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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리트니 결혼소동 해프닝으로 반나절만에 취소 ‘초스피드 이혼’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사진)가 반나절만에 결혼을 취소했다.지난 3일 오전 5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소꿉친구 제이슨 알렉산더와 결혼식을 올린 지 반나절도 안돼서다.초스피드 결혼에 초스피드 ‘이혼’이 됐다. 이날 늦은 오후 스피어스는 변호사,공증인,자신의 매니저 등 수명이 보는 앞에서 결혼 무효 서류에 사인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서류는 법원의 업무가 시작되는 월요일에 접수했다.짧게나마 스피어스의 남편이었던 알렉산더는 4일 고향인 루이지애나 켄트우드로 혼자 돌아갔다. 스피어스의 매니지먼트사인 지브 레코드사는 한 연예케이블방송에 “두 사람이 농담을 지나치게 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보냈다.스피어스는 3일 라스베이거스의 한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예배당으로 직행,결혼식을 올렸었다. 전경하기자 lark3@
  • 신나는 건강동호회/철인 3종 ‘아이언윙’

    “올해는 기필코….”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다짐한다.하지만 비장함은 대개 봄볕에 눈 녹듯 사라지고,이런 저런 핑계를 대기 마련이다.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들.하지만 즐거운 이들.‘철인을 따라다니기만 해도 철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인3종경기 동호회 사람들의 훈련 현장을 가봤다. “국화씨,오늘도 벗고 뛸거야?날도 추운데 참아.”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지난 28일 새벽 6시50분.기온은 영하 7.9도.10명의 남녀가 모여 있는 주차장 곳곳엔 매끄러워 보이는 얼음이 눈에 띄었다.조금 다가가자 들려오는 말소리.“겨울 코트에다 목도리까지 중무장을 하고 있어도 추운데 얇은 운동복만 입은 사람이 그나마 입고 있던 웃옷도 벗는다니….”이들은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동호회 ‘아이언윙’ 회원들이다. ●새벽6시50분 살에는 듯한 추위 철인3종경기는 수영 3.9㎞,사이클 180.2㎞,마라톤 풀코스 42.195㎞를 한꺼번에 완주하는 경기다.러닝머신에서 5㎞ 뛰고도 다리에 알이 박이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은 말그대로 ‘철인(鐵人)’이다. 회원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10여분간 이리저리 관절을 움직이다 땀을 낸다고 PT체조까지 한다.오늘은 일요 훈련을 하는 날.25㎞ 마라톤과 사이클 20㎞가 예정되어 있다.다들 모자·귀마개·장갑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있다.조정경기장 트랙을 돌아 한강 둑길로 접어드는 코스.미사리 간사 박인석(49)씨가 “오늘은 기자분도 오고 했으니까 살살 가자고.앞에서 너무 빨리 달리지마.”회원들에게 당부를 한다.“은숙씨,목요일에 보니까 수영 잘하던데.동계 훈련만 잘하면 시합나가도 되겠어.”“에에,아직 3㎞도 못 나가요.숨쉰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더니 목도 아프고….”회원들은 달리면서 호흡도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얘기를 나눈다. 30분 정도 됐을까.슬슬 앞사람들과 기자와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이젠 보이지도 않는다.겨우 4㎞ 정도 뛰었는데 다리가 묵직해졌다. 인터뷰를 핑계로 인석씨와 걷기 시작했다.2번이나 철인 코스를 완주한 인석씨에게 왜 철인3종경기를 하느냐고 물었다.“힘들지만 그 과정을 이기는 것이 트라이애슬론의 묘미”라는 대답이 들려온다.사실 그도 운동을 하기 전 허리 디스크에 시달렸다.무릎관절도 안 좋아 3층 사무실에서 내려오는 것도 힘들었다.그런 그가 어떻게 철인3종경기를 하게 됐을까.“처음엔 마라톤을 했지.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트라이애슬론을 하게 되더라고.운동을 하다가 보니까 관절 근육도 튼튼해졌지.내가 낼 모레 오십인데 언제라도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다.”며 자신감 있게 웃어보였다. 인석씨와 함께 한강 둑으로 접어들자 김국화(26)씨가 기어이 웃통을 벗고 달리고 있었다.찬바람에 살이 벌겋게 됐다.“국화씨,그러면 나중에 살이 에려.정 웃통을 벗고 달리려면 토시를 껴.그러면 따뜻해”라고 보다 못한 인석씨가 조언을 했다.텔레비전에서 철인3종경기를 하는 걸 보고 무작정 운동을 시작했다는 국화씨는 1년 만인 지난 8월 철인 코스를 완주했다.“철인3종경기를 하기 전에 헬스를 한 게 전부다.”라며 “경기 한 달 전에 일주일에 마라톤 20㎞,사이클 40㎞를 한 번,수영을 두 번씩 연습했다.”고 말했다.이어 “이런 나도 할수 있었으니까 누구나 다 철인에 도전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반문했다. ●힘들지만 훈련후 성취감에 뿌듯 국화씨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최정수(40)씨.땀으로 젖었던 정수씨의 옷이 하얗게 얼었다.얼음을 털어내는 그도 철인3종경기는 초보다.지난 여름에 산악자전거를 타러 갔다 철인대회를 구경하고는 바로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했다.“딸하고 철인 대회를 봤는데 ‘저거다.’ 싶더라고요.그래서 바로 그날부터 연습을 했죠.지난 10월에 울진 대회를 나갔죠.성적이요? 준비 없이 대회에 나갔으니까 성적이야 뭐”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다. 추운 한강변에서 2시간 넘게 달리던 이들이 돌아온 것은 오전 10시가 다 된 시간.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오자 중간에 사라져 다른 이들을 걱정케 했던 임송운(35)·이호정(28)씨가 생강차를 들면서 기다리고 있었다.송운씨는 “호정씨가 감기 때문에 힘들어서 쉬고 있었다.”며 오는 3월에 결혼할 예비신랑의 살가움을 보여줬다.송운씨와 호정씨는 트라이애슬론으로 맺어진 인연. 송운씨는 “수영을 잘 하지 못하는 제가 잠실쪽에서 마라톤을 하고 있었거든요.근데 호정씨가 수영대회에서 3㎞를 쉬지 않고 헤엄치더라고요.비록 4등을 해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아 저 사람은 체력은 걱정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한눈에 뿅갔죠.”라며 옆에 있는 호정씨와 웃음을 나눴다. 이제 회원들은 하나둘씩 사이클과 MTB 등을 꺼내 자전거 훈련을 준비했다.올 초에 철인경기에 입문한 정은숙(35)씨는 오늘 사이클 클립 연습을 한다. ●동호회서 만나 결혼하는 커플도 “잘 해야 돼.오늘 생일인데 괜히 넘어져서 몸에 상처라도 나면 남편이 화낼 걸.”이라고 말하는 회원들의 농담에 모두 크게 한 번 웃으며 훈련을 하러 나섰다.은숙씨는 잔디밭으로,나머지 회원은 조정경기장 트랙으로 자리를 옮겼다.훈련이 쉽지 않은 듯 은숙씨는 몇번이나 넘어졌다. “내가 수영이나 마라톤은 자신이 있는데 자전거는 영 무서워서….”라며 말문을 연 은숙씨는 “국군체육부대에서 여군 하사관으로 근무를 했죠.그때 여자사이클 선수들하고 방을 같이 썼는데 이 친구들이 시합을 하고 오면 말그대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돼서 들어오곤 했죠.그걸 봐서 그런지 자전거 타는 것을 내 자신이 겁내나 봐요.”라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엔 그럴듯하게 다리를 움직였다.다른 사람들도 슬슬 돌아오고 오늘의 훈련은 점심 무렵에 끝이 났다. 기자가 돌아갈 때 인석씨는 “마라톤 훈련중에 지구력을 향상하는 지속주(持續走) 훈련이 있는데 영어 약자로 LSD라고 해.마약 이름과 같아.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트라이애슬론은 마약처럼 끊기가 어렵다고 한다.”며 “트라이애슬론은 절대 어렵지 않은 운동이다.누구나 철인만 따라오면 철인이 될 수 있다.다음 훈련에도 나오지?”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호박(琥珀) - 김효동

