없지만, 그가 여기서 농민들과 어울리고 노동의 질고를 체험하였음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소탈한 농사꾼 김육은, 서울에서 간혹 귀한 이가 찾아와도 입던 옷 그대로, 하던 일 그대로 맞이하였다. 가문에는 전설 같은 일화도 전한다. 농한기에는 숯을 구워 서울에 가 팔았는데, 새벽에 동대문을 열면 맨 처음 들어오는 숯장수가 그였다고 한다. 은거한 지 3년째 김육은 회정당(晦靜堂)이란 작은 집을 지었다. 그런데 ‘어둡고 고요하다’(晦靜)는 이름에 담긴 뜻이 의미심장하다. 후배 장유는 그 뜻을 이렇게 풀었다. “군자는 험난한 상황에서 천하를 경륜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곤궁한 생활도 달게 여긴다. 소리를 거두고 빛을 갈무리하니 그가 있는지도 모른다. 급기야 기운이 무르익어 움직이면 산악을 흔들고 하늘을 밝히니 그 기세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기회는 오게 마련이다. 회정당에서 세상을 나갈 때를 기다리며 곤궁을 달게 여기는 김육은 때를 기다리는 잠룡이었다. ●홍길동의 꿈 vs 안민(安民)의 현실 허균은 감성에만 빠진 시인이 아니었다. 서얼, 천민과 스스럼없이 사귀었던 그는 그들의 희생에 값하는 지도층의 책임을 누구보다 강조하였다. 특히 정치의 잘잘못에 대한 국왕의 책임을 무섭게 걸고 넘어갔다. 주자학자들이 국왕의 마음가짐을 강조하며 결과에 대한 검증을 모호하게 흐렸던 데 반해, 그는 정치·경제·국방 등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당시 현실에서 그 책임에 답할 사람을 과연 찾을 수 있었을까. 없다면 남은 길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자기가 탈출하거나 아니면 판을 새로 짜는 것이다. 현실에 저항하다 탈출하여 새 질서를 세우는 허균의 염원은 모두 ‘홍길동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꿈에 불과했다. 현실의 그에게는 탈출할 율도국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따르던 7인의 서자(庶子)가 역적으로 몰리자 극적인 변신을 꾀한다. 인목대비를 폐하려는 광해군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국왕의 측근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제자 기준격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하여 그는 전격적으로 능치처사되었다. 허균이 왕조의 전복을 정말로 꾀했는지는 미스터리다. 말년의 변신은 꿈을 접고 권력에 아부했던 모습일 수도, 아니면 반역을 위한 극적인 변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반역에 성공했을지라도 그가 꿈 꾼 평등은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것이었다. 신분의 완전 철폐는 그로부터 3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김육의 관운은 인조반정 이후에 순탄하게 풀렸다. 새 정부가 특별 기용하였고 문과에도 급제하였다. 출발은 늦었지만, 그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개혁책을 건의하였고 차근차근 실현하였다. 그가 일생 심혈을 기울인 개혁은 대동법의 확대 시행이었다. 세금 제도를 바꾸어 민생을 도모하는 대동법을 삼남에 확대하는 일은, 그가 우의정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행되었다. 김육은 대동법 말고도 여러 방면에서 민생과 복리를 위해 노력하였다. 병자호란 직후에는 ‘구황벽온방’이란 의서를 간행하여 기근과 돌림병을 막고자 하였다. 수차와 수레를 사용하여 생산력을 높이려 했고, 은광을 개발하고 점포를 설치하여 상공업을 진흥하려 했고, 도시에서 화폐를 유통하고 전국으로 확대하여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꾀했다. 그 주장들은 후대에 대부분 실현되었다. 시대를 선도할 수 있었던 그의 저력은 민생을 중심에 놓고 이념과 실질을 적절히 운용한 데 있었다. ●이상의 대동, 현실의 대동 유학의 경전 ‘예기’에는 차별 없이 모두가 행복한 대동 사회가 그려져 있다. 이 소박한 이상은 고대, 중세의 개혁·혁명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였고, 현대의 민주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와도 결합하여 변화의 불을 댕겼다. 17세기 초 조선의 갈림길을 두고 허균과 김육이 대동 세계를 기획한 것은 같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갔다. 허균은 거침없는 비판으로 위선을 폭로했고, 때론 일탈과 파격을 피하지 않았다. 김육은 현실에 충실했고 구체적인 실천에 주력했다. 허균이 하늘을 보며 세상을 뛰쳐나갈 때, 김육은 땅을 보며 세상 속으로 가라앉았다. “예절과 가르침이 어찌 자유를 구속하리오, 인생의 부침 다만 정(情)에 맡길 뿐. 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을 쓰시게, 나는 나대로의 삶을 이루겠으니.”(허균, ‘문파관작’) “성인의 법은 백성들에게 은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어리석고 생각이 얕아 학문이 어떠한 것인지 잘 모른다. 오로지 바라는 바는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일처리를 실질적으로 하는 것이니, 절약하여 백성을 아끼고 부역과 세금을 줄이는 것이다. 공허한 것을 추구하며 뜬구름 잡는 글은 숭상하고 싶지 않다.”(김육, ‘호서대동절목서’) 급진적인 평등을 꿈꾸며 자유롭게 인생을 편력한 허균도 매력적이지만, 노동 중에 묵묵히 인생의 도리를 깨친 김육의 통찰 또한 저력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선택을 앞에 둔 우리는 허균을 가슴 속에, 김육을 머릿속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이경구(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 중산층 품고 정치이념 ‘우향우’… 외연넓히기 나서

