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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엽기 남편? 아내에게 성형수술 강요한 사내

    엽기 남편? 아내에게 성형수술 강요한 사내

    “돈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어요.내 아내를 먼저 열명길에 오른 전처 모습으로 성형수술을 해주면 됩니다.” 중국 대륙에 한 30대 초반의 사내가 성형외과를 찾아 자신의 아내를 죽은 전처의 얼굴 모습으로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요구해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화제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충칭(重慶)직할시에 거주하고 자오강(趙剛·32·가명)씨.인테리어 회사를 경영하는 중소기업 사장이다.그는 아내 차이(蔡·23)모씨를 데리고 충칭시 시내 가오신(高新)구 인민병원 성형미용과를 찾아 사망한 전처 루(盧)모씨의 사진을 내보이며 루씨의 모습과 비슷하게 차이씨의 얼굴을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엽기’적인 일이 발생했다고 중경상보(重慶商報)가 24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자오씨는 전처 루씨와 캠퍼스 커플이었다.자오-루 커플은 양쪽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5년전 어렵사리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은 쉽지 않았지만 이들 부부의 금실만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할 할 정도로 좋았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내 루씨와 함께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었다.이들 부부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하지만 하늘도 이들 부부의 원앙과 같은 금실을 시샘한 탓일까.지난 2003년전 어느 비오는 날 밤,청천벽력같은 일이 일어났다. 회사 일을 끝내고 아내 루씨와 함께 귀가하던중 교통사고를 당했다.자오씨가 몰고가던 승용차가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앞서가던 지프차를 들이받아 루씨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자오씨는 6개월 동안 입원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청천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자오씨는 한동안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자살 일보 직전까지 가는 등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이때 부모들은 생때같은 자식을 죽일 것같아 죽을때 죽더라도 결혼하라고 권유했다. 죽기 전에 2세를 보고 죽으라고 새 장가 가기를 종용하자,부모의 권유를 거절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매번 거절하는 것이 부담이 된 자오씨는 결국 새 장가를 들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들어 그는 여러 명의 미혼 여성들을 소개받았다.인테리어 사업으로 제법 돈을 모은 덕분이다.하지만 관심을 가질만한 여성을 만나지 못했다.그런 가운데 미모의 차이씨를 만났는데,한눈에 반해버렸다. 그가 차이씨에게 반한 것은 다름아닌 그녀가 전처 루씨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차이씨가 농촌 출신이고 가게 여종업원이었지만 자오씨는 조금도 주저없이 아내감으로 낙점했다.그리고 그해 8월 결혼식을 올렸다. 혼인 후 차이씨는 아내 노릇을 톡톡히 잘해냈고 자오씨도 아내를 살갑게 보살펴 이들 부부의 금실도 전처 루씨때 못지 않게 좋았다.자오씨는 죽은 아내 루씨로부터 적게 받은 사랑을 지금의 아내로부터 보상받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차이씨를 더욱 더 사랑했다. 그런데 1주일여전인 지난 17일 몇년 동안 못만난 고향 친구 한 명이 자오씨에게 “지금 아내 차이씨를 보니까 전처 루씨와 너무나 많이 닮았다.”며 “약간 얼굴을 손보면 전처 루씨와 쌍둥이처럼 닮게 될 것”이라고 농담삼아 지껄였다. 한데 이 말이 가시처럼 뇌리에 와 박힌 자오씨는 한동안 잊혀지지가 않았다.며칠 동안을 고민한 그는 끝내 차이씨에게 루씨의 얼굴처럼 고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한마디 슬쩍 던졌다.차이씨는 이 말이 너무 황당했지만 사랑하는 남편 자오씨의 간곡한 요청이기에 결국 수락했다. 자오씨는 23일 당당한 모습으로 차이씨와 함께 인민병원 성형미용과 장롄펑(張蓮鳳) 주임을 찾았다.그는 루씨의 사진을 꺼내보이며 차이씨를 루씨 모습과 똑같게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장 주임은 이들 부부에게 다시 한번 재고해보라고 일단 집으로 돌려보냈다.장 주임은 “자오씨의 성형수술 이유가 너무 맹목적이다.”며 “성형수술이 결코 부부관계나 감정을 가장 좋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고 조언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김석의 Let’s wine] 화이트와인의 세계

    [김석의 Let’s wine] 화이트와인의 세계

    와인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오래 전, 한 친구와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화이트와인을 만든 사람은 색맹이 아니냐.’는 농담을 들은 적 있다. 사실, 화이트와인의 색은 노란색이다. 어떤 와인들은 새콤달콤한 맛이 날것 같은 레몬 빛을 띠기도 하고, 잘 숙성된 와인들은 황금빛을 띠기도 한다. 그 외에도 볏짚색이라는 표현도 화이트 와인의 컬러를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보다 정확한 화이트와인의 정의는 붉은 빛을 전혀 띠지 않는 와인을 말하기 때문에, 위에 언급된 컬러의 와인들은 모두 화이트 와인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보통 화이트 와인이 연녹색, 노란색, 황금색등의 빛깔을 내는 것은 청포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지만, 더 재미있는 사실은 적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화이트 와인의 세계는 변화무쌍하며, 예측불허여서 더더욱 우리의 흥미를 끈다. 전세계에서 재배되고 있는 수만 가지의 많은 포도 품종들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랑을 받고 있는 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에는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리슬링, 세미용의 네가지를 들 수 있다. 샤르도네는 청포도의 왕이다. 타고난 풍부함과 섬세함으로 최고의 화이트와인을 만든다. 신선한 풋사과, 파인애플의 향, 갓 구운 빵 냄새를 복합적으로 풍긴다. 소비뇽 블랑은 풋풋한 풀 향기가 나는 상큼하고 신선한 청포도로 재배 방식에 따라 매우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닌다. 보르도 지역에서는 세미용과 블랜딩하여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만들거나 반대로 달콤한 소테른 와인을 만드는데 자주 쓰인다. 독일이 고향인 리슬링은 산도와 당도의 절묘한 조화로 아주 드라이한 와인부터 아주 달콤한 와인까지 맛의 범위가 매우 넓어 천의 얼굴을 지닌 포도로 묘사되곤 한다. 세미용은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 곰팡이를 피우고, 그 흉측한 모습을 견딘 후에는 벌꿀 향 가득한 와인으로 탈바꿈하여 수많은 연인들에게 최고의 달콤함을 선사하고 있다. 화이트와인은 보통 아페리티프(aperitif:식전주)로 즐긴다. 아페리티프는 저녁 식사 전에 마시거나, 칵테일 대신으로 또는 파티에서 마시는 와인이란 의미로 입맛을 돋우고, 분위기를 가볍고 즐겁게 만들기 위해 레드와인보다 화이트와인을 선호한다. 또한 날씨가 더울 때는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 와인을 즐겨 찾는데, 레드 와인보다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고, 차게 마시는 것을 정석으로 하기 때문이다. 얼음과 물을 채운 통에 20∼30분간 담가 적당히 시원하게 마시면 화이트 와인의 청량감을 느끼기에 좋다는 것을 유념해두면 더욱 상쾌하게 즐길 수 있다. 한국주류수입협회 와인총괄 부회장 (금양인터내셔널 상무)
  • 한나라지도부 ‘경선관리’ 시험대에