    월령 29일,그믐이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비껴 떠 있다.망원경 경통에 입을 맞추고 숨을 길게 내쉰다.경통의 옆면을 스치며 부연 입김이 날아간다.파인더에 눈을 들이댄다.그믐달은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꼼짝없이 잡혀 있다.접안렌즈로 눈을 옮기고 핀트를 맞추자,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또렷이 나타난다.달의 바다인 습기의 바다가 거친 암영을 채워가고 있다.그 주위를 비에타나 티코와 같은 크레이터들이 점점이 두르고 있다.크게 심호흡한다.내뱉은 입김이 옅은 달무리를 만들어내다간 금세 흩어진다.눈을 떼고 고개를 젖뜨린다.금방이라도 화구를 열 듯한 하늘이지만 아직껏 짙은 어둠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깊은 바다의 잔잔한 침묵을 그려내는 듯하다.꼭 움켜쥐고 있던 액세서리 호박을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온다.로스토크 연안 부두,김 선배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다.오래 머물진 않을 거야.어디까지나 여행이니까…….호박이야.발트해를 상징한대.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북두칠성 국자의 머리 부분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작은곰자리를 거쳐 북극성으로 옮겨간다.호박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발트해,김 선배가 그곳에서 곤충이 박힌 호박을 캐고 있다면,나는 이곳에서 놈들을 낚아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간들거리는 고목 가지가 그믐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할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방한복을 여미는 모습이 어줍다.담배는 안 돼요.할아버지는 담배를 먼저대로 담뱃갑 속에 쑤셔 넣는다.할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방한모를 씌우고 요철(凹凸)형 단추를 채워 드린다. 때각!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찔한다.손전등을 입에 물고 점퍼 속에 손을 넣는다.손바닥만한 관측일지가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9월15일,강원도 횡성,오리온자리가 희미하게 보이다.맨눈 관측,화성이나 황소자리보다는 밝은 편임…….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펜을 꺼내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11월18일,경북 문경새재.그믐달에 가까워 맨눈으로 3,4등성도 확인 가능.사자자리 부근을 향해실험 촬영.바람이 불지만 촬영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듯……. 망원경 앞으로 돌아온다.파인더를 단단히 고정하고 조심스레 미동나사를 조절한다.망원경의 방향이 찬찬히 천정(天頂)으로 향한다.하늘은 자정을 기해 이전까지의 침묵을 깨뜨릴 것이다.삼십 년을 넘게 만삭이었던 하늘이 자궁을 연다? 굉장히 매혹적이야.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어! 근사한 녀석들 많이 담아 와.플레이트로 고개를 돌린다.넉 대의 카메라가 좁은 플레이트 위에 빽빽이 올려져 있다.많이 잡아오면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주는 거지? 나도 꼭 찍고 싶었는데…….작년에 소백산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놈도 찍지 못했잖아.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서 큰 놈에게 희망을 걸었는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그것마저도 물 건너갔지 뭐야.편지하면 그 주소로 보내주는 거 잊지 마.바람에 실려 온 검불이 얼굴을 스친다.망원경의 접안부를 두 손으로 꼭 감싼다.밤하늘 이곳저곳에 빛을 게우고 번뜻 사라질 녀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은 기필코 대어를낚아야 한다. 문경새재는 초행이다.소백산이나 함백산에서보다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귀띔이 이곳을 선뜻 결정하게 만들었다.잡광(雜光)이 없고 먼지가 적어 촬영이 용이한 곳이라는 정보는 관련 잡지를 통해 앞서 접한 터였다.산꼬대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촬영지다.나무가 많지 않은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또한 썩 마음에 든다.고개를 들어올린다.밤하늘에 지독한 정적이 연출되고 있다.바람이 차다.귓불을 스치는 산바람은 가랑이까지 으스스하게 만들 정도다.할아버지가 으레 신경이 쓰인다.차에 계시는 편이 낫겠어요.내려가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가벼이 손을 올려본다. “괜찮아요.다 늙어서 한 번 찾아온 감기가 그 무슨 대수라고.”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영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손자를 따라나서야겠다는 얄망궂은 고집을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두통 때문에 소다를 댓 수저 퍼먹었거든.어째 머리가 다섯 배는 더 지끈거려요.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려나…….할아버지를 향한 불안함이 이제는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옮겨간다.온천 관광을 떠나는 부모님이 홀로 집에 계시기 적적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동행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서릿바람에 아이를 업고 밭에 나온 기분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수안보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내내 말이 없던 할아버지의 입을 트게 한 것이 차가운 기침이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화분증 탓에 봄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은 없는 분이다.성치 않은 오른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온다.당장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얼마 버티기 힘드실 거예요.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니까…….그나저나,등나무집 할머니 말이다.왜,너도 알잖아,얼마 전에 네 엄마가 소개시켜준…….” 낚시용 승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궂다.이내 지팡이 끝으로 낙엽 더미를 헤적이기 시작한다.땅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선영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수치에 매우 민감하겠군.아,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난…….찻잔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행동이 거치적거린 모양이었다.남자는 말을 멈추고 김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영문학과 선배야.우리 동아리 회장이었고…….이 년 전에 졸업했어.둘 다 초면이겠지? 나는 김 선배의 재킷에 박힌 장식용 버클에 시선을 고정했다.반갑네.남자는 내 시선을 밀쳐내듯 손을 내밀었다.손이 형편없이 못생겼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나는 그가 청하는 악수를 건성으로 받아들였다.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 손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합니까! “성우라고 했지,아마?” 김 선배가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많이 찍어봤나? 사진 속에 별을 담는 것과 정물을 담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쉽사리 덤비지 말아야 할 것이 천체를 담아내는 일이야.한낱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간 큰 오산이지.듣자하니 소질이 많다던데…….무엇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이 녀석이 찾아왔더라고.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볼품이 없더군.난 처음에 반딧불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농담 삼아,개똥벌레의 일주 사진이네,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그랬지.” 남자는 김 선배를 돌아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다.김 선배의 얼굴로 미소가 이어졌을 때,그녀의 재킷에 달려 있는 버클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다.어째서 별을 찍지? 나는 남자의 점잖은 말투가 듣기에 거북했다.글쎄요,뭐든 좋아지기 시작하면 따라가는 법이죠.남자는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물을 하나 할까 하는데,어떤가?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과장된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누군가 카페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놓아두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괜찮아,성우야? 불편해 보여.난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나는 김 선배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분야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이야.물론 지금은 접은 상태지만…….작년엔 외국의 한 천문대가 주최한 천체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어.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이 대단해.열정이라는 말로 남자의 나이를 짐짓 감추어보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우스꽝스러웠다.저 사람 곧 인도로 떠날 거야.다른 세상을 접해 보고 싶대.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봐.남자의 구두 소리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 가득 둔탁한 공명을 일으키며 다가왔다.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세요,할아버지? “아니,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을 토해낸다.기침 소리가 밤하늘에 긴 메아리를 긋는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의 안경알에 그믐달이 갇혀 있다.그믐달이 거듭 요람으로 변하는 착각이 든다.할아버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산록을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내내 요람 위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무릎을 매만지며 번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요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의족이 할아버지를 지탱하기엔 무리이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없다는 듯 쉬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점점 뒤처지는 할아버지를 이곳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달의 이미지가 전하는 느긋한 안주(安住)가 아니었을까.회답이라도 하듯 북극성 주위를 오르내리던 낙엽이 요람 위에 사붓 내려앉고 있다. “할망구가 은근히 피하더구나.어쩐지 아니다 싶었어.미련일랑 한푼 남길 것도 없다.네 엄마도 그렇지,그리 줏대 없는 할망구를…….” 할아버지는 의각이 끼인 다리를 쭉 뻗는다.아닐 거예요.할머니가 일부러 피하기야 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 한 대를 집어 든다.애지중지하는 펜탁스67 기종이다.노출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한다.노출 시간을 초과한 감이 들지만 유성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다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필름이 아까울 뿐이다.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장만했던 카메라야.니콘FM2지.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자! 그믐달을 할퀴면서 한참을 꼬박거리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진다.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배낭으로 고개를 돌린다.어서 받아,성우야.내년 가을에 유성을 촬영할 거라면서? 이번에 못 찍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카메라 한 대 더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면서.어서 받아.나는 김 선배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건네는 카메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끝없이 생기더군.혼자 여행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가면 갈수록 새로운 걸 찾게 돼.물론 과거가 바탕이 된 새로움이겠지만.인도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나? 힌두교? 일처다부혼? 아니면,마하트마? 남자와 김 선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아,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야,마하트마란.김 선배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나는 김 선배가 잠시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불안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힘으로 나타났다.그들이 지나간 카페 홀에 문뜩 간디와 마하트마를 외치는 남자가 부딪쳤다가 분산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종업원은 나의 대답을기다리는 투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무안해하길 바라면서 그녀의 코밑을 계속해서 쏘아보았다.리필해 드리겠습니다.위대한 영혼 좋아하시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한달음에 몰려온다.옹그리고 있던 낙엽 더미가 소르르 흩어진다.달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융단이 말리듯 낙엽 더미가 굴러간다.굴러간 낙엽만큼의 양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거년스럽다.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낙엽 한 장이 사부랑삽작 걸터앉는다.아니,어느새 날아간다.할아버지,녹차 드릴까요? “아니,됐다…….애초에 소개를 받는 게 아니었지,여시 같은 할망구!” 배낭에서 녹차 티백과 보온병을 꺼낸다.배낭 옆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다.다만 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웃음이 나온다.플레이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와 플레이트 위에 올린 넉 대의 카메라가 하늘을 향해 조리개를 가만 열어놓고 있다.적도의 가대에 올린 카메라는 천구의 이동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가져오지 않은 남자의 카메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유성을 담아내기에 카메라가 적은 듯도 하다. 티백을 간닥거리며 망원경의 접안부를 들여다본다.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사이에 웅그리고 있던 은하단이 어느 틈에 천정(天頂)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별들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녹차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네,부담이 엔간히 드네,민망해서 자식들 볼 면목이 없네,다 늙어서 주책이 아닌가 싶네…….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더니,뭐 그리 둘러댈 것이 많은지.보험 들으랄 때부터 알아봤지,내가! 참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네 그려.” 녹차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린다.입술을 훔치며 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나의 시선이 어느새 할아버지의 고개를 따라간다.성도(星圖)를 펴놓은 듯한 밤하늘이다.고개가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쪽 하늘에 고래자리가 자오선 위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서쪽 하늘,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말없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달을 품은 동쪽하늘,쌍둥이별의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드높게 떠 있다.가슴속에 새겨진 성도가 보이지 않는 별마저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아마 잦은 촬영에서 밴 습관일 것이다.멀리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외롭게 반짝인다.별을 본다는 건 말이야…….그건 결코 값싼 센티멘털리즘만으로 되지 않는 거야,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겐.김 선배의 손가락이 작은개자리에 머물렀다.끝내 그 모습만을 유지하는 별은 없어.나 역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진 않아.프로키온,다른 별들처럼 모여 있지 않고 외롭게 떠 있지.저 별을 보고 있으면…….아니다,값싼 감상은 내가 찾고 있네…….자,봐봐! 김 선배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베텔게우스를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다시 시리우스로 돌아오면…….김 선배의 손가락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김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어색한 마음에 멀리 횡성군(郡)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그렇게 그려보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이루어지는 거야.네 손으로 한번 그려볼래?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주머니 속의 호박이 얼굴에까지 느껴진다. “생판 모르는 할망구 만나서 뭔 득을 보겠다고.내가 미쳤지!” 할아버지는 두 손을 비비며 몸을 움츠린다.몸 전체가 굼벵이처럼 오그라든다.정말 안 되겠어요,차로 돌아가요.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뜨고 달 쪽을 올려다볼 뿐이다.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달은 달일 뿐,요람은 그저 값싼 감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독한 난시 탓에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밤하늘이라는 것마저 이곳에 와야 할 명분을 지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어느새 할아버지의 발목까지 낙엽 더미가 덮여 있다.의족으로 낙엽을 헤치는 모습이 곰상스럽다.갑자기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창에서 일어선다.차로 가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꾹 찌른다. “칼을 들었으면 두부라도 썰어야지,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산중턱을 엷게 스친다.등나무집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칠순을 넘겨보는 할아버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을 등나무집 할머니의 얼굴로 대신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다만,물 건너간 사랑을 되돌리지 못할 때 찾아올 슬픔을 고스란히 할아버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작년 가을에 콤바인 예취날에 바짓부리가 걸려 발목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은 그 후유증마저 낫게 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 못한 섬으로 가로막힐 때가 있다.경우에 따라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쉽사리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등나무집 할머니는 둘러대는 것이 아니다,어쩌면.할머니도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만나지 말자는 게 진심이라는 게냐?” 아니,그런 것이 아니라,뭔가 사정이…….갑자기 눈 속에 번뜩하며 섬광이 스민다.고개를 젖히자 곧 하늘이다.드디어 화구를 벌린 모양이다.그대로 하늘에 눈을 처박는다.이중성단을 관통하며 희미하게나마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단말마와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따라 금세 사라진 녀석이지만 잔상으로나마 눈 속에 남는다.보셨어요? 저기…….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관심도 없는 투다.대인이 또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하고 말하면서 그 사람 이런 말을 꼭 덧붙였어.자신은 타 없어지는 유성이 아니라,우주에 버려진 별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그 말이 무슨 뜻일까? 나는 선배가 말하는 남자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더니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 사람 지금은 인도에 없어.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갔겠지.김 선배는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토해냈다.그러면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이번엔 네 엄마가 아니라,내가 직접 말해야겠어.만나서 담판을 짓든지…….성우야,두유 좀 가져다 다오.목이 다 탄다.” 배낭으로 다가간다.지퍼를 열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두유를 찾는데 다시 유성이 떨어진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큰곰자리 부근으로도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큰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북극성을 오매불망하는 듯한 눈매가 큰곰으로부터 전해져 온다.거듭 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사자자리 유성우다.모(母)혜성의 궤도 문제로 삼십 년의 주기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무엇이든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머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봐.무슨 일이 있어도 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김 선배가 일러주었듯,아니,그녀가 전하는 어느 화백의 말처럼 하늘은 곧 오랜 세월 품어온 정한(情恨)을 차가운 땅덩이를 향해 쏘아댈 것이다.정한이란 비타민E 다음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F와 같은 인생의 알 수 없는 영양소일지도 모른다고 천경자 화백이 말했지.그 여자,아니,그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참 재미있게 표현했었어.전시회 작품들이 대부분 오로라와 같은 몽롱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거든.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라를 목격했다는데,글쎄,갓 잡은 등 푸른 생선이 파닥이는 것 같더라나? 화가의 표현치고는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아? 김 선배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념에 사로잡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김 선배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또 그 사람 생각하는군요? 김 선배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는 김 선배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런 식으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내뱉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서 빙빙 돌았다.김 선배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사람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서도 머물지 않으려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상념을 자르려는 듯 의외의 말을 던졌다.성우야,횡성에 가자.너도 태기산에 간 적 있지? 나는 한참 뒤에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렇지 않아도 오리온자리 일주 사진을 찍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요,가요.김 선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밀황색 호박을 꺼내 코에 가져다 댔다.그래,가.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얘,두유가…….” 느지감치 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린다.옷깃에 달라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버름한 방한복을 여며드린다.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라이트 버튼을 누르자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빛을 발한다.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노출 시간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다가간다.노출 시간을 또다시 오버한 감이 든다.필름을 새로 갈아끼운다.때마침 희미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연속 촬영을 한다. 다시 한 마리가 떨어진다.제법 모양을 갖춘 놈이다.운이 좋으면 긴 유성흔을 잡은 사진을 현상할 수 있을 듯하다. “땃땃하게 데운 베지밀이 최곤데 말씀이야.그,병에 든 거 말이다.” 카메라의 구도를 바꾸어본다.이번엔 복사점을 중심으로 앵글을 잡지 않고 주변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을 생각이다.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놈들이기 때문에 천구가 모두 피사체다.사진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깨알과 같이 작다 하더라도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만큼은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살아나 그야말로 황홀하다.마지막이라는 말이 얼마나유혹적인지 알아?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해는 아마도 네가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거나 손자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겪고 나서야 올 거야.군침이 돌지 않니?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거의가 떨어져서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거야.운이지,뭐.노벨이 태어난 해엔 한 시간 동안 무려 만 개 이상이 떨어졌다는데…….성우야? 김 선배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꼭 갈 건가요? 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성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인도에 갈까?” 그 사람 인도에 없다면서요? 아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김 선배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뜬금없이,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의 얼굴빛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나는 내가 말했어야 하는 부분을 모욕적으로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널 좋아하는 것 같아.그녀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땐 수치심마저 치밀었다. “젊었을적엔 참 고왔을 얼굴인데…….에이,모르겄다.늙을수록 애가 돼 간다는데 남사시럽게…….이놈의 나이도 이냥저냥 시들어갈 판인가?” 시계를 들여다본다.12시30분.유성은 카메라를 향해 간헐적인 입김만 뿜을 뿐 탄성을 자아낼 만한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있다.어쨌든 물고 늘어져야 한다.새벽 1시에서 2시 사이가 녀석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극대 시각이라는 정보를 굳이 믿으라면 아직 3,40분 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그때에 대비해 아껴두었던 커트필름을 꺼낸다. 갑작스레 휴대전화기가 엉덩이를 간질인다.어머니의 전화다.걱정이 되는 모양이다.할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이미 내 목소리에서 할아버지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가 나를 따라나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신 것일까.할아버지는 세상을 관조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다리를 절단하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이제는 바라만 보며 살란다,하면서 관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뭐든 간섭하고 살았는데,이젠 좀 앉아서 쉬어야지.늙어서 다리 쓸 일이 뭐가 있겠어.방바닥에 앉아서 창 밖이나 구경하면 됐지.그걸 관조라고 해도 될 거야.할아버지가 관조라는 말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 말했을 때,사실 너무 우스웠다.세상에는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보다 시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사학년생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작년 선배들처럼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시하지는 않을 거야.그만큼 작품이 적다는 얘기겠지.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참 대단해.별을 잡아온다는 게 어디 쉬워?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김 선배는 밖을 바라보며 전면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뽀드득뽀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귓전에 머물렀다.선배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녔잖아요.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섰다. “고작해야 일주 사진이 전부야…….커피 두 잔 주세요…….다른 사람들은 은하며 성단이며 그림 같은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탁자 밑에서 자꾸만 나의 구두코가 그녀의 발을 차고 있었다.그런데도 김 선배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내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그녀는 그녀의 생각 속에 머물고 말 듯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말이야.아,계획은 세웠니? 유성우 말이야.할아버지 사고 때문에 작년에 찍지 못했잖아.맞다,할아버지는 괜찮으시지?” 플레이트를 돌아본다.아무래도 좁은 플레이트 위에 넉 대의 카메라는 무리이지 싶다.사진 주변에 수차(收差)가 나올 것을 감안해야 할 듯하다.옆 카메라의 릴리즈가 들어올 것도 예상해야 할 판이다.사진 표면에 검은 줄이 생길 것이 뻔하다.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작품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망원경과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다.카메라 한 대를 들어 망원경 앞으로 가져온다.신발 끈을 끄른다.망원경의 접안부와 카메라의 렌즈를 맞대고 신발 끈을 감는다.왜요,필요한 거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요 좀 보련다.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배낭을 걸어 놓았던 나무로 절뚝절뚝 다가간다.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크다.늦었구나! 지도교수가 내 어깨를 치고 홀을 빠져나갔다.몇 작품 전시하지 않은 전시회 치고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였다.선배들의 사진전은 ‘우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열렸다.‘끝의 향연’이었던 작년의 제목에 비하면 꽤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제목이긴 했다.사진전은 학교 도서관 입구의 홀에서 개방적으로 열렸다.얼마 안 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안드로메다은하나 플라아데스 성단 사진은 그 몇 안 되는 작품들까지 빛내기에 충분했다. “겸연쩍긴 하지만,그래도 차지 않은 달이 더 정이 간다니까.” 달은 고개를 젖힌 할아버지의 코끝에 붙어 있지만 바람에 끄덕이는 나뭇가지 탓에 자꾸만 명멸한다.‘달과 금성의 일주,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올림푸스 OM-1,45㎜ 광각렌즈…….’ 공책 크기만한 사진 속에 지평선을 향해 사선을 내리긋는 달과 금성의 일주가 힘차게 다가왔다.개똥벌레 일주 사진,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 “성우야.” 어느 결에 김 선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나는 사진 속의 달과 금성을 머릿속에 그려진 반딧불과 견주어 보았다.미친놈!“늦었구나?” 김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선배는 자신의 사진을 한번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횡성에 가본 적이 있군요?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실망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인화할 때도 온통 딴생각이었으니…….괜찮아요.개똥벌레 같지 않은데요,뭘.정말 괜찮아요.나는 김 선배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입아귀를 부풀렸다. “괜찮으면,너 가질래? 지금 가져가도 돼.” 김 선배가 조용히 물었지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부터 김 선배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그녀는 홀 주위를 돌기만 할 뿐이었다.나는 김 선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김 선배는 ‘개똥벌레의 일주’가 놓인 이젤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치면서도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나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고 되뇌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어!” 김 선배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돌연 도서관을 빠져나갔을 때에도 내 입 속에선,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바다뱀자리와 큰개자리의경계선 부근에 섬광이 스친다.지평선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한참 만에 나타난 녀석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기대를 많이 한 탓이다.플레이트 앞에 선다.50㎜ 표준렌즈를 광각렌즈로 교체한다.필름을 빼내면서 웬일인지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46도 화각으로 유성을 잡는다는 것이 무리이지 싶었다.새 필름으로 갈아끼운다.이번엔 초점비에 따라 4분에서 8분씩 노출을 주기로 한다.버름했던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망원경으로 다가간다.경통에 키스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로 눈을 가져다댄다.잘 보여? 힘없는 목소리로 김 선배가 물었다.오늘따라 잘 잡히지 않네요.횡성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불안했다.달의 상을 또렷하게 끌어오는 것마저 힘에 부칠 정도로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잘 안 되니? 김 선배는 까치발을 하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꼭 찔러 넣었다.천문학도 아닌데 왜 그렇게 쩔쩔매? 천문학이면 괜찮게요?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니…….안 되겠어요.카메라 좀 가져다 줄래요? 그냥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왜,내가 있어서 그래?” 카메라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김 선배는 잠시 악력을 썼다.카메라가 중요해,내가 중요해?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장난스레 되물었다.선배는 아빠가 좋아요,엄마가 좋아요? 김 선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놓아 버리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두 시간 동안 노출할 거니까 지겨워도 참아요.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셔터를 누르자,김 선배가 대뜸 딸꾹질을 토해냈다.나 몰래 뭐 훔쳐 먹었어요? 나는 배낭으로 다가가 보온병과 녹차 티백을 꺼냈다.자,마셔요. “자연현상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주는 거 같아.” 김 선배에게 녹차가 담긴 잔을 건넸다.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때론 인간을 징벌하기도 한다는 점이죠.김 선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래,맞아.때론 징벌하기도 하지.그걸 피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김 선배를 돌아보았다.피할 수 없어요.다만,치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답일 뿐이죠.감상만 쫓아가지 말아요,제발! 그러다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징벌을 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뱉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긴 한숨으로 대신했다.프로키온,외로운 별이야.김 선배는 감상에 빠지고 있었다.그녀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연거푸 그려댔다. 김 선배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대뜸 일어섰다.우리 그만 내려가자.나 너무 피곤해.나도 모르게 김 선배를 쏘아보고 있었다.피곤하다니요? 올라온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지났는데.노출 끝내려면 적어도…….김 선배는 기필코 가야 한다는 표정이었다.그녀의 눈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쏘아보았다.일단 내려가자.김 선배는 무턱대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선배님,지금! 김 선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선배,이건 반칙이에요.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간다는 건…….저따위 별들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어!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 미안해,그냥 내려가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우야,넌 여기가 어디 같니? 아까부터 유심히 살펴봤는데,아무래도 이상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묻는다.주위를 둘러본다.내 눈엔 그저 낮은 산언덕으로만 보인다.무슨 겁을 주시려구요? “모르겠니? 난 아무리 봐도…….” 안 갈 거예요? 김 선배는 ‘횡성여관’ 앞에 섰다.그녀는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여관이라는 글자에서 ‘관’자의 네온사인이 끔벅이며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요.빨리 가요,선배! “나…….나,여기 예약했어.” 예약요? 여관도 예약이 돼요? 응,오래 전에…….할아버지 손끝에서 라이터 불꽃이 번뜩인다.깊은 고랑이 팬 이마 위에 돌연 플라아데스 성단이 나타난다.영묘한 빛을 산란하는 산개성단.할아버지는 담배를 문다.성단이 단박 사라진다.담배! 손전등을 켜고 할아버지를 향해 불빛을 겨눈다.담배요!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소리가 맞은편 산허리에 부딪힌다.어이없이 큰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툭 불거진다.죄송해요,전 다만……. “다시 한 번 비춰보거라…….아무래도 무덤자리 같은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펴고 팔을 뻗어 허공에 둥그런 원을 그린다.손전등 불빛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다.어느새 이슬이 맺힌 언덕 주위가 불빛에 번뜩인다. “그래,맞다.무덤자리가 확실해.둔덕이 좀 진 곳이 있잖니? 오래 돼서 다 깎여 내려갔지만 그것이 봉분이고…….” 할아버지는 이번에 두 팔로 허공을 감싸는 시늉을 한다. “양쪽의 활이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잖니.저 봐라,가지가 이리저리 벌어지긴 했지만 묘목도 있잖아.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다시 주위를 비추어본다.엉성한 이팝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을 좀 쓰지,죽어서도 한이겠구먼.” 네,그런 것 같네요.할아버지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고개를 든다.때를 맞추어 북두칠성의 국자 옆으로 상당히 밝은 유성이 떨어진다.준비해 두었던 커트필름으로 모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한다.하늘은 등갓이 손톱에 찢긴 순간처럼 번쩍 발한다.긴 유성의 꼬리가 눈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긴 궤적을 남긴 유성은 할아버지가 등진 산의 허리춤에 박히면서 소리 없이 부서진다. 망원경 접안부에 맞댄 카메라의 필름도 커트필름으로 교체한다.망원경과 카메라가 불안하게 맞대어져 있다.상이 선명하지 않잖아! 자,다시 해보자.김 선배가 내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처음엔 다 그런 거야.심호흡하고 다시 해봐! 천천히! 여자 다루어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래,천천히 렌즈를 돌리면서…….상을 잡아야 사진이든 뭐든 나올 거 아니야! 다시,다시! 신발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상이 선명해지도록 접안렌즈를 천천히 조정한다.무한대를 응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려면 파인더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래,그래야 한다.파인더에 들이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아랫입술을 꼭 깨문다.다시 상이 가능한 한 선명할 때까지 망원경 접안렌즈의 초점을 맞춘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댄다.전망이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다.다시 망원경의 초점을 정밀하게 맞춘다.들어온다.선명해진다.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고 최대한의 노출을 유도한다.긴장이 밀려온다.검지에 힘을 주고 셔터를 누른다.순간 내 행동에 대한 반감 섞인 생각이 스친다.우주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 소지할 수 있다는.그것 봐,하면 되잖아.어,언제 왔어요? 김 선배가 남자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거역하고 있었다. “가만,그러고 보니,내가 죽은 이 위에 버릇없이 앉아 있었네 그려.” 할아버지는 승창을 들고 망원경 쪽으로 다가와 앉는다.배낭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과 두유를 꺼낸다.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꼭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좋으신 할머니 같던데.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차갑지만 폭신한 낙엽방석이다.녹차가 담긴 컵을 가볍게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영묘하게 빛나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동쪽 하늘을 호령하면서 지평선 위에 드높이 떠 있다.궁수자리의 남은 마지막 밝은 별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켄타우루스와 남십자가자리의 별들 그리고 에라다누스강자리의 아케르나르가 남쪽 하늘에 깊이 박혀 있다.할아버지,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니다.온천은 무슨…….” 들추어진 할아버지의 바짓부리를 정리해드린다.차갑고 딱딱한 의족이 손끝에 느껴진다.할아버지가 내 어깨 위에 천천히 손을 얹는다. “힘들여서 만나봐야 게 잡아 물에 넣는 꼬락서니지.안 그러냐,성우야?” 죄송하지만,삼백이호실로 방 하나 더 주세요.돈을 지불하고 김 선배의 뒤를 따랐다.층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벌건 융단을 뒤덮고 지루하게 이어졌다.관측장비가 무거운 탓인지도 몰랐다.삼층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김 선배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냈다.미안해,괜찮아질 거야.나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나는 그녀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와 나는 삼백일호와 삼백이호 앞에 나란히 섰다.선배의 옆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문을 향해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토해냈다.괜찮아,정말이야.그녀에게 열쇠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꼭 자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더군다나 차도 있는데…….김 선배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목에 걸린 호박을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짐짓 어색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미안해…….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무엇이든 오래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기억이든뭐든…….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호박을 얹어놓고 꼭 쥐어주었다.호박이야.발트해의 상징이래.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직접 가서 캐보려구…….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해 연안 도시라는데.주 이름이…….아주 긴 이름이었는데……. 무척이나 밝은 대화구가 눈에 들어온다.사방이 일순 밝아진다.느낌이 좋다.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다시 여러 개의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곧 큰곰의 머리 부분으로도 유성이 떨어진다.유영하는 연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은빛을 산란하며 하늘을 가른다.제법 공격적이다.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쾌감이 전해진다.맞아,포어포메른주였어.독일의 북동부,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망원경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대자 동전 크기의 유성이 망원경 안으로 날아온다.몸이 반사적으로 꺾인다.조금만 참으세요,할아버지.이것만 찍으면 다 되니까.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카메라에 키스한다.너만 믿으마.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할아버지 등뒤로 다가간다. “그놈의 미련이 문제라지…….성우야,등나무집 할머니가 만나는 주겠지?” 나는 할아버지 등뒤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때마침 유성의 꼬리가 할아버지의 긴 하품 소리를 따라 하늘에 은회색 칼날을 하늘에 긋는다.뒤이어 서너 개가 더 떨어진다.지평선 어딘가에 떨어졌을 유성의 잔상이 오래도록 눈 속에 남는다.무덤 주위를 둘러본다.하필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호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곳이 한때는 슬라브족의 요새였다는 거야.맞아,슬라브족의 요새.한자동맹이란 것도 그곳에서…….엉터리 수작 말아요! 입이 열릴 뻔했지만 참았다.내 손으로 호박을 채취하고 싶은 게 꿈이야.고대 생물이 들어 있는 호박 말이야.난…….김 선배는 말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잡았다.잠깐만요! 김 선배는 여관 복도가 울릴 만큼의 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김 선배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망울에 작은 프로키온이 나타났다.우는 거예요,지금? 그녀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거요,잘 구경했어요.아무리 찾아도 개똥벌레는 없던데요.나는 돌돌 만 ‘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을 점퍼에서 빼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나,잠깐 약국에 좀 다녀올게.기다리지 말고 자.” 김 선배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나는 호박과 돌돌 만 사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말해줘요! 아니야,내가 갔다 올게.먼저 자고 있어.그녀는 이미 층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나는 슬라브족도 한자동맹도 아닌,김 선배가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만을 알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다시 시작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낙엽 더미가 굴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흡사 융단이 말리는 듯하다.굴러간 양만큼의 낙엽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발 아래 펼쳐진다.그믐달로 날아간 낙엽들이 한점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주머니에 손을 넣는다.호박이 느껴진다.호박 속에 갇혀버린 것은 나일지 모른다.손님,삼백일호 손님,안에 있어요? 복도 끝,창유리를 통해 어슷하게 비쳐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물 위에 떠가고 있었다.발트해,삼백일호 문 아래로 차가운 해수가 밀려나오고,나는 그 위에 밤새 쥐고 있던 호박을 떨어뜨렸다.점벙! 발끝으로 밀려온 해수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김 선배는 결국 호박을 캐러 떠났다.손님,손님! 이봐요! 하늘을 올려다본다.동쪽 끝에 겨우 고개를 내민 시리우스에 손가락을 찍는다.천천히 베텔게우스와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 옮긴다.다시 시리우스로 손가락이 이동하지만 그만 손가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만다.나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없는 모양이다.곧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에도 삼각형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관측일지를 꺼내든다.11월19일,사자자리 감마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20여 개의 유성 출현.30년 후에는…….호박을 꺼내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간다.로스토크,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고 없다.
  • “대선때 우리는 티코타고 깡통 주유 한나라는 리무진타고 유조차 급유”盧, 장·차관 송년만찬서 한마디