    통합진보당이 자신들이 대변할 계층을 확대한 강령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들만의 리그’였던 옛 민주노동당 때의 정치적 이념은 오른쪽으로 반보 이동해 대중성을 강화했다. 각각 다른 통합세력의 정치적 지향이 절충점을 찾은 결과이자, 연말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을 겨냥해 외연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10일 2차 전국운영위원회를 통해 개정된 강령에서 진보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청년, 여성, 중소영세상공인, 빈민, 사회적 약자 및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진보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대변하겠다.”고 밝혔다. 민노당 강령에 없었던 중소상공인이 ‘대변할 계층’으로 추가된 것이다. 진보당 싱크탱크인 진보정책연구원의 박경순 부원장은 “민노당 강령에 영세상공인이라는 표현은 있었지만 중소기업까지 포괄한 중소상공인이라는 말은 없었다.”며 “이는 중산층까지 포괄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진보당 내에서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재벌까지 포함한 전 계층을 대변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전날 운영위에서 강기갑 의원은 “재벌이나 부자까지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야 한다.”며 “이를 예외로 하는 것은 진보당의 범위를 협소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보당은 또 기존의 ‘재벌 해체’를 ‘독점재벌 중심 경제 체제를 해체해야 한다’는 문구로 완화하며 경제구조 개선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민노당 때의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라는 표현도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로 순화됐다. 당시 민노당은 강령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해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고 민중이 참 주인이 되는 체제”라고 규정했다. 진보당 강령이 밝힌 ‘진보적인 민주주의’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사회”라는 개념이다. 자본주의 폐해라는 말도 사라졌다. 박 부원장은 “과거 사회주의도, 현재의 자유 민주주의도 아닌 제3의 민주주의 형태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라는 말을 써왔는데,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업그레이드 해서 보다 발전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어 이번에 수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진보당의 뿌리를 설명한 강령 전문 첫 줄에 대해서도 이견이 분분했다. 통합진보당은 자신들이 ‘갑오농민전쟁과 의병운동, 3·1운동과 민족해방운동, 노동해방운동, 4·3항쟁, 4·19혁명, 부마항쟁과 5·18, 6월 민중항쟁, 7·8·9월 노동자 대투쟁, 촛불항쟁을 계승한 정당’이라고 설명했는데, 이 중 4·3항쟁은 제외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4·3항쟁은 지역적 사건이란 주장이다. 갑오농민전쟁과 의병운동도 너무 오래된 일이니 빼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 밖에 촛불시위는 정권 교체 등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 현재 진행형이니 강령에 넣기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가축방역협의회 11일 개최… 미국 소고기 검역 향방 주목

    농림수산식품부는 11일 중앙가축방역협의회 산하 광우병 위원회를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지난달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농장에서 광우병 발병 젖소가 발견된 뒤 처음 소집되는 협의회다. 농식품부 장관 자문기구인 협의회는 11일 새벽 귀국하는 미국 현지 조사단 보고를 받은 뒤 오전 9시부터 미국산 소고기 검역·수입 문제를 논의한다. 여인홍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협의회 자문과 내부 의사결정을 거쳐 오후 3시쯤 현지 조사 결과와 앞으로의 정부 조치방향에 대해 공식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광우병 위원회는 수의과학검역원 등 정부 기관과 의대·수의대 교수, 농민단체, 소비자단체 소속 등 21명으로 구성됐다. 한국이 수입하는 소고기는 이번에 미국에서 발병한 비정형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주장한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 포함되는 한편 미국산 소고기 검역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와 각을 세워 온 우희종 서울대 수의대 교수도 협의회의 일원이다. 농식품부는 협의회 자문을 받아 미국산 소고기 처리에 대한 후속조치를 세우게 된다. 현재 기류로는 검역·수입 중단 등의 강력한 제재 조치가 단행될 가능성은 낮게 전망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2000억 횡령…정관계 로비 추적

    금융 및 수사 당국은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영업정지에 따른 퇴출을 막기 위해 정·관계 인사 10여명에게 금품을 건넨 정황을 포착하고 확인에 나선 것으로 8일 알려졌다. 금융 당국은 김 회장이 수십 개의 차명계좌를 개설, 비자금 등을 관리해 온 사실도 파악하고 자금 추적에 나섰다. 또 김 회장이 밀항 직전 203억원을 인출한 데다 제3자를 내세워 1500억원대의 불법대출을 통해 충남에 있는 리조트를 소유한 점 등으로 미뤄 횡령액은 2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검찰은 이날 김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이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록 검토 결과 혐의 사실 소명과 함께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모두 인정된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과 금융당국·저축은행 업계 등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 명의로 된 저축은행 예금이 한 푼도 없었다. 김 회장이 차명계좌로 자금을 관리해 왔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에는 부인 하모씨의 예금이 10억여원, 아버지(81)의 예금이 2억원가량 들어 있었다. 하모씨는 지난해 9월, 아버지는 지난 3월 돈을 전부 인출했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은 고객들을 증자 등으로 안심시키고 있는 사이 가족의 돈만 빼돌렸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이 같은 사실은 적기 시정조치 사전통지를 한 지난 4월 12일부터 미래저축은행의 대주주 가족 및 임직원 예금 인출 사항을 관리하면서 뒤늦게 알았다.”면서 “돈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아버지는 충남 예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평범한 농민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에게 특별히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 수사 당국은 또 김 회장이 수십억원의 자금을 빌려 준 뒤 일부를 돌려받는 등 대출 자체를 부실하게 처리한 사실도 파악했다. 합수단은 전날 30여곳에 이어 이날 미래저축은행 본점(제주) 등 10여곳에 대해 추가로 압수수색을 실시해 대출·회계장부, 서버 전산자료 등을 확보했다. 합수단은 솔로몬·미래·한국·한주 등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임원들과 한맥기업(솔로몬) 등 계열사 직원들을 소환해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 대출과 횡령 액수 등에 대해 조사했다. 합수단은 특히 김 회장의 불법대출, 횡령 금액 및 용처 등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합수단은 현재 드러난 2000억원대보다 횡령액이 훨씬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또 김 회장으로부터 돈을 건네받은 인사 몇 명이 지난 7일 검찰로 찾아가 현금 뭉치 수십억원을 반납했다. 김 회장 측 변호인은 “지난해 9월 회사 회생을 위한 증자 당시 참여한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줬으며, 지난 3일 우리은행에서 인출한 200억원이 출처”라고 해명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조사 결과 정·관계 인사들이 줄줄이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적어도 10여명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래저축은행이 2008~2010년 사이 최태원 SK 회장에게 차명으로 동일인 대출 한도를 어기고 1000억원가량을 대출해 준 경위도 조사하고 있다. 한편 김 회장은 지난달 8일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 부근에서 별장 관리인이자 고향 친구인 김모씨가 자신이 승합차에 실었던 뭉칫돈 56억원을 훔쳐 달아났다고 주장했다. 이경주·홍인기기자 kdlrudwn@seoul.co.kr
  • ‘의성마늘’ 사상 최고가