    한나라지도부 ‘경선관리’ 시험대에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간의 불꽃튀는 검증전이 전개되는 가운데 당 지도부의 입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날에 이어 한선교·유정복 의원 등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은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여론몰이’에 나섰다. 반면 이 전 시장측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방송사들의 출연 요청까지 거절하며 일단 자제모드로 들어갔다. 이에 따라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후보검증론 파장에서 지도력을 시험받게 됐다. 대선주자간 공방이 격화될 경우 계파간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데다 자칫 여권에 공세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와 이 전 서울시장의 검증대결을 당내 경선준비기구 등 당 공식기구로 끌어오지 못한다면 지도부의 능력이 크게 훼손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박 전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강 대표는 당 대선주자 ‘사전검증’ 논란과 관련해 “검증은 당이 주도적으로 하겠다.”며 제동을 걸며 적극 나서고 있다. 강 전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선 후보 선출 방식, 시기 등과 함께 검증 방법도 다음 달 초 출범하는 경선준비위원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라며 “후보자들이 직접 검증을 하는 것보다는 당이 하는 게 옳지 않냐.”며 박 전 대표 측의 ‘직접 검증’ 주장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특히 강 대표는 이달 초 신문소설 ‘강안남자’와 관련한 성적 농담으로 구설수에 올랐다가 개헌논의 반대를 당론으로 이끌어 내면서 위상을 회복하는 중에 또다른 고비를 맞게 됐다. 양 대선주자간 검증대결을 당 공식기구로 끌어오는 지도력을 발휘한다면 대선 정국을 진두 지휘하는 명실상부한 당 대표로서의 위상을 보장받게 된다. 하지만 검증 대결 무대를 당내로 옮겨오지 못하면 자격론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여성&남성] “검열은 없다” 남녀 화장실 낙서문화

    화장실은 철저한 ‘나만의 공간’이다. 어떤 행동을 해도 그 행동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화장실에서만큼은 사회적인 체면 따위는 휴지통에 버리고 가장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 된다. 특히 화장실 벽은 이런 인간 본능의 가장 원초적인 낙서판이다. 화장실 낙서가 인터넷 시대를 맞아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분출하는 공간이다. 여자와 남자, 화장실에서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이들의 낙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 남- ”포복때 팔에 양말 대라” ●스토리 갖춘 ‘야설’에 낯뜨거운 그림까지 자영업자 조모(51)씨는 화장실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낙서로 ‘야설(야한이야기)’을 꼽았다. 공중화장실에서 많이 발견되는 야설은 대부분 일기 형식의 경험담으로 시작해 소설처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과 같은 스토리라인을 갖추고 있는 예가 많다. “별의별 희한하고도 야한 낙서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비슷한 이야기라도 심심하니까 또 읽게 되죠. 그런 걸 보면 화장실에 연필을 들고 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궁금증이 일어요.” 또 난삽한 그림 낙서도 많고 화장실 문에 ‘뒤를 보시오.’라고 써놓아서 뒤를 돌아 보면 ‘뭘봐.XX야.’라고 써놓는 황당한 장난 낙서도 자주 눈에 띈다. 회사원 홍모(31)씨에게도 중학교 시절 야간 고등학교 선배들이 화장실에 연재식으로 써둔 ‘야설’이 가장 인상적인 낙서였다. 당시 최고의 인기가도를 달리던 ‘청순가련형’ 여자 탤런트를 주인공으로 한 야설은 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던 홍씨의 눈길을 휘어잡았다. “‘연재 야설’을 보기 위해 늘 같은 화장실 방을 찾아 다니기도 했죠. 삽화까지 포함된 야설은 당시 학교에서 최고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홍씨 역시 “여자 화장실에도 ‘동성애’와 같은 야한 이야기들이 많이들 써져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무원 선모(31)씨 역시 남자 화장실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낙서는 야한 그림이라고 했다.‘W,X,Y’식의 영문 이니셜을 조합해둔 조잡한 그림이나 나체 그림 등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선씨는 “남자들만 그렇지 여자 화장실에는 오히려 야한 낙서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군대엔 사회생활 미련 담은 글 많아 화장실 낙서에서 유익한 경험을 배우고 교훈을 얻었다는 남성들도 있다. 대학생 이모(21)씨는 가끔 화장실에 가서 낙서를 읽다 보면 자신도 낙서를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씨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군대시절 훈련소 화장실에 씌어 있던 낙서였다. 이미 훈련소를 거쳐간 선임병들이 ‘각개전투할 때 팔꿈치에 양말을 대고 나가면 피부가 안 벗겨져 좋다.’,‘완전군장 제대로 안해도 되니까 페트병 같은 걸 넣어서 무게를 줄여라.’,‘훈련소에서 잘해봤자 별 거 없다. 상점 많이 받아봐야 전화밖에 못하니 대충 요령 펴라.’는 등으로 써놓은 낙서는 이씨에게 주옥 같은 글이었다.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내용과 사회생활에 대한 미련을 담은 글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동기들밖에 없는 훈련소에선 선임병들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죠.”이씨는 “여자들은 아마 친구들에게 마음 상했던 이야기나 말 못할 내용 등의 험담을 화장실에 낙서로 풀어 놓을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원 정모(30)씨의 기억에 가장 인상 깊었던 낙서는 소변기 앞에 적혀 있던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글이었다. 정씨는 이 글을 보고 한차례 크게 웃은 뒤부터는 소변기에 바짝 붙어서 일을 본다. 정씨가 생각하는 여자 화장실 낙서는 ‘쇼핑 이야기’다.“여자들은 쇼핑을 워낙 좋아하니 ‘어제 뭘 어디서 샀는데 정말 싸고 좋더라.’,‘그 가게 절대 가지 마라. 바가지 씌운다.’는 식의 글이 적혀 있을 것 같아요.” ●장기기증, 성매매 전화번호까지 불법 난무 군무원 석모(25)씨는 공중화장실 낙서만 보면 인상을 찌푸린다. 장기기증 소개 글과 전화번호, 나이트클럽 종업원 전화번호, 성매매 전화번호, 산부인과 낙태알선 등 온갖 불법적인 낙서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소속 부대 화장실에다가 ‘낙서게시판’을 만들어 뒀다. “게시판과 펜을 준비해 뒀더니 야한 글보다는 부대원들이 힘들거나 짜증나는 일들을 써놓는 스트레스 해소 장소 역할을 하더군요.”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여- “딴 남자한테 눈이 가요” ●“상담 원하면 연락해라” 전화번호 남기기도 김모(25·프리랜서)씨가 나온 여대는 화장실에 낙서가 많기로 소문난 대학이었다. 화장실에는 남자 친구가 있지만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간다는 등 남자 친구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는 낙서가 많았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고민에 대한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그렇게 필기도구들을 챙기는지, 밑에 화살표 표시를 달아서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더라고요. 그런 남자 친구 따위는 버려도 괜찮다, 더 깊은 상담을 원하면 전화하라며 자기 전화번호까지 남겨 놓는 사람도 있었어요. 거의 동네 사랑방 수준이었죠.” 김씨는 자신은 낙서를 하지 않았지만, 그런 화장실 댓글들이 공감이 많이 가서 한참을 보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아무리 익명이라지만, 나만의 내밀한 고민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곳에, 그것도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화장실에다 써놓고 싶진 않단다. “주위를 보면 낙서는 대개 남들에게도 말 못할 고민을 털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던데, 나는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도 친한 친구에게 털어 놓습니다.” 이모(23·대학생)씨는 재치 넘치는 화장실 낙서에 대해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직접 화장실 낙서를 써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남의 쓴 낙서를 보는 건 즐기는데, 막상 내가 나서서 뭔가를 써봐야겠다는 용기는 안 나더라고요.” 오히려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애용한다. 인터넷 공간에 비밀글로 설정해 두고 혼자만 본다. 싸이월드 다이어리가 조씨에겐 혼자만의 낙서장인 것이다. 남자 화장실에 대해서는 “남자들은 화장실에서 담배를 많이 핀다고 들었다. 낙서할 시간이 없지 않을까.”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심한 욕설도 용서되는 일종의 탈출구 신모(26·회사원)씨는 화장실 낙서가 갑갑한 일상생활에 대한 탈출구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오늘도 이 XX가 지랄하네.’등 선생님에 대한 욕설이 많았고, 대학교 때는 ‘누구랑 섹스했네.’,‘그놈 거시기 크네.’등 저질스러운 것들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인생이 사실극처럼 갇혀 있는 것 같을 때 이런 낙서들을 남기는 것은 심한 게 아니면 면죄부가 되는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런 낙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모(26·회사원)씨는 어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들른 고등학교 시험장에서 다양한 화장실 낙서들을 목격했다. 남자학교에서 시험을 보던 날, 우연히 본 남자화장실의 적나라한 낙서에 깜짝 놀랐다.‘나 누구랑 잤다.’,‘어제 애인이랑 XX했다.’등 진한 성 관련 농담들에 눈이 둥그레졌다. 남자화장실에 비하면 여자학교 화장실의 낙서 수준은 ‘○○이 죽어랏!’ 등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들을 험담하는 내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익명이다 보니 사람들이 구애되는 것 없이 편하게 욕도 하고 그러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예전보다는 낙서가 많이 줄었다. 아무래도 인터넷이나 컴퓨터가 발달하다 보니 펜으로 하는 작업이 줄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취업준비생들의 처절한 고민이 그대로 조모(25·고시준비생)씨는 얼마 전까지 노량진에 있는 고시학원을 다녔는데 학원 화장실을 보면 그곳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힘들다.”,“전공과목 점수가 너무 안 나와서 고민이다.” 등 다가올 시험에 대한 초조감과 긴장감이 낙서에 고스란히 배어난단다. 또 수험생이 많다 보니까 가끔씩 ‘까칠한’ 낙서도 나온다. 어떤 사람이 화장실에다 “화장실 좀 깨끗히 쓰세요.”란 낙서를 해놨는데, 누가 그 밑에다 “‘깨끗히’가 아니라 ‘깨끗이’인데요. 맞춤법 좀 제대로 쓰세요.”란 글을 써놓아서 좀 살벌했던 적이 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안녕하셔요] 「스타」 윤정희(尹靜姬)