    노무현 대통령은 30일 최근의 검찰 수사와 관련,“국민들에게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용서를 구할 것은 구하겠다.”면서 “허물이 있지만 허물을 딛고,소명감을 가지고 책임있게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장·차관급과 시·도지사 부부 250여명을 초청해 송년 만찬을 갖고,이같이 말했다.노 대통령은 “언제나 고단하게 걸어왔지만 좌절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자금과 관련,“우리는 티코차를 타고 어렵게 깡통으로 기름을 넣으며 대선가도를 갔지만,리무진을 타고 유조차로 기름을 넣으며 달린 쪽이 훨씬 많이 썼을 것”이라고 ‘뼈’있는 농담도 했다.한나라당의 대선자금이 훨씬 많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이 대목에서 참석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노 대통령은 “올해 1년을 돌이켜보면 국회와는 다시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대결의 과정이었다.”고 취임 첫해를 회고했다.윤성식 감사원장 지명자의 인준부결,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해임건의 등을 두고 말한 것이다.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팽팽하게 힘든 과정이었지만,정책 측면에서는 정부가 한 일을 대부분 국회가 수용했다.”면서 “정치대결이 있어도 국회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책에는 협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가 나라 걱정해서 잘 해준 것으로 믿지만 장·차관들의 엄청난 노고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정부에서 하는 일에 대해 비판이 많고,TV와 신문도 (잘못했다고)지적만 해서 느낌이 좋지 않겠지만 들여다보면 중요한 일을 훌륭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참석자를 포함한 공무원들을 격려했다. 노 대통령은 새해 포부도 밝혔다.노 대통령은 “새해에는 정부혁신 등을 통해 다이내믹 코리아(역동하는 한국),일 잘 하는 정부,신뢰받는 정부를 만들어나가 대통령도 성공하고,모두 성공하는 길로 나아갈 것”을 당부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국정홍보처장의 ‘신세한탄’