    수확을 40일 정도 앞둔 경북 의성 한지마늘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8일 의성군과 마늘 재배 농민, 상인 등에 따르면 이날 현재 의성 한지마늘 밭떼기 가격은 660㎡(200평)에 최고가는 650만원, 평균 가격은 4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15% 정도 오른 가격으로 사상 최고가이다. 브랜드 마늘인 ‘의성마늘’의 수확기는 매년 6월 20일 무렵이다. 이처럼 ‘의성마늘’이 전례없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국내 난지형 마늘의 재배 면적 감소와 작황 부진에다 중국의 마늘 소비 증가에 따른 국내 수입 감소 때문으로 알려졌다. 김모(68·단촌면)씨는 “40년 농사에 올해 같은 마늘 가격은 처음”이라며 “명품 의성마늘의 희소가치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의성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통합진보당 해부] (2) 경기동부 연합 누가 이끄나

    통합진보당의 당권파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이석기(비례대표 2번) 당선자는 4·11 총선을 통해 정치 무대에 데뷔하기 전까지 이름도, 얼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베일속 인물’이었다. ●이용대·정형주 등 숨은 실세 거론 운동권 시절 민족해방(NL) 계열 조직 ‘자주민주통일운동그룹’(자민통)에서 활동했고, 이적단체로 판정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이며 경기동부연합에서 핵심 사업을 맡았다. 또 진보 매체인 ‘민중의 소리’ 이사와 당의 광고·홍보물을 독점한 광고기획사 ‘CNP전략그룹’의 대표라는 정도가 그와 관련해 알려진 전부다. 그러나 그는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서 1만 1235표를 얻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이자 구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었던 윤금순 후보를 압도했다. 당 안팎에선 경기동부연합의 조직적 투표가 이뤄진 결과로 보고 있다. 이 당선자가 핵심 실세라는 점은 당 내에서도 이견이 없지만, 무대 밖에서 조직을 ‘관리’해 오던 그를 경기동부연합이 모두의 주목을 받는 비례대표 후보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는 따로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용대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정형주 전 민노당 경기도당 위원장이 이른바 이 당선자 뒤의 ‘숨은 실세’로도 거론된다. 하지만 당권파 사정에 밝은 당의 한 관계자는 “이른바 ‘실세’를 정책위의장, 경기도당 위원장으로 내세웠겠느냐. 그 정도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들이 아니다.”라고 신빙성을 낮게 봤다. 비당권파의 다른 당 관계자는 “이정희 대표, 장원석 사무총장, 이의엽 정책위의장, 우위영 대변인, 신석진 대표 비서실장 등이 당내에선 ‘5인회의’라고 불렸는데, 회의를 하다가도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는 정회하고 따로 나가 회의를 했다. 이석기씨의 지시를 받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며 이 당선자가 사실상 핵심 실세라는 주장에 무게를 뒀다. ●“李의 등장은 고육책” 지적도 당내에선 대선을 앞두고 경기동부연합이 실세를 정치 무대에 세워도 될 만큼 진보 운동이 대중화됐다고 판단, 이 당선자를 원내에 입성시키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통합진보당 해부] ① 당권파 경기동부연합은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인 민족해방(NL) 계열의 경기동부연합은 점조직화돼 있어 조직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 누구인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폐쇄적 조직이다. 더구나 학맥으로 촘촘히 얽혀 있어 표면화되지 않았는데도 결속력이 강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부정 경선 사태로 2008년 분당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는데도 경기동부연합이 비례대표 후보 2번 이석기 당선자와 3번 김재연 당선자의 사퇴를 온몸으로 막고 있는 데는 ‘내 조직 지키기’ 식의 이런 폐쇄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당 안팎의 중론이다. 학생티를 벗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운동권 조직인 셈이다. 경기동부연합의 모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은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 13개 단체와 재야 및 학생운동권을 두루 엮어 출범했다. 경기동부연합은 당시 전국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지역연합 8곳 중 하나다. 경기동부연합과 함께 당권파로 거론되고 있는 인천연합, 울산연합, 광주·전남연합 모두 전국연합의 지역 지부였다. 처음부터 경기동부연합이 당 주류였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2000년 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출범한 이후 대거 당에 입당, 지역위원회를 장악해 가며 세를 불려 갔다.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가 초반 진보정당 운동의 중심이었고 민주노총이 민노당 대의원 중 30%에 가까운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2004년 무렵에는 구도가 바뀌어 전국연합과 민주노총이 진정추의 세를 압도했다. 평등파로 분류되는 조승수 의원, 노회찬 대변인 등이 진정추 출신이다. 경기동부연합이 세를 불릴 수 있었던 데에는 학생운동도 한몫했다. 지금은 해체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강경파였던 경기동부총련 출신의 한 인사는 “정형주 전 민노당 경기도당위원장이 각급 학교로 이른바 ‘지도 사업’을 나왔었다.”고 말했다. 경기동부총련 출신 학생운동권 일부는 졸업 후 지역에 남아 경기동부연합과 관계를 유지하며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이자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집행위원장 출신인 비례대표 3번 김재연 당선자가 이와 유사한 케이스다. 경기동부연합 출신에는 서울대 운동권과 특히 한국외대 운동권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비례대표 2번인 이석기 당선자가 한국외대 82학번이고, 정 전 경기도당위원장도 같은 학교 84학번이다. 이 밖에 4·11 총선에서 경기 성남중원에 출마했다가 성희롱 파문으로 낙마한 윤원석(86학번) 전 민중의소리 대표, 우위영(84학번) 진보당 대변인, 편재승(87학번) 전 민노당 사무부총장, 김기창(85학번) 전 민노당 성남시협의회의장, 이양수(85학번) 전 민주노총 조직실장이 한국외대 출신이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는 이의엽 통합진보당 정책위의장, 이상규(서울 관악을) 당선자, 이용대 전 민노당 정책위의장이 경기동부연합으로 분류되는 진보당 인사다. 당 주류였던 이들은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를 거치며 점차 고립되는 양상이다. 범당권파로 분류되던 인천연합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출신인 비례대표 1번 윤금순 당선자의 사퇴와 함께 등을 돌렸고 울산연합의 지지도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비당권파 관계자는 “다른 당권파들이 당을 지키려고 하는 가운데서도 경기동부연합만은 패권을 지키려 움직이고 있다.”며 “이들의 폐쇄성과 대중적 진보정당은 양립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편파적 조사 수용 못해” 이정희대표 사퇴 거부