    [안녕하셔요] 「스타」 윤정희(尹靜姬)

    『올핸 봄이 생략된 것 같아요. 늦추위가 그토록 맹랑하더니 어느틈에 폭양이 쨍쨍- 』「톱·스타」윤정희양의 한가한 한 때. 「팬티·수트」차림이 여름을 한아름 안고 왔다. 노출면적이 지나쳤다고 느꼈는지 조금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카메라」앞에서도 좀처럼 벗지 않기로 유명한 그녀지만 『집에 돌아오면 이렇게 훌쩍 벗어버리는게 홀가분하다』고. - 오늘은 촬영이 없는지… 『학교에 다녀왔어요. 매주 화요일엔 학교에 나가요』 중앙대(中央大) 대학원생인 윤양은 1주일에 하루씩은 학생이 된다. 매주 화요일 아침 9시부터 하오 1시까지. 급한 촬영이 아니면 화요일 하루는 배우 아닌 학생기분으로 강의실에 나간단다. - 학교생활에는 잘 어울려지는지… 『동료들과 낯이 익었으니까요. 처음엔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 와있는 것 같아 퍽 어색하고 서먹서먹 했어요. 지금은 농담을 주고 받을만큼 친숙해 졌어요』 - 학교와 영화 어느쪽이 더 즐거운지… 『영화는 일이란 생각에서 하고 학교는 자신을 위해 공부한다는 보람을 맛보기 위해 다니고 있어요. 두가지 다 중요하지만 즐겁기는 학교쪽이에요. 강의시간도 나에게는 쉬는 시간같이 기분전환이 되거든요』 윤양이 우석대(友石大)를 졸업하고 국내배우중 처음으로 대학원에 들어가자 한편에서는 『윤정희가 멀지않아 영화계를 떠나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소문이 나돌았었다. 「스타」의 주변에는 언제나 화제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도미(渡美)·은퇴(隱退)」 소문은 확실히 성급한 「뉴스」(?) 였다. 『영화배우가 되기 전엔 대학교수가 제일 되고싶은 직업이었어요. 그러나 지금단계로서는 영화가 전부인걸요. 미국유학은 하고싶다는 생각뿐이지 구체적인 복안이 있는건 아녜요. 발표할 계제도 아니고- 』 - 작품수를 줄인다는 소문이던데… (이 질문에는 잠시 침묵. 눈을 깜박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작품 가지고 서로 쟁탈전을 벌이는것같은 인상을 일반에게 주고 있는데 그럴수록 연기자에겐 손해인것 같아요. 숫자만 많으면 뭘 해요. 진짜 작품다운 영화에서 연기다운 연기를 해야죠』 윤정희·문희(文姬)·남정임(南貞姙) 세「스타」가 한동안 벌였던 배역쟁탈전을 두고 하는말 같다. 한때 50~60만원선으로 올랐던 세 배우의 출연료가 최하 30만원까지 떨어지기도. 그러나 작품수를 줄였다는 윤정희양의 지금 출연영화가 자그마치 23편. - 그렇게 많은 영화에서 번돈을 모두 어디에 쓰는지… 『소비가 크니까 벌기가 바쁘게 없어져요. 의상, 유지비 빼고 3분의 1쯤 저축될까요?』 현재 윤정희양에게서 월급을 받고 있는 사람이 운전사, 「스케줄·맨」, 뒷시중드는 여인까지 모두 5명. 최소한 15만원이 지출된다. 이밖에는 동생 4남매가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국민학교에 차례로. 그래서 벌인 「치킨·센터」『희의 집』이 번창일로라는게 윤양의 자랑이다. 윤양의 어머니 박여사는 얼마전 서울 명(明)동 번화가에 제2의 『희의 집』을 차리려다가 계획을 변경, 대한극장앞 현재의 자리에서 2배로 늘려 신장개업했다. 영화쪽 보다 통닭집 수입이 『오히려 실속 있다』고 자랑할 정도. 그러나 치부(致富)에 관한 한 윤양의 욕심은 그리 크지 않다. 『돈은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잖아요?』 - 지금 걱정되는건… 『동생(미애(美愛)·스튜어디스)가 병원에 있어요. 가벼운 병이니까 걱정될건 없지만- 』 [선데이서울 70년 5월 17일호 제3권 20호 통권 제 85호]
  • 강재섭대표 ‘성적 농담’ 사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5일 자신의 ‘성적 농담’ 논란과 관련, 대변인을 통해 공개 사과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강 대표가 경위를 불문하고 적절하지 못한 표현으로 물의를 빚은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나 대변인은 브리핑 후 기자들과 만나 “전날 간담회 공식 인사가 끝난 뒤 테이블에 앉은 몇몇 사람들과 사적인 얘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황우여 사무총장이 현 정부의 언론탄압 문제를 지적하면서 문화일보의 ‘강안남자’ 얘기를 꺼내 이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한 얘기였다.”면서 “그러나 이 문제로 물의가 빚어져 유감을 표시하게 된 것”이라고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나 민노당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당내에선 크게 문제삼지 않는 분위가였으나, 일각에선 강 대표가 신중하지 못한 농담을 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포르노 보는 고릴라!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포르노 보는 고릴라!

    서울대공원에 가면 포르노를 보는 고릴라가 있다. 시답잖은 B급 농담처럼 들릴지 몰라도 사실이다. 물론 고릴라 스스로 ‘야동’을 찾아 인터넷을 헤맨다든지 직접 VTR의 버튼을 누르진 않더라도 보긴 본다. 대공원의 할아버지 로랜드 고릴라 ‘고리롱’(♂·1969년생)의 이야기다. ●구애작전에도 돌부처 같은 고리롱 사실 야동 보는 고릴라 이야기 뒤엔 새끼를 얻기 위한 사육사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숨어 있다. 한번 수입하는데 10억원을 호가하는 몸값으로 서울대공원에서도 가장 비싼 로랜드 고릴라는 씨가 귀한 순서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동물이다.4년에 한번 새끼를 배는 데다 세계적으로도 500여마리밖에 없어 짝짓기 상대를 찾기도 어렵다. 새끼 한 마리만 낳더라도 말 그대로 ‘대박’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고리롱과 고리나(♀·1978년생) 암수 한 쌍이 살고 있다. 하지만 ‘임을 봐야 뽕을 따는 법’. 사육사들이 맺어준 연으로 둘은 이미 지난 2000년 여름 야외방사장에 신혼살림을 차렸지만 아직 ‘속궁합’을 맞춰 보지 못한 상태다.“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저 데면데면하기만 하더라고요.”담당사육사의 말이다. 사육사들은 ‘돌부처’ 같은 수컷 고리롱에게 원인이 있다고 본다. 함께 동거한 지 한달이 지나자 암컷 고리나는 나뭇가지를 머리에 꽂고 몸을 부비는 등 고리롱에게 육탄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그때마다 큰 눈을 껌뻑이며 먼산만 쳐다보는 고리롱의 모습에 동물원 사람들의 속은 까맣게 타버렸다. 그렇게 2년이 넘어 나란히 팔베개를 하고 자는 사이까지 발전했지만 여전히 짝짓기하는 광경은 발견되지 않았다. ●정자은행에 마지막 기대 결국 비장의 카드로 등장한 것이 동물 포르노라고 불리는 ‘짝짓기 비디오’다. 영장류의 경우 짝짓기 하는 모습을 보면 성욕을 느낀다는 학설에 따라 어렵사리 고릴라의 짝짓기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구해 상영하게 된 것이다. 대공원 관계자는 “처음엔 교미소리에 뚫어져라 쳐다보긴 했지만 그냥 거기까지….”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비아그라를 써보자는 내부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알려진 것 외에도 동물에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아이디어로 그쳤다. 대공원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거는 것은 정자은행이다. 고리롱이 죽으면 정자를 채취해 암컷 고리나의 난자에 체외수정한 후 자궁에 착상시키는 방법이다. 서울대공원 홍보팀 강형욱 팀장은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르지만 새해에는 좋은 소식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져주기로 하고 둔 바둑은 없다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져주기로 하고 둔 바둑은 없다