    “국정홍보처는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있는 것도 문화관광부에서 다 빼앗아 가려고 해 문을 닫아야 할 판입니다.” 정부발표 및 국내외 홍보업무 담당 정부기관인 국정홍보처의 조영동 처장이 29일 낮 시내 한 음식점에서 출입기자단과 송년 오찬을 갖고 이같이 ‘신세한탄’을 했다. 조 처장은 “언론정책 업무와 한국언론재단은 (관리·감독권한이) 모두 문화부에 있고 아리랑-TV도 떨어져 나갔다.”면서 “남아 있는 것이라곤 해외홍보원 몇 곳과 K-TV뿐”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해외홍보원 중 규모가 큰 4곳은 문화부가 담당하고 있고,홍보처에는 9곳뿐인데 그마저도 문화부가 뺏어가려고 한다.”고 힘없는 홍보처의 현실을 빗대어 읍소했다. 조 처장은 “얼마 안되는 예산(540억원)인데도 올해 10억원이나 삭감돼 결국 예산 부족으로 인터넷 국정브리핑 경품행사를 없앴다.”면서 “언론재단을 홍보처로 끌어올 수 있도록 (언론이)도와달라.”고 뼈있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요즘에는 정권을 홍보하면 국민들로부터 욕만먹는다.”면서 “홍보처는 ‘정권홍보’보다 ‘정책홍보’에 치중하고 있다.”고 때아닌 정책홍보론을 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다국적 청춘들 재기발랄 해프닝/새달1일 개봉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온도가 높으면 선도(鮮度)가 떨어진다?’ 새해 1월1일 개봉하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L'Auberge Espagnole)는 통념을 뒤집고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신통한 프랑스산 코믹드라마다.시간이 갈수록 감성의 온도가 올라가는데도 화면을 처음 대할 때의 신선함이 끝까지 유지된다. 영화의 주요공간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기숙사 아파트.주위의 권유로 오랜 꿈인 작가를 포기하고 공무원 취직공부를 하기 위해 25세의 프랑스 청년 자비에(로맹 뒤리스)가 뒤늦게 합류한 공간이다.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 남녀학생들이 함께 사는 아파트는 갖가지 재료들이 뒤섞여 부글부글 끓고 있는 스튜냄비 같다.서로 다른 사고방식,문화적 차이 등으로 재기발랄한 해프닝들이 꼬리를 물고 터진다. 영화는 자비에를 구심체로 가지를 뻗어나간다.홀어머니와 여자친구 마틴느(오드리 토투)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학을 왔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낯선 이국생활에 적잖이 방황하는 그에게 가장 큰 위안처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스인 신혼부부.그러나 유부녀 안네소피(주디스 고드레쉬)와 자주 만나면서 성적 환상에 사로잡히고 결국 넘지 못할 선을 넘고만다. 벨기에,영국,스페인,독일,이탈리아,덴마크 등 다국적 청춘들이 부대끼며 엮어내는 영화의 최고 매력 포인트는 하나하나 제 몫을 다하며 살아 있는 캐릭터들.영국에 두고온 남자친구 몰래 바람을 피우다 기숙사를 발칵 뒤집어 놓는 웬디,매사에 깔끔하고 정확해야 직성이 풀리는 독일인 ‘범생이’ 토비아스,늘 지저분해서 잔소리를 바가지로 먹는 이탈리아인 알렉산드로….모두 웬만한 영화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성격이 뚜렷하다.특히 영국에서 놀러온 웬디의 말썽쟁이 남동생 윌리엄(케빈 비숍)은 영화를 배꼽잡는 코미디로 띄워올리는 ‘히든 카드’. 이국땅에서 다국적 젊은이들이 빚는 사랑과 우정,갈등 등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내내 경쾌한 톤을 유지한다.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몇가지 메시지는 야무지게 전달한다.언어장벽으로 극명히 드러나는 문화적 간극,조금씩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가는 젊은이들의 우정 등은 영화가 생각없는 코미디가 아님을 입증한다.질펀한 성적 농담으로 말초신경만을 자극한 채 고민하지 않는 국산 코미디 영화들을 반성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프랑스로 돌아와 마틴느와 헤어진 자비에가 마지막 진로를 선택할 즈음에는 청춘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를 두고두고 기억하게 할 또 하나의 주요장치.영국 록그룹 라디오헤드의 애상짙은 선율 ‘No Surprises’가 반복되면서 청춘영화의 미묘한 떨림은 한껏 증폭된다. 황수정기자 sjh@
  • 사고/박완서 칼럼 ‘살아가는 이야기’