    “편파적 조사 수용 못해” 이정희대표 사퇴 거부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가 4일 비례대표 부정 경선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단이 즉각 총사퇴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이 공동대표는 당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대해 “편파적 부실조사로, 공동대표단의 논의에서도 배제된 단순 보고 사안”이라며 이를 채택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부정 경선 파문을 둘러싼 진보당 내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의 갈등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분당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국회 원내로 처음 진입한 2004년 17대 총선 후 8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전국운영위에서 “책임져야 할 현실을 피하지 않겠으며 6·3 당직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면서도 “지도부의 즉각 총사퇴와 비상대책위 구성은 장기간 당을 표류시킬 옳지 못한 선택”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오는 12일 향후 정치 일정이 확정될 중앙위가 끝나는 즉시 제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와 관련, “불신에 기초한 의혹만 내세울 뿐 합리적 추론도 하지 않았다. 부풀리기 식 결론은 모든 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진상조사위는 진실을 밝힐 의무만 있지 당원들을 모함하고 모욕을 줄 권한은 없다.”며 “당원 누구도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역공했다. 경선 부실 관리의 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는 김승교 중앙선관위원장은 “경선 한 달 전부터 당비 5000원을 납부하고 유권자가 된 당원이 1만 9000명에 달할 정도로 이미 과열됐고 선관위는 뒤처리도 벅찼다.”며 “지역구 당선자들도 현재 문제가 된 동일한 온라인 시스템으로 경선을 치렀다. 총체적 부실·부정 딱지를 붙이면 지역구 후보라고 안전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비당권파인 유시민 공동대표는 “부정이냐 부실이냐를 떠나 우리 당의 비례대표 경선이 민주주의 일반 원칙과 상식에 어긋났다고 생각한다.”고 강하게 대립했다. 앞서 진보당 윤금순 비례대표 1번 당선자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의 조직 후보로서 비례대표 경선 사태에 대한 입장을 같이해 당선인으로서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직접 사퇴를 언급하지는 않아,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인물인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의 사퇴를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안동환·송수연기자 ipsofacto@seoul.co.kr
  • [통합진보당 갈등 최악] “경선 비례후보 전원 사퇴해야”…윤금순 1번 당선자 “책임질 것”

    통합진보당 윤금순 비례대표 1번 당선자가 4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조직의 후보이자 당선자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자진 사퇴의 뜻을 밝히고 당 지도부와 비례대표 순위 경선 참여 후보 전원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파문으로 당이 국민께 많은 실망과 걱정을 끼친 점을 매우 송구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하며 사과드린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부정 경선을 통해 비례대표 상위 후보가 된 뒤 4·11 총선에서 당선된 이석기(2번)·김재연(3번) 비례대표 당선자뿐 아니라 낙선한 나머지 비례대표 후보들도 비례대표 승계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진보당의 배타적 지지단체인 전여농은 기자회견에서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경선 자체가 투표한 값을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며 이같이 요구했다. 하지만 윤 당선자의 사퇴가 즉각 이뤄지는 것인지, 다른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사퇴를 전제로 한 ‘조건부’ 사퇴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굳게 입을 닫았다. 일부에서는 경기동부연합의 비례대표 2번 이석기·3번 김재연 당선자의 사퇴를 촉구하기 위한 압박 카드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진상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도 비당권파 쪽에서는 당권파가 윤 당선자만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아 사퇴시키고 문제가 된 나머지 당선자들을 남기려 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했었다. 윤 당선자가 기자회견에서 “저도 책임을 지겠다.”고 했을 뿐 직접 사퇴를 거론하지 않은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 경선 참여 후보 전원의 사퇴를 전제로 한 조건부 자진 사퇴로도 해석된다. 윤 당선자는 구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출신이기는 하지만 당 주류로 등장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지역 지부인 ‘경기동부연합’이 아닌 ‘인천연합’과 가깝다. 순위 투표 후보자 전원 사퇴를 요구한 것도 ‘비당권파가 자기 계파 후보의 비례대표 승계를 노리고 1~3번 당선자 사퇴를 주장한다.’는 식의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당권을 쥐고 있는 ‘경기동부연합’은 그러나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여전히 자기 계파의 이·김 당선자를 감싸고 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다시 주목받는 中 인권운동가들