    총보(1∼170) 이 바둑은 11월13일에 두어졌다. 그런데 김효곤 4단은 그 다음날 입대 예정이었다.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부대에 배치될 것을 감안하면 이 바둑을 이기더라도 그 다음 판을 둘 수 있을 확률이 거의 없다. 따라서 승부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료기사들은 이 바둑에 대해서 “김효곤 4단이 져주기로 하고 뒀지.”하고 진동규 3단에게 농담을 건네곤 한다. 어쩌면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프로기사들 중에는 승부에서 일부러 져주는 프로기사는 한명도 없다. 혹시 대국 전에는 그런 마음을 먹었더라도 막상 대국에 임하게 되면 절대로 져주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프로기사이다. 즉 바둑에 전념하는 순간에는 바둑수 이외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즉 져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 바둑에서도 김효곤 4단은 초반 포석에서 약간 우세하게 앞서 나갔다. 흑59라는 패착을 두기 전까지만 해도 바둑은 흑이 유리했다. 그러나 한수의 패착으로 우변에서 쫄딱 망하면서 순식간에 형세는 뒤바뀌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김효곤 4단은 끊임없이 승부수를 날렸다. 흑103의 붙임부터 좌하귀 백 대마를 노리는 수를 두고 흑109,119로 우하귀 백 대마를 노리며 재역전을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결국 재역전에 성공하지 못하고 차이가 점점 벌어지자 돌을 거두고 만 것이다. 아마 진동규 3단도 초반 형세가 불리했을 때보다, 유리해진 다음에 더 긴장했을 것이다. 자신이 역전을 시키며 크게 앞서 나가고 있지만 이런 바둑을 재역전당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바둑에 대해서 진동규 3단에게 물었을 때 주위의 동료기사들이 “져주기로 하고 둔 것 맞지?”하고 묻자, 진 3단은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아마도 그 웃음의 의미는 “내가 이 바둑을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라는 것만 같았다. 승리한 진 3단에게 축하를 보내며, 김효곤 4단은 군복무 잘 하고 바둑계에 성공적으로 복귀하기를 바란다. 170수 끝, 백 불계승 (제한시간 각 10분, 초읽기 40초 3회, 덤 6집반) 유승엽 withbdk@naver.com
  • [EBS플러스1]

    07:00 겨울방학특강 과학08:40 고1 예비과정 영어, 수학10:20 겨울방학특강(재) 문학, 비문학, 영어영문독해112:50 겨울방학특강(재) 수학, 사회, 영어영문독해215:20 겨울방학특강(재) 과학, 국어, 영어17:00 고1 예비과정(재) 영어18:00 고1 예비과정(재) 수학19:00 고1 예비과정(재) 문학   ●진실게임(SBS 오후 8시55분) 24세 엔돌핀 동생과 60세 흰머리의 미소천사 형은 36세 차의 돼지띠 형제. 신통방통 시원한 점괘가 술술 풀리는, 돼지 신 내린 일월돈신.50㎏ 뺀 돼지총각.12세로 최연소 카이스트 입학자인 똘똘이. 카리스마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협객 등 화제의 돼지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놀라운 돼지띠, 진짜를 찾아본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송씨는 경선에게 양평의 땅문서를 주지 않았느냐며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세영은 땅문서가 어디 있는지 반드시 찾아내겠다며, 찾는다면 경선과 반씩 나눠 갖겠다고 농담한다. 같은 시각, 건우는 서경과의 비밀 보금자리인 양평 별장에 도착해 요리를 하며 서경을 기다린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중국에서 결혼 비용도 500만원 정도 비싼 서양 결혼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중국 칭다오에선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야외결혼식을 치른다. 드레스부터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당하는 예식 산업과 회사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중국의 달라진 예식문화, 서구화의 또 따른 면을 보여준다.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귀농을 하고 나서 선웅이에게 동생이 둘이나 생겼다. 바로 이웃집의 민재와 서연 남매. 이 두 귀여운 남매는 학교 갔다 오는 선웅이를 항상 마중 나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정도로 이젠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평소와 다른 길로 선웅이를 데리러 가던 우경씨가 그만 길을 잃고 마는데….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늘 같은 옷에 같은 헤어스타일, 개성 없고 딱딱해 보이는 내 남편의 이미지. 당당하고 멋진 남편을 만들기 위해 주부들이 나선다. 같은 정장도 더 멋지게 입는 방법이 있다. 얼굴형과 체형에 맞는 와이셔츠 고르는 법부터 넥타이 코디법, 그리고 액세서리 활용법까지 멋쟁이 남편 만드는 비법을 공개한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나라 이익 되는 사법개혁안 정치권이 발목 잡아서야…”

    “나라 이익 되는 사법개혁안 정치권이 발목 잡아서야…”