    대한매일이 새해부터 서울신문으로 새 출발하면서 우리시대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인 소설가 박완서(72)씨의 칼럼을 싣습니다.‘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이름의 이 칼럼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감각이 빛나는 산문의 미학을 전해줄 것입니다. ‘한국 문학의 한 축복’으로 불리는 박완서씨는 분단현실에서부터 가족의 의미,여성문제,자본주의 체제 아래서의 인간소외 등 우리 사회 제반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 주는 탁월한 소설들은 물론 목덜미를 차갑게 훑고 지나가는 듯한 서늘한 감각의 감칠맛 나는 산문으로도 크게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자락 아래 아치울 마을에 사는 박씨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늙는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시간과 더불어 원경으로 물러나는 일이고 원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생의 전모를 볼 수 있다.”는 작가의 달관의 경지를 보여 줄 것입니다.오늘의 세태를 깊은 통찰력으로 성찰한 사색과 생활의 정경들이 단아하고 유려한 문체로 생생하게 드러날 이 산문은 연륜의 깊이와 대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격조 높은 글이 될 것입니다.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박완서씨는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장편소설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엄마의 말뚝’‘너무도 쓸쓸한 당신’과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미망’‘아주 오래된 농담’ 등을 발표했습니다.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만해문학상·황순원문학상 등 수많은 문학상도 받았습니다. 새해부터 격주로 월요일에 연재될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어느 오페라단장의 호소/‘이순신’ 해외공연 갈채받고도 정부지원금 안나와 파탄위기

    오페라단장들은 한 차례 실패로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음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공연이 끝난 뒤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무대에 나서 박수를 받는 즐거움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성단장이 아니라,드레스 차림으로 나설 수도 없는 남성단장이라면 ‘즐거움’보다는 ‘손실’의 위기에 더 크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안타깝게도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불행의 주인공은 지난달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순신’을 공연한 성곡오페라단의 백기현(공주대 교수) 단장이다.그는 24일 “파탄위기에 처해 있다.”며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당부하는 ‘호소문’을 냈다.그는 이번에 러시아 작곡가 블라디미르 아가포니코프에게 위촉한 신작 오페라 ‘이순신’을 공연하면서 모두 12억원을 썼다.국비 3억원과 지방비 3억원은 확보했지만,기업협찬을 목표로 했던 6억원은 구하지 못했다. 백 단장은,충청남도가 정부에 특별교부세를 요청한 데 희망을 걸었다.2000년 로마공연 때도 특별교부세를 지원받은 적이 있어 다시 한번 배려를 기대했다고 한다.러시아 연출자에 러시아 성악가 합창단 오케스트라가 참여한 초연은 다행스럽게 성공적이었고,내년에는 동유럽 공연을 추진한다는 구상도 나왔지만,정작 정부지원금은 나오지 않았다. 백 단장은 1998년 로마공연 때도 9억원의 빚을 졌다.다음해 ‘두 분의 은인’이 3억원씩을 떠맡았지만,백 단장은 집을 팔아야 했던 것은 물론 지금까지도 역시 교수인 부인의 월급까지 차압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한 얘기지만,책임은 누구보다도 재원을 전적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만 의존한 백 단장이 져야 한다.그렇지만 실패한 전작에는 거액을 투입하고,다듬으면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는 성공적인 신작은 사장시킨다는 것은,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그동안의 ‘투자’를 생각해서도 아까운 일이다. ‘이순신’의 소유권을 백 단장이나 성곡오페라단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갖고,자기 고장의 영웅을 다룬 지역의 대표 오페라,나아가 한국의 대표 오페라로 키워가는 방안을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서동철기자 dcsuh@
  • 열아홉 그 여든 그녀 사랑에 빠지다/박정자 주연 연극 ‘19 그리고 80’