    다시 주목받는 中 인권운동가들

    죽음을 무릅쓰고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인 천광청(陳光誠)의 기적적인 탈출을 도와준 중국 인권운동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우편배달원으로 가장해 공안(경찰)을 따돌리고 산둥(山東)성 린이(臨沂)시 이난(沂南)현 둥스구(東師古)촌 집에 있던 천을 베이징까지 차로 데려와 ‘배트걸’이란 별명을 얻은 허페이룽(何培蓉)은 지난 1일 난징(南京)의 자택에 연금 중이라고 홍콩 명보가 2일 보도했다. 영어교사인 허는 수차례 둥스구촌의 천을 찾아갔다가 협박·구타·감금된 바 있는 인권운동가이다. 탈출을 도와준 뒤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네티즌들은 그녀의 아이디 ‘펄 허’(Pearl her)에서 따온 ‘진주를 돌려달라’(還我珍珠)를 구호로 석방촉구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웨이보(微博·트위터)를 통해 장위(姜瑜) 외교부 대변인을 향해 “당신은 천이 자유의 몸이라고 떠들지만 현지 정부 관계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공개 도전했을 정도로 반골(反骨) 기질을 지녔다. 천을 인계받아 베이징 미국 대사관에 들여보낸 궈위산(郭玉閃)은 노벨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 주도로 2008년 303명이 서명한 중국 민주화 촉구선언 ‘08헌장’에 이름을 올린 반체제 학자다. 공맹(公盟) 등 시민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달 30일 공안당국에서 풀려났다. 총연락책을 맡았던 베이징의 후자(胡佳)와 그의 부인 쩡진옌(曾燕)은 중국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 당초 환경문제로 시작한 후는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도화선이 된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를 위한 추모 행사를 주도하고 납치된 가오즈성(高智晟) 인권변호사 등을 위한 구명을 벌이다 수차례 구류·연금되기도 했다. 2007년 유럽의회에서 중국 인권실태를 증언한 뒤 국가전복 선동 혐의로 3년여간 감옥생활을 했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유럽연합(EU)으로부터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은 바 있다. 옥살이 중인 중국의 인권운동가들은 적지 않다. 노동자와 농민,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지하교회 신도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에 앞장선 가오즈성 변호사는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감옥에 수감돼 있다. 감옥 내 인권 상황을 폭로한 ‘20세기 바스티유 감옥’의 저자로 유명한 웨이징성(魏京生)은 10여년 수감 끝에 1997년 추방된 뒤 미 워싱턴에서 중국 민주화 운동을 이끌고 있다. 1996년 사하로프상과 로버트케네디인권상을 받았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과수·비닐하우스 작물도 지원 ‘전북형 밭농업직불제’ 첫 시행