    “정치권이 사학법 개정과 연계해 국회에 계류중인 사법개혁안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와 국가의 이익이 되는 중요한 사안을 정치권이 이해관계로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습니까.” 27일로 2년간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하는 한승헌(72) 위원장은 26일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의 지연 처리와 관련해 정치권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못내 서운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개추위는 그동안 25개의 사법개혁법안을 만들어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했고, 장기과제 8건에 대해서는 정책자료로 다듬어 정부에 넘겼다.”면서 “여야가 로스쿨 법안에 합의해 놓고도 다음날 사학법과 연계하겠다며 이를 깬 뒤 8개월여 동안 손 한번 대지 않은 것은 무책임한 처사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심의를 중단한 상태에서 반대 의견을 내고, 또 태스크포스(TF)팀을 새로 구성하겠다고 밝힌 것은 시일을 더 끌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로스쿨 법안 등 몇몇 법안의 경우 처음부터 시행 시기를 못박고 추진했던 것은 그만큼 사안이 시급했기 때문”이라면서 “처리 지연으로 인한 국민의 불이익 내지 피해는 매우 크고 심각하게 번질 염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로스쿨 도입에 따른 부작용이 거론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일본은 입학 문호는 넓혀 놓고 졸업하는 문을 좁혀 놓는 바람에 변호사 합격률이 절반을 넘지 못하면서 법조인 양성에 문제점을 드러냈다.”면서 “우리의 경우 입학문과 졸업문을 비슷하게 하고, 장학금 제도 등을 적절히 활용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사개추위 활동을 접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는데, 노 대통령이 사개추위에도 애프터 서비스(AS)가 있는 게 아니냐는 농담을 했었다.”고 소개하고 “사개추위 활동은 공식적으로 접더라도 사법개혁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법원과 검찰 갈등에 대해서는 “양쪽 다 침묵하는 것이 좋다.”면서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이 패배해서야 되겠느냐.”면서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언론도 싸움을 붙이지 말고 침묵하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기자들로부터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의 지명에 대한 평가를 요구받고는 “다들 무난하다고 하지 않느냐.”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노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대해서는 “유감스럽다.”면서 짤막하게 언급했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2006년 10월, 국제 100세인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90세 이상 노인의 장수비결이 발표되었다. 규칙적인 하루 세 끼 식사와 충분한 수면. 즉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장수의 핵심요소였다. 우리 생활 속의 가장 기본적인 건강요소인 쾌식, 쾌면, 쾌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건강법인 ‘삼쾌’의 비밀을 알아본다.   ●레드 코드(EBS 오후 11시55분) 15A팀은 고양이를 구하려고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 줄에 매달린 소년 필리포를 극적으로 구출한다. 간질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는 필리포. 그를 보고 파우스토는 어머니의 가출과 알코올 중독이던 아버지가 만취 상태에서 자동차 사고로 숨져 고아원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사랑도 미움도(SBS 오전 8시30분) 아파트 공원에서 정희는 재혁에게 우리 관계는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적절한 관계를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에 재혁은 충격을 받고 이내 농담식으로 자신의 관계가 이제까지 부적절한 관계였냐고 말한다. 정희가 집으로 돌아간 사이 재혁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두커니 공원벤치에 앉아 있는다.   ●얼마나 좋길래(MBC 오후 7시45분) 만복은 필두를 찾아와 눈물로 사과를 하는데, 투병으로 초췌해진 필두를 보고는 기가 막히다. 필두는 만복의 죄를 선주가 다 갚았다며 봐주겠다고 한다. 만복은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선주를 바라본다. 한편 검찰 직원들의 손에 붙들려 잡혀가던 만복은 동수에게 선주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사무실에서 영농일지를 쓰는 타이거 박. 꼼꼼하게 정리하는 그의 모습에서 과거 냉철한 분석력을 자랑했음을 알 수 있다. 농사에 관련된 책을 독파하며 필리핀에서 농사를 위해 애쓰고 있다. 드넓은 논을 바라보며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그의 표정이 심오하다. 그런데 너무 무리를 한 탓인지 감기에 걸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커피와 함께 에티오피아의 대표 작물인 카트. 이곳 경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카트 생산에 여성은 물론 어린이까지 종사한다. 카트 잎을 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집중력도 올라가나, 장기간 복용하면 정신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 유럽국가에서 카트는 금지 목록에 올랐다.
  • 지구촌 지도자들의 2006년 말…말…말…

    지구촌 지도자들의 2006년 말…말…말…

    이번 송년 술자리에서 단연코 화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격정적으로 쏟아낸 ‘말’이다.“노무현만 왜 그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올해도 전 지구촌 지도자들이 ‘할 말은 한다.’는 신념으로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진한 텍사스 사투리와 잦은 ‘말실수’로 유명한 대통령이다. 구글에서 ‘부시(Bush)’,‘인용(quote)’이라는 검색어만 쳐도 그의 엉터리 어법을 가리킨 신조어인 ‘부시즘(Bushism)’ 목록과 ‘멍청한(dumb) 부시’라는 사이트가 줄줄이 따라 나온다. 올해의 부시 어록에 기록될 만한 레토릭(修辭·수사)은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털어놓은 말. 부시 대통령은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의 말을 인용,“(이라크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처음 시인했다. 불과 열흘 전인 8일에만 해도 그는 집요하게 묻는 출입기자들에게 “이라크 상황이 나쁘다. 이제 됐소?(It’s bad in Iraq.That help?)”라고 퉁명스러운 감정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7월 G-8 정상회담에선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를 ‘어이, 블레어(Yo,Blair)’로 불러 영국민의 분노를 샀다. 앞서 2월엔 총기 오발사고를 낸 딕 체니 부통령을 향해 “내 유일한 지지자를 쐈다.”고 농담해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 중 압권은 2005년 9월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미국민의 비난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내뱉은 한마디. 당시 연방재난관리청장이던 마이클 브라운에게 “브라우니,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라는 천지를 분간못한 엉뚱한 칭찬을 했다. 이 말로 부시는 지지도가 팍 떨어지는 위기를 겪었다. ●취임연설 가장 긴 美대통령은 해리슨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말 많았던 대통령은 누구일까. 미 역대 대통령의 각종 기록을 공개한 ‘미 대통령 연구(www.presidency.ucsb.edu)’ 사이트에 따르면 제9대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의 취임 연설이 가장 길었다. 사용된 단어수는 무려 8500자. 다음은 27대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으로 5000단어가 넘었다. 미 대통령 대부분은 취임 연설에서 2000단어 안팎을 말했다. 레임덕 현상으로 상징되듯 부시 대통령도 집권 후반기를 맞아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1년 취임 연설 분량은 2000단어가 되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단어수는 3875자. 지난 1월 연두교서에는 5433단어가 쓰여 대폭 길어졌다. 또 두 시기 동안 주로 쓴 단어도 ‘아메리카, 시큐리티(안보), 테러, 굿(good)’ 등에서 ‘세계, 국민, 경제, 자유’ 등으로 변화가 왔다. ●아마디네자드·차베스 ‘독설´ 유명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독설가’로 유명하다. 두 대통령 모두 올 한해 동안 부시 대통령과 ‘맞짱을 뜬´ 지도자라는 확고부동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 9월 미국의 홈그라운드인 뉴욕의 유엔총회 연설을 시작하며 “악마(부시 대통령)가 어제 여기에 다녀갔다. 아직도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5월에는 “부시는 (그의) 목장에서 입이나 다물고 있어라.”라고 한 데 이어 이라크 전쟁 3주년을 맞은 3월엔 ‘겁쟁이, 얼간이, 술고래’라고 부시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부시 대통령을 ‘전 세계의 통치자’로 조롱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북한인권’ 부부싸움?

    “사안에 대해 보는 관점이 다르면 부부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선 정정당당하게 논쟁해야죠.” 지난 19일 기독교사회책임이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국가인권위 북한인권입장표명 적절한가’를 주제로 연 포럼에서 부부사이인 서경석 목사와 신혜수 국가인권위원이 북한인권 문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이들이 공식 석상에 함께 나와 논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혜수 위원은 21일 “북한인권에 관한 인권위의 입장이 잘못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 참석했다.”면서 “서 목사가 남편이란 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보는 관점이 달라 각자의 의견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집중 토론했다. 대표적 보수단체로 알려진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서경석 목사는 “인권위는 정부가 북한인권 개선에 나서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 인권위가 지난 11일 ‘북한인권은 인권위 조사 대상이 아니다.’고 발표한 것은 빈약한 결론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신 위원은 “인권위법과 남북한 특수 상황을 고려하면 속시원한 답변을 내놓을 수 없었다. 현실적인 한계와 인권위의 고심은 알려지지 않은채 일부분만 부각됐다.”고 반박했다. 신 위원은 “사람들은 둘 사이의 특수관계를 재미있어 하던데 이 자리에서 부부라는 것은 논쟁에서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인권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인권위의 입장을 바로 알리기 위해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그날 이후 서로 ‘내가 이겼다.’는 농담을 주고 받기는 했다. 남편이 나보다 보수적이어서 사안에 대해 종종 논쟁을 벌인다.”면서 “서로 생각을 존중하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사소통을 해 사회 갈등을 풀어가는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인권위에서 북한인권특위 위원으로 활동한 신 위원은 지난해 3월부터 인권위원회의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위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대선주자 24시] (4) 박근혜 前한나라당 대표