    여든살 할머니와 열아홉살 청년이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사랑이 아무리 국경과 나이를 초월한다고 해도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조합이다.하지만 연극 ‘19 그리고 80’을 보노라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올해초 3개월간 장기공연되며 수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던 이들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1년만에 다시 찾아온다.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사랑이 추하거나 불쾌하지 않고,가슴을 적시는 유쾌한 감동으로 다가온 데는 작품 자체의 힘 못지않게 80세 할머니 ‘모드’역의 배우 박정자(62)가 내뿜는 매력이 큰 몫을 했다. ●귀여운 할머니와 움울한 청년의 사랑 박정자는 길가의 나무를 뽑아다 공기좋은 곳에 옮겨심고,동물원에서 바다표범을 몰래 데려다 바다에 풀어주는 엉뚱하고,귀여운 할머니 모드 역을 아주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높은 나무위를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성큼성큼 오르는 박정자의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로맨틱하면서,동시에 연륜이 가져다준삶의 지혜까지 갖춘 모드의 사랑스러움은 박정자로 인해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지난 공연중에 ‘80세 생일이 될 때까지 매년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그 꿈은 이내 배우로서 이뤄내야 할 삶의 목표가 됐다.내년 1월9일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막올리는 ‘19 그리고 80’공연은 그가 목표 지점을 향해 내딛는 두번째 발걸음인 셈이다. “모드를 연기하면서 80이란 숫자에 매료됐어요.배우로서 도전해야 할 산처럼 느껴진 거지요.끝까지 오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예순 넘어서 목표를 갖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그는 이 작품을 ‘배우 박정자의 레퍼토리’로 정하면서 한가지 원칙을 세웠다.매년 연출자와 상대 배우,스태프 등을 모두 바꿔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번 공연에는 여성 연출가 한태숙과 연극배우 김영민이 낙점됐다. ●매년 공연때마다 연출·스태프 바꾸기로 “같은 작품이라도 연출가와 배우에 따라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요.두번째라고 해서 익숙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그래서 늘긴장되지요.” 한태숙 연출가와는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에쿠우스’에 이어 세번째 공연.무겁고 진지한 작품을 주로 연출해온 한태숙 연출가가 경쾌한 코믹물에 가까운 이 작품을 어떻게 다듬어낼지 관심거리이다. 상습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던 음울한 청년에서 모드를 만나 사랑과 삶의 희망을 깨닫는 해럴드역의 김영민은 ‘레이디 맥베스’‘추적’ 등에서 실력을 쌓은 젊은 배우.미소년 이미지의 그가 무대에서 보여줄 새로운 해럴드의 모습도 기대를 모은다. 지난 공연에서 극중 모드와 해럴드의 키스신은 큰 화제가 됐다.박정자는 “주변에서 ‘복도 많다’고 부러워한다.”면서 “매번 젊은 남자배우와 키스하려니 염치는 없지만 행복하다.”고 농담을 했다.그러더니 “이번엔 연출가가 러브신을 보강하겠다고 해서 내심 기대를 하고 있다.”며 짖궂은 미소를 짓는다. 모드는 평소 ‘죽기에 적당한 나이’라고 여겨온 여든번째 생일날,해럴드로부터 청혼을 받지만 이미 결심한 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그토록 삶에 낙천적이던 모드가 자살하는 대목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자 박정자는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모드에게 죽음은 삶의 일부이자 또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변화일 뿐이에요.모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해럴드가 새롭게 태어나고,성숙할 수 있도록 모든 영양분을 원없이 주고 간 것이지요.모드가 해럴드에게 아낌없이 나눠준 사랑과 지혜는 결국 작가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대학로 정미소서 내년 2월말까지 해럴드역의 김영민이 보는 이들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해럴드나 모드 둘다 어떤 면에서 사회로부터 소외된 인물들이에요.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두사람이 서로에게 동화된다면 충분히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전엔 상상도 못해본 상황이지만 연습을 하면서 차츰 해럴드를 이해하게 되더라고 말했다.김영민은 요즘 극중에 삽입될 ‘월광소나타’연주를 위해 색소폰을 배우는 중이다. ‘19 그리고 80’(원제 해럴드와 모드)은 미국 시나리오 작가 콜린 히긴즈의 작품으로,1980년 브로드웨이에 처음 선보인 뒤 프랑스 등 유럽 무대에서 인기를 끌었다.2월29일까지(02)765-5476. 이순녀기자 coral@
  • [씨줄날줄] 후세인의 족보

    미국 대통령 중 거짓말로 가장 유명한 이는 36대 대통령 린든 B 존슨이다.베트남을 공격하기 위해 지어낸 ‘통킹만 거짓말’때문이다.“질문:존슨 대통령은 언제 거짓말을 하나.답:입만 열면.”이라는 농담의 주인공이 된 그는 족보도 널름 미화했다.한국을 방문,미군 앞에서 연설하면서 그는 고조부가 알라모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말했다.훗날 존슨의 전기를 쓴 도리스 굿윈이 거짓말을 한 이유를 묻자 알라모가 아닌 다른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이것 또한 거짓말이라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이 2000년 10월11일자에 소개한 내용이다. 존슨 대통령이 거짓말까지 한 걸 보면 우리네만큼은 아니어도 서양 사람들도 족보나 가문을 꽤 챙기는 것 같다.그래도 역시 족보는 우리 것이 최고지.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사이버 족보 사이트도 엄청 많은 걸. 하지만 여기서 잠깐 우리 족보도 점검을 해볼 필요는 있다.영남대 명예교수인 이수건 박사는 “17세기까지 양반층은 10%에 그쳤다.”면서 “조선 후기로 내려올수록 본관을 바꾸거나 가계를 조작하는 일이 성했다.”고 말한다.금속활자 연구의 권위자인 손보기 교수는 “지게에 활자를 지고 다니면서 족보를 찍어주고 돈벌이를 하는 인쇄 행상이 19세기 성행했다.”고 말한다.‘재미있는 성씨·족보 이야기’의 저자 김정열씨도 조선시대 족보는 징집면제증빙서였기 때문에 뇌물로 족보를 첨삭하거나,남의 문중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투탁(投託),편법으로 만든 별보 등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투탁해서 만든 탁보에 이름을 올린 이들을 ‘붙인집’이라 했다. 이라크 후세인 전 대통령이 집권시 족보학자에게 명령했던 족보 투탁 공작이 마침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고 외신은 전한다.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그는 언제부턴가 ‘신성한 운명’을 믿으면서 자신의 가계를 이슬람 예언자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에 연결시켰다.하지만 체포된 지 3일만인 17일 마호메트 족보를 관리하는 아슈라프 연합은 후세인이 족보를 위조했다면서 그를 마호메트의 제자에서 삭제한다고 발표했다.졸지에 마호메트 가문의 붙인집에서 ‘떨어진집’으로 전락한 것.사필귀정이지.제 조상 어디에다 팔아먹고 남의 조상밑에 억지로 끼어들어간 게 탄로나지 않으면 이상하지.그 힘센 미국 대통령도 거짓말로 가문 빛내보려다 죽어서도 욕보는데. 강석진 논설위원
  • 코끝 찡한 ‘생각있는’ 코미디/정준호·공형진 콤비… 31일 개봉 동해물과 백두산이

    스크린 속에서 부쩍부쩍 커가는 배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영화보기의 한 즐거움이다.오는 31일 개봉하는 코미디 ‘동해물과 백두산이’(제작 주머니필름·영화사 샘)가 그런 관람포인트를 가진 영화다. ‘두사부일체’‘가문의 영광’ 등 꾸준히 코믹영화를 흥행시켜온 정준호와,최근 ‘별’‘위대한 유산’ 등에서 주인공을 밀어낼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공형진이 콤비플레이를 이룬 작품.감정이나 제스처의 과잉없이 자연스럽게 사실적인 코미디를 구사하는 공형진의 캐릭터가 씹으면 씹을수록 진한 맛을 우려낸다. 국산 코믹멜로라면 이제 더 볼 게 없을 만큼 많이 봤다고 생각한다면 영화는 설정부터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북한 군 장교와 병사가 실수로 남쪽으로 흘러내려와 오도가도 못하고 온갖 해프닝을 겪는다는 이야기 얼개다.북한 매봉산 기지에 근무하던 엘리트 인민군 장교 최백두(정준호)와 제대 말년의 병사 림동해(공형진)는 바다낚시를 나갔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그만 동해안 남한구역으로 표류해온다.구사일생의 기쁨도 잠시.한여름피서철을 맞아 온통 비키니 천국이 돼있는 해수욕장에서 둘은 갑작스러운 ‘문화적 충격’에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댄다. 철저히 코미디 정서에 기댔으면서도 영화는 관객들의 공감을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요리조리 드라마에 끼워맞췄다.크게는 남북 대치상황을,작게는 청소년 문제를 끌어들여 작품의 공감대를 넓히려 한 흔적이 뚜렷하다.동해로 떠내려온 백두와 동해는,경찰 고위간부의 딸이자 가출 여고생인 한나라(류현경)를 만나 비밀리에 도움을 받으며 생각지도 못했던 우정을 쌓아간다. 영화는 두 남자가 다시 북으로 향하기까지의 좌충우돌 해프닝에 큰 비중을 둔 듯하다.여자친구들과 함께 가출해 방황하는 나라와 우정을 쌓는 대목 말고는 진지한 화면을 찾아볼 수 없다.나라를 찾아다니다 백두와 동해 대신 엉뚱하게 간첩으로 몰려 허둥대는 두 형사(박철,박상욱)의 캐릭터도 코미디의 재미를 높이는 요소다. 흥행은 못했으나 데뷔작 ‘오버 더 레인보우’(2002년)로 감식안을 인정받은 안진우 감독 연출.남북분단을 소재로 그흔한 멜로 요소 없이 영화를 다듬어낸 데서 신인감독의 배짱이 충분히 읽힌다.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공화국 혁명전사들’을 별난 국외자로 묘사했지만,그를 통해 남북의 문화적 간극을 코끝 찡하게 돌아보게 한 배려가 돋보인다.요즘 흔한 코미디물처럼 질척한 성적 농담이나 사랑타령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생각없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설명이 부족한 몇몇 설정 탓에 드라마에 사심없이 빠져들기가 어렵다.백두와 동해가 탈없이 남한을 빠져나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나라가 무엇때문에 반항과 갈등을 거듭하는지 등은 관객의 짐작에 맡겨질 뿐이다.윤곽이 뭉개진 두루뭉술한 메시지들이 주제의식을 다잡아 부각시키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황수정기자 sjh@
  • 편집자에게/ “老부모 버리면 당신도 버림받는다”