    과수·비닐하우스 작물도 지원 ‘전북형 밭농업직불제’ 첫 시행

    전북도가 정부의 밭농업직불제를 보완한 ‘전북형 밭농업직불제’ 시행에 들어가 타 시·도로 확산될 전망이다. 2010년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밭 농업 소득보전 지원 조례’를 제정한 전북도는 지난 1일부터 밭농업직불제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고 2일 밝혔다. 이는 정부가 지난달 17일 밭농업직불제 추진안을 최종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전북형 밭농업직불제는 쌀, 보리 등 19개 품목만 지원하는 정부안과 달리 과수, 식·약용 작물, 비닐하우스 등 모든 밭작물에 대해 직불금을 지원키로 해 농민들의 요구를 폭넓게 수용했다. 전북형은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품목에 대해 형평성 차원에서 개인 농업인에게만 0.1~1㏊ 범위에서 지원한다. 화훼류와 조경수는 지원대상 품목에서 제외했다. 정부안과 별도로 지급하는 밭작물 직불금 지원 예산은 도가 20억원을 확보하고 14개 시·군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해 지원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자체별로 직불금 지원액이 다소 차이가 날 가능성이 있지만 1㏊당 평균 36만원 선일 것으로 예상된다. 농민들의 직불금 신청 기간도 정부는 이달 말까지인 데 비해 전북은 다음 달 말까지로 한 달 길다. 도내 모든 읍·면·동 사무소에서 신청을 받는다. 도 관계자는 “농업인 간 형평성 시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방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품목 외에도 모든 밭작물에 대해 직불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 추진 직불제는 공부상 밭에 경작한 19개 품목에 대해 개인은 0.1~4㏊, 농업법인은 0.1~10㏊ 범위에서 ㏊당 연간 40만원을 지원한다. 정부와 도의 공통적인 제외 대상은 타 법률이나, 규정에 따라 이중으로 직불금을 지원받는 농지이다. 또 법인소유 농지, 휴경지, 유리온실, 식용(약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조경수(화훼) 식재 농지도 제외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당권파 “비례 1~3번 사퇴할 사안 아니다” 반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부정·부실 선거가 이뤄졌다는 정황이 2일 드러남에 따라 비례대표 1~3번 당선자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선거 결과의 신뢰성이 무너진 이상 당선자들이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지난 3월 14~18일 치러진 경선에서 27.58%의 득표율로 1위를 한 이석기 ‘민중의 소리’ 전 이사는 ‘경기동부연합’의 실력자로 알려졌으며, 2위인 윤금순(13.35%) 당선자는 옛 민주노동당 출신의 여성농민운동가다. 따로 실시된 청년비례대표 선거를 통해 당선된 3번 김재연씨도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으로 분류된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부정·부실 선거 개입 세력을 밝혀내지 못했으나, 비당권파는 이런 정황을 포함한 각종 의혹을 들어 부정 선거의 배후로 당권파를 지목하고 있다. 김 당선자의 경우 부정 선거 논란 속에 청년비례대표 선거에서 9180표(46.4%)를 얻었는데, 당 일부에서는 “당원들의 성향을 분석했을 때, 절반에 가까운 표가 김 당선자에게 쏠리기는 구도상 어렵다.”는 얘기도 나돈다. 하지만 이런 의혹들이 사퇴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부정표의 양이 순위를 뒤바꿀 정도였는지가 진상조사를 통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은 “모든 표를 조사할 수는 없어 (투표함) 200개 중 3분의1을 샘플링해 조사했고, 중복된 IP에서 온라인 투표가 이뤄진 건수도 100개 샘플만 우선 뽑았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부정 선거의 배후 세력, 온라인 투표에서 부정 행위가 이뤄진 정황을 확실히 입증하지 못함에 따라 근거 없이 사퇴를 요구할 수 없다는 주장도 팽팽하다. 당권파들은 온라인 투표 과정에서 이뤄진 네 차례의 소스코드 수정이 부정 선거를 목적으로 진행됐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이상 선거 부정을 인정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당권파의 한 관계자는 “1~3번 비례대표 당선자의 경우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기 때문에 당원이 뽑은 후보를 낙마시키는 것은 당심에 상처를 내는 일”이라고 당선자들을 거들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갈 길 먼 전주·완주 통합

    전북 전주시와 완주군이 지난달 30일 통합을 공동 건의하기로 전격 합의했으나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귀추가 주목된다. 1일 전주시와 완주군에 따르면 완주군의회와 농민단체 등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전주시가 상생발전사업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통합합의는 무효라는 내용이 합의문에 명시돼 통합추진 과정에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완주군의회는 송하진 시장과 임정엽 군수가 통합을 공동 건의하기로 발표한 30일에 통합반대 기자회견을 했다. 군의회는 통합에 따른 구체적인 예산확보와 사업계획, 투자계획 등에 대한 진정성 있는 통합계획이 수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산면을 중심으로 한 완주군 6개면 농민단체와 주민들도 통합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임 군수는 통합건의 기자회견 이전에 군의회와 농민단체를 설득해 동의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 때문에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을 위해서는 양 지역의 의회동의보다는 주민투표를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전주시와 완주군이 합의한 10개항의 상생발전사업 추진 여부도 관건이다. 통합시청사는 완주군에 배치하고 종합스포츠타운은 공동건설하며 농업발전기금 1000억원을 확보하기로 했지만 이행은 지켜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농수산물도매시장 신축이전, 완주군에 대규모 위락단지 조성, 고속·시외버스터미널 이전 등도 이행할 의지가 있더라도 민자유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때문에 전주·완주 통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주시가 진정성을 가지고 상생발전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8)정도전과 이방원