    [대선주자 24시] (4) 박근혜 前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내년 대선에서도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보여줬던 ‘박풍(朴風·박근혜 바람)’을 다시 한번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그의 자신감은 ‘살인 일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하루 일정에서 감지된다. 이같은 ‘철인 일정’은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 등을 통해 박 전 대표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지만, 박 전 대표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우선 지치지 않는 그의 체력에 놀란다.20·21일 이틀 동안 무려 춘천 속초 원주 옥천 등지의 14곳을 돌아다녔다. 이동하는 박 전 대표의 체어맨 차량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간이 램프였다. 달리는 차안에서도 끊임없이 강연 자료를 소화해내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 돼 버렸다고 한다. 빡빡한 일정 탓에 “좋아하는 테니스를 요즘에는 잘 치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지만 아직 조카 세현이의 선물조차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21일 아침 10시55분 충북 옥천읍 교동리 고(故)육영수 여사 생가 복원 현장을 살피기 위해 나선 박 전 대표는 분홍색 터틀넥 스웨터와 재킷차림으로 환영나온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피곤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괜찮아요.”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전날 6시간 정도 잠을 잔 박 전 대표에게는 피로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생가를 찾은 까닭인지 박 전 대표의 모습은 생기있어 보였다. 그는 “부모님과 여름 휴가 뒤 자주 외가에 왔었다.”며 “어머니가 사실 때보다 연못이 반으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공사진척 상황에 관심을 보였다. 이날 외가에서 박 전 대표는 사실상의 대선출정식을 가졌다. 박 전 대표는 어머니 생가를 찾은 정치적 의미를 묻는 질문에 “충북을 오게 되면 당연히 방문하게 되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당대표 선거를 위한 출정식 전에도 찾았던 이곳에서 그는 “부모님이 (박 전 대표가) 젊었을 때 흉탄에 숨지시고 임종도 못해 죽을 때까지 사무치는 그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할 일을 하고 국민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부모님께 대한 효심이다.”며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박 전 대표는 특히 열린우리당측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겨냥해 제기한 ‘박정희 흉내내기’ 논란을 염두에 둔 듯 “아버지의 이미지를 닮는다는 이야기가 보도됐는데 아버지의 겉을 닮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마음을 닮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에서 “갖고 계셨던 국가관 역사관 안보관 사심없이 나라에 봉사했던 마음을 닮는 것이 진정으로 닮는 것이고 중요하다. 얼마나 닮았는가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여론조사상의 지지율에는 애써 초연한 모습이었다. 각종 조사에서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과의 지지율 격차에 관한 질문에는 “또 물어보세요.”라고 반문한 뒤 “내일 또 물어보세요.”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 측근은 1년이라는 시간이 남은 시점에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빠진 당을 구했던 용기와 함께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어우러져 나오는 여유라고 전한다. 측근들은 박 전 대표가 지난 6개월 동안 ‘국정운영’을 위한 많은 공부를 해왔다고 한다. 지지율보다는 국정운영의 바른 틀을 세우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해서다. 이틀간의 동행 취재에 나서는 동안 박 전 대표가 가는 곳마다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들과 사진을 함께 찍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목격됐다.‘예쁘다’는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20일 속초 활어시장에서 서민들이 건네주는 소주도 거침없이 마셨다. 초고추장을 찍은 골뱅이를 마다하지 않고 먹고 난 뒤 목장갑으로 손을 닦고 다시 인사에 나서기도 했다. 스킨십을 강화해 ‘얼음 공주’이기보다는 누구나 가까이 하고 싶은 ‘국민 누나’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라는 듯한 행보였다. 전날 찾아간 강원도의 한 부대에서는 떠나기 전 장병들에게 일일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장병들을 격려하며 “제대 후에는 인기짱이 될 것”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친밀하게 다가서려 했다. 옥천·속초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길섶에서] 잊고 싶은 기억/황성기 논설위원

    학교 때 친구나 옛 동료들을 만나는 일이 잦은 연말이다. 마흔다섯에 늦장가 든 고교 동창생 집에 송년회를 겸한 집들이를 갔다. 신랑의 발바닥을 친다거나 하는 못된 짓은 기력이 떨어져 친구들이 엄두를 못낸다. 정성스레 차린 안주에 술을 나누며 옛날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신부 앞에서 짓궂은 농담도 곁들이는 게 집들이라건만 나이 든 신부 앞이라 근질거리는 입을 오물거릴 뿐 덕담만 나눈다. 그러나 동창이란 나이가 얼마나 들건 타임머신을 타고 깔깔거리며 즐거웠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이이고 그게 인정 아닌가. 술이 몇 순배 돌았을까. 둑방 터지듯 친구들은 기어코 신랑이 신부에게 고백하지 못한 사건들을 경쟁적으로 꺼낸다. 잊었거나 잊고 싶은 과거의 행적이나 별명에 얽힌 신랑의 몰랐던 사연들이 줄줄이 술상에 오른다. 이튿날 새벽 4시에나 파한 집들이의 설거지도 큰 일이었겠지만 조각조각 드러난 옛 일들의 뒤처리를 친구가 어떻게 했을지. 술이 깨고서 걱정했던 것은 필자만이 아니었을 터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13) 다운증후군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13) 다운증후군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프랑스 영화 ‘제8요일’에서 다운증후군을 앓던 주인공 조르주는 마침내 날개를 달고 뛰어내려 ‘천사의 죽음’을 택한다. 그임죽음이 자신의 의지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장면으로 기억된다. 정신박약의 일종인 다운증후군은 우리나라에도 흔한 질병이다. 실눈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지고, 코는 납작하며, 입이 작고 혀가 입 밖으로 비죽이 밀려나오는 특징을 보인다. 또 머리가 납작하고, 눈과 눈 사이가 멀며, 짧은 손가락은 안으로 자꾸 말린다. 경희의료원 성형외과 양원용(대한성형외과학회 차기회장) 교수는 지능장애 때문에 흔히 백치로도 불리는 이런 다운증후군의 증상을 이렇게 설명한다.“평균 지능지수가 50 안팎으로, 침착성이 없고, 호기심이 강하며, 아무나 잘 따릅니다. 또 엉뚱한 흉내와 농담으로 주위의 시선을 끌기도 합니다. 선천성 심장판막증과 발육장애 등 매우 특이한 용모와 증상을 가진 질환입니다.” 정확한 국내 통계는 없으나 일반적인 유병률은 신생아 600∼700명당 한 명꼴로 태어난다. 주로 고령(35세 이상)의 초산부에게서 태어날 확률이 높다. 서양에서는 이 병을 가진 아이의 눈꼬리가 몽골인과 닮았다고 해서 ‘몽고증’이라고도 부른다. 양 교수는 최근의 고령임신 경향으로 다운증후군 유병률이 높아질 것을 경계한다.“신생아 700명당 1명꼴로 태어나므로 정상인이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산모가 고령일수록 이런 아기를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며, 남성의 나이가 50을 넘어서 아이를 가질 경우에도 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가진 젊은 임신부가 늘고 있어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원인은 염색체 이상이다. 다운증후군 환자는 정상인보다 1개가 많은 47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유전질환으로, 어머니가 관련 인자를 가진 경우에는 15%, 아버지가 가진 경우에는 4% 확률로 나타나며 특히 어머니의 21번 염색체에 이상이 있으면 아이는 100%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아이가 47개의 염색체를 가졌다면 그 다음 아기도 1%의 확률로 이 병을 갖게 되며, 염색체 수는 정상이나 위치가 바뀐 전위의 경우에는 그 가능성이 8%로 높아집니다.” 따라서 임신부는 적극적으로 태아 염색체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염색체 전위라면 부부가 지체없이 염색체 검사를 받아야 한다.“모든 임신부가 다운증후군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진단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혈청검사, 초음파검사와 융모막검사로 임신 12주 이내에 얼마든지 진단이 가능합니다.” 양 교수는 다운증후군이 다른 선천성 기형에 비해 발생 빈도가 높은데도 이들에 대한 교육 및 재활시설이 태부족한 현실을 개탄했다.“그뿐이 아닙니다. 사회적 인식과 이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 등이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겪는 불편과 고통과 클 수밖에 없지요.” 선천성 질환이어서 치료는 환자가 갖고 태어난 신체적 증상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안면 성형이나 혀 절제술 등이 그것이다. 제한적이지만 이런 치료를 통해 환자들의 적극적인 사회 복귀와 정상적인 생활을 돕는다. 큰 혀를 항상 내밀고 생활하는 경우에는 혀의 일부를 절제함으로써 여기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해결한다. 혀를 내민 환자는 대부분 공명장애 때문에 발음이 어눌하며, 편도선과 아데노이드 염증질환이 잦고, 심하게 코를 골기도 한다. 또 충치가 심하고 턱이 불균형성장을 하게 되는데,3∼4세 무렵에 혀 절제술을 시향하면 이런 문제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안면 성형은 다양하게 이뤄진다. 발육 부진으로 코가 납작한 환자는 양 눈 사이가 더 멀어보이고 눈 안쪽에 주름이 잡히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코뿌리를 높여 해결한다. 또 눈썹이 안쪽으로 나 각막을 찌르거나 발육 부진으로 광대뼈가 평평한 경우, 목에 지나치게 많은 지방이 축적된 경우, 변형된 귀와 힘없이 처진 아랫입술도 수술치료가 필요하다. “물론 이전 특성을 가졌다고 다 수술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술 기술이 발전해 흉터 등의 부담이 없을뿐더러 환자의 용모나 인상을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 이상으로 큽니다. 그러나 지능이 너무 낮아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없는 환자라면 수술을 받아도 실제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더러는 수술이 무의미할 정도로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없지 않고요.” 수술 시기는 일반적으로 취학 전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혀 절제술은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인 3∼4세 무렵에 해주는 게 좋다.“적기에 수술을 하면 환자가 자신의 용모나 신체 기능에 자신을 가져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이 연령대를 지나친 환자의 수술 치료가 어렵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제든 환자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수술치료가 가능하지요.” 아직 정책적 지원이 흡족한 수준은 아니다. 얼마 전 혀 절제술이 보험 대상이라는 판례가 나왔다. 이에 따라 혀 절제술 환자는 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심장재단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의 수술치료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양 교수는 이런 당부로 말을 맺었다.“전 세계에서 이스라엘 다운증후군 아동들의 사회 적응력이 가장 높습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이 자식들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고 헌신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운증후군 아동들도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떳떳이 자립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더 따뜻해야 하고, 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을 껴안아야 합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광양 가야산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광양 가야산