    -‘불효세태 경종’기사(대한매일 12월17일자 9면)를 읽고 “있을 때 잘 하지!”란 말을 많이 한다.농담처럼 내뱉는 이 짧은 한 마디엔 지나칠 수 없는 뜻이 담겼다.후회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자식을 너무 감싸다 때로는 부작용도 빚지만,우리네 부모들의 자식사랑이 각별하기론 세계 으뜸이라 할 수 있다.피붙이를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게 혈연을 중시하는 우리 정서로는 아직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무리 세태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셋이나 되는 아들이 8순에 가까운 노모 모시기를 서로 떠넘기다 법원으로부터 월 200만원의 부양료를 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는 기사를 접하고 주변에서도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었다. 부모 대하기를 우습게 여기는 부모를 둔 자식이 무얼 배우겠는가.무언(無言)중 학대할 대상으로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한다.부모가 세상을 등져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 사라진다면 두고두고 후회로 남거나,강원도 영월 3형제처럼 비정한 자식이라는 비난을 산다면 스스로도 자식에게서 버림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부모를 모시고 꿋꿋이 살아가는 자식이 더 많다.“너도 늙어 봐라.”란 말을 곰곰 되새겨보자. 김용자 경북 경산군 진량읍
  • 盧대통령 회견/회견·특검임명 안팎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의 16일 기자회견에 대해 ‘내용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반박했다.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3가지가 정리됐다.”면서 “‘10분의1’ 언급과 관련해 책임지겠다고 했고,검찰의 수사를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그리고 지금 불법대선자금에 대해 밝히지 못하는 사유도 설명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특별검사로 임명된 김진흥 변호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저도 담담하게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기는 기분으로 가고 있다.”며 ‘대통령측근비리 특검’에 임하는 소회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노 대통령은 이어 “자꾸 야당탄압이라고 하는데 결코 일으킨 사건이 아니다.”고 ‘대선자금 기획수사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운명에 모든것 맡기는 기분” 피력 노 대통령은 특검 임명장 수여가 어색한 듯 “앞으로 대통령과 관련된 법을 만들때 법무장관이 임명토록 하면 좋겠다.”면서 “보통 임명하고 나면 농담도 하고 당부말씀도 드렸는데 오늘은 그렇게 안하겠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도 보였다.이어 “말씀 안드려도 소신껏 하겠다는 각오도 있을 것이고,국민적 압력도 있으니 소신껏 하라.”면서 “제 자신에 대한 검증이기도 하고 검찰수사에 대한 검증이기도 하다.”고 강조해 검찰수사에 대해 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지난해 대선을 마치고 의혹 제기를 받지 않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딛고 일보(一步)를 어떻게 나갈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인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시대의 흐름’에 운명을 맡기겠다는 심경을 밝혔다.노 대통령은 앞서 기자회견에서 불법대선자금·측근비리 등과 관련,한나라당과 비교해서 깨끗하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검찰출두와 관련,“제 스스로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느냐.”면서 “(한나라당과 비교해서)50보,100보가 아니겠느냐.”고 말하기는 했다.하지만 “저는 (한나라당의)10분의1을 넘지 않는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노 대통령이 직설법은 아니지만 이 전 총재에 대한 ‘적법처리 원칙’을 밝힌 것도 주목된다.재신임 국민투표는 사실상 물건너갔지만,재신임을 묻겠다는 점을 굽히지 않는 것도 관심 사항이다. ●‘대선자금등 한나라보다 깨끗' 강조 윤태영 대변인은 회견 후 “충분히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노 대통령이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직접 배경설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측은 대부분의 신문이 ‘정계은퇴’발언에 대해 ‘검찰수사 가이드라인을 제기할 수도 있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거나,‘폭탄발언’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불쾌해 했다.이날 회견에서 방송사 기자들에게 주로 질문권을 준 것도 이런 시각과 무관치 않다.노 대통령도 “한나라당의 의혹제기에는 강한 쐐기가 필요하고,10분의1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데,그 말이 적절하냐 여부로 문제를 끌고가면 본질이 호도된다.”면서,이틀전 언론보도에 대한 ‘유감’을 간접적으로 표시했다. 한편 이날 노 대통령이 출입기자들과 공식적으로 회견을 한 것은 취임후 국내에서만 12번째였다. 곽태헌기자 tiger@
  • 중국어… 불어… 차라리 영어를 더…쌍용차 직원들 “고민되네”

    ‘중국어를 배울까,프랑스어를 배울까,아니면 영어를 더 공부해야 하나.’ 요즘 쌍용차 직원들은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다.‘새 주인’의 향배가 농(弄)의 핵심이다.어느 업체가 매각주체로 선정되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이다. 11일에는 쌍용차 매각을 위한 입찰제안서 접수가 마감됐다.매각 주간사인 삼일회계법인은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미국 GM과 프랑스 르노,중국 난싱(藍星) 및 SAIC의 자회사인 후이쭝 자동차 등 5∼6곳이 제안서를 낸 것으로 알려지는 정도다.삼일회계법인은 3∼4일간 정밀심사를 거쳐 우선협상 대상자를 추천할 예정이다.최종 결정은 내주 초 채권단협의회에서 이뤄진다.채권단은 우선협상 대상자와 본격적인 매각협상에 들어간다.가급적 연말까지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방침이다. 쌍용차 매각작업은 이처럼 초읽기에 돌입했다.노조는 매각반대 투쟁을 강행할 방침이다.독자운영을 이뤄내겠다며 버틸 기세다.하지만 직원들은 노조만 믿고 지낼 수 없는 형편이다. 입찰제안서의 전단계인 인수의향서를 낸 업체는 국내외 8∼9곳.GM과 프르노,난싱과 상하이기차공업집단공사(SAIC),인도 타타그룹 등이다.영어,중국어,프랑스어권으로 나뉜다. 인수후보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대형업체보다는 중견 메이커가 유리하다는 소문도 나돈다.현재로선 분명한 사실은 두가지 뿐이다.외국업체가 후보로 선정되면 외국어가 더욱 필요하게 된다는 게 첫째다.둘째는 그 업체의 국적에 따라 사내의 제1외국어가 결정된다는 점이다.물론 매각작업 무산은 또다른 문제다. 한 관계자는 “매각작업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나오지 않은 탓인지 회사 분위기는 아직 평온한 편”이라면서도 “직원들이 매각관련 언론보도의 진위를 물어오거나 어느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는지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訪美 이종석 “난 자주동맹파”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나는 자주파도 동맹파도 아니며 그보다는 상식파 또는 자주동맹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이종석(李鍾奭·사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9일 워싱턴 특파원단과 간담회를 가졌다.이 사무차장은 이 자리에서 “나에 대해 반미주의자라고 하거나 노무현 정부의 탈레반이라고들 말하고 하는데 이는 모두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식과 합리를 바탕으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외교·안보정책을 기획·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그는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자신에 대해 “탈레반인줄 알았는데 아니였다.”라든가 “머리에 뿔이 난 줄 알았다.” 는 등의 농담을 건넨 사람도 있었다면서 “나는 두건도 쓰지 않았다.또 이렇게 눈웃음치는 탈레반을 본 적이 있느냐?”고 말하면서 모두 보지 않은 데서 비롯된 오해라고 말하기도 했다.그는 “이번 방문을 통해 미 정부 내 외교·안보 라인의 많은 인사들을 만나 많은 유익한 대화를 나눴다.미국의 생각을 많이 들었고 우리가 생각하는것도 많이 전달했다.고 말했다.이어 “이처럼 이야기를 해보니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고 덧붙였다.그가 밝힌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앞으로 우리의 외교정책에 어떤 모습으로 투영될 지가 관심거리다. 이 사무차장은 이번 방문에서 초청자인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을 비롯해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 등과 회담을 가졌다. mip@
  • ‘죽은 어머니와 6개월 동거’ 소년 학교지원·성금으로 새 보금자리

    죽은 어머니를 지켜주겠다며 시신과 6개월여 동안 한 집에서 살아온 송모(15·중3)군에게 보금자리가 마련됐다. 9일 송군이 다니던 S중학교와 이천시 등에 따르면 송군을 돕겠다며 각지에서 보내준 성금과 학교 교사들이 모은 돈으로 학교 인근에 방 한 개와 주방,거실이 딸린 12평(보증금 500만원,월세 20만원) 크기의 원룸 하나를 마련했다. 당초 학교와 시는 송군에게 학교 근처에 하숙방이나 무의탁 노인이 거주하는 주택의 방 한칸을 얻어주려 했으나 혼자만의 생활을 좋아하는 송군의 의사와 이모의 허락에 따라 원룸으로 거처를 정했다. S중학교 이덕남(50) 교감은 “송군의 얼굴에서 한동안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이젠 친구들과 농담도 하고 웃는 등 점차 밝고 씩씩한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송군은 이천시 율면의 한 고등학교로 진학이 결정됐으며 송군이 다니는 학교와 이천경실련,이천의 순복음예광교회 등이 부모 역할을 맡아 보살피기로 했다. 송군은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일자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재지정된 송군은 앞으로 매월 31만 4000원의 생계비와 연간 9만원의 교과서대금 및 학용품 구입비를 받게 되며,고등학교 학비를 지원받고 의료보호대상자로도 지정돼 무료 진료도 받게 된다. 이천 윤상돈기자 yoonsang@
  • “저는 서류 한뭉치… 각하는 한장으로 준비 盧대통령은 분석력 탁월한 듯”알제리대통령 회담서 돌출발언

    압델 아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이 9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확대정상회담에서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돌출발언’을 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한 뒤 확대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각하는 정말 저와 비교가 된다.”면서 “한국과 알제리의 정상회담을 위해 저는 서류 한 뭉치를 준비해왔는데,각하는 서류 한장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이어 “(각하는)종합분석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노 대통령은 “종이는 적지만 글은 많다.”고 답변했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그래서 분석 종합능력이 뛰어나다고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종합능력은 뛰어나지만 말이 잘 안 된다.”면서 “인사말씀을 줄이고 실질적 얘기를 나누자.”고 화제를 확대정상회담 의제쪽으로 바꿨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자신은 정상회담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는데 노 대통령은 서류 한장만 갖고 나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인사말 치고는 매우 이례적이다.이에 대해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알제리 대통령이 농담으로 말한 것”이라며 “실제 회담에 들어가면 1장으로 정리한 것도 다 얘기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설명했다.한편 노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과 관련,“이라크의 평화정착과 재건을 위해 파병하게 됐다.”면서 이해를 요청했다.이에 대해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전적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고,윤 대변인이 전했다. 양국 정상들은 회담을 마치고,21세기 미래지향적 협력기반을 강화하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된 공동언론발표문을 발표했다.경제분야에서의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가기로 하고,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게 동북아 뿐 아니라 세계평화와 안정유지에 필요하다는 점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알제리 정상은 물론 마그레브(북서 아프리카)지역 국가원수가 방한한 것은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처음이다. 곽태헌기자 tiger@
  • “대표경선 참여 부추겼는데 이번공연 남편 덕좀 볼까요”/민주당 조순형대표 부인 배우 김금지씨 연기생활 40주년기념 ‘선셋대로’ 막올려