    [선택! 역사를 갈랐다] (8)정도전과 이방원

    1398년(태조 7) 음력 8월 26일 밤, 정도전은 이방원과 마주하였다. 정도전은 살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방원은 거절했다. 1차 왕자의 난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정도전이 꾸었던 꿈은 뒤틀리고 변하였다. 정도전과 이방원, 두 사람은 조선 초기의 신권과 왕권론을 대표하는 역사적 라이벌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정말 역사적 라이벌로 이해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은 나이 차이부터 상당했다. 1392년 조선이 만들어질 때 정도전은 50세의 중년, 이방원은 25세의 청년이었다. 당시로는 아버지와 아들뻘 정도의 차이였다. 혹시 1383년(우왕 9) 정도전이 처음 이성계를 만났던 함주 막사에서 보았던 이방원은 16살의 똑똑하고 야심에 찬 아이로 기억했을 수 있다. 그만큼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 어렵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살아온 길도 조금 달랐다. 정도전은 경상도 향리 집안 출신이고, 어머니의 혈통 문제로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귀족 가문이 얽혀 있는 중앙정계에서 그는 과거시험과 자신의 실력만으로 권력의 정글을 헤쳐나가야 했다. 이 때문에 정도전은 유배를 갔다. 그 후에도 노골적으로 차별을 받았다. 자신이 세운 삼각산 아래 학교를 옮겨야 했고, 이사도 여러 차례 했었다. 아마도 그의 성격은 원칙적이고, 때로 과격했던 것 같다. 이방원은 그보다 좋은 주변 환경에서 좋은 조건에서 살았다. 그는 이성계가 중앙 정계에 등장한 이후에 태어났다. 또한, 이성계의 많은 아들 중에서 드물게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벼슬길에서도 크게 어려운 일을 겪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귀족적 나약함보다 정치적 판단력과 추진력이 있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하는 과정은 그의 냉혹함과 판단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새 술은 새 부대로’ 의견 모은 정도전과 이방원 정도전과 이방원이 당면했던 현실은 국가운영의 문제였다. 고려왕조는 힘들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명나라와 이전 원나라 사이에서 방황했다. 더구나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은 견디기 쉽지 않은 시련이었다. 특히 왜구의 침략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고, 바닷가 지역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냈다. 국내 상황은 더 문제였다. 고려의 귀족들은 지배층이면서도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들은 권력과 경제력을 이용해 남의 땅을 삼켰다. 넓어진 땅에 필요한 일손은 백성을 노비로 만들어 보충했다. 이들에겐 법적 소송도 먹히지 않았다. 귀족들은 자신의 수하에 있던 사람들을 관료로 만들었다. 세금을 내야 할 땅과 군대에 가야 할 사람들이 계속 줄어 갔다. 한마디로 국가운영이 파탄나고 있었다. 새로운 질서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공감했다. 여기까지가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정도전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이성계와 손잡았다. 고려말 여러 지식인이 정도전처럼 개혁을 생각했다. 그들은 성리학을 공통된 이념적 무기로 삼아 현실에 적용하려 했다. 자신들의 학문을 실학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본 불교는 인륜을 해치는 껍데기 학문이었다.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와 개혁을 꿈꾸었던 세력이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된 사건이었다. 당시 요동 정벌을 추진했던 우왕과 최영 장군 등은 구세력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렇지만, 개혁세력은 점차 분화되어 갔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어한 정도전과 조준. 적어도 고려왕조의 틀은 유지하려 한 이색, 권근, 정몽주 등은 대립해야 했다. 정몽주의 죽음은 고려의 가을을 재촉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정도전, 고려 귀족을 관료로 대체를 시도하다 정도전은 정치의 근본이 민(民)이라고 했다. 유교 정치의 원리인 셈이다. 권력이 이곳에서 출발하고, 통치자가 민심을 잃으면 덕(德)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넘긴다. 그래야만 이성계가 국왕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이 백성에서 선비가 등장해서 관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도전에게 선비와 농민은 둘이 아니었다. 그의 의도는 과거 문벌 귀족들이 차지했던 관료 자리를 더 많은 계층과 지역에 개방하는 것에 있었다. 이를 위해 정도전은 지방관 등의 천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또한, 관료들은 통치를 위한 지식과 능력이 필요했기에 반드시 학교를 거쳐 과거시험을 보도록 했다. 그는 고려시대처럼 과거 시험관과 합격자 사이의 개인적 인맥이 생기는 것을 막고, 이를 위해 사립학교를 약화시켰다. 정도전이 추구한 것은 중앙집권적인 국가운영이다. 그는 중국 고대의 제도인 6부를 원리로 한 중앙 관제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권력이 중앙에 모여 마치 물고기를 잡는 그물처럼 행정망이 펼쳐지는 그런 국가였다. 고려의 행정체계는 마치 벌집처럼 복잡한 자율성을 지녔다. 이 체계가 고려말 국가위기에 대응하는 일에 무기력했다. 국가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동원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정도전은 이를 중앙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가문과 개인 등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조선의 중앙집권적인 국가운영방식은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이방원, 고려 귀족문벌 다시 정치로 흡수하다 이성계가 집권한 이후 정도전이 당면한 정치적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왕의 후계자 문제, 다른 하나는 명과의 외교 문제였다. 후계자 문제는 빨리 정리되었다.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강씨 소생의 막내가 후계자로 결정된 것이다. 이성계는 첫째 부인인 한씨 소생으로 6명의 아들을 두었고, 이방원이 그중에서 다섯째 아들이었다. 정도전 등은 공로가 있는 아들을 세우자는 의견이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정도전이 죽게 되는 원인이 된다. 또 큰 문제는 명과의 외교 마찰이었다. 명 태조인 주원장은 조선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주원장은 조선이 명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명에 사신으로 왔던 이방원 등에 대해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특히 명은 외교 문서의 문구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조선에 문서 작성자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명은 정도전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렸다. 정도전은 이 문제에 정면 대응하려 했다. 그는 요동 정벌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그는 이를 통해 정권에 위협이 될 최대 변수, 즉 왕자와 개국 공신들이 거느린 사병(私兵)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동 정벌 추진은 조준 등과 같은 개혁파까지 이를 반대하게 한 카드가 되었다. 개국 공신들도 자신의 사병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찬동하지 않았다. 이방원은 이런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고, 결국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방원은 일단 형을 국왕의 자리에 앉혔다. 그렇지만, 그는 본인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한편, 수하들을 요직에 포진시켰다. 이방원이 주로 손을 잡았던 세력은 현실 개혁이 아닌 개선을 주장했던 세력들이다. 이들은 보수파는 아니지만, 기득권층의 이해는 나름대로 보존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사람들이다. 고려말 이색 아래에서 공부했던 권근, 하륜 등이 그들이었다. 물론 이방원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은 이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는 숙청이 끝난 이후에는 모든 정치세력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개혁파였던 조준은 영의정으로 내세웠고, 사돈 관계를 맺었다. 또한 자신이 살해한 정몽주를 복권하고, 정도전의 동생과 아들의 벼슬길도 열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거 귀족 가문으로 중심을 재편하였다. 단, 이들 가문 간의 결속력을 막고자 종실 세력을 키웠다. 한마디로 이방원은 정도전처럼 중앙 정계에 지방세력을 끌어들이지 않고, 이들의 참여를 막았다. 대신에 이들에게는 군역의 면제나 면세와 같은 특권을 주었다. 이처럼 정도전이 추구했던 개혁의 방향은 이방원에 의해 변질되었다. ●일본 학자의 정치적 방법론이 조선사를 왜곡? 그렇다면, 이방원은 왕권 강화론자, 정도전은 신권론자였을까? 여기에는 국가 권력을 보는 시각의 문제가 전제된다. 원래 왕권과 신권의 대립 구도로 정치사를 이해하려 했던 학자들은 일본 학자들이었다. 그들이 메이지 유신을 겪으면서 천황과 봉건 영주의 대결로 정치사를 이해하려는 방법론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왕권이나 신권 등의 말은 모호하고 피상적이다. 예컨대 외척이나 소수 공신에게 특권을 주는 것은 신권의 강화이면서 국왕권의 강화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정도전의 경우이다. 그는 총재인 재상이 행정실무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왕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성인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재상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주장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 정도전은 공민왕 이후 여러 고려 국왕들의 파행적인 정치운용과 도덕적 문제를 목격했다. 그는 조선에서 국왕이 소수 귀족가문과 결탁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가 재상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측근인 남은과 함께 군사권을 태조 이성계가 장악해야 한다고 건의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비록 그의 개혁구도는 이방원에 의해 변질되었지만, 그가 지향했던 중앙집권체제는 조선 왕조를 규정짓는 설계도가 되었다. 김인호(광운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 [Weekend inside] 올해 값 3배 뛰자 결국 ‘中배추 수입’