    그 지명에서부터 따뜻함이 느껴지는 전라남도 광양(光陽)은 ‘밝은 햇살’이란 뜻의 ‘희양’을 거쳐 고려 태조 23년부터 오늘날까지 ‘볕이 잘 들고 환한’ 고장으로 제 소임을 다하고 있다.3월 초순이면 다압면 일대를 새하얗게 수놓는 절정의 매화 천국, 백계산 6000여 동백림 속 옥룡사터, 뼈를 이롭게 한다는 고로쇠 수액 채취의 원조 등등 남녘의 작은 도시는 새해가 되기 전부터 이미 봄 맞을 채비로 분주하다. 백운산과 호남기맥에 묻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정작 광양시 중심권역에 들어선 산은 호남정맥의 핏줄로 똘똘 뭉친 가야산(497.3m)이다. 시민들에겐 쉼터를, 바윗꾼들에겐 암벽등반 장소 제공을 척척 해내는 곳으로, 정상에 서면 광양만 및 여수 산업단지 일대와 지리산 주능선 조망이 가능하다. 산악인의 탐험정신을 자극할 등산로는 아니지만 가야산에도 제법 많은 산길이 열려 있다. 정상을 기준점으로 했을 때 금광블루빌에서 3.9㎞, 적벽 코스는 1.8㎞, 동백쉼터 코스 1.2㎞, 제2주차장에서 체육공원을 거치는 길은 4.1㎞, 가야터널∼장수약수터 코스는 2.1㎞이다. 하산시간을 넉넉히 잡아도 어디서든 4시간을 넘지 않는다. 가야산 초입에서 정상까지는 상당히 가파른 편이어서 백두산이나 한라산처럼 덩치가 큰 산을 오를 때 예행연습 장소로 쓰이곤 한다. 농담처럼 “가야산까지 한 번도 안 쉬고 올라갈 체력이면 전국 어느 산이든 가능”하다는 게 광양 산꾼들의 설명. 평일인데도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데 집안일을 끝낸 주부는 물론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직원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비가 잘 된 등산로 급경사엔 안전밧줄과 계단이 설치됐다. 제1주차장에서 적벽까지는 0.8㎞에 불과하지만 중간에 휴식이라도 취했다면 30분쯤 잡아야 한다. 철계단을 밟고 적벽에 올라서니 등 뒤에 두고 오르느라 미처 보지 못한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적벽 정상엔 1999년 캉첸중가(8586m) 등반 중 사망한 고 한도규 대원의 넋을 기린 케른이 있어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이곳에서 가야산 정상은 0.6㎞이지만 일단 적벽에서 내려와 암장 일대를 우회하는 코스를 택하는 게 좋다. 가야산 정상에서 0.47㎞를 내려서면 작은 가야산인데, 그냥 밋밋한 능선에 가까워 그 이름이 다소 무안할 정도다. 이곳부터 가야터널까진 1.13㎞이고 제2주차장은 1.93㎞ 떨어져 있다. 작은 가야산을 6분쯤 내려와 오른쪽 길로 방향을 튼다. 동백쉼터로 가는 길로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과 밝은 가로등까지 세워져 있다. 식수도 구할 수 있는데 산행 전 미리 물통을 채우고, 이곳에선 가볍게 목을 축이는 정도가 좋을 듯싶다. 마지막 숲을 나서자 처음 육교를 건너 마주했던 이정표가 반갑게 손을 내민다. 이정표 왼쪽 길로 산행을 시작해 오른쪽 길로 하산한 셈.GPS 기록을 보니 이리저리 걸었던 길이 고작 3.63㎞에 불과하다. 산행 시간은 충분한 휴식을 포함, 3시간 안쪽이다. # 여행 정보 광양만에 450만평 규모로 세워진 광양제철소 견학은 평일의 경우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가능하지만 주로 단체 관람에 한하며 약 1시간 30분쯤 걸린다. 가족 단위의 개인일 경우 일요일 오전 10시에만 가능하다. 견학 희망일 기준, 최소 3일 전까지 인터넷(www.posco.co.kr)으로 예약하면 신청인의 이메일 주소로 견학 가능 여부를 알려준다. 개인의 경우 견학 시간은 40분이다. 자세한 사항은 광양제철소 홍보팀(061-790-2442)으로 문의한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MOUNTAIN 기자)
  • [사설] 교수 철밥통 깨야 마땅하다

    교수로 임용되기만 하면 연구 실적이 있건 없건, 강의를 제대로 하건 말건 승진과 정년이 보장돼 온 교수사회의 ‘철밥통’ 관행에 슬슬 금이 가는 모양이다. 교수신문이 전국 주요대학 15곳을 조사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사립대학의 교수 승진심사에서 탈락한 이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탈락률이 아주대에서는 70.8%, 연세대 57.7%, 성균관대 45.2%에 이르렀다. 교수가 승진심사에서 한차례 탈락했다고 바로 퇴출당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연세대·성균관대 등 일부 대학은 일정기간에 승진하지 못하면 교수직을 박탈하는 ‘직급정년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승진 탈락률이 12.1%인 한양대와 27%인 경희대 등을 비롯한 많은 대학들도 이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무능·불성실한 교수를 대학사회에서 솎아내는 제도적 장치는 갈수록 정밀하게 작동하리라고 우리는 기대한다. 교수직 철밥통이 깨져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울대 기초교육원이 올 1학기 교양 과목을 들은 학생들을 상대로 받은 강의평가 결과를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시간강사의 강의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반면 교수직의 강의는 최하위로 꼽혔다. 강의를 조교에게 떠맡기거나 농담까지도 매학기 똑같이 하는 교수들의 행태가 적잖게 지적됐다. 교수 철밥통은 마땅히 사라져야 할 폐습(弊習)이다. 대학 당국이 철밥통 깨기에 적극 나서야 하지만 그에 앞서 교수들 스스로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 [HAPPY KOREA] 강원지역 4곳 주민활동 탐방