    “대표 경선 전에는 부부가 함께 설친다는 비난을 우려해 일부러 공연 홍보를 안 했어요.그런데 경선이 끝나고 나니 모두들 배우가 아니라 정치가 아내에만 관심을 가지시니… 이젠 남편 덕 좀 볼까봐요.(웃음)” 중견 연극배우 김금지(61)씨가 연기 인생 40년을 맞아 기념공연을 마련했다.3일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막 올린 연극 ‘선셋 대로’(21일까지,02-747-4188)에서 여주인공 ‘노마’역을 맡아 2년만에 무대에 서고 있는 것이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로 유명한 ‘선셋 대로’는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가 과거의 영화(榮華)와 환상에 사로잡혀 몰락해가는 이야기.‘구질구질한 역할’이어서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뮤지컬을 본 지인들이 ‘당신이 적역’이라며 적극 추천해 40주년 기념작으로 택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민주당 대표 경선 이후 남편인 조순형 신임대표 덕분에 덩달아 바빠졌다.여기저기서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 때문이었다.공연을 코앞에 둔 처지라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를 농담 섞어 말했다.“이참에 내 공연이나 알리자는 생각에서…” ●“좋아하는 일 평생 했으니 후회없어요” 국립극단 연기연수생 1기 출신인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어미’ ‘타이피스트’ 등 숱한 작품에서 주역으로 명성을 날렸다.3년 전 자신의 이름을 건 ‘극단 김금지’를 창단했고,지난 3월까지 연극배우협회장으로 활동했다.그에게 연기는 어떤 의미일까.“내가 좋아하고,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평생 하고 있으니 정말 행복한 삶이지요.배우로서 하고 싶은 역할은 웬만큼 다해봤고,유명해질 만큼 유명해졌으니 후회는 없어요.” 그래도 아직 무대에 설 때면 떨리기는 마찬가지란다.“연습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대사 한줄을 놓고 어떻게 표현할지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그것 역시 제겐 즐거움입니다.막상 공연이 시작되면 갇힌 느낌이 들어서 ‘언제 끝나나.’ 그 생각만 해요.” 조 대표도 김씨의 이런 심정을 잘 헤아리기 때문에 공연을 자주 보지는 않는다.대신 분장실에 들러 꽃다발을 전하는 배려는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정치 名家' 답게 아들도 정치에 뜻 자연스레 조 대표의 얘기로 화제가 옮겨졌다.그는 “내가 경선에 나가라고 부추겼는데 내심 떨어지면 어떡하나 가슴을 졸였다.”면서 “당선이 결정되는 순간 너무 기뻤다.”고 회상했다.바른말 잘하기로 유명한 조 대표지만 집에선 오히려 자신이 쓴소리를 전담한다며 웃었다.김씨에게 한눈에 반한 조 대표의 열렬한 구애로 5년 연애끝에 결혼한 두 사람은 소문난 잉꼬부부이다.중책을 맡은 남편이 가정에 소홀할까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지금까지 한번도 정치에 남편을 뺏겨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조 대표의 집안은 널리 알려진 대로 정치 명가(名家)이다.조병옥 박사가 조 대표의 아버지이고,국회부의장을 지낸 고 조윤형씨가 그의 형이다.현재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들 성덕씨도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기업체에 근무하다가 뒤늦게 정치에 입문한 아버지처럼 당분간은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고 난 뒤 정치에 뛰어들 계획이라고 한다.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딸 소영씨는 희곡을 쓰고 있다. 이날 첫 공연에선 연극학을 교양과목으로 수강하는 중앙대 학생 등을 포함해 관람객이 150석을 꽉 채웠으나 정치인들은 물론 정치권에서 보낸 화환도 눈에 띄지 않았다.김씨는 예전과 다름없이 공연을 마쳤으며,공연이 끝난 뒤 출연진과 함께 중앙대생들과 대선배로서 격의없는 대화를 나눴다. 이순녀기자 coral@
  • 창단 25주년 기념공연 따로따로 아쉬운 신명

    ●‘사물놀이' 원조는 김덕수·최종실·이광수·김용배 이른바 원조 사물놀이 멤버들을 놓고 시중에서는 엇갈린 주장이 힘을 겨룬다.“한데 모여야 더 힘을 쓰지….”라는 사람이 많지만 “사물놀이가 궤도에 올랐으니 흩어져 자기 색깔을 찾는 것도….”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물놀이 창단 25주년을 맞아 멤버들이 따로따로 기념공연을 준비하면서 논란은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원조 사물놀이는 장구의 김덕수와 징의 최종실,북의 이광수,꽹과리의 김용배 네 사람을 말한다.1978년 2월 공간사랑에서 열린 ‘전통음악의 밤’에 ‘웃다리 풍물-경기 충청가락’을 발표한 구성원은 조금 달랐지만,다음해부터 만장에 소박하게 내걸었던 팀 이름 ‘사물놀이’를 순식간에 보통명사로 탈바꿈시켜 간 것은 이 넷이다. 이 가운데 김덕수가 ‘사물놀이 탄생 25주년 기념 난장 페스티벌’(02-762-7300)을 2∼7일 호암아트홀에서 갖는 데 이어 ‘사물놀이 창단 25주년 기념공연 최종실의 소리여행’(031-676-8276)이 12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된다. 잘 알려진 대로 원조 사물놀이의 상쇠 김용배는 1986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이광수는 평생 족쇄가 되어버린 마음의 병이 도지는 바람에 최근에는 세상에 미안함을 느끼며,스스로를 추스르는 시간을 갖고 있다. 김덕수와 최종실이 따로따로 무대를 갖는 것을 두고는 “25주년이라는데 이런 날도 안 모이다니….”라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지난 98년 20주년을 맞아 제각각 공연했을 때는 나오지 않던 얘기라 당사자들도 조금은 당혹스러운 듯하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한데 모였던 것은 1994년 6월.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사물놀이 발전기금 마련을 위한 무대를 가졌다.당시 네 사람은 ‘살아있는 전설 다시 한 무대에 서는 사물놀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형무대를 꾸몄다.이날 김용배의 자리는 강민석이 채웠다. ●1994년 6월 마지막으로 한무대에 원조 사물놀이는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는데,참석한 사람들에게는 소고(小鼓)에 이름을 자필로 나란히 써주었다.농담을 보태자면,이들이 앞으로 다시 모이지 않아야 기자가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 소고의 값어치도 그만큼 높아질 텐데…. 어쨌든 남아있는 김덕수와 최종실 이광수 세 사람은 음악이든,인간이든 서로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다른 듯하다. 김덕수와 이광수는 1999년 3월 안숙선 명창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함께 공연을 갖기도 했다.이광수는 아직도 “아내보다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최종실도 이광수를 두고는 “변치 않는 우정으로 아끼고,정을 나누고 있다.”고 말한다.반면 김덕수와는 “공연장에서 가끔 만나기는 하지만 교류가 없다.”고 밝혔다.나아가 “사물놀이는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장르가 아닌데도,어느 개인이 만든 것처럼 비쳐져 속상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김덕수보다는 그렇게 인상지워 놓은 세상에 대한 항변일 것이다.김덕수도 최종실에 대해서는 “나의 음악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면서 견해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한때 음악활동을 함께했다고는 해도 25년이라는긴 세월이 지났고,이제는 50대 나이에 접어들어 나름대로 예술관(觀)이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뭉칠 것’만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서로의 음악과 인간에 대한 견해차이 역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원조 사물놀이는 뭉쳐서 한국사람을 대표하는 정서가 한(恨)이 아니라 신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웠고,국제사회에서 이를 널리 각인시켰다.그렇지만 흩어져서 한 일은 더욱 많다. ●‘따로 또 같이' 한국 타악의 힘 알려 뛰어난 기획력의 소유자인 김덕수는 사물놀이라는 ‘신앙’의 전도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물놀이 한울림 예술단’을 만들었다. 세계풍물겨루기대회 등으로 국제적 보급에 힘쓰는가 하면,상설극장을 오는 11일 부천 상동영상단지에 개관하는 등 사물놀이의 ‘큰집’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최종실은 한국을 ‘세계 타악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사물놀이의 리듬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의 리듬도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그의 제자들은 지금도 세계 각국의 타악리듬을 배워 새로운 한국적 전통을 찾아내는 데 여념이 없다. 이광수는 몸과 마음으로 전통적 풍류정신을 곧이곧대로 잇고 있는 이 시대의 마지막 남사당패 소리꾼이다.절절한 인간적 고뇌를 담은 그의 비나리가 얼마나 가슴저미게 하는지는 직접 접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사물놀이에 가렸던 남사당패의 음률이 그를 통하여 세상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30주년엔 함께 하는 공연 볼 수 있길 세상을 버린 김용배가 남겨놓은 것도 많다.원조 사물놀이를 떠나 정착한 곳은 국립국악원으로,그는 당시에는 이웃했던 국립국악고에도 사물놀이를 퍼뜨렸다.국악원과 국악고라는 ‘제도권’을 공략한 것은 남사당패 출신이 주축이 된 원조 사물놀이로서는 획기적이었다.이후 사물놀이가 어떤 계층에도 쉽게 받아들여진 데는 김용배가 있었다. 원조 사물놀이 멤버들이 앞으로 할 일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오히려 흩어져 있어야 더욱 전통예술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그렇다 해도 2008년 30주년에는,오랜만에 마음을 활짝 열고 친구들을 만나 장구 징 북 꽹과리를 함께 두드려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서동철기자 dcsuh@
  • 한지에 묻어난 고향의 푸근함/ 한국화가 강미선 작품전

    한국화가 강미선(42)은 한지의 질감과 수묵의 농담을 한껏 살려 그림을 그린다.그렇기에 그가 그리는 생활 주변의 소소한 사물들에서는 그윽한 먹의 향기와 고향과 같은 푸근함이 묻어난다.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학고재 화랑에서 열리는 그의 작품전에 ‘일상향(日常鄕)’이란 제목이 붙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미선은 정물을 주로 다룬다.소담스레 담긴 ‘귤’,비에 젖은 우산을 바닥에 펼쳐 놓은 ‘큰비’,휑뎅그렁하게 놓여 있는 쓰다만 듯한 ‘일기’….정물과 풍경의 경계에 놓인 작품들도 등장한다.시들어 바스러질 것 같은 나뭇잎을 그린 ‘낙엽’이나 박수근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나목’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또 이가 깨진 잔금 도자기들을 늘어놓은 ‘도자기 소묘’ 연작은 도자기의 다양한 조형감을,‘백자’는 조선시대 달 항아리의 깊고 오묘한 색감을 구현한 작품이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흔한 소재의 그림이지만 그의 작품은 깊이를 느끼게 한다.두꺼운 마티에르 효과를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강미선은 투박한 질감을 내기 위해 결이거친 닥종이를 반복적으로 발라 올린다.그렇게 만든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이 세월의 이끼가 낀 토담 같기도 하고 화강암 표면에 종이를 얹고 두드린 탁본 같기도 한 느낌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02)739-4937.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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