    [Weekend inside] 올해 값 3배 뛰자 결국 ‘中배추 수입’

    올들어 배추값이 3배 이상 급등하면서 ‘배추국장’이 두 손을 들었다. 결국 ‘중국 배추’ 카드를 꺼내들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3일 중소 김치업체 공급용으로 중국산 배추 500t을 수입한다고 13일 밝혔다. 정부가 농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중국 배추 수입이라는 비상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배추를 포함한 농축산물 가격, 약값, 통신비, 공공요금, 기름값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물가 오름세 심리가 나타나지 않게 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유가가 너무 많이 올라 있는 상태”라면서 혹시 공급이 과점형태에서 이런 일이 계속되는지 유통체계를 비롯해 제도 개선을 통한 관리방안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발상의 전환을 통한 유가관리를 당부했다. 배추국장인 이천일 농식품부 유통정책관은 “저온현상과 한파로 겨울배추 출하량이 감소했다. 봄배추 생산량도 평년보다 1%, 지난해보다 40% 정도 감소하고 출하 시기도 평상시보다 10일 정도 지연돼 4월 중순 이후 일시적으로 물량 부족 현상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배추 수입 배경을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국내산과 같은 품종으로 재배한 배추 2000t에 대해서도 추가로 계약을 맺었다. 국내 수급상황에 맞춰 들여올 예정이다. 올해 초 포기당 1000원 안팎에서 거래되던 도매 배추값은 이달 초 3120원까지 올라갔다. 평년(2579원)에 비해서도 21% 정도 높은 시세다. 품질이 좋은 배추 특품 가격은 더 가파르게 올랐다. 이날 서울 가락시장에서 10㎏짜리 한 망이 1만 5563원(도매가)에 거래됐다. 한 망이 3포기인 점을 감안하면, 포기당 가격이 5000원을 넘는 셈이다. 그동안 정부는 비축물량 6820t 가운데 5032t을 도매시장과 대형마트에 풀어 포기당 소매가를 2000원대 안팎으로 묶어 놓았다. 하지만 재고 배추가 1788t에 불과해 하루 100~200t씩 방출하면 이달 말 이전에 비축물량이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천일 국장은 “대형 김치업체는 4월 말까지의 계약물량을 확보했지만, 영세한 김치업체는 가락시장 등 도매시장에서 당일 필요한 물량을 구매하기 때문에 갑자기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면서 “수입 배추 500t을 이런 김치업체에 직접 공급해 간접적으로 도맷값 상승을 막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봄배추 재배면적 감소를 지난 1월부터 예측해 왔지만 수입을 미뤄왔다. 김장철 배추에 비해 수요 탄력성이 높은 봄배추를 수입하는 데 따른 부담감 때문이다. 배추는 시기별로 봄배추·여름철 고랭지배추·가을배추·겨울배추 등 4차례에 걸쳐 재배된다. 이 중 김장용으로 쓰이는 게 가을배추다. ‘한국 밥상에는 배추김치’라는 인식 때문에 물가 정책에서 배추가 차지하는 상징성이 크지만, 실제로 가을배추를 제외하면 가정에서 직접 배추를 사는 빈도는 높지 않다. 대신 김치업체에서 배추를 사는 사례가 많다. 이에 따라 농업계와 전남 나주·전북 완주 등 봄배추 주요 산지에서는 4월 봄배추 공급량이 부족해도 2년 전 김장철 파동 때처럼 가격이 급등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에 주는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농민들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정부도 이런 농심(農心)을 의식해 산둥성 일대 배추 2000t을 계약만 해놓은 채 국내 유입을 보류하고 있다. 이 국장은 “2000t을 확보했지만, 이 물량을 얼마나 들여와 얼마나 공급할지는 수급 및 가격동향을 보아가며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5월 봄배추 출하가 본격화돼도 도매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 수입물량을 추가로 들여온다는 구상이다. 국내 배추값이 안정되면 중국산 배추를 중국 시장에서 되팔 작정이다. 결국 물가안정 부담과 농민의 반발 사이에서 정부가 중국 배추 도매상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셈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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