    [HAPPY KOREA] 강원지역 4곳 주민활동 탐방

    과거를 답습하면 미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농촌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농촌이 변화하려면 일거리의 ‘양’을 늘리거나, 생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인 ‘질’을 높여야 한다. 그 밑거름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이다. 이같은 변화의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강원도 산골마을들을 찾았다. ■ “농한기 따로 없어요” “농한기가 뭐이래요?” 겨울은 한가한 농한기가 아니냐는 질문에 순박함이 물씬 풍기는 강원도 사투리로 농담반, 진담반 이렇게 되묻는다.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용탄2리 달뜨락마을 주민들과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 펜션마을 주민들의 겨울은 농번기 이상으로 바빴다. ●달뜨락마을 주민, 영농자금 ‘소 닭 보듯’ 달뜨락마을은 몇 해 전만 해도 이맘때가 마땅한 할 일이 없는 농한기였다. 마을 주민들의 소득원 가운데 80%는 콩이다. 콩은 5∼6월에 파종해 9월이면 수확이 끝나기 때문에 10월부터 이듬해 이른 봄까지는 별다른 일거리가 없었다. 해발 1500m가 넘는 가리왕산 자락에 위치한 산촌마을이라, 겨울철에는 땔감을 구하러 산을 오르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달뜨락’이라는 상표를 만든 뒤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고철호 당시 이장은 “일반적으로 농촌은 농번기 6개월은 일하고, 농한기 6개월은 쉰다.”면서 “농한기에 술에 빠지거나 씀씀이가 커지게 마련이라, 일거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수확한 콩으로 11∼12월에 메주를 쑨다.2월에는 메주로 간장과 된장 등 장류를 담근다. 메주와 장류는 마을 공동생산·판매시설에서 달뜨락이라는 상표로 판매되며, 수익금은 주민들이 일한 만큼 나눠 갖는다. 예전에는 콩 80㎏ 1가마를 내다팔아 20만원 정도를 버는 데 만족했다. 하지만 지금은 콩 1가마를 메주로 팔면 60만원, 장으로 판매하면 90만원으로 각각 소득을 높일 수 있다는 비결을 터득했다. 농사일이 한가해지는 여름철에는 도시민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 매년 5000명 정도가 마을을 찾는다. 마을 근처에는 국내 두 번째로 매장량이 많은 정선탄전이 있다.80년대에는 달뜨락마을을 포함한 인근 5개 마을에 3000명 가까이 살았지만, 탄전이 폐광된 현재 주민 수는 채 1000명도 안 된다. 유독 달뜨락마을은 최근 10가구 30명가량 늘었다. 농한기, 농번기 구분이 사라진 덕분이다. 고씨는 “우리 마을에 배정되는 연간 1억원의 영농자금을 예전에는 서로 빌리겠다고 다툼이 일었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 남는다.”면서 “마을의 소득이 높아지면서 돈을 빌려가라고 먼저 제안하는 금융기관도 있지만, 오히려 주민들이 관심조차 갖지 않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달뜨락마을 주민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 마을 공동기금을 활용해 ‘생약초체험관’을 짓고 있다. 지천에 널려있는 황기, 더덕, 도라지 등 약초와 산나물을 새로운 소득원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펜션마을 주민,“시골에서 농사만 지어야 하나요?” 흥정계곡을 끼고 6㎞ 구간에 길다랗게 위치한 흥정리 펜션마을은 옥수수와 감자, 배추 등이 주산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 122가구 가운데 ‘손에 흙을 묻히지 않는’ 농가가 전체의 40%가 넘는 49가구다. 더이상 농사 지을 힘이 없는 노령층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40세 미만 젊은층이 전체 주민의 절반에 육박한다. 산골짜기와 계곡 사이사이에 농업기반 시설을 늘리는 노력 대신, 흥정계곡이라는 자연자원과 연계한 펜션 등 체험관광시설을 확충하는 데 주력한 결과다. 현재 마을에는 모두 80여개 펜션이 자리잡고 있다. 모양과 형태도 제각각이어서 전국적으로 손에 꼽히는 펜션단지로 자리잡고 있다. 하룻밤에 600여 가족이 동시에 머물 수 있다 보니, 지난해 방문객만 17만명에 이른다. 김형일 이장은 “주민들의 평균 소득은 연간 2000만원 안팎이지만, 상위 20%의 소득은 5000만원 이상”이라면서 “상위 소득자들은 농업과 펜션을 겸업해 사계절 쉬지 않고 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주민간 소득격차가 심해지고 있어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정선·평창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부가가치 높였어요” “부가가치를 높여야죠.” 인구와 소득 감소로 신음하는 우리 농촌의 살 길은 없느냐는 질문에 대답은 의외로 명쾌하고 간결했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삽교1리 산채마을 주민들과 홍천군 화촌면 외삼포2리 산초울마을 주민들이 몸으로 실천하는 농촌의 나아갈 방향을 들여다봤다. ●산채마을 주민,30~40대 평균소득 7000만~8000만원 산채마을은 당초 해발 700m 고지에 자리잡은 화전민 마을이었다.60∼70년대 정부의 화전민 이주정책으로 250가구 1500명이던 주민 수는 37가구 110명으로 급감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은 주민들이었다. 주민 수는 줄었지만, 고랭지 배추와 감자 등을 재배했던 농지는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것. 지금은 농가당 경지면적이 평균 2만∼3만평에 달해 주민 모두가 ‘만석꾼’인 기업농 형태가 됐다. 1999년부터는 마을 공동으로 산채작목반을 구성, 산나물을 심기 시작했다. 마을 주변 산에서 생산되는 나물만 취나물과 곤드레 등 13종에 이른다. 더덕과 꿀, 오미자 등 철마다 생산되는 농산물이 수십종에 달할 만큼 생산품이 다양해졌다. 감학석 당시 이장은 “농촌도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면서 “주민들끼리 협의를 통해 품목별 생산량을 자율 조정하기 때문에 가격이 폭락해 울상 짓는 일도 줄어들었다.”고 강조했다. 마을이 명성을 얻고 체험시설을 갖추자, 방문객도 증가했다.1999년 당시 한 명도 찾지 않던 이곳에 지난해는 1만명이 다녀갔다. 김씨는 “방문객이 늘면서 직거래가 가능해져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윈-윈’이 가능해졌다.”면서 “특히 산나물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태기산채영농조합’에서 적정 가격으로 일괄수매하기 때문에 중간도매상들이 가격을 낮추고 폭리는 취하는 횡포도 차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평균 소득은 3000만원 안팎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균등 분배하는 체험마을 운영수익 등 가구당 500만원 정도의 농업외소득도 포함돼 있다. 특히 30∼40대 젊은층의 평균 소득은 7000만∼8000만원을 웃돈다. 마을 땅의 30% 정도를 외지인이 사들였을 정도로 여느 농촌의 ‘팔리지 않는 땅’과도 거리가 멀다. 김씨는 “마을의 발전된 모습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면서 “하지만 마을이 바뀌기까지 주민들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배워가야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발전 방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초울마을 주민,“생산은 필수, 가공도 필수” 산초울마을은 지난 3월 마을 공동으로 발아현미 작업장을 건립했다. 발아현미는 영양소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발아과정에서 유익한 효소도 생성되기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로 떠오르고 있다. 발아현미는 현재 전국적으로 10여곳에서만 생산된다. 농민 입장에서는 굳이 생산물을 바꾸지 않아도 소득을 끌어올리는 수단이 된다. 일반쌀은 80㎏ 한 가마당 16만원 선이지만, 친환경재배를 통해 현미로 팔면 24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현미를 발아시키면 가격은 70만원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주민 최철수씨는 “앞으로는 발아현미를 이용한 가공식품에 대해서도 연구할 계획”이라면서 “다만 판로 확보에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외부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초울마을은 갈수록 늘어나는 노인층과 휴경 농지를 각각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묘안’도 짜냈다. 주민 330명 가운데 3분의1 정도인 65세 이상 노인들이 공동으로 휴경 농지를 경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섭 노인회장은 “농사를 안 지으면 농지도 흉물이다.”면서 “수익금은 노인회 운영기금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 횡성·홍천